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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이라마 한국비자 신청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종교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지난 16일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다고 세계종교지도자대회 준비위원회(위원장 연기영)가 18일 밝혔다. 준비위에 따르면 달라이라마의 방한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지관 스님)와 김대중도서관(관장 류상영)의 초청으로 추진돼왔으며, 달라이라마가 한국행 비자를 신청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달라이 라마 중국귀국 47년만에 성사 가능성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망명 생활 반세기 만에 다음달 중 중국으로 귀국할 가능성이 크다고 11일 홍콩 빈과일보가 영국 인디펜던트지를 인용, 보도했다.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 소식통은 달라이 라마가 이르면 오는 5월 중국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예샤오원(葉小文) 중국 국가종교사무국장은 이달 초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 투쟁을 완전히 포기할 경우 중국 방문을 허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이와 관련,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티베트 망명정부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해외 거주 티베트인들이 후 주석 방미 기간에 일체의 반대 및 항의 활동을 열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해외 거주 티베트인들은 중국 지도자들이 해외를 순방할 때마다 현지 중국대사관 등 주변에서 티베트 독립 구호를 외치며 항의활동을 벌여왔다. 중국과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들은 지난 2월 중국에서 협상을 갖고 티베트 자치확대 허용 등 방안을 논의하고 상당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이 허용될 경우 달라이 라마는 지난 59년 망명길에 나선 지 47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이 티베트에 진주한 지 9년 만인 59년 3월 티베트 라싸(拉薩)에서 발생한 폭동을 중국이 무력진압하자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차리고 유랑생활을 해왔다.홍콩 연합뉴스
  •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열 살 안팎의 일곱 아이들이 눈 덮인 히말라야를 넘고 있다. 티베트의 수도 라사를 출발해 히말라야를 넘는 대장정. 해발 6000m의 설원은 춥고 가파르고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고산증으로 입술이 퉁퉁 부어오르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이 앞을 막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이 검은 거인처럼 이들을 위협하면 아이들은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은 ‘인간의 한계 도전’을 내걸고 히말라야를 찾는 산악인도 아니고, 고산 트레킹을 즐기는 모험가도 아니다. 빼앗긴 땅 티베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다름아닌 피란민이다. 지배자인 중국의 압제로부터, 배고픔으로부터,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아이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이래 해마다 3000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이렇게 고향을 떠나 히말라야를 넘는다. 그중엔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망명하는 승려들이 가장 많고, 가난 대신 희망의 미래를 꿈꾸며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는 아이들도 1000명이나 된다.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유영미 옮김, 지식의 숲 펴냄)은 히말라야를 넘어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가는 일곱 아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의 눈물겨운 현실을 들려 준다. 다람살라는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곳이다. 저자는 지난 2000년 4월 15일부터 14일간 아이들을 동행 취재하며 그들의 눈물과 희망을 생생한 다큐멘터리(독일 ZDF 방송)로 담아낸데 이어 이를 책으로 엮었다. 아이들은 왜 부모를 등지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가. 열살 소녀 리틀 페마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오줌을 싼다. 자상한 아버지에서, 언제부터인가 알코올중독자가 된 아버지의 폭력은, 꿈에서까지 아이를 공포에 질리게 한다. 젊었을 적 낡은 엽총만으로 중국군과 싸워 살아남은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페마의 엄마는 자유가 있고, 폭력이 없는 곳으로 딸을 보내기로 했다. 여섯살 돌커와 열살의 치메 자매는 가난과 학교 때문에 히말라야를 넘는다. 엄마가 밤새 만든 손가방과 양탄자, 앞치마 등을 팔아서 번 돈을 모았지만 비싼 학비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 돈둡(8)은 의사의 아들로, 마을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2학년부터는 중국인 선생님에게 중국어로 수업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돈둡의 부모는 아들이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돈둡을 인도로 보낸다. 가이드 니마가 이들을 인솔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히말라야 설원을 넘는 일은 목숨을 건 탈출이다. 거기다 중국 공안의 눈도 피해야 한다. 아이들은 무거운 짐에 어깨를 짓눌린 채 졸린 눈을 비비며 어둠속을 헤쳐 나간다. ‘너무 추워. 보이는 건 눈뿐이야. 엄마는 내 신발이 푹 젖어 발이 얼마나 아픈지 알고 계실까?엄마가 로사(티베트의 설)에 인도로 날 찾아오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해야지’. 쓰러질듯 힘든 여정속에서 페마는 이렇게 엄마를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가족곁을 떠난 셋째날 밤, 여섯살 난 어린 동생 돌커를 잘 돌봐 주라던 엄마의 당부 때문에 정작 자신의 힘겨움은 까맣게 잊고 있던 치메는 동생이 잠들자 마자 눈물을 쏟는다.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길은 가파르고 커다란 바위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지요. 멀리 8000m 봉우리들이 검은 거인처럼 우뚝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어요. 너무 두려웠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높은 산, 가파른 길과 싸웠어요. 엉엉 울면서요.” 살얼음이 언 강을 건너고, 눈 지대를 지나 국경에 다다른 아이들은 드디어 ‘자유’를 외친다.1만 3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달라이 라마 평전/질 반 그라스도르프 지음

    달라이 라마.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21세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티베트의 정치·종교 지도자다. 지난 198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면서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제 전세계 평화의 상징이자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국내에도 달라이 라마에 관한 책이 50여권이나 출간됐을 정도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풀어썼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자서전이나 대담, 강연집도 나와있다. 세계적인 티베트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질 반 그라스도르프가 10여년에 걸쳐 완성한 ‘달라이 라마 평전’(백선희 옮김, 아침이슬 펴냄)은 ‘그 정치적 미스터리와 영적 카리스마의 비밀’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티베트의 정치적·종교적 현실을 냉정한 시각으로 풀어 기존 책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저자는 10여년간 달라이 라마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직접 만나고, 방대한 자료조사와 치밀한 탐구를 통해 티베트의 특수한 역사·종교·정치적 상황을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짜냈다. 그동안 티베트 안팎과 달라이 라마를 둘러싸고 벌어진 수많은 미스터리들을 긴박하게 파헤친다. 전세계에 미치는 도덕적 영향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달라이 라마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미스터리에 둘러싸여 있다. 그의 권력 승계에 있어 주변 가족들의 몫은 무엇인가?그의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티베트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상징적인 존재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떤가?그는 자연사했는가 살해당했는가?어린 신의 주위에서 놀아난 섭정들의 물질적 탐욕과 한 섭정의 성적 유희가 ‘세계의 지붕’인 티베트를 망친 원인인가? 중국첩보국과 CIA는 이 ‘설국’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었는가? 다람살라 망명정부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결코 인정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티베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드러나지 않은 많은 정보들과 인물들, 특히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을 통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한 문명과 한 나라의 미래를 자문하게 한다.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의 죽음부터 2003년까지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특별한 개인을 추앙하고 미화한 전기가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그가 속한 나라, 민족, 문화의 느린 임종을 증언하는 가슴 아픈 평전이다.14대 달라이 라마가 가장 고심하는 것도 티베트 문화의 보존이라고 한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를 찾고 난민을 돕기 위해 애쓰는 것도 티베트가 ‘세상의 안식처´로, 혹은 티베트인들이 자부하듯 ‘이 땅의 배꼽’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 아닐까. 티베트의 아픈 역사와 치부를 긴박한 리듬으로 세세하게 증언함으로써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1만 5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만해대상 평화부문에 달라이라마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조계종 법장 총무원장)가 제정하고 백담사 만해마을이 주관하는 제9회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티베트의 망명정부 수반이자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선정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제9회 만해대상 평화부문에 달라이라마를, 문학부문에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시인인 소잉카(전 노벨상 수상자), 실천부문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 학술부문에 가산불교연구원장 지관 스님을 각각 선정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시상식은 8월12일 오전 11시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있을 예정이다.
  • [월드 이슈-中·印 갈등씻고 손잡나] 23억 ‘친디아’ 팍스아메리카나 맞선다

    [월드 이슈-中·印 갈등씻고 손잡나] 23억 ‘친디아’ 팍스아메리카나 맞선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친디아(CHINDIA·중국과 인도의 합성어)’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62년 국경분쟁 이후 43년간 앙숙으로 지낸 양국이 지난 11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만모한 싱 인도 총리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항공, 교육, 과학기술, 관광, 문화교류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전방위적인 협력에 착수한 것이다. 인구 23억(중국 13억, 인도 10억)의 두 아시아 거인이 약속대로 손을 맞잡을 경우, 아시아 지역안보와 국제무역 환경에 큰 변화가 일 전망이다. ●중국, 인도 앞세워 미국의 포위전략 돌파 두 나라의 화해로 ‘아시아 안보 지형’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중국 입장에서 인도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은 시시각각 조여왔던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의 일각을 돌파했다는 의미가 적지 않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중앙아시아, 인도 등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서부지역에 대한 포위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 군사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 당시 인도와의 군사협력 강화를 약속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방관계인 인도에 대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가상 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향후 미국과 인도는 미사일 방어체계(MD)를 비롯한 안보분야는 물론 첨단기술 및 경제·에너지분야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인도에 F-16 전투기와 패트리엇 미사일 방어체계,PC-3 해상 초계기 등의 첨단무기 판매를 결정했다고 중국 관영 주간 ‘세계보(世界報)’ 최근호가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은 인도와의 최대 걸림돌인 국경분쟁의 정치적 해결이란 원칙에 합의하면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일대 타격을 준 것이다. 적어도 중국은 인도를 친미 국가로 기울지 않게 했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팍스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세계지배)’에 맞선 ‘다극화 전략’에 시동을 걸었다. ●美 아시아 전략에 일대 타격 베이징 우주항공대학 국제전략연구소 장원무(張文木) 교수는 “중동 페르시아만과 말라카 해협 사이에 위치한 인도는 전략적 요충지”라며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인도 역시 강한 압력를 느끼고 있어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여지는 많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중국의 당근전략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중·인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은 인도가 유엔과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며 인도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인도의 소프트웨어와 중국의 하드웨어를 마치 파고다(탑)를 쌓듯이 결합시키면 두 나라는 ‘아시아의 세기’를 열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양국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기초작업에 착수했고 지난해 137억달러였던 양국의 교역액을 2010년까지 300억달러로 확대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콩 아주시보(亞州時報)는 두 나라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경분쟁 ▲중·인·미 삼각관계 등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의 줄타기 외교 인도 역시 미·중간 파워게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줄타기 외교’를 시작했다. 아시아 대국을 꿈꾸는 인도는 일본과 싱가포르 등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동진(東進) 전략’을 추진 중이다. 지난 40여년간의 폐쇄경제에 종지부를 찍고 매년 6% 안팎의 경제성장을 지속,2050년 ‘라이벌 중국’을 따라잡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도가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지만 동맹관계까지 발전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과 아시아 패권을 다투는 일본도 최근 인도와의 관계개선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카말 나스 인도 통상장관은 13일 “최근 인도와 일본의 교역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일본의 대인도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이에 화답하듯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이달 말 인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일본 총리의 인도 방문은 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은 지난해 전체 ODA(공적개발원조)의 24%인 11억 4000만달러를 인도에 제공하며 인도에서의 시장확대를 노려 왔다. 인도는 중국과 미국의 ‘파워게임’을 활용하고 중국 역시 인도를 앞세워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을 견제하겠다는 ‘3인 4각의 전략 외교’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oilman@seoul.co.kr ■ 양국 경제협력의 미래 중국과 인도의 전략적 접근이 가속화되고 있는 분야는 경제분야다.11일 뉴델리서 발표된 ‘델리 선언’을 구체화해 나가기 위한 후속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두 나라는 우선 오는 10월 이전에 경제무역 및 과학기술 공동위원회 개최를 위한 실무준비에 착수했다. 과학기술과 금융시스템 분야에서 별도의 협력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정보 교환, 인적 교류 등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한 발 앞선 인도의 정보통신기술(IT)과 금융·서비스업 분야의 노하우 전수를 희망하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인도 방문 후 처음 찾은 곳이 실리콘밸리인 방갈로르인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원 총리는 이 자리에서 “중국의 하드웨어와 인도의 소프트웨어를 합치면 세계 IT업계를 석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항공우주·생명공학 분야도 시너지효과 기대 원자력, 항공우주, 생명공학 등에서도 양국은 서로 주고 받을 것을 찾으면서 ‘동반 상승’을 꾀하고 있다. 기술 이전과 관련, 선진국들의 견제를 받고 있는 동병상련 입장에서 서로 연합을 통해 기술을 교류하고 시장을 공유해 이같은 봉쇄를 뚫겠다는 전략이다. 과학기술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술합작지도 위원회의 발족과 올해내 상호 첨단기술교류회의 개최 등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가시화되는 에너지 및 자원 협력도 대표적인 협력 분야다. 양국은 일단 원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에너지 및 자원 협력 등 공동 대처의 발판을 놓았다는 평가다. 국제 석유시장에서 원유확보를 위한 입찰경쟁 자제 및 해외유전 공동개발 등에 의견접근을 봤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금까지 원유 공급량의 각각 40%와 70%를 해외에 의존하는 중국과 인도는 국제 석유시장에서 입찰경쟁을 벌이다 가격상승 부담 증가란 자충수를 둬 왔다. ●2008년까지 교역액 200억弗로 확대 인도의 마니 샨카르 아이야르 석유장관은 지난 2월 “중국과 인도의 경쟁으로 다른 나라들의 배만 불려왔다.”며 양국간 협조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고 중국측의 호응도 받았었다. 중국 3대 철강회사 가운데 하나인 중국 우한철강의 경우 주 수입원인 호주 BHP사가 철강석 가격을 올리자 인도로 수입원을 다원화할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같은 흐름과 맥이 통한다. 인도는 이와 함께 쌀, 포도 등 농작물의 중국 수출길도 열었다. 두 나라의 지난해 교역액은 137억달러. 전년보다 79%나 늘었다. 지난 1991년 2억 6400만달러에 비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교역액을 2008년까지 200억달러로 늘리겠다는 것이 두 나라의 목표다. 양국간 무역액이 연간 200억달러인 인도·미국간의 무역액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中·印 갈등의 역사는 국제사회에서 앙숙으로 알려진 중국과 인도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그리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1950년대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로운 관계를 이어온 두 나라가 총부리를 들이대게 된 것은 국경분쟁 때문이었다. 현재 양국이 분쟁 중인 지역은 서쪽 카슈미르 일부인 악사이친과 동쪽 아루나찰 프라데시이다. 악사이친의 히말라야산 국경을 두고 1962년 10월 발발한 양국 전쟁은 40여일 만에 중국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고 중국은 인도가 점유했던 악사이친을 빼앗아 버렸다. ●1962년 국경분쟁이후 앙숙관계 악사이친은 현재 중국의 자치주인 신장(新疆)과 티베트를 잇는 고속도로가 나있는 전략 요충지이다. 중국은 아루나찰 프라데시도 점령했지만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리적인 문제점과 국제적 비난 등을 고려해 곧 철수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선조가 현재 중국의 자치주인 티베트에서 왔다는 점 등을 들어 아직까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영국, 인도 식민지배가 분쟁의 씨앗 두 나라간 국경 분쟁의 씨앗을 뿌린 당사자는 영국이었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은 티베트와 접한 인도의 북방 국경선을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인도가 독립을 하고 중국이 1950년 티베트를 자치주로 강제 편입시키면서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1950년대까지는 외교적으로 무마되는 듯 보였지만, 산발적 총격전이 일어나다 1962년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전쟁은 또 다른 갈등을 불러왔다.‘인도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기록된 전쟁 패배 이후 인도는 핵무기 개발 등 전격적인 국방력 증대에 나섰으며 중국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인도의 숙적 파키스탄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지원했다. ●티베트 문제가 또 다른 갈등 불러 티베트 문제도 두 나라가 충돌을 거듭해온 부분이다. 인도는 중국으로부터의 티베트 독립을 외치는 달라이 라마가 1959년 봉기에 실패하자 자국 내 다름살라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게 해주었다.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편입됨에 따라 사라져 버린 중국과의 지리적 완충지대를 복원하도록 지원한다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양국은 가장 큰 쟁점인 국경 문제의 경우 1962년 전쟁 이후에 설정된 ‘실질적 국경선(LAC)’은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지난 10여년 간 실무협상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합리적 해결’을 대전제로 구체적인 타협안을 이끌어낼 것으로 전망된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동업할 때 친구에게 빌려준 돈 친구 파산땐 떼일 가능성 높아

    Q 직장을 2000년에 그만두고 친구와 동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자금을 조달하고 친구는 영업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6개월도 안 되어 동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저는 추후에 지분을 돌려받기로 하고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경영이 어려워져 보증인으로서 제 집이 압류를 당했고 세금도 2000만원이 넘습니다. 약 2년간 이자명목으로 일정금액을 받긴 했지만 동업자는 2년 전부터는 전혀 채무를 갚지 않고 있어 현재 빚이 1억원을 넘습니다. 동업자는 재산이 전혀 없는 상태로 월세를 살고 있습니다. 벌어서 갚겠다고 말은 하지만 변제능력이 의심스럽습니다. 요즘 개인 파산이 쉽게 이루어진다고 하니, 만약 이 친구가 파산신청을 하게 될 경우 저는 제 의사와 관계 없이 채권을 떼이는 것인가요. -한호영(43)- A 이론상 채무자가 돈이 없다며 빚을 갚지 않을 때 채권자는 소송을 내서 채무명의를 얻어 강제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집행을 할 재산이 있을 경우에 효과가 있는 것이지, 재산이 없을 적에는 법원이 이것을 명하는 서류는 휴지이고, 채권이라는 것은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되는 것입니다. 즉 채권의 가치는 채무자의 재산에 의존합니다. 동업자는 변제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고대에는 빚을 못 갚는 채무자를 노예로 만들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불과 100여년 전까지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채무자가 자신의 장래 노동력을 담보로 빚을 얻고 이행하지 못할 때 채무노예가 되는 방식입니다. 현대의 법은 이와 같은 강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채무자가 가진 재산으로만 채무를 갚고 나머지는 면제하는 방식을 인정하는데 이것이 파산입니다. 노예제도의 부인이지요. 물론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을 해서 갚는 방식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니까(명예롭고 도덕적인 길입니다), 그 가능성을 기대하고 재산을 투자하고 빌려주는 것도 자유로운 영역에 속합니다. 그런데, 명예나 도덕은 그것에 그칠 뿐 강제로 이것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국가기능을 벗어납니다. 도덕이나 명예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강요할 수 없습니다.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는 빚에 몰렸을 때 이것을 떨구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것이 파산입니다. 일종의 보험입니다. 채권자로서는 항상 채무자가 재산이 떨어졌을 때 파산이라는 보험을 타 먹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채권자는 스스로 담보, 보증과 같은 위험 회피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채무자의 파산 위험에 대해서는,“안됐지만 할 수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파산·개인회생 전문 변호사)
  • [국제플러스] 달라이라마 “티베트 독립 포기할수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69)가 “티베트의 문화와 정신·환경을 보호해 준다면 독립을 포기하고 중국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4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가진 회견에서 “나는 분리독립에 찬성하지 않으며 티베트 현대화를 원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달라이 라마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티베트의 주권과 주장을 포기, 중국의 일부가 되고 싶다.”며 “그 결과로 중국 경제발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이자 자치구라고 규정한 뒤 “티베트의 문화와 불교도 중국 문화의 일부”라고 덧붙였다. 달라이 라마의 이같은 발언은 정치·경제·외교 문제에는 자치를 추진하지 않되 종교와 문화에는 자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인도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와 중국과의 협상이 촉진돼 달라이 라마의 망명생활이 청산될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망명정부내 강·온파의 대립을 야기할 가능성도 크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티베트 독립 봉기가 실패하자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 [데스크시각] TV를 끄는 이유/김성호 문화부장

    ‘바보상자’ ‘만능상자’.TV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비유하는 대칭적인 말일 것이다. 전자가 TV에 매달려 수동적인 정보전달에 빠지는 행태를 겨냥해 붙인 말이라면, 후자는 일상의 전지전능한 혜택 차원에서 미화한 비유일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대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일상에서 TV와 큰 상관관계를 갖고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TV 권력’이란 말까지 생겨났을까. 실제로 TV가 얼마만큼 일상생활을 구속하는지는 각종 자료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하루 3시간23분을 TV앞에서 보낸다. 일주일에 하루를 TV를 보면서 지낸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전국의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일 지상파 TV시청시간은 평균 2시간22분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같은 통계를 종합하면 우리의 TV시청시간은 최소 하루 평균 3시간 정도이며 하루 8시간의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사실상 1년에 68일을 TV앞에서 보내는 셈이다. 이같은 통계와 함께 이런저런 TV의 부작용도 덧붙여진다. 가족과 세상을 단절시키는가 하면 반복되는 시청으로 인한 중독증을 낳는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의 경우 언어장애와 시력저하, 비만 등 질병을 가져오고 수동적인 행동습관까지 낳는다고 한다. 넘쳐나는 저질 오락프로그램의 만연과 일방적인 보도 관행은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기적으로 TV를 보는 사람들은 인간의 속성이 악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고 세상이 더욱 각박해짐을 느끼게 된다.”고 TV의 해악을 지적한 바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가톨릭다이제스트 등 단체와 회원 가족들이 지난 18일 ‘TV 안 보기 시민모임’ 창립총회를 가졌다.5월 어린이주간과 9월 독서주간에 범국민적인 TV 안 보기 운동을 벌일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한다. 모임을 주도하는 숙명여대 서영숙 교수는 “TV 안 보기 운동을 확산해 건강한 가정문화와 건전한 여가시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라고 모임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TV 안 보기 운동’은 새삼스러운 집단행동이 아니다. 지난 1993년 ‘TV를 끕시다’ 캠페인을 벌인 YMCA는 방향을 바꿔 ‘TV 바로보기 운동’을 펼치고 있고 인터넷 온라인 상에서도 ‘TV를 끄면 삶이 살아난다’는 슬로건 아래 네티즌들의 TV 안 보기 클럽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문제는 단지 TV를 끄거나 안 보는 것으로 TV의 ‘해악’이 근절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발족한 ‘TV 안 보기 시민모임’이 모델로 삼은 미국의 ‘TV 끄기 연대’도 지난 94년부터 TV 안 보기 운동을 벌여오고 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닐스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여전히 미국 가정에서는 하루 평균 7시간40분 TV가 켜져있고 1명이 하루평균 4시간을 시청한다고 한다. 나라가 곤경에 처했을 때 이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이 애국자는 아닐 것이다. 좋은 TV프로그램을 선별해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과감하게 거부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미국 ‘TV 끄기 연대’의 프랭크 베스피 총재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일들은 하기 힘들고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하지만 TV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문제는 선택과 주체적인 시청 태도이다. 수동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시청자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김성호 문화부장 kimus@seoul.co.kr
  • 달라이 라마 내년 한국방문 이뤄질까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이 이뤄질 수 있을까. 전남 여수 석천사 주지인 진옥 스님이 달라이 라마의 내년 방한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최근 인도를 방문해 달라이 라마와 40분 가량 면담한 진옥 스님은 “달라이 라마 성하께 내년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방한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한국정부가 방한을 허용한다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라도 방한하겠다. 그동안 못들어간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며 간곡한 방한의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진옥 스님은 “불자 국회의원 모임인 정각회 등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접촉하고 있으며, 통도사·해인사 등 삼보종찰의 큰 스님들과도 달라이 라마 방한을 위한 협력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2000년 달라이라마방한준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돼 왔지만 한국과 중국간의 정치적 관계 등을 고려해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 때에는 방한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정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 초청장까지 티베트 망명정부에 전달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달라이라마방한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인 정웅기 참여불교 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정책실장은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부담이 되고 별다른 실익이 없을지 모르지만 평화와 자비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며 “정부에서도 이제 더이상 달라이 라마 문제를 단순한 대 중국 카드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 같은 ‘유명 승려’의 방한에 대해서는 사실 불교계 내부에서도 흔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 불교계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중 한 명인 틱 낫한 스님이 올 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받은 ‘홀대’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은 최근 “모 스님이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하겠다고 말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밝힌 바 있어 주목된다. 한국 방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심정은 어떨까. 달라이 라마를 해마다 만나온 진옥 스님은 몇 차례나 초청이 무산된 데 대해 달라이 라마에게 사과하자 그는 “국제관계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냐.(중국)공산당의 압박은 도덕적인 수준을 넘어 맹목적인 것이며 ‘공갈’에 가깝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평화의 화신’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자서전 ‘유배된 자의 자유’에서도 밝혔듯이 적대관계에 있는 중국마저도 사랑한다.“적은 인내심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가장 큰 스승”이라고 그는 말한다. 많은 불자들은 이번에는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꼭 성사돼 그의 비폭력·평화사상이 한반도에 꽃 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임영숙 칼럼] “사쿠라가 그립다”

    [임영숙 칼럼] “사쿠라가 그립다”

    ‘사쿠라’로 불리는 것을 우리 정치인들은 싫어한다. 요즘은 잘 들리지 않지만 박정희 유신 이후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는 정치권에서 사쿠라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여당에 협조적으로 보이는 야당 인사에게는 어김없이 붙는 꼬리표였다. 벚꽃의 일본말인 사쿠라는 변절한 정치인, 지조없는 정치인 등을 지칭한다. 유진산 이철승씨 등 1960∼70년대 야당의 거물들은 물론 80∼90년대 정치인들도 이 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사쿠라에 대한 향수가 솔솔 피어 오르는 것 같다. 지금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염려하며 차라리 사쿠라들이 정치판에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고 회고하는 이들을 가끔 보게 된다. 한 저명한 정치평론가는 사쿠라의 원조로 불리는 유진산씨를 ‘한국 현대사에서 재평가가 가장 필요한 정치인 중 한명’으로 꼽기도 한다. 이해찬 국무총리의 한나라당 폄하 발언으로 시작된 국회파행이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차떼기당’‘좌파정부’‘깽판총리’‘수구꼴통’로 이어지는 막말을 주고 받은 여야는 극한대립을 풀지 않고 있다. 지나친 강경론에 제동을 걸었던 양쪽 온건파의 목소리는 ‘적전 분열’‘등 뒤에 총질하는 것’‘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삿대질에 움츠러들고 말았다.“싸우다 죽더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정기 국회가 아니라 내년 4월 재·보궐선거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강경파의 채근에 밀린 한나라당은 급기야 의원들의 지역구별 투쟁과 규탄집회 등 볼썽사나운 장외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총리의 유럽 순방 중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는 술자리 발언에서 비롯된 여야 대립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서로 한치의 양보도 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 제공자인 총리가 먼저 유감표명이나 사과로 풀어야 할 것을 강공으로 맞선 것이 잘못이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미국 대선이 끝나도록 진흙탕에서 뒹굴며 산적한 민생문제와 경제난을 외면하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모두에 국민은 짜증스러움을 느낀다. 사쿠라가 그립다는 것은 이처럼 경직된 한국 정치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이다. 정치를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만 접근할 뿐, 설득과 절차를 통한 타협과 공존의 정치를 모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재정권 시절의 밀실정치·부패정치 소산으로 여겨졌던 부정적인 의미의 사쿠라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소생시키는 완충지대·중간자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완충지대·중간자의 역할은 여야 정치권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 개혁과 반개혁의 극단적 편가르기와 적대적 대립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 모든 곳에 필요하다. 경제정책,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서도 명분에 얽매이는 이분법적 대립에서 벗어나 구체적 현실과 사실에 주목하는 실사구시의 유연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내편도 네편도 아닌 중간자가 더 많다. 이쪽이 잘못했지만 저쪽도 책임이 있다는 사람들, 이쪽에 공감하지만 저쪽도 이해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결국 여론의 향배를 결정한다. 이들을 무시한 정치는 민심을 잃는다. 우리네 삶 자체가 단순하게 흑백으로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선거때만 기억하는 듯하다.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마침 한국인들에게 보낸 메시지도 음미할 만하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또는 서로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우리는 함께 살아야만 합니다. 또 모든 나라들과 모든 공동체의 미래는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용서의 정신과 상호의존의 원리를 깨닫기 바랍니다.” 주필 ysi@seoul.co.kr
  •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 양위

    노로돔 시아누크(82) 캄보디아 국왕이 7일 양위(讓位)를 발표하며 후임 국왕 선출을 요청했다.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시아누크 국왕은 이날 오전 왕자이자 의회 의장인 라나리드를 통해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건강상 이유를 들어 양위 방침을 밝히고 9인으로 구성된 국왕선출위원회를 발족할 것을 요구했다.후임 국왕에는 시아모니(51) 왕자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양위 발표 배경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캄보디아 총선 이후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시아누크가 중재에 나섰지만 실패하면서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지난 1월 진료를 핑계로 캄보디아를 떠난 이후 중국과 북한에 머물러왔다.그는 지난 6일 귀국하려 했지만 야당이 반대하자 귀국을 취소했다. 시아누크의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하다.1941년 조부인 모니본 국왕 사망 뒤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55년 왕위를 아버지 수라마리트에게 넘겨주고 총선에서 승리,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70년 우파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중국으로 망명했다.크메르 루주가 집권한 1975년 귀국해 국가원수가 됐지만 7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한 뒤 다시 중국으로 피신,망명정부를 세웠다.오랜 망명생활 끝에 91년 귀국,93년 캄보디아 헌법이 입헌군주제로 바뀌면서 왕좌에 복귀했다.시아누크는 특히 고 김일성 북한 주석과 각별했다.김 주석은 시아누크를 위해 평양에 호화저택과 경호원까지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씨줄날줄] 시아누크/이목희 논설위원

    며칠전 평양에서 타전된 한 장의 사진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북한 리더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캄보디아 최고훈장을 수여한 뒤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시아누크 국왕은 고(故) 김일성 주석과 절친한 사이였다.김 주석 자리에 김 위원장이 들어간 셈이다. 시아누크 국왕 부부는 지난 4월부터 넉달이나 평양에 머물렀다.국왕 일행은 엊그제 북한측의 대대적 환송을 받으며 고국으로 돌아갔다.시아누크 국왕은 올해 82세.18세에 왕위에 오른 뒤 국가원수,망명정부 수반,대통령에 이어 다시 왕으로 복위하는 등 파란만장한 생을 살고 있다.19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우파 쿠데타에 이어 좌파 크메르루주 독재기간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며 망명생활을 했다. 김일성은 생존 당시 시아누크 국왕을 특별하게 아꼈다.평양에 호화로운 저택을 제공하고,캄보디아 복귀 후에도 북한 경호원을 붙여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시아누크 국왕도 힘든 일만 있으면 평양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이번 평양 장기체류도 캄보디아의 실권자 훈센 총리와의 불화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시아누크를 극진히 대접하는 데는 ‘부친의 친구’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김일성 유훈통치’가 일국의 국왕이 다른 나라에 4개월이나 머무는 상식 밖의 외교의전을 만들었다.시아누크 국왕은 지난달 “조만간 왕위를 포기하고 북한에 체류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함께 최근 탈북자들의 ‘남방 탈출로’로 애용되고 있다.훈센 총리는 시아누크 국왕과 달리 남한에 호의적이다.훈센-시아누크-김정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를 잘 이용하면 남북관계에 도움을 받을 것이다. 시아누크 국왕의 예에서 나타나듯,공산국가나 독재국가 지도자들은 ‘옛 친구’를 존중하는 편이다.제도와 관계없이 움직이므로 현직이건,물러났건 간에 환영을 받는다.근래 남북관계가 꼬이고 있다.김대중 전 대통령,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까지 김 위원장이 호감을 가진 인사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 볼 만하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씨줄날줄] 상하이 임정 청사/이상일 논설위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포화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하늘을 생각케 한다/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월광의 폭포속으로 사라지고….’역사에 밝지 못한 사람들은 ‘상하이(上海)임시정부’하면 학교때 읽은 김광균의 시 한편이 주는 이미지가 어쭙지 않게 먼저 떠오른다.여기에 망명 정부란 말이 주는 당당하지만 쓸쓸한 이미지,악전고투했을 당시 독립운동 상황 등이 오버랩된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연건평 48평에 연립주택형 3층 건물.말이 정부 청사이지 일반 주택과 다름없다.그래도 임정 청사는 1919년 4월 상하이에 마련된 뒤 한국인의 거점이 되었다.김구 주석은 이봉창 열사에게 일본 왕에 폭탄 투척을 지시했다.한반도 도·군·면에 책임자를 두어 한국인들과 연결하는 연통제를 실시한 구심점도 임정이었다.또 일제치하를 탈출한 한국인들을 일시 보호한 장소가 된 곳도 임정 청사였다.임정은 1932년까지 상하이에서 13년간 유지되다 그후 일제의 반격으로 항저우(杭州)등으로 연이어 청사를 옮겼다. 상하이 임정 청사는 요즘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길가도 아니고 여전히 외진 곳에 있다고 여행객들은 전했다.“주소가 ‘마당로(馬當路) 306-4호’인 임시정부청사는 왜 이리 찾기가 힘든지….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처럼 생긴 중국식 집들과 작은 가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주소인 306번지가 없었다.나중에 보니 중국인들이 사는 골목 한 귀퉁이에 있었다.”10여년전인 1993년과 지난 2001년 두번에 걸쳐 복원됐는데도 잘 찾기 어려울 정도라면 독립운동 당시는 얼마나 보잘것없었겠는가. 임정 청사를 포함한 주변 1만 4000여평에 대해 상하이 시 당국은 재개발을 추진하다 지난 10일 일시 중단했다고 한다.재개발 사업주체 입찰에서 한국의 토지공사가 유력해지면서 중국업체들이 반발하자 시 당국이 입찰을 취소하고 신중한 검토에 들어갔다는 것이다.앞으로 수의계약방식으로 우리측에 개발권이 넘어올 것으로 한국은 희망하고 있지만 적어도 누가 추진하건 임정 청사 보존에 관해 중국으로부터 확약을 받았다고 하니 다행이다.다만 재개발한다고 주변 지형을 너무 바꾸지 말고 당시의 거리 상황과 분위기를 살려 역사를 느끼게 했으면 싶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달라이 라마 ‘한국 위한 법회’ 지난달 31일 인도 남걀사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사진)가 한국의 불교신자들을 위하여 법회를 열었다. 5일 법보신문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는 지난해 12월29일부터 31일까지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의 남걀사원에서 ‘한국 대중을 위한 첫 법회’를 봉행했다. 달라이 라마는 여수 석천사가 주관한 이 법회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에는 한국의 불자들과 법문의 내용을 놓고 자유롭게 질의하고 응답하는 시간을 별도로 가졌다. 이 자리에는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을 비롯해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달라이 라마의 제자 청전스님,보성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수원 봉녕사 승가대학 교무 설오스님과 신경정신학 전문의 이시형 박사,방송인 이계진씨 등 한국인 불교신자 300여명이 동참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길섶에서] 낙엽송

    밤새 내린 가을비로 주위가 온통 낙엽 천지다.아파트 단지와 주변 도로가 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는 낙엽들로 몹시 어지럽다.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단풍들이었는데….문득 부질없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기억은 참으로 무섭다.낙엽을 접하면 하고많은 글 중에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이 맨먼저 떠오른다.‘낙엽은 포-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아마 고교시절 대학 입시공부를 하면서 뇌리에 박히도록 달달 외어 아직도 남아있는 게 아닌가 싶다. “원없이 잠 한번 자고싶다.”는 우리네 아이들을 안쓰러이 지켜보면서 언제 수능시험을 치르나 했는데,벌써 오늘이다.요즈음은 학교뿐 아니라 학원 특강이다,인터넷 강의다 해서 내용은 물론 공부방법까지 부모들 시절과는 판이하다. 그래도 학창시절의 기억이 가장 오래 남을 터.요즈음 아이들은 먼훗날 어른이 되어 낙엽을 보면 맨 먼저 떠오를 낙엽송(頌)이 무엇일까.갑자기 어깨를 짓누른다. 양승현 논설위원
  • 황장엽씨 美 디펜스포럼 회견/“美, 김정일 제거에 정책 초점을”

    |워싱턴 백문일특파원|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지난달 31일 미 하원 별관에서 디펜스 포럼 주최의 오찬에 참석,“미국이 김정일 독재체제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다음은 참석자들과의 일문일답. 북한의 핵개발 의도는?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르지만 북·미 핵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것은 일관된 사상이었다고 본다.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려는 것은 장난감용이 아닌 게 분명하지 않은가.왜 핵 무기를 가지려는지 물을 필요도 없다.처음부터 북한내 간부 진영에서는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핵개발을 도왔나? -내가 알기로는 도와주지 않았다.김정일은 핵개발 사실이 러시아나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싫어했고 비밀로 부쳤다.1984년 평양주재 소련대사가 여러차례 나를 찾아와 “핵무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항의했다.김정일에게 보고하니까 “묵살하라.”고 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나 6자회담을 평가한다면…. -미국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근본적인 입장은 김정일 독재체제를 제거하는 것이다.다만 중국과 북한의 동맹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점은 이해해야 한다.중국의 지지는 북한에 경제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정치적·심리적으로 생명과도 같다.북한의 변화를 위해 북한과 중국의 동맹관계를 떼내는 게 관건이다. 미국으로 망명할 생각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됐기 때문에 마음대로 질문할 수는 있다.그러나 그런 질문은 나에게 모욕이다.내가 남한에 온 것도 망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남한은 내 조국이다.북한을 해방시키고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중요하지만 왜 조국을 놔두고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가.무엇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남한에 왔겠는가. 망명정부를 수립할 계획은? 대한민국 정부가 있는데 망명정부를 조직해서 뭐 하겠다는 것인가.김정일을 제거하기 위한 반체제 조직을 견고하고 견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처음부터 망명정부 개념에는 반대했다. 북한 정권의 붕괴시점은? -나는 점쟁이가 아니다.다만 김정일 집단이 어떻게 활동하느냐와 반체제 민주주의 역량이 어떻게 투쟁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내가 북한을 떠날 때에는 5년 이내로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다.여러가지 정세 변화로 북한이 붕괴하지 않았으나 당시로는 옳은 판단이었다.북한정권의 붕괴를 위해 내부의 민주주의 조직을 강화하고 외부의 원조를 끊는 게 가장 중요하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은 가능한가 -주민들이 굶어죽고 탈북 사태가 잇따르자 독재만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서 제한된 범위의 경제개혁을 하려 했다.그러나 개인의 권위를 유지하고 군대를 강화하다 보니까 개혁이 잘 안됐다.외국에서 구호물자를 보내주니까 “외교를 잘해서 주민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개혁을 서두르지 않는다.자본주의만으로는 독재체제를 약화시킬 수 없다.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정보를 공유,반체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보장돼야 한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성공했나? -주체라는 개념에 많은 오해가 있다.주체는 인민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말이다.문제는해석이 달랐다는 점이다.김일성은 노동계급과 그 대표인 수령을 주체로 본 집단 이기주의자였고 김정일은 수령만으로 정의한 개인 이기주의자다.나는 인민이 주체라고 생각했고 이는 민주주의 사상과도 같다. 김정일은 사상 최악의 독재자인가?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할 수 있다.그러나 역사적으로 더 지독한 독재가 있었는지 여부는 증명할 수 없다.개인의 문제나 평가보다 김정일 집단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mip@
  • 황장엽 방미 / 황장엽씨 인터뷰 “조국땅에서 죽고 싶다”

    미국 방문을 앞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24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평화적으로 김정일 독재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기 위해 힘을 합쳐 나가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김정일 독재체제 민주화 위해 방미” 방미 활동의 목적은. -내 모든 활동의 목적은 김정일 독재체제하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원하는 데 있다.방미 목적도 예외일 수 없다.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문제는 한 나라 안에서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다. 국제민주역량의 중심에는 미국이 서 있으므로 김정일 독재체제를 반대하는 투쟁도 미국과의 동맹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미국을 방문해 한·미 동맹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해 평화적으로 김정일 독재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기 위해 힘을 합쳐 나가는 데 이바지하려고 한다. 미국 망명설과 망명정부 수립설이 나도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터무니없는 헛소문이다.대한민국은 나의 조국이고,나는 조국땅에서 죽고 싶다. 일부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난하면서도 김일성 주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나는 어느 개인에 대해 감정을 갖고 지지하거나 숭배한 적이 없다.나의 어떤 사람에 대한 입장은 그의 사상에 대한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 ●“귀국후 한총련 만나 대화하고파”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방미저지 결사대를 결성했는데. -순진한 그들을 기만하고 부추기고 선동해 그릇된 방향으로 내몰고 있는 그 배후의 반민족적이고 반인민적 집단에 대해 비열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들을 만나 진지하게 대화하겠다. 최근 탈북인단체연합회를 결성하고 상임대표를 맡았는데.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을 독재체제에서 구원하고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인재다. 탈북자들을 매우 아끼고 사랑할 뿐 아니라 그들이 유능하고 믿을 수 있는 애국자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연합
  • 책꽂이

    ●이집트 신화(베로니카 이온스 지음,심재훈 옮김,범우사 펴냄) 이집트에는 고유한 창조신화가 많았다.눈(Nun)이나 아툼,라 같은 태초의 신,네케베트와 아몬,아텐 등 파라오와 왕국의 수호신,프타와 세크메트 등 창조와 다산·출산을 담당하는 신,세케르와 셀케트 같은 죽음의 신 등 여러 신들이 있었다.이런 신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결혼을 하기도 하고 자식을 낳기도 하며 권력을 분산시키기도 하는 인격신의 면모를 지닌다.고대 이집트의 신앙은 결국 내세의 지배자 오시리스로 귀결된다.역사 속에 스며든 고대 이집트의 신앙을 샅샅이 살폈다.1만 2000원. ●법정에 선 나무들(크리스토퍼 스톤 지음,허범 옮김,아르케 펴냄) 요즘 환경행정법 영역에서 최대 이슈는 원고적격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하는 것이다.아직까지 자연환경이 원고가 돼 소송이 진행된 사례는 찾기 힘들지만 여러 원고 중 하나로 자연물이 포함된 경우는 적지 않다.미국 캘리포니아주 동부와 네바다주에 걸쳐 있는 저지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그 한 예.이책은 비인격의 권리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1만 5000원. ●일본 최고 부자가 공개하는 돈버는 기술(오마타 간타 지음,이명숙 옮김,신원문화사 펴냄) 늘 상인의 자세로 생각하고 행동하라.상인은 무엇보다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하며,상인다운 자각만이 성공의 열쇠.슬림도칸 등 다이어트 식품으로 유명한 긴자마루칸의 창업자인 저자의 ‘평범한’ 진실을 담았다.8500원. ●조선미술사(세키노 다다시 지음,심우성 옮김,동문선 펴냄) 일제 관학자에 의해 씌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한국미술의 독창성을 부정,중국 미술의 모방 내지 아류로 규정한다.그런 시각에서 한국미술의 시발점을 낙랑미술에서 찾는다.또한 삼국시기부터 통일신라 시기까지는 그런대로 발달의 여지를 보이지만 고려시기부터는 쇠조하면서 조선시기에 와서는 쇠퇴·타락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반도적 성격론’‘정체론’‘일선동조론’ 등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성격을 띠지만 자료로서의 가치는 적지않다.3만원. ●유형별 면접정보 분석과 입사전략(이대성 지음,성신여대 취업지원센터 펴냄) 주요 기업별 면접정보와 입사전략을 수록.면접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하지만 인사담당자들은 나름의 비전전략을 세워 취업전선을 돌파하라고 권한다.‘특이형’ 인재만을 뽑는 소수·수시채용 시대에 맞는 자기소개법 등 실전지침이 실렸다.3000원. ●달라이 라마 자서전(톈진 갸초 지음,심재룡 옮김,정신세계사 펴냄) 인도 동북부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본명 톈진 갸초)의 자서전.1935년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티베트 동북부 암도지방의 탁최라는 곳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 이름은 라모 톤둡.세 살이 되기 전 달라이 라마의 화신으로 인정받은 그는 1950년 티베트가 중국의 침략을 받자 15살의 나이에 14대 달라이 라마에 즉위하면서 티베트의 정치적 통치자가 됐다.티베트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 1959년 인도로 망명했다.1만 5000원.
  • 책 / 마담 세크러터리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66)의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Madam Secretary,노은정·백영미 등 옮김,황금가지 펴냄)가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망명자의 딸에서 유엔대사를 거쳐 미국 행정부 사상 여성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숨막히는 역사의 현장을 발로 뛴 올브라이트의 삶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1937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올브라이트는 두살 때 나치의 탄압을 피해 조국을 떠난다.망명정부에서 정보분야를 담당하던 아버지를 따라 런던에서 생활하던 그의 가족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귀국했지만 체코가 공산화되면서 미국행을 택한다.미국사회의 이방인인 그는 명문 웰즐리 대학 시절 미국 굴지의 미디어그룹인 콕스 가문의 상속자 가운데 한 명인 조지프 올브라이트를 만나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한다.그러나 마흔다섯의 어느날 남편으로부터 일방적인 이혼통보를 받는다.“이 결혼은 끝났다.당신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결혼생활 23년만에 이상적인 아내와 어머니가 되겠다는 꿈이 산산조각난 것이다.이혼 뒤 올브라이트는 조지타운대 교수,민주당 국제외교전문위원,상원의원 보좌관 등의 일을 한꺼번에 맡아 하면서 점차 이혼의 충격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력을 쌓아간다. 이 책에는 올브라이트의 사생활과 공생활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올브라이트는 서른아홉살이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될 때까지 공직생활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는 클린턴 행정부 1기 내각에서 유엔대사를 거쳐 1997년 2기 내각에서는 국무장관을 맡는 등 정치인생의 황금기를 맞는다.그는 ‘워싱턴 포스트’에 자신이 유대인이며 조부모가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숨졌다는 사실이 보도돼 시련을 겪기도 한다.올브라이트는 “사람들은 내가 우리 가족의 과거를 몰랐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부모님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아버지의 야심이나 속물근성 또는 수치심 때문이라고 은근히 암시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올브라이트는 2000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방북 회담과 2002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등 한반도와 주변정세를 회고하는 데 적잖은 지면을 할애한다.올브라이트는 코소보 사태를 풀기 위해 유고연방 폭격까지 마다하지 않던 강한 국무장관이었다.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유독 외교적 해결방안을 고수했다.그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 때문이었다.올브라이트는 제64대 국무장관에서 물러날 때까지 북한문제와 중동문제의 돌파구를 찾고 또한 코소보에서 밀로셰비치를 몰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국무장관 임기 말,마침내 유고슬라비아에서 밀로셰비치가 물러나면서 클린턴 행정부 외교정책의 시험장이 됐던 발칸반도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됐다.이제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스럽게 물러날 수 있었다.올브라이트는 “민주주의는 공정하지만 다소 냉혹하다.”는 말을 남겼다.민주주의의 실천을 지원하지 않는 외교정책은 어떠한 경우라도 미국의 국익을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전 2권 각권 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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