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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설움에 설움에 설움 더해…꺾이지 않는 긍지로 피다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설움에 설움에 설움 더해…꺾이지 않는 긍지로 피다

    넉넉한 가문이었지만 이미 가세가 기울어진 집에서 김수영은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에 가서도, 만주에 가서도, 연희전문에서도 공부를 마치지 못했어요. 맘에 들지는 않지만 시인으로 등단했고, 의용군으로 북한에 갔다가 거제도 수용소에 갇힙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 그는 짐승스러운 설움을 체험합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나는 벌써 인간이 아니었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포로가 되었다는 것, 포로는 생명이 없는 것이라는 것, 아니 그보다도 포로가 되었길래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던들 지금쯤은 이북 땅 어느 논두렁에서 구르고 있는 허다한 시체 속에 끼여 고향을 등지고 이름도 없이 구르고 있을지도”(시인이 겪은 포로생활·1953) 모른다며 “허무하고도 서러운 일뿐”이라고 썼습니다. 가장 허무하고도 서러운 일을 체험할 때 쓴 시가 ‘긍지의 날’입니다. 이 시는 1953년 9월호 ‘문예’에 처음 발표되었으니, 가장 서러웠을 전쟁 중 혹은 포로수용소에서 구상했을 듯합니다.제목이 긍정이 아니고 긍지입니다. 한자로 ‘肯志’가 아니라 ‘矜持’로 쓰여 있습니다. 긍(矜)자는 ‘창 모’(矛)와 ‘이제 금’(今)으로 이루어진 한자입니다. 긍지라는 한자는 ‘지금 자루를 쥐고 있다’는 뜻일까요. 자긍심(自矜心)이라고 하지요. 긍지를 가지면 창자루를 쥔 듯 든든할까요.누구나 매일 밥 먹고, 일하고, 잠자는 뻔한 일상을 ‘순환’하며 살아갑니다. 순환의 원리를 너무나 잘 알기에 일상은 지겹고 뻔해요. 일상의 피로를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내 삶에는 설움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설움은 상처이고, 아름다움은 환상이죠. 상처와 환상의 증환(症幻)을 품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사실 설움과 아름다움으로만 지친 삶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아요.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긍지를 만날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설움과 아름다움이 충돌하여 긍지에 이릅니다. 긍지가 없는 사람은 상황에 복종하는 노예가 됩니다. 긍지가 있는 사람이 창조하고 책임지고 모진 운명에 맞섭니다. 우리는 힘든 나날을 “몇 개의 번개 같은 환상”으로 견뎌 왔지요. 나의 꿈은 교훈이며 청춘이며 물이며 구름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죠. 다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긍지입니다.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나의 최종점은 긍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견뎌야 합니다. 파도처럼 흔들려서(혹은 흔들려도), 소리가 없고, 퍼붓는 비에도 젖지 않는 강한 긍지로 화자는 살아가겠다고 합니다.당연히 모든 피로는 내가 만듭니다. 멋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도구가 되기 위해 퇴근 후에도 헬스클럽에 다니고 운동장을 뜁니다. 포도당 링거를 맞아 가며 일하고 공부하는 도핑(doping) 사회입니다. 성과를 올리기 위해 내가 나를 착취합니다(한병철·피로사회). 피로도 내가 만들지만, 진짜 해야 할 일은 긍지를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오스트리아 극작가 페터 한트케는 사람들을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와 반대되는 ‘우리-피로’라는 개념을 내놓습니다. 내 성공만을 위해 미친 듯 살아가는 삶을 넘어, 내 삶을 나누는 피로를 그는 ‘우리-피로’라고 명명했습니다. 나만을 위한 ‘분열적인 피로’와 달리 ‘우리-피로’는 ‘화해시키는 피로’라고 합니다. 긍정적인 피로겠죠. 이 겨울에 독거노인 댁에 도시락이나 연탄이라도 나를 때 나의 지겨운 피로는 의미 있는 긍지로 변합니다. ‘우리-피로’를 나누는 순간 회춘(回春)한다고 합니다.내 설움과 피로를 극복하는 순간, 그때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한치를 더 자라는 꽃”으로 핍니다. 긍지의 날은 꽃이 피는 날입니다. 설움에서 싹튼 긍지는 꽃으로 피어납니다. 가장 피로한 ‘오늘’이야말로 긍지의 날이다. 첫 연에서 말했던 지겹게 피로한 “순환의 원리”를 깨달은 이후에는 새로운 순환, 풍성한 반복으로 변합니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거울 앞에서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수십 번 자기세뇌하는 ‘아Q정전’식 사이비 정신승리에 반해, 김수영의 긍지는 전혀 다릅니다. 설움을 망각하려는 긍정과 달리, 김수영의 긍지는 설움을 설움으로 이겨내는 단독자의 긍지입니다. 어제 겪은 설움의 힘으로 오늘 겪는 설움을 이겨나가는 포월(匍越), 기어서 넘어가는 경지입니다. 그 설움은 다시 아름다움을 만나 새로운 긍지의 꽃을 피워낼 설움이지요.“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거미·1954) 전쟁 후에도 김수영은 설움을 겪었습니다.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릴 만치 그는 설움 속에 살아갑니다. 사랑하던 여자가 지인과 함께 살고 있고, 남동생은 월북이 아니건만 월북으로 오해받아 연좌제 때문에 가족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내에게 포르노 소설까지 쓰게 했던 숨기고 싶은 비루한 순간은 얼마나 서러웠을까요. 비단 개인적인 설움으로 그가 이렇게 괴로워했을까요. 그를 낳고 기른 이 나라는 그야말로 서러운 눈물의 나라였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된 줄 알았더니 미군정이라는 새로운 식민지에서 좌우가 싸웁니다. 거의 3차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는 민족상잔을 겪습니다. 전쟁 후에도 닭장 앞에서 모이를 주며, 까마득히 사라져 가는 민주주의를 서럽게 그리워하는 그의 처지는 안팎으로 설움과 피로 자체였습니다. 그를 버티 게 한 것은 눈물을 곱씹으며 설움을 오히려 긍지로 승화시키는 다짐이었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더러운 글은 쓰지 않겠다고 그는 다짐합니다. “곧은 소리를 곧은 소리를 부른다”(폭포)며 곧은 글만 쓰기로 다짐합니다. “우선 나는 지금 매문(賣文)을 하고 있다. 매문은 속물이 하는 짓이다. 속물 중에도 고급 속물이 하는 짓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매문가의 특색은 잡지나 신문에 이름이 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이 나는 것을 좋아하고, 라디오에 나가고, 텔레비에 나가서 이름이 팔리고, 돈도 생기고, 권위가 생기는 것을 좋아한다.”(이 거룩한 속물들·김수영 전집 2 산문) 그는 매춘하듯 글을 싸구려로 매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속물이 되고 싶지 않았고, 긍지 있는 글만 발표하고 싶었습니다. 정직한 글을 쓰며 서러운 시대를 견디고 싶어 김수영은 무, 파, 상추 등 채소와 닭을 키워 팔기 시작합니다. 닭을 키우는 “양계는 저주받은 사람의 직업입니다. 인간의 마지막 가는 직업으로서 양계는 원고료 벌이에 못지않은 고역입니다”(양계 변명)라면서도 그는 “나는 양계를 통해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양계를 시작한 지 2년인가 3년 후에 나는 노모에게 병아리 천 마리를 길러 드린 일이 있습니다”라며 의미를 찾습니다. 닭을 키우면서도 자기의 설움에 그치지 않고 “근 10년 경영에 한 해도 재미를 보지 못한 한국의 양계는 한국의 원고료 벌이에 못지않게 비참합니다”라며 한국의 경제상황을 함께 봅니다. ‘긍지의 날’을 여럿이 읽으면 간혹 당혹스러운 반응을 만나곤 합니다. 피로에 지친 여사원은 이 시를 낭송하다가 눈물을 훔쳤습니다. 노숙인들을 위한 민들레 교실에서 노숙인 한 분은 이 시야말로 감동 자체라고 합니다. 성매매 체험 여성들과 함께 읽고, 돌아가면서 어떤 설움을 경험했는지 대화하다가 숨죽여 운 적도 있어요. 김수영의 시가 공감을 일으키는 핵심에 설움이 있습니다. 설움이야말로 긍지를 꽃피우는 씨앗이지요. “내 맘에 서러움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피우는 그런 아침이슬의 긍지입니다. 모짊의 시간은 긍지를 증폭시킵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둘러봅니다. 나의 설움은 나의 긍지를 만듭니다. 설움이 클수록 긍지도 커집니다. 남을 위해 피로를 나누는 사회적 영성은 더욱 생기롭습니다. 서러운 오늘이야말로 내가 자라는 날입니다. 오늘은 설움으로 긍지의 꽃을 피우는 긍지의 날입니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판사 사찰 논란’ 전원 교체…징계 맡을 부서 급 높였다

    ‘판사 사찰 논란’ 전원 교체…징계 맡을 부서 급 높였다

    김명수(59·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의 중심에 선 법원행정처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안철상(61·15기) 신임 법원행정처장은 취임 일성으로 사법행정의 대대적인 개편을 선언했다.대법원은 1일 법원행정처 관련 법관 16명에 대한 전보 및 겸임, 겸임 해임 인사를 오는 7일자로 단행했다. 인사는 기획조정실과 윤리감사관실에 집중됐다. 새로 행정처에 보임한 판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김 대법원장이 1·2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며 일부는 사법제도·인사 개혁에 목소리를 높여온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 소속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법원행정처의 개편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사법행정의 문화와 관행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며 “인사 대상이 된 법원행정처 근무 법관들은 현안과 무관하다는 점을 양지해 주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가 사법부 최대 위기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후속 조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전격 인사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열어보지 못한 행정처 컴퓨터의 암호화 문건에 대한 조사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법원은 조만간 세 번째 조사 기구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판사 사찰 논란 등을 키운 문건을 작성한 부서로 지목된 기획조정실은 전원이 겸임 해임됐다. 행정처 판사들은 원소속 법원이 있는 상태에서 겸임 형태로 근무하기 때문에 겸임이 해제되면 원 소속으로 돌아간다. 사법 행정 전반 사무를 총괄하는 최영락 기획총괄심의관은 서울고법으로 돌아간다. 기조실 심의관 3명도 각각 서울중앙지법과 수원지법으로 복귀한다. 새 기획총괄심의관은 이한일 서울고법 판사가 겸임한다. 3명이던 기조실 심의관은 당분간 2인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희 수원지법 평택지원 판사와 강지웅 대전지법 판사가 보임한다. 사태 진상 파악과 후속 조치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될 윤리감사관실도 1명이 퇴직하고 2명이 전보되는 등 대폭 교체됐다. 특히 지법 부장판사급이었던 감사관 자리가 고법 부장판사급으로, 평판사가 맡아온 윤리감사 기획심의관이 지법 부장판사급으로 격상된 점이 눈에 띈다. 윤리감사관실에 힘을 싣겠다는 대법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퇴직 예정인 김현보 감사관의 후임으로 김흥준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임명됐다. 기존 윤리감사 심의관 두 명은 겸임이 해제되고, 새로 3명이 보임한다. 신임 윤리감사 기획심의관은 김도균 사법연수원 교수, 윤리감사 심의관은 박동복 서울 남부지법 판사와 한종환 광주고법 판사가 맡게 됐다. 역시 퇴직을 결정한 박찬익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의 후임은 황순현 대구지법 부장판사가 맡는다. 2년간 공보 업무를 맡았던 조병구 공보관은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로 자리를 옮기고, 박진웅 서울고법 판사가 새로 보임한다. 일신한 행정처를 이끌게 된 안 처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사법행정이 그동안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법부가 처한 위기의 진앙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사법행정은 제자리를 찾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그간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풍토 속에서 사법행정이 재판 지원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거나 소홀히 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처장은 법원행정처의 조직, 임무, 의사결정 구조, 정보 공개 상황 등 여러 제도를 살펴보고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설명하며 “사법행정에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계신 법원 구성원들이 사법행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의견을 거리낌 없이 개진하실 때 비로소 실효성 있는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성폭행 혐의’ 前에티오피아 대사, 국민재판 신청

    檢 “피해자 인권 침해… 반대” 주에티오피아 대사 재직 당시 업무상 관계가 있는 여성 3명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문환 전 대사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김 전 대사의 변호인은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김관구 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국민참여재판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 전 대사 측은 “지위를 망각하고 가볍게 행동한 점을 반성하고 있다” 면서도 공소 사실은 적극 부인했다. 피해자 1명과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합의하고 성관계를 했을 뿐 위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명을 성추행한 혐의에 대해서도 “손등과 어깨를 두드리는 등 일부 신체 접촉은 있었지만, 추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 눈높이에서 판단을 받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 인권 보호를 위해 국민참여재판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대했다. 일부 피해자 측 변호사 역시 “피해자는 이번 사건으로 신분이 노출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다수의 배심원 앞에서 진술해야 하는 국민참여재판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고 반대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전부의 의견을 모두 확인한 뒤 국민참여재판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 전 대사는 주에티오피아 대사로 근무하던 2015년 3월 직위를 이용해 업무상 관계가 있던 여성 1명과 성관계를 맺고, 2014년 11월과 지난해 5월에는 다른 여성 2명을 각각 성추행한 비위가 적발돼 파면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백민경 기자의 오만상~상] 현장에 답이 있다

    [백민경 기자의 오만상~상] 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 기자가 제일 잘 알지.”‘꼬꼬마’ 기자 시절부터 들은 얘기다. 현장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취재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일선 기자가 ‘팩트’를 가장 잘 알 수 있단 뜻이다. 얼마 전 4년여의 금융부 생활을 마감하고 산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산업 전반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으로 뜨거웠다. 낯선 출입처에 적응하려고 현장을 부지런히 찾았다. 늘어난 연차만큼 무거워진 엉덩이를 끌고 기업과 근로자들을 만났다. 그중 혁신 중소기업 대표로 대통령 만찬에 참석했던 한 중기 사장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중소기업중앙회 간부이기도 한 그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질문에 신분을 ‘망각’(?)한 듯 “중기가 정책에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순응하되 부작용을 고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러니 내가 다른 사장들한테 욕을 먹지”라는 농담 섞인 웃음과 함께. 그러면서 그는 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이 아닌 월 단위나 연 단위로 책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기업 하도급 업체들은 계약 물량을 맞추기 위해 수십일간 잔업을 하는 일이 부지기수여서다. 기한을 못 맞추면 일감이 끊어질 텐데 어느 업체가 목숨 줄이 걸린 마당에 법을 지키고 있겠느냐는 얘기다. 주 5일 근무시간을 월 단위로만 조정해도 숨통이 트인다는 논리였다. 그는 주 52시간 근무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주 5일은 A공장에서, 주말은 옆 동네 B공장’에서 투 잡을 뛰는 외국인들만 늘어날 것이라고 부작용도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간담회에서 만난 또 다른 중기 대표는 최저임금 시행과 관련, “외국인 근로자 숙식 비용을 최저임금 기준에 포함해 주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공무원, 금융인들을 만났을 때보다 현장 곳곳에서는 나름 신선한 발상들이 많았다. 평창올림픽에 한 줄기 기대를 건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들을 만났을 때도 몰랐던 일선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개성에 투자했던 공장 설비 시설이며 자산들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탓에 자금 압박이 목까지 차오른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망하고 싶어도 망할 수도 없단다. 가지도 못하는 개성에 자산이 있다고 법원이 파산신청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란다. 물론 현장의 이야기가 모두 정답은 아니다.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거나 법적으로 준비가 안 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장을 모르면 현실과 괴리된 정책이 탄생한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왜 은행은 4시에 문을 닫느냐”며 연장 영업을 주문했을 때도 금융권은 들끓었다. 은행 대면 거래가 10%대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잔업을 이해 못한 ‘탁상 주문’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오후 4시 이후 또는 주말에 문을 여는 은행 ‘탄력점포’는 현재도 크게 늘지 않았다. 정책을 만들 때, 기업을 운영할 때 현장의 목소리를 먼저 귀담아들어야 하는 이유다. 혼선의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문제를 제시하고 보완해 가자는 자세도 중요하다. 현장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white@seoul.co.kr
  • 안태근, 최교일 사태... 폐쇄적 검찰문화의 어두운 그늘

    안태근, 최교일 사태... 폐쇄적 검찰문화의 어두운 그늘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지목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과 사건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의 사태는 검찰의 폐쇄적 문화의 어두운 그늘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권력의 정점에서 자신들의 이익에만 충실하다는 안팎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같은 이들을 견제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도 숙제로 남는다.검찰은 검찰끼리 챙기고 도와주는 소위 ‘조폭 문화’란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앞서 안 전 국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있을 때 연간 무려 1000여 차례 이상 전화 통화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휘를 받는 법무부 검찰국장이라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숫자라는 것인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렇듯 자기들끼리만 싸고도는 문화가 남아, 이번과 같은 성추행 폭로 사건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으나, 실상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국회가 밥 그릇 싸움에만 관심있고, 실제 제도적 미비를 고쳐야하는 막중한 책임은 망각한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의 제식구 챙기기, 감싸기는 지난해에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책임자였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사 대상자였던 안 전 국장이 술자리를 갖고 돈 봉투를 주고받은 사실이 여실히 전해진다. 이 전 지검장은 안 전 국장 등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법무부 과장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고 식사를 대접한 혐의로 기소됐다. 안 전 국장은 면직 처분됐다.서지현 검사는 지난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서지현 검사와 함께 평소 검찰 내부의 문제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던 임은정 검사에 대한 관심도 새롭다. 임 검사는 지난해 7월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이는 법무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뒤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폭로한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를 도화선을 서지현 검사의 검사 간 성추행 폭로가 가능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단독] 불탄 차 옆에 또 불법 주차… 달라진 게 없다

    [단독] 불탄 차 옆에 또 불법 주차… 달라진 게 없다

    ‘소화전 막으면 벌금’ 현수막 막고 왕복 2차선 도로는 주차장 전락 승용차 한 대 지나가기도 버거워 충북 제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29명이 숨지는 화재 참사가 난 지도 벌써 한 달. 17일 오전 11시쯤 다시 찾은 참사 현장은 기자에게도 트라우마를 드리웠다. 시커멓게 그을린 건물 외벽과 불에 탄 1층 주차장 차량들이 경찰 수사가 끝나지 않은 탓에 그대로 존치돼 있어 화재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금세 떠올리게 했다. 건물 가까이 다가서자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2층 유리창만 일찍 깨고 진입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일까. 박살 난 통유리 안쪽의 2층 여자 사우나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애타게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했다.‘설마’가 불러온 참사의 교훈을 망각한 듯 스포츠센터 주변 도로의 불법 주정차는 여전했다. 지난해 12월 21일 화재 당시 불법 주정차로 소방차 진입이 늦어져 화를 키웠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 보였다. 스포츠센터 건물 앞 왕복 2차선 도로(폭 6m 60㎝)는 정문 근처 30여m 구간을 제외하고는 길가 양쪽으로 불법 주정차 차량이 줄지어 서 있어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가운데로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주차된 차들을 손으로 밀어 봤지만 핸드브레이크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주정차 차량이 없었던 스포츠센터 정문 앞 도로도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통제구역’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철제 울타리 앞에 주차를 한 운전자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불법 주차를 한 30대 남성 운전자에게 다가가 ‘여기에 차를 세우면 소방차가 다닐 수 없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점심만 먹고 바로 차를 빼겠다”고 답한 뒤 황급히 식당으로 뛰어갔다. ‘소화전 주변에 주차를 하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낼 수 있다’는 현수막이 인근 도로에 걸려 있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옥외 소화전을 가로막고 주차된 차들도 눈에 들어왔다. 스포츠센터에서 자동차로 6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대형 건물 주변 골목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건물은 필로티 구조에 목욕탕과 헬스클럽이 입주해 있는 등 불이 난 스포츠센터와 유사한 게 많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행히 비상구는 확보된 상태였다. 하지만 역시 불법 주차 차량들로 화재 시 골든타임 확보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제천시는 불법 주정차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제천시 관계자는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단속을 할 수도 없어 고민이 크다”며 “현재 하소동에 공용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부지를 찾고 있는 중인데 부지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 화재 당시 3층에 있다가 탈출한 김창연(78)씨는 “불이 났다고 외치는 아우성과 사이렌 소리가 환청처럼 계속 귀에서 들려 괴롭다”며 “빨간색만 봐도 무섭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만 가면 심장이 뛰고 불안하다”며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청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화재 참사 이후 스포츠센터 주변 상권은 급랭했다. 인근에서 3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최현욱(65)씨는 “화재 전엔 하루 매출이 100만원을 넘었는데 지금은 50만원도 안 된다”며 “연말연시에 예약된 송년회와 신년회가 모두 취소됐다”고 했다. 이어 “불이 난 건물이 그대로 노출돼 있어 흉물스럽고 무섭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철거가 어려우면 가림막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i.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기억법’ 열쇠 찾는 뇌과학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기억법’ 열쇠 찾는 뇌과학

    실험참가자 회상시 동일부분 활성 특정 세포 자극 개별기억 분석까지 새해가 시작되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못다 이룬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사실 지난해를 되돌아 본다고 해서 365일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기억해내지는 못합니다. 어떤 기억은 방금 일어났던 일처럼 또렷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는 경우가 더 많지요.같은 상황을 겪은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거나 전혀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어 당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뇌과학과 제니스 첸 박사는 사람들에게 영국 BBC에서 방송한 인기 드라마 ‘셜록’ 시즌1의 한 에피소드를 함께 보도록 한 뒤 특정한 장면을 회상해 설명하는 실험을 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실험 결과, 사람들마다 똑같은 장면을 다르게 기억하고 해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첸 박사는 실험 대상자들이 기억을 되살리며 설명하는 동안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했는데 서로 다른 기억과 해석을 내놓기는 하지만 똑같은 영역이 비슷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최근 10년간 신경과학 분야와 영상진단 기술이 발달하면서 개별 기억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다른 기억들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기본 법칙을 밝히려는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고 있지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는 지난 10일자에 이 같은 기억 연구의 동향에 대해 자세한 분석 기사를 실었습니다. 네이처에 따르면 지금까지 연구는 기억과 관련된 뇌의 위치나 일반적인 기억 형성 메커니즘을 찾는 데 집중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하나’의 개별 기억을 추적하는 연구가 붐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 기억이란 정보를 단순히 모아놓는 주머니나 저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기억은 뇌의 한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고도의 분산과 융합 과정이라고 합니다. 개별 사건들이 뉴런을 자극시켜 비슷한 기억들을 불러내 융합되면서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고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기억 하나만을 ‘콕’ 집어서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빛으로 특정 신경세포만 자극해 연구할 수 있는 광유전학 기술과 영상진단 및 인공지능(AI)을 통한 분석기술이 발전하면서 개별 기억만 골라내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하나의 기억이 어떻게 상호작용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다고도 하네요. 이렇듯 뇌과학의 발달과 기억의 비밀이 하나하나 풀려가면서 나이가 들거나 질병을 앓았을 때 왜 기억력이 떨어지는지, 범죄 수사과정에서 증인의 기억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도 밝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학습 효율을 높이고 기억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겠지요.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야 박사가 만난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남자’ 솔로몬 셰레셰브스키의 삶을 보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결코 축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망각하는 능력이 없어 과거의 현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던 셰레셰브스키는 몽상에 빠져 살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학생이나 기억하는 것보다는 잊는 것이 많아지는 나이대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무한한 기억력이 부럽기는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적당히 기억하고 적당히 잊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dmondy@seoul.co.kr
  • [서울플러스 칼럼] 경제민주화 무엇이 문제인가?/황종성 경제 칼럼니스트

    [서울플러스 칼럼] 경제민주화 무엇이 문제인가?/황종성 경제 칼럼니스트

    ●경제민주화, 현 정부의 역량으로 풀어내야 4만불로 도약한다 경제를 민주화한다는 것은 고전경제학인 자유시장경제 사상에 젖어있는 대기업 총수들로서는 교과서에 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이다. 서양에서 건너온 경제학 교과서는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경제활동인데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사회주의가 가미된 강제이론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제시했던 경제학자들도 대기업의 불공정이 눈에 보이지만 어떠한 법령으로 조정해야 할지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계속 세월을 허비한 게 사실이다.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덩치 큰 형님들이 체구가 작은 동생들과의 거래에서 좀 신사적으로 공정하게 거래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오히려 대기업이 살아야 낙수효과로 경제가 산다는 친 대기업 프랜드리 정책이었다. 박근혜 정부 또한 김종인을 내세워 표를 얻은 다음 친 대기업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이해가 부족한 역대 대통령들이 대기업에 규율을 가하는 경제민주화 작업에 도전하기보다는 국정의 당면과제에 매몰되었고 여당이나 야당의 대치상황의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몇 명 이서 쉽사리 발의될 문제도 아니다. 정부 관계부처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대기업과 하청기업간의 갑을관계를 해소해야헌법 119조 1항의 자유시장경제에 기초해서 시장을 자유롭게 방치 할 경우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와 얼룩말 관계가 되는 것으로 자연적으로 자의적 타의적 불공정거래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전통시장에서 농산물 등을 단순거래 할 경우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서 가격이 형성되지만 을이 갑에게 부품을 지속적으로 납품해야 하는 관계에서는 도면을 제출할 수밖에 없고, 원가가 노출될 수밖에 없고, 기술이 노출될 수밖에 없고, 원가를 낮추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고, 요구가 통하지 않으면 도면을 경쟁사에 넘겨서 투 트랙으로 납품 받을 수밖에 없고, 기술을 모방할 수밖에 없듯이 대기업의 끝없는 탐욕으로 약자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처참한 불공정 갑을 관계가 형성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시장경제라는 명목으로 국가에서 손쉽게 통제하기가 불가능했다. 또한 갑을 관계에 쫓기다 보니 하청기업들은 원하는 제 값을 받을 수 없는 구조이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대기업은 이러한 중소기업의 희생으로 가격경쟁력이 생성되고 독점계약으로 독과점하게 되고 경쟁자가 생성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 대기업 부익부 중소기업 빈익빈이 되어 10대 대기업의 유보금 700조원 시대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결국 국가는 방관할 수 없어서 공정거래 위원회를 만들고 공정한 룰로 공정거래를 유도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하청기업의 특허는 대기업 것이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대기업이 변리사를 통해서 기술탈취가 가능한 맹랑한 법 그 자체로 다른 내용만 추가하면 별도의 특허나 실용신안이 가능하다. 한국의 고무줄 특허법으로 힘이 약한 중소기업은 전혀 보호받을 수 없는 특허제도이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신기술이 있어도 특허출원을 하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기술 노출을 줄이는 방편인 것이다. 대기업과 특허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중소기업은 시간 싸움에서 감당이 안 되고 기술 싸움에서 지칠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서는 중소기업의 원천특허 주변에 방어 특허를 즐비하게 내놓기 때문에 방어 특허에 매몰되고 만다. 소송 기간 동안 제품은 충분히 팔아먹고 제품 사이클이 끝나서 빈 껍데기만 남게 되니 기력만 허비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싸워보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특허나 실용신안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중소기업 하는 것은 기업의 생명력을 보장받을 수 없어서 무수한 기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특허가 활성화되려면! 특허료 연납을 폐지하고 방어개념의 특허는 반려하고 원천특허에 더 기회를 주고, 잠자는 특허는 평가기관에서 가치를 평가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곳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특허 괴물을 차단하는 등 전문가의 토론을 거쳐서 특허법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의 급여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기업과 하청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모든 원가가 노출되어 중소기업이 원하는 제 값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회사를 유지 관리하고 직원들 봉급 주고 나면 다음 단계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져서 기술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조달될 수 없는 신기술 부품과 로열티는 선진국에서 비싼 값 주고 수입해야 하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제값을 주고 물건을 사주는 것은 미래시장을 위한 투자이고 국가에 대한 애국이다.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재육성 되지 않는 환경이 안타까운 것이다. 오늘날 대기업의 독점은 공정한 분배의 균형이 깨져버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기업은 살고 하청 관계의 중소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것이다. 이렇듯 대기업은 구매에서 남기고 매출에서 남기니 배부른 것이다. 대기업 사원 평균 연봉이 1억이면 하청 관계의 중소기업은 평균 3800만원 정도인 것이다. 대기업의 한정된 채용은 최고의 인재를 골라 쓰지만 중소기업 채용은 청소년이 취직을 기피하므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매우 심각하다. 부모로부터 용돈 받고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취직하지 않는 캥거루족이 100만명이다. 경제가 민주화되지 않는 결정판이다. ●경제가 민주화되려면 기회의 분배가 경제민주화의 결정판이다. 대기업 품목의 독점을 막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경제민주화법 119조 2항에서는 국가의 판단에 따라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의 고부가 상품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해야 기회가 분배되고 모두의 소득분배가 공평해지는 것이다. 99%의 중소기업이 88%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이러한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이 될 수 있도록 대기업품목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은 대기업보다 강소기업의 수가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에는 자동차회사만 250개가 있고 휴대폰 회사도 250개가 존재하듯이 기업 활동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어서 법령에 없는 사항은 공무원의 제지를 받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경제가 민주화되는 것이다. 중국처럼 기업이 원하는 기회를 마음껏 풀어헤쳐야 만 가지 기술이 펼쳐지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의 독점기회를 나눌 수 있도록 경제민주화법 119조 2항의 법령을 만들어서 대기업이 백화점식으로 계열사를 만드는 선단식 재벌 지배구조를 지양하고 중견기업들이 1인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앞길을 터 주어야 할 것이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으로는 경제민주화 불가능 한국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다. 10대 재벌 평균 계열사가 80여개로 순환출자로 아전인수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단식 재벌경영의 토대가 중견기업들을 재벌그룹에 가두고 고성장의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재벌 쪽에 편중되어 있는 국가 경제의 부가 낙수효과 없이 자본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중소기업들의 활력이 저하되어 재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재벌개혁의 과제는 포트폴리오 이상의 법인을 가질 수 없도록 수량 제한을 해주는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과일나무를 자유분방하게 자연상태로 놔두고 성장시키면 과일이 너무 열려 가지가 찢어지는 것보다 적정수량의 전지를 통하여 건강한 수량을 갖는 것이 경제적인 것이다. 대기업의 내수판매를 향한 수평적 시장 분야 잠식보다는 자본과 기술력을 통한 해외 진출 시장으로 더욱 수준 높은 미래 먹거리로 달러를 벌어들여야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대기업이 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한 가지 품목의 탄탄한 재벌이 변화무쌍한 80개 계열사 관리하는 것보다 집중력의 힘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재벌이 한 가지 품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줘야 롯데 신격호 회장이 재판에 출석하여 “내 회삿돈 내가 자녀에게 주는데 무엇이 문제냐” 라고 하였다. 연로하여서 경영을 망각하였다 해도 장사에 있어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119조 1항의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은 사유재산인 것이다. 1년에 3억원 이상의 개인소득에 대하여 42%의 합산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소득의 거의 반을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이 소득을 다시 상속하려면 또다시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야 한다. 기업을 운영해서 법인세, 개인 소득세, 재산세, 상속 증여세를 내다보면 3중 과세 당하는 납세구조인 것이다. 기업 하나 운영하면 국가 유지세금 3중 과세와 고용인 먹여 살리는 기업인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애국자이다. 재벌들 또한 이러한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재벌개혁 또한 모두가 섭섭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 주어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미래를 향해서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개혁이야말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활력 법안으로 개혁해야 1인 대기업이 가능한 나라 100% 지분 100% 상속세 없이 상속이 가능한 나라로 당근을 주어야 재벌해체가 가능하다. 100% 상속은 강력한 소유욕을 충족시키며 평생 노력하면 자기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기업의 활력을 북돋운다. 100% 상속세 면제는 금수저가 아니고 고용을 책임지는 고용상속이다. 상속세의 면제는 일벌레 인증서나 다름없다. 100% 상속은 안정된 고용상속이다. 고용 안정화가 일자리 풍부한 경제민주화의 표상인 것이다. 80개의 5% 지분보다 1개의 100% 지분을 가지고 세계화의 드넓은 시장에서 집중하는 것이 이 시대 대기업의 역할인 것이다.
  • [이재무의 오솔길] 몽블랑

    [이재무의 오솔길] 몽블랑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인가…/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 보는 것이다”(송찬호 시, ‘만년필’ 부분)2018년이 시작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58년 개띠인 나는 무술년 개띠 해를 맞는 느낌이 남다르다. 낱낱의 시간은 더디게 가지만 단위로 묶어 놓은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흐른다. 시간은 마치 헐어 놓기가 무섭게 비워 가는 쌀가마니처럼 문득 의식하여 돌아보면 어느새 저만큼 흘러가 있다. 올해 시간의 쌀가마니도 예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노년에 이를수록 시간의 심리적 흐름은 빠르게 진행된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식, 무의식의 강박 때문이리라.새해를 맞으면 버릇처럼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막연하게나마 계획을 세우고 각오나 결심 같은 걸 하게 되는데, 처음의 각오와 결심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나브로 느슨해지고 풀어져 흐지부지 사라지고 만다. 올해도 나는 예년의 버릇에 기대어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마음을 다져 보고자 한다. 올해 나의 계획과 다짐은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갖는 일이다. 잠 안 오는 늦은 밤 거실에 앉아 있으면 집 안의 온갖 사물들이 조근조근 말을 걸어온다. 벽면에 걸려 있는 TV와 거울이 말을 걸어오고 신발장 속 신발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부엌에서 주방기기들이 달그락거리며 싸우고 있고 옷장 속 옷들이며 아내의 화장대에 놓인 화장품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점차 신경이 예민해져서 일일이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 안전을 확인하고는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곤 한다. 오늘은 35년 전 문단 말석에 부끄러운 이름 석 자 올린 해 기념으로 받은 선물 몽블랑이 문득 책상 서랍을 열고 나와 내 귀를 크게 열어 놓는다. 몽블랑은 말한다. “당신(나)은 자기(몽블랑)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온 것은 아닌가?” 지인은 35년 전 내게 만년필을 선물하면서 ‘사무사’(思無邪) 정신을 강조했다. 나는 지인의 뜻에 따라 백지 앞에서 삿된 생각을 멀리하려 각별히 애를 써야만 했다. 만년필은 단순한 필기도구가 아니었다. 만년필은 하나의 순결한 정신이요, 굳고 정한 태도였다. 만년필은 의식을 거행하는 사제처럼 엄숙하게 촉에서 나오는 핏방울로 원고지 칸칸을 적셔 나갔다. 만년필은 또한 순금의 언어를 캐는 지하 갱도의 곡괭이였는데, 암벽을 만나 캄캄하게 울기도 했다. 순결에의 강요, 의식을 지배하던 그는 급기야 나의 무의식에까지 촉수를 뻗쳐 왔다. 글쓰기에 두려움을 느낀 나는 그를 장롱 속 문갑 안에 두고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만년필은 내 의식으로부터 멀어져 망각의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만년필 대용으로 볼펜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가볍고 경쾌했다. 쓰기에 속도가 붙고 그럴수록 구겨진 생활이 점차 펴지기 시작했다. 볼펜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말이 많아지고 글의 길이도 길어졌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나를 속이고 나를 굴절시키고 나아가 나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징그럽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점차 멀리하게 됐다. 한동안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생업의 순환과 반복에 갇혀 살게 됐다. 무미건조한 생활에 지쳐 갈 무렵 내 책상 위에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나는 자판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그는 모든 것에 민감하고, 민첩하고, 신속했다. 나는 속도의 수족이 되어 살았지만 예전처럼 아프지 않았다. 때 묻어 얼룩덜룩한 이름이 세상을 떠돌수록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몽블랑을 다시 찾았을 때 그의 피는 이미 굳어 있었다. 올해 벽두 거창하게 나는 나 자신에게 약속을 걸어 본다. 35년 전 초심, 그 몽블랑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 [사설] 남발되는 ‘아니면 말고’ 정책, 국민은 혼란스럽다

    정책은 공동체 이익을 향한 시장과의 대화다. 시장의 동의 또는 승복이 있어야 성공을 거둔다. 특히 시장을 바로잡는 정책일수록 반발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면밀한 검토와 정교한 해법, 부단한 설득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제 시장을 패닉으로 몰아넣은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논란과 같은 일련의 불협화음이 예사롭지 않다. 정부가 높은 국정 지지도에 취해 이런 정책의 필요조건을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제 가상화폐 시장은 오전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불사’ 언급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 게시판으로 대거 몰려가 격한 어조로 반발했고 이에 화들짝 놀란 청와대가 저녁 무렵 “조율되지 않은 방침”이라며 박 장관 발언을 거둬들이는 촌극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가상화폐 거래액은 2100만원에서 1550만원대로 25% 남짓 폭락했다가 다시 2000만원으로 널뛰었다.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크고 작은 손실을 보았다. 청와대 게시판에 걸린 가상화폐 규제 반대 청원에 어제 오전까지 10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동참한 것만 봐도 반발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가상화폐 규제를 둘러싼 정부의 혼선과 해명은 두 가지 점에서 납득하기가 어렵다. 청와대는 ‘박 장관 개인 의견’이라고 했으나 법무부가 참여한 범정부 가상화폐 규제 태스크포스(TF)의 논의 끝에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등을 담은 특별법 제정 방안이 마련된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융시장의 민감성에 둔한 법무부 장관이 경솔하게 발언한 게 사실이라면 마땅히 시장의 혼란과 피해에 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무 조치가 없다. 더 납득하기 힘든 점은 일각의 주장처럼 청와대가 지지자들의 반발 때문에 핵심 정책을 물린 게 아니냐는 점이다. 300만명에 이르는 가상화폐 투자자의 상당수가 20~30대 젊은층이고, 이들 중 다수가 현 정부 지지 세력인 까닭에 이들의 반발 앞에서 마땅히 추진해야 할 정책을 거둬들인 것이라면 이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를 묻게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는 최근 아동수당과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 수업을 놓고 갈지자 행보를 거듭해 국민들의 혼란과 반발을 사고 있다. 5세 이하 아동의 부모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문제를 놓고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소득 상위 10%를 제외하는 원안을 바꿔 전체 대상자에게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회 예산 협의 과정에서 확정된 방안을 자의로 뒤집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교육부는 유치원 영어 수업을 놓고 불과 보름 새 ‘금지→미확정→금지→유예’로 이어지는 갈팡질팡 행보를 보이고 있다. 모두가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설득 과정이 배제된 결과물들이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도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있다. 정부는 시장에 눈을 떠야 한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민의에 쏠린 文정부 여민정치, 책임 중시하는 위민정치로”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민의에 쏠린 文정부 여민정치, 책임 중시하는 위민정치로”

    “청년에게 일자리는 희망입니다. 그 희망을 잘 가꿔 나가도록 환경을 만들고 지원하는 게 고용정책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누군가 한 말이 아니다. 정책이념에서 문재인 정부와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브레인 박재완이 2010년 9월 고용노동부 장관에 취임하며 한 말이다. 청년 일자리를 비롯해 국리민복이라는 지향점은 같지만 지난 9년여 보수 정권이 걸어온 오른쪽 루트를 버리고 왼쪽 루트를 택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이명박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기획재정부 장관 등을 지낸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전·현 정권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이념과 가치에 따라 다르겠으나 국정이 나아갈 길은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지난 4일 오후 그가 국정전문대학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성균관대를 찾았다.-탄핵 이후의 정국 상황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촛불 정국은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거듭 확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존중하고 창의와 다양성을 창달하는 실체적 민주주의로까지 나아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집단최면에 걸린 듯한 편향과 쏠림이 걱정스럽다. 정론(正論)이 힘을 잃고, 중론(衆論)이 활개를 치면 편 가르기가 심화되고 국민 통합은 요원하다.” -탄핵 정국 이전에도 분열상은 극심했다. “그렇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랑을 거친 상황에서 국민 갈등을 보듬는 통합 노력이 더욱 중요한데 현 정부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아 걱정이라는 얘기다. 적폐 청산만 해도 국민 통합과는 다른 방향으로 치달아 왔다. 적폐는 사실 안전 불감증과 허례허식, 교통질서 위반 등 일상 속에도 뿌리 깊게 존재한다. 이런 문제들을 제쳐 놓고 과거 정부에 대한 전면 부정에만 치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여민(與民)정치’에만 치중할 뿐 ‘위민(爲民)정치’는 소홀히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참여와 대표성을 중시하고 중론을 좇는 여민정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리민복의 실체적 관점에서 책임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위민정치다. 소통에 치중하는 여민과 책임을 강조하는 위민이 조화를 이뤄야 성숙한 민주주의에 이를 수 있다. 민의를 받드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다르다. 민의에 매달리는 국정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각 정부 부처가 시민단체 인사 등을 중심으로 적폐청산 기구들을 만들고, 이들 기구가 사실상 부처를 지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과연 어떤 법적 근거와 정당성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의문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검토한 외교부 태스크포스(TF)만 해도 어떤 법적 정당성을 갖고 있는지, 그들의 권한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의문이다. 한·일 관계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 일제강점기에 저질러진 일본의 만행과 한반도 분단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망각하자는 말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양국의 지난번 합의가 성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참된 반성과 역사적 책임은 백마디 말보다 앞으로 북한을 정상국가로 바꾸고 한반도를 통일하는 데 일본이 적극 협력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구현돼야 한다.” -위민정치를 보완할 대안은 뭔가. “교육이나 에너지 문제처럼 나라의 내일과 직결된 정책들이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부터 중요하다.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 정책을 주관하듯 재정위원회, 교육위원회, 에너지위원회 같은 독립된 기구를 구성하고 전문가들을 대거 참여시켜 정책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위원회 위원들의 임기를 10년 이상이나 아예 종신직으로 해 정권 눈치를 보지 않고 나라의 내일을 위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문재인 정부는 그래도 소통하는 정부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의 장점인 건 분명하다. 소통을 바탕으로 한 여민이 없으면 국정은 아예 되질 않는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모두 잇따른 선거 승리로 자만했던 것이 결국 불통 논란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이 점은 현 정부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70% 안팎의 높은 국정지지도를 바탕으로 일방통행식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이럴수록 더 겸손하고 반대 진영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보장할 것이다.” -젊은층에서 보수는 배척당하는 상황이다. 보수 정파의 쇠락을 넘어 보수우파의 이념 자체가 지지를 잃어 가는 것 아닌가. “젊은층이 보수를 배격하는 경향은 취업과 결혼, 보육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그 책임을 보수우파 기득권 세력에게서 찾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기득권층은 보수우파의 이웃 말이 아니다. 대기업이나 의사, 변호사 등을 기득권층이라고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조나 우버택시 도입에 반대하는 택시업계 등도 사실 기득권층이다. 어쨌든 우파의 분발이 요구되는 게 사실이다. 우파의 본질적 가치, 즉 자율과 창의, 다양성, 가족, 인권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국민 행복을 증진할 정책들을 개발해 내는 게 첫번째 소명이다. 나아가 개인보다 집단, 자율보다 규제, 다양성보다 획일성, 인간 존엄보다 이념을 중시하는 시대 역행의 흐름을 제어하고 막아 내는 일도 중요하다. 당장은 좌파가 내세우는 여러 정책들이 솔깃해 보일 수 있으나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체계 개혁 등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정책들이 바탕이 됐다. 우파는 그런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홍준표 대표의 자유한국당, 잘하고 있다고 보나. “책임지는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했지만 대통령이 저 지경이 됐다면 정계은퇴든, 총선 불출마든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몇 명은 나왔어야 했다. 그런 게 없으니 국민들 마음이 떠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보수우파 진영도 이제 40~50대가 전면에 서서 혁신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용기가 없거나 허물이 많거나 자신이 없거나 소시민으로 자족하려는 생각들, 쥐꼬리만 한 걸 지키려는 마음이 복합돼 ‘비겁한 보수’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우파 진영 모두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하고 우파의 새로운 세대를 양성해야 한다. 특히 한국당은 세대교체가 불가피하다.” -소득주도 성장을 기치로 한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어떻게 보나. “시장이 다양화, 전문화, 글로벌화하면서 정부의 정책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인 시대가 됐다. 지금은 민간이 정부보다 더 많이 알고 훨씬 책임 있게 행동한다. 그런 만큼 경제 패러다임도 민간 부문에 더 힘을 싣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여전히 정부 주도로 경제를 끌고 가려 한다. 그게 문제다. 이제라도 정부는 시장을 향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민간이 새 질서를 만들어 내도록 도와야 한다. -현 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면. “노동 문제다. 지금의 노동제도는 제조업, 공장, 남성, 전일제 정규직을 중심에 둔 초기산업화시대의 틀에 머물러 있다. 실리콘밸리엔 근로시간도, 정규직도 없다. 업무공간과 업무시간이 다양화됐다. 고부가가치 경제시스템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 역주행을 하고 있다. 노조 쪽에 치우쳐 있는 점도 문제다. 노동이사제를 비롯해 노조가 요구해 온 것들을 국정 5개년 기본계획에 거의 다 담았다. 노조와의 이런 약속들을 다 이행하면 총고용이 위축되고 기업활동도 크게 활력을 잃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비단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영세기업들도 다 걱정하는 일들이다.” jade@seoul.co.kr ■박재완 前 장관은 2008년 6월 미국산 소고기 수입 역풍으로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출범 4개월 만에 비서실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참모가 교체됐다. 그러나 박재완 정무수석은 오히려 국정기획수석으로 자리를 옮겨 이명박 정부 국정 전반을 총괄하게 된다. 이후 노동부 장관을 거쳐 2011년 6월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은 뒤로 이명박 정부와 임기를 같이했다. 민간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반대하는 그의 경제정책 기조는 이른바 MB노믹스의 골간을 이뤘다. 실용우파를 표방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대표적 인사로, 멘토라 할 박세일 전 서울대 교수(지난해 1월 작고)에 이어 2014년부터 우파 진영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이끌고 있다. ▲63세, 경남 마산 ▲서울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정책학 박사 ▲성균관대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 ▲17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청와대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노동부 장관 ▲기획재정부 장관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엠블랙 지오, 최예슬과 열애 공개 이틀 만에 해명? 무슨 일이길래..

    엠블랙 지오, 최예슬과 열애 공개 이틀 만에 해명? 무슨 일이길래..

    엠블랙 지오가 배우 최예슬과 열애 사실을 공개한 지 이틀 만에 팬들에게 해명했다.4일 엠블랙 지오(32·정병희)가 배우 최예슬(25)과 열애를 인정한 뒤 팬들 사이에서 불거진 논란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날 지오는 엠블랙 팬카페를 통해 “이번 일로 많이 놀라셨을 거라 생각한다. 화도 나셨을 테고, 서운함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는 가수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이다.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도 제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라며 “이해 하실 수 없다 하여 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최예슬을 만났다”며 “한 여자로서 사랑받을 때 친구들이나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인스타의 글들에 대해 당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가수와 팬은 노래와 무대로 만나야 하고, 사적인 모든 부분들까지 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성립되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단 한순간도 A+ 팬들을 망각하거나 기만한 적 없다”라고 설명했다. 지오가 이 같은 글을 남긴 것은 지난 2일 지오와 최예슬의 열애 사실 공개 이후, 팬들 사이에서 불거진 논란 때문이다. 일부 팬들은 그동안 지오와 최예슬이 몰래 만남을 가져오며 SNS에 본인들만 알게끔 연애 사실을 티냈다며 그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또 조만간 예정된 지오 팬 미팅에 깜짝 게스트로 여자친구인 최예슬을 초청하려던 것이 아니냐며 그를 나무라기도 했다. 한편 지오는 지난 2일 “가장 평범한 저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인연이 된 사람이 최예슬”이라며 “많은 것을 인정해주고 배려해주는 사람이다. 정말 행복하다”라며 배우 최예슬과 열애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다음은 엠블랙 지오 입장 전문 이번 일로 많이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화도 나셨을 테고, 서운함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좀 더 사적인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저는 인생에 두 번의 큰 좌절을 겪었습니다. 타이키즈와 엠블랙 타인에 의해 제가 좌우되고 멤버들과의 물리적 이별을 겪었던 게두 경험의 공통점입니다. 엠블랙으로 활동하면서 큰 영광을 가졌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무한한 팬분들의 사랑과 어디에서도 두려울 것 없었던 멤버들이 있어서 제 부족함 마저 감출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회사의 회계 문제, 잘못된 경영 방식으로 인해 멤버 둘과 이별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채 제가 힘든 걸 남 탓하려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남은 저와 승호 미르는 회사의 잘못된 경영으로 도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엠블랙이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참 아이러니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욕하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오해를 풀어달라고 억측이 난무하는 기사들에 해명기사라도 내달라고 회사에 부탁했지만 회사는 그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멤버들과 계약을 끝냈다 얘기합니다. 회사의 잘못이었으니까요. 그 당시 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나이만 먹었지 사회에서 한 거라곤 무대에서 노래 불렀던게 전부인 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였습니다. 아픔은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제 몸과 마음을 지배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채우고 살았습니다. 우울함은 집밖을 나가지 못하게 했고, 결국 대인관계도 끊기게 했습니다. 가족들의 전화도 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나아질 때 쯤 용기를 냈습니다. 거울이라는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여전히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따갑게 느껴졌고,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냈습니다.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팬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늦은 나이지만 복무를 시작했고 복무하는 동안 내외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저로 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너무나 치열했던 시간들을 살아왔고, 부질없었던 감정소모가 아쉬웠습니다. 팬 분들에게도 종종 심경을 밝혀 왔지만 가수 활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또 타인에 의해 좌우되고, 사랑해주시는 팬 분들, 밤낮으로 신경써주는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들, 심지어는 친구들까지 한 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정말 매일 매일 이별하면서 사는 기분이었거든요. 나를 위해 살자 나의 행복이 우선이다. 온전히 나를 위해 살아보고 나의 행복을 찾자. 타인의 행복을 나의 행복이라 착각하지 말자. 진짜 내 사람은 존재할까.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난 꼭 지킬거야. 많은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이 만들어지고 있을 때 최예슬을 만났습니다. 제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한 여자로서 사랑받을 때 친구들이나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인스타의 글 들에 대해 당부하지 않았습니다. 팬미팅은 제 오랜 숙원입니다. 회사와 마지막 까지 싸운 이유가 팬미팅입니다. 돈이 얼마나 들기에, 대관이 얼마나 어렵길래 왜 계속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할까. 제가 직접 하고 싶었습니다. 팬미팅 특별게스트는 미르였습니다. 주말이라 참석이 가능하다 하여 팬 분들께 인사드리려 했습니다. 왜 팬미팅에 여자친구를 공개할거라는 억측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활동할 방향에 대해 말씀드리려 했고, 제게 궁금하신 모든 것들에 솔직하게 말씀드리려 했던 게 팬미팅의 내용이었습니다. 단 한명이 오시더라도 팬미팅은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저는 가수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도 제 인생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기회는 원하는 시기와 타이밍에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유, 방식, 순서 모든 것에 기준은 없습니다. 이해 하 실 수 없다 하여 욕할 필요는 없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 뿐입니다. 신기하게도 1년 전 팬미팅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말씀 드릴 때에도 보이지 않던, 2년간 제 인스타그램에 댓글 한 번 남기지 않던 분들이 팬이라는 감투를 쓰고 나타나 욕을 하고 공감을 얻어내려 노력합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1차원적인 부분에 있어 어떠한 심리 미동도 없습니다. 절 사랑해주는 분들에게 사랑을 나누기에도 충분치 못해 늘 아쉽습니다. 가수와 팬은 노래와 무대로 만나야 하고, 사적인 모든 부분들까지 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성립되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 한순간도 A+ 팬분들을 망각하거나 기만한 적 없습니다. 제게 큰 영광을 주신 분들이고 저는 그 영광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이번 일에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진=지오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1. 눈먼 자의 윤리 때론 그림자가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긴장 가득 훈련된 표정을 지어도, 무시당하지 않으려 허리를 꼿꼿이 세워도, 불안은 그림자에 투영돼 존재를 누설한다. 가끔 속내를 들켜도, 환멸에 사로잡혀 생이 부대껴도 그림자는 결코 존재를 떠나지 않는다. 뒤틀리면 뒤틀린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닌다. 삶과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그러곤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닮은 모습을 하곤 쓸쓸히 흘러다닌다. 생을 반복하고 따라하며 생이 이곳을 떠나도 홀로 남아 존재를 증거한다. 그림자의 이 헌신엔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맹목이 있다.한편으로 그림자는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다. 표정도, 색깔도, 음성도, 촉각도, 냄새도 모두 집어삼킨 채 존재의 맹점을 현상한다. 감각이 보증하는 확실성을 제거하고 정체불명의 검은 얼룩을 펼쳐 놓는다. 그림자는 시각 속의 동공이며 감각을 배반하는 충동이다. 그러니 그림자란 본디 외경의 대상인 것이다. 감각과 관념에 잘려 나간 세계가 역으로 이쪽을 바라볼 때, 맹목의 관계는 뒤집힌다. 그림자에 감염되어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기이한 갈증을 느끼며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니는데 그들을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들도 그림자와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수억의 생들을 베끼고 반복하며 처연히 이해해 간다. 그림자의 맹목과 시인의 맹목. 어찌할 수 없음으로밖에는 풀이될 수 없는 이 눈멂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진실한 이해의 방법이 된다. 불가해한 생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따라하며 존재의 자세를 닮아 버리는 것. 그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진 함부로 대상을 떠나지 못하는 무능이 그들이 가진 윤리이며 능력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시가 과연 이 충분한 맹목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이어진 일련의 실험적 시들이 관습적 문법의 경계를 뒤흔들고 시의 외연을 확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 의지와 선언이 너무 앞선 나머지 관념과 이론이 시를 대신 살아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유행하는 철학적 담론을 잘 소화한 시가 좋은 시가 아니듯, 시와 비평이 근거로 삼은 담론의 윤리성이 시의 윤리와 덕목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말과 삶에 대한 치열한 응시와 질문. 좋은 시의 윤리와 덕목은 언제나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이 점에서 시의 본연에 충실하고 있어 반갑고 소중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위태로운 추락의 한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다. 좁고 피폐한 삶을 지켜 내기 위해 일말의 어둠도 쫓아내기에 급급한 지금, 육박해 오는 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당당한 목소리가 절실하다. 이 눈 맑은 시인은 삶의 도처에 엎어져 있는 상흔을 읽어 내고, 고통의 결과 깊이를 삶의 구체적 언어로 더듬으며 섬세히 응시한다. 그림자가 한 생을 바쳐 삶과 동행하듯, 그의 시 역시 수억의 생을 바쳐 그림자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을 성실히 몸에 새겨 넣으며 깊고 단단해진다. 그림자란 본디 맹점이며, 어떤 확신도 불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무지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고, 보인다고,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자로부터 ‘시선’의 능력을 빼앗았기 때문이며, 닮았다는 이유로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 온 탓이다. 마음의 눈꺼풀은 그렇게 굳게 닫힌 채 존재가 퍼붓는 질문으로부터 안전하게 물러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림자에게 외경을 되돌려 주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이론과 개념들이 생의 그림자가 될 수 없음을 몸소 증거한다. 김소연은 그림자의 시인이다. 그림자의 언어로, 그림자의 시선에 응답하며, 그림자가 남겨놓은 파문들을 뼛속 깊이 묻는다. 2. 그림자양식장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자아 내면의 복수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그림자들의 양식장이라 부를 만한 공간에서, 시인은 말들을 먹이로 던져 주며 내면의 그림자들이 불러일으키는 파문을 응시하고 있다. 그림자의 차가운 비늘이 말에 닿아 번지고 마침내 말을 삼켜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불화하는 내면에로 깊이 침잠한다. 차가운 환멸과 단호한 자기 부정은 김소연 시의 근본을 이루는데, 여기에는 뼈아픈 목도만이 있을 뿐 화해의 축이 부재한다. 타협 불가능한 절대적 자세로 삶의 피폐를 건넌다. 무참한 추락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되는 이곳의 삶에 당당히 맞서 고통의 극한을 살아 낸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모두 통과한 그의 목소리는 가장 뜨거울 때조차 차가움을 예감하고, 가장 차가울 때조차 뜨거움을 끌어안는다. 이 현격한 열의 낙차가 일상의 무감각한 관성을 깨뜨리는 뇌관으로 작동한다. 사월은 차갑다/사월의 돌은 더 차갑다/사월의 돌을 손에 쥔 사람은 어째서 뜨거운가/그는 어째서 가까운가//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살고 있다/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이곳은 차가우므로 더 유리하겠지 - 「열대어는 차갑다」 부분 (『아침』) 돌은 사월의 뜨거움을 기억하기에 더 차갑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들이기에, 그렇지 못한 현실을 더 비극적으로 비춘다. 화자는 마루 아래라는 가시성 바깥의 공간에 망각된 세상의 온기를 풀어놓고 있다. 현실과 ‘너머’의 세계가 빚어내는 처연한 온도차를 뜨거움으로 명명하는데, 그러므로 “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는 선언은 설익은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선 안 된다. 세계에 금이 가는 이유는 이곳과 너머 사이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지 희망과 열정 같은 추상적 개념 때문이 아니다. 불화를 불화로서 보존하되, 이들이 빚어내는 떨림과 파열을 섬세히 기록하는 것. 김소연 시의 이와 같은 분명한 자세는 화자가 실족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노출하는 장면에서 더 아프게 현상된다.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헛짚고 세계의 성감대를 헛짚은. 내리 빗나가던 선택들. 말하자면 기다림으로 독이 남는 자세. 시효를 넘긴 고독. 일종의 모독.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을 뿐. 부패 직전의 끝물이다. - 「끝물 과일 사러」 부분 (『극』) 말의 파편들이 ‘끝’이라는 날카로운 선 앞에까지 밀려나 있다. 각 행의 끝엔 더 이상 남은 공간이 없다. 마침표조차 제대로 찍히려면 스스로가 끌어온 말들을 다시 과거로 밀어내야 한다. 미루고 미뤘던 삶의 초라한 진실이 단정하고 건조하게 한마디를 건넨다. “우리도 끝물이다.” 단단하게 요약된 이 사랑의 문장은 아프다. “치사량의 관성”으로 버텨온 관계의 맨얼굴, “끝물 과일”이 화자를 바라본다. 언어가 감정을 헛짚고, ‘사랑해’가 ‘미안해’를 대신하며 살을 찌워 갈 때, ‘끝’은 이렇게 언어의 은밀한 구석에 날카로운 뼈를 현상한다. 이럴 때 언어는 잔혹해진다. 한없이 위태로워 길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짐승이 된다. 과녁에서 벗어난 말들의 사체가 한동안은 무심히도 쌓였을 것이다. 시인은 이 사랑의 폐허를 떠나는 중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를 “끝물은/아주/달아.”라는 감각적 긍정으로 전환해 낸다. 허위로, ‘헛짚음’으로 유지된 일상을 ‘끝물’에 비유하는 순간, “치사량의 관성”은 역으로 서로의 치부와 세계의 성감대를 더욱 선명하게 발설한다. 부재하는 여기를 정면으로 직시함으로써 몰락한 꿈의 순간들을 발굴해 낸다. 폐허엔 여전히 지독한 허기와 갈망이 어리겠지만 이를 부정하지 않고 생의 언어로 감각해 냄으로써 끝물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도래해야 할 것으로 변모된다. 어떤 환상도 희망도 없이 뜨거움과 차가움을 반복하며 그의 문장은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그가 “차례차례 사랑이었던 것들과 한꺼번에/달디단 혼숙을 하는 것”(「달디단 꿈1」, 『극』)이 꿈이라며 부드럽게 말할 때에도 “이 조용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치욕스럽다”(「학살의 일부12」, 『극』)며 “중무장된 평화”(「학살의 일부1」, 『극』)가 학살이라 선언할 때처럼 단호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의 시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불화와 혼숙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한 사람은 나를 바로 보지 않는다/소파와 구별되지 않게 소파 속에 있거나/반쯤 열린 문틈 안에서 베개를 돋워 돌아눕는다//한 사람은 나를 보다가 나를 태운다/그 온도는 태양과 다름없고/내 운명은 종이와 마찬가지라/돋보기 같은/그의 눈빛에 나는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대체로 나는 그 앞에서 나는 재만 남는다//또 한사람/꿈을 보기 위해/눈꺼풀을 오려냈다는 이 사람/밤새 두 손을 소담히 오므려서/잠든 두 눈을 나는 덮어주곤 했다// (중략) //축하보다는 축복을 받고 싶은 시월 아침에/오만 잡병의 숙주가 된 육체/속옷 벗듯 벗어둔 채/마음끼리 살을 섞는다 - 「세 사람과 한집에 산다」 부분 (『눈물』) 화자는 텅 빈 폐허 같은 방 안에서 자신의 갈라진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나’에게는 두 명의 폭군이 있는데, 하나는 나를 지우고 다른 하나는 나를 재로 만든다. 비록 관계의 양상은 다르나 결과적으로 나를 비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이 더해진다. ‘꿈을 보기 위해 눈꺼풀을 오려 냈다는 사람’은 나에게 어떤 힘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를 존재로 만들어 준다. 화자는 눈꺼풀을 오려 낸 눈이 꿈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잠든 눈을 가만히 덮어 준다. 이 시가 평범한 시였다면, 이 세 번째 사람에게 시의 전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세 개의 그림자로부터 한발 물러나, 이 셋과의 공평하고도 평등한 혼숙을 명명한다. 물론 이는 화해라는 낭만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세 개의 그림자와 나 사이엔 살을 섞어도 결코 화해될 수 없는 아득한 거리가 여전히 냉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문장은 자신을 거쳐간 수많은 그림자들을 마음에 풀어 놓고 그들이 일으키는 파문들에 눈을 충분히 단련시킨 자만이 얻어 낼 수 있는 ‘말’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이 위태롭고 어려운 일을 그는 차분하고도 안정된 걸음걸이로 해낸다. 굉장한 내공과 섬세한 마음의 섭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지나간 마음에 눈을 빼앗겨서도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되며, 섣부른 성찰로 도망쳐서도 안 된다. 꼬이고 뒤틀린 존재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뒤엉키며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는 것. 어떤 불화도 해소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삶의 진실 앞에 스스로를 담담히 열어 놓는 것. 김소연의 시는 이 선명한 규율들을 가슴에 품은 채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보폭으로 사유의 어긋남과 욕망의 비틀림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3. 유실영(影)보호소 김소연 시의 한 축이 자아 내부에 도사리는 복수적 그림자들의 불화를 매개하고 내부의 균열과 긴장을 풀어 놓는 데 있다면, 다른 한 축은 타자의 삶에 깃든 그림자에 대한 섬세한 응시로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그림자는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로 환원되지 않는데, 이는 무엇보다 그의 시가 삶의 구체적 실상과 인간의 유한한 조건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새로운 삶을 위해 전시해 놓은 그럴듯한 기념물이 아니라, 매일의 몰락을 견뎌 온 숨겨 온 자세들이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장소이다.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은 표정들과는 달리 불가피하게 삶의 피폐가 누수되는 공간이며, 모두가 공평히 그런 누수 속에 강제되는 사건이다. 시인은 그렇게 누군가 흘려 버린 그림자들을 데리고 와 사라져 가는 존재들을 거두고 보호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의 내력을 짚어 보며 삶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남아 이곳을 떠도는 그림자들을 위무한다. 그녀는/바다에서 용이 머리를 치키고 올라올 때와 같이/담배 연기를 코로 뿜는다 여의주처럼/담배를 물고 앉아서/성긴 이빨을 자꾸 드러낸다// (중략) /그 노파는 세상 사람들이 그어놓은 줄들을/그런 모양으로 무시하듯 질펀히 앉아서 살아왔다//노오란 양지는 노파를 점점 비켜간다/노파는 그저 햇볕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햇볕이 얼굴의 반을 부시게 하더니/점점 비껴서/이제는 그늘 안에 노파를 가둔다 - 「학살의 일부 10-이빨이 성긴 노파」 부분 (『극』) 노파는 퇴락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연함 속에 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추락의 상흔이 이빨이 성긴 노파의 얼굴에 현상된다. 자신감 넘치는 낡은 몸 안에, 아무도 관심 없던 폐허 몇 개쯤 담담히 갖고 있을 노파의 눈빛이 화자를 응시한다. 함부로 이해해선 안 될 외경이 노파의 그림자에 어린다. 김소연이 “그 얼굴은 얼굴 외에 또 다른 것들이 겹쳐 있었다”(「1937년생」, 『극』)고 말할 때나, “우리 뒤에 깔린 반듯한 비단길을 아무도 걷지 말거라/벼랑 끝 노을이 우리 이마에 새겨주는 불립문자를/아무도 읽지 말거라”(「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빛』)고 진술할 때, 그가 끌어올린 그림자엔 어찌할 수 없는 외경이 실려 있다. 그가 외경을 표하는 그늘들엔 어쩐지 피 냄새가 짙다. 그늘은 찬란한 빛에 의해서만 어둠을 풀어내고, 어둠이 풀려날 때마다 추락은 반복된다. 수없이 깨지고 터져도 결연히 몸을 털고 일어난 생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뜨거운 어둠을 품는다. 그 어둠의 무게가 어깨와 허리를 휘게 만들고, 그림자는 삶을 견디는 그들의 자세를 닮아 버린다. 이승에서 삼십 년/육신을 빠르게 쓰고 저승으로 이사한 아들 사진을//팔십 년째/육신을 아껴 쓰고 계시는 아버지가/느리게 문갑 문을 열어 만지고 계신다// (중략) //계시는 사진 한 장과 없어진 사냥개 사이엔/벽지처럼 살고 있다/앞모습을 보아선 아니 될/가족의 녹슨 얼굴들이 - 「계시는 아버지」 부분 (『눈물』) 여기에는 경솔히 이해해선 안 될 그늘에 머물기 위해 추락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 현상돼 있다. 자식의 죽음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기엔 상처는 너무 깊고 치명적이다. 그래도 삶은 이어져야 하기에 멍이 곰팡이처럼 들어선 낡은 방에 벽지를 바른다. 벽지를 뜯어내고 나면 그 자리엔 함부로 보아선 안 될 타인의 맨 얼굴이 저마다의 자세로 들어앉아 있다. 행복한 시절의 낙서처럼, 녹슬어 가는 얼굴들을 마냥 덮어 둔 채 가족의 삶은 이어진다. 벽지에 얼룩진 가족의 그림자는 이따금 마음을 괴롭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림자의 앞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며 불경이다. “엄마가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에/아기들이나 지을 법한 표정”(「뒤척이지 말아줘」, 『눈물』)을 훔쳐보았다고 타인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그러한 표정을 숨기고 있을 얼굴을 그림자를 통해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 번 슬쩍 보고 건네는 동정이 아니라, 그림자를 평생 가슴에 품은 채 그림자가 건네는 추락의 내력을 오래도록 살아볼 때만 허락되는 일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들이 쓰여진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었다/ (중략) //그 창문으로 나는 지금 바깥을 내다본다/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에 서서// (중략)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에서/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잠깐의 반가움과/오랜 두려움뿐이다//두려움에 집중하다 보면/지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었던 사람이/실은 자신의 피폐를 통역하려 했다는 것을/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내쫓으면서/나는 알게 된다 - 「여행자」 부분 (『아침』) 화자는 지금 수십, 수백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그늘에 머물러 있다.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 없는 그늘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은 희망이 불가능한 곳으로 자신을 조용히 밀어 넣기도 했을 것이다. 상처를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을 위해 황무지뿐인 창밖을 오래 바라봐야만 했으리라. 화자는 낙관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 않아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피폐한 문장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타인의 전생이 한꺼번에 이곳의 삶으로 현상돼 번지고 부대끼는 일. 화자가 매개하고 있는 이 순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던 “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포기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나를 보호하던 관념들을 내려놓은 채 타인의 그늘을 만져 보는 일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시인이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 낼 때//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먼지가 보이는 아침」, 『아침』)이라고 말할 때, 다음 생이란 희망적이고 추상적인 미래의 어느 때를 의미하지 않는다. 타자의 그림자를 밟는 일이란 이미 하나의 생이 끝나고 다른 생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에 담긴 무게를 섬세히 읽어 내고 그 무게가 역으로 자아의 무게를 읽어 내는 경계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의 시를 버림받은 그림자들의 보호소라고 할 때, 화자는 그림자들을 관리하는 주체도 아니고 동정을 베푸는 관광객도 아니다. 그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관통하는 사건의 매개이며, 타인의 그림자로부터 또 하나의 생을 물려받는 상속의 증거이다. 그림자를 이해하며 그림자에 감염되어 스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간다. 길 잃은 그림자들은 그렇게 다음 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4. 아포리아인형극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배우이고 관객이며, 공기이고 침묵이다. 그림자들에 잠재된 생의 근원적 형상을 발굴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생의 어둠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과 연극을 시작한다. 때로는 독백으로, 때로는 방백으로, 그림자인형들 사이에 무형의 그림자가 스미고 번진다. 연극은 비교적 순조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말이 리듬을 타면 탈수록 그림자는 연출자의 의도를 넘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발화하기 시작한다. 오려낸 눈동자의 텅 빈 어둠으로 삶이 역류하기 시작한다. 말에 자기를 꿰뚫리고 거꾸로 그림자에 응시당할 때, ‘이곳’은 어떤 강제성에 내몰린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낯선 질문들에 발가벗겨진 채 노출되는 것이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몸에 둘렀던 기호와 기표들의 강고함은 물거품이 되어 녹아 버린다. *현재까지 발간된 김소연의 시집은 『극에 달하다』(1996),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 『눈물이라는 뼈』(2009), 『수학자의 아침』(2013)까지 총 네 권이다. 인용할 경우 면수는 생략하고 각각 『극』, 『빛』, 『눈물』, 『아침』으로 표기한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자세만이 남아 있다//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그의 충고를 따르자면/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 「빛의 모퉁이에서」 부분 (『빛』) 그림자 없는 삶을 위해 끌어다 쓴 빛의 피곤이 필연적으로 ‘밤’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정확한 진술은 이러한 말과 그림자의 본질에 닿아 있다. 단적으로 말해 그림자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면 그것은 유령의 삶일 것이다. 그림자는 사물의 물성을 증거하면서, 동시에 그 물성을 지워 버린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그만큼 물성이라 믿어 왔던 존재의 본질이 허약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서만 사물의 사물됨을 알 수 있고, 말을 통해서만 자신의 자신됨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유령의 것이라면, 말을 부여받지 못한 내면 역시 비존재로 내몰린다. 그러나 어떤 그림자로도 어떤 말로도 존재의 본질은 포착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림자와 말은 환영 혹은 오류가 되어 존재의 본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그림자가 지닌 이 이중성. 존재의 물성을 실감하게 하면서 오히려 그 실감을 내파해 버리는 모호성에 삶과 말이 지닌 진실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림자를 수도 없이 베끼며, 그림자들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어떤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일뿐이다. 밤마다/그녀였던 당신이었던/수많은 아이들이 찾아와요/거친 바람처럼 문을 흔들며 칭얼대요/하나같이 눈은 퉁퉁 부었고 손끝은 차고/고개는 숙였어요// (중략) //지낼 만한 노곤함과/돌아갈 만한 차비를 두 손에 움켜쥐고/칭얼대고 칭얼대다 사라지죠//들어줍니다 두 귀를 여행 가방처럼 활짝 열고서/쓰다듬지요 두 손을 세계지도처럼 판판히 펼쳐서 위로합니다 긴 밤을 꼬박 앉아서// (중략) //번번이 한 아이가 남아 있어요/벽에 걸어둔 시커먼 외투처럼 등 뒤에서/이 아이, 자기가 엄마라고 우깁니다// (중략) /누워서 그녀는 자기 젖을 빨아요/그러면 그녀는 잠이 오지요 - 「그녀의 생몰 연도를 기록하는 밤」 부분 (『눈물』)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보다도 밤의 시간에 더 스스로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낮이 강제하는 빛의 윤곽으로부터 풀려남으로써 그림자는 비로소 ‘경계’의 영역에 서기 때문이다. 그녀였던 당신이었던 수많은 그림자들은 태양의 폭정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이미 반쯤은 사라지고 투명해진 모습으로 찾아와 말을 건넨다. ‘그녀’가 그 수많은 그림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젖을 물리며 그림자들의 해갈될 수 없는 결여에 응답하는 것뿐이다. 이 고된 노동. 그림자들을 위무하기 위해 역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그녀’가 스스로의 젖을 빨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적 진술은 삶의 피폐성을 요약한 아포리아에 가까워진다. 그의 시에 잔혹동화와 같은 모티프들이 자주 동원되는 까닭 역시 동화가 압축해 내고 있는 생의 근원적 형식 때문이다. 그가 변용한 동화들 속에서 캐릭터는 오직 ‘자세’만으로 요약되는데, 무수히 많은 말들로 흘려보내도 끝끝내 남아 되돌아오는 ‘그림자’의 맹목적 갈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 밑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은 그 지붕 위를 저벅저벅 밟고 다녔대. 암늑대는 노란 지빠귀를 올려다보고, 노란 지빠귀는 늑대를 내려다보았대. 둘은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대. 그래서 겨울밤은 감옥이 되기 시작한 거래. - 「눈물이라는 뼈」 부분 (『눈물』) 아이의 성장통을 비유하고 있을 이 시는 어떤 노래의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새하얀 벽 위로 그림자들이 생을 공연한다. 섭생을 위해 지빠귀를 노리는 암늑대의 자세는 낮고 단단하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마음은 모두 잘라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늑대의 눈빛에 어리는 검은 허공의 시간. 그 시간이 서서히 늑대를 물들여 간다. 암늑대를 내려다보는 지빠귀 역시 흔들림 없이 다가올 운명 앞에 눈감지 않는다. 공포에 몸을 맡겨 둔 채 자신도 그 시간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리고 이들의 비극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바람과 아이가 있다. 이들이 빛과 어둠 사이에서 얽히고설키며 삶을 요약해내는 동안, 그 단단한 함축을 받아 먹고 돌들이 자란다. 하나의 비극이 있었음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생의 굴레에 의연하게 걸어 들어가 견뎌낸 그늘이 있음을 증거하고 제의한다. 김소연의 시는 그림자로 펼쳐 낸 한 편의 아포리아 인형극이다. 이 연극에는 무수히 많은 그림자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부재한다. 주인공이라 일컬을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생 자체일 것이다. ‘삶’이 그려 내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다변성 속에서도 결코 인간을 놓아 주지 않는 묵직한 생의 중력을 그의 시가 잘 포착해 내는 건 그림자야말로 생의 본질임을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자는 원상의 형상을 얼마든지 왜곡도 하고 때론 숨어 버리기도 하지만 결코 달아나지 않는다. 원상 내부의 상처와 질곡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생의 모서리를 현상해 낸다. 삶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무수한 그림자 기표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그림자란 본디 원상의 것도 아니며, 원상과 무관한 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그림자란 한 편의 활시위와 같다. 원상의 중력과 그 중력을 넘어서려는 두 힘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휘어질 때, 그림자는 필연적으로 생의 근원에 가까워진다. 김소연의 문장이 지닌 안정된 흡인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5. 판화적 글쓰기 인간이 맹점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는 건 맹점에 의한 시야의 어둠을 다른 눈의 시각을 통해 메우기 때문이다. 언어의 눈, 그림자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빛을 가득 채워 존재가 현현하는 곳을 봉쇄할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감정과 생각이 어긋나고, 말과 빛이 허용하는 사유만이 폭거하는 메마른 불모지로 변모한다. 동일성의 사유에 항거하는 최근의 숱한 철학적 사유들이 그 윤리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삶의 언어를 구원해 내지 못하는 건 이들 이론과 이미지의 현란함이 맹점의 파쇄가 아닌, ‘보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언어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한, 자신의 손과 발로 직접 일구어 내지 못한 이미지의 언어들은 스스로가 올바른 대체시각이며, 이 강렬한 빛으로 맹점과 어둠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또한 뒤틀린 자만이며 확장된 동일성이다. 그러나 맹점은 우리 삶의 조건이며, 그 종착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은 부정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세계와 인간 사이에 놓인 고유한 매개 방식이다. 그림자가 아무런 음성도 없이 지상에 잠시 내려앉은 검은 입으로 말을 건넬 때, 이를 가장 섬세하게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은 어둠을 어둠인 채로 내버려 두는 일이다. 시선의 한구석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어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이 조건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하여도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유령처럼 태어나고, 그 절망적인 시도를 되풀이하며 말의 어긋남 속에서 더 진실한 말 하나를 길어 올린다. 이는 시인의 숙명이며,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를 김소연의 시적 방법론을 빌려 말하자면 판화적 글쓰기라고 명명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성실하고도 마음 따뜻한 그림자 필경사는 그림자에 각인된 어둠의 지문을 숨죽여 더듬으며 그 굴곡과 깊이를 음화로 찍어 낸다. 어둠의 언어로, 어둠을 끌어안은 채,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근원적 자세들을 현상해 낸다. 안전한 거리에서 시각의 윤곽을 따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 어둠에 밀착해 어둠을 살아 내면서 몸으로 찍어 내는 것이다. 그의 판화적 글쓰기에서 그림자는 언제나 모상(模像)이 아닌 원상(原象)일 수밖에 없는데, 시선의 권력을 그림자에게 돌려줌으로써 주체가 만들어 낸 일련의 위계상을 단번에 해체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바와 전략이 너무도 명확한 만큼 쉽게 ‘코드’로 환원될 수 있다는 약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시는 ‘코드’로 읽히지 않는다. 그림자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기보다는,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 자체를 경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구체적인 삶의 시공간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삶의 실경이 굳건하게 뿌리박고 있는 시적 공간에서 그림자의 우화로 그림자의 눈빛에 노출되도록 만들 뿐이다. 태양에 흑점이 많을 때는, 역설적으로 태양의 활동이 가장 ‘극에 달했을’ 상태라고 한다. 내부의 격렬한 균열과 폭풍이 열의 흐름을 방해하여 상대적으로 어둡고 온도가 낮은 부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림자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가장 격렬한 생을 통과한 내상들이며, 그 내상이 건네는 말의 뒤틀린 방식이라고. 김소연의 시는 현실 너머의 추상적 피안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을 절실히 통과한 이후의 ‘이곳’을 그림자의 형상을 통해 추적해 낸다. 삶을 가장 치열하게 마주한 자의 뜨거움으로 그늘이 품은 울음을 읽어 내고 위무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일컬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의 흑점들로 이루어진 점자들이며, 생의 근원적 자세를 찍어 낸 판화들이라고.
  • 현장 옆 불법주차 ‘빽빽’…여전히 소방차 공간 없다

    현장 옆 불법주차 ‘빽빽’…여전히 소방차 공간 없다

    소화전 4개도 다 차량으로 막혀소방차 전용구역도 버젓이 주차 주변 건물 비상구도 물건 꽉 차 “이웃들 참사 보고도 안전 망각”26일 낮 12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사고 현장. 외벽 전체가 시커멓게 그을리고 폭격을 맞은 듯 통유리가 부서진 흉측한 건물 모습은 지난 21일 29명의 목숨을 앗아 간 참혹한 당시 상황을 실감하게 한다. 인근 몇몇 가게들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걸고 조용히 영업을 이어 갔고, 일부 노래방과 호프집 등은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참사 이후 5일째 문을 닫고 있었다. 하지만 참사 현장 주변의 안전의식은 아직도 부족해 보였다. 스포츠센터 동쪽 이면도로를 가 보니 양쪽으로 불법 주차한 차량 탓에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화재가 나서 소방차가 출동한다면 작은 펌프차가 겨우 지나갈 공간밖에 없었다. 인명 피해가 크게 난 원인의 하나가 불법 주차 차량이었다. 소방 당국은 견인차까지 불러 불법 주차 차량을 치우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교훈’을 벌써 망각한 것 같다. 불법 주차 차량은 화재 발생 시 소방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소화전까지 가로막았다. 화재 현장 근처의 롯데마트 주위를 살펴보니 빨간색 소화전 4개가 모두 차량에 막혀 접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소화전 등 소화용수 시설 주변 5m 이내에 불법 주정차할 경우 2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규정을 모르는 걸까. 소화전이 장식품처럼 보였다. 인근에 사는 주민 손모(42)씨는 “이웃들이 대형 화재로 목숨을 잃었는데도 아직도 ‘설마’ 하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며 “하소동 중심 상권인 이 일대에 주차할 곳이 없다지만 아무 일 없는 듯 불법 주차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전 불감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스포츠센터 길 건너편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자 주차장이 텅 비었는데도 노란색으로 그린 소방차 전용구역(가로 5m, 세로 12m)을 물고 세운 차량들이 보였다. 주민들이 귀가하는 밤이 되면 소방차 전용구역은 무용지물이 될 게 뻔해 보였다. 하지만 도로가 아니라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를 보완하려고 지난해 11월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비상구를 찾지 못해 스포츠센터 사망자가 많았는데도 주변 상가 건물들의 계단과 비상구는 아직도 엉망이었다. 노래방, 커피숍, 당구장 등 10여개 점포가 입주한 한 4층짜리 상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3, 4층 사이 계단에 벽이 설치돼 더 올라가지 못했다. 불이 나 대피했다면 꼼짝없이 갇혔을 것이다.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권석창 의원, 제천 참사 현장서 “뭘 감출 게 있다고 못들어가게 하냐”…출입 논란

    권석창 의원, 제천 참사 현장서 “뭘 감출 게 있다고 못들어가게 하냐”…출입 논란

    25일 권석창 자유한국당 의원이 출입이 통제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현장에 들어가는 부적절한 처신을 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권 의원은 지난 24일 오후 화재 감식 등을 위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한 화재 현장을 방문해 30여 분 간 둘러봤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현장을 촬영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비디오머그의 영상을 보면 권 의원은 현장에 들어가려하자 출입을 제지하는 경찰과 승강이를 벌였다. 권 의원은 “뭐야 이게, 여기서 지금”이라고 소리치면서 현장 진입을 막는 경찰과 소방관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그는 “뭘 그렇게 감출 게 있다고 못들어가게 하고 있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장 출입을 제지 당하자 권 의원은 휴대전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권 의원은 “청장님!”이라고 말하고는 “여기 들어가서 현장조사 하겠다는데 지금 못 들어가게 하는 거요, 지금?”이라고 따졌다. 이어 “재난안전특위에 어차피 경찰청장 부를 거예요. 지금 언론이 옆에서 다 듣고 있어요. 지금 옷을 입고 들어가겠다는데 못 들어가게 하는 게 어딨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의원은 “지금 사정 다 이야기했잖아요, 지금. 이제 들어가자고요”라고 하더니 “내가 의원이라고 밝혔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고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와서 지역구 국회의원입니다. 그 다음에 의원이라고 밝혔잖아요. 배지도 달고 갔고”라면서 “그러면 국회의원이 못 들어가게 하는 덴 여기 밖에 없어요. 피고인이나 피의자는 못 들어가지만, 국회의원이 어떻게 못 들어가요”라고 따졌다.권 의원은 이어 자신이 현장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권 의원은 “일단 저기 현장을 봐야 내가 보고를 할 거 아니예요”라면서 “저희도 원내대표, 당대표도 다 있잖아요. 저도 현장 잠깐 봐야 돼요. 저도. 봐야 저도 이야기를 해야 되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특위 열리고 하면 이 지역 국회의원이 제일. 나한테 물을 텐데 내가 모른다고 할 수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현장에서 출입을 허가하자 전화를 끊었다. 권 의원은 “현장 앞에 와있어요. 나 말고 한명 더, 아니 우리 보좌관”이라더니 “여기서 현장에서 오케이 했어요, 또 지금. 현장에서 두 분만 들어가시라고 방금 연락 왔으니까. 그냥 여기서 현장 조치할게요”라고 말하고 통화를 마쳤다. 권 의원의 부적절한 처신에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화재 현장은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해 유족들도 출입을 못하고 있다. 유족대표 일부만 지난 23일 합동 감식을 참관했을 뿐이다. 한 유족은 “유족들도 정확한 화재 원인 규명을 돕기 위해 현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국회의원 신분을 내세워 현장에 들어가 사진까지 찍은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은 25일 “현장 보존을 위해 철저하게 격리된 공간에서 ‘나 국회의원인데’라며 경찰 저지를 무시하고 현장에 들어간 것은 용서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충북도당도 “대참사로 전 국민이 안타까워 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유족을 돌보는 등 수습책을 마련해야 할 국회의원 본문을 망각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 권 의원은 “현장을 찾은 것은 의정활동의 일환”이라며 “현장을 통제해 처음에 (경찰 등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곧 안전장비를 모두 갖추고 경찰관 입회하에 현장을 둘러봤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특파원 칼럼] 일본에서 본 제천 참사/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에서 본 제천 참사/이석우 도쿄 특파원

    “차고 증명제 하나만 제대로 시행했어도 많은 희생자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을 언급하던 재일한국인 지인이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소방차를 가로막는 불법 주차, 막혀 있는 비상구’는 대형 화재 참사에서 빠지지 않는 주범으로 지탄받아 왔지만, 피눈물 나는 절통한 사건들은 반복적으로 우리 주변을 강타한다. 한국인의 집단 망각증 때문일까, 제도적 장치의 미비 탓일까. 일본의 차고 증명제는 불법 주차를 근본적으로 막는 제도적 장치다. 주차장이 확보되지 않으면 차를 살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이 일본을 지탱하는 대표 산업이지만 차 소유에 대해서는 적잖은 부담을 지게 했다. 아파트 등 공동 주택이라면 차 소유자는 별도의 주차비를 내야 한다. 한국처럼 아파트를 사거나 세든다고 자동적으로 주차장이 제공되지 않는다. 도쿄라면 3만~5만엔(약 29만~48만원)은 훌쩍 나온다. 회사 건물에 주차하기 위해서도 따로 비용이 든다. 집, 회사, 볼일 보러 다니는 곳 등의 주차비 등을 계산하면 한 달 주차비로만 대략 10만엔 이상을 각오해야 한다. 차고제 증명과 예외 없는 단속 등 엄격한 법 집행은 불법 주차를 막고 도심 혼잡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근간이다. “돈 있는 자만 차를 몰라는 말이냐”는 반론이 나올 법하지만 도시 집중도가 우리보다 심각하고, 지진 등 재난 위협 속에서 긴급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는 일본에서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고 이를 받아들인다. “내수 살리기에 역행한다”란 구실로 우리처럼 차고 증명제를 반대하는 정치인도, 관료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 선의에 기대하기보다는 제도적 장치, 시스템을 통한 문제 해결을 더 신뢰한다. 불법 주차는 생활 속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 질서와 준법 정신에도 직접적 악영향을 준다. 우리 아이들은 불법 주차를 당연한 것으로 보고 배우며 자란다. 주차 딱지를 떼이고, 시비하고 삿대질하는 사람들…. “내가 뭘 잘못했느냐. 다른 사람들도 늘 그렇게 하는데….” 길거리에서 매일 보는 장면은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원칙을 압도하는 상황 논리의 승리’를 상징한다. 불법 주차가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아무리 위협해도, 선거로 뽑힌 지자체 단체장들은 인기 없는 정책을 쓰지 않으려고 못 본 체한다. 결국 한국은 불법 주차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수준의 나라로 굳어져 간다. ‘깨진 유리창 법칙’의 지적처럼 경미한 범죄의 방치가 큰 범죄를 부르듯, 불법 주차의 용인이 한국 사회의 준법 정신 하락을 부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 일본과 같은 차고 증명제의 도입 같은 결정은 불가능한 걸까. 이런 조치가 공동체를 위해 불편과 부담을 개인들이 나눠 져야 함을 일깨우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제천 참사는 지켜져야 할 것이 외면되고 무시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이고, 현실이다. 일본인들은 엘리트들이 짜놓은 틀 안에서 안심하고, 순응하면서 그 질서를 목숨처럼 지키면서 산다. 한국의 공동체와 공공질서는 개개인들의 제각각 역주행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치료하고, 법치 사회의 질적 하락을 더이상 용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과 같은 미봉책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지만, 또 그것을 외면할 것인가. 제도와 시스템 구축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 모두 절치부심해야 한다. jun88@seoul.co.kr
  • 여대생 치마 속 ‘몰카’ 찍은 남성 교직원, 항소심도 집행유예

    여대생 치마 속 ‘몰카’ 찍은 남성 교직원, 항소심도 집행유예

    한 대학교 기숙사 사무실에서 여대생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교직원이 항소심에서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2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근 춘천지법 형사1부(부장 정회일)는 성폭력처벌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33)씨가 “형량이 무겁다”면서 낸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과 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한 원심도 유지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0월 10일 오후 5시쯤 강원 원주시의 한 대학교 기숙사 사무실에서 ‘미니 히든 카메라’가 든 서류 가방을 이용해 B(21)씨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같은 수법으로 A씨는 지난해 7월부터 같은 해 10월 말까지 여대생 등 8명의 치마 속과 신체 등을 촬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가방에 카메라를 숨겨 치마 속에 넣는 등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방법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한 원심은 적법하다“면서 ”학생들을 보호·관리해야 할 교직원의 지위를 망각하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고려해 원심 형량을 정한 만큼 형량이 무거워 부당하다는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없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시민단체 “김영란법 개악에 경악…이 총리 사퇴해야”

    시민단체 “김영란법 개악에 경악…이 총리 사퇴해야”

    일부 시민단체들이 ‘부정청탁·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부분 상향 조정된 데 대해 “개악에 경악한다”며 이낙연 국무총리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안전사회시민연대 등 11개 단체로 구성된 ‘김영란법 사수 및 강화를 위한 시민연대’는 1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김영란법 개악에 앞장서는 이 총리와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적폐청산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가 김영란법 (시행령) 개악을 시도하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이 총리는 갈등을 조정하는 총리의 본분을 망각하고, 특정 집단의 로비에 휘둘려 부패방지법을 만신창이로 만들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청탁금지법을 발의한 권익위가 개악 작업에 앞장선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특히 개정안건 부결 결정이 불과 2주만에 뒤집힌 것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농업축수산업 분야의 매출 감소는 농업개혁과 유통개혁을 통해 해결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관련 업종의 소득향상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지난 11일 음식물·선물·경조사비의 상한액을 정한 이른바 ‘3·5·10 규정’을 ‘3·5·5+농축수산물 선물비 10만원’으로 조정하는 내용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가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찰인권센터장 “폭행당한 기자 사과해야” 논란

    경찰인권센터장 “폭행당한 기자 사과해야” 논란

    “순방 기자단 폐지” 4만여명 청원중국 경호원의 한국 기자 폭행 사건과 관련해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이 해당 기자에 대한 징계와 소속 언론사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이는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해외 순방 수행기자단 폐지’ 청원이 빠르게 찬성을 얻고 있어 청와대측의 답변을 받을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장 센터장은 16일·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국에서 물의를 빚은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는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대중국 외교에 막대한 지장을 야기한 해당 기자를 징계하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다른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 정하는 기준을 따라야 한다”면서 “국가적 외교 성과를 망가뜨리고 나라 망신까지 시켰다면 세종로 네거리에 멍석을 깔고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4일부터 ‘청와대 기자단, 해외 수행 기자단 제도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18일 0시 현재 4만 3300여 건의 찬성을 얻었다. 청원 개요에는 “대한민국의 언론은, 그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채 스스로 권력화하고 펜을 칼처럼 휘두르는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30일 동안 국민청원이 20만건이 넘으면 답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답변 여부가 주목된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열린세상] 경험과 기억/유효상 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장

    [열린세상] 경험과 기억/유효상 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장

    ‘저 친구는 2학년 때 소풍 가서 장난치다 선생님께 많이 혼났잖아.’ ‘신입사원 시절에 내가 진짜 술을 많이 사 주고 그랬지.’ ‘그때 당신이 먼저 심한 말을 해서 싸웠잖아? 기억 안 나?’ 당사자들은 전혀 기억을 못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연신 자신 있게 과거의 일들을 마치 어제 일인 듯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다시 송년회의 계절이 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오랜만에 학창 시절의 동창생들도 만나고, 과거에 함께 일하던 동료와 과거를 회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런 자리에는 과거의 기억을 마치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이 옛날 얘기를 완벽하게 재생하는 친구들이 한두 명쯤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위 포토그래픽 메모리(완벽한 기억력)를 뽐내며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러나 그러한 화기애애한 자리가 과거에 대한 기억의 차이로 불편한 상태로 행사나 모임이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경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경험 정보는 망각된다. 이 때문에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도, 어제 만난 친구의 넥타이 색깔도, 그제 먹은 점심 메뉴도, 심지어 오늘 회의 시간에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쉽게 잊는다. 기억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해 주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판단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이토록 중요한 기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심리학 박사이자 범죄학 교수인 줄리아 쇼는 최근 그녀의 저서 ‘몹쓸 기억력’에서 우리가 확실하다고 여기는 기억이 사실은 얼마나 불완전하며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크리스토 차브리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서 사람들이 기억했다고 생각하는 내용과 실제의 차이를 ‘기억력 착각’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기억력 착각은 실제 사실보다 그것을 느끼는 감정에 좌우되며, 인간들은 기억할 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도 마치 자신이 겪은 사건처럼 착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충격적이거나 중요한 사건에 대해 선명하고 상세한 기억일수록 착각이 가장 크게 작동하며, 기억 체계는 사실과는 관계없이 자신을 사건의 중심에 갖다 놓으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했다. 빅토리아대학의 스테판 린드세이 교수는 실험 대상자 몰래 가족들에게 어린 시절 사진을 받아 열기구를 탔던 것처럼 보이게 사진을 조작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보여 주며 기억나는 것을 회상해 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열기구를 탔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으며, 심지어 조작된 사진에도 없던 세세한 내용까지 이야기했다. 오히려 실험이 끝난 뒤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열기구를 탄 적이 없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경험과 기억 사이의 혼동은 강력한 인지적 착각이다. 실제 경험과 기억은 왜곡되기가 쉬운데, 예를 들어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죄책감으로 인해 전쟁에서 적군을 사살했다고 하는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적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과거 실제 경험을 나중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바꾸곤 하는 것이다. 한편 기억 연구의 전문가인 이반 이스쿠이에르두는 그의 저서 ‘망각의 기술’에서 사람들이 ‘지우고 싶은 기억을 삭제하고, 중요한 사건, 아름다웠던 시절을 또렷이 기억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했다. 심리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커너먼 교수는 인간에게는 경험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자아(remembering self)라는 두 존재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경험자아는 현재 내가 경험하는 것을 느끼는 것으로, 지금 벌어지는 기쁜 일이나 쾌락은 즐기고 고통이나 괴로움은 피하려 하고, 기억자아는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데, 이 두 자아는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하루의 삶 속에서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한 사람이다.’ 대니얼 커너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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