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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법 속출… 흐려진 표밭/부정선거운동 이틀만에 1백여건

    ◎향응·금품제공 사례 잇따라/야 순회집회도 큰영향 줄듯 기초자치단체 의회의원 선거가 개시된지 이틀째인 9일 전국적으로 선거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벌써부터 후보자들의 불법·타락행위가 잇따라 온국민이 바라는 공명선거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검찰과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불법선거운동을 한 후보자 등을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고 전국 각 지역의 민간단체들도 조직을 총동원해 불법·타락행위를 감시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과열·타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까닭은 후보자들이 기초의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쓸데없는 감투욕에 젖어 있거나 광역의회의원이나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후보자들이 자주 저지르고 있는 대표적인 불법사례는 호별방문과 향응제공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이번 선거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될 정당이나 행정기관 등에서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를당원으로 입당시키고 후보를 조정한다는 구실로 선거에 개입하거나 각종 보고대회를 여는 것 등도 공명선거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평민당 등 야권에서 이달말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할 예정인 수서비리 진상규명집회」도 이번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선관위 등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이처럼 과열기미가 두드러짐에 따라 이날 현재 검찰과 경찰·지역선관위·시민단체 등에 고발된 부장선거사례만도 1백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하룻동안 부정선거운동으로 판단되는 3건의 시민고발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고발사례를 보면 서울 성동구에서 기초의회 후보로 등록할 예정인 김모씨가 모단체의 부녀회원들을 동원,후보자추천장을 확보한 뒤 이를 대량으로 복사해 갖고 다니면서 등록에 필요한 인원수를 초과해 주민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의 일부지역에서는 출마후보자들에 대한 사전조정이나 예비투표 등을 실시,후보자를 단일화 시키고 있어 말썽을 빚고 있다. 이같은사정은 지난 국회의원 총선에서 황색바람을 타고 전지역구에서 평민당 후보가 당선된 전남·북지역에도 비슷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힘에 의한 중동질서 재편 안된다/정종욱(서울시론)

    ◎전후구도 도덕성에 바탕 둬야 걸프전쟁이 지상전의 시작과 함께 싱겁게 끝날 것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래서 세계가 온통 승리의 기쁨에 들떠있고 흥분해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나친 낙관을 경계할 정도로 지상전의 진행과 성과에 만족해 있다. 그러나 과연 전쟁이 그렇게 쉽게 끝날 것인가? 또 전쟁이 끝나는 경우 진정한 의미에서 얻은 자와 잃은 자는 과연 누구일까? 지상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세계의 관심은 쿠웨이트해방이 아니었다. 지상전이 임박한 상태에서 이라크와 소련이 내놓았던 종전제안도 조건이 붙어있긴 했어도 분명히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완전철수를 못박고 있었다. 이것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내용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들 단호히 거부했다. 쿠웨이트의 회복이라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이라크와 후세인의 응징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안보리의 결의에 배치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논란을 무릅쓰고 이라크국경 안으로 전쟁을 확대키로 한것이다. 이라크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동시에 후세인이 아랍민족주의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예부대인 공화국수비대를 두들겨 부셔야하고 쿠웨이트가 아닌 이라크 영토내에서 후세인의 높은 코를 꺾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부시대통령이 잘 알고 있었다. 군사적 패배뿐 아니라 정치적 굴욕까지도 후세인에게 안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불확실하다. 정치적 승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쿠웨이트에서 안정되고 민주적인 정권이 수립되어야하고 나아가서 중동지역에서 후세인 없는 새 질서가 들어서야 한다.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어야하고 중동의 전후복구 사업에 다국적국가들의 참여문제도 타결되어야 한다. 모두가 쉬운 문제들은 아니다.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해서라도 끝까지 항전할 경우 생길 수밖에 없는 엄청난 피해와 파괴도 부시의 고민 중의 하나이다. 특히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대의 완전철수를 수락한 마당에서 다국적군이 이라크의 군사적 패배를 위해 전쟁을 계속할 경우 이에 대한 세계여론의 비난도 부시에게는 큰 정치적 부담이 되지않을 수 없다. 걸프전쟁이 끝난게 아니라 새로운 단계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걸프전쟁이 다국적군대의 쿠웨이트 점령과 이라크의 군사적 패배로 끝날 경우 잃은 자와 얻은 자가 누구일까라는 문제도 해답은 간단하지 않다. 얼핏보기에 가장 많은 것을 얻은 쪽이 미국이고 부시대통령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걸프전쟁의 승리로 미국은 월남전 이래 가장 강력한 군사적 승리를 얻게 되었고 부시는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적어도 부시는 내년에 있는 대통령 선거전에서 재선을 사실상 보장받게 되었다. 또한 미국은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도전자 없는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이 인정되게 됨으로써 냉전체제의 와해와 함께 유럽에서 잃어버렸던 힘의 기반을 걸프지역에서 만회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얻은 가장 큰 이익은 원유공급의 독점권이라 할수 있다. 이는 경제력 경쟁에서 유럽에서는 독일에게,아시아지역에서는 일본에게 판정패 당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제성장의 열쇠인 원유공급의 확보를 미국이 독일과 일본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반에 걸쳐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결정적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얻은 것만큼이나 이라크와 소련도 많은 것을 잃은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와 영향력이 위축되었던 소련은 중동에서 발판을 잃게 됨으로써 국력쇠퇴의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이같은 엄청난 타격을 받고도 과연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라크도 마찬가지이다. 제2의 나세르를 꿈꾸던 후세인은 아랍민족주의의 순교자가 아닌 배신자로 낙인찍힐 절망적 위기에 몰려있다. 같은 아랍국가인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강점했다는 사실 자체가 후세인과 나세르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다르게 하고 있다. 아랍민족의 위신을 높이는 대신 오히려 열강의 영향력이 더욱 강하게 투영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많은 것을 얻었으면서도 동시에 많은 것을 부담으로 안게되었다. 이 부담을 지탱하지 못하면 얻은것 만큼이나 잃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짊어질 부담은 무엇보다도 힘의 오만이다. 걸프전쟁의 승리에 도취할 나머지 세계질서의 재편을 미국 위주로 밀어붙일 가능성을 경계해야한다. 새로운 국제질서는 힘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도덕성에 입각해야한다. 힘의 우열에 따른 위계적 권위질서가 아니라 상호 이해관계를 보완하는 다원적 질서이어야 할 것이며 국제관계의 윤리적바탕 위에 서야할 것이다. 실리와 윤리가 조화되어야 하며 힘의 권위가 아닌 도덕적 우월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을 망각했기 때문에 미국은 월남전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악에 대한 응징이 힘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악에 대한 응징이 힘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악에 대한 응징은 선의 도덕성을 과시함으로써 비로소 참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 정치권의 “자정 몸부림”/우득정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뇌물외유 사건과 수서파문으로 헌정사상 유례없이 8명의 국회의원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참상을 맞은 정치권은 그 어느때보다 자정과 자숙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야 할것없이 비극의 발단은 혼탁한 정치풍토 및 불합리한 선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제도개선과 함께 돈을 요구하는 타락된 분위기가 일신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국운영을 책임진 민자당은 당정개편에 이은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담화문 발표에 발맞추어 「청정정치의 개막」을 선언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당내 특위구성 등 후속조치 강구에 골몰하고 있다. 돈 안드는 정치를 하려면 현행 국회의원 선거법부터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는가 하면 지난 임시국회에서 정치권 자정조치의 일환으로 국민앞에 제시했던 국회의원 윤리헌장도 보다 「강도 높은」내용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처방도 제시되고 있다. 금품스캔들의 회오리에 휩싸여 정치권 전체가 마치 부패의 온상인양 백안시 당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정치권이 이같은 인식을 갖고 나름대로의 활로를 모색하는것은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또 정치인의 부패를 탓하기에 앞서 구조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는 선거제도와 정치자금 배분방식,그리고 유권자의 잘못된 선거 의식을 들추어내는 정치권의 향변도 「현실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을 회생키 어려운 나락으로 몰고 가고 있는 여론의 분노는 오랜세월 동안 누적된 정치권의 정치 도덕적인 불감증,빠른 망각과 「야누스」적인 대응방식 때문에 기인된 것이 아닌가 싶다. 뇌물외유의 폭풍이 몰아치던 지난 임시국회에서도 그처럼 자정의 목소리를 드높였던 정치권이 윤리헌장 제정문제에 있어서는 막상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때문에 지루하게 계속된 말다툼에 태산명동 서일필격으로 아무런 구속력없는 면죄부 한장만 던져놓고 「근엄한」 표정으로 국회를 나서는 모습을 국민들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철면피한」 정치권의 행동양태를 너무도 자주 목격했기 때문에 정치권의 요란한 몸짓에도 불구하고 채찍질이 사그러들지 않는 듯하다. 소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은 고쳐야겠지만 여론은 형식적인 외양간의 견적서나 설계도 보다는 땀흘려가며 허물어진 외양간을 고쳐나가는 정치인의 참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 「3의원」 회기후 구속의 반향

    ◎정치적 “적당처리” 없어야/“검찰 「축소수사」” 국민 의혹없게/대입부정 사건과 형평유지를 검찰이 「뇌물외유」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국회상공위 소속 이재근·박진구·이돈만의원에 대해 당연히 구속사유가 되는 뇌물수수의 혐의사실을 밝혀내고도 정치권의 요청에 못이겨 구속영장의 청구시기를 임시국회 이후로 미루자 『법집행의 형평에 어긋날뿐 아니라 과연 검찰에 엄정한 처벌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다. 이는 같은 때에 수사가 시작된 대학입학시험 부정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엄정하게 가해지고 있는 것과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법집행의 형평 원칙에도 크게 벗어나고 있다는 비난이 비등하고 있다. 또 무역협회의 「특계자금」을 지원받아 외국을 다녀온 의원들이 이들 외에도 더 있는데도 이들에 대해서는 당초의 강력한 의지와는 달리 수사를 하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축소수사가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갖게 하고 있다. 이와함께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시기 연기방침의 발표와 때를 같이해 이미 수사가 끝난 세 의원에 대해서도 의원직을 사퇴할 경우 불기소처리하겠다는 정부·여당의 방침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이번 사건도 충분한 시간이 지난뒤 정치적으로 적당히 처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김주원변호사는 이에대해 『의원들의 사퇴를 전제로 불구속기소 운운하는 것은 다시 한번 국민들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이들 의원외에 「뇌물외유」와 관련된 모든 의원들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하지만 우선 범죄사실이 드러난 이들부터 엄정하게 사법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또 이번 수사대상에서 「특계자금」을 포함시키지 않은데 대해서도 『정치권에서 이에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국정조사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수사권이 없는 국회차원의 조사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제,『이 부분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의혹이 점차 증폭되고 있는만큼 검찰은 이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중고차 매매업을 하는 김상돈씨(35·서울 강남구 삼성동 143의11)는 『일반 하위직 공무원은 단 몇푼을 받아도 구속,파면하면서 국회의원이라고 몇천만원씩 받고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히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직접 뽑은 대표이니만큼 잘못을 저지를 경우 국민앞에 사죄하고 더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세 의원이 자동차협회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여행경비를 과연 뇌물로 볼 수 있는가하는 문제와 뇌물로 볼수 있다면 형사처벌은 어느 선까지 가야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검찰안팎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빚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국민에게 알려진뒤 여론은 이들 의원을 엄벌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마침내 검찰로 구속방침을 세우기에 이르렀었다. 「뇌물외유」 의원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은 결국 국민들 사이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당사자인 이재근의원 등은 사건직후 기자회견을 자청,『관행대로 했을뿐이며 구설수에 오른 것은 억울하다』고 말해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다. 나아가 평민당은 대변인성명을 통해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렸다고 못마땅한 반응을 보였고 민자당 의원들도 자기네 박진구의원이 소속 상임위원장의 요청으로 따라갔을 뿐이라고 두둔하는 몰염치한 면을 나타냈다. 이같은 수사초기의 정치권의 반응과는 달리 수사가 진행되면서 『국민이 뽑은 공인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한 행위』라는 쪽으로 여론은 기울었고 정치권에서도 의원윤리강령의 제정을 추진하는 등 자체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분위기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가 지난해 12월말 입수된 자체첩보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국회상공위와 관련있는 경제계에서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 의원의 명목상 여행목적은 「북미지역 자동차 수출입실태 파악 및 입법자료수집」이었으며 국회에는 공식적인 의원외교활동이 아니라 자비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계획서를 낸뒤 지난 9일 출국했다가 자동차공업협회로부터 검찰의 내사 사실을 통보받고 당초 예정이었던 20일 귀국을 앞당겨 지난 17일 돌아왔었다. 결국 과소비풍조와 퇴폐 향락풍조를 근절해야 한다는 국민적 과제와 걸프전쟁에 따른 경제적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화·뇌물성 여행을 다녀온 의원들에게 쏟아지는 국민들의 질책과 비난이 너무나 거세 구속방침을 확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영향력에 맥을 못추고 한발 물러선 검찰에 대해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이 퍼부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수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이며 정치권의 수사에 대한 영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학부모들이 밝힌 예체능 대입 비리 실태

    ◎「부정합격」 사례금 억대까지 오간다/전문브로커­심사위원 “액수흥정”/수상 경력자들도 돈 안주면 낙방/「서울대 사건」은 “빙산의 일각”… 공정기할 개선책 시급 서울대 음대 입시부정 사건의 여파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곪을 대로 곪아있던 우리나라 대학들의 입시부정 환부의 하나가 터진 것일뿐 부정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여론이다. 그동안 사립대학 일반계열 학생들의 부정입학 사례가 더러 보도되기는 했으나 대부분 학교재단의 묵인아래 이루어졌고 부정입학의 대가로 받은 돈도 상당부분 취약한 학교재정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동정의 여지가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같이 예체능계열의 교수 등이 교육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개인의 사욕을 위해 입시부정을 저지른 것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범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예체능계열의 수험생 자녀를 두었던 학부모들은 이번 입시부정 사건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고급공무원인 주모씨(51)는 첼로전공인 딸이 두차례나 S대 음대에서 낙방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예체능계 입시의 비리가 얼마나 고질적인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주씨의 딸은 내신 3등급에 국내경연대회에서도 여러번 1등을 했으나 시험에는 거푸 낙방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로부터 「시험에 합격하려면 2천만∼3천만원을 써야한다」는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주씨는 돈도 돈이지만 고급공무원이라는 신분때문에 유혹에 넘어갈 수는 없었다. 주씨는 결국 딸을 유학시키기로 결심,지난해 9월 세계적인 명문인 미 줄리어드 음대에 지원시킨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시킬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딸의 실력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주씨는 미국 현지 지역신문이 연일 딸의 연주능력에 대해 대서특필하는 것을 보고는 한국에서의 고질적인 예체능계대학 입시부조리를 다시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원인 정모씨(54)는 딸(23)을 S대 미대에 응시하도록 했으나 역시 두번 계속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정씨의 딸은 국내 사생대회에서 여러번 1등을 했고 내신성적도 수험생 가운데 2∼3등이었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정씨는 문교부 관계자를 통해 딸의 실기점수를 확인하려 했으나 『입시때 수험생들이 그린 그림들은 이미 소각해 버렸다』는 통보를 받았다. 현재 미술계에서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려면 그 대학출신이 경영하는 학원에 다니면서 입시시즌에는 해당 대학교수와 만나 거래액수를 정해야 한다는 소문이다. 이때 교수의 작품을 비싼값에 사주거나 수천만원대의 보석을 건네주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체육계열의 경우에도 「금력특기」가 판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부유층의 학부모들이 학력으로는 대학진학이 어려운 자녀들에게 특기자 혜택이 가능한 종목을 가르친 뒤 일류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고교체육 관계자들을 통해 대학측에 수천만원에서 억대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학부모들이 선택하는 종목은 과도한 교습비 등으로 선수층이 얇은 골프·승마·요트·아이스하키 등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예체능계열 교수 및 강사 이외에 교직원들도 입시부정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얘기다. 입시 사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들은 응시원서에서 수험생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아는 교수를 통해 합격시켜 줄테니 3천만∼4천만원을 가져오라』고 해 돈을 챙긴뒤 수험생이 불합격됐을 경우 돈을 되돌려주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이들은 심사위원 등 입시 사정교수와는 전혀 접촉하지도 않으면서 수험생들이 합격하면 자신들이 애쓴 덕이라고 속이고 불합격자에게는 돈을 돌려줘 말썽의 소지를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번 입시부정 사건을 계기로 예체능계 입시의 선발방법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등 부정과 비리의 여지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게 학부모 및 고교입시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제/조지 캐넌 진단(해외논단)

    ◎“「오도된 평등주의」가 소개혁 막고 있다”/70년 독재로 자유경쟁원리 완전 망각/민족분규는 자율협조로 해결 바람직 소련은 지금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다. 경제적 혼란도 문제지만 연방체제마저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47년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주창,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조지 캐넌교수는 이제 「슈퍼 스테이트」,소련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외교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91∼91년 겨울호에 실린 그의 논문을 요약,소개한다. 러시아는 과거 수세기동안 지리·정치적으로 서구문명과 단절돼 있었으며 그만큼 현대화 과정도 뒤졌다. 그러나 18∼19세기에 들어 러시아사회는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고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의욕적인 교육개혁과 농업개혁이 추진됐고 사회전반에 의욕이 엿보였다. 물론 이를 가로막는 체제내 갈등과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절대왕정,의회제도의 부재,민족문제 등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 현대화 작업의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유혈혁명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1917년 초에는 의회제도의 토대가 마련됐고 왕정폐지는 무혈로도 가능했다. 1917년 혁명은 이 평화적 변화가능성을 하루 아침에 뒤엎어 버렸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러시아의 반체제 세력중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화를 반대하는 급진 과격세력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차르왕정과 러시아 사회를 완전히 파괴시키기를 원했다. 파괴 후의 계획은 극히 모호하고 유토피아적이었다. 이들은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함으로써 예상외의 호기를 얻었다. 1917년 여름 임시정부는 왕정이 붕괴된 어수선함 속에서 이 전쟁을 계속키로 결정,큰 실수를 저질렀다. 레닌파의 권력장악을 가능케한 것은 2년반에 걸친 전쟁과 1917년초 국내정치의 혼란이었다. 그러면 공산정권 수립이 러시아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레닌은 일차적으로 부르주아 인텔리층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후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인텔리층까지 모조리 제거했다. 이 결과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과거와 단절됐고 이 단절은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스탈린은 자신의 개인통치에 장애가 되는 지식층과 레닌의 잔재세력을 모두 몰아내기 위해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했다. 1937년과 38년에 이 숙청은 절정에 달했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회전체가 히스테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1940년대에 들어 러시아 국민들은 설상가상으로 숙청보다 더 무서운 2차 대전의 공포를 맞게 된다. 소련은 1941년 6월 정식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소련국민들 사이에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원초적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스탈린은 자신을 이 감정과 교묘히 결합시켰다. 정부와 국민은 힘을 모아 나치에 저항했고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전쟁이 끝나면 정부의 통치방법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 변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예전의 통치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무서운 전쟁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국민들의 간절한 희망을 스탈린은 철저히 무시했다. 국민들은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으로 급격한 체제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배이념으로서스탈린주의에 대한 조직적인 대안도 반대도 러시아사회엔 존재하지 않았다.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잔재세력을 지도부에서 모두 몰아내는데 4년이 걸렸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자신도 곧이어 밀려나고 말았다. 그후 80년대 중반까지 오면서 소련에는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지도자들만 번갈아 등장했다. 물론 유리 안드로포프는 예외였다.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체제변혁은 이들의 상상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전자통신 시대를 맞아 소련내 젊은 지식층들의 체제불만은 점점 더 높아져갔다. 여행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 있고 경제기술 수준은 19세기 수준에 머물러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레닌이 물려준 이데올로기로는 더이상 체제유지가 힘들게 됐다. 국민들 가슴속에선 이미 죽어 없어진 이데올로기에 소련 지도자들은 계속 매달려 있었다. 이 체제위기를 감지하고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 고르바초프였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산주의 이후 러시아의 앞날에는 힘든 3가지의 과제가 놓여있다. 첫째,공산당에 집중돼 있던 권력중심을 선거에의해 선출된 민주정부 체제로 이전하는 것. 둘째,중앙집중적인 경제체제를 자유기업 체제로 전환하는 것. 셋째,지난 3세기동안 지속돼온 다민족체제를 보다 자유로운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 이 3가지 변화들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은 분명 크게 도약될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상상 밖으로 심각하다. 70여년의 공산독재로 러시아 국민들은 민주통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모두 잊어버렸다. 그 이해수준은 1910년대보다도 더 뒤떨어진다. 경제현실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창의적 영역이 철저히 억압당해왔기 때문에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을 체제의 한 수동적인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과장된 평등주의가 만연돼 누구도 선두에 나서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수준을 남보다 앞세우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들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체제변화는 신속한 진전을 보이기가 상당히 어럽게 돼있다. 이런 태도들을 고치려면 오랫동안 꾸준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담당할 마땅한 교사들도 없다.한편 소련방을 구성하고 있는 제민족간 관계 재조정도 필수적이다. 현재 강력한 추세에 있는 민족주의로 인해 지난 세기의 다민족·다언어 제국 유지는 이제 용납이 안된다. 발트해 3국은 분명 독립할 자격이 있고 결국은 독립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마다 차이가 있어 일괄적으로 단일모델이 제시되기는 힘들다. 현재 소련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러시아 공화국의 주권요구에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러시아 민족은 전통적으로 여타 소수민족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전통·문화·종교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 공화국까지 주권을 내세우면 소련방의 존재 이유가 의문시된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연방공화국과의 관계도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어 이것이 갑자기 끊어지면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 경제적 혼란도 클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연방공화국 몇몇은 서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공화국내에서 끔찍한 내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연방 수중에 있는 핵무기에 대한 관리책임이 분담됨으로 인해 생겨날 문제도 끔찍하다. 여기에 덧붙여 세계무대에서 강대국으로 막대한 발언권을 행사하던 소련이라는 단일 국가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것도 아무래도 불길하다. 현재 소련의 민족문제는 연방과 공화국 모두 양극단만 고집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선 안된다. 타협이 마련돼야 하고 절제와 인내가 양쪽 모두에게 지켜져야 한다. 완전한 독립도 아니고 과거의 연방체제도 아닌 새로운 관계가 모색돼야 한다. 그것이 소련 자신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에도 유익하다.
  • 「독존」 버리고 「타협」 익혀야/새해 대담

    ◎우리 정치문화 선진화의 길은 어디에/이기 집착은 갈등 조장,파국만 초래/보스 중심의 「사랑방정당」 사라져야/위정자 선택·감시는 국민의 몫… 지자제 선거 공명해야 제구실 기대/이용필 진덕규 ▲이용필교수=오늘의 한국 정치현실은 건국후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지난 42년간 5∼6차례 헌정중단을 겪었던 우리 헌정사의 명암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야 정치갈등이 심화되는 반면 현안문제는 타협이 안되고 이것이 다시 정치갈등을 증폭시켜 그 결과 헌정 중단이라는 파국을 자주 겪어온 것이 우리 헌정사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5공이후 6공화국에 들어서면서 이같은 정치갈등이 지나치게 심화돼 공존의 여지조차 없어지면 곤란하다는 인식이 여야 지도자간에 고조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컨대 지난 여름 야당의 의원직 사퇴도 상호 파국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3∼4개월의 국회공전은 있었지만 국회 복귀로 종결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의 민주주의가 장구한 세월을 통해다듬어져 온데 비해 우리는 민주화를 위한 「학습과정」 자체가 짧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기술이 미숙한데다 명분에만 집착,실리를 놓쳐 파국을 초래하곤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산층이나 지식층의 정치감각이 크게 세련되는 등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적 갈등을 포함해 사회 각 부문의 갈등 팽배로 지난봄 한때 「총체적 위기」라고 할 정도의 위기국면을 맞았으나 이를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에 힘입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권력은 공유” 인식을 정치 지도자들도 이같은 국민의식 수준에 맞춰 동시적이든 계기적이든 권력을 공유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이는 지도자간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진덕규교수=해방이후 40여년간의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정권장악에서 집권기를 거쳐 붕괴,몰락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유형을 답습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권의 획득 및 고착화 과정에서 상당한 분파성과특정영역에 대한 인사치중 현상이 나타나 일반 국민들의 정치욕구와는 간격이 생기고 국민불만이 누적됨에 따라 권력구조는 더욱 경직화하고 소수 집중화돼 왔습니다. 국민들의 정치체제 변혁요구가 강해지고 마침내 시민저항이나 쿠데타 등에 의해 정권이 붕괴되면 다시 소수세력이 국민합의를 무시한 채 정권을 장악하는 식으로 정치변동의 단순반복적 성격이었지요. 이로써 이른바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탄생된 6공화국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정치과정은 국민의식과 괴리를 보여 총체적 위기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욕구를 수용하고 부응하는 정치라기 보다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지체 내지 유예시킴에 따라 정치혼란이 사회 각 부문의 혼란으로 이어져 파국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교수=우리 정치가 이처럼 답보상태에 있는 요인을 3∼4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주된 요인으로는 고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은 심화·증폭되는데 비해 이를 수렴·해소시키는 제도권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해결이 지연되었다든가 최근 안면도 핵처리시설 문제로 말미암은 주민들의 과격시위운동이 좋은 예입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사전에 행정적·정책적 수단으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같은 갈등을 초래한 것은 우리 정치체제의 관리능력의 부족이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정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두번째 요인으로는 정당정치·의회정치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오면서 체제변화는 아니지만 평화적 정권교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헌정사에서 획기적 경험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6·29로 6공의 정통성 문제가 해결돼 부분적으로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한편 완전한 민주화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정당간 정권교체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 근자에 진보세력이 정당 간판을 달고 제도권으로 들어와 다행이지만 아직 제도권·비제도권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의회정치를 마비시키는 요인입니다. 대중사회에서 정당정치를 확립하려면 당내 민주주의가 선행돼야 하고 당내 민주주의는 정당의 보스가 일방적 공천권 행사 등 전권을 갖는데서 벗어나 중간보스제가 정착돼야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로버트 달이 말한 권력정치의 다원화가 이뤄져야 정권교체시 등 변혁기에 힘의 공백도 메울수 있는 겁니다. 즉 정권교체기의 레임덕 현상이랄까,권력의 누수를 줄여 정권교체를 스무스하게 해주는 중간보스제를 통한 권력의 다원화가 이뤄져야 하는데도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이를 소홀히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가 그나마 현상유지라도 하고 있는 것은 조금 전에도 얘기했듯이 저변이 넓어진 중산층과 지식층이 정치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국민의견 수렴 미흡 ▲진교수=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5가지 정도의 영역을 중심으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정치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이념만 자유민주주의 민족주의 정의사회구현일 뿐 현실성이 결여돼 있어요. 추상적인 논의에 머물다 보니 정치목표나 이데올로기가 없는 사회로 떠돌고 있는 셈이지요. 정치 엘리트의 성격면에서는 보스의 자의성에 의해 충원되는 직업정치인들이 모든 영역을 다 지배하려다 보니 한계를 느끼게 되고 정치엘리트와 국민들간의 의식이나 능력 격차가 없어지거나 역전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선진국에서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최소한 일정 영역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치 제도화에 있어서도 국민정당 대중정당 민중정당이나 압력단체를 기간 조직으로 하는 정당이 없고 보스중심의 사랑방정당으로서 특정인의 권력창출기능만 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의회도 국민 다수의 의견마저 반영하지 못한 채 요식절차의 기능만 수행할 뿐이어서 의회와 사회의 괴리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정치 과정으로서의 선거는 국민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합치는 축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우리의 현실은 서로의 위치만 확인하는 분열 전주곡으로서 국민 의사와 관계없는 특정 지도자의 정당성만 부여해주는 역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문화를 살펴볼 때 중산층,특히 지식인들이 이제까지 보여준 태도는 비판을 전제로 논리성과 윤리성을 확보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논리나 대안없는 비판절대주의나 맹목적 지지일변도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누적되면서 총체적으로 급격히 부각된 것이 최근 1∼2년의 정치현상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개선여부는 우리의 자구노력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젠 「삶의 질」 향상 ▲이교수=20세기 후반기 들어 선진민주주의 국가부터 통치력의 한계가 노출되기 시작하고 있어요. 인간이 갖고 있는 자원은 제한된데 비해 인구는 엄청나게 증가돼 갈등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이같은 흐름은 우리 정치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즉 정치체제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고 있는데 반해 관리능력은 이에 못미치고 있지요. 예컨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무역마찰 등 우리 정치체제에 누적되는 중압감(정치적 스트레스)은 국민 대다수의 협조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여서 졸속으로 결정된다면 체제관리에 굉장한 문제를 초래하게됩니다. 또 우리 정치에 있어서 봄만 되면 과거 춘궁기나 풍토병처럼 위기가 오는 것에 대한 심각한 진단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정치가 갖고 있는 정치과정상 일종의 간헐적 스트레스에 대해 집권층이나 야당세력이 충분히 인식을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진교수=통치능력의 위기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40대 이상에게는 좋든 나쁘든 자기귀속 이데올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공중분해돼 이념공백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40대 미만은 상업주의적 자본주의 문화의 침투로 인해 감각세대로 돌변,인내라는 고전적 의미의 가치관 붕괴를 초래했지요.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도 크게 달라져서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려는 예전의 「삶의 영역보장」 단계에서 「삶의 질 고양」 및 정치요구 차원으로 높아졌습니다. 평등의식과 열정적 참여의지를 바탕으로 한 대등한 정치참여 요구에 대해 기존의 제도와 정치권 및 권력구조로 대응,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국민 욕구수준을 정치권력 구조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요. 때문에 정치영역이 의사당에서 거리로 옮겨가고 있으며 비제도권의 존재는 곧 제도권의 통치능력 한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치는 마냥 표류하는데 가까스로 이 사회를 지켜가는 힘은 정치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 나오지 않나 하는 느낌입니다. ▲이교수=우리 정치가 표류하고 있는 것은 의회가 국민대표적 기능이나 정책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방금 지적하신 바처럼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동떨어진 권력 헤게모니 쟁탈 내지는 갈등조장으로 끝나고 있지요. ○개혁만이 안정도모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은 선거제도와 시장경제 원리가 적절하게 결합이 돼야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여야 지도자들은 개인의 집권과 당리당략에만 집착하다 보니 선거와 시장경제 원리의 조합이라는 효용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민주화가 꾸준히 지속돼 더 나은 삶의 질을 유도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이 마련돼야 합니다. 앞으로 지자제가 실시되면 또 한번의 소란과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과정은어쩔 수 없이 한번은 겪어야 하겠지만 자제제 선거에 있어서도 정권적·당략적 입장에 집착하다 보면 우리 민주주의의 장래는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진교수=개혁이 없으면 정치는 오히려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이 정치안정을 가져오고 안정이 있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지요. 그러나 6공화국은 안정면에서 한계에 와있고 개혁은 더디며 발전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치가와 국민들 사이의 의사합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3당 통합만 해도 특정 정치권력의 재창조가 아니라 국가 정치발전을 위한 신사고의 소산이라고 당사자들이 주장했던 기억이 나는데 얼마후 내각책임제개헌 합의각서가 있느니,차기 대권주자가 누구라느니 하는 등 국민의사와 관계없는 권력거래로 비침에 따라 국민들의 정치환멸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지자제 문제만 해도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제도를 논의하기 보다는 당리당략에 이용하려다보니 국민과 자꾸 멀어지게 되는것이지요. 정치가들만의 게임으로는 미래가 밝아질 수 없습니다. 정치 지도자를 불신하는 국민감정은 요즘의 윤리·도덕적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양보하면 서로 이득 ▲이교수=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정치 지도자간의 신뢰구축이 전제돼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피차 조금씩 양보하면 서로 큰 이득을 볼 수 있는데도 상호 양보를 안해 똑같이 손해를 보는 「죄수들의 딜레마」와 같은 상태로 빠져들고 있어요. 정치가 불안하니 경제가 제대로 뻗어나갈 수 없고,노사문제가 확산되고 각종 부조리 등 사회악이 독버섯처럼 돋아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공백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정당정치가 궤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더욱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 브란트 전 서독총리가 지적했듯이 민주주의가 곧 방종이라는 생각으로 흐르거나 개인이 너무 자기 이익추구에만 급급하다 보면 민주주의는 파국을 맞게 되고 「독재의 바다」가 생기게 마련이지요. ▲진교수=대처 영국총리에도전했던 해즐타인의 경우와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의 등장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해즐타인은 50대에 총리가 되기로 목표를 정한 야심가입니다. 어려서부터 총리당선을 목표로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치졸한 얘기입니까. 국민의 인정과 지지를 받아야만 대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목표를 미리 정하고 이 목표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고방식이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바웬사가 노조지도자로서 폴란드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인정하지만 바웬사의 영역은 거기서 끝나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의 전문영역이 따로 있기 때문이지요. 바웬사의 정치권력 욕심이 폴란드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 의문입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이제는 인내와 관용과 타협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과거 우리 정치체제는 이전의 권력구조를 희생으로 삼지 않은 경우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인내와 관용을 갖고 하나의 장에서 역량을 경주해 협의하고 경쟁하기 보다는 분열과 소수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얘기고 이것이 바로 우리 정치사회의 해결과제입니다. ▲이교수=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가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를 못하고 2차 투표에 나서려다 결국 포기한 결정은 참으로 슬기롭게 여겨졌습니다. 바웬사의 경우도 사회주의 체제속에서 노동운동을 활성화시켜 오늘의 폴란드 민주화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쨌든 우리 사회에서도 대처의 경우처럼 참신한 쇼크가 있어야 더 밝은 정치를 기약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이 게임의 룰도 안 지키면서 나 아니면 안된다는 유아독존식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야 지도자들의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때입니다. ▲진교수=범국민적인 인식의 전환이 가장 절실한 시점이 바로 올해지요. 올 봄에 지자제 선거가 실시되고 연말부터 총선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6공화국 중반기로서 레임덕 현상이 불가피하고 무정부주의에 가까운자기규제결핍 상황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여건은 우리 정치를 매우 걱정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국민과 정치가의 의식과 실천의 대전환이 중요한 겁니다. 국민은 인식전환이 가능한 정치 지도자를 선별하고 감시해야 하고 정치 지도자는 국민선도 책임을 져야합니다. 6공화국이 추진해온 북방정책의 결과로 우리 사회가 이념공백을 자초한 것 또한 사실이지요. 지하철 구내에서는 『공산주의자나 간첩신고는 안기부에』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데 남북한 총리회담과 문화·체육교류 관계로 서울에 우글우글한 「공산주의자」는 왜 신고대상이 안되는지에 대한 논리적 설득작업이 생략됐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의 공백이 생겨난 것입니다. ○대안있는 비판 중요 사회지도급 인사들도 정치 지도자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 문제가 심각했을 때 관념이 아닌 현실을 연구한 학자가 몇이나 되며 언론은 상업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다했습니까. 종교는 기복 종교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정신적 가치확립을 위해 얼마나 매진했을까요. 우리 사회의 기성제도 정치가 한계에 다다름에 따라 시민운동에 기대를 걸게됩니다. 정당차원과는 달리 직업 및 이익·사회단체가 활성화돼야 합니다. 차기 대권주자를 밀실에서 뽑고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의식에 제약이 가해져야 합니다. 지도자는 국민이 선출하는 것이지 밀실에서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선거가 선동정치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되고 올바른 국민의사를 반영하는 수단이 돼야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대안있는 비판이 중요합니다. ▲이교수=우리 민족은 맨 주먹으로 이만큼이나마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것만 보더라도 뛰어난 민족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국민이 이같은 훌륭한 자질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것이야말로 우리 지도자들의 소임입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정치 지도자들이야말로 앞서 말한대로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정치인들이 씨는 뿌리되 수확은 다른 사람이 거둘수도 있다는 식으로 신사고를 해야만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단군 이래 처음 맞이한 성장의 호기에서 아르헨티나처럼 하루 아침에 주저앉지 않으려면 그만큼 정치 지도자들의 자기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지요.
  • 염치 없는 세비 인상(사설)

    국회 운영위원회가 국회의원 수당을 29.4%나 대폭 인상하기로 의결한 처사는 어떠한 논리로도 합리화되기가 어렵다. 세비의 대폭적인 인상은 윤리적 측면과 우리 경제현실,그리고 다른 부문과의 형평성 등 어느 것을 보아도 도저히 납득이 되어지지 않는다. 정치적 문제로 70여일 동안 정기국회를 공전시킨 국회가 스스로의 세비는 단 10분 만에 통과시킨 그 기민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2대 국회 때만 해도 국회의원들이 수당을 인상해도 개정 당시의 국회의원 임기중에는 그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대 국회는 이 법률(국회의원 수당에 관한 법률)의 규정조항을 삭제한 바 있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해당 법률을 개정한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었던 일인데 이번에는 팽창예산이라 말썽이 많은 예산심의를 하면서 예산 증가율(19.8%)보다 10% 포인트 높게 세비를 인상하고 있는 것이다.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의 세비는 대폭 인상하는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우리 사회에는 집단적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의원들의 세비인상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시중의 집단적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연쇄효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집단주의의 폐해를 없애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할 국회가 오히려 집단이익에 급급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밀도 있는 예산심의를 통하여 국민부담을 최대한 덜어주어야 할 국회가 자신의 세비를 인상하는 것으로 예산심의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예산삭감은 커녕 증액으로 예산안 예비심사를 끝낸 국회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국회의원들은 스스로의 세비인상을 결정하기 이전에 국민여론은 물론 내년도 우리 경제 전망 등을 깊이 고려했어야 했다. 내년도 산업현장에서 만약에 두자리 수 임금 인상,그것도 30%에 가까운 임금인상이 이루어진다면 나라경제는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내년 근로자임금 인상률이 한자리 수내에서 억제되도록 그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의원들의 두자리 수 세비인상은 근로자들의 임금결정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바꿔 말해 의원들이 사회적 지도성과 책임성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세비를 두자리 수로 인상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곡가를 한자리 수에서 억제하고 내년도 물가를 한자리 수에서 안정시킬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더구나 의원세비는 근로자의 임금,농민들의 추곡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의원들에게 겸직이 허용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임금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거듭 지적하지만 생계비를 한자리 수내에 억제하지 않으면 나라경제가 위태로울 지경에 있는 상황에서 활동비에 속하는 세비를 두자리 수에서 결정할 수 있는가. 오히려 국회를 공전시킨 기간 동안 세비를 받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이 참다운 국회의원상이 아닐까 한다. 굳이 근로자들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내세우고 싶지 않지만 국회도 국정에 기여한 만큼 세비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한자리 수내로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 비논리적 주가의 속성 잊지말라/「폭등ㆍ폭락」 이기는 건전투자의 길

    주가가 연 7일째 계속 급상승을 거듭하였다. 25일에는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긴 했지만 이러한 이상급등은 과거의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 주가 상승률면에서 과거의 실적들을 살펴보면 87년 6ㆍ29 이후에 주가 상승률은 20.4%,25일 이격률(주가추세를 나타내는 공식으로 1백15 이상이면 증시과열을 의미한다) 최고치가 1백15.0%였었다. 87년 대통령 선거후에는 주가 상승률은 40.4%,이격률최고치는 1백13.9%였었다. 그뒤 88년 4ㆍ4분기 금리자유화 조치단행 당시 주가상승률 37.7%와 이격률최고치 1백11.2%에 비해서 이번의 주가상승 국면에서는 상승률이 40.7%,이격률은 1백24%로서 모두 과거의 단기급등기록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25일 이격률과 단기간의 주가상승폭이 사상 최고수준을 보이는 우리 증시의 과열조짐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상승기반 확보 미지수 그동안 백약이 무효라고 했던 우리 증시를 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것은 다음의 몇가지 복합적인 요인들로 설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아직까지는 시장자체와경제의 기초변수들의 확고한 뒷받침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는 이른감이 없지 않다. 첫째로 시장내부적으로 매물공백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난해 12ㆍ12조치 이후 투신ㆍ증권ㆍ보험ㆍ보험사들과 증안기금에서 매수한 주식규모가 8조5천억원에 이르며 주식물량이 개인투자로부터 기관투자로 상당히 옮겨갔다. 또한 미수와 신용에 의한 외상매물이 지난 10일의 소위 「깡통계좌」 반대매매 과정을 통해서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지난 3월말 외상매물이 3조4천억원 선에서 최근 1조3천억원 선으로 감소하여 시장자체내 매물압박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최근 보름동안 고객예탁금의 유입이 늘어나 6천억원으로 증가하였다. 한마디로 증시내에 공급보다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 폭발장세의 기본을 이루었다 하겠다. 둘째로 대내적으로 몇가지 호재가 방아쇠 역할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정부의 금융산업개편안이 가장 큰 호재로 작용하였다고 할 것이다. 금융산업의 합병 및 전환의 지원과 대형화 유도,신규업무 진출허용 등을 내용으로 한 「금융기관의 합병 및 전환지원에 관한 법률(안)」의 발표는 금융주를 중심으로 연일 상한가를 치게 했고 이것이 다른 주가에 영향을 미치면서 확산되자 일반 개미투자군이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여기에 곁들여 보장형 수익증권 발매로 투신사의 투자여력 증대와 자본자유화 임박설,남북관계개선 등의 재료가 가세했고 국제적으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41달러에서 28달러로 하락하여 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한 위기감이 다소 진정된데다가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서 지난 4월18일 1백엔당 4백42원에서 현재 5백75원으로 30% 상승하여 우리상품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도 호재로 작용하였다. 다시말하면 우리경제를 밝게 볼 수 있는 요인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넷째로 환율변동에 따른 국제 단기성 자금의 유입가능성이 커졌고 최근 토지종토세의 실시가 가시화되면서 지난해 금융실명제 실시로 빠져나갔던 자금이 다시 증시에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밖에 앞으로 각종 선거를 앞두고 자금살포와 주식시장에의 영향 등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도배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소의 경제여건 변화가 수반되고 증시로의 자금유입이 계속되고 있어 상승여력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으나,우리경제의 기본적인 여건이 확실하게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고 증시 자체적으로도 주가상승폭이 단기간에 40%를 넘어섰고,또한 8백20∼8백30포인트대의 대기매물이 대량포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지나친 추격 매수나 군중심리에 휩싸인 뇌동매수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록 투자의 여력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주가의 흐름상 일시적 조정의 가능성은 항상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투자행동패턴을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투자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 자체가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과학적인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경험이 일천한 개인투자가 중심시장에서는 정보의 분석과 유통이 과학적이지 못하고 쉽게 루머성 정보나 뇌동매매에 휩쓸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투자가들은 얼마전의 쓰라린 투자경험을 살려 차분히 시장의 흐름을 살펴보고 심사숙고 한 연후에 투자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투자방향은 수출,유가,엔화 등의 요인들이 산업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북방관련산업,금융관련산업이라 해서 무조건 뛰어들기 보다는 향후의 이해득실을 차분히 분석하면서 확실한 투자기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침체때의 경험 기억을 또한 개인의 투기적 동기에 의한 매수보다는 여유자금에 의한 투자적 동기에 의한 매수라는 건전한 투자전략이 소망스럽다. 지난 증시침체때 증권시장의 이해당사자들은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투자가들은 많은 대가를 치르고 값진 경험을 하였다. 그 경험이 단기급등주가에 현혹되어 아무런 쓸모없이 망각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개인을 위해서도 증시전체를 위해서도 결코 이로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오직 현명한 투자가로 다시 태어난 투자가들만이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 “자위대 파병은 평화위장한 폭거”/일본언론ㆍ법조계의 시각

    ◎페만 호재삼아 군사대국화 속셈/국민적 합의 도출ㆍ주변국 설득등이 급선무 헌법의 해석을 변경해 가면서까지 자위대를 중동에 파병하겠다는 일본 정부방침에 대해 헌법학 전공인 고바야시 나오키(소림직수) 교수(전수대)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종래의 헌법해석을 대폭 전환시켰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록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일본 자위대의 유엔군 참가문제와 관련,「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와 「집단안전보장」을 구별한다고 말하지만 그 실태가 어떻게 다른가. 언어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시로 여겨온 평화주의를 말을 바꿈으로써 근저로부터 붕괴시켜버리는 이번 사태는 허용할 수 없는 폭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은 아직 발전도상에 있으며 전 인류의 의사를 대표할만한 존재로는 되어 있지 않다. 유엔이 어느국가의 국익에도 좌우되지 않는 존재가 되지 않는한,집단안전보장이란 추상용어일 뿐이다. 이를 무시하고 자위대를 유엔군에 참가시키는 것은 실태와 명목의 의도적인 혼동이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원점으로 돌아와 특정의국익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 인류에의 공헌을 생각해야 한다』 언론계에서의 비판도 신랄하다. 마이니치(매일)신문은 『패전을 「종전」이라는 말로 속이며 과거의 역사에 겸허하지 못했던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서독의 경우와 비교해 볼때 너무 큰 차이가 난다』고지적하고 『과거 역사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의 통찰없이 전후의 평화정책을 안이하게 변경하려는 자세를 아시아 근린제국의 국민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일본정부가 15일 느닷없이 내놓은 헌법해석의 변경방침은 이처럼 각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장차 유엔군이 창설될 경우 예컨대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라하더라도 자위대가 참가하는 것은 현행 헌법의 범위내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신해석의 견해이다. 유엔헌장 7장 42조에는 『안보리는 비군사적인 조치로만은 불충분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제평화 및 안전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ㆍ해군 나아가 육군의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정부가 신해석의 근거로 삼는 「집단적 안전보장」이다. 이처럼 낯선 개념을 구차스럽게 도입한 이유를 일본정부 관계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발상은 동서 냉전구조시대의 유물이다. 지금은 그것으로 대응할 수 없다』 일본은 왜 이처럼 헌법해석을 변경해 가면서까지 파병을 서두르는가.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유엔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경제대국 일본으로서의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협력을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부ㆍ자민당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또 이 기회에 자위대의 유엔군 참가에의 길을 열어둠으로써 캄보디아평화후 설치가 예상되는 유엔군에 아시아의 리더로서 참가하겠다는 속셈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군에의 자위대참가가 평화주의를 표방한 헌법 전문 및 무력행사의 포기를 규정한 제9조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설명만으로 일본국민,나아가 아시아 근린제국을 설득할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헌법해석의 변경은 결정적인 국책변경이다. 여기에는 국민적 합의와 주변 제국의 납득이 필요하다. 일본의 헌법은 인류에 피해를 끼친 침략전쟁에서 패전한 결과 반성의 의미에서 나온 「선언」이다. 이것을 견강부회의 졸속구상으로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역사의 두려움을 망각한 처사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 동서독 내일 통일/41년 만에 공산동독 소멸

    【베를린 연합】 10월3일 0시(한국시간 상오 8시) 독일 방방곡곡의 교회탑마다에서 종소리가 울리면서 45년간에 걸친 독일 분단의 시대는 공식으로 막을 내린다.〈관련기사 5면〉 그리고 동독이라는 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히틀러의 제3제국이 무너진 뒤 미국과 소련·영국·프랑스 등 4대국이 누려왔던 베를린 점령권도 상실된다. 이날 베를린의 구제국의회 의사당 앞에서는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헬무트 콜 총리,발터 몸퍼 베를린 시장 등 국가요인 및 정치지도자는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독일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역사적인 통일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앞서 2일 하오에는 동독 인민의회와 로타르 드메지에르 총리가 이끄는 정부가 해산식을 가지며 이로써 지난 49년 10월 소련에 의해 세워진 동독국가는 만 41년 만에 완전히 소멸,점차 망각 속에 파묻혀 버릴 것이다. 통일 기념 행사를 갖고 하나가 된 독일은 4일 제국의회 의사당에서 통합의회의 첫회의를 가지며 이 자리에서 콜 총리는 통독 정부의 새 출범을 공식 선언한다. 이로써 독일은 지난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사실상 최초의 통일을 이룬 이래 역사상 2번째로 민족통일을,그리고 1차대전 후의 바이마르공화국,1949년 냉전의 절정기에 수립된 동서독에 이어 금세기에 들어서 3번째의 새 국가를 성취하게 된다.
  • 미얀마군,서방대사관 난입/공관 피신 반체제인사 체포ㆍ구금

    ◎당사국선 강력 반발… 외교분쟁 비화 조짐 【방콕 AP AFP 로이터 연합】 미얀마 군사정부는 미국ㆍ서독ㆍ영국 대사관 구내에 군대를 난입시키고 심문을 한다면서 미얀마인 직원들을 구금했다고 한 외교관이 27일 폭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외교관은 군이 10일전 서독 대사관에 들어왔으며 미국과 영국 대사관에도 이미 수차례나 난입했었다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또 지난 수개월동안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체포나 위협이 확산되는등 인권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말하면서 유럽공동체(EC)ㆍ호주ㆍ일본ㆍ뉴질랜드ㆍ스웨덴ㆍ미국 등이 미얀마정부에 대사관 난입과 인권탄압에 대한 공동 항의를 구두로 전달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탈리아 대사가 전달한 항의의 내용은 이들 국가들이 현 군사정권을 『미얀마의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으며 페르시아만 사태로 인해 미얀마의 상황이 망각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등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미ㆍ영ㆍ호주 등 대사관의 미얀마인 직원들이 취조를 이유로 구금돼 있다고 밝혔다. 한편 또다른 한 외교관은이날 미얀마의 승려들이 총선에서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이양치 않고 있는 군사정권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군관리들을 파문시키고 있으며 이것은 대부분이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상당한 파급효과를 지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당초 불교중심지인 만달레이시의 대수도원장들에 의해 처음 시작됐으나 이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하고 최근 만달레이시에서는 거의 매일 반정부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 에너지대책 일관성 있어야(사설)

    정부가 발표한 절전방안은 정책의 일관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네온사인과 백열등에 대한 절전고시는 동자부가 이번에 새로이 마련한 것이 아니다. 82년 마련되어 줄곧 시행해오던 끝에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도시미화와 외국관광객 유치 명목으로 시행이 중단되었다가 페만사태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전고시뿐이 아니고 다른 에너지절약대책도 유가파동이 있을 때마다 단골 처방으로 등장해왔다. 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나자 정부는 에너지절약을 부르짖다가 중동건설 수출로 경제가 호전되면서 절약시책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79년 제2차 파동 때도 에너지절약시책을 추진하다가 86년부터 3저의 호황으로 흑자경제가 지속되자 파동이 언제 있었느냐는 식으로 망각되어버렸다. 동자부가 지난 87년 8월이후 90년 6월까지 에너지소비절약대책회의를 한번도 열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대책은 관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에너지정책당국의 이완현상은 다른 부처에 영향을 미쳐 에너지 소비조장적 행정이 비일비재했다. 에너지 행정은 공백상태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행정은 진공상태에 있는 데 반하여 흑자경제로 국민생활에 소비붐이 일었고 이는 에너지 과소비현상을 초래했다. 에너지절약시책이 전혀 추진되지 않은 87년부터 89년까지 3년동안 석유류 소비가 연평균 12.2%씩 증가해왔다. 이는 오일쇼크 직후인 81년에서 85년까지의 연평균 증가율 0.2%에 비하여 가공할 만한 증가세이다. 이러한 에너지 소비급증을 보면서 우리는 정부정책의 일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스럽게 생각케 된다. 간헐적으로 소비절약시책을 펴면 그 시책이 추진될 때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다. 그러나 시책이 중단되면 절약에 대한 반작용심리에 의하여 소비가 이상적으로 폭발하는 것은 하나의 상례이다. 따라서 이번만은 절전고시를 비롯한 에너지절약대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나가기 바란다. 페만사태가 원만히 수습되어 제3차 오일쇼크가 발생하지 않는다 해도 에너지절약시책은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이 견지되는 가운데 범정부적 협조체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에너지절약시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에너지절약시책과 배치되는 어떤 시책이 수립되거나 추진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정책수립기관과 일선 행정기관간의 유기적 협조체계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번 절전시책은 일선 행정기관의 협조가 없이는 그 시행여부조차 파악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더구나 네온사인등 광고규제는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절전고시대로 이행이 될지 의문스럽다. 설사 어떤 업체가 고시를 어길 경우도 1백만원이하의 벌금규정뿐이어서 큰 구속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선 행정기관이 관련업체나 공장에 꾸준히 계도하여 이들 업체가 스스로 에너지절약운동에 동참토록 유지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결국 범정부적으로 에너지 절약의지가 확고히 굳혀져야 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절전고시의 성공여부는 정부 의지를 시험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에너지절약대책의 향방을 가름하는 중요한 척도라 할 수 있다.
  • 「명기 홍도」의 전말을 보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느닷없이 기생 「홍도」의 묘비가 화제를 만들었다. 30년대 신파극의 대표적인 히로인 홍도가 실은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원래 그런 이름의 명기가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극중 주인공이라는 식의 화제였다. 찬찬히 따져보면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좀 우습다. 어차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하는 홍도는 화류계 출신이고 화류계에 진출하려면 옛날 기생이름을 따는게 관례처럼 되어 있었으니,변사또의 수청기생 점고만 귀여겨 들어도 찾아질 수 있는 홍도를 작가는 주인공이름으로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조선시대의 기생 홍도가 그 모델이기라도 한 것처럼 연결하는 일은 턱도 없는 짓이다. 이치가 이렇게 명료한데도 미디어마다 이 뉴스를 상당한 크기의 지면을 별러가며 소개하고 있다. 제목도 「조선기생 홍도는 실존인물」식으로 붙여서 사진 곁들여 큼직큼직하게 소개했다. 왜 그랬을까. 「홍도」에 대한 관심이 왜 그리 높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새로 발견한 「명기」의 존재와 행적때문이었던 것 같다. 「명기」라는 말에는 호방한 남성문화가 조소되어 있다. 요즘처럼 왜소해지고 위축된 시대의 남성들에게는 아득한 전설처럼 들릴 그런 문화다. 새로 발견되었다는 「홍도의 묘비」는 남성들의 마음속 낡은 창고속에 먼지를 쓰고 망각되어가던 어떤 정서를 들춰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잡초가 무성히 자라 돌보는 이 없어보이는 스산한 무덤앞에 중둥머리께가 딱 잘린 채 서 있는 비석과 묘는 이상하게 누구의 눈길이나 끌게하는 데가 있기는 하다. 특히 당대의 지방 문장가와 풍류객들이 비문을 쓰고 모금을 해서 세웠다는 비석은 흥미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어떤 풍류객들이었을까. 문득 떠오르는 시조 한 수가 있다. 『청초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는다/잔잡아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선조때 문인 임제의 시조다. 뛰어난 문장가요 기개있는 선비였던 그가 천하 명기 황진이의 무덤앞에서 읊은 시조다. 벼슬자리에 부임하러 가던 길에 이 시조를 써서 읊은 그는 신성하게 이도에 임해야 국록받는 선비가 한낱 천기 무덤앞에서 함부로 문장을 농했다고 해서 이후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일화가 따른다. 유난히 규율과 규범이 엄격했던 것이 선비들의 삶인데 비명에 당당히 이름을 새겨넣어가며 기생을 찬양해놓은 이 홍도의 비는 꽤 흥미롭다. 더구나 이 비석은 사진으로 보아서는 허리께가 딱 잘려졌음을 보여준다. 더러 금이 가는 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딱 잘린 것은 아무래도 누군가가 심술삼아 잘랐던 것같아 보인다. 풍류로만 떠도는 지아비를 둔 어느 양반집 내당여인이 누군가를 시켜 잘라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하는 몰골이다.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께서는 딸들을 나무랄때 입버릇처럼 기생을 들먹이셨었다. 『기생이냐,버선을 지루신게?』 『상스럽게 반절을 하면 못쓴다. 기생이나 그런 절을 하느니라』 『망측스럽게 치마를 외루 입었구나. 기생이나 그렇게 입는 법이니라』 조선시대 기생은 백정ㆍ장인ㆍ중과 함께 낮은 신분에 속했었다. 관에 기적이 매어 있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종과 진배없는 신분이었다. 그렇게 낮은 신분이면 양반집 내당마님들은 경멸만 하면 그만이었을터인데 사사건건 빗대어가면서 기생을 들먹여 빈정거리는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보면 기생이라는 존재가 사대부가의 아낙들에게 끼쳤던 심리적 갈등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천하의 영웅 호걸이라도 눈이 멀어 녹아나는 것은 「기생첩」이었다. 「권련의 마지막 한대」를 아낀다는 뜻으로 『기생첩도 안준다』는 말도 있다. 남성들이 애지중지할 수 있는 상징의 집약이 「기생」이었을 터인즉,임금의 장인께 사랑받으며 만고의 호강을 다했을 기생 홍도가 자유로운 새가 되어 낙향을 즐기는 모습은 규방깊숙이 갇혀 사는 내당마님들에게는 눈허리가 시었을 게 뻔하다. 게다가 아무리 명문가의 며느리가 되어도 죽은 뒤에 아녀자의 무덤앞에 묘석같은 기념비가 세워질 수는 없다. 더구나 글을 읊는 호걸 한량들이 문장을 지어 바치는 명예로운 대접은 받지 못한다. 홍도 묘비의 허리를 자르고 싶은 심경을 가진 양반가의 「부인」들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경주시 도지동 야산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기생 홍도의 잡초무성한 무덤과 비석이 화려하게 화제를 뿌리게 된 까닭은,웬만하면 남성이 영웅호걸이 될 수 있었던 옛날에 대한 향수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서양의 기사도가 아름다운 숙녀에 대한 존경을 척도로 했듯이 동양의 영웅을 구성하는 조건도 미색에 있었다. 그 미색은 법도나 가문에 의해 정해지는 「부인」으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홍도는 「살롱」 문화의 여주인처럼 풍류객들의 「대모」노릇도 했던 모양이다. 이를테면 경주가 낳은 「조르주 상드」쯤 된다. 그런 여인을 향해 찬사를 바치고 비명을 지어줄 수 있었던 당대의 남성들에게 오늘의 남성이 선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10여년전 일본에서는 이제는 고인이 된 전직 수상이었던 거물급 정치인이 자신의 소첩이던 여인의 죽음을 맞아 영정을 들고 장례식에 참례하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최후의 명치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마돈나선풍을 일으키며 새 수상감이 나오는 족족 「스캔들」 방망이를 휘두르는 일본여성들의 힘을 보며 「최후의 명치인」이라는 말의 탁월한 지적을 다시 음미하게 되었었다. 천한 신분의 기생들 사이에서 원석하나를 찾아내어 「명기」로 탁마해 놓고 호방하게 천하를 논하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를 추념하노라면 우리 남성들은 오늘의 자신들이 좀 작아진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홍도전말」이 그런것이었던듯 여겨진다. 시대는 한참 변했고 남성들에 의해 「히로인」이 만들어지던 시대도 이제는 가버린 것 같다. 아무리 아쉬워하고 쓸쓸해 해도 변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안됐지만 그것이 오늘이다.
  • 파국 부른 세종대 사태 87일/「최종 시한」이후의 추이 전망

    ◎학생 반발→신입생 모집 정지→폐교 배제못해/“휴교령 불가피”강경론도… 「동경대 재판」될듯 세종대는 어디로 갈 것인가. 대량유급 사태의 최종시한인 10일 새벽 경찰의 공권력이 투입됐는데도 수업이 정상화되지 않고 있는 세종대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제는 대량유급사태를 모면할 길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량유급 사태가 확실시되는 것은 이날 등교한 2천여명의 학생들마저 거의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수업거부 주동학생들에 은근히 동조하고 있는데 따른것이다 또 그동안의 분규를 지켜본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학생이나 학교측 어느쪽 주장이 옳든 세종대에 대해 이제는 무언가 결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여론까지 일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 따라 대량유급사태가 빚어질 경우 세종대는 수업거부 학생들의 극심한 반발→학교운영마비→91학년도 신입생모집정지의 수순을 밟아 사실상 폐교의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생들 대부분이 이제 1학기의 법정최소수업일수인 14주를 채우지 못하게 돼 사실상유급이 확정된 셈이어서 문교당국이 그 어떤 특별조치를 내리지 않는 한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구제하기는 힘들게 됐다. 더구나 이날 공권력이 투입된데 대한 일반학생들의 인상이 좋지않아 사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견해도 대두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발은 이날 상오 정원식문교부장관이 사태수습책을 협의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을 때 승용차를 부수기까지 하는 난폭한 행동으로 나타났으며 학생들은 『문교부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은 이번 사태가 「재학생 전원 유급」이라는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된 원인이 재단측과 학교 및 교수들의 무능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재단측은 주동학생들이 오영숙교수(52ㆍ영문과)의 「총장선임」을 지지하며 등록금 자체수납에 나섰을 때 등록기한을 11차례나 늦추면서 『학교측에 등록하지 않으면 제적시키겠다』고 위협했을 뿐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수들도 제자들이 유급위기에 몰리고 폐교직전까지 이르는데도 중재역할을 맡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사태가 여기에까지 이른 직접적인 원인이 학생들의 수업거부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수업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강경투쟁으로만 치달은 운동권 중심의 수업거부 주동학생들의 책임이 무엇보다 큰 것도 사실이다. 어떻든 이같은 상황이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파행적으로 경찰의 경비속에 일부수업은 계속될지 모르지만 결국 대량 유급사태는 모면할 길이 없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문교부 일각에서는 학생들을 직접 강의실안까지 강제로 끌어다 앉힐 수 없는 바에야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재학생 전원 유급이 불가피한 휴교령을 내리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다. 이같은 강경론은 전후사정이 어떠하든간에 학생들이 수업을 받기를 거부한 이상 학생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원칙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 공권력의 보호아래서 8월말까지 1학기수업이 진행된다하더라도 현재상황으로는 수업률을 50%이상 넘기기가 힘들며 주동학생들과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한 2학기 수업도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상황인식도 「휴교령」의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해 5월의 서울교육대와 동의대사태때는 수업일수 부족직전 학생들 스스로가 다시 공부하겠다고 청원을 해 유급사태는 막았지만 이번 세종대사태는 그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교육대도 당시 주동학생들이 학우들을 유급시킬 수 없다면서 등록금동결 등의 주장을 철회하고 휴교령의 해제를 요구했으며 동의대는 재학생 7천5백56명 가운데 93.4%인 7천2백47명이 「면학전념서약서」까지 썼었다. 이처럼 세종대는 서울교육대와 동의대와는 달리 68년 일본에서 있었던 동경대 사건과 비슷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동경대사건은 의사법개정안에 반대하던 의학부 학생 17명이 징계된데 대해 의학부 학생들이 항의하면서 농성이 시작됐고 이것이 전체학생들의 수업거부사태로 확산됐다가 전원 유급이라는 비극을 불렀었다. 마침내는 신입생모집 중지조치가 내려지고 6개월이상 농성이 계속되다 69년1월 8천5백명의 경찰이 투입돼 겨우 진압됐으며그뒤 10년동안 학교가 황폐화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번 세종대사태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었다고는 하나 학업에 전념해야 하는 학생의 본분을 망각하고 과격투쟁일변도로만 치달은 운동권중심의 학생운동이 빚은 엄청난 피해였다. 결국 지난 4월15일 학교측의 임시휴업조치 이후 공권력이 투입된 10일까지 87일동안 분규가 거듭돼온 세종대사태는 학원민주화란 명분을 내걸고 전교생의 유급위기로까지 몰고간 주동학생들의 대량징계와 함께 대량유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며 이는 또다른 분규의 불씨를 남겨 학교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과민증 불감증(사설)

    작은 시비가 큰 시비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시비가 사실은 그렇게 작은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아이싸움이 어른싸움 동네싸움으로 번지고 세르비아인 학생이 쏜 사라예보의 총 한방이 1차 세계대전을 빌미로 되기도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작은 시비가 너무 자주 그것도 신경질적으로 일어나면서 과격한 데로 발전하고 마는 것이 작금의 우리 사회 현실이다.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전 지하철이 좀 연착한다 하여 기다리던 승객들이 유리창 등 기물을 부수면서 난동부린 일을 기억한다. 젊은이가 나이든 이에게 담뱃불을 붙이자고 하는 것을 나이든 이가 나무라자 그를 구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일도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이다. 엊그제 서울 시내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우를 살해한 사건도 그 맥락이다. 뛰어가면서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것을 못참고 시비를 벌인 끝에 흉기로 찔러 죽이고 있다. 잔뜩 화가 나있고 무엇엔가 쫓기는 상황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 세태이다. 자그만 일에 금방 분통들을 터뜨리면서 사단을에스컬레이트시켜 나간다. 너나없이 과민반응 증후군속을 살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근래 부쩍 늘어나고 있는 존비속 살해사건도 그것이다. 그럴 만한 일이 아닌데,조금만 이성을 찾는다면 결코 그럴 수 없는 일인데 신경질적으로 그 존비속을 살해하고들 있는 것이 아니던가. 각박해진 사회현실이 심어가고 있는 심리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사회는 너무들 극기와 인내의 덕목을 망각하고 잇다. 못견디고 못참는 것이다. 조급해지고 성급해져 있는 것이다. 학교성적 떨어진다고 자살하는 경우를 놓고 보자. 학우를 살해하는 경우와 나타난 현상은 다르지만 심리상태로 보자면 다를 것이 없다. 못견디고 못참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공격의 대상이 타냐 자냐의 차이일 뿐이다. 자살하고 타살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와같은 과민증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대도시의 건널목 풍경을 보자. 파란불이 켜졌다 해도 전후좌우를 살핀 다음 건너간다 해서 크게 늦을 것은 없다. 그렇건만 파란 불이 켜질 무렵 해서 뛰어건넌다. 자동차들도 역시 그렇다. 고층건물의 엘리베이터 타는 사람들에게도 이 건널목 건너기 심리는 그대로 나타난다. 2∼3초만 기다리면 문은 자동으로 닫히련만 그걸 못기다리고 버튼을 두번 세번 신경질적으로 눌러댄다. 우리가 정작 더 걱정해야 할 일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사회적인 불감증이다. 사소한 일로부터 고교생이 고교생을 살해한 사건만 해도 그것이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것인 만큼 대단히 중시해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냉담한 채이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사건들이 거푸거푸 일어나면서 우리의 정상한 감각이 면역을 심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심리의 일반화가 범죄현상 못잖은 악성의 사회병리라고 하여 잘못이 없을 것이다. 이제 여름이다. 계절적으로 불쾌지수라는 것이 다른 때보다 더 높아지는 철이다. 이런 때일수록 좀 느긋해지는 심성들을 기르기로 하자. 사람이란 이성을 지녔기에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던가.
  • 노대통령 「6ㆍ29」 3주년 기자간담 내용

    ◎“「윗물」은 직접 점검,사정반 계속 가동”/국정 우선부문은 갈등ㆍ위화감 해소/우리 경제 1∼2년뒤엔 활력 회복 확신/“지도자는 때로는 「물」,때로는 「불」이 되어야” 노태우대통령은 28일 낮 청와대에서 6ㆍ29선언 3주년을 하루 앞두고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내각제개헌문제,특명사정활동,한소및 한중관계,대북한관계 등 국정전반에 걸쳐 약 1시간20분동안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다음은 노대통령과의 일문입답 요지. ­내일이면 6ㆍ29선언 3주년이 됩니다. 당시 선언과 관련된 공개되지 않은 비화라도 있습니까. ▲나는 본래 비밀을 간직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사 있다 해도 여러분들이 가만히 놔두길 합니까. 보도될 것은 다 되어버렸어요. ­6ㆍ29선언에 대해 평가하는 시각이 여러가지인 것 같은데요. ▲여러 눈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마침 내일(29일) 저녁에 6ㆍ29선언 3주년을 맞아 「국민과의 대화」 시간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회고도 있을 것이고 무엇이 잘 돼 왔고 무엇이 잘 안돼 왔는지도 결산을 하게 되리라 봅니다. 오늘 이 자리는 내일을 위한 예행연습이 되는 셈이군요. 사람들은 흔히들 망각속에 산다고들 하지만 망각이 때로는 좋을 수도 있고 어느 때는 아쉬울 수 있지요. 6ㆍ29이후 변화된 상황에 대해서는 책도 문헌도 많이 나와 있다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안하고 영광스러웠던 것은 얼른 잊어버리고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요. 물론 이런 점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계속 생기고 문제가 와글와글하는 나라는 발전하고 반면 잠잠하면서 겉으로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는 나라는 정체하고 후퇴하는 게 사실입니다. 6ㆍ29이후 모든 것이 잘 됐다고 하는 것은 현실안주가 되기 쉽고 뭔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래지향적인 발전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사회 각계 각층의 얘기들을 지도자들이 수렴해 발전적으로 풀어 나가야지요. ­대통령은 스스로 국민에게 부드럽게 보인다고 보십니까,아니면 강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얼마전 워싱턴포스트 소련지국장이 회견을 요청해 만났는데이렇게 묻더군요. 「6ㆍ29선언이후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나 하는 일을 보고 어떤 이는 마음이 약하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옛날의 강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며 「어느 쪽이냐」고 질문했어요. 나는 이에 「민주주의를 하려니 유할 때는 유해야 하고 또 질서를 잡을 때는 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지도자는 물이 될 때는 물이 되고 불이 될 때는 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 잦아서는 안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국민이 불편하고 자연히 통치도 어려워지지요. 나는 스스로 나의 개성이 유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군에 있을 때 1년에 한두번 화를 내는 일이 있을까 말까 하는데도 부하나 참모들이 나를 어렵고 무섭게 느낀다고 하더군요.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권위주의를 싫어합니다. 권위주의는 반민주 정치문화이지요. 과거엔 권위주의가 정치문화의 주류를 이뤄왔으나 이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안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6ㆍ29선언이후 권위주의 문화가 다 없어졌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것이 정치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고 확신합니다. ­집권 중반기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국정의 가장 중요한 부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시점이라기 보다는 이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갈등과 위화감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 현실적이면서 또 그 목표가 보이는 것이 통일문제라고 봅니다.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두가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국민의 의지가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도 직결되는 것이지요. 둘째는 경제적으로 후퇴해서는 안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경제가 안되면 민주주의도 기대할 수 없지요. 어려운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시대적 과제입니다. ­「노­고르비」회담이후 한소관계는 어디까지 와있습니까. ▲회담 당시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소련측이 공개를 꺼렸습니다만. 지금 문제는 소련측 자체내에 있습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갈등이 뒤엉켜 있지요. 내달(7월)에 당대회가 열리겠지만 워낙 경제가 안풀려 안심을 할 수 없습니다. 경제가 안풀리면 보수세력이 반격을 가할 수 있고 급진개혁파도 공격을 할 가능성이 있지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중간에서 고민이 크겠지요. 그러나 소련은 국내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보여 고르비도 페레스트로이카정책으로 개혁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가 너무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순리적으로 되게 마련입니다.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이 한소회담직전 노대통령의 연내방소를 자신있게 전망했는데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습니까. ▲희망사항으로 얘기했겠지요. 그 양반도 소련에 갔다 와서 그쪽 분위기도 알고 하니까 그렇게 희망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방소수교단 파견은 언제쯤 이뤄집니까. ▲다음달 소련의 전당대회가 끝나는 것을 봐야 알겠습니다. ­한소회담후 한­중국관계도 급진전되고 있다는데. ▲중국과의 관계개선은 시작이 소련보다 빨리 되었고 또 진전이 진행되어오다가 천안문사태로 주춤해졌지요. 중국은 지금 스스로 정치적 변화를 하기도 어렵고 우리가 강요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해서 경제협력도 자연히 영향을 받게되었지요. 한때 경제교류도 둔화되었으나 최근 회복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9월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시 상승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항간에는 아시안게임때 대통령이 북경을 방문한다고 하는데요. ▲고르비와 회담이 뜻밖에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어디 원인없는 행위가 어떻게 이뤄집니까. 한소회담에서도 느꼈지만 사회주의국가와의 협력,수교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특히 언론의 보도문제입니다. 그들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그런 문제를 논의할 때 첫째 내거는 조건이 논의의 보안입니다. 한중관계의 언론추측보도는 상대방을 당혹하게 만들고 국익차원에서도 큰 폐해를 끼치게 됩니다. ­중국과의 사이에도 「원인행위」가 이뤄지고 있습니까. ▲내가 직접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지난 16일 김대중 평민당총재와의 회담에서 내각제개헌문제등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있다는 설이 있던데요. ▲여러번 김총재와 회담을 해봤지만 지난번 회담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게 없었어요. 한가지 이 사람(김대중총재)이 오해하는 것은 금년내에 당장 개헌을 하여 내각제로 바꾸어 내가 또다시 대통령으로 뽑혀 장기집권을 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그 오해는 풀린 것 같았어요. ­내각제개헌 추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나 정부형태문제를 정치인이면 자유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김 평민총재와의 회담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6ㆍ29선언 당시에도 내 소신은 내각제라고 단서를 붙여 놓고 직선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내각제를 갖고 무슨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없습니다. 내각책임제가 아무리 좋다 해도 국민이 싫다하면 하지 않을 것이고 야당과도 논의할 용의가 있습니다. 헌법개정문제는 여야가 상의하고 협력해서 할 일이며 일방적으로 몰아부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년은 국민들에게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안정을 약속한 큰 일이 있는데 금년안에 개헌을 추진한다고 하는 것은 다 뜬 소문입니다. ­부동산투기 근절ㆍ특명사정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야당에서 권력남용이라고 하고 있으나 국가의 모든 행정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참모에게 무엇을 못 시킵니까. 특히 부동산문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뿌리를 뽑을 것입니다. 5ㆍ7특별담화를 통해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이를 지킬 주체는 공직자입니다. 공직자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약속을 지킬 수 없으니 그들의 자세를 점검 안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지만 윗물은 내가 직접 점검하여 틀림없다 확일될 때까지 특명사정반을 계속 가동할 작정입니다. 부동산투기ㆍ물가ㆍ민생치안 등에 대해서는 열심히 하고 있으나 아직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는 만큼 더 열심히하여 이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특명사정반으로부터 정치인 비리내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또 신문에 정치인 비리를 내사한다고 대문짝만하게 쓸려고 그러지요. 그 문제는 알쏭달쏭함이라고만 하겠어요. ­한소 정상회담이후 대북한정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습니까. ▲기본원칙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나 북한측의 주장을 수용하는 범위가 전보다 넓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쪽은 대화의 목적 전부가 선전에 있어 종전에는 끊어버리는 입장이었으나 앞으로는 선전목적이더라도 웬만한 것은 수용하는 선에서 폭을 넓혀 대화를 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경제구조의 문제등으로 수출부진등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지난 86년이후 경기가 좋을 때 경제구조 변경을 했어야 했습니다. 어느 외신기자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한국경제를 평했듯이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에 경제구조 조정을 하고 기술향상 제조업등에 투자의 우선순위를 두었으면 지금의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이 금방 효과가 나타날 수는 없겠지만 1∼2년뒤에는 반드시 활력을 회복할 것이고 특히 소련등 동구권국가들과의 교역이 본격화되면 소비재 분야등 중소기업의 붐이 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 월드컵 괴롭히는 「관중난동」/고두현 체육부기자(오늘의 눈)

    온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월드컵의 열기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번 월드컵의 초점은 우승의 향방과 훌리갠대책이라고 일컬어질 만치 월드컵조직위원회는 훌리갠의 난동을 어떻게 미리 막느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훌리갠이란 한마디로 폭도화한 팬들이다. 지난 85년 브뤼셀에서 열렸던 유럽축구선수권대회결승 유벤토스(이탈리아)와 리버풀(영국)의 경기에서 술에 취한 두 팀의 팬들이 난투극을 벌인 끝에 39명의 사망자를 낸 이래 특히 악질적인 영국의 응원단에게 훌리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이 주어졌다. 훌리갠(HOOLIGAN)이란 원래 건달ㆍ깡패를 뜻하는 영어로 런던에 살고 있던 아일랜드인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됐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열이 오르기 쉬운 월드컵에 훌리갠마저 끼어들어 난동을 부리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 지 모른다. 조직위원회와 경비당국은 머리를 짠 끝에 오는 16일 예선리그F조의 영국과 네델란드의 경기를 살다니아섬의 칼리아리에서 열기로 했다. 특히 열광적인 두 나라 팬들을 섬에 봉쇄(?)하자는 작전이다.훌리갠의 원조인 영국의 정부도 골치가 아프다. 영국정부는 이탈리아 당국에게 대회기간중 술을 팔지 말 것을 건의하고 FIFA(국제축구연맹)가 최악의 사태를 예상해서 영국팀에게 출전금지조치를 취하더라도 영국정부는 항의하지 않겠다고까지 통고했다. 또 영국정부는 특히 악질적인 훌리갠 1백명의 명단을 이탈리아정부에 넘겨주고 이들의 입장을 막도록 요청했다. 영국정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탈리아의 가바내무부장관은 월드컵경기 개최 12개 도시에 주류판매 금지의 권한을 넘겨주었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쿠베르탱남작은 『스포츠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을 고귀하고 영예롭게도 만들 수 있지만 야비하고 불명예롭게도 만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포츠의 참된 가치는 페어플레이를 통해 온세계 사람들이 우정을 다짐하고 평화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망각하고 오직 승패에만 집착할때 반칙ㆍ난동 등 인간이 지닌 온갖 추악함이 스포츠를 더럽히게 마련이다. 단일종목으로는 세계최대의 행사인 월드컵을 제대로살려나가자면 선수들 뿐만 아니라 팬들도 페어플레이 정신을 준수해야 할텐데….
  • 노대통령 만찬답사

    ◎이제 우리는 신뢰받는 우방이 되기 위해/과거역사의 잔재를 씻는데 노력해야 그 아득한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아 왔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세에 들어와 고통을 받는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두 나라간의 오랜 선린우호의 역사에서 볼때,어두운 시대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두 나라는 참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과거를 씻고 우호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 주신 것은 의미깊은 일입니다. 이제 우리 두 나라가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신뢰하는 우방이 되기위해 양국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어 온 과거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데 우리 모두 노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나라간 훌륭한 관계를 후대에까지 물려주어야 합니다. 한일 두 나라가 다함께 추구해온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 세계의 보편적 가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한일 관계는 오직 우리 두 나라간의 관계에서만 중요한 데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동과서의 문화가 조화를 이룰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이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이끌며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더 나은 세계와 인류의 공동번영을 위해 큰 공헌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책무일 것입니다. 앞으로의 우리 두 나라 관계는 상호존중과 이해위에서 공동의 이상과 가치를 지향하며 발전할 것입니다.
  • 일왕,“불행했던 시대” 대목서 긴장/노대통령 방일여로 이모저모

    ◎도이 사회당위장도 “엄청난 과거사과”/가이후총리 “동년배끼리 대화로 풀자” 노태우대통령은 24일 낮 12시 특별기편으로 일본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행사 참석,일왕 예방,도쿄도지사 접견,일본 유력인사 개별접견에 이어 가이후총리와의 1차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참석 등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쁜 일정. ▷일왕 주최만찬◁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가장 관심을 모은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는 24일 저녁 8시40분쯤 시작. 미리 준비된 만찬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사에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라는 대목에서 잔 기침을 해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젊은이들의 교류를 비롯한 양국의 장래문제를 언급하면서는 밝은 어조로 바꾸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은 21세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국관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 ○애국가 연주뒤 축배 만찬사가 끝난 뒤 애국가 연주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과 한국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이어 노대통령은 만찬답사에서 전후 일본의 발전과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고대로부터의 양국간 문화교류를 선린우호의 역사를 담담한 어조로 지적한 뒤 근세에 있어서의 어두웠던 과거에 언급. 노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다』고 힘을 주어 강조하고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역설. 노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고 이날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평가하고 『과거 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 데 모두 노력하자』고 다짐.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노대통령 내외의 입장,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노대통령의 답사,민속공연은 보도진에게 공개됐는데 이때마다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7시50분쯤 일왕 궁성인 황거내 만찬장 호메이 덴(풍명전)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아키히토일왕내외로부터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은 만찬장인 호메이 덴 2층으로 오르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 『오늘 만찬을 통해 반가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되어 기쁘다』고 인사. 이어 하오 8시35분쯤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을 선두로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미치코왕비,나루히토(덕인) 왕세자부처,그밖의 왕족들 순서로 만찬장에 입장했는데 이순간 미리 테이블에 착석해있던 귀빈들이 일제히 일어섰으며 궁내청소속의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공식가요 「벽을 넘어서」를 은은히 연주.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착석한 헤드 테이블에는 가이후총리 내외,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 내외,다케시타 나카소네 전총리 내외,쿠사바최고재판소장관 내외 등 일본측 인사와 최호중외무부장관등 우리측 수행장관들이 같은 열에 나란히 착석. 이날 만찬 음식은 제비집스푸 연어구이 등 주로 서양식이었으며 메인디시는 쇠고기였고 포도주와 일본주도 포함. ○…노대통령 내외는 하오 10시45분쯤부터 순쥬노바로 자리를 옮겨 일본 민속공연 「아악」을 일왕 내외와 약 20여분간 관람. 노대통령이 관람한 아악은 고대 한반도에서 전래한 고려악형식이었으며 노대통령은 민속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석으로 가 피리모양의 악기를 입에 대보기도 하며 연주팀을 격려. 이날 궁성만찬은 당초 하오 8시부터 10시30분까지 2시간30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 사이에 환담이 길어지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따라 45분이 길어진 밤 11시15분께야 종료. ▷1차 정상회담◁ ○…이날 하오 영빈관에서 열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간의 제1차 정상회담은 접견환담및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진행 ○가벼운 담소로 시작 하오 6시 정각 영빈관에 도착,접견실인 2층 사이란 노마홀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2명씩의 배석자와 함께 자리에 앉아 가벼운 담소로 대화를 시작. 가이후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측의 사정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이 두차례씩 지연된 데 대해 송구스러움을 표한 뒤 한국내에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방문을 결심한 데 대해 사의를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대해 『정달 어려운 방일이었다』고 털어놓고 『그런만큼 뜻있는 방문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20세기를 깨끗이 정리하여 밝은 21세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 가이후총리는 『각하께서 6ㆍ29 민주화선언의 선두에 나서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개척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같은 연대 출신이므로 뜻을 나누면 대화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가이후총리는 이어 『곧 있을 정상회담에서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깊이 반성한다』며 「공식 사죄」에 앞서 사죄의 뜻을 간략히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 「고맙다」고 응답한 뒤 자신가 가이후총리,아키히토 일왕이 가가가 32,31,33년생임을 들어 『서로 배짱이 통하는 동년배의 우리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면 긴 역사속에서 짧고 불행했던 기간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각계 인사접견◁ ○…노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스즈키 도쿄도지사를 접견한 데 이어 나카소네(중증근),다케시타(죽하) 전총리,도이(토정)사회당위원장,이시다(석전)공명당위원장,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 등 일 정계원로및 중진들을 차례로 접견. 다케시타 전총리는 노대통령을 만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이기를 빈다』고 했고 도이 사회당위원장은 『과거 양국간에 있었던 엄청난 일에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고 36년 식민통치등에 대한 사회당으로서 입장을 전달. ○일왕과 1호차 탑승 ▷환영식◁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1시20분 숙소인 영빈관 앞뜰에서 아키히토일왕 내외 나루히토(덕인)왕세자 왕족대표인 마사히토(정인) 일왕제 가이후 일총리부처 일본 전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진 환영식에 참석,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한 뒤 일본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하오 1시19분 아키히토 일왕 부처와 영빈관 현관 입구에서 첫 인사를 교환한 뒤 붉은 카펫이 깔린 테라스에서 일왕 부처와 나란히 서서 의장대가 연주하는 애국가와일본국가를 들으며 새로운 한일 선린우호관계 발전을 다짐. 노대통령은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수석영접위원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의장대의 총례를 받은 뒤 도보로 의장대를 사열. 노대통령은 사열을 마친 후 환영식에 참석한 사쿠라우치요시오(앵내의웅) 일 중의원의장 쓰치야 요시히코(토옥의언) 참의원의장및 일 각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 노대통령은 10분간에 걸친 환영식이 끝나자 아키히토 일왕과 국빈 1호차에 탑승하면서 환영나온 도쿄 한국인학교 학생,일본국민교생,재일교민 등 2백명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고 이들은 양손에 든 태극기와 일본국기를 흔들며 환호. ▷일 하네다 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4일 정오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이원경 주일대사및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일 외무성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역사적 일본방문을 시작. 노대통령 내외는 이어 다나카 의전장의 소개로 나카야마다로(중산태랑) 일 외무장관 내외와 야나기 겐이치 주한 일본대사 내외등 일본측 영접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재일동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대기하고 있던 국빈차량에 탑승. 이날 하네다 공항에는 경호관계로 일반 환영객은 출입이 금지됐고 공항구내에는 일본경호요원들이 50∼1백m 간격으로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며 일본 NHK­TV는 정오 뉴스시간에 생중계로 도착광경을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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