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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몽 없이 태어난, 퀴어… 시로 채운 서사의 빈터

    태몽 없이 태어난, 퀴어… 시로 채운 서사의 빈터

    “바다 밀려오든 남김없이 밀려가든규정 밖 우린 영원히 여기 서 있어”남녀 규정 거부 비이분법적 퀴어부재·불일치 감각으로 독자 압도교보 출판브랜드 북다 시인선 1번기사·태몽의 정의·변희수 하사 초상여러 텍스트·이미지 시와 어우러져 꿈은 존재의 시(詩)다. 이성과 논리가 다 포섭할 수 없는 존재의 잉여를 도발적으로 품어낸다. 어쩌면 그것은 저 거대한 무의식이 숨기고 있는 존재의 비밀을 풀어낼 열쇠일지도 모른다. 김선오(34) 시인의 새 시집 ‘말 꿈 몸’을 펼치기 전 시집 마지막에 실린 ‘작업노트’를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로서 나에게 태몽이 없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개인 서사의 빈터를 시로 다시 써볼 수 있을까. 나를 환영해 줄 장소가 전통적 가족 공동체의 내부는 아닐 것이다.” 부재와 불일치의 감각이 시를 밀어붙인다. 강력한 힘으로 독자를 단숨에 압도한다. “번들거리며 희박해지는 잉어와 나. 유리창이 모자이크를 걷어낸다. 나의 눈동자에 얹히는 잉어의 눈동자, 기꺼이 잉어의 살이 되려 하는 나의 뺨. 한 개의 몸으로 응결되지 않으려는 몸짓.// 보여? 또렷이/ 보여? 익사하지 않고 우리는/ 우리가 된단다.// 우리?”(‘하나’ 부분) 꿈이 무의식의 발현이라면, 태몽은 어느 한 집단의 ‘문화적 무의식’이다. 거기에는 젠더를 둘로 나누는 데 익숙해진 언어의 편견과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인의 작업은 태몽의 내부를 폭파하는 것이다. ‘잉어가 나오는 꿈을 꾸면 아들을 낳는다’는 신화적 망상을 해체하는 일이다. 시적 자아와 “잉어”가 ‘하나’가 되려는 순간, 그들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엮이려는 찰나에 시인은 과감히 물음표를 찍어버린다. ‘일치’를 거부하며 당연시되던 관습을 의문시하는 태도. 시의 힘은 여기서 비롯된다. “꿈은 나를 달래고 보호합니다./ 꿈은 열망과 고통을 식히고 기도에 몰두하게 합니다./ 꿈이 없었다면, 나를 낫게 하는 꿈이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누더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기도는 꿈꾸지 않게 해달라는 것……/ 대신 나의 꿈을 세계에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시 ‘깃과 기척’(42쪽) 바로 앞쪽에 실린 이 글에는 딱히 제목이 없다. 시인지 산문인지 불분명하다. 만약 이 글이 시라면 화자의 말일 테고, 그렇지 않다면 시인 김선오의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하나로 확정할 수 없다. 시인과 화자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게 김선오의 의도일 수도 있다. 이분법적 구분은 이제 질색이니까. “꿈이 투명한 실처럼 내게서 풀려나와 세계의 찢어진 부위를 부드럽게 봉합할 수 있기를……” 언어는 세계를 둘로 나눈다. 그러나 언어 바깥에 있는 꿈은 언어가 찢어놓은 세계를 다시 연결한다. 아주 부드럽게. “꿈을 말하는 목소리는 노이즈다. 사회적, 역사적 거대 서사를 구성하는 패턴화된 리듬에 포섭되지 않는다. 노이즈로서의 꿈-말하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어떤 방법론을 사용할 수 있을까. 끝없이 ‘노이즈 캔슬링’ 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이 소음을 들리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작업노트’ 부분) 김선오는 2020년 시집 ‘나이트 사커’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신춘문예, 문예지 신인상 등 일반적으로 시인이 되는 경로를 거치지 않았다. 지난해 문지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최근 평단의 주목을 받는 시인이다. 이번 시집은 교보문고의 출판 브랜드 북다의 시인선 ‘어떤시집’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어떤시집’은 하나의 테마로 하나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시집이다. 시인이 고른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집 전체를 기획한다. ‘말 꿈 몸’도 구성이 독특하다. 단순히 시만 있는 게 아니라 신문의 기사, 꿈과 트라우마에 관한 논문, 태몽의 사전적 정의, 동료 시인 김리윤이 그린 고 변희수 하사의 초상 등이 아울러 실려 있다. 다채로운 텍스트가 시와 맞물려 한 편의 대화처럼 읽힌다. 자기 몸과의 불일치, 세상과의 불화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시인이 전하는 낮은 위로처럼 읽히는 시구가 있다. “바다 밀려오라,/ 밀려가라, 남김없이/ 우리는 영원히 이곳에 서 있을 것이다”(‘밝고 밝아 보이는 세계’ 부분)
  • 애쓰지 않아도 스며드는 몸짓… 전민철의 꿈, 멈추지 않는 춤

    애쓰지 않아도 스며드는 몸짓… 전민철의 꿈, 멈추지 않는 춤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일본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 선 발레리노 전민철(22)에게는 행복감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일본무대예술진흥회(NBS)가 주최한 갈라 공연 ‘제니스 오브 발레’엔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질 로망을 비롯해 마리아넬라 누네즈(영국 로열발레단), 위고 마르샹(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디아나 비슈네바(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들이 출연했다. 전민철과 나가히사 메이는 마린스키의 퍼스트 솔리스트로서 한무대에 섰다. 둘째 날 공연 후 도쿄의 한 호텔에서 만난 전민철은 ‘차이콥스키’ 파드되(2인무)에서 착지할 때 살짝 흔들렸던 걸 두고 “아쉬운 마음이 공연 끝까지 가더라”고 했다. “대단한 캐스팅 속에서 부담을 가졌던 듯하다”고 돌이킨 그는 “그들의 춤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야를 많이 넓혔다”며 이번 공연의 의미를 찾았다. 지난해 그는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전체 최고상(4월), 마린스키 ‘라 바야데르’ 주역 데뷔(7월), 마린스키 정식 입단(10월) 등 이력을 쌓으며 세계 발레계에 이름을 알렸다. 마린스키는 김기민(34) 수석무용수 이후 두 번째로 입단한 한국인 발레리노에게 두 번째 등급인 퍼스트 솔리스트 자격을 주었다. 그는 마린스키에서 훈련한 지난 석 달 사이 체력이 훨씬 좋아졌고 점프가 더 나아진 듯하다고 자평했다. 작품 수와 공연 횟수가 많은 마린스키는 일주일간 작품을 준비하고 공연한 뒤 바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파트너의 중심축과 점프 타이밍을 빠르게 파악하는 감각도 키웠다. 지도위원인 유리 파테예프 전 마린스키 예술감독의 조언으로 점프 방식도 고쳤다. 장점으로 꼽히는 ‘가볍게 뛰고 사뿐히 내려앉는 점프’에 힘있게 높이 올라가는 방법을 얹어 체공 시간이 더 길고 우아해졌다. “준비 단계의 움직임, 허벅지를 활용하는 방법 등을 바꾼 게 매우 큰 도움이 됐다”고 부연했다. 파테예프의 지도를 받는다는 건 그의 성장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파테예프는 ‘우아하고 귀족적인’ 마린스키의 정수를 가장 잘 계승하는 인물로 ‘음악과 춤의 일치’, ‘대사를 하듯 보여주는 춤’을 지향한다. 전민철은 “손짓 하나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하고, 흘러가는 멜로디 안에 숨어 있는 특정 음까지 표현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오는 28일 레오니트 라브롭스키 안무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오르는 그에게는 파테예프의 지도와 자신의 해석을 몸으로 풀어내는 게 숙제다. “‘나만의 무엇’을 찾으려고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것보다 그 캐릭터 안에 완전히 들어가고 싶다”는 그는 “누가 봐도 이질감 없이 ‘로미오 그 자체’라는 말이 나오도록 연기하는 게 지금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특별하다거나 성공했다는 표현 대신 “내 삶을 살고 있고 꿈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을 꺼냈다. 한예종 영재원 때부터 은사이자 멘토인 조주현 한예종 무용과 교수의 조언을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왕관을 스스로 쓰려고 하지 마라’, ‘풍선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자주 하시는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댔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음 목표를 설정하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계속 춤을 추는 것, 그게 다음 꿈입니다.”
  • “여오현 매직? 잠도 못 자… 쌍따봉 팍팍 날려요”

    “여오현 매직? 잠도 못 자… 쌍따봉 팍팍 날려요”

    김호철 바통 이어받아 꼴찌서 4위레크리에이션식 훈련, 사기 북돋워“원팀 중요… 색깔이 있는 팀 만들 것” “‘여오현 매직’이요? 어휴, 저는 스트레스 때문에 잠도 못 잤습니다.” 2025~26 프로배구 여자부 V리그 3~4라운드 돌풍의 주역 여오현(사진·48) IBK기업은행 감독대행이 최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7연패 책임을 지고 지난해 11월 사퇴한 김호철 전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그는 취임 직후 4연승을 거두더니 4라운드에서도 5연승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마술’을 부렸다. 최하위까지 떨어졌던 팀은 어느덧 4위(승점 36·11승 13패)로 올라서며 ‘봄 배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여 대행은 “경기를 할 때마다 자꾸 지니까 훈련하기도 싫고, 나중에는 경기장 가는 것조차 싫어지더라”면서 “우선 힘을 빼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다. 훈련 전 발을 사용하는 게임을 비롯한 각종 미니 게임으로 몸을 풀고, 훈련은 레크리에이션처럼 운영했다. 선수의 단점을 지적하고 혼내기보다 장점을 알려주며 사기를 북돋웠다. 2000~2013년 삼성화재에서, 2013~2024년 현대캐피탈에서 ‘슈퍼땅콩’으로 불리며 리베로 포지션으로 코트를 누볐던 그는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이후 은퇴까지 15번의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고, 그 가운데 9번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은퇴를 고민하던 차에 김 전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24년 4월 코치로 합류했다. 그리고 코치 생활 1년 7개월 만에 감독 지휘봉을 잡았다. 여 대행은 “선수 때는 경기만 잘하면 됐는데, 코치가 되니 선수들 챙기고 감독님도 보필해야 했다. 감독은 여러 선택지에서 결정을 내리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에너지 소모가 크다”고 털어놨다. 위기 상황에서 감독대행을 맡은 뒤 가장 먼저 전술 변화부터 시도했다.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빅토리아와 아웃사이드 히터 킨켈라의 포지션을 재배치하고 육서영을 뒷받침해 탄탄한 공격 삼각편대를 구성했다. 이 변화가 적중하며 상승세가 시작됐다. 무엇보다 감독이 되자마자 ‘나부터 웃자’고 다짐했다. 그는 경기 도중 선수가 실수해도 웃었고, 득점을 할 때는 엄지를 세우고 양손을 쭉 뻗어 트레이드 마크인 ‘쌍따봉’을 날린다. 선수들을 독려하느라 경기 내내 소리를 질러대느라 목이 하루도 성할 날이 없다. 그는 “배구는 3번의 연결을 해야 하는 경기다. 어떤 종목보다도 ‘원팀’ 정신이 중요하다”면서 “선수 한 명이 밝아지면 결국 팀도 바뀐다”고 강조했다.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딘 여 대행의 목표는 간결하고 명확했다. “색깔이 있는 배구, 즐거운 분위기와 건강한 문화가 있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 [인터뷰]‘쌍따봉’이 깨운 잠재력…여자배구 판 흔드는 돌풍의 주인공, 여오현 IBK기업은행 감독대행

    [인터뷰]‘쌍따봉’이 깨운 잠재력…여자배구 판 흔드는 돌풍의 주인공, 여오현 IBK기업은행 감독대행

    “‘여오현 매직’이요? 어휴, 저는 스트레스 때문에 잠도 못 잤습니다.” 2025~26 프로배구 여자부 V리그 3~4라운드 돌풍의 주역 여오현(48) IBK기업은행 감독대행이 최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7연패 책임을 지고 지난해 11월 사퇴한 김호철 전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그는 취임 직후 4연승을 거두더니 4라운드에서도 5연승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마술’을 부렸다. 최하위까지 떨어졌던 팀은 어느덧 4위(승점 36·11승 13패)로 올라서며 ‘봄 배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여 대행은 “경기를 할 때마다 자꾸 지니까 훈련하기도 싫고, 나중에는 경기장 가는 것조차 싫어지더라”며 선수 시절을 돌아보고 “우선 선수들의 힘을 빼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다. 훈련 전 발을 사용하는 게임을 비롯한 각종 미니 게임으로 몸을 풀고, 훈련은 레크리에이션처럼 운영했다. 선수의 단점을 지적하고 혼내기보다 장점을 알려주며 사기를 북돋웠다. 팀의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건 오랜 선수 경력에서 체득한 것이다. 그가 배구공을 처음 잡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당시 학교에 배구부가 생겼는데, ‘빵도 주고 우유도 주고 운동도 가르쳐 준다’고 해서 나갔다가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키가 워낙 작았던 터라 ‘차라리 유도나 레슬링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홍익대에 진학해 레프트 포지션을 맡았지만 그때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의 재능이 꽃피운 건 1997년 국제배구연맹(FIVB)이 ‘리베로’ 포지션을 도입하면서다. 여 대행은 “175㎝의 키는 배구선수로서 너무 작았고, 장래도 불투명해서 리베로로 전향했다”고 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삼성화재에서, 2013년부터 2024년까지 현대캐피탈에서 ‘슈퍼땅콩’으로 불리며 코트를 누볐다.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이후 은퇴까지 총 19번의 챔피언 결정전에 15번이나 올랐고, 그 가운데 9번을 우승했다. 대한민국 ‘레전드 리베로’로 활동했지만, 세월을 이길 순 없었다. 슬슬 선수 은퇴를 고민하던 차에 김 전 감독이 그를 불렀고, 2024년 4월 코치로 합류했다. “김 전 감독께서 현대캐피탈 감독이실 때, 국가대표 감독이실 때 지도를 받았습니다. 지도자를 고민하고 있었고, 명장 밑에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코치가 되니 고통이 2배로 늘었다고 한다. 여 대행은 “선수 때는 몸이 힘들지만 경기만 잘하면 됐는데, 코치가 되니 중간에서 선수들 챙기고 감독님도 보필해야 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다”며 웃었다. 그런데 꿈꾸던 감독 데뷔 순간은 생각보다 갑작스레 다가왔다. 김 전 감독이 자진 사퇴하면서 사령탑을 잡게 됐다. 코치를 한 지 1년 6개월밖에 안 됐는데 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7연패에 빠진 팀을 당장 이끌어야 했다. 자칫 성적이 나쁘면 지도자로서 앞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과감히 도전했다. “감독은 여러 선택지에서 결정을 내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코치 때와 달리 그런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힘든 기색을 보일 순 없었다. 그는 감독이 되자마자 ‘나부터 웃자’고 다짐했다. 경기 도중 선수가 실수해도 웃었다. 잘했을 땐 엄지를 세우고 양손을 쭉 뻗어 트레이드 마크인 ‘쌍따봉’을 날려줬다.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계속 소리를 질러대느라 목이 하루도 성할 날이 없다. “배구는 3번의 연결을 해야 하는 경기입니다. 그리고 그건 혼자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경기보다 ‘원팀’을 강조합니다. 선수들이 잘하건 못하건 제가 일부러라도 소리를 더 내고 박수 쳐줘야 선수들도 편하게 경기할 수 있습니다. 선수 한 명이 밝아지면 결국 팀도 바뀝니다.” 팀의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데서 나아가 선수 배치나 전술에 대한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외국인 선수 빅토리아와 아웃사이드 히터를 맡았던 킨켈라의 포지션을 바꾸고 육서영을 뒷받침해 탄탄한 ‘공격 삼각편대’를 구성한 게 효과를 봤다. 중앙과 후위 선수들 역시 예상보다 잘하고 있다. 여 대행은 한참 동안 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칭찬을 이어가더니 “우리 선수들이 이 힘든 시기에도 고맙게 잘해주고 있다. 정말 대견하다”고 미소 지었다. 특히 리시브를 담당하는 ‘리베로’ 임명옥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는 “경력이나 기록을 따져도 여자 선수 중에서는 ‘톱 클래스’”라고 엄지를 치켜들더니 “승부욕도 좋다. 마흔 살이지만 본인이 관리만 잘하면 3년 정도 더 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딘 여 대행에게 앞으로 어떤 배구를 하고 싶은지 묻자 간결하고 명확한 답이 돌아온다. “색깔이 있는 배구를 하고 싶고, 즐거운 분위기와 건강한 문화가 있는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 “남성도 당했다”…도쿄 지하철 성추행 실태에 ‘충격’

    “남성도 당했다”…도쿄 지하철 성추행 실태에 ‘충격’

    도쿄 지하철을 이용하는 남성 이용객 6명 중 1명이 성추행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일본 슈에이샤 등 외신에 따르면 도쿄의 열차와 기차역을 이용하는 승객 중 성추행 피해를 경험한 비율이 37.2%에 달했다. 도쿄 당국이 2023년부터 도내 성추행 피해 실태 및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정기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성추행 피해 비율은 2023년 27.1%, 2024년 36.2%, 2025년 37.2%로 3년 연속 증가했다. 지난해 성추행 피해를 경험한 여성은 54.3%, 남성은 15.1%로 집계됐다. 여전히 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이지만, 남성 피해자도 6명당 1명꼴로 나타났다. 피해 후 대응 방식은 “참았다·아무것도 못했다”는 응답이 37.9%로 가장 많았는데, 남성(39.0%)이 여성(37.7%)보다 높았다. 피해 남성인 30대 A씨는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는데, 취한 남자가 승차하더니 몸에 손을 댔다. 처음에는 실수로 스쳤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도 계속 만져 성추행임을 깨달았다”며 “만원 열차라 주변에서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내가 이런 피해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소리 지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하라다 다카유키 쓰쿠바대 인간과학연구소 교수는 “15%라는 수치에 매우 놀랐다. 일본 정부가 과거 실시한 대중교통 이용 경험에 대한 유사 조사에서는 일관되게 낮은 수치가 나왔었다”며 “보통 5% 내외를 기록했고, 10%가 넘는 경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남성과 소년들이 피해자로서 필요한 지원을 받기는커녕,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거나 조롱당할까 봐 두려워했다”면서 “당국이 여성 승객 보호에 치중함으로써, ‘여성은 더 취약하고 보호가 필요하고, 남성은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이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 크고 흰 눈이 그립거든 말없이 오라 태백으로[박상준의 문장 여행]

    크고 흰 눈이 그립거든 말없이 오라 태백으로[박상준의 문장 여행]

    태백역 인근 사슴목장 초록뿔언덕30만㎡ 고원에 사슴 200마리 방목산책길에 보는 이국적 풍경 장관 눈 내린 다음날·잔설 쌓인 날 추천당골광장서 시작되는 하늘전망대 890m 길이·무장애길 초보도 거뜬 정상에서 문수봉·천제단까지 조망 축제 전 미리 보는 눈 조각들 주목올해 주목받는 여행 트렌드 중 하나가 ‘책과 관련한 여행’이라고 합니다. 서울신문은 이에 맞춰 다양한 세대와 트렌드를 아우를 수 있는 을 3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박상준 여행작가가 책 자체 보다 책 속 한 문장의 ‘정서’에 집중한 콘셉트의 여행법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커튼은 닫혀 있고, 누운 채로는 바깥이 보이지 않는데도, 내 주변으로 서름한 빛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서 아까 꾸던 꿈이 이어지고 있는가 싶기도 하다. 나는 눈을 천천히 깜이며 그 환상의 빛을 가늠해보다가 문득 이런 확신에 이른다. ‘뭔가 찾아온 거야!’”/한정원, ‘시와 산책’ 중. 그 ‘뭔가’가 찾아오는 서걱서걱한 겨울 아침을 좋아한다. 창가의 눈부심이 햇살만의 수고가 아니란 건 겨울이어서 어렵잖게 알아챌 수 있다. 밤새 내린 눈은 그렇게 반짝인다. 밤하늘의 별과는 다른 빛남일 텐데, 별은 먼 데 있지만 차가운 그것은 그렇게 고요히 우리 곁으로 내려앉는다. ●크고(太) 흰(白) 눈을 찾아서 작가 한정원은 “눈을 발견한 날은, 사랑을 발견한 듯 벅차다”고 했다. 그리고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가 1번부터 100번까지 눈이라고 덧붙인다. ‘시와 산책’(시간의 흐름, 2020)은 작가가 시를 읽고 산책한 나날의 기록이다. 월러스 스티븐스, 에밀리 디킨슨,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의 시가 작가의 일상에 눈처럼 내려앉는다. 나는 작가가 고른 시의 심상을 더듬어 눈 내린 겨울의 길 위를 같이 산책하고 여행한다. 첫 장 ‘온 우주보다 더 큰’은 온통 눈에 관한 이야기고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겨울은 아니어도 작가만큼이나 눈을 좋아하므로, 글 속의 작가처럼 “뭔가”에 눈 뜨는 아침을 소망하고 눈이 거기 있기를 희망한다. 첫눈 같은 사랑 또한 말이다. 물론 환상은 환상일 뿐이다. 올해 겨울 하늘은 유독 야박하다. 눈 내린 날을 손에 꼽는다. 그렇다고 날씨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느지막이 눈을 뜨고 천장을 보며 깜빡이던 아침, 문득 이런 확신에 이른다.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을 찾아가는 게 겨울을 대하는 여행의 자세일 터. 강원 태백시는 우리가 사랑하는 눈의 고장이다. 이름부터 ‘크다’를 뜻하는 태(太)에 ‘흰색’을 뜻하는 백(白)이지 않은가. 물론 태백이란 지명은 ‘크게 밝다’는 뜻을 가진 태백산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내 멋대로 크고 흰 눈이기도 할 것이라 여긴다. 지난해 3월, 봄 여행 취재를 위해 태백산 하늘전망대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폭설을 만나 낭패했다. 봄의 일을 하러 가서 겨울을 만난 건 난처했지만 반대로 내심 겨울을 늘려 맞은 것 같기도 해서, 눈 내린 날로 갈무리할 수 있어 뿌듯했다. 매해 눈을 만난 횟수를 헤아린다는 한정원이 보았으면 얼마나 반겼을까. 작가가 못내 아름다웠다고 말했던, 눈이 열한 번이나 온 어느 겨울의 모습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눈 속 사슴의 ‘눈’ 속으로 태백 가는 찻길은 중앙고속도로를 내려서 영월부터 강원도의 오지를 달린다. 도로가 매끈하게 뻗지는 않았지만 웅장한 산세는 무척 감동적이다. 겨울 여행을 사랑한다면 행로에 슬며시 만항재를 끼워 넣어도 좋겠다. 하지만 ‘시와 산책’에 처음 나오는 시가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기차에서 내리며’이므로 나도 기차를 탔다. 태백선 기차는 영월의 동강과 정선의 민둥산과 태백의 함백산과 어울려 지난다. 창밖의 굽이와 굽이가 ‘행’이고 기차역은 ‘연’이며 철로는 ‘운율’처럼 다가온다. 시 속의 우연한 만남은 없지만 겨울은 스치는 풍경만으로 깊어 간다. 태백역에 내려서는 사슴목장 초록뿔언덕을 찾는다. 겨울 태백 여행을 위해 간직했던 버킷리스트다. 겨울 눈은 특별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리 특별하지 않기도 하다. 나는 눈 오는 날 아침이면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데 그곳의 설경 역시 아름답다. 잠시 태백산이라 해도 믿을 만큼. 그러니 그 유명한 태백의 겨울이 흔한 겨울 풍경처럼 느껴지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모두가 시인일 수 없고 여행은 일상의 ‘뭔가’보다 ‘특별한 뭔가’를 찾는 것일 때도 있으므로. 초록뿔언덕에선 그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언덕 위를 거니는 사슴은 이채로움을 넘어 얼마간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처음 찾았던 날부터 언젠가의 눈 쌓인 겨울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30만㎡ 고원에 200마리가 넘는 사슴이 설원 위를 뛰노는 상상을 해보라. 하물며 순백의 겨울 설원이다. 사슴목장은 초록뿔언덕 카페를 지나 입장한다. 건물 1층은 전시 공간을 겸하고 목장을 바라보는 카페는 2층이다. 초록뿔라떼나 초록뿔꽃사슴빵 같은 메뉴는 곧 만나게 될 사슴들의 예고편이다. 카페 바깥에서 전망대까지 난 산책로가 주 행로인데 사슴들은 멀지 않은 기슭에서 멀뚱히 경계하듯 눈을 마주친다. 사람들은 그 대치의 순간이 경이로워 덩달아 숨죽여 멈춰 선다. 그러면 사슴은 때때로 서서히 다가오기도 한다. 목장의 녀석들은 사람이 그리 낯설지 않다. 특히 초록뿔언덕의 마스코트, 200일 된 사슴 소금이는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이상봉 대표가 키워 강아지처럼 몸을 비빈다. 곁에서 눈을 맞출 적에는 매우 반짝이는 건 루돌프의 코가 아니라 눈망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작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사슴에게 겨울은 고달픈 계절이다. 조급해한다고 겨울이 서둘러 물러날까. 한정원의 말처럼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다행히 이 대표가 사슴들의 산타클로스가 되어 준다. 그는 매일 오후 3시, 사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언덕을 오른다. 이 시간은 초록뿔언덕을 찾은 이들에게도 선물 같은 시간이다. 초록뿔언덕에서 방목하는 사슴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럼에도 억지할 수는 없으므로 어떤 날은 멀리 한두 마리와 눈 맞추는 일에 그치기도 한다. 적어도 먹이 주는 시간에 찾으면 헛걸음할 일은 없어 사슴과 사람이 각자의 행복을 공유한다. 그날이 눈 내린 다음이거나 잔설이 두텁게 쌓인 경우, 사슴들은 조금 과장하면 북극의 순록처럼 보인다. ●‘눈’으로 즐기는 태백산 명소 사슴과 헤어져 태백산 하늘전망대와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 사이에서 망설인다. 지지리골은 태백이 꼭꼭 숨겨둔 겨울 명소다. 화전민이 살던 시절에는 지지리도 못살아서, 가까운 함태탄광이 흥하던 시절에는 광원들의 고기 굽는 지글지글 소리를 따 이름 붙였다지만, 서정의 오솔길은 경관 못지않은 비밀스런 드라마를 숨겨놓고 있다. 특히 오밀조밀한 길을 지나 길 끝에서 활짝 열리는 숲속 벤치에서는 누구나 눈을 감고 자작나무의 은밀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다만 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다. 차를 타고서도 좁은 흙길을 제법 올라야 한다. 기차를 타고 나선 나는 못내 엄두를 낼 수 없어 아쉬움을 삼키며 태백산 하늘전망대로 방향을 잡는다. 하늘전망대는 태백산 등산로 초입 당골광장에 있다. 태백산은 유일사에서 올라 천제단, 반재 등을 돌아보고 당골광장으로 내려오는 구간이 가장 유명하다. 당골광장에서 올라 천제단을 보고 다시 당골광장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당골 초입은 관광버스가 줄을 잇는다. 겨울 사랑이 적극적인 이들은 서둘러 태백‘산’에 오른다. 그들은 “눈은 흰색이라기보다 흰빛”이라던 한정원 작가의 말뜻을 나보다 먼저 이해할까. 전체 길이가 890m인 태백산 하늘전망대와 탐방로는 등산을 벅차하고 산책 삼아 겨울을 즐기는 나 같은 이들에게 알맞다. 휠체어나 유아차 보행이 가능한 무장애길이지만 눈 내린 겨울에는 조심해야 한다. 당골탐방지원센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완만한 데크 탐방로를 따르는데, 센터 입구에서 문화관광 해설사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겨울 태백을 여행하기 좋은 때는 언제일까요? 지금부터 겨울 내내 좋아요, 같은 뻔한 말이 오가지만 그만큼 태백의 겨울 풍경은 남다르다. 태백산 당골광장에는 눈을 꼭꼭 눌러 담은 커다란 거푸집이 눈길을 끈다. 이달 31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열리는 33번째 태백산 눈축제를 장식할 눈조각의 원형이다. 거푸집을 해체하면 정육면체의 커다란 눈얼음이 남을 것이고, 작가들은 축제가 열리기 전부터 눈을 조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과정은 결과만큼이나 흥미로운데 눈얼음을 다듬는 이맘때 모습은 비공식 ‘프리페스티벌’이라 부를 만하다. 눈축제가 끝나면 설날을 전후해서 습설이 내린다. 쉬이 녹지 않은 습한 눈은 단단하게 쌓여 태백 겨울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리고 태백의 더딘 겨울은 3월에 이르러서도 지난해처럼 폭설로 내리기도 한다. 택시 기사는 태백에서 30㎝ 정도는 눈도 아니라고 했다. 지난해 늦은 겨울에는 갑작스레 내린 폭설로 통리에서 5시간 동안 발이 묶였다며 무용담을 들려준다. 트렁크에는 만약에 대비하기 위한 버너와 라면이 상비돼 있노라고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차가운 눈… 겨울이 가리킨 겨울 하늘전망대는 탐방로 끝에서 좌우로 사열한 소나무 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몇 차례 크게 나선을 그리며 오르고, 사방의 풍경을 조금씩 소분해서 끌어안는다. 정상에는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고 먼 데 능선에는 태백산 문수봉과 천제단의 파노라마다. 아래쪽 숲에는 석탄박물관의 권양로(석탄을 운반하고 이동하는 통로)가 솟아 눈의 고장이자 광산의 도시라는 걸 다시금 일깨운다. “바람도 좋다, 여기는.” 옷깃을 여미는데 곁에 있던 이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린다. 아, 그렇기도 하겠구나. 도치법을 쓰는 그이 또한 시인이다. 그 말을 듣고 맞는 전망대 정상은 바람이 그저 매섭지만은 않다. 눈이 얼음장처럼 차갑지만은 않은 것처럼. 덕분에 멀리 두던 시선을 끌어오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우듬지와 그늘 아래 잔설에 눈길이 닿는다. 전망대 높이가 33m이니 나무의 키는 족히 20m가 넘겠다. 이토록 키 큰 나무의 머리 꼭대기, 우듬지를 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제야 뒤늦게 나는 왜 눈이 좋은가 되묻는다. 눈이 좋은 건 그것이 겨울다움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겨울은 겨울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한정원은 봄의 마음으로만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일 거라 말한다. “행복은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하고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하는데 겨울은 그저 시리도록 차가운 눈으로 제 몫의 행복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탐방로를 돌아 나오는 길에는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흐린 하늘은 언제라도 다시 눈이 내릴 태세다. 지금 눈이 내린다면 머리 위 자그마한 숲속 하늘 위로 난분분 내리겠다. 나는 다시 몸을 숙여 눈 한 줌을 쥐어보고는 눈 쌓인 곳을 골라서 걷는다. 손끝에서 찌릿하고 명징하던 그 차가움에 정신이 번쩍 들고, 그것들이 발끝에서 뽀드득하고 말간 소리를 내어 부서질 때, 겨울 산책의 참맛은 다시 한번 눈이라는 걸 깨닫는다.
  • 반얀트리 아이스링크에서 겨울 즐긴 서울 중구 어린이들

    반얀트리 아이스링크에서 겨울 즐긴 서울 중구 어린이들

    서울 중구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반얀트리 서울)과 중구 아동 30가구를 아이스링크 체험 행사‘매직 윈터랜드’에 초청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반얀트리 서울의 후원으로 지난 19일 아이스링크장에서 열렸다. 아동과 부모 등 60명은 국가대표 출신 전문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기본자세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강습 후에는 따뜻한 간식과 음료로 몸을 녹이며, 가족 간의 유대감을 쌓는 시간이 이어졌다.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 김병윤 대표이사는 “호텔 아이스링크장이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으로 채워져, 오히려 저희가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의 미래인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따뜻한 동행을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응원하며 따뜻한 나눔을 실천해 준 반얀트리 서울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어린이들이 꿈을 키우며 건강히 성장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경기도담뜰 겨울 눈밭 놀이터’ 개장…김동연, “겨울왕국 마음껏 즐기시길”

    ‘경기도담뜰 겨울 눈밭 놀이터’ 개장…김동연, “겨울왕국 마음껏 즐기시길”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도심에서 마음껏 겨울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경기도담뜰 겨울 눈밭 놀이터가 개장했다. 경기도는 17일 수원 광교 경기융합타운 내 경기도담뜰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꿈나무기자단, 도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담뜰 겨울 눈밭 놀이터’ 개장식을 열었다. 김 지사는 개장식 인사말을 통해 “도담뜰을 개장한 뒤 청년의 날에는 청년을 위해서, 도민의 날에는 도민을 위해 행사를 했는데 오늘은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겨울왕국을 만들었다”며 “제일 먼저 신경 쓴 것은 안전이었다. 안심하고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시간 되시면 경기도서관에서 몸도 녹이고 책도 둘러보시고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개장식은 K-POP 댄스팀인 ‘라스트릿크루’의 공연을 시작으로 김 지사와 꿈나무기자단, 도민들이 함께 눈동산에 설치된 대형 박을 눈송이로 터뜨리며 개막을 알렸다. 개장식 후 김 지사는 참석자들과 함께 눈썰매, 얼음썰매, 미니 바이킹, 체험 부스 등 주요 시설을 점검하며 도민들과 직접 소통했다. ‘경기도담뜰 겨울 눈밭 놀이터’는 2월 28일까지 총 43일간 운영되고 도민 누구나 1000원으로 다양한 놀이 시설을 즐길 수 있다. 오전(10~13시)과 오후(14~17시) 두 차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과 설날 당일(2월 17일)은 휴장한다. 한편 경기도가 지난 13일 예매를 진행한 결과 17일 오전·오후 이용권 300매가 홍보 시작 2시간여 만에 동이 났다. 입장권은 경기도 누리집(gg.go.kr)에서 겨울눈밭놀이터 배너를 누르면 네이버 예약 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 몸짓에 담아낸 혁신과 클래식

    몸짓에 담아낸 혁신과 클래식

    지난해 1059개 무용작(서양·한국·대중)이 2064차례 무대를 장식했고 75만여명이 공연장을 찾았다(1월 14일 기준).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을 통해 나타난 흐름을 보면 무용 공연은 2021년 671회, 2022년 834회, 2023년 875회, 2024년 900회로 완만한 상승선을 그리다가 지난해엔 가파르게 증가했다. 해외 인기작들을 불러오면서 관객층을 넓힌 것이 주효했다. 올해도 관객들의 눈높이를 더욱 높일 작품들이 펼쳐진다. ●양대 발레단의 레퍼토리 대결 국립발레단은 ‘백조의 호수’(4월 7~12일)로 올해의 문을 연다. 낭만 발레의 정수 ‘지젤’(10월 13~18일), 드라마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11월 10~15일), 연말 스테디셀러 ‘호두까기인형’(12월 12~27일)까지 다채롭게 준비했다. 모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현대 발레 두 작품을 묶은 ‘더블 빌’(5월 8~10일·서울 GS아트센터)에선 영국 로열발레단 상주안무가인 웨인 맥그리거의 ‘인프라’와 현대 발레의 상징적 레퍼토리로 꼽히는 ‘봄의 제전’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봄의 제전’(1913)은 바슬라프 니진스키(초연 안무)부터 모리스 베자르, 케네스 맥밀런, 피나 바우슈 등 당대의 안무가들이 한 번쯤 도전한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2014년 한국 초연을 한 글렌 테틀리 버전(1974)을 공연한다. 유니버설발레단의 2026년은 ‘한국 창작발레의 역사부터 클래식 대작까지’로 정리된다. 한국 창작 발레의 상징으로 꼽히는 ‘심청’(5월 1~3일 예술의전당)이 창작 4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으로 돌아온다. 국립극장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른 ‘심청’은 한국 고전과 서양 발레를 조화시키며 전 세계 12개국 40여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예술의전당과 공동기획으로 준비한 ‘백조의 호수’(8월 14~23일)에 이어 ‘고전발레의 교과서’로 불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10월 2~4일)도 명단에 올렸다. 마린스키 스타일의 화려하고 정교한 연출로 13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작품이다. 천재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1927~2007)의 베자르 발레 로잔(BBL)이 25년 만에 서울을 찾아 상징적 작품 ‘볼레로’, ‘불새’와 함께 아시아 초연작 ‘햄릿’(4월 23~24일 GS아트센터) 등을 선보인다. 명문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으로 국내 초연한다. 5월 16~17일 예술의전당 공연을 전후해 화성예술의전당과 대전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한다. ●현대무용 ‘아이콘’들의 내한 현대 무용에선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혁신의 아이콘’들이 연이어 내한해 무용애호가들을 설레게 한다. 웨인 맥그리거는 국립발레단과 선보이는 ‘인프라’에 앞서 자신의 무용단과 ‘딥스타리아’(3월 27~28일 GS아트센터)를 공연한다. ‘웨인 맥그리거 시리즈’를 기획한 GS아트센터는 최첨단 기술을 무용, 시각예술과 결합한 ‘딥스타리아’와 함께 몸과 기계의 교감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운영한다. GS아트센터는 이어 조각가 코헤이 나와와 안무가 다미앵 잘레가 협업해 장르의 특징을 응축한 ‘플래닛[방랑자]’(6월 25~26일)를 올린다. 28일에는 신작 퍼포먼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LG아트센터 서울은 ‘관객들이 놓쳐서는 안 될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을 시차 없이 소개한다’는 모토에 걸맞게 눈에 띄는 작품들을 세웠다. 독보적인 무용 언어를 구축해온 크리스탈 파이트가 지난해 영국 올리비에상 최우수 무용작품상을 받은 ‘어셈블리 홀’(6월 5~7일)로 첫 내한 무대를 연다. 인간의 내면, 권력과 폭력 같은 주제를 정밀한 군무로 구현했다. 지난해 한국 무용계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힌 ‘해머’의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이 ‘한여름 밤의 꿈’(6월 12~14일)을 들고 다시 방한한다. 북유럽 백야를 배경으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축제를 현대 발레극으로 펼쳐냈다. 2015년 로열 스웨덴발레 초연 당시 건초 더미 위에서 펼쳐지는 폭발적인 군무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발명가이자 혁신가’라는 극찬을 받았다. 에크만은 세종문화회관·서울시발레단 초청으로 ‘선인장(Cacti)’도 올린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를 공통분모로 ‘캣티’와 크리스티안 슈푹의 ‘죽음과 소녀’(8월 15~16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를 ‘더블 빌’로 묶었다. 에크만의 작품이 유머와 풍자가 어우러졌다면 슈푹의 작품은 특유의 시적인 연출과 음악의 정서가 녹아들어 있다. ●신진 안무가들의 실험적 작품도 국립현대무용단은 신진 안무가 정록이와 정재우의 ‘더블 빌: 머스탱과 개꿈’(4월 3~5일)으로 올 시즌을 시작한다. 여러 작품에서 실력을 입증해온 김보라 안무가의 ‘내가 물에서 본 것’(6월 12~14일)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관객을 만난다. 지난해 한국 초연한 윌리엄 포사이스 안무가의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을 이재영 안무가의 ‘메커니즘’, 정철인 안무가의 ‘비보호’와 엮어 ‘트리플 빌’(10월 2~4일)로 올린다. 두 작품 모두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 영화를 따뜻하게 채워 주는 음식들[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 본 영화]

    영화를 따뜻하게 채워 주는 음식들[정지욱의 창가에서 바라 본 영화]

    지난 연말 그리고 연초에 오래된 일본 영화 두 편이 4K라는 멋지고 우아한 날개를 달고 우리 관객들 곁에 찾아왔다. 이타미 주조 감독의 ‘담뽀뽀’와 후루아타 야스오 감독의 ‘철도원’이 그것이다. 전자는 제작된 지 40년 만에 처음으로 스크린에서 한국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고 후자는 한국에서 개봉한 지 25년 만에 재개봉한다. 일본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아는 작품이 ‘담뽀뽀’지만, 사실 이 작품이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상영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필자도 처음 본 것은 스크래치가 가득한 복사판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였고, 그나마 영화제를 통해서만 스크린으로 만난 적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질이 뛰어난 4K로, 그것도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반갑고 기대가 컸다. 특히 라면이라는 소재를 작품에 잘 담아 놓았다. 다소 선정적인 표현이 있어 성인들을 위한 작품으로 분류되지만, 라면에 대한 표현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다카쿠라 겐의 선 굵은 연기가 돋보였던 영화 ‘철도원’은 25년 전 개봉 당시 기자 시사회에서 처음 만났다. 스크린 그득한 설원을 배경으로 가슴 아린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일본의 국민배우라 불리는 다카쿠라 겐과 히로스에 료코의 대표작으로 불릴 만큼 관객들에게 두 사람을 깊이 새겨 놓은 작품이다. 작품에는 삶의 회한을 통해 묵직한 아버지의 군상을 우직하게 담아냈다. 17년 전 잃은 딸의 등장은 다소 SF 영화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일본인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 두 작품을 보며 겨울날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일본의 대표 먹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라면’과 ‘단팥죽’이다. 영화 ‘담뽀뽀’는 그 소재가 라면이고, 영화의 배경도 라면 가게다. 또한 ‘철도원’에서 여러 사람의 추위를 녹여 주고 손을 데워 주는 것은 우리의 감주와 비슷한 ‘아마자케’ 또는 ‘단팥죽’ 그리고 딸 유키코와 함께 나누는 식사다. 영화를 보고 나서 식사로 라면이, 후식으로 감주나 단팥죽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러다 보니 차가운 겨울날 우리의 고유 음식 중엔 뭐가 좋을까 궁리를 해 보았다. 역시 얼큰하고 뜨거운 ‘김치찌개’, 밀가루 반죽을 투덕투덕 뜯어낸 ‘수제비’는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곤 윤재호 감독의 단편영화 ‘찌개’(2022)를 떠올린다.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셰프 에이미, 엄마의 뒤를 이어 찌개집을 운영하는 은선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혁 감독의 단편영화 ‘귀로 만든 수프’(2023)는 프랑스 입양 청년 막심이 어머니가 만들어 준 추억의 수프를 찾아 고국에 와서 마침내 찾은 것이 ‘수제비’였다는 이야기다. 거장 감독의 음식영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생각하며 자그마한 단편작품을 떠올리는 것이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크건 작건 음식에 다가가는 자세나 그 표현에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다. 특히 지금처럼 추운 날씨에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찾아 맛보는 데엔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김치찌개를 생각하며 떠올린 곳은 청년들을 위한 김치찌개 식당 ‘청년문간’과 ‘청년 식탁 사잇길’. 서울 정릉동을 비롯해 여러 곳에 위치한 ‘청년문간’, 전북 전주시 전북대 인근 ‘청년 식탁 사잇길’은 모두 3000원에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흔하면서도 소중한 먹거리인 김치찌개를 청년, 청소년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곳이다. 추운 겨울날뿐 아니라 무더운 여름날에도, 일년 내내 김치찌개를 3000원에 제공하며 요즘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 두 곳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인다. 그중에서 주목할 것은 영화에 관한 활동이다. ‘청년문간’에서는 청년들에게 영화를 연출해 보거나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2030 청년영화제’를 여러 해 동안 개최했다. 올가을 여섯 번째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청년들에게는 여러 가지 꿈이 있다. 그중 하나인 영화감독이 되는 꿈을 실현함으로써 사회로 한 걸음을 내딛게 하려는 것이 ‘2030 청년영화제’의 취지다. 5회째 열린 지난해까지 40여명의 감독을 배출하고 매해 40~50여 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청년들을 위한 청년의 영화제다. ‘사잇길’에서는 해마다 4분기에 젊은 영화인들의 단편 작품을 상영하고 관객들과 대화하는 ‘월례영화만찬회’라는 상영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사잇길 청년인권영화제’를 열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인권을 영화를 통해 만나는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인권영화제는 스무 편가량의 작품을 경쟁 부문 등에 초청해 상영하는 영화 잔치로 꾸려질 예정이라고 한다. 몸을 채워 주는 양식으로 음식이 있듯이 정신을 채워 주는 마음의 양식으로는 영화가 제격이 아닐까. 특히 청년들의 싱그러움이 그득한 건강한 마음의 양식들로 채워진 영화제들 말이다. 작지만 소중한 두 곳을 통해 많은 청년들이 먹거리와 영화라는 문화적 소양을 듬뿍 섭취하기를 바라 본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 송혜교·공유 만난다…‘시청률 15.8%’ 스타 작가와 재회한 ‘700억 대작’

    송혜교·공유 만난다…‘시청률 15.8%’ 스타 작가와 재회한 ‘700억 대작’

    배우 송혜교와 공유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노희경 작가의 신작 ‘천천히, 강렬하게’가 약 1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촬영을 종료하며 2026년 최고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지난 10일 송혜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마지막 출근”이라며 ‘천천히, 강렬하게’ 대본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1회부터 최종화인 22회까지의 내용이 담긴 대본 4권이 있어 모든 촬영 일정을 무사히 마쳤음을 알렸다. 이번 작품은 ‘우리들의 블루스’,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즈’ 등을 집필한 노희경 작가와 ‘커피프린스 1호점’, ‘치즈인더트랩’ 등을 연출한 이윤정 감독이 의기투합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송혜교는 ‘그들이 사는 세상(2008)’,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이후 약 13년 만에 노희경 작가와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노희경 작가의 페르소나로 알려진 송혜교가 이번 작품에서 어떤 연기 변신을 선보일지에 관심이 쏠린다. 여기에 송혜교와 공유와의 만남 역시 화제다. 두 사람은 과거 KBS2 ‘태양의 후예’에서 함께할 기회가 있었으나, 공유가 출연을 고사하며 인연이 엇갈린 바 있다. 이후 약 10년 만에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게 되며 팬들의 오랜 기다림을 해소할 전망이다. ‘천천히, 강렬하게’는 야만과 폭력이 만연했던 1960~1980년대 한국 연예계의 탄생기를 배경으로 한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성공을 향해 몸을 던졌던 이들의 뜨거운 성장과 사랑을 그린 시대극이다. 송혜교는 어린 시절부터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누구보다 단단한 내면을 지닌 ‘민자’ 역을 맡았다. 민자는 억척스럽게 살아가다 한국 음악 산업에서 기회를 엿보고 과감하게 몸을 던지는 인물이다. 공유는 민자의 소꿉친구 ‘동구’ 역을 연기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지만, 민자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인물로 작품의 또 다른 축을 이룰 예정이다. 제작 규모 역시 역대급이다. 약 75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국내 드라마 중 손꼽히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송혜교와 공유를 비롯해 차승원, 이하늬, 김설현 등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을 뽐내는 톱스타들이 대거 합류해 기대감을 높인다. 촬영 종료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송혜교와 공유를 한 화면에서 보다니 꿈만 같다”, “노희경 작가의 감성으로 750억 대작이라니 무조건 봐야겠다”며 기대를 내비쳤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작진과 배우들이 총출동한 ‘천천히, 강렬하게’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후 어떤 흥행 기록을 세울지 관심이 쏠린다.
  • “시신 싣고 운행한 살인 택시”…6년 숨어지낸 연쇄살인마를 잡은 것은 그것[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신 싣고 운행한 살인 택시”…6년 숨어지낸 연쇄살인마를 잡은 것은 그것[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010년 3월 28일 오전 10시. 일요일 아침의 평온함이 감돌던 대전 대덕산업단지의 북쪽 끝 2차선 도로 위로 자전거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트로 향하던 외국인 노동자 자하드의 시선이 길가 건물 한쪽 벽면에 머물렀다. 대형 트럭과 담벼락 사이, 언뜻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취객인 것으로 생각하고 자전거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다가간 자하드는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잠자듯 누워 있는 줄 알았던 젊은 여성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양쪽 발목은 흰색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고, 얼굴과 목은 청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누군가 이 가련한 여성의 목숨을 끊은 뒤 인적 드문 이곳에 유기한 것이었다. 자하드의 112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10시 40분경이었다. 입만 막은 채 서서히 꺼져간 숨현장에 출동한 형사들과 감식반의 눈에 비친 시신은 기이할 정도로 깨끗했다. 앳된 얼굴의 피해자는 줄무늬 블라우스에 베스트,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듯한 옷매무새는 그가 사회 초년생임을 짐작게 했다. 코에는 핏자국이 있었고 광대뼈와 왼쪽 턱에도 작은 상처가 발견됐지만, 모두 치명상은 아니었다. 현장 바닥에서 혈흔은 찾을 수 없었다. 특이한 점은 여성 피살자들에게서 통상적으로 발견되는 목 졸림의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부검의들에 따르면 살해당한 여성의 90%가 힘이 약한 여성 제압에 용이한 목 졸림으로 사망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여성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있었으나, 시반(屍斑·시신의 피부에 나타나는 자주색 반점)은 몸 앞쪽에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피해자가 엎드린 상태에서 죽음을 맞았음을 의미했다. 정액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가슴에서는 남성의 타액이 검출됐다. 부검 결과 밝혀진 사인은 ‘비구(鼻口) 폐쇄성 질식사’였다. 입가에 테이프 자국이 선명했다. 하지만 의문은 남았다. 테이프가 코는 제외하고 입만 막고 있었는데 왜 질식했을까. 해답은 사망 당시의 자세에 있었다. 범인은 피해자의 손을 등 뒤로 묶고 입을 막았다. 팔이 뒤로 꺾인 자세가 오래 지속되면 심장박동이 크게 떨어지는데, 법의학자들은 이 자세로 오래 방치할 경우 코나 입 어느 하나만으로 숨 쉬는 것이 어려워 질식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피해 여성은 코에서 난 피가 비강을 막아 호흡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였다. 지문 조회 결과 사망자는 충북 청주에 사는 24세 송 모 씨였다. 대학 졸업 후 무수한 입사 도전 끝에 취직에 성공한 송 씨는 출근 첫째 주 휴일을 앞둔 3월 26일 금요일 저녁, 청주 남문로에서 친구들과 환영 회식과 생일파티를 마치고 택시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범인은 이제 막 피어나려던 꽃망울을 무참하게 꺾어 버렸다. 274만 개의 눈… 도시의 감시자가 범인을 지켜봤다형사들은 즉각 시신 발견 지점 주변의 폐쇄회로(CCTV) 확인에 나섰다. 범인은 트럭과 담벼락 사이에 시신을 유기하며 완전범죄를 꿈꿨겠지만, 도시의 감시자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성과 없이 이어지는 CCTV 화면 탐색에 형사들이 조금씩 지쳐갈 즈음, 모니터 속 시간이 오전 1시 30분을 가리키는 순간 결정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시신이 발견되기 약 9시간 전이었다. 화면 속에 퉁퉁한 체격의 남자가 등장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트렁크를 열어 급히 무언가를 꺼냈다. 이미 숨져 있는 송 씨였다. 남자는 트럭 옆에 송 씨를 버린 뒤 황급히 차를 몰고 떠났다. 화면이 너무 흐려 범인의 이목구비나 차량 번호는 식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차종이 흰색 NF쏘나타임은 분명했고, 더 큰 수확은 차 지붕에 택시 표지가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경찰은 송 씨가 회식을 마치고 탑승한 택시를 쫓기 시작했다. 경찰은 CCTV 속 범인이 시신을 유기한 후 다시 거주지로 추정되는 청주로 돌아갔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 갈 수밖에 없는 ‘노루목’을 찾아야 했다. 수사팀이 지목한 지점은 현도교였다. 대전 대덕단지에서 신탄진 나들목(IC)을 거쳐 청주로 넘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길목이자, CCTV가 설치된 곳이었다. 범행 당일 오전 1시 30분 이후 다리를 지나간 택시는 총 67대였다. 경찰은 이 중 유독 수상해 보이는 1대에 주목했다. 번호판을 잘 볼 수 없도록 반사 테이프를 붙인 택시였다. 차종 역시 앞서 현장 CCTV에서 목격된 것과 동일한 흰색 NF쏘나타였다. 정밀 분석을 통해 드러난 차량 번호를 확보한 후 경찰은 즉시 청주의 한 택시회사로 형사들을 급파했다. “CCTV에 다 찍혀 있다.” 형사들의 추궁에 택시 기사 안남기(41)는 순순히 자기 집에서 수갑을 받았다. 신고가 접수된 지 불과 12시간 만의 검거였다. 그의 택시 운전석 문짝에서는 식칼이, 트렁크 매트에서는 송 씨의 혈흔이 발견됐다. 송 씨를 위협해 빼앗은 현금 7,000원도 함께 나왔다. 조사 결과 드러난 안남기의 행적은 엽기적이었다. 그는 청테이프로 송 씨를 질식사시킨 뒤 시신을 트렁크에 실어둔 채 집에서 잠을 잤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다음 날인 27일 오후 2시부터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 태연히 택시 영업을 했다는 점이다. 이날 오후 11시 시신을 유기하러 가기 전까지, 안남기의 택시에 탔던 승객들은 발밑 트렁크에 시신이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택시를 이용했다. 안남기는 “테이프로 입만 막았기 때문에 송 씨가 숨은 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성폭행 혐의 또한 부인했다. 이미 2000년에 감금 및 성폭력 혐의로 3년 형을 받고 2003년 6월 출소했던 그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놓고도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나 강도치사만을 적용받기 위해 갖은 술수를 썼다. 드러난 ‘죽음의 택시’, 그리고 뼈아픈 수사의 허점“연기군 조천변 살인사건 있잖아요. 이번에 나온 DNA가 그 사건 용의자와 일치해요.” 수사가 진행되던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이 사건이 단순 강도 살인이 아님을 알렸다. 안남기의 과거 범행이 칡넝쿨처럼 줄줄이 딸려 나왔다. 그는 택시 기사를 하며 6년간 무려 3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었다. 첫 번째 피해자는 2004년 10월 충남 연기군 조천변 도로에서 발견된 23세 여성 전 모 씨였다. 채팅을 통해 만난 남성을 보러 청주에 왔던 전 씨는 안남기의 택시를 탔다가 이불에 싸여 노끈으로 묶인 채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두 번째 피해자는 2009년 9월 26일, 청주 무심천 장평교 아래 하천가에서 낚시꾼에게 발견된 41세 여성 김 모씨였다. 손발은 청테이프로 결박되어 있었고 하의가 일부 벗겨진 상태였다. 김 씨 역시 닷새 전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가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 수사의 뼈아픈 실책도 드러났다. 2009년 김 씨 사건 당시, 경찰은 택시 회사를 상대로 탐문 조사를 했으나 기사 개개인을 조사하지 않아 안남기를 놓쳤다. 결정적인 기회는 또 있었다. 김 씨 실종 다음 날인 9월 22일 오전 7시경 청주의 한 편의점 현금인출기에서, 그리고 8일 후인 30일 또 다른 은행에서 40대 초중반 남성이 김 씨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려다 실패한 장면이 CCTV에 포착됐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고, 김 씨의 계좌에 대해 즉시 경찰 신고가 이뤄지는 ‘부정 계좌’ 등록 대신 단순 ‘지급정지’ 조치만 취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 틈을 타 안남기는 수사망을 피해 갔고, 결국 해가 바뀐 2010년 3월, 송 씨라는 또 다른 희생자를 낳고 말았다. 미제사건을 푼 열쇠는 도로 위의 감시자 CCTV안남기의 범행 대상은 주로 늦은 밤 택시에 탄, 몸집이 작거나 술을 마신 여성들이었다. 그는 1심 재판부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10월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의성을 부인하고, 끊임없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지하게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겪은 고통 등을 고려해 극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가 숨 쉴 수 있도록 테이프를 찢어주었다는 등의 변명을 통해 ‘살인의 고의성’을 다투었던 안남기의 주장이 일부 참작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그는 현재 16년째 복역 중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여죄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2005년 2월 충남에서 실종된 여성과 2009년 9월 청주 도로가 트럭 밑에서 발견된 미용 강사 사건 등이 그의 소행으로 강력히 의심받고 있다. 2024년 통계 기준, 정부와 지자체가 설치한 공공 CCTV는 200만 대에 이르며, 민간이 설치한 CCTV는 이 수치의 10배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CCTV는 사생활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지만, 안남기 사건에서 보듯 자칫 미제사건으로 묻힐 뻔했던 억울한 죽음들의 한을 풀어주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 달리자, 말의 기운 깃들지니

    달리자, 말의 기운 깃들지니

    병오년, 말띠 해에 강렬한 말의 기운을 받으면 한 해가 술술 풀릴 것만 같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하는데, 기왕이면 말의 기운을 듬뿍 받을 여행지를 가고 싶다. 그래서 찾아봤다. 말띠 해에 어울릴 곳들이다. 전북 진안 마이산말의 귀 닮은 마이산 비경 첫손 꼽을 곳은 ① 전북 진안군 마이산(馬耳山)이다. 조선의 3대 왕 태종이 이 일대를 지나다 말(馬)의 귀(耳)를 닮았다며 마이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태종의 아버지이자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에 얽힌 전설도 있다. 고려 말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이성계가 꿈에서 국가를 잘 경영하라는 계시와 함께 금척(금으로 된 잣대)을 받는데, 그 꿈을 꾼 곳이 바로 마이산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잔치 때마다 추던 몽금척(夢金尺)이란 춤도 이성계가 마이산에서 금척을 받은 내용이 소재다. 마이봉 아래 600년 넘은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또한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진안 사람들은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 1만원권 지폐 밑그림인 일월오봉도가 마이산과 주변 산군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이다. 다섯 개의 봉우리와 해, 달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는 왕이 앉던 어좌 뒤 병풍 그림으로 쓰이는 등 조선 왕조의 표상으로 통했다. 조선을 세운 이와 그의 후손이 마이산과 얽힌 인연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산을 제대로 느끼려면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 주변에 견줘 독특한 산세가 한결 도드라져서다. 부귀산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산 중턱까지 승용차로 간 뒤, 10분 남짓 산을 오르면 된다. 진안군청 옆 성산정, 익산~포항간 고속도로 진안휴게소 전망대 등도 마이산 전망 포인트다. 전북 순창 인계면 마흘리천마가 날아오르는 ‘명당’ 마이산처럼 높은 산만 찾을 일이 아니다. 나라 안에서 가장 소문난 명당 터는 외려 낮은 산에 있다. 가장 유명한 ‘말 명당’은 전북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馬屹里)다. 특히 ② 김극뉴(1436~1496)의 묘가 포인트다. 풍수를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 천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천마등공’(天馬登空)의 명당이라 불린다. 안내판이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다. 마을 이름인 마흘리는 ‘말 같이 우뚝 솟았다’는 뜻이다. 마을 뒷산은 두 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이뤄진 모양이다. 작은 봉우리 이름이 용마산(龍馬山)이다. 말 모양의 지형에서 명당 자리는 콧구멍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한다. 김극뉴의 묘가 바로 이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높고 낮은 봉우리 2개가 연달아 이어진 곳을 마체(馬體)라 부른다. 말안장처럼 생긴 봉우리란 뜻이다. 옛사람들은 말안장에 오르는 것을 벼슬을 한다는 의미로 여겼다. 공교롭게도 마체 앞의 콧구멍 자리에 묘를 쓰고 난 뒤 광산 김씨 집안에서 벼슬을 하는 이가 줄줄이 나왔다고 한다. 견강부회의 느낌도 있지만, 광산 김씨가 이후 국반(國班 ·전국구 양반)의 반열에 올라선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북 장수 승마레저파크승마 체험으로 말 기운 듬뿍 전북 장수는 오래전 가야 무사들이 활동했던 이른바 ‘전북 가야’의 고도다. 장수에는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곳곳에 존재한다. 가야 고분군이 발견된 곳이 마봉산(馬峰山), 발굴된 최초의 가야 유물이 말 편자다. 여기에 말 테마파크인 ③ 장수승마레저파크도 있다. 승마 체험 등 레저와 말 박물관 등의 문화 시설, 숙박 시설 등을 갖췄다. 깡통 열차와 카트 투어, 말 먹이 주기 체험 등도 즐길 수 있다.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 형태의 펜션도 있다. 서울 중랑구 용마산도심 속에서 즐기는 일출 서울 중랑구에도 ④ 용마산이 있다. 용마(龍馬)란 용의 비늘이 온몸에 덮인 말을 가리킨다. 경북 경주시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天馬圖)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 용마산 아래 면목동(面牧洞)은 조선시대 궁중의 말을 키우던 목마장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이 용마(龍馬) 한 마리 내려주십사하고 하늘에 빌던 곳이 용마산이다. 도심과 가까운 데도 산양과 마주칠 정도로 자연이 잘 보존돼 있고, 대중교통으로 접근도 수월하다. 지난해 새로 개장한 ‘용마산 스카이워크’에서 맞는 수도 서울의 일출도 장관이다. 대구 달성 마비정 벽화마을말의 슬픈 전설이 머문 곳 말의 전설이 전하는 곳도 많다. ⑤ 대구 달성군 마비정(馬飛亭) 벽화마을은 거의 사람에 견줄 만큼 의인화한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이 마을 대나무 숲에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숫말 ‘비무’와 몸에서 빛과 향기가 퍼져 나오는 암말 ‘백희’가 살았다. 어느 날,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 이 마을에 온 마고담이라는 장수가 백희를 비무로 착각하고는 ‘화살을 건너편 산으로 날리는데 화살보다 늦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백희가 화살을 따라잡지 못하자 마고담은 단숨에 목을 벴고, 백희의 주검을 마주한 비무는 구슬피 울며 종적을 감췄다. 훗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마고담이 정자를 지어 둘을 기렸다. 그 정자가 마비정이다. 마을을 감싼 토담을 따라 그려진 다양한 벽화가 인상적이다. 마비정 아래 인흥마을에도 볼거리가 많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남평 문씨 세거지다. 날아갈 듯한 처마의 한옥들과 돌담길, 오래된 나무들이 단박에 이방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경기 고양 원당 종마목장말 따라 걷는 산책길 산책하기 좋은 곳 하나 덧붙이자. ⑥ 경기 고양시 원당 종마목장이다. 드라마 촬영지, 인증샷 명소로 알려진 곳인데, 원래는 경주마와 기수를 양성하는 한국마사회 경마교육원이다. 1997년부터 목장 일부를 산책로와 피크닉 공간으로 개방했다. 지하철 3호선 원흥역을 기준으로 차로 약 6분, 도보로 35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 목장 옆은 서삼릉(사적)이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잠든 능과 말이 노니는 목장이 낮은 울타리 사이로 공존하는 모습이 제법 인상적이다.
  • “황재균이 은퇴해서”…뜻밖의 ‘마지막 유산’ 장시환 “2~3년 더 듣겠다”

    “황재균이 은퇴해서”…뜻밖의 ‘마지막 유산’ 장시환 “2~3년 더 듣겠다”

    “재균이가 자기는 진짜 오래 할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은퇴하더라고요.”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장시환(39)이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얻은 별명이 있다. 바로 ‘현대 유니콘스 마지막 유산’이다. 2008년 1월 해체하기까지 현대는 왕조를 세우며 수많은 명선수를 배출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 현대 소속이었던 선수들에게도 은퇴의 시기가 찾아왔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오재일(40), 정훈(39)에 이어 황재균(39)까지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고 발표하면서 마지막으로 장시환만 남았다. 특히 황재균은 아직 경쟁력이 있는 선수로 평가받아 은퇴 소식이 많은 팬을 놀라게 했다. 장시환은 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의 신년인사회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자신을 둘러싼 수식어에 대해 “되게 부담스럽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재균이를 2~3년 전에 만났는데 당시도 현대 선수들 기사 나올 때여서 재균이는 자기가 유산으로 오래 할 거라고 했다”면서 “제가 재계약하고 오니 LG에 프런트나 코치님 중에 현대 출신이 많다. 볼 때마다 ‘마지막 유산’이라고 한다”고 웃었다. 장시환은 지난해 1군에서 단 1경기도 못 뛰었다. 2군에서도 유망주 육성을 중시하는 팀 기조에 따라 출전 기회가 별로 없었다. 9경기 8과3분의2이닝 1승 1패 평균자책점 4.15가 그의 마지막 기록이다. 그리고 방출됐다. 은퇴를 고민하던 그를 붙잡은 건 아내의 조언이다. 그의 아내는 “1군에서 마지막으로 던지고 은퇴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장시환은 은퇴 생각을 접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지막일 수 있기에 일찌감치 몸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 어렵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된 그는 “유산이 바로 없어지지 않게 2~3년은 더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의 말년이 아쉽지 않게 박수받고 떠나고 싶은 꿈이 크다.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시즌 절반 정도인 3개월만 잘하는 게 목표다. 장시환은 “시즌 6개월을 다 잘할 수 없어 반타작만 하자고 하고 있다”면서 “저는 열심히 할 건데 감독님이 제가 공이 좋으면 주구장창 써도 되고 안 좋을 땐 안 쓰시는 게 팀에도 보탬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위엔 특히 취약해 여름은 피하라는 조언도 남겼다. 선수 생활 막바지에 이루고픈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현대에서 시작해 히어로즈, kt 위즈, 롯데 자이언츠, 한화, LG를 거치는 동안 우승은 없었다. 우승에 앞서 가을야구 자체에 대한 갈증도 크다. 장시환은 “포스트시즌에 갔을 때 주축이 아니라 불펜이었고 그러다 보니 즐길 새도 없었다. 히어로즈 시절에도 한국시리즈 때 한 경기도 못 던지고 분위기만 느꼈다”고 떠올렸다. 지난해 한화의 가을야구를 보며 ‘몇 년만 더 어렸어도 저 자리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강속구 투수인 그의 구속은 시속 145㎞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1군에 가면 3㎞ 정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담도 곁들였다. 장시환은 “2군 경기는 아드레날린이 분배가 안 되고 낮 경기도 많이 하는 것도 있고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면서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데도 145㎞였으니 1군에서 150㎞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장시환은 이날 신년인사회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는 “어린 선수보다 더 많이 노력하려고 한다”면서 “프로는 잘해야 한다”고 올 시즌 활약을 예고했다.
  • 차기 메이저리거 보인다…김주원 “도전할만한 선수 되는 게 우선”

    차기 메이저리거 보인다…김주원 “도전할만한 선수 되는 게 우선”

    지난해 야구 인생을 활짝 꽃피운 NC 다이노스 유격수이자 말띠인 김주원(24)이 말의 해를 맞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김주원은 5일 경남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구단 신년회에 참석해 “(프로 데뷔 후 첫 말띠 해를 맞아) 신기하기도 하고 안 될 것도 되는 긍정적인 기운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주원은 지난해 타율 0.289 15홈런 65타점 44도루를 기록하며 리그 최정상급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이를 바탕으로 생애 첫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다. 지난해 정규시즌 활약은 물론 11월 일본과 평가전 2차전에서 9회말 2사 후 동점 솔로 홈런을 때려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도 김주원은 주전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 그는 “한 달 정도 빨리 시즌을 시작하는 만큼 몸을 먼저 만들고 있었다”며 “오전에 운동, 오후에는 병역 혜택 관련 봉사 활동을 다니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김주원이 WBC에서 활약을 다짐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가대표로서 자부심과 각오도 남다르지만 국제 무대에서 실력을 보여줄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주원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는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뒤를 이어 ‘빅리거 유격수’가 될 재목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주원은 빅리그 진출 꿈에 대해 “프로 입단 초에는 막연한 꿈이었는데 제가 비록 작년 한 시즌 잘한 상황이지만 신인 시절과 비교하면 (미국 진출의 꿈이)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며 “(김)혜성이 형이나 (송)성문이 형도 미국에 나가시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미국 무대가 생각이 나기는 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일단 매년 발전해서 미국 무대에 도전할 만한 선수가 되는 것이 일단 첫 번째”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진출 얘기가 장난에서 조금씩 (현실로) 바뀌어 가는 것이 제게는 더 힘을 내는 원동력이 된다”고 덧붙였다. 김주원은 2026시즌 보완할 점에 대해 “수비 쪽에서 실책 수를 줄이고 더 안정적으로 해야 한다”며 “실책 수가 많았는데도 수비상을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는데, 다음에 또 수비상을 받게 되면 실책 수에서도 더 당당해지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 “중학교 같은 반 29번·30번” 안성기·조용필, 60여년 인연 재조명

    “중학교 같은 반 29번·30번” 안성기·조용필, 60여년 인연 재조명

    ‘국민 배우’와 ‘국민 가수’는 학창 시절에 절친이었다. 5일 별세한 고(故) 안성기(74)와 그를 먼저 떠난 보낸 조용필(76) 이야기다. 생일이 1월1일인 안성기는 학교에 빨리 입학했고, 조용필과 경동중학교를 함께 다녔다. 특히 3학년 때는 짝꿍이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죽마고우였다. 조용필는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안성기와 친분을 인증했다. 1997년 KBS ‘빅쇼’ 출연 당시 중학생 시절 소풍 사진을 꺼내 보이며, 특별한 우정을 공개했다. 조용필은 당시 “같은 반. 제가 29번이었는데, 안성기 씨가 바로 제 짝인 30번이었어요. 그래서 남다른 그런 우정을 가지고 있고, 사실 어렸을 때 얘기지만 그때는 학교에서 딱 한 학생만 머리를 길렀어요. 바로 안성기 씨만 머리를 기르고, 그것까진 좋다 이거예요. 오전 수업만 하고 점심시간에 가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안성기가 아역 배우였던 사실을 짚은 것이다. 안성기는 과거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얄개전’(1965)이 상영되던 서울 아카데미 극장에 조용필을 비롯 친한 친구들을 초청했던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안성기는 당시 스타였지만 조용필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안성기는 지난 2018년 조용필의 데뷔 50주년 축하 영상 ‘50& 50인’에선 그의 잠재된 ‘끼’를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안성기는 “신만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누구도 그런 기미를 채지 못했고 자기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하게 될 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평소 조용필의 곡들을 즐겨불렀다. 애창곡 중 하나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다. 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몸과 마음이 푸근하게 젖어든다고 그럴까? 너무 많이 알려졌지만 너무 좋아하는 노래”라고 꼽았다. 안성기는 박중훈과 함께 주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2006)에 자신이 좋아하는 조용필의 또 다른 노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를 사용하자고 이준익 감독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평소 자신의 곡을 영화에 삽입하는 것을 꺼려한 조용필은 안성기의 부탁에 흔쾌히 ‘라디오 스타’ 곡 사용을 허락했다. 이에 앞서 2003년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 처음 성사됐다. 당시 조용필이 정규 18집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를 발매하면서 타이틀곡 ‘태양의 눈’ 뮤직비디오를 안성기가 주연한 1000만 영화 ‘실미도’의 영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2009년 안성기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렀을 때도 두 사람의 우정은 남달랐다. 당시 한국 영화계는 많이 어려웠고 안성기는 이를 고려해 조용필을 비롯 어머니를 잘 아는 일부 친구들하고만 장례를 치렀었다. 2013년엔 두 사람이 ‘제4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나란히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모습이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아이에게 안 부끄럽게… 제복 입은 사람 존중받는 나라 되길”[월요인터뷰]

    “아이에게 안 부끄럽게… 제복 입은 사람 존중받는 나라 되길”[월요인터뷰]

    두 다리 잃은 목함지뢰 사건어릴적 야구선수 꿈꾸다 군 입대 DMZ 작전 중 지뢰 밟고 정신 잃어의족 낀 미군과 만난 뒤 재활 의지군 복귀 이후까지 24번 수술 버텨조정 선수로 제2의 인생재활 중 SH 장애인조정 선수 제안첫 야외 훈련 뒤 운동선수 꿈 결심 5월에 태어날 아이 육아 최대 고민군인 희생 정신 중요성 알려줄 것병오년(丙午年)을 알리는 제야의 종이 울린 지난 1일 0시 서울 보신각. 당목(撞木)을 밀어 타종한 시민대표 11명 중 한 사내에게 눈길이 쏠렸다. 2015년 목함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 섰지만, 24차례의 수술과 고통스러운 재활을 딛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 조정선수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하재헌(32) 예비역 육군 중사다. 지난달 30일 하남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만난 그는 “(목함지뢰 사건이) 잊혀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분들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의 기운을 지닌 붉은 말의 해의 5월에 아들이 태어난다. 어렸을 때 야구선수를 꿈꿨던 그는 “캐치볼도 하고 싶고, 물놀이도 같이 가고 싶다. 육아가 최대 고민”이라며 “아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고 새해 바람을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야의 종 타종은 특별한 경험일 것 같은데. “평소 타종식을 챙겨보는 편은 아니라 덤덤했는데, 부모님이 신기해 했다. 다들 좋은 기운으로 2026년 한 해를 살기를 바라며 종을 치겠다. 특히 군인들이 (나처럼) 다치지 말고 무사히 전역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싶다.” -목함지뢰 사건이 어느새 10년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나를 모르는 분들도 많다. 응원 편지를 써줬던 초등학생들이 벌써 20대다. 잊혀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사건만은 기억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생생하다. 침투 흔적을 살피는 수색작전이 오전 7시쯤 시작됐다. 차를 세우고 비무장지대(DMZ)로 걸어 들어가 철책 사이 소통문을 열었다. 김정원 중사가 선두였고, 뒤를 따랐는데 폭발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주저 앉아 있었다. 흙먼지가 가득했고, 터진 다리부터 통증이 올라왔다.” -현장이 워낙 참혹했는데. “지혈만 한 뒤 일반전초(GOP)에서 소독하고 붕대를 다시 감았다. 현장에서 옮겨지는 과정에서 등 부상까지 심해서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는데 혈압이 너무 낮았다. 수술을 못하고 8시간 정도 대기했다. 수술만 24차례 받았다. 2023년 피부 이식 부위가 벌어져 수술한 게 마지막이다.” -어떤 감정일지 짐작조차 어렵다. 20대 젊은 나이에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군에서 다치면 대부분 크게 다친다. 그만큼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원망이 없을 순 없다. 안 좋은 생각도 들었지만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다. 군대를 안 갈 수는 없고, 다리를 다시 붙일 수도 없다. 되돌릴 수 없으니 덤덤하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다시 걸을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수술과 치료 만큼이나 재활 과정이 고통스러웠을 텐데. “한쪽 다리만 절단되면 목발이 더 편하다고도 하는데 (두 다리를 모두 잃은) 난 선택지가 없었다. 두달 만에 의족으로 균형을 잡고 조금씩 걸었다. 젊은 데다 운동을 해서 재활이 빠른 편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때 재활을 열심히 해서 지금 덜 절뚝이는 편이다. 이식받은 피부가 벌어지곤 하는데, 병원에서는 회복 기간엔 의족을 쓰지 말라고 해도 막상 쉽지 않다. 휠체어로 생활하기엔 우리나라에 계단이나 턱이 많다.” -병문안 온 미군을 만났던 일이 전환점이 됐다고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온 미군 상사가 이야기하다 바지를 걷어 올렸다. 나와 같은 양쪽 절단이었다. 그는 의족을 끼고 공수훈련도 받는다고 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힘이 났다.” -재활이 일단락됐어도 복귀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처음엔 원래 근무했던 1사단으로 복귀하고 싶었지만, 작전 보직은 한계가 있었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김정원 중사(하 중사를 옮기던 과정에서 2차폭발로 한쪽 다리를 잃음)는 사이버사령부를 택했다. 고민하던 내게 의무사령관이 수도병원을 권유했다. 다친 장병들이 많이 오는 곳이니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거란 말에 선택했다.” -거기서 조정도 시작하게 된 건가. “유가족 지원 업무를 맡았는데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때에 SH 장애인조정팀의 임명웅 감독님이 찾아왔다. 재능이 있다고 본 것 같다. 나는 군에 남겠다고 했지만 감독님이 3년 가까이 설득했다. 로잉 머신(조정 동작을 재현한 실내 운동기구)을 병원에 두고 수요일마다 재활했다. 어느 날 미사리 조정경기장으로 나를 불렀다. 야외에서 처음 배를 탔는데 재밌더라. 어릴 적 꿈이던 운동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단기간에 전국장애인조정대회 1위, 아시안컵 2위에 올랐다. “전역 1년 전 첫 출전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이후 SH에 몸 담고, 주장도 맡았다. SH는 공공기관 최초의 장애인조정팀이다.” -장애인 조정과 비장애인 조정은 어떤 차이가 있나. “비장애인 조정은 중량급과 경량급으로 나뉘지만, 장애인은 장애 등급에 따라 PR1, PR2, PR3로 나뉜다. PR3은 다리까지, PR2는 허리와 팔을, PR1은 팔만 쓰는 식이다. 물에 빠지지 않도록 PR1·PR2는 배의 폭도 더 넓고 자전거 보조 바퀴 같은 역할을 하는 ‘폰툰’을 단다. 국제대회에서 PR2는 혼성 종목만 있는데 국내 여자 선수가 적어 2년째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했다. PR1으로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장애인 스포츠는 선수 생활이 비교적 긴 편이다. 첫 국제대회에서 16위를 했는데 당시 15위를 한 외국 선수가 아버지와 동갑이었다. 체력 관리를 잘하면 오래 할 수 있을 거다.” -상이용사 모임도 활발히 나가는 편인가. “천안함 사건 등으로 다친 선·후배들과 편하게 교류하는 정도다. 공을 찰 순 없지만, ‘베테랑FC’ 풋살팀에서 응원한다. 큰 사고가 나면 수도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지뢰 사고로 다친 이주은 서울시 청년부상제대군인 상담센터 운영실장도 그렇게 알게 됐다. 이 실장은 내 권유로 조정도 시작했다.” -지난해 결혼하고 일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운동을 하다가 서울시장애인체육회에서 일하는 아내와 만났다. (숙소와 훈련장이 있는) 미사리조정경기장에서 가까운 하남에 신혼집을 구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더라. 성남 집에 자주 가려고 하지만 멀어서 쉽지는 않다. 미안한 마음 뿐이다.” -아빠가 된다는 귀띔을 들었다. “5월이 예정일이다.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웃음). 나중에 아이를 수영장에도 데려가고 싶고, 함께 산책도 하고 싶은데 물놀이도 어렵고, 오래 걷는 일은 힘들다. 그런 부분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걱정이다. 가끔 (야구) 캐치볼을 하는데 아들과도 해 보고 싶다. 육아를 잘 할 수 있을지가 최대 고민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바람은. “개인적으론 선수로서 한번 더 국제대회에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가정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다. 그리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한다. 여전히 호국보훈의 달이나 무슨 기념일에만 집중되는 느낌이다. 태어날 아이에게도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다. 제복을 입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지키고 있기에 우리가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재헌 선수는 1994년 부산 출생. 2015년 비무장지대(DMZ) 수색 작전 중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가 터지면서 두 다리를 잃었다. 자신이 재활 치료를 받았던 국군수도병원 의무부사관으로 복무하다가 2019년 중사로 전역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장애인조정팀 창단 선수이며 2025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남자 단체전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 “감독님 방목형 조련에 쑥쑥 커… 리그 4강 이상 찍어야죠”[스포츠 라운지]

    “감독님 방목형 조련에 쑥쑥 커… 리그 4강 이상 찍어야죠”[스포츠 라운지]

    아버지·오빠까지 모두 ‘농구 가족’이상범 감독 덕에 수비·체력 좋아져올 시즌 도움·득점 팀 내 각 1·3위올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가능성“시즌 생각뿐, 뽑아주시면 너무 감사”지난해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부천 하나은행이 이이지마 사키를 지명했을 때 농구 관계자들은 모두 뜨악한 표정이었다. 지난 시즌 9승21패로 압도적 꼴찌에 최근 몇 년간 하위권을 맴돈 하나은행이 약점인 가드 포지션을 보강하지 않고 포워드인 이이지마를 지명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드래프트에 3개월 앞서 부임한 이상범 감독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202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입단해 프로 5년차를 맞는 박소희(23)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박상욱)와 오빠(박종하·고양 소노)까지 모두 농구 가족인 박소희는 청소년 국가대표와 국가대표에도 선발될 만큼 가능성과 기량을 인정받았다. 신장 178㎝로 가드로는 좋은 신체조건을 가진 그는 이 감독을 만난 뒤 기량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를 지난달 24일 만나 신년 목표와 꿈을 물었다. 이번 시즌 들어 팀은 물론 본인의 기량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말에 박소희는 웃으며 “지난 시즌에 비해 두 가지가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수비고 다른 하나는 체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제가 공격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수비가 약점이었다”라면서 “감독님과 정선민 코치님이 수비 부분을 많이 알려주시면서 누굴 막아도 끝까지 부딪쳐서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시즌 내내 정말 주야장천 체력 운동만 했다”면서 “수비와 체력 운동만 하다 보니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경기를 뛰다 보니 서서히 몸이 좋아졌다는 것을 이제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웃었다. 박소희는 사실 이 감독이 부임한 뒤 한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선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이 감독 눈에 박소희는 안일한 플레이에 궂은일 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선수에 불과했다. 이 때문인지 이 감독은 시즌을 앞두고 일본 전지훈련과 지난해 8월 열린 박신자 컵에서 아예 박소희를 기용하지 않았다. 따로 불러 혼을 내지도 않고 스스로 깨우치기를 바라며 ‘방목’했다. 박소희는 “뭔가 잘못해서 기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는데 감독님이 혼도 내지 않고 아무 말도 안 하셔서 너무 힘들었다”면서 “한동안 체육관 근처 나만의 비밀 장소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고 뒤돌아봤다. 그렇지만 이 감독의 ‘츤데레’ 조련에 마음을 다잡은 박소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 단계 올라서면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24경기에 출전한 그는 평균 5.13득점(26위), 2.92리바운드(22위), 1.96도움(15위)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에는 1일 현재 올 시즌 13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11점(11위)으로 팀 내에서 이이지마와 진안에 이어 득점 순위 3위에 올랐다. 또 3.23도움(7위)으로 팀 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3점 슛 성공도 경기당 평균 1.54개로 단독 7위에 오르는 등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팀은 이이지마와 박소희의 견인에 힘입어 10승 3패를 기록하며 리그 단독 1위를 달리는 중이다. 공동 2위 청주 KB와 부산 BNK보다 3게임 앞서 있으며, 승률은 0.769에 달한다.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겸한 그가 득점을 많이 하는 날은 승리하고 득점하지 못하는 공식이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KB와의 경기에서 수비에 막혀 무득점 하던 날 팀도 대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반면 지난달 8일과 21일 인천 신한은행과 아산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는 올 시즌 최다인 20점을 퍼부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분당경영고 시절 변소정(BNK)과 함께 팀을 이끌며 나이별 대표팀 단골 멤버였던 그는 돌파와 게임 조율 능력, 외곽포 등을 갖춰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다. 그는 올 시즌 하나은행의 성적을 예상해달라는 말에 “시즌 시작 전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좋다. 제가 입단 후 팀의 가장 좋은 성적이 4위였는데 그거보다는 높은 성적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희의 활약이 계속되면서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는 “지금은 오로지 시즌에 대한 생각뿐”이라며 “그렇지만 뽑아주시면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겸손해했다. 경기가 없는 날이면 인천 청라의 숙소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카페 투어를 다닌다고 밝힌 그는 “처음엔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가장 소통도 많이 하시고 선수에게 먼저 장난도 치신다”며 “자만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 지켜봐 달라”고 당차게 인터뷰를 마쳤다.
  • 낭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랑과 존경… 절실함으로 써내려간 ‘김대중 옥중서신’[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낭비 없이 빼곡히 채운 사랑과 존경… 절실함으로 써내려간 ‘김대중 옥중서신’[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희호 여사에 보낸 엽서편지 4장큰 시련 앞에 아내 향한 감사 인사한 자 한 자 깨알같은 글씨에 감동김우진·박화성·차범석·김현을 기리며바다 굽어보는 언덕 위 ‘목포문학관’목포가 사랑한 문학가들과의 만남동료·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 전시‘목포는 항구다.’ 이 말에는 ‘개항장 목포’의 근현대와 격동이 담겨 있습니다. 전남 목포시는 그 세월을 여태껏 몸에 지닌 채 살아낸 도시입니다. 시간을 덧대어 쌓은 근대의 골목에서 만난 모든 것이 편지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빼곡히 눌러쓴 옥중서신이, 문학평론가 김현을 떠나보내고 쓴 소설가 이청준의 편지를 읽다가, 그들의 말과 글이 자꾸만 눈에 밟혀 당신에게 전하는 새해 편지에 슬그머니 옮겨 적고 말았습니다. ●빼곡하게 적어나간 마음 목포에 오기 전, 꼭 두 눈으로 보고 싶던 편지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본 사진 한 장 때문이었는데요. 편지의 실물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내용을 모두 읽기도 전에 발신인의 진심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곧장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향합니다. 목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정치 생활을 시작한 곳입니다. 그의 부모는 목포진 인근에서 영신여관을 운영했고요. 지금은 소년 김대중 공부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공부방 창가로는 목포 앞바다와 삼학도가 보입니다. 소년 김대중은 이 풍경을 보며 꿈을 키웠겠습니다. 그러니 삼학도에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과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위치한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삼학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라서 차로 오갈 수 있습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1층은 카페테리아가 있고 벽면에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전시실은 2층에 해당합니다. 2000년 노벨평화상 시상이 이뤄진 노르웨이 오슬로 현장을 재현한 공간에서 출발해 노벨평화상과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는 ‘동아시아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3전시실에 있습니다. 우선 옥중 생활을 재현한 공간을 들여다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76년 3·1민주구국선언과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6년 넘게 감옥에서 보냈지요. ‘인동초’라는 별명은 그때 생겨났고요. 창가에는 그가 옥중에서 읽은 ‘서양철학사’, ‘역사의 연구’, ‘이방인’ 등의 제목이 적혀 있는데요. 수감 중에 무려 6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제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던 네 장의 엽서 편지는 그 맞은편에 있네요.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쓴 편지에는 읽을 책들을 청하는 내용이 보이고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와~’하는 감탄이 일어요. 숨을 턱 멎게 하는 빼곡한 글씨가 단박에 시선을 끌거든요. 훨씬 큰 지면일 줄 같았는데 고작 A4 한 장 크기에 불과했습니다. 덕분에 실체가 주는 감동은 훨씬 컸고요. ●편지지 빛 바래갈수록… 빛 발하는 감정 김대중 대통령의 편지는 옥중에서 써 내려간 편지입니다. 긴 시간 이어진 편지는 두 권의 책으로 출간할 만큼 방대한 양입니다. 옥중서신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뉩니다. 1976년 3·1민주구국 선언으로 복역하던 진주교도소, 1977년 12월 서울대병원 특별감옥, 그리고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서 갇혔던 시기입니다. 서울대병원 특별감옥에서는 펜이 없어 못(철사)으로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소장한, 잉크 없는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진주교도소와 청주교도소 시기에 쓴 편지를 전시합니다. 펜으로 쓴 편지 역시 못으로 쓴 편지 못지않습니다. 무엇보다 글씨의 모양이 깨알처럼 작습니다. ‘깨알 같다’는 소소하게 재미있는 사건을 비유적으로 쓰는 단어일 텐데요. 이 편지는 글자 그대로 깨알 같습니다. 낭비 없이 가득 채워 촘촘하지요. 어떤 심정이기에, 어떠한 절박함이기에 이리도 절실한 글들을 담아 건넸을까요. 편지의 글씨는 쉬이 읽을 수 없을 만큼 작았습니다만, 다행히 원본 옆에는 확대 스크린이 있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 ‘사랑하는’ 앞에 ‘존경’을 표하는 사이라니요. 받는 이를 향한 편지의 첫 호칭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합니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1980년 11월 21일에 썼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사형을 선고받은 두 달 후였지요. 편지 안에는 두 사람의 오롯한 관계 속에서, 편지지의 빛이 바래갈수록 외려 빛을 발하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빈틈없는 편지는 진심의 다름 아닐 테고요. 김대중 대통령은 “일생을 두고 겪은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큰 시련 앞에서 아내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느낌이나 지식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단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씁니다. 편지 속 장래, 행복, 희망 같은 단어가 왜 그리도 낯선지요. 아마도 죽음을 앞둔 이의 언어처럼 보이지 않아 그랬을 겁니다. 전시하는 편지는 아니지만 ‘옥중서신2’(시대의 창)에는 같은 날 밤 이희호 여사가 쓴 답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존경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내일에 대한 희망 꼭 가지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옥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곧고 단단한 사랑이 못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편지 전시를 보고는 어록 푯말의 통로를 지납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용기는 최고의 미덕이다’ 같은 용기에 관한 말들이 유독 많습니다. 인동초라 불린 그 또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겠지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 몹시도 필요한 날이 있었을 겁니다. 그 가운데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라는 말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깨알처럼 작은 믿음일지라도 모이고 쌓이면 신념이 될 수 있겠지요. 한 해의 초입에서 그 말들을 가슴에 새겨 품어봅니다.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편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삼학도 서쪽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목포문학관이 나옵니다. 목포문화예술회관 맞은편 입안산 자락입니다.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 문학관은 그 자체로 문학입니다. 이곳에서 목포가 사랑한 4인의 문학가를 만납니다. ‘난파’ ‘산돼지’ 등을 쓰고 성악가 윤심덕과 열애한 극작가 김우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편 소설 ‘백화’를 쓴 소설가 박화성, 드라마 ‘전원일기’의 얼개를 만든 사실주의 극작가 차범석,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 주인공입니다. 목포문학관은 이들 네 문인의 주제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희곡 최초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된 김우진의 친필 원고와 차범석이 쓴 ‘전원일기’ 첫 집필본, 후배 소설가 박완서가 선배 소설가 박화성에게 보낸 ‘작은 것이나마 선생님이 아껴주실만한 것’으로 시작하는 짧은 편지를 읽습니다. 그리고 김현관에서 꽤 오래 머뭅니다. 김현은 진도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목포로 이사 왔다고 해요. 1977년에는 김병익 등과 함께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을 창간했고요. 김현관은 그의 문학전집을 비롯한 노트와 필기 자료, 작가들이 건넨 선물 등을 전시합니다. 저는 김현이 김병익, 이청준 등 동료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꼼꼼하게 읽어 나갑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학 시절이던 1975년 2월에는 이청준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대답없는 편지인 줄” 알고 있지만 “너에게 밖에 편지할 놈이 없다”는 푸념으로 써나간 편지는 막역한 사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자신이 읽은 책 가운데 감명 깊었던 대목을 옮겨 적는 게 전부이지만, 편지의 마지막에는 “불행의 사진을 그리지 말거라”라고 당부합니다. 김현이 편지를 쓴 이유는 이청준이 “고통하고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입니다. 아파할 줄 아는 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청준의 ‘알리바이 문학’에도 나오지요. 이청준은 김현이 세상을 떠난 2년 후 그의 아들 김상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늘 생각하고 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김현의 글을 읽는 것이 이청준에게는 “절실한 추모”라 전합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자극이 되며 격려가 되는 친구였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편지는 단순한 편지로 읽히지 않습니다. 내게 가까운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새날의 아름다운 것들에게 목포의 옛 시간이 남은 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는 포도책방에 들릅니다. 일제강점기 미곡창고로 지었고 한동안 지역독립영화관이 있던 곳이라지요. 양쪽 벽면과 책방 가운데 커다란 원형 책장이 눈길을 끕니다. 특이한 건 책방의 ‘주인’입니다. 무려 218명이나 됩니다. 200명이 넘는 책방지기가 각각 책장의 한두 칸을 차지하고 ‘엄마별의 뒤죽박죽 책방’ ‘행복@로컬’ 등의 문패를 내걸었습니다. 그러므로 책장의 칸칸은 작은 서점이 됩니다.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포도책방이겠습니다. 새 책도 있고 헌책도 있고 소품도 있습니다. 책방지기 가운데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작가도 있고 평범한 우리네 이웃도 있지요. 홍보도 기발합니다. 펜션 주인장인 어느 책방지기는 펜션 할인권을 내걸기도 했네요. 책방을 나와서는 몬도마노에 머물며 새해 첫 여행의 시간을 갈무리합니다. 몬도마노는 이탈리아어로 ‘한없는 세계’를 뜻하는 숙소입니다. 연극인인 호스트는 작은 집과 방과 뜰에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의 염원을 담았지요. 일제강점기 창고를 리모델링한 내부는 층고가 높은 스튜디오 스타일의 복층입니다. 지난해 연말에는 변방연극제가 열리기도 했다 합니다. 숙소였다가 연극의 무대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 셈입니다. 삶과 연극이 따로이지 않다는 전갈이겠습니다. 자그마한 뒤뜰 또한 매력적입니다. 저는 자그마한 창 너머 겨울의 뜰을 품은 방에서, 몇 년 동안 쌓인 글들을 읽습니다. 먼저 머물다 간 이들의 글과 주인장이 답장하듯 써놓은 글은 한 권의 편지 모음이라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저는 그들처럼 앉은뱅이책상에서 당신에게 건네는 새해 첫 편지를 씁니다. 목포는 항구라는 뻔한 말 대신 목포는 희망이라고 적습니다. 그리고 목포문학관에서 읽은 김현의 문장을 옮겨 적습니다.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나는 그쳐본 적이 없다.” 아름다울 수 있는 것들을 희망하다 보면 아름다운 것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해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 오전 9시 ~ 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 월요일 휴관, http://www.kdjnpmemorial.or.kr ● 목포문학관 - 오전 9시 ~ 오후 6시, 월요일 휴관, https://biz.mokpo.go.kr/munhak
  • 한 단어, 한 줄 툭… 시마가 불쑥 찾아왔다

    한 단어, 한 줄 툭… 시마가 불쑥 찾아왔다

    ‘시마(詩魔)가 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 시마와 나눈 22일 동안/ 그 애증의 기록을 남긴다.’ ●시마와 한 달간 동고동락 시를 쓰듯 시인의 말을 남겼다. 정일근(68) 시인은 ‘시의 마귀’가 아니라 ‘시를 짓고자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일종의 마력’으로 “시마가 찾아와 지난해 10월 한 달 꼬박 동고동락하며 같이 보냈다”고 했다. “시인이 만드는 열정의 이름”이자 “피할 수 없는 유혹” 같은 시마가 불쑥 다가와 시의 한 단어, 한 줄을 툭, 건네주고 사라졌다. 시인은 그것으로 시를 짓고 62편을 추려 ‘시 한 편 읽을 시간’을 냈다. 제목은 ‘밤 열한시 오십육분의 시’에서 가져왔다. ‘지친 바람처럼 무너져 돌아’와 일찍 자리에 누운 어느 날 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아직 오늘의 귀퉁이가 조금 남았다, 밤 열한시 오십육분// 이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가, 오늘이 끝나지 않은 것이// 아직 기도할 시간 있는 것이// 시 한 편 읽을 시간 남아 있다는 것이’라며 하루의 끝자락에서 흐르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헤아린다. 오늘과 내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다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품게 된 아쉬움일 수도 있다. 1984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정일근 시인은 한국일보 신춘문예(1985년·시), 서울신문 신춘문예(1986년·시조)에 연이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1987년 첫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창비) 이후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서정’의 얼굴이 됐다. ●40년 시력… 언어적 경계를 넘어서 이번 신간은 시인의 열다섯번째 시집이자 ‘난다시편’의 다섯번째 책이다. ‘정일근의 편지’와 수록작 ‘시란’(A poem is)의 영문판(정새벽 반역)이 수록돼 있다. “여기 우리들 시를 거기 우리들 시로 거처를 옮겨 언어적 경계를 넘어볼 수 있겠다는 또 하나의 재미를 꿈꿔보자 했다”는 게 출판사의 부연이다. 꽃 한 송이로 꽃밭 다 보여주듯 씨앗 한 톨로 숲을 보여주는 시(‘시가 꾸는 꿈’ 중), 깔끔한 맛과 화려한 향기의 시를 마시며 취하고 싶은 날 찾게 되는 시인(‘시를 도정하듯’ 중)이고 싶은 바람이 시 곳곳에 묻어있다. ‘내 몸을 때려 편경(編磬) 소리 내며/ 시를 읊듯 노래하며 살았으면’(‘다시, 만어’ 중) 하고 40년 시력을 녹여냈다. “제 시의 페이지를 넘기는 당신의 손, 그 손바닥에 손금의 온기로 고스란히 남고 싶습니다.”(‘정일근의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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