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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그래미가 선택한’ 도자 캣

    [포토] ‘그래미가 선택한’ 도자 캣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국 최고의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꼽히는 ‘그래미 어워즈’ 수상에 아쉽게 실패했다. 방탄소년단은 4일(한국시간) 오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자로 호명되지 못했다. 이 부문 수상자로는 지난해 ‘키스 미 모어’(Kiss Me More)로 큰 사랑을 받은 도자 캣과 SZA가 선정됐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버터’(Butter)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 10주 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음악시장을 강타해 어느 때보다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았기에 아쉬움이 더욱 컸다. 이들은 ‘빌보드 뮤직 어워즈’를 2017년 이래 5년 연속,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를 2018년 이래 4년 연속으로 수상한 바 있어 ‘그라모폰’(그래미 트로피)만 손에 넣으면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을 모두 석권할 터였다. 특히 ‘버터’의 흥행 성공으로 지난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대상 격인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Artist Of The Year)까지 아시아 가수 처음으로 차지하면서 그래미 수상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멤버 슈가는 지난해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래미 수상이) 당연히 쉽지는 않겠지만 뛰어넘을 장벽이 있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그래미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진 역시 “아직 우리가 받지 못한 상이 그래미”라며 “아직도 못 받은 상이 있으니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한 바 있다. RM은 시상식을 앞두고 진행된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그래미는 음악산업 동료들의 투표로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며 “지난 2년간은 매우 지치고 고통스러웠는데(exhausting and devastating), 우리가 그래미를 수상한다면 이것들이 모두 보상받고 성과를 올리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수상 불발을 두고 상업적 성과나 인기보다는 음악성 자체를 따지는 그래미의 성격이 반영됐다거나, 댄스 음악·보이그룹과 아시아 가수에게 유독 박한 특유의 보수성이 작용했다는 지적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방탄소년단이 지난해 내놓은 결과물이 풀 앨범(Full Album)이 아닌 싱글(Single) ‘버터’ 하나뿐이어서 음악적 성취를 어필하기에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결과와 무관하게 그래미가 2년 연속으로 K팝 노래를 후보에 올린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에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론이 없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사실 그래미가 보이그룹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방탄소년단이 후보에 든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지난해 ‘다이너마이트’에 이어 ‘버터’까지 두 곡 모두 그래미가 후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수상을 못 했어도 의미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수상자가 발표된 뒤 유튜브 라이브스트리밍 채팅창에는 많은 팬이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보라색 하트 물결로 아쉬움을 달랬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시상식에서 단독 무대도 꾸몄다. 이들이 ‘그래미 어워즈’ 무대에 오른 것은 2020년 이래 3년 연속이다. 이들은 검은색 수트를 입고 마치 ‘첩보 요원’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방탄소년단은 오는 8∼9일(이하 현지시간)과 15∼1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단독 콘서트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라스베이거스’(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LAS VEGAS)를 열고 전 세계 ‘아미’(방탄소년단 팬)를 만난다.
  • [속보] ‘빌보드 10주 1위’ BTS, 그래미 수상 불발…“아시아에 박하다” 비판

    [속보] ‘빌보드 10주 1위’ BTS, 그래미 수상 불발…“아시아에 박하다” 비판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그래미 수상이 올해도 불발됐다. ‘버터’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음에도 댄스 음악·보이그룹이라는 특성과, 아시아 가수에게 유독 박한 그래미 특유의 보수성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가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서 BTS 대신 ‘키스 미 모어’를 부른 도자 캣이 호명됐다.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버터’(Butter)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 10주 1위를 기록하며 어느 때보다 수상 가능성이 높았기에 아쉬움이 더욱 컸다. 방탄소년단은 2020년 이래 3년 연속 그래미 무대를 꾸몄다. RM은 시상식을 앞두고 진행된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그래미는 음악산업  동료들의 투표로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며 “지난 2년간은 매우 지치고 고통스러웠는데(exhausting and devastating), 우리가 그래미를 수상한다면 이것들이 모두 보상받고 성과를 올리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보수적인 그래미가 상업적 성과나 인기보다는 음악성 자체를 따지고, 아시아 가수에게 박한 평가를 내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수상자가 발표된 뒤 유튜브 라이브스트리밍 채팅창에는 ‘아미’들이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보라색 하트 물결로 방탄소년단을 응원했다. 방탄소년단은 오는 8∼9일(이하 현지시간)과 15∼1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단독 콘서트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 라스베이거스’(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LAS VEGAS)를 열고 전 세계 ‘아미’를 만난다.
  • 먹튀한 놈, 손 쓴 놈, 벼르는 놈

    먹튀한 놈, 손 쓴 놈, 벼르는 놈

    지난 2일 확정된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8개 조 가운데 한국이 속한 H조만큼 ‘지난 악연’으로 얽히고설킨 조는 없다. H조에는 한국을 비롯해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등이 묶였다. 네 나라 가운데 우루과이, 특히 그중에서도 루이스 수아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악연의 중심’에 있다. 우루과이는 한국과의 역대 상대 전적에서 6승1무1패로 우위에 있다. 월드컵에서는 두 차례 만나 다 이겼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조별리그에서 1-0으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16강전에선 2-1로 이기며 8강에 올랐다. 열세를 인정한다고 해도 남아공 대회는 아쉬웠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끈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로 아르헨티나(3승)에 이어 B조 2위를 차지해 원정 첫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16강전에서 수아레스에게 선제골과 결승골을 내주는 바람에 그 이상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가나는 수아레스와 더 깊고 뼈아픈 악연에 묶였다. 16강전에서 한국을 꺾은 우루과이의 다음 상대는 가나였는데, 당시 가나는 두 번째 출전한 월드컵 본선에서 처음으로 8강까지 올랐지만 이른바 ‘신의 손’ 때문에 좌절했다. 당시 1-1로 팽팽하게 맞선 연장 후반이 끝나기 직전 가나의 골키퍼까지 뛰어나온 상황에서 프리킥을 받은 도미니크 아디이아의 헤더를 수아레스가 아예 대놓고 손으로 막아냈다. 그는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주고 바로 퇴장당했지만 가나의 키커 아사모아 기안이 실축한 탓에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결국 가나는 2-4로 패해 눈물을 뿌렸다. 승리의 일등 공신은 수아레스였지만 가나의 눈에는 자국의 월드컵 역사를 바꾼 천하의 역적으로 불렸을 게 틀림없다. 커트 오크라쿠 가나축구협회 회장은 조 추첨이 끝난 뒤 “설욕의 시간이 왔다”면서 “우리는 남아공 당시 분명히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수아레스의 ‘수비’가 나왔다. 재대결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르투갈도 2018년 러시아월드컵 16강전 패배로 우루과이에 앙금이 남았지만 정작 가장 뼈아픈 패전은 2002년 인천 문학구장에서였다.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D조 3차전에서 포르투갈은 주앙 핀투와 베투의 연이은 퇴장 속에 박지성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얻어맞고 눈물 가득한 짐보따리를 꾸렸다. 한국 팬들도 포르투갈에 대한 분노가 적지 않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때문이다. 그는 2019년 7월 K리그 올스타와의 친선 경기를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그라운드에 단 1분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른바 ‘노쇼’ 사건으로 공분을 샀다. 거액의 초청료만 챙겨 ‘날강두’라는 별명도 생겼다. 한편 한국이 16강에 오르면 G조의 브라질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G조는 브라질, 세르비아, 스위스, 카메룬으로 구성됐다.
  • 얽히고 설킨 구원(舊怨), 이번엔 풀어지나 - 한국 속한 카타르월드컵 H조

    얽히고 설킨 구원(舊怨), 이번엔 풀어지나 - 한국 속한 카타르월드컵 H조

    지난 2일 확정된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8개 조 가운데 한국이 속한 H조 만큼 ‘지난 악연’으로 서로 얽히고 설킨 조는 없다.H조에는 한국을 비롯해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등이 묶였다. 네 나라 가운데 우루과이, 특히 그 중에서도 루이스 수아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악연의 중심’에 있다. 우루과이는 한국과 역대 상대 전적에서 6승1무1패로 우위에 있다. 월드컵에서는 두 차례 만나 두 번 다 이겼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조별리그에서 1-0으로, 2010년 남아공에서는 16강전에서 2-1승을 거두고 8강에 올랐다. 열세를 인정한다 해도 남아공 대회는 아쉬웠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끈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로 아르헨티나(3승)에 이어 B조 2위를 차지해 원정 첫 16강에 올랐다. 그러나 16강전에서 수아레스에게 선제골과 결승골을 내주는 바람에 그 이상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후반 23분 이청용의 동점골로 만든 재기의 희망을 수아레스가 12분 뒤인 후반 35분 결승골로 짓밟았다.가나는 묘하게도 수아레스와 더 깊고 뼈아픈 악연에 묶였다. 16강에서 한국을 꺾은 우루과이의 다음 상대는 가나였는데, 당시 가나는 두 번째 출전한 월드컵 본선에서 처음으로 8강까지 올랐지만 이른바 ‘신의 손’ 때문에 좌절했다. 당시 1-1로 팽팽하게 맞선 연장 후반이 끝나기 직전 가나의 골키퍼까지 뛰어나온 상황에서 프리킥을 받은 도미니카 아디이아의 헤더를 수아레스가 아예 대놓고 손으로 막아냈다. 그는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주고 바로 퇴장당했지만 가나의 키커 아사모아 기안이 이를 실축하는 바람에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결국 가나는 2-4로 패해 눈물을 뿌렸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수아레스였지만 가나의 눈에는 자국의 월드컵 역사를 바꾼 천하의 역적으로 불려졌을 게 틀림없다. 커트 오크라쿠 가나축구협회 회장은 조 추첨이 끝난 뒤 “설욕의 시간이 왔다”면서 “우리는 남아공 당시 분명히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수아레스의 ‘수비’가 나왔다. 우루과이와의 이번 재대결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르투갈도 2018년 러시아월드컵 16강전 패배로 우루과이에 앙금이 남았지만 정작 가장 뼈아픈 패전은 2002년 인천 문학구장에서였다.16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 복귀,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D조 3차전에 1승1패의 전적을 안고 나섰던 포르투갈은 주앙 핀투와 베투의 연이은 퇴장 속에 박지성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얻어 맞고 0-1로 져 1승2패가 되면서 눈물 가득한 짐보따리를 꾸렸다. 하지만 한국 축구팬들 입장에선 포르투갈에도 아직 씻겨지지 않은 분노가 엄연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때문이다. 그는 2019년 7월 K리그 올스타와 친선경기를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그라운드에는 단 1분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른바 ‘노쇼’ 사건으로 공분을 샀다. 거액의 초청료만 잡아떼였다며 ‘날강두’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 개그우먼 유미선 “남편과 이혼 소송 중”

    개그우먼 유미선 “남편과 이혼 소송 중”

    개그우먼 유미선이 “이혼 소송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한 유미선은 “돌싱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런 얘기 해도 되나’라고 묻는 MC의 질문에 유미선은 “나는 떳떳 하니까”라며 “진행 중인 법정 공방에서 우위에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유미선은 “그런 코너가 있다면 불러달라”라며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하기 어렵겠지만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당당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송 중인 상대방에게 오히려 그는 “잘 지내니”라고 밝게 안부를 묻기도 했다. 한편 유미선은 2012년 MBC 19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같은 해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부문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슬하에 3세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 [속보] 교황, 푸틴에 격노 “철없고 파괴적 침공”

    [속보] 교황, 푸틴에 격노 “철없고 파괴적 침공”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해 “일부 강력한 통치자(potentate)가 갈등을 일으키고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지중해 섬나라 몰타 순방 중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슬프게도 일부 강력한 통치자가 민족주의적 이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교황이 이렇게 푸틴을 겨냥한 비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교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철없고 파괴적인 침공”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황청은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편이고 교황은 이번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이나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 왔지만,이날 발언은 교황이 격노했음을 보여준다고 AP는 평가했다. 교황은 지난달 13일 “도시 전체가 묘지로 변하기 전에 용납할 수 없는 무력 침략을 멈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러시아를 직접적으로 지칭한 것은 기도할 때 등으로 한정해왔다.
  • 통일·교육부까지… 블랙리스트 전방위 수사 ‘조준’

    검찰이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이어 통일부·교육부의 산하기관장 사퇴 압박에 대한 수사도 검토 중인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에 대해서도 같은 의혹이 제기된 상태라 정권 교체기에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될지 주목된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최형원)는 통일부 산하의 남북하나재단 손광주 전 이사장과 교육부 산하의 동북아역사재단 A 전 이사장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2019년에 이미 진행했다. 둘은 2017년 9월 임기를 1년여 남기고 정부 압력에 의해 사표를 제출했다고 알려졌다. 손 전 이사장은 “천해성 당시 통일부 차관이 2017년 7월 차관실에서 차를 마시던 도중 ‘정권이 바뀌었으니 사표를 내는 것이 관례”라며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됐으니 협조해 달라고 말하기에 일단 새 일자리를 알아볼 시간을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8월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직접 전화해서는 9월 1일부터 국회 회기가 새로 시작되니까 그 전에 마무리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사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도 사퇴 종용이 있었고 다만 그 관례라는 것에 일부 수긍을 해 사표를 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A 전 이사장도 “2017년 당시 교육부 국장 1명, 과장 1명이 재단으로 찾아와 ‘이사장님 신변 정리 문제로 찾아왔다’며 의사를 전달하고 갔다”면서 “이후 다시 과장 혼자 와서 ‘이사장님이 직접 사표를 주셔야 제가 교육부 본부에 가지고 간다’고 재단 행정실장한테 얘기해 사퇴하게 됐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2019년 3월 검찰에 접수한 고발장에는 통일부와 교육부 외에 과기정통부,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의 블랙리스트 의혹도 포함됐다.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이어 나머지 부처 사건에 대해서까지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 문재인 정부에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삼 변호사는 “대법원이 지난 1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유죄로 판단했기에 비슷한 구조의 사건에 대해 검찰이 줄줄이 수사에 나설 것”이라며 “현 정권을 겨누는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5월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후 대대적인 검찰 인사가 예상된다. 실질적으로 한두 달의 시간만 남은 셈이라 산업부의 사퇴 압박 및 채용 비리 여부 등을 확인하기도 벅찰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 옷값 공방에 ‘한복 현금 구매’ 보도 나와…靑 “특활비 안 썼다” 일축

    옷값 공방에 ‘한복 현금 구매’ 보도 나와…靑 “특활비 안 썼다” 일축

    청와대, 옷값 논란에 “특수활동비 사용한 적 없어” 일축‘한복 현금구입’ 보도엔 “사비 현금으로 쓴 것”탁현민 “옷값 논란? 사비로 구매”“옷장 궁금하다고 그냥 열어봐도 되는 건가”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 값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30일에도 이어지는 가운데 청와대는 김 여사가 의상 비용으로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김 여사가 과거 현금으로 한복을 구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서도 “사비를 현금 형태로 산 것 뿐이다”라며 문제될 것 없다고 선을 그었다. ● 탁현민 “사적 비용 결제한 적 없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을 사는 데 청와대 특수활동비가 쓰였다는 의혹에 대해 “관저에서 키우는 개 사룟값도 직접 부담한다”며 “놀라운 발상이다”라고 꼬집었다. 탁 비서관은 이날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어떤 비용으로도 옷값이라든지 사적 비용을 결제한 적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가 전날 해외 순방 등 주요 행사에 착용했던 의상은 사비로 구매했다고 밝힌 데 이어 재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제기되는 의혹을 반박한 것이다. 탁 비서관은 “영부인 의상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논란이 된 특활비에도 당연히 그런 항목은 없다”며 “김 여사의 의상 구입에 쓰인 특활비는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의혹 제기하려면 증거 제시해야 한다” 일부 네티즌이 ‘김 여사의 의상을 전부 사비로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을 두고는 “문제의 핵심이 특활비 활용 여부라면 그런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인이 개인 돈으로 사 입은 옷인데 대통령 부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계속 해명해야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탁 비서관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쇼’에 나와서도 의료비는 사비로 부담했다고 강조하며 사회자가 ‘카드로 직접 계산했다는 건가’라고 묻자 “맞다. 물론 사비 카드로 구매했다는 얘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번 전액 현금 결제’ 보도 나와靑 관계자 “여사 사비 쓴 것…세금계산서 있다” 그러나 이날 조선일보는 ‘김 여사가 한복 6벌, 구두 15켤레를 구입하면서 이를 매번 전액 현금으로 지급했다는 증언이 나왔다’는 취지의 보도를 냈다. 매체는 지난 2017년 문 대통령 취임 후 김 여사가 두루마기 등 700만원 어치 한복 외에 수제화도 현금으로 결제했고 대금은 당시 2부속비서관으로 동행했던 유송화 전 청와대 비서관이 치렀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보도에 대해 “여사의 사비를 현금으로 쓴 것이다”라며 “세금계산서까지 발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안다.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탁 비서관은 김 여사가 2억원 상당의 까르띠에 브로치를 착용했다는 주장을 두고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여사가 착용한 브로치를 만든 디자이너가 이 내용을 해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사회자가 “까르띠에 ‘짝퉁’을 착용한 것이라는 궁금증이 있다”고 묻자 탁 비서관은 “그 디자이너에게 상당히 모욕적인 발언이 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탁 비서관은 인터뷰 도중 한 시청자가 ‘사비로 옷을 산 내역을 공개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자 그를 향해 “옷장이 궁금하다고 제가 그냥 열어봐도 되는 건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 “구준엽♥서희원 가장 사랑했을 때 이별”

    “구준엽♥서희원 가장 사랑했을 때 이별”

    대만스타 서희원(46)이 20년이란 시간이 흘러 구준엽(53)과 다시 사랑을 이룬 이유가 공개됐다. 서희원과 구준엽은 지난달 8일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해 부부가 됐다. 이후 구준엽은 대만으로 건너가 서희원과 재회했으며, 지난 28일 대만에서도 혼인신고 절차를 마무리 해 20년 만에 사랑의 결실을 이룬 국제 부부가 됐다. 서희원 동생이자 가수 서희제는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을 때 ‘구준엽은 아니지’라고 했다. 언니의 기쁨과 감동의 표정을 보며 놀랐지만 기쁠 수밖에 없었다. 언니의 마음에 얼마나 깊게 구준엽에 대한 마음이 있는지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희제는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많은 얘기를 할 순 없지만, 언니와 구준엽은 가장 사랑했을 때 헤어져야 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깊은 후회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20년 전 서희원은 동생 서희제와 함께 진행하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이와 관련한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할 말은 있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노코멘트 하겠다.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동생 서희제는 “언니가 왜 구준엽과 열애설이 휘말렸다는 이유로 클론 팬들에게 이런 공격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언니는 잘못한 게 없다. 클론의 소속사 사장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언니 혼자서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STOP PUTIN] 우크라 여성 “남편 죽인 러시아 병사들 네 살 아들 옆에 있는데”

    [STOP PUTIN] 우크라 여성 “남편 죽인 러시아 병사들 네 살 아들 옆에 있는데”

    우크라이나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러시아군 병사들에게 지속적으로 강간을 당했다고 폭로해 우크라이나 검찰이 수사 중이라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28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성폭행 피해 주장은 여럿 나왔지만 피해 여성이 직접 증언하고 증언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이 나라 검찰이 정식 수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나탈랴란 가명을 쓴 이 여성은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 셰브첸코브에 살고 있었다. 지난 9일에 “총성 한 발이 울린 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집안에 누군가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고 돌아봤다. 두 러시아 병사였다. 둘은 가족이 기르던 반려견을 쏴죽였다. 그 뒤 그녀의 남편도 사살했다. “난 오열하며 ‘우리 남편 어디 있느냐?’고 절규했다. 바깥을 내다보니 남편이 문 옆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더 젊은 병사가 내 머리에 총구를 댄 뒤 ‘나치니까 남편에게 총을 쏜 거야’라고 말하더라.” 네 살배기 아들이 옆 보일러실에 숨어 있었다. 두 병사는 그녀를 반복적으로 범했다. 아들은 울고만 있었다. “한 병사가 ‘입 다물고 있는 게 나을거야. 안 그러면 아들이 엄마 뇌가 집안에 흩뿌려져 있는 것을 보게 할거야’라고 겁을 줬다.” 아들이 옆방에서 우는데도 그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번갈아 그 짓을 했다. 총은 계속 겨눈 채였다. 병사들은 차마 우리 말로 옮길 수 없는 말도 내뱉었다. 그러곤 “이 여자를 죽여야 할까, 살려둬야 할까?”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 그녀의 증언이다.이달 초 우크라이나 여성 국회의원인 레시아 바실렌코는 영국 관리들에게 성폭행 피해 신고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를 통해 “여성들이 집단 유린을 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있다. 빠져나갈 곳이 없는 여성들이었다. 우리가 얘기하는 이들은 나이 지긋한 분들”이라며 “피해 여성들은 강간범이 처벌 받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극단을 선택해버린다”고 털어놓았다. 나탈랴 모자는 남편과 아빠가 지은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아직도 아들은 아버지의 생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엄마가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의 시신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를 묻을 수도 없다. 마을에 갈 수도 없다. 여전히 러시아 점령군 수중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던 브로바리 지구가 해방됐더라도 그녀는 돌아갈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기억하는 일이 힘겹다. 이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남편이 가족을 위해 이 집을 지었기 때문에 스스로 팔려고 하지는 절대 못할 것 같다.”
  • ‘인수위 해촉 1호’ 실무위원, 실명 거론하며 폭로…인수위 시끌

    ‘인수위 해촉 1호’ 실무위원, 실명 거론하며 폭로…인수위 시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처음으로 해촉한 실무위원이 반발과 함께 내부 폭로를 이어가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해촉된 인사가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셀카’를 통해 당선인의 경호차량 번호판을 노출한 것이 해촉의 배경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해당 인사는 29일 인수위 인사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작심 비판에 나섰다. 인수위 현판 배경 ‘셀카’에 경호차량 번호판 인수위 내 과학기술교육분과 실무위원으로 일한 조상규 변호사는 29일 해촉 사실이 알려지자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이날 오전 인수위는 대변인실 공지를 통해 “실무위원 1인에 대해 해촉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해촉 사유를 밝히지 않았는데, 이후 그가 조 변호사라는 사실과 함께 그가 SNS에 올린 사진이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조 변호사가 인수위 건물 현판 앞에서 ‘셀카’를 찍었는데 그 뒷배경에 주차돼 있던 당선인 경호 차량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해당 사진엔 윤 당선인의 경호 차량과 번호판이 그대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경호처로부터 현직 대통령에 준하는 경호를 받고 있어 차량 번호 등은 모두 보안 사항이다. 조 변호사는 해당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 “사진에 나오는 차는 제 차와 똑같은 차인데 단지 방탄이고 기관총이 들었다는 차이가 있다”라고 적었다. 조 변호사 “촬영금지 안내 받은 적 없다” 조 변호사는 이날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히 반발했다. 조 변호사는 “제가 찍은 사진이 아니더라도 경호 차량의 번호판이 명확히 다 나온 사진이 인터넷에 허다하다”며 “통의동 입구에 이렇게 많은 보안요원들이 있는데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안내를 하거나 제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워크숍 강의 사진도 행사 전 찍지 말라는 통지가 없었다”며 “강의안 옆에는 ‘공개’라고 돼 있는데 이게 보안 사항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인수위로부터 해촉 사유가 뭔지 어떤 통보도 설명도 못받았다”면서도 “이유를 불문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실무위원에서 자진 사퇴한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 권영세·김창경 등 실명 거론 비판과학기술교육분과 김창경 인수위원과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을 겨냥한 발언도 나왔다. 조 변호사는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창경 위원은) 자신이 출연한 방송을 안 봤다고 부처 관계자들에게 호통치고 교육부 업무보고 30분 전 혼자 부처 사람들을 정신교육 시켰다”며 “업무보고 내내 혼자 발언하고 인수위원 3명만 남기고 모두 퇴실시켜 깜깜이 회의를 진행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여자 실무위원에게는 케이크를 자르라고 했다”라고도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친구 공개된 개인 SNS 글에선 “김창경 위원이 (실무위원인) 안모 교수에게 ‘여자 실무위원이 케이크를 자르라’며 다른 위원들이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성적 비하 발언을 했다”라고 쓰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박성중 간사가 ‘권영세 의원하고 왜 사이가 안 좋으신가’라고 물었다. 권영세 팀에서 제가 (인수위에) 들어와 난리가 났다고 전해 들었다”라며 권 부위원장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조 변호사와 권 부위원장은 21대 총선 당시 용산에서 미래통합당 후보 경선을 함께 치른 바 있다. 조 변호사는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 법률자문위원 출신으로,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해 공수처의 압수수색 등을 받은 바 있다. 조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이와 관련, “사실 저는 고발사주 담당 변호사다. 윤석열 당선인을 위해 사무실 압수수색을 당하고 공수처에 끌려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며 “그런데 실무위원 자리 하나 차지했다고 이렇게 음해하고 나가라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고든 정의 TECH+] 특명! 길이 62m 초대형 쓰래기를 재활용하라

    [고든 정의 TECH+] 특명! 길이 62m 초대형 쓰래기를 재활용하라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대표적인 친환경 발전 수단입니다. 하지만 발전 시스템 자체가 100% 친환경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 수명이 다한 폐 태양광 패널 이슈가 있고 풍력 발전의 경우에도 재활용이나 폐기가 까다로운 블레이드 (blade, 풍차에서 날개 부분) 문제가 있습니다.  바람의 힘을 받아 발전기를 돌리는 핵심 부품인 블레이드는 가능한 가볍고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크기가 클수록 바람을 많이 받을 수 있고 가벼울수록 빨리 움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리 섬유 강화 플라스틱 소재처럼 매우 가볍고 튼튼한 소재가 많이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 금속과 달리 재활용이 매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풍력 발전 업계의 주요 기업 중 하나인 제네럴 일렉트릭 (GE)은 2020년부터 100% 재활용이 가능한 블레이드를 목표로 하는 제브라 (Zero Waste Blade Research, ZEBRA)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풍력 발전기의 블레이드는 바람의 힘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손상되기 쉬운 부위로 끊임없는 교체 수요가 발생합니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풍력 발전기 설치 규모가 증가하면서 폐기된 블레이드의 양이 2050년에는 4300만 톤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제브라 컨소시엄에 참가한 여러 기업과 연구소들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초대형 풍력 발전 블레이드를 제작했습니다. (사진) 62m 길이의 이 대형 블레이드는 아케마(Arkema) 사가 개발한 엘림 (Elium) 액상 열가소성 수지 (thermoplastic)와 오웬스 코닝(Owens Corning)이 개발한 유리 섬유로 만든 것입니다.  이 유리 섬유 강화 열가소성 수지 소재는 기존의 블레이드와 비슷한 성능을 지니고 있으나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화학적 탈 중합화 (depolymerized)가 가능해 본래 원료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썩지도 않고 다른 용도로 재활용하기도 어려운 62m 길이 블레이드 폐기물을 100% 회수할 수 있습니다.  물론 풍력 발전기 블레이드는 문제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제브라 풍력 블레이드를 실제 환경에서 검증해 기존의 블레이드를 대체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몇 년에 걸친 테스트와 연구에서 내구성과 안전성이 확인되면 앞으로 폐기 후 처치 곤란한 대형 블레이드 폐기물을 더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친환경 에너지의 대명사인 풍력 발전이 더 친환경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감찰 후 추문 시달리던 소방관 극단 선택…법원 “공무상 재해”

    감찰 후 추문 시달리던 소방관 극단 선택…법원 “공무상 재해”

    암행 감찰을 받고 허위 소문에 시달리다 극단 선택을 한 소방관에게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숨진 A씨의 유족이 “순직 유족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며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소방서 팀장이던 A씨는 2018년 9월 동료 소방관들과의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 공교롭게도 회식 참석자 중 한 명이 소방재난본부의 암행 감찰 대상이어서 이날 회식 자리도 감찰 대상에 포함됐다. 이후 소방서 내에서 회식에 참석한 동료 소방관과 A씨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하는 소문까지 돌자 A씨는 억울함과 모멸감을 느꼈다. 이에 더해 보직 변경으로 인한 어려움마저 겹쳐 우울증을 앓던 A씨는 2019년 3월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그러나 인사혁신처는 A씨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없다고 보고 순직 유족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인사혁신처의 이같은 결정에 반발해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A씨의 사망이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고인이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감찰 및 그 이후 직장 내 소문으로 인해 극심한 모멸감, 불안감 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어 우울 증상이 발생한 것”이라며 “고인이 겪은 스트레스가 공무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공무원이 공무로 인해 우울증 등 질병이 발생하거나 악화해 극단 선택을 했다면 공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대만은 지금] “무자비한 외교부” 대만 외교부, 중국을 ‘서대만’으로 암시

    [대만은 지금] “무자비한 외교부” 대만 외교부, 중국을 ‘서대만’으로 암시

    대만 외교부가 ‘서대만’(West Taiwan), ‘커우궈’(口國) 등으로 중국을 암시하는 게시물을 인터넷에 올려 대만인들로부터 화제를 모았다고 대만 언론들이 보도했다. 25일 대만 외교부는 페이스북을 통해 외국인에게 대만에서 중국어를 배우라는 홍보성 게시물에 이러한 표기를 했다. 외교부가 올린 그림에는 대만을 상징하는 흑곰 캐릭터가 미국 래퍼 드레이크의 ‘예스/노’ 밈을 패러디한 모습이 담겼고, 그림 우측으로 “서대만에서 공부? 대만에서 공부!”(Study in West Taiwan? Study in Taiwan!)라는 문구를 넣었다. 흑곰은 서대만에서 공부한다는 부분에서는 ‘노’(No)라는 제스쳐를, 대만에서 공부한다는 부분에서는 ‘예스’(Yes)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서대만은 중국이 대만에 흡수 통일되어 대만의 서쪽이 된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대만 독립 세력이 본토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로 받아 들여지는 만큼 중국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지난 12월 독일 모바일 게임 광고에 중국 대륙을 ‘서대만’으로 표기한 지도가 등장해 중국 환구시보가 발끈한 바 있다.  또한 외교부는 중국어로 “커우궈 가서 공부할래? 대만 와서 공부할래!”라는 말로 중국의 ‘중’(中)자를 ‘모’라는 의미의 ‘구’(口)자로 처리해 직접적으로 중국을 지목하지 않고 암시만 했다. 이러한 방법은 중국에서 영화 등 자막 검열 시 자주 쓰는 방법이다. 일례로 죽이다라는 의미의 민감한 단어 ‘살’(殺)자가 ‘구’(口)로 대체되기도 한다.  또한 외교부는 해당 게시물에서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는 물론 ‘적합한 환경’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과 미국이 교육 분야 협력 각서 체결 및 다양한 교육을 추진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어 외교부는 교육 협력을 통해 대만과 미국의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고 자유 민주주의 및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접한 대만인 네티즌들은 “어느 나라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그 나라인 줄 안다”, “중국을 모욕했다”, “커우궈(口國)는 인구 13억의 나라냐”, “외교부가 무자비해지고 있다”, “웃겨 죽겠다”, “ 이건 순항미사일인가” 등의 폭발적인 반응을 쏟았다. 현지 국회의원도 이에 논평했다. 자오톈린 민진당 입법위원은 “온라인의 세계는 그리 딱딱하지 않다며 대만은 국제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했다. 그는 그예로 “차이잉원 총통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화상 통화를 했고, 둘은 트위터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며 “외교부의 창의성을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우쓰화이 국민당 입법위원은 “사람들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대만에 오도록 장려하고 대만이 중화 문화의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외교부가 정부를 대표해 대외적으로 이러한 표현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 [STOP PUTIN] JK 롤링 푸틴에 반박 “왜 날 끌어들여 전쟁 비호?”

    [STOP PUTIN] JK 롤링 푸틴에 반박 “왜 날 끌어들여 전쟁 비호?”

    “비판하는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독약을 먹이며 현재 저항했다고 해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람이 서구의 캔슬 컬처를 비판하는 일이 아마도 최선은 아닐 것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느닷없이 자신의 예를 끌어들여 자신과 러시아를 옹호한 데 대해 트위터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롤링은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최근 징역 9년형을 선고받은 알렉세이 나발니의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러시아 예술상 수상자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서방 국가들이 롤링을 배척하듯 “천년이 된 나라를 지워버리려(cancel)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수백만권의 책이 팔린” 롤링이 소위 젠더 프리덤을 지지하는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캔슬 컬처’의 타깃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상당수 서방 국가에서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차별하고 있으며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 작곡가와 작가들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캔슬 컬처’를 1930년대 나치 독일이 책을 불태우려 한 데 빗대기도 했다. ‘캔슬 컬처’는 공인 등이 잘못을 저지르면 지지를 철회하고 배척하는 현상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지지를 눌렀다가 이를 취소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롤링은 성전환 혐오로 보이는 발언으로 오해를 샀으며 최근 해리포터 20주년 회고편에 등장하지 않은 것도 그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롤링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털어놓은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험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고 지적했을 뿐이었다. 영국 BBC는 지난달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에 찬성하는 러시아인들이 등장하는 행사가 일부 취소됐다고 전하면서도 미 타계한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이 연주된다고 행사가 취소된 경우는 훨씬 적다고 지적했다. 이날 모임에도 참석한 명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페스티벌과 콘서트홀 초청과 매니지먼트 계약이 취소됐다. 이달 초 영국 카디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차이코프스키 작품을 레퍼토리에서 제외했는데 성명을 통해 “두 군데 군대 관련 소절이 나와 현 시점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인도적 위기가 끝나야 ‘woke’와 ‘캔슬 컬처’에 대한 토론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권교체기마다 내 사람 앉히기… 반복된 ‘인사권 갈등’ 잔혹사

    정권교체기마다 내 사람 앉히기… 반복된 ‘인사권 갈등’ 잔혹사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인사권 행사를 두고 갈등 양상을 보이면서 과거 정권 이양기 인사권을 둘러싼 신구 권력 간 대립이 재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적으로 법적 인사권자인 현직 대통령이 인사를 하면서 당선인과의 조율을 거쳐 왔지만, 정권교체든 정권재창출이든 임기 말 인사권 행사를 두고는 팽팽한 갈등이 반복돼 왔다. ●盧·MB, 어청수 경찰청장 임명은 논의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시기에는 고위 공무원과 공기업 임원 인사를 둘러싸고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청와대에 인사 자제를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28일 새 감사위원에 김용민 청와대 비서실 경제보좌관을 임명하고, 대통령 몫 중앙선거관리위원에 강보현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를 각각 내정해 발표하면서 인수위 측에 양해를 구했다. 당시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양해해 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해 오면서 앞으로 계획된 임기제 인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인수위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며 “더이상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4일 인수위가 고위직 인사 자제를 거듭 요청하자 “청와대 대변인이 이미 두 차례나 협조하겠다고 했다”며 “만일 한 번 더 협조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은 사람 모욕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 제 마음대로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을 2주 앞두고 어청수 신임 경찰청장을 임명하면서 인수위와의 논의를 거쳤다. 당시 청와대는 “차기 정부 출범 전 임기가 끝나는 인사는 인수위 의견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황 권한대행이 2016년 12월 당시 공석이거나 교체대상인 공공기관장에 대해 제한적으로 인사를 하겠다고 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유력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 보은성 알박기 인사”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황 권한대행은 19대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김용수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대통령 몫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지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방통위원직을 맡은 지 두 달밖에 안 된 김 위원을 미래부 2차관에 임명하면서 황 권한대행의 ‘인사 강행 알박기’를 무력화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MB·朴, 정권재창출 때도 자리 다툼 정권재창출이더라도 공기업 낙하산 인사 등을 두고는 미묘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 감사 자리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정부 말기 공공기관 287곳의 기관장·감사·상임이사 중 44명은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당선인은 당시 “최근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데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이라며 “다음 정부에서도 부담이 되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 고용승계 안 된 50대 버스기사 숨진 채 발견

    고용승계 안 된 50대 버스기사 숨진 채 발견

    울산에서 50대 버스 운전기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공공운수노조 울산본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5시 40분쯤 울산의 한 원룸에서 버스 운전기사 A씨가 숨져 있는 것을 회사 동료 B씨가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유서가 있는 점 등을 토대로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8월 근무하던 버스회사가 경영난으로 버스노선 등을 다른 회사에 넘어가는 과정에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았다. A씨 등 버스기사 50명은 고용 승계를 위한 천막농성 등을 벌였다. 현재까지 36명 고용이 해결되지 않아 22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다. A씨는 건강이 나빠져 지난달부터 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것으로 알려졌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씨줄날줄] 청와대 사적 지정/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청와대 사적 지정/서동철 논설위원

    문화재청이 ‘문화재’라는 이름과 그 분류체계를 고치기 위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다양한 찬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오는 5월 10일이면 적어도 우리가 오랫동안 써 왔던 ‘문화재’라는 표현은 수명을 다하고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날 달라지는 것은 또 있다. 청와대가 ‘역사’로 바뀌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에 제동이 걸렸음에도 취임 당일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방침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경복궁과 청와대는 맞붙어 있다. 일대는 태조가 1395년 경복궁을 지어 입궐한 이후 627년 동안 최고 통치자의 체취가 이어 담긴 역사적 복합공간이다. 대통령이 떠난 이후 청와대의 난개발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새로운 건물을 지어 자신들이 원하는 용도로 쓰겠다는 꿈을 꾸면서 ‘바람을 잡는’ 분위기가 벌써부터 없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남쪽 경복궁과 서쪽 칠궁이 각각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이다. 사적은 보호구역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만큼 마구잡이 개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연경관지구나 역사문화미관지구 같은 서울시 조례로도 이중삼중 꽁꽁 묶여 있어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청와대 내부에는 적지 않은 문화유산이 있다. 대통령 관저 뒤편의 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석조여래좌상이 대표적이다. 이참에 고향인 경주로 하루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 함께 세웠다는 오운정도 있다. 현판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것이라니 그 역사성도 남다르다. 누군가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청와대의 문화재적 중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궁궐 뒷마당’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공간’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중요하다. 청와대를 가장 잘 보존하면서 활용도를 높이는 방법은 사적 지정이다. 경복궁이 문화재면 청와대도 문화재여야 마땅하다. 사적 지정은 청와대의 모든 것을 지금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기도 하다. 더하여 대통령 집무실이 떠나도 ‘옛 청와대’가 아닌 청와대여야 한다. 조선 왕조가 막을 내렸다고 경복궁이 ‘옛 경복궁’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 尹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용산구청장 “아닌 밤중 홍두깨”

    尹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용산구청장 “아닌 밤중 홍두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 발표와 관련해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아닌 밤중 홍두깨로 느닷없이 보도듣도 못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성 구청장은 서울시청에서 열린 용산역사박물관 개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용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지 묻자 이같이 답했다. 성 구청장은 “(미군 기지 이전으로) 용산이 기지개를 켤 기회가 왔는데 집무실이 들어옴으로 인해 개발 계획이 무산되거나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그렇게 된다면 용산 사람들은 정말 참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대통령 당선인이 추가 규제할 계획이 없다는데, (부정적 영향은) 뻔하지 않으냐”며 “교통통제부터 시작해 청와대 앞까지 늘 데모가 끊임없이 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 구청장은 집무실 용산 이전 발표가 구와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도 강조하며 당선인 측을 향해 비판했다. 그는 “어떤 사람도 (집무실 이전에 대해) 구청장에게 귀띔해준다던가,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전혀 이야기조차 없는데 그것이 소통인가. (용산구는) 나머지 뒤치다꺼리만 하는 것이 소통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저는 물러갈 사람이지만 앞으로 당선될 용산구청장과 반드시 의논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성 구청장은 자신과 윤 당선인을 부부에, 구민은 자식에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우지 말아야 한다”며 “아버지를 사랑하냐 어머니를 사랑하냐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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