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말이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 순결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 공항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 노모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 반발
    2026-04-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292
  • 권력… 그 이면에 있는 본질을 묻다

    권력… 그 이면에 있는 본질을 묻다

    권력자의 영광과 비극이 빠른 속도로 교차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권력은 인간 삶의 상태를 결정하는 힘. 우리의 현실이 이토록 불행한 건 권력을 쥔 주권자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슬픈 사실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가상의 대화 두 편 ‘대화극’은 현대 정치·법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독일 철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5)가 집필한 가상의 대화 두 편을 엮은 책이다. 슈미트는 이 책에서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방송극’의 형식을 빌려 문학적으로 논구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행사하는 권력이 신으로부터도, 자연으로부터도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만 인간들 사이의 용건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권력은 선한 것입니까, 아니면 악한 것입니까? 혹시 둘 다인가요?” “그 질문은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질문일 겁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정말로 추호의 의심도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선한 것이다, 내가 갖고 있다면.’ 그리고 ‘권력은 악한 것이다, 내 적이 갖고 있다면.’”(‘권력과 권력자에 이르는 통로에 대하여’)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의 구분이다.” 슈미트 철학의 핵심은 이 문장으로 요약된다. 초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으로 슈미트는 유럽 학계에서 스타로 군림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치가 등장했을 때 거기에 협력하며 ‘제3제국의 어용학자’로 위세를 떨쳤다. 영광은 영원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범으로 지목돼 1년간 수감 생활을 한다. 감옥에서 풀려난 1947년부터는 고향 플레텐베르크에 칩거한다. 이때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는데, ‘대화극’에 실린 두 편의 글도 이때 쓰인 것이다. ‘나치 협력자’라는 치명적인 오명에도 불구하고 명철한 현실 진단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는 학자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부상하는 가운데 재발견되고 있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두어 모금의 물만이 권력으로의 통로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사실과 보도, 제안과 추측 들이 시시각각 그를 향해 몰려듭니다. 사실과 거짓, 현실성과 가능성이 범람하는 이 무한의 바다에서는 가장 총명하고 또 가장 강력한 인간이라 해도 기껏해야 두어 모금 정도의 물만을 퍼낼 수 있을 뿐입니다.”(‘권력과 권력자에 이르는 통로에 대하여’) 권력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왕좌에 앉은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길래 내 위에 서서 나를 지배하는가. 필연적으로 집합을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구한 질문이다. 어떤 이는 그것이 자연에서 왔다고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신’이 부여한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결국 권력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 개개인의 협소한 물리적, 지적, 정신적 능력을 무한히 능가하는”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어떤 구체적인 질서를 보유했건 간에 모든 육지적 실존의 중심과 핵심은 집입니다. 집, 재산, 명예, 가족, 상속권 이 모든 것은 육지적 현존(Dasein)의 토대(Grundlage) 위에서 형성됩니다.”(‘새로운 공간에 대하여’) ●“삶의 상태를 결정하는 게 권력” “인간은 땅의 존재, 땅을 밟고 있는 존재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출간됐던 슈미트의 ‘땅과 바다’의 첫 문장이다. 이 책에서 슈미트는 서유럽의 역사를 땅과 바다의 대결로 서술한다. ‘새로운 공간에 대하여’는 ‘땅과 바다’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권력과 권력자에 이르는 통로에 대하여’가 권력의 미시적 속성을 파고들었다면 ‘새로운 공간에 대하여’는 그 권력이 지구적 차원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탐색한다. 슈미트는 ‘권력과 권력자에 이르는 통로에 대하여’의 마지막을 웅장한 시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테오도어 도이블러의 시 ‘북극광’의 일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결단이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말이 될 것입니다.”
  • 동아시아 최고 풍광 품은 ‘물의 나라’[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동아시아 최고 풍광 품은 ‘물의 나라’[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천하제일 명승지…군사 요충지 충남 보령이라면 누구나 대천해수욕장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길이가 3.5㎞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은 대천을 일찍부터 서해안을 대표하는 휴양지로 명성을 날리게 했다. 보령은 서해를 방어하고 삼남에서 도성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는 수군 사령부가 있던 고장이기도 하다. 오서산에서 발원한 광천천이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오천의 충청수영성이 그것이다. 군선 정박지 선소(船所)엔 이제 형형색색 낚싯배만 가득하다. 하지만 ‘천하제일의 명승’으로 불리며 숱한 시인 묵객을 불러들였던 영보정(永保亭)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광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충청수영성과 오천항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보령을 찾는다면 충청수영성도 찾아보기를 권한다. 자연은 물론 역사와 문학의 즐거움도 함께 누리는 품격 높은 여행이 될 것이다. 조선시대 충청수영성의 모습은 규남 하백원의 ‘해유시화첩’으로 그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화순 선비 하백원은 1842년 보령의 다섯 선비와 더불어 일대를 유람하고 그 감상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시화첩을 펴면, 수영성 내부에는 영보정을 비롯한 건물이 들어차 있고 지금은 터만 남은 충청수영의 수호사찰 한산사(寒山寺)도 하구 너머에 보인다. 바다에는 몇 척의 배도 떠 있는데 거북선의 모습을 강조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규남은 수차의 일종인 자승차(自升車)를 고안하고, 당시 전라도관찰사 서유구에게 수리에 활용하도록 건의했다는 실학자다. 2015년 복원된 영보정에 오르면 수편의 제영시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정 같은 곳에서 그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운문으로 짓는 것이 제영시다. 읍취헌 박은(1479~1504)의 ‘영후정자’(營後亭子)도 그중 하나다. 읍취헌은 갑자사화로 불과 25세의 나이에 목숨을 잃은 인물이다. 파직당하고 충청도 수군절도사였던 장인 신용개를 찾아 충청수영에서 열흘 남짓 머물 때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충청수영성과 주변의 풍광을 문학성 높게 표현한 작품으로 후세까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름다운 풍경들 詩로 남아 ‘영후정자’에는 수영성 주변을 택국(澤國·물의 나라)이라는 표현으로 운하의 고장인 중국 소주와 연결 짓는 대목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에 나오는 ‘고소성 밖 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라는 시구를 떠올리게 했다. 소주의 옛 이름이 고소(姑蘇)이고 고소성은 곧 소주의 고대 성곽을 가리킨다. 소주의 한산사는 지금도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고 한다. 고소성은 이렇게 충청수영성의 별칭이 됐다. 옛 시인들은 수영성 앞바다도 소성강이라 불렀다. 수영성이 자리잡은 동네는 지금도 소성리다. 충청수영은 충청도수군절도사영의 줄임말이다. 충청도 수군의 총대장인 절도사가 있는 본부라는 뜻이다. 관할구역은 북쪽으로 아산만에서 남쪽으로 금강 하구 장항만에 이른다. 충청도 수역은 전라도와 경상도 평야 지대 세곡을 수도로 나르는 조운선의 중간 기착지에 해당한다. 고려 말 왜구가 횡행하자 육로 수송으로 돌아갔지만 세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자 조선은 조운을 재개했다. 왜구의 가장 중요한 약탈 대상인 조운선을 보호하려면 충청도 수군을 강화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외교 1번지…조선 수군의 핵심 기지 고려시대 왜구가 날뛸 수 있었던 것은 수군이 육군의 보조기능에 그쳤기 때문이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지역 사령관인 도절제사를 두면서 수군 강화 의지를 보였다. 수군도절제사는 세종시대 수군도안무처치사로 바뀌었다가 세조시대 수군절도사라는 이름으로 정착한다. 충청수영은 ‘연려실기술’(1776년) 기록 이후 본영과 함께 소근포진, 안흥진, 평신진, 마량진, 서천포의 5개 수군진으로 운영됐다. 소근포진과 안흥진은 태안, 평신진은 서산, 마량진과 서천포는 서천에 있었다. 충청도 서해안은 고대부터 선진문물이 중국으로부터 가장 먼저 들어오는 통로였다. 백제가 웅진(공주)에 이어 사비(부여)로 잇따라 천도하면서 보령지역 포구의 역할도 전과 달라졌을 것이다. 서해로 나가는 출구에 자리잡은 오늘날의 오천 대회이포도 국제항구로 역할을 했을 것으로 학계는 본다. 고려시대 거란의 방해로 송나라를 오가는 항로가 북로에서 남로로 옮겨지면서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대회이포 서쪽 고만도에는 송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영빈관이 설치되기도 했다. 고려사에는 ‘삼별초가 고란도에 침입해 병선 6척을 불사르는 한편 선장(船匠)을 죽이고 조선관(造船官)인 홍주부사와 결성·남포 감무를 사로잡아 갔다’는 기록이 있다. 1272년(원종 13년)의 일이다. 고란도는 그 위치나 역할로 볼 때 고만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고만도는 국가적 외교 공간이자 핵심 수군 기지였다. 더불어 고만도가 국가적 차원의 조선소 역할도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시대에도 안면도를 포함한 충청도 서해안의 소나무는 병선·조운선 및 궁궐 건축 재료로 특별히 보호됐다. 왜군 방어 해상 보루…배낚시 메카 조선왕조가 출범하자 태조는 1396년 고만도에 수군 첨사를 배치한 데 이어 곧 수군 사령 부를 대회이포로 옮긴다. 큰 바다가 가까운 고만도는 왜적이 대규모로 침입하면 방어가 쉽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수군도안무처치사는 보령현 서쪽 대회이포에 머무른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충청수군 사령관을 당상관으로 임명한 것은 그 이전인 듯하다. 충청수군절도사는 조선 후기 삼도수군통제사와 삼도수군통어사의 지휘를 동시에 받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는 경상좌·우수군과 전라좌·우수군, 충청수군을, 삼도수군통어사는 경기수군과 황해수군, 충청수군을 총괄했다. 외적이 남쪽에서 침입하면 통제사, 북쪽에서 공격하면 통어사 지휘를 받는 것이 충청수군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충청수사 최호가 이순신 장군에 이은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명령에 따라 투입된 칠천량에서 전사한 것도 이런 수군 체계를 보여 준다. 조선과 왜의 관계가 비교적 안정된 이후 충청수영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조운선의 안전한 항해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조운선 관리 책임은 수군절도사의 참모인 우후에게 맡겨졌다. 우후는 1669년(현종 10년)부터 조운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3월부터 9월까지 아예 원산도에 상주했다. 우후에겐 세곡선을 호송하고 기상 변화에 따라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난파한 조운선의 곡식을 수습하는 역할도 주어졌다. 조운선을 통제한 관아의 흔적은 원산도의 가장 큰 포구인 진촌에 남아 있다. 19세기 들어 우후에게는 이양선을 경계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원산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 오봉산에선 외적 침입을 신속하게 충청수영에 알리던 봉수대의 유구도 확인됐다. 진촌에는 수군 우후 최창호 등을 기리는 공덕비도 남아 있다. 대천과 원산도를 잇는 보령해저터널이 2021년 개통됨에 따라 조운선 통제와 이양선 경계의 현장을 찾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됐다. 오천항은 ‘배낚시의 메카’로도 불린다. 연중 다양한 어종이 잡히지만 4~5월 주꾸미 시즌과 9~10월 갑오징어 시즌에는 주변에 교통체증이 빚어질 만큼 많은 낚시객이 몰린다. 낚시를 즐기지 않더라도 오천항에선 다양한 제철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에도 잠수기 어업 본거지이기도 한 오천에서 갖가지 키조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병인박해 순교 성지…5인 성인으로 충청수영성을 둘러보고 오천항의 맛을 즐겼다면 2㎞ 남짓 떨어진 갈매못 순교 성지를 방문하는 것이 순서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로·위앵 신부, 황석두·장주기가 참수된 충청수영성의 형장이다. 충청도 내포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체포된 다블뤼 등은 한양으로 압송됐다. 이들을 굳이 충청수영성으로 데려가 처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다양한 분석이 이뤄졌다. 그중 하나가 군문효수(軍門梟首)로 바다를 이용한 천주교와의 교섭을 경고하려 했다는 것이다. 다섯 순교자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 [길섶에서] 일어판 서울길 안내도

    [길섶에서] 일어판 서울길 안내도

    며칠 전 서울역 앞을 지나면서 몇 해 전 일이 떠올랐다. 부부로 보이는 초로의 두 일본인이 택시승강장에서 택시 운전기사에게 종이 인쇄물을 내보이며 승차를 요청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어로 된 서울길 안내도였는데, 기사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냥 지나쳤다. 또 다른 택시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우리 일행 가운데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말이 능숙한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일행들은 “좀 도와주라”며 그분의 등을 떠밀었다. 평소 나긋나긋 대화를 잘 나누던 그분은 이날은 웬일인지 관광객들을 나무라는 듯한 퉁명한 어조였다. 목적지가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운 거리여서 택시기사들이 손을 가로저었던 거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기사들이 자기들 말과 자료를 이해하지 못해 승차를 거부한 것이라 생각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는 거였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일본말을 정확히 못하면 놀림과 경멸을 받아야 했던 어르신이었다. 한국에 올 거면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판 안내도를 준비해 왔어야지, 그러지 않은 건 ‘예의’에 어긋나는 ‘오만’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 굶주리는데 잔디부터…김정은 ‘비상식적 지시’에 북 주민들 절망 [핫이슈]

    굶주리는데 잔디부터…김정은 ‘비상식적 지시’에 북 주민들 절망 [핫이슈]

    북한 당국이 전국 공공기관과 공장·기업 용지에 잔디밭을 조성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난 속에서도 자투리땅에 곡식을 심어 버티던 주민들 사이에서는 “먹지도 못할 풀을 심으라니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미 의회 예산 지원을 받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2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당국이 전국 기관과 단위, 공장·기업 용지 외관에 잔디밭을 조성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지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대성 교양 자료’ 학습 과정에서 하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도당위원회가 배포한 자료에서 김 위원장이 2012년 9월 국가사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잔디 심기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는 내용이 강조됐다고 전했다. 당국은 이를 근거로 잔디 조성을 전국적으로 일반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지시는 단순한 권고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재배 방법까지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원수님의 시험포전 방식’이라며 김 위원장이 시험 재배 과정에서 사용한 방법을 적용해 땅을 30~40㎝ 깊이로 파낸 뒤 흙을 불에 구워 보드랍게 만들어 깔고 잔디를 심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냉담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교양 학습에 참여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금처럼 식량 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잔디가 웬 말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 “곡식 심던 땅에 잔디라니”…현장 분위기 싸늘 북한 지방 공장과 기관에서는 이미 담장 아래나 구내 자투리땅까지 활용해 곡식을 심는 일이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소식통은 지난해 많은 공장과 기업이 구내 공지와 담장 주변에 콩과 옥수수, 감자를 심어 나눠 먹었다며 “곡식을 심어야 할 땅에 잔디를 심으라는 지시에 간부들조차 난감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안북도의 또 다른 주민 소식통도 모든 기관과 기업에 잔디밭 조성 지시가 내려졌다며 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담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땅을 깊게 파는 것도, 흙을 구워 만드는 것도 배부를 때나 가능한 일”이라며 굶주린 사람들이 무슨 힘으로 그런 작업을 하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지방에서는 빈 공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의 땅에 이미 곡식을 심고 있다고 설명했다. ◆ 데일리NK 재팬 편집장 “굶주린 현실 외면한 비상식적 지시” 이번 조치를 두고 전문가들은 북한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RFA 인터뷰에서 김정은 집권 이후 정책이 즉흥적이고 독선적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며 생활 실정과 맞지 않는 지시가 주민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포털 야후재팬에 게재된 데일리NK 재팬 칼럼에서 고영기 편집장은 이번 조치를 “굶주린 현실을 외면한 김정은의 비상식적인 지시”라고 평가했다. 고 편집장은 식량난 속에서도 주민들이 공장 부지와 담장 아래에 곡식을 심어 버텨 왔지만, 잔디 조성 지시는 이러한 최소한의 생계 기반마저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잔디 조성 지시는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김 위원장이 외국의 도시 경관을 북한에 적용하려는 시도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관련 기사 댓글에서도 “식량난 속에서 잔디를 심으라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지시”라는 반응이 이어지는 등 비판이 잇따랐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인민을 위한다면서 정작 먹을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주민들은 “굶주리는 처지를 얼마나 모르면 이런 지시를 내리겠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당국이 식량 문제보다 외관 정비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손바닥이 신분증… ‘바이오패스’면 OK!

    손바닥이 신분증… ‘바이오패스’면 OK!

    ‘비행기를 타려면 신분증이 꼭 필요하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국내 공항에서는 손바닥만 대면 자동으로 신분 확인이 가능한 ‘바이오패스’가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어서다. 이 같은 편리함 때문에 바이오패스 이용자들이 늘고 있다. 23일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4개 공항에서 바이오패스를 이용한 사람은 국내선 1072만명, 국제선 105만 7000명이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9.7%, 23% 늘어난 수치다. 바이오패스는 비행기 탑승자가 손바닥 정맥 정보를 등록한 후 국내선 탑승 시 전용 통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비대면 신분 확인이 가능해 보안요원을 일대일로 대면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바이오패스 등록도 간단하다. 각 공항에 마련된 바이오 등록대에서 직접 등록하거나 모바일에서 사전 등록 후 바이오 등록대에서 손바닥 정맥을 등록하면 된다. 앞서 공사는 2018년 공항 이용객의 탑승 수속 혼잡을 완화하고 탑승 절차의 편의를 돕기 위해 전국 공항에 바이오패스를 도입했다. 공사는 또 카카오와 협업해 공항 내 각종 시설 위치를 알려주는 ‘실내 지도’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 서비스는 카카오맵 앱을 통해 공항의 각종 편의시설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2024년 김포·김해·제주공항에서 시작해 지난해 전국 공항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이 앱에서는 각종 시설 위치뿐만 아니라 식당 메뉴, 운영시간, 전화번호 등 전국 14개 공항의 1583개 시설 정보를 실시간 제공한다. 김포·김해·제주공항에서는 교통약자 등을 대상으로 ‘우선 검색서비스’도 제공한다. 장애인, 임산부, 80세 이상 고령자, 24개월 미만 영아 등 교통약자와 법무부 출입국 우대카드 소지자, 각종 보훈대상자 등 사회적 기여자가 대상이다. 가족관계증명서 또는 주민등록등본을 제시하면 3자녀 이상 다자녀가구도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 “퍼팅이 돈”이라고?… KLPGA는 드라이버 잘 쳐야 상금왕[권훈의 골프 확대경]

    “퍼팅이 돈”이라고?… KLPGA는 드라이버 잘 쳐야 상금왕[권훈의 골프 확대경]

    퍼팅 -0.53타… 티샷 +1.01타로 1위2021년 6회 우승 박민지 최다 상금어프로치 SG·그린 적중률과 밀접5년간 퍼팅 SG 1위 상금왕은 전무정확한 티샷… 버디 기회 더 만들어KLPGA 코스, 볼 스트라이킹 중요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 수많은 골프 격언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언급하는 말이다. 멀리, 높게 날아가는 드라이버 티샷은 모든 골퍼가 선망한다. 선수라고 다를 게 없다. 장타자는 세계 어떤 투어에서든 인기 스타가 된다. 장타자는 팬을 경기장과 TV 앞에 끌어들인다. 그러나 호쾌한 장타가 꼭 성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프로 무대에서는 스코어를 결정짓는 마지막 절차, 즉 퍼팅이 승부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는 말이 금과옥조가 됐다. 하지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는 이런 통념이 통하지 않는다. KLPGA투어 상금왕의 경기력을 데이터로 뜯어본 결과는 ‘드라이버가 돈’이었다. 스포츠 데이터 전문 기업 CNPS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KLPGA투어 선수들의 스트로크 게인드(SG) 기록을 뽑아봤다. SG는 특정 부문에서 특정 선수가 전체 선수 평균보다 얼마나 더 많은 타수를 쳤는지, 얼마나 덜 쳤는지를 알려준다. 2021년 박민지의 퍼팅 SG는 -0.53타였다. 평균적인 선수보다 퍼팅으로 매 라운드 0.5타씩 손해를 봤다는 뜻이다. 이는 투어 전체에서 106위에 해당한다. 반면에 박민지의 티샷 SG는 +1.01타로 투어 전체 1위였다. 박민지는 티박스에서 이미 1타 이상의 이득을 챙기고 시작한 셈이다. 2021년 박민지는 6회 우승에 15억 2137만원이라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세웠다. 그린이 아닌 티박스에서 투어의 최상위 지배자가 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작년까지 5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2022년에도 6승을 거둬 14억원이 넘는 상금을 챙기며 상금왕에 오른 박민지는 티샷 부문 SG 8위(0.70타)였다. 반면 퍼팅 부문 SG는 15위(0.48타)로 겨우 상위권에 턱걸이했을 뿐이다. 2023년 상금왕 이예원도 티샷 부문 SG 3위(0.66타)에 올랐지만 퍼팅 부분 SG는 16위(0.52타)였다. 생각만큼 퍼팅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3번의 우승과 14억원 넘는 상금을 차지했다. 2024년 상금왕 윤이나는 티샷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누렸다. 티샷 SG 1위를 꿰찼는데 무려 1.05타를 벌었다. 그 역시 퍼팅 SG에서는 32위(0.31타)에 그쳤다. 지난해 홍정민도 퍼팅 SG는 35위(0.18타)에 불과했다. 홍정민 역시 티샷 SG 4위(0.88타)를 무기로 상금 순위 1위를 꿰찼다. 지난 5년 동안 상금왕에 오른 선수 중 퍼팅 SG 1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퍼팅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도 상금왕이 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티샷 부문 SG에서 10위 밖 선수가 상금왕에 오른 사례는 5년간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 상금왕들의 어프로치 SG 순위가 해답이다. 여기서 어프로치는 그린 주변 쇼트게임이 아니다. 선수가 그린을 향해 치는 모든 샷을 말한다. 어프로치 SG 기록은 그린 적중률과 거의 일치할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항목이다. 2021년 박민지는 어프로치 부문 SG 4위(1.55타)였다. 2022년 박민지는 5위(1.05타), 2023년 이예원은 10위(0.94타), 2024년 윤이나는 6위(1.08타), 2025년 홍정민은 1위(1.39타)였다. 그린 적중률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2021년 박민지 3위(78.89%), 2022년 박민지 7위(76.47%), 2023년 이예원 4위(74.88%), 2024년 윤이나 2위(78.36%), 그리고 지난해 홍정민 2위(79.75%)였다. 요약하자면 역대 상금왕은 정확한 티샷을 토대로 누구보다 자주 정규 타수 이내에 볼을 그린에 올렸다. 다른 선수들보다 많은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높은 티샷 SG는 단순히 거리가 멀리 나간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다음 샷을 치는 데 유리한 곳에 볼을 떨군다는 뜻이다. 버디 기회가 잦으니 퍼팅 실력이 조금 처져도 버디는 더 많이 잡아낸다. 이는 정확하게 원하는 지점에 볼을 때려내는 능력, 즉 볼 스트라이킹이 뛰어난 선수가 상금왕을 꿰찼다는 뜻이기도 하다. KLPGA투어 코스 세팅은 티샷, 그린을 향해 치는 어프로치 샷에서 실수하면 타수를 크게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볼 스트라이킹이 매우 중요한 코스 세팅이 KLPGA투어의 특징이다. 다음 달 개막하는 KLPGA투어에서 올해 어떤 선수가 상금왕을 거머쥘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누구보다 드라이버를 실수 없이 잘 치고, 아이언을 정확하게 치는 선수라면 상금왕 후보라는 사실이다.
  • [사설] 지방선거 100일 앞에도 ‘자기 정치’만 하는 野 대표

    [사설] 지방선거 100일 앞에도 ‘자기 정치’만 하는 野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대응을 보자면 유구무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마저 끝내 거부했다. “절연을 요구하는 세력이 당을 갈라치기하는 세력”이라고 했다. 어처구니없는 궤변이 6·3 지방선거를 불과 100일 앞둔 시점에 야당 대표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귀가 의심스럽다. 야심차게 추진하던 당명 변경도 선거 이후로 미뤘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이지만, 근본적 쇄신은 회피하면서 간판만 바꾸겠다는 발상이 애초에 먹힐 리 없었다. 윤 전 대통령 선고에 대한 장 대표의 발언은 상식을 한참 벗어났다. “아직 1심”이라며 무죄 추정을 내세운 주장은 중도층의 한 오라기 남은 기대마저 완전히 접게 하는 자멸의 언어나 다름없다. ‘윤 어게인’ 세력과의 단절 요구에 “다양한 목소리도 담아내는 것이 외연 확장”이라는 억지는 극우 유튜버 논리 그대로다. 국민 대다수의 정서와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는 장 대표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윤석열 세력의 숙주”, “국민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등의 거친 비판이 쏟아진다. 이런데도 귀를 닫고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것은 지방선거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되든 상관없다는 뜻으로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선거에서 참패해도 강성 지지층만 붙들고 있으면 당권을 움켜쥐고 대선도 꿈꿀 수 있다는 계산이 빤하다. 사실상 유일한 야당의 대표가 이기심에 판단력을 망실한 것이 지금 한국 보수의 비극이다. 이대로면 국민의힘은 서울과 부산에서도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 당대표가 정치적 사욕에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서도 영남권 중심의 당 중진들은 함구로 일관한다. 국민의힘이 쇄신으로 소생할 수 있는 실낱같은 여지마저 사그라들고 있다. 과거를 끊지 못하고 표류하는 현재를 방치하면서 보수의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 “부동산 왜곡 주범은 ‘똘똘한 한 채’… 1주택 중심 세제 손봐야”[월요인터뷰]

    “부동산 왜곡 주범은 ‘똘똘한 한 채’… 1주택 중심 세제 손봐야”[월요인터뷰]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예정대로 5월 9일 종료한다고 선언하며 부동산 시장 정상화에 온힘을 쏟고 있다. 연일 다주택자들을 향해 “버티는 것보다 파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각종 혜택을 축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설 연휴에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이 문제를 두고 소셜미디어(SNS)로 설전을 벌이는 등 부동산 문제가 6월 지방선거 전 핵심 이슈로 떠오른 상황이다. 건축·도시 전문가로 국회의원을 지낸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지난 19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으로 부동산 현안을 짚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다주택자 규제 강화 기조는 ‘다주택자를 악마화’한 문재인 정부와는 다르다고 전제하며 임기 1년 차 여대야소 국면에서 이 대통령이 강력한 추진력으로 부동산 시장 정상화에 성과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부동산 시장 왜곡의 주범이라며 1가구 1주택 보호에 치중한 세제 및 대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초고가 ‘한 채’ 선호로 공급 병목 종부세 폐지하고 재산세로 통합과세 기준을 ‘총자산’으로 바꿔야‘도심 저층 주거지’ 해법으로 제시세운지구 고층 개발, 바보 같은 짓시장 혼자 도시공간 결정 말아야李정부 4년 동행할 서울시장 중요청년이 부담 가능한 주택이 핵심좋은 후보 안 나오면 출마할 수도-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강화 기조를 평가한다면. “부동산 정상화라고 본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는 윤석열 정권이 1년씩 유예했는데, 시장에 안 좋은 사인을 준다. ‘버티면 또 유예해주겠지’라고. 모든 걸 원칙적으로 한다는 입장은 너무나 반가운 사인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이 있고, 정당이나 청와대는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데 대통령이 ‘우리는 원칙대로 한다’는 사인을 준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다주택 보유 자체를 사회악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굉장히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를 악마화하며 다주택자들에게 주택을 팔라고 했다. 한편에서는 다주택자가 민간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선 ‘똘똘한 한 채’ 선호가 강화되는 동시에 임대사업자들이 주택을 몇백 채씩 사 모으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은 초고층 주상복합이나 아파트 단지에 대한 수요만 높이고 임대차 시장을 떠받치는 다세대 다가구 주택의 공급은 감소시키는 양극화를 유발했다.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어그러지는 게 굉장히 많다.”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을 걷어낼 방법은. “1가구 1주택에 대한 과도한 보호는 재고해야 한다. 장기 보유하면 할수록 세금을 감면해주니 가격이 높은 주택을 살수록 유리하다. 그래서 똘똘한 한 채로 가는 거다. 특히 1가구 1주택 중심의 세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재산세 부과 기준을 주택 수가 아닌 전체 보유 자산으로 해야 한다. 지방에 다세대 주택 두 세 채 가져서 총 10억 가진 사람과 아파트 한 채로 30억 가진 사람 사이에 차이를 둬야 한다. 대신 재산세는 제대로 거둬야 한다. 악마화되고 효과도 없어진 종합부동산세를 없애고 재산세로 통합해야 한다. 대신 지방세인 재산세를 국가 차원에서 배분하기 위해 30% 정도는 국세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정부가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모든 정책은 타이밍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여소야대라 하고 싶은 대로 못 했다. 3~4년차에 여대야소가 됐을 때 종부세 등을 강화했지만, 효과를 보기에 너무 짧았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지 않겠나’라는 시장의 인식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년차고 여대야소다. 부동산 세제도, 대출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공급도 중요한데. “여태까지 공급이 잘 안된 이유는 똘똘한 한 채 때문이다. 초고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아파트가 단지화되고, 단지가 커진다. 그러면 이해관계자 간 협상이 길어지고 공사비도 올라가니 지방정부가 지구를 지정하고 허가를 내주더라도 착공이 안 된다. 공급의 병목 현상이 생긴 이유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건축정책의 비전·목표를 제시하고 관계 부처의 건축정책을 심의·조정하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다. 지난해 9월 취임한 김 위원장은 올해 위원회의 핵심 과제로 ‘공간 민주주의’와 ‘건축산업 대전환’을 제시했으며, 최근 청와대에 주택 공급 방안으로 ‘도심 블록형 주택’을 보고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도심 블록형 주택’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국건위가 제안한 건 도심 저층 주거지를 공급하는 방안이다. 공급 방안일 뿐만 아니라 건축 혁신, 임대 혁신 등이 망라됐다. 개발 단위를 중형으로 줄이고, 단지가 아니라 건축을 중심으로, 종합적 품질경영(TQM)이 가능한 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설계와 시공, 운영이 따로니 사후 관리가 안 된다. 먹튀하는 분양 사업밖에 없게 된다. TQM, 즉 기획부터 설계, 시공, 임대 분양 관리, 시설 운영까지 패키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간 민주주의’와 ‘건축산업 대전환’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공간 민주주의는 가치의 측면이고 건축산업의 대전환은 실용의 측면이다. 공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일상적인 공간을 어떻게 배분해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광화문 광장의 활용 방안을 서울시장 혼자 결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아울러 토목의 시대를 지나 건축의 시대를 맞아 건설 산업을 바꿔야 한다. 여전히 토목 시대에 만들어진 법, 규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규제 리셋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주차장이다. 주차장이 건축을 옥죄고 있다. 공사비의 30%를 지하에 때려 박는다. 이를 저렴하게 할 방법이 로봇 주차, 인공지능(AI) 주차다. 이걸 해보려고 한다.”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었던 김 위원장은 최근 서울의 역사, 과제, 비전을 담은 ‘이토록 서울’을 출간했다. 김 위원장은 책에서 역대 서울시장들을 평가하며 차기 서울시장은 서울의 본질적 과제에 도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지역 균형 발전과 서울의 성장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나. “서울은 이미 세계 유일무이의 매력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활용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서울에 투자를 해야하는데, 데이터센터 등은 지방으로 간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서울에는 문화산업, K컬처 경제를 하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울에 K팝 공연 등을 위한 아레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저는 서울이 아니라 수도권에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첼라 모델’이다. 북미 최대 음악 페스티벌인 코첼라는 로스앤젤레스(LA) 교외에서 개최되지만 관련 관광은 LA 중심으로 이뤄진다. 코첼라처럼 50만명 이상의 페스티벌을 개최하기엔 서울에 땅이 부족하다. 하지만 수도권에 개최한다고 하더라도 관광객들은 서울에 와서 머물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이 협업해야 한다.” -서울시의 종묘 앞 세운지구 개발에는 정부가 반대하고, 정부의 태릉CC 주택 공급에는 서울시가 ‘이중 잣대’라며 비판하고 있다. “세운지구 개발은 어리석다. 시간의 힘이 만든 공간을 건드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대안도 있다. 왜 거기에 꼭 145m 건물이 올라가야 하나. 세운지구는 광장시장과 연결된 곳이라 (세운상가의) 전자상가와 바로 붙어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허브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꼭 높을 필요는 없다. 반면 태릉CC는 문재인 정부 때도 1만호를 짓는다고 했다. 그때 영향평가를 했다. 이번에도 분명히 유산평가를 할 거다. 태릉은 유산평가를 받아서 하겠다는 건데 종묘 앞은 안 받겠다는 것 아닌가.” -차기 서울시장이 풀어야 할 본질적 과제는 무엇인가. “서울이 인구, 특히 젊은 인구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다. 부담 가능한 주택을 어떻게 주느냐. 서울의 주택 공급률은 97%다. 100%가 안 되는 소수의 도시 중 하나다.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젊은 생산 인구들이 싸게 살 수 있는 주택을 어떻게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공공 임대가 늘지 않는데, 시장이 머리를 싸매고 국토부를 압박하면서 해야 한다. 또 하나는 일자리 배치 문제다. AI 시대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자기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해서 살아남고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청년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선거에 출마할 의향이 있는지. “차기 서울시장은 너무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와 4년을 같이 갈 시장이다. 잘하면 신나게 갈 수 있다. 좋은 공약을 가진 후보가 있으면 밀어줄 수도 있다. 그런 후보가 안 나오면 내가 나갈 수도 있다. 아직은 그런 후보가 안 보여서 직접 출마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데 끝까지 기다려보겠다.” ■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건축학 석사와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9년 행정 신수도 기본계획, 1996년 부산 수영정보단지 마스터플랜, 2000년 인사동길 등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건축기본법 제정을 이끌었다. 18·21대 국회의원으로 국토교통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지난해 9월 국가건축정책위원장에 취임했다.
  • “햄버거도 사치”… 도시락 싸고 편의점 찾는 2030

    “햄버거도 사치”… 도시락 싸고 편의점 찾는 2030

    서울 중구에서 일하는 직장인 장윤석(30)씨는 22일 찾은 맥도날드 매장 키오스크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눈에 띄게 인상된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제를 하기 직전 결국 그는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장씨는 “그동안 햄버거는 부담이 적은 점심 메뉴였는데, 이제는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며 “더 저렴한 식당을 찾아야겠다”고 말했다. ‘가성비 점심’으로 여겨졌던 패스트푸드 가격이 오르면서 2030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마지노선이 무너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맥도날드는 지난 20일 햄버거와 음료 등 35개 품목 가격을 평균 2.4% 인상했다. ‘빅맥’ 세트는 7400원에서 7600원으로 올랐다. 버거킹도 지난 12일부터 가격을 조정해 와퍼 세트 가격을 9200원에서 9600원으로 인상했다. 세트 가격이 1만원에 육박하자 “이제 햄버거도 사치”라는 말이 오르내린다. 상승세는 패스트푸드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김밥 한 줄 평균 가격은 3800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7.4%(262원) 올랐다. 삼겹살 가격도 200g 기준 2만 1056원으로 3.8%(774원) 상승했다. 밥값 부담이 커지면서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도시락 회귀’ 현상이다. 직장인 전모(29)씨는 아침 잠 30분을 줄여 김치볶음밥과 반찬 등을 챙긴다. 점심시간이면 탕비실 전자레인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한다. 그는 “요즘은 도시락통 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고 전했다. 편의점도 주요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직장인 이지용(28)씨는 점심시간마다 편의점 진열대를 천천히 둘러본다. 그는 “상사가 사주는 날이 아니면 외식은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며 “6000원에 가까운 편의점 도시락도 가끔 부담이 될 때면 컵라면으로 눈을 돌린다”고 털어놨다. 
  • “한국, 재협상 땐 조선·핵잠 불똥”… “대미투자 일방적 양보 자제해야”

    “한국, 재협상 땐 조선·핵잠 불똥”… “대미투자 일방적 양보 자제해야”

    불확실성엔 공감… 대응엔 엇갈려테런스 라우 “일·EU 등과 협력을”제임스 김 “전 세계가 새 과제 직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위법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미국 내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한국에 기회이자 위기라고 진단했다. 한국 기업들에는 그간 낸 관세를 환급받을 길이 열렸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관한 불확실성도 커졌다는 것이다. 향후 대응에 대해선 미국과 이미 체결한 무역협정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제언과 일방적인 양보는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관세 전문가인 테런스 라우 시러큐스대 로스쿨 학장은 21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한국과 미국의 무역협정이 법적으로 불확실한 상태에 놓였다”며 “미국 정부는 관세를 다시 부과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찾아야 하는데, 대부분 기간 제한이나 세율 상한 등 제약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과 협상한 대미 투자 조건이 그대로 적용될지, 재협상을 해야 할지 미지수이지만 기존 협의를 유지하라고 권하고 싶다”며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에 직면한 일본, 유럽연합(EU), 영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진보 성향 경제학자인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공동 창립자 겸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 가능한 인물이 아니고 그의 지도력 하에 있는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무역 파트너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대립할 이유는 없지만, 수익성 없는 투자 요구에 대해서는 어떠한 구속력 있는 양보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자동차 등 일부 제품에 관세 인하 조치를 한 건 실질적 가치가 거의 없다”며 “인하 조치가 지속될지 향후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한 유럽 8개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가 철회하는 등 상황에 따라 관세를 조정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논평에서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에서 대미 투자 합의를 파기하라는 압력에 직면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조선 및 핵잠수함 사업 등 다른 중요한 사안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임스 김 스팀슨센터 한국프로그램 국장은 “연방대법원 판결은 관세 시대의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불확실성의 시작”이라며 “한국은 물론 모든 국가가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 “트럼프, 이란에 굴욕당할 수도”…미국이 공격하면 벌어질 일 [밀리터리+]

    “트럼프, 이란에 굴욕당할 수도”…미국이 공격하면 벌어질 일 [밀리터리+]

    이란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 BBC가 실제 전쟁이 발생할 경우 펼쳐질 수 있는 7가지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1. 이란 정권 교체 및 민주주의 체제 전환이는 미군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그 산하 바시즈 민병대를 공격해 현 이란 정권을 붕괴시키고 이란을 민주주의화 시키는 내용이다. 다만 과거 이라크와 리비아의 사례에서 보듯 서방의 군사 개입이 수년간의 혼란과 유혈 사태로 이어진 전례가 있어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게 평가된다. 2. 이란 정권 생존 및 강경 노선 일부 철회또 다른 시나리오는 미국의 강력한 공격에도 이란의 신정 체제는 살아남지만, 기존의 강경 노선을 일부 철회하는 이른바 ‘베네수엘라 모델’이다. 이란이 중동 전역의 친이란 무장단체 지원을 줄이고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축소하며 자국 내 반정부 시위대 억압을 완화하는 등 온건한 정책으로 선회하는 내용이다. 다만 이 시나리오 역시 현실성은 희박하다. 47년 간 변화를 거부해 온 이란 신정 지도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3. 군부 집권미국의 공격으로 이란 정권이 붕괴하고 극심한 혼란 속에서 이슬람혁명수비대가 권력을 장악해 강력한 군사 정부를 수립하는 내용이다. IRGC는 정예 부대지만 거대 건설 기업을 소유하는 등 이란의 경제에도 깊숙이 개입해 있다. BBC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매번 정권 교체에 실패하는 이유는 군부 이탈이 없는 동시에 이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군부 집권 시나리오는 많은 전문가가 가장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4. 이란의 전면적인 보복미국이 이란을 침공할 경우 이란이 강력한 보복 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이란은 동굴이나 산악 지대에 숨겨둔 수많은 탄도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바레인과 카타르 등 중동 내 미군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 앞서 이란 지도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군사 공격을 가할 경우 중동 내 미군 기지를 타격하겠다는 위협을 밝힌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자국 영공을 미군에게 열어주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란의 보복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 시나리오 역시 현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5. 호르무즈 해협 봉쇄이란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0%와 액화천연가스(LNG)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해 미국 등 서방 국가를 꾸준히 위협해 왔다. BBC는 이란이 침공 받은 직후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해 무력으로 보복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는 실제로 1980년대 당시 이란과 이라크 전쟁에서 동원됐던 방식이다. 이란은 최근에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사격 훈련을 벌이며 무력을 과시한 가운데,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급등하고 세계 무역에 막대한 타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6. 미국 함선 격침 및 생존자 포로 확보이란이 수많은 고속정과 자폭 드론을 동원한 ‘벌 떼 공격’(swarm attack)으로 미군 함선을 격침하는 시나리오다. 미 해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고폭탄 드론이나 고속 어뢰정을 미 해군을 향해 대거 발사하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미군 함정이 침몰당하거나 승조원 중 생존자가 포로로 잡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BBC는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엄청난 굴욕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란 해군은 이미 미 해군의 기술적 우위를 극복하거나 우회하기 위해 비전통적·비대칭적 전투 훈련에 집중해 온 만큼 미국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7. 대혼란과 내전미국의 공격으로 이란 정권이 붕괴한 이후 권력 공백이 발생하면서 나라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는 내용이다. BBC는 “미국이 침공한 뒤 이란 내부가 완전히 무너지면 시리아나 리비아처럼 내전이 발발하고, 쿠르드족과 발루치족 등 소수 민족이 무장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국경 근처에 막강한 군사력을 집결시킨 뒤, 행동하지 않으면 체면을 구길까 봐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이 전쟁은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채 예측 불가능하고 잠재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오픈 AI와 손잡은 세레브라스…AI 프로세서 시장 새 판 짤 수 있을까? [고든 정의 TECH+]

    오픈 AI와 손잡은 세레브라스…AI 프로세서 시장 새 판 짤 수 있을까? [고든 정의 TECH+]

    오픈 AI는 최근 웨이퍼 스케일 엔진(Wafer Scale Engine, 이하 WSE)을 개발하는 미국의 스타트업인 세레브라스(Cerebras)와 인프라 도입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세레브라스의 WSE 기반의 750MW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는 계획으로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투자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1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픈 AI는 세레브라스의 최신 WSE3-3 기반의 GPT-5.3-Codex-Spark를 공개해 이 프로세서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엔비디아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두 회사가 기존에 맺은 상호 투자 계획들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런 행보는 오픈 AI가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합니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물론 더 비용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웨이퍼 스케일 엔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들고나온 세레브라스가 실제 그만큼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세레브라스는 2015년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2019년 첫 번째 WSE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이 기술에 웨이퍼 스케일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프로세서를 만들 때 사용되는 둥근 원판인 웨이퍼를 잘라서 칩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웨이퍼 전체를 통째로 하나의 프로세서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적인 프로세서와 메모리 모두 웨이퍼를 잘라서 제품을 만들고 있지만, 웨이퍼를 여러 개로 잘라서 프로세서를 만든 후 이들을 별도의 시스템에서 병렬로 연결한다는 것은 사실 제조 비용 상승은 물론 프로세서 간 데이터 전송 시 발생하는 병목현상으로 인해 성능이 떨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발상을 바꿔 아예 웨이퍼 하나를 통째로 멀티코어 프로세서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이전부터 있어 왔으나 몇 가지 큰 걸림돌이 있어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첫 번째는 프로세서 제조 과정에서 사소한 오류 하나만 생겨도 웨이퍼 전체를 못 쓰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프로세서는 웨이퍼 하나에서 150개 정도의 제품이 나왔을 때 100개 정도만 양품이면 나머지 50개를 버려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웨이퍼 전체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한 번만 발생하면 웨이퍼 전체를 못 쓰게 되어 손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웨이퍼 안에 수많은 코어를 탑재할 경우 코어 간 병목 현상과 메모리 병목 현상 역시 우려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거대한 프로세서는 전력 소모량과 발열량 역시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어 실용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힘들었습니다. 세레브라스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우선 하나의 큰 코어 대신 작은 코어 여러 개를 연결해 반복되는 구조를 만든 후 각 코어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 일부 코어와 연결 회로에 오류가 생기더라도 나머지 부분이 정상 작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용량의 SRAM을 프로세서에 통합해 메모리 병목 현상을 최소화했습니다. 2024년 공개한 세레브라스의 최신 프로세서인 WSE-3의 경우 TSMC의 5nm 공정을 이용해 4조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역대 가장 거대한 프로세서로 90만 개의 코어를 집적했습니다. 실제로는 90만 개보다 더 많은 코어를 넣어서 오류가 나더라도 90만 개 정도의 코어 숫자를 보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코어가 많다고 해서 성능이 바로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수많은 코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WSE-3는 코어들은 거대한 메쉬(Mesh) 구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실리콘 안에서 모든 코어가 연결된 덕분에 수천 개의 GPU를 묶을 때 발생하는 병목 현상을 피하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입니다. WSE-3는 90만 개의 코어를 뒷받침하기 위해 44GB SRAM 메모리를 칩에 통합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대규모 AI 연산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를 모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가중치(Weights)를 칩 외부의 전용 스토리지에 보관하고, 연산 시 필요한 부분만 초고속 스트리밍으로 칩에 공급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런 독특한 구조를 통해 웨이퍼 스케일 엔진 기술은 기본 AI 프로세서가 지닌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AI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AI 생태계 자체가 엔비디아의 CUDA에 기반해 있고 AI 서비스 솔루션 자체도 GPU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려운 장벽입니다. 더구나 현재도 적자인 오픈 AI는 여기저기 투자 계획과 협업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지만, 이 막대한 자금들을 어디서 조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금 흑자를 내고 있다고 해도 앞으로 계획된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천문학적인 자금을 조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니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제 WSE-3나 혹은 그 후속 프로세서들이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엔비디아의 GPU보다 더 앞선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역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 여러 AI 제조사가 자사의 기술이 엔비디아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의미 있는 대항마로 성장한 곳은 구글의 TPU 정도이며 오랜 라이벌인 AMD 조차도 아직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할 수준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엔비디아의 기술을 신생 스타트업이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지 아무래도 의문인데, 확실하지 않은 곳에 많은 자금을 투자할 정도로 재무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입니다. 물론 엔비디아의 현재 모습을 10년 전 대부분 예상 못한 것처럼 앞으로 10년 후 역시 예상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과연 10년 후 엔비디아의 독점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가 시장을 뒤흔들게 될지 궁금합니다.
  • 트럼프 vs 한국, 또 말이 다르네…“가자 재건에 원조금 내기로” 주장, 진실은? [핫이슈]

    트럼프 vs 한국, 또 말이 다르네…“가자 재건에 원조금 내기로” 주장, 진실은? [핫이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 재건 지원에 한국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주장했으나, 한국은 이와 다른 입장을 내놓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가자지구 평화위원회 첫 이사회 회의에서 “이 행사는 이미 성공적”이라면서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을 포함해 역내 다른 국가들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알고 있으며 러시아도 참여할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일본은 방금 원조 자금 모금 행사를 주최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한국 정부는 일본이 개최하는 모금 행사에 참석해 가자지구 재건을 위한 원조금을 낼 계획이어야 하지만 실제는 이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국내 언론에 “행사 참석 여부와 관련해 현재까지 관련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평화위원회 첫 회의에서 비가입국인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했으며 아직 정식 가입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평화위원회 가입이 먼저 결정된 뒤에야 원조 자금 모금 등 부대 성격의 행사에 참여할지 여부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현재 정부의 입장으로 보인다. 유엔 대체하려는 평화위원회, 트럼프는 종신 의장트럼프 대통령이 한국도 참여한다고 일방적으로 밝힌 평화위원회는 지난 1월 가자지구의 과도기 통치를 담당하는 기구로, 트럼프 대통령이 창립하고 의장을 맡았다. 원래 해당 기구는 가자지구 종전과 재건이 주 목적이었으나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영역이 대폭 확대됐다. 가자지구 평화위원회 헌장 초안에 “분쟁 지역에서 안정을 촉진하고, 합법적 통치를 회복하며, 지속 가능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기구”라고 명시돼 있는 것으로 보아 유엔을 대체하거나 유엔과 경쟁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위원회의 의장으로서 평화위 회원국으로 초청할 국가를 직접 결정할 권한이 있다. 회원국의 임기는 3년이지만 의장이 재승인하면 연장되고 제명권 역시 의장이 가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위원회에 10억 달러(약 1조 5000억원)의 기부금을 내는 국가는 상임이사국이자 종신 회원국으로 임명한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실상 영구 회원권에 해당하는 거액의 가입비를 내는 국가만이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평화위원회가 부유한 국가들만의 클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현재까지 평화위원회에 정식 가입한 국가는 이스라엘과 카자흐스탄, 헝가리, 인도네시아, 불가리아, 바레인, 벨라루스, 파키스탄 등 20여개국이다. 이 중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랍에미리트(UAE), 모로코, 바레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 등 9개국은 총액 70억 달러 이상을 공여하기로 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은 참여를 거부하거나 답변을 유보했다.
  • 보는 행위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 움직임이다

    보는 행위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 움직임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식대로 세상 응시세상도 자신 바라보지만 쉽게 망각선택·행동 따른 후회 견디며 살아가물결치는 어둠 보며 죽음 의미 고찰 “어둠을 오래 노려보고 있으면 그 어둠이 마치 살아서 물결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소설가 김채원(34)에게 질문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와 작가 사이, 의도치 않았던 이 선문답(禪問答)을 이해하고자 적지 않은 시간 고민했음을 밝힌다. 살아서 물결치는 저 어둠은 나더러 살라는 것인가, 죽으라는 것인가. 그걸 알려면 어둠을 오래 노려봐야 한다. 19일 김채원과 서면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의 단편 ‘별 세 개가 떨어지다’가 얼마 전 젊은 소설가들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김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살, 죽음은 어려서부터 나와 가까웠고, 역설적으로 나를 지켜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만화가인 후지모토 타츠키가 자신이 그린 단편 만화의 뒷면에 짧게 적어둔 일화가 있다. 편집부로부터 ‘몇 페이지면 끝날 이야기를 너무 길게 그렸다, 분량을 좀 줄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거다. 이때 그의 반응이 재밌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항상 몇 페이지면 끝날 이야기를 아주 길게 그리는 것 같다고. 나에게는 자살과 죽음이 그런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별 세 개가 떨어지다’는 할아버지와 손녀들이 함께 죽음을 맞이한 한 남성의 발을 바라보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열린책들 ‘하다’ 앤솔로지(걷다·묻다·보다·듣다·안다) 중 ‘보다’에 실린 단편이다. 말 그대로 ‘보는’ 것이란 무엇인지, 시각에 관한 다섯 편의 소설 중 하나다. 김채원은 거기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길어 올렸다. 본다는 것이 작가에게 무엇이길래. 물어봤더니 꽤 긴 대답이 왔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고도 못 본 척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썼다. 본다는 행위는 나에게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보이는 것’ 사이를 오가는 움직임에 가깝다. 추상적으로 나간다면 ‘내가 보이는’ 일에 신(神)의 존재를 개입시킬 수도 있겠다. 한여름에 친구들과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에 놓일 때마다 신이 우리를 너무 주목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 말이 농담일 때도, 아닐 때도 있다.” 우리 각자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자신이 보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저 쉽게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라고 정리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단 더 복잡하다. ‘이타적’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볼 수 있다는 걸 쉬이 망각한다. 사실 세상의 많은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김채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나는 소설을 쓰고 발표하는 사람이니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다른 이에게 들킬 수밖에 없을 뿐이다. 다들 마음대로 조금씩 이상하게 세상을 볼 텐데, 이 이상함의 어디까지가 받아들여지고, 어디까지가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모른다. 누가 정해주지 않으니 혼란스러울 테고.” 모든 선택은 후회를 남긴다. 그것이 과거의 자신에게 최선이었음에도 그렇다. 인간은 그 후회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것이 작품을 밀어붙이는 힘이다. 김채원은 젊다. ‘젊음’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일단 ‘젊은작가상’을 받았으니 일단 지금의 김채원은 젊은 것이 틀림없다. 젊다는 건 과거보다 미래가 더 많이 남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터다. 앞으로 후회할 순간이, 후회되는 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오히려 더 어릴 때 나는 내가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다. 한때 불면이 아주 심했는데, 너무 오래 깨어 있다 보니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산 것 같더라. 이제 불면도 많이 나아졌고 내가 늙었다고 섣불리 생각하지도 않는다. 젊음이란 조금 서두르고, 실수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끊을 때 망설이는 무엇이지 않을까.”
  •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대 만나려 비워둔 내 ‘작은 여백’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대 만나려 비워둔 내 ‘작은 여백’

    등산을 하건, 산책을 하건, 평안한 마음으로 길을 걷다 개를 만나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일단 시선이 가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언제 짖을지, 언제 똥오줌을 눌지 예측이 불가능한 탓에 불편한 느낌은 더해 간다. 상대방이 기르는 개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그렇다고 개 주인 들으라고 날 선 반응을 보일 필요야 없다. 개 주인도 마찬가지다. 그저 서로가 조금씩 불편함을 참고 넘어가야 한다. 새 책 ‘최적의 거리’는 이처럼 적당한 거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첫 편 ‘초읍의 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등산객들이 무리를 지어 내려오고 있다. 피하고 싶은 것은 꼭 만나게 된다.” 반려견 ‘터프’와 산책하던 주인공 ‘나’의 속엣말이다. 등산객은 그저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가 지레 갖는 이런 속마음은 부지불식간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럼 등산객도 ‘나’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표제작인 ‘최적의 거리’는 영화 ‘장미의 전쟁’(1990)을 보는 듯하다. 주인공 ‘수정’과 남편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두고 끝없이 싸우는 사람들 같다. ‘수정’은 이혼해 혼자 사는 친구 ‘선미’가 부럽다. “술과 담배와 음악, 그리고 자유….”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던 ‘선미’가 어느 날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이를 보는 ‘수정’은 안타깝다. 금방 커버린 아이가 품을 떠나고 나면, 다시 ‘선미’가 외로워질 것이 뻔해서다. 그런데 이 대화에서 두 친구가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아이 자신의 삶 말이다. 사람들은 요즘 다소 느슨한 관계를 선호한다고 한다. 지나치게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불편하다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대다수의 생각도 이와 일치하는 듯하다. 갈등의 발화점을 자신이 아닌 주변에서 먼저 찾는다는 것도 그렇다. 다른 이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책이 갖는 미덕은 이 지점에 있지 싶다. 다른 이상을 가진 이들이 무얼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걸 불편해하는지 알게 해준다. 작가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거리(距離)에 대한 이야기”라며 “내가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다가가기보다는 그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고 했다.
  • 천 년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모로코 페스가 간직한 시간의 풍경

    천 년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모로코 페스가 간직한 시간의 풍경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가장 많은 장면을 기억 속에 담기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구성해야 한다. 그러한 여행자에게 가장 좋은 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인상적인 공간이 많은 도시이다. 그리고 모로코의 페스(Fes)가 바로 그런 도시이다. 이 곳은 9천 개가 넘는 골목이 얽히고설켜 천 년이 넘는 시간을 박제한 채 숨쉬고 있는 기묘한 도시이다. ●인류 최초의 대학이 세워진 곳 9세기 초 오늘날 튀니지에서 ‘파티마 알 피흐리’(Fatima al-Fihri)라는 이름의 여인이 태어났다. 상인이었던 그녀의 부모는 더 많은 기회를 위해 페스(Fes)로 넘어왔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파티마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녀는 이 돈을 공동체를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당시 페스에 이주민들이 늘어나자 그녀는 ‘알 카라위인’(Al-Qarawiyyin) 사원과 대학을 세웠다. 그녀는 대학 건물의 기초를 세우는 날부터 859년 완공되는 날까지 약 18년 동안 매일 기도를 올렸고, 공사현장을 직접 감독하며 모든 정성을 쏟았다. 1981년, 알 카라위인 대학이 위치한 ‘페스 메디나(Fes Medina)’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이 대학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 기관’으로 인정했으며 기네북에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최초로 ‘유니버시티’(University)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1088년 설립) 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기록이다. 한 여인의 신념은 페스를 인류 문명의 지적 토양을 닦았던 자부심의 공간으로 만들었고, 중세에는 유럽의 학자들까지 이 곳으로 넘어와 지식을 구해갔다고 전해진다. 페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슈아라 가죽 염색 공장’(Chouara Tannery)이다. 11세기 방식 그대로 가죽을 무두질하고 염색하는 이곳은 거대한 팔레트를 연상시킨다. ●미로 속의 오감 : 페스의 특징과 관광지 페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구시가지 ‘메디나’에 모여 있다. 이 곳의 입구인 ‘블루게이트’는 마법의 문처럼 들어갈 때는 화려한 푸른 타일이 이방인을 반긴다. 그런데 문으로 들어가 뒤를 돌아보면 푸른색은 어느덧 페스를 상징하는 초록색으로 변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자동차 소음이 사라지고 나귀의 울음소리와 상인들의 외침소리가 대신한다. 마치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메디나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곳은 ‘슈아라 가죽 염색 공장’(Chouara Tannery)이다. 11세기 방식 그대로 가죽을 무두질하고 염색하는 이곳은 거대한 팔레트처럼 생겼다. 천연 염료가 섞인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는 하지만, 염료 통 안에서 남자들이 가죽을 밟는 모습은 중세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메디나는 여행에 익숙한 사람조차 극악의 난이도로 기록된 곳이다. 약 9천개의 골목은 여행객의 필수 동반자인 ‘구글 맵’ 조차도 안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는 길을 잃는 것이 필수이다. 오히려 기꺼이 길을 잃고 길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면 메디나가 주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안쪽에는 창문 하나 없는 삭막한 골목뿐이지만 그 뒤에는 분수가 흐르고 화려한 모자이크가 수놓아진 정원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마치 삭막한 공간 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생명력처럼 느껴진다. ●페스 여행객들의 이야기 페스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이는 “지독한 냄새와 호객행위 때문에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내 인생의 진정한 여행지이며 이 곳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페스는 불편한 곳이다. 시끄럽고, 악취도 있으며, 길을 잃기 쉽기 때문에 절대 효율적인 공간은 아니다. 도시처럼 예측 가능하고 정형화된 여행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삶이 너무 지루하고 복잡하고 혹은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면 페스는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그곳의 미로 속에서 기꺼이 길을 잃다 보면, 어쩌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 천 년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모로코 페스가 간직한 시간의 풍경 [한ZOOM]

    천 년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모로코 페스가 간직한 시간의 풍경 [한ZOOM]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가장 많은 장면을 기억 속에 담기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구성해야 한다. 그러한 여행자에게 가장 좋은 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인상적인 공간이 많은 도시이다. 그리고 모로코의 페스(Fes)가 바로 그런 도시이다. 이 곳은 9천 개가 넘는 골목이 얽히고설켜 천 년이 넘는 시간을 박제한 채 숨쉬고 있는 기묘한 도시이다. ●인류 최초의 대학이 세워진 곳 9세기 초 오늘날 튀니지에서 ‘파티마 알 피흐리’(Fatima al-Fihri)라는 이름의 여인이 태어났다. 상인이었던 그녀의 부모는 더 많은 기회를 위해 페스(Fes)로 넘어왔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파티마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녀는 이 돈을 공동체를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당시 페스에 이주민들이 늘어나자 그녀는 ‘알 카라위인’(Al-Qarawiyyin) 사원과 대학을 세웠다. 그녀는 대학 건물의 기초를 세우는 날부터 859년 완공되는 날까지 약 18년 동안 매일 기도를 올렸고, 공사현장을 직접 감독하며 모든 정성을 쏟았다. 1981년, 알 카라위인 대학이 위치한 ‘페스 메디나(Fes Medina)’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이 대학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 기관’으로 인정했으며 기네북에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최초로 ‘유니버시티’(University)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1088년 설립) 보다 약 200년이나 앞선 기록이다. 한 여인의 신념은 페스를 인류 문명의 지적 토양을 닦았던 자부심의 공간으로 만들었고, 중세에는 유럽의 학자들까지 이 곳으로 넘어와 지식을 구해갔다고 전해진다. 페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슈아라 가죽 염색 공장’(Chouara Tannery)이다. 11세기 방식 그대로 가죽을 무두질하고 염색하는 이곳은 거대한 팔레트를 연상시킨다. ●미로 속의 오감 : 페스의 특징과 관광지 페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구시가지 ‘메디나’에 모여 있다. 이 곳의 입구인 ‘블루게이트’는 마법의 문처럼 들어갈 때는 화려한 푸른 타일이 이방인을 반긴다. 그런데 문으로 들어가 뒤를 돌아보면 푸른색은 어느덧 페스를 상징하는 초록색으로 변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자동차 소음이 사라지고 나귀의 울음소리와 상인들의 외침소리가 대신한다. 마치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메디나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곳은 ‘슈아라 가죽 염색 공장’(Chouara Tannery)이다. 11세기 방식 그대로 가죽을 무두질하고 염색하는 이곳은 거대한 팔레트처럼 생겼다. 천연 염료가 섞인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는 하지만, 염료 통 안에서 남자들이 가죽을 밟는 모습은 중세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메디나는 여행에 익숙한 사람조차 극악의 난이도로 기록된 곳이다. 약 9천개의 골목은 여행객의 필수 동반자인 ‘구글 맵’ 조차도 안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는 길을 잃는 것이 필수이다. 오히려 기꺼이 길을 잃고 길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면 메디나가 주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안쪽에는 창문 하나 없는 삭막한 골목뿐이지만 그 뒤에는 분수가 흐르고 화려한 모자이크가 수놓아진 정원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마치 삭막한 공간 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생명력처럼 느껴진다. ●페스 여행객들의 이야기 페스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이는 “지독한 냄새와 호객행위 때문에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내 인생의 진정한 여행지이며 이 곳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페스는 불편한 곳이다. 시끄럽고, 악취도 있으며, 길을 잃기 쉽기 때문에 절대 효율적인 공간은 아니다. 도시처럼 예측 가능하고 정형화된 여행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삶이 너무 지루하고 복잡하고 혹은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면 페스는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그곳의 미로 속에서 기꺼이 길을 잃다 보면, 어쩌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문학관 앞에 고개 숙인다

    [나태주의 풀꽃 편지] 문학관 앞에 고개 숙인다

    아직 살아 있는 문인을 위해서는 문학관을 세우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학전집도 만들지 않고 문학상도 제정하지 않는 걸로 되어 있다. 그것이 오랫동안의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불문율을 어기고 그 모든 것을 다 해 버렸다. 우선은 운이 좋았다. 공주 태생도 아닌데 8년 동안 공주문화원장으로 일한 것이 주요하게 영향을 주었다. 공주시와 충남도의 공무원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했으며 공주 지역 문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처음엔 아주 초라하게 시작한 문학관이다. 공주시에서 일제강점기 지어진 낡은 적산가옥 한 채를 매입해 복원한 일이 있는데 그 집을 사용해 문학관을 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공주 풀꽃문학관’이라 간판을 달았다. 그것이 2014년 10월. 그해에 또 공주시의 상금 지원으로 고맙게도 ‘풀꽃 문학상’을 제정·시상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8년엔 1박 2일 일정으로 ‘풀꽃 문학 축제’까지 해마다 개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충청 지역 시인들을 중심으로 ‘풀꽃 시문학회’까지 조직되어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니 더없이 좋은 동행자들을 만난 셈이다. 그렇게 10년 풀꽃문학관을 운영해 오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현대식 문학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역시 공주시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원에 의해 그 문제도 점진적으로 해결되어 2025년 7월에는 현대식 문학관을 새롭게 개관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건평이 300평에다가 3층 규모로, 건축 경비 70억원을 들인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 건축 경비 또한 오로지 공주시 것으로만 하지 않고 중앙정부의 돈과 충남도 지원금을 보탠 것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는 돈이었다. 개관을 하면서 이번에는 아예 ‘나태주 풀꽃문학관’이라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이는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었으나 역시 공주시에서 조례 개정까지 서둘러 그렇게 한 것이다. 심히 조심스럽고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문학관은 여러모로 기존의 다른 문학관과 구별된다. 다른 문학관이 기념관, 전시관, 박물관 성격을 갖는다면 우리 문학관은 체험관, 참여관, 휴식 공간의 성격을 갖는다. 그것이 처음부터 내 주장과 생각이었다. 또 내부 공간 구성이나 시설물, 전시물도 단순 명쾌하게 하자는 것이 내 뜻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부에 칸막이나 문을 만들지 말자고 해서 층마다 통으로 열려 있어 헌칠한 느낌을 준다. 날마다는 아니지만 가끔 나도 볼일이 있거나 직원들을 만나 협의할 일이 생기면 문학관에 들르곤 한다. 그런데 갈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야, 좋다. 그런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특히나 조망이 초특급이다. 1층이나 2층 창가에 가서 서면 통창으로 공주 시내 풍경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어디 먼 곳 서양의 한 나라에 여행 와서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정말로 공주가 그런 곳이다. 그러길래 나는 열다섯 살 나이에 공주를 처음 만나고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공주에 와서 살고 싶다는 소원을 세웠던 것이리라. 거듭 민망하고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생전에 내 이름을 딴 문학관을 가진 것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영광이고 감사다. 문학관을 마련했을 때 딸아이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빠는 이제 화석이 되어야 해.’ 화석이라면 돌 속에 박힌 죽은 생물의 시체를 말한다. 내가 아직은 살아서 움직이기도 하고 글도 쓰고 문학 강연도 하는 사람인데 어찌 화석이 된단 말인가! 그만큼 조심해서 살라는 충고일 것이다. 우리는 일본 가옥으로 된 문학관을 ‘구관’이라 부르고 새로운 문학관을 ‘신관’이라 부른다. 두 채의 문학관은 서로 버티지 않고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치 좋은 가족처럼 서로를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애당초 설계자가 그런 의도로 설계했고 시공사가 그것을 성실히 실현해 낸 까닭이다. 아무리 보아도 두 채의 풀꽃문학관은 나로서는 기적의 산물이다. 글 쓰는 일로 일생을 버틴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크고도 아름다운 선물은 없다. 더없는 포상이며 영광이다. 문학관 앞에 고개를 숙인다. 나태주 시인
  • “불안은 전환의 신호… 절제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박상숙의 호모픽투스]

    “불안은 전환의 신호… 절제해야 무너지지 않는다”[박상숙의 호모픽투스]

    물질주의·양극화 심화에 AI까지혼란기에는 변화를 읽는 힘 필요주역은 고난을 건너는 방향 제시흉을 견디게 하는 건 ‘정한 마음’주역, 수천 년 검증 거친 사유체계‘위편삼절’ 공자에 보어·융도 매료법학도에서 역학자 변신은 ‘운명’미신 아닌 학문 체계 정착이 목표 요즘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을 말한다. 경제는 성장했고 기술은 발전했지만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자산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빚은 늘어나며, 경쟁은 더 거세졌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방향은 또렷하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일터 깊숙이 파고들면서 ‘내 자리는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일상의 불안으로 번졌다. 직업의 의미와 인간의 역할을 다시 묻게 되는 시대, 능력의 기준마저 흔들린다. 정치권의 분열과 사회적 신뢰의 균열, 돈을 둘러싼 과열은 그 불안을 더욱 키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더 깊이 흔들리고 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지금의 열기가 기회인지 위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다. ●변화의 질서 알면 대비할 수 있어 역학자인 강기진 태극사상연구소 소장은 이 불안을 몰락의 신호가 아니라 전환의 신호로 읽는다. “불꽃은 꺼지기 직전에 가장 거세게 타오릅니다.” 팽창이 극에 달하면 응축이 시작되고, 양이 차오르면 음이 뒤따른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야말로 주역을 읽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변화의 질서를 모르면 막연한 공포가 되지만, 이해하면 두려움은 대비로 바뀐다는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인생은 길과 흉이 7대3이다. 사람은 흔히 흉을 더 오래 기억하고 크게 체감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길이 더 많다. 그렇기에 흉은 끝내야 할 불운이 아니라 건너야 할 구간에 가깝다. “흉을 견디게 해주는 건 정(貞), 즉 올곧은 마음입니다.” 주역은 흉을 없애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왜 이 고비가 왔는가,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야 하는가. 그의 삶 또한 그런 물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그는 사법시험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법학은 맞지 않았고 경제학에 몰두했다. 경기순환 이론과 파동은 세상을 설명하는 강력한 틀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주역을 접했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음과 양이 번갈아 작용하는 것이 곧 도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망치로 맞은 듯했다고 회상했다. 경제학이 경기순환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반면 주역은 상승과 하강을 세계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방식, 곧 도(道)로 본다는 깨달음이 진로를 바꿨다. 그는 이를 의지의 결단이라기보다 ‘운명’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주역은 단순한 점서 아니다 주역은 유교의 삼경 가운데 하나인 ‘역경’으로 오랫동안 핵심 경전으로 자리해 왔다. 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은 우연한 일화가 아니다. 역경을 반복해 읽다가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역이 점치는 책에 그쳤다면 그런 독법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출발이 점복이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주역의 기원은 고대 중국 은(殷)나라의 점복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점은 단순한 주술이 아니었다. “은나라에서는 점을 가장 잘 치는 사람이 왕이 됐습니다. 틀리면 권위를 잃었습니다.” 점은 통치이자 생존의 문제였다. 맞는 것은 남고 틀린 것은 버려졌다. 그렇게 오랜 축적과 검증을 거치며 하나의 사유 체계로 다듬어졌다. 이런 이유로 그는 주역을 단순히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하는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듬어진 사유는 후대에도 이어졌다. 조선의 사상가들 역시 주역을 단순한 점서로 읽지 않았다. “역을 잘 알면 점을 치지 않는다”는 말이 이를 보여 준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역경을 읽은 뒤 일상의 ‘기미’를 살피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점이 아니라 흐름을 읽는 힘이었다. 강 소장은 이순신 장군의 사례도 들었다. 전쟁을 앞두고 점을 쳤지만, 운에 기대려는 행위는 아니었다. 여기서 그는 진인사대천명의 뜻을 주역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먼저 기미를 읽고, 도에 맞게 행동하고, 정(貞)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몫입니다. 그걸 다한 뒤에야 천명을 묻는 겁니다.” 주역의 괘가 가능성을 제시한다면,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실천이다. 서양에서도 주역은 질서의 철학으로 읽혔다. 영어로는 ‘북 오브 체인지스(Book of Changes)’로, 변화의 법칙을 담은 책이라는 뜻이다. 독일 신학자 리하르트 빌헬름의 번역본이 가장 널리 읽혔고, 스위스 정신의학자 카를 융이 책에 깊이 매료돼 서문을 썼다. 융은 주역의 문장이 무의식을 자극하는 상징체계라고 봤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닐스 보어는 상보성 원리를 정립한 뒤 태극 문양을 문장에 넣었다. “우리는 점이라 하지만, 그들은 철학과 과학으로 읽었다”는 그의 말은 동서의 인식 차이를 요약한다. 주역이 미신이라는 오명을 벗고 학문적 체계로 자리 잡게 하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서강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은나라의 역사와 사상, 갑골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이론을 현실과 연결하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정보기술(IT) 기업과 협업해 ‘사상체질과 마음건강’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근 펴낸 ‘원효의 마음공부’ 역시 역학의 틀을 보완하려는 작업이다. 주역이 변화의 원리를 다룬다면 인간의 마음과 본성을 밝히는 작업은 원효의 한마음(一心) 사상이 이어받는다고 그는 말한다. “주역에는 인간의 성(性)을 직접 밝히는 대목이 없습니다. 그 공백을 보완하는 것이 원효의 사상이죠.” 그는 저술뿐 아니라 왕성한 강연 활동을 통해 주역을 전파하고 있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주역을 읽어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주역이 연구자들만의 학문이 아니라 삶을 고민하는 이들이 함께 읽는 고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개인의 공부를 넘어 공동체의 현실로 향한다. ●한류의 힘은 정서적 공감 강 소장은 오늘 우리가 겪는 혼란을 분명한 위기의 징후로 읽는다. 정치의 분열과 과열된 물질주의, 심화되는 양극화가 그 단서다. 그러나 그것을 몰락으로 단정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큰 과도기인 대과(大過)괘의 국면에 들어와 있을 뿐입니다.” 한 국면에서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소용돌이라는 설명이다. 전환의 기류는 문화 영역에서도 감지된다고 했다. “‘오징어게임’은 일본의 데스게임 설정을 차용했지만 그 안에 ‘정(情)’이라는 정서를 담았습니다. 극단적 경쟁의 서사 속에서도 관계와 연민을 놓지 않는 감정이 세계의 공감을 얻은 거라고 봅니다.” 한류가 세계 무대에서 힘을 얻는 배경에도 물질문명의 경쟁 논리를 넘어서는 정서적 공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물질문명이 저물고 정신문명의 가치가 부각되는 흐름 속에서, ‘정’을 바탕으로 한 문화의 힘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그 배경을 우리 역사에서 찾는다. 동학 운동, 일제강점기, 전쟁과 독재. 숱한 고난을 통과하며 우리의 정신은 오히려 굳세졌다. “겨울이 추울수록 봄 농사에 쓸 씨앗이 더 단단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고난은 상처만 남긴 시간이 아니라 관계와 연민, 공동체 감각을 축적한 시간이었다는 해석이다. 그렇게 벼려진 힘이 오늘의 문화적 역량을 떠받치는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정신을 한 글자로 설명하면 ‘정(貞)’이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 과하지 않은 힘이다. 이야기는 결국 절제로 수렴된다. 절제는 금욕이 아니라 거리 두기다. “행복의 비결은 멀리서 보는 것입니다.” 멀리서 본다는 것은 욕망과 공포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흐름을 읽는다는 뜻이다. 그는 공자의 말을 덧붙였다. “군자는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으며, 생존했을 때 망할 것을 잊지 않으며, 다스려질 때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좋을 때 다음 국면을 생각하고, 안정 속에서도 변화를 읽는 태도다. 주역은 ‘과(過)’를 경계한다. 지나침은 균형을 무너뜨리고, 균형이 깨지는 순간 국면은 급격히 바뀐다. 음이 극하면 양이 오고, 양이 극하면 음이 온다. 거스르지 않되 휩쓸리지 않는 것. 멀리 보고 한 걸음 물러서 판단하는 힘이 결국 고난을 건너게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절제하는 자만이 어떤 변화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강기진 소장은 서울대 법과대학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사상체질연구소 소장과 한국작명교육협회 회장도 맡고 있으며 주역의 학문적·사상적 가치를 정립하기 위해 꾸준한 집필과 강연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유림방송 ‘강기진의 주역산책’, EBS 교양강좌 ‘평생학교’ 등에 출연했으며 저서로는 ‘오십에 읽는 주역’, ‘주역 독해’, ‘원효의 마음공부’ 등이 있다. 하루 10시간씩 2년간 매달려 완성한 ‘주역 독해’를 대표작으로 꼽는다. 박상숙 논설위원
  • “개·고양이보다 귀여워”… 중국 ‘미니말’ 인기 급상승 [여기는 중국]

    “개·고양이보다 귀여워”… 중국 ‘미니말’ 인기 급상승 [여기는 중국]

    2026년 병오년 ‘말의 해’를 맞아 중국에서 반려동물로 미니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판매자들은 개나 고양이보다 키우기 쉽다고 홍보하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한순간의 충동구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7일 중국 현지 언론 환치우망 보도에 따르면 키 1m도 채 되지 않는 앙증맞은 미니 조랑말이 중국 소셜미디어(SNS)를 장악했다. 애니메이션 ‘마이 리틀 포니’를 닮은 품종인 셰틀랜드 포니가 주인공으로 떠오르며 순식간에 이른바 ‘인싸 반려동물’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에는 “귀엽다”, “당장 사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약 8000위안, 한화로 약 167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상품 소개에는 성격이 온순하고 아이가 탈 수 있어 정서 발달에 좋다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사육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간단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판매자들은 3~5 ㎡ 정도의 공간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먹이는 풀 위주로 생풀이나 건초, 농작물 줄기를 주면 되고 하루 한 번만 먹이면 된다고 강조한다. 사료비도 하루 2에서 3위안이면 충분하다며 한화로 500원에서 600원 수준이라고 홍보한다. 개나 고양이처럼 예방접종이 필요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내세운다. 개는 산책이 필요하지만 말은 마당에 두면 된다며 산책을 시켜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과연 말 한 마리를 기르는 일이 이렇게 쉬울까. 그러나 실제로 말을 키우거나 승마를 배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충동적으로 데려오지 말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선택하라는 경고가 잇따른다. 실제 사육 비용은 구매 가격에서 끝나지 않는다. 조랑말은 체구만 작을 뿐 예민한 성향을 지닌 말이기 때문에 키우기 쉽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쉽게 죽지 않는 것과 키우기 쉬운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먹이 역시 판매자 설명과 다르다. 하루 한 번이면 된다는 말과 달리 말은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가량 거의 쉬지 않고 풀을 뜯는다. 건초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도시 가정에서 이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배설물 관리도 큰 부담이다. 말은 신진대사가 활발해 하루 배설 횟수가 십여 차례에 이른다. 전문 마방에서는 보통 2시간마다 한 번씩 분뇨를 치우지만 일반 도시 주택에서 이를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육 비용의 핵심은 발굽과 치아 관리다. 말은 크기와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치아를 갈아주고 발굽을 다듬어야 한다. 발굽 손질 비용은 한 번에 최대 40만원이 넘고 여름철에는 매달 관리가 필요하다. 전문 수의사가 부족해 출장 진료를 받을 경우 출장비만 20만원을 넘는 사례도 있어 일반 가정에는 큰 부담이 된다. 전문가들은 도시에서 조랑말을 기르는 행위는 가축 사육에 해당할 수 있어 방역 신고, 사육 장소 확보, 분뇨 처리 등 관련 절차를 갖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허가 없이 사육할 경우 행정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경고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