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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수종사의 아량/손성진 논설고문

    한국의 아름다운 경치에서 두물머리를 뺀다면 한강이 노(怒)할 수 있다. 동쪽 고원에서 따로따로 샘솟은 두 물줄기가 굽이굽이 천릿길을 달려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 빚어내는 아련한 비경. 강과 맞닿은 경기 남양주시 운길산 중턱에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형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수종사라는 절이 있다. 1458년에 중창(重創)됐다고 하니 역사가 600년은 족히 넘을 이 절이 높은 곳에 자리한 큰 이유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전망 때문일 것이다. 멀리서 흐르는 강물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무심히 흘러간다. 그 옛날 수종사 스님들도 저 풍경에 반해 힘든 참선을 이겨 냈던 건 아닐까. 놀랍게도 해발 410m에 있는 수종사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다. 자연 훼손이라는 말이 떠오르기 전에 내방객들에게 가파른 산악도로를 개방한 것에서 수종사의 포용심이 느껴진다. 그 덕에 힘에 부쳐 도저히 산을 오를 수 없는 어르신들도 쉽게 수종사로 올라가 두물머리의 아름다움을 젊은이들과 함께 만끽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절문을 활짝 열어 놓은 수종사는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좋은 것을 독차지하지 않고 베푸는 아량. 수종사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sonsj@seoul.co.kr
  •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여성들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어떻게 밀려났을까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여성들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어떻게 밀려났을까

    할리우드 최고의 영예라는 아카데미상이 만들어진 것은 1929년. 그런데 그중에서도 소위 핵심 경쟁부문에 속하는 감독상을 여성이 받은 것은 2010년 캐스린 비글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위키피디아에는 여배우들이 받는 상과 달리 ‘성이 구분되지 않은(non-gendered)’ 부문에서 여성들이 받은 역사를 따로 정리해 두고 있다. 소위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이들 부문에서 여성들이 상을 받기 시작한 것은 꽤 근래의 일인데, 그중에서 두 부문에서만큼은 여성들의 활약이 일찍부터 두드러졌다. 하나는 ‘의상상’이고 다른 하나는 ‘편집상’이다. 두 부문 모두 1940년대부터 여성 수상자들이 등장했다. 의상상을 일찍부터 여성들이 받은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재단과 재봉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졌고, 영화 스튜디오들도 의상 작업은 여성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집상은 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을까? 영화가 디지털화된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필름 편집(editing)은 물리적인 필름을 손으로 일일이 잘라 붙여야 하는 수작업이었고, 이는 재봉일과 비슷한 작업으로 분류됐다. 따라서 초창기부터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편집실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들이 가득한 장소였다. 여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니 뛰어난 영화편집자도 여성들 중에서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남성은 사람들 주목받는 하드웨어 몰려 여성들이 할리우드의 필름 편집실로 진출해서 커리어를 개척하고 있던 1940년대, 또 다른 영역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바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었다. 지금은 전형적인 ‘남초 영역’으로 불리는 프로그래밍 분야를 개척한 것은 여성들이었다. 사람의 언어를 0과 1로 이루어진 컴퓨터의 언어로 바꿔 주는 컴파일러(compiler)를 만든 그레이스 호퍼 같은 여성들이 2차 대전에 급진전한 컴퓨터의 발전을 주도했다. 1960년대 미항공우주국이 달에 보낸 아폴로 우주선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총책임자는 마거릿 해밀턴이라는 여성이었다. ‘프로그래머’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성을 떠올리게 되는 요즘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 이유는 할리우드의 편집일을 여성들이 도맡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프로그래밍은 단순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관련 작업은 여성들에게 맡기고 남성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하드웨어에 몰려들었다. 1967년에 나온 한 기사는 “비서직이 아니면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유망한 직업으로 프로그래밍을 추천했고,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미국 대학교의 컴퓨터 전공에서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37%에 달했다. 하지만 그때 정점을 찍고 컴퓨터 분야에서 여성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돈이 몰려들면서 남성들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 빌 게이츠와 스티브 워즈니악, 스티브 잡스 같은 남성들이 ‘컴퓨터 천재’로 묘사되고, 프로그래밍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묘사되기 시작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여성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여성 프로그래머들이 남성과의 실력 경쟁에서 밀려난 거 아닌가?” 여성들은 과학기술(STEM) 분야, 그중에서도 특히 수학, 컴퓨터와 같은 분야에서 남성들보다 타고난 능력에서 뒤진다는 주장도 그런 의문을 뒷받침한다. 이런 종류의 주장을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하버드대학교의 로런스 서머스 경제학 교수다. 29세의 나이에 하버드 역사상 최연소 정교수가 되고,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천재’로 통하는 서머스는 총장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여성과 남성은 수학적 능력에 타고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가 교내외에서 큰 비판을 받고 총장직에서 사퇴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서머스의 주장을 옹호했다. 서머스는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수학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두 집단의 능력이 보이는 ‘표준편차와 가변성이 다르다”고 했다는 거다. 이는 쉽게 말해 남녀 학생의 평균 수학점수는 비슷해도 제일 잘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남학생이라는 얘기다. 그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을 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수학점수 최상위 학생들은 2대1로 남학생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 서머스의 주장이 맞는 걸까? ●서머스 교수 “여성과 남성 수학적 차이 존재” 또 다른 연구가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아시아계 남녀 학생들의 수학 성적을 조사했는데 최상위 학생들 중 남녀 비율은 0.9대1로 여학생이 높았던 것이다. 그럼 여성이라도 아시아계 여성들은 수학적 능력을 타고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한국에서 수학점수는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높은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결국 집과 학교, 사회 환경에서 아이들이 접하는 젠더 역할과 능력에 대한 편견이 점수에 반영된다는 거다. 이런 편견은 중고등학교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모든 편견적 요소를 고려해도 대학교 때까지의 실력을 고려하면 미국의 공대 박사 과정에는 여성이 적어도 33%는 돼야 정상인데, 실제로는 1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엔지니어는 남성’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온갖 장벽을 뛰어넘고 학부 교육까지 마쳐도 (서머스 교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 교수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너무나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사회적 편견이 교사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 주는 두 번의 실험이 있었다. 한 실험에서는 교사에게 아이들의 아이큐를 실제와 다르게 알려 주고 시간이 흐른 후에 아이큐를 다시 측정했더니 교사에게 아이큐가 높다고 알려 준 그룹의 아이들은 아이큐가 올라갔고, 낮다고 알려 준 아이들의 아이큐는 내려갔다는 것이다. 교사가 자기가 알고 있는 아이큐에 따라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를 다르게 가졌고, 교사의 무의식적 차별 대우에 아이들의 실력이 변화한 것이다(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똑같은 80점대의 점수를 받아도 아시안계 아이들에게는 교사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떨어졌다”는 반응을, 히스패닉이나 흑인 아이에게는 “참 잘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이런 차별 대우가 후자 집단의 성적 하락을 부추긴다는 연구가 있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교사가 초등학생들에게 “파란눈을 가진 아이들은 똑똑하고 성실한데, 갈색눈을 가진 아이들은 멍청하고 게으르다”고 말하자 하루 이틀 만에 갈색눈을 가진 아이들의 수행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며칠 뒤 “선생님이 잘못 알았다”면서 “사실은 갈색눈의 아이들이 똑똑하다”고 하자 곧바로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결국 교사가 가진 편견은 교사의 언행 변화와 학생들의 자신감이라는 두 가지 통로로 아이들의 실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여성 엔지니어 차별 상상 초월 남자아이들과 똑같은 능력을 타고난 여자아이들은 미디어에서 본 대로 프로그래머들은 모두 남성이라고 생각하며 자라고, 학교에 가서는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교사, 교수들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의심받고, 직장에 가서는 온갖 성차별과 성희롱을 겪게 된다. 실리콘밸리의 여성 엔지니어들이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교육환경에서 자라고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문화에서 일하는 남성 엔지니어들로부터 받는 차별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성 프로그래머들은 아무리 경력이 길어도 일단 무시하고 들어가는 남성 프로그래머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살아남는다는 것이 한 베테랑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다. 이렇게 사회적 편견 속에서 교육을 받고, 일터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남성과 경쟁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집에 돌아오면 이번에는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이 기다리고 있다. 아카데미 편집상을 최초로 받은 여성 앤 보첸스(1940)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다음 여성 수상자 바버라 매클린(1944)은 폭스 영화사의 편집총책임자까지 올랐지만 병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은퇴했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돈이 되는 산업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온갖 장애물과 굴레를 씌워서 밀어내는 것은 비겁한 반칙이다. 남성 중심의 소프트웨어 업계는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코드미디어 디렉터
  • 시간 흐르면 괜찮다? 그 착각 벗어던져야 지금 행복할 수 있죠

    시간 흐르면 괜찮다? 그 착각 벗어던져야 지금 행복할 수 있죠

    그리움·가족·달라진 시간관 담은 11곡통기타·목소리로 담담하게 위로 전해“솔로 앨범은 공원에서 바라보는 황혼동화 속 완벽한 행복 기다리지 말아야”“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 있기도 한단다/더 늦기 전에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모든 생명은 아름답다.”(‘시간’) 기타 소리에 실린 나지막한 음정이 노래와 독백을 넘나든다. 지난 18일 나온 가수 김창완의 정규 솔로 앨범 ‘문’(門)은 담백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마음에 와닿을 땐 묵직한 위로가 된다. 발매 이틀 전 서울 서초구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창완은 기타를 안고 연주와 대화를 오갔다. 산울림에 이어 김창완밴드로 활동 중인 그가 홀로 만든 음반으로 돌아왔다. 1983년 ‘기타가 있는 수필’ 이후 37년 만이다. 특별히 계획하지는 않았던 이번 앨범은 관객을 못 만나는 일종의 ‘분리 불안’에서 시작됐다. “공연이 취소되면서 공백이 생겼고 곡들을 더 모아 정규 솔로 앨범으로 엮었어요. 늘 제가 해 오던 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일상이 이렇게 조명받긴 또 처음이네요.” ‘시간의 문을 열다’란 부제가 붙은 이번 앨범에는 기존 발표곡에 신곡 6곡을 더해 모두 11곡을 실었다. 애착이 간다고 밝힌 연주곡 ‘엄마 사랑해요’를 시작으로 시간의 본질을 묻는 ‘시간’, 힘든 이들에게 따뜻한 엄마 품을 상기시키는 ‘자장가’와 ‘먼길’이 포함됐다. ‘이제야 보이네’, ‘보고 싶어’ 등에선 돌아가신 부친과 막냇동생(고 김창익)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생각까지 가족을 향한 애틋함도 담았다. ‘글씨나무’, ‘옥수수 두 개에 이천원’은 특유의 동심과 일상 풍경을 놓치지 않고 전한다.타이틀곡 ‘노인의 벤치’는 쓸쓸하면서도 두 백발의 세월이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한 곡이다. “나이 든 여자가 다가와 앉아도 되냐고 물었지/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어 (중략) 그렇게 우린 만났어 세월의 흔적처럼/노인의 벤치에 앉아서/ 날 보고 방긋 웃었지 나도 그녈 보고 웃었어/주름을 볼 용기가 없었으니까.” 돋보기로 비춘 가사와 기타 치는 모습, 노트 속 그림들이 등장하는 이 노래 뮤직비디오는 그가 휴대전화로 직접 찍었다. 이번 앨범은 ‘기타가 있는 수필’과 맞닿아 있다. 당시 수록곡 ‘꿈’에선 “예쁜 성에 왕자가 살고 공주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번엔 “유치한 동화책은 일찍 던져 버릴수록 좋다”(‘시간’)고 말한다. 완벽한 행복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는 제안이다. 기계 흔적 없이 최소한의 악기로 만든 어쿠스틱한 소리가 음악을 듣는 현재에 더 집중하게 한다. “37년 사이 가장 달라진 걸 꼽자면 시간관이에요. 시간은 흘러간다고 배웠지만,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무언가 될 거라는 착각을 유발하는 사고방식이었죠. 시간에 대한 이러한 믿음을 벗어던졌어요. 동화 속 세상이나 환상적인 사랑이 어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대신 지금 누리는 행복을 봐야죠.” 자신의 생각과 변화가 오롯이 담긴 정규 솔로 앨범을 그는 ‘공원에서 보는 황혼’에 비유했다. 9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산울림을 ‘지난밤 달콤한 꿈’으로, 김창완밴드는 ‘밝아 오는 아침’이라고 한 것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꽃보다 낙엽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인도 많아요. 그간 태양의 노고와 한여름의 비, 이런 것들이 다 담겨 있으니까요. 아침은 어둠이 지난 뒤 편안한 아름다움이라면, 어둠이 내리기 직전 두려움 앞에서 보는 고즈넉한 황혼은 애처로움이 섞인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죠. 간절해서 아름다운 것이 황혼의 그것이에요.” 황혼이라고 표현했으나 그의 곡들은 듣는 이의 나이를 가리지 않고 가닿을 법하다. “저는 그냥 노래할 뿐이에요. 저의 잡다한 생각들이 뭉클하는 덩어리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죠.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지금까지 저를 노래하게 한 것이고요.” 그가 다시 기타를 잡았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가을 앉은 ‘몽마르뜨 언덕’에 서면… 세상 근심도 희망으로 채색될까

    가을 앉은 ‘몽마르뜨 언덕’에 서면… 세상 근심도 희망으로 채색될까

    몽마르트르 언덕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경사진 계단에 앉아 프랑스 파리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이름만 들어도 이곳에 살던 피카소의 그림과 몽마르트르를 무대로 활동하던 하이네의 시구와 사티의 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몸과 마음이 코로나19에 갇혀 움츠러드는 요즘, 몽마르트르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훅 달뜨게 한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1회 ‘몽마르뜨 공원 가는 길’ 투어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작했다. 사방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이란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기대로 살짝 공중에 떠 있는 듯 가볍다. 훌쩍 고속버스에 올라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투어에 올랐다.1970년대부터 서울과 지방을 잇는 버스 여객 및 화물을 수송하는 종합터미널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고속버스터미널은 ‘민족 대이동’이라 표현되는 귀성과 귀경길의 중심지로 서울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보존 필요성이 인정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장소이다. 과거에 형성돼 현재까지 전달되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유산에는 시대의 정보와 가치가 내포돼 있다. 미래유산은 현재에서 머물지 않고 미래에까지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유산에 대해 아는 데에서 더 나아가 활용을 통한 시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그런데도 1976년 강남의 허허벌판에 4개월 만에 급조된 고속버스터미널은 초반에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인구를 강남에 분산시키려는 목적으로 위치 선정에서 터미널이란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그 당시 승객들의 대부분이 강북에 거주하고 있어 터미널은 경유지로만 이용됐다. 그러다 강북의 터미널을 강제 폐쇄하고 강남터미널만 이용하도록 하자 승객들은 더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잠수교를 건설하고 남산 3호터널을 뚫었다. 고속버스터미널 주변의 만성적인 교통 정체는 시외버스터미널은 서울남부터미널로, 호남선은 바로 옆의 센트럴시티터미널로 이전하고 지하철 3호선이 건설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풀렸다.엘리베이터를 타고 2010년에 본관 건물 10층 옥상에 조성된 하늘공원으로 갔다. 시야가 확 트여 왼편으로 남산이, 오른편으로 우면산이 보였다. 정면 발아래에는 도착지별로 색색의 고속버스들이 나란히 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준공 당시에는 승하차장이 1층, 3층, 5층에 있었는데 승차장과 진입로를 일반 콘크리트 건물 기준으로 지었기 때문에 버스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현재는 1층만을 쓰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잡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니만큼 성급하게 시작하기보다 예상되는 문제들을 감안한 통찰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 지난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샘터화랑은 1978년 9월에 설립된 이래 한국의 근현대 미술을 선도하며 성장해 왔다. 2층에 있는 화랑은 검고 작은 문을 통해 입장하게 돼 있다. 화랑 안의 공간도 그리 넓지 않았다. 그런데도 샘터화랑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정립이란 사명감을 가지고 박서보, 윤형근, 정창섭, 이강소, 전혁림, 손상기, 오세열 등의 한국작가들 외에도 미국의 찰스 아놀디 등 국내외 예술가의 삶과 예술철학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진정성 있는 거장들의 전시를 개최해 오고 있다. 동시에 장래성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이들의 작품 제작을 지원하고 프로모션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현재 ‘한국의 로트렉’이라고 불리는 고 손상기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1983년부터 매년 개인전을 열고 있다고 했다. 화랑의 가장 안쪽에 손상기의 1984년 작품 ‘공장도시-일몰’이 있었다. 그림에는 멀리 해가 지고 있어서 앞쪽이 컴컴한데, 둥글게 굽은 등의 남자가 리어카를 끌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남자의 어깨에는 무거운 삶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다. 수레 뒤로 천진스러운 아이의 모습과 위로부터 이어진 석양빛이 골목을 따라 들어오는 흐름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손상기 자신은 자라지 않는 키에 불편한 몸이었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지고 아이에게는 혹은 작품을 바라볼 독자들에게는 빛을 남겨 주려 했던 것일까. 예술 작품은 일상적인 삶 속에 은폐된 근원적인 힘을 보여 준다고 한다. 후대에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앞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정신적 가치를 확실하게 구현한 작품을 보고 있으려니 화가에 대한 애잔함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른 낙엽이 떨어져 있는 가을의 노란 갈색빛 도로와 높다란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걷다 서울법원종합청사 본관동에 다다랐다. 가을바람이 저 스스로 옷깃을 스치며 살랑거려서 힘든 줄 몰랐다. TV 뉴스나 언론, 드라마 등에 법원의 상징적 건물로 자주 등장하는 본관동 계단 앞에 참가자들이 모이자 경비원이 급히 달려왔다. 오후 2시에 집회가 예정돼 있어서였는데 영문을 몰랐던 일행이 당황해하는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서울법원 종합청사 본관 건물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공건축물로 1989년 지하 2층, 지상 20층의 철근콘크리트조로 준공됐다. 법원이라는 균형적 공정성을 나타내기 위한 조형적 의도가 반영된 건축물로 보존 가치가 있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가는 서관, 동관의 수직미와 대칭성, 양옆에 펼쳐진 저층 법정동의 균형감, 그 한가운데 새겨진 커다란 법원 문양과 부채꼴 계단의 웅장함은 사법부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됐다. 설계의 최우선적 고려사항은 새로운 청사가 ‘법원 권위의 상징’이 되게 하고, 이를 통해 ‘법의 존엄성’을 고양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서울법원종합청사를 바라보는 느낌이 ‘웅장하고 고압적’이라 하니 설계의 의도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확한 말과, 거의 정확한 말의 차이는 반딧불과 번개만큼의 차이를 가져온다. 법의 존엄성과 고압은 너무 커다란 격차이다. 막상 미디어에서 보던, 법원을 상징하는 대형 문양이 걸려 있는 중앙 현관은 실제로 일반인들이 출입하지 못한다.국립중앙도서관 옆의 좁은 계단을 올라 서리풀 공원과 몽마르뜨 공원을 잇는 누에다리에 올랐다. 누에다리는 이 일대에 조선시대 양잠기관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있었던 점에 착안해 거대한 누에의 형태로 제작됐으며 폭 3.5m, 길이 80m 규모로 반포로 상공 23.7m 높이에 설치됐다. 밤에는 누에다리 외부와 교량 바닥에 설치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시설이 보랏빛의 환상적인 야경을 선사한다. 햇빛이 환한 낮이어서 그런지 둥글게 원을 그리며 뻗어 있는 누에 모양의 흰 아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에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입구의 표지판을 되새기며 다리 중앙에 섰다. 차가 가득한 도로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예술의전당이 보였다. 돌아서니 아까 지나왔던 고속버스터미널이 보였다. 뒤돌아 몽마르뜨 공원으로 향했다. 잠깐 산길을 따라 걸으니 넓은 몽마르뜨 공원이 나타났다. 입구에는 류근조 시인의 ‘몽마르뜨 언덕’이란 시가 쓰인 팻말이 있다. ‘누구나 여기 이곳에 오면/어려움 속에서도 같이 살아가는 기쁨에/마음은 항상 하늘 높이 날라올라/즐거이 노래하고 비상하는/한 마리 노고지리가 되는가.’마지막 구절의 시구처럼 마음의 근심과 걱정이 모두 날아가게 하는 공간이었다. 랭보의 ‘감각’이란 시를 읽고, 몽마르트르에서 활동한 피카소, 고흐, 고갱의 팻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장미꽃밭에서 춤을 추는 동상을 바라보노라니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앉아 있는 듯했다. 여행은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가 이국적인 거리를 거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 여러 색의 고속버스를 바라보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화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먼 이국의 정취를 옮겨와 꾸민 공원을 거닐며 랭보의 시에 등장하는 보헤미안이 됐다. 이런 여행도 참 멋지구나 하고 감탄했다. 글 이소영 동화작가해설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다음 일정 - 제22회 김중업의 장위동 이야기 ●출발 일시 10월 24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오늘의 눈] 원치 않았던 임신 책임 여성에게만 묻는 사회/손지민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원치 않았던 임신 책임 여성에게만 묻는 사회/손지민 사회부 기자

    “저게 사람이냐, 임신을 원치 않으면 몸을 잘 간수해야지.” “(아이) 생산자가 책임져라. 왜 사회가 책임지나.” “저 미혼모를 돕자는 건 인신매매범을 돕자는 것 아닌가.” 한 여성에게 악플이 쏟아졌다. 이 여성은 지난 16일 중고 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앱) 당근마켓에 ‘36주 아기를 20만원에 입양 보낸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여론이 여성에게 손가락질하는 사이 아이 엄마의 사연이 드러났다. 아이 아빠도 없고, 부모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여기에 산후우울증까지 더해져 감당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충동적으로 판매 글을 올린 것을 후회한다는 내용이다. 36주라는 아기도 낳은 지 3일 된 신생아였다. 사실 철부지 엄마의 잘못이라고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건 쉽다. 덮어놓고 아이 엄마를 비난하고, 법에 따라 철저히 처벌한다고 이런 일이 사라질까.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기저귀·분유 지원, 취업성공패키지 지원, 수도·전기요금 등 지원, 통신비 감면 등 정부가 시행 중이라고 선전하는 미혼모 지원 정책들이다. 그러나 정부가 선전하는 사회안전망은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신생아는 당근마켓으로 나왔고, 엄마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입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미혼모 지원 정책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미혼 여성의 입장에서 말이다. 어떤 배경에서 아이가 태어났든, 미혼모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런 사건은 또 발생할 수 있다. 그저 알아서 키우기만을 바라는 사회에서는 엄마도, 아이도 행복할 수 없다. 정부는 실제 미혼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결혼하지 않고 임신한 여성이 아이를 낳기 전 무엇을 가장 걱정하는지부터 들어야 한다.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아이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방법,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 절망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성이 아이를 인생의 짐으로 느끼지 않고, 계속해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sjm@seoul.co.kr
  • 文대통령 “지금이 경제 반등 골든타임”

    文대통령 “지금이 경제 반등 골든타임”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지금이 경제 반등의 골든타임으로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범정부적 노력을 배가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수출이 회복되는 상황에 더해 내수 회복도 같이 간다면 확실한 경제 반등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정부는 내수 활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다방면으로 추진해야 하며 그동안 방역상황 때문에 아껴두었던 정책도 곧바로 시행을 준비하고 착수해 주기 바란다”며 소비쿠폰 지급 재개를 비롯해 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예술·문화·여행·관광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6일 발표된 9월 고용동향과 관련, 문 대통령은 “‘방역이 곧 경제’라는 말이 9월 고용동향 통계에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8월의 뼈아픈 코로나 재확산이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고용 상황 악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구하지 못하신 분들, 일시적으로 휴직하신 분들, 특히 더욱 어려워진 청년들의 일자리 시름을 생각하면 마음이 매우 무겁다”면서 “정부는 ‘최선의 방역이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거듭 명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고용시장 충격을 조속히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면서 ▲4차 추경으로 마련한 긴급고용안정 지원 신속한 마무리 ▲연내 30만개 공공부문 일자리 공급 완료 ▲내년 103만개 공공일자리 사업 연초부터 집행 ▲한국판 뉴딜 본격 추진을 지시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트럼프 나와라!”…美 남성, 트럼프 타워 16층 매달려 고공농성

    “트럼프 나와라!”…美 남성, 트럼프 타워 16층 매달려 고공농성

    자신을 흑인 인권운동가라고 밝힌 한 남성이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트럼프타워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욕포스트는 18일(현지시간) 밧줄 하나에 의지해 트럼프타워 16층에 매달린 남성이 4시간이 넘도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등산용 로프로 추정되는 붉은색 밧줄에 몸을 묶고 트럼프타워에 매달린 남성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시카고경찰 대변인 톰 애런은 “20대 남성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시카고 트럼프타워 16층에 매달려 있다. 언론에 전할 말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자신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가라고 밝힌 남성은 “트럼프는 선거 전에 공약을 해야 한다. 선거 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 하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밧줄을 잡아당기려고 한다면 뛰어내릴 것이다. 칼을 가지고 있다. 밧줄을 자르고 떨어져 죽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언론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이날 오후 5시 27분쯤 트럼프타워에 매달린 남성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시카고경찰이 남성을 설득하기 위해 협상가를 투입했지만 아직 별다른 소득은 없는 상태다. 일단 농성자가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할 가능성은 없다. 이날 오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 예배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카슨시티 공항에서 열린 대선 유세 현장으로 향했다. 벌써 4시간째 계속되고 있는 고공농성에 현지 경찰은 빌딩 주변 교통을 통제하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2009년 완공된 시카고 트럼프타워(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 타워)는 98층짜리 초고층 빌딩으로 그 가치는 8억4700만 달러(약 9675억 원)에 달한다. 트럼프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지만, 최근 며칠 사이 여러 수모를 겪고 있다. 고공농성 하루 전이었던 17일 밤에는 북미 철강노조가 빌딩 전면부에 민주당 조 바이든과 카마랄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는 대형 광고 문구를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박훈 “‘김봉현 입장문’ 원본 봤다”며 실명 언급…당사자들 “사실무근”

    박훈 “‘김봉현 입장문’ 원본 봤다”며 실명 언급…당사자들 “사실무근”

    박훈 변호사가 ‘라임 사태’(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김봉현(46·구속 기소)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신문에 보낸 자필 입장문 원본을 봤다고 주장하며 입장문에서 익명 처리된 인물들의 실명을 언급했다. 박 변호사는 19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른바 김봉현의 폭로 문건 원본을 봤다”면서 문건에서 익명 처리된 사람들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했다. 김 전 회장이 입장문에서 ‘검사장 출신 야당 유력 정치인 변호사’가 누구인지를 ‘전 대표 최측근 정치인’이라고 표현하였는데, 박 변호사는 여기에 익명으로 기술된 ‘전 대표’가 황교안 옛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의 입장문에는 ‘지검장 로비 명목’으로 ‘수원사건 관련 5천 지급’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는데, 박 변호사는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지검장’이 윤대진 당시 수원지검장(검사장)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입장문에 이강세(58·구속) 전 광주MBC 사장(현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기술된 문장에 등장하는 ‘김모씨’는 김장겸 전 MBC 사장이라는 것이 박 변호사의 주장이다.그러나 박 변호사가 실명을 언급한 당사자들은 김 전 회장의 주장 내용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 전 사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화살을 엉뚱한데로 돌리고 물타기를 위한 악랄한 모함”이라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대학 동기인 이 대표가 집안 동생이라고 해서 김 전 회장과 몇 차례 만났을 뿐 김 전 회장과 둘만 만난 적도 없고, 다른 사람과 자리를 같이 한 적도 없다”면서 “저는 이 대표나 김 전 회장으로부터 라임의 ‘라’자도 들어본 적이 없고 알지도 못했다. 그 누구를 소개시켜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8일 이 대표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한 지인의 소개로 2014년경 이 대표를 알게 됐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 전 사장은 또 “MBC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기(2017년 2~11월)에는 김 전 회장을 전혀 만난 적이 없다. 지난해 두어 차례 이 대표, 김 전 회장과 만난 일은 있지만 라임 얘기는 전혀 없었고, 두 사람한테 ‘회사가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윤 검사장도 김 전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전직 검찰 수사관 A씨를 통해 로비를 했다면서 지난해 12월 수원여객운수 횡령 사건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 무마를 위해 ‘지검장 로비 명목’으로 A씨에게 5000만원을 지급했다고 입장문에 적었다. 수원여객운수 횡령 사건은 당시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했고, 김 전 회장은 수원여객운수 회삿돈 횡령 혐의 등으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윤 검사장은 서울신문에 “나는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보고한 검사에게 철저한 수사와 신속한 구속을 지휘했다”면서 “지난해 12월 경찰이 영장을 신청해서 검찰이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는데, 영장이 청구되니까 김 전 회장이 도망을 갔다. 김 전 회장의 거짓말이거나 A수사관이 돈을 착복한 실패한 로비”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윤 지검장은 “나는 김 전 회장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일면식도 없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자치광장] 코로나 시대, 작은 목소리도 더 크게/박성수 서울 송파구청장

    [자치광장] 코로나 시대, 작은 목소리도 더 크게/박성수 서울 송파구청장

    코로나19 이후 카메라를 통해 주민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대다수의 행사가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생긴 변화다. 생경하지만 이렇게라도 주민들과 만나는 것은 행정을 하며 생긴 개인적인 신념 때문이다. 취임 이후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강조해 왔다. 매년 27개 전 동을 돌며 주민들과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구정을 이끌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제는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더 다양한 소통 방식을 강구하고 있다. 사회관계망과 화상앱을 활용한 것에서 한발 나아가 최근 방송국에서나 볼 법한 방식을 도입했다. 이원을 넘어 삼원, 사원 생중계 방식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이어 가고 있다. 얼마 전 열린 첫 대화 자리가 인상 깊었다. 문정비즈밸리의 일자리허브센터와 전통시장 2곳을 연결해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각 장소에는 50명 이내의 주민밖에 모일 수 없었지만, 결론적으로는 150명이 모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유튜브로 시청한 주민까지 포함하면 한 주제로 수백 명이 모인 것과 다름없다. 특히 그동안 소통에 한계가 있던 시장 상인들로부터 현장에서 바로 의견을 낼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을 얻었다. 야시장 개최, 풍납동 토성 산책로 조성, 지역화폐 추가 발행, 소상공인 무이자 대출 지원 등 생생한 의견이 현장에서 나왔다. 무엇보다 한목소리로 원한 건 지속적인 관심이었다. 그 속에는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으로 대화의 길마저 막힌 데 대한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지쳐 있는 주민들을 위해 더욱 현장으로 갈 때다. 때로 우리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지 않는가. 다음달까지 송파미래교육센터, 송파둘레길, 석촌호수 등에서 학생과 학부모, 지역 문화예술가와 해설사, 청년, 여성, 어르신 등 다양한 주민을 만날 예정이다. 이미 새로운 대화 방식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작은 목소리까지 크게 귀담아듣겠다. 주민들의 목소리와 생각이 정책이 되도록 하겠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말이다. 함께 가기 위해서는 마음이 이어져야 한다. 지속적인 대화가 서로의 마음을 잇는 튼튼한 끈이 돼 줄 것이다.
  • [이경우의 언파만파] 죽음을 가리킬 때

    [이경우의 언파만파] 죽음을 가리킬 때

    생명이 끊어졌음을 가리키는 말 ‘죽다’ 또는 ‘사망하다’, 조금 덜 쓰이지만 그래도 낯설지 않은 ‘운명하다’. 이 말들은 죽음에 대해 특별한 의미나 가치를 덧붙이지 않는다. 그저 생명이 다했다는 사실을 평면적으로 나타낸다. 그렇지만 ‘숨지다’ 또는 ‘숨을 거두다’란 말은 직접적이지 않고 조금 굽어 있다. 어떤 죽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꺼려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라는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이 작용할 때는 죽음이 이렇게 완곡해진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때는 ‘돌아가시다’라고 높여 말한다. 여기에 사회적 관계나 위치에 따라 죽음을 나타내는 말들은 달라진다. 어렵기도 하고, 굽어 있기도 하고, 차별적이기도 하다. ‘별세’의 사전적 의미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이다. 일상의 의미 또한 다르지 않지만,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 기사들에서 ‘별세’는 가장 흔하게 보인다. 죽은 사람이 모두에게 ‘윗사람’인 것은 아닌데도 이렇게 알린다. 그것도 모두에게 쓰이는 건 아니고 나이가 있고, 살아생전 지위가 있었던 이들에게 주로 사용된다. 사회적으로 큰 업적이나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는 ‘별세’라는 말이 작아 보인다고 여기는 듯하다. 언론은 특별해 보이는 이들의 죽음을 ‘타계’라고 기록한다. ‘별세’보다 ‘타계’가 한 단계 위이듯 사전의 풀이도 달라 보인다. 사전은 ‘타계’를 ‘귀인(貴人)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대통령이나 교황이 사망했을 때는 또 다르다. 이때 언론들은 주로 ‘서거’라고 붙여 왔다. 이들의 죽음은 더 다른 무엇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죽은 몸을 가리키는 말들에도 구별과 차별이 있다.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는 ‘시체’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하고, 고유어를 써서 ‘주검’이라고도 하지만, 어떤 이의 죽은 몸은 ‘시신’이라고 높여 가리킨다. 어떤 ‘유골’들은 높여서 ‘유해’라고 한다. 때로 사회적 주목을 받는 이의 ‘시체’에도 ‘유해’라고 표현한다. 더 대접하고 싶어 하는 태도가 있다. 죽음은 종교별로도 다르게 나타난다. 불교에서는 ‘입적’이나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뜻하는 ‘열반’이다. 개신교에서는 ‘하늘의 부름을 받아 돌아간다’는 뜻으로 ‘소천’이라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의 의미로 ‘선종’이라고 한다. 천도교에서는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에서 ‘환원’이라고 부른다. 모두 종교적 시각이 담겨 있다. 낯선 말들이지만 언론매체들은 대부분 그대로 전달한다. 이보다는 쉽고 일상적인 표현이 더 낫지 않을까.
  •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마종기 시인은 우리 시단에서 퍽 이채로운 위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생애의 많은 시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는 슬럼프 없이 균질적 시 쓰기를 해 온 모어(母語)의 사제요, 순수 참여의 틀을 넘어 지성적 사유를 통한 위안의 시 쓰기를 지속해 온 서정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그의 열두 번째 시집 ‘천사의 탄식’이 나왔다. ‘시인의 말’에 “아주 멀고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고달픈 말과 글을 모아서 고국에 보낸다”라고 적었던 그 작품들이 실렸다. 30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귀국해 국내 독자들과 만나고 지인들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 왔던 그였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그러질 못했다.시인은 시집 뒤표지 글에서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 나눔이고 생환 훈련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한세상 시를 사랑하며 살았다”라고 했다. 그 세계에 대한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동원해 지난날로부터 이번 성과에 이르기까지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올해는 봄에 귀국하려고 시집 출간도 그렇게 잡아 놓았는데 갑자기 터진 코로나 난리 때문에 귀국을 못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영시집 ‘Forty Two Greens’(마흔두 개의 초록)가 뉴욕의 코드힐 프레스(Codhill Press)를 통해 출간됐습니다.” 거기서도 여전히 그는 현재형의 시인이다.●체온 나눔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 이번 시집에 ‘아내의 꽃’이라는 정갈한 시가 있다. 평생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함께해 온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그에게 아내는 언제나 “따뜻해지고 느긋해져서/ 어깨가 다 가벼워지는” 세월을 나누어 온 반려자일 것이다. “아내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미국에 와서 결혼한 이후 너무 외로워 시를 썼고 서울 친구들에게 발표를 부탁하며 의사 생활을 이어 왔는데 시를 읽어 달라고 할 사람이 없었어요. 아내와는 시에 대해 나누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바로 그 외로움 때문에 시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영화 ‘패터슨’에도 인용된 의사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인이 되는 첫째 조건이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어쩌면 아내는 좋은 시를 쓰라고 그동안 자신의 시에 관심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아내가 제 시를 읽겠다고 합니다.” 두 분의 사랑과 체온 나눔의 시간이 지극한 울림으로 전해져 온다.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도쿄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과 서양무용가 박외선 선생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학문적, 예술적 역량과 감성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게 틀림없을 것이다. 시인은 미국으로 향할 때 손에 50달러를 쥐어주며 헤어졌던 선친의 급작스런 별세 소식에 서러움과 죄책감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전형적인 문사셨어요. 청빈한 삶을 기리셨고 가난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예술가형이셨지요. 단 한 가지 무용에만 몰두하셨던 분이죠.” 청년 마종기는 연세대 의예과에 입학했고, 1959년 1월에 ‘현대문학’ 초회, 이듬해에 완료 추천을 받고 시인이 됐다. 올해는 그러니까 등단 갑년(甲年)이 되는 셈이다. 마종기는 드뷔시나 사티 같은 인상파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시도 그 방향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우선 살아남아야 했고, 시는 자신에게 먼저 위로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마종기의 초기시에는, 이국 생활을 예감이라도 한 듯, 처연한 유랑 의식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시인은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 영원한 떠돎이라는 실존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그에게 시는 천천히 위안과 그리움의 세계로 번져갔다. 그런 세계를 함께해 준 스승은 누구였을까? “한 분이라면 최민순 신부님을 들겠습니다. 가톨릭계에서는 존경받는 영성 신학자셨고 이탈리아어 ‘신곡’이나 스페인어 ‘돈키호테’를 직역해 세간을 놀라게 한 번역가셨지요. ‘현대문학’ 등단 소감도 신부님께 올리는 편지 형식으로 썼지요. 선친 장례 미사도 명동성당에서 친히 챙겨 주셨습니다.” 문인 중에는 박두진 선생을 들었다. 그분의 착하고 조용하신 성정도 좋아했고 그분의 단호한 강골도 좋아했다. 학생 때부터 선생을 따랐고, 그분이 ‘현대문학’에 등단시켜 주셨고, 첫 시집 ‘조용한 개선’(1960) 서문도 써 주셨다. 그렇게 부모님과 스승에 대한 체온 나눔의 기억으로 그는 이국 생활을 견뎌 왔고 지금까지 ‘마종기’일 수 있었으리라.●‘변경의 꽃’에서 ‘아내의 꽃’까지 1965년 공군사관학교 군의관이었던 마종기는 그해 여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군인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심문을 받고 감방에 수용됐다. 기소유예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쫓기듯 나와 산 것이 벌서 55년째다. 그는 1968년과 1972년에 황동규, 김영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을 두 번 펴냈다.“그 친구들과 함께 펴낸 ‘평균율’은 제게 큰 의미가 있지요. 고국을 떠난 게 1966년이었고 5년간 미국에서 수련의로 살아낸 그 시절은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고 한편으로는 저를 괜찮은 의사로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그때 두 친구가 우정의 선물을 준 거죠.” 이번 시집 표지 캐리커처도 김영태가 그린 것이 들어갔다. 언젠가 시인은 “김영태 시인이 보낸 편지가 제일 많더라”고 추억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을 향한 시인의 사랑이 깊게 전해져 온다.1969년에 방사선과 전문의에 합격한 뒤로 그는 의대 교수로서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 그 과정에서 낸 세 번째 시집 ‘변경의 꽃’(1976)은 이국에서 살아온 이의 떠돌이 의식과 그리움을 담은 결실이었다. ‘변경의 꽃’이야말로 이국에 살던 시인의 초상이 아니었겠는가. 그러고 보니 ‘변경의 꽃’으로부터 그는 ‘담쟁이 꽃’, ‘박꽃’, ‘축제의 꽃’으로 ‘꽃’을 변형해 오다가 이번에 ‘아내의 꽃’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시인은 가장 아끼는 시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를 들었다. 나도 ‘이슬의 눈’(1997)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혼돈의 시간을 겪어 정서적으로 시의 도움이 절실하던 때의 시집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떠올렸다. 한 편 읽어 보자.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바람의 말’) 그 ‘바람의 말’을 넓혀 온 트라이앵글이 의학과 시와 신앙이 아니었을까? ●의사-시인-신앙인 ‘선순환의 삶’ “제 시에서 의학과 신앙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의사였으니 의학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요. 신앙 역시 외국에서 살아오느라 더 깊어지거나 흩어졌을지 모르지만 가톨릭 교인으로 60년 살아왔으니까요.” 그는 의학이나 신앙이 시의 모멘텀이 되는 때는 있었지만 가급적 그 몸체가 다 보이는 것은 경계해 왔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은 조금 달랐다. 시인은 지난봄 원고를 보내고 첫 교정지를 받았는데 팬데믹으로 모든 게 정지되자 다시 찬찬히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없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등단 소감에 좋은 믿음의 시인이 되겠다고 썼던 생각이 났고, 몇 편 버리고 서너 편 신앙적 시들을 넣게 됐다고 한다. “의학은 육체의 치유, 시는 정신의 치유, 신앙은 영혼의 치유를 위한 매개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고 믿음과 시를 합치면 감동이 떨어지게 되고, 의학과 시도 한쪽으로 기울면 둘 다 역할을 못할 것입니다. 서로 우러르고 가까이에서 아끼는 상태가 돼야겠지요.” 그만큼 ‘의사’와 ‘시인’은 어느 하나가 주(主)가 되고 다른 하나가 종(從)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종기에게 상호의존적인 수평적 축이었던 셈이다. 선진 의학을 5년간만 공부하고 돌아가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시인은 그 땅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았다. 오하이오에서 의사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플로리다로 옮겨 사는 시인은 아들 셋과 손주들이 멀리 살고 있어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전부라고 한다. 평생 고독했지만, 자신의 시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분을 만나면 갑자기 자신을 겹으로 싸고 있던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이 다 날아가버린다고 했다. 의사-시인으로 “한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슬의 명예’)이었다지만, 그의 ‘변경의 꽃’으로서의 시작(詩作)은 지금부터 다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마종기’의 생으로 시작될 것이다. 위안과 그리움을 “내 나라도 보이던 따뜻하고 편한 그 색깔”(‘노을의 주소’)에 담은 ‘천사의 탄식’이 보내준 소중한 만남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고소한 맛에 ‘쓱싹’ 담백한 맛에 ‘뚝딱’ 돌아온 가을 밥도둑

    고소한 맛에 ‘쓱싹’ 담백한 맛에 ‘뚝딱’ 돌아온 가을 밥도둑

    “이제 다 끝나가네요. 한 달 전만 해도 ‘물 반 전어 반’이었는데 말이죠.” 충남 서천군 홍원항을 근거지로 20년간 전어잡이를 한 선장 이일희(60)씨는 지난 17일 오전 11시쯤 서천 마량포구 앞에서 전어를 잡다 서울신문의 전화를 받고 “올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전어가 풍어였다”며 “바다에 나가면 그물을 6~7번 치는데 한 번에 10~20t씩 잡혀 그물이 찢어질 듯했다”고 말했다. 전어는 그물코 한 변이 1.2~1.5㎝짜리 선망을 싣고 어군탐지기로 전어를 쫓다 발견 즉시 길이 350m 그물을 빙 둘러쳐 잡는다. 어선 한 척과 운반선이 한 선단을 이루지만 올해는 풍어여서 배 한 척이 더 투입되기도 했다. 운반선은 성질 급한 전어가 죽지 않게 뭍으로 옮긴다. 500㎏씩 넣을 수 있는 물칸 8개 안팎을 갖췄다.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는 “전어는 민물과 섞이는 강하구 인근 바다에서 산란해 금강이나 천수만 주변 바다에서 많이 잡힌다”며 “동해안보다 서·남해안에 전어가 많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비가 많이 내리면 풍어를 이루는 것도 같은 이치다. 전어의 서식 적정수온은 15~20도로 연안의 수온이 25~30도에 이르는 여름철에는 깊은 바다에 살다 가을로 접어들면 얕은 바다로 이동한다.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전어는 산란을 앞두고 연안에서 살을 찌워 가을철에 최고로 맛이 좋아진다. ●풍어에도 소비 줄어 하루 매입량 2t 제한 홍원항에만 15개 전어잡이 선단이 있다. 매년 8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조업한다. 전어가 많은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어떤 때는 천수만과 가까운 태안군 남면 마검포 앞바다까지 북상해 올라간다. 그래도 육지와 10㎞도 떨어지지 않은 바다다. 이씨는 “전어가 한창 잡힐 때는 새벽 1시고 2시고 가리지 않고 출항했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덜 잡히는 요즘에는 보통 아침 6시쯤에 나가 6~7시간 작업하고 돌아온다”면서 “화주(중간상인)들이 전어는 많이 잡히는데 코로나19로 소비가 줄어 손해가 나니까 선단마다 하루 매입량을 2t으로 제한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 바닥에는 ‘전어잡이를 잘한 해는 집을 사고 못한 해는 집을 판다’는 얘기가 있는데 홍원항 어민들은 올해 전어풍어에도 코로나19 탓에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고 투덜댄다.홍원항 전어 음식점은 12개 정도, 판매하는 곳은 40여곳이 있다. 전어 경매장도 있다. 일반 소비자도 경매에서 한짝(10~15㎏)을 6만~7만원에 살 수 있다. ㎏당 회와 구이는 3만 5000원씩, 무침은 4만원 하는 음식점보다 매우 저렴하다. 해마루횟집 주인 조미정(51)씨는 “예전 축제 때보다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식당마다 주말에 하루 200~300명이 찾아와 전어를 즐긴다”면서 “회와 무침이 가장 많이 팔리지만 나이 드신 분 중에는 구이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이어 “구이는 냉동 전어를 쓴다”면서 “숯불에 구우면 속은 익지 않고 겉만 타는데 그릴에 구우면 겉과 속이 골고루 익어서 맛이 무척 좋다”고 덧붙였다. 구이용은 큰 것을 쓴다. 홍원항에서는 이를 ‘떡전어’라고 부른다. 그 절반 크기도 안 돼 밴댕이만 한 전어는 ‘띠푸리’라고 한다. 전어는 7년생으로 해가 갈수록 몸집이 커지는데 최대 26㎝까지 자란다고 서해수산연구소 연구관은 밝혔다. 1년생은 길이 11㎝ 정도이다. 조씨는 “산 전어를 구우면 살이 오그라들거나 부서지고 모양도 틀어져 구이용은 무조건 냉동시킨다”고 했다.●천대받던 전어… 축제로 ‘귀한 몸’ 변신 30~40년 전에는 ‘준치나 가오리를 먹었지 전어는 길가에 버렸다’, ‘전어잡이 배도 없었다’고 천대받았던 기억이 전해지는 홍원항에서 ‘귀한 고기’로 위상이 바뀐 것은 축제 덕이다. 2000년 당시 마을 이장이 “전어가 많이 잡히는데 그냥 해보자”고 주민들을 설득해 처음 축제가 열렸다. 조씨는 “그 당시 음식점 열 집 중 두 집은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참여하길 포기했다”면서 “축제장에 외지인이 물밀듯이 몰려오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 어린 자식들까지 나서서 마늘 까고 상추를 씻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주민들이 앞치마 두르고 손님을 받는데 ‘반반’(회 반, 구이 반)이란 말을 몰라 되묻고는 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다. 조씨는 “수족관에 바닷물과 전어를 넣고 죽을까 봐 아침저녁으로 물을 갈아 주고 잠도 못 자고 관리를 했는데 하루 지나니 입과 눈이 빨갛게 변하고 이틀이 지나니 죽어버려 너무 당황했다”고 한다. 그는 “그래서 전어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공부를 해보니 수족관은 민물 70%와 간수 30%를 섞어 넣어야 잘 산다는 걸 알았다”면서 “이때 터득한 방법으로 지금도 수족관 전어를 살리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지만 지난해 가을 보름간 열린 19회 축제 때는 21만명이 넘을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다. 구제역과 코로나로 두 해 걸렀지만 전국 최초로 연 전어축제는 홍원항을 ‘전어의 메카’로 부상시켰다. ●조선시대 난호어목지에선 ‘錢魚’로 표기 조선시대 서유구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귀천이 모두 좋아하고 맛이 좋아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 전어(錢魚),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모양이 화살촉처럼 생겼다고 해 전어(箭魚)라고 표기했다. 자산어보에 ‘전어는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고 기록됐으니 정약전도 맛을 인정한 것이다. 가을 전어는 지방 함량이 100g당 10g으로 봄 전어보다 3배 넘게 많다. 조씨는 “전어 회를 썰 때 보면 뱃살 쪽에 돼지비계처럼 하얀 기름이 끼어 있다. 기름이 이리 많으니 고소할 수밖에 더 있느냐. 담백한 맛도 난다”면서 “전어는 확실히 계절 음식이다. 가을 외에는 손님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천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與 “라임사태, 공수처 1호 수사” 野 “특검 도입해 철저 규명해야”

    與 “라임사태, 공수처 1호 수사” 野 “특검 도입해 철저 규명해야”

    라임 사태의 핵심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 16일 서울신문에 보낸 ‘옥중 서신’에서 “현직 검사와 야당 인사들에게도 로비를 했다”고 폭로하면서 정치권이 크게 들썩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과 야당을 압박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에 무게를 실었고, 국민의힘은 특별검사 도입을 요구하며 장외 투쟁까지 예고했다. 민주당 신동근 최고위원은 “왜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가 필요한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 사례”라며 “법무부와 검찰은 수사 과정에 윤석열 총장이 개입했는지, 향응 수뢰 검찰이 누구인지, 억대 수뢰 유력 야당 정치인이 누구인지 철저한 수사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번 사건을 검찰의 ‘공작 수사’로 규정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페이스북에 “검찰총장과 전현직 고위 검사들, 사건 수사 검사, 국회의원과 유력 정치인 등 공수처 수사 대상 대부분이 언급된 공작 수사 의혹”이라며 “공수처 수사 대상 1호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라임과 옵티머스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고 있는 국민의힘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장외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MBN에 출연해 “특검 관철 수단은 국회 의결인데 저희는 103석밖에 안 되고 민주당은 저 의석을 갖고 깔아뭉개려 한다”며 “원내에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안 되면 국민께 직접 호소하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라임의 주범이 언론사에 옥중 편지를 보내고, 남부지검이 신속하게 입장을 밝히고, 추미애 장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감찰을 지시하고, 민주당이 야당을 공격한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 냄새가 진동한다”며 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밝혔다. 옵티머스 펀드에 1억원을 투자했다가 환매한 사실이 알려진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주 원내대표에게 특검을 하자고 역제안을 하며 “권력형 비리가 아닌 단순 투자로 확인되면 주 원내대표는 의원직 사퇴로 책임지라”고 말했다. 이에 주 원내대표는 “검찰이 제대로 못 하니 특검을 하자는데 거기에 뭘 걸라는 말이냐”고 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세상 밖 나오지 못하고… ‘미안해 아가야’, 매년 2월 그날이면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세상 밖 나오지 못하고… ‘미안해 아가야’, 매년 2월 그날이면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67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을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 직장인 이현지(37·가명)씨의 휴대전화 달력은 매년 2월 11일 알람을 울어 댄다. ‘미안해 아가야’ 여섯 글자가 무지근한 그날의 고통을 상기시킨다. 9년 전 이씨는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씨는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는 순간 “지구 종말이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원래 피임을 철저히 하는데 딱 하루 제대로 못 했고, 너무 순식간이라 임신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임신 사실만으로 이미 공황 상태였는데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건 더 힘들었다. 이씨는 “동네 산부인과를 일일이 돌며 물어봤는데, 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겨우 찾은 병원에서도 의사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수술 과정과 후유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대신 “어떻게 5주차까지 임신 사실을 모를 수 있느냐”며 이씨를 혼냈다. “젊은 사람이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말도 따라 나왔다. ●“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 ” 수술의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의사는 전신마취 대신 부분마취를 택했다. 이씨는 수술기구가 몸속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모습과 소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수술이 끝나자 의사는 몸에서 꺼낸 덩어리까지 보여 줬다. 이씨가 휴대전화 알람으로 매년 떠난 생명을 기억하는 것은 당시의 죄책감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씨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놀랐겠지만 솔직히 나도 충격이 커. 나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 혼자 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씨는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그의 어머니는 이씨의 동생을 가졌을 때 낙태를 고민했다. 터울이 너무 크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독교 집안인 탓에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이씨는 “원래 엄마랑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다. 돌아가실 때도 큰 감정의 동요가 없었는데 수술하고 나니 저절로 떠오르더라”면서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내 편이 돼 줬을까 하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임신중절도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봐줬으면 ” 남자친구나 당시 룸메이트 외에 이씨가 자신의 낙태 경험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이 무서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는데, 정부가 내놓은 입법예고안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이씨는 “임신중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거다. 그래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낙태도 불법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정의당 김종철 대표 “민주당 공정경제3법 눈치본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 “민주당 공정경제3법 눈치본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18일 “더불어민주당이 공정경제 3법도 재벌 눈치를 보며 갑론을박한다”며 날을 세웠다. 김 대표는 이날 14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스타 항공 노동자들을 만나 “당선 후 바쁜 일정으로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며 “자주 찾아뵙고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볼 것”이라고 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 노조 박이삼 위원장은 “이스타항공 사측이나 이상직 의원이 문제를 해결할 단계를 넘었다”면서 “정부와 민주당이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원섭 조직쟁의국장은 “민주노총에서 지난달에 현재 투쟁 중인 사업장 해결과 관련한 공개질의를 민주당에 전달했으나 민주당으로부터 ‘불가하다’는 입장을 받았다”며 “민주당이나 이낙연 대표가 움직이지 않아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찾아가야 되나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종철 대표는 “정부여당이 책임있게 나서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 “제가 후보시절부터 이재명 지사를 거론한 이유가 민주당이 보수화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스타항공과 같은 노동자 문제에 책임 있게 나서는 것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김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공정경제3법도 재벌눈치를 보며 갑론을박하는데 노동자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는 모른 척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미안해’ 9년 전 지운 아기, 아직도 죄책감 시달립니다

    ‘미안해’ 9년 전 지운 아기, 아직도 죄책감 시달립니다

    67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형법상 낙태죄의 개정 시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임신중절(낙태) 허용 주수를 놓고 씨름하며 ‘불법’ 낙인은 거두지 않는 사이 여성들은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다. 서울신문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며 가슴에 묻었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공개한다. 직업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낙태는 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이자 책임이었다고.직장인 이현지(37·가명)씨의 휴대전화 달력은 매년 2월 11일 알람을 울어댄다. ‘미안해 아가야’ 여섯 글자가 무지근한 그날의 고통을 상기시킨다. 9년 전 이씨는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씨는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는 순간 “지구 종말이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원래 피임을 철저히 하는데 딱 하루 제대로 못 했고, 너무 순식간이라 임신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임신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몸살과 함께 찾아왔다. 몸이 건강한 편이었는데도 그날 이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은 메슥거리고, 온몸이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 처음엔 야근이 잦아 그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게 임신 초기 증세였다. 임신 사실만으로 이미 공황 상태였는데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건 더 힘들었다. 이씨는 “동네 산부인과를 일일이 돌면서 물어봤는데, 내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겨우 찾은 병원에서도 의사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수술 과정과 후유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대신 “어떻게 5주차까지 임신 사실을 모를 수 있느냐”며 이씨를 혼냈다. “젊은 사람이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말도 따라나왔다. 수술의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의사는 전신마취 대신 부분마취를 택했다. 이씨는 수술기구가 몸속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모습과 소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수술이 끝나자 의사는 몸에서 꺼낸 덩어리까지 보여줬다.이씨가 휴대전화 알람으로 매년 떠난 생명을 기억하는 것은 당시의 죄책감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씨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도 놀랐겠지만 솔직히 나도 충격이 커. 나도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 혼자 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씨는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그의 어머니는 이씨의 동생을 가졌을 때 낙태를 고민했다. 터울이 너무 크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독교 집안인 탓에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이씨는 “원래 엄마랑 각별한 사이가 아니었다. 돌아가실 때도 큰 감정의 동요가 없었는데 수술하고 나니 저절로 떠오르더라”면서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내 편이 돼 줬을까 하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나 당시 룸메이트 외에 이씨가 자신의 낙태 경험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이 무서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는데, 정부가 내놓은 입법예고안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7일 현행 낙태죄를 유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만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내용의 입법예고안을 내놨다. 이씨는 “임신중절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거다. 그래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통증도 부채감도 여성만의 몫인데, 법으로까지 처벌하는 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아예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도 의미 있는 선택”이라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낙태도 불법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연락 부탁드립니다서울신문은 낙태죄 개정을 앞두고 임신중절을 직접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법적 처벌과 윤리적인 비난 사이에서 남몰래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clean@seoul.co.kr 으로 들려주세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한 여성의 선택은 죄가 아니라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 김병준, 김종인 겨냥 “부산시장감 없다니… 차라리 문 닫아라”

    김병준, 김종인 겨냥 “부산시장감 없다니… 차라리 문 닫아라”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부산시장) 후보가 안 보인다”는 발언을 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문을 닫아라”라고 비판했다. 김 전 위원장은 18일 페이스북에 “무슨 낯으로 공당이라 하며 국고보조금을 받고, 또 그 지도자라 하여 얼굴을 들고 나니나. 단 하루라도 말이다”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김 위원장 발언을 비판하면서 영화 ‘글러브’를 반대 사례로 들었다. 김 전 위원장은 “폭력행사로 징계를 받은 프로야구 간판투수가 지방에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 야구부 코치로 봉사하며 전국대회 출전을 준비하게 되는 이야기”라며 “팀플레이 자체가 어려운 아이들이 무슨 야구를 하겠는가. 그러나 아이들과 코치가 같이 뛰고 같이 울고 같이 넘어지고 하면서 실력을 쌓아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위원장 말처럼 정말 국민의힘에 서울시장감이 없고 부산시장감이 없나. ‘글러브’에서의 청각장애인 경우 정도 되는 사람도 없나 묻고 싶다”고 말했다. 또 “사람을 키우는 것도 공당과 그 지도자의 책무 중의 하나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같이 노력해서 좋은 인물로 다듬어주는 것이 도리”라면서 “당에 사람 없다는 그런 자해적 발언이 앞설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김 전 위원장은 서울·부산시장 후보군을 치켜세우면서 오히려 김 전 위원장은 낮게 평가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당을 운영해 본 사람으로서 분명히 말하건대 거론되는 후보들을 포함해 국민의힘에도 인물들이 있다. 잘못된 정치 문화와 질서로 인해 그 잠재성과 역량을 다 드러내지는 못했지만”이라고 밝혔다. 반면 “문제는 오히려 지휘다. 홀로 박수 받을 생각에 이 곡 저 곡 독주해 대는 것이 문제다. 이 사람 저 사람 줄이나 세우면서 말이다”라며 김 위원장을 겨냥했다. 아울러 “백번을 양보해 훌륭한 사람만 모시고 오면 된다고 하자. 지휘자가 나름 역량 있는 연주자까지 망신을 주며 홀로 독주를 하는 오케스트라에 관중이 몰리겠는가. 또 그런 오케스트라에 훌륭한 연주자가 지원하겠는가”라며 김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부산에서 열린 지역 언론 간담회에서 내년 4월 보궐선거와 관련, “지금 거론되는 인물 중에는 내가 생각하는 (부산시장) 후보는 안 보인다. 국회의원 3~4선 하고 이제 재미가 없으니 시장이나 해볼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정총리 “소비할인권 지급방안 논의…숙박·여행·외식은 신중 검토”

    정총리 “소비할인권 지급방안 논의…숙박·여행·외식은 신중 검토”

    정세균 국무총리는 18일 “그간 제한을 받아왔던 문화와 여가 활동을 방역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이나마 지원해 드리고자 한다”면서도 숙박·여행·외식 할인권은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 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경제도 경제지만 ‘코로나 우울’을 넘어 최근에는 ‘코로나 분노’, ‘코로나 절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사회 전반에 탄탄한 방역 체계를 갖추고 그 범위 내에서 민생경제 회복을 추진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회의에서는 방역상황에 따라 그동안 미뤄뒀던 소비할인권 지급 방안을 논의한다”면서도 “숙박·여행·외식 등에 대한 할인권 지급은 향후 방역상황을 좀 더 보며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는 “지난 한 주간 국내발생 확진자 수는 41명에서 95명까지 편차를 보여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생활 방역을 정착시키고 대규모 집단감염을 차단하는 한편 가을철 이동 증가 등 위험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처해야겠다”고 전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급속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전세계 확진자 수가 4000만명에 육박하는 등 ‘글로벌 2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현실화한 모습”이라며 “관계부처는 국가별 위험요인을 면밀히 분석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숙박·관광·공연·영화·전시·체육·외식·농수산물 등 8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1700억원 규모의 소비쿠폰 발급을 진행했다. 하지만 광복절 연휴를 전후해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사흘만에 중단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지난 16일 제1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방역당국과 협의해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재개시점을 확정활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36주 아이 20만원에 팝니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글[이슈픽]

    “36주 아이 20만원에 팝니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글[이슈픽]

    중고거래 앱에 “아이 입양” 글 올라와 충격경찰, IP 추적 나서…“게시자 신원 확인 중” 대표적인 중고 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인 ‘당근마켓’에 36주 된 아이를 입양한다는 판매글이 올라와 공분을 사고 있다. 17일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30분쯤 당근마켓 앱 제주 서귀포시 지역 카테고리에 “아이 입양합니다. 36주 되어있어요”라는 판매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아이가 이불에 싸인 두 장의 사진과 함께 20만원의 ‘판매가격’을 제시해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지만 캡처 사진이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분노 섞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네티즌들은 “세상이 너무 무섭다”, “너무 화가 난다”, “이건 아니지 않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등의 글을 올리면서 공분하고 있다. 현재 이 게시자를 처벌해달라며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게시물은 올라온 지 얼마 안 돼 삭제됐다”며 “16일 신고가 접수돼 IP 추적 등을 통해 게시자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게시자가 실제로 유아를 판매할 목적으로 게시물을 올렸는지 등을 먼저 파악한 뒤 아동복지법 위반 등 법률 적용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게시자가 판매글을 장난으로 올렸다 하더라도 처벌해야 한다는 등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LX 전 감사, 직원 성과급 수억원 반납받아 이상직 의원 후원”

    “LX 전 감사, 직원 성과급 수억원 반납받아 이상직 의원 후원”

    LX 전 감사, ‘동문’ 이상직 의원 지역구에 집중 기부감사원 감사 뒤 해임…김상훈 의원 “처벌 안 받아” 한국국토정보공사(LX)의 전 감사가 직원들로부터 반납받은 수억원의 성과급을 이상직(무소속) 의원의 지역구에 집중적으로 기부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은 16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LX의 류모 전 상임감사가 2018년 12월 공사 직원 성과급을 반납받아 4억 1700만원의 기부금을 조성해 31곳의 기부처를 정했는데 25곳이 전주시 완산구였다”라며 “이곳은 누구의 지역구냐”라고 물었다. 이에 김현미 장관은 “이상직 의원”이라고 답했다. 류 전 감사와 이상직 의원은 학교 동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LX는 2016년 8월 성과연봉제 조기이행 방침에 따라 지급받았던 성과급을 반납하도록 한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공사 직원 1290명이 반납한 4억 1700만원을 사회복지단체 등에 기부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류 전 감사는 자신의 직무권한을 넘어 다른 임직원의 소관 사항인 기부금 지급 대상을 직접 정한 것이다. 김 의원은 “류 전 감사가 기부처 31곳 중 25곳을 직접 선정해서 기부하고서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는데, 말이 되느냐”라며 “직원 성과급을 거둬서 친구 선거에 도와주려 했는데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 장관이 “류 전 감사가 감사원 감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자 김 의원은 “감사를 받았지만 그것으로 끝났다”며 “정상적이라면 감사 결과 고발돼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류 전 감사는 당시 이와 같은 부당 기부 외에도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사적으로 알고 있는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한 행위 등으로 올해 초 해임 결정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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