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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강북에 살아 보니

    [열린세상] 강북에 살아 보니

    창경궁 홍화문을 지납니다. 이 문 앞에서 영조는 균역법의 시행을 두고 양반과 평민들로부터 의견을 들었지요. 조금 더 가면 선인문이 나옵니다. 연산군이 쫓겨나고 사도세자가 죽음을 맞이했던 곳이지요. 이어서 ‘김상옥로’가 나옵니다. 일본 경찰 간부들을 처단하고 1천여명의 일경에 맞서 세 시간을 싸우다가 자결하신 곳이지요. 청계천을 지나면 장충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을미사변과 임오군란으로 순직하신 충신과 열사의 제사를 모신 곳입니다. ‘긴또깡’(김두한)이 살던 수표교도 이곳에 남아 있지요. 터널을 지나면 소월로를 만나게 됩니다. 봄이면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곳이지요. 강남 개발의 신호탄이자 경부고속도로의 시발점인 한남대교를 건너 사무실에 도착하게 됩니다. 제가 만나는 출근길 풍경이지요. 퇴근길은 교통 상황에 따라 길이 달라지다 보니 좀더 다양한 풍경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다리도 만나고, 대한민국 보물의 상징인 흥인지문도 만나고, 젊은 지성과 고뇌의 상징이었던 대학로도 만나게 되지요. 운이 좋은 날에는 한국 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사 앞을 지나기도 하고, BTS 공연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된 광화문을 지나기도 합니다. 조선 임금들의 최애 공간이었던 창덕궁과 그들의 신위를 모신 종묘를 지나기도 하지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에는 흥인지문에서 내려 낙산에 올라 석양을 보며 퇴근하기도 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인지 부쩍 외국인의 발길이 잦아졌습니다. 18년 전 서울에 정착할 당시 한강 이북에 조금 살다가 이남 지역으로 이사한 후 16년 만에 다시 강북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출퇴근길이 한없이 즐거웠지요. 보이는 곳마다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광화문으로 책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문득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기 오면 꼭 강남에 온 것 같아.” 순간 어리둥절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강남에 가면 차선이 넓고 반듯반듯하잖아. 강북에는 그런 곳이 없는데 여기는 꼭 강남처럼 길이 나 있거든.”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습니다. 강북에는 종로나 을지로 등을 제외하면 반듯한 길이 없는 데다 길 자체가 그다지 넓지 않습니다. 물론 강북은 구도심이어서 옛길 중심이고, 강남은 계획 도시이다 보니 처음부터 반듯하게 길을 내는 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산지와 평야라는 지형 차이가 더해졌겠지요. 그런데 강남과 강북의 차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선 지방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심 공동화 현상이 서울 강북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 도심인 종로와 중구는 밤이면 불이 꺼지는 지역입니다. 주거 환경이 노후화되다 보니 상주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때문에 초중고교 모두 소규모 학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지요. 심지어 폐교를 고민하는 학교마저 있을 지경입니다. 교육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명문대 진학률은 학부모에겐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지표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의학 계열이나 명문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강남북 간 최대 10배까지 벌어졌다는 통계도 있지요. 자치구별 재정자립도도 3배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복지나 공공서비스의 질이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한강은 이제 더이상 지리적 경계선에 그치지 않습니다. 경제와 교육, 공공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상징하는 뜻을 담은 경계이기도 하지요. 한강을 경계로 강북과 강남, 테헤란로를 경계로 테북과 테남, 양재천을 경계로 양북과 양남이라고 구분 짓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사람이 살아야 도시에 활력이 생기고 안전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결국 강북 발전의 최우선 과제는 밤에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드는 데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전 수원지검 1차장
  • ‘거지맵’ 보며 싼 점심 찾아 삼만리… 카풀 출근으로 티끌까지 모은다

    ‘거지맵’ 보며 싼 점심 찾아 삼만리… 카풀 출근으로 티끌까지 모은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직장인 윤모(32)씨는 6일부터 직장 동료와 카풀을 시작했다. 치솟는 기름값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다. 구의역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 일주일씩 번갈아 운전대를 나눠 잡기로 했다. 윤씨는 “월 15만원 정도 들던 기름값이 8만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 같다”면서 “출퇴근 시간을 맞춰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기름값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고 밝혔다. ●자동차 키 놓고 카풀·대중교통 이용 기름값은 연일 오름세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956원으로, 전날보다 8원 올랐다. 서울은 1988원까지 치솟으며 20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부담이 커지자 직장인들의 대응 방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카풀로 비용을 나누거나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으로 갈아타는 ‘출퇴근 생존법’이 일상 속에 자리 잡는 분위기다. 정책도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탰다. 서울시의 ‘4~6월 기후동행카드 월 3만원 페이백’ 지원책과 K-패스 환급기준 금액 절반 인하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대중교통 이용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평소 차로 출퇴근하던 김모(31)씨는 “회사까지 20분 정도 더 걸리지만, 페이백을 받으면 비용 차이가 확실하다”며 “회사에선 ‘6월까지는 무조건 대중교통’이라는 말이 오간다”고 전했다. ●극가성비 식당 모은 지도 ‘인기’ 고유가와 고물가가 겹치면서 점심시간 풍경도 달라졌다.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1만원 이하 식당만 모아둔 ‘거지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누구나 접속해 정보를 등록하고, 사용자 주변의 저렴한 식당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 점심시간이 되면 이 지도에 오른 식당들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찬다. 지도에 오른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은 이날 정오 전부터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북적였다. 처음 본 사람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7000원짜리 찌개로 점심을 해결한 직장인 황재희(43)씨는 “강남에서 1만원 미만 식사는 이제 ‘귀한 선택지’가 됐다”며 “도시락을 싸 오지 않으면 결국 저렴한 메뉴를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강남구 직장인 강다진(32)씨도 “2030 사이에서는 이 지도를 보며 6000원짜리 식당을 찾아다니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고 전했다.
  • 李대통령 “주차장이 무슨 가업, 기가 찬다”… 가업상속공제 30년 만에 손본다

    李대통령 “주차장이 무슨 가업, 기가 찬다”… 가업상속공제 30년 만에 손본다

    ‘세금 회피’ 수단으로 악용돼 온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도입 30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다. 가족 등 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곳을 ‘가업’으로 물려받으면 과세표준이 되는 상속재산가액을 기간에 따라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하는 제도다. 하지만 실제 빵을 굽지 않는 베이커리나 주차장업을 물려받으며 상속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도마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에 주차장업이 있는 것을 지적하며 “주차장에 특별한 기법이 뭐가 있나. 대상을 줄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어 “진짜 가치가 있는 걸로 해야지 무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공제 대상 업종이 많은 데 대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면서 “가업성이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주차장을 하는 것보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삼성 반도체에 훨씬 특화돼 있어 가업성이 더 높을 것 같다. 안 그런가”라고 반문했다.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은 이날 ‘가업상속공제 실태조사 결과’와 ‘가업상속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재경부는 1997년 제도 도입 후 지원은 크게 확대된 반면 요건은 완화돼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취지에 안 맞는 업종을 배제하는 등 제도 전반을 재설계하기로 했다. 직접 제조하지 않고 납품만 받는 음식점업이나 주차장업 등이 검토 대상이다. 토지를 이용한 과도한 공제를 방지하기 위해 공제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3.3㎡당 공제 한도 금액도 설정한다. 백년가게 등 다른 장수기업 제도가 최소 15년 이상의 경영 기간을 요구한다는 점을 고려해 현행 ‘10년 이상 경영·상속 후 5년간 사후관리’라는 조건도 상향 조정될 방침이다.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2026년 세법 개정안에 해당 내용을 반영할 계획이다. 국세청의 실태조사 결과 수도권 대형 베이커리 25곳 중 제과점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으나 실질적으로 공제 대상이 아닌 커피전문점으로 운영하며 가업상속공제를 남용한 곳이 11곳으로 확인됐다. 공제를 더 받으려고 가건물을 세워 유휴 토지를 사업용으로 둔갑시켜 세금을 줄이려 한 꼼수 사례도 적발됐다.
  • “IMF 때도 문 안 닫아… 가장 힘든 순간, 금융이 힘이 돼야”[월요인터뷰]

    “IMF 때도 문 안 닫아… 가장 힘든 순간, 금융이 힘이 돼야”[월요인터뷰]

    금융은 숫자로 움직이지만, 개인의 삶을 숫자에 모두 담을 수는 없다. 신용등급과 담보, 각종 지표가 판단의 기준이 되면 개인의 삶은 뒤로 밀리기 쉽다. 경기가 꺾이면 이 간극은 더 커진다. 대출 문턱은 높아지고 기준은 더 까다로워지면서, 가게를 유지하려는 사람이나 월세를 버텨야 하는 사람,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부터 줄에서 밀려난다. 어떤 조직은 달랐다. 사람을 보고 ‘금융(돈의 융통)’을 했다. 돈이 막힐수록 문을 닫지 않고 오히려 더 열었다. 그 선택은 단순한 대출을 넘어 “버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더 주목할 점은 그 결과다. 사람을 믿고 돈을 풀었는데도 조직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성장했고, 건전성도 함께 지켰다. 일어나야 했던 사람의 절박함과, 그 가능성을 믿은 금융이 함께 만든 결과였다. 궁금해졌다. 사람을 중심에 둔 금융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리스크를 감수하는 선택을 반복하면서도 어떻게 흔들리지 않았을까. 서울 소월로 신협중앙회 사무소에서 5일 고영철 신협중앙회장을 만나 그 ‘답’을 들었다. 전남 담양의 산골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형편이 어려울수록 삶의 기회가 얼마나 쉽게 좁아지는지를 몸으로 겪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교와 직장에서 신협 사람들을 알게 됐다. 더 어려운 사람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1993년 광주문화신협 설립에 ‘원년 멤버’로 참여했다. 그가 현장에서 세운 원칙은 단순하지만 분명했다. 금융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금이 돌지 않는 위기일수록 금융은 더 열려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 원칙은 말이 아니라 선택으로 이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는 “조합원이 신청한 대출은 한 건도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자금까지 막히는 순간 금융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그 결과는 분명하다. 광주문화신협은 33년간 단 한 번의 적자 없이 전국 3위 규모 조합으로 성장했다. 위기 때마다 현장에 자금을 풀며 버텨낸 그는 이제 총자산 160조 5000억원 규모의 신협 전체를 이끄는 중심에 서 있다. 숫자로 보이는 성과 뒤에는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신뢰가 쌓여 있었다. 다음은 고 회장과의 일문일답. 광주서 33년 무적자 신화돈줄 말라도 서민 대출 문은 열어야신뢰 바탕 160조 이끄는 수장으로-금융이란 무엇이라고 보나. “지역과 서민을 이해하고, 어려운 시기에 필요한 자금을 연결하는 것이 금융이다. 바로 신협이 해야 할 일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나는 광주문화신협의 실무 책임자였다. 은행들이 건전성을 이유로 소액 대출까지 조이면서 지역 자영업자와 서민들은 사실상 갈 곳을 잃었다. 담보가 있어도, 보증을 세워도 자금이 막히는 일이 반복됐다. 금융은 경제 활동을 뒷받침하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생계를 위한 1000만원, 2000만원 대출마저 막히는 것은 본질과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합원이 신청한 대출은 어떤 경우에도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분들은 부동산을 사거나 투기하려고 돈을 빌리려는 게 아니었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가게를 지키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돈이었다. 그런 자금을 연결하는 것이 신협의 역할이라고 봤다. ‘광주문화신협은 돈을 빌려준다’는 입소문이 났다. 다른 금융기관에서 외면받던 자영업자들이 몰렸고, 꽃집과 떡집, 식당, 마트가 하나둘 살아났다. 당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지금도 찾아와 고마움을 전한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식당을 운영하던 분이 있었다. 1000만원이 절실했지만 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연체 우려도 있었지만 대출을 승인했다. 그의 절박함을 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게 안에서 잠을 잘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결국 식당은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번호표를 뽑을 만큼 손님이 몰린다. 이 사장님은 이후 다른 금융기관의 제안이 와도 신협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이 신뢰이고, 신협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본다.” 희망을 잇는 생산적 금융자영업이 돌아야 고용·소비도 돌아생계냐 투자냐, 사람 보는 눈도 중요-금융권에 ‘생산적 금융’이 화두다. “생산적 금융은 대기업 투자나 첨단산업 지원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미래에 희망이 있지만 자본이 부족해 출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자영업자가 다시 일하고, 고용하고, 소비하고, 지역경제를 돌게 만드는 것도 생산적 금융이다. 신협은 규모에 맞는 방식으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결국 ‘사람을 보는 눈’이다. 같은 5억원짜리 자산이라도 투기 목적과 생계 목적은 완전히 다르다. 단순한 재무 수치나 담보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가족의 생계가 달린 자영업이라면 생산적 요소가 결합된 것으로 봐야 한다. 생계를 기반으로 한 대출은 결국 떼먹지 않는다. 상환 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자금이 생산적인지, 어떤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는 현장이 가장 잘 안다.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자금을 연결해 부가가치를 만들게 하는 것이 금융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과제 1호는 건전성 회복작년 PF발 8%대 연체율 절반 낮춰부실 채권 정리 등 자산 관리 강화-신협 전체를 이끄는 중앙회장이 되셨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건전성 회복이다. 부동산 PF 부실 영향으로 자산 건전성 문제가 커졌다. 부실채권 관리 자회사 케이씨유NPL대부를 통해 약 3조5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입했다. 그 결과 연체율은 지난해 중반 8%대에서 최근 4.83%까지 낮아졌다. 목표는 3% 이하다. 추가 출자를 통해 부실채권 매입 여력을 확대했고, 별도 자산관리회사 설립도 추진 중이다.” 금융 넘어 생활돌봄 구상요양·치료·주거 결합 ‘복지타운’ 추진권역별 연대·투자해 지역 인프라로-꿈은 뭔가. “신협은 금융을 넘어 삶을 함께하는 조직으로 가야 한다. 핵심 과제가 권역별 복지타운이다. 전국 조합원 가운데 약 285만명, 40% 이상이 고령층이다. 이들이 신협과 함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요양, 치료, 주거 기능을 결합한 복합 시설을 권역별로 구축하는 방식이다. 고령층은 식사나 일상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를 통합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인프라다. -구체적인 구상은. “개별 조합이 아니라 연대가 핵심이다. 조합 간 협력과 공동 투자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 수도권·영남·호남·충청 등 4~5개 권역으로 나눠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에만 253개 조합이 있고, 영남 200여개, 호남과 충청도 각각 100개 이상이 있어 연대 구조만 갖추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우선 출자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 설명하고 제도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 디지털 혁신·규제 개선 시급‘온뱅크’로 지역 특화 플랫폼 확장대출 한도·여신업 규제 해결 총력-인터넷은행을 포함해 디지털 전략은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지. “인터넷은행은 오해가 있다. 새로운 인터넷은행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운영중인 비대면 플랫폼 ‘온뱅크’를 고도화하겠다는 뜻이었다. 조합원 중심 서비스에서 벗어나 청년층과 비조합원, 소상공인까지 포괄하는 플랫폼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지역 밀착 금융에 특화된 디지털 모델을 만들겠다는 방향이다. 신협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지역 밀착형 금융에 있다. 대형 플랫폼 경쟁보다는 소상공인과 지방 중소기업, 서민층에 맞는 특화된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만드는 방향으로 접근하겠다.” -규제에 대한 입장은. “규제 필요성은 인정한다. 다만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예컨대 신협중앙회와 새마을금고중앙회의 동일인 대출 한도를 들 수 있다. 두 곳 모두 자기자본의 20%라는 기준은 같지만, 신협중앙회는 부동산·건설업 대출 한도 규제와 고액여신 한도 규제 등이 추가되면서 실제 대출 한도는 500억원 정도다. 반면 새마을금고중앙회는 1조원 이상의 대출도 가능해 격차가 크다. 신협은 한쪽 다리를 묶은 채 뛰는 상황이다. 신협은 외부 법인에 출자할 법적 근거가 없어 신협사회공헌재단 등에도 출자할 수 없는 구조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 역시 시장 점유율이 1% 수준에 불과함에도 은행과 동일하게 적용돼 자금 운용이 제약되는 상황이다. 규제 취지는 이해하지만 규모와 역할을 고려한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 ■ 고영철 신협중앙회장은 1959년생으로, 조선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광주문화신협 창립에 참여했다. 2016~2019년 광주문화신협 상임이사, 2020 ~2026년 이사장을 지냈다. 2026년 제34대 신협중앙회 회장에 취임했다.
  • 李 “추경에 지방 부담 증가?… 재정 여력 8.4조 늘어”

    李 “추경에 지방 부담 증가?… 재정 여력 8.4조 늘어”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편성된 ‘고유가 피해지원금’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이 커졌다는 주장에 대해 “말이 안 된다”며 정면 반박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X)를 통해 ‘추경안의 피해지원금 사업비 6조 1400억원 중 지방비는 20~30%인 1조 3200억원으로, 지자체 재정에 부담이 예상된다’는 취지의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를 공유하며 이같이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는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1인당 10만~60만원을 지급하는 피해지원금과 관련해 지방비 분담금이 1조 3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추경에서 지방정부 재정 여력 보강을 위해 지방정부에 주는 돈(지방교부세)은 9.7조원이고, 지원금 사업에 드는 지방정부 부담금은 1.3조원”이라며 “지방정부 재정 여력은 8.4조원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방 재정 부담이 늘었나요? 명백히 줄었다. 이건 초보 산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확대된 재정 여력에 대한 지방정부 자율 결정권을 침해하냐고 비판하는 건 몰라도, 재정 부담 증가는 말이 안 된다”고 적었다. 또한 “이 사업은 강제가 아니니 지방정부는 20~30% 부담이 싫으면 안 해도 된다”며 “그런데 지역주민에 대한 지원금 중 중앙정부가 70~80% 부담해주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거부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조금 더 부담해 주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여야는 오늘 10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이번주에 26조 2000억원 규모의 추경안 심사에 집중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중동 상황이 장기화되면 2차 추경도 검토하겠다는 생각이다. 홍익표 정무수석은 이날 MBN 인터뷰에서 “하반기에 추가적인 추경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도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7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여야정 민생경제 협의체 회담’을 열기로 했다. 이 대통령과 양당 대표가 청와대에서 마주하는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 선거구 획정 또 지연… “반 편성 없이 반장 뽑나”

    선거구 획정 또 지연… “반 편성 없이 반장 뽑나”

    6·3 지방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지 않아 예비후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반 편성도 않고 반장 뽑겠다는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선거구 획정이 지연되면서 후보들의 선거 운동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알권리도 제약받고 있다. 유권자의 추천을 받아야 출마할 수 있는 무소속 후보들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다. 전북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도의원 예비후보는 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선거구 획정이 빨리 돼야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는데 설만 무성하다”며 “‘깜깜이 선거’가 되면서 불편한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실체가 없으니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선거 운동을 해야 할지 갑갑하다”고 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심사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시도 차원의 선거구 획정 논의를 하려면 오는 17일까지는 입법이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국민의힘과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일단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진보 성향 4당은 지난 2일 광역의회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하는 등의 정치개혁 법안 처리에는 합의했다. 하지만 각 정당과 후보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탓에 선거구 획정은 단시간에 결론 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전북 장수군을 비롯해 부산 중구, 대구 군위군, 인천 옹진군 등 9곳은 인구 기준에 미달해 선거구 조정이 불가피하다. 의원 숫자를 늘리거나 중대선거구제 도입, 인접 지역과 합치는 방안 등이 거론되는데 국회 차원에서 결론을 내지 않으면 예비후보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선거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인구 하한선을 맞추기 위해 인근 지역을 합칠 경우 기존 선거구에서 선거를 준비하던 후보들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익숙하지 않은 지역민을 대상으로 유세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교선 민주당 강원도의원 춘천시 제2선거구 예비후보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우리 동네가 어느 선거구에 속하는지, 출마자는 어느 동네 주민을 대표해야 하는지 모르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직무유기가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며 “매번 법을 어기는 잘못된 관행은 이제 멈춰야 한다. 국회에서 하루빨리 선거구를 획정해 주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지방선거의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은 6개월 전이다. 그러나 법정 시한이 정해진 지난 2016년 이후 규정을 지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96일 전에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됐고 2022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선 42일 전에 선거구 획정을 위한 관련 법 개정이 이뤄졌다. 올해 치러지는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은 지난해 12월 5일로 이미 넉 달이나 지났다. 이에 경남정치개혁광장시민연대는 지난해 12월 23일 선거구 획정을 미루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국회를 대상으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선거구 획정 지연의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를 비롯해 소수정당과 무소속 출마자에게 집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무소속 후보는 추천장을 받아야 후보 등록을 하는데 선거구 획정이 안 돼 있으면 누구한테 추천장을 받아야 하는지부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서를 내고 “오랜 기간 조직과 체계를 갖춘 거대 양당과 달리 후보자 공천부터 많은 품이 드는 신규·소수 정당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치명적인 불이익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 고지원 ‘송곳 아이언’… KLPGA 국내 개막전 첫날 선두 굿샷

    고지원 ‘송곳 아이언’… KLPGA 국내 개막전 첫날 선두 굿샷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2차례 우승하며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던 고지원이 국내 개막전 첫날부터 힘을 냈다. 고지원은 2일 경기 여주시 더 시에나 벨루토CC(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더 시에나 오픈(총상금 10억원) 1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쳐 리더보드 맨 윗줄을 꿰찼다. 더 시에나 오픈은 올해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KLPGA투어 대회다. 보기 하나 없이 버디 5개를 골라내는 깔끔한 경기를 펼친 원동력은 18개 홀에서 딱 두번 그린을 놓친 송곳 아이언샷이었다. 퍼팅도 따라줬다. 그린 적중시 홀당 평균 퍼트는 1.69개에 불과했다. 출전 선수 전체 평균보다 2타 가량 낮았다. 지난해 드림투어에서 뛰다가 8월 제주 삼다수 마스터즈에서 우승을 차지해 단숨에 정규 투어로 승격했고 11월 S오일 챔피언십에서 두번째 우승을 거둔 비결 가운데 하나로 비거리 증대를 꼽았던 고지원은 이날도 겨울 훈련 동안 비거리를 꾸준하게 늘린 덕을 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드라마틱하게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늘어난 것 같다. 스피드 훈련과 근력 운동을 계속했고 체중도 늘었다”면서 “헤드 쪽에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장비로 풀스윙을 빠르게 하는 훈련을 꾸준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비거리가 늘어난 덕분에 두번째 샷을 좀 더 편하게 칠 수 있어서 경기가 수월하게 풀렸다는 얘기다. 지난 겨울 동안 쇼트게임 훈련에 중점을 뒀다는 그는 이날도 두번 그린 미스에서 어렵지 않게 파를 지켰다. 올 시즌 목표를 묻자 “작년에 성적이 괜찮다 보니 목표가 계속 커졌는데 오히려 그런 욕심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전에는 대상 같은 큰 목표까지 생각했지만 지금은 한 라운드, 한 경기씩 집중하는 것이 목표”라고 몸을 낮췄다. 작년 시드순위전을 수석으로 통과한 신인 양효진이 4언더파 68타를 때려 1타차 공동2위에 올랐다. 양효진은 신인왕을 다투게 된 김민솔(1오버파), 김가희(2오버파)와 동반 라운드에서 압승했다. 양효진은 “아마추어 때부터 늘 같이 치던 사이라서 긴장되지는 않았다”면서 “신인왕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음 먹으면 290야드 장타를 날리는 중학교 2학년생 김서아도 4언더파 68타를 쳐 아마추어 돌풍을 예고했다. 이번 시즌 첫 경기를 KLPGA투어에서 치르는 전 세계랭킹 1위 박성현은 평일임에도 몰려든 팬들 앞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부활 가능성을 보였다. 작년 상금왕 홍정민은 4오버파, 작년 대상 수상자 유현조는 1오버파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 [열린세상] 유권자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열린세상] 유권자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6·3 지방선거 예선전이 한창이다. 멸사봉공으로 예쁘게 화장한 면면이 화려하다. 이때쯤이면 우리는 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누구를 찍어야 하는가. 우리 편? 그러나 이 질문은 절반만 맞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대한민국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는 이미 좌와 우라는 대립 구도로 고착돼 있다. 정책의 내용보다 진영의 색깔이 먼저 소비되며 토론은 설득이 아니라 충성 경쟁으로 흐른다. 이 과정에서 많은 유권자는 피로를 느끼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좌도 우도 아니고 그냥 중도야.” 이 말은 무관심이 아니라 선언이다. 특정 진영에 자신을 묶지 않고 판단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중도’라는 이름 뒤에 아무 기준도 없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줏대 없음의 자백이다. 유동성에 불과하다. 결국 유권자의 힘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첫째, 이 정책은 실제로 작동하는가. 정치는 말로 시작하지만 정책은 구조로 완성된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되는가, 실행 과정에서 발생할 갈등은 어떻게 조정되는가,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설계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공약은 구호에 불과하다. 유권자는 우선적으로 작동 방식을 물어야 한다. 둘째, 이 정책은 지속 가능한가. 선거는 짧고 정책은 길다. 당장의 인기와 지지를 얻기 위한 정책은 다음 정부,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되기 쉽다. 재정이 감당 가능한 수준인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 수 있는가. 지속 가능성을 묻는 질문은 정치의 깊이를 가르는 기준이다. 셋째, 실패했을 때 책임지는 구조가 있는가. 정책은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반복될 때 사회는 학습하지 못한다. 공약이 안 지켜졌을 때, 정책이 부작용을 낳았을 때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가. 책임 없는 권한은 정치가 아니라 위험이다. 넷째, 이 정책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정책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를 바꾼다. 단기적으로 개인에게 유리한 선택이 장기적으로 사회를 왜곡한다면, 그 비용은 결국 다시 개인에게 돌아온다. 주인됨의 선택은 이 지점을 함께 고려하는 데서 시작된다. 다섯째, 이 정치인은 상황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가 아니면 말을 바꾸는가. 정책은 환경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태도다. 설명하는 정치는 신뢰를 만들고, 말을 바꾸는 정치는 불신을 쌓는다. 유권자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의 정직함을 평가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질문은 좌든 우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정 진영을 지지하더라도 이 기준을 포기하는 순간, 유권자는 선택자가 아니라 추종하는 존재가 된다. 그저 정치 협잡에 동원된 꼭두각시일 뿐이다. 반대로 이 기준을 유지하는 순간, 유권자는 비로소 정치의 주인이 된다. 그래서 투표는 기준의 선언이다. 말이 아닌 정책을 보겠다, 이미지가 아닌 구조를 보겠다, 단기 이익이 아닌 지속 가능성을 보겠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이 반복될 때 정치도 변한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는 중도를 얻지 못하면 집권하기 어렵고 진보는 의제 설정을 통해 중도를 끌어당기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진영이든 공통된 사실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중도, 즉 다수 유권자는 정책에 의해 움직인다. 이념이 아니라 체감되는 변화, 작동하는 제도, 책임 있는 운영에 반응한다. 결국 정치의 수준은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가 만든다. 우리가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정치의 방향이 결정된다. 감정과 분위기가 아니라 질문과 기준으로 투표할 때 정치는 비로소 경쟁이 아니라 설계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당신의 정책은 실제로 작동하는가, 그리고 다음 세대에까지 그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면 그 누구도 선택받을 자격이 없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 [사설] 韓에 대놓고 불만 트럼프… 몰아칠 청구서에 만반 대비를

    [사설] 韓에 대놓고 불만 트럼프… 몰아칠 청구서에 만반 대비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 대국민 연설에서 예상과 달리 이란 전쟁과 관련해 ‘종전 선언’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2~3주 동안 이란을 강하게 타격해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며 되레 엄포를 놓았다. 이 기간 중 이란과 종전 합의가 되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 시설과 원유 시설을 추가로 타격하겠다고도 경고했다. 그제 “우리는 곧 이란을 떠날 것”이라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고려하자면 특유의 협상 전술일 수도 있다. 종전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막바지 강공을 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진심이 무엇이건 한국으로서는 헤쳐 나갈 터널이 만만치 않다.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종전이 되더라도 에너지 수급 위기는 오래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제부터 비상 벨트를 더 바짝 조여야 한다. 무엇보다 심상치 않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드러낸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다. 그는 어제 연설에 앞서 가진 백악관 행사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언급하다가 “유럽 국가가 하게 두자. 한국이 하게 두자”고 했다. 이어 “(한국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험지에, 핵 무력(북한) 바로 옆에 4만 5000명의 군인을 두고 있는데도 말이다”라고 했다. 물론 파병에 불응한 일본과 중국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문제가 당면 현안인 우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몇 배나 더 무겁다. 특히 주한미군의 부풀린 숫자까지 들먹인 것도 가볍게 넘길 대목이 아니다. 이란 전쟁에서 스텝이 꼬인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안보 분야에서 동맹국들을 향해 무차별 청구서를 던질 수 있다. 예사롭지 않은 조짐은 벌써부터 엿보인다. 며칠 전 프랑스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확대회담에서는 한미 외교장관 회동이 불발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철강·농산물에 이어 인공지능(AI) 인프라 등 ‘무역 장벽’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안보 분야에서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를 경고한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 감축을 고리로 방위비 증액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전방위 청구서가 날아들기 전에 정부와 정치권, 기업이 힘을 모아 선제 대응해야 한다. 정부와 정유업계가 미국산 원유 도입을 늘리기로 한 것이 좋은 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연설에서 “미국산 석유를 사라”고 했으니 미국의 불만을 달래면서 우리의 원유 공급도 늘릴 수 있는 방책일 수 있다. 이란과의 협상을 통해 중동산 원유 수급의 물꼬를 트는 일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나의 친구들(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다산책방) “예술이라는 건 원래 아주 희미한 불꽃이야. 한숨 한 번에도 꺼질 수 있단 말이야. 예술에는 친구가 필요해. 이 불꽃이 자기 힘으로 환하게 타오를 수 있을 때까지 서로 몸을 맞대 바람을 막아주고 꺼지지 않도록 손으로 감싸줄 친구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화염이 될 때까지 그럴 친구가.” 지독한 고독을 견디고 사는 이들을 위로하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최근작. 학대, 따돌림 등 잔인한 현실 속에 놓인 10대 아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그린 ‘바다의 초상’을 남기고 뿔뿔이 흩어졌다. 25년 후 거리에서 페인트 낙서를 하는 열여덟 살 루이사가 그림 속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유머와 눈물, 감동이 교차하는 루이사의 여정을 따라 어린 시절 우정이 어떻게 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 풀어냈다. 583쪽, 1만 8000원. 없을 때까지 있는 단어(김언 지음, 난다) “타인에 대해 존중과 배려가 없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인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망신시키는 사람이다. 문제는 자기 망신을 초래하는 일을 스스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전에 자기 성찰을 하는 능력 자체가 부족한 데서 생기는 일일 것이다.” 12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네 번째 책. 겨울과 여름, 3월과 5월 사이 “그저 낀 상태로 머무는”(작가의 말) 애매한 4월을 보면서 시인은 삶의 품격을 떠올리고(4일 에세이) 슬픔을 말하며(17일 시) 새벽의 위로를 본다(22일 시). 매일 한 편씩 시인의 담백한 일기를 공유하는 맛이 있다. 200쪽, 1만 7000원. 돈 주운 자의 최후(이여민 지음, 유영근 그림, 비룡소) “내가 묻자 두현이는 기름 묻은 입가를 도복 소매로 쓱 닦으며 도리질을 쳤다. “아빠가 현금은 잃어버리면 끝이라고 다음부터 더 조심하라고 했어요, 형.”…툭하면 호주머니에 넣어 둔 돈이 도망간다는 1학년 선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두민이가 길에서 돈을 주웠다. 주운 돈을 경찰서에 갖다 줬다가 실망한 경험이 있는 두민이는 돈 주인을 직접 찾겠다고 했고, 여러 이유로 동네 아이들도 줄줄이 따라붙으며 ‘모험’이 시작됐다. 가치에 대한 생각, 타인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태도 등 어른들도 맞닥뜨릴 수 있는 질문을 남긴다. 올해 제15회 비룡소 문학상을 수상했다. 108쪽, 1만 4000원.
  • 세대 갈등·충돌에 취약한 사회… ‘영포티’를 논쟁거리로 만들다

    세대 갈등·충돌에 취약한 사회… ‘영포티’를 논쟁거리로 만들다

    2030세대 기회 줄고 경로 단절 누적40대의 태도보다 사회구조 영향 커 젊은 감각과 적극적 소비, 자기관리의 대명사였던 ‘영포티’는 어째서 젊어 보이려는 안간힘, 기득권적 여유, 과시와 허세의 이미지로 바뀌었을까.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정책실에서 한국 사회의 주요 정치·경제 현안을 대상으로 정책 분석과 구조적 연구를 수행했던 저자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뜨거운 논쟁 대상이 된 영포티를 분석한다. 그는 영포티가 세대 간 간극, 갈등이 더 큰 충돌로 비화되기 쉬운 구조적 환경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표식이라 설명한다. 그러면서 영포티라는 이름이 은폐하고 있는 사회 설계의 결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밝힌다. 영포티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는 ‘늙지 않는 중년’이라는 비교적 이상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정적인 사회적 용어로 변모했다. 저자는 “왜 한때 장려되던 삶의 방식이 어느 순간부터 비난의 표적으로 전환되었는가”라고 질문한다. 이는 40대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2030세대가 경험한 기회 축소와 경로 단절의 누적과 맞물려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세대 간 자산 격차를 단기간에 증폭시킨 계기였다. 유동성 확대와 자산 가격 급등은 기존 자산 보유자에게는 복리 효과를 가속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그러나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집단에게 그 상승은 기회가 아니라 장벽이 됐다. 그때 호출된 이름이 영포티였다는 것이다. 유독 40대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2030세대의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에 말해 온 기준과 현재의 선택 사이의 단절이다. 말은 남아 있고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데, 그 말이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순간 일관성은 붕괴되고 신뢰는 증발한다. 권력과 일상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설명 없는 태도는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다. 저자는 갈등을 만들어 낸 구조를 바라봐야 이름만 바뀐 채 반복해서 재생산되는 영포티 같은 표식의 본체를 드러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저출산·고령화 ‘가족 절벽’ 시대… 느슨한 관계 속 행복 찾기

    저출산·고령화 ‘가족 절벽’ 시대… 느슨한 관계 속 행복 찾기

    ‘가족은 이래야 한다’ 문화적 압력구성원 사생활 대립하게 만들어결혼과 출산 고집은 시대착오적 “가족은 중층적 의미를 담은 단어다.” 가족학·인구학 전문가인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복잡미묘한 현재 한국 사회 가족의 모습을 살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는 통계와 정책, 비즈니스와 경제 분야 담론에 가려져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개인과 가족의 삶을 조명한다. 과거에 급제해 가문을 일으키던 조선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개인의 성공 = 가족의 성공’이라는 공식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연습생이 가족을 떠올리며 성공을 꿈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개인의 성공과 가족의 성공이 분리되지 않는 현상을 ‘가족주의’라고 한다. 가족주의는 하나의 신념 체계로 ‘가족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문화적 압력이다. 특히 서정적 가족주의는 정서적 유대감으로 맺어진 이상적인 가족에 대한 신념으로 ‘가족은 모진 세상의 풍파 속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라는 이상을 심어준다. 저자는 가족주의가 역설적으로 가족을 회피하게 만들며, 구성원의 사생활과 대립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또 이런 양가감정 때문에 죄책감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배경에는 가족을 신성화하는 ‘가족 신화’가 있다고 꼬집는다. 이런 가족 신화는 갈등을 회피하게 만들고 죄책감을 유발하며 궁극적으로는 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결혼과 출산이 가족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가족 절벽’ 시대, 저출생·고령화·양극화의 파고 속 변화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끊임없이 변한다. 저자는 ‘모든 가족은 고유하며, 모든 가족은 다르다’라는 인정에서 가족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또 굳이 관계성에 대한 로망을 꼭 가족에 국한할 필요도 없다고 조언한다. 느슨하고 사소한 관계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후지산 북쪽엔 한일 경계인의 서사가 흐른다

    후지산 북쪽엔 한일 경계인의 서사가 흐른다

    후지산 절경에 숨어 있는재일교포 이양지 문학비경계인의 흔적 되짚어 봐‘인증샷 핫플’ 혼마치 거리 낮은 건물 늘어선 골목 끝후지산은 마치 액자 같아‘후지고코’ 5개 호수 명소주변에 관광 인프라 가득후지큐 하이랜드도 아찔후지산을 처음 본 건 오래전 신칸센 차창 너머였다. 일본 도쿄에서 서쪽 방향으로 달리던 열차가 도심을 벗어날 무렵, 느닷없이 차창 밖으로 거대한 흰 봉우리가 들이닥쳤다. 정상에 눈을 이고 있는 후지산이었다. 그 박력 넘치는 등장에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탄성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야마나시는 바로 그 후지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현이다. 야마나시현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이제부터 전하려는 건 조선과 한국을 사랑했던, 후지산 북쪽 기슭에서 온 사람들과 그들이 거닐었던 풍경에 관한 이야기다. 야마나시현은 도쿄에서 특급열차로 한 시간 반이면 닿는다. 주말이면 어지간한 관광지 주차장은 도쿄 지역 번호판을 단 차들로 북새통이다. 그만큼 도쿄 사람들에게 야마나시는 근교 여행지로 인식되고 있다. 야마나시현은 내륙의 분지다. 전체적으로 고도가 높다.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강원 평창군의 700m 보다 높은 800~900m 정도의 고지대에 대부분의 도시가 형성돼 있다. 한국인에겐 마음 불편한 벚꽃길 먼저 후지요시다시의 아라쿠라야마 센겐 공원부터 간다. 야마나시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특히 벚꽃이 피는 봄철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산인해다. 과장 좀 보태 100개 나라 언어를 한꺼번에 듣는 느낌이다. 해마다 벚꽃 필 무렵에 주민 축제가 열렸지만 올해는 취소됐다. ‘오버 투어리즘’ 때문이다. 공원뿐 아니라 도시에 산재한 명소들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의 일본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곳곳에서 주민 불만이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아라쿠라야마 센겐 공원을 먼저 소개하는 건 야마나시를 대표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불편할 수 있는 여행지라는 걸 무엇보다 앞서 말하고 싶어서다. 아라쿠라야마 센겐 공원은 가장 일본적인 풍경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후지산과 벚꽃, 붉은색 오층 건물이 완벽한 구도로 어우러져 있다. 일본을 소개하는 관광 포스터에서 수없이 봤던 바로 그 풍경이다. 문제는 추레이토(충령탑)라 불리는 붉은 오층탑이다. 야마나시 출신 전사자의 위패가 이 탑에 합사돼 있다. 한데 이들이 어느 지역 전투에서 사망했는지가 불분명하다. 한반도에서 빚어진 양국 간 전쟁에 투입됐다가 전사한 군인의 위패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 유명한 공원에서 기필코 마주해야 할 건 재일교포 이양지 문학비일런지도 모른다. 그의 문학비는 찾기가 쉽지 않다. 야마나시 최고의 풍경을 굽어보는 ‘명당’ 인근에 옹색하게 숨어 있어서다. 이양지(1955~1992)는 재일교포 소설가다. 일본 이름은 다나카 요시에. 한국계로는 두 번째로 1989년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제주도 출신 부모를 둔 이양지가 나고 성장한 곳이 바로 후지요시다이다. 도쿄의 명문 와세다대학을 다니던 그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한국말로 떠드는 관광객을 만났다. 당시 재일교포 사이에서 신분을 노출할 수 있는 한국어는 일종의 금기였다. 그런데도 ‘2류 국가’에서 온 한국인은 거리낌이 없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된 그는 와세다대를 중퇴하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1982년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조국과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탐색했다. 그 경험이 소설 속 인물들의 언어가 됐다. 그는 재일 한국인 유학생의 좌절과 환멸을 다룬 소설 ‘유희’(由熙)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단을 놀라게 했다. 그가 정한 제목 ‘유희’는 ‘밝음에 이르지 못한 존재’를 뜻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한국무용을 공부하던 그는 1992년 일본으로 돌아가 장편소설 ‘돌의 소리’를 집필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서른일곱 안타까운 나이에 숨을 거뒀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던 작가가 어린 시절 매일 올려다보던 하늘, 후지산이 보이는 이 공간에 문학비가 세워진 건 그런 까닭일 것이다. 센겐 공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시모요시다 혼마치도리가 있다. 편의점인 로손 가와구치코마에점에 견줄 만큼 소셜미디어 핫플로 떠오른 곳이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옛 상점가로, 낮게 깔린 건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그 골목 끝에 후지산이 액자처럼 걸렸다. 맑은 날이면 거리를 걷는 내내 후지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골목을 천천히 걸으면 오래된 시계점, 된장 가게, 작은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전통 양식의 건물들도 곳곳에 남아 있다. 관광지인데도 지나치게 꾸미지 않아 일상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고소한 튀김 냄새를 따라가면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소박한 식당이 나온다. 후지요시다 명물인 요시다 우동을 파는 곳이다. 얼요기 정도로 먹는 건 나쁘지 않지만, 한 끼 식사로 생각하지는 마시길. 아직 야마나시 현민들의 소울 푸드, 호토 국수가 남아 있다. 복사꽃 산골서 만난 가네코의 삶야마나시를 대표하는 건 물론 벚꽃이다. 하지만 복사꽃의 위세도 만만하지 않다. 4월이면 야마나시 분지 전체가 복사꽃 연분홍으로 물든다. 복사꽃 향기를 따라 야마나시시 마키오카초의 산골 마을로 들어서면 ‘문제적 여자’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시비와 만난다. 가네코의 동지였던 구리하라 가즈오 등이 1974년 그의 삶과 행적을 기려 세운 시비다. 가네코는 ‘불량스러운 조선의 아나키스트’ 독립지사 박열(1902~1974)의 아내였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추서한 일본인 독립유공자다. 그가 태어난 곳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지만 성장한 곳은 야마나시다. 시비가 건립된 곳은 가네코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 유년 시절을 야마나시에서 보낸 그는 아홉 살 때 충북 청주시 부강면(현 세종시)의 고모 집으로 건너가 7년을 살았다. 후지산을 빼닮은 부강면의 부용산이 그가 절망 속에서 찾아가던 위안의 산이었다. 부강에서 3·1 만세운동을 목격한 뒤 야마나시로 돌아와 혁명의 길로 들어선 그는, 도쿄에서 만난 박열과 함께 일왕 폭살을 계획하다 체포돼 스물세 살에 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현재 야마나시에 남은 그의 흔적은 거의 없다. 마키오카초의 시비, 그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가네코 타카시 가족이 2017년까지 살았던 집 정도가 고작이다. 다행히 2003년부터 짝수 해마다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관과 일본 가네코 후미코 연구회가 공동으로 시비 앞에서 추도식을 연다. 조선의 美 사랑한 아사카와 형제 야마나시현 동북쪽에 가네코가 있다면 서북쪽 호쿠토시엔 아사카와 형제가 있다. 형인 노리타카는 ‘조선 도자기의 신’이라 불린다. 1913년 경성(현 서울)의 소학교에 미술교사로 온 그는 1946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33년 동안 조선 도자 연구에 몰두했다. 1914년엔 그의 권유로 동생 다쿠미도 조선에 온다. 다쿠미는 황무지 같았던 한반도의 녹화운동에 헌신했다. 현 한국 인공림의 37% 정도가 그의 공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쿠미는 급성 폐렴으로 40세에 요절하면서 “조선의 옷을 입혀 조선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조선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그의 관을 매겠다며 나선 조선인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동생을 먼저 보낸 노리타카는 이후 반평생 모았던 공예품과 도자기 등을 신생 한국에 기증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1964년에 세상을 떴다. 아사카와 형제의 고향인 호쿠토시에 일본 내 3대 ‘장수 벚꽃’으로 꼽히는 ‘야마타카진다이 자쿠라’가 있다. 믿기 어렵긴 한데, 공식적으로 수령이 2000년에 이른다고 한다. 이웃한 니라사키시엔 와니쓰카 벚꽃이 있다. 들녘에 핀 ‘홀로 벚꽃’으로, 후지산 등 주변 풍경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벚꽃이 피는 시기엔 경관 조명을 한다. 이 장면 하나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객과 사진작가들이 몰린다.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 사이에 솟은 후지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한데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이다. ‘신앙의 대상’과 ‘예술의 원천’이 등재 이유다. 후지산과 주변 신사, 호수 등 25곳의 구성 자산이 포함됐다. 후지산 관찰에는 새벽부터 이른 오전 시간대가 좋다. 말간 공기 덕에 선명한 후지산을 보기에 유리하다. 치맛자락처럼 뻗은 후지산 아래로 여행 명소들이 별처럼 박혔다. 다섯 개 호수를 이르는 이른바 ‘후지고코’(富士五湖)가 대표적이다. 모토스코, 쇼지코, 사이코, 가와구치코, 야마나카코 등이 후지고코다. 1707년 후지산 대분화로 형성됐다. 오감이 만족하는 후지산 기슭가장 유명한 건 가와구치코다. 후지산이 물 위에 거꾸로 비친 모습, 이른바 사카사후지(逆富士)로 이름났다. 그러니까 데칼코마니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는 건데, 사실 맑고 바람 없는 날엔 다섯 호수 모두 이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다만 일본인 시각에서 그 장면이 가장 빼어난 곳이 가와구치코인 거다. 명성에 걸맞게 주요 명소를 도는 ‘레드 라인’ 버스, 텐조산 정상까지 오르는 케이블카, 호수 북쪽의 오이시 공원 등 다양한 관광시설이 조성돼 있다. 호수 북쪽의 가와구치 아사마 신사는 인증샷 성지다. 특히 신사 뒤 요배소(遥拝所)가 인기다. 붉은 도리이 사이로 후지산이 담기는 사진 한 장을 위해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다른 호수들도 저마다 한 가지 ‘캐릭터’는 갖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 붙어 있으니, 렌터카를 가져갔다면 천천히 다섯 호수 전체를 돌아보길 권한다. 가와구치코와 후지요시다 사이에 후지큐 하이랜드가 있다. 이른바 일본 내 ‘4대 절규 머신 성지’ 중 하나다. 하늘 위로 사람들을 ‘내던지는’ 놀이기구들이 득시글댄다. 후지산을 보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재미가 각별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향토 음식 먹고 온천으로 마무리 속이 출출할 때는 호토가 딱이다. ‘며느리라면 호토를 잘 끓여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야마나시현민들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음식이다.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이튿날 아침으로 먹는 것이 현지 가정집의 오랜 방식이라고도 한다. 우리 수제비와 비슷한데, 꽤 맛있다. 과자 ‘쫀디기’를 닮은 길고 끈적한 면과 단호박, 감자, 표고버섯 등의 채소가 걸쭉한 국물과 어우러진다. 가와구치코 인근에 호토만 내는 집들이 몇 곳 있다. ‘오픈런’을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식당에서 한 시간 남짓 대기해야 한다. 이 지역 별미인 말고기 육회를 곁들여 먹길 권한다. 값이 비싸 지갑은 홀쭉해지겠지만. 후지큐 하이랜드 바로 앞에 후지야마 온천이 있다. 이 온천의 자랑은 일본 최대 규모의 순수 목조 욕탕이다. 천장 높이가 12m를 넘고 100평(약 330㎡)이 넘는 대욕장은 전통 건축 방식인 못을 사용하지 않는 이음새 공법으로 지었다. 온천수엔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효과가 있다는 바나듐이 풍부하게 함유됐다고 한다. 3층에 다다미 전망 라운지가 있다. 누워서 후지산을 볼 수 있다.
  • “2~3주 이란에 극강 타격”…종전 기대감 부순 트럼프

    “2~3주 이란에 극강 타격”…종전 기대감 부순 트럼프

    “목표는 거의 달성”추가 강공 예고호르무즈 개방도 각국에 떠넘기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이란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자평하며 2~3주 동안 대대적인 타격을 가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할 경우 휴전을 검토할 수 있다며 종전 기대감을 띄운 지 하루 만에 공세 강화로 돌아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진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지난 4주 동안 우리 군은 (이란에) 전례 없는 승리를 거뒀고 테러 정권 지도자 대부분이 사망했다”며 “전략 목표가 거의 달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2~3주 동안 강력한 타격을 가해 그들이 원래 있어야 할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며 강도 높은 추가 공격을 시사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종전 방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이란 기대가 나왔지만, 공세 강화에만 방점을 찍었다. 지난 2월 28일 개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생방송 대국민 연설을 한 건 처음이며, 18분가량 진행됐다. 그는 “이란의 석유 시설은 가장 쉬운 목표물임에도 불구하고 타격하지 않았다”며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발전소 등 주요 타깃을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에 대해선 “우리는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란은 사실상 괴멸했으니 세계 각국이 해협을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전쟁이 끝나면 국제유가가 진정되고 증시도 회복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 불참한 동맹국에 불만을 터뜨리면서 한국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오찬 행사에서 “한국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험지에, 핵 무력(북한) 바로 옆에 4만 5000명의 군인을 두고 있는데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방어를 위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는 걸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한미군은 2만 8500명 규모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에도 부풀린 숫자를 자주 거론했다.
  • [데스크 시각] 바람이 무섭다

    [데스크 시각] 바람이 무섭다

    바람이 무섭다. 영남은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후보를 찾기 힘들었던 험지였는데, 이제는 제 발로 찾아와 후보 공개 면접에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외친다고 한다. 보수 출신 인사들끼리 민주당 경선을 치르는 이색 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견조하게 나오자 나타난 현상이다. ‘큰 선거는 조직이 바람을 못 이긴다’는 지론을 가진 정청래 대표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여는 것도 ‘바람몰이’ 역할을 자처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간 당대표가 찾지 않던 시군구까지 내려와서 현장 최고위를 하니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에 출마하는 예비 후보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 ‘기호 1번’이 적힌 파란 점퍼를 입은 예비 후보들이 정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길게 줄 서는 걸 보면, 이 사진 한 장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바람에 취해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지 못할까 걱정이다. 지역 일꾼인 줄 알고 뽑아 줬는데 기실 자신의 출세 욕구를 위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간판을 이용한 것이라면, 실망한 유권자들이 그 다음 선거에서 여당에 마음을 내줄까. 바람이 무섭다지만 더 무서운 건 바람이 한 방향으로만 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종 후보를 뽑는 지금 이 시간이 중요하다. 기왕 지역에 내려가 현장 최고위를 한다면 보여 주기식 행사를 넘어 실제 지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담아듣는 시간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그러면 그럴듯한 공약으로 포장한 후보와 그 지역에 꼭 필요한 후보가 누구인지 자연스레 가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7~28일 경북 의성과 영덕을 찾은 정 대표가 어민들과 조업을 한 뒤 “현장에 가면 여의도에서 몰랐던 디테일을 듣게 된다”고 한 것 역시 결국 정치도, 행정도 다 현장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의원은 금요일 저녁에 지역구로 내려가 지역민과 소통하고 월요일 오전에 다시 국회로 복귀해 의정 활동을 하는 ‘금귀월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주말에 계속 본회의가 열려 금·토·일 사흘 동안 ‘서울→지역구→서울→지역구→서울→지역구→서울’을 반복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지역구가 전남 지역이라 서울까지의 거리가 상당한데도 금귀월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직접 눈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있어서라고 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부터 사람들의 표정까지. 이걸 이 의원은 이렇게 표현한다. “삶을 읽는 거죠.” 최근 민주당 서울시장·경기지사 예비 경선에서도 시민의 삶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있었다. 김영배 의원은 서울시민의 ‘시간 불평등’을 해결하겠다며 귀가하는 마지막 1㎞에 주목했다. 만원 전철에서 내려 다시 지친 몸을 이끌고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야 하는 시민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이들의 턱밑까지 차오른 숨소리를 외면하는 정치는 자격이 없다”고. ‘덜 피곤한 경기인’을 공약한 권칠승 의원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을 위해 프리미엄 버스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역구 숙원인 ‘GTX-C 노선 병점 연장’을 공약에 끼워 넣을 법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권 의원은 경기지사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경기도민의 고충을 최대한 빨리 해결할 수 있는 해법 찾기에 충실했다. 이들의 도전은 예비 경선에서 끝났지만 집권여당 후보의 공약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줬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전국의 예비 후보들도 바람에만 의존해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출마를 결심했다면 지역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삶을 읽어 낼 역량도, 의지도 없다면 이쯤에서 내려놓자. 국회 본관 정문에 새겨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글귀를 볼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져서 하는 말이다. 김헌주 정치부 차장(부장급)
  • [손열 칼럼] 미중 정상회담을 향한 미중일 삼국지

    [손열 칼럼] 미중 정상회담을 향한 미중일 삼국지

    트럼프 쇼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상호관세 재인상 압박에 대미투자특별법을 만들며 총력 대응하는 사이, 미국의 이란 공습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파병 압력에 처했고 향후 전황에 따라 어떤 청구서를 받을지 모른다. 트럼프발 오일 쇼크는 한국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동병상련의 일본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19일 미일 정상회담을 치렀다. 트럼프의 무리한 요구가 돌출할 수 있는 위태로운 회담에서 다카이치는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에게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사람은 오직 도널드”라는 아첨과 함께 대미 투자 선물 보따리를 풀어 일단 미국의 강압을 피해 갔다. 한국은 호르무즈 파병에 관해 선례가 될 수 있는 일본의 대응에 주목했지만, 정작 일본의 시선은 중국에 가 있다.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중국의 외교적·군사적·경제적 강압으로 중일 관계는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미중 양국 간 유화 국면이 조성되어 자국의 안보 이익이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애당초 3월 말로 예정된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 이전에 어렵사리 미일 정상회담을 마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미국에 유화 자세를 이어 가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달 8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이란 공습 중지를 요구했으나 직접적인 비판은 삼갔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쌍방이 적절한 환경을 정비해 불필요한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호르무즈 파병 요청을 명시적으로 거부한 유럽과 달리 중국은 “각 당사국들과 연락을 유지하며 긴장 완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반응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기 회복이 시급한 트럼프에게 미국산 농산물과 항공기, 나아가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란 선물도 띄우고 있다. 이러한 자세 뒤에는 정상회담을 앞둔 중국의 심모원려가 깔려 있다. 트럼프에게 대만 문제에 유리한 발언을 유도해 다카이치에게 일격을 가하는 한편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에 자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대접받고 있음을 과시하고 트럼프가 동맹보다 미중 관계 구축을 더욱 중시한다는 점을 발신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미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축소하고 대중 관계를 중시하라는 시그널이자 동맹 이완을 유도하는 책략이다. 일본은 트럼프가 중국의 노림수에 걸려들지 않도록 동맹의 중요성을 강력히 어필했다. 트럼프는 동맹을 거래관계로, 동맹국을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 일본은 자국이 대체 불가한 동맹임을 인식시키기 위해 거래 가능하고 매력적인 대미 투자 ‘카드’를 선별했다. 인공지능(AI) 개발에 따른 전력 수요 확대에 대응해 가스 화력발전소 및 차세대 소형원자로(SMR) 건설 등 에너지 카드,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핵심광물인 희토류 리사이클과 제련 사업, 동 광산, 리튬 생산에 대한 미일 합작 투자 등 경제안보 카드, 그리고 미사일 공동 개발과 생산을 제안하는 방위산업 카드 등이다. 일본이 선택한 에너지·핵심광물·방산 패키지는 대미 투자 사업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에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미일 관세 합의가 한미 관세 합의의 준거가 됐듯이 말이다. 한국 측이 내건 전략적 투자와 상업적 합리성 기준, 그리고 미국 측의 에너지 투자 요구를 조합해 보면 일본과 유사한 투자 패턴이 나올 듯하다. 문제는 중국이다. 미국이 전쟁의 수렁에 빠져 동맹국의 신뢰를 상실해 가는 사이 중국은 국제적 위상을 높이며 한국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드 보복 사태 이래 한국은 대중 의존도 감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지만 무역, 핵심광물, 자본시장에서 중국의 압도적 지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안보상 중국에 여러 초크 포인트(급소)를 노출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중 긴장 완화는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동맹의 이완과 미국의 대중 경제안보 태세 약화로 이어지는 경우 한국의 대중 취약성은 가중될 것이다. 대미 투자와 자주국방 추진 정도로 중국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우리만의 심모원려가 필요하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꿰맨 양말로 찾은 시신… 78년 만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렀죠”

    “꿰맨 양말로 찾은 시신… 78년 만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렀죠”

    “꿰맨 양말을 보고 니 아방(아버지)인 줄 알았져. 산더미처럼 쌓인 시신들 더미에서, 안 그랬으면 찾지도 못했을 거여.” 1일 서울신문과 만난 제주4·3 희생자의 유족 고계순(78)씨는 1948년 겨울 군경 토벌대에 의해 총살된 아버지(고석보씨)의 이야기를 꺼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김보희씨)는 시아버지와 함께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헤매고 또 헤맸다. 고씨가 태어난 지 6개월도 안 됐던 때였다. 어머니는 홍역을 앓아 고열에 시달리는 고씨를 업은 채였다. 그해 겨울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들 만큼 매서웠다. 어머니는 자신이 직접 꿰맸던 양말 한 짝을 보고 남편이라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무자년 동짓달 스무날은 그렇게 아버지의 제삿날이 됐다. 직접 꿰맨 양말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시신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구르마에 싣고 오다가 남의 밭에 묻었던 시신은 나중에 봉개동 가족묘지로 이장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은 고씨는 고열로 인해 청력을 거의 상실했다. 열 살이 돼서야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이 몰살됐듯, 그렇게 총에 스러진 사실을 알게 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큰고모 자식들은 군불 때는 아궁이 속에 숨어 겨우 목숨을 구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4·3 희생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은 생존 자체를 위협했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나이가 될 무렵 군대에서 제대한 작은아버지가 결혼하면서 고씨를 자신의 자식으로 호적에 올렸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가슴에 묻어둔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 또 다른 상처가 찾아왔다. 7남매를 둔 작은아버지가 별세한 뒤 고씨는 친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작은아버지 호적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더욱 진해졌다. “희생자로 인정해 달라고, 호적 좀 바로잡아 달라고…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어요.” 2년여가 흐른 지난 2월 13일 고씨는 78년 만에 아버지를 되찾았다. 국무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그를 희생자 고석보씨의 친생자로 인정한 것이다. 고씨는 “아버지를 한 번도 잊은 적 어수다. 이제 맘이 편해마씸. 한이 풀렸수다”라며 목메인 듯 말을 멈췄다. 오영훈 제주지사가 고씨의 집을 찾아 4·3위원회의 결정서를 직접 전달했다. 결정서에는 “고계순은 희생자 망 고석보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씨를 포함해 4명에게 4·3 희생자와 친자 관계를 확인하는 결정이 처음 내려졌다. 조천 출신 김영석씨의 딸 순자(80)씨, 성산 출신 김철호씨의 딸 정해(78)씨, 구좌 출신 이완배씨의 딸 애순(77)씨 모두 출생 신고가 이뤄지기 전에 부친이 토벌대에 총살당하거나 형무소 수감 중 행방불명되며 할아버지의 자녀로, 부를 공란으로, 자신을 호주로 출생신고 돼야 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 집안 족보, 희생자의 묘비, 친인척의 증언 등을 통해 아버지를 되찾았다. 4·3으로 인해 비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2021년 4·3 특별법이 개정되면서다. 기존 가족관계등록법으로는 생부가 행방불명돼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한 경우 친자 관계를 인정받기 어려웠으나 4·3 관련 특례 규정이 이때 신설됐다. 2023년 7월부터 관련 신청이 본격적으로 이뤄졌으며 지난해 4월부터는 도 차원의 사실 조사가 완료된 건에 대해 실무위원회 심의가 본격화했다. 지금도 많은 유족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기록해 달라”며 신청서를 내고 있다. 도에 따르면 3월 기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은 희생자와의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221건을 포함해 499건(취하 73건 제외)이 접수됐다. 4·3 관련 가족관계 정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과 한 가족의 역사를 되찾는 일이다. 고씨는 인터뷰 말미에 “아버지가 살아 있었으면 엄마도 재혼 안 했을 테고 내게도 형제자매가 있었을 텐데…”라고 이야기하며 말끝을 흐렸다. 도는 지난달 26일 제243차 실무위를 열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10건을 추가 의결했다. 이 중 희생자와 자녀 사이의 친생자 관계를 확인·인지한 사안이 8건이다. 모두 고씨의 사례와 유사하다. A씨 등 7명은 출생신고 전 부친의 사망으로 희생자의 형과 형수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출생신고됐으며 1명은 희생자 사촌의 자녀로 출생신고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8명도 4·3위원회의 최종 심의·결정을 통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3일 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제78주년 4·3추념식에서는 고씨의 사연이 영상과 배우 김미경의 낭독·연기로 소개될 예정이다.
  • 상상력은 ‘감각’ 넘어선 ‘해석’

    상상력은 ‘감각’ 넘어선 ‘해석’

    상상 때 뇌활동 비교 분석해 보니단순한 외부 자극 처리 활동 아닌감각 변환하는 고차원 연합 영역조현병·PTSD 환자 치료 등 기대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논리는 당신을 A에서 Z로 데려다줄 것이고, 상상력은 당신을 어디든 데려다 줄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상상력은 지식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만드는 창의적 사고의 핵심이다. 상상력 덕분에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배우고, 계획하며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뇌과학은 상상력이야말로 인간 뇌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작업 능력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사과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서 사과 이미지를 ‘보고’, 좋아하는 노래를 생각하면 그 노래 리듬이 ‘들린다’. 이처럼 왜 상상에 심상(心象)이 동반되는가는 뇌과학의 오랜 수수께끼다. 지금까지 심상은 ‘감각 재활성화’에 의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감각 재활성화 이론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외부 입력이 없는 상태에서 뇌가 시각, 청각 피질 같은 감각 영역을 다시 켜는 것이 심상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대 연구팀은 심상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순수한 감각 현상이 아니라 지각을 해석하고 조직하는 고차원 인지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1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신경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뉴런’ 3월 31일 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남녀 실험 참가자 8명을 대상으로 어린이 생일 파티, 언덕 위의 성 같은 8가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상상하게 한 다음, 정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찍어 총 60시간 이상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어 참가자의 감각 네트워크와 연합 네트워크를 매핑하고, 상상할 때 뇌 활동과 실제 지각 중 뇌 활동을 비교 분석했다. 감각 네트워크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등 외부 자극을 직접 처리하는 뇌 영역이고 연합 네트워크는 감각 입력을 의미, 맥락, 개념으로 변환하는 고차원 처리 영역이다. 분석 결과, 상상 상태에서 뇌 활동은 순수한 감각 영역이 아닌 고차원 연합 영역에서 활성화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상이 단순히 감각의 복사본이 아니라는 의미다. 상상은 원시 감각 입력 단계가 아닌 장면, 단어, 사건, 아이디어 등 정보를 통합 처리하는 후반 단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감각 없이 감각적 경험을 만드는 뇌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조현병 환자의 환각,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의 플래시백 현상, 사고력은 정상이지만 머릿속으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인지장애인 아판타시아 환자 연구와 치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를 이끈 로드리고 브래가 노스웨스턴대 의대 교수는 “어린이 생일파티에서 날 수 있는 소리를 상상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소리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장면 전체를 그려낸다”고 설명했다. 브래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외부 자극이 없거나 과거, 미래를 떠올릴 때 활성화되는 디폴트 네트워크가 상상할 때 전반적으로 활성화하는 동시에 무엇을 상상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대규모 뇌 네트워크가 통합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 李대통령, 예외적 장특공제 유지 시사… “직장·자녀 교육은 불가피”

    투자·투기용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해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제) 축소를 시사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일시적 비거주 1주택자가 된 사람에 대해선 세금 감면 혜택을 계속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대통령은 1일 엑스(X)에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의 사유로 비거주 1주택자가 된 사람들은 집을 팔기도, 세를 놓기도, 직접 들어가 살기도 쉽지 않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해당 기사 본문에서 인용한 제 말에 의하면, 갭투자용이 아니라 주거용인데 직장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일시 비거주하는 경우는 (장특공제 축소에서) 제외됨이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일한 ‘심층기획’ 기사에서 투기용이 아니고 직장, 자녀 교육 등으로 일시 거주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고 쓰는 건 몰라서인가, 알면서 그러는 것인가”라며 “명백히 모순되는 기사이니, 조금만 더 심층분석해서 기사를 정정해 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직장이나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일시적 비거주 1주택자가 된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장특공제 축소 대상으로 시사한 ‘투자·투기용 비거주 1주택자’에서 제외되는 만큼,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은 ‘모순’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다주택은 물론 1주택이라 할지라도 주거용이 아닌 투자·투기용이라면 장기 보유를 이유로 세금 감면을 해 주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며 “장특공제 제도가 매물을 막고 투기를 권장하는 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투자·투기용으로 주택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직장 통근이나 자녀 교육 등으로 인해 자신이 보유한 주택에 거주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장특공제 혜택을 더이상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왔다. 이에 이 대통령이 직접 이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직접 메시지를 X에 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 [황수정 칼럼] 꼰대 엄마의 당나라 군대 참견기

    [황수정 칼럼] 꼰대 엄마의 당나라 군대 참견기

    며칠 전 식사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광화문 공연에서 BTS가 군복을 입고 나타났다면. “대한민국 육군,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외쳤다면. 자주국방이 전 지구적으로 홍보되지 않았을까. 어림없는 얘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군복 입은 BTS에 “국뽕” 비판이 쏟아졌을 테니까. K컬처가 세계 문화의 첨병이 된들 우리는 정신적 지체를 못 벗어나고 있다. 군사독재의 콤플렉스 속을 헤맨다. 군 수뇌부가 가담한 불법 비상계엄으로 콤플렉스는 더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7일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한미동맹에 과도한 의존은 금물”이라고 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회복 의지를 밝히면서 선택적 모병제로 국방개혁을 주문했다. “미래 전장을 주도하려면 스마트 강군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이유도 곁들였다. 나 같은 사람은 일차원적 궁금증이 먼저 든다. 젊은 직업군인들이 열악한 처우를 못 견뎌 군을 탈출하는 현실. 왜 지금 선택적 모병제일까. 있는 직업군인들을 먼저 단속해야 순서 아닌가.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때부터 ‘10만 선택 모병제’를 제안했다. 18개월인 의무복무 기간을 10개월로 줄이되 그 공백을 3년쯤 복무할 자원 병사들로 채우자는 얼개다. 수십만 청년을 억지로 병영에 가두지 말자는 것, 원하는 사람한테는 군대가 좋은 직장이 되게 하자는 것.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자는 취지다. 청년 커뮤니티는 후끈했다. 의무복무를 10개월로 줄여 주면 집권당으로 표를 주겠다고 했다. 이대남 잡기 선거용이라는 해석이 또 분분하다. 비현실적이라는 냉소가 갑론을박의 주류다. 선택적 모병제의 유인책은 첫째도 둘째도 획기적 처우. 기존의 부사관들까지 줄줄이 처우를 높여 줘야 하는데 막대한 예산은 준비됐냐는 것이다. 부사관을 늘리겠다는 뜻이라면 기왕에 확보한 부사관들은 왜 열악한 처우로 방치하느냐고 따진다. 안 그래도 짧은 복무기간만 반토막 낼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총을 잡는다 싶으면 제대했는데, 총인지 과녁인지도 모르고 제대할 판이라는 우스개가 왁자하다. 나는 K방산의 명품 K9 자주포가 신기하기만 하다. 지평선 너머 40㎞ 사정거리. 자동차로 시속 100㎞를 밟아도 24분이나 걸리는 어마무시한 거리의 표적을 어떻게 명중시킬까. 극강의 지능형 전투장비들이 별나라 얘기 같다. 나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에는 거의 대부분이다. 국가의 안보 역량은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대통령이 “강군”을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다. 드론이 현대전의 대세라 한들 병사들이 여전히 전장의 기둥이다. 세계대전의 참호전, 6·25 진지전과 똑같은 육탄전을 우크라이나전에서 생생히 확인하고 있다. 26세 하사의 하소연을 인터넷에서 퍼왔다. “부사관 준비 3년, 면접 5번 떨어지고 겨우 붙었는데 병장이 나보다 실수령액이 더 많다. 책임은 10배, 월급은 역전. 어느 바보가 군 간부 할까.” 올해 병장의 기본급은 150만원, 직업군인 하사는 193만원. 뭔가 한참 잘못되고 있다. 전형적 위계조직인 군에서 블랙코미디 같은 얘기다. 직업군인 청년들이 자괴하다 군을 떠나고 있다. 병사들을 훈련시킬 간부들의 기를 먼저 펴 줘야 강군이다. 28조원 기초연금 예산의 100분의1이라도 돌려 보라. 이런 내 말이 꼰대라면, 좋다 나는 꼰대다. 아들을 현역 만기제대시킨 엄마의 자격으로 나는 병사들 손에서 휴대전화를 거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일 일과 끝난 뒤부터 밤 9시까지 허용하는 규율은 규율일 뿐이다. 폰 하나를 따로(‘투 폰’으로 통한다) 쓰기도 한다. 규정을 어기면 징계지만 지휘관 재량. 군 인권이다 뭐다 잡음에 엮일까 이마저 눈감는 경우가 많다. 제대를 코앞에 둔 육군 병장에게 듣는 현실이다. 코인, 주식 투자에 온 신경이 쏠렸는데 총, 대포를 무슨 정신으로 만질까. 나만 아찔해지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덜컥 내준 휴대전화, 윤석열 정부가 대책없이 올려준 월급. 이 둘이 강군의 기틀을 좀먹고 있다. 모두가 알면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너무나 불편한 진실. 방 안의 코끼리들을 개혁의 도마에 올려야 한다. 줬다가 뺏는 것만큼 김새는 정책은 없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황수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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