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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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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아 8국 콩고 파병 합의/세네갈 등 평화유지군 구성

    ◎브라자빌선 치열한 포격전 【나이로비·브라자빌 AP 연합】 서아프리카 8개국은 역내 평화유지군을 구성해 첫임무로 콩고의 내전 종식에 투입키로 합의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서아프리카경제통화연맹(UEMOA) 가맹 8개국은 토고 수도 로메에서 가진 정상회담에 이같이 합의하고 평화유지군을 1천6백­1천8백명으로 구성키로 했다. UEMOA에는 베냉·부르키나파소·코트디부아르·말리·니제르·기니비사우·토고·세네갈이 포함돼 있다. 한편 콩고 수도 브라자빌에서는 휴전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날 파스칼 리수바 대통령의 정부군과 데니 사수 응궤소 전 대통령 추종자간의 전투가 더욱 치열히 전개됐다. 이날 포격 속에 진행된 전투로 의사당 건물이 부서지고 내달의 선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됐던 긴급 각의도 취소됐다. 전투가 계속되는 바람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브라자빌 사무소를 폐쇄했다고 WH)관계자가 전했다.
  • 아주/불 약화·미 득세/불­경제적 이익 급급…민주주의 전수 외면

    ◎미­인도적 지원 강화… 양콩고 친미화 성공 19세기 후반 아프리카 침탈에 나선 유럽국가 가운데 최근까지 아프리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프랑스가 그 자리를 서서히 미국에게 내주고 있다. 프랑스의 영향력 감소는 지난달 옛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로랑 카빌라 반군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친프랑스적인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을 축출한데 이어,콩고의 야당 지도자 드니 사수 응궤소가 프랑스와 가까운 리수바 대통령 정권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데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프랑스는 그동안 영국이 식민통치 기간중 식민지에 민주주의를 전수하고 행정 관리를 양성한 것과 달리 다이아몬드광산을 개발하는 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경제적 이익을 뽑아내는데만 전력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프랑스는 그러한 비난속에서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프랑스 및 벨기에·영국 등에서 독립한 뒤에도 이들 신생국가의 정부수반에 프랑스와 가까운 지도자를 내세우며 일종의 커넥션을 형성,그들의 정치·도덕적 부패를 눈감아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프랑스의 영향력이 이같이 강력했지만 미국도 92년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하는 등 영향력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그러나 미국의 소말리아 개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미국은 소말리아에서의 실패 때문에 군사적 개입은 꺼리고 있다.하지만 「기아와 전쟁에 허덕이는 아프리카를 구출한다」는 식의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며 영향력을 학대해왔다. 미국이 프랑스의 영향력을 압도한 결정적 사건은 옛 자이르 내전이었다.프랑스는 독재자로 악명을 떨치던 모부투 전 자이르 대통령을 계속 지원했으나 모부투 대통령은 미국이 지원한 카빌라 반군에 의해 축출됐다.프랑스는 모부투의 망명을 받아주느냐 마느냐로 고민할 때 미국은 카빌라에게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서방 언론은 최근 중앙 아프리카의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들려오는 내전의 총성은 바로 반세기에 걸친 프랑스 식민주의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조종의 소리라고 빗대고 있다.
  • 아프간 난민 대탈출 사태/내전 격화/타지크공 국경 10만명 운집

    【카불·모스크바 AFP 연합】 아프가니스탄의 약 3분의2를 장악하고 있는 회교 탈레반군과 옛 정부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10만여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아프간 북부 타지크스탄 접경지역으로 대거 탈출했다. 안드레이 니콜라예프 러시아연방 국경수비대(FPS) 국장은 26일 타지크 수도 두샨베에서 독립국가연합(CIS) 국경수비대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고위안보회의에서 내전을 피해 아프간­타지크국경으로 탈출한 난민이 10만여명으로 늘어났다면서 이들이 타지크로 유입되는 등 국경상황이 곧 악화될 수 있는 것으로 경고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에모말리 라흐모노프 타지크대통령도 이 회의에 참석,탈레반군이 아프간 북부의 주들을 장악하면 국경에 밀집해 있는 아프간 난민이 1백만명에 이를수 있다며 아프간에 거점을 두고 있는 타지크 반정부단체들이 타지크를 침략하기 위해 이같은 상황을 이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클린턴/징집기피 전력 군통수 합격점

    ◎아이티 파병이어 「사막타격」서 또 전과올려/「믿을만한 지휘자」 54% 응답… 「전웅」 돌에 압승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단행한 「사막타격」 작전과 함께 클린턴 대통령의 미군 최고통수권자 타이틀이 한층 공고해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미군의 최고사령관이란 헌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휘하 군이나 국민 일반으로부터 이같은 이름에 걸맞는 최고지휘관 대접을 받지 못했다.92년 대통령선거전 때 드러난 그의 베트남전 징집회피 「행각」은 대통령당선 이후에도 「군에 안 갈려고 온갖 꾀를 쓴 비겁자」란 인상을 씻지 못했다.특히 최고통수권자인 그의 지휘를 받아야 할 군인들 중 상당수가 클린턴 대통령을 내심 경멸해 마지 않았다.취임 첫 군대방문으로 찾아간 항공모함 루스벨트호의 해·공군 병사들은 동행 기자들에게 드러내놓고 클린턴의 군대경험 결핍을 조롱해 마지 않았다.클린턴이 최고통수권자 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대중의 의구심은 그가 진보적 선거공약으로 내놓은 군의 게이(동성연애자)거부 타파를 실제 시도하면서 아주 깊어졌다. 그러나 94년 후반부터 서서히 클린턴 대통령의 최고통수권자 타이틀은 무게를 더해가고 군도 그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이는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초의 예상을 깨고 미군을 십여차례나 해외에 파병하는 적극성을 보인 덕분이다. 군대경험과 함께 외교경험이 전무한 그는 국내문제에다 포커스를 맞추겠다고 약속했으나 외교및 대통령직의 파병 권한 중요성을 곧 깨달았다.93년 소말리아 군벌체포를 위해 미군을 동원했다가 18명만 희생당한 대실수 여파로 보스니아 내전개입에 아주 소극적이었다.그러나 94년 아이티 군정종식·민정회복 개입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보스니아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95년8월부터 2만명의 미군을 파병했다.올 3월 대만해협 긴장을 항공모함 파견등으로 해소시킨 뒤 이번에 5년만에 대대적 군사행동에 나선 이라크를 크루즈미사일로 강타했다. 이라크공격에 대해선 국제 여론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나 미국내 여론은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무엇보다 클린턴 대통령의 최고통수 자격에 대한 시비가 이라크 강력대응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라크공격 후 워싱턴포스트­ABC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라크와 다시 전쟁이 붙을 경우 누구를 최고지휘관으로 신임하겠는가」란 질문에 클린턴 대통령은 54%을 얻었고 보브 돌 후보는 35%에 그쳤다.2차대전의 「대영웅」인 돌을 「병역도피자」가 가볍게 눌러버린 것이다.
  • 브라운 미 상무 탑승기 추락/기업인 등 33명 전원 사망

    【두브로브니크·자그레브·워싱턴 외신 종합】 론 브라운 미국 상무장관과 기업인등 33명을 태운 미공군 T­43 수송기가 3일 하오2시50분(한국시간 하오9시50분) 조금 지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상공에서 추락,장관을 포함한 모든 탑승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관리들이 밝혔다. 흑인인 브라운 장관은 4년간의 내전을 끝낸 크로아티아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투자와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이 곳을 방문하던중 변을 당했다. 미국과 크로아티아관리들은 이 비행기가 악천후에 조종사실수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비행기에 대한 사격이나 적대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미국내 표정/“기체 전소… 곳곳 시신·잔해” 주민들 전언/추락기 블랙박스 회수… 기업인 6명 명단 확인 ○…3일 아드리아 해안 마을의 한 조그마한 언덕 꼭대기에 추락한 미국 군용기는 가운데 부분이 불이 시꺼멓게 탄 채 시신과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등 처참한 모습. 이 관리는 추락 지점에서 음성 기록과 조종 기록이 각각 보관돼 있는 2개의 블랙박스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브라운장관과 동행했던 미국 기업인들이 누구인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들 기업인들은 옛유고지역을 둘러보고 현지 투자여건을 파악키위해 동행했던 것.다음은 사고에 탑승했던 것으로 확인된 기업인 6명의 명단.▲AT&T서브머린 시스템스의 원터 머피부사장 ▲포스터 휠러 에너지 인터내셔널의 로버트 위태커 회장 ▲하자 엔지니어링의 존 스코빌 회장 ▲릭스 인터내셔널 뱅킹의 폴 커시맨 3세회장 ▲대기 및 수질 기술사의 클로디오 엘리아 회장 ▲파슨스 건설의 레오나드 피로디 회장. ◎브라운 미상무 누구/89년 흑인 최초 당의장 피선/「슈퍼 세일즈장관」으로 유명 ○…항공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론 브라운 미국 상무장관(54)은 지난 92년 대선때 빌 클린턴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흑인 법률가. 지난 89년 흑인으로는 최초로 민주당 의장을 역임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으로 흑인이라는 약점을 극복한 브라운 장관은 93년 1월 상무장관에 임명된 뒤 전세계를 누비며 상무장관직을 슈퍼 세일즈맨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장관 취임 이후 공화당 정치공세의 주요 목표가 돼 뇌물수수설에 휘말리는가 하면 현재까지도 특별검사로부터 개인적인 축재과정에 대한 조사를 받는 등 끊임없는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는 한국에서 장교로 근무하기도 했다.
  • 소규모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카네스로드 미 아델피대교수(해외논단)

    ◎세계질서 확립차원 미군 개입전략 마련을/소 붕괴후 지역패권경쟁 등 새 안보환경 형성/「인도주의」 명분보다 「민주수호」 정치적 접근 필요 소연방 붕괴에 따른 냉전 종식은 미국의 외교정책사에 큰 획을 그었다.공산세계 이후의 새로운 시대가 형성되면서 안보환경에 극심한 변화가 일고 있다.이에 따라 미국안보정책에 관해 몇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미국은 종전처럼 무적의 막강한 군사력을 전세계에 배치해 가상적을 압도해야 하는 것일까.미국은 적이 없는 현실 속에서도 이익 유지를 위해 군사력의 해외사용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가다듬고 있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미국은 직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전세계의 소규모 분쟁에 계속 개입하는 것이 옳은 정책방향일 것으로 생각된다. 소규모분쟁이란 흔히 제한전이나 내전·게릴라전등 저강도분쟁을 뜻한다.미국 안보정책은 소규모분쟁 개입을 대형전쟁에 대한 것 못지않게 일관된 특징으로 하고 있다. 소규모분쟁은 대부분 내전이나 혁명과 연계돼있어 정치적 의미가 심대하다.또 강대국들의간섭으로 대내외적인 복잡성을 띠게 마련이다.유고슬라비아문제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소규모분쟁에 미국이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안보환경 때문이다. 소련위협의 소멸은 미국의 안보문제를 단순화시키는 동시에 세계안보지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모스크바의 영향력이 상실되면서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민족간 대립이나 야망도 함께 해소됐지만 소련힘의 공백을 틈타 90년 이라크 후세인 처럼 지역패권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는등 새로운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특히 세계안보환경 변화양상은 국가주권 행사의 경계선 불투명성과 경제우선주의등으로 표출된다. 앞으로 미국이 직면할 안보 도전은 3가지로 요약된다.첫째는 미국 국토 자체 또는 미국인과 해외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동맹국이나 친구들에 대한 위협,세계질서에 대한 위협등이다.이는 테러리즘,국제마약거래,불법이민,핵탈취나 제한핵공격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두번째는 재래전이나 내전,미국과 긴밀한 안보 연계를 맺고 있거나 중요한 이해가 걸려있는 나라에서의 쿠데타등이다.세번째는 미국의 이해가 걸려있는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행위이다.이 행위는 간접적으로 장기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미국이 보는 세계질서 이해의 위협 여부는 해당지역이나 세계에서의 민주정부의 존재 여부로 평가될 것이다. 미국은 이같은 여러가지 유형의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무력의 제한된 사용에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없지 않다.따라서 어떤 조건에서 무력 사용에 나설 것인지,미국민의 여론악화등으로 발생되는 제약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교리나 접근방법을 어떻게 전환해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우선 유엔에 의존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그러나 유엔은 기본적으로 군사작전 수행 능력과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그렇다고 유엔이 협력자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유엔평화유지활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유엔은 또 걸프전 처럼 다국간 협력에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해준다. 그러나 유엔 없이 미국이 혼자 세계질서를 위한 군사작전을 준비해야 할 경우는 없을까.여기서는 다만 소말리아처럼 인도주의를 내건군사개입이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목의 군사개입보다 합법성 획득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민주주의 체제 구축은 단기적으로 불안정성과 장래의 분쟁을 해결하는 처방이 될 수 있다.반면 인도주의적 접근은 국제적 품위는 지켜주되 지역적 정치분쟁을 가열화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작전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작전 측면이 아니라 개념 측면에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미국은 소규모분쟁을 정치적으로 크게 보아야 한다.군사측면보다 정치분야에 전략적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또 적에 대한 것 못지 않게 미국 우방의 장단점도 잘 평가해야 한다.미국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를 소규모전에서 중심고리로 삼아야 한다. 한편 미국관리들은 정치영역은 상대방에게 자유선거를 치르도록 압박하는데 기여돼야한다고 왕왕 가정한다.그러나 선거개혁이나 정치구조 변화는 파괴적인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결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미국은 따라서 주민 생활에 즉각적이고 극적인 차별을 가져오는 개혁을 무시해야 한다.예를 들면 행정 및 사법제도개선,부패관리 제거,법구조나 세제개혁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소규모전의 경제적 차원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강대국의 개입은 의도와는 달리 경제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소규모전쟁 수행능력은 두가지에 좌우된다.개념적 명료성과 작전효과성이다.미국은 더이상 논쟁을 피하려 하지 말고 군사·정치·경제·정보등 모든 차원에서 소규모전쟁 문제를 다루기 위한 전략과 행정적 틀을 마련하는데 나서야 한다.또 미국은 군사측면보다 전략적·정치적 지혜를 잘 짜내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독/주재외교관에 사회복지혜택 논란

    ◎본국지원 끊긴 소말리아외교관 청구 계기/법원선 “유치기능 상실땐 예외인정” 판결/생계유지도 힘든 빈국출신 신청 급증할듯 다른 나라에서 파견돼온 외교관에게도 사회복지혜택을 주는 것이 타당한가. 독일에서는 최근 아프리카 등지에서 파견된 외교관중 상당수가 본국송금이 끊김으로써 생활비조차 모자라게 되자 이들에게 독일국민이 누리는 사회복지혜택을 주어야 하는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논란의 대상은 경제난에 시달리는 나라의 외교관이 대부분이지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내란 등으로 국가체제가 사실상 붕괴된 경우다. 이와 관련,베를린연방행정법원은 지난달 29일 일반적으로 외교관에 대한 사회보장혜택이 불가능하지만 파견국의 국가통치기능이 상실되는 경우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생활고에 시달려온 독일주재 소말리아 외교관(여)이 본에 사회보장혜택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사회복지비지급청구소송을 낸 결과다.이 외교관은 지난 6년간 내전에 휩싸인 소말리아로부터 일체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상태였다. 논란은 이 판결 이후 본시가 앞으로 제3세계권 외교관의 사회복지비청구가 급증할 것이라며 큰 우려를 나타내면서 본격화됐다.독일에 파견된 제3세계 빈국 출신 외교관중 상당수가 독일내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낮은 급료로 생활하거나 혹은 아예 송금이 끊겨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외국인에게는 사회보장혜택을 주면서 단지 외교관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데 독일정부의 고민이 있다.
  • 민병석 크로아티아 평화유지단 단장

    ◎“유고 전후복구사업 적극 대비할때”/유엔활동 참여인력 늘려야 국익 신장/국제사회 견실한 양자관계 구축 긴요 세계화시대의 중심무대인 국제연합(유엔)에서 현재 최고위직을 맡고 있는 한국인은 민병석 크로아티아평화유지단(UNCRO)단장이다.민단장은 주체코대사이던 지난해 7월 유엔 사무차장보에 임명된 뒤 UNCRO단장직을 맡아 옛 유고연방 내전지역인 크로아티아에 파견됐으며,내년 1월15일까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최근 외무부와의 업무협의차 일시귀국한 민단장은 『더 많은 한국인이 국제기구에 참여해야 우리의 국익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으로서 유엔의 고위직을 맡아 일하는 소감은. ▲실제로 유엔의 한 부분을 이끌어가며 일해보니 그동안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너무 표면적인 경험만 했다는 반성이 됩니다.안에 들어가보니 행동양식이 다르다고나 할까.우리 국력이 커갈수록 보다 많은 인력이 유엔에 참여,일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제기구에서 활동할 때 염두에 둘 점은. ▲유엔에서 직접 일해보니 다자관계란 것은 양자관계의 연장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역시 중요한 것은 굳건한 양자관계의 구축이죠.우리 국력이 뒷받침되고 우리의 국익과 국책이 무엇인가 명확히 될 때 다자관계의 상황에서도 활동의 방향이 뚜렷이 서는 것 같습니다다.어느 국가든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특정국가의 꼭두각시로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내전이 장기화된 옛 유고연방에서 활동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텐데. ▲싸움을 말리는 것이 직접 싸움을 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그러나 함께 일하는 유엔 직원은 어려운 여건이지만 전쟁지역에서의 인권보호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활동결과는 어떻게 발표하나. ▲내년 1월15일 활동이 끝난 뒤 1월말 유엔에 정식보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그전에 내용을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유고 내전지역에 대해 한국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언젠가 유고지역의 내전이 끝나면 전후복구사업이 시작될 것입니다.그 규모는 중동개발에 버금갈 전망이죠.일부에서는 제2의 마셜플랜이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현지에 미국·독일기업이 이미 진출해 있습니다.우리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 대흥구 중국 심양(세계속 한인촌 탐방:3)

    ◎황무지를 옥토로… 딴 농촌의 3배 소득/5천여명 정착… 우리말·전통풍습 그대로 간직/된장국·김치 담그기 등 가르쳐 중국인을 조선화/「새마을 공장」 4백여곳 유치… 산업화 앞장도 중국 북동부 3개 성의 심장격인 심양.요령성의 성도이자 우리에겐 봉천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구육성」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초·중학교 우리말 수업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보신탕집 간판으로부터 2차선 찻길을 따라 조선음식점 1백여개가 줄지여 들어서 있다.심양∼대련 사이 고속도로가 곁에 있는 이곳은 심양시 우홍구의 「대흥향」.찻길 따라 음식점과 상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 교외의 농촌이다.1만5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3분의 1인 5천여명이 조선족인 우리동포 자치지역이다.명칭은 「대흥 조선족자치향」. 『20년대초까지 논은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려웠고 극소수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황무지를 송화강의 지류인 훈하를끌어들여 물길을 낸 뒤 논농사를 시작,궁핍에서 벗어나게 한 게 바로 조선족이었다』고 48년말부터 30여년동안 이곳 공산당간부로 일해온 지역지도자 이성일·67·전당서기)씨는 회고한다.길지 않은 이민역사와 한족에 비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조선족자치지역이 된 것은 『조선족 손으로 이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가난과 일제침략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 모여 이룬 이곳은 우리말과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아이의 백일잔치,노친네의 환갑은 물론 전통양식을 보존한 제사풍습 등등.설날이면 이웃집에 세배다니고 농사일과 궂은 일이 있으면 몰려가 품앗이를 하는 등의 끈끈한 유대의식도 변치 않았다.순 우리말로만 수업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곳 조선족은 절대로 한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행여 자식이 한족과 결혼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와는 약간 다른 풍습이다. ○연변 등 외지동포 이주 오히려 중국인을 「조선화」시켰다.노인등 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절,논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쌀재배법을 전파시켰고 적잖은 이 지역 중국인이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데서도 대흥 조선족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가옥도 이웃 사이에 담장이 따로 없는 개방형 농가다.아이를 조선식 포대기에 들쳐업고 다니는 새색시.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는 동·서혼합 결혼식.집안에 들어서면 구들방이 보이고 크고 검은 무쇠가마솥이 눈에 띄는 곳.안타까운 것이라면 국가규정 때문에 전통적인 무덤(토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문화혁명후 토장이 금지돼 화장한 뒤 죽은 이의 유골을 황해로 흐르는 훈하에 뿌리는 전통이 생겼다.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1910년말부터 평안도에서 일가친지 모두가 이주해온 황성출(65·전대흥향 공업책임자)씨는 『처음 이주자들은 몇년만 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917년 오강소학교란 조선학교를,20년엔 기독교 예배당를 세우며 차차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30년대초까지도 추수때면 한족 지주등에게빚갚고 나면 빗자루 하나만 남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허일벽(72·전대흥향 정부농업조리)씨는 한때 1만여명 가까운 조선족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와 59∼60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여파로 상당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설명한다. 연변지역등의 조선족마을이 최근 도시이주등으로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 역시 연변과 흑룡강성등 외지에서 이주해온 동포 가구로 1백호가량 늘었다.이곳 인구는 5천명정도지만 심양시 서탑지역,동릉구 혼하찬지역과 함께 10만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해마다 9월초면 열리는 조선민속·운동절에 약 5만명 대부분이 가족별로 참가한다. 한·중 두 나라의 급격한 관계발전을 타고 이곳도 한국행 열풍엔 예외가 없다.4살때 평안도에서 왔다는 흥성촌의 김응석(69)씨의 세 아들중 두명은 한국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비자등 법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씨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며 자랑한다.김씨집은 산업화이전의 초가집이고 부엌엔 무쇠가마솥이 걸려 있다.해질녘에 불쑥 들른 취재진에게 『저녁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드는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옛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한집 건너 김미영(33)씨 집 역시 남편이 지난해부터 한국서 일하고 있다.농토는 연변에서 온 조선동포에게 맡겨 임대수입을 받는다는 김씨는 남편을 보러 꼭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공단인접한 교통요지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대흥향은 농공산업단지로 탈바꿈하려는 안간힘으로 한창이다.동북 최대공업단지 철서공단에 접해 있고 북경∼장춘∼하얼빈을 잇는 교통요지인 점도 산업화를 향한 행보를 재촉한다.우리 새마을공장격인 향진기업은 모두 4백6곳.지난해 공업생산은 4억위안(5천만달러)으로 농업생산액 1억위안을 앞섰다.피혁·의복·방직·장식재료등을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유입이 늘고 있다.정명수 향정부 판공실주임은 『지난 91년부터 올해까지 외자기업의 총투자액은 7백60만달러』라며 『총생산액으로 볼 때 외자기업의 비중이 지난해 공업생산의 절반가량인 2억위안에서 올해는 2억8천만위안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밝은 전망을 소개했다. ○종업원지주제 첫 실시 이곳의 월 평균소득은 여타 농촌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7백∼8백위안정도.한 관계자는 한국 가서 일하고 부치는 노무소득·관광객안내비등을 합치면 실제소득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향 행정책임자인 김재만 향장은 심양 조선족제1중학(고교과정)과 심양 정법대를 나온 35살의 청년이란 것도 이곳의 활력과 미래를 상징한다.김향장은 투자유치가 자신의 주임무이며 한국기업의 투자를 주민과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최근 한국의 삼우금속과 합자로 총자본금 11억규모 심양 흥우금속제품공사설립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중국 공무원하면 경직된 행정관리가 연상되지만 김씨는 자칭타칭 「세일즈맨」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김향장은 『대흥향은 내년부터 중국 최초로 기업고정재산의 30%한도내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는 기업개혁실험에 들어간다』며 밝은 대흥향의 미래를 자랑삼아 밝혔다.전통적으로 북한의 영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이들은 이제 한국의 존재는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한다.이들은한국을 모델삼아 공업화된 농촌속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장승균/“조선족은 문화수준 높아”/동북부 지역 벼농사 전파… 개발 한몫 중국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항일전쟁 및 해방전쟁(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중국 동북부지역을 개간,수도작문화,즉 벼농사를 전파시켜 경제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선족은 또 교육을 중시,문화수준이 높고 노래와 춤등 예술성이 풍부하며 호방하면서도 엄격히 예절을 지키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족은 60년대까지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개혁개방후 각 방면으로의 진출,계층분화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연변지역등 농촌에 모여 살던 조선족의 도시이주가 최근 늘면서 일부 집성촌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경상주 조선족은 현재 1만여명에 달하고 임시거주등의 인구까지 따지면 모두 3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조선족의 전체인구는 공식통계로는 1백92만3천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조사연도(90년)와 전중국의 인구증가률 1.4%보다 낮은 1%가량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2백만명가량으로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한국방문 및 장기체류는 상대방 국가의 법률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한국정부가 민족연관성을 배경으로 조선족에 대해 특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 크렘린의 남침 결단(모스크바 새증언:4)

    ◎스탈린­모택동 비밀회동… “북 남침 지원키로”/김일성,중 공산화에 고무… “개전”고집/스탈린,“전쟁나면 북 지원”전문 보내/소,북 3개 정예사단 창설·「무기구입 차관」제공 약속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최초로 남침허용을 요청한 49년 3월부터 이듬해 1월 만찬장사건이 일어나기까지 10개월여 동안 적어도 표면적으로 스탈린은 전쟁 개시를 원치 않았다.49년 9월 툰킨 대사대리가 김일성의 옹진반도 점령계획을 보고한 것을 시발로 평양의 소련대사관과 모스크바 사이에 오간 전문들은 김일성이 남침 개시를 요청하고 스탈린이 이를 말리는 식으로 계속됐다.49년 10월30일부터 수일간 스탈린과 슈티코프대사간에 오간 전문들을 보면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기도를 막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읽을 수 있다. ○“전쟁기도 못 마땅” 스탈린은 9월24일 당정치국결정을 통해 김일성에게 남침불가를 통보한 바 있다.그러나 슈티코프 대사는 그후에도 김일성이 옹진반도점령,해방구건설 등에 미련을 못버린다는 사실을 계속 보고했다.이 일을 두고 스탈린은슈티코프 대사를 크게 질책하기에 이른다.『10월30일.슈티코프 대사에게 엄중경고함.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조선에 대해 국지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대사의 행동은 적절치 못함.그런 도발은 우리의 이익에 매우 위험하고 적으로 하여금 대규모 전쟁을 시작할 빌미를 주는 것임.대사의 행동은 전적으로 무책임한 것임』 크게 놀란 슈티코프 대사는 이튿날 곧바로 해명전문을 스탈린 앞으로 띄웠다.『본인은 북조선 내무성에 파견된 우리 고문관 보두아긴 대령을 통해 북조선이 38도선을 침범치 못하도록 엄중 감시하라고 지시했음.본인은 북조선당국에게 남조선을 무력침공하라는 충고를 결코 한 바 없음』 스탈린은 이 해명에도 불구하고 11월20일 당중앙위 명의로 재차 경고전문을 슈티코프에게 보냈다.『귀하가 제출한 해명은 전적으로 불만족스러움.이는 바로 모스크바가 내리는 지시사항을 귀하가 이행치 않는다는 증거임.38도선에서 어떤 긴장도 발생시켜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대신 귀하는 이 문제를 놓고 토의를 벌였음』 호된 질책을 당한슈티코프 대사는 이후 김일성의 남침계획 관련 보고를 중단했다.대신 남한의 북침기도에 관한 보고만 수차 스탈린 앞으로 더 보냈다. 그렇다면 스탈린이 이러한 초기 입장을 바꿔 김일성의 남침의사에 동조하게된 것은 언제,무슨 계기가 발단이 된 것일까.그것은 바로 중국내전에서 모택동이 승리한 것이다.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가장 크게 고무된 사람은 바로 김일성이었다.김일성이 만찬장사건을 일으킨 것도 사실은 모택동의 승리에서 얻은 용기의 일단을 보인 것이었다.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을 해방시켰으니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김일성은 생각했던 것이다.더구나 모택동은 중국내전만 끝나면 북조선을 도울 수 있다는 언질을 여러차례 김에게 했었다.1950년 1월30일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답신이 스탈린으로부터 떨어졌다.모스크바에서 면담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소 차관 전용 허용 이날 스탈린은 전쟁불가를 고수하던 종전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다음의 전문을 슈티코프 대사 앞으로 보냈다.『…김일성 동지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함.그러나 그가 지금남조선과 관련해 도모하려는 중대사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도 이해해야 함.무엇보다 큰 위험부담이 없는 쪽으로 일을 꾸며야 함.그가 이 문제와 관련,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는 항상 그를 만나 이야기할 준비가 돼있음.이런 나의 입장을 김일성에게 전달하고 이 문제에 대해 내가 그를 도울 준비가 돼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 구체적인 남침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이 전문이 되는 셈이다.그러나 마치 면담허락의 조건인 양 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매년 최소한 2만5천t의 납을 소련에 공급해달라고 요구하며 『김일성이 이 요구를 거절하지 말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슈티코프 대사는 전문을 접수한 바로 그날 김일성을 만났다.이날 면담내용은 이튿날 스탈린 앞으로 보낸 보고전문에 상세히 기록됐다.『50년 1월31일.각하의 지시에 다라 김일성 동지를 만났음.김일성은 내가 전달한 내용을 매우 만족스럽게 받아들였음.동지께서 그를 만나겠다고 한 사실과 이 문제(남조선 해방문제)와 관련,그를 지원해 주겠다고 한 사실에 그는 매우 큰 감명을 받았음.김은 스탈린동지의 진의를 한번 더 확인하고 싶어 스탈린동지께서 바로 이 문제와 관련해 자기를 만나자고 한 게 분명하냐고 재차 물었음.본인은 이 전문내용으로 판단할 때 그렇다고 확인해주었음.김은 자기는 언제든지 스탈린동지를 만날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음』 이와함께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소련이 요청한 납을 10∼15일 이내에 약속대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문을 보낼 바로 그 시점에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은 모택동과 만나고 있었다.김일성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때 스탈린 모택동 두사람은 북한의 남침시 지원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그렇게도 전쟁을 애원했던 사람은 김일성이었지만 중국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함과 함께 북한의 남침문제에 대해서 스탈린 모택동 두사람이 이니셔티브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2월2일 스탈린은 슈티코프 대사 앞으로 다음의 전문을 보냈다.『…다음 사항을 김일성 동지에게 주지시킬 것.그가 나에게 의논하고자 하는 문제는 현시점에서 완벽한 보안이 유지돼야 함.북조선의 다른 지도자들은 물론 중국지도자들도 알아서는 안됨.이는 적에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함임.…중략…지금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모택동 동지와의 회담에서 우리는 북조선의 군사력과 방어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이를 도울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논의했음』 이틀 뒤 김일성이 먼저 슈티코프 대사를 만나자고 요청했다.그리고는 즉각 다음의 문제들을 제기했다.(대통령문서소보관.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50년 2월4일.김일성은 전군을 10개 사단으로 증강시키기 위해 추가 지상군사단을 편성하고 싶다며 본인의 의견을 물었음.본인은 이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답하고 우선 이에 필요한 물질적 자원이 있느냐고 물었음.아울러 이에 대해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음.김일성은 소련정부가 51년도 분으로 주기로 한 차관을 50년도에 쓸 수 있도록 자기가 직접 스탈린 동지에게 요청토록 해달라고 했음.그는 이 차관으로 3개 지상군사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무기를 구입하고 싶어했음.본인은 이 요청을 본국정부에 보고하겠다고 답했음』 스탈린은 2월9일자 전문을 통해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답했다.그는 이 3개사단을 엘리트장교,현대식 장비를 갖춘 정예부대로 만들라는 별도주문까지 덧붙여 보냈다.다음은 전문내용.『김일성을 만나 3개사단 창설을 추진하라고 이를 것.이 사단들은 경험있는 장교들과 훈련 잘된 사병,현대무기를 갖춘 정예부대로 만들어야한다는 점을 그에게 유념시킬 것.51년도분으로 책정된 차관을 50년도로 전용시켜 3개사단 창설에 필요한 무기구입에 쓰도록 승인한다는 것도 알릴 것』 ○「무력남침」못 박자 바로 이튿날 슈티코프 대사는 김일성을 만나 이 사실을 통보하고 곧바로 같은날 스탈린에게 그 결과를 보고했다.슈티코프 대사는 『김일성이 이 사실을 듣고 매우 기뻐했으며 원조에 대해 스탈린 동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몇번이나 되풀이 했다』고 보고했다.이후 김일성은 모스크바 방문준비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방문절차와 관련,모스크바와 평양간 수차례 전문이 오갔다.3월20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대사를 만나 방문날짜를 4월초로 잡고 박헌영을 대동하고 싶다고 말했다.아울러 이번 방문을 1946년도와 마찬가지로 비공식(비밀) 방문으로 하고 싶다고 주문했다.방문준비는 모두 마쳤으며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다음의 사항을 논의하고 싶다며 회담의제를 내놓았다. 김일성이 제의한 이 의제는 3월21일자 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①남북조선 통일 방안과 방법에 관해 ②북조선의 경제발전에 관해 ③가능하다면 당사업에 관해. 3월23일 슈티코프 대사는 이 의제를 더 상세히 정리해 다시 모스크바로 보냈다.①통일방안 ②경제문제 ③중·조선관계 ④아시아공산당,노동당의 협력문제 등으로 세분한 이 전문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이 ①항의 통일문제이다.그런데 3월1일자 보고전문에서 「남북조선통일 방안과 방법」으로 기술됐던 이 항목이 이틀 뒤의 이 전문에서 『남북조선 통일 방안과 방법.의도는 군사적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는 데 있음』이라는 쪽으로 바뀌어졌다.통일방안을 아예 「무력남침」으로 못박자고 김일성이 요청한 결과였다.
  • 인종전쟁(외언내언)

    지난 20일 발표된 올해 퓰리처상 보도사진부문 수상작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아프리카의 난민캠프에서 한 흑인 어린이가 열병으로 죽은 어머니를 깨우려 울부짖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23일 로이터통신이 전한 르완다학살사건의 스케치기사는 『한 아기가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었고 몇몇 어린이들이 시체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엄마를 찾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르완다사태의 비극성을 잘 그리고 있는 기사들이다.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부족갈등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5백여년전 투치족이 르완다로 이주해 들어오면서부터.백인 식민지시대가 되면서 백인들은 소수민족인 투치족을 중용해 다수인 후투족을 견제하는 데 이용했다.62년 르완다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게 되자 후투족정부가 들어서게 됐다.그때부터 후투족의 투치족에 대한 보복이 시작됐다. 그동안 투치족이 얼마나 희생됐는지는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한다.철저히 은폐·조작돼 왔기 때문이다.94년초에만 50여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투치족이 94년 4년여의 내전끝에 정권을 차지하게 되자 이번엔 반대로 투치족의 후투족에 대한 보복이 시작됐다.22일 감행된 투치족 정부군에 의한 후투족 대학살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는 부족끼리의 내전으로 92년 한해에만 35만명이 죽고 6백만 인구중 2백만명이 아사위기에 빠지는 사태가 있었다.동부유럽의 보스니아내전도 「인종청소」로 통한다.세르비아계와 회교도및 크로아티아계간의 민족분쟁에서 3년여동안 20만명의 사상자와 인구의 절반이 난민이 됐다.체첸사태도,지난 3월 터키군이 쿠르드족 소탕전을 벌인 것도 모두가 인종갈등의 소산이다. 반인륜·반문명적인 이런 인종전쟁이 어디까지 갈지는 예측불허다.아무도 해결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도 인종분쟁의 특징이다.유엔의 기능이 보다 강화돼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 아프리카 대륙의 비극(해외사설)

    아프리카는 확실히 국제사회가 환멸을 맛본 대륙이다.기근과 대량학살,그리고 인간살육을 방지하기 위한 인도주의적인 간섭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끝이 없는 일이다.적용된 수단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소말리아 사태에 1만5천명의 유엔군이 투입되는 대대적인 개입이 있었지만 조촐한 결과에 만족해야만 했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부룬디의 폭력사태 재발이나 지난해 여름 르완다의 대량학살은 국제사회에 또 다른 장애물로 등장했다.최근 부룬디의 다수파는 민족주의자들이 95%를 차지하는 정규군의 보호아래 촉발된 극렬전사들의 폭력과 차별정책을 겪었다. 유엔 안보리나 아프리카기구의 책임자들은 현상황을 종결짓기 위한 구두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프랑스의 베르나르 드브레 대외협력장관은 부룬디를 방문해 프랑스의 의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즉 부룬디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룬디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부룬디는 르완다 사태와는 다르다.집권자와 군부가 유엔의 개입을 바라는 다수 반대파들에 대응하기 위해 나라를 유혈 혼란속에 빠뜨렸다.현정부와 군부는 그들이 그같은 개입에 반대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온건한 요소들을 고무하는 이른바 「최소한의 프로그램」만이 가능한 선택으로 남아 있다.그것은 무장과격주의자들에게 계획을 알려주고 현재 부룬디에 남아 있는 서구인들의 철수를 촉진시키는 것이다. 유고내전 같은 드라마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예방외교를 아프리카에서 전개하는 것은 망상일 뿐이다.본질적인 논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국경분쟁과 소수민족문제를 민간적인 방법으로 관리하게 되면 유럽연합의 여권사무소로 들어온다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부족간 분쟁이 중단기적으로는 평화공존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것같지만,결국 증오심에 차있는 사회를 분리하거나 분류를 해야만 끝난다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 주소말리아 유엔군/평화유지 활동종료

    【모가디슈·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2일 소말리아주둔 마지막 유엔평화유지군인 파키스탄군 8백여명이 모가디슈에서 철수함에 따라 소말리아를 가뭄과 내전에서 구출하기 위한 유엔의 개입이 결국 소말리아에 평화를 정착시키지는 못한 채 2년만에 끝났다. 미군은 지난 27일 21개국 출신 3만8천명에 이르렀던 유엔 평화유지군중 마지막으로 남은 파키스탄군과 방글라데시군 2천4백명의 철수를 엄호하기위해 소말리아에 상륙했다.
  • 미,한국군 보스니아파병 요청/지난달 합참의장에 서신

    ◎23개국에 PKO참여 타진/“유엔서 공식요청땐 검토”/국방부 미국은 최근 내전중인 보스니아지역에 한국군을 유엔평화유지군(PKO)으로 파병할 수 있는지 여부를 우리정부측에 타진해온 것으로 2일 밝혀졌다. 미 정부는 지난달 24일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국방무관 매클리대령을 통해 각각 「참고서한」형식으로 보스니아사태에 대한 유엔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파병 가능성을 타진해왔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샐리 캐쉬빌리 미 합참의장 명의로 김동진합참의장에게 보내온 이 참고서한은 『이 서한은 지난 12월6일 유엔이 보스니아 PKO파병을 결의한데 따라 전세계 23개국에 발송하는 것으로 한국이 파병을 할수 있을지 여부를 검토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서한은 한국측의 PKO파병과 관련,전투,의무,건설등 부대의 종류나 병력규모등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으나 전체 23개국에서 6천5백명 정도의 인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앞으로 유엔이 공식으로 파병을 요청해올 경우 구체적인 참여여부를 검토키로 했다. 국방부는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미국측이 보스니아 PKO참가를 처음 요청해왔을때 현지에 내전이 진행중이라는 점을 들어 「참가불가」의 입장을 통보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유엔의 르완다와 아이티에 대한 PKO파병 요청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유엔의 공식요청이 있으면 파병여부를 검토하게 될 것이나 보스니아상황이 유동적이어서 파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등 12개기준 부합해야 가능/외무·국방부 “내전 유동적… 어렵다”(해설) 내전상태인 보스니아에 대해 미국이 한국군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참여의사를 타진해옴에 따라 한국측의 보스니아 파병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국방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는 미국이 자신의 입장을 간접 통보한 수준으로 구체적 검토 착수 이전에 있는 한국정부로서는 「가타부타」 입장을 표명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PKO활동은 활동비의 3분의 1이상을 부담하는 미국이 「대주주」로 전체를 콘트롤하고 있어 유엔이 한국참여를 요청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주한미군측은 이날 비공식논평임을 전제,『한국측에 전달한 서한은 미국의 요청이 아니라 유엔의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혀 유엔의 공식통보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외무부와 국방부는 보스니아내부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유동적」상황이라고 규정하고 일단 PKO참여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특히 병력이나 장비파견에 대해 최종결심을 해야할 국방부의 경우 종전에 수립해놓은 PKO파견기준에 따라 보스니아파병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어서 보스니아 상황이 안정세로 즉각 회귀하지 않는 한 사실상 보스니아 PKO참여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방부는 PKO파견 기준으로 ▲현재 분쟁당사자 간의 정전협정 체결 여부 ▲현지 PKO 지휘계통 확립 여부 ▲파견부대의 안전성 여부등 12개 기준을 세워놓고 있다.국방부는 이 기준에 따라 지난해 소말리아 PKO파병과 서부사하라 의료부대 파병등의 결정을 내렸으나 93년 7월과 지난해 3월 유엔의 보스니아 참여요청과 아이티·르완다등지의 참여요청에 대해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참여를 거절했었다. 한편 한국은 서부사하라에 의료지원단으로 42명,인도·파키스탄·그루지야등에 옵서버로 12명등 모두 54명의 PKO병력을 파견해 놓고 있다.
  • 올해는 유엔이 정한 「관용의 해」

    ◎인종·세대갈등 풀게 「평화의 문화」 전파/유네스코 난민교육 프로그램등 활용 『폭력,죽음,편협함은 세상을 더욱 어둡고 잔악하게 만들 뿐이다.우리가 열린 마음과 진보와 평화의 정신으로 그같은 문제들을 해결할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길은 관용 이외에는 없다.우리들 각자의 관용은 세대간,성별간,개인간,집단간의 관계에 있어 오만함을 피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우리는 관용의 문화 정착을 위한 필수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관용은 평화의 새로운 이름임에 틀림없다』 유엔이 창설 50주년을 맞아 95년을 「관용의 해」(Year for Tolerance)로 정하고 새로운 반세기를 위한 인류의 행동지표로 내세운 「관용선언문」의 일부분이다. 유엔이 95년의 캐치프레이즈를 다소 추상적 개념인 관용으로 내세운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즉 유엔 50주년의 기념이 단순한 한해 동안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그 정신을 전인류가 영원히 간직해 평화건설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갈수 있도록 하자는데 참뜻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용의 해 프로그램은 유네스코에 의해 추진되고 있으며 요란하고 화려한 행사위주가 아니라 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평화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이른바 「평화의 문화」를 지구상에 정착시키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같은 취지에 따라 실시될 관용의 해 행사계획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관용선언문 공표=지난 93년 4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됐던 법학자·철학자·종교가·사회학자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관용선언문 초안을 유엔총회에서 관용에 대한 국제적 원칙으로 선포하고 그 정신의 구현을 위해 회원국 모두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관용증진=유네스코의 기존 교육프로그램을 활용,개개인이 사상의 교환등 사고의 자유스러운 흐름을 촉진하고 다른 의견의 청취및 수용을 위한 열린 마음을 갖도록 한다. ▲통신을 통한 관용증진=정보및 개인의견의 자유스런 흐름을 촉진할 수 있는 통신체제의 구축을 통해 표현의 자유및 표현의 교통을 촉진시킨다. 구체적인 활동계획으로는 먼저 개인적,정부적,비정부적(NGO)관심의 제고를 위해 유엔과 사이먼 위젠탈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관용회의가 1월중 뉴욕에서 개최된다.또 관용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학술심포지엄이 레바논 빌로스에서 국제인간과학센터 주관으로 개최되며 한국의 경희대와 유네스코가 공동주관하는 국제학술세미나도 계획되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은 구 유고와 소말리아·캄보디아등에서 실시한 적이 있는 난민교육과 엘살바도르에서 내전 직후 실시됐던 분쟁후 평화구축 프로그램등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지며 유네스코 산하 국제교육국 주관으로 관용 교과서를 편찬하고 비디오 테이프등이 제작되고 있다.
  • 95한반도 주변 정세 전망/전문가 대담

    ◎전환기 동북아 “새질서 진통”/서울­평양관계 “제자리 걸음”/북­미합의 이행여부가 평화공존 관건/북,한국고립 노려 대미 「추파외교」 가속/「정상회담」 빠르면 하반기 성사 가능성/WTO출범 여파… 경제·안보환경 급변/주한미군 철수 쟁점화 가능성 대비를/중·러 불안 고려 일본과 급속한 군사교류는 “시기상조” 1995년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는 한해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김일성사망이후 북한에 새로운 체제가 출범하고 북한의 경수로 건설을 위한 국제기구의 활동이 본격화 되는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역동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는 국제무역기구(WTO)의 출범에 따라 국제경제의 환경이 변화하고,핵확산금지조약(NPT) 연장등과 관련한 국제안보 환경의 변화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박수길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과 강성학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좌담을 통해 95년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와 우리 외교의 진로를 점검해 본다. ▲박수길원장=95년 국제정세는 일단 불확실성의 지속이라는 특성을 나타낼 것 같습니다.냉전체제가 붕괴한뒤 세계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을 예측했습니다.그러나 아직까지는 그런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95년에도 전환기적인 불확실성이 계속될 것입니다.이는 세계정세를 주도해가는 주요국의 리더십 결여와도 관계가 있습니다.특히 미국이 국내문제에 전념해서 신세계질서 창출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결여된 전략적 무기력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확대등 지역주의의 확산과,유엔의 기구개편을 통한 역할 증대등과 같은 현상도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분쟁은 늘듯 ▲강성학교수=미래에 관해 얘기를 하는것만큼 모험적인 일은 없을 겁니다.새 국제질서가 아직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말하자면 청사진이 없다는 것입니다.나폴레옹전쟁이후엔 세력균형이란 것이 있었고 1차대전이후엔 국제연맹,2차대전이후에는 국제연합이란 것이 있어 어느정도 미래예측이 가능했었습니다.그러나 91년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소위「신세계질서」라는 국제질서를 꺼내봤지만 현재의 국제정세는 확실한 비전없이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적어도 95년까지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아 군사단극체제가 계속될 것입니다.이에 따라 국제체제는 안정을 유지할 것입니다.이 안정체제 아래서는 과거의 냉전체제에서도 그랬듯 한편으로 자유세계의 결속을 강화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많은 대립과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상됩니다.95년에도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소규모 지역분쟁이 다반사로 표출될 것입니다.현재는 미국의 초강대국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동의 문제에 대해 미국이 책임회피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셈입니다.아무래도 국내정치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고 비용을 요구하는 일에 대해 선뜻 나서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박원장=세계적인 현안(GLOBAL AGENDA)의 해결에 초점을 맞춰보면 좀더 밝은 면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가 무기한,또는 상당기간 연장될 것으로 전망됩니다.화학무기협정(CWC)도 발효될 가능성이 크고요.또 내년에는 유엔이 50주년을 맞아 안전보장이사회 개편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되고,이는 결국 국제 분쟁에 대한 유엔의 대처능력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됩니다.세계무역기구의 출범도 국가간 상호의존성및 협력의 증대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겠죠.물론 종교·민족·인종 분쟁이 지속될 가능성은 여전합니다.그러나 전반적으로는 평화지향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강교수=최근의 유엔을 보면 2차대전후 마치 루스벨트의 꿈이 현실로 돼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올해 95년에는 유엔 50주년을 맞아 개편논의도 활성화될 것이고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문제나 한국의 비상임이사국 진출문제등도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그러나 유엔기구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수단이어서 많은 한계를 노출시킬 것입니다.지금까지 유엔평화유지군 활동등을 보면 유엔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상당 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있습니다.많은 나라들이 유엔의 역할확대의 필요성을인지하면서도 실제로 성공을 뒷받침하는 재정문제등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저는 95년에 유엔이 국제적 갈등을 얼마나 해소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한·미관계 재정립 ▲박원장=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유엔은 보스니아 사태라든지,소말리아 내전에서 한계가 드러난 셈이죠.그러나 유엔이 없으면 인류가 기댈 수 있는 국제기구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또 현재 추진중인 평화유지상비군이 출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결국 유엔을 이끌어 가는 나라의 정치적 의지와 관계되는 일입니다. ▲강교수=지난 89년 예일대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앞으로의 세계가 상호의존시대 아래 글로벌 마켓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미 예언한 바 있습니다.이를 입증이나 하듯 WTO가 출범했습니다.여기서 성공하면 몫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고 실패하면 그만큼 위험부담이 커지는 셈입니다.지금까지 지역협력기구가 있었지만 전세계를 활동무대로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 될 것이며 그만큼 우리는 무한경쟁속에서 살게 됐다고나 할까요.미국과 한국은 지금까지의혈맹관계에서 하나의 비즈니스파트너로 될 가능성이 큽니다.미국에 대한 새인식이 요구된다고나 할까요.미국은 「동북아지역속에서의 한국」보다는 「전체속에서의 한반도」를 조망할 것입니다.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군사적 개념에서 본다면 미국의 역할이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따라서 95년에는 주한미군철수문제라든가 유엔사령부의 해체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도 있을 것같아요. ▲박원장=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령부 해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최근 조지프 나이 미국 국방차관보가 제출한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미군의 전진배치를 계속 유지하고,다자안보대화를 추구하며,핵확산을 방지하고,동아시아에서 계속적으로 균형유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부시 대통령 당시의 3단계 감축 계획을 모두 바꿔놓은 것이죠.동북아 정세는 이중적 측면이 있습니다.전체적으로 보면 평화무드로 가고 있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이죠.다행히 북·미합의가 실천되는 단계에 들어갔는데 북한이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한반도에도 평화공존 체제구축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강교수=주한미군철수문제가 본격 논의 될 수 있다는 것은 곧 철수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한·미 동맹관계를 보면 두나라사이에 경직되고 관료화돼있는 숙제들을 풀어야할 부분들이 많습니다.그러나 최근 제네바의 북·미합의 이후 미군의 계속주둔은 과연 필요한 것인가의 문제가 미국내는 물론 주변관계국들사이에 터져 나올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는 『미군은 모두 떠날 것이다』라는 하나의 가정위에서 모든 안보전략을 새로 세울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미국이 다자간 안보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없이도 안정과 평화상태가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박원장=동북아 정세를 점쳐보려면 미국의 대 동북아 정책에 유의해야 합니다.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동북아에서 안보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됩니다.이와 함께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클린턴 대통령이 93년 신태평양 공동체의 구성을 제안한 바와 같이 경제적 측면도 강조하고 있습니다.APEC등이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 수단인 셈이죠.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역시 안보공약의 확인에 중점이 주어지고 있습니다.공화당이 의회선거에서 승리한뒤 이러한 측면이 더욱 강화됐죠.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한반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패권주의를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입니다. ○4강과 협력강화 ▲강교수=김일성사후 북한은 폭풍전야처럼 매우 조용합니다.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북한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하지만 남한과의 관계개선은 95년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같습니다.왜냐하면 북한은 근본적으로 남한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 두려움이 계속 커진다고 봤을 때 북한이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리라고 보여지지 않아요.남한과는 계속 거리를 두면서도 일본과 미국에는 「추파」를 던질 상황도 쉽게 예견되지요.특히 김정일의 리더십을 보면 자신감이 결여돼 있고 비전을 제시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조용한 상황이라는 것은 내부에서 김정일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없다는 뜻일 겁니다.대외적으로보다는 대내적인 혼란에 시달릴 수 있는 여러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박원장=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만 이루어지면 일본은 저절로 따라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한국은 아예 제쳐두려고 하지요.그러니 95년에도 남북대화가 활발하게 재개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다만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가 들어가자면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곤란합니다.그것이 북한이 가진 딜레마죠.한국에 대한 고립정책을 취하지만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아닙니까.때문에 내년 후반기에 대화가 재개되면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겠습니다. ▲강교수=북한이 1차로 원하는 것은 핵무장이지 경수로의 지원은 아닌것같아요.경수로지원을 통한 이번의 핵해결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때문입니다.그들로 봐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요.따라서 북한은 절대로 핵문제해결에 있어 수세적인 입장을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오히려 더욱 큰 소리칠 가능성이 있으며 경수로해결을 위한 남한과의 대화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북한이 진실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한 경수로지원등으로 그들을 국제사회에 끌어낸다는 것은 서방의 자의적인 판단일수 있습니다. ▲박원장=한국의 안보는 스스로가 갖는 군사력과 미국의 안보공약이 가장 기본적인 요체입니다.좀더 나아가면 동북아 6개국을 중심으로한 안보대화를 통해 한반도 주변의 환경을 좀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다.만일 4강에 대해 차등외교를 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미국을 업고 4강과의 균형을 유지하며 우리의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죠.역사적으로 근세이후 한반도 주변에서 4번의 전쟁이 발발했는데 한국전쟁을 제외하면 청·일,러·일,중·일전쟁등 3번의 전쟁에 일본이 관련돼 있습니다.과거에 대한 올바른 인식 속에 일본과도 미래지향적으로 경제및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파트너십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중국은 이붕 총리가 방한한 이후에는 안보면에서의 협력조짐도 있습니다.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은 남북한 가운데 우리쪽이 더 실리가 많다고 보는 것이죠.러시아도 국교정상화이래 한국으로부터의 대접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같습니다.북·미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의 참여가 미흡한데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큰 테두리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우리 경수로를 두고 러시아 것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하지만 러시아는 4강의 다른 나라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강교수=한·일협정 이후 다소 예외적인 경우는 있었지만 한·일관계는 정부가 민간부문보다 앞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다고 보입니다.그러나 일본이 지금까지 보인 것은 대북지원을 통해 한반도분단이라는 현상유지정책을 취해왔다고 보여집니다.일본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며 일본과의 급속한 군사교류등도 서둘러 조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사고 탈피를 ▲박원장=끝으로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세계화의 문제를 한번 짚어봐야 하겠습니다.김영삼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의출범에 맞춰 세계화를 주창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생존전략으로 삼아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96년이면 우리가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기구(OECD)에도 가입하지만 우리 국민의 의식개혁이 가장 중요합니다.냉전시대를 지배하던 과거의 사고방식과 패러다임으로부터 탈피하여 세계를 활동무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강교수=동감입니다.세계화의 추진은 당연한 추세입니다.어떤 의미에서는 의도적으로라도 추진해야할 과제라고 여겨집니다.그러나 세계화를 추진하다 자칫 우리 자아를 상실할 우려도 있습니다.상대적으로 약소국가인 우리가 앞장서다 보면 틀림없이 스스로를 상실할 부분이 많지요.따라서 세계화의 추진만큼 우리의 주권강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남·북간의 경쟁은 끝난게 아니라 계속되고 있습니다.단지 그 경쟁에서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 뿐입니다.이 유리한 위치를 강화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새로운 안보전략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북한이 「불장난」을 하지않도록 압도적인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이러한 바탕위에서 세계화의 추진이 의미가 있을 겁니다.
  • 남·북긴장 완화돼야 북해체 당겨진다/브레진스키박사의 예진

    ◎미 지도력 약화… 세계질서 불확실성 여전/북경·평양서 권력다툼땐 「아·태시대」 도래 지연/경제블록화 가속… 동아경협체 등장 시간문제/보스니아내전 등 냉전유산 다음세기까지 문제로 □대담=이경형워싱턴특파원 1995년의 세계도 여전히 불확실성의 시대에 놓여 있다.석학이자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박사에게 새해의 국제정세와 한반도 장래에 대한 전망을 들어본다.브레진스키 박사는 현재 존스 홉킨스대 폴니체 국제정치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전략문제연구소(CSIS)고문직도 맡고 있다.지미 카터대통령 시절인 지난 77∼81년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역임하면서 미·중국 국교수립에 크게 공헌했으며 50년대는 미하버드대 교수로,60년초부터 89년까지 30년간은 컴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했었다. ­90년대 초반부가 탈냉전이 시작한 시대였다면 90년대 후반부는 냉전시대의 유산이 사라져가는 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러한 시대의 조류속에서 95년 한해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1995년은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보스니아 문제,구소련지역에서는 러시아의 입지와 그들의 야망,극동지역에서는 등소평이후 중국의 권력승계 물론 북한체제의 안정 여부와 그들의 진로 문제도 모두 미해결의 사안들입니다. ­다음 세기에도 냉전유산이 지속 될 것으로 보신다는 뜻입니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아마 다음 세기에도 계속 될 것입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분쟁보다는 인종적·종교적 상이성에서 오는 지역분쟁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이같은 경향은 금세기말까지도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십니까. ▲산업혁명이나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던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은 더이상 현대적 의미가 없으며 그런 시대는 거의 끝났다고 믿습니다.이러한 혁명들은 모든 사회문제들이 인간의 본성이나 역사성에 관한 교조주의적 가설에 따라 해결된다고 보는 소위 「강압적인 유토피아」 사회로 나가는경향이 있었습니다.이같은 이데올로기적인 도식은 더이상 성립될 수 없습니다.그러나 종교적 감성에 의해 촉진되는 인종적·종교적 분쟁은 훨씬 뿌리가 더 깊고 특히 언어나 문화,역사에서 연유되는 국민의 심정적 정체성과도 많이 연관되어 있습니다.이같은 분쟁은 아마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오늘날은 과거에 세계를 이끌었던 진정한 의미의 초강대국이 없다고 생각됩니다.미국이 계속 세계의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까. ▲최근까지 초강대국은 미국과 소련 뿐이었고 이 둘중에서 이제 미국만 초강대국으로 존재합니다.미국이 과거에 비해 일관성이 부족하고 전략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미국은 분명히 세계의 지도국이고 또 지도국으로서 중심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예를 들어 미국은 핵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지만 과거처럼 목표가 분명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그리고 확고하게 지도력을 구사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미국의 이같은 변화는 지도자 개인의 속성에서도 일부 연유하나 현재 대통령의 외교보좌팀도 그렇게 강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외교적으로도 전략적인 초점이 없는 것같습니다.클린턴 대통령도 외교문제보다는 미국내 문제 우선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유엔 평화역할 한계 ­보스니아 사태에서 보듯이 유엔이 국제사회에서 평화유지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봅니까. ▲유엔이 평화유지자로서 역할이 점차 사라진다는 명제는 잘못된 도식입니다.언제 유엔이 진정한 평하유지자였던 때가 있었습니까.그렇지 않습니다.유엔이 한국전쟁에서 싸웠을 때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주도 아래 싸웠습니다.우리가 유엔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면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평화유지자로서의 기능을 더욱 발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캄보디아가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유엔은 주요국가들이 이해를 달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이에 해당하는 예가 바로 보스니아 문제로 미국과 러시아간에만 견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프랑스와도 의견이 다르지 않습니까.이러한 상황 아래서는 유엔이 효과적인 평화유지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새해부터 새로운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출범합니다.이러한 신국제무역질서가 통상을 촉진하고 국제사회를 통합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봅니까.또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나 유럽공동체(EU) 등 지역경제협력체가 세계를 지역경제세력으로 분할하지는 않을까요. ▲WTO가 자유무역을 증진시키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그 속도는 느릴 것으로 봅니다.무역장벽을 제거하는데는 앞으로도 수년이 걸릴 것입니다.이러한 장벽 가운데 법률처럼 명시적이고 공식적인 사항은 빠르게 제거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들중에 특정국가의 문화나 고유한 관행,전통에 뿌리박고 있는 비공식적이고 간접적인 장벽은 쉽게 제거될 수 없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WTO가 정착되면 무역자유화는 분명히 촉진될 것입니다.그리고 경제의 블록화는 세계무역의 자유화를 위한 필수적 과정의 하나라고 봅니다.지역적 협력에 바탕을 둘 때 범세계적인 협력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EU는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도 지역적 경제협력체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그리고 NAFTA도 AFTA(미주자유무역지대)로 확대되는 것은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 지역경제협력체도 외부에 대해 개방적일 때만 세계자유무역 신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급진적 경제성장에 힘입어 무기경쟁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특히 중국과 일본의 군사대국 가능성이 없지 않은 가운데 앞으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문제를 어떻게 봅니까. ○자유무역 촉진될듯 ▲극동지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나 열강들간의 경쟁도 심한 지역입니다.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주요한 열강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과 한국으로 하여금 안보문제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할 것입니다.이러한 틀에서 볼 때 주한미군의 유지는 지역안정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만약 미군이 철수한다면 아시아 열강들간의 세력경쟁 움직임은 크게 촉진될 것이며 다른 아시아국가들의 안보도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안보협력 강화해야 ­동아시아지역에서도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안보협력기구의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까. ▲유럽과 동아시아는 서로 여건이 다르다고 봅니다.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통합된 군사조직을 갖고 있지요.그리고 약간 느슨한 기구이지만 CSCE도 있지요.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안보기구는 아닙니다.만장일치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정치적·군사적으로 일정한 방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동아시아의 현 상황에 비추어 기껏해야 유럽안보협력회의 같은 기구가 형성될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그것이 실질적인 안보협력체제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그리고 이는 열강들의 패권정치에는 효과적인 억제책이 될 수 없습니다.지역안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안보 문제에 관해 특수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들끼리 즉 미국과 일본·중국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여타 국가들간의 더욱 긴밀한 안보협력을 증진시켜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그같은 안보협력이 이뤄진다 해도 오늘날 유럽과 같은 안보기구를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중국과 아세안국가들을 포함한 동아시아지역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의 하나로 되고 있습니다.21세기는 동아시아·태평양의 시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무엇보다 경제기적으로 불리는 아시아의 성장에 관한 얘기는 많은 부분이 공허한 신화라고 생각합니다.아시아는 경제수준이 매우 낮은데서부터 출발했고 자본과 값싼 노동을 효과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고도의 성장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나 이것도 선진산업국가들의 과거 개발단계와 비교하면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닙니다.일본에서도 침체가 나타나듯이 한국도 아마 과거보다도 훨씬 많은 성장의 어려움을 맞을 것입니다.지금까지 보호속에 누려왔던 특수한 지위는 이제 더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중국의 경우 지금과 같은 성장을 지속한다면 오는 2020년까지는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만 국내에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한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또 동아시아에 중요한 안보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 지역의 높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동아시아가 현재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지속할 것이며 21세기가 동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가설은 변수를 무시한 독단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 한반도 문제로 질문을 옮겨 보겠습니다.미국과 북한간의 핵합의가 남북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봅니까. ◎국제사회 멀지않아 핵위협 직면/독·베트남과 달리 점진적 흡수통일 가능할것 ▲한반도의 안정화에 기여할 것입니다.남북한 관계의 안정은 궁극적인 한반도 재통일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라고 봅니다.북한체제는 이미 실패했습니다.그 체제는 또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이 위협을 느낄 경우 이를 방어할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요.역설적이긴 하지만 보다 긴장이 완화되고 협력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면 종국적으로 통일을 촉진하는 북한의 해체를 앞당길 것입니다.남북한의 통일은 동서냉전에 의해 분단된 다른 두 지역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단계로 이뤄질 수 있을것입니다.베트남의 경우는 어느 일방의 군사적 승리에 의해 통일이 달성되었고 독일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한 정치·경제적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통일이 성취되었습니다.한국의 경우 제 3의 방법인 남한의 북한에 대한 우호와 협력에 의해 점진적 흡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개선 전망을 어떻게 보며 새해에는 정식외교관계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합니까. ▲1∼2년 사이에 외교관계 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만 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북한간의 합의가 북한의 약속위반이나 미의회의 클린턴행정부에 대한 합의이행 유보 강요나 아니면 한국이나 일본이 경수로 제공에 따른 재정부담을 떠맡지 않으려 하는 등의 이유로 이행이 지연되지만 않는다면 미국과 북한간의 외교관계는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답변과 관련하여 새해부터 공화당이 장악하게 되는 미국의회가 북미 합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습니까.▲공화당으로부터 북미 합의에 대한 일부 반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나 합의 전부를 거부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그 합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해석이나 합의를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달성되었을 때 동북아의 세력 균형은 어떻게 될 것으로 봅니까. ▲무엇보다 통일한국이 핵을 보유하고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만약 핵보유국이라면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저해할 것이며 일본의 핵무장을 고무시킬 것입니다.둘째는 등소평 이후 중국의 권력승계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또 중국이 국제적인 체제에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으로 봅니다.그러므로 여기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개재되어 있다고 봅니다.적어도 중국의 권력경쟁에 있어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보다 확고한 민족주의적 대국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될 것으로 봅니다.이같은 경향은 이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같은 요소가 중국내부의 권력이양 과정으로 국한되고 이 과정의 갈등이 외부로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위험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따라서 한반도의 재통일이나 중국의 권력승계나 이를 싸고 발생할 수 있는 권력투쟁은 이 지역에 불확실성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는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는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요.핵기술 획득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국가들은 결국 핵보유국이 되리라고 봅니까. ▲핵확산을 전면 중지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완화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일부 국가들은 적어도 핵무기의 잠재능력을 보유할 것으로 보며 현재보다는 더많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할 것으로 봅니다.여러가지 가능성으로 볼 때 장래 어느 시점에 가서는 핵무장한 지역 세력국가들간의 핵무기 분쟁이 어떤 형태로든 있을 것으로 봅니다.그러한 의미에서 앞으로 국제사회는 실질적인 핵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94년은 세계난민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르완다를 비롯,곳곳에 5천5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유엔이나 국제사회는 더이상 내전이나 이같은 난민 발생에 대처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유엔이 캄보디아에선 잘 대처했으며 소말리아나 르완다에서도 합리적으로 대처했거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약 지역적 내전의 참화에 강대국간의 이해가 대립되어 있을 때는 유엔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유엔이 거기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 우크라/벨로루시/몰도바/북한/내년 소멸 가능성

    ◎영 이코노미스트 전망/경제난 심화… 주변국에 통합 유력/북,부유한 남의존… 독일과 같은 길 지도업자들에게는 해마다 기존 국가의 소멸 혹은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펴낸 별책 「95년의 세계」에서는 95년에 소멸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우크라이나,벨로루시,몰도바,북한 등 4개국을 들었으며 새로 생길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는 퀘백과 소말리공화국 등 2개국을 들었다. 이 책은 「95년의 세계지도」란에서 95년에 없어질 확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를 지적했다.그 까닭은 러시아인들이 아직도 우크라이나를 「식량창고」로 생각하고 있으며 벨로루시는 대부분의 역사를 러시아와 공유하고 있는 한편 이들 양국 국민들도 독립후 극심한 경제난으로 러시아와의 재결합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따라서 이들은 「슬라브연방」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국가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루마니아어를 사용하고 있는 몰도바를 들었다.구소련에서 독립한몰도바는 아직까지 러시아군 제14군단이 주둔하고 있으며 러시아측이 비록 3년내 철수를 공언하고 있으나 러시아에 합병이 되지 않는다면 루마니아와 합병 가능성이 높다 또하나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는 북한을 지적하고 이미 노쇠해져 버린 북한 공산정권이 동독과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즉 북한이 보다 부유하고 안정된 남측의 동족들에게 의존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새로 생길 국가로 퀘백이 지목된 것은 이미 지난번 주의회 선거에서 퀘백분리당이 1백25석가운데 77석을 획득,캐나다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할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 또 소말리공화국은 과거 영국령과 이탈리아령이 합쳐 형성됐던 소말리아에서 영국령지역만 가르키는 것으로 이탈리아계 지배의 소말리아가 내전으로 인해 피폐해졌기 때문에 영국계가 별도로 독립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 “보스니아내전 「세」계 승리”/“서방 군사개입 실효성 없어져”

    ◎페리 미국방/유엔평화군 조기철수 시사/미·러 등 5국 “즉각 휴전” 촉구 【사라예보·워싱턴 AP AFP 연합】 비하치가 함락 위기에 처한 가운데 미국은 27일 보스니아 내전에서 세르비아계가 승리했음을 사실상 시인하고 서방의 군사개입 또한 어렵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은 이날 미NBC­TV의 「언론과의 만남」프로에 출연,보스니아 내전에서 세르비아계가 승리했다고 선언하고 이제 회교정부군을 구원하기 위해 서방이 효과적 군사조치를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유엔의 요청없이 공습을 할 수 없는 형편이고 공습을 실시하더라도 내전의 향방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면서 따라서 미지상군은 현지 군사작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이해는 내전이 발칸반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로즈 보스니아주둔 유엔보호군사령관도 이날 전투가 가열되면 유엔군이 철수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자그레브·브뤼셀 로이터 AFP 연합】미국과 러시아 등 보스니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5개 실무접촉」국가들은 28일 유엔 안전지대인 비하치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내전당사자들에 대해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이들 5개 실무접촉그룹대표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이틀간의 비공개 회의를 끝마치면서 발표한 성명에서 협상을 통한 보스니아 내전종식을 전적으로 지지 한다면서 이같이 촉구했다. 지난 11일 미국의 보스니아 무기 금수 이탈선언이후 처음 열리는이번 회의에서 5개국 대표들은 비하치에서의 즉각적인 휴전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역에서의 적대행위 종식을 공동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 5개국의 대표들은 비하치의 회교도들을 구원하기위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개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함락 임박 비하치시 표정/“대학살” 소문… 주민 절반 탈출/보스니아측 “유엔대응 미온적” 맹비난/세르비아계 “억류 유엔군 석방 용의” ○…비하치 함락 위기와 함께 민간인들의 피해가 커지자 유엔을 비롯한 서방측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보스니아의불만이 폭발하고 있다.유엔 안보리는 26일(현지시간) 비하치 지역의 즉각 휴전과 세르비아계의 병력철수를 촉구.그러나 무하메드 사치르베이 유엔주재보스니아대사는 『안보리의 휴전 촉구는 나토의 공습 요청 묵살및 유엔 자신의 임무 수행 실패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며 『유엔은 세르비아계의 침공을 중단시키기 위해 군사조치를 취하겠다는 위협조차 발표할 뜻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맹비난.사치르베이 대사는 이어 『유엔은 비하치를 방어하든가 비하치의 민간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든가 결정하라』고 촉구.함디자 카빌라치 비하치시장도 비하치가 함락되면 대량학살이 뒤따를 것이며 비하치 주민들의 생사는 유엔에 달려 있다며 유엔의 미온적 태도에 분노를 표시. ○…7만 시민 가운데 이미 절반 이상이 세르비아계의 공격을 피해 떠난 비하치 시내는 정부군이 세르비아계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설치한 나무·차량등의 바리케이드만 눈에 띌 뿐 시내 전체가 텅 빈 모습.한편 세계식량계획(WFP)은 27일 비하치를 떠난 3만여명의 난민들이 불타버린 자동차나 마분지로 지은 집 등 임시거처조차 찾기 힘들 만큼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최악의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분유·우유·소금 등 생활필수품마저 극심한 부족을 보이는 식량악화 속에 내전 발생후 세번째로 맞는 이번 겨울은 또다른 비극을 부를 것이라고 우려. ○…그러나 세르비아계는 이같은 ICRC나 유엔의 호소를 무시한 채 비하치에 대한 더욱 드센 공격을 계속.세르비아계의 한 군지도자는 미해병대 병력이 아드리아해로 파견됐다는 소식에 대해 『우리는 소말리아나 아이티가 아니다.미군의 병력 파견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한 고위관리는 27일 나토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억류중인 4백여명의 유엔평화유지군 일부를 풀어줄 용의가 있다고 시사. 이에대해 마이클 로즈 보스니아주둔 유엔군사령관은 이날 프랑스 TV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현장에서 봉쇄당한 채 행동의 자유를 박탈당하긴 했지만 정확하게 인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7일 미국·영국·프랑스·독일등과의 「접촉그룹」 회담에서 보스니아사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유고연방의 탄유그통신이 보도. 코지레프 장관은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내달 2일의 브뤼셀 「접촉그룹」 각료회담에서 보스니아 전역의 포괄적 적대행위 중단이라는 새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보스니아 파병 검토/관계부처/공병·의료부대 PKO 참여 논의

    ◎유엔선 전투병력 요청 【뉴욕=나윤도특파원】 정부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의 일환으로 유엔이 공식요청해 온 옛 유고 보스니아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유엔측에서 현재 보스니아 지역 치안유지를 담당할 수 있는 전투병력의 파견을 희망하고 있지만 이 지역이 아직 내전중인 점을 감안,공병이나 의료부대등 비전투병력의 파견을 고려하고 있으나 아직 시기는 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4일 『정부는 보스니아 지역에 대한 한국군의 파견등을 요청하는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의 서한을 여러 차례 접수한 바 있다』며 『현재 국방부등 관계부처에서 병력 파견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국민정서로 볼 때 전투행위등 민족분쟁이 심각한 보스니아 지역등에 대한 파병을 결정하는 것은 아직 때가 이른 것 같다』며 『그러나 소말리아의 경우에서와 같이 공병이나 의료부대 파견은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종하주유엔대사도 『유엔으로부터 구유고에 대한 PKO참여를 요청받았다』며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할 때 PKO활동과 유엔 재정분담금 증액등 유엔에 대한 기여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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