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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총리,「스승의 착잡한 심경」 토로

    ◎“스스로 내 종아리 때리고 싶은 심정”/“진실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이 야속/공직 물러나면 교단에 다시 서겠다” 『책임이 있는 우리들이 잘못 가르쳐 그런 일이 생겼다는 심정에서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채찍을 들어 내 종아리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정원식 국무총리서리는 4일 상오 기자간담회를 자청,외국어대생들에게 당한 집단폭행의 경위와 「스승」으로서 느끼는 착잡한 심경을 15분여에 걸쳐 털어놓았다. 정 총리서리는 이날 평소와 같이 상오 8시40분에 출근해 국무위원과 총리실 간부들의 위로인사를 받은 뒤 침통한 표정으로 소접견실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정 총리서리는 『노교수로서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것이 야속하고 서글펐다』고 솔직히 토로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채찍을 들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을 몇 차례 되뇌었다. 그는 그러나 『어떤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고 공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강단에 서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계속 강단에 서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믿고 가르치는 제자와 따르는 제자,나를 존경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학생들에 의해 운동장으로 끌려나왔을 때도 때리는 학생보다는 말리려는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외국어대 출강경위에 대해서는 『지난 3월4일부터 시간강사 자격으로 교육대학원 강의를 맡았으며 아프리카순방을 떠나기 전인 지난 5월에 종강날짜를 잡아놓았었다』면서 『비록 정부에 들어왔으나 학생들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강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 『계단으로 끌려내려 올 때는 자칫 쓰러지기라도 하면 더 큰 불상사가 날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애를 썼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총리서리는 간담회 후 사과차 찾아온 이강혁 외국어대 총장 등 대표 3인을 면담한 후 심신의 충격을 우려한 비서진들의 권유로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삼청동 공관으로 직행,휴식을 취했다.
  • 졸지에 총리 모신 택시운전사 김종인씨

    ◎“밀가루범벅된 분이 총리라니…”/처음엔 교수가 학생에 봉변 당한줄…/“순찰차 탑승” 사양… 경황중에도 침착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던 이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겁니까』 3일 하오 외대에서 고별 강의를 하다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한 정원식 총리서리를 공관까지 태우고 간 서울3하5310호 개인택시 운전사 김종인씨(42·서울 강동구 길1동 374의8)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이날 하오 7시30분쯤 석관동에서 20대 남자를 태우고 외대앞까지 갔다. 이때 백밀러로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쓴 노신사가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사실은 교수가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한 것으로 생각,자리를 피하려 했습니다』 교수가 차에 타면 학생들이 차를 부술까 겁이 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 택시를 잡은 40대 남자가 『이분은 총리십니다. 공관까지 모셔주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을 때 김씨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총리를 모시게 돼 영광이라고 생각했으나 정 총리가 수행원 3명과 함께 차를 타고 출발하면서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총리에게 결례가 될까봐 백밀러를 통해 총리의 모습을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차가 휘경역을 지나자 경찰순찰차와 서장 승용차가 나타나 총리를 모시고 가겠다고 했으나 정 총리는 택시로 가겠다고 했다. 『공관까지 갈 동안 정 총리는 줄곧 차분했습니다』 수행원들이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자 정 총리는 『괜찮다』면서 『그래도 말리는 학생이 더 많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차가 공관 현관입구에 도착하자 김씨는 정 총리에게 『주의깊게 몰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총리는 『수고했다』며 공관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TV를 켰다. 방송에서 조금전 자신의 「손님」이 된 정 총리서리가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확인한 김씨는 일할 의욕을 잃었다. 지난 74년 군복무를 마친 뒤부터 택시운전을 해온 김씨는 학생들의 시위가 있을 때마다 영업에 지장이 많았지만 학생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날 사건을 겪은 김씨는 『학생들이 분신까지 하면서 만들려는 세상이 고작 이런 꼴이란 말입니까. 이제 누가 학생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 계란세례 나무라자 주먹·발길질/패륜의 총리폭행 현장

    ◎「김귀정 살려내라」 소란… 강의 45분 만에 중단/수강생들 자제 호소… 과격학생들과 몸싸움도 ○…정원식 총리서리가 3일 하오 6시30분 총리가 되기 이전부터 맡아오던 외대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학생생활지도 특강」의 마지막 강의를 위해 교육대학원 4층 418호 강의실에 들어서자 미리와 수업준비중에 있던 50여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축하인사를 건네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시작. 이날 90분 예정으로 시작된 강의는 학생들이 수업분위기를 위해 취재를 마지막에 해줄 것을 요청,취재기자들도 없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계속됐으나 30여 분이 지난 하오 7시쯤부터 2백여 명의 학생들이 복도로 몰려와 「정 총리 물러가라」 「전교조 탄압했다」 「김귀정을 살려내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소란을 피우자 정 총리서리는 하오 7시15분쯤 서둘러 수업을 마쳤다. ○유리창 깨고 끌어내 ○…정 총리서리가 강의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밖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계란을 던지며 한꺼번에 몰려들자 경호진들이 황급히 건너편 강의실인 415호로 정 총리서리를 피신시키고 안으로 문을 잠근 채 잠시 대피 밖에서 「귀정이를 살려내라」는 등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강의실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정 총리서리를 강의실 밖으로 끌어내 밀가루를 퍼부으며 이 가운데 6∼7명은 정 총리서리의 뒷덜미와 멱살·혁대끈을 잡고 계단을 통해 1층 로비까지 밀고 내려왔으며 이때 로비에 있던 학생들은 현관문을 닫고 총리일행을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저지. 이 과정에서 정 총리서리의 강의를 듣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은 학생들이 자제를 호소하고 과격학생들을 뜯어 말리는 등 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가까스로 대학원 현관문을 나온 정 총리서리 일행은 처음에는 차량이 세워져 있는 쪽으로 가려 했으나 학생들이 물을 뿌리며 저지,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정 총리서리는 『이게 무슨 짓들이야 왜들 이러는가』라며 학생들을 나무랐으나 몇몇 학생들이 뒤편에서 주먹으로 정 총리서리의 머리를 내리쳤으며 허리부분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이들 과격학생들은 그들의 행위를 말리는 취재기자나 교직원들에게도 대들었으며 정 총리서리 일행을 교문 쪽으로 몰고 갔고 이때 운동장 주위에 있던 학생들도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가세. ○탈진상태 교문 탈출 ○…교문 앞에는 이미 1백여 명의 학생들이 교문을 잠가놓고 화염병 등을 준비해 놓은 채 「전교조 탄압주범 정원식을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 앞의 전경들과 대치중이었는데 하오 7시45분쯤 정 총리서리 일행이 교문 앞에 당도하자 이들을 내보내지 말라고 외치며 계속 폭언. 이때 정 총리서리는 거의 탈진한 상태로 경호진과 일부 학생들에 의해 부축을 받고 있었으며 이같은 정 총리서리의 상태를 본 다른 학생들이 교문을 열어 하오 7시50분쯤 정 총리서리의 일행은 간신히 교문을 빠져나왔다. 정 총리서리는 곧바로 교문 앞을 지나던 서울3하5310 개인택시에 실려 삼청동 공관으로 향했으며 경호진과 비서진들도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마이크로 집합선동 ○…정 총리서리는 이날 외대 강의에 앞서 교통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기자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지하철1호선의 동대문역까지 승용차로 가서 그곳에서 외대 앞의 휘경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한 뒤 휘경역에서 학교까지 5백여 m를 도보로 가면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이날 총리가 교문을 들어선 하오 6시10분쯤에는 학생들도 모여 있지 않아 별 제지를 받지 않았으나 강의가 시작된 하오 6시30분쯤부터 일부 학생들의 교내 마이크를 통해 모일 것을 선동,하오 7시쯤에는 5백여 명이 모여들었으며 이 가운데 2백여 명이 강의실로 올라가 소동을 벌였다.
  • 외대생들,정총리 폭행/어제 저녁/마무리 강의뒤 끌려나와 봉변30분

    ◎수십명이 주먹질·밀가루 세례/안경 부숴지고 허리에 타박상/“오늘의 현실 몹시 비통”/정 총리 정원식 국무총리서리가 3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마지막 강의를 서둘러 마치고 나오다 몰려온 학생 2백여 명에게 둘러싸여 계란과 밀가루세례를 받고 여러차례 주먹으로 뒷머리를 맞고 허리를 발길로 채이는 등 폭행을 당했다. 정 총리서리는 이날 총리가 되기 전부터 외대 교육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해오던 「학생 생활지도 특강」의 마무리 강의를 위해 출강,하오 6시30분부터 8시까지 1시간30분 예정으로 강의를 시작했었다. 정 총리서리는 이날 강의를 시작한 30분 후쯤부터 복도에서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자 7시20분쯤 강의를 서둘러 마치고 나오다 계란과 밀가루세례를 받았으며 옆 강의실에 10여 분쯤 피신해 있다가 창문을 깨고 들어온 학생들에 의해 건물밖으로 끌려나와 욕설과 물세례를 받았으며 학생들에게 이끌린 채 30여 분 간 봉변을 겪으며 가까스로 교문을 빠져나갔다. 이과정에서 시위를 말리는 학생들과 과격 학생들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정 총리서리는 안경이 깨지고 주먹세례를 받고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날 하오 7시50분쯤 교문을 나온 정 총리서리는 경호진과 일부 학생들의 부축을 받으며 학교앞을 지나던 서울3하5310 개인택시를 타고 황급히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향했다. 학생들은 정 총리서리의 일행이 떠난 후에도 5백여 명이 교문앞에 모여 『독재정권 타도』 『귀정이를 살려내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라 하오 8시40분쯤 해산했다. 한편 정 총리서리는 이날 저녁 외국어대생들의 자신에 대한 폭행사태와 관련,『오늘의 현실이 대단히 비통스럽다』고 말하고 『총리 이전에 한 교수로서 맡았던 강의를 책임지기 위해 종강을 하고 나오는 도중 소란을 피운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고 강용식 총리비서실장이 전했다. 정 총리서리는 이날 폭행사건으로 목과 허리 등에 타박상을 입었으나 병원에 입원할 상태는 아니고 공관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았다고 이현구 공보비서관이 밝혔다.
  • 「무탄무석」의 평화시위/박대출 사회부 기자(현장)

    ◎새 시위문화 정착의 가능성 보인다 시위대는 도심 한복판 곳곳으로 옮겨 다니며 구호를 외치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을 에어싸고 따라다닐 뿐 시위를 말리려 들지 않았다. 그곳에는 화염병이나 돌·최루탄이 보이지 않았다. 28일 저녁 재야단체 회원과 학생 등 1만여 명이 참가한 을지로2가 네거리 일대에서의 김귀정양 사망사건 규탄시위현장에서였다. 시위대는 경찰이 을지로2가 네거리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하자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평화시위를 가졌다. 일부 골목에는 이들이 「유사시」에 대비해 준비해놓은 화염병을 담은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이 화염병들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경찰도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만을 거듭했을 뿐 최루탄을 쏘지 않았다. 이 같은 평화시위는 양측의 협상결과였다. 김양이 다니던 성균관대 학생 4천여 명은 이날 하오 3시30분쯤 학교에서 김양사건 관련집회를 가진 뒤 김양의 사체가 안치된 백병원으로 가기 위해 교문 밖으로 몰려나갔다. 경찰 8백여 명이 이들을 막아 나섰고 학생들도 저지선을 뚫으려고 30여 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학생들은 『총학생회 이름으로 평화시위를 보장하겠다』고 경찰측에 제안했고 경찰도 『학생들을 한번 믿어보겠다』고 양보했다. 결국 학생들은 교문을 나서 종로4가와 청계천4가,대한극장 앞 등을 거쳐 백병원까지 3㎞ 가량 가두행진을 벌였다. 경찰은 행진대열의 양쪽에 늘어서 시위대를 보호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당초 약속대로 인도만을 따라 행진하지 않고 차도 일부까지 차지했으나 경찰도 일부 차선으로 차량통행이 가능하다고 보고 한발짝 더 양보하는 느긋함을 보였다. 이들은 가두행진을 벌이며 한두차례 약식추모행사를 가진 뒤 하오 8시쯤 중앙극장 앞에 충돌없이 이르렀고 그 사이 시위대는 1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서 시위대는 하나 둘씩 흩어져 자정쯤에는 5백여 명으로 줄었다가 새벽 4시쯤에는 모두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불량배들이 골목에 쌓아둔 화염병 50여 개를 던졌을 뿐이었다. 새로운 시위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이날 시위를 보고내킨김에 『차도가 아닌 보도에서 시위가 이뤄졌다면 시민들의 불편을 한결 덜 수 있을텐데…』하는 욕심을 내봤다.
  • 강기훈씨에 사전 영장/검찰,“유서대필” 통보따라

    ◎자살방조 혐의 검거 나서/“명동성당 공권력 투입 시기 신중 검토”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26) 분신자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강력부(부장 강신욱 부장검사)는 26일 「전민련」측이 제출한 김씨의 수첩이 변조됐고 이 수첩 필적이 이 단체 총무부장 강기훈씨(27)의 필적과 같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통보에 따라 이날 하오 강씨에 대해 자살방조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검찰은 강씨가 「전민련」 및 「대책회의」 관련자들과 함께 명동성당에 있는 점을 감안,공권력 투입 방법 및 시기는 정부고위층과 협의해 신중히 결정하기로 했다. 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강력부 신상규 검사의 청구로 이날 하오 6시에 법원에 접수돼 당직판사인 김경종 판사에 의해 하오 9시 발부됐다. 검찰은 영장청구 요지에서 『강기훈은 올해 5월 초순 숨진 김기설이 자살을 결심하고 결행하는 것을 말리지 않고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유서를 써주고 전민련의 김선택·서준식 등이 장례 등 사후처리문제를 맡아 처리해준다는 등 암시를 하면서 이를 도와주었으며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어 영장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강씨에게 자살교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현재로선 이에 대한 증거가 확실하지 않아 일단 자살방조혐의만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강씨가 명동성당을 나와 잠적했을 경우에는 공개수배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강씨 이외에 다른 「전민련」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김씨 자살에서 명백한 관련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으나 앞으로 조사 결과 혐의가 밝혀지면 모두 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지금까지 조사결과로 볼 때 강씨의 자살방조 혐의는 충분히 입증됐다』고 밝히고 『강씨는 유서대필 외에도 지난 8일 김씨 사망 뒤 10·12·14일 등 3차례에 걸쳐 검찰수사에 따른 김씨 사망대책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며 14∼16일 사이에 김씨 수첩을 조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대도시인근도 채권입찰제(사설)

    건설부는 주택공급규칙을 다시 고쳐 대도시 인근지역에까지 청약예금 및 채권입찰제를 확대시행키로 했다. 주택공급규칙을 고친 지 한 달이 넘기도 전에 또다시 규칙을 바꾼 것은 주택행정이 얼마나 임기응변식인가를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건설부는 불과 한달 전인 지난 4월 주택공급규칙을 개정하면서 유예조치로 6개월 후에 군지역에도 재당첨금지제도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규칙이 발표된 뒤 실시된 경기도 고양군 성사지구 아파트분양의 경우 경쟁률이 최고 4백8.6 대 1에 이르는 사상최대의 투기열풍에 휘말리자 건설부는 부랴부랴 대도시 인근지역의 주택투기억제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건설행정 당국은 부동산투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투기우려지역에 대한 사전감시제를 강화하여 투기를 사전에 방지하겠다고 강조해온 바 있다. 70년 후반의 광란적인 부동산투기를 방불케 하는 성사지구 아파트청약의 경우 관계당국이 다짐해 온 사전감시제를 조금만 활용 했더라도 사전에 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대도시지역과는 달리 주택청약 예금과 채권입찰제가 실시되지 않음으로써 수도권 인근 군지역 아파트가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은 지난해부터로 알려지고 있다. 당첨만 되면 그 자리에서 몇천 만원의 웃돈을 얹어 전매할 수 있다는 풍문이 파다하면서 서울을 비롯,인근지역 주민들이 주민등록을 이 지역으로 옮기는 일이 부쩍 늘었다. 주민들의 위장전입신고가 늘고 있는 데도 관계당국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당 군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 주민들도 청약예금과 관련없이 아파트 분양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상의 맹점이 성사지구에 투기열풍을 불게 한 것이다. 뒤늦게 3년 이상 거주한 주민에게 1순위를 주는 등 제도를 개선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건설부는 성사지구에 투기현상이 나타나자 국세청으로 하여금 투기조사를 의로하고 주택공급규칙을 개정하는 사후약방문식 행정을 했기 때문이다. 건설부가 사전감시는 못 했더라도 고양군 당국이 요청한 대로 최소한 1년 이상 거주한 주민들에게 1순위를 주는 조치는 취했어야했다. 건설부가 때를 놓쳐 주택공급규칙을 개정하면서 이번에는 군지역 투기억제시책의 강도를 지나치게 높여 실수요자의 부담증가는 물론 일부 군지역의 경우는 멀지않아 청약미달사태가 예상된다. 올 들어 일부 지방도시에서 분양미달사태를 보이고 있고 수도권지역 신도시의 경우도 연말쯤에는 같은 조짐을 보일 것으로 예견된다. 이 상황에서 주택공급규칙을 고쳐 부산·대구·대전·광주 등 대도시 인근 군지역까지 수도권지역 인근 군과 똑같이 채권입찰제와 청약예금에 의한 20배수 청약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러한 일괄적인 제도가 시행되면 건설업자들이 상대적으로 열세권에 있는 광주 등의 인근 군지역에서 주택건설을 포기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이들 지역주민은 수도권 인근지역 투기 때문에 피해자가 되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수도권 인근지역에서 채권입찰제와 주택청약예금제도를 실시한 뒤 단계적으로 부산 등 다른 대도시 인근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른 대도시 인근 군지역에 대해 사전감시제를 강화한다면 성사지구에서 일어난 투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유서대필/자살방조죄 성립 논란/대필 밝혀지면 어떻게 되나

    ◎「수구제공」등 구체행위 없어 성립 안돼/법원/돕겠다는 의지 확인… 「간접방조」로 봐야/검찰 분신자살한 「전민련」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우서를 다른 사람이 대필해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법적으로 자살방조죄가 성립될 수 있을까. 검찰 수사는 현재 김씨의 유서를 대필해준 사람으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를 지목,김씨의 유서와 강씨의 필적 등을 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의뢰하는 등 수사를 집중하면서 강씨가 출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강씨는 유서의 필적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에서 김씨의 유서를 강씨가 대필해 주었다는 확증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강씨의 신병만 확보된다면 유서대필 사실을 밝혀내기는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번 사건 수사에서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필해준 사실을 밝혀냈다고 했을 때 그것만으로 자살방조죄를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법조계에서조차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물론 강씨가 단순히 유서를 대필해 줬을 뿐 아니라 나아가 자살을 하도록 부추긴 사실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김씨의 행적을 면밀히 추적하면서 집중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럴 경우 강씨가 김씨에게 자살하도록 권유했거나 자살을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자살교사 또는 방조죄를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단순히 유서를 대필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방조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데는 검찰 내부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형법 제2백52조(촉탁,승낙에 의한 살인 등) 2항은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이 조항과 관련된 판례가 극히 드문 실정이며 더욱이 자살하는 사람의 유서를 대필해 준 사건이 발생한 적은 거의 없어 법정용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일부 현직 판사와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들은 유서대필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형법규정을 적용,유죄판결을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방조범 처벌의 일반규정인 형법 제 32조에 관한 우리 판례는 방조행위를 「범행한다는 정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그 방법은 물질적,정신적,직접적,간접적이든 가리지 아니한다」고 하고 있으나 그럴 경우에도 구체적인 방조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자살방조죄의 경우에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죽을 수 있도록 자살의 도구를 구해주거나 자살자체를 도와주는 행위가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행위의 예는 ▲분신자살하는 사람에게 휘발유나 시너를 갖다주거나 몸에 불을 붙여 주는 행위 ▲목을 매 자살하는 사람에게 끈을 제공하거나 목을 매기 쉽도록 도와주는 행위 ▲흉기나 극약을 구해 주는 행위 등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들은 자살을 말리지 않았거나 유서를 대신써준 행위 등은 자살방조죄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수사검사들은 『김씨가 자살하려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도 이를 말리지 않고 유서까지 대신 써준 행위는 분명히 자살을 도와준행위로 봐야 한다』고 주장,자살방조죄가 충분히 성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유서를 대필해 준 행위가 직접적으로 자살을 도아준 행위는 되지 못할지라도 유서가 자살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이라면 대필행위는 간접 방조라는 의견이다. 검찰은 아직 강씨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김씨가 죽기 전 강씨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자살과 관련한 어떤 논의를 했는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나 유서대 필외의 자살방조 또는 교사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강씨가 유서를 대필해준 사살이 분명하다면 김씨의 자살 자체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지 않고 다만 유서만을 대신 써 주었다는 것은 그 동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가 자살하도록 권유하거나 자살을 도와준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남의 유서를 대신 써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편 검찰은 「전민련」측에서 김씨의 것이라고 내놓은 수첩이 조작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수첩의 조작 여부를 밝혀내는 것 또한 이번 수사에서 자살방조 여부를 가리는데 있어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 “건물 파손 말라” 말리는 행인에 뭇매

    ◎5·18 국민대회·강군 장례 이모저모/CNN 보도진,이 여인 분신 촬영하다 봉변/광주 상인들,“토요일은 장사 잘되는 날” 영업/연대에 박노해씨 명의 「옥중메시지」 나붙어 ○프락치 아니냐 시비 ○…이날 하오 7시40분쯤 노제가 치러지던 공덕동 네거리에서 김 모씨(42·광고업)가 교통초소의 대형 유리창 3장을 깨는 학생들을 나무라다 시위대들로부터 뭇매를 맞아 얼굴이 찢어지는 등 상처를 입었다. 시위대 40여 명은 이날 김씨가 『공공시설은 파손시키지 말라』고 말하자 『당신 안기부 프락치 아니냐. 신분증을 보자』며 멱살을 잡고 쓰러뜨린 뒤 온몸을 마구 때렸다. 시위대는 또 김씨에게 사건경위를 묻는 H일보 송 모 기자에게도 『당신이 뭔데 자꾸 묻느냐』면서 몸을 밀치고 취재수첩을 빼앗아가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를 말리던 한 시민은 『민주사회를 이루자는 사람들이 공공건물을 파손하고 신분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프락치」라며 군중심리를 이용,폭행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고 한마디. ○…강군 치사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6일부터 학생회관에 사무실을 차려놓은 「대책회의」의 주도로 비롯된 각종 대규모 집회 및 시위로 20여 일 이상 홍역을 치러온 연세대 교직원들은 강군 장례식이 끝난 18일 매우 홀가분해 하는 모습. 학생과의 한 직원은 『그 동안 강군사건과 관련된 외부인들의 집회 등으로 기본 학교업무마저 마비돼 학생증 및 복무단축확인서 발급업무 등 최소한의 민원만 처리해왔을 뿐』이라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운구 휘문고에 들러 ○…이날 하오 9시15분쯤 강군의 운구행렬이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에 도착하자 재학생 50여 명은 검은 리번을 달고 본관 앞에 임시로 마련된 빈소에서 운구행렬을 맞았다. 이곳에서 약 15분간의 추모식이 끝나자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는 추모시를 읽은 강군의 선배 배노준씨(24)에게 『추모시를 간직하고 싶다』고 요청,시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받기도 했다. ○“정권과의 전쟁” 규정 ○…이날 연세대 백양로 게시판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사노맹」 중앙위원 박기평씨(필명 박노해) 명의로 된 「박노해의 옥중메시지」라는 제목의 대자보 7장이 나붙었다. 박씨는 이 대자보에서 현시국을 「노 정권과 민중과의 전쟁상황」으로 규정하면서 『노 내각을 퇴진시키는 것이나 김대중에게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노 정권을 쓰러뜨려 임시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곳곳에 화염병 파편 ○…이날 하오 10시쯤부터 전남도청 앞으로 진출하려는 시민·학생 등 1만여 명과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려는 경찰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시내 금남로·중앙로 등 도심 곳곳이 화염병 파편과 최루탄,국민대회에서 뿌려진 3만여 장의 유인물 등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이날 국민대회가 열린 금남로·충장로 일대의 상가에는 「5월단체 회원」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사람으로부터 『오늘은 시민 모두가 그날의 뜻을 기리는 경건한 날이므로 일찍 철시하라』는 요청의 전화가 쇄도하기도. 충장로1가 K의류상 주인 김 모씨(59)는 이날 상오부터 이같은 내용의 전화를 두 차례나 받았으나 토요일은 장사가 잘되는 날이므로 철시하지 않는 등 대부분의 상인들은 11주년을 맞는 5·18정신 계승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업에 열중하는 모습. ○분신자,여대생 오인 ○…이날 상오 11시50분쯤 이정순씨(39)가 투신한 현장에서 이 학교 영문과 2년 신 모양(20)의 가방이 발견되어 「대책회의」측과 학교측은 투신자를 신양으로 보고 가족에게 연락하는 등 한동안 법석. ○“쇠파이프 맞아 입원” ○…미국 CNN­TV 소속 카메라맨과 녹음기술자 등 2명이 이날 연세대 앞에서 한 여자의 분신장면을 촬영하려다 시위학생들로부터 쇠파이프와 곤봉으로 폭행당해 입원했다고 CNN의 한 관계자가 밝혔다. CNN의 통역인 조주희씨는 『한 여자가 분신 후 고가철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으려던 카메라맨 김효성씨와 녹음담당 조남백씨 등 CNN 보도진이 그곳에 모여 있던 군중에게 붙잡혀 폭행당했다』고 말했다. ○고교생도 시위 참여 ○…이날 「한국고등학생기독교운동서울연맹」 소속 고등학생 5백여 명은 퇴계로2가 일대를 점거한 시위대 틈에 끼여 스크럼을 짜고 현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 학생들은 『전진하는 고등학교』 『새 나라의 고등학교』 등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퇴계로2·3가를 왕복하며 2시간쯤 가두행진을 벌이다 시위양상이 점차 격렬해지자 하오 7시쯤 모두 해산. ○고교생 분신 초긴장 ○…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은 지난 16일 강진 고교생들의 교외시위에 이어 이날 보성고교 김철수군의 분신사건이 일어나자 시위·분신의 불길이 고교생까지 확산될까 초긴장. 광주시교육청은 이미 고교생들의 추모집회 참가를 학교장 재량으로 허요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5·18추모집회를 용인했으나 이들이 과격시위나 분신 등 극렬행동에 참여할 것인가를 두고 예의주시. 한편 이날 전남도교육청 관내에서는 강진고교를 비롯,5개 고교가 5·18 추모행사를 교내에서 가졌다. ○민자 전북당사 피습 ○…이날 하오 8시20분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1가 민자당 전북도지부 당사에 시위대 학생 1백여 명이 몰려와 50여 개의 화염병을 던졌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 시국불안과 연대파업(사설)

    전노협과 대기업 연대회의가 주축이된 전국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가 오는 18일 총파업을 선언한 가운데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노조가 잇따라 파업을 결의,노사관계가 긴장국면으로 빠져 들고 있다. 대우중공업과 한라중공업 노조가 지난 13일 파업을 결의했고 같은날 진해화학 등 6개 업체가 조업중단과 파업을 단행했다. 「치사정국」 이후 불안한 시국속에서 21개 기업체가 노사분규에 휘말려 있다. 올해 임금협상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시국불안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올 임금협상이 극히 불안정하고 대결을 위한 대결구도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구나 시국이 불안해지면서 노동운동이 재야 학생세력과 연대할 움직임을 보여 산업현장에 전례 없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와 노사문제가 우리경제의 최대 현안과제인데 노사간 협상에 제3자에 해당하는 강성의 재야 학생세력이 개입하게 된다면 산업현장은 파국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산업현장이 분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 그 결과는 뻔하다. 89년의 악성분규가 생산성 감퇴뿐 아니라 사용자에게는 사업의욕,근로자에게는 근로의욕을 각각 감퇴시킨 사실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분규로 인한 일시적인 생산감퇴나 경기침체는 간과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주체들이 또다시 의욕을 상실하고 좌절에 빠진다면 우리 경제는 남미형 경제로 다가서게 될 것이다. 경제주체들이 「경제하려는 의지」를 잃으면 나라경제가 파국에 빠진다는 사실은 남미의 여러나라에서 실증된 바 있다. 우리가 그 시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남미형 경제로의 함몰은 우리 국민 누구도 원치 않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우리가 근로자 단체에 진정으로 호소하고 싶은 것은 임금협상과 무관한 파업은 지양해 달라는 것이다. 시국불안은 하루 빨리 수습되어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이다. 시국불안을 빌미로 조업을 중단하거나 파업을 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입지를 오히려 좁힐 뿐이다. 국민들이 바라지 않는 일을 노조들이 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파업은 임금협상 과정에서 강자인 사용자의 횡포와 우월적인 지위남용에 대항하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또 노사협상의 당사자는 사용자와 근로자이다. 협상은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할 뿐 아니라 철저한 당사자주의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재야 학생권이 노사협상에 개입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 노사 어느 쪽도 제3자의 개입을 바라서는 안된다. 우리 노조는 지난 4년 동안의 노동운동을 통해서 당사자주의에 의한 협상을 벌이기에 충분할 만큼 실력과 힘을 배양한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노동조합은 이제 막강한 사회세력으로 부상해 있다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근로자들이 노사협상 과정에서 인내하고 자제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을 때 노동운동이 한단계 발전하게 된다. 성숙된 노동운동으로의 이행을 위해서 그리고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시국과 관련된 연대 파업은 중지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하고 싶다. 대다수 근로자들도 시국을 빌미로 한 조업중단이나 파업을 원치 않는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 「시국선언」 교사 징계 방침/교육부/서명참여 3천여명 경위 조사

    ◎“의사 표시할 권리 있다” 교사들 반발 교육부는 10일 최근 일부 교사들의 시국선언 등 집단행동에 대해 『국가공무원법·교육공무원법 및 사립학교법에 이를 금지하고 있으므로 법을 어긴 교사에 대해서는 징계처분 등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윤형섭 교육부 장관은 이날 전국 시·도 교육청 학무국장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교사들은 학생들이 시국사태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교내·외 생활지도에 특별히 유념하고 가정과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학생보호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윤 장관은 또 『교사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특수한 신분의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될 어떠한 행동도 자제해야 할 것』이라면서 『각 시·도 교육감들은 교육질서를 문란시키거나 학교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모든 행동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시·도 교육청은 시·군·구 교육청별로 지금까지 성명에 참여한 교사 3천여 명을 상대로 경위조사에 나섰다.그러나 성명을 낸 교사들은 『교사는 의사를 표시할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경위서를 낼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10일 『교육부의 이 같은 엄단방침과 각급 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시국선언교사들에 대한 탄압행위를 즉각 중지하라』는 성명을 냈다. 「전교조」는 10일 하오 6시 서울지부소속 교사 1천여 명이 서울 동국대 중강당에 모여 「교사의 날 기념식 및 교육자치 쟁취를 위한 전진대회」를 가진 것을 비롯,전국 1백65개 지부별로 일제히 집회를 가졌다.
  • 더이상의 소모전은 안된다/이영섭 전 대법원장

    ◎이 5월…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폭력」이 「나라 위한 길」일 수는 없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참으로 안된 일이다. 지난달 26일 명지대 강경대군이 전경에 맞아 사망한 뒤 3명의 학생이 잇따라 분신자살을 기도,2명은 이미 숨을 거두었고 1명은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다. 유족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비보를 접하고 정말로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극단」 미화 말아야 작금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자제와 함께 깊은 자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더 이상 공방전을 벌이거나 소모전을 펴서는 안된다. 학생들은 냉정을 되찾아 학생신분임을 잊지 말고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할 때가 됐다. 특히 분신자살은 우리 모두에게 크나 큰 충격과 함께 분노를 던져 주었다. 분신과 같은 극한 행동은 인간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한다. 인간에게는 자기자신을 보호하는 본능이 있다. 물론 학생들이 분신을 기도하기까지에는 남 모를 번민과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여간한마음 가지고서는 이같은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우리사회 일각에 이러한 일련의 극한 행동에 대해 말리려 들지 않고 그것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미화시키면서 찬양하는 기풍이 만연돼 있음은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풍은 또다른 분신 등 상승작용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죽은 학생들의 영령앞에 무슨 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의 과격시위나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다시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할 때가 왔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학생시위는 해방 이후 4·19를 정점으로 영웅시 되어온 게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하지 못한 일들을 치러내 의거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순수하고 정의로운 「그 마음」에 기성세대는 찬사와 함께 그분들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기대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같은 순수한 열정들이 사라지고 상아탑은 어느덧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된 느낌이다. ○공권력 대항은 안돼 이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십분 옳다 하더라도 폭력을 수반한 주의·주장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들이여! 무모하게 피를 흘리지 말고 부득이한 경우,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에 한해 분연히 움직여 달라. 공감을 얻지 못하는 행동은 일시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고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정부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데 대한 반성과 아울러 국민앞에 대사죄를 해야 한다. 우선 데모진압 방식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그동안의 적극적이고 전투적인 방식을 물리치고 어디까지나 소극적이고 선도하는 입장에서 부드럽게 막아야 한다. 부드러운 치안과 정치 속에 국민들은 여유를 느낀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그 정부에 대해 「좋다」고 칭찬하고 영광이 깃들일 것이다. 경찰의 과잉진압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학생들이 먼저 화염병·돌·각목을 사용하는 등 「폭력」을 동원한 데 기인한다. 공권력에 대항하는 폭력을 그대로 둘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진압하기 위해 마치 적과 대치하는 것처럼 삼엄한 상태에서 전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민들에게는 정말 보기 민망한 일이다. ○「구국의 길」 생각을 어째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같은 동지이자 똑같은 국민끼리 그렇게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한데 모아 싸워도 선진국을 따라잡기 힘든 때이다. 특히 올 들어서는 수출부진으로 적자폭이 커지고 물가가 뛰는 등 국가경제는 물론 서민들의 생활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이거나 장기농성을 벌이는 것 등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모두가 합심해서 자유민주주의의 공고한 기틀을 다질 시기이다.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발휘해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경제에 발을 맞춰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살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일부 교수 등이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장기농성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무거운 마음을 가눌 수 없다. 대학교수들이 사랑하는 제자를 잃은 슬픔에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 만은 없다는 심정에서 이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때문에 농성 등 극단적인 행동도 일응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보다는 젊은이들의 「앞길」에 대해 진취적이고 도움이 될 만한 선도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 지각있는 국민들의 소망이라는 것을 고언해 두고 싶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반성과 함께 무엇이 「구국」을 위한 길인가를 통찰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근원은 「정치부재」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성 싶다. ○“정치부재” 반성을 이처럼 심각한 사태에 대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심전심으로 단합하여 위기에 처한 정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지혜를 짜내야 한다. 국민들을 착하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높은 정치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여기에 정치인들이 여야 각각 자기들만을 위한 주의 주장이나 당리당략만을 위해 이번 사태를 이용한다면 국민들에게 추악한 모습만 보여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고해 둔다. 모두가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보다 신중해지고 특히언행에 조심했으면 한다.
  • 이 슬프고 아픈 자기소모(사설)

    생때 같은 우리의 젊은이가 또 불행하게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26일 명지대 앞길에서 이 학교 학생 강경대군이 동료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하다가 절명한 것이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 봐야 안다고 하지만 시신에 나타난 정황이나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할 때 전투경찰들에게 얻어맞고 죽은 것만은 분명하다. 또 검찰에서도 폭행에 가담한 4명을 구속하고 관련 책임자들을 직위 해제함으로써 과잉진압 탓임을 시인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해서 그 동안 공해산업 문제로 소연하던 시국이 공안정국 회오리 속에 휘말리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통령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들고 나오고 있고 대학가 또한 규탄 집회를 가지면서 정권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수습되어 갈 것인지 커다란 사건이 계기하고 있는 시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가슴에는 암운이 드리운다. 오늘날의 우리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벌이는 화염병·투석 시위와 이에 대응하는 경찰의 최루탄 발사·구타 진압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차갑다. 그 잘잘못을 가리기에앞서 이제는 이같은 불행한 자기소모가 없어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 때문이다. 60년대나 70년대와도 다르다. 한번 어느 대학가가 술렁인다 하면 교통부터 마비되기 시작하면서 선의의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나 불이익은 큰 것이다. 젊은이들끼리의 대결임으로 해서 혈기가 폭력을 에스컬레이트시켜 가는 것이 시위 현장의 상호 심리상태이기는 하다. 그러나 경찰은 어디까지나 경찰이어야 한다. 따라서 과잉 진압으로 과격화의 유인을 제공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구나 그로 인한 인명 희생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잘못을 떠나 불행한 사태로 하여 외아들을 잃은 부모와 그 지친들의 아픔과 슬픈 마음은 헤아리고도 남는다. 위안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이같이 슬프고 불행한 일을 당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우리의 젊음과 젊음끼리의 대결이 이 이상 언제까지 더 계속되어야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4·19 의거를 비롯하여 대학생들의 시위가 모든 국민의 공분을 대변해준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오늘날의 대학가 시위는 대체로 작게는 학내문제에서부터 지엽적 시국문제에 이르기까지 용훼하는 것으로 변모되고 있다. 이번 사건도 등록금인상 거부투쟁 등을 벌이다가 구속된 그 학교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벌인 시위가 발단인 것으로 알려진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전투경찰도 학생들과 똑같은 우리의 젊은이들이다. 그러므로 시위를 하던 학생이 어느날 전투경찰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그 같은 젊음끼리 끝도 없는 양 대결해 오는 자기소모의 역정이다. 그 시간 그 정열을 학업에 쏟고 그 시간 그 정열을 산업현장에라도 쏟는다면 얼마나 바람직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 민족의 적도 이념의 적도 아닌 우리의 젊음끼리 대치한 끝에 벌어진 불행한 사태를 생각할 때 가슴은 더 미어지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물론 응분의 책임도 따라야겠지만 이를 계기로 하여 규탄에 머무르지 않는 시위문화의 새로운 길도 모색되었으면 한다. 그를 위해서는 평화로운 의사표시와 그것을 올바로 수용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요청되는 것이다.
  • 외언내언

    고르바초프는 정말 무사한 것인가. 저러다가 소련이라는 나라 자체가 거덜나고 마는 것은 아닌가. 소련의 되어가는 모양만 보고 있으면 그런 걱정이 앞선다. 한마디로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25일의 소련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의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직 사임소동도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 고르바초프의 줄타기 곡예정치였다. ◆급진개혁파로부터는 개혁을 제대로 않는다는 압력이고 보수파는 개혁이 지나치고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다. 양쪽을 오가는 줄타기식 중도노선의 고르바초프가 질서를 강조하며 보수로 기울자 독재가 부활한다는 개혁파의 아우성이었고 옐친과 타협하자 보수파가 들고 일어나 그의 서기장직 사임을 외쳤다. 화가 난 것인지 고도의 정치술수인지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직 사표를 던지는 선수를 치자 보수파는 오히려 그를 말리느라 부산을 떠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건재하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소련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의문을 갖게 된다. 개혁파나 보수파나 아직은 고르바초프를 위협할 만한 적이 못 된다는 데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개혁파는 서방언론에 보도되는 것만큼 지지 기반이 강하지도 못하고 분열되어 있다. 보수파는 고르바초프에 의해 시작되어버린 이 엄청난 사태를 수습할 자신이 없다. 고르바초프 없는 혼란이 시작되면 동구 공산당을 보다 더 심하고 비참한 곤욕을 치를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다. ◆개혁파나 보수파 모두 싫거나 좋거나 지금은 고르바초프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술의 천재라는 고르바초프는 이것을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이제이 아닌 이파제파의 곡예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을 근본부터 뒤흔들어놓았다. 실패로 끝난다면 국민에게 무어라고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것은 내 인생에서도 한차례뿐인 마지막 페레스트로이카다』라고 답했다. 배수의 진을 쳤다는 결의인 것이다. 그의 곡예정치가 언제까지 효험이 있을지. 그는 성공할 것인지. 한 세기를 마감하는 이 역사적인 크렘린 정치극의 결말이 정말 궁금해진다.
  • 미산자몽서 또 「발암농약」/「시민의 모임」밝혀/레몬·키위서도 검출

    한때 발암물질 소동을 빚었던 자몽을 비롯,키위 레몬 등 미국산 수입과일에서 또 유해농약성분이 검출되어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2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나와 있는 미국 수입산 과일인 자몽 키위 레몬과 인천항에 하역된 밀을 수거,국립보건원에 검사를 의뢰한 결과 밝혀졌다. 국립보건원 검사결과에 따르면 요즘 일반이 즐겨먹는 키위의 경우 발암성 농약 아진포스메칠이 0.003ppm,자몽과 레몬에서는 디코폴 0.01ppm,2.4 D 0.021ppm이 각각 검출됐다. 그리고 미국산 수입 곡물인 밀에서는 인체에 해로운 페니트로티온이 0.001∼0.016ppm이 검출된 것으로 통보해왔다. 이번에 검출된 농약성분 가운데 디코폴과 2.4 D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고시한 발암성 농약으로 특히 2.4 D의 경우는 월남전 당시 미국이 밀림의 입사귀 말리기 작전에 사용했던 고엽제 성분의 제초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2.4 D에 대한 잔류허용기준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규제방안도 없기 때문에 더욱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산 자몽에서 지난 89년 검출된 알라성분에 이어 또 다시 검출된 디코폴은 미국의 남서부에서 목화와 감귤류에 널리 사용하는 것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잔류 허용량은 1ppm,미국은 10ppm으로 돼 있다.
  • 음주·난폭운전 40대 세무사/“도주우려 없다” 영장기각

    ◎서울동부지원 서울지법 동부지원 박선주 판사는 22일 술을 마신 채 난폭운전을 하다 이를 말리는 행인을 때린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유연일씨(41·세무사·강동구 명일동 15 삼익아파트 301동 1009호)에 대해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유씨는 지난 21일 상오 1시45분쯤 송파구 방이동 모일식집에서 술을 마신 뒤 서울3구 9923호 쏘나타승용차를 몰고 송파구 풍남동 402 앞길을 지나다 택시를 기다리던 안광식씨(28·운전사·강동구 풍납동 313)가 『왜 난폭운전을 하느냐』고 하자 『당신이 왜 참견하느냐』며 안씨의 팔을 비틀고 멱살을 잡는 등 행패를 부려 전치 10일의 상처를 입힌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었다. 유씨는 경찰의 음주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구속기준치인 0.36%보다 많은 0.38%로 도로교통법위반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혐의로 이날 구속영장이 신청됐었다.
  • 소의 제의 배경과 정부의 대응

    ◎파장 클 「한·소 조약」… 「선린」에 초점/미·일 관계 고려,군사내용은 배제/경제·과기교류등 단순협력만 모색/소,동북아 진출 교두보 확보 겨냥한듯 정부가 22일 청와대 임시국무회의에서 논의한 제주 한소정상회담 후속조치의 핵심은 「한소 우호협력조약」을 미일 등 우방국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신중히 대처한다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주재하면서 『소련과의 우호협력조약은 한소 양국 관계,일본 등 전통우방과의 관계 및 한반도의 전체 정세에 긍정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방향이어야 한다』며 외무부에 구체적인 대책마련을 지시했으며 이상옥 외무장관은 『소련측의 구체안이 나온 뒤에 이의 체결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보고,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이같이 조약 체결에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한소 관계 등 기존 우방과의 관계 및 대외정책 전반에 미칠 영향과 파장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임시국무회의 후 혼선을 빚지 않기 위해 당초 발표대로 「우호협력조약」으로 조약 명칭을 통일한다고 발표했으나 외무부측은 정상회담 통역관인 이르게바예프(소련측)·유학구씨(우리측)에게 확인 결과,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제의해온 조약 명칭은 「선린관계 및 협력조약」으로 판명됐다고 밝히고 있다. 소련측은 실무협의에 없던 조약 체결을 돌연 제의해왔을 뿐이고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외무부는 소련이 그 동안 다른 나라와 체결해온 조약을 유형별로 분석,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소련이 체결한 조약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군사동맹관계를 설정한 조약으로 지난 61년 7월 북한과의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비롯,폴란드·헝가리·체코·유고·쿠바 등 과거 동구 위성국과 체결했다. 이는 체결상대국에 적대적인 동맹체에 가입하지 않으며 상대국이 군사적 침공을 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군사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준군사동맹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조약은 지난 71년 인도와의 「평화·우호·협력조약」을 비롯,이집트·소말리아 등 주로친소국가와 이뤄졌다. 그러나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본격추진한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동맹국이 아닌 서방국가와도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통독 전 서독,10월 프랑스,11월 이탈리아 등과 이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 내용은 동맹국과 체결한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들 서방국가와 체결한 조약은 「상대국이 군사침공을 당할 경우 공격국에 대한 군사지원을 않는다」는 등 군축문제를 포함한 군사적 내용을 담고 있다. 외무부는 소련측이 제의한 조약이 한반도의 특성을 감안,과거의 3가지 유형과는 분명히 대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군사적인 언급은 분명히 배제되는 일반적인 내용을 담은 조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이 체결한 조약의 공통사항은 ▲상호 주권존중과 영토보전 및 국내문제 불간섭 ▲국제문제에 대한 정례협의 ▲경제·과학·기술·문화 등 각 분야 협력 및 교류 확대 등으로 모아질 수 있다. 소련도 군사협력보다는 경제·과학기술·문화 등의 분야에서 협력 및 교류 확대를 염두에 두고선린협력조약을 제의했을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진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 53년 미 워싱턴에서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비롯,한미 안보협력체제를 훼손해가면서 한국이 그들과 군사문제를 규정하는 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서구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소련이 아태지역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동북아를 비롯한 아태지역 진출의 교두보 확보차원 수준에서 나온 것으로 관측된다. 이상옥 외무장관은 오는 8월쯤 모스크바를 방문,소련측의 진의를 충분히 타진해 이 문제를 구체화할 계획인데 양국간 조약이 체결되더라도 경제협력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지난해 12월 채택된 「모스크바선언」을 문서화하는 정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소련측의 제의는 우리의 북방외교와 미일 등 우방국과의 외교 사이에 균형있는 외교정책을 펼쳐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여겨진다. 이날 회의는 이밖에 양국 경협 확대를 위해 시베리아 천연가스 등 자원개발에 민관협조체제를 구축하고 미일 등 제3국과 공동협력을 구체화하기로 결정,시베리아 본격진출이 기대된다. 이번 제주정상회담에서 우리 유엔가입을 적극 지지한다는 소련측의 비공개 입장표명은 국제사회에서 유엔가입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직은 명시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중국 입장정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이날 『연내 유엔가입을 반드시 실현시키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은 소련을 통해 우리 유엔가입에 중국도 사실상 지지하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관측된다. 한소간 급속한 관계발전은 일본과 중국을 자극,동북아의 새 국제질서 형성 속도가 매우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소의 대외조약과 내용 ○공통적인 주요내용 ▲주권 상호존중,영토보전,국내문제 불간섭,평화를 위한 상호협력 ▲국제문제에 대한 정례협의 ▲경제·과학·기술·문화 등 각 분야 협력 및 교류 강화 ▲유효기간은 10∼20년 ○조약 명칭 및 안보관련 조문 ▲소·북한=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1961년 7월6일) 상대방에 적대적인 동맹체결 및 동맹체 가입 금지 일방적 군사공격을 당했을 경우 즉각 군사적 지원제공 ▲소·인도=평화·우호·협력조약(1971년 8월9일) 식민주의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협력 상대방에 적대적인 군사동맹 불가입 및 적국에 대한 영토 사용 불허 ▲소·서독=선린·동반·협력조약(1990년 9월12일) 상대방에 대한 무력위협 및 무력사용 자제 자위적 목적 이외의 무력사용 금지 ▲소·프랑스=우호·협력조약(1990년 10월) 유엔헌장에 근거하지 않는 무력사용 또는 무력위협 포기 ▲소·이탈리아=협력·우호조약(1990년 11월) 상호 또는 제3국에 대한 불가침원칙 재확인 일방이 군사공격을 당할 경우 공격국에 대한 군사지원 금지
  • 한·소우호조약 추진에 일 열도“깜짝”/언론들 대서특필…도쿄의 반응

    ◎동맹국 이외는 처음… 한·소 밀착 과시/노선수정 요구… 대북 압력카드 될듯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소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한소우호협력조약」 체결을 제의하고 한국측이 이를 수락한 사실에 대해 일본언론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것은 소련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진출함에 있어 한국을 정치면에서도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명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21일자 대부분의 일본 신문들은 한소우호조약 체결을 1면 톱기사로 다루었으며,사설·해설기사를 통해 그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마이니치(매일)신문은 해설기사에서 『한소 관계의 급속한 긴밀화는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일본·중국 등 한반도주변 제국의 움직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케이(산경)신문도 1면기사에서 『소련이 아시아에서 동맹국 이외의 국가와 이런 종류의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하고 『이것은 한소의 긴밀성을 내외에 과시함과 함께 소련의 앞으로의 아시아관계에 하나의 모델이 되는 것으로 주목된다』고 밝혔다. 아사히(조일)신문은 「제주도에 분 신풍」이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련의 최고지도자로서 처음으로 한반도까지 찾아온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을 요청했다. 이제까지의 관계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증하고 확대기초를 공고히 하려는 적극적인 제안이다. 새로운 막을 연 일소 관계와 한소 관계를 축으로 한반도에 남은 「냉전의 화석」을 움직이고 그 「가시」를 제거해서 아시아외교를 전면적으로 저너개하겠다고 구상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의욕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련의 최고지도자가 사상 처음으로 한반도를 방문하면서 우선 한국을 선택했다는 것은,그 자체가 커다란 외교성과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렸다는 것은 소련의 한국중시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회담은 동서냉전의 아시아적 상징이었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도 드디어 질적인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제주도회담 이후의한반도」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북한은 유엔 동시가입이 한반도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고 거부하고 있다. 양보안으로서 단일의석가맹안도 내놓고 있으나 한국측은 현실적이 아니라고 한다. 그럴 것이다. 우리도 북한이 동시가입안을 받아들이도록 희망한다. 동시가입은 통일에의 과도기적 스텝이라고 보아야 하며 통일의 장애가 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이 안 된다면 한국의 단독가입을 지지한다. 한국이 연내라도 단독가입신청을 한다면 중국은 절박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령 올해는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내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중 경제관계를 생각한다면 언제까지나 거부권을 발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소련과의 협의의 행방이 주목되는데 차라리 중국은 동시가입을 북한에 설득하고 실패한다면 한국의 「단독가입」에 기권 내지는 찬성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제주도회담에서 기본합의된 한소 우호협력조약은 북한의 노선수정을 요구하는 압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산케이신문은 사설에서『한국은 소련의 대국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소련과 동맹관계에 있는 북한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련 최고지도자를 맞아들이는 데 성공한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는 훌륭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북한보다 먼저 한국땅을 밟았다는 엄연한 사실은 역사에 영구히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한국이 무조건 들떠 있다가는 대국주의적 소련에 발목을 잡힐 위험이 있다. 소련의 대국주의는 일소 수뇌회담을 통해서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예컨대 17일의 국회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안보를 위한 다국간협의를 제안했는데 그 협의의 멤버에 중국과 인도는 포함됐으나 한국과 북한은 들어 있지 않았다. 아시아안보를 논하는 경우,한반도정세를 빼고서는 그 어떠한 협의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사자를 포함시키지 않고 협의하려는 것은 대국주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런 대국주의를 가장 가까운 자유권의 우호국 국민으로서 경고하고 싶은 것이다』 ◎외교상특수관계로의 발전을 의미/「한·소조약」 체결땐 군사관계는 배제 ▷우호협력조약이란?◁ 양국이 국제법에 의해 규율되는 권리와 의무를 갖는 것으로 일반적 외교관계에서 특수관계로의발전을 의미한다. 서방국가보다는 통상 사회주의 국가간 연대를 다지기 위해 체결되는 이 조약은 경제협력관계 증진,분쟁의 평화적 해결,무력사용 배제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군사동맹 내용을 포함하는 형태도 있다. 소련은 지난 61년 북한과 군사동맹관계를 밝히는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지난해 만기를 맞았으나 상호폐기통보를 하지 않음으로써 효력이 자동적으로 5년간 연장됐다. 소련은 중국과도 지난 50년 같은 조약을 체결했으나 지난 79년 중국의 일방 통고로 폐기됐으며 유고·알바니아를 제외한 동구국가들 및 몽골과도 군사동맹성격의 이 조약을 체결했다. 또 이집트·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도 준 군사동맹성격의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이 소련과 이 조약을 체결할 경우 군사관계는 배제되고 국제적으로 확립된 일반적 내용만이 포함될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전망하고 있다.
  • 도서상품권(사설)

    「도서상품권」이라는 유가증권이 발권되었다. 도서출판계의 오랜 숙원이면서도 성사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업이다. 온갖 시비에 휘말리고 한때는 사업자체를 반납하는 일까지 생각해 볼 만큼 심각한 상황도 거쳤지만 마침내는 모든 장애요인들을 극복하고 한국도서 보급주식회사가 설립되고 예정대로 15일부터는 액면 5천원짜리 도서상품권은 발매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자녀나 손자손녀에게 세뱃돈이나 용돈을 줄 때 점잖은 어른들은 『책이나 사 보아라』라며 건네준다. 크리스마스 선물·생일선물·결혼선물·긴 병으로 누워있는 이에게 선물을 준비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책을 선물로 선택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화폐를 손에 쥔 청소년이 반드시 책을 사보게 되지는 않을 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으므로 오히려 새로운 걱정을 만들게 된다. 선물로 책을 생각했던 사람들은 어떤 책이 선물로 마땅한 지에 대해 망설이며 곤혹을 느끼다가 마음을 바꾸게도 된다. 꼭 책으로만 바꿀 수 있는 유가증권이 있다면 이런 고민은 깨끗이 해결될 것이다. 「도서상품권」은 그런 역할을 위해 창안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읽는 문화가 매우 빈곤한 사회다. 또한 그 징후가 날로 악화해가는 사회이기도 하다. 「보는 문화」의 극성에 의해 그나마의 빈곤한 영토까지 점점 침범당하고 있다. 「읽는 문화」가 퇴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책을 통해 지식이나 정서를 습득하는 기회와 기능이 축소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보는 문화로는 대신할 수 없는 지식의 정착기능과 사고력의 성장기능이 약화되는 것을 뜻하며,침착하게 판단하고 성실하게 참는 일,어려움을 이기고 탐색하는 기질의 퇴화를 뜻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던 시기에 일단의 일본 사람들이 「한국탐구」를 하러 온 일이 있다. 그들이 돌아가서 보고하기를 한국은 전혀 무서워할 상대가 아님을 호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한국인들은 독서를 안하는 국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억지로라도 「읽는 문화」를 회생 확대시켜야 할 필요가 우리에게는 있다. 특히 유해환경의 밀림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생활하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독서」처럼 좋은 처방이 없다. 이렇게 많은 「필요」를 지난 독서운동에 도서상품권은 긴요한 대응역할을 해줄 것이다. 도서상품권의 효율성이 이렇게 높으면서도,이것의 실현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하고 많은 고비가 있었다. 발행주체를 둘러싼 문제와 정산요율 마진이 반발의 요인이 되었는데,참여에서 소외되었다고 주장하는 서적 유통업계의 불만이 해소되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일에는 전체를 보고,그 전체에서 부분을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서상품권이 겪은 과정의 갈등도 그런 교훈을 주었다. 관장부서인 문화부가 이 일을 추진하기에 숱한 장애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시행과정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나타날 것이다. 모든 상품권이 법으로 발행금지 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도서상품권」만이 허락된 것은 국민의 독서생활 증진을 위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목적에 부합되게 정착해 갈 수 있도록 더 많은 공을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 제주도·거문도·고르바초프/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미국의 페리제독이 일본에 개국을 강요할 무렵 러시아의 푸티아틴 제독은 1854년 거문도에 함정을 대고 조선정부에 대해 개국교섭을 시도한 적이 있다. 승무원들 중에는 「오블로모프」 「평범한 이야기」 「군함 팔라다호」 등의 명작을 남긴 러시아작가 곤차로프도 끼어 있어 여행기를 남겼다. 조선 정국은 이때부터 러시아의 집요한 남하정책과 이에 맞서는 중·일·영·미 등 각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던 러시아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하여 공산주의 소련으로 변한 후 다른 형태로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전후 소련은 새로운 열강의 자격으로 남북한 분단에 작용하고 북한을 도와 한국전쟁에 「간여」하더니 이제 또 한 번 세상이 바뀌면서 한국과 근교하는 이웃으로 새롭게 나타났다. 그 소련과 한국의 우호협력증진의 속도는 한마디로 「급속」이요 「과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소간 작금년에 걸친 관계개선을 눈비비며 바라보던 서방측의 많은 소련전문가들은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다음과 같은 분석으로 소련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즉 소련은 처음부터 북한과의 기본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남한과의 경제교류를 통한 실리를 꾀해 왔다. 국내적인 경제개혁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서독에 경제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일은 냉정했다. 어떻게 보면 소련의 경제적 파탄으로 나라의 존립이 어렵게 될 때까지 기다리려는 태도였다. 이에 당황한 소련은 동서독의 통일을 지원하여 이로부터 대소 경제지원을 꾀하는 한편 남한과의 외교관계 수립으로 경협을 이루려 했다. 또한 한소 수교는 소련의 대일본 북방도서협상 그리고 일본의 자본을 시베리아 극동 연해주로 끌어들이는 데 좋은 근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소의 급속한 관계개선과 소련의 입장을 해석하는 이러한 시각은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소관계의 두 수레바퀴는 이제 쾌속으로 제 궤도에 들어선 것이다.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입성과 그에 이은 고르바초프의 제주기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 시점에서 흔들리지 않고 바로 잡아야 할 것은 우리의 대소 시각이다. 소련의 한반도 정책은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을 기조로 해 매우 복잡한 변천과정을 보여 왔다 그러나 전체적인 관계구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은 그들 범세계적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뚜렷한 대상이 아니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다만 소련의 대미·대일·대중국 정책의 부수적 일환으로 한반도가 고려되었을 뿐이다. 둘째 소련은 한반도를 태평양으로 향하는 변방지역의 일환 즉 지정학적 요충지로 간주한 결과 이를 군사안보적 대상지역으로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 하자면 소련에 있어 한반도는 정치·외교·경제·문화 등의 교류를 위한 주대상국이 아니라 군사전략적 부수대상의 하나라는 것이다. 비록 시대와 지도자에 따라 농도의 차이는 있었다 하더라도 이상과 같은 지적은 대체로 맞는 편이다. 『소련의 한반도 정책은 없었다』고 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서구학자는 『소련에게 있어 한반도는하나의 군사적 완충지대에 지나지 않는다』고까지 지적한 바 있다. 사실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프 체르넨코 등에 이르는 역대 소련지도자의 한반도 인식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단 한사람 그 같은 고정시각으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이번에 한국 최대의,그리고 아름다운 섬 제주를 찾아오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다. 우리의 대소 인식에서 고려할 사항은 또 있다. 정상적인 관계발전 과정으로 본다면 한소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우호협력관계로 전환하는 기초적 준비과정을 최소한 3∼4년의 3단계로 본 것이 구미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그들에 의하면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2년간의 비정치적 무역대표부로 교역증진을 통한 사전조정기가 첫 단계이다. 둘째 단계가 올림픽 이후 2∼3년째가 되는 영사협정기간이다. 3∼4년째가 되는 기간으로 이 기간에 한소수교가 이뤄질 것으로 본 것이다. 한소관계에 관한 한 전문가들의 이러한 예측과 분석은 빗나갔다. 실제로 두 나라가 국교수립을 선언한 것은 서울올림픽 후 만 2년이 되는 때였다. 그 과정에서 앞을 달린 것은 한국이었고 소련은 그 뒤를 따른 것이다. 너무 앞서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두 나라간 과거지사로서 미처 처리되지 못한 일,정리했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특히 우리 민족사에 크나큰 비극을 안겨 준 6·25전쟁의 진상과 실상을 함께 규명하고 설명해 보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국가의 무기력과 가슴찢기는 아픔을 남겨놓은 대한항공(KAL)여객기 격추사건에 대한 마무리도 없었다. 지난달 중순 소련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는 10회에 걸쳐 KAL기 사건의 내막을 취재 게재했고 최근 일본의 TV는 당시의 소련 조종사와 사고현장 잠수부들과의 회견내용을 방영함으로써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된 바도 있다. 국교가 이뤄졌고 양쪽 정상들이 가고 오는 단계에서 당장 무슨 배상과 양보를 공식 논의하는 데는 현실 여건상 무리가 따를지 모른다. 다만 그것이 실리적이고 장기적인 한소협력의 바람직한 앞날을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공동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적대관계는 적대관계이고 현재의 친구관계는 그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간 관계와 협상은 국익차원의 영원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우리의 대소인식이 보다 냉철해야 하고 그 정책이 의연해야 함은 이 때문이다. 소련은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하는 세계의 대국으로서 우선 잘 살길을 찾고 있다. 한국은 소련이 갖지 못한 개발의 경험을 나누며 평양으로 가는 길을 모스크바에서 찾고자 한다. 모두들 그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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