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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때 도움받은 군민들 ‘싸리비’ 화답

    태풍때 도움받은 군민들 ‘싸리비’ 화답

    “주민들과 함께 싸리비로 골목길 눈을 치우다 보면 어린시절 고향생각이 절로 납니다.” 관악구 봉천4동 7통장 이종서(48)씨는 최근 한 가지 즐거움이 늘었다.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지역일을 앞장서서 해결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주민들과 함께 골목길을 청소할 때가 가장 신이 난다. 한데 어울려 동네일을 한다는 뿌듯함이 만만찮다. ●지원 아끼지 않은 관악구민에 감사 특히 지난 15일 아침에는 강원도 평창산 싸리비가 등장, 어릴 적 고향 전주의 추억까지 떠올리게 했다. 이씨는 “옛날 고향에서처럼 동네 이웃들과 서울의 골목길을 청소해 볼 줄은 정말 몰랐다.”며 즐거워했다. 이씨 등 동네주민 20여명이 이날 처음 사용한 ‘싸리비’는 최근 강원도 평창군 주민들이 보내준 선물이다. 선물이 저마다의 의미를 담고 있듯 이 싸리비는 두 지역민들의 끈끈한 우정을 말해준다. 최근 동계올림픽 유치와 관련,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평창군은 지난 2002년 8월 태풍 루사로 5조 5000억여원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입는 등 엄청난 상처를 입은 재해지역이었다. 당시 관악구 주민들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6000만원의 성금과 25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모아 평창군민들에게 전달했다. ●8개면의 노인들이 손수 만들어 다음해에도 또다시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자 6000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전달하는 등 남다른 우의를 과시해 왔다. 결국 두 지역은 지난해 6월 자매결연을 맺었다. 지난 12일 관악구에 보내온 싸리비 500여개는 평창군 8개면의 노인들이 관악구민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기위해 손수 만든 것이다. 노인들은 싸리비를 만들기 위해 지난가을 인근 야산에서 틈틈이 싸리를 구해 말리고 다듬어 왔다고 한다. 싸리비는 앞마당이나 골목길 등 비교적 넓은 지역을 청소하는 데 사용된다. 특히 겨울철 내린 눈을 쓸어 모으기에는 안성맞춤이다.40대 이상이면 누구나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 동네 어귀나 앞마당을 쓸고 다니던 싸리비의 추억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관악구는 이 빗자루를 동별로 20∼30여개씩 나누어 눈을 치우고 골목길을 청소하는 데 사용토록 하고 있다. 관악구 관계자는 “싸리비가 두 지역민뿐 아니라 각박한 것으로 알려진 이웃의 정을 돈독하게 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司試수석합격기] (상)D-30부터 판례 집중 공략

    [司試수석합격기] (상)D-30부터 판례 집중 공략

    지난해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홍진영(23)씨는 서울대 법학과 4학년 재학중에 사시에 합격, 수험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공부만 하느라 덜 자란 채로 시험에 합격한 자신이 두렵기도 하다며 경계심을 보였다. 신구중, 대원외고를 나온 그는 특히 법여성학에 관심이 많다. 시험준비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수석으로 합격한 그만의 노하우를 1·2차 과목별로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차 다양한 시험은 객관식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이해의 깊이보다는 넓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중요 부분을 깊이 있게 완전히 이해하기보다는 그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골고루 눈에 익히는 방법을 택했다. 또 이론문제는 애매한 지문이 나오면 틀릴 가능성이 높아 판례문제에 주력했다. 최소한 판례문제만큼은 확실하게 맞춰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시험을 한 달 정도 남기고서는 강의 테이프를 병행하며 판례만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또 매일 조금씩이라도 문제를 풀면서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파악해 나갔다. ●다양한 문제 접하는데 교수 문제집 도움 민법의 경우 김형배 교수의 저서와 이정우 판례집, 정일배 객관식 민법판례를 6개월간 공부했다.1차 시험을 한 달 정도 앞두고는 유정 조문판례로 조문과 주요 판례를 정리했다. 민법은 개별적인 판례의 사실관계를 확인한다기보다는 기본적인 법리를 판결 요지를 통해 재확인하는 정도로 점검해 나갔다. 미묘한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다른 부분이나 아주 중요하게 꼽히는 것만 따로 정리를 했다. 교수가 집필한 문제집을 푸는 것이 안전할 듯싶었지만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12월 중순부터 한 달간은 기본서를 3회독하고 판례만 따로 1회독을 하다 보니 시간이 모자랐다. 때문에 학원가의 진도별 모의고사로 대신했고, 시험을 열흘 남짓 남기고는 전범위 모의고사를 매일 1회씩 풀었다. ●형법, 판례 최종 죄목 일일이 확인 형법은 신호진 형법요론을 정리서로 삼고 총론은 임웅, 각론은 이재상 교수의 교과서를 발췌해 공부했다. 판례는 이인규 판례집과 신호진 형법판례총정리로 정리했다. 문제집은 한국법학원과 한림법학원의 진도별 모의고사, 그리고 김일수 교수의 문제집을 참고했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무슨 교수 문제집이냐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문제를 접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을 받았다. 특히 형법은 이론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에 1월 말에 판례강의 테이프로 1회독을 하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나오면 판례집을 다시 정독하는 방식으로 복습했다. 사실관계를 알 수 있는 판례에서는 반드시 결론적으로 무슨 죄인지를 확인하고 넘어갔던 것이 효과가 컸다. 헌법은 황남기 헌법을 정리서로 삼고 이해가 필요한 부분은 권영성 교수와 허영 교수의 저서를 참고했다. 판례집과 부속법령집은 정회철 변호사의 것을 보았다. 문제집은 민경식 객관식 헌법과 한국법학원의 진도별 모의고사를 보았다. 헌법 1차 시험은 딱히 방법론이 잘 잡히지 않는 과목이라 암기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시험 직전에 전범위 모의고사를 매일 1회씩 풀면서 자신없는 부분을 3개씩 택해 그 부분만 다시 책을 보며 정리한 것이 효과적이었다. 마지막까지 헷갈리는 부분은 간략하게 메모를 해 두었는데 그 분량이 헌법만 노트로 네 페이지가 넘었다. 이 노트는 시험장에 가져가 쉬는 시간에 활용했다. ●정해진 시간에 문제 푸는 연습 병행 선택과목은 노동법을 택했다. 신문 등을 통해 노동 관련 분쟁을 접할 기회가 많아 다른 선택과목보다는 좀더 친숙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깊이 있는 공부는 하지 못했다. 시험을 3개월 정도 앞두고 노동법 공부를 시작했는데 학원의 무료특강을 들으며 중요내용을 중심으로 암기했고 두문자를 많이 활용했다. 교재도 조문과 판례 중심으로 정리돼 있는 콤팩트한 교재를 택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암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노동법을 너무 편법으로 공부한 것 같아 부끄럽지만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과목별로 전범위 모의고사를 풀면서 노동법에는 매일 한 시간 반 정도를 투자해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푸는 연습을 병행했다. 막상 시험장에서는 공부가 부족한 듯해 긴장이 됐지만 민법을 제외하고는 두 번씩 검토를 하며 답안지를 메웠다. 당일 저녁 채점을 해보니 평균 92점 정도가 나와 합격을 확신할 수 있었다.
  • [박기철의 플레이볼] 선수와 에이전트

    이번 겨울에는 구대성의 뉴욕 진출 여부가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처음에는 양키스 계약의 확실성을 두고, 다음은 메츠와의 계약금 진실성이 화제가 됐다. 마지막으로는 에이전트의 무자격 문제까지 거론됐다. 아직도 에이전트는 어떤 특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팬들이 있다. 국가를 관장하는 협회를 회원으로 둔 국제축구연맹(FIFA)은 선수들의 이적 문제도 관할한다. 에이전트의 자격도 FIFA가 부여한다. 이런 유럽식의 관행과는 달리 미국의 주요 스포츠 시장은 철저한 자유 경쟁을 근간으로 한다. 특히 야구의 경우 에이전트의 자격에 대해 구단을 관할하는 커미셔너 사무국은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 1966년 다저스의 두 에이스인 샌디 쿠펙스와 돈 드리스데일이 공동 전선을 펴면서 에이전트에게 협상을 대행시킨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당시 다저스 구단주 오말리는 죽어도 에이전트와는 협상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두 선수가 스프링캠프를 거부하는 실력행사에 나서자 두 손을 들어야 했다. 즉, 에이전트는 선수가 그의 말에 따르기만 하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한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에이전트의 자격 여부를 결정하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심사뿐이다. 에이전트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선수가 인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구대성의 경우에 관여한 에이전트의 자격은 구대성이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하는 순간 사실상 인정을 받는다. 다만 선수노조는 에이전트가 선수에게 불이익을 주는지 사후관리를 한다. 랜디 존슨을 양키스에 보내는 빅딜을 성사시킨 에이전트는 앨런 네로라는 시카고 출신 인물이다. 벨트란을 메츠로 보낸 스콧 보라스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미국 랭킹 8위의 거물 에이전트다. 그는 선수에게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선수노조의 조사를 받았다. 하나는 한국의 프로야구 구단을 위해 외국인 선수 고용에 관한 자문을 했을 때이고, 다른 한번은 국제적인 선수 정보를 인터넷으로 구단에 공급하는 회사를 설립했을 때이다. 에이전트가 구단을 위해 일을 하면 선수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사의 이유였다. 선수의 이익을 해치지는 않아 특별한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구단을 위한 정보제공회사의 주식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말았다. 에이전트와 선수는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둘 다 손해다. 에이전트가 선수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선수가 에이전트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도 많다.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임창용의 경우 에이전트의 능력에 관계없이 한 에이전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더라면 결과는 훨씬 좋았을 것이다. 스콧 보라스나 앨런 네로가 거대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데는 능력도 있지만, 선수들과의 철저한 신뢰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OST 새음반]

    ●오페라 유령 이미 발매된 1장짜리 음반(14곡 수록)의 인기의 여세를 몰아 발매된 2CD 디럭스 에디션. 예스24에서 예약 구매만으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두 장의 CD에는 영화 전편에 흐르는 모든 음악뿐 아니라 대사까지 담겨 있어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풍부하고 깊이 있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크리스틴 역의 에미 로섬, 유령 역의 제라드 버틀러 등의 드라마틱한 노래가 영화의 감동을 다시 한번 재현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단짝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아 다시 한번 아름다운 선율을 과시했다. 영화 배경이 된 18세기 유럽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이고 유려한 곡들이 가득하다. 영화 엔딩신에 흐르는 주제가 ‘세계의 약속’은 소피 역의 성우로 활약한 여배우 바이쇼 지에코가 직접 불렀다. ●알렉산더 그리스 출신 작곡가 반젤리스가 자국의 영웅을 음악으로 표현했다.1981년 올림픽 영웅들을 그린 영화 ‘불의 전차’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반젤리스는 ‘블레이드 러너’‘미싱’ 등 수많은 영화에서 수준 높은 음악들을 구사해왔다. 이번 앨범은 전작 ‘1942 콜럼버스’를 능가한다는 평. 서사극에 맞게 스케일 크고 웅장한 음악에서 가슴 뛰는 사랑의 멜로디까지 고루 담았다. ●샤크 윌 스미스, 안젤리나 졸리, 잭 블랙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목소리 연기로 화제가 된 애니메이션 ‘샤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ar Wash), 저스틴 팀벌레이크(Good Foot), 밥 말리의 아들 지기 말리(Three Little Thing), 메리 J 블라이즈(Got To Be Real) 등 유명 가수들이 참여한 OST도 유명세에 있어서 밀리지 않는다.OST 자체가 한 장의 컴필레이션 음반인 셈.‘라이언 킹’으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아 인간 세상을 패러디한 바다 도시를 경쾌한 힙합리듬에 실어 표현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생존자 25%에만 구호식량 전달”

    유엔 등 국제기구들은 15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남아시아 쓰나미 피해지역에 이번 주말까지 깨끗한 물 등이 공급되지 않으면 전염병 창궐 등 제2의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잇따라 경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질병 예방을 위한 신속한 조치가 이행되지 않으면 사망자 수가 배로 늘어나 3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고 세계식량계획(WFP)도 피해지역 생존자 가운데 4분의 1만이 구호 식량을 전달받고 있다며 빠른 지원대책을 촉구했다. WHO는 6일 성명을 통해 “쓰나미 피해 지역의 전염병 발생에 대비, 경보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6600만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WHO는 5일 콜레라와 이질과 같은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피해지역에 응급진료팀을 보냈고, 구호의 손길이 많은 지역에 미치고 있지만 여전히 깨끗한 물이 부족해 이번 주말까지 신속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사망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종욱 WHO 사무총장은 “이들 지역에서 전염병이 발생하면 15만여명이 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지역의 WHO 구호활동을 총괄하는 로널드 월드먼 박사는 전염병이 피부 상처를 통해 침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에서는 상처 부위가 썩는 ‘괴저(壞疽)’가 발생, 손발을 절단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또 더러운 물로 인한 폐렴과 홍역도 큰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토니 밴버리 WFP 아시아 담당관은 교통시설 파괴와 홍수 등에 따라 이재민의 4분의 1만이 구호 식량을 제공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가운데 유엔은 피해복구에 전념해도 모자랄 판에 여전히 내전을 치르고 있는 일부 피해국가에 대해서는 구호액 삭감을 경고했다. 얀 에겔란트 유엔 인도지원담당 사무차장은 “내전 중인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소말리아 등이 평화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구호의 손길에서 제외될 수 있다.”며 복구기간에 정전과 평화를 촉구했다. 한편 호주 정부는 5일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에 10억 호주달러(7억 6400만달러)를 차관과 공여 형식으로 내놓겠다고 밝혀 세계 최고 구호지원국으로 올라서는 등 각 국의 구호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여기에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0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이로써 각 국과 국제기구가 구호활동에 내놓겠다고 약속한 금액은 47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나이롱 양말/심재억 문화부 차장

    ‘나이롱양말’의 변덕에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쪽을 켜서 만든 수제 스키를 꺼내들고 개울가 얼음지치기에 나섰다가 얼음장이 푹 꺼지면 아랫도리가 통째로 물에 젖곤 했는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천둥벌거숭이지만 한겨울에 발이 몽땅 젖었으니 그 살이 얼마나 아렸겠습니까. 짓까불다 못견딜 만하면 검불을 모아 지핀 불가에 서캐처럼 들러붙어 양말을 말리곤 했는데,‘나이롱’이라는 게 참 허망해 휙, 불꽃만 스쳐도 오그라들고 눌어붙어 숭숭 구멍이 뚫리곤 했거든요. 시쳇말로 ‘씻고 벗고’ 양말은 그거 한 켤레뿐인데 그걸 ‘절딴’내 놨으니 눈앞이 캄캄할 수밖에요. 햇볕에 녹아 얼음판이 질척거릴 무렵, 코를 빼물고 들어서면 어머니는 낌새로 사달을 짐작하십니다.“뜨신 방에서 주는 밥이나 챙겨 먹지, 무슨 용오르는 일이 있다고 그런 델 가.” 꾸지람에 오금이 저리지만 그게 면죄부가 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 날은 종일 방안에서 뭉기적거립니다. 오리새끼도 아니고 한겨울에 맨발이 가당키나 합니까. 저물 녘, 어머니는 광목천을 덧대 기운 양말을 건네십니다.“또 불 옆에 갔단 봐라.”는 엄포를 따뜻한 눈총에 얹어.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발굴, 2005 유망주] 탁구 조언래

    “아테네에선 승민이형이었지만, 베이징땐 제 차례입니다.” 지난해 아테네올림픽 탁구에서 유승민이 16년 만에 남자단식 금메달을 확정짓던 순간, 친선경기차 중국 창춘시에 머물던 ‘차세대 에이스’ 조언래(19·농심삼다수·창원남산고 졸업예정)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줄곧 정상권을 맴돌면서도 ‘끝장을 보겠다.’는 투지가 부족했던 그에게 ‘올림픽 금메달’이란 뚜렷한 목표가 생긴 것. “아직 거칠지만 서비스 리턴을 가다듬고 경험을 쌓으면 2∼3년 뒤 세계를 놀라게 할 재목”이라는 유남규 코치의 평가처럼 조언래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탁구의 미래’다. 펜홀더 전형의 유승민이 화려한 기술로 팬들을 매료시키지만 백핸드의 약점과 체력 부담으로 선수 생명이 짧은 반면, 셰이크핸드 조언래는 중국 선수들과 비슷한 스타일이면서도 유럽 선수들과 맞먹는 파워를 지녀 세계 무대에서 롱런할 기대주다. 조언래는 1·2회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연달아 단식 준우승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떠올랐다. 여느 선수들처럼 ‘중국 징크스’에 시달렸던 조언래가 지난대회 단체결승에서 ‘숙적’ 리후(18세 이하 3위)에게 통쾌하게 복수한 것은 ‘타도!중국’의 가능성을 밝게 했다. 리후는 2003선수권 단식결승에서 조언래를 꺾었던 중국 청소년팀 에이스.2003년 패배 뒤 절치부심했던 조언래는 구석구석 파고드는 드라이브로 리후를 몰아붙여 3-1 완승을 거뒀다. 조언래가 처음 라켓을 잡은 것은 함안 아라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를 따라 놀러갔다가 처음 본 녹색 테이블에 놓인 2.7g의 작은 공은 평범한 시골소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운동을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1년반 가까이 ‘서클활동’이라고 둘러댔던 조언래는 5학년때 첫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커다란 트로피를 안고서 돌아온 아들의 행복한 모습에 어머니도 더는 말리지 못했다. 성인무대에 뛰어든 올해, 조언래의 목표는 두 가지. 첫째는 1월말 예정된 세계선수권선발전 통과고, 두번째는 ‘천적’ 마롱(18세 이하 8위)을 꺾는 일. 마롱은 조언래에게 3번 모두 패배를 안겼으며 지난해 중국선수권에서 왕하오(세계 1위)와 마린(3위)을 연거푸 꺾은 중국의 ‘떠오르는 태양’. 물론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의 메달사냥을 방해할 유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조언래는 요즘도 하루 6시간씩 묵묵히 담금질을 하고 있다.“깨뜨릴 목표가 없으면 무슨 재미”냐며 비지땀을 쏟는 그에게 3년뒤 금빛 드라이브를 기대해 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피의 역사/더글러스 스타 지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재미있는 자료가 공개됐다. 수혈용 혈액이 부족하다고 앓는 소리를 하던 대한적십자사는 제약회사에 팔 수 있는 혈장 채집에만 몰두해왔다는 것이다. 혈장은 알부민제제의 원료가 되기 때문에 혈액 가운데 꽤나 비싸게 팔리는 부분이다. 여기에다 주된 헌혈 대상자인 군인들에게 피를 뽑기 위해 대한적십자사는 군부대에 시설공사와 물품제공 등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고귀한 봉사와 헌신’의 이미지로만 윤색되어 있는 헌혈에 이렇게 복잡한 뒷배경이 있다는 사정은 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간 ‘피의 역사’(더글러스 스타 지음, 박범수 옮김, 이룸 펴냄)는 ‘피와 자본’간의 함수관계를 다룬 꽤나 재미있는 역사책이다. 서점이나 책을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시사’로 분류한 것처럼 이 책은 오직 ‘피’를 둘러싼 의학계와 산업계의 주장과 관련, 시대상황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피를 둘러싼 시대상황 집중 묘사 흔히 피는 산업계의 석유와 비교된다. 그러나 석유보다도 더 위험한 게 피다. 질병이 옮겨갈 수도 있고 헌혈의 봉사적 성격 때문에 원재료에 대한 비용이 적은데다 문화적인 의미와 결합되어 있어 더 다루기 어렵다. 처음 문제가 된 것은 문화적인 장벽이다. 생기론의 영향으로 피는 어떤 밝혀지지 않은 힘이 있는 체액으로 간주됐다. 이 때문에 목과 다리 부분을 절개해 일부러 피를 흘리는 방혈(放血)이 수천년간 치료법으로 행해졌다. 또 순한 새끼양의 피를 광인(狂人)에게 넣으면 정상인으로 되돌아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웃을 일이 아니다.2차대전 중 독일군은 극심한 혈액 부족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아리아인’이 준 피 외에는 수혈받지 않았다. 미국 역시 백인과 흑인의 피를 항상 분리해뒀다. 우리는 아직도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구분짓고 있다. ●대형제약회사들이 생산·유통 장악 그러나 과학의 발달도 피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했다. 혈액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고 수혈기술이 발달하면서 자본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피에 대해 신화에 젖어 있을 때는 우스꽝스러웠을망정 피에 대한 경건함이라도 있었지만 잘 포장된 혈액은 그냥 상품일 뿐이다. 석유를 세계 7대 산유국이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대형제약회사들이 혈액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쉽게, 다량의 피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빈민가를 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마약중독자나 극빈층에게서 피를 받다가 비난을 받게 되자 3세계로 손을 뻗쳤다. 이 부분에 이르면 군인과 학생들의 헌혈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현실과 대비가 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기에다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수혈이 외려 생명을 단축시키는 사태가 일어나고 세계 각국은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지은이가 신문기자 출신이어서인지 드라마틱한 구성이 많은데다 간결하면서도 재치있게 꼬아논 문장이 많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3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지진해일 대재앙] 슈뢰더 “피해국가 부채 탕감해주자”

    |베를린 연합|동남아·서남아 지진 해일 참사를 계기로 향후 재난 피해와 관련된 국제적인 응급구조·구호 및 복구지원 체계가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독일 언론들이 30일 보도했다. 그동안 국제기구나 각국 정부 및 민간 구호단체들이 재난 피해국에 따로 지원하던 것과 달리 외채를 공동으로 탕감하고 지원 활동을 효율화하려는 다자간 국제회의까지 모색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서방 채권국 모임인 파리클럽과 선진 8개국(G8) 회의는 쓰나미(지진 해일) 피해국에 대한 부채의 일부 탕감이나 상환유예 등의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토대로 ‘아프가니스탄 재건회의’처럼 유엔 등 국제기구가 공동 주최하고 주요 국가와 피해 당사국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회의가 올해 안으로 열릴 전망이다. 이와 관련,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이날 “피해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책임과 장기간의 지원을 바란다.”면서 “부유한 모든 나라들은 해당 지역의 재건을 떠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뢰더 총리는 미리 배포한 신년사에서 “독일은 유럽연합(EU)을 통해 유엔과 세계은행이 형식과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피해국들을 효율적으로 돕도록 촉구할 것”이라면서 “부채의 일부 탕감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인도네시아와 소말리아의 외채 상환 유예를 파리클럽에 제안하겠다고 밝혔으나 신년사에서는 부채 탕감까지 거론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피해지역 11개국의 외채 상환유예를 파리클럽 회의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외채삭감 논의를 위한 G8 회의 개최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모든 제안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에 동조했고 최대 채권국인 일본도 이같은 논의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일요영화]

    [일요영화]

    ●미이라(MBC 오후 9시45분) ‘정글북’ 등의 스티븐 소머즈 감독 1999년작. 브랜든 프레이저, 레이첼 와이즈, 존 한나 출연. 1932년 공포영화를 인디아나 존스 풍의 영화로 리메이크했다. 사막의 모래 위에 드러나는 미라의 얼굴, 인간을 공격하는 수만 마리의 밀랍 풍뎅이떼 등 컴퓨터 그래픽을 적극 활용한 특수효과들이 볼 만하다.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에서만 1억270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기록해 속편과 외전까지 제작됐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영화를 누렸던 시대 중 하나인 세티 1세 치하. 파라오의 정부 앙크수나문은 승정원 이모탭과 금지된 사랑에 빠져 처벌받는다. 앙크수나문은 자결하고 이모탭은 산 채로 석관에 갇혀 영원히 생(生)시체가 되는 극형을 받은 것. 그 후로 3000여년이 지난 서기 1925년. 외인부대 장교 오커넬과 이집트 박물관 사서 이비, 이비의 오빠 조나단은 고대 이집트의 재화를 찾아나섰다가 실수로 이모탭을 부활시키고 만다.124분.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못말리는 가족(KBS1 오후 11시30분) 피터 팀 감독의 2002년작. 요리사 스테판은 부인 시몬과 잦은 다툼 끝에 결국 이혼하고 말지만 그의 꿈은 사실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 그러나 각자가 다른 가정을 꾸리면서 가족사는 점점 복잡해져만 가고 사춘기 자녀들 사이에서도 여러 문제가 생기는 등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92분.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눈을 떴다. 문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암실에 있으면 의식도 시간도 모두 멎었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주로 암실에서 지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닥에 누워, 불필요한 감각이 퇴화된 심해의 생물처럼 눈과 귀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촉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기는 욕조 속의 더운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경쾌한 리듬의 허밍이었다. 멜로디가 귀에 익었다. 가게 안으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몸 마디마디를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눌려있었던 몸 왼쪽이 저려왔다. 암실 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손그늘을 만들고 부신 눈을 떴다. 딱딱한 알루미늄 가방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 속에 앉아있는 여자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빛 무더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스러지면서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는 얼굴빛이 유달리 희었다. 여자가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팔은 윤곽이 희미했다.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반쯤은 투명해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것인지 자신을 일으켜 달라는 것인지 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손아귀 깊숙이 손을 넣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칫하면 못 찾고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상가가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그쪽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로는 죽은 골목이 돼버렸다. 사진관은 옛 번화가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원래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을 허물고 상업용 건물을 급조해 형성된 상가였다. 지금은 가게를 연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곳은 구식 양옥의 1층을 개조해 가게로 쓰던 것이어서 밖에서 보면 가정집처럼 보였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어요. 한 달 전에 이미 매매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저에게 세 놓을 생각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대를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중고로 구입한 17분 컬러 현상기가 한 구석에 놓여있을 뿐,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진관을 하려고 산 건물이지만 한 달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암실에서 보냈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얼룩져 더러워진 벽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나뭇결을 들여다보았다. 곳곳의 정경들을 기억 속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세밀하게 보았다. 여긴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오래전에 아버지가 여기서 사진관을 했어요. 위층에 살림을 차리고요. 여자의 나이를 가늠해봤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보였지만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쯤일 것이다. 여기서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처음엔 그냥 둘러보고만 가려고 했어요. 막상 와보니 여기 있고 싶어지는군요. 세를 놓는 건 싫다고 하셨죠? 대신 일을 하겠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게를 열면 가게일도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말끄러미 보았다. 여자의 눈빛 속에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집안일과 병간을 도맡았던 아주머니와 6개월여를 함께 지내본 적은 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면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딘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와 묏자리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동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도로의 모퉁이에 나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가 느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던 자리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골목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가로수에 가려 골목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 길이 번화가였지. 세가 워낙에 비싸서 느이 아버지가 저 골목 끝에 있는 집을 사서 아래층을 가게로 개조했다.2층에다 신접살림을 차렸고, 너도 거기서 낳았어.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저기서 오래 살았을 게야. 그때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어름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생전의 아버지처럼 사진관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두운 골목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의 유순한 흐름을 따라 유유히 나의 생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49재를 치르고 어머니의 무덤에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성한 것은 지붕까지 뻗어있는 담쟁이덩굴뿐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곧장 계약서를 썼다. 다니던 잡지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사진기자로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구 곳곳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 중심의 다큐멘터리 잡지였다. 사직서는 그날로 수리되었다. 잡지는 상업성이 강한 잡지들을 출간하는 모(母)기업의 품격을 위해 창간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사진이 실리는 잡지를 다수의 대중은 외면했다. 독자가 많지 않으니 당연 광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모기업은 서서히 경영에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권고사직을 당할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통장으로 입금된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어머니의 결혼 예물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세 장의 보험증서가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는 보험증서를 쥐고 오열했다. 오십 몇 년의 삶의 흔적이라기에는 세 장의 종이는 너무도 가볍고 쓸쓸한 것이었다. 2층의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 암실에서 지내면 되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려운 조건은 아니로군요. 여자는 알루미늄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2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히는 휴대용 침대를 암실에 갖다놓고, 내 물건들은 거실에 놓았다. 여자가 식사준비를 했다. 여자는 냉장고 뒤쪽 구석에 쑤셔 넣어두었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양념통이나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주위를 서성대던 나는 머쓱해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자가 차린 상은 정갈했다. 냉장고에는 맥주와 인스턴트식품만 가득했었는데, 여자가 차린 밥상에는 찌개에 윤기가 흐르는 밑반찬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여자의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던 것과 맛이 흡사했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싱긋 웃었다. 환한 빛이 얼굴 가득 퍼졌다. 이곳에 머무는 대가로는 좀 과분하군요.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여자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암실에서 보냈다. 여자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했다. 거실로 내어 놓은 옷장 속에는 바싹 마른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여자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거칠게 그린 가게 구조도와 비용에 관한 세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관을 열었으면 해요. 여자가 건넨 종이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종이 몇 장으로는 가게의 모습이 요연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가게에 있는 17분 현상기는 되팔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사진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증명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갖추고, 현상·인화 서비스를 하면 되겠다 싶어 17분 컬러 현상기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바투 다가와 앉아 손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계획을 설명했다. 암실은 공간이 꽤 넓으니까 두 개로 나누었으면 해요. 조명기기와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요. 표준화된 QSS방식으로는 사진을 기록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만 충족시킬 수 있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서 현상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암실을 개방해서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 제가 꿈꾸고 있던 사진관이에요. 암실에서 나와 보니 벽에 호두나무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던 자동 현상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대고 엎드린 채 기름걸레로 바닥의 나무를 닦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켜켜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암실 공사하러 인부들이 올 거예요. 가벽을 세우는 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어디 잠깐 다녀오는 건 어때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내려온 후로는 첫 외출이었다.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SLR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인데, 검은 몸체의 카메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가 이물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풍경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들판에 앉아 서서히 땅에 내리고 있는 어둠을 응시했다. 구릉처럼 낮은 산의 언저리에는 스러진 햇빛이 모여 검붉은 노을로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의 윤곽이 어둠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 않았다. 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불현듯 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가게에 걸려 있는 간판에 불이 환했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암실카페 - 빛이 스며든 자리’라고 씌어 있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출입문을 열자 직사각의 탁자 세 개가 보였다. 한쪽 면을 벽에 붙인 탁자에는 어림잡아 2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실과 스튜디오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주방이 들어섰다. 주방은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바bar 형태였다.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닫이 유리문이 달린 업소용 냉장고 안에는 캔음료와 몇 종류의 맥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암실 옆의 공간에는 몇 개의 조명기구가 놓여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스튜디오를 제외한 가게의 정경은 카페에 가까웠다. 늦은 시간에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 사진관보다는 호프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어요. 어두운 방에 스며든 빛의 흔적, 그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여자는 벽의 진열장을 닦고 있었다. 이곳에 카메라를 진열해 놓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사진관에 카메라 진열대가 있었지요. 집집이 가정용 카메라를 구비해놓기 이전에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대여했으니까요. 가방 속에 묵혀두는 것보단 가게로 내오면 오래된 사진관 이미지도 풍기고, 손님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도 보여주고 좋을 것 같은데요. 진열대는 애초부터 카메라를 놓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천장에 진열대를 비추는 작은 조명이 있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형식의 진열대에는 유리문이 달려 있었는데, 먼지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가 되어 있었다. 2층에서 카메라들을 가져왔다. 케이스에 넣어 상자에 보관해왔지만,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오토포커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해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썼다. 내게는 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게 마련이었다. 클래식 카메라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카메라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게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이나 카메라처럼 정물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단 한 대의 카메라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카메라를 꺼내 닦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첩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닦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는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사막에 묻힌 수천 년 전의 미라처럼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머, 이건 콘탁스II네요.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는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이걸 썼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주로 갖고 있는 카메라는 니콘FM2였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간혹 클래식 기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콘탁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올 때 구입한 것이라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카메라의 각별한 내력을 말했으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아있던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콘탁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카메라 앞면에는 키릴문자로 киев라는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카메라는 1949년에 생산된 키예프 카메라예요. 생산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방이지만 부품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왔지요.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소비에트는 전쟁배상금으로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인 자이스 이콘(Zeiss Ikon)을 요구했어요. 공장의 모든 부품과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우크라이나로 이송됐지요. 파견된 드레스덴의 노동자들이 자이스 이콘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었으니 이 카메라는 콘탁스II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인 셈이지요. 여자는 수건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닦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여자의 손놀림은 병든 육친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애틋해 보였다. 이 카메라는 제게 존재증명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거든요.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었지요. 월남에서 번 돈으로 이 카메라를 샀어요. 지금이야 회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돈이면 읍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지요. 아버지가 월남에서 부쳐온 돈을 큰아버지가 들고나갔었다니까요. 장사를 해보겠다고요.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읍내의 모든 술집을 뒤졌대요. 동생이 목숨 걸고 번 돈인데 술맛이 나더냐고 꾸짖어 모셔왔대요. 정혼한 사이긴 했지만 결혼 전이고 손위 시숙인데, 어머니는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요. 큰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술과 여자로 평생을 보냈어요.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느 집안에나 그런 무능하고 호방한 큰아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더라면 제게 유품 같은 건 남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니까요. 이 카메라 외에는 제 존재를 증명해줄 무엇도 남지 않았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한 삶의 내력을 갖고 있는 이 여자가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혈육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이 사진관으로 온 것도 여자가 카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귀성 어류처럼 내가 태어난 이 사진관으로 흘러들었던 것인지도. 사진관에는 손님이 없었다. 몇 차례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맥주를 찾았다. 여자는 암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이라고 가게에 대해 설명한 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첫 손님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여자애는 알고 있다며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여자애는 탁자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여자애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주었다. 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자애가 중얼거리며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여자애는 기름종이로 이마와 콧등의 유분을 닦고, 콤팩트 퍼프로 꼭꼭 눌렀다. “왜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이건 증명사진이니까요. 처음 발급받는 주민등록증이거든요. 원판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숫자와 지명과 이름과 125분의 1초 동안의 모습과 소속된 나라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증명이라는 말이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졌다. 증명이 목적인 플라스틱 카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 “저는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디지털 사진은 원판이 없잖아요. 디지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삭제하는 것도 복사도 고치는 것도 쉽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떠도는 이미지들처럼 느껴져요. 상이 음각으로 새겨진 필름의 원판은 이를테면 이미지가 깃드는 집 같은 거죠.” 여자애의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었다. 작고 까맣고 윤기가 도는 점이었다. 나는 보정을 원한다면 점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고 어른들이 빼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는 이 점이 좋아요. 점도 제 몸의 일부니까요. 사람들은 이 점 때문에 저를 쉽게 기억해요. 아마 아저씨도 그럴걸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와요. 여기서 직접 현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사진을 담아두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이름을 썼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였다. 여자애는 이현아라는 이름 옆에 한쪽이 지나치게 부푼 하트 문양을 그려 넣고, 내게 찡긋 윙크를 했다. 여자애가 지갑을 꺼냈다. 첫 손님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 암실도 이용할 수 있나요?” “암실에서 직접 현상할 수도 있고, 현상을 맡길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도 사용할 수 있고요.” “좋은데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곧 손님이 늘어날 거예요.” 암실에 누워 있다가 몹시 갈증이 나 밖으로 나갔다. 진열대의 조명등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암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아요.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 암실에서는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농밀한 어둠뿐이에요. 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무서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거기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곳에 있나요? 거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두려움, 고독, 침묵, 약간의 위안, 그리고 나. 암실에 누워 있으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예요.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바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요. 암실에 누워있는 나와 나를 응시하는 나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존재하는 걸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죠.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보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 반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각각 우주와 반우주를 형성했으며, 이 둘은 서로 맹렬한 속도로 멀어져갔다고 추측했다. 반물질은 물질을 만나는 순간 백만 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상쇄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우리들은 반물질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맥주잔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여자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여자에게 닿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사진관에 온 두 번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잡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현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그가 이현아의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현아의 증명사진이 든 봉투를 건넸다. “현아 오빤 거 어떻게 아셨어요? 신기하네. 남매지만 닮은 데가 별로 없거든요.” 굳이 닮았다고 한다면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아가 다녀가고 난 후 그 다음 손님이 현재였기 때문이었다. 곧 손님이 늘어날 거라던 현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형.” 그는 가방에서 세 통의 필름을 꺼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현상·인화 작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의 필름을 그에게 다시 건넸다. 외형발색 필름이었다. 외형발색 필름은 유제층 안에 발색제가 없어서 필름제조회사에서만 현상할 수 있었다. 암실 수납장 안에는 약품부터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디지털시계, 라텍스 장갑까지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현재가 알고 있는 것은 암실작업의 일반적 과정뿐이었다. “암실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말 놔요, 형.” 현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암실 작업도 사진 찍는 것과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는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말을 놓고 보니 현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웃음기 많은 얼굴 때문인지 현재에게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었다. 세이프라이트를 켜자 현재가 암실 문을 닫았다. 작업을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열심히 이론공부를 해도 직접 찍어보기 전에는 실력이 늘지 않잖아. 암실작업도 그래. 온도와 시간을 지킨다고 발색현상이 잘 되는 건 아냐. 날씨나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가 다르니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암기가 아니라 감이야. 감을 잡으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 현재는 인화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인물사진이었다. 수준급인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사진의 노출이 대부분 오버돼 있었다. 현재는 다음 동호회 모임은 이곳에서 갖기로 했다며, 이제부터는 손님이 꽤 늘어날 거라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재와 비슷했다. 제일 먼저 현재가 현아와 함께 왔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각자의 사진을 돌려보았고, 더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는 치들도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색인 듯 보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거나 현재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격 없이 대했다. 그들은 원래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미라지Mirage’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동호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시야를 좁혔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 잔 더 해야겠다며 여관방을 잡아 나갔다. 현재가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돌려보냈다. 가게 문을 닫고 어질러진 탁자를 그대로 놓아둔 채 암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데다가 몸이 몹시 피곤했다. 구석에 접어놓은 침대를 펼치자마자 나는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든 달빛이 바닥을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자는 내 뺨을 감싸 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여자의 혀가 들어왔다. 여자는 혀로 내 잇바디를 훑었다. 여자의 혀는 복족류의 속살처럼 차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가슴이 더워졌다. 나는 팔로 여자의 등허리를 감고 입을 열어 여자의 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뜨거워진 가슴을 달랬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 나가 문을 닫았다. 늦게야 일어나 암실에서 나왔다. 여자의 둥근 등이 보였다. 여자는 암실을 등지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속의 색소가 다 바랜 것처럼 여자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당신의 사진에는 색이 없군요. 하나같이 흑백사진뿐이에요. 게다가 당신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요. 노출이 부족해요. 노출이 모두 -2스톱이군요. 글쎄요. 저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슬라이드 필름을 쓸 때에는 노출이 오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배웠거든요. 카메라는 어두운 방이죠. 무언가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해요. 조리개를 조금만 더 열고 셔터 속도를 늦춰요. 햇빛 때문일까.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스크랩하는 여자의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에 떠 있는 한천질의 자포생물처럼 손가락 아래로 사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와 입술의 윤곽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여자를 봤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탁자를 보자 여자는 여전히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자주 사라졌다. 몇 시간 또는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돌아온 여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가게를 돌봤다. 손님이 점차 늘어서 가게일이 바빴다.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느새 연기처럼 희미해져 실루엣으로만 넘늘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던 날, 현재가 현아와 함께 찾아와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사진 관련 잡지에서 루미노그램(Luminogram,光跡사진)에 대한 글을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끝에 불이 들어오는 펜 모양의 라이트를 들고 온 현아는 이민 간 친구에게 라이트 페인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거라며 몹시 들떠 있었다. 라이트 페인팅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암실에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릴리즈를 연결한 후 세이프라이트를 껐다. 셔터 속도를 Blub에 놓았다. 현아는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으며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셔터를 Blub에 맞추고 1 스톱 부족의 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조사하면 글씨를 쓰고 있는 연출자의 모습이 사진에 나온다. 현아의 작업이 끝난 후 여자가 펜라이트를 들었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천천히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켜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있던 라이트펜이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은 여전히 가게로 찾아와 암실을 사용하고 차를 마시고 더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혔다. 시간은 여전히 흘렀고, 어두울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의식은 여자에 대한 기억을 쫓고 있었다. 문밖에서 경쾌한 멜로디의 허밍이 들려왔다. 처음 내게로 왔던 날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외로움이 불러낸 환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에서 달려온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려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현상한 라이트 페인팅 사진을 꺼내보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에는 서정주의 시구가 씌어 있었다. 물 위에 뜬 유성물감처럼 글씨의 획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여자가 서 있었을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공간은 검은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시의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바람처럼 사라진 여자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여자가 택한 이별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입 맞춘다면, 거리낌 없이 이를 열어 여자가 내민 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자의 둥근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몸이 완전히 스러지고 난 후 먼먼 내생의 어느 날이어도 좋았다. 진열대에는 여자가 남기고 간 키예프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옆의 콘탁스를 꺼냈다. 노출을 오버스톱으로 다시 맞추고 뷰파인더에 키예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라고 말했던 키예프 카메라는 내게는 여자에 대한 기억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진은 어두운 방에 잠시 스며들었던 빛, 그 빛의 흔적을 기록한 한 장의 루미노그램으로 남을 것이다.(끝) ■ 당선소감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사진관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상가 2층 건물이었지요. 그 후부터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사진관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 오래된 사진기가 들어있는 곳. 증명사진을 찍으러온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웃으세요, 한 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곳. 소읍의 탄생과 죽음과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는 곳. 돈을 벌어도 좋고 벌지 못해도 좋은, 그런 사진관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사진관을 넣어두고 저는 수시로 꺼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관 안에는 허약한 식물이 자랐습니다. 제 소설은 결여의 토양에서 결핍의 양분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닌 게 없어도 너무 지독하게는 살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다독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약한 소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구효서 선생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뻐요. 한결같이 제게 여여한 미소를 보여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가족과 문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응오씨, 당신은 제 삶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승미 ●약력 1974년 강원도 양구 출생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은 각기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문학도들에게 패기와 정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이름으로건 예술의 이름으로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을 적당히 꾸려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소년’‘달을 보고 짖는 개’‘펑크로커 실종기’‘빛이 스며든 자리’ 등 4편이었다.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미래없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지만,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을 움켜 쥘때 문학적 형상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달을 보고 짖는 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주제와 구성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잘 만든 이야기, 그러나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낡은 이야기에 새로운 진실이 담기기는 어렵다. ‘펑크로커 실종기’는 누아르 서사의 형식 속에 펑크족들의 생활양태를 담은 소설로 문장이 경쾌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겉과 속을 심도있게 성찰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조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펑크족은 펑크족이다.’라는 말 이상의 매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풍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에서 온다. ‘빛이 스며든 자리’는 구렁각시의 민담과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대의 사진예술론으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실과 환상을 정교하게 봉합해서 꾸며낸 예술가 소설이다.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는 주제의 설정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현길언 황현산
  • [키워드로 풀어본 퀴즈2004]온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보세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기습적인 신사 참배로 시작한 갑신년이 사상 초유의 희생자를 낸 남아시아 대재앙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올 한해 우리의 일상에 머문 뉴스속의 키워드를 퀴즈 형식으로 되짚어 본다. 파란과 격동의 ‘그 때 그 순간’을 곱씹어보며 희망의 을유년을 준비하자. 출제 채종규 DB팀장 jkc@seoul.co.kr 1월 1. 갑신년이 열린 첫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가 이 곳을 기습 참배해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 곳에는 중·일전쟁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전몰자 250만여명의 위패가 안치돼 있다. 일본의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 정부 인사의 참배를 군국주의 부활의 조짐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곳은? 2. 4일과 25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쌍둥이 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이 행성의 표면에 차례로 안착, 유럽의 마스 익스프레스호와 함께 모두 3개의 탐사선이 물 흔적을 뒷받침하는 사진 자료와 광물 분석 자료를 보내왔다. 과학자들은 생명체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행성은? 3. 5일 국세청은 기업이 한도액 이상 접대비를 지출할 때 정규 영수증에다 접대하는 사람, 접대 받는 사람, 목적 등을 별도 기재,5년간 보관해야 비용으로 인정받게 했다. 이른바 ‘접대비 실명제’ 도입이다. 기업들은 접대 구조를 개선하기보다는 편법·불법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기업 접대비의 건당 한도액은? 2월 1. 12일 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복제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미국의 저명한 과학잡지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10대뉴스’ 3위에 올랐다. 국가로부터 요인급 경호를 받는 ‘국보급 과학자’로 떠오른 이 교수는? 2. 13일 이라크 파병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파병 규모는 3600명. 올리브를 뜻하는 아랍어인 자이툰 부대로 불린다. 극도의 보안속에 8월 3일 선발대가 파견됐다. 이후 단계적으로 배치가 완료됐다.12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은 이 곳을 전격 방문, 장병들의 사기를 높였다. 자이툰 부대가 평화 재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의 지명은? 3. 19일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개봉 58일 만에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관람 등급인 ‘15세 이상’ 가운데 3명중 1명이 이 영화를 본 셈이다. 뒤이어 ‘태극기 휘날리며’도 100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안성기 설경구 등이 열연한 이 영화 제목은? 3월 1.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이르자 6일 정부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여러 금융 기관에 빚이 있는 경우 원리금 일부를 갚으면 신용 불량자에서 해제한 뒤 이 곳을 통해 장기 저리로 대출을 해줘 금융기관에 돈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했다. 여러 은행의 부실채권을 모아 처리하는 이 곳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2. 12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3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60여일에 이르는 탄핵정국 기간에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무리없이 수행해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국무총리는? 3. 30일 서울중앙지법은 작년에 귀국해 ‘경계인’ 논쟁을 불러 일으킨 재독 학자에 대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7월 21일 서울고법은 증거 미흡을 내세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현재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새해부터 서울신문에 칼럼을 집필할 예정인 이 사람은? 4월 1. 1년 4개월을 끌던 한국과 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1일 공식 발효됐다. 이로써 한국은 자동차 휴대폰 등을, 칠레는 커피 배합사료 등을 무관세로 수출하게 됐다. 그렇다면 동남아 시장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한국이 11월 29일 FTA를 체결한 국가는 어디? 2. 15일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지역구 후보에 1표, 지지정당에 1표를 각각 찍는 투표방식이 실시됐다. 기존의 인물 위주에서 정당의 정책 등을 평가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된 것. 진보정당인 이 정당은 지역구에서 2석, 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 8석 등 모두 10석을 확보해 창당 이후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했다. 이 정당은? 3. 22일 평안북도 신의주 인근의 한 기차역에서 거대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질산암모늄을 실은 화물열차와 유조차 등이 폭발해 역 인근 소학교 학생 등 150여명이 죽고 1300여명이 다친 대형사고였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이틀 만에 사실을 발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해 눈길을 끌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난 이 역은? 5월 1. 1일 서울시는 자동차에 빼앗긴 도심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조성한 이 곳을 개방했다. 총 면적 3995평 중앙에 104mx76m의 타원형 잔디밭은 보름달을 상징하며,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깔린 것과 같은 ‘켄터키 블루그래스’라는 양잔디를 깔았다. 인근에 마련된 분수대와 스케이트장 등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곳은? 2. 23일 제5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해 한국 영화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박찬욱 감독 작품으로 최민식 유지태가 주연을 맡았다. 일본만화를 각색했으며,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사설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남자와 그를 가둔 남자의 비밀을 다룬 이 영화의 제목은? 3.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28일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을 총장으로 선임했다. 지난 98년 ‘분자 양자 홀 효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최근 KAIST의 사립화를 골자로 한 ‘KAIST 비전 구상’을 발표해 과학기술계와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총장 취임전에도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소장과 포항공대 석좌교수로 부임하는 등 유독 한국과 인연이 많은 이 사람은? 6월 1.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이 사람이 5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81∼88년 대통령 재임기간 미국인들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주고 냉전 종식을 가속화한 인물로 평가된다.37세때 할리우드에 진출해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레이거노믹스’로도 잘 알려진 이 사람은? 2.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왕복선이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무사 귀환, 민간 우주비행 시대에 성큼 다가섰다. 이후 미국의 버진갈락티카를 비롯한 우주여행 관련 회사들이 잇따라 설립돼 향후 민간에 의한 우주개발 경쟁이 본격화 될 것임을 예고했다. 순수 민간 자본으로 제작돼 타임지 선정 ‘올해의 발명품’에 선정된 이 우주 왕복선은? 3.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이라크 무장단체 ‘유일신과 성전’에 피랍된 가나무역 직원이 22일 무참히 살해됐다. 납치범들은 비디오를 통해 이라크 주둔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했고, 이틀 뒤 만행을 저질렀다. 생존을 염원한 온 국민을 비탄에 잠기게 한 이 사람은? 7월 1. 1일 이 기구 산하의 세계유산위원회는 고구려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신청을 동시에 등재시켜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킬 수 있는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제공한 셈이 됐다. 유엔을 대표하는 단체중 하나로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이다. 이 기구는? 2. 미국·유럽이 공동 참여한 이 탐사선은 80개월간 35억㎞를 항해한 끝에 1일 토성 궤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탐사선이 보내온 영상을 통해 새로운 위성 2개를 발견, 토성 위성이 모두 33개임이 밝혀졌다. 토성고리 사이 간극을 최초로 발견한 프랑스 과학자의 이름에서 따 온 이 탐사선의 이름은? 3. 18일 2003년 9월부터 부유층 노인, 여성등 21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을 체포했다. 한 사람이 저지른 살인 숫자로는 정부수립이후 최대이다.“100명을 죽이려 했는데 빨리 잡혀 아쉽다. 시신의 일부를 먹었다.”는 등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내 국민을 경악케 했다.12월 13일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희대의 살인마는? 8월 1. 제28회 아테네하계올림픽이 ‘신의 땅’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14일 막을 올렸다.1896년 제 1회 대회 개최이후 108년 만에 고향으로 귀환한 지구촌 축제에서 한국은 금 9, 은 12, 동메달 9개로 종합 9위에 올라 지난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8년만에 톱10에 복귀했다. 차기 2008년 올림픽은 어느 도시에서 열릴까? 2.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23일 국회를 통과했다.“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의 법철학이다.‘왕따 학생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서 소수자의 편에 섰다. 탤런트 최진실의 변론을 자청한 강지원 변호사의 부인으로도 유명한 이 사람은? 3. 24일 한국과 중국은 ’고구려사 문제의 정치화 방지’ 등 5개 구두 양해사항에 합의했다. 마찰원인은 중국이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 유적이 자리잡은 지린성 일대를 중국 유적지로 홍보하는 등 역사 왜곡을 본격 시도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논거를 제공한 중국의 연구 프로젝트 명칭은? 9월 1. 11일 열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빈집’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난 2월 15일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사마리아’로 같은 상을 받았다.‘섬’(2000년) ‘수취인 불명’(2001년) 등은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국내 보다 해외서 높은 평가를 받아 세계와 소통하는 ‘충무로 이단아’로 불리는 이 감독은? 2. 정부는 고위 공직자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을 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거나 신탁기관에 맡기는 제도를 14일 확정했다. 단 ‘직무와 관련이 없는’ 주식은 보유를 허용했다, 공직자 윤리법에 정해진 ‘재산공개대상자’ 5697명이 대상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이 제도는? 3. 중국공산당 전당대회가 열린 19일 장쩌민의 군사위 주석자리를 전격적으로 물려받아 10여년간의 2인자 생활을 마감하고 공산당·정부·군 등 3권을 모두 장악하게 됐다. 중국은 2차대전 이후 교육받은 세대로 지도부가 전면 교체돼 본격적인 ‘테크노크라트’시대를 맞이했다. 공산당의 ‘모범생’으로 권력의 정점에 우뚝 선 이 사람은? 10월 1. 1일 국내에서 첫 번째로 현대자동차가 두가지 이상의 동력을 사용하는 자동차 개발에 성공했다. 저속 주행에는 전기 모터, 고속 주행에는 휘발유 엔진을 사용해 연료와 배출가스를 줄일 수 있다. 영어로 ‘잡종’이라는 뜻으로,2008년부터 상용화될 미래형 자동차는? 2. 일본의 야구천재인 이 선수는 2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5타수 3안타를 때려 한 시즌 최다안타 신기록(259개)을 세웠다.1920년 조지 시슬러가 세운 257개를 84년만에 갈아 치운 대기록. 타고난 센스와 자로 잰 듯한 타격, 강한 어깨 등 완벽한 조건에 노력까지 겸비한 이 선수는? 3. 헌법재판소는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법 규범이며, 모든 헌법사항을 성문헌법으로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법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문자화되지 않은 헌법적 관행 내지는 관례를 말하는 이 법은? 11월 1.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초접전 끝에 민주당 존 케리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 국무장관으로 국가 안보보좌관을 지낸 흑인 여성을 내정했다. 미국 역사상 올브라이트에 이어 두번째 여성 국무장관이 된 이 사람은? 2. 11일 ‘중동의 큰 별’이 떨어졌다. 이스라엘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69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창설해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한 그는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94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평화협정에 합의,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2001년부터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자치정부 청사에 연금당한 이 사람은? 3.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 행위가 19일 적발된 뒤 26만여건의 문자메시지를 분석하여 모두 314건의 부정행위를 밝혀낸 곳.2000년 온라인상의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서울경찰청에 창설된 조직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범죄 정보 수집, 인터넷상의 명예훼손과 스토킹, 전자상거래 사기사건 등을 전담하는 이 곳의 이름은? 12월 1. 개성공단 시범단지에서 생산한 제품이 15일 국내에 첫 반입됐다.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의 조선아태평화위가 개성공단 개발에 합의한 후 4년4개월만의 첫 결실. 개성에서 만든지 8시간 만에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400세트가 판매돼 15분 만에 동이 났다. 개성공단과 더불어 민족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떠오른 이 주방기구는? 2. 교수신문이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약하는 교수 162명에게 2004년 한국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물은 결과 1위로 꼽혔다.‘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패가 되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친다.’는 이 말은? 3. 사상 최악의 지진해일이 26일 동남아와 서남아를 강타했다.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는 물론 인도 스리랑카와 아프리카 소말리아까지 여파가 미쳐 사망·실종자가 1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닷속 지진이나 화산 폭발등으로 발생하는 이 지진해일을 일컫는 국제 공용어는? ■ 힌트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기사검색란을 활용하세요(기획섹션 참조).
  • [지진 해일 대재앙] 이재민 500만명도 굶주림과 사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해일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만 8만여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돼 사망자가 모두 12만명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피해지역을 돕기 위한 지구촌 가족들의 구호 노력도 이미 50∼60개국이 3억 5000만달러 이상의 지원을 약속하는 등 사상 최대 규모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장비와 인력 모두 터무니없이 부족한 데다 구호 노력도 전염병 창궐 예방에 주력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집도 잃고 먹고 마실 것 하나 없이 내팽개쳐진 500만여명의 생존자들은 2∼3일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삶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스리랑카에서 홍역과 설사병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데이비드 나바로 보건위기팀장은 30일 인도양 연안 피해국가들에서 500만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적절한 위생시설이 갖춰지지 못한 상태에서 먹을 것과 마실 물 없이 며칠째 굶으며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구호 노력이 시체 매장 등 전염병 예방쪽에 치우치다 보니 맨몸으로 폐허 속에 남겨진 생존자들로부터 지지부진한 구호 작업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반다 아체에서 만난, 더러운 사롱(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을 걸친 한 30대 중반의 여인은 “쌀과 의약품, 석유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 이틀간 아무 것도 먹지 못했는데 도대체 먹을 것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며 지원의 손길이 늦어지는 데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얀 이글랜드 유엔 긴급구조조정관은 생존자들에 대한 지원은 벌써 24시간 전에는 이뤄졌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48∼72시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면서 주말로 갈수록 이들의 절망은 커질 것이라고 개탄했다. ●최고 30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태국의 휴양지 카오락에서는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있지만 구조대원들이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않은 탓에 일부 자원봉사자들만이 구조에 나서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태국 당국이 해일이 덮치기 1시간 전에 이미 지진 발생 사실을 알고 해일과 같은 가공할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지만 해일이 발생할 것이란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경보 발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 태국 기상청의 수말리 프추아브는 “바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지진이 해일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면서 “경보가 발령되면 관광객들 사이에 패닉상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파리클럽 등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에 긴급복구자금을 제공하는 한편 채무상환을 유예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IMF 본부의 한 관계자는 특히 내년 15억달러를 상환해야 하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채무상환 재조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파리클럽도 내년 1월12일 파리에서 모임을 갖고 지진 피해국의 부채 문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관련 소식통이 전했다. ●가장 많은 구호금을 지원하는 국가는 스웨덴으로 무려 7500만달러를 약속했다. 민간단체로는 영국의 민간 구호기관들의 연합체인 긴급재난위원회(DEC)가 3800만달러의 구호금을 모았다. 이는 영국 정부가 약속한 원조금 2900만달러는 물론 미국이 지원키로 한 3500만달러보다 많은 금액이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쌀 개방협상 타결] 정부 “최상의 결과” 농민 “농촌 다 죽어”

    [쌀 개방협상 타결] 정부 “최상의 결과” 농민 “농촌 다 죽어”

    30일 허상만 농림부 장관은 쌀협상 관련 발표문의 절반 이상을 향후 농민 지원 및 농업 경쟁력 강화 대책에 할애했다. 발표문 7장 가운데 4장이 소득보전, 복지확충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9개국과 피 말리는 협상을 통해 쌀 의무수입 물량, 소비자 시판 규모 등을 최소화했다고 농림부는 자평하지만 농민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농민 설득은 정부가 풀어야 할 최대 난제다. 현재 농민들은 정부가 협상시한에 쫓겨 수입쌀 시판 허용 등 상대방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였다며 협상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전국농민연대는 이날 정부 발표 직후 내놓은 성명에서 “정부의 쌀협상 결과는 농업·농촌의 파탄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행계획서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출계획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도 “정부가 국민적 합의도 거치지 않고 강대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쌀시장 개방은 시간문제일 뿐이며 지금은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보다 쌀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초 국회비준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여기서도 최대 관건은 농심(農心)이다. 농민 반발이 거셀 경우, 유권자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야 의원들이 비준안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농민 설득과 국회비준 성공이 사실상 한묶음인 셈이다. 허 장관은 “법적으로만 따지면 올해 말로 쌀 관세화 유예가 끝나기 때문에 내년 1월1일부터는 공백상태가 시작되는 셈”이라면서 “국회비준 동의안 처리가 장기화되면 WTO 회원국들의 문제제기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지진 해일 대재앙] 전염병 공포… 매장 급급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과 해일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등 피해국들은 28일 대대적인 구호 및 복구 작업에 들어갔으나 장비와 인력 부족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구호작업보다도 전염병 창궐 방지를 위한 시체 처리 등에 매달리다 보니 집과 생계수단을 잃은 생존자들은 앞으로 며칠간 최악의 고통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최대 인명피해를 기록한 스리랑카에 도착한 구호팀들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참상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무너진 건물 잔해를 빼고는 눈에 띄는 것은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일부 자원봉사자들만이 흩어진 시체들을 한곳에 모아 정리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을 뿐 사람들의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여진으로 24∼48시간 안에 또 다른 해일이 덮칠지 모른다는 경보가 내려지자 해안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고지대를 찾아 내륙으로 대피했다. ●“전염병 예방이 급선무” 울부짖는 생존자들 인도에서는 또 다른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뜨거운 날씨로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막게 만드는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도 잠시, 시체 처리에 여념이 없다. 부패에 따른 오염을 막지 못하면 전염병이 크게 번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또다시 대규모 피해를 막기 힘들다는 경고에 따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과 부모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땅 속에 파묻거나 바다 속으로 던져넣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세계 각국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지원에 나서고는 있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유엔은 48시간 내에 구호팀과 구호물자를 실은 수송기 100여대가 피해지역에 도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48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지가 당장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하던 보건체계는 완전히 무너져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프리카 연안국까지 비상 이번 쓰나미 대재앙은 피해 지역에서도 새 기록들을 쏟아냈다. 지진으로 인한 해일은 진앙지로부터 7000㎞ 가까이 떨어진 동아프리카에까지 여파를 미쳐 소말리아에서는 100여명의 어부들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등 아프리카 동부 연안국가 곳곳에서 저지대가 침수되는 피해를 불렀다. 오만, 예멘 등 중동 국가들도 해안지대 가옥들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으며 정부 당국은 해안지대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기도 했다. ●해일경보체제 도입 논의 영연방 국가들은 내년 1월 인도양 연안 모리셔스에서 재해에 대한 조기경보체제를 갖추는 방침을 논의할 것이라고 돈 매키넌 영연방 사무총장이 27일 밝혔다.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인도와 스리랑카, 몰디브 등은 모두 영연방 국가들로 해일경보체제만 갖춰졌더라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이 줄곧 제기돼 왔다. 일본과 호주도 각각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해일에 대한 경보체제를 신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아시아 대지진] 섬나라 몰디브 수도 3분의2 잠겨

    인도양의 해양관광지로 인기높은 섬나라 몰디브가 국가재난상태에 빠졌다. 26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강진의 여파로 1000여개의 산호섬으로 이뤄진 저지대 국가 몰디브가 국가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는 최근 지구온난화 현상 등으로 나라 전체가 침수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 국가 존립위기까지 언급되고 있다. 몰디브 전체 인구 30만명 중 대부분이 천혜의 산호섬 자원을 이용해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번 강진으로 당분간 국가경제의 근간인 관광산업이 한동안 마비되는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길이 2㎞, 폭 800m인 수도 말리는 3분의 2가량이 해일로 인한 홍수피해를 입었다. 아흐메드 샤히브 정부 대변인은 “수도 말리섬의 지표면이 해수면보다 고작 1m 높은데, 높이 1.3m의 해일이 덮쳤다.”면서 “마우문 압둘 가윰 대통령이 국가재난사태를 선언하고 국제지원을 호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TG, 단독 선두 복귀

    공동선두끼리 맞붙은 ‘부산 대회전’에서 양경민(24점·3점슛 5개)-신기성(21점·3점슛 5개·7어시스트) ‘토종 듀오’가 빛을 발한 TG삼보가 승리, 하루 만에 단독선두에 복귀했다. TG는 26일 부산금정체육관에서 열린 04∼05시즌 프로농구경기에서 주전 4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화끈한 공격력으로 KTF를 82-67로 꺾었다. 두 팀은 올시즌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TG의 개막 7연승 행진에 브레이크를 건 팀이 KTF. 반면 KTF가 7연승으로 단독선두까지 치고 올라가자 TG가 연승행진에 제동을 걸었다. 피말리는 접전이 점쳐졌던 경기는 초반 돌발 상황으로 일찌감치 갈렸다.1쿼터 3분여를 남기고 ‘리바운드 2위’ 자밀 왓킨스(TG)와 ‘득점 4위’ 게이브 미나케(KTF)가 거친 말싸움을 벌이다 나란히 퇴장당한 것.TG는 ‘트윈타워’의 한 축이 사라졌고,KTF는 확실한 득점원을 잃었다. 2쿼터부터 TG 전창진 감독은 높이를 포기한 채 스피드를 바탕으로 빠른 패스워크에 의한 외곽찬스를 노렸고, 이 전략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신기성, 양경민, 처드니 그레이(19점 8리바운드)는 3점슛 13개를 포함해 64점을 합작, 김주성은 홀로 골밑을 지키면서도 13점 9리바운드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공동4위 팀끼리의 격돌에서는 KCC가 SK를 92-87로 따돌리고 상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서울경기에서 LG는 삼성 서장훈에게 24점 10리바운드를 허용하며 78-87로 무릎 꿇어 팀 최다연패 타이인 9연패에 빠졌다. 오리온스는 대구에서 18점 7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올린 김승현의 활약에 힘입어 전자랜드를 92-85로 제쳤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따뜻한 손 나눠요] ② 난곡은 아직도 달동네

    [따뜻한 손 나눠요] ② 난곡은 아직도 달동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재개발이 한창인 ‘난곡(蘭谷)’사람들은 아직도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난곡의 끝자락 비탈길에서 쪽방이나 지하셋방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주민이 300가구를 훨씬 넘는다.30년을 넘은 ‘삶의 터전’을 벗어나기엔 여건도 용기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난곡을 잊지 않는 사람들의 정이 있어 세밑이 춥지만은 않다. ●쪽방과 지하셋방엔 ‘난곡 인정(人情)’ 난곡 뒷산 비탈길 끝자락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아슬하슬하게 자리잡은 무허가 판잣집에는 한 평 남짓한 쪽방 7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에 홀로 몸을 의지하고 있는 김순옥(81)할머니에게 난곡은 ‘제2의 고향’이다. 지난 3월 중풍으로 쓰러진 김 할머니에게는 한달에 한번씩 자원봉사자가 찾아와 목욕을 시켜주고 집 정리도 해준다. 지난달 신림사회복지관과 동사무소에서 전달한 연탄 200여장 덕분에 쪽방의 아랫목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 5년전 아들이 죽고 며느리와 불화가 생기면서 오갈 데 없는 처지로 난곡까지 밀려 오게 됐다는 김 할머니는 “가족과는 떨어져 산 지 오래지만, 그래도 쪽방 사람들끼리는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물어본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난곡에는 아직도 이웃의 정이 남아 있다.”고 엷은 웃음을 지었다. 난곡에서 살다 재개발로 이웃한 신림 7동 지하셋방으로 살림을 옮긴 윤미혜(54·여)씨는 “난곡에서 살 때는 일자리 소식을 알려주는 이웃 때문에 떠나질 못했고, 재개발로 30년 이웃이 흩어진 뒤에도 난곡 철거촌에서 고물이나 구리선 등을 주워다 팔았다.”면서 “갈수록 고물이 줄어들지만, 난곡을 떠난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장애인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는 윤씨는 “예전에는 한 집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다음날 소문이 퍼져 온 동네 사람이 말리러 다녔다.”고 돌아봤다. ●새해 온가족 다모이는게 소원 35년 동안 산동네 판자촌에 살다가 난곡 주변 지하셋방으로 옮긴 조명애(70)할머니의 새해 소망은 단 하루라도 좋으니 온가족이 한 데 모이는 것이다.7남매를 둔 조 할머니는 “사는 게 빠듯한지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싫은지 명절이 와도 얼굴 보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섯째딸(35)과 손자·손녀와 함께 살고 있어 다른 할머니보다는 나은 편이다. 조 할머니는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식당일을 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딸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은 대물림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새해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희망으로 달래는 가난 난곡은 관악구 신림동 산101일대 2만 1750평을 일컫는다.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시내 불량주택이 철거되면서 빈민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마을이 형성됐다. 지난 2001년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난곡을 상징하던 파란색 문의 공동 화장실이나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둔 대규모 판자촌은 이제 옛풍경이 되어 버렸다. 대신 그자리에서는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2006년 9월이면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탈바꿈한다. 바람드는 판잣집이라도 갖고 있던 가옥주 2500여가구는 아파트 완공을 기다리며 이웃한 임대 아파트 등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형편이 되지 않는 세입자들은 근처 쪽방이나 셋방에서 비슷한 처지인 이웃들의 인정에 가난을 잊으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국악인 박범훈씨 종합대 총장에

    한평생을 우리 가락의 현대화, 대중화에 매달려 온 ‘신 국악인 박범훈’이 중앙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국내 종합대학에서 국악인 출신 총장이 탄생하기는 처음이다. 중앙대 법인 이사회는 24일 직선제 투표에서 1위 후보로 올라온 박범훈(56) 국악대학원 창작음악학과 교수를 제12대 총장으로 뽑았다. 그는 고향인 경기 양평의 중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다가 17세 때 동네에 찾아온 남사당패에 매료돼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가락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악예고에 들어가려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오면서 국악을 향한 도전의 길에 들어섰다. 인간문화재 지영희 선생에게서 피리를 배운 그는 예고 졸업 후 중앙대 음악학과(작곡)를 거쳐 일본 무사시노 음대에서 석사, 동국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도전을 즐기는 박 신임총장은 국악의 대중화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한영애, 송창식, 김수철 등 대중가수와 함께 국악 공연을 시도하고, 도올 김용옥의 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86아시안게임,88올림픽,2002한·일월드컵, 대구유니버시아드 등 굵직한 행사의 개막식 음악 작곡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MBC 마당놀이 ‘허생전’,‘홍길동전’ 등도 그의 작품. 그에게는 ‘첫’이라는 말이 늘 따라다닌다.93년 처음으로 아시아민족악단 창단식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12현 가야금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25현 가야금을 선보였다. 민간으로는 국내 최초인 중앙국악관현악단도 만들었다. 교육행정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10년 남짓 서울국악예고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한국 최초로 서울국악유치원, 국악중학교, 국악대학, 국악교육대학원을 잇따라 설립했다. 발도 넓어 지난 11월11일 열린 그의 ‘음악인생 40주년 기념공연’에는 정·관계, 문화계 인사 1500명이 참가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그가 총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자 음악계 선후배들이 “작곡이나 지휘는 누가 하느냐.”며 말리기도 했다는 후문. 그는 “4년 동안 부총장직을 맡아 중앙대의 행정이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다.”면서 “그래도 막상 총장이 돼 발전기금을 모금하러 다닐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껄껄 웃었다. 박 신임총장은 내년 초 40장의 CD로 구성된 ‘박범훈 소리연(緣)’전집을 내고 잠시 창작활동을 쉴 작정이다.“예술이 노래하고 춤추는 딴따라만이 아닌, 행정과 정치가 모두 담겨져 있는 분야”라는 그의 예술철학이 어떻게 대학 운영으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해진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儒林(250)-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儒林(250)-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공자는 이처럼 계강자를 도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와 노자와의 사상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유리(遊離)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일치되고 있는데, 일찍이 노자도 ‘세도 부리는 도둑’, 즉 나라도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들에 있는 논밭은 거칠어지고 여염집 광은 비어 있는데도 비단옷 차려입고, 날이 선 칼을 차고, 맛난 음식을 싫증내며, 재물이 가득하면 이를 일러 세도 부리는 도둑이라 한다.” 노자의 말처럼 공자도 계강자를 ‘세도 부리는 도둑’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도 부리는 나라도둑일수록 입으로는 백성을 위한다는 공치사를 자주하는 법. 계강자는 다시 공자에게 묻는다. “백성들로 하여금 공경스럽고 충성되며 부지런히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에 공자는 대답한다. “백성들을 장중하게 대하면 자연 공경스러워지고, 효도와 자애로써 대하면 자연 충성스러워지고 선인들을 등용하고 무능한 사람을 가르쳐주면 자연 부지런히 힘쓰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공자는 계강자의 질문에 원칙적인 대답만 할 뿐 직접 정치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계강자가 공자에게 ‘당신은 국로로서 어찌 의견을 말하지 않습니까.’하고 비난을 받을 정도로 나라의 원로(元老) 노릇은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학문에 정진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전념하고 있었지만 노나라의 중요한 국사에는 관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논어의 계씨편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이때는 기원전 482년 공자의 나이 70세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계강자가 군사를 일으켜 전유(臾)를 정벌하려 하였다. 전유는 오늘날 산둥성 페이현(費縣) 서북쪽에 있는 나라로 대대로 노나라의 속령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계강자가 이를 정벌하려 하였던 것이다. 당황해진 염유와 자로가 공자를 찾아뵙고 아뢰었다. “계씨가 전유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자가 말하였다. “구(求:염유의 이름)야,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겠느냐. 전유는 옛날 선왕께서 동몽산의 제주로 삼고 그곳에 봉한 나라이며, 또한 노나라의 영역 안에 있는 나라이다. 노나라를 떠받드는 신하의 나라인데 어찌하여 그를 친다는 것이냐.” 공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동몽산(東蒙山)’은 지금의 산둥성 멍인현(蒙陰縣) 남쪽에 있는 산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몽산이라고도 불린다.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신령한 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대로부터 노나라와 군신의 예를 갖춘 속령이었던 것이다. 공자의 질책에 염유가 변명하여 대답하였다. “계씨가 치려는 것이지 저희 두 사람은 모두 원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구야, 옛 사관이었던 주임(周任)은 이렇게 말하였다.‘자기 힘을 다하여 벼슬자리에 나아가되 만약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벼슬은 그만둔다.’는 것이다. 위태로운데도 붙잡아두지 못하고 넘어지려 하는데도 부축해 주지 못한다면 그런 신하는 어디에다 쓰겠느냐. 또한 너의 말도 잘못이다. 범과 들소가 우리 밖으로 나가거나 궤 속에 넣어둔 신귀(神龜)와 구슬이 깨어졌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공자의 질책은 평소에도 언짢게 생각하고 있던 염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계강자를 도와 가렴주구에 나선 염유의 변명이 못마땅해서 신하된 도리로 계씨를 말리지 못한 불찰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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