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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소말리아 등 ‘여행금지’… 日후쿠시마 인근 등 ‘철수권고’… 레바논 등 57개국은 ‘여행자제’

    한국여성 A씨가 여행자제 및 철수권고 지역인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게 피랍됐다가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되면서 정부의 ‘여행경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12일 “지난해 출국자수가 2800만명을 넘었고 올해는 3000만명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며 “여행 장소도 다양해지면서 한국민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A씨가 피랍된 부르키나파소 역시 대부분이 여행자제, 북부는 철수권고 지역으로 북쪽 국경을 맞댄 말리와 니제르는 전역이 철수권고 지역이다. 실제 무장세력은 A씨 등을 무법지대인 말리로 끌고 가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의 여행경보는 여행유의(남색경보), 여행자제(황색경보), 철수권고(적색경보), 여행금지(흑색경보)의 4단계다. ‘여행유의 지역’은 신변안전 주의, ‘여행자제’는 신변안전 특별유의 및 여행 필요성 신중 검토, ‘철수권고’는 긴급용무를 제외한 철수 및 가급적 여행 취소·연기, ‘여행금지’는 즉시 대피·철수가 필요하다. 이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여행금지 국가를 방문·체류하려면 외교부에서 ‘예외적 여권사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외교적 공무, 취재, 가족의 사망·사고 등 꼭 필요한 경우만 발급된다. 위반 시 여권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현재 이라크, 소말리아·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리비아, 필리핀 일부 지역 등이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됐다. 철수권고 지역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 이내가 대표적인 곳으로 전 세계 47개국에 달한다. 여행자제는 레바논, 파푸아뉴기니 등 57개국에 산재해 있으며 여행유의도 가봉, 아르메니아 등 57개국이다. 여행경보 등급은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과 각 지역국이 치안, 테러, 납치, 자연재해, 보건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결정한다. 하지만 헌법상 여행의 자유가 있고 교민도 많아졌기 때문에 여행경보를 공격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행경보 지역은 ‘알고 챙기고 떠나고’(www.0404.go.kr)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프랑스 군인 2명 희생시킨 ‘위험한 여행’

    프랑스 군인 2명 희생시킨 ‘위험한 여행’

    한국 여성·美·프랑스인 29일 만에 구출 사망 부른 작전에 파리 환영 행사 썰렁아프리카 서부 부르키나파소에서 납치됐다가 프랑스군의 구출작전으로 풀려난 한국인 여성 1명과 프랑스인 2명 등 3명이 프랑스에 건강한 모습으로 도착했다. 40대 한국인 여성은 프랑스인 2명이 납치되기 이전에 억류돼 28일간 붙잡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11일(현지시간) 프랑스24 등에 따르면 한국인 여성 1명과 프랑스인 남성 로랑 라시무일라스(46), 파트리크 피크(51) 등 3명은 이날 프랑스 정부의 소형 전용기편으로 파리 남서쪽 인근 빌라쿠블레 군비행장에 도착했다. 함께 구출된 미국인 여성 1명은 부르키나파소에서 미 당국에 인계됐다. 한국인 여성 등 풀려난 인질들은 프랑스 정부에 감사를 표하면서 구출작전 중 전사한 군인 2명에 대해 애도를 표시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외무·국방장관과 군 합참의장,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대동하고 활주로까지 직접 마중을 나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두 명의 자국 국민 및 한국인 여성과 일일이 악수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시종일관 굳은 얼굴이었으며, 화환 증정식이나 환영 인파 없는 간단한 환영 행사만 치러졌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프랑스 최정예 특수부대 ‘위베르 특공대’ 부대원 2명이 구출작전에서 전사한 데다 피랍자들이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여행금지 지역에 들어갔다가 납치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탓이었다. 한 네티즌은 프랑스 해군 페이스북에 “무모한 관광객들을 위해 영웅들이 희생됐다”고 올렸다. 프랑스24 등은 프랑스 소셜미디어에 “구출작전 중 전사한 군인 2명에 대한 애도와 인질들에 대한 비판적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구출된 프랑스인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 “벌금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랍자들이 전사한 대원들에게 애도를 표했다는 보도에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위해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등의 격앙된 댓글도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피랍자들을 맞이한 자리에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두 군인들의 희생 앞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고 말했다. 그는 두 특수부대원을 기리는 추모식을 오는 14일 파리 시내 복합군사문화시설인 앵발리드에서 직접 주재하기로 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도 이날 간단한 환영식 후 “정부의 여행 관련 권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여행사들도 이 권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피랍자 중 한 명인 로랑 라시무일라스는 환영 행사 직후 “희생된 장병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를 전하고, 정부와 군의 투철한 정신과 휴머니즘에 감사드린다”면서 “위험한 지역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반성의 뜻을 밝혔다. 그의 발언 직후 한국인 여성도 그 옆에서 프랑스어로 짧게 “메르시”(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앞서 프랑스군 특수부대는 미군의 정보 협조를 얻어 지난 9일 밤과 10일 새벽 사이 프랑스인 2명이 억류된 무장단체 캠프를 급습하는 등 구출작전에 나서 한국인 및 미국인 여성이 각각 1명씩 추가로 억류된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을 함께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부르키나파소 북쪽 국경을 넘어 말리로 옮겨지고 있었다. 프랑스 당국은 “이번 구출작전이 프랑스 시민들과 함께 억류된 한국인과 미국인 인질의 발견으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 ‘매우 희귀한 어려운 작전’이었다”고 밝혔다. 프랑스 당국은 구출작전에 돌입할 때에도 한국인 및 미국인 인질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구출작전으로 인한 교전으로 무장조직원 4명이 사살됐으며 2명은 도주했다. 구출작전에서 사망한 위베르 특공대의 알랭 베르통셀로(28) 상사와 세드리크 드 피에르퐁(33) 상사는 작전 중 인질이 있는 곳으로부터 10m 떨어진 지점에서 발각됐으나 인질 안전을 우려해 발포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에게 달려들다가 근접사격을 받아 숨졌다. 한편 베르통셀로 상사의 아버지인 장뤼크 베르통셀로는 이날 프랑스 RTL라디오 인터뷰에서 “알랭은 해야 할 일을 했다. 특수부대원은 아들의 천직이었다. 아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며 아들을 애도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예능보고 아프리카로? 계획 전 ‘해외여행 경보’ 봐주세요

    예능보고 아프리카로? 계획 전 ‘해외여행 경보’ 봐주세요

    한국여성 A씨가 여행자제 및 철수권고 지역인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게 피랍됐다가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되면서 정부의 ‘여행경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12일 “지난해 출국자수가 2800만명을 넘었고 올해는 3000만명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며 “여행 장소도 다양해지면서 한국민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아프리카가 소개되면서 이 지역 여행객도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피랍된 부르키나파소 역시 대부분이 여행자제, 북부는 철수권고 지역으로 북쪽 국경을 맞댄 말리와 니제르는 전역이 철수권고 지역이다. 실제 무장세력은 A씨 등을 무법지대인 말리로 끌고 가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의 여행경보는 여행유의(남색경보), 여행자제(황색경보), 철수권고(적색경보), 여행금지(흑색경보)의 4단계다. ‘여행유의 지역’은 신변안전 주의, ‘여행자제’는 신변안전 특별유의 및 여행 필요성 신중 검토, ‘철수권고’는 긴급용무를 제외한 철수 및 가급적 여행 취소·연기, ‘여행금지’는 즉시 대피·철수가 필요하다. 이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여행금지 국가를 방문·체류하려면 외교부에서 ‘예외적 여권사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외교적 공무, 취재, 가족의 사망·사고 등 꼭 필요한 경우만 발급된다. 위반 시 여권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현재 이라크, 소말리아·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리비아, 필리핀 일부 지역 등이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됐다. 철수권고 지역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 이내가 대표적인 곳으로 전 세계 47개국에 달한다. 여행자제는 레바논, 파푸아뉴기니 등 57개국에 산재해 있으며 여행유의도 가봉, 아르메니아 등 57개국이다. 여행경보 등급은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과 각 지역국이 치안, 테러, 납치, 자연재해, 보건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결정한다. 하지만 헌법상 여행의 자유가 있고 교민도 많아졌기 때문에 여행경보를 공격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여행금지 및 철수권고 지역이 여행금지 권고 지대이지만, 실제 여행자제 및 여행주의 지역 역시 국민의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외교부의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공관의 영사조력도 중요하고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해외 어느 곳이나 예상치 못한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신변안전에 신경을 써 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여행경보 지역은 ‘알고 챙기고 떠나고’(www.0404.go.kr)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구출된 한국인 여성, 경보 무시했을 가능성 있지만 피해자이기도 해

    구출된 한국인 여성, 경보 무시했을 가능성 있지만 피해자이기도 해

    11일 밤 영국 BBC를 들여다보다 난감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된 뒤 파리로 이송되기 전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을 예방한 프랑스인 음악교사 두 명과 함께 한국인 40대 여성 A씨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도 되지 않은 채 보도된 것이었다. AFP통신이 전송한 이 사진은 밤 10시 무렵만 해도 국내에 외신사진들을 서비스하는 연합뉴스 AP사진과 연합해외사진 카테고리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재되지 않았다.(이 사진들은 밤 11시 30분을 넘겨 게재됐다.) 신원이나 개인 정보는 물론 여행의 목적,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무장세력에게 피랍됐는지 알려지지 않은 A씨는 우리 정부의 해외여행 경보를 무시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헬(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을 여행한 귀책 사유도 어느 정도 갖고 있지만 애꿎게 무장세력에 납치돼 28일 동안 신변에 위해가 있을지 모르는 공포를 견뎌온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된 피해여성에게 귀책 사유를 들이미는 일부 누리꾼도 있지만 그 얼굴을 성급히 보도하는 일은 2차 피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할 길도 없고 상식적으로 가족들도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도 미쳤다. 이런 상황에 외교부 당국자는 12일 “A씨가 부르키나파소에서 남쪽에 있는 베냉으로 이동하던 중 ‘체크 포인트’ 인근에서 미국 여성과 함께 무장세력에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프랑스 측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아직 우리 외교부가 직접 A씨로부터 피랍 경위에 대한 진술을 듣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통보대로라면 A씨는 정부가 여행을 자제하라고 발령한 것을 무시하고 부르키나파소 남부를 여행하다 횡액을 당한 것이 된다. 정부는 원래 부르키나파소 전역에 ‘적색 경보’(철수 권고)를 발령했다가 2015년 6월 정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말리·니제르 접경인 북부 4개주를 제외하고는 ‘황색 경보’(여행 자제)로 낮췄다. 만약 프랑스인 인질 두 명처럼 피랍된 곳이 베냉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정부가 베냉에는 여행경보를 발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부르키나파소의 여행 경보를 상향하는 것은 물론 베냉에 경보를 발령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12일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프랑스 군병원 측은 전날(현지시간) A씨에 대해 기본 건강검진을 한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진단했으며, 심리치료 및 경과를 지켜본 후 퇴원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앞서 프랑스군 특수부대가 부르키나파소의 무장세력과 교전 끝에 이들에게 납치된 A씨와 프랑스인 두 명, 미국인 여성 등 4명을 구조했으며, A씨와 프랑스인 2명은 전용기 편으로 11일 오후 5시(한국시간 12일 오전 1시) 파리 근교 군공항에 도착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A씨는 공항에서 한국의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했으며, 건강상 특별한 이상이 없을 경우 조속히 귀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종문 주프랑스 대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감사 및 (교전 중 희생된 프랑스 특수부대 상사 두 명에 대한) 애도 메시지를 전했으며, 마크롱 대통령은 이에 사의를 표하며 두 나라가 계속해서 국제무대에서 협력을 강화하자고 언급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와 주프랑스대사관은 A씨가 프랑스 군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통역을 지원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필요한 영사조력을 계속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불편한 궁금증이 인다. 왜 A씨와 달리 미국인 여성은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이송 절차에 들어간 것일까? 혹시 한국과 미국 정부의 영사 조력에 어떤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외교부로선 A씨를 조속히 귀국시켜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도우면서도 여행 위험지역을 방문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경종을 울리며, 발령경보 시스템에 허점은 없는지 점검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아울러 무슬림 지하디스트 세력과 패망했다는 미국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호하는 이슬람국가(IS) 잔존세력이 활동하는 지역을 여행하는 재외국민이나 국민은 없는지 점검했으면 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프랑스 외무장관 “피랍 국민 2명 왜 위험지역 갔는지 설명해야”

    프랑스 외무장관 “피랍 국민 2명 왜 위험지역 갔는지 설명해야”

    프랑스군이 아프리카 무장 세력에 납치됐던 인질 4명(프랑스인 2명, 한국인 1명, 미국인 1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해병 특수부대원 2명이 전사했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민 2명이 납치됐던 아프리카 베냉 북쪽의 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 접경지대는 이미 위험지역으로 설정돼 있었다며 위험지역 여행 자제를 촉구했다. 장이브 르드리랑 프랑스 외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유럽1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 2명이 있던 곳은 이미 적색경보 지역으로 설정돼 있다”면서 “이는 그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며, 가게 되면 중대한 위험을 지게 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르드리앙 장관은 “무장세력에 납치돼 우리 군이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이 지역에서 매우 신중한 주의가 요구된다”면서 “이 나라들을 여행하려고 하면 미리 여행자 수칙을 숙지해야 하며, 외무부와 규칙적으로 연락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르드리앙 장관은 또 일간 웨스트프랑스 인터뷰에서 “무장세력 위협 형태가 달라졌다”면서 “기동성이 좋아졌고 말리 남부 지방, 부르키나파소, 베냉 북부 등이 표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출 작전으로 돌아온 자국민 2명에 대해 “왜 그런 위험한 곳에 갔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프랑스군 특수부대는 자국민 2명이 지난 1일 베냉 북쪽에 있는 펜드자리 국립공원에서 실종된 이후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된 사실을 알고 구출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9일 밤과 10일 새벽 사이 부르키나파소의 무장세력 숙영지를 급습해 교전 끝에 프랑스인 2명, 한국인 1명, 미국인 1명 등 인절 총 4명을 구출했다. 이 과정에서 특수부대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인 2명과 달리 현재까지 한국인과 미국인의 구체적인 피랍 경위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무장세력에 의해 무려 28일 동안 억류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프랑스 “한국 여성 등 인질들, 무법천지 말리로 끌려가기 직전 구출”

    프랑스 “한국 여성 등 인질들, 무법천지 말리로 끌려가기 직전 구출”

    아프리카 무장 세력에 납치됐던 한국인 여성 등 인질 4명이 무법천지인 말리로 끌려가기 직전에 구출됐다고 프랑스 당국이 밝혔다. 프랑스군은 자국민 2명이 지난 1일(현지시간) 서아프리카 베냉 공화국 북쪽에 있는 펜드자리 국립공원에서 실종된 이후 작전에 돌입,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며 구출 기회를 엿봤다고 밝혔다. 한국인 추정 여성과 미국인 여성의 구체적인 피랍 경위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인질범들이 코끼리와 사자 등 야생동물 서식지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펜드자리 국립공원에서 프랑스인 관광객 2명을 납치했다는 것이 프랑스 당국의 설명이다. ●“인질범 말리로 가면 구출 어려워”…미군, 무장세력 정보 제공 10일 AFP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인질들이 무장세력들이 판치는 말리로 넘겨질 것을 우려해 구출 작전을 승인했다. 당시 무장괴한들은 인질들을 끌고 말리로 가기 위해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숙영지에서 대기 중이었다는 게 프랑스 당국의 설명이다. 프랑스군과 미군이 운용하는 드론은 베냉에서 부르키나파소로 이동하는 무장괴한들의 움직임을 계속 관찰했고, 프랑스군 특수부대는 인질 구출 기회를 잡기 위해 이들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프랑스의 특수전 의료팀도 파리에서 작전 지역으로 급파됐다. 이 과정에서 미군은 작전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프랑스군 지휘관들은 9일 밤 무장괴한이 말리와 인접한 부르키나파소 북쪽 지역에 멈춘 시점을 마지막 기회로 판단했다. 인질들이 말리에 있는 이슬람 무장단체로 넘겨지면 사실상 구출 작전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플로랑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부 장관은 “부르키나파소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면서 “인질들이 말리로 옮겨졌다면 구출 작전은 너무나 위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부대원, 한밤 중 숙영지 침투…예상치 못한 인질 2명 추가 발견 프랑스군 특수부대원 20여명은 한밤중 헬기로 무장세력과 인질들의 숙영지 근처에 급파됐다.특수부대원들은 숙영지에서 인질들을 확인하고 9일 밤부터 10일 새벽까지 진행된 작전 끝에 인질들을 구출했다. 이 과정에서 특수부대원 2명이 인질범들이 쏜 총탄에 맞아 희생됐다. 인질범 6명 중 4명은 현장에서 사살됐고, 2명은 도주했다. 이들은 아프리카 말리에 근거지를 둔 무장세력 ‘카티바 마시나’(Katiba Macina)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전을 수행한 특수부대는 현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질들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한다. 애초 피랍된 것으로 확인된 프랑스인 2명 외에 여성 인질 2명이 더 있었던 것이다. 한국과 미국 국적으로 파악된 이들은 무장세력에 의해 무려 28일간 억류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인 여성 등 2명 피랍 경위 확인되지 않아 아직 한국인과 미국인 여성이 피랍된 경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프랑스 당국은 자국민 2명이 납치된 곳이 펜드자리 국립공원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베넹 공화국 북서쪽에 위치한 2755㎢에 달하는 국립공원으로, 프랑스군 특수부대가 구출 작전을 수행한 부르키나파소와도 인접해 있다. 열대우림의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코끼리, 사자, 하마, 버펄로, 영양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서아프리카의 유명 관광지다. 2009년 3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지로 지명됐고, 2017년 7월에 공식적으로 세계유산이 됐다. 펜드자리 국립공원을 관광하던 중 피랍된 프랑스인들은 지난 1일 저녁 숙소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들을 안내했던 여행가이드는 며칠 뒤 펜드자리 국립공원에서 여러 발의 총탄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외교부 “구출된 한국인 인질은 40대 여성…신원 파악” 외교부는 이날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프랑스군 작전으로 구출된 인질 4명 중 1명이 40대 한국 국적 여성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와 주프랑스대사관은 구출된 우리 국민의 국내 연고자를 파악해 구출 사실 및 건강상태 등에 대해 알리는 등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출된 인질 4명은 11일 오후 5시(현지시각·한국시각 11일 자정)쯤 파리 소재 군 공항에 도착한 뒤 군 병원으로 이송돼 건강상태를 점검받을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구출된 2명의 자국인과 1명의 한국인을 직접 공항에서 맞이한다고 엘리제궁이 10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이번 구출 작전으로 희생된 프랑스 군과 그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우리 국민을 구출해 준 데 대해 프랑스 정부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프랑스대사는 구출된 우리 국민이 탑승한 군용기가 파리에 도착할 때 공항에 출영하여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적극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프랑스군 “부르키나파소 억류 한국인 여성 있는지 모른 채 작전 돌입”

    프랑스군 “부르키나파소 억류 한국인 여성 있는지 모른 채 작전 돌입”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조직에 억류된 프랑스인 인질 둘과 함께 한국인과 미국인 여성을 구출한 프랑스군은 작전에 돌입할 때만 해도 한국인과 미국인 인질의 존재를 몰랐다고 밝혔다. 프랑스군 합참의장인 프랑수아 르쿠앵트르 대장은 10일(현지시간) 국방부 합동 브리핑을 통해 프랑스군 특수부대가 지난 9일 밤과 10일 새벽 사이 부르키나파소의 한 무장세력 캠프를 급습해 교전 끝에 프랑스인 둘, 한국인 한 명, 미국인 한 명을 구출했다. 프랑스 정부는 주불 대사관에 한국인 여성의 이름을 알렸는데 우리 대사관은 이름을 봤을 때 한국인이 맞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인은 여성으로, 여행 도중 미국인 여성과 함께 무장세력에 납치돼 28일 동안 억류돼 있었다고 르쿠앵트르 대장은 밝혔다. 10일 밤(한국시간) 이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한국 외교부가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고 문제를 삼는 국내 언론도 있었지만, 프랑스군 역시 작전에 돌입했을 때 한국인 인질이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스군은 드론 등 정찰을 통해 모은 정보와 미국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무장세력의 근거지를 특정해 프랑스인 2명이 억류된 사실을 확인한 뒤 기습작전을 감행했으나, 작전 돌입 때까지도 프랑스인 외에 다른 나라 인질이 더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프랑스인 인질들은 파트리크 피크(51), 로랑 라시무일라스(46)란 이름의 음악교사들로 지난 1일 베냉 북부의 펜드자리 국립공원 안 사파리를 돌아보다가 피랍됐다.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은 브리핑에서 “아무도 그들(한국인과 미국인 여성)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프랑스군은 자국인 인질이 있는 무장세력의 캠프를 며칠 동안 은밀히 감시한 뒤 이들이 말리에서 암약하는 테러조직 ‘카티바 마시나’ 쪽으로 옮겨질 것으로 판단, 기습 구출작전을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르쿠앵트르 합참의장은 “(카티바 마시나 쪽으로 인질들이 옮겨지면) 구출 작전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군은 구출 작전 도중 특수부대 상사 둘을 잃었다. 르쿠앵트르 합참의장은 교전 과정에 4명의 무장세력 조직원이 숨졌고, 둘이 달아났다며 작전 중 산화한 장병들의 이름을 세드릭 드 피에르퐁과 알랭 베르톤첼로라고 소개했다. 감정에 겨운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프랑스는 두 아들을 잃었고 우리는 두 형제를 잃어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국인 둘과 신원 미상의 한국인 여성을 11일 오후 5시(현지시간) 파리 근교 빌라쿠블레 공군 비행장에 나가 직접 맞을 계획이라고 엘리제궁이 밝혔다. 장이브 르 드리앙 외무장관과 파를리 국방장관, 르쿠앵트르 합참의장도 참석한다고 엘리제궁은 덧붙였다. 최종문 주프랑스 대사도 공항에 나가 한국인 여성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할 계획이다. 대사관은 프랑스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인질로 억류됐던 여성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납치된 경위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AFP 통신은 프랑스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인 여성이 “독자적인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따로 귀국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말리, 니제르와 국경을 이루는 부르키나파소 북부 4개주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고 지하디스트 무장조직과 이슬람국가(IS) 잔존 세력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해 철수 권고에 해당하는 조치인 적색경보를 발령한 상태다. 이 지역을 방문하지 말고, 체류하고 있다면 빨리 안전한 국가나 지역으로 철수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지역에는 황색경보를 발령, 여행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韓외교부도 모르는 한국인 인질, 佛특수부대가 부르키나파소서 구출

    韓외교부도 모르는 한국인 인질, 佛특수부대가 부르키나파소서 구출

    “인질 구출 과정서 프랑스 특수부대원 2명 순직”프랑스군이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과 교전 끝에 이들에게 납치된 한국인 1명 등 4명의 인질을 구조했다고 프랑스 정부가 10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한국 외교부도 프랑스 정부로부터 이같은 통보를 받았다며 자세한 억류 및 구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은 이날 “9일 밤과 10일 새벽 사이 부르키나파소 북쪽에서 프랑스군의 작전으로 인질들을 구출했으며 작전과정에서 2명의 해병 특수부대원들이 숨졌다”고 밝혔다. 프랑스군이 구출한 무장세력으로부터 구출한 인질은 모두 네 명으로, 프랑스인 2명, 미국인 1명, 한국인 1명이다. 프랑스인들은 지난 1일 아프리카 베냉에서 납치됐다고 엘리제궁은 전했다.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연합뉴스에 “우리 국민이 실종됐다는 신고는 없었고, 자세한 억류 및 구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을 납치한 무장세력은 아프리카 말리에 근거지를 둔 ‘카티바 마시나’(Katiba Macina)이라고 르몽드가 보도했다. ‘카티바 마시나’는 말리 중부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으로 2015년 1월 말리 내전 와중에 창설됐다. 이 단체는 ‘마시나 해방전선’(FLM)이라고도 불리며, 말리의 마시나 지방에 이슬람 제국을 재건한다는 목표로 활동해 왔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맥주잔 던져 술집 주인 실명 위기…40대 구속

    맥주잔 던져 술집 주인 실명 위기…40대 구속

    싸움을 말리던 술집 주인에게 맥주잔을 던져 실명 위기에 빠트린 40대가 구속됐다. 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10일 손님 A(46)씨를 중상해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4일 오전 3시 30분쯤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식당 주인 B(62·여)씨에게 맥주잔을 던졌다. 당시 A씨는 다른 손님과 말다툼을 벌이다 B씨가 자신의 편을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맥주잔을 얼굴을 향해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맥주잔을 얼굴에 맞은 B씨는 왼쪽 눈 신경이 손상돼 실명 위기 상태라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에서 도주 우려 등의 이유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말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충남 신서천화력 건설 현장에서 크레인 부품 떨어져 근로자 숨져

    9일 오후 2시 43분쯤 충남 서천군 신서천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근로자 A(55)씨가 공사장 크레인에서 떨어진 부품에 맞아 숨졌다. 이 부품은 높이 37m의 크레인 상단에 고정돼 크레인 줄이 말리는 것을 방지하는 권과장치(안전장치)로 무게가 10㎏에 이른다고 경찰은 밝혔다. 신고를 받고 119 구급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심정지 상태였다. 구급대 관계자는 “A씨가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부품의 낙하 충격이 워낙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당시 A씨는 크레인 밑에서 공사장 장비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A씨는 시공사 협력업체 소속 일용직 근로자로 알려졌다. 경찰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보령지청과 함께 부품이 떨어진 이유 등 정확한 사고경위를 가리기 위해 현장감식을 하고 공사 관계자와 근로자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 신서천화력발소는 모두 1조 6000여억원을 투입해 건설하는 것으로 오는 9월 준공될 예정이다. 서천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2000자 인터뷰 10]이종원 “ICBM으로 북미 절충 가능”

    [2000자 인터뷰 10]이종원 “ICBM으로 북미 절충 가능”

    2019년 5월 한반도 상황은 북한과 미국,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정체된 상황이라는 ‘정(靜)’과 그럼에도 남한과 미국이 대화 재개를 위한 메시지를 계속 북한에 보내고,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강화를 꾀하는 ‘동(動)’이 겹쳐진 상태에 있다. 국제정치 연구의 원로인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를 9일 서울에서 만나 북미, 남북, 북일, 한일관계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 교수는 지난 4월부터 중국의 베이징대학에 3개월 예정으로 체류하고 있으며, 9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우석대 주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잠시 한국을 방문 중이다. 北 외교버팀목 강화, 버티되 판 깨지 않으면서 미국 압박 Q: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 교착이 3개월가량 이어지고 있고, 남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에도 물밑 접촉조차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A: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교섭을 진전시킬 의향이 있다고 본다. 미국 내 전통적인 관료, 군부, 전문가 쪽에서 대북 신중론이 많아 하노이에서 잘 안 됐다고 여긴다. 북한의 경제상황을 보면 빨리 비핵화 협상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을 끌면서 대미 압박을 가하는 중이다. 연말이란 시한을 둔 것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미국 대선이 하반기에 본격화하니까 거기에 맞춘다는 의도도 분명하다. 북한이 가진 수단은 군사적 압박이다.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인데, 이는 판을 깰 수 있으니 단거리 발사체라는 저강도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ICBM 시험은 최후에 남겨두고, 우선은 버티면서 외교적 발판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를 다짐으로써 미국을 견제하고 흔들 수도 있고,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해제도 논의할 수 있다. 특히 북·러시아 정상회담은 하노이에서 상처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신을 만회하는 이벤트적 성격도 있었다. 중러와의 외교를 강화하고 버티되, 판을 깨지 않으면서 미국을 압박한다는 게 지금의 북한이다. 남한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기 어렵고 대미 영향력도 약하다고 보기 때문에 현재 북한이 남북관계에 소극적이다. Q: 인도적 지원이 남북 및 북미 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A: 직결되기는 어렵다. 식량은 북한에 필요한 것이니, 대화재개의 원동력이 될 수는 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 달래기를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절제된 발언을 보면 그렇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상황 악화는 막겠다는 게 미국 생각이다. 따라서 쌀 지원 같은 낮은 차원의 인센티브를 주면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토대를 만든다는 의도는 분명히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남북이 단절돼 있기 때문에 식량지원이 당국자 회담의 명분을 만들 수는 있다. 북한이 ICBM 내려놓으면 미국과 협상할 수 있어 Q: 미국이 비핵화 일괄타결 방식을 바꿀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북미 절충은 가능한가. A: 폼페이오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발언을 보면 미국은 빅딜을 원하지만 그에 앞서 빅피처를 보기를 바란다. 핵폐기가 중요하지만 로드맵, 즉 비핵화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이라는 게 미국의 요구인 것이다. 하노이에서 북한이 영변만 말하고 있으니 미국 입장에선 안 되는 것이다. 폼페이오가 4월 1일 중요한 얘기를 했다. 3차 북미회담이 있다고 본다고 전제하면서 3차회담에서는 의미있는 첫 발을 내딛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거기에 키워드가 있다고 본다. 미국도 일괄타결을 얘기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단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전체상을 보이고 단계적으로 가는 것, 그게 미국 입장이다. 미국이 딜에 응할 가능성은 있다. 미국 관심은 ICBM이다. 영변만 갖고는 안 된다. 북한이 빅피처를 보이거나 ICBM 폐기의 첫발을 내디디면 미국도 움직일 것이다. 내가 볼 때 북한도 ICBM 딜을 할 가능성이 있다. 작년에 동창리를 꺼내 ICBM을 어젠다로 올리겠다는 마음을 비쳤다. 완성돼 실전배치된 노동 미사일보다 미완성의 화성15형 ICBM을 버리기 쉽다고 본다. 시진핑 방북이 북미 정상회담에 우선할 것 Q: 북미협상이 상반기에 있을 수 있나. A: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가능성을 봐야 한다. 북한으로선 시 주석의 방북 이벤트에 중점을 둘 것이다. 시 주석이 방북하면 빈 손으로는 가지 않을 테니까. 중국도 북미, 미중관계 등으로 장고를 하고 있다. 상반기는 시 주석의 방북이 걸려 있어 북미가 재개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실무접촉은 할 수 있겠지만. 하노이 실패는 일본에겐 찬스 Q: 북일 정상회담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A: 하노이 결렬은 일본에겐 찬스이다. 그동안 소외감도 있고 해서 북미가 잘 안 됐기 때문에 기회가 생긴 것이 사실이다. 북한에게도 일본에 접근하는 메리트가 있다. 일본의 강경론과 미국의 강경파가 맞닿아 있고, 한국보다는 일본이 미국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 일본으로선 카드가 된다.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하노이 결렬 이후 매일같이 대북 방침 전환을 표명하고 있다. 일본인 납치문제 진전이 북일 교섭의 최소한 조건이었으나 지금은 무조건 정상회담하자고 한다. 이런 발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때 한 것이다. 납치를 입구에 두는 게 아니고, 최종적인 해결은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완결을 짓는 방식이다. 입구론이 아니고 과정론, 출구론이다. 아베 총리가 무조건 평양에 가겠다는 건데 괄목할 만한 노선전환이다. Q: 북미 정상회담 전에 북일 정상회담이 가능한가. A: 일본이 서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돼 있었다. 납치해결을 정권의 핵심과제로 삼았는데 십수년간 성과가 없었다는 비판이 납치피해자 가족으로부터도 분출하고 있다. 개헌도 진척이 안되고 대 러시아 외교에서도 러시아 페이스에 말리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 생각해서 정권의 추진력으로 북일관계를 이용한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아베 총리에 대한 불신이 있다. 2014년 스톡홀름 교섭 때도 그랬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아베 총리의 진정성, 진의를 생각할 것이고 아베를 만나 북미 교섭에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데 도음이 된다면 이벤트성이라도 정상회담 할 것이다. 북한으로선 밑질 게 없다. 미국 강경론의 억제에 활용될 수 있다면 응할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에겐 빈손 귀국이 되면 힘들어진다. 북일 정상회담은 실현가능한 측면도 있지만, 시니컬하게 보면 아베 총리의 ‘외교 왕따’ 속에서 그래도 뭔가 하고 있다,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일 수 있다. 한일 정상 얼굴 붉히더라도 만나야 Q: 한일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A: 한일 정상 간 골은 상당히 깊다. 문제가 구조적이다. 당분간은 관리해야 한다. 지정학적 구조 변동기이기 때문에 한일관계를 내버려 둘 상황은 아니다. 두 지도자 간 개성의 충돌이 있고, 원칙의 충돌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칙과 신념을 중시하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라는 지향성이 있다. 아베 총리도 전략 마인드가 있긴 하지만 우파적 이념을 내세운 정치가이기 때문에 유연성이 없다. 역사문제, 외교문제로 부딪힌다. 개성, 구조, 정치상황, 정권의 성격 등에서 한일 충돌의 요인이 있다. 그렇다고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을 회피해선 안된다. 6월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야 한다. 양국의 외교 관료들은 결과를 생각해 소극론을 얘기할 지 모르지만 두 정상이 얼굴 붉히더라도 만나야 한다.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식물 하는 사람 되고 싶어요” 자신있게 말하는 사회 되길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식물 하는 사람 되고 싶어요” 자신있게 말하는 사회 되길

    사람들은 종종 내게 언제부터 식물을 좋아했는지를 묻곤 한다. 언제부터 식물을 좋아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주말마다 아버지와 관악산을 오르고 집 앞 보라매공원을 산책하면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아버지는 내 기억에도 없는 두어 살 즈음의 이야기를 꺼낸다. 걷지도 못하는 나를 안고 당시 살던 집 앞의 어린이대공원에 가 꽃을 보여 주면 내가 그렇게 좋아하며 웃었다는 이야기. 어쨌든 내가 식물을 좋아하게 된 건 어린 나를 식물이 있는 곳에 데려가 보여 주었던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렇게 성장한 내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원예학과에 간다고 했을 때, 학원 선생님과 친척 등 주변 어른들은 인기 학과도 아닌 농대에 왜 가냐며 의아해했다.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이 시대에 젊은 사람이 왜 굳이 식물을 공부하냐는 이야기였다. 그때 어른들의 말을 따라 원예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정말 식물을 공부하거나 농사를 짓는 일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며 식물을 가꾸는 건 나이 든 사람만이 잘할 수 있는 일인 걸까.우리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콜라를 먹을 수 있는 건 식물을 좋아했던 열두 살 어린이 때문이란 걸 이야기하고 싶다. 바닐라는 사프란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다. 아이스크림, 빵, 과자, 심지어는 콜라와 향수, 화장품의 원료로 이용되며 마다가스카르의 경제를 뒤흔드는, 세계에서 가장 경제력 있는 허브식물 중 하나다. 흔히 바닐라와 바나나를 헷갈려 하기도 하는데, 바닐라는 난초과 바닐라속, 바나나는 파초과 무사속으로 전혀 다른 식물이다. 이들은 옅은 노란색의 꽃이 일 년에 딱 하루만 피는데 꽃이 진 다음에 그 자리에서 녹색 열매가 나고 그 열매 꼬투리가 여물기 전에 수확해 가공하면 우리가 이용하는 바닐라빈, 향료가 된다. 나는 실제로 익지 않은 바닐라빈을 본 적이 없지만 듣기로는 바닐라 열매를 수확하기 전 녹색일 때는 우리가 떠올리는 그 바닐라 향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녹색의 바닐라빈을 수확해 펴 말리고 수분을 발산하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녹색의 열매가 짙은 갈색이 되면서 바닐린이라는 화합물질이 방출되고 비로소 바닐라 향이 나게 된다고. 바닐라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사람 손도 많이 가고 꽃피는 기간이 워낙에 짧기 때문에 생산이 힘들어 향료 중 유난히 비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바닐라가 세계에서 사프란 다음으로 비싼 향료가 된 건 이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닐라는 열매를 맺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열매를 맺으려면 수분을 해야 하는데, 이들이 특정 곤충에 의해서만 수분하기 때문에 이 곤충이 살지 않는 지역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한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에서 처음 발견해 유럽에 가져온 바닐라는 열매를 맺거나 번식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밝혀졌는데 바닐라의 수분 매개자인 곤충이 유럽에서는 서식하지 않는 게 원인이었다. 식물학자들은 300년 동안 바닐라의 수분 매개자인 벌을 대신할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했지만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까다롭게 장소를 가리던 바닐라가 현재 세계적인 향료가 될 수 있었던 건 한 소년이 인공수정법을 개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프리카의 한 농장에서 노예로 일하던 에드먼드라는 이름의 소년은 바닐라를 자신의 농장에서 재배하고 싶었고, 어떤 방법으로 수분을 할 수 있을까 연구하다가 대나무 가지로 바닐라 꽃잎을 뒤로 젖혀 자가수정을 방해하는 부분을 들어 올려 수분하는 방법을 찾아낸다.현재까지 세계의 모든 바닐라 재배지에서는 이 방법을 이용한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멕시코, 인도네시아에서 바닐라 재배가 가능하게 된 건 모두 소년 에드먼드 때문이다. 식물을 연구하는 건 세상에 뒤처지는 일이라든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식물을 좋아하던 열두 살 소년이 쏘아올린 작은 기술로, 우리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부드러운 맛의 콜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늘 식물종의 보전을 위해 식물을 좋아하고, 공부해야 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게 종 보전을 위한 거라면, 앞으로 식물을 보전할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식물에 흥미를 느끼고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며칠 전 어린이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식물을 좋아해요. 커서 농사 지을 농부가,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가 될 거예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태평양전쟁 터지자… 일제는 모든 조선 영화사를 강제 통합했다

    태평양전쟁 터지자… 일제는 모든 조선 영화사를 강제 통합했다

    1940년 전후 조선영화는 일본영화계와 협업하고, 조선총독부 당국과 협상하며 어느 정도 안정적인 제작 궤도에 오른 듯 보였지만 이것은 조선영화인들의 열망이 과도하게 앞선 탓에 그들에게 일종의 착시감을 준 것이었다. 조선영화계는 자본도 기술도 장비도 여전히 빈곤했고, 일제 당국은 더 강하게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반영을 요구하고 있었다. 특히 고려영화협회가 제작하고 최인규가 연출한 ‘수업료’(1940)와 ‘집없는 천사’(1941)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영화는 일본 시장에서의 흥행도, 일제의 영화로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시기 조선의 민간 영화사들은 당국의 국책영화 시스템 속으로 급속히 재편되어 갔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은 이를 더욱 가속시켰고, 1942년 5월 사단법인 조선영화배급사와 9월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설립되며 조선영화는 본격적인 전시체제 국면으로 진입했다. 특히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는 일제가 조선의 모든 민간 영화사들을 강제로 통합해 만든 제작사였다. 이는 1944년 4월 조선영화배급사로 통합되어 사단법인 조선영화사가 되었고, 최인규는 이곳에서 국책선전영화 ‘태양의 아이들’(1944)과 ‘사랑과 맹세’(1945)를 연출하며 해방 직전까지 필모그래피를 이어갔다.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최인규의 영화들을 통해 ‘조선영화’의 본질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향린원 설립’ 방수원 목사 실화 ‘집없는 천사’ ‘집없는 천사’는 ‘수업료’에 이은 최인규의 세 번째 작품이자 고려영화협회의 세 번째 작품이다. 사실 고려영화협회(이하 ‘고영’)는 제작부터 배급까지 사업 범위로 삼았던 고려영화사의 산하 프로덕션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였던 이창용은 1930년대 후반 일제 당국과 적극적으로 교섭하며 조선영화의 생존을 모색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최인규는 ‘고영’의 창립작이었던 ‘복지만리’(1941)의 감독 전창근과 함께 제국주의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소재로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의 영화시장을 겨냥해 영화를 만들었다. ‘집없는 천사’는 경성의 부랑소년들을 모아 함께 생활한 향린원(香隣園)의 설립자 방수원 목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이창용은 당시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 촉탁이었던 니시키 모토사다에게 시나리오를 맡겼고, 일본의 영화평론가 이지마 다다시로부터 감수를 받았다. 소학교 4학년 어린이의 작문을 원작으로 일본영화계의 중견 작가 야기 야스타로가 시나리오를 썼던 ‘수업료’의 작업 방식과 유사하게 진행하면서 더욱 만전을 기한 것이다.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어 대사는 임화가 썼다. 음악 역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이토 센지가 ‘수업료’에 이어 다시 맡았고, 1940년부터 일본 쇼치쿠에서 영화음악을 맡았던 작곡가 김준영(일본 이름 아사히나 노보루)까지 합류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기본으로 한 테마 음악은 그의 선택으로 보인다. 세트 촬영 역시 ‘수업료’를 촬영한 ‘고영’의 남대문촬영소에서 진행했고, 촬영은 김학성, 녹음은 양주남이 맡았다. 영화의 도입부 카페 전체 공간을 훑는 장면이라든지 영화 전반의 쇼트를 연결시키는 감각에서 볼 수 있듯이 최인규의 연출력은 조선영화 발굴작 중 단연 뛰어나다. 영화는 부랑아집단에서 앵벌이 생활을 하는 명자(김신재)와 용길 남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부랑아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친 용길은 길거리 고아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방성빈(김일해) 목사를 만난다. 고아들을 위한 사업을 구상하던 그는 아내 마리아(문예봉)를 설득하고 그녀의 오빠인 의사 안인규(진훈)로부터 공간을 지원받아 고아들과 함께 향린원을 만들어간다. 긴 장마가 끝난 어느 날, 향린원에서 도망가려는 아이들을 말리다 물에 빠진 용길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방 목사는 급히 안 의사를 부른다. 이 사건으로 안 의사 밑에서 간호 일을 배우던 명자는 용길과 재회한다. 영화는 아역 배우들뿐만 아니라 실제 향린원 원아들이 직접 출연해 사실감을 더하고 있다. ●경성 시사회는 ‘북적’… 조선어 썼다고 8분 삭제 ‘수업료’와 마찬가지로 ‘집없는 천사’ 역시 조선에서의 흥행은 성공적이었다. 정확한 흥행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경성다카라즈카극장에서의 유료 시사회부터 관객들의 행렬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공개는 결국 개봉하지 못한 ‘수업료’ 경우처럼 만만치 않았다. 일본의 배급사 도와상사는 조선군 보도부의 추천을 거쳐 조선영화 최초로 문부성의 추천까지 받아 개봉을 준비했지만 개봉 직전 내무성으로부터 재검열을 받고 문부성 추천 역시 취소되었다. 결국 218m(8분가량)가 잘린 개정판으로 개봉된다. 당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 속 조선어의 사용과 복장이 문제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복장 문제는 영화 속 부랑아집단의 우두머리로 등장한 윤봉춘이 일본의 전통적인 노동자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당시 경성 시내 부랑아들 숫자는 1000명 정도였다고 기록되는데, 이러한 현실을 드러낸 것 역시 일제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구제하는 주체가 기독교의 조선인 목사라는 점도, 그가 영화 내내 자립을 강조하는 것도 용인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화는 도쿄의 쇼치쿠계에서 개봉했지만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고, 교토 등 다른 도시에서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수업료’와 ‘집없는 천사’는 제국 일본의 영화를 지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조선총독부·해군성 후원받은 ‘사랑과 맹세’ 일제 말기 최인규의 마지막 연출작인 ‘사랑과 맹세’는 일제의 국책영화사인 사단법인 조선영화사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크레디트를 보면 해군성과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해군보도부의 지도를 받았다. 고려영화협회의 기획으로 일본 도호영화가 제작했던 ‘망루의 결사대’(1943)에 이어 이 영화 역시 도호가 사실상 합작의 형태로 지원했다. ‘수업료’의 시나리오 작가 야기 야스타로뿐만 아니라 다카다 미노루 등 도호 출신의 배우들도 참가했다. 1989년 영상자료원이 일제 말기 국책선전영화인 ‘망루의 결사대’, ‘젊은 모습’, ‘사랑과 맹세’ 3편의 필름을 도호영화로부터 수집할 수 있었던 배경인 것이다. ‘사랑과 맹세’는 ‘망루의 결사대’를 연출한 이마이 다다시가 공동 연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랑과 맹세’는 조선에서 만들어진 국책영화 중 처음으로 일본 해군의 가미카제 특공대를 다뤘다. 일본 해군의 후원과 지도를 받았다는 크레디트가 등장하는 이유이다. 영화는 조선인 고아 김에이류(영룡의 일본어 발음)가 일제의 해군 병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경성신보사 기자였던 무라이 소위(독은기)는 가미카제 출정 전 시라이 국장(다카다 미노루)을 찾아와 김에이류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원래 에이류는 종로의 부랑아였는데, 시라이가 입양해 보살피고 있다. 무라이는 미국의 항공모함에 돌진해 전사하고, 신문에는 그의 순직 기사가 실린다. 국장 부부는 무라이 소위의 고향 집을 방문해 그의 아버지인 교장(시무라 다카시)과 조선인 아내 에이코(김신재)를 만난다. 교장은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다른 무라이들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에이코는 상하이에서 귀환할 때 남동생을 잃어버렸고 이름은 에이추(영중의 일본어 발음)였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남매 설정 등 ‘집없는 천사’의 인물 구도를 변주하는 대목이다. 특히 에이류 역의 김유호는 ‘집없는 천사’에서 용길이 물에 빠지는 사건을 일으킨 영팔을 연기하기도 했다.에이류는 소국민신보의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무라이 소위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특공대에 지원한 마을 청년이 입대하는 날, 역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고장 나 청년은 먼 길을 뛰어 가게 된다. 실은 에이코가 누나이길 기대한 에이류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전날 윤활유를 빼 놓은 탓이었다. 이를 안 에이코는 못난 동생은 싫다고 말하고, 결국 에이류는 동생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에이류는 시라이 국장으로부터 좋은 기사를 썼다고 칭찬받고 견습기자를 제안받지만 그는 해군특별지원병령(1943년 7월 공포)을 기회로 무라이 소위 뒤를 이어 해군에 지원한다. 입대하는 에이류는 에이코 그리고 양모와 함께 진해 해군부대 앞의 벚꽃길을 걸으며 무라이 소위의 동생은 ‘반도’에 많다고 말한다. 바로 ‘사랑과 맹세’가 ‘집없는 천사’와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이다. 이제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이야기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일제는 무라이 소위의 뒤를 이어 벚꽃처럼 산화할 병사들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진해 해병단의 정문과 해군들의 행진 모습을 촬영한 선전 영상으로 끝맺는다.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요 등장인물 중 고아 청년 에이류와 무라이의 부인 에이코 그리고 무라이 고향의 입대 청년 소우케이메이(송경명의 일본어 발음)만 확실하게 조선인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입대를 앞둔 청년들은 조선인이지만 그 외 주요 배역의 남성들은 그 배우가 실제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의 여부를 떠나 영화 속에서 일본인인지 조선인이지 확실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사실 독은기가 연기한 무라이 소위가 다닌 소학교는 극 중에서 조선인 아이들의 학교로 보이고, 시라이 국장도 이 학교 출신이라고 나온다. 일제가 궁지에 몰린 태평양전쟁 말기 국책선전영화에서 군인을 비롯한 남성들을 일본인과 조선인으로 구분해 설정하는 것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일제의 국책영화사가 제작한 마지막 조선영화는 이렇게 조선 청년들을 일제의 병사로 만들기 위해 내몰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성범죄 신고 복수’ 딸 살해 의붓아버지 결국 “미안하다”

    ‘성범죄 신고 복수’ 딸 살해 의붓아버지 결국 “미안하다”

    중학생인 12살 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저수지에 버린 30대 남성이 검찰에 넘겨졌다.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는 그는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정말 미안하다”고 짧게 말했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김모(31)씨를 7일 광주지방검찰청에 구속 송치했다. 김씨는 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기 전 숨진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억울함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내가 구속을 피한 상황에서 억울한 점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는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김씨는 지난달 27일 오후 6시 30분쯤 전남 무안군 한 농로에 세운 승용차 안에서 의붓딸을 살해하고, 이튿날 오전 5시 30분쯤 시신을 광주 동구 너릿재터널 인근 저수지에 버린 혐의다. 김씨는 시신이 저수지 수면 위로 떠 올라 반나절 만에 발견되자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자신을 성범죄자로 신고한 의붓딸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살해사건과 별도로 의붓딸 강간미수 등 김 씨의 성범죄 의혹은 광주지방경찰청이 수사한다. 경찰은 재혼한 남편인 김씨를 도와 딸을 살해한 혐의로 입건한 친어머니 유모(39) 씨에 대한 보강 수사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법원이 증거 부족 등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유씨의 혐의를 입증해 신병처리 방향을 정한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살해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김씨를 말리지 않았고, 딸 시신을 버리려 집 밖으로 나간 남편을 신고하지 않은 유씨가 범행에 가담했다고 판단해 살인 및 사체유기 방조 혐의를 적용했다. 유씨는 지난 2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남편이 나도 죽일 것 같아서 무서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의 범행 가담을 입증하는 직접 증거를 찾을 것”이라며 “검찰이 남편 김씨를 재판에 넘기는 시점 이전에 유씨도 송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애달픈 국민 위로한 변사, 문화재로 등록 않으면 크나큰 문화 상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애달픈 국민 위로한 변사, 문화재로 등록 않으면 크나큰 문화 상실”

    마지막 ‘변사’ 생활 30년 최영준이 말하는 ‘목소리 마술사’“인간문화재 등록요? 좋죠! 무성영화 변사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로 인정받고 계승 발전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면 더 없이 반가운 일이죠. 나라잃은 설움에 가득찬 식민지 백성을 통곡하게 하고 목놓아 아리랑을 노래하며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과 변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을 발했던 문화적 횃불입니다. 변사의 역사가 짧다고요? 제가 마지막 변사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30여년 전 무성영화가 단 한편밖에 남지 않던 시절 사명감 하나로 사재를 털어 변사공연을 이어왔습니. 100년 전통을 가진 무성영화와 변사를 하찮게 여겨 이 시대에 소멸시킨다면 크나큰 문화상실이자 후손에게 잘못이 될 것입니다.”변사, 일제시대 탄생한 광대… 무성영화, 관객에 전달애달픈 대사에 심금 올리는 목소리… 관객 울리고 웃겨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동영상을 만들 수 있고, 영화관에 들어서면 선명한 고화질 화면에 서라운드 음향이 펼쳐지는 디지털시대다. 이런 와중에 무성영화를 해설하고 연기하고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변사(辯士)가 아직도 활동한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끓어올랐다. 호기심으로 수소문한 최영준씨. 자신을 광대(廣大)라고 부르는 그는 한국에서는 유일한 ‘목소리 마술사’라는 변사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한국영화 백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무성영화 변사. 애달픈 스토리에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세파에 시달린 관객을 웃겼다 울리는 변사. 그러나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변사가 전국을 다니며 전성기를 누리듯 공연을 이어 간다니 그의 애환과 비결을 듣고 싶었다. 지난 3일 최영준씨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광대의 나이는 늘 철없는 열 살”이라며 굳이 나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30여년전 우연히 본 ‘검사와 여선생’에 꽂혀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 제작해 변사로 나서새로운 장르여서 ‘무성영화 변사극’이라 명명”- 변사극에 빠지게 된 계기는. “30여 년 전, 모노드라마 1인극 연극배우로, 인천에서 ‘약장수’, ‘팔불출’을 직접 제작하고 출연해 서울로 진출하였죠. 그 당시 연극의 중심이었던 이대입구 소극장에서 한 작품 당 2년씩, 장장 4년간 장기공연을 마치고 차기작품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5년 전에 작고하신 변사 신출 선생의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보게 됐어요. 무성영화와 변사를 보는 순간 ‘아, 이거다’ 싶었죠. 제 눈에는 변사가 1인극 배우로, 무성영화는 훌륭한 무대장치로 보였던 겁니다.” 이걸 꼭 해야겠다 마음먹고 그 시절의 다른 흑백무성영화가 또 있는지 찾았다. 당시 한국에 ‘검사와 여선생’ 외에는 무성영화가 단 한편도 없었던 상황. 신파극으로 유명한 ‘이수일과 심순애’를 무성영화로 직접 제작해서 변사로 나섰다. 그때가 1986년. 그 때부터 전국 순회공연과 미국 공연도 갔다. 장르에 대한 구분이 필요해서 그는 직접 장르 이름을 ‘무성영화 변사극’이라고 붙였다. - 무성영화 변사극이란 뭔가요.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시대를 주도하는 문화가 있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문화도 있어야 합니다. 무성영화 변사극은 우리나라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 속에서 위로 받고 싶었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신파극, 악극, 그 시절 대중가요, 흑백 무성영화, 그리고 변사를 새롭게 디자인하여 이 시대의 관객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는 마당극이라는 그릇에 담았습니다. 저의 연출기법이죠. 장르의 융합이랄까, 하이브리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요. 각기 독립된 장르의 장점을 섞어놓은 비빔밥 같은 장르이니 그 이름을 새롭게 붙인겁니다.” -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변사 연기에 도움이 되나. “한 우물만 파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죠.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시기에, 저는 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살아 왔죠. 극단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연극배우, 연출,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작사, 작곡, 가수, 개그맨…, 라디오 DJ도 재작년까지 25년간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을 부른 가수가 바로 접니다. 글쓰기, 연기, 연출, 노래, 작사, 작곡…. 발표한 음반도 열장이 넘습니다. 음반 한 장에 제가 만든 신곡이 평균 10곡이니 거의 미친 듯이 열정을 쏟아 붓는거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말이 쉽지 완전히 맨땅에 헤딩 하는거죠. 전사의 심장으로, 독학으로, 가시밭길을 헤쳐 가는 겁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저의 학습이고 노하우를 터득하는 방법입니다. 파란만장한 제인생의 이런 모든 것이 자양분이 되어 ‘1인36역’의 변사를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변사극 매력?…관객과 소통, 무성영화와 호흡마당놀이 형식… 관객 호응 일본 영화사도 놀라주 관객은 노령층… 노인 증가에도 콘텐츠 부족”- 무성영화 변사극의 매력은 무엇인가. “관객과 대화하고 함께 얼싸안고 울고 웃는, 접촉을 통한 소통입니다.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 무성영화와 변사의 환상적인 호흡인거죠. 변사의 연기술과 웃음을 주는 애드립은 젊은 관객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르신을 위한 공연입니다. 또한 마당놀이 형식을 도입해서 관객의 적극 참여를 유도합니다. 지난 2월에 일본 마츠다 영화사를 방문하였는데 무성영화 1000편을 보유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변사는 5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지만 대중의 주목도가 떨어져 정부의 지원사업에 의지하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제 공연 영상을 보더니 어떻게 이렇게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지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9월에 초청공연을 갖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무성영화 상영이 역사적인 콘텐츠의 재연이라면, 저의 무성영화 변사극은 변사와 관객이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공연입니다. 제가 이렇게 지극히 한국적으로 변사극을 만들고 틀을 잡아 놓으면 후대에 누군가에게는 초석이 되고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화 영역이 더욱 확장되는 것이죠.” - 변사극 공연, 지방에서 많이 하던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서울 보다 지방이 문화 소외지역이라고 해서 그쪽 문화단체나 지자체에서 많이 초청을 해줍니다. 이게 아날로그 콘텐츠이다 보니 관객층은 주로 저를 알아봐 주시는 어르신들이죠. 그런데, 사실 진짜 문화소외 지역민은 서울에 사는 어르신들이예요. 노인을 위한 구경거리가 없다면서 어쩌다 변사공연을 보시고는 ‘자주 보고 싶다, 많이 아쉽다’고 하시더군요.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가 많아지지만 즐길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잖아요. 앞으로 방방곡곡 더 많은 공연으로 노인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고,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썼다는 미발표곡 ‘목포항’도 불렀고, 조금 뒤에는 ‘목포의 눈물’도 구성진 가락으로 읊조렸다. 아이들 같은 목소리로 동요도 여러차례 불렀다. 물론 변사의 역할을 소개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화와 유독 인연이 깊다고 했다. 연극배우 시절 극장 개봉영화 ‘엘리베이터 올라타기’, ‘랏쉬’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개그맨 데뷰 후에는 어린이 영화 십여편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어린이 영화 시나리오 두 편을 썼는데요, 한 편은 지난달에 경주에서 촬영을 마쳤고요, 또 한 편은 8월에 제주도에서 촬영할 예정입니다. 배우들의 대사는 전부 제주도 사투리입니다. 영화음악도 제가 다 작사 작곡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올해가 한국 영화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변사 배우러 오면 말려…엄청 노력에도 돈은 안 돼그래도 배우겠다면 1인극 ‘팔불출’ 공연하라면 안 와10년 노력해야 제대로 된 변사… ‘노랑목’ 나와야 해”- 변사, 하고 싶다는 사람이 혹시 있나. “가끔씩 찾아옵니다만 제가 말리죠. ‘변사극 쉽지 않다. 떼돈 버는것도 아닌데 노력은 엄청 많이 필요하다.’ 그래도 변사를 해보겠다고 하면 제가 30년 전에 공연했던 모노드라마 ‘팔불출’의 대본과 동영상을 주면서 ‘이 작품, 한번 공연하고 오라’고 합니다. 90분 동안 혼자 공연한 작품이거든요. 그러면 다 기겁을 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더군요. 변사가 되려면 어느 정도 나이도 있고 타고난 재능에 연기가 익어야 합니다. 부단히 노력해서 한 10년은 해야 제대로 된 변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랑목이 나와야합니다. 변사 연기의 신의 한수는 노랑목입니다.” - 노랑목?, 이게 뭔가요. “이게 뭐냐하면요, 이난영 선생의 ‘목포의 눈물’을 가만히 들어보시, 모기소리처럼 들릴 듯 말 듯 아주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이 소리가 애달프면서도 심금을 울립니다. 발성이 달라요. 노랑목 연습은 입을 작게 벌리고, 귓가에 속삭이듯 노래하고 말합니다. 그러자면 목구멍을 딱 막아야 합니다. 보통은 목을 열고 말하는데 이건 목구멍을 닫아야 해요. 그래야 비성, 두성 가성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됩니다. 변사는 흘러간 옛 노래도 불러야 되고, 모든 배역의 목소리를 연기해야 하는데, 특히 남자 변사가 여자 주인공 목소리를 예쁘게 구사해야 합니다. 노랑목이 가능해지면 실제 여성보다 더 여성스런 목소리, 변성기 이전의 어린아이 같은 예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오랜 연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언제부터 이런 엔터테이너 소질을 보였나. “제가 어릴 때부터 연극을 시작할 무렵인 20대 중반까지는 내성적이고 말도 없었습니다. 남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극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죠. 고등학교 다닐 때 잠깐 연극부에서 활동을 했지만, 처음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할 때 연기는 모르고 자의식은 강해서 많이 힘들었죠. 더구나 대학을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적성이 맞지 않아서 1년 다니다 그만두었으니, 전공이 완전 다른 연극 문외한 이었죠. 그래도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당시에 최고의 연극배우 이호재씨를 롤모델로 삼았어요. 그때 마침 그 분이 1인극 약장수를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공연했는데, 그 배우의 ‘약장수’ 대사를 전부 몰래 녹음해서 숨구멍은 어디인지, 억양은 어떻게 하는지, 소리는 어떻게 내는지 연구하고 따라했습니다. 그의 공연을 매일 봤고, 그의 대사를 전부 외웠습니다. 그 명배우의 모든 것을 그대로 벤치마킹 한 셈이죠. 그러다가 결국 제가 살던 인천에서 소극장을 만들어서 개관 기념공연으로 최영준 모노드라마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때가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약장수’에 이어서 ‘팔불출’을 했는데, 한 작품을 2년씩 하루 두번 계속 공연하니 그 작품에 대해서는 도가 트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서울 서대문 푸른극장에 있는 공연기획사인 ‘태멘’으로 스카우트되어 모노드라마를 푸른극장 지하 말뚝이 소극장에서 계속 했습니다.” - 모노드라마 당시 반응은. “처음 인천에서 할 때는 객석이 텅 비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관객 없이 연습도 하는데 …. 연기 공부를 한다’ 하는 심정으로 독하게 계속하니 나중에는 입소문이 나서 극장이 미어터졌습니다. 그래서 한달에 400만원 줄테니 서울의 말뚝이 소극장에서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서울로 진출했던 거죠. 당시 선배들이 저를 두고 ‘너같은 어린 놈이 무슨 일인극이야. 일인극은 베테랑들이 하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형, 나이 먹으면 힘이 없어서, 체력이 딸려서 못하는 게 일인극이예요’라고 받아치면 선배들이 저보고 ‘저런, 당돌한 녀석’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 “연극배우 이호재가 롤모델…대사 몰래 녹음해 연습고 강계식 선생의 한마디 충고가 신의 계시처럼 꽂혀‘희극 배우는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울릴 줄 알아야’전유성도 고마운 사람… 인맥 동원해 영화도 만들어줘”- 그래도 격려해준 선배는 없었나.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민재 형이 약장수 공연 당시에 연출을 봐 주셨는데, 저의 연기 개인지도 교사였죠. 연기에 눈을 뜨게 해주신 은인이죠. 변사를 체계적으로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습니다만 강계식, 고설봉 두 분이 생각납니다. 영화계에선 이향, 이런 분들과 신파극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80년대 초반이니 당시 이분들이 70대를 넘겼거나 80대에 가까웠습니다. 이분들이 신파시대의 마지막 세대예요. 제가 빨리 같이 작업하지 않으면 이분들이 갖고 있는 신파극의 유산을 놓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연기도 연출도 같이 하면서 그분들하고 여러 작품 신파극을 만들면서 ‘이건 뭐예요’, ‘저건 뭡니까’하면서 많이 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강계식 선생이 저보고 ‘여보게 미스터 최, 자넨 말이야, 희극배우야. 희극을 전문으로 연기를 하라는 거야. 근데, 희극배우는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을 울릴 줄도 알아야 돼.’라고 하신 말씀이 신의 계시처럼 제게 팍 꽂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하염없이 웃기다가 끝에는 관객을 반드시 울립니다. 슬픔으로 끝나야 그게 예술적이라는 거죠. 카타르시스도 있고. 그 당시 신파극에 대한 것을 많이 배우고 터득했죠. 또 한분은 개그맨 전유성씨예요. 어느 날, 저의 무성영화 변사극 계획을 들으시더니 감독을 맡아 주시고 당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영화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시고 제가 변사로 나설수 있도록 해주신 결정적인 귀인이자 은인이죠.” - 우리나라에 변사극 레퍼토리가 많나. 무성영화가 있으면 변사극이 가능한가. “무성영화라고 해서 다 변사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는 변사가 없어도 상영할 수 있습니다. 변사의 개입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도 완벽한 영화입니다. 변사극의 무성영화는 반드시 변사가 개입해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예컨대 ‘검사와 여선생’을 변사 없이 무성영화로만 상영한다면 이상하고 싱거운 상황이 될 것입니다. 변사는 영화와 관객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합니다. 변사의 능력이 흥행을 좌우할 정도로 변사극의 핵심입니다. 현재 저의 변사극 레퍼토리는 세편입니다. 1948년작 ‘검사와 여선생(감독 윤대룡) 1986년작 ‘이수일과 심순애’(감독 전유성), 2002년작 ‘나운규의 아리랑’(감독 이두용) 입니다.” - 남기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올해안에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를 제가 무성영화로 제작, 감독할 예정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 무성영화에서 시도했던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생각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경우 예를 들면, 변사가 영화속 배우들의 싸움을 말린다. 영화 속 김중배 얼굴에 두루말이 화장지를 던진다. 이수일이 돈을 뿌리는 장면에서 변사도 같은 동작으로 돈을 뿌린다… 등등. ‘홍도야 우지마라’에서는 변사가 영화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쁜놈을 때려주고 화면 밖으로 나오고, 비맞는 영화 속의 홍도에게 변사가 우산을 건네주고, 화면 속 홍도의 편지를 변사가 받아서 홍도 남편에게 건네주는 등의 가상현실 같은 장치를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애수를 자아내는 장면을 그대로 살려낼 겁니다.” “올해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 무성영화 제작 예정제작비 구애없이 다음 세대 위해 작품 남기는 게 할일언젠가 무성영화 박물관 설립하고 변사 양성하고 싶어”- 무성영화 제작에 큰 돈이 들텐데 제작비 조달은 어떻게 하나. “1억원정도 예상하는데, 변사극 공연으로 벌어서 영화 제작할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작비용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손익 분기점이 올 때까지 계속 울궈 먹을수 있으니 그렇게 무식한 투자라고 생각하진 않는거죠. 많은 분들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면 좋겠다는 요구도 있고요. 다음 세대, 후학들을 위해 제가 살아있는 동안 여러 작품을 남겨놓는 것이 이 시대 마지막 변사로서의 할 일이죠.”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10년 전, 2009년에 미국 LA에서 공연기획을 하는 이광진씨 초청으로 미국 서부지역 한국교민들을 위해 순회공연을 떠났어요. 서울 촌놈이 샌디에고, 오렌지카운티, LA,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태평양을 따라 죽 거슬러 올라갔죠. 가는 곳마다 대성황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도 오지라는 알래스카에서 공연을 마치고, 공연장 출입구에 서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며 관객 배웅을 하는데,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20달러를 차비에 보태 쓰라고 주시는 거예요. ‘마음만 받겠다’고 해도 한사코 주시면서 ‘나, 집에 가고 싶어. 한국에 가고 싶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가시던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분들에게는 저의 공연이 고국의 추억이며, 그리움이었던 거죠.”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 무렵 서울로 왔단다. 함경도가 고향인 부모님이 한국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난 내려온 것이었다. 서울에선 휘문중고를 다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세가 기울어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인천에서 서울로 통학했다. 대학을 그만두는 바람에 배워야 한다며, 지금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그는 늘 학생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무성영화 박물관을 만들어 전 세계의 무성영화를 수집, 보관, 상영하고 변사학교를 만들어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변사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물론 무성영화 제작도 계속할 겁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버닝썬 폭로’ 김상교 도운 내부 제보자는 버닝썬 보안요원

    ‘버닝썬 폭로’ 김상교 도운 내부 제보자는 버닝썬 보안요원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 사태의 도화선이 된 폭행 사건의 피해자 김상교씨가 사건 공론화 과정에서 자신을 도왔던 내부 공개자를 공개했다. 그는 폭행 사건 당시 자신을 말리던 버닝썬의 가드(보안요원)였다. 김상교씨는 지난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이번 폭행 사건, 더 나아가 버닝썬 내 약물 범죄 및 경찰과의 유착 의혹 등을 공론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제보자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김상교씨는 “11월 24일 폭행 사건 이후 로펌을 통해 (폭행 및 연행 당시의) CCTV 원본 요청을 했지만 강남경찰서 생활안전계는 이를 비공개 결정했다”면서 “폭행 사건에 대한 CCTV 또는 블랙박스를 구하려면 ‘보배드림’이라는 자동차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보라는 친구의 조언에 12월 14일 글을 올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뜻밖에도 ‘버닝썬에서 오픈 때부터 가드를 했고, 폭행 사건 당시 저를 옆에서 말리던 가드라면서 당시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당신이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 걸 잘 안다. 제보를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김상교씨는 “며칠 뒤 버닝썬과 강남경찰서 측의 협박과 회유에 신변에 큰 위협을 느꼈지만, 이 사람이 진짜 내부 제보자라면 그도 큰 용기를 냈을 텐데, 내가 혼자 가야 진정성 있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차를 타고 경기도의 한 시내로 그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했다. 그는 “놀랍게도 당시 20살밖에 안 된 이 친구가 모든 걸 용기 내서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면서 “지난 1년간 버닝썬에서 행해진 믿기 힘든 사건들, 그리고 마약, 그들의 사업 방식, 들으면 들을수록 놀랄 만한 인사들, 연예인들, 빈번했던 미성년자 출입 사건, 경찰 무마, 경영진의 고객 폭행 (등에 대해 들었다)”고 했다. 김상교씨는 “사실 버닝썬 사건이 터지고 주변 사람들도 숨기 급급하고 ‘그들은 위험하다, 너무 큰 집단이다, 절대 못 막는다, 대한민국은 원래 그렇다’면서 겁쟁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면서도 “단 한 명으로 시작됐다. 사회의 더러움을 막고 싶어 하던 20살 친구”라고 했다. 김상교씨가 그에게 “왜 이렇게 용기를 내 주냐”고 묻자 그는 “그냥 돈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하는 게 싫어요. 아닌 건 아닌 거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상교씨는 “보안요원으로 첫 사회 생활을 한 이 친구는 믿기 힘든 세상이었고, 세상에 꼭 알려야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상교씨는 폭행 당시 상황을 전한 이 제보자의 글도 함께 소개했다. 버닝썬에서 8개월 정도 보안요원으로 일을 했다고 하는 이 제보자는 “11월 24일 폭행 당시 나의 입장에선 그 상황이 범죄라고 느껴 피해자인 김상교씨를 끌어안으며 말렸다”면서 “그러나 그날 가드팀에게 배신감과 그걸 묵인하는 나에게 큰 실망을 하며 버닝썬을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날 VIP 입구에서 취객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무전을 듣고 달려갔는데 장모 이사가 김상교씨를 폭행하고 모욕적인 욕설을 뱉고 있었고, 김상교씨에게 장 이사가 달려들고 있는 등 가드 입장에서는 정말 아비규환이었다”고 폭행 사건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가드 입장으로서 잘못된 거지만 회사 이사님을 격하게 말릴 수 없었다”면서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 처음 보배드림에 글이 올라왔을 때 김상교씨에게 도움을 드리겠다는 글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 제보자는 이후 언론사 인터뷰나 취재에 어느 정도 응해주며 진실을 밝히고자 열심히 노력했다면서도 “그 과정에서 버닝썬 가드총괄팀장, 가드팀장급 되는 이들에게 길거리를 돌아다니기 무서울 정도의 협박과 압박을 당했다”고 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가드팀장급 되는 이모씨는 제보자라는 사실을 부인하자 “그럼 제보자가 누군지 말해라. 안 그러면 네가 죽는다”, “살고 싶으면 그게 누군지 네가 알아와라”라는 식으로 제보자를 지속적으로 협박했다. 제보자는 “그래도 폭행 사건과 현재 언론에 많이 언급되는 마약, 성추행, 성매매 등 많은 내용들을, 일하며 직접 보고 들었던 진실을 믿고 김상교씨를 공개적으로 도와드리려고 한다”면서 “처음 김상교씨를 만난 게 5개월 전인데, 그때 승리, 린사모, 정준영, 김○○, 최○○ 등 다 예상하고 김상교씨에게 말했던 것들이 1월 28일 이후 언론에 퍼지기 시작한 사실들”이라고 전했다.그러면서 “이게 정말 진실인 걸 알고, 내가 아는 사실을 믿고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김상교씨를 도울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진실만으로 밝힐 것이고, 진실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제보자는 인스타그램에 김상교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숨고 조심하는 건 죄 지은 사람한테 양보하고, 나는 여행 가고 싶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많은 누리꾼들이 응원 댓글을 단 가운데 버닝썬 관계자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은 “더러운 배신자 ××…이래서 어린 ××들은 직원으로 쓰면 안 된다”면서 욕설을 남기기도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강한 특허 창출, 수요자 관점에서 특허심사 필요

    강한 특허 창출을 위해서는 수요자가 원하는 심사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글로벌 기업간 특허분쟁이 심각해지면서 지식재산 선진국(IP5) 등 주요 국가들이 특허심사 품질 제고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LG전자가 미국에서 몬디스 테크놀로지와의 특허소송(1심)에서 패소해 4500만 달러 배상 판결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이미징 솔루션 기업인 셀렉트로부터 이미지 센서에 관한 특허침해 소송을 당했다. 특허분쟁에 휘말리면 기업은 비용뿐 아니라 판매 금지, 기업 이미지 하락 등 간접 피해까지 감수해야 한다. 불필요한 특허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고품질 특허가 중요하고 특허심사단계부터 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3일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이 발간한 특허심사품질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특허청(JPO)은 매년 출원인을 대상으로 특허심사 품질에 대한 조사를 통해 심사정책을 발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자 관점을 심사에 반영하고 정책 홍보를 통해 지재권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출원인 700여명을 대상으로 1개월간 심사 품질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는 데 올해는 긍정적인 응답이 62.2%로 2012년 이후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국내 특허문헌조사, 심사관 의사소통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심사 판단의 균질성은 2년 연속 부정적인 인식이 높았다. 이에 따라 일본 특허청은 향후 특허품질 관리를 위한 정책 우선 순위로 심사관간 판단·역량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한국은 심사분야 설문조사를 실시하지만 대상이 다출원인 및 다대리인으로 한정된 데다 결과를 공개한다지만 접근이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 더욱이 4차산업혁명 기술전담 심사조직 신설이나 3인 협의심사 등 특허심사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한 이용자 평가, 즉 검증이 빠져 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심현주 박사는 “특허심사 품질 제고를 위해 출원인의 정책 수요를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심사품질 조사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표본 집단을 일정 규모 이상으로 확대하고 조사항목도 세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유시민 “비밀조직 전부 지켰다”…심재철 “또 진실 왜곡”

    유시민 “비밀조직 전부 지켰다”…심재철 “또 진실 왜곡”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1980년 유시민의 진술서가 77명의 민주화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됐다’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주장을 직접 반박했다. 유 이사장은 재단 유튜브 채널에 올린 ‘1980 서울의 봄, 진술서를 말할레오’ 영상에서 “저는 그 진술서를 보면 잘 썼다고 생각한다. 감출 것은 다 감췄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했다”며 “(진술서를 쓴 이후) 500명 가까운 수배자 명단이 발표됐는데 저희 비밀조직(서울대 농촌법학회) 구성원은 단 1명도 그 명단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0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던 유 이사장은 “그때 학생회장이나 대의원회 의장은 늘 잡혀간다는 것을 전제로 활동했다”며 “처음에 학생회 간부를 맡을 때 잡혀서 진술하게 되면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노출할지 이미 사전에 얘기가 됐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잡혀가면 첫째로 학내 비밀조직을 감춰야 한다. 우리는 총알받이로 올라온 사람들이다. 소속 써클과 비밀조직을 감추고 모든 일을 학생회에서 한 것으로 진술하도록 예정돼있었다”며 “두 번째로는 정치인들과 묶어 조작하는 것에 휘말리면 안 된다. 당시 김대중 야당 총재와는 절대 얽히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은 “계엄사 합동수사부에서 쓴 진술서에 신계륜(당시 고려대 학생회장), 이해찬(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등 (당국이) 다 아는 것만 썼다. 다른 내용도 비밀이 아닌 별 가치 없는 진술이었다”며 “김대중 총재의 조종을 받아 시위했다는 진술을 계속 요구받았지만 알지 못한다고 버텼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0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심 의원이 공개한 진술서에 대해 “7월 이후에 쓴 것으로 추측된다”며 “여러 관련자가 한 허위 진술 등이 각각 영향을 미치면서 만든 진술서라 쓴 사람이 그것을 최초 진술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진술서라는 게 변호인을 대동하고 가서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식이 아니다. 제가 임의로 쓴 것은 하나도 없다. 두들겨 패니까 쓴 것”이라며 “말을 안 했다가 들키거나 사실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내용을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심 의원이 본인의 진술서를 공개해봤으면 한다.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당시 군사법정에 제출된 심 의원의 자필 진술서와 진술조서, 법정 발언을 날짜순으로 다 공개해보면 제 진술서에 나온 내용이 누구 진술서에 제일 먼저 나왔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맞으면서도 수배자 명단에 들어가지 않도록 내가 감춘 조직은 1년도 안 돼 ‘무림 사건’으로 고구마 줄기 얽히듯 다 잡혀갔다”며 “합수부에서 내가 다 감췄는데 자기들이 잡혀서 군대에 있던 나를 서빙고 보안사에 불려오게 했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그는 “심 의원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당시 형제처럼 가까웠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받아 심 의원이 복무 중인 부대로 면회도 갔다”며 “심 의원도 이제 이 일에 그렇게 매달리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우익 유튜버들이 내가 동지를 밀고했다는 둥 헛소리를 한다는데, 지금까지 한 것은 용서하겠다”며 “이 방송이 나가고 나서 계속 그런 식으로 하면, 제가 송사하는 것을 정말 안 좋아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유 이사장의 이 같은 반박에 심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진실을 왜곡하는 예능의 재능을 발휘했다”며 “유시민의 합수부 진술서는 내가 체포되기 전인 6월 11일과 12일에 작성됐다”고 재반박했다. 심 의원은 “유시민은 학생운동권 상세 지도와 같았던 그의 진술서에서 총학생회장단이나 학생지도부 외에 복학생 등 여타 관련자와의 사적 대화까지 상세하게 진술했다”며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과 학생시위 지도부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던 신군부가 퍼즐을 맞출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의 주장에 유 이사장은 연합뉴스에 “제가 설명할 책임을 느끼는 문제는 다 이야기했다. 논쟁할 가치도 없고 논쟁할 의사도 없다”며 “애쓰는 심 의원이 안쓰러울 뿐”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의붓딸 살해사건’ 조력자 아내는 폭력남편 피해자일까

    ‘의붓딸 살해사건’ 조력자 아내는 폭력남편 피해자일까

    중학생인 12살 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의붓아버지 김모(31)씨의 폭력 성향을 경찰이 조사한다. 살해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난 아내 유모(39)씨가 김씨로부터 위협을 받다 어쩔 수 없이 딸 살해에 가담했는지 밝히기 위한 조사다. 2일 광주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김씨 조사에 프로파일러를 투입한다. 프로파일러는 김씨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는 전문가다. 경찰은 이날 김씨 아내 유씨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나도 남편에게 해코지를 당할 것 같았다’, ‘무서웠다’, ‘말리지 못했다’고 한 진술에 주목하고 있다. 유씨는 재혼한 남편인 김씨가 친딸 A(12)양을 살해할 때 조력자 역할을 하고 시신 유기를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자신이 승용차 뒷좌석에서 A양을 목 졸라 살해하던 당시 아내는 앞 좌석에 앉아 생후 13개월 된 아들을 돌봤고, 시신을 유기하고 집으로 왔을 때 유씨가 ‘고생했다’며 자신을 다독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반면 유씨는 ‘말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취지로 진술해 다소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경찰은 김씨가 가정폭력을 일삼은 정황을 토대로 유씨가 범행에 가담한 정도를 파악할 계획이다. 김씨는 아내 유씨를 폭행해 처벌받은 전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남편 김씨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딸 살해에 가담한 것은 아닌지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살해당한 여중생 모진 삶…친부에게 매맞고 계부에 학대당해

    살해당한 여중생 모진 삶…친부에게 매맞고 계부에 학대당해

    30대 의붓아버지에게 신체적 학대에 성적 학대까지 당한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는 이유로 보복성 살인을 당한 12살 여중생이 친아버지로부터도 한때 수없이 매를 맞으며 학대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12년의 한 많은 생의 마지막 순간, 친어머니에게조차 외면 당했던 가엾은 여중생의 짧은 삶은 의지할 데라고는 없는 처참한 생이었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후 3시쯤 광주 동구 너릿재터널 인근 저수지에서 머리에 비닐봉지가 씌워지고 발목에 벽돌 담긴 마대 자루가 묶인 여중생 A양의 시신이 떠올랐다. 양 발목에 묶인 벽돌 마대 자루 가운데 하나가 풀리면서 수심이 얕았던 저수지 수면 위로 처참한 주검이 드러났다. 소지품으로 신원을 확인한 경찰이 양육권자인 광주의 친모에게 연락하면서 함께 살던 의붓아버지가 집 근처 지구대를 찾아가 자수했다. 비슷한 시각 목포에서는 현재 A양을 돌보던 친부가 수학여행을 이틀 앞둔 토요일 오후에 집을 나가 밤새 돌아오지 않은 딸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의붓아버지는 자신을 성범죄자로 몬 A양에게 앙갚음하고자 범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A양을 낳은 아내도 범행에 가담했다고 털어놓으면서 끔찍한 사건 전말이 밝혀졌다. A양의 친모는 자신의 친딸을 죽이고 시신을 처리하고 온 의붓아버지에게 “고생했다”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친어머니는 승용차 뒷좌석에서 재혼한 남편이 딸을 살해하는 동안 둘 사이에서 낳은 생후 12개월 된 젖먹이를 돌보고 있었다.부부는 시신을 트렁크에 싣고 광주 집으로 돌아왔다. A양의 죽음이 세상에 영영 드러나지 않도록 마대 자루 2개에 벽돌을 가득 담아서 챙긴 의붓아버지는 고향인 경북 문경까지 밤새 시신을 버릴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부부가 붙잡히고 나서 집 담벼락 옆에 세워진 승용차 안에는 A양만 빠진 단란한 가족사진이 남겨져 있다. A양의 짧은 삶은 친아버지와 살았을 때도 고단했다. 부모가 이혼한 뒤로 A양은 다른 형제와 함께 친아버지 집에서 지냈다. 수시로 매를 드는 친아버지로부터 구해달라며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찾았고, 결국 의붓아버지와 살게 됐다. 2016년부터 광주 의붓아버지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A양은 잦은 구타를 당하며 추운 겨울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붓아버지가 A양을 산으로 끌고 가서 목 졸라 죽이려고 한 적도 있었다는 조부모 주장도 제기됐다.친어머니와 의붓아버지 부부가 ‘도저히 못 키우겠다’며 아동보호소로 보낸 지난해 A양은 목포 친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의붓아버지로부터 성적으로 몹쓸 짓을 당했다고 호소한 A양은 제대로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하고 한 맺힌 생을 마감했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자신을 성범죄자로 지목한 의붓딸 A양에게 복수하고자 살인을 저질렀다는 의붓아버지 김모(31) 씨를 구속했다. 친부는 지난달 9일 경찰서를 찾아 A양의 의붓아버지인 김씨를 성추행 혐의로 신고했다. 친부는 이혼한 아내이자 여중생의 친모인 유모(39) 씨로부터 딸이 의붓아버지로부터 음란 동영상을 받고 신체 부위를 촬영해 보내라며 강요받은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경찰에 설명했다. 당시 친부는 유씨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서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린 뒤 몹쓸 짓을 한 김씨 부부에게 항의했다. 남편의 살인에 조력자 역할을 하고, 시신유기에 방조한 친어머니도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력자 역할을 한 친모 유씨는 ‘말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취지로 범행 계획 단계에 대해 김씨와 다소 차이가 있는 진술을 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27일 오후 6시 30분쯤 전남 무안 농로에서 중학생인 딸 A양을 승용차 안에서 살해하고, 이튿날 오전 5시쯤 시신을 광주 동구 너릿재터널 인근 저수지에 버린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로 경찰에 구속됐다. 유씨는 남편의 범행에 가담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 방조)로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는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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