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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가의 도시’ 성북구, 각양각색 3·1절 기념 눈길

    ‘독립운동가의 도시’ 성북구, 각양각색 3·1절 기념 눈길

    만해 한용운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거주했던 ‘독립운동가의 도시’ 서울 성북구가 다채로운 행사로 제105주년 3·1절을 기념하고 있다. 성북구 대표 역사 유적지인 심우장에선 ‘심우장에 색채를’ 행사를 연다. 심우장은 민족 대표 33인이자 시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구청 블로그에서 흑백 심우장 그림을 내려받아 나만의 색으로 칠하며 105년 전 3·1운동의 주역을 기릴 수 있다. 색칠한 심우장 그림 사진과 성북구청 인스타그램의 친구 추가하기를 한 사진을 등록하면 35명에게 경품도 제공한다. 다음달 1일부터 10일까지 진행한다.성북구 관계자는 “성북구청 직장어린이집 원생을 대상으로 심우장에 색채를을 사전 진행한 결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호평이 나왔다”고 말했다. 구를 상징하는 참새 캐릭터를 활용한 ‘대한독립만세 짹짹이’ 이모티콘에 대한 호응도 높다. 성북구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내려받을 수 읬다. 의례적인 3·1절 기념에서 벗어나 친근함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취지다. 시 ‘청포도’가 탄생한 성북동 종암동의 ‘문화공간이육사’에서도 특별한 체험행사 ‘비밀결사’를 준비했다. 다음 달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독립선언서 필사 체험, 접선 암호 퀴즈, 기념사진 체험행사를 펼친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방문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공식 유튜브 ‘성북TV’를 통해 3·1절 특집 영상을 통해 성북천 등 3·1 만세운동의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성북마을아카이브’ 홈페이지도 3·1절과 독립운동과 관련한 성북구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도시 성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성북구민이 많다”라며 “제105주년 3·1절과 한용운 선생 서거 80주년을 맞아 성북구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미래세대와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 ‘제주판 쉰들러’ 만나 목숨 구한… 일반재판 생존 수형인 첫 직권재심

    ‘제주판 쉰들러’ 만나 목숨 구한… 일반재판 생존 수형인 첫 직권재심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일반재판 생존 수형인에 대한 첫 직권재심을 청구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이하 합동수행단)은 1950년 5월 2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업위반죄 등으로 금고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일반재판 생존 수형인 강순주(94)씨에 대해 9차 직권재심을 청구했다고 27일 밝혔다. 강 씨는 2011년 1월 26일 희생자 결정된 생존 수형인으로 4·3특별법에 의한 특별재심을 청구했고, 이번 재심청구는 합동수행단에서 일반재판 생존수형인에 대해 직권재심을 청구한 첫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앞서 합동수행단은 희생자 결정이 없는 군사재판 생존 수형인 2명(박화춘 할머니와 오씨)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직권재심을 청구하고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거주하는 4·3생존 희생자 강 씨(호적상 1932년 9월생)는 일본 나고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945년 광복이 되자 귀국했지만 1948년 4·3의 광풍을 마주했다. 일본말은 유창하지만 한국말이 어눌했던 16세 소년은 동네 지인과 숨어 있다가 영문도 모른채 잡혀갔다가 다행히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이후 또 한번 예비검속으로 붙잡혀가는 운명을 맞았다. 불순분자라는 누명을 쓰고 성산포경찰서에 연행된 후 제주항에 있는 주정공장에 끌려가 취조와 고문을 당한 것. 바로 그때 훗날 ‘제주판 쉰들러’로 불리는 문형순(1897~1966) 성산포경찰서장이 지역에서 예비검속으로 구금된 221명을 총살하라는 군의 명령에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 하겠다’며 강씨 등을 풀어줬다. 문 서장은 제주 4·3사건 당시 상부의 민간인 총살 명령을 거부하고 수많은 목숨을 구해 지금은 ‘제주판 쉰들러’로 불린다. 말년에 그는 대한극장(현대극장의 전신)에서 매표원으로 일하던 중 1966년 향년 70세에 홀로 생을 마감했다. 강씨는 문 서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6·25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하기도 했고 4·3 보상금(1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강씨의 가족으로는 현재 배우자와 아들, 딸, 사위 등이 있다. 합동수행단 왕선주 검사는 “생존 수형인이고 연세가 드신데다 배우자 역시 중환자여서 재판부에 최우선적으로 재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라며 “3월 중에는 재심이 잡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합동수행단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관련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을 2022년 2월 10일 최초 청구한 이래 현재까지 48차에 걸쳐 총 1390명을 청구해 그중 45차로 청구한 수형인까지 총 1300명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또한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한 직권재심은 2022년 12월 28일 제주지검에서 1차로 10명을 청구하고 2023년 2월 22일 합동수행단이 그 업무를 이관받아 2023년 5월 11일부터 현재까지 2차~8차에 걸쳐 총 70명을 청구했다. 1차까지 포함하면 모두 80명을 청구한 셈이다. 현재 5차 청구 수형인까지 모두 50명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 의대 졸업생들 인턴 임용도 포기… ‘의료 대란’ 가속화 우려

    의대 졸업생들 인턴 임용도 포기… ‘의료 대란’ 가속화 우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확산하면서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직서를 내고 이탈한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됐던 신규 인턴마저 임용을 포기하고 나섰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의 수련을 앞둔 인턴들의 임용 포기 선언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3일 기준 전남대병원은 다음 달 인턴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던 101명 중 86명이 임용 포기서를 냈고 조선대병원은 신입 인턴 32명 전원이 임용 포기 의사를 밝혔다. 같은 날 기준 제주대병원은 입사 예정인 인턴 22명 중 19명, 경상대병원은 입사 예정 37명이 임용 포기서를 냈다. 부산대병원에서도 다음 달 1일부터 근무하기로 한 인턴 50여명이 임용 포기 의사를 밝혔다. 충남대병원에서도 신규 인턴 60명이, 건양대병원에서도 30명이 임용을 포기했다. 현장에서는 전공의 말년인 레지던트 4년차들이 집단 사직에 동참하거나 병원을 떠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다음 달 의료 현장에 지금보다 극심한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3월이면 전임의들도 떠나간다고 한다. 3월에 들어와야 할 인턴 선생님, 1년차 전공의들은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이제 대학병원 의사 30%가 3월이면 사라진다. 절망적 상황은 이제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 의료 대란 이달 말 ‘분수령’…전공의에 이어 전임의 등 거취 관건

    의료 대란 이달 말 ‘분수령’…전공의에 이어 전임의 등 거취 관건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전공의와 전임의의 수련·근로계약이 갱신되는 이달 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일부 ‘최고참’ 전공의가 수련 계약 종료와 함께 병원을 떠나고, 전문의로 병원에 남은 전임의마저 이달 말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할 경우 의료현장의 공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정부와 주요 병원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등 주요 대학병원은 전공의의 빈 자리에 전임의와 교수를 배치해 입원환자 관리와 응급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신규 환자의 예약을 최대한 줄이고, 수술을 30∼50%까지 축소하면서 현재 인력으로 가동한 최대 범위 내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일부 병원은 응급실을 교수와 전임의의 ‘2교대 근무’ 체계로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외래 진료와 수술, 입원환자 관리, 야간당직 등을 수행하며 진료 공백을 메우는 중으로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주요 병원은 전임의와 교수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전임의는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배우는 의사(펠로 또는 임상강사)다. 이들은 매년 2월 말 기준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데 현 사태로 재계약 여부를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과중한 업무 부담 및 분위기에 흔들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전임의는 “원래 전임의는 1년 계약이니까 사직은 아니고 병원에 남아있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과중한 업무는 차치하고 남아서 일해도 욕만 먹을 수 있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전공의 말년인 ‘레지던트 4년 차’도 집단 사직에 동참하거나 전문의 자격도 포기한 채 병원을 떠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달 말 수련 종료를 앞둔 레지던트 4년 차가 병원에 남게 되면 내달에는 전임의 신분이 된다. 의료 현장에서는 오는 29일 이후 의료대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내달 의료현장에 더 극심한 ‘대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건복지부도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채우던 전임의마저 이탈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전임의, 임상강사들이 지금 전공의가 빠져나가면서 업무 부담이 굉장히 많이 올라간 것으로 안다”며 “환자를 위해서 좀 자리를 지켜주십사 다시 한번 부탁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임상강사는 교수로 정식 채용되기 전 계약제로 일하는 의사들이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아직 전임의들의 움직임이 구체화한 건 없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전임의까지 빠지게 되면 업무 공백이 더 커지기 때문에 수술과 진료를 더 축소해서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뭉크의 디자인 품고… ‘인간의 절대 고독’ 무대 오른다

    뭉크의 디자인 품고… ‘인간의 절대 고독’ 무대 오른다

    불세출의 명작 ‘절규’를 남긴 노르웨이의 국민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한때 연극 무대와 포스터(사진)를 디자인했던 적이 있다.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시대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만년작 ‘욘’이다. 인간의 절대 고독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이 다음달 29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올라온다. ‘욘’은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은행가로 출세한 욘 보르크만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린 후 한순간 부와 명예를 잃고 병든 늑대처럼 칩거하는 이야기다. 욘의 고독과 그를 둘러싼 이들의 욕망을 극적으로 그린다. 가문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아들에게 집착하는 귀닐, 실패한 옛사랑을 조카에게서 보상받고자 하는 엘라가 대표적이다. 욘의 아들 엘하르트는 과연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19세기에 활동했던 입센은 근대극의 선구자로도 평가된다. 만년에 쓴 ‘욘’ 외에 대표작으로는 ‘인형의 집’이 있다. ‘인형의 집’은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연극으로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를 장식한 고전으로도 꼽힌다. 이 연극을 통해 새삼 알려진 입센과 뭉크 간의 인연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뭉크는 당시 “혐오스러운 그림을 그린다”는 혹평을 듣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유럽 최고의 극작가로 인정받고 있던 입센의 격려로 뭉크는 작품 활동을 이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1897년 파리에서 열린 ‘욘’ 공연에서 뭉크는 무대와 포스터 디자인 작업을 맡았다. 뭉크 역시 말년에 욘과 같이 은둔 생활을 하면서 고독과 불안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던 것을 보면 이 작품이 뭉크의 그림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인 고선웅이 각색하고 연출했다. 김종석이 뭉크에게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무대를 디자인할 예정이다.
  • 66년 해로한 부인 손잡고 하늘로…
네덜란드 前총리 부부 동반 안락사

    66년 해로한 부인 손잡고 하늘로… 네덜란드 前총리 부부 동반 안락사

    드리스 판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와 부인 외제니가 지난 5일(현지시간)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로 별세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네덜란드 공영 NOS 등 외신에 따르면 헤라르 존크먼 권리포럼 연구소장은 “판아흐트 부부는 매우 아팠으며 함께가 아니면 떠날 수 없었다”면서 “지난주 함께 손을 잡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권리포럼 연구소는 판아흐트 전 총리가 말년에 설립한 기구다. 부부는 1931년생 동갑으로, 1958년 결혼해 66년을 해로했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아내를 항상 ‘내 여인’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법무장관, 외무장관, 부총리를 거쳐 1977~1982년 총리직에 오른 판아흐트 전 총리는 이후 유럽연합 대사로 일본과 미국에 주재하면서 공직을 이어 갔다.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부부는 판아흐트 전 총리의 93세 생일(2월 2일) 사흘 후 안락사로 영면에 들었다. 2002년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에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치료 가망성이 희박한 경우 등 6가지 조건을 판단해 안락사를 결정한다. 2022년에는 전체 사망자의 5.1%인 8720명이 안락사를 택했다. 동반 안락사는 2020년 13쌍(26명)이 보고된 뒤 2021년 16쌍, 2022년 29쌍으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안락사 전문센터 대변인 엘케 스바르트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동반 안락사 요청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드물다”며 “두 사람이 동시에 고통을 겪으면서 완치 희망이 없는 경우는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 “北 김정은과 먹방”… 기안84 꿈꾸는 ‘태계일주4’

    “北 김정은과 먹방”… 기안84 꿈꾸는 ‘태계일주4’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 시즌3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가 다음 시즌 가 보고 싶은 여행지로 북한을 꼽았다. 지난 6일 유튜브 채널 ‘침착맨 원본 박물관’ 채널에는 기안84 초대석 영상이 공개됐다. ‘나 혼자 산다’에 이어 여행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태계일주’)를 이끌며 지난해 말 2023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을 받은 기안84는 “생각보다 (부름이) 안 온다”며 “대상 받으면 광고가 줄을 설 줄 알았는데, 없더라. 똑같이 출근하고 있는데 저는 좋다”고 말했다. ‘태계일주’는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 기안84를 중심으로 한 현지 밀착 현실 여행기를 그리며 큰 사랑과 호응을 얻었다. 시즌1 남미에 이어 시즌2 인도, 시즌3 마다가스카르를 다녀온 기안84와 형제들(덱스, 빠니보틀, 이시언) 이야기는 지난 4일 시즌3으로 막을 내렸다. 쉼 없이 3개 시즌을 몰아치다시피 한 ‘태계일주’의 시즌4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큰 가운데 기안84는 “PD님이 이야기 안 해줘서 모르겠다. 고민이 많은가 보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내 생각엔 (‘태계일주’ 시즌4를) 가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기안84는 다음으로 가 보고 싶은 여행지로 “황제펭귄이 보고 싶다”며 남극을 꼽았다. 그는 “돈이 많이 든다. 남극 갈 때 1인당 2000만원 든다더라”며 “남극은 다 하얗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내내 하얀 것만 봐야 하니 이야기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즌제 여행 예능의 주인공다운 분석을 내놨다. 이어 머뭇거리던 기안84는 “북한을 가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선 넘는 이야기를 할 것 같다”며 한 이름을 적어 문답을 이어가던 침착맨(이말년)에게 보여줬다. 기안84는 “이 친구가 나랑 동갑이다. 이런 이야기 해도 되냐. 먹방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직접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1984년생인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기안84는 “(북한에) 갔다가 납치돼 아오지 탄광 같은 데 잡혀갈 수도 있어서 힘들겠더라. ‘태어난 김에 탄광’”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 100년 만에 돌아오는 고려 사리

    100년 만에 돌아오는 고려 사리

    한국 불교사에 업적을 남긴 고려 스님의 사리와 14세기 불교문화의 정수가 깃든 사리구가 100년 만에 고국에 온다. 문화재청과 대한불교조계종은 5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미술관을 찾은 최응천 문화재청장과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혜공 스님이 미술관 측과 사리·사리구 반환에 대해 협상한 결과 오는 5월 부처님오신날 이전에 사리를 기증받기로 했다고 6일 밝혔다. 높이 22.2㎝, 밑지름 12.1㎝ 크기의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는 국내 관람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일정 기간 임시 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리구 안에는 높이 5㎝, 밑지름 3㎝ 크기의 팔각당형 사리구 5기가 안치돼 있다. 고려 말 나옹 스님 입적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사리구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라마탑의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1941년 보스턴미술관이 펴낸 간행지에 따르면 원소장처는 경기 양주시 회암사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된 것을 미술관이 1939년 보스턴의 한 매매상에게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리구 안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 1과와 지공 스님 사리 1과, 나옹 스님의 사리 2과 등 모두 4과의 사리가 남아 있다. ‘여말선초의 한국 불교에 끼친 지공의 영향 검토’(염중섭) 등 논문에 따르면 인도 승려로 1328년 2년 7개월간 고려에 머물렀던 지공(1300~1363) 스님은 인도식 선불교로 고려 불교의 계율 정신을 환기했다. 또 양주 천보산 일대에 226칸의 거대한 불사를 일으켰는데 바로 현재의 회암사 터다. 그의 적통 제자인 나옹(1320~1376) 스님은 고려 공민왕 말년인 1370년 무렵 고려 불교의 실질적 1인자로, “탐욕도, 성냄도, 번뇌도, 욕심도 모두 벗고 물같이 바람같이 강같이 구름같이 살라”는 가르침으로 유명하다. 혜공 스님은 이날 “사리는 불교의 성물이자 예경의 대상으로 당연히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감)돼야 한다”면서 “이번 사리 기증은 종교적으로 의미가 매우 크며 사리를 신자들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내로 들여온 뒤 보존 방안은 조계종과 회암사, 봉선사 등이 협의해 결정할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사리구가 임시 대여로 들어오면 전시뿐 아니라 보존 처리에도 나설 계획이다. 사리구의 지속 가능한 보존과 고려 공예품에 대한 학술 연구를 위해서다. 불교계와 문화재계는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해당 유물을 돌려받기 위해 2009년부터 논의를 이어 왔다. 2013년 이후 논의가 중단됐다가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미술관을 찾은 김건희 여사가 반환 논의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협상이 이뤄지게 됐다.
  • 고독 속 ‘절규’마저 찬란하게… 뭉크가 건넨 ‘위로’를 만난다

    고독 속 ‘절규’마저 찬란하게… 뭉크가 건넨 ‘위로’를 만난다

    노르웨이 국민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생애 전체와 예술 세계 변화를 조망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가 처음 국내 관객을 찾아온다. 오는 5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절규를 넘어서(Beyond the Scream)’다.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사업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세계적 아이콘이 된 그의 대표작 ‘절규’를 넘어 뭉크의 화업 인생 초기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아우르는 140여점의 회화와 채색 판화, 드로잉 등으로 촘촘히 채워진다. 특히 이번 전시는 세계 유명 미술관 소장품뿐 아니라 개인 컬렉터들이 품고 있던 작품도 하나하나 공들여 설득해 국내 관람객에게 대거 소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귀한 자리다. 서울신문은 전시를 앞두고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우정아 포스텍 교수,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 등 3명의 전문가에게 뭉크의 작품이 현대인에게 주는 울림,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 봐야 할 그의 주요작, 다른 화가와 차별화되는 뭉크의 개성, 미술사에 뭉크가 남긴 영향 등을 묻고 공유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 사회는 이세라 아츠인유 대표가 맡았다.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아트스페이스호화에서 만난 이들 전문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뭉크의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있는 국내 첫 전시로 이렇게 방대한 뭉크 작품을 노르웨이 밖의 한자리에서 볼 기회는 드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뭉크가 겪고 작품으로 극복해 낸 ‘사랑과 죽음’은 극단적인 개인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이를 겪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이에 뭉크의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수많은 ‘금쪽이’들에게도 희망과 치유의 힘을 전파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오늘날 관람객’에게 뭉크의 작품이 주는 울림은 무엇인가. 우정아 뭉크는 개인적으로 겪은 큰 비극이 너무도 많다. 어머니와 누나를 일찍 잃고 아버지에겐 정신적 학대를 당한다. 자신도 병약해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좌절에 늘 끌려다녔다. 여든이 넘게 살며 마지막이 돼서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그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안식, 위안을 준다. 이에 많은 국내 관람객들이 다양한 감상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전시에 대한 기대가 특히 크다. 양정무 뭉크가 마음을 파고든 순간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의 작품 가운데 스페인 독감에 걸렸을 때와 걸린 이후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코로나19에 따른 투병과 격리 속 힘겨웠던 우리에게 희망을 줬다. 병을 극복하고 화폭 가득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에서는 ‘극복에 대한 희망’이 움튼다. 우리가 미술계에서 주로 말하는 ‘빅네임’으로는 반 고흐, 피카소 등이 있지만 인간의 심리를 화면에 그린 화가를 얘기할 땐 뭉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요즘 현대미술이 작가 자신의 심리와 삶, 정체성을 어떻게 그림이나 매체에 녹여내는지에 집중하는데 뭉크는 이를 혁신적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삶의 그림자도 얼마나 찬란할 수 있는지 보여 준 화가다. 고독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가로도 독보적이라 현대인의 삶, 정서와 교감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미경 뭉크는 어머니로부터 결핵을, 아버지로부터는 정신병을 물려받았다고 얘기해 왔다.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동시에 컸다는 얘기다. 뭉크가 그런 고통과 이에 대한 극복을 동시에 녹여낸 그림으로 스스로를 결국엔 치유했듯 1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도 그의 작품에서 ‘집단 치유의 힘’을 만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전시에는 140여점이 소개된다. 뭉크 작품의 특징과 그가 미술사에 남긴 의미는. 우정아 뭉크는 ‘절규’ 하나만 알고 있어도 어디서 그가 그린 그림을 보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특징이 있다. ‘딱 봐도 뭉크, 멀리서 봐도 뭉크’라는 건 화가로서 굉장한 재능이다. 인물의 표정은 공허하고, 얼굴은 해골 같고, 눈동자는 흐릿한데 원색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학생 시절부터 말기까지 그린 그림이 고루 나오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그린 건가’ 싶을 정도의 작품도 여럿이다. ‘독일 표현주의 선구자’라는 수식어처럼 파리를 오가며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고 내면을 표출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을 개발한 부분을 눈여겨보면 좋겠다. 양정무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가장 흥미로운 전시가 고흐와 뭉크의 2인전이었다. 두 사람의 작품을 하나씩 짝지어 놨는데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진 못했지만 고흐의 혁신성을 받아들인 첫 번째 중요한 세대의 화가가 뭉크라고 판단된다. 고흐보다 10살 아래인 뭉크는 고흐의 작품에서 유사한 구도와 색감, 정서와 감정의 표출을 습득했을 거다. 좀더 강렬하게 풀어놓았다. ‘절규’, ‘병든 아이’, ‘키스’ 등의 작품을 보면 확실히 화면의 자율성이나 색채감을 광범위하게 표출하는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는 1895년 독일 베를린 전시에서 ‘뭉크 스캔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최첨단 화풍을 시도해 베를린 작가들을 자극하며 독일 표현주의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베를린 전시는 뭉크를 미술사에 안착시킨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출품작을 보며 감탄했다고 했는데,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 봤으면 하는 수작은. 양정무 뭉크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전시엔 1882년 그가 20대가 되기 전 그린 자화상도 있고, 죽기 한 해 전인 1943년 그린 자화상도 나온다. 인생의 초입부터 마지막까지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지 고민한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 젊을 땐 키도 크고 훤칠하지만 어두운 내면이 들여다보이는 반면 말년에는 행복한 면모가 드러난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생애 중요한 순간마다 그렸던 중요한 작품을 다수 볼 수 있다. ‘브로치’란 작품도 있는데, 뭉크가 스무살 차이에도 깊은 관계를 맺었던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에바 무도치의 이미지를 담은 판화다. 전시의 한 섹션은 ‘욕망과 사랑’, ‘전쟁 같은 사랑’으로 구성할 만한 리스트다. 우정아 자화상이 많다는 건 화가가 그만큼 끊임없이 자신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생클루의 밤’이 온다는 데 놀랐다. 미술관 소장품이 아니라 노르웨이 유력 인사들을 여럿 거친 작품인데 그가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던 파리 근교 생클루에 짧게 체류했을 때 그린 그림이다. 어두운 밤 창가에 한 신사가 앉아 있는데 그가 아버지인지 뭉크 자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뭉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줬고 고통의 근원이 된 아버지에 대한 상실과 애도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누구나 자신이 겪었을 상실을 이 그림을 통해 감정이입할 수 있는데 평소 보기 힘든 작품이라 기대가 크다. 이미경 ‘아픈 아이’도 8점가량 오는데 화가가 15살에 누이의 죽음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을 1927년 환갑이 된 나이까지 계속 변주해 그렸다. 아팠던 누이 앞으로 불어오는 바람 등에 담긴 쓸쓸함과 슬픔 등 멜랑콜리한 정서와 감정이 곳곳에 담겨 있는 작품으로 신경 써서 봐 주셨으면 한다. 우정아 세기말적 정서가 강렬한 작품도 여럿 온다. 이미경 ‘뱀파이어’, ‘키스’, ‘마돈나’ 등을 원톱으로 꼽을 수 있다. 양정무 클림트의 ‘키스’도 유명하지만 구석진 곳에서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는 뭉크의 ‘키스’는 세기말적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다. 우정아 사랑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준다. 뭔가 불길하다(웃음).-뭉크가 집중했던 ‘채색 판화’도 다수 출품되는데. 양정무 뭉크의 채색 판화는 그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세계로, 작가가 가장 열중한 장르이기도 하다. 주요 대표작이 완성될 무렵인 1894년 이후 판화로 넘어가 몰입했는데 작품을 그대로 판화로 옮긴 것도 있지만 그림 속 일부나 세부를 더 확대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특히 이번에 8점이 오는 ‘마돈나’는 작품을 쭉 나열해 보면 다 다르다. 찍어 낸 시기도 다르지만 회화에 담으려 했던 메시지를 변형시키거나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병든 아이’도 중요한 작품인데, 아이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등의 시도를 했다. 자기 작품에 대한 ‘보급판’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판화를 자신의 작품을 확대, 재평가하려는 매체로 활용했다는 의미가 크다. 이 때문에 뭉크의 판화는 아카이브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작품 세계를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시각 이미지 면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이미경 일부 관람객은 판화가 오면 실망할 수 있지만 뭉크에게 판화는 굉장히 중요한 매체다. 서른한 살 무렵 정점을 찍는 작품들을 내면서 판화로 넘어가 이를 아끼고 새로운 장르로 생각하며 많은 도전을 했다. 이는 그가 판화를 유화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증거다. 판화라면 폄훼하는 기존의 시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우정아 뭉크에겐 판화 고유의 색채나 표면의 질감, 촉각적 효과 등 모든 것이 내면을 표현하는 데 중요했다. 유화 ‘절규’가 2012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300억원에 팔리는 기록을 낸 바 있는데, 이렇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건 유화, 파스텔 버전이지만 그는 강박적으로 그린다고 할 정도로 같은 작품을 반복해 그리고 그림이 팔리면 슬퍼하며 사 간 사람에게 다시 빌려오거나 달라고 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선 이렇듯 같은 주제의 작품을 다채롭게 변주했던 그의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다른 화가와 차별화되는 뭉크만의 독보적 개성은 무엇인가. 이미경 그는 19세기를 정의했고 20세기의 방향을 제시한 작가다. ‘마돈나’, ‘뱀파이어’ 등으로는 여성의 팜파탈 이미지를 재해석해 19세기 말 남성들이 느낀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회화적으로 잘 보여 주기도 했다. 양정무 자꾸 사람들이 그림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니까 자신이 얘기해 버린다. 눈에 들어온 정보를 그리는 게 아니라 봤던 것들을 기억으로 재생산해 그린다고. 심리적인 그림, 정서적인 그림, 치유적인 그림으로 자기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20세기 미술사 대전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화가임은 분명하다. 우정아 우리는 반 고흐, 잭슨 폴록, 바스키아 등 정신질환, 아픔이 있는 작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하지만 뭉크는 아픔이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이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창출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깊이 보게 하는 화가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고통의 기억을 계속 그리는 건 상처를 계속 파 보며 화가이자 개인으로서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성찰해 보는 것으로,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도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나의 내면, 뒤틀린 내면을 이미지로 표출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 준 화가를 깊이 들여다봤으면 한다.
  • [열린세상] 공지영 작가의 고백/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공지영 작가의 고백/유창선 정치평론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열렬한 응원자였던 공지영 작가가 최근 인터뷰에서 조 전 장관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해 눈길을 끌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열렬하게 옹호했던 한 사람이 내가 이전까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중에 과오가 드러났을 때 그가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이렇게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었구나 싶었다.” 가볍지 않은 성찰과 고민의 과정을 거쳐 꺼낸 얘기일 테니 제3자가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실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판단을 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가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우리 사회를 두 동강 냈던 쟁점이 그렇게 복잡한 내용의 것은 아니었다. 설혹 당시 검찰 수사에 과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녀의 입시비리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된 만큼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자기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보통의 가정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법한 행동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른 젊은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안겨 주었다면 잘못임이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조 전 장관 일가는 자신들의 억울함만 강변했을 뿐 공 작가의 지적처럼 ‘미안했다’, ‘잘못했다’는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은 여러 차례 사과했다고 말하지만, 뜬구름 잡는 사과의 말은 한 번 하고 울분의 말은 수백 번 계속하니 그런 사과가 진정성 있게 들리기 어렵다. 더 관심이 갔던 것은 세상을 보는 공 작가의 시선이 달라진 점이다. 공 작가는 “우리 세대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지지하지 않고 비판적 자세를 취하며 사안별로 판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86 운동권이 국회의원이 되고,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는데도 여전히 낡고 이분법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80년대식 구호를 외치는 이데올로기적 동지들과 결별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그동안 좌우 양대 진영의 극단적 대결에 고개를 가로젓던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던 바와 같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악마도 아니요 천사도 아니다. 우리 진영의 것이면 무조건 옳고 반대 진영의 것이면 무조건 틀렸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사안에 따라 실사구시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이성과 합리의 정신을 지키려는 지성의 태도다. 공 작가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누구 편에도 서지 않으니 생각하는 대로 말하면 되고,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그만큼 자제도 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으면 외로워지고 돈도 적게 벌린다. 대신 자기 생각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최근에 오유경 전 KBS 아나운서가 낸 ‘어른 연습’이라는 책을 읽었다. “내면이 아픔, 분노, 질투, 미움의 감정으로 들끓지 않는 상태. 즉 ‘행복’이란 인생 후반기에 마음의 성장을 통해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를 악마라며 저주하고 증오가 가득한 마음으로는 어른이 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을 역지사지로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져야 세상도 좋아진다. 좌파 운동가였던 시인 도로시 파커는 말년에 이런 시구절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었다. 선과 악이 종잡을 수 없이 얽혀 있어 앉아서 나는 말한다. 세상이란 원래 그래.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현명해.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거야. 이기고 지는 게 별 차이가 없단다.” 추상 같은 심판과 투쟁만으로 세상이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에서는 실현된 적 없는 화석 같은 신념일 뿐이다. 이제는 20세기의 산물이었던 86세대의 세계관을 넘어서야 한다. 공지영이 새로 낸 책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라는 제목이 마음에 든다. 우리는 멱살잡이하는 패싸움에서 벗어나 이제는 좀 외로워질 필요가 있다.
  • 로열 아카데미에서 만난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드로잉 [으른들의 미술사]

    로열 아카데미에서 만난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드로잉 [으른들의 미술사]

    필자가 서양 회화사를 강의할 때 대체로 르네상스 미술부터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 예술에서 회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남아 있는 회화 형태는 벽화나 중세 필사본 정도로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회화는 ‘최후의 심판’, ‘모나리자’나 ‘대사들’과 같은 그림처럼 프레스코 벽화나 나무, 캔버스에 유화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프레스코는 이탈리아처럼 건조하고 더운 곳에 적합한 회화 형태다. 그보다 북쪽에 위치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와 같은 춥고 습한 지역들은 캔버스나 나무를 선호했다. 드로잉, 예술교육 기초과정에서 독립된 작품으로프랑스에서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1648년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가 창설된 이래 프랑스 예술 규범은 주제나 매체 등을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왕립 아카데미는 예술 교육의 기초 과정으로서 드로잉을 강조했다. 왕립 아카데미는 유화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드로잉과 습작을 그리도록 했다. 그러나 200여 년간 국가 주도의 미술 체계는 19세기 예술가들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19세기 중후반 인상주의자들과 같은 개혁적 성향의 예술가들은 종이 작업이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인상주의자들이 주목한 빛과 색채는 캔버스보다 종이에서 더 좋은 결과를 냈다. 그들은 드로잉, 파스텔, 수채화들을 더 이상 유화 습작을 위한 준비나 예비 과정이 아니라 독립된 작품으로 여겼다. 이제 드로잉이나 파스텔, 수채화들은 전시나 미술시장에서 회화나 조각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드로잉, 파스텔, 수채화 등이 이렇게 변화를 맞게 된 이유는 당시 과학과 기술 발달이 재료 생산을 획기적으로 진보시켰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화학자들은 아닐린(합성수지의 원료) 염료를 개발해 예술가들이 다양한 색채를 낼 수 있게 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모두 얼리 어답터들이다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진보들은 예술가들이 새로 나온 재료들을 실험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드가는 다양한 드로잉 재료들을 사용했으며 특히 말년에 파스텔을 주로 사용했다. 드가는 파스텔을 칠한 후 가루 날림을 막기 위해 접착제를 사용하고 다시 그 위에 파스텔을 칠해 다양한 색채 층을 만들어냈다. 이 색채 층들은 보는 각도, 위치, 조명에 따라 무수히 변화한다. 인상주의자들은 새로운 재료들을 가지고 변화를 꺼리는 아카데미 방식에 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20세기 새로운 미술의 방향을 제시했다.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는 19세기 말 미술에서 드로잉이 어떻게 회화와 동등해졌는지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현재 런던에서는 로열 아카데미를 비롯해 퀸즈갤러리(한스 홀바인 드로잉전), 사치갤러리(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에서 드로잉 전들이 열리고 있다. 150여년 전 인상주의자들의 부름에 21세기 관객들이 답하고 있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 [세종로의 아침] 살얼음판 한반도, 위기 예방이 최선/강국진 정치부 차장

    [세종로의 아침] 살얼음판 한반도, 위기 예방이 최선/강국진 정치부 차장

    일반전초(GOP) 경계근무도 ‘과학화 경계시스템 시대’라는 말을 듣고 상전벽해라는 말부터 떠올랐다. 10여년 전만 해도 GOP는 말 그대로 사람을 촘촘히 세우는 방식이었다. 1개 소대가 40명을 넘나들었다. GOP 근무는 탄약고에서 1인당 실탄 75발에 수류탄 하나씩 받는 걸로 시작됐다. 햇빛이 처음 비치는 시간을 BMNT(해상박명초), 햇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간을 EENT(해상박명종)라고 부른다. EENT +30분부터 자정까지 ‘전반야’와 자정부터 BMNT -30분까지 ‘후반야’가 순서대로 야간 근무를 하고, 주간 근무가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주간 근무 초소엔 항상 M60 기관총이 북측을 향해 조준된 채 거치돼 있었다. 초소에 들어가면 M60 장전 여부를 확인하게 돼 있다. 하루는 사수가 초소에 들어간 지 얼마 있다가 부사수에게 물었다. “지금 이 M60은 장전이 돼 있을까, 안 돼 있을까?” 부사수가 자신 있게 장전이 안 돼 있다고 대답하자 사수는 “방아쇠 당겨도 되겠지?”라고 재차 물었다. 부사수가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사수는 정말로 방아쇠를 당기려다가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직접 확인해 보니 장전이 돼 있었다. 당시 탄약수로 이를 지켜봤던 필자는 그 사수가 “내가 하마터면 전쟁 일으킬 뻔했다”며 엄청나게 화를 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만약 그때 기관총을 쐈고, 혹시라도 북한군 장병이 죽거나 다쳤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분노에 눈이 멀어 남쪽을 향해 총을 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공명심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우리 중대장이 “즉강끝(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응징)!”을 외치며 응사하라고 했더라면 또 어떻게 됐을까. 상호 긴장과 적개심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선 조그만 손짓 하나만으로도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1914년 사라예보 암살 사건이 3000만명에 가까운 장병과 민간인이 사망하는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중일전쟁도 1937년 중국 베이징 인근에서 발생한 얼핏 사소해 보이는 충돌이 첫 단추였다. 2011년 중동 전역을 들끓게 만든 ‘아랍의 봄’도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한 노점상의 분신 시위로 시작됐다. 물론 현재 한반도에서 전면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견이 많은 듯하다. 무엇보다 남북 모두 속으로는 ‘전쟁은 안 된다’는 최소한의 자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북한은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골치가 아프다. 그렇더라도 국지적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남북이 주고받는 강경한 ‘말 대포’를 듣고 있자면 당장 내일이라도 유혈 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싶다. 물론 우리 국군장병들의 준비 태세를 믿는다. 하지만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최선은 남북관계 개선은 바라지도 않으니 갈등이 더 격화되지 않도록 위기관리라도 제대로 해 달라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군 복무 내내 북한이 국지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고, 이판사판이라며 남침할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가 넘쳐났다. 남북 긴장이 높아지기만 했다. 그러다 ‘말년 병장’이 돼 받아 든 건 남침 위기가 아니라 외환 위기였다.
  • “고등어 백반 결제해주셨죠?” …20대女, 말년 병장 밥값 내줬다

    “고등어 백반 결제해주셨죠?” …20대女, 말년 병장 밥값 내줬다

    군인을 본 시민들이 식사 값을 대신 지불하는 미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대 여성이 말년병장의 밥 값을 대신 결제한 사연이 알려졌다. 17일 군관련 제보 채널인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육군 5군단 소속 말년병장의 사연이 소개됐다. A병장은 “전날 전역 전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용산역 앞 백반집에 갔다”며 “자리가 부족해 한 테이블에 20대로 보이는 여성분과 대각선으로 앉게 됐다”고 운을 뗐다. 그는 “사장님이 ‘어느 분이 먼저 오셨는지’ 묻자 저는 여성분이 먼저 오셨다고 했고, 여성분은 ‘군인이 먼저 오셨다’고 했다”면서 “사장님이 알겠다며 제 상을 먼저 차려주더라”라고 앞선 상황을 설명했다. A병장은 “식사를 마친 후 계산을 하려는데 사장님이 ‘같이 앉으셨던 여성분이 (A병장이) 군인분이라며 밥 값을 같이 결제하셨다’고 하더라”며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해 뛰어나왔다”고 했다. A병장은 멀리 흰색 패딩을 입고 걸어가고 계시는 20대 여성을 찾아 “고등어 백반 결제해 주신 분 맞으시죠?”라고 물었고, 여성은 밝게 웃으며 “군인분이셔서요”라고 했다고 전했다. A씨는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는 말씀을 여러 번 전하고 그렇게 열차를 타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했다”며 “가슴 한 구석이 벅차올랐고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군인이라는 신분 막바지인 제게 평생 기억에 남을 선물을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시민들이 군복을 입은 장병들의 식사비나 커피값을 대신 결제했다는 미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일에도 휴가나와 혼자 칼국수를 먹고 있는 육군 장병의 식사비를 대신 결제한 후 자리를 떠난 시민의 사연이 알려졌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군인이 시킨 음료 뚜껑에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전달한 카페 알바생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 “꼴찌 친정 위해 마지막 열정…더 가치 있게 은퇴하고 싶다”[홍지민 전문기자의 심심(心深) 인터뷰]

    “꼴찌 친정 위해 마지막 열정…더 가치 있게 은퇴하고 싶다”[홍지민 전문기자의 심심(心深) 인터뷰]

    “워낙 지는 일이 많았던 팀이라 한번 이길 때마다 선수들은 물론 감독님, 코치님, 트레이너, 영양사, 회사 분들까지 너무 행복해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두 배로 행복하다. 모두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더 이기고 싶다.” 백약무효일 것 같았던 부천 하나원큐가 2023~24시즌 여자프로농구를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2021~22시즌 5승25패, 2022~23시즌 6승24패로 연속 꼴찌였는데 이번 시즌 후반기 첫 경기까지 7승10패(4위)를 기록하며 첫 플레이오프(PO) 진출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청춘을 다 바친 친정으로 6년 만에 돌아와 그 중심에 선 백전노장 김정은(37)을 최근 만났다. 그동안 아산 우리은행에서 정규 1위 4회, 챔피언 결정전 우승 2회 및 최우수선수(MVP) 1회 수상까지 선수로서 가장 빛나는 시간을 보낸 그였기에 하나원큐 복귀는 의외였다. “원래 우리은행에서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하나원큐가 꼴찌로 굳어지는 분위기가 안타까웠다. 농구 인생의 마지막을 친정팀 후배들을 성장시키는 데 쏟는다면 보다 가치 있는 은퇴가 아닐까 생각했다.” “팀에서 유일한 30대다. 좋은 언니, 좋은 선배라는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악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쓴소리를 많이 한다. 말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지만 좋은 소리만 하고 좋은 얘기만 들어서는 팀이 성장할 수 없다. 프로의 자세도 많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그 자신도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딱 10승만 하자, 꼴찌만 하지 말자’가 목표였는데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은 후배들이 잘 따라와 준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김정은만큼 후배들 마음을 잘 이해하는 선수도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포워드였지만 약체팀의 ‘소녀 가장’이기도 했다. 2005년 11월 김정은에게 첫 유니폼을 입게 한 부천 신세계는 몰락한 명문이었다. 신인왕도 하고 득점왕도 했지만 꼴찌팀을 정상에 올려놓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고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은 2012년 해체했다. 재창단한 하나외환(현 하나원큐)도 약팀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2015~16시즌 생애 첫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 감격의 눈물을 쏟았지만 희대의 ‘첼시 리 사건’으로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역사에서 기록 자체가 지워졌다. “나도 겪어 봐서 아는데 경기에 나가면 질 것 같은 느낌이었을 거다. 이제는 내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후배들이 ‘해볼 만하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잃을 게 없는 팀이니 신나게 플레이하고 후회 없이 나오자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나원큐가 끈질겨졌다는 평가가 많다. 수비 때문이다. 2시즌 연속 꼴찌를 전전하는 동안 하나원큐는 경기당 평균 78.8점, 75.0점을 내주는 등 ‘월등한’ 최다 실점 팀이었다. 이번 시즌엔 다르다. 평균 62.1점으로 대폭 줄였다. 최소 실점 3위로 준수해졌다. “상대 팀에 있을 때 하나원큐와 경기한다고 하면 놀러가는 느낌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팀도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상대가 쉽게 보면 안 되는 팀이 되어야 한다고, 전투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도 어렸을 때는 공격할 줄만 알았지 이기는 법을 몰랐다. 수비는 의지의 문제다. 감독님, 코치님이 세부적으로 잡아 주고 있다. 이제 후배들도 수비하니까 이긴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 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대기록 달성이 눈앞이다. WKBL 정규 경기 통산 최다 득점 1위가 다가왔다. 2012년 은퇴한 정선민 국가대표팀 감독이 8102점의 기록을 가졌다. 김정은은 현재 7981점이다. 1위로 올라서기까지 122점 남았다. 13경기 남았고 경기당 평균 10.6점을 넣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산술적으로 시즌 내 새 역사가 가능하다. WKBL의 간판이 바뀌는 일이라 설렐 법도 한데 오히려 덤덤한 김정은이다. “요즘은 한 경기에 10점 넣기도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솔직히 금방 할 줄 알았다. 돌아보면 부상으로 망쳤던 시즌, 못 뛰었던 경기들이 너무 아깝다. 그래서 인제 와서 한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다.” 팀의 PO 진출과 최다 득점 신기록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PO 진출을 고를 것이라는 김정은에게는 사실 또 하나의 대기록이 대기 중이다. 역대 최다 출전이다. 임영희 우리은행 코치가 600경기로 기록 보유자다. 김정은은 553경기를 뛰어 경신까지 48경기가 남았다. 이번 시즌 포함 세 시즌은 뛰어야 한다. 그러나 기록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프로 데뷔한 해에 태어난 후배들과 같이 뛰고 있다. 지금까지 운동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아직도 코트 안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버텨 온 게 5년 정도 됐다. 일단 2년을 보고 하나원큐로 돌아왔는데 스스로 나태해졌다거나 더이상 선수로서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공을 내려놓겠다.”
  • 뉴진스 민지 ‘칼국수 논란’에 결국 사과문…“좋지 못한 태도 죄송”

    뉴진스 민지 ‘칼국수 논란’에 결국 사과문…“좋지 못한 태도 죄송”

    그룹 뉴진스 멤버 민지가 일명 ‘칼국수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민지는 16일 뉴진스 팬 커뮤니티에 “지난 2일 버니즈(팬덤 명칭)분들과 소통하는 라이브에서 저의 말투와 태도가 보시는 분들께 불편함을 드렸다”며 “버니즈분들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소통하는 라이브에서 좋지 못한 태도를 보여드린 것 같아 놀라고 상처받으셨을 버니즈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겨울 칼국수가 뭔지 모른다는 제 말에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저도 알고 있다”며 “제가 편식이 심해 칼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어 칼국수의 종류와 맛을 생각하다 ‘저도 모르게 칼국수가 뭐지?’라는 혼잣말이 나와 버렸다”고 설명했다. 민지는 “혼잣말이라 오해가 생길지 몰랐고 명확한 해명을 하고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제 판단과는 다르게 더 많은 말들이 따라붙고 멤버들과의 사이까지 언급되며 이상한 오해를 받는 게 일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저를 알게 모르게 괴롭혔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답답한 마음에 해명을 했지만 너무 미숙한 태도로 실망시켜드린 점 스스로도 많이 반성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통해 휴가 중에 많이 고민해보고 주변분들과 대화를 통해서도 제 말 한마디의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많이 배웠다.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 조심하고 신경쓰겠다”고 전했다. 앞서 민지는 2022년 1월 웹툰작가 이말년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 출연해 칼국수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칼국수가 뭐지?”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민지의 해당 발언을 두고 민지가 아이돌 콘셉트를 위해 의도적으로 칼국수를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냐는 억측이 제기됐다. 이후 억측을 넘어서 도 넘은 비난이 민지를 따라다녔고, 민지는 지난 2일 라이브 방송에서 “여러분 제가 칼국수를 모르겠느냐. 두번 생각해보라”며 “칼국수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뭐가 들어가는지 어떤 재료로 만드는지 다 알고 계시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해당 영상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면서 ‘뉴진스 민지 칼국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결국 이번 사과문까지 이어진 것이다. 민지의 사과문을 두고 “이게 뭐라고 사과하냐”, “사람들 유튜브나 틱톡이나 죄다 칼국수 이야기만 하더라”, “사과할 일이 아닌데” 등 자성론도 나오고 있다.
  • 검소한 듯 사치, 태평성대엔 부패… ‘모순의 황제’ 건륭제

    검소한 듯 사치, 태평성대엔 부패… ‘모순의 황제’ 건륭제

    인류 역사상 실질적인 통치 기간이 가장 길었던(63년 4개월) 제왕이자 장수한(89세) 군주 중 한 명. 인자하면서도 잔인했고, 검소하면서도 사치스러웠으며, 겸손하면서도 거만했던 인물. 태평성대를 이룬 성공한 황제이자 말년에는 정치적 실수로 스스로 태평성대를 무너뜨리고 아편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은 실패한 황제. 이 모두가 단 한 사람,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에 대한 평가다. ‘건륭’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 정치가와 학자, 시인, 여행가, 사냥꾼 등 다양한 모습이 합쳐져 있는 별종 황제에 가까이 다가가 그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한다. 우선 그의 치적. 건륭제가 나라를 다스린 50년간 중국 인구수는 그 전보다 몇 배나 늘어 최대 3억명에 달했다. 경제 규모도 세계 1위였다.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의 3분의1에 이를 정도였다. 영토도 최대로 넓혔다.건륭 24년 때 청나라 영토는 1450만㎢에 달했다. 현재 중국의 면적 960만㎢에 견줘 1.5배 가까운 크기다. 문화 분야에서도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8만권으로 구성된 총서 ‘사고전서’를 만든 것이다. 글자 수가 9억 9600만 자에 달해 중국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의 총서로 꼽힌다. 160㎝ 정도의 키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건륭제는 체력도 뛰어나 말 타고 활 쏘는 데 능했고, 평생 4만 3000여 수의 시를 써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태평성세에 취해 대신들에게 공물을 강요하면서 부패를 주도했다. 특히 반체제 인사에게 탄압을 가하는 ‘문자옥’(文字獄)을 역대 황제 가운데 가장 많이 일으켰다. 또 왕조에 불리한 내용을 담은 책을 6만~7만권 불태우기도 했다. 프랑스 대혁명, 영국 산업혁명 등 서양 문명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고집불통과 오만함으로 봉쇄 정책을 펴 외교적으로 고립되면서 청나라 몰락의 빌미를 자초한 그의 삶은 현재 우리도 되새겨 볼 만하다.
  • 파리지엥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파리의 벨 에포크’ 특별전

    파리지엥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파리의 벨 에포크’ 특별전

    현존하는 최고의 파리지앵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그린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파리 모습을 담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특별전은 미셸 들라크루아 대규모 전시회로 지난 16일 개막해 내년 3월 3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최된다. 특별전은 한국경제신문과 2448 Artspace가 주최하고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후원했다.75~90세 그린 오리지널 페인팅 200여점 전시  화가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열리는 특별전에는 들라크루루아의 화가 인생 최대 규모의 전시로 75세부터 90세까지 그린 오리지널 페인팅 200점 이상이 전시됐다. 특별전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가 사랑한 도시 ‘파리’와 ‘벨 에포크’다. 벨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한다. 들라크루아는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대부분의 일생을 보낸 파리지앵 화가다. 파리를 그린 작품이 남아있는 클로드 모네, 로베르 들로네, 귀스타브 카유보트, 카미유 피사로 같은 선배 화가들과 달리 50년 이상을 지속적으로 파리를 그려냈다.   이번 전시는 들라크루아가 75세부터 90세인 2008~2023년까지 그린 작품들을 조명한다. 그는 1970년대부터 과거 파리의 향수를 담은 듯한 화풍을 완성했다. 50년간의 화가로서의 삶 중에 이번 전시는 후반기 작품들을 보여준다. 그의 마지막 화풍에서는 인생의 말년에서 비로소 나올 수 있는 원숙함이 묻어난다.행복한 유년기 향수를 일으키는 전시  대부분의 그림마다 그가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Queen) 혹은 강아지와 함께 있는 그의 소년시절이 담겨있어 작품 속의 이야기를 추론하는 묘미가 있다. 작가는 1930년대를 그대로 역사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시대에 가진 인상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옛 파리의 모습을 통해 현재 파리 여행을 꿈꿀 것을 말한다. 이번 전시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150점 이상 소유한 2448 Artspace와 110명의 개인 소장자들 도움으로 들라크루아 후기의 방대한 컬렉션을 선보인다. 들라크루아는 20년 전부터 한국아트페어에 소개되었고 2011년, 2013년, 2016년 세 차례 한국국제페어(KIAF)를 방문한 적이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KIAF에서 미셸 들라크루아 작품이 있는 전시장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전시장이었다.  이번 전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리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 5000원이다. 
  • ‘전원일기’ 아들역 배우 근황…“촬영 때 만난 女와 결혼했다”

    ‘전원일기’ 아들역 배우 근황…“촬영 때 만난 女와 결혼했다”

    드라마 ‘전원일기’의 수남이로 알려진 강현종이 근황을 공개했다. 11일 방송된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에서는 ‘전원일기’ 순영 역 박순천과 순영 아들 수남 역 강현종의 약 20년 만에 만났다. 3년 전 결혼했다는 강현종은 2세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강현종은 아내에 대해 “‘전원일기’ 할 때 군대 말년에 사귀던 친구다. 그 친구를 방송하면서 5~6년 만났다. 40대에 다시 만나 1년 만나고 결혼했다”고 설명했다.강현종은 결혼식 때 박순천에게 연락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때 연락드리기가 좀 그렇더라. 연기자 그만두고 잘 돼서 연락드려야 하는데, 너무 죄송스러운 거다”라며 성공한 모습을 보이고픈 마음에 쉽게 연락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 “세계서예아트비엔날레 열면 어떨까요”… 묵향 서귀포, 서예도시 아이콘 되나

    “세계서예아트비엔날레 열면 어떨까요”… 묵향 서귀포, 서예도시 아이콘 되나

    서귀포시를 21세기 디지털시대의 신서예문화의 메카로 육성하기 위해 ‘묵향 서귀포 프로젝트’ 추진기획단이 발족되고 비엔날레 성격인 세계서예아트페스티벌을 추진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4일 도의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추사 축제 세계화와 케이-콘텐츠 도약을 위한 ‘제2차 추사토론회’에서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전 이사장이 이같은 제안을 해 주목을 받았다. 조선시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세한도’등을 남긴 추사 김정희의 콘텐츠를 발굴하는 자리에서 나온 제안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박 전 이사장은 “제주도는 추사 김정의 선생이 9년 유배기간 동안 최고의 서체 ‘추사체’를 완성한곳인 동시에 현대 한국 서예계의 큰 별인 소암 현중화선생의 고향이자 말년까지 거주하면서 활동했던 서예의 본고장”이라며 “서예문화의 가치재발견과 새로운 도약의 시대에 서귀포시가 보유하고 있는 추사와 소암이라는 서예문화에 있어서 불후의 거목이라는 유산을 적극 발굴하고 이를 서귀포시의 문화예술의 발전전략속에 올바르게 위치시키고 특히 문화관광산업과 연관해 서예를 산업적 콘텐트로 끌어올리는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1세기의 미래형 도시는 창조도시다. 현재 스페인 밀라노, 일본 가나자와, 아일랜드 더블린, 스웨덴 시스타사이언스시티, 미국 오스틴, 폴란드 크라코프,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은 세계 유수의도시들 중 소규모 인구분포이지만, 창조도시로 미래의 인간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면서 “서귀포시 역시 서예라는 신성장동력을 바탕으로 창조도시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예는 한·중·일·베트남·대만 등 아시아 5개국의 공통문화이면서 전세계 인구의 30%가 속해 있는 문화권이다. 서귀포의 서예문화산업콘텐츠가 문화관광산업의 전략종목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열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도시발전측면에서 서예도시발전전략 위헤 서귀포시를 서예도시의 아이콘으로 육성해야 한다”면서 “현대서예기념관 건립을 통한 동아시아서 현대서예문화의 교류와 흐름을 선도, 추사·소암기념관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서예문화관광테마를 개발 상품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묵향 서귀포 프로젝트 추진위원단을 발족하고▲묵향-서귀포 세계서예아트페스티벌(비엔날레) ▲묵향-아시아센터 건립 ▲전각박물관 ▲추사디자인센터(폰트&캘라그라피전문박물관) ▲서예오픈스튜디오(레지던시 작가 입주공간)건립 ▲서체개발전문기업의 연구소 및 본사의 제주이전 추진 ▲폰트그라피뮤지엄 ▲한국서예대학건립 등을 제안했다. 박 전 이사장은 “21세기는 청정과 문화 두개의 키워드가 발전동력”이라며 “서귀포는 청정이라는 천혜의 조건 위에 서예문화라는 신문화성장동력을 얹힌다면 소위 창조도시형 문화지식인력의 유입과 산업의 육성을 통한 도시발전의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국회의원(제주시갑)은 ‘한류 원조’ 추사 김정희 컨텐츠 세계화를 위한 1차 토론회에서 추사 김정희의 글과 그림이 있는 세한도 콘텐츠를 글로벌 콘텐츠로 키워야 하며 김정희의 가치를 통한 제주도의 미래를 제안한 바 있다. 한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1840년 윤상도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약 9년 간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대정읍에 있는 추사관은 김정희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하며 남긴 흔적을 모은 곳으로 그가 살았던 초가집도 옛 모습 대로 복원되어 있다. 추사관에는 유배생활을 엿볼 수 있는 김정희 선생이 쓴 현판 글씨와 아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단한 유배 생활에도 그는 자신을 갈고 닦으며 ‘추사체’를 완성하고 유명한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그렸다.
  • 치매 걸린 엄마는 왜 자꾸 아빠를 찾았을까

    치매 걸린 엄마는 왜 자꾸 아빠를 찾았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때,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을 더는 모르게 됐을 때 진짜 이별은 온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떨어져야 하는 거리감이 아니라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지다 더 사라질 일 없이 기억이 멈춰버릴 때를 의미하는지 모른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과의 시간이 그렇다. 평생 나를 기억해준 엄마, 아빠가 언젠가부터 나를 모르고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그때가 진정한 헤어짐의 순간이다.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극단 행복한 사람들의 10주년 기념 연극 ‘나를 잊지 말아요’는 마음이 미어지는 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70대 노인 금옥은 홀로 치매에 걸린 남편 병관을 돌보며 살아간다. 병관은 고장 난 구식 라디오를 켜겠다고 끙끙대다 금옥이 물을 가지러 간 사이 집을 나간다. 당황한 금옥은 딸 경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지만 경희는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금옥은 경희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사라지길 바란다고 오해하고 미친 듯이 경희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그런 금옥 앞에 3년간 집에 오지 않았던 아들 경수가 나타난다. 엄마가 왜 화를 내는지 몰라 경수가 당황하는 사이 이웃집 여자 수연이 찾아온다. 수연은 경수에게 실은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고 알려준다. 병관은 사실 1년 전에 죽었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금옥에게 병관은 여전히 살아있는 남편이다. 자꾸만 기억을 왜곡한 채 살아가는 엄마를 보는 경수는 답답할 뿐이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치매에 걸린 엄마까지 모시고 살아가는 남매의 삶이 참 고단하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치매 걸린 엄마를 모시느라 자녀들의 자존감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엄마가 죽어야만 그 불행이 끝나고 마는 아픈 서사를 사실적으로 그렸다.작품에서 병관은 금옥의 또렷한 자의식을 상징한다. 병관과 있을 때의 금옥은 정신이 멀쩡한 영혼이 된다. 금옥은 절규한다. “나 잘못한 거 없어. 나 잘못한 거 없다고. 나한테 왜”라고. 금옥의 절규는 죄지은 것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 생의 말년에 찾아온 치매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부모님의 원망을 듣는 것 같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제 더는 자신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는 낯선 사람이지만 딸 수연은 엄마 안에 여전히 진짜 엄마가 있을 거라 믿는다. 비록 늙고 치매에 걸려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여도 수연은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라 굳게 확신한다. 수연의 믿음대로 금옥의 영혼은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고 “엄마가 어떻게 보고만 있느냐”고 애가 끓지만 그 간절한 한마디가 현실의 자식들에게 닿지 못하는 장면은 너무나 아프게 다가온다. 부모님이 늙고 치매에 걸리면 예전 같은 보통의 하루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연극 ‘나를 잊지 말아요’의 마지막은 엄마가 무척이나 행복하게 기억하는 네 가족의 단란한 식사 자리다. 치매 노인의 기억이 얼마나 망가지는지 비록 알 수는 없지만 작품에서는 치매에 걸린 엄마가 행복한 기억을 안고 떠날 것이란 희망을 전한다. 모시는 동안은 너무 힘들어 당장 죽었으면 싶다가도 치매에 걸렸던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는 행복한 기억만 안고 가길 바라는 자녀들의 마음이 담긴 듯하다. 비록 연극이지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인생의 문제를 다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65세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이고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면 간병하는 자녀들의 삶까지 피폐해지는 현실에서 ‘나를 잊지 말아요’는 가족의 의미를 가슴 깊이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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