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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정약용의 안경/함혜리 논설위원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원나라에서 관직을 맡았던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원나라의 늙은 신하들이 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볼록렌즈 안경을 끼고 있다고 썼다. 중국이 안경 발명국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문들은 안경이 1280년경 베니스의 유리공들에 의해 최초로 제작됐고 수도승들에 의해 중국 원나라까지 전해졌다고 본다. 우리나라에 안경이 처음 소개된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즉 16세기 말로 추정한다. 안경알은 유리가 아닌 수정을 갈아서 만든 것이었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1600년대 초부터는 경주에서 안경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렌즈가 마치 ‘게눈’처럼 생겨서 체신이 안 선다는 이유로 초창기에 안경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18세기 들어 실용성을 중시하는 실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안경이 보편화되면서 안경은 선비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말년의 정조도 안경을 착용했을 정도였다. 정조실록에 보면 정조는 정조 23년(1799년) 7월에 안경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는 안경 다리를 비단실로 만들고 테는 옥으로 된 옥안경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의 나이는 당시 47세였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정조를 도와 개혁을 주도했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순조가 즉위하면서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소론과 남인 사이의 당쟁이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는다. 포항 장기에서 1차 유배생활을 마치고 47세에 강진의 귤동에 있는 초가에서 다시 유배생활을 했다. 정약용이 10년 동안 머물면서 역사에 빛나는 학문적 업적을 남긴 곳이 다산초당이다. 전남 강진군이 다산초당에 설치할 새로운 초상화를 공개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김호석 교수가 치밀한 고증을 거쳐 완성한 새 초상화에서 다산은 안경을 끼고 있다. 방대한 독서량과 저술로 인해 시력이 많이 약화됐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후기 최고의 르네상스형 지식인으로 꼽히는 다산이 근엄함을 벗어던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안경을 쓴 모습이 눈에 익으려면 아무래도 좀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이사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기웅 파주출판도시 이사장

    이기웅(李起雄·69) 파주출판도시 이사장은 4년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위를 완전 절제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출판도시병’ 이다. 병은 별것 아니지만 힘이 달려 맘껏 일을 못하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전문출판사 열화당의 대표이지만 회사일을 제쳐두고 파주출판도시를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하는 데 매달린 결과다. 출판도시를 완성하는 데 걸린 20년 세월이 암세포가 되어 위를 갉아먹었다. 지난 13일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출판도시의 심장부인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와 활판공방, 열화당출판사를 이리저리 오가며 6시간 동안 이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갖가지 업무와 모임이 그를 놓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쉴새 없이 전화를 받고, 지시를 내리고, 협조를 구했다. 사안마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입주 출판인클럽 회원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곰탕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엘리베이터 타기를한사코 거절한채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1단계를 마무리짓고 2단계로 접어든 파주출판도시에는 아직도 그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일산 집을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출판도시내 열화당 출판사에 침대를 들여놓고 산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집을 처분하고 출판사 신관 4층에 꾸민 생활공간으로 아예 이사를 오기로 했단다. 여러 출판인들의 이사 행렬도 이어질 예정이다. 불꺼진 출판도시의 밤을 가장 싫어하는 이 이사장이‘불이 꺼지지 않는’ 출판도시에 상주할 날이 머지않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책이란 무엇입니까. 또 출판인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이 서야 나라가 섭니다. 책은 말을 세우는 도구입니다. 출판인은 문자를 통해 말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책은 ‘영혼의 지도’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출판인이라면 유네스코 헌장 중에 ‘우리는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는 문구를 명심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1980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출판협회(IPA)총회에서 ‘도서관 사서의 나태함’을 출판의 자유를 저해하는 요소의 하나로 지적한 보고서를 읽고 감회에 젖은 적이 있습니다. 책의 남발도 경계의 대상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경우 무려 100여종이 쏟아졌습니다. 세계 10위권 출판대국의 허명이자 숨기고 싶은 치부죠. 파주출판도시는 흐트러진 책의 질서를 바로잡고, 출판인들의 허물을 성찰한 뒤 회복시키는 ‘책의 유토피아’가 될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가 2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사장께서는 ‘비와 바람의 도시일지(都市日誌)’라는 책에서 1988년부터 2007년까지 장장 20년 간의 출판도시 건설과정의 풍상을 정리하셨는데 출판도시의 미래상은 어떤 겁니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출판도시는 21세기 한국출판의 미래입니다. 책의 내일이기도 하지요. 21년 전 이기웅, 김경희(지식산업사), 김언호(한길사), 박맹호(민음사), 윤형두(범우사), 전병석(문예출판사), 허창성(평화출판사) 등 뜻이 맞는 출판인 7명이 북한산과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산상(山上)결의’를 맺은 결과물입니다. 여기에 입주업체와 건축가들이 맺은 ‘위대한 계약서’덕분에 출판과 건축의 만남, 출판과 도시의 희귀한 만남이 이뤄졌어요. 전체 부지 48만여평 중에서 26만여 평에 해당하는 1단계 지구에 250여출판 관련업체가 입주했습니다. 앞으로 22만 평에 이르는 2단계 지구에서는 영화와 활자가 만나게 될 겁니다. 또 두 개의 도서관 즉 ‘아시아지식문화 아카이브’와 ‘영혼의 도서관’이 새로운 코어가 될 겁니다. →자서전을 집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네. 틈틈이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살아 생전 자서전을 출간하지는 않을 겁니다. 자료를 정리해 놓을 뿐이고 출간여부는 내가 죽고 나서 행해질 일입니다. 영혼의 도서관에서 그런 일이 이뤄질 겁니다. →‘영혼의 도서관’이라는 개념이 생소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책 중의 책은 자서전입니다. 고인의 유족 또는 친지와 협력해서 고인이 써 왔던 자서전의 원고를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탄생시킨 뒤 소장하는 사후 도서관입니다. 죽어서 아름다운 책더미에 묻히게 되는 셈이지요. 저의 마지막 책, 자서전도 영혼의 도서관 서가에 꽂히게 될 것입니다. →출판도시는 도시 전체가 건축물의 경연장이네요. 단순한 출판도시가 아니라 인간성 회복을 꾀하는 인간도시, 문화도시, 박물관도시를 지향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목표를 이루셨나요. -출판산업의 세 요소는 기획, 생산, 유통입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하고 편집해 바로 옆 인쇄소에 보내 인쇄·제본·제책을 완료한 뒤 출판물종합유통센터를 통해 공급하는 원스톱 체제를 갖춘 것이죠. 책의 수요를 예측해 남발을 막고, 서로 노출돼 있기에 부끄러운 책을 만들지 못합니다. 편집자끼리 책을 교환하게 되면서 기획과 편집경쟁이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책의 질이 30% 이상 좋아졌고 물류비용도 30% 이상 줄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게 최고의 성과이죠. →열화당의 도서목록에서는 생소한 안중근 의사 관련 책을 내신 적이 있는데…. -대문호 톨스토이는 삶 자체가 ‘참회록’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해 온 인생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참회록을 쓰듯 인생을 살려고 애썼습니다. 1993년 일산에 출판도시를 들이기로 한 계획이 틀어지고 난 뒤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습니다. 빛을 찾은 것이 1995년 노산 이은상 선생이 정리한 안중근 의사의 공판기록 번역본이었지요. 그때까지 안 의사를 너무 몰랐습니다. 안다는 것은 깨달음인데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공판기록 속에서 안 의사의 엄청난 외침을 듣고 비로소 깨달은 거죠. 나의 고통은 고통도 아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자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2000년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안중근투쟁기록을 옮겨 엮은 까닭입니다. 출판도시 본부에 안의사의 흉상을 세웠죠. 안 의사는 출판도시의 정신적 감리인입니다. 개인적으론 안 의사로부터 출판도시를 완성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현재 수행 중입니다. ■ 李이사장 문화유전자는 강릉 선교장서 자라 ‘제2의 율곡’ 꿈꾸다 이기웅은 한때 1만명의 소작인을 두고 ‘관동제일가’를 자처하던 강릉 선교장(船橋莊)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전주 이씨 종손의 당숙이다. 선교장의 사랑채이자 문집과 서책을 간행하던 열화당(悅話堂)이 놀이터였다. 군불을 때고, 책 심부름하던 소년이었다. ‘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는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했다. 예전엔 ‘열화당 강릉 1815, 서울 1971’이라고 새긴 명함을 들고 다녔다. 서울서 출판사를 세운 것은 비록 1971년이지만 열화당의 전통은 선교장이 지어진 1815년부터라는 자부심의 발로였다. 1996년 바르셀로나 국제출판협회(IPA) 총회 때 100년 넘은 유서 깊은 출판사에 기념패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에 1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출판사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확인소동이 벌어졌다. 얼마 전 열화당 출판사 신관 도서관건물에 개인생활공간을 지으면서 선교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인 활래정(活來亭)의 개념을 부활시켰다. 그가 강릉에 가면 묵는 정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감실(龕室)도 만들었다. 신위(神位)나 불상, 초상, 성체(聖體)를 모시는 종교적 장소다. 모친의 사진과 오늘의 이기웅과 열화당을 있게 한 스승들을 모실 생각이다. 그는 선교장의 ‘문화적 유전자’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후손이다. 하지만 친탁과 외탁의 비율을 처음엔 ‘7대3’이라고 했다가 곧바로 ‘6대4’로 정정했다. 모계 혈통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됐다. 그는 “율곡 이이 선생을 닮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본(율곡은 덕수 이씨)도 다르고 500년 가까운 세월 차에도 불구하고 강릉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활동했으며, 말년에 파주에 정착해 생을 정리하는 것이 율곡의 삶의 궤적과 동일하다. 결코 우연은 아닌 듯싶다. ●약력 ▲강릉 출생(1940년) ▲강릉상고,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일지사 입사 ▲열화당 설립(1971년) ▲서울 올림픽조직위 전문위원 ▲서울예술대학 강사 ▲출판저널 창간편집인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수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출판학회상 ▲백상출판문화상 ▲중앙언론문화상 ▲가톨릭 매스컴 대상 ▲인촌상 ●주요 출판·저술 미술문고, 미술선서, 한국의 굿, 한국의 고궁, 한국의 탈놀이, 교양한국문화사,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열화당미술문고, 영상원 총서, 경주 남산, 서원,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 몽골의 암각화,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 의리를 지킨 소
  • [서울광장] ‘權不五年’의 망각/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權不五年’의 망각/이목희 논설위원

    김대중 정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권력의 2인자’였던 박지원 의원이 한 상갓집을 찾았다. 취기가 적당히 오른 한나라당 인사가 시비를 걸어 왔다. “정권 끝나고 감옥 가기 싫으면 똑바로 하쇼!” 박 의원은 여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런 꼴을 얼마나 봤는데….” 단단히 대비하고 있으니 염려 말라고 했다. 얼마 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다른 자리에서 만난 박 의원은 표정이 좋았다. “정권 재창출까지 했으니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겠구나.”라는 분위기였다. 영리한 박 의원은 권좌에서 물러났을 때를 대비했을 것이다. 그랬던 박 의원도 차가운 감방살이를 피하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 인사들은 정권 초부터 고초를 겪었다. 대선자금 수사와 건평씨를 비롯한 대통령 친인척·측근 인사의 구설수. 당시 실세 중 한 명이 큰소리를 쳤다. “우린 끝이 좋을 거요. 김영삼·김대중 정권이 비리로 말년에 곤욕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김현철씨, 박지원씨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더구나 정권 초에 이렇게 힘든 시련을 겪었는데….” 참여정부 인사 가운데서도 이광재 의원은 깨끗한 척했던 이였다. 비싸지 않은 밥집을 애용하고, 양주보다는 소주폭탄주를 즐겼다. 여러 차례 비리의혹 수사를 비켜간 것은 나름대로 치밀한 관리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의원은 ‘박연차 수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제는 이 의원 차원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리 몸통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참여정부 인사들의 장담은 헛말이 되었다. 알면서도 실천을 못했으니 우둔해서인가, 정치적 치매인가. 대통령직선제 도입 후 정권이 5년마다 바뀌고 있다. ‘권불오년(權不五年)’의 교훈은 어린 학생들도 안다. 그럼에도 비리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김영삼 정권에서 청와대를 취재하면서 왜 비리가 발생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느꼈던 적이 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99% 부패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김현철씨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청와대 수석과 내각, 안기부(지금의 국정원)까지 모두 현철씨 인맥이 장악했다. 정권 초 김덕룡·한완상씨가 현철씨를 외국으로 보내자는 건의를 했다가 혼쭐이 났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 대부분을 현철씨 인맥이 생산하니 도무지 견제 받을 틈이 없었다. 김광일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현철씨를 비판하다가 도청까지 당하는 처지에 몰렸다. 권력자들의 비리 반복은 개인이 스스로 조심해서 근절될 일은 아닌 듯싶다. 공직 인사와 정부 정책에 개입하려는 유혹은 너무나 강하다. 월권을 하게 되면 돈의 유혹 또한 뿌리치기 힘든 지경에 이른다. 복수의 통로로 권력 주변인물을 살피는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친인척·측근 관리팀을 여러 곳에 만들어 크로스 체크를 함으로써 대통령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옥상옥 소리를 듣더라도 강력한 수사권을 가진 공직비리조사처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철저하게 견제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제2의 노건평, 제3의 이광재는 도처에서 나온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와 혜안이다. 누구라도 비리가 드러나면 싱가포르의 리콴유처럼 이를 악물고 처단해야 한다. 리콴유는 단돈 10만원을 받은 공무원을 처벌했다. 뇌물 수수 의혹을 받은 오랜 동지가 “한 번만 봐달라.”고 매달렸지만 뿌리쳤다. 친구가 자살함으로써 리콴유는 우정을 잃었지만 청렴을 얻었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문화행사 알림방]

    ■2기 입주작가 16명 전시회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기 입주작가 16명이 1년간 작업한 작품 100여점을 ‘사이, 차이‘라는 주제로 27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전시회를 갖는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회화, 설치, 조각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창작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작가들의 작품설명회와 저렴한 가격에 작품 구입이 가능한 아트마켓도 마련된다. 043-299-2161. ■‘한국미술의 변천’ 무료 특강 ●국립전주박물관 28일 오후 2~4시 안휘준 문화재위원장을 초청해 ‘한국미술의 변천’을 주제로 무료 특별 강좌를 갖는다. 신청순으로 250명을 접수한다. 063-281-2386. ■해설이 있는 판소리 500회 ●전주전통문화센터 27일 오후 7시30분 박계향(70) 명창을 초청, 해설이 있는 판소리 500회 특별공연을 개최한다. 박 명창은 1983년 전국판소리명창대회 최우수상과 1987년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장원, 199 8년 예술총연합회 예술문화상 공로상을 받았다. 063-280-7042. ■27일부터 고암 산수풍경 ●대전 이응노미술관 27일부터 6월14일까지 ‘고암 이응노의 산수풍경전’을 연다. 고암의 초기작에서 말년작까지 모두 36점이 전시된다. 관람료는 어른과 어린이 모두 500원이다. 042-602-3270. ■뮤지컬 ‘위대한 유산’ 공연 ●광산문화예술회관 27일 오후 3시와 6시30분 두 차례에 걸쳐 창작뮤지컬 ‘위대한 유산’을 공연한다. 이 작품은 광주 광산구와 호남대가 관학협력 문화 프로젝트로 마련했다. 4남매가 현실적 문제로 겪는 갈등을 사랑과 화합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으며, 가족의 소중함과 불변의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 ‘수색대 전역’ 김태우 “병역기피? 피할 수 없다면…” (일문일답)

    ‘수색대 전역’ 김태우 “병역기피? 피할 수 없다면…” (일문일답)

    그룹 god 출신 가수 김태우(28)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25일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위치한 27사단 이기자부대 수색대대에서 현역병으로 복무한 김태우는 마중 나온 200여명 팬들과 취재진들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전역을 신고했다. 특히 김태우는 연예병사의 특혜를 마다하고 최전방에 자원, 이후 수색대대에서 각종 훈련을 성실하게 완수한 것으로 알려져 여타 연예인보다 더욱 따뜻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김태우와 군생활을 함께 50여명의 병사들은 그의 마지막 길이 아쉬운 듯 일일히 가슴을 맞대고 진한 포옹을 나누며 그를 높이 들어올려 헹가레를 하는 등 뜨거운 전우애를 나눴다. 취재진 앞에 선 김태우는 “병장 김태우! 2009년 2월 25일 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전역을 고했다. [전역 직후 가진 김태우와의 일문일답] ▶ 지금 소감이 어떤가? 마치 학교를 졸업한 기분이다. 특별히 잘난 것도, 잘한 것도 없고 그저 열심히 했던 것 뿐인데 여러 지휘관 여러분들께서 예쁘게 봐주셔서 큰 상까지 주시고 얼떨떨하다. 다들 감사드린다. ▶ 잠은 푹 잤는가? 전역 전에 말년 휴가로 3일 대기하면서 매일 새벽 2-3시경 잠들었다. 설레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지금 가장 생각나는 것은?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과 자장면 등 기름진 음식들이 먹고싶다. ▶ 군대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이는 누구인가? 팬 여러분이 가장 보고 싶었다. ▶ 군 생활 후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진심어린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사실 똑같은 군생활을 하고 나왔는데 마치 나만 특별한 일을 한 것처럼 비춰질까봐 걱정이 크다. 처음부터 동일하게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단순하게 얘기하면 착해진 것 같다. ▶ 군대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군대는 특이한 집단이다. 사회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모여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등병 때는 모두 이등병으로서의 생각을, 일병은 일병처럼, 상병과 병장은 모두 그때의 계급에 따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정이 드는 것 같다. ▶ 군대에 있으면서 관심을 두었던 여자 아이돌 가수가 있는가? 군대에서 이성을 대할 기회가 없다보니 아무래도 여자 가수들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소녀시대가 큰 힘이 됐다.(웃음) 소녀시대는 같이 있을 때 힘이 되는 그룹인 것 같다. 소녀시대 고마워! ▶ (god 팬들의 상징인) 하늘색 풍선을 다시 본 소감이 어떤가? 마치 하늘로 날아 갈 것 같다.(읏음) ▶ 팬 여러분을 위해 노래 한 소절을 불러 줄 수 있나? 기꺼이 하겠다. 군생활 동안 늘 이 노래를 팬 여러분께 불러 드리고 싶었다. god의 ‘촛불 하나’다. ‘지치고 힘들땐 내게 기대. 언제나 니 곁에 있어 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 줄게.’ ▶ god 형들은 왜 오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는가? 다들 바쁜 것으로 알고 있다. ▶ god 형들 중 누가 제일 면회를 자주 왔는가? 호영이 형이 가장 자주 만나러 왔다. 준형이 형과 계상이 형은 영화 촬영 일정으로 바빴다. 비는 내가 휴가 나갔을 때 직접 만났다. ▶ 군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가? 통제받으면서 생활 한다는 것과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 힘든 군생활에도 불구, 외모가 변치 않은 것 같은데 어떤가? 데뷔 때 부터 외보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한 관리는 없었다. ▶ 연예 사병이 아닌 일반 병사로 자원한 이유가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연예사병이라고 해서 절대 그분들이 편하게 군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대는 어느 곳에서 어느 직무에 있던 다들 똑같이 힘든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수색대에 있었지만 같은 군생활을 했다. ▶ 집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후 군대에서 보급 받은 속옷을 갈아입고 오늘 오후에 있을 콘서트 준비를 하고 싶다. ▶ 오늘 콘서트 계획은 어떻게 진행 된 것인가? 군대에 있는 동안 팬 여러분들이 너무 큰 힘이 되줘서 보답할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다. 물론 무료 콘서트다. 8년동안 가수로 생활하면서 무뚝뚝한 성격 탓에 팬 여러분께 표현을 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제가 받은 사랑의 고마움을 돌려 드리고 싶다. ▶ 무대가 그리웠는가? 무대와 카메라에 2년 동안 굶주려 있었다.(웃음) 그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 ▶ 마지막으로 군생활을 앞둔 또는 함께한 병사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긍정적인 생각의 전환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곳에 와서 절감했던 말 중 하나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였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임하면서 인생 전환의 좋은 계기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군대에 있을 때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이제는 제가 사회에 나가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열심히 앨범 활동에 임하며 그 사랑을 조금씩 보답해 나가겠다. 이기자! 충성! 지난 2007년 3월20일 입대 후 약 2년 만에 군복을 벗은 김태우는 전역 당일인 오늘(25일) 오후 5시 청담아트홀에서 팬들과 첫 만남을 가진 후 미니콘서트를 열어 변치 않은 노래 실력을 과시할 예정이다. 김태우의 소속사 측은 “오는 4월 두 곡을 담은 디지털 싱글에 이어 7월에는 정규 음반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與 포스트 홍준표 경쟁 가시화

    與 포스트 홍준표 경쟁 가시화

    한나라당이 차기 원내대표 선출을 앞두고 후보자 간 경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오는 5월 1년 임기가 끝나지만, 2월 임시국회가 마무리되면 홍 원내대표의 역할이 사실상 종료되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도 요즘 “제대 말년”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차기 원내지도부는 이명박 정권 2년차의 강력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강경 주류가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 많다. 지난 1년간 집권 여당의 원내활동에 대해 자성하고 있는 주류 진영이 향후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결속을 다지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이런 점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4선의 안상수(경기 의왕·과천)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본인도 적극적이다. 안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이 어려울 때 한번 더 희생하라는 권유가 많다.”면서 “다수 의원들이 재출마를 요청해 오면 거절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안 의원은 홍 원내대표 직전 원내대표를 지낸 바 있다. 안 의원은 박희태 대표와 안경률 사무총장이 모두 부산·경남(PK) 출신임을 지적하며,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의 승리로 한나라당이 압승한 만큼 집권 2년차의 원내대표는 수도권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집권 여당에서 같은 의원이 두 차례나 원내대표를 역임하는 것에 대한 역풍도 감지된다. 안 의원이 원내대표로 출마하면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으로는 이종구(서울 강남갑)·정병국(경기 양평·가평) 의원 등이 거론된다. 같은 논리로 수도권 출신의 3선 임태희(경기 성남 분당을) 현 정책위의장도 차기 원내대표로 거론된다. 임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코드 원내대표’로서 당·청 소통을 원활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임 의장은 “지금은 내공을 쌓을 때”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수를 중시하는 국회직의 성격상 ‘3선 원내대표론’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부산 출신의 4선 정의화(부산 중·동) 의원도 주류 쪽에서 거론된다. 정 의원이 거론되는 배경에는 대야 관계를 고려해 온건하고 합리적인 인사가 원내사령탑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정 의원이 출마할 경우 지역과 계파 안배 차원에서 친박 쪽의 수도권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뚝심이 약하다.”는 평가가 단점이다. 이 밖에도 수도권의 4선 황우여(인천 연수) 의원도 물망에 오른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실세 장관 클린턴과 북핵 일괄 타결

    [정종욱 월드포커스] 실세 장관 클린턴과 북핵 일괄 타결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다음 주 한국을 방문한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후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측 최고위 인사다. 그는 다른 장관과는 격이 다르다. 8년 동안 백악관 안주인 노릇을 했을 뿐 아니라 작년 초까지만 해도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삼고초려 제의에 장관직을 수락했지만 그냥 장관이 아니다. 국무부 고위직 인선의 전권을 위임받았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대통령과 직접 전화를 할 수 있는 특권도 갖고 있다. 그가 실세 장관이라는 사실은 최근 크리스토퍼 힐의 이라크 주재 대사 발령으로 입증되었다. 힐 대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 핵 문제를 전담한 국무부의 차관보였다. 6자 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로서 부시 임기 말년에 서둘러 북핵 문제를 봉합해서 점수를 잃었고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오면 공직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 사람을, 그것도 이미 내정된 인사를 밀어내고 힐러리가 요직으로 꼽히는 이라크 대사로 지명한 것이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힐 대사로서는 영전을 앞두고 한국을 고별 방문하는 즐거운 여행길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다룰 클린턴 장관이 가야 할 앞길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최근 북한이 한 말과 행동을 분석해 보면 앞으로 북한이 추구할 전략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 전략의 핵심은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의 양자 협상에 매달리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축하 사절의 파견을 제의하는가 하면 새 정부에 가까운 민간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극진히 대우하고 이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남한에 대해서는 과거 남과 북이 체결한 정치 안보 관련 협정의 무효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강력한 군사 행동을 경고하는 등 노골적인 대결 태세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정부를 상대로 북한이 펼칠 협상 전략의 출발점은 자신이 이제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는 점이다. 워싱턴과 평양이 다룰 안건의 핵심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아니라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이 대등한 입장에서 핵군축회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무기가 없는 한국이나 일본은 이 협상에 참석할 수 없다. 6자회담은 계속되지만 북한과 미국의 양자 협상에서 합의된 것을 추인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비핵화의 대상이 한반도 전체이기 때문에 북한뿐 아니라 남한에서도 핵무기의 존재 여부를 성역 없이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물론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도 검증의 대상이다. 경수로 건설도 다시 내걸기 시작했다. 경수로 건설에 적어도 7년 이상이 걸린다고 보면 북핵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내에 마무리짓기 어렵다는 계산도 나온다. 이런 주장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북한이 이런 주장들을 했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내놓는 속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핵개발이든, 핵무기이든 그것이 해결되고 북한이 반사 이익을 챙기려면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과연 북한이 적어도 7년 이상이나 버틸 정치적 경제적 여유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북한이 오바마 정부에 전하려는 메시지의 알맹이는 오히려 정치적 일괄 타결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상대가 손을 내밀면 잡을 것이라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취임 일성도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런 상황이 닥쳐올 수도 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이번 한국 방문에서 북한 문제에 관한 미국의 의도를 파악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도 유익한 일일 것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정조 ‘政敵’과 서신정치… 독살설 희박

    정조 ‘政敵’과 서신정치… 독살설 희박

    조선 22대 국왕 정조(1752~1800년)가 재위 말년에 막후에서 은밀한 통치행위를 벌였음을 보여주는 친필 어찰 6첩 299통이 발굴됐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은 9일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의 종합 검토’ 학술대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조가 예조판서와 우의정으로 있던 노론 벽파(僻派)의 거두 심환지(1730~1802년)에게 보낸 비밀편지의 일부를 공개했다.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보낸 이 편지들은 개인이 소장해 오던 것으로, 1년동안 탈초(정자체로 풀어쓰기)와 번역을 거쳤다. ●현안 있을 때마다 의견 조율 임형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은 “조선조 국왕의 어찰로는 가장 많은 분량인 데다 정조가 심환지 한 사람에게 보낸 비밀편지라는 점에서 정조 말년 정국 동향의 비밀스러운 전개과정은 물론 인간적인 면모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획기적인 사료”라고 평가했다. 정조는 어찰이 공개될 때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편지를 없앨 것을 지시했으나 심환지는 어찰을 받은 날짜와 시간, 장소를 꼼꼼히 기록해 보관해 왔다. 편지에 따르면 정조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내 의견을 조율하고, 지시를 내렸다. 노론 벽파인 심환지가 정조와 날카롭게 대립했다는 통념을 깨는 한편 어진 선비형으로 알려진 정조가 막후 정치에 능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조가 1798년 7월14일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한 뒤 8월28일 우의정으로 발탁하기에 앞서 금강산으로 ‘피신여행’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정조와 심환지는 수많은 비밀편지를 교환하며 미리 상의했다. 심환지가 우의정으로 있으면서 여러번 사직상소를 올린 것도 정조의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선 정조와 심환지(노론벽파)의 대립을 쉽게 얘기하지만 1795년 화성 축조 이후 정조가 노론벽파를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인정해 본격적으로 등용했음을 보여준다.”면서 “당대 벽파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앞으로 학계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정조는 남인계 거두 채제공(1720~1799년)과도 비밀편지를 주고받았음이 최근 밝혀졌다. 이는 정조가 노론과 소론, 남인, 시파와 벽파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당파를 초월해 어찰을 통한 정치를 꾀했음을 보여준다. ●수차례 건강이상 언급 이번 편지 발굴로 정조 독살설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정조는 사망 13일 전인 1800년 6월15일에 심환지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서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고 호소한 것을 비롯해 수차례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토로했다. 소장자는 조만간 원본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 기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인본은 내달 중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간행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용산사망자 아들 “아버지가 테러범?” 아직도 동네 목욕탕에선… 9급 공채에 30대가 몰린다 현인택 ‘동문서답’ 청문회 화왕산 억새 태우다 4명 사망 고3 시기별 수능 전략 제주女교사,1~2일전 살아있었다
  • 남도 겨울여행 지금이 딱이에요

    남도 겨울여행 지금이 딱이에요

    고즈넉한 남도 겨울 바닷가의 정취, 고려청자와 한국화의 운치, 그리고 소설속의 장면들…. 토요일마다 강진과 진도에서 열리는 고려청자와 미술품 경매장은 물론 보성과 장흥에 산재한 문학탐방 길에 ‘노루꼬리만한’ 짧은 겨울해를 탓할 만큼 방문객이 늘고 있다. ●청자박물관과 운림산방의 경매기행 강진군 대구면 청자박물관의 청자경매장. 관요(강진군에서 운영하는 가마)와 민간요에서 빚어낸 청자 작품들이 경매품으로 등장한다. 경매는 정상가의 50%선에서 시초가로 출발, 최고액을 부른 호가자에게 낙찰되는 방식이다. 얼마 전 재미동포(대학교수)와 함께 청자경매장을 찾은 김남수(46·회사원·서울 중구)씨는 “125만원에 청자 도자기 1점을 낙찰받아 지인에게 선물했더니 감격하더라.”고 말했다. 경매장 주변에는 무위사 극락보전의 흑벽에 채색된 후불벽화(1476년)를 비롯해 백련사 동백림, 마량항 토요음악회, 영랑생가,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이 있다.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만덕산 자락에는 다산초당 유적지가 산재한다.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운림산방에서는 한국화 등 미술품이 경매된다. 첨찰산 난대림에 자리한 운림산방은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유가 말년에 살던 곳이다. 미술품 경매는 2년여 만에 800여점(1억 9000만원)이 낙찰되는 등 호응도가 아주 높다. 지난해 선보인 경매작은 전남도가 출연한 남도예술은행이 한국화·문인화 등 작가 120여명에게 1300여점(3억 7000만원)을 사들인 것이다. 진도는 들노래·만가·잡가 등 살아 있는 민속예술의 보고다. 경매 참가자들은 토요일마다 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민속공연을 본 뒤 일몰이 기가 막힌 세방낙조를 감상하는 일정에 열광한다. 지난해 14만명이 다녀갔다. 또 고려시대 몽골군과의 최후 항쟁지인 용장산성(군내면)과 신비의 바닷길(임회면) 등도 시간내서 볼 만하다. ●벌교·장흥의 문학기행 보성 벌교에 자리한 태백산맥문학관. 지난해 11월 개관 이래 두 달 사이에 2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누린다. 소설 ‘태백산맥’은 700만부 넘게 팔린 작품. 벌교읍내에는 작가 조정래씨의 생가는 물론 작품 속의 현부자집, 소화다리, 홍교 등이 그대로 보존돼 역사를 말한다. 요즘 제철을 맞은 벌교 참꼬막으로 시장기를 달래는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또 득량만에 이어진 장흥은 걸출한 문인들의 고향이다. 회진포구를 사이에 두고 고 이청준(서편제·당신들의 천국)은 회진면 진목리에서, 한승원(포구·해변의 길손)은 회진면 신덕리에서 태어났다.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 송기숙(녹두장군·암태도)은 이웃한 용산면 포곡리 출신이다. 한씨는 안양면 율산마을 바닷가에 ‘해산토굴’이란 집을 짓고 글을 다듬는다. 글 사진 강진·장흥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익산 미륵사지 유물 출토] 설화 의존 미륵사·석탑 ‘역사의 영역’으로

    [익산 미륵사지 유물 출토] 설화 의존 미륵사·석탑 ‘역사의 영역’으로

    백제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는 백제사의 비밀을 한 몸에 품고 있었다. 설화의 영역에 머물렀던 미륵사 창건의 역사는 19일 공개된 미륵사터 석탑의 금제 사리봉안기로 단숨에 명백한 역사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졌다. 그동안 미륵사의 창건 주체는 ‘삼국유사’에 따라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창건 시기 역시 백제 무왕의 재위 기간이라는 것 정도일 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었다. 사리봉안기는 설화의 부정확성과 창건 시기의 혼돈을 한꺼번에 바로잡은 것이다. 나아가 사리봉안기는 다른 문헌 기록과의 비교 검토 작업을 통해 앞으로 백제사, 백제문화의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게 됐다. 하지만 사리봉안기가 나왔다고 해서 삼국유사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삼국유사는 ‘서동요’에서 서동(백제 무왕)이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를 만났다는 사실을 기록했고, ‘백제 무왕의 왕비가 미륵사를 베풀었다.’고 기록했을 뿐이다. 후대 연구자들이 두 가지를 묶어 미륵사를 선화공주가 창건했다고 해석했고, 이것이 정설로 통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미륵사 석탑의 ‘사리봉안기’에서 ‘우리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善因)을 심어…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라는 대목이 있다. 두 가지 ‘팩트’를 하나의 스토리로 잇는 것이 올바르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학계에서도 그동안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를 단순한 설화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삼국 통일을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이던 백제의 왕과 신라의 왕이 사돈관계를 맺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 첫 번째 의문이었다. 게다가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의 고승 일연(1206~1289)이 삼국통일 이후 수백 년이나 지난 뒤에 썼다는 것도 의심의 뼈대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학계에 가해진 ‘미륵사 사리봉안기 쇼크’는 결코 작지 않은 것 같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사리봉안기 기록에 따라 서동설화는 물론 미륵사 창건 동기도 흔들리게 됐다.”면서 “특히 사리봉안기에 미륵신앙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는 만큼 그동안 무왕이 불교적 세계관에 따라 이상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전륜성왕을 추구했을 것이라는 기존의 연구 결과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판독자에 따라서는 사리봉안기의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는 대목에서 ‘우리 백제 왕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을 ‘백제 왕후와 사택적덕의 딸’로 읽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정확한 해석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기에 서동요의 내용이 실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형국이다. 이도학 교수는 “무왕은 재위기간(600~641)이 길고, 미륵사를 세운 639년은 말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먼저 선화공주와 결혼한 뒤 훗날 사택적덕의 딸을 다시 왕비로 맞아들였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미륵사 사리봉안기로 서동설화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백제 왕의 이야기일 가능성은 희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익산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추사도 극찬한 남종 문인화의 진수

    추사도 극찬한 남종 문인화의 진수

    19세기 후반의 화가 둘을 꼽으라면 천재였으나 세상에 얽매이기를 싫어했던 오원 장승업(1843~97)과 이사람이 간혹 거론된다. 몰락한 양반가의 자손으로 그림 솜씨 하나로 왕을 비롯해 당대의 명사들과 인연을 맺고 몽당 붓 한자루에 의지해 전국을 주유한 노력형 화가 소치 허련(1809~92).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각별하게 사랑하고 아끼던 제자로, 우리나라 전업작가의 효시이자, ‘예향 호남’시대를 연 당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은 소치 허련 탄생 2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2월1일까지 연다. 소치는 시와 글씨, 그림에 능하다 하여 삼절로 불렸지만 김정희의 제자로 분류되면서, 또한 작품의 편차가 심하다는 이유 등으로 평가절하돼 왔다. 이번 전시는 선비의 내면 세계를 표출하는 남종 문인화의 한국적 수용과 확산에 기여한 소치를 한국 미술사에 제대로 자리잡게 하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의 선조인 허대는 임해군의 처조카다.진도로 귀향간 임해군을 따라왔다가 허대는 그곳에 터를 잡게 된다. 한때 왕가와 혼인의 연을 맺을 만큼 명문가였지만, 허련대에서는 몰락한 양반가에 불과했다. 허련은 28세 초의선사에게 그림을 배운다. 초의선사가 그의 재능을 아껴 동갑내기 친구인 한양 사는 김정희에게 허련을 소개하면서 허련의 꿈같은 인연이 시작된다. 조희룡 김수철 이한철 유재소 전기 등 주요 서화가와 교류했다. 1849년(소치 42세)에는 헌종 앞에서 임금의 벼루에 먹을 갈아 그림을 그리고, 수 차례 대궐에 드나들며 왕실 소장 고서화에 대한 품평도 했다. 헌종이 금 300냥을 하사해 한양에 집을 마련하기도 한다. 말년에도 흥선대원군, 민영익, 정만조 등 당대 명사들과도 교분을 쌓았다.그러나 자신을 후원하던 스승과 정치인들이 모두 돌아가자, 생활을 위해 모란을 많이 그려 팔아 ‘허모란’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정약용의 유배지 중 하나인 강진군 대구면 천개산 백적동을 실경산수로 그린 ‘일속산방도’다. 진경산수면서도 문인화처럼 먹을 아주 적게 묻힌 몽당 붓으로 쓱쓱 그렸다. 한번도 일반인에게 공개된 적이 없던 개인 소장품으로 소치가 46세 때 황상에게 그려주고 초의선사가 교정을 보았다. 김정희는 ‘오늘날 이런 작품이 없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대문호’ 해밍웨이 미공개글 3000여편 공개

    ‘대문호’ 해밍웨이 미공개글 3000여편 공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 명작을 남긴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미공개 글 공개가 초읽기에 들어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쿠바의 핑카 비히아 박물관은 반세기 동안 소장해온 헤밍웨이의 글을 디지털화 해 사상 처음으로 공개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쿠바의 헤밍웨이’라는 책을 통해 몇 편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박물관이 소장해온 그의 글이 모두 공개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이 소장하다 공개하기로 결정한 헤밍웨이의 글(문건)은 모두 3000개. 디지털화 작업을 거쳐 1월 5일부터 학자 등에게 공개된다. 박물관은 “45년 전부터 보관해온 것으로 대다수 문서는 보관상태가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표적 문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는 말년을 쿠바 수도 아바나의 외곽에서 보냈다. 그가 살던 저택은 박물관으로 변해 보존되고 있다. 이번에 문건을 공개하기로 한 핑카 비히아 박물관이 바로 생전에 그가 살았던 저택이다. 박물관에는 생전에 헤밍웨이가 멕시코만에서 즐겨 탔다는 요트 등이 전시돼 있다. 핑카 비히아 박물관 관계자는 “미국 사회과학연구회와의 협력으로 문건의 디지털화 작업이 가능했다.”며 “(양국의 합동작업이) 쿠바와 미국의 지식인 간 교류의 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문화마당] 해외동포와 문학교류 넓히는 뜻/김종회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문화마당] 해외동포와 문학교류 넓히는 뜻/김종회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미국 청교도 문학의 대표적 걸작 ‘주홍글씨’를 쓴 너대니얼 호손(1804~1864년)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고독하게 자랐다.지극히 주변머리가 없던 호손은 생활이 궁핍했고 성격이 침울했다.나중에 그가 미국의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의 친구들 덕분이었다. 호손이 보든 대학을 다닐 때 절친한 세 친구가 있었다.첫 번째 친구는 호레이쇼 브리지라는 이름으로 상당한 부호의 아들이었는데,신출내기 호손을 위해 조건 없이 출판비를 부담해 주고 그가 문단에 데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번째 친구는 장편의 서사시 ‘에반젤린’으로 유명한 시인 헨리 롱펠로였다.호손보다 먼저 문단에 자리잡은 그는 친구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책의 서문을 써주고 친구가 이름을 얻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세 번째 친구는 후에 미국의 제14대 대통령이 된 피어스였다.대학시절부터 사교적이고 수완이 좋았던 피어스는 여러 가지로 호손을 도왔으며,말년의 호손은 대통령 피어스의 호의로 영국 리버풀의 영사로 가서 평화로운 집필생활을 하였다.호손은 피어스의 전기를 써 줌으로써 그 신세를 갚았다. 호손이 죽자 형제나 다름없던 친구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전송해 주었다.훌륭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호손의 생애가 복된 것일 수 있었고,세 친구는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의 결실로서 아메리카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문필을 추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 모두는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호화롭게 장식한 거인이요 거장들이다.비록 우리가 그들처럼 시대를 넘어서 인구에 회자될 만한 중량을 갖지 못한 갑남을녀들이라 할지라도,그들이 온 생애를 통해 모범을 보인 우정의 결실을 본받지 못할 까닭은 없다. 이달 초 한 주간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여,한국문학평론가협회와 경희사이버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회 미주동포문학상 시상식 및 문학 강연회 행사를 치렀다.미국 각지에서 수상자인 문인들이 그곳으로 모였다.현지 거주 원로 작가인 신예선 선생을 비롯한 미주 한인 문인들이 얼마나 성의 있게 안내하고 규모 있게 행사를 준비하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는 한국의 평론가들과 미주의 문인들 사이에 쌓인 오랜 교분과 우정이 작용하고 있었다.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일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축복임을 실감한 나들이였다.8만리 태평양을 건너서도,선한 인연에 선한 열매라는 이치는 어김이 없었다. 맨 처음 필자가 LA,뉴욕,샌프란시스코,시카고 등 미주 문단에 발걸음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이었다.아직 40대 중반의 들뜬 혈기와 문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다가간 필자를 이들은 여러 모양의 시각으로,그러나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기실 그 나이는 미주 문단에 나타난 한국 문인으로서는 가장 젊은 편이었다. 필자로서도 최선을 다하여,이들의 문학 현장을 들여다보았다.그리고 이를 한국문학에 잇대어 발표와 출판의 길을 찾고 또 함께 나누었다.그 중 여러분이 매년 4월 경남 하동에서 열리는 이병주국제문학제에 다녀가기도 했다.저 먼 곳 이방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모국어를 잊지 않고 문학이라는 마음의 텃밭을 가꾸어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한국 문단은 이들에게 빚진 자의 심정이어야 옳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해외동포문학전집 24권을 발간하고 문학상을 제정하여 현지를 찾아가 시상하곤 하는 것은,이를테면 그 빚을 갚는 일이며 동시에 양자 간 교류의 통로를 넓혀가는 일이다.지난해 LA의 시상식에 이어 이번에도 그러했거니와,우리는 작은 씨앗을 심고 오히려 풍성한 실과를 수확하는 기쁨을 누렸다. 김종회 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 [15일 TV 하이라이트]

    ●사미인곡(KBS1 오후 11시30분)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 하나로 뭉쳤다.독립영화 창작집단, ‘키노망고스틴’의 4인방 류훈,오영두,장윤정,홍영근씨.지금까지 수십 편에 이르는 영화가 이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지만,이들에겐 못내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다.바로 ‘내 영화’를 만드는 것.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꿈을 확인한 이들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하는데.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한국으로 입양된 러시아 소녀 장수인과 한국인 엄마 김경희 모녀를 만나본다.수인이를 입양하게 된 계기와 수인이에게 듣는 한국 가족과의 첫 만남,한국 엄마와 러시아 엄마의 차이를 들어본다.6개월만에 한국어를 마스터하고 친구들의 고민 상담가로 인기 만점인 수인이의 학교생활도 함께 한다. ●창사47주년 특별기획 에덴의 동쪽(MBC 오후 9시55분) 신태환의 핏줄이 아닌 걸 다행으로 알라던 레베카의 말을 확인하러 명훈은 레베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한다.명훈은 친자 확인을 위해 신태환의 침실에 들어가 머리카락을 줍는다.결과가 나왔다는 원장의 전화에 명훈은 잔뜩 긴장하는데. ●TV로펌 솔로몬(SBS 오후 8시50분) 무능한 남편 강산뿐 아니라 사사건건 괴롭히며 못살게 구는 시어머니 옥순과 시누이 강자로 인해 순정의 시집살이는 항상 고되다.급기야 이들과 다투던 중 유산까지 하게 되고 지독한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한 순정은 결국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과연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지나친 시집살이,이혼 사유가 될까 ●실버퀴즈 노노클럽(EBS 오후 7시50분) 이번 시간에는 신내복지관 부설 애원시니어대학 어르신들과 함께 한다.말년에 새롭게 학창시절을 마음껏 즐기는 어르신들.체계적인 수업과 철저한 성적관리로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고 한다.졸업 후 아쉬워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대학원 코스까지,학구열에 불타는 어르신들의 활기차고 유쾌한 모습을 소개한다. ●세계 세계인<교양학교>(YTN 오전 10시30분) 일본에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전통 요리를 하거나,기모노를 입는 것은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구경하기 힘든 모습이 됐다.평소에 하지 않다보니 기모노를 제대로 입거나,전통 요리법을 아는 사람도 점점 줄고 있다.일본 전통 교양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를 찾아가 본다.
  • 사후 20년만에 돌아온 ‘모더니즘 기수’

    사후 20년만에 돌아온 ‘모더니즘 기수’

    전봉건(1928~1988)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무표정한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형형한 눈빛,앙다문 입,적당히 벗겨진 앞머리와 장발은 격동의 시대를 헤쳐오면서도 고집스럽게 모더니즘의 절대미학을 추구했던 그를 고스란히 얘기해주는 듯했다. 전후 모더니즘의 대표시인 전봉건이 한 권의 책으로 망라됐다. ‘전봉건 시전집’(남진우 엮음,문학동네 펴냄)은 무려 40쪽에 이르는 장시(長詩) ‘춘향연가’와 20편을 잇댄 장시 ‘속의 바다’를 포함해 모두 402편을 담았다.기존에 시집으로 나온 시는 물론,그저 각종 문예잡지 구석구석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전봉건의 자식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전봉건은 분명 서구 모더니즘의 피세례자였다. ‘피아노에 앉은/여자의 두 손에서는/끊임없이/열 마리씩/스무 마리씩/신선한 물고기가/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가장 신나게 시퍼런/파도의 칼날 하나를/집어들었다’(‘피아노’) 중·고 국어시험 단골 출제 문제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시를 비롯해 ‘너’,‘북1’ 등 때로는 만져질 듯 풍성하게,때로는 저릿할 정도로 감각적인 언어와 관능적 서정을 담은 시를 발표하며 비슷한 또래인 김수영,김춘수,김종삼 등과 함께 단숨에 모더니즘 계열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잡았다. 전봉건에게는 평생을 관통해온 기억이 있었다.그는 평남 안주가 고향인 실향민 출신으로 ‘군번 0157584’를 달고 ‘중동부전선’에서 한국전쟁을 직접 치렀다.1950년 1월 ‘문예’지에 서정주와 김영랑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고 불과 몇달 뒤의 일이다. 전쟁은 그에게 죽음과 파괴,상처,생명 등 심미적 감각의 날을 더욱 벼리게 만들었다.장시 ‘춘향연가’에서도 전쟁이 남긴 붉은 피의 이미지는 선연하다. 또한 집안을 가득 채울 정도의 수석(壽石) 애호가로서 남긴 56편의 연작시 ‘돌’에서도 마찬가지다.그는 ‘…나루터 찬물 속에서/삭은 뼈처럼 하얀/돌 하나를 건져냈다’(‘돌1’ 일부)와 같이 전쟁터에서 죽은 동료를 추모한다. 말년에 미완성으로 남긴 59편의 연작시 ‘6·25’는 전쟁의 비극에 대한 애도,죽음과 피에 대한 애도를 더욱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진행한다.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에게 한국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전봉건의 지명도와 시적 성취에 비해 지금까지 연구는 상당히 부족한 형편”이라면서 “전집의 출간을 계기로 아름다움을 갈망해온 존재론적 탐구자인 전봉건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타임지 선정 올해 10대 뉴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버락 오바마의 당선 등을 올해의 10대 뉴스로 선정해 8일(현지시간) 인터넷판을 통해 발표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깨달았을 때 타임은 월가에서 시작돼 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를 ‘하늘의 붕괴’로 표현하며 10대 뉴스의 첫머리로 꼽았다.9월13일 토요일에 흘러나온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위기 소식은 일년내 먹구름이 가시지 않던 경제에 폭풍을 몰고 왔다는 것.그런 점에서 9월13일 토요일은 온갖 우울한 경제뉴스의 범람을 몰고온 시작점이었다는 게 타임의 설명이다. ●그가 해냈다!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될 버락 오바마의 당선에 대해 타임은 “인종적 장벽을 극복한 것은 물론 미국 정치의 세대이동을 가져온 혁명적인 선거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웅장한 여정이었다.”고 평가했다.그리고 이 같은 드라마의 중심에는 영웅적이고 침착하며 라이벌을 압도하고 카리스마를 지닌 ‘그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인질로 잡힌 뭄바이 지난 10년간 종교라는 미명 아래 고통받아 온 대도시 명단에 뉴욕과 런던,마드리드에 이어 뭄바이가 추가됐다. 인도의 금융 중심지이자 영화의 도시인 뭄바이는 사흘 동안 단 10명의 무장괴한들에게 인질로 잡혔다. 타임은 이웃들과 파키스탄인들을 지목하는 지역 정치인들과 보안 관리들의 행태에 대해 “인도 도시들에 대한 공격이 인도내 소수 무슬림집단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간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슬라마바드의 참상 파키스탄은 뭄바이 테러에 대한 인도의 비난을 자신들도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실제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무장단체들은 국경은 물론 파키스탄 중심부까지도 공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타임은 지난 9월20일 6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슬라마바드 메리어트 호텔 테러를 올해의 10대 뉴스로 꼽았다. 타임은 이 밖에도 ●해적이 장악하다(소말리아 해적의 선박 납치) ●코카서스의 전쟁(러시아와 그루지야간 전쟁) ●중국이 멜라민을 뿌리다(멜라민 파동) ●쿠바 아버지의 말년(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2선 후퇴) ●콜롬비아의 대담한 구출(좌익 게릴라에 6년간 인질로 잡혔던 잉그리드 베탕쿠르 전 콜롬비아 대통령 후보의 구출)●자연이 내린 이중 재앙(미얀마의 사이클론 피해와 중국 쓰촨 대지진) 등을 올해의 10대 뉴스로 정의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풍요 속에 깃든 화려한 바로크

    풍요 속에 깃든 화려한 바로크

    명작 동화 ‘플란더스의 개’ 의 주인공 네로가 평생 보고 싶어했던 천재화가 루벤스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물론 네로가 죽기 직전 환상인지,실제인지 모를 상황에서 본 ‘안트베르펜 대성당’의 벽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와 ‘성모승천’ 은 들어있지 않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는 오는 10일부터 내년 3월13일까지 피터 폴 루벤스의 대표적인 유화 19점을 비롯해 그의 동료와 제자들의 작품을 모은 ‘루벤스,바로크 걸작전’을 연다.루벤스말고도 안토니오 반 다이크,얀 반 호이엔 등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한 17세기 북유럽의 대표 작가 46명의 유화 75점이 전시된다.당시 네덜란드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원조격인 ‘튜울립 선물 거품의 붕괴’를 겪었던 나라다.다시 말해 이 작품들은 17세기 국제 금융시장에서 네덜란드의 독보적인 지위를 반영하듯 풍요롭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 작품은 오스트리아 빈 3대 미술관의 하나인 빈 아카데미 뮤지엄 소장품으로,외교관이었던 안톤 람베르크 슈프린첸슈타인 백작이 평생 수집해 기증한 것들이다.미술관이 속해 있는 빈 아카데미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히틀러가 지원했지만 재차 낙방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일화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모네,마네,르느와르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 익숙한 관람객에게 루벤스는 다소 낯설 수도 있겠다.‘빛의 화가’ 렘브란트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한다면 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까.다만 렘브란트가 방탕한 생활 끝에 인생의 중반부터 가난과 몰락의 길을 걸었다면,외교관으로도 활동하며 사업가적 기질까지 발휘하던 루벤스는 초상화 수요가 적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 말년까지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는 차이가 있다. 이같은 인생살이의 차이는 그림에도 그대로 반영됐다.루벤스의 그리스 신화에 모티브를 둔 그림에는 풍요롭고 풍만하다 못해 뚱뚱해 보이는 여성과 남성들이 밝고 화려한 색깔을 배경으로 관능미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여기에 과감하고 복잡한 화면 구도가 살아있는 듯 생동감을 더해 준다.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도자기 표면같이 매끈한 피부 표현이나 정제된 색채를 기대해선 안 된다.서울전 이전에 광주 비엔날레 기간에 광주시립미술관에서 1차 전시를 했다.어른(대학생 포함) 1만 2000원,학생 9000원,미취학생 7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인생의 긴 항로에 ‘명리학’이 숨어있다

    인생의 긴 항로에 ‘명리학’이 숨어있다

     ■ 오늘 이 시간에는 ‘명리학문’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고통스러울 때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이처럼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운(運)이 좋은지,나쁜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이에 따라 명리학(命理學)은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는 유익한 학문의 하나로,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무대 뒤의 학문(學文)이라 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식층으로부터 외면되어 왔었다.하지만 최근 들어 명리학(命理學)이 현대인에게 새롭게 그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학문(學文)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이는 다양하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함에 있어 그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에 따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구청,문화센터,언론사,대학 사회교육원 등 공공기관의 교양강좌를 주도할 수 있는 명리학 엘리트 지도자 양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이는 분명 이론적(理論的)·논리적(論理的) 지식체계와 함께 학문적 원칙을 확립하는 작업인 동시에 제도권안에서도 명리학(命理學) 중심의 세대교체(世代交替)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그동안 우리 사회는 과학이나 다른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그런 관점에서 명리학(命理學)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 인간이란,소우주(小宇宙)이기에 무한무교(無限無敎)의 영역을 보유하고 있다.이와 같이 우주의 공간속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힘의 세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과학이 극도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 학문만 유독 소멸(消滅)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깊이 뿌리 박혀 존재하는 이유는 암흑 속에 쌓인 본지로부터 자기의 운명을 밝혀 주는 등불인 명리학(命理學)이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예부터 명리학(命理學)을 만학(萬壑)의 제왕이라고 칭하여 왔다.그 이유는 본 학문자체가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뜻한다.또한 어떠한 학문과도 연결되는 명리학(命理學)을 연구함으로써 그만큼 박학다식(博學多識)해 진다는데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명리학(命理學)의 본질이 무분별한 난립으로 그 이치가 퇴색되고 있는 현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오해와 편견으로 정립된 명리학(命理學)을 통해 재조명하기 위해 옛 문헌을 정리는 물론 끊임없는 학습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그 깊이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학문이다 보니 연일 공부를 거듭해야 함에 있어 어렵겠지만,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책이란 글로 이루어졌고 글이 나오기 전에는 대자연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옛 선인들은 대자연을 먼저 이해하고 글을 표현했으나 후학들은 대자연을 파악하지 못한 채 글을 쓰고 있다. 대자연을 표현하지 못한 글은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그렇다고 해서 고전적 이론에만 치우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적용해서는 맞지 않는다.    고전이론을 타파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고전적 이론을 10년 이상 공부하고도 자신의 사주팔자(四柱八字)조차도 분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이제 명리학(命理學)이 미신이라는 불신과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고전이론을 토대로 보다 과학적인 학문으로서 명리학(命理學)을 더욱 연구·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을 명심하자.    명리학(命理學)의 기원은 출생이 일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신비로운 진리를 밝힌다는 데서 시작되며,이미 3천년 전부터 행하여져 왔음이 문헌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이를 통해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의 생애에 있어서 출생이라는 것이 가장 우연적인 사실이며,이 우연에 의해 어떻게 필연적인 인생행로가 전개되어 나가는가에 대한 규명을 위해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를 원용하며 학문적인 체계를 이룩해 왔다.    우리나라의 사주명리(四柱命理)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보다 한참 후인 조선조에 들어와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확인할 수 있다.제도상으로는 태조 원년인 1392년부터이지만 과거제도의 잡과(雜科)에 음양과(陰陽科)가 편성되면서부터이다.초기에는 문신,후기에는 기술관이 훈도(訓導)에 임명되었으며 과거제도의 음양과는 천문학(天文學),지리학(地理學)과 함께 명과학(命課學)을 두어 각 분야별 인재를 등용하는 관문으로 기능했다고 전해진다.    초기에는 문신,후기에는 기술관이 훈도에 임명되었으며 시험은 관상감(觀象監)에서 주관하여 별도로 훈도(訓導)를 두고 생도를 모집하고 명과학(命課學)의 인재를 양성하였다.이들이 시험을 치르거나 배워야 하는 과목으로는 원천강(袁天綱) · 서자평(徐子平) · 응천가(應天歌) · 범위수(範圍數) · 극택통서(剋擇通書) · 삼진통재(三辰通載) · 대정수(大定數) · 육임(六任) · 오행정기(五行精記) · 자미수(紫微數) · 현여자평(玄輿子平) · 난대묘선(蘭臺妙選) · 성명총화(星命摠話) ·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으로 1차 시험인 초시(初試)와 2차 시험인 복시(覆試)로 나뉘어 3년마다 시행되었으며,복시는 예조(禮曹)에서도 함께 주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명리학(命理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누구든 큰 틀의 운명(運命)을 갖고 태어난다.사람들은 그 틀 안에서 수많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때문에 운명을 결정지을 경우의 수는 무한한 셈이다.이런 점에서 보면 명리학(命理學)의 운명론(運命論)적 사고는 인간의 의지를 부정하지만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즉,사람의 운은 90% 이상 정해져 있고,이에 따라 근본적인 운(運)은 변하지 않지만 주어진 운명(運命)에 대해 어떻게 순응하고 개척하느냐,얼마나 자기 인생을 잘 관리하느냐가 일생(一生)의 성패(成敗)를 가름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리학(命理學)의 본질은 개인의 그릇(命)과 운(運)을 보고 ‘때’를 알아 진퇴(進退)시기를 분별하는 데 있다.명(命)과 운(運)은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을 뜻하며,운(運)이란 변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실상은 변하는 이치도 이미 정해진 궤도를 따르는 필연적인 과정일 뿐이라는 얘기다.    명리학(命理學)은 그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듯,그에 따른 의미처럼 죽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오직 살아 숨쉬는 것을 그 대상으로 한다.그래서 명리의 명(命)은 목숨 ‘명’자를 쓰는 이유이다.우리 인간은 실존 즉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이미 목적인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게 되어 있다.그것이 끝이든 새로운 시작이든 우리는 현재의 육신(肉身)으로 그것을 인식 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또한 명리학(命理學)은 사주(四柱)의 여덟 글자를 통해 인간의 명(命)을 나타내는데 사주(四柱)는 그 사람의 초년(初年),중년(中年),말년(末年)의 운(運)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해 표시하고,10년을 단위로 변하는 대운(大運)과 해마다 바뀌는 세운(歲運),그리고 월(月)·일(日)·시(時)의 운(運)을 표시한다.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재를 편히 살 수 있는 것이기에 사주(四柱)에 의거하여 일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판단하는 학문이 명리학인 것이다.이에 따라 명리학(命理學)은 사주학(四柱學)이라 불리기도 하는데,사주(四柱)의 기원은 출생을 가장 중요시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주(四柱)는 그 사람의 조상,부모,형제,배우자,자식의 운(運) 그리고 학문,직업운을 말해 주며 신체의 질병과 요수(夭壽)를 말해 준다.뿐만 아니라 성격과 이성관계,궁합과 택일 등 인생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표시해 준다.개인의 사주,즉 생(生)·연(年)·월(月)·일(日)·시(時)를 중심으로 하여 인간의 운명을 예지하고 대비하려 한 것은 사주(四柱)가 가장 우연한 결과로 인간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또한 연(年)·월(月)·일(日)·시( 時)가 각각 독특한 기(氣)를 띠고 있을뿐만 아니라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    인간의 운명을 사주(四柱)를 통해 관찰이 시작됐고,그것이 점차 학문적 체계를 갖춤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명리학(命理學)을 성립하게된 것이다.이처럼 자연의 이치,우주의 원리,나의 근원으로부터 시작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생극제화로 이루어진 학문(學文)인 명리학(命理學).특히 생명의 태어남과 함께 부모가 주는 가장 큰 선물로,운세에도 좋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조화로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없을 것이다.하늘의 변화와 땅의 신비를 가진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라고 인식하고 음양오행(陰陽五行)에 기초를 둔 학문(學文)으로써 말이다.    명리학(命理學)에 의해 매일 일운(日運)을 보지 않더라도 예감이나 꿈을 통해서도 사고를 예견할 수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고 사고를 당한 후에야 비로소 인정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命理學)인 것이다.이는 사건을 예지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긴 항로를 갖가지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전자를 근거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이를 미리 알고 적절하게 대처해 나가는 사람이다.악재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미리 알고 대처하면 대길(大吉)한 사주(四柱)를 가지고도 이를 알지 못하여 기회를 놓치고 운(運)을 잡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윤택하고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명리학(命理學)이 인생의 운(運)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미리 알아 그것에 잘 대처하여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지,결코 정해진 운명(運命)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비관적 운명론(運命論)을 주지시키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누구를 막론하고 명리학문(命理學文)을 배움으로써 자아발전(自我發展)은 물론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명리학(命理學)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 도움말-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교육원/명리학과 노재환 교수  
  • 샤갈·마티스와 천국의 문열다

    샤갈·마티스와 천국의 문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22일 개막해 120일동안 열리는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특별전’의 부제는 ‘화가들의 천국’이지만,전시를 보면 관객들에게도 천국에 들어선 심정일 것 같다.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조차 개막식에서 “샤갈,마티스,미로,레제,칸딘스키,피카소 등 미술 교과서에서나 봤던 20세기 최고 작가들의 최전성기 초대형 작품들을 볼 수 있다.”며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할 정도니까 말이다.유 관장은 지난해 퐁피두센터와 전시와 관련해 전시 작품을 협상할 때 마티스,샤갈,미로는 꼭 가져와서 한국에 전시를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고 했다.그리고 실제로 해냈다.알랭스방 퐁피두센터 대표도 이날 “퐁피두 전시회가 전세계에서 많이 열렸지만,이렇게 많은 대표작이 해외로 유출된 것은 한국전시가 처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우선 2층 전시관 앞의 실커튼에 전사돼 있는 니콜라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을 손으로 헤치면서 화가들의 천국에 입장하게 된다.16세기 유럽에서 지상낙원,유토피아라는 의미로 사용된 아르카디아는 서양 인문·예술 전반에 걸쳐 오랜 세월 영감의 원천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끊임없이 재생돼온 소재다.즉,그 소재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에 이르는 광범위한 장소로서,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2층 전시관은 황금시대,쾌락 등으로 구성돼 있다.이곳에선 피카소의 ‘누워 있는 여인’,앙리 마티스의 ‘붉은 색 실내’와 같은 명작을 만날 수 있다.맨 마지막 전시는 지우세페 페노네의 ‘그늘을 들이마시다’.넓은 방 가득히 월계수 이파리가 철망 가득 도배를 하고 있는 설치미술이다.월계수 향이 가득한 러시아식 야채 수프를 마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3층은 더 신난다.‘여가’ 등 레제의 작품 다수와 칸딘스키의 ‘파랑을 향해서’,샤갈의 ‘무지개’,마티스의 ‘폴로네시아’연작인 하늘·바다가 기다린다.야수파인 마티스가 말년에 종이오리기에 취미를 붙이고 페인팅 대신 콜라주를 즐겼다고 알고 있었지만,그 크기가 가로 3m의 대작인 줄은 미처 몰랐다.3층 전시관을 나갈쯤 A4용지 사이즈의 달력 그림으로 흔히 봐오던 호안 미로의 ‘블루Ⅱ’ 와도 마주친다.진품은 가로 355cm,세로 270cm의 대작.크기가 주는 감동이 ‘만땅’이다.  별볼일 없는 작품을 내걸고 바다 건너왔다고 감언이설하는 전시가 아니다.좋은 작가들의 좋은 작품이 가슴을 쿵쿵쿵 뛰게 한다.관람객에 떠밀려서 겨우겨우 작품을 보게 된다면,인내심을 가지고 두 바퀴 세 바퀴 다시 돌아봐도 좋겠다.내년 3월22일까지.관람료 어른 1만 2000원,청소년 9000원,어린이 7000원.(02)2124-8938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핫리우드] 할리우드 스타들, 비극의 가족사는?

    리얼리티 쇼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으로 비욘세. 에디 머피 등이 출연한 영화 ‘드림걸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제니퍼 허드슨의 비극이 최근 할리우드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제니퍼 허드슨의 어머니 다넬 도너슨과 오빠 제이슨이 시카고 남부의 자택에서 총에 맞은 변사체로 발견된 데 이어 실종됐던 조카 줄리언 킹 역시 한 차량 뒷자석에서 여러 군데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경찰은 “허드슨가의 비극이 가족 사이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용의자로는 제니퍼의 자매인 줄리아의 전 남편 윌리엄 발포어가 지목됐다. 아마추어 가수 지망생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거물 스타’가 됐지만 제니퍼 허드슨은 현재 견딜 수 없는 가족의 비극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대중들의 이목을 끌 만한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매스컴을 장식하지만 이처럼 안타까운 가족의 비극사가 발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동안 비극의 가족사를 경험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례를 모아봤다. ◆로만 폴란스키의 비극 2002년 칸 영화제에서 ‘피아니스트’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명감독 로만 폴란스키에게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파렴치한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1977년 당시 13세에 불과하던 미성년자 모델과 맺은 성관계로 강간혐의가 적용돼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도피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렴치한’같은 그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관계자들이나 대중들도 적지 않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내가 잔인한 살인마 집단에게 너무도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1968년 오컬트 무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악마의 씨’를 통해 로만 폴란스키는 더욱 주목을 받게 됐지만 이듬해 여배우 출신의 아내 샤론 테이트가 현재까지 미국에서 희대의 살인마로 꼽히는 찰스 맨슨 일당에게 칼로 난자를 당하고 살해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찰스 맨슨이 노린 이는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가 아니라 명가수 도리스 데이의 아들인 음악 프로듀서 텔리 멜커였다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자신을 뮤지션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텔리 멜커에게 앙심을 품고 집을 습격했지만 그는 이미 이사를 갔고 그 집에 로만 폴란스키 부부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유럽으로 출장 중이던 로만 폴란스키는 화를 면했지만 임신 8개월이던 그의 아내는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로만 폴란스키는 평생 고통스러운 기억을 짊어진 채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말론 브란도의 쓰디쓴 말년 수 많은 명배우가 탄생한 할리우드에서도 최고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스타는 누굴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등 거장과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이 최고의 배우라고 추천하는 주인공이 바로 말론 브란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워터 프론트’.‘대부’. ‘지옥의 묵시록’등 숱한 명작들에서 선보인 연기는 할리우드의 많은 별 중에서도 단연 빛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더없이 불행했다. 비극적인 가족사 때문이다. 첫 아내에게서 태어난 아들 크리스천은 1990년 이복 여동생의 남자친구를 살해했다. 남자친구가 자신의 여동생을 괴롭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고로 말론 브란도는 수시로 아들의 법정에 불려다니며 파파라치의 표적이 됐으며 아들은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오빠에 의해 남자친구가 살해당한 충격을 견디지 못한 그의 딸이 1995년.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배우로서 누구보다 큰 족적을 남긴 말론 브란도이지만 가정사에서는 더욱 큰 시련을 겪으며 쓰디쓴 말년을 보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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