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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는 내 사랑] ⑤ 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

    [만화는 내 사랑] ⑤ 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

    “어렸을 때 본 만화들에 대한 추억과 감동이 정신적인 토양이 되지 않았을까요?” 원혜영(61) 민주통합당 의원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은 6·25전쟁 뒤 우리 만화가 짧은 부흥기를 이뤘을 때다. 그는 경기 부천 읍내에서도 십리는 떨어진 촌에 살았다. 없는 살림에 읍내 만화방까지 갈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다만 여름과 겨울방학 때는 신 나게 만화책을 뒤적일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 있는 외갓집에 놀러가면 사촌들을 따라가 2~3일은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최고 인기는 ‘라이파이’였어요. 하지만 전 눈물 흘릴 정도로 가슴 뭉클한 작품이 더 좋았어요. 박기정 작가 작품이 그랬던 것 같아요.” 1981년 풀무원을 창업한 뒤 전국 곳곳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기차역 부근의 만화방에 갈 기회가 많아졌다. 당시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고행석 작가의 ‘불청객’ 시리즈.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들이 푹 빠져 있던 만화 잡지 ‘보물섬’을 함께 읽곤 했다. “고행석 작품은 파격적이었어요. 정말 독특하고 독창적이었죠. 하지만 나중에는 작품의 질이 점점 떨어졌죠. 아마 대량 생산 탓이었던 것 같아요. 무척 아쉬웠죠.” 우리 만화와 가장 큰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8년에 부천시장으로 취임하면서다.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를 설립해 우리 만화의 발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부천을 만화로 특화된 문화 도시로 성장시켰다.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만화를 비장의 카드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온리 원, 퍼스트 원’을 이룰 수 있는 키워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화는 우리 정서에 큰 영향을 주고 친숙한데도 국가나 지방 정부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었죠. 시 차원에서 시작했던 센터가 국가 차원으로 확대 발전해 자랑스럽고 보람을 느껴요.” 단순하게 도로를 넓히고 건물을 짓는 것에서 벗어나 문화 분야까지 지방행정 영역을 넓히고, 만화가 정당하게 평가되고 대접 받는 데 기틀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국회로 돌아온 뒤에도 지난해 만화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공동 발의하는 등 만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동안 만화가 사회 역할과 영향에 견줘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많았습니다. 만화 진흥법은 만화가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죠.” 솔직히 요즘엔 만화를 자주 접하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온라인 만화, 웹툰은 따라잡기 힘들다면서 웃었다. 그래도 볼 만한 작품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양귀자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원미동 사람들’과 웹툰 ‘모든 걸 걸었어’를 꼽았다. 모두 부천과 관련 있는 작품이다. ‘원미동 사람들’은 부천을 무대로 도시 서민의 애환을 그렸고 ‘모든 걸 걸었어’는 대기업이 손을 놓은 뒤 시민들의 힘으로 결성한 부천FC1995 축구팀을 모델로 삼은 작품이다. 19대 총선에서 당선돼 4선 의원이 됐다. 국회 상임위를 문화 쪽으로 선택해 만화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어떻겠냐고 질문을 던졌다. 슬며시 미소를 짓더니 18대 국회에 이어 통일·외교 쪽을 지망하고 있지만 만화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화는 그야말로 세계 공통 언어 아닐까요. 내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공감하는 데 효과가 있는 문화입니다. 외교 분야에서도 만화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리나라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⑥ 웹툰을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⑥ 웹툰을 말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만화는 웹툰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국내 만화계의 위기 상황에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이야기와 그림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던 것은 옛말이다. 현재 500여명에 이르는 웹툰 작가들은 저마다 다른 매력과 개성을 뽐내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 만화의 미래를 담보할 것이라는 장밋빛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웹툰은 정보기술(IT) 인프라와 만화가 결합한 우리의 특산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힘입어 성장했고 지금도 의존도가 너무 높다 보니 미래의 청사진도 그 울타리 안에 묶여 있는 형국이다. 웹툰의 역사는 10여년에 불과하다. 2000년 즈음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개인 홈페이지나 커뮤니티에 올리던 일기체 만화를 출발점으로 본다. 이러한 작품들이 인터넷상에서 호응을 얻자 여러 아마추어 작가들이 비슷한 시도를 하며 흐름을 형성했다. 이에 주목한 포털들이 계약을 맺고 웹툰을 정식으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셉트로 무장한 웹툰이 포털의 확장성과 결합해 시너지를 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포털 연재 작품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현재 웹툰의 양대 산맥인 네이버와 다음에서 연재 중인 작품은 각각 140여편, 60여편에 이른다. 양적인 성장만 한 것은 아니다. 초창기와는 달리 치밀한 이야기와 세밀한 그림체를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작품도 등장했다. 또 개그, 일기체 위주에서 탈피해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이 쏟아지고 있다. 편집자의 개입이 적어 작가들이 보다 자유롭게 발상하고 작가와 독자가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상황이 큰 역할을 했다. 나아가 웹툰은 문화이자 생활이 됐다. ‘엄친아’ ‘차도남’ 등 웹툰에 등장했던 단어들이 유행어가 되는 것은 일상다반사. 인터넷 실시간 검색 순위에 웹툰 내용이나 작가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사람들은 주 1~2회 요일별로 포털에 올라오는 웹툰들을 TV 드라마 보듯 손꼽아 기다린다.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가 보급되며 출퇴근 시간도 웹툰을 즐기는 시간대가 됐다. 주 소비층은 20~30대로 파악되고 있지만 40~50대가 보는 경우도 많다. 평소 만화에 관심이 없었거나 만화에서 멀어졌던 사람들도 웹툰에 빠진 셈이다. 도대체 웹툰을 얼마나 많이 보는 것일까. 네이버 웹툰의 경우 코리안클릭 기준으로 지난 4월 순방문자수(UV)가 708만명, 페이지뷰(PV)는 9억 1804만건에 달했다. 웹툰 접속이 절정을 이뤘던 지난해 8월에는 각각 951만명, 11억 7497만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PC 이용자만 대상으로 한 통계치다. 모바일 기기 이용자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약 1400만명이 자사 웹툰에 접속하는 것으로 네이버는 보고 있다. 국내 인터넷 사용 인구 3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다. 여기에 다음 등 다른 포털까지 더하면 규모는 한층 커진다. 다음 웹툰은 한 달에 UV 410만명, PV 6억 3000여건을 기록 중이다. 역시 모바일은 제외한 수치다. “웹툰이 급성장한 것은 기본적으로 공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콘텐츠로서의 장점이 있어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감정이입이 가능한 캐릭터와 다음 회 내용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 독자와 팬을 만들 수 있었다.”(권혁주 웹툰 작가)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지만 웹툰의 산업 규모나 파급 효과가 연구된 바는 없다. 웹툰이 1차적으로 무료 소비되는 탓이 크다. 웹툰의 무한한 가능성은 원천 콘텐츠로서의 위상에서 가늠할 수 있다. 인기 작품들이 출판 만화로 변신하는 것은 기본. 드라마, 영화, 뮤지컬, 연극, 게임, 캐릭터 등 다른 분야로 옮겨지는 작품이 줄을 잇고 있다. 웹툰계 최고 스타로 꼽히는 강풀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순정만화’ ‘아파트’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이 영화나 연극,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일각에서는 웹툰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만화 단행본 시장을 뛰어넘어 이미 1000억원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웹툰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여름 호랑의 ‘봉천동 귀신’이 국내 게재 이튿날 미국 만화 사이트에 번역 게재되며 반향을 일으켰다. 손재호·이광수의 ‘노블레스’나 지강민의 ‘와라 편의점’ 등은 해외 네티즌의 자체 번역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만화적인 재미와 경쟁력을 갖췄다는 이야기다. “웹툰이 다양한 플랫폼에 빠르게 적응한 만큼 어떤 기기나 환경에서도 그 영향력이 줄지 않고 대한민국 대표 콘텐츠로 성장할 것으로 믿고 있다.”(박정서 다음 웹툰 PD) 웹툰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포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유통·소비 구조는 웹툰에 양날의 검이다. 웹툰은 자체 수익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고료를 받고 포털에 작품을 연재하고 포털은 공짜로 독자들에게 웹툰을 제공한다. 포털은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며 내부에 트래픽을 가두고 광고를 파는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 현재 웹툰은 포털 서비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킬러 콘텐츠이지만 포털이 웹툰 대신 다른 콘텐츠에 투자하는 상황이 온다면 웹툰에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웹툰 작가들의 창작 환경이 안정적이지 못한 점도 문제다. 출판 인세나 영화 판권 등 2차 저작권 수입은 일부 스타 작가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대부분은 포털에서 받는 고료에만 의존하고 있다. 신인 작가들은 한달에 100만~15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기를 얻으면 당연히 고료가 올라가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웹툰은 독자에게 직접 평가를 받으며 성장하는 구조인데 하루에도 수십명씩 정식 작가에 도전하는 등 진입 장벽이 매우 낮다. 그래서 웹툰 작가의 기본적인 복지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웹툰 유료화에 대한 바람도 만만치 않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웹툰 내 간접 광고나 중간 광고 등 수익 모델이 개발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웹툰 외 다른 분야를 살려 만화 시장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또 웹툰이 산업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창작자가 그에 걸맞은 대가를 받고 있는지 객관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포털은 독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작품이라도 다양성 차원에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웹툰이라면 지원해줘야 한다.”(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4) 이효재 한복디자이너

    [만화는 내 사랑] (4) 이효재 한복디자이너

    “여자들은 대개 예쁜 옷, 예쁜 보석, 예쁜 가방을 갖고 싶어 하잖아요. 모든 사물에 ‘예쁜’이라는 말을 차례로 붙인다면 1순위는 바로 만화예요. 밤하늘의 밝은 별과 맑은 보름달, 낮에 나온 반달은 볼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잖아요. 제가 볼 수도 있고 가질 수 있는 1순위, 그것도 바로 만화죠.” 서울 성북동 길상사 맞은편 2층집에는 만화방이 하나 있다. 일반에 공개된 곳은 아니지만 내부 공간이나 장서의 규모가 상당한 수준이다.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예술가로 유명한 이효재(54)씨의 만화 서재다. 만화가 좋아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어느새 서재 벽면 천장까지 채우게 됐다. 그의 만화 읽기는 남다르다. 우선 손을 깨끗이 씻는다. 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은 화장실에서도 읽는다지만 그의 만화책들은 좀체 보금자리를 빠져나가는 법이 없다. “책을 몰래 가져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꽃과 우산, 만화는 가져가도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며 웃었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매우 느리다. 다른 사람이 예닐곱장을 읽을 시간에 한장을 겨우 읽는다. “그림 한칸 한칸, 대사 한줄 한줄, 캐릭터 표정 하나하나를 곱씹어가며 정독해요. 젊었을 땐 소설도 꽤 읽었는데 나이가 든 지금도 제 곁을 지켜주는 건 만화밖에 없네요.” 그에게 어릴 적 만화방에 대한 추억은 없다. 낯가림이 심하고 결벽증까지 있었던 탓에 만화방에 가지 않았다. 만화와의 첫 만남은 집으로 배달되는 어린이 신문을 통해서였다. 그는 신동우의 ‘풍운아 홍길동’과 몇몇 공상과학(SF) 만화들을 떠올렸다. “어린이 신문을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만화를 보면서 그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우주시대를 꿈꾸곤 했죠. 인간의 상상력을 만화로 그려내기 때문에 결국에는 과학이 만화를 쫓아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만화를 처음 구입한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다. 20년여 전 친구의 부탁이 계기가 됐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너무 보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서 친한 서점 주인을 통해 빌려 달라고 했다. 그 마음이 너무 절실해 보여 자기 지갑을 열어 통째로 사서 건넸다.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만화책을 사들였다. 서점에 갈 때마다 차 트렁크를 만화로 한가득 채워 왔다. 마음에 드는 만화를 보면 완결 시리즈를 보관용, 독서용, 대여·선물용 등으로 따로 샀다. 순정 장르와 SF 장르를 즐기는 그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 그림이 예뻐야 하고 음란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 직업상 의상이나 디자인을 소재로 한 만화를 좋아하지 않을까 했는데 고개를 가로젓는다. “직업과 취미는 달라야 해요. 직업 외 다른 세계에서는 제가 편해야 하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보지 않아요. 같은 업종 이야기는 외면하게 되죠.” 국내 작품에서는 허영만의 ‘짜장면’과 황미나의 ‘레드문’, 이미라의 ‘은비가 내리는 나라’를 필독서로 추천했다. 외국 작품에선 ‘천재 유 교수의 생활’ ‘캔디 캔디’ ‘마스터 키튼’ ‘팻숍 오브 호러스’를 꼽았다. ‘은비가 내리는 나라’는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그림만 봐도 행복해지는 ‘천재 유 교수의 생활’은 여행길에 꼭 동행시킨다. 그래도 단연 최고는 ‘짜장면’이다. 에피소드와 대사를 줄줄 읊을 정도다. 어깨너머로 같이 보던 남편이 이 작품을 모티브로 곡을 짓기도 했다. 그의 남편은 피아니스트 임동창(56)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만화에 대한 편협한 시선이 많다고 했더니 돌아온 답이 이렇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좋은 점을 발견하겠죠. 그것을 발견하고 안 하고의 차이이기 때문에 독립운동 하듯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만화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무심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만화를 함부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 해석만 달리하면 세상은 천국이에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5) 교양·학습 만화를 말한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5) 교양·학습 만화를 말한다

    교양·학습 만화는 웹툰과 함께 2000년대 들어 국내 만화시장을 주도한 쌍두마차다. 특히 초등학생을 겨냥한 어린이 학습 만화가 맹활약을 했다. 누적 판매 1000만부를 넘긴 ‘대박’이 잇따라 등장하며 전체 오프라인 출판 만화 시장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교양·학습 만화는 만화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뮤지컬,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과 온라인 게임으로까지 변신하고 있다. 요즘에는 성인층을 겨냥한 인문 교양 만화의 출간이 늘어나며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 교양·학습 만화는 수출 전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등 우리 만화를 대표할 특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지만 과다 경쟁으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주 타깃층의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등 미래가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매출액 2341억원… 잡지·단행본의 2.5배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콘텐츠 산업통계’에 따르면 일반 출판사들이 내놓는 어린이·학습 만화의 2010년 매출액은 2341억원에 달한다. 만화 전문 출판사 매출액(잡지·단행본 등 927억원)의 2.5배에 이르는 규모다. 온라인 만화 제작 유통업과 만화 임대업 및 도소매업을 포함한 만화 산업 전체 매출(7419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1.6%에 달한다. 만화 산업 분야 대부분의 매출이 감소세에 있지만 어린이·학습 만화는 2008년 2057억원, 2009년 2242억원, 2010년 2341억원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 오프라인 출판 만화 제작 비중을 살펴보면 어린이·학습 만화가 70.2%로 가장 크다. 그 뒤를 만화 단행본(28.3%), 만화 잡지(1.1%)가 잇고 있다. 만화산업의 중심이 과거 단행본에서 이제는 어린이·학습 만화로 완전히 옮겨 온 것이다. 어린이·학습 만화가 급성장을 거둔 것은 만화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 변화와 맞물려 소비자들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기획력, 오락성과 정보 전달력의 적절한 조화가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자극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한번 성공한 어린이·학습 만화는 다른 소재와 분야를 활용한 시리즈로도 제작이 가능해 수많은 출판사들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며 과열 현상을 빚기도 했다. 현재는 전반적으로 만화산업이 정체되면서 어린이·학습 만화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안정화되는 단계로 업계는 보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 누적 2025쇄 1400만부 판매 이렇듯 출판 만화 시장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교양·학습 만화의 국내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1970년대 영업 사원들에 의해 방문 판매되던 금성사, 계몽사 등의 만화 전집류를 그 출발점으로 본다. 세계사, 한국사, 위인전, 과학 등을 만화로 쉽게 풀어낸 것들이었다. 본격적으로 교양·학습 만화의 존재감을 알린 것은 서울신문이 선정한 ‘한국 만화 명작 100선’에도 포함된 이원복(66·덕성여대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다. 1981년 어린이 신문을 통해 연재를 시작한 이 만화는 1987년에 처음 단행본으로 선보였다. 현재까지 나온 14권의 누적 판매 부수가 2025쇄 1400만부에 달하는 교양·학습 만화의 대표다. 교양·학습 만화 시장이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그 출발점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당시 그리스·로마 유물 전시회가 잇따르고 이윤기(1947~2010)의 권위 있는 번역본이 나오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새삼 주목받은 덕을 톡톡히 봤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정보 전달 위주의 내레이션 형식을 취했다면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오락 만화의 서사 문법을 적극 받아들여 보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또 순정 만화체로 그려 여학생으로까지 독자층을 넓혔다. 작가와 출판사가 수십억원에 달하는 저작권 소송에 휘말리며 더 유명해진 이 작품은 20권으로 완결됐고 지금까지 2000만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를 이어 극한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전략을 모티브로 코믹 만화 장르를 이식한 ‘살아남기’ 시리즈와 중국 고전 ‘서유기’에서 따온 모험물 형식의 학습 만화 ‘마법천자문’ 시리즈, 게임을 만화로 옮긴 ‘코믹 메이플 스토리’ 시리즈 등 누적 판매부수 1000만부를 넘어서는 작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특히 오락성을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오히려 정보 전달력을 강화하며 홈쇼핑·인터넷 등을 통한 전집 판매 전략을 구사한 ‘와이?’(Why?) 시리즈는 지난해 누적 판매 부수 4000만부를 돌파하는 등 우리 국내 출판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쓰고 있는 중이다. 엄청난 성공이 거듭되자 만화계 내부에서 서자(庶子) 취급을 받던 어린이 학습 만화에 대한 시선과 평가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한 만화가들이 이 시장에서 주로 활동했으나 이두호, 이현세 등의 대가들도 진입하는 시장이 됐다. 최근 들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나 ‘미학 오디세이’ 등 성인층을 겨냥한 인문 교양 만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교양 학습 만화가 진화하는 사례지만 아직 탄탄한 기반을 갖추지는 못한 상태다. ●만화 수출액 815만 달러… 1년 새 두 배 그간의 추이만 놓고 보면 교양 학습 만화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 같지만 업계는 그렇지 않다고 분석한다. 어린이 만화시장의 독자층이 절대적으로 줄고 있다는 것이다. 2001년 450만명이었던 초등학생이 2006년에 390만명, 올해 290만명으로 줄었고 2030년에는 230만명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어린이 게임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진 것도 학습 만화에는 어두운 그림자다. 만화계는 해외 수출과 전자책 시장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찾고 있다. 어린이 학습 만화는 이미 수출 시장에서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국내 만화 수출액은 2009년 420만 9000달러에서 2010년 815만 3000달러로 1년 새 거의 2배가 됐다. ‘살아남기’와 ‘와이’ 시리즈의 약진이 큰 역할을 했다. 29개국에 수출된 ‘살아남기’ 시리즈의 경우 국내와 해외 판매량이 각각 1000만부씩으로 엇비슷하다. 2014년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초중고 전 과정으로 확대될 예정인 디지털 교과서도 정체된 어린이 학습 만화 시장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태블릿PC 등 디지털 디바이스가 학생들에게 보급되면 이를 통한 애플리케이션 시장으로 외연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부 차원에서 샘플링 번역 등에 대한 지원이 있다면 어린이 학습 만화의 수출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다. 한편으로 디지털 플랫폼으로의 전환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순수 창작 만화와 비교할 때 정책적인 배려가 아쉽다.”(어린이 학습 만화 기획자 홍재철)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금현진 외 글, 이우일 그림, 사회평론 펴냄) 동북공정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부터 배우는 국사. 어려워서 아이들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유명만화가의 그림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최근 교과서의 변화를 역사책에 반영해 놓았다. 각 권 1만 2000~1만 3000원. ●구름 공항(데이비드 위즈너 그림, 베틀북 펴냄) 용, 토끼, 사자를 닮은 구름을 보면 하늘 어딘가에서 그런 모양으로 찍어내는 공장이 있을 것 같다. 작가가 그런 상상력을 아름답고 꼼꼼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글씨 없는 그림책으로 읽어줄 때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1만 2000원. ●신나는 수요일(안느 베르티에 글·그림, 김소희 옮김, 뜨인돌어린이 펴냄)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사람얼굴, 물고기, 기차, 비행기 등을 만들어 내면서 도형을 배우고, 수학적 사고를 자연스레 익힌다. 1만 1000원.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4)1990~2000년대 만화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4)1990~2000년대 만화를 말하다

    1990~2000년대 우리 만화는 전례 없는 역동성을 경험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내달렸다. 다양한 만화잡지가 출간되며 시장이 꽃을 피웠다. 판매부수 100만이 넘는 단행본도 나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 작품의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만화시장의 만개(滿開)도 잠시, 청소년보호법 시행과 함께 도서 대여점의 기형적인 성장과 몰락, 경기침체가 겹치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만화는 웹툰 등에서 돌파구를 찾으며 새로운 디지털미디어 환경에 대응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1990년대는 1980년대와 다른 잡지 문화가 형성됐다. 과거 만화가 단순하게 어린이와 성인 대상으로 양분됐다면 90년대에는 청소년층, 여성층 등을 공략하는 잡지가 나와 연령별·취향별 세분화가 이뤄졌다. 88년 ‘아이큐 점프’와 ‘르네상스’에 이어 91년 ‘소년챔프’가 창간되며 이런 분위기를 주도했다. 특히 ‘아이큐 점프’와 ‘소년챔프’ 등은 작품 연재에 출판사 편집부가 적극 개입하는 일본식 시스템이 뿌리 내리는 데 일조했다. 연재 매체가 늘어나며 작가군(群)도 몸집을 불렸다. 이명진·박산하 등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했다. 만화잡지 주최 신인 공모전을 통해 새 감각으로 무장한 신세대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잡지 연재→단행본 판매’의 공식이 정착돼 만화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이충호 등 국내 작가 작품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우리 만화계는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성취를 이뤘다. 만화 출판사도 기업화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거뒀다. 서울·대원·학산 등 ‘빅3’ 출판사가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 만화의 부흥은 일본 만화의 정식 수입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윤태호) 과거 제도권에서 일본 작품을 베껴 그렸다면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비 제도권의 무단복제 해적판이 주류를 이뤘다. 민주화 물결을 타고 87년 10월 출판 자율화가 이뤄진 게 시발점이었다. 이때 외국 저작물도 국내법에 따라 보호받는 개정 저작권법이 발효됐다. 그럼에도 일본 만화 해적판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500원짜리 소형 해적판이 봇물을 이루며 학생과 직장인들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일본 만화가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온 것은 89년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전략 삼국지’가 처음이다. 하지만 시장 판도를 송두리째 바꾼 것은 89년 12월부터 ‘아이큐 점프’를 통해 연재된 ‘드래곤볼’(도리야마 아키라)과 92년 2월 ‘소년 챔프’를 통해 국내에 상륙한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다. 이 작품들은 단행본 시장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국내 만화시장의 덩치를 키우는 데 기여했다. 정식으로 들어온 일본 만화가 국내 출판 만화시장의 50~60%를 잠식하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좋은 만화보다 잘 팔리는 만화가 대세로 굳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원 폭력물, 판타지물 등 일본의 주류 장르에 탐닉했다. 그림체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에 다채로웠던 우리 만화는 90년대 들어 시장규모는 커졌지만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윤태호) 국내 만화시장이 외형 성장을 한 데에는 90년대 초반 등장한 도서 대여점도 한몫을 했다. 만화방이 공간 중심으로 운영된 데 반해 대여점은 일정 기간 빌려 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여점은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실직자 구제책으로 대여점 창업에 각종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98년 대여점은 1만 1223곳에 달해 정점을 찍었다. 대여점에 대한 평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단행본 판매 부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준 것만큼은 인정해줄 만하다. 하지만 과거 만화방용 만화가 전체 만화 수준을 떨어뜨렸던 것처럼 대여점용 단행본의 등장도 비슷한 부작용을 낳았다. 코믹스 단행본에 공장 만화 시스템을 도입해 출판하는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급격하게 포화 상태에 도달했던 대여점은 2000년대에 들어서며 몰락해 갔다. “잡지 연재 단행본이 나오고 그게 서점의 진열대에 꽂히고, 독자가 돈을 내고 사가는 사이클이 완성될 수 있었는데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친 점이 아쉽다.”(윤태호) 90년대 이후에는 만화에 대한 산업 차원의 관심이 커졌다. 이 흐름을 타고 만화 교육기관과 정책지원 기관이 대거 등장했다. 90년 충남 공주대에 만화학과가 처음으로 생겼다. 2000년에는 한국애니메이션고가 설립됐다.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만화 전공 또는 학과가 거푸 개설됐다. 98년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99년 서울 애니메이션센터, 2000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되는 등 정책적 지원 기관들도 잇따라 만들어졌다. 다양한 만화 관련 행사들이 생긴 것도 이 즈음이다. 한편으론 만화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여전했다. 97년 일진회 사건이 대표적이다. 학원폭력 소재 일본 만화의 영향으로 국내 학교에 폭력이 만연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 만화사에 가장 큰 탄압 사례인 ‘천국의 신화’ 음란물 시비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전 심의가 없어졌지만 청소년보호법이 생겨 심의를 대신하고 있다. 청소년보호법의 발효로 만화의 가장 큰 유통경로였던 학교 앞 문구점에서 만화 단행본들이 자취를 감췄다. ‘19금(禁)’ 코너를 만들 수 있는 대형 서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점 진열대에서도 만화가 사라지며 시장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성인 만화잡지도 하나둘 폐간의 수순을 밟았다.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만화의 위상은 전보다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사회적인 평가는 더욱 박해졌다. 청소년 정신건강에 해롭다든지 하는 식으로 매도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만화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있는 나라에서 이렇게 또 옥죄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윤태호) 불법 스캔 만화까지 등장해 출판 만화시장은 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오프라인 대여점을 대체하는 뷰어(Viewer) 만화가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온라인 만화방 형태로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디지털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우리 만화계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던졌다. 이 중 단연 눈에 띄는 가능성의 시그널은 웹툰이다. 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글 안에 그림 첨부파일을 그대로 띄울 수 있는 환경이 구현됐다. 직장과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개방성과 확장성을 바탕으로 기존 만화에 흡수되지 못했던 작가들과 아마추어 작가들이 온라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개인 홈페이지에서 일상을 다뤘던 ‘마린블루스’(정철연)나 ‘스노우캣’(권윤주) 등이 인기를 끌며 마침내 웹툰의 싹을 틔웠다. 신문 지면에선 ‘아색기가’(양영순) 등이 인기를 얻으며 컬러 만화에 대한 친밀도를 높였다. 특히 ‘아색기가’의 개그 코드는 웹에서 만화를 보여 주는 방식을 확립했다. 웹툰을 본궤도에 올린 것은 스크롤 방식에서도 서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 강풀의 ‘순정만화’다. ‘순정만화’의 성공 뒤 포털들은 앞다퉈 웹툰 공간을 마련했다. 이어 ‘천일야화’(양영순), ‘위대한 캣츠비’(강도하) 등이 속속 등장하며 지평을 넓혔고, 웹툰은 지금 한국 만화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웹툰은 기본적으로 무료인 데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 의존도가 강하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보다 넓은 독자층과 열혈 팬덤, 다양한 소재 등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일본 만화 의존도가 없어졌다는 것도 성과라면 성과다.”(윤태호)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이 기사는 윤태호 작가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박인하·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 등을 참고해 재구성했습니다.
  • 이준석 ‘문재인 참수 만화’ 페이스북에 올려

    이준석 ‘문재인 참수 만화’ 페이스북에 올려

    새누리당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이 8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목이 베어진 패러디 만화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이 비대위원은 전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 작가가 그린 만화 삼국지를 패러디한 출처 불명의 만화를 링크시켰다. 당초 원작 만화는 조조에게 억류돼 있던 관우가 전투에서 적장의 목을 베고 돌아와 그 목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장면이었다. 패러디 만화에서는 관우의 얼굴에 4·11 총선 당시 부산 사상에 문재인 대항마로 출마했던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 목이 잘린 적장 얼굴에는 문 고문, 조조 측근의 얼굴엔 이 비대위원의 사진이 각각 합성돼 있었다. 손 후보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는 술 한 잔을 마신 뒤 문 고문의 목을 베어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명예훼손 논란 등 비난이 거세지자 이 위원은 이 만화를 서둘러 삭제했다. 이어 이 비대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해당 만화가 좀 긴 편인데 제가 마지막 부분에 그런 혐오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올렸다. 문 당선자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 위원은 또 이날 오전 문 고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고 문 고문은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박 위원장의 사과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박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렇게 흉악하고 예의 없고 적개심으로 가득한 것이 박근혜 키즈들의 정신세계라는 사실이 경악스럽다.”면서 “박 위원장이 이 문제에 어떻게 처신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② 배우 정찬

    [만화는 내 사랑] ② 배우 정찬

    “만일 헐크가 우리나라에서 탄생했다면 인기도 얻기 전에 금세 사라졌을 거예요. 어린이에게 해로운 녹색괴물이라는 비난을 받고서 말이지요. 앞에서는 만화 한류를 부르짖고, 뒤에서는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는 멍청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1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가 올해 국내 개봉영화 중 가장 빠르게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미국의 만화전문 출판사 ‘마블 코믹스’의 영웅 캐릭터가 대거 출동하는 영화다. 배우 정찬(41)은 이 영화를 본 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만화가 처해 있는 답답한 상황이 떠올랐다. 얼마 전 국내 만화계는 웹툰 사전심의 논란에 휩싸였다. 그때 정찬의 머리에는 1990년대 후반 ‘천국의 신화’ 음란물 시비사건이 오버랩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만화를 문화의 주요 축으로 여기지 않는 기성세대의 왜곡된 시각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천국의 신화’에 적용됐던 잣대라면 그리스·로마 신화도 어린이들에겐 유해물이죠.” 정찬은 만화 마니아다. “만화로부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자양분을 얻었다.”고 자부한다. 또 “다른 장르에서는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입체적 표현력과 파급력이 만화에는 존재한다.”고 정의한다. 그는 전문잡지가 쏟아지며 국내 만화가 르네상스로 치닫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꺼벙이’(길창덕), ‘로봇 찌빠’(신문수) 등 명랑 만화를 즐겨 봤다.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로봇 만화 ‘철인 캉타우’(이정문)도 기억에 생생하다. 명절에 친척들이 찾아와 용돈을 주면 재빨리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한창 만화에 빠져 있으면 “엄마 화났다.”며 동생이 찾아오곤 했다. 어른들은 만화방에 드나들면 공부 못한다며 ‘나쁜 곳’으로만 여기던 때다. TV 만화도 오후 6시부터 30분가량 하는 애니메이션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만화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저의 보물섬이었습니다.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 것도 만화였고 영상문법, 휴머니즘, 풍자, 사랑도 만화를 통해 배우고 깨달았지요.” 영화잡지를 사느라 바빴던 중·고교 시절에도 자투리 돈은 만화를 보는 데 썼다. 허영만 작가는 그의 우상이었다. ‘카멜레온의 시’는 충격적이었다. 문학적 정서가 깔린 복합적인 플롯이 그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아무리 이론서를 들여다봐도 모호하기만 했던 드라마·영화의 스토리와 플롯이 그때 비로소 손에 잡히기 시작하더군요. 악역이라고 해도 선이냐, 악이냐의 단선적 캐릭터면 답답하고 재미없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오토바이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동체이륙’을 접한 뒤엔 바이크가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죠.” 지금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만화가게에 달려간다. 웹툰을 보는 것도 요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금사리 백봉장군(필명)의 좀비물 ‘산송장’과 재수(필명)의 SF물 ‘파이프 시티’가 그의 추천작이다. “‘산송장’은 은근히 방송 미디어 쪽을 풍자하고 있어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죠. 독특한 소재의 ‘파이프 시티’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네요.”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만화가 있냐고 했더니 강풀의 ‘26년’을 꼽았다. 얼마 전 영화화 작업이 중단됐다가 다시 추진되고 있는 작품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의무, 그리고 무언가를 희망할 수 있는 권리. 이런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작품이에요.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은 의무고, 그에 기반해 자기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은 권리라고 할 수 있지요.” 올여름 태어날 딸이 아빠처럼 만화를 통해 풍부한 정신의 자양분을 얻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어린 친구들이 볼 수 있는 토종 만화가 제가 자랄 때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제가 문화부 장관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 만화를 팍팍 밀어줄 겁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③ 1970~80년대 만화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③ 1970~80년대 만화를 말하다

    1970년대 우리 만화는 혹독한 시련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검열과 ‘신촌 대통령’ 합동문화사의 독점, 유해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등이 만화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혹한 속에서도 봄을 부르는 싹은 움을 틔우고 있었다. 주간지와 신문 연재 등 새로운 돌파구의 기반이 마련됐고,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만화문화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고 있었다. 결국 1980년대 들어 어린이·성인·순정 만화 잡지들이 봇물을 이루며 한국만화는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1970년대에도 검열이 심했다. 부분수정, 전면수정, 폐기만 있었는데 무사통과는 거의 없었다. 작가들은 만화를 잘 그리는 것보다 검열을 피하는 방법을 연구하기에 바빴다. 합동문화사 체제도 작가들을 옥죄었다. 인기 작가가 마음에 안 들면 이름이 비슷한 작가를 만들어 엇비슷한 작품을 그리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창작 분량을 강제로 할당하기도 했다. 출판사가 만들어 낸 유령 작가의 작품을 대신 그려야 하는 괴상한 착취 구조도 있었다.”(김형배) ●만화에 가해진 군사정권의 분서갱유 사회적으로 만화가 푸대접을 받는 상황은 1970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이·청소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만화는 항상 일등으로 몰매를 맞았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남산이나 동대문운동장에서 불량만화를 모아 태우는 행사가 열렸다. 만화계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은 1972년 1월 말 일어난 ‘불량만화 파동’이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사고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군사정권과 언론은 “어린이가 만화에서 본 내용을 흉내내다 숨졌다.”며 엉뚱한 곳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특별단속이 시작됐고 경찰은 곳곳의 만화방을 급습해 수만권의 만화책을 폐기처분했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을 선포했다. “교육계 전반이 만화에 적의(敵意)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모든 문제가 만화에서 비롯된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하지만 현재 30~40대인 내 올드팬 가운데 어렸을 때 만화를 읽어서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김형배) ●새로운 만화의 통로, 잡지 1960년대 만화방 중심의 문화는 1970년대 들어 큰 변화를 맞는다. 바로 만화잡지의 확산이었다. 이 시기 어린이 잡지에 실린 만화들은 이전과 달리 호흡이 길어졌다. 1960년대 중후반에 창간된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등이 그 중심이었다. 컬러 지면을 도입하고 만화 분량을 대폭 늘린 것이다. 특히 어깨동무는 1972년 사상 처음 별책부록으로 ‘도깨비 감투’(신문수)를 끼워줬다. 본지에 연재하던 만화가 7쪽 안팎이었지만 도깨비 감투는 60쪽이나 됐다. 어린이 잡지의 약진은 서점용 단행본 만화문고 등장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새소년을 발행하던 어문각의 ‘클로버 문고’다. 1972년부터 약 12년 동안 429권이 나오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가운데 389권이 만화였다. ●한국만화의 어두운 과거, 표절 클로버 문고는 다른 한편으로, 일본만화 표절이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문고의 첫 작품인 ‘유리의 성’(정영숙)과 최고 히트작인 ‘바벨 2세’(김동명) 등 상당수가 일본작품을 베낀 것이었다. 사실 일본만화 표절은 그 역사가 오래됐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밀림의 왕자’(서봉재)를 첫 표절 사례로 본다. 1951년 나왔던 일본 작품 ‘소년 케냐’를 그대로 옮긴 작품이다. 이후에도 일본만화 표절 및 복제 작품이 인기를 끄는 사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벨 2세의 인기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바벨 3세’를 그려야 했던 김형배 화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만화 표절 문제에서 기성 작가 대부분이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만화를 창작품이 아닌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등 만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결과다. 출판업자들은 돈벌이에 급급해 작가들에게 베끼기를 강요했고, 작가들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했다. 만화가와 우리 사회 모두 피해자다.” ●1970년대의 수확, 성인만화 잡지 문화의 발달은 성인만화 시대를 열어젖혔다. 1968년 성인 주간지 ‘선데이서울’과 1970년 국내 첫 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가 창간됐다. 1970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이 매체들은 성인만화 시대를 연 쌍두마차다. 일간스포츠의 경우 1972년 ‘임꺽정’, ‘수호지’ 등 고우영의 극화를 싣기 시작하며 그해 2만부에 불과했던 발행부수가 1975년 30만부로 늘어났다. 선데이서울은 1974년 박수동의 ‘고인돌’을 게재하며 성인만화 인기에 불을 댕겼다. 선데이서울의 성공으로 각종 주간지가 나오게 되는데 강철수가 ‘주간여성’에 ‘청춘의 낙서’를 연재하며 성인만화 붐을 거들었다. 신문이나 잡지도 심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어린이 만화나 만화방용 만화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누릴 수 있어 성인만화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성인만화들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과정에서는 대대적으로 수정, 삭제 조치를 당해야 했다. ●한국만화 르네상스의 상징, 보물섬 1982년 10월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어린이 만화 월간지 ‘보물섬’이 창간된 것이다. 오로지 만화만 실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만화 잡지였다.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뒀다.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등 수많은 인기 작가들이 작품을 연재했다. 그런데 보물섬을 발간한 곳이 육영재단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육영재단은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가 설립했다. 보물섬이 창간되던 해 박근혜(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만화에 암흑기를 드리운 대통령의 딸이 우리 만화 르네상스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이후 1985년 ‘만화광장’, 1987년 ‘주간만화’, 1988년 ‘만화세계’와 ‘매주만화’가 나오는 등 1980년대 중반 이후 성인만화 잡지가 잇따라 창간되며 만화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영세한 졸속 저질 만화 잡지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1988년 ‘아이큐 점프’, 1991년 ‘소년 챔프’ 등 일본식 체계를 그대로 이식한 잡지가 잇따르며 우리 만화잡지는 다시 변화를 맞게 된다. 1970년대에 어린이 잡지의 강세에 힘입어 명랑만화가 도드라졌다면, 1980년대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장편극화가 큰 흐름을 형성한다. 순정만화도 다시 도약기를 맞는다. 김동화, 한승원, 황미나 등이 먼저 지평을 넓혔다. 이어 장편 서사 멜로물을 앞세운 김혜린, 강경옥, 김진, 신일숙 등이 걸작들을 대거 선보였다. 특히 1988년 11월 순정만화 월간지 ‘르네상스’가 창간되며 순정만화의 꽃은 활짝 만개한다. “1980년대 들어 만화가가 데뷔하고 작품을 발표할 매체가 훨씬 다양해지며 우리 만화가 정점을 이뤘다. 어린이 잡지와 스포츠 신문 등이 큰 역할을 했다.”(김형배)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이 기사는 김형배(65) 화백 인터뷰를 바탕으로 최열 ‘한국 만화의 역사’, 손상익 ‘한국만화통사㈛’, 박기준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박인하·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를 참고해 재구성했습니다.
  • “수족관 속 활어 월급쟁이 내 신세 닮아 리얼리티 살리려 횟집 아르바이트도”

    “수족관 속 활어 월급쟁이 내 신세 닮아 리얼리티 살리려 횟집 아르바이트도”

    화가를 꿈꾸던 이대희 감독은 뒤늦게 색약(2도 색약)이란 사실을 알고 조소 전공으로 대학을 갔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때마침 이현세 만화가가 색약이란 기사가 눈에 들어왔고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로 진로를 틀었다. 2003년 어느 날 그는 회사 근처 횟집에 들렀다. 수족관에 빼곡히 들어찬 물고기와 ‘교감’을 한 건 그 순간이었다. 애니메이션 기획·제작사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는 자신의 현실과 횟집 수족관에 갇힌 활어의 처지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상영된 이대희(35) 감독의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은 그렇게 시작됐다. 순제작비 10억원이 투입된 ‘파닥파닥’은 망망대해에서 잡힌 고등어 ‘파닥’이 어촌의 한 횟집 수족관에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파닥’은 틈만 보이면 수족관 밖으로 몸을 내던진다. 오로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뿐이다. 그런데 수족관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올드 넙치’를 비롯한 다른 활어들의 시선은 싸늘할 따름이다. 하지만 자유를 찾으려는 ‘파닥’의 몸부림이 계속되면서 양식장 출신들도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한다. ‘파닥파닥’이 전주영화제에서 마지막 상영을 한 지난 1일 이 감독을 만났다. ‘파닥파닥’의 기획은 2007년부터 구체화됐다. 애니메이션 회사에 사표를 던진 이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횟집 취업이었다. 영화 엔딩크레딧의 ‘스페셜 생스 투’(제작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부분)에 횟집 이름이 네 개나 나온 연유다. 이 감독은 “2007년 말쯤이었다. 사표를 내고 나온 터라 돈도 필요했다. 낮에는 백화점 물류센터에서 상자를 나르고 틈틈이 각본을 쓰고 저녁에는 대형 횟집에서 아르바이트했다. 6개월쯤 주로 서빙을 했고 전어를 딱 한 번 떠봤다.”며 웃었다. 덕분에 ‘파닥파닥’ 각본은 펄떡거리는 활어처럼 리얼리티를 얻었다. 횟감으로 테이블에 올라 힘겹게 마지막 숨을 들이쉬는 고등어에 담배를 물리는 몰상식한 손님이나 뜰채로 활어를 건져 관상용 금붕어가 있는 작은 어항에 빠뜨리는 짓궂은 꼬마 등 작품에 녹아든 일화들은 그가 횟집에서 목격한 장면에서 비롯했다. 편집에서 빠졌지만 ‘파닥’이 바다에서 그물에 걸리는 과정을 묘사하려고 강원도 속초 동명항에서 고깃배를 타기도 했다. 미술감독, 촬영감독과 함께 올랐다. “(바다에서 잘못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간신히 허락을 얻었다. 손바닥만 한 고깃배였는데 처음에는 (놀이기구) 바이킹을 탄 것처럼 재밌었다. 먼바다에 나가자 파도가 요동쳐 밧줄로 몸을 배에 묶어놓은 채 간신히 버텼다. 온갖 구멍으로 분비물을 토해냈다.” ‘파닥파닥’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고등어, 넙치, 놀래미(원래는 ‘노래미’가 맞다.), 붕장어, 줄돔, 농어, 도미 등 어류들의 성향에 착안해 캐릭터를 설계했다는 점. 낚시를 할 때 잡았다가 다시 놓아줘도 3초 만에 바늘에 걸린다는 놀래미는 아둔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밤에 먹이를 포획하는 성향을 지녀 ‘바다의 갱’으로 불리는 붕장어는 1인자에게 복종하지만 동지도 먹이로 삼는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파닥’과 관련해 이 감독은 “고등어는 직진하는 성격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곧잘 욱한다. 저돌적인 행동파로 봐야 한다. 횟집 어항에 들어오면 계속 벽에 몸을 부딪쳐 코가 깨지고 멍들어 일찍 죽는다는 점에 착안해 바다로 탈출하려 하는 집념의 캐릭터로 삼았다.”고 말했다. ‘웬만한 횟집에서는 고등어를 구경도 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농담처럼 물었더니 “가을에 딱 2주 나온다. 우리가 아는 고등어처럼 등이 푸른색이 아니라 형광등 불빛처럼 희멀건 색이라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설명했다. 출신 성분(바다 혹은 양어장)에 따라 수족관 내 계급과 서열이 결정된다든지, 절대 권력의 전횡에도 모두가 침묵하는 설정은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그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정면에 내세울 생각은 없었다. 궁극적으로는 자유 의지를 말하고 싶었다. 바다로 돌아가려는 고등어의 의지가 꿈이 없는 현실에 만족한 채 근근이 살아가던 놀래미와 넙치의 생각마저 바꿔 놓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애니메이션 관객 기록을 갈아치운 ‘마당을 나온 암탉’, 평단과 마니아의 지지를 동시에 끌어낸 ‘돼지의 왕’에 이어 토종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이끌 기대작으로 꼽혀온 만큼 영화제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는 “처음부터 수족관을 포로수용소 같은 느낌으로 표현하길 원했는데 생각보단 어두운 톤으로 나왔다.”면서 “(인간 세계에 잡혀 온 열대어의 탈출기를 그린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기대한 분들이야 실망하겠지만 상업적으로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7~8월에 50개 안팎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게 목표라고 귀띔했다. ‘파닥파닥’의 제작비 10억원 중 절반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지원받았지만 나머지는 이 감독이 대출을 받는 등 스스로 마련했다. “기획 때만 해도 투자를 받는 데는 관심도 없었다. 하물며 캐릭터 상품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땐 어렸던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일까. 차기작으로는 다섯 살짜리 딸도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는 디즈니풍은 아닐 거다. “악당과 마녀, 사악한 계모는 잔인한 최후를 맞고 착하면 행복하게 산다는 식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담고 싶지도 않고 그게 교육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전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아이디어 경연’ 과학공모전 봇물

    ‘아이디어 경연’ 과학공모전 봇물

    국내 과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 온 ‘체험·실험 부족’의 해결책으로 경연대회와 공모전이 주목받고 있다. 정형화된 교과서의 지식을 외우는 대신, 이를 기반으로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생각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유난히 새롭게 선보이는 대형 공모전이 많다. ●골드버그대회, 창의성·협동심 키워 국립과천과학관의 ‘제1회 골드버그 대회’가 대표적이다. 골드버그 장치는 미국의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가 지역신문에 연재한 만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가장 단순한 동작을 복잡한 여러 단계를 거쳐 수행하도록 하는 장치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력을 키우고 팀 단위 과제해결을 통해 서로 협력을 배울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87년부터 전국 규모의 루브 골드버그 머신 콘테스트를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피타고라스위치’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대회가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오는 8월 14일 열리는 과천과학관 대회에서는 ‘풍선 부풀리고 터트리기’라는 과제를 최소 10단계 이상의 과정을 거쳐 해결하도록 작동하는 장치를 4시간 내에 제작해야 한다. 초·중·고교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지도교사 1명과 학생 4명이 팀을 이뤄 지원할 수 있다. 참가신청은 오는 31일까지이며, 6월 7일에 본선 진출팀 초·중·고 10개팀씩 30개팀이 발표된다. ●캔위성 경연 ‘색다른 체험’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오는 8월 ‘캔위성 체험 경연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캔위성은 인공위성의 구성요소를 단순화해 음료수 캔 안에 만든 교육용 위성으로 열기구나 소형 과학로켓을 이용해 상공 수백미터로 쏘아올린 후 낙하하면서 위성처럼 사전에 계획된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돼 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우주개발 선진국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다. 교과부는 위성 개발 및 임무 난이도를 고려해 초·중학생 대상 과학캠프와 고등·대학생 대상 경연대회로 구분해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초·중생 대상 과학캠프는 8월 7일부터 9일까지 KAIST에서 진행되며 초등학교 5년 이상부터 팀 단위로 신청이 가능하다. 고등·대학생 대상 대회는 학생들이 위성을 직접 기획·개발해 창의성과 성과를 겨루는 방식으로 서류심사와 임무심사를 통해 선정된 5개팀이 8월 9일 최종 경연을 벌이게 된다. 참가신청은 오는 25일까지 인터넷으로 받는다. ●매주 토요일 로봇경진대회 국립중앙과학관은 지난 28일부터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국립중앙과학관 로봇경진대회’를 열고 있다. 대회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저가형 로봇을 중심으로 창작지능로봇, 스마트 제어 로봇, 가족로봇체험, 골프로봇 등의 종목으로 운영된다. 월 대회 수상자들이 기별 결선, 연말 결선을 거쳐 최종 우승자를 매년 가리게 되며 교과부 장관상, 대전시장상, 교육감상 등이 수여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1) 최강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만화는 내 사랑] (1) 최강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이제 곧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입니다. 만화로 그리면 당연히 8전 전승이겠죠.” 최강희(5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만화 사랑은 유명하다. 어렸을 때 만화가를 꿈꿨다. 흔한 어릴 적 꿈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그의 초등학교 때 습작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림체는 좀 떨어지지만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캐릭터가 있고 장면도 잘 연출됐다. 축구, 첩보, 쿵후 등 만화 장르도 다양하다. 그가 만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경기 양평 강하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교에 배달되던 어린이 신문에서 길창덕(1930~2010)과 이원복(66)의 작품을 만났다. 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틈만 나면 만화를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 형들은 전교 1등을 다투는 수재들이었다. 집안에서는 만화에 빠져 공부도 하지 않는 그를 걱정했다. 할머니는 만화만 보러 다니는 손자 잡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밥 먹고, 만화 보고, 만화 그리는 것 밖에 안 했던 것 같아요. 신간은 10원에 6권, 구간은 10원에 하루종일이었는데, 만화가게에서 VIP 대접을 받았어요. 나중에는 만화가게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들키지 말라고 자기집 안방까지 내주더라고요.” 거의 모든 만화를 섭렵했다는 최 감독은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김종래(1927~2001)의 작품들과 이상무(66)의 독고탁 시리즈를 꼽았다. 복싱, 축구 등 스포츠 만화는 물론이고 당시 이소룡 영화가 크게 인기가 있어 쿵후 만화도 빼놓지 않았다고 했다. 우신고 시절에도 축구부 친구들을 모델로 축구 만화를 그렸다. 하지만 점점 운동의 비중이 커지면서 만화는 자연스레 멀어져갔다. 다시 만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프로축구 울산 현대 소속이던 1986년 즈음.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후배가 만화책 10권을 빌려왔다. 이현세(56)의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어렸을 때 봤던 만화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인물이나 배경이 너무나 사실적이었고 내용도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몰라요.” 최 감독은 ‘오! 한강’에서부터 ‘식객’ 등 허영만(65)의 작품도 자주 접한다고 했다. 만화에 대한 사랑과 동경은 여전하지만 요즘은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쉽다. 그는 28세에 늦깎이로 태극마크를 달고 그때부터 올림픽부터 월드컵까지 굵직한 무대들을 누볐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는 만화 같은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팀에게 우승을 안겼다. 이제 국가대표 사령탑이다. 고졸 출신으로는 역대 두 번째다. 스스로 삶이 만화 같다는 최 감독은 “인생을 살며 아스팔트를 걸어본 적이 없다. 비탈길, 언덕길만 걸었다.”고 했다. 숱한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데 만화도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은 물론이다. “돌이켜 보면 만화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직접 만화를 그려본 경험은 지도자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만화를 그리려면 이야기와 인물을 설계해야 하는데 팀을 꾸리는 과정도 비슷하거든요.” 한국 만화계가 침체기라는 이야기에 그는 흐름일 뿐이라고 말했다. “축구 경기에도 흐름이 있죠. 우리 만화도 현재 위치에서 노력하다 보면 흐름이 바뀌어 반드시 좋아질 거예요.”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2) 1950~60년대 만화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2) 1950~60년대 만화를 말하다

    우리 만화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영화 등 다른 대중문화와 비슷하게, 만화도 신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던 때 국내에 첫발을 들였다.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렸던 이도형의 한 칸짜리 그림을 국내 첫 시사만화이자, 근대만화의 기원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17~18세기 조선시대 풍자화나 풍속화, 또는 그보다도 오래 된 민화(民畵)를 우리 만화의 뿌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 만화는 이미 1926년 첫 ‘원소스 멀티유스’(하나의 소재를 여러 장르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 사례가 나올 정도로 일찌감치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 최초 풍자영화로 인정받는 ‘멍텅구리’라는 작품이 개봉했는데 이는 1924년 한 일간지에서 선보였던 노수현의 네 칸짜리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일제시대 만화는 짧은 시사 풍자만화가 주류를 이뤘고, 호흡도 짧았다. 우리 만화가 대중과 본격적으로 호흡하며 역사를 써나간 것은 1945년 해방 이후다. 일제에 의해 폐간됐던 신문과 잡지가 복간되고 새 간행물이 쏟아져 나왔다. 거기에 만화가 실렸다. 첫 단행본과 첫 만화전문 잡지도 등장했다. 특히 만화방을 중심으로 여러 장르의 작품이 쏟아진 1950년대 중후반에서 1960년대 초중반을 첫 황금기로 본다. ●‘코주부’ 김용환·‘고바우’ 김성환 선구자 해방 뒤 우리 만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바로 코주부 캐릭터로 유명한 김용환(1912~1998)이다. 일본에서 그림 유학을 했던 그는 일찌감치 일본 최고 원고료를 받는 톱클래스 삽화가로 활동했다. 해방 직후 출간한 ‘토끼와 거북이’(1946)는 국내 단행본 만화의 효시로 남아있다. 김용환은 1948년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전문 잡지 ‘만화행진’ 창간을 주도했다. 협회를 만들어 만화가 권익향상과 후진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히트작 ‘코주부 삼국지’(1952)가 서울신문·한국만화영상진흥원 선정 ‘한국만화 명작 100선’에 포함됐다. 또 다른 거목으로는 시사만화의 대가 김성환(80)이 있다. ‘고바우 영감’(1950)으로 유명한 그는 3권짜리 반공만화 ‘도토리 용사’(1951)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김용환과 김성환은 우리 현대만화의 개척자이자 아버지다. 김용환은 과장법을 사용한 그림에서부터 섬세한 그림까지 만화의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능력을 갖췄다. 김성환은 과장법 위주의 가벼운 그림을 그리는 데 완벽했고, 호흡이 길지 않은 신문과 잡지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뤘다. 이들의 그림을 교과서 삼아 연구하고 따라하며 많은 작가들이 탄생하게 됐다.”(박기준) 이 시기 작품 19편이 한국만화 명작 100선에 포함됐다. 김용환을 비롯해 ‘엄마 찾아 삼만리’(1958)의 김종래, ‘만리종’(1959)의 박기당, ‘조국을 등진 소년’(1964)의 이근철, ‘땡이의 사냥기’(1965)의 임창 등 일본 유학을 했거나 일본에서 나고 자랐던 작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100선에는 들지 못했지만 국내 순정만화의 어머니 엄희자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만화방(만화가게)은 만화의 유통과 소비를 확산시켜 만화가 대중적인 오락거리로 떠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만화 자체의 질을 떨어뜨려 ‘불량’, ‘저질’ 이미지를 덧씌우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만화방이 등장한 것은 195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만화 단행본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자, 이를 빌려주는 노점 좌판이 먼저 나타났다. 서점에서 실비를 받고 진열돼 있던 만화책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쟁 뒤 사서 보기 힘들던 힘겨운 경제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만화방, 기폭제이자 부작용 양산도 작가들이 단행본으로 몰려 발행부수가 폭증했으나, 만화방이 생겨나며 판매부수가 줄어들자 서점들은 오히려 만화 취급을 꺼렸다. 만화 소비가 만화방 중심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전국 유통망을 갖춘 총판이 잇따라 등장하며 만화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59년 전국 2000 곳이던 만화방은 1960년대 말에는 9.5배인 1만 9000곳으로 늘었다. 만화방이 성황을 이루자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찾는 수요가 생겨났다. 이에 맞춰 부엉이문고, 제일문고, 크로바문고 등 만화전문 출판사가 등장했다. 이 출판사들은 인기작가를 전속으로 두고 만화책을 펴냈다. 부작용도 나타났다. 만화가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저가·저질 만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반 20쪽 안팎의 딱지만화가 유행했지만, 중후반에 두꺼운 고급 양장 단행본이 성공을 거두며 시장을 재편했다. 그러나 만화방용 만화는 고급 양장본과 달리 분량도 50~60쪽 안팎에 그쳤고, 싸구려 느낌이 강했다. 특히 1967년 중소 출판사들이 뭉쳐 ‘합동’이라는 이름으로 만화 출판과 유통을 독점하게 되자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신촌대통령 합동의 등장 이후 더 열악해졌다. 단가를 낮추면 그만큼 이익이니 크기도 줄이고, 종이도 싸구려를 썼다. 인쇄도 조악했다. 인기작이 나오면 대충 베끼기 일쑤였다. 만화 자체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박기준) ●검열의 시작… 20~30년 후퇴기 1961년 5·16 군사 쿠테타는 문화계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가들의 창작력을 옥죄는 사전심의, 즉 검열이 시작된 것이다. 만화도 예외일 수 없었다. 1961년 12월부터 원로 만화가들과 출판사 관계자로 구성된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이름만 ‘자율심의’인 검열을 맡았다. 그러나 명목상의 자율도 오래가지 않았다. 1967년 박정희 정부는 밀수, 도벌, 탈세, 폭력, 마약과 함께 만화를 ‘사회 6대 악(惡)’으로 규정했다. 이듬해 8월 한국아동만화자율회 해체 뒤 문화공보부 산하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가 생겼고 이들은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소재와 내용은 물론 어린이 건강을 보호한다며 종이 종류와 판형, 쪽수, 편수까지 통제하고 강제했다. 이름과 달리 폐휴지나 다름없던 선화지(仙花紙) 대신 갱지(紙)를 사용하게 하고 국판에서 4X6배판으로 책 크기를 키웠다. 권당 최대 130쪽까지 내용을 늘리게 하는 대신 편수는 무제한으로 이어가지 말고 ‘상·중·하’로 끝내게 했다. 아동만화윤리위원회는 1970년 1월 한국도서출판윤리위원회, 한국잡지윤리위원회와 함께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회(현 간행물윤리위원회)로 통폐합됐다. “남자와 여자가 손만 잡아도 풍기문란이라고 빨간 색연필이 그어졌다. 심지어 가족이라도 남녀가 한방에서 자는 것은 그릴 수 없었다. 전쟁만화를 그리면 북한 장교가 잘생겼다고 트집 잡아 늑대 같이 그리게 했다. 필명을 쓰던 작가들은 사람 이름 같지 않다는 지적에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만화 속 등장인물도 마찬가지였다.”(박기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이 기사는 박기준 화백 인터뷰를 바탕으로 최열 ‘한국 만화의 역사’, 손상익 ‘한국만화통사㈛’, 박기준 ‘박기준의 한국만화야사’, 박인하·김낙호 ‘한국현대만화사’를 참고해 재구성했습니다.
  • [한국만화 명작 100선] 80년대 주름잡던 ‘공포의 외인구단’ 추억 넘어 전설로

    [한국만화 명작 100선] 80년대 주름잡던 ‘공포의 외인구단’ 추억 넘어 전설로

    전문가 100명을 통해 엄선한 ‘한국 만화 명작 100선’은 우리 현대사의 흐름과 삶의 패턴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포함된 가운데 한국 만화의 황금기로 평가되는 1980~1990년대 작품이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다. 황금기에 한몫했던 순정만화와 2000년대 이후 한국 만화를 이끌고 있는 웹툰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 ‘아기공룡 둘리’ 2위에 선정 만화 전문가들에게 최고의 명작으로 꼽힌 작품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1982)이었다. 당시 사회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등 억눌린 젊은이들의 감성을 대변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 만화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뒀고, 그 주제가도 인기를 끌었다.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1983)는 1위를 놓고 끝까지 경합하다 아쉽게 2위로 밀렸다. 전문가들은 허영만 ‘오! 한강’(1987), 고우영 ‘삼국지’(1968), 이두호 ‘임꺽정’(1991), 윤승운 ‘맹꽁이 서당’(1983), 길창덕 ‘꺼벙이’(1970), 양영순 ‘누들누드’(1995), 김산호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1959), 윤태호 ‘이끼’(2007) 등을 시대별로 고르게 10위권에 포진시켰다. 독자들의 선호도는 크게 달랐다. 인기 1위는 여전히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그러나 그 뒤를 허영만 ‘식객’(2002), 박소희 ‘궁’(2002),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2007), 전극진·양재현 ‘열혈강호’(1994), ‘아기공룡 둘리’, 천계영 ‘오디션’(1998), 조석 ‘마음의 소리’(2006), 허영만 ‘타짜’(1999),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1987)가 이었다. 비교적 창작 시기가 오래되지 않은 1990년대 이후 작품이 다수 포함되며 톱 10 목록이 달라졌다. 일반 독자 선호도 조사는 전국 15세 이상 49세 이하 남녀 가운데 명작 100선에서 5편 이상 읽은 1000명을 대상으로 올 1월 26~30일 이뤄졌다. 오차범위 ±3.1%로 신뢰수준 95%다. 선호도를 떠나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읽었는지를 뜻하는 열독률에서도 순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1위는 ‘아기공룡 둘리’(67.5%)가 차지했다. ‘먼나라 이웃나라’와 배금택 ‘열네살 영심이’(1988)가 63.1%로 공동 2위였다. 이진주 ‘달려라 하니’(1985), ‘공포의 외인구단’, ‘식객’, 이두호 ‘머털도사님’(1985), ‘꺼벙이’, ‘궁’, ‘타짜’가 뒤를 이었다. 남녀노소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명랑 만화체 작품이 크게 늘어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허영만 다섯 작품 선정돼 최다 영예 명작 100선 선정은 작가가 아니라 작품을 기준으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100선에 1편 이상 뽑힌 작가도 16명에 달했다. 이현세와 함께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허영만이 무려 다섯 작품을 올려 1위를 했다. 초창기 ‘각시탈’(1974)에서부터 ‘오! 한강’과 ‘비트’(1994)를 거쳐 ‘타짜’, ‘식객’까지 포함됐다. 데뷔 40년이 가깝도록 항상 변화를 추구, 여전히 정상을 지켜내며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꾼임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만화는 어린이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뜨린 성인만화의 개척자 고(故) 고우영도 시대를 반영한 해학과 풍자를 섞어 고전을 재해석한 ‘삼국지’와 ‘수호지’, ‘임꺽정’(이상 1974), ‘일지매’(1977) 등 네 편을 올렸다. ‘순정만화 레전드’ 가운데 한 명인 김혜린과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그리며 ‘국보급 작가’로 꼽히는 이두호가 각각 세 편을 100선에 진입시켰다. 이두호는 ‘머털도사님’, ‘객주’(1988), ‘임꺽정’이고 김혜린은 ‘북해의 별’(1983), ‘비천무’(1988), ‘불의 검’(1992)이다. 이 밖에 강풀·권가야·김수정·신문수·신일숙·양영순·윤태호·이상무·이정문·이희재·최규석·황미나도 두 편의 작품을 100선에 진입시켰다. ●1980~90년대 순정만화 14개 ‘약진’ 성별에 따라 선호도가 확연하게 갈리는 순정만화가 대거 포함된 점도 눈에 띈다. 모두 열네 작품이 포함됐다. 김혜린의 작품을 비롯해 황미나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1983)과 ‘레드문’(1994), 이진주 ‘달려라 하니’,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딸들’(1986)과 ‘리니지’(1993), 강경옥 ‘별빛속에’(1987), 김진 ‘바람의 나라’(1992), 원수연 ‘풀하우스’(1993), 박희정 ‘호텔 아프리카’(1995), 천계영 ‘오디션’, 박소희 ‘궁’이다. 각종 만화 잡지가 쏟아지며 한국 만화가 황금기를 이뤘던 1980~90년대에 집중된 점이 눈길을 끈다. 대개 타 장르도 비슷한 상황이긴 하나 순정만화 장르가 잡지 시장이 열악해진 1990년대 후반 이후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2000년대 ‘웹툰’ 주류가 되다 역사는 짧지만 현재 한국 만화를 견인하고 있는 웹툰이 다수 포함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웹툰은 1990년대 후반에 싹을 틔워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국의 톡특한 만화 장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만화와 달리 독자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다. 또 ‘디지털 키즈’를 끌어당기는 스토리텔링과 연출 방식으로 짧은 시간에 전통적인 만화 플랫폼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기성 만화가들은 디지털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만화 문법에 적응하지 못하며 도태되는 경우가 많아 한국 만화계에 희망과 고민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강풀의 ‘순정만화’(2003)와 ‘그대를 사랑합니다’, 양영순의 ‘천일야화’(2005),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2006), 조석의 ‘마음의 소리’(2006), 윤태호의 ‘이끼’(2007), 주호민의 ‘신과 함께’(2010) 등 2000년 이후 작품 가운데 절반인 일곱 개가 웹툰이다. 웹툰 고유의 스크롤 방식은 아니지만 온·오프라인 동시 연재를 했거나 온라인에서 먼저 선보였던 허영만 ‘식객’과 최규석 ‘100도씨’(2009)까지 넓은 의미의 웹툰으로 포함한다면 웹툰이 한국 만화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확연해진다. ●이제 만화도 스마트 시대 명작 100선 선호도 조사와 함께 진행된 만화 열독 방식에 대한 조사 결과도 매우 흥미롭다. 만화를 즐기는 방식에 있어서 변화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1000명에게 만화를 보는 주된 방법을 물었더니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컴퓨터 등으로 본다는 응답이 42.7%로 가장 많았다. 주로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는 응답자도 21.6%에 달했다. 결국 디지털 방식으로 만화를 즐기는 비중이 64.3%에 이른다는 뜻이다. 반면 전통적인 방식은 크게 위축됐다. 단행본 등 책 형태로 본다는 응답자는 22.9%, 스포츠신문에서 본다는 응답자는 9.4%에 머물렀다. 최근 흐름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스마트 기기 부문이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보유한 비중은 79.2%로 집계됐다. 10명 중 8명이 스마트 기기를 보유한 셈이다. 이 가운데 스마트 기기를 통해 ‘매일’ 만화를 본다는 응답자는 16.0%였다. 매일 보는 경우를 포함해 ‘주 2~3회 이상’ 스마트 기기로 만화를 보는 비율은 44.3%에 달했다.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스마트 기기 보유자들은 스마트 기기를 통해 만화를 월평균 8.3회 보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만화계가 스마트 기기에 어울리는 만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까닭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국만화 명작 100선] “동서양 아우르는 한국형 히어로작가 양성을”

    [한국만화 명작 100선] “동서양 아우르는 한국형 히어로작가 양성을”

    2010년 8월 ‘비정시공’ 출판기념회 이후 1년 8개월 만에 만난 이현세 화백은 수척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초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이 화백은 수술 경과가 좋다며 웃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일단 끊었다. 그랬더니 친구들과 동네 술집 주인들이 모두 비상이란다. 보리밥만 먹고 집에서 화실까지 걸어 다닌다. 창작 활동에 지장은 없느냐고 했더니 “평생 살면서 이렇게 머리가 맑은 상태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술 먹을 시간에 더 그릴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많이 그릴 수 있다. 전혀 지장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한국 만화 명작 100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회화적 완성도에서 완벽한 작품도 아니고 더 좋은 작품이 많으니까…. 굳이 분석해보자면 캐릭터 설정, 갈등 구조, 중첩된 복선 등 당시로선 익숙지 않은 이야기 구조와 한국 전통 곡선에서 벗어나 직선의 미학을 사용한 점 등이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지 않았나 싶다.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동 만화가 아닌, 남녀노소가 모두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려보려 했다. 집요한 사랑 이야기가 여심을 사로잡았다. 강한 것이 아름답다, 도전하고 승리한다는 메시지는 남성층을 만족시킨 것 같다. 통과 의례를 거치면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게 해 주겠다는 메시지는 암울한 사회에 좌절하고 번민했던 수많은 젊은이의 일성이 아니었나 싶다. →아쉬움이 많은 작품은. -‘천국의 신화’다. 우리 민족 상고사를 주제로 한 대작을 그리려고 했다. 필생의 역작으로 생각해 100권을 목표로 했다. 음란물 시비로 6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절반가량 줄여 끝내야 했다. →최근 웹툰 심의 논란이 있었는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자정 능력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한심했다. 하지만 웹툰 작가들에게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요즘 웹툰 작가들은 상당히 개인적이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번 일로 한자리에 모여 뜻을 나누게 됐다. →‘천국의 신화’ 사건 뒤 필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는데. -‘천국의 신화’를 하며 신명이 없어졌다. 협심증과 당뇨도 그때 생겼다. 일단 의지도, 체력도 꺾였으니 그런 평가가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현세라는 작가 개인에겐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처음으로 만화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많이 부드러워지는 등 인간적으로 성숙해졌다. →한국 만화의 미래는. -출판 만화 시장이 위축된 게 문제지만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찾았다. 일본을 제외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행복한 거다. 세계적으로 자체 시장을 갖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일단 웹툰 체제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본다.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기 때문에 또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영화, 드라마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새로 제정된 만화 진흥법은 작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던 해외 마케팅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만화가 한류 콘텐츠로 자리 잡으려면. -이미 일본과 유럽에 우리 작가들과 작품이 진출해 있는 상태다. 남은 게 미국 그래픽 노블 시장인데 작가를 직접 보내 현지에서 공략하는 게 어떨까 싶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한국형 히어로를 만들어 성공을 거둔다면 소녀시대나 빅뱅을 뛰어넘는 한류 만화 스타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다음 작품 계획은? -‘천국의 신화’가 끝나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인기 캐릭터 베스트 10에 까치와 엄지가 없더라. 까치와 엄지로 밥 먹고 살 때는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 자리를 찾으려면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10년 동안 해왔다. 내 만화를 좋아하던 독자들이 골프를 즐기고, 아이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세대가 됐더라. 그래서 세계사·한국사와 ‘버디’를 그렸다. ‘창천수호위’ 등 이현세류 작품도 냈지만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이 크다. 내년이면 환갑이다. 70세 이후엔 동화를 하기로 마음먹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10년이 정말 중요한 시기다. 눈이 보이는 한 붓을 놓지 않을 것이다.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한국만화 명작 100선] 본지-진흥원 ‘100선 기획’ 어떻게

    [한국만화 명작 100선] 본지-진흥원 ‘100선 기획’ 어떻게

    우리 만화가 치열한 글로벌 문화전쟁 속에 영화·드라마·음악을 잇는 차세대 한류 콘텐츠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만화는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저급 오락물로 폄하되거나 청소년 유해매체로 배척되기 일쑤였다. 특히 기록의 보전과 가치의 평가에 있어서는 어떤 다른 분야보다 허술하고 하찮게 다뤄졌다.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하 진흥원) 공동 ‘한국 만화 명작 100선’ 선정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서울신문과 진흥원은 지난해 11월 ‘한국 만화 명작 100선’ 기획 추진 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실무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문성과 신뢰성을 두루 갖춘 명망 있는 선정위원단 확보였다.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등 관련 단체들의 추천을 통해 만화가, 교수, 평론가, 출판인 등 100명의 선정위원단이 구성됐다. 작품 추천이 특정 시대나 장르에 치우치는 것을 막기 위해 직군별, 장르별, 연령별, 성별 등을 세심하게 안배했다. 선정위원들은 한 권이라도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을 1인당 10~20편씩 추천했고, 이를 통해 한국 만화사 103년을 함께해 온 500여편의 주옥같은 우리 만화가 추려졌다. 서울신문과 진흥원은 이 가운데 추천 횟수 상위 100편으로 한국 만화 명작 100선을 확정했다. 진흥원은 이에 더해 올 1월 일반 독자 1000명을 대상으로 100선 개별 작품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했다. 우리 만화 사상 최초의 명작 100선은 이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신문은 전문가 추천 100선의 개별 순위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상위 10편만 공개하기로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100선 선정 도와주신 분들 강도하 강병한 강인선 고경일 고아라 곽현창 권가야 김낙호 김동범 김동화 김미림 김병수 김성훈 김세영 김수용 김양수 김은권 김준구 김충영 김현국 김형배 김혜린 라상균 문정후 박건웅 박경철 박관형 박기준 박소희 박인하 박재동 박정서 박정훈 박흥용 방학기 백무현 백정숙 백준기 서승택 서찬휘 손기환 손문상 송낙웅 신문수 신일숙 신형빈 얌이 양영순 양재현 오경은 오태엽 원종우 위원석 유승열 유승하 윤기헌 윤태호 이두호 이상무 이우영 이재식 이정문 이정은 이진희 이충호 이해광 이현석 이현세 이희재 임덕영 임청산 장봉군 장정숙 장진영 전극진 전진석 정필원 조관제 조득필 조항리 조희윤 주완수 주재국 주호민 진정식 천강원 천계영 최규석 최민 최재봉 하일권 한상정 한창완 허영만 형민우 홍승우 홍재철 홍종민 황미나 황민호(이상 가나다순)
  • [한국만화 명작 100선] ‘100選 만화방’ 놀러오세요~

    “우리 만화 100선을 어떻게 볼 수 있나요?” 한국 만화 명작 100선 가운데 중장년층이 향수를 느끼는 1980년대까지의 작품은 절판 등으로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다음 달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내 만화도서관에 ‘한국 만화 명작 100선 만화방’을 만들기 때문이다. 기존 만화도서관 서가에 100선 개별 작품을 비치하는 특별 코너를 마련해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박물관 수장고에 소장된 희귀 영인본도 복사본 형태로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진흥원은 또 명작 100선을 번갈아가며 상세하게 소개하는 순서도 마련할 예정이다. 만화도서관은 월요일(정기휴관), 1월 1일, 설 연휴, 추석 연휴를 빼고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 입장은 무료이지만 ‘고우영 기념관’, ‘만화가의 머릿속’ 등 각종 전시·체험 코너가 마련된 만화박물관을 이용하려면 4000~5000원이 필요하다. 진흥원은 23일부터 만화 전문 사이트 ‘디지털 만화규장각’(www.kcomics.net)을 통해 서울신문과 공동으로 선정한 ‘한국 만화 명작 100선’ 목록 전체를 공개하고 상세한 작품 정보도 제공한다. 또 온라인서점 ‘대교 리브로’(www.libro.co.kr)와 함께 한국 만화 응원 이벤트도 진행한다. 25일부터 두 달 동안 리브로 코믹 사이트에 명작 100선 특별 페이지를 만들어 응원 댓글이나 100선에 얽힌 추억 또는 감상 등을 남긴 독자 가운데 10명을 추첨해 최근 복간된 허영만의 ‘각시탈’을 선물한다. 이 밖에 진흥원은 ‘한국 만화 명작 100선’을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만화 복간 사업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국만화 명작 100選… ‘공포의 외인구단’ 1위

    한국만화 명작 100選… ‘공포의 외인구단’ 1위

    ‘꺼벙이’와 ‘둘리’, ‘오혜성’ 중에 가장 대표적인 한국만화 캐릭터는 무엇일까. 허영만과 이현세, 고우영, 이두호 중에 불멸의 역작을 가장 많이 남긴 작가는 누구일까. ●부천 박물관에 ‘100선 만화방’ 한국 만화역사 100여년을 빛낸 대표작품 100편의 명단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우리 만화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 보고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만화 명작 100선’을 공동으로 선정, 22일 발표했다. 만화는 오랜 세월 한국인의 정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중요한 문화 콘텐츠로 성장해 왔고, 최근에는 ‘K코믹스’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입지도 빠르게 넓혀 가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분석·평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심과 조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우리 만화사의 주역들을 ‘명예의 전당’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만화가 52명, 평론가 10명, 교수 18명, 출판기획자 20명 등 만화 전문가 100명에게 조언을 구해 ‘한국만화 명작 100편’을 최종 선정했다. 그 결과 1위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1982)이 차지했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다양한 기획기사를 오프라인·온라인(www.seoul.co.kr)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새달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 ‘명작 100선 만화방’을 설치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유통 포함 생산효과 2조원 만화는 문화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산업적으로도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0년 국내 만화산업의 생산유발 효과는 기획·제작 단계에서만 1조 3597억원에 달하고 유통 부문까지 포함하면 2조 1162억원에 이른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현재 국내 만화계는 K코믹스를 영화, 드라마, 스포츠, 음악에 이은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한국 만화 명작 100편 선정이 여기에 강한 추진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동화·만화속 그림여행 떠나볼까

    동화·만화속 그림여행 떠나볼까

    마침내 봄날 같은 봄이 왔다. 아이들 손잡고 가볍게 둘러볼 수 있는 만화 전시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참여형 이벤트도 있다. 9월 2일까지 경기 성남시 야탑동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서는 ‘에릭 칼 한국 특별전’이 열린다. 에릭 칼은 1967년 동화 ‘갈색 곰아, 갈색 곰아, 무엇을 보고 있니?’를 통해 데뷔한 뒤 다양한 종이조각을 콜라주 기법으로 엮어 내는 작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그의 작품만 따로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작가다. ‘배고픈 애벌레’로 미국뿐 아니라 한국 엄마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에릭 칼은 동화 속 그림뿐 아니라 순수예술 쪽으로도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 왔는데, 판유리나 플라스틱 칼집을 활용한 작가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에릭 칼이 그린 동화의 원화 작품들은 물론 그가 순수예술 분야에서 작업해 왔던 다양한 작품들도 함께 전시한다. 1만 2000원. 1577-4356.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는 6월 17일까지 ‘만화로 보는 세상’전이 열린다. 만화가 박수동의 ‘고인돌’에서부터 팝아트 작가 이동기의 ‘아토마우스’에 이르기까지 만화 그 자체나 만화를 응용한 현대미술작품 등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명랑만화 시대의 주역 박수동, ‘로봇찌바’의 신문수, ‘요철발명왕’의 윤승운, ‘심술통’의 이정문 등의 작품에서 옛 기억이 물씬 풍겨 난다. 요즘 유행하는 웹툰, 카툰을 위한 공간도 마련됐다. ‘패션왕’의 기안84, ‘도로시밴드’의 홍작가, ‘마음이 만든 것’의 정필원 등도 참가했다. 3000원. (02)425-1077. 이제는 대중적인 캐릭터가 된 육심원 작가도 독특한 이벤트를 벌인다. ‘육심원 친구 닮은꼴 찾기’ 이벤트다. 육 작가의 작품을 취급하는 갤러리AM은 25일까지 이메일(galleryam@nate.com)로 육심원이 그린 캐릭터와 비슷한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 ‘완전·많이·조금 닮은꼴’을 선발해 상금을 준다. 또 이들 가운데 우수한 작품들을 모아 5월 5일부터 28일까지 따로 전시회도 연다. 갤러리AM 측은 “육 작가의 캐릭터들이 모두 이 시대 여성이 따라하고 싶은 싱그러운 공주라는 점에서 재미있다는 반응과 함께 응모작들이 밀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미화·김제동·이외수·이준석… “닥치고 투표” SNS 인증샷 물결

    김미화·김제동·이외수·이준석… “닥치고 투표” SNS 인증샷 물결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1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문화계·연예계 인사들의 투표 인증샷이 넘쳐났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SNS를 통한 투표 참여 독려행위에 제한이 없어진 상황에서 치러지는 첫 선거인 까닭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문화계·연예계 인사들의 투표 독려는 여느 선거보다 활발했다. 국무총리실의 사찰과 관련, 이른바 ‘좌파연예인’ 논란에 휩싸였던 방송인 김미화씨는 한복 차림에 검정테이프로 일자(一) 눈썹을 만들어 개그맨 활동시절 ‘순악질 여사’ 캐릭터로 분장하고, 한손에는 ‘닥치고 투표’라고 쓴 방망이를 들고 찍은 투표 인증샷을 띄웠다. 김씨는 트위터 팔로어들이 올린 인증샷을 리트위트(재전송)하며 투표를 적극 당부했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아침에 갓 일어난 모습으로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김씨는 투표 시작 전 트위터에 “정치는 그 자체로는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습니다. 더러운 이들에게 정치를 주면 더러워지고 깨끗한 이들에게 정치를 주면 깨끗해집니다.”라는 글을 남겨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이돌 연예인들의 투표 인증샷도 줄을 이었다. 걸그룹 원더걸스의 유빈은 “선거권을 갖게 된 후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했는데 오늘도 역시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증샷으로 네티즌들로부터 ‘개념 아이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걸그룹 레인보우 지숙, 씨스타 소유, 달샤벳 아영 등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는 아이돌 연예인들의 인증샷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분홍색 치마 잠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투표 인증샷을 찍었던 개그맨 김경진씨는 “너무 서둘러서 투표하러 나오는 바람에 급하게 양치질, 머리 손질하는 중”이라며 투표소 앞에서 양치질하는 인증샷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연예인 못지않게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만화가, 교수들도 투표 인증샷과 함께 투표를 독력했다.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스포츠 머리로 짧게 삭발하겠다.”고 선언한 소설가 이외수씨는 트위터에 투표소 바깥에서 아내와 찍은 사진과 함께 “많은 분들이 제 헤어스타일이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하셨습니다. 현재 상황만으로는 예상보다 저조한 편이지만 젊은이들에 의해 막판 뒤집기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걸어 봅니다.”라며 젊은 층에게 투표를 호소했다. 만화가 강풀씨는 “나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라며 투표 전후 자신의 모습이 꽃으로 바뀌는 ‘비포 앤드 애프터’ 사진을 만들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조국 서울대 교수,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 파워 트위터리안들도 인증샷을 제시하면 서로 팔로(맞팔)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 사건의 소재가 됐던 재판의 합의 내용을 공개해 중징계를 받은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투표 인증샷을 찍을 때 특정 후보 기호를 연상케 하는 손가락 표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선관위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엄지손가락을 든 채 투표 인증샷을 찍어 트위터 등에 올린 이 판사는 “(같은 논리대로라면) 선거운동기간 중이 아닌 때에 손가락 둘을 펴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도 사전선거운동이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MBC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김태호 무한도전 PD는 “대국민 일꾼뽑기 오디션 ‘슈퍼머슴K’ 투표 참여했습니다.”라면서 총선을 오디션 프로그램에 비유한 뒤 “‘나 하나쯤이야’ 하다 보면 응원하던 사람 떨어지는 거 잘 아시죠.”라며 투표장에 갈 것을 호소했다. 스포츠 해설가 양준혁, 당구선수 차유람씨 등 스포츠 스타들과 윤일상·방시혁 등 유명 작곡가들도 인증샷 대열에 참여했다. 투표 인증샷이 이미 광범위한 사회적 현상이 된 만큼 네이버, 다음 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도 투표 인증샷과 관련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 이들 인증샷을 한데 모아 소개하거나, 인증샷 찍을 때의 주의점을 따로 공지하기도 했다. 신진호·조태성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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