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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는 내 사랑] (11)만화 비평서 냈던 시인 함성호

    [만화는 내 사랑] (11)만화 비평서 냈던 시인 함성호

    만화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집이나 사무실로 찾아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면 책장에 어떤 만화책이 꽂혀 있나 눈길을 주게 된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함성호(49) 시인의 집이자 사무실인 소소재(素昭齋)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웬걸, 서재에서 만화책을 찾아보기 힘든 게 아닌가. “만화는 만화당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냄새 퀴퀴한 소파, 라면 끓이는 냄새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이중 책장, 복작복작한 분위기에서 봐야 제맛이죠.” 그런데 만화당이라니? 그가 나고 자란 강원도 속초에서는 만화가게를 만화당으로 불렀다고 했다. 함 시인의 추억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만화책을 뒤적이다 저절로 한글을 깨우쳤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약주를 드신 아버지가 늦게 귀가해 만화책을 빌려 오라고 하면 밤길을 달려 만화당에 갔어요. 영업이 끝난 가게 문을 두드려 주인을 깨우곤 했죠. 하도 꼼꼼하게 고르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던 적도 많아요.” 그는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아버지가 특히 좋아했던 김기태 작가의 칼싸움 만화와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이근철 작가의 전쟁 만화를 꼽았다. “당시에는 만화가들의 그림체가 지금보다 더 개성 넘치고 다양했어요. 이근철 작가는 인물 얼굴을 길쭉하게 그리는 모딜리아니나 뒤뷔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정말 독특한 그림을 보여줬죠.” 함 시인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로 허영만 작가를 꼽았다. 기본적으로 깊이가 있고 독자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취재가 잘된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전세훈·전인호 작가의 관상 만화 ‘신의 가면’을 좋은 작품으로 추천했다. “사실 초등학교 교과서는 만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만화가 황당무계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요즘에는 만화만 봐도 웬만한 교양을 다 습득할 수 있잖아요.” 그는 젊은 세대 못지않게 웹툰도 많이 본다. 새로운 표현 방법과 만날 때마다 열광한다고. 그는 정병식 작가의 ‘가족 사진’에 대해서는 스크롤에 따라 변화하는 시선 처리에 정말 감탄했고 난다 작가의 ‘어쿠스틱 라이프’의 경우 처음엔 몰랐던 감동이 해가 갈수록 서서히 생겨나게 하는 진정성이 엿보인다고 소개했다. “요즘 한국 만화는 일본과는 다른 범주로 다양하게 나가고 있어요. 한국만의 독특한 게 있지요. 우리 만화는 한국인의 삶을 기록하는 데 아주 탁월하다고 봐요. 기록화적인 역할을 하는 거죠.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고 당시 삶을 가늠하듯 요즘 우리 만화가 나중에 대단한 자료가 될 수 있어요. 지금 순수미술이 하지 못하는 일이죠.” 그는 창작에는 비평이 따라 줘야 하는데 우리 만화에 대한 비평이 활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함 시인은 만화 비평서를 낸 얼마 되지 않는 국내 글쟁이 중 한 명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회화적인 시각에서 만화를 바라본 ‘만화당 인생’을 2002년에 냈다. 우리 만화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일본, 말레이시아 작품까지 다뤘다. 잘 안 팔려 ‘저주받은 걸작’이 됐다고 하는 그에게 비평서를 또 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부정적인 반응이다. “평생 즐겁게 만화를 봤는데 만화 보는 자체가 일이 되니까 가끔 짜증도 나더라고요. 올 초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주일에 한 번 만화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파업으로 중단하게 되니 너무 좋은 거 있죠. 허허허.” 그 대신 ‘페이퍼’ 등 대중잡지에 그렸던 카툰을 모아 작품집을 하나 낸다고 슬며시 말을 꺼낸다. 어쨌든 역시 만화 사랑 인생이었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2) 대학 만화 교육을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2) 대학 만화 교육을 말하다

    어린이날 즈음이 되면 동대문운동장이나 남산공원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애꿎은 만화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태우던 시절이 있었다. 만화가 어린이 정서에 얼마나 해로운지 보여주겠다는 관 주도의 과격한 퍼포먼스였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 만화학과가 생기리라 예견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만화 교육 열풍이 국내에 찾아왔고 지금은 해마다 1000명 이상의 만화 전공자가 배출되고 있다. 특정 스승을 찾아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던 선배들과 달리 지금의 젊은 만화가 지망생들은 대학에서 길을 찾으며 한국 만화를 풍요롭게 살찌우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 만화 선진국에서는 대학 내에 만화학과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역사는 오래됐다. 이미 1950년대에 관련 강의가 개설됐을 정도다. ‘만화왕국’ 일본에서 유일하게 만화학부를 둔 교토세이카대는 1973년에 2년제 만화 전공 코스를 개설한 뒤 1979년 4년제로 전환해 현재 대학원까지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전국 대학 10여곳에서 만화 교육을 하고 있으나 전문 직업학교 에콜의 역할이 더 크다. 우리나라는 20년가량 늦었다. 만화를 저급 문화 또는 불량 식품으로 취급하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만화를 학문 영역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만화 관련 공식 교육기관이 처음 생긴 것은 1990년이었다. 공주전문대(현 공주대)에 만화예술과가 개설됐다. 그러나 대학 만화 교육의 봇물이 터진 것은 그로부터 5년 뒤다. 출판만화 시장이 커지며 만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정부가 만화를 문화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부의 뒷받침과 지역 사학 설립 붐이 맞물려 만화 및 애니메이션 학과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 1995년 공주영상정보대, 경민대 등 2년제 전문대학에 잇따라 만화학과가 들어섰다. 이듬해 세종대와 상명대가 4년제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만화학과를 만들었다. 1997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만화학과가 개설됐다. 김병수 목원대 만화 애니메이션학과 교수에 따르면 국내 만화학과는 지난해 기준으로 20개 정도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게임, 디자인 등 관련 학과의 부분 전공까지 합치면 140여개 대학에서 만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 내 학과 설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만화에 대한 내용이 처음 포함됐다. 1999년에는 아현직업학교에 만화학과가 생겼고 이듬해 만화 특성화 고교인 한국애니메이션고가 문을 여는 등 중고교 과정에도 만화 교육이 뿌리를 뻗게 된다. 그러나 대학 만화 교육은 벌써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교육적 차원의 진지한 고민보다는 산업적 측면만 고려한 채 양적 팽창이 급속도로 이뤄진 결과다. 그동안 학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자리를 다지기보다는 인력 양성에 안주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는 게 만화계의 중론이다. 우선 대부분 미대 입시 형식을 빌려 온 입시 전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현재 만화학과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입학할 수 있어도 만화를 좋아하거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입학이 불가능하다. 그림만 보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와 내용도 함께 보는 방식으로 입시 체계가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커리큘럼 개선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 위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어 창조적인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있는 작가를 키워내기에는 미흡한 구조라는 것이다. 특히 만화 기획이나 비평, 문화, 산업 등을 공부하는 이론 과목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에서 만화의 학문적 위상이 자리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 양성도 중요하지만 만화를 학문으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학술·연구자들도 키워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연구자들이 대학 강단 외에는 설 곳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학부는 실기 위주인 반면 대학원은 학술·연구 위주인 불균형 구조도 개선 대상이다. 뉴미디어 등 매체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현재 대학에서 만화를 배우는 학생들이 5~6년 후 사회의 주류가 되기 때문인데 실제 대학 교육은 변화에 뒤쳐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만화 교육은 학원과는 다른 ‘대학다운’ 차별점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당장의 창작 기술에만 머물지 않고 미학적, 문화적, 나아가 과학적 맥락을 장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의미가 생긴다.”(김낙호 만화 평론가) 현재 만화학과 학생들이나 교수들에게 가장 큰 이슈는 취업 대책이다. 가장 잘 풀린 경우가 작가로 데뷔하는 것. 이 밖에 게임 회사나 일러스트레이션·동화 삽화 프리랜서, 만화학원 강사, 초·중·고 방과 후 예술 강사 등이 만화학과 졸업생의 진로가 된다. 그런데 취업자 규모에 따라 대학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게 현재 정부 방침이다. 만화학과는 취업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 학교 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부실 대학 지정으로 퇴출이 현실화되고 있는 요즘 학교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려 할 때 만화학과가 1순위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만화학과 졸업생들이 연재를 하고 단행본을 낸 작가가 되더라도 4대 보험이 없으면 취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학과에 견줘 상대적으로 불합리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화학과가 졸업생들에게 인턴으로라도 취업하라고 권하는 등 직장인 양성에 목매는 상황이 벌어진다. 장기적으로 만화 교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만화 전공 내에서 교직 이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초중고에서 만화 교육은 예술강사 제도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도 임시직 성격이어서 선호도가 그리 높지 않다. 예술강사들의 신분 안정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만화산업 발전 중장기 계획에 스태프 지원 제도, 1인 창조기업 활성화, 연구소 설립을 비롯해 연구 사업 활성화 지원을 포함시키는 등 교육계와 현장의 벽을 허무는 방안을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김병수 목원대 만화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만화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수원 화성 (김진섭 글, 김병하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18세기 실학정신과 신과학 기술이 녹아 있는 수원 화성의 건축 과정을 조선왕실의궤처럼 그려 넣은 그림이 길고 아름답다. 1만 5000원. ●이솝 우화 (장 필리프 모주네 글, 장 프랑수아 마르탱 그림, 최정수 옮김, 별천지 펴냄) 잘 알려진 이솝우화지만 그림이 달라지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진다. 현대적이면서 미니멀한 그림이 좋다. 1만 800원. ●이븐 바투타, 실크로드 세계를 여행하다 (박유상 그림, 아카넷주니어 펴냄) 실크로드는 아랍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가 물품교역을 통해 연결된 곳이다. 이곳을 돌아본 14세기 이슬람 법관인 바투타가 여행기를 남겼다. 1만 2000원. ●쿠당탕 (강경수 글·그림, 파란자전거 펴냄) 작가의 만화가다운 상상력으로 장화 신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해 피노키오, 피리 부는 사람, 라푼젤, 피터팬의 후크 선장 등을 조연으로 등장시킨, 뻔한 이야기지만 웃음이 나온다. 9800원.
  • [만화는 내 사랑] (10) 만화 그리는 변호사 이영욱

    [만화는 내 사랑] (10) 만화 그리는 변호사 이영욱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붙었다고 하면 왠지 만화와 거리가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영욱(41·연수원 34기·법무법인 강호) 변호사는 이 말에 고개를 젓는다. “30~40대는 어릴 때 만화를 많이 보며 자란 세대 잖아요. 판사나 검사, 변호사 중에 지금도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 변호사는 “하굣길에 만화가게 밖에 붙어 있는 신간 날짜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며 ‘해왕도의 비밀’(이현세), ‘무당거미’(허영만), ‘검신검귀’(이재학) 등을 떠올렸다. 그는 만화를 보고 또 보는 스타일이다. 명작들을 추려 그림이나 대사를 꼼꼼히 분석하듯 감상하는 취미가 있다. 요즘 파고 있는 작품은 ‘타짜’ 4부작(허영만)과 ‘십팔사략’(고우영). 조훈현의 삶을 다룬 ‘바둑 삼국지’(박기홍·김선희)를 걸작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그를 인터뷰에 초대하지 않았을 것. 그는 만화 그리는 변호사다.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작가다. 명함에 ‘만화가/ 변호사’라고 쓰는 이유다. 원래 그는 사시를 볼 생각이 없었다. 대학 때 공부는 뒷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만화 동아리에 열성을 바쳤다. 한겨레문화센터에 다니며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도 했다. 당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결혼식 주례가 시사만화로 유명한 박재동 화백이었다. 졸업 즈음인 1995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애니 단편상·각본상을 받았다. 또 신한새싹만화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첫 직장이 TV 애니 ‘영혼기병 라젠카’, 극장판 애니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을 만들던 서무비였다.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유명해진 오성윤 감독에게 일을 배웠다. 광고회사로 직장을 옮겼을 때도 캐릭터 사업팀에서 일했고, 집안 권유로 사시에 도전하게 됐을 때도 만화는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고시신문에 고시생의 하루를 담은 만화 ‘고돌이의 고시생 일기’를 3년가량 연재했던 것. 사법연수원 시절에도 홈페이지에 연수생의 하루를 그림으로 풀어 인기를 모았고, 지금은 대한변협신문에 변호사의 일상을 담은 ‘변호사 25시’를 6년째 연재하고 있다. 각종 판례들을 만화로 알기 쉽게 옮기는 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민법·형법·형사소송법에 이어 조만간 헌법과 관련한 여섯 번째 단행본이 나온다. 이 판례 만화들은 지난달부터 서울중앙지법 홈페이지에도 게재되고 있다. “요즘 법원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위한 콘텐츠로 만화 쪽을 생각했나 봐요. 원고료요? 판사님이 부탁하시니 어쩌겠어요, 그냥 감사패를 주겠다고 하시던데요. 하하하.” 지적 재산권이 그의 전문 분야다. 만화 저작권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만화 관련 저작권 분쟁 사건을 여러 건 처리해 왔고 강풀·윤태호 등 웹툰 작가가 속해 있는 에이전시 누룩미디어의 자문을 맡고 있다. 이따금 그림 솜씨를 발휘해 법정에서 사건 개요를 만화로 그려 판사에게 보여 주며 변론을 하기도 한다. “작가들은 깨알 같은 글자로 된 계약서를 보기 싫어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함부로 계약서를 썼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죠. 요즘 만화가 각광을 받으며 저작권 침해 사례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그의 꿈은 순수 창작 만화를 그리는 것이다. 특히 일본 ‘도라에몽’이나 미국 ‘스누피’ 같은 어린이 만화를 그려 보고 싶어 했다. “법조계를 다뤄 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요. 경제·경영 컨설팅 소재에도 관심 있지요. 지금까지가 그림을 다듬는 기간이었다면 이제는 슬슬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있는 느낌이네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1) 시사만화의 어제와 오늘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1) 시사만화의 어제와 오늘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대명사로 군림해 온 시사만화가 여러 해째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권력을 풍자하고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며 서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픔을 대변했던 시사만화가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 무대였던 신문 지면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독자들이 신문을 펼치면 가장 먼저 찾을 만큼 높았던 열독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위기의 시사만화의 과거를 짚어보고 온라인시대 부활의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우리 만화의 역사는 시사만화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1909년 이도영 화백이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게재했던 삽화를 근대 만화의 출발로 보는데, 그게 바로 시사만화다. 시사만화는 이렇듯 언론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와 친일파를 풍자하며 민초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대한민보는 일제의 사전 검열에 맞서 시사만화 게재란을 먹칠해 인쇄한 적도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에도 시사만화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등 독재와 억압 속에 말 한마디 제대로 하기 힘들었던 시절, 시사만화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다. 1950년대 들어 시사만화의 스타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대중적인 스타는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동아·조선 등)이다. 이승만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며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고바우 영감에 이어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경향·한국 등), 김기율 화백의 ‘도토리’(서울), 정운경 화백의 ‘왈순 아지매’(경향·중앙 등), 윤영옥 화백의 ‘까투리 여사’(서울), 오룡 화백의 ‘야로씨’(조선), 이홍우 화백의 ‘나대로 선생’(동아) 등이 차례차례 스타로 떠올랐다. 시사만화의 기본이 권력에 대한 풍자라 필화(筆禍)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1958년 김성환 화백의 ‘경무대 똥통’·1972년 윤영옥 화백의 ‘새마을 운동 비판’·1986년 안의섭 화백의 ‘대통령 모욕’ 사건 등이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시사 만화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당시 일부 네 칸 만화들은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군사 정권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박재동이란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한겨레 그림판을 통해 참신하고 진보적인 한 칸 만평을 선보이며 스타로 떠올랐다. 이는 신문 시사만화의 주류가 ‘네 칸 만화’에서 ‘한 칸 만평’으로 이동하는 세대 교체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후 김상택(경향·중앙)·백무현(서울) 화백 등이 한 칸 만평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시사만화의 위기가 시작된다. 민주화 이후 만평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사들은 시사만화 지면을 점점 줄여나갔다. 2002년 동아일보는 손문상 화백이 떠나며 만평의 맥이 끊겼다. 2004년에는 문화일보와 세계일보가 각각 이재용, 조민성 화백과 갈등을 빚으며 만평을 내렸다. 2007년 매일경제 이필선 화백, 2009년 중앙일보 김상택 화백, 2011년 조선일보 신경무 화백이 지병으로 세상을 뜨며 만평이 자취를 감췄는데, 중앙일보만 박용석 화백이 맥을 잇고 있다. 시대를 풍미하던 네 칸 만화는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1999년 조선일보 ‘미스터 삐삐’(안중규), 2002년 중앙일보 ‘왈순 아지매’, 2004년 한겨레 ‘미주알’(김을호), 2008년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이 차례차례 연재를 중단했고 이후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다. 전국 단위 일간지가 한 칸 만평, 네 칸 만화를 모두 게재하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네 칸 만화를 계속 연재해 온 전국 단위 일간지는 서울신문·경향신문·매일경제밖에 없다. 한 칸 만평과 네 칸 만화를 모두 다뤄 온 곳은 서울신문·경향신문뿐이다. 시사만화가 위축되고 있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시대의 변화다. 과거와 달리 권력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수단이 많아졌고 그 경쟁에서 시사만화가 조금씩 밀려났다. 오프라인 매체의 권위가 무너진 온라인 시대가 오며 사회 풍자 기능을 인터넷 콘텐츠에 상당 부분 내주게 된 것. 언론사 내부의 원인도 있다. 민주화 이후 저항 대상이 정치 권력에서 자본 권력으로 이동했고, 광고주와의 관계를 고려한 언론사 내부 편집 방침과 시사만화가들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언론사들도 부담스러운 시사만화 게재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무한경쟁 시대에 광고매출 감소로 경영난에 봉착한 중소 언론사들은 구조조정 1순위로 시사만화를 올려 놓는 분위기다. 시사만화를 부활시키려면 시사 만화계 자체는 물론이고 언론계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많다. 많은 전문가들이 내부 편집 방향에 얽매이지 않고 시사 만화가의 소신과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한다. 독자를 사로잡을 화제작이 자주 나올 수 있도록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매일 마감을 해야 하는 국내 시사 만화가들은 외국에 비해 정신노동의 강도가 매우 높다. 정치·경제·사회 등 전문 분야별로 전담 시사 만화가를 둬 높아진 독자 수준을 충족시킬 만한 전문성과 깊이를 갖추고 이를 통해 노동 강도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사 만화계 내부의 변화도 절실하다. 독자의 관심과 욕구가 다양해진 만큼 그동안 갇혀 있던 정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시사만화의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형식 파괴를 시도하며 새로운 시대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필요성도 제기된다. 시사만화 인력이 정체된 만큼 후진 양성 시스템을 고민해 볼 시기다. 현재 전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사 만화가는 30명 안팎. 그나마 정규직은 10명가량이다. 좁은 시장 탓에 시사 만화가 지망생도 갈수록 줄고 있다. 김을호 화백 이후 여성 시사 만화가는 맥이 끊긴 상태다. 기성 언론에 소속된 시사 만화가에 견줘 상대적으로 더 많은 창작의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에 인터넷 미디어를 통한 시사만화가 늘고 있지만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에는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새로운 시사만화 플랫폼을 만들어 저변을 넓히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면이 있는 작가와 지면이 없는 작가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시사만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배포하고 여기에서 수익 구조를 만들어 작가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앞으로가 매우 중요하다.”(하재욱 전국시사만화협회 사무국장·시사만화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거대한 숲에서 인간의 자기 모순과 추함을 보다

    거대한 숲에서 인간의 자기 모순과 추함을 보다

    “숲에서 부엉이가 울고 나무들이 달려든다고요.”(40쪽) 편혜영(40)이 쓴 장편소설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읽는 내내 이 구절을 챙겨야 한다. 보통 소설이라는 것이 읽어 가면서 플롯을 이해하고 주인공과 동일시하면서 결과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래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주요한 지점마다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다. 이런 식이다. 가사 문제 변호사 이하인은 어느 날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나선다. 이경인은 산의 관리인으로 있었다. 그리고 실종되기 전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부엉이~’ 운운한다. 형은 자신의 치통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하인에게 폭력을 가해서, 이하인은 어린 시절 형이 죽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를 꿈꿔 왔다. 탐정이 된 듯 이하인은 주민들에게 수소문한다. 2주 전에 관리인으로 부임한 박인수, 세탁소 주인 최창기, 서점 주인 한성수, 술집 주인 이안남, 관리소의 진 등이다. 그런데 이하인이 형을 찾지도 못했는데 뺑소니 트럭에 치여 죽고 만다. 어처구니없는 1부의 끝이다. 적자 서점을 12년째 운영하는 한창기는 진에게 빚이 있지만, ‘그 숲에서 한 일, 그동안 목격한 것, 그가 공모자로 가담한 일 모두가 담보였다.’고 말해 무엇인가가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암시를 팍팍 해 놓았다. 때문에 실망과 맥빠짐을 정리하고, 실종된 이경인도 찾아야 하니까 2부에 기대를 걸어야 했다. 그러나 2부에서 형은 잊혀진다. 대신 새로운 관리인 박인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박인수는 전도양양한 회사원이었지만, 이직에 실패하면서 인생이 무너져 내렸다. 하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계속 미역국을 먹는 박인수는 점차 술에 의존해 살아간다. 술에 취해 자살을 시도했고, 자살에 실패한 날 외동아들 세오를 집어던져 머리를 다치게 한다. 그 결과 세오는 아토피를 앓게 되고, 아빠를 두려워한다. 인생에 실패해서 술을 마시는지, 술을 자꾸 마셔서 삶이 실패하는지 선후가 헷갈리게 된다. ‘악마가 사람을 일일이 찾아다니기 어려울 때는 대리로 술을 보낸다.’는 프랑스 격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3부는 세탁소 주인 최창기, 서점 주인 한성수, 술집 주인 이안남, 관리소 진의 과거사가 펼쳐진다. 마치 만화가 윤태호의 ‘이끼’가 떠오르는 인생들이다. 마치 진은 이끼의 이장 같고, 나머지는 어떤 엄청난 일의 공모자들로 보인다. 남자 형제 사이의 이 갈리는 폭력을 그리면서 로펌 사무장의 입을 통해 “안 친한 가족이 널렸습니다. 게다가 가족보다 친하다는 말은 가족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친해 보인다는 것이지 속을 다 내보일 정도로 친한 건 아닙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지독한 관계일 수도 있고요.”라며 그 일당의 관계를 암시했다. 그런데 진과 그 일당이 저질렀다는 불의나 범죄는 변호사 이하인을 교통사고사로 위장해 살해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 사소하다면 사소하다. 따라서 불안과 공포를 따라서 이 소설을 독해해 나갔다면 심각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 소설이 뭐냐? 이경인에서 박인수로, 박인수에서 또 다른 관리인으로, 그것도 알코올 중독자를 또 고용해 똑같은 사건이 반복적으로,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론 없이 진행될 것을 암시한다. 우리 사회는 거대한 음모도 아닌 사소한 음모에 결탁돼 타인을 이용하고 기망하면서, 술에 취해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취중 현실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끝내 깔끔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탐정소설은 아니다. 스릴러 장르 소설 같기도 하지만, 끝내 순수소설이라고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이런 작자의 의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인 작가는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시작으로 이효석문학상(2009), 오늘의 젊은예술가상(2010), 동인문학상(2011)을 수상했는데,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 만한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배트맨 한판 붙자”… 충무로 스타군단 맞짱 뜬다

    “배트맨 한판 붙자”… 충무로 스타군단 맞짱 뜬다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7~8월을 앞두고 영화계는 지금 ‘폭풍 전야’다. 지난해 여름 ‘최종병기 활’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강세를 보였던 것과 달리 올해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앞세운 할리우드 대작들의 공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영화는 액션, 코미디, 스릴러, 사극 등 다양한 장르와 풍성한 이야기로 승부수를 띄웠다. 올여름 할리우드 공습에 맞설 한국 영화 빅 8를 짚어봤다. ●100억대 대작…물량 對 물량 올여름은 예년에 비해 한국 영화 대작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100억원대 블록버스터 두 편이 개봉해 체면치레할 예정이다. 그중에서도 총 14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도둑들’(7월 25일 개봉)은 단연 군계일학이다.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오달수, 김해숙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초호화 출연진이 등장하며 ‘한국판 어벤져스’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타짜’와 ‘범죄의 재구성’ 등 범죄 액션물에 일가견을 보인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최 감독은 최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한 주 먼저 개봉하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의 경쟁에 대해 “배트맨이 꿈에 나올 정도지만 대결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배우들이 가진 매력 역시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면서 기대와 부담감을 동시에 밝히기도 했다. 정지훈(비)의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인 ‘R2B: 리턴 투 베이스’도 100억원이 넘게 투입된 항공 블록버스터. 이 작품은 올해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후반 작업에 공을 들이며 분위기를 쇄신해 오는 8월에 개봉한다. 하늘에 인생을 건 전투기 조종사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으로 신세경, 유준상 등이 출연한다. ●여름철 대표선수 공포 스릴러 누가 뭐래도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는 공포·스릴러다. 새달 5일 여름 성수기 시장의 포문을 여는 ‘연가시’는 인간의 뇌를 조종해 자살하게 하는 살인 기생충 연가시를 소재로 한 재난 공포 영화. 연가시는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괴담이 퍼지면서 유명해진 기생충으로, 영화 개봉에 맞춰 인터넷에 동명 웹툰을 공개하는 등 입소문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연가시에 감염된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 재혁 역은 연기파 배우 김명민이 맡았다. 7월 19일 개봉하는 영화 ‘이웃사람’은 만화가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스릴러 영화. 이웃집 소녀가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뒤 의문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서로 의심하는 이웃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세븐데이즈’에서 납치당한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로 출연했던 김윤진이 이번에는 딸을 죽인 연쇄 살인범에게 맞서는 엄마 역으로 다시 한번 모성애 연기를 펼친다. 천호진, 마동석, 김성균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고 아역 배우 김새론이 1인 2역에 도전한다. ●윤제문 VS 박진영 코미디 대결 무거운 영화들 사이에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코미디물도 있다. 새달 12일 개봉하는 ‘나는 공무원이다’는 개성파 배우 윤제문의 첫 영화 주연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어떤 일에도 흥분하지 않는 ‘평정심의 대가’ 7급 공무원이 홍대의 문제적 인디밴드를 만나면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는다는 이야기로 그동안 각종 드라마와 연기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인 윤제문이 발랄한 생활 밀착형 코미디 연기로 변신을 꾀한다. 윤제문의 코미디 연기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배우가 아닌 가수 박진영이다. 그가 생애 처음으로 영화배우에 도전하는 ‘500만불의 사나이’는 7월 19일 개봉을 확정했다. 500만불 전달을 명한 뒤 자신을 죽이고 돈을 빼돌리려는 상무의 음모를 알게 된 회사원이 대반격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추노’와 ‘7급 공무원’의 제작진이 만든 코믹 추격극이다. 첫 영화 주연을 맡은 두 배우의 코믹 연기 경쟁에 관심이 쏠린다. ●신토불이의 힘…사극 2편 출격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습이 조금 느슨해지는 8월에 사극 두 편이 출격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사극 ‘최종병기 활’이 8월에 등장해 여름 극장가의 다크호스가 됐던 선례를 따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는 8월 9일 개봉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당시 권력의 상징이었던 얼음을 얻고자 서빙고를 털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사극이다. 차태현이 얼음 전쟁을 도모하는 리더 역을 맡아 생애 첫 사극에 도전하고 오지호가 조선 제일의 무사로 출연한다. 8월에 개봉할 예정인 ‘나는 왕이로소이다’도 신분이 뒤바뀐 세자와 노비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사극. 왕세자의 자리가 부담스러운 세자 충녕이 궁에서 탈출하고 우연한 사고로 그와 꼭 닮은 노비 덕칠이 충녕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군 복무 후 3년 만에 돌아온 주지훈의 복귀작으로 그는 1인 2역에 도전한다. 화끈한 물량 공세는 없지만 어느 때보다 다양한 상차림에 충무로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영화 ‘도둑들’의 배급을 맡은 쇼박스의 최근하 과장은 “할리우드 대작들의 공세가 예상되지만 한국적인 소재와 연기파 배우들이 포진한 국내 영화 라인업도 충분히 알차고 강점이 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9) 소설가 성석제

    [만화는 내 사랑] (9) 소설가 성석제

    “제게 고우영과 도스토옙스키, 베토벤은 동급이죠.” 소설가 성석제(52)에게 인생의 책을 꼽으라고 했더니, 고전 명작을 제쳐 두고 고우영의 ‘삼국지’를 골랐다. 고등학생 때 갓 개통한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고 등교하며 스포츠신문을 통해 접했던 고우영의 ‘삼국지’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고 했다. “이전까지 읽었던 만화나 무협지는 모두 제 눈높이였어요. 그런데 고우영 삼국지는 경지가 달랐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이 있었고, 밀도가 높고 문학적이고 창의적이었어요.” 할머니 무릎을 베고 옛날 얘기를 듣는 것도 쉽지않던 어린 시절, 누이가 빌려온 만화책은 성석제에게 세상을 향한 통로가 되어 주었다. 다섯 살 즈음으로 기억한다. 집안 곳곳에 숨겨져 방치됐던 돈 꾸러미들이 귀신이 돼 사람을 괴롭히는 내용의 만화였다. 글도 만화책으로 익혔다. 아홉 살 위 형이 이정문의 ‘설인 알파칸’을 사갖고 왔다. 국내 SF만화 초창기 작품이다. 그림은 알겠는데, 글을 모르니 약이 바짝 올랐다. 오기 때문이었는지 한나절 만에 글을 깨우쳤단다. 초등학교 때는 만화보다 무협지에 빠져 살았지만 곧 만화를 벌컥벌컥 들이켤 기회가 찾아왔다. 중학교 입학 무렵 가족이 경북 상주에서 서울로 이사했다. 다른 형제들은 먼저 가고 성석제만 1년을 더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남았다. 읍내 만화가게를 싹쓸이하던 시기였다. 10~20원에 하루 종일 만화를 볼 수 있었다. 무협지로 단련한 속독 솜씨를 발휘해 앉은 자리에서 수백권을 읽어 젖혔다. 당시 재미있었던 만화로 2차 세계대전 소재 전쟁물을 주로 그렸던 이근철의 작품 등을 꼽았다. “돈 몇 푼 내고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만화가게 주인에겐 밉상이었겠죠. 한 번은 쓰러져 가는 아파트에서 서민들 사이에 일어나는 소동을 다룬 만화를 보다가 큰 소리로 웃었더니 ‘여기가 너네 안방이냐’며 쫓겨날 뻔한 적도 있어요.” 어른이 된 뒤에도 김수정, 허영만, 박재동, 주완수 등의 작품을 만나며 만화의 진화를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만화 걸작들을 보면 다른 예술 장르와 견줘도 뒤질 게 없어요. 만화가 갖고 있는 힘과 특성, 이런 게 완성됐다고 봐야 하니까 우열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죠.” 바둑을 좋아하는 그에게 박수동의 ‘만방 아저씨’, 일본의 ‘고스트 바둑왕’ 등 바둑 소재 만화를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그러나 무협 만화들은 아무리 봐도 만족스럽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무협만큼은 만화로 봤을 경우 환상이 덜한 적이 많았다는 것. 50세가 넘은 지금도 성석제는 여전히 만화를 본다. 좋은 만화가 있다는 소문이 산 넘고 물 건너 끊임없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만화를 볼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여동생 집은 ‘만화 아지트’ 역할을 한다. 만화를 워낙 좋아하는 매제가 폐업을 앞둔 만화 대여점에서 ㎏당 가격을 매겨 만화책을 수천 권 넘게 구입했다. 무엇이 계기가 되든 한 번 발동이 걸리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읽는다. 최근 인상 깊었던 것은 굽시니스트의 작품. 함부로 흉내내지 못할 자기만의 문법으로 풍자를 넘어서 철학에 가까운 관점을 보여 주는 게 인상 깊다는 설명이다. 그의 소설은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만화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이 만화로 그려진다면 어떨까. “그럴 만한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의가 들어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정말로 감사할 일이죠.”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0) 어린이 창작만화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0) 어린이 창작만화를 말하다

    “어린이 창작 만화는 그냥 맥이 끊긴 정도가 아니야.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지. 게임하고 학원 다니느라 아이들 정서가 메마른 요즘 같은 때 과거보다도 어린이 창작 만화가 더 절실한데 말이야.” 올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인 윤승운(69) 화백을 최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SICAF 어워드는 일종의 공로상이다. 윤 화백은 길창덕(1930~2010)·신문수(73) 화백과 함께 명랑 만화를 대표하는 만화가다. ‘꼴찌와 한심이’, ‘두심이 표류기’, ‘요철 발명왕’, ‘맹꽁이 서당’ 등 주옥 같은 그의 작품에 어린이들은 울고 웃었다. 윤 화백은 50년 만화가 인생이 인정받았다는 기쁨보다 아쉬움을 진하게 드러냈다. 자신이 한창 활동할 때와는 달리 어린이 창작 만화가 빛을 잃은 요즘이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도 상이라는 걸 못 받아 봤는데, 준다니까 기분은 좋아. 그러나 이상해. 다 끝나고 나서 받으니까 말이야. 창피하기도 하고….” 그는 지난해 초부터 작품 연재를 중단한 상태다. 윤 화백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손자도 게임에 빠져 산다며 섭섭해 하기도 했다. “게임기를 내가 사줬는데 말야. 허허허…. 그래도 예전에 그렸던 작품을 보여 주면 곧잘 흥미를 보이더라고.” 한학에 조예가 깊은 그는 그릴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 사서삼경 같은 고전을 어린이 만화로 옮기고 싶어 한다. 마음속에선 ‘공자’, ‘맹자’, ‘장자’ 등을 만화로 옮겨 유명한 타이완 만화가 차이즈중(蔡志忠)이 라이벌이다. 창작열이 여전히 끓고 있는데도 윤 화백은 작품을 연재할 통로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했다. “젊은 후배들도 활동할 무대가 드문 마당에 다 늙어서 밥 먹을 자리 찾는다는 소리를 듣기는 싫지. 꼭 내가 아니더라도, 어린이 창작 만화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어린이 창작 만화를 그리는 후배들이 계속 나왔으면 해.” 초등학생 이하를 어린이, 18세 이하를 청소년, 그 이상을 성인으로 구분할 때 국내 어린이 창작 만화 시장은 지리멸렬 그 자체다. 어린이 만화가 창작 만화가 아니라 학습 만화 형태로 큰 흐름을 이루고 있기는 하다. 어린이 만화가 꿈과 희망을 주며 우리 고유의 정서와 인성을 키우는 시대가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며 학습 효과를 올리는 시대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젠 학습 만화마저 획일화되며 포화 상태다. 학습 만화는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여전히 영어, 수학, 과학에 매달리거나 성공한 전작을 답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이 창작 만화의 활성화가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는 게 만화계 시각이다. 국내 최초 어린이 만화는 1925년 1월 나왔다. 방정환이 발행한 잡지 ‘어린이’에 실린 안석주의 6칸짜리 ‘씨동이의 말타기’다. 국내 만화의 출발점을 1909년으로 삼는 게 보통이니 만화가 어린이의 친구가 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근대 만화 초창기를 제외하면 우리 만화는 ‘아동’이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며 어린이의 전유물로 각인돼 왔다. ▲1950년대 ‘만화세계’ ▲1960년대 ‘새벗’ ‘학원’ ▲1970년대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 등 어린이 잡지와 어린이 신문을 통해 만화는 어린이의 친구이자 동시에 교사 역할을 했다. 어린이 만화의 호황은 ‘보물섬’으로 상징되는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 어린이 만화는 성인 잡지에 이어 청소년층을 겨냥한 잡지들이 쏟아져 나오며 주춤거린다. 만화계 내부 원인도 있었다. 만화계 자체적으로 어린이 만화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했다. 만화는 유치하고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고, 그 결과 만화의 외연이 넓혀지자 대부분 창작자들이 청소년·성인 만화로 쏠렸다. 때마침 일본 소년·소녀 만화가 물 밀듯이 들어왔다. 사회적으로는 어린이에 걸맞은 어린이 문화가 사라지고 청소년·성인 문화와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실도 한몫했다. 아이들이 즐길거리가 많아진 환경 또한 어린이 만화의 침체를 부채질했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 시대 부모들의 선택에서 어린이 창작 만화는 열외 대상이 되며 밀려났고 그 자리를 어린이 학습 만화가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어린이 창작 만화가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1960~80년대와 비교할 순 없지만 어린이 창작 만화를 꾸준히 연재하고 또 연재분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어린이 잡지가 남아 있다. 2003년 12월 창간된 ‘고래가 그랬어’(고래가 그랬어 출판사)와 2005년 12월에 창간된 ‘개똥이네 놀이터’(보리출판사)다. 각각 통권 100호와 80호를 넘겼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김경호의 ‘귀신장군 무동이’, 김홍모의 ‘두근두근 탐험대’ 등 어린이 창작 만화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잡지의 힘이 컸다. 2005년 제정된 부천만화대상을 통해서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어린이 만화 부문에 대한 시상이 이뤄지고 있다. 학습 만화와 창작 만화 모두 대상이다. 최근에도 변화의 계기가 될 만한 일이 생겼다. 어린이 전문 출판사 비룡소의 만화 브랜드 고릴라박스가 총상금 3000만원을 걸고 어린이 만화 관련 공모전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비룡소 측은 “만화 본연의 즐거움과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참신한 어린이 창작 만화를 탄생시켜 국내 어린이 만화 시장에 신바람을 일으키는 한편 이를 한류로 연결해 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어린이 창작 만화가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학습 대상으로 바라보는 풍토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국내 만화의 다양성을 담보하고 어린이들에게 ‘친구’를 되찾아 주기 위해 공적인 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출판 시장, 특히 만화 시장 상황에서 사명감만으로 어린이 창작 만화의 맥을 잇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창작 만화에 대한 지원이 1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작품은 남지만 부가가치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좋은 만화 한 편이 만들어지면 여러 가지 2차 저작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시장, 구조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나오겠지요.”(유문숙 ‘개똥이네 놀이터’ 편집장) “좋은 어린이 창작 만화가 나와도 시장에서 독자들에게 접근하기까지 애로 사항이 많다는 게 중요해요. 창작과 제작 지원도 중요하지만 유통과 보급 쪽으로도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전국 국공립도서관과 학교 도서관 등 도서관 네트워크를 통해서 좋은 어린이 만화 목록을 보급하고 권장하고, 새로 나온 어린이 창작 만화를 모아 주기적으로 소개하는 등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 평론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토끼와 원숭이’ 만화책 문화재 1호 되나

    국내 최초로 만화책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 한국만화박물관은 21일 “국내 첫 만화 단행본으로 알려져 있는 고 김용환 화백의 ‘토끼와 원숭이’를 지난 4월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1946년 5월 조선아동문화협회가 발간한 이 책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연말까지 등록 문화재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만화박물관은 고 김종래 화백의 ‘엄마 찾아 삼만리’(1958년) 육필 원고도 함께 문화재로 등록할 계획이다. 등록 문화재는 국가가 엄격한 규제를 통해 보존하는 국보·보물·사적 등 지정 문화재와 달리 생성 연도가 크게 오래되지 않아 역사적·학술적 가치는 다소 떨어지지만 보존 및 활용 가치가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현존 최고(最古)의 영화 필름인 ‘청춘의 십자로’(1934년) 등이 등록 문화재로 올라 있다. ‘토끼와 원숭이’는 그동안 기록으로만 존재해 왔으며 실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문 32쪽짜리인 ‘토끼와 원숭이’는 마해송 원작의 동화를 김 화백이 만화로 옮긴 작품으로 그림과 글이 분리된 삽화체 형태다. 일각에서는 김 화백의 또 다른 작품인 ‘홍길동의 모험’이 1945년 후반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단행본 효시로 보기도 한다. 원로 만화가 박기준 화백은 “‘토끼와 원숭이’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그림이 뛰어나고 예술적 가치가 높다.”면서 “의인화된 동물을 소재로 한 점은 당시 일본보다 우리 만화가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⑧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 장범준

    [만화는 내 사랑] ⑧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 장범준

    올 상반기 대중음악계 최대 이슈 중 하나는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다. 지난해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에서 준우승을 하더니 올 3월 자작곡 11곡을 담아 발표한 데뷔 앨범이 상한가를 쳤다. ‘벚꽃 엔딩’, ‘이상형’, ‘첫사랑’, ‘여수 밤바다’ 등 8~9곡이 동시에 음원 차트 상위권을 석권했다. 두 달도 안 돼 13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을 정도. 톱 클래스 아이돌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첫 단독 콘서트에 이어 지난달 시작한 전국투어 콘서트도 연일 매진이다. 이쯤 되면 버스커버스커가 만화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사람도 있겠다. 버스커버스커는 만화가 맺어준 밴드다. 리더이자 기타를 치는 장범준(23)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김형태(20)는 상명대 천안캠퍼스 만화·디지털콘텐츠 학부 선후배 사이. 드럼을 두드리는 브래드(27)는 같은 학교 영어 강사였다. 밴드 로고나 1집 앨범에 그려진 멤버 캐릭터 이미지 모두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장범준의 손에서 빚어졌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장범준을 전화로 만나봤다. “연습도 하고 미니 앨범도 준비하고, 방송 녹화도 하고 광고도 찍고, 연예계 생활을 처음 해보고 있어요. 사실 얼떨떨하죠. 엄마도 (사람들이) 제 노래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요.” 좋아하는 작품을 물으니 ‘슬램덩크’, ‘ H2’, ‘격투맨 바키’, ‘킹덤’, ‘진격의 거인’ 등 일본 작품을 앞머리에 세운다. 국내 작품으로는 강풀 시리즈,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하일권의 ‘3단합체 김창남’ 등을 꼽았다. 그림이 주는 느낌이 좋다며 의외로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를 보태기도 했다. “여러 가지로 세상을 느껴볼 수 있잖아요. 작가가 만들어가는 서정적인 분위기, 그런 게 특히 좋았죠.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했어요. 사실 글자 읽는 것을 싫어하는 저로선 만화가 있어 너무 행복했어요. 딱딱한 위인전도 만화로 보면 정말 재미있었죠.” 만화와 음악 사이에서 연결 고리를 많이 느낀다고 한다. 만화를 그리는 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1집의 ‘여수 밤바다’ 같은 경우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밤바다가 까만데 보이지는 않고, 모텔 불빛이나 조명이 아름답게 내려쬐는 장면들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썼죠.” 좋아하는 축구는 몸집이 작아서, 하고 싶은 노래는 가수 얼굴이 아니라서 중3 때 그림으로 진로를 잡았다는데 과연 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고2 때인 2006년 대구시 주최 대구만화캐릭터공모전에서 대상,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조선대 주최 전국학생미술실기대회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장범준은 “특기자 전형을 위해 공모전에 자주 나갔기 때문”이라고 겸손해 하는 한편, 입시 미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입시 미술을 하다 보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목표로 그리게 되죠. 그러다 보면 그림 실력은 느는데, 그리고 싶은 마음은 없어져요. 그래서 지금 음악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어요.” 표현이 더 자유롭고 다양해서 만화가 다른 어떤 순수 미술보다 진짜 그림 처럼 느껴진다는 장범준은 여전히 만화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 “원래 극화체로 만화를 그리는데, 패션 드로잉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죠. 언젠가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꼭 그려보고 싶어요.”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⑨ 만화의 OSMU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⑨ 만화의 OSMU를 말하다

    최근 안방극장에서 사랑받고 있는 드라마 ‘각시탈’은 원래 허영만의 만화가 원작이다. 1974년 만화계에 데뷔한 허영만은 두 번째 작품인 ‘각시탈’을 통해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이 만화는 1978년 김추련 주연의 ‘각시탈 철면객’이라는 영화로 변신해 스크린에 걸렸다. 1986년에는 일제시대가 배경인 원작과 달리, 북한을 배경으로 한 반공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만화의 ‘원소스 멀티유스’(OSMU·하나의 소재를 여러 장르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만화가 TV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변신하는 것은 기본. 음악과 공연, 게임, 캐릭터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화는 여러 콘텐츠 산업 분야에 풍부한 소재와 상상력을 제공한다. ‘각시탈’ 사례에서 보듯 다양한 형태의 재탄생을 통해 만화 자체의 생명력도 길어진다. 만화 창작자에게는 창작 활동을 뒷받침할 수익원의 다변화를 보장한다. 2010년 만화 산업의 OSMU 효과는 3144억원에 이르며, 이를 포함한 전체 전·후방 경제 유발 효과는 1조 36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제작과 유통까지 포함하면 2조 1000억원대다. 만화의 영화화에 물꼬를 튼 작품은 1924년 첫선을 보인 노수현의 ‘멍텅구리 헛물켜기’다. 국내 네 컷 만화의 효시로 알려진 이 작품은 1926년에 미국 할리우드 코미디 형식을 빌린 우리 영화 사상 최초의 풍자 희극 영화 ‘헛물켜기’로 만들어졌다. 물꼬는 일찌감치 터졌으나 1970년대까지 스크린으로 옮겨진 만화는 그리 많지 않다. ‘각시탈 철면객’ 외에 김승호 주연 ‘고바우’(1959), 도금봉 주연 ‘왈순 아지매’(1963), 장미희 주연 ‘순악질 여사’(1979) 정도다. 다들 원작이 이야기 만화가 아니라 시사 만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각각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정운경의 ‘왈순 아지매’, 길창덕의 ‘순악질 여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원작 인기가 영화화로 이어졌겠지만, 당시까지 이야기 만화는 어린이용이라는 사회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사영화 외에 1967년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이 처음 등장한다. 국내 최초 극장판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이다. 동생 신동우의 ‘풍운아 홍길동’을 형 신동헌이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이 작품 이후 2010년 ‘마법 천자문’까지 국내 만화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나, 그 숫자는 많지 않다. 1980년대에는 만화 르네상스에 힘입어 이현세의 ‘떠돌이 까치’,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등이 TV 애니메이션으로 활발하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만화의 영화화는 1980년대 들어 본격화된다.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28만명을 끌어모은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기폭제가 됐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원작이다. 이후 이현세·박봉성·허영만 작품 등 선 굵은 극화들이 잇달아 영화로 옮겨진다. 1990년대 초반에는 배금택의 ‘변금련’, 한희작의 ‘러브러브’, 강철수의 ‘돈아 돈아 돈아’ 등 농도 짙은 성인 만화들이 스크린 나들이를 하며 또 다른 흐름을 형성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만화 원작 영화가 개봉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 이 때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일본 만화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이 대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김용화 감독의 ‘미녀는 괴로워’다. 2006년에 나온 허영만 원작의 ‘타짜’는 관객 680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만화 원작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만화의 영상화는 드라마도 예외가 아니다. 공교롭게 만화 원작 첫 드라마도 시사 만화에서 비롯됐다. 1967년 TBC에서 방송한 ‘왈순 아지매’가 그 주인공. 이후 만화 원작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87년 허영만 원작의 ‘퇴역전선’이었다. 1990년대는 만화 원작 드라마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기였다. 청춘스타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던 1993년 이현세 원작의 ‘폴리스’와 1995년 허영만 원작의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가 성공을 거둔다. 특히 1998년 김희선·김민종이 주연을 맡은 허영만 원작의 ‘미스터Q’가 정점을 찍는다. ‘미스터Q’가 세운 최고 시청률 45.3%(평균 35.5%)는 역대 만화 원작 드라마 사상 최고 기록으로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서는 만화 원작 드라마 제작이 급증한다. 그러면서 2003년 방학기 원작 ‘다모’, 2004년 원수연 원작 ‘풀하우스’, 2005년 강희우 원작 ‘불량주부’, 2006년 박소희 원작 ‘궁’, 2007년 박인권 원작 ‘쩐의 전쟁’, 2009년 일본 만화 원작 ‘꽃보다 남자’ 등이 꾸준히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며 만화의 입지를 넓혔다. 특히 ‘다모’의 경우 팬덤을 형성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 만화 영화화의 대세는 웹툰이다. 웹툰에 내러티브를 본격 도입한 강풀 같은 경우 ‘아파트’를 시작으로 많은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 연극,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올해도 ‘이웃사람’과 ‘26년’이 대개 중이다. 강풀 작품을 비롯해 지금까지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졌거나 판권 계약을 맺은 웹툰은 20개가 넘는다. 드라마의 경우 ‘꽃보다 남자’ 이후 일본 만화 원작이 크게 늘고 있다. 국내 만화계에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일단 지상파 외에 케이블TV 등 매체가 늘어나며 검증된 원작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아시아 시장, 특히 일본을 겨냥한 드라마 수출도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작품이 해외에서 재탄생하는 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 형민우의 ‘프리스트’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돼 지난해 개봉했으며, 하일권의 ‘3단합체 김창남’은 영국 제작사와 판권 계약을 맺은 상태다. 만화의 OSMU는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영화계, 방송계의 주축으로 성장하며 만화적인 문법과 아이디어, 클리셰(정형화된 표현)를 차용한 영화, 드라마가 쏟아지고 있다. 간혹 도용 내지 표절 시비가 일기도 한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다. 창작자 사이에서 만화와 관련한 지적 재산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 이유다. 만화 원작자에 대한 권리 보호도 시급하다. 웹툰의 경우 1차적으로 무료이다 보니 저작권료가 저렴하게 책정되기도 한다. 또 만화가들이 계약에 서툴러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기도 한다. 이 때문에 만화가를 위한 매니지먼트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만화의 OSMU는 아직 시작 단계로 볼 수 있다. 미국·일본에 견줘 원작 만화와의 산업적 연결성이 약한 게 아쉽다. 게임, 캐릭터, 패션 등 부수적인 라이선스 사업들이 따라와야 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영상화에 그치고 있다. 보다 넓은 영역에서 OSMU가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그 피드백이 만화 창작 쪽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백수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만화 캐릭터 대상 받은 신인가수 누군가 했더니…

    만화 캐릭터 대상 받은 신인가수 누군가 했더니…

    올 상반기 대중음악계 최대 이슈 중 하나는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다. 지난해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에서 준우승을 하더니 올 3월 자작곡 11곡을 담아 발표한 1집 앨범이 상한가를 쳤다. ‘벚꽃 엔딩’, ‘이상형’, ‘첫사랑’, ‘여수 밤바다’ 등 8~9곡이 동시에 음원 차트 상위권을 석권했다. 두 달도 안돼 13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을 정도. 톱 클래스 아이돌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첫 단독 콘서트에 이어 지난달 시작한 전국투어 콘서트도 연일 매진이다. 이쯤 되면 버스커버스커가 만화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사람도 있겠다. 버스커버스커는 만화가 맺어준 밴드다. 리더이자 기타를 치는 장범준(23)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김형태(20)는 상명대 천안캠퍼스 만화·디지털콘텐츠 학부 선후배 사이다. 드럼을 두드리는 브래드(27)는 같은 학교 영어 강사였다. 밴드 로고나 1집 앨범에 그려진 멤버 캐릭터 이미지 모두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장범준의 손에서 빚어졌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장범준을 전화로 만나봤다. “연습도 하고 미니 앨범 준비도 하고, 방송 녹화도 하고 광고도 찍고, 연예계 생활을 처음 해보고 있어요. 사실 얼떨떨하죠. 엄마도 (사람들이) 제 노래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요뭐.” 중·고교 시절 좋아했던 작품을 물으니 ‘슬램덩크’, ‘ H2’, ‘격투맨 바키’, ‘킹덤’, ‘진격의 거인’ 등 일본 작품을 앞머리에 세운다. 국내 작품으로는 강풀 시리즈,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하일권의 ‘삼단합체 김창남’ 등을 꼽았다. 그림이 주는 느낌이 좋다며 의외1로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를 보태기도 했다. “여러 가지로 세상을 느껴볼 수 있잖아요. 작가가 만들어가는 서정적인 분위기, 그런 게 특히 좋았죠.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했지요. 사실 글자 읽는 것을 싫어하는 저로선 만화가 있어 너무 행복했어요. 딱딱한 위인전도 만화로 보면 정말 재미있었죠.” 만화와 음악 사이에서 연결 고리를 많이 느낀다고 한다. 만화를 그리는 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1집의 ‘여수 밤바다’ 같은 경우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밤바다가 까만데 보이지는 않고, 모텔 불빛이나 조명이 아름답게 내려쬐는 장면들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썼죠.” 좋아하는 축구는 몸집이 작아서, 하고 싶은 노래는 가수 얼굴이 아니라서 중3 때 그림으로 진로를 잡았다는데 과연 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고2 때인 2006년 대구시가 주최 대구만화캐릭터공모전에서 대상, 부천만화정보센터(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조선대 주최 전국학생미술실기대회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장범준은 “특기자 전형을 위해 공모전에 자주 나갔기 때문”이라면서 입시 미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입시 미술을 하다보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을 목표로 그리게 되죠. 그러다 보면 그리는 실력은 느는데, 그리고 싶은 마음은 없어져요. 그래서 지금 음악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어요.” 만화가 표현이 더 자유롭고 다양해서 다른 어떤 순수 미술보다 진짜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장범준은 여전히 만화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 “원래 극화체로 만화를 그렸는데, 패션 드로잉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죠. 언젠가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꼭 그려보고 싶어요.”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광주학살 주범 26년만에 단죄”

    “광주학살 주범 26년만에 단죄”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만화가 강풀의 인기 웹툰 ‘26년’이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화사 청어람은 13일 “미술감독 출신인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혜진과 진구, 임슬옹, 변희봉씨 등을 캐스팅해 7월 첫주에 크랭크인한다. 9월까지 촬영을 끝내면 12월에는 개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새달 크랭크인… 12월 개봉 예정 서울대 미대 출신 조근현 감독은 ‘후궁: 제왕의 첩’을 비롯해 ‘마이웨이’ ‘형사 Duelist’ ‘장화, 홍련’ 등에서 감각적인 미장센을 선보인 실력파다. 진구는 5·18 당시 아버지를 잃은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을 맡았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은 한혜진이 연기한다. 학살 주범을 직접 처단하려는 극비 프로젝트에서 저격수로 활약한다. 아이돌 그룹 2AM의 멤버 임슬옹은 현직 경찰 권정혁으로 분한다. ‘26년’은 2008년부터 수차례 영화화가 시도됐다. 하지만 광주의 비극을 겪은 국가대표 사격선수, 조직폭력배,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 등이 26년 후 그날, 학살 주범 ‘그 사람’을 단죄한다는 민감한 내용 탓에 번번이 투자가 무산됐다. ●민감한 내용 탓에 번번이 영화화 무산 지난 3월에는 시민들에게 3만~5만원씩 소액 투자를 받는 소셜 필름 메이킹(Social Film Making)을 도입했지만, 목표액 10억원을 채우지 못했다.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제작비 46억원 중 15억원이 부족하지만, 크랭크인까지 3주 남았고 크라우드 펀딩도 재개할 계획이다. 용기를 내어준 투자자들과 배우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7) ‘건축가 부부’ 임형남·노은주씨

    [만화는 내 사랑] (7) ‘건축가 부부’ 임형남·노은주씨

    ‘달토끼’라는 만화가 모임이 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함께 모여 사람 사는 풍경을 크로키로 옮긴다. 박재동, 이희재, 오세영 등 대선배부터 젊은 후배까지 여러 세대가 만나 정신적 교류를 하고 봉사 활동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임형남(51)·노은주(43) 가온건축 공동대표도 이 모임의 일원이다. 박재동 화백의 권유로 건축가의 상상력과 만화가의 상상력을 나눈 지 벌써 일년 반이 넘었다. 개근은 못 했지만 만화가를 꿈꾸는 큰딸도 열심히 데리고 다닌다. “좋은 분들을 뵙는 것 자체가 훌륭한 공부죠. 대가들이라 잘 그리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건 둘째치고 정말 열심히 그리세요. 조금이라도 쉬면 손에 녹이 슨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말만 앞서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노은주) 짜장면 한 그릇 값인 300원에 어린이 만화잡지를 즐겨 보던 순간, 책이 고무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만화방을 드나들던 순간, 나갔다 들어오면 돈을 다시 내야 하기 때문에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오줌을 꾹꾹 참았던 순간…. 누구나 만화에 대한 추억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부부에게 만화는 그저 추억 속에 머무는 게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활동으로 만화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 고2·중3 두 딸과 함께 온 가족이 서울 남산에 있는 ‘만화의 집’을 자주 찾는다. 웬만한 만화책은 소장하고 있는 만화 도서관이다. 김혜린을 좋아하는 엄마는 순정만화 중심의 잡식성, 고우영을 최고로 치는 아빠는 명랑만화파로 이상무의 독고탁 시리즈가 공통분모다. 딸들에겐 박소희의 ‘궁’을 비롯해 일본 만화 ‘원피스’나 ‘강철의 연금술사’가 인기다. 요즘 만화도 접하고 옛 만화도 들춰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세대 차가 없어지고 동등한 입장이 된다. 서점에서 소설과 시집을 구입하고 만화를 고르는 시간도 이들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요즘 아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크게 보면 게임, 연예인, 만화예요. 우리 부부는 게임은 안 되고 요즘 노래도 따라잡기 힘드니 만화는 아이들하고 저희를 이어주는 끈이자 소통하는 통로죠. 비용도 가장 덜 들고 중독성도 적고 정서에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노은주) “숙제는 했냐, 요즘 성적은 어떠냐 정도를 빼면 공통 화제가 별로 없죠. 만화를 통해서는 시사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아이들에게 시 못지않게 창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바로 만화죠.”(임형남) 만화 예찬은 계속된다.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삶을 접하기 힘든 게 분명한 사실. 만화는 영화, 연극을 보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는 게 부부의 지론이다. 더욱이 만화는 그림과 그림 사이, 칸과 칸 사이를 상상으로 메워 볼 수 있다. 노 대표는 학창 시절 ‘아르미안의 네 딸들’ 같은 대하 순정만화를 보다가 세계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사회 일각에선 만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는 것을 안다. 올 초만 해도 일부 웹툰의 폭력성이 거론되며 사전 심의 논란까지 일었다. “부모로서 그런 걱정 많이 하죠. 그런데 20~30년 전에도 칼싸움, 총싸움이 난무하던 홍콩 영화를 많이 봤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가치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게, 걸러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노은주) 온 가족이 만화 마니아지만 역시 부모는 부모다. 아이들이 만화를 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따금 걱정도 된다며 웃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아이들에게 한마디 던진다고 한다. “얘들아! 공부는 하고 만화 보는 거니?”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8) 만화축제·전시를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8) 만화축제·전시를 말하다

    만화를 그저 책으로만 보던 시대는 지났다. 평면 2차원(2D)에서 뛰쳐나온 만화를 3차원(3D) 공간에서, 오감(五感)으로 즐기는 시대다. 생각과 기술이 기존 틀을 깨고 무한대로 질주하며 만화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종합 예술이 됐다. 여름은 이런 만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계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풍성한 만화 축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7월엔 SICAF, 8월엔 BICOF 다음 달 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등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이 여름 만화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올해로 16회째. 8월에는 15일부터 닷새 동안 경기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등에서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가 개최된다. 올해 15회를 맞았다. 특별 전시회와 시상식, 국내외 작가 초청전, 체험 이벤트, 각종 페어로 꾸며지는 굵직한 두 행사에는 해마다 각각 20만명, 10만명 안팎이 다녀간다. SICAF, BICOF 같은 대형 행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크고 작은 만화 전시회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예술 형식의 하나로 만화를 체험하고 소비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술 영역으로의 진출은 만화를 신한류 콘텐츠로 거듭나게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평가된다. 해외에서 만화 전시회는 1960년대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화와 서사적 형상’ 전시회가 최초 만화 관련 전시회로 꼽히는데 개최 일주일 만에 5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만화 시장과 만화 문화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잣대인 축제가 본격화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1970년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 1974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1975년 일본 도쿄 코미케가 세계 만화 중심지에서 차례차례 시작됐다. 세계 3대 만화 축제로 손꼽히는 행사들이다. 각각 팬덤 중심, 출판만화 중심, 동인지 중심으로 차이가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만화축제 본격화 우리나라에서 만화 축제는 1990년대 중반에 도드라졌다. 민주화 물결 속에 각종 문화 연구 담론이 쏟아져 나왔는데 만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중 오락으로만 여겨졌던 만화는 이때부터 예술 경계를 넘어서는 문화 연구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됐다. 여기에 만화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며 산업과의 융합을 꿈꾸는 문화산업론적 시선도 보태졌다. 특히 정부는 문화 콘텐츠가 세계 강국을 만든다는 기치 아래 만화를 규제 대상이 아닌 진흥 대상으로도 바라봤다. 만화 관련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생겨난 것은 1994년 문화관광부 내에 문화산업국이 신설되고 2000년까지 문화산업진흥기본법 등이 만들어졌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1995년 SICAF가 만화 축제의 물꼬를 텄다. 첫해 15만 1000명, 이듬해 39만 5000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수많은 만화 콘텐츠를 한자리에서 종합적으로,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후 1997년 동아·LG국제만화페스티벌과 춘천만화축제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1998년 BICOF가 깃발을 들었다. 코미케를 본뜬 코믹월드, 아마추어리즘을 내세운 AKA만화축제도 생겼다. 이 밖에 대전, 대구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의 만화 축제들이 쏟아졌다. 이러한 흐름은 만화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히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으나 중복과 부실이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축제 포화’ 상태가 된 2000년대 들어 일부 만화 축제들은 없어지거나 축소되고 다른 취지의 행사로 바뀌었다. 대신 만화 관련 상설 전시공간이 등장하는 성과가 있었다. 2002년 서울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내에 만화의 집이, 2009년 경기 부천에 한국만화박물관이 문을 연 것이다. 방대한 만화 라이브러리와 함께 다양한 소재의 기획전을 상시적으로 열어 가족 단위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만화박물관의 경우 지난해 관람객 23만 7000명을 기록했다. 저소득 계층 등 무료 관람객을 제외하더라도 유료 관람객이 17만명에 달했다. ●외형은 커졌지만 내실은 좀 더 다져야 국내 만화 축제는 외형적인 면에서는 세계 유수 행사에 버금 가는 수준이 됐지만 좀 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 축제 모방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는 고유의 축제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축제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자생력을 갖춰야 하는 게 가장 큰 숙제다. 대부분의 축제는 중앙정부나 지자체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유료 입장 수익과 스폰서 유치가 자생력 확보를 위한 관건이다. SICAF의 경우 서울시의 10년 지원 협약이 올해 종료된다. 관람객이 주로 어린이층이라는 것도 취약점이다. 또 관람객 대부분이 내국인이라는 한계도 있다. 예산의 한계를 딛고 보다 다채로운 기획을 마련해 성인 마니아층을 이끌어 내는 한편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를 위해 해외 만화 전문가·작가·관람객 유치를 위한 노력도 다각도로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만화 축제는 작가와 독자, 작품이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그런데 관(官) 주도로 출발했다는 한계 때문인지 실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본래 취지가 퇴색돼 정작 작가는 참여를 꺼리고 마니아들도 찾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김병수 만화가) 만화 축제는 다소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으나 만화 관련 전시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만화가 가진 파격적인 상상력이 관객 코드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전시 비용 측면도 무시못할 부분이다. 국내 전시 시장이 위축되다 보니 사업자들이 미술품에 비해 제작비가 덜 드는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 쪽에서 틈새 시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비용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면 질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도 나오기 때문이다. “만화 관련 전시가 늘어나는 것은 일단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신선함과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전시도 많다. 인터넷 등을 통해 엄청나게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여해 기획해야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한상정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지금까지 만화 축제나 전시회는 만화를 산업 콘텐츠로 생각하며 꾸려졌지만 순수 예술 차원에서 바라보는 행사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야 작가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 만화가 진정한 의미의 신한류 콘텐츠로 도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 3월에는 만화 원화를 순수 미술 작품처럼 판매하는 만화 전문 아트 마켓이 국내 최초로 열리기도 했다. “국공립 미술관에서 만화 전시를 하고 정부 아트뱅크에 만화 원화가 당당히 포함되는 등 순수 예술로 인정받을 때 만화가 오랫동안 한류라는 이름에 걸맞은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이철주 문화기획사 아르떼피아 대표)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일하는 퍼스트레이디/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천재 만화가 래리 고닉의 성공에는 한 출판 편집자의 공이 컸다. 1980년 생소한 래리의 ‘역사만화 시리즈’가 유능한 편집자였던 케네디 미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의 손에 들어가면서다. 재키는 재혼한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가 죽자 45세의 늦은 나이에 새로운 출발을 했다. 대형 출판사인 더블데이의 부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전 보그지의 사진기자였던 재키는 책을 좋아해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19년간 출판 편집장으로서 재능을 발휘했다. 복사기 앞에 줄을 서고, 계단 통로에 앉아 다른 이들과 토론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변신했던 것이다. 그녀는 “80세까지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64세에 삶을 마감했다. 재키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간 영부인이 또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은 엘리제궁에 살던 시절 인권과 소수자 권리보호에 얼마나 열심히 매달렸던지 종종 프랑스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동거녀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는 다니엘을 능가하는 맹렬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 같다.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데다 영부인이 되고도 계속 워킹 맘으로 일하겠다고 선언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트리에르바일레가 최근 영부인이 되고 난 뒤 처음으로 잡지 ‘파리마치’에 기사를 써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쓴 기사는 전기작가 클로드 카트린 키즈망이 쓴 ‘엘리너 루스벨트, 퍼스트레이디이자 반란자’라는 책에 대한 서평이다. 그는 기사에서 “생각해 보라. 기자 영부인은 새로운 게 아니다. 대서양 건너편의 이런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반세기 전 자신과 비슷한 길을 갔던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를 상기시켰다. 엘리너 여사도 잡지 ‘우먼스 데모크라틱 뉴스’에서 기자로 일하다 편집장까지 했다. ‘여성 민주당 소식’에 사설을 쓰고, 백악관 생활을 소재로 한 신디케이트 칼럼 ‘나의 날’을 집필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칼럼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 파리마치의 정치부 기자 출신인 트리에르바일레는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문화부로 옮겼다. 두 번째 남편과 낳은 10대 아들 셋을 기르고 있다. 그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도 아닌 올랑드에게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인생관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해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진다. 프로는 역시 아름답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6)‘미수다’ 미르야 말레츠키

    [만화는 내 사랑] (6)‘미수다’ 미르야 말레츠키

    이건 정말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방송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널리 알려진 독일 여성 미르야 말레츠키(35) 이야기다. 지금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문화 전도사’. 처음부터 한국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땐 일본 만화와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을 동경해서다. 그런데 그가 홈스테이로 머물던 집의 주인 부부가 이혼을 해 두 달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듬해 함부르크대에 입학해 일본어를 전공으로, 한국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부전공 선택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일본을 떠날 당시 한국이 잘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였을 뿐이다. 2000년 3월 우연히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고 나서야 알았다. 한국에도 재미있는 만화가 있다는 것을. “한국에 대해 아는 거라곤 태권도 정도였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한국의 문화와 사람들이 대단하더라고요. 1학기 일정이었는데 2년이나 머물게 됐습니다.”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 접했던 한국 만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선명한 게 조운학의 학원 무협물 ‘니나 잘해’다. “가장 나이 많은 외국인 누나로 태권도 도장을 다녔는데 한국 남동생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게 만화 내용과 맞아떨어져 무척 재미있었어요.” 사서 보는 걸 즐겨 한국 만화를 수백권은 족히 모았다고 한다. 미르야는 한국 만화로 가득 채워진 독일 집 책장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여줬다. 독일 본대학 한국어번역과에 편입해 다닐 때는 같은 과 교수부터 모르는 사람까지 한국 만화책을 빌려 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통역으로 활동하다가 귀국길에 올랐다. 여기서 또다시 운명을 만나게 된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잠시 들렀던 것. 일본 만화를 번역 출판하는 독일 출판사 부스를 찾아가 한국 만화도 재미있는데 혹시 출간할 계획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이듬해 3월 그가 번역한 한국 만화가 독일에서 처음 나왔다. 고야성의 ‘유리달 아래서’다. 지금까지 그녀가 독일어로 옮긴 한국 만화는 ‘프리스트’ 등을 포함해 줄잡아 200여권이다. 2005년을 즈음해 번역했던 이명진의 ‘라그나로크’와 이윤희·카라의 ‘마왕일기’는 독일에서 최고 인기 있는 일본 만화 ‘원피스’보다 더 잘 팔렸다. “제가 번역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특히 ‘마왕일기’는 한국보다 오히려 독일, 프랑스, 미국서 더 인기를 끌었죠.” 가장 번역하고 싶은 만화책으로는 박소희의 ‘궁’을 꼽았다. 독일 출판사에 추천했더니 현지 만화 시장에선 그림체가 아직 시기상조라고 했단다. “사실 외국에서는 중국, 일본을 많이 알면 알았지 한국에 대해선 잘 몰라요. ‘궁’ 같은 작품을 통해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죠.” 2006년 한국에 정착해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는 그는 ‘아이온’ 등 한국 온라인 게임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도 많이 한다. 미르야의 꿈은 한국에서 어서 빨리 노벨상 작가가 나오는 것이다. 번역가로서 한국 작품을 해외로 널리 알려 한국에서도 노벨상 작가가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제가 번역한 작품이 노벨상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고 보면 한국에는 좋은 게 너무나도 많은데 외국에서는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많이 아쉬워요.”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7)리얼리즘을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7)리얼리즘을 말하다

    ‘만화 같다.’는 말이 있다. 좋게 이야기하면 환상적이라는 뜻으로, 나쁘게 이야기하면 황당무계하거나 유치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만화 특유의 상상력이 강조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대 만화의 뿌리를 더듬다 보면 18~19세기 유럽 풍자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석판이나 동판에 계몽과 풍자를 담아낸 그림들이다. 원래 만화의 출발점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근대 만화는 시사만화, 풍자만화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 상륙해 우리 만화 역사의 첫 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리얼리즘 만화가 K코믹스의 새로운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상상이 아닌 현실을 이야기해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리얼리즘 작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리얼리즘 만화는 교양·학습 만화, 웹툰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틈새 시장이다. 하지만 우리 만화 생태계에 다양성의 저변을 넓히고, 오락·상업 위주로 성장한 만화에 예술성을 부여해 다른 예술 장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들어 줄 분야로 만화계는 기대하고 있다.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공동 선정한 ‘한국 만화 명작 100선’ 중엔 허영만의 ‘오! 한강’, 이희재의 ‘간판스타’,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 장진영의 ‘삽 한자루 달랑 들고’, 최규석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와 ‘100도씨’, 최호철의 ‘태일이’가 넓은 의미의 리얼리즘 만화로 분류된다. 신문 만평과 네 컷 만화 등 시사 만화가 오랫동안 현실을 반영해 온 것에 비해 긴 이야기 구조를 갖춘 서사 만화에서 리얼리즘이 본격적으로 싹을 틔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해외에선 퓰리처상에 빛나는 만화 ‘쥐’의 모태인 아트 스피겔먼의 ‘지옥별의 죄수’나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기수 로버트 크럼의 ‘로버트 크럼의 고백’ 등 1970년대 초 작품들을 리얼리즘 만화의 초기 형태로 본다. 이웃 일본 같은 경우에도 히로시마 원폭 피해 경험을 소재로 1973년 연재를 시작한 나카자와 게이지의 ‘맨발의 겐’이 대표적이다. 시기적으로 68혁명이나 전공투 운동 등의 역사 흐름 속에서 리얼리즘 만화가 태동했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가 출발점이다. 큰 갈래 가운데 하나가 1980년대 민중 운동 흐름 속에서 나왔다. 1982년 농촌 문제를 다룬 탁영호의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기념비적인 작품. 이후 1980년대 중후반까지 노동 만화, 농민 만화, 빈민 만화 등이 꾸준히 등장했다. 다른 갈래는 제도권 만화의 몫이었다. 1980년대 이후 이현세와 허영만이 두각을 드러내며 표현에 있어 사실성을 가미한 극화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내용의 사실성과 사회적인 탐구, 현실 비판적인 내용을 담아내려고 하는 흐름이 형성됐다. 대표적인 작가가 이희재, 오세영, 박흥용, 백성민 등이다. 특히 이희재, 오세영 등은 월간 ‘만화광장’ 등 여러 성인 만화 잡지를 통해 사회성 짙은 단편들을 쏟아냈다. 1990년대 중반 단행본으로 출간된 ‘간판스타’와 ‘부자의 그림일기’는 이러한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국내 리얼리즘 만화의 이정표를 세웠다. 오락성에 치우쳤던 기존 만화와 달리 시대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녹여내고, 한편으로 새로운 만화 문법을 제시해 작가주의 작품, 예술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원래 만화는 고급 엘리트 문화가 아니라 대중 문화로 출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 내는 것은 애당초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위원석 휴머니스트 편집 주간) 1990년대 들어서는 동구권이 몰락하는 등 사회가 변화하고 상업 만화가 정점을 찍으며 리얼리즘 만화는 흐름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다. 대신 해외 리얼리즘 만화 걸작들이 속속 소개되는 한편 만화 예술 운동을 내세운 언더그라운드·독립 만화가 등장하며 다음 시기를 위한 발판을 준비했다. 2000년대, 특히 2000년대 중후반 들어 리얼리즘 만화가 다시 꽃을 피운다. 강풀의 ‘26년’과 최규석의 ‘100도씨’ 등 사실과 허구를 섞은 팩션 만화에서부터 어두운 현대사를 조명하는 역사 만화(정경아 ‘위안부 리포트’, 박건웅 ‘노근리 이야기’ 등),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는 자전 만화(오영진 ‘보통시민 오씨의 북한체류기’, 고영일 ‘푸른 끝에 서다’ 등) 등으로 범주도 다양해졌다. 김홍모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참여한 ‘내가 살던 용산’, 김수박의 ‘사람 냄새’ 등 사회 이슈를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해 만화로 옮기는 다큐멘터리(르포) 만화도 나왔다. 리얼리즘 만화가 재도약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1980년대 우리 만화 붐을 청소년기에 경험했던 세대가 성장해 만화 시장에서 주요 소비층이 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 30~40대가 된 독자 사이에 진지한 만화를 보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론 2000년대 들어 정치 지형도가 바뀌면서 정치적 피로감과 무력감을 해소하는 미디어들이 예전만큼 다양하지 않은 상황도 한몫했다. 기존 미디어에서 균형감 있는 소통이 부족하다 보니 하위 문화인 만화로 소통에 대한 요구가 쏠렸다. 창작자들의 발언 욕구도 강화됐다. 1980년대 리얼리즘 만화가 일부 선구자들이 이끌고 가는 것이었다면 요즘 리얼리즘 만화의 창작 지형은 보편화됐다. 1인 미디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창작자들이 만화를 통해 사회에 말하고 싶은 바를 전달하려는 분위기가 이뤄진 것. 가장 신세대적인 분야로 여겨지는 웹툰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동물에 빗댄 윤필의 ‘야옹이와 흰둥이’는 리얼리즘 우화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또 웹툰 특유 ‘병맛’ 작품을 그렸던 이경석도 최근엔 진지한 리얼리즘 단편을 그려내기도 한다. 젊은 작가군도 사회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자본과 기득권의 시선에서 바라본 현실이 많이 유포되고 있는데 이와는 다른 시선에서 사회와 진실을 바라보는 노력들도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리얼리즘 만화, 다큐 만화가 지속돼야 한다.”(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리얼리즘 만화의 숙제는 확연하다. 일부 성공 사례들도 있지만 지속 가능한 창작 활동을 담보하기에는 아직 전체 시장이 여물지 않았다. 독자에게 소비되고 또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이 다시 창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만화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우선 리얼리즘 만화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다. 사회 참여적인 소재나 내용을 유지하되 주요 타깃인 성인 독자층의 정보 교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역사나 인문 소재와의 접목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또 리얼리즘 만화 자체가 상업·오락 만화의 대안으로 출발한 점을 고려하면 산업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문화 운동, 예술 운동 차원의 협동조합 등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창작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리얼리즘 만화가 새 시장을 만들었지만 아직 만족할 수 있는 시장이 된 것은 아니다. 만화 전체 시장의 위축 속에서 틈새 역할은 충분히 한 만큼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석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팀장·만화 평론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서울시 축제형 일자리 박람회 폐막

    서울시가 기존의 기업-구직자 매칭 위주에서 벗어나 ‘축제형 일자리박람회’로 꾸민 2012 서울시 청년여성일자리박람회가 시민들의 호응 속에 마무리됐다. 30일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이날 덕성여대에서 열린 박람회에는 구직과 이색 직업 체험을 원하는 시민 3000여명이 참여했다. 특히 이날 박람회는 기존 전시형 박람회와는 달리 참여자의 체험 공간을 대폭 늘려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서는 전통주 제조법을 배우며 막걸리를 맛보는 막걸리 소믈리에, 손글씨를 활용한 캘리그라피 디자이너, 벽화 등 각종 디자인에 응용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다이어트 진단을 해주고 맞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등 이색 직업 체험이 인기를 누렸다. 박람회에 참여한 대학생 김윤진(24)씨는 “기업체 부스만 덩그러니 있는 기존 채용박람회와는 달리 다양한 직업을 직접 체험해보고 직업 자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계기가 돼서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람회에는 만화가 강풀, 오상진 아나운서, 이의헌 사회적기업 JUMP 대표 등이 직업 철학에 대한 특강을 벌이기도 했다. 또 청년 사회적기업 대표들이 참여해 사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제품을 전시하는 부스도 마련됐다. 시는 연말까지 모두 9회에 걸쳐 연령대별로 차별 화된 여성 일자리 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다음달에는 경력단절 중·장년 여성, 여고생 등을 위한 박람회가 손님들을 맞는다. 참여 희망자는 온라인박람회 홈페이지(2012jobfair.seoulwomen.or.kr)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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