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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인식, 한국이 골대 옮겨” “견강부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자문하는 전문가 기구가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의 책임을 한국 측에 전가했다. 한국 정부는 “일방적이고 견강부회적인 주장”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21세기 구상 간담회’는 6일 전후 70년 담화에 관한 보고서를 아베 총리에게 제출했다. 보고서는 일본이 “만주사변 이후 대륙으로의 침략을 확대했다”면서 “무모한 전쟁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나라에 많은 피해를 줬다”고 규정했다. 한국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민족자결의 대세에 역행해 특히 1930년대 후반부터 식민지배가 가혹화됐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주로 사실관계 기술에 중점을 뒀으며 이것이 사죄의 대상이라는 인식이나 판단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이 골대를 움직였다”며 악화의 책임을 한국 측에 미뤘다. 보고서는 1998년 당시 양국 정상인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사이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소개한 뒤 “그 뒤 한국 정부가 역사 인식 문제에서 ‘골대’(골포스트)를 움직여 온 경위에 비춰 영속하는 화해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보고서가 거론한 ‘골대 이동’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2011년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일본에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고노 담화, 아시아여성기금 창설 등 일본의 노력을 거론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식민지 시기 문제의 본질과 해결 노력의 필요성은 거론하지 않았다. 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취임 때부터 (일본 문제에서) ‘심정’을 전면에 내세운 전례 없이 엄격한 대일 자세를 가진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그 배경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같은 반일적 단체가 국내에서 영향력이 있다는 점도 있지만, 한국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국제 정치에서 일본과의 협력의 중요성이 저하되고 있는 것이 꼽힌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전후 70년간 한국의 대일 정책은 이성과 심정 사이에서 흔들려 왔다”며 “한국과의 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이성과 심정 양쪽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보고서는 올해 일본 외교청서(백서)의 한국 관련 기술에서 빠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필요성을 거론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보고서에 대해 “양국 관계의 선순환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비록 민간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그간 일본 정부의 공언과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中 ‘7·7사변’ 맞아… 對日 역사 총공세 나선다

    중국이 중·일전쟁의 계기가 된 ‘7·7사변’(溝橋·노구교 사건) 발생일인 7일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및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를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일 역사 총공세는 9월 3일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을 정점으로 만주사변이 터진 9월 18일, 대만 광복 70주년인 10월 25일, 난징(南京)대학살이 일어난 12월 13일 등 연말까지 계속된다. 7·7사변 78주년 기념일인 이날 베이징시 노구교 인근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서는 ‘위대한 승리, 역사적 공헌’을 주제로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이번 전시회에는 일제의 만행과 중국인의 항일전쟁 모습을 담은 1170점의 사진과 2834건의 문헌·사료 등이 전시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이 소련군에 참여해 전투를 수행한 기록도 포함됐다. 전국 각지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노구교 사건은 1937년 7월 7일 밤 베이징 남서쪽 외곽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야간 훈련 도중 일어난 병사 실종 사건을 중국군 탓으로 돌리며 베이징으로 연결되는 요충지인 노구교를 점령한 사건이다. 병사는 20여분 뒤에 원대 복귀했지만 일본군은 이 사건을 빌미로 중국 침략을 본격화했다. 중국은 2차 국·공합작을 이뤄 항일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특히 오는 8~9월 150여개국과 유엔 본부 등에서 ‘평화를 위한 기념’을 주제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항일전쟁과 제2차대전 승리, 유엔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과거사 공세 무대를 세계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또 항일전쟁 관련 영화 10편이 개봉되고, ‘동북항일연군’을 비롯한 12편의 항전 드라마와 20편의 다큐멘터리가 전파를 탄다. 일본군 전범들의 자백서도 출판될 예정이다. 9월 3일에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각국 지도자를 초청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휘하는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서울대 온 시진핑 서재엔 ‘문·사·철 & 한·중·일’

    서울대 온 시진핑 서재엔 ‘문·사·철 & 한·중·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7월 서울대 특별 강연에서 약속했던 도서 1만권 기증식이 1일 서울대 성낙인 총장과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교내 관정도서관에서 열렸다. 중국 측이 자체적으로 선정해 서울대에 전달한 도서 가운데는 ‘문화 강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문·사·철’(文史哲) 서적이 상당수였고,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다룬 책들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기증 규모는 책 9279권과 DVD 755점 등 총 1만 52점이다. 기증 도서 목록을 살펴본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은 ▲문학·역사·철학 등 ‘문사철’ ▲중화인민공화국의 건립 과정과 배경을 다룬 근현대사 ▲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향후 중국의 비전 등 크게 4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한·중·일 3국의 과거사와 연계된 저서들이 눈에 띄었다. 이 중에는 1931년 ‘만주사변’이나 1937년 ‘난징대학살’처럼 일본 군국주의의 만행을 다룬 책들이 많았다. 문 원장은 “‘일본 전범 자백서’ 등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과정에서 일본이 저지른 침략 만행에 대해 다룬 책들이 눈에 띈다”며 “이런 책들을 집중 배치한 데는 나름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7월 서울대 특별 강연에서 임진왜란 등을 언급하며 “중국과 한국은 일본의 야만적인 침탈 때 서로 도왔던 사이”라면서 한·중 양국의 대일 항쟁 역사를 환기시킨 바 있다. 중국 고전인 ‘사기’ ‘자치통감’ 등과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루쉰(迅) 전집, 베이징 자금성의 유물 내역을 기재한 ‘자금성 소장 자료 소개 총서’ 등도 포함됐다. 여기에는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중국의 외교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밖에 ‘한국 화교의 역사와 현상 연구’, ‘한국고려사연구’ 등 한국 관련 저술 및 한국어 책도 200권에 달했다. 서울대는 도서 분류 작업이 끝나는 오는 9월 중앙도서관에 별도의 ‘시진핑 주석 방문 기념 자료실’을 만들고 기증 도서들을 비치할 계획이다. 한편 추 대사는 이날 기증식 후 ‘한·중 관계의 최근 상황과 중국 국내외 정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일부 국가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한국 관광에 대한 주의경보를 발령했지만 중국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자국의 한국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일왕, 아베 견제? 신년소감서 “만주사변 역사 배워야”

    일왕, 아베 견제? 신년소감서 “만주사변 역사 배워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1일 새해를 맞아 “이번 기회에 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매우 중요하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올 8월 15일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아베 담화’에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가운데 이번 발언이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일본 궁내청을 통해 공개한 신년소감에서 올해 일본이 패전 70주년이라는 분기점을 맞이한다고 지적한 뒤 “많은 이들이 돌아가신 전쟁이었다. 전장에서 돌아가신 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과 도쿄를 시작으로 폭격 등으로 돌아가신 분의 수는 정말 많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왕의 이번 신년사를 놓고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에 대한 위기감을 표현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기회에 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전쟁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매우 중요하다”고 밝힌 대목이 그렇다. 궁내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신년소감 영문판에는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이 발발한 1931년까지 명시했다. 일왕이 그냥 ‘전쟁의 역사를 배우자’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이다. 종전 50주년을 맞이한 1995년 아키히토 일왕이 발표한 신년소감에선 “과거에서 배우자”는 메시지가 빠져 있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현장 행정] 유관순 열사 유해 묻혔던 곳 아시나요

    [현장 행정] 유관순 열사 유해 묻혔던 곳 아시나요

    “유관순 열사 추모비로 용산구 근현대사를 바로 세웁니다.” 18일 용산구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을 찾아 업무보고를 받은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내년에 이곳에 유관순의 추모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유관순이 1919년 3월 1일 만세독립운동, 4월 1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이후 징역 5년을 선고받고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사후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구가 유관순의 추모비를 추진하는 이유다. 성 구청장은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은 1920년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열렸고 이번에 추모비를 조성할 지역인 이태원의 공동묘지에 안장됐다”며 “이후 1936년 일본이 군용기지 조성 목적으로 그의 묘를 이장하면서 유골이 사라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당시 이태원 공동묘지는 지금은 이태원 이슬람사원 인근의 사유지다. 따라서 구는 추모비에서 유관순 열사의 옛 묘를 바라볼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고, 그 결과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이 선택됐다. 구는 지난달부터 추모비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며 추모비가 건립되면 정기적으로 추모 행사를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추모비 개막식 일정과 추모비 모형 등은 66명의 역사 전문가로 이뤄진 추진위원회가 정하게 된다. 성 구청장은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가 수년간 추진해 온 ‘구 근현대사 바로 세우기’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이곳이 유관순 열사의 유해가 마지막으로 묻혔던 곳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말했다. 성 구청장은 지난해 말 360페이지에 이르는 역사 사료집 ‘우리가 잘 몰랐던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를 펴냈다. 지난 7월에는 ‘용산기지’를 특정해 옛이야기를 담은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를 발간했다. 100년간 외국군 부대가 주둔하며 역사의 베일에 숨어 있던 용산 아방궁(일제 시기 조선 총독 연회장), 충혼비(만주사변 시 일본군 전사자 기념비가 현재는 미군 전사자 기념비로 쓰임) 등을 다뤘다. 매년 심원정터, 용산신학교, 새남터성당, 효창원 등을 방문하는 구 역사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용산신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 건물이며, 효창원은 백범 김구를 포함해 의·열사 7명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성 구청장은 “개발하고 발전하는 것도 후세의 몫이지만 역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라며 “후세들이 역사를 발판으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도록 돕기 위해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서울광장] 아베 극우주의의 종착역/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베 극우주의의 종착역/오일만 논설위원

    밀운불우(密雲不雨). 비가 내리기 전에 먹구름이 잔뜩 낀 모습이다. 주역의 소과괘(小過卦)에 나오는 구절로 조짐만 보이고 뭐하나 일이 성사되지 않는 암울한 형국을 말한다. 대륙 세력 중국과 해양 세력 일본이 정면충돌하고 중간에 낀 우리가 동분서주하는 2014년 동북아 정세와도 비슷하다. 현재의 동북아 정세는 불행히도 과거사의 끝자락에서 시작됐다. 중화 부흥(中國夢)을 앞세운 중국은 120년 전 청일전쟁 패배 이후 치욕을 되갚으려 와신상담 중이고 장기 침체기에 빠진 일본은 군국주의에서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 한다. 치욕과 영광의 교차점에서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이 된 양국의 에너지가 갈등과 충돌을 향해 가는 것은 뭔가 불길하다. 경제 불황이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졌던 과거사의 교훈을 되새김질하지 않더라도 20년간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불황기에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면서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 길을 열어 놓은 점도 수상쩍다. 1930년 전후의 대공황기에도 그랬다. “1929년(쇼와 4년) 월가의 주식시장 대폭락 사태로 닥친 불경기가 일본을 덮쳤다. 세상에 실업자가 넘쳐 흘렀고 불경기에서 일찍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쟁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1932년(쇼와 7년) 전쟁(만주사변)으로 인해 경제가 좋아지면서 신문은 노골적으로 전쟁 확대를 선동했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치닫는 배경이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비평가인 한도 가즈토시의 말이다. 전쟁을 향해 가는 일본 군부의 어리석은 판단과 이에 편승해 권력을 추구했던 정치인들, 전쟁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언론의 행태를 생생하게 전했다. 쇼와시대에 이은 헤이세이 26년(2014년) 일본은 어떤가. 마치 쇼와시대의 데자뷔를 보는 느낌이다. 2012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극우적 행보를 훈장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이나 군국주의 부활을 노골화하는 극우단체들, 군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입을 닫는 일본 극우 언론들이 활개친다. 전쟁 전 극우 세력들의 핵심 축이 군부였다면 지금은 전쟁으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매개체다. ‘태평양전쟁은 자존자위의 올바른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우익들 세계관과의 절묘한 결합점이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우익 정치인들이 집요하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목을 매는 이유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현재의 집권 세력인 아베 정권은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자 일본 극우화의 본산으로 불리는 세이와정책연구회 회원들이 주류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의 산파역을 맡았던 요시다 쇼인을 정신적 지주로 모신다. “구미 열강과의 조약은 지키되 그 불평등 조약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조선 및 만주에서의 영토 확장으로 만회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권으로 계승됐다. 아베 정권은 요시다의 가르침에 따라 전후 세대가 대부분인 국민들을 우경화하면서 군사대국화의 길로 나가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평화헌법 개정에 앞서 “독일 나치 정권에서 바이마르 헌법 개정 수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 발언은 이들의 역사관을 가늠케 한다. 국제 정세 역시 일본 극우주의 세력에 자양분을 주는 형국이다. 중국과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은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의 배양지가 되고 있고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은 군사대국화에 아스팔트를 깔았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 견제를 위해 재팬머니가 절실하다. 분쟁 지역에서의 전쟁 위험이 클수록 수지가 맞는다는 입장에서 미국 군산(軍産) 복합체의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1세기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는 조지 프리드먼 역시 군국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이 정치·경제적 이유로 호전적인 국가로 변할 수 있다고 갈파했다. 침략을 정당화하고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찬미하는 정권과 이웃하고 있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어찌 보면 북핵보다 더 위험한 동북아의 핵폭탄을 이고 사는 심정이다. oilman@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설국’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작품의 줄거리가 잘 기억나지 않아 늘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설어하며 읽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설국’은 기승전결의 뚜렷한 구조를 지닌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결된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문예춘추라는 문학잡지에 연재됐던 12편의 단편들이 모여 연작 형태의 중편으로 완성됐다. ‘설국’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35년에 시작해 1948년 완결편을 내기까지 14년에 걸쳐 속편을 집필하고 가필하며 수정을 거듭해 완성한 작품으로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가와바타는 두 살에 부모님을 여의었고 연이어 할머니를, 열다섯에 누나와 할아버지를 잃었다. 몸도 약해서 이런 배경이 기질화됐는지 작품마다 서글픔이나 허무한 감성이 나타난다. 이런 점은 그가 살았던 당시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일본은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제국주의적 야심을 키워 나갔고 서구 열강들은 이를 견제하던 어수선한 시기였다. 1929년 대공황의 영향을 일본 경제도 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왔던 시골 처녀들은 귀향할 수밖에 없었고 가와바타는 이에 주목하고 모티프를 얻어 ‘설국’을 집필했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서적이나 사진을 통해 서양 무용에 관한 논평을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부모의 유산에 기대어 호화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는 자연과 자신에 대한 진지함을 잃기 쉬운 까닭에 그것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산이 좋다며 자주 산을 찾는다. 여행 도중 어느 한적한 온천장에서 게이샤 고마코를 만났고 일 년에 한 번꼴로 세 차례 그녀를 만나 잠깐 지낸다는 것이 이야기의 큰 얼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얗게 되었다.” ‘설국’하면 떠오르는 이 문장은 소설의 시작 부분이다. 가와바타는 일부러 확실한 지명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명을 명확히 밝히면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곳에 대해 자세히 묘사해야 할 것 같아서라고 후기에서 설명했다. 이 외에도 설국이 설국인 까닭은 터널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다. 설국에 가기 위해서는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길고 어두운 터널은 세계를 둘로 가르는 경계 구실을 한다. 터널이 어둡고 길수록 터널 다음의 세상은 낯설게 느껴진다. 경계를 지나면 이 세상에 없었던 신비로운 몽환의 세계가 나타난다. 비현실에 들어서게 되는 마당에 실재하는 지명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그래서 설국은 그저 설국이면 족한 것이다. 터널을 나오면 설국이 나타나고, 밤의 밑바닥은 하얗게 된다. 하얗게 희미해지는 이미지는 독자를 비현실의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일은 현실의 것이 아니다. 설국에 가는 시마무라는 생산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한량이다. 설국에서 만나는 인물들도 고마코나 요코 외에 뚜렷한 인물이 없다. 고마코나 요코조차도 일상생활의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설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가 속한 현실 세계의 일이 아니므로 더욱 쉽게 받아들이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다. ‘설국’의 주요 등장인물은 시마무라, 고마코, 요코에 불과하다. 시마무라는 산행 후 우연히 들른 온천장에서 고마코를 만나고 그녀를 보러 다시 돌아오지만 적극성은 없다. 요코가 ‘고마짱을 잘 돌봐 주세요’해도 ‘나로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라고 말하고 만다.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고마코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지하게 살아가고 자기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으려는 인물이다. 일기를 쓰고 샤미센을 연습하고 스승 아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가 되고.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그녀의 행위에는 불순함이 없다. 요코는 고마코의 약혼자로 알려진 스승의 아들을 간호하고 그가 죽은 뒤에도 매일 산소에 찾아간다. 찌르는 듯한 시선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요코는 그녀의 헌신적인 간호와 더불어 순수함의 절정으로 묘사된다. 고마코와 요코의 삶은 매우 달라 보이지만 시마무라의 삶과 비교해 보면 건강하게 보인다. 그러나 작품의 끝에서 요코가 죽게 되는 것은 지극히 순수하기만한 것이 현실의 삶에서 버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 준다. 시마무라는 ‘헛수고’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자신이 하릴없이 지내면서도 고마코가 하는 일들을 너무도 쉽게 헛수고라 평가해 버린다. 고마코가 그동안 읽었던 소설에 대해 일일이 기록하는 것, 자신에게 품고 있는 사랑 같은 것까지도 헛수고라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들을 열심히 해내는 고마코에게서 순수함을 발견한다. 시마무라가 고마코의 삶을 헛수고라 폄하해도 그녀는 쉽게 긍정한다. 네가 그렇게 여기든 말든 상관 않겠다는 의지보다는 그저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노력이 헛되지만 거듭된다는 점에서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삶을 열심히 꾸려가는 것과 자신을 비교하며 허무를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헛수고라는 점에서 보면 요코의 삶은 고마코보다 한 수 위다. 요코는 다른 여자의 약혼자로 알려진 남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 희생하고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헛수고에 진지하다. 이런 비현실성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어려운 만큼 갈망도 커지므로 독자는 이런 허무의 세계에 몰입하게 돼 시마무라와 같이 설국을 헤매게 된다. ‘설국’을 읽다 보면 묘하게 기운이 빠진다. 이는 가와바타가 일관되게 보여준 허무함과 몽환적 분위기가 주는 아련함도 있지만 시간의 일정한 흐름도 없이 순간의 감성에 충실한 상징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가 지닌 특성과 매우 닮아 있다. 잦은 줄 바꾸기를 통해 시의 행과 같은 연상을 자아낸다. 독자는 이런 호흡 조절을 통해 문장 사이에 숨어 있는 감정을 읽는 노력을 하게 된다. ‘왜 이런 느낌을 갖게 되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하며 읽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은 독자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더 몰입하게 되고 읽은 후에도 그 여운을 오래 간직하게 된다. ‘설국’은 어느 한 부분을 떼어 읽더라도 그 자체로 눈 고장의 분위기를 진하게 갖고 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중 한 문장을 고르고 이것들을 이어 붙이기만 해도 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시간을 따라가는 줄거리에 주목하기보다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을 찾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음미하는 방법으로 읽으며 문장이 주는 여운을 즐기는 것이 좋다. 이 작품에서 가와바타는 설국이라는 비현실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그려내었다. 인간이란 무심히 순수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현실에서 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읽고 나면 온통 눈과 겨울의 나라만 남는다. 그래서 시마무라가 온천장을 세 차례 방문한 것 중 단 한 번만이 겨울이었다는 것을 깜빡하고 만다. 성애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도 없지만 에로틱하다. 동화 같기도 하고 서정시 같기도 하다. 참으로 묘한 소설이다. 최영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 [현장으로 책으로, 역사기행 떠나볼까] 군사기지 숨은 유적 자취 따라…

    용산구가 용산기지에 대한 숨겨진 역사를 새롭게 담은 지역사 기초 자료집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97∼1953)를 발간했다고 5일 밝혔다. 무려 1800여년에 걸친 역사다. 책은 러·일전쟁 이전의 용산, 러·일전쟁과 용산기지의 탄생, 용산기지 내 각 부대와 주요 시설 현황, 강제 병합과 용산기지, 해방 정국하의 용산기지, 6·25전쟁과 용산기지 등 11장으로 구성됐다. 군사전략 요충지였던 용산기지에는 숨겨진 유적과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100년 이상 외국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외부인의 접근이 통제됐던 이곳에는 미·일 군사시설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다. 일제가 만주사변 때 일본군 전사자들을 기념하며 세운 충혼비는 현재 6·25전쟁 당시 미군 전사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 총독의 연회장으로 쓰인 아방궁은 제2대 조선 총독 하세가와가 러·일전쟁 직후 남은 군사비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그 자리에는 121병원이 들어섰다. 책자 발간을 위해 구와 용산향토사연구가인 김천수씨가 힘을 모았다. 김씨는 “이번 책이 용산기지의 역사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용산공원 조성에 작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장현 구청장은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용산공원 조성에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100여년의 역사적 파고에 휩싸인 제주 해녀 4代의 상흔과 치유의 삶

    100여년의 역사적 파고에 휩싸인 제주 해녀 4代의 상흔과 치유의 삶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인 구소은(오른쪽·49)의 ‘검은 모래’(왼쪽·은행나무)는 제주 우도와 일본의 화산섬 미야케지마를 중심으로 잠녀 가족 4대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100여년의 시간을 통해 “정착을 꿈꾸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던 디아스포라의 신산한 삶을 들여다본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전개된다. 1910년 한일합병 직후 우도에서 출생한 구월은 ‘태어나면서부터 나라를 잃은 신세였던’ 잠녀다. 구월은 어려서부터 바다를 놀이터 삼아 자라나지만 일제의 수탈 아래 삶은 날로 가혹해진다. 일본 어민들은 제주 앞바다를 제 집처럼 드나들고, 잠녀들이 결성한 해녀조합은 총독부의 압제에 관제조합으로 전락한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 이어지자 1941년 남편은 구월과 딸 해금을 데리고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80㎞ 떨어진 미야케지마로 이주한다. 미야케지마에서는 2대 해금과 3대 건일, 4대인 미유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가까스로 일본 땅에 정착한 이들의 삶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거세게 흔들린다. 구월의 남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나가사키에 나갔다가 미군의 원폭으로 사망한다. 해금은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한태주를 만나 건일을 낳지만 한태주는 한국 전쟁에 북한군 학도병으로 참전해 전사한다. 일본인과 재혼한 해금은 차별을 우려해 아들의 이름을 마츠가와 켄으로 바꾼다. 건일과 미유의 이야기에는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재일 조선인의 정체성 문제가 도드라진다. 역도산을 ‘조센징’이라 멸시하는 일본인을 지켜보던 건일은 “일본 사람들과 똑같이”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건일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략) 출신 성분 때문에 이 사회에서 배척당한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사회적 성공에 몰두하지만 딸 미유는 다르다. 미유는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일본 극우 집안의 자제인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으면서도 “한국식 장 담그기의 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검은 모래’는 해금과 건일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미유를 통해 깊은 역사적 상흔의 치유와 화해 가능성을 제시한다. 쇠락한 미야케지마를 바라보며 “그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해도 저 바다와 바위들은 기억해 줄까” 라고 생각하는 미유는 작가의 목소리에 가장 가깝다. 미야케지마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검은 모래’를 썼다는 작가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던 작은 마을에서 갇혀 있는 에너지를 느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영탄조와 설명조의 표현이 지나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입증하고 있다”는 평과 함께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씨줄날줄] 종교와 스포츠/박정현 논설위원

    올림픽 경기의 금기사항으로 마약, 상업주의, 정치, 종교 등이 꼽힌다. 고대 올림픽 시절에 네로 황제는 5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대회에 참가해 전차 경기와 자신이 고안한 경기 종목에서 우승을 싹쓸이해 버렸다. 대회는 난장판이 됐고, 스포츠 행사가 정치에 오염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신을 섬기던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이 개최될 때면 각지에서 올림피아로 몰려들어 신전에 참배하는 등 강한 종교적 성향을 보였다. 하지만 피에르 쿠베르탱이 1894년 고대 올림픽을 본떠 근대올림픽을 부활시키면서 정치·종교·상업주의를 철저히 배제시켰다. 그럼에도 올림픽은 이런 금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1932년 10회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운 뒤 만주국을 전세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참가신청을 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당연히 만주국의 참가신청을 거부했다. 독일 올림픽위원장이자 IOC 위원인 레오도르 레발트에게 유대인 피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그를 몰아내려는 나치정권과 IOC의 분쟁이 빚어졌던 적도 있다. 종교가 개입한 올림픽은 피로 얼룩졌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사살하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올림픽은 아니지만 보스턴 마라톤 대회 테러도 종교가 개입된 사건으로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모양이다. 테러를 주도한 타메를란 차르나예프가 극단적 이슬람주의 웹사이트의 ‘광팬’이었으며, 지하드(성전) 사이트에 들어가 관련 게시물을 탐독했다는 사실이 하나둘씩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이런 탓에 IOC는 ‘시위’와 ‘정치·종교·인종적 선전’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IOC 윤리규정 3장23조는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경멸 또는 차별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 및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이노세 나오키 일본 도쿄도 지사가 경쟁상대인 이슬람 국가 터키를 자극하는 발언을 해서 구설에 올랐다. 그는 미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국가들이 공유하는 것은 그들의 신 알라뿐”이라고 발언을 했고, 국제사회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올림픽 개최에 나서려면 이런 발언이 금기사항이라는 사실쯤은 파악했을 터. 알고도 그랬다면 망언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 왜곡 망언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으로부터 ‘동북아의 왕따’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일본이 ‘국제적 왕따’가 될 판이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에겐 왕따를 자초하는 ‘망언 DNA’라도 있는 건 아닐까.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日의원 야스쿠니 집단 참배] 이제는 대놓고 역사도발… 7월선거 보수 표심몰이 검은 속셈

    [日의원 야스쿠니 집단 참배] 이제는 대놓고 역사도발… 7월선거 보수 표심몰이 검은 속셈

    아소 다로 부총리 등 각료 3명이 지난 21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이어 23일에는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집단 참배했다. 최근 몇 년간 100명 이하의 의원들이 참배한 것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 이러한 참배 인원 증가는 일본 정치권의 보수화 추세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왜 매년 춘계·추계 예대제와 패전일인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것일까. 야스쿠니 신사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나섰다가 숨진 이들을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1978년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을 연합군에 의해 오명을 뒤집어쓴 ‘순난자’(殉難者)로 규정한 뒤 비밀리에 합사해 놓았다. 신사에는 2만 1000여명의 조선인들도 강제 합사돼 있다. 전범자와 일반 전몰자들이 섞여 있다 보니 우익이 아닌 일반 참배자 대부분도 유족의 관점에서 참배하지만 겉보기에는 A급 전범자들을 용인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우익들에게는 군국주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징적인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의 우익들은 A급 전범들을 범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일본의 중대 전쟁 범죄인을 재판하기 위해 1946년 실시한 도쿄재판에 대해서도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쟁 책임은 인정하지만 14명만이 특별히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나라를 위해 숨진 영령들을 위로하는 이곳을 국정 최고 책임자인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1985년 나카소네 전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집권한 2001년부터 해마다 참배해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지난 2006년 총리 때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는다”고 말한 아베 신조 총리는 이번 춘계 예대제에는 공물을 봉납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난해 1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압승해 3년 4개월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자민당은 오는 7월 참의원(상원)에서도 보수층의 지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외교적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각료나 의원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다고 발뺌하는 형식이 되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3일 “일본에는 신교(神敎)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각료든 초당파 의원이든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우익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대표는 한국 정부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을 미루기로 한 것과 관련,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이미 외교에 영향을 미쳤다”며 “정권 핵심에 있는 사람은 대국적 입장에서 행동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진보 언론들도 정치인들이 내정을 위해 외교 분란을 일으키는 것에 비판하고 나섰다. 아사히신문은 ‘야스쿠니 문제, 왜 불씨를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23일자 사설을 통해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한 때 아베 정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야스쿠니 참배는 역사인식에 관한 문제이며, 양국(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된 것”이라고 적었다. 마이니치신문도 사설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한 중국, 한국과의 협력을 어렵게 함으로써 결국 일본의 국익을 해칠 수도 있다”며 “무신경한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지극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CHINA] 창춘, 안개도시의 사람들

    [CHINA] 창춘, 안개도시의 사람들

    영하 30도는 아무것도 멈추지 못했다. 그런 날에도 창춘 사람들은 얼음수영을 하고, 조깅을 즐기고, 스키를 탄다. 이곳에서 추위는 안개처럼 사소한 불편일 뿐이다. 1월1일의 한국은 추웠다. 그후 며칠은 영하 22도까지 내려가는 기록적인 한파 뉴스가 연일 TV를 장식했다고 들었다. 그날 나는 중국 길림성 창춘의 한복판에 떨어졌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었다. 그리고 또, 안개가 자욱한 저녁이었다. 시야가 뿌옇다고 해야 할지, 혹은 하얗다고 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촉감만큼은 명확했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축축한 한기. 창춘의 겨울 속으로 걸어 들어간 첫 느낌은 그랬다. 그런 도시의 이름이 아이러니하게도 창춘장춘·長春. ‘긴 봄’이었다. 1, 4 매년 1월1일에 시작되는 창춘 빙설축제의 볼거리는 모두 눈에서 탄생한 것이다 2 인공호수변에 만들어진 창춘 징웨이탄 스키장은 크로스컨트리에 최적인 평지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3 동북아시아 최대 규모의 인공산림이 만들어내는 설경도 인상적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추위는 사소한 불편이다 창춘 샹그릴라 호텔의 메이드가 침대 머리맡에 놓고 간 1월2일자 날씨 예보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날씨 맑음, 최저기온 -28℃, 최고 기온 -18℃’. 레깅스 두 겹, 방한속옷 위에 면 티 4겹, 양말 두 켤레,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다운 점퍼에 장갑과 모자, 턱까지 감싸 버린 두툼한 목도리.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한 중요한 한 가지는 창춘시에서 준비해 주었다. 가이드를 통해 전달받은 마스크를 착용해서 눈을 제외한 모든 피부를 감싼 후에야 비로소 외출 준비가 끝났다. 버스 안의 온도는 한국과 비슷할 것 같았다. 영하 10도 정도? ‘잠깐이니’ 하며 옷깃을 여미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온 남자들의 표정이 호되게 당한 얼굴이었다. 버스 안에서 하얀 입김을 솔솔 뿜으며 가이드 애란씨가 말하길, ‘창춘은 겨울이 성수기인 여행지’라는 것이다.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잡은 하얼빈의 빙등제나 삿포로 눈 축제를 떠올리니 기대감이 몰려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금세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눈만 내놓은 사람들이 부지런한 걸음으로 빙설축제 개막식이 열리는 징웨이탄정월담·淨月潭 스키장 개막 무대를 향하고 있었다. 시내에서 20여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창춘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식 공간인 징웨이탄 국가삼림공원은 4.3km2 넓이의 인공호수와 드넓은 인공산림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누각, 식물원, 골프장, 삼림욕, 동물원, 스포츠 클라이밍 시설을 갖추고 연중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지만 겨울의 징웨이탄에는 하늘과 땅의 경계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10월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모든 것을 덮어 버린 지 꽤 오래된 풍경이었다. 80년 전부터 조성되어 울창한 산림을 이룬 낙엽송, 사시나무, 자작나무, 느릅나무, 해화나무, 홍송 등도 모두 하얀 조끼를 껴입은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꽝꽝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썰매를 타거나 연을 날리는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다. 호수 옆 공터에는 온통 눈으로 만든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눈으로 조각한 동물상, 여인상들이 숲의 여기저기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설경을 즐기고 있었다. 750만 창춘 사람들에게 영하 20도의 추위는 안개처럼 사소한 불편인 듯 보였다. ▶travie info 징웨이탄 스키장 완만한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크로스컨트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도시형 스키장이다. 매년 원단(1월1일)에 이 스키장에서 개막해 4일간 진행되는 장춘 빙설축제도 국제 크로스컨트리 대회와 함께 진행된다. 창춘에는 징웨이탄 외에도 북대호 스키장, 연화산 스키장, 묘향산 스키장 등 3곳의 스키장이 더 있으며 2007년 동계아시안게임의 개최지이기도 하다. 입장료 30위안 개장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4시30분 찾아가기 창춘시 징웨이 경제개발구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에서 18km 떨어져 있다. 102번, 104번, 120번, 160번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의 0431-8451-8000 마지막 황제의 마지막 자리 온도 차이가 있겠지만, 창춘 사람들과 우리가 공유하는 춥고 아픈 기억이 있다. 창춘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가 만주국滿洲國, 1932~1945을 세우고 그 수도로 삼은 도시였다. 당시 이름은 신징신경·新京. ‘일본의 새로운 수도’라는 뜻이다. 당시 만주국 황제가 살았던 황궁은 ‘위만황궁박물관’이 되어 일반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만주국의 허수아비 황제로 살아야 했던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1906~1967’의 기막힌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읽히는 곳이다. 황궁은 규모가 아주 크거나 호화찬란하지는 않았지만 궁으로서의 구색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깡마르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16세의 소년 푸이가 사진 속에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5명의 부인을 두었지만 성기능 장애로 단 한 번도 동침을 하지 않았다는 황제의 침대는 작았다. 하지만 변비가 심했던 황제의 화장실은 넓고 쾌적했다. 총명하고 아름다웠으나 신하와의 불륜으로(겁탈이라는 설도 있다) 아들을 낳았던 첫 번째 부인, 효각민황후완용 공주는 감금당한 채 아편 중독자가 되어 생을 마쳤다. 밀랍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는 그녀는 걷지도 못해서 누운 채로 신하에게 아편을 받아 피우고 있었다. 일본 여자와 결혼시키려고 일본은 부단히 노력했지만 푸이는 그것만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사랑했다는 3번째 부인 담옥령은 결혼 7년 만에 의문스러운 병사로 생을 마쳤다. 평소 일본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그녀는 가벼운 질병에 걸렸다가 치료를 받은 후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난 것. 만주국황궁 복원 사업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창춘 출신이었던 4번째 부인 이옥금 여사였다. 푸이의 마지막 5년은 간호사 출신이었던 19세 연하의 마지막 부인 이숙현 여사가 함께했다. 이런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몇시간의 박물관 관람도 지겹지 않다. 창춘에 남아있는 만주국의 흔적을 하나 더 찾으라면 영화제작소다. 일본은 영화를 좋아했던 푸이 황제를 위해, 아니 그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창춘에 중국 최초의 영화제작소를 세워 주었다. 지금은 동북영화제작소로 이름을 바꾸고 2년에 한 번씩 창춘영화제도 실시하고 있다. 1 창춘은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수도였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만주황궁박물관의 안내원 2 창춘 샹그릴라 호텔 객실에서 내려다본 창춘 시내 전경 3 마지막 황제 푸이가 머물렀던 흔적이 만주황궁 곳곳에 남아있다 4 10월부터 3월까지,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독한 겨울은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5 물엿을 입힌 과일 꼬치는 인기 높은 길거리 간식이다 6 겨울날 창춘의 거리는 인적이 뜸하고, 꼭 그만큼 창춘 중앙시장에는 사람들이 붐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봄날의 장날’을 기다리며 창춘이 항상 춥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름이 되면 38도까지 치솟는 극성스러운 더위가 찾아온다. 한국의 날씨와 흐름은 비슷한데, 좀더 ‘극적’인 셈이다. 그 사이에 잠깐 찾아오는 것이 있으니, 봄이다. 봄이 되면 창춘에는 나물과 특산물을 파는 큰 장이 서곤 했는데 정부는 이 기간 동안 상인들에게 면세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살림살이의 얼음까지 녹일 수 있었던 봄날이 길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이름이 바로 창춘이다. 지금이야 한겨울에도 시장에만 나가면 활짝 핀 꽃다발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시장의 계절감은 그만큼 모호하다. 하지만 두툼한 솜바지와 털 장식 부츠가 쌓여 있는 창춘에서만큼은 겨울스러운 시장을 만날 수 있었다. 월마트에 가서 보온물주머니를 2개 사고, 시장에 가서 발토시를 하나 샀다. 패딩 무릎 방한대처럼 한국에는 없을 것 같은 창춘만의 생활필수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국의 겨울도 만만치 않게 추워졌으니 말이다. 시장을 나와 택시를 잡기로 했다. 합승이야 기본으로 각오한 것. 하지만 창문을 빼꼼 연 택시들은 목적지를 듣는 둥 마는 둥 휑하니 멀어져 버리곤 했다. 그렇게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30분을 서 있자니 발끝에 감각이 없었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사방에서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 소리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에 치이다 보니 갑자기 치열한 근성이 불쑥 올라왔다. ‘자동차성’이라는 닉네임이 있을 정도로 차가 많다는 창춘에서, 저렇게 많은 택시 중에서 단 한 대를 못 잡고 있단 말인가. 창춘은 1953년 중국 최초로 자동차 공장이 세워진 곳이다. 1956년에는 최초의 중국산 자동차 ‘해방표’가 공개됐다. 파란색 트럭이었다. 1988년에는 독일과 합작으로 폭스바겐 생산을 시작했는데, 그런 이유로 창춘에서는 택시의 흔한 기종이 폭스바겐이고, 자가용은 아우디가 많다는 것이 옆에서 함께 발을 동동 구르던 가이드 애란씨의 설명이었다. 덧붙여 최근에는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일본 수입차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그런 설명이 무색하게 30분 만에 어렵사리 잡아 탄 택시는 달리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허름한 차였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달리기만 하면 되지.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것은 그만큼 소중한 법이다.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창춘의 사람들에게 봄날이 얼마나 감사한 계절일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시게 봄! 부디 오래 머물다 가시게!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중국남방항공 kr.csair.com ▶travie info 항공편 중국남방항공은 서울-창춘 노선을 매일 운항하고 있다. 인천 출발편은 오전 9시40분, 귀국편은 창춘에서 오전 9시30분에 출발하며,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문의 1588-9503 kr.csair.com 위만황궁박물관 창춘시 동북부에 위치한 국가AAAAA풍경구로 만주국 황제 푸이가 살았던 황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황제의 경마장부터 침실 등 생활공간과 외빈접객실 등 당시 사용됐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개방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5시(여름철은 오후 5시50분까지) 입장료 성인 80위안, 학생 30위안 찾아가기 창춘역에서 택시로 10분 소요(창춘시 동북부 광복로 5번지 장통로와 섬서로 교차지), 버스는 80번, 264번, 225번, 114번, 256번, 276번, 287번 이용. 문의 0431-8286-6611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어른이 되어도 전쟁의 상처는 그대로였다

    어른이 되어도 전쟁의 상처는 그대로였다

    AP통신은 2011년 9월 말 “한국계 미국 소설가 이창래의 소설 ‘항복한 사람들’(The Surrendered)이 올해의 미 데이튼 문학평화상 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뽑혔다”고 보도했다. 한국전으로 상처받은 삶들을 수십 년에 걸쳐 조명한 이 소설로 이창래는 그해 퓰리쳐상 최종후보작에도 올랐다. 또한, 그해 시인 고은 등과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항복한 사람들’이 최근 출판사 RHK에서 ‘생존자’란 제목으로 번역·출판됐다. 영문을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항복한 사람들이겠지만, 출판사가 왜 ‘생존자’라는 제목을 택했는지 소설을 읽다 보면 뼈저리게 느껴진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에 머물지 않고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1950년대 한국전쟁과 그로 인해 발생한 20만 명의 전쟁고아의 처참한 삶, 연합군으로 참전한 20살의 미군의 고통, 선교활동을 위해 파견된 미국인 목사 부부의 엇나가는 삶 등이 갈피갈피에 스며 있다. 또한, 재미교포들의 뿌리 없는 삶뿐만 아니라 미국의 밑바닥 인생들의 삶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다움을 말살하는 전쟁의 참상이 쓸고 간 자리에도 사람들은 신통하게 살아간다. 그것은 스스로 인간다움을 포기한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950년 한국에서 전쟁으로 11살 어린 ‘준’이 엄마와 쌍둥이 언니와 오빠, 또한 쌍둥이 여동생과 남동생을 처참하게 잃고 고아가 되면서 시작된다. 이어 곧바로 1986년 뉴욕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47~48세의 ‘재미교포 준’의 인생으로 훌쩍 건너뛴다. 준은 10여년 이탈리아로 훌쩍 여행을 떠난 뒤 연락이 끊긴 아들 니콜라스를 추적하고 있다. 이제 서른 살이 됐을 아들이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 사는 헥터라는 한국전쟁 참전 군인을 찾고 있다. 공간적 배경은 1950년대 전쟁으로 인생이 망가져 버린 10대의 준과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죄의식으로 도망치듯 전쟁을 찾아온 20살의 헥터, 1930년 만주에서 살다가 만주사변을 경험하고서 인생의 한 자락을 놓아버린 선교사의 아내 실비가 한데 모이는 ‘새로운 희망’ 고아원이다. 준과 헥터, 실비가 안은 각자의 삶의 무게는 누구도 덜어내 줄 수가 없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지루하지 않다. 1965년에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한국계 미국작가인 이창래의 작품은 비교적 감정의 과잉이 적다. 과도한 민족주의로 질척거리지도 않고, 앞뒤 가리지 않는 증오와 ‘마땅히 이러해야 했다’는 식으로 재단하는 지독히 한국적 윤리의식을 강요하지 않아 한국전쟁을 비교적 자유로운 시각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당시를 돌아보며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극한까지 다가가지 않은 채 살아남은 자의 오만에 불과하지 않을까.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시진핑 “美, 댜오위다오 개입말라” 직격탄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19일 중·일 간 분쟁 중인 센카구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관련, “댜오위다오 매입은 웃기는 짓”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에 대해서도 “개입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였다. 시 부주석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을 방문 중인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 이같이 말한 뒤 “일본은 잘못된 행동을 자제하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저해하는 말이나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또 미국에 대해서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댜오위다오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특히 중·일 간 갈등을 격화하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이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센카쿠열도가 미·일 상호방위조약 대상이라는 점을 재확인함으로써 일본 편에 선 데다 방중 직전 일본에 들러 미사일방어(MD) 시스템과 관련된 고성능 레이더 기지를 일본에 추가 설치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중국 봉쇄’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 부주석은 이 같은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낸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은 양국이 센카쿠열도 인근 해역에서 경쟁적으로 관공선을 늘리면서 격화되고 있다. 만주사변 81주년 기념일인 지난 18일 최고조에 달했던 중국 내 반일 시위는 이날을 기해 거의 열리지 않고 있으나 해상 충돌 가능성은 고조된 것이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날 전체 순시선(경비함) 121척 가운데 약 50척을 센카쿠 해역에 배치해 중국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배치된 순시선 가운데는 40㎜ 기관포를 장착한 1000t급 아소함이 포함됐다. 무장 공작선 나포 등 준전투 상황에 투입되는 함정이다. 중국도 일본 측의 저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이날 센카쿠 인근 해역에 배치한 관공선을 16척까지 늘렸다. 해감총대 소속 해양감시선 10척과 농업부 산하 어정선(어업관리선) 6척이다. 이 중 4척은 이날 오후 8시 현재 센카쿠 접속수역(12~24해리) 안에 머물렀다. 해양감시선 6척은 오후 센카쿠 주변 해역을 떠나 중·일 중간선 너머로 사라졌으나 철수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남은 감시선은 특별한 추가 행동을 하지 않고 있어 대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아울러 일본이 이미 자위대 함정을 센카쿠열도 주변으로 이동하게 했고, 중국 군부도 경고음을 내고 있어 최악의 경우 양국이 무력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난징(南京) 등 4대 군구에서 미사일 등을 동원해 센카쿠 상륙 및 탈환 실전 훈련을 집중 실시하고 있다. 공격형 핵잠수함을 자국 어선단 후위에 배치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일본은 중국 측이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의 통관을 늦추는 방법으로 사실상 경제보복에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중국 상무부의 선단양(沈丹陽) 대변인도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는) 중·일 경제무역 관계에 반드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해 경제 보복 가능성을 내비쳤다. 2010년 9월 센카쿠열도 해역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 충돌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중국은 희토류 수출 중단과 일본 상품의 통관 지연으로 보복조치에 나서 일본을 항복시킨 바 있다. 중국은 일본에 사이버 공격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부처, 법원, 병원 등 적어도 19곳의 웹사이트가 명백히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고 일본 경찰청이 밝혔다. 이들 웹사이트는 접속할 경우 “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란 메시지가 나오도록 조작돼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만주사변 81돌… 中 100개市 反日시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일으킨 만주사변이 81주년을 맞은 18일 중국 100여개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인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만주사변일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오전 9시 18분 중국 전역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랴오닝(遼寧)·간쑤(甘肅)·윈난(雲南)·쓰촨(四川)·안후이(安徽)성 등의 지방 정부는 만주사변 희생자 추모 차원에서 사이렌을 울렸다. 시위대는 “9·18을 잊지 말자.”,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는 중국 땅”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오성홍기,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 등을 들고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부르면서 거리를 누볐다. 베이징 시내 량마차오루(亮馬橋路)에 있는 일본 대사관에는 1만여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플라스틱 물병과 계란을 일본 대사관에 던졌고 공안(경찰)은 대사관으로 돌진하려는 시위대를 제지했다. 상하이에서도 4000여명의 시위대가 일본 총영사관에 모여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를 비난했고 만주사변이 시작된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는 4500여명이 훼손된 일장기와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사진을 들고 항의했다. 중국 공안 당국은 평화적인 시위는 용인하겠지만 폭력, 파괴, 약탈 행위는 엄중 처벌하겠다고 경고하며 시위대를 통제했다. 센카쿠 상륙을 시도했던 홍콩 댜오위다오보호행동위원회는 선박검사증명서를 받지 못해 출항하지 못했다. 관영 신화통신 등의 언론 매체들도 이성적인 애국을 강조하면서 폭력 행위 자제를 촉구했다.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는 구내 800곳의 일본계 기업에 하루 동안 임시 휴업할 것을 권고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칭다오 등에 있는 일본인 학교도 하루 휴교했다. 저장(浙江)성과 푸젠(福建)성의 어선 1000척이 몰려갈 것으로 예고된 센카쿠열도 해역에서는 중국 어업지도선 ‘위정(漁政) 35001호’와 해양 감시선 10척이 접속수역 12∼24해리(22∼44km)에서 항해해 긴장을 고조시켰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센카쿠열도 주변에 대형 순시선 7척과 소형 어선을 추적할 수 있는 순시정을 배치했으며 방위성도 비상 상황에 대비해 자위대 함정을 센카쿠열도와 가까운 해역으로 이동시켰다. 일본 정부는 또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에 정보연락실을 설치했다. 앞서 이날 오전 9시 30분쯤에는 일본인 2명이 센카쿠열도에 기습적으로 상륙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이들이 사전 허가 없이 섬에 상륙한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선 ‘중일 교전’이 하루 종일 인기 검색어 목록에 오르는 등 네티즌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소금, 쌀 등의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는 모습도 목격됐다. 저장성 원저우(溫州)시의 소금을 관리하는 염무국은 전날 시민들을 상대로 “2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소금이 있다.”며 사재기를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일본에서도 반중 감정이 고조되면서 17일 오후 6시쯤 후쿠오카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 연막탄 두 발이 날아들었지만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中 ‘비상’…18일 대규모시위 예고, 日 ‘다급’…美에 ‘지원 사격’ 호소

    中 ‘비상’…18일 대규모시위 예고, 日 ‘다급’…美에 ‘지원 사격’ 호소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에 항의하는 중국 내 반일 시위가 격화되면서 중국과 일본 모두 비상이 걸렸다. 중국은 반일 시위가 자칫 ‘반정부 시위’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하며 통제에 나섰고, 중국 내 일본인 및 일본 기업은 극도로 긴장한 채 시위 양상 변화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센카쿠열도 등 동중국해 도서는 미·일 상호방위조약에 해당한다.”며 미국 측에 ‘지원사격’을 호소해 중국 측의 반응이 주목된다. 중국 정부는 17일 폭력 시위대 검거 소식과 함께 ‘시위는 용납하되 폭도는 엄벌한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광저우(廣州) 공안국은 17일 전날 반일시위를 빌미로 길거리에 주차 중이던 일제 차량과 일본 상점 유리창 및 광고판을 파손한 혐의로 1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시 공안(경찰)국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이성적 항의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타인의 합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은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국이 폭력 시위 엄단 조치를 밝힌 것은 일부 시위 현장이 통제가 안 될 만큼 과격 양상을 띠고 있고, 이는 자칫 반정부 시위로 확산될 위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6일 광둥(廣東)성 선전(深?) 시위의 경우 시위대가 공산당위원회 건물로 몰려가 돌멩이 등을 투척하는 등 반정부 양상을 보였다. 한편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중국 유일의 전국망인 중앙 인민 라디오 인터넷판을 인용, 중국 저장성과 푸젠성의 어선 1000척이 17일 센카쿠열도를 향해 출항해 이르면 이날 센카쿠열도 부근 해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들 어선은 지난 6월 1일 시작된 동중국해 조업 금지 기간이 끝나는 16일에 출항할 예정이었지만 태풍 때문에 하루를 연기해 17일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 일본인과 일본 기업들은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졌다. 17일에는 반일 시위가 잠시 주춤했지만 만주사변 81주년인 18일 전국적으로 대규모 반일 시위가 예고돼 있어 외출을 삼가고, 영업을 중단하는 등 시위 양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유니클로는 18일 중국 내 19개 매장의 문을 닫는다고 17일 밝혔다. 이는 전날보다 12곳 늘어난 수치다. 파나소닉도 생산라인이 파괴된 칭다오와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의 전자부품 공장 가동을 18일까지 중단할 예정이다. 마쓰다 자동차는 난징(南京) 공장 가동을 18일부터 4일간 멈출 계획이다. 유통업체 이온도 시위대의 습격으로 매장 물품 등을 약탈당한 칭다오의 대형마트 ‘자스코 황다오(黃島)점’ 영업을 중단했으며 영업 재개가 불투명한 상태다. 또 다른 유통기업인 세븐아이홀딩스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이토요카도’ 슈퍼마켓 13곳과 세븐일레븐 편의점 198곳의 영업을 중지할 예정이다. 일부 일본계 백화점과 슈퍼마켓은 시위대의 습격 및 약탈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아예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시위로 인해 직접적 피해를 입은 기업이 아니더라도 직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휴업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일본 교도통신은 전했다. 반일시위가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9·18 만주사변 81주년과 겹치면서 중국에선 일본 침략 역사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만주사변 발발지인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9·18역사박물관에는 최근 관람객이 급증해 하루 평균 1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18일 반일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글들이 확산되면서 중국 내 일본 공관과 일본인들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 한편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도쿄에서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중국과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 도서가 미·일 상호방위조약에 해당한다는 데 일본과 미국 정부가 동의했다고 밝혔다. 겐바 외무상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과의 센카쿠 분쟁에서 미국 측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유조구(柳條溝)사건/박정현 논설위원

    1964년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통킹만 사건에서 시작됐다. 미국은 베트남 통킹만 영해에서 미국 구축함이 북베트남으로부터 공격당했다고 발표한다. 구축함이 북베트남을 먼저 공격했다는 북베트남의 주장은 묻혀 버리고, 미국은 미군 피격을 명분 삼아 북베트남과 전쟁에 돌입한다. 훗날에야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하려고 계획적으로 유발한 사건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작은 사건이 큰 전쟁으로 확산되는 일은 역사의 다반사. 큰 사건을 일으키려는 인간의 욕망은 작은 사건을 쉽게 조작하기도 한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며 시작된 이라크전쟁은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나지 않았나. 1931년 9월 18일 밤 발생한 유조구(柳條溝·류탸오거우) 사건 조작도 마찬가지다. 창춘(長春)과 봉천(奉天·지금의 선양)을 횡단하는 만철선의 봉천 부근 유조구에서 철도 노선 폭파 사건이 벌어진다. 일본이 경영하던 만철선 철도 경비와 만주 관리는 관동군이 맡고 있었고, 관동군은 사건 발생 즉시 중국 동북군의 소행이라고 지목한다. 관동군은 봉천 주재 동북군 소탕과 만철선 주변 도시 장악에 나섰다. 이것이 바로 유조구 사건이다. 당시 끊어진 열차 노선의 길이는 79㎝에 불과했고 철도 운행은 금방 재개됐다. 이쯤 되면 동북군 공격의 빌미로 삼으려고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겁 없는 관동군 장교들은 사건 조작과 역사 왜곡에 능했던 모양이다. 유조구 사건과 장쭤린(張作霖) 암살사건 모두 관동군의 참모 장교들이 저지른 짓이다. 1927년 만주 군벌 장쭤린이 이용가치가 없다고 보고 이동 중인 열차를 폭파시켜 그를 암살한 일과 유조구 사건이 곧 만주사변이다. 중국인들은 9월 18일을 만주사변 발발일인 국치일로 삼고 있다. 일본정부가 일주일 전 민간인 소유자로부터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사들이는 국유화 방침을 밝히자 중국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수교 40년 만에 최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중국 내 시위로 중·일 양국뿐 아니라 동북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중국인들은 ‘과거 일을 잊지 말고 교훈으로 삼는다’는 선양(瀋陽)의 만주사변 박물관 입구 기념비의 문구를 잊지 않고 있다. 심각한 역사 망각증을 앓고 있는 일본 극우세력들이 중국의 국치일을 앞두고 기름을 부은 격이다. 동북아에서 더 큰일이 터지기 전에 그들이 하루빨리 망각증을 고쳐야 한다.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美국방 “中·日 전쟁 날수도”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에 반대하는 중국 내 반일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를 순방 중인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중국과 주변 국가 간의 영토 분쟁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제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만주사변 발생(1931년 9월 18일) 81주년을 앞두고 중국 인터넷에는 반일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어 18일이 이번 사태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6일에도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전역 80여개 도시에서 격렬한 반일 시위가 이어졌다. 전날에 이어 8만여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일본 대사관 앞에는 1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몰려들어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조치에 항의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중국 정부에 일본인과 일본기업의 피해 방지 조치를 취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중국 어선 1000여척이 금어기가 풀린 센카쿠열도 해역에 집단으로 출항할 계획이어서 양측의 해상충돌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한편 다음 달 부임을 앞두고 갑자기 쓰러진 일본의 니시미야 신이치(60) 신임 주중대사가 이날 오전 도쿄 병원에서 숨졌다. 베이징 주현진·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中, 센카쿠 재상륙 압박

    홍콩 시위대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재상륙 계획을 발표하고 중국 무역 부문의 고위 책임자가 일본에 대한 경제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중국은 13일에도 강도 높게 일본을 압박했다. 군사훈련을 통한 무력 위협과 언론의 비난전도 이어 갔다. 홍콩 댜오위다오 주권수호 행동위원회 총책임자인 천위난(陳裕南)은 오는 18일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9·18 만주사변 81주년을 맞아 댜오위다오 상륙 시도를 검토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중국 상무부의 장쩡웨이(姜增偉) 부부장(차관급)은 언론 브리핑에서 “일본의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로 양국 간 경제·무역 관계에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며 민간의 일제 불매운동 용인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최근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청두(成都), 지난(濟南) 등 4개 군구가 육해공 3군 합동 작전을 통한 섬 상륙 훈련을 실시했다고 중국중앙(CC)TV가 전날 보도했다. 중국 군은 최근 활발한 군사훈련을 통해 일본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일본 초당파 국회의원들의 중국 방문을 비롯해 양국 국민과 예술인들의 교류도 대부분 중단되거나 연기됐다.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는 전날 일본 측에 전화를 걸어 “우호적 분위기에서 (일본 의원들을) 맞이할 수 없다.”며 방문 중단을 요구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경성 탐낸 일본 지금은 어떨까

    1931년 9월, 일본은 류타오후 사건을 빌미로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만주의 대부분을 점령한다. 국제연맹은 곧바로 리턴조사단의 조사보고서를 채택, 일본의 만주 철수를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묵살하고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한다. 계속되는 국제연맹의 압박으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고립되던 그해, 조선의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앞에는 ‘흥아(興亞)연구소’라는 특수 조직이 꾸려진다. 연구소의 수장 도요카와 젠요(豊川善曄)는 이곳에서 그동안 벼려왔던 ‘경성천도론’을 발간한다. 대동아공영을 위해 일본의 수도를 조선의 경성으로 옮겨 대륙 침략을 더욱 가열차게 벌여 나갈 것을 주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성천도’(김현경 옮김, 전경일 편역·감수, 다빈치북스 펴냄)는 도요카와의 주장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놓은 책이다. 번역자들이 당시 시대 상황과 용어 해설 등을 상세하게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도요카와는 책을 통해 “일본 번영의 지리적 이득을 위해서는 경성이 7할의 역할을 담당하고, 도쿄는 나머지 3할을 수행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경성으로 제국의 수도를 옮기면 가만히 앉아서 일본과 만주의 통제공작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800만명의 일본인을 조선으로, 조선인 800만명은 만주로 이주시켜야 한다고도 했다. 도요카와는 왜 도쿄가 제국의 수도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도쿄의 최대 결점이 “우리의 생명선인 조선·만주 대륙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라고 봤다. 두 지역을 병탄한 이상 도쿄가 접한 동쪽 바다보다는 서쪽 대륙이 중요한데, 도쿄는 이를 등지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 둘째는 지반이 약하다는 점이다. 그가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주요한 계기도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 대지진이었다. 그는 “이 지진의 도시, 도쿄에 수도를 두는 것은 국가로서 크나큰 손실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니 “나의 오랜 바람인 경성천도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도 당연해 보인다. 아울러 도쿄가 해안에 위치한 탓에 방어적 지형을 갖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반면 경성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처졌고, 그 가운데로 한강이 흘러가는 천혜의 길지다. 그가 경성을 “흡사 이탈리아의 테베레 강변을 타고 영원한 수도라 불리던 로마를 방불케” 한다고 본 이유다. 무엇보다 지층이 안정돼 도쿄처럼 지진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 않았다. 최근 일본인들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도쿄에 수직직하형의 대지진을 겪을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80년 전 도요카와의 생각과 오늘날 일본인들의 생각은 얼마나 다를까. 1만 2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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