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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50돌에 맞는 3·1절(사설)

    오늘 우리는 76돌 3·1절을 맞는다.올해 3·1절은 우리국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안겨주고 있다.하나는 광복50주년을 맞는 해의 뜻깊은 3·1절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 식민지통치의 상징이었던 총독부건물의 철거를 알리는 고유제가 국립중앙박물관앞 광장에서 열린다는 것이다.구총독부청사의 철거는 해방 반세기만에 문민정부의 결단으로 이룩된 쾌거다. 총독부건물의 철거와 더불어 경복궁의 완전복원은 민족정기와 자존을 드높이는 기념비적 역사이다.그러나 종전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에게 참담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가해자 일본은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기피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아시아 식민지를 해방시킨 전쟁』이라고 미화시키는 망발마저 보이고 있다.일본국회의 부전 및 사죄결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극우세력들이 국회와 민간에서 목청을 높이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참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일본의 복고적 변신이다. 1919년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3·1만세운동은 민족적 에너지가 자유와 독립이란 명제로 활화산처럼 결집된 장엄한 드라마였다.국권을 빼앗긴지 10년째,도탄에 빠진 민생들이 절망과 무기력에 직면해 있을때 놀라운 민족의 에너지가 만세운동으로 분출한 것이다.죽은 줄로만 알았던 한민족의 기개와 투혼이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라는 원대한 국가목표를 설정하고 올해 그 원년을 맞았다.세계화전략을 통해 국력을 키우며 제2의 광복인 통일을 달성하고 나아가 세계중심국가로 발전한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을 가능케했던 열화같은 우리민족의 에너지를 세계화에 결집시켜 세계일류국가를 만드는 일에 온국민이 합심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우리 시대와 역사의 소명이기도 하다.
  • 3월의 빛깔… 희망으로 물들이자(박갑천 칼럼)

    기독교적 바탕에서 고독의 세계를 추구한 시인 김현승은 3월을 사랑한 듯하다.그의 「3월생」은 이렇게 시작된다.「눈보다도 입술이 더 고운/저애는/아마도 진달래 피는 3월에 태어났을 거야」.「겨울 가도/봄은 아직 오지 않은」 3월을 그는 발그스름한 진달래빛으로 본 것일까. 3월은 거쿨진 항쟁의 함성을 들려주면서 열린다.역사가 흘러도 사그라들지 않을 영겁의 함성이다.배달의 핏줄을 이어받은 겨레라면 누구나 떨리는 울분으로 그림그려보는 「독립만세」와 태극기의 물결.그날에 흘린 피는 3월이 이울면서 진달래로 피어 강산을 뒤덮는다.그러는 3월의 빛깔은 골풀이 함성이다.겨레의 기상이며 의기다. 감사나운 떠세의 가련한 뒷걸음질을 보여주는 달이 3월이다.봄은 아직 이르다 해도 그 길목엔 들어서 있는 시점 아닌가.그것은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제압하는 것(유능제강·황석공소서)을 보여주려는 섭리의 뜻이기도 하다.꽃샘추위로 마지막 발싸심을 한다 해도 부드럽고 따사롭게 불어오는 마파람 앞에 견뎌내지 못하는 게 겨울의 모습이다.천군만마 속을 누비는 싸움터에서의 효장이 가녀린 여인의 치맛자락에 휘감겨 헤어나지 못하는 꼴과도 같다.산과 들의 새 생명한테는 어머니 숨결 같은 마파람의 어디에 추위를 몰아내는 힘이 있다는 것일까.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괴로움이 가면 기쁨이 오는 법.이런 인간사에 대해서는 「노자」도 이렇게 말해놓고 있다.『…불행은 행복의 원인이 되고 행복은 불행의 원인이 된다.그러나 누가 그 궁극에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는 줄을 알겠는가…』.그런 점에서 환난도 피하려 들지 말고 자기몸같이 귀중히 여기라고 말한다.3월은 그래서 환난으로 엎드려 지내는 사람들에게 소리친다.『마음속이 겨울인 자들아.보라.혹한과 눈보라도 마침내 물러가지 않는가』고.어려움을 당해서는 주저앉지 말 것과 함께 기쁨의 날에도 어려웠던 시기를 생각하면서 뒤넘스러워지지 않아야 할 것을 3월은 가르친다. 새로운 생명이 꿈틀대는 3월의 빛깔은 어쨌거나 희망이다.희망은 가난한 자들을 먹여살린다고 하는 말이 있다.매양 물거품같이 사라지지만 거기 매달려야 하는인간을 비관적으로 표현한 말이다.하지만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것.웅크렸던 겨울을 터는 기지개를 켜면서 희망을 호흡해야겠다.모두들 3월을 희망의 빛깔로 물들여 나가자.
  • 76돌 3·1절/전국서 대대적 행사

    ◎서울 등 14개 시·도에서 7만여명 참가/항이·만세 운동지 68곳 추모행사·노제 올해로 76주년이 되는 3·1절 기념행사가 사상 최대규모로 펼쳐진다. 내무부는 26일 서울을 비롯,전국 14개 시·도와 2백31곳 시·군·구에서 모두 7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제히 기념행사가 각각 벌어진다고 밝혔다. 또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 광장을 비롯,전국의 47개 항일운동 사적지에서는 2만8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행사와 함께 백일장 등이 마련된다. 대전장터,충남 아우내장터 등 전국 21곳의 3·1운동 만세운동지에서는 1만8천여명이 모여 만세사건 재연,시가행진,노제 등 문화행사를 갖는다. 올해의 이같은 3·1절 기념행사는 사상 최대규모로 정부가 개항 1백주년,광복 50돌을 맞아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시켜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세계화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경남도 23개 전 시·군에서는 5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태극기를 들고 2∼4㎞를 달리며 독립정신을 되새긴다.제주에서도 조천만세동산두곳에서 1천4백여명이 기념식과 함께 2·4㎞구간에서 태극기 마라톤을 벌이며 민족적 자존심 회복을 다짐한다. 강원도는 3월1일부터 5일까지 춘천 종합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 2백여장의 항일운동 사진 전시회을 마련한다.이번 사진전에는 면암 최익현선생이 대마도로 끌려가는 장면 등 신미양요(1871년)부터 광복후 정부수립때까지 일제의 학정을 생생하게 보여줘 시민들의 애국심을 크게 일깨우게 된다. 이에앞서 28일에는 유관순열사가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충남 천안 병천 기미독립만세 기념비 광장에서는 지난해보다 두배나 많은 2천여명의 주민들이 흰저고리,검은치마 차림으로 봉화제와 횃불행진 등을 벌여 올 3·1운동 기념행사의 「봉화」를 올린다. 한편 정부는 이번 3·1절을 계기로 광주시 북구 광주제일고의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과 제주 조천만세동산주변을 각각 기념공원으로 조성해 성역화하기로 했다.
  • 민주/계파갈등 상존…KT앞날 험난/전대서 총재로 추대는 되었지만…

    ◎내분 임시봉합… 동교계 지원이 절대변수/지방선거 참패땐 당권투쟁 재연 불보듯 이제부터는 「이기택 총재」다.그토록 갈망했던 제1야당의 총재 자리였다.그가 총재로 추대된 24일 임시전당대회에서 그의 얼굴에는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이날 만큼은 그의 날이었다. 그는 더이상 「9인9색」의 한명이 아니다.웬만한 일은 단독으로 결정해도 되게 됐다.그래서인지 비장한 각오도 엿보인다. 이 총재는 총재직 수락연설에서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강력하고 효율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겠다』고 선언했다.지금까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나약하고 우유부단한」이라는 수식어를 그의 이름 앞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뜻이다.그만큼 의욕도 대단하다.한 측근은 『내일부터 당이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고했다.명실상부한 「이기택당」으로 만들 생각인듯 보이기도 한다.당의 체질개선과 개혁작업에 한껏 체중을 싣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홀로서기의 본격 점화로도 읽혀진다. 이 총재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도 야심찬 복안을 갖고있다고 한다.이를 바탕으로 8월 정기전당대회에서 다시한번 총재직을 거머쥔뒤 총선을 거쳐 대권도전에 성큼 다가선다는 심산같다.원내의석도 1백석이상으로 늘려 제1야당으로서는 지난 85년 옛 신민당(1백3석) 이후 최대숫자를 구축하겠다는 의욕도 보이고 있다.따라서 당운영 방안등에 있어 독자노선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총재의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험난하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하다.우선 그는 한시적 사령탑에 지나지 않는다.지방선거 결과도 때에 따라서는 「사약」이 될수도 있다. 또 「태양론」으로 극에 달했던 당내갈등이 여전히 시한폭탄이다.언제 어떤 식으로 터질 지 누구도 예측을 할 수가 없다.무엇보다 이번 지도체제 개편은 「12·12투쟁」의 갈등과 전당대회를 둘러싼 내분을 임시봉합한데 따른 부산물에 불과하다.결국 동교동계의 지원없이 이 총재가 그의 구상을 제대로 펼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실제로 이총재와 동교동계의 갈등은 곪을 대로 곪은 양상이다.이날 아침까지도 양쪽이 대의원수 문제로 으르렁거린데서도 잘 나타난다. 동교동계는 이 총재와의 「불안한 동거」를 청산하겠다고 이미 마음을 굳히고 다른 대안을 찾고 있으며 이번에 민주당에 합류한 이종찬,김근태 카드를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방선거에 대비한 영입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머리를 아프게 하는 대목이다.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충청권과 영남권에 대한 공략도 「자민련」의 출현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놓여 있다.이총재가 자기의 정치생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가장 중요한 길목에 들어선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임시전당대회장 스케치/중량급 입당 등 「깜짝쇼」 없어 분위기 침체/총재추대에 영남 대의원만 “이기택” 연호 24일 하오 2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의 제5차 임시전당대회는 전국에서 올라온 4천여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축제분위기 속에서 3시간 남짓 진행됐다.그러나 대표경선등 지도부 선출이나 중량급인사의 입당발표등 「깜짝쇼」가 이뤄지지 않은 탓인지 긴장감이나 열기는 기대에 못미쳤다는 것이 중론.특히 대의원수 조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일부 대의원들의 돌출행동이 우려됐으나 별다른 소동은 없었다. ○…당헌개정안 의결과 총재단 선출,총재 연설,야권통합 선언,통합대표 인사,결의문 채택등의 순서로 진행된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총재단 선출.김말용전당대회의장이 『개정된 당헌에 따라 이기택대표를 새총재로 선출한다』고 선포하자 이기택총재는 대의원들의 환호속에 단상앞으로 다가가 손을 번쩍 들어 총재직을 수락.이어 김의장은 나머지 최고위원 8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부총재로 선출됐음을 선언.한편 이총재가 부총재들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동안 단상 좌측에 자리잡은 부산·경북·대구등 영남지역의 대의원들은 「이기택」을 연호했으나 나머지 대의원들은 박수로만 환영하는 대조적 모습을 보여 눈길.이총재는 총재수락연설을 통해 『정통야당 민주당의 총재로서 역사를 되돌리려는 어떤 불순한 시도도 단호히 배격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4대 지방선거의 승리와 정권교체의 그날을위해 전진하자』고 독려. ○…이 총재의 야권통합 선언에 이어 이종찬새한국당대표와 김근태 통일시대국민회의 대표가 단상에 오르자 대의원들은 「민주당 만세」「야권통합 만세」를 외쳐 행사장의 열기는 최고조에 이르는 모습.이새한국당대표는 통합을 축하하는 인사말에서 『만년야당이 집권하는 신화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 ○…레이저 광선이 난무하는 가운데 중간에 열린 축하행사에는 농악패의 사물놀이속에 가로 5m,세로 3.5m의 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해방이후의 야당사를 그린 극영화를 10분 남짓 상영.여기에는 최근 폭발적 인기를 모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광주사태 장면등이 일부 삽입돼 눈길. ○…이날 행사에는 최근 정가의 쟁점이 되고 있는 행정구역개편논의의 주역인 민자당의 김덕용사무총장과 손학규의원이 참석해 이채.또 이동진·이영일·오유방·김봉욱 전의원 등 새한국당쪽 인사 30여명과 정동익·김희선·이목희씨등 통합에 참여하는 재야인사 50여명도 참석.이밖에 이기택 총재의 부인 이경의 여사로부터최근 신장을 기증받은 이건자씨(46)와 미스코리아 한성주양도 자리해 눈길.
  • 일제 「소요일람지도」 공개/3·1운동 진압자료

    ◎170곳서 무차별 발표/일인이 지난해 독립기념관 기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1919년 3·1운동당시 일본군이 시위진압자료로 작성해 극비문서로 관리해오던 「소요일람지도」를 와세다대학 문학부 미야타 세츠코교수가 입수,지난해 8월20일 독립기념관에 기증해왔다고 23일 밝혔다. 가로 38.5㎝ 세로 49㎝크기의 이 지도는 왼쪽 아래에 「조선총독부 대정팔년 사월삼십일 현재」라고 씌어있어 1919년4월30일쯤 작성됐음을 보여주며 독립운동 발발지역은 둥근 반점,일본군이 무차별적으로 발포한 지역은 붉은 점으로 나타나 있다.지도에 따르면 대략 만세운동지역이 3백10여곳에 이른다.러시아접경지역에서 제주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고 발포지역은 대략 1백70여곳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혈진압한 것으로 돼있다.
  • 3·1절행사 다채롭게/아우내장터 봉화제 등 거행키로

    다채롭게 정부는 광복 50주년을 맞는 올해 3·1절 기념행사를 예년보다 대대적으로 치른다는 방침 아래 전야제로 2월28일 충남 천안군 아우내장터에서 봉화제를,경기도 김포군 오라니장터와 제주도 조천에서는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갖기로 했다. 서석재 총무처장관은 10일 이같은 내용의 올해 3·1절 기념행사 개최 계획안을 이홍구 국무총리에게 보고했다. 정부는 3·1절 기념행사의 참석인원도 지난해의 3천2백명에서 4천명으로 늘리고 기념식이 끝난 뒤 행사장인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3·1운동 관련인사 33명이 참석하는 보신각종 타종행사도 갖기로 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에는 광복 50주년을 선열들에게 알리는 고유제(고유제)를 지내고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한편 궁중음악제도 개최할 예정이다.
  • 일본식 지명 우리말로 고친다/4월까지 주민의견 수렴/내무부

    ◎광복50돌 맞아 일제잔재 청산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일본식 땅이름 모두가 우리말로 고쳐진다.또 76주년 3·1절 기념행사를 국민화합을 다지는 범국민 축제로 승화시키기위해 예년과 달리 다채롭게 펼쳐진다. 내무부는 8일 김무성차관 주재로 전국 부시장,부지사 회의를 소집,이같은 내용의 지방행정 역점 사항을 시달했다. 내무부는 이에 따라 오는 3월20일까지 일제시대에 고친 지명실태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4월20일까지 지역별로 지명위원회와 주민의견을 수렴한 종합적인 땅이름 교정방안을 보고토록 했다.내무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행정구역 및 땅이름을 우리 고유명칭으로 바로 잡기로 했다. 또 76주년 3·1절 행사와 관련,범국민적인 태극기 게양운동을 벌이고 시·도 및 시·군·구별로 독립만세운동지역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갖는 한편 광복회원 등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강화토록 했다. 내무부는 또 오는 6월27일 지방선거에 대비해 시·도 및 시·군·구별로 지방선거지원단을 설치,운용하라고 지시했다.
  • 세계화 민자당/「2·7 전대」 이모저모

    ◎“이춘구 대표” 지명에 동의 박수 환호/“차세대 길러낼 적임자” 김 대통령이 소개/당헌개정안·「세계화 선언」 일사천리 통과 민자당은 7일 하오 국민정당·정책정당으로 환골탈태를 다짐하는 3차 정기 전당대회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었다. 축제무드 속에 진행된 이날 대회는 김영삼대통령을 총재로 재선출하고 이춘구 국회부의장을 새 대표로 결정,오는 6월 4대 지방선거체제에 돌입하는 사실상의 출정식이었다. 대회는 재적대의원 6천9백1명 가운데 6천6백74명과 외교사절·종교·문화예술등 1천8백여명의 각계 초청인사를 포함,1만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하오 2시부터 2시간남짓 열띤 분위기로 진행됐다. ○「신당」 의원6명 불참 ○…대회장에는 대표직 사퇴에 이어 오는 9일 탈당 및 신당창당을 선언할 김종필 의원은 물론 이날 시내 한 호텔에서 박준규 전국회의장·최각규 전부총리 등과 창당준비실무위 회의를 가진 구자춘 정석모 김동근 조부영 이긍긍 의원등이 불참.대의원석 상단에 자리잡은 대전 충남·북지역 대의원석 일부도비어 있어 민자당의 「세계화」에 따른 내부진통을 반영.그러나 김의원과 같은 보수계로 분류되고 있는 노재봉 안무혁 권익현 의원과 최재구 고문 등은 출석,김의원의 신당과 아직 거리를 두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시. ○…아나운서 변웅전씨의 사회로 진행된 식전행사에서는 현철·윤복희·그룹 코리아나 등 인기가수들의 축하공연과 국수호 무용단의 북연주,깃발무용단과 코레스무용단의 춤,MBC관현악단의 연주,김봉임 서울오페라단장이 지휘하는 민자당 여성합창단의 「보리밭」 등 가곡이 어우러져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 ○이순재 의원 사회 ○…이순재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본대회는 하오 3시 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이 환호 속에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이어 정재철 중앙상무위의장을 새 전당대회의장으로 선출하고 강령·기본정책 및 당헌 개정안과 「세계화선언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특히 문정수사무총장이 낭독한 「세계화 선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21세기 선진한국을 위한 자기혁신』과 『경쟁력있는 정치,국민의요구를 수용하는 민생정치,통합의 정치 실현』을 천명.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김대통령의 총재 재선출은 정재철전당대회의장이 당무회의의 제청에 대한 대의원들의 동의를 묻는 형식으로 진행.정의장이 『김 대통령은 그동안 총재로서 우리 당을 국민정당으로 육성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여 왔다』면서 제청안을 상정하자 대의원들은 팡파르 속에 우레와 같은 박수로 가결. 박인수(서울대)·김인혜(숙명여대)교수의 「희망의 나라로」등 축가가 울려퍼지는 속에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 헬무트 콜 독일총리등 각국 정치지도자의 축하메시지가 소개되면서 박수가 파도를 타 분위기는 절정에 도달. 김 대통령은 총재연설을 통해 『민자당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정치를 선도해야 한다』면서 국민정당·민주정당·정책정당·차세대정당·통일주도정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김 대통령은 특히 『세대를 나누고 지역을 볼모로 한 낡은 정치,무책임한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고 김종필 의원의 신당 움직임을 겨냥한 듯한 대목에 힘을 준 뒤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중산층의 확충과 미래지향적 차세대육성』을 거듭 역설. ○「대표」 지명순간 긴장 ○…이날 신임대표 지명이 이루어지기까지 원외의 정원식 전국무총리와 원내인 이춘구 국회부의장을 놓고 대회 중반까지도 최종 낙점자가 드러나지 않아 당직자들마저도 혼선을 거듭.전날밤에 이부의장이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정전총리의 전격기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연막전술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돌기도.이 때문에 김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고 그동안 철저한 비밀에 부쳐왔던 대표 지명순서에 이르자 대회장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긴장된 분위기.다만 처음에 단상 총재석 옆자리에 마련됐던 대표내정자 자리가 행사도중 갑자기 철수돼 원외의 정전총리가 아니라 국회부의장 자격으로 단상 뒷줄에 앉아 있던 이춘구씨가 대표임을 극적으로 암시. 김 대통령은 이부의장을 대표로 지명하면서 『나라가 어려웠던 지난 날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맡은 소임을 충실히 다하는 사람으로 차세대를 길러내기 위한 일에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한 뒤 이부의장의 손을 맞잡고 연단앞으로 나와 대의원들의 동의를 요청. ○…김 대통령이 이부의장을 대표에 지명하자 대의원들은 일제히 박수로 동의를 표하고 한때 대표설이 나돌던 김윤환 정무장관 등은 가벼운 미소로 이 대표를 축하.이대표는 『당의 세계화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하겠다』고 짤막한 인사. 박범진대변인의 「국민께 드리는 약속」낭독에 이어 민관식고문의 선창으로 만세삼창을 하는 것으로 대회를 종료. ○…대회가 끝난뒤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김대통령은 『역사는 승리자만 기억한다』면서 『용기와 신념을 갖고 희망의 정치,가능성의 정치를 펼쳐 나가자』고 강조.김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프로기사 조훈현9단에게 『바둑처럼 정치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피력.탤런트출신의 최영한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축하연에는 민자당 소속의원·지구당위원장·후원회원·시도의원·각계인사 등 1천5백여명이 참석. ◎후속 당직인사 전망/총장/김정수·서청원 의원 유력… 문정수 총장 유임설/총무/박종수·이민섭·현경개·양정규 의원 등 집중거명/김 정무1 유임 가능성… 정책의장엔 4의원 물망 이춘구 국회부의장이 7일 민자당의 새 대표로 등장한 것은 오는 6월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민정계에 우선적으로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이는 그동안 소외감을 느껴온 민정계의 부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자 민주계의 일보후퇴로 이어지게 될 전조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8일부터 이루어질 6역을 포함한 후속 당직개편에서는 민정계 실세들이 전면배치되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혀가고 있다.그러나 그 정도는 처음 예상보다 엷어지는 느낌이다.이날 전당대회 직전까지 유력한 대표후보로 거론되던 원외의 정원식 전국무총리가 대표로 기용되는 것보다는 민정계의 전진강도가 조금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원내총무 정무제1장관 등 4개 요직에 대한 숫자상의 배분은 처음 예상대로 민정 3,민주 1의 구도에 변함이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그러나 다가올 최대 정치행사인 선거의 실무책임자이자당무의 핵심인 서열 4위의 사무총장은 민정계로 넘어갈 것처럼 점쳐지다 다시 민주계 몫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따라서 정책위의장 총무 정무장관 등 나머지 3개 요직에는 민정계 인사들이 전진 배치될 전망이다.대신 민주계는 총장직만을 갖게 됨으로써 나머지 당직에서는 한발 뒤로 물러나 「후일」을 기약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사무총장에는 김정수·서청원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또 김덕용의원과 그동안 당직을 맡지 못했던 김봉조의원의 전격기용도 점쳐지고 있으며 문정수총장의 유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원내총무에는 이한동 총무의 경선총무 가능성과 함께 민정계의 박정수·이민섭·현경대·양정규 의원이 도전하게 될 공산이 크다.정무장관에는 「대표등용」과 「총장입성」에 실패한 김윤환 의원이 유임될 가능성이 가장 크며 정책위의장에는 신상식·김진재·박정수·이승윤 의원등이 거명되고 있다.이한동 총무가 물러나게 되면 그를 안배하는 뜻에서 이부의장의 후임이나 중앙상무위의장에 기용될 수도있을 것이다. 민정계가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 맡고 민주계는 정책위의장만을 차지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6역을 뺀 나머지 12역에는 주로 민정계 3·4선급 의원들 가운데서 기용될 전망이다. 대변인에는 박범진대변인의 유임 가능성과 함께 민정계인 최재욱·강용식의원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세계화추진위원장에는 민정계의 박정수·정재문·이승윤의원이 거명되고 있다. 국책자문위원장에는 대전·충청지역의 정서를 감안해 남재두의원이 기용될 것으로 예상된다.14개 위원장 및 4개 특별위원장 등 실무당직에는 민주계의 재선급 의원들이 대거 기용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관악산 신령님께 고합니다” 오승호 경제부기자(현장)

    ◎농림수산부 직원,비내리기 축원 『을해년 2월5일 길일을 택해 농림수산부 차관 박상우가 관악산 신령님께 삼가 고개숙여 고합니다…』 「한남정맥 관악산」이라고 쓴 신위에 돼지머리,시루떡 등 넉넉한 제물 앞에서 원예특작과 권기석 계장이 축문을 읽어 내려갔다. 『지금 남부지방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식수난과 농작물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하루 속히 비를 내리셔서 가뭄을 해갈시키고 애태우는 농민의 주름살을 펴 주시길 기원합니다』 일요일인 5일 상오 11시20분 해발 6백32m 서울 관악산 정상의 헬기장.농림수산부 박차관과 직원 1백여명이 정성을 모아 가뭄극복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올리고 있었다. 축문낭독에 이어 김한수 농산정책심의관을 시작으로 참석자들이 번갈아 절을 올렸다.마침 산을 찾은 등산객들도 기우제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호기심보다 가뭄의 심각함을 공감하려는 듯했다. 농림수산부 한 직원은 『산에도 족보가 있다』면서 『속리산에서 뻗어 나온 한강 이남의 산들은 경기도 과천의 청계산을 거쳐 관악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툼한 등산복 차림의 이용규(대한산악회 서울시 부회장)씨는 『농림수산부에 재직했다가 93년 퇴직했다』며 『농정을 담당하는 직원들 못지않게 올 농사가 걱정돼 선약도 깨고 기우제에 참석했다』고 말했다.유종섭 외환은행 상무이사는 『언론보도를 보고 산을 좋아하는 직원 20명과 함께 왔다』면서 『관악산 신령님이 비를 내리게 해주셔서 농민들을 신명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우제는 『절수·저수·용수개발 등 가뭄극복 3대 운동으로 올해에도 기필코 풍년농사를 이룩하겠다』는 박차관의 다짐섞인 격려사와 만세삼창을 끝으로 30분 만에 끝났다. 기우제를 지낸 농림수산부 직원들은 애타는 마음이 다소 누그러진 듯했다.그러나 용수개발 업무를 직접 맡고 있는 이상무 농어촌개발국장은 아쉬운 듯 한마디 던졌다.『지난 3일엔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는 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관악산 신령님」이 애타는 농심들을 얼마나달래 줄지 궁금하다.
  • 신당결성의 반시대성(사설)

    민자당의 김종필 전대표가 박준규 전 국회의장등과 함께 신당결성 움직임을 표면화하고 있다.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정당설립의 자유를 용훼할 생각은 없다.그러나 김씨의 신당추진은 우리의 정치발전과 역사의 흐름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민자당내 김씨의 거취문제에서 발전된 신당추진움직임은 처리과정의 혼선과 그에 따른 비판 및 동정론,그리고 특정지역의 정서를 떠나 역사적 정당성과 국민적 여망에 비추어 볼때 한마디로 시대역행적인 흐름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지역정서와 관계없는 대다수국민들이 느끼는 대로 우리의 정치시계가 15년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추진세력들과 그들이 내건 명분이나 방법론 등에서 정치발전의 후퇴나 역사에대한 반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지역당은 안된다 정치체제에 대한 민주적 정통성시비가 종식된 상황에서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3김시대의 실질적 청산과 정치지도자들의 신진대사로,세계화시대와 새로운 세기의 통일과 번영의 선진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정치발전의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바람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우선 김씨가 오너가 되는 신당의 결성은 충청권과 일부 TK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또 하나 지역당의 출현과 3김시대로의 회귀라는 시대역행적인 정계구도의 재현을 예고하고 있다.한군데도 아닌 두군데의 지역정서를 묶어서 지역연합당을 만들겠다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지난 한 세대동안 망국적 지역대결구도의 조성에 책임의 일단을 부인 못할 김씨로서 통일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과거의 유산을 해소하는 데 여생을 바쳐야 마땅한 일이지 그것을 심화시키는 행태는 정당화되기가 어렵다고 우리는 생각한다.다가오는 선거에서 도단위의 지역감정이 선동정치의 재료로 악용될 때 지역간 갈등과 대립으로 사회적 통합이 깨어질 상황을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신당추진론자들이 그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대교체는 국민적 요구다 다음으로는무엇을 위한 3김구도의 재현이냐 하는 것이다.후생을 위한 병풍역할을 내건다지만 김씨의 오너체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그것이 또 한사람의 오너역할에 상승작용을 할 것이라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지금 국민들의 당혹감은 어째서 김영삼대통령의 당선과 김대중씨의 정계은퇴로 국민적 청산이 된 3김체제의 망령이 또 다시 고개를 드느냐에 있다.민주화투쟁이라는 명분이 있었던 과거의 3김시대와는 달리 이번 신당은 국민적인 대의와 명분이 불투명하다.중산층을 기반으로 하고 개혁과 세계화목표를 내건 민자당에서 굳이 이탈하는 동기가 반개혁,반보수,반세계화라면 몰라도 보수층대변을 표방하는 것은 민자당에 있을 때는 보수가 안되고 나가야 된다는 모순된 논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각제 미끼지 명분 못된다 김종필씨와 박씨등이 내각제를 들고나오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3당통합때의 이면합의가 내각제라고 하여 현재 민자당의원 가운데 그것을 선호할 의원들을 유인하는 미끼로서 내걸었다면 내각제개헌론을 정치이기주의에 악용하는 것이며 당당하고 떳떳한 태도라 할 수 없다. 결국 민자당이탈의 신당은 선거를 앞둔 소외불만세력의 이합집산이라는 측면이나 기존의 지분확보와 정치생존을 위한 이유 이외에 국민적공감을 얻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인상을 주고있다.권력의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개인적 반감과 지역정서의 세일즈를 극대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래서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안타깝게 생각하는것은 신당추진의 주역들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단적인 예로 국회의장을 스스로 중도하차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정은 신당주도가 개인적인 한풀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한다.신당주역들중 한분은 지난 한세대동안 국회의원,집권당대표,국무총리,대통령후보를 거치고 또 한 분 역시 집권당대표,국회의장까지 지내는 등 대통령 빼고는 거의 안해본 자리가 없는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면 자신들의 시대적 역할은 끝났음을 깨달아 자신들의 이익이나 입지에 집착하는 자세를 버리고 막이 내린무대에서 조용히 내려와 역사를 마주하며 후생들을 지켜보는 존경받는 사표가 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그런 시대정신에 대한 자각이 없는 한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훌륭한 후생들이 그들의 뒤에 서지 않을 것이며 서서도 안된다. 우리는 지역주의와 사감에 의한 신당추진은 안된다는 어느 원로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기대한다.국민대다수의 생각도 물론 그러할 것이다.
  • 무오독립선언 76돌 기념식/세종회관서 열려

    일제때 조국독립을 위한 3대독립선언 가운데 가장 앞선 대한독립선언(일명 무오독립선언)선포 제76주년 기념식이 2일 낮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승곤 광복회장·조만제 삼균학회장·김시복 국가보훈처차장등 관계자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광복 50주년행사로 처음으로 열린 이 행사는 김광복회장의 개식사에 이어 조회장의 독립선언서 낭독,이강훈 전광복회장의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또 이날 행사에서는 이현희 성신여대교수의 「대한독립선언과 정통성문제」,정용대 건국대교수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이라는 주제의 학술강연이 있었다.
  • 통합의 정치·정론의 언론으로/세계화를 위한 제언(사설)

    세계화의 목표인 「21세기의 선진화·일류화된 조국」을 이룩하기 위해선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정치와 언론의 향도적인 자세와 역할이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민심의 행방과 여론의 적정한 수집·분석,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정보화시대의 주체로서 실행역할을 고르게 할 수 있는 정치와 언론의 영향력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근대산업화과정에서의 정치와 언론은 그 엄청난 공적에도 불구하고 각기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다양성의 통합과 정론제시기능을 극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일반적 평가다. 특히 최근 정치양태는 다수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크게 우려된다.오늘날 가장 낙후된 분야가 정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각종 기관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는 번번이 정치의 수준과 기능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해내고 있다. 또한 이에 참여하는 정치인은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다.모든 것의 모범이어야할 정치는 도도한 세계화의 흐름을 외면한 채 자기성찰과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한 느낌이며 나아가 국가발전을 유·무형으로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잦다는 비판에 직면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준엄한 비판을 받는 부분은 이미 민주화된 지금 민주와 비민주의 대결구도라는 과거의 낡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을 뿐아니라 미래의 역할을 자임하기 위한 태세진입에 주저하고 있는 점이다.보다 넓은 세계,보다 깊은 미래를 겨냥한 대안과 정책을 통한 경쟁력 있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불신과 반목으로 점철되어 있는 정치권이 스스로 과감한 탈출을 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국가적 목표의 설정도 성취될 수 없다.이제 정치는 국가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김영삼대통령은 지역과 계층,세대와 정파의 차이를 뛰어넘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모두가 하나가 되는 「통합의 정치」를 제창하고 있다.이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정치인의 의식과 관행의 급속한 세계화무장이다. 개인과 지역중심의 파벌이나 인맥위주의 정당운영은 제일 먼저 타파해야 할 구정치의 관행이다.긴박하게 변해가는 세계에서 일류가 되려면 앞서려는 의지와 안목을 지닌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새롭고 유능한 정치인이 쉽게 동참할 수 있는 세대교체의 제도적 보장과 정당의 체질개선을 위한 민주적 운영방식의 도입은 하루도 늦출 이유가 없다.정치꾼이 판치던 자리에는 새로운 세계관과 전문적 식견을 가진 이들이 대신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행여 불만세력이 무리지어 발호하는 지역할거주의가 재연되는 시대도착적인 어떠한 구태도 정치 선진화라는 관점에서 청산돼야 하며 절대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정론을 통한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의 역할 역시 이 시대에 되씹어 보아야 할 과제다.사회 여러분야중 창조적이고 건설적 역할이 항상 강조되는 언론의 속성때문이다.지금은 단순한 민심의 반영이나 정서적 대응등 상업적 영합이 아닌,세계화차원의 새로운 역량발휘가 필요한 때다.세계 일류국가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간의 협력 가능한 부분을 제대로접합시키는 언론의 새로운 교량역할이 요청된다.탐색보도를 통해 특정한 권력투쟁에 천착하거나 피상적 사안에 초점을 맞춰 정치행위를 상품화하는 흥미위주에서 벗어나는 일도 이제는 서둘러야 할 시급한 과제다.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정치와 언론이 세계화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공적 소명의식이 제고되어야 함은 물론 국민의 끊임없는 비판과 의식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 미 군정체제 확립(새로 쓰는 한국현대사:5)

    ◎“일인활용 불가피”속 행정권 장악에 석달/서울 입성뒤 「북쪽 접수」 주력… 개성 첫 점령/북의 소군은 2개월 앞서 「도인민위」 설치/인천입항 미군 환영길 한국인 2명 일경에 피살 미군이 인천에 첫발을 디딘 1945년 9월8일은 미 군정 3년을 포함해 이후 반세기동안 유지돼 온 한미간 특수 역사관계의 출발점이었다.그러나 한국인과 미군의 첫 만남은 그 시대상황을 상징이라도 하듯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졌다.미군을 환영하러 부두로 몰린 한국인들이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두명이 숨지고 십여명이 부상한 것이다. 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근대 해항지여서 일찍부터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고 그 세도 강한 항구도시였다.반면 부두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이 활발히 움직이는등 반일세력도 만만찮았다.따라서 해방이 되자 인천시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일본경찰은 재향군인 9천명을 급하게 모아 특별경찰대를 조직,각 파출소에 배치하는등 경비를 강화했으며 한국인들도 이에 맞서 치안유지회(보안대)를 결성해 대치하는 분위기였다. 「미군이 9월8일 인천항으로 상륙한다」는 소문이 며칠전부터 떠돌자 시민들은 「해방군」을 맞는다는 기쁨에 들떴다.이에 조선총독부는 9월5일 담화를 통해 『미군은 민중환영등 의례적인 행사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이어 8일에는 인천경찰서가 의사·산파·우편배달부를 제외한 사람의 외출을 금지한다고 공시했다.그리고 『이것은 미군의 지시』라고 못박았다. 8일 아침이 되자 인천시내 곳곳에는 미군을 환영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무리를 형성했다.미군 함정이 부두에 도착한 하오2시쯤에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인천항쪽으로 나아갔다.인파가 현재의 인천우체국 자리를 지나 산업은행 앞에 이르자 일본 특별경찰대의 99식 소총이 불을 뿜었다.이 발포로 행렬에 앞장선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 권평근(당시 45세)과 보안대원 이석우(20세 가량)등 2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권평근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사는등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해방된 우리땅에서 독립운동가가 일본경찰에게 공공연하게 피살된,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이 사건에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사전정보부족과 한국에 대한 그릇된 시각,일본측 농간들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군은 진주에 앞서 한국주둔 일본군사령관 우에쓰키(상월양부)와 연락,그로부터 『무장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듣자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일본군의 치안유지권을 인정한다.이같은 미군의 입장은 권평근·이석우의 사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장례식이 끝난 뒤 유족들이 미군에 발포경찰관등을 고발,이에 대한 군사재판이 13일 열렸다.이 자리에서 일본인인 인천경찰서장등은 『미군 지시로 환영·외출을 금지했는데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고 법정은 이들의 행위를 「합법」이라고 판정했다.재심청구를 했지만 곧 기각됐다. 이 사건은 미국 신문에 즉시 보도돼 미국내에서도 비판여론이 크게 일었다.종군기자 리처드 E 라우터배크는 「뉴욕타임스」9월9일자 기사에서 『일본군이 환영군중에게 발포한 것은 미군사령부의 지시때문』이라고 공개했다.「뉴욕타임스」는 이어 11일자 사설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정책을 시행한 쓰레기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우리가 해방시킨 민중에게는 강경하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심각하게 제기했다. 한국점령 임무를 맡은 미 제24군단 가운데 8일 인천을 통해 맨 먼저 들어온 부대는 7사단이었다.7사단은 인천에 17보병연대를 남겨놓고 9일 아침 서울로 향했다.당시 미국신문들은 거리풍경을 『흰옷을 입고 이상스런 검정모자(갓)를 쓴 한국인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서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USA Army Welcome」이라고 쓴 환영아치도 가끔 눈에 띄었다』고 보도했다.한국인들은 대부분 순수한 마음에서 미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했던 것이다. 이날 하오4시6분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현 국립중앙박물관)제1회의실에서 38선이남 일본군의 공식 항복행사가 열렸다.일본측 대표인 아베 노부유키(아부신행)조선총독,우에쓰키 주둔군사령관등이 먼저 들어왔고 이어 하지중장,킨케이드중장(제7함대사령관)등 미군대표가 자리를 잡았다.하지중장 뒤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X자로 세워져 있었다. 다음날부터 미군은 38선이남의 영토와 행정조직을 장악하는데 본격적으로 나선다.서울에 본부를 둔 7사단은 우선 북쪽지역에 주력해 12일 개성을 점령한 다음 소련과 연락할 전신장치를 설치했다.이어 그리고 미군정은 각 도에 군정지사를 보내 행정권을 장악했다.지사 발령날짜를 보면 ▲경기도 10월2일 ▲강원도 11월26일 ▲충북 11월8일 ▲충남 10월9일 ▲경남 9월28일 ▲경북 11월3일 ▲전북 11월20일 ▲전남 10월26일등이다.초대 군정지사들은 영관급 장교가 대부분이고 경남지사인 찰스 해리스가 유일하게 준장이었다. 미군이 지방에 분산 배치된 초기에는 군정 수행에 어려움이 많았다.군단위까지 확보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고 특히 훈련된 행정요원은 턱없이 모자랐다.그런가 하면 현지실정을 몰라 한동안 일본인 관리를 활용해야 했으며,일부 지역에선 「조선인민공화국」이 임명한 관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그러나 각 도에 군정지사를 파견해 자리잡음으로써 미군정은 1945년 11월 말쯤 전국적인행정체제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반도 진격속도가 빨랐던 북쪽의 소련군은 군정체제를 이루는데도 앞섰다.8월9일 참전한 소련군은 일부지역에서 일본군의 저항을 받긴 했지만 8월 말까지는 38선이북 지역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끝냈다.점령군은 제25군,그 사령관은 IM 치스차코프대장이었다. 치스차코프는 평양에서도 조만식이 주도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와 「공산당 평남도위원회」를 합쳐 「평남 인민정치위원회」를 구성케 했다.이 위원회는 비록 조만식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실제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소군은 이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정치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을 엮은 인민위원회를 9월 말까지 각 도에 구성했다. 미군이 남쪽에서 직접통치의 형태를 갖췄다면 소군은 자치적으로 보이는 「인민위원회」구성을 통해 간접통치하는 교활한 방식을 택한 셈이다. ◎해방된 내땅인데… 일경에 맞서다 피살/유족 최초 증언… 「권평근의 인천참사」/미군 의뢰 따른 일 통제에 강력 저항/20∼30년대 노조운동 통해 항일투쟁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던 날 일본경찰의 흉탄에 희생된 권평근(1900∼45년)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그는 1919년 「3·1운동」부터 45년 9월 숨질 때까지 독립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아직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지 못했다.그에 관한 기록이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어 미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본사 취재팀은 일본측 기록인 ▲삼전방부의 저서 「조선 종전□ 기록」(암남당서점) ▲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인 「국외□어□□용응조선인명부」 ▲경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에서 31년 9월 발행한 「사상월보」9월호들을 검토했다. 또 ▲서울경찰청이 1993년 6월9일 국가보훈처에 회신한 「권평근에 대한 지문조회」결과 ▲국가보훈처 소장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기록 ▲조선일보 1931년 7월24일자,8월27일자,9월4일자 ▲동아일보 1931년 8월27일자,10월27일자 등 각종 자료와 가족으로부터 단독입수한 권평근의 미공개사진,증언들을 종합해 국내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권평근의일생을 복원했다. 권평근은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배재학당에 다니던 그는 「3·1운동」때 고향에서 시위대열의 선두에 섰다가 3년동안 충청도로 피신한다.이어 26∼27년에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해외 반일조선인 명부」에는 그를 『배일사상이 농후한 요주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권평근의 경력은 30년대에 빛난다.인천으로 이사해 노동조합에 투신한 그는 31년 7월 「일본인습격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된다.당시 만보산사건이 일어나자 국내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인사이에 충돌이 잦았다.그러나 권평근 등은 일본이 한·중 양국을 이간질시키려고 사건내용을 과장한 것이라며 중국인을 공격하는 군중의 분노를 일본인에게로 돌렸다.이 사건으로 그해 10월26일 경성지법 형사제1부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는다.당시 재판기록을 보면 권평근은 이해 5월1일,6월10일,7월5일 등 세차례에 걸쳐 반일시위를 벌이려고 구체적인 준비를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복역을 마친 권평근은 노동조합을 통해 더욱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벌였고 해방당시에는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이었다.총격 현장에서도 그는 일본경찰에게 『해방된 우리땅에서 웬 참견이냐.쏠테면 쏘라』며 가슴을 내밀었다고 한다.그의 장례식은 사회단체장(일부 기록은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딸 명숙씨(55·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742)는 아버지를 『6척 장신에 힘이 장사였다』고 기억했다.또 그리 어렵지 않은 살림인데도 자신은 하루 두끼만을 먹으며 어려운 이웃에게는 식량과 옷을 서슴없이 나눠줬다고 회상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김성호 〃 ▲김경운 〃
  • 서울대/인문계 36점 하락/자연계 7점 상승/합격자 평균점

    ◎본고사가 당락 좌우/과학·외국어고 강세 여전/여학생 23%로 늘고 재수생 28%로 줄어 서울대 입시에서도 94학년도와 마찬가지로 수험생들의 내신 및 수능성적은 비슷한 수준임에도 최고득점자와 최저득점자의 점수차가 1천점 만점에 인문계 1백65점,자연계 2백60점까지 벌어져 대학별고사가 당락을 좌우한 것으로 분석됐다. 합격자 평균점수는 수학I·외국어선택이 어렵게 출제된 인문계가 지난해보다 36점 떨어진 8백9점인 반면 자연계는 7백97점으로 7점 올랐다. 27일 발표된 서울대 95학년도 신입생 합격자 5천45명의 사정 결과 학과별 합격선은 ▲법학 8백10점 ▲경제·국제경제학군 8백5 ▲정치·영문 7백95 ▲의예 8백17 ▲치의예·전기공학군 8백10 ▲물리·컴퓨터공학 8백5점 등으로 비공식 분석됐다. 인문계의 경우 평균점수는 떨어졌어도 합격자 최저점수는 지난해와 같은 7백40점대로 밝혀져 본고사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됐다. 점수분포 폭은 인문계는 35점,자연계는 70점이 줄어 변별력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균합격점보다 낮은 7백35∼7백85점대에 불합격자가 대거 몰려있어 중하위권 학과에서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지난해에 이어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수고가 강세를 보였고 이는 올해부터 동일계열에 지원할 경우 비교내신제를 적용,내신성적상 불이익이 사라진 때문이다. 51명 이상의 합격자를 낸 고교는 3개 외국어고를 포함,모두 8개교이며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한 명덕외국어고도 50명의 합격자를 냈다.그러나 강남 8학군 고교는 한 학교도 50명 이상의 합격자를 내지 못했다. 서울대에 1명 이상의 합격자를 배출한 학교는 지난해 5백49개교에서 5백63개교로 늘어나 일부학교 집중현상이 다소 둔화됐으며 이는 대학별고사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합격생 가운데 재수생의 비율은 27.97%로 지난해(31.58%)에 이어 6년째 떨어졌고 여학생은 1천1백45명(22.70%)으로 다소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42.8%,광주 7.0%,부산 6.4%,대구·전북 6.1%등의 순으로 합격생의 서울집중현상은 여전했다. 한편 수능시험에서 전국수석을 차지한 정성택(19·부산과학고)군이 총점 9백15.95점으로 전기·전자·제어공학군에 합격했으며 인문계에서는 사회대 경제·국제경제학과군을 지원한 류상윤(18·광주과학고)군이 8백96.95점을 받아 수석합격했다. ◎뇌성마비 딛고 서울대 합격/산림자원학과 최은형군 “홀로서기 만세”/장애인 취급 싫어 정상인과 경쟁/결석 한번도 안해… 산림학자가 꿈 『몸이나 말이 부자유스럽다고 해서 희망을 버리지 말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올해 서울대 산림자원학과에 합격한 최은형(18·부천고)군은 약간 더듬거리는 말투로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는 합격소감을 밝히면서 장애때문에 고생하는 후배수험생들에 대한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최군은 출생때 난산으로 뇌에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뇌성마비에 걸렸으며 젖을 제대로 빨지못해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었다. 두돌이 지나서야 걸음마를 시작했고 네살때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을 더듬는등 발육도 늦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면 늘 눈을 감아 가족과함께 찍은 사진도 별로 없을 정도로 시력도 좋지않다. 최군은 장애인으로 취급받기 싫어 국민학교때부터 특수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정상적인 학생들과 다녔다. 결석은 한번도 하지 않았으며 성적도 중학교때까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교에서는 전교 10위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군은 운동과 노래를 제대로 하지못해 체육·음악시간은 무척 괴로웠다. 특히 국민학교 1학년 첫 운동회때 몸이 불편해 우두커니 응원석에 앉아있다가 점심만 먹고 돌아와야 했을 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공부는 상오 6시30분쯤 등교,하오11시까지 학교에서 했으며 특히 논술에 대비,신문사설을 매일 1시간씩 읽고 논리력과 표현력을 길렀다. 내신 4등급·수능성적 1백53점으로 정상인들과 겨뤄 떳떳이 합격한 최군은 『전공과목을 열심히 연구해 휼륭한 산림관계 학자가 되는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입시준비하느라 읽지 못했던 소설책과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다』는 최군은 주류도매상을 하는 최연섭(48)씨와장현기(46)씨의 2남중 장남이다.
  • 민자당대표의 사퇴(사설)

    김종필민자당대표가 마침내 당대표위원 자리를 내놨다.한국 정치 전반에 대한 그의 공과는 차후 그의 행보와 크게 관련될 수밖에 없다.우리는 그의 사퇴가 등떼밀려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정치의 선진화와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는 세대교체를 위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이뤄진 행동으로 역사의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정치인에게는 진퇴의 가름이 가장 큰 덕목이다.물러날 때를 잘 선택하는 것이 공인의 자세란 관점에서 그의 자퇴를 해석하고자 한다. 김씨(JP)의 대표직 사퇴는 차세대를 위한 당의 세계화와 선진화 추구 과정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정치발전을 위한 그의 공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의 역할은 여기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의 퇴진은 3당합당체제의 불안정한 행보의 종지부이며 세대교체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사퇴에 앞서 최근 그가 보여온 끝없는 말의 수사와 당총재를 겨냥한 흠집내기는 당대표로 머물 명분을 빼앗았다.당무집행권이 사실상 정지된 당사자가민자당의 지구당개편대회에 참석해 대표축사를 강행하는 행위도 보기에 딱한 것이었다.김대표로 인해 야기된 당의 혼돈은 그가 선택한 대표직 사퇴와 함께 막을 내려야 한다. 민자당의 전당대회가 곧 열리게 되면 가시화되겠지만 대표직을 내놓은 김씨는 평당원으로 남아 봉사한다든가 아니면 당을 떠나든가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앞으로의 진로선택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지만 고희가 다된 정치지도자의 풍모를 흐트러뜨려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을 특히 당부하고자 한다. 우리는 최근 그가 공언한대로 몇명의 추종자와 불만세력을 규합해 신당을 만드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군소정당으로 전락해 정국혼란만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우리는 원내활동이 미미한 군소정당이 국민의 관심밖에 동떨어져 있는 예를 수없이 보아 왔다. 또 동정론과 지역감정을 부추겨 지역할거주의를 획책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된다.충청권 정서가 김씨편이라 생각하지만 주민감정은 언제나 유동적이어서 지역감정을 부추길 경우의 부담과 책망도 염두에 두어야 할것이다. 지금 국민 대부분은 기성원로들의 지도세력이 아닌 차세대 중심의 정치권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끝없는 혼란으로 나라의 발전이 오히려 저해되는 현존의 정치행태는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차세대 중심의 세대교체는 시대의 섭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대표직을 떠나는 김씨는 새로운 혼란과 혼선의 주인공이 아니라 당에 남아 당의 원로로서,그리고 정치원로로서 국가 발전에 공헌하는 역할을 자임해야 함이 마땅하다.JP는 여론과 시대정신을 잘 살펴야 할것이다.
  • 신4당체제/다음달엔 윤곽잡힐듯/6월 지방선거 앞선 신당·분당구도는

    ◎「포용정치」 내세워 「내각제」 추진/JP/「반민자 비민주」틈 비집기 작전/KT 정국의 흐름이 정계개편쪽으로 치닫고 있다.당위성의 차원을 떠나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개편의 초점은 민자당의 김종필대표와 민주당의 이기택대표에게 맞춰진다.대표직 사퇴를 통보받은 김대표는 며칠전부터 탈당에 이은 신당창당 의사를 밝혔다.이대표도 17일 민주당을 탈당할 의사를 내비쳤다.두사람은 이미 결심을 굳혔고 이제 시기선택의 문제만 남았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이렇게 되면 정국의 구도는 「신4당체제」로 나갈 수 밖에 없다. 개편의 계기는 민자·민주당 할 것 없이 「세대교체론」이다.여권 핵심부가 김대표를 퇴진시키려는 명분은 「세계화」였다.세계화,즉 차세대를 위한 정치를 위해서는 김대표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김대표의 처지와는 반대로 민주당의 이대표도 「세대교체」를 주장했다.김대중아시아·태평양재단이사장의 『실질적인 정계은퇴』를 요구했다.이대표는 차기 대통령선거에 야권후보로 나서겠다는 뜻을 품고있다. 두사람이 언제부터 신당창당을 추진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그러나 신당 간판으로 오는 6월말 지방자치선거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다음달까지는 결단을 내릴 전망이다. 지금 상황에서 지방자치선거는 정계개편의 목표일 수도 있다.지금과 같은 양당체제로는 엄청난 공급초과 현상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김대표와 이대표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거친 노련한 정치의 연금술사들이다.신당창당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으로 겪었다.그러면서도 신당창당을 외치는 것은 지방자치선거의 방대함에 비추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력확충의 측면에서 두사람의 생각은 다르다.김대표는 자신의 출신지역인 충청권의 지역정서에다 보수계층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박정희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던 경북지역의 지지도 바라고 있다.여기에다 「5·6공」출신 소외그룹등 여권의 「불만세력」들을 흡수하겠다는 생각이다.「포용의 정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내각제 개헌을 주요이슈로 내세우겠다는 뜻도 내비치고 있다. 이대표는 「반민자당 비민주당」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이를 위해 「3김 시대 청산」의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특정지역의 지지에 근거한 「3김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신당창당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다수다.김대표나 이대표나 실질적인 지지기반이 미약하기 때문이다.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당창당을 추진하겠다는 것 자체를 「화풀이성」으로 치부하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여권 핵심부는 동조 탈당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할 태세다.이른바 「고사작전」이다. 이대표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현재로선 이부영의원이 이끄는 개혁모임 인사들 가운데 일부가 가담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파괴력」 측면에서는 회의적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신당이 성공할 지를 떠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계개편의 방향이 정치의 퇴행을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정치발전은 인적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특히 정당은 소수집단의 이해에서 벗어나야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판문점 세관 올안 설치/관세청,남북직교역 대비

    ◎세관마다 북물품 통관반/수출입 간소화… 직통관제 확대 남북한 경제교류 활성화에 대비,빠르면 연내 판문점에 세관이 신설되며 전국 세관에는 북한산 물품의 통관 전담반이 설치된다.이환균 관세청장은 14일 전국 세관장 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관세행정 개선방향」을 확정했다. 육로를 통한 남북 직교역 물품의 처리를 위해 경기도 의정부출장소를 서울 북부세관으로 승격하고 물량이 더 늘면 판문점에 세관을 신설한다.서울세관과 인천 부산을 포함한 10곳의 항만세관 등 11곳에는 이달 안에 북한산 물품통관 전담반을 가동하고 나머지 19개 세관에도 연내 전담반을 설치한다.인원은 4∼5명이며 11곳의 출장소에도 1명의 전담자를 둔다. 대신 남북한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총기류나 불온성 물품의 국내 반입은 막는다.비과세 혜택을 보기 위해 북한산으로의 위장하는 경우가 많은 호두와 미꾸라지 등은 자동승인 품목에서 제한승인 품목으로 바꿔 위장 반입을 차단한다.제3국을 경유하는 물품은 해당국 주재 관세관을 통해 북한 반출 여부를 확인한다. 수출입 절차도 대폭 간소화,수입물품의 검사비율은 전체의 30%에서 10%로,수출물품의 검사비율은 5%에서 3%로 줄인다.배로 들여오는 물품을 하역과 동시에 부두에서 즉시 내주는 「부두 직통관제」 대상도 제조업체의 생산재에서 제조업체의 모든 물품으로 넓힌다. 담보없이 통관시키고 관세를 나중에 받는 「선통관 후납부제」도 활성화해 제조업체가 수입하는 생산재뿐 아니라 세금체납 사실이 없는 비제조업체의 생산재까지 허용한다. 세관원이 여행객이나 수입업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으면 준 사람과 함께 고발하고 상급자에게도 연대 책임을 물린다.
  • 베트남근로자 12명과 오순도순/“우리회사는 국제가족”

    ◎서울 성수동 「아주양말」 훈훈한 인간애 만세/“외국인근로자 학대 믿기지 않아요”/“맵고 짠것 못먹는다” 별도식단 배려/함께 기숙사 생활… 휴일엔 나들이도 서울 성동구 성수2가에 있는 아주양말(사장 이치준·53)은 종업원 1백30명의 평범한 중소업체. 종업원 중에는 지난해 8월 입사한 베트남 연수생 12명(남자 2명·여자 10명)도 끼어 있으나 마치 한 가족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외국인 연수생을 고용하고 있는 일부 중소기업이나 이들을 소개한 인력송출 관리업체들이 임금갈취·감금폭행 등 비인간적인 학대행위를 자행,사회적인 물의를 빚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회사는 가장 모범적인 「국제적 한가족업체」이다. 연수생들을 맞이한 이후 회사측은 이들에게 갖은 정성을 기울였다. 연수생들을 모두 회사안에 있는 50평 규모의 3층 기숙사에서 생활하도록 했다.연수생들이 짜고 매운 음식을 싫어한다는 점을 고려,이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내장과 닭고기 튀김 등 별도의 식단까지 짰다.이를 위해 일주일에 두번씩 마장동 축협시장을 찾아 시장을 따로 볼 정도다. 근무가 없는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이들을 데리고 용인자연농원·덕수궁·남산등 가볼만한 곳을 구경시키며 한국을 알리고 이해시켜 이곳에서의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있다. 『처음엔 어색하고 두려웠어요.그러나 지금은 동료들이 친형제처럼 대해줘 갈수록 재미나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은 웃음으로 대신하고 있어요』 한국에 온지 5개월밖에 안되는 밴듀 강양(20·가공부)은 그동안 열심히 배웠지만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보람찬 생활을 설명했다. 아직까지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불편한 게 많은 이들이지만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까지 이것 저것 묻고 해결해주는 회사의 배려로 신명나게 일하고 있다. 따스한 인간애는 만국의 공통어일까.한달에 겨우 20만원(2백30달러)을 받는 박봉이지만 어느 누구 하나 불평을 하지 않는다. 일요일에도 야외 나들이가 싫다며 일하게 해달라고 회사에 조르는 일이 허다하다. 트렌티 턴빈양(22·하노이출신)은 『최근 야근수당으로 받은 돈을 모아 부모님께 한국의 자랑인 인삼을 보내드렸다』고 말했다. 입국할 때만 해도 낯설고 두려워 한국땅에서 어떻게 지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제 시간이 나면 동료들이 가르쳐 준 「아리랑」「사랑해 당신을」등 우리 유행가를 자연스레 부른다. 여유가 생기면 노래방이라는 한국의 「명소」도 한번 가볼 계획이라고 했다. 기숙사 사감으로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김팔란씨(50·여)는 『비록 돈을 벌기위해 온 외국인들이지만 같은 노동자로 희로애락을 나누고 있다』고 웃었다. 이 회사 김병철(51)상무이사는 『양심적인 기업경영이 뿌리내릴 때 우리가 지향하는 기업의 세계화도 이뤄 질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민족적 항일투쟁이 독립 이끌어냈다/구한말서 해방까지 광복운동사

    ◎상해임정 19년 출범… 독립운동 주도/독립군부대 1920년 1∼3월 국내진공 24회/윤봉길의사등 의거 잇따라 일본인 간담을 서늘케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그래서 암울했던 질곡의 시대는 더욱 길고 지루했다.그 칠흑 같은 어둠의 세월에서 맞은 19 45 년8월 15일 광복은 민족의 새로운 탄생이고 부활이었다.실질적으로 국권을 빼앗긴 19 05 년을사조약 부터 기산하면 40년만의 일이다.또 19 10년 8월 29일 국치일로 시작해서는 정확히 34년11개월 보름만에 이룩한 민족의 해방이었다.그리고 나서 올해로 광복 50주년.격동의 시대로 흔히 회자되는 그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에게 지금 광복의 의미가 희석되어 있다.그리하여 더러는 민족해방을 연합군 승리가 안겨다 준 선물 정도로 여긴다.이는 당치 않은 판단이다.광복은 일제침략에 저항한 민족독립운동이 이끌어낸 자존의 역사인 것이다. 광복은 일제침략에 저항한 민족독립운동이 이끌어 낸 자존의 역사인 것이다. 광복을 성취하기까지의 반일독립운동은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이른바 국치일 때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이어진 민족주의 운동이다.1919년의 3·1운동은 민족독립운동의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3·1운동은 「독립선언서」가 보여주는 것 처럼 목적이 현대국가 건설에 있다.그리고 이 운동에 2백만명의 민중이 직접 뛰어들어 일본으로부터 독립,국민국가를 세우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3·1운동은 일본의 무력에 의해 탄압되어 현대적 국민국가를 마련할 수 있는 터전이 사라지고 말았다.이에 따라 독립정신의 실체적 형태를 갖춘 여러 임시정부가 주로 해외에서 태어났다.그 대표적 임시정부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정부(3월17일)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4월10일)다.거기에 국내 한성임시정부(4월23일)가 하나 더 늘어났다.이 임시정부들은 민족지도자들의 협의를 거쳐 1919년9월 상하이에서 하나의 정부로 출범하기에 이른다. 임시정부는 3·1운동에 의해 집약된 민족의지가 깔린 주권국민의 대표기관이기도 했다.상하이 시기(1919∼1932년)에는 외교활동과 독립전쟁을 지도하는데 주력해왔다. 주권국민의 대표기관으로 민주공화제를 임시헌장에 도입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의지는 강했다. 임시정부의 수립은 반일민족독립을 통해 장차 조국광복이 오리라는 확신을 어느 정도 심어주었다.그리고 중국을 비롯,만주·노령지역을 향한 망명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독립은 동 단체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독립군의 창설과 재편성이 이루어져 북간도와 서간도에 만도 34개부대가 포진했다.노령지역에도 이와 맞먹는 독립군 부대가 생겨났다.북간도의 대한독립군과 복로군정서,군무도독부,서간도의 배산무사단과 태극단 등이 그것이다. 그 독립운동의 힘은 때로 국내로 역류되었다.일본군 쪽의 자료에 의하면 1920년1∼3월까지 3개월 동안 독립군부대의 국내진공은 24차례에 이르고 있다. 항일독립전쟁 중 가장 빛나는 전투는 1920년10월 김좌진·나중소가 지휘했던 일군과의 청산리싸움이다.청산리대첩으로 불리는 이 싸움에는 북로군정서(북로군정서)독립군 1천6백명이 나서 6일동안 10여차례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 독립군부대들은전략상 러시아영토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이동 중에 밀산에서 독립군부대들을 통합,3천5백명 병력의 대한독립군단을 탄생시켰다.서일을 비롯,지청천·홍범도 등의 독립군 중진들이 모두 망라되었다.이들은 소비에트 적군의 안내로 자유시에 집결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독립군은 1921년6월22일 장갑차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적군의 공격을 받는다.적군의 배신으로 얼룩진 이 참사가 흑해사변으로도 불리는 자유시사건이다. 이렇듯 나라를 잃고 유랑한 항일독립군의 전열이 한때 일그러지지만,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은 계속되었다.그 하나가 1932년4월 윤봉길의거인데,이 사건은 침체해 있던 임시정부를 회생시키는데 기여했다. 광복군이 창설된 것은 1940년9월17일.김구주석이 이끄는 임시정부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침략군에 쫓겨 상하이로부터 근거지를 7번째 옮겨 마지막 기착한 중칭시기(중경시기·1940∼1945년)의 일이었다.때마침 일어난 태평양전쟁에 맞추어 대일선전포고를 한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중국·인도·버마전선에 참전시켰다.미군의 특수부대 OSS와 합동작전을 펴기도 했던 광복군은 국내에 투입할 계획이었으나,일본이 서둘러 항복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민족해방의 광복을 성취한 데는 중국대륙에서의 임시정부나 독립군의 항일저항이 크게 뒷받침되었다. 광복은 결코 타율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민족독립운동에 의한 광복의 빛이 지난 시대에 오랫동안 가리워졌지만,오늘의 민주주의 헌법은 국가의 정통성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찾았다.그래서 광복50년 이후의 현대사는 독립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한 가운데 우뚝한 자존의 역사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독립운동 연표 ▲1910년8월29일:한일합병 조약문 발표. ▲1911년12월19일:이상설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근업회를,서일등은 북간도에 독립운동단체 중광단조직. ▲1913년5월13일:안창호등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창립. ▲1919년2월8일:동경유학생 6백여명이 동경 YMCA에서 독립선언서 발표. ▲1919년3월1일:민족대표 33인(4인 불참)이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 낭독.탑골공원을 비롯,전국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됨.▲1919년4월10일:상해에서 제1회 임시의정원을 개원하고 의정원법 통과 및 내각을 조직함으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920년10월20일:북로군정서 김좌진·이범석부대가 청산리에서 일군과 싸워 대승. ▲1921년1월:만주 독립군부대들이 통합,서일을 총재로 대한독립군단조직. ▲1929년11월3일: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 ▲1932년4월29일: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이 상해 홍구(강구)공원에서 열린 상해사변 축하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사령관(백천의칙)등 10명을 사상케 함. ▲1945년7월:광복군이 이범석 휘하의 국내정진군총지휘부 설치,국내진입작전 결정. ▲1945년8월15일:일제의 강점으로부터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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