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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종이 땡땡땡」 출간차 귀국/김메리 할머니 특별 인터뷰

    ◎“요즘 부모들 「가르침없는 자유」 주는게 문제”/「뭐든지 배워라」 어머님 말씀 내인생의 좌표/우리교과서 만들며 작곡… 50년 애창 큰 보람/20년만 젊어도 그림 배울텐데… 서울신문 초대에 감사드려요 □대담=임영숙 문화부장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 국민에게 애국가 다음으로 친근한 노래 「학교종」의 작사·작곡가 김메리할머니(92·미국 뉴욕거주).격동의 한 세기를 현대여성도 엄두를 못낼 도전과 모험으로 치열하게 살아 온 「영원한 젊은이」이기도 하다.자서전 「학교종이 땡땡땡」의 출판기념회와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김할머니를 2일 임영숙 문화부장이 만나 보았다.〈편집자 주〉 ­자서전을 단숨에 읽었습니다.재미있고 감동적이더군요. 『고마워요.할 이야기가 많아서 「속 학교종이 땡땡땡」을 써야 할까봐요.처음엔 영어로도 쓰려고 했는데….우리 딸 귀인(조귀인 미국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국장보)이가 「학교종이 땡땡땡」을 영어로 다시 쓰기로 했어요.미국에서도 책이 나올거예요』 숙소인 남산의 힐튼호텔을 찾은 이날 상오,김할머니는 진분홍 꽃무늬가 돋보이는 하늘색 옷에 같은색 스카프,브로치를 단 흰 털실 베레모 차림으로 햇볕 가득한 방에서 일행을 맞이했다.뉴욕에서 서울까지 13시간의 비행에도 아랑곳없이 꼿꼿한 자세에 웃음을 잃지 않고 80여년전의 일까지 하나하나 기억해 얘기하는 모습은 거의 「소녀」에 가깝다.아직도 마음은 25∼29세라고 말했다. ○남산 신사참배 “생생” 『일제때 저 남산언덕배기에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했어요.한달에 두번씩 신촌에서 이화학당 학생들 20여명이 함께 걸어와 저기서 절 한번하고 또 신촌까지 걸어갔습니다.지금 남산을 보니 그때 가슴아팠던 것이 사라지는군요.아주 시원해요』 ­한국이 많이 변했지요. 『나쁜쪽으로 보다 좋은쪽으로 변화가 더 많아요.이제 남은 것은 북한이 문제인데 통일도 곧 될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불리는 「학교종」의 가사가 원래와 달라졌다고 어제 공항에서 말씀하셨는데… 『아동문학가 윤석중씨가 나중에 바꾸었어요.문법상 문제가 있다면서.그래서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 「내가 한국에만 있었어도 가만두지 않았다」고 항의를 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죠.그러나 지금은 좋아졌어요.그리고 올해부터 미국 뉴욕주 국민학교 음악책에 「학교종」이 실리는데 종소리가 「딩딩딩(Ding)」으로 번역돼 좀 우스워요.』 ­해방직후 이화여전 음악과장 시절 현제명 김성태씨등과 음악교과서를 만들면서 20여곡을 작곡하셨다는데 「학교종」말고 다른 작품은 남아있지 않습니까. 『당시 교과서가 있으면 찾을 수 있을텐데 안타까워요.1950년 미국에서 내 손으로 직접 써서 출판한 「한국민요집」은 아직도 미시간의 도서관에 남아 있는데…』 「학교종」이 지난 95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교사용 지도자료에만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매우 섭섭해 했다. ○김규식씨가 사촌오빠 ­「학교종이 땡땡땡」을 읽다 보면 나이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새로운 삶을 사는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구한말 명문가의 규수로서 결혼하기 싫다고 만주로 도망가고,이화여전을 졸업한 뒤 장학생으로 미국유학을 떠나 전공인 영문학대신 음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귀국후 이화여전 음악과장이 됐다가 학칙을 어긴 고위층 자녀 학생을 유급시킨 일로 말썽이 나자 음악과장 자리를 박차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 화학과 미생물학 석사가 돼 49세부터 미국 병원실험실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고,정년퇴직후 70세가 넘은 나이에 평화봉사단이 되어 아프리카로 떠나고,80세에 서예를 새로 배워 전시회를 열고….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살면서 어머니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어머니는 늘 나에게 무엇이든 배우라 하셨어요.도둑질 빼고 무엇이든지요.항상 남을 도우라는 말씀도 하셨어요.또 그 시대의 여성치고는 개방적이어서 내가 하려는 일이 옳으면 막지 않으셨어요.소학교때 선생님의 얘기도 가슴 속에 살아 있어요.한 사람이 나뭇가지에 올라갔는데 그 나뭇가지가 약해서 부러지러 하자 빨리 그 옆의 든든한 가지로 옮겨 살았다는 거예요.우리의 삶도 「좀 더 나은길」을 찾아 부단히 움직야 합니다』 ­지금도 새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하고 싶은 일을 거의 다 했는데 한가지만 아직 못했어요.그림 그리는 일이예요.79세때 뉴욕대학 평생교육 과정에 들어가 3년간 소설 쓰는법도 배웠어요』 ○공부하고 싶어 만주로 ­어린시절 이름은 지금과 달랐지요. 『셋째딸이라 해서 삼식이었지요.그러나 기독교신자인 어머니가 메리(Mary)라고 부르셨습니다.아버지(김익승)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일본유학을 한 뒤 일본어,영어에 능통해 외무대신까지 지냈고 김규식박사가 사촌오빠됩니다.보통학교를 나온 뒤 배화학교를 다녔으나 졸업반이던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 졸업은 못했지요.그러나 그때 교사들이 잡혀가 보통학교 졸업반 학생이 임시교사가 됐어요.나도 15세 되던 해 논산의 보통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는데 17,18세나 되는 남자학생들이 가득찬 학교에 도착하니 「아기선생 왔다」며 놀려대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까지 살아 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만주에 3년간 있을때 였어요.논산에서 6개월만에 올라 오니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하시더군요.당시 궁중전의였던 다섯째 삼촌이 고종황제가 독살됐다는 소문을 역이용한 일본인들때문에 만주로 떠나게 돼 영어사전 하나만 달랑 챙겨들고 따라갔어요.삼촌의 병원 일을 도우면서 영어사전을 통째 외우고 교회에서 풍금반주를 하기도 했는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어요』 ○74세에 아프리카 봉사 ­만주에서 돌아 와 이화학당에 입학하셨을 때의 동급생이나 후배들 얘기 좀 해주시죠. 『이화학당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동기중 이기붕씨의 부인이 된 박마리아가 있어요.1,2등을 다투는 라이벌이었죠.하지만 이씨와의 결혼은 내 중매로 이루어졌어요.게다가 한 학년 밑에는 모윤숙 백낙준씨의 부인이 된 최이권 등이 있었는데 이들도 여간 극성이 아니었어요.학생회장도 선배인 우리들을 제치고 서로 맡겠다고 난리였어요』 ­미국으로 다시 떠나서 뒤늦게 전공을 바꾸신 이유는….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서 였어요.70세까지 병원 실험실에서 일했어요.75년 남편(조오흥)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어 벙원에서도 정년퇴임 하고 나자 이제는 또 무얼할까 하다가 74세가 되던 1978년 미국 평화봉사단에 지원,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떠났어요.2년동안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80년 4월 라이베리아에 쿠데타가 일어나 미국으로 돌아왔지요』 ­대단하십니다.건강유지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음식과 운동이예요.매일 동네를 3블록씩 산보하고 비가 오는 날은 집안에서 자전거등 운동기구로 운동을 해요.아침은 과일주스나 과일,보리죽과 볶은 가루에 우유를 타서 먹든지 달걀반숙을 먹어요.점심은 좀 양이 많은데 7첩반상으로 차려먹죠.맵지않게 만든 김치와 깍두기,생선,나물무침,전을 즐기지요.돼지고기,닭고기는 안 먹고 일주일에 세번 생선국,두번 야채국을 먹어요.외식은 안해요.또 뇌세포 생성을 돕기 위해 매일 TV 교양프로의 토론을 보며 받아쓰기도 하지요.아직 돋보기도 안쓰고 바느질도 직접 해요.지난 89년 뇌일혈로 한때 쓰러졌던 적이 있어요.그때도 기억력,시력을 그대로 유지해 의사가 「신비하다」고 말했어요.지난해 기억력테스트를 해보니 25∼29세 연령의 기억력으로 나오더군요.「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우리 옛말의 그 정신으로 삽니다』 ○주일학교 교사 맹활약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지금은 주일학교에서 한국인 어린이들의 교사로 일해요.「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도와주면 좋은 인물됩니다」라는 노래를 직접 만들어 우리말,영어로 가르쳐주기도 하죠.월요일이면 하루종일 드러누워야 할 정도로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가르치는 동안에는 생기가 나요.20년만 젊다면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텐데…』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노래를 배우고 자라는 우리 어린이들과 부모님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요즘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린이들이 가짜 동물,식물만 보면서 놀잖아요.그게 못마땅해요.자연에서 진짜 동물,식물을 보면서 놀아야 배우는 것도 많아요.그리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자유는 무제한으로 주지만 지도를 안하는 것 같아요.지도하면서 자유를 주어야합니다』 ­서울에 얼마나 머무실겁니까 『2∼3주일 있을 생각이예요.떠나기전에 서울신문을 방문하겠습니다.서울신문에서초대 해 줘서 고마워요』〈정리=서정아 기자〉
  • 통일·외교정책 역점방향(21세기 여는 15대국회:9)

    ◎“북체제 연착륙 유도후 통일 바림직”/인적·물적교류확대… 신뢰회복 급선무/4자회담 성사시켜 새 평화체제 구축 21세기를 여는 연대기적 의미를 지닌 15대 국회는 통일·외교사적으로 볼때도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분단 반세기를 마감하고 통일한국의 초석을 다져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이번에 의정단상에 서게 되는 선량 가운데 통일·외교분야의 전문가들도 한결 같이 이를 강조한다. 이들 통일 및 외교통 의원당선자들은 새 국회가 해야 할 주요 과제로 크게 두가지를 제시했다.그 하나가 정부가 통일정책 방향을 올바르게 정립토록 견제·감독하는 일이다.누적된 경제난과 김일성사후 정치·사회적 불안정으로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북한체제를 상대로 하는 정책이기에 그 필요성은 더 커진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국제적 외교역량 강화다.탈냉전 이후 한반도 주변 안보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면서 경제력과 삶의 질등 모든 영역에서 선진국 대열에 서게 하는 데 국론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통일정책 정립시급 통일·외교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의원당선자 절대 다수가 이같은 총론에는 공감을 표시했다.서울신문이 26∼27일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15대 국회가 지향해야 할 통일·외교정책 방향」이라는 설문조사를 통해서였다.대다수 응답자가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한 평화통일,주변 4강등과의 공조체제로 안보태세 강화,우리의 국력 신장에 걸맞는 국제사회에의 기여 확대 등 거시적 통일·외교 정책방향에는 일치된 견해를 나타냈다. 특히 절대 다수는 갑작스러운 흡수통일보다는 북한체제의 연착륙(소프트 랜딩)을 유도해야 한다는 견해였다.요컨대 접촉을 통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평화통일로 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각론적인 방법론상에서는 성향에 따라 약간씩의 편차를 드러냈다.이를 테면 민자당 정책조정실장을 지낸 신한국당의 백남치 의원(서울 노원갑)은 『통일기반이 마련되기 위해선 긴장완화와 신뢰회복이 선행되어야 하고,이를 위해서 단절된 당국간 대화가 우선 이어져야 한다』는 원칙론을 피력했다.남북고위급회담대표를 지낸 자민련의 이동복당선자(전국구)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당국간 신뢰회복과 대화채널 복구』를 꼽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통일원장관출신의 이세기 의원(신한국당·서울 성동갑)등 다수 당선자는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경협과 이산가족교류등 인적·물적 교류의 확대가 가장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그 이유는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신한국당의 손학규 의원·광명을·전서강대교수)는 말로 요약된다. 이부영 의원(민주당·서울 강동갑·국회통일외무위원)도 『남북간 또는 서방과의 교류를 통해서 북한체제를 서서히 개방시키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한화갑(국민회의·목포신안을·국회통일외무위원)·김부동(자민련·대구동갑·육사교장)·강창희 의원(〃·대전중·전육대교수)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반면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수당선자(신한국당·춘천갑)는 『주변 강대국을 통한 대북 설득노력 또는 우리에게 유리한 국제적 환경조성이 더 긴요하다』고지적했다.주중대사였던 황병태당선자(신한국당·문경예천)는 『북한은 식량위기등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한 쉽게 개방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식량지급을 위한 지원방식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중심역할을 대북 정책 우선 순위의 판단기준이 되는 북한체제의 존속여부에 대해서는 견해차의 진폭이 컸다.『붕괴는 시간문제이나 언제·어떤 방식으로 붕괴할지는 변수가 너무 많아 알 수 없다』(국민회의 곡성구례 양성철당선자·경희대교수)는 언급에서 보듯 북한체제의 장기적 전도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주류였으나,단기전망에 대해선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이세기 의원은 빠르면 2∼3년 이내에 북한체제가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그는 『군부의 불만과 개혁을 원하는 태크노크라트의 대립등 심각한 내부갈등 표출과 동시에 일부 불만세력의 집단행동 가능성』등을 근거로 삼았다. 신한국당 한승수·허대범(진해·전 해군교육사령관)당선자는 『김정일의 북한체제가 금세기내에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한당선자는 『김정일과 북한지도부는 한배를 타고 있다』며 이들의 공멸 가능성까지 점쳤다. 이에 비해 손학규·김부동·강창희 의원등과 이부영·이동복당선자등은 『김정일이 실각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체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 연명이 가능하다』고 답했다.남북고위급회담대표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수차례 남북회담에 참석했던 이동복당선자는 공산체제의 붕괴과정을 ▲정권 ▲체제 ▲국가 등 3단계로 구분한뒤 『민중의 참여가 있어야 가능한 북한의 체제붕괴는 2000년대에 가서야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병태당선자는 『북한이 워낙 어려운 여건에서 독재체제를 다져 왔으므로 생각보다는 오래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한화갑 의원은 북한체제가 현재의 위기상황만 극복하면 상당기간 존속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그는 ▲수십년간 구축된 북한체제의 통치기반과 ▲북한주민의 복종성을 그 근거로 들었다. 15대 임기중에 줄곧 계속될 대북 경수로지원사업에 대해서도 한국의 중심적 역할에 대해선 한 목소리를 냈다.반면 재정지원 분담비율에는 편차가 컸다. 손학규 의원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집행이사국인 한·미·일 3국이 균등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김부동의원과 한승수당선자는 이보다 한발 더나아가 50%와 3분의 2선을 떠안아야 한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한반도 새평화체제 구축방안 마련을 위해서는 한·미양국이 북한에 공동제의한 4자회담이 성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대세였다.그러나 상당수 대북 전문가급 선량은 북한이 우리측의 제의에 대해 변칙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에 대한 보완대책을 주문했다. 손학규·김부동·강창희 의원 등은 4자회담의 성사여부와는 별도로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OECD가입 투시 이와 달리 황병태당선자는 『4자회담은 결과적으로 남북당사자 해결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폈다.한승수·이부영당선자등도 우선 4자회담 성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쪽이었다. 다만 양성철당선자는 『4자회담 그 자체보다는 거기에서논의될 의제가 중요하다』면서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문제에 미국만이 아닌 한국측과도 진지하게 논의할 자세가 돼있는 지 미심쩍다』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국제경영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에도 찬성론이 우세했다.황병태당선자는 『세계무대에서 책임있는 국가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가입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설파했다.한승수당선자와 한화갑 의원등도 여야를 떠나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제반 여건 성숙후 가입』(손학규 의원),『조금 이른감이 있다』(김부동 의원),『무역관행과 행정규제문제등 우리 내부적으로 사전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양성철당선자)는 등 신중론도 섞여 있었다.이부영당선자는 『현재로선 가입에 다른 실익보다는 부담이 더 크다』는 입장을 개진했다.〈구본영 기자〉
  • DJ 호남방문/대선가도 원거리 포석

    ◎총선성원 답례­수도권패배 위로/향후 선거 호남표 이탈 차단 카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총선이 끝난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호남지역을 찾았다.김총재는 김상현 지도위의장과 유재건부총재 등 40여명의 당선자들과 함께 20∼22일 광주와 전주 등 자신의 「정치적 고향」을 잇따라 방문했다.과거 대선기간중에도 「지역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씻기 위해 가급적 자제했던 호남방문이었기에 당내 일부에서도 이례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국민회의측은 단순히 4·19묘지와 국립묘지 방문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한다.박지원 대변인은 『정통야당으로서 동작동 국립묘지와 4·19국립묘지,대전 제2국립묘지,망월동 묘역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며 호남에 머무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김총재도 『국립묘지와 5·18 묘역 등은 민족정통성과 민주정통성을 대표하는 성지』라면서 『이곳을 참배하는 것은 우리당이 지향해야할 방향,즉 민주 정의 통일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하는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호남방문이 총선패배에 대한 김총재 나름의 대책이며 20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가도를 위한 「원거리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이번 방문도 총선패배후 일산칩거중에 김총재 스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이번 총선에서 변함없는 성원을 보낸 호남유권자에 대한 답례와 서울패배로 나타난 사기저하와 허탈감을 위로한다는 시각이다.『평소엔 무관심하다가 선거때만 표를 요구한다』는 불만을 어루만지며 향후 대선에서 호남표이탈을 막기 위한 방문이라는 분석도 있다.김총재가 호남표 결속에 「집념」을 갖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권가도를 향한 본격적인 「시동」이라는 것이 이번 방문 목적임이 곳곳에서 드러났다.이번 방문이 국립묘지와 망월동 묘지를 엮는 「묘지순례」의 일환이라고 했지만 이번 방문에서 「유일 민주정통세력」임을 누누이 밝혔다.20일 광주 간담회에서 김총재가 『내가 대통령이 된다해도 전라도가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밝힌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김총재는 망월동 묘역을 떠나며 「민주부변,유훈만세(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민주영령들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킨다)」라는 휘호를 남겼다.〈광주=오일만 기자〉
  • 국가유공자 가족 의료인 정신대할머니 무료 진료(조약돌)

    ○…국가유공자 가족으로 구성된 의료인들이 정신대 할머니들을 무료진료해주는 등 의료봉사 활동을 펴고 있어 화제. 국가유공자 자녀로서 국가로부터 학비지원 등의 혜택을 받아 성장한 의료인들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인 「소금회」는 이달부터 일제때 정신대로 끌려가 고통을 당한 할머니들에게 무료로 치과 질환을 치료해주고 틀니도 제공.이 모임의 대표로 3·1운동 당시 경북 상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성해식선생(1899∼1939)의 손자인 성백균 박사(52)는 지난 86년 소금회를 결성,산간벽지와 도시 빈민촌을 돌면서 1만7천여명에게 사랑의 인술을 베풀어 왔다는 것.〈황성기 기자〉
  • 이변 속출… 곳곳서 무명이 중진 꺾어/4·11총선 화제의 당선자

    ◎홍준표­“부패와의 전쟁 중단하지 않겠다”/이상현­3진끝 당선… 운동원과 감격 눈물/김민석­전국 최연소… 한밤 「당선사례」 벅보/백승인­3차례 맞대결 정호씨 설욕 4·11 총선에서는 역대 어느 선거에서보다 많은 새 인물들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하며 풍성한 화제를 뿌렸다. 하오 6시부터 개표 방송에 귀를 기울이던 국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방송사의 투표자 조사와 실제 개표결과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자 TV 앞을 떠날 줄 몰랐다.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후보가 단 한차례만에,또는 재수 삼수를 하며 절치부심했던 후보가 당선이 확정될 때는 탄성을 터뜨렸다. ○안심하기엔 일러 ○…하오 6시 개표 시작과 동시에 방송 3사에서 발표한 합동 여론조사 결과 1위로 나타난 신한국당 서울 관악갑의 3수생 이상현 후보 사무실의 일부 운동원들은 때이른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격.그러나 이후보는 『한광옥 후보와의 차이가 3.8%포인트에 불과해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이르다』며 감정을 억제. 서울 종로의 이명박후보측은 개표 결과 국민회의의 이종찬후보를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나자 만세를 부르며 『종로구민들이 얼마나 변화를 갈구하는지 보여줬다』며 승리를 장담. 서울 금천의 신한국당 이우재후보측도 방송사 조사결과 국민회의의 이경재후보를 비교적 큰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상기된 가운데서도 『2위와 8.3%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마지막 뚜껑을 열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고 자제. 3선인 국민회의의 박실의원을 앞선 3수생 신한국당 동작을의 류용태후보도 『지난 14대 총선 때도 개표 초반 앞서다 역전패 당했었다』면서도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꿋꿋이 지역주민을 위해 헌신해 온 점이 표로 연결된 것 같다』고 자평. ○국가경영에 일조 ○…신한국당의 최영한후보와 경쟁 끝에 전국 최연소로 금배지를 단 영등포 을의 국민회의 김민석후보(32)는 당선이 확실시되자 환호성을 지르는 운동원을 남겨놓고 「당선사례」 벽보를 붙이러 나서며 『세계화 시대와 국가경영에 일조하는 국회의원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공부하는 의원이 되겠다』며 『지난 선거에서 떨어진 뒤 밥상에 미역국을 올린 적이 없었는데,이제 미역국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광진을 국민회의의 추미애후보는 당선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도되면서 쇄도하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고무적인 표정으로 응하면서 『아직 확실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니 끝까지 지켜보자』며 신중한 표정. ○…송파 갑 신한국 홍준표 후보(42)도 여론조사 결과가 압도적인 지지로 나타나자 『지역구민과 당원,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한다』며 『국회에 진출하더라도 「부패와의 전쟁」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장담. 서초 을의 신한국당 김덕용 후보(55)측도 초반 개표결과 압승으로 나타나자 『국민들에게 감사한다』면서도 『최종 개표결과를 기다려보자』며 신중한 반응. ○득표수계산 분주 ○…신한국당 후보와 민주당 고문이 경합,전국적 관심을 모은 부산 해운대·기장 갑선거구는 하오 11시까지 신한국당의 김운환후보와 민주당의 이기택후보가 서로 승리를 장담 못하며 선관위측에서 불러주는 득표수를 계산하느라 분주한 모습. 이후보가 2백표차로 김후보를 뒤쫓아오다하오 11시 10분쯤 해운대 반여 1동 투표함 개표에서 9표차로 바짝 추격. 김후보는 뒤이어 개표가 시작된 반송동에서 2백여표차로 추격을 뿌리치며 다시 달아나기 시작. 대구 서갑에서 4전5기의 신화를 이룬 무소속의 백승홍후보는 『숙적이던 정호용후보와 3차례 맞대결 끝에 번번이 차점으로 낙선했으나 이번에 압도적인 차이로 설욕했다』며 『부정과 부패를 심판한 주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생활정치가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다짐.
  • 그린테크/고부가 멀티미디어용 스피커 개발(앞선 기업)

    ◎핵심부품 IC 자체설계… 연 500만달러 수출 「음향도 상품이다」.멀티미디어용 입체음향 스피커 전문업체인 그린테크(주) 박계주 사장(40·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흥리)의 말이다.그는 이 스피커만 팔아서 지난해 40억원을 벌었다.음향이 돈이라는 말이 입증된 셈이다. 박사장은 업종선택을 잘해 성공한 케이스.이미 대중화된 개인용 컴퓨터(PC)의 멀티미디어화를 겨냥,스피커를 출시한 게 맞아떨어진 것.3차원 입체음향 스피커는 시스템이 설치된 공간의 구조,스피커의 위치,방향 및 높낮이와 상관없이 입체적인 스테레오 음향을 내는 스피커로 가상현실,CD롬 드라이브,게임용 사운드 카드에 필수적이다.선두주자는 미국의 「SRS랩」.88년 기술을 개발,특허를 획득한 상태. 박사장이 그린테크를 창업한 것은 92년.10년간의 회사생활을 마감한 뒤 였다.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일을 다룬 경험도 살리고 무엇보다 「자기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처음엔 오퍼일을 했다.하지만 무역업은 사업다운 사업이 못된다는 판단에 따라 제조업으로 돌아섰다.컴퓨터 소프트웨어,주변기기를 주로 다뤘다.업계흐름을 파악하고 스피커에 손을 댄 게 94년말쯤이다. 작년초 SRS랩과 기술제휴 관계를 맺고 개발부 직원 10여명이 6개월간 매달린 끝에 시제품이 나와 10월 한국전자전(KES)에 출품했다.개발비만 3억원이 투자됐지만 제값을 해내고 있다.매출액이 92년 5억원에서 지난해 40억원으로 껑충뛴게 이를 반증한다.올해는 80억원이 목표다.삼성,현대 등 20여 대기업과 일본 NEC,영국 로직 등 10여개 해외업체의 주문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수출은 대략 월 40만달러선.월마트도 수입업체에 끼일 전망이다. 그린테크는 올해부터 기술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매출액 대비 15%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이미 핵심부품인 집적회로(IC)는 자체설계했다.회사이름의 영문 머릿글자를 딴 고유상표 「GNT」모델시리즈 30여종을 출시하고 있다.내수가는 3만∼10만원.수출가는 25∼40달러선.기존 스피커에 비해 부가가치가 50%는 높다. 요즘엔 설비증설을 서두르고 있다.주문량 소화를 위해서다.안성과 중국 광동성 공장은준공단계다.월 17만∼20만세트를 생산해서 10만세트 이상을 수출할 계획이다. 박사장은 멀티미디어용 스피커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독자기술과 가격경쟁력,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 배제가 그의 무기다.혼자서 67명의 종업원을 이끌고 있는 젊음과 패기도 한몫을 한다.〈박희준 기자〉
  • 국내 최초 민간환경센터 세운다

    ◎서울에 내년 착공… 시민환경단체 중심 모금운동/전시·교육·연구공간 마련… 환경운동 메카로/각종정보 수집 공급… 관련법률·질병 상담도 전국민이 참여하는 모금운동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민간환경센터가 건립된다.이 센터는 21세기 정보화,전문화,국제화,지방화시대에 걸맞는 민간환경운동의 발전적 위상정립을 위해 각종 전시,교육,연구 및 시민환경단체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한국환경센터 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이세중·운영위원장 최열)는 26일 운영위원회를 갖고 건립기금을 마련키 위해 이달부터 정계,재계,학계,문화계,환경단체 등 각계의 대표자 및 주도적 인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범시민 모금운동을 전개키로 확정했다. 환경센터는 총사업비 50억원으로 오는 97년 4월에 착공,98년 3월 완공할 계획이다.서울 종로구 누하동 251번지 일대에 2백93평의 부지를 이미 확보해놓고 있다.건물의 규모는 지하2층 지상4층.지하 2층은 주차장,지하 1층은 교육관(강당)·센터건립과정에 대한 기록실·환경상품 판매코너,1층은 환경전시관·생태교육관,2층에 시민환경정보센터 및 전산실·세미나실,3층은 시민환경연구소·환경병및 관계법률 상담실·회의실,4층에는 환경단체가 자리잡게 된다. 환경운동의 메카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매김하게 될 이 센터가 문을 열게되면 어린이와 시민의 지속적인 환경교육은 물론 전문적인 환경연구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최신 환경정보를 수집해 공급하고 환경관련 상품유통 및 법률,질병 등의 상담을 하게 된다.또 21세기를 향한 실천해야할 지역문제를 공동으로 연구개발하고 환경단체들의 연대사업등을 수행하는 동시에 시민의 힘에 기반을 둔 친환경적 지역 모델을 구축해 나간다는 것이다. 환경센터의 건립이 추진된 것은 지난해 9월.환경운동연합 최열 사무총장이 세계최대의 환경상인 골드만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 7만5천달러(5천5백여만원)를 기금으로 내놓으면서 태동하기 시작했다.이에 따라 지난해 12월18일 각계인사 53명으로 구성된 한국환경센터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그동안 세부 사업계획을 마련해 왔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김영삼 대통령이 금일봉을 기탁했으며 동양맥주와 현대자동차가 각각 2천만원,농협중앙회에서 1천만원을 쾌척하는 등 그동안 1천1백여명이 4억5천여만원을 내놓았다. 추진위는 이에 힘입어 이달부터 본격적인 모금활동에 들어갔다.지난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 아트오케스트라가 참여한 「건립기금마련 신춘환경음악회」를 가진 것을 기폭제로 26일부터 오는 4월25일까지 한달동안 직장과 예술인,종교인 등을 대상으로 「센터설립 설명회」를 갖는 동시에 거리캠페인을 벌여 붐을 조성한다. 이어 오는 4월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환경센터 건립을 위한 서울 발기인대회」를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 각지역의 발기인대회를 열어 10억원의 기금을 마련할 계획이다.이밖에 자연생태 및 환경의식 고취와 실천을 소재로 한 2개의 비디오와 환경소책자등 3종의 교육용 자료 1만세트를 제작 보급하고 오는 연말 환경실,연하장,달력 등을 만들어 판매키로 했다. 이세중 위원장은 『환경센터가 마련되면 시민환경운동의 요람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미래의 친환경적 경제부흥과 쾌적한 삶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반조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에 전국민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 대종상 영화제/문화축제로 치른다

    ◎새달 20일부터 국립극장·동숭아트홀 등 입체적 진행/시상식 중심 벗어나 일반 팬 동참 유도/후보작 5편 상영·영화회고전도 마련 올해로 34회를 맞는 대종상영화제가 4월20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국립극장과 연강홀,마로니에공원,동숭아트홀 등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한국영화인협회와 삼성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올 행사는 시상식 중심으로 치러진 예년과는 달리 문화축제 성격의 「영화의 숲」행사와 한국영화회고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영화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릴 「영화의 숲」행사(4월20∼27일)기간에는 대종상영화제의 역사를 추적한 대형그래픽이 미술회관 외벽에 설치되며 올해 작품상 후보에 오른 5편의 영화가 상영된다.또 주요영화의 명장면을 편집한 멀티비전이 상영되고 극장간판의 제작과정도 구경할 수 있다. 4월21일부터 5일간 종로 5가 연강홀에서는 「시대속의 청년작가 10인전」이라는 주제로 한국영화회고전이 열린다.상영작품은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46년작) ▲이강천 감독의「피아골」(55년작)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56년작) ▲신상옥 감독의 「이조여인잔혹사」(69년작) ▲유현목 감독의 「순교자」(65년작) ▲김수용 감독의 「웃음소리」(78년작) ▲김기영 감독의 「하녀」(60년작) ▲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68년작) ▲이만희 감독의 「귀로」(67년작) ▲임권택 감독의 「짝코」(79년작)등 모두 10편. 본선 작품 심사는 21일부터 6일간 동숭아트홀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대종상영화제에는 지난해 3월12일부터 올해 3월26일 사이에 제작이 완료돼 법정심의기구의 심의를 마친 극영화라면 편수에 제한없이 출품이 가능하다.이에 해당되는 작품은 대략 60여편.출품접수 기간은 26일까지(평일 상오 10시∼하오 5시,토요일 상오 10시∼낮 12시,일요일 제외)로 영화제 사무국에 출품서류를 제출하면 된다.문의 3672―6772 한편 영화제 사무국은 올 영화제에 일본 영화평론가협회장을 역임한 사토 다다오(좌등충남)씨와 홍콩영화계 인사 1명을 본심위원으로 초빙키로 했으며 영화제 경비 8억7천만원은 전액 삼성문화재단이부담한다고 밝혔다.영화제 시상식은 4월27일 하오 5시30분부터 국립극장에서 열린다.〈김종면 기자〉
  • 오세창 선생 서예특별전/전서 등 3백여점 한자리에

    ◎사후 40여년만에 전시회/3·1운동 민족대표… 격동기 “정신적 지도자”/저술·독립선언서 원본·전각실인 등 포함 한국 근대서예사의 거두이자 근대전각의 아버지,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의 1인이며 광복후 서울신문 초대사장을 지낸 우리나라 근세격동기의 정신적 지도자. 한두 줄로 압축하기엔 너무나 뛰어난 업적과 예술적 위상으로 시대를 풍미한 위창 오세창 선생. 서울신문사와 예술의 전당은 12일부터 4월7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그의 서예특별전을 마련한다. 이 전시에는 뜨거운 민족애와 예술혼을 불태우며 이 땅의 개화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6·25등 격동기를 고고히 살다간 그의 삶을 투영한 서예등 명편 3백여점이 출품된다.유족과 개인소장자는 물론 공공미술관이나 도서관등에서 출품,사후 40여년만에 빛을 보는 전시작은 서예 70점을 포함한 저술원본과 감식관련자료 1백18점,전각분야의 실인 2백40여점,「근역서화징」원본등 10여점,독립운동선언서원본,제·발문 대표자료 20점,유품 10점,청조문인간독첩 7책등. 전서의금자탑을 이룬 그의 서예와 독보적 경지를 이룬 전각작품은 조형의 현란함보다 표정 없는 묵직한 필획구사로 걸출한 예술성을 드러낸다.독자적 상형문자의 의미구성으로 그의 깊은 정신적 기저를 간파할 수 있게하는 대표작들이 전시장을 무게 있게 채움과 동시에 미술사연구의 결정서인 「근역서화징」이 의미를 더해준다.우리나라 역대서화가 1천1백17명의 사적과 평전을 편년체로 엮은 이 저서는 위창 이후에 없는 서화사의 귀한 필독서다. 1864년 개화선각자이자 금석문의 대가인 오경석의 장남으로 서울 중인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8대에 걸친 역관가문의 환경에서 일찍이 한학을 접하며 16세에 역과에 합격했다. 그후 박문국 주사를 역임하며 언론과 인연을 맺어 한성주보 기자를 거쳐 만세보와 대한민보사장,광복후 서울신문 초대사장을 지내며 국민계몽활동에 남다른 정열을 쏟았다.민족지도자로서의 면모 또한 굳건해 일제식민통치에 항거하다 33인중의 1인으로 3년의 옥고를 치렀으며 항일정신은 광복까지 계속됐다. 「근대전각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독보적 경지를 이룬 그가 작품활동에 몰입한 것은 서화사의 격동기인 1920년대이후.청·장년기를 사회활동으로 놓쳤으나 가문에서 전해오는 방대한 양의 고서화정리와 함께 금석문탁본,전각의 무서운 수련을 통해 60대이후 서예에 일가를 이루게 된다. 당대최고의 서화수집가이며 엄정한 품평가로도 실력을 발휘한 위창은 지난 53년 피난지인 대구에서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 위창 오세창전(외언내언)

    3·1운동 33인의 한 분이며 언론계의 선구자이고 서예와 전각의 독보적 대가였으며 금석문·미술사학자로서 탁월한 안목을 지녔던 분­바로 위창 오세창 선생이다.르네상스시대에는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불렀다.화가·조각가·과학자·해부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이 그 예가 된다. 독립운동가로서 「3·1선언」에 민족대표로 참여했다가 3년의 옥고를 치른 것만으로도 그의 자취는 우뚝하다.33인 중 상당수가 3·1운동 뒤 변절,친일파가 됐던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언론인으로서의 오세창은 1886년 박문국에 들어가 한성주보의 기자를 했으니 근대신문 최초기의 기자라고 할 수 있겠다. 언론을 통한 구국활동에 힘을 쏟은 그는 초창기 만세보·대한민보 사장을 지냈으며 광복후 1945년 11월22일에는 81세 고령에 창간된 서울신문의 초대 사장으로 추대됐을 정도.언론계를 떠난지 반세기만에 「해방조선의 대변지」인 서울신문 창간 사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독립운동가로,언론인으로 너무도 우뚝했던 탓에 예술가로서의 오세창은 일반에게 그리 알려지진 않았다.일찍 서구문명과 학문에 눈떴던 그는 서화에도 뛰어난 감식안을 가지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우리나라 역대 서화가 1천1백17명의 사적과 평전을 집대성한 역저 「근역서화징」을 펴냈다.해박한 지식과 고증을 바탕으로 한 이 저서는 우리 미술사 연구의 시원을 이룬다. 전서와 전각으로 일가를 이루었던 위창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시회가 오늘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다(4월7일까지).서예작품 1백20여점 외에 전각도장 2백40점과 감식자료 30여점 등이 전시돼 그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부친 오경석이 중국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주고받은 서간과 위창 자신의 서신들도 함께 전시돼 당시 지식인들의 생활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그의 예술적 노작들은 해방 이전 일제하의 질곡밑에서 이루어졌다.식민지 치하에서 그의 예술혼이 더욱 치열했음을 알게 한다.
  • “일은 침략근성 버려라”/문인·민간단체 모여 「역사왜곡」 규탄

    ◎독도에 울려퍼진 「3.1주권정신」/선상서 고유문 올리고 사물놀이/전국곳곳 “영토 사수” 결의 대회도 3·1절 77돌인 1일 독도는 물론 전국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와 일본의 독도 망언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한국 문인대표 93명은 상오 9시30분 독도에서 1.5㎞ 떨어진 해상의 「한나라호」 선상에서 기념식을 갖고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푸른 독도 가꾸기」「배달녹색연합회」 등 9개 민간단체 회원과 울릉도민 등 2백여명은 독도에 상륙,독도를 지키다 숨진 이들에 대한 위령제를 갖고 「독도사수」를 다짐했다. 수원공설운동장에서는 학생과 시민 등 3만여명이 모여 「3·1절 기념식 및 일본 독도 망언 규탄대회」를 여는 등 민간단체들이 주도하는 집회가 전국에서 열렸다. 『독도는 이제 우리 대한민국 영토의 성스러운 상징이 되었습니다…우리 독도를 지켜오신 단군이시여,이 나라 문인들의 뜻이 온겨레와 함께 한결같이 한자리에 있음을 알아주시옵소서』 「독도사랑」과 「독도지키기」를 천지신명께 고하는 문인들의 고유문이 독도 앞바다에 울려퍼지자 흩뿌리던 진눈깨비도,솟구치던 물결도 잠시 숨을 멈추는 듯 했다. 1일 상오 독도가 저건너 바라보이는 바다에 뜬 「한나라호」선상.한국문단을 대표하는 문인 90여명은 독도를 밟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3·1절 기념식을 진행했다.시대의 지성과 양심을 상징하는 문인들이 독도에서 행사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 문인들은 당초 독도에 상륙해 기념식을 갖기로 했으나 거친 날씨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부득이 배 안에서 행사를 치를 수 밖에 없었다.이날 독도 주변에는 진눈깨비가 내렸으며 바람이 초속 10m안팎으로 불고 파고가 3∼4m에 이르러 하오 1시를 기해 폭풍주의보가 내려졌다. 한때 침울했던 분위기는 그러나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가 신명나는 길놀이를 펼치면서 뒤바뀌었다.기념사­고유문­축시­결의문­만세삼창의 순으로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문인들은 「독도사랑」「나라사랑」을 다시금 되새겼다. 황명 방문단장(문학의 해 조직위 집행위원장)은 기념사에서 『3·1절을 맞아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혀준 3·1정신을 뜻깊게 되새기면서,선열들의 민족혼이 서린 우리 고유한 영토를 한치도 훼손되지 않게 지켜나갈 것을 우리 문학인들이 국민과 함께 만천하에 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유문은 성춘복시인이 낭독했으며,김후란시인의 축시 「독도는 깨어 있다」낭송,결의문 채택,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기념식을 마치고 귀경길에 오른 문인들은 배 안에서 「독도에 대한 역사적 고찰」강연과 소감 발표회,「국토와 문학」을 주제로 한 세미나등을 열어 독도방문의 감격을 서로 나누었다. 이 행사에는 이근배·구혜영·이문구·조태일·손춘익·한승원·윤후명·도종환씨등 원로·중견 문인 93명이 참석했다.이 가운데 작가 이문구씨와 도종환시인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독도를 소재로 한 소설과 시를 쓰겠다고 밝혔다.이씨는 『국토를 사랑하고 가꾸는 일은 문인이 당연히 해야 할 임무』라면서 현재 작품을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독도방문단 1백70여명은 전날 하오4시 해양대 탐사실습선 「한나라호」(3천6백40t급)를 타고 부산항을 떠나 이날 상오5시쯤일찌감치 독도 해역에 도착했다.문인들은 기상상태가 나쁜데도 불구하고 독도에 상륙하기를 원했지만 이들을 실어나를 경비정이 독도 접안에 실패하고,독도경비대도 「접안 불가능」을 통보하는 바람에 독도 땅을 밟아볼 기회를 뒤로 미뤄야 했다.
  • 걸인·기생 「독립만세」 진주서 77년만에 재현

    1919년 3월 경남 진주에서 있었던 걸인과 기생들의 독립만세운동이 29일 77년만에 재현됐다. 진주 문화사랑모임(회장 이영달)과 망진산 봉수대 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이순기)가 일본의 독도망언에 대한 진주시민들의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공동으로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4천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참가했다. 망진산 봉수대 복원기공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남강 둔치에 모여 망진산 봉수대의 봉화불에 맞춰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일본의 독도망언을 규탄했다. 3·1운동 당시 진주에서는 3월18일 걸인 1백여명이 『왜놈들이 재산을 빼앗아가 밥을 빌어먹고 있다』며 『독립하지 못하면 2천만 동포는 거지가 될 것』이라고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펼쳤다.이어 19일에는 진주의 권번(기생들의 조합)소속 50여명의 여자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강에서 촉석루까지 행진했었다.
  • 일 독도망언속 다시맞은 3·1절/「망언규탄」·「극일함성」그날처럼

    ◎“선열의 자주정신 계승” 메아리/1백여 문인 “독도지키기” 다짐 일본의 잇따른 「독도 망언」으로 반일감정이 높아진 가운데 3·1절 77돌을 맞았다. 1919년,그날의 함성만큼이나 뜨거운 극일의 목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진다.각계각층에서 일본을 규탄하고 선열을 기리는 다양한 모임과 행사가 잇따른다. 문인 1백여명은 1일 상오 8시 독도에서 3·1절 기념행사를 갖는다.「96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서기원)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기념사,고유문 낭독,축시 낭송,결의문 채택,만세삼창 순서로 3시간 남짓 진행된다. 문인들은 고유문을 통해 『독도는 만년토록 동해의 등대로써 나라의 안녕에 이바지하였으며,그 극진함이 하늘에 닿아 천년토록 국가의 고임을 받았다』고 상찬하고 『우리가 이곳에 닿은 것이 매우 늦었으나 이로부터 자주 찾고 글로써 국토를 지키고 가꾸기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김후란시인의 축시 「독도는 깨어 있다」 낭송에 이어 ▲한국과 일본은 국가간 공익질서를 상호 숭상·수호하는 동반자 관계를 정립하고 ▲일본은 두나라 후손에게 참화와 질곡을 남긴 책임을 반성하며 ▲일본은 억지를 쓰는 구시대적 망상에서 깨어날 것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다. 독립기념관(단장 박유철)은 통일염원의 탑에서 3·1정신의 계승을 다짐하는 「통일염원의 종 타종식」을 갖는다.각계 대표 22명이 참석해 33번 종을 친 뒤 조국통일 실현의지와 일본의 독도망언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낭독한다. 「사랑의 실천 국민운동본부」(대표회장 유호준 목사)는 상오 11시 한일 과거청산 범국민운동본부,순국선열유족회,6·3동지회,한국기독교총연합 등 8개 단체와 공동으로 「3·1절 나라사랑 범국민운동 대행진」을 갖는다.2천5백여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앞에서 종로3가 탑골공원까지 대형 태극기와 순국선열 영정을 앞세워 행진한다. 「삼일운동 기념사업회」(이사장 이원범)도 상오 8시 탑골공원을 청소한뒤 국민대 조동걸교수를 초청,「3·1운동의 현대적 의미」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갖는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은 하오 2시 종묘공원에서 「3·1 민족자주정신 계승 및 군국주의 부활 반대 결의대회」를 갖고 일본의 망언을 엄중 경고한다. 서울시는 낮 12시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우고 조국통일과 번영을 기원하는 「보신각 타종행사」를 갖는다.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의 유족 19명,3·1독립운동 유족 14명 등 33명이 참석해 33번을 타종한다. 나라밖 행사도 다채롭다.「극일운동시민연합」(의장 황백현)과 「흥사단」(이사장 김종림) 회원 10여명은 상오 11시 도쿄 일본국회 앞에서 대형 독도그림을 내걸고 3·1절 기념식 및 독도망언 규탄대회를 갖는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회장 배해원) 회원 15명은 사이판에서 열리는 태평양전쟁 징용 희생자 추모비 건립 행사에 참가한다.
  • 「우리 설날」(외언내언)

    방송 앵커들은 「설날」에다가 『되찾은…』이라는 접두어 붙이기를 좋아한다.「우리것」을 잃었다가 찾았으므로 이 설을 지키라는 듯이 들리기도 한다.그렇다고 회계연도도,신학기도,공공기능에서 국제 범례에 이르기까지 양력을 따르는 오늘의 우리가 「우리 설」을 기점으로 생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인들은 『요즘 젊은 것들이 제새끼 생일은 꼬박꼬박 챙기면서 어른 생일이나 조상제삿날은 잊는다』고 한탄하지만 그것은 「요즘 것들」의 무심함 탓보다는 「음력날짜」와 현실생활이 유리된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러면 「우리 설날」은 어떤 명절인가.대한제국 황제의 칙령으로 양력생활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날을 기점으로 살아온 옛 원단이다.24절기가 딱딱 들어맞는,농경사회의 생활지표에 가장 적합한 설날인 것이다.한해 농사계획을 이날로 비롯해서 세우고 명절과 생신이며 기일은 물론 길흉대사의 날에서 이사하고 고사지내는 모든 생활의 지표를 만세력 짚어가며 이 「설날」에 정리했다.토정비결도 이날이 기준이었다. 조상께 차례도 지내고세배를 나누며 좋은 한해를 다짐하는 숭고한 명절이다.헌옷으로라도 정성들여 설빔을 갖춰입고 쇠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온 「우리 설」이었다.그러나 세월은 너무도 달라져서 이날을 새해가 시작되는 「설」로 생활할 수는 이미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되찾았으니」 꼭 쇠어야 할 설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날에 묻어있는 「우리 설」의 오랜 정서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리는 날이면 충분하다.특히 그것이 강한 어버이세대들을 찾아뵙는 효도의 날로서는 지켜질 가치가 있다.그런 마음으로 고향에도 가고 차례도 지내고 어른들께 문안도 드리는 것은 뜻깊다.마치 음력생활로 돌아가기라도 하자는 듯 「되찾은 우리 설」을 되뇌는 일이나 「황금휴일」 만났다고 골프채를 짊어진채,또는 외화쓰기에 신이 나는 짓은 허망하고 품위없어 보인다.「옛날 우리설」을 아름다운 고유명절로 만들어가는 일은 지금의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다.
  • 대통령치사 30분간 박수·연호 66차례/신한국당전당대회 이모저모

    ◎공천자 일일이 손잡아 격려… “필승” 당부/이회창·박찬종씨 소개때 기립박수 물결 6일 하오2시부터 2시간30분동안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국당 제1차 전당대회는 3당합당의 잔재를 떨쳐내고 15대 총선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하는 잔치 한마당으로 어우러졌다. 이날 행사는 당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당직자,5천4백25명의 대의원 등 모두 1만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매머드급으로 진행됐다.특히 2백53명의 공천자들도 모두 나와 지난 해 지방선거 패배직후 열린 전국위원회와 달리 총선승리의 자신감과 각오를 부각시키는 장면이 곳곳에 연출됐다. ○15개 총선공약 발표 ○…하오 3시쯤 김대통령이 악단의 팡파르속에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힘찬 박수와 함께 김대통령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푸른색 깃발을 흔들며 연호했다. 개회선언에 이은 당기 입장 순서에서 김대통령은 기수단으로부터 새롭게 도안된 당기를 전달받고 좌우로 3∼4차례 힘차게 흔들어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강삼재사무총장의 당무보고에 이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는당헌개정안과 대통령제 지향,국민 통합의 화합정치 등을 담은 정강 및 기본정책 개정안 등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김종호정책위의장이 분야별 15개 총선공약을 담은 「국민과의 약속」을 발표해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꽃가루·분수불꽃 물결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제3부 「필승전진대회」 가운데 공천자들이 소개되는 대목. 서울·경기·인천·강원·제주 등 권역별로 필승기를 앞세운 후보자들이 이름과 사진·출마지역구를 알리는 대형화면과 함께 일일이 호명될 때마다 박수의 물결이 장내를 뒤덮었다. 「인재가 몰려온다,승리가 보인다」「신한국 신바람 서울에서 제주까지」등 현수막과 함께 『개혁의 바람과 승리의 견인차가 될 서울』『중부권의 부흥을 이뤄낼 경기도』『충절의 고장에서 신바람으로 지역바람을 잠재울 대전·충남북』『호남의 기적으로 1당지배를 극복할 광주·전남북』『자존심을 되찾을 대구·경북』『총선필승의 선봉대 부산·경남』 등 지역특성을 감안한 구호들이 어우러져 분위기를 북돋웠다.꽃가루와분수불꽃도 물결을 쳤다. 김대통령은 이들이 차례차례 중앙단상에 오를 때마다 손을 잡아 올려 격려와 함께 격전의 진두지휘에 나설 뜻을 분명히 했다. ○세대교체 당위성 강조 ○…지난 해 8월 전국위원회 이후 당 공식행사에 처음 참석한 김대통령은 치사에서 『국민의 높은 존경을 받는 지도자들과 숱한 영재들이 개혁과 안정의 기치아래 속속 모이고 있다』면서 『모두 힘을 합쳐 이들과 함께 승리의 월계관을 쟁취하자』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정치는 역사바로세우기의 중심』이라며 낡은 정치·썩은 정치의 청산을 역설한뒤 『신선하고 개혁적이며 능력 있는 새인물들이 정치를 맡아야 할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세대교체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안정이 없는 견제는 혼란을 의미할 뿐』이라며 총선에서의 안정의석 확보의지를 강조했다.치사 마지막 부분에서 김대통령은 원고에는 없던 『승리는 우리들의 것』이라는 말로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김대통령은 특히 일반 국정연설과는 달리 유세를 연상케하는 양자택일식·단문단답식 연설로 「출정」에 나서는 공천자들과 당의 사기를 고취시키는데 역점을 두었다.준비된 연설문을 이용하지 않고 연단 양쪽에 마련된 프롬프터만 잠시 쳐다본뒤 참석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즉석연설로 감정을 싣기도 했다. 치사의 대목 대목마다 참석자들의 박수와 연호가 66차례나 터져나왔다.이 때문에 당초 20분으로 잡혀 있었던 치사시간이 30분쯤으로 길어져 열기를 반영했다. ○“개혁정당으로 전진” ○…3부 「신한국 필승 전진대회」에서 김윤환대표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신한국당이야말로 안정속의 지속적인 개혁으로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주체』라면서 『경륜과 패기가 조화된 개혁정당으로 전진할 것』을 다짐했다. 이어 김대표가 영입인사인 이회창전총리와 박찬종전의원을 직접 소개하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김대통령이 김대표와 이전총리·박전의원과 나란히 단상 전면 중앙에 나서 손을 맞잡아 올려 단합을 과시하자 참석자들은 『와』하는 환호와 함께 일제히 기립,필승구호를 외쳤다.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국민에 희망 심어주자 ○…이회창전총리는 인사말에서 『어떠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패배주의도 깃들 수 없다』며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국민에게 정의에 대한 확신과 미래의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찬종전의원은 『개혁과정의 작은 실수를 과장하고 비틀어서 개혁의 발목을 잡거나 본질을 훼손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지금은 개혁비틀기와 개혁죽이기의 역풍에 맞서서 개혁살리기를 위해 힘을 모을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전의원은 『한사람 한사람이 전도사와 나팔수로 나서지 않으면 나라바로세우기의 뜻이 올바로 전파되지 못하고 국민속에 뿌리내릴 수 없다』고 덧붙인뒤 『역사상 가장 정직한 선거,가장 깨끗하고 가난한 선거로 선거바로세우기를 실천하자』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정재철전당대회의장의 개회사와 당기 입장으로 시작된 전당대회는 맹형규서울 송파을 지구당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신한국출범」을 주제로 한 2부 본행사는 오프닝과 동시에 「신한국당의 비전제시」영상물이화면을 메우면서 막이 올랐다. 「화합의 시간」인 1부에서는 총선필승 의지를 다지는 영상물 「우리들 뜨거운 노래」가 대형화면을 통해 방영된데 이어 「신한국을 여는 시나위」라는 공연이 펼쳐졌다.분수불꽃과 특수조명·드라이아이스 등 특수효과 속에 남녀 MC의 사회로 방실이·육각수·설운도 등 연예인들이 흥을 돋우었다. 행사는 참석자들의 당가 제창에 이어 김수한고문의 선창으로 만세삼창을 외친뒤 정재철전당대회의장의 폐회선언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 8월 전국위원회 때와는 달리 1층 행사장으로 통하는 출입구에서부터 경호요원들이 대의원들은 물론 보도진의 출입까지 엄격히 통제하는 등 경호에 부쩍 신경을 쓰는 인상이었다.
  • 단동시 영화산기슭 항미원조기념관(압록강 2천리:23)

    ◎한국전 유물 1천여점 10곳에 전시/부지 18만㎡에 연건평 1만2천㎡… 58년 건립/김일선·모택동 친필서한·명령서등도 전시/영웅실엔 전사한 모택동 맏아들 석고상도 중국과 북한이 손을 잡고 치른 한국전쟁을 통해 오늘의 단동시인 당시 안동은 영웅도시가 되었다.그로 인해 1958년 9월 중앙문화부의 비준을 거쳐 안동에 이른바 항미원조기념관이 세워졌다.이 기념관이 오늘의 모습으로 확장된 것은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19 93년의 일이다.기념관의 확장은 19 83년 북한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길에 단동(안동)에 들른 중앙군사위 부비서장 홍학지의 주선으로 실현되었다. ○등소평 친필 든 탑 세워 항미원조기념관은 단동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영화산기슭에 있다.글자 그대로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북한)을 원조한 전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관의 현판은 당시 중국인민항미원조총회 곽말약(곽말약)이 썼다고 한다.18만㎡나 되는 부지에 1만2천㎡에 이르는 건물을 지었다.그리고 지난 1953년에는 등소평동지의 친필이 든 높이 53m의 탑을 세웠다.탑높이 53m는 1953년의 정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기념관에는 10개의 전시실을 두어 한국전쟁에 관한 1천1백8건의 문물이 전시되었다.이 가운데 주목을 끈 자료는 김일성이 모택동주석에게 보낸 친필서한이다..연합군의 반격으로 위기에 처하자 중국의 지원을 간곡히 요청한 김일성의 친필서한은 여러 자료 가운데 백미인지도 모른다.김일성 서한 옆에는 중국 인민지원군 조직을 채근한 모택동의 친필 명령서가 나란히 진열되었다. 그러니까 대륙의 거인이던 모택동의 휘필 한점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스탈린과 김일성이 합작한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그 명령에 따라 1백만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전화속으로 뛰어든 것이다.장백현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조선족 서군(65)선생의 회고담을 들어보면 당시 중국지원군 참전상황이 잘 드러난다.19 50년 당시 장백현 공청단위원회 선전부장이던 그는 한달 훈련을 받고 중국지원군 고사포부대 제1사 제1탄소속 부중대장으로 참전했다. 『가을이 깊을대로 깊은 10월19일로 기억하지비.그날밤에 안동을 떠나 장전하구로 와서 이내 압록강철교를 건넜수다.극비의 행동이라 중국말도 못하게 했고 중국을 떠날 때 글이 있는 물건은 못 지니게 했구마.삭주를 거쳐 평안남도 북진에 도착한 것이 10월28일인가,그렇지비.그날밤 거기서 5리쯤 떨어진 영봉에서 우리 지원군과 미군이 첫접전을 붙지 않았겠슴둥.그게 운산전투였지지비』 그 운산전투에서 미군은 3일간 포위되었다.11월1일 미군이 포위망을 뚫었으나 지원군은 미군 2천명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그 무렵에 지원군을 「38군」이라고 불렀는데 모택동이 「만세 38군」이라는 친필까지 내려 전공을 치하했다.그러나 지원군의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특히 서군선생이 소속된 고사포부대는 박살이 났다.장비가 일본군이 쓰던 것이라 포탄이 포신에서 발사되어도 12초가 지나야 터졌다.그런 상황이어서 미군의 포격과 공습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서군선생이 소속한 고사포부대는 12월25일 압록강을 다시 건너 요령성 금주시로 철수했다.거기서 소련제37.85포로 재무장하고 이듬해 3월18일 집안을 거쳐 만포로 건너갔다는 것이다.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에 비해 모든 장비가 열세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단동의 항미원조기념관에서도 확인되었다.기념관내 공군진열실에서 본 쌍방의 공군장비에서는 너무 엄청난 차이가 났다.당시 중국인민해방군은 전체 전투기가 2백대도 안되었지만,연합군비행기는 1천2백대였다는 것이다. ○연합군 비해 장비 열세 1951년 3월15일 지원군 공군사령부가 안동에 창설되었다.사령원은 유진이었는데,더러 미그15기가 F84 미군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그러나 공중전 전과는 미미한 것이어서 조선인민군과 함께 대공포화에 중점을 두었다.요령성 관전현 석호구향 보산촌에 사는 김창권(66)씨는 전쟁 때 고사기관총소대에 복무했다.방호산이 사령으로 있던 조선인민군 제5군단 12사 1연대 1중대 고사기관총소대 사수이던 그는 당시 활동상을 소상히 이야기해주었다. 『우리 고사기관총소대는 대우가 달랐디요.일반전투원은 하루 배식량이 8백g이었는데 우리는 1천g이었단 말입네다.12.7㎜ 소련제 고사기관총으로 무장했는데,재수가 좋으면 적기를 명중시켰디요.함경남도 함주군에 주둔할 때니끼리 1951년 1월18일 오전쯤 됐을 겁네다.미군기 한대가 저공으로 공격해와서리 갈겼디요.그거이 명중되어 처음 한대를 잡고서리 뒤에 두대를 더 잡았디 뭡니까.그래서리 전사영예훈장 2급을 받았댔습네다』 그에게는 일생동안 무료치료에 자식의 대학진학특전 등이 돌아왔다.그러나 중국으로 오는 바람에 한때 무효가 되었으나,지난 1987년 전공을 다시 인정받아 지금은 매달 3백원씩 연금을 받는다는 것이다.그는 전쟁을 회고하기를 떴다하면 미군 비행기고,아군기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말로 대신했다.그렇듯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는 바람에 북한은 물론 중국쪽 국경지대에도 낙하산부대들이 투하되었다. 1952년 11월15일 백두산일대에 낙하산병이 투하되자 장백·임강·무송현이 발칵 뒤집혔다.경찰과 민병대가 동원되어 5주야를 산을 수색했다.이들에 의해 1명이 사살되고 15명을 포로로 잡았다.「장백현지」를 보면 이보다 앞서 1951년 6월29일 낙하산 침투병을 잡는 데 공헌한 장백현 12도구 사람 채후남(1888∼1974년)이야기가 인물록에 나온다.채후남은 마을에 살다 행방불명된 김형길이라는 청년이 낙하산으로 떨어져 이미 이사한 어머니를 찾아 숨어든 것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관광·참배객 줄이어 항미원조기념관 맨 위층에 마련한 전쟁묘사공간 「청천강전역」은 스케일이 엄청 컸다.그림과 실물조각,조명과 음향이 한데 어울린 이 공간은 높이 17m,너비 1백32m나 되었다.마치 전장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그 공간을 넋잃은 듯 바라보는 노인이 있어서 말을 걸어보았다.아니나다를까,전쟁에 참가했다는 노인이었다.자신을 평안북도 창성 태생으로 지금은 단동시에 사는 조선족 최정근(69)이라고 소개했다. 『은산전투를 마치고 청천강으로 나갔다.나는 포병이라 부근부대를 뒤따라 조을리에 이르니 전투가 끝났다고 그라데…,시체가 즐비해서 밤이면 얼어서 뻣뻣한 미군시체를 바람막이로 쌓아놓고 잠을 잤디 않았갔수.죽은 미군 신발을 벗겨 신는 것은 약과고 속옷까지 벗겨 입었으니 원….손을 옷속에 넣으면 이가 한줌씩 잡혔으니 별도리가 없었디』 전쟁은 가혹한 것이었다.항미원조기념관 영웅모범열사실에는 모택동의 맏아들 모안영의 석고상이 전시되었다.지원군사령부 근무중 미공군 폭격에 사망한 그의 유해는 북한에 묻혀 있다.어떻든 전쟁은 비극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그렇다면 항미원조기념관은 전쟁예찬이 아닌 전쟁억제에 더 큰 비중이 깔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시중 외제골프채 70% “가짜”/서울지검

    ◎100억대 조립·판매 20명 적발… 6명 구속/캘러웨이­혼마 등 유명상표 붙여/1만세트 제작… 2∼3백만원 받아 「캘러웨이」,「혼마」 등 해외 유명상표를 불법 부착한 가짜 외제 골프채 1백억원 어치를 제조,시중에 판매한 골프채 수입 및 제조업자 등 모두 20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형사 4부(신건수부장·이창재검사)는 19일 유명 외제상표를 불법 부착한 골프 부품을 밀수입한 연송훈(34·경기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씨 등 골프채 부품수입업자 2명과 국내에서 부품을 제조한 박용관(39)씨 등 부품제조업자 2명,이를 완제품으로 조립해 시중에 팔아온 문성영(34)씨 등 조립업자 2명 등 모두 6명을 상표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이들로부터 골프채를 공급받아 판매한 정우용(40)씨 등 11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하고 달아난 대만인 골프채 부품 밀매상 왕승리씨(33) 등 3명을 수배했다. 연씨등은 지난해 2월부터 대만에서 제작된 가짜 유명 골프채나 머리(헤드)손잡이(그립)부분의 부품 1만7천4백여개를 밀수입해 조립업자 문씨등을 통해 완제품으로 만든뒤 세트당 2백만∼3백만원에 판매해 14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함께 구속된 박씨등은 지난해 2월 경기 김포군에 골프채 부품 제조공장을 차려놓고 몸체(샤프트) 2만여개를 만들어 외제상표를 부착해 조립업자들에게 판매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조사결과 이들은 대만에서 제작된 「캘러웨이」「혼마」「미즈노」등 가짜 유명 골프채 부품을 이용,완제품을 만들어 중국인 밀매상을 통해 밀수입하거나 상표가 없는 상태로 정식 수입해 영세공장등에서 조립한뒤 유명제품 라벨을 붙여 골프상이나 골프 실내연습장의 직원을 통해 판매하는 수법으로 지금까지 모두 1만세트(12만개)를 판매해 1백억원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외제 골프채의 70%가 가짜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이 만든 골프채는 외관상으론 진품과 구분이 안되나 무게 중심과 균형이 안맞아 장시간 사용할 경우 「골프 엘보」등의 부상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한겨울 달구는 「냉장고 싸움」

    ◎대우 입체냉각·LG 샤워냉각·삼성 독립냉각/삼성­냉동·냉장 분리 「문단속」으로 “1위 지키기”/LG­음식물 찾아 냉기 위에서 아래로 뿌려/대우­압축냉기 매5분 분사… 탈취기능 강화 가전 3사의 신제품 판매경쟁이 연초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독립냉각,샤워냉각,터보입체냉각 등 올해는 3사 모두 냉장고의 기본기능인 냉각 강화에 승부를 걸었다. 대우전자가 94년부터 기본기능 위주의 입체냉장고 탱크를 내놓아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늘려가는 가운데 94년 LG 김치독 냉장고와 삼성 바이오 냉장고간의 부가기능 대결에서 김치독 냉장고가 승리한 반면,95년에는 기본기능의 삼성 문단속 냉장고가 부가기능의 LG의 육각수 냉장고를 제친데 이은 변화다. 지난해 문단속 냉장고의 호조에 힘입어 처음으로 업계 1위에 오른 삼성전자는 12일 냉각기를 2개 설치해 냉동실과 냉장실을 별도로 제어하는 독립냉각시스템을 적용,냄새이동을 차단하면서 냉각효율을 극대화한 96년형 문단속 냉장고 「독립만세」를 선보이며 1위 수성과 격차 벌이기에 나섰다.냉동실의 에어샤워방식과 냉장실의 회전분사냉각 방식도입으로 냉각기능을 한층 강화했다.국내 최초로 CFC가 아닌 환경보존형 대체냉매를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신제품 발표시기가 2월로 가장 늦었던 LG전자는 이번에는 일찌감치 구랍 28일 「LG냉장고 싱싱나라」를 개발,1위 탈환을 외치며 시판에 들어갔다.식품을 많이 쌓아 보관하는 한국인의 냉장고 사용습관에 맞춰 냉장고 각 선반마다 수십개의 냉기구를 설치,냉기를 위에서 아래로 뿌려주는 샤워냉각방식과 새로운 음식물의 위치를 파악해 냉기를 집중분사하는 추적냉각시스템을 채택했다.LG전자는 냉장실 온도가 3℃로 안정화되는 시간이 2백17분으로 34% 단축됐고,두부 저장기간이 7일정도 길어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입체냉장고 탱크가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2년연속 50%이상 급성장을 보이며 시장점유율을 94년 19%,95년 26%로 늘린 대우전자는 다음주중으로 신제품 「입체냉장고 탱크Ⅱ」를 선보여 매출신장을 가속화할 계획이다.대우전자의 신제품은 터보입체 냉각방식을 채용,기존에 30분동안 나오던 냉기를 압축해 5분마다 뿜어내 냉장실의 평균 온도를 2℃ 더 낮추고 내부소재를 일체 발포성형을 통해 냉장실과 냉동실 사이의 틈을 없애 냉기의 외부 유출을 최소화했다.고성능 금촉매 입체 탈취기를 5개 장착,냄새제거 기능을 향상시킨 것도 특징이다.
  • 북,우성호 선원 세뇌… 선전에 이용/납치·송환과정서 드러난 속셈

    ◎우리 정부 배제… 유엔사에 일방 통보/「판문점 송환」 정전체제 무력화 겨냥 「86우성호」의 선원과 유해가 7개월만에 돌아왔다는 흥분이 점차 가라앉으면서,정부내에서는 우성호의 납치와 송환과정에서 드러난 북한측의 저의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이 커져가고 있다. 쉽게 말해 북한이 순진한 우리 선원들을 잡아가 북한내부와 남한,국제사회에 대한 선전의 도구로 철저하게 이용했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판단이다.때문에 선원들의 송환이 대북 쌀지원 대화의 속개로 연결되기는 힘들다는 시각이다. 우선 북한은 김부곤 선장 등 생존선원 5명을 억류하는 동안 북한의 방송에 출연시켜,김영삼 대통령과 남한의 체제를 비판하도록 강요했다.방송내용을 입수한 우리측 기관이 놀랄 정도로 억류선원들의 대남 비판은 격렬했다. 어느 나라나 선원들의 생활은 대체로 어렵고 힘든 것이 실정이다.따라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을 수 있다.북은 이러한 점을 이용,이들을 북한주민용 선전도구로 사용한 것이다.특히 『남측이 사과만하면 당신들을 돌려보내려 했는데 남측이 이를 거부,당신들을 버렸다』고 이간질하는 교묘한 심리전을 펴기도 했다. 북한은 또 선원들이 언젠가는 남한으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까지도 치밀하게 계산한듯 하다.그 때를 대비해 선원들에게 북한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융숭한 대접을 한 것으로 보인다.북한측은 이들을 처음 3개월동안 억류했던 남포에서도 융숭한 대접을 했고 또한 평양과 원산·묘향산등 「대외 선전용 장소」를 보여주기도 했다.귀환당시 선원들은 북한의 일반인들에게는 대단히 귀한 옷인 양복차림에 점퍼와 여행가방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26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한 직후 북한쪽을 향해 『남포만세,평양만세』등을 외치며 두팔을 치켜올려 보는이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7개월여에 걸친 협박과 회유,그리고 처절한 세뇌의 강도를 그대로 나타내주는 장면이었다. 송환과정에서도 북한은 일방적인 선전술을 이용했다.지난 22일 별안간 방송을 통해 송환사실을 일방적으로 알렸다.판문점에 상주하는 우리측 연락관에게는 송환절차와 월경루트를 알리지 않았다.유엔사 정전위측에 월경루트만을 일방통보했을 뿐이다.북한이 판문점 송환을 선택한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선전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또 북에서 남으로 판문점을 일방통행하는 것을 관례화함으로써 정전체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그러한 암시의 배후에는 미국과의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그들의 상투적인 주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긴장속 분계선서 북 보도진에 포즈/우성호 선원 귀환 이모저모

    ◎“이 은혜 잊지 않겠다” 북측에 작별인사/“살이서 떤난 사람이” 유골 붙잡고 오열 ○…북한측은 우성호 선원들을 송환하기 직전인 26일 하오 3시56분 신흥광씨(37)등 사망한 선원 3명의 유골을 든 인도관계자들을 먼저 판문점 군사정전위 본회의실 근처로 내보내 송환에 대비. 이어 하오 3시58분 박재열씨(44)등 생존선원 5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판문점 북측지역인 판문각계단을 걸어내려오기 시작. 이들은 군사분계선을 넘기전 북측관계자들로부터 무언가 귀띔을 받은뒤 들고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일제히 북측을 향해 돌아서 북측 보도진과 배웅나온 관계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기도. 이어 북측을 향해 『남포엄마만세!』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 일부선원은 『저희를 아는 모든 분들 안녕히 계십시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남북회담사무국 전방사무소에 설치된 임시분향소에 대기중이던 유족들은 하오 4시20분쯤 유골이 도착하지 일제히 오열. 유족들은 흰보자기에 싸인 유골들을 보자 제대로분향도 못한채 유골을 부둥켜안고 이름을 외치기도. 우성호 피격 당시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심재경씨의 누나 영희씨는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이렇게 죽어서 돌아왔느냐』며 말을 잇지못했다. 북한에서 조사를 받다 병사한 것으로 보도된 선원 이길룡씨 유족들은 『평소 그렇게 건강했는데 병사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망연자실한 표정. 선원 박재열씨는 가족들에게 『다시 고향에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도 『(북측이) 고향에서 설이라도 지낼 수 있도록 하기위해 돌려 보내준 것 같다』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 선원들은 『처음엔 남포의 어느 여관에선가 3개월동안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원산 송도원 휴양소로 옮겨 줄곧 지내다 마지막 일주일은 평양에서 지냈다』며 『가혹행위등 고생은 없었으며 식사나 잠자리도 괜찮았다』고 설명. ○…이날 판문점을 거쳐 송환된 우성호 선원 5명과 유해 3구는 하오 5시45분쯤 경찰차량의 선도를 받으며 서울 종로구 평동 서울적십자병원에 도착. 선장 김부곤씨(34) 등 생환자 5명은 상기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린뒤 병원로비에서 기다리던 가족들과 약 1분간의 포옹으로 상봉의 기쁨을 대신하고 입원실로 직행. 이들은 『살아 돌아와 기쁘다』면서 『지난 22일 고향으로 가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정말 고향땅을 밟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기쁨을 표시. ○…심재경(35),신흥광(37),이일용씨(59)의 유해가 안치된 영안실에는 유가족 20여명의 통곡소리만이 흘러나올 뿐 생환자들이 도착한 로비의 들뜬 분위기와 극명한 대조. 전남 여수에서 상경한 심씨의 형 태욱씨(39)는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된 자신을 위해 결혼도 안한 채 외항선을 타며 가족을 이끈 동생의 죽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선장 김부곤씨 회견/북여관서 조사받아… 가혹행위 없었다 북한에 억류된지 7개월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우성호 선장 김부곤씨(34)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밖 남쪽에 위치한 남북대화사무국 전방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랍경위와 북한에서의 생활 등에 관해 설명했다. ­나포경위는. ▲항해미숙으로 북한영해를 침범했다. ­도주했나. ▲항해중 앞을 분간하지 못했다.북한경비정이 갑자기 나타났다.그래서 도주하기 시작했다.경비정이 총을 쏘며 정지명령을 내렸으나 계속 도주하다 잡혔다. ­억류기간중 대우는.가혹행위는 없었나. ▲구타등 가혹행위는 없었다.식사도 괜찮았고 여관에 죽 머물러 있었다.처음 한달간은 선원들이 분리되어 조사받았다.조사기관이나 조사원들 이름은 모르겠다.한달이 지난뒤 두명이 같이 있게 해주었다. ­지난 9월25일 북한방송에 출연한 것은 강압에 의한 것인가. ▲북한당국이 (남한이)우리를 헐뜯는다고 해서 시킨대로 한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을때 「감사합니다」라고 한 것은 시켜서 한 일인가. ▲아니다.북측이 대우를 잘해 주어서 스스로 한 것이다. ­북한체류중 방문한 곳은. ▲남포·평양·원산·묘향산에 갔었다. ▷86우성호피랍 일지◁ △5·27 16:00=제85·86 우성호 산동반도앞 해상에서 중국어업지도선에 피랍 △5·29 15:00=제86우성호 벌금고지서 갖고 인천을 향해 출발 △5·30 12:40=서해 북방한계선 북방해상서 총격 납치됨 △5·30 17:10=북한 「중앙방송」,정체불명 선박 나포 발표 △6·13=대한적십자사 송환 위한 판문점 접촉 제의 △6·15=북,판문점 접촉 거부 △6·19=베이징 1차쌀회담 송환 요청,북한 「당국 조사뒤 가능」언급 △9·20=북한 「중앙통신」송환시사.사상자 발생 시인 △9·27=베이징 3차쌀회담 송환합의 못봐 △12·22=「중앙통신」,26일 판문점 통한 송환 발표 △12·26=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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