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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10년후 타이완에 영향력 행사”

    “中, 10년후 타이완에 영향력 행사”

    “중국은 10년 정도 후면 타이완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과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가는 과정에서 중국은 이를 위해 타이완에 작은 양보를 할 자세도 돼 있다.” 크리스토퍼 맥낼리 미국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AST-WEST CENTER) 연구원은 ‘동북아시아 저널리스트 대화’ 포럼의 초청 강연에서 중국과 타이완의 ‘양안 관계’는 상호의존을 더 심화시켜 나가면서 당분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음은 ‘거대 중국과 양안 관계’란 강연 및 일문일답 내용. ▶마잉주(馬英九) 총통 당선 이후 양안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타이완에서 가장 투자 능력이 크고 부유한 계층에 속하는 100만명가량이 상하이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 살고 있다. 마 총통은 타이완 증권시장에 중국의 거대 국영 기업 등을 유입·상장시켜, 증시를 활성화시키고 경제에 윤기를 돌게 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통신, 통행, 화물 직항 등 ‘삼통(三通)’ 가운데 타이완 경제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화물 직항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자, 디자인, 자본 등 타이완의 강점과 중국의 노동력 결합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국 등) 경쟁국들을 위협할 것이다. ▶양안간 우호 분위기는 계속될까. -경제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마 총통은 부상하는 중국과 좋은 관계를 통해서 경제 살리기에 추진력을 더해 가겠다는 전략이다. 천수이볜 전 총통의 독립노선을 비판하면서 친중국정책을 펴고 있는 마잉주의 얼굴을 세워주기 위해 중국도 노력하고 있다. 타이완과 국교를 갖고 있는 일부 나라들이 타이완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이 이 국가들을 만류하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의 고위급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치적 돌파구가 열릴 수 있나. -앞으로 2∼3년 동안 양안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적다. 양측 다 그럴 필요를 많이 느끼지 않는다. 후진타오 주석도 내리막길을 달리는 경제, 빈부격차·지역격차로 인한 불안정, 확산되는 농민 등 불만세력의 시위 등 올림픽 이후 국내적인 도전과 현안에 직면해 있다.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다. 반면 “타이완을 팔아 먹으려 한다.”는 비난을 독립파로부터 받고 있는 마 총통 경우도 무리해서 베이징에 가거나 정치적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마 총통 임기말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타이완의 다음 대선을 위해 마잉주와 중국 공산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가능성은 적지 않다. 타이완 독립 분위기의 확산을 경계하고 대륙측과 좋은 관계를 원하는 국민당 후보가 계속 집권하고 대륙과의 교류협력 확대를 위해 중국측이 양보할 수도 있다. 중국처럼 일당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통치되는 체제에서는 큰 이익을 위해 전술적으로 기꺼이 작은 양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우호적인 타이완 정권의 재창출이란 점에서 마 총통 임기말 전격적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없지 않다. 호놀룰루(미 하와이주) 이석우 국제전문기자 jun88@seoul.co.kr
  • [한가위 공연] 고궁 뮤지컬에서 가족극까지 입맛 따라 골라보세요

    [한가위 공연] 고궁 뮤지컬에서 가족극까지 입맛 따라 골라보세요

    한가위 선물치고는 매정하게 짧은 3일간의 연휴다. 귀향·귀경길 걱정에 고향방문을 뒤로 미뤘다면 모처럼 공연장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좋을 뮤지컬, 아이와 보면 유익할 연극, 연인 또는 맘맞는 친구와 함께하면 더욱 유쾌해질 무대를 소개한다. ●부모님과 함께 휘영청 달밝은 고궁 야외무대에서 즐기는 공연은 어떤 기분일까. 고궁뮤지컬을 표방한 대장금이 그 답이다. 드라마 ‘대장금’에 충실했던 초연 당시의 버전과 달리 이번 작품은 공연 장소인 경희궁의 장점을 살려 웅장하면서 함축적인 합창극 형태의 뮤지컬로 재탄생했다.30일까지 월∼토 8시. 일요일은 쉰다.1544-1555. 연극 잘자요, 엄마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또 다른 방식인 자살을 엄마에게 설득시키려는 딸과 그런 딸을 끝내 이해해야만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절제된 감성으로 표현했다. 나문희, 손숙, 서주희, 황정민 등 연기파 여배우들의 열연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11월2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02)766-6007. ●자녀와 함께 아동·청소년연극의 보증 수표인 학전과 극단 연우가 손잡은 대장만세는 버림받은 아이들의 성장통을 동물 세상에 빗대 따뜻하게 그린 가족극이다. 음악극적인 요소와 그림자극이 더해져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10월12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 만 4세 이상.(02)763-8233. 퓨전 국악극 마법의 동물원도 눈여겨볼 만하다. 마법에 걸린 동물 친구를 구하기 위해 환상의 세계로 떠나는 두 친구의 신비한 모험담을 통해 환경오염 문제 등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11월2일까지 창조콘서트홀1관.(02)747-7001. 드로잉쇼는 국내 최초의 미술 공연이다. 무대 전체를 화폭 삼아 손으로 그린 작품들이 마법처럼 눈앞에서 펼쳐진다. 무기한, 대학로 질러홀.24개월 이상.(02)766-7848. ●연인과 함께 눈으로만 즐기는 공연이 따분하다면 직접 무대에 참여할 수 있는 뮤지컬 제너두가 제격이다. 단 매회 30명에게만 혜택이 주어진다. 그리스 여신 키라와 예술 지망생 쏘니의 사랑 이야기가 신나는 음악이 흐르는 롤러스케이팅 무대위에 펼쳐진다.11월2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02)745-5570. 연극 39계단은 무대예술만의 고유한 장점을 극대화한 코믹스릴러 작품이다.4명의 배우가 130여개의 캐릭터를 순식간에 넘나드는 장면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경이로운 감동이다.10월1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1544-155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일왕도 야스쿠니 참배해야”

    |도쿄 박홍기특파원|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후임으로 유력한 아소 다로 자민당 간사장이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일왕도 참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소 간사장은 이나다 도모미 자민당 의원의 야스쿠니 참배를 요청하는 정책 제언에 “외할아버지인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와 주권회복의 날인 지난 4월28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면서 “일왕도 참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소 간사장은 외무상 재직 때인 2006년 1월28일 나고야시에서 열린 공명당 의원 모임에서 “(야스쿠니 신사의) 영령은 일왕을 위해 만세라고 했지, 총리만세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왕이 참배하는 것이 최고”라며 일왕의 야스쿠니 참배를 요구, 파문을 일으켰다. hkpark@seoul.co.kr
  • 부토 남편 자르다리 파키스탄 새 대통령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53) 파키스탄인민당(PPP) 공동대표가 6일(이하 현지시간) 제11대 파키스탄 대통령에 선출됐다.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연방 상·하원과 4개 주의회 의원들이 실시한 투표 결과, 자르다리가 702표 가운데 481표를 얻어 압승했다고 밝혔다.PPP 지지자들은 승리가 굳어지자 “부토 만세”“BB(베나지르 부토)가 생환했다.”면서 환호했으며 더러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자르다리는 탄핵 압력에 굴복, 지난달 사임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9일 임기 5년의 새 대통령에 취임한다고 파르자나 라자 PPP 대변인이 말했다. 자르다리는 7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취임식에 초청했다.”며 취임 일성을 내놓았다고 DPA통신이 보도했다. 이웃이면서도 적대적이었던 두 나라가 미군 주도의 대테러 전쟁 등을 놓고 협조관계에 접어들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어서 주목된다. 자르다리는 지난해 12월 말 부토의 암살로 파키스탄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됐다. 당시 7년 동안의 망명을 끝내고 귀국한 부토는 총선 유세 도중 피살됐다. 이후 자르다리는 아들 빌라왈(19)을 부토 가문이 주도하는 PPP의 의장에 세웠고 자신은 공동의장으로 당권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지난 2월 PPP가 총선에서 승리하자, 자르다리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강화됐다. 자르다리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토의 그늘에서 이권을 챙기며 덧칠된 부패 이미지를 지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외신들은 일제히 지적했다. 그는 국책사업 등 이권에 개입, 계약액의 10%를 챙기곤 했다는 의혹으로 ‘미스터 10%’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사임한 뒤 분위기가 험악해진 테러와의 전쟁을 어떻게 돌파하느냐도 관건이다. 최근 파키스탄에선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 무장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이날 페샤와르에서는 차량 폭탄테러가 일어나 경찰 5명을 포함해 적어도 35명이 숨지고 60여명이 크게 다쳤다. 자르다리도 정국불안 때문에 대선을 앞둔 2주일 동안 유수프 라자 길라니 총리의 관사에서 선거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한가위 선물] 올 추석선물 트렌드는 ‘실속형’

    올해 추석에도 고급 선물세트와 저가형 실속세트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지만 고물가와 불경기 탓에 실속형이 과거보다 많이 나오고 잘 팔리는 게 특징이다. 백화점에서도 싼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할인점 인터넷쇼핑몰 등은 가격을 전년 수준으로 동결하거나 포장을 줄여 가격을 낮춘 실속형 선물을 선보였다. 2일 롯데·현대·신세계·갤러리아 등 주요 백화점에 따르면 10만원 안팎의 실속형 선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측은 “실속형 선물 세트로 수삼한차재료 2호(수삼 350g, 한차재료 870g)를 산지 매입에 따라 비교적 저렴한 9만원에 내놓았고, 은갈치세트(1.8㎏)와 참굴비세트(1.2㎏)도 산지 직거래로 기존보다 25% 이상 싼 10만원에 판다.”면서 “7만∼12만원대에 나온 실속형 선물세트 판매가 전년 동기보다 35%나 늘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측도 “와인의 경우 지난 추석에는 10만∼20만원대의 중·고급이 주종을 이뤘으나 올해는 5만∼10만원선이 잘나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갤러리아측도 “최근 본판매 3일간 선물세트 평균 구매단가를 조사한 결과 9만 4400원이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쇼핑몰, 할인점 등 업계는 저가 제품을 대폭 강화했다. 옥션에 따르면 추석 2주 전 잘팔리는 선물 세트는 생필품으로 조사됐다. 쌀은 전년 동기보다 50%, 밀가루와 설탕은 각각 40%나 늘었다. 이마트는 10% 가격인하 상품, 가격동결 선물세트, 초저가 선물세트 등 저가 상품 320여개 품목 380만세트를 내놓았다. 고유가 등 여파로 올 들어 가격 인상요인이 있는 상품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가격으로 만든 가격동결 선물세트는 50여품목,100만세트다. 일반 제조사 제품보다 20%가량 싼 할인점의 PB(private brand) 선물 세트도 많다. 홈플러스는 타월 세트, 황금배 세트 등 2만원 미만의 PB 선물세트를 준비했다. 가격을 낮추려고 포장을 줄인 점도 눈에 띈다. 롯데마트는 1만 9800원짜리 북한산 동고버섯 세트를 내놓으면서 용기를 없앴다. 이 선물세트는 채반을 쓰지 않고 종이박스만 사용해 비용을 5000원 가까이 줄였다. 주현진 김효섭 홍희경기자 jhj@seoul.co.kr
  • 김동길 교수 “불교 배후세력 밝혀내야” 논란

    김동길 교수 “불교 배후세력 밝혀내야” 논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범불교도 대회 등과 관련한 배후세력을 색출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 교수는 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불교 승려들의 집단 시위에 배후세력이 있는지 없는지 당국은 만전을 기하여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이어 “이런 뜻밖의 집단행동이 전통종교인 불교와 신흥종교인 기독교 사이의 유례없는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김 교수는 또 “(기독교 신자들이 반발하게 된다면)유혈 종교분쟁이 벌어지고,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는 적화통일론자들은 만세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까지 논의를 확대시켰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에 대해서는 “나는 단 한 번도 불교를 탄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면서 “불교 당국자들이 ‘가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반성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김 교수의 이 같은 글에 대해 불교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발언들이 오히려 종교간 갈등을 유발한다.”며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네티즌들은 김교수의 이 같은 발언에 “경찰력을 무리하게 행사하는 등 종교 탄압이 분명했는데 배후세력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네티즌 ‘정명’은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에 “수행자가 어디 할 일이 없어 배후세력의 말을 듣고 수행처를 떠나겠느냐.”며 “그들은 한국의 정신이고 방향타로 이들이 바르지 않았다면 불교는 2500여 년을 지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외에도 “김교수 당신 치매에 걸린 것이냐.”,“무슨 배후 세력을 색출하라고 난리를 치는가.정신이 혼미한 것 아니냐.”는 등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도 있다. 한편 최근 서경석 목사와 장경동 목사도 각각 “불교계에 대한 좋은 인상이 훼손됐다.”,“스님들은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등 불심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 겨한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추석선물 세트 판매 ‘극과 극’

    추석선물 세트 판매 ‘극과 극’

    추석 선물세트 판매전이 후끈 달아올랐다. 백화점과 호텔 업계는 고급 선물세트를 강화했다. 반면 할인점, 인터넷쇼핑몰 등은 실속형 중저가 상품을 늘렸다. ●백화점·호텔 “초(超) VIP를 잡아라” 롯데백화점은 명품특선 수(秀) 등 프리미엄 선물세트를 내놓았다. 품목 수도 210여개로 전년보다 45%나 늘렸다. 한 병(3ℓ)만 선보인 ‘돔 페리뇽 제로보암’ 샴페인의 가격은 1200만원이다. 지금까지 국내 유통업계가 내놓은 샴페인 중에선 가장 비싸다. 강남점에 있다. 아직 팔리지 않았다. 황제 굴비 세트(10마리)는 200만원. 흑곶감 명품세트(45만원), 계약어장 명품멸치(40만원), 황혜성 명인찬류(35만원), 전통한우 칡소 세트(65만원) 등도 내놓았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호두와 백화고, 곶감으로 구성된 유기농 3종 명품세트는 40만원, 친환경 연향차(茶) 세트는 98만원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유기농 1++등급 최상품 한우를 지난해 추석 때보다 40%가량 늘렸다. 모두 50마리다. 등심, 안심, 채끝 등 4㎏으로 구성된 명품 유기농 목장 한우 특호는 70만원에 내놓았다. 한 세트에 200만원이나 하는 프리미엄 참굴비(3.5㎏ㆍ10마리)는 20세트 준비했다. 세트당 120만원인 자연산 활전복(2.5㎏)도 50세트 내놓았다. 현대백화점은 ‘명가특선’,‘현대명품’ 등 프리미엄 상품을 지난해 추석 때보다 60% 늘린 40품목을 준비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명품 선물세트는 최고의 상품들로 구성했다.”고 주장했다. 현대 명품한우 매(梅) 57만원, 프리미엄 굴비세트 200만원, 명품 죽방멸치 50만원, 프리미엄 전복 매(梅) 80만원, 명품사과 배세트 24만원, 명작 곶감세트 40만원 등이 주력 상품이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이 지난 11∼28일 추석선물 사전 예약판매(비 프리미엄 제품 포함)를 한 결과 전년 동기보다 매출이 30%가량 늘었다. 호텔업계에선 고가의 상품권을 선보였다. 워커힐호텔은 올해 처음 상품권을 출시했다.100만원·200만원·300만원권 등 3가지다. 상품권에는 쿠폰북 형태로 객실 숙박권, 레스토랑 이용권, 와인 교환권 등이 들어 있다. 웨스틴조선호텔은 호텔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추석선물용으로 내놓았다.100만원·50만원·10만원권 등으로 이뤄져 있다. 프라자호텔도 호텔 내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10만원권)을 올 추석 시즌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신라호텔은 삼성플라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삼성상품권을, 롯데호텔은 롯데면세점에서도 쓸 수 있는 호텔상품권을 팔고 있다. ●할인점·인터넷쇼핑몰 ‘실속파’ 겨냥 신세계 이마트는 10% 가격 인하 상품, 가격동결 선물세트, 초저가 선물세트 등 저가 상품 320여개 품목 380만세트를 내놓았다. 지난해 5만 4800원에 판매했던 비타칼슘재배 혼합세트(배 4개+사과 6개)를 올해에는 4만 8800원에 내놓았다.2만원 이하 저가 상품 수는 108개로 지난 추석 때(59개)보다 2배가량 늘렸다. 자체 브랜드(PL)인 참치캔 선물세트(캔 9개들이)는 8900원. 롯데마트도 중저가의 실속 선물세트 비중을 지난해 추석 때보다 30%가량 늘렸다. 수산물 선물세트 중 멸치와 김 세트는 지난해 추석 때보다 물량을 대폭 늘려 모두 18만세트를 준비했다. 인터넷쇼핑몰은 한우·육우 할인 공세를 펴고 있다. 옥션은 마장동 판매자 연합인 ‘마장동 닷컴’과 함께 다음달 10일까지 한우나 국산 육우 예약판매를 진행한다.20세트 이상 주문하면 갈비 선물세트, 한우 혼합 정육세트 등을 최고 25%가량 할인해 준다.1등급 명품 한우 보신세트인 꼬리·반골 5㎏은 3만 1000원 할인된 9만 9000원에 판다. G마켓은 농협과 함께 구매한 상품이 한우가 아닐 경우 고객에게 구매 금액의 100배를 보상해 주는 ‘한우 100배 보상 캠페인’을 지난주부터 진행하고 있다. 각 도를 대표하는 토바우(충남), 참예우(전북) 등 전국 9개 농협 한우 공동브랜드 및 횡성한우 등 10개 개별 브랜드가 참여했다. 할인폭은 품목별로 다르다. 대표 상품으로는 한우지예 갈비세트1호(1등급 이상 찜갈비 2㎏)가 7만 6000원이다. 다하누몰에서는 한우의 사골·잡뼈·사태 4.6㎏으로 구성된 효도1호를 7만 2000원에 판다. 미리 예약한 고객에게는 10% 추가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유목민들의 환호… 들뜨는 초원 현지에 도착해 사흘째 되는 날 늦은 오후,갑자기 울란바타르 시내가 들썩거렸다.도심 곳곳에서는 차량이 경적을 울려대며 질주하고 있었고,그 차창 밖으로 벗은 몸통을 드러낸 청년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환호성을 토해냈다.저녁이 되자 시내 중심지에 있는 정부 청사 앞 수흐바토르 광장에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광장이다.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황톳빛 나는 수흐바토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 울란바토르와 몽골의 중심 광장이다. 그들은 손에 손에 몽골 국기를 들고 있었다.베이징 올림픽에서 몽골 전통 씨름선수 출신인 투브신바야르 나이단(24)이 유도 남자 100㎏급 결승에서 카자흐스탄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몽골 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최초의 일이라고 했다.그 분위기가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을 때의 서울 풍경과 흡사했다.방송은 종일 그 소식을 전했다.방송체계가 열악해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경기 비디오는 나중에야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나 시민들 반응은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며 자국민들의 신명을 긁어댔다. 환호작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유목정신과 버무려진 근대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국가주의의 한 모습은 심야에 대통령이 각료를 불러모아 광장의 연단에 오른 것에서도 확인됐다.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광장의 축하 집회에서는 ‘몽골 만세’라는 구호가 밤새 울려퍼졌다.도심의 건물 곳곳에 대형 몽골 국기가 내걸리고,사람들은 취한 듯 이런 분위기에 젖어 그날도,다음날도,그 다음날도 금메달 얘기를 되내이고 곱씹었다.한 시민은 금메달을 딴 몽골선수에게 족히 5억 토그르기는 주어질 것이라며 부러워했다.일종의 포상금이고 격려금인 셈이다. 하기야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소요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이들의 관심을 일거에 잠재울 금맥이 터졌으니 그 선수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했을 것인가.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탓인지 그들은 금새 그런 국가적 과제를 잊고 금메달의 환호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우리에게도 전두환 집권 초기에 ‘3S(Sports,Sex,Screen) 정책’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그 묵은 관성은 지금도 때만 되면 되살아나 국민들의 정신을 갉아댄다.일종의 심리적 마약 같은 것이다.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애쓴 선수들의 노고와는 별도로 그런 마약 같은 정치적 의도가 많은 국민들의 정서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필자만 가진 것은 아니리라. 초원의 나라를 들뜨게 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얼핏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황무지도 가만 들여다 보면 온갖 생명의 약동이 있듯 더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듯 보이는 왕년의 제국 몽골이 긴 잠을 털어내고 약동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그들은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일군 제국의 꿈을 다시 이루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런 바람은 그들의 유전자가 된 정복욕의 현대적 발현일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몽골의 엥크볼드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지금 몽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로지 말 안장에 몸을 얹은 칭기즈칸이 극동에서부터 멀리 아랍권과 서·동유럽 일대를 아우르고 위대한 승자가 되었듯 우리 몽골도 반드시 국부를 일궈 그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지금도 몽골 초원에는 양과 말,야크 무리가 끊임없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으며,사내들은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한다.그러나 그런 노마드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는 알 수 없다.옛적 몽골의 용맹스런 기마부대가 마각(馬脚)을 앞세우고 지축을 흔들며 질주해 간 길을 지금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말과 오토바이가 갖는 기능의 유사함은 놀랄 만큼 닮았다.말이 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오토바이로 달릴 수 있다.몽골 젊은이들이 구닥다리라도 오토바이를 즐기는 것은 이런 말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들의 핏속에는 말등에 생애를 얹고 거친 초원을 끝에서 끝으로 달리며 살아온 강인하고 웅혼한 기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운 안짱다리 사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그들은 바깥으로 휜 안짱다리로 어기적거리며 불안하게 걷는다.다 까닭이 있다.유목민인 그들은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고 살아왔다.그런 그들이 말을 버리고 도시로 들어와 살아도 기마의 흔적까지 청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안짱다리는 그들이 말을 몰아 초원을 내달리며 살아왔음의 지울 수 없는 유흔이다.그렇게 말과 함께 살아온 그들이 생계를 위해 다리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가 퇴행성 관절염이다.말을 버렸으니 말이 겪어야 할 다리의 노역을 고스란히 사람이 감당해야 하고,그러자니 관절염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를테면 문명이 그들에게 편의만 준 게 아니라 관절염의 고통까지 가져다준 셈이다. 사실 지금의 지리멸렬한 몽골을 보면서 옛 영화의 재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엥크볼드 총리의 말마따나 강한 희구가 또한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혹은 희망이 읽히는 것도 사실이었다.구체적인 삶의 일이야 짧은 기간 머물다 이내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원나라 멸망 이후 일패도지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혈족들을 다시 불러모아 당장 뭔가를 도모할 여력을 갖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연자원과 광물 등 지하지원,그리고 옛 영화에의 향수가 언젠가는 무한한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곳 ‘젊은 전사’들의 눈빛에서 읽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사실 몽골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비록 입성이 초라하고,용모가 꾀지지하다 해도 눈빛 만큼은 여전히 도발적이고 진취적이었다.노마드의 기질을 타고난 그들은 바깥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그들은 소득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긴다고 했다.이것 역시 유목의 한 관습이다.하기야 과거 칭키즈칸의 정복 시절,수만리 원정길에 나선 그 ‘전사’들이 무슨 재주로 제 나라 여자만을 품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하면 답은 간단한 것이었다.그로부터 자유로운 섹스의 관행이 또한 하나의 습속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울란바토르 시가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MP3를 즐겨들으며,더러는 콜라를 곁들인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그들 중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올해 스물 두살인 그의 이름은 오고바흐타였다. -학생인가. ▲울란바토르 국립대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있었는데,두달 전쯤 헤어졌다.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쪽 부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우리집은 양을 키우는 가난한 집인데 그 쪽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매우 유족한 편이다. -그런 일로 헤어져 안타깝지 않나. ▲처음엔 무척 속이 상했지만 어쩌겠나,받아들여야지.사실,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꽤 많다. -최근 몽골에서도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국내 일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그는 자국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한사코 발언을 꺼렸다.) -사실,옛 영화를 돌이켜 보면 지금의 몽골 모습은 좀 실망스럽다.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기는 어렵다.경제적 어려움은 몽골의 현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집요한 방해가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중국은 네이멍구 자치주의 독립 요구를 의식해 철저하게 우리를 견제하고 있고,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하다.사람들은 몰라도 네이멍구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언젠가는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이 중 생활 여건이 좀 나은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돼 있다.) 또 정치인들이 더 정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지금 몽골의 많은 실력자들은 부패해 있고,그래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혹시 밖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당연히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나 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그걸 바란다.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만약 갈 수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다. -그럴 이유라도 있나.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으며,나도 마찬가지다.생김이 비슷한 것도 좋고…,한 혈통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나.사실,2년 전 형이 한국 평택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몽골에 들어와 있다.형을 통해서도 한국 얘기 많이 들었다. 오고바흐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생각보다 깊고 강했다.그들은 중국을 몽골을 토막낸 분열의 조종자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도 있었다.근대 이전에 한족과 몽골족(흉노족·선비족)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투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중국은 틈만 나면 군대를 동원해 흉노족을 토벌했다.칭기즈칸 이전만 해도 흉노족은 통일된 세력을 이루지 못해 항상 중국의 한족 토벌군에게 쫓기며 살아야 했다.한족 토벌군이 한번 들이닥치면 그들의 생업은 한순간에 초토화되기 일쑤였다.그럴 때면 이들은 또다시 기약없는 유랑길에 오르곤 했다.부족 단위로 연맹체를 이뤄 살았던 이들이 막강한 한족 토벌대에 맞설 결속력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이런 몽골인들의 한은 이들이 남긴 노래에도 흔적이 남아있다.‘해가 지면 저 먼 동쪽에서 낯선 말울음 들리고 갑옷 입은 적들이 초원의 단잠을 해치러 온다….’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들은 게르를 지을 때 항상 출입구를 동쪽에 둔다.언제 한족 토벌군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동쪽을 경계하면서 살라는 의미였다.그것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면서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만큼 그들은 한족의 중국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그런 두려움은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할 때까지 계속됐다.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이런 뿌리 깊은 적대감은 중국 본토를 정복해 원제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여과없이 투영됐다. 칭기즈칸은 동서양 어느 나라를 정복해도 결코 무리한 동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너희 식으로 살라.종교든 전통이든 다 예전처럼 향유하도록 허락한다.단,나를 배반하는 것만은 용서하지 않겠다.복종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이것이 정복자 칭기즈칸의 지배방식이었다.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복속을 요구했다.몽골인들이 갖지 못한 문자 말고는 모든 것을 몽골 식으로 바꿨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륙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몽골족은 중국 정복 이후 이전의 앙심을 철저하게 되갚았다.몽골이 우리나라를 대한 것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광경이다. 그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젊은이들의 사교는 자유롭나. ▲그렇다.대학생쯤 되면 대부분 연인을 갖는다. -혼전 관계는 어떤가. ▲자유롭다.요새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다르다.부모 세대와는 그런 점에서 이해를 공유하기 어렵지만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어른들도 그런 점에서는 보기보다 개방적이다.그런 점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이 크다.이곳에서는 한국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실제로 그곳에서는 아리랑 TV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전에 동거하는 경우도 많지 않겠나. ▲당연하다.내 친구 중에도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사는 애들이 많다.개중에는 아이를 둔 친구도 있다.사실 몽골에서는 유목 특성상 결혼식이라는 의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야 그렇지 않지만….요새는 젊은이들이 그런 습속에 얽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 얘길 들으면 아직 몽골 대학에는 첨단 기술을 배우는 학과가 부족한 것 같다.한국이나 중국은 같은 기술이라도 세분화해서 가르치는데 몽골에서는 기술 분야의 경우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에서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분야를 정해 공부를 한다.그런 점 말고는 별로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역사를 자부하되 거기에 갇히지는 말자.” 그 전에 투브 아이마그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바이갈마 국립병원장은 자신이 옛 소련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고 얘기했다.이처럼 기성세대의 주류는 대부분 소련 유학파들이다.당연히 대학 교육의 주류도 소련 유학파들이었다.구미지역으로 나가 공부를 하는 부류는 대부분 나이가 젊은 신세대들이다.그들에게서 몽골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제국의 몰락 이후 한없이 추락하는 지리멸렬한 몽골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뜻밖에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였고,구닥다리 전통에 발목이 잡힌 답답한 국수주의자나 국가주의자도 아니었다.담담하게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몽골의 모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했고,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말하고 싶어했다. 오고바흐타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그는 제법 기품있고 당당한 젊은이였다.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그는 몽골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라고 정리했다.현대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전통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특히 현대문명이 몽골의 가족주의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지금 몽골의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초원을 누비던 예전의 ‘전사’가 아니었고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열린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시민’이었다.오고바흐타가 그런 몽골의 바람을 내게 보여주었다. 하기야 울타리가 없는 초원에서 살던 그들이 문명의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몽골은 우리나라와 달리 컴퓨터로 대변되는 디지털의 수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마치 전통 매듭을 엮어 늘어뜨린 것 같은 그들의 문자 ‘외가르징’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서다.이런 까닭에 그들은 지금도 몽골말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도 글은 러시아 문자를 쓴다.예전에 한자를 들여와 우리 식으로 음을 부여한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몽골 구레대학에 재학 중인 아마르자르갈(20)이라는 여학생은 “이런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그래도 사람들이 몽골말을 잊은 건 아니다.”고 말한다.그는 “정부가 지금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한 3년쯤 후면 우리 문자로 컴퓨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그들의 얼굴에서 몽골의 내일을 볼 수 있었다. 몽골 제국의 전성기는 10∼12세기였다.이 때 몽골을 이끌었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우고데이,손자 쿠빌라이칸 등은 몽골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정복사업을 완성했다.지금 몽골인들이 갖는 자부심은 여기에서 기원한다.물론 그런 자부심이 그들에게 더 이상 ‘빵’이 될 수 없으며 ‘칼’도 될 수 없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봐도 몽골인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비록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지만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도 특성이라고 할만 합니다.그것이 모욕이든 은혜든….이런 몽골 사람들을 상대로 일부 한국인들은 구차하다,못 산다,지저분하다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몸짓과 표정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런 한국인들을 보고 이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저것들이 이제와 우릴 얕잡아 본다.예전엔 우리 발밑을 기던 것들이….’라고 합니다.가난하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요.”ACC 김종구 회장의 말이다.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몽골통이다.울란바토르에만도 그와 형님,동생 하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다.몽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이런저런 인연으로 현 총리와 울란바토르 시장 등 정부 고위 관료들과도 격의없이 지내 이젠 그들과 사적인 인연도 무척 깊다고 말한다.그는 몽골인들의 기질이 사내다운 면모를 좋아하지만 의외로 정에 약하다고 정리했다. 다시 그의 말을 듣자.“사실 많은 사람들이 몽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하지만 이 나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그래서 구미 열강들이 벌써 그걸 노리고 엄청난 공세를 펴고 있기도 합니다.일본만 해도 벌써 몽골의 지하자원 지도를 만들었답니다.우리가 오불관언할 처지가 아닙니다.지금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알짜배기를 다른 나라가 다 가져간 뒤에 겉만 핥아대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되지요.우리도 몽골을 장기적인 국가전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 오르디흐(‘오르디흐’는 산을 오르다는 뜻의 몽골어이다.그는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몽골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했다.“잘은 모르지만 유럽 국가들이 우리 지하자원을 불법적으로 채굴(무단 채굴이 아니라 당초의 협정을 위반한 채굴이라는 뜻)해 가고 있으며,이걸 우리 지도자들도 알고 있다고 들었다.그러나 그 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모른다.국민들은 이런 점에서 지도자들이 좀 더 투명한 국정운영을 바라고 있다.”(사실 오르디흐의 말을 듣기 전에도 몽골 권력자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외국에 넘기면서 막대한 사익을 챙기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지를 달구던 해가 설핏 기울자 울란바토르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로 넘쳐난다.낮에는 없던 과일 노점도 서둘러 좌판을 펴고,재래시장도 아연 활기를 띤다.오가는 차량도 낮보다는 훨씬 많아진 듯 하다.시내의 한 음식점 창밖으로 내다본 울란바토르 시가지는 확실히 낮과 밤이 달랐다.더위 탓이리라.밤이면 활기를 띠는 곳이지만 중국의 도시들처럼 환락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그런 곳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지만….)도시 분위기는 그냥 수더분하고 소박했다.어둠이 내리자 나방이 다시 가로등을 에워쌌다.도심의 경직된 스카이라인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위는 노을이 조용히 잔광을 거두고 있었다.음식점 점원에게 동쪽을 물었다.그 어디에 서울이 있을 것이다.‘오랑캐 말은 북풍에 귀를 열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운운했던 무명씨의 싯귀가 떠오른다.‘바람의 땅,태양의 나라’에서 맞은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하편에 계속)
  • [인사]

    방위사업청 ◇과장급 신규임용 △합동지휘통제체계사업팀장 金顯植 한국은행 ◇실·국장 이동△금융결제국장 전한백△런던사무소장 최재현△경제교육센터 원장 임재철△부산본부장 이용호△대구경북〃 김성민△목포〃 안용성△충북〃 오만세 ◇1급 이동△기획국 전지영△총무국 유병갑△경제통계국 김영배△금융안정분석국 조성제△감사실 신동욱△광주전남본부 김현의△강원〃 이창형△경기〃 김유곤 ◇2급 이동△정책기획국 윤면식△금융경제연구원 장홍범△경제교육센터 배일상△부산본부 송태복△대구경북〃 정석조△광주전남〃 김동일△전북〃 황승호△인천본부 김종귀△경남〃 박재익△울산〃 김갑식 한화증권 △평촌 지점장 徐鍾碩△청주 〃 李東周△리스크관리팀장 金柄植 도로교통공단 △교육사업본부장 류정선
  • 하이트맥주, 온라인게임서 “독도 지킵시다”

    하이트맥주는 광복절을 기념해 온라인게임 ‘세컨드라이프’와 함께 게임 이용자를 상대로 독도수호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게임 참가자가 세컨드라이프 게임의 온라인 가상공간 내에 설치된 독도 수호선에서 ‘태극기 흔들기’,‘만세 부르기’ 등의 과제를 수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과제를 마치면 게임용 화폐(10린든달러)를 상품으로 준다. 하이트맥주는 과제 성공 1건당 50원을 적립, 참가자 이름으로 독도수호 단체에 기부하는 한편 같은 액수를 하이트맥주 이름으로 함께 전달할 계획이다. 하이트맥주는 이밖에 홈페이지에서 ‘독도 수호를 위한 결심 댓글 달기’ 이벤트를 열고 참가자를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독도 수호 티셔츠 100장을 증정한다.
  • [Metro] ‘서울 독립운동 역사 현장’ 발간

    서울시는 대한제국 시기 구국운동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126곳을 소개한 ‘서울 독립운동의 역사현장’을 14일 발간했다. 275쪽 분량이며 현재 위치가 확인된 독립운동 현장을 담았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무르며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행한 거처(현 종로구 계동 43), 독립운동가 송학선 의사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살해하려고 했던 창덕궁의 모습 등을 소개한다.또 200여명의 직공들이 3·1 만세운동을 벌인 용산인쇄소 직공 파업시위 터, 민립대학 설립을 주도한 조선교육협회 회관,6·10 만세운동을 벌인 조선학생과학연구회관 위치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의 현장을 사진과 신문자료 등으로 보여준다. 동아일보와 중외일보 창간사옥 터 등도 담겨 있다. 비매품으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 있는 시사편찬위원회 서울시 종합자료관, 국·공립도서관 등에서 열람할 수 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독립유공자 361명 광복 63주년 포상

    국가보훈처는 제63주년 광복절을 맞아 신간회 총무간사로 활약한 이춘숙(李春塾·1889∼1935)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李惠鍊·1884∼1969),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1927) 여사 등 361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에 포상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66명(독립장 2명, 애국장 59명, 애족장 105명), 건국포장 65명, 대통령표창 130명 등이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4명이고 여성은 10명이다. 이들은 오는 15일 광복절 중앙경축식장과 지방자치단체 주관 경축식장에서 훈장을 받거나 추서되며, 국외 거주자는 재외공관을 통해 본인과 유족에게 훈장이 전달된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이춘숙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 등을 오가며 임시정부 수립운동에 참여한 뒤 같은 해 4월 상하이로 망명해 1920년 4월까지 임시의정원 의원, 부의장을 지냈다. 이후 임시정부 군부차장과 학무차장 등을 역임하면서 임정의 헌법 개정, 공채발행 조례 등의 제정에 참여하고, 상하이 민단장 여운형 선생이 발기한 신한문화동맹 등에 각각 참여해 활동했다.1920년 11월 일경에 체포된 후 국내로 압송돼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출소했으며,1927년부터 1931년 5월까지 신간회 경성지회의 총무간사, 중앙집행위원, 중앙상무위원, 조사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같은 독립장이 추서된 유기석(柳基石·1907∼?) 선생은 1928년 중국 상하이에서 재중국조선인무정부주의연맹을 결성했고,1930년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1932년 이후 베이징으로 건너가 동북의용군 등의 항일단체에 가입해 톈진 일본총영사관 및 일본기선에 수류탄을 투척했다.1938년 김구 선생과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실추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난징에서 한족동맹의장 겸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 대장으로 활약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는 1909년부터 독립운동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1919년 미국 LA에서 조직된 부인친애회, 대한여자애국단에서 활동했다. 안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는 1907년 국채보상의연금을 기부하고 1926년에는 상하이 재류동포 정부경제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직접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대통령표창이 추서된 정막래(丁幕來·1899∼1976)·이소선(李小先·1900∼?) 여사는 기녀 출신으로 1919년 경남 통영군 통영면 기생조합에서 동료와 함께 기생단을 조직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돼 각각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건국훈장 독립장 柳基石(중국방면) 李春塾(임시정부) ●건국훈장 애국장 具錫圭(의병) 權能道(만주방면) 金炳鉉(만주방면) 金士極(만주방면) 金相周(만주방면) 金瑞雲(만주방면) 金錫元(의병) 金錫弘(만주방면) 金演性(의병) 金用三(만주방면) 金龍玉(만주방면) 金龍澤(만주방면) 金允涉(만주방면) 金俊元(만주방면) 金昌鉉(만주방면) 金恒龍(만주방면) 盧秉漢(인니방면) 朴基運(의병) 朴貞鍵(중국방면) 朴定勳(만주방면) 朴琮植(국내항일) 方成柱(만주방면) 裵敬鎭(국내항일) 白圭三(노령방면) 白一龍(만주방면) 徐光道(의병) 徐允峯(만주방면) 孫亮燮(인니방면) 孫正彬(만주방면) 申英七(의병) 申應奎(만주방면) 申 훤(만주방면) 吳民聲(중국방면) 李灌鎔(국내항일) 李光河(만주방면) 李相寬(만주방면) 李錫吉(의병) 李成鎬(중국방면) 李元甫(국내항일) 李泰涉(만주방면) 李赫魯(국내항일) 李鉉稷(국내항일) 李華榮(의병) 任成祐(국내항일) 鄭天和(3·1운동) 鄭泰玉(국내항일) 趙正來(국내항일) 崔敬京(만주방면) 崔文武(만주방면) 崔文鳳(노령방면) 崔聖必(의병) 崔承觀(만주방면) 韓慶錫(학생운동) 韓大弘(만주방면) 許璋煥(국내항일) 玄思桂(만주방면) 黃甲用(의병) 黃稷淵(국내항일) 黃海龍(국내항일) ●건국훈장 애족장 姜極模(만주방면) 姜明秀(3·1운동) 高圭永(국내항일) 高德鳳(만주방면) 權靑松(의병) 金敬俊(3·1운동) 金光壽(3·1운동) 金大支(3·1운동) 金東赫(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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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琪煥(국내항일) 洪思哲(3·1운동) 洪鎭玉(3.1운동) 黃乭伊(3·1운동) 黃萬模(3·1운동)
  • [굿모닝 베이징] 마오쩌둥과 셀프 누드展

    [굿모닝 베이징] 마오쩌둥과 셀프 누드展

    베이징시 서북쪽 차오양구에 위치한 ‘798예술구’는 지난 1950년대 옛 소련의 원조로 건설된 대규모 군수공장 지대다. 한때 중국의 첫 원자폭탄 부품과 인공위성 부품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80년대 들어 변화의 바람과 함께 공장들이 하나, 둘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을씨년스러운 폐공장지대로 변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가난한 예술가들이 싼 값에 이곳의 공장 창고를 빌려 작업실로 쓰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변화했다.2001년에는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인 ‘중앙미술학원’이 인근에 자리잡으면서 갤러리와 카페 등이 속속 들어섰고, 현재 서구 젊은이들이 만리장성이나 자금성보다 보고 싶어하는 베이징의 명소가 됐다. 택시에서 내려 바라본 798예술구의 풍경은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갤러리 798 스페이스’. 깔끔하게 단장된 입구에 들어서니 아치를 반으로 쪼개 놓은 듯한 건물 천장에 선명한 붉은 글씨로 쓰여진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마오 주석은 우리 마음의 붉은 태양, 마오 주석 만만세’. 마침 그 곳에선 중국의 유명 사진작가인 수용과 유나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과거 콜걸과 호스티스로 일했던 유나가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해결방안(解決方案·Solution Scheme)’이란 제목의 셀프 누드 연작. 루나는 작품설명을 통해 “중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으면서도 사회적 터부로 남아 있는 매춘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대륙을 30년 가까이 통치한 마오쩌둥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뒷얘기를 남겼지만, 공식적으로는 혁명 이후 발표한 금지령 1호 가운데 매춘을 금지시켰던 금욕적인 지도자였다. 이런 마오 주석을 찬양하는 선전 구호와 매춘을 주제로 한 예술 사진이 하나의 프레임 속에 교차하는 이 공간은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사회의 단편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듯했다. 글 사진 베이징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Beijing 2008] 금빛 물살에 폭염 씻어

    올림픽이 개막되자마자 전해진 최민호와 박태환의 잇따른 금메달 소식에 국민들은 한여름 무더위와 경기침체의 우울함을 모처럼 말끔히 씻어냈다. 전국민적인 축제의 주말이었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 아파트에서는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특히 박태환이 수영에서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순간에는 일요일 아침임에도 서울지역 TV 중계 시청률은 42.1%를 기록하면서 전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10일 남자 자유형 400m에서 박태환이 금메달을 목에 걸자 시민들은 기쁨에 북받친 감회들을 털어놓았다. 시민들은 불모지에서 ‘하면 된다.’는 정신을 보여준 박태환을 칭찬했고,2·3등에 그친 중국과 미국선수를 전광판에서 가리키면서 “경제·외교 등 분야도 분발하라. 하면 된다.”고 외쳤다. 아이들은 “나도 마린보이가 되겠다.”면서 ‘박태환 키즈’의 탄생을 예고했다. ●“불모지에서 캔 금… TV 시청률 42%” 박태환의 모교인 단국대 죽전캠퍼스 본관 야외로비에서는 동창·동문 200여명이 아침 9시부터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응원을 펼쳤다. 이들은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자 일제히 만세를 외치며 교직원·학생·시민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교직원 이원진(39)씨는 “비교 기록만 보고 금메달을 따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환상적으로 우승했다. 취업난에 고생하는 학우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선사했다.”면서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학과동기인 박대용(19·체육교육과 1학년)씨는 “친구들과 목이 쉬어라 응원했는데, 전 국민이 하나가 되도록 축제의 장을 만들어준 태환이가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한강시민공원 잠실지구 자연학습장에서 열린 ‘한강 횡단 수영 대회’에 참가한 2600여명 시민들은 오후 1시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 획득에 대한 기쁨을 나누고 다른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기 위해 2008개의 태극기를 나눠 들고 한강을 횡단했다. 바다수영동호회 수미사(수영에 미친 사람들) 회원 20여명은 가로 12m, 세로 8m 대형 태극기를 들고 한강 공원 잠실 지구에서 뚝섬 지구까지 1.53㎞ 구간을 헤엄쳐 건넜다. 행사를 마련한 배홍모 본부장은 “진보, 보수로 갈린 민심을 수영으로 하나가 되게 했다는 데 금메달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박태환 키즈 “나도 형 처럼 될래요” 서울 한강시민공원 망원수영장에는 3000여명 시민이 운집해 수영장 안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중심으로 응원전을 펼쳤다. 피켓을 든 여고생들과 부모의 손을 잡고 아이들은 200m 지점에서 박태환이 선두로 나서자 열렬히 환호했다. 박태환이 1위로 골인하자 수영장에는 축포가 작렬했고, 은색 종이가 수영장 안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쏟아졌다. 일부 여고생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6살 아들과 응원한 유환선(40·성남시 분당구)씨는 “경기침체, 불황으로 시름하는 서민들에게 오랜만에 행복한 웃음을 찾아준 값진 선물”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현초등학교 임준혁(10)군은 “형은 초등학생들의 우상이에요.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태환이 형같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린보이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서울 홍현초등학교 윤동주(10)양은 “초등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서 감동받았어요.”라고 울먹였다. ●“중국·미국도 못 따라올 실력 통쾌했다” 서울시 중랑구 D정육점을 운영하는 김인준(53)씨는 “경기가 바닥인데다 미국산 쇠고기까지 들어와서 장사가 더 안 되는데, 이런 불황 속에 전 국민을 기쁘게 하는 소식이 전해져서 기분 좋다.”면서 “가뭄에 단비 같은 통쾌한 질주였다.”고 말했다. 김민주(33·서울 은평구 역촌동)씨는 “중화민족주의의 본고장인 베이징 한복판에서 세계 초강국인 미국과 유럽 선수들을 눌렀다는 데서 통쾌함이 더 크다. 우리나라 정부, 정치권도 독도, 쇠고기 협상 등의 미숙함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제무대에서 성숙한 역량을 발휘해 국민들에게 기쁨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김승훈기자 kdlrudwn@seoul.co.kr
  • [Beijing 2008] “김천 악바리가 일 냈다”

    “동네 악바리가 큰일을 해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안겨준 최민호 선수의 고향인 경북 김천에서는 이틀째 흥분과 감동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최 선수의 모암동 집에서는 최 선수의 어릴적 별명인 ‘악바리’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10일 아버지 최수원(56)씨와 어머니 최정분(58)씨의 모암동 집에는 하루종일 축하객이 들락거리고, 축하 전화가 쏟아졌다. 일부 축하객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최 선수 부모가 다니는 황금동 성당을 비롯한 김천 시내 곳곳에는 ‘축 금메달 획득’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이날 저녁 모암동사무소에서는 주민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축하 잔치가 펼쳐졌다. 이 자리에는 박보생 김천시장 등 각종 단체장들이 나와 전날에 이어 밤늦도록 금메달 획득 순간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날 최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 가족들은 김천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주민 등 100여명과 함께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최 선수가 오스트리아의 파이셔 선수를 한판승으로 가볍게 물리치자 가족과 주민들은 손에 태극기를 든 채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등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때 폭죽이 잇따라 터졌고 시내 곳곳에서는 ‘와’하는 함성과 ‘최민호 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민호가 평소에 ‘유도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끝장을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북받치는 감정을 참았다. 어머니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 형편에 선수생활 뒷받침도 못했다.“면서 연신 “미안하고, 참 장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천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佛, 햄버거·샌드위치 비만세 ‘만지작’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 정부가 햄버거·샌드위치 등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 등에 ‘비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예산부·건강부가 지난달 말에 작성한 비공개 보고서를 경제 전문 레제코가 단독 보도하자 일간 르 피가로, 주간 렉스프레스 등이 일제히 이 소식을 전했다. 예산부 재무감독국과 건강부 사회문제감독국이 공동 작성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너무 기름지거나 달거나 짜서 비만을 유발하는 ‘스낵 음식’에 19.6%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들 식품이나 음료수에 부과되는 세금은 5.5%다. 보고서는 이른바 ‘비만세’를 부과하면 국민들의 비만을 예방할 수 있고 질병보험료 재원도 늘릴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올해 질병보험의 재원은 410만유로(약 65억원)로 만성적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또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인 6200만명 가운데 41.6%가 비만이나 과체중 상태에 있다. 비만세를 부과하면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9월 말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도 설탕이 많이 든 음료수에 1%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야당의 반발로 철회됐다. 또 이런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시민들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비만인들에 대한 차별과 싸우는 ‘알레그로 포르티시모’협회의 실비 방크문 사무총장은 “비만 유발 음식에 세금을 부과하면 이 음식들이 더 인기를 끌 수 있다.”면서 “이 음식들을 소비하지 못하게 억제할 게 아니라 제대로 소비하는 방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vielee@seoul.co.kr
  • “1등 할끼다”… 태극전사들의 출사표

    “1등 할끼다”… 태극전사들의 출사표

    “영광은 노력하는 자만의 것이다.” “국민의 응원에 멋진 경기로 보답하겠다.”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태극전사들이 개막을 눈 앞에 두고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통해 경기에 임하는 자신들의 각오를 다졌다.사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라온 그들의 각오를 살펴본다. ●‘난 잘할수 있어’파 양궁 임동현 선수 “베이징에서..만세를 할 수 있도록!!”,펜싱 남현희 선수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을 때!” ,복싱 김정주 선수 “영광은 노력하는 자만의 것이다.” 등 자신에 대한 다짐을 하며 자기최면을 걸었다. 특히 태권도 차동민 선수는 “‘그대의 발이 심히 지칠 때¸링 가운데로 발을 끌고 가서라도 1회전만 더 싸워라.”는 글로 굳건한 각오를 내비쳤다. ●‘하나님 믿습니다’파 축구대표팀의 기성용 선수는 “주님 정말 간절합니다.후회 없도록 꼭”이라고 기도했고,김동진 선수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구약성서 시편 46편 10절 문구를 인용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사격의 김찬미 선수는 “저희 하나님이 좀 ‘짱’이시거든요^^ㅋㅋㅋ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로 신세대 특유의 발랄함을 과시했다. ●‘팬들 감사해요’파 팬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통해 선전을 다짐하는 선수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농구 신정자 선수는 “처음 나가는 올림픽 후회 없이 열심히 하고 돌아올 것”이라며 “끝까지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야구 장원삼 선수는 “머(뭐) 있습니꺼∼∼1등할끼다.”라고 구수한 사투리로 배짱 있는 플레이를 다짐했다. 또 지난 5일이 생일이었던 탁구 유승민 선수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생일을 축하해주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 뒤 “여러분들의 응원에 멋진 경기로 보답하겠다.”고 밝혀,탁구 최강자인 중국 왕하오 선수의 벽을 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말보다 행동- 단답파 긴 글이 아닌 짧은 문장을 남김으로써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준 선수들도 있었다. 리듬체조 신수지(베이징 아자아자~!^^),체조 김대은(승리는 습관이다),사격 김유연(금메달! 必!) 하키 강문권(메달로 보답하겠습니다♥) ●박태환과 김연아 베이징올림픽 대표 아이콘인 수영 박태환 선수는 미니홈피에 별다른 인사말을 써놓지는 않았다.하지만 피겨 김연아 선수와 일촌평을 나누며 ‘파이팅’을 다짐했다. 박태환이 ’나 낼(내일) 출국해~!!‘라고 써놓자,김연아는 ’그렇구나.다 잘 될거라 믿어!! ㅋㅋ화이링^^‘이라며 선전을 당부했다. 태극전사들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다짐과 인사에 대해 네티즌들은 “베이징에서도 우리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화답하며 선전을 기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대를 말하다] 민주투쟁의 장 → 축제·소통의 마당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대를 말하다] 민주투쟁의 장 → 축제·소통의 마당

    ■ 광장 “인간은 광장을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중략)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최인훈의 ‘광장’ 중에서 우리 민족과 사회를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공간을 고르라면 단연 ‘광장’을 꼽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함께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어깨를 맞대고 푸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섭리라고 믿는 우리에게 광장은 곧 삶이 진행되는 ‘무대’였다. 이에 일찍이 작가 최인훈은 그의 대표작 ‘광장’에서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광장에 대한 기억은 세대별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20세기는 실로 ‘광장의 세기’로 남아 있다.20세기의 광장에는 독립을 위한, 민주화를 위한 결사항쟁의 외침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20세기는 독립·민주화의 광장 “라디오에서 해방됐다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지. 죄다 뛰어나가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어. 왜정 때 군인으로 끌려간 영감 기다리던 나도 영등포역 앞에 나갔는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지.” 80살 김부식 할머니는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민족과 함께 다시 살아난 광장을 기억했다. 그는 “모르는 사람들과 얼싸안고 거리 곳곳을 누비는데도 실감이 안 났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김기영(43)씨는 광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 오른다.1987년의 민주항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해 6월 우리는 모두가 동지였고, 가는 곳은 모두 민주화의 광장이었고, 우리가 치른 것은 성전이었다.”라면서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광장에 모였던 백만 군중은 항쟁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민주화 사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새천년 들어 광장에는 자긍심이 깃든 우렁찬 함성소리가 넘쳐났다.“지금도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하면 심장이 뛰어요. 취업준비에 한창이던 대학교 4학년 때인데 우리와 이탈리아전이 기말고사 전날이었어요. 짜릿한 역전승에 밤새 놀다가 다음날 오전 전공시험에 지각했는데, 저처럼 늦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함께 그곳에 있었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죠.” 28살 이지영씨가 광장과 함께 떠올린 기억이다. 이씨는 “함께했던 기성세대에게는 ‘레드 콤플렉스’ 없이 마음껏 붉은 광장을 바라본 첫 기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광장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2002년 붉은악마… 2008년 촛불 당시 추모집회에 참석했던 김지은(37·여)씨는 “동생 같은 아이들이 처참하게 숨졌는데 공식적으로 항의도 못하는 현실에 자존심이 상했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거리로 나갔다.”면서 “‘진혼 촛불’로 가득찬 광장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엄숙하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듬해 광장은 다시금 촛불로 가득 찼다.2004년 3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촉발된 촛불집회였다. 2008년의 광장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계기로 온라인 광장에서 시작된 논의는 그대로 컴퓨터 화면 밖으로 뛰쳐나와 현실 세계의 광장으로 이어졌다. 박민서(15)양은 “이전에도 크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가는 것을 봤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나도 시청 앞 광장에 나갔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이제는 로컬리티시대]지역공동체 운동 현황·진단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이제는 로컬리티시대]지역공동체 운동 현황·진단

    1990년대 중반 이후 공동육아, 대안학교 등 다양한 지역공동체 운동이 확산되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지역공동체 운동은 여전히 실험 단계다. 성공적으로 정착한 지역공동체도 많지만 온전한 모양새를 갖추기도 전에 문을 닫은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역공동체가 각종 지역 의제 해결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역공동체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생활정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 세상’ 만드는 풀뿌리 민주주의 시발점 현장 활동가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적 차원에서 만든 ‘관주도형 지역공동체’를 제외한 순수 주민주도형 지역 공동체는 전국적으로 200곳이 넘는다. 대표적인 곳은 성미산공동체(서울 마포)와 변산생활공동체(전북 부안)등 마을 공동체, 한밭레츠(대전)와 과천품앗이(경기 과천) 등 지역화폐 공동체, 부안 등용마을(전북 부안)등 생태공동체, 풀무학교(충남 홍성)와 간디학교(경남 산청)같은 교육공동체 등이 있다. ●시민대표 뽑아 지방선거 후보 내고 정책 제안 지역공동체는 회원들에게 생활속에서 정치를 체험하는 민주주의 학습장이나 다름없다. 서울 마포지역 풀뿌리생활정치 공동체인 ‘마포연대’ 상임이사 이경란씨는 “과거 공동체 운동에는 ‘내’가 없었고 사회나 소수자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행복한 세상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면서 “사회문제와 생활 문제가 분리된 것이 아니며 지역공동체 운동을 통해 지역을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역공동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좋은 시발점으로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성미산 후보를 내기도 했고,2004년에는 후보들에게 정책 제안도 했다.”면서 “생협 대리인을 도의원에 당선시킨 일본 가나가와현 생협처럼 우리도 시민대표를 뽑아 구의원과 시의원을 낼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고 했다. ●품앗이 모임·지역화폐 활용도 제고 노력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안시민발전소장 이현민씨는 “무한 경쟁시대로 치닫는 도시적 삶은 다음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현대 사회에서 지역공동체의 의미는 조금 불편하고 가난해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한밭레츠’ 두루지기 이수정씨는 “지역화폐 운동은 먹거리 생협과 의료 생협, 공동육아 등 복합적인 품앗이 공동체”라고 소개한 뒤,“공동체를 활성화하고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품앗이 만찬’ 등 주기적인 회원 모임과 지역화폐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려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동육아로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의 교사 정현영씨는 “1996년 공동 육아를 위해 공동체에 가입했는데 핵가족 사회에서 내 아이가 어른을 공경하고 신뢰하며, 예의 바르게 크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대안 학교가 한국 사회의 주류 교육이 아니라 불안한 점이 없지 않지만 올바른 교육이 있고, 좋은 이웃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공동체 생활의 장·단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동체는 누가 ‘로드맵’을 그려 주는 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가 그리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현석 김민희기자 hyun68@seoul.co.kr ■외국 유명 공동체 3곳 노동자생협 뭉쳐 스페인 매출 7위 대기업으로 외국의 공동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생긴 물질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활발해졌다. 외국 공동체의 다양한 사례와 현황은 국제생태공동체 네트워크(http:///gen.ecovillage.org)나 계획공동체 종합웹사이트(www.ic.org)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비교적 잘 알려진 외국의 공동체 세 곳을 소개한다. ●스페인 몬드라곤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피레네산맥 끝자락에 있는 몬드라곤은 한때 쇠락한 광산촌이었다. 그러나 2006년 현재 몬드라곤은 스페인내 연간 매출 7위, 일자리 창출규모로는 3위를 차지하는 대기업이다. 몬드라곤 그룹(Mondragon Corporation Cooperative·MCC)의 시작은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와 마을 주민 수십명이 MCC의 모태가 된 ‘울고르(ULGOR)’라는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지역주민들이 모은 1100만세타(약 36만달러)를 자본금으로 설립했다. 곧 스페인내 100대 기업으로 떠오른 울고르의 성공을 기반으로 아라사테, 코프레시, 에델란 등 다른 생산협동조합이 속속 생겨났고 이들은 모두 MCC란 이름 아래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MCC는 해외 23개 공장을 포함해 모두 123개 공장에서 6만여명을 고용하는 굴지의 대기업이다. MCC의 성공 이유는 기업이 주민들의 삶과 일체화된 데 있다. 몬드라곤 인구 2만 5000여명 중 노동가능 인구는 1만 3000여명 정도인데, 이 중 3분의2가량인 8300여명이 MCC의 조합원이다. 이들은 몬드라곤 그룹 산하의 금융기관인 ‘카하 라보랄(노동인민금고)’에서 대출받고 산하 소비협동조합인 ‘에로스키’에서 각종 생활용품을 산다. 또 이들 자녀의 상당수는 MCC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몬드라곤 기술대학을 졸업한 뒤 MCC에 취직한다. ●밴쿠버의 ‘100마일 먹거리 사회’ 자기 지역의 먹거리를 소비하자는 ‘로컬 푸드’운동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노력의 하나다. 그러나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이 운동이 지역사회 경제를 촉진시키고, 저소득층을 돕는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공공텃밭(Community Garden)을 통해서다. 공공텃밭은 버려진 조각땅에 텃밭을 일구는 운동이다. 나만의 뒤뜰, 줄여서 ‘모비(MOBY·My Own Back Yard)’라고도 한다. 누구든지 1년에 20달러만 내면 땅을 얻을 수 있다.2006년 기준으로 밴쿠버에는 총 18곳에 950개의 공공텃밭이 조성돼 있다. 조사에 따르면 밴쿠버 시민의 44%가 자신의 입으로 들어갈 먹거리를 텃밭에서 직접 가꿔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밴쿠버식량정책협의회는 밴쿠버 올림픽이 열리는 2010년 1월1일까지 총 3000개의 텃밭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2006년 밴쿠버 시의회는 이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해 시 소유의 공원, 공터 등을 공공텃밭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공공텃밭 운동을 통해 밴쿠버식량정책협의회는 ‘뒤뜰 나누기(Sharing Backyard)’운동처럼 직접 기른 먹을거리를 저소득층에 기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독일 뮌헨의 여성주거공동체 공동체의 본질은 ‘모여살기’다. 독립은 좋지만 고립은 싫은 사람들이 연대의식을 혈연삼아 사는 것이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다. 독일 뮌헨의 옛 공항부지에는 49가구가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이 있다.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과정도 다른 다양한 여성들이 그곳에 모여 살고 있다. 독신 한 가구의 방은 45∼60㎡(14∼18평), 공동 공간인 부엌 딸린 회의실과 마당, 창고 등이 따로 있다. 출발은 불가능한 공상 같았다. 집 없는 설움 없이, 연령과 국적을 떠나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아가기.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 2000년부터 240명의 여성이 각각 150만원씩 갹출해 조합을 꾸리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7년만에 집이 완성됐다. 출자금 3000만∼5000만원, 월세 40만∼60만원 정도를 내면 누구나 살 수 있다. 집은 조합의 공동 재산이므로 소유권은 없고, 이사갈 때는 조합원 권리를 반납하고 출자금을 돌려받게 된다. 이곳에 사는 50여명의 여성들은 현대사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결핍을 메우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공동육아 프로그램이나 실업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취업·창업 돕기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들은 지난해 바이에른주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주거단지’상을 받기도 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YS “폭력 변질 촛불 버릇 고쳐야”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최근 폭력화된 촛불집회에 대해 “완전히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YS는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 회복을 주문했다.YS는 30일 상도동 자택에서 청와대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맹형규 정무수석의 신임 인사를 받는 자리에서 “대통령의 5년 임기는 헌법에 의해 보장돼 있는데 ‘그만 두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으며 이같이 말했다. 강경진압을 하고 있는 정부를 두둔한 발언이다.YS는 촛불집회와 관련,“지금 무법천지, 무정부 상태로 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 기강을 유지하는 것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질서를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한 책무”라면서 “현재처럼 무력하게 하는 것은 책임을 다한 게 아니며 너무 긴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임 시절이던 1996년 한총련 사태를 떠올리며 YS는 “그때 경찰을 동원해 강력히 소탕하다시피 해 사실상 한총련이 없어졌다.”고 한 뒤 “내 임기가 끝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똑같은 짓을 했지만 경찰이 완전히 무력하게 됐다.”고 했다.YS는 시위대 중 일부가 ‘김정일 만세’라는 문구를 쓴 것을 언급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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