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만리장성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외환시장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이별 통보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결혼사진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71
  • ‘이동준 극장골’… 김학범호 만리장성 깼다

    ‘이동준 극장골’… 김학범호 만리장성 깼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이 9일(한국시간) 태국 송클라의 틴술라논 스타디움에서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조별리그 C조 1차전 상대인 중국을 1-0으로 꺽고 조1위에 안착했다. 대표팀은 경기 종료 1분전인 후반 추가시간 48분에 터진 이동준(가운데·23)의 극장골로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향한 대장정에 나섰다. 아시아에 걸린 도쿄올림픽 티켓은 총 4장으로 개최국 일본을 제외한 상위 3위만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다. 사진은 결승골을 넣고 환호하는 이동준. 송클라(태국) 연합뉴스
  • [여기는 중국] “복 들어온대서”…만리장성 벽돌 훔치다 조난

    [여기는 중국] “복 들어온대서”…만리장성 벽돌 훔치다 조난

    20대 중국 남성 두 명이 만리장성의 벽돌을 훔치려다 눈 덮인 절벽에서 조난을 당했다. 베이징완바오 등 현지 언론의 지난달 30일 보도에 따르면 각각 20세, 26세로 알려진 남성 두 명은 지난달 26일, 만리장성의 벽돌을 집안에 놓으면 풍수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이를 구하기 위해 베이징 화로우 지역을 가로지르는 만리장성인 무톈위창청으로 향했다. 이들은 관광객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 만리장성은 ‘공략’하기로 모의했고, 이날 밤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와 컴컴한 어둠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만리장성을 다 오르지도 못한 채 결국 50m 높이의 절벽 가장자리에 갇히고 만 것. 목숨에 위협을 느낀 이들은 구조를 요청했고, 절벽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갇힌 지 4시간이 지나서야 구조될 수 있었다. 구조대에 따르면 당시 이들 남성들은 손에 빈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쓰레기를 줍기 위해 봉투를 들고 절벽을 올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문제의 남성들이 만리장성 무톈위창청 인근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한 뒤, 식당 직원들에게 ‘집안의 풍수를 위해 만리장성 벽돌 몇 개를 훔치러 왔다’고 털어놨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두 남성은 결국 경찰서에서 정식 조사를 받았으나, 만리장성의 벽돌을 훔치는 것은 불법적이며 매우 위험하다는 경고 조치만 받은 뒤 귀가했다. 만리장성의 벽돌이 중국인들의 미신 탓에 훼손되는 일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만리장성의 벽돌로 집을 짓거나 벽돌을 집 안에 두면 풍수상 좋다고 여기는 중국인들이 많은 탓에 끊임없이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당국의 자료에 따르면 만리장성에서 벽돌로 이뤄진 구간은 10% 정도이며, 해당 구간은 수년간 자연침식뿐만 아니라 도난으로 훼손됐다. 당국은 만리장성의 벽돌을 훔치다 적발될 경우 상당한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적발이 쉽지 않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중국과도 비겼다… 벨 데뷔전 ‘합격점’

    남자부선 일본이 중국 2-1 꺾고 첫 승 한국 여자축구의 새 사령탑인 콜린 벨(잉글랜드) 감독이 데뷔전에서 ‘난적’ 중국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며 무난하게 출발했다. 벨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10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챔피언십 여자부 1차전에서 중국과 0-0으로 비겼다. 한국은 비록 승리를 따내진 못했지만 최근 4년여 이어진 중국전 4연패 사슬을 끊어내며 자신감을 챙겼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0위인 한국은 16위 중국과의 상대 전적에서 4승6무27패가 됐다. 강호를 만나면 뒤로 물러서곤 했던 한국은 이날은 다른 모습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강한 전방 압박으로 공세를 펼쳤다. 슈팅 5-4(유효슈팅 3-1), 코너킥 4-0, 프리킥 11-8이 말해 주듯 전혀 밀리지 않았다. 세트피스를 도맡은 미드필더 장창(서울시청)이 날카로웠다. 경기 내내 프리킥과 침투 패스로 중국 골문을 위협했다. 특히 전반 27분 페널티아크 오른쪽 부근에서 왼발로 쏘아 올린 프리킥이 골문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했으나 별명이 ‘만리장성’인 상대 골키퍼 펭쉬멍의 선방에 막혔다. 한국은 후반 2분 교체 투입된 중국 공격수 양리의 오른발 슛이 왼쪽 골대를 맞히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벨 감독은 후반 막판 손화연(창녕WFC), 여민지(수원도시공사), 장창 대신 강채림, 정설빈, 이소담(이상 인천현대제철)을 차례로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으나 중국 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2005년 원년 대회 우승 이후 14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은 오는 15일 대만과 2차전을 치른다. 경기 내내 선 채로 선수들을 독려했던 벨 감독은 “행복해요”라고 한국말로 데뷔전 소감의 운을 뗀 뒤 “중립적인 관객이 봤을 땐 우리가 나은 팀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흡족해했다. 또 “한국엔 어리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질 수 있게 자신감을 심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남자부에서는 일본이 중국을 2-1로 누르고 첫 승을 신고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육·해·공 트라이포트… 무역 비즈니스 공항 날갯짓

    육·해·공 트라이포트… 무역 비즈니스 공항 날갯짓

    송하진 전북지사는 2일 “새만금 국제공항은 새만금 내부 개발 속도를 더욱 가속화하고 새만금지구를 동북아의 경제 중심지로 발돋움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송 지사는 “새만금의 공항·항만·철도 등 육·해·공 복합물류시스템인 트라이포트(TriPort) 밑그림이 완공돼 국제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면서 “타 공항과 차별화된 글로벌 무역 비즈니스 공항으로 특화시키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획재정부가 새만금 국제공항 관련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원안대로 의결했다. “정부가 새만금 국제공항의 사업성을 인정하고 건설과 관련된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지었음을 뜻한다. 이는 공항 건설에 필요한 국비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만금의 육·해·공 복합물류시스템 구축 밑그림이 완성됐다.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시장과 인접한 새만금의 입지 요건을 고려했을 때 전방위적 운송체계는 그 자체로 큰 경쟁력이 된다. 또 친환경자동차, 재생에너지 등 새만금 신성장 엔진의 출력을 높이는 기폭제가 된다. 관광, 금융, 농생명, 식품산업 등 전북 주요 산업의 동반 성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도는 새만금 트라이포트 구축으로 8537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6500여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공항 건설과 함께 승수효과를 높일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내년에 동서도로가 완공돼 새만금 내부 진입이 가능해진다. 2022년에는 남북도로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된다. 문제는 속도다. 이를 위해 정부에 조속한 인프라 구축을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 앞으로 예산 확보와 사업 추진 동력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 -다른 지역 공항과의 차별화 전략은. “공항과 항만, 철도 구축으로 수송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점이다. 새만금 내부 개발 사업과 연계해 인근 공항과 차별화된 무역비즈니스 공항으로 특화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겠다. 차질 없이 추진되고 경쟁력을 확보하면 새만금 공항의 미래는 달라진다.” -앞으로 기대하는 새만금의 모습은. “새만금이 새로운 문명을 상징하는 도시가 됐으면 한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파리의 에펠탑처럼 문명사에 길이 남을 성공작이나 자랑거리가 됐으면 하는 소망이다.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이 있는 미래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한국 여자농구, 5년 만에 만리장성 돌파

    한국 여자농구가 2014년 이후 5년 만에 중국에 짜릿한 1점 차 재역전승을 거두며 2020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 전망을 밝혔다. 이문규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4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프레 퀄리파잉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중국을 81-80으로 제압했다. 한국과 중국, 뉴질랜드, 필리핀이 출전한 이번 대회의 상위 두 팀이 내년 2월 열리는 최종 예선 출전권을 확보한다. 국제농구연맹(FIBA) 랭킹 18위인 한국은 16일 필리핀(50위)과 2차전을, 17일 뉴질랜드(35위)와 마지막 경기를 벌인다. 한국 여자농구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70-64로 승리한 뒤 2015년과 2017년, 201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중국과 네 차례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남북 단일팀이 출전한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도 패했다. 2014년 승리도 중국이 주전 선수들을 세계선수권대회에 보내 당시 아시안게임에는 2군 위주로 출전한 덕분이었다. 한국은 8위 중국을 맞아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고 앞서갔다. 3쿼터를 51-41로 마쳤지만 4쿼터 개시 1분 10초 만에 7실점하며 순식간에 중국과 접전 양상이 펼쳐졌다. 경기 종료 2분 50초를 남기고 77-77 동점이 됐고 종료 1분전 3점슛을 허용하며 77-80 역전까지 당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연달아 두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뒤집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中의 속살 ‘후통’서 건져 올린 망각의 역사

    中의 속살 ‘후통’서 건져 올린 망각의 역사

    자금성을 중심으로 3000여개가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중국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 후통(胡同). 1980년대부터 추진된 개혁개방 정책으로 재개발되면서 옛 모습을 대부분 잃었지만 원(元)대 이후 800년간 이어져 온 중국 역사의 수장고이자 삶의 터전이다. 자금성이며 만리장성, 천안문 같은 걸출한 명소에 가려져 건성건성 보고 지나치는 관광지쯤으로 여겨지는 곳.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는 그 먼지에 뒤덮인 수장고를 열어젖혀 역사 속에 숨었던 공간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복원해 놓은 노작(勞作)이다. 저자는 2015년부터 3년 6개월간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던 현 서울신문 사회부장 이창구씨. ‘유서 깊은 후통에서 중국의 다른 면을 보게 될 것’이라는 지인의 권유로 매주 토요일 자전거를 타고 후통 곳곳을 누볐다. 그 발굴 작업(?)을 통해 건져 올린 망각과 방치의 역사며 인물들의 면면이 방대하고 흥미롭다. 맨 앞에 배치한 ‘독립운동가의 거리’에선 우리 독립운동사의 숨은 명장면이 숱하다. 이육사 선생이 순국한 둥창 후통 28호, 김원봉의 의열단이 암약했던 와이자오부제 후통, 신채호 선생의 활동상이 혁혁한 난뤄구샹과 진스팡제…. 특히 허우구러우위안 후통의 이회영 선생 집이 독립투사의 아지트였음이 밝혀져 놀랍다. 매일 적게는 10명, 많게는 40명이 찾아왔다는 증언을 보면 이회영의 집은 독립운동가들의 집합처이자 망명객들의 사랑방, 독립운동 본부였음에 틀림없다. 발굴 작업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깃든 이색적인 거리로 이어진다. 전통 담뱃대 가게며 골동품 가게, 고서점, 표구방이 즐비한 옌다이셰제, 공묘와 국자감이 있는 궈쯔젠제….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후통은 중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공간이다. 타 후통에선 늘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는 루쉰의 연민과 동심 가득한 얼굴을 찾아내고, 화 후통에서는 청을 멸망시킨 장군 차이어가 위안스카이에 의해 가택 연금당했던 고통을 읽는다. 신문기자답게 순례의 자전거 페달은 베이징의 진보 신문 징바오를 창간해 ‘중국 기자정신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사오피아오핑(邵萍)의 혼이 깃든 웨이란 후통 30호에서 멈춘다. 5·4운동의 발기인이었던 사오피아오핑은 결국 총살당했다고 한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징바오의 옛 건물 앞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언론의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내부 모순과 부패에 스스로 쓰러질 가능성이 크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시위대에 총 겨눈 ‘민머리 홍콩경찰’ 중국서는 영웅대접

    시위대에 총 겨눈 ‘민머리 홍콩경찰’ 중국서는 영웅대접

    지난 9월 4일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폐 이후 잦아드는 듯 했던 홍콩 시위가 복면 금지법 시행으로 다시 격화되고 있다. 특히 1일과 4일 시위에 참가한 10대 2명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잇따라 중상을 입으면서 시위대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강경 진압에 앞장선 홍콩 경찰들이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특히 홍콩 경무처 기동부대 소속 경장 라우 첵케이(46, 중국명 류저지·劉澤基)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라우는 지난 7월 30일 콰이청 경찰서 앞에서 시위대에게 산탄총을 겨눈 민머리 경찰관이다. 그 사건으로 홍콩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됐지만 중국에서는 스타덤에 올랐다.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중국 정부가 그를 앞세워 국민 결속에 나설 정도다. 중국은 중추절 다음날 국영 CCTV 채널1의 저녁 메인 뉴스에 라우 경장을 등장시켰다. 이날 방송에서 라우 경장은 “우리나라(중국)가 계속 번영하기를 바란다”, "홍콩인은 중국인”이라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나는 중국인이다”라는 소개글이 걸려있는 그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페이지에는 벌써 79만5605명(7일 현재)의 팔로워가 모였다. ‘대머리 라우 선생’(Bald Lau Sir)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일부 여성 지지자는 결혼 요청까지 하고 있다.이런 중국인들의 반응은 지난 5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와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도 주목했다. 텔레그래프는 중국 여성들이 “근육질 몸매가 매우 멋있다, 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다”라며 라우 경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우 경장은 지난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행사에도 초청됐다. 동료 9명과 함께 홍콩 경찰 대표로 베이징을 방문한 라우 경장은 “개인적인 영광을 넘어 홍콩 경찰 전체의 영광”이라면서 “만리장성을 걷고, 북경오리를 먹으며 군용기와 전차, 미사일 등 중국의 놀라운 과업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톈안먼 광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열병식을 참관 후 그가 실제로 만리장성을 방문하자 지지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라우 경장 역시 이런 관심에 감사를 표하며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너무 관대하다”거나 “폭도들 때문에 동료들이 중상을 입었다”라는 글로 대놓고 중국의 입장을 대변했다. 심지어 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학생인데, 내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밝히고, “중국 본토 학생들은 자신이 중국인임을 이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하나의 중국’을 강조했다.홍콩 경찰의 실탄 사격으로 10대 시위자 2명이 누워 있는 상황에서 강경진압에 앞장선 홍콩 경찰의 중국 내 인기는 양측의 입장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공공집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전면 금지하는 ‘복면 금지법’을 발표한 홍콩 정부는 식민통치 시절의 긴급법을 발동, 지난 5일 0시를 기해 시행에 나섰다. 이후 시위대의 거센 반발과 야당의 비난이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일본은 생문화, 중국은 불문화, 한국은?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일본은 생문화, 중국은 불문화, 한국은?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왜 그랬지, 늘 와이(why)를 생각한다. ‘왜’라는 물음을 머리에 이고 산다. 그렇지 않으면 내면의 의미와 이유를 모른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한 나라의 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일본만 가면 변비로 고생을 한다. ‘왜 그럴까’ 바로 먹는 것에 있음을 알았다. 일본은 날것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일본을 생문화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생선회(스시)다. 소나 돼지처럼 네 발 달린 동물을 먹기 시작한 것은 명치유신 이후다. 일본 음식은 달고 연해 속된 말로 별로 씹을 것이 없다. 일본의 된장국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건더기가 없어 손에 들고 호록호록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호록호록 소리가 나야만 잘 먹었다는 표시라 한다. 우리네 국을 일본처럼 마셔 버리면 건더기가 목구멍에 걸리고 만다. 우리의 밥상은 밥보다 반찬이 몇 배 많다. 일본은 밥에 비례해 반찬이 훨씬 적다. 자연 건더기도 없고 부드럽고, 씹을 것도 적다 보니 일본인이 덧니가 많고 변비가 많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일본의 치의학과 항문의학이 세계적인 것도 우연이 아닌 듯싶다. 중국은 어떤가. 중국집 주방을 보면 금방 안다. 음식은 거의가 높은 온도에 순간적으로 데치거나 볶거나 튀겨 먹는다. 그래서 중국을 불문화라 한다. 한국은 어떤가. 삶거나, 찌거나, 볶거나 혹은 절이고 날로 먹기도 한다. 너무 다양해 특색이 없다. 김치찌개나 비빔밥처럼 여러 가지를 섞어야 제맛이 난다. 그래서 한국은 비빔밥 문화라 한다. 삼국의 문화 차이는 집들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일본은 날것을 주로 먹듯이 집들의 재료도 하나같이 생나무다. 곧은 생나무를 쓰다 보니 집도 깔끔하고 반듯하다. 일식집을 연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은 탑도 거의 나무로 쌓은 목탑이다. 중국의 집들은 거의가 불로 구운 벽돌이다. 만리장성도 벽돌로 쌓았다. 탑도 구운 벽돌로 쌓은 전탑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우리의 집들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나무, 돌, 벽돌, 흙 등 두루 쓴다. 탑을 봐도 목탑, 석탑, 전탑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한중일 세 나라 집들은 처마에서도 한눈에 차이가 난다. 일본 집 지붕은 칼로 자른 듯 경사가 심해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눈이 쌓여 무너짐을 방지하고, 빗물이 빨리 흘러내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반면 중국의 지붕들은 처마가 너무 치켜 올라가 방정맞은 느낌을 준다. 우리는 어떤가. 추녀의 양끝이 부채살이나 버선코처럼 살짝 올라가 기와와 흙의 무게를 상쇄시키다. 마치 학이 사뿐히 나는 기분을 자아낸다. 벽체를 보자. 중국은 벽돌로 집을 지어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없다. 일본도 벽체가 나무라 비바람에도 잘 견딘다. 굳이 처마를 우리처럼 길게 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기와집이건, 초가집이건 벽체를 나무나 수수깡으로 얽어매고 흙으로 발라 비바람에 취약하다. 그래서 중국, 일본과 달리 우리는 지붕 처마를 길게 뺀 것이다. 일본 집은 기둥이나 대들보가 반듯한 데 비해 우리는 굽은 경우가 더 많다. 이를 두고 자연스럽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곧은 나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굽은 곳을 잘라 내다 보면 쓸 재목이 별로 없다. 하는 수 없이 굽은 나무를 쓴 것이다. 그래서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우리는 문종이를 창살 안에다 붙인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반대로 문 바깥에다 붙인다. 안에다 붙이면 지저분한 것을 가려 깨끗하다. 하지만 비바람으로 쉽게 훼손된다. 반면 밖에 붙이면 창살이 오래간다. 한중일 삼국의 문화가 차이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마디로 기후와 풍토가 다르기 때문이다.
  • 조국 ‘끝장회견’에 엇갈린 여야…이인영 “의혹 해소” vs 나경원 “변명과 감성팔이”

    조국 ‘끝장회견’에 엇갈린 여야…이인영 “의혹 해소” vs 나경원 “변명과 감성팔이”

    민주당 “적지 않은 의혹 해소돼”한국당 “거짓과 선동의 만리장성”한국당 오늘 오후 반박 간담회 개최청문회 열자는 주장에 당청은 ‘곤란’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8시간 20분에 걸친 ‘끝장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직접 설명한 것에 대해 여야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소상한 해명을 통해 의혹의 상당수가 해소됐다고 봤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장황한 변명과 감성팔이에 불과했다며 평가절하했다. 한국당은 지금이라도 인사청문회를 열어 조 후보자를 검증해야 한다고 별렀지만 민주당은 무리한 요구라고 거절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맞섰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조 후보자는 무제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많은 의혹을 소상히 해명했다”며 “적지 않은 의혹이 해소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 후보자는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허탈감에 대해서도 진지한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했으며 후보자 주변인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성실하게 소명했다”면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권력기관 개혁에 대한 단호한 의지도 확인했다”고 말했다.반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조 후보자는 기자들의 짤막한 질문에 장황한 변명·기만·감성팔이만 했다”며 “청문회장과 검찰 조사실에서 완전히 무너질 거짓과 선동의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는 “조 후보자는 법으로 정해진 인사청문회 제도가 있는데도 감히 추악한 발걸음으로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능멸했다”며 “위법과 특권, 반칙의 삶을 살아온 조 후보자가 장관으로 가겠다는 길마저 편법과 특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후보자는 대국민 미디어 사기극을 하는 데 언론을 이용했다. 오만한 권력을 앞세워 언론을 업신여겼다”며 “국민이 그렇게 우습나. 국민이 그렇게 만만한가”라고 지적했다. 한국당은 오늘 오후 2시 조 후보자의 기자 회견 답변을 반박하는 대국민 언론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인영 원내대표는 “보나 마나 뻔하겠지만 인내를 하면서 지켜보겠다”면서 “국회의 의무인 인사 검증은 뒷전이고 정치공세만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한국당은 여전히 조 후보자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 원내대표는 “아직 법정 기한이 남아 있고, 청문회 절차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열흘의 시간을 허용하고 있다”며 “앞으로라도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 기한을 넉넉하게 주는 게 최소한 양심 있는 대통령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협상이 될 수 있는 재송부 기한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국회는 대통령의 재송부 요청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곧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구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며칠을 송부 시한으로 줄지 모르겠지만 송부 시한을 막연히 길게 줄 수도 없는 곤란함이 있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日외무상, 한국 취재진에 “일본 카메라네”

    日외무상, 한국 취재진에 “일본 카메라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한일 외교장관 회담 직전 취재진에게 다가와 “캐논? 니콘?”이라고 묻는 영상이 화제가 되자 “바보같은 소리는 그만두라”는 반응을 보였다. 고노 외무상은 21일 베이징 구베이타운에서 열린 회담 장소에 먼저 도착해 강경화 외교장관을 기다리다 일본인 기자들과 일본 외무성 공식 사진기자에게 접근해 “그게 뭐에요? 캐논? 이 카메라는 니콘? 캐논이 둘이네요”라며 직접 카메라 상표를 확인하고 다녔다. 이를 두고 한국 취재진에선 “묻지도 않았는데 일본 카메라 브랜드를 언급한 것은 한국 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의식한 발언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노 외무상은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취재진이 들고 있던 카메라가 무거워보여 잡담 도중 물어봤던 것이다”라며 해명했다. 고노 외무상은 “강 장관을 기다리는 동안 만리장성을 함께 올라간 일본 기자들과 잡담했는데 그 안에 한국 기자들도 섞여 있었을 뿐”이라며 “애초에 한국어를 못하니까 누가 말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바보같은 말은 하지 말은 하지 말자”라고 썼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가왕가능” 트루디 극찬..이대은 노래 실력 어느 정도길래..

    “가왕가능” 트루디 극찬..이대은 노래 실력 어느 정도길래..

    가수 트루디가 연인인 야구선수 이대은의 노래 실력을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야구선수 이대은은 앞서 2018 kt wiz 팬페스티벌 신인선수 장기자랑에서 ‘지금 이순간’을 열창한 바 있다. 훈훈한 외모를 자랑하며 무대에 올라선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지금 이순간’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대은 무대를 접한 팬들은 “가수 아닌가요?”, “실제로 듣고 싶다”, “불공평하네..야구 실력에, 외모에, 노래 실력까지..”, “이대은 화이팅”, “잘한다”, “노래 잘하네”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앞서 트루디는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이대은이 노래를 진짜 잘한다. 나오면 가왕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복면가왕’ 출연 준비를 하면서 이대은에게 많이 배웠다. 선생님으로서 ‘노래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더라. ‘복면가왕’에 한번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MC 김성주는 “공을 그렇게 잘 던지는데 노래도 잘하냐”면서 “(출연을 위해) 다리 좀 놔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트루디는 ‘만리장성’이란 이름으로 ‘복면가왕’ 무대에 올랐다. 1라운드에서 ‘방탄모래성’에 밀려 탈락한 트루디는 그룹 ‘블랙핑크’의 ‘불장난’을 부르며 가면을 벗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복면가왕’ 트루디, “이대은 노래 진짜 잘해, 가왕도 가능”

    ‘복면가왕’ 트루디, “이대은 노래 진짜 잘해, 가왕도 가능”

    ‘복면가왕’ 래퍼 트루디가 연인 이대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8일 래퍼 트루디는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출연해 1라운드에서 ‘가왕 어디까지 가봤니? 가왕석까지 만리장성’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라 ‘방탄모래성’과 대결을 펼쳤다. 이날 트루디는 티샤니의 ‘경고’를 열창했으며, 윤미래와 비슷한 음색을 뽐내 청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방탄모래성’에 밀려 아쉽게 탈락한 트루디는 2라운드 솔로 무대에서 블랙핑크의 ‘불장난’을 부르며 정체를 공개했다. MC 김성주는 트루디를 소개하며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 프로야구 이대은 선수와 공개 연애 중이다”며 트루디의 연인 이대은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이대은도 노래를 잘 하느냐”라는 물음에 트루디는 “진짜 잘한다. 가왕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남자친구의 노래 실력을 칭찬했다. 이어 “이대은이 ‘복면가왕’ 출연에도 도움을 줬나”라는 질문에는 “많이 배웠다. 선생님으로서 ‘노래는 이렇게 해야한다’라고 하더라. (복면가왕에) 한 번 나와야 한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김성주 역시 “지금 TV로 보고 계실텐데, 지금은 시즌 중이니까 끝나고 연락 드리겠다”며 러브콜을 보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이대은은 프로야구 KT위즈 소속 투수로 활약 중이다. 트루디와 이대은은 지난해 11월 열애 사실을 인정하고, 공개 연인으로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세계의 전통 무술 고수들 ‘충주 대회전’… “무예도 미래 먹거리”

    세계의 전통 무술 고수들 ‘충주 대회전’… “무예도 미래 먹거리”

    중국 허난성 덩펑시 쑹산에 있는 소림사는 중국의 상징으로 불리는 만리장성만큼 유명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 등 역사적 가치도 한몫했지만 쿵후로 불리는 무술이 없었다면 ‘소림사의 오늘’은 상상하기 힘들다. 강렬한 괴성과 호쾌한 동작으로 적을 물리치는 소림사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급성장하면서 소림사는 이제 기업 못지않은 경제효과를 내고 있다. 연간 300만명이 방문하는 소림사는 무술공연, 브랜드마케팅, 제약, 식품업 등 수익사업으로 1000억원대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예도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소림사가 보여 준다. 527년 소림사에서 수행을 시작한 달마 대사가 승려들의 강한 육체를 위해 만든 무술이 이 같은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다 줄지 누가 알았을까.우리나라에 소림사의 경쟁자가 탄생할지 모른다. 무예에 미친 자치단체가 있어서다. 세계 최대 무예경기대회를 여는 충북도다. 도는 다음달 30일부터 9월 6일까지 8일간 충주 일원에서 2019 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을 연다. 2016년 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에 이어 두 번째다. 중앙정부가 나서야 가능할 법한 세계대회를 작은 광역단체가 두 번이나 개최할 정도로 열정만큼은 대단하다. 올해 대회는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됐다. 개최지부터 남다르다. 충주는 전통무예 택견의 고장이다. 초대 택견 예능보유자인 송암 신한승(1928~1987) 선생은 경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충주로 이사 왔다. 그는 이후 택견의 원형을 정리하고 1973년 충주 용산동에 택견 최초의 전수관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한국전통택견회가 발족됐고 충주시는 이들을 위해 택견전수관을 지었다. 충주가 택견의 본고장이 되자 당시 이시종 충주시장은 1998년 충주세계무술축제를 개최했다. 이재영 충주무예마스터십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무예마스터십은 충주무술축제 이후 20여년간 충북이 일궈 온 무예사업의 결실”이라며 “충북이 마스터십을 기반으로 다양한 무예산업을 선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참가 임원과 선수단은 태권도, 유도, 무에타이, 사바테 등 20개 종목에서 100여개국, 4000여명에 달한다. 청주마스터십보다 선수단이 2배 가까이 늘었다. 조직위는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 태권도시범단 초청도 추진 중이다. 경기종목은 펜칵실랏, 카바디 등 4개 종목이 추가됐다. 펜칵실랏은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선보인 동남아 전통 무술이다. 한 여인이 강에서 빨래하다 호랑이와 큰 매가 싸우는 것을 보고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인도 전통무예인 카바디는 인도 고대 서사시 ‘바가바드기타’에 등장하는 두 부족 간 전쟁에서 유래됐다. 7명의 적과 싸우다 전사한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운동으로 알려졌다. 대회의 국제적 위상도 달라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함께 양대 스포츠기구로 인정받는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가 공식후원한다. 무예마스터십의 가치와 철학, 대회의 지속가능성 등을 인정받은 것이다. 국제스포츠계 유력단체들의 주요 인사들도 대거 참여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명예대회장을 맡은 가운데 IOC를 대표해 위자이칭 부회장이 충주를 방문한다. GAISF에서는 라파엘 키울리 회장과 스테판 폭스 부회장이 온다.종목별 국제연맹을 통해 선발된 선수들이 참가해 경기 수준도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사바테에서는 세계랭킹 1위인 무함마드 디아비(말리)와 2018년 세계선수권 2위인 마리아 무사(알제리), 삼보에서는 세계 1위인 로르 푸르니에(프랑스)와 3위인 빅토르 레스코(라트비아)가 참가한다. 크라쉬에서는 2017∼2019년 유럽선수권 1위인 일리아디스 미르마니스(그리스)와 2019 국제크라쉬그랑프리 1위인 나자로프 카나자르(타지키스탄), 주짓수에서는 2018아시안게임 국가대표인 성기라(한국)와 세계랭킹 1위인 아말 무자히드(벨기에)가 출전한다. 선수 개인별 순위를 정하는 점수인 랭킹포인트 시스템도 적용된다. 이번 대회 성적이 선수들 세계랭킹을 정하는 데 반영되는 것이다. 현재 랭킹포인트 부여가 확정된 종목은 태권도·주짓수·무에타이·사바테·펜칵실랏 등 9개다. 클린대회를 위한 도핑검사도 국제표준 규정에 따라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행된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파견된 검사관이 도핑검사를 주관한다. 도핑관리상황실은 충주체육관에 마련되고, 충주체육관 등 5개 경기장에는 도핑관리실이 설치된다. 부대행사도 즐길 만하다. 다음달 29일부터 9월 2일까지 ‘무예 영화의 역사를 바꾸다’라는 주제로 국제무예액션영화제가 진행된다. 25개국 50여편의 영화가 상업 및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부문으로 나눠 선보인다. 영화는 충주 시네큐와 청주CGV 서문점에서 무료 상영된다. 한국 액션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정창화 감독은 특별회고전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1953년 ‘최후의 유혹’으로 데뷔한 정 감독은 25년 감독 생활 동안 30편의 액션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홍콩 최대 영화사 쇼브러더스에 스카우트돼 동양 액션영화를 최초로 서구에 소개한 감독이다. 강창식 도 체육진흥팀장은 “고향이 충북 진천인 정 감독은 1978년 ‘죽음의 다섯손가락’이란 영화로 미국에 진출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적도 있다”며 “충주세계무술공원에서 열리는 영화제 개막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무예산업박람회도 열린다. 국내 5개 업체가 참여해 태권도 용품, 도복, 대련용품 등을 전시판매할 예정이다. 유네스코 무예시범단과 비보이와 밴드 공연, 게릴라이벤트 등도 펼쳐진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모바일 픽!] “이런 경험, 한번쯤 있잖아요”…최악의 여행 모아보니

    [모바일 픽!] “이런 경험, 한번쯤 있잖아요”…최악의 여행 모아보니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해외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실패해야 했던 황당한 여행담을 담은 사진이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온라인 미디어인 ‘보어드판다’에 올라온 사진들은 부푼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 여행객들이 예상치 못한 현지 상황에 처한 ‘웃픈’ 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한 남성은 마치 벽처럼 보이는 희뿌연 배경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사실 이 곳은 사진찍기 좋은 핫스팟으로 알려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골드게이트브리지)다. 이 여행객이 방문한 하필 그날, 짙은 안개에 휩싸인 금문교에 선 여행객은 “결국 나는 금문교를 보고야 말았다”며 농담으로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야 했다.페루의 유명 관광지이자 역사적 가치가 높은 페루 마추픽추를 방문했던 여행객의 사진도 있다. 이 여행객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몇 시간 동안 힘들게 하이킹을 했지만, 역시 궂은 날씨 탓에 희뿌연 안개와 리마 한 마리만을 본 채 마추픽추에서 내려와야 했다고 적었다.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갔다가 낭패 아닌 낭패를 본 여행객도 있다. 한 서양 여행객은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만리장성을 찾았다. 여행객이 몰린 탓에 몇 시간 동안 줄을 서 간신히 만리장성에 올랐지만, 전망을 보기에는 지나치게 흐린 날씨였다. 언뜻 보면 해당 장소가 중국인지 아닌지 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정도다. 같은 장소를 방문한 또 다른 서양 여행객은 “13시간 동안 2만 1196㎞를 날아가 본 것이 이 장면”이라며 역시 안개에 휩싸인 만리장성에서의 기념사진을 공개했다.이밖에도 반 고흐의 유명 작품을 보기 위해 입장료를 내고 박물관에 갔다가, 뒤늦게 해당 그림이 다른 박물관에 대여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행객, 유명 교회와 박물관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독일 비텐부르크를 찾았다가 공사 중이라는 표지판에 발길을 돌려야 한 여행객의 인증샷 등은 깨알같은 웃음을 남겼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숨은 진주…태풍의 섬…神의 계단

    숨은 진주…태풍의 섬…神의 계단

    ●슈퍼태풍 연간 10번 통과하는 ‘바타네스’ 바타네스는 필리핀 최북단 루손섬과 대만 사이에 위치한 1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제도다. 필리핀보다 대만 쪽에 더 가깝다. ‘필리핀의 땅끝’이라 불리는 곳으로 필리핀 사람들도 가보고 싶어 하는 오지다. 바타네스의 별명은 ‘태풍의 섬’이다. 강한 태풍이 자주 지나가서 이렇게 불린다. 필리핀 태풍 관측 기준으로 슈퍼 태풍에 해당하는 초강력 태풍이 일년에 열 차례 이상 통과한다. 바타네스는 2000년대 초반까지 자급자족을 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물물교환을 하며 살았고 시장이 생긴 건 2005년이다. 바타네스가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태풍 때문이었다. 바타네스는 태평양 연안에서 불어오는 태풍의 길목에 놓여 있다. 바타네스 주변은 수많은 태풍이 만들어지는 진원지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은 시속 240㎞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어야 태풍이라 부른다. 섬에는 ‘레이더 투콘’이라 불리는 레이더 기지가 있다. 미군이 대형 파라볼라 안테나를 세우려 했지만 강한 태풍이 불어 레이더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고 지금은 건물 잔해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태풍이 많다 보니 건축양식도 독특하다. 태풍에 견디기에 알맞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바닥을 깊게 파고 벽을 쌓아 올린다. 석회암으로 지어진 돌집은 벽의 두께가 1m에 달한다. 집 지하실에는 태풍이 불 때를 대비해 가축과 식량을 저장하고 사람이 대피할 수 있는 방공호가 만들어져 있다. 문과 창문이 모두 태풍이 오는 방향을 등지고 난 것도 이채롭다. 바타네스에서는 아주 독특한 고기잡이 방식을 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서 기다란 장대 두 개를 든 남자가 파도가 밀려 올 때마다 파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물을 던지는 것이었다. 태풍이 올 때는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작은 그물 낚시로 조업을 대신한다고 한다. 이를 ‘플라잉 네트’라고 부르는데, 그물을 V자 모양으로 만들어 바다를 향해 힘껏 던진 다음 재빨리 걷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걸로 작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쥐노래미 같은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 튀겨 먹는다.잦은 태풍으로 조업을 자주 나갈 수 없는 바타네스의 어부들은 생선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주로 자연 건조를 한다. 우리네 황태처럼 해풍에 말려 보관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건조하는 물고기는 ‘도라도’라 불리는 만새기다. 말린 고기는 1년 이상 두고 먹을 수 있다. 말린 도라도의 맛은 노가리와 비슷하다. 도라도와 함께 먹어야 하는 요리는 얌이다. 한국의 참마와 비슷하다. 바타네스 사람들은 쌀 대신 얌을 주식으로 먹는다. 거센 해풍 때문에 쌀농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얌은 고구마하고 감자를 합친 맛인데, 얌과 함께 도라도를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빴던 것인지 바타네스에서 태풍과 맞닥뜨렸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슈퍼 타이푼”이라며 창문을 꼭꼭 걸어잠갔다. 태풍은 무시무시했다. 밤새 하늘이 울부짖는 듯했다.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사놓은 맥주를 홀짝이며 이 작은 섬이 태풍에 쓸려 나가지 않기를 비는 것뿐이었다. 아침이 되자 태풍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골목은 태풍이 지나간 흔적으로 어지러웠다. 나뭇잎과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몸통이 부러져 있는 나무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태연했다. 모닝빵을 파는 아이는 ‘빵 사세요’를 외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녔고 빗자루를 든 아낙들이 태연하게 어지러운 골목을 쓸고 있었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주변의 나무전봇대는 벼락을 맞아 활활 불에 타고 있었는데 말이다. 바타네스 사람들에게는 태풍도 일상이었던 것이다.●스쿠버다이빙의 성지 ‘보홀’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약 700㎞ 떨어진 보홀. ‘필리핀의 보석’ ‘필리핀의 숨겨진 진주’ 등 별명은 많지만 보홀을 가장 잘 설명하는 별명은 ‘아시아의 홍해’다. 그만큼 다이빙 포인트로 유명하다. 다이버들 사이에선 ‘보홀은 몰라도 보홀 바다는 알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수많은 다이빙 포인트 가운데 팡라오섬 남서쪽에 위치한 발라카삭섬이 가장 뛰어나다. 팡라오섬에서 필리핀 전통배 방카로 약 30분 정도만 나가면 된다. 섬 주변 바다는 수심이 낮지만 조금만 나아가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깊어지는 절벽 지형이다. 물이 맑아 가시거리가 좋은 데다 파도가 잔잔해 수많은 다이버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스쿠버다이빙을 꼭 경험해 보길 권한다. 물 밖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숨이 멎을 듯 아름답다. 울긋불긋 아름다움을 뽐내는 산호 군락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는 풍경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커다란 바다거북이 등을 툭 치며 지나가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고래상어도 만날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이 아니더라도, 스노클링만 경험하는 것으로도 보홀 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보홀섬 중앙에 자리한 초콜릿힐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 경주의 왕릉처럼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봉우리가 끝도 없이 솟아 있다. 이런 언덕들이 무려 1700여개로 추정된다. 사실 필리핀을 찾기 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필리핀 하면 세부와 보라카이가 먼저 떠올랐고, 이 두 여행지는 누구나 한 번쯤 찾은 흔한 여행지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타네스와 보홀에 머문 시간 동안 필리핀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곳은 낙원에 가까운 곳이 아니라 진정한 낙원이었다. 아직도 바타네스와 보홀의 투명한 바다와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눈이 마주쳤던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눈앞에 맴돈다. 여행을 갈 때 단 한 곡의 노래만 가져가라면 존 레넌의 이매진을 가져갈 것이고 단 한 곳만 가라면 그곳은 아마도 바타네스와 보홀 둘 중 한 곳일 것이다.●바나웨 계단식 논 길이만 ‘지구 반 바퀴’ 루손섬은 필리핀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필리핀의 중심 섬이다. 수도 마닐라도 이곳에 있다. 바나웨는 루손섬을 덮고 있는 ‘루손섬의 지붕’이라 불리는 최고 높이 2922m의 ‘코르디예라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마을로 행정구역 상으로는 이푸가오주에 속하며 인구는 약 3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바나웨를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300여㎞ 떨어져 있지만, 해발 2000m급 산들이 줄지은 코르디예라산맥을 따라가다 보니 자동차로는 꼬박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지프니를 타고 포장도 안 된 산길을 덜컹거리며 고역스런 길을 가야 한다. 이 험준하고 작은 산골 마을이 명소가 된 이유는 라이스 테라스라고 부르는 계단식 논 때문이다. 코르디예라산맥의 가파른 산비탈을 깎아 만든 논들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데, 직접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산 하나가 온통 논이라고 보면 된다. 도저히 벼농사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60, 70도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끝없이 층층의 논이 자리잡고 있다. 바나웨를 비롯해 인근 산악 지역의 논둑 길이를 모두 합하면 그 길이가 무려 2만 2240㎞에 달한다. 만리장성의 10배, 지구를 반 바퀴 도는 거리다. 1995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쌀은 신… 산기슭에 2000년 세월 새긴 이푸가오족 이 장관을 만든 주인공은 이푸가오족이다. 이푸가오는 ‘언덕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2000년 전 코르디예라산맥에 정착했다. 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산등성이를 일궈 논을 만들었다. 중국의 한족이 만리장성을 쌓고, 로마가 유럽과 지중해를 누빌 때 이푸가오족은 해발 2000m 고지대에 먹고살 방편으로 계단식 논을 조성한 것이다. 맨 아래 논이 가장 먼저 만든 것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최근에 만든 것인데, 나무의 나이테처럼 유구한 세월이 산기슭에 새겨진 셈이다. 게다가 이 논들은 모두 천수답이다. 농사를 전부 빗물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이푸가오족은 이 논 전체에 빗물이 돌아다닐 수 있게 대나무관으로 배수로까지 만들어 놓았다니 더욱 놀랍다. 계단 곳곳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 빗물을 저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물을 빼는 배수로를 연결해 논마다 물이 고르게 흘러갈 수 있도록 했다. 쌀이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보니 보관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이푸가오족 전통 가옥을 ‘발루이’라고 하는데, 3층 구조로 만들어진 목조가옥이다. 1층은 돼지나 닭 같은 가축을 키우는 곳이고, 2층은 원룸 형식으로 만들어진 주거공간으로 부엌과 침실을 갖추고 있다. 제일 중요한 3층은 쌀을 보관하는 창고다. 2층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 연기가 3층으로 올라가 쌀을 자연적으로 건조시켜 썩지 않게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쌀 수확을 마치면 제의를 지낸다. ‘뭄바키’라는 제사장을 불러 술과 고기를 마련해 쌀의 수호신인 ‘불룰’에게 바친다. 사람의 형상을 한 ‘불룰’은 라이스 테라스와 쌀을 지키는 이푸가오족의 수호신이다. 닭을 잡아 피를 빼고 배를 가른 다음 닭 내장을 꺼내어 ‘바일’이라고 부르는 점을 친다. 내장의 색깔과 상태로 길흉화복을 가늠한다. 제사가 끝나면 햅쌀로 지은 밥과 제를 올렸던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눠 먹는다. 바나웨에서 버스를 타고 낭떠러지나 진배없는 가파른 산길을 하루 종일 달려가면 또 다른 이푸가오족 마을인 바타드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한 시간 정도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300여 가구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인 바타드가 모습을 보인다. 워낙 접근하기 힘든 곳이라 마을까지 생필품을 가져다주는 짐꾼까지 있다고 한다. 바타드는 800계단 논으로 유명하다. 맨 아래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논의 계단 수가 800개 달한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이 마을 역시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곳인데, 아직도 절구질을 해서 쌀을 빻는다. 키질을 하며 쭉정이를 날리는 것도 옛날 우리나라에서 하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산길 짐 나르던 나무자전거, 아이들 놀이기구로 바나웨와 바타드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아이들이 나무로 만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타는 자전거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겼다. 프레임과 바퀴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핸들로 방향 전환도 가능하다.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막대기가 있어 발로 밀면 그 자전거가 멈춘다. 하지만 페달이 없어 오직 내리막길에서만 달릴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쌀 축제 때는 나무자전거 경주대회도 연다고 한다. 이 나무자전거에 대한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짐을 가지고 비탈과 경사가 많은 산길을 걸어갈 일이 아득했던 이푸가오족들이 수고를 덜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처음의 용도를 떠나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놀이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푸가오족은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사냥을 잘하기로 소문나 있다. 지금도 그 풍습이 남아 있어 머리에 두개골 장식을 즐겨 한다. 노인들 머리 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원숭이 머리뼈나 도마뱀 머리뼈로 장식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입에 껌을 씹듯 뭔가를 질겅질겅 씹고 있다. 이것은 이푸가오족의 기호품이자 전통 약재인 ‘빈랑나무’ 열매로 잇몸을 튼튼하게 해주고 충치를 예방한다고 한다. 열매는 씹고 난 뒤에 침을 뱉듯 뱉는데, 두개골 장식을 한 노인이 빈랑나무 열매 때문에 빨갛게 변한 입술로 씩 하고 웃으면 사실 좀 무서운 생각도 든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여행수첩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필리핀항공 등이 인천~마닐라를 운항한다. 마닐라에서 국내선을 타고 1시간 40분을 가면 바타네스에 닿는다. 세부에서 보홀까지는 배를 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부에서 보홀의 타그빌라란까지는 70㎞ 정도 떨어져 있으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루손섬 북부는 저지대와 산악지대의 기후가 확연히 나뉜다. 저지대는 전형적인 몬순 기후이지만 산악지대(코르디예라)는 겨울철 기온이 10℃ 밑으로 떨어진다. 12~4월은 건기, 6~10월은 우기다. 산악지대 토착민들의 마을을 방문할 땐 반드시 현지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밑창이 튼튼한 운동화가 필수다.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에펠탑을 사랑한 사람들 / 한건축 대표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에펠탑을 사랑한 사람들 / 한건축 대표

    올해가 에펠탑이 세워진 지 130년이 되는 해로 가장 성대한 레이저쇼에 대한 뉴스가 각 매체를 장식했다.이처럼 큰 뉴스가 된 배경에는 몇 년 전 이탈리아의 몬자 브리안자 상공회의소가 에펠탑의 가치에 대해 조사 발표한 영향이 클듯하다. 유럽의 상징적 조형물과 건축에 대하여 인지도, 관광객, 상징성 등을 반영해 그 가치를 매겼는데 2위인 콜로세움 원형경기장과 약 다섯 배의 차이로 1위를 기록했다. 당시의 환율로 계산하면 한화로 약 616조원의 가치가 인정되었다. 7년전 기준 한해 에펠탑을 찾는 관광객이 약 800만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최근 1000만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2위인 콜로세움이 한화로 약 129조원이고 스페인의 파밀리아 성당이 약 127조원의 가치라고 하니 에펠탑이 가지는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콜로세움이나 파밀리아 성당의 입장에서 보면 그 차이를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의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라니 콜로세움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지금은 보물단지가 된 에펠탑이 처음부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1889년 프랑스혁명 백주년 기념으로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 공모되었을 때 토목기술자였던 구스타프 에펠은 320m(안테나포함)의 높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물 자체의 하중만 견디면 되는 철탑을 계획하여 제출하였으며 공기나 공사비 등 이런저런 고려에 의해 선정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프랑스인들은 문화, 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였다. 품격있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흉물스런 철탑이 웬 말이냐고 반대가 심했다. 특히 많은 예술가가 이 흉측한 철 구조물을 비난하였다. 대표적으로 모파상은 에펠탑의 완성 후 탑의 1층 식당에서 식사를 자주 했는데 그 이유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지 않으며 밥을 먹을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듯 애물단지였던 에펠탑이 보물단지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철로 만들어진 미려한 곡선은 건축 후에 많은 사람을 감탄시키기 충분했고 비난일색이던 예술가들을 칭찬으로 바뀌게 했다.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거나 에펠탑 광장에서 예술 활동을 하였다. 프랑스의 진보적인 색체는 다른 보수적인 곳에서는 다루지 못한 내용들을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싸이가 에펠탑 광장에서 공연을 하여 2만 여명이 군집하였다.작년에는 한국의 퍼포먼스작가 배 달래도 에펠탑 광장에서 ‘못다 핀 꽃 한 송이’ 라는 무거운 주제의 공연을 했었다.미술작품으로는 많은 화가가 에펠탑을 그렸지만, 샤갈의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들 그중에서도 에펠탑의 신랑 신부는 유명한 작품이다.미술가, 행위예술가, 음악가, 영상예술가, 문학가에 이르기 까지 모든 장르의 문화 예술인들이 에펠탑을 소재로 하고 배경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에펠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에펠탑 자체가 아름답다보니 그 예술성에 에펠탑을 좋아한다. 둘째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진보적이라 제약이 적어 어떤 예술적 표현도 수용하는 편이다. 예술에서는 어떤 집단의 눈치도 안보는 프랑스인들의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많은 예술가들을 파리로 부른다. 셋째는 에펠탑의 인지도나 상징성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함께하고 싶도록 만든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그곳에서 뭔가를 도전하고 싶게 만든다. 넷째. 가장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모이고 다인종국가로 홍보효과가 크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를 사랑하고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사랑한다에펠탑은 예술가만 사랑한 게 아니다. 히틀러 역시 에펠탑을 너무 좋아해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던 탑의 약 1700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하여 폰 콜티즈 장군에게 에펠탑과 파리를 파괴할 것을 지시하였고 아홉 번이나 확인하였다. 네덜란드의 한 도시를 파괴한 히틀러다운 명령이었다. 다행이 폰 콜티즈 장군이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며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하여 지금 우리가 에펠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항명을 하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에펠에 대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많은 사람이 에펠을 건축가로만 알고 있으나 에펠은 화학을 전공한 토목술자로 유럽의 많은 철교를 설계하고 건설 하였다. 이중 가장 유명한 철교는 가리비 고가교로 대형 아치가 철교를 떠받치고 있다.마치 에펠탑의 하부를 보는 듯하다. 에펠은 에펠탑 이후에 건축가라는 이름을 달았다. 또 그는 에펠탑 이전에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철 구조물을 설계하였으니 프랑스와 미국의 상징물을 설계한 셈이다.에펠탑 건설시 프랑스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예상 공사비의 약 25% 정도였다. 에펠은 자신이 공사비를 대고 대신 향후 에펠탑이 유지될 20년간 관람비용 등을 자신의 회사에서 받는 것으로 계약을 하고 에펠탑을 지었으며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약 800일 만에 공사를 마쳤다. 물론 에펠탑은 만국 박람회 최고의 전시물이었으며 그 관람수입만으로 공사비를 다 충당할 수 있었다. 에펠탑은 원래 20년간 유지될 목적이었으나 통신이나 군사적 목적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철거를 면하였다. 에펠탑으로 성공한 에펠은 파마마 운하를 만들었으나 큰 손해를 입어 어려움을 겪었다. 에펠의 성공은 그의 정체성에 대한 후학들의 다툼을 유발했다. 화학자들은 에펠이 화학자라 했으며 토목가들은 에펠을 토목가라 하고 건축가들은 에펠은 건축가라 한다. 수학자들은 에펠탑의 곡선이 수학의 함수를 활용한 지수 그래프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한다. 내 주변에서도 간혹 토목을 하는 사람들이 건축가들에게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토목가가 만들었다며 토목의 예술성을 어필 한다. 각 나라마다 지방마다 상징물로 자리매김 된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있으며 그 홍보가치는 천문학적이다. 파리의 에펠탑과 개선문,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그리스의 파르테논, 스페인의 피밀리에 등. 미국의 러시모어 바위산의 대통령 조각상,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의 예수상, 이집트의 피라미드, 칠레의 모아이석상, 중국의 만리장성과 천안문 등은 상징물인 동시에 어마어마한 관광자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무엇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의 이미지를 넘는 상징물이 없단다. 광화문 광장이 월드컵 응원과 촛불혁명으로 많이 보도되어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위에 열거한 다른 나라의 상징물에 비하면 지명도는 미미하다. 일부 건설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를 뛰어넘는 국가적 기념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억지로 상징물을 목적으로 만들 필요야 없겠지만 국가적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고려해볼만 하다. 꼭 대형 구조물이 아니어도 된다. 파리의 에펠탑을 비롯한 상징물들은 모두가 스토리가 있다. 어떤 것은 예술성에서 어떤 것은 규모에서 어떤 것은 상징성에서 유명해졌지만, 공통점은 스토리가 입혀진 홍보가 이런 가치를 만들어냈다. 특히 에펠탑은 에펠탑 광장을 각종 문화행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에펠탑의 사진이 계속 생산되고 홍보된다. 한국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많은 유적이 있다. 건축물로서 파르테논과 비교되는 종묘, 조각물로서 세계 어느 것에도 손색없는 석굴암, 소실되고 없지만, 황룡사 대탑 같은 조형물들은 충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알릴만 하다.몇 달 전 BTS의 한 멤버가 불국사 등 우리 문화유적을 방문 사진을 올렸다는 기사를 보며 나라에서 할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체계적인 연구와 홍보를 위해 정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에펠탑의 1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는 상징물이 아직 없음을 아쉬워하며 돌아보게 된다.
  • [여기는 중국] 노동절 하루, 만리장성 일대 버려진 쓰레기양 18t…무단 투척 탓

    [여기는 중국] 노동절 하루, 만리장성 일대 버려진 쓰레기양 18t…무단 투척 탓

    노동절 연휴를 맞아 중국 베이징 인근 만리장성 일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양이 무려 18t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일 단 하루 동안 만리장성 바다링(八达岭) 일대에서 폐기된 쓰레기양으로 알려졌다. 특히 18.2t의 무단 투기 쓰레기 가운데 약 11t은 라면 국물, 먹다 남은 음료수 등 액체 쓰레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유력언론 베이칭왕(北青网)은 노동절 연휴 첫날인 지난 1일 만리장성 바다링 일대를 찾은 인파의 수가 약 5만 4000여명을 넘어섰다며 2일 이같이 밝혔다. 중국 국가여유국은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약 5일간 계속되는 노동절 공식 연휴 동안 만리장성 등 인파가 몰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무료 버스 운행 및 자원봉사자 67명 배치 등을 지원해왔다. 특히 지난 4월 2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최대 8일간의 노동절 연휴를 제공하는 회사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이 기간에 환경미화원 증원을 지원해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여유국은 올 노동절 연휴 동안 이 일대에만 추가 환경미화원 인력을 150여명 증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식적인 연휴가 시작된 지난 1일, 만리장성 바다링 일대에는 먹다 버린 생수병, 사용한 휴지, 먹고 남은 음식물이 담긴 일회용 도시락 등이 곳곳에 방치됐다고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지적했다.이를 수거하기 위해 각 지역에 배치된 환경미화원들은 어깨에 둘러멘 가방에 쓰레기를 담는 모습이 현지 언론을 통해 그대로 일반에 공개된 것. 최근 팔달령 일대에 배치됐다는 환경미화원 한 씨는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관광객들의 문명 성숙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지만, 쓰레기를 바닥에 함부로 버리는 이들의 수도 상당히 많다”면서 “수거해 치우고 또 치워도 돌아보면 다시 쓰레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오고 간다. 바쁜 환경미화원들을 생각해서라도 쓰레기는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더욱이 이 같은 관광객들의 쓰레기 무단 투척 문제는 지난해에도 꾸준히 사회 문제로 지적받아 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같은 기간 팔달령 인근에서 수거된 쓰레기 양은 총 65톤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이 중 생수병, 일회용 도시락, 비닐 봉지 등 고체 쓰레기는 35톤, 먹다 남은 물, 음료수, 라면 국물 등의 액체 쓰레기는 30여 톤에 달했다. 한편, 중국 국가여유국은 이 시기 팔달령 여행자들을 위해 교통 안전 요원 80여명을 이 일대에 배치했다. 또, 주차 문제 해결을 위해 총 2908대의 자동차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 구역을 확보, 제공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무료 식수 제공,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의료진료실 마련, 혈압 측정 및 휠체어 대여 서비스 등을 추가로 제공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특파원 생생리포트]남북 동시 참가 베이징 엑스포 북한관엔 미사일 대신 비둘기

    [특파원 생생리포트]남북 동시 참가 베이징 엑스포 북한관엔 미사일 대신 비둘기

    오는 29일 개막하는 베이징 세계원예박람회에 한국과 북한이 동시에 고유 정원의 특징을 담은 국가관을 선보인다. 베이징 엑스포로도 불리는 세계원예박람회는 베이징 외곽 옌칭에서 10월 7일까지 열린다. 만리장성 아래 펼쳐지는 꽃과 식물의 향연에는 세계 110개국이 참여하며 규모는 503만㎡로 중국의 유명 관광지인 이화원의 1.5배에 이른다.베이징 엑스포 한국관은 ‘연자루’(燕子樓)란 이름의 고려 시대 양식 정자다. 연자루는 실제 전남 순천 죽도봉공원에 있는 2층 누각으로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에 손억이라는 이가 승평부사로 부임하여 호호란 관기와 사랑을 맺었는데 영전하여 순천을 떠났다가 훗날 다시 찾으니 호호는 이미 늙어 있었다는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물 위에 걸터앉은 2층 다락집 형식의 실제 누각을 재연해 한국적 아름다움을 과시할 예정이다. 연자루는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곳으로 1930년 일제에 의해 철거됐다가 1978년 순천 출신 재일교포 김계선씨의 성금으로 원형대로 복원됐다.북한관의 경우 지붕은 기와지만 건축 양식은 좀 더 현대적이다. 조형탑에는 미사일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장식되어 있다. 국가관은 한국관과 북한관 외에도 카타르관, 인도관, 미얀마관, 일본관 등이 조성된다. 중국관은 고전미를 뽐내는 날렵한 곡선의 지붕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해 친환경적인 건물로 완성할 예정이다. 현재 베이징 엑스포의 공정은 90% 정도 완료됐다. 방문객 숫자가 1600만명으로 예상되는 베이징 세계원예박람회의 입장권 가격은 평일 120위안이다. 글·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농촌 빈곤 목도한 늦깎이 목민관, ‘토지 공개념’ 제시하다

    농촌 빈곤 목도한 늦깎이 목민관, ‘토지 공개념’ 제시하다

    우리 형님 얼굴과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我兄顔髮曾誰似)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날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봤지.(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드메서 본단 말고(今日思兄何處見) 두건 쓰고 도포 입고 가서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自將巾袂映溪行) 연암 박지원은 1787년(정조 11년)에 많은 사람을 잃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아내와 사별하고, 7월에 형님상을 당하고, 얼마 뒤에는 며느리까지 떠났다. 이별 가운데 가족과의 이별은 더욱 아프다. 떠나보내고서도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내 잃은 박지원은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홀아비’로 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 박지원은 아버지를 여의고서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형님의 얼굴을 봤다. 이제, 형도 죽고 없다. 형이 보고 싶을 때면?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그려볼 수밖에. 언제나 의관을 정제하고 지내던 형님의 생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에서 형으로, 형에서 아우로 이어지는 혈육의 애잔함과 함께 단아하던 형님의 인품까지 단 스물여덟 자로 그려 내는 솜씨가 놀랍다. 조선 최고 문호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 박지원은 1737년(영조 1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으로 부친 박사유의 2남 2녀 중 둘째였다. 그리고 열여섯에 농암 김창협의 학통을 계승한 이보천의 딸과 결혼했다. 명문가의 후예로서 당대 최고의 지성과 학맥을 댄 노론계 일원이었으니 그의 미래는 보장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세 차례의 운명적 만남을 계기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삶은 굽이쳐 갔다. #첫 번째 만남, 미더운 벗들과의 학문적 우의 박지원도 여느 선비들처럼 한때 과거 공부에 몰두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벼슬길로 나아갈 것인지, 학문세계에서 자유롭게 노닐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북한산 암자에서 독서할 즈음 스물여섯의 박지원은 사도세자가 죽는 참극을 목도했다. 숙종·경종·영조로 이어지며 벌어지던 숱한 정치적 부침의 결정판이기도 했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박지원은 마침내 젊은 시절 꿈과 결별한다. 대신 뜻을 같이하는 벗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을 비롯하여 송도 평양 천마산 속리산 가야산 단양 등을 함께 유람했다. 그러던 중 개성 부근의 ‘제비바위골’(燕巖)을 발견하고, 뒷날 은거를 다짐하며 자신의 호로 삼았다. 박지원이 현실 정치 진출을 포기한 데는 평생 벼슬하지 않고 포의로 지낸 부친과 장인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장인은 사위가 과거장에서 시험 답안도 제출하지 않고 나왔건만 내심 기뻐했다고 한다. 박지원 자신도 아들에게 “모름지기 수양을 잘해 마음이 넓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 돼야지 과거 공부에 매달리는 쩨쩨한 선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을 정도였다. 모두가 간절하게 소망하던 과거를 하찮게 치부했던 그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학문과 그 길을 함께하는 벗들이 벼슬보다 더욱 미더운 삶의 동반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옛날에 벗(朋友)을 말하는 사람들은 벗을 ‘제2의 나’(第二吾)라거나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컬었다. 이런 까닭에 한자를 만든 사람이 ‘날개 우’(羽) 자를 빌려 ‘벗 붕’(朋) 자를 만들었고, ‘손 수’(手) 자와 ‘또 우’(又) 자를 합쳐서 ‘벗 우’(友) 자를 만들었다. 벗이란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박지원, ‘회성원집(繪聲園集)’ 발문 시서화에 뛰어났던 청나라 문인 곽집환의 문집에 써준 서문의 첫 대목이다. 홍대용이 1776년 북경에서 그의 문집을 가지고 왔는데, 박지원이 읽고 서문을 지어줬다. 미지의 중국인에게 건넨 첫 번째 인사가 ‘벗이란 어떤 존재인가’였다. ‘제2의 나’라는 표현이 적실하게 와서 꽂힌다. 박지원만 그리 생각한 게 아니다. 이덕무도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핏줄을 같이하지 않은 형제”라고 했고, 박제가도 “사람에게 하루라도 벗이 없으면 좌우 두 손 잃은 것 같다”고 했다. 그들에게 벗은 타인이 아니라 아내이자 형제와 같았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가 ‘교우론’에서 갈파한 것처럼 “나의 벗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반쪽이요, 바로 제2의 나”(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였던 것이다. 실제로 담론과 음악을 함께 즐겼던 홍대용이 죽자 박지원은 그 이후 음악을 듣지 않고, 갖고 있던 악기들도 모두 남에게 줘버렸다고 한다. ‘지음’(知音)이란 이렇게 절절한 또 다른 자기였던 것이다.#두 번째 만남, 중국으로의 가슴 벅찬 여행 박지원은 많은 벗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많기도 했지만, 출신과 개성도 다양했다. 홍대용 유언호처럼 명문가문의 후예,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처럼 서자 출신, 정철조와 같은 과학과 그림의 달인, 백동수와 같은 창검술의 고수 등.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잘 깨우쳐 준다면 비록 돼지 기르는 종이라도 나의 어진 벗이요, 의로운 일을 보고 충고해 준다면 비록 나무하는 아이라도 나의 좋은 벗”(홍대용에게 보내는 편지 중)이라던 박지원의 우정관은 빈말이 아니었다. 박지원과 그의 벗들은 주로 종로 탑골공원 안의 원각사탑 근처에서 모임을 가져 일명 ‘백탑파’로 불렸다. 그곳에서 “비 뿌리고 눈 날리는 날에도 연구하고, 술이 거나하고 등잔불이 꺼질 때까지 토론”(‘북학의’ 서문)하며 떠들썩한 우정의 향연을 벌였던 것이다. 담론의 주제는 조선을 넘어 드넓은 중국으로 향해 있기 일쑤였다. 1766년(영조 42년) 중국에 다녀온 홍대용은 자신의 견문을 연행록에 담아 과시했고, 1778년(정조 2년) 이덕무와 함께 중국을 보고 온 박제가도 ‘북학의’라는 저작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지적 호기심이 남달랐던 박지원은 무한 부러웠을 터.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홍국영을 피해 연암에 은거하고 있다가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사절단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1780년(정조 4년)의 일이다. 압록강을 건너 말로만 듣던 중국 땅으로 들어섰다. 열흘을 걸어도 산이 보이지 않는 요동벌판을 바라보며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다”(‘호곡장론’)라고 했던 감격 어린 발길은 마침내 만리장성 너머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무령산을 돌아 광형하를 건너 밤중에 고북구(古北口)를 빠져나가는데, 때는 삼경이었다. 관문을 나와 말을 장성 아래 세우고 높이를 헤아려 보니 10여길이나 되었다. 붓과 먹을 끄집어내어 술을 부어 먹을 갈고 성벽을 어루만지면서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밤 삼경, 조선의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라고 썼다. 그리고는 곧 크게 웃으며 “나는 서생으로서 머리가 희어서야 한 번 장성 밖을 나가는구나” 했다. -박지원 ‘밤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口記) 조선의 사신은 청나라 북경까지 다녀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마침 건륭제가 황제의 별궁이 있는 열하에 머물고 있어 거기까지 가야 했다. 허탈하고 고달프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북경에서 열하로 가기 위해 만리장성의 북쪽 관문인 고북구를 지나가는 경이로운 체험.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발걸음이었던 만큼 감회가 남달랐다. 여느 연행록과 달리 ‘열하일기’라고 명명한 까닭이다.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물 대신 술로 먹을 갈아 자신의 자취를 장성에 써내려가는 문사의 풍류가 멋들어지게 보이지만, 이내 씁쓸한 헛웃음을 터뜨린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이제껏 좁은 조선 땅에 갇혀 살았다는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던 탓이다. 그때 박지원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세 번째 만남, 궁핍해져 가는 농촌 현실 대면 박지원은 중국에서의 견문을 기록해 둔 여행 메모를 고치고 다듬어 1783년(정조 7년) ‘열하일기’를 탈고했다. 그의 문명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하지만 문체가 정통 고문에서 벗어났다거나 오랑캐인 청나라 연호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호된 비난을 함께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정조의 질책과 함께 원고 전체가 불태워질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시비가 분분하던 즈음 박지원은 젊은 날 포기했던 벼슬길에 쉰 살이 되어 나서게 된다. 너무 궁핍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평생의 지기 유언호의 천거로 1878년(정조 10년)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했지만, 별로 두드러진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1792년(정조 16년) 안의현감을 시작으로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 지방관으로 있은 10여년은 박지원의 삶을 재조명하게 하는 각별한 시기였다. 수차, 베틀, 물레방아 등을 제작해 농민의 수고를 덜어주는 한편 왕성한 창작력으로 많은 작품을 짓기도 했다. 특히 1799년(정조 23년)에 지어 올린 ‘과농소초’(課農小抄)의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는 주목할 만하다. 토지 소유 상한선을 정해 부호들이 토지를 무한정 늘려 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일종의 토지공개념인 셈이다. 주나라의 정전제나 한나라 동중서의 논의를 이어받은 것이긴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심해지는 농촌 현실을 목도한 목민관으로서 제기한 혁신적 방안임이 분명했다. 그 책을 읽고 감탄한 정조도 ‘농서대전’의 편찬을 맡겨야겠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그의 꿈은 빛을 보지 못했다. 1805년(순조 5년) 69세로 생을 마치고 말았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교수 ■ 문학·여행·농업 등 망라한 연암집 필사본으로 전승되다 20세기 들어서야 공간됐다. 김택영이 선집 형태로 1900년 6권 2책 ‘연암집’, 1901년 3권 1책 ‘연암속집’, 1917년 7권 3책 ‘중편 연암집’을 간행하고, 박영철이 1932년 17권 6책 ‘연암집 전집’을 간행했다. 제1~10권은 일반 시문, 제11~15권은 열하일기, 제16·17권은 과농소초이다. 연암집 번역본은 우전 신호열 선생과 김명호 교수가 공역으로 2007년 출간했다. 열하일기 번역본은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연민 이가원 선생이 1968년 최초 완역하고서 김혈조 교수가 2017년 개정 신판을 출간했다.
  • 벙커버스터도 막는다…中 대규모 ‘지하 만리장성’ 건설

    벙커버스터도 막는다…中 대규모 ‘지하 만리장성’ 건설

    중국이 지하에 파괴가 어려운 신물질을 이용해 건축 중인 대규모 ‘지하 만리장성’ 건설 현장이 공개됐다. 차이나닷컴 등 현지 언론이 중국 군사 전문가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현재 파괴가 어려운 물질을 이용해 돌로 된 산맥의 지하 깊은 곳에 만리장성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기존의 만리장성이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흙과 벽돌을 이용, 2만 1196km의 긴 형태로 지은 것이라면, 새롭게 건축되는 ‘지하 만리장성’은 중국 내 주요 군사기지 주변의 지하에 지어지는 벙커 형태다. 장시위성텔레비전을 통해 공개된 지하 만리장성 건축 현장은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진 않지만, 지반 시설 공사는 대체로 마무리 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이 시설은 화강암 산악지대에 지하에 있다고만 알려졌을 뿐, 공사 현장이나 구체적인 위치 등은 공개되지 않아왔다. 지하 만리장성의 타깃 중 하나는 일명 벙커버스터(Bunker buster)로 알려진 폭탄이다. 대형 관통 폭탄인 벙커 버스터는 지하에 위치한 적의 핵심시설을 파괴하는데 사용되는 무기로,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핵심무기 중 하나다. 이밖에 극초음속미사일 공격을 받아도 해당 시설이 이를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하 만리장성’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중국의 군사 전문가인 첸치후(錢七虎·82)로 알려졌다. 그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 프로젝트는 기관포나 폭탄, 핵폭탄 등의 공격에 맞서는 새로운 방어 군사시설의 필요성에 따라 진행된다”면서 “이것은 국가의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이 전장에서 실제 사용하는 저강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중국 군사 전문가들은 한정된 지역의 핵심 표적을 초토화하는 저강도 핵무기에 대비하는 방어 능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