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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추시대 만리장성유적 발견

    │베이징연합│만리장성의 축조시기가 300년 가량 앞당겨지게 됐다. 만리장성이 세워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2,200년전인 진시황 시대라는 것이학계의 오랜 정설.그러나 중국 학자들은 최근 산둥성에서 이보다 앞선 춘추전국 시대(기원전 770년∼476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장성의 흔적을 발견,정설에 도전하고 있다. 산둥성 지보시 문화재관리 당국자는 “이 장성은 산둥성 창치현의 한 마을에서 시작해 칭다오 인근 해안까지 뻗어있어 길이만도 620㎞에 달한다”면서 “춘추전국 당시의 강국인 제(齊)나라의 남쪽 영역을 감싸고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 기록에 따르면 흔적만 남아있는 이 장성은 12개의 관문과 9개의성문,50개의 성채와 성곽,12개의 봉화대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제나라는 장성 축조를 170년이 걸려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리장성은 진시황 이후 20여명의 황제가 신축 또는 보수작업을 명령해 5,000㎞로 확장됐다.
  • ‘무자본 무공해’ 관광산업(3회)

    관광산업은 21세기의 핵심 서비스산업이자 문화산업,정보통신서비스업과 함께 성장전망이 밝은 지식기반 산업이다.지난해 우리나라 관광업계는 사상 처음으로 425만여 명의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그러나 우리나라는 관광객들에게 덤핑판매를 하는 등 여전히 질보다는 양의 확대에 치중,관광산업의 부가가치가 낮다.외형 불리기에 급급하기보다 품격 높고 실속 있는 선진국형 관광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관광의 부가가치 제고가 시급한 실정이다.●친절과 청결 일본인들의 친절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외국인이 길을 물으면 미소띤 얼굴로 ‘하이’하며 길을 안내해준다.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은 화장실을 깨끗이 하고 관광도로를 정비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스페인은 이후 도로 정비 및 화장실 개선에 힘써 관광대국이 됐다.96년에는 관광부문에서 286억달러의 흑자를 기록,무역에서의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았다. 친절과 서비스,청결은 돈없이도 쌓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이자 관광산업의기본덕목이다.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관광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회의산업에 눈을 돌려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24만㎡의 대형 실내 전시장이 있다.주차장 등 부대시설까지 포함하면 40만㎡에 이른다.이 곳에서는도서 전시회,자동차 전시회,음악 전시회 등 각종 국제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메세(전시회)’가 열리면 시내 호텔이 모두 차는 것은 물론 인근 중소도시의 숙박시설도 동이 난다.100달러이던 호텔 하루 숙박료는 150∼200달러로 올라간다.그나마 예약을 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다.식당,택시 등도 덩달아특수를 누린다. 회의산업은 부가가치가 높다.외래 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평균 1,491달러를 쓰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3,285달러를 지출한다.2.2배 많은 것이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 대한 소득창출,세수증대,고용창출 등의 간접효과도 가져온다.●문화와 접목된 관광상품 미국 뉴욕시는 브로드웨이 연극공연을 통해 연간2조7,000억원의 수입을 올린다.뉴욕시 관광수입의 23%다.이탈리아 라 스칼라좌의 오페라,소련 볼쇼이 발레단의 발레도 유명한 문화상품이다.‘쌍동이표칼‘을세계에 수출하는 독일인들은 일본에 가면 일제 사시미용 회칼을 찾는다.회칼이 수십년 동안 요리수련을 거쳐 도(道)를 얻은 주방장만이 잡을수있는 신성한 물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일본이 일식을 세계에 전파하면서 전통음식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를 세계에 알린 결과다.‘사시미’(회)와 ‘스시’(초밥)는 서양에서도 고급 음식으로 인식된다. 우리에게도 문화상품은 무궁무진하다.팔만대장경,탈춤,판소리,사물놀이,태권도,김치,씨름,한복,한지 등 헤아릴 수 없다.인사동 거리에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전설을 만들어라 이탈리아 로마 트레비분수에 가면 동전이 수북하다.동전을 구멍 안에 넣으면 행운을 가져온다는 전설 때문이다.독일 라인강변의 로렐라이언덕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이다.그러나 프랑크푸르트를 찾는 관광객은 한번쯤 들르게 마련이다.선원들이 요녀(妖女) 로렐라이의노래를 듣다 강에 빠져죽었다는 전설 때문이다.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기념사진을 찍는 명소가 된 것도 입소문이 났기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 서귀포시 정방폭포 절벽에 새겼다고 하는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중국 후한서와 진시황 본기에 따르면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불(徐市,서복이라고도 함)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소년·소녀 500명과 함께 서귀포에 도착했다고 한다.정방폭포 근처에 전설을 기념하는 기념비석을 세우거나 영지버섯 등 건강식품을 불로초 대체 상품으로 개발하면 중국인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밤문화를 만들어라 캉캉춤과 뮤지컬로 이어지는 프랑스 파리의 리도쇼.화려한 무대와 볼거리로 파리의 밤을 외롭지 않게 하는 나이트 라이프다.에펠탑은 낮에 보면 그저 고철 덩어리이지만 밤이 되면 독특한 간접조명시설로멋진 야경이 연출된다.개선문의 야경도 놓칠 수 없다.낭만이 가득한 세느강의 야간 유람선도 밤을 풍성하게 한다.이러한 밤 상품은 500프랑∼1,000프랑을 호가한다.반면 낮에 둘러보는 루부르박물관은 입장료가 50프랑을 밑돈다. 점심시간에 세종문화회관 빈터에서 열리곤 하는 음악회가 밤에 열린다면 서울의 밤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관광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일본 가가와현은 쫄깃쫄깃한 우동으로유명한 고장이다.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우동학교에서 우동만드는 법을 배우고 자신이 만든 우동을 시식한다.모두들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한다.괌에서는 민속마을 관람이 끝나면 현지 안내원이 관광객들에게 민속모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고 민속춤 경연대회도 벌인다.춤을 멋지게 춘 관광객에게는 민속모자를 선물로 준다.관광객은 민속춤을 익히고 현지인은 외국인에게 괌의민속춤을 알리는 등 누이좋고 매부좋고다. 관광객은 단순히 구경만 하는 피동적인 객체이기를 싫어 한다.한복 입어보기,널뛰기 등 관광객이 직접 체험하게 하라.그러면 재미는 배가된다.●살거리,먹거리를 만들어라 IMF가 터지지 전 영국 런던의 버버리매장에는한국인 점원이 배치돼 있었다.한국 관광객이 앞다투어 값비싼 의류를 구입했기 때문이다.프랑스 파리의 면세점도 랑콤,샤넬 넘버5 등 유명 화장품을 사려는 한국인들로 북적됐다.유사품이 아닌 진품을 살 수 있는데다 시세차익을 올릴수 있기 때문이다.스위스에 가면 대부분의 관광객이 선물용으로 등산용 칼을 산다.쇼핑은 관광객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남대문시장과 이태원상가의 활기찬 거래 행위는 그 자체가 관광상품이다.여기에 값싼 상품 또는 독특한 기념품이 있다면 금상첨화다.●눈높이를 관광객에게 맞추어라 자금성,만리장성을 자랑하는 중국인에게 경복궁,비원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그러나 이들에게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수원 삼성전자 단지 견학은 훌륭한 관광상품이다.롯데월드,에버랜드 등 대형 위락시설도 이들의 눈길을 끈다.반면 유럽인들에게 서울 시내 고궁관람은호기심의 대상이다. 동남아인들이 한국의 겨울스키,가을단풍에 매료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도움말 주신 분] 대전대 邊在眞 교수,홍콩 관광청 柳桓圭 대표,수안보 산그림 호텔 李鍾完사장,한국 관광공사 朴春圭 홍보실장,문화관광부 林炳秀 관광국장.
  • 세계 유람선 관광 시장규모

    ◎작년 630여만명… 매년 6∼8% 성장/북미지역 전체 77%… 나머지는 유럽/30대 이하 젊은층 급증… 거의 가족단위/최근 중국 많이찾아 인근 국가도 관심 세계 크루즈관광 시장은 지난해 약 630만명으로 해마다 6∼8%씩 꾸준한 성장추세를 보이고 있다.2000년에는 크루즈관광객이 88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가동율도 80%이상으로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지역별로는 북미가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유럽이 점유하고 있다. 크루즈관광객은 종전에는 40대 이상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요즘에는 30대 이하의 젊은층이 큰 폭으로 증가,전체 시장의 절반에 이르고 있다.특히 가족단위 여행이 대부분이다. 이들 크루즈관광객은 최근 중국을 많이 찾고 있다.중국은 크루즈관광객을 위해 3일간 북경,만리장성을 방문하는 코스를 운영 중이다. 중국에 크루즈관광객이 몰리자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덩달아 크루즈관광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크루즈관광 활성화에 가장 열심인 곳은 싱가포르.미국의 마이애미에 못지 않은 크루즈항으로 도시를 발전시키려는 중이다.이를 위해 최근 크루즈전용 정박장을 3곳 갖췄으며 싱가폴과 인도네시아,말레이지아 등 지역을 잇는 정박장 4곳도 운영 중이다.그러나 한국은 크루즈관광의 경우 불모지나 다름없다.지난 84년 크루즈 2척이 2,250명을 싣고 부산항에 입항,처음으로 크루즈관광이라는 업종이 알려졌을 정도다.관광객들은 낮동안 항구에 상륙,시내관광과 쇼핑을 한다.올해에는 5척이 7,380명을 싣고 한국을 찾아온다.하지만 이들은 모두 중국과 일본을 여행목적지로 하고 있어 한국은 중간 정박지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크루즈관광시장에서 이처럼 낙후된 것은 전용부두와 정박장 등 시설이 없는데다 크루즈를 타고 오는 손님들의 기호에 맞는 관광상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여기에 지금껏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도 있다.
  • 풍요… 재앙… 두 얼굴의 양쯔강

    중국의 양즈강이 지구촌의 눈실을 모으고 있다.6월12일부터 시작돼 2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는 장마로 금세기 최악의 재앙이 우려되기 때문이다.양쯔강은 그러나 애물단지만은 아니다.중국인들에게는 ‘약속의 땅’이다.일용할 양식을 도맡아왔다.개혁과 개방정책 이후에는 중국산업의 요충지로 모습을 바꿨다. 뿐만 아니다.양쯔강은 중국문화의 모태였고 철학을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했다.내면세계의 풍요로움도 역시 양쯔강의 몫이었다. 중국 역사속에 서 재앙과 함께 삶의 자양분을 도맡아온 양쯔강의 ‘두 얼굴’을 조명해 본다. ◎중국인과 양쯔강/강 유역 180만㎢는 ‘약속의 땅’/비옥한 토지 中 전체 곡물량의 40% 생산/홍수땐 ‘천문학적 피해’ 두려움의 대상 양쯔강은 중국인들에겐 ‘어머니’다.일용할 양식을 주고 때로는 준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주변의 180만㎢ 비옥한 토지는 중국인들에게 먹고 살 식량을 대주었고 양쯔강은 평원에 물을 공급해 준다.중국 전체 논가운데 70%가 주변에 자리하고 있고 곡물의 40%를 생산한다.인자하고 자상한 어머니같은 양쯔강의 모습일테다. 양쯔강은 내면세계도 살찌워 줬다.특히 도도한 양쯔강의 물결이 쉬어가는 둥팅(洞庭)호는 시성(詩聖) 杜甫 등이 작품활동의 무대로 삼았던 중국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양쯔강은 인자하기만 한게 아니다.여름철이면 수마(水魔)로 돌변한다.스스로 키운 인명,재산,유적까지 가차없이 앗아간다.중국인들은 사랑하는 만큼 양쯔강을 두려워한다. 두 얼굴을 지닌 양쯔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는 고대이래 중국의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그리고 치수(治水)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요즘 홍수와 싸우면서 밀리는 물줄기를 끝내 막기보다는 피해가 적은 곳에서 제방을 폭파해 흐름을 열어주려는 것은 바로 치수 철학의 한 모습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양쯔강 중·하류지역/중 내륙 경제개발 거점 부상/풍부한자원·노동력 공업도시 여건 충족/물류수송 쉬워 내륙지역 연계개발 효과 상하이(上海)에서 충칭(重慶)으로 이어지는 양쯔강 중·하류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 경제의 심장부다. 개혁과 개방을 표방한 78년부터 고도성장을 이뤄낸 중국인들은 유역을 하나의 공업단지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중국 국가계획위원회의 ‘長江(양쯔강)개발전략’이 그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양쯔강을 흔히 용으로 비유해 왔다.상하이가 용의 머리가 ‘長江개발전략’은 유역의 풍부한 전력과 노동력,그리고 자원과 축적된 기술을 양쯔강의 수로를 통해 하나로 묶어 거대한 공업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륙지역의 무한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성화하고 유역 도시들을 거점으로 경제발전을 내륙 깊숙한 지역으로까지 확대해 나가겠다는 생각이다.육상교통으로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의 부족을 물길의 활성화를 통해 뚫어보자는 계산도 깔려있다. 양쯔강 유역의 핵심지는 후베이(湖北)성의 우한(武漢).용의 배에 해당하는 곳으로 ‘장강 개발전략’의 선도 도시가 된다.충칭과 난징도 포함시켜 강철·자동차산업을 일으키고 과학기술 연구단지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중국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양쯔강 주변지역을 발달한 연해지역과 결합시켜 개발한 뒤 발전효과를 구이저우(貴州),쓰촨(四川),광시(廣西),칭하이(靑海),간쑤(甘肅) 등 8개성 내륙 빈곤지역까지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대홍수 원인·역사/서부 고원지대 폭설이 화근/비 800㎜ 쏟아져 제방 버팀력 한계/31년 14만여명 숨져 피해규모 최대 양쯔강의 역사는 범람의 기록들이다.해마다를 예외없이 크고 작은 홍수들이 꼬리를 물었다.특히 양쯔강의 홍수는 규모가 방대해 피해 또한 엄청나다. 20세기에 들어서만 기록으로 남을 엄청난 대홍수가 서너차례나 있었다.31년과 54년의 대홍수가 대표적인 사례다.31년의 대홍수 때에는 무려 14만여명이 숨지고 3,000만명의 이재민을 냈다.54년 대홍수에서도 3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1,000만명이 살던 집을 떠나야 했다. 올해의 홍수도 지독하다.54년 대홍수이래 최악의 대재앙이다.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예년보다 비가 훨씬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양쯔강 유역의 여름철 월 평균 강수량은 300㎜ 정도.올해는 3배에 가까운800㎜ 이상이 쏟아지면 양쯔강의 수위를 높였다. 7월21일과 22일 이틀동안 후베이성의 우한(武漢) 일대에 무려 400㎜를 쏟아지며 홍수는 절정을 맞았다.자그마치 4,600여곳의 제방이 붕괴 위험에 처했다. 중국 정부는 홍수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3일에는 후베이성에서 제방 11곳을 폭파하는 등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다.모든 지역을 홍수로부터 방어하고 지킨다는 전방전수(全防全守) 방침을 철회했다.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공업지대인 대도시나 하류 지대를 지키기 위해 농촌지역의 제방을 폭파시켜 물길을 돌리기로 했다. 중국 기상국은 올겨울 칭하이(靑海)성과 티베트고원에 30년이래 가장 많은 눈이 쌓인게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서부 고원지대에 적설량이 많으면 동아시아 계절풍의 온난한 대기가 북상하지 못하고 한랭기류와 만나 많은 비를 뿌린다고 설명했다. ◎‘江속의 만리장성’ 三崍댐/홍수조절·전력생산 등 다목적 기능/총저수량 393억㎥ 소양댐의 14배 양쯔강에 만들고 있는 싼샤(三崍)댐은 현대판 만리장성 쌓기에 비유된다. 도도한 강물을 막는 역사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로 홍수를 막고 전력을 얻는 명실상부한 다목적 댐이다.중국의 야심찬 양쯔강유역 개발계획의 핵심사업이다.서부 내륙지역에 부족한 전력과 물의 공급원이다 될 것이다. 공사 현장은 양쯔강 중류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현 싼더우핑(三斗平). 이창에서 서북쪽으로 40㎞쯤 떨어져 있다.93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10월에 물살을 막는 차단벽을 설치하는 등 1차 공정을 마쳤다.지금은 본격적인 댐건설에 돌입했다. 2003년까지 댐건설 공사를 마무리지으면서 제1호 발전기도 가동시킨다.2009년까지는 1기당 70만㎿의 발전용량을 가진 26개의 수력발전소를 완공한다는 계획이다.공사가 완공됐을 때의 발전량은 1,820만㎿.핵발전소 18개의 발전량과 같은 규모다.세계최대규모인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이타이푸댐을 앞서게 된다. 댐은 높이 175m,길이 2,300m.총 저수량은 393억㎥로 소양강댐의 13.6배.저수지는 너비 1.1㎞에 길이가 644㎞. 그러나 싼샤댐 건설에 반대와 회의도적잖았다.댐 건설을 위해 120만명이 이주해야 했다.건설비용도 자그만치 500억달러.환경 파괴와 함께 지진 등으로 댐이 파괴됐을 경우 인류 최대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양쯔강/커커시리산서 발원 총 길이 6,300㎞ 대륙 중심부 횡단 중국 대륙 중앙부를 횡단하는 가장 긴 강.총 길이가 6,300㎞로 유역면적이 180만㎢에 이른다.중국 사람들은 흔히 창장강(長江)이라고 한다. 발원지는 멀리 칭하이성(靑海省) 서부 커커시리(可可稀立)산맥의 남사면. 쿤룬(崑崙)산맥과 바예카라(巴顔喀拉)산맥의 남쪽,탕구라(唐古拉)산맥의 북쪽을 남동쪽으로 흐른다.여기서 다시 쓰촨(四川)성 서부와 시짱(西藏 티베트)자치구 경계를 지나 중국 심장부로 성큼 접근한다. 중·하류 지역에는 비옥한 양쯔평원이 발달,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둥팅호와 푸양호 등 곳곳에 유명 호수들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특히 하류지역에서는 잦은 범람을 막기이 위해 강 양쪽으로 2,700㎞의 제방을 덧붙여 쌓아 놨다.그러나대홍수를 막기에는 부족해 연례적으로 물난리를 치른다.
  • 北京∼杭州 대운하 복구/중국판 뉴딜정책 추진

    ◎미개통 6백여㎞ 공사로 대규모 고용 창출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가 있다(上有天堂,下有蘇杭)”.베이징(北京)에서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명소인 항저우까지 장장 1천여㎞를 배로 가는 대운하가 개통될 전망이다.베이징시 인민대표 31명은 최근 징항(京杭·베이징과 항저우간) 대운하를 복구,중국의 남북을 관통시키자는 의안을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 제출했다. 징항대운하는 수에즈,파나마 운하와 더불어 세계 3대운하의 하나이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북으로는 하이허(海河),황허(黃河),챵쟝(長江),화이허(淮河),쳰탕쟝(錢塘江)등 5개 하천을 관통한다.이 대운하는 현재 남반부의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항저우까지 약 400㎞ 구간이 이미 복구돼 사용하고 있다.하지만 베이징에서 쉬저우까지 북반부는 폐허상태로 방치된 데다 온갖 공업폐기물로 오염돼 있다. 그래서 베이징시,톈진시(天津市),허베이성(河北省) 및 산둥성(山東省)이 공동으로 대운하를 북구,개통시키자는 주장이다.왕웨이청(王維城) 칭화(淸華)대학교수는 “대운하 복구는 만리장성 못지않게 중화민족의 응집력을 끌어모을 수 있다”면서 “아울러 대운하 주변의 풍부한 문화유산과 자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면 큰 수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도 이들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동남아 금융위기의 영향권아래 들어간 중국은 최근 대규모의 국유기업민영화 및 정부조직축소로 대량실업과 불경기해소가 최대의 현안이다. 따라서 주룽지(朱鎔基) 총리 등 국가지도자들도 이 징항대운하 개통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운하를 완전개통하는 대역사(大役事)를 일으키면 상당한 규모의 일자리를 마련,결과적으로 대량실업을 타개하기 위해 구상중인 중국판 뉴딜정책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까닭이다.
  • 21세기 기산점 뒤늦은 논란/英 “2001년부터” 95년 공식화

    ◎중 “2000년이 타당” 최근 반론/국제기구도 이견… 통일 시급 【베이징=鄭鍾錫 특파원】 “2000년인가,2001년인가”. 눈앞에 닥친 21세기를 앞두고 그 기산점(起算點)을 언제로 할 것인가를 따지는 논란이 벌어졌다.2001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 21세기의 기산점을 2000년으로 해야 한다고 중국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온 까닭이다. 신·구세기 교체는 세계적인 관심사이다.2000년대 진입은 더욱이 1천년(millenium) 만에 한번 오는 것으로 국제사회 여러 부문의 활동과 직접 관련돼 있다.세기 구분에 관해서는 1995년 영국왕실의 그리니치천문대가 이미 21세기의 기산점이 2001년이라고 밝힌 바 있다.인류가 통용하는 연대기 가운데기원 0년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에 대해 중국천문학명사심사결정위원회는 최근 국제천문학연합회에 공식으로 서한을 보내 21세기를 2000년 1월1일부터 계산하는 한편 세기구분과 2000년 귀속에 관한 통일규범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건의했다.1900년대가 끝나는 2000년부터 마땅히 21세기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중국의 주장이다. 중국은 지난달 베이징 교외의 파다링(八達嶺) 만리장성 기슭에 대형 ‘역산(逆算) 날짜시계’를 설치,매일매일 2000년까지 남은 날짜를 고시하고 있다.누가 뭐라든 중국은 2000년부터 21세기를 계산한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현재 21세기의 기산점이 국제적으로 완전히 통일된 것 같지는 않다.그리니치천문대의 기산점 발표 직후 영국시민들 가운데서도 일부가 이 결정에 반대했으며,많은 국제기구과 국제적 인사들 사이에서도 언제부터 21세기가 시작되는지를 둘러싸고 일부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결국 세기말 계산에서 1년이라는 차이가 나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이것이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강력히 일고 있다.
  • 방콕의 오토바이 택시/홍철 국토개발연구원장(굄돌)

    오토바이면 오토바이고,택시면 택시지 ‘오토바이 택시’는 무어란 말인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는 신사·숙녀 할 것없이 영업용 오토바이 운전사의 허리를 껴안고 시내를 질주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벤츠 자가용의 뒷좌석에 점잖게 앉은 ‘사장님’도 길이 막혀 약속시간에 늦을 듯하면 체면불고하고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에게 매달린다. 길은 좁지만 월부 자동차 덕분에 ‘마이 카’시대가 빨리 도래하다 보니 오토바이 택시가 등장하고,차안에 소변통을 갖고 다녀야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방콕에서 벌어진다. 같은 동남아국가의 도시이긴 하지만 싱가포르는 완연히 다르다.10년후의 교통상황을 예측하여 40㎞ 에 달하는 지하고속도로까지 계획해 두었다.고율의 세금때문에 한국산 쏘나타 승용차 값이 원가보다 3배가 넘는 5천만원에 달하니,아무나 자동차 가질 엄두를 못낸다.싱가포르는 도시교통뿐만 아니라 주택·환경·시민의식 등 모든 면에서 신이 질투할 정도로 완벽한 도시국가이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시민들의 주 교통수단인 북경은도시순환도로를 4환까지 건설했다.앞으로를 대비해 북경시 외곽지역에 5번째 순환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다.북방 호족의 침략을 막느라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인들의 면모가 도시교통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지난 겨울 서울의 도시교통이 IMF사태 때문에 한결 나아졌다고 하지만 봄이 되면서 서서히 과거로 돌아가는 듯하다.2∼3년후 우리가 고통스런 IMF 터널을 통과했을 때 서울에도 방콕처럼 오토바이 택시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지금부터 신호등·주차관리·병목지점 등 도시교통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 토머스 제퍼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1)

    ◎독립선언서 기초한 ‘미 건국의 일등공신’/“지도자의 민중 불신은 정부 불신 초래” 철학 실천/직접설계 건축한 사저 세계문화유산 지정 보존 【샬롯빌(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언론이 자유스럽고 모든 사람이 그 언론에 접할수 있을 때 우리 모두는 안전해진다.”미국 건국의 1등 공신으로 추앙받는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열렬한 자유언론의 신봉자였다. 특히 그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민중에 대한 신뢰’사상은 미대통령의 국민사랑과 국민존중 정신의 기원이 되고 있다. 그는 국무장관 출신으로 후임 대통령이 된 제임스 메디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확실히 의존할수 있는 유일한 것은 민중뿐”이라고 강조하며 “지도자의 민중에 대한 불신은 민중의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져온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특히 책을 좋아해 ‘걸어다니는 도서관’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한 그는 자신의 집에 넓은 도서관을 만들어 6천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책들은 1814년 영국군의 워싱턴 침공으로 불탄 미의회도서관을 재건할때 밑거름이 됐다. ○‘걸어다니는 도서관’ 별명 버지니아 서부 셰난도 밸리의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펼쳐진 샬롯빌은 버지니아 중서부 최대의 도시로,명문 UVA(버지니아대학)가 위치한 교육도시이자 건국초기 3명의 대통령을 배출시킨 미 역사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워싱턴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나간 29번 도로를 따라 2시간 가량 달려가면 샬롯빌에 이르러 제퍼슨의 사저인 ‘몽티첼로’가 나온다.그 인근에는 미헌법의 아버지인 4대 대통령 매디슨의 사저 ‘몽펠리에’와 유럽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외교를 천명한 몬로독트린으로 유명한 5대 제임스 몬로의 ‘애쉬론’농장 등이 자리잡고 있어 이 일대는 조지 워싱턴을 비롯 모두 8명의 대통령을 배출,건국초기 버지니아왕조라는 말을 탄생시킨 현장이기도 하다. 1776년 미독립선언서의 기초자로 유명한 제퍼슨 대통령은 역대 42명의 미대통령중 가장 재능이 많고 지식이 풍부했던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그는 건축가이자 발명가로 유명했으며 또 저술가,음악가로도 당대 최고의 경지를보일 정도로 다양한 능력의 소유자 였다.정치경력 측면에서도 주의원,연방하원의원 등 의회직을 비롯,주지사,대사,국무장관,부통령 등을 역임한 가장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이태리어로 ‘작은 산’ 이라는 뜻의 몽티첼로는 제퍼슨이 어린시절 뛰어놀던 자신의 농장 한가운데 있는 작은 언덕에 우뚝 서있다.그가 직접 설계하여 지은 이 집은 인간의 삶과 주거공간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시킨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집과 정원과 농장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몽티첼로는 그의 또하나의 걸작품인 UVA의 아카데미 빌리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미독립의 기운이 싹틀 무렵인 1743년 버지니아의 부유한 개척농가에서 태어난 제퍼슨은 당시 명문이던 윌리엄&메리 칼리지를 졸업하고 24세에 변호사 시험을 패스한뒤 10년동안 주의원으로 활약했다.75년부터 76년까지는 대륙회의에 버지니아 대표로 참석,독립 달성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그후 버지니아 주지사와 프랑스대사를 지냈다. ○퇴임후 버지니아대학설립 특히 프랑스혁명을 현지에서 직접 겪은 제퍼슨은 귀국후 인간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권리장전’ 등 헌법수정안을 통과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그는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좋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그가 생각한 좋은 정부는 국민들이 자기사업을 자유로이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한 작고 약한 정부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영국군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채의 상환을 위해 엄격하게 내핍하는 간소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9세때 결혼한 부인 마르타의 10년만의 죽음은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었으며 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1남5녀의 자식을 키웠다.그는 백악관에 홀아비로 입성한 첫대통령이었으며 큰 딸 마르타가 8년동안 퍼스트레디의 역할을 맡았다. 대통령 퇴임후 몽티첼로로 돌아온 제퍼슨은 후세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버지니아대학을 설립했다.그는 가장 이상적인 아카데미 빌리지의 설계뿐아니라 교수진 선발,커리큘럼 등도 만들었으며 초대 총장을 역임했다.특히 후임 대통령이 된 메디슨과 몬로 등 고향 친구들과는 한동네에 살며 버지니아대 총장까지도 돌아가며 할 정도로 한평생 교분을 나누며 살았다. 그는 말주변이 없어 연설에는 곤혹을 치렀지만 뛰어난 문장력으로 글쓰기를 좋아해 퇴임후에도 1년 평균 1천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정부통령으로 있으면서도 경쟁관계로 사이가 나빴던 2대 대통령 존 아담스와는 나중에 화해하여 다시 친하게 지냈으며 독립선언 50주년이 되던 1826년 7월4일 같은날 죽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제퍼슨은 자신의 묘비명에 미독립선언서의 기초자,버지니아 종교자유장전의 기초자,버지니아대학 설립자를 기록해줄것을 유언으로 남겼다.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역할보다도 이들 역할에 더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건축가로도 탁월한 능력”/“인간의 삶­주거공간 이상적 조화/불 대사 재직시절 독학으로 터득”/제퍼슨 기념재단 이사장 다니엘 조던 【샬롯빌(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몽티첼로를 관리하고 있는 토마스제퍼슨 기념재단 이사장 다니엘 조던 박사는 버지니아대 역사학과 교수로 제퍼슨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제퍼슨에 대한 평가를 설명해달라. ▲라이딩스의 조사에 따르면 42명의 미대통령중 4위로 나타났다.다른 조사들도 빅 쓰리(링컨,워싱턴,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비슷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마운트 러시모어의 4명의 대통령상에도 포함돼 있다.워싱턴이 건국의 아버지라면 제퍼슨은 건국의 1등공신 이다. ­제퍼슨의 능력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무엇인가. ▲건축가로서의 능력을 제일로 꼽을수 있다.프랑스대사로 파리에 있는 동안 독학으로 터득한 그의 건축에 대한 안목은 인간의 생활 양태와 주거공간의 조화를 실현시킨 것으로 탁월한 것이었다.몽티첼로의 집안 및 정원 배치,버지니아대 아카데미 빌리지의 학문공간과 생활 공간과의 연계는 뛰어난 것이다.피라미드,만리장성 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그는 7개국어를 이해할 정도로 해박했다. ­제퍼슨의 몽티첼로 생활은. ▲1772년부터 1826년 사망때까지 54년을 살았다.퇴임후에는 독서와 발명에 몰두하며 농부로서 정원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였다.그러나 다소 사치스러운 생활로 곧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됐으며 의회도서관 화재시 책을 2만4천달러에 판것도 그 때문이다.그는 메디슨,아담스 등 친구들과의 서신교환을 좋아해 모두 1만9천여통의 편지를 남기고 있다. ­워싱턴의 제퍼슨 기념관은 언제 건립됐나. ▲1943년 4월13일 제퍼슨의 200주년 탄생일에 봉헌됐다.워싱턴 포토맥강가에 제퍼슨의 동상과 어록 등을 새겨놓은 둥근 기념관이 우뚝 서 있으며 수많은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다.
  • 동서문화의 북방 통로(중앙아시아를 가다:15)

    ◎고구려,만리장성 북로 이용 서역과 교류/외교사절·통신 등 비밀 유지 위해/비단기 요충지 중원 피해 왕래/서역선 만리장성 남로 따라 고구려로 청동기 이전부터 유라시아 대륙에는 민족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그이동 통로는 한대 이후에는 비단길이라고 부른 고대 상업유통로였다.교역 상품들은 멀리 한국에서 영국까지 유통되었다.그러나 몽골제국 시대를 제외하고는 이 교역품들은 한번에 비단길의 끝에서 끝까지 간 것이 아니었다.여러 번 되팔리면서 여러 차례의 단거리 운송 끝에 유라시아 대륙의 끝까지 전해졌던 것이다.그 주 통로가 두말 할 필요없이 중앙아시아였다. 그리고 무역은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다.이때문에 중앙아시아의 고대 및 중세 도시는 타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부를 누릴 수 있었다.지역적부를 차지하기 위하여 중앙아시아에 세계사적 대정복전쟁들이 일어났던 것도 그 지역의 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알렉산더 대왕,한나라,이란의 사산 왕조,당나라,티베트 왕조,위구르 왕조,몽골제국,또 청나라가 각각 중앙아시아의 비단길을 장악하려는 전쟁을 일으켰다.그러나 역사적으로 제국의 관심을 샀던 비단길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열강국 ‘비단길 장악’ 전쟁 청나라가 동투르크스탄 곧 신강성을 점령할 즈음,유럽의 열강이 해양을 통해 직접 중국으로 들어왔다.따라서 비단길은 급격하게 고립되고 그 기능이 상실되었다.이어 19세기에는 러시아가 서투르크스탄을 정복하면서 동서교류의 통로인 비단길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일정구간의 물품유통은 당연히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나 오아시스를 거쳐서 이동되었을 것이다.그러니까 서역에서 온 상품들은 신강성에서 하서주장을 따라 난주를 지나 서안에 이르러 집하되었다.이 상품들 가운데 얼마가 고구려까지 전달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남북조시대는 많은 소국들이 중원에 난립한 때다.그 상품들이 중원을 지나자면 여러 번 통관세를 내는 번거로움을 치르고 나서야 고구려의 영토인 만주와 한반도에 전달되었을 것이다.이익을 위한 순수 상품의 유통일 경우에는 그런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익을 위한순수상품이 아닌 경우에도 반드시 중원을 거쳐서 고구려에 왔을까 하는 의문이 간다.예컨대 고구려와 돌궐 칸 사이의 외교사절이나 중요한 통신같은 경우는 오히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원을 피해서 서역에 갈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고구려에서 전교할 것을 이미 결정하고 전교행을 떠난 서역의 스님들 역시 그렇다.도중에 중원을 관광하기를 원하지 않는 한,중원을 우회할 수 있는 통로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어떤 이유에서든지 서안에서 낙양과 북경을 거쳐 요동에 이르는 통로,곧 만리장성 남로를 피하여 고구려에 오는 길을 택한 동서교류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가장 잘 웅변해 주는 사건이 양무제때의 삼론종의 조사 승랑이었다.승랑은 원래 도사였기 때문에 저술을 남기지 않아 결국 송나라때의 ‘송고승전’에 빠졌다.그러나 그의 손자벌 제자인 가상 대사 길장이 그가 지은 ‘대승현론’과 ‘삼론현의’에서 다음과 같이 거듭거듭 강조한다.승랑은 요동에서 온 고구려 승려로서,양나라 무제때에 화남의 섭산으로 내려왔다.그가 가르친 공사상의 핵심이 진속합명중도인데,이는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가장 온전하게 전하는 논리로서 길장 자신은 물론이고 삼론종의 사상적 근거를 이룬다.이러한 주장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사상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근거이기 때문에 삼론종은 중국에 대승불교를 건설하는 이론적 초석의 역할을 했다.다시 말해서 삼론종은 당나라의 대승불교를 유도한 안내자였다.이처럼 중요한 삼론종의 조사가 승랑이었다는 사실을 길장이 주장하는 것이다.그런데 승랑은 이미 요동에서 명성을 쌓고,화남으로 내려왔던 것이다.그리하여 양무제가 그를 모시려 해도,이를 뿌리치고 승랑은 산간에서 공사상의 진정한 뜻을 제자들에게 전하여 삼론종의 논학을 일으켰다.그리하여 공사상은 극동의 불교문화를 변화시키는 효시의 역사적 역할을 감당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승랑만큼 큰 역사적 역할을 했던 한국 사상가가 또 있었던가.우리는 어째서 그를 잊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중원의 불교문화를 전환시킬 만큼 큰 힘을지닌 승랑과 같은 사상가는 결코 본인 당대에 나타날 수 없다.그만한 인물이 나타나기 위해서는,그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불교 사찰이나 문화센터가 있어야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다.그런데 요동의 불교문화센터는 중원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랑은 요동에서 성장했다.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미 투르크의 오르혼비문과 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도를 거론하면서 고구려는 한문이나 한문문헌지식과 관계없이 멀리는 로마의 사절들과도 교섭했다는 사실을 앞에서 이야기했다.이런 맥락에서 승랑이 성장했던 요동의 불교문화센터는 중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요동으로 들어온 서역의 승려들에 의하여 용수의 중관론이 전해졌을 것이라는 상정이 가능하다.고구려에서 중원을거치지 않고 투르크의 세계,곧 서역으로 직접 이어지는 통로는 두 길이 가능하다. ○고구려 벽화에 서역인 등장 하나는 신강성까지 와서 고비사막을 직접 건너는 이른바 만리장성 북로이다.다른 하나는 신강성도 거치지 않고 천산북쪽 현재의 카자흐스탄의 대초원을 가로질러 알타이산맥과 바이칼호수 사이의 계곡을 타고 몽골로 들어와 만주로 닿는 대스텝 통로이다.아마도 신강성의 동투르크스탄과는 장성북로가 더욱 편리했을 것이고,서투르크스탄의 서쪽 중앙아시아까지 가는 데는 스텝통로가 더 유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북방방통로를 통해서 고구려인들은 서역인들과 직접 교섭을 했기 때문에 고구려 벽화에는 코가 큰 서역인들과 씨름도 하고 격기도 하는 풍습을 그릴 수 있었다.그 뿐 아니라 신라인들은 위구르조각과 같은 서역과의 문화교류의 흔적들을 남겼다.이제는 서역과의 교섭사를 개방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중 하북성 6.2 강진 47명 사망/250명 부상

    ◎건물 1천재 파손… 만리장성 훼손 우려/수일간 규모 4 여진 가능성 경고… 피해 더 늘듯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중국 허베이(하북)성 북부 상이(상의)현과 장베이(장북)현에서 10일 리히터 강도 6.2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35명이 사망하고 1백64명이 부상했으며 최소한 2만명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중국 관영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지진 피해지역에서 1천여채 이상의 건물이 무너지거나 또는 금이 가는 등의 피해가 발생,사상자는 구조 활동이 진행됨에 따라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지진국은 이날 상오 11시 50분(한국시간 낮 12시 50분) 발생한 지진으로 이같은 인명피해 외에도 장베이 현청 소재지에서는 90% 이상의 건물에 금이 갔으며 상이 현청 소재지에서는 약 8백채의 건물이 붕괴되거나 금갔다고 밝혔다. 지진국은 수 분동안 계속된 이번 지진의 진앙이 상이 현과 장자커우(장가구)시,장베이현 중간인 북위 41.1도,동경 1백14.3도 지점이라면서 앞으로 수일동안 리히터 규모 4 가량의 여진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혀 추가 강진 발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이날 동남쪽으로 약 2백20㎞ 떨어진 수도 베이징에는 일부 건물에 진동이 느껴졌으나 그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았다. 지진국은 진앙지 남쪽 장베이현과 장자커우시 경내를 통과하는 만리장성이 훼손됐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시(중앙아시아를 가다:10)

    ◎중앙아 최고의 도시… 동서문화 교류 요충지/8세기 아랍군에 점령… 투르크족 점차 이슬람화/사마르칸트궁전 벽화엔 고구려인 조문사신이… 오늘날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주의 주도다.그러나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역사에 등장한 중앙아시아 최고도시의 하나였다.그 고도에서는 옛 고려인을 그린 벽화를 만날 수 있다.멀고도 먼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을 만나다니…….그럴만한 사연을 지닌 고도가 바로 사마르칸트인 것이다. 그러한 역사속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동서문화의 교류가 중앙아시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동서문화 교류를 통해 세계문화사가 전개되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따라서 세계문화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앙아시아역사를 한 차례쯤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대규모 민족이동 첫 파장 중앙아시아 일대 대초원의 역사에서 파상적으로 일어난 사건은 대규모의 민족이동이다.그 첫 파장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분명치 않다.다만 파장의 주체가 수메루족이 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해볼 수 있다.기원전인 BC3500년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고대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족은 오늘의 터키족이 속하는 알타이어족의 한 갈래다.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연구한 앗시리아학자들이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원주민들과는 생활습관 뿐 아니라 언어마저 다른 수메르족이 이 지역에 나타났다.그 수메르족은 뒷날 지금의 중동인종인 셈족에게 흡수되면서 수메르어도 사라졌다.이들 두 사건,다시 말하면 수메르족의 출현과 소멸은 알타이어계의 동양족이 서남쪽으로 이동한 뒤 메소포타미아에 고대문화를 다시 이룩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그것은 민족의 서방이동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BC2000년쯤 알타이와 내몽골,시베리아로 코카시안 또는 백인들이 들어왔다.그들이 만들어놓은 문화가 바로 지난번에 말한 아파나시에보문화다.그 다음 8세기쯤에는 스키타이가 기마병을 이끌고 이 지역에 제2진으로 도착했다.그러니까 백인의 동방이동은 중앙아시아가 두번째 맞은 파장이었다. 스키타이의 기마술은 카스피해안에서 몽골과 만주에 이르는 대초원 전지역에 충격을 안겨주었다.보병을 한꺼번에 밀어치울 수 있는 기마전은 당시로서는 가공할 전술이기도 했다.그리고 말은 여러 가축을 이끌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기마술은 결국 본격적인 유목생활을 재촉한 생활수단으로 정착했다.토착의 동양족들은 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이에 따라 민족혼합이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새롭고 강력한 정치집단도 나왔다.BC3세기 몽골에서 발흥한 흉노가 그 집단이다. ○흉노 저지 만리장성 축소 그 시기에 중국의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았다.북쪽의 흉노족을 막기위해서 였다.BC221년에 시작하여 기원후인 AD220년에 끝난 전한과 후한이 기를 써서 막아야 했던 세력은 흉노다.서방의 흉노인 훈제국의 아틸라 칸은 AD445년에 등극했다.그리고 아시아에서 중부유럽에 이르는 지역을 손아귀에 넣었다.동·서 로마를 포함한 어떤 세력도 흉노에 대항하지 못했다. 동로마의 황제 데오도시우스가 아틸라 칸을 살해하려다 발각된 일이 있다.그러나 죽음을 맞을뻔 한 아틸라 칸은 데오도시우스 앞에서 당당했다는 것이다.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방의 사가들이 흉노를 얼마나 질시하고 두려운 눈으로 보았는지를 잘 알수 있다.중국의 정사도 마찬가지다.중국은 흉노에 비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겉치례옷을 걸쳤을 뿐 질시와 두려움은 여전했던 것이다. 동방의 돌궐제국은 한때에 와해되었다.그러나 6세기에 돌권의 후예들이 투르크라는 이름으로 부족연맹을 결성했다.돌궐 또는 투르크제국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흉노와 마찬가지로 돌궐 역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대제국들로 나누어졌다.비록 다양한 세력들이기는 했으나 투르크는 같은 문화와 언어,종교 만큼은 서로 공유했다. 그런 투르크에도 변화가 왔다.8세기 초에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아랍 이슬람군에 점령된 것이다.이들 지역의 투르크족은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그 뒤에 이슬람지역의 투르크족들은 여러 이슬람투르크왕조를 세웠다.그리고 AD751년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탈라스로 원정한 고선지장군이 이슬람 투르크 세력에게 패했다.중국은 이를 계기로 중앙아시아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슬람 투르크의 왕조들은 13세기 몽골의 말발굽에 짓밝히는 비운을 맞았다.투르크는 패자이기는 했으나 이슬람문화는 끝까지 지켰다.그리고 유럽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오스만 터키제국(AD1340∼1922년)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투르크의 영광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듯 흉노와 돌궐의 민족이동은 BC3세기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그 사이 몽골의 군사적 제압이 뒤따랐다.그러나 민족이동의 주역들은 이슬람이나 기독교에 편입되었다.이슬람화한 각 지역의 투르크족들은 나름대로 문화적 정체성을 지금도 강하게 지니고 산다.오늘날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에 남아서 사는 투르크족이 그들이다. ○‘해뜨는 나라 고구려’ 기록 중국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탈라스 패전 이후 시야를 벗어났다.우리의 역사도 그 지역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벽화속의 그림이기는 하나 사마르칸트에서 고구려의 사신을 만났다.그 벽화는 아프레시압박물관에 소장되었다.그런데 오르콘 돌궐비문은 카칸의 조문 사절단들이 누구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해가 뜨는 나라 베클리(고구려),타브카즈,티벳,아바르,로마,키르키즈,오츠 쿠르칸,오트우즈 타타르,기단(거란),타타비 등 여러 민족들이 신음하고 울기위해(주문하러)왔다.”고 기록했다. 투르크제국 공식비문에 ‘해뜨는 나라 고구려’가 첫 국빈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 공식기록은 고구려 사절단이 어떤 국가의 사절단들과 조우했는지를 일러주는 자료다.고구려 사절단은 천산아래 탈라스를 지나와서 세계의 끝에서 온 여러나라 사절들을 만났다.그런 중국 영향권 밖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위해서는 한문이나 한자문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 후나바시 전 아사히신문 미주총국장 칼럼 요지(해외논단)

    ◎일,미 경제재생 실험 배워야 동남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과 일본의 위기로 이어져 전후 최악의 세계경제위기를 초해할 위험성이 있다고 후나바시 요이치(선교양일) 전 아사히(조일)신문 미주총국장이 주장했다.최근 아사히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화폐가치와 주가폭락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아시아 전체를 휩쓸고 있다. 아시아 금융·외환위기라는 파도의 제1파는 태국바트화의 폭락으로부터 시작됐다.제2파는 한국 원화가치의 폭락 때문에 일어났다.한국·태국 등의 위기가 해결되지 않으면 홍콩과 중국으로부터 제3파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무서운 충격파가 일본으로부터 일어날지 모른다.미국의 로렌스 서머스 재무부 부장관은 지난 11일 미국주재 일본대사를 불러 “일본이 과감한 내수확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1970년대 영국의 전철을 밟을것이다.그렇게 되면 전후 최악의 세계경제 위기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내용의 미국의 우려를 전달했다.당시 영국은 세계의 주요 경제대국이면서도 거액의 자본유출에 직면,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융자를 요청했다.미국은 70년대 영국과 같이 일본경제도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70년대 영 붕괴의 교훈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세계화 흐름속에 아시아의 경제통합이 이루어지며 과민한 연쇄반응을 일으킨 결과다.화폐가치와 주가의 폭락이 연쇄적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각국은 자국의 경제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상호 협의·조정해오지 않았다.94년의 중국 원의 평가절하와 95년이후 달러에 대한일본 엔저의 유발이 다른 아시아 국가의 통화가치 하락을 초래했다.아시아의 통화정책은 제각각이다. 아시아는 ‘시장의 룰’도 애매하고 정부도 기업도 정보공개를 소홀히 해왔다.‘아시아는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세계 투자가들의 투매를 불러오고 있다.‘아시아의 기적’ 과정에서 주창됐던 아시아적 경제개발사상,정치체제론,사회질서관,국제시스템 구상 등이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등 경제대국들도 아시아의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있다.미국의 세계문제 관여정도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미국은 태국의 위기때 관망자세를 취했다.한국위기 때도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미국 1극 구조에 대한 불안감으로 동남아시아 위기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은 홍콩달러를 팔려는 헤지펀드(투기자금)를 마치 흉노족의 침입과 같이 보며 외화관리강화라는 ‘만리장성’을 견고하게 하는데 바쁘다.중국의 국제경제시스템 참여는 아직 중반의 과정에 있어 이번 위기에서 중국은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있지만 그러한 상황이 아시아경제의 최대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은 그 과정에서 경제성장의 ‘기관차’역할도 외국제품을 수입하는 흡입판 역할도 하지못해 왔다. ○아시아주의 벗어날 때 지금은 일본경제 재생의 비전과 행동이 필요한 때다.그러나 편협한 아시아주의와 일본주의를 주입시켜서는 안된다.아시아도 일본도 세계의 ‘공존공영’이라는 큰 틀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위기는 브라질이나 러시아 등 세계적으로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 세계는 90년대 미국 경제재생의 실험을 배워야 한다.미국은 저축 부족과 대외불균형 등 거시 구조는 불안정했으나 금융·정보·통신의 제3차 산업 혁명으로 대기업 붐을 이루었다.미국경제 부활의 근저에는 재기와 창업정신이 흐르고 있다. 도전에는 실패도 있다.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워 재기할 것인가.미국사회는 실패로부터 배워 ‘패자부활’을 하기 쉬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정보공개는 그러한 재기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미국과 비교할 때 일본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일본정부와 국회는 거품경제 붕괴후 경제실정의 조사보고서를 만들지 않았다.그러한 보고서가 있었다면 일본 보다 늦게 거품경제의 위기를 맞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 참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창업 쉽도록 체제개혁 일본은 창업하기 어려운 사회다.과점,계열,담합,규제,정경유착 등이 창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일본은 창업이 쉬운 미국의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일본의 경우 특히 창업이 어려운 가운데 중소기업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된다.중소기업을 활성화(보호가 아님)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아시아 국가중에는 이번 위기를 관과 대기업 유착의 개발독재를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경제·시장 민주화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있다.일본은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지원할 할 필요가 있다.
  • ‘사막의 오아시스’ 고도 투루판(중앙아시아를 가다:4)

    ◎지하수로 5천㎞… 중 3대토목 대역사/관정 1천여개… 포도밭 등 드넓은 농경지가 중국인들은 이런 말을 한다.“신강성을 가보지 않고 중국이 얼마나 넓은지 말하지 말라”고….이 말을 “투루판을 가보지 않고 신강성을 말하지 말라”고 바꾸고 싶다.한자로 토로번이라 표기하는 중국 신강성 투루판은 그렇듯 경이로운 지역이었다. 투루판까지는 돈황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정거장 유원에서 열차를 타고 밤을 새워 꼬박 11시간을 달렸다.투루판에 내렸을때 대지는 온통 불덩어리였다.사방으로 눈을 돌려도 사막만이 펼쳐지기는 했으나 그 사막 가운데로 풍성한 농경지가 들어앉았다.섭씨 45도의 고온에 이글거리는 사막과는 달리 싱그럽다. ○인근엔 75도 화염산이 투루판은 도시가 이국적이거니와 사람들도 그랬다.투루판사람들,다시 말하면 위구르족은 동양인 골상과 사뭇 다르다.그들이 입은 옷과 살아가는 건물에서 발산하는 강렬한 색깔로 해서 동화의 나라에 온 착각이 든다.어린아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마치 꼬마모델이나 되는 것처럼 척척 포즈를 취했다.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그런 투루판 아이들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나오는 태도를 본 적이 없다. 근교에는 손오공의 이야기에 나오는 화염산이 있다.해가 뜨면 75도라니 과연 화염산이다.극한적 자연조건속에 풍취 어린 문화가 숨쉬는 투루판은 타클라마칸사막에서 보면 동쪽이다.그리고 고비사막의 서쪽이니까 오아시스 도시이기도 한 투루판은 비단길의 주통로였다.천산북로의 주요 거점으로,동서문화교류의 징검다리 구실을 해온 역사도시인 것이다.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투루판 사람들도 눈 녹은 물을 마시고 산다.천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생긴 물이다.그 천산의 물은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이른바 감아정이라는 수직 물구멍을 30m간격으로 파고나서 이를 지하수로와 연결시켜 끌어왔다.물구멍만 1천개가 넘고 지하수로의 길이는 5천㎞에 이른다고 한다.실로 놀라운 대역사의 고대 토목공사 현장이 투루판에 있다.이 엄청난 지하수로 건설공사는 한무제가 서역을 경영하면서 시작되었다.만리장성 및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 3대 토목공사의 하나가 투루판 지하수로다.한해 강수량은 고작 16㎜인데 비해 증발량은 300㎜나 되는 건조한 열사에서 물 한방울은 바로 생명수였다.그 생명의 젖줄 지하수로는 지금까지 2천년동안 사막속의 경작지에 습기를 불어넣고 사람들 목을 축여주었다. ○실크로드의 주루트 역할 예부터 투루판은 포도의 도시다.포도는 본래 메소포타미아가 원산지였으나 차츰 이웃으로 번져 먼저 그리스로 들어갔다.그리고 동으로 인도와 타클라마칸을 거쳐 투루판으로 확대되었다.중국의 포도는 물론 투루판에서 전파된 것이다.투루판의 포도주는 일찍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당나라 시인 왕한(678∼726년)은 야광채 백옥잔에 부어 마시는 서역 포도주를 이렇게 노래했다.‘야광배에 가득한 맛있는 포도주/마시려하니 마상의 비파소리 흥취를 더하네/취하여 사막에 두어버려도 그대 비웃지 마오/고래로 전쟁에서 돌아온 이 몇 사람이오’서역정벌에 나섰다가 포도주에 흠뻑 취한 중국인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오늘도 여기저기 널린 포도구가 투루판 여행객을 유혹한다.양고기 꼬치구이 샤슬릭과 위구르족의 빵인 낭을 굽는 드넓은 포도밭 유원지를 찾으면 투루판 포도주가 반드시 식탁에 올랐다.그리고 천산의 찬물,뜨거운 햇볕에 달게 익은 수박과 하미,참외가 따라 나왔다.거기에 동화속 요정처럼 아름다운 무희의 춤과 전통음악을 곁들이면 오아시스에는 늘 낭만이 넘친다. 고대로부터 비단길 국제무역으로 상술을 다진 탓일까.투루판 사람들은 관광객을 놓칠 리가 없다.포도구에서 전통기념품을 파는 것은 상식이고 별의별 것을 다 내놓았다.그리고 씨가 없다는 백포도에서부터 100가지가 넘는 포도가 좌판에 즐비했다.‘투루판의 포도가 익었네/아나이칸의 마음도 벌써 취했다네…’그 노래가 들릴 듯한 포도구의 풍경은 한껏 풍요롭다. 그 유명한 고창고성은 투루판에서 50㎞ 떨어진 사막에 있다.2백만㎡에 이른다는 폐허의 고성은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인 채 고창왕조의 영화를 잃어버린지 오래다.한 도시이자 성채인 고창성은 9세기 중엽 투루판 위구르국 고창왕조가 세운 도읍지였다.그 무렵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일어났다.천하를 수습하러 나선 북송은 신흥 티베트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위구르국을 재빨리 끌어안았다.이를테면 북송으로부터 왕권을 승인받은 고창왕조는 정치세력을 급속히 확대했다. 이 왕조는 정치역량뿐 아니라 문화적 주체기반도 차근차근 다져 나갔다.비단길 교역의 매개자로 마니케이즘과 네스토리우스 기독교파가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는데도 도움을 주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였다.이와 함께 불교를 수용하여 토착문화와 융화시켰다. ○포도주 명산지로 유명 그렇듯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 언어는 터어로 통일했다.이는 다양한 주민을 터키화하는데 성공한 요인이 되었다.고창왕조는 결국 위구르족문화의 주체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투루판 위구르족은 13세기 징기스칸 정복하에서도 오히려 몽골제국 건설에 힘을 실어주었다.그들은 ‘박시’라는 서사계급과 문자체계를 몽골제국에 제공했다.그래서 몽골제국은 급기야 행정체계를 세우고 몽골문자를 만들었다.그럼에도 위구르족은 15세기부터 이슬람화하면서 자신들의 문자와 불교를 잃어버렸다.이유는 문화주체의식이 위구르족 마음속을 떠난데 있다.지금은 스스로를 위구르인이 아닌 투루판 사람이라고 부른다.그들은 역사의 온갖 애환을 포도밭에 묻어두었는지 모른다.
  • 불교문화의 보고 돈황(중앙아시아를 가다:3)

    ◎동서문화 교류의 루트… 굴마다 불상·불화/‘사막의 오아시스’ 막고굴은 대상들 휴식처/유목민족 중국 넘나들면서 대중불교 전파 오늘날 중국 감숙성 땅 돈황은 멀고먼 비단길을 오가던 대상들의 영원한 오아시스이자,동서문화교류 루트의 빛나는 금자탑이다.만리장성 서쪽 끝 요새인 가욕관에서 하서주랑의 넓은 계곡을 따라 400여㎞를 달려가면 벌써 모래바람이 일고 곧 돈황에 이른다.돈황 계곡 남쪽에는 장족 말로 ‘하늘에 닿는다’는 뜻의 기련산이 우뚝했다.돈황에서 서쪽으로 100㎞를 가면 옥문관과 양관이 사막 한가운데 서있다.고대로부터 유명한 호탄의 옥을 싣고 대상들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이 바로 옥문관이었다.옥문관과 양관은 한무제가 개통한 비단길의 중국측 전초 기지였다.이곳을 지나면 신강성의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이 기다렸다. ○옥문관 비단길 전초기지 이와는 반대로 대상들이 험난한 타클라마칸을 지나 옥문관에 이르면 한숨을 돌렸다.눈 앞에 나타난 돈황에서 쉬어갈 참이어서 마음의 위안을 얻게 마련이었다.그리고 장안을 떠나 서역으로 가는 대상들은 이 오아시스 도시에서 죽음의 사막을 지날 채비를 단단히 차렸다.대상들은 험난한 사막과 끝없는 초원을 지나는 길에서 닥칠 온갖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으레 무리를 이루어 떠났다.그들을 대상이라 한 이유도 여기에 있거니와 사실상 군단이었다.대상은 비단을 싣고 중앙 아시아를 지나 서쪽 멀리 콘스탄티노플까지 갔다.동서를 오가는 대상의 편대에는 불교인들이 자연스럽게 끼여들었다.그리고 중국에 불교를 전했다.비단길의 여울목,돈황이 불교문화의 보고가 된 것도 이때문이다. 돈황은 주변 사막마을들과는 달리 흥청거린다.그 유명한 막고굴을 찾고 명사산에 오르기 위해 온 관광객들로 해서 시장과 거리는 활기에 차있다.막고굴은 명사산 동쪽 벼랑에 있다.기련산맥의 한 자락,삼위산을 마주보고 늘어선 단애에 천불동 석굴을 파고,그 안에 무수한 불·보살의 소상을 빚고 불화를 그렸다.그렇듯 돈황의 명성은 막고굴에서 비롯되었다. 석굴에 안치한 불상과 벽화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대작들이다.처음에는 이 거대한 불사의 규모와 작품의 정교함에 경탄을 금치 못하다가,이내 그런 작업을 한 인간의 도전적인 노력에 경외감이 들었다.누가 이처럼 놀라운 일을 했고,어째서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외경스러울 뿐이다. 막고굴은 가히 중국 불교사의 박물관이다.대략 3세기에 시작한 막고굴 조성은 북위(442∼534년)때에 이르러 더욱 활발해졌다.이어 당대(618∼906년)들어서는 돈황 불교마을이 극치를 이루었다.비단길이 쇠락한 송대(960∼1035년)에는 막고굴 불사도 한풀이 꺾였다.그이후 청대까지는 주로 보수와 개조를 거듭했다. ○당대 불교문화 꽃피워 막고굴의 초기,다시 말하면 북위의 그림들은 어느 모로나 서역의 그림이다.검정선으로 이미지를 정리한 화법과 강력한 색상은 중국의 감각과 전혀 다르다.인도의 산악 라다크지방 알치의 불화를 보는 듯하다.그것은 아리안의 미적 감각이다.그러나 당대에 오면 중국적인 기법으로 불보살을 표현했다.중국불화로 바뀌는 것이다.그러니까 중국불교의 변천을 보여주는 실체가 막고굴 불교미술이기도 했다. 대승불교가 당대에 왜 꽃을피울수 있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돈황유적은 던져준다.불교는 기원 전후해서 중국에 들어왔다.유교사회였던 한대의 불교는 대수롭지 않았다.그러나 한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일어서기까지(220∼618년) 약 4세기는 유목민족들이 중국을 넘나들면서 여러 왕조를 세우던 시대였다.이 시기 비단길을 지배한 세력은 유목민족들이었다.이들 유목민족은 자신들과 친숙한 불교를 널리 전파했다.그래서 불교가 중국에 차츰 든든하게 뿌리를 내렸고,당나라에 오면서 중국적인 대승불교로 훌쩍 날개를 폈다.다시 한족이 세운 송대에는 신유학에 의해 문화가 쇄신되면서 불교가 사양의 길을 걷게 되었다.천불동은 이런 역사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돈황 막고굴 불사에는 왕실과 귀족들의 기복적인 동기가 깔렸다.그런 맥락에서 막고굴 유적을 깊게 들여다보노라면 고차원의 교리에 대중불교의 요소가 습합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그래서 더욱 다채롭다.또 중국인들은 막고굴유적에서처럼 자신들의 감성을 통해 대승불교의 문헌전통을 주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그리고 당나라예술을 불교와 더불어 더욱 꽃피웠다.문헌전통의 주체적 수용이 문화를 한단계 높게 끌어올린 것이다.
  • (주)오메가소프트 ‘E.Q MAN’/부담없이 즐기는 ‘미로게임’

    ◎나라별 10개 스테이지… 먹이 없애야 ‘득점’ 어려운 게임은 사절.‘E.Q MAN’은 초보자가 부담없이 즐기기에 딱맞는 미로 게임.(주)오메가소프트(02­636­2633)에서 순수 국내기술로 만든 오락실용 게임으로,11월 중순 선보인다. 게임에는 나라별로 모두 10개의 스테이지가 있다.아프리카,한국,이집트,네덜란드,인도,미국,중국,북극 등이다. 30여개 캐릭터들이 스테이지마다 5라운드씩 등장한다.이집트의 피라밋,한국의 장승,네덜란드의 풍차,인도의 사원,중국의 만리장성,미국의 자유의 여신상,북극의 이글루 등 각국의 문화를 잘 나타내는 배경을 택한 것이 특징이다. 캐릭터도 우리나라의 도깨비,산적,귀신을 비롯,전갈,미라,코브라,에스키모,강시,코브라 등 매우 다양하다. 진행방식도 아주 단순한 편. 미로 사이에 숨어있는 먹이 아이템(오염물질)을 없애 가면서 득점하는 방식이다.두개의 스테이지를 무사히 통과해야 한개의 보너스 스테이지가 등장한다.
  • 세계 문화유산 안방서 ‘순례’

    ◎KBS 1TV 8일부터 매주 5회 시리즈 방영/유네스코 제작 15분짜리 다큐멘터리 형식/10월엔 한국유적 종묘·해인사·불국사 소개 KBS가 전세계 30여개국에 흩어져 있는 인류 문화유산의 흔적들을 찾아 소개하는 ‘세계 문화유산’시리즈를 8일부터 내보낸다.1TV 월∼금요일 하오 11시40분. 15분짜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시리즈는 본래 유네스코가 지난 94년 세계 문화유산을 영상물로 남기자는 취지로 기획한 ‘세계의 보물,인류의 유산’프로젝트의 하나.이를 위해 유네스코는 지난 95년부터 독일 공영방송인 ARD·ZDF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세계 문화유산 506곳을 대상으로 총 500편의 프로그램 제작을 진행중이다.현재 80편이 제작완료돼 세계 각국의 위성 및 지상파를 통해 방영되고 있고 KBS는 이중 55편을 1차로 들여왔다. 이번에 선보일 내용은 인도의 ‘타지마할 묘’(8일)와 영국의 ‘스톤헨지’(9일),스페인의 ‘안토니오 가우디 근대건축물’(10일),러시아의 ‘성 페터스부르크’(11일),이집트의 ‘아부심벨 신전’,페루의 ‘마추픽추 잉카유적’,중국의 ‘만리장성’,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석조건축물’ 등과 함께 종묘·해인사 장경판고·불국사 석굴암 등 우리 나라의 문화유산들도 포함돼 있다.이들 한국의 문화유산편 제작에는 특별히 KBS가 참여,지난 5월말 독일 공영방송사인 SWF와 함께 국내에서 촬영을 마친뒤 7월 중순부터 독일에서 편집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한국편은 10월 중순쯤 방영될 예정이다. 이 시리즈가 눈길을 끄는 것은 역사적·예술적·학문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인류의 최고 유산들을 보다 깨끗하고 선명한 영상과 음질로 담아냈다는 점.지난해 6월부터 서울신문이 매주 월요일에 게재하고 있는 특집 ‘세계 문화유산 순례’가 문화유산의 장엄한 가치를 기자들의 현장감 넘치는 글을 통해 깊이있게 조명하고 있다면 TV는 실물색상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등 고도의 영상표현 기법을 총동원,시청자들에게 또다른 감흥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매회 방송시간이 다큐멘터리가 안기 쉬운 지루함을 덜게끔 15분으로 꾸며진 반면,프로그램 내용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늦은 시간대에 배정된 편성의 인색함으로 시청자들을 스스로 외면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 뿌리 내리는 한국인(한·중 수교 5주년:중)

    ◎교민 3만여명 ‘차이나 드림’ 꽃피운다/도심 곳곳 한국제품 전문판매점 성업/4천여업체 진출 ‘메이드인 코리아’ 각인/언론매체도 ‘한국의 장점’ 앞다퉈 보도 한국은 중국인에게 더이상 낮선 대상은 아니다.자동차로,VTR 등 가전제품으로,밀어닥치는 여행객들로,축구팀으로 한국과 한국인은 수교 5년만에 가까운 이웃으로 중국인의 삶과 생활속을 파고 들고 있다.북경의 관문,수도공항에 도착하면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TV형 모니터와 개인용 짐수레에 부착돼 있는 한국기업 광고가 첫눈에 들어온다.공항을 지나 시내로 들어오는 고속도로에도,북경시내 중심가인 장안대가변에도 포항제철,삼성,대우,쌍용 등 국내 기업의 대형 광고판이 일본기업의 그것과 경쟁이라도 하듯 우뚝우뚝 솟아있다. TV를 틀면 한국 VTR과 CD플레이어 등을 선전하는 광고가 중국 시청자들의 망막과 청각을 때리고 있고 한국산 옷등 각종 한국제품 전문판매점이 대도시마다 문을 열고 있다.수교전 한국과 관련,대체로 부정적인 소식만 전하던 인민일보와 중앙TV(CCTV) 등 중국의 언론매체들도 한국의 좋은점과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등 한국관련 보도를 늘려나가는 추세다.일반인들도 한국에 대해 더 자세히 잘 알게되고 한국의 정치,경제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밀어닥치는 한국 관광객의 쇄도속에 북경의 대표적 관광지 고궁(자금성)에선 7개 언어로된 안내 설명 통역서비스 가운데 한국어가 포함됐고 만리장성 꼭대기에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한글로 된 중국 공안당국의 경고문이 영어,일본어와 함께 나란히 붙어있다.70만명∼80만명선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96년말 63만명)중국 방문객만큼 한·중 교류의 폭을 상징하는 것은 중국내 상주하는 한국인들의 증가다.주중대사관측 집계로는 중국 상주 한국인은 최소한 3만여명선.약4천여개의 크고 작은 회사들이 중국에 나와 한국상회를 구성했고 집계되지 않은 한국인과 한국회사들은 더 많다는 것이 주중한국대사관측 설명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한국수요’로 중국내 대학들에선 한국어과 개설이 유행처럼됐고 중국최고 명문안에 드는 상해의 부단대학,천진의 남개대학 등이 한국어과를 개설,기존에 한국어를 가르치던 북경대를 포함한 모두 26개 대학에서 1천6백여명의 학생이 한국어과에 적을 두고 한국말을 익히고 있다.강택민 주석,이붕 총리를 비롯,상당수의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한국을 다녀왔고 한국의 제주도 한번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이야기에 끼일수 없을 정도라고 중국내 한국 열기를 한 중국국무원 관리는 설명한다. 중국기자협회의 양가합 주임은 “중국시장과 중국대륙에 대한 한국인들의 진출과 도전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60·70년대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킨 한국인들이 이제 중국에서 차이나 드림을 실현시키려 시도하는 것 아니냐”며 한국인들의 활발한 대중국 진출을 평가했다.
  • 만리장성과 텅빈 요새(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앤드루 네이션·로버트 로스 공저/‘거대한 몸집’지탱 버거운 중국/하드­소프트웨어 다 낡아 ‘종이 호랑이’불과 중국은 미국 중심의 아시아 질서,나아가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인가,아니면 한낱 종이호랑이에 불과한가? 전세계 인구의 5분의1을 차지하는 12억 인구,개방·개혁의 물결로 부흥하는 경제,외환보유고 순위를 대번에 아시아 3위로 올려놓은 홍콩접수,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상징적인 힘의 알파를 한번에 거머쥐게 된 중국.그러한 중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두려움 그 이상이다. 동아시아에서 질서유지자 역할을 해온 미국과 막강한 경제력을 토대로 아시아 패권을 꿈꾸는 일본,그리고 한반도는 앞으로 도래할지도 모를 팍스 시니카(Pax Sinica)시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각국의 정치학자들이나 분석가,정책입안자들은 중국의 실제 힘을 계산하고 미래모습을 점치기에 분주하다. ‘중국 위협론’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힘이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미국 콜럼비아대 정치학 교수인 앤드루 네이선과 보스턴대 정치학자 로버트 로스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고 주장한다.그들은 최근 펴낸 책 ‘만리장성과 텅빈 요새(The Great Wall And The Empty Fortress)’에서 중국을 ‘종이 호랑이’로 결론짓는다. ○‘팍스시니카’도래 촉각 네이선과 로스 두사람의 시각은 냉전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 강력하게 제기돼온 ‘중국 위협론’을 부정하는 분석이다. 냉전의 종식으로 미국의 주적이었던 소련이 사라져 버렸을때 많은 학자들은 새 시대의 적으로 ‘깡패 국가’인 이라크 등 몇몇 나라와 민족갈등 등을 꼽았다. 그러다 세계은행이 지난 92년 중국이 과거와 견줄수 없는 거대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자 국제사회는 중국의 미래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세계은행 보고서에 놀란 정치학자들은 재빠르게 중국의 경제와 기술력,무기구매력,전쟁훈련 상황 등을 바탕으로 미래의 힘을 추산해냈다.그들이 낸 결론은 중국이 조만간 아시아의 맹주로 떠오를 것이고 이는 이 지역의 운명에 깊이 간여해온 미국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이것이바로 ‘중국 위협론’이다. 이 ‘중국 위협론’에 대한 찬반 논쟁은 과거 소련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관련한 강경론자와 온건론자들의 논쟁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올해 초 ‘다가오는 중국과의 갈등(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이란 책을 펴낸 대표적인 강경론자,즉 중국 위협론자인 언론인 러처드 번스타인과 로스 먼로는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치를 위협하며 이는 남지나해상에서 수세기동안 이어진 남사군도 장악에서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중국은 동아시아와 유럽· 중동을 연결하는 무역과 전략요충지를 장악함으써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주변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수세 입장 반면 네이선과 로스는 중국은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민족문제 등으로 거대한 영토를 유지하는데 급급하며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입장이라고 분석한다. 군사력은 기술과 조직적인 면에서 미국은 차치하고 대만이나 일본·한국에 훨씬 뒤처지며 전통적으로 중국군은 방어용으로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또 공격기는세상에서 가장 낡은 것으로 대부분이 50·60년대 기술수준에 머물며 해군의 경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와 싸우면 틀림없이 패한다는 입장이다.하드웨어보다 더 중요한 육해공군의 명령·통제·통신·지식수행력이 더 문제이다.남사군도만해도 전략요충지로 삼거나 군시설을 설치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규모라는 것이 네이선과 로스의 주장이다.그들은 적어도 25년 안에는 중국의 위협이 현실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책은 25년 이후의 장기적 측면에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중대한 허점을 안고 있다고 월드폴리시 저널 편집장인 벤저민 쉬발츠는 말한다.현재 중국의 역동적인 경제성장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분석하는 일단의 ‘중국 위협론자’들은 25년후가 문제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벤저민 쉬발츠는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한다.이책을 쓴 두사람의 저자나 ‘중국 위협론’을 주장하는 강경론자 모두 분석의 차이에도 불구,결론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이른바 미국에 의한 ‘힘의 균형’상태가 지속돼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힘의 균형’ 유지시켜야 ‘미국 지배에 의한 균형’은 그러나 보는 각도에 따라 모순적일 수 있다.미국 입장에서 ‘균형’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패권주의’로 보일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중국이 자신의 커져가는 부를 이용,미국의 아시아 지배를 종식시키고자 한다해도 놀랄일이 아니라는 것이다.미국이 중국 위협론을 거론하면 할수록 중국의 야심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야심이 드러날 뿐이다. 268페이지.W.W.Norton & Company.27달러 50센트.
  • 영국 선사유적 스톤헨지(세계 문화유산 순례:33)

    ◎광활한 평원에 거대한 환장열석/영웅무덤·제사유적 추측속 외계인 작품설도/돌한개 최고 50t… 고대인간 능력에 경외심이 던에서 남서쪽 윌트셔지방의 스톤헨지(Stonehenge)로 가는 길은 푸른 목초위에 무리지은 양떼와의 끊임없는 만남이다.한가로운 느낌마저 들게 하는 전형적인 영국 농촌 풍경에서 영국의 모직산업이 얼핏 연상됐다.3시간여동안 눈에 녹색막이 낄 정도로 푸르른 목초지를 지켜보다 솔즈버리 언덕을 넘었을때 거석문화의 잔영 스톤헨지가 눈앞에 펼쳐졌다.갑자기 현대에서 선사사회로 돌아가 버린 듯한 당혹감마저 들게 했다. 첫 눈에는 선사 유적지의 신비스러움에 가슴이 설레이지만 다가 서면 실망감도 없지 않다.들판에 바람을 맞으면서 서 있는 차석주군의 주변을 둘러보면 초목지대 뿐이다.황량하다는 느낌마저 든다.그러나 스톤헨지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라는 두 시대에 맞물린 선사인류의 기념비적 문화유적이다.고고학자들의 과학적 연대측정에 따르면 기원전(BC) 3850∼200년까지 장장 3천600여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유적이라는 것이다.돌기둥들을 고리모양으로 둥글게 나란히 세워놓은 이른바 환상열석 유적이 스톤헨지다. 스톤헨지는 바깥 도랑과 둑,네모꼴 광장과 방향표시석인 힐스톤,돌기둥을 세워놓은 입석군,중앙 석조물 등으로 이루어졌다. 스톤헨지의 용도에 대해서는 갖가지 추측과 억측만이 남아 있을뿐 정설이 없다.석기시대의 제사유적이라든지,영웅의 무덤이라는 설이 있다.당시 원시인들의 지적 수준으로는 거대한 돌덩이를 옮겨 정교하게 쌓을수 없다는 이유로 외계인들이 내려와 만들었다는 설은 사뭇 흥미를 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이탈리아의 피사사탑 등과 함께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스톤헨지.BC 2세기 시돈의 안티파르테가 선정한 세계적인 수수께끼인 기자의 피라밋 등 고대 불가사의와는 달리 중세 선정된 불가사의의 하나이다.스톤헨지에서 맨먼저 축조된 구조물은 지름 86.6m의 둥근 둑이다.둑의 내부에는 화장한 뼈가루를 넣었던 구멍이 질서정연한 형태로 남아 있다.평상시 육안으로는 둑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지만 눈내리는 겨울날이면 그 형체를확연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톤헨지는 고대 인간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을 안겨 주었다.컴퓨터를 만들고 달에 발을 디뎠는가 하면 양을 복제해낸 현대의 과학도 스톤헨지앞에서는 어쩌면 무력한 존재인지 모른다.어떻든 스톤헨지를 계획한 솔즈버리의 선사인들은 원형의 둑을 쌓은 뒤에 뼈가루를 넣는 구멍을 만들었을 것이고,그다음에는 큰 기둥과 난간돌(순석) 따위의 거석을 세웠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즈음에 이르러서 스톤헨지의 신비 하나가 새롭게 벗겨졌다.유적 중앙에 말발굽 모양으로 가지런히 둘러 세워놓은 큰 돌의 원산지가 밝혀진 것이다.블루스톤이라는 이 돌은 스톤헨지로부터 자그마치 385㎞나 떨어진 웨일즈 남서부의 프레슬리산에서 가져왔다.아마도 썰매나 뗏목을 이용해 육로와 해상을 번갈아가며 운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톤헨지에서 빼놓을수 없는 방향표시석 힐스톤은 오늘의 국도변에 자리했다.스톤헨지가 태양신앙과 결부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거석 유물이기도 하다.힐스톤은 동쪽을 가르키는데,그것도 하지에 해가 떠는 방향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우연이었을까,하지날 힐스톤이 가르키는 방향에서 해가 떠올라 중앙제단을 비췄던 시기는 천문학적으로 BC 1840년이라는 계싼이 나온다는 것이다.그리고 힐스톤을 세운 시기를 과학적으로 측정한 연대와도 맞아 떨어져 기묘한 생각이 들수 밖에 없다. 그리고 환상열석 중심축에서 30m를 벗어난 자리에는 「사르센 원」이라고 불리는 둥근 띠가 있다.사르센 원을 따라 가면 두개의 커다란 돌을 세워 놓고 그위에 또 다른 돌을 눕혀 놓은 삼석탑을 만난다.돌 한개의 무게는 25t에서 최고 50t까지 나간다.기중기가 같은 기구가 없던 당시에 50t 무게의 돌을 어떻게 운반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여전히 남는다.학자들은 지레 받침대와 밧줄을 이용해 돌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과학적인 추측을 할 뿐이다. 황량하기만한 스톤헨지는 대규모 관광공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영국의 문화재 관리 기관인 브리티시 헤리티지는 약 6500만파운드(약780억원)를 들여 오는 2000년까지 첨단 레저시설을 갖춘 공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선사인류의 지혜가 가득한 문화유산이 훼손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스톤헨지를 돌아섰다. □여행가이드 영국을 찾는 관광객들 가운데 스톤헨지는 런던시내와 주변의 윈저성 등에 이어 마지막으로 찾는 관광코스이다. 과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는 교육용으로 더없는 관광거리이다.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으며 2주일 전에 예약을 해두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성인은 3.5파운드(약4천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하지만 입장권을 사고나면 출입구에 확인하는 사람조차 발견할 수 없어 역시 신사의 나라임을 실감한다. 런던시내 워털루역에서 솔즈베리까지 기차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솔즈베리에서 타는 관광버스는 편안하게 스톤헨지까지 안내해 준다.아니면 아예 런던시내에서 관광버스를 타면 되고 부근의 「바스」도 함께 관광코스로 끼워 넣으면 좋다.
  • 도서출판 책세상,시리즈 「위대한 작가들」 두번째

    ◎현대서사문학 거장 토마스 만의 삶·예술/「부덴브로크 일가」 등 소설3편속 문학세계/당시 사진 20여점 등 자료적 가치도 가득 프란츠 카프카,제임스 조이스 등과 함께 현대 서사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의 생애를 담은 전기집 「토마스 만」(로만 카르스트 지음,원당희 옮김)이 도서출판 책세상에서 나왔다.책세상이 펴내는 본격전기 시리즈 「위대한 작가들」의 둘째권.「지성과 신비의 아이러니스트」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이 책은 아이러니라는 일관된 틀을 통해 토마스 만의 삶과 예술의 역사를 짚어간다.아이러니는 토마스 만의 작품세계와 삶의 태도를 규정짓는 주요 인자.토마스 만은 반어적 관점에서 작중인물과 거리를 둔채 이야기를 전개한다. 토마스 만의 생애와 창작활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긴 도정에 걸쳐 있다.그런 만큼 작가로서의 발전과정 또한 복합적이다.특히 그의 정치적 이념의 변화과정은 당대의 미묘하고 까다로운 명암을 그대로 반영한다.1920년 이전의 토마스 만은 독일의 보수성을옹호하면서 정치를 본성적으로 꺼려하는 독일의 향토주의 혹은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준다.그러나 「마의 산」을 기점으로 그는 민주주의라는 사회공동체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파우스트 박사」를 집필하던 시기에는 미국으로 망명,파시즘운동에 적극 가담했다.여러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그의 삶과 예술세계에 미친 영향을 꼼꼼히 살피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미덕.바그너,쇼펜하우어,니체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이들은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청년 토마스 만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정신적 모태였다.바그너가 낭만적 음악의 아름다움과 표현기법을 통해 토마스 만의 서사문학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면,쇼펜하우어는 논리정연한 사상체계를 통해 그의 작품에 내적 깊이를 더해줬으며,니체는 세기말의 우울과 몰락감에 삶의 열정을 불어 넣어줬다.특히 니체는 데카당스의 자기진단과 성찰,염세주의의 극복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신사적 진폭이 큰 토마스 만의 삶과 문학을 하나의 체계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는 것은 자칫 오류에 빠지기 쉽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토마스 만의 3편의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일가」「마의 산」「파우스트 박사」를 중심으로 그의 문학세계를 조명한다.이 작품들은 토마스 만의 3대 걸작으로 꼽힐뿐 아니라 대략 20년 간격으로 출간돼 그의 문학적 시기구분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토마스 만의 첫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일가」(1901)는 19세기 유럽의 사실주의 전통에 입각한 작품으로 독일 시민계급의 발전과정을 비판적으로 그린 시대적 연대기이자 결산물이다.「마의 산」(1924)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내적으로 열병을 앓고 있던 서구의 정신적 풍경을 반어적 어법으로 표현한 작품.또 「파우스트 박사」(1947)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대참사를 「운명의 교향시」로 형상화한 노년기의 역작이다. 과거의 역사를 추적하는데는 때로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만리장성의 장문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이 책에는 토마스 만과 그의 가족,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20여점의 사진과 600여개의 인용문 등이 실려있어 자료적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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