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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전 장관 비리폭로 17일 재입국/권병호씨 행적

    ◎사건관련 당사자들 만나 향후대책 논의/18일 「헨리권」 미국명 사용 중국으로 떠나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의 비리의혹을 폭로한 권병호씨(54)가 21일 돌연 중국 북경에 모습을 나타내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권씨는 지난달 9일 출국,지금까지 미국 LA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검찰 조사결과 권씨는 미국에 머무르다 국민회의의 정동영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이 전 장관의 비리를 폭로한 17일 저녁 김포공항을 통해 은밀히 다시 입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검은 지난달 23일 권씨가 UGI 전사장인 강종호씨로부터 1억3천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피소되자 소재지를 수소문한 결과,지난달 9일 이미 출국한 사실을 확인,기소중지조치를 내렸다.검찰은 당시 권씨의 재입국에 대비,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측에 입국하면 통보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권씨는 입국 이튿날인 18일 상오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했다. 권씨는 출입국 과정에서 「헨리 권」이라는 미국명을 사용했다. 권씨는재입국 이후 반나절동안 이번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들을 만나 향후 대책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북경에서 기자들과 만나 귀국할 의사도 있는 것처럼 내비쳤지만 미국에 있는 부인이 전화를 통해 극구만류하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기중개상인 권씨는 지난 1월까지 서울 동부이촌동의 58평짜리 맨션아파트에서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 맨션 경비원은 권씨는 평소 이웃주민들과 거의 접촉이 없었으며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고 밝혔다.단지 키가 훤칠하고 차림이 말쑥해 제법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경비원은 『권씨가 집근처 C교회에 상당히 열심히 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권씨는 C교회에서 어떤 직책도 맡지 않아 대부분의 신도들은 그의 신분에 대해 잘 몰랐다고 밝혔다. 권씨는 지난 2월 맨션을 떠나 용산구 용산동 UGI사무실로 주소지를 옮겼다.하지만 그 이후의 국내행적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박홍기·이지운 기자〉
  • 이 총리­JP 휴일 골프회동

    ◎현정부 총리론 처음… 김수한 의장도 참석/JP 제의 받아들여… “김 대통령 사전양해” 이수성 국무총리가 20일 골프를 쳤다.이총리는 이날 김수한 국회의장,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이정무 원내총무와 함께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4시간 가량 운동을 했다. 이총리는 오랜만에 필드에 나섰음에도 「옛실력」을 발휘,85타를 기록했다.김의장 83,김총재 84,이총무 76타 등 다른 인사의 스코어도 좋은 편이었다. 이총리가 골프를 친 것은 공직자 골프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현정부의 총리로서 처음이다.총리실 관계자들은 이총리의 필드행이 「야당 총재에 대한 정치적 필요성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이총리가 골프를 친 것을 골프 해금의 전주곡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설명이다. 이날 골프모임은 이총리 초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골프를 먼저 제의한 것은 김총재였다.이총리가 지난달 10일 정기국회 개회를 맞아 인사차 국회로 김총재를 찾았을 때다.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자리에서 김총재는 『골프나 한번 치자』고 인사를 건넸고 이총리 또한 『날짜를 한번 잡겠다』고 화답했다. 이총리는 이 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직접 양해를 구했고,김대통령도 수긍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총리와 김총재는 이후 시간과 장소를 결정했다.이 약속은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한차례 미루어졌다고 한다.다시 약속한 날이 바로 이날이다. 측근들은 「아직 분위기가 좋지않다」고 만류했지만 이총리는 『야당 총재가 아니더라도 약속을 두번 미룰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결심을 굳혔다는 후문이다.〈서동철 기자〉
  • 장세동씨 추석날 옥중 회갑(조약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추석인 27일 회갑을 옥중에서 맞는다. 그는 현재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이다. 복역하기는 네번째다. 지난 89년 5공비리사건과 93년 이른바 「용팔이사건」(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으로 수형생활을 했고 12·12와 관련,지난 2월 구속된뒤 8월19일 1심 구속만기로 풀려났다가 8월26일 1심 선고공판에서 다시 법정구속됐었다. 옥중에서 회갑을 맞는 장피고인은 의외로 담담하다.가족과 주변사람들이 마련하려던 소연도 극구 만류했다. 이 날은 공휴일이라 가족에게도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 교도소측이 제공할 추석 별식을 잔칫상으로 대신할 참이다.선친과 전남 고흥에 사는 노모를 향해 큰 절이나 올릴 계획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회갑을 이틀 앞둔 25일 부인과 측근들의 방문을 받았다.공군과 육군에서 사병으로 복무중인 두아들 걱정도 했다.쓸쓸이 맞을 「주군」(전두환 피고인)의 추석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위로하는 측근에게 『새마을복을 입고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이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 “군 포위망 못벗어났다” 추적 박차/무장공비­수색 이모저모

    ◎바다밑 지형도 수록 북군용 도첩 발견/검문속 귀향객 “생각보다 상황 심각” 무장공비 소탕작전 8일째를 맞고 있는 군 수색대는 25일 상오 강릉시 강동면 칠성산 동남쪽 망기봉 일대에서 무장공비로 보이는 거동수상자 3명을 발견,추격전을 벌였으나 아군 부상자만 발생한 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군 당국은 『해발 9백m가 넘는 칠성산은 산림이 울창하고 머루,다래 덤불이 우거져 있어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수색이 계획보다 힘들게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 그러나 이날 수색에서 무장공비 잔당 5명이 군 포위망 안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다소 안도하는 모습. 군 관계자는 『25일 수색에서 무장공비 5명이 일단 포위망을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며 『앞으로 2∼3일 안에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추석연휴가 시작된 25일 하오 강릉시 지역을 찾은 귀성객들은 시내 곳곳에서 실시되는 군·경의 검문에 비로소 지난 며칠동안 이 지역에서 벌어진 긴박한 상황을 실감하며 긴장. 이날 하오 고향을 찾은 권오림씨(36·경기도 의왕시)는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고향으로 오는 도중 무려 4∼5회의 검문을 받았다』며 『그동안 TV를 통해 막연히 접했던 고향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이날 상오 공개된 무장공비의 유류품 가운데 북한의 군용 해양도첩이 눈길을 끌었다.처음 공개된 도첩의 겉장 위쪽에는 「비밀」이란 글자와 함께 「조선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로국」이 1992년에 발간했다고 기재.다음 장에는 「바다를 정복하려면 바다를 알아야 합니다­김일성」과 함께 「바다모양의 변화에 따라 적들의 행동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조건에서 기상수학을 잘 알아야 적들의 기도를 제때 알아낼 수 있습니다­김정일」이 나란히 씌어 있기도. 군 관계자는 『이 도첩에는 한반도 주변의 각종 바다밑 지형도와 수로가 복잡한 표시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일급 군사기밀에 속한다』고 설명. ○…추석 이전에 공비가 완전 소탕되기를 기대했던 강릉시민들은 수색작전이 장기화되자 불안해하는 표정.강동면·구정면 일대에 선조 묘소가 있는시민들은 성묘를 포기하고 자식들의 귀성을 만류하는 등 어느 때보다도 「썰렁한」 한가위.
  • 일부 학부모 자녀 몰래 학교 송금/한의대 사태 이모저모

    ◎등록률 높아지자 일부학생 동요 전국 한의대생의 등록 마감시한을 하루 넘긴 17일 학교측과 학부모들은 미등록으로 제적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전국한의과대학 학생회연합(전한련)은 17일 0시부터 상오 7시30분까지 11개대학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임위원회를 열어 등록거부투쟁을 계속해 나간다는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 전한련은 상오 9시 한의대건물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등록률이 50%를 넘었다고 하지만 아직 40%에 가까운 학우들이 등록을 하지 않고 전한련과 같이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있다』며 한약조제시험의 책임자처벌과 보건복지부의 성의있는 태도를 거듭 촉구. 이진우 전한련 대변인(원광대 한의대 학생회장)은 『복지부가 한의약정국 설치 등 성의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기존의 입장을 선회하자는 소수의 의견도 있다』고 말해 내부적으로 약간의 동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대두. ○…경희대는 등록마감시간인 17일 정오 이후에도 등록을 원하는 학생에 대해서 등록을 접수하는 등 파장을 최소화하기위해 안간힘. 학교측은 『미등록자 명단을 파악하는데 2일정도 걸리고 또 미등록사실에 대해 본인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확인 작업을 하는데 1주일 가량 소요된다』고 설명,17일 이후 추가등록을 허용할 방침임을 시사. ○…대전대 한의대는 상오 11시 등록마감을 앞두고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측에 등록방법이나 지로번호를 문의한 뒤 학교 경리과나 은행으로 등록금을 납부. 익산 원광대에서는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 몰래 등록금을 송금한 뒤 학교측에 전화로 알려 등록을 확인했으며 부산 동의대에서는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감시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며 하오에 등록해도 괜찮으냐는 문의 전화가 쇄도.
  • 국장근·박주천 의원 일문일답

    ◎“호화쇼핑 나하고는 전혀 무관”­국 의원/“떠돌아 다니는 얘기 취합한 것”­박 의원 해외 호화쇼핑 파문의 당사자인 신한국당 박주천,국민회의 국장근,자민련 이원범 의원은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호화쇼핑 사실을 전면부인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이다. ­호화쇼핑 보도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의원)나하고는 무관하다.상식밖의 일이다.내 이름이 거론됐는데 출처와 보도경위를 파악해볼 생각이다.나는 초선이어서 선배의원들을 따라다녔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쇼핑할 시간이 없었다.보도는 1백% 오보다.정정해주지 않으면 다음 문제를 검토해보겠다. ­문제가 된 고급양주 「루이13세」와 모피를 샀는가. ▲루이 13세라면 옛날 프랑스왕 아니냐. ­30만원 이상 샀으면 세관에 신고하게 돼 있는데. ▲신고할만큼 사지 않았다. ­검찰조사에 응할 생각인가. ▲검찰이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문제가 안되기 때문에 생각해보지 않았다. ­양주 발렌타인을 2병 샀다고 했는데 영수증이나 현물이 있나. ▲영수증은 찾아보면 있을지 모르겠다.내놓을 만하게 쇼핑한 적이 없다.양주는 1병 샀다. ­국회로부터 지원받은 액수는. ▲(박의원)아직 정산이 끝나지 않아 못봤다. ­첫 발설자로 알려져 있는데. ▲떠돌아 다니는 얘기를 취합한 것일 수 있다.어떤 사람과 식사과정에서 「이런 얘기가 있는데 맞느냐」고 물어 「일부 맞는 것도 있으나 사실과 틀린 것이 많다」고 대답했었다. ­공항에서 의원끼리 충돌설은. ▲모스크바 공항에서 항공편이 다음날로 연기돼 대한항공측이 제공한 호텔로 가서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함께 탄 모의원이 KAL직원을 한명 오라고 하기에 「다른 승객들의 숙소배정 때문에 바쁠텐데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는 과정에서 언성이 좀 높아졌다.다툰 것은 아니다.
  • 길림성 아랍저촌(송화강 5천리:4)

    ◎“조선족의 이상향” 도시화 농촌 건설/60년대 인근 11개 늪메워 거대한 농토조성/문혁시기에도 벽돌·기와·농기구공장 세워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하면 송화강은 비극의 강이다.그 물굽이마다에 고구려와 발해,일제에 항거한 독입운동 등의 잔영이 어렸을지라도 모두 역사무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그러나 용기 있는 조선족이 그 강유역에다 또 다른 번영의 씨앗을 뿌렸다.거기가 길림성 연길현 납가진 아랍저촌이다.이 마을은 현성인 구전에서 75㎞,길림시에서는 35㎞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이 현의 이름 납가진은 만주어로 울라가진인데,강역이라는 뜻이다.또 알라디촌으로 부르는 아납저촌에는 언덕 아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마을은 지명에 걸맞게 송화강지류 장로하 강변 언덕에 둘러싸여 있다.그런데 터를 넓게 잡았다.단층의 벽돌집과 고층아파트가 길 양편에 오순도순 자리잡은 아납저촌은 촌단위의 마을이라기보다는 자그마한 도시였다.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고 김용구씨 헌신적 노력 아랍저촌은 본래 대정촌에 사는 지주 정씨가 소유한 소택지였다.1931년 경상도 사람 고분동·정기호 등 일곱가구가 이주해와 자리잡은 데 이어 이듬해 열가구가 아랍저촌에 들어와 소작으로 농사를 지었다.지대 자체가 소택지라서 땅을 논으로 개간한 이들은 1936년 보둑을 쌓고 화수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본격적인 벼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5백78가구에 2천3백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광복 당시 83가구에 비하면 아납저촌은 크게 발전한 셈이다.문화혁명 후기인 1970년대초에 이미 국내외에 모범촌으로 소문난 이 마을은 지금도 길림성에서 첫손 꼽히는 도시화농촌이기도 했다.오늘의 아랍저촌이 있기까지는 별의별 우여곡절이 뒤따랐지만,그 뒤에는 조선족 지도자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1980년에 타계한 김용구 선생이다.1914년 경북 김천 태생인 그는 1954년 군에서 대퇴(제대)한 이후 금주향 당위원회 부서기로 있다가 잔뼈가 굵은 아랍저촌으로 돌아왔다.아납저촌 당서기를 자청하여 하급직으로 내려앉은 그는 마을 사람을 일깨워 억척으로 일했다.당시 아랍저촌은 낡은 초가집에 살면서 근근이 밥술이나 뜨는 그런 마을이었다. 1962년 송화강유역에 큰 가뭄이 들었다.그는 송화강물이 줄어든 틈을 타서 관개수로를 이용한 발전시설을 갖추었다.그리고 등잔불 대신 마을을 백열전등으로 밝혔다.그의 집념은 크고 작은 11개의 늪을 메워 논을 만드는 대역사로 이어졌다.꼬박 3년에 걸쳐 1백만㎡의 흙을 파다 늪을 메운 끝에 3백17a의 논을 새로 얻었다.그는 욕심을 더 부려 1971년 경지정리를 서둘러 착수했다.3년에 걸쳐 올망졸망한 논 6천a를 평평하게 다듬고 네모가 나게 잘랐다.기계영농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중국대륙 전역에서 파괴가 자행되던 시절,다시 말하면 문화혁명시기에도 아납저촌에서는 연생산량 5만장규모의 벽돌공장이 건설되었다.이와 더불어 연생산량 10만장규모의 기와공장·목기공장·농기구수리공장을 문화혁명시기에 세웠다.이들 공장의 수입은 아납저촌 전체수입의 40%를 점하고 있다.연변사범학교를 나와 마을에서 교편을 잡다 퇴직한 김규삼(61) 선생의 자랑은 액면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충북 충주시 이류면 태생인 그는 아납저촌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벽돌가옥 317채 지어 배당 『아랍저촌의 알곡수확은 1967년 이후 열두해 사이에 곱절이 늘어나 한 사람앞에 1천2백㎏씩 돌아간 셉입네다.나라에 바친 벼만해도 1천t이었디요.공동저축금은 10배나 늘어났으니 엄청 성장한 것 아닙네까.그래서리 1978년 길림성 당위원회에서는 「아랍저촌의 경험을 가일층 학습하고 보급하는데 대한 결정」을 내렸댔디요.길림성내 모든 농촌이 아납저촌을 본받으라는 내용이었습네다』 아랍저촌의 집체경제는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촌의 당서기인 김용구 선생은 새 농촌주택 건설과 함께 유치원·병원·마을회관을 짓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농촌주택은 1968∼80년 고래등 같은 벽돌기와집으로 3백17채를 지었다.집은 물론 거저 배당하면서 열사유가족·군인가족·영예(상이)군인·노인가정에 우선순위를 주었다.당시 아랍저촌에는 3백62가구가 살았다.마을 사람이 김용구선 생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그는 막무가내였다.『나는 3백62번째 새 집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는 운명하는 날까지 초가집에서 살았다. 김용구 선생이 세상을 뜬 이후 아랍저촌은 개혁개방이라는 현실 앞에서 한동안은 휘청거렸다.토지를 개인한테 도급을 주고 공장도 전체의 80%를 개인에게 팔아넘겼다.그리고 촌 간부들도 개인 호주머니를 채우느라 열을 올렸다.이 때문에 집체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민족사회는 허물어졌다.능력있는 사람은 개인기업을 경영하거나 한국을 찾아가 돈을 벌었다.재간없고 돈없는 사람이 겨우 마을을 지켰다. ○개방진통 겪고 다시 활기 1986년 아납저촌은 다시 자각의 깃발을 들었다.「농업으로 마을의 기초를 다지고 기업을 적극 발전시키는 가운데 상업을 흥성하자」는 것이 그 깃발이었다.아납저촌정부는 개인한테 판 기업을 다시 사들였다.농공상총공사)를 세우고 산하에 농업·목축업·공업공사를 두었다.개혁개방이후 8년간을 몸부림친 끝에 1994년부터 다시 기를 폈다.그해에 4천8백만원의 총생산액을 기록한 것이다.이어 1995년에 총생산액 1억1천만원을돌파한 아납저촌은 올해 목표를 1억5천만원으로 잡아놓았다. 오늘날 아납저촌은 김석배(47)서기가 이끌고 있다.그는 김용구 선생의 아들이다.촌정부로부터 경찰로 발탁된 적이 있으나 부친의 만류로 마을을 지키다 당지부 서기가 되었다. 『지난 71년 촌에서는 저를 경찰후보로 발탁했댔습네다.그 시절 농사꾼이 월급쟁이가 된다는 것은 장원급제나 다름없었디요.그런데 부친께서 촌에 올라가 농사꾼 자식은 그저 농사꾼이 되어야 한다고 반대를 했디 뭡네까.그때는 부친이 원망스러웠디만,지금 생각하면 마을에 남은 거이 다행스럽디요』 아랍저촌은 1994년에 도시화농촌건설 10개년계획을 세웠다.촌정부청사를 중심으로 서쪽에 5백가구가 입주한 아파트단지를 건설키로 하고 6층 아파트단지 하나는 이미 완공시켰다.그리고 일손이 모자라 62가구 3백여명의 외지 조선족을 받아들였다.마을 발전추세로 보아 아랍저촌의 적정인구를 1만명선으로 잡아놓았다.10개년계획기간에 교육지구 및 민속촌을 건설,민족성을 지킨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 “전씨 가족설득에 항소 결심”/변호인단이 밝힌 뒷얘기

    ◎소설 「대망」영향… 초기부터 포기 뜻 비쳐/“최 전 대통령 법정서 진실 밝혀야” 언급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항소 결심을 굳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가족들이 항소 포기를 완강하게 만류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의 한 변호인은 5일 『전씨가 항소를 확정하게 된 주요 원인은 사형 확정을 두려워 한 가족들의 간청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부인 이순자씨 등 가족들은 당시 『본인의 명분도 중요하지만 가족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전직 대통령이지만 가족들에게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아니냐』고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선고 수개월 전부터 항소 포기 의사를 내비쳤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전씨는 1심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4월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게 되니 국론분열만 심해진다』며 『재판은 1심으로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하지만 변호인단은 전씨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재판 초기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후 지난 7월 변호인단이 재판 진행에 불만을 품고사퇴한 뒤 본격적으로 항소심 준비에 들어가자 전씨는 『한번 잘 해보라』고 했고,변호인들은 항소 포기 의사는 없었던 일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1심선고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전씨는 변호인단에게 『소설 「대망」을 읽어보니 거기 나오는 무사들은 「의」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치더라』고 소개한 뒤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는 등으로 항소포기의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 뒤 일부 언론에서 이같은 사실이 보도되고 변호인단의 만류가 계속되자 전씨는 『내게 맡겨달라』며 잠시 발을 뺐다. 그러다가 3일만인 지난달 30일 가족들의 간청으로 항소를 결심하게 됐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전씨의 항소결심은 항간에 알려진대로 여러가지 이해득실을 저울질했다기 보다는 가족들의 설득 때문이었던 셈이다. 한편 1심선고가 끝난 뒤 전씨는 변호인단에게 『가만히 재판장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5·18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 잘못 알고 있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12·12사건이야 시각에 따라 견해차가 있을 수 있지만 5·18 사건은 내가 개입한 부분이 없는데 어떻게 없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고 변호인단은 전했다. 전씨는 1심 재판 도중 최규하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채택 여부가 논란이 되자 『최 전 대통령이 법정에 나와서 진실을 밝혀야 나의 결백함이 밝혀진다』면서도 『전직 대통령 3명이 모두 한 법정에 나란히 서게 되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 국세청 조사국:3/세무조사(테마가 있는 경제기행:34)

    ◎투기·환락업소 등 사회악 척결 큰몫/국가적 과업 자부심… 병든부분 예외없이 메스/기업들 조사방해 육탄전·장부 빼돌리기 예사 세무조사는 경제와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는 「메스」다.개인에서 기업까지 사회를 곪게 하는 행위는 어김없이 조사국의 「메스」가 가해진다. 8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국세청은 조사국을 중심으로 투기를 뿌리뽑기 위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87년부터 89년까지 5차례의 단속에서 추징한 세금은 1천5백56억원.상습투기꾼의 명단을 공개하는 극약처방도 동원,투기 바람을 잠재웠다.투기단속을 지휘했던 박경상 당시 조사국장(현 성업공사사장)은 『국세청의 부동산 투기단속은 그때로서는 국가적 과업이었다』고 회고한다. 룸살롱등 유흥업소·골동품점·호화사치업소·호화해외여행자 등은 세무조사의 단골 메뉴.「사회악」으로 여겨지는 행위들은 예외없이 세무조사의 철퇴를 맞는다.오렌지족의 소득원 조사(93년 2월),호텔호화디너쇼 참석자 조사(91년 12월),집세 많이 올린 임대인 조사(90년 3월),전기 많이 쓴 사람 5만명 조사(84년 4월)등이 그 예. 세무조사권은 기업의 생사여탈권과 다름없다.회계장부를 영치해 조사하는 것을 조사요원들은 「염」이라 부른다.세무조사를 시체에 수의를 입히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대규모 탈세로 특별조사나 세무사찰을 받는 기업은 치명적인 손상을 각오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은 김철호씨의 명성사건.상업은행에서 자금을 불법 인출,사업을 급속히 키워가던 명성에 국세청은 추경석 당시 조사국장(현 건설교통부장관)의 지휘아래 50여명의 조사요원을 투입,3백3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20여개의 계열사를 운영하던 명성은 결국 공중분해됐다.「철의 대부」 박태준 전 포철회장도 세무조사를 받고 정·재계인사로서의 생명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지방의 S소주사,R전기,H음향기기업체 등은 세무조사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한 기업들이다. 5공시절에는 세무조사권이 남용되는 사례도 많았다.B소주회사의 예.『당시 Q청장이 소주회사 사장의 회사 인사문제와 관련한 사소한 발언에 기분이 상해 「당장 세무조사하라」고 지시했다.그러나 부하 직원들의 만류로 이 회사는 겨우 조사를 면했다』당시 현장을 지켜본 국세청 모국장의 증언이다. 세무조사는 찾아 내려는 조사요원들과 감추려는 기업인들의 싸움이다.과거에는 육탄전이 벌어지거나 천장에 비밀장부를 숨겨두었다가 발각되는 일도 있었다고 조사관계자들은 회고한다.『빠찡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의 탈세를 조사할 때에는 폭력배들의 협박과 방해를 막기위해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했다』(장준환 조사2과장) 전축을 만드는 C사의 세무조사에 얽힌 얘기.세무조사 요원들이 들이닥치자 이 회사의 업주는 문을 걸어 잠가 출입을 못하게 하고 밖에 대기시켜 두었던 한패에게 회계장부를 집어던져 장부를 갖고 도망가도록 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무조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말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한다는 인식이 차츰 확산되고 있다.『어느 회사의 세무조사를 하다 회사 물건을 누군가가 외부로 빼돌리는 사실을 발견해 기업주에게 알려주었더니 무척 고마워한 일이 있다』 최명해 기획예산담당관(전 서울청 조사2담당관)의 경험담이다. 세무조사를 통해 회사비를 찾아 낼 수 있어 요즘은 세무조사를 환영하는 경영자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 소녀가장 집단 성폭행 세태 무대서 고발/김지숙씨 「로젤」 재공연

    ◎서울두레서 24일부터 새달 15일까지/초연서 드러난 번역극 냄새 없애려 다시 번안/김씨 “답답한 세상 대변하려 「분장실」 공연 미뤄 『소녀가장 집단성폭행 등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성폭행사건을 접하고 다시 한번 「로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난 91년부터 2년동안 2천회이상 공연돼 60만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페미니즘 모노드라마 「로젤」의 히로인 김지숙의 말이다.그는 「분장실」이라는 연극을 올 가을 올리기 위해 연습하다가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 단원의 만류를 뿌리친 채 「분장실」공연을 미뤘다.그리고 「로젤」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오는 24일부터 9월15일까지 서울 대학로에 있는 문화예술관 서울두레에서. 독일작가 헤르트 뮐러 원작의 「로젤」은 극단 전설 제작으로 번역은 송경혜,연출은 김지숙 자신이 맡았다. 초연에서 드러난 번역극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완벽한 번안과정을 거친 것이 이번 공연의 특색.주인공의 이름 로젤을 제외하고는 거리이름도 외국것을 모두 없앴다.마치 친구가 고백하듯이 친근함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계획이다.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선동적이던 김지숙의 연기가 차분하게 목소리의 톤을 낮춰 「누이」처럼 인생살이를 말할 예정이다. 연극은 로젤이 두곳의 술집을 오가며 한 친구에게 파란 많은 자기 삶을 들려주는 고백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로젤은 권위주의적인 군의관 출신 아버지의 강요로 음악대학 진학을 포기한다.대신 호텔직업학교를 나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이미 자신의 꿈을 상실하고 권위와 체제에 길들여진 로젤은 남성에게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그러나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는 바람둥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뒤틀린 남자와의 관계에서 절망한 로젤은 자살도 시도해보지만 허사다.결국 자기 생계라도 꾸려나가기 위해 로젤은 술집 매춘부로 일하게 되지만 부러질 듯 약해진 그녀는 불량배로부터 윤간을 당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무대불이 하나둘씩 꺼지면서 로젤이 친구에게 건네는 마지막 대사는 『이것이 내 인생에 전부였던가.나도 다르게 살수 있었던 건 아닐까』 이 탄식은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아왔거나 살고 있는 많은 여성에게 경종을 울릴 듯하다.
  • 이신범 발언파문/대화정국 다시 급냉(정가 초점)

    ◎여야의 입장과 표정/DJ·JP 통화후 강경 급선회/“이 의원 소신발언… 청와대 회담 연연 안해”­여/대선 전초전 인식… “이번 기회에 공조 과시”­야 18,19일 열릴 예정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야당 두 김총재와의 청와대회담이 신한국당 이신범 의원의 발언파문에 휩싸여 무산 위기에 놓였다. 이의원의 발언취소 및 사과를 청와대회담 조건으로 내건 야당측이나,이를 일축한 신한국당측의 자세로 미루어 볼때 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극히 불투명해졌다. 이 때문에 모처럼 조성되는 듯한 대화정국은 다시 급랭하고 있다. ○…이의원 발언은 당초 「해프닝감」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야당측의 거센 반발로 예상치 않게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야는 하루동안의 절충시일을 남겨놓고 있지만 서로의 인식차가 크다. 이번 사태는 향후 정국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야당측이 내년 대선의 전초전을 본격화하는 성격이 짙다. ○…국민회의는 이의원의 발언과 청와대회담을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이었으나 16일 아침 김대중 총재가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전화연락을 받고 급선회했다. 자민련의 강경한 기류에 국민회의가 이끌린 형국이다. 김종필 총재는 이의원의 발언이 있은 15일 저년 『이런 상황에서 영수회담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이미 청와대회담 거부를 시사했다. 국민회의도 「인신모독」이라며 흥분했지만 최소한 영수회담과는 선을 긋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신한국당이 이의원 발언을 옹호하며 대정부 질의등에서 김 대통령을 비난했던 야당 의원들을 맞제소하자 국민회의에서도 『일과성 해프닝으로 간과할 일이 아니다』는 강경론이 대두됐다. 두 총재가 정말 화가 난 측면도 있지만 차제에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신한국당의 확답을 받아두고 대권과 관련,당안팎의 거센 도전도 뿌리치자는 의도도 있다. 나아가 방어적 차원의 공세지만 야권공조를 견고히 함으로써 향후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고 볼수 있다. ○…여권은 이번 사태가 청와대회담 거부 빌미로 작용될 수 없는 문제라고 발끈했다. 그럼에도 야당측이 이를 고리로 걸고 나선다면 굳이 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다.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초선의원이(두 김총재의) 과오를 지적했다고 국가원수와 약속한 회담을 거부한다면 정치적 도량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고를 촉구했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청와대회담은 김대통령이 야당총재와 격의없이 대화하는 자리로 이의원의 발언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야당측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야당은 국회에서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발언을 수시로 하면서 이번 일로 약속된 회담을 않는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파문 장본인 이신범 의원 인터뷰/“초선 충정으로 대통령·야 총재 비판/발언 취소·사과할 생각 전혀없다” 야당 총재 비난발언 파문의 주인공인 신한국당 이신범 의원은 16일 야당측이 영수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데 대해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며 『사과할 뜻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이의원은 『발언의 취지는 정치권의 변화를 요구한총선민의에도 불구하고 대권을 의식한 여야의 대결정치 행태가 전혀 달라지지 않아 초선의원의 충정으로 정치지도자인 대통령과 두 야당총재를 비판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의원은 이어 『국회의원의 정치적 소신에 따른 발언을 문제삼아 국회윤리위에 제소하고 영수회담과 연결지어 정치공세화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구태정치』라며 『발언을 취소하거나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여권지도부의 지시에 따른 발언이라는 야당측 주장에 대해서는 『누구의 지시에 따라 말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의원은 『발언직전 원고를 입수한 우리당 부총무들이 발언 수위를 낮추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을 오히려 내가 거절했다』며 『부총무들의 만류로 「25년전 그분(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지칭)이 만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라는 대목에서 「그분이 만든」을 뺀 것이 원고를 수정한 전부』라고 말했다. 질문서를 몇시간전쯤 언론등에 배포하는 관례를 벗어나 발언 직전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도 『통상 민감한 문제는 발언도 하기전에 야당측이 트집을 잡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 야당의 「떼쓰기 정치」/진경호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어렵사리 문을 연 15대 국회가 또다시 볼썽 사나운 모습을 보였다.15일 국회 본회의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이 보여준 「떼쓰기 정치」는 과연 이 국회가 21세기를 맞이할 국회인지 의심케 한다. 이날 대정부질문은 15대 국회가 임기 개시후 무려 47일만에 시작한 첫 의정활동이다.지난주 여야대표들은 국회 정당대표연설을 통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앞다퉈 다짐했다. 그러나 이날 본회의에서 야당이 보여준 모습은 「새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낱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꺾어 놓기에 충분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본회의는 막바지 질문에 나선 민주당 이규정·신한국당 이신범 두의원의 발언이 빌미가 됐다.민주당 이의원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를 「행동하는 욕심」으로 비난했고 신한국당 이의원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두 총재를 『노욕을 버려라』며 싸잡아 비난했다. 이들의 질문이 끝나자 야당측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민주당 이원범 수석부총무는 단상으로 나가 김수한 의장의 만류에도 불구,의사진행발언을 「관철」했고 국민회의 설훈 의원도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신한국당 이의원등을 맹공했다. 이어 총리답변은 마무리됐으나 야당측이 또다시 의사진행발언을 고집했다.남궁진의원등 국민회의 부총무단 6∼7명은 의장석 밑에서 발언권을 달라며 김의장의 의사진행을 가로막았다.김의장이 이에대해 국회법 99조3항을 들어 『국무위원들의 답변이 끝난뒤 허락하겠다』고 대답했으나 야당측은 막무가내였다.마침내 국회의장이 정회를 선포했다.하오 5시20분부터 한시간의 정회끝에 속개된 회의는 신한국당 맹형규,국민회의 채영석,자민련 김범명 의원 등 교섭단체별로 의사진행발언을 허용했다. 어찌보면 있을 수 있는 실랑이로도 비쳐진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국회의장의 사회권을 국회의원들이 물리력으로 박탈했다는 사실이다. 국민회의 유재건 부총재는 지난 12일 국회 정당대표연설에서 『국회를 국회답게 만들기 위해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자민련 김종필총재는 이튿날 연설에서 『야당이 국회개원을 거부하면서까지 현정권과 맞섰던 이유는 국회의 권위와 권능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신범 의원을 비난하기에 앞서 국회의장의 권위를 실추시키면서 지키고 쌓아갈 국회의 권위가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 김상현 의원·동교동측/갈등 심화(정가초점)

    ◎김 의장­대권관련 잇단 돌출 행보/동교동­당내분란 우려 불만 고조 국민회의 김상현 지도위의장의 행보를 보는 동교동측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김의장이 대권관련 발언으로 김대중 총재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높일수록 김의장을 바라보는 눈빛도 날카로워진다.동교동측은 표면상으로 「정면대결」은 자제하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양측을 휩싸고 있는 상태다. 동교동측이 긴장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총선직후.김의장이 『당내 경선을 통해 대권주자를 뽑자』며 김총재에게 반기를 들면서부터다.이어 지난 14일에는 『김총재가 내년 대선에 불출마할 경우에 대비해 대선을 준비하겠다』며 아예 노골적인 도전의사를 드러냈다.금기중의 금기로 통하는 김총재의 불출마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동교동측의 노기에 불을 댕긴 셈이다.김의장이 사석에서 김총재의 대선승리 가능성을 부정했다는 소문도 김총재측을 격앙케 했다. 이에 동교동 핵심들은 수시로 만나 대책을 논의하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김총재가 『김의장을 주시해야한다』는 당부도 있었다는 소문도 나돈다.측근들의 일부는 『직접 대응할 경우 김의장에게 말려들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권노갑 지도위원과 한광옥 사무총장 등 핵심측근들은 김의장을 적극적으로 만류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이용희 부총재 등은 『말을 아끼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동교동측이 김의장을 경계하는 이유는 당내분란 때문이다.내년 대선이 김총재에게 집권 마지막 기회인 데다 상황도 어느 선거보다 좋지않다는 판단이다. 최근 김의장이 비호남 원외위원장을 열심히 만나고 있는 것도 동교동측을 자극하는 대목.김의장이 대통령후보 경선에 대비,「조직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본다.동교동측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자민련과의 공조에 대해 양측의 신경전도 한창이다.김의장은 『독재정권에 반대했던 세력이 차기대권을 잡아야 한다』며 김영삼 대통령과 자신이 국내에서 공동대표로 활동했던 「민추협」을 부각시키고 있다.〈오일만 기자〉
  • 경도컬렉션/신사복 임가공 탈피 자기상표로 승부(앞선기업)

    ◎창립 6년만에 외형 10배 성장… 올매출목표 80억 「기획과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다」 신사복제조업체인 경도컬렉션(대표 홍성호·53·서울 관악구 신림8동)은 중소의류제조업계에선 무서운 아이로 통한다.불과 6년만에 외형을 10배나 키운데다 서울·경인지역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회사로 발돋움했기 때문이다.신사복임가공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대기업체를 거래선으로 끌어들인 데다 「아스프레이지」라는 자기상표제품을 개발한 것도 이채롭다. 홍사장은 『이제 중소의류업체도 단순임가공에서 탈피,고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전문화를 이룩해야 한다』며 전문화를 강조했다.그것은 곧 기획과 디자인이라고 믿고 있다.그는 시즌마다 열리는 해외유명패션쇼에 회사디자이너들을 빠짐없이 보낸다.해외패션계의 흐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디자인개발 등에 연간 매출액대비 최소 3%는 쓰고 있다.중소의류업체로서는 적지 않은 액수지만 그는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회사의 성장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홍사장은 90년5월 회사를 세웠다.유명봉제회사인 (주)부흥에서 상무로 근무하다 퇴직하면서 창업했다.봉제업계의 베테랑으로 일욕심도 있었고 봉제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기독교인의 「책임감」에서 겁없이 달려들었다고 한다.퇴직금 6천7백만원으로 공장을 빌려 신사바지를 만들었다.봉제업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해 그는 기숙사시설을 완비했고 대우도 후하게 해주었다.주변에서는 망하고 말 것이라며 만류도 많이 했다.의류업계의 도산이 속출하는 게 당시 현실이었다. 그러나 「외골수」라는 별명답게 그는 끝까지 밀어붙여 통념을 깨버렸다.지난해 30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는 80억원의 매출이 기대된다.엘칸토 등 몇몇 대기업을 거래선으로 확보했기 때문이다.수출상담도 활발하게 벌이는 등 그의 사업은 계속 확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93년에는 바이어의 물량취소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생산량의 50%를 차지하던 바이어의 물량취소로 50일간 일감이 모자라 허덕여야 했다.연간 매출이 7억원 남짓하던 때에 두달여만에 2억원의 손실을 입었다.조업단축등을 통해 직원을 기계 앞에 붙들어 매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다.홍사장이 「아스프레이지」(유럽산 독수리)라는 자기상표를 지난해 등록한 것도 이같은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홍사장은 올해엔 중가제품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내년 유통시장개방에 대비할 각오다.이를 위해 인력도 보강하고 개발비도 증액할 방침이다.내년에는 숙원사업인 자체공장을 건립해 도약의 기반을 닦고 2001년쯤 회사를 공개할 계획을 갖고 있다.하지만 기술인력확보가 쉽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박희준 기자〉
  • “중국군 훈련 최근접지” 대만 팽호도를 가다/본사 이기동 특파원

    ◎전투기 굉음… 도로엔 군보훈련 군인/섬 전체 팽팽한 긴장감… 주민들 출어 못해/마공 시내는 선거철 소란 가득… 묘한 대조 대북을 출발한 90인승 쌍발 프로펠러여객기는 불과 1시간만에 팽호군도의 수도 마공시 공항에 도착했다.만만치 않은 전운은 비행기가 내리면서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느껴졌다.군용비행장의 한켠을 민간기들이 이용하는 탓인지 대만군의 주력 F5기들이 연이어 뜨고내리며 내는 굉음에 귀가 멍멍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통하는 해안도로변 곳곳에 위장망을 씌운 대공포가 솟은 방공포대가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중국군이 공정대를 투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전략요충지인 탓인지 도로 곳곳에서 M16 소총으로 무장한 소대병력이 구보훈련을 하고 있다. 도로변의 한 대공포진지를 찾아들어가보니 진지를 에워싸고 갓 만든듯 흙이 채마르지 않은 엄호·방어진지들이 불과 4∼5m간격으로 들어서 있다.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려던 앳된 얼굴의 병사는 1주일여 전부터 엊그제까지 새 방어진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중국군이 2차 실탄사격훈련을 벌였던 해역은 이곳 팽호도에서 서남쪽으로 불과 70여㎞ 떨어진 곳.고기잡이 배로도 1시간30분 남짓 거리이다.마을주민들이 가리키는대로 섬 남단 이수산항의 방조제 위에 올라 망원경을 통해서 보니 훈련 인근지역인 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팽호도의 주민 10만여명은 대부분이 어업을 생업으로 한다.잡은 고기를 대북,홍콩,일본 등지로 수출해 보기 드문 부촌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중국군의 훈련으로 출어를 제대로 못해 생계에 적지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왕씨성을 가진 한 어부는 『중국군의 훈련을 전후해 출어를 삼가라는 현당국의 당부가 있었다.그리고 요즈음 날씨도 좋지 않아 이래저래 출어를 않고 있다』고 했다.왕씨는 『중국군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대대로 살아온 이곳을 떠나기는 싫다.맞서 싸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팽호도에서 중국군이 상륙하기에 가장 용이하다는 지형의 익문촌 일대 해변초소들에서는 병사들이 참호를 파고 모래주머니로 진지를 보강하느라 한창이다.진지 주변의 긴장감과는 달리 초소 앞까지택시를 들이대는데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26세라는 대만 가오슝 출신의 장교는 『전쟁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초소의 엄호시설과 참호보강 작업을 하고 있지만 평소와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마공시내로 들어오면서 해변의 긴장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23일 실시되는 총통선거의 각당 운동원들이 떼지어 다니며 전단을 뿌리고 스피커를 단 선거운동용 차량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대북시도 그랬듯이 전쟁의 긴박감보다는 선거철의 소란함이 앞서는 것같았다.관광상품을 파는 한 가게주인은 심지어 『외국기자들이 왜 이렇게 몰려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당신들이 전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니냐』고까지 했다. 해질 무렵 항구에서 닻을 내리던 한 어부는 『중국군 훈련지역 쪽으로 가니까 대만해군정이 가로막고 더이상 밑으로는 못가게 하더라』며 그곳 사정을 전해주었다.한화로 30만원에 배를 빌려 이튿날 훈련해역으로 나가볼 생각이라고 했더니 그는 손을 가로저으며 『가까이 갈 수도 없을 뿐아니라 아무 표시도 없는 망망대해일 뿐인데 뭣하러 가느냐』고 만류했다.해가 지면서 시외곽으로는 또다시 전에 없는 긴장감이 에워싼다.군인들이 지나는 차량을 일일이 세워 검문하고 순찰군인들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해안순찰도 크게 강화됐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피차 사생결단의 전의를 다지는 것도 아니고 적의 머리끝 하나 비치지 않는 이상한 「전쟁전야」속에 팽호도의 밤은 깊어갔다.
  • 공천헌금 공방 폭로전 비화

    ◎김상현 의원―“이기택씨 14대때 10억 유용 의혹”/이기택씨측­“DJ 백30억 받았다는 애기 들어”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총선공천 헌금을 둘러싼 공방이 한계수위를 넘어선 폭로전으로 치달으면서 이전투구의 양상을 빛고 있다. 국민회의 김상현 지도위의장은 15일 『14대 총선 당시 민주당 전국구후보 공천과정에서 이기택 공동대표가 신진욱의원으로부터 당헌금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았으나 10억원을 당에 입금시키지 않았다 』면서 민주당 이기택 고문의 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김의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당시 신의원은 이대표를 고발하려 했으나 김대중 공동대표가 이를 만류했다』고 밝혔다. 박홍엽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14대 총선때 이대표가 40억원의 공천헌금 가운데 절반을 착복한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민주당 이기택 고문의 정계퇴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고문은 『14대 총선 당시 김대중씨와 함께 공천헌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김대중씨가 착복했을 지는 모르지만 나는 단 한푼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고문의 측근인 조광한 부대변인은 『14대 총선 당시 김대중·이기택 공동대표가 전국구 공천자들로부터 각각 1백30억원과 1백5억원을 공천헌금을 받아 80억원씩을 당비로 내고 나머지 50억원과 25억원을 대표지원금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시 신진욱 의원이 이대표의 착복설을 주장했으나 사실무근임이 밝혀졌었다』고 주장했다. 조부대변인은 그러나 이날 하오 파문이 확산되자 『당시 당 주변에 떠돌던 얘기를 전한 것일 뿐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한것은 아니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에 대해 권신 국민회의 총재 비서실장은 14대 전국구공천과 관련, 『전체 헌금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당시 전국구 24명중 당료 8명, 전문직 8명, 헌금 8명의 비율로 공천했다』면서 『이중 헌금케이스는 김대중 대표가 5명, 이기택 대표가 3명의 지분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시 기대표가 박일·김옥천·국종남·이동원·박정훈 의원, 이대표가 신진욱·김충현·강희찬 의원을 각각 공천했다』고 전했다. 권실장은 『김대표 케이스인 국종남 의원은 상한액 30억원을 다 냈으나 나머지 3명은 상한액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대표지원금을 따로받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이기택 고문 오늘 공식입장 표명 민주당의 이기택 고문은 공천헌금시비와 관련,16일 상오 마포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식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 「독도망언」 항의 60대 분신 기도(조약돌)

    ◎전직경관… 아들내외 등 설득 귀가 ○…1일 상오 11시10분쯤 3·1절 기념행사가 이어진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전직 경찰관인 엄모씨(65·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송우리)가 일본의 독도망언에 항의하기 위해 분신하겠다며 한바탕 소동.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몸에 휘발유를 뿌린 엄씨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아들(41·경기도 의정부시) 내외의 설득으로 1시간여만에 귀가. 엄씨는 편지지 4장 분량의 유서에서 『일본의 그릇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주고 한민족의 자존심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3·1절에 분신하기로 결심했다』고 설명.
  • “조직원 확보하라” 여야 주자 비상

    ◎상대 사무장 매수… 당원 빼가기 일쑤/지역유지·선거전문가 쟁탈전 치열 총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권자접촉 및 운동원관리등을 맡을 핵심조직원 확보를 위한 후보들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후보들은 특히 이번 총선부터 유급 선거사무원말고도 원칙적으로 누구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선거법이 바뀐 점을 활용,각종 연고를 동원할 수 있는 지역유지나 선거전문가의 쟁탈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강원도의 P모 후보측은 최근 사무장이 동료·친지들의 만류등을 이유로 며칠째 출근하지 않는 바람에 자동차정비업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부랴부랴 부탁,사무장자리를 맡겨야 했다. P후보측은 인접한 같은 당 지구당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추적한 결과 상대당 후보측의 「공작」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대구의 한 자민련 후보는 최근 사무장이 돌연 상대후보측에 「투항」해버리자 충격을 받아 쓰러지기도 했다. 신한국당의 L의원은 공천경합에서 탈락,다른 당으로 출마한 경쟁후보가 조직원들을 상당수 빼갔으나 1년전부터 개인적으로 관리해온 20·30대 「자원봉사단」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건하는데 성공한 「미래대비형」 케이스. 조직원을 둘러싼 후보진영간의 줄다리기는 특히 국민회의와 민주당 잔류인사들간에 뜨겁다. 서울의 민주당 L의원은 최근 조직담당 팀장이 호남향우회 회원등 「주력부대」를 이끌고 국민회의측 후보로 「귀순」해버려 새로 조직을 구성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경기도의 한 민주당후보는 최근 지구당개편대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지구당 간부 및 당원들이 송두리째 국민회의에 입당해버리는 바람에 개편대회를 창당대회로 바꿔야 했다. 서울의 국민회의측 한 후보는 거꾸로 무소속으로 나오는 상대후보가 「사실상의 국민회의후보」를 자청하며 조직원들을 야금야금 잠식,타격을 입고 있다고 당지도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호남지역에서는 물갈이대상으로 거명된 국민회의소속 현역의원들이 「내천설」이 떠도는 공천신청자들에게 조직원들을 빼앗겨 울상인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광주의 한 현역의원은 「낙점설」을 앞세운 공천경합 후보들이 당원들을「배분」해 버리자 허탈해 하고 있다. 대규모 당원가입등의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선거브로커들도 후보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틈타 「줄타기」에 한창이다.서울에 지역구를 둔 P의원의 한 비서관은 『며칠전 친목회원 20여명을 입당시켜주겠다』고 찾아온 40대 남자 3명을 돌려보냈으나 몇시간뒤 상대후보 사무실에서 만족한 표정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 나만 믿으라더니…/남기창 전국부기자(현장)

    ◎민선도수 비리에 군민들 분통 『내 손으로 뽑은,나만 믿으라던 민선 군수가 뒷구멍으로 돈을 받았다니…』 지난해 7월23일에 발생한 「씨 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건으로 여름내내 역겨운 냄새와 찜통 더위 속에서 기름띠 제거작업을 벌였던 전남 여천군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 정근진 여천군수(63)와 여수해양경찰서장이 사고를 낸 호유해운측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되고 당시 여수해항청장과 현재의 통영해양경찰서장·여수경찰서장까지 불구속 입건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역구의원인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신순범의원까지 검찰에 소환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이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됐다』고 탄식하고 있다. 정군수는 사고가 나자 군의회 의장으로,해양 수산양식의 전문가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피해상황 및 민간부문의 방재작업을 총 지휘하는 사고수습 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맹활약했다.3개월동안 현장을 발로 뛰었기에 주민들은 다음번 선거는 할 필요도 없다고 농을 주고 받았다. 그는 또 사고발생 이틀뒤인 지난해 7월25일 하오 여천군 남면 연도리 마을회관 앞에서 금오·안도 등 인근 섬지역의 주민들과 이장단 등 성난 군중 수백명이 선상시위를 벌이려고 하자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밤을 지새우며 주민들을 간곡히 설득,먼동이 틀 무렵에는 주민들의 배웅까지 받았다.
  • “성혜림은 김정일 여성 편력 희생양”/93년귀순 임영선씨 증언

    ◎60년대 「백일홍」 등 영화출연뒤 인연/남편과 강제이혼… 모스크바로 추방 『성혜림씨는 따뜻한 성품과 소박한 외모를 지닌 전형적인 현모양처형이었습니다』북한총정치국 영화창작실에 근무하다 93년 귀순해 「북조선의 목란꽃 인민배우 우인희」를 출간한 임영선씨(32)는 성씨가 김정일의 여성편력에 의해 희생된 여자중의 하나라고 폭로했다. 임씨는 성씨가 60년대 중반 「백일홍」,「분계선마을」등의 영화에 출연해 유명해져 김정일의 눈에 띄게됐다고 설명했다.당시 성씨는 북한 문예총위원장 이기영의 아들 이평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다.김정일이 유부녀인 성씨에게 자주 불륜관계를 강요해 애정행각을 벌이자,혁명 1세대인 오진우·최현·김일등이 적극 만류했다.김정일은 김일성관저에서 비밀리에 파티를 즐겼으며,유부녀인 성씨를 참석시켰다가 오진우에게 발각돼 꾸중을 듣기도 했다.그러나 김정일은 성과 계속 관계를 맺어 김일성과 중앙당이 성씨를 남편과 강제이혼시켜 모스크바로 추방했다는 것이다. 성씨는 김정일과 수년간 가정을 꾸리고 산것은 아니며 가끔씩 김정일에 의해 불륜을 강요받은 정도라면서 당시 많은 여성예술인들이 권력층인사들에게 시달렸다고 말했다. 임씨에 따르면 성혜임씨는 60년대 중반 우인희의 그늘에 가려진 신출내기 여배우라는 것이다. 임씨는 또 김정일의 첫부인은 홍일천이 아닌 변씨성을 가진 여성으로,평남 청산리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의 딸이며 김일성의 중매로 결혼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아들을 못나아 변씨는 이혼당했다.김정일의 처와 자식들은 베일에 가려오다가 92년 임씨도 참석한 한 영화행사에서 두번째 부인 김영숙과 8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나와 소개됐다는 것이다. 성혜림씨는 함께 배우생활을 한 인민배우 우인희,공훈배우 김현숙만큼 큰 성공을 하지 못한것은 김정일과의 불륜관계로 인해 최고배우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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