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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나리 행차’

    이번 가뭄에도 지도층 인사들의 현장 방문이 줄을 이었다. 특히 정치권 고위층의 발길이 유별났고 가뭄 극복을 위한정쟁중단 선언과 함께 극에 달했다.언론이 때맞춰 주목했던 것도 무관치 않았던 것 같다.농민들은 대개 ‘나리 행차’를 반갑게 맞는다.‘지원금’이라는 것도 염두에 두었겠지만 먼곳까지 찾아온 뜻이며 따뜻한 격려가 고마워서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하나같이 ‘정치 이벤트’화하면서엑스트라로 동원됐다는 자괴감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모 정당의 ‘윗분’이 모내기를 했던 경기도 광주에서는교통체증으로 일정이 1시간 넘게 지체되면서 초조해진 논주인이 이양기를 몰고 논으로 들어가자,한 당직자가 나서“‘윗분’의 할일이 없어진다”며 만류했다고 한다.뒤늦게 도착한 ‘윗분’이 “오늘 행사가 여러분을 오히려 번거롭게 했는지도 모르지만…”이라며 성금을 전달했다니‘정치 쇼’임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같은 날 경기도 화성을 방문했던 또 다른 정당 ‘윗분 행차’ 역시 마찬가지였다.20분 동안 모내기에 동원된 인원이현역 의원 20여명을 포함해 100명에 육박했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물대기의 극적 효과를 노렸음인지 레미콘55대를 동원했다고 한다.물이 정작 필요한 것은 후미진 곳이었지만 레미콘은 큰 길가 논에만 물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화성시의 50억원의 지원 요청에 ‘잘되도록 해보겠다’는 답변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농심을 천심으로 받드는 역사는 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구태여 가뭄이 들지 않아도 나라님이 나서 봄에는 선농제,농번기인 여름엔 중농제,그리고 수확기 가을에는 후농제를 지냈다고 전한다.조선조들어 선농제만 남아 지금에이르고 있다.임금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서울 동대문밖,지금의 제기동에 있던 선농단(先農壇)에 나아가 신농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소를 잡아 선농탕(지금의 설렁탕)을끓여 농민은 물론 주위를 유랑하는 거지까지 불러 한자리에서 나눠 먹었다고 한다. 들녘에 나설 때에는 거지와도 한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을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아직도 최악의 가뭄은계속되고 있다.파업의 불씨도 살아있고 후유증 처리에도지혜를 모아야 한다.가뭄 극복을 위해 그만두겠다고 공언한 지 나흘도 채 안돼 여야는 소모적 정쟁을 또 시작했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정치권만 ‘선농시대’를 떠돌고 있는것 같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日외무·국방 잇단 訪美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외상과 나카다니 겐(中谷元) 방위청장관이 미국 방문길에오른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의 상견례를 겸한 이번 방문의 주 목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미·일 정상회담(6월말 워싱턴) 의제 조율이다. ■미·일 외무장관 회담 18일(한국 시간) 파월 장관과 외무장관 회담을 갖는 다나카 외상은 미국측의 불신을 씻는데 주력할 방침. 미사일 방어(MD)구상에 대한 부정적 발언으로 “반미(反美)주의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그녀로선 오해를 불식할 절호의 찬스이다.“미국에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정부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방미를 적극 권했다. 지난 5월 초 일본을 방문했으나 다나카 외상을 만나지 못하고 ‘문전 박대’를 당한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 부장관을 만날지도 관전 포인트. ■미·일 국방장관 회담 22일 럼스펠드 장관과 첫 대면을갖는 나카다니 방위청 장관은 올해로 50년을 맞는 미·일안보동맹을 점검하고 중요성을 재확인한다.회담에서 미국측은 MD 구상을 설명하고 일본측의 참가를권유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MD 참여가 ▲중국의 불필요한 경계를 불러일으키고 ▲엄청난 개발비가 들어가며 ▲집단적 자위권행사에 저촉된다는 점 때문에 일본측은 명확한 대답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marry01@
  • 과로 입원 김원길복지 퇴원

    13일 과로로 입원했던 김원길(金元吉)보건복지부장관이입원 하루 만인 14일 퇴원,집에서 요양을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김 장관은 15일 퇴원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일정이 너무 많아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14일 퇴원했다”면서 “김 장관이 평소 고혈압인데다 혈압이불규칙적이어서 입원기간 동안 고혈압 관련 검사를 받은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금감원 간부 잇단 ‘의문의 사퇴’

    31일부터 금융감독원의 2급 이상 간부들도 재산등록 의무자로 포함된 가운데 2급 이상 간부 2명이 최근 사표를 낸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문홍순(文弘淳) 비은행검사2국장이낸 사표가 지난 29일자로 수리됐다”고 밝혔다.관계자는“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격무에 시달려 당분간쉬고 싶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26일에는 감사실의 이청재(李靑宰) 팀장이 낸 사표가 수리됐다.이 팀장은 신흥증권 감사로 자리를옮길 예정이다.민간 금융회사로 나가기 위해 오래전 부터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들은 모두 다 업무능력이 뛰어나 주변에서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와 관련,금감원 주변에서는 재산등록 의무대상자가 되면 퇴직이후 민간기업 취업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받아야 해 이 심사를 피하기 위해 미리 사표를 낸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금감원 직원들은 지난 24일 임용웅(林勇雄) 부원장보가 낸 전업신청건이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부결되면서 매우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금감원은 최근 취업제한 대상자가 2급 이상으로 확대된데다 정년보장도 어려워지자 금융회사로 전업하겠다는 심리가 직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소장파 반란’ 청와대 반응

    청와대는 법무장관 인사 파동이 막 수습돼 가는 판국에 초선 의원들이 또다시 불을 지피자 어이없어하면서도 지친 표정이다.집단행동을 한 이들 의원에게 비난이 쏟아졌다.이같은 움직임을 미리 알고 만류하려고 했으나 연락을 끊은 채‘거사(擧事)’를 단행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내부적으로 치유할 일을 밖에서 내지른다고 해결되겠느냐’며 경솔함을 나무랐다. 한광옥(韓光玉)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는 모두 비서실장이 추천하는 것”이라며 더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기대했다. 한 관계자는 “이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누가 (사정을)모르겠느냐”면서 “기본이 안된 사람들”이라고 신랄히 비판했다.이어 “(이들이)무슨 인사에 관여했다고 당직사퇴를하느냐”고 꼬집고 “당장 사표를 수리해야 한다”고 흥분했다. 이에 앞서 한 핵심 관계자는 “임명 전의 중대한 결격사유가 나중에 발견됐다면 추천자 문책 논리가 타당성을 갖겠지만 임명 후에 발생한 ‘해프닝성 사고’에 대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불편한 심기를내비쳤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러나 서명 의원들을 정면으로 비판할경우 사태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어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에 따라 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 등고위 관계자들은 서명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경위를 파악하는 등 사태수습에 골몰했다.청와대 관계자들은 특히 이번 파문을 둘러싸고 마치 당정간 갈등이 있는 것처럼비춰질 경우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태의 조기 진화에 나섰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이봉주-정봉수 마라톤보다 힘든 화해

    머나먼 화해의 길-.한국마라톤의 간판 이봉주(삼성전자)와옛 스승 정봉수감독(코오롱)은 언제쯤 화해할 수 있을까. 이봉주와 오인환코치(삼성전자)는 지난달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최근 인사차 정감독을 찾았다.그러나 이봉주의 옛 소속팀 코오롱의 반응은 냉담했다.코오롱은 “정감독은 언제 올지 모른다.또 정감독이 만나줄지도 모르겠다”면서 만남 자체를 만류하는 눈치였다고 오인환코치는 전했다. 한때 가족보다 다정했던 이봉주와 정 감독이 소원해진 것은 지난 99년.당시 정감독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를길러낸 뒤 이봉주와 함께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그러나 이봉주와 오인환코치는 정감독의 독선적인 팀운영과 코칭스태프 개편안에 반발해 팀을 이탈했다.이 때부터 이들의사이가 멀어졌다. 그 뒤 삼성에 새둥지를 튼 이봉주와 오인환코치는 지난달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반면정감독은 이봉주가 떠난 뒤 불운이 겹쳐 현재는 매일 병원을 찾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1년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정봉수 감독의 가슴속 앙금은사라지지 않았다.옛 스승을 버리고 떠났다는 배신감때문이다. 정감독도 섭섭함을 여과없이 드러냈다.정감독은 “굳이 찾아오겠다면 못만날 것도 없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준석기자
  • [오늘의 눈] 日 왜곡 교과서 전시는 당연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사 왜곡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이독립기념관 주최로 15일 서울 광화문 갤러리와 독립기념관에서 동시에 개막됐다.매우 뜻깊은 행사다.전시물 중에는 문제가 된 검정본 8종 등 일본의 역사왜곡 실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들이 많다.1870년대의 교과서를 보면 임나일본부설등 역사왜곡이 오래전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행사는 당초 10일 개막될 예정이었다.그러나 관계당국이 “일본정부와 대화를 하는 중인데 괜히 국민들을 흥분시키기보다는 관망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만류’하는 바람에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독립기념관측은 “할 말은 해야 하는 것이고,독립기념관마저 이 일을 안하면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에게 할 도리가 아니며,우리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안타까운 일이다. 상대방이 있는 외교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나 매사를 그런 시각으로 접근하다 보면 자칫 국가위신을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독립기념관은 지난 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국민적 공분에서 태동됐다.온 국민의 참여로 4년여에 걸쳐모인 성금 500여억원을 토대로 87년 8월15일 문을 열었고 4개월 동안 400만명이 관람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개관 당시 연구직이 32명이었고 자료수집예산은 1억2,000여만원이었다.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연구직은 8명,자료구입예산은 1,960만원으로 줄어들었다.독립운동사를 연구하기에는 담당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반면 일본은 82년 교과서 왜곡 파동 당시 주변국들의 비난을 무마한 뒤 최고액권인 1만엔짜리 지폐의 인물을 쇼토쿠 태자에서 제국주의침략이론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로 바꾸는 등 의뭉스러운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한반도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됐던 19세기 말을,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는 요즘에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대비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될수 있다.“거짓역사를 가르치는 나라는 망한다”지만 역사를 경시하는 나라도 어찌 흥할 리가 있겠는가. 김주혁 문화팀 차장 jhkm@
  •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민속연 제작 배무삼씨

    어렸을적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싶은 마음으로 누구나 한번쯤 날려봤을 연(鳶).옛날엔 정월 대보름날 연에 송액영복(送厄迎福)이란 글을 써서 연줄을 끊어 하늘높이 날려보내곤 했다. 연은 1,300여년 전인 신라 진덕여왕 원년(서기 647년)에김유신 장군이 비담과 염종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이후 고려말 최영 장군,세종대왕때 남이 장군,임진왜란때이순신 장군이 화공법이나 작전지시 수단으로 사용하다가영조대왕(1724년)때 궁중놀이인 연날리기를 민중에게 장려하면서 민간에 파고 들어갔다. 이런 내력을 지닌 연이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아직도 고집스레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부산민속연보존회 이사장 배무삼(裵武三·58)씨.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지금도 방 한칸을 작업장삼아 한지를 손질,문양을 그려넣고 대나무를 다듬어 붙여 명주실로 병잡기(무게중심잡기)를 하고 있다.하루 많이 만들면방패연으로 4∼5개. 그가 연과 인연을 맺은 것은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가 주최한 부산국제친선연날리기대회에 출전한 74년.연만드는손재주를 당시 보존협회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계기였다. 그는 동구 초량동 집에서 동래구 온천동 보존협회까지 틈만 나면 걸어가 연만드는 법과 띄우는 법을 배웠다. 당시엔 동래가 민속연 만들기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6·25 전쟁으로 전국 피란민들이 모이면서 제작기법이 한단계높아졌기 때문.연 제작법과 날리기대회의 규칙 등도 이때전국적으로 표준화됐다. 연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배씨는 87년 부산공동어시장을그만뒀다.“돈도 되지 않는 일을 한다”는 부인(53)의 만류도 뿌리쳤다.이후 연날리기대회도 별로 없고 연을 찾는사람도 없어 입에 풀칠조차 어렵게 됐다. 배씨가 제작한 방패연은 1만4,000원,가오리연 7,000원,얼레 1만5,000∼5만원이다. 그럼에도 평생 배운 기술을 묵히기 아깝고 연을 널리 보급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 아직 계속하고 있다.94년엔 부산민속연보존회도 만들었다.연 전시 박물관과 함께 항상 연을 날릴수 있는 공간확보가 여생의 꿈. “연은 단순한 듯하지만 자유자재로 조종이 가능한 비행물체이기 때문에정교한 과학”이라고 강조하는 배씨는 94년 부산시 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으나 보류됐다.연락처 (051)554-6475. 글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보스턴 마라톤 이봉주 우승/ 천안 고향집 축제 분위기

    “지난달 세상을 뜬 봉주 아버지가 이 영광스런 장면을보았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아들이 17일 새벽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는모습을 충남 천안시 성거읍 소우리 고향집에서 지켜본 이봉주 선수의 어머니 공옥희(孔玉姬·66)씨는 “봉주가 미국에 가기 전 전화로 이번 일요일 아버지의 49재에 우승소식을 반드시 갖고 가겠다고 다짐했었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공씨는 이날 새벽 딸 경숙(慶淑·34)씨 부부,외손녀(11),외손자(8)와 함께 TV로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이 선수의 누나 경숙씨는 “잘했다.고생했다”고 말했다. 공씨는 “작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따 섭섭했었는데 이번에 우승하게 돼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랐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성적을 내 나라의 위상을 세계에떨쳤으면 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이날 아침 TV로 이 선수의 우승사실을 알고 달려온 마을주민들은 “상중인데 무슨 잔치냐”는 공씨의 만류에도 부침개를 부치며 조졸하게 잔치상을 마련,이 선수의 쾌거를축하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
  • 초점 인물/ 민주당 김영진의원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재수정을 요구하며 일본 중의원의원회관 앞에서 6일간 단식농성을 벌여온 민주당 김영진(金泳鎭) 의원이 17일 오후 귀국했다. 김 의원은 “일제시대 36년간 잔학한 행위를 저지른 일본이 21세기에도 역사를 왜곡한 가짜 교과서를 만들어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며 일본의 반성과 회개를 거듭촉구했다.그는 이어 “많은 일본 시민들이 농성장을 방문해‘우리 일본의 죄를 용서해달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특히 “일본 교회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모포나 물등을 가져와 조를 짜서 금식에 동참했으며,중의원과 참의원의원 50여명도 찾아와 1시간씩 동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며 일본 각계 인사와 단체들의 호응을 소개했다. 김 의원은 지난 11일부터 감기와 탈수 증상을 보이면서도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을 비롯한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16일 오후까지 홀로 단식농성을벌였다. 한편 일본내 교계와 시민단체들은 김 의원의 단식농성을 계기로 역사교과서 왜곡 시정 연대기구를 결성키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락기자 jrlee@
  • 김재영 차관 사의표명 뒤늦게 알려져

    행정자치부 김재영(金在榮)차관이 지난 1월27일 사임 의사를 표명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김 차관은 지난해1월28일 취임석상에서 “차관직을 1년만 하고 물러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화제를 모았었다. 그는 이 약속에 따라 취임 후 1년이 되는 날 당시 최인기(崔仁基)장관에게 사의를 전달했고,임명권자에게도 간접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최 장관이 차관급 인사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김 차관은 28일 “공직에 들어와 차관까지 올랐으면 자신의 영광은 물론 국가의 혜택까지 받은 사람”이라면서 “취임 전부터 차관직은 1년 정도 하고 후임을 위해 물려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김 차관의 분명한 거취 표명이 공직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의 ‘그림자 차관론’은 또다른 의미에서 정부청사 내에서 회자되고 있다.그는 최 전임 장관이 의욕적으로 일을 할 때 자신을 내세우는 일이 전혀 없었다.소리없이 내부 일을 챙겼다. 행자부의 한 국장은 “최 전임 장관이 일을 잘 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김 차관의 보이지 않는 보필이있었기 때문”이라며 김 차관을 가정의 ‘어머니’에 비유했다.그러나 정작 그는 1년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공표한사실도 다른 차관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오히려 조심스러웠다고 토로했다. 홍성추기자
  • 3·26 개각/ 이태복 복지노동수석

    “어려운 시기지만 적당히 처신하지는 않겠습니다.국민의 어려움과 고통을 찾아 나서 해결하겠습니다” 26일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으로 임명된 이태복(李泰馥·51) 노동일보 회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노동계의 대부’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이제 대통령을보좌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료계 문제 등 극히 민감하고도 어려운 현안들을 조율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이수석은 “항상 힘겹고 어려운 현실을 개척하면서 살아왔다”는 말로 각오를 대신하면서 “지도층 모두가 함께 반성하면서 국민의 고통과 불편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문제 종합일간지 ‘노동일보’의 발행인으로 정부의노동·복지정책을 비난하기도 했던 그는 “‘내 탓 남의탓’만이 아닌 우리의 문제”라면서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그의 인생은 도전과 고난의 연속이었다.하지만 한번도 좌절하지 않았다. 70∼80년대 대표적인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노동자의권리를 요구하다 고문경관 이근안에게 붙잡혀 두달여 동안 온갖 고초를 겪기도 했다.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7년을 넘게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암울한 시기에 사회·노동운동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어서 그런지 각계에 걸친 그의 교우관계는 유난히 끈끈하다.대전교도소 수감 당시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직접 면회를 오기도 했다. 그의 별명은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맹글이’.실패할 것이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상 유례가 없는 ‘노동일보’를 창간,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기틀을 잡았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철도·전력·금융노조 파업 때에는 노정(勞政)간의 의견을 막후에서 조율,조정하는 등 ‘합리적 조정자,개혁적 실천가’로서의 모습도 잃지 않았다. 이수석은 “평생의 숙제인 복지와 노동문제의 ‘희망’을 찾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면서 “어렵고 힘든 국민들을 위해 온힘을 쏟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조현석기자 hyun68@
  • ‘한국의 슈바이처’ 仁術 접다

    “죽는 날까지 환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슈바이처’ 문창모(文昌模·94)박사가 만 70년동안 입어온 의사 가운을 벗었다. ‘최고령 국회의원’ ‘진료활동을 펴고 있는 최고령 의사’ 등의 숱한 기록과 함께 의료계 및 교육·정치·종교·사회사업분야에서 거목으로 존경받고 있는 문 박사는 지난 24일 진료를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별도의 은퇴식은 없다.다만 오는 31일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은퇴 예배’로 대신할 계획이다. 평안북도 선천 출생으로 지난 31년 세브란스의전을 졸업,70년동안 의사의 길을 걸어온 문 박사는 58년 연세대 원주기독병원의 전신인 원주 연합기독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강원도 원주에 정착했다.64년 원주시 학성동에서 문이비인후과를 개원한 이후 매일 아침 6시30분부터 37년동안 한자리에서 인술을 펴왔다. 문 박사는 특히 결핵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고 70년대 육영수여사를 설득해 원주에 나환자촌을 건설하는 등 사회사업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지난해 의사들의 의약분업 관련 파업시위때는 ‘의사의 길은 환자들과함께 하는 것’이라며 병원 문을 열고 환자들을 돌봤다. 문 박사는 “걷기가 불편하고 손놀림도 둔해져 자칫 환자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며 자식들이 만류해 그만두게 됐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문 박사는 96년 출간한 ‘천리마 꼬리에 붙은 쉬파리’라는 제목의 자서전 서문에서 “의사가 된지 66년,나이가 아흔이 된 지금도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8∼9시까지일한다.나는 별무취미로 도무지 재미가 없는 사람이지만이런 진료생활을 축복이라고 여긴다”고 ‘후회없는 삶’을 담담히 표현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
  • 무한탈출 쇼? 무한탈선 쇼!

    지난 토요일 오후,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기자는 눈을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죄스러움에 얼굴이 화끈달아올랐다.‘토요클로즈업’(대한매일 17일자 12면)란을통해 ‘온가족이 즐길수 있는 새 오락프로’로 소개했던 SBS ‘쇼! 무한탈출’에서 “도대체 대한민국 공중파 채널이맞는가”싶을만큼 파격적인 내용들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 호언장담’코너에 출연한 god는 “음식 남기는 건절대 안돼”라는 말을 과거에 했다는 죄로 301가지의 중국음식을 먹어야 했다.꾸역꾸역 밀어넣다 결국 괴로운 표정으로 백기를 드는 모습은 엽기 그 자체였다. 또다른 코너에는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얼굴 전체를 성형수술하고 싶다는 한 여성이 등장했다.진행자가 성형수술이 굉장히 고통스럽다며 다른 시술자들의 깎아낸 턱뼈까지 보여주고 만류했지만 결국 그녀는 수술대 위에 올라가 의연히(?) 의사에게 얼굴을 내맡겼다.모범생을 대표한다는 서울대생과 서슴없이 욕을 하고 담배를 피워대는 여학생의 미팅을담은 ‘극적남녀’,가수 차태현을 싫어하는안티 팬들의 환심을 사려 차력쇼까지 마다않는 ‘차태현 국민가수 만들기’코너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송뒤 SBS홈페이지에는 “굶고 있는 이들도 많은데 음식갖고 장난하나”“지나친 가학성… 온 국민을 새디스트로 만들려는가”“차라리 인터넷 성인방송으로 전환하라”등 수백건의 항의가 빗발쳤다. ‘쇼! 무한탈출’은 오락프로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봄 개편에 맞춰 야심차게 내놓은 주력 프로.세상의 고정관념과틀을 깨겠다는 기획의도는 특히 젊은 층들의 기대를 불러모았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함량미달이었다.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어쩌다 그런 것이 아닌,아예 작심하고 선을 넘은 혐의가 짙다는 점이다.만약 그 ‘작심’이 시청률을 타깃으로 했다면 결과는 대성공이다.수많은 시청자들은 “도대체 이게 뭐야”하며 브라운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SBS의 방송지표 ‘건강한 방송,건강한 사회’와는한참 거리가 멀다.지난해 11월 창사 10주년을 맞아 “건강하고 유익하면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의 사랑을받는 방송으로 거듭나겠다”라던 송도균사장의 공언도 한참비껴난다. 시청률이란게 그만큼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을까.드라마 ‘순자’가 연예계의 뒷얘기를 파헤쳐 물의를 빚었던 게 엊그제.PD나 제작진들의 함량미달 차원은 이미 벗어났다.시청률만 올려놓으면 뭐든지 용서가 되는 방송풍토가 ‘쇼! 무한탈출’이라는 괴물을 낳은 진짜 주범이기 때문이다. 허윤주기자 rara@
  • [사설] 우려되는 공무원들의 집단행동

    일부 공무원들의 집단 움직임이 심상찮다.일부 지역 공무원들이 직장협의회 등의 ‘종용’에 따라 지역별 3·1절 행사의 참석을 거부했고,공식 출범을 눈앞에 둔 하위직 공무원들의 친목모임인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연)은 벌써부터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겠다고나서고 있다.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도 이달 안에 교수노조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겠다고 한다.공무원과 교사들에대한 성과금 지급 파동으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공직사회가또다시 요동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직에 몸담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무조건 침묵을 지키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불합리하거나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것은 당연하다.하지만 국민의 공복임을 자처하는 공무원 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하면,그 방식이나 절차는 나름대로의 질서와 절도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없다.특정 사안에 이의가 있거나 건의할 사안이 있으면,상급자와의 협의나 토론을거쳐 처리하고 계통을 밟는모습을 보이는 것이 순리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지역 직장협의회가 인터넷 등을 통해 3·1절 행사 참석을 만류하고 적지않은 공무원이 이에 동조한 것은 경솔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온 국민이경건하게 지내야 할 국경일을 ‘실력 행사’를 시험하는 날로 삼았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더구나일본 극우파 망동으로 온 국민이 분개하는 상황에서 맞은 3·1절이 아닌가. 공무원직장협의회나 전교조 등 공무원 모임은 법 테두리 안에서 목소리를 키우고,조직내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을기울이기를 당부한다.자신들의 주장이나 생각이 곧바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서 집단행동으로 밀어붙이려는 태도는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김중배 MBC사장 인터뷰

    26일 MBC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장으로 선정된 김중배(金重培)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대표는 주총 직후 기자들과만나 “MBC 경영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백지에 그림을그려나가는 심정으로 임하겠다”고 운을 뗀 뒤 “하지만 언론개혁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공영방송의 진로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은 해왔다.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 정립과 내부 개혁에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내부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각론을 말하기엔 이르다.하지만 MBC가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이상무엇이 정말 공익을 위한 것인지,이 시대와 겨레에 도움이되는 방송은 어떤 것인지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다.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성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개혁성이란 말은 언론개혁을 가리키는 것인지 MBC 자체개혁을 말하는 것이다.‘정권 재창출을 위해 신문개혁에 방송을 이용하려 한다’는 등 여러 걱정이 있는 것으로 안다.지난 40년동안 남을 비판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오면서 남을 비판하려면 스스로에게 더욱 준엄해야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그런 점에서 MBC가 개혁을 말할 수 있으려면 자기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자체개혁에 힘써야 한다. ■비(非)방송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방송인이 아니지만언론이 지향해나가야 할 바가 무엇인지는 안다.표현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바탕을 관통하는 기조는 같다.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이 나를 선임한 데는 전임사장이 내부갈등으로 중도하차한 상황에서 방송인이 아닌 내가 오히려편견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시민·사회운동을 하다 제도권으로 들어가 실패한 사례가많다.결정과정에 힘이 많이 들었을텐데 고민이 정말 많았다. 주위에서도 양론이 팽팽했다.한편에서는 시민운동에서 좀 일하다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라며 만류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동안 언론개혁을 떠들고 다녔으면서 이런 기회를 마다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충고했다. ■시민단체장 출신으로서 그간 언론개혁,미디어렙 등 MBC와시민단체간에 상충되는 현안에 관한 생각은 목표가 같더라도운동권과 제도권내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을것이다. 독재적인 사장이 되기는 싫다.민주적인 토론을 통해내부 의견을 수렴해가고 미처 내가 몰랐던 정당성이 있다면반영해 나가겠다. 허윤주기자 rara@
  • YS “금융위기 누구도 얘기안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두번째 회고록이 출간을 하루 앞두고 14일 주요 내용이 공개됐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감사원장에 발탁한 데 이어총리와 당대표는 물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총재까지시켜서 대선후보가 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줬다.대선후보가된 뒤에 나도 무척 기뻐했다.이총재도 처음에는 감읍했다.그런데 명예총재로 물러나 있던 내게 탈당을 요구했다.총리때내 권위에 도전해 파면했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 지난 대선 당시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5년간 잘 관리하면 다음에 될 것이므로 탈당하지 말라고 했다.그도 처음에는 좋다고 하더니 태도를 바꿨다.나를 완전히 배신한 것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김대통령이 92년 대선에서 패한 뒤런던으로 떠나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당선을 축하한다.나는 정치를 떠난다.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성공한 대통령이되기 바란다’고 내게 말하더라.그러더니 돌아와서 정치를재개하고 내 임기 내내 나를 욕하고 발목을 잡았다. ■DJ 비자금 실명전환하지 않은 뭉칫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나왔다. 비자금이 폭로됐을 때 김대통령은 겁을 먹었다.법대로 했으면 잡아넣을 수도 있었다. ■현철씨 구속 현철이를 구속하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이 죄가 안된다고 했지만 별 방법을 다 찾아서라도 잡아넣으라고 했다.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구속 학생들이연희동을 습격해 대치가 계속된다는 보고를 받았다.그냥 놔두면 두 사람이 결국 죽게 될 것 같아서 검찰에 ‘철저히 조사해 혐의가 드러나면 구속하라’고 했다. ■경제위기 나는 경제를 매우 걱정했는데 관료·학자·재벌·언론 누구도 금융위기를 얘기하지 않았다. ■클린턴 미 대통령 94년 당시 ‘북한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며 클린턴 전대통령이 전쟁을 하겠다고 해서 30분을 전화로 싸웠다.나는 ‘우리 군인은 단 한명도 동원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공직인맥 열전](20)정보통신부.하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7월1일 정보통신부 우정국에서 독립했다.정통부 소속이지만 본부장이 인사권 일부(2∼4급 전보권)와 경영권을 갖고 있는 준 독립기구다.산하 우체국이 2,816개(별정우체국 포함)나 돼 조직이 방대하다.정통부 본부가미니 부처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교용(李敎鎔·행시 16회)본부장은 정보통신지원국장,정보통신정책실장 등 초고속 승진 코스를 밟아왔다.우정사업본부설치추진단장을 계기로 계약직인 초대 본부장을 맡았다. PCS(개인휴대통신)사업자 선정으로 잡음이 났을 때 도맡아 수습에 나선 의리파다.부하를 가려 쓰려고 하다보니 정통부측과인사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성옥(李成鈺·행시 21회)경영기획실장은 정보화,통신서비스,통신정책 등을 두루 거친 정통부 내 대표적 이론가로 꼽힌다.상하관계가 원만하나 다소 고지식한 면도 있다.홍기환(洪起煥)경영총괄과장은 공보담당관 등을 거친 홍보 전문가로대인관계 폭이 넓으나 고집도 센 편이다. 최재유(崔在裕·행시 27회)경영관리과장은 우정사업경영개선기획단,춘천우체국장을 거친 체신통.듬직한 몸집대로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어서 상사들이 좋아한다.이번 인사때 정통부로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이 본부장이 만류해 남게 됐다.이동오(李東午)재무관리과장은 ‘유신사무관’으로 불리는 육사 5급 특채 출신. 보스 기질이 강하고 할 말은 하는 스타일로 때로는 윗사람과충돌하기도 한다. 우편물의 접수·운송·배달 등 우편사업을 맡는 우편사업단과 예금·보험 등 금융사업을 관장하는 금융사업단은 우정사업본부의 2대 핵심 조직이다. 우편사업단 이재륜(李在倫)단장은 역대 장관 수행비서를 오래한 덕분에 차분하다.미국 워싱턴대 경영대학원 유학 등으로 비고시 출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빠르게 승진해 왔다.부산체신청장때 부산 지역 정보화사업을 무난히 해낸 공로로발탁됐다. 장익형(張益亨)우편기획과장은 감사계통에 근무 경험이 많고 상하관계가 원만하다는 평이다.권문홍(權文洪)사업개발과장은 고양일산 우체국장으로 있다가 이번에 복귀했다.주을룡(朱乙龍·육사5급 특채)국내우편과장은 감사관실,마산합포우체국장을거쳤다.변근섭(邊根燮·행시 23회)국제우편과장도같은 날짜로 금융사업단 보험과장에서 옮겨 왔다.홀어머니를모시고 사는 노총각(44)으로 동력자원부, 산업자원부를 거쳤다. 금융사업단은 39조2,797억원의 예금자금·보험기금(지난해말 기준)을 관리한다.신영수(辛英壽·행시 18회)단장은 정통부 내 ‘재경부 마피아’ 출신으로 Y2K 상황실장을 무난히해내 당시 남궁석(南宮晳)장관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이재태(李裁泰·행시 22회)금융기획과장은 미국 뉴욕주립대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따낸 유학파다. 맡은 일은 빠짐없이해내지만 소극적이라는 평.김영수(金瑛秀·행시 29회)예금과장은 최연소 과장(38)이다.김호(金鎬·행시 24회)보험과장은정통부 정책국 지식정보산업과장으로 있다가 이쪽으로 왔다. ‘백만장자와 골프’라는 책도 번역했다. 이계순(李啓淳·행시 24회)감사담당관은 장관 비서관 등을지내 차분하고 조용하게 일하는 스타일로 소극적이라는 평도뒤따른다. 이복동(李福童)총무과장은 방송통신대를 나와 비고시 출신의 핸디캡을 치밀한 업무 능력으로 커버하고 있으며 상하 좌우관계가 원만하다. 박대출기자 dcpark@
  • [김삼웅 칼럼] 당쟁과 정쟁 그리고 민생

    일본인 시데하라 히로시가 대한제국 정부의 학정참여관으로 조선에와서 ‘조선정쟁지(朝鮮政爭志)’를 펴내고, 이책에서 당쟁을 조선정치의 특징이라고 규정한데 이어 호소이(細井肇)같은 자가 “조선인의혈액에는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파싸움이 계속되었으며이는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다”란 극언을 한 것을 알고는 분노를삼키기 어려웠다. 일제 관학자들이 한국인을 업신여기면서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고자만든 궤변이고 억설로 치부했다. 이광수나 최남선이 이를 받아들여동족을 비하하는 글을 쓴 것을 읽고는 친일파들의 상투적 수법으로접어두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최근에 많이 바뀐다. 정녕 우리 민족은 당파심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시데하라가 지적한 “조선시대의 정당들은 주의(主義)를 가지고 서로 존재하는 공당(公黨)이 아니라 이해관계에서 서로 배제하는 사당(私黨)”이란 모습이 요즘 상황과 겹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는 기호와 영남지방으로 갈려 싸우던 당쟁이 지금은 영남과호남으로 바뀌었다. 당시에는 그래도율곡과 우계(牛溪)사이에 벌어진 ‘율우논변(栗牛論辨)’이나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그리고 이른바 ‘예송논쟁(禮訟論爭)’등이 있었다. 비록‘예송논쟁’이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의 복상(服喪)문제를 둘러싸고3년복을 입느냐, 1년복을 입느냐 따위의 ‘하찮은’시비로 시작되었으나 논쟁의 대부분이 당시 최고의 담론이 화두가 되었다. 본질은 권력싸움이지만 명분은 학구적인 논쟁이었다. 적어도 요즘 우리 정쟁처럼 명분도 실익도 없는 ‘개판싸움’과는 달랐다. 경제회생의 ‘몸통’을 잡는 정치는 지금이나 조선시대나 다르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국토가 황폐하고 민심이 흉흉해졌다. 지각있는 지도층이라면 관민이 힘을 모아 국난극복과 민생을 위한 정치에 매진했어야 옳다. 그런데 아니었다. 선조가 죽자 영특한 세자 광해를 두고 두살배기영창을 후계로 삼으려고 정파간에 싸움이 붙고 결국 광해가 집권하여피바람이 불었다. 그 여파로 인조반정이 이루어지고 또 한차례 보복전이 나타났다. 민생은 뒷전이었다. 임진·병자양란으로 피폐해진 국토를 재건하고 백성을 돌보고자 ‘대동법(大同法)’이 마련되었지만 정쟁으로 100년 뒤에야 전면 실시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지역별로 실시하는 시험과정으로 평가하지만사실은 농민생활의 안정과 국가재정의 확충을 위한 세력과 양반지주의 입장과 기득권만을 보호하려는 세력과의 분쟁 때문이었다. 율곡이 당쟁을 없애려고 나섰지만 허사였다. 율곡은 사사건건 대립하는 동인과 서인을 양시론(兩是論)으로 화해시키고자 했다. 즉 “무왕(武王)과 백이숙제의 일은 둘다 옳고 춘추시대의 전쟁은 둘다 그르다”는 식이다. 무왕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치려할 때 백이숙제는주왕이 도리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신하가 임금을 축출하는 것을 옳지않다고 거사를 말렸다. 그러나 무왕은 만류를 무릅쓰고 주왕 축출에성공했다. 이에 백이숙제는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들어가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 죽었다. 무왕과 백이숙제의 행위는 모두 옳다는 것이 율곡의 양시론이다. 오히려 반대세력이 율곡을 모함하고 나섰다. 젊었을 때의 입산(入山)을 두고 계모와 싸우고 가출하여 머리깎고 중이된 것은 불효이자 이단이란 것이다. 모친을 잃은 슬픔에 출가한 것이 ‘사상논쟁’의 배경이다. 당시 ‘불교도’의 낙인은 요즘 ‘용공좌경’처럼 치명적이었다. 영조는 어떻게 해서라도 당쟁을 없애보고자 노론의 영수 민진원과소론의 영수 이광자를 불러 두사람의 손을 맞잡고 화해를 종용했다. 그리고 노론을 한사람 기용하면 소론도 한사람 기용하는 식으로 탕평책을 적극 실현했다. 이런 인사방식을 ‘쌍거호대(雙擧互對)’라고했다. 이같은 영조의 노력도 당쟁을 뿌리뽑지 못했다. 조선사회는 쓸 만한 인재를 그냥 두지 않는 못된 병폐가 있었다. 조금 우수하다 싶으면 모함하여 쫓아냈다. 우암 송시열을 기호지방에서는 극존칭인 ‘송자(宋子)’라 높이고 영남지방에서는 ‘시열이’란개이름으로 불렀다. 최근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지역별로 평가가 다른 것도 비슷한 양상이다. 한달만에 국회가 정상화됐다. ‘설민심’의 실천이 국회에서 나타날것이다. 정쟁을 접고 경제살리기와 대미외교,남북문제에 힘을 모았으면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희망 2001] 광주 북구보건소 김세현씨

    “환자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의사가 참 의료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시 북구 보건소에서 20여년 동안 서민들의 건강을 지켜온 김세현(金世現·50)씨는 최근 경제사정 악화 및 혹한 등으로 보건소를 찾는 환자가 부쩍 늘면서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김씨는 언어소통과 손놀림 등이 자유롭지 못한 선천성 뇌성마비 3급 장애인이지만 영세민과 노인 등 환자의 마음까지도 따듯하게 달래주는 참 의사다.직접 좌절과 고통을 체험했기에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그는 의료계가 장기 폐업을 했던 지난해하반기 하루 평균 170∼200명의 환자를 돌봤다. 무릎 통증으로 보건소를 자주 찾는 김순례씨(67·여·광주시 북구오치동)는 “의사가 너무 친절하고 잘해줘 일반 병원은 아예 가지 않는다”며 고마워했다.북구 보건소장 이청우(李靑雨·57)씨는 “악천후나 개인적인 사정 등을 내세워 결근한 적이 한번도 없는 성실한 의사”라며 “주민들은 그를 ‘북구의 슈바이처’로 부른다”고 말했다. 김씨가 자신의 몸이 일반인과 다르다고 느낀것은 초등학교 1학년때.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교사인 아버지(80)를 따라 순천으로 이사해 남초등학교에 입학했다.그러나 등하교길에 급우들로부터놀림을 당하면서 처음으로 좌절을 느껴야 했다. 그는 광주 북중을 나와 명문 광주일고에 입학했다.대입 모의고사에서 줄곧 1등을 할 만큼 성적이 뛰어났지만 가족의 만류로 서울 유학을 포기하고 71년 전남대 의대에 들어갔다.신체의 부자유 때문에 때때로 학업을 쉬며 가정의학을 전공한 그는 인턴과정을 밟기 위해 광주 J병원과 목포 S병원에 각각 원서를 냈으나 거절당했다.두번째시련이었다.그는 이내 인턴과정을 포기하고 광주 동구보건소에 들어가 82년 북구보건소로 옮겼다. “청소년기 마음 고생이 많았으나 영국 소설가 크로닌의 ‘성채’를 읽고 ‘참된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는 그는 “용기와 희망,역지사지(易地思之)가 인생 철학”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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