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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프타임] 두산 거포 김동주 전격 은퇴선언

    프로야구 두산의 간판타자 김동주(28)가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두산은 19일 김동주로부터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다. 새 인생을 찾아보겠다.”는 전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두산은 김동주가 현재 서울을 멀리 떠나 있으며 돌아오는 대로 구단을 찾아 은퇴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지만 적극 만류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 [삶과 경영 이야기] (29) 병원 첫 수출 박인출 예치과 원장

    [삶과 경영 이야기] (29) 병원 첫 수출 박인출 예치과 원장

    병원법인 ‘메디파트너’의 박인출(54) 대표는 최고경영자(CEO)로 성공한 치과의사만이 아니다.병원은 병만 고치는 곳이 아니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병원은 환자에게 만족을 주며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며,환자는 의사의 일방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 선택권을 지닌 고객이라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는 운동가다.의료시장의 문이 굳게 닫힌 우리나라에서 국내 병원을 처음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중이다. ●의사 한명이 하루 10명 환자 진료 서울 강남구 역삼동 충현교회 맞은 편의 예치과 강남점.꽃과 나무,유리로 둘러싸인 4층짜리 건물이다.‘메디파트너’의 모태이자 국내 최초인 병원 프랜차이즈의 1호점이다. 원장인 박인출 대표의 안내를 받아 병원 안에 들어서자 생소한 광경이 펼쳐졌다.병원 1층의 주제는 봄이다.환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나 진료수속을 밟는 데스크 모두 오렌지색 등 아늑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 빛깔로 꾸며졌다.박 원장은 “엘리베이터는 환자 전용”이라며 계단을 통해 2층으로 걸어 올라갔다.2층의 주제는 여름.검은색과 흰색의 조화로 시원을 느낌을 주는 마사지실,미용관리실,보철진료실 등이 있다.3층은 엷은 밤색 계열의 나무 무늬로 가을 분위기를 연출한다.개별 진료실은 원형으로 배치돼 있다.각 진료실에는 의자에 누운 환자의 시선이 ‘웹 TV’에 고정되도록 했다.잔잔한 선율의 음악이 흘러나온다.치료중인 환자를 배려한 것이다.웹 TV에선 메디파트너가 자체 제작한 방송이 전국 54개 체인점에 동시에 방영된다.4층은 겨울이다.흰색과 유리로 꾸며 진료실 안을 환하게 했다.병원 내부 전체에 꽃과 그림,주변에 어울리는 장식품들이 즐비하다.‘병원냄새’가 아닌 은은한 비누향이 물씬 풍긴다.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여느 병원과 확연히 다르다.우선 병원 이름이다.‘예’는 ‘예,그렇습니다.’처럼 긍정을 표시하는 우리말 ‘예’자와 환자를 떠받든다는 뜻에서 한자어 ‘예(禮)’에서 따왔다고 한다.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면,‘서비스 코디네이터’가 진료 접수를 도와주며 환자를 대기실인 ‘카페’까지 안내한다. 예치과 강남점의 의사 15명과 직원 65명이 지난해 올린 매출은 90억원.의사 1명이 하루 평균 10명의 환자만을 돌본다.30∼4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다른 병원들과 비교하면 양질의 진료가 나올 수밖에 없다.그렇다 보니 진료비는 다른 병원에 비해 3배 가량 비싸다. 전국 54개 치과와 성형외과,한방병원이 ‘예’라는 공동 브랜드를 사용하며 이같은 서비스를 추구하고 있다.지난해 12월 중국 상하이에 ‘수출 치과병원’ 1호점이 개설됐다.내년 3월에는 두 곳이 더 생길 예정이다. ●간호사의 담배 심부름에 충격 박 대표는 부모가 이북 출신이라고 소개했다.그는 “아버지는 평양에서 의사를 하다 6·25전쟁 때 월남했는데 평소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네가 커서는 진료에다 미용개념까지 지닌 치과나 성형 의사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씀했다.”고 전했다.박 대표는 “대학 교수인 어머니는 여성운동에도 적극적인 분”이라고 말했다.“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는 아버지에게서,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듯하다.”고 스스로 정리했다.그는 “발 재간이 있는 아이들을 고아원에서 데려다 축구부를 꾸리던 중학교 시절,나는 시험을 치르고 입학한 유일한 축구선수였다.”고 회고했다.동네 기원에서 혼자 터득한 바둑 실력은 대학에 들어가 대표선수가 될 정도였다.조정 경기나 보컬그룹 활동도 적극적이었다고 자랑한다. 박 대표는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돈은 벌지만 기계적인 의사생활’을 바꾸고 싶어 미국행을 결심했다.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전문의 과정을 이수하던 중 “갑자기 맹장수술을 받게 돼 병원에 입원했는데 나를 일깨우는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병실의 옆 침대에 암에 걸린 노인이 있었는데,그 노인이 어느날 간호사에게 돈을 주며 담배를 사다달라고 요구했다.간호사가 의사의 충고를 전하며 흡연을 만류했으나 노인은 막무가내였다.간호사는 고집에 눌려 담배를 사다 주며 “조금만 피우라.”고 간곡히 당부했다.박 대표는 “암 환자에게 담배를 전하는 행위가 정당한지를 따지기 전에 우리나라 병원에서 간호사가 환자의 담배 심부름을 할 수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회고했다. 귀국후 3년 동안 치과대학 교수생활을 하다 1986년 서울 압구정동에 15평짜리 병원을 차렸다.그는 “아파트를 팔고,돈도 빌려 차린 첫 병원이어서 서둘러 돈을 벌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터득한 교훈과 평소 생각하던 이상형의 병원을 조금씩 실천했다.”고 말했다.누구나 오기를 꺼리는 치과병원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병원을 병원 같지 않도록 꾸몄고 환자의 호소를 진득하게 들으며 궁금한 점을 해소해 주었다.직원들에게도 가족처럼 대했다.그랬더니 우습게도 ‘이빨을 아프지 않게 뽑는 치과’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개업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75평짜리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 자본금이 모였다.새 병원도 ‘튀는 병원’으로 알려지면서 환자들이 몰렸고,예쁜 인테리어 때문에 여성잡지에도 소개되었다. ●병원은 호텔 접대에서 유래 박 대표는 본격적인 새 병원문화를 만들기 위해 치과대학 동기생 4명과 ‘공동병원’ 설립에 뜻을 모았다.그러나 의료계 일부에선 ‘의사들이 동업하면 2년안에 돈 날리고 동료마저 잃는다.”면서 말렸다.그는 “6개월 이상을 동기생들과 그 가족들까지 어울려 만나면서 반드시 성공해 뜻있는 병원문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고 당시의 각오를 전했다.92년 동업 형태의 공동병원인 강남점의 개설이 두번째 변신이다.이 공동병원은 동업을 뛰어넘어 훗날 ‘프랜차이즈 병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박 대표는 “환자들은 자신이 병원의 최대 고객이라는 점을 병원의 횡포에 눌려 잊고 살았다.”면서 “병원(hospital)의 영어 어원은 호텔(hotel)과 접대한다(host)라는 단어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했다. 병원이 번창가도를 달리던 99년 세번째 변신을 시도했다.‘예’라는 공동브랜드를 사용하는 회원사들에 병원운영 건설팅과 소프트웨어 개발,고객만족 프로그램 공유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프랜차이즈 회사를 설립한다.회원 의사들의 학술 모임이 자신들은 물론 치의학의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우사에게서 배운다 박 대표는 고객접점(MOT·진실의 순간)이라는 개념을 중시한다.박 대표는 “MOT란 원래 투우에서 쓰이던 용어로 고객과 만나는 접점에서 서비스를 크게 강화해야만 전체적인 질 향상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라면서 “고객이 존중돼야 할 이유를 이보다 잘 설명하는 예는 없다.”고 단언했다.즉 투우사가 소의 정수리에 정확히 칼을 꽂아야만 소를 한방에 쓰러뜨릴 수 있지,만약 실수로 자칫 칼이 빗나가면 화가 난 소에 도리어 투우사가 들이받힐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소와 만나는 어느 한 순간에 정확한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진실의 순간’이라고 설명했다.예치과는 90년대 초반에 이미 발 마사지 서비스를 병원에 도입했고,입 냄새를 기계가 측정해 수치화하는 ‘헬리미터’를 도입함으로써 치주질환 환자들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는 또 이상적인 공동병원의 모델을 찾기 위해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각국 병원의 특징과 의사들의 관계를 나름대로 정리했다.“미국 병원은 합리적인 계약이 중심이어서 병원 체인이 자연스럽게 운영됐지만 의사 선후배가 무시되는 수평관계가 문제”라고 전했다.“일본은 수직체계로 한 사람의 보스가 아랫사람들을 인간적으로 잘 챙겨주지만 개인의 창의적 발상과 참여가 억눌렸다.”고 말했다.그는 “마침내 찾은 병원이 싱가포르의 ‘테이앤드파트너스’라는 병원 체인으로 서양의 합리적인 의료 시스템과 동양의 인간미가 조화를 이룬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아울러 국내 의료계의 현실에 대해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그는 농업분야의 최근 쌀 협상에 의료개방 문제를 빗대 “시장개방이 아직 멀었다고 반대하는 이들의 시각이 답답하다.”면서 “그들의 말처럼 시기상조라면 개방이 미뤄지는 동안에 훗날의 개방을 대비한 철저한 준비와 변신이 필요할 텐데,아무것도 진척되는 것도 없이 시간만 보낸다.”고 강조했다.박 대표는 이어 “가장 힘든 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아이디어를 잊도록 하는 일”이라는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박인출 원장은 박인출(54) 예치과 대표 원장은 훤칠한 키에 호감을 주는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녔다.무슨 일이든 나서길 좋아해 하는 일도 많다.병원법인 메디파트너 대표이사,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산업벤처협회 회장,서울대병원 성형외과 외래교수.‘환자도 고객이다’(1999년·창현) 등의 저서도 냈다. 동업병원을 세운 지 12년 만에 한해에 90억원씩 버는 치과병원을 만들었다.3년전 ‘튀는 병원’으로 소문이 나자 국세청 조사관 11명이 들이닥쳤다.23일 동안 병원을 뒤졌으나 영수증 한장 빼놓지 않고 매출의 40%를 세금으로 꼬박꼬박 낸 것으로 확인돼 오히려 그해말 모범 납세자상을 받았다. 그 자신도 ‘틀림없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그의 꿈은 국내 최초의 병원 지주회사를 만들어 중국 등에 한국 의료진과 병원을 수출하는 것이다.
  • [토요영화]

    [토요영화]

    ●버티칼 리미트(MBC 오후 11시30분) 마틴 캠벨 감독의 200년작.K2를 배경으로 한 크리스 오도넬 주연의 산악 스릴러물. 최고의 산악인 로이스는 아들 피터와 딸 애니,그리고 대원들과 함께 암벽 등반을 즐기던 중 사고를 만난다.대원들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리고 이들 세 명이 자일 하나에 몸을 지탱하게 된다.자일 하나로는 세 명이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로이스는 자신의 자일을 끊도록 요구하고,피터는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든다. 3년 후.부유한 사업가인 엘리엇은 자신이 운영하는 항공사 홍보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등반 코스인 K2 등정을 계획한다.사고 이후 은둔한 사진작가로 사는 피터는 다큐멘터리 방송 팀으로 등반대에 합류하게 된 애니와 만나게 된다.껄끄러운 남매의 상봉도 잠시,애니는 등정을 만류하는 피터를 차갑게 외면한다.산악 전문가 몽고메리 윅은 정복 날짜를 정하고 무모한 일정을 잡은 엘리엇 일행을 비난하지만,계획대로 다음날 등반은 시작된다.오랜만에 나타난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K2는 평온한 모습으로 이들을 맞이하지만,곧 산의 분노가 시작된다.130분. ●도성4(iTV 오후 11시30분) ‘지존무상’,‘정전자’,‘도신’ 등을 연출한 왕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직접 출연까지 한 액션물.지존 자리를 놓고 암투를 벌이는 도박세계를 담고 있다.지존을 향한 사나이들의 집념과 근성있는 도전,폭력과 술수가 난무하는 도박세계를 리얼하게 묘사했다는 평.일인자가 되기 위해 친구를 배신한 악당과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면서까지 도전장을 내민 무명(장가휘)의 한판 대결이 중심 축.‘도성’ 주성치를 대신해 무명이 새로운 도신으로 나서 마음내키는대로 카지노를 휘젓는다.100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차이나 리포트 2004] (35)한국 ‘미스터피자’의 성공담

    [차이나 리포트 2004] (35)한국 ‘미스터피자’의 성공담

    ‘피자 맛의 황무지’인 중국에서 한국인의 손 맛으로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점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는 ‘미스터 피자’의 성공은 단연 돋보인다.중국에서도 80년대 후반부터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맥도널드와 피자헛 등 글로벌 패스트푸드점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여전히 피자를 즐기는 인구는 0.1%안팎.미스터 피자는 지난 2000년 중국시장에 뛰어들어 해마다 100%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해왔다.미스터 피자 허준(45) 사장에게 중국진출 5년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베이징 이효연특파원|“일단은 고객의 눈길을 끌고,이왕 들어온 손님은 확실한 서비스로 왕처럼 모신 다음,미스터 피자의 맛을 정통피자 맛으로 각인시킵니다.” 허 사장이 한결같이 지켜온 성공 노하우다.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원칙적인 소신 하나로 그는 올 상반기 베이징시내 6개 점포에서 매출액 50억원을 달성했다. ●매장 위치와 서비스로 고객 시선 끌어 피자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비싼 매체광고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장의 위치.허 사장은 피자를 잘 모르는 중국인들이 발품 팔아가며 피자를 먹으러 올리 없다고 생각하고 매장을 대로주변의 ‘로드숍(road shop)’ 위주로 개장했다.오피스텔과 대사관 밀집 지역에 자리잡은 1호점 젠궈먼(建國門)점,젊은 입맛을 겨냥해 대학가에 문을 연 우다오커우(五道口)2호점,그리고 지난 6월 문화광장 지하 2층에 개장한 6호 시단점까지 미스터피자 점포는 모두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다. 눈에 잘 띄면 찾아오는 손님도 많은 법.일단 매장 안으로 발길을 돌린 손님은 그 때부터 미스터 피자만의 서비스를 경험하게 된다. 지난 6월10일 오후 친구와 함께 왕푸징의 미스터피자 동방광장점을 찾은 비페이쭈안(25)은 점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에 매우 놀랐다.점원들의 낭랑한 인사소리에 끌려 매장 안으로 들어선 그는 직원 30여명이 일렬로 줄을 서서 허리를 90도로 구부려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담당 점원 쑨추이(孫翠·21)는 그를 자리에 안내한 뒤 무릎을 꿇듯 앉아 메뉴를 상세히 소개해주고 주문을 받는다.쑨추이는 뭘 시켜먹을지 꾸물대는 그에게 포테이토피자 레귤러를 추천했다.쑨추이는 손님이 식사 중에도 부족한 것은 없는지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살핀다. 이 같은 광경은 한국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고객 중심의 서비스 인식이 부족한 중국에선 매우 낯선 모습이다.비페이쭈안은 “종종 집근처의 피자 뷔페를 갔었는데 미스터 피자 맛이 더 나은 것 같다.”면서 “무엇보다 점원들이 친절해 기분좋다.”고 말했다. 허 사장은 “10∼30위안이면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중국에서 55위안짜리 레귤러 피자 한판은 비싼 값이기 때문에 손님이 대접받았다는 느낌이 들도록 서비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스터 피자의 서비스 교육은 매우 철저하다.6개 점포 직원 250여명은 매일 아침 8시30분∼9시30분,오후 3∼4시,저녁 10시30분∼50분까지 세차례 서비스 교육을 받는다.시중에 선보인 10여가지 피자의 맛과 특징을 숙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점원 모두가 손님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받아보는 시뮬레이션 교육을 통해 실전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늘 손님에게 자연스러운 웃음을 보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항상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허 사장의 생각이다. ●‘한국’ 아닌 ‘정통피자’브랜드로 인식되고파 “우리에게도 피자는 낯선 서양음식일 뿐이었습니다.13억 중국인 모두가 좋아하는 피자 맛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맛의 비교대상이 없는 중국인들에게 미스터 피자는 ‘한국의 피자’가 아닌 ‘정통 피자’라는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허 사장이 미스터 피자가 한국브랜드임을 굳이 강조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미스터 피자는 지난 90년 일본과 기술제휴로 한국에 첫 선을 보였다.초기 6년 동안은 일본에 로열티를 지불했지만 지금은 순수한 한국회사다.한국인의 노하우로 서양의 맛을 빚는 셈이다.미스터피자는 한국 시장에서 검증된 맛의 비법을 계량화해 중국에서도 똑같은 ‘수타 피자’의 맛을 재현하고 있다.피자 원재료도 지난해부터는 100% 현지에서 공급하고 있다.한국에서 건너온 것은 피자 맛의 비법과 경영철학,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한국인 3명뿐이다. “베이징에는 피자 매장이 겨우 28개입니다.한국의 매장이 약 600여개 달하는 것에 비하면 아직도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성공한 미스터피자의 경영철학과 손맛은 황무지 중국 시장 개척의 모범답안이다.허 사장은 풀어야 할 문제와 그 풀이법을 손에 쥐고 13억 중국인 입맛에 ‘정통 피자’의 맛을 각인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belle@seoul.co.kr ■ 우리銀 김범수 베이징지점장 |베이징 이효연특파원|지난 7월25일로 개점 1주년을 맞이한 우리은행 베이징지점.현지사무소도 개설하지 않고 바로 지점을 오픈하는 모험을 했지만 틈새시장 개척과 투철한 서비스 정신,현지직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인력관리로 올 상반기 49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취재팀은 지난 6월8일 오전 베이징 현대밀레니엄빌딩 7층 우리은행 베이징지점에서 김범수(48)지점장을 만났다.그는 우리은행 중국 진출 1년 성과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지금과 같은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올 한해 80만∼90만달러의 흑자를 내는 것은 무난하다는 전망이다. 첫 단계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고객으로 삼은 것이 주효했다.자동차부품업체,제조업,정보기술(IT)관련 업체 등 우리은행 고객의 90%가 한국기업이다. 김 지점장은 한국인 변호사,회계사와 함께 매 월 한차례 법인설립과 금융업무 등 초기진출 기업에 꼭 필요한 설명회를 열어 고객들에게 우리은행의 신뢰감을 쌓아간다. 김 지점장은 “중국계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 때마다 외환관리국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과 달리 우리은행은 본점과 네크워크를 구축,한국기업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출·송금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한다. 우리은행이 중국계 은행과 또 다른 차이점은 투철한 서비스 정신에 있다.전화는 친절하게 받고 고객의 질문에 “모른다.”라고 답하지 않는 것이 철칙.김 지점장의 이런 생각은 철저한 서비스 교육으로 이어진다. 우리은행 전 직원은 매주 목요일 아침 8∼9시 은행 업무에 대한 사례 연구를 한다.송금,수수료,이자율,대출 등 고객이 궁금해하는 사례를 중심으로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고객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지 함께 토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타부서의 업무를 이해하고 어떠한 고객의 질문에도 자신감있게 답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는다.서비스 교육 초기에는 중국계 은행에서 온 현지 경력직원들의 반발도 있었다.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한 그들은 고객이 자신의 월급을 준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김 지점장은 직원들에게 은행업무의 본질은 서비스라고 강조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은행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거듭 설득했다. 마지막으로 김 지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지직원과의 관계다.우리은행 베이징지점의 총직원은 16명.그 중 중국인은 12명이다.김 지점장은 그들의 습관과 룰을 존중하며 직원 개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쏟는다. 직원의 경·조사는 반드시 챙기고 그들의 가족을 만났을 때는 직원의 업무능력을 칭찬하는 등 체면을 세워준다.좌식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인을 생각해 회식 때에도 방에 앉아 식사하는 장소는 피한다. 김 지점장은 우리은행 베이징 지점의 발전과 더불어 중국 현지 직원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그는 지난해 3월 현지 직원 공채 때 1000여명의 중국 엘리트들이 몰려온 것을 기억한다.한 차례 서류전형을 치르고 두 차례 영어면접으로 최종 8명을 선발했다.김 지점장은 이들이 훌륭한 은행원으로 성장하는데 우리은행이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현지직원들이 다른 기업으로 옮겨가는 것을 만류하지 않습니다.다만 이들이 우리은행에서 사회인으로서의 기초를 닦았다는 자부심만 잊지 않는다면 이들은 우리은행에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김 지점장은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이 늘수록 우리은행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한국기업과 중국기업의 교류가 많아질수록 우리은행의 중국 고객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중국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belle@seoul.co.kr
  • [논술비타민] 역사는 살아있다

    동일한 사물과 사건일지라도 그에 대한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제시문 (가)와 (나)를 참조하여 (다)와 (라)의 차이점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 뒤 그것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를 오늘날의 문제와 연관지어 논술하시오.(1800자 내외)-연세대 2002대입 논술고사(인문계) 가개념적 지식의 한계나 상대성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왜냐하면 실재를 표현해 놓은 것이 실재 그 자체보다 훨씬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며,우리는 곧잘 이 둘을 혼동하여,이 개념과 상징을 실재 그 자체로 착각하곤 한다.이러한 미혹을 떨쳐버리게 하는 일이 바로 동양 신비사상의 주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그래서 불교의 선사들이 이르기를,손가락은 달을 가리키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니,달을 인식한 후에는 그 손가락 때문에 우리가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다.또한 도가의 현자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있으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 따위는 잊혀지게 마련이다.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해 필요하며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는 잊혀지고 만다.말은 생각을 전하기 위해 있으며 생각하는 바를 알고 나면 말 따위는 잊고 만다.” 서양에서는 의미론자인 알프레트 코지프스키가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어구로 똑같은 견해를 정확하게 표현했다.(…중략…) 동양의 신비사상가들은 궁극적인 실재란 추론의 대상이나 형상화할 수 있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그것은 우리의 언어나 개념의 근원이 되는 감각이나 지성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 적절하게 기술될 수 없다는 것이다.(…중략…)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람의 그림자 실제 길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묻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한 물체의 ‘진정한’ 길이를 묻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그림자란 3차원 공간에 있는 점들이 2차원 평면 위에 투영된 것이며,그래서 그 길이는 투영의 각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마찬가지로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는 4차원 시공 속에 있는 점들이 3차원 공간에 투영된 것과 같으며,그것의 길이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카프라,‘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나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들의 이름만 나온다.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그때마다 누가 그 도시를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리마에서 건축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에 미쟁이들은 어디로 갔던가? 그 많은 보고(報告)들.그 많은 의문들.(브레히트,‘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다태조(太祖) 무황제는 패국 초군 사람으로 성(姓)은 조(曹),휘(諱)는 조(操),자(字)는 맹덕(孟德)이었다.태조는 어려서부터 임기응변하는 기지가 있었으나,멋대로 놀기를 좋아해,덕행과 학업을 닦는 일을 등한히 하였다.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오직 양(梁)나라 사람 교현(橋玄)과 남양의 하옹만이 달랐다.교현이 태조를 일러 말하기를 “천하는 장차 혼란에 빠질 것인데,세상을 구할 만한 재목이 아니면 이를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천하를 안정시키는 일은 아마도 그대에게 달려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나이 스물에 효렴에 천거되어 낭관이 되었고,승진하여 제남국의 상(相)이 되었다.제남국에는 10여개의 현이 있었는데,장리들 가운데 대부분이 귀족과 척신에게 아부하고 뇌물을 받는 일이 횡행하였다.이에 태조가 상주(上奏)하여 그 중 8명을 파직시켰고 음란한 제사를 엄금하니 간악한 자들이 모두 숨어버려 군내의 질서가 안정되었다.얼마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얼마되지 않아 기주자사 왕분,남양 사람 허유,패국 사람 주정 등이 호걸들과 연합하여 영제를 폐위시키고 합비후를 옹립할 계획을 세우고 태조에게 알렸지만,태조는 그런 제의를 거절하였다.왕분 등의 계획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동탁은 태조를 효기교위로 삼아 그와 함께 조정의 모든 일들을 의논하고자 하였다.그러나 태조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사잇길을 따라 동쪽(고향 초군)으로 돌아가려고 했다.호뢰관을 빠져나와 중모현을 지나갈 때 정장의 의심을 받아 현읍까지 압송되어 갔다.마을사람 중에 어떤 이가 태조를 알아보자 그에게 부탁하여 풀려나게 되었다.(진수,‘삼국지’ 위지(魏志)무제기(武帝紀)) 라그의 관직은 기도위로,패국 초군 사람인 조조인데 자는 맹덕이다.조조는 성을 나와서 초군으로 달아났다.그날 밤 진궁은 노자를 마련하여 조조와 함께 변장을 하고 칼 한자루씩을 가지고 슬그머니 관청을 벗어나 고향을 향해 말을 달렸다.3일 동안을 달려 성고지방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저 마을에 여백사라는 분이 계시는데,그분은 우리 아버님과 결의형제한 분이오.집안 소식도 들을 겸 오늘 밤 그곳에서 묵어가도록 합시다.” (…중략…) 여백사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후에 다시 나와 진궁에게 이렇게 말했다.“집 안에 좋은 술이 없어 서촌으로 가서 술을 좀 사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나귀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중략…) 두 사람은 살며시 뒤꼍으로 다가갔다.그곳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묶어서 죽여버리는 것이 어떨까?” 조조가 진궁에게 속삭이듯 말했다.“내 생각이 맞았소.먼저 선수를 써서 처리해 버립시다.” 말을 마치자 조조는 진궁과 더불어 칼을 빼들고 들어가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이니 여덟 사람이 죽었다.조조가 나머지 사람들을 찾아 부엌으로 가보니,그곳에는 잡으려고 묶어 놓은 돼지 한 마리가 있었다.진궁의 마음은 아프고 괴로웠다.두 사람은 급히 말을 타고 여백사의 집을 나와 달아났다.한 두 마장쯤 달려가다가 그들은 나귀를 타고 돌아오는 여백사 노인과 만났다.백사의 나귀 안장에는 술 두 병과 갖가지 안주가 실려 있었다.여백사는 떠나는 그들을 한사코 만류했다.조조는 듣지 않고 길을 서둘렀다.몇 걸음 가지 않아서 조조는 갑자기 칼을 빼들고 도로 돌아가서 여백사에게 “저기에 오는 저 사람이 누구입니까?”하고 소리를 쳤다.여백사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조조의 칼이 여백사의 목을 내리쳤다. 진궁이 크게 노하여 조조를 꾸짖었다.“조공,이게 무슨 짓이오!”“여백사가 집에 돌아가서 식구가 다 죽은 것을 보면 우리를 그냥 놔두겠소? 사람들을 풀어 우리를 뒤쫓을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꼼짝없이 큰 화를 당할 것이오.”“알고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의에서 크게 벗어나오.”“차라리 내 편에서 천하 사람들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저버리게 할 수는 없소.”조조는 차갑게 대답했다.진궁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나관중,‘삼국지연의’) 1.사오정,저팔계와 토론하다 “요전에 과거사 청산 관련 TV토론 봤니? 되게 짜증나더라.특히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를 성매매 행위 비슷하게 인식하는 모 교수 발언은 너무 심하지 않냐?” 사오정은 저팔계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글쎄,나도 우연히 토론회를 보았는데,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그날 그 교수의 얘기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 시기에 한국인들 중에도 잘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 자신도 반성하자는 의미로 얘기한 것인데 방송토론회 속성상 잘못 전달된 부분이 있다고 봐.” 저팔계의 말에 사오정은 흥분했다.“너 잘 안봤구나.상대 토론자가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종의 공창 형태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는 주장은 일본 우익들의 궤변’이라고 반박하자,그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한게 명백하다고 말했는데 누가 주장했나.’라고 하기도 했지.사회자가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 아닌가.’라고 했을 때도 ‘정신대 문제가 한국전쟁과 해방 이후 한국에 존재한 미군 위안부와 전혀 관계 없다고 하는 인식이라면 대단히 유감’이라고 했어.정신대를 미국 위안부와 같게 취급한다는 소리 아냐?” 저팔계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래.그런 표현만 놓고 보면 오해의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그렇다고 그 교수의 발언이 정신대와 미국 위안부는 같은 것이라고 얘기한 것도 아니잖아.정신대 시절의 비양심적인 인간들과 미국 위안부 시절의 비양심적 인간들 모두 반성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는 동일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 아닐까? 실제 그 이후의 발언을 보면 일본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했고,당시에 잘못한 한국인의 문제도 따져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에 내 판단이 맞을 거야.” 저팔계의 말에 사오정은 “말 뜻을 파악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똑같은 표현을 두고도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니….”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 때 삼장 선생이 들어왔다.“무슨 얘기를 그렇게 진지하게들 하고 있느냐?” 둘은 자신들이 나눈 얘기를 들려주었다.“허허! 어려운 문제구나.언어라는 것이 정확한 듯하면서도 사실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마침 오늘 문제가 너희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을 듯하구나.” 2.삼장 선생,문제를 풀다 “자! 문제를 풀어볼까? 먼저 제시문 (가)와 (나)를 참조하라고 했으니 두 글의 중심 내용을 파악해야겠지? 제시문 (가)는 언어의 불충분성,또는 그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나)는 왕이나 영웅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역사관이나 역사 기술방식의 잘못을 우회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다.이런 점들은 문제의 서두에서 제시하고 있는 ‘동일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표현이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다)와 (라)를 보면,똑같은 사건을 두고 서술자의 관점이나 인식의 차이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다)의 경우는 조조를 영웅으로 기술하고 있다.조조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임기응변하는 기지가 있었으나 멋대로 놀기를 좋아해 덕행과 학업을 닦는 일을 등한히 하였다.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나 몇 사람은 영웅을 알아 보았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잘못된 부분보다는 그 업적 중심의 기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라)에서는 조조가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또한 좋지 않은 품성이 나타난 사건을 자세히 서술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따라서 본론1에서는 앞서 예시한 것들처럼 똑같은 사건이 어떻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리 표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해 서술하면 된다. 그 이후에는 ‘그것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를 오늘날의 문제와 연관지어 논술하라.’고 하였다.따라서 본론 후반부에서는 현대에서 역사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가 달라진 사례를 들면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밝혀야 한단다.역사에 대한 평가가 정반대로 달라진 경우는 많다.동학혁명은 과거에 ‘폭동’으로 해석됐지만 지금은 ‘혁명’으로 재평가되고 있고,광주민주화운동 역시 과거에는 ‘광주사태’로 불렸으나 현재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게 된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런 것과 관련해 친일청산,국가보안법 폐지,의문사 진상규명,이라크 파병,행정수도 등 많은 문제들이 현존하고 있다.결국,이러한 역사 해석의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논리적으로 서술해 나가는 일이 이번 논술의 관건이라 할 것이다.제시문의 내용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언어의 한계와 해석 관점의 차이로 인해 실재가 왜곡되거나 잘못된 인식이 싹틀 수 있으므로 이런 점에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3.삼장선생,덧붙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역사에 관해 좀더 얘기해보자.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게 마련이다.사회의 변화,문화의 변화 등 이 모든 변화가 곧 역사다.어느 역사학자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한 것처럼 역사는 과거의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현재 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나아가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실로서가 아니라,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고 내일의 우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바탕으로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며,역사의 의미를 찾아 삶을 창조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역사를 공부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해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역사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가능한가.’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역사적 사고를 하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갈 수 있는 단초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점 때문에 논술고사에서 역사 관련 논제를 직접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이 제시문으로는 자주 나오므로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역사를 항상 오늘의 우리와 관련지어 생각하려는 자세와 올바로 역사를 보고자 하는 관점의 문제를 염두에 두며 공부하려무나.” 4.사오정 깨닫다 “예! 잘 알겠습니다.” 둘은 힘차게 대답한다.“팔계야! 우리 좀더 역사공부를 한 뒤 다시 한번 아까 그 문제를 토론해 보자.”“응.그때는 선생님 모셔놓고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얘기하는지 시합하자.선생님 심판이 돼주실 거죠?” “물론이지.그런데 심판 봐주는 값은 얼마나 줄거니?” 삼장선생의 말에 둘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논술강의가 이어집니다. 논술과 심층면접 지상강의 내용에 대해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http://cafe.daum.net/seoulinseoul로 문의하면 선생님들의 조언과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野의원, 60대경비 취중폭행

    국회의원이 골프를 친 뒤 클럽하우스에서 술을 마시다 60대 경비원을 폭행,경비원이 사흘째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있다. 지난 12일 밤 9시40분쯤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아시아나CC 클럽하우스내 VIP룸에서 한나라당 김모(61) 의원이 지인 등 7∼8명과 함께 골프를 마치고 술을 마셨다.이때 골프장 용역경비원 강모(60)씨가 자리가 언제 끝날 지 알아보기 위해 열려진 방안을 들여다 보다 눈이 마주쳐 김 의원으로부터 욕설을 들었다.김 의원이 소리치자 황급히 자리를 피했지만 5∼6분뒤 룸안의 손님이 모두 나간 줄 알고 다시 룸을 찾은 강씨는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던 김 의원과 맞닥뜨렸다. 김 의원은 강씨를 보자 욕설과 함께 비닐포장된 건어물로 강씨의 얼굴을 때렸고 직원들의 만류로 차를 타러 나갔던 김 의원은 다시 VIP룸쪽으로 올라와 방문을 잠그려는 강씨 얼굴을 때리고 발로 배를 걷어찼다는 것. 강씨는 15일 “술에 취해 폭행한 것도 화나지만 보좌관을 시켜 전화로 사과의사만 밝힌 것이 말이 되느냐.”며 “폭행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용인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儒林(182)-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儒林(182)-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자로가 스승 공자를 만류한 사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공자는 공산불뉴의 초청을 받고 말하였다. ‘생각해 보니 옛날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소읍인 풍(豊)과 호(鎬)에서 일어나 왕업을 이룩하여 천자가 되지 않았던가.지금 비 땅도 작은 것이긴 하지만 나의 도를 실천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공자가 비로 떠나려 하자 제자 자로가 언짢게 여기면서 공자를 만류하였다. ‘그만 두십시오.스승답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나를 부르는 사람이 어찌 공연히 부르겠느냐.나를 통하여 새로운 동주(東周)를 이룩케 하려는 뜻인 것 같다.’” 이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자는 아무도 자신을 등용해 주는 사람이 없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공산불뉴로부터 초청을 받자 그곳이 비록 작은 땅이지만 잘만 하면 문왕과 무왕처럼 왕업을 이룩할 수 있다고 자위하면서 소읍인 비로 가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공자를 만류한 사람은 거침없이 바른말을 하던 제자 자로.그는 공자가 듣기에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그만 두십시오,스승님답지 않습니다.’라고까지 핀잔하면서 이를 말렸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자보다 자로의 태도가 더 옳았던 것으로 곧 판명된다. 원래 공자를 초청한 공산불뉴는 반역자였다. 사기에 의하면 정공 8년(기원전 502년) 공자 나이 50세 때에 계씨의 가신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던 공산불뉴가 계씨와 사이가 벌어져 양호를 충동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그리하여 양호와 공산불뉴는 삼환(三桓)씨의 적자를 폐지하고 비교적 양호와 사이가 좋은 서자들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하려고 마침내 계환자를 잡아 가두었던 것이다.그러나 계환자는 절대로 복수하지 않겠다는 맹약을 하는 속임수를 써서 감옥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는데,손아귀를 벗어나자 계환자는 삼환씨의 군대를 동원하여 양호를 반격하니 양호는 결국 패하여 제나라로 도망쳤던 것이다. 원래 공자는 노나라의 임금이었던 소공과 정공들을 무시하고 세력을 떨치던 삼환씨에 대해서도 깊은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삼환씨들은 환공(桓公)의 자손들인 맹손(孟孫),숙손(叔孫),계손(季孫)씨들을 말함인데,이들은 자신들의 권세만을 믿고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천하의 권력을 자신들 맘대로 주무르던 대부들이었다.그러나 이들의 가신이었던 양호와 공산불뉴가 난을 일으켜 삼환씨들을 가두고 권력을 독점하자 노나라의 정치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양호는 일찍이 공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돼지를 선물로 보냈던 적신(賊臣).‘나라를 잘 다스릴 보배를 지니고 있으면서 나라를 혼란한 채 내버려 둔다면 그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유혹하였던 반역자.이때 공자는 양호의 노골적인 유혹을 ‘좋습니다.장차 나도 벼슬을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렸던 것이다. 그러나 공산불뉴라고 해서 양호와 다른 사람은 아닌 것이다.오히려 공산불뉴는 양호를 충동질해서 반란을 일으킨 모사꾼이 아닌가.아무리 자기를 등용해 주지 않는다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공자라 할지라도 그런 공산불뉴가 초청한다고 해서 어떻게 성큼 가려 했던 것일까.결국 공자가 떠나려 하자 ‘그만 두십시오.스승님답지 않습니다.’라고 말렸던 자로의 태도가 더 현명했던 것이다. 자로의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방자하게 권력을 휘두르던 이들의 모습에 실망했는지 공자는 끝내 공산불뉴의 초청을 거절한다.사기는 이를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자는 끝내 비로 가지 않았다.”
  • 儒林(181)-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儒林(181)-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기원전 501년,노나라의 정공 9년.공자는 마침내 중도재(中都宰)란 벼슬로 그토록 오랫동안 꿈꿔왔던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이때 공자의 나이 51세였다. 일찍이 젊은 시절이었던 19세 때 위리라는 벼슬에 있었고,2년 후인 21세 때는 승전리가 되었던 것이 공자가 지금까지 했던 유일한 관직생활이었다.하나는 창고의 물건을 관리하는 낮은 벼슬이었고,나머지 하나도 나라의 가축을 맡아 기르는 하찮은 벼슬이었지만 ‘공자세가’에서는 하나같이 공자가 위리를 맡자 ‘창고의 물품장부가 깨끗이 정리’되었으며,공자가 승전리를 맡자 ‘가축이 크게 번식하고 잘 자랐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공자는 다른 벼슬은 하지 못하였다.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일년 남짓 제나라로 망명하기도 했지만 재상 안영의 교묘한 제지로 아무런 소득 없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공자는 그러나 마침내 51세가 되어서야 ‘중도재’란 벼슬로 등용된 것이다. 중도재란 문자 그대로 노나라의 수도인 곡부가 아닌 제2의 도시였던 중도를 다스리는 직책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시장이나 도지사에 해당하는 벼슬이었던 것이다.공자가 꿈꿔왔던 한 국가의 정치를 좌우할 수 있는 대부나 상경의 위치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벼슬할 수 있는 계급 중 가장 낮은 신분인 사에 속했던 공자로서는 만족할 수 있는 벼슬이었던 것이다. 사기에 나와 있던 대로 공자가 주나라로 가서 노자를 만나고 온 뒤부터 제자들이 점차로 많아져 공자는 이미 사상가로서 전국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자신이 15세 때 배움에 뜻을 두었고,30세 되어서는 익힌 바를 굳게 지켜 흔들림이 없었고(而立),40세 이르러서는 일처리와 도리를 이해함에 모르는 바가 없었고(不惑),50세 이르러서는 하늘의 뜻을 깨달아 하늘과 사람을 원망치 않게 되었으며(知天命),60세 때는 다른 사람의 한마디만 들어도 곧 시비의 판단은 물론 인품까지 알게 되었고(耳順),70세에 달하니 말과 행동은 물론 사고함에 전혀 과오가 없었다(從心所欲)고 고백하였는데,이렇듯 공자가 중도재에 등용된 것은 자신의 말처럼 ‘하늘의 뜻을 깨달았던 지천명’의 황금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공자는 하늘의 뜻을 깨달았던 51세 때에 중도재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벼슬에 기꺼이 뛰어들었던가.인류가 낳은 대사상가이자 성인이었던 공자가 어째서 그토록 현실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가.노자로부터 직접 ‘예를 빙자한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병과 헛된 집념’이라는 노골적인 비난을 받으면서 세속적인 욕망의 화신으로까지 비유되었던 공자.그것을 공자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공자는 자신의 제자였던 자로(子路)로부터도 못마땅한 핀잔을 받게 된다.자로는 공자보다 9세가 연하인 제자로 이름은 중유(仲由)였으며,성격이 과감하고 거칠었으나 한편 솔직하고 곧아서 스승에 대해서도 바른말을 잘 했으므로 공자는 자로에 대해 늘 걱정을 하면서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로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공자의 태도를 노골적으로 만류하는 장면이 사기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산불뉴(公山不 )가 비(費) 땅을 근거로 계씨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사람을 보내어 공자를 초청한 일이 있었다.공자는 오랫동안 학문을 닦아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으나 실제로 활용해 보지도 못하였고 아무도 자기를 등용해 주지도 않았다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 [‘국보법 개폐’ 세확산 경쟁] 원희룡·김영선 ‘튀는 설전’

    한나라당이 잠정 마련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놓고 김영선·원희룡 최고위원이 설전을 벌였다. 13일 오전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중앙상임위에서 소장파인 두 최고위원은 당내 이견을 각각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놨다.두 사람 모두 율사 출신,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운동권 활동 등 여러 공통분모를 가진 터여서 눈길을 끌었다. 원 최고위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그는 열린우리당의 대체입법론·형법보완론의 허점을 지적하면서도 한나라당 개정안에 대해서도 ‘아픈 소리’를 곁들였다. 특히 “지난 주말 당의 개정안이 보도됐는데 마지못해 ‘찔끔 개정’하는 모습으로는 국민에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불고지죄 조항은 삭제해야 하고 찬양·고무는 전향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 최고위원이 또다시 ‘튀는 발언’으로 당론과는 방향을 달리하자 순간 회의 분위기는 굳어졌다.박근혜 대표가 “당론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보도됐다.사견 형태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국민이 헷갈릴 것”이라고 만류했지만,원 최고위원은 “정치적으로 두 개의 정부,평화공존 원칙이 채택돼 있는 만큼 ‘정부 참칭’도 고칠 수 있다.”며 ‘튀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자 김 최고위원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 질의서를 내자고 제안하면서 원 최고위원의 발언을 차단했다. 김 최고위원은 “북한이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상황과 연계해 대한민국의 행동과 의사결정 체제를 수용할 것인가를 이야기해야지 인권문제나 자유문제를 무한정 말할 수 없다.”며 “헌법상의 권리는 균형을 갖춘 것인데 하나의 권리를 무한정 얘기한다면 다른 권리가 부정되는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36)

    儒林 173에는 布衣(베 포/옷 의)가 나온다.布衣는 ‘베로 지은 옷’,‘벼슬 없는 선비’를 이른다.포의는 庶民(서민)의 옷으로,서민들은 노인이 되기 전 비단 옷을 입을 수 없다는 데서 온 말이라고 한다. 布는 본래 ‘父’(부/보)와 ‘巾’(수건 건)를 합하여 ‘베’를 뜻하는 글자이며,경우에 따라 ‘널리 알리다.’‘베풀다.’의 뜻으로도 쓰인다.‘布告’(포고:고시하여 널리 일반에게 알림),‘布施’(보시:남에게 물건을 베품),‘布衣寒士’(포의한사: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가난한 선비)에 쓰인다. 衣는 웃옷,즉 ‘저고리’를 본뜬 글자이다.허신은 ‘설문해자’에서 ‘옷을 衣라고 함은 사람이 옷에 의지하기 때문이며,웃옷은 衣(의)라 하고,아래옷은 裳(치마 상)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衣자가 들어간 말에는 ‘衣服’(의복),‘衣食住’(의식주),‘衣裳之治’(의상지치:법을 정할 필요없이 인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을 교화함) 등이 있다. 史記(사기) ‘項羽本紀(항우본기)’에는 이런 故事(고사)가 전한다.秦(진)나라의 도읍 咸陽(함양)에 입성한 項羽(항우)는 3세 황제 誅殺(주살)과 阿房宮(아방궁) 全燒(전소),始皇帝(시황제)의 무덤 해체,막대한 金銀寶貨(금은보화) 掠取(약취),부녀자 유린 등 반인륜적 행위를 일삼았다.側近(측근)인 范增(범증)을 비롯한 신하들이 부당성을 極諫(극간)하였으나 항우는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랴.’라고 하면서 默殺(묵살)하였다. 항우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향 彭城(팽성)으로 遷都(천도)하여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功德(공덕)을 알리는 데에는 성공한다.그러나 關中(관중)지역을 차지한 劉邦(유방)에게 대패하여 천하를 잃고 말았다.여기서 유래한 錦衣夜行(비단 금/옷 의/밤 야/다닐 행)은 ‘아무 보람 없는 행동을 자랑스레 함’을 뜻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布衣를 자처한 사람 가운데 중국 춘추시대의 介之推(개지추)가 있다.그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19년간 망명생활을 한 公子(공자) 重耳(중이:文公)를 줄곧 수행하였다.그러나 그들의 망명생활에 終止符(종지부)를 찍는 朗報(낭보)가 왔다.主君(주군) 중이가 진나라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이 소식과 함께 주군을 따르던 무리들은 꿈에 부풀어 황금빛 미래를 그릴 뿐,과거의 쓰라린 기억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배에 오르는 순간 그들은 누더기와 쪽박을 모두 강물 속으로 던졌다.깜짝 놀란 개지추는 그들을 挽留(만류)하며,“우리의 同苦同樂(동고동락)이 이날을 위해서였단 말이오? 어려웠던 과거를 쉽게 잊는 사람은 행복을 논할 자격이 없소.”라고 개탄했다.개지추는 그 길로 벼슬의 미련을 접고 고향 길을 찾았다. 개지추의 예견대로 論功行賞(논공행상)에 눈먼 측근들은 나라와 백성의 安危(안위)보다 일신의 영달에 혈안이었다.민심은 離反(이반)되고 국가 財政(재정)은 枯渴(고갈)되어 갔다.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진문공은 이 難局(난국)을 타개할 인물은 개지추 뿐이라는 判斷(판단)에서 개지추를 찾았지만 그는 끝까지 綿山(면산)에서 布衣之士(포의지사)로 생을 마감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특허청 인사 후폭풍 거셀듯

    “공직생활 29년,물러날 때가 됐지요.” 정태신(52·행시 16회) 특허청 차장이 최근 사의를 표했다. 행시 후배인 김종갑(53·행시 17회) 청장 부임 직후인 지난 6일 사표를 낸 것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는 심경을 밝힌 뒤부터는 잠잠해졌다.후배 기수가 기관장으로 부임하자 선배가 스스로 퇴진한 것은 대전청사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정 차장은 지난 2년 6개월간 안살림을 챙겨오면서 두 차례나 사의를 표했으나 하동만 전 청장과 간부들의 만류로 무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한 간부는 “정 차장은 평소 떠밀려 나가느니 스스로 명예롭게 떠날 것이라고 말해왔다.”며 “깔끔한 성격이 그대로 나타났다.”고 말했다.정 차장은 퇴직 후 서예와 학업에 정진할 것으로 알려졌다.2002년 제12회 공무원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정 차장의 사퇴로 특허청 고참급 국장과 김 청장보다 고시에 먼저 합격한 2명의 보직국장 등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내부적으로는 정 차장의 퇴진이 인적쇄신의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더욱이 개청 이후 내부 승진을 통한 첫 차장 배출에 대한 기대감도 감돈다.10일 있을 1급 승진을 위한 다면평가(대상 15명) 결과가 주목된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 전북 부안과 전원시인 신석정

    [문학이 머문 풍경] 전북 부안과 전원시인 신석정

    “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중략)” 한국 최초의 전원시인 신석정(辛夕汀·1907∼74). 시인은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잃어버린 조국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시를 통해 간절히 찾아가고 싶은 이상향으로 노래했다.시작생활 50여년 동안 우리의 산과 자연 그 자체를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켜 여느 시인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인이 태어났던 전북 부안군은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 불릴 만큼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성하고 경관이 빼어난 지역이다.지평선까지 펼쳐지는 황금벌판,낙락장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등성이,일몰이 장관인 격포와 해창 앞바다…. 그가 목가시인,자연시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자양분은 곧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부안읍 선은리 ‘신석정 고택 청구원(靑丘園)’은 시인이 외로움 속에 첫시집 ‘촛불’과 두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펴낸 산실이다.1934년부터 전주로 이사했던 54년까지 20년 동안 시작활동을 했던 이곳은 당시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석정은 처녀시집 ‘촛불’을 펴내면서 “청구원 주변의 산과 구릉,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날갈 때 얻은 꿈 조각들”이라고 전했다.청구원은 앞은 논과 밭들이 이어져 시원하게 툭 터져 있고 멀리 상소산이 보이는 정남향의 아담한 초가삼간이었다.마당이 넓어 시인이 직접 심고 가꾼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다. 청구원에서 출생해 중학교 시절까지 이곳에서 자란 시인의 셋째아들 광연(68·전 동아일보기자)씨는 “아버님은 틈이 날 때마다 마을 뒷산에 올라 커다란 버드나무 밑에서 시상에 잠기셨다.”고 회고했다.또 집앞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상소산에서 멀리 서해로 이어지는 평야지대와 바다를 응시하며 시상을 떠올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최근 찾은 청구원은 양옥집과 창고에 가려져 초라한 모습이었고,주변 경관도 완전히 변했다.그림처럼 아름답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은 4차선 도로건설과 주택개량사업으로 도시화되고 있다.지난 91년 시비가 세워진 변산면 해창 해변공원 앞바다는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새만금간척사업이 한창이다. 1907년 부안읍 동중리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집안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8살때 남의 빚보증을 잘못 서 가세가 크게 기울면서 인근 선은동으로 이사했다. 선은동은 석정이 꿈많은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다.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우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하고,농사를 지으며 독학으로 문학의 길을 닦아갔다.18세이던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고향의 자연에서 얻은 시편들을 발표했다. 1930년 서울로 올라가 중앙불교전문강원(동국대 전신)에서 1년간 불전을 공부하면서 문예작품 회람지 원선(圓線)을 만들었다.1931년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시문학 동인이 된 시인은 당시 시단의 거두였던 정지용,이광수,한용운,주요한,김기림 등의 문인을 만나게 된다. 그해 어머니 상을 당한 석정은 김기림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향,물려받은 가난과 싸우며 문학의 길을 계속 걸었다.낙향 3년 만에 조촐한 집을 장만해 청구원이라 이름 붙였다. ●시인은 키가 크고 술을 즐긴 멋쟁이 해방 이후 1947년에는 일제 말기 숨막혔던 상황속에서 악몽 같은 세월을 견디며 쓴 32편을 묶어 ‘슬픈 목가’를 펴냈다.이 무렵 석정은 김제 죽산중,부안중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72년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내 무덤에 태산목을 심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자연에 귀의했다. 허소라(68·군산대 명예교수)씨는 “고인은 키가 훤칠하고 이국적인 얼굴에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술을 즐겼던 멋쟁이였다.”면서 “목가시인이기 전에 항상 역사의 현장에 입회인이 되고자 했던 올곧은 선비였다.”고 말했다. 석정 작고 10주기인 1984년 후학들이 ‘석정문학회’를 결성해 동인지를 발행하고 있다.올해는 시인 작고 30주기를 맞아 추모문학제가 열렸다.지난 3일부터 오늘까지 시인의 친필 시화와 서예,유품,유영이 전시되고 시세계를 재조명하는 문학특강과 세미나가 개최됐다.청구원과 해창시비를 순회하는 문학기행 행사도 가졌다.30주기 추모 기념우표도 발행됐다.같은 시기에 부안문화원에서는 ‘석정 변산시인학교’와 기념백일장,석정시 낭송회,추모 문학강연이 열려 그를 추모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정부·국회 “잘못된 관행 바로잡자”

    오랫동안 지속돼온 정부와 국회간 ‘그릇된’ 관행이 17대 국회에서 바로잡힐지 관심이다.국회에서 ‘공무원들의 대기 근절’을 적극 유도하는 데다 정부 내에서도 개선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일반 공무원들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간부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간부 공무원들은 “국회의원의 질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무원직장협의회도 ‘합법적인 자료요구’ 등 제도개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젠 바꾸자” 지난 25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회의실에 대기 중이던 공무원 20여명이 김무성 재경위원장의 ‘업무복귀’ 요청으로 회의실을 빠져 나왔다는 언론보도 후 공직 내에서 ‘불필요한 국회대기’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공무원의 국회대기는 의원들의 자료요구나 기관장의 답변에 대비해 회의장 부근에 무작정 기다리는 것.국회뿐만 아니라 지방의회에서도 이런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16대 국회에서 한때 없애려 했지만,17대 국회에서 다시 도마에 올랐다.재경위뿐만 아니라 과학기술부의 결산보고가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와 감사원을 대상으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위원장들이 같은 취지의 지적을 했다. 국회 대기는 국회의원들이 시키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국회에선 적극 만류하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공식적으로 국·실장만 참석토록 하고 있지만,윗사람이 답변을 잘하도록 과장·계장·실무자까지 총 출동한다. 행자부는 국회대기를 일버리기 과제로 선정해 놓고 있고,정부 차원에선 이해찬 국무총리 지시로 ‘국회 요구 자료 온라인 제출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대기 근절 움직임에 대해 재경부의 한 국장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국장과 주무과장 모두 국회에서 대기해 업무가 마비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 최소 인원만 가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른 국장은 “직원들이 대기하지 않으려면 의원들이 구체적인 수치 등 세세한 질문을 자제해야 하는데 얼마나 실천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행자부의 한 국장도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의원들의 질의 태도가 바뀌어야 할 것”이라며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윽박지르듯 하는 태도가 있는 한 대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서기관은 “국회에 대기하는 공무원의 80∼90%가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오는데,이젠 장·차관 등 간부들이 적극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협의회,제도개선 ‘총대’ 공직내에서 관행개선에 목소리를 내는 쪽은 직장협의회다.간부공무원은 국회의원과 직접 대면하기 때문에 입바른 소리를 꺼리지만,직협은 상대적으로 꺼릴 게 없는 데다 ‘명분’도 있기 때문이다. 행자부·노동부·재경부·정통부·통일부 등 5개 직협 대표들은 최근 성명을 내고 ‘무분별한 국정감사 자료요구’를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회법에 따라 자료를 요구할 때는 본회의·위원회 또는 소위원회의 의결로 해야 하는데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며 “7월부터 행자부에 요구한 1000여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회법을 지킨 것은 단 1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일부 의원들이 국회의원 개개인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거나,타 상임위에서도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법개정을 추진 중”이라며 “이는 국회운영을 심각히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8년 임기 마치고 퇴임하는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

    8년 임기 마치고 퇴임하는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25일 퇴임하는 서울시 교육청 유인종 교육감이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그 간의 소회와 교육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유 교육감은 “정권이 3차례,교육부 장관이 11차례 바뀌는 동안 정부의 교육정책이 일관성 없이 추진돼 소신을 갖고 일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김영삼 정권 말기,중학교 3학년의 고입연합고사 폐지를 추진할 당시 정부가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자신을 수차례 만류했었다고 말했다. 유 교육감은 교육방법의 혁신을 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특기적성교육과 영어교육의 내실을 다지고 통일교육의 틀을 잡은 것을 재임기간 중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그는 “국·영·수 중심의 학력평가를 지양하고 학생들에게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며 “각종 영어캠프를 열어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교육을 추진한 것은 큰 성과”라고 덧붙였다. 또한 “초·중·고 교원과 학생들의 금강산 연수도 6년 동안 진행해 체험중심의 통일교육 틀을 마련했지만 북한의 학교와 교류가 성사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학교 교장·교사와 학부모의 의식개선 필요성도 강조했다.교장은 리더십,교사는 전문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며 학부모는 오로지 입시교육만이 최고라는 편협한 생각을 버릴 것을 당부했다. 교사평가는 꼭 이루져야 하지만 평가 전·후로는 반드시 제도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한다는 생각도 밝혔다.그는 “교사가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해주고 평가 후에는 교사의 부족한 부분이 보충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불거진 현행 국사교육 강화논란과 관련, “교과서 중심 교육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덕·윤리는 교과서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익혀야하듯 역사교육은 사회교과목을 중심으로 모든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화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학교 교원임용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의 갈등과 빚대어 설명했다.“여·야가 정책적으로 조금씩 양보하면 사사건건 다툴 일이 없다.”면서 “사립학교 교원 임명권을 이사회에 주되 형식적이던 교장 제청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예루살렘 평화행진 시작

    |예루살렘 연합|2300여명의 국내외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하는 예루살렘 평화행사 ‘예루살렘 예수행진 2004’가 안전을 우려한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7일 저녁(현지시간) 평화콘서트로 시작됐다. 행사는 국내 개신교 단체가 외교부에 해외봉사활동을 목적으로 등록한 ‘아시아문화협력개발기구’ 주관이며 예루살렘∼베들레헴 구간 평화행진을 중심으로 10일까지 열린다. 아시아문화협력개발기구 최한우 사무총장은 “한국 청년과 청소년 등 500명이 열흘 전부터 팔레스타인 관할인 베들레헴에 들어가 묵고 있다.”고 전했다.
  • [클릭 아테네 2004 D-9] 10대 바람분다

    ‘아테네에도 10대 바람이 분다.’아테네올림픽에선 4년전 시드니대회에 이어 또 다시 10대 신동들의 돌풍이 거셀 전망이다. 시드니 때는 ‘인간 어뢰’ 이언 소프(21·호주)가 3관왕으로 바람몰이를 했고,단 한번의 실수로 동메달에 그쳤지만 ‘리듬체조 퀸’ 알리나 카바예바(22·러시아)가 빼어난 미모와 우아한 율동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는 ‘축구 신동’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19·포르투갈)가 앞장선다.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을 통해 이미 실력을 발휘했다.쟁쟁한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조국을 결승으로 이끈 것.지난해 10대 선수 사상 최고 이적료(1750만유로·246억원)를 받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그는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감독이 올림픽 출전을 극구 만류했으나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라며 10대 특유의 당돌함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수영 신동’ 마이클 펠프스(19·미국)도 에게해에서 금빛 물살을 가른다.그의 목표는 72년 뮌헨올림픽에서 마크 스피츠(미국)가 달성한 이후 30년이 넘도록 신화로만 남아왔던 7관왕을 재현하는 것이다.시드니대회 때 만 15세의 나이로 출전했으나 메달을 따내지 못한 그는 이번엔 소프와의 재대결에서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영국의 소년 복서 아미르 칸(17)의 황금 펀치도 빼놓을 수 없다.영국 복싱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아테네행 티켓을 따낸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만 18세의 나이에 금메달을 따냈던 최연소 기록을 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그가 출전하는 60㎏이하 급에는 디펜딩 챔피언 마리우 킨델란(32·쿠바)이 버티고 있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당찬 자신감을 보였다. 만 19세 9개월의 나이로 1968년 스펜서 헤이우드 이후 최연소 미국 농구대표의 타이틀을 안게 된 ‘리틀 조던’ 르브론 제임스도 ‘에어 쇼’를 선보일 예정이다.지난해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미프로농구(NBA)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시즌 평균 20.9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올리며 녹록지 않은 실력을 발휘했다.게다가 이번 대회에 테러 위협 등을 이유로 샤킬 오닐 등 간판들이 대거 불참,그의 책임이 더 커졌다.지난해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중국 여자 다이빙의 간판으로 떠오른 위민샤(19)도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의 여왕으로 ‘다이빙’할 각오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사설] 김선일 사건 감사결과 겨우 이건가

    감사원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된 김선일씨 사건 감사진행 상황을 어제 국회에 보고했다.요지는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현지 군납사업 유지를 위해 김씨 피랍사실을 한국대사관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김씨 구명협상을 벌였다는 김 사장의 주장도 신뢰성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김 사장 개인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것으로 이해된다.이런 정도의 감사결과라면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는 감사에 앞서 정부의 외교·안보시스템 전반을 점검하라고 촉구했다.현지 대사관의 대응미숙을 포함,외교부·국정원·국가안보회의(NSC)가 유기적 협조체제 아래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따져야 했다.해외교민 및 정보관리 체계의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표출된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외교부가 AP통신으로부터 김씨 관련 문의를 받고 묵살한 과정,미군의 사전인지 여부,대사관과 김 사장의 관계 등이 철저히 규명되어야 했다.감사원의 중간 발표에는 이같은 부분들이 미흡하다. 감사원은 김씨 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김 사장에게 유기치사 혐의를 적용,검찰에서 수사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김 사장이 잘못했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하지만 온 나라를 흔들었던 사건을 그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이 본격화되면 전 세계의 한국인이 테러대상이 될 수 있다.새달초에는 수천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예루살렘에서 종교행진을 갖는다.김씨 사건 감사를 흐지부지 마무리짓는다면 제2,제3의 유사사건 발생을 막겠다는 공직자들의 의지가 약해질 우려가 있다.감사원은 추가조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국회는 조만간 열릴 국정조사 청문회를 통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해소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주길 바란다.
  • 아라파트 최대위기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35년 정치인생의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지난 2001년 이스라엘군에 의해 연금조치를 당해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에 갇혀 지내왔으면서도 팔레스타인 자치 독립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실질적 권한을 행사해온 그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16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경찰총수 등이 가자지구에서 납치됐다가 하루 만에 풀려난 사건이었다.아라파트 수반은 이를 빌미로 치안기구 문책인사를 단행,대표적 부패인사인 자신의 사촌을 가자지구 국가보안군 사령관에 임명했고 이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주류파 최대 세력이자 자신이 이끄는 파타(Fatah)로부터도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아흐마드 쿠라이 총리도 사직서를 냈고 아라파트의 만류에도 불구,개혁일정을 내놓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다며 압박하고 있다. 개혁을 요구하는 반(反)아라파트 시위가 잇따르자 팔레스타인 난민을 지원하는 유엔구호사업기구(UNRWA)는 55명의 직원 중 20명을 예루살렘으로 보낼 것이라고 밝혔고 유엔은 “보안기구를 개혁해야 할 것”이라며 압박 대열에 합류했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젊은 개혁세력이 아라파트의 혁명세대를 부패 집단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말 예정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수를 앞두고 이들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앞으로 그가 ‘중동의 오뚝이’라는 별명처럼 이번에도 불리한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함혜리특파원 유럽은 지금] 佛 인종·종교갈등 사회문제로

    서유럽국가에서 인종·종교 갈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프랑스에서 아기와 함께 파리근교의 도시고속전철을 타고 가던 젊은 주부가 백주 대낮에 10대들로부터 끔찍한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9일 오전 북부 외곽을 오가는 도시고속철도(RER) D선 객차안에서 13개월된 아기를 동반한 여성(23세)을 6명의 청년들이 칼로 옷을 찢고 복부에 나치독일의 상징인 만(卍)자형 십자상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행패를 부렸다.이런 가혹행위를 하는 동안 같은 열차에 탑승했던 승객들 중 누구도 나서서 만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톨레랑스(관용)’가 미덕인 프랑스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경찰에 따르면 15∼20세 가량의 흉기를 든 범인들 6명은 애초에는 강도짓이 목적인 듯 열차에 탑승했던 이 여성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며 가방에서 돈과 신용카드 등을 빼앗았다.이 여성이 파리 16구(區)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분증을 발견한 범인들은 “16구에는 유대인만 살고 있다.”고 외친 뒤 갑자기 소지하고 있던 흉기를 이용해 “기념품으로 삼겠다.”면서 이 여성의 머리카락을 6조각 냈고,셔츠를 절단한 뒤 복부에 펜으로 ‘만(卍)’자를 2개 새겼다고 전했다.이 과정에서 유모차에 타고 있던 13개월 된 어린 아이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하지만 피해자는 실제 유대인도 아니고,더 이상 16구에 살지도 않았다. 다행히 이 여성과 아이 모두 심각한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은 프랑스내 유대인과 이슬람인 등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격 증가에 따른 공포심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시민의식 부재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까지 나서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시하면서 범인들을 색출해 엄벌하라고 지시했다.그는 또 “자녀들에게 광신주의,배타주의,극단주의 맹종에 대한 치명성을 자녀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고 프랑스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프랑스 경찰은 교외선 열차역 내 목격자 탐문과 폐쇄회로 TV 화면 탐색 등을 통해 범인들을 추적 중에 있으며,시민단체들은 목격자들에게 즉각 범인색출 작업의 협조를 촉구하고 나섰다. lotus@seoul.co.kr˝
  • [전환시대 리더십]③ 김근태가 ‘진화’한다

    이해찬 총리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김근태 의원은 기자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포석이 ‘통일=정동영,복지=김근태’로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그가 ‘1지망’이었던 통일부를 접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받을 것인가?아니면 입각을 포기할 것인가.며칠 전부터 조언그룹의 얘기를 경청하던 그가 특유의 ‘장고’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날 오후 4시.밖으로만 돌던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여의도 한반도재단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오늘 내일은 기자 만나면 안되는데….”라며 웃었지만,결국 기자를 야박하게 물리치지 못했다. 입각할 것이냐는 질문에 “숙고하고 있다.”며 확답을 피했으나,“민주세력이 단합해서 노 대통령과 함께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입각을 결정했음을 내비쳤다.“나는 대통령과 친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불법정치자금 폭로,다시는 못해 이처럼 그의 어법은 간접적이다.또 복잡하게 말한다.때문에 비디오 세대들에겐 요지가 뭔지 어렵게 느껴진다.그가 지난 15대 초선 의원일때 기자들은 그의 방에 들락거리기를 좋아했다.지엽적인 정쟁에 매몰되지 않고 근본적으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그의 ‘운동권적 시각’이 신선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시대정신’이 바뀐 뒤로 기자들은 간접적이고 선명하지 않은 그의 어법을 싫어한다고 했다.몇년 전만 해도 신선했던 그의 ‘운동권적 시각’은 이제 나이브하고 미숙하며,승부사적 기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그는 이러한 지적에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차원에서,칭찬으로 알아듣겠다.”고 둘러갔다. ‘평소 정치적 판단을 잘 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운동권적 판단을 하는 오류’로 자주 지적되는 사례는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때 당시 권노갑 고문으로부터 2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밝힌 것이다.민주당 인사들은 해당행위를 했다고 격분했고,한나라당은 부도덕성을 공격했다. 그는 비난과 냉소를 견뎌보려 했지만,경선에서 득표율 꼴찌를 기록했고,급기야 중도하차했다.참모와 선·후배 정치인의 만류를 물리치고,양심의 목소리를 따른 대가는 처절했다. 그는 “그 고백 덕분에 동교동계가 지원하는 이인제 의원 대신,개혁적인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후보가 됐고,정권 재창출에 기여했다는 생각을 한다.또 조직적인 돈선거를 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아니냐.”며 멋쩍어 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그도 깨달은 것이 있다.운동권적 양심보다 정치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그래서 그는 선회해야 했다. “똑같은 조건이 다시 벌어진다 해도,절대 못한다.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그때 너무 쓰라렸다.”솔직한 목소리다. ●측근들 “김장관이 진화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2시,보건복지부 청사.김근태 신임 복지부 장관이 취임사를 앞두고 있다.김 장관은 어색함을 털어내기 위해 “내가 원내대표할 때 파이팅을 많이 하니까,사람들이 ‘김근팅’이라고 하더라.(직원들 작게 웃음) 복지부 파이팅 한번 할까요?”라며 선창으로 팔까지 흔들어가며 2차례나 파이팅을 외쳤다.복지부 공무원들도 따라했다.김 장관은 이어 어리숙한 모습으로 “취임사를 할까요?”라고 물어본다.직원들 사이에 더 큰 웃음이 터져나왔다.카리스마가 드러나지는 않지만,미숙한 듯 친근하게 복지부 공무원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측근들은 “김 장관이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취임사가 끝난 뒤 그는 강당에 모인 공무원 모두와 눈빛을 맞추며 두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대충대충이 안되는 그가 진지한 눈빛으로 5초 동안이나 손을 잡고,말까지 건넸다. 사람을 성심껏 대하는 그의 태도는 지난달 22일 열린우리당 통외통위·국방위 연석 간담회에서도 잘 나타났다.김선일씨 피랍대책을 정부와 협의하는 자리에서,의원 20여명은 회의 시작을 기다렸다.의원들은 그러나 정부측 1∼2급 관계자가 긴장된 모습으로 10분 넘게 대기하고 있는 것에 신경쓰지 못했다.그때 김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부측 관계자냐.”고 물으며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수고한다.”는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결정 늦지만 철저하게 지킨다 152석 과반의석의 여당이 됐지만,당정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부와 여당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이 원내대표를 그만둔 뒤 못내 마음에 걸렸다.실험기간이 짧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는 지난번 노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문제와 관련,“당이 대통령의 소신을 몰라 잘못 공약했다.”고 발언한 것이 못내 서운하다.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책임지듯,원내대표는 총선 공약을 책임지기 때문이다.그는 결국 “계급장을 떼고 토론해서 잘못 됐으면 바로잡고,국민에게 사과하자.”는 말을 했다.그러나 다른 말은 다 사라지고 ‘계급장 떼고’만 남아,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모습만 부각된 것도 안타까워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햄릿형 정치인’이라는 지적에 대해 “결정은 늦게 내리지만,한번 결정하면 철저히 지키고 부당한 억압에 물러서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대권을 꿈꿔 보겠다.”는 김 장관.그에겐 지도자로서의 절차탁마가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 같다.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그는 경쟁자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지사 등을 손꼽는다. 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사진 오정식기자 oosing@seoul.co.kr ●약력 ▲1947.2.14 경기 부천 출생 ▲양수초등학교 광신중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초대 의장 ▲민청련 사건으로 투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집행위원장 ▲전민련 사건으로 구속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공동대표 ▲민주당 부총재 ▲15,16,17대 의원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보건복지부 장관 ■ ‘정치인 김근태’의 고민 ‘정치인 김근태’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대중성 확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를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지난 2월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분”이라고 말했다.그는 쉽고 편하고 재미있기보다는,어렵고 사색적이고 재미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재야 운동가로 30여년을 살았지만 이른바 ‘KS’인 경기고·서울대 출신인만큼 지식인 층에서 그의 이름 석자는 대충 통한다.그러나 국민들에게 통하지 않으면 밤낮으로 대권을 꿈꾼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하면 된다.”고 대입시험을 앞둔 ‘고3’처럼 말했다.스스로도 대답이 멋쩍었는지 “지난 4월 총선 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현장에 맞게 제한된 시간에 원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훈련이 꽤 됐다.”고 부연했다. 그는 특히 4월14일 저녁 마지막 유세지인 명동성당에서 ‘감’을 얻었다고 강조했다.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250석 이상으로 예상되던 열린우리당 의석이 노인폄하 발언 이후 하루에 지지율이 2∼3%씩 떨어져 1당을 내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의 절박함이 진실되게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호소력도 좋아졌고,전달력이 좋아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당시 그를 두고 열린우리당 출입기자들은 ‘근본적인 한계(대중성)에도 불구하고 선전한다.’고 평가했다.그러나 정동영 통일부 장관,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비교하면 그의 대중적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복지부 장관 재임 기간 이를 극복하는 게 ‘김근태’의 과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문소영 기자는 청주 출신으로 지난 1992년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시사주간지 뉴스피플과 경제·문화부에서 일한뒤 정치부로 옮겨 청와대에 이어 열린우리당을 출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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