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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너무 짧았고 정치지형은 험난했다”

    “시간은 너무 짧았고 정치지형은 험난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29일 총리직 사임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9월29일 총리에 취임한 지 10개월 만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 총리의 사의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총리는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여러 번에 걸친 사의표명 이후에도 총리직을 지킨 이유는 6·2 지방선거부터 7·28 재·보선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일정 속에서 정부의 근무기강을 확립하고 국정의 중심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주요 정치일정이 일단락되면서 대통령께서 집권 후반기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건과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이 국가의 책임 있는 공복으로서 사임의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특히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세종시 수정안을 마련했지만 이를 관철하지 못한 점은 개인적인 아쉬움의 차원을 넘어, 장차 도래할 국력의 낭비와 혼란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불러일으킨다.”며 “모든 책임과 허물을 제가 짊어지고 이제 국무총리 자리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국정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후임 총리가 결정될 때까지 최소한의 책무는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어 “그동안 국가 운영의 원칙을 바로 세우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며 사회의 그늘진 곳을 밝게 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며 “그러나 제가 생각했던 일을 이뤄내기에 10개월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너무 험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며 모두를 위한 번영을 추구할 여건을 확고히 마련하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쉽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가 이미 세 차례나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이날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의사를 밝히자 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정 총리와) 좀 더 같이 일하고 싶어서 여러 번 만류했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사의를 표명했으며 저는 이를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했다고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후임총리 인선 및 개각과 관련, “이제 선거가 끝났고 원점 상태에서 검토되고 있다. 8월 첫주 휴가를 가서 그 기간에 구상하고 검토해서 개각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따라 중폭 정도의 장관 교체가 예상되는 개각은 이 대통령의 여름휴가가 끝난 뒤인 다음달 9~10일을 전후해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환·김성수기자 khkim@seoul.co.kr
  • [재·보선 후폭풍] 鄭총리 “집권후반기 동력 회복”… 명예로운 퇴진 선택

    [재·보선 후폭풍] 鄭총리 “집권후반기 동력 회복”… 명예로운 퇴진 선택

    정운찬 국무총리가 29일 취임 10개월 만에 결국 ‘명예로운 불명예 퇴진’의 길을 선택했다. ‘세종시 총리’로 불리며 지난해 9월 말 취임한 이후 세종시 수정안 관철을 위해 ‘올인’해 왔으나,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동력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정치적 운신의 폭이 급속히 좁아진 까닭이다. 정 총리는 6·2지방선거에서 세종시 수정안 심판론을 제기한 야권에 참패한 뒤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공식 사의를 표명했다. 또 수정안이 부결된 후에도 국회 본회의에서 또다시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이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야권뿐 아니라 한나라당 등 여권 내부에서도 사퇴론이 제기됐고, 정 총리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국정 공백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총리직을 유지해 왔다. 더욱이 지방선거 이후 정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인적개편 건의를 했다가 불발됐다는 이른바 ‘총리 거사설’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관실)의 민간인과 정치인 불법 사찰 파문 등의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마음고생도 심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총리가 전격 사퇴의사를 발표한 것은 집권 하반기를 맞아 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완승한 만큼 모양 좋게 퇴진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다음달 초로 예정된 여름휴가 동안 개각을 포함한 정국운영 구상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자신이 거취를 분명히 함으로써 개각하는 데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 총리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 “재·보선 등 주요 정치일정들이 마무리되면서 대통령께서 집권 후반기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며 “지금이 책임 있는 공복으로서 사임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특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사퇴로 인한 여권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점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즉 여당이 완승하면서 유임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사퇴함으로써 ‘아름다운 퇴진’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도 “좀 더 같이 일하고 싶어서 여러 번 만류했지만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또다시 사의를 표명해 매우 안타깝다.”고 말해 ‘명예로운 퇴진’의 길을 터줬다. 정 총리는 향후 거취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학계로 돌아와 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서민들의 복지 향상 등을 연구하는 작은 연구소를 만드는 쪽에 관심이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국민들과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정치적 앞날을 도모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정 총리가 최근 주말마다 정보기술(IT)·외교안보 등 각 분야의 공부 모임을 만들어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해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정운찬 총리, 오후 2시 공식사의 예정

    정운찬 총리, 오후 2시 공식사의 예정

    정운찬 국무총리가 29일 총리직 사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 총리의 사의를 수용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정 총리는 후임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국무총리직을 사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사퇴 결심 배경에 대해 “주요 정치일정이 일단락되면서 대통령께서 집권 후반기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건과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이 국가의 책임있는 공복으로서 사임의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세종시 수정안을 마련했지만 이를 관철하지 못한 점은 개인적 아쉬움을 넘어 장차 도래할 국력의 낭비와 혼란을 방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불러일으킨다”며 “모든 책임과 허물을 제가 짊어지고 이제 국무총리 자리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정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후임 총리가 결정될 때까지 최소한의 책무는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의 공식 사퇴 발표는 이 대통령과의 교감 아래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종시 수정안 부결 등에 대한 책임을 모두 안고 떠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7.28 재보선 승리로 국정 장악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이 대통령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려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앞서 정 총리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그 다음날 사의를 표명한 것을 비롯,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피력한 바 있다. 특히 정 총리는 지난 3일 북중미 3국 순방에서 귀국한 직후 독대를 통해 사퇴 의사를 강하게 전달했으며, 이후 이 대통령은 고심 끝에 사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정 총리의 사퇴 결정에 따라 후임 총리 인선을 포함한 내각 개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총리와 함께 중폭 정도의 장관 교체가 예상되는 개각은 이 대통령의 여름휴가가 끝난 뒤인 내달 10일께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아이유, 택시안 ‘잔소리’ 열창…인터넷방송 생중계

    아이유, 택시안 ‘잔소리’ 열창…인터넷방송 생중계

    가수 아이유가 택시 안에서 열창한 모습이 인터넷 방송에 실시간 생중계돼 화제다.아이유는 지난 27일 오후 6시께 작곡가로 추정되는 일행과 택시를 타고 연습실로 이동하던 중 자신이 탄 택시기사가 진행하는 온라인 방송에 포착됐다.인터넷 방송의 진행자인 이 택시기사는 처음에 아이유를 알아보지 못한 채 평상시대로 “현재 택시에서 인터넷 방송 중인데 촬영해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했다.그러자 아이유와 동승한 이가 방송을 만류했지만 그녀는 “저 아이유에요”라며 자신을 밝혔다. 택시기사가 이를 믿지 못하자 아이유는 임슬옹과의 듀엣곡 ‘잔소리’를 반주에 맞춰 열창했다.이에 뒤늦게 아이유라는 사실을 깨달은 택시기사가 다시 한 번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하자 아이유는 흔쾌히 수락, 이때부터 끼 많은 택시기사와 게스트 아이유의 ‘게릴라 방송’이 진행됐다. 아이유가 재차 노래를 부를 땐 택시기사가 직접 화음까지 넣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한편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간 아이유의 ‘택시열창’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택시 아저씨 땡 잡으셨다”, “아이유 팬서비스 굿”, “아이유 노래도 잘 부르고 완전 착하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사진 = 동영상 캡처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 아이유, 택시기사 요구에 열창 생중계…”팬서비스 굿”

    아이유, 택시기사 요구에 열창 생중계…”팬서비스 굿”

    가수 아이유가 택시 안에서 열창한 모습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생중계돼 화제다. 아이유는 지난 27일 오후 일행과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자신이 탄 택시기사가 진행하는 온라인 방송에 포착됐다. 택시기사가 먼저 아이유에게 촬영을 제안하자 동승한 이가 처음에는 방송을 만류했다. 결국 아이유는 택시기사에게 본인을 확인시킨 후 임슬옹과의 듀엣곡 ‘잔소리’를 반주에 맞춰 열창했다. 뒤늦게 아이유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택시기사가 다시 한 번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하자 아이유는 흔쾌히 수락, 이때부터 끼 많은 택시기사와 게스트 아이유의 ‘게릴라 방송’이 진행됐다. 아이유가 재차 노래를 부를 땐 택시기사가 직접 화음까지 넣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한편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간 아이유의 ‘택시열창’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택시 아저씨 땡 잡으셨다”, “아이유 팬서비스 굿”, “아이유 노래도 잘 부르고 완전 착하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 = 동영상 캡처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 믹키유천 매니저 폭행 논란 ‘뺨 때려 vs 어깨 밀쳐’

    믹키유천 매니저 폭행 논란 ‘뺨 때려 vs 어깨 밀쳐’

    믹키유천 매니저가 미성년자를 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진위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 네티즌은 26일 한 온라인게시판에 자신의 동생이 믹키유천 매니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네티즌은 글을 통해 분식집에 갔다가 우연히 믹키유천을 보게 됐고 이를 제지하던 매니저가 따귀를 때리며 폭언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을 증명한 CCTV 영상이 확보됐으며 목격자들도 존재한다고 덧붙이며 믹키유천 측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합의할 뜻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사건을 담당하는 화성서부경찰서는 CCTV와 관련 “영상에 폭행 장면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믹키유천 측은 네티즌의 주장과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믹키유천 매니저는 당시 뺨을 때린 것이 아니라 어깨를 살짝 밀쳤다. 밥을 먹는데 상대방이 계속 쳐다보면서 사진을 찍어 만류했지만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욕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고등학생이 욕을 하자 매니저는 ‘말 함부로 하지 말라’며 학생을 밀치게 됐다. 이번 사건을 담당 중인 경기도 화성 서부 경찰서 한 관계자는 “지난 26일 사건을 접수한 후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를 마쳤다”며 “현재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특파원 칼럼] 北이 꺼내들 다음 패는/김균미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北이 꺼내들 다음 패는/김균미 워싱턴특파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천안함 사건 관련 의장성명 채택과 함께 상황은 순식간에 제재국면으로 옮겨갔다. 언론의 관심은 온통 한·미 군사연합훈련과 추가제재, 6자회담 재개 전망 등 이른바 출구전략에 쏠려 있다. 더욱이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직후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발빠르게 ‘평화’ 모드로 전환하면서 북한은 이목을 선점했다. 북한의 이런 평화공세는 1년 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4월 북한은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거리미사일을 실험발사했다. 5월 2차 핵실험을 실시했고, 6월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추가제재 결의 1874호가 채택됐다. 러시아와 중국도 찬성표를 던졌다. 북한은 안보리 결의에 따라 수출이 금지된 물품이 실린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을 수색할 경우 가만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던 북한이 급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미국에 유화제스처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북한 국경수비대에 체포돼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여기자 2명의 전격 석방이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특사 자격으로 8월4일 평양에 들어가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미국은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 북핵이나 6자회담과는 별개라고 강조했지만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어 시차를 두고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과 리근 북한 외무성 국장의 방미 등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이후 한국에도 유화정책을 폈다. 물론 2009년 여름과 2010년 7월 상황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지난해의 경우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실험발사하고 핵실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한국 군인 46명의 사망이라는 직접적인 인명피해는 없었다. 따라서 선언적·상징적 의미가 큰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한국과 미국은 안보리 대응 이후 양자적·독자적 제재를 발표했고, 연합군사훈련으로 첫 단추를 끼웠다. 한국과 미국, 중국과 북한 모두 현재의 대치국면을 대화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일 준비가 돼 있지 않는 한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이라고 밝힌 적은 없지만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임으로써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안보리 의장성명을 놓고 ‘외교적 승리’라고 선언했던 북한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꿔 사과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워싱턴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이 제재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지난해 미국인 여기자 2명을 석방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억류돼 있는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월 불법으로 북한에 들어갔다 체포돼 8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곰즈는 최근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북한이 석방을 제안한다면 미국은 인도적 문제로 별개라는 입장을 취하며 북한이 요구하는 고위 관계자를 북한에 보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뉴욕채널이 있기는 하지만 특사를 통해 미국에 이른바 비핵화에 대한 자신들의 진정성을 전달하려 시도할 것이다. 미국인의 석방이 국면전환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그럴싸하게 들린다. 관건은 향후 미국과 한국의 대응이다. 대화의 창이 막혀 있는 것보다는 북·미든 남북간이든 대화채널이 가동되고 있는 게 낫다. 전례에 비춰볼 때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있을 때 돌파구는 북·미대화에서 마련된 경우가 왕왕 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도 중요하지만 한·미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주 서울에서 열리는 양국 외교·국방장관(2+2)회의가 중요하며, 이를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kmkim@seoul.co.kr
  • ‘비만 사형선고’ 285kg 뚱보녀의 충격 절규

    ‘비만 사형선고’ 285kg 뚱보녀의 충격 절규

    “이렇게 누워서 죽고 싶지 않아요.” 285kg이 넘는 몸무게로 영국에서 가장 뚱뚱한 여성의 비극적인 사연이 외신에 소개됐다. 대중지 더 선은 “영국 에식스 주에 사는 샤론 메브시믈러(40)가 한 주립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생사를 다투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메브시믈러는 30세가 되기 전까지 평균 체중이었다. 그러나 넷째 아이를 낳은 뒤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음식중독으로 체중이 200kg 넘게 불어나 영국에서 가장 뚱뚱한 여성이 됐다. 152cm 단신이나 몸무게가 300kg에 달하는 초고도 비만이 되자 심장과 폐기능이 손상됐다. 2007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는 현재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럽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를 치료하는 의료진은 이 여성이 너무 뚱뚱해서 수술이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 메브시믈러는 치료만 받으며 몇 년 째 침대신세를 지고 있다. 그녀는 더 선과 한 인터뷰에서 “침대에 방치돼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 집에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의료진의 만류에도 그녀는 강력하게 수술을 원하고 있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술을 하고 싶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영국에서 가장 뚱뚱한 남성은 폴 메이슨으로, 몸무게가 449kg이었으나 올해 초 수술을 받았다. 사진=샤론 메브시믈러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2AM 조권, 머리에 볼링공 직격탄...’충격’

    2AM 조권, 머리에 볼링공 직격탄...’충격’

    SBS E!TV ‘예능제작국’의 지난주 방송된 5회에 최고 인기 아이돌 2AM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다. 2AM 멤버들은 스튜디오 등장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로 ‘예능제작국’의 기선제압을 하는데 성공했다. 조권은 촬영 내내 ‘예능제작국’에서 준비한 게임과 벌칙을 탐탁지 않게 여긴 나머지 앙심을 품고 소품까지 망가뜨리는 등 제대로 된 복수극을 보여주어 보는 이를 통쾌하게 하기도 했다. 특히 계속되는 벌칙에 오기가 생긴 조권은‘부담을 극복해보SHOW!’ 코너 중, 굴러오는 볼링공을 머리로 막아내는 게임에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막아낸 나머지 머리를 움켜잡고 뒹굴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조권은 “괜찮아요.”라는 말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잠시나마 걱정했던 멤버들을 안심케 했지만 그 때부터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고 눈이 풀려 나머지 멤버들은“권이가 머리에 큰 충격을 받고 나서 바보가 됐다.”라고 할 정도로 뼈 속까지 예능돌인 깝권의 활약을 볼 수 있다. 방송은 오는 14일 밤 12시. 사진 = SBS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
  • [민간사찰 파문] 이인규 돌연 회견취소 보이지 않는 손 개입?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으로 검찰 소환이 임박한 이인규(54)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 7일로 예정된 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이 전 지원관 측 관계자는 “총리실이 직위해제된 사람에게 기자회견장을 내줄 수 없다고 갑자기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김창영 총리실 공보실장은 7일 “언론 보도와 국회에서 제기된 많은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게 많아 (이 전 지원관이) 자신의 입으로 밝히고 싶어 했다.”면서도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 안 하기로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6일 오후까지만 해도 이 전 지원관의 기자회견 강행 의지는 확고했던 것으로 언론에 포착됐다. 그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억울하다.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호소하며 기자회견 강행 의지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지원관 등 4명은 당초 6일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었으나 민주당의 ‘영포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날 총리실을 항의 방문하는 바람에 기자회견 일정을 하루 늦췄다. 이 전 지원관 측은 이날 오후 정치권 등이 제기한 의혹에 대한 답변 자료를 만드는 등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본지의 ‘합동기자회견’ 보도가 나간 저녁 늦게부터 이 전 지원관의 기자회견 중단을 위한 설득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부터 이 전 지원관과의 연락이 끊겼다. 이 전 지원관 측의 한 관계자는 “기자회견 자체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말 실수 등을 통해 의혹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만류했다.”고 전했다. 이 전 지원관은 모처에서 밤을 새우면서 기자회견 강행 여부를 저울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검찰 소환에 대비, 변호사와 대책을 논의하는 등의 과정에서 이 전 지원관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 기자회견을 취소한 배경으로 추정된다. 총리실 관계자는 “민주당의 항의방문에서 총리실의 조사결과가 이 전 지원관의 변명만 담았다고 비난한 것도 기자회견 무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지원관의 기자회견 계획과 취소는 ‘윗선’과의 조율을 통해 결정된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에 수사 의뢰된 이 전 지원관 등 4명이 합동기자회견을 하려 했던 것은 누군가가 기획한 것이고, 윗선이 이들의 기자회견 이후의 역풍을 우려해 취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주리·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태극전사 만난 MB “올 최고 반가운 손님”

    태극전사 만난 MB “올 최고 반가운 손님”

    “나는 이길 수 있는 게임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얼굴을 보니까 선수들이 어떻게 경기에서 뛰었는지 생생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축구대표팀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갖고 한국-우루과이 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찬에는 허정무 감독을 비롯해 박지성·박주영·이청용·기성용·이영표·차두리 등 선수단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정말 올해 최고 반가운 손님이 청와대를 방문했다.”면서 대표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원래 한식이었던 오찬 메뉴를 “그동안 많이 먹었을 테니 중식으로 바꾸라.”고 직접 지시하는 등 선수단 대접에 세심한 배려를 했다. 이 대통령은 선수들과 얘기를 나누며 한-우루과이전이 마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순방 중에 열려 경기를 못 볼까 노심초사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토론토에 가서 못 볼 줄 알았더니 숙소에 들어가니까 경기가 시작되더라. (경기를 관전하라고) 비행기가 속도를 좀 더 냈는지 1시간 이상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경기를 봤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우루과이전에서 박주영 선수의 슈팅이 골대 맞고 들어갔으면 이겼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G20 회의와 관련, “독일과 영국(잉글랜드)하고 경기할 때는 마침 두 나라 총리가 옆에 앉았다가 슬그머니 빠지더라. 회의하는 도중에도 전념하지 못하고 스코어에 집중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북한도 잘해 주었으면 했는데 포르투갈에 7-0으로 졌다.“면서 “너무 차이가 나니까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몇몇 해외파 선수들의 소속 팀을 일일이 거명하자 박주영 선수가 이영표 선수에게 귀엣말로 “다 외워서 나오셨나 보다.”라고 하자 이를 들은 이 대통령은 “원래 축구에 관심이 많다.”고 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지성 선수가 “다음에는 33살이어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자 김윤옥 여사는 “지금 이영표 선수도 33살인데 펄펄 뛰고 있다.”면서 은퇴를 만류했다. 이 대통령은 “2022년에는 한국에서 월드컵을 유치해 보려고 한다.”면서 “이번에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다.”고 기대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결혼이주자 2세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결혼이주자 2세

    일곱 살 상원이(가명)는 4개국어를 한다. 한국어와 중국어는 유창하고, 영어와 필리핀어는 알아듣는 정도다. 한국 아빠와 필리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화교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다. “쉬는 시간에는 한국어로, 수업 시간에는 중국어를 써요. 엄마랑은 영어와 필리핀어를 섞어 쓰는데 많이 헷갈려요.” 화가 나면 엄마, 아빠가 못 알아 듣도록 중국어로 불평한다. 상원이가 외국인 학교인 한송 한성화교 소학교에 입학한 것은 아빠 A(40)씨의 결단이었다. 한국어에 서툰 엄마가 학습을 지도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학원비를 맘껏 지출할 가정형편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상원이가 우리나라 교육제도 속에서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배려 가장한 차별 피해 외국인학교 선택 다문화지원 정책이 쏟아지면서 ‘배려’를 가장한 ‘차별’이 발생한다고 A씨는 지적했다. 다문화 아동만 따로 모아 특별활동을 시켜서 따돌림을 부추기고, 학습수준도, 언어도 다른데 다문화 아동이라는 이유로 방과 후 학교를 강요해 부작용을 낳는다고 했다. A씨는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 정부의 실험 교육에 상원이를 맡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공부하는 게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100년 전통의 외국인 학교라 안심했다. 학기가 9월에 시작하는 데다 중국어를 할줄 알아야 입학할 수 있어 6개월 전에 부속 유치원에 보냈다. 2상원이는 첫날, 울면서 돌아와 “다시는 학교에 안 간다.”고 선언했다. 화교 부모를 둔 아이들처럼 중국어를 못하는 데다 어린이집과 다른 낯선 환경이 힘들어서다. “일반학교에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붙잡고 A씨는 ‘글로벌 인재’라는 말을 꺼냈다. “네가 크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거야. 아빠는 한국 사람, 엄마는 필리핀 사람, 친구는 중국 사람, 지금부터 그렇게 살면 나중에 상원이는 전 세계에서 1등이 되는 거지.” 상원이는 아빠의 얘기를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핀 초등학교와 학생교환 프로그램 계획 A씨는 둘째 상희(4·가명)와 셋째 상수(2·가명)를 ‘다문화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뜻이 맞는 다문화 가족들끼리 준비모임도 꾸렸다. “학부모가 학교활동에 적극 참여해 아이들을 ‘민간 외교자원’으로 키웠으면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필리핀 초등학교와 자매결연해 학생 교환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A씨 아이들은 필리핀에서, 필리핀 학생은 한국에서 방학을 보내는 거다. 숙박은 두 나라의 부모가 맡는다. 프랑스와 독일,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A씨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인맥을 쌓고 그러다 보면 민간 외교가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엄마 글로리아(30·가명)는 자녀교육을 고민하는 남편과 중국어를 홀로 배우는 상원이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먼 학교를 지하철로 통학하고 과제물도 혼자 하면서 상원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됐다.”고 말했다. “다섯 살쯤 되니까 엄마보다 한국어를 잘하더군요. 그러더니 어느날 ‘엄마, 필리핀 사람이라서 좀 창피해’라고 말하는 거예요.” 상원이는 “엄마, 그만해. 다 지나간 일인데….”라고 엄마의 말을 가로막았다. “엄마는 그때 충격 많이 받았어.” “그때는 엄마, 한국어 발음이 이상하니까. 친구들이 놀리고….” 상원이는 말끝을 흐렸다. 글로리아의 한국 적응도 순탄하지 않았다. 친척의 소개로 만난 A씨와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을 결심했다. 외국으로 떠난다는 딸을 부모가 만류했다. “한번 가면 오기도 쉽지 않은데….” 2000년 5월 A씨가 필리핀으로 입국, 설득에 나섰고 한 달 뒤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말과 달리 시부모는 글로리아를 반기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의 검은 피부를 두고 수군거렸다. ‘다르다.’는 게 한없이 그를 위축시켰다. 그때 남편이 주민센터의 영어강사를 권했다. 한국 아줌마와 어울려 한국어를 배우고, 영어를 가르치며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다. 둘째 상희가 태어났을 때 또다시 위기가 닥쳤다. 상희가 한 달 일찍 나오는 바람에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한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입국할 수가 없었고, 시어머니는 그때까지 외국인 며느리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몇 달간 머물 가정형편도 못 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아니어서 복지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쓰러졌다. ‘황달·영양실조’로 일주일간 입원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후 3년간 병원을 들락거렸다. 이처럼 아이를 홀로 키우기가 어려워 필리핀으로 아이를 보내는 다문화 가족도 있다고 글로리아는 설명했다. 대가족 전통이 남아 있어 어린 시절을 보내기는 그곳이 낫다는 거다. ●‘창피하다’는 상원이 말에 엄마 다시 공부 글로리아는 ‘엄마가 창피하다.’는 상원이의 말에 중단했던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2007년 전문대 복지학과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2급,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땄다. 산학협력 프로그램이라 남편도 함께 다녔다. 천안에서 보육교사로 일했고, 지난해에는 다문화 강사로도 등록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필리핀 문화를 소개한다. 전통의상과 국기, 언어를 알려주면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난다. 그러나 엄마들의 반응은 실망스럽다. 아이가 만든 필리핀 국기나 다양한 언어의 이름을 자랑하면 엄마가 “그런 거 뭐 하려 했니? 버려.”라고 말한다. “다문화 사회에서 살려면 필요한 교육인데….” 글로리아는 안타까워했다. 상원이와도 자연스레 소통한다. 다문화 강의교재를 만들어 자녀들에게 시연하고 조언을 받았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한국어를 빨리 배우지 못할까 봐 필리핀어도 잘 쓰지 않았던 엄마는 늦었지만, 자녀들에게 필리핀 문화를 가르칠 수 있어 행복하다. 지하철에서 중국어 학교 과제물을 풀던 상원이에게 한 아줌마가 물었다. “넌 엄마가 중국 사람이니?” “아니요. 엄마는 필리핀 분이고요. 아빠는 한국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는 중국 학교에 다녀요.” “우와, 너희 가족, 참 멋지구나.” 상원이는 엄마 사무실로 달려와 자랑했다. ‘도전하길 잘했구나.’ 글로리아는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아이가 한국에서 차별 없이 똑같이 자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꿈꾸는 다문화사회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법원 “성폭행 예상하고 망 봤다면 강간죄”

    성폭행이 발생할 것을 짐작하면서 망을 봤다면 공범자들과 마찬가지로 특수강도강간죄 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고법 형사1부(부장 임성근)는 성폭행 현장 밖에서 망을 본 혐의(성폭력범죄처벌법상 특수강도강간 및 카메라 촬용) 등으로 구속기소돼 1심서 징역 6년이 선고된 황모(27)씨의 항소심에서 피고인 항소를 기각했다고 4일 밝혔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황씨는 비록 강도강간 행위를 직접 분담해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미필적으로나마 이를 인식하면서 밖에서 망을 봐 범행에 가담한 것”이라고 밝혔다.재판부는 이어 “황씨는 범행 이전에 공범들에게 성폭행을 만류했고 더욱이 강간 및 카메라 촬영을 공모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공범들이 성폭행에 필요한 청테이프와 카메라 등을 준비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고 유죄를 인정했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토종감독’ 허정무 박수칠 때 떠납니다

    ‘토종감독’ 허정무 박수칠 때 떠납니다

    ‘박수칠 때 떠날 수 있어 행복하다.’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일군 허정무(55) 감독이 축구대표팀 사령탑에서 떠났다. 허정무 감독은 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감독 인선에서 물러나겠다. 대한축구협회가 후임 감독 선정에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일찍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분간 재충전 시간을 가지면서 공부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허 감독은 2007년 12월, 7년여간 이어지던 ‘외국인 감독 시대’를 끝내고 한국인 지도자로 심판대에 올랐다. K-리그 전남을 이끌다 대표팀을 맡은 허 감독은 “축구인으로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선언했다. 그만큼 결연했다. 결국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을 이뤄냈고, 한국인 감독 월드컵 첫 승과 원정 월드컵 16강까지 달성했다. 계약 기간은 남아공월드컵 종료까지였다. 조중연 축구협회장은 “경험 있는 국내 지도자가 오랫동안 대표팀을 이끌 때가 왔다.”면서 허 감독의 유임을 바란다는 뜻을 표명했다. 그러나 허 감독은 고심 끝에 재계약을 포기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컸다. 취임 2년 6개월 만이었다. 허 감독은 “월드컵과 함께 감독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사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16강 목표를 이루고 그만둬 다행이다.”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고의 순간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악의적인 비난에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도 내비쳤다. 허 감독은 “잘못해서 비판받는 건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때는 인신공격성이 지나친 게 많다. 주위 가족들까지 힘들다.”고 말했다. 연임을 놓고 고민하던 허 감독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혔던 계기도 인터넷에 떠도는 네티즌들의 악의적인 댓글과 그로 인한 가족들의 만류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좋은 기억도 많다. 허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16강 진출했을 때 정말 기뻤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을 봤을 때 고맙고 뭉클했다. 정말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허 감독은 “축구계에 능력있고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은 만큼 좋은 국내감독이 대표팀을 이끌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국내 지도자에 힘을 실었다. 후임 감독에게 “대표선수들 모두가 능력있고 발전하는 선수들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정진했으면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30개월간 조련해 온 한국축구도 객관적으로 진단했다. 허 감독은 “체력이나 정신력, 조직적인 면에서는 전혀 뒤지지 않는다. 가장 부족한 게 기술적인 부분이다. 볼터치와 패스능력, 순간 상황 판단능력, 영리한 플레이 등은 기초부터 닦아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유소년 축구 육성이나 프로축구 K-리그 복귀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당장 K-리그로 간다든지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축구를 통해 사랑받는 위치에 올랐으니 축구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허정무 “감독직 내려놓겠다” 연임 포기발표

    허정무 “감독직 내려놓겠다” 연임 포기발표

    ‘2010 남아공월드컵’ 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직 연임을 포기했다.허정무 감독은 2일 “대한축구협회가 후임 감독 인선에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일찍 결심하게 됐다.”며 “당분간 재충전 시간을 가지면서 공부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당초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이 허정무 감독의 유임 희망의사를 내비쳤고 다음달 11일 시리아와의 평가전과 2011아시안컵이 얼마 남지 않아 허 감독의 연임이 예상됐다.하지만 허 감독은 대표팀을 지휘하는 동안의 심한 스트레스와 가족들의 만류 등의 이유 때문에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허 감독의 향후 거취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허 감독의 사임 소식을 들은 축구팬들은 “그동안 수고하셨다” “떠날 때를 아는 당신은 낙화 보다 더 멋있구나. 박수 칠 때 떠나라”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잘해주셨다” 등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한편 대표팀 감독을 내려놓은 허 감독의 후임으로 현재 홍명보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과 정해성 대표팀 수석코치가 거론되고 있다.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강서정 인턴기자 sacredmoon@seoulntn.com
  • 힘 실린 鄭총리 교체설

    정운찬 총리가 30일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된 것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6월3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를 하면서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이 대통령이 곧바로 만류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6월14일 청와대 인적쇄신과 관련한 정 총리의 ‘거사설’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여전히 유임 가능성이 높았다. 정 총리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다는 것이 여권 고위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 총리의 ‘교체’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자의든 타의든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세종시’에만 올인해온 정 총리로서는 세종시 수정안이 백지화되면서 일정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표현만 완곡하게 했을 뿐 정 총리가 사실상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해석도 이 같은 전망을 가능케 한다. 이 대통령의 최종 결심에 따라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정 총리까지 여권의 ‘빅2’가 모두 바뀌게 되는 셈이다. ●세대교체 등 MB 구상 안갯속 이에 따라 여권 인적 개편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시기도 빨라지고 교체폭도 더 커질 수 있다. 인적 쇄신에 대한 이 대통령의 구상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게 없다. ‘세대교체’가 화두로 40대 중반~50대 초반 인사가 중용될 것으로 알려진 정도다. 사람을 한 번 쓰면 큰 허물이 없는 한 쉽게 내치지 않는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로 볼 때 ‘돌려막기’라는 비난이 나올 수 있지만 ‘자리이동’도 일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캐나다와 파나마에 이어 멕시코 순방을 마치고 3일 귀국하면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재 진행 중인 청와대 조직개편 방안이 마무리되면서 새로 생기거나 없어질 수석급 자리가 확정되면 수석비서관급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조직개편은 세종시·4대강 문제를 맡았던 국정기획수석실의 폐지, 홍보수석실의 메시지기획관실 흡수, 시민사회수석실 신설 방안 등이 실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靑 인사 14일 한나라 全大 전후 조직개편과 함께 인사비서관실에서는 후보군에 대한 인사검증을 위한 실무작업을 상당 수준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청와대 인사가 실제 단행되는 시기는 7월1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전후한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청와대 참모진 교체도 폭이나 인선 등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석 중에서는 교체대상으로 거론되는 민정·국정기획·홍보·정무수석의 거취가 주목된다. 일부가 바뀌거나 정부 부처 장관급으로 옮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장수장관’ 포함 전면개각 거론 대통령실장에는 유력하게 거론되던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이석채 KT 회장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이름이 새로 나오고 있지만, 아직 유력한 후보는 부상하지 않고 있다. 개각은 총리까지 포함될 경우 전면개각 수준이 되면서 취임 3년차를 맞는 ‘장수 장관’의 상당수가 바뀌게 된다. 여성 의원을 포함한 정치인 1~2명의 입각도 거론되고 있다. 파나마시티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제 갈 길 가는 친이·친박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계 내부에 각각 분열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친이계는 청와대가 입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부의 요구서 서명 의원 모집 작업이 순조롭지 않다. 친박계는 전당대회 후보를 2인으로 압축하려는 중진 의원들의 잇단 시도에도 불구하고 조율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친이계 66명만 부의요구서 서명 친이계 임동규 의원이 발의한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부의 요구서에 서명한 의원은 28일 현재 66명에 그쳤다. 일사불란하던 예전 모습과는 차이가 크다. 청와대의 ‘말발’이 이제 안 먹히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법안에 서명한 의원들조차 내키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명에 동참한 친이계 정태근 의원은 “부의 요구는 국회법에 따른 국회의원의 정당한 요구이지만 야당이 물리적으로 반대하면 강행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9월 정기국회 처리론’에 대해서도 “9월로 미뤄진다면 그때 가서 처리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친이계 다른 의원도 “청와대에서 수정안 부의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주장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면서 “청와대에는 수정안의 본회의 부의가 민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어서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명 불참 의원들은 세종시의 본회의 부의는 지방선거의 민심을 무시하고, 세종시 논란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뜩이나 다음 총선에서 당선될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에서 수정안 처리는 스스로 역풍을 자초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황영철 의원은 “수정안에 대한 민심이 지방선거를 통해 파악된 마당에 다시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명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친박계 전대 출마자 4명 끝내 조율안돼 친박계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전당대회 출마 후보를 최소 2인으로 줄여야 차기 지도부 내에 친박 인사 포진이 가능하다는 계산이지만, 이미 이성헌·이혜훈·한선교 의원이 독자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29일에는 서병수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며, 주성영 의원도 대구·경북 지역을 대표해서 나온다는 결심을 접지 않고 있다. 허태열 최고위원은 오전 친박계 중진회의가 끝난 뒤 “출마 후보를 제한하는 예선전 성격의 ‘컷 오프제’ 도입 논의가 당에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중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운 의원들은 예선에서 탈락해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다만 “그런 일이 없도록 후보등록일인 다음달 5일 직전까지 후보를 압축시키겠다. 그러지 않으면 다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박 후보들은 완강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는 이상 친박 후보 난립 사태가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출마를 선언한 이성헌·한선교 의원은 출마의 변에서 자신들의 출마가 모두 박 전 대표를 위한 충정임을 앞세웠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박 전 대표가 전화해 (출마를)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다. 박 전 대표의 동의 없이는 나올 수 없다.”(이성헌 의원), “대표께 (출마의 뜻을) 말씀드렸더니 ‘최선을 다하시라.’고 이야기해 주셨다.”(한선교 의원) 며 각각 박심(朴心)이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정체성 섞인 내 삶 궤적 종교화해 주인공과 닮아”

    “정체성 섞인 내 삶 궤적 종교화해 주인공과 닮아”

    ‘현대연극의 거장’ 피터 브룩의 작품 ‘11 그리고 12’가 마침내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탄성만 전해지던 피터의 연극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처음이지만, 공연은 20일까지 단 5차례뿐이다. 작품의 주연배우인 마크람 J 쿠리(65)를 17일 서울 논현동 숙소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11’이 세계 초연된 뒤 전 세계를 돌며 순회공연을 갖고 있다. ‘11’은 아프리카 말리 지방의 1930년대 실화에 토대한 작품이다. 기도문을 11번 외우느냐, 12번 외우느냐를 두고 일어난 끔찍한 종교분쟁을 다뤘다. 쿠리는 당초 12번 외우는 파에 속했으나 11번 암기파와 화해하는 종교지도자 ‘티에르노 보카’ 역을 맡았다. 종교 간 화해와 깨달음을 강조하는 핵심인물이다. ●“1930년대 아프리카 종교분쟁 실화 다뤄” →피터의 명성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지만 배우들까지는 잘 모른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태어난 곳은 팔레스타인, 자란 곳은 이스라엘이다. 1973년 영국 런던에서 연기공부를 했고, 운좋게 이곳까지 오게 됐다. 영어는 물론, 히브리어, 아랍어 등으로 연극뿐 아니라 TV,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작업해왔다. 문화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이스라엘에서 상과 작위도 받았다. 이스라엘이 아랍인에게 작위를 준 것은 처음이다. 짐작하겠지만 정치적으로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였다. 팔레스타인 태생이지만 집안은 크리스천이고, 국적은 이스라엘이다. 이런 혼합적인 정체성이 다양한 분야를 헤엄쳐 나오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이런 정체성 때문이었는지,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출가인 피터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연기하려 들지 말고, 평소의 당신처럼 하라.”였다고 한다.) →그런 정체성이 티에르노 역할과 잘 맞아떨어지는 듯한데, 피터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희곡 각색과 공동연출을 맡은 마리엘렌 에스티엔이 나를 좋게 본 것 같다. 200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스라엘 시인 마하무드 다르시 연출의 ‘벽화’(Mural)란 작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를 본 마리엘렌이 피터에게 추천했고, 지금까지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종교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어릴 적 이스라엘의 크리스천 스쿨을 다녔다. 일주일에 두번 반드시 미사를 보도록 했는데 강요에 의한 것이어서 반발심이 컸다. 이슬람, 유대인과 함께 생활해온 덕분에 다양한 종교와 예배를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모두들 엄격한 규율을 강조했고 저마다 자기 종교가 더 좋고 다른 종교는 나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있었다. 권력이나 정치와 밀접하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들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데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성장과정이 아마도 내 행동, 말, 외모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피터 역시 그런 점 때문에 나를 캐스팅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 생각이나 질문 없이 교리나 법률을 따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종교라는 것은 이런저런 것을 해야 한다.’는 주입은 사실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종교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는 것” →당신의 정체성만큼이나 출연진의 국적도 영국, 미국, 스페인, 말리 등 다양하다. -배우들의 출신지가 다르다 보니 배우들 모두 각자 자신이 경험한 사회의 백그라운드를 끌고 들어온다. 그런 부분들을 서로 설명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의미 깊다. 언젠가 피터에게 “이런 걸 한번 하고 나면 일상의 작업환경으로 되돌아가기는 무척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피터는 “그냥 전달하라(pass it on).”고 하더라. 그는 자신에 대한 신격화를 무척 싫어한다. 그냥 나름의 작업방식을 전달하고 전달받기를 원한다. →연극 얘기로 돌아가자. 식민지 상황 아래서 전통과 근대의 교차지점을 말하는 장면들이 무척 인상깊었다. 티에르노가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말하는 대목 등 말이다. -시계는 일종의 종교와 과학 간의 대립인데, 티에르노는 종교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시계 얘기는 굉장히 상징적이고 관객들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다. 내가 설명하기보다는 관객들이 직접 보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식민 지배국인 프랑스에서 들어온 시계를 기괴한 물건 취급하지만, 티에르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시계를 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자 암쿠렐에게 신학문을 배우라고, 프랑스정부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또 그들의 장점만 따서 배우라고 말하는 이도 티에르노다.) →신은 뭐냐는 제자의 질문에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라고 답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안 그래도 피터에게 대본을 직접 읽어 보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우니 당신이 읽는 걸 들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그랬더니 피터는 몇 주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러고 2~3주쯤 지나니 차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경험과 몸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고, 피터 역시 그러기를 바랐다. 극 중에서 티에르노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한 것도 바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라는 것 아니었나. (쿠리는 이런 내용의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했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봐서였다. 그는 “내가 꼭 종교지도자 같다.”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10년 전만 해도 이런 얘기 못했을 텐데, 지금 나이에는 해도 될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한국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인간을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매우 보편적인 얘기다. 그렇다고 심각한 내용은 아니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국적 공연팀인지라 여러 국가의 민속악기도 등장한다. 음악이 굉장히 좋다. 유머러스한 장면도 많으니 월드컵 때문에 경황 없더라도 우리 공연을 즐겨달라.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中 초기 피말린 권력투쟁… ‘對美전쟁’을 돌파구로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中 초기 피말린 권력투쟁… ‘對美전쟁’을 돌파구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은 절대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마오쩌둥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동이 틀 때까지 줄담배를 피웠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듯 중국과 한국 지도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갈수록 중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타이완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미군과 정면충돌을 피하고 싶었다. 그는 이번 전쟁의 승패가 가져올 정치적 여파를 꼼꼼히 계산했다. 미군이 참패를 맛볼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공내전을 치르느라 쇠약해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미국의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를 속속들이 파헤친 ‘콜디스트 윈터’에서 묘사한 중국 참전결정의 전야(前夜)이다. 중국 주력부대의 압록강 도하 시간은 1950년 10월19일 오후 5시30분이었으니 18일 밤 상황인지도 모른다. 진위를 떠나 핼버스탬은 마오쩌둥의 번민을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 중국군 개입은 한반도 내전을 순식간에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었다. ●마오 결정은 중국을 위한 선택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마오쩌둥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 숱한 해석과 이론이 난무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한국전쟁 참전의 대의명분은 ‘미국에 대항해서 북한을 돕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제7함대를 파견해 타이완해협을 봉쇄하고,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6월27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에 정면대항하는 이른바 ‘미·중 전쟁’의 선전포고였다. 중국을 목표로 한반도, 타이완, 베트남 등 3개 루트를 통해 침투하려는 미국의 ‘삼로향심우회(三路向心迂回)’ 전략에 맞서려는 의도였다. 마오쩌둥은 미국이 이들 3개 지역을 차지하고 나서 궁극적으로는 중국본토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참전 배경과 결정과정은 그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설득에 따라 공산진영을 지키려는 마오쩌둥의 고독하고 영명한 결정이라는 정도밖에. 그러나 최근 공개된 러시아와 중국 측 비밀자료를 보면 마오쩌둥은 신생 중화인민공화국과 자신의 운명을 건 주사위를 한국전쟁을 향해 내던졌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은 마오쩌둥의 독단적 선택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중국은 이 같은 사실을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전쟁의 명분과 결과만 얘기했다.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의 실마리는 ‘조선인 사단’의 귀환 동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개전 초 김일성이 파죽지세로 낙동강 전선까지 공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해방군에서 귀환한 3만 5000명 규모의 조선인 장병의 공이 컸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국 동북 3성 거주 조선족으로 구성된 2개 사단(2만명)을 통째로 북한에 넘겼다. 이들은 인민군 5, 6사단으로 편성됐다. 1950년에는 나머지 부대원 1만 5000명을 또 귀환시켰다. 이들은 국공내전에서 실전을 쌓은 백전노장들, 인민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마오쩌둥, 스탈린과 한국전쟁’을 쓴 화동 사범대 선즈화 교수는 “북한에 대한 마오쩌둥의 동정과 지지를 보여준 조치”라고 분석했다. ●조선인 해방군 3만여명 北에 넘겨 본격적인 참전준비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7월부터 치밀하게 이뤄졌음이 중국 측 자료에 의해 새롭게 드러났다. 참전이 최종 결정된 10월19일까지 넉 달 가까이 피 말리는 내부투쟁이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벌어졌다. 7월7일 ‘미국의 조선 무장침략 후의 정세분석과 중국의 국방 증강대책’이라는 국방군사 회의가 열렸다. 13일에는 한국에 투입될 30만명 규모의 동북변방군 창설이 결정됐다. 가상 적국은 미국이었다. 8월4일 당 중앙 정치국회의에서 마오쩌둥은 “미국은 한반도와 타이완, 베트남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교전할 작정이다.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전투규모가 크든 작든 혹은 원자폭탄을 사용하든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결사항전의 비장한 선언을 했다. 동북변방군은 출동할 때 ‘의용군’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조선인민군 복장을 착용하며, 인민군의 깃발을 내걸고, 주요 간부의 이름도 조선인 이름으로 바꿨다. 해방군 정예부대인 제4야전군이 주축이 된 의용군은 ‘준비된 군대’였다. 참전 초기 연합군을 무서운 속도로 밀어내며 연전연승한 것은 연합군의 실책도, 운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매복, 위장 등 한반도 북부 산악지형에 맞는 전술을 훈련을 통해 몸에 익혔기 때문이었다. 30만 의용군이 오로지 인해전술로 북진 중이던 13만 연합군을 물리쳤다는 건 냉전시대 교육의 산물이다. 9월 참전 구상이 세워졌지만 시기는 계속 연기됐다. 마오쩌둥도 저우언라이 총리와 린뱌오 등 지도부의 거센 반대를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중국의 문서보관소인 당안관(?案館)자료와 내부적으로 발간된 ‘건국 이후 마오쩌둥의 문고(文矯)’ 등에 따르면 중국 지도부는 혼란을 겪었다. 린뱌오는 “중국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을지도 모르고, 승리 가능성이 작다.”라는 이유로 출병을 반대했다.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일본 도요가쿠엔대학 지안롱 교수는 저서 ‘모택동의 한국전쟁’에서 10월4일과 5일 정치국 회의 참가자 중 찬성과 반대의 세력분포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찬성자는 마오쩌둥 혼자뿐이었고, 불명확한 사람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펑더화이 사령관 두 명이었으며, 나머지 7명은 반대했다는 것이다. ●中 독자출병 소식에 스탈린 눈물 그러나 마오쩌둥은 10월5일 정치국 회의에서 “어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어떤 곤란이 있더라도, 미군이 평양을 점령하기 전에 출병해야 한다.”라고 밀어붙였다. 펑더화이를 의용군 총사령관에 추천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세 번이나 번복된 참전이 최종 결정됐다. 이후 냉전체제가 해체돼 한국전쟁의 주역인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김일성 사이에 오간 극비문서들이 공개되기 전까지 중공군 참전과정의 진실은 서고 속에 묻혀 있었다. 김일성에게 베이징의 개입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크렘린은 계속 베이징 지도자에게 미루고 있었다. 중국의 참전소식은 나흘 뒤인 10월8일에야 평양에 전해졌다. 초대 평양 대리대사를 지낸 차이청원은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그것 잘됐다, 잘됐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마오 주석과 당 중앙에 나와 조선 당, 인민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해 달라.”라고 기뻐했다고 적고 있다. ’ 앞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으로 패주하면서 중국 망명정부 수립을 준비 중이던 김일성은 10월1일 ‘경애하는 마오쩌둥 동지’ 앞으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위험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직접 출동해 지원해 달라.”라고 애걸복걸하는 편지를 보낸 상태였다. 중공군의 참전결정이 차일피일 늦어진 것은 소련군의 공군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였다. 보병은 중국, 공군은 소련이 맡는다는 것이 애초 양측의 합의사항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 총리를 모스크바에 보내 공군지원을 요청했으나 ‘준비 불충분’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중국 측 연구자들은 이를 ‘스탈린의 배신’이며 추후 중·소 갈등의 뿌리가 되었다고 본다. 또 소련공군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의 독자출병소식을 들은 스탈린은 눈물을 흘렸다고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몇 년 뒤 마오쩌둥은 “스탈린은 나를 (자국이익만 생각하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로 의심했지만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된 1950년 겨울부터 이 의심은 사라졌다.”라고 회고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에 러시아어 통역장교로 자원입대한 장남 마오안잉(28)을 미 공군기의 폭격으로 잃었다. 마오안잉의 묘는 평남 회령군 ‘지원군 열사능원’에 있다. 36만명에 이르는 중국군 전사자들과 함께 묻혀 있다. 마오쩌둥은 만류하는 측근들에게 “내 아들이 가지 않는다면 인민 누구도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쟁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중국과 북한 양국의 우의는 혁명열사들의 선혈로 맺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中, 3년간 500만명 병력 투입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의용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중국 측 자료에 따르면 79개 보병사단과 12개 공군사단, 16개 포병사단, 10개 공병사단, 10개 전차연대 등 모두 합치면 200만~300만명에 이른다. 최고조에 이른 1953년 4월부터 7월까지는 일시에 130만명의 병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3년 동안 연인원 500만명이 동원됐다는 서방 측 자료도 있다. 중공군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36만 6000명이지만 비전투 사상자를 더하면 사실상 60만~90만명으로 추정된다. 미군 전사자 3만 3000명과는 비교 불가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쟁 참전은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이 됐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인 북한 편들기를 비판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생각은 60년 전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일본-타이완-한국전선에 대항하고 완충지대를 갖기 위해서는 설령 사고뭉치라고 하더라도 북한을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김일성의 우상은 스탈린에서 마오쩌둥으로 바뀌었다. 결정적인 순간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전쟁 전 소련 위주의 북한정책이 전쟁 후 중국위주로 전환됐다. 지안롱은 “정전협정 뒤 중국과 북한 수뇌는 언제라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특수한 관계가 계속됐다.”라고 설명했다.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던 마오쩌둥에게 한국전쟁은 터닝 포인트였다.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써 소련과의 동맹을 공고히 했고, 북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이 함부로 못하는 위협적 존재가 됐다. 인도차이나반도 문제 등에 대한 국제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1971년 타이완을 내쫓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는 발판이 됐다. 비록 ‘비기는 전쟁’으로 끝났지만 마오쩌둥의 도전과 모험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오쩌둥은 1953년 스탈린 사후 자신이 사망한 1976년까지 중국과 공산진영에서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했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 기자 joo@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20) 조설근·고악의 ‘홍루몽’

    [고전 톡톡 다시 읽기] (20) 조설근·고악의 ‘홍루몽’

    ‘홍루몽’의 지은이로 알려져 있는 조설근(曹雪芹·동상 1715~1763)은 청나라 난징(南京) 강녕직조(江寧織造·황궁에 물건을 공급하는 일)를 맡은 명문가의 귀공자로 태어났다. 강희제가 남방을 순시했을 적마다 그 집에서 묵었다고 하니, 이 집의 영화로움은 가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부귀영화는 잠시였고, 소년시절(옹정제 대)에 가문이 몰락하였다. 베이징으로 이주한 그는 불우하고 가난한 일생을 보냈다. 조설근이 창작해 놓은 전80회-처음에는 ‘석두기(石頭記)라는 제목이었다-를 이어, 고악(高 )이 후40회를 창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읽고 있는 120회본 ‘홍루몽’이 이로써 완성됐다. ‘홍루몽’은 480명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청대의 문화, 사회, 정치, 전통, 복식, 음식 등의 다방면이 그려져 있는 ‘중국 전통사회의 백과사전’ 격인 작품이다. 주로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 및 설보차(薛寶釵) 간의 연애와 혼인, 가부(賈府)의 흥망성쇠를 큰 줄기로 하고 있다. 여기서 반봉건·반청혁명 사상 및 인생무상설과 인생비극설, 애정비극설 등의 주제들이 도출된다. 학계에서는 ‘홍루몽’을 연구하는 학문을 ‘홍학(紅學)’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중과 연구자들의 광범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인간 세계로 내려간 돌 옛날옛날에 공공(共工)씨가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박아 하늘에 구멍이 났다. 이에 여왜(女?)씨가 급히 돌을 달구어 하늘을 기웠다. 그 때 하늘을 깁는 일에 쓰이지 못한 신통한 돌은 어느 날 문득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부귀영화를 누려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신선 세계의 스님과 도사에게 인간 세계로 보내달라고 조른다. 선사들은 만류한다. “저기 저 인간세계에는 진정으로 즐거운 일이 있지만, 그걸 오래도록 간직할 수는 없다네. 하물며 옛말에도 아름다운 것에는 부족함이 있고,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두 경구는 언제나 붙어 다니는 형국이니, 순식간에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기는 법이요, 사람도 달라지고 산천도 바뀌는 법이지. 결국에는 한바탕 꿈이 되고 만사가 공(空)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네. 그러하니 아예 가지 않는 게 좋아.”(1회) 돌은 재주가 남달랐을 터이나 하계에 마음이 가 있는 상태라 이 말이 귀에 쏙 들어오진 않는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꿈과 같다는 것, 한때의 부귀영화가 허망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눈앞의 그것을 좇아서 일생을 살아간다. 실제로 겪지 못한 일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한다고 모든 것을 납득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존재의 본성이 그렇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간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곳에서 길(道)이 만들어지고, 그 길을 걸어간다(修道). 걸어가면서 깨달아간다. 아, 그렇지 이게 삶이지. 그러므로 인간에게 일상은 도량이 된다. 한 번으로 완전히 득도할 순 없다.(그런 사람도 있고, 득도의 순간은 한순간에 판가름나지만) 하계로 내려가고 싶어하는 미련한-물론 신통방통하긴 하지만-돌처럼 ‘홍루몽’ 속 인물들도 단 한 번의 사건과 단 한 번의 예언으로는 인생사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수많은 꿈과 수많은 예언 및 징조들이 있었다. 그걸 되씹어 볼 시간도 없이 다른 일들이 터진다. 불초한 자손과 우매한 중생은 환몽(幻夢)에 도취되어 살았으니, 그들은 현실을 둘러싸고 있는 환(幻)의 그물을 알아채지도, 찢지도 못했다. ‘달은 차면 기울고 물도 차면 넘친다.’고 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도 했다. 초등학생도 다 아는 말이라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신선 좋은 줄은 알면서도, 오로지 부귀공명을 잊지 못한다!”는 말처럼, 그저 현실의 욕심과 편안함에 눈 가리고 아웅할 뿐이다. 그 눈가리개를 치워버리는 일! 그것으로 자신의 본성에 마주할 수 있다. ●바보, 사랑을 외치다 어쨌든 신통하지만 조금은 바보 같은 돌은 막무가내로 떼를 써서, 부채 끝에 매달기 딱 좋은 크기의 옥이 되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백옥으로 집을 짓고 금으로 말을 만들 정도로 권세를 휘두르는 가부의 귀공자 가보옥으로 환생했다. 그 인연의 징표인 옥을 입에 물고. 이러한 심상치 않은 탄생으로, 그는 세상에 없는 것 빼놓고 다 가진 가부의 절대 권력인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그는 홍진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감정들을 경험한다. 특히 그는 “여자는 물로 만든 골육이고 남자는 진흙으로 만든 골육이라, 여자아이를 보면 마음이 상쾌해지지만 남자를 보면 더러운 냄새가 진동한다.”고 할 만큼 여성의 아름다움과 행동거지 및 식견에 감탄했고, 수염 난 사내가 갖고 있는 가식적인 충효사상을 싫어했다. 그가 배운 세상의 아름다움은 8할이 여성이라는 존재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또한 그녀들의 낙화와 같은 운명에 세상의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등을 한데 맛보는 경험을 했다. 현실의 부귀영화를 쥐려고 하면 쥘 수 있는 처지였으나 사랑에서도 그렇고, 원치 않은 입신출세의 길도 그렇고, 보옥은 현실세계와 타협의 지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 다정(多情)도 병이런가, 자신의 옥마저 잃어버린 보옥은 정신줄을 놓고 만다. 바보가 되었다. 눈동자가 풀리고 옆에서 하라고 하지 않으면 문안인사도, 밥도 먹지 않는 상태까지 되었다. 바보도 병이다. 마음이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몸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랑의 고백, 대옥의 의심과 주위 어른들의 반대. 바보 보옥은 한마음을 그녀에게 줬지만, 할머니의 반대로 원치 않은 여인과 결혼해야 했다. 결혼식이 진행될 때 대옥은 죽고, 그렇게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어른들의 거짓으로 성사된 결혼은 대옥의 죽음 위에서 이뤄졌다. 결혼이라는 의식에는 죽음과 삶이 교차했다. 시간이 지나 보차를 사랑하게 된 보옥. 이 사랑의 결정체로, 쇠퇴한 가부를 다시 일으킬 이들의 자식은 새로운 질서와 운명에 대한 긍정이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고,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까마귀는 어디선가 운다. 이런 자연현상이 길한지 흉한지 점칠 수 없다.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자기 본성을 드러낼 뿐이니까. 인간만이 자연현상과 인간사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며, 가짜니 진짜니 하며 얽매이며 연연해한다. ‘홍루몽’에는 여러 번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짜가 진짜가 되면 진짜 또한 가짜요, 무가 유가 되면 유 또한 무가 된다.” 이 구절을 가짜와 진짜라고 확언할 수 없는 것, 그냥 음양이 끊임없이 하나가 다하면 다른 하나가 되는 변화의 양상만이 참되다는 식으로 해석할 순 없을까.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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