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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만에 작품활동 재개 소설가 송기원씨(인터뷰)

    ◎“더이상 게으름에 빠져있을 수 없어 시작”/창비 봄호에 자전적 단편 「아름다운 얼굴」 발표 작가 송기원씨(46)가 10년만에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지난 84년 단편소설 「처자식」이후 거의 절필상태에서 지내던 그가 자전적 요소가 많은 단편소설 「아름다운 얼굴」을 시작으로 소설가로 되돌아온 것이다. 『주위에서는 왜 소설을 안 쓰는지 모두들 궁금해합디다.그야 두말할 것도 없이 게으른 탓이었지요.그러나 이보다는 글을 못쓰는데 대해 더 이상 스스로 변명할 거리가 없더군요.인생의 오십고개를 눈앞에 둔 지난 설날 직전 출판사등 그동안 관여해왔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렸습니다.집안에 들어앉아 글쓰기만할 작정을 대고 있습니다』 그가 소설가로 돌아와 실로 오랜만에 내놓은 단편소설 「아름다운 얼굴」은 계간지「창작과 비평」 93년도 봄호에 게재된다.어린시절부터 90년 출판사를 그만두기까지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친 「의식의 상처」가 만들어진 과정을 담았다.때로는 고백체로,때로는 수필을 써나가듯이,또 어떤때는 전통적인 소설기법으로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자기 일에 치여 놓치거나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사람」이야기를 써나갈 생각입니다.다른 사람들 얘기를 쓰려했습니다만 먼저 내 얘기부터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번 작품은 앞으로 쓸 소설들의 「프롤로그」내지는 「총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이번 작품 서두를 보면 소설가로 돌아온 작가의 독백이 아련히 들려온다.『좀 엉뚱하지만 10년간의 공백을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잇게된 것도,가까스로 다시 소설을 쓸 작정을 하게된 것도 바로 이 아름다움 때문이다.아름다움과 자기혐오는 동격이다.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혐오를 견뎌내지 못하고 끝모를 나락으로 자신을 던져버릴때,자신을 온전히 포기해버릴때,거기에서 발견되는 것은 자기애,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소리가…. 그는 올해안으로 사춘기시절 고향의 장터에서 어울렸던 부랑아들을 소재로 「교양소설」같은 장편소설을 완성할 계획이다.이밖에도 의식의변화가 심했던 문학청년시절을 또 한권의 장편으로 엮어낼 생각도 가지고 있다.한마디로 올해는 자신을 정리하는 글들을 쓴다는 것이다. 『앞으로 3년동안 철저히 글에만 매달릴겁니다.매체에 구애되지 않고 글을 발표할거구요.양식이나 주제 모두 어느 한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쓸 겁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면 몇년째 구상해온 장편소설 「사람」도 이젠 머리속에서 끌어낼 요량도 대고 있다.그리고나선 역사소설도 쓰겠다는 작품청사진을 제시한 그는 특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황진이의 이야기를 소설로 담아내고 싶다는 의욕을 펼쳐보였다. 『나는 너무 깊이 숲에 든 나머지 민중운동이라는 큰 산은 보지 못한것 같습니다.그래서 당파성이나 분파주의 혹은 조직논리에 따른 비인간화 따위의 악목들만 본 셈인지도 모릅니다』그동안의 자신을 회고한 그는 민중문학권작가들이 운동권내부의 갈등에 눈돌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왜냐하면 시야를 넓혀 잃어버린 독자들을 되찾자면 이 길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74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로 동시에 등단한 그는 그동안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때」(83)「마음속 붉은 꽃잎」(90)과 소설창작집「월행」(79)「다시 월문리에서」(84)를 발표한 바 있다.
  • 첫 장편소설「서울에는 바다가 없다」출간 중견시인 정호승씨(인터뷰)

    ◎“10·26사건의 역사적 의미 소설로 재구성” 중견시인 정호승씨(43)가 3권짜리 첫 장편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를 내놓았다.지난 82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부터 언젠가는 소설을 발표하리라 예상되었던 터라 시가 아닌 「10·26사건」을 다룬 그의 첫 소설에 주위의 관심이 쏠려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1년반동안 이 소설에만 매달려 있었어요.「10·26사건」의 구체적인 사실들은 다 드러나있는 상태여서 이 소설속에서 새롭게 밝혀지는 것은 없습니다.이보다는 「어버이를 죽인 패륜아」라는식으로 평가돼온 김재규라는 한 개인을 다른 각도에서 그려냈습니다.그의 인간적인 면들을 부각시킨 것이지요』 「논픽션의 픽션화」로 자신의 첫 장편소설을 소개한 그는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이룬 이 역사적 사실을 소설적인 방법으로 재현시키고자 했다.그는 최근들어 박정희 전대통령을 그리고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이 사건의 역사적 의의가 5공세력에 의해 폄하돼 국민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유신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당시 암울했던 사회현실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습니다.이를 과거속에 묻어버린 기성세대에게는 그 시절의 뼈아픈 기억들을 되돌이켜보게하겠다는 의도도 담았구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는 김재규와 함께 아내와 이혼하려는 사진기자 김현국의 이야기를 양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김재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 것도 작가의 욕심이다.그는 「10·26사건」을 다른 방법으로도 조만간 천착해볼 계획을 갖고 있다. 조선천주교회사를 소설로 쓰고 싶다는 그는 이제 막 시작한만큼 앞으로 한동안은 소설만 쓸 생각이다.지난 73년 시단에 나와 20년동안 줄곧 시만 써왔다.이 작품의 제목도 지난 82년 출간된 자신의 시집 「서울의 예수」에 수록돼있는 시에서 따왔다고 살짝 일러준다.
  • 번역서 「중국우화」 출간 이용환경장(인터뷰)

    ◎“중국인 사고방식 알리려 노력”/우화통해 현대인에 교훈 전 아마츄어레슬링국가대표,유도대학졸업,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취득,대만 국립사범대학 자비연수,서예가,현직 경찰관…. 최근 「중국우화」(을지서적간)라는 번역서를 낸 서울중부경찰서 보안과 이용환경장(41)의 신상명세서이다. 『이 우화집을 통해 『느린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중국인의 실제주의적 사고방식의 규범을 한국인들에게 보여주려고 했어요.우리가 잘알고 있는 「만만디」와 뿌리를 같이 하는 이러한 중국정신이 우화와 고사에 가장 잘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키 1백87cm,몸무게 1백kg의 거구로 중부경찰서 형사계근무때 「고릴라형사」라고 불렸던 이형사의 외모를 보고서는 이같은 학구열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고등학교(리라공고)에 다닐때 덩치가 커다는 이유만으로 레슬링선수가 됐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습니다.유도대학재학시 국가대표로 뽑혀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그는 형사로근무하는 틈틈이 대학원을 다녔고 자신이 직접 체험한 범죄자들의 세계를 연구한 「청소년범죄실태분석과 윤리의식에 관한 조사연구」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또 평소 알고 지내던 대만출신 화교를 통해 생각지도 않았던 대만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초에 펴낸 「일본을 알자」에 이어 그의 두번째 저서가 되는 「중국우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편작,장량의 기우,새옹이 말을 잃다,창과 방패같은 57개의 짧은 우화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 북한,네팔서 밀수/외교관 연루 확인/네팔관리

    【카트만두 AFP 연합】 네팔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1백50만달러 상당의 은·가전제품밀수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 네팔관리가 17일 말했다. 이 관리는 네팔 남부 비르군즈 세관당국이 카트만두 주재 북한 대사관이 수신인으로 되어있는 한 컨테이너를 열자 밀수품이 나왔다고 밝히고 당국은 1백53만달러상당의 자동차 베어링·은·비디오 카메라·세탁기등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 북한,네팔서 또 밀수/은괴 1.7t·전자제품 대량 적발

    ◎대사관직원 도주 【카트만두 upi 연합】 네팔 세관당국은 16일 북한 대사관이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은,전자제품 등의 다량 밀수사건을 적발했다고 네팔 외무부와 언론이 밝혔다. 네팔의 브리군즈 세관은 구랍 1일 밀수품이 실린 컨테이너 트럭을 압류했으며 사건 발생후 북한대사관 관계자가 도주해 이날 북한 대사관측이 참관하지 않은 가운데 이 트럭의 화물을 개봉 조사한 결과,1천7백50㎏의 은괴와 전자제품등 밀수품을 발견했다. 네팔 주재 북한대사관은 이번에 적발된 밀수품에 대해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팔의 북한대사관은 이번 사건 이전에도 금·시계·마약 밀수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다.
  • 다이애나,“이혼” 결심/영지 보도… 두 왕자 양육권도 포기

    ◎대다수 한국인들,“곧 결별” 점쳐 남편과 별거중인 다이애나 왕세자빈(31)은 이혼을 원하고 있으며 두 아들의 양육권도 포기할 뜻을 갖고 있다고 영국 신문이 10일 보도했다. 대중지인 선데이 미러는 다이애나 왕세자빈 핵심 측근의 말을 인용,다이애너 왕세자빈이 지난 수개월간 숙고 끝에 결국은 이혼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윌리엄(10)과 해리(8)등 두 왕자의 양육권을 둘러싼 다툼도 그만두기로 했다고 전했다. 현재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이혼을 결심함에 따라 더이상 왕비 자리에는 연연치않고 있으며 왕실을 떠난 뒤에는 공적 활동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것을 고려중이라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최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왕세자 부부가 조만간 결별할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찰스 왕세자(44)가 왕위 계승을 포기,장남인 욀리엄 왕자에게 이를 물려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 일 누드스타 리에 파혼 위기/스모선수 다카하나다측서 결별 결정

    지난해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누드집 「산타페」의 미야자와 리에(19)와 인기 스모선수 다카하나다(20)가 파경의 위기에 처했다고 일본의 일간스포츠지가 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1면에서 다카하나다가 지난 연말 가족회의에서 지난 해 발표했던 약혼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파경은 일본스모협회 관리들이 스모계의 거물이자 다카하나다의 부친인 후지시마에게 아들이 대중스타가 아니라 스모선수라며 보다 엄격한 지도를 요청했고 이에따라 후지시마가 가족회의를 소집,아들에게 『결혼을 원하면 당장 스모를 그만두라.그대신 부자관계는 끝장』이라며 결혼포기를 강요한데 따른 것이라고 신문은 밝혔다. 한편 파경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뒤 후지시마는 교도통신에 『그 보도에 대해 말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우리(부자)는 곧 시작될 스모시합만 생각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리에의 모친인 미츠코여사는 『전적으로 낭설』이라며 이같은 내용에 대해 들은 바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두 사람은 문제의 파티후 아직 만난 적이없으며 다카하나다는 오는 9일 시작될 새해 스모대회를 앞두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 신정/한복 맵시로 정초 분위기 만끽

    ◎떡국·산적 등 맛깔스런 우리음식 준비/다과대접땐 비스킷보다 한과가 제격/남/대님은 안쪽 복숭아뼈 위서 2번 돌려매/여/속옷 갖춰서 입고 토털패션 연출이 제멋 새해 1월은 양력설과 음력설(22일)이 함께 들어있어 새해를 맞는 설렘과 함께 친지방문,찾아오는 손님맞이로 주부들에겐 바쁜 달이 될것 같다.알뜰하면서도 격조있는 상차림,예절바른 한복맵시로 바쁜 가운데서도 즐거운 정초분위기를 느껴보자. ▷상차림◁ 우리 어머니들은 한꺼번에 많은 손님들이 몰려와도 빠른 시간내 음식을 내는 지혜를 발휘하곤 했는데 한과와 차등 다과와 만두 흰떡 육수등을 미리미리 준비해두었기 때문이다. 요리연구가 한정혜씨(한정혜요리학원장)는 『정초 손님들은 여러곳을 들러 음식을 대접받고 오는 경우가 많아 과다한 상차림보다는 떡국과 쇠고기 산적,알맞게 익은 김장김치정도를 식사상으로 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한정혜원장의 도움말로 손님들이 갑자기 방문해도 당황하지 않고 준비하는,경제적인 상차림 요령을 알아본다. □떡국…설명절의 대표적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다.미리 준비해 둘 육수는 값비싼 소고기보다는 큼직한 닭고기를 통째 오래 삶아 이용하는 것이 좋다.삶은후 국물은 가재(면보)를 깐 체에 받혀야 기름이 뜨는 것을 방지할 수있다.고명으로는 삶아진 닭고기를 찢어놓고 알지단과 소금물에 데친 당근을 채친뒤 랩으로 씌어 놓는다.또 푸른색을 내기위해 파대신 미나리를 썰어놓고 음식낼때 살짝 데쳐내면 갖가지 고운 색깔의 맛깔스러움을 연출할 있다. □쇠고기 산적…작은 꼬챙이에 두께3㎜,넓이1∼1·5㎝,길이6㎝정도로 썬 소고기와 쪽파 당근,표고나 느타리버섯을 끼워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손님방문시 준비해둔 양념에 묻혀 구워낸다.양념(소고기 6백g당)은 간장4큰술,설탕2∼3큰술,청주2큰술에 마늘·파 다진것,깨소금 참기름 후추를 적당히 쳐서 만든다. 요구르트드레싱을 준비해 야채샐러드를 내놓아도 육류음식과 조화돼 별미다.양상치는 값이 비싸므로 재래상치와 깻잎,큰파 채친것,배추속,오이등 값싼 우리야채를 내는 것도 좋다. 요구르트드레싱을 만들때는 샐러드기름과 토마토 케첩·요구르트를 각각 3큰술,1작은술 넣고 식초(2큰술)와 양파간것(1큰술),꿀(2분의1작은술)을 섞은뒤 거품기로 젓고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다.먹기 직전 흔들어서 야채위에 뿌린다. 다과대접을 할때 비스켓,커피등을 내놓으면 성의가 없어 보이므로 쉽게 만들수있는 매작·약과같은 한과와 수정과·유자·모과차등 우리고유의 차를 내는 것이 좋다.특히 모과차는 사기주전자나 파이렉스주전자에 40분정도 팔팔 끓이면 아주 고운 분홍빛이 우러나온다.여기에 잣을 몇개 띄우면 멋스런 식탁분위기엔 그만이다. ▷한복입기◁ 몇해전만 해도 4계절용 한복이 인기였으나 요즘은 계절에 따라 맞춰입는 추세가 강하다.설명절에는 친지방문등 예의를 갖춰야 할 자리에 주로 나가므로 초록색 다홍색등 고전적색깔과 잉크색 군청·회색 녹두색등 중간색계통의 아래위 다른색 배열색상으로 입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복은 평시에는 거의 입지 않아 자칫 잘못입으면 맵시가 나지 않을 뿐더러 우스운 꼴이 되기 쉽다.요즘에는 고름 허리끈 대님을 각각 매듭단추 벨트 단추로 처리,전통한복의 불편함을 없애거나 양장 모양을 딴 개량한복이 많이 나오고 있으나 한복연구가 이리자씨는 『명절때만이라도 개량한복보다는 전통한복을 입어 우리의 옷을 정확하게 입는 법을 알아둬야 한다』고 말한다. 이리자씨의 도움말로 한복 맵시있게 입는 법을 소개한다. 성묘나 세배,민속놀이의 활동량과 맵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여자한복의 경우 속버선 속바지 속적삼등 속옷을 잘 갖춰 입어야 된다.두루마기는 남녀 모두 갖춰 입어야 하는 옷인데 특히 남성들은 동저고리나 마고자차림으로 밖에 나다니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방한용인 여성의 두루마기와 달리 남자두루마기는 의례용이므로 실내에서 손님을 맞을 때도 두루마기를 벗지 않아야 한다. 여자한복의 경우 안에 페티코트를 입어 지나치게 치마를 부풀리는 것은 설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속바지­속치마를 입되 속치마의 길이는 치마보다 2∼3㎝정도 짧게,치마는 걸었을때 버선코가 보일듯 말듯한 길이로 해서 뒤쪽에서 20㎝정도 겹쳐지도록 입어야 속치마가 보이지 않는다.남자한복은 바지허리와 대님 매는 법이 어렵다.허리는 오른쪽 사폭을 왼쪽으로 접은뒤 바지가 풍성한 멋이 있도록 볼륨을 조절한뒤 허리끈을 돌려맨다.대님은 작은 사폭 시접선을 복숭아뼈 안쪽에다 맞춰서 바짓단을 밖으로 한바퀴 돌려 제자리에 오게한 후 대님한쪽을 복숭아뼈 안쪽에 대고 옷고름매듯이 고를 진다음 두번 돌려 맨다.대님의 길이는 6∼7㎝가 적당하다. 하얀 목도리를 하면 중후한 멋이 한결 살아나는데 이때 두루마기 겉으로 목도리를 내지말고 하얀 동정의 멋스러움을 살리도록 한다. 이밖에 여성은 옛날 여인네들이 겨울철 외출시 사용한 조바위,아얌등 머리장식과 비단신 갖신 고무신등 토털패션을 연출해야 제멋이 난다.아이들도 운혜(여아)태사혜(남아)등의 정통신발을 갖춰주는데 동대문 남대문시장등 한복전문상가에 가면 8천∼2만원선에 구입할 수있다.그러나 성인남자는 구두를 신어야 어울린다.
  • 랑탕 리룽봉 등반/한국인 1명 사망/네팔인 2명도

    【카트만두 UPI 연합】 네팔의 해발 7천2백34m 랑탕 리룽봉 등반에 나섰던 한국인 1명과 네팔인 2명이 지난 18일 등반중 사망했다고 네팔 관광부가 21일 발표했다. 관광부는 한국인 대학생 김진현씨(25)와 네팔인 비르 타망(33),도르제 타망씨(33)등 3명이 지난 18일 선발대 캠프를 떠나 정상정복에 나섰다가 해발 6천m 지점에서 동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미 남성들,일보다 가정 중시

    ◎“사회활동 더이상 남성의 상징 아니다”/좋은 아버지·남편되려 고위직 사임도 미국 굴지의 영화제작사인 파라마운트의 회장 브랜든 타티코프씨(42)가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친 그의 딸과 시간을 보내기위해 최근 사임했다. 할리우드의 최고 경영인의 한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출세보다 가정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회장직을 미련없이 버린것은 직장생활과 사생활에 대한 미국남성들의 관점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고위 관리나 고위 경영진이 가족과 관련된 문제로 사임한다는것은 한때 상상할수 조차 없었으나 지금은 미국에서 자주 볼수 있는 일이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금융기업의 하나인 피델리티 마젤란 기금의 전회장 피터 린치씨 역시 가족과 더많은 시간을 보내기위해 지난 90년 46세의 나이로 13년동안 지켜왔던 회장직을 그만두었다.게다가 그의 후임자 모리스 스미스씨는 단지 2년동안 재직하다 사임하고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옮겨가 버렸다.또한 뉴욕시 경찰국장 리 브라운씨는 병든 부인을 돌보기위해 올해초 갑자기 사표를 냈다. 이같이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을 보다 적극으로 하려는 남성들의 자세는 비단 고소득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직장 남성들에 확산되고 있다.최근의 조사로는 미국의 남성들이 자신의 시간을 몽땅 일에 바쳐야 하는 직장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듀퐁사가 지난 91년에 실시한 내부조사에서 남자직원의 56%가 융통성있는 작업 스케줄을 선호하고 있으며 40%는 보다 융통성있는 일자리로 옮겨갈 것을 생각하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또 미국전신전화회사(ATT)에서는 현재 가족을 위해 휴가를 택하는 직원의 50명당 한명이 남자직원들로 알려졌다.10년전에는 이 비율이 1백대 1이었다. 남성의 역할은 돈을 벌어오는 것이고 여성은 집안일이나 돌보는 것이라는 종래의 생각에 변화가 온것은 최근 맞벌이 가정과 편부모 가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그결과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활동이 남성의 상징이라거나 남성의 신성한 역할이라고 생각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 「민주·전국련」 제휴 찬양하는 북의 저의(사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가 북한의 대남전략,다시말해서 남한을 적화시켜 통일하려는 책동이다.남북대화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남침용 땅굴을 판다든지,「남한조선노동당」이라는 대규모 간첩단을 남한내에 구축한 일들이 바로 북한의 변하지 않은 대남적화전략인 것이다. 북한정권의 일관된 대남전략은 최근들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그들은 남한의 대선정국에 편승해 남한사회의 혼란과 북한체제의 결속,그리고 남한에서의 소위 친북 「민주연합정부」의 수립을 겨냥한 갖가지 형태의 모략선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선거일이 임박해옴에 따라 북한은 대남흑색방송인 「민민전」방송을 통해 민주당과 「전국연합」의 정책연합에 환영의 뜻을 표시한데 이어 「전체국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선거관련 대남 모략선동에 혈안이 되고 있음을 내외통신은 전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도대체 어떤 현실인식아래 그따위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대답은 간단하다.우리 대선정국의 허점을 노려 이쪽을 최대로 교란시켜 보려는 목적인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북한이 왜 민주당과 「전국연합」의 정책연합을 즉각 환영하고 계속해서 지지를 보내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알게된다.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민주당과 연대한 「전국연합」은 전로협 전대협등 38개 민주민족운동단체의 총연합체로 재야의 중심세력이다.재야운동권 가운데는 온건세력도 있으나 대부분이 반체제적 이념체계와 투쟁노선이 극력·과격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대다수가 크게 거부감을 느껴온것이 사실이다.더욱이 재야운동권의 조직안에는 「주사파」와 같은 북한노선에 앞장서서 활동하는 세력들이 엄존해 있다.이들이 공공연하게 주창해 오고 있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혁명을 통해서라도 민중민주주의 체제등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주사파」는 지금까지의 이념체계와 투쟁방식에 있어서 북한의 대남전략지휘부가 내보내는 라디오방송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그러니 북한정권이 민주당과 「전국연합」의 연대를 환영하지 않을리가 없다.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재 선거마당에서온건을 위장하여 맹렬한 활동을 펴고 있는 「전국연합」에 대해 저쪽에서 어떤 실제적인 지원이 있을수도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확언컨대 이제 우리가 분명히 해야할 것이 있다. 「전국연합」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재야단체가 그나마 사려깊은 행동을 하지않을 경우 북한정권의 대남적화전략에 깊게 말려든다는 것을 알아야한다는 점이다. 이미 중앙선관위도 「전국련」이 북한의 「환영」저의대로 특정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선거운동을 불법이라고 유권해석한 이상 더 이상의 우려와 의혹을 사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 ’92우수발명전 상공장관상 수상 심상옥씨(인터뷰)

    ◎분필지우개 가루 안날리고 털어/“교사·학생 건강에 도움됐으면” 『학생들이 칠판지우개를 창밖 건물벽에 치며 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지요』 92전국우수발명품전시회에서 칠판지우개 털이개로 상공부장관상을 탄 옥일산업대표 심상옥씨(44)는 교사나 학생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아이디어를 실현하기위해 10여년동안 다니던 건설회사도 그만두었다. 『사실 생소한 일에 뛰어드는 것은 성공의 기쁨보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지요.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지난3월 실용신안등록을 한 칠판지우개 털이개는 직사각형의 통 안에 지우개를 넣고 회전손잡이를 돌리면 분필가루가 자동으로 털린다. 『분필가루가 잘 털리게 두개의 십자형 기어를 사용,한번 손잡이를 회전시킬때마다 기어에 연결된 플라스틱판이 8번 지우개를 칩니다』 이 개발품에는 분필가루를 담는 함과지우개를 다 털고 꺼낼때 분필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하는 막이판등이 설치되어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기어의 마모방지와 함께 지우개를 치는 플라스틱판을 만드는 일이 였지요』 막대기와 합판등을 이용해 지우개를 털어보았으나 분필가루가 제대로 털리지도 않고 아래로 떨어지지도 않아 애를 먹었다. 그러던 끝에 구멍이 많이 난 유연한플라스틱판과 마모를 막을수 있는 특수플라스틱을 사용한 기어를 생각해 냈다.이것이 현재의 제품으로 지금까지 4만여개를 팔았다.
  • “당선땐 단임,낙선땐 은퇴”/김영삼후보 관훈토론 일문일답

    ◎“정치자금 기득권층 대변한적 없다”/해직교사문제는 법질서 차원에서 해결 민자당의 김영삼후보는 1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관훈클럽 초청 특별기자회견을 가졌다.3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이날 특별회견에서는 이광훈 경향신문논설위원실장,정종문 동아일보수석논설위원,최청림 조선일보편집국장대리,성병욱 중앙일보논설주간,이성춘 한국일보논설위원등이 대표질문을 벌였다.이날 회견의 일문일답내용은 다음과 같다. ­회견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국회와 정부내에 「선거제도개혁특위」를 두어 각종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고치겠다는 내용이다.대통령제하의 선거구제 개혁인지,내각제를 전제로 한 선거구제 변경인지. ▲무슨 제도든 완벽한 것은 없다.지금 현재 선거구제,즉 소선거구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든가 여러가지 문제를 이야기하는 계층이 많다. 이에 대해선 많은 의견교환이 필요하다.그래서 국회와 정부내에 기구를 두어 선거제도를 개혁해 국민분위기를 바꾸고 돈 적게 드는 제도 마련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내각제와 선거구제 변경은 무관하다고 했는데 대통령제하에서 선거구제도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내각제를 생각하고 있는것 아닌가. ▲전혀 사실과 다르다.내각제를 고려해 선거구제를 바꾼다는 것은 생각한바 없다.다만 소선거구제라 해도 지금과는 다른 변형된 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향후 과제로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돈 적게 쓰고 민의를 더 잘 대변하기 위해 국민의 총의를 모아보자는 것이다. ­선거구제도에 대해 아직 결론을 안내렸다 하더라도 복안이 있으면 이야기해달라.우리 선거사에서 소선거구제와 1구2인제는 둘다 돈 많이 드는 선거로 판명되어 이제 남은 것은 중대선거구제밖에 없지 않은가.그리고 소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바꾸더라도 전국구제도를 그대로 둘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전혀 복안을 갖고 있지 않다.다만 국민의 중의를 모으고 여러분같은 지성인과 정치권을 포함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고치겠다는 것이다.의견을 모아보겠다는 것이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대선이 진행중인 시점에서 선거구제변경을 검토할수 있다고 한것은 내각제유인전술이 아닌가. ▲분명히 말하겠다.내각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민자당은 금권선거의 주범으로 국민당을 공격하고 있다.그렇다면 민자당은 과연 깨끗한 선거를 하고 있다고 자신하는가. ▲나는 오랜 야당생활동안 금권·관권선거에 시달렸다.4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낙선까지 했다.그렇기에 부정선거에 대해선 단호하다.솔직히 말해 현재 민자당의 돈사정은 아주 어렵다.쓸래야 쓸수가 없다.또한 관권선거도 국민의식상 불가능하다.금권선거에 대해선 국민들이 누가 돈을 많이 쓰는지 알고있다. ­항간에는 김후보가 업계로부터 수천억원의 정치자금을 받고있다는 말도 있으며 기득권층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오랜 정치과정동안 친구들로부터 돈을 받은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간까지 예금을 한적이 없다.돈이 들어오면 정거장처럼 잠시 있다 지나가는 정도였다.그러나 결코 기득권세력과 결합돼 특정계층을 대변한적은 없다. ­김후보는 3당합당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노태우대통령·김종필씨와 내각제를 합의해놓고도 나중에 공개적으로 내각제를 거부했다.무소속당선자를 절대 입당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해 놓고도 총선후 무소속당선자는 물론 타당출신의원들을 직접 나서서 받아들였다.이런 것들이 김후보의 정직성·진실성과 어떤 관련이 있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정직을 최선의 덕목으로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런 생활을 고수하겠다. 내각제를 위해 통합했다는 일부 신문의 보도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그때 나라가 완전히 무너질지도 모를 무정부상태에 처할 정도의 상황에서 어떻게 내각제를 전제하겠는가.나중에 통합문제가 정해지고 나서 이런 것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라는 의견이 나왔고 솔직히 그때 생각으로 내각제를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각제개헌등은 야당이 먼저 주장하고 국민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또 무소속과 관련해선 국가적 차원에서 집권당이 과반수 의원을 확보못했다.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적 차원이라는 전제로 해 영입에 나섰던 것이다. ­김후보는 정직을 전매특허처럼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김후보는 87년 대선후 『13대 대선은 원천부정』이라며 정권타도를 천명한바 있으나 3당통합을 했고 내각제 합의각서설이 나돌때 절대 그런일이 없다고 했다가 사본이 공개되자 『내각제를 추진하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것』이라고 했는데. ▲13대총선후를 생각하기 바란다.그때 2년동안은 무정부상태였다.화염병과 데모대,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았고 경제는 그때 망가졌다.그러한 상태로 나갔다면 헌정중단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때문에 3당통합을 통해 이만큼 나라를 안정시킨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이다.비밀로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비밀로 했어야 한다.둘 사이의 비밀을 폭로한 사람이 나쁜사람이다.이를 정직성과 연관시키면…(말끝을 흐리며)한마디로 배신이다. ­한국병 치유를 공약으로 내거셨으나 합당 이후 집권당 대표로서 소위 한국병을 만드는데도 책임의 일단이 있지 않은가. ▲일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나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일부 인사가 민자당병이라고 하나 지금은 남을 탓할 때가 아니다.천주교에서 내탓이라고 하듯이 한국병 중에서도 가장 나쁜것은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데 있다. ­해직교사등 전교조문제에 대한 입장은. ▲해직교사문제는 민주주의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게 중요한 만큼 이 차원에서 해결토록 하겠다. ­노대통령과 김후보 관계는 합당이후 다정함과 갈등의 반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지명을 통해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경선과정을 반드시 거쳐야한다고 노대통령에게 건의했다.그리고 경선을 정정당당하게 하면서도 노대통령이 김영삼대표를 지지한다는 명확한 의사표시를 요구했다.하지만 노대통령은 끝내 중립을 지킨다면서 그렇게 안했다.앞으로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차기대통령후보경선에서 반드시 「누구를 지지한다.경선을 공정하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바로 그것이 민주주의 전통이기 때문이다.또 중립은 내가 먼저 요구했다.정권의 정통성과 국민의 신뢰를 받기위해 중립내각하에 공명정대하게 대통령에 선출되는게 정당한 방법이라 생각했다.그러나 노대통령에게 탈당까지 해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노대통령이 탈당의사를 밝혔을때 굉장히 망설였다.그래서 명예총재는 그만두더라도 평당원으로 남아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노대통령이 끝내 거절,「정 그렇게 하겠다면 하십시오」라고 해버렸다.(웃음) ­3당합당으로 좋은 점도 있었겠으나 국민들이 보기에는 통합후 민자당이 허구한날 집안싸움으로 실망 덩어리로 돌변했었는데. ▲통합후 민자당의 모습에 대해선 국민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통합후 나를 대통령후보가 되지 못하도록,나를 제거하려는데서 문제가 생겼다.그같은 파도를 헤치고 내가 이긴 것이다. ­앞으로 노대통령과의 관계는.차기정부는 6공과 어떻게 되나. ▲차기정부는 6공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노대통령은 전임대통령으로서 법이전에 인간적인 면에서 예우하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김후보는 주택·자동차등 17억4천만원의 재산을 공개했는데 유가증권·현금·귀금속·골동품등이 빠져있다.「정직한」재산공개를 해달라. ▲나는 골동품등에 전혀 관심이 없다.친구들이 자금을 지원하면 바로 당에 전하거나 민주인사에게 건네줬다. ­3당합당이후 2인자가 정보정치피해자라는 것은 이상하다.경선때 박태준씨가 안기부장을 만나고 경선을 포기했다.그렇다면 김후보는 정보정치의 가해자가 아닌가. ▲정보정치에 가장 시달려온 사람이 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경선때 문제는….세상이 이상하니까 이상한 일도 많은 것이다. ­CD사건과 관련,민자당이 정치자금을 조달하려다 일어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격앙된 목소리로)말도 안되는 얘기이다.정치인중에 증거도없이 무책임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정치 이전에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선되면 친인척관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둘째아이 가지고 말하는 것같다.아버지가 대통령 하려는데 아들이 도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다른 후보의 자식들도 아버지를 돕고 있는데 언론이 너무 과대포장 하는것 아니냐.(좌중웃음) ­김후보는 이번이 대선재수이다.실패하면 또 도전할 것인가. ▲이번 선거기간 동안 전국을 돌아보니자신감을 갖게됐다.나 자신이 국회의원직을 내놓은 것은 다시는 국회의원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대선도 이번이 마지막이다.떨어지면 정치를 안할것이다. ­지난 80년 신군부가 득세했을때 시중에는 김후보 여성스캔들에 관한 괴문서가 나돌았다.이에대해 해명해달라. ▲공작정치의 전문가가 있다.안기부에서 괴문서를 만들었다.누가 했는지 안다.지금 그같은 짓을 했던 사람이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3당후보의 TV토론에 응할 것인가. ▲나는 관훈클럽토론회에 최다인 6번 나온 사람이다.토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다.TV토론을 안한다고 한적이 한번도 없다.다만 지난5월부터 토론을 하자니까 천천히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선뜻 응하지 않았다.따라서 TV토론을 기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실무진영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 재보는 재미(외언내언)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교육위원들이 의자에 앉아서 「버티기」를 했다는 보도에 접하며 이런 일은 안 일어났어야 했다는 마음이 들었다.그렇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그런 실력행사가 그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서울시의회 문교위의 교육청감사를 저지할 수 있었다고 하니 지나간 태풍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그 며칠만에 기어이 시의회의 문교위원회는 교육청 행정사무감사를 재시도한 모양이다.집요하다. 지역구사람들에게 시달리고,품위문제를 들어 사회에서는 지탄받고,걸핏하면 삿대질이나 하면서 개점휴업상태에 있는 국회를 보며 때마침 초선을 한 한 선량에게 그래도 국회의원이 매력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던 일이 있다.평소의 그를 미루어 보면 『별로 재미없어서 고만두고 싶다』는 대답이 나올 법해서 물어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소 만족한 얼굴로 『그런데 그 국무위원 불러다 호통치는 재미는 있습디다』하는 것이었다.감사를 하는 재미를 뜻하는 것이다.재보는 재미일 것이다.작건 크건 정치에 뜻을 둔다는 것은 이런 재미를 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시의회의 문교위원들이 교육청 행정감사를 어떻게해서라도 강행하려는 것은 그런 기회를 하나라도 놓치고싶지 않아서일 것이다.그러나 법을 놓고 보면 이 부분은 아무래도 전문기구인 교육위원회에 조사권한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것같다.그저 「특정사안」이라는 단서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시의회 문교위원들이 강행하려고 하는 일반행정감사는 그 단서조항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은가싶다. 특정사안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거쳐야할 절차가 있고 시민들이 다함께 납득할만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어쨌든 옛스승을 연상케 하는 교육자출신의 교육위원들이 노해서 반대하는 모습도 보기 안쓰럽고 할일많은 일반행정을 젖혀두고 자치기구들이 이런 일로 큰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도 보기에 안좋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5)

    ◎유년시절:3/해방후 5차례 우상화단계 격상/첫 선전책자에는 “군사놀이 즐긴 아이”/이번 회고록선 “5살때 지원사상 체득”/투쟁정신 등 보태 “타고난 수령”으로 포장 북한이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김일성의 어린시절」과목에는 앞에서 말한 (1)애국심,투쟁정신 (2)영웅성 이외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3)효성…김일성은 썰매타기를 하면 바지가 해진다고 그만두려 하였다.(그 효성에 감동한 어머니는 똬리를 만들어 그가 마음놓고 썰매타기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었다) ○효성·우애 등 부각 그는 할아버지가 가꾼 복숭아를 남이 먼저 따지 못하게 하고 그것이 익었을때 제일 큰 것을 할아버지에게 가져다 주었다. (4)약속…외갓집에 갔을때 모친이 점심때 꼭 돌아온다고 한 말을 곧이 듣고 모친이 돌아올 때까지 늦도록 기다렸다. (5)우애…할아버지가 삼아 준 귀한 벼짚신을 친구에게 주고 자기는 맨발로 돌아온 일이 몇번이나 있었다. (6)절약…김일성은 언제나 짚신을 신었는데 군사놀이를 할때는 신바닥에 물을 주어 신고,이짝 저짝 엇바꾸어 신었다. (7)꿈…여름에 소나기가 와서 무지개가 비꼈을 때 그는 집으로부터 무지개를 잡으러 만경봉까지 달려갔다. (8)호기심…부친이 집에 가져 온 축음기에서 개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거기에 개가 숨어 있는가 어떤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 소리판을 깨보고 나팔통을 뽑아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 다음에 바늘에 꽂혀 있는 쇠통을 만져 바늘을 손으로 다져보고 쇠통에 달린 공명판을 칼끝으로 뚫었다. (이렇게까지 하여도 부모는 오히려 그를 대견하게 여기고 축음기가 소리 나는 이치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9)승부…나이가 세살 더 많은 아이와 씨름을 하여 비기자 안걸이를 연구하며 끝내 이기고야 말았다. (10)애향심…우리 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을 다른 아이는 꽃이라든가 나비라고 하였을때 김일성은 만경대가 제일 아름답다고 주장하였다. (11)군사훈련…다섯명 이상 모여서 군사놀이를 할때 번호를 잘못 부르는 것을 알고 산가지놀이를 하며 셈세기를 연습시켜 끝내 번호를 맞추도록 하였다. (12)대장…그는 군사놀이에서 언제나대장을 하였다.그들은 이 놀이를 두편으로 갈라서 하였는데 김일성은 항상 「왜놈」과 싸워 반드시 이겼다. (13)새잡이…그는 참새를 덫으로 잘 잡았다. (14)증오심…추수 때 지주 아들이 와서 만경대 아이들이 수숫대 총을 가지고 군사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업신여기자 김일성이 달려가서 그를 떠받았다. 이상 「무지개 비낀 만경대」에 나오는 김일성 어린시절의 「사적」들을 항목별로 하나씩 소개하였다.요컨대 북한에서 가르치고 있는 「사회주의 도덕」의 내용은 이러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세기와 더불어」를 보면 김일성 어린시절의 우상화는 이전보다 더 격상되었다.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이다. ○부친가르침 일관 「나의 아버지는 지원의 뜻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지원이란 문자 그대로 뜻을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뜻을 원대하게 가지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별로 특이할 것은 없다」 「온 나라 백성들을 깨우치고 불러일으켜야만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데 이 일은 하루이틀에 성취할 수 없다.그래서 뜻을 멀리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의 손목을 잡고 만경봉에 오르내릴때부터 이런 말씀을 자주 해주었다.아버지의 가르침은 애국주의사상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김형직은 아들에게 자신의 지원이라는 교육사상에 따라 「국권회복」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애국주의교육을 하였다.김일성은 만경봉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김일성 어린시절 신화」의 형성과정을 필자가 더듬어 온 내력에 비추어 생각하여 보면 대체로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해방직후 한설야는 김일성과 그 일가들로부터 유소년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만경대」란 책을 써서 과대선전하였다.그것은 앞에서 일부 반영된 썰매타기라든가 군사놀이 축음기를 파괴한 이야기나 동네 아이들속에서 「대장」이었다는 한갓 어린이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 64년에 박상혁은 이 이야기들보다 추상적인 애국심·투쟁정신같은 개념을 동원하여 김일성이 「타고난 수령」이라고 선전하게 되었다.68년에 백봉은 「수령」이 태어나자 그 부모가 「자장가」같은 노래까지 지었다고 하였고 82년에는 만5세짜리 김일성이 한문이 아닌 국문으로 「조선독립」이란 글자를 쓸 수 있도록까지 우상화의 수준을 높였다. ○추상적 사상까지 그런데 이번 회고록은 애국심·투쟁정신같은 「개념」보다 한층더 추상적인 「사상」을 가져왔다.김형직이 아들에게 「지원」이란 사상으로 「국권회복」에 나서도록 교육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리하여 김일성은 사실은 어떻든간에 만5세까지 「지원사상」을 전수받은 「수령」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북한의 인민학교 학생들은 이렇게 조작된 김일성 어린시절 이야기로 그에 대한 충성과 효성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①「무지개 비낀 만경대」26∼85면 ②「세기와 더불어1」15∼17면
  • 북경∼서울의 앞날/한진건 북경대교수 서울신문 47돌 특별기고

    ◎황해경제 한·중 축으로 대도약/경쟁아닌 보완관계로 호혜기반 강화/경협 우선,문화 등 교류폭 점차 확대를 지난 8월 중국과 한국간에 이뤄진 수교는 참으로 감격적인 일이었다.중국인들로서는 오랫동안 바랐던 일로 모두가 마음속으로 매우 흡족해했다. 수교를 계기로 양국간에는 기존의 경제무역 교류는 물론 문화예술방면의 교류도 봇물 터지듯 활발해지고 있다.또 두나라가 가까워짐에 따라 동북아시아 뿐아니라 전세계 평화를 위해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이 관계전문가들 사이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이는 한국과 중국 두나라 국민이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온갖 지혜를 모아야할 이유가 될수 있을 것이다.상호간 친선증대를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선 경제분야에선 상호이익이라는 전제아래 협력체제를 강화해가야할 것이다.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는 협력은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잘아는 바와같이 중국과 한국은 지난 79년부터 무역거래를 시작했다.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막 시작하던 참이었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두나라 사이에는 국교가 없었던 탓으로 홍콩이나 일본 싱가포르등의 중개업체를 통해 서로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어쨌든 양국무역은 84년에 급격히 늘어난데 이어 88년에는 본격적인 상호의존단계로 접어들었으며 지난해에는 60억달러에 육박한 것으로 전해지고있다.그러다가 올해는 관계전문가들로부터 1백억달러의 예측이 나오고 멀지않아 2백억달러교역도 가능하리라는 얘기들이고 보면 정말 꿈만같은 일들이 우리앞에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반해 한국업체들의 중국에대한 투자는 아직까지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는것 같다.물론 수교 직후에는 억달러단위의 투자가 계획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는 있으나 그동안 한국업체들의 대중국 투자의욕은 극히 제한적이었다.아직 중국의 경제정책을 완전히 믿을수 없다고 생각하는 업체들이 많은것 같고 중국의 투자환경이나 상품시장에 대한 이해부족도 꼽을수 있을것 같다. 모두들 잘아는 바와 같이 중국은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데다 인구까지 많아 노임마저 아주 싸기 때문에 한국업체들이 투자하기엔 안성맞춤이라는게 본인의 소박한 생각이다.거기에다 거리도 가깝고 서로 바다로 연결돼 수송에도 문제가 없고 언어장벽까지 해소시켜줄 조선족도 많지 않은가.반면 우리 중국에는 자금이 부족하고 기업경험이 많지 않을뿐아니라 시장자율경제에 대한 의식도 부족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업체의 중국투자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근본적으로 한국업체도 이익을 보고 중국인도 그 덕을 좀볼수 있는 터전은 이미 마련됐다는 얘기이다. 중국이 갖고있는 기술밑천은 기초연구사업과 일부 전자기술연구가 좀 앞서 있다는 점을 들수 있다.하지만 연구비가 부족하고 기술판매시장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어서 중대한 연구가 중도에 그만두게 되거나 일부 기술항목은 연구에 성공했다해도 기업의 상품생산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런 기술을 이용,합작사업을 벌이면 양측 모두 큰 이득을 볼게 뻔하다. 양국간 건실한 협력체제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할수 있어야함은 물론이다.중국과 한국은 지난 몇십년간 상호 격리상태로 지내왔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너무 몰랐던게 사실이다.그래서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인이 말하고 행동하는데 많은 제한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막상 현지에 와서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물론 어떤 면에서는 아직 개선할 여지가 있지만 모두들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한다. 사회전반을 놓고 볼때 나쁜 버릇과 그릇된 행위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예컨대 일부 중국인들이 버스를 탈때 줄을 서지않은채 앞다퉈 오르거나 아무데나 가래침을 뱉는 행위,상점판매원의 퉁명스런 태도,달러암시장에서 액수를 속이는 일따위를 들수있다.그러나 이같은 일들은 모두 일시적인 현상이다.경제발전과 사회적 계몽에따라 점차 종적을 감추게될 사회적 쓰레기들에 불과하다. 일부 한국인들은 이같은 일들을 싫어할수도 있겠으나 너무 신경쓸 일은 못된다.어느 사회든 결함이 전혀없는 완벽한 사회는 없기 때문이다.중국도 결함이 많지만 장점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중국인의 한가지 모습을 보고 중국인은 모두 이럴것이라고 판단하면 안된다.중국은 영토만해도 남한의 1백배나 된다.기후도 한대 열대 온대지방을 모두 갖추고 있을 정도이며 지역마다 각기 다른 풍광과 문화유적을 지녀 만약 중국내 32개 성·시를 모두 여행하고 나면 32개 국가를 돌아다닌만큼 다양한 경험을 갖게 될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중국이나 한국은 모두 한문화권에 속한다.특히 한국에서는 유교문화의 정수가 구석구석에 스며있다.모두가 예의 바르고 어른을 존중하며 부모에 효도하고 가문의 전통을 중시한다.그래서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존경해왔다.이와는 반대로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의 많은 파괴과정을 거쳐 유교사상의 장점들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거나 아예 사라지게 됐다. 몇해전 어느 한국학자가 공자의 탄생지인 곡부를 방문했을 때 많은 외국인들이 공자사당에서 절을 하는데 정작 중국인들은 옆에서 팔장을 낀채 구경만하더라고 전한바 있었다.사실 한국의 성균관과 문묘에서는 음력 2월과 8월에 공자와 그 주요 제자들을 위한 제사를 예부터 줄곧 지내오고 있으나 중국에서는한동안 중단됐다가 80년대에 와서야 다시 시작됐다. 앞으로 중국과 한국간에 문화교류가 본격화되면 한국의 유교사상은 도리어 중국에 되돌아 전파돼 중국국민들에게 영향을 줄수도 있을 것이다.이러한 문화적 반작용은 중국인들로하여금 유교의 훌륭한 전통을 잘 이어받게 하고 한문화권을 더욱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지금 상당수의 한국유학생들은 중국에서 한의 경제학 중문학등을 공부하고 중국의 일부 학자들도 한국에서 연구사업등에 종사하고 있다.이는 양국간에 진행해야할 수만갈래의 교류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그동안의 경제와 문화교류의 범위를 기술정보 철학 종교 라디오 TV등 각 분야로 확산시켜야 한다.이를위해 우리 다함께 노력해야할 것이다. □약력 ·44년 협서성봉상현출생 ·70년 북경대 동방어언문학부 조선어과졸업 ·78∼80년,86∼87년 김일성종합대학어문학부 연수 ·현 북경대 동방어언문학부 조선어과교수 ·저서:「중한동물명칭사전」 「중한식물명칭사전」 「한국속담선집」 「한국속담이야기」 「한국말의 어원을 찾아서」 「세계풍속전서」
  • 화가 박고석씨(이세기의 인물탐구)

    ◎가식과 물질 탐하지 않는 「산의 화가」/웅대한 산의 정기 힘찬 붓놀림으로 표출/세상잡사에 초연… 「자유 예술인」으로 살아.과묵함 속에서도 친구들 위하는 따뜻한 마음 가득 그가 한 문장으로 길게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시인 고은씨는 『그와 함께 있으면 나 자신은 왠지 혼자서 돌아가는 음반(음반)같을 때가 있다.그는 그 음반의 소리를 들을 뿐』이라고 했을 정도다.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이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말없이 자유스럽게 움직이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산의 화가」박고석씨다. 그는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줄곧 「산」에만 집착해 왔다. 도봉·북악 백양산에서 설악·치악·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명산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그의 산은 질풍같고 어느 때는 성난파도와도 같다. 안료가 범벅이된 힘찬 붓자국이 선명하게 지나간 화면을 바라보노라면 싱싱하게 살아있는 산의 정기가 꿈틀거리듯 압도해 온다. ○60년대후 산에만 집착 순간의 감동을 놓칠세라 그 웅대장려함을 작가는 단숨에 끌어안는 식으로 캔버스에 담아낸다. 봉우리와 봉우리,구릉과 구릉 사이로 때론 황금빛,때론 벚꽃빛 구름이 여울져 흐르고 하늘은 지중해의 사파이어로 산의 배경을 이루어 놓고 있다. 특히 그가 애착하는 설악의 용틀림같은 산맥은 마치 베토벤의 장엄미사곡을 듣는 듯한 비장감마저 던져준다. 60년대 후반까지 박고석씨 화실은 지금의 안국동 백상기념관 자리인 공간사랑 건물안에 있었다. 가죽바닥처럼 매끄럽고 긴 복도를 지나면 왼쪽 코너에 화실이 있었고 그곳에는 시인 김수영·구상·고은씨와 고은씨를 따라 소설가 최인훈씨,그리고 첼리스트 전봉초씨가 드나들곤 했다. 그들이 오면 박고석씨는 『어?』큰 눈을 껌벅한다.「왔느냐 반갑다」는 뜻이다. 그리고 술병을 잡아 들어보이며 커피잔에 술을 따라 건넨다. 모두들 가난했던 시절,그 화실에는 술과 함께 중국집에서 시켜온 군만두와 땅콩 부스러기가 널려있곤 했다. 그후 70년에 들어서자 그는 원남동 창경원 돌담길에 위치한 인수빌딩 4층으로 화실을 옮겼다. 먼저 화실보다 넓고 환한데다 창경원이 뜨락처럼 내려다보이는 낭만적인 분위기였다. 그의 부인 김순자씨는 미국으로 의상공부를 하러 떠나고 정릉집은 4남매에 맡겨둔 채 그는 노상 이화실에서 기거하는 듯했다. 화가는 화가대로,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마치 소설을 쓰기위해 일부러 설정해놓은 가족구성 처럼 그 가족은 저마다 외롭고 썰렁한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김순자씨는 아이들과 남편과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러 미국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의상 공부를 끝내고 워싱턴에 드레스숍을 열게되자 그는 자녀들을 하나씩 데려다 그곳에서 공부시켰다. 그때도 박고석씨는 도무지 말이 없어 왜 부인이 미국에 갔는지 왜 아이들이 이따금 보이지 않는지 아무도 몰랐고 이런것을 물으면 그는 그냥 씩 웃을 뿐이었다. 박고석씨는 생활이나 자녀학비에 관심없이 삽화료만 생겨도 조선일보뒤 아리스다방으로 달려가 친구들에게 술사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집에선 굶어도 그의 화실엔 친구들을 위한 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번은 딸아이 은령의 중학교등록금을 내야 한다니까 『걔가 벌써 그렇게 됐냐?』하는 식이다. 김순자씨는 그런 남편을 원망해본적이 없다.『남편은 예술가이니 당연히 그런 일은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녀들도 학비 한번 제대로 주지않은 아버지를 섭섭해 하기는커녕 『아버지는 화가이고 자유인·자연인』이라고 존경한다.지금 훌륭하게 자란 4남매의 효도는 넘칠듯 극진하기만하다. ○74년,20년만에 개인전 박고석씨는 74년,20년만에 몇번이나 망설이고 미뤘던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모처럼 연 개인전에서 그는 대자연의 황홀한 절경속에서 끓어 오르는 작가의 격정을 담은 「산 시리즈」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산처럼 듬직한 화가의 산그림에 매혹되어 그때부터 그를 「산의 화가」라 불렀다. 그는 어린시절 모란봉과 대동강이 있는,자연조건이 아름다운 평양에서 나고 자랐다. 본명은 박요섭.성경에 나오는 요셉이 그의 이름이었으나 중학교 시절 심산의 낡은돌(고석)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어 가졌다. 평양교계의 인물인 박종은목사와 김승은여사의 아들 4형제중 막내.숭실중을졸업하던해 아버지가 큰형을 데리고 상해로 망명하자 비뚤어진 사춘기를 보냈고 35년 도쿄에 유학,니혼대 예술학부 미술과를 나와 동경 팔척화랑서 첫 개인전을 여는등 44년까지 도쿄에 머물렀다. 해방과 함께 중학동창인 전봉초(첼리스트) 서종일(성악)과 함께 월남,그이후 망명떠난 아버지와 큰형,어머니와 두형 등과는 영원한 이산가족이 되었다. ○부친망명으로 생이별 6·25의 와중에서 친구소개로 만난 김순자씨와 결혼.김순자씨는 건축가 김수근씨(86년작고)의 친 누님이기도 하다. 결혼후 부산피난시절의 고물시계장수 이야기는 51년 제작한 「범일동 풍경」에 잘 나타나 있다. 「헌 석유궤짝위에 헌 고물시계 몇개를 나란히 펴놓고 팔았으나 엿장수도 거들떠보지 않았다」(신동아 70년 6월호)는 수필이 그것이다. 박고석씨는 이른바 예사로운 성격은 아니다.그의 과묵으로 인해 그가 무엇을 얼마만큼 생각하고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는 또박또박 설명할 수가 없다. 단지 격식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치장을 역겨워한다.집도 비바람만 들이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 넓은 터에 지은 정릉집은 그야말로 이리저리 판자를 얽어맨 바라크에 불과했다. 다만 책만은 산더미처럼 쌓여 그가 한때 동서양의 명작을 난독(난독) 섭렵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80년 4자녀의 유학을 마치자 김순자씨는 16년간의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정릉집과 원남동 화실을 정리하여 83년 명륜동4가 대학로 건너편에 처음으로 아틀리에가 있는 살림집을 장만했다. 김수근씨가 매형을 위해 직접 설계 감리한 독특한 건조물이었으나 이때도 그는 디자인과 장식을 생략하라,살림집과 아틀리에가 독립되도록 현관을 따로 내라,「내집 가지고 건축연습하지 말라」고 처남을 나무랐다. 그해 그는 갑작스러운 순환기계통의 이상으로 보행이 부자유스러운 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의 산이란 평생의 과제로 선택할만한 경이의 대상이었다. 산은 말없이 그곳에 엎드려 있으나 한순간도 그에게 같은 감동을 준적이 없었다.사계는 물론 어제와 오늘,아침과 저녁이 다른 변화불측은 화가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아 놓아주지 않는다. 최근의 그의 산은 적묵(적묵)의 기법과 처절하리만치 깊고 짙은 임리의 설채로 소나기가 지나간후의 씩씩한 젊음을 살려내고 있다. 그는 90년 고희를 넘긴 화업기념으로 현대화랑에서 역시 「산의 시대」 개인전을 벌였고 개인전이후 강원도 설악동에 작업실을 마련해서 그곳에 머무르다가 부부가 손을 잡고 두어달에 한번정도 서울에 올라온다. 그리고 동숭동 난다랑에 나타나 커피를 마시거나 「맛있는 점심」을 찾는 만년의 행복을 누리기도 한다. ○설악동에 작업실 마련 그의 걸음걸이는 불편하고 말씨는 어눌하나 설악동에선 거의 하루도 빼지않고 울산바위밑에 화구를 펼쳐놓고 산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산에 대한 용솟음치는 열정을 정온으로 다스리고 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너의 생명이 무엇이냐,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인것을­. 한때 분노로 원망했던 부친이 들려준 이 성경 한구절이 어쩌면 평생동안 그를 지배했기 때문에 그는 뭇형식과 가식과 물질을 탐하지 않고 산처럼묵묵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 표현주의와 야수파적 미학이 돋보이는 도정을 지나 관조적 여운이 감도는 소박한 화경(화경)에 이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단 한점,그를 버리고 간 부친과 두고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도원의 산을 기도로써 그려내려 하고 있다. □연보 ▲1917년 평양에서 출생.목사인 박종은씨와 김승은씨의 아들 4형제중 막내 ▲숭덕소학교·숭실중 졸업 ▲35년 도일 ▲39년 니혼대 예술학부 미술과 졸업 ▲40∼42년 일본서 격조전 창립동인전 연구회출품 ▲43년 도쿄 팔척화랑서 개인전 ▲45년 월남 ▲48년 대광고 미술교사 ▲51년 부산서 현대한국회화전 ▲52년 이봉상 손응성 한묵 이중섭과 구조전 창립동인전 ▲〃 (부산)휘가로다방서 개인전 ▲53년 홍대 미대 교수 ▲〃 손응성 이봉상 이응로 이정규와 5인전 ▲55년 중앙대 미대(미술학과장) ▲52∼62년 유영국 황염수 이규상 한묵 천종자와 모던아트전(연6회 출품) ▲60년 국전 추천작가 ▲65년 세종대 미대교수 ▲67∼76년 구상전 출품 ▲69년 국전운영 자문위원 ▲74년 개인전 공간개인전 ▲83년 개인전(현대화랑) ▲89년 한국미술협회고문 ▲90년 화집 발간및 개인전(현대화랑) 한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 평북 백령대굴은 「지하금강」(북한 이모저모)

    ◎5㎞길이 14개굴에 폭포까지 “절경”/형제탑·비룡담 등 신비한 석순 즐비 ○…평북 구장군 대풍리에 있는 길이 5㎞의 「백령대굴」은 북한의 「지하금강」으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절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평양신문 최근호가 소개했다. 「백령대굴」은 원굴과 거기에서 갈라진 미로굴,산해굴을 비롯한 14개의 크고 작은 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굴은 총연장 9백50m로 내부로 들어갈수록 백색 또는 남황색의 반투명체인 종유석과 석순들이 특이한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이 굴에는 맘모스를 연상케 하는 「맘모스동」,두 그루의 석순이 5m 높이로 대리석 기둥처럼 서있는 「형제탑」이 있으며 비룡담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샘물이 있는 동굴인 「모험동」이 있다. 또한 길이가 72m나 되는 넓은 구역인 「명사십리」,폭포모양의 종유석이 있는 「폭포동」,장정에 등불같이 종유석이 달리고 밑에는 아이들이 계단에 앉아 노는 것 같은 신비로운 모양과 그밖에 「삼태자」석순,「만탑동」,「포도동」등으로 불리는 절경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한복 잘 입는 법」 등 소개/「옷차림」화첩 최근 출간 ○…북한은 최근 주민들의 옷차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현대적이면서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는 옷치장」을 유도하기 위해 「옷차림」이란 제목의 화첩을 출간한 것으로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가 최근 보도했다. 정무원 경공업위원회 산하 피복연구소에서 출간한 이 화첩에는 한복을 계절과 때,장소(예:결혼식,무도회,명절)에 맞게 『우아하고 고상하면서도 현대적으로 맞춰 입는 방법』들과 남녀별,노소별로 「나뉜돗」(투피스) 「달린옷」(원피스) 「간이옷」(간편복) 등을 입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소개돼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한 이 화첩은 다양한 옷차림 소개와 함께 개개인이 모두 옷을 지어 입을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의상의 경우 「설계도안」(재단본)까지 수록했는데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거리에 「낙랑식당」/대형 대중식사실 개업 ○…북한은 평양시내 신시가지로 조성중인 통일거리(구 낙랑거리)에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돕기위해 「낙랑식당」을 개업했다고 평양신문 최근호가 보도했다. 대동강 북쪽 평천구역에서 「충성의 다리」를 건너 통일거리와 만나는 교차지점 왼쪽 충성1동에 자리잡은 「낙랑식당」은 2층 건물로 1층 정문에 들어서면 수·소화물 보관소가 있고 그 옆으로 2개의 대중식사실이 마련되어 있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왼쪽에는 금강산을 화폭에 담아 벽화로 장식한 64석짜리 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각종 장신구로 치장한 1백42석의 비교적 큰 방이 있다. 메뉴로는 국수 빵 떡 만두국밥 고기국밥 상밥등의 요리와 청량음료등이 구비되어 있는데 1층에서는 주로 국수 빵 떡류를 서비스하고 나머지는 2층에서 취급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사이비종교 제재 등 요구/종말론피해자 단식농성(조약돌)

    ○…11일 하오3시부터 서울 여의도광장 새마을봉사대본부앞에서 「시한부종말론」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박근창씨(40·중랑구 면목동)가 사이비종교를 규제하는 「종교법」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 눈길. 박씨는 『아내가 6년전부터 생활고에 못이겨 교회에 자주 나가면서 이혼을 요구해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어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사회적 혼란을 틈타 극단적 신비주의에 빠져 신자들을 속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종교지도자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살빼기는 올바른 식습관으로/미 여성지“단기간다이어트는 해악”충고

    ◎전문가도 「장기에 걸친 음식과 승부」 강조 건강을 위해 체중줄이기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최근 단기간의 식이요법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올바른 식습관을 갖는 것이 체중감량에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다. 미국의 월간 여성지 「워킹 우먼」최근호는 이제 다이어트는 체중조절을 위한 해결책이기 보다 오히려 문제의 하나로 보는 사고가 지배적이라면서 체중을 줄이려면 단기간의 식이요법에 기대기 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식습관을 바꿔보라고 충고하고 있다. 실제로 식이요법을 써서 체중감량을 해본 사람들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체중이 줄어들었으나 장기적으로는 다시 살이 찌는 경우가 많았다. 「과식을 극복하는 법」을 쓴 캐롤먼터와 제인 히슈만은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음식과 정면승부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체중을 줄이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인 결핍감을 극복하기 위해 식사습관을 점진적으로 바꾸고 운동시간도 점차 늘려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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