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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노무라증권 주무른 30代 큰손(뉴스 인사이드)

    ◎부동산증권 개발 4년간 10억弗 수익/금융위기로 가치 급락… 몽땅 날려/퇴직금 432억원만 챙기고 ‘딴살림’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 노무라(野村)증권 미국 현지법인의 이산 페너(37).흔해 빠진 경영학 석사학위(MBA)도 없이 벼락출세,수십억달러를 주무르다 노무라증권에 10억달러의 손해를 입히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일본의 주간 아에라 최신호는 노무라증권이 이 겁없는 풍운아 덕분에 웃다가 울게 된 기막힌 사연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뉴욕대학 출신인 무명의 페너가 노무라증권 미국 현지법인에 입사한 것은 93년 4월.입사하자마자 부동산담보증권(CMBS)이라는 신 상품을 개발,4년간 노무라증권에 10억달러의 이익을 안겨줬다. CMBS가 히트를 한 것은 미국 부동산경기가 회복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부동산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자금을 조성한 뒤 운용자금에 목말라하던 부동산업자에게 고금리로 빌려주는 사업은 크게 성공했다.불티나게 CMBS는 팔려나갔고 페너는 435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지난 8월 러시아 금융위기는 페너의 운명을 바꿔놨다.CMBS의 가치가 급락,노무라 미국현지법인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CMBS에 치중한 게 화근이었다.후발 증권사가 CMBS에 3억달러 가량밖에 투자하지 않은 데 비해 페너는 ‘위험분산의 원칙’을 무시하고 무려 70억달러까지 사업규모를 늘렸다.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미국 현지법인 등의 손실로 국내외 직원 2,0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다. 풍비박산의 와중에 페너는 슬그머니 회사를 그만두고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열어 ‘재기’를 꿈꾸고 있다.무려 3,600만달러(약 432억원)의 퇴직금을 챙긴 채.
  • 연말정산 요령 알아보면/보육료도 소득공제 받는다

    ◎올부터 영·유아 1인단 연간 70만원까지/증권사 주식저축 공제 100만원으로 늘어 올해부터 어린이집,놀이방 등 보육시설에 내는 보육료도 연말정산때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증권회사를 통해 주식저축에 가입하면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 한도가 현재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어나고 투신사에서 취급하는 주식형증권투자신탁도 세액공제대상에 새로 추가됐다. 국세청이 26일 발표한 ‘98년도 근로소득 연말정산 요령’에 따르면 내년 1월 실시되는 올해 근로소득에 대한 연말정산부터 어린이집,놀이방 등의 보육비가 새로 소득공제대상에 추가돼 영·유아 1인당 연간 70만원까지 공제를 받게 된다. 증권회사의 주식저축에 든 사람은 연간 불입액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에서 깎아준다. 이 경우 세액 공제액은 100만원(불입액 기준 2,000만원)을 넘을 수 없다. 투신사에서 취급하는 주식형 증권투자신탁(신탁재산의 80%이상을 주식에 편입)도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돼 저축불입액의 5%를 100만원 범위에서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이들 저축의 세액공제혜택은 올해말 불입분까지다. 근로자는 99년 1월분 급여를 받기 전까지 소속 회사에 해당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문답풀이/18세·5세 자녀둔 맞벌이부부 600만원 공제/차남도 실제로 노부모 부양하면 공제 적용/연도중 만20세된 자녀도 기본공제 대상 달라진 내용을 중심으로 연말정산 요령을 문답풀이로 알아본다. ●연말정산 시기는 지난해부터 연말정산 시기가 다음년도 1월분 급여지급시로 변경됐다. 즉 99년 1월분 급여를 지급하는 때에 98년 연간급여에 대해 연말정산을 한다. 중도퇴직한 경우에는 퇴직한 달의 급여 지급시기가 연말정산시기가 된다. ●중도에 입사한 근로자의 연말정산은 98년중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 새로 입사한 근로자의 경우 전(前)근무지의 ‘소득자별 근로소득원천징수부’사본과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발급받아 전 근무지의 급여및 공제·감면세액을 현(現)근무지분과 합산해 연간 공제한도액 범위내에서 계산해야 한다. ●연말정산 대상 사업소득의 범위는 지난해 보험모집인의 보험모집수당에 이어 올해부터는 방문판매원의 방문판매수당 및 다단계판매원의 후원수당도 직전년도 수입금액이 7,500만원 미만인 자에 한해 연말정산대상에 포함된다. ●가족이 배우자,20세 미만인 자녀 2명,98년도중 만 20세에 달한 자녀가 1명인 경우 기본공제액은 부양가족의 공제대상에 인원수 제한은 없으며 자녀 또는 형제자매가 당해 연도중에 만 20세에 도달하더라도 공제대상이 되므로 기본공제액은 본인을 포함,5명에 대해 1인당 100만원씩 500만원이다. ●차남이 60세 이상인 부모를 부양하고 있으나 주민등록이 별도로 돼있다. 부양가족공제를 받을 수 있나 차남이 실제로 부모를 부양하고 있는 경우에는 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장남이 공제를 받지 않아야 하고 호적등본을 제출해야 한다. ●18세와 5세인 자녀가 있는 맞벌이부부인 경우 각자의 공제액은 5세 자녀의 기본공제를 남편이 받는 경우 남편은 기본공제 200만원에 소수공제자 추가공제 50만원을 더해 250만원의 공제가 가능하다. 배우자는 기본공제 200만원에 소수공제자 추가공제 50만원,부녀자공제50만원,자녀양육비공제 50만원 등 350만원의 공제를 받을 수 있어 부부가 모두 600만원의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교육비 공제대상 유치원은 교육비공제대상 유치원은 ‘교육법상의 학교’인 유치원 즉 교육청으로부터 유치원인가를 받은 국·공·사립유치원(관인유치원)을 말한다. 관인유치원이 아닌 피아노학원,미술학원,속셈학원 등은 대상이 아니다. ●국외유학을 위한 어학연수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경우도 해당되나 국외교육비를 소득공제받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교육법에 의한 학교와 유사한 국외교육기관에 지출한 교육비에 한한다. 어학연수비는 공제대상이 아니다. ●97년 11월에 1년만기 근로자주식저축에 가입한 근로자가 만기해지후 98년 12월에 다시 같은 저축에 가입한 경우 98년에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나 97년에 가입한 저축을 만기 또는 중도해지한후 새로 가입해 1인 1통장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98년 불입금액에 대해 세액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근로자주식저축 세액공제는 어떻게 되나 증권사의 주식저축과 투신사의 주식형증권투자신탁의 경우 저축불입액의 5%를 세액공제 받는다. 불입한도액이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확대돼 세액공제금액도 종전 최고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었다. 세액공제가 가능한 저축상품 가입시한은 근로소득자들에게 재산증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당초 지난해말에서 올해말까지로 연장했다. ◎세금 이렇게 줄여라/공제 영수증 모두 챙기도록/65세이상 병원비 모두 혜택/형제자매 교육비 공제 받아 샐러리맨의 유일한 절세찬스인 연말정산철이 돌아왔다. 연말정산이란 세무당국이 근로자를 대상으로 많이 낸 세금은 돌려주고 덜 낸 세금은 더 징수하는 절차이다. 법에서 보장된 각종 공제혜택에 따라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챙겨 놓으면 많이 낸 세금에 대해서는 돌려받을 수 있다. 연말정산시한이 내년 1월까지(1월분 봉급지급일 전까지)로 1개월 늦춰졌지만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미리 챙겨두었다가 회사에 제출하는 것이 좋다. 연말정산을 통한 절세(節稅) 테크닉 5가지를 짚어본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면 일단 공제대상이다 배우자,형제 자매, 미혼자녀,입양아,부모,조부모,장인,장모 등 부양가족은 모두 1인당 100만원씩 기본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빠진 사람이 있다면 주민등록등본을 첨부,바로 잡아야 한다. 올해 사망한 가족도 공제혜택이 있다. ●영수증을 모아라 자동차보험 등 각종 보험영수증과 공제조합의 공제영수증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의료보험료 및 고용보험료는 전액,보장성보험료는 50만원까지 공제된다. 종교단체 헌금,수재의연금,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기부금은 전액 공제대상이다.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연간소득의 5%까지 과세대상 소득금액에서 빼준다. ●의료비 영수증을 확인하라 연간 소득의 3%를 넘는 의료비는 100만원까지 공제된다. 65세이상 노인이나 장애자의 재활에 들어간 병원비는 100만원을 넘겨도 공제대상이다. 병원은 물론 한의원,조산소,약국영수증도 해당된다. 다만 약국에서 발행한 간이세금계산서는 영수증비고란에 환자성명과 질병,발행자의 서명날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학자금공제를 최대한 활용하라 배우자의 학비는 물론 형제 자매 교육비의인원수 제한이 없어졌다. 관인 유치원 및 보육시설의 경우 1인당 70만원까지 공제된다. 단 법정 보육료불입통지서를 학원에서 받아 은행에 납입한 뒤 제출해야 한다. 국내대학은 1인당 230만원까지,해외교육기관에 유학중일 경우 150만원까지 공제된다. ●저축상품의 공제대상이 넓어졌다 증권회사의 주식저축이외에 증권투자신탁회사에서 취급하는 주식형 증권투자신탁으로 세액 공제대상이 확대됐다. 주식저축의 불입시한도 97년말에서 올해 말까지로 연장됐으며 불입한도액도 2,000만원까지 늘어난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한신초등교 ‘위로’ 학예회 열어

    ◎500여명 참가 모처럼 웃음꽃 만발/‘힘내세요’ 편지 읽을땐 눈시울 붉혀 “아빠 힘내세요.” “아이들이 아빠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여기서 주저앉을 수 있겠습니까.” 12일 서울 도봉구 창4동 한신초등학교(교장 申東奎)의 학예회 행사장.500여명 아버지들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아빠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이름의 이날 행사는 경제난으로 움츠러든 아버지들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아이들은 그동안 아버지를 주제로 준비한 공예와 그림,‘아버지께 드리는 글’ 등 600여점을 전시했다.6학년 학생들은 ‘아버지를 위한 기도’라는 글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아버지가 혼자 줄담배를 피우시며 창 밖만 쳐다보시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IMF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뛰시는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아이들답지 않게 속깊은 마음이 묻어난 글들이 아버지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버지가 최근 은행에서 퇴출당했다는 朴모군(12)은 “아버지가 은행을 그만두었지만 슬프거나 부끄럽지 않아요.저에겐 언제나꿋꿋하신 아버지가 있거든요”라고 적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朴賢京씨(38·회사원·도봉구 창2동)는 “어려운 시대에도 이를 악물고 사는 게 아이들 때문”이라면서 “한결 의젓해진 아이를 보니 일할 의욕이 생긴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난 뒤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빠와 아이들에게 IMF 한파가 춥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닌 듯했다.
  • 위기의 한국교회/윤대골 목사(기고)

    ◎군사문화속에서 몸집만 키워 ‘함께하는 교회’ 기능 상실/안으로부터 개혁 이뤄 지역사회에 봉사 다해야 한국교회가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면,한국교회의 현 상태를 운명 직전의 경우와 같다고 말한다면 과언일까? 필자의 진단으로는 한국교회의 현재를 그 이상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를 ‘주’(믿음과 삶의 기본지침)로 하는 신앙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가 누구인가? 하늘의 자리를 내놓으신 분 아닌가? 왜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된 자리를 내놓으셨나? 버림받은 생명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하나가 되어 죽음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생들과 더불어 함께 일어서기 위함이셨다. 그뿐만인가? 모든 것을 다 내주시기까지 가난해지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까지 주셨다. 예수의 ‘내주심’의 삶은 거기서 그치지 않으셨다. 내주신 몸의 자리,무덤의 소유도 거부하셨다. 그리고 전무(全無)의 자리에 드셨다. 성서는 그것을 ‘부활’이라 한다. 한국교회,세상을 위해 무엇을주었나? 무엇을 버렸나? 한국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인가? 하늘이 주는 도리로 감히 묻는다. 한국교회는 부활의 종교공동체인가? 필자가 한국교회의 부활을 크게 의심하는 큰 이유중 하나가 이미 자체조절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버린 ‘대형화’에 있다. 세계 50대교회의 꼭 절반이 한국에 있다. 한국의 대교회는 자신들이 알았거나 몰랐거나,지난 40여년간 소위 ‘조국 근대화’를 존립철학으로 했던 군사통치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루어져온 산물이다. 그 주장이 그렇고,그 용어가 그렇고,그 사고가 그렇다. 지난 40년동안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무력통치를 감행해온 집단과 한국 대교회론자들은 그 궤를 같이해온 것이다. 그러면서 두 세력이 꼭같이 수(數)를 지상으로 하는 ‘매머니즘’을 신앙으로 자리잡게 해버렸다. 그래도 한국교회가 죽을 수는 없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지은 죄로 운명의 전야에 이르러 있다 해도,하늘이 한국교회에 내린 소명이 있는 한 한국교회는 살아야 한다.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살 길을 말한다. 첫째,원 예수교회의 회복이다. 성령께서 시작한 교회는 ‘함께’하는 교회였다. 다른 것은 다 후에 하더라도 목사들 기본급료의 호봉제 정도는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날 같이 목사되었는데,어느 목사는 500만원이나 받고 어느 목사는 50만원도 못 받는다면 그걸 어찌,교회는 그만두고 사람세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둘째,대교회를 해체해 지역에 봉사하는 건강한 중소교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서울은 나의 교구’라는 따위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극동교회가 극서지역의,북쪽교회가 남쪽교회의 교인을 실어나르는 짓은 이제는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선교행위가 아니다. 지역사회를 책임지는 교회들로 선교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셋째,인적 청산을 해야 한다. 세상의 구석구석에 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다. 하늘의 뜻이다. 세상의 누구도 역사가 가는 길은 막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개혁의 바람막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것이 소위 대교회라는 것이다. 개혁은 안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력에 의한 징벌을 당하게 될 것 아닌가? 군부통치 40년동안 끊임없이 군부세력을 등에 엎고 기독교 지도자를 자처해온 무리들은 겸손하게 이제 막후로 물러나야 한다. 새 술을 더 이상 낡은 부대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변함없는 私邸식 식단(양승현의 취재수첩)

    金大中 대통령 내외는 별로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주방에 특별한 주문을 하는 적이 거의 없다. 국민의 정부가 문민정부의 ‘개혁 칼국수’처럼 식단에 눈에 띄는 특징이 없는 것도 ‘집주인’의 식성 탓인지도 모른다. 청와대 식단은 크게 두가지다. 관저 식사와 공식·비공식 오·만찬이다. 관저에서는 늘상 밥과 국,그리고 3∼4가지 반찬이 상에 오른다. 국은 미역국과 우거지국이 단골 메뉴이고,김치와 생선구이,무나물·취나물 등 나물류가 즐겨 드는 반찬이다. 사저(私邸) 시절 그대로다. 관저 요리사 2명이 과거 사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쩌다 비서관들이 “심심하다”고 하면 옛맛에 익숙한 대통령 내외는 늘상 “맛있다”며 ‘웬 반찬 투정이냐’는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간혹 李姬鎬 여사가 별미로 만두국이나 카레라이스를,金대통령은 ‘맛보기’로 자장면을 주문하기도 하지만 거의 주방에 맡긴다. 한동안 金대통령은 밤참으로 인절미 등을 즐겼으나 몸무게 때문에 요즈음은 끊었다. 오·만찬은 한식,중식,양식이 돌아가며 나온다. 행사 성격에 따라 朴琴玉 총무비서관과 주방장이 알아서 결정하지만 金대통령의 전날 행사때 메뉴를 가장 우선적으로 참고한다. 한식은 우거지탕,육개장,갈비탕(출입기자들은 취임 100일 간담회 때는 육개장,6개월 때는 갈비탕을 ‘얻어먹었다’)이 준비된다. 물론 탕만 나오는 게 아니고 생선구이,전,새우 등 3∼4가지 코스가 곁들여진다. 중식도 볶음밥과 면 종류가 주 메뉴이나 마찬가지로 양장피,해삼요리 등의 코스가 뒤따른다. 양식은 스테이크가 주종이다. 한 사람에 1만원을 넘기지 않으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朴仙淑 부대변인은 전한다. 청와대 공식 요리사는 주방장(4급)을 포함해 5명. 관저 요리사는 ‘보조’개념으로,본관행사 주방일도 거든다. 이들이 준비하는 식사인원은 50명선으로 그 이상이면 바깥 호텔에 주문한다. 전 정부 때는 30명까지만 치렀는데 20명이나 늘었다며 힘들다고 했다.
  • 공직개혁 고삐 더 죈다/金正吉 행자

    ◎“공직사회 반드시 변화 시킬것” 金正吉 행정자치부 장관은 2일 “공직사회를 반드시 개혁하라는 것이 金大中 대통령과 국민이 나에게 부여한 책무”라면서 공직개혁을 더욱 강도높게 추진할 방침임을 분명히했다. 金장관은 이날 공직사회의 그릇된 관행을 지적한 자신의 저서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를 놓고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 비난여론이 일고 있는 데 대한 입장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金장관은 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월례조회에서 전에 없이 강한 톤으로 “책의 내용을 질타하기 전에 정부수립 50년 사상 처음으로 장관이 왜 그런 책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책을 왜 지금 썼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장관을 그만두고 나면 그런 책을 쓸 이유가 없는 것”이라면서 “장관은 부하직원의 잘못을 질타하고,직원들은 부당한 요구를 하는 장관을 바로잡을 때 개혁이 공염불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金장관은 특히 “직원들이 지난달 벼베기 행사를 하면서 이 책을 화제에 올리며 ‘역대최고의 저질 장관’이라며 성토한 것을 알고 있다”고 불쾌감을 표시한 뒤 “공직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개혁에 임하는 비장한 각오를 피력했다.
  • ’98 농림 수산식품 축제 개막/푸짐한 우리 먹거리 한곳에

    ◎本社 후원 농림부가 주최하고 서울신문사가 후원하는 ’98 우리 농림수산식품 대축제가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옛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렸다. 정부 수립 50주년과 제3회 농업인의 날을 기념해 다음달 3일까지 7일간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전국에서 모인 1,653개 품목의 농수산 식품이 전시돼 다음달 3일까지 7일간 풍성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관람객들에게 제공한다. 이날 개막식에는 金泳鎭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과 金東泰 농림부 차관 등 정·관계 인사와 元喆喜 농협중앙회장 등 생산자단체 대표,유관기관 관계자,일반 시민들이 대거 참석,성황을 이뤘다. 행사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다양한 신토불이 농수산물이 ▲팔도전통식품관과 ▲생산자단체관 ▲전통가공식품협회관 ▲민속주관 ▲특산단지연합회관 ▲농업경영인연합회관 등 10개 관에 전시,판매된다. 전라도의 토화젓에서부터 경남의 뽕잎가루,충남의 꿩만두 등 전국의 산해진미를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다.
  • 남자친구 누나 냉대에 앙심/19차례 허위 주문전화 덜미(조약돌)

    ○…남자친구의 누나가 자신을 냉대하는데 앙심을 품고 친구 누나 명의로 허위주문 전화를 일삼은 20대 여자가 경찰의 전화 추적 끝에 붙잡혔다. 충남경찰청은 25일 林東囍씨(21·여·무직·경기도 광명시 광명3동 28의 12)에 대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林씨는 지난 20일 하오 6시쯤 대전시 서구 용문동 H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남자 친구의 누나 李모씨(25·대전 H초등학교 교사)라고 속이며 이 학교로 5,000원짜리 1회용 도시락 200개를 배달해 달라고 주문하는 등 한 달 반동안 19차례에 걸쳐 허위주문 전화를 해온 혐의다. 林씨의 허위주문한 음식은 쇠고기 50근과 돼지고기 100근,햄버거·콜라 각 50개,만두 50인분,떡 5말 등 피해액이 285만여원에 달한다.
  • 공직시험 여성 채용비율 20%로/내년부터

    ◎김 대통령 내일신문 회견/남북정상회담 언제든 환영 金大中대통령은 28일자 주간 ‘내일신문’과의 회견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해 여성에 대한 비례대표 후보 30% 할당제를 법제화할 예정이며 내년부터 각급 공직시험에서 여성채용 비율을 20%로 정하는 등 여성의 공직진출을 크게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일 발매되는 이 주간지 회견에서 金대통령은 사정(司正)과 관련,“이는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국가사회의 체질과 구조를 갖추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한 뒤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작업을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나 대통령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검찰을 앞세워 정치보복을 하는 일은 결코 있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남북 정상회담 추진문제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이 전부는 아니나 북한에서 모든 문제를 놓고 대화하자고 한다면 평양이든 서울이든 어느 곳에서나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경제장관들이 공동으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현재의 의사결정 체계가 장기적으로 정책수립의 합리성과 자발성을 높이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裴說과 梁起鐸의 삶(다시 태어난 ‘대한매일’:3)

    ◎‘구국민족지’이끈 울타리­대들보/배설­1904년 들어와 넉달만에 창간.35세 짧은 삶 마감 때까지 이국땅서 일제와 목숨건 싸움 대한매일의 역사를 말하자면 裴說과 梁起鐸 두 사람을 첫머리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창간자이자 발행인인 배설이 대한매일의 울타리요 지붕이었다면 양기탁은 이를 떠받친 기둥이자 대들보였다. 두 사람 가운데 양기탁의 삶은 그 당시 애국지사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대한매일이 일제에 넘어간 뒤의 행적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평생을 국권수호와 광복에 바쳤다. 반면 영국인 배설(Ernest T.Bethell)이 한국사와 맺은 인연은 독특하다.그는 31살(앞으로 배설의 나이는 생일까지 따져 만으로 표기)때인 1904년 한반도 땅을 처음 밟아 넉달 만에 대한매일을 창간했다. 배설은 입국 전까지 16년 동안 일본에서 사업을 벌였다.더욱이 영국과 일본은 러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영·일동맹을 1902년 이미 체결했다.일본에서의 오랜 생활 경험이나 영국이 일본의 동맹국이란 사실에서 배설은 친일 성향 가능성이 높은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낯선 땅에서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일 수 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그의 삶에서 단초를 찾을 수밖에 없다. 배설은 1872년 11월3일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당시 양조회사 경리사원이었으나 후에 극동을 상대로 한 무역회사를 차린다.배설은 고향에서 전문대 수준의 상업·기술학교를 마친 뒤 아버지 회사의 일본 사무소가 있는 고베로 건너간다.만으로 15살 때이다. 고베에서 골동품상을 하던 배설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터지자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로부터 특별통신원으로 종군취재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는다.이에 앞선 기자 경력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 자신은 1908년 6월 열린 재판에서 “일본에서도 신문에 관계한 일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배설은 1904년 3월10일 한국땅에 들어와 크로니클지 4월16일자에 ‘경운궁 화재’를 특종 보도하기도 했다.그러나 곧 해임되는데 ‘친일적 기사를 싣는 신문사 방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이어 그는 대한매일 창간에 들어간다.중국·일본에서는 영자지가 여럿 나오는데 한반도에는 없었다는 사실이 가장 매력적인 요소였을 것이다.그의 성격도 창간에 한몫을 했으리라고 여겨진다.배설 사후 대한매일에 실린 ‘배설공의 약전(略傳)’에는 ‘공의 성질을 대강 의론할진대 의협강의(義俠剛毅) 네 글자에 지나지 않으니’라고 밝혔다.곧 정의를 위하는 뜻이나 기질이 굳세다는 의미다. 양기탁과의 만남도 큰 힘이 됐을 것이다.배설은 입국 직후 통역 겸 번역자로서 양기탁을 소개받았다.이후 신문사를 만들어 함께 일하면서 같은 또래(양기탁이 한살 많다)로서 우정과 신뢰를 쌓아갔다. 배설은 일제에 의해 1907년 10월과 이듬해 6월 두차례 법정에 선다.두번 다 영국인이 재판장이었지만 판결은 일본측 입김을 강하게 받는다.1908년 재판에서 배설은 3주간의 금고형과 6개월의 근신,또 이를 어길 경우 추방한다는 판결을 받는다.그럼에도 기는 꺾이지 않아 1909년 1월 영자지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속간했다.이때 워싱턴 포스트지는 ‘배설을 중단시키는 방법이란 암살밖에 없을 것’이라는 서울발기사를 실을 정도였다. 배설은 그해 5월1일 35살의 길지 않은 삶을 이 땅에서 마감한다.일본은 물론 영국·미국 등 제국주의 열강은 그의 죽음이 ‘눈엣가시’를 뺀 듯 후련했겠으나 ‘한국인들은 투쟁으로 일관한 가장 믿었던 벗을 잃은’(후임 발행인 만함의 애도사 중에서)것이다. 우강(雩岡) 양기탁이 대한매일에 기여한 공은 어쩌면 배설을 훌쩍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배설이 일제 탄압을 가로막는 보호막을 대한매일에 제공했다면 그 안에서 실제 신문제작과 경영을 도맡다시피한 사람은 그이기 때문이다. 양기탁은 1871년 4월2일 평양에서 한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어려서 한학을 배워 10대 중반에 이미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우국지사,동학당과의 교류로 애국심을 키워나갔다.서울의 한성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일본 나가사키상업학교에서는 2년반 동안 한국어교사로 일해 영어 일어에도 능통했다. 그는 정부기관인 예식원에서 번역관보로 일하다 1904년 8월22일 제1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자 다음날로 그만두고 대한매일 제작에 본격적으로 매달린다.창간호가 7월18일 나왔을 때도 이미 간여한 만큼 그는 신문사 일과 예식원을 한동안 같이한 것으로 여겨진다. 양기탁은 대한매일에서 ‘총무(general manager)’로 통했다.공식 직함은 아니지만 편집과 업무일을 두루 책임지고 맡아해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지금 직제로는 전무쯤에 해당되는 셈이다. 대한매일이 1905년 영문과 국한문판을 분리하면서부터는 국한문판 제작이 중심이 되었고 그 제작은 전적으로 양기탁이 맡았다.배설 스스로도 “나는 한국말을 모르기 때문에 지면제작의 전권을 그에게 맡겼다”고 밝혔었다. 1908년 5월 일제 통감부의 기관지인 영자지 ‘서울 프레스(Seoul Press)’의 다음 기사는 양기탁의 지면제작 방향을 그대로 보여준다.이 신문은 대한매일 국한문판·한글판에 대해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원본으로 보이는 영문판과 판이하게 다르다.한국어판들은 영문판에 비해 훨씬 나쁘고,있는 그대로 못된 신문’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양기탁은 한민족에게 직접 배포되는 국한문·한글판에서 더욱 강력하고 공격적으로일제를 비판한 것이다. 1910년 6월14일 대한매일의 발행인이 만함에서 李章薰으로 바뀌자 양기탁은 ‘대한매일에서 손을 뗀다’는 광고를 신문에 낸 뒤 단호히 물러났다.이후 대한매일을 기반으로 조직한 신민회(新民會)사건으로 6년 동안 옥고를 치렀으며 1923년 만주로 건너가 무장독립단체인 의성단·통의부·정의부 등을 만들어 항일 무장투쟁에 나섰다.1933∼35년에는 남경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냈으며 38년 그 땅에서 서거했다.그의 유해는 지난 5월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 “교육계 비리 반드시 척결”/金 대통령 경기도청 방문

    金大中 대통령은 16일 “교육계에 부정부패가 있다는 것은 정말 통탄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국민의 정부에선 이것이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경기도청을 방문,林昌烈 지사 등으로부터 업무현황에 관해 보고를 받은 뒤 “이런 일은 극소수라고 해도 있어선 안되는데 문제는 교육계에 비리가 보편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을 반드시 해낼 것이며 절대로 적당히 넘어가거나 중도에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공무원 상층부의 부정은 거의 사라졌다고 확신하며 만일 남아있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또 “지방자치단체가 외자도입을 할 경우 정부는 필요하면 현재의 제한규정도 완화하는 등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金대통령은 지역언론 기자들과 회견에서 “지방경찰제도의 시행시기에 관한 문제는 남았으나 시행한다는 방침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 추석 특집 볼멘소리/영화 대부분 재탕·삼탕물

    ◎‘시간 때우기’ 드라마 재방송/네티즌 “야구 중계하라” 빗발 추석 특집프로에 대한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매번 기대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결과는 대동소이.시청자의 눈높이도 낮아질대로 낮아졌다.하지만 올 추석엔 낮아진 눈높이에도 맞지않는 편성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한국영화나 외화의 대부분은 역시 재탕 삼탕이었다.물론 볼만한 작품도 더러 있었지만 불만스럽다는 반응이 앞섰다.성룡과 이연걸을 빼면 홍콩영화가 없는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같은 배우의 작품을 여러번 봐야하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게다가 드라마 재방송도 상당한 시간을 차지했다.상계동에 사는 한 시청자는 “경영난 상황에서의 군살빼기 측면을 고려한다 해도 너무한게 아니냐”면서 “그러면서도 특집 운운하는 것은 속임수”라고 지적했다. 푸념의 절정은 3일 PC통신에서 벌어진 프로야구중계 요청 대란.각 방송사 시청자참여 코너는 다음날 프로야구 패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인 해태­OB전 중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3일 하루 하이텔에 쏟아진 원성(?)만 하더라도 MBC 28회 SBS 26회에 KBS는 무려 45회나 됐다.이날 시청자코너의 전부를 차지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야구를 꼭 중계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지만 준플레이오프 진출팀 결정전이라는 높은 관심도에 비춰볼때 방송 3사가 이 시간대를 철지난 ‘전설의 고향’이나 월화드라마 재방영만으로 채운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게 네티즌들의 지적이다. MBC의 이긍희 편성실장은 “IMF영향으로 비용문제가 제일 걸림돌인데 비싼 돈을 주고 들여온 외화를 한번만 방영하고 그만두기는 힘든게 현실이다”라고 배경을 털어놓았다.또 스포츠 제작부의 한 관계자는 “편성상의 이유라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스포츠 생중계가 드라마재방송보다 시청률이 낮은 현실에서 광고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게 대세”라고 설명했다. 다른 방송사도 비슷한 이유를 내세운다.나름대로의 사정은 있겠지만 시청자 주권의 관점에서는 약간 궁색하게 들린다.내년 설연휴부터는 보다 짜임새 있는 편성으로 ‘쉴만한 프로’를 준비하는 자세를 기대해 본다.
  • 너무 짧은 시험공고(공무원 시험 변화의 바람:3)

    ◎시험 한달전 ‘벼락 공고’… 수험생 곤혹/시험때마다 준비에 차질/사전 공고된 경찰직 인기/“충원계획 짜기 어렵다” 주관기관 사전공고 기피 사법·행정·외무고시의 1,2차 시험이 대부분 끝난 요즘 신림동 고시촌에는 ‘설(說)’들이 무성하다.내년 시험 실시시기를 놓고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모 사법시험위원회 위원의 입에서 나왔다는 얘기까지 덧붙여져 소문들은 그럴싸하게 나돌고 있다. 이처럼 고시생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시험 시기.이에 맞춰 시험준비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국가직 시험은 매년 1월 초에 일괄적으로 공고돼 왔다.사법시험 1차는 2월,행정고시와 외무고시는 각각 3월에 치러진다.수험생들은 이같은 시험공고 일정이 불만스럽다.공고난 지 한달 또는 두달만에 시험을 본다는 것은 너무 빡빡하다는 얘기들이다. 서울 H대학 졸업생인 金成澤씨(30)는 “공고에서 사법시험까지 한달의 기간밖에 주지 않아 준비할 여유가 많지 않다”며 시험 일시를 아예 매년 몇월 며칠로 정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신림동 고시학원의 吳모 원장은 “시험일자 공고는 1년 동안의 공부를 마무리해야 하는 수험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며 시험일을 몇달 전에 알려주는 예측가능한 행정을 펴줄 것을 촉구했다. 7,9급 시험은 한달 전 공고하는 ‘벼락시험’이어서 수험생들을 당혹케 하기 일쑤다.노량진 학원에서 7급 일반행정직을 준비하는 梁모씨(25)는 촉박한 시험 공고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간호학과를 졸업해 2년간의 시험준비 기간 동안 서울시 7급 행정직 한 번 치른 것이 유일하다. 지난해 1점 차이로 아깝게 낙방했지만 올해에는 서울시 7급은 시험이 아예 없어 1년 동안 헛수고만 한 셈이다.육서당한교 고시학원의 李雨 원장은 “한달 전 갑자기 시험공고를 하면 수험생은 정보를 몰라 시험을 놓치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런 탓에 최근 하급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경찰직.올해 5번의 시험을 보기 때문에 기회가 많다는 이유에서다.의경출신인 金모씨(28)는 H보험회사 영업사원을 그만두고 경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金씨는“다른 시험은 언제 볼 지 예측할 수 없지만 경찰직은 사전에 공고가 돼 있어 합격 가능성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험주관 기관은 수험생들의 요구사항에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는다.행정자치부는 올해부터 한달 정도 앞당겨 12월 초에 공고할 예정이지만 더 이상 앞당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힌다.각 부처에서 필요 인원을 파악해 충원계획을 짜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서울시 인사과 관계자도 “요즘에는 명예퇴직자가 많아 어디서 어떤 인력이 필요할 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교원임용시험에 대한 대학생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한햇동안 열심히 공부했지만 한 명도 임용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한달 전에 했기 때문이다.
  • 민주열사 열전:10/분신 택시기사 朴鍾萬(정직한 역사 되찾기)

    ◎노동운동 탄압 항거 84년 분신/군사정권 反노동자적 행태에 격분/민주노조 파괴공작 목숨 바쳐 제동 84년 11월30일 오전 11시30분. 조인식 여사(46·국민회의 민원부국장)는 문밖에서 나는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남편 회사차였다.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았구나”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 조여사는 눈을 감았다. 시커멓게 그을리고 온몸이 부풀어오른 알몸의 사내는 바로 자신의 남편 朴鍾萬이었다. 물을 달라고 소리지르던 그는 부인을 알아보고는 거듭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할일이 남았으니 퇴원시켜달라고 떼를 썼고,옆에 있던 동료들에게는 빨리 회사로 가 일을 수습하라고 재촉했다. “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동료기사들의 희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몸에 불을 붙였던 택시기사 朴鍾萬. 그는 저녁 8시50분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회사 노조어용화 기도 무엇 때문에,누구를 위해서 그는 죽어야 했을까. 노조대의원이었던 朴鍾萬은 소속회사인 민경교통이 노조사무장 이태길씨를부당 해고하자 이에 항의하는 단식농성 끝에 분신자살했다. 당시 이씨는 조합주택 기금 유용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노조위원장을 대신해 노조를 열성적으로 이끌고 있었고 회사는 사소한 이유를 들어 그를 해고했던 것이다. 그외에도 노사간에는 몇가지 요인으로 갈등이 쌓여 있었고,여기에 노조위원장의 비리의혹과 어용화,노조의 분열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회사는 그 이전부터 3차례에 걸쳐 노조간부를 해고하고 정상적인 성과급 지급을 거부하는 등 상습적으로 부당 노동행위를 자행해 왔었다. 또한 고참기사들 중심인 상조회 회원들을 노조에 가입시켜 노조 분열을 조장하고 노조의 어용화를 기도했다고 한다. 朴鍾萬은 노조위원장도 사무장도 아닌 대의원에 불과했지만 그런 부당해고를 통한 노조파괴공작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해고통지서가 게시판에 붙자 鍾萬이는 격분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비단 자신들만이 아닌 전국의 택시기사들이 당하는 문제라고 보았어요”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안을환씨(48·개인운송조합 은평지부 차장)의 회고다. 안씨는 그가 숙직실에서 운행일지 뒷면에 무언가를 적고 있어 무얼 쓰느냐며 다가가자 “알 필요 없다”며 찢어 잠바주머니에 넣었다고 말했다. 그때 쪽지 앞부분에 “내 한목숨 희생되더라도…”란 글귀를 분명히 보았으며 안씨는 쓸데 없는 생각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유서로 보이는 그 쪽지를 찾으려고 잠바를 뒤졌지만 없었다고 했다. 당시 동료들은 朴鍾萬이 유달리 의협심과 동정심이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동료 일이라면 발벗고 뛰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항상 그를 먼저 찾았고 따라서 동료들로부터 ‘대장’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한다. 동료 부인이 중병이 걸리자 아이를 자신의 부인 조씨에게 맡겼고 적금을 깨 급한 일을 당한 동료를 돕기도 했다. 과로로 2개월간 쉬고 나온 동료가 한푼의 월급도 받지 못하자 자기일은 팽개치고 동료일에만 매달려 당사자가 그만두자고 하기까지 했다. ○갖은 회유·협박 물리쳐 회사는 모든 기사들이 따르는 그를 회유하려고 새 차를 우선 배정하기도 했지만 즉각 거절당했다. 역시 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배철호씨(48)는 “朴鍾萬은 진실 하나로 조합에 참여한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무장의 해고가 결정되기전 전무를 찾아가 ‘해고’가 아닌 ‘자진사퇴’만이라도 허락해달라고 빌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당시 택시회사에서 해고되면 회사마다 비치돼 있는 이른바 ‘취업카드’에 기록됐고 ‘불순분자’로 찍혀 택시를 몰 수가 없었다. 그는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회사정문 앞에 가마니를 깔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동료기사인 배철호 안을환씨도 곧 합류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던 한 회사 고위간부는 추위때문에 동료들이 갖다준 담요까지 빼앗아 갔고,“너희들도 오래 못갈 것”이라고 협박했다. 분신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함께 농성을 하던 두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노조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석유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배씨가 낌새를 채고 그를 부른 순간 朴鍾萬은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어 창문을 깨고 튀어나왔다. 당시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이 사건의 배경으로 노사대립을 적절히 수렴할 만한 제도적 장치 미흡과 분규 해결과정에서의 기업과 정부의 진지하지 못한 자세를 꼽았다. 그러나 이것은 핵심을 벗어난 ‘점잖은’ 분석이었다. 실은 독재정권 유지의 자양분인 정경유착에 의한 착취구조와 정권의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적 시각이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정부는 그 이전부터 노동자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 정보기관이나 행정관청의 노동운동에 대한 눈에 띄지 않는 감시와 통제,신규노조 설립 신고 반려 및 어용노조 결성 유도,임금인상투쟁에의 경찰 개입 및 민주노조 파괴행위 등이 일상화돼 있었다. 朴鍾萬 열사는 민경교통 노조사무장 이태길씨가 아닌 전국 택시회사의 부당해고와 노조탄압,독재정권의 반노동자적 행태에 항의해 분신했던 것이다. □朴鍾萬 열사 연보 ▲1948년 부산출생 ▲68년 서라벌고교 3년 중퇴 ▲82년 (주)민경교통 입사 ▲83년 노조 복지부장 ▲84년 11월30일 분신 ◎가족·동료들 그후/부인 조인식 여사 민주화투쟁 혼신/동료 이태길씨 충격 딛고목회의 길 朴鍾萬 열사의 죽음이후 부인 조인식여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죽었을때 31살의 평범한 운전기사 아내였던 조여사는 지금 집권여당 민원부국장으로,국민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같이 고민하며 해결점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 당시 장례식때까지만 해도 기가막히고 경황이 없어 죽음의 의미 같은 것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을 일산공원묘지에 묻고 돌아오면서 억울함이 복받쳐 올라왔다고. 그때 노동부는 남편 죽음의 배경을 단순한 노조 내분과 朴鍾萬의 개인적인 결함으로 몰아붙였던 것이다. 조합장과 사무장의 실권 장악 다툼에서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하고 朴鍾萬이 전과 3범이라는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전과라는 것이 하나는 고등학교때 열차역 앞에 있는 자재를 엿바꿔먹은 행위였고,나머지는 간이매점을 운영할때 옆집 사람과 물품인수과정에서 싸움이 붙었던 것,민경교통에서 동료운전사의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로 회사측과 다툼이 있었던 것이었다. 조여사는 그때부터 남편의 명예회복에 직접 나섰다. 같은 처지에 있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민주화투쟁 및 노동운동 현장에 악착같이 나갔다. 또 박종만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추모사업과 함께 운수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담는 ‘운수노보’를 발행했다. 당시 朴鍾萬과 함께 단식농성을 했던 안을환씨는 그의 죽음이후 노조위원장을 맡아 근무여건 개선에 앞장서다 4년후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분신의 직접적 원인제공자가 됐던 사무장 이태길씨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노동 자체가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그것이 죽음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이 그를 평상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했다. 영안실에 朴鍾萬이 내걸었던 요구조건을 내걸다 경찰서 정보과로 붙들려 갔던 그는 1년여 동안 기도원을 돌며 기도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신학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서울 응암동 응암중심교회에서 목회자로 일하고 있다. ◎당시 택시기사 근무여건/회사마다 ‘취업카드’ 비치 노조활동 방해/사납금 과중으로 사고율 다른 車의 4배 당시만 해도 택시기사는 구조적으로 회사측에 한없이 무력했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종속관계에서,‘돈은 주는 대로 받고 일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전근대적인 의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곳중의 하나가 택시회사였던 것이다. 우선 노조원들은 해고 앞에 무력한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가 회사마다 비치돼 있던 ‘취업카드’에 ‘해고’라는 단어가 기록되면 택시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朴鍾萬씨처럼 해고가 아닌 ‘자진 사직’을 시켜달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 운전사들,특히 고참 운전기사들이 기업주에 쉽게 굴복하는 것은 대부분 기사들의 꿈인 개인택시에 대한 욕심때문이다. 개인택시를 몰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무사고 운전기록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하는데 회사측의 협조나 배려가 꼭 필요한 것이다. 또 회사에 노조가 있으면 회사를 팔아먹기도 힘들고,따라서 값도 깎이기 때문에 업주들은 기를 쓰며 노조설립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노조를 통해 업주에게 대항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기사들은 상당히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해야했다. 다른 차량에 비해 교통법규 위반이나 과속, 난폭운전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사고빈도가 매우 높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택시는 다른 차량에 비해 4배 정도 높은 사고율을 보였는데 과중한 사납금이 주요 원인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운전사들은 병도 많아 78.5%가 위장병을 앓고 있으며,시력장애는 40%,신경성 질환 38.5%,성욕감퇴 23.1%라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추석연휴 앞둔 공단 표정

    ◎빈손 근로자들 눈물 글썽/‘귀향버스 대절·선물꾸러미’ 옛말/체임업체 늘면서 거리마다 썰렁/부모님 뵐 면목없어 전화로 대신 “힘들지만 올해는 참아야겠지요.” 2일 오전 서울 구로공단.예년 같으면 추석연휴를 맞아 귀향 인파로 북적댔겠지만 올해에는 눈에 띄게 썰렁했다.선물 꾸러미를 싸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년 같으면 귀향교통편을 알리는 공고문이 빼곡이 붙어 있을 공단내 안내 게시판도 텅텅 비어 있었다.전세버스를 이용해 고향을 찾는 근로자들도 보기 드문 광경이 됐다.구로공단에 입주한 465개 업체 중 전세버스를 마련한 곳은 구로 1공단에 있는 (주)한창 한 곳뿐이다. ‘고향행’을 포기하고 연휴 전날까지 작업을 하는 사업장도 많았다. 지난해 말 부도가 난 뒤 지난 8월 화의가 개시된 대림금속.자동차부품을 제조하는 이 회사는 125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65명으로 줄었다.월급도 끊겼다가 지난달 25일에야 겨우 절반만 지급됐다.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연차수당·철야수당을 모두 반납하고연휴 전날까지 작업을 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봉급도 깎이고 상여금도 못받았지만 이번만은 참기로 했다. “고향에 몸만 갈 수 있나요.내년을 기약해야죠.” 지난해 7월부터 실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한 朴勝民군(19)은 이달 월급으로 30만원을 받았다.지난해 추석때는 부모님 옷을 마련해 고향에 갔지만 올해에는 회사 기숙사에서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형제작업체인 영도정밀의 林鍾喆씨(40).13평 남짓한 공장에서 직원 1명과 함께 매달 2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었다.IMF체제 이후에는 일감이 뚝 떨어졌다.직원도 그만두고 이제는 혼자 남았다.한달 수입도 50여만원에 불과하다.충남 서천의 부모님께 매달 꼬박꼬박 부쳐주던 생활비도 끊은 지 오래다. “명절이라고 내려가면 부모님께 용돈이라도 드려야 하는데 면목이 없어요. 그냥 집에서 가족들과 보낼 생각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로공단 상설 할인매장은 대목을 맞아서도 매상이 오르지 않아 울상이다.2공단 상설의류 할인매장 앞 주차장과 진입도로는 예년 같으면 추석선물을 사려고 몰려든차와 인파로 가득했지만 올해는 한산하기만 했다.최고 90%까지 할인판매를 하는 의류매장에서도 1만원짜리 옷이 비싸다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뿐이다. 반면 드물기는 하지만 넉넉한 한가위를 기대하는 업체도 있다. 기차 모형품을 만들어 파는 삼홍사. 직원 360명 모두에게 100%의 상여금을 지급하고 2만2,000원짜리 종합선물 세트도 돌렸다. 광주가 고향인 李惠圓씨(23·여)는 “주변에는 봉급도 제대로 못받는 친구가 대부분인데 상여금과 선물까지 받아 너무 기쁘다”면서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 공무원의 별… 1급 어떤 자리인가

    ◎사무관서 25∼30년… 능력·운 따라야/차관보·기획실장 연봉 5천만원선/운전기사도 지원 산업자원부에 이어 재정경제부의 1급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1급은 어떤 자리일까. 샐러리맨의 최고의 꿈은 조직의 수장인 사장이다.하지만 공무원들에게 사장에 해당하는 장관의 꿈은 너무 멀다.그저 1급이라도 됐으면 원이 없겠다고 한다. 기업에서는 이사,공직사회에서는 1급이 되면 별 달았다고 말한다.1급의 대우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권한은 엄청나게 크다. 1급이라면 정부 부처의 차관보나 기획관리실장을 모두 일컫는다.재정경제부의 세제실장과 국세심판소장,산업자원부의 자원정책실장과 무역정책실장 등이 1급이다. 엄밀히 말하면 차관보는 1급상당 별정직이고 기획실장 등은 일반직의 최고직인 명실상부한 1급이다.1급은 군(軍)으로는 소장이나 중장정도에 해당한다. 국장급에서 1급이 되면 먼저 달라지는 것이 운전기사가 제공된다는 점.관용차는 제공하지 않지만 운전기사를 정부부담으로 제공한다. 연간 보수액은 1급 최고호봉의 경우 5,182만원(월 평균 431만원)으로 국장급 4,733만원(373만원)보다 조금 많다. 대기업의 부장급 정도에 불과하다.개인적인 기밀비는 없고 맡고 있는 부서의 판공비 한도내에서 사용하지만 영수증 첨부 등 절차가 까다롭다. 일반 기업의 샐러리맨과 달리 정부 1급의 권한과 대우는 막강하다.1급은 부처내 인사위원회에 참여한다.중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차관의 대리역으로 부처간 차관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대개 1급의 수명은 1­2년이며 길어야 3년을 넘지 않는다.그 안에 차관으로 승진하거나 옷벗고 산하기관으로 가야 한다.일반기업과 달리 ‘물좋은’ 부처의 경우 차관보에서 바로 그만두는 법은 없으며 대개 산하기관장으로 간다.국장급은 산하 기관장으로 옮기기 어렵다. 1급이 되는 길은 25­30년이 걸린다.능력에다 운과 그리고 연줄이 작용해야 한다.한 경제부처 과장은 “1급은 능력만으로는 안된다.능력은 단지 ‘참고사항’일뿐” 이라며 그외의 변수가 많이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 부패 정치인 퇴출 與野 모두 나서야/金時佑(발언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불신하는 풍조가 있다.이는 우연히 생겨난 일이 아니다. 국세청장과 차장까지 동원하여 정치자금을 조성했으면 경위야 어떻든 우선 국민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한다.부끄러움을 알고 자숙해야 한다.그 후에 당 차원에서의 진상규명이 공당의 태도일 것이다. 모두 똑같은데 왜 나만 잡아가느냐,그것이 억울해서 국회의원들은 갖은 추태를 보이는 모양이다.그러나 이는 소인배의 시비이지 정치지도자의 길이 아니다. 표적수사 시비나 억울함은 여론으로 형성되는 것이지 당사자들이 목청을 높여 말할 것이 아니다. 더욱이 임시국회까지 이용하고,지역감정까지 악용하고 있으니 이는 나라야 어찌되건 제 몸만 보호하려는 비열하고도 오만한 행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배고픈 백성이 밥 한 그릇을 훔쳐 먹어도 유치장 신세이고 단돈 만원을 훔쳐도 벌을 받는다.그런데 수천만원,혹은 억대의 돈을 받고도 이를 눈감아주지 않는다고 대가성이 있느니 없느니 자기변명만 내세우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국회의원과 사람이 물에 빠지면 강물이 오염되기 전에 국회의원부터 건져야 한다는 항간의 유행어가 웃자고만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같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의 모습이 당당해져야 한다. 늘 질서를 파괴하고 기강을 무너뜨리며,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누리는 선량한 백성들의 생활리듬을 깨뜨리는 자들은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이른바 힘있는 자들이었다. 이제 그런 정치인들은 퇴출돼야 한다.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경제질서가 잡힌다.공권력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범죄를 다스리는데 추상같은 힘을 보여야 한다.여기에 무슨 시한이 있고 여야가 있겠는가. 경제 살리기가 더 급하다는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며 부정부패 척결을 그만두자는 일부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주장이야말로 가치관을 혼돈시키고 역사를 그르치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의 회기중 불체포특권이란 국회의원에게 옳은 일을 하라는 방패막이지 결코 범죄행위를 엄폐하라는 보호막은 아니다. 지금 국민들은 소신있고 애국하는 용기있는 정치인을 원한다.당리당략과 아전인수격의 정치논리에 신물을 느끼고 있다.나라를 위하는 일에 여야가 있을 수 없고 부정부패를 도려내는데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무엇때문에 이전투구인가.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 주부서 민주투사 변신/아지자 말聯 안와르 부인

    코라손 아키노,아웅산 수지….정적(政敵)에게 희생된 남편과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평범한 가정 주부이면서 비범한 민주 투사들. 아키노 여사는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 독재권력에 의해 암살되면서 평범한 가정주부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민주화 투쟁을 벌여 마르코스를 축출하고 필리핀 대통령에 올랐다.정적(政敵)에게 살해된 미얀마 독립운동가 아웅산 장군의 딸인 수지 여사도 가정주부였다가 독재정권의 전횡에 분노,민주화 투쟁에 뛰어 들었다. 또 한명의 평범한 가정주부가 가시밭길에 뛰어들었다.주인공은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의 부인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 여사(46).20일 밤 경찰이 급습,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을 강제연행하자 민주화 투쟁에 동참할 것을 선언했다. 평소 남편의 그림자를 밟을세라 근신하며 내조해온 탓에 6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안과의사를 그만두고 가정주부로 돌아간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아지자 여사는 “예전의 마하티르 총리는 위대한 지도자였으나 지금은 ‘정치 무법자’로 표변했다”며 “나는 항상 목소리를 낮췄으나 2,200만 말레이시아인들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것만은 방관할 수 없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단호하게 밝혔다.
  • 司正을 政爭으로 왜곡말라/金三雄 주필(時論)

    “억울한 욕을 당할 때는 낮잠만 자고 있다가 옳은 일을 해보려면 밤잠을 자지 않고 반대한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 북행(北行)을 떠나려 할 때 이를 한사코 반대하며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쓸쓸한 독백이다. 여기서 ‘억울한 욕을 당할 때’란 송진우씨 암살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법정에 서게 된 일을 말한다. 결국 ‘밤잠을 자지 않고 반대’한 세력에 의해 백범의 통일정부 수립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정부의 정치권 사정과 관련하여 일부 언론이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 경제를 살려야 할 때에 맨날 사정만 하느냐는 것이다. 정부의 사정을 정쟁으로 치부하면서 개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얼마전까지도 정치부패를 척결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열을 올렸던 언론이다. 부패정치인을 ‘퇴출’시키라고 얼마나 촉구했던가. 그런 언론이 막상 부패정치인에 대해 사정이 본격화되자 엉뚱한 이유를 들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부패의 ‘몸통’을 보호하려는 정치적 배경인지, 정치개혁을 좌절시키려는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이 기회에 부패정치를 청산하라는 국민의 뜻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주장이다. 엄격히 말해서 경제살리기와 정치인 사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회생은 급선무이고, 사정은 후선책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패척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부패구조를 개혁해야 국난의 근본원인이 김영삼정부의 무능과 정경유착, 정치부패에서 기인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치부패를 그대로 둔채 경제회생부터 하라는 것은 모래 위에 가건물부터 짓자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온몸에 퍼진 암세포를 그대로 두고 영양제나 계속 투여하자는 논리와 진배없다. 우리는 과거 몇차례 개혁의 기회를 잃었다. 오랜 일을 그만두고 13대 국회에서 5공청산 작업이 진행될 때도 일부 언론이 “언제까지 5공청산이냐”고 여론을 조성하여 ‘5공청산’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때라도 정경유착의 부패구조를 제대로 척결했었다면 오늘의 국난은 예방되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해서 나라를 이 꼴로 만든부패정치의 구조악을 그대로 두고 경제회생은 불가능하다. 구린내 나는 부패의 하수구를 묻어둔채 새로 시작하자는 논리는 구조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며,이는 미래의 부패도 용인하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부패척결은 정치개혁의 전단계이며,이는 바로 깨끗한 정치를 통해 경제회생과 제2건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오늘 비록 수술의 아픔이 따르더라도 종양을 제거하지 않으면 생명을 지키기 어렵다. 일부 언론이 사정과 정쟁을 등식화시키면서 정부가 경제회생을 팽개치고 사정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단선적 사고의 전형이다. 정직한 언론이라면 국난의 책임을 묻고 부패척결과 정치개혁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자고 써야 한다. ○부패혐의 있으면 측근부터 비록 오늘의 아픔이 따르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다시는 부실 국가가 되지 않도록 일부 성급한 국민을 위로하고 여론을 조성하면서 사정(司正)을 지원하고 개혁을 선도해야 옳다. 그리고 따져야 할 일이라면 편파적인 사정은 없는가,왜 거물급을 제쳐두느냐,결코온정주의가 작용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결코 좌고우면해서는 안된다. 일부 기득권층의 여론이 마치 국민의 여론인 것으로 착각해서도 안된다. 이번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지 않으면 우리 정치,나아가서 국가의 희망을 찾기는 어렵다. 정부에 당부하고자 한다. 결코 사정에 여야 차별을 두거나 표적수사,정치보복이어서는 안된다. 공정무사하게,부패혐의가 있으면 측근부터 척결하는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옳은 일을 해보려면 밤잠을 자지 않고 반대’하는 백범의 독백과 좌절이 두번다시 되풀이되어선 안되겠다.
  • 자녀대상 범죄 늘어 충격/자살위장극·요구르트 독살 이어 올3번째

    ◎생활고 이유 힘 약한 자식 희생양 삼아/전문가들 “가정 붕괴땐 人倫 무너질것” 이번 아버지에 의한 아들 손가락 절단 사건은 IMF사태 이후 가족붕괴형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발생,충격을 더하고 있다. 특히 가족 내 약자인 자녀를 이용하거나 대상으로 삼는 범죄가 갈수록 잔인하고 빈도도 높아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월 서울에서 발생한 중학생 李모군의 자살 위장극과 7월 울산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요구르트 독살사건에 이어 물욕에 눈이 어두워 자식을 희생양으로 삼은 세번째 사건이다. 이들 사건은 모두 부모가 아들을 범죄도구로 삼은 자작극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마산 사건의 경우 비록 아버지 姜鍾烈씨가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는 하나 분별력이 없는 아들을 꾀어 신체의 일부를 자르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사전 계획하고 예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아연케 하고 있다. 앞서 지난 7월19일 발생한 농약 요구르트 사건도 아버지가 요구르트 제조업체와 백화점 등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기 위해 아들을 살해한 자작극으로 추정되고 있다. 李모군 자살위장극의 경우도 李군이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어 엄마 병을 고쳐드리고 싶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꾀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 각지에서 온정이 답지했지만 나중에 어머니 朴씨가 궁핍한 생계를 면하기 위해 아들을 시켜 자작극을 연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련의 사건을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가치관 혼돈과 세기말적 아노미현상이 IMF 이후 생계위기와 맞물리면서 더욱 깊어지고 있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남대 河泰榮 교수는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가장의 실업이 가족구성원 전체를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서 “가족 내 인간관계의 퇴행은 경제난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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