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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시촌 ‘아나바다’바람

    고시촌에도 벼룩시장 붐이 일고 있다.경제난의 여파로 책값을 조금이라도아끼려고 헌책을 활용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대상도 고시에서부터 법무사 변리사같은 각종 자격증 시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거래는 PC통신이나 고시정보지,서점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책 주인은 헌책을 팔아서 다른 책을 사고,구매자는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아나바다(아껴쓰고,나눠쓰고,바꿔쓰고,다시쓰는) 운동’인 셈이다. 행정고시를 준비중인 서울대 졸업생 이모씨는 헌책을 가장 잘 활용하는 케이스.이씨는 책을 사면 중요한 요점만 체크하면서 빨리,깨끗이 읽고 벼룩시장에 내놓는다.새책이나 다름없는 고시서적은 구입가격의 75% 정도에 금방팔린다. 한 수험생은 “가산점을 받기 위해 정보처리기사 시험도 준비하다 포기하게 됐다”며 구입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은 2만2,000원짜리 정보처리기사 수험서를 1만5,000원에 내놓았다. 잘하면 80여만원 짜리 책도 10만원쯤에 살 수 있다.법무사 수험공부를 시작했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는 한 수험생이 이런 파격적인 가격으로 PC통신에 ‘공급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헌책을 사려는 수험생도 적지 않다.한 수험생은 “행정학을 정가의 40%에 사겠다”는 의사를 PC통신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PC통신 등을 통한 직거래는 값이 싼 대신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까닭에 서울 신림동 고시서적 헌책방을 찾는 수험생들이 상당히 늘었다. 신림동 헌책방인 ‘책창고’의 주인 신현수(申鉉洙)씨는 “IMF 이전에 비해 헌책을 찾는 수험생들이 30% 정도는 늘어난 것같다”고 말했다.죽림서적 주인 김형식(金炯植)씨는 “고시생에게 한 권에 3만∼4만원씩 하는 책값은 상당한 부담”이라면서 “헌책의 장점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미리 밑줄을 그어놨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박정현기자 jhpark@
  • 법무사자격제도 대수술 시급

    “법원과 검찰 직원들에게는 지난해 300명 가까이 자격증을 주고 시험선발은 30명으로 제한하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법무사를 지망하는 수험생들의 법무사 자격제도에 대한 불만은 대단하다.공기업을 그만두고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진영화씨(38·가명)는 “공무원의 전관예우를 위해 국민은 일자리마저 빼앗겨야 하는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법무사 자격증의 문제점 수험생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법무사의폐쇄성이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전문 자격사 가운데 공무원 출신으로 자동으로 자격을 부여받은 비율이 법무사는 94.2%이고 공인노무사 62.1%,관세사 44.2%,변리사 30.3%,세무사 24.5%이다.다른 시험은 경력 공무원에게 시험과목을 일부 면제해주고 있지만 법무사와 변리사는 시험을 모두 면제해주고 있다. 대전에 사는 이재희(李在熙)씨는 “법원 직원 출신에게 자동으로 자격증을 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형사사건을 다룬 검찰 직원에게도 자격증을 준다는 것은 더욱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법무사 시험제도뿐 아니라자격증을 따고 나서도 장벽은 곳곳에 있다.합동법인의 경우 5명 이상의 법무사 가운데 2명은 공무원 경력자이거나 10년 이상 법무사 종사자로 정해져 있어 합동법인의 자유로운 설립을 가로막고 있다. 또 공무원 출신에게 자동으로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유착관계를 조장한다고지적돼 왔다.협회 가입이 강제되고 내규로 광고행위를 규제,자유로운 영업활동을 제한하고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도 문제시돼 왔다. 법조계 반응 법원행정처 송기헌(宋基憲)등기과장은 “법원·검찰 직원에게 자격증을 주는 것이 평등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지 않는다”고 반박한다.검찰 직원들은 법무사 자격증을 받기에 충분한 법률적인 소양과 자질이 있다는것이다.법조계에서는 법무사제도에 손질이 가해질 것이라는 소문에 명예퇴직을 신청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선 전망 법무사 자격은 대법원장이 인정하고,시험시행도 법원행정처 소관이다.규제개혁위원회가 법원행정처에 세무사 등의 자동 자격증부여제도 폐지방안을 전달하고 개선을 권고하는 데 그친것도 이 때문이다.법원행정처도 곧 개선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법원행정처가 직원들의 기득권을 깨트리고 얼마나 획기적인 개선안을 내놓을지 주목을 모으고 있다.
  • [오늘의 눈] 본질 벗어난 농·축협 명칭 싸움

    한동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농협과 축협이 최근 때아닌 ‘이름 논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농·축협 중앙회 통합을 앞두고 통합중앙회의 이름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관건이다.농협은 현재 명칭인 ‘농업협동조합중앙회’로 하자는 반면 축협은‘축(畜)’자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맞선다.양쪽은 그 나름대로 논리적근거도 대고 있다. 농협은 이름을 바꿀 경우 통장·수표를 다시 발행해야 하는 등 소요비용이막대하다는 점을 꼽는다.“이름 하나 바꾸는데 2,100억여원의 헛돈을 쓸 수있느냐”는 주장이다.이에 반해 축협은 29년 역사의 전문협동조합의 명맥을잇기 위해선 축산업을 뜻하는 용어의 반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또 과거의 적폐를 해소하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두 조합은 벌써부터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공세에 들어갈 만큼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작명문제가 이번 협동조합 개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말마저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이름 석자에 목숨을 거는 이도 있고,명칭이 단체의 얼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논쟁을 벌이는 사정이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그러나 본질을 떠난 소모적 논쟁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농·축협 비리의 피해 당사자인 농민의처지에선 턱없이 한가로운 사안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통합중앙회의 주도권을 쥐겠다”거나(농협중앙회),“애초부터 원치않는 농협과의 통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축협중앙회)으로 논쟁을 시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많다. 문어발식 경영과 조합비 횡령 등 온갖 비리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지 불과 두달여가 지났을 뿐이다.현재도 검찰 수사로 농·축협 임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는 실정이다.그런데도 두 조합은 통합 협동조합의 기구개편 등 세부 개혁방안에 합의하지 못한 채 서로 반목과 질시만을 거듭하고있다. 단체의 이름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것은 협동조합 개혁의 본질과는 무관하다.두 조합이 이제부터라도 소모적 논쟁은 그만두고 국민과 농민에게 빚진 심정으로,참회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개혁작업에 동참하길 바란다. 박은호 경제과학팀
  • 현직공무원 ‘연금불이익’ 안받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현직 교원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할 때 연금 기금부족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부예산으로 공무원연금에 기금을 출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김대통령은 12일 교육부 국정개혁과제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이해찬(李海瓚)교육부장관으로부터 “연금법 개정으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때문에 교원들이 대거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등 교직사회가 동요하고 있어 이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건의를 받고 “교원이 동요되지 않도록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 95년 12월 연금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공직에 몸담은 일반공무원,교육공무원은 종전대로 퇴직연금 또는 일시금 및 명예퇴직수당을 받을수 있게 됐다.특히 교육공무원은 오는 2000년 8월까지 명예퇴직을 신청하면종전 65세 기준으로 명퇴수당을 지급받게 된다. 정부는 향후 공무원 연금제도를 개선하더라도 현직 교원을 포함한 기존 공무원에 대해서는 현행의 기득권을 유지해 줄 방침이다. 현행 연금제도는20년 이상 재직하다 그만두면 연령에 상관없이 사망 때까지 퇴직연금을 받거나 일시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다만 96년1월1일 이후 임용자에 대해서는 연금불입기간 20년을 채우지 않고 퇴직할 경우 60세에 미달하는 연수만큼 연금이 일정비율 줄어든다. 한편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연금적립액은 지난 96년말 기준으로 5조6,805억원에서 97년 6조2,015억원으로 늘었으나 지난 해 4조7,844억원으로 줄어든데 이어 올해 말에는 1조6,807억원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32)춘원 이광수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송욱(宋稶) 전 서울대 교수(80년 작고)는 생전에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 지식인의 역사적 현실’이란 글에서 춘원 이광수의 편린 하나를 남긴 바 있다.문학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그는 친구와 함께당대의 대문호이자 우상이었던 춘원 이광수를 만나볼 요량으로 춘원의 부인(허영숙)이 경영하던 산부인과병원으로 찾아갔다.간호사의 안내로 병원의 긴복도를 지나 온돌방에 다다르자 춘원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황송해하며 춘원에게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설 무렵 라디오에서 일본어 방송이 흘러나왔다.그러자 춘원이 “이 방송은 이세대신궁(伊勢大神宮)에서 올리는 ○○제(祭)의 실황 중계방송이죠”라며 자못 경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춘원은 일본군국주의 종교의식에 방송을 통해서 참가하고 있는 것이었다.의외의 장면을 목도하고 춘원에 대해 실망을 느낀 두 사람은 이내 그와 작별하였다.두 사람의 등 뒤에 대고 춘원은 “이제부터는 작품을 일어로도 쓸 수 있고 우리말로도 쓸 수 있어야죠”라고 권했다.이후로 그는 춘원의 글을 많이읽지 않았다고 적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창씨명 香山光郞).역사속에서 우리는 그를 어찌 볼 것인가?그의 당대에서부터 사후 반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려 왔다.문학적 업적을 강조한 ‘대문호’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민족반역자 ‘친일파’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92년 그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유족·추종자들이 기념행사를 하면서작성한 한 자료에 의하면,그를 연구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40여편이나 됐다.그런데 그 논문의 주제는 전부 문학분야였다.그의 일제하 친일행적을 연구한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이래놓고 그의 진면목을 탐구했다고 할 수는없다. 이처럼 그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생애 전반을 아우르기 보다는 문학분야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그에 대한 평가가 균형을 잃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춘원처럼 ‘시대의 인물’로 활동한 자는 그가 활동할 당시의 시대상황과 당시 민중들이 그를 어떤 인물로 인식했느냐 하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춘원이 문인인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민중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2·8독립선언’의 작성자이자 샹하이 시절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을 만든 ‘민족지사’로서의 면모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의 변절에 대해 민중들이 안타까와 하고 분노해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춘원을 문인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마치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군인,만해 한용운(韓龍雲)선생을 스님으로만 평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춘원에대한 평가는 이래서 시각교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민족지사’의 거울에 비춰본 춘원은 어떤 모습인가.한마디로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 모습이다.그의 일생을 통해 정신사를 관통하고 있는 ‘친일’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춘원은 1892년 평안남도 정주에서 과거에 실패한 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이종원(李種元)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아명은 보경(寶鏡).5세 때 한글과 천자문을 깨우치고 8세 때 동양고전을 두루 섭렵할 정도로 총명한 그였지만 10세때 콜레라에 걸린 양친이 사망,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러던중 14세 때 천도교 유학생으로 일본 메이지(明治)학원에 입학하면서처음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한데다 별다른 학문적 기초나 바탕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제국주의라는 물결이 넘실대는 일본이라는거대한 ‘바다’에 내던져지게 됐다.그의 비극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주체의식을 키우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도일 초기부터 문학에 심취한 그는 메이지학원 동창회보 ‘백금학보’(1909.12.15,제19호)에 일본어로 된 단편소설 ‘사랑인가’(원제 ‘愛か’)를 발표하였다.조선인 소년이 일본인 소년을 신격화하여 연모하는,일종의 동성애를 내용으로 하는 이 소설은 내용보다는 발표시점이 문제다.그가 이 소설을 탈고한 날짜(1909.11.18)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동양천지를 뒤흔드는 의거가 조선인 손에서 일어난 그 무렵 그는 하숙방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1917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無情)’을 발표한 후 ‘전조선여성의 연인’ 소리를 듣던 그는 본처와 이혼한 후 허영숙(許英肅)과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였으며 1919년 2월 도쿄 유학중 ‘2·8독립선언’을 작성,일약 민족지사의 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가 작성한 ‘선언’을 자세히 뜯어보면 “…합병 이래 일본의 조선통치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反)하여 오족(吾族)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오족에게 참정권,집회·결사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를 불허하며…”라며 일제가 ‘합병’당시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삼고있는데 이는 강도가 한 약속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해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2년 남짓 활동하다가 애인 허영숙의권유로 ‘독립신문’ 편집을 그만두고 사랑을 찾아 조선으로 돌아왔다.월탄박종화(朴鍾和)는 그의 ‘일기’에서 춘원의 귀순(歸順)은 총독부의 신변보장을 조건으로 허영숙이 설득한 결과이며 이 일로 허영숙의 첫 애인 진학문(秦學文)은 홧김(?)에 일본여자와 결혼해버렸다고 쓴 바 있다. 귀국(1921.3)도중 춘원은 선양(瀋陽)에서 체포돼서울로 호송됐으나 별다른 조사나 재판 없이 곧 석방되었고 두달 뒤 5월에는 허영숙과 결혼하였다.다시 9월에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면담하는 등 그는 그때부터 이미 당국의비호를 받고 있었다.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듬해 5월 그는 잡지 ‘개벽’에 일제의 반독립 논리를 민족논리로 위장한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그의 동아일보 입사는 그 이듬해 23년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월 300엔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보수를 받았다.24년 그는 동아일보에 다시 ‘민족적 경륜’이라는 대일 타협노선의 논설을 발표,어용적 민족개량·자치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위의 두 글에서 그는 조선이 쇠퇴한 이유는 민족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며 민족성 개조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약소국의 침략·지배를 정당화한 것을 배낀 것이었다. 중일전쟁 발발 1개월전인 37년 6월 그는 소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이내 병보석으로 풀려났다.이 단체 역시 발족 당시부터 총독부와 사전협의하에 조직된 단체이고 보면 독립운동단체라고 할 것도 없다.경기도 경찰부장 지바(千葉)는 “민족본능인지하수(독립사상)가 지표(地表)로 분출했을 때는 극격히 막지말고,버려두지도 말고,자연의 유력(流力)을 이용해서 바다로 흘러가도록 ‘도랑을 설치’하라”고 하였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林鍾國)은 “이 ‘도랑’이 바로‘민족개조론’이요,수양동우회요,‘민족적 경륜’이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일전쟁 이후 춘원은 전시협력을 위주로 보다 행동적인 친일대열에가담하게 된다.39년 중국에 출정한 일본군 위문단(북지황군위문작가단)결성식의 사회를 맡은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이해 10월 결성된 조선문인협회 결성식에서 그는 회장에 추대되었다. 이듬해 2월 11일 ‘창씨개명령’이 선포되자 그는 그 다음날로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모범적인(?) 창씨개명을 내놓으면서 일반인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그리고는 외쳤다.“…나는 지금에 와서 이런 신념을 가진다.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매일신보’,1940.9.4) 심지어는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이런 그를 두고 단국대 김원모(金源模)교수는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친일을 했을 뿐,그의 심저(心底)에는 독립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변호하고 있는데 공감하기 힘들다. 해방직후 춘원은 향리에 칩거하며 ‘나의 고백’ ‘돌베개’ 등을 쓴 바 있다.그는 인조(仁祖)가 병자호란 때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여인들을 홍제원(弘濟院)에서 목욕시킨 후 정조문제를 거론치 못하도록 한 예를 들어 친일파문제도 이처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수감돼 있던 그는 재산보전을 위해 허영숙과 위장이혼하는 교활함까지 드러냈다.일관된 친일과 타협으로 일제강점기를 산 춘원.그는 공사를 막론하고역사와 민족 앞에 단 한번도 진실한 적이 없다.
  • 산자부 직장協 -흡연실 설치·식당 개선 요구

    “흡연실을 더 설치해 주세요”“구내식당의 음식 질을 높여달라” 복지 개선을 요구하는 공무원들의 목소리이다.산업자원부 직장협의회(대표朴永鐘·6급·화학생물산업과)가 지난 한달동안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대부분 기관들의 직장협의회가 지지부진한속에서 산자부는 활발한 활동으로 공직사회에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직원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털어놓은 것은 흡연실.과천청사에는 1층 로비에만 흡연실이 마련돼 있어 담배 한 대 피우려면 심한 경우에는 꼭대기층인 7층에서 내려가야 한다.직원들은 1∼2개 층마다 흡연실을 설치해 주면 이런불편함이 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구내식당에 대한 개선요구도 쏟아져 나왔다.판에 박은듯한 음식의 메뉴를다양화하고 질도 높여달라는 것이다.한 직원은 “지난 연말에는 종무식이 늦어져 1시 가까이 돼서야 구내식당을 찾았는데 밥이 부족해 곤란을 겪었던 적이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구조조정 탓에 상조회 규정 개정의 필요성도 나왔다.상조회 규정은 직원들로부터 본봉의 1%를 거둬,20년 넘게 근무하고 퇴직하는 동료에게는 100만원의 격려금을 주도록 돼있다.하지만 구조조정 탓에 15년이나 10년을 근무하고 그만두는 공무원이 줄줄이 나오는데도,이들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는 불합리가 생겼다.이런 규정을 고쳐 10년 미만,10∼15년,15∼20년 등으로 차등해서 격려금을 주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직원들은 커피 자판기 운영을 자율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산업자원부 직장협의회는 이들 의견을 선별한 뒤 다음달쯤 朴泰榮 장관과면담을 갖고 건의할 계획이다.
  • 北 “선박충돌사건 3者개입 말라”

    현대상선 소속 우리 선박과 충돌,북한 배가 침몰한 사건에 대해 북한측이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만폭호가 소속된 북한 묘향해운용선중개회사 대변인은 4일 담화를 통해 “이번 사건은 민간선박들 사이에 일어난 사고이므로 당국은 물론 그 어떤 3국이나 다른 삼자가 개입함이 없이 쌍방의 당사자들이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고 평양방송이 이날 보도했다.현대측과의 직접담판을 통해 최대한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뜻이 깔려 있는 듯 비쳤다. 담화는 또 만폭호가 사고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뒤 “남조선 당국은 북남 민간선박들 해난사고에 끼어들어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려는 행동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만폭호 생존선원 2명의 신병을 4일 넘겨받았다.북한은 이날 오후 12시50분(한국시간) 스리랑카 콜롬보 항에 정박중인 현대상선 듀크호에 신병인수를 위해 파견한 인도 주재 참사관 1명을 올려보내 박용운,황정호 등 2명의 생존선원의 신원을 확인한 뒤신병을 인수했다고 외교통상부가전했다. 북한측은 생존선원을 콜롬보항에 정박중인 북한의 ‘원산호’나 항공기를 이용해 북한으로 데려갈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 신당동 동산초등교, 학교 촌지 거부 결의 3년째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 있는 동산초등학교(교장 池達根)는 ‘촌지 없는 학교’로 통한다. 지난 97년 2월 교사 20명이 모여 촌지를 받지 않겠다고 결의한 다음부터다. 촌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난 교사는 담임직을 그만두게 하는 등 사실상의 ‘퇴출’ 조치를 내리자는 내부 다짐도 함께 했다. 이후 교사들은 촌지는 물론 간단한 식사나 차 대접까지도 사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는 신뢰가 쌓였고 대화가 잦아지면서 학사행정 문제도 스스럼없이 논의하게 됐다. 운동장을 호주산 인조잔디로 단장한 것도 교사와 학부모들이 꾸준히 대화를 나눈 데 따른 결과다. 지난해 6월 학교 앞에 아파트 재개발공사가 시작되자 교육 환경이 악화될것이라는 걱정의 소리가 쏟아졌다.교사와 학부모들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시공사인 D건설에 피해보상을 요구,보상비를 받아 인조잔디를 깔았다. 학생들은 부상의 염려 없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다. 학부모 安善姬씨(42·여)는 “촌지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자 선생님들을 자주 찾게 됐다”고 말했다. 李鍾洛
  • 수영대표선수‘피랍’ 허위신고

    국가대표 수영선수 李모양(16)납치사건은 李양이 꾸며낸 거짓 사건으로 밝혀졌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2일 고향에 내려간 李양에게서 “태릉선수촌 생활이 너무 힘들고 선수촌에 들어가기 싫어 납치됐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밝혔다.李양은 “국가대표 훈련이 너무 힘들어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일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양은 지난달 31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앞에서 괴한 3명에게 납치됐다가 7시간만에 청주에서 풀려났다고 경찰에 신고했었다.
  • 극단 신화 서민극 시리즈 ‘해가 뜨면‘

    “이 시대에 걸맞는 연극의 모습은 서민극이다” 극단 신화는 3일부터 6월6일까지 인간 소극장무대에서 이같은 캐치프레이즈 아래 서민극 시리즈 3편으로 ‘해가 뜨면 달이 지고’(김태수 작·김영수연출)를 올린다. 삶의 구석진 곳을 샅샅이 찾으려는 이들의 작업은 옥수동 꼭대기(1편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와 뚝섬 목욕탕(2편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을 지나 이번엔 망우리 달동네로 이어진다.주요 등장인물은 도시빈민이자 실향민이다.만두가게 주인(윤주상)의 집에서 인물 동희(추귀정)남매와 전과자 성준(김규철·최준용) 등은 사소한 일에 울고 웃고,지지고 볶으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간다. 아울러 이들이 서로를 ‘고향친구’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고향’을 되찾는 모습도 그린다.(02)923-2131李鍾壽
  • 수영국가대표 7시간 피랍

    국가대표 여자 수영선수가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가 7시간 만에 풀려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오후 4시50분쯤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정문 앞에서국가대표 수영선수 李모양(16)이 괴한 3명에게 승합차로 납치됐다. 李양은 “뒷머리를 주먹으로 맞고 의식을 잃었다”면서 “깨어보니 승합차문을 여닫는 소리가 났고 눈과 발이 테이프로 묶여 있었다”면서 “서울 말씨를 쓰는 젊은 남자 2명과 40대 전후의 남자 1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李양은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린 제54회 회장기 수영대회에 출전한 뒤 대구 고향집에 들렀다가 태릉선수촌으로 복귀하던 길이었다. 범인들은 李양의 휴대폰으로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42)에게 “수영을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수영을 시키지 않겠다”는 대답을듣고 1일 0시15분쯤 李양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역전 화물터미널 근처 철길에 내려놓고 달아났다. 李양은 경찰에서 범인들이 지난 2월22일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새로 선발된선수들의 이름을전부 알고 있었고 “전에 있던 선수들을 내쫓은 사람들은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이 수영계를 말아 먹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국가대표선수 선발과 감독 교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범행으로보고 최근 국가대표 감독에서 물러난 朴모씨(46)를 불러 조사했다.국가대표에서 탈락한 高모(20)·趙모군(20) 등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경찰은 그러나 “뒷머리를 주먹으로 맞았다고 진술했지만 뒷머리에서 상처를 발견하지못한 데다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납치 자체가 거짓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고 밝혔다.
  • [大學고시반을가다] (3) 고시 메카 서울대

    서울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金모씨(27)는 지난 1월 오랜만에 연구실을 벗어나 중앙도서관에 들렀다.자리를 잡고 영어 원서를 읽다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전공서적을 읽고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었고,모두들 법전을 펼쳐놓고 있었던 것이다. 고시열기는 서울대에서도 불타오르고 있다.金씨는 “놀랍기도 했지만 왠지가슴 한 구석이 쓸쓸했다”고 돌이켰다.인문대 교수들이 얼마전 학문이 설자리를 잃었다고 자성한 것도 이런 고시열풍과 무관하지만은 않다.고시반이없는 서울대는 도서관 전체가 ‘고시반’ 역할을 하고 있다.한 어문학과의지난해 졸업생 24명 가운데 취업자는 단 한명.학교측이 올해 졸업생 가운데2,789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진학·입대를 뺀 순수 취업률은 21.3%로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졸업생 5명 가운데 4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미취업자의 상당수와 재학생들이 고시,특히 사법시험으로 몰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宋모씨(28·법학과졸)는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등의 1차시험을 앞둔 3월 초에는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80∼90%는 고시준비생들로 가득찼다”고 말했다. 사회학과 4학년 張모씨(26)는 “법대를 비롯해 인문·사회과학·사범대 등문과계열 학과 3·4학년 가운데 70%정도는 고시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한다.7년째 사법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한 노장파 고시생은 “취직했던 동기생들도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와 함께 사법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고시열풍은 3∼4년 전부터 이공계열까지 불어닥쳐 이공계 학생들이 법대 강의실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胡文赫법대교수는 “수강생들의 4분의 1정도는법대 학생이 아니다.특히 이공계 학생들은 사법시험과 변리사 시험관련 과목을 주로 듣는다”고 말했다.법과대 강의 수강을 신청하려고 새벽부터 줄을서는 현상은 몇년째 계속되고 있다.법대 강의실은 넘쳐나는 학생들이 복도까지 메우고 있을 정도이다. 서울대생 또는 졸업생들은 사법시험을 비롯한 각종 고시를 휩쓸고 있다.유일하게 2위를 차지하는 것은 공인회계사(CPA)시험이었지만 요즘은 경영대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기업에 비해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자유롭다는 점이 최대의 매력이다. 하지만 서울대생이 고시준비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도서관이 고시생들로 가득찬 듯한 현상은 주로 시험에 임박했을 때에나타나는 겉모습에 불과하다는 얘기다.인문대 관계자는 “순수학문에 전념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그들은 눈에 띄지 않을 뿐”이라며 서울대생들 전체가고시생으로 비치는 데 불만을 표시한다. 장택동
  • 금호현악4중주단 오늘부터 새봄맞이 순회공연

    첼리스트 송영훈을 새 멤버로 받아들인 금호현악사중주단이 26일 대구 대덕문화전당(오후 7시 30분)을 시작으로 29일 구리시청 대강당(오후 6시 30분),30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오후 7시 30분)에서 잇달아 새봄맞이 정기공연을 갖는다. 지난달 유럽·인도 7개 도시의 순회연주회를 끝마친 직후에 갖는 공연이어서 한층 성숙한 음악세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연주곡목은 후고 볼프의 ‘이탈리아 세레나데’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현악 사중주 제 2번’ 베토벤 ‘현악사중주곡 제 8번 마단조’(라주모프스키 사중주곡) 등. 지방 공연은 금호사중주단이 지난해부터 서울 중심의 연주풍토에서 벗어나지방 음악계와 중앙과의 거리를 좁히고 지방 연주활동을 활성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번 대구 연주회에서는 클라리넷 주자 현재건씨(경북도립 교향악단수석,성덕대 겸임교수)가 나와 베버의 ‘클라리넷 오중주곡’을 협연한다. 금호사중주단은 바이올린 김의명(한양대 교수,리더) 이순익(한양대 교수)비올라 정찬우,첼로 송영훈으로 짜여 있다.첼리스트 양성원 대신에 새로 영입된 송씨는 미국 줄리어드와 영국 북부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줄리어드와엘가 콩쿨에서 각각 1등을 차지했으며 영국 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많은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현재 핀란드의 첼리스트 알토 노라스를 사사하고 있다. 한편 비올리스트 정찬우는 이번 학기부터 교직을 그만두고 연주활동에만 전념한다.(02)758-1204姜宣任
  • 申茂成공정위상임위원 사표

    공정거래위원회 申茂成상임위원(57)이 임기를 석달 앞두고 지난 23일 후진들을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 지난 96년 6월 공정위 상임위원에 부임한 申위원은 오는 6월 3년 임기가 끝나더라도 연임될 가능성이 있으나 “후진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물러났다.申위원은 차관보급인 상임위원을 그만두고 월급 50만원을 주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사외이사자리로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사외이사는 이사회 참석 수당까지 합쳐봐야 월 70만∼80만원밖에 안된다. 申위원은 문화 분야의 일을 계획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평소 일처리가 합리적이고 부드러워 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申위원이 후배들을 위해 용퇴한 것으로 안다”면서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는 요즘 공무원 사회에서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제2공화국과 張勉] (7) 尹潽善과의 갈등/金在淳 前국회의장

    1960년 8월29일 이른 아침 張勉총리를 비롯해 제2공화국 장관들이 서울역으로 모여들었다.이들은 ‘尹潽善대통령이 휴가 겸 민정시찰을 떠나니 모두 나와 전송하라’는 대통령 비서실의 전갈을 받고 나온 참이었다.이윽고 ‘관1호’차를 타고 尹대통령 부처가 등장했다.尹대통령은 張勉내각의 정중한 배웅을 받으며 오전 8시 특별열차 편으로 떠난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한동안 수군거림이 일었다.“내각책임제인데 대통령이 각료들에게 전송나오라고 ‘지시’하는 짓은 무엇이며,그렇다고이에 군말없이 따르는 張내각은 또 뭐냐”하는 말들이었다.한마디로 “尹潽善은 월권한 것이고 張勉은 제 밥그릇도 못챙긴다”는 평이었다. 張勉정부 출범 닷새 후에 일어난 이 간단한 삽화는 ‘張勉총리와 尹潽善대통령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성을 갖는다.민주당 신·구파의 대결이라는 큰 구도 말고도 ▒권위주의적인 尹潽善과 다툼을 싫어하는 張勉의대조적인 성격 ▒처음 도입한 내각책임제를 양쪽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듯한 미숙함들이 이 삽화에는 들어 있다. 제2공화국은 의회가 정치의 중심인 내각책임제였다.대통령은 의전적인 의미의 국가원수에 불과하며,총리야말로 행정권 담당자인 동시에 국정(國政)에관한 총괄적인 책임자였다.그러므로 尹潽善대통령은 국민과의 접촉을 자제하고,국내 정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거리를 두는 게 도리였다. 그런데 尹대통령은 회고록(‘사실의 전부를 기록한다’에 수록)에서 “틈틈이 민정시찰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밝혔듯이 자주 거리로 나섰다.도로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시절이라서 그가 지방시찰에 나설 때면 으레 특별열차가 동원되곤 했다. 문제는 대통령과의 잦은 접촉이 국민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느냐에 있었다.정치학자들은 “국가통치의 중심이 총리인지,대통령인지 국민들이 혼동을 일으킨다”면서 “이같은 혼란은 정치안정에 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또 “尹대통령이 내각책임제에 상관없이 李承晩대통령이 누린 권위를 자신도 유지하고 싶어한 듯하다”는 풀이도 뒤따른다. 尹대통령은 민주당 구파 정치인들을 청와대로 자주 불러들여 모임을 가졌으며 張勉내각의 정책과 배치되거나,그것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불쑥불쑥 내곤 했다. 60년 10월10일 許政과도정부때 임명된 시도지사를 張정부가 경질하자 尹대통령은 구파의 입장을 반영해 ‘유감’을 표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張내각에서 “왜 정치에 관여하는가”라고 항의하자 그는 “국가적인 큰 잘못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했다”고 대응했다.다음해 1월12일 尹대통령은민·참의원 합동회의 치사를 통해 시국을 ‘국가적 위기’라고 규정하고 “정쟁의 휴전을(당파간에) 협정하라”고 촉구했다.그는 “한 개인,한 당파가당면한 난국을 타개할 수 없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당파이익을 위해 이를 부정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張勉내각을 겨냥해 거국내각을 구성하라는 촉구였다. 張내각과 민주당 신파는 당연히 발끈했다.새해 들어 사회가 안정돼 가고 따라서 경제건설에 주력하려는 마당에 ‘국가적 위기’‘난국’ 운운하며 찬물을 끼얹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분개했다.朱耀翰·金永善 등 張내각의 핵심 각료들은 尹대통령이 내각을 붕괴시키는 명분을 쌓으려 한다고 의심했다. 張勉과 尹潽善의 갈등은 3월23일 ‘청와대 요인회담’(일명 청와대 4자회담)에 이르러 극점에 다다른다.그 전날 밤 서울에서는 반공법·데모규제법 제정을 반대하는 횃불데모가 있었다.張勉정부 때의 마지막 대규모 시위로,밤에 횃불을 동원한 방식 때문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23일 오후 8시 청와대에는 張勉총리·尹潽善대통령·郭尙勳민의원의장·白樂濬참의원의장이 모였다.張내각의 국방장관인 玄錫虎와 이미 신민당으로 분당한 구파의 金度演 柳珍山 梁一東 趙漢栢 徐範錫도 자리를 같이했다.참석자들이 남긴 회고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이어서 각기 조금씩 다르지만 그 윤곽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張총리는 ‘반공을 위한 국민운동 전개를 논의하자’는 연락을 받고청와대로 갔다.처음엔 그런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전개되더니 어느결에 ‘정권문제’로 화제가 바뀌었다.이윽고 尹대통령이 “혼란한 정국을 극복할자신이 있느냐”면서 은근히 총리 사임을 종용하더라고 회고했다. 반면 尹대통령은,참석자들이 張총리에게 “거국내각이라도 만들어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했다고 밝혔다.이에 張총리는 “내가 그만두면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더라는것.그러나 尹대통령은 모임이 서로를 이해하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고 술회했다. 한편 柳珍山은 “尹대통령이 ‘현상유지책만으로 안된다면(정국을 담당할인물을)한번 바꿔 봐야 할 게 아니오’라고 일격을 가하자 張총리가 얼굴이창백해져 변명을 했다”면서 張총리가 끝내 궁지를 면치 못했다고 기록했다. 참석자들은 밤 11시30분쯤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을 내린 것은없었다.다만 이 모임에서 나온 말들은 일절 발설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다음날 白樂濬이 회담 내용을 공표하는 바람에 각 신문은 ‘尹대통령이 張총리에게 정권을 내놓으라고 했다’고 대서특필했다.張정부와 신파가 격노한 것은 당연했다.李錫基 민주당 원내총무가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야당 대표들만 불러 놓고 張총리에게 정권을 내놓으라고 말한 사실은 언어도단이다.청와대는 음모를 꾸미는 곳이다.尹대통령이 앞으로도 그런 식의 정치간섭을 한다면 우리 민주당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張勉과 尹潽善 사이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지경이 됐다.내각책임제에서 반목하고 갈등하는 총리와 대통령의 관계는 ‘정치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했다.5·16쿠데타가 발생한 뒤 힘을 합쳐 쿠데타를 진압해야 할 두 사람은 최소한의 연락마저도 유지하지 않는다.그만큼 불신의 골이 깊었기 때문이다. - 張내각 외무부 정무차관 金在淳 前국회의장 金在淳전국회의장(76·월간 ‘샘터’ 발행인)은 張勉내각에서 외무부와 재무부의 정무차관을 지냈다.5·16쿠데타 후 ‘혁명검찰’에 의해 ‘반혁명죄’로 구속돼 복역하다 주체세력내 지인의 도움으로 열달 만에 풀려났다.이후 공화당에 참여했고 金泳三정부에서 국회의장직을 사퇴하며 정계를 떠났다. 그때 남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유행어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金전의장은 “張勉정부는 탄환 대신 투표용지로 세운 민주정부인데 지키지를 못해 아직도 국민 앞에 죄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민주당이 비록 신·구파로 나뉘어 있었지만 해공(申翼熙)·유석(趙炳玉)이 계실 때는 張勉박사와의 사이에 조금도 틈바구니가 없었다”고 강조했다.그 예로 1959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정·부통령 후보를 뽑을 때도 張勉이 趙炳玉에게 3표차로 석패했지만 아무런 잡음이 없었음을 들었다. “민주당 신·구파가 대통령 후보,당 대표 자리를 놓고 표대결을 벌이지만결과에는 승복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밝힌 金전의장은 “국무총리 인준때해위(尹潽善)가 상산(金度演)을 먼저 지명한 것은 배신”이라고 단정했다. ‘7·29총선’후 대통령은 구파에서,총리는 신파에서 나눠 맡기로 했는데尹潽善을 대통령으로 먼저 뽑고 나니 구파의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다.그는 “학생·시민이 피 흘린 대가로 정부가 들어섰는데 구파가 민의를 거슬러대통령·총리를 독점하려던 게 배신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내각책임제 하에서 尹대통령의 정치 간섭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張총리의리더십 부족이라는 평가에 대해 金전의장은 “그것이 張박사의 성격”이라고 말했다. “해위의 월권을 막으려면 사사건건 따지고 싸워야 하는데 張박사는 누구하고 다투는 분이 아니어서”라는 설명이다.그는 “훗날 되돌아보니 張박사처럼 책임을 맡은 분이 겸양만을 내세우는 게 꼭 옳으냐는 생각도 들었다”고아쉬워했다. 金전의장은 “사실 해위는 張박사와 신파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몇가지 사례를 소개했다.가령 59년 전당대회때 尹潽善이 최고위원으로 뽑힌 것도 신파에서 “점잖은 분이니 밀어주자”고 뜻을 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張박사는 나를 평소에 ‘재순군’이라고 부르며 무척 아껴주셨다”고 회고했다.金전의장은 “민주주의는 결국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 높아져야이루어지는 것인데 당시는 張박사 같은 분을 제대로 이해하는 상황에 이르지못했다”면서 “정말 아까운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용원
  • 수산진흥원 박사부부 ‘팀장격’ 연구관자리에

    “바다 자원은 농업처럼 비료 등으로 가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바다의이용과 동시에 꾸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한·일 어업협상의 소용돌이 속에 국립수산진흥원내 부부박사 연구관이 탄생해 화제다. 연근해과 金場根박사(43)와 적조공학과 崔熙九박사(41) 부부로 지난해 8월金박사가,이달 초에는 崔박사가 연구관으로 승진했다.연구관은 진흥원 각 연구분야별 팀장격의 자리다.부부는 또 부경대학 증식학과,식품공학과 출신으로 대학 선후배이기도 하다. 金박사는 현재 진행중인 한·일 어업협상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해양수산업 전반의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다.앞으로 인력 양성이 나의 으뜸가는의무”라면서 “일본은 오래전부터 인력 양성이나 바다자원의 관리측면에 노력을 기울여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국가로 꼽힌다”고 말했다. 현재 金박사는 초음파를 이용한 어업자원 연구와 고래에 관해,崔박사는 해양 오염에 관해 각각 연구를 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최근 각 분야의 구조조정으로 같은 직장내 부부 직원들 가운데 한 쪽이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마음고생이 많았다”면서 “해양환경 보전과 수산자원의 조화롭고 지속적인 이용에 도움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 나갈것”이라고 다짐했다.
  • [조약돌]장기기증 운동서 실천으로…전북지역본주 安秉喆씨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전북지역본부 吳奎正 사무국장(35)은 15일 서울 한양대병원에서 만성신부전증 환자인 安秉喆씨(29·강원도 인제군 북면)에게 신장을 기증한다. 吳씨는 장모가 만성신부전증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지난해 2월 직장을 그만두고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환자 50여명에게 장기 기증자를 연결해준 吳씨는 “얼굴도 모르는 환자들을위해 선뜻 자신의 장기를 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장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吳씨는 골수 기증도 신청해 놓았다. 金美京 chaplin7@
  • 한나라 비주류중진들 李총재 압박

    한나라당 李會昌총재의 정국 운영방향을 둘러싸고 당내 비주류 중진들의 ‘훈수’가 잦아지고 있다. 특히 여야간 이견으로 총재회담이 늦어지자 “대승적 견지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며 은근히 李총재를 압박하고 있다.이번 주 중 총재회담이 열리지 못한데는 李총재의 정치력 부재가 한몫했다는 지적이다.장외투쟁후 여권의 정계개편중단 약속이 나왔을때 대화정국으로 나갔어야 하는데도 여러고리를 다는 바람에 총재회담의 시기를 놓쳤다는 분석이다. 10일부터 다시 임시국회를 연데 대해서도 참여연대 등으로부터 세풍사건의주역인 徐相穆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라는 비난이 잇따르자 李총재의 지나친 집착의 결과라며 곱지않은 시선이다.최근 정치쟁점으로 떠오른내각제,국민연금,한일어업협정 문제 등에 대처하는 李총재의 전략,전술도 “미흡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달 집단지도체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한 李基澤 전총재대행은 “장외투쟁을 하다가 갑자기 그만두는 등 현재 한나라당은 야당도 여당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라면서 “당의 움직임을 좀처럼 예측할 수 없다”고 李총재의당 운영행태를 비판했다.李전대행은 “현재 영남지역은 ‘반여(反與)’기류때문에 야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실제로 야당을 지지하는 것은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주류에 속한 金德龍부총재도 최근 李총재의 대여 전략에 이의를 제기했다. 金부총재는 8일 총재단회의에서 “당 지도부가 여권내 내각제 논란을 둘러싸고 미온적 태도를 보여 오히려 당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당 내분으로 이어져 스스로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金潤煥전부총재도 여전히 李총재와 거리를 두고 있다.“한마디 상의도 없이 나를 당 고문으로 앉혔다”며 불만을 표시할 정도다.李漢東전부총재는 金전부총재와 지난 6일 골프 회동을 통해 교감을 나눴다.金守漢전국회의장과 徐廷和의원도 자리를 같이 했다. 이에 대해 李총재쪽은 “현재 당내 비주류는 뚜렷한 ‘실체’없이 ‘과대포장’돼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당을 아끼는 일부 중진들의 건전한 비판일 뿐 비주류가전면에 나설만한 명분도 없고,여건도 조성되지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 [굄돌]행복의 조건

    20세기 막바지,다가오는 새로운 천년을 목단꽃 축제 같은 행복감으로 맞이하고 싶다.우리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조건의 문제로,물질적 추구만이 아닌그 이상의 조건들이 있음을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면 우리의 연분홍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행복의 구체적인 조건은 무엇인가.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에 의해 전국의 20세 이상 남여 1,000명을 대상으로‘1999년 한국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가 밝혀졌다.이 조사에 따르면 IMF이후 44%가 불행해졌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50.7%는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다.이에 반해 행복해졌다는 응답은 5.4%에 그쳐 IMF가 우리에게 여러가지 불행의 주범임을 확인시켜 줬다. 이 조사는 또 행복의 첫째 조건은 ‘가정의 화목’이 31%로 가장 많았고,건강(28%),재산(17%) 등이 그 뒤를 이어 한국인이 행복을 가정에서 찾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한국인의 ‘행복지수’는 58점.젊은 세대는 행복지수가 높은 반면 50대 이후 행복지수는 크게 하락한다.왜 그럴까.그것은 아마도 육체적 소외감과 정신적 상실감 때문일 것이다. 현대는 개성 중심의 시대로 옮아가면서 개인은 자꾸 강해지고 있으나,가족이나 집단은 급속도로 와해되고 있는 실정이다.서구의 극단적 개인주의와 자연정복주의를 반성하면서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그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또 자연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옛 미덕을 되살리는 일일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슬하에 6남매를 두셨다.특히 맏아들인 나에게 자나깨나강조하신 것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역시 가정의 화목이었다.지천명의 고개 마루를 넘어 딸을 출가시켜 놓고 보니 갈수록 그 말씀이 새록새록실감난다. 물소리처럼 이어지던 안식구와의 실랑이도 이제는 그만두기로 다시 마음 먹는다.가정의 화목이 가장 빛나는 기쁨이라는 것이 나이테 따라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홍희표 목원대교수·시인
  • 경제정의硏 소장직 사퇴 李弼商교수

    경실련 산하 경제정의연구소 소장직 사표를 낸 李弼商교수(고려대 경영)는5일 “시민단체는 순수해야 한다”는 말로 경실련의 내부 갈등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표시했다. 李교수는 “시민단체는 이익단체도 정치단체도 아니다”고 전제한 뒤 “희생과 소신을 갖고 일하고 있는 상근간사들이 조직의 문제점을 제기했다고 징계를 내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지 의견이 다르다고 함께 일하던 文光承사무국장이 그만두게 된상황에서 소장 자리에 계속 있을 수가 없고 도의적 책임도 느껴 사표를 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실련의 진로와 관련,李교수는 “창립 초기의 순수함과 선명성을 되찾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면서 “기득권에 연연하지 말고 다함께 힘써야 개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쫓아낸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고 자기 개혁을 한다면 경실련 내에서의 역할을 적극 모색하겠다”면서 “경실련을 떠나고 싶지는 않아 당분간 평회원 자격은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李교수는 2년간 경실련 정책위원장을 맡아정책브레인 역할을 해온 데 이어 경제정의연구소 소장으로서 경제적 균형발전과 공정분배 등을 위한 조사,연구,홍보활동을 펼쳐왔다. 金榮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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