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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 (2)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 (2)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나는 손가락을 두 개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내 손을 생각하면 아주 귀중한 보물의 손이다.”-희아의 일기 중 여든여덟 개의 피아노 건반 위를 네 손가락이 넘나들며 만들어내는 선율은 경이롭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20). 두손을 합쳐 네 개뿐인 손가락, 그나마 왼손 손가락은 관절이 없어 구부러지지 않는다.50㎝ 남짓한 짧은 다리는 강약과 여음을 조절하는 피아노 페달에 닿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런 모든 역경을 딛고 그가 만들어내는 연주는 어떤 세계적 피아니스트와도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희아는 올해 그만의 소중한 꿈을 이뤘다. 그녀가 좋아하는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의 명연주자 리처드 클레이더만(팝 피아니스트)과 협연을 가진 것. 희아는 “꿈 같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희아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에서 부상을 당해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온 척추장애인, 어머니는 병원에서 그를 간호한 간호사였다. 영화 같은 두 사람의 사랑 속에서 희아가 태어났지만 아이는 불행히도 여느 아이와 달랐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은 보통 사람보다 열배, 스무배 힘들었다. 희아는 여섯살 때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약한 손가락 힘을 키워주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자신감을 주자는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어렵게 개인레슨을 받을 수 있었지만 손가락 힘이 약해 피아노 건반을 울려 소리를 내는 데만 석달이 걸렸다. 정상인에 맞춰진 일반 학교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머니 우갑선(50)씨는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먼저 피아노에 돌아와 앉은 것은 희아 자신”이라고 회상한다. 오른손을 쓰지 못해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치는 캐나다 피아니스트 라울 소사의 내한 연주회는 희망을 북돋워준 또다른 계기였다. 매일 10시간 이상의 혹독한 연습이 이어졌다.1993년 전국장애인예술대회 최우수상,1999년 장애극복 대통령상 등을 휩쓸었다. 국내 자선음악회에 이어서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타이완 등지를 오가며 해외연주회도 열었다. 희아의 네 손가락 피아노 연주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새해에는 모두 버리자는 소망이 담겨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다큐극장-맞수(EBS 오후 9시30분) 결국 아내를 보내고 혼자남은 권혁대씨는 동창 오광이와 함께 베트남 아내와 살아가는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푼다. 이튿날, 마음이 풀린 텅은 윙 부부와 함께 안동시장으로 쇼핑을 간다. 신기한 것이 많아 한보따리 물건을 사온 베트남인 아내. 집으로 돌아온 오광씨와 윙은 오붓한 한때를 보내고….   ●비법 대공개(SBS 오후 7시5분) 연말연시에 계속되는 모임, 피할 수 없는 술자리를 어떤 방법으로 슬기롭게 피할 수 있을까. 또 술에 덜 취하는 방법은 없으며, 술을 마실 만큼 마시고 제 정신을 차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첫 출산 후에 불어난 몸무게를 줄이는 비법을 엿보고, 추운 겨울을 이길 수 있는 주부의 원기충전 건강법도 알아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아프리카 남부의 보츠와나 공화국을 무대로 쓴 탐정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작가 스미스는 소설을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보츠와나는 지난 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다이몬드 광산이 발견돼 아프리카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곳이다.   ●맨발의 청춘(MBC 오후 8시20분) 택수가 자꾸 미선에게까지 접근하자 기석은 희정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희정은 기석의 갑작스러운 말을 믿을 수가 없다. 한편, 준혁은 경주를 단장시켜 친구들 모임에 데려가고, 경주는 신나는 분위기에 마냥 즐겁다. 화숙이 때문에 고민하던 정환은 순옥을 찾아가 재혼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별난 여자 별난 남자(KBS1 오후 8시25분) 새로운 단서로 출생 의혹에 확신을 갖게 된 석현은 친구 이야기라며 해인에게 슬쩍 친자 감별에 대해 묻는다. 말자는 민숙이 안마기를 주문하자 내심 기뻐하고, 해인은 종남의 게스트시험 준비를 도와준다. 안마기를 기다리던 말자는 사돈댁으로부터 안마기를 받았다는 전화를 받는데….   ●걱정하지마(KBS2 오전 9시) 미연은 세찬에게 물벼락을 씌우고 절교를 선언한다. 은새는 세찬에 대한 그리움을 어쩌지 못하고 세찬이네 집 앞에서 서성거리다 홍주와 세령에게 들키고 만다. 한편, 선우는 미연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딸 문제만 해도 골치가 아픈 미연은 기가 막히고, 화가 날 뿐이다.
  • 대전 ‘복지 만두레’ 정착 성공

    ‘복지만두레로 사랑 나눠요.’ 주민의 참여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대전시의 복지모델인 ‘복지만두레’가 다른 자치단체 등 관련기관들로부터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18일 대전시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추진한 복지만두레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행정자치부의 지방행정혁신 우수사례로 선정되면서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사회복지전문가 및 시설·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의 문의와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대전시의 복지만두레에는 이달 현재 2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9200여가구의 어려운 이웃들과 결연을 하고 개인의 특성에 맞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길섶에서] 가진 것/이상일 논설위원

    40대 초반의 주부가 뒤늦게 고시공부를 하려고 관악 고시촌 스터디 그룹에 참여했다. 그녀가 발견한 시험준비생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삶의 유보’였다고 한다.40대에 직장을 그만두고 시험 준비에 나선 늦깎이 준비생도 있고 줄줄이 낙방해 30세가 넘어선 후에도 공부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싱글족도 흔하고 결혼해서도 직장생활을 하는 부인 덕에 공부만 하는 남편도 있다. 기혼자들도 아기도 낳지 않고 미뤄두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 출생률이 낮다는 것을 고시생들을 보면서 절감했다고 그 주부는 털어놨다. 그들은 자동차도 없고 취미도 없고 놀러다니지도 않는 것 같았다. 모두 시험 이후로 미뤄두고 먹고 자고 공부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스스로 “별로 돈도 없고 풍족하지도 않다.”고 생각해 상대적인 궁핍감을 느껴왔다고 했다. 그러나 고시생들을 보면서 정말 자신이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는 남편도 있고 집에 가면 같이 놀 아이들도 있고 자동차도 있지 않나…. 고시생들에게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하면 ‘너무 가진 것이 많아 미안할 정도’라고 그 주부는 주위에 말했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대한전선과 대한방직, 대한제당은 모두 한뿌리 기업들이다.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설립했던 회사들로 장남인 설원식(83) 전 회장이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의 경영권을 승계해 가장 먼저 계열분리했다.3남인 설원량(작고) 회장은 1972년 인송의 실질적인 ‘경영 후계자’로서 당시 대한그룹의 주력사인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고 설원량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한때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기도 했지만 오일쇼크의 충격과 가전사업 매각 등으로 사세가 크게 줄었다. 또 동생인 설원봉(57) 회장이 88년 대한제당을 갖고 분가하면서 옛 대한그룹은 사실상 대한전선만 남게 됐다. 지금은 고 설원량 회장의 부인인 양귀애(58) 고문이 오너가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임종욱(57) 사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고 설 회장의 장남인 윤석(24)씨는 대한전선 경영전략팀 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이처럼 1950년대 재계 서열 다섯손가락 안에 들었던 대한전선그룹은 오늘날보다 과거가 더 화려한 기업이다. 혼맥도도 이와 비슷하다. 창업주인 설경동 회장가(家)는 지금은 흔적만 남은 옛 재벌가(家)와 적지 않은 인연으로 엮여 있다.4남2녀를 뒀던 인송은 1970∼80년대 욱일승천했던 국제그룹 창업주 양태진 회장가(家)와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가(家)와 사돈지간이다. 관계에서는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과 임송본 전 대한석탄공사 총재가 사돈들이다. ●50년대 재벌가 인송 인송은 1901년 평안북도 철산군 인송리에서 부친 설흥업옹과 모친 조성녀 여사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정동(鄭童)이었지만 서당 스승께서 ‘큰 인물로 대성하라.’는 뜻에서 경동(卿東)으로 지어줬다. 인송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는 부친을 세살 때 여의고, 모친을 따라 함경북도 부령으로 이사해 무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3년간 허드렛일을 하며 집안을 돌보던 인송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어렵게 오쿠라 고등상업학교에 입학했지만 끝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 귀국해야 했다. 인송은 이후 부령 군청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1921년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판매사업을 벌였다.1936년에는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청진 앞바다에서 정어리를 잡아 이를 가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1940년대 초에는 어선 70척에 비행기로 고기를 탐지할 정도의 함경도 거부로 성장했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북측에 공산군이 진주하면서 월남한 인송은 무역회사인 대한산업과 부동산 회사인 원동흥업을 세워 남쪽에서도 곧 거부 대열에 올라섰다.6·25전까지 그가 수원에 세운 성냥공장은 남한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인송은 53년 재벌의 터전이 된 대한방직을 인수해 근대적인 경영을 시작했다.55년엔 대한전선 인수,56년에는 대동제당(현 대한제당)을 세워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가로 올라섰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인송은 54년 자유당 재정부장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갔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는 60년대 초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인송은 4·19 의거와 5·16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 내로라하는 그룹 창업주들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려 험난한 시기를 보냈다. 특히 인송은 강제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부동산도 몰수당했다. 부친의 이같은 시련을 지켜봤던 설씨가(家) 4형제는 훗날 정치와 담을 쌓은 것은 물론 부동산 투자도 꺼렸다. 인송은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이라도 소홀히 버리지 않았다. 편지가 오면 칼로 봉투의 한 귀퉁이를 잘 도려내고, 그 뒷면을 이용해 한번 더 사용했을 정도였다. 인송이 송인상 효성 고문(당시 부흥부장관)에게 보낸 편지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하던 대로 송 장관에게 소식지 ‘무역통신’ 뒷면을 이용해 서신을 보냈다. 이를 받은 송 장관은 대기업 사장의 검소함에 탄복해 서신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수년간이나 회의석상이나 강연회에서 이를 소개했다고 한다. ●옛 영화가 가득한 혼맥 인송은 두번 결혼했다. 그는 첫번째 부인 이태하(작고)씨 사이에 원식과 원철(68)씨 등 2남을 뒀다. 두번째 부인 유인순(작고)씨 사이엔 원량과 명옥(59), 원봉, 영자(53)씨 등 2남2녀를 뒀다.4남2녀 가운데 여자 형제는 중매로, 남자 형제는 연애 결혼했지만 당시 재벌가의 통혼이 그러하듯 인송은 관·재계의 명문가를 사돈으로 맞았다. 장남인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은 일제시대 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총재와 대한석탄공사 5대 총재를 지낸 임송본씨의 딸 희숙(75)씨와 연애결혼했다. 당시 원식씨는 희숙씨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에서 유학할 대학을 바꿀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설 전 회장 부부는 설범(47) 대한방직 회장과 설경화(46)씨 등 1남1녀를 뒀다. 차남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은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의 딸 보경(66)씨를 미국 유학중에 만나 인연을 맺었다. 보경씨는 코리아헤럴드 출신의 언론인이다. 설한(39), 설훈(35), 설혜선(34) 등 2남1녀를 뒀다. 3남 설원량 회장은 1969년 동생인 명옥씨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양귀애 고문과 결혼했다. 명옥씨와 양 고문은 친구 사이다. 양 고문은 국제그룹 양태진 창업주의 막내딸이며,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누이 동생이다. 윤석(24), 윤성(21)씨 등 2남을 두고 있다. 4남 설원봉 회장은 박용학 전 대농 명예회장의 장녀인 선영(56)씨와 혼례를 치렀다. 선영씨는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를 다녔던 설 회장과 선영씨는 학창시절부터 오랜기간 만남을 가졌다. 윤호(30)와 혜정(25)씨 등 1남1녀를 뒀다. 장녀 명옥씨는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 가문의 소개로 71년 김우기(63) 서울대 의대 교수와 결혼했다. 동철(33)과 승철(31)씨 등 2남을 뒀으며 장남은 의사, 차남은 대한제당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영자씨는 고 설원량 회장의 친구인 정근모 명지대 총장의 중매로 차동완(58)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진영(28)씨와 종현(25)씨 1남1녀를 두고 있다. 3세들도 속속 가정을 꾸리고 있다.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의 장남인 설범 회장은 한연나씨와 결혼했으며, 장녀 경화씨도 차정하씨와 혼인을 치렀다. 양 고문의 장남 윤석씨는 지난해 6월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생인 심현진(24)씨와 연애 결혼했다. 현진씨의 부친은 심광일(52)씨로 중견 건설업체인 석미건설을 경영하고 있다. 양 고문은 “오랫동안 연애를 한 데다 아들의 판단을 믿었다.”면서 “설 회장도 생전에 둘의 결혼을 허락한 만큼 일찍 결혼을 시켰다.”고 말했다. 설영자-차동완 교수 부부의 장녀 진영씨는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조 부사장은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손자로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이다. 진영씨는 대한전선 3세 가운데 유일하게 재벌가(家)와 통혼했다. ●일찍 시작한 분가 설경동 가문의 기업 분가는 여느 재벌가(家)와 달리 일찍 시작됐다. 창업주 사후에 2세들의 분가가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인송은 생전에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등을 계열분리시켰다.1960년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데다 가정불화마저 겹치면서 인송은 어쩔 수 없이 대한산업과 대한방직 등을 장남 원식에게 맡겨 2세 경영을 펼치도록 했다. 인송은 이후 대한전선과 대한제당을 중심으로 경영을 해오다가 72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3남인 당시 설원량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토록 했다.74년 인송이 결국 타계하자 설 회장이 대한전선그룹을 이끌게 됐다. 대한전선은 88년에 또 한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창업주 인송의 유지를 받들어 설원량 회장이 계열사인 대한제당을 분가시킨 것이다. 설 회장은 동생인 설원봉 회장이 대한제당에 입사한 이래 경영수업을 충실히 받아왔다고 보고, 대한제당 관련 주식을 설원봉 회장에게 모두 양도해 대한전선에서 완전 분리시켰다. 대한제당은 현재 식품소재사업과 레저, 외식업 등에 진출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인송의 후계자 설원량 회장 고 설원량 회장 유족들은 지난해 9월 135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상속세를 신고했다. 매출 2조원이 안되는 중견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자진 신고하자 고 설 회장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상속이나 증여세를 덜 내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다른 재벌가(家)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대단했다. 그는 평소 “기업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손님이 되어야지, 불청객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한토막. 대한전선 본사와 각 공장 구내식당에서 제공되는 한 끼 밥값은 80원이다. 공짜로 주는 것이 낫겠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설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같이 정해졌다. 설 회장이 내 돈을 내고 밥을 먹어야 음식이 혹시라도 부실해지면 회사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서 내린 조치였다. 설 회장 본인도 줄곧 구내식당을 이용했는데, 이 역시 회장이 자주 이용하면 음식에 좀 더 신경을 쓰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낸 것과 달리 설 회장은 부친인 설경동 회장 못지않은 ‘구두쇠’였다. 그는 양복을 한 벌 사면 소맷단이 해질 정도로 입었다. 식당에서 사용한 휴지는 잘 접어두었다가 화장실에서 다시 사용했다. 쉽게 쓰는 휴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휴지라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같은 성품 때문일까. 그는 4형제 가운데 부친으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설 회장이 미국 텍사스주립대로 유학갔을 때, 인송의 커다란 기쁨 가운데 하나가 아들의 편지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인송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설 회장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설 회장은 67년 대한전선 총무부장으로 입사했다. 인송은 설 회장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호된 경영자수업을 받도록 했다. 설 회장은 68년에 상무,70년엔 전무 등 주요 사업부 수장을 거치면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72년 사실상 경영 대권을 이어받은 설 회장은 견실한 전선사업과 가전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70년대 중반 2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로 대한전선을 키웠다. 후계자로서 연착륙했다는 주변의 평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대한전선과 금성사(현 LG전자)가 선점한 가전시장에 삼성전자가 후발업체로 뛰어들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70년대 후반부터 덩치에 밀린 대한전선은 자금난으로 갈수록 어려워졌다. 설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고 토로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친의 유업을 일순간에 포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기업가로서 그간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고 했다. 대한전선 가전사업에 관심이 컸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당시 “가전사업이 어려우면 언제라도 대우에 협력제의를 해달라.”는 의중을 넌지시 전해왔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혼자서 시간을 보내던 설 회장은 83년 3월 그룹 임직원들에게 가전부문 매각을 발표했다, 매각 금액은 2억달러 규모로 당시엔 그야말로 빅딜이었다. 가전사업과 생산직원 모두 대우로 넘어갔다. 대우그룹으로 바꿔타는 직원이 무려 6000여명. 대한전선에 남는 인원은 3000명 남짓이었다.24개 계열사 중 10개사가 대우에 속하게 됐으며, 남은 계열사는 통폐합 절차를 거쳐 7개사로 줄었다. ●‘풍운아’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 설원식 전 대한방직 명예회장의 이력은 좀 독특하다.50년대 국내 대표적인 재벌가(家)의 장남이었지만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뒤,55년부터 5년간 중앙대 문과대에서 강사(서양학)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그는 1960년 대한방직과 대한전선 사장직에 갑자기 취임했다. 이후 3년간이나 부친인 인송과 재산 다툼을 벌였지만 그는 결국 법적으로 대한방직과 대한산업을 옛 대한그룹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설 전 회장은 70년대 대한종합개발을 설립해 건설업에 진출했으며, 아세아종합금융을 세워 금융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업 진출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는 아세아종금 주가가 폭락하면서 퇴출위기에 몰리자 주식시세를 조종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세아종금은 이후 진승현씨에게 인수돼 한스종금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훗날 ‘진승현 게이트’로 불거졌다. 설 전 명예회장은 98년 장남인 설범 회장에게 대한방직 경영권을 물려주며 현장에서 물러났다. 차남인 설원철 전 대한방직 고문의 이력도 형에 못지않다. 그는 일본 게이오대 법대와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그는 부친의 기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쳤다. 그는 대한무역진흥공사에 입사해 조사부 부장과 샌프란시스코 무역관 관장을 거쳤다.91년엔 형인 설원식 전 회장에 이어 대한방직과 대한산업 사장에 올랐다.2년 후에 고문직으로 물러났다. ●‘3무 경영’ 설원봉 회장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은 연세대 법대와 미국 브루클린 공대대학원을 거쳐 1976년 대한전선 종합조정실 이사로 경영에 첫 발을 내디뎠다.83년 대한제당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88년엔 형으로부터 대한제당을 물려받았다. 그는 형과 달리 부드럽다는 평이다. 그러나 나서기를 꺼려하는 것은 다른 형들과 똑같다. 재계에서 친한 인사로는 경기고 동기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설 회장은 현장과 인재 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외환위기 극복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국제 원자재값 급등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설 회장은 직원들의 신뢰속에 감원과 임금 삭감, 노사분규 없이 힘든 시기를 헤쳐왔다.‘무감원, 무감봉, 무분규’라는 대한제당 특유의 ‘3무(無) 경영’은 이렇게 나오게 됐다. 대한제당은 현재 의약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그룹 나침반 임종욱 사장 대한전선의 대표 최고경영자(CEO)인 임종욱(57) 사장은 서울생으로 선린상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95년 회장 비서실장에 임명된 이후 9년간 설원량 회장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받들어 회사경영 전반에 대해 실무관리를 해오고 있다.97년 외환위기 때에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3배 이상 끌어올렸다. 무주리조트와 쌍방울 인수, 진로채권 투자에 나서는 등 사업다각화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임 사장은 설 회장이 타계한 이후 회사 경영의 나침반으로서 차세대 ‘먹을 거리’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미망인이 본 故설원량 회장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예요. 자기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어요. 자제심도 대단했고요. 남편을 사회와 일에 빼앗겼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평생 일만 하다 간 분이에요. 그림이나 음악에도 대단히 조예가 깊었는데….” 양귀애 고문은 남편인 고 설원량 회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는 듯 설 회장을 언급할 때는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설 회장은 지난해 3월 뇌출혈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아직도 설 회장 사진을 안봐요. 집이나 사무실에 있는 남편 사진들을 다 치웠어요. 감정이 많이 정리가 됐다고 해도 가끔은 가슴이 휑해요. 유품을 정리하는데 옷가지들이 너무 낡았더라고요. 대기업 회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와이셔츠 소매는 다 헐었고, 구두는 신기 민망한 수준이었어요.” 그는 일만 했던 남편이 썩 재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둘만의 데이트는 자주 했다고 했다.“설 회장은 사업이 꼬이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어김없이 저를 불러요. 옆에 있어달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한동안 생각만 해요. 그 때는 옆에서 말 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그래서 저를 불렀던 것 같아요. 덕분에 둘이서 남산을 자주 산책했고, 가끔은 골프도 둘이서만 치고 다녔답니다.” 그는 불임으로 꽤 고생했다. 장남인 설윤석 과장을 결혼 12년차에 가질 정도였다.“시댁식구들 눈치 많이 봤죠. 재벌가(家)로 시집와서 12년간 애기가 없었으니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어요. 그때마다 남편이 바람막이가 돼 줬습니다. 참 고마웠죠.” 양 고문은 시아버지인 인송 설경동 회장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아버님이 저를 특히 예쁘게 보셨어요. 항상 자신 옆에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외출을 하면 꼭 저를 데리고 다니며,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한복입은 모습이 예쁘다고 해서 신혼 초에는 한복만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설 회장은 자식을 엄하게 대했다고 한다.“남편은 아들들에게 절대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았습니다. 수입도 없는 애들이 돈 쓰는 버릇부터 들이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비행기를 탈 때도 애들은 항상 이코노미석이었습니다.” 양 고문은 지금까지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자신의 전부를 쏟았지만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시아버지와 남편이 일군 대한전선을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한편 그는 큰 오빠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의 근황과 관련,“건강하시고 친구들을 만나 소일하신다.”면서 “(국제그룹 해체로) 당시엔 심리적인 타격이 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잊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막오른 3세 경영 인송 설경동(작고) 회장이 창업한 대한전선과 대한제당, 대한방직 등은 모두 3세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3세가 최고경영자(CEO)로 전면에 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제 실무부서에 배치돼 첫 걸음마를 시작한 곳도 있다. 가장 빨리 ‘세대교체’가 이뤄진 곳은 대한방직. 설경동가(家)의 장손인 설범(47) 회장이 1998년 대한방직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설씨가(家)의 3세 경영을 알렸다. 그는 85년 대한방직 이사로 출발해 91년 상무,95년 부사장,96년 대표이사 사장 등을 맡으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설 회장은 2001년 한스종금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만두라.’는 소액주주들과 주총에서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등 한차례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주변에선 설 회장을 소탈하고 온화하다고 평한다. 집안 가풍대로 보수적이며, 사업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업계에서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하다. 배재고와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더 뷰크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지난해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학업과 경영수업을 동시에 했던 장남 설윤석(24)씨는 올 들어 경영전략팀 과장으로서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을 쌓고 있다. 그는 대한전선의 최대주주인 삼양금속 지분의 절반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선 설 과장의 나이가 아직 어린 데다 모친인 양귀애 고문이 후견인으로 나서는 만큼 급하게 경영 대권을 잇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종욱 대한전선 사장이 전문경영인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어 후계자 교육에 더욱 치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양 고문은 “설 과장의 진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승진이나 유학 등은 상황에 따라 이뤄질 것이에요.”라고 했다. 동생인 윤성(21)씨는 중학교 3년때 미국으로 유학가 현재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다니고 있다.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의 장남인 윤호(30)씨는 경영 대권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는 2000년 6월에 입사해 현재 제당식품사업부를 책임지는 전무로 일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린다. 설 전무는 경기고와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왕수석’ 靑 떠나나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또 다시 청와대를 떠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문 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을 떠나기에 앞서 사의를 표시한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16일 동남아 순방에서 돌아온 뒤 참모진들과 만찬을 함께 했으나 이 자리에서도 문 수석의 거취와 관련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 수석은 2004년 2월 건강상의 이유로 민정수석을 그만 뒀다가 3개월여뒤에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적이 있다. 청와대는 문 수석의 사의표명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반응이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문 수석이 사의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는 게 공식적 입장”이라면서 “사의표명을 기정사실화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문 수석의 거취에 유동적이라고 강조하는 까닭은 대안부재론이다. 청와대에서 문 수석의 자리를 메울 만한 인물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 수석의 거취는 내년 초 청와대 개편과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문 수석이 그만두면 ‘바늘과 실’로 비유되는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의 거취도 주목된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이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신종우 한양증권 이사

    [이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신종우 한양증권 이사

    요즘 바쁘게 생활하는 직장인 중에도 틈틈이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는 이들이 많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선 체력도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업 경쟁이 치열한 증권사의 40대 임원이 가장 격렬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이종격투기(MMA)에 흠뻑 빠져 있다면 보통의 경우는 아닐 것 같다. 신종우(41) 한양증권 법인영업팀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내년엔 링에서 1승이 목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의 한 스포츠센터. 각종 스포츠 단련장이 즐비한 이곳에 이종격투기 체육관도 있다.K-1 선수로 변신한 최홍만 덕분에 이미 눈에 익숙한 포즈로 땀을 흘리는 동호인들이 제법 많다. 여성 회원들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 직장인들이다. 한쪽 링에서 다부진 덩치(키 173㎝)의 신 이사가 키가 좀 커 보이는 회원과 맞붙었다. 신 이사는 링에 오르자마자 상대방의 무차별 주먹을 안면에 허용했으나 왼발 ‘미들킥’으로 옆구리를 차고 재빨리 목조르기(암트라이앵글초크)에 들어갔다. 이종격투기는 복싱, 레슬링, 무예타이 등 갖가지 무술의 장점을 합친 종합무술이다.K-1과 경기방식이 거의 똑같지만, 선 채로만 경기를 하는 K-1과 달리 레슬링처럼 누워서 조르기 등을 할 수 있다. 신 이사는 법인영업 업무 특성상 저녁식사 약속이 많지만 약속이 없으면 일주일에 2∼3번씩 체육관을 찾는다. 약속이 있어도 오후 3시 주식시장이 끝난 뒤 꼭 몸풀기 훈련이라도 하고 약속 장소에 간다.2년째 이종격투기에 매료된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년의 꿈은 아마추어 대회에서 1승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고픔 잊으려고 다시 운동 신 이사는 어릴적부터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운동이 한때 자살충동에 빠질 만큼 망가졌던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주었기 때문에 지금은 삶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대구에서 자란 신 이사는 1984년 영남대 법학과에 입학하기 전에 공인 유도 3단, 합기도 2단의 실력을 갖췄다.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그는 대학축제의 ‘A급 MC’로도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대학생의 월 수입이 600만∼700만원이나 돼 술집 출입도 잦았다. 학사장교로 군에 입대, 육군 특공연대에서 특공무술도 익혔다. 군 전역후 투자신탁증권사에 입사했다. 동료들을 앞질러 능력을 발휘하며 몇년 만에 핵심 영업점인 압구정동 지점장으로 나갔다. 적립식펀드와 비슷한 주식형수익증권을 판매하면서 ‘원금보전기법’의 상품을 ‘원금보장’상품이라고 둘러대고 목돈 유치에 과욕을 부리다 그만 사고를 친다. 주가하락으로 각서까지 써주고 끌어들인 고객 계좌와 선후배들의 채무보증이 빚으로 바뀌었다. 갚아야 할 빚이 5억원이나 됐다. 월급은 차압을 당하고 가족과 함께 수원의 월세 단칸방으로 밀려났다. 볼모로 직장생활을 하며 외환위기를 맞았다. 신 이사는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직장 동료들이 점식을 먹으러 나가면 혼자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회사 체력단련장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면서 “바벨을 들면서 대학 때 흥청망청 돈을 쓰고, 하루에 수십억원을 주무르던 투신사 지점장의 처지가 처량하고 또 부끄럽기도 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운동이 재기의 투지를 불러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자 ‘다시한번 해보자.’는 투지가 생겼다. 퇴근하면 증권가에서 ‘투자의 귀재’로 통하는 전문가를 찾아가 돈 버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딱한 사정을 이해한 전문가로부터 장외주식거래, 파생상품 투자 등에 대한 노하우를 배웠다. 또 새벽 3시에 수원 집을 나와 과천의 청계산을 4시간 동안 등반하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츰 돈벌이가 좋아져 3년여 만에 5억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 그는 “빚을 다 갚고 회사를 그만두는 날 남은 재산은 760만원뿐이었다.”면서 “앞으론 빚 없는 세상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문사 등을 거쳐 3년전 한양증권에 둥지를 틀었다. 브라질 유술인 ‘주짓수’ 등 운동은 계속했다. 법인영업은 펀드매니저, 연금 담당자 등을 상대로 수천만원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기관 자금의 주식매매를 유치하는 업무다. 어떻게 하든 ‘큰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기부는 즐거움이며 책임감 때문 신 이사는 법인영업을 하며 자신이 건네준 명함이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그 정도에 기가 죽을 그가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법인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무작정 한 책임자의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당신 누구냐.”고 책임자가 묻자,“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 창피해서 그러니 잠시만 앉아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분 뒤 꾸벅 인사만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신 이사는 “3∼4번 그렇게 행동하자 나중에 그 책임자가 ‘뭐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먼저 말을 걸더라.”면서 웃었다. 신 이사는 지금 증권가에서도 손꼽히는 수억원대 연봉의 영업전략 전문가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가까운 사찰을 찾아 시주하는 게 즐거움이다. 매월 사회복지재단과 노숙자단체에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는 것은 힘겹게 보낸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결코 다시는 인생의 링 위에 쓰러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긴긴 겨울밤 따끈한 팥죽

    긴긴 겨울밤 따끈한 팥죽

    동지는 1년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또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상들은 동지를 양기(陽氣)가 솟아나는 상서로운 날로 여겼다. 동지가 설 다음으로 경사스러운 날로 대접을 받았고,‘작은 설’이라는 뜻의 ‘아세(亞歲)’라고 불린 것도 모두 그런 이유에서다. 떡국이 설날의 대표적인 먹거리라면 동지 음식은 단연 팥죽이다.‘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며 조상들이 즐겨먹던 음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팥죽이다. 팥죽은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새알심’이라고 불리는 찹쌀 단자를 만들어 넣고 끓인 음식이다. 옛날에는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리거나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부려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치렀다. 그 다음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고 이웃에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이런 주술적 의미 외에도 팥은 당질과 단백질, 비타민A, 비타민B1, 칼슘, 인, 철 등을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과 변비해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아주 좋은 음식이다. 경기도 전통음식 기능보유자인 김명자씨가 동지 팥죽 만드는 법을 들려줬다. “팥은 불리지 말고 씻어서 바로 삶아야해요. 그래야만 영양분이 빠지지 않고 제대로 삶아 지거든요. 또 삶은 팥은 체에 내려 껍질은 버리고 앙금(팥 속살)만 걸러서 쒀야 담백하고 색깔도 예쁜 팥죽이 되지요.”라며 김씨는 미리 준비해 놓은 재료들을 가리키며 요령을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쌀은 물에 충분히 불리고 아주 진밥을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 또 찹쌀로 빚은 새알심은 그냥 넣고 끓이기도 하는데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넣는 것이 훨씬 퍼지지않고 쫄깃하다. 이렇게 밥과 새알심을 어느 정도 익혀 놓고 끓이면 팥이 타서 냄비바닥에 눌러 붙거나 쌀은 채 익지않는 등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팥을 삶으면 사포닌이란 성분이 나와 쌉쌀한 맛을 내기 때문에 팥을 넣고 처음 끓기 시작하면 물을 반드시 버리고 다시 끓여야 맛있는 팥죽을 만들 수 있다. 팥죽 4인분을 맛있게 끓이려면∼. 멥쌀1/2컵, 팥2컵, 물이 필요하다. 새알심 재료는 찹쌀가루 1컵, 뜨거운 물 3큰술, 소금 1/2작은술.(1)팥을 씻어서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끓인다. 끓어오르면 바로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푹 무를 때까지 삶는다.(2)삶은 팥을 체에 내려 물 3컵 정도를 부어가면서 팥물을 받은 후 팥 껍질은 버린다.(3)찹쌀가루는 소금을 넣고 익반죽 하여 동그랗게 빚은 다음 녹말 가루를 입혀 굴려준 뒤 끓는 물에 넣고 새알심이 동동 뜨면 건진다. 불린 쌀에 웃물을 부어 퍼질 때까지 끓이다 앙금을 넣는다. 윗물과 앙금을 잘 섞이도록 끓인다. 여기에 쌀을 넣고 푹 퍼질때까지 끓이다가 새알심을 넣고 계속 끓인다. 끓이면서 잘 저어주어야 재료가 골고루 섞이고 바닥에 눌지 않는다. 동지 팥죽에 새알심을 넣는게 번거롭다면 조랭이 떡을 넣어도 된다. 개성지방의 떡인 조랭이 떡을 만들어 팥죽에 넣으면 쫄깃하고, 눈사람 모양이라 아이들이 좋아한다. 소금 대신 설탕이나 조린 밤, 단호박 등 취향에 따라 함께 넣어 끓이면 한결 색다른 팥죽이 된다. 팥요리 다모여라 영양이 가득한 팥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요리를 알아보자. (1) 팥양갱 팥양갱도 집에서 달지 않고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재료 팥 3컵, 설탕 3컵, 한천(젤라틴과 같은 역할)30g. (1)팥은 끓는 물에 한번 삶아 버린 후 헹군 다음 팥이 무를 정도로 삶는다.(손으로 비볐을 때 터질정도로 완전히 익혀야 한다.) (2)푹 삶아진 팥을 체에 놓고 물 3컵을 부어 가면서 내려 팥물을 가라 앉힌다.(3)한천을 냉수에 녹인 후 끓여준다.(4)잘 걸러진 팥물에 적당량의 설탕을 넣어 끓이다가 (3)의 재료를 넣어 다시 한번 끓인 후 굳힌다. (5)예쁘게 모양을 낸 후 잣을 올려 접시에 담아낸다. (2) 단팥죽 우리는 보통 단팥죽과 동지 팥죽이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둘은 만드는 방법부터 다르다. 단팥죽은 삶은 팥을 그대로 사용해 팥의 씹히는 맛을 최대한 살린 음식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맛있는지 모르겠다. 재료 팥 1컵, 설탕 1컵, 소금 반 작은술, 물 3컵, 삶은밤 3∼5개, 생강즙 반 작은술, 물녹말 1 큰술(물녹말이란 물과 녹말을 1:1로 섞은 것을 말한다.) (1)팥은 깨끗이 일어 한번 끓으면 물을 버린 후 헹군 다음 다시 물을 넣고, 팥알이 푹 무르도록 삶는다. (2)삶은 팥에 물 3컵을 부어 끓이다가 설탕과 생강즙을 넣어 타지 않게 저어준다. (3) (2)에 물 녹말, 삶은 밤을 넣어 다시 한번 끓여준다. (4)예쁘게 담은 후 접시에 담아낸다. 설탕만 넣고 끓이면 단맛이 너무 가볍다. 물엿과 설탕을 반반씩 넣고 끓이면 보기도 좋고 단맛이 깊어진다. 기호에 따라 약간의 계핏가루를 넣어도 맛난다. (3) 팥칼국수 설탕으로 달달하게 간을 하고 한 젓갈 뜨면 붉게 물든 쫄깃한 면발이 팥물과 올라온다. 뜨끈한 팥물을 그릇채 들고 마시면 한 겨울의 추위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또한 젓가락이 아닌 수저로 국수와 국물을 같이 먹으면 더욱 맛있다. 팥칼국수의 단짝인 김치와 동치미 국물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재료 붉은팥 3컵, 칼국수 250g, 물 30컵, 소금 1큰술 (1)붉은 팥은 씻어 일어서 물을 충분히 붓고 한소끔 끓인 다음, 물을 버리고 새 물에 소금을 넣고 팥이 터질 때까지 푹 삶는다. (2)잘 삶아진 팥을 으깨어 고운 체에 거른다. (3)거른 팥의 웃물을 먼저 솥에 붓고 오랫동안 끓인 후 빛깔이 고와지면 앙금을 넣고 저으면서 다시 끓인다. (4)팔팔 끓으면 칼국수를 넣고 면이 익으면 불에서 내린다. 면은 시장에서 사도 되지만 밀가루, 계란, 우유 등을 넣고 반죽을 한 다음 병으로 밀어 만들면 더욱 맛있다. 팥죽 맛난곳 사다 먹으면 더 맛있다? 시장과 백화점은 물론 죽 전문집에서도 맛있는 팥죽을 포장해서 판다. 망원 1동 동사무소 근처에 있는 고모네 낭화(02-336-5015)는 담백하고 푸짐한 팥죽이 군침이 도는 곳. 직접 팥농사를 짓기 때문에 국내산 1등급 팥만을 사용한다. 진한 팥 국물이 자랑이다. 커다란 그릇에 새알심이 가득한 팥죽이 먹음직스럽다. 손으로 직접 밀어 만드는 팥 칼국수도 정말 맛있다. 새알팥죽 4000원, 팥칼국수 3500원, 잣죽 6000원. 삼청동에 있는 서울에서 두 번째 잘하는 집(02-734-5302)은 잘 알려진 단팥죽 명가.29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 은행, 팥 등을 주인이 직접 경동시장에서 장을 봐온다. 햇밤이 들어 있어 달콤하며 달걀만 한 새알심의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원래 이곳은 한방 찻집이었는데 손님의 요청으로 한두 그릇씩 팔던 팥죽이 명물로 자리 잡았다. 단팥죽 5000원, 십전대보탕 5000원. 단점이라면 가격에 비해 팥죽 양이 좀 적다는 것. 예술의 전당 건너편에 있는 서초동 백련옥(02-525-8418)은 강남 지역에서 친절한 서비스와 청결함, 맛난 팥죽까지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팥죽과 함께 먹는 김치와 동치미를 매일 담가 담백하고 시원함이 그만이다. 손님이 많지만 친절한 서비스를 유지하고 주방을 개방해 음식을 만드는 것도 볼 수 있다. 백련옥은 팥죽뿐 아니라 여러가지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집으로도 유명하다. 동지팥죽·팥칼국수 6500원, 왕만두 5500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24)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24)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wo men,both one year away from retirement,are working on an assembly line.One says to the other,“Last night I made love to my wife three times.” “Three times!” says his friend.“How did you do it?” “It was easy,” says the first man.“I made love to my wife,and then I rolled over and took a nap for ten minutes.I woke up,I made love to my wife again,then rolled over and took another nap for ten minutes.I woke up,I made love to my wife again,and then I went to sleep.I woke up feeling like a bull!” His friend says,“Well,that is fantastic! I’m going to have to give that a try.” So he goes home that night and goes to bed.He makes love to his wife,then rolls over and takes a nap for ten minutes.He wakes up,makes love to his wife again,then rolls over and takes another nap for ten minutes.He wakes up,makes love to his wife again for a third time,then rolls over,and falls asleep. He wakes up in the morning and he´s twenty minutes late for work.He throws on his clothes and runs down to the factory.When he gets to his station,the boss is standing there waiting for him.The man says,“Boss,I´ve been working for you twenty years,and I‘ve never been late before.You’ve got to forgive me these twenty minutes this one time!” The boss says,“What twenty minutes? Where were you Tuesday,where were you Wednesday …?” (Words and Phrases) one year away from retirement:정년을 1년 앞둔 assembly line:조립 라인 make love to∼:∼와 잠자리를 하다 roll over:(몸을)돌려 눕다 take a nap:선잠을 자다 wake up:깨다 go to sleep:잠자리에 들다 feel like a bull:황소처럼 불끈 솟는 기분을 느끼다 give that a try:그것을 시험해보다 for a third time:세 번째로 fall asleep:곯아떨어지다 throw on∼:∼을 급히 걸치다 (해석) 정년을 일년 앞둔 두 남자가 조립 라인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말하길,“어젯밤 마누라랑 세 번 했어.” “세 번이나!”라고 친구가 말했습니다.“어떻게 그렇게 해?” “그야 쉽지”라고 먼저 사람이 말했습니다.“마누라랑 한 탕 하고 돌아누워 선잠을 십 분을 자. 일어나 마누라랑 다시 한 번 하곤 돌아누워 십 분을 또 자. 깨어나서 마누라랑 다시 한 번 더 하고 잠들지. 깨어나면 황소처럼 불끈 솟거든!”친구가 말했습니다.“아, 그거 환상적이네! 한 번 시도해 봐야겠는걸.” 그래서 그 남자는 그 날 밤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내와 한 탕 하고 돌아누워 십 분간 선잠을 잤습니다. 깨어나 다시 아내와 한 탕 더 하고 돌아누워 선잠을 다시 십 분간 잤습니다. 깨어나 아내와 세 번째로 한 번 더 하고 돌아누워 곯아떨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직장에 20분이 늦었습니다. 옷을 걸치고 공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역에 도착했을 때, 보스가 그곳에서 서서 그 남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말했습니다,“사장님, 사장님을 위해 20년을 일했는데 이전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 번 한 번만 20분 늦은 걸 용서해주십시오.”사장이 말했습니다,“무슨 20분을 말하는 거예요? 화요일에 어디 있었어요, 수요일에는…?” (해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습니다. 못된 친구와 어울리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를 말합니다. 한 남자가 부인과 세 차례나 연거푸 했다는 친구 말을 좇아 자기 부인과 세 번이나 한 것은 좋았는데, 그만 직장에 20분 늦었습니다. 사실은 20분이 늦은 것이 아니고, 처음 한 날과 두 번째 한 날은 아예 결근을 했습니다. 이에 사장이 무슨 일이 생겼는가 걱정이 돼서 이 남자의 집 근처에 와 본 것입니다. 나이를 잊고 정력을 발산하다가는 10분 선잠이 하룻밤이 되어버립니다. ■ Life Essay for Writing 돈키호테 같은 추진력 초등 영어 시장의 개척, 파닉스 교재의 도입, 아이들을 깨우는 전화 관리 등으로 분주하던 어느 날, 함께 근무하던 교육연구실의 동료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교재를 만들고 회사를 창업했는데, 김 회장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의 돈키호테 같은 추진력과 치밀함을 아는 그는 아파트 2채를 살 수 있는 많은 돈을 계약금으로 내밀었다. 당시 김 회장은 업계에 이미 이름 석자를 충분히 알렸지만 광주에서 자리잡기 위해 버는 돈은 모조리 사업에 재투자하던 시기라 아직 임대주택의 설움을 겪고 있던 중이었다(President Kim was still living in the second floor of a two-story rental house because he reinvested all the money he earned to settle himself in business in Kwangju,although he made a series of successes and thus became well-known in the business world at that time). 김 회장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동료가 고마웠다. 그는 계약을 체결하러 전주에 위치한 약속 장소로 나갔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으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동행한 아내가 도장을 가지고 광주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아니 이 사람이, 남자의 앞길을 막아도, 이렇게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How dare she stand in her husband´s way?)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회장은 생각했다. 이혼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 절대문법17 자리매김학습 동사의 기본적인 역할 중에 한국인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보어다. 한국어에는 보어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동사에는 주어가 따르고 시제가 있다는 특성이 있다. 동사는 또한 목적어와 수식어, 그리고 보어와 함께 쓰일 수도 있다. 동사 turn 뒤의 white는 앞에 나온 주어의 상태나 모습을 설명한다. 나의 손이 변하는데, 어떤 상태로 변하는 가를 보충 설명해 주기 위해 사용된 보어다. 이처럼 동사는 보어를 가질 수 있다. 동사의 자리와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제시된 표의 빈칸을 채우시오. 정답:1.became (1)My son (2)과거 (4)a sheriff 2.looks (1)The thief (2)현재 (4)exhausted 3.ate (1)Fox (2)과거 (5)in the cave
  • 한파에 울고웃는 업체들

    한파에 울고웃는 업체들

    이달 들어 수은주가 연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지속되면서 업계의 매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방한용품 판매가 늘고 있는 유통업체 및 난방용품 판매업체는 희색이 만면이지만 고유가로 인해 판매가 감소한 등유 등 일부 석유제품 판매업체는 울상을 짓고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간식류 매출도 큰 폭으로 는 것도 특징이다. ●난방용품 판매 불티 최근 유가가 오르면서 기업과 음식점, 가정은 석유·가스를 사용한 난방을 줄이는 대신 전기를 이용한 난방용품을 선호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하이마트의 경우 14일 기준으로 난방제품의 판매가 전주보다 60% 이상 늘었다. 특히 가정과 사무실 등에서 본격적인 겨울 채비에 나서며 전기온풍기와 석유로터리히터 등 난방 제품 판매가 전주보다 70∼80% 증가했다. 4만∼5만원대의 원형 전기히터와 전기요 장판은 전주보다 2배가량 늘었다. 테크노마트의 경우도 월동 가전 제품이 전년과 대비해 20% 이상 증가했다. ●강추위 때문에 신난 유통·의류업계 유통업계는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실시한 바겐세일 기간에 한파 영향으로 겨울 코트 등 의류 매출이 호조를 보였다. 신세계 백화점부문의 경우 무려 32.6%의 높은 신장률을 나타냈다. 이 기간에 모피류는 72%, 신사복은 34% 증가했다. 신세계 이마트 역시 추위로 겨울 상품 판매가 대폭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가전이 97%, 내의 57%, 머플러·모자류가 각각 79%,156% 신장했다. 롯데마트의 성인 및 아동 내의도 각각 34%,28% 판매 신장을 보였다. 야외 활동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간식류 매출도 폭증하고 있다. 이마트는 12월 들어 겨울철 대표 밤참 메뉴인 냉동만두와 호빵이 각각 71%,42.8% 신장했다. 해물탕류도 27% 증가했다. 유통업계는 요즘 같은 강추위가 지속되면 다음 달 시작되는 겨울 바겐세일 때 의류 상품들이 모자랄 수 있을 것으로 판단, 벌써부터 바이어들이 업체를 방문하면서 겨울의류 물량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갑수 이마트 마케팅 상무는 “갑작스러운 한파로 고객들이 보온이 잘 되는 제품들을 구입하고 있다.”면서 “크리스마스와 연말 특수를 기대하고 상품을 많이 준비했다.”고 말했다. ●등유 등 석유제품 판매는 갈수록 줄어 반면 서민의 난방 연료로 각광받던 등유는 최근 한파에도 불구하고 판매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등유는 최근 하루 소비량이 약 9만 3900배럴로 지난 92년 9만 3600배럴의 최저치에 근접하는 등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등유를 주로 사용하던 도시 영세민과 농어촌 주민들이 최근 유류가의 인상으로 인해 난방용 연료를 연탄이나 전기를 이용한 난방시설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의 남산석유 김성기 사장은 “몇 년 전만 해도 동절기의 등유 하루 판매량이 70드럼 정도였는데 올해는 하루에 12드럼에 불과하다.”면서 “특히 지방에서는 기름보일러 대신 나무보일러와 연탄보일러로 대체하는 경우가 무척 많아졌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청소년기는 종속적 아동기와 독립적 성인기 사이의 전환기로서 인생의 긴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는가에 따라 이후 삶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10대 자녀들이 자아 정체감을 잘 가질 수 있도록 부모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알아본다.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지난달 말 하와이에서 신부 박리혜씨와 비공개 결혼식을 가진 박찬호가 한국에서 결혼 피로연을 열었다. 이들 새내기 부부의 만남부터 결혼까지의 풀스토리가 공개된다. 첸카이거 감독의 판타지 영화 ‘무극’으로 아시아 대장정에 나선 월드스타 장동건. 장동건의 흥미진진한 중국 방문기를 동행취재했다.   ●클로즈업(YTN 오후 1시25분) 대한항공 파업에 대한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노동계와 정부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의 로드맵 추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공익사업에 대한 신속한 긴급조정권 발동을 두고 노동계가 반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사관계법과 제도의 선진화 방안인 로드맵이 나오게 된 배경 등을 듣는다.   ●영재의 전성시대(MBC 오후 9시55분) 중서의 회사를 인수한 영재는 정신없이 다니며 고객을 모으기 위해 애쓴다. 한편, 필립은 은재에게 업무적으로도 도움을 주며 계속 친절하게 대한다. 이런 필립의 모습에 은재는 점점 마음이 누그러진다. 필립과 은재를 대상으로 팀장 승진심사가 벌어진다. 은재는 성의를 다해 기획안을 작성하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사서 먹는 것보다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훨씬 더 맛있다는 겨울철 별미 만두를 집에서 만들어보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만두피를 직접 만들어 쓰느냐, 사서 쓰느냐부터 만두 맛이 갈린다고 한다. 한국식 만두의 맛내는 비법과 별미로 만들 수 있는 중국식 만두 만드는 법까지 함께 배워본다.   ●추적60분(KBS2 오후 11시5분) 지난 9월 서울 암사동, 밤길을 걷던 정모씨는 알 수 없는 물체에 들이받혀 큰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그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입힌 것은 다름아닌 멧돼지였다. 그들은 왜 산 속을 떠나 도심으로 내려온 것일까. 야생 멧돼지의 이동경로를 밝히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과 인간세계를 향한 경고에 귀기울여 본다.
  • [시론] 식품안전, 농장에서 식탁까지/양병우 전북대 농업경제학 교수

    [시론] 식품안전, 농장에서 식탁까지/양병우 전북대 농업경제학 교수

    ‘기생충 알 김치’ 파동으로 다시 식품안전 행정의 일원화 문제에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만두 소’ 파동 때에도 같은 논란이 무성했으나 결과는 흐지부지됐다. 연례행사처럼 식품안전 문제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행정의 일원화에만 매달리고 있다. 식품안전 행정체계가 다원화돼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한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8개 부처에 분산된 식품행정을 일원화, 책임행정을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 ‘먹을거리’에는 두가지 실질적 요소가 있어야 한다.‘안전’과 ‘안심’이다. 안전이란 ‘유해나 위험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모든 식품과 농산물은 각종 미생물이 살고 있는 토양과 물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유해요인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더라도 유해인자를 100% 없앤 ‘무균상태’로 만드는 ‘절대안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유해물질이 인체에 해롭지 않게 줄여 나가야 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과학자들이 말하는 안전은 위험을 최소화하거나 무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위험을 확률로 나타내기도 한다. 예컨대 ‘기생충 알 김치’로 감염될 가능성은 백만명 중 한 명이라고 표시한다. 안심은 ‘마음이 편안해 걱정이 없는 상태’이다. 안심의 정도는 사람들이 느끼는 우려라는 ‘감정의 강도’에 따라 다르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안심은 ‘사회가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성과 사회시스템의 투명성’에 좌우된다. 보통 식품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되면 신뢰성도 높아진다. 우리 사회는 과거에 비해 과학이 훨씬 발달했고 식품안전과 보건위생의 수준도 급격히 상승했다. 때문에 ‘기생충 알 김치’와 ‘만두 소’ 파동이 과거보다 못한 식품안전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식품오염’ 사건들이 전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식품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수준이 급상승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감이 증폭되는 이유는 안전 차원이기보다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식품정보의 제약성으로 신뢰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이 식품안전과 정책개혁의 초점을 소비자 신뢰회복에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전 수준을 높이는 것도 시급하지만 우리가 안고 있는 식품안전 제도개혁의 과제는 실추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현재 식품 선진국에서 실행되고 있으며,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각국에 권고하는 ‘위험(위해성)평가기능’을 식품안전 행정조직에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품안전평가부와 국립독성연구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등에 분산된 위험평가 조직과 인력을 통합, 국무총리실 소속의 새로운 독립기관으로 설치하는 것을 뜻한다. 이같이 행정부로부터 독립한 ‘위험평가기구’는 식품안전과 관련한 행정부의 법률과 정책에 과학적·기술적 자문을 해주고 위험정보의 교환과 공개 등으로 소비자들의 신뢰회복에 힘써야 한다. 아울러 식품과 관련한 기준과 규격의 설정, 검사·검역 및 단속 등 식품안전 관리행정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통합해야 한다. 선진국에서 내세우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즉 논·밭에서부터 가공장과 유통업체를 모두 일괄 관리하고 문제 발생시 역추적과 재발방지를 담보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선진형 식품안전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김치파동’ 등이 주는 교훈의 실체를 올바르게 파악, 혁신적인 마인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日本의 현관 요코하마

    日本의 현관 요코하마

    1859년 일본의 첫 개항장으로 서구문물을 수용한 요코하마. 일본의 근대화는 이곳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좋을 만큼 요코하마는 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의 현관’이다.1872년에는 요코하마∼도쿄간 일본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기도 했다. 요코하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초’로 기념할 것이 많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가스등이 켜진 것도, 최초의 외과병원이 세워진 것도, 근대도로인 바샤미치(馬車道)가 생긴 것도, 아이스크림이 탄생한 것도 모두 이 진취적인 기질의 하맛코(요코하마 출신자)에 의해서다. 개항 당시 600명의 인구에 불과하던 자그마한 어촌은 이제 인구 350여만명의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일본 근대문화의 발상지 요코하마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여행지로 변신하고 있다. 글 사진 요코하마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요코하마의 특징은 한 마디로 세계 유수의 항구도시라는 점이다.1859년 에도 바쿠후 말기에 개항한 이래 요코하마는 세계 각국의 선박이 드나드는 ‘미나토(항구) 요코하마’로 명성을 지켜왔다.JR(일본철도) 네기시선 간나이역에서 걸어서 15분, 오삼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 가보면 요코하마가 진정 일본의 대표 항구임을 실감할 수 있다. # 요코하마의 상징 ‘오삼바시’ 요코하마의 상징이자 중심인 오삼바시는 2002년에 새롭게 문을 연 국제여객터미널이다. 대형 외국 여객선이 기항하는 이곳에는 2000㎡의 다목적 홀이 있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다. 오삼바시 터미널은 거대한 배의 형상을 띠고 있다. 비스듬한 바닥 전체가 널마루로 되어 있어 걷기 편하다. 마치 1등 선객을 위한 프롬나드 데크(산책 갑판)를 걷는 기분이다. 터미널 조금 높은 곳에는 24시간 열려 있는 옥상광장이 있어 연인이나 나들이객들이 즐겨 찾는다. # 최고(最高)건물, 최속(最速)승강기 오삼바시에서는 미래형 도시설계로 유명한 미나토미라이21 지역이 훤히 내다보인다. 요코하마 여행의 핵심인 미나토미라이21은 사쿠라기초 역 바로 북쪽에 위치한 신개발 지역. 이곳에 바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70층짜리 랜드마크 타워(296m)가 있다. 랜드마크 타워에는 1분에 750m까지 속도를 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승강기가 있다. 바람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승강기를 달걀 모양으로 설계한 점이 독특하다.2층 로비에서 69층 랜드마크 타워 스카이가든(입장료 1000엔,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토요일은 밤 10시까지) 전망대까지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0초. 기네스 북에도 올랐다. # 석양과 함께하는 헬리콥터 크루징 요코하마의 풍경은 랜드마크 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새처럼 조감하는 것도 멋스럽다. 미나토미라이 헬리포트에는 요코하마항 상공을 나는 다양한 코스의 헬리콥터가 대기하고 있다. 석양 무렵에 운항하는 ‘트와이라이트 코스’(비행시간 약 5분)는 어른 4000엔, 어린이 2000엔.10분에 걸쳐 요코하마의 야경을 보여주는 ‘요코하마 베이 라이트 코스’는 트와이라이트 코스보다 3배 이상 비싸다.5인승 헬리콥터를 타고 요코하마 상공을 나니 요코하마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 책임자인 가오루 하라(엑셀항공주식회사 영업부장)씨는 “일본에서 헬리콥터 크루징을 1년 내내 하는 곳은 요코하마와 도쿄뿐”이라며 “특히 30여년의 역사를 지닌 요코하마 헬리콥터 크루징은 몇 달전에 예약해야 탈 수 있는 요코하마의 명물”이라고 말했다. # 낭만 싣고 떠나는 ‘로열 윙’ 유람선을 타고 요코하마를 감상하는 것도 기억에 남을 만하다. 오삼바시에는 ‘로열 윙’이라는 거대한 배가 있어 크루즈 여행을 주도한다. 일본에서 유일한 엔터테인먼트 식당선(船)이다. 순항 시간은 런치 타임(2100엔)과 디너 타임(2100엔)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사이에 티 타임 크루즈(1600엔)가 따로 준비돼 있다. 이 레스토랑 배에서는 중국의 1급 조리사가 광둥식 요리를 선보인다. 중국 본토 요리와는 사뭇 다른 ‘퓨전형’이어서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낮 시간에는 우아한 고전음악이, 저녁 시간에는 쿨 재즈가 생음악으로 펼쳐져 여행의 흥취를 더해준다.‘로열 윙’에 오르기 위해서는 개인은 두 달전에, 단체(15명 이상)는 10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 시간살림이 성공여행의 열쇠 여행의 묘미가 일상을 잊고 색다른 여유를 즐기는 것이라면, 시간에 쫓겨 종종걸음치는 맛보기 관광은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의 압박 속에 사는 게 현대인의 숙명. 그러니 어떻게든 시간살림을 알뜰히 해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하루동안 요코하마를 둘러보려면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헬리콥터와 유람선도 타고 오삼바시 터미널에서 요코하마의 바람도 다면 이제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까. 일본의 차이나 타운인 주카가이(中華街)와 그 주변을 살펴보고, 다시 오삼바시로 돌아와 요코하마 야경 감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극채색의 문 지나면 음식천국 ‘일본 속의 중국’ 주카가이는 미나토미라이선 모토마치·주카가이 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인다.1923년 관동대지진 후 바다를 메워 만든 항구공원인 야마시타코엔 남쪽이다. 주카가이는 2차대전 전까지는 ‘난징(南京)거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차이나 타운이 다 그렇듯 주카가이에 들어서면 먼저 현란한 극채색 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카가이에는 우호의 의미가 담긴 젠린몬(善隣門)과 세이요몬(西陽門)을 비롯해 모두 10개의 문이 있다. 차이나 타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거리 한가운데 자리잡은 중국식 사원 간테이뵤(關帝廟)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영웅 관우를 상업의 신으로 모신 곳이다. 화려한 색상의 웅대한 건물이 차이나 타운의 상징 구실을 하고 있다. 이 곳은 참배하려면 돈을 내야하지만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중국인들의 유난한 재신(財神)숭배 행태라니….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 삼국지 영웅 모신 간테이뵤 주카가이에는 각종 식당과 잡화점 등 500여개의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요코하마 개항 당시 중국의 상관(商館)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이 이 곳에 계속 머물면서 터를 닦아 놓은 노포들이다. 차이나 타운의 매력은 단연 먹을거리. 주카가이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다.‘중국인은 하루 세 끼가 아니라 다섯 끼를 먹는다.’고 한다. 딤섬 즉 중국식 만두를 수시로 먹는데서 생긴 말이다. 차이나 타운을 걸으면 이를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 주카가이야말로 ‘만두의 거리’다. 구운 돼지고기가 든 차슈만두, 오징어먹물 만두, 상어지느러미 만두 등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인 거리 가운데 하나인 주카가이는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 타운에 맞먹을 만한 음식천국이다. # 외국인 거류지였던 야마테 주카가이와 이웃한 곳으로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야마테 지역이다. 주카가이와는 또다른 점에서 이국적이다. 요코하마에는 개항과 더불어 외국인 거류지가 생겨났다. 특히 야마테지역은 서양인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이국풍의 건물과 교회들이 적지 않다. 요코하마항이 내다보이는 언덕 경사면에 위치한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에는 요코하마에 살았거나 방문했던 40여개국의 외국인 약 4500명이 잠들어 있다. 야마테 지역에는 1909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목조서양식 건물인 야마테자료관, 유럽풍 돌층계와 정원이 아름다운 미나토미에루오카코엔 등 이국적인 볼거리들이 많다. # 요코하마는 역시 밤 주카가이와 그 주변을 둘러봤으니 이제 다시 오삼바시로 갈 차례. 해거름에 찬바람을 맞으며 오삼바시에 서니 멀리 요코하마의 명물 베이 브리지(860m)가 눈에 들어온다. 요코하마의 아름다움은 밤풍경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요코하마의 밤은 베이 브리지 아래로 흐르는 검푸른 물결과 각양각색의 건물에서 내뿜는 불빛이 어우러져 빛의 축제를 방불케 한다. 요코하마는 역시 밤이다. 푸른 빛을 쏟아내는 불야성의 밤.“거리의 불빛이 너무도 곱구나 요코하마 부루라이토 요코하마∼” 1970년대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한 이시다 아유미의 ‘부루라이토 요코하마’ 가락이 절로 떠올랐다. 요코하마는 도쿄의 위성도시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오고가는 배들로 늘 분주한 운치있는 도시다. 요코하마 여행객들은 흔히 도쿄에 숙소를 정하고 요코하마에 들르는 방식을 택한다. 도쿄에 숙소가 많은 만큼 싼 곳도 많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요코하마까지는 JR 도카이도혼선 등을 이용하면 30여분만에 갈 수 있다. 최근 미나토미라이선과 JR쇼난신주쿠 라인이 증설돼 도쿄 쪽에서 오기가 훨씬 편해졌다. 한국에서 요코하마로 직접 가려면 ANA항공편을 이용하면 된다. 김포공항에서 하네다공항까지 비행기가 하루 두 차례(오후 1시, 밤 8시20분 출발) 뜬다.ANA항공은 ‘요코하마 알리기’ 차원에서 내년 1월10일부터 12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모니터 투어도 실시할 예정이다.45명 정도로 예상가는 39만 9000원선. 문의 ANA항공 영업부(02)752-1160.
  • [어떻게 지내세요] 작곡가로 돌아온 김강섭 전 KBS 악단 지휘자

    [어떻게 지내세요] 작곡가로 돌아온 김강섭 전 KBS 악단 지휘자

    “요즘들어 우리 대중 음악이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고 있어요. 또한 유사표절 등 쉽게 쉽게 부르려는 경향도 많고요.” 대중음악 연주가 김강섭(73)씨. 지난 1985년 ‘KBS-TV 가요무대’를 제작한 이후 20년 가까이 상임 지휘자를 맡아 국내와 해외동포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 그의 방송음악 인생은 올해로 45년째를 맞는다. 또 KBS 음악프로인 ‘열린 음악회’ 출범의 산파역을 담당했다. 특히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불나비’‘그 얼굴에 햇살을’ 등 200여곡의 히트곡과 ‘달려라 백마’ ‘팔각모 사나이’ 등의 군가를 작곡, 이래저래 우리나라 대중 음악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이같은 공로로 지난 94년 연주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고, 최근에는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주인상을 수상했다. 지난 주말 서울 서초구 반포동 팔레스호텔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가 일주일동안 중국을 다녀온 직후였다. 까닭을 물었더니 “연길과 백두산을 여행했다.”면서 “왠지 백두산만 다녀오면 기운이 펄펄 난다. 온천욕까지 하면 모든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고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고 크게 웃었다. 지금까지 백두산은 열두번정도 다녀왔단다. 하산하는 길에는 가끔 ‘연길예술단’ 관계자들과 만나 음악얘기를 꽃피운다. 지난 91년 연길방송국 개국 기념일에 초청된 것이 인연이 돼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가요무대’ 얘기가 나왔다. 그는 “20년 전 당시 KBS 박현태 사장이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옛날로 돌아가더라, 좋은 프로그램 하나 연구 좀 해보슈.’라고 해 지금의 ‘가요무대’를 만들게 됐다.”고 회고했다. 또 “처음에는 담당 PD와 아나운서가 세번이나 바뀌는 진통을 겪다가 출범 3년째 김동건씨가 진행을 맡으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따라서 ‘가요무대’는 자신의 음악인생 가운데 가장 애정을 두는 대표작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0월말 이런저런 사정으로 물러나게 돼 아쉬움과 섭섭함을 동시에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가수마다 음악의 넓이가 다르다. 지휘자는 그걸 맞추는 책임이 있다. 그런데 요즘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PD들은 그걸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그만두게 된 이유를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11월21일 방송된 ‘가요무대 20주년 특집’때 방송사측에서 감사패를 전달하겠다고 했으나 김씨는 단호히 거절했다.20년 동안 일해온 예우가 겨우 그것뿐이냐는 서운함에서였다. 김씨는 “해외연주를 하면서 수차례 기립박수를 받을 만큼 많은 감동과 에피소드를 안겨 주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300여회의 연주기록을 세워 동포들에게 뜨거운 조국애를 심어 주기도 했다.”고 잠시 회상에 젖어든다. “우리가 얘기하는 트로트니 탱고니 하는 것은 리듬의 한 장르일 뿐입니다. 언론에서도 트로트 리듬 혹은 트로트 풍이라고 해야지요. 미국에서 유행한 이 리듬은 일본으로 건너와 ‘뽕짝’으로 바뀌었고 이어 우리 문화에 파고들었습니다. 세계 음악의 흐름을 간파하면서 우리식 가락과 리듬이 담겨 있어야 진정 대중음악이 발전합니다.” 미식가인 그는 요즘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서울 주변의 맛있는 집을 자주 찾는다. 슬하에 딸만 셋을 두었으며, 결혼한 딸 둘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막내딸, 부인과 지낸다.“그동안 연주인생을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작곡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나와의 싸움 이기니 사장님 됐죠”

    “아무리 열악한 상황이라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3일 경기도 화성 청려수련원에서 영등포역·서울역 노숙인 130명을 대상으로 ‘아주 특별한 강의’가 열린다. 두부제조업체 짜로사랑의 대표 김동남(45)씨가 ‘후배 노숙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서울복지재단이 주최한 노숙인 캠프에 나선 것이다. 김씨는 3년 동안의 노숙인 생활을 청산하고 직원 9명을 거느리면서 짜로사랑을 월매출 2500만∼3000만원의 회사로 일궈냈다. 짜로사랑은 ‘진짜로 우리 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국산콩으로만 두부를 만든다. 중졸 학력이 전부인 김씨는 20대에 알코올 중독에 빠져 변변한 직업도 없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증을 딴 뒤 방송통신대도 1년동안 다니고, 결혼도 했다. 이후 아파트 관리사무소, 어린이집 등에서 일했으나 외환위기 때 일자리를 잃으면서 다시 술독에 빠졌다. 자연스레 가정불화도 생기고 이혼까지 하면서 집을 나와 노숙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김씨는 2002년초 수원의 노숙인 쉼터인 ‘해뜨는 집’에 들어가 자활 후견기관의 도움을 얻어 일해보기로 했다.10평도 안 되는 공장에 중고 두부 기계를 한 대 들여놓고 동료 노숙자 2명과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시간때우기’식으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동료 노숙인은 모두 그만뒀다. 김씨는 다시 술을 찾았다. 하지만 ‘자기와의 싸움’에 매번 지는 자신이 한심했다. 결국 시장 아주머니와 시골 할머니들에게 부탁해 두부 만드는 기술을 새롭게 배웠다. 노숙인 쉼터는 ‘젊은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좋다.’면서 두부업체를 김씨에게 맡겼다. 이 때 짜로사랑이라는 브랜드도 고안하게 됐다.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일주일도 못 버티고 그만두는 직원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밑천이 되는 회사로 꾸릴 겁니다.”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무·릉·島·원 럭셔리 제주

    무·릉·島·원 럭셔리 제주

    제주도를 잘 안다고? 천만에. 제주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눈으로만 보는 제주도가 아니다. 온몸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헬기나 벌룬을 타고 하늘에서 제주도를 내려다보며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제주도를 즐길 수 있다. 또 영화의 한 장면에 뛰어들어 하얀 요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오붓한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바다 속은 어떤가. 형형색색의 산호와 아름다운 물고기들의 천국에 초대받을 수도 있고, 바다 한가운데서 낚시를 즐기는 해상좌대 낚시체험을 할 수도 있다. 물좋은 산방산 온천, 미국의 유니버설스튜디오가 부럽지 않은 익스트림아일랜드, 꿩사냥과 ATV(4륜 산악오토바이)와 함께하는 대유랜드, 사자와 호랑이 등 아프리카의 문화가 가득한 아프리카 박물관 등도 새로운 체험거리다. 꿈과 모험이 가득한 곳, 날마다 새로워지는 제주도가 좋다! 글·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요트를 타고 바다로 요트를 타고 바다를 질주하는 꿈도 제주에선 쉽게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돌고래 쇼로 유명한 서귀포시 퍼시픽랜드(www.pacificland.co.kr,064-738-2110)에 가면 요트여행을 할 수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샹그릴라´호에 올랐다. 선장이 신발을 벗을 것을 권했다. 여느 배와 달리 바닥이 깨끗하다. 배안에는 특급 호텔처럼 시설이 깔끔하다. 침대가 구석구석에 4개, 화장실, 주방, 차 마시는 공간까지 모든 편의 시설이 다 갖추어져있다. 드디어 하얀 배가 미끄러지듯 바다로 나간다. 갑판에 올라 앉았다. 배 앞쪽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바다구경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돛을 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니 조용해서 더욱 좋다. 물살을 가르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와 낭만적이다. 일몰과 일출 체험은 기본, 운 좋으면 돌고래의 재주도 볼 수 있단다. 여름에는 수영과 선탠도 즐길 수 있다.1시간에 6만원, 하루 종일 임대도 가능하다. 겨울이라도 제주도에선 요트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하늘 위에서 감동을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옆에 있는 대양항공(www.jejuh.com,064-792-3553)헬리포트로 달려가자. 생각보다는 작고 아담한 여객터미널이 황금빛으로 변한 새별오름앞에 자리잡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50석 규모의 대합실이 나온다. 보안검색이 공항과 같다. 금속탐지기로 몸을 검색하고 보안교육을 받는다. 헬기 안에선 이동이 불가하고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의 사용도 안 된다는 보안요원의 5분간 교육이 진행된다. “바람이 부는데 위험하지는 않나요.”소심하게 묻자 보안요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우리 헬기는 26인승 러시아제 MI-171기종으로 조종사와 승무원을 제외하고 19명이 탈 수 있는 최신 기종입니다.”라며 “제트 엔진을 양쪽에 가지고 있고 자체 레이더로 돌풍이나 기상변화를 감지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가장 안전한 헬기입니다.”라고 자랑한다. MI-171헬기는 일반 헬기보다 속도는 2배가 빠르고 높이도 무려 4000m까지 오를 수 있는 초대형 헬기란다. 안심된다. 엔진이 가쁜 숨을 뱉어내듯 ‘두두두∼드’ 소리를 내더니 바로 땅을 박차고 오른다. 생각보다 소음도 크지 않다. 창밖으로 크고 작은 오름들과 골프장들이 눈에 들어오더니 어느새 왼쪽으로 산방산이 보인다.395m의 깎아지른 듯한 산방산. 우락부락하면서도 우직하게 서있는 모습에 감탄사가 흐른다. 스치듯 산방산을 지나치더니 이내 쪽빛의 제주바다가 펼쳐진다. 남태평양의 바다보다 제주의 바다는 짙고 깊은 푸른빛이다. 바다는 일렁일렁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눈을 뒤로 돌렸다. 거대한 퇴적암으로 이뤄진 용머리해안. 거대한 빗자루로 쓸어낸 듯한 모습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땅위에서 보았을 때와 다른 웅장함과 생김새에 눈을 돌릴 수 없다. 물론 헬기가 시속 50∼60㎞ 저속으로 날아간다고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너무 순간이라 아쉬울 정도였다. 짙은 파란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바다를 날더니 어느덧 잘려진 식빵 한 조각이 떠 있는 듯한 모양의 섬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인 마라도다. 바람이 거센 섬이라서 그런지 높은 건물이나 나무가 없어 평면적으로 보인다. 섬을 둘러싸고 있는 깎아지른 듯한 해안선, 멀리 보이는 하얀 등대, 드문드문 보이는 건물들에서 왠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진다. 마라도를 한바퀴 돌고는 헬기는 다시 제주도로 향한다. 비록 30분도 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시간동안 경험을 했지만 가슴 속에는 한 가득 제주의 아름다움이 자리잡았다. 호주의 12사도상이나 몰디브의 상공을 헬기로 볼 때와는 다른 아름다움과 감동이 느껴졌다. 헬기투어는 현재 마라도와 서귀포 앞바다 코스를 운항 중이며 12월 초부터는 한라산 백록담을 돌아보는 코스도 운항할 예정이다. 비행시간은 대략 25분 내외이며 요금은 12월말까지 9만 9000원. ●짜릿함의 감동 제주를 하늘에서 느끼는 또 다른 방법은 벌루닝을 타는 것이다. 서귀포시에 있는 열기구테마파크(www.ballooning.co.kr 064-732-0300)로 가보자. 놀이동산에서 탈 수 있는 작은 풍선이 아니다. 커다란 풍선에 바구니를 달고 그 안에 올라 타 하늘여행을 할 수 있다. 열기구는 열로 공기를 데워 그 뜨거워진 공기의 부력으로 하늘을 날지만 벌루닝은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가스를 벌룬에 채워 하늘로 떠오른다는 점이 다르다. 또 열기구처럼 하늘을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줄)로 육지와 연결된 계류식 벌루닝이기 때문에 하늘을 떠다닌다기보다 하늘에 올라서 그 상태로 떠있다가 다시 내려가 오히려 안전하다. 헬기와는 달리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올라가기 때문에 짜릿함을 느끼며 동시에 제주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직경 22m, 높이 34m의 거대한 벌룬이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자 바구니에선 환호성이 터진다. 바람이 잔잔한 날은 무렵 150m 높이까지 올라간다. 내려다보자 자동차와 집들이 장난감크기로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살짝 불어오자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만화 속의 주인공이 된 양 신이 나서 이리저리 다니며 즐거워한다. 정상에서는 10여분 정도 머문다. 오르고 내리는 시간을 포함해 20분 정도 소요된다. 어른 2만 4500원, 초등학생 1만원.7세 이하는 무료. 기상조건에 따라 변동이 심하므로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제주의 속살을 찾아 제주 청정해역에선 바다 속도 즐길 수 있다. 제주 바다의 속살은 형형색색의 산호와 예쁜 물고기들로 가득하다. 특히 이맘때가 바다속 시야가 좋아 잠수함체험하기에 가장 좋다. 마라해양군립공원내 송악산부근 바다를 구경하는 남제주 안덕면에 있는 제주잠수함(064-794-0200)을 추천한다. 일단 잠수함까지 가려면 작은 배를 타고 10여분 바다로 나가야한다. 임시 선착장에 내려 잠수함으로 갈아탄다. 노란색의 잠수함이 예쁘다. 수중 다이버들이 수백마리의 줄돔, 볼락 등 물고기를 몰고 다니고 아름다운 산호섬인 꽃동산을 구경하는 등 산교육장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나들이라면 빠뜨리면 아쉽다. 어른 4만 9500원, 아이 2만 9700원. 잠수함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해저탐험증을 선물로 준다. ●제주 바다의 색다른 체험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 만들어진 해상좌대에서 짜릿한 손맛과 싱싱한 회맛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안덕면 대평리 용왕 난드르마을로 가면 된다.1인당 1만원이면 3분 거리에 있는 해상좌대에 내려주고 낚싯대도 빌려준다. 주인 김정숙(019-698-3893)씨에게 미리 전화하면 좌대에서 먹을 수 있게 회를 떠주기도 한다. 제주에는 방어가 제철인데 5명 기준 5만원이면 배를 2시간 동안 빌려 방어낚시도 즐길 수 있다. ●레포츠의 천국 대유랜드 서귀포시 상예동 대유랜드(www.daeyooland.net,064-738-0500)는 수렵, 사격,ATV(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레포츠의 천국이며 꿩요리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이기도 하다. 요즘은 클레이사격을 배운 후 ATV를 타고 사냥을 나가는 레포츠가 유행이다. 국내 유일의 상설 수렵장인 대유랜드의 크기가 무려 120만평이나 되고 자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꿩이 특히 많다. 꿩 5만마리를 방사해 놓았기 때문에 언제나 수렵이 가능한데다 별도의 수렵면허가 없어도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안전하게 사냥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클레이 사격을 배운 후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고 본격적인 수렵여행에 나선다. 물론 가이드가 동행한다. 꿩 사냥은 보통 3∼4명이 한 조가 되어 나가며 요금은 엽총 등의 사냥장비 대여료와 실탄값, 가이드와 사냥개 동행 등을 포함해 1인당 15만원. 사냥시간은 2∼3시간정도, 꿩 3마리는 잡을 수 있다. 또 클레이사격장(20발 3만 5000원)외에도 스미스 웨슨 38구경과 베레타 9㎜ 등을 갖춘 권총사격장(12발 3만 5000원)과 라이플사격장(12발 3만 5000원)을 갖추고 있다. 꿩 요리 전문 음식점도 있어 포획해온 꿩을 회나 샤부샤부, 구이 등으로 요리해준다. 꿩 회와 꿩다리구이, 꿩튀김, 꿩샤부샤부, 꿩만두 등이 차례로 나오는 코스요리는 1인당 5만원. 초보자부터 마니아까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ATV는 단거리(3만원), 중거리(5만원), 장거리(7만원)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온몸으로 즐겨요 이밖에도 4D 입체영상의 감동과 함께 짜릿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익스트림아일랜드(064-739-0051)는 아름다운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 있다. 14×8m의 대형 스크린으로 즐기는 동시에 시뮬레이터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바람, 연기 등 4D 특수효과가 가미돼 가상체험의 현실감을 극대화시킨 영화를 감상한다. 각양각색의 공룡들이 눈앞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고, 이를 피하기 위해 시뮬레이터는 비명을 지르는 관람객을 태운 채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며 짜릿한 스릴감을 맛보게 한다. 주의 사항을 일러주는 프리쇼관, 이야기 줄거리를 알려주는 스토리관, 본격적인 입체영상을 즐기는 어드벤처관 순으로 관람을 하며 시간은 20분 정도 소요된다. 상영시간은 매시 정각과 30분. 정원 45명.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어른 6000원, 초등학생 이하 4000원. 이밖에도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의 산방산온천(064-794-5088)은 제주도 최초의 온천으로 지하 600m에서 솟아나는 탄산온천수로 유명하다. 물 솟는 소리가 비둘기 소리를 닮았다고 해서 ‘구명수’로 불리는 탄산온천수는 성인병 예방은 물론 각종 질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산온천에 몸을 담그면 온몸에 미세한 기포가 달라붙어 마치 눈사람처럼 변하고 10분 정도 있으면 온몸에 파스를 붙인 듯 후끈거린다.2층 온천탕에선 산방산과 한라산도 보인다. 입장료는 9000원. 또 중문관광단지 내 국제컨벤션센터 쪽에 있는 아프리카박물관(www.africamuseum.org,064-738-6565)도 ‘강추’. 온통 황토빛으로 칠해진 것 하며, 첨탑을 잇따라 붙인 듯한 모습이 이국적이다.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며, 서아프리카 말리 공화국에 있는 젠네대사원(이슬람 사원)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사진작가 김중만씨의 아프리카 사진, 아프리카 미술품 및 공예품,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동영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어른 6000원, 어린이 3000원이다. ■ 제주도 대표 음식 제주도를 대표하는 음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도 ‘말고기’를 빼놓을 수 없다. 탐라목장 (064-764-7678)은 직접 목장에서 식육용으로 말을 길러 신선하고 깨끗한 고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름난 곳이다. 대개 말고기를 질기다고 피하는데 탐라목장의 말고기는 소고기 못지않다. 뒷다리 살과 등심을 잘게 썰어 배 등과 함께 무쳐낸 육회. 정말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살짝 숯불에 익혀먹는 등심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 막창, 양념갈비 등 말고기의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말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글리코겐 함량이 높아 맛이 달콤하고 단백질 함량도 높고 필수 아미노산의 비율도 떨어지지 않아 영양이 만점인 약이 된다. 칼로리와 콜레스테롤 함량이 적어 요즘처럼 살빼기에 민감한 시대에 매력적인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다. 육회, 막창, 불고기를 포함한 코스 요리가 1인분에 1만원부터 5만원까지.
  • 꼬마아기 14인의 치맛바람

    꼬마아기 14인의 치맛바람

    치맛바람 중에도 아주 훈훈한, 엄마냄새 가득한 바람도 있다. 정릉동 266의 61, 담없는 집의 엄마 김문수(金文洙·38)씨가 그런 바람의 주인공. 벌써 넉 달째 동네소녀 열 네 명의 집회를 일요일마다 집뜰에서 열어준다. 노래하고 공놀이하고「포크·댄스」추는「브라우니」소녀단 집회. 다음은 하도 재미있어 보여 찾아 본 어느 일요일의 이 집회 얘기. 한국 최초의 동네소녀단, 일요일마다 한 집에 모여 『들린 사람처럼 아이들에게 매혹되고「걸·스카우트」운동에 미치지 않고는 이 짓을 못하죠. 아이 셋 가진 살림하는 여자가 집안으로 남의 아이들을 끌어 들이는 일이니까요』 「브라우니」는 소녀단 중에도 제일 나이 어린 국민학교 꼬마들의「그룹」이다. 그래서 우선 시끄럽고 다루기가 가장 힘들다. 이 정릉의「브라우니」들 나이도 만 6살부터 12살까지. 대장인 김문수씨의 막내딸 박명선양과 동네꼬마 서은선양이 최연소자. 5학년짜리가 6명, 4학년짜리가 2명, 3학년짜리 3명, 2학년짜리 1명. 일요일 하오 2시면 저희들 이름대로「브라운」빛「브라우니」단복을 입고 모여든다.「브라우니」방석 한 개씩,「브라우니」일기 하 권씩을 들고 온다. 집회는 담은 없지만 넓은 잔디가 있는 뜰에서 열린다. 손가락 두 개로 이마를 짚고 악수하는「브라우니」인사를 한다. 1주일 만에 만나는 동무들. 주간 동안은 제각기 다른 학교, 다른 학급으로 뿔뿔이 헤어져 공부하는 꼬마들이다. 사실 이 정릉「브라우니」는 이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국민학교 어린이의 소녀단 활동이 이제까지 없었던 건 아니다. 거의가 학교 단위로, 학년 단위로「그룹」이 조직되고 대장은 국민학교 선생님이다. 엄마가 대장이 되어 이웃을 단위로 조직된「브라우니」는 이 정릉의 경우가 처음. 나이가 다양하니까 지도하는 엄마는 좀 힘들다. 얼핏 생각하면 꼬마들도 6살~12살이면 지능 정도차가 심해서 곤란할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오히려 흥미 있어 한다. 학교에서, 집에서 보는 식상한 얼굴들이 아니라서인지 의들도 그럴 수없이 좋다. 『하느님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어린이가 된다』『남을 돕고 가족을 돕는다』『손윗사람을 존경하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약속과 규율을 같이 외는 것도 이날의 일과. 게임을 한 가지씩, 끈 매는 법도 배우고 쉬운「게임」을 한 가지씩,「포크·댄스」도 한 가지씩 엄마대장이 가르치는 대로 배운다. 공치기를 하다가 털썩 자빠져도 옷을 버리지 않는다. 옥외에서는「브라우니」깔개를 엉덩이에 꼭 매고 있으니까. 끈 매는 법도 배운다.『남을 돕는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우선 무엇이든 할 줄 알아야 한다. 치맛단이 뜯어졌거나 단추가 떨어졌을 때 꿰매는 법도 배운다. 6살박이 명선, 영선, 두 꼬마도 물론 같이 배운다. 12살짜리 언니들은 이 두 꼬마가 앙증맞고 귀여워 죽겠단다. 이래서 집회 활동 중에 우애는 더욱 깊어진다. 「브라우니」일기첩에는「1일 1선(善)」의 소녀단 실천항목이 있다. 제각기 공책에 칸을 만들어 가진 자작 일기첩. 1주일 동안 한 착한 일을 서로 공개하는 일과도 있다. 아직은 어린 꼬마들이니까「이닦기」「자기 방 자기가 치우기」「형제끼리 안 싸우기」「엄마 심부름 하기」가 가장 큰 기록. 그동안 날씨가 추워서 옥외집회는 잠깐 하고「프로그램」을 주로 집안에서 했다. 20평짜리 집의 4평 응접실과 꼬마방이「브라우니」임시집회실. 열 네 명이 모여 앉으면 와글와글해서 사람과 소리가 집안을 꽉 메운다. 『어쩌다 일요일에 집에 있으면 자기 아이들도 귀찮은 법인데 매주일 그 와글거리는 것 어떻게 참고 사시오?』 이 집 주인 박기순(朴基淳·한국은행 조사역)의 친구들이 신통해 한다. 방관자인 아빠뿐만 아니라『「브라우니」에 들린』엄마도 실은 고달프다. 『교회에서 좀 늦게 돌아오면 점심밥이 입에 들어 갈 새가 없어요』 꼬마들이 벌써 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일이 재미나는 것은 운명이고 부부간의 결혼계약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기순씨는 신통해 하는 친구들에게 변명조로 이렇게 해명한다. 『「걸·스카우트」를 그만두지 않는 걸 조건으로 결혼했으니 별 수 있나요』 대장은 세 아이 가진 엄마, 13년 전 소녀단원 된 후로 13년 전인 57년 3월 김문수씨는「걸·스카우트」봉사대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한창 재미를 붙인 그 해 9월에 결혼을 했다. 그때 심정으로는 너무 당연한 결혼조건. 그 뒤로 매주 2시간「걸·스카우트」일을 해왔다. 『「브라우니」들이 너무 수선을 떨면 조심스러워요』 그래도 아빠가 자주 독촉을 해서 만들어진「담없는 집의 브라우니」다. 작년 11월에 딸네미 있는 이웃집을 일일이 방문해서 22명이 모였었다. 집이 좀 멀고 너무 수줍음 타는 아이들이 빠지고 지금은 14명. 『엄마들이 그러는데 꼬마들이 일요일 되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른대요. 4월은 꽃씨 뿌리는 달이죠』 지난번 3월 15일 선서식을 했는데 엄마들이「금일봉」을 선사했다. 그 돈으로 꼬마들이 공을 샀다. 나머지는 동네에 뿌릴 꽃씨를 사서 4월 활동을 할 계획. 57년 3월 김여사가「걸·스카우트」대원으로 선서한 것도 15일. 이번「브라우니」들이 선서한 것도 3월 15일. 그 동안 모아둔「걸·스카우트」단보(團報)를 며칠 전에 들춰 보고 알아낸 우연의 일치. 이것도 즐겁고 신명나는「운명」인 줄 알고「브라우니」엄마 노릇을 언제까지나 할 작정이란다. [ 선데이서울 69년 4/20 제2권 16호 통권 제30호 ]
  • [사설] 안타까운 농민들의 시위·분신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안이 지난 23일 국회를 통과한 시점을 전후해 농민들의 반대 시위가 전국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다. 화를 참지 못한 농민의 분신이 잇따르고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머리를 다친 농민은 엊그제 끝내 숨졌다. 이달 들어 농민 2명이 쌀 개방 반대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기도 했다. 과격 시위로 그동안 농민 100여명과 전·의경 22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는데도 사태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아 큰 걱정이다. 더구나 아까운 생명을 이렇듯 쉽게 내던지는 농민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농민 시위가 하도 과격해서 경찰은 통제불능이라고 하소연할 정도라고 한다. 물론 경찰의 원천봉쇄와 과잉진압으로 불상사가 속출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극단적·폭력적 방법으로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특히 공권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자제돼야 마땅하다. 이런 와중에 일부 농민단체들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협박하고 정권퇴진 운동을 벼르는가 하면, 외국 쌀의 입항 저지와 수입쌀 창고 소각투쟁을 전개하겠다니 앞날이 더 걱정이다. 쌀시장 개방은 세계적 대세이며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농민들이 이성을 되찾아 정치권·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차분하게 대책을 논의해야 할 때다. 농업의 체질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농업인의 소득보전을 위해 궁리 중인 정부를 일단 믿어야 한다. 정치권도 농민의 표와 인기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이번에야말로 농민들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농민들도 귀중한 생명을 잃거나 버리는, 무모한 행동을 당장 그만두기 바란다.
  • [실전논술]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을 구분해야 하는가

    ●다음 글을 읽고 (가)와 (나)의 논점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고전 음악 과 대중 음악을 구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가)대중 매체는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대중 매체 시대의 음악이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유의사항 (1)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2)대중 매체가 음악에 미치는 영향을 진술할 것. (3)대중 매체 시대에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것. 어느 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에서 설문 조사를 통해 문화 예술에 대한 수용자 집단의 태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 주목할 것은, 우리 나라 문화 발전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문화 예술의 수용 형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TV) (52%),(야외무대)(23%),(실내 무대 공연)(13%),(영화)(6%) 순으로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조사 연구가 특정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에 틀림없다면, 그 결과는 어느 정도까지는 수긍이 간다. 보통 사람들이 1년에 고작해야 음악회에 몇 번을 가겠는가? 그러니까 오히려 TV나 야외 무대 공연에 신경을 더 써 달라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는 음악회장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기회보다 다른 기회에서 무의식 중에 음악에 휩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소위 ‘순수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하고 불건전한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의 음악’이며,‘일상 음악’이다. 일상 음악은 못쓰는 것으로 내동댕이쳐진 ‘깡통 음악’이며,‘부정적 감상’을 위한 음악, 기능 음악, 배경 음악,‘가벼운 음악’이다. 이 음악은 상품의 형태로 시장에 진열되어 있으며, 쓰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버려야 할 ‘소비재성 음악’이다. 이것은 다국적 기업 또는 그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는 국내 음반 산업의 생산 제품이다. 자동차나 고속 버스, 엘리베이터, 쇼핑 센터, 식당, 다방, 호텔, 공항, 사무실, 공장, 비행기, 수영장, 공원, 캠퍼스, 은행, 운동장, 병원에서 틀어놓는 음악은 특별히 우리의 주의를 끌지도 않으며, 마치 벽에 걸려 있는 장식용 그림이나 인테리어 시설처럼 하나의 ‘배경’으로 존재한다. 배경 음악은 적절한 데시벨의 음향 한계라는 일정한 폭을 가진다. 이 음량 폭보다 작아도 안 되고 커도 안 된다. 즉, 듣는 사람에게 과도한 정신 집중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음악 내용도 어려워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촌스럽게 진부한 것이어서도 안 된다. 배경 음악에 가장 적격인 것은 언뜻 들어서 그 선율이 잘 생각나지 않으나 자꾸 듣다 보면 그 원래의 곡이 무엇이었나 알 수 있게 되는, 말하자면 폴 모리아나 레이몽 르페브르가 편곡하는 방식의 세미클래식 또는 흘러간 팝송이다. 아니 배경 음악의 맥에 들어오면 그것이 베토벤이든 비틀즈든 상관없다. 이런 점에서 배경 음악은 고전 음악과 대중 음악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그 잘못된 2분법에 대해 보란 듯이 손가락질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무엇인가 듣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외로워진다. 듣지 않으면서도 라디오를 켜 놓아야 안심이 된다. 소리를 듣는 것은 자신과 외부 세계와의 대화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단절을 뜻한다. 그러나 듣지 않으면서 시끄럽게 틀어놓는 것은, 외부의 무의미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의미의 부재, 의미의 해체는 기술 지배(technocraft)의 권력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대중 매체 시대의 음악은 그 전달 경로에 있어서 악보보다는 레코딩에 의존한다. 이 레코딩의 특징은 악보가 갖는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며, 녹음 과정에서 허용되는 이론상 무한정의 수정 가능성(더빙을 통하여), 그것을 감상하고 수용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무한정의 반복 가능성이다. 사실 TV, 라디오, 음반 등의 대중 매체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의 수용 형태는 레코딩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대중 매체에 등장으로 이제 음악을 들으려면 시간적·공간적 제약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인도 음악에서는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아침에 듣는 음악, 점심 때 듣는 음악, 저녁 때 듣는 음악이 달랐으며, 그 음악을 들으려면 그 음악에 해당하는 시간대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바흐가 살던 시절 그의 칸타타를 들으려면 주일날 성 토마스 교회에 출석하거나, 아니면 결혼식이 베풀어지는 귀족의 집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대중 매체의 등장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도의 아침 라가와 바흐의 부활절 칸타타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이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벗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음악을 듣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이 없어졌다는 것은, 안방에 드러누워 TV를 보거나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음악회장에서 상상도 못할 행동이다. 음악회의 에티켓 중에는 옆 사람과 잡담을 하거나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은가? 듣고 싶을 때 듣고, 듣는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끌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면서 잡지를 보거나 식사를 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또, 듣고 싶은 음악의 일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듣고 싶을 때는 그 악장의 플레이어에 바늘을 올려놓으면 된다. 아예 레코드 회사에서도 이러한 식의 감상을 염두에 두고, 특정한 분위기의 짧은 소품들을 옴니버스로 편집하여 시장에 내놓고 있다. 심지어는 잘 알려진 음악의 주제나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만 엮어서 메들리로 녹음한 음반도 나와 있다. 음악 감상의 유형도 ‘주제적 감상’이나 ‘명곡 해설집 식의 감상’이 이루어지며,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음악 퀴즈식의 감상’이 지배적이다. ●지문의 분석 음악 생활은 음악을 행하고, 듣고, 즐기는 모든 공적이고 개인적인 형태의 음악 문화 생활을 의미한다. 음악 생활은 직업 음악가적인 활동, 음악 애호가적인 활동 또는 지역 문화에 따른 사회 현상을 반영한다. 때문에 음악 생활의 개념은 시대적으로 변화되는 사회 현상에 따라서 이해되어지는 음악 문화에 좌우될 수 있다. 음악은 인간의 정서와 감성의 표현이므로 음악을 통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은 동시대 문화와 사회의 산물이므로 그 속에는 당연히 그 시대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대중 매체 시대의 음악은 곧 민주화 시대의 음악이다. 여기서는 음악에서의 계층 간의 대립이나 구분은 그리 엄격하지 않다. 다원화된 음악 문화가 다원화된 모습으로 각계 각층의 수용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 매체의 등장으로 음악의 민주화가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음악계를 지배하는 통념이 아직 연주회장 내에서의 음악 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성 음악인들이 실용 음악에 대해 무시하고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것과도 통한다. 그러나 모든 예술 음악인들이 그러한 생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용 음악, 체육 음악, 영화 음악 분아에 기성 음악인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사고 방식도 점점 개방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대중 매체 시대에 음악이 처해 있는 현실적 상황을 직시하여 대응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 미술 대학에 회화과, 조소과, 공예과와 더불어 응용 미술학과 또는 산업 미술학과가 있듯이, 실용 음악과의 설치도 하루 빨리 시급하게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예술 대학의 실용 음악과 설치는 매우 적절한 것이며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글에서는 먼저 문화 예술의 수용 형태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기술하고 있다.TV나 야외 무대 공연에 힘써 달라는 의견이 많은데, 이것은 사람들이 기존에 향유하던 문화 예술 양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음악에 있어서도 과거에는 주로 실내 음악회를 통해 문화 생활을 즐겼지만 지금은 생활의 현장에서 음악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정신을 집중할 필요가 없이 이루어지는 음악 감상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음악을 인테리어처럼 이루어지는 음악이라고 해서 배경 음악이라고 한다. 배경 음악은 적절한 데시벨의 음향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음악으로, 이 영역에서는 고전 음악이든 대중 음악이든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대중 매체 시대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음악을 틀어놓고 생활을 하게 되었고, 대중 매체 시대의 음악은 악보보다는 레코딩에 의존하기 때문에 음악가들을 직접 연주가 아닌 레코딩을 통해서 먼저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게 해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적·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게 됨으로써 음악 감상 형태도 달라지게 되었고, 또 음악도 자기가 원하는 곡을 취사 선택해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대중 매체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글은 대중 매체에 의해 변화된 음악의 양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출제의도 이 문제는 대중 매체가 음악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면서 아울러 대중 음악과 고전(예술) 음악의 구분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서 논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중 매체 시대에 음악이 나아갈 길이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논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대중 매체가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서 살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 음악과 고전 음악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의 주장을 펴기 위해서는 그 나름대로의 근거를 들어야 한다. ●생각하기 먼저 대중 매체 시대가 되면서 대중 매체가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의해야 한다. 그러면 대중 매체가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가 실제 생활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할 때, 대중 매체가 음악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고, 내용적 측면이나 감상적 측면에서도 골고루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의를 펼쳐야 한다. 이것은 감상적인 측면에서 대중 매체가 음악에 미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음악이라는 것은 실내에서 음악가들의 연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대중 매체가 발달하면서 음악가와 감상자가 분리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이 논술에 있어서 바탕이 되는 논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지어 볼 때, 대중 음악과 고전 음악이라고 지금까지 구분해 왔던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하게 될 때가 온 것이다. 대중 매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은 그것이 대중 음악이건 고전 음악이건 상관 없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필요 없다면 어떤 기준에 의해서 그렇게 볼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실용 음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쓸까주어진 논제와 관련하여 우선 주제는 대중 매체가 음악에 미친 영향으로 잡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주제문은 ‘대중 매체 개입으로 인해 대중 음악과 예술 음악의 구분이 필요 없어졌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과 관련해 글의 서론을 정리할 수 있는데, 최근에 나타나는 대중 매체 시대의 음악 감상 경향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예전의 놀이 마당과 달리 안방에서 혼자 음악을 듣는 일이 가능해졌고, 워크맨 등으로 듣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토대로 이것이 지닌 문제점을 제시할 수 있다. 본론 부분에서는 먼저 아직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대중 음악과 예술 음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이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대중 매체의 개입으로 상황이 변화했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도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고 음악회 문화도 음반 산업에 종속되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결론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이제는 굳이 예술 음악이니 대중 음악이니 해서 나눌 필요가 없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오늘 오뎅에 정종한잔 어때?

    오늘 오뎅에 정종한잔 어때?

    찬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만나는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국물을 후후 소리내어 마시는 따끈한 ‘오뎅(어묵)’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더욱이 주문도 하기 전에 넉넉한 마음씨의 아줌마가 내놓는 국물은 차가운 손은 물론 지친 마음까지 녹여주기에 더욱 좋다. 집에서 맛있게 ‘오뎅’을 만들어 사랑을 나누자. 연인과 친구와 함께 맛있다고 소문난 ‘오뎅바’에서 만나자. 겨울의 맛, 사람사는 멋을 듬뿍 느껴보자. 글·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오뎅’어디서 건너왔나 ‘오뎅’은 떡볶이와 함께 서민의 먹을거리 중 하나이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기승을 부릴 때면 무, 다시마, 파 등을 넣은 구수한 멸치 국물에 모락모락 김을 쏟아내는 ‘오뎅’의 맛이 그리워진다. ‘오뎅’은 유감스럽게도 일본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가까운 중국이나 타이완에도 ‘오렝(黑輪)’이라는 음식이 있지만 제국주의 일제가 전파한 음식 문화의 하나이다. 그러나 ‘오뎅’의 맛이나 형태는 나라마다 다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모양과 맛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따뜻하고 시원한 국물 때문에 ‘오뎅’을 찾는다면 일본에선 우리나라와는 달리 국물을 거의 먹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의 ‘오뎅’은 주로 꼬치 어묵을 먹지만 일본은 달걀, 두부, 문어, 은행 등을 국물에 담가 익혀 먹는다. ‘오뎅’이란 일본어로 진작에 ‘어묵’이란 우리말로 대체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뎅’은 ‘오뎅’으로 불러야 제맛이 나는 것 같다. ●집에서도 즐겨요 생각만큼 집에서 만들기엔 녹록치않은 요리가 ‘오뎅’이다. 집에서 맛있는 ‘오뎅’을 만들어 먹는 방법을 알아보자. 맛있다는 여러 ‘오뎅바’를 찾아다니며 취재했지만 모두 다른 맛과 특색을 가지고 있고 만드는 방법도 다양해 정도(正道)가 없다. 하지만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쓰는 것만은 어느 곳이나 공통된 요리법. 재료 : ‘오뎅’, 무, 다시마, 멸치, 가다랭이포(가츠오부시), 양파, 대파, 진간장, 청양고추, 말린 새우 등등 만드는 방법 : (1)우선 다시물을 만든다. 물은 4인분 기분으로 라면 4개를 끓이는 물보다 좀 작으면 된다. 가다랭이포는 세 큰술, 멸치는 한 술 정도. 말린새우는 두 술정도, 무는 큼직하게 썰고 다시마는 손바닥보다 좀 큰 크기로 두 장 정도를 넣고 끓여준다.팁:센불보다는 중불로 오래 끓이는 편이 국물을 맑게 한다.(2)끓는 물에 ‘오뎅’을 한번 삶아내 기름기를 빼낸다.(3)한소끔 끓으면 무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건져낸다. 특히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씁슬하고 떫은 맛을 내므로 물이 끓으면 바로 건져내야한다.팁:이때 청양고추(고추씨를 넣어도 된다)를 넣으면 비린내와 잡내가 말끔히 없어진다. 매운 맛을 좋아한다면 청양고추는 3∼4개를 넣어준다.(4)진간장이나 일본 간장(쯔유)로 국을 내고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일본식 재료인 혼다시를 조금 넣어도 된다. 끓이다 보면 짜게되므로 처음에는 약간 심심하게 간을 하는 것이 좋다.(5)삶아 기름기를 뺀 오뎅을 (4)에 넣고 다시 한번 끓여준다. 담아 낼 때 쑥갓과 김가루를 뿌려 내면 더 맛있다. ●‘오뎅’재료는 어디에? 온·오프라인에 일본 식품전문 매장들이 성업중이다. 간편하게 일본 간장부터 ‘오뎅’, 소스까지 모든 식품을 살 수 있다. 모노마트는 일본요리재료 전문가게. 소스와 식초, 장류뿐 아니라 면류 과자 냉동식품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이 장점. 서울 용산구 이촌동 렉스상가에 이촌점(02-749-7589),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1동 대명상가 1층 수내점(031-711-8073)에 매장도 있다. 온라인숍(www.monomart.co.kr)에서는 배송도 해 준다. 얌(www.yum.co.kr)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식재료를 파는 인터넷 요리재료 전문 쇼핑몰. 면류와 쓰유 소스 장류 등 70여가지를 판다. 일본된장 미소와 카레가 인기상품. 각각의 식재료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요리법 등이 함께 나와 있으며 인터넷에서 다양한 요리법과 요리재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슴프레 땅거미가 내려 앉을 무렵 친구나 동료들과 따끈한 오뎅에 정종을 가볍게 한잔 먹을 만한 곳이 바로 ‘오뎅바’다. 역사깊은 곳부터 일본인들에게도 유명한 곳, 소문난 맛집을 소개한다. ●나무가 있는 오뎅바,‘けやき(게야키)’ 중앙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좁은 공간에 신선한 산소를 뿜어 내고 결 고운 목재로 처마와 탁자 등으로 모던함이 돋보이는 ‘오뎅바’. 인테리어를 전공한 주인 박지영(33)씨의 감각이 돋보인다. 국물 맛도 독특하다. 멸치로 우려낸 기본 국물에 몸에 좋다는 한약재를 섞어 반나절을 달인 ‘오뎅’국물 한 그릇이면 ‘겨울보약’이 따로 없다. 거기에 매콤한 청양고추로 마무리해 감칠맛이 난다. 치즈어묵, 문어어묵 등 20여 가지의 다양한 어묵의 진수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 공간이 작아 아늑하며 오붓하게 정종 한 잔과 오뎅을 맛보기에 좋다.‘오뎅’은 개당 1000∼2000원 사이. 분당에서 죽전으로 좌회전 해서 300m 가면 우리은행 1층에 있다. 영업은 오후 6시부터.(031)898-0746 ●일본인이 더 좋아하는 ‘みなみ(미나미)’ 저녁 6시, 문열기가 무섭게 일본인들이 들어오는 집이다. 일본의 어느 술집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집은 ‘오뎅’국물이 특이하다. 일단 색깔이 맑지않다. 우리나라 된장국과 비슷한 분위기. 하지만 맛은 놀랍다. 아주 담백하고 고소하다. 역시 무엇인가 비법을 간직한 집이다. 다시마, 무 등의 기본 재료에 담백한 국물 맛을 내는 디포리, 가쓰오부시와 일본 간장을 첨가해 짭조름하면서도 맛이 깊다. 특이하게 도가니탕에 들어가는 연골(스지)을 넣었다. 하지만 비리거나 기름기가 전혀 없다. 모둠‘오뎅’에는 구운 어묵, 도미 살로 만든 어묵과 연골(스지)의 쫄깃함까지 맛볼 수 있다.1만 5000원. 일본인들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었다며 인사를 하기도 한다.1만 5000원. 논현동 영동시장 농협에서 10m 아래 있다. 오후 6시부터 영업시작.(02)511-6218 . ●일본 전통 ‘오뎅’집 ‘돈부리’ 압구정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오뎅바’. 간단한 간판 ‘오뎅’에서 이집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본의 선술집에 온 것 같다. 나무로 만든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소품이 잘 어울린다. 국물이 맑고 맛이 깨끗하다. 거의 모든 재료를 일본에서 수입해다 쓴다. 조미료는 쓰지 않고 생강 무 다시마 파 양파 멸치 등 재료로 맛을 낸다.’돈부리’의 비법은 간장이다. 몽고 간장에 한약재를 넣고 달인 맛간장으로 간을 맞춰 맛이 독특하고, 변함없다.‘오뎅’ 한 그릇을 시키면 새우와 문어, 곤약, 고구마와 쫄깃한 어묵까지 참 푸짐하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1만 5000원. 생선구이도 맛있다. 메로, 삼치, 연어 등 각각 1만 5000원. 압구정 디자이너스클럽 건너편 골목 비오니카페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200m쯤 가면 오른편에 있다. 영업은 오후 6시부터.(02)517-9570. ●재즈와 함께 즐기는 ‘쌈바’ 컴컴한 골방에 흐르는 재즈 음악에 혹시 카페에 들어왔나 착각에 빠진다. 그런데 가운데는 ‘오뎅’꼬치가 나란히 놓여 있다. 최우진(32)사장은 국물맛을 내기위해 고생했다고 말한다. 멸치를 기본으로 북어대가리까지 넣어 시원한 국물맛을 냈다. 자신이 직접 매일 우려낸다.70∼80년대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태국식 ‘오뎅’인 피시볼에서 참소라, 가래떡 등 다양한 꼬치 먹을거리가 있다. 개당 1000∼3000원 사이. 압구정역 4번 출구 앞에 있다. 오후 6시부터 영업시작.(02)512-3850. 이밖에도 20여년 동안 한자리에서 일본식 오뎅을 팔고 있는 향헌(02-738-8186)은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 있다. 강남구청 사거리에서 선릉역쪽에 있는 부산오뎅(02-542-0717)은 13년 된 오뎅집. 오뎅통이 덩그랗게 하나 있고 주변에 13개의 의자가 놓인 소박한 공간이지만 맛은 소문이 자자하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자팽고’의 신개념 오뎅 요리는 무한히 진화한다. 오뎅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버섯오뎅, 만두오뎅, 순대오뎅, 치즈오뎅, 맛살오뎅….‘오뎅 종주국’ 일본에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다양한 오뎅요리의 변종들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초동 ‘자팽고’에서는 도미살로 만든 형형색색의 생선 어묵을 샤부샤부식으로 매콤한 육수에 살짝 데쳐먹는 새로운 오뎅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른바 ‘피시볼(생선완자) 샤부샤부’다. 기존의 오뎅 맛이 부드럽고 들큰한 반면 이 곳의 피시볼 오뎅국은 얼얼할 정도로 맵고 칼칼한 것이 특징이다. 느글느글한 맛이 전혀 없다. 국내산 도미살을 어묵 재료로 써 잡뼈나 잡생선으로 만든 일반 어묵에 비해 맛이 한결 담백하다. 청양고추와 일반고추 가루를 적당히 섞어 만든 양념장을 푼 국물에 숙주나물, 느타리버섯, 청경채, 실파 등 갖가지 채소를 넣어 시원한 맛을 냈다. 이 집의 또 다른 메뉴인 ‘삿포로 모듬오뎅’은 술 안주로 제격이다.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만 맛을 내 어묵 특유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 알싸한 맛이 난다. 같은 급의 강남권 오뎅집들보다 값이 꽤 싼 것도 이 집의 매력이다. 찾아가는 길:강남역 6번 출구로 나와 직진, 지오다노 골목으로 들어와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0m 전화번호:(02)591-1663 주메뉴:피시볼 샤부샤부(8000원), 삿포로 모듬오뎅(1만원), 자팽고 샤부샤부(1만 3000원) 영업시간:오전 11시∼밤 11시 주차장:없음 휴무일:연중 무휴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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