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만두
    2026-02-11
    검색기록 지우기
  • 석방
    2026-02-11
    검색기록 지우기
  • 다락
    2026-02-11
    검색기록 지우기
  • 이대
    2026-02-11
    검색기록 지우기
  • 참외
    2026-02-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082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올해 교단 떠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올해 교단 떠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초·중학교 국어시간 ‘시읽기’에 등장한다. 평범한 농촌의 일상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앙증스러운 ‘동요시’가 아닐까 싶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60)씨. 현재 섬진강 상류지역,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 교사로 몸담고 있다.1970년부터 교사생활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38년째. 그 세월 중 20여년이나 2학년 ‘꼬맹이’들의 담임을 맡아 함께 뒹굴었다.‘영원한 2학년’인 까닭이다. 그는 지난 3월21일부터 어린이날인 오늘(5일)까지 아주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덕치초 2학년 아이들이 평소 그렸던 그림 150여점을 모아 광주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것. 재학생은 물론 2학년을 거쳐간 제자 졸업생들도 많이 참석, 코흘리개 시절을 떠올렸다. 김 시인은 2학년 어린이들과 각별하다. 평소 2학년을 “깨끗한 영혼, 이슬을 단 풀잎”이라며 무척 아꼈다. 이런 그가 올해로 교단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에구 섭섭도 하여라. 어린이날을 맞아 그를 만나러 떠났다. 서울에서 전주, 다시 전주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임실을 거쳐 5시간 만에 강진 터미널에 내렸다. 주름이 잔뜩 파인 할머니 몇분이 좌판을 깔고 산나물을 파는 모습이 눈에 띈다. 택시를 타고 덕치초 정문에 도착한 것은 10분 후. 어릴 적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렸던 한 폭의 그림이 눈앞에 쫙 펼쳐진다. 아담한 2층건물이 회문산을 바로 등지고 섬진강 상류의 물흐름을 묵묵히 감상하고 있는 자태였다. 주위는 온통 푸르름으로 학교를 둘러쌌다. 푸른 잔디밭의 운동장에는 어린이들 몇몇이 즐겁게 뛰어 놀고 있었다. 학교건물 유리창에는 1학년부터 6학년 교실을 알리는 색종이 간판이 붙어 있었다. 김 시인은 운동장 한쪽에 별도의 작은 가건물 공간을 마련, 시도 쓰고 아이들과 상담도 하며 지낸다. 여기에는 각종 문학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멀리서 왔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머리를 짧게 깎아서 그런지 김 시인은 환갑의 나이지만 40대 후반이라고 우겨도 얼마든지 통할 것 같은 동안(童顔)이었다.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면 나이를 안 먹느냐고 인사를 건네자 “그런 것 같다.”며 웃는다. ▶아직도 2학년 담임인가요? “아닙니다. 올해는 국어교과 전담입니다.1∼2학년은 글짓기를 가르치고 3∼6학년은 국어만 가르치고 있지요.2학년만 20년 넘게 맡고 있다가 이번 학기 처음으로 교과전담을 하게 됐습니다.2학년은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대신 진실이 통합니다. 또 한 순간이라도 가만히 있지 못해요. 이는 흡수능력이 가장 왕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TV나 자동차 등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들이 전혀 없어도 뛰어놀 땅만 있으면 그들은 행복합니다.” ▶20년 동안 2학년 꼬맹이들과 지낸 소감이 있다면? “그들은 진지합니다. 이는 곧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나무가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같지요. 또 표현을 잘 합니다.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볼 때마다 항상 느끼지요. 그래서 몇년 동안 2학년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두었다가 이번에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추억을 만들어주고 또 어른들에게는 우리 어린이들의 진지함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덕치초 재학생은 모두 46명이다.2학년 7명,3학년 11명,4학년 11명 등이다. 하지만 갈수록 학생수가 줄어든다고 했다. 더러는 농촌학교체험을 하러 도시에서 몇명씩 오기도 한다. 김 시인이 어릴 적 이 학교에 다닐 때는 반 학생이 모두 18명. 워낙 가난한 마을이어서인지 중학교에 진학한 학생은 그가 유일했다. 농민이 꿈이었던 그는 농고를 졸업한 뒤 은행대출을 받아 돼지와 오리사육 사업을 하다 그만 망하고 말았다. 서울로 도망가서 빈둥빈둥 지내다 다시 고향에 내려 왔다. 친구들이 ‘선생’을 권유했다.1960년대말 당시만 하더라도 교사수가 절대 부족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교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떠밀리다시피 친구들과 함께 사진 찍어 지원서를 제출했더니 혼자만 합격통지서를 받았다.4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뒤 1970년 덕치초 바로 인근의 청웅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덕치초로 온 것은 1년 뒤였다. 그가 시를 쓰게 된 것은 책을 파는 아주머니를 만나면서였다. 산골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차에 ‘도스토옙스키전집’을 구입한 그날로 독서삼매경에 푹 빠졌다. 이후 철학을 생각하게 됐으며 그 생각을 정리하려고 틈틈이 글을 써두게 됐다. 여기에 격동기의 1970∼80년대 사회상을 담다보니 어느날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위에 감수 받을 시인도 없고 해서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 글을 보내면서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결국 1985년 시집 ‘섬진강’을 펴내면서 오늘날 국민적 시인 반열에 올랐다. ▶교단을 떠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아직 정년도 남았는데? “6·25 혼란 중에 실제나이보다 세살 적게 호적에 올려져 51년생으로 돼 있습니다. 정년까지 4,5년은 더 남은 셈이지만 솔직히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나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나이 예순이 되면 그만두려고 했지요.” 이어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일을 털어 놓는다. 어쩌면 교직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들어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서울 가서 결혼해 살다가 가정파탄이 생겨 아이들만 이곳 할머니한테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오게 됩니다. 그 제자 놈들이 저보고 또 (자기네 자식들을)가르치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가슴이 정말 미어지더군요. 그 아이들도 울고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처럼 시들어가는 나뭇잎 같은 아이들을 살려 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애정을 많이 쏟았다. 처음보다 아이들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했지만 그는 “가난의 대물림과 양극화 현상으로 벼랑끝으로 몰리는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고 장탄식을 한다. 그는 지난해 모 텔레비전 방송사의 요청으로 덕치초 2학년 아이들과 인간드라마를 한편 찍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이들과의 이별’을 예감했다고 고백했다. 행복과 보람, 말할 수 없는 어떤 안타까움이 동시에 교차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아이들이 놀 줄을 모른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같이 놀아 줄 상대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이는 정서가 고갈되고 교육이 점수위주로 이뤄지는 탓입니다. 교육정책 자체가 21세기의 개념도 모르고 방향도 잃고 있지요. 대안은 환경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생태 순환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는 이달에 책 2권을 낸다. 지금의 섬진강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과 초등학교 이전에 경험했던 고향마을(덕치면 진메마을) 이야기를 모았다. 교단을 떠나면 글쓰는 일에만 전념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달부터 고향마을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지금의 계획”이라며 웃어 넘긴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으며 모두 대학생이다. 전주에서 출퇴근해온 그는 곧 진메마을로 집을 옮겨 노모를 모시며 살 예정이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임실 출생. ▲68년 순창농림고 졸업. ▲70년 청웅초등학교 교사. ▲71년 덕치초등학교 교사. ▲82년 창작과 비평사 ‘21인 신작시집’에 작품발표로 문단 데뷔. ▲97∼2002년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 교사. ▲02∼현재 덕치초등학교 교사. ▲03∼현재 제4대 전북작가회 회장, 전북환경운동 공동의장. ●주요 수상내역 2002 제11회 소충사선문화상,1997 제12회 소월시문학상,1986 제6회 김수영문학상 등. ●주요 도서작품 콩 너는 죽었다(동시집), 풍경일기(산문집). 시집 섬진강, 맑은날, 꽃산가는 길, 누이야 날이 저문다, 그리운 꽃편지, 그 여자네집, 강같은 세월 외 다수.
  • [특파원 칼럼] 후 주석의 訪日을 주목하는 이유/박홍기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후 주석의 訪日을 주목하는 이유/박홍기 도쿄특파원

    10년 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을 국빈 방문했다. 장 주석은 일왕 주최 만찬장에 연미복이 아닌 인민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일본의 변치 않은 과거사 인식에 대한 무언의 경고이자 시위였다. 와세다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도 거절했다. 대학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부노가 총리 때인 1915년 중국에 불평등 협정을 강제했다는 이유에서다. 장 주석은 당시 미래 지향 역시 역사의 반성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6일 국빈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장 주석 이래 10년 만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국제 정세도 변했다. 중국의 힘은 거대해졌다. 외교의 무대에서는 여느 때보다 실용·실리가 강조되고 있다. 경제 우선이다. 역사 문제는 주요 의제의 한쪽에 밀려난 듯싶다. 미묘한 난제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중·일 양국의 ‘암묵적 합의’도 엿보인다. 후 주석의 방일은 ‘꽃을 피우는 여행’으로 비쳐지고 있다. 후 주석은 지난해 12월 양국의 전략적 호혜관계를 한층 띄우려는 듯 “봄날, 꽃이 피는 시기에”라며 일본 방문을 약속했던 연유에서다.2006년 10월 아베 신조 총리의 방중은 ‘얼음을 깨는 여행’,2007년 4월 원자바오 총리의 방일은 ‘얼음을 녹이는 여행’으로 자리매김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지난해 12월 중국을 찾아 올해를 ‘일·중 도약의 해’로 천명했다. 얼음이 녹아 없어진 터에 꽃을 심고 피우겠다는 게 양국의 전략이다. 후 주석의 방일에 순풍만 불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복잡다단하다. 티베트 사태의 강경 대처에 따른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 봉송과정에서 일어난 혼란, 중화주의를 부르짖는 애국주의 등은 국제적으로 거센 비난을 사고 있다.‘무서운 나라’라는 인상도 심어 줬다. 일본의 눈길도 그다지 따뜻하진 않다. 불신과 불만이 강하다. 중국산 농약만두 파동이나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개발 등 현안에 대한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 탓이다. 자연스럽게 “후 주석의 방일 시점이 좋지 않다.”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초점은 후 주석의 일본에서의 행보에 맞춰지고 있다. 일본과의 전략적 호혜관계 강화는 정해진 수순이다. 양국의 ‘공동 문서’ 작성도 예정돼 있다. 후 주석은 ‘부드러운 중국, 개방적인 중국’을 내세울 것 같다. 탁구를 치고, 사찰 호류지를 찾고, 중국의 국부 쑨원이 다녔던 식당에 들르는 것도 잘 짜여진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아사바 유키 야마구치 현립대 교수는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다독일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지구온난화 대책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국제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태세다. 또 지난달 30일 숨진 우에노 공원의 판다 ‘링링’을 대신할 판다 선물의 구상도 흘러나올 법하다. 일본을 포함, 세계를 향한 손짓이다. 눈앞에 닥친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라도 국제 사회의 협조가 절실한 까닭에서다. 후쿠다 총리에게 후 주석의 방일은 정치적 호재다.20%선도 위협받고 있는 지지율을 반등시키기 위한 기회로 삼을 판이다. 중국 중시 외교를 펴는 후쿠다 총리로서는 당연하다. 후 주석과 공식 만찬 외에 음식점에서 개인적인 만남도 갖고 중국과의 인연을 한껏 뽐낼 작정이다. 하지만 티베트 사태 등의 ‘민감한 현안’을 확실하게 짚고 가야 한다. 외교가의 일각에선 “후쿠다 총리는 후 주석에게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후 주석의 방일 핵심은 티베트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메시지를 밝힐지 여부다.‘내정 간섭’이라는 티베트 사태의 대응 원칙은 접은 뒤 인권 개선을 약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재집권 이후 후 주석의 첫 외유가 중·일 양국을 넘어 세계를 겨냥,‘꽃을 피우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세계의 시선이 후 주석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홍기 도쿄특파원 hkpark@seoul.co.kr
  • [유전자변형농산물 홍수(上)] DNA 조작…교배 개량과는 달라

    ▶GMO와 품종개량은 어떻게 다른가. -GMO와 품종개량은 서로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조합시켜 유용한 성질을 가진 품종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차이점은 품종개량이 두 생물체의 유전자들을 교배나 육종에 의하여 무작위적으로 조합하고 여기에서 생긴 수많은 유전자재조합 중 우연히 좋은 유전자재조합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것인 반면 GMO는 원하는 특정 유전자만을 선택하여 작물에 인위적으로 이식하는 기술이다. ▶LMO와 GMO의 차이는. -통상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LMO는 살아있음(Living)을 강조하는 용어로 그 자체 생물이 생식, 번식이 가능한 것을 말하고,GMO는 생식이나 번식이 가능하지 않은 것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정의할 수 있다. ▶GM작물로는 어떤 것이 있나. -GM작물은 제초제 내성, 해충 저항성, 바이러스 저항성, 인체 유익한 성분(비타민, 불포화지방산, 철분 등) 등을 가진 작물로 국내에서는 콩, 옥수수, 면화, 유채, 사탕무, 알팔파, 감자 등 58종이 수입 허가된 상태다. ▶GM작물 안전성은 어떻게 평가하나. -식약청 내에 각계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유전자재조합식품 안전성 평가자료심사위원회에서 평가한다. 위원회는 알레르기 유발성과 독성, 영양성 등에 대해 심의한다. 위원들은 식물학과 분자생물학, 미생물학, 영양학, 의학, 농학, 독성학 등을 전공한 각계 연구진과 공무원, 과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GMO 표시를 위반하면 처벌은. -GM표시를 하지 않거나 허위로 표시했을 경우 품목제조정지 처분을 받고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지난해 5월 동두천시에서 GM성분이 든 만두를 판매한 업체가 GM미표시로 적발된 게 유일하다. ▶GMO의 부작용이나 안전성 논란 사례는 있었나. -GMO의 인체에 대한 부작용 사례는 아직 보고된 적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 프랑스 캉 대학의 생쥐 실험에서 몬산토사에서 개발한 GM옥수수가 간과 신장에 유독성 증세를 일으켰다는 실험 결과가 나온 바 있다.
  • “법규 엄격 해석, 억울한 피해자 막아야”

    “법규 엄격 해석, 억울한 피해자 막아야”

    “당신이 A회사 연구원으로 일한다면 수시로 영업비밀을 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부정한 목적이 아니지요. 그런데 당신이 A회사를 그만두고 B벤처기업을 창업한다면 두뇌를 포맷하지 않는 한 A회사에서 알게 된 기술관련 노하우 등을 사용할 겁니다. 그런데 만약 A회사에서 당신을 영업비밀 유출 등 혐의로 고소한다면 당신은 기소될 수 있고 구속될 수도 있습니다. 대단히 불합리하고 무리한 법적용이죠.” 해외기술 유출혐의로 기소된 전남대 이형종 교수 사건의 변론을 맡아 지난 2일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낸 법무법인 화우의 최성식(39) 변호사는 “부정경쟁방지법은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필요하지만 18조2항 벌칙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칫 과학기술계의 국가보안법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법 18조2항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기업에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기업에 유용한 영업비밀을 취득·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그 재산상 이득액의 2배 이상 10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최 변호사는 “취득·사용이라는 가운뎃점을 사용한 것은 부정한 목적으로 취득하고 동시에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해야만 죄가 성립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실제 수사당국에서는 ‘취득만으로도 죄가 되고 사용만으로도 죄가 된다.’며 둘 중 하나만 해당돼도 기소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법에서 규정한 영업비밀에 대해서도 “영업비밀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고,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하는 세가지 성격이 모두 있어야 성립하는데 법대로 적용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비판했다. 두가지 예를 들었다. 지난해 검찰은 한 중공업회사에서 공작기계를 만들다 퇴사, 벤처기업을 만들었다가 전에 있던 회사로부터 영업비밀 유출혐의로 고소된 S씨를 부정경쟁방지법위반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유출했다는 영업비밀은 부품 제작방법과 도면 사본뿐이었고 이는 이미 모두 공개된 자료들이었다. 경쟁사로 이직하면서 조리법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지난 1월 구속됐다 2월에 보석으로 석방된 C회사 연구원 K씨사건도 있다. 두 사건 모두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이런 식이 되면 연구원들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연구원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부작용만 낳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으로서는 연구원이 이직 후 부정한 목적으로 회사에서 취득한 영업비밀을 사용하려 한다면 민사소송법상 전직금지가처분신청을 내면 된다.”면서 “굳이 연구원을 구속시키는 방식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김정길 체육회장 사퇴 올림픽 준비 차질 우려

    산적한 체육계 현안을 남기고 그는 떠났다. 관용차도 마다하고 비서실장 승용차를 타고 3년2개월 정든 대한체육회를 떠났다. 베이징올림픽 개막 102일을 앞두고 일어난 일이다. 사무총장 승인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대립 끝에 지난 25일 사의를 표명했던 김정길(63)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이 28일 끝내 사퇴했다. 김 회장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장 자리에 있음으로써 올림픽을 지원해야 할 정부와 불편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오히려 올림픽 준비와 산적한 체육현안 해결에 방해가 될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며 “이제는 모든 것이 정상화됐으면 한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김 회장은 체육회장과 KOC 위원장뿐 아니라 2014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위원장, 대한태권도협회장 직에서도 함께 물러났다. 2005년 2월 제35대 체육회장에 당선된 김 회장은 내년 2월까지 임기가 10개월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8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신청을 한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샀고 구안숙 사무총장 내정자에 대한 정부의 승인 거부를 문제삼아 벼랑끝 대치를 하다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체육계 수장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일은 제가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육회 정관에 따르면 회장이 사퇴할 경우 직무대행을 지명하고 물러나도록 명시됐지만 김 회장은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적절치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힌 뒤 “직무대행을 지명하지 않고 5월7일 긴급이사회를 소집하는 서류에 마지막으로 결재했다.”고 밝혔다. 이사회에서 직무대행을 선출하든지, 후임 회장 선출 절차에 들어갈지를 결정할 것이란 얘기다. 만약 후임 회장 선출 절차에 들어갈 경우 한 달 정도 기간이 걸린다. 또 선거가 과열될 경우 올림픽 준비에도 적잖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대행체제가 오래 지속될 수 없으니 차기 회장을 빨리 선출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김 회장은 또 “올림픽 성적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겠지만 스포츠외교 역량의 약화가 우려된다.”며 자신의 뜻에 공감해 그만두겠다고 밝힌 김상우 KOC 총무의 사표를 반려했다고 밝혔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TV, 책을 말하다(KBS1 오후 11시30분) 신문과 TV 등의 매스미디어에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마이크로미디어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면서 우리의 일상과 사고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주 함께 읽을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는 바로 그 사소한 변화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소항하게 관찰한 있는 책이다.   ●스페이스 공감(EBS 밤 12시10분) ‘미스터 펑크(Funk)’란 별명으로 불리며 국내 펑크 음악계를 이끌어온 한상원. 어쿠스틱 악기로만 구성된 이번 공연은 국내에서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다.1970년대 복고풍 펑크 사운드의 단순한 재연을 넘어 21세기 미래지향적 감성으로 풀어낸 신선한 무대가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듯하다.   ●뉴스Q 2부(YTN 오후 4시30분) 30일 개봉되는 영화 ‘가루지기’는 기존 변강쇠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봉태규는 이 영화를 통해 미소년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야심찬 도전장을 내밀었다.‘가루지기’의 주인공을 맡은 봉태규가 출연, 영화소개와 함께 영화로 못다 한 뒷얘기를 풀어놓는다.   ●흔들리지마(MBC 오전 7시50분) 기철은 형철이 그동안 신분을 감추고 히말라야에서 살고 있다가 큰 부상을 입었다며, 그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을 의아해한다. 소희정은 수현에게 결혼을 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는다. 수현이 준비가 덜 됐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소희정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한다.   ●애자언니 민자(SBS 오후 7시20분) 건달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 채린과 양금. 양금은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고, 채린은 그런 건달들을 봐주면 안 된다며 오늘은 장사를 접자고 말한다. 한편 복자를 찾아간 원자는 앞으로는 어머님이라 부를 테니 잘 대해 달라고 말하고, 다린에게는 공기놀이를 하자며 환심을 사려는데….   ●강적들(KBS2 오후 9시55분) 빚쟁이 사건으로 가족사를 들킨 것에 자존심이 상한 영진은 관필에게 공과 사는 구분하자고 분명히 선을 긋고, 그 사건을 계기로 수호는 관필이가 영진에게 마음이 있다고 넘겨짚게 된다. 한편 영진은 뜻하지 않은 여자아이의 방문을 받고 그 아이가 바로 관필의 숨겨둔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 문국현 “지도부 사퇴→전대서 재신임 묻겠다”

    문국현 “지도부 사퇴→전대서 재신임 묻겠다”

    창조한국당 이한정 비례대표 당선자의 구속 이후 두문불출해 온 문국현 대표가 25일 입을 열었다.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해온 그는 이날 ‘경찰 책임론’을 들고 나오면서 상황 돌파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당 차원의 반성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문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범죄기록조회서에 전과가 누락돼 있어 조그만 신생정당의 공천심사위원들이 찾아내기는 어려웠다.”면서 “경찰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금 진행 중인 검찰의 과도한 수사는 매우 우려스럽다.”면서 “이재오 부활을 위한 문국현과 창조한국당 죽이기 시도가 아니기를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례대표 추천에 대해 문 대표는 “(이 당선자를) 3월 중순 5∼10분간 면담한 뒤 이력서를 당에 전달했다.”면서도 “공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당 채권 발행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공천과 당채가 연관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것은 없다.”고 했지만 ‘공천에 관여하지 않고 어떻게 확신하냐.’고 되묻자 “그건 알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제명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제명을 주장하지만 당 윤리위원회에 강요할 수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 문 대표는 “이번 일이 일단락되면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전대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대안 없이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취업준비생 60만 시대](4) 안준기씨의 수입차서비스센터 취업기

    [취업준비생 60만 시대](4) 안준기씨의 수입차서비스센터 취업기

    “당장 급하다고 적성을 고려치 않는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조금 늦어도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BMW 코오롱 모터스 서비스 센터 취업에 성공한 안준기(31·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취업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신의 적성 파악을 꼽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학교와 직장을 다시 선택하는 남다른 시행착오를 경험한 탓이다. 안씨는 지난 2003년 서울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제약회사에 취업했다. 당시에도 취업난은 만만치 않았지만 안씨는 쉽게 제약회사에 합격, 병원영업을 담당하는 영업부 사원으로 2년간을 일했다. 영업이 재미있고 소질도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해 막연하게 영업직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영업이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았고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았던 자동차 분야를 기웃거렸다. 그는 “일단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좋은 회사라 생각하고 거기에 포커스를 두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돈보다는 적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2005년 한국폴리텍2대학 자동차학과에 다시 입학했다.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직업교육을 위해 2년제 대학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안씨에게는 원하는 직업을 가지려는 바람이 더 절실했다. 안씨는 2년 동안 자동차검사산업기사, 자동차정비기사 등 자격증을 취득했다. 다른 곳과 달리 직업선택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동료들이라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더구나 폴리텍 대학에서 기술을 익히고 자격증을 취득한 후 일자리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안씨가 지난 2월 새롭게 취업한 회사는 수입 외제차를 주로 수리·정비하는 곳이다. 상담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 됐던 갖가지 외제차를 매일 접하고 자신의 힘으로 직접 고칠 수 있어 일이 마냥 즐겁다고 한다.“비록 연봉은 그리 높지 않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점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기술이 아직 부족해 어려운 일들은 하지 못하지만 직접 정비한 차들이 다시 출고 될 때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기술을 더 쌓아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진출하고 싶은 게 그의 포부다. 다만 후회스러운 것은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까지 몇년을 허비했다는 점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한나라 4選은 고민중

    한나라 4選은 고민중

    ‘거물급 정치인’을 향한 한나라당 4선 의원들의 진로고민이 한창이다. 18대 총선에서 승리해 4선의 영예를 안은 한나라당 의원은 김영선·남경필·박근혜·안상수·이윤성·정의화·홍준표·황우여 의원 등 총 8명. 이들은 대다수가 당대표, 원대대표 등 주요 당직과 국회 상임위원장 등을 거친 바 있어 ‘갈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다. 이로 인해 당 일각에서는 이들이 당대표나 국회부의장 경선 등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영선, 부의장·상임위원장 저울질 이미 정치적 거물이 된 박 전 대표를 제외한다면 4선 중 유일한 여성인 김 의원은 아직 상임위원장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로 선택의 폭이 넓다. 김 의원은 18일 전화통화에서 “당 대표까지는 아직 생각이 없다.”면서도 “국회부의장이나 국회상임위원장 등의 자리도 상황이 되면 고려해 보겠다.”며 경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박근혜측 “복당 문제가 우선” 이번 총선에서 경기도당위원장을 맡아 한나라당 수도권 압승에 일조한 남 의원은 “도당위원장은 그만두기로 결심했다.”며 “백지 상태에서 모든 가능성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다음주 중에는 향후 진로에 대한 입장 정리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아직 상임위원장을 거치지 않아 당 대표나 최고위원 출마,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 등을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당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박 전 대표는 당권도전에 대해 아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었다.”며 “복당 문제를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전했다. 당 대표 출마가 유력시되는 안 원내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놓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있는 중”이라며 “현재는 임시국회에 전념해야 하니 임시국회가 끝나고 진로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출마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윤성 부의장, 정의화 원내대표 포부 이 의원은 향후 진로 모색에 가장 적극적이다. 이 의원은 “국회 전반기에는 여당 몫인 국회부의장 자리에 도전하고 싶다.”며 경선 출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어 “후반기에는 당권에도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의원의 목표도 분명하다. 정 의원은 “나는 원내대표만 생각하고 있다.”며 “마음은 그런데 독불장군처럼 혼자 진행할 수 없어 주변의 얘기도 들어본 후 출마 준비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출마설이 돌고 있는 홍 의원은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이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해외 순방 후에 결정할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황우여 의원도 “(국회부의장이나 당권도전에 대해) 생각은 해봤는데 결심한 게 없다.”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구동회 한상우기자 kugija@seoul.co.kr
  • [씨줄날줄] 정년/ 황성기 논설위원

    일본 오사카에서 1990년 설립된 ‘마이스터 60’이란 회사는 신입사원의 입사를 60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원의 평균 연령은 64세, 최고령자가 80에 가깝다. 반도체 제조장치 등 고도화한 산업기계의 유지를 주 업무로 하는 인재파견회사이다. 창업자 히라노 시게오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샐러리맨들은 회사를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란 말을 듣고 격분했다고 한다. 숙련된 정년퇴직자들을 활용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데 착안해 설립한 회사가 지금 사원 500명을 넘어섰다.3년 후 사원을 1000명으로 늘린다는 장대한 목표도 세웠다. 그가 내건 ‘나이는 등번호, 인생에 정년이란 없다’는 구호가 적중한 것이다. 공무원과 교사 등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 갈수록 정년이 낮아지고 있다. 직장인들의 체감정년은 45세까지 내려갔다. 이런 우리 현실사회에서 ‘제3의 연령기(the third age)’는 한번쯤 되새길 개념이다. 미국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의 윌리엄 새들러 교수가 저서 ‘서드 에이지’에서 내놓았다. 그는 “2차 배움과 성장을 통해 자기 실현을 추구해 갈 수 있는 30년의 보너스”라고 제3연령기(40∼70세)에 든 사람들에게 희망가를 불러준다. 법원이 여성 패션모델의 정년은 35세라는 판결을 내렸다. 화보 촬영을 갔다가 숨진 모델(당시 17세)의 부모가 딸이 살았다면 60세까지 일할 수 있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였다. 이런 손배소는 돈을 조금이라도 적게 지급하려는 피고 측과의 피말리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나온 판결은 보험금 지급에 적용하는 직업별 정년의 기준이 된다. 승려의 정년이 목사보다 5년 많은 70세, 일반 술집의 마담이 룸살롱보다 10년 많은 40세이고, 골프장 캐디는 35세라는 기준은 다 사회적 통념에 기초한 ‘법원 정년’이다. 일본의 경우 기업에서 시작된 정년 파괴가 2006년에 시행된 ‘고령자고용안정법’에 의해 사회 각 부문으로 침투중이다. 정년을 65세로 올리거나 폐지함으로써 고용 안정과 함께 연금 재정도 확보하는 효과를 올리고 있다. 우리는 어느 선진국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정년의 벽을 허무는 법제화와 더불어 사회적 합의가 시급한 시점에 왔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아름다움

    [신경림 누항 나들이]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아름다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시 ‘낙화(落花)’의 첫 대목이다. 이어지는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라는 표현을 보건대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이지만, 세상에는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보편적 에피그램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번 총선을 보면서 과연 옳은 소리라고 생각을 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기는 고사하고 갔던 사람이 다시 와서 이곳저곳 물을 흐려놓은 것이 이번 총선이었다는 자조적 관전평이 설득력을 갖는다. 흔히 역사를 되돌리려는 무모한 시도를 당랑거철(螳螂拒轍)에 비유한다. 사마귀가 앞발을 들어 달리는 수레를 멈추게 하려 했다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얘기로, 그 무모하고 허망함이 이 고사가 주는 교훈일 터이지만, 이번 총선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이 ‘당랑거철’은 주효했다. 듣기만 해도 이에서 신물이 나는 사람들이 나와서 지역감정과 온정주의에 호소하면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던 지역주의를 되살아나게 함으로써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끌어 내렸다. 총선 초기 국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공천혁명도 이들로 해서 용두사미로 끝나면서 정치 자체가 희화화되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준 사람도 적지 않았으니,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면서 스스로 입후보를 사양한 전·현직 국회의장이 그들이요, 전 총리가 그러하며, 정권교체로서 자기 임무가 끝났다고 정계에서 물러간 보수정객이 또한 그들 중 하나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유유자적 슬리퍼 바람으로 산책을 하는 전직 대통령도 보기 좋다. 이들은 우리 정치에 실망해서 정치 허무주의로 전락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한가닥 빛으로 밝혀준다. 물론 그만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맹자(孟子)’에도 “그만두어서는 안 될 경우에 그만두는 사람은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지만-‘盡心 上(진심 상)’-아마도 이번 입후보자 대부분이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골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혹은 보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일이 있고 그만두어서는 안 되겠기에 나섰을 것이다. 어차피 경쟁이니까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고 그 당락의 결정은 전적으로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연히 그 결정이 존중되어야겠지만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조금은 씁쓸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주화의 가치를 지나치게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점이 그것이다. 우리는 지금 단군 이래 가장 자유롭고 민주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 민주주의는 그 완성도에 있어 채워야 할 구석이 아직 많다. 그리고 이만큼의 민주주의도 피와 땀의 대가로 쟁취한 것이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사람들이 여럿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것이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경력이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되는 왜곡된 풍속도도 가끔 목도되었다. 이제 거대담론의 시대는 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일상에 매몰되어 가치중심을 잃는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진정으로 아름답고 빛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두어서는 안 될’ 경우에 그만두지 않아야 할 사람을 국민이 적극적으로 뽑어주고 지켜주는 미덕이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시인 신경림
  • 대교협 사무총장 MB측근으로 교체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김영식 사무총장이 교체될 것이라는 얘기가 교육과학기술부 안팎에서 돌고 있다. 대교협은 교과부로부터 대학입시 관리업무를 넘겨 받아 위상이 강화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후임 사무총장에는 김대식(46) 부산 동서대 일본어과 교수가 거론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비서실 네트워크 팀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세를 규합했던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14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대학교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자리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제의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대교협 사무총장을 맡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현직 교수 신분을 포기해야 하고, 뚜렷한 잘못이 없는 김영식 총장을 그만 두게 하는 것도 부담이다. 사무총장은 대교협 이사회에서 후보를 추천받아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외압’‘낙하산’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이런 탓인지 김 교수도 이같은 소문을 부인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하마평이 자꾸 흘러 나오는 게 부담스럽다. 사무총장에 가려면 사표를 내야 하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갈 이유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건과 관련해서는 청와대 이주호 수석이나 손병두 대교협 신임 회장 등 어느 누구한테도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공식적으로 제의가 온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孫‘호흡 조절’ 鄭‘바깥 바람’

    4·9총선에서 낙선한 통합민주당의 대표적 중진 4명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려 있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해 지난해 대선에 출마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재야계의 ‘대부’ 김근태 의원,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한명숙 의원 등의 거취다. 이르면 다음달쯤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와 맞물려 이들의 선택은 당내 역학관계를 재설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손 대표는 총선에서 ‘의미있는 의석수’를 얻은 만큼 전당대회를 무난히 치러내는 데 진력할 방침이다. 그 뒤로는 2선으로 물러나 ‘호흡 조절’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3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의미가 강하다. 손 대표 측근은 “손 대표는 전당대회 이후 당무에서 손을 떼고 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상당기간 정치상황을 관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손 대표측은 새로운 당 대표 선출에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18대 의원 81명 중 20여명을 자신의 계보로 거느릴 정도로 당내 최대 분파로 부상했지만 ‘중립’을 지켜 시빗거리를 낳지 않겠다는 의도다. 정동영 전 장관은 본인은 물론 대부분의 계보 인사들도 낙마해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정 후보로서는 정치권 내에서는 당장 그 무엇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해외 외유설’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정 전 장관측 관계자는 “정 전 장관은 이번 주 중 선거에 도움을 주셨던 분들을 찾아 뵐 것”이라며 “향후 거취에 대해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현재로선 미국 등 해외로 나가 통일·외교 분야 연구를 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김근태 의원은 아직 집에서 칩거하며 낙마의 충격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비교적 유력한 후보로 꼽혀왔던 데다 상대가 보수진영 신진 인사여서 패배의 충격과 절망감이 더욱 큰 모습이다. 한 측근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조차 힘든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조만간 친목 지지모임인 ‘파랑새 조기축구단’에 나가는 등 ‘권토중래’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명숙 전 총리도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향후 진로를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측은 “정치를 그만두지는 않겠다. 크고 길게 보고 갈 생각”이라며 당 일선 복귀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전당대회를 통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당내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마오이스트, 네팔 총선 압승

    네팔 첫 총선에서 반군 정당 마오이스트(M)의 돌풍이 거세다. 일간 네팔뉴스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13일 개표가 완료된 94개 선거구 가운데 54석이 M에 돌아갔다. 이 추세라면 집권은 떼놓은 당상으로 보인다고 더 히말라이언타임스는 보도했다.플라찬다 총재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2만 3277표를 얻어 1만 2154표에 그친 네팔국민회의(NC) 후보를 2배 가까이 따돌리고 무난히 당선됐다. 제헌의회 진입에 성공한 다른 후보들도 워낙 큰 표차로 앞서 M의 기세를 그대로 드러냈다. 바부람 바타라이 부총재도 3만 5119포로 4894표의 NC 후보를 제쳤다. 반면 M과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NC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연대(UML)는 13일 현재 각각 16석을 차지하는 데 머무르며 제2당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240명의 지역구 의원과 335명의 비례대표 의원이 뽑히며, 선거결과 확정 뒤 총리가 26명의 의원을 추가로 지명,601명의 제헌의회가 구성된다. 특히 총선엔 74개 정당 가운데 54개가 뛰어든 난립상태여서 M의 득표는 그 결과가 사실상 뻔하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M은 벌써부터 압승을 장담하며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망치와 낫이 그려진 당기(黨旗)가 나부끼는 가운데 지지자들이 공산혁명 구호를 외치면서 거리를 붉은 색 꽃가루로 물들이고 있다. 플라찬다 총재는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라면서 “다른 정당들과 협조해 이에 부합하는 새 헌법을 만들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총선에 옵서버로 참가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선거는 네팔이 오랜 정치폭력을 털어내고 민주주의의 길을 걷는 계기”라면서 “마오이스트 정당이 승리하더라도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네팔에서는 1990년 복수정당제가 허용된 이래 의회 세력이 꾸준히 민주화를 요구해 왔으나 정부해산권을 가진 갸넨드라 국왕은 총리를 13번이나 교체하면서 의회와 맞섰다. 네팔의 마오이스트 반군은 군주제 타도와 공산국가 건설을 꿈꾸며 1996년 무장봉기를 일으켜 10년간 정부군과 내전을 치렀으며 이 과정에서 1만 30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2006년 11월 정부와 평화협정을 체결, 내전에 종지부를 찍은 마오 반군은 뒤로는 임시정부에 참여해 민주화 이행 과정에 목소리를 냈다. 1만 5000여명의 병력을 거느린 마오 반군은 국토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하며 국왕 축출과 군주제의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총선에서 M이 승리하면 1769년부터 239년간 영욕을 누려온 샤(Shah) 왕조는 실권을 모두 빼앗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확률이 커진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폴리페서 이젠 그만”

    “폴리페서 이젠 그만”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극명하게 드러난 ‘폴리페서(정치참여 교수)’의 수업권 침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폴리페서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던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13일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포함하는 수정 법률안을 18대 국회가 개원하면 바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2004년 발의했던 폴리페서 규제를 위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은 자동폐기될 전망이다. 시민단체인 흥사단은 심재철 의원실에 시민단체·학생·교원노조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 것을 요청했고, 심 의원은 오는 22∼24일에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대학과 정치권에 양다리를 걸치는 폴리페서의 학습권 침해는 3단계에 걸쳐 나타난다. 첫째, 폴리페서가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공천을 받으려는 겨울방학 동안 교과목이 배정된다. 이에 따라 폴리페서가 공천을 받으면 갑자기 자신의 교과목을 폐강시키거나 다른 교수나 강사로 대체하는 일이 빚어진다. 둘째, 공천을 받은 교수는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최소한 2주 정도를 멋대로 휴강하거나 대강(대체강의)으로 때운다. 셋째, 총선 후 지역구나 비례대표 당선자는 일방적으로 휴직하기 때문에 학기 중 교수가 바뀌고, 다선 폴리페서일수록 휴직 기간은 길다. 낙선한 교수들은 슬그머니 학교로 돌아온다. 이에 대해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이지문 소장은 공천에 도전하는 교수들은 한 학기만이라도 휴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 학기만 휴직하면 학생들의 학습권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데 교수들은 그것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4년마다 되풀이되는 논란을 이번에는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수정 법률안에서는 학습권 침해 문제를 반드시 짚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교수가 공천에 도전할 때는 법으로 휴직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당선 후 장기휴직을 막기 위해 국공립대와 사립대 모두 2년만 교수의 휴직을 허용하는 조항도 포함시킬 계획이다.2004년 수정 법률안은 국공립 대학 교수에 한해서만 교수와 국회의원의 겸직을 금지하도록 해 형평성 논란이 있었다. 참여연대도 등록금 1000만원에 짓눌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폴리페서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진걸 간사는 “수업권을 침해받은 학생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면서 “우선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나서서 각 대학이 휴직 및 복직 심사 규정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몇몇 폴리페서들은 당선 후 교수직을 그만두려고 했으나 대학측에서 당선된 폴리페서들을 국회 ‘로비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휴직을 만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회의 최미숙 상임대표는 “폴리페서 퇴진운동까지 고려하고 있다.”면서 “학부모들이 정치에만 관심을 갖는 교수들의 월급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경주 김정은기자 kdlrudwn@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6) 유화적인 대일정책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66) 유화적인 대일정책Ⅰ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635년 후반 무렵, 조선은 또 다른 난제를 안고 있었다. 다름 아닌 ‘일본 문제’였다. 조선은 갈수록 높아지는 후금의 군사적 위협과 명의 요구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처지였다. 당연히 일본과의 관계 안정이 절실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바쿠후(幕府)와 쓰시마(對馬島)에서는 이른바 ‘야나가와 이켄(柳川一件)’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파장은 당연히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조선은 ‘서북(西北) 방면의 난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도 일본을 다독이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야나가와 이켄’의 발생 ‘야나가와 이켄’은 1633년(인조 11), 쓰시마의 가로(家老) 야나가와 시게오키(柳川調興)가 자신의 주군(主君)인 쓰시마 도주(島主) 소오 요시나리(宗義成)의 비리를 바쿠후에 폭로하면서 비롯되었다. 그 ‘비리’의 핵심은 소오가 1621년과 1629년 조선에 보내는 사신을 자기 휘하의 사람으로 멋대로 파견하고 그 과정에서 바쿠후의 국서(國書)까지 바꿔치기했다는 내용이었다.1629년에 조선에 보낸 사신이란 겐포(玄方)를 가리킨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그는 조선이 정묘호란으로 수세에 처해 있던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여 서울까지 상경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실제 쓰시마 도주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의 교역을 재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에서 사절 명칭을 과장하거나 문서를 위조하는 일을 다반사로 저질렀다. 쓰시마 차원에서 조선에 보내는 사절을 국왕사(國王使, 바쿠후 장군이 보내는 사절)라고 가장하거나 아예 조선이 내려준 도장을 위조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시게오키는 왜 요시나리의 ‘비리’를 폭로했을까? 쓰시마 내부의 관계와 서열을 보면 그는 분명 요시나리의 부하이자 집사(執事)였다. 더욱이 그는 요시나리의 이복 여동생과 결혼하여 혼인 관계로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시게오키가 자신의 주군을 고발하는 ‘배신’을 저지른 것은 잘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야나가와 이켄’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시게오키는 기본적으로 요시나리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요시나리에 대한 우월감이기도 했고, 경쟁심이기도 했다. 시게오키는 요시나리보다 한 살이 많은데다, 에도(江戶)에서 태어난 이후 쇼군(將軍) 주변에서 생활했다는 자부심이 컸다. 권력의 중심지인 에도에서 잔뼈가 굵었고 쇼군의 측근들과도 친하다는 자부심이, 궁벽한 쓰시마의 연소한 주군을 가볍게 보는 자세를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시게오키는 바쿠후와의 관계, 조선과의 무역 문제 등을 놓고 요시나리와 갈등을 빚게 되었고 궁극에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달았다. ●‘야나가와 이켄’의 결말 양자의 갈등이 극에 이르자 시게오키는 급기야 소오의 집사 역할을 그만두겠다는 의향을 비쳤고, 끝내는 요시나리의 ‘비리’를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시게오키의 폭로 내용에 놀란 바쿠후는 1633년 5월부터 ‘야나가와 이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요시나리와 시게오키는 각각 에도로 불려가 국서 위조와 국왕사 파견 건에 관련하여 심문을 받았다. 바쿠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쓰시마에도 중신들을 파견하여 두 사람과 관련된 인물들을 수사했다.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증인들을 에도로 연행했다. 바쿠후는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쇼군의 권위와 관련된 문제이자 조선과의 외교 문제와도 연결된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바쿠후는 두 사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쓰시마에서 조선으로 가는 무역선의 파견을 중지시켰다. 뿐만 아니라 쓰시마의 어선들이 조선 근해로 나아가 조업하는 것도 중지시켰다. 그 같은 상황에서 두 사람에 대한 바쿠후의 조사는 2년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1635년 3월, 쇼군의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은 일반의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쇼군은 요시나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쇼군은 ‘국서 위조’와 관련하여 요시나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 쓰시마의 영주(領主)이자 다이묘(大名)로서 요시나리의 위치를 다시 인정하고, 당시까지 해오던 것처럼 조선과의 외교도 계속 담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쇼군은 또한 요시나리에게 이듬해까지 조선으로부터 통신사를 초치하라는 명령도 아울러 내렸다. 국서 위조와 관련된 모든 죄는 시게오키의 것으로 판결되었다. 쇼군은 시게오키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유배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그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던 측근들의 일부는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쇼군 주변의 바쿠후 실력자들 대부분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었음에도 시게오키는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바쿠후는 왜 ‘국서 위조’와 관련된 최고 책임자인 요시나리 대신 ‘고발자’인 시게오키를 처벌하는 조처를 취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소오 가문을 매개로 이어져온 조선과의 기존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국서를 제멋대로 뜯어고친 것은 분명 커다란 허물이었지만, 중세 이래로 조선과의 관계를 능숙하고 원만하게 이끌어온 소오 가문의 노련한 능력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바쿠후가 ‘야나가와 이켄’과 관련하여 소오 요시나리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그렇다고 요시나리가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바쿠후는, 요시나리의 측근이자 외교승(外交僧)으로서 조선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담당했던 겐포를 유배에 처하는 조처를 내렸던 것이다. 요시나리에게는 조선과의 관계에서 ‘외교 참모’를 잃는 아픔이었다. 바쿠후는 겐포를 제거한 후 대신 교토(京都)의 다섯 사찰(五山)들로부터 승려들을 쓰시마에 파견하여 외교문서의 작성과 감독을 맡기는 조처를 취했다. 소오가 외교문서를 위조하는 것을 막고 조선과의 외교를 직접 감독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야나가와 이켄’과 조선의 고민 ‘야나가와 이켄’이 요시나리의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그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서 조선은 상당히 긴장했다. 사건이 조선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일찍부터 쓰시마 내부에서 소오 요시나리와 야나가와 시게오키 사이에 알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1617년(광해군 9) 일본에 다녀왔던 이경직(李景稷)은 ‘시게오키는 교활하고 민첩한데 요시나리는 우직하나 기력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1624년 일본에 회답사(回答使)로 다녀온 강홍중(姜弘重) 또한 쓰시마에 머물면서 양자를 관찰했다. 그는 조선 사절단을 접대하는 요시나리와 시게오키의 선단 규모까지 비교할 정도로 세심하게 양자를 살폈다.1632년에도 양자가 서로 싸운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조선은 왜역(倭譯) 최의길(崔義吉)을 보내 상황을 탐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야나가와 이켄’이 터지고, 바쿠후가 사건의 전말을 수사하면서 조선으로 오는 무역선과 어선들의 출항을 금지시키자 조선의 의혹은 더 증폭되었다. 조선은 당시 명과 후금으로부터 전선(戰船)을 빌려달라는 요구에 시달리고 있었던 데다,‘공경(孔耿) 사건’과 관련하여 서북변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바로 이 때 쓰시마로부터 와야 할 세견선(歲遣船)이 오지 않자 조선은 일본과 쓰시마 내부에 중대한 변고가 일어났다고 여기게 되었다. 자연히 남방 지역의 해방(海防)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쓰시마와 에도의 사정을 탐문하고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문이 줄을 이었다. 정묘호란 이후 ‘후금 문제’에만 주로 매달려왔던 상황에 또 다른 난제가 추가된 것이다. 인조와 조정의 당국자들은 서북과 동남, 양쪽에서 위협받고 있는 조선의 냉혹한 현실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북으로부터의 위협이 더 급박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일본에 대한 조선의 대응은 유화적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취업준비생 60만 시대] (3)고졸 이문기씨의 加 유명 건설사 취업기

    [취업준비생 60만 시대] (3)고졸 이문기씨의 加 유명 건설사 취업기

    “항상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갖고 준비한다면 해외취업의 기회는 반드시 잡을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건설기술자로 취업에 성공한 이문기(38·대구 광역시 달성군)씨는 건설현장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10년간 자신이 맡았던 업무들을 꼼꼼히 적어 놓은 작업 일지를 보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철저한 습관이 그를 해외 굴지의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건설현장에서 10년 넘게 일했지만 경력증명서 한 장 뗄 수가 없었다.”면서 “해위취업을 마음에 두면서부터 필요한 서류나 증명서 등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19세 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건설현장에 뛰어들었다. 건설현장의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다. 독학으로 공부를 하면서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쳤고 영어학원을 통해 생활영어도 익혔다. 목수로서의 관록도 쌓이면서 전문가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경험 많은 전문가라는 점을 누구에게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이름 있는 회사의 정식 직원이 아닌 이른바 일용직근로자(노가다)로 잔뼈가 굵었기 때문이다.1997년 IMF사태 이후 외국으로 취업이민가겠다는 결심을 한 뒤부터 작업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씨가 해외취업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일용직 근로자가 근로자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가·사회가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는 3D 기피업종이라며 동남아의 값싼 인력을 불러 대체하고 있지만, 처우개선만 되면 국내 인력도 일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씨는 “이런 부당한 대접을 벗어나 기술자로서 인정받고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국회사를 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해외 취업을 생각하면서 영어회화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을 찾아 캐나다 건설근로자로 취업에 성공한 것도 바로 이런 철저한 준비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지원센터 양희경 차장은 “이씨처럼 철저한 준비로 외국회사와 직접 알선이 이뤄지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취업한 회사는 캐나다에서 도급순위 2위, 역사 100년이 넘는다. 시간당 30캐나다달러(약 3만원)의 고임금으로 2년간 고용계약을 맺었다. 연장근무와 함께 영주권까지 가능한 조건이다. 그는 인터뷰를 한 다음날인 지난 4일 임신 중인 부인과 함께 캐나다로 출국했다.“캐나다 생활에 잘 적응하고 그곳의 목수 라이선스를 취득해 인정받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자신감 없으면 장관 하지 말아라”

    “자신감이 없으면 아예 장관을 하지 말아라.” 전 보건복지부(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장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일할 수 있는 준비와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같이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전임 장관들이 현직 장관들에게 보내는 조언들이 ‘장관 직무가이드’에 부록으로 수록돼 눈길을 끈다. 조언의 상당수는 장관으로서의 위상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강조한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은 “장관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쥐고 있는 중요한 자리다. 적당하게 자리를 지키는 그런 위치가 아니다. 소신을 갖고 최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부의 행정이나 정책 하나하나는 연습이 아니다. 모든 것을 진검 승부한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부(현 농수산식품부) 장관은 “하루만 하고 장관을 그만두더라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한다는 일념으로 중장기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성 장관에 대한 ‘훈수’도 있다.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일반 국민들은 여성 장관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여성으로 본다.”면서 “여성 장관은 더더욱 도덕적·전문적으로 잘 해야 하고, 전문성을 가지기 어렵다면 건전한 상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동문서답하지 않고 정확히 의사 표현”

    “여러 달 동안 소란을 끼쳐 대단히 죄송하고,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런 일이 없어야 되고, 있다면 없어야 되고,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4일 삼성 특검에 출석한 이건희 회장은 당당하고, 차분한 표정이었다. 의혹에 대한 질문에는 간혹 고개를 가로저으며 강한 부정의 뜻을 나타냈다. ●자장면과 물만두로 저녁식사 특검팀은 당초 기자들에게 “수사가 자정을 넘기지는 않을 것”,“오후 11시 전후부터는 (이 회장 귀가 취재를 위해)대기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정작 조사는 자정을 넘겨 다음날 오전 1시쯤까지 진행됐다. 이 회장의 조사 시간이 길어지자 진술을 마친 이 회장이 조준웅 특검과 단독 면담을 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수사가 끝난 뒤 7층 특검 사무실에서 내려온 이 회장은 피곤한 표정으로 승용차에 올랐다. 앞서 특검팀이 통보한 이날 오후 2시 정각 검은색 벤츠 승용차를 타고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 회장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1분 남짓 포토라인에 선 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한 뒤 7층 특검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 회장은 먼저 조준웅 특검을 만난 뒤 윤정석, 조대환 특검보와 강찬우 검사 등 3명으로부터 경영권 불법승계와 비자금 불법 조성·관리, 정·관계 불법로비 등 3대 의혹을 조사받았다. 이 회장은 조사에 협조적으로 임했으며, 저녁식사로 자장면과 물만두를 배달시켜 수사팀과 함께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 회장이 동문서답하지 않고 질문 취지를 알아 듣고 본인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이 회장의 출석은 특검 발족 86일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수사 초기 모르쇠와 비협조로 일관했던 삼성이 이렇듯 태도를 바꾼 이유에 대해 이 회장 등의 사법처리를 두고 특검과 물밑에서 모종의 ‘합의’가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예측도 나온다. ●특검, 피의자에 “회장님” 존칭 빈축 실제로 특검팀은 조사할 분량이 굉장히 많다고 걱정하면서도 이 회장을 ‘오후 2시’라는 늦은 시각에 불렀고,“가능한 한 한 차례로 조사를 끝내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는 등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이학수 부회장 등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다른 인물과 달리 이 회장에 대해서는 유독 ‘회장님’,‘이 분’,‘오시면’ 등의 존칭을 쓰며 예의를 차린 것도 빈축을 샀다. 정은주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성처녀 애배고“할말많다”

    성처녀 애배고“할말많다”

    『「아일랜드」의「잔·다르크」가 임신을 했다 』 - 그렇잖아도 심심찮게 세계의 화제에 오르내리는 영국의 처녀 하원의원「버나데트·더블린」 양(22)이 가을에는 아버지 없는 엄마가 되겠다고 스스로를 폭로해, 본바닥 「아일랜드」와 영국은 고사하고 온 세계에 다시 한번 「쇼킹」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핫·팬츠」로 의사당 휩쓸고…약한자의 대변자를 자부 북「아일랜드」의 「쿠크스타운」빈민가에서 태어나 여자대학생의 몸으로 쟁쟁한 상대후보의 경쟁을 물리치고 겨우 21살의 나이에 영국 하원의원의 자리를 차지한 것만도 영국의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거니와 신사중의 신사만 모이는 「신사의 나라」의 의사당에서 휘파람을 불며 복도건 어디건 마구 뛰어다니기가 일쑤. 그런가 하면 「미니」나 「핫·팬츠」차림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품위를 자랑하는 다른 의원들의 눈둘바를 모르게 만드는 말괄량이 의원도 영국의회 사상으로는 처음있는 일이다. 술·담배가 또한 보통이 아닌 「헤비」급. 북「아일랜드」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종교분쟁으로 온통 폭동의 거센 바람속에 가랑잎처럼 밀려다닐 때, 「데블린」양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에 대항하여 「가톨릭」계의 군중을 선두에 나서서 지휘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이 「아가씨 투사」의 팔짓 발짓의 몸짓 하나하나도 모두가 의표를 찌르는 일들 뿐이라 자연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마련. 비록 가난한 목수였지만 「아일랜드」의 자유와 통일을 염원하고 또 그러한 행동에 가담하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어렸을때부터 「데블린」양에 배어들어 12살 때는 벌써 「반역의 시」를 불러 정치적 항의 행동의 첫발을 내디뎌 「투사」로서의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의 분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세기를 걸쳐 내려오는 숙명적 대결, 언론과 집회를 제한하는 특별권한법, 언제까지나 헤어날 아무런 보장도 없는 서민들의 가난-이런것들이 하나하나 「데블린」양의 과격한 마음에 불을 질러 폭발적 행동을 치닫게 만들었다. “의원(議員)은 정치문제만 대표…사생아 배건말건 개인(個人)일” 타고난 웅변을 종횡으로 휘둘러「벨파스트」대학에 들어가자 이미 학생지도자의 하나로 꼽혔다. 이후로의 「데블린」 양의 생활은 정치집회와 데모의 연속이었다. 능란한 말주변과 지칠줄 모르는 행동력은 희망없는 나날을 지내는 「가톨릭」계통의 빈민들에게 꿈을 심어줬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잘 살수 있는가』그들은 환호속에 「데블린」양을 지도자로 삼았고 성녀(聖女)로 따르기조차 하게 된 것이다. 이번의 「성녀임신」소식은 「아이리시·타임즈」의 여기자가 「데블린」양과 「인터뷰」한데서 명백해진 것인데, 이에 따르면 「데블린」양은 올 2월에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나아갈 길을 결정할때까지 침묵을 지켜 왔다는 것. 이제 마음이 서서 세상에 털어 놓는다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기르려고 했어요. 낙태는 도의상 할수없어요. 아버지가 누구냐고요? 그것은 밝힐 수 없죠. 왜 밝힐수 없느냐는 것도 말할수 없어요』-서슴없는 태도다. 『의원은 정치문제를 대표할 따름이며 도덕적인 문제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겠어요? 의원도 사람인 이상 아이를 낳는 법. 그것이 사생아건 뭐건 상관할건 없다고 생각해요』-그녀다운 배짱이다. 물론 자기로서도 도덕적인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단다. 『「가톨릭」에서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사생아의 딱지를 붙여 차별하려고 드니 그런 모순이 어디있어요. 왜 죄가 아기한테 있어요. 있다면 부모지요』 사생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대학 2학년 때 학생토론회에서 당당한 이론을 펼친적이 있다. 이번의 「임신」은 그 실천에 불과한 것.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본적인 성도덕에 대해 놀랄만큼 모르고 있어요. 모두가 인습에 사로잡힌 옹고집이란 말예요. 자유연애는 인정하지만 사생아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모순이 어디있을까요』 「데블린」양은 결혼도 않지만 의원직도 그만두지 않겠단다. 더구나 다음 선거에도 출마하겠다니…. 지지자가 「가톨릭」신자들이라 그들의 엄격한 윤리관에 비추어 이번 일이 용납이 될는지 다음 선거에서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장본인인 「데블린」양 생각으로는 별로 타격을 받을 것 같지 않다는 눈치. 「데블린」양의 자서전적인 저서『내 영혼의 가치』를 들춰보면 곳곳에 의회의 타락과 무능을 꼬집고는 자기는 국회의원에의 매력도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연애를 인정한다면 사생아(私生兒)도 인정해야 마땅” 『북「아일랜드」문제가 「웨스트민스터」에서 토의되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선거구에 관심이 없는 의원들, 이권과 지위만이 그들에게는 보물, 의회란 그들의 사교「클럽」입니다. 내가 「아일랜드」를 위해 해준 것은 겨우 벽촌에 우체통 하나를 설치해준 것 뿐예요. 정치란 나에게는 알 수도 없는 「게임」, 내가 국회의원으로서의 의의를 찾자면 「아일랜드」의 비참한 현상위에 이득을 노리는 정객들이 내 자리를 못차지하게 하는 것 뿐입니다』 한편 이번 사건을 놓고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반응은 어떤가. 「데블린」양의 지지파, 중부 「얼스터」독립사회주의자 기구에서는 『얼마나 용기있는 일인가, 역시 「데블린」양은 경탄할만 하다』고 즉각 성명을 발표하곤 공민권운동측의 선동적 악선전을 막기위해 「데블린」양을 북「아일랜드」수도로 불러 재신임을 다짐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의 대변인은 『누가 이런 궁지에 몰리더라도 교회는 변함없는 신의 사랑을 내릴뿐』이라고 자못 관용이다. 「데블린」양의 앙숙인 「프로테스탄트」의 지도자 「이안·페이즐리」목사마저도 『죄없는 자만이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외엔 할말이 없소』 식이다. 환호를 지르며 갈채를 보낸 것은 역시 「아일랜드」의 「우먼·리브」. 『어젯 밤을 기해 결혼 않은 엄마의 수치심은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는 죽어버렸다』 스스럼없이 정치집회에 나온 「데블린」양의 아랫배는 아닌게 아니라 엄마가 될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Q>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