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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라운지] 프로야구 2군 올스타전 MVP KIA 이명환

    [스포츠 라운지] 프로야구 2군 올스타전 MVP KIA 이명환

    프로야구 퓨처스(2군) 올스타전이 열린 지난 19일 춘천 의암구장. 5000여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너무 긴장했을까. 홈런레이스에서 5아웃을 당할 때까지 2개밖에 넘기지 못했다. 본 경기에서도 4번째 타석까지 범타와 볼넷으로 헛손질. 하지만 9회초 2아웃 주자 1루의 마지막 기회가 왔다. 놓치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쐐기 투런홈런 한 방으로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야구인생 9회말 2아웃 찬스를 기다리는 KIA의 신고선수 이명환(24)이다. ●졸업반 징크스… 험난한 취업의 길 처음 방망이를 잡은 때는 대구 율하초교 5학년. ‘야구부원 모집’ 포스터를 본 소년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학원 하나 더 다닌다는 정도로 생각했던 소년은 부모를 설득했다. 물론 ‘재미’로 시작한 운동이 ‘생활’이 되자 버거워 했다. 중학교에 올라간 뒤론 몇 번이나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구멍가게와 식당 등을 꾸려 뒷바라지하는 부모에게 포기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구고에 진학한 뒤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잘 하는 애들 위주로만 돌아가더라고요. ‘야구, 너 한번 이겨 보겠다.’는 생각으로 야간 개인운동을 시작했어요. 그 습관이 지금까지 계속됐죠.” 꾸준했지만 눈에 확 띄지는 못했다. 3학년 때 대통령배에서 첫 우승을 맛봤다. 5번타자로 한몫을 했다. 하지만 프로 스카우트의 눈에 들지 못했다. 2004년 고향팀 삼성의 선택(1차지명)은 대구고 동기이자 4번타자였던 박석민이었다. 한양대에 진학했지만 안 좋은 소문이 돌았다. ‘실력은 안 되는데 돈을 썼다.’는 식. “터무니없는 얘기에 속이 상했죠. 부모님 심정은 말도 못했고요. 보란 듯이 잘 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전통의 명문이지만 당시 한양대는 고만고만한 팀.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졸업반 때 부진했다. 결국 신인드래프트(2차지명)에서 또 외면받았다. 야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일본독립리그 입단테스트를 봤다. 결과를 기다리면서 KIA와 경찰청 테스트도 봤다. 천만다행 KIA에서 합격통보가 날아 왔다. 연봉 1800만원짜리 ‘신고선수(연습생)’지만 야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서바이벌게임… 살아남아야 한다 지난해 신고선수로 KIA에 입단한 선수는 5명. 1년새 3명이 옷을 벗었다. 구단 통보를 받으면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게 신고선수의 운명. 살아 남기 위해 죽도록 연습했다. 첫해에는 드문드문 대타로 나서 타율. 219에 3홈런 14타점을 올렸다. 시즌이 끝난 뒤 마무리 훈련 때 왼쪽 손목이 많이 아팠다. 하지만 퇴출 명단에 오를까봐 티도 못 냈다. “주먹도 못 쥘 만큼 아팠어요. 거의 깁스 수준으로 테이핑을 했죠. 코치님이 ‘넌 테이핑 값 따로 내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연습벌레의 노력이 통한 걸까. 올들어 KIA 2군의 4번타자로 선발출전하는 일이 늘었다. 3할에 육박하는 타율(.299)에 9홈런 26타점. 파워만큼은 1군의 해결사 노릇을 하는 김상현 못지않다는 평가다. 선구안과 외야 수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앞서 2군 올스타전 MVP가 됐던 채태인(삼성)과 전준우(롯데)처럼 1군에 올라갈 날을 꿈꿀 법하다. “(올스타에 뽑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MVP가 되니 부담은 있죠. 하지만 채태인 선배나 준우와 저는 달라요. 지금 1군에 가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없어요.”라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했다. “언제까지 1군에 올라가야겠다는 식의 목표는 없어요. 노력하다 보면 찬스가 한 번쯤은 오겠죠. 물론 그땐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주말 대구 원정 때 집에 들러 MVP 부상으로 받은 상품권을 부모님께 드리겠다고 했다. 뚝심과 열정으로 꿈을 키워 온 그가 1군무대에서 활짝 웃을 날을 기다려 본다. 글 사진 광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명환은 누구 ▲출생 1985년 4월26일 대구 ▲가족 이상호(56)씨와 최춘자(53)씨의 2남 중 막내 ▲학력 대구 율하초-성광중-대구고-한양대 ▲경력 2002년 화랑기고교대회 홈런·타점왕. 2003년 대붕기고교대회 타격·타점·홈런왕 ▲별명 기봉이(이유는 자신도 모른다고) ▲체격 188㎝, 94㎏ ▲포지션 좌익수(우투우타) ▲연봉 2000만원 ▲절친 고교 동기로 2군에서 한솥밥 먹는 박진영(내야수) ▲취미 요리(찜닭 정도는 거뜬. 레시피만 있으면 웬만한 요리는 척척)
  • 블로그에 글 하나 썼더니 100달러가…

    “저는 미국에서 성공한 블로거도 아니고, 수익도 변변찮은데….” 인터넷에서는 영어가 가장 경쟁력 있는 언어다 보니 광고 등으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벌어들이는 파워블로거들도 압도적으로 미국인이 많다. ‘신문과 블로그의 빅뱅’ 시리즈를 위해 명성과 수익 면에서 파워블로거라 불리는 많은 이들과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인터뷰를 하기 어렵다는 답장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뉴욕에서 어렵게 연락이 닿은 고수민(38)씨는 본인 스스로 파워블로거가 아닌 듯하다고 했지만 이미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라 불리는 블로그 세상에서는 유명인이었다. ‘뉴욕에서 의사하기(ko.usmlelibrary.com)’란 블로그를 2007년 11월부터 운영 중인 고씨는 “미국 파워블로거들은 광고의뢰 같은 비즈니스로 연결되지 않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면 이메일을 아예 안 보는 것 같아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메일이 오고 바쁘겠어요.”라며 기자를 위로했다. 고씨처럼 의사 블로거로 맥루머스닷컴(MacRumors.com)을 운영했던 아널드 김은 1년 전 아예 내과 의사직을 그만두고 블로거로 전업했다. 이메일을 보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아널드 김은 최근 개인 블로그에 “지난 1년간 매우 바빴으며 의사를 그만둔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웹사이트 편집과 프로그램을 도와줄 두 사람을 새로 고용해 앞으로는 이메일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씨는 현재 뉴욕시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부속 몬티피오레 의료 센터 재활의학과 전공의 3년차로 근무 중이다. 흔히 레지던트라 불리는 전공의 과정은 많은 의학 드라마에서 희화화해 즐겨 다루는, 대부분 의사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라고 입을 모으는 때다. 하지만 고씨는 이 전공의 과정만 세 번째 밟고 있다. 그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2000년부터 미국 의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2005년에 미국으로 이주했어요. 미국행을 준비하는 의사들을 위한 웹사이트에 글을 올렸는데 인기가 많았죠. 덕분에 미국 의사 고시 준비학원에서 강의하게 됐고 이때 자료를 활용할 생각을 못했는데 아는 선배가 블로그에 올리라고 하더군요.”라고 설명했다. ●블로그로 한 달 최고 1700달러 광고수입 올려 고씨는 “블로그를 소개한 선배가 ‘인기만 있으면 한 달에 몇백 만원은 쉽게 번다.’라며 꼬였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2007년 인터넷에서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에 관한 논쟁과 월드컵의 인기로 블로그에 관련 글을 썼다가 광고 수익으로 한 달에 500만 원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고씨가 블로그를 1년 반 이상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소통의 즐거움’이었다. 정보를 주고 사람들로부터 댓글과 같은 피드백을 받는 보람 때문에 블로그에 180개가 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부수적으로 돈을 버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며 고씨는 자세하게 그간 수입 내역도 설명했다. 2007년 11월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는 하루 방문자가 수십 명 수준이었는데 12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화면에 노출되면서 하루 방문자가 10만, 20만 명으로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글 하나를 썼는데 10만 명이 읽었고, 다음날 블로그에 달린 구글 애드센스 계좌에 100불이 생겼더라고요. ‘별일이 다 있네!’라고 생각했죠.” 애드센스란 구글이 만든 광고 프로그램으로 웹 사이트 방문자가 광고를 클릭하면 광고 게시자로부터 받은 광고비를 구글이 웹 사이트 제작자와 나눠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고씨는 지난해 1월에는 최고 1700달러(한화 약 210만 원)짜리 수표를 구글로부터 받았다. 한국의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자는 제의도 쏟아졌다. 고씨가 블로그에 글 하나를 쓸 때 평균 투자하는 시간은 6시간이다. 의학 관련 포스팅을 할 때는 특히 조심스러워서 관련 논문 등을 꼼꼼하게 찾아 점검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글을 올리는 횟수가 점점 줄었고 1년 전 부터는 일주일에 평균 한편씩 블로그에 쓰고 있다. 비례해서 광고 수익도 줄었다. 지난해 2월에는 700달러로 수입이 반으로 줄었고, 3월에는 400달러로 떨어졌다. 이후에는 한 달 평균 400달러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록하다가 지난 5월에는 40~50달러로 확 줄어들었다. ●남들과는 다른 시각 제공한 글로 블로그 인기 끌어 고씨가 블로그에 쓰는 글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미국에서의 의사생활, 영어공부, 자동차다. 처음 고씨가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의사 블로거가 몇 명 없었지만 지금은 몇십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양깡’이란 필명으로 유명한 비뇨기과 의사 양광모씨가 의사 블로거의 시조 격인데, 양씨는 ‘닥블(docblog.kr)’이란 의사들의 그룹 블로그도 만들었다. 물론 고씨도 닥블에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의사들이 블로그 세계에 뛰어들도록 독려하는 양씨는 의사 블로거의 사회적 책임 또한 강조하고 있는데, 고씨도 양깡의 주장에 동의한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한 의사의 ‘유도를 해서 허리 통증을 이겼다.’라는 블로그 내용이 올라 인기를 끈 적이 있어요. 이처럼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개인적인 경험을 의사들이 인터넷에 쓰면 국민 건강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고씨가 미국에서 의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환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점점 모순된 한국의 의료제도가 눈에 들어왔다. 의대에 다닐 때 교수가 절대 알려주지 않았던, 개업의가 사채를 쓰고 링거와 물리치료로 먹고 살며 대학병원은 장례식장과 주차장, 매점으로 돈을 버는 현실이 그를 미국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의사들의 현실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한국과는 제공하는 의료의 질이 다른 만큼 많은 환자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보다 의사의 수입이 높지는 않다. 한국에서 개인병원 부원장으로 있다가 미국에 온 고씨는 미주리주에서 내과 전공의로 1년 6개월, 뉴욕에서 재활의학과 전공의로 3년 과정을 마치고 올해 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 후에는 미주리주의 병원에서 일할 예정이다. 바쁜 전공의 과정과 병행한 블로그 활동으로 지난해 말에는 다음에서 주는 블로그 기자상도 받았다. 상금은 기부금으로 쓰였다. ●악플 때문에 정치적으론 중립적인 글만 써 블로그계의 스타인 파워블로그들에게는 ‘악플’이 숙명적으로 따른다. 고씨는 지난해 1월 미국의 의료제도에 관한 글을 쓰면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미국 의료제도가 하도 ‘지옥’이라고 하기에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자 글을 썼어요. 미국 의료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이 아닌데 졸지에 옹호하는 사람으로 매도되더군요.” 고씨는 좋아하는 차에 비유해 한국과 미국의 의료제도를 비교했다. 미국의 의료 제도에 쓰이는 비용은 에쿠스급에 서비스는 그랜저급이라면 한국은 엑센트급의 돈을 들이고 아반테급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이제 누적된 모순이 한계에 달한만큼 아반테급의 돈을 들여서 아반테급의 서비스를 받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악플은 지울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제는 광우병이나 한국 의료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는 정치적인 글들은 중립적으로 쓰려고 한다. 대신 하고 싶은 말들은 모아서 책으로 낼 생각이다. 조만간 고씨의 이름으로 ‘우직하게 제대로 영어공부하기(가제)’란 책이 출간된다. 그동안 블로그에 올라왔던 독자들의 댓글과 수기 등도 반영된 ‘소통’의 결과물이다. 의사 블로거의 가장 큰 장벽은 시간이다. 환자들을 제대로 진료하기도 어려운데 일일이 블로그에 댓글을 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레지던트로 바쁜 고씨 역시 가족과의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서도 블로그 활동이 알려지면서 일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줄까 봐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덕분에 최근 있었던 수련 중 전기진단학 일제고사에서 전미 재활학과 의사 중 3등이란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환자들에게 ‘도둑놈’ 소리 안 듣고 신나게 일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고수민씨. 앞으로도 그의 정열적인 블로그에서 계속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넷서울신문 뉴욕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후원: 한국언론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중산층 두껍게] 희망 잃은 빈곤층 2인 인터뷰

    [중산층 두껍게] 희망 잃은 빈곤층 2인 인터뷰

    “게으르니까 가난한 거라고요? 잘살려고 노력할수록 가난해지더군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빈곤층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먹고 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가난의 질곡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빈 손으로 남하한 뒤 돈 없고 배운 것 없어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한 모자와, 영세자영업자로 일하면서 생긴 빚으로 파산하고 만 한 가장의 사연을 통해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빈곤층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 두평 쪽방살이 80대 할머니 김씨 “월수 70만원… 아들 약값에 돈 다써” 서울 후암동의 김순애(81)씨와 김수용(49)씨 모자는 한 달에 25만원을 주고 두 평 남짓한 쪽방에서 산다. 10년 전만 해도 같은 동네의 4평짜리 방에서 살았다. 하지만 아들 김씨가 7년 전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평수를 절반이나 줄여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자는 기초생활보호생활자로 등록돼 동사무소에서 각각 40만원, 30만원을 받아 생활한다. 다른 수입원은 없다. 얼마 전까지는 어머니 김씨가 리어카를 끌고 폐지와 빈 병을 주워 용돈벌이를 했지만 구청에서 나온 감시관에게 적발돼 수급비를 깎일 뻔한 일을 겪고는 그만두었다. 한 달에 70만원을 받아 방값 25만원, 아들 약값 20만원, 생활비 20만원을 쓰고 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아들이 사고가 난 뒤 병원비가 없어 MRI(자기공명 단층 촬영장치) 한번 제대로 찍어보질 못했어. 아직 젊은데 어쩌면 좋아.”라며 아들을 걱정했다. 그렇다고 단 하루도 게을리 보내본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전쟁이 끝나고 영등포역 뒤 영일동 판잣집에 자리를 잡았다. ‘가난해서 걸리는 병’인 장티푸스와 콜레라로 아들 넷을 모두 잃고 막내 하나만 겨우 살렸다. 그 막내는 돈이 없어 중학교 1학년을 자퇴하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16살부터는 공사판을 다니며 어깨 너머로 전기 기술을 배웠다. 80년대 개발붐을 타고 한강 둔치 건설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뒤로 일용직을 전전했으므로 4대 보험이나 정년 등은 꿈도 못 꿨다. 어머니 김씨는 “평생 번 돈은 약값으로 다 들어갔다. 만날 아들하고 둘이서 방 안에만 있어 혹시 나가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병원비는 또 누가 내나 싶어서…”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모자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한다. 얼마 전 한 봉사단체가 밥솥을 줘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집 근처 교회에서 일주일에 두 번 반찬을, 한 달에 한 번 쌀을 갖다줘서 생활에 큰 보탬이 된다. 그러나 시장에 나갈 때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 물가 때문에 한숨만 는다. 아들 김씨는 “반찬값이 점점 올라서 시장에 가기가 무서울 정도예요. 파도 한 단에 3000원이나 하더라고요. 요즘엔 파를 한 번 사서 잘라둔 다음에 나눠 먹어요.”라며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 20여년 직업 전전 장애인 최씨 “5000만원 빚이 두배로… 파산도 못해” 서울 성동구에 사는 최모(50)씨는 ‘만세’를 부르기 일보 직전이다.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세’는 곧 파산을 일컫는 말이다. 20여년 동안 과일노점상, 전파상, 초고속 인터넷 대리점 등 안 해본 일이 없는데 희한하게 일을 할수록 빚만 쌓였다. 9년 전 동업하던 친구가 먼저 ‘만세’를 부르고 난 뒤 빚 2000만원이 생겼다. 그걸 갚지 못해 대여섯 개의 카드를 가지고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사단이 난 것이다. 3살 때 뇌성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한 최씨는 고등학교 전자과를 나와 1985년 조그만 전파사를 차렸다. 2년간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했지만 대기업이 애프터서비스망을 본격적으로 구축하면서 조그만 전파사는 고객을 한꺼번에 잃게 됐다. 12년 전 한 중소 보일러회사에 들어갔지만 학력도 낮고 장애인인 최씨에게 승진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5년간 다니다 과일 노점상으로 나섰다. 과일은 빨리 팔지 않으면 썩어서 내버리는 물건이라 재고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지만 처음 장사를 해보는 최씨는 요령을 전혀 몰랐다. 모아둔 돈을 까먹고 나서 1998년 친구와 함께 초고속 인터넷 대리점을 열었다. 인터넷이 전국에 막 깔리기 시작한 때라 가입에 두세 달이 걸렸고 설치가 안 되는 지역도 많았다. 당연히 최씨의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신용유의자가 되자 최씨의 빚을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빚 2000만원이 생겼다. 이듬해부터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2003년 카드대란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나 마구 카드를 발급해주던 때라 간신히 터져나오는 빚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 못갔다. 2003년 최씨와 그의 아내는 신용유의자가 됐다. 최씨는 “그저 열심히 일해 가족들하고 먹고 살려고 한 것밖엔 없는데 신용유의자의 나락에 떨어져 버렸다.”며 울먹였다. 그는 “빚 원금이 5000만원이었는데 얼마 전 파산신청을 하려고 계산해보니 1억원이 됐다. 그동안 파산할 돈이 없어 파산도 못하고 있었다.”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책과 파산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무더위와 함께 시작되는 땀.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땀 때문에 고민, 땀이 부르는 각종 피부병과 냄새 때문에 한 번 더 고민. 땀은 왜 생기는 것인지, 피부에 독이 되는지 약이 되는지, 어떻게 하면 냄새를 없앨 수 있는지, 땀과 관련된 다양한 고민들. 시원하게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30분 다큐(KBS2 오후 8시30분) 대학 진학을 미루거나 대학을 그만두고 ‘알바’로 살아가는 젊은이가 많아지고 있고, 십년 넘게 일했던 회사에서 가뿐히 정리되고 파트타임을 구하는 중장년층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소위 ‘알바의 고수들’ 그들에게는 분명한 알바철칙, 알바철학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바의 고수들을 만나본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준수를 집으로 초대해 닭백숙을 해주며 사위라도 된 듯 오버하는 용여와 선경.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됐다며 배 아파하던 희정은 최은경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한편 댄스 페스티벌에 나가게 된 준수와 친구들. 은경은 무대 위에서 멋진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준수가 멋있어 보이는데…. ●태양을 삼켜라(SBS 오후 9시55분) 정우는 장 회장이 골치 아픈 일이 있다며 사람 목숨을 운운하자 놀란다. 수현은 상미와 밥을 먹다가 태혁을 언제 만난 거냐는 상미의 물음에 졸업연주회 때라는 말과 함께 태혁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도 털어놓는다. 한편 수현은 제주도에 도착했다가 자신을 기다리는 정우를 만나게 된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하룻밤에도 수차례 잠에서 깨는 9개월 민기. 엄마는 잠이 든 민기의 눈치를 살피다 품에서 내려놓는다. 그런데 바닥에 눕히기가 무섭게 민기의 울음보가 터진다. 도대체 민기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함께 영유아 아이들의 수면습관에 대해 알아본다. ●YTN 초대석(YTN 낮 12시35분)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에 돈을 버는 재테크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 100세 시대에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해 자산관리를 하는 것이다. 조기 은퇴가 많아진 요즘 미래에셋 강창희 고문과 함께 재테크 열풍에 대한 생각과 노후를 보람 있게 사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 원색으로 담아낸 ‘비극의 한국사’ 그리고 신화

    원색으로 담아낸 ‘비극의 한국사’ 그리고 신화

    “한달 전인가요,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이 방계 족보에 잘못 올라간 자신들의 족보를 변경해 달라고 소송해 승소했어요.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이 1456년에 일어났으니 이미 550여년 지난 일이죠. 이번 소송의 결과는 왕위를 둘러싸고 삼촌이 조카를 죽인 세조와 단종의 비극은 21세기 지금도 진행 중인 일이라고 봐야겠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작가’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서용선(58) 작가는 ‘왜 단종과 사육신의 비극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사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기억을 통해서, 또는 구체적인 오늘날의 현상을 통해 연장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박팽년의 아내는 세조에게 출산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세조는 딸을 낳을 경우에만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고, 박의 아내는 아들을 낳자 종의 자식과 바꿔치기를 해 그 아들을 살렸다. 이름을 숨기고 살던 박팽년의 자손은 조선 숙종 때 단종이 복권되자 함께 복권되면서 박씨 족보에도 이름을 올리는데,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뿌리를 잘못 찾아 갔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오태석의 연극 ‘태(胎)’는 이런 역사의 비극을 그렸다. ●단종과 사육신 연작, 6·25연작 등 그려 서 작가는 국내 서양화단에서는 드물게 ‘역사화’에 관심을 가지고 1986년부터 단종과 사육신 연작을 그리고 있다. 6· 25전쟁과 관련한 연작이나, 단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한국인의 조상에 대해 그린 신화 시리즈 ‘마고성 사람들’ 그림 등도 역사화의 한 연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서 작가는 “서양 명화라는 것이 수천년 동안 사회와 인간 사이의 갈등과 투쟁, 역사· 신화· 문학 속 인간들에 대한 끈끈한 관심 등을 시각화했는데, 우리를 포함해 동양은 수천년 동안 관념 속의 맑고 아름다운 풍경만을 그렸다.”면서 “이런 자각이 역사화나 신화를 그리도록 했고, 특히 신화의 경우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정신을 고양시키기에 자꾸 그리게 된다.”고 말했다. 역사화나 신화를 그리는 배경으로 그는 뒤늦은 자아의식의 발견을 든다. 그는 가세가 기울자 방황하며 수 차례의 대입에 실패해 군대를 다녀온 후 남들보다 5년 정도 늦은 1975년에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을 했다. 서 작가는 “내 나이 25~26살 때인데, 창조적 상상력 하나 없이 그 얼굴이 어떤 역사와 배경이 있는지도 모른 석고 데생으로 입시를 치른 것을 생각하면 창피하다. 어떻게 작가가 됐는지 모를 정도다.”고 이야기한다. 반백이 된 지금이야 슬그머니 웃음을 머금고 과거를 토로하지만, 30~40대에는 치열하게 고뇌했을 것만 같다. 서 작가는 색채 사용도 그 나이 또래의 서양화가들과 다르다. ‘한국의 마티스’란 별명을 얻은 박생광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는 “원색에 대한 본능을 의식적으로 꺼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고 말한다. 탱화나 불화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 냈던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 미술과 문화는 색채를 억제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먹의 농담을 활용한 수묵화가 크게 발달했다는 것. 그는 500년 이상 억제된 색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잠재의식 속에서 색채감각을 꺼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원색을 사용한다. 때론 그림에서 색들이 조화롭지 않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촌스러움을 즐긴단다. 그림의 크기도 개인들이 소장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 그 이유는 이렇다. 그는 ‘도시인’ 연작 시리즈를 위해 서울이나 베이징을 왔다갔다 한다. 그는 베이징에서 20대 중반의 젊은 작가들이 실평수 100평(330㎡)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작업하는 걸 보고, 의식적으로 크게 그려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을 보면서 서 작가는 어린 시절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을 읽으며, 잃어 버린 영토에 대해 분함을 느꼈을 때와 비슷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자꾸만 축소지향적이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9월20일까지 전시… 작품의 크기·색채 등 끊임없는 도전 주제의식, 색채와 크기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정신 등이 그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이유로 보인다. 작품 감상의 포인트겠다. 지난해 서울대 미대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있는 그는 틈이 나면 강원도 영월을 방문한다. 단종릉인 장릉, 유배됐던 청령포, 나중에 시신이 버려졌던 서강 등을 돌아본다. 또 투기된 단종의 시신을 차가운 물속에서 수습한 영월호장 엄흥도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1986년 서강에서 단종의 이야기와 강물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함을 느꼈다는 그는, 파란 강물에서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의 비극과 인생의 비애를 함께 보았으리라. 그가 청년의 심정으로 느낀 감정들이 2009년 초대형 회화 50여점과 조각 10여점, 드로잉 120여점으로 시각화됐다. 전시는 9월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선정· 전시하는 ‘올해의 작가’는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서 크게 기여했거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는 작가들로, 전수천(1995), 김호석(1999), 노상균· 이영배(2000), 전광영· 권옥연(2001), 이종구· 서세옥(2005), 정현(2006), 정연두(2007)씨 등이 선정됐다. 관람료 3000원. (02)2188-600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글로벌 시대] 외국어 단상/조환복 주멕시코 대사

    [글로벌 시대] 외국어 단상/조환복 주멕시코 대사

    어느 날 대사관 행정원이 취미를 묻기에 사전에서 외국어 단어 찾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지난 외교관 생활 30여년간 영어 사용국은 물론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여러 언어권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다 보니 책장에는 다른 책보다도 각종 외국어별로 사전, 문법책, 숙어집, 회화집 등이 즐비하다. 외교부 생활을 외국어 단어를 찾으면서 시작했는데 지금도 매일 사전을 뒤적이고 있다. 아마도 외교부를 그만두는 날까지 단어를 찾아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때 묻은 사전들을 넘겨보면서 단어 하나하나 찾던 그 옛날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7개 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취미로 하는 선배가 있다. 이들 언어를 모두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가사에 나온 단어의 의미는 이해하며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선배는 7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정통하다. 나의 경우도 여러 나라의 문화를 그 나라 언어를 통해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부하게 하는지를 깨달으면서 그 지루하던 단어 찾는 일이 즐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외출시 자연스럽게 단어장을 갖고 다니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적고 찾아 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과거 중남미 역사를 영문 번역서를 통해 읽은 후 스페인어 원본을 통독하고 나니 느낌이 아주 달랐다. 영어 문장을 통해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스페인어 각 단어 단어를 통해 추가로 느껴지는 감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현재와 같은 세계화 시대에서 외국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것이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이해되고 공유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이 세계시장에 진출함에 있어서도 시장 조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문화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된다.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사업이 실패하거나 불필요한 수업료를 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외국어는 문화에 대한 이해의 첩경이다. 지난 산업화 시대에 우리의 무역 역군들은 잘 준비되지 않은 외국어로 전 세계 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우리가 당시 외국어를 조금 더 유창하게 구사하며 폭넓게 대화할 수 있었더라면 각종 교섭을 더 스마트하게 하고 상품 값도 조금 더 올려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외국어에 쏟는 시간, 경비, 정성 그리고 이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이러한 외국어 광풍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보이고 있지만 그만큼 외국어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각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세대만 지나면 외국어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불편함과 왜소함도 많이 해소될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진취적인 기상과 상당히 준비된 외국어 구사 능력을 보면 우리 세대처럼 외국어에 주눅이 들어 살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이들이 활동할 세상에는 중국어가 영어 못지않게 중요하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 근무할 때 어느 러시아 대학생이 한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서양 사람들이 중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영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서양 사람들은 초서체로 쓴 한문 문장을 보면서 추상화를 연상한다고 한다. 그만큼 라틴계 언어와 중국어 언어구조가 근본적으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내 한국 유학생이 전체 외국 유학생의 4분의1이며 전 세계에서 중국어 어학 검정시험에 응시한 모든 외국인 중 한국인이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전 세계에서 한국에 제일 먼저 설립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만큼 본격적인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여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만큼 앞서 준비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앞으로 우리 젊은 세대가 영어와 중국어로 무장하고 당당히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미리 그려본다. 조환복 주멕시코 대사
  • [유통플러스]

    ●대상 청정원이 한 달 동안 7777개의 행운 팡팡 이벤트를 진행한다. 맛선생 구매고객 7077명에게 맛선생 정품·워터파크 상품권·알뜰세트를 증정하고, 온라인 게임 응모자 700명에게 맛선생 오색자연을 증정한다. ●배스킨라빈스가 ‘북극곰’을 테마로 민트맛과 바닐라맛을 섞은 아이스크림 신제품 북극곰 폴라베어를 선보였다. 민트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섞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색상과 디자인면에서 시원함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G마켓은 코피온과 함께 오는 22일까지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외봉사단 10기 참가 신청을 받는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9월7일부터 11박12일 일정으로 자원봉사·교육봉사·문화교류 등 활동을 펼친다. 비용은 G마켓이 지원한다. ●일동후디스가 2009 출산 장려 캠페인을 편다. 지난 1일부터 2010년 6월30일까지 둘째 아기 이상을 출산한 가정에 일동후디스 분유 및 이유식 등 제품을 15~20% 할인된 가격에 제공한다. 서울·충남·경북·강원·광주·인천에서 다자녀 혜택카드를 발급받은 회원이 일동후디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도브의 보디워시 브랜드 고 후레쉬가 콘서트형 뮤지컬 펌프보이즈 초대권 증정 행사를 연다. 오는 19일까지 도브 홈페이지에서 응모하면 10명을 선정해 초대권을 2장씩 준다. ●샘표가 흑초음료 샘표 백년동안을 새롭게 출시했다. 100% 통알곡 생현미를 일본 가고시마현의 3단계 자연발효공법으로 만들었다. 흑초에 1~3배의 물을 섞어 마시거나 우유·두유·요구르트 등에 섞어 음료 대용으로 하루 3차례 이상 꾸준히 마시면 좋다고 한다. 500㎖ 5610~6070원. ●스타벅스가 커피 젤리를 담은 커피 음료 3종을 출시했다. 아라비카 원두로 만든 젤리는 씹을수록 원두의 깊은 풍미를 느끼게 한다. 톨 사이즈 기준으로 4300~5800원. ●매일유업이 지방 함유량 0%에 칼슘을 넣은 매일우유 무지방&칼슘을 출시했다. 싱거운 맛을 극복하고, 일반 우유보다 칼슘과 식이섬유의 양을 2배로 늘렸다. 930㎖ 2400원. ●피죤이 중국 톈진 이마트 시대오성점에서 액체세제 액츠 입점 축하행사를 열었다. 액츠 모델인 탤런트 김정은이 사인회를 갖고 중국에 액츠를 홍보했다. 액츠는 베이징 까르푸와 이마트에도 입점할 계획이다.
  • 연출·연기 직접하며 이방인 설움 훌훌~

    연출·연기 직접하며 이방인 설움 훌훌~

    지난 6일 오전 서울 구로아트밸리 소강당. 여성 10여명이 아이처럼 이리저리 오가며 소리쳤다. 신나게 게임을 즐기는가 싶더니 어느새 서너명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들은 최근 수년간 한국으로 이주해온 외국인 여성들. 20, 30대의 가정주부들로 낯선 한국에서 겪어온 마음의 상처를 눈물로 털어냈다. 중국출신 이수화(36)씨는 “낯선 곳에 처음 와 남편과 시장을 나갔다가 언어 때문에 큰 불편을 겪었다.”면서 “이후 두달 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주변에 머물며 언제나 이방인 취급을 받아왔던 이주여성들이 작은 반란을 꿈꾼다. 연극공연을 통해 각박한 한국생활의 상처를 털어내고 삶의 모습을 스스로 바꾸겠다는 다짐이다. ●올해 2회째… 12일 구로아트밸리서 구로구와 구로문화재단, 극단 마실은 이주여성을 위한 연극 ‘내마음에 물주기’를 12일 오후 6시 구로아트밸리 소강당 무대에 올린다. 이주여성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으며 연기까지 하는 일종의 역할극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연극의 배역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주여성 8명이 나눠 맡았다. 한국인 주부 서너명도 자원봉사 차원에서 동참했다. 연극 내마음에 물주기의 부제는 ‘까오싱위의 비밀상자’. 2년 전 중국에서 시집온 까오싱위가 한국에서 살아가며 겪는 팍팍한 삶을 다뤘다. 까오싱위는 남편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고민하면서도 회사에 취직해 삶을 꾸리려는 진취적 여성이다. 그녀의 비밀상자에는 눈물 어린 어머니의 약값, 자전거 여행의 추억, 고향의 울창한 숲 등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연극에 참여한 한 여성은 명절 때 만두 속에 동전을 넣어먹는 중국 풍속을 얘기하다 “가족들이 부르는 것 같다.”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중국인 귀화여성의 얘기를 다룬 만큼 올해 연극은 모두 중국 출신 여성들로 채워졌다. 지난해 말 다른 주제로 올려진 첫 공연에는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여성들이 참여했다. ●마음의 상처 치유해 주인공을 맡은 이영월(33·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는 “어학교실에 다니다 극단측이 연극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권유해 함께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5년 전 중국 톈진에서 회사 친구 소개로 만난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이주해 왔다. 그녀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돈 많이 벌었냐.’고 냉소적으로 바라볼 때 가끔 속이 상한다.”며 “5살된 딸 아이는 한국어가 다소 서툴지만 잘 적응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진행되는 연극연습을 거르지 않아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애초 함께 시작했던 이주여성 중 일부는 남편과 시댁 등의 반대 등으로 꿈을 접어야했다. 이들 이주여성들은 공연 당일에도 마지막 연습을 위해 구슬땀을 쏟는다. 공연은 오후 6시부터 한시간 가량 진행된다. 연극을 기획한 손혜정(35) 극단 마실 대표는 “공부방 봉사를 해오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접하면서 이주여성을 위한 연극을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내용들은 모두 이주여성들이 직접 겪은 얘기”라고 소개했다. 또 “어떤 분은 귀가 잘 안들려 병원에 갔다가 마음의 병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연극을 통해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김정권·서갑원의원 “박연차 돈인지 몰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무더기 기소된 정·관계 인사들의 공판이 시작됐다. 혐의를 시인하는 피고인은 일부뿐이고 대부분 금품을 받은 적이 없거나 몰랐다고 주장,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규진)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과 서갑원 민주당 의원은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모두진술에서 김 의원이 지난해 3월 차명으로 박 전 회장의 후원금 2000만원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2006년 5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차명으로 1000만원을 후원받았고, 정산CC와 뉴욕 맨해튼 한인식당에서 각각 5000만원과 2만달러를 건네받은 혐의로 기소됐다.이들은 모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후원금이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지, 박 전 회장의 돈이라거나 박 전 회장이 이를 지시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서 의원은 또 “정산CC에서 박 전 회장과 골프를 치기는 했지만 돈은 받은 적 없고, 맨해튼에 있는 한인 식당 한 곳을 간 적은 있지만 박 전 회장의 지인이 운영하는 곳인지 모르는 데다 돈은 받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2006년 4월 아들을 통해 2억원을 받고, 같은해 7월 부산 해운대 P호텔에서 1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박관용 전 국회의장 역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 전 의장은 “2006년 4월은 이미 의장직을 그만두고 정계를 은퇴한 뒤로 생활비로 쓰라고 해서 받은 것이고, 실제로 당시 몸담고 있던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에 대부분 익명 기부했다.”면서 “호텔에서 박 전 회장과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돈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하지만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혐의를 모두 시인, 이날 변론을 종결했다. 검찰은 2004년 10월과 2006년 1월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박 전 회장에게서 2차례에 걸쳐 10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김 전 의장을 기소했다. 김 전 의장은 이에 대해 “처음 받은 5만달러는 김덕배 전 비서실장이 일부를 쓰고 나서 귀국한 뒤 보고하기에 보관하고 있으라고 했고, 두번째 5만달러는 받은 적도 보고받은 바도 없다.”면서도 “하지만 친자식과 같은 김 전 실장이 이미 시인을 해 법정에서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고, 입법부 수장으로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니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김 전 의장에 대해 징역 1년에 추징금 1억 575만원을 구형했다.함께 기소된 이택순 전 경찰청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에 대한 첫 공판은 3일 열린다. 김종로 검사, 이상철 서울시 정무부시장, 박진 한나라당 의원, 최철국 민주당 의원의 첫 공판도 8~9일 사이 진행된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미스·태평양화학」윤정옥양-5분데이트(201)

    「미스·태평양화학」윤정옥양-5분데이트(201)

    시원스런 눈과 오똑한 코, 씩씩한 성품으로 태평양화학에서 귀여움과 신임을 함박 모으고 있는 윤정옥양(20)이다. 취직한 지 꼭 반년됐는데 미용과에서「메이크·업」을 맡고 있다. 『매일 3군데씩 출장 나가요. 직장내의 OL이나 여대생들에게 간단한 미용상식을 알려주고「메이크·업」을 해보이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어요』 적성에 맞는 직장생활이라 만족하고 있다는 행복한 아가씨다. 중대부속여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영화구경보다는 축구경기에 몇배 매력을 느낀다. 좋아서다. 취미도 수영과「스케이팅」. 그렇지만 가끔씩 퇴근 뒤에는 비빔밥 만두 등을 만들어 동생들에게「서비스」할만큼 음식도 썩 잘 만든다. 별명이 뭐냐니까 여태껏 한번도 없었다면서 하나 지어 달라는 애교를 보인다. 『너무 맘에 드는 직장이어서 결혼할 때까지 몇 년 더 다니려고 해요』 결혼 뒤에는 집에서 조용히 공예「디자인」을 공부하려는 생각. 윤세씨(50·상업)의 4남4녀중 넷째딸.『부모님은 의사와 같은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과 혼인시키겠다고 하시지만…』 사람의 폭이 넓고 사회생활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면 어느 직업이건 가리지 않겠다는 윤양의 말. 보라색을 무척 좋아하는데 혈액형은 B형. 167cm의 키. <媛> [선데이서울 72년 9월 10일호 제5권 37호 통권 제 205호]
  • ‘키 51cm’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남자

    네팔 카투만두에 사는 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남자’ 부문 세계기록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7세의 칸젠드라 마가르는 키 51㎝·몸무게 4.5㎏으로, 현재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라 있는 중국의 허핑핑(72㎝·20세)보다 21㎝나 작아 공식 인증이 유력시 된다. 600g의 작은 몸으로 태어난 그는 주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상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네팔의 의사들은 마가르가 뇌하수체의 발달이상으로 일반보다 작은 키를 가지게 됐다고 추측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마음에 걸려 외출을 할 수도 없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세계기록을 가질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아이가 댄스 동호회에 가입해 순회공연을 다녀온 이후로 네팔을 넘어 인도에서까지 유명인사가 됐다.”면서 “그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남자’의 후보가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 덕분”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비록 학습장애 때문에 최근에서야 학교에 입학해 읽고 쓰는 법을 익히는 중이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그의 꿈은 ‘월드 스타’다. 마가르는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춤 솜씨를 보이는 것이 꿈”이라며 “만약 내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남자’가 된다면 미국 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령미달로 아직 세계 기록에 오르지 못한 마가르는 등재 신청이 가능한 18세가 되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남자’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30] NG족… 장미족… 토폐인… 이퇴백… 불황이 낳은 슬픈 젊음이여

    [2030] NG족… 장미족… 토폐인… 이퇴백… 불황이 낳은 슬픈 젊음이여

    2000년대 초 청년 실업난이 심화되면서 2030은 서글픈 별명을 갖게 됐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과 한 달 월급 88만원을 받는 비정규직인 ‘88만원 세대’가 대표적이다. 이후 취업난과 관련된 유행어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온다. 불황이 빚어낸 취업 유행어와 그에 얽힌 사연을 모아 봤다. ●이름만 아름다운 장미족 누구나 부러워하는 ‘스펙’(학점, 토익 등 취업 준비요건을 이르는 말)의 소유자 강모(27·여)씨는 스스로를 ‘장미족’이라고 부른다. 우아한 이름과 달리 장미족은 ‘장기미취업 졸업생’이라는 우울한 뜻을 담고 있다. 강씨는 명문 사립대에서 영문학과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 2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다녀왔고 6개월간 중국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토익 점수 960점에 각종 사회단체 봉사 활동 이력도 화려하다. 광고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전력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초 졸업한 강씨는 아직까지 첫 직장도 구하지 못했다. 장기백수 신세다. 홍보전문가가 꿈인 강씨는 줄기차게 기업체 홍보실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그러나 뚜렷한 이유 없이 최종 면접에서 2~3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하반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채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자 강씨 역시 다른 백수들처럼 우울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올해 초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지만 졸업한 지 1년이 지났기 때문인지 서류전형 통과도 어려운 신세가 됐다. 강씨는 “행정인턴 자리는 단기 비정규직이라 애초부터 지원할 생각을 안 했다.”면서 “상반기 공채 시즌이 끝난 지금에 와서야 ‘행인(행정인턴의 준말) 모집에라도 기웃거려 볼 걸’ 하는 후회가 밀려 든다.”며 우울해했다. 그는 “내년에 대학원 입시도 생각하고 있지만 석사학위가 취업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망설여진다.”고 털어놨다. 대학졸업 후 3년째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윤모(28·여)씨도 장미족에 속한다. 대학 4학년 때는 몇몇 기업 공채에서 최종합격하기도 했던 윤씨였지만 자신이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입사를 포기했다. 그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높은 콧대가 문제였다.”며 후회했다. 시간이 갈수록 최종면접은커녕 1차 서류심사마저 줄줄이 떨어지는 형편이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처지다. 장미족 윤씨의 삶에 딴죽을 거는 건 돈뿐만 아니다. 명절 때마다 친척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왜 취업을 못하느냐.”며 비꼰다. “취직이 안 되면 ‘취집’(취업 대신 결혼을 택하는 것)이라도 하라.”며 진지하게 조언하는 어른들도 있다. 윤씨는 2년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 ‘솔로’로 지냈다. 3년째 백수생활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져 친구들이 소개팅을 권유해도 사양해 왔다. ●토익이 뭐길래 대학 졸업 후 1년 넘게 취업 준비 중인 박모(26)씨는 ‘토폐인’(토익 폐인)이다. 졸업 직후부터 거의 매달 토익시험을 보고 있지만 점수가 좀처럼 오르지 않아 고민이다. 입사지원서를 쓸 때도 ‘700점대 초반’인 토익 점수가 가장 마음에 걸린다. 800~900점대 토익점수를 요구하는 회사에는 아예 응시할 수 없을뿐더러 토익성적 제한이 없는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다가 떨어질 때면 낮은 토익 점수 때문에 탈락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생활비도 부족한 마당에 20만원이나 하는 ‘명품’ 토익 강의는 박씨에게 그림의 떡이다. 매달 토익 응시료를 내기 위해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조차 부끄럽다. 취업 시즌이 돌아오자 강씨는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고 ‘토익 정복’에 나서기로 했다.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토익 800점을 넘겨야 한다. 휴대전화의 착·발신을 일시정지한 뒤 고시원에 들어간 강씨는 빨간 매직펜으로 ‘토익 800’이라고 쓴 머리띠를 이마에 두른 채 공부에 매달렸다. 그렇게 한 달간 공부한 뒤 본 토익시험은 확실히 이전과 달랐다. 듣기 문제를 읽어 주는 외국인의 말은 귀에 쏙쏙 박혔고 읽기 문제도 어디서 한번쯤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 있게 답을 적어 내려가던 박씨는 시험을 친 뒤 3주를 초조하게 보냈다. 드디어 성적 발표 날에 강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토익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점수는 800점에서 5점 모자란 795점이었다. 박씨는 “찍은 문제에서 하나만 맞았더라도 목표 점수를 받았을 텐데. 한번 더 도전할 수밖에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3년째 취업 준비 중인 김모(26)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토폐인’이다. 토익 점수에 매달리다 나중에는 강박관념으로까지 발전한 것. 대학 4학년때 김씨가 처음으로 본 토익시험 점수는 400점대였다. 학교 다닐 때 동아리 활동하랴 연애하랴 바빠서 영어공부에 전혀 신경을 못 썼다는 김씨는 “철이 좀 늦게 든 편이어서 대학 졸업반이 돼서야 마음먹고 처음 토익을 봤는데 절반 이상 틀렸다.”며 창피해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다급해진 김씨는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토익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휘와 듣기였다. 매달 시험을 보는데도 점수는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다. 2년쯤 지나자 드디어 800점 고지에 올라섰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해도 800점대 후반에서 맴돌 뿐 900점을 넘긴 적이 없었다. 김씨는 “남들은 봉사활동이다 인턴이다 해서 이력서도 화려한데 나 혼자 토익에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더 우울해서 죽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미 토익에 중독된 김씨는 공부를 중단할 수 없었다.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틈만 나면 단어장을 보고 외웠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전화영어로 원어민과 더듬더듬 대화를 했고, 고시공부하듯 토익책을 팠다. 그러기를 3년째, 두 달 전 김씨는 결국 950점짜리 토익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었다. 김씨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나머지 성적표를 액자에 넣어 방에 걸어 두었다. 그는 “처음에 취업을 위해 토익공부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험대가 됐다.”면서 “이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씨익 웃었다. ●쫓겨나거나 제발로 나오거나 서른을 코앞에 둔 안모(29)씨는 ‘이퇴백’(20대에 퇴직한 백수) 신세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면 한숨만 나온다. 경제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한 안씨는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느라 휴학이 잦았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초 8년 만에 졸업을 했다. 그는 지난 1월 인턴 수십명을 채용한 한 대형은행에 합격할 때까지만 해도 취업난이 남의 얘기인 줄 알았다. 졸업과 동시에 번듯한 직장에 취직했다는 이유로 친구들은 질투 어린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안씨는 인턴기간이 끝나면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상사의 말만 믿고 복사 등 잡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턴 만료기간인 상반기가 끝나가도록 정식채용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상사는 경영상황이 악화돼 불가피하게 예정돼 있던 정규직 전환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면서 안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씨는 “정식채용 하나만 믿고 버텼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면서 “취업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는 데다 하반기에 재취업되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암담해했다. 하루 15시간씩 공부하는 ‘공시족’ 이모(27·여)씨도 한때는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다. 많은 월급은 아니었지만 한 달에 200만원 남짓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이씨의 오랜 꿈인 외교관을 뒤로 제쳐 놓도록 유혹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 전 이씨는 2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외무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곳은 공무원 사회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넓은 시야를 가져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준비기간을 3년으로 잡고, 회사를 다니며 모아둔 돈을 생활비로 쓸 계획도 세워 놨다. 이씨는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해보고 싶은 건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외무고시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신림동 고시원에서 하루 평균 15시간 책을 읽고 학원 강의를 듣는 일상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이씨는 예쁜 옷을 입고 친구를 만나 수다 떨고 남자 친구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등 20대의 ‘특권’을 포기하고 청춘을 저당 잡힌 것 같아 우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힘든 순간은 ‘과연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이씨는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니까 합격이 될지 안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면서 “막막한 앞날만 생각하면 공부도 하기 싫고 안정적인 직장을 왜 박차고 나왔는지 후회가 된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이씨는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는 “평생을 꾸어온 꿈인데 쉽게 이뤄질 리 없다. 힘들게 고생한 만큼 붙고 나면 더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오달란 유대근기자 dallan@seoul.co.kr
  • 엠마 왓슨 “‘해리포터’가 마지막 작품 될 것”

    엠마 왓슨 “‘해리포터’가 마지막 작품 될 것”

    “연기, 이만하면 됐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영국 배우 엠마 왓슨(19)이 연기를 그만 둘 의사를 또 한 번 밝혔다. 왓슨은 미국 매거진 ‘틴 보그’와 한 인터뷰에서 “더 이상 연기를 향한 ‘불타는 열정’이 없다.”면서 “이제 ‘헤르미온느’역도 끝났으니 더 이상 연기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다른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만은 확고하다.”고 전해 팬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그녀는 또 다음 달 개봉을 앞둔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의 프로모션 행사와 흥행부담으로 괴로운 나머지 “내 생애에 이렇게 피곤한 날들은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왓슨이 연기를 그만두려는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에서는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허위 기사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았다. 또 영국 캠브리지 대학과 미국 예일대학의 입학허가서를 받은 뒤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사생활을 지키는 동시에 ‘평범해지고 싶다.’는 왓슨의 꿈은 당분간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7세 연상인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장면이 끊임없이 파파라치의 표적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디자인한 패션브랜드까지 론칭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세계적인 브랜드 버버리의 모델로 발탁됐으며, 유명 매거진을 통해 파격적인 화보를 공개하는 등 팬들의 관심이 끊일 틈이 없다. 한편 엠마 왓슨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선언한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다음 달 개봉한다. 사진=틴 보그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일부러 낙제… 선배찾아 취업노하우 배워

    대학들이 이번 주부터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경기침체 등으로 대학생들의 여름나기는 그야말로 고역이다. 졸업을 앞둔 4학년생들은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인 98년 여름방학을 보낸 학교 선배들의 노하우를 따라하며, 2~3학년생들은 어학연수 대신 교환학생을 선호하고, 신입생들은 배낭여행 대신 도서관과 어학원을 찾는다. 광고기획자(AE)를 꿈꾸는 K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박성진(27)씨는 친구들과 함께 1998~2000년도에 광고대행사에 입사한 95학번 선배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박씨는 “외환위기의 타격을 직접 경험했던 95학번 선배들의 취업 노하우를 듣고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D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채은하(23·여)씨는 8학기째인 올 1학기에 일부러 한 과목을 F학점을 받았다. 채씨는 졸업학점에 단 3학점만을 남겨두고 있다. 기업들이 졸업예정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취업을 못한 채씨 친구 10명 가운데 8명은 채씨처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들도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학사제도를 일부 바꾸고 있다. 연세대는 내년부터 C+ 이하의 성적을 받으면 횟수 제한 없이 재수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C- 이하 성적을 받은 경우만 재수강할 수 있었고 횟수도 4회까지로 제한돼 있었다. 고려대는 성적이 확정된 과목의 수강기록을 지울 수 있는 ‘학점포기제’를 올해부터 확대 운영하고 있다. 성적이 좋지 않은 과목을 최대 6학점까지 성적증명서에서 아예 삭제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 2~3학년생들은 그동안 통과의례처럼 여기던 어학연수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환율이 오르면서 1년에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집에서 받아 떠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학생들의 마음가짐이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열심히 돈을 모아 연수를 떠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교환학생에 눈을 돌리는가 하면 더러는 비정부기구(NGO)의 해외봉사활동 파견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과테말라에서 해외봉사요원으로 일하는 김진욱(24)씨는 “봉사에 대한 보람도 있지만, 취업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3학년생들은 인턴사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턴사원은 4학년들이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피한다. 대형인터넷 포털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한문구(23)씨는 “4학년생은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기업들도 3학년생을 오히려 선호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학 신입생들은 도서관에서 고학년들과 자리전쟁을 벌이고 있다. S대 1학년 정상준(20)씨는 “여름방학 동안 토익 900점을 넘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서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와 꼭 자리를 잡는다.”고 말했다. 박건형 오달란기자 kitsch@seoul.co.kr
  • 은행 인턴들 집으로 U턴

    은행 인턴들 집으로 U턴

    지난해 8월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A은행 인턴으로 근무하던 김모(28·서울 도봉구)씨는 다시 백수 신세가 됐다. 3개월의 인턴 기간이 지난주 끝났기 때문이다. 10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입사해 100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오로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일해왔다. 김씨는 “적은 숫자지만 그나마 정규직에 지원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 “다른 은행들은 정규직 채용 계획조차 불투명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에 따라 올해 상반기에만 2000명이 넘는 인턴사원이 뽑혔지만 시중은행들은 뚜렷한 정규직 채용계획 없이 하반기 인턴 모집에 다시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단기 일자리 위주의 생색내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민·신한·우리 등 8개 시중은행에 채용된 2500여명의 인턴들의 근무기간이 이달 대부분 끝난다. 이들 은행 가운데 정규직으로 일부 전환되는 곳은 우리은행 한 곳 정도다. 나머지 인턴들은 다른 은행의 신입행원 모집을 기다려야 할 처지다. 인턴 근무자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하반기 채용 계획을 밝힌 곳도 우리(250명)·기업(200명)·외환(100명)은행뿐이어서 1학기 졸업생들이 가세하는 하반기 채용시장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시중은행 인사담당 관계자는 “올 상반기 실적 전망도 좋지 않은데다 앞으로 경기 전망도 불확실하다.”면서 “본사에서도 직원들을 지점으로 배치하는 등 인력 운용을 축소하는 분위기여서 하반기에도 신입 행원을 뽑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업무 위주의 인턴 운용도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4월 은행들이 주택청약종합통장 실적 올리기 경쟁에 나서면서 일부 지점에서 인턴들을 상대로 할당량을 정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B은행에서 인턴을 하다 얼마 전 그만두고 취직 준비를 하고 있는 정모(29·경기 의정부시)씨는 “카드 모집 할당이나 서류 위주의 단순 업무도 문제지만 ‘잠시 있다가 그만둘 사람’이라는 차별적인 시선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정씨가 일했던 은행은 3분의1에 가까운 인턴들이 중도에 포기했다. 이런 가운데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에 나서거나 인턴의 대부분을 정규직으로 채용키로 한 곳도 나오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 상반기 인턴채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전 직원이 임금의 6%를 반납해 정규직을 뽑는 중소기업에 대해 월급의 80%를 지원키로 했다. LG그룹도 최근 인턴사원의 80%(550명)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는 “단기 근무로 끝나는 인턴들을 양산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은행원의 임금 반납을 통해 실질적인 일자리 나누기에 앞장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내가 못하는 것도 잘 하도록 격려해 주셨죠”

    “내가 못하는 것도 잘 하도록 격려해 주셨죠”

    “저희 아버지, 최고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사진 왼쪽·53)의 성공 뒤에는 그의 최고의 멘토인 아버지 빌 게이츠 서(오른쪽·83)가 있었다. 두 사람은 현재 275억달러(약 35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자선기구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회장이다. 작년 6월 MS에서 물러난 빌 게이츠와 1998년 시애틀의 유명 법률회사 프레스톤 게이츠&엘리스에서 물러난 아버지. 이젠 부자가 함께 어깨를 겯고 역사상 최대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제2의 인생’을 바치고 있다. CNN머니는 21일(현지시간) 수십년 간 서로 동지애 어린 조언을 나눠온 이 ‘특별한 부자’를 조명했다.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하며 생각 나눠 빌 게이츠는 아버지가 건넨 최고의 조언으로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하도록 격려해 준 일”을 꼽았다. “부모님들은 제가 어렸을 때 밖에 나가서 수영, 축구, 풋볼을 하도록 했어요. 그땐 왜 그러는지 몰랐어요. 부모님은 제가 편한 일만 고집하는 대신, 잘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는 걸 깨닫게 하고 리더십을 키우게 하려는 것이었죠. 정말 환상적인 조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요일 가족 만찬의 중요성과 성탄절에 같은 잠옷을 입는 것 등 가족의 전통을 일구는 데 애썼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가르침을 높이 샀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고 저녁식사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전통은 정말 큰 차이를 만들어 냈어요.” 여느 아버지와 아들처럼 불편한 순간도 있었다. 빌 게이츠 자신도 “내가 키우기 편한 아이는 아니었다.”고 자인했다. 하고 싶은 일은 고집을 세워서라도 기필코 해야 하는 천성 때문이었다. 아들은 특히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겠다던 자신의 결정에 아버지가 흔쾌히 찬성해준 일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고 사정을 알아 보고는 ‘그래, 네가 가서 해볼 만한 일이구나.’하셨죠. 부모님들은 진실로 제 편이셨어요.” 아버지의 믿음은 그가 명문 하버드대를 그만둘 때도 이어졌다. ●자식의 품위 떨어뜨리지 않도록 노력 아버지 게이츠는 화목한 가정을 이뤄온 비결을 귀띔했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서 연 ‘부모교육’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강조한 게 자식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죠. 자녀와의 관계에서 이 말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다면 정말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어요. 나는 내 아들의 열렬한 팬입니다. 아들은 훌륭한 시민인 동시에 탁월한 사업가예요.”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서울·대전고검장 사의…지방국세청장 등 18명 명퇴

    천성관(51·사시 22회)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에 내정됨에 따라 권재진(56·사시 20회) 서울고검장과 김준규(54·사시 21회) 대전고검장이 22일 사의를 표명하는 등 검찰에 인사 후폭풍이 불고 있다. 국세청도 지방청장 등 18명의 간부가 이날 무더기로 명예퇴직(명퇴)을 신청했다. 권 고검장은 “내정자 마음이 편하도록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면서 “결과 발표가 의외였지만 금방 마음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권 고검장은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됐었다. 김 고검장은 “검찰조직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가게 돼 미안하기도 하고 아쉬움도 남지만 새 총장과 후배들이 잘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권·김 고검장의 사의 표명을 시작으로 천 내정자 선배 기수인 사시 21회와 22회 인사들의 사퇴가 잇따를 전망이다. 21회에는 권 고검장 외에 명동성 법무연수원장이, 22회는 김 대전고검장 외에 문성우 대검차장, 문효남 부산고검장, 신상규 광주고검장 등이 있다. 또 천 내정자의 사시 동기인 이준보 대구고검장, 이귀남 법무부 차관, 김종인 서울동부지검장, 김수민 인천지검장 등도 조만간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이날 일선 고검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총장 취임시까지 검찰 본연의 임무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의 국세청장 내정으로 국세청도 이날 “지방청장 2명을 포함해 본청 국장급 간부 3명과 세무서장(서기관급) 등 18명의 간부들이 명퇴서를 냈다.”고 밝혔다. 국장급 고위간부 3명은 서현수 대구지방국세청장, 김광 광주지방국세청장, 김창섭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허병익 차장이 오늘 간부회의에서 이들 세분이 ‘후배들을 위해 용퇴를 결정해 안타깝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명퇴를 신청한 일선 세무서장들은 대부분 1950년생과 1951년생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그러나 “이번 명퇴는 원래 이달 말로 예정돼 있던 절차”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신임청장 시대를 맞아 인적 쇄신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추가 명퇴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안미현 오이석기자 hyun@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50분) 낯선 이들에게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는 김명익씨의 집은 손님이 끊길 새가 없다. 길 가다 멈춰 선 모든 사람이 인연. 그들에게 차(茶)와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김명익씨의 사람 만나는 방법이다. 팍팍한 세상 속에서 차를 통해,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진심을 소통하려는 김명익씨를 만나본다.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세계에너지협회 부회장 김영훈씨를 초대해 몽골 사막에 건립한 신재생에너지 초원에 대해 들어본다. 자연 에너지를 이용한 몽골 초원의 경제적 효과와 그로 인한 몽골주민들의 생활 변화, 몽골 정부에서 주는 최고훈장을 받은 얘기를 비롯, 미래에너지인 신재생에너지의 정의와 보급률 등을 알아본다.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많은 아이들이 구순구개열 및 안면기형 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지만 의료시설과 의료기술의 낙후로 기본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캄보디아. 서울대치과병원을 주축으로 한 의료진이 캄보디아로 의료봉사 활동을 떠난다.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한 의료진의 7일을 함께한다. ●TV로펌 솔로몬(SBS 오후 8시50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미리. 사장의 무시와 핍박 속에서도 월급 생각에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횡포는 날로 더해가 미리는 결국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한다. 사장은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는 것이니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하는데, 미리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요리비전(EBS 오후 10시40분) 동해의 희망찬 일출처럼 시작되는 것이 바로 오징어잡이.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동해안에서는 오징어잡이가 새롭게 시작된다. 여름이 시작되는 요즘 오징어는 동해안선을 따라 북으로 올라온다는데…. 산길을 오르던 산사나이 정승권을 따라 동해안 길을 타고 이어지는 오징어의 여행에 동행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0분) 지난해 5월12일 강진이 중국 쓰촨성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무려 8만 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곳곳에 폐허가 남아 있는데 베이촨 현도 건물의 대부분이 붕괴돼 생존자들은 임시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인기 관광지였던 이곳에 방문객들이 되돌아 오며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가 또다시 긴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응하여 유엔 안보리가 강력한 제재조치를 포함하는 결의안 1874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이에 맞서 북한이 전쟁도 불사한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유엔 안보리가 금지된 군수 물자를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들을 공해 상에서 검문하기로 한 데 대해 북한이 이를 전쟁행위라고 규정, 강력한 무력 대응을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핵무기 제조에서 새로운 조치들도 취했다. 이미 보유하고 있던 폐연료봉들을 재처리하여 플루토늄 핵폭탄을 만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농축 방법을 통해 우라늄 핵무기도 제조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필자는 이미 지난번 칼럼에서 이러한 북한의 조치들을 예견한 바 있다. 북한이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구실로 본격적 우라늄 핵폭탄 제조의 길을 선택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분석했다. 이는 북한에 핵폭탄이 경제적 보상을 받고 포기하려는 협상용이 아니라 체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인식되고 있음을 뜻한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미 6~7개 정도의 플루토늄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해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려는 계획을 오래 전부터 추진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의도가 명백해진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대응은 미국 등 우방국들과의 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북한에 압력과 설득을 병행하여 한반도의 비핵화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입장이 확인되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용인할 수 없으며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기존의 6자 회담을 재가동하되 북한의 반대로 이것이 불가능한 현실에 비추어 우선 북한을 제외한 5개국들이 모여 문제해결을 논의하자는 취지이다. 또한 북한이 핵무기로 위협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대한 방위공약이 재확인되었다. 북한의 어떠한 군사적 도발에 대해서도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당분간 긴장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도발도 계속될 것이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도 예상할 수 있고 서해 등에서 국지적 군사도발도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공해 상에서 북한의 선박을 검문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사용하고 있는 벼랑 끝 전술이란 게 일단 한번 시작하면 도중에 그만두기가 어렵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탈출계획(exit strategy)이 벼랑 끝 전술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권력승계라는 북한 내부 문제와 연계되어 있어 탈출구를 찾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탈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탈출구는 중국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안정이라는 두 가지 선택에서 후자를 중시해 왔다. 북한의 핵 보유를 막기 위해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여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이 발생하는 것보다는 북한의 핵 보유를 묵시적으로 인정해 주려는 것이 중국의 속내였다. 그러나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안 협의 과정에서 이런 중국의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있음이 감지되었다. 일본을 위시한 한반도 주변의 핵무장 논의를 중국은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핵주권론도 성급하다.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잘못하면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사태 추이를 좀더 지켜보는 냉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정종욱 전 서울대 교수·외교안보 수석
  • 김정일 딸도 스위스 유학

    │도쿄 박홍기특파원│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딸이 1990년대 후반부터 스위스 베른의 공립 초등학교에 유학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북한 정보에 밝은 외교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 16일 보도했다.초등학교에는 재학기록도 남아 있다. 유학 시기는 오빠인 3남 정운과 겹치며, 학교도 정운이 다녔던 공립중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다. 남매는 베른에서 함께 살면서 유학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신문은 김 위원장의 딸 이름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 한국에서는 ‘영순(英順)’이라는 설도 있으며,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자신의 저서에서 ‘여정’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예정은 차남 정철, 정운과 같이 고영희(2004년 6월 사망)씨가 생모이며, 1987년에 태어났다는 사실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후지모토는 김 위원장의 딸이 9월26일에 태어났다고 책에서 밝혔다.학교 재적기록을 보면 예정은 ‘정순’이란 이름으로 초등학교에 다닌 데다 1988년 1월1일 태어난 것으로 적혀 있다. 북한대사관이 입학 수속을 했고, 문씨라는 여성이 통역을 했다. 예정은 1996년 4월23일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 보충학습반에 들어간 뒤 1997년 8월부터 초등학교 3학년반으로 옮겼다.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2000년 7월까지 기록이 남아 있지만 학교를 그만둔 날짜는 비어있었다. 예정은 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인 2000년 말쯤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했다는 게 외교 소식통의 말이다. 초등학교의 교사에 따르면 예정은 ‘북한 외교관의 딸’이라면서 학교에 다녔다. 등하굣길에는 모친이 아닌 여러명의 여성이 교대로 동행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주변에서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가는 등 보통 학생과 다른 취급을 받았다. 이 교사는 “과보호라고 생각했다.”고도 말했다.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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