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만두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082
  • ‘스타골든벨’ 전현무 아나 하차 ‘왜?’

    ‘스타골든벨’ 전현무 아나 하차 ‘왜?’

    ‘스타골든벨’ 진행을 맡았던 탤런트 이채영과 전현무 아나운서가 하차했다. 전현무는 8일 방송된 KBS 2TV ‘스타골든벨’에서 “아쉽지만 오늘을 끝으로 인사드려야하겠다.”고 하차 사실을 밝히며 “천정명이 맡은 프로그램마다 조기종영을 하는데 그의 영향을 받아서 나도 방송을 그만두는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날 방송의 끝 무렵 전현무는 “내게 너무 많은 도움을 준 ‘스타골든벨’ 고마웠다.”며 “나만의 밉상 짓 이제 어느 곳에 가서 하죠?”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채영 역시 ‘스타골드벨’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그녀는 “‘스타골든벨’은 내 고향이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포근했고 행복했다. 잊지 못할 프로그램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스타골든벨’은 오는 10일부터 단행되는 2010 KBS 봄 개편을 맞아 새롭게 출발한다. 오는 15일 첫 방송될 ‘스타골든벨2’는 기존 MC 지석진과 함게 정다은 아나운서, 신정환이 진행을 맡았으며 엠블랙 이준, 이승연, 천명훈 등이 출연한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율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펜 터치로 등반 의미 그려

    요즘은 등산도 생중계하는 시대다. 얼마전 오은선 대장이 안나푸르나에 오르던 때가 그랬다. 세계 여성 산악인 가운데 처음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 과정이 머나먼 한국까지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오 대장과, 정상까지 그를 따라갔던 정하영 KBS 촬영감독이 흘린 땀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호들갑스러운 중계가 마음에 걸렸다.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경외심을 갖고 엄숙해야 한다고 하면 고리타분한 생각일까. 그래서인지 분명히 생중계였지만, 안나푸르나는 그저 TV 속에 머무르는 것 같았다. 왜 산에 오르는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가 말한 것처럼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산에 오르는 의미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산악 만화 ‘신들의 봉우리’(홍구희 옮김, 애니북스 펴냄)가 전5권으로 완간됐다. ‘음양사’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유메마쿠라 바쿠가 1997년 원작을 썼고,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2000~2003년 그림으로 옮겨 연재했다. 2001년 일본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만화부문 최우수상과 2005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최우수작화상을 받았다. ‘신들의 봉우리’는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근처에서 실종된 뒤 1999년 정상 아래 200m 지점에서 시신이 발견된 맬러리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그가 뉴질랜드의 에드문드 힐러리보다 29년 먼저 사상 처음으로 정상을 밟았는지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비밀을 풀어줄 열쇠는 맬러리가 갖고 갔던 코닥 카메라. 오랜 세월이 흘러 네팔 카트만두에 나타난 이 카메라를 통해 산사나이 두 명의 운명이 뜨겁게 얽힌다. 산을 오르는 ‘한 마리의 짐승’ 하부 조지와 그를 쫓는 사진작가 후카마치 마코토다. 만화는 미스터리를 다루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두 사내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무산소 등정 도전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거친 숨소리와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책에서 튀어나온다. 8000m급 명산들의 웅장함과 고도감이 세밀한 펜터치로 되살아난다. 전문 산악인들도 감탄할 정도로 등반 과정의 긴박감과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서의 인간 심리, 자연의 위대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정상에 선 후카마치가 독백을 쏟아낸다. ‘무엇인가 몸속에서 기어 올라온다./중략/굵직한 무언가가 등을 빠져나가 머리 끝으로 내달렸다. 나는 지구를 밟았다…왜 산에 오르는가? 그런 물음도, 그에 대한 답도 티끌처럼 사라지고 창공으로 몸과 의식이 치닫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오바마 행동대장’ 오베이 은퇴

    ‘오바마 행동대장’ 오베이 은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 입안에 앞장서 온 까닭에 공화당 진영으로부터 대표적인 낙선운동 대상으로 꼽혀온 정치거물 데이비드 오베이(71·위슨콘신) 하원 세출위원장이 5일(현지시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1969년 보궐선거를 통해 연방 하원에 진출한 이후 21차례 연임에 성공, 하원 의원 가운데 네 번째로 의정 활동 기간이 길다. 오베이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솔직히 내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새 출발을 위해 새로운 인물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다. 나도 새 장을 열 준비가 됐다. 올해를 끝으로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오베이 의원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검사 출신인 공화당의 션 더피(38) 후보에게 뒤지면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그러나 “난 20차례 이상 선거에서 이겨 봤다. 내가 한 번 더 이길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냐.”면서 “내 평생 싸움에서 물러서 본 적이 없다.”고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의 패배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은퇴가 아님을 강조했다. 공화당 연방하원의원 위원회(NRCC)의 켄 스페인 대변인은 “오베이가 인생 최대의 시합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의 실패한 경기부양책 설계자가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베이 의원의 선택은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이 “지난 2월 76세를 앞둔 두 명의 동료 의원이 사망한 것이 오베이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는 등 당 지도부는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자격정지 3년 선수생명 위기…‘쇼트트랙 파문’ 중징계

    자격정지 3년 선수생명 위기…‘쇼트트랙 파문’ 중징계

    쇼트트랙 담합 파문에 휘말린 밴쿠버 동계올림픽 2관왕 이정수(단국대)와 계주 은메달리스트 곽윤기(연세대)가 대한빙상경기연맹 상벌위원회로부터 자격정지 3년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정수 측 관계자는 5일 “전날 오후 빙상연맹으로부터 곽윤기와 이정수 모두 자격정지 3년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실상 선수를 그만두라는 얘기와 같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빙상연맹으로 구성된 공동조사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쇼트트랙 파문’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정수와 곽윤기에게 ‘자격정지 1년 이상’을 권고했다. 29일 열린 빙상연맹 상벌위는 당시 권고안보다 강력한 ‘자격정지 3년’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이번 징계로 이정수와 곽윤기는 앞으로 3년 동안 국내외 대회에 나설 수 없어 사실상 선수생명이 끝날 위기를 맞았다. 쇼트트랙의 한 관계자는 “상벌위에 참석한 이정수와 곽윤기가 해명하는 자리에서 반성하기보다 책임을 떠넘기듯 한 인상을 줘 징계 수위를 더 높이는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이정수와 곽윤기 측은 억울하다며 이의신청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에 이의가 있으면 7일 이내에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고, 빙상연맹은 30일 이내에 재심사해 연맹 이사회를 통해 징계를 확정한다. 재심사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면 대한체육회에 이의신청할 수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오은선 14좌 완등” AP 인정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처음으로 완등한 한국의 여성이 무사히 돌아왔다.” AP통신은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3일(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한 소식을 활짝 웃는 사진과 함께 ‘가장 높은 정상에 올라갔다 안전하게 돌아온 첫 번째 여성(1st woman to climb tallest peaks returns safely)’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AP는 오 대장이 지난달 27일 히말라야 8000m 이상 14봉의 마지막인 안나푸르나에 오르며 1997년 가셔브롬 Ⅱ봉에서 시작한 14좌 등정을 모두 마쳤다고 보도했다. 오 대장은 AP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너무 힘들었다.”면서 “3~4년 정도 등산을 쉬면서 휴식을 취한 뒤 앞으로 할 일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AP통신은 또 스페인원정대 구조 논란과 관련해 “우리 팀은 오후 3시에 정상에 도달했고, 스페인 원정대는 오후 4시에 올라갔다. 캠프4로 돌아왔을 때 완전히 탈진했다.”는 오 대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특히 오 대장은 “우리는 정말 구조하고 싶었지만, 나와 셰르파는 슬로프를 다시 타고 그들을 구조할 상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AP는 14좌 완등 경쟁자였던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이 최근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14좌 완등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지만 네팔 정부와 네팔등산협회도 오 대장의 기록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AFP통신은 오 대장이 완등한 것보다 칸첸중가 의혹을 반박했다는 내용에 더 비중을 두고 보도했다. 오 대장은 “칸첸중가 정상에 오른 것을 KBS가 찍은 비디오가 있다.”며 “파사반은 셰르파 몇 명이 ‘내가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역공했다. 그동안 파사반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했던 AFP는 히말라야 고봉 등정의 최고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가 오 대장과 면담한 뒤 “오 대장과 파사반의 말이 완전히 달라 누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마지막까지 토를 다는 보도를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우지원 은퇴 발표

    ‘황태자’ 우지원(37·모비스)도 코트를 떠난다. 모비스는 3일 우지원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우지원은 “선수생활 연장과 은퇴의 기로에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올 시즌 주장으로서 팀을 통합챔피언에 올려놓는 등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판단해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우지원은 선수생활은 그만두지만, 모비스에 계속 남아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게 된다. 우지원은 “유학도 생각해 봤지만 유재학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는 게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재학 시절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농구대잔치 스타로 군림했던 우지원은 프로에 입문한 뒤에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프로원년인 1997년 대우에서 프로생활을 시작, 군복무 시기인 1998~99시즌을 제외하고 13시즌 동안 573경기에 출전, 경기당 평균 12.8점, 2.5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모비스는 우지원의 공로를 인정해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시키기로 했으며, 2010~11시즌 개막전에 앞서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을 갖기로 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오은선 만난 홀리 “14좌 완등 축하”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오른쪽·44·블랙야크) 대장이 3일(한국시간) 오후 엘리자베스 홀리(86·미국) 여사와 면담하고 14좌 완등에 대한 인증을 받았다. 이날 네팔 포카라에서 수도 카트만두로 이동한 오 대장은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 관한 기록을 50년 동안 집계해온 최고의 권위자인 홀리 여사와 한 시간가량 면담했다. 홀리 여사는 오 대장에게 우선 이번에 오른 안나푸르나 등정에 관해 질문하고, 14좌 완등 경쟁을 벌이던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이 최근 제기한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에 대해서도 캐물었다. 오 대장은 파사반의 의혹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자 홀리 여사는 오 대장에게 “14좌 완등을 끝냈느냐.”고 마지막으로 물었고 오 대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홀리 여사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환하게 웃어 오 대장이 여성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오 대장과 인터뷰가 끝난 후 연합뉴스와 만난 홀리 여사는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에 대해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사이트에 ‘논란 중’이라고 표기한 이유를 묻자 “스페인 팀에서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에 의혹을 기록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오 대장이 14좌 완등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홀리 여사는 “나는 언제까지나 기록자일 뿐 판단자가 아니다.”며 “지금은 내가 작성하는 등정 리스트에 ‘논란 중’이라고 기록돼 있지만 스페인팀이 의혹을 철회하면 언제든 등정으로 고쳐질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논란 중이라는 말을) 삭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홀리 여사는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등반대를 인터뷰하고 등반 기록을 50년 동안 차곡차곡 정리해 오면서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히말라야 최고 권위자가 됐다. 히말라야 고봉 등정을 공인해 주는 기관이 사실상 없는 현실에서 홀리 여사가 오 대장의 14좌 완등을 인정함에 따라 오 대장은 국제 산악계에서도 여성 최초 14좌 완등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카트만두 연합뉴스
  • 만화가 김영하 “내 작품만 2000권…복간은…”

    만화가 김영하 “내 작품만 2000권…복간은…”

    만화가 김영하는 1947년 평안북도 박천 출생으로 한국전쟁 당시 부모님과 자신만 남한땅을 밟았다. 한국엔 먼 친척뻘 형만 한명 있을 뿐이다. 의지할 친척은 없었지만 형제들은 많았다. 김영하는 7남매 중 장남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김영하는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책의 귀퉁이에 작은 그림을 그리며 어렴풋이 ‘그림’에 대한 꿈을 꿨다. 틈틈이 연습장에 그린 만화를 교실 뒤에 붙여놓으면 다른 친구들이 보고선 낄낄거렸다.  고3때, 작품공간은 교과서 한쪽에서 극장 간판으로 변했다. 서울 왕십리 어느 극장의 간판을 그리게 됐다. 몇달이 지났을 무렵, 지나가던 한 신사의 “네 그림체는 만화에 더 어울리겠다.”는 말을 듣고선 자신의 길이 만화가임을 깨닫게 됐다. 이후 시내버스 안에서 만화 대본을 들고 있던 ‘만화가 문하생’들을 우연히 마주친 것이 그 꿈을 실현시킨 계기였다. 이들 문하생과 서울 용두동 작은 방에 모여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기본으로 한 만화를 그렸고, 무작정 출판사로 찾아가 작품을 들이밀었다.  당시 편집장은 그 만화를 싣지 않았지만 김영하의 그림 실력은 인정했다. 스토리를 주며 작품도 의뢰했다. 열아홉살 때였다. 당시 돈으로 원고료 1000원을 받았다. 작품을 함께 한 셋이서 300원씩 나누고, 남은 100원으로 돼지갈비 석대와 막걸리 두되를 사먹었다. 하지만 작품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출판사의 ‘대표 만화가’ 이름으로 나왔다.  이 작품은 오래 그리진 못했지만, 다른 만화가 밑에서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행운아’ ‘대성공시리즈’로 유명한 김기백 화백을 2년간 도왔다. 그의 이름으로 그린 첫 작품은 ‘주머니대장’이다. 기백이란 가명으로 그리던 작품의 3권째부터 자신의 이름 석자를 새겼다. 1967~1968년쯤의 일이다. 김영하는 이때부터 1997년 은퇴할 때까지 최소 2000권 이상의 작품을 그렸다. 30년 만화가 세월을 3시간여 인터뷰를 통해 되새김해 본다.  ▲ 은퇴후 작품활동이 없어 궁금했다. 어떻게 지냈나.  - 5년전 이곳으로 내려와 아내와 함께 작은 텃밭 가꾸는 재미로 살고 있다. 지난해 별로 작황이 좋지 않아 이번 겨울에 소똥을 3부대나 쏟아부었다. 지금도 잡초 뽑다가 들어왔다. 손녀들이 오면 마당에서 뛰어놀기 때문에 약을 치면 안된다.  ▲ 마지막 작품이 1997년 ‘요괴헌터’던데. 갑작스러운 은퇴였다.  - 요괴헌터 뒤에 한 PC잡지에 연재를 했는데 얼마 못 했고, 소년중앙에 연재한 요괴헌터가 사실상 마지막이다. 은퇴를 할 때쯤엔 나이가 많다보니 회식을 해도 상석에 앉히고, 완전히 원로 취급이었다.(웃음) 젊은 애들하고 ‘맞네 안맞네’ 이런 말도 나오고 나도 하기가 싫어졌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됐다. 마흔살까지만 하겠다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는데, 막상 마흔살이 되니 인기가 더 올라가고 돈도 잘 벌고 그래서 좀 더 하게 됐다.  ▲ 은퇴에 뭔가 ‘만화적인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어찌 보면 팬들이 실망할 수도 있겠다.  - 내 만화는 있으면 보고, 없으면 마는 작품이었는데 그런 팬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만화가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많은 작품을 했고, 행복했다. 이제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미련이 없다.  ▲ 얼마나 많은 작품을 했나.  - 한창 바쁠 때는 문하생들 15명과 함께 한 적도 있다. 잡지에 싣는 분량만 한달에 300페이지나 됐다. 대본소 것으로 봤을때 한달에 평균 9권(일반 단행본 3권 분량)만 잡아도, 1년 열두달 30년 했으니 2000권은 될 거다.  ▲ 어떻게 그렇게 많이 그릴 수 있었나.  - 같이 일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었다. 처음에 캐릭터의 특성을 설명하고 대강의 얘기를 잡아주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밑그림을 그리는 식이었다. 15명까지 함께 일해 봤다.  ▲ 그 많은 식구를 다 먹여 살릴 수 있었나.  - 아내가 매일 밥 해 먹이느라 고생이 많았다. 수입은 한창 때는 한달에 9권씩 그렸는데 그러면 원고료가 웬만한 공무원보다 2~3배는 많았던 거 같다. 80평(264㎡) 되는 집도 사고 100평(330㎡)짜리 건물도 사서 사무실로 썼다. 만원인 버스를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으니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  - ‘고봉이와 페페’라고 펭귄이 나오는 건데, 보물섬 창간호때부터 함께 했던 작품이다. 보물섬이 창간하던 해에 ‘아기공룡 둘리’를 제치고 ‘최고상’을 받았다.  ‘요술공주 보배’가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이고, ‘짬보람보’가 가장 오래 연재한 작품이다. 요술공주 보배는 그때 당시 아내는 요술쟁이라는 드라마(미국 시트콤)를 보고 힌트를 얻었고, 짬보람보는 람보·코만도가 인기 있어서 생각해 냈던 것이다.  순수하게 내가 새로 만들었다기보다 차용한 게 많았다. 초기에 김기백 선생과 함께 일하면서 캐릭터를 구상할 때도 데스카 오사무(아톰 원작자)와 치바 테츠야(허리케인 조 원작자) 그림을 합쳐서 다른 인물을 그려냈다.  ▲ 하늘을 찌를듯 위로 오똑 솟은 콧날과 캐릭터 얼굴에 ‘x’표시가 있는 게 특징이라던데.  - 개구쟁이의 느낌을 표현하려 한 거다. 성깔 있고 왈가닥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했다.  ▲ 꾸리·꺼비·꽁이, 펭킹, 최고봉… 캐릭터 이름이 다 재미있다.  - 쉽게 지어야 더 쉽게 읽히니까 그랬다. 그림체도 그래서 되도록 쉽게 단순하게 그리려고 했다. 사실 나도 원래 본명이 김영삼인데, 어느날 점쟁이가 내 이름을 보더니 “이름이 똑같은 사람 2명이 동시에 출세하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원내총무를 지냈을 것이다. 그래서 내 필명은 ‘김영하’로 바꿨다.  ▲ 펭킹라이킹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었는데.  - 내 원작을 바탕으로 했는데, 실제로 내가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부분은 없다. 애니용 캐릭터를 그릴 때 내가 좀 틀을 잡아주고 했어야 했는데 워낙 바쁜 때라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원래 내 캐릭터보다 좀 더 길쭉하게 그려져서 ‘똘망똘망’한 느낌이 사라진 거 같다.  ▲ 그런 캐릭터들이 그립다는 팬들이 많다. 복간에 대한 계획은 없나.  - 후배가 원고 있으면 (복간을 위해) 달라고 하는데, 일단 이사오면서 책을 다 싸놔 정리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서울에 살 때 지하실에 예전 책을 보관해 놨는데 다 곰팡이가 슬어서 ‘풀죽’이 됐다. 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영상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 5월 독립운동가 오광심선생, 5월의 호국인물 어재연장군

    5월 독립운동가 오광심선생, 5월의 호국인물 어재연장군

    국가보훈처는 만주 조선혁명당에서 비밀연락활동을 전개하고 광복군으로 의병이나 군대 지망자를 모집하는 초모(招募) 활동에 힘쓴 오광심(왼쪽·여·1910~1976)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선생은 평북 선천에서 출생해 조선혁명당에 가입한 뒤 남만주에서 동명중학 부설 여자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교직을 그만두고 조선혁명군 군수처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조선혁명군 유격대와 한·중연합 항일전에서 지하 연락활동을 하는 등 독립전쟁에 가담했으며, 이 무렵 조선혁명군 참모장이던 김학규 선생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이후 만주지역 독립운동 상황이 악화되자 임시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민족단일당 조직운동 및 조선민족혁명당 부녀부 차장으로 활동했다.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 후 총사령부에서 사무 및 선전사업을 담당했다. 모병업무 강화를 위해 광복군 서안 제3지대가 편성되자 서안보다 더 전선에 가까운 산둥반도에서 활동하는 등 대일항전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1945년 광복 후 교포 보호와 안전한 귀국을 위해 노력했고, 이후 심양에서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48년 4월 귀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와 함께 전쟁기념관은 이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강화도 수비에 큰 공을 세운 조선 후기의 명장 어재연(오른쪽·1823~1871) 장군을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어 장군은 19세가 되던 1841년 무과에 급제해 광양현감, 해주진영 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1866년 프랑스 로즈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는 병인양요를 일으키자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을 방어했다. 1871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는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6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광성보에 급파돼 대응하다 전사했다. 전쟁기념관은 6일 오후 2시 호국추모실에서 어 장군의 자손들과 유관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추모 행사를 열 예정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스페인원정대, 오은선 ‘흠집’… 홀리여사 “비난 정당화 안돼”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나섰다가 조난 당한 스페인원정대가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을 비난한 것과 관련해 히말라야 등정기록을 관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언론인 엘리자베스 홀리(87) 여사가 오 대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오은선은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를 완등하고, 홀리와의 인터뷰를 통한 세계 공인을 앞두고 있다. 오 대장이 하산 중 구조요청을 받고 도우려고 했던 스페인원정대의 토로 칼라팟이 사망하자 스페인원정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그를 비난했다. 동료들도 악천후 탓에 그를 구하지 못했다. 원정대장 후아니토 오이아르사발은 29일(이하 현지시간) 스페인 라디오에서 “스페인원정대가 한국원정대의 셰르파에게 6000유로씩의 사례금을 제시하며 구조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산악인의 동료정신이 없는 것에 분개한다.”며 오 대장을 비난했다. 홀리 여사는 그러나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산에서 내려올 때는 약간의 에너지밖에 남아 있지 않고, 이는 자신이 하산하는 데 모두 써야 한다.”면서 “(산악인들이) 남을 돕지 않았다고 책임을 묻는 것은 대부분 정당화될 수 없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의 등반에 남자의 경우 10㎏, 여성은 5㎏ 이상 체중이 빠져 구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편 오 대장은 “17년간의 긴 여정이 끝나 홀가분하다. 따끈따끈한 찜질방에서 시원한 식혜를 마시며 쉬고 싶다.”며 베이스캠프에서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갖고 있다. 오 대장은 1일 베이스캠프를 출발,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해 홀리 여사를 만나 안나푸르나 등정을 공인받고, 논란 중인 칸첸중가 등정 여부에 대해 다시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2010 대충청방문의 해] 생선국수·꿩회 안잡수면 무효~

    [2010 대충청방문의 해] 생선국수·꿩회 안잡수면 무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맛좋은 먹을거리는 즐거운 관광을 완성시킨다. 내룩지방인 충북은 강과 호수가 많아 민물고기 음식이 발달했다. 단양 쏘가리매운탕은 허기진 기운을 보충하는 데 최고다. 단양 특산물인 육쪽마늘을 다져넣은 양념이 민물고기의 비린맛을 감쪽같이 없애 신선하고 담백하다. 쏘가리는 살이 돼지고기처럼 맛있어 ‘수돈’, 쓸개가 웅담 성분과 비슷해 ‘수담’으로 불린다. 옥천군에 가면 생선국수가 유명하다. 수백마리의 민물고기를 6시간 이상 끓여 만든 육수에 삶은 소면이 들어간 생선국수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영양식이다. 40여년전 옥천군 청산면에 생선국수를 만들어 파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후로 이곳에 생선국수 골목이 형성됐다. 괴산의 올갱이국은 충청도가 자랑하는 해장국이다. 올갱이는 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로 어패류 가운데 굴 다음으로 카로틴이 많고, 멸치 다음으로 칼슘이 풍부하다. 된장국물에 밀가루옷을 입힌 올갱이를 넣은 뒤 마늘 한주걱과 부추를 듬뿍 넣으면 시원한 올갱이국이 완성된다. 제천은 약초의 고장답게 약초비빔밥을 만들었다. 표고버섯을 달인 물로 지은 밥과 당귀, 천공, 작약, 홍화 등의 약초와 각종 채소, 고추장을 놋그릇에 담아 비비면 약초의 향이 입맛을 살린다. 꿩회는 월악산, 수안보 온천과 함께 충주의 3대명물 중 하나다. 꿩 한마리를 잡으면 육회, 꼬치, 불고기, 만두, 수제비 등 다양한 요리를 즐길수 있는데 그중 으뜸은 꿩회다. 생선회보다 부드럽고 육회보다 담백한 꿩회 한점을 입에 넣으면 그대로 녹아버린다. 증평의 명물인 홍삼과 돼지가 결합한 홍삼포크, 진천의 상징인 화랑정신과 진천쌀이 합쳐진 생거진천화랑밥상, 민물고기를 바삭하게 구운 청원 도리뱅뱅이 등도 충북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열린세상]너무 빨리 소진되는 아이들/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열린세상]너무 빨리 소진되는 아이들/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주변에서 소진(burn out)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대부분 평소 유능했던 사람들이다. 쉴 새 없이 일하고 업무를 수행하다 기력이 다 빠진 것이다. 소진된 사람들은 대개 무기력해지고 업무에 대해서도 강한 저항을 나타낸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다. 한번은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나타났는데, 어느 날부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전혀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난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공부하는 게 벅찼고, 어린 아기를 안고 먼 거리를 오가며 헤매는 내 자신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열정을 바쳤던 일들이 다 쓸데없고, 무엇보다도 이것이 나 자신과 내 가족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 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도교수님께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내 얘기를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야단 맞을 것을 각오하고 갔던 난 의외의 선생님 반응에 순간 당황했지만 곧 날아갈 듯 마음이 가벼워져, 그 후 정말 푹 쉬었다. 우리 아이들과 내가 꿈 같은 시간을 보냈던 날들이다. 2년쯤 지났을까. 민망했지만 지도교수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학위 논문을 쓰겠다고. 이번에도 선생님은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생각보다 일찍 왔구나.” 선생님은 내가 다시 추스르고 돌아올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만일 그 때 내게 휴식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난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삶에 활력을 주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유익하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어 감당하기 힘들게 되면 심리적으로 고통을 느끼게 된다. 휴식을 통해 적절히 이완시켜 주지 않으면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다. 어릴 때부터 너무나도 바삐 사는 아이들이 정말 걱정될 때가 많다.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집에 오면 숙제하기 바쁘고, 주말이나 방학 땐 학습 스케줄이 더 빡빡해진다. 어떤 아이들은 방학이 싫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책을 손에서 놓은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그렇게도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가 정작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할 시기에 녹다운이 되어 공부하곤 담을 쌓는 것이다. 이들 부모는 애간장이 타 자녀들과 매일 전쟁을 치른다. 그러나 부모가 이렇게 난리를 친다고 해서 아이들이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공부하게 되는 예는 거의 없다. 소진이 되면 그렇다. 공부할 기력도, 애정도 다 없어진다. 공부에 대해 심한 저항을 나타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때는 잠시 멈추고 숨을 쉬어야 한다. 다시 기력이 살아나도록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한다. 교육방송 프로그램 중 공부의 왕도라는 것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매회 다른 성공사례들이 나오는데, 공통적인 것은 이들이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며, 교과서와 학교공부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설마 그럴까 믿지 않는 모양인데, 난 그렇지 않다. 100%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서 넘치는 에너지를 느끼기 때문이다. 초·중·고를 거치면서 그들은 소진되지 않았던 것이다. 학부모들은 대개 어떻게 하면 자녀가 공부를 잘할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자녀가 휴식을 취하고 건강하게 놀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부모는 드문 것 같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녀 스스로 공부에 대한 의미를 찾고 점점 더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에너지가 많이 축적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정작 공부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소진되어 책을 손에서 놓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많은 아이들이 너무 일찍 소진되고 있다. 어릴 때에는 에너지를 쓰기보다 에너지를 축적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자녀의 인생을 길게 보는 어른들의 지혜가 요구된다.
  • ‘14좌 정복’ 오은선 마지막 고지… 홀리와의 인터뷰 남았다

    ‘14좌 정복’ 오은선 마지막 고지… 홀리와의 인터뷰 남았다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봉을 등정한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28일 오후 7시45분 캠프1(5100m)로 무사히 내려왔다. 안나푸르나에서 하산하던 오 대장은 이날 오전 12시45분쯤 캠프4(7200m)에 순조롭게 도착했다. 그러나 오 대장과 대원 6명은 6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후아니토 오이아르사발 대장의 스페인 원정대가 “대원인 톨로가 7700m 부근에서 탈진해 쓰러져 있다.”고 도움을 요청, 일단 캠프4에 머물렀다. 톨로가 있는 곳은 캠프4에서 6시간 이상 올라가야 하는 먼 거리. 오 대장은 전날 등정을 위해 20시간 가까운 강행군을 해 체력이 바닥났고 먹을 음식마저 거의 남지 않아 직접 구조에 나서진 못했다. 오 대장은 “가서 구할 순 없지만 물과 음식, 산소 등을 지원하려면 대기해야 한다.”며 하산을 미뤘다. 오 대장은 캠프4에 머물며 구조대에 합류하기를 기다렸지만, 도착이 늦어지자 결국 16시간 만인 오후 4시45분쯤 철수를 결정했다. 이후 3시간 만인 오후 7시45분 캠프1에 도착했다. 식량과 산소가 부족해 오 대장 원정대마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남은 식량과 자일, 산소를 캠프4에 있는 스페인 원정대 셰르파에 넘기고 하산했다. 오 대장은 캠프1에 도착한 뒤 “하산 때 눈이 날리고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있었지만 위험한 순간을 잘 넘기고 캠프1에 내려왔다.”고 무선으로 베이스캠프에 연락했다. 오 대장은 1~2일 휴식을 취한 뒤 헬기 등을 통해 네팔 카트만두로 이동한다. 여성 최초 히말라야14좌 완등 기록을 공인받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어서다. 엘리자베스 홀리(86·미국) 여사와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홀리 여사는 1963년부터 네팔에 거주하면서 50여년간 히말라야 고봉 등반을 인증해 온 최고 권위자다. 오 대장은 지난해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중 13번째로 올랐던 칸첸중가(8586m) 등정과 관련해 다시 의혹을 받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오 대장과 경쟁했던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이 27일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 성공에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티베트의 시샤팡마(8027m)를 등정 중인 파사반은 공영 라디오에서 “오 대장이 칸첸중가에 오른 뒤 우리도 올랐다. 하지만 오 대장이 보여준 사진들에는 내 사진과 달리 눈이 덮이지 않은 바위가 있었다.”면서 “오 대장과 함께 올랐던 셰르파에게 물어봤는데 정상에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영국 BBC도 오 대장의 기록에 대해 셰르파의 증언과 사진, 로프 등 의혹을 제기하며 의문을 표시했다. 이렇게 의혹이 잇따르자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했던 홀리 여사도 “오 대장이 하산하면 당시 셰르파와 함께 다시 얘기를 들어볼 것”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블랙야크 관계자는 “지난해 파사반도 오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이 성공한 직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다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홀리 여사도 지난해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한 만큼 국제 공인에는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 대장은 홀리 여사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등정보고회를 열고 새달 중순쯤 귀국할 예정이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스페인 산악인 파사반 “오은선 칸첸중가 등정 의문투성”

    스페인 산악인 파사반 “오은선 칸첸중가 등정 의문투성”

    스페인 여성 산악인 에두르네 파사반이 27일 오은선 대장의 등정 성공에 의문을 제기했다. 오은선 대장은 27일 오후 6시 16분 해발 8,091m인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해 세계 최초로, 한국인으로서는 4번째로 완등자에 자랑스러운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에 대해 티베트 시샤팡마에서 파사반은 27일 현지 공영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오 대장의 등정 직후 자신도 칸첸중가(히말라야 고봉 중 하나)에 올랐으며, 오 대장이 찍은 사진에는 자신의 사진과 다르게 눈이 덮히지 않은 돌이 보여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파사반은 “오 대장이 카트만두에 돌아와 이(칸첸중가 등정)를 증명해야만 할 것이다.” 며 “오 대장은 이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는 이를 지켜볼 것이다.” 고 말했다. 한편 파사반은 지난 17일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으며 13좌를 오르는데 성공했다. 현재 티베트 시샤팡마를 등정중이며, 날씨 상태가 좋으면 내달 첫째 주 정상에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티베트 시퍄팡마는 14좌 완등의 마지막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하림 시인 간암으로 별세

    최하림 시인 간암으로 별세

    시인 최하림(본명 최호남)이 22일 오전 11시쯤 경기 양평군 자택에서 간암으로 숨졌다. 71세. 1939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김현, 김승옥, 김치수 등과 더불어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했다. 1976년 첫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로 시작해 2005년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순수시와 참여시 사이에서 어느 한 쪽에 대한 타협도, 쏠림도 없이 자신만의 작품성 넘치는 시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 오월 광주를 매개로 해서 노골화한 죄의식과 폭력, 생명, 죽음 등 인간 보편의 가치를 탐구했다. 이산 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문학 부문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올해 2월에는 서울예대 제자들과 문단의 후배들이 한 데 모여 ‘최하림 시 전집’(문학과지성사)을 내고 출간기념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지난해 간암 판정을 받은 고인은 전집 서문에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 듯한 말을 남겼다. “마침내 나는 쓰기를 그만두고 강으로 나갑니다. 나는 바위에 앉습니다. 비린 내음을 풍기며 강물이 철철철 흘러갑니다.(중략) 죽은 자들과 대면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강물은(혹은 시간은) 사라져버리겠지요.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유족으로는 부인 장숙희씨와 아들 승집, 딸 유정·승린 1남 2녀가 있다. 승린씨는 소설 ‘아홉개의 숲’을 낸 작가다.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화장할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에 꾸려졌으며, 장지는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이다. 발인은 24일 오전 5시. (02)2258-5957.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신사동 가로수길

    [Seoul 요모조모-만원의 행복]신사동 가로수길

    2000년대 초반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다녀온 컨설턴트 김병준(37)씨는 주말이면 유학시절의 향수에 빠지곤 했다.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와 브런치,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멀티숍 사이를 거닐던 때를 잊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그때 못잖은 즐거움을 찾았다. 요즘 ‘가장 뜨는 곳’으로 꼽히는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2006년 유학파 빈티지숍 열며 시작 지하철 4호선 신사역 8번 출구부터 신사중학교까지 이어지는 가로수길은 과거 ‘오렌지족’으로 대표되는 압구정문화의 변두리이자 고급문화의 상징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자리잡은 화랑이나 젊은 의상 디자이너들의 멀티숍들이 한국판 ‘소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본격적인 변신은 2006년 후반 시작됐다. 해외 유학파가 문화를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빈티지숍과 카페 등을 열면서부터다. 가로수길에는 갤러리 8곳, 의상 디자이너숍 128곳, 잡화숍 25곳, 커피 및 카페 109곳 등 515개의 아기자기한 숍들이 자리잡았다. 처음 찾는 사람들은 바깥에서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에 취하고, 다시 찾으면 가게로 들어가서 만나는 풍경에 취하게 된다. 자신의 옷을 설명하는 디자이너들과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는 멀티숍 주인들의 설명을 듣다 보면 영화 ‘프리티우먼’의 줄리아 로버츠가 된 듯한 느낌까지 받는다. 숍을 운영하는 정빛나(33·여)씨는 “가게 주인들 대부분은 무조건 옷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여유를 가졌다.”면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눈총을 주거나 불친절한 상점은 찾기 힘들다.”고 소개했다. 광고회사 TBWA코리아의 젊은이들이 이 길을 무대로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라는 책을 쓴 것도 이같은 독특함 때문이다. 이들은 책에서 “가로수길에는 느림과 여유를 지배하는 인간 중심 시스템이 있었고, 세상과 생산자·소비자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새로운 사회학을 배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윈도 쇼핑에 지친 사람들은 베트남 음식점 ‘리틀 사이공’, 파리 센강변 카페를 벤치마킹한 ‘부첼라’, 이북식 만두와 서울식 백반으로 유명한 ‘모던밥상’ 등을 찾아볼 만하다. 식물원처럼 꾸민 ‘블룸앤구떼’, 정통 영국식 홍차가 나오는 ‘말리’ 등의 커피숍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의상숍 등 500여 상점 몰려 있어 대로변에는 점차 대기업과 패션 빅브랜드,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소호형 빈티지숍들은 점차 가로수길 사이의 세로 골목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른바 ‘세로수길’의 탄생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개성 강한 인테리어가 형성된 가로수길은 비싸지 않은 가격에 고급문화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유흥과 소비문화로 변질되지 않고 현재의 모습을 유지해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글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김장훈, 미니홈피 탈퇴 선언 “왜?”

    김장훈, 미니홈피 탈퇴 선언 “왜?”

    가수 김장훈이 자신의 미니홈피 탈퇴를 선언했다. 김장훈은 22일 오전 “그간 운영해오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탈퇴합니다.”라는 제목이 달린 글을 게재했다. 악플러 때문에 탈퇴를 결심했다는 김장훈은 “악성 댓글로 시달려 그동안 업체측에 몇 차례 시정을 요구해왔다.”며 “하지만 삭제나 접근 금지를 시켜도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그릇된 방식에 포기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김장훈은 “어머니까지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모습은 도저히 볼 수 가 없다.”며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불효자가 된 것 같다. 사람은 밉지 않지만 슬프다.”고 전했다. 김장훈은 미니홈피 활동을 그만두는 대신 ‘김장훈닷컴’이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겠다는 향후 계획을 알렸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피플 인 포커스] 프로농구 모비스 통합우승 이끈 유재학 감독

    [피플 인 포커스] 프로농구 모비스 통합우승 이끈 유재학 감독

    “제 별명을 만수(萬數)라고 불러주시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죠.” 그는 ‘만수’라는 별명이 과분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만수는 지난 시즌 KT&G 이상범 감독이 만가지 수를 가졌다는 뜻으로 유재학(47) 모비스 감독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러나 유 감독은 이 별명을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지난해 11월4일 전자랜드를 꺾고 감독으로는 최연소(46세7개월15일)로 정규리그 300승 고지에 올랐다. 또 모비스를 2009~10 프로농구 통합우승으로 이끌며 리그 최고의 명장임을 증명했다. 올해는 유 감독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고도 4강 탈락했던 수모를 이번 통합우승으로 말끔히 씻어냈기 때문. 이뿐만이 아니다. 유 감독은 구단에서도 특급대우를 받게 됐다. 모비스는 다음 달 31일 계약이 만료되는 유 감독과 5년간 연봉 4억원, 총액 20억원에 재계약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프로농구 감독 중 최초로 연봉 4억원 고지에 올랐다. 지도자로서 4년 이상 장기계약도 처음이다. ●9년째 기러기아빠 “가족에 늘 미안” 지도자 생활 20여년 만에 최고의 순간을 즐기는 유 감독.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9년째 ‘기러기 아빠’ 신세다. 2001년 부인 김주연(47)씨와 두 자녀가 모두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로 유학을 갔다. 그는 아이들과 매일 통화를 한다. 그래도 아버지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게 못내 걸린다고 했다. 방학 때 가족들이 한국에 들어와도 시즌 중이라서 잠깐씩 얼굴 보는 걸로 만족한다고. “아빠로서 아이들한테 항상 미안하죠. 그래도 항상 아빠를 지지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중3 때 39연승 신화 쓰기도 유 감독이 농구를 처음 시작한 건 상명초 3학년 때다. “당시 학교에 농구팀이 있어서 단체로 장충체육관으로 응원을 갔는데, 너무 멋져 보였죠.” 이때부터 유 감독의 뇌리에서는 농구가 떠나질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 농구대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대순 감독의 권유로 농구에 발을 들여놨다. 용산중 시절 그는 39연승의 신화를 쓰며 ‘농구천재’ 소리를 들었다. 도전정신도 남달랐다. 주전으로 뛰기 위해 농구명문 용산고 대신 경복고를 택한 그는 팀을 매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연세대를 거쳐 1986년 기아 농구단 창단 멤버가 됐다. ●3차례 무릎수술로 28세에 은퇴 1987년 경희대를 상대로 21개의 어시스트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1989년 팀을 우승시킨 뒤 3차례나 수술한 것. 결국 한창인 28세에 은퇴의 길을 택했다. 1989년 말 모교인 연세대에서 코치 제의를 받으면서 지도자 생활이 시작됐다. 1994년부터는 대우증권 농구단 창단 멤버로서 본격적인 실업팀 코치 생활로 들어섰다. “체육관 건립부터 선수 모집까지 거의 다 제가 했죠. 젊은 혈기로 감독 역할까지 다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최연소 프로팀 감독으로 승격된 1998년 대우를 정규리그 3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2003~04시즌에는 전자랜드를 4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는 전자랜드의 역대 최고 성적이다. 2004년 모비스의 감독직 제의를 수락하면서 그는 본격적인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이전 시즌 꼴찌에 그친 팀을 맡아서 제 궤도에 올려놓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죠.” 그의 말대로 모비스는 최고의 팀이 됐다. 그는 모비스를 최근 다섯 시즌 동안 4차례나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가운데 두 번은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성적 안 나와서 그만둘 때까지 최선” 유 감독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유 감독이 지닌 밑그림은 뭘까. 그는 “선수 선발과 코치 지명 등 구체적인 것은 국대협과 상의해 봐야겠죠.”라면서도 “지난 시즌에 추락한 한국농구의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틀을 새롭게 짜야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목표는 메달권에 드는 것이다. 그는 감독으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우승했지만 벌써 다음 시즌이 걱정되네요.”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언제까지 지도자 생활을 할지 묻자, 그는 “성적이 더 안 나와서 감독을 그만두게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라며 미소 지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약력 ▲출생 1963년 3월20일 서울 ▲체격 180㎝, 80㎏ ▲학력 상명초-용산중-경복고-연세대 ▲가족관계 부인 김주연(47), 아들 선호(20), 딸 선아(17) ▲별명 만수(萬數-만 가지 수) ▲수상경력 2006·2007·2009년 프로농구 정규리그 감독상 ▲주요경력 1986~1990년 기아농구단 선수, 1990~1994년 연세대 코치, 1994~1997년 대우증권 코치, 1997~1999년 대우 제우스 감독, 1999~2001년 신세기 빅스 감독, 2001~2003년 SK 빅스 감독, 2003~2004년 전자랜드 감독, 2004~현재 모비스 감독
  • ‘싱글맘’ 이파니 “편견과 따가운 시선 너무 힘들었다”

    ‘싱글맘’ 이파니 “편견과 따가운 시선 너무 힘들었다”

    모델출신 방송인 이파니가 ‘싱글맘’ 으로 살아가는 힘든 심경을 고백했다.최근 케이블채널 스토리온의 ‘보통 사람들의 톡 까놓는 스토리’ 녹화장에서 이파니는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이라는 편견과 이혼녀라는 따가운 시선이 너무 힘들어 방송 활동을 그만두고 싶었다.” 고 속내를 털어놓았다.이파니는 이어 “아들에게만큼은 당당한 엄마이고 싶어서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 연기에 도전하게 됐다.” 고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된 계기도 밝혔다.연극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이파니는 “섹시한 이미지 하나만으로 캐스팅 됐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며 연기에 대한 열정도 드러냈다.특히 이파니는 “싱글맘으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날 응원해주는 아들을 보면서 힘을 얻고 있다.” 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은 오는 17일 밤 12시.사진 = 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2 지방선거 왜?] 한나라 한前총리 수사중단 요구

    한나라당이 연일 검찰을 때려대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불법정치자금 의혹 수사 때문이다. 이른바 ‘별건(別件) 수사’를 그만두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원희룡 의원은 13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법원의 1심판결 전날 검찰이 고의로 (불법정치자금 의혹을) 공개한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만큼 정도를 걸어야 한다. 또 다른 수사로 국민적 불신을 산다면 검찰은 치명적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 인재영입위원장인 남경필 의원도 “한 전 총리에 대한 별건 수사는 선거 뒤로 미루는 게 좋겠다.”면서 “한 전 총리 재판이 정권 견제론에 불을 지피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전날 정몽준 대표와 서울지역 의원들의 모임에서도 격렬한 성토가 이어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는 전언이다. 한나라당이 걱정하는 건 ‘야당표의 결집’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한 전 총리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재판 과정에서 대강 이뤄진 셈”이라면서 “수사를 더 했다간 야당표만 화나게 할 뿐”이라며 혀를 찼다. 6월2일 선거일 이전에 추가 기소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다. 걱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검찰 때리기’ 자체를 걱정하고 있다. “안 그래도 무죄 판결로 창피를 당한 검찰을 더 자극하면 안 된다. 자존심 상한 검찰 수뇌부가 여기서 멈추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찰 자존심까지 생각해야 하는 여당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