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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동화구연가’로 변신한 김정숙 여사

    [포토] ‘동화구연가’로 변신한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설을 앞두고 공동체의 나눔 정신을 담은 구연동화를 선보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8일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라는 동화를 구연한 김 여사의 영상을 공개했다. 채인선 작가가 쓴 이 동화는 손 큰 할머니가 설을 맞아 숲속의 여러 동물과 함께 세상에서 제일 큰 만두를 만들어 배불리 먹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2021.2.8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유튜브 영상 캡처
  • 더 나은 삶 위해 민중과 연대… 사람답게 사는 길 찾는 문학 대들보

    더 나은 삶 위해 민중과 연대… 사람답게 사는 길 찾는 문학 대들보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와 타협한다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 이것은 요산 김정한 선생의 문학비에 있는 문장이자 선생의 삶과 소설 그 자체다. 어떤 문장은 때로 한 생애를 고스란히 그리는데, 이것의 발원이자 끝은 오롯이 그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생이 말한 ‘사람’은 어떤 존재들일까. 땅에 두 발을 딛고,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다는 것은 모두 같다. 하지만 형상은 같을지언정 사는 형태와 마음은 다 달라서 ‘사람답게’가 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 아닌가. 게다가 빼앗긴 땅을 딛고 선 사람들이라면 ‘사람답게’란 이른바 생존의 다른 말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늘 땅에 서 있을 수밖에 없던, 그리하여 삶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묻은 농민들의 이야기를 가장 자세히 삶의 끝까지 유심히 듣고 쓰던 작가. 빼앗긴 땅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곡절을 누구보다도 아파했으며 끝내 그들과의 유대와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자 했던 요산 김정한의 소설과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선생은 1908년 음력 9월 26일에 경남 동래군 북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금정산 자락에 위치한 동네였던 터라 낙동강과 범어사가 지척이었다. 강가의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과 절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매료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동네 서당에서 한학을 시작했고, 어머니에게서는 한글을 배웠다. 명정 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에 참여했다. 중앙고보를 거쳐 동래고보를 졸업했다. 1928년에 양산 대현공립보통학교의 교사가 됐다. 교사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안에 있는 일본 선생들과의 불합리한 제도에 항거해 동맹휴업을 결의했다가 경찰서에 연행된다. 이 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둔 선생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 제1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문우회에 가입해 시를 쓰기 시작한다. 이때 ‘조선시단’에 ‘구제사업’이라는 작품을 기고했다가 제목만 실리고 내용의 전문이 삭제되는 일을 겪는다. 귀국한 다음해에 남해공립보통학교의 교사로 부임했고, 그 시기에 소설 ‘사하촌’을 써서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사하촌’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사찰 소유의 논밭을 경작하는 빈농들의 궁핍한 삶과 친일 스님들의 행적을 비롯해 절 아래 마을의 논들을 관리하는 마름들의 횡포를 사실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고통받는 민중들과 가진 자들이 토지를 수탈하는 모습들이 일제강점기였던 시대상을 반영했고, 작품에 나오는 절의 실제 배경이 범어사라는 것이 알려져 그곳 스님들의 원성을 샀다고 한다. 소설 발표 후에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테러를 당해 두 달 동안이나 거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을 다치기도 했다.1939년에 남명학교로 전근을 갔을 적에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한글을 쓰지 못하는 형편이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동아일보 신문지국을 운영했다. 그러나 일제의 신문 검열과 그간의 행적들로 인해 일본 순사들의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아원으로까지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절필하고 경남도청 상공과 산하 면포조합 서기로 취직해 해방될 때까지 근무를 했다. 해방 후에도 미군정의 정책에 반대해 경찰에 잡혀 가는 생활이 계속됐다. 6·25 때는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돼 죽을 고비를 맞이하지만 남해공립보통학교 시절의 제자와 처남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래톱이야기’를 쓰며 다시 문단에 복귀한다. 이후에 낙동강 주변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농촌소설들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핍박받고 가난에 찌들어 있는 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을 받는다. 선생은 ‘문학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 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며 민중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썼다. 이것이 그의 작품이 리얼리즘 문학의 선봉에 서게 된 이유다.1950년 부산대 교수였던 선생은 4·19혁명 후에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5·16 쿠데타 직후에 해직됐다가 1965년이 돼서야 복직하게 됐다. 이때부터 매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시작해 ‘수라도’, ‘뒷기미 나무’, ‘산거족’, ‘삼별초’ 외에 수 많은 소설들을 썼다. 독립운동과 광복 후의 반독재, 반민주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고 절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지만 30년 후에 다시 펜을 잡고 ‘사람’이 ‘사람답게’ 지낼 수 있는 세계, 흙먼지 이는 폭폭한 삶일지라도 누군가는 그들의 어깨를 부여잡고 함께 걷고 있다는 연대의식들을 나타내는 작품들을 써 내려갔다. 대부분 정의와 인간됨,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억울하게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고 불의에 타협하며 어려운 이들의 삶을 모른 척했더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 선생의 삶과 고투의 시간들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선생은 끝내 힘없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정의와 사람다운 삶을 노래했다. 그를 계속 주목하게 하는 배경엔 이런 강직하고도 치열했던 글쓰기 행보가 있다. 2006년에 개관해 지금까지 부산의 가장 큰 문학 성체로 자리한 요산문학관은 선생의 생가를 비롯해 세미나실, 전시실, 도서관, 집필실, 강당으로 이루어진 다목적 건물이다. 후배 작가들을 비롯해 부산 시민들이 언제든지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러 가지 문학적인 시간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선생의 생애와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발자취들도 확인해 볼 수 있다.요산문학관에서는 매년 ‘요산문학축전’을 열고 있다. 문학관과 부산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주축이 돼 치르는 큰 문학 잔치다.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는 ‘고유제’를 시작으로 요산문학상, 창작지원금 시상, 소설 세미나, 백일장과 전시 등으로 요산 정신을 기리고 후배 작가들을 독려한다. 부산에 거주하며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가 된 임회숙 작가는 올해도 요산문학축전의 한 축을 담당해 여러 행사를 지켜본 소감을 전해 주었다. 부산에 있는 후배 작가들은 리얼리즘 문학의 대들보이자 민중들과 끊임없이 연대하고 불의에 저항했던 요산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싶어 하며, 선생은 부산 문학의 정신이자 대들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임 작가는 선생과의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제1회 요산문학제 수필 부문 장원 출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학의 시작이 요산 선생의 작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또 작가가 돼 해마다 요산문학축전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복되다고도 말해 주었다. 요산 선생은 후배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리얼리즘 소설의 바이블 같아서 소설을 쓰다 길이 막힐 때마다 펼쳐 드는 책이 바로 요산 선생의 수많은 소설 중의 하나라고도 했다. 선생이 불의에 항거하고, 지주와 소작농들의 혈투 그리고 땅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싸움으로부터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그때와 지금의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래서 선생의 소설이 리얼리즘이라는 것인가. 끝없이 새롭게 읽히는. 그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언제나 고민하게 되는 게 아닐까.낙동강가와 절 아래 마을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문장이 지금도 살갗이 흙먼지에 쓸려 오듯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어깨동무하며 두 발로 땅을 디딜 수 있는 곳, 그리해 우리가 같이 나란히 앉아 책장을 펼칠 수도 있는 곳, 그곳이 김정한 선생의 요산문학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 “여기도 전철 놔주오”… 지방선거 1년여 앞두고 집단 민원 ‘봇물’

    “여기도 전철 놔주오”… 지방선거 1년여 앞두고 집단 민원 ‘봇물’

    GTX-D노선 두고도 동시다발적 경쟁김포 서명운동… 남양주 “와부읍 정차”국토부 “철도 수요·경제성 우선 평가”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전철을 연결해 달라는 집단 민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경제성이나 재원 마련대책 등의 고려 없는 지역 주민들의 막무가내식 요구다. 특히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국회의원 지역구였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마을 주민들의 요구가 거세다. 또 GTX-D노선을 두고도 지역마다 정차역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7일 고양시에 따르면 가좌마을 주민들은 지하철 3호선의 파주 연장이 가시화하면서 김 전 장관의 공약 이행에 이재준 시장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대화역이 종점인 지하철 3호선이 가좌마을까지 연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이 지역구 국회의원은 물론 국토부 장관까지 그만두면서 좌불안석이다. 김 전 장관은 이 지역에서 두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3호선의 가좌마을 연장을 약속했었다. 고양시 한 관계자는 “가좌마을뿐 아니라 입주를 마친 신도시인 덕이지구와 운정지구 등 지하철 수요가 많은 지역을 모두 아우르려면 도저히 노선을 그릴 수 없다”면서 “대화역을 기준으로 가좌마을은 서북쪽에, 덕이·운정은 동북쪽에 있어 동시에 한 노선에 포함하기 난감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GTX-D노선 유치를 놓고도 지역마다 ‘동상이몽’이다. 이 노선은 올 상반기 발표될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서울·인천·경기 지역 여러 지자체가 동시다발적으로 경유를 희망하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경기도는 부천·김포·하남 등 3개 지자체와 함께 인천공항과 김포 통진읍에서 각각 출발해 ‘Y자 형태’로 부천에서 만나 구로역, 사당역, 삼성역을 거쳐 하남까지 연결하는 D노선안을 국토부에 제출했다. 김포 등 일부 지역주민들은 D노선 유치를 요구하는 서명 작업까지 벌였다. 다른 지역에서도 벌떼같이 일어섰다. 이달 초 서울 강서구를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변창흠 국토부 장관에게 수도권 서부지역의 교통 편의성 확대 등을 위해 D노선이 김포공항과 마곡지구를 경유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기 동부지역에서는 남양주시와 경기도가 또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남양주시는 최근 D노선을 남양주 와부권역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반면 이재명 지사는 최근 D노선 시작점을 하남에서 광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와부읍과 광주는 방향이 전혀 달라, 두 곳 중 한 곳은 눈물을 삼켜야 한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지역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은 다 자신의 지역에 GTX-D 노선의 정차역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철도 수요와 경제성을 가장 우선으로 평가하겠다”며 외부의 압력에 선을 그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여기는 남미] 예수 재림한다더니 목사만 사라졌네…남미에서 말세 사기극

    [여기는 남미] 예수 재림한다더니 목사만 사라졌네…남미에서 말세 사기극

    성경에 예언된 예수의 재림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은 교회 신자들이 졸지에 알거지가 됐다. 하늘로 들림을 받으면 세속적인 것은 다 필요 없다는 말에 직장이나 사업을 그만두고 전 재산을 정리해 교회에 바쳤지만 온다던 예수는 오지 않고 목사만 감쪽같이 사라진 탓이다. 콜롬비아 바랑키야에 있는 베레아교회의 신자들의 이야기다. 이 교회에서 시무하던 가브리엘 알베르토 페레르 목사는 언제부턴가 말세가 됐다면서 예수의 재림을 강력히 예언했다. 그러면서 목사는 "1월 28일에 예수님이 오신다"면서 신자들에게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고 했다. 목사는 예수의 재림을 앞두고 신자들에게 세속적인 일들을 정리하라고 했다. 그는 "재림한 예수님에게 이끌려 천국으로 가려면 영혼이 순수하고 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직장이나 사업은 그만두고 재산은 모두 팔아서 정리하라고 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얘기지만 신자들은 그런 목사의 말을 100% 신뢰했다. 목사가 솔선수범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목사는 아틀란티코대학의 문학과 교수였다. 원래 불신자였던 그는 아내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자신도 신자가 됐다고 한다. 예수님의 재림을 1월 28일로 예언한 그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겠다며 사표를 내고 교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목사를 지켜본 신자들은 기꺼이 목사를 따르기로 했다. 신자들은 직장과 사업을 정리하고 전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쳤다. 한 여자신자는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집 등 전 재산을 정리해 교회에 헌납했다고 한다. 그런 신자들에게 목사는 "(재산을 정리했으면 이제) 금식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을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신자들이 금식기도에 들어가자 지역 사회에선 "불안하다"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한 주민은 "저러다 집단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주민들의 불안 속에 드디어 28일이 됐고, 다행히 불행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만 없었던 게 아니다. 신자들이 굳게 믿었던 예수의 재림도 없었고, 이제 교회엔 목사도 없었다. 예언이 빗나가자 신자들은 교회로 달려갔지만 이미 목사는 신자들이 바친 재산을 챙겨 부인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핸드폰 연락이 안 되는 건 물론이다. 시 관계자는 "걱정했던 (집단자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신자들이 알거지 신세가 됐다"면서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목사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여자신자는 "부동산뿐 아니라 집기까지 모두 팔아 완전 무소유자가 됐다"며 "물질적인 것은 모두 소용없다는 말에 깜빡 속은 내가 어리석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사진=영상 캡쳐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다…일상을 괴롭힌 장벽을 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다…일상을 괴롭힌 장벽을 잊다

    건설회사 그만두고 약자 위한 숙소 지어장애·비장애인 함께 머물 수 있게 설계휠체어 문턱 없애 한달살기도 문제 없어“이 공간에선 자유롭게 삶 누릴 수 있길”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사람답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휠체어를 가로막는 모든 문턱을 없애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탈 수 있는 ‘휠체어 그네’를 놓은 여행자 숙소 ‘삼달다방’이다. 이곳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문화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한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곳, 삼달다방은 다양한 삶을 품는 문화공간이라고 이상엽(55)씨는 소개했다. 이씨는 2015년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배우자와 제주로 내려와 전 재산을 털어 삼달다방을 만들었다. 직접 흙짐을 지고 자재를 나르고 미장을 했다. 그는 4일 인터뷰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가 함께 건강한 사회를 꿈꾸고, 그런 사회적 가치가 담긴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삼달다방에는 무지개집(게스트하우스), 문화동(문화공간), 이음집(한 달살이방) 3개 동이 있다. 이 중 이음집은 제주 한 달살이를 꿈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익활동가 전용 숙소다. 장애인 시설을 나와 백년가약을 맺고 제주 신혼여행에 나선 이상우·최영은 부부가 이음동의 첫 손님이었다. 이음동이 있었기에 거동이 불편한 부부가 마음 편히 제주에 머물며 여행이란 일생일대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이음동 건축의 신호탄은 이씨의 친구 이규식씨가 쏘아 올렸다. “장애가 있는 이규식씨는 탈시설한 사람이었고 장애인 권리와 인권향상에 몸을 던져온 이였어요. 어느 날 그가 대뜸 계좌번호를 불러 달라고 하더군요. 며칠 뒤 집 마련을 위해 모은 청약통장을 해지했다며 삼달다방 계좌로 송금해 줬어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제주에서 좀 길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보내준 돈은 500만원. 건물 하나를 올리기에는 부족했지만 진한 소망이 마음에 와닿았다고 한다. 이씨는 ‘대출의 힘’을 빌려 공사를 시작했다. 건물 이름 ‘이음’은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장애인을 잇는 탈시설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이씨는 예술활동을 원하는 장애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기타도 칠 수 있도록 컨테이너를 가져다가 또 하나의 문화공간 만들기를 구상하고 있다. 지금도 삼달다방에서는 소수자를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하고 있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비장애인, 노인, 임신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요. 통합이란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과 삶의 공간에서 장벽을 없애 가는 과정이에요.” 이씨는 “장애인이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제주를 평등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장애인용 콜택시를 증차하고 저상버스를 늘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삼달다방의 장애인 손님용 리프트 승합차 한 대로 누비기에 제주는 너무 넓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다, 일상을 괴롭힌 장벽을 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다, 일상을 괴롭힌 장벽을 잊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사람답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휠체어를 가로막는 모든 문턱을 없애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탈 수 있는 ‘휠체어 그네’를 놓은 여행자 숙소 ‘삼달다방’이다. 이곳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문화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한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곳, 삼달다방은 다양한 삶을 품는 문화공간이라고 이상엽(55)씨는 소개했다. 이씨는 2015년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배우자와 제주로 내려와 전 재산을 털어 삼달다방을 만들었다. 직접 흙짐을 지고 자재를 나르고 미장을 했다. 그는 4일 인터뷰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가 함께 건강한 사회를 꿈꾸고, 그런 사회적 가치가 담긴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삼달다방에는 무지개집(게스트하우스), 문화동(문화공간), 이음집(한 달살이방) 3개 동이 있다. 이 중 이음집은 제주 한 달살이를 꿈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익활동가 전용 숙소다. 장애인 시설을 나와 백년가약을 맺고 제주 신혼여행에 나선 이상우·최영은 부부가 이음동의 첫 손님이었다. 이음동이 있었기에 거동이 불편한 부부가 마음 편히 제주에 머물며 여행이란 일생일대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이음동 건축의 신호탄은 이씨의 친구 이규식씨가 쏘아 올렸다. “장애가 있는 이규식씨는 탈시설한 사람이었고 장애인 권리와 인권향상에 몸을 던져온 이였어요. 어느 날 그가 대뜸 계좌번호를 불러 달라고 하더군요. 며칠 뒤 집 마련을 위해 모은 청약통장을 해지했다며 삼달다방 계좌로 송금해 줬어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제주에서 좀 길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보내준 돈은 500만원. 건물 하나를 올리기에는 부족했지만 진한 소망이 마음에 와닿았다고 한다. 이씨는 ‘대출의 힘’을 빌려 공사를 시작했다. 건물 이름 ‘이음’은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장애인을 잇는 탈시설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이씨는 예술활동을 원하는 장애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기타도 칠 수 있도록 컨테이너를 가져다가 또 하나의 문화공간 만들기를 구상하고 있다. 지금도 삼달다방에서는 소수자를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삼달다방에 머무는 시간만이라도 자유롭게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해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비장애인, 노인, 임신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요. 통합이란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과 삶의 공간에서 장벽을 없애 가는 과정이에요.” 삼달다방을 찾은 비장애인들은 이씨에게 “장애인과 일상을 함께한다는 게 특별한 게 아니었네요. 그저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네요”라고 소감을 말한다고 한다. 이씨는 “장애인이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제주를 평등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장애인용 콜택시를 증차하고 저상버스를 늘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삼달다방의 장애인 손님용 리프트 승합차 한 대로 누비기에 제주는 너무 넓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 “오늘 같은 충격 처음”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 “오늘 같은 충격 처음”

    프로배구 KB손해보험의 이상열 감독이 선수들에게 따끔한 질책과 함께 분발과 결기를 주문했다. 왠만해선 선수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껴안아주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KB손보는 3일 대한항공과의 V리그 홈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0-3(19-25 14-25 17-25)으로 완패했다. ‘말리 특급’ 케이타가 오른쪽 허벅지 부상으로 결장했다고는 하지만 리그 2위 팀의 모습이 아니었다. 경기 내용이 처참했다. 이 감독은 경기 직후 굳은 표정으로 “오늘같이 배구를 할 거면 다 그만둬야 한다. 이렇게 처참하게 책임감 없이 경기한다면 그만두는 게 팬들을 위해서도 낫다”고 질책했다. 이어 “45년간 배구를 하면서 오늘처럼 충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모든 책임은 감독인 나한테 있지만 선수들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깔았다.선수들의 결기를 촉구한 이 감독은 졸전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케이타가 없어도 보여줄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수들의 범실이 잦자 작전시간을 부른 이 감독은 “케이타가 빠진 것 빼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선수들을 다독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세 세트 모두 20점 미만이었고, 두자릿수 득점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케이타는 KB손보 공격의 54.3%를 차지했다. 리시브 효율이 32.06%로 리그에서 가장 낮다. 불안한 공도 케이타가 해결해주면서 상위권을 지켰다. 문제는 KB손보가 봄배구를 하기에는 상위권 순위 싸움이 치열하다는 데 있다. 2위 KB손보에서 5위 한국전력의 간격이 불과 승점 8이다. 깜빡 졸면 순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이 감독의 질책이 절실하다. 케이타가 복귀할 때까지 국내 선수들이 얼마나 버티느냐가 KB손해보험의 봄배구 관건이다.앞서 케이타는 지난달 30일 OK금융그룹 경기 후 다음날 허벅지 통증을 호소해 검사한 결과 오른쪽 허벅지 근육 1cm가량의 부분 파열 진단을 받았다. 이 감독은 경기 직전 “일주일 정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길면 3주 정도, 3경기 결장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비시즌 때 코로나로 몸을 만들지 못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아마존 떠나 우주로… 세기의 갑부 ‘미친 짓’ 계속된다

    아마존 떠나 우주로… 세기의 갑부 ‘미친 짓’ 계속된다

    분기매출 1000억 달러 첫 달성과 발표 집 차고서 시작해 세계 최대 업체 일궈 “우린 미친 일 함께 해와… 은퇴 아니다”우주탐사 등 매진… 후임엔 앤디 제시집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해 30년도 채 안 돼 ‘제국’을 일군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57) 최고경영자(CEO)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겠다는 밝혔다. 1995년 소박한 온라인 책방으로 출발한 아마존이 지난해 4분기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 매출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2일(현지시간) 그는 “새로운 상품과 아마존 초기의 창의성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오는 3분기부터 CEO 자리를 자신의 그림자로 불리며 아마존 웹 서비스를 이끌어 온 앤디 제시(53)에게 넘긴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아마존 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우주탐사회사인 블루오리진과 언론사인 워싱턴포스트 운영, 자선사업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계획이다. 베이조스의 경영 2선 퇴진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오러클과 같은 빅테크 기업을 일군 일련의 창업가들에 비해 다소 늦은 편이다. 늦은 만큼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 진출했고, 더 많은 부를 쌓았다. 지난해 7월 현재 베이조스의 순자산은 1716억 달러(약 206조원)로, 지난해 테슬라 주식 급등으로 일론 머스크에게 권좌를 내주기 전까지 2017년 이후 줄곧 세계 부호 1위였다. 베이조스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27년 전 오직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오늘 우리는 130만명의 직원을 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우리는 정말 미친 일들을 함께 했다”고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그가 언급한 27년 전은 근무하던 헤지펀드 회사서 만나 결혼한 매킨지 스콧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시애틀로 이주, 오직 인터넷의 가능성만 보고 부모의 은퇴자금인 30만 달러를 투자받아 ‘무모한 도전’에 나섰던 1994년을 말한다. 쇼핑몰 이름을 ‘카다브라’로 지었다가 잘못하면 발음이 ‘시체’를 뜻하는 속어처럼 들린다는 지적에 ‘아마존’으로 바꿀 만큼 시작은 어수룩하고 미미했다. 그러나 베이조스는 실패해도 끊임없이 도전해 3년 만에 아마존 주식을 상장했고, 기성 업계와의 접점을 찾아 신기술에 빠르게 투자하며 성공 곡선을 그려 냈다. 아마존은 반즈앤드노블스 같은 대형서점과 저작권 분쟁을 벌이다 상거래에서 ‘다품종(롱테일) 전략의 힘’을 터득했고, 대형할인점 코스트코를 찾아가 원가절감법을 배웠다. 1998년 실리콘밸리 기업인 정글리에 1억 7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실패의 쓴맛을 보긴 했지만, 그 거래에서 구글 창업자들을 소개받아 이후 급등한 구글 주식을 초기에 보유하는 식의 행운도 거머쥐었다. 2019년 위자료가 362억 달러(약 43조원)에 달하는 ‘세기의 이혼’을 했지만, 이듬해 코로나19 여파로 아마존 주가가 급등해 위자료보다 더 많이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일도 있었다. 베이조스의 이번 결정은 ‘은퇴’가 아니라고 아마존은 설명했다. 베이조스는 편지에서 “놀라운 발명이 있으면 그 새로운 게 정상이 되고, 그때 (신기함을 잊은) 사람들의 하품이 발명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면서 “계속 발명하고, 처음 아이디어가 미친 것처럼 보여도 절망하지 마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베이조스 역시 ‘사람들의 하품’을 찾는 여정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MTS”…토스증권, 한국판 로빈후드될까?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MTS”…토스증권, 한국판 로빈후드될까?

    토스증권, 공식 출범 선언“밀레니얼·투자초보 타깃”수수료 0.015% 업계 최저사전 신청, 최대 6개월 무료토스증권이 2030대 밀레니얼 세대와 주식 초보자들을 위한 새로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처음 공개하면서 출범을 알렸다. 국내에서는 12년 만에 등장한 신규 증권사다. 기존 증권사와 다르게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MTS 서비스 제공, 사전 신청 고객 대상으로 최대 6개월간 거래 수수료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선보이며 ‘한국판 로빈후드’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박재민 토스증권 대표는 3일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2010년에 처음 MTS가 등장하고 10년이 지났지만, PC 기반 홈트레이딩시스템(HTS) 기능을 그대로 모바일로 가져오다 보니 초보 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발견했다”며 “토스증권을 통해 모든 신규 투자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서비스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토스증권은 핀테크 회사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가 100% 지분을 가지고 설립한 회사다. 토스증권은 최대 6개월 동안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미국 무료 증권 애플리케이션(앱) 로빈후드도 거래 수수료를 따로 받지 않고 MTS를 게임을 하듯 재미있고 쉽게 구성해 개인투자자들의 인기를 얻었다. 다만, 토스증권은 2월 말 서비스가 전체 공개되면 수수료를 업계 최저 수준인 0.015%로 유지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업계 최저 수준으로 거래 수수료를 유지해 고객들을 유인하고 더 좋은 서비스와 가치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롭게 공개한 토스증권 MTS는 처음 주식을 시작하는 투자자들이 투자할 기업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만두 브랜드 ‘비비고’를 검색하면 관련 기업으로 CJ제일제당과 CJ씨푸드 종목이 조회된다. 기존 주식거래 창에서 볼 수 있는 용어도 ‘매수→ 구매하기’, ‘매도→판매하기’로 쉽게 표시됐다. 어떤 주식에 투자할지 잘 모르는 고객들은 ‘영업이익률 TOP 100’, ‘관심 TOP 100’ 등 순위를 바탕으로 구성된 차트도 홈화면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구매 종목이나 관심 종목으로 등록한 주식에 급등락 등 변동 상황이 발생하면 ‘앱 푸시’를 통해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토스 앱 이용자라면 별도의 앱 설치 없이 토스 앱 안에 ‘주식’ 탭에서 주식거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토스는 거래하는 종목 지수뿐만 아니라 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뉴스 등 관련 정보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토스증권산업분류기준(TICS) 체계를 통해 실제 재무제표상 매출을 기준으로 기업을 소개하고, 기존 산업 분류로 검색하기 어려웠던 종목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토스증권은 설 연휴 전후로 사전 신청자한테 MTS를 먼저 선보이고, 이달 말 전체 고객을 상대로 서비스를 공개할 예정이다. 상반기 안에 해외주식 중개 서비스를 소개해 소수점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로보어드바이저에 기반을 둔 자산관리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토스증권 관계자는 “토스는 2030대 밀레니얼 세대 1000만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며 “이들의 투자 시장 진입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대거 유입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하이트진로, 저소득층에 설 떡국 나눔

    하이트진로, 저소득층에 설 떡국 나눔

    하이트진로가 올해도 명절맞이 이웃사랑 나눔 활동을 이어 간다. 하이트진로는 신축년 설을 맞아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명절 음식을 후원한다고 2일 밝혔다. 서울역 쪽방상담소, 부산 마리아마을 등 전국 34개 사회복지기관에 떡국용 떡과 만두 약 1만명분을 지원한다. 하이트진로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 장애인, 노인 등 명절에도 가족과 함께하기 어려운 이웃들과 따뜻한 떡국으로 정을 나누고자 설 나눔 행사를 마련했다. 앞서 지난달 23일 김인규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 30여명은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에서 노숙인들을 위한 떡국 배식 봉사를 펼쳤다.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겨울용 양말, 핫팩, 생수 등을 전달하며 새해 복도 함께 기원했다. 하이트진로는 2012년부터 460여곳의 사회복지기관, 16만여명의 취약계층 이웃들에게 명절 음식을 후원해 왔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로 더욱 추운 명절을 맞이하게 될 이웃들께 작은 도움이나마 되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100년 기업으로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두 오빠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

    두 오빠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

    “두 오빠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 50년 전 신민당에서 활동하다 숨진 당시 10대 두 청년의 유족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줄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한루비(53)씨 가족은 2일 전북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오빠의 영문을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주시청을 통해 진실화해위원회에 두 청년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규명도 신청했다. 루비 씨는 “서슬 퍼런 정치 보복이 두려워 가족 누구도 수십 년간 그때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다가 최근에야 부모님과 언니들로부터 그때의 사건을 듣게됐다”며 뒤늦게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나선 배경을 밝혔다. 한씨의 큰오빠 종호 씨는 1971년 5월에, 작은오빠 보만 씨는 3년 후인 1974년 1월에 각각 숨졌다. 1969년 고교생(전주 숭실고등 공민학교) 신분으로 신민당에서 잔일을 하던 큰오빠는 고교를 졸업한 이듬해(1971년)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신민당)이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서자 벽보를 붙이는 등 적극적으로 선거 홍보를 도왔다. 사건은 1971년 4월 27일 치러진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당선된 직후인 4월 29일 발생했다. 루비 씨는 “4월 29일 밤 9시쯤 마을 주민으로부터 큰 오빠가 괴한들로부터 벽돌로 머리를 맞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현장으로 달려가자 무차별 폭행을 멈추고 그대로 도주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폭행으로 심한 두통과 호흡곤란, 근육경련을 일으켜 전주 성모병원에 입원한 큰 오빠는 열흘가량 입원 치료를 받다가 끝내 숨졌다. 그는 “입원 중 괴한들이 찾아와 큰오빠에게 ‘사건에 대해 함구하라’라거나 ‘신민당 활동을 그만두라’는 등의 협박을 당했다”고 전했다. 큰오빠와 함께 신민당 활동을 하던 작은 오빠 보만 씨는 고교 2학년인 1974년 1월 고향인 임실군 운암면의 한 냇가 빙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남달리 영특했던 작은 오빠는 초등학교 때부터 전주 영생고를 다닐 때까지 줄곧 ‘장학생’을 놓친 적이 없었다. 유족들은 두 오빠가 숨진 현장에 경찰관들이 나타났으나, 사망원인을 수사하지 않고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고 주장했다. 루비 씨는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두 오빠는 정치깡패들의 무차별 폭행의 희생양이 된 거 같다”면서 “누군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당시 민주공화당 소속의 괴한들에 의해 발생한 20여 건의 폭행 사망 사건을 최근 알게 됐으며, 이 가운데 8건은 가해자가 특정돼 재심을 통해 (가해자들의) 유죄가 확정됐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석달째 무급휴직 중인데, 관두거나 1년 더 휴직하라네요”

    “석달째 무급휴직 중인데, 관두거나 1년 더 휴직하라네요”

    “코로나 때문에 12월부터 무급휴직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권고사직으로 나가거나, 1년 무급휴직으로 전환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지원금을 받은 후 지켜야 하는 감원방지 기간인 한 달 동안 무급휴직을 하고 그만두라고 했습니다.”(직장인 A씨)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자리 감소 폭이 IMF 외환위기 때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자리 충격은 특히 고용안정성이 취약한 비정규직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는 정부 일자리 정책의 한계와 대안을 논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유독 노동 부문에서 회복이 더뎠다. 황선웅 부경대 교수와 신희주 가톨릭대 교수의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기종합지수와 산업생산지수는 지난해 말 코로나19 위기 전 수준을 회복했고, 주가와 아파트 매매가는 그 이상으로 크게 올랐지만 취업자 수는 여전히 지난해 2월보다 70만 명(-2.5%) 줄어든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통계상으로 취업자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1주 동안 1시간도 일하지 않은 일시휴직자를 제외한 취업자 수는 지난 해 2월보다 120만 명(-4.5%) 줄어든 수준이다. 경기 상황이 1% 악화할 때 고용이 몇 % 감소했는지를 나타내는 고용 탄력성을 통해 분석해보면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고용 탄력성은 1.4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0.8∼1.2뿐 아니라 1998년 외환위기의 1.3∼1.4보다 컸다. 코로나19 사태의 고용 탄력성은 일시휴직자를 제외할 경우 2.5로 크게 뛴다. 실직을 경험한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8.8배에 이르는 등 노동 부문 경기 악화의 영향은 비정규직에게 집중됐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총 4차례에 걸쳐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직장인의 실직 경험은 1차 조사(4월) 5.5%, 2차 조사(6월) 12.9%, 3차 조사(9월) 15.1%, 4차 조사(12월) 17.2%로 증가했다. 그러나 고용 형태별로 보면 정규직은 3.5%, 4.0%, 4.3, 4.2%로 소폭 증가했지만 비정규직은 같은 기간 8.5%, 26.3%, 31.3%, 36.8% 등 폭증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는 “노동 부문의 피해가 비정규직,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은 정규직 일자리 중심으로 짜여 있다”면서 “정부 일자리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재난실업수당’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필리핀서 손자 돌보러 왔다가… 달동네 다문화 가족 덮친 화마

    필리핀서 손자 돌보러 왔다가… 달동네 다문화 가족 덮친 화마

    강원 원주시의 재개발을 앞둔 주택 밀집 지역에 화재가 발생해 다문화가정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인 남편은 출장 중이어서 화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은 31일 오전 3시 5분쯤 원주시의 주택 밀집 재개발지역에서 화재가 발생, 필리핀 국적의 외할머니 A(70)씨, 손녀(9)와 손자(8) 등 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함께 잠을 자다 이웃에 의해 구조된 숨진 아이들의 어머니인 필리핀 국적의 B(34)씨와 처음 불이 난 주택에 거주하던 C(67)씨 등 2명은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20여채의 집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일명 ‘달동네’인 명륜동의 한 주택에서 시작된 화마(火魔)는 순식간에 인근의 B씨 집까지 번졌다. B씨 가족은 화재 당시 같은 방에 모여 잠을 자고 있었다. 불이 나자 이웃 주민들이 창문을 통해 구조 요청을 한 B씨를 끌어내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A씨 등 방 안에 있던 가족을 구조하려 했으나 주택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실패했다. 화상을 입고 치료 중인 B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다니던 플라스틱 공장을 최근 그만두고 실직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0년 전 한국으로 시집온 B씨의 육아 등을 돕기 위해 지난해 어머니 A씨가 한국을 찾은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한 이웃은 “가정 형편은 어렵지만 어머니와 딸의 사이가 정말 좋은 가족이었다”며 “어머니와 자녀를 동시에 잃은 B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이날 불은 A씨와 C씨가 거주하던 집 2채를 전소시키고, 이웃집 2채는 절반가량 태운 뒤 1시간 20여분 만에 꺼졌다. 불이 난 곳은 원주시내 원동 남산 재개발지역으로 고지대에 주택 20여채가 빽빽하게 모여 있어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해 인명 피해가 컸다. 소방대원들은 지상 소화전을 이용해 화재 진압을 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석유난로 취급 부주의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감식을 벌일 계획이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사상 최초 경제수장 3관왕…유리천장 박살낸 재닛 옐런 [김정화의 WWW]

    사상 최초 경제수장 3관왕…유리천장 박살낸 재닛 옐런 [김정화의 WWW]

    미국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 재무부 장관. 한 자리만 해도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 경제 관련 주요직을 세 개나 역임하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경제학자가 탄생했다. 재닛 옐런(75) 신임 미 재무장관 이야기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미 상원이 인준안을 찬성 84표, 반대 15표로 통과시키면서 옐런은 재무장관으로서 8만 7000여명의 직원과 200억달러(약 22조 3500억 원)을 관장하게 됐다. 미국 232년 역사상 첫 여성 재무장관이다. 50년 가까이 이어진 옐런의 이력은 단순히 ‘유리천장을 없앴다’는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오랫동안 남성의 분야로 여겨진 경제학에서 내딛는 걸음마다 여성의 역사를 새로 써 왔다. 동기 중 유일한 여성…우등 졸업에도 종신교수직 못 얻어 워싱턴포스트(WP)는 옐런에 대해 “전국에서 여성의 교육 기회를 요구하는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옐런은 학업을 마쳤다”고 했다. 여성이 학교에 간다는 것 자체가 익숙지 않던 1960~1970년대, 옐런은 자주 그 낯선 위치를 자각해야 했다.그가 졸업생 대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게 1963년, 훗날 브라운대로 편입된 여대 펨브룩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배우고 우등 졸업할 때가 1967년이었는데, 브루클린의 몇몇 고등학교에선 그때까지도 여학생의 입학조차 불가능했다.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졸업한 1971년 옐런은 동기 중 혼자 여성이었다. 옐런은 1971년부터 하버드대 조교수로 일할 때도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당시 매우 외로웠다고 한 바 있다. 대학에서 최우등학생 모임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를 졸업했고, 박사 학위를 딴 뒤에는 그의 노트가 ‘족보’로 몇 년간 전해질 정도로 우수한 인재였지만 하버드대에서 종신 재직권(테뉴어)을 받지 못했다. 옐런은 한 인터뷰에서 “하버드대 시절 젊은 여성 교수로 많은 차별을 겪었다”며 “남자 동료 중 누구도 논문을 함께 쓰려고 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결혼한 뒤에도 경제학자로서 빨리 주목받지 못했다. 연준에서 일할 때 만난 그의 남편은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로프 조지타운대 교수인데, 초기엔 이 같은 남편의 그림자에 가려지며 배우자의 일을 따라 자신의 일을 그만두는 사람(trailing spouse)라고 불리기도 했다.당연하고 익숙했던 차별 넘어 여성들의 ‘길잡이’로 이런 배경 탓에 옐런은 오히려 성별 언급을 꺼리면서 스스로 여성으로 부각되지 않는 것을 바라기로 유명했다. 그는 연준 때 ‘남성 의장’(chairman)이나 ‘여성 의장’(chairwoman)이 대신 성별 구분 없는 ‘의장’(chair)으로만 해달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실수로 ‘미스터(Mr.) 옐런’이라고 불렀지만, 이를 정정하지 않은 일도 있다.하지만 그는 스스로 새 역사를 쓰고 변화를 일으키며 경제·금융계 여성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여성이 과학과 공학 분야에도 진출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경제학은 여전히 백인 남성에 의해 지배되는 현실 때문이다. 미국 등 전세계 2만명 이상의 학자가 참여하는 전미경제학회(AEA)의 2019년 설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200명 이상의 전현직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차별을 겪었다고 응답한 여성은 절반에 가까웠다. 남성은 3% 뿐이었다. 동료에 의해 동의 없는 신체 접촉 등 성추행과 심한 경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도 175명이었다. 여성 10명 중 3명은 자신의 업무가 동료들만큼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느꼈다고 답했다. AEA 회장 임기를 앞두고 있던 옐런은 당시 “이 설문에서 드러난 건 용납할 수 없는 문화”라고 비판했고, 이후 경제학계에 만연한 여성과 소수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고 변화를 촉구했다. 옐런은 1998년 경제자문위원회 당시 ‘성별 임금 격차의 추세 설명’ 보고서도 내놨다. 그는 “여성과 남성의 평균 임금 격차는 1970년대 후반 약 40 %에서 1997년 약 25 %로 감소했다”면서도 “기술과 직업 특성 차이를 통제한 후에도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수입이 적다는 건 직업 시장에서 여전히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이 계속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료 “항상 준비된 메리 포핀스”…美 구원투수 될까연준 시절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라는 두가지 책무를 모두 해내며 경제수장으로서의 역할도 증명한 옐런은 자신을 “실용적이고, 정책에 전문성을 가진 주류 경제학자”라고 했다. 언뜻 평범한 말이지만, 그의 철학에는 분명한 색이 있다. 여성뿐 아니라 소수 인종,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는 지난해 8월 WP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특히 저소득층 노동자가 겪을 어려움에 대해 우려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부자 증세와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옐런을 잘 아는 이들은 그를 인생의 ‘멘토’로 여긴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인 메리 델리는 “옐런은 똑똑할뿐 아니라 항상 ‘사람’을 생각한다”며 “옐런과 얘기하면 사람들은 그들이 존중받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는 연준 부의장 시절 옐런과 함께 식사하는 도중에 나이든 여성이 옐런에게 다가와 그녀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감사함을 표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동료들은 그를 “단호하지만 친절하고, 믿을 수 없게 똑똑하고 항상 준비됐다”고 평하며 동화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 ‘메리 포핀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 때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자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인 크리스티나 로머는 옐런을 일컬어 “경제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하고 녹아내리기 전에 경고음을 내줄 사람”이라며 “만일 상황이 잘못되면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할 사람”이라고 했다. 앞으로 재무장관으로서의 그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서 가장 이들이 목숨을 잃은 미국에서 그는 이미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2800달러, 민주당에 2만 5000달러를 기부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재닛 옐런은 누구 · Janet Louise Yellen1946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생1963 고등학교 졸업생 대표로 졸업1967 펨브룩 칼리지 경제학 학사 우등 졸업 (1971년 브라운대로 합병)1971 예일대 경제학 박사 졸업(동기 중 유일한 여성)1971~1976 하버드대 조교수1977~1978 연준 이코노미스트1994~1997 연준 이사1997~1999 빌 클린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2004~2010 연준 산하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2010~2014 연준 부의장2014~2018 연준 의장 (트럼프와 마찰로 연임 무산)2021~ 미 재무장관
  • 지적장애 선배 끓는 물 끼얹고 착취한 20대 연인, 징역 15년

    지적장애 선배 끓는 물 끼얹고 착취한 20대 연인, 징역 15년

    지적장애가 있는 선배와 한집에 살며 고문하고 학대한 20대 연인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1부(정지선 부장판사)는 29일 특수중상해, 특수중감금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박모(22)씨와 그의 여자친구 유모(24)씨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경도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에게 가혹행위를 반복했다”며 “피해자는 일상 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해를 입었고 신체·정신적 고통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여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경기도 평택시 자택에서 중학교 선배인 A(25)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해 착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같은 종목의 운동을 해 인연이 있던 A씨를 평택으로 불러 함께 생활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면서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A씨를 골프채와 쇠 파이프 등으로 폭행하고 끓는 물을 몸에 끼얹거나 불로 몸을 지지기도 했다. 또 A씨에게 빌리지도 않은 6000만원의 차용증을 쓰게 하고 도망가면 가족을 해칠 것처럼 협박했다. 피해자는 이로 인해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피부가 괴사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한성기업, 한끼애 ‘제육만두’·‘뚝불만두’ 2종 출시

    한성기업, 한끼애 ‘제육만두’·‘뚝불만두’ 2종 출시

    한성기업의 가정간편식(HMR) 브랜드인 ‘한끼애’는 제육볶음과 뚝배기불고기를 각각 만두에 담은 ‘제육만두’와 ‘뚝불만두’ 2종을 선보였다. 2종 모두 국내산 돼지고기 30% 이상을 사용하고 신선한 재료와 특제 양념을 넣었다. 특히 최근 얇은 피 만두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얇고 쫄깃한 만두피를 사용해 내용물의 식감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한성기업 관계자는 “집안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제육만두와 뚝불만두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마저 위로받는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 가정간편식 브랜드인 ‘한끼애’를 강화해 만두 등의 다양한 제품을 한 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성기업은 수산물 회사의 장점을 살려 국내 처음의 해물 만두를 출시했으며, 새로운 제품을 지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 남경필 “그거 잘해? 힘 합쳐봐? OK! 스타트업은 ‘연정’이 되더라”

    남경필 “그거 잘해? 힘 합쳐봐? OK! 스타트업은 ‘연정’이 되더라”

    무수한 정계 원로들이 ‘정치는 허업(虛業)’이라 했건만 여전히 각계에서는 종착역이 정치인 양 여의도로 몰려온다. 금배지의 무게에 눌려 허덕이면서도 또다시 손에 쥐려 죽고 죽이는 치열한 생존게임을 반복한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2019년 54세의 나이에 이를 역행하는 삶을 택했다. 수도권 선거 승리를 내리 6번(국회의원 5선·경기지사) 거머쥔 화려한 전적, 여전히 회자되는 소장파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존재감, 거물 정치인 인생을 뒤로하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스타트업 세계에 뛰어들었다. 정치에서 다 못 피운 ‘사람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꿈, 비즈니스로 마저 피우겠다며 의료 데이터 수집을 기반으로 하는 건강케어 서비스 ‘빅케어’ 대표가 됐다. 지난 25일 서울 삼성동 빅케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직원들과의 열띤 회의 도중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나와 주먹 인사를 건넸다. 정장과 구두 대신 스티브 잡스 스타일의 검정 목폴라와 캐주얼화 차림새였다. 여전히 쏟아지는 정계 러브콜과 관련해선 “나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이 정치판에선 할 일이 없다. 그때의 난 불행했다”며 선을 그었다. 지금은 무엇이 행복하냐 묻자 한껏 고조돼 빅케어의 청사진을 한참 풀어냈다. 그는 정치에선 제 기능을 못했던 통합과 상생이 요즘 시대 비즈니스, 플랫폼 산업에선 오히려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새 직업을 금세 찾았다. “경기지사 할 때부터 데이터나 플랫폼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판교를 중심으로 아이디어와 열정은 있는데 돈이나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 판을 벌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주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땐 정치할 때니까 자연스레 정부가 플랫폼을 깔고 이후 경쟁은 저들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했다. 정치를 그만두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면 내가 행복할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딱 이 분야가 떠오르더라. 앞으로 의료, 바이오가 대세이고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니 이쪽에서 내 다음 인생을 시작해 보자 싶었다. 지금도 지사 때 연을 맺은 30대 유능한 창업자와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완전히 다른 분야인데 적응이 됐나. “업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같다. 전에는 정치로 시민을 행복하게 하고 싶었고, 지금은 우리 회사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 개인의 의료 데이터를 모아 질병 등 예고된 불행을 막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우리가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병원에 다니는 등 평생 세금과 내 돈으로 만들어진 재산인 의료 데이터는 엄청나지만 정작 주인에게는 그것이 없다. 각 병원, 건강보험 공단, 고용노동부, 교육부 등 뿔뿔이 흩어져 있다. 데이터를 모으면 그 사람이 보인다. 인공지능 시대에 돌입했고 이젠 병을 예측할 수 있는 알고리즘도 많이 나와 있다. 앞으론 더 발전할 거다. 우선 내 데이터가 모여 있어야 인공지능이 개입해 ‘저렇게 살면 죽어,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얘기해 줄 수가 있다.”-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인가. “일차적으로는 여기저기 흩어진 개인의 의료 데이터를 모아 준다. 다만 보안은 은행 수준으로 철저하다. 지난해부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코로나19 위험도 자가평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위치는 물론이고 나이·성별·병력을 기반으로 위험성을 판단해 준다. 연도별 건강검진 기록을 한데 모아 건강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 설 이후에는 ‘마음케어’ 서비스를 론칭할 예정이다. 개인이 노출시킨 텍스트로 심리 상태를 분석하고 적절한 대처 방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다. 과학적으로 공인된 심리검사 분석 틀에다가 연세대 송민 교수 등과 함께 자체 개발한 툴을 함께 적용했다. 이후 시리즈로 비만케어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새로 꾸려 온 삶에 만족하나. “나는 살면서 늘 행복을 추구했는데 정치 생활 거의 끝 부분에 와서 행복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싸우지’, ‘왜 이렇게 분열되지’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주장했던 게 연합, 협치 같은 것들이었고 의원 할 때도 제3의 길을 걸으려고 노력도 해 봤다. 나름대로는 최대한 해 봤고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게 구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결국 한 사람의 실험으로 끝나게 되더라. 구조적 변화를 위해서 대선까지 도전하며 노력해 봤지만 잘 안 됐고. 탄핵 후 국민적 열망에서 비롯된 엄청난 정치적 에너지가 사회의 구조를 바꿔 새로운 미래가 열리길 너무도 희망했다. 그런데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더라. 분열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을 보며 확실히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젠 내가 정치에서 더는 할 일은 없겠다’라고.” -지금 일에서는 본인의 명확한 역할을 찾았나. “이해가 다른 사람들을 통합해 통합된 국가를 만들자는 게 정치할 때의 목표였다. 난 그걸 지금 비즈니스에서 하고 있다. 정말 뛰어난 사람이 많은데 서로 이해관계를 묶어 내지 못해 시너지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정치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다. ‘너 그거 잘해? 우린 이걸 잘하거든. 힘 합해 볼까? 공정하게 나누자. 오케이.’ 이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다. 정치는 지금까지도 선거에서 ‘네가 나한테 도전해? 밟아버려.’ 이런 잔혹한 게임이잖나. 반면 제조업 시대를 넘어선 요즘 시대 비즈니스, 플랫폼 비즈니스에선 내 동네에 비슷한 사람이 나타나면 ‘컬래버(협업)할 게 없을까’, ‘파이를 키워 나갈 방법이 뭐 없을까’를 고민한다. 상생, 협업, 공유 이런 것들이 여기선 가능하다.” -정치권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인가. “지금의 삶이 너무 즐겁다. 실은 지난해 총선 전과 서울시장 보궐선거 준비 초기 시점에 여기저기서 연락을 많이 주셨다. 사무실에 모시고 요즘 하는 일을 설명해 드렸더니 얼마 듣지도 않고 다들 후다닥 가시더라. 아마 속으론 ‘저렇게 신나서 떠드는 걸 보니 이 인간 진짜로 안 할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을 거다. 정치 인생 후반부에 난 마음도 아프고 불행했다. 정치에서 희망이 아닌 절망만을 느꼈다. 나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정치판에서는 안 먹힌다. 괴로운 편 가르기를 통해 링에 오르고 파이널에 가도 또 상대를 때려눕혀야 하는 그런 게임, 난 싫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의미가 있다. 고객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고 나 자신도 행복해졌다.” -자녀가 정치한대도 말릴 건가. “본인들부터가 아마 한다고도 안 할 거다. 우리 아들들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스타트업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우리 큰아들이 요즘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집에서 서로 그런 얘기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아이디어나 영감도 많이 얻고 있다. 나름대로 능력 있는 자기 친구들을 끌어모아 캠핑 관련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것 같더라.” -숨 가쁜 정치 전쟁터를 떠나 찾은 일상은 어떤가. “회사 출근 시간이 오전 10시다. 오전에 여유가 있으니 아침 루틴이 생겼다. 일어나면 우선 기도를 한 후 집에서 기르는 생허브를 따서 차를 끓여 마신다. 그리곤 명상과 서리요가(유튜브 요가 채널)를 하는데 내가 너무 잘하더라. 퇴근하고 저녁 때는 집에 가서 집사람과 시간을 보낸다. 특히 요즘에는 원래 나가 살던 큰아들한테 같이 좀 있자고 해서 3달째 우리 집에서 출퇴근하며 같이 지내고 있다. 저녁마다 맥주나 와인 한 잔씩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제도 같이 랍스터 사다가 집에서 쪄서 영양보충을 제대로 했다. 조만간 둘째를 불러 영양보충을 시킬 요량이다. 요즘 우리 애들한테 우리 집이 ‘힐링캠프’로 불린다. 이런 삶을 두고 내가 어딜 가겠나. 딱 봐도 행복해 보이지 않나.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정청래 “추미애는 노무현처럼 국민에 미안함 남겨”

    정청래 “추미애는 노무현처럼 국민에 미안함 남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곧 법무부장관직을 그만두는 추미애 장관에 대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국민들에게 미안함을 남긴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대중도 노무현도 그 분들에게 미안해했던 국민들이 지지자들이 그 분들을 만들어 냈다”며 언젠가 보상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의원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추미애 장관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며 이제 추미애의 시간은 가고 인사청문회가 끝난 박범계의 시간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추미애는 물러가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작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보수언론과 야당의 파상공세로 추미애가 입었을 상처도 크지만 그가 보여준 용기와 결기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법무부 장관의 표상”이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법무부 장관은 전형적인 공무원으로 검찰의 선배로서 후배 검찰을 때로는 당근과 채찍으로, 때로는 한통속로 관리하거나 관리를 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의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가장 큰 업적은 법무부의 탈검찰선언과 실행”이라고 설명했다. 검찰과의 짬짜미 고리를 끊고, 견제와 균형의 균형추를 새롭게 확립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검찰청이 법무부의 외청이었음에도 여태껏 흡사 검찰부 법무청같은 하극상 질서였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검사에 대한 인사제청권자는 법무부 장관이지만, 지금까지 검찰총장이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고 법무부 장관은 도장만 찍는 식이었으나 추 장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업급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인사 논의를 위해 장관을 상대로 법무부 장관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이는 마치 회사의 인사부장이 인선안을 들고 사장실에 가지 않고 사장에게 사장실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제3의 장소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법적으로 보장된 장관의 인사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저항이라고 부연했다. 정 의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로부터의 법무부 독립선언을 한 셈”이라면서 ‘추-윤 갈등’과 같은 개인 간 감정싸움이나 권한다툼이 아니라 법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던 검찰 권력의 균열이자 구태와의 결별이라고 주장했다. 또 추미애가 아니라 홍길동 법무부 장관이었어도 똑같은 시련과 저항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추미애를 검찰개혁의 주연 배우로 임명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시대의 신이 임명했을 수도 있다며 검찰개혁은 시대적 운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 일제 손에 죽는 치욕 대신 ‘옥중 자결’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 일제 손에 죽는 치욕 대신 ‘옥중 자결’

    1929년 12월 28일자 신문 1면에 “근래에 보지 못한 대음모”, “미증유의 대사건”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를 단 큰 사건이 대서특필됐다. 바로 장진홍 의사의 대구 폭탄 투척 의거이다. 일제는 사건이 발생한 뒤 2년 2개월이 넘도록 보도를 통제하다 장 의사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을 검거한 뒤에야 공개했다. 폭탄을 던져 일제 기관들을 폭파하기로 계획한 장 의사는 1927년 6월 일본인 고바야시로부터 다이너마이트 30개와 뇌관 30개, 도화선 등을 15원을 주고 구입해 폭탄을 만들기로 했다. 폭탄 투척 대상으로 삼은 곳은 경북도청, 경북경찰부, 조선은행 대구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이었다. 의사는 냄비와 솥 등 쇠붙이를 부수어 파편을 만들고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폭탄을 제조했다. 동지를 규합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단독으로 거사를 치르기로 하고 경북 칠곡군 봉화산 골짜기에서 폭탄 성능 실험에 성공했다.1927년 10월 18일 아침. 대구 덕흥여관에 투숙한 의사는 나무상자 4개에 폭탄을 넣어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신문지로 포장했다. 11시 30분쯤 여관 종업원에게 소포 4개를 주면서 “나는 몸을 다쳐 걸을 수 없으니 이 벌꿀 선물 상자를 조선은행, 도청, 식산은행의 순서대로 급히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종업원은 친절한 의사의 말에 의심하지 않고 소포를 받아 먼저 조선은행으로 가서 4개 중 1개를 전달했다. ●안동·영천경찰서 폭파 제2 거사는 실행 못 해 바로 이때 포병 출신 일본인 은행원이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나무 상자를 열었다. 은행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두려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벌꿀 선물이라던 상자 속에는 불이 붙은 도화선이 2㎝밖에 남지 않은 폭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은행원들은 상자의 도화선을 끊고 다른 상자 3개는 건물 앞 공터에 갖다 놓고는 경찰에 연락했다. 대구경찰서 일경 10여명이 출동해 폭탄 3개를 은행 옆 길에 옮겨 놓았다. 채 2분이 지나지 않은 11시 50분쯤 폭탄이 굉음과 함께 잇따라 폭발했다. 현장에 있던 은행원과 일경 등 5명이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은행 창문 70여개가 부서졌다. 유리 파편이 대구역까지 날아갈 정도로 폭탄의 위력은 엄청났다. 장 의사는 1895년 6월 6일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현 구미시 인동)에서 태어났다. ‘충효’를 가훈으로 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의사는 애국심과 효심을 중히 여기며 성장했다. 1907년 인명학교(현 인동초등학교)에 입학해 의사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장지필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졸업했다. 장지필은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심어 주는 애국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는 인명, 협성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제자들에게 민족의식을 깨우쳐 준 우국지사였다. 의사는 1914년 3월 조선보병대에 들어갔다. 1910년 한일병합 후 대한제국 친위대를 개편한 부대였다. 조선보병대 입대는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중도에 보병대를 그만두고 광복단에서 활동하던 의사는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1918년 만주 봉천(현 선양)으로 갔다. 만주에서 의사는 조선광복단 이국필, 김정묵 등을 만나 과감한 무장투쟁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넘어간 의사는 한인 100여명을 규합해 조선보병대 경험을 살려 ‘보병조전’(步兵操典)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적군(赤軍)과 백군(白軍)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었는데 하바롭스크가 백군에 점령되고 일본 관동군이 출병하자 귀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국 후 의사가 착수한 일은 3·1운동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 집안의 전 재산인 전답 5두락(약 1000평)을 몽땅 팔아 조사 비용을 마련했다. 의사는 서적 행상으로 가장,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가 자행한 학살, 방화, 고문 등을 상세히 조사해 문건으로 만들었다. 마침 1919년 7월 미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했는데 함대에는 경북 출신 승무원 하사관 김상철이 있었다. 의사는 김상철에게 조사서를 전달하고 세계 각국에 배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일제에 항거할 최종 수단으로 폭탄 투척을 생각하고 있었다. 1927년 4월 무렵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폭탄 전문가 호리키리를 만난 것은 의사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 계기가 됐다. 호리키리는 의사에게 다이너마이트와 철편 등을 이용한 폭탄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도 동지 이름 발설 안 해 의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후 인상착의를 바꾸고 도피해 경북 선산에 은신했다. 폭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의사는 경북 안동과 영천에서 경찰서 등 주요 기관을 폭파하는 제2의 거사를 계획했지만 일경의 감시망이 좁혀지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신변의 위험을 느끼자 의사는 1928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경시청과 중의원에 폭탄을 던질 계획을 세우면서 오사카에서 안경점을 하는 동생집에 머물렀다. 한편 일제는 의사의 폭탄 투척을 중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망을 좁혀 갔다. 수사 과정에서 관련이 없는 이정기 등 8명을 검거해 악독한 고문으로 자백하게 만든 뒤 진범으로 꾸며 재판에 넘기기도 했고, 폭탄 상자에 쓰인 글씨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민족저항 시인인 이육사를 투옥시키기도 했다. 일경은 이런 엉뚱한 수사 끝에 마침내 의사가 벌인 일임을 알아내고는 체포에 혈안이 됐다. 그러다 일본에서 귀국한 노동자로부터 의사를 오사카에서 본 적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결국 동생집에 숨어 있던 의사는 일본으로 급파된 일제 형사들의 간교한 계략에 체포되고 말았다. 1928년 2월 19일 의사는 대구로 압송됐다. 의사는 “일본이 멸망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며 이번 거사는 야만 일본을 타도하기 위하여 정의의 폭탄을 던진 것인데 성공하지 못하고 너희들의 손에 붙들린 것이 천추의 유한이다”라고 일경들을 호통쳤다. 또 조선인 경관들에게는 “한민족의 피를 받고도 일제 경찰의 주구가 되어 동족의 해방운동을 이다지도 방해하는 악질 조선인 경관의 죄상이야말로 나의 죽은 혼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일제는 공범을 대라며 혹독한 고문을 했지만, 의사는 어느 누구의 이름도 대지 않고 혼자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0년 2월 17일 1심에 이어 4월 24일 복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다. 의사는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웃은 다음 주먹만 한 돌을 주머니에서 꺼내 재판장에게 던지고 큰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한 다음 다시 의자를 집어던지며 항거했다. ●張의사 자결에 재소자 1300명 만세·단식투쟁 최종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자 의사는 일제의 손에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느니 깨끗이 죽기로 결심했다. 1930년 6월 5일(음) 무더운 밤 11시쯤 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했다. 의사의 나이 35세였다. 의사의 자결 사실을 안 대구형무소 재소자 1300여명은 만세를 부르고 단식투쟁을 하며 농성을 벌였다. 의사의 부모는 충격을 받고 세상을 떴다. 일경은 의사의 장례도 방해했다. 의사의 시신은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지도 못하고 칠곡 석적면 남율의 언덕에 쓸쓸히 묻혔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의사는 순국하기 전 옥중에서 간수를 통해 조선 총독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너희들 일본제국이 한국을 빨리 독립시켜 주지 않으면 멸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내 육체는 네놈들의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위하여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고야 말겠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文 ‘당정 재정 갈등’ 정리… 총선 앞둔 與 “이르면 3월 손실보상”

    文 ‘당정 재정 갈등’ 정리… 총선 앞둔 與 “이르면 3월 손실보상”

    더불어민주당은 25일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하는 방안을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해 이르면 3월, 늦어도 4월 초 지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손실보상 제도화 방안 검토를 공식 지시함에 따라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낙연 대표는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코로나19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영업손실보상법, 협력이익공유법, 사회연대기금법 등 ‘상생연대 3법’을 언급하며 “공정한 기준을 세워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며 “2월 임시국회부터 충분히 논의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홍익표 정책위의장도 MBC 라디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속도”라며 “3월 늦어도 4월 초에는 지급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등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중소벤처기업부 등 부처와 당정에 손실보상 방안을 검토하도록 주문했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 및 여당과 기획재정부의 견해차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서둘러 정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기재부와 당 양쪽에 탁상공론을 그만두고 생산적 논의를 지시한 것 아니겠냐”며 “제대로 현장 조사가 안 되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주무 부처인 중기부는 소상공인과 커뮤니케이션도 잘되고 지급할 수 있는 전달 체계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재정이 감당하는 범위’라고 했지만, 사실상 여당의 손을 들어 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직접 교통정리를 하면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기재부는 힘이 빠진 모양새가 됐다. 기재부는 세 차례에 걸친 재난지원금을 기획했던 예산실을 주축으로 여당과 손실보상 방안을 협의 중이지만, 정작 홍 부총리가 주재한 확대간부회의에선 공개 언급이 전혀 없었다. 홍 부총리는 전날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도 몸살감기를 이유로 불참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감염병예방법에 보상 의무를 명시하는 방안은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 부담이 크고 향후 유사 상황 때 유연성을 발휘하기 힘든 특별법 제정보다는 기존 소상공인법을 수정하는 방향이 유력하다. 당은 손실보상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중기부와, 재원 마련은 기재부와의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손실보상 방법으로 임대료나 세금 등 고정비를 지원해 주는 방안, 전년 대비 손실차액의 50~70%를 보상하는 방안 등이 나온 가운데 민주당은 비례와 정액 보상 두 가지를 병행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집합금지·제한 14개 업종의 과세 자료를 기준으로 손실차액의 일정 비율을 보상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과세 자료가 없는 영세업자는 정액 보상하는 방식이다. 정액 보상은 연매출 4000만원 이하 사업자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영세업자는 과세 자료가 없어 손실 규모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시범적으로 일정 금액을 정해서 보상하고, 차후 대안을 마련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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