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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과 문학 엮었다…올해 문학주간 주제 ‘소리-채집’

    음악과 문학 엮었다…올해 문학주간 주제 ‘소리-채집’

    가을밤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문학주간 행사가 22일부터 5일 동안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올해 ‘소리-채집’을 주제로 문학을 청각과 공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관람객을 맞는다. 22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에는 공연 ‘주고 받는 소리’가 마련됐다. 오랜 기간 서신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온 시인 마종기와 가수 루시드 폴이 나이와 장르를 넘어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 23일부터 ‘시들의 사운드트랙’, ‘내 소설의 테마곡’ 등 문학주간 기획위원들이 기획한 10여개 프로그램을 대학로에서 진행한다. 신진 작가들이 나오는 ‘나의 첫 책 프로젝트’부터 ‘최인훈 작가 5주기 기념 포럼’까지 다양한 문학인을 아우를 예정이다. 이밖에 공모로 선정한 20여개 문학 프로그램이 부산, 제주 등에서 운영된다. 행사 기간 마로니에공원 지하 다목적홀에서 허수경 시인 5주기 기념전시를 연다. 한글 활자 디자이너 이용제 교수가 허수경 시선집 수록 작품을 타이포그래피로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마로니에 야외공원에서는 체험 부스를 운영한다. 타자기와 만년필 등을 활용해 문학 작품을 필사해볼 수 있다. 문학주간은 작가와 독자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행사로, 2016년부터 운영 중이다.
  • 경기도박물관 ‘두 얼굴의 평화, DMZ’ 특별전

    경기도박물관 ‘두 얼굴의 평화, DMZ’ 특별전

    경기도박물관이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두 얼굴의 평화, DMZ’ 특별전을 오는 10월15일까지 선보인다. 29일 경기도박물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1953년 7월27일 경기도 북부의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을 기념하는 특별전으로,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참상, 정전협정, 그 결과로 만들어진 비무장지대(DMZ)를 조명한다. 전시는 지난 2020~2021년 문화재청·경기도·강원도가 합동으로 진행한 ‘한반도 비무장지대 실태조사’ 성과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발굴·수습한 영웅들의 유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제1부 ‘끝나지 않은 전쟁’ ▲제2부 ‘두 얼굴의 DMZ’ ▲제3부 ‘내일을 위한 기억’ ▲제4부 ‘DMZ 실태조사 성과 순회사진전’ 등으로 나뉜다. 1부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는 6·25전쟁과 정전협정을 다룬다.6·25전쟁에서 사용한 대표적인 무기인 M1 소총과 ‘따발총’이라고 불리는 소련제 슈파긴 기관 단총, 전쟁 때 뿌려진 삐라, 유엔군이 돌아갈 때 기념으로 가져간 아리랑스카프 등을 전시한다. 2부 ‘두 얼굴의 DMZ’에서는 비무장지대의 안보·역사유적과 생태환경을 다룬다.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2㎞씩 후퇴한 지점까지 설정된 비무장지대(DMZ)는 지금껏 남북 군인이 대치하는 ‘중무장지대’이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생태계가 회복된 공간으로 남아있다. 철원의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 전투의 전사자 6명의 유품도 전시된다.백마고지에서 전사한 고 편귀만 하사의 유품인 만년필과 ‘전사자신원확인통지서’,‘호국영웅패’와 유해를 감쌌던 태극기가 든 상자 등을 전시한다. 3부 ‘내일을 위한 기억’에서는 6·25전쟁에 전투부대와 의료지원을 해준 국제연합군의 22개 국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국내의 기념비를 소개한다. 이와 함께 70년 전 정전협정 지도를 통해 사라진 마을과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도 전시한다. 4부는 ‘DMZ 실태조사 성과 순회사진전’이다.DMZ 실태조사 때 촬영한 가장 최근의 사진들을 경기도박물관 갤러리에서 따로 선보인다. 아울러 2009년 국방부 의뢰로 최초로 휴전 이후 비무장지대 기록 사진을 촬영한 박종우 작가의 다큐멘터리 사진도 전시된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 관계자는 “비무장지대 땅 밑에 지뢰와 폭탄이 숨어있고 전사자의 유해와 유품, 문화유적과 사라진 마을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이들을 무심히 덮고 회복해가는 자연생태계의 모습을 통해 DMZ의 내일,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시간 아까워 생면만 드셨나” 아들 울린 주석중의 ‘라면 스프’

    “시간 아까워 생면만 드셨나” 아들 울린 주석중의 ‘라면 스프’

    지난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장남 현영씨가 최근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사연들을 담아 추모객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주 교수의 아들 현영씨가 추모객들에게 전한 메시지를 27일 페이스북으로 공개했다. 주씨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저희와 함께해주신 덕분에 아버지 장례를 무사히 마쳤다”며 “많은 분이 아버지가 평소 어떤 분이었는지 얘기해주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줘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주씨는 장례를 마친 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찾은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다시 슬픈 광경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그는 “책상 서랍 여기저기, 그리고 책상 아래 한쪽에 놓은 박스에 수도 없이 버려진 라면 스프가 널려 있었다”면서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환자 보는 일과 연구에만 전심전력을 다하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너무나 가슴 아팠다”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전했다. 주 교수가 남긴 서류들 속에서 기도문도 발견됐다고 했다. “제가 환자의 치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 주 교수가 평소 사용하던 만년필로 직접 쓴 기도문들이었다. 주씨는 “정성을 다해 수술하고 환자를 돌보지만 내 힘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그렇게 적어두신 듯하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 주 교수에게 치료받았던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진 사연도 소개했다. 주씨는 “아버지 빈소가 마련된 첫날 펑펑 울면서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어려운 수술이라며 모두 피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집도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노라며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며 장례 당시 빈소를 찾은 추모객의 사연을 떠올렸다. 그는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저 환자는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감당해야지 어떡하겠냐’,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랬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힘들고 긴장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심장 수술에 정성을 다해 도와주신 많은 분께 늘 고마워했다”며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데 능한 분이 아니어서 아버지의 진심이 전해지지 못했다면 이렇게나마 아버지의 뜻을 전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주씨는 “많은 분이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해줬다”며 “여러분이 기억해준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주 교수는 지난 16일 오후 1시 20분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패밀리타운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 [단독] “한미, 6·25 때 부산·강릉 앞바다 추락 미군기·유해 함께 찾는다”

    [단독] “한미, 6·25 때 부산·강릉 앞바다 추락 미군기·유해 함께 찾는다”

    6·25전쟁 막바지에 부산과 강원 강릉시 앞바다에 추락한 미군 항공기 잔해와 승무원 유해를 찾는 한미 공동조사가 시작된다. 한미 국방부가 유해 발굴에 함께 나서면서 한미동맹 70주년의 의미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이근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22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70주년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계기로 유해 발굴 관련 다양한 국제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단장은 “1953년 1월 13일 미군 B26 항공기가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추락했고 항공기에 탑승했던 미군 3명은 시신을 아직 수습하지 못했다”며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과 공동으로 9월에 해운대 앞바다에서 수중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1952년 11월 15일에는 미군 C46D 수송기가 강릉 앞바다에 추락했고 미수습자가 8명이나 된다”며 “강릉 앞바다 역시 한미 공동조사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다음달에는 DPAA가 보관하고 있는 국군전사자 유해 7구가 국내로 봉환된다. 이 단장은 “미국에서 보관하는 유해 7구 중 3구는 하와이 무명용사묘지를 재개장하는 과정에서 국군전사자라는 게 확인됐다”며 “4구는 북한이 미군 전사자인 줄 알고 미국에 인계했는데 추가 확인 결과 한국군으로 드러난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국유단에서 보관하고 있는 중국군 유해 25구를 인도적 차원에서 중국으로 송환하는 논의도 진행 중”이라며 “중국과 협의를 거쳐 10월쯤 송환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이 단장은 “국유단으로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유해 발굴을 재개하는 게 큰 과제”라며 “남북 관계 등 고려 사항이 많지만 언젠가는 남북과 미국 3자가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DMZ 일대는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대략 국군전사자 유해가 1만여구로 예상한다”며 “특히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경기 연천군 111고지 등은 남북뿐 아니라 미군과 중국군 전사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DMZ 유해발굴사업은 2018년 남북 9·19 군사합의로 2019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실시됐다.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는 백마고지에서 진행했지만 올 들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 단장은 지금까지 발굴한 전사자 유해 가운데 편귀만 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백마고지에서 발굴할 당시 5사단 소속 강훈구 중사가 유해 발굴을 위해 조성한 주차장 옆 경사면에서 정말 우연하게 작은 뼛조각을 찾아낸 게 계기가 돼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다”며 “보통 유해 발굴이 끝난 곳에 주차장을 만들기 때문에 전혀 기대도 안 했던 곳이었다. 기적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인이 생전에 쓰던 만년필에 이름을 새겨 놨고, 유가족들은 2006년부터 4차례에 걸쳐 유전자 시료 채취를 해 준 덕분에 신속하게 가족관계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이어 “최근 유족들이 고인의 만년필을 기증하기로 했다. 조만간 기증식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1월 고 최봉근 일병 신원 확인을 했다고 고인의 딸에게 연락했는데, ‘그러잖아도 어젯밤 꿈에 아빠를 만났다’며 울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는 이 단장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6·25 전사자가 12만 1879구나 된다. 하루라도 빨리 임무를 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국유단의 기술력은 미국에서도 인정해 줄 정도다. 하지만 신원 확인을 위해선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유단 전화(1577-5625)로 알려 주면 직접 방문해 시료 채취를 해드린다”고 당부했다. 국유단은 국방부 직할 기관으로 2007년 창설됐다. 현재 300여명 규모로 탐문, 발굴, 신원 확인 등의 업무를 한다. 사료 조사와 현장 탐사를 거쳐 발굴 장소를 확정하면 일선 부대와 협력해 발굴하는 데 통상 80~100명이 6주가량 참여한다. 기초 발굴을 바탕으로 현장 감독하는 국유단 관계자들이 유해를 발굴한 뒤 유전자 시료와 유해를 대조해 신원을 확인하면 ‘호국영웅 귀환 행사’를 통해 유가족에게 인계한다.
  • [단독] “한미, 6·25 때 부산·강릉 앞바다 추락 미군기·유해 함께 찾는다”

    [단독] “한미, 6·25 때 부산·강릉 앞바다 추락 미군기·유해 함께 찾는다”

    6·25전쟁 막바지에 부산과 강원 강릉시 앞바다에 추락한 미군 항공기 잔해와 승무원 유해를 찾는 한미 공동조사가 시작된다. 한미 국방부가 유해 발굴에 함께 나서면서 한미동맹 70주년의 의미를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근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22일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정전협정 70주년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계기로 유해 발굴 관련 다양한 국제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이 단장은 “1953년 1월 13일 미군 B26 항공기가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추락했고 항공기에 탑승했던 미군 3명은 시신을 아직 수습하지 못했다”며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와 공동으로 9월에 해운대 앞바다에서 수중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1952년 11월 15일에는 미군 C46D 수송기가 강릉 앞바다에 추락했고 미수습자가 8명이나 된다”며 “강릉 앞바다 역시 한미 공동조사를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다음달에는 DPAA가 보관하고 있는 국군전사자 유해 7구가 국내로 봉환된다. 이 단장은 “미국에서 보관하는 유해 7구 중 3구는 하와이 무명용사묘지를 재개장하는 과정에서 국군전사자라는 게 확인됐다”며 “4구는 북한이 미군전사자인 줄 알고 미국에 인계했는데 추가 확인 결과 한국군으로 드러난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국유단에서 보관하고 있는 중국군 유해 25구를 인도적 차원에서 중국으로 송환하는 논의도 진행 중”이라며 “중국과 협의를 거쳐 10월쯤 송환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이 단장은 “국유단으로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유해 발굴을 재개하는 게 큰 과제”라며 “남북 관계 등 고려 사항이 많지만 언젠가는 남북과 미국 3자가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DMZ 일대는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대략 국군전사자 유해가 1만여구로 예상한다”며 “특히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경기 연천군 111고지 등은 남북뿐 아니라 미군과 중국군 전사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DMZ 유해발굴사업은 2018년 남북 9·19군사합의로 2019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실시됐다.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는 백마고지에서 진행했지만 올들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 단장은 지금까지 발굴한 전사자 유해 가운데 고(故) 편귀만 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백마고지에서 발굴할 당시 5사단 소속 강훈구 중사가 유해 발굴을 위해 조성한 주차장 옆 경사면에서 정말 우연하게 작은 뼛조각을 찾아낸 게 계기가 돼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다”며 “보통 유해 발굴이 끝난 곳에 주차장을 만들기 때문에 전혀 기대도 안했던 곳이었다.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인이 생전에 쓰던 만년필에 이름을 새겨놨고, 유가족들은 2006년부터 4차례에 걸쳐 유전자 시료 채취를 해준 덕분에 신속하게 가족관계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이어 “최근 유족들이 고인의 만년필을 기증하기로 했다. 조만간 기증식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1월 고 최봉근 일병 신원 확인을 했다고 고인의 딸에게 연락했는데, ‘그렇잖아도 어젯밤 꿈에 아빠를 만났다’며 울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는 이 단장은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6·25 전사자가 12만 1879구나 된다. 하루라도 빨리 임무를 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국유단의 기술력은 미국에서도 인정해줄 정도다. 하지만 신원 확인을 위해선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유단 전화(1577-5625)로 알려주면 직접 방문해 시료 채취를 해드린다”고 당부했다. 국유단은 국방부 직할기관으로 2007년 창설됐다. 현재 300여명 규모로 탐문, 발굴, 신원 확인 등이 업무다. 사료 조사와 현장 탐사를 거쳐 발굴 장소를 확정하면 일선 부대와 협력해 발굴하는데 통상 80~100명이 6주가량 참여한다. 기초 발굴을 바탕으로 현장 감독하는 국유단 관계자들이 유해를 발굴한 뒤 유전자 시료와 유해를 대조해 신원을 확인하면 ‘호국영웅 귀환 행사’를 통해 유가족에게 인계한다.
  • ‘논산 군번’보다 깊게 새겨진 창작혼… 작가의 서재를 엿보다

    ‘논산 군번’보다 깊게 새겨진 창작혼… 작가의 서재를 엿보다

    사실 충남 논산을 간 건 웅어 때문이었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귀한 물고기. 산란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맘때가 제철이다. 한데 웅어는 단 한 점도 맛볼 수 없었다. 기억과 역사의 공간들, 낮과 밤의 자태가 완전히 딴판인 호수, 우듬지부터 새봄이 내려앉은 휴양림 등에 시선을 빼앗긴 탓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전하려는 건 식도락가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시선을 ‘강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논산의 볼거리 이야기다.놀뫼는 요즘 논산 사람들이 부쩍 내세우는 논산의 별칭이다. ‘너르다’라는 순우리말이 변해 놀뫼가 됐다는 견해도 있고, ‘누런 땅’ 혹은 ‘너른 땅’이란 뜻의 황산(黃山)의 순우리말 이름이란 견해도 있다. 황산이 어딘가. 백제 ‘오천 결사대’의 선봉장 계백 장군이 열 배의 신라군에 맞서 싸운 곳이다. 패장의 이름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곳이 황산 말고 또 있을까. 황산이 곧 놀뫼라는 해석에 더 마음이 쏠리는 이유다. ●‘인간시장’의 혼 담긴 김홍신 문학관 논산 중앙로의 김홍신 문학관부터 간다. 건물 외벽의 로고가 시선을 끈다. 빨간 원은 창작혼을 상징하는 ‘피 한 방울’, 검은 원은 결실로서의 문학을 상징하는 ‘잉크 한 방울’의 의미가 담겼다. 단아한 건물 외모와 달리 파사드는 화사하다. 빛의 양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빛깔로 보이는 다이크로익 필름으로 마감했기 때문이다. 낮보다는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때 한결 알록달록해 보인다.1980년대 중반 김홍신은 남자 고교생들에게 ‘영웅’이었다. 그의 책 ‘인간시장’ 때문이다. 위악적이라고 해야 할까, 법대생이면서도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장총찬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은 당대의 부조리한 사회를 주먹으로 통렬하게 부숴댔다. 고교생들이 사회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사회성 짙은 소설에 그리 열광했을까. 시리즈 한 권이 끝나면 다음 책이 출간될 때까지 다들 몸이 달아 기다렸다. 책이 책방에 깔렸다는 소식이 돌면 요즘 말로 ‘오픈런’을 벌였다. 누군가 확보한 책을 학교로 가져오면 순서를 정해 읽었다. 책은 하나고 기다리는 녀석들은 많으니 당연히 ‘대여 기한’이 짧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수업 시간에 교과서 사이에 끼운 채, 혹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 악착같이 읽었다. 김홍신 문학관에선 대표작 ‘인간시장’을 비롯해 ‘대발해’ 등 그의 역작들과 만날 수 있다. 김홍신은 철저한 만년필, 원고지주의자다. 문학관 관계자에 따르면 손목터널증후군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고생하면서도 여태 원고지에 만년필로 육필 원고를 쓰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타계한 이어령 선생의 생전 모습을 마주하는 것도 반갑다. 문학관 2층의 키네마틱 아트 전시장에서다. 이어령 선생과 김홍신 작가가 대화하는 형식의 화면이 작품처럼 전시됐다. 문학관 건너는 집필관이다. 김 작가가 내려와 머물 때도 있단다. 2층엔 거대한 고사목을 활용해 휴게 공간을 만들었다. 옛 은진초등학교에서 가져온 벼락 맞은 느티나무라고 한다. 여행자들이 다리쉼 하기 안성맞춤이다. 집필관 일부는 작가들의 레지던시로도 쓰인다.강경 쪽엔 강경산 소금 문학관이 있다. ‘은교’, ‘풀잎처럼 눕다’, ‘소금’ 등 박범신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저서들과 작가의 서재, 강경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한 공간, 논산 지역 작가의 전시와 체험 공방 등이 마련돼 있다. 박범신이 태어난 곳은 이웃한 연무읍이다. 이른바 ‘논산 군번’의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라도 잊지 못할 터다. 신병훈련소의 대명사인 연무대가 있는 곳이니 말이다. 박 작가가 실제 성장한 곳은 강경이라고 한다. 강경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교사 생활을 하던 그는 1973년 한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 문학상,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김동리문학상, ‘더러운 책상’으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나라 대표 작가로 자리잡았다. 문학관의 이름이 된 작품 ‘소금’은 그가 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해 지은 소설이다. 문학관 뒤 옥녀봉(강경산) 자락에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된 ‘소금집’ 등이 남아 있다. 옥녀봉은 강경의 전망대 같은 곳이다. 높이는 약 44m에 불과하지만 굽어보는 풍경만큼은 넓고 시원하다. 한옥 형태의 옛 강경성결교회예배당(등록문화재) 등도 옥녀봉 자락에 있다.●강경포구 굽어보는 ‘소금 문학관’ 강경은 논산에 딸린 소읍이다. 하지만 두 도시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전남 나주와 영산포의 관계와 비슷하다. 강경이 잘나갈 때는 “은진(논산)은 갱개이(강경) 덕에 먹고산다”고 했단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현 강경역사관, 이하 등록문화재), 구 연수당 건재약방, 강경갑문, 화교학교와 사택 등 당대의 영화를 엿볼 수 있는 풍경들이 읍내 곳곳에 널렸다. 그중 강경성당은 필수 방문지다. 반전의 풍경을 갈무리한 곳이다. 외형은 딱 로켓이다. 각지고 뾰족하다. 그러니 내부도 대들보에 서까래를 연결한 전형적인 삼각형의 지붕일 거라 누구나 예상하기 마련이다. 한데 안으로 들면 꼭 방주에 든 듯하다.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들이 고래의 뼈처럼 둥글다. 이를 ‘첨두형 아치’(끝이 뾰족한 아치)라고 한다. 그러니까 겉은 뾰족하면서 안은 방주처럼 안온한 건물이 바로 강경성당이다. 1961년 프랑스 신부가 지어 현재 등록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돈암서원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중 하나다. 핵심 건물은 응도당(凝道堂·보물)이다. 정면 5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창건 연대는 1633년으로 추정된다. 응도당은 옛 서원의 강당 건물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한다. 양 측면엔 풍판을 달고 그 아래로 눈썹지붕까지 달았다. 궁궐을 제외하고 눈썹지붕을 단 건물은 흔하지 않다. 덩치는 크면서도 건물에 스민 건축기법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기단 위의 주춧돌을 60㎝가량 높여 건물 자체가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기둥과 지붕을 잇는 공포 등의 부재들도 섬세하게 조각했다. 그 위에 식물의 이파리를 닮은 기와 암막새로 멋을 더했다. 늘씬한 미녀를 보는 듯하다. 천장의 ‘응도당’과 ‘돈암서원’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세계유산 ‘돈암서원’도 필수 코스 건물 뒤로는 분합문을 내 밖의 경치를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 덕에 응도당 담장 너머의 ‘S’자 산길이 꼭 실경산수화처럼 보인다. ‘도(道)가 머문다’라는 뜻의 건물 이름과 조응하는 풍경이다. 사당인 숭례사의 꽃 담장도 독특하다. 열린 자세를 가지라는 지부해함(地負海涵), 지식을 넓히고 예를 갖추라는 박문약례(博文約禮), 햇살과 훈풍처럼 상대를 배려하라는 서일화풍(瑞日和風) 등 서원이 배향하는 김장생의 가르침 12자를 전서체로 알록달록하게 새겨 놓았다. 아이와 함께 갈 만한 곳 하나 덧붙이자. 연산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등록문화재)이 있는 역이다. 옛 새마을호 객차를 연결해 카페, 놀이방, 책방 등으로 꾸민 열차 체험관도 독특하다.
  • 문구 덕후, 도쿄서 찾은 ‘80개의 보물’ 대방출 [그 책속 이미지]

    문구 덕후, 도쿄서 찾은 ‘80개의 보물’ 대방출 [그 책속 이미지]

    안경처럼 생긴 물건을 펼치면 가위가 된다. 생선 모양 볼펜은 얼핏 보면 진짜 물고기처럼 보일 정도다. 축구선수 모양의 귀여운 연필깎이, 둥그런 공에 구멍을 뚫은 연필꽂이 역시 눈길을 끈다. 도쿄의 작은 문구점에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아이템들이다. 문구류를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도쿄의 독특한 문구점 80곳을 탐방하고 ‘덕심’을 가득 담아 정리했다. 파이롯트 만년필, 트래블러스 노트, 로이텀 불렛 저널 등 한 번쯤 들어 봤을 문구계의 클래식부터 희귀한 그림책과 인터넷을 뒤져도 구하기 어려운 각종 문구류를 손 그림으로 담아냈다. 문구점 위치를 표시한 지도와 문구점 내부 구조, 그리고 직원들 모습까지 감성이 물씬 전해진다. 작가가 오랜 세월 축적한 문구 사용 비법을 비롯해 주요 문구점 근처 볼거리와 먹을거리 등 알찬 정보도 들어 있다. 도쿄를 여행한다면 시간 내어 문구점에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 경계를 모르는 英 작가 쿠레이시 “죽음이 말을 걸어왔다. 그 뒤 달라진 것들”

    경계를 모르는 英 작가 쿠레이시 “죽음이 말을 걸어왔다. 그 뒤 달라진 것들”

    “난 죽음을 봤다. 죽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파키스탄계 영국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69)가 지난해 12월 복싱데이(선물 포장하는 시즌) 휴가를 즐기던 이탈리아 로마에서 낙상 사고를 당해 팔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며 4일(현지시간) 영국 BBC 월드서비스 뉴스아워에 이런 사고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뀌어놓았는지 털어놓았다. 쿠레이시는 영화와 연극, 소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문필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다. 영국 사회의 다양한 속성, 국외자 신분의 사람들과 주변인들이 겪는 인종 갈등, 계급, 성 등의 사회적 쟁점을 다루는 문제작들을 발표하며 늘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1984)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로 지명됐고, ‘시골뜨기 부처’로 소설가로 입지를 다지며 최고의 신인 소설가에게 주어지는 휘트브레드상을 수상한 뒤 1993년 BBC의 4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져 그해 BBC 미니시리즈상을 차지했다. ‘런던이 나를 죽이다’(1991)는 직접 감독까지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자녀들에게 영상통화를 해 작별을 고하고 싶었는데 여자친구 이사벨라 다미코가 말리는 바람에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한사코 죽음을 피하려 했지만 지금은 달라진 여건을 좇아 죽음과 어울려 지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팔다리에 약간 감각이 돌아왔지만 뭔가를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물리치료사는 몇주 뒤면 포크를 들고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의 저작을 보는 신규 독자가 늘어났고 수백만이 자신의 블로그를 찾아 받아쓰거나 한다면서 자신도 스스로와 인간의 조건을 배워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이렇게 쓰지 않았는데 책에다 만년필로 적어넣거나 컴퓨터로 고쳐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받아쓰기하듯 적어놓으면 대단한 반응이 쏟아져 놀랍다면서 한 사고가 다른 사고를 낳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종종 이 세상에 혼자 뿐이라고 느끼며 월드서비스와 BBC3와 BBC4 채널을 듣곤 한다며 자신의 저술처럼 사람들을 아는 것에서 위안을 느끼며 항상 절망의 심연이라고 표현한 지점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받아쓰기를 자주하는 단어는 삶을 긍정하는(life-affirming), 어둠(dark), 재미있는(funny)와 현실에 생생한(alive to his reality) 등이라고 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고 했다. “갑작스럽게도 난 앓음의 문을 넘어 왔다. 그리고 난 변했다. 장애인들의 조건에 대해 정말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세상의 어느 가정이라도 장애인 한둘과의 인연은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존재하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던 고뇌와 고통의 세상을 살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싶다. 나는 장애를 가진 작가들을 돕는 자선단체를 세우고 싶은데 그 이름은 카프카의 소설 제목 변신(Metamorphosis)을 붙이고 싶다.” 그와 친한 문인으로는 지난해 여름 소설 낭독 모임에 참가했다가 습격을 당한 살만 루시디가 손꼽힌다. 늘 둘은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재미있는 문자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쿠레이시에 따르면 루시디는 절대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지 않는데 워낙 그가 개인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난 내게 일어난 일을 다 말한다. 난 내 정체성을 작가로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환자였느냐고 내가 물으면 그는 아니라고 답하는데 그는 그래야만 한다.” 손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야 쓰고 타이핑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려면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아픈 사람들은 자주 스스로에게 ‘왜 나야?’라고 되묻는데 한 학교 친구는 아주 단순한 답, ‘왜 내가 아니어야 하는데?’를 들려줬다고 했다. 쿠레이시는 우리는 예외가 됐으면 생각하고 아픔이 우리를 망가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말년으로 치닫는 시점에 이런 일이 생겨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 6·25 백마고지전투 산화 용사 유해 70년 만 가족 품에...국유단 편귀만 하사 확인

    6·25 백마고지전투 산화 용사 유해 70년 만 가족 품에...국유단 편귀만 하사 확인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백마고지 전투(1952년 10월 6∼15일)에서 전사한 고(故) 편귀만 하사 유해가 70년만에 유족들 품으로 돌아간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발굴한 국군 9사단 30연대 소속 고 편귀만 하사 유해를 가족에게 인계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22일 경기 오산시 보훈회관에서 연다고 21일 밝혔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9사단은 12차례 공방전 끝에 고지를 확보했던 전투였다. 유해는 지난 7월 작은 뼛조각을 발견하면서 처음 확인했고, 이후 철모와 M1 소총 등 유품 91점을 발굴했다. 특히 편 하사 이름을 새긴 만년필을 통해 유해 신원을 확정할 수 있었다. 고인은 전남 나주시에서 5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1948년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배우자 태중에서 막내딸이 자라고 있던 1952년 6월 입대해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은 뒤 9사단에 배치됐고, 끝내 딸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전사했다. 딸 편성숙씨는 “간절히 찾았는데 살아서 돌아오시는 기분”이라며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다한 것 같아 마음이 벅차다”고 소회를 전했다. 국유단은 유해 신원 확인에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며 전화(1577-5625)나 인근 보건소·보훈병원·군병원 등으로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나 거동 불편, 생계 등 이유로 방문이 어려우면 국유단이 직접 찾아갈 수도 있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0년 4월 시작됐고 지금까지 전사자 20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백마고지에서는 3명의 유해 신원이 확인됐다.
  • ‘화장실에 카메라 설치’ 의붓딸들 촬영한 60대…檢, “항소 기각하라”

    ‘화장실에 카메라 설치’ 의붓딸들 촬영한 60대…檢, “항소 기각하라”

    집안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20대 의붓딸들을 몰래 촬영하고 성추행해 징역 3년 6월을 선고 받은 60대가 항소하자 검찰이 재판부에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전고법 제1-2형사부(재판장 백승엽)가 16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준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A(60)씨의 항소심 결심 공판을 연 가운데 검찰은 “A씨의 항소에는 이유가 없으며 별다른 사정 변경도 없다”며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 측 변호인은 “A씨가 범죄 사실을 모두 인정한 등을 고려할 때 1심 형량이 너무 무거워 항소했다”며 “피해자 측이 요구한 합의금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등 합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비난 가능성은 크지만 추행 정도가 작다”고 선고일을 넉넉히 잡아 합의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이날 결심 공판에서 “죽을 죄를 지었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받고 싶다. 많이 반성하며 살겠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A씨는 2017년부터 집 안 화장실 칫솔통에 카메라를 설치한 뒤 20대 의붓딸 2명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고, 이렇게 찍은 나체 사진과 동영상 파일 수백 개를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저장해 놓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화장실 칫솔 통에 만년필 형태의 초소형 카메라를 몰래 설치해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 또 2017년부터 이듬해까지 잠 든 자매의 방에 들어가 신체 여러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 추행하기도 했다. A씨의 범행은 막내 의붓딸이 우연히 A씨의 휴대전화 사진첩을 보는 과정에서 들통이 났다. 막내딸이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사진과 동영상을 삭제하며 증거를 인멸했고, 딸들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1심을 맡은 대전지법 공주지원 형사1부(부장 김매경)는 “A씨가 친족 관계인 의붓딸들이 쉽게 항거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딸들의 고통이 크고, 피해 또한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엄벌을 원하고 있다”고 징역 3년 6월을 선고하고 8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달 9일 오전 10시 15분으로 선고 기일을 잡고 A씨 측이 원활한 합의를 이유로 연기를 신청하면 한 차례 연장할 계획이다.
  • 의붓딸 나체 촬영하려고 ‘집 화장실‘에 카메라 설치한 60대

    의붓딸 나체 촬영하려고 ‘집 화장실‘에 카메라 설치한 60대

    집 안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20대 의붓딸들을 몰래 촬영하고 성추행한 60대가 징역 3년 6월을 선고 받았다. 대전지법 공주지원 형사1부(부장 김매경)는 2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A(60)씨에게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지만 피해를 당한 의붓딸들이 엄벌을 원하고 있다”고 이같이 선고하고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A씨는 2017년부터 집 안 화장실 칫솔통에 카메라를 설치한 뒤 20대 의붓딸 2명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고, 이렇게 찍은 나체 사진과 동영상 파일 수백 개를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저장해 놓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화장실 칫솔 통에 만년필 형태의 초소형 카메라를 몰래 설치해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 또 2017년부터 이듬해까지 잠 든 자매의 방에 들어가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 추행하기도 했다.A씨의 범행은 막내 의붓딸이 우연히 A씨의 휴대전화 사진첩을 보는 과정에서 들통이 났다. 막내딸이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사진과 동영상을 삭제하며 증거를 인멸했고, 딸들을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친족관계인 의붓딸들이 쉽게 항거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딸들의 고통이 매우 크고, 지금까지 피해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 “빌어먹을, 너무 싫다”…즉위식서 짜증낸 찰스3세, 이번엔 잉크에 짜증 연발

    “빌어먹을, 너무 싫다”…즉위식서 짜증낸 찰스3세, 이번엔 잉크에 짜증 연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73)가 즉위 이후 거듭 짜증을 내는 모습이 포착됐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추모를 위해 이날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인근 힐스버러성을 방문했다. 찰스 3세는 방명록에 서명하는 도중 펜의 잉크가 흘러 손을 적시자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공개된 영상에는 찰스 3세가 서명을 하는 모습이 담겼다. 찰스3세가 서명을 하고 나서 보좌관에게 “오늘이 9월 12일인가”라고 물었고 보좌관이 “13일입니다, 폐하”라고 대답하자 “어이구, 날짜를 잘못 썼네”라면서 다시 썼다. 이어 찰스3세는 카밀라 왕비에게 펜을 넘겨주다 손에 묻은 잉크를 보면서 “너무 싫다”고 말했다. 카밀라 왕비는 “사방에 흘렀네”라고 말했고, 찰스 3세는 “이런 빌어먹을 것은 못 참겠어. 매번 말이지”라고 거친 말을 내뱉으며 여러 차례 손을 닦았다. 비슷한 모습은 지난 10일 세인트 제임스궁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나왔다. 당시 찰스 3세는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기 전 책상에 놓여있던 펜대와 잉크병 등을 치우라는 의미로 여러 차례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찰스 3세는 이 펜 대신 재킷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문서에 서명했다. 해당 모습은 방송에 그대로 생중계 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펜 때문에 연이은 해프닝이 발생하자 트위터에선 ‘#Pengate’(펜게이트)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두 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 짜증난 찰스 3세?…즉위식서 ‘이거 치워’ 손짓 포착

    짜증난 찰스 3세?…즉위식서 ‘이거 치워’ 손짓 포착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로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73)의 행동 하나하나가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거행된 즉위식에서 책상에 놓여있는 물건을 치우라고 지시하는 모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이날 찰스 3세는 성 제임스궁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즉위 선언문에 서명을 하고 국왕으로서의 맹세를 했다. 화제가 된 장면은 찰스 3세가 공식 문서에 서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책상 위에는 즉위 선언문과 펜이 담긴 통, 잉크병 등이 놓여 있었다. 찰스 3세는 이 통에 준비된 펜을 쓰지 않고 자신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문서에 서명했다. 이후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을 공휴일로 선포하고 이에 서명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려고 했다. 그때 책상 가장자리에 놓인 잉크병과 만년필 통이 방해가 된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수행원은 물건을 책상에서 치웠다. 비슷한 장면은 몇 분 후에 다시 포착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을 공휴일로 선포하고 이에 서명하는 과정에서였다. 다시 문서에 서명하기 위해 책상에 앉으려던 찰스 3세는 잉크병 등을 보더니 치우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수행원은 다시 물건을 치웠다. 해당 장면들은 언론에 생중계됐고, 트위터 등 SNS에서 잇따라 공유되며 화제가 됐다. 네티즌들은 “짜증난 표정이네”, “인성이 드러난 것이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반면 모친의 사망 이후 예민해진 상태이고, 애초에 잉크병과 펜이 잘못 배치돼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편 지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은 오는 1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할 전망이다.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은 수개월 뒤에 열릴 전망이다.
  • [길섶에서] 헤어질 결심/박현갑 논설위원

    [길섶에서] 헤어질 결심/박현갑 논설위원

    안 보던 책과 낡은 다이어리 등 책상 위 물건을 정리 중이다. 모두 참고할 요량으로 쌓아 둔 것들이다. 물건 속 손글씨 등 일상의 흔적과도 헤어지려니 아쉽기도 하다. 정리는 기억과의 이별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시간따라 기억도 새로 채우는 게 맞다며 애써 위로해 본다.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몽블랑이라는 말에 50대 이상은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산을, 30대는 만년필을, 20대는 하얀 눈가루를 뿌린 케이크를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백설공주나 인어공주 등 서양의 고전동화 속 주인공은 대부분 백인이다. 요즘은 흑인이나 라틴계 주인공들도 넘쳐난다. 원작가에겐 왜곡이겠으나 다문화 사회 흐름에 맞춘 설정이라니 관념은 변하는 게다. 이성 간 애정표현 방식이나 부모 자식 간 사랑 등은 어떨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을 게다. 그런데 남성,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이 나오고, 인공지능 모델이 주목받는 시대다. 애써 지켜 온 규범과 삶의 양식도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 박인환·이봉구·천상병 ‘명동 샹송’… 서늘한 세월 품은 예술혼의 해방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박인환·이봉구·천상병 ‘명동 샹송’… 서늘한 세월 품은 예술혼의 해방구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세월이 가면‘ 박인희의 목소리로 듣는다. 조용필, 최백호, 양하영, 이동원, 적우, 임태경의 목소리로 듣는다. 현인 그리고 나애심의 목소리로 듣는다. 박인환의 시(詩)를 가사로 이진섭이 작곡한 노래 ‘세월이 가면’을 들으며 명동을 걷는다.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편곡과 음색에 따라 노래는 다르게 들린다. 세월이 흐르는 이치를 아직 모르는 목소리의 낭만적인 떨림, 휙휙 쌩쌩 곁을 스쳐 지나는 세월을 온몸으로 느끼는 목소리의 흔들림, 지난 세월을 회한으로 돌이키는 젖은 목소리, 그 미련마저도 모두 지워져버린 듯 아련한 회상과 망각의 목소리. 1956년 시를 쓰고 곡을 붙이고 노래하던 처음의 그때, 그들에게 세월은 어떤 의미였을까?2009년 EBS에서 방영된 문화사 드라마 ‘명동 백작’은 1951년 3월 이봉구(박철호)가 폭격으로 폐허가 된 명동 거리를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려했던 명동,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명동이 전쟁으로 초토화된 것을 목격한 이봉구는 끝내 설움이 북받쳐 엎드려 오열한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명동 또한 전쟁 아닌 전쟁으로 폐허의 분위기다. 인파로 북적대던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텅텅 비어 있다. 말마따나 인파(人波), 사람의 물결에 휩쓸린 채 멋쟁이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쏙 빠졌던 예전의 명동은 온데간데없다.그곳도 마찬가지다. 명동 한복판, 명동성당에서 을지로 입구로 가는 큰길에 눈에 잘 띄던 화장품 가게도 역병의 폭격을 이기지 못했다. 유리창에 붙은 ‘임대’라는 글자가 가슴에 슥, 붉은 빗금을 긋는다. 빈 가게 귀퉁이에 보도를 향해 돌 하나가 덩그러니 섰다. ‘문화예술인이 찾았던 은성 주점 터: 이곳에서 약 10m 앞에는 1960년대 소설가이자 언론인 이봉구(1915~1983)와 변영로, 박인환, 전혜린, 임만섭 등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던 주점 터이다. 특히 이봉구 선생은 명동을 좋아하여 명동 시장(市長)·명동 백작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낭만의 시대였다. 야만의 시대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 전쟁이 끝나고 설움과 불안과 울화가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대던 때였다. 너나없이 가난했다.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암흑 세상을 하루하루 버텼다. 육신과 영혼의 허기가 는개처럼 자욱했던 그 시절의 명동 그리고 은성은 갈 곳 없는 예술가들의 은신처,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는 예술혼의 해방구였다.은성도 그 자리에 있던 화장품 가게도 없는 거리에 멀거니 섰다가 길을 건넜다. 명동파출소 옆 골목 안쪽 지하에 ‘명동백작5060’이라는 밥집 겸 술집이 옛 은성을 재현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크 타임을 막 지나서인지 점심 장사를 한 흔적만 남아 있고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다. 객쩍은 낮술일지나 음복하는 심정으로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하려 했더니, 불러도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빈 입을 쩍 다신다. 어두침침한 조명, 낮은 천장,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 쓸쓸하고도 아련하다. 그 시절의 은성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1956년 봄밤, 일군의 예술가들이 어김없이 은성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 열변과 췌담이 왁자지껄한 가운데 상고머리의 젊은 시인이 있었다. 그 시절의 평균키를 훌쩍 뛰어넘는 장신에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를 좋아하는 멋쟁이였지만, 21살에 등단해 10년을 시인으로 사노라니 빈한한 살림살이에 세탁소에 맡긴 스프링코트를 찾을 돈이 없어 봄에도 두꺼운 겨울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은성 주점을 운영하던 사람은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1986년 작고)씨였다. 영화 제작자였던 남편이 과로로 숨지자 외아들을 키우고 생계를 잇기 위해 가게를 열었다. 그런 연고로 은성은 자연스럽게 문인들을 비롯한 영화인, 음악가, 화가 등 예술가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이 됐다. 박인환을 비롯해 김수영, 변영로, 전혜린, 오상순, 입구 쪽에 서서 막걸리 한 잔 사줄 사람을 기다리던 천상병 등이 단골이었다고 한다. 작가라는 작자들은 가난했다. 그럼에도 밥을 못 먹는 주제에 술은 잘도 먹었다. 예나 제나 쥐꼬리 같은 고료를 받으면 탈탈 털어 사먹고, 택택한 물주가 나타나면 얻어먹고, 뻔뻔하게 외상도 줄창 대고 먹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을 주문하는 박인환 일행에게 은성의 주인이 밀린 외상값부터 갚으라고 지청구했다. 그러자 박인환이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사 삼아 작곡가 이진섭이 노래를 만들었다. 3년 전 ‘밤의 탱고’를 발표해 가수 활동을 시작한 연극배우 나애심이 노래를 했다. 노래를 들은 은성의 주인, 이명숙씨는 눈물을 훔치며 술을 내주었다. 그 곡이 명동의 노래, 명동 샹송, ‘세월이 가면’이었다. 얼핏 듣기에 사랑 노래였다. 아니, 그 사랑이 시들고 난 뒤 여전히 남은 기억에 대한 노래였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을 잃어도 잊지 못하는 것, 그것은 들끓는 가슴이 아니라 ‘서늘한 가슴’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가족을 잃은 사람, 연인을 잃은 사람, 영이별이 아니더라도 생이별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이 허깨비처럼 허정거리며 살았다. 잊고 싶은 기억에는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 속에도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기억이 섞여 있어, 이름은 잊어도 눈동자와 입술은 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처럼 시간 앞에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세월이 가면’은 그들을 위한 노래였다.어느덧 등단한 지 30년이 돼 버린 나는 꼬꼬마 때 까마득한 선배들로부터 ‘명동 시대’의 일화를 귀동냥했다. ‘영혼의 양식을 공급해 준 곡창’으로서 명동은 분야와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예술가와 문화 종사자들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과 무용은 물론 대중문화와 비평과 언론까지 경계가 없었다. 그 시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문화사 속에 이름으로 남았다. 그 말단에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이지 못한 아쉬움을 명동 시대의 에피소드들을 사(私)소설로 기록한 ‘명동 백작’ 이봉구 선생의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은성에서 소주를 마시는 말년의 이봉구를 김일주 선생이 찍었는데, 신인 시절 나도 문인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하던 그의 피사체가 됐던 적이 있다. 아, 그런데 김일주 선생도 지난해 여름 작고했다는 부고를 뒤늦게 읽었다. 이제 술 마시는 작가들, 침 튀기며 토론하는 작가들, 싸우는 작가들, 술상에서 조는 작가들의 모습을 기록할 사람도 더이상 없다…. 나애심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다. 안개 같은 담배 연기 속에 울려 퍼지는 깔깔한 목소리, ‘나는 천 년의 세월을 지나온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보들레르의 시구가 떠오른다. 은성은 1973년에 영업을 종료했고 그 자리에 2004년 서울문화재 기념표석이 설치됐다. 세월을 따라 사람들이, 사랑이 그렇게 가버렸다.(㉻에서 계속) 소설가
  • “어느 날 오징어 사주고 떠나시더니…” 백마고지 용사, 70년 만에 딸 품으로

    “어느 날 오징어 사주고 떠나시더니…” 백마고지 용사, 70년 만에 딸 품으로

    2021년 10월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 일대에서 수습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가 조응성 하사로 확인됐다. 17일 국방부에 따르면 백마고지 전사자 병적기록 등 자료조사를 거쳐 딸 조영자씨를 찾아냈고, 유전자 분석으로 친자 관계를 최종 확인했다. 1928년 경북 의성 태생인 조 하사는 농사를 짓던 중 전쟁이 터지자 1952년 5월 아내와 두 딸을 남긴 채 제주도 제1훈련소로 입대했다. 9사단 30연대 소속이었던 조 하사는 1952년 10월 백마고지에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방어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때 철원 일대 백마고지를 확보하고자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12차례의 공방을 벌여 7차례나 고지 주인이 바뀐 접전이었다. 지난해 10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발굴 당시 고인의 유해는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발견됐다. 유해는 상반신만 수습됐는데, 탄약류를 비롯해 개인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 유품도 발굴됐다. 특히 철모와 머리뼈에서는 한눈에 봐도 전사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탄알 관통 흔적도 발견됐다. 딸 조씨는 아버지의 신원 확인 소식에 “어느 날 아버지가 오징어를 사오셔서 맛있게 먹었는데, 우리에게 이별을 고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신 것 같아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국방부는 고인을 위한 ‘호국영웅 귀환 행사’를 이날 인천에 있는 유족 자택에서 열었다. 국방부가 2000년 4월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시작한 이후 총 185명의 국군 전사자 신원이 확인됐다.
  • 사격자세 그대로…백마고지에 일등병 잠들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사격자세 그대로…백마고지에 일등병 잠들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높이 395m의 야산. 6·25 전쟁의 격전지로 이른바 ‘백마고지’로 불린 곳입니다. 국군이 22만발, 중공군이 5만 5000발의 포탄을 쏴 민둥산이 됐고, 그 모습이 ‘백마’와 같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곳입니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 최정예 제38군은 3개 사단 4만 5000명을 동원해 군사 요충지인 이 산을 차지하려고 공세를 퍼부었고, 국군 9사단은 10여일의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적을 패퇴시켰습니다. 24번이나 고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 중공군은 국군의 3배인 1만여명이 사상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고 합니다. 9사단은 당시의 공로로 ‘백마부대’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국민들의 심금을 울린 그 병사 그로부터 69년이 지나 백마고지 정상에서 발견된 한 신병의 유해가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무명용사인 이 전사자의 계급은 ‘일등병’으로 현재의 ‘이병’에 해당합니다. 그의 개인호는 포탄과 총탄이 쏟아지는 진지의 가장 바깥쪽에 있었습니다.사격하는 자세 그대로, 그는 진지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습니다. 방탄모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봐서 포탄 파편이나 적탄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줍니다. 녹슨 군번줄이 있었지만, 인식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유해 근처에서는 계급장, 탄약류, 만년필, 숟가락도 발견됐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는 앞으로 이 무명용사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돌아오지 못한 전우를 그리며 울다 지난달 10일에는 백마고지 전투 참전용사 이상순(92)옹 등 9명의 영웅이 직접 발굴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쓰러진 전우를 고지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과 전투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그들은 귀환하지 못한 전우를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었다고 합니다.전투 현장에서는 음료병을 이용한 ‘화염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퇴각하기 직전 탄약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화염병을 투척해 소각시켰거나 긴박한 진지 공격 상황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국방부는 지난 9월부터 지난달 24일까지 약 110일 동안 비무장 지대(DMZ) 백마고지, 화살머리고지 등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해 유해 22구, 전사자 유품 총 8262점을 발굴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산야에서 싸우다 쓰러진 6·25 전쟁영웅 13만명이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더 많은 이들이 귀환하길 기원합니다.
  • “사격자세 그대로”…백마고지 참호서 이등병 유해 발굴

    “사격자세 그대로”…백마고지 참호서 이등병 유해 발굴

    6·25전쟁 최대 격전지인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 전투 유해발굴 현장에서 포탄을 피해 참호에 숨어 사격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습의 국군 전사자 추정 유해가 공개됐다. 국방부는 24일 오후 지난 9월부터 약 110일 동안 비무장지대(DMZ)에서 유해 발굴을 진행해 총 27점(잠정 22구)의 유해와 총 8262점의 전사자 유품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국군 전사자 추정 유해 중 개인호에서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의 유해도 발견됐다. 이 유해 인근에는 계급장, 구멍이 뚫린 방탄모, 탄약류, 만년필, 숟가락 등이 발견됐다. 이 전사자의 계급장은 일등병이었다. 6·25 때 일등병은 현재 군 계급 체계에서는 이등병에 해당한다. 전투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초년병 유해는 지난달 28일 백마고지 395 고지 정상에 있는 개인호에서 발견됐다. 군은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한 서욱 국방부장관은 유해발굴 임무를 수행한 지휘관과 관계자에게 “여러분들이 백마고지에서 흘린 땀방울이 지금의 전환기를 평화의 시간으로 만드는 초석”이라며 “최선의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하루빨리 남과 북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이행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전했다.앞서 이상순(92)씨 등 백마고지 전투 참전용사 9명도 지난 10일 백마고지 유해 발굴 현장을 방문했다. 참전용사들은 직접 작성해 온 편지를 낭독하며 “70년 만에 이곳 백마고지를 다시 밟아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 죽어도 더 이상 여한이 없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군은 오는 26일 유해발굴 완전작전 기념식을 통해 올해 비무장지대 유해발굴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에 명시된 남북공동유해발굴에 북측이 호응하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언제라도 공동유해 발굴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해서는 유해소재 제보, 유가족 시료채취 등 국민적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 확산과 참여를 유도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한글학자 출신지 경남 김해에 전국 최초 공립 한글박물관 개관

    한글학자 출신지 경남 김해에 전국 최초 공립 한글박물관 개관

    한글을 주제로 한 전국 최초 공립박물관이 경남 김해시에 건립돼 9일 문을 열었다.경남 김해시는 이날 오후 김해시 분성로 김해문화원 옆 김해박물관에서 개관식을 했다. 김해한글박물관은 김해출신 한글학자로 한글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한뫼 이윤재(1888∼1943) 선생과 눈뫼 허웅(1918∼2004)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우리 민족의 위대한 한글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건립했다. 이윤재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언어학자로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 편집 및 발행 책임을 맡아 우리글 지키기에 앞장섰다. 일제 식민사학에 대항해 진단학회(震檀學會) 창립에도 참여했다. 허웅 선생은 한글학회 회장과 이사장을 지냈다. 김해한글박물관은 3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600㎡ 규모로 건립됐다. 1층에는 기획전시실, 2층에는 제1·2전시실과 체험형 영상실·집필실·교실 등이 설치됐다. 박물관 건물 외벽을 비추는 미디어파사드(외벽 영상 장치)도 설치했다. 박물관에는 이윤재·허웅 선생의 한글 연구 업적을 중심으로 한글 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자료 등을 전시했다. 이윤재 선생이 집필한 ‘표준조선말사전’, ‘문예독본’, 허웅 선생의 육필 원고, 만년필, 생전 의복 등을 볼 수 있다. 김해시는 한글박물관 개관을 위해 개인, 기관, 문중 등으로 부터 보물 1점과 4000여점 유물을 기증받았다. 기증 받은 유물 가운데는 ‘조선말 큰사전’, ‘문예독본’을 비롯해 조선시대 순 한글로 작정된 최초의 한글 공문서인 보물 제951호 ‘선조국문유서’(宣祖國文諭書) 등도 포함돼 있다. 선조국문유서는 임진왜란때 의주로 피난 간 선조가 왜군 포로가 된 백성들을 회유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내린 한글 교서다.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장수 권탁(1544∼1593)이 이 문서를 가지고 적진에 몰래 들어가 적 수십 명을 죽이고 우리 백성 100여명을 구해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 보물은 지난 6월 안동 권씨 종친회에서 5년 기한으로 기탁해 김해한글박물관 주요 전시품이 됐다. ​김해한글박물관에서는 1980년대 이전 사용됐던 책걸상, 칠판 등 기성세대의 향수를 떠올리는 옛 교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연도별 국어시험을 본 뒤 채점 한 성적표도 받을 수 있다. 이날 김해한글박물관 개관식에는 허성곤 김해시장, 송유인 김해시의회 의장, 황준석 국립한글박물관장, 오세연 국립김해박물관장을 비롯해 유물 기증·기탁자 등이 참석했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김해한글박물관이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하고 김해 출신 한글학자들의 업적을 기리는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해한글박물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 문 대통령, 유엔총회 가는 BTS에 특사 임명장 수여

    문 대통령, 유엔총회 가는 BTS에 특사 임명장 수여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방탄소년단(BTS)에게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 임명장을 수여했다. 문 대통령이 BTS를 만난 것은 지난해 9월 제1회 청년의날 기념식 행사차 BTS가 청와대를 방문한 이후 1년 만이다. 이날 행사에는 BTS 멤버 전원과 소속사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정부 및 청와대에서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김형진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BTS 측에서는 BTS 멤버들과 신영재 빅히트뮤직 대표, 이진형 하이브 이사가 자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여식이 진행된 청와대 본관 1층 충무실로 들어서면서 BTS 멤버들과 주먹인사를 나눴다. 뒤이어 김남준(RM), 김석진(진), 민윤기(슈가), 정호석(제이홉), 박지민(지민), 김태형(뷔), 전정국(정국)까지 6명의 멤버 각각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또 외교관 여권과 만년필 선물까지 전달했다. 문 대통령과 BTS 멤버들은 기념촬영을 한 후 또 한 번 주먹인사를 나눴다. 제이홉은 촬영 후 문 대통령을 바라보며 양손 엄지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취해 참석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코로나19 극복,지속가능한 성장 등 미래세대를 위한 글로벌 의제 관련 국제적 협력을 주도하고, 우리나라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맞는 외교력 확대를 위해 BTS를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임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BTS는 다음주 미국 뉴욕에서 진행되는 제76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본격적인 특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유엔총회에서는 지속가능한발전목표(SDG)가 핵심 의제로 논의될 예정으로,BTS는 20일(현지시간) 개최되는 SDG 모먼트(Moment)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영상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SDG 모먼트는 2019년 지속가능발전목표 정상회의 정치선언에 따라 유엔 사무총장 주도로 개최되는 연례행사로 작년에 처음으로 개최됐다. 청와대는 “방탄소년단은 그동안 전 세계에 위로와 희망을 전해 왔다”며 “이번 유엔총회 참석으로 주요 국제이슈에 대한 미래 세대의 공감을 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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