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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사일개발 가능성 알고도 日기업 기계 對北수출 의혹”

    |도쿄 연합|미사일 개발에 전용가능한 기기를 북한과 이란 등지에 불법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일본의 ‘세이신 기업’이 군사전용 가능성을 사전 인지하고도 수출을 감행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13일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세이신 기업측은 1994년 고체연료 제조에 사용되는 분쇄기 ‘제트밀(jetmill)’을 북한에 수출하기에 앞서 재일총련 산하 ‘재일 조선인 과학기술협회(과협)’측으로부터 기계의 용도 등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과협측 간부는 세이신측에 제트밀의 형식 및 분쇄정도 등을 조사한 뒤 ‘점도분포 측정기’ 등 필요한 관련기기를 결정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세이신측은 94년 봄 총련계 기계회사에 제트밀 등을 판매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만경봉호 편을 통해 관련 기기를 북한에 수출했다. 제트밀은 일반적으로는 의약품,농약,도료 제조 등에 사용되나,미사일 연료인 과염수산 암모니아 등을 분쇄,입자를 균일하게 함으로써 미사일의 비거리 및 추진력을 제고하는 군사적 목적으로도 사용가능한 것으로알려졌다. 또 세이신측은 북한과 이란은 물론,중국와 인도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제트밀을 수출한 혐의가 새롭게 드러났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전했다. 앞서 일본 경시청 공안부는 12일 북한과 이란에 미사일 개발에 전용가능한 기기를 불법수출한 혐의를 받아 온 ‘세이신 기업’의 우에다 하루히코(植田玄言·68) 사장 등 5명을 체포했다.
  • [이경형 칼럼] 實用외교와 ‘상황’외교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 외교는 ‘등신’운운 등 야당의 막말을 듣기도 했지만 ‘미래 지향’이라는 화두를 던졌다.한·일 ‘미래 지향’속에는 양국의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 쌍무적인 관계도 있지만 동북아의 평화를 구축하자는 지역안보 협력의 희망도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는 대신,일본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 쪽에 손을 들어 줄 것을 바랐던 것이다.노 대통령도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북핵문제에 관해 대화 이외의 방법에는 일부 거부감과 우려가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이 ‘대화 우선’을 강조한 데 비해 오히려 ‘대북 압박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일본의 이러한 방침은 노 대통령의 방일 전후로 보인 전시대비법 처리라든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안 발의,북한 만경봉호 입항 저지 등에서도 엿보였다.일본은 북한의 핵 개발을 빌미 삼아 이미 군사 대국의 길로 행군을 시작했다.노 대통령은 자신의 ‘대화 우선’ 강조에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 정계 지도자들이 “이해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고 평가했지만,일본측 반응은 외교적 수사 범위를 넘지 못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일 외교와 지난번 방미 외교 사이에 하나로 관통되고 있는 노선은 실용주의 외교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이번 경우 ‘저자세 외교’‘굴욕 외교’등 국내의 호된 비판이 있긴 했지만 전후 광복세대의 한국 지도자로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입 발린 소리’에 연연해 하지 않고,이를 뛰어넘은 것은 나름대로 평가할 만하다. 과거사를 두고 티격태격하기보다 우선 북핵의 한·일 공조에 역점을 둔 것은 구체적인 성과와는 별개로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버르장머리’발언으로 한·일 관계가 서먹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YS식 으름장 외교’보다는 ‘MH(노무현)식 실용 외교’가 진일보한 것이다.노 대통령이 지난달 부시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미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북한의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키로 한 것도 냉철한 현실론에 입각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노 대통령의 실용주의 외교가 그때 그때 상황 논리에 따라 원칙이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노 대통령은 방일 기간 중 TV프로에 나와 한국의 우호관계 중요성을 일본,중국,미국 순으로 언급했다.물론 노 대통령이 지리적인 측면에서 대답한 것으로 볼 수 있다.하지만 한국이 중·미 등거리 외교를 취하고 싶은 속내를 보인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노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귀국 후 스스로 “착잡하다.”고 말해 버리면 과거사 불언급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미국에 가서 조야로부터 많은 점수를 따놓고도,귀국해서는 “좀 오버했지.”라고 말하면 ‘워싱턴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를 생각해야 한다. 누가 봐도 노 대통령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보통 사람’의 외모에 솔직한 대화가 그 포인트다.그러나 외교적 표현에서 ‘솔직하게 의견교환을 했다’고 하는 것은 곧 ‘의견이 대립했다’는 것으로 이해되듯이,외교 문제에서 ‘솔직한 말’은 전후좌우를 잰뒤 맨 나중에 꺼내야 할 말이다. 경우에 따라 정상회담 등 외교에서도 솔직한 것이 좋을 수도 있다.그러나 ‘겉으로 한 말’과 ‘솔직하게 한 말’이 본질적으로 달라질 때는 사태가 심각해진다.엄정한 국제 역학관계에 입각하여 국가의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주의 외교 노선과 상황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외교는 전혀 별개다. 국가운영의 철학 부재로 일관성을 잃는 ‘상황논리’외교로 비쳐지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는다.이런 일은 조금만 유념하면 막을 수 있다. 논설위원실장 khlee@
  • [열린세상] 대화와 압력의 병행전략

    노무현 정부의 북핵 해법에 대한 한·미·일 정상간의 정책협의가 마무리됐다.한·미 정상회담(5월14일)과 미·일 정상회담(5월23일) 그리고 한·일 정상회담(6월7일)에서 3국이 합의한 해법은 ‘대화와 압력의 병행전략’이다.북한 핵문제를 대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으로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되,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와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강행 등 ‘금지선(red line)’을 넘을 경우 ‘추가적 조치(further steps)’ 또는 ‘더 강경한 조치(tougher measures)’ 등으로 압박을 가할 것에 합의했다. 한·미·일은 일련의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와 압력의 병행전략’이란 북핵 해법에 합의했지만,한국은 그러나 대화에,일본은 대화를 위한 압력에,미국은 압력에 비중을 두면서 대북 압박 수위를 점차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미국은 이미 지난 4일 존 볼턴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의 발언 등을 통해서 대북 핵압박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북한의 무기판매,불법 마약판매,해외 범죄조직의 자금송금 등 불법적 외화 벌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차단해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원을 봉쇄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존 볼턴은 하원 국제관계 위원회에 출석,“제재와 봉쇄가 핵 물질이나 핵 기술이 대량 살상무기를 구하려는 나라들에 전달되는 걸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그것은 우리의 화살 통 속에 있는 새롭고 중요한 화살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대북 제재와 봉쇄를 본격화해 북한 지도부를 압박,대량 살상무기(WMD)개발을 막으려 한다.이미 동맹국들과 북한의 무기 수출과 마약 밀거래 등 불법적 외화 획득의 저지에 나섰다.북한의 의심스러운 해상 수송을 추적해 검사할 계획이라고 한다.최근 호주가 북한 선박 ‘봉수호’를 수색하여 마약을 적발하고,일본이 북한 선박 만경봉호의 ‘안전검사’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결국 일본 운항을 중단시켰다.미국과 동맹국의 북한에 대한 ‘사실상의 경제제재’는 이미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미국 정부의 관리들도 이러한 조치들이 교역제재(embargo)에는 미치지 못하지만,‘선택적인 저지(selective interdiction))’로 보고 있다고 한다.국제 사회로부터 이른바 ‘불량국가’로 낙인 찍히고,테러 지원국가로 묶여있는 북한은 경쟁력이 있는 상품이 거의 없어 자본주의 국가들과 정상적 교역이 어렵다.9·11테러 이후 불량국가에 대한 국제 사회 감시가 강화되고 최근 미국과 동맹국들의 압박이 가중돼 무기수출,마약밀매,위조지폐 사용 등으로는 외화 획득이 어렵게 됐다.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한 계획경제 개선조치 등 일련의 정책전환 실패에 따른 리더십 위기,내부자원 고갈과 외부감시 강화로 비롯된 경제위기 심화,사회 일탈행위의 급증 등 북한 체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북한 당국은 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할 경우 ‘내부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이 사실상의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자 지난 8일 외무성 대변인이 “일단 자주권이 침해당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즉시적인 물리적 보복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북한은 핵 억제력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봉쇄정책은 핵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강경대응을 거듭 주장했다.미국이 경제제재,선박나포 등 물리력동원,선제 군사공격 등 3단계 강경대응 방안을 거론했다며 대북 압박정책의 구체화에 반발하며 강경 방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북한은 추가적 조치가 실현되면 한반도는 핵 재난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민족공조를 강조하며 민족적인 성전을 요구하고 나선다. 남은 것은 북한의 ‘합리적 선택’이다.북한은 핵개발 고수 후 붕괴냐,핵포기 후 생존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북한의 선택을 돕기 위해 남북한,미국,중국,일본이 참가하는 ‘5자 회담’이 곧 열릴 것이다.북한은 ‘선 쌍무회담 후 다자회담’ 개최 주장을 바꿔 다자회담 내에서 북·미 양자협의 방식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고 유 환 동국대 교수 북한학
  • [황성기 특파원의 도쿄 이야기]日 ‘만경봉호 혐오증’의 끝은?

    만경봉호 운항이 중지된 사태는 북한식 표현을 빌리자면 ‘일대 사건’이다.지난해 9·17 평양 북·일 정상회담이 북에서 일어난 일대 사건이라면 6월8일 만경봉호 입항 포기는 일본에서의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북한이 출항을 포기했느냐,일본이 입항을 저지했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1500여명의 경찰병력,100여개 우익단체 회원 800여명,일본 6개 성청의 만경봉호 대책반,인산인해의 보도진이 진을 치고 있는 니가타항에 북한이 만경봉호를 보낼 리 만무하다.전개될 상황이 뻔하기 때문이다.재일동포들도 “굴욕스러우니까 오지 말라.”고 애원했을 정도다.일본 정부의 강경한 만경봉호 대책은 미·일이 생각하고 있는 대북 경제제재의 초보적인 단계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오기 지카게 국토교통상도 10일 “한해 1300여차례 일본을 드나들고 있는 북한 화물선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대화’를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압력’을 구사하기 시작한 셈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없는 것은 일본인들의 북한 혐오증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점이다.잘해 보자고 했던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시인으로 북·일 관계는 거꾸로 갔다.북한이 ‘깡패 국가’라는 막연한 심증을 갖고 있던 일본인에게 부인할 수 없는 물증을 안겨준 일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한 탈북자의 미 의회 증언으로 만경봉호는 밀수·공작을 버젓이 일삼는 괴물로 둔갑했다.증언내용과 미확인 보도는 납치국가 북한의 이미지와 엉키면서 무섭게 전파됐다.북의 가족에게 전할 생활물자를 갖고 만경봉호를 타려던 재일동포의 낙담하는 모습과 입항포기를 ‘승리’라고 환호하는 납치 피해자 가족의 광경은 지극히 상징적이다. 재일 한국·조선인들이 경제·문화·연예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현실을 우려하는 일본인들이 눈에 띈다.‘각계각층의 재일 한국·조선인 리스트’가 있다는 소문도 돈다.나치 독일의 유대인 배척처럼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 배제의 움직임이 시작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만경봉호 사태를 보면서 떨칠 수 없다. marry01@
  • 北만경봉호 日입항 포기

    |도쿄 황성기특파원|북한 원산과 일본 니가타를 오가는 부정기 화물·여객선 만경봉호가 9일로 예정했던 니가타항 입항을 전격 중지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남승우 부의장은 8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만경봉호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대응이 너무 엄중해 우호적인 입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출항을 보류한다는 북한으로부터의 연락을 오후 3시쯤 받았다.”고 전했다.남 부의장은 “일본 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운항이 재개된다.”면서 “다음번 입항 예정일이 오는 23일”이라고 밝혔다.하지만 일본 내 여론이 개선되지 않는 한 운항재개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이같은 결정은 일본 정부가 만경봉호에 대한 대대적인 선상검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출항 포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매년 30차례 정도 북한과 일본을 오가는 만경봉호는 올들어 1월에 한차례 운항했을 뿐 일본인 납치 시인 이후 악화일로의 대북 여론,운항경비 부담,사스 영향 등으로 운항을 연기해 왔다.아사히신문 인터넷판은 “미사일 부품 수출이나,마약 밀수에 관련된 것으로 지적돼 일본 당국의 검사·감시가 강화되자 운항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5개월 만에 운항을 재개하는 만경봉호의 입항에 대비해 니가타항 주변 등지에 1500여명의 경찰을 배치해 24시간 경계태세를 갖춰 왔으며 7일에는 경찰병력 등을 동원한 선상검사 리허설까지 가졌다.일본의 100여개 우익단체 회원 800여명도 니가타에 총집결,입항반대 시위를 벌이며 조총련과의 충돌도 예상됐다. 지난달 20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한 탈북자가 “북한은 만경봉호를 이용해 일본의 미사일 부품을 실어날랐다.”고 증언하는 등 만경봉호는 ‘군사전용 부품의 부정 수출,북한의 지령을 전달하는 공작선’으로 지목돼 일본 내 여론이 최악에 달한 상태였다. 일본측은 입항 직후 후생노동성 직원 7명을 선내로 들여보내 사스 감염자 여부를 확인하는 검역작업을 실시하고,입국관리 직원과 세관원,경찰 등 100명 이상을 동원해 만경봉호 선상검사에 나설 예정이었다.국토교통성도 만경봉호의 구조와 설치물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 선박 안전을 점검하는 검사를 1993년 이래 10년만에 실시할 태세였다. 이같은 일본측 사정을 감안해 북한은 만경봉호의 출항을 중지시켰을 가능성이 높다.재일 조선인 사회에서도 일본인들의 여론 압박을 의식해 만경봉호 입항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marry01@
  • 국제 플러스 / ‘北核의혹’ 만경봉호 새달 운항 재개

    |도쿄 황성기특파원| 올 1월부터 일본 운항을 중단해 온 북한의 비정기 화물여객선 만경봉호가 6월 초부터 운항을 재개한다고 일본 언론이 22일 보도했다.만경봉호의 운항 재개는 북한 탄도 미사일 개발에 관여해 온 전 북한 기술자가 22일 미 상원 증언을 통해 북한 핵개발 계획에 필요한 미사일 부품 등이 만경봉호를 통해 밀반출됐다고 폭로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니가타∼원산을 오가는 만경봉호는 일본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북한에 운반하고 재일 조선인의 모국 방문 교통 수단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지난 해 21회 니가타항에 입항했던 만경봉호는 지난 1월 15일 입항한 이후 사스 감염자의 입국을 막는다는 이유로 운항이 중단돼 왔다. 한편 일본 정부는 북한 탄도미사일 개발에 일본 부품이 사용됐다는 증언과 관련 ,대량살상무기 관련 기술의 수출 허가 규제를 확대하고 부품의 대북 수출 단속을 강화키로 했다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이 22일 보도했다.
  • “北, 한국서 마약 대량 밀매”/ 탈북자 美상원 청문회 증언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북한은 국가 차원에서 외화획득을 위해 아편을 재배하고 있으며 생산된 마약을 한국과 일본에 대량으로 팔고 있다고 한 탈북자가 20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 참석해 증언했다. 북한의 전 고위 관리라고만 자신을 밝힌 이 탈북자는 이날 미국 상원 재무관리·예산·국제안보 소위원회가 ‘마약,위조지폐,무기확산:북한 커넥션’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청문회에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김일성이 1980년대초 현지시찰을 통해 함경도 연사군에서 아편을 재배해 마약을 생산한 뒤 외화를 벌어들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4면 그는 생산된 마약이 특히 한국과 일본에 대량으로 밀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특히 “2001년 12월 남한 당국이 부산항에 들어온 배에서 다량의 마약을 적발했는데 그것이 북한산이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한편 미사일 유도장치 생산에 종사했었다는 탈북자 이복구(가명)씨는 “북한은 조총련을 통해 만경봉호로 미사일 부품을 실어날랐다.”면서 북한이 미사일 유도장치 부품의 90%를 일본에서 들여왔다고 말했다. mip@
  • 3白 도시 4色 여행 - 흰눈 흰쌀 흰피부의 고장 日니가타현

    |니가타(일본)최종찬특파원| “그래도 이틀이면 금방 여섯자는 쌓여요.계속 쏟아지면 저 전봇대 전등이 눈 속에 파묻혀 버리죠.당신 생각을 하며 걷다간 전깃줄에 목이 걸려 다치기 십상이에요.” 1968년 일본에서 첫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雪國'(설국)의 한 구절이다.이 설국의 무대가 바로 니가타(新潟)현. 일본 혼슈(本州)북서부에 자리한 이 지방은 11월 중순쯤 첫 눈이 내려 그 다음해 3월 중순까지 온통 새하얗게 파묻힌다.순백의 세상,눈의 나라를 연출한다. 니가타는 눈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쌀 ‘고시히카리'의 생산지이며 이 쌀로 빚은 청주 ‘고시노칸파이'는 탁월한 맛으로 최고급술의 대접을 받는다.그리고 이 지방 여성들은 순백의 피부를 자랑한다.흰눈과 흰쌀,흰피부 때문에 예부터 니가타는 ‘3백(白)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단조로운 일상을 뒤로 하고,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일본의 친절과 전통이 넘치는 ‘일본속의 일본'에서 늦겨울의 정취를 맛보는 것은 어떨까. ◆水 - 日최장 시나노강 흐르는 니가타시 일본에서 가장 긴 시나노강이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다.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5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다리는 ‘반다이바시’(万代橋).1880년에 건설된 이 다리는 1887년에 불타버린 후 여러 번 개·보수를 거쳐 1929년 지금의 아름다운 돌다리로 재건됐다. 이 다리의 오른쪽으로 니가타항이 보인다.이곳은 북한화물선 만경봉호가 정박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항구 바로 옆에는 32층 고층타워 ‘도키메세’가 눈길을 끈다.한국 COEX와 자매시설로 5월1일에 문을 열 이 건물은 회의,전시회,연회,숙박도 가능한 국제복합컨벤션센터. 6개국어 동시통역부스와 300인치 대형영상스크린이 설치된 국제회의실과 1000명까지 수용 가능한 컨벤션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史 - 이토가문 본가 북방문화박물관 니가타시 근교 요코코시마치에 있는 북방문화박물관은 일본 최대 대지주 중의 하나인 이토 가문의 본가로 태평양전쟁후 국가에 기증되어 박물관이 되었다. 대지 8800평 건평 1200평으로 개인소유 건물 가운데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이곳은 다다미방만 65개.길이가 30m인 삼나무를 통째로 대들보로 사용한 것만 보아도 그 규모를 짐작 할 수 있다. 한때 52만평의 농지를 소유했던 이토가문이 썼던 물건과 수집품 등이 방마다 전시되어 있다.이 집에는 문화적 가치가 높은 물건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정삼각형 건물은 현존하는 유일한 것이다. 니가타에는 105개의 양조장이 있다.니가타시 근교 시바타시에 있는 양조장 이치시마주조(+81-254-22-2350)가 대표적.이곳은 대지주인 이치시마 가문의 친척이 만든 곳.1790년대에 문을 연 이 양조장의 술은 산뜻한 첫맛과 깔끔한 뒷맛으로 유명하다.미리 연락하면 청주 만드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다. ◆雪 - 5월까지 씽씽 日스키 발상지 일본 스키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니가타는 나에바 및 묘코고원등 76개의 스키장이 있다.연간 900만명의 스키어들이 방문하며 평균 적설량은 3∼4m.눈의 질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12월초부터 5월초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아라이리조트(+81-255-70-1717)는 10년전에 문을 연 스키장.천혜의 코스에서 맘껏 스키를 탈 수있다.어린이,장애인,노약자도 눈에서 안심하고 놀 수 있는 시설과 탁아소가 갖춰져 있다.1박에 2인1실(조·석식 포함)1만2500엔(1엔은 우리 돈 10원)부터.나에바 리조트(+81-257-89-2211)는 일본 최대규모 스키장.슬로프는 가장 높은 1789m의 다케노고산에 있어 빼어난 설질과 적설량을 자랑한다.코스는 28개로 리프트는 곤돌라(5481m로 세계 최장)를 포함 38개.1인1박(조식,곤돌라,리프트이용권 포함)에 평일 1만 3900엔 이상,주말 1만 5300엔 이상을 줘야 한다. ◆說 - 소설 설국 무대 유자와 온천 도쿄에 살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을 3차례 찾았고 그때의 경험이 대작을 탄생시켰다.삼나무숲과 오지야마을과 눈 덮인 에치코 유자와산을 배경으로,시마무라(島村)와 게이샤 고마코(駒子)그리고 요코(葉子)간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여주인공 코마코의 실제모델은 게이샤 마츠에(松榮).그녀는 4년전에 죽었다.1972년 자살한 작가가 이 소설을 썼던 다카항(高半,+81-25-784-3333)여관은 지금도 유자와에 있어 그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정부등록국제관광지로 지정된 이 여관은 ‘가스 미노마’(안개의 방)라 불리는 작가의 집필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작가의 숨결을 느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니가타는 일본에서 온천이 4번째로 많다.온천을 찾아 모든 시름을 잊고 자연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괜찮은 추억이 될 듯하다.이곳을 대표하는 온천여관은 무이카마치의 ‘류공’(龍言,+81-257-72-3470).방마다‘君家’등 이름이 있으며 노천욕을 즐길 수 있다.1박에 2인1실 2만3000∼4만5000엔. siinjc@kdaily.com ■여행가이드/일식 맛보며 게이샤 공연 감상 ●항공편과 여행상품 대한항공 니가타행 직항기가 인천국제공항에서 일주일에 5회(월·목·금·일요일 오후 5시,수요일 오전 11시10분)뜬다.소요시간은 1시간40여분.설국의 무대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도쿄에서 신칸센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 여행상품으론 나스항공여행사(02-777-7650)의 3박4일 일정의 스키투어가 있다.매주 수·일요일 출발.1인당 69만9000원.전일본여행사(02-777-7650)를 통해 호텔,항공예약도 가능하다. 니가타공항에는 한국어로 된 관광안내서가 비치되어 있다.자세한 문의는 니가타현 서울사무소(02-773-3161). ●먹거리 니가타시 후루마치 음식점 거리에선 일본전통요리를 맛보며 후루마치 게이기라 불리는 게이샤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이들은 기타처럼 생긴 전통악기인 사미센을 연주하고 전통노래를 들려주며 민속춤을 보여준다. 요네야마산의 신사를 찾아가는 정경을 그린 노래를 들려준 요요코시(60)는 게이샤생활만 50년째.그녀는 경기불황으로 수입이 크게 줄었다고 푸념을 했다. 이곳의 괜찮은 음식점은 오하시야(大橋屋,+81-25-228-2509).전채,회,국,조림등 다양한 향토요리를 맛볼 수 있다.가격은 7000∼1만엔.우오쿠니야(魚國屋,+81-025-243-2000)에선 조림,회등 5가지 코스요리를 3000엔이면 먹을 수 있다.
  • [사설]北 봉쇄, NPT탈퇴 다 안된다

    국제질서는 국가 사이에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 절충하고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된다.우리가 먼저 이런 전제를 하는 것은 북한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갈등으로 한반도는 물론,동북아 평화를 유지하는 국제질서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9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제네바 합의가 사실상 파기됐다면서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 가능성을 내비쳤다.같은 시점,미국의 콜린파월 국무장관은 북한에 대해 정치적·경제적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해 ‘포괄적인 봉쇄’(tailored containment)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일본은 송금 및 만경봉호 입항 금지 등 독자적인 대북제재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핵 문제는 어디까지나 대화·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한국과 주변국들은 싸움을 붙일 게 아니라 말려야 한다.미국도 강경책 일변도에서 한걸음 양보하고,북한도 국제사회가 모두 고개를 젓는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요원 추방,NPT탈퇴 시사 등 자학적인 행동을 그만두어야 한다.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계획이없다.’고 밝힌 것이나 북한이 ‘국제사회가 전력을 보장한다면 핵동결 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시사한 데서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한국과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나서 미국과 북한에대화의 명분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해야 한다.그 방법으로 미국의 대북중유 지원 재개와 북한의 핵동결 해제 조치 중단을 동시에 추진하도록 중재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핵 문제는 해결의 시기를 놓치면 금방 악화일로로 치닫게 돼 있다.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태는 남북한의 안보는 물론 경제적 이해와도 배치된다.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한·미관계,한국과 주변국,남북관계 등의 갈등을 상호협력 관계로 재조율해야 한다.벌써 미국의 대북 봉쇄 전략을 두고 한·미간에갈등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사태다.정부도 포용정책의 기본틀은 유지하되 적어도 핵문제에 관한 한 탄력적이고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할것이다.
  • 스타로 본 2002스포츠/부산AG북한미녀응원단‘남북은 하나’ 北女 신드롬

    월드컵축구 4강 주연들 못지 않게 2002년을 화려하게 장식한 스타는 ‘화려한 조연’으로 불린 부산아시안게임 북녀 응원단. 이들은 북한이 국내에서 열린 국제종합대회에 첫 참가했다는 부산아시안게임의 역사적 의미마저 희석시킬 만큼의 강력한 신드롬을 일으켰다.더불어 남북간 이질감 해소라는 큰 소득도 가져다 주었다.지난 10월15일 북녀 290명을 태운 만경봉호가 부산 다대포항을 떠난 뒤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북한 응원단은 남북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들의 등장은 남녘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지난 9월28일 이들을 실은 만경봉호가 도착해 20일 가까이 머문 다대포항은 새로운 명소로등장했다.미녀들을 구경하기 위해 매일 수천명이 몰려드는 바람에 다대포항은 늘 북새통을 이뤘다.북녀들은 일일 공연으로 환대에 화답하며 분위기를띄웠다. 외신은 물론 국내 방송과 신문도 아우성이었다.그 결과 다대포를 찾지 못한 사람들도 이들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전사회적으로 ‘북녀 신드롬’이 몰아쳤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0대 이상 미혼 남성 520명 가운데 64%가 북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미모와 순박함,순종적 이미지 등이 매력으로 꼽혔다.또 40대 이상 장년층에서 66%가 북녀를 며느리로 맞고 싶다고 응답해 이들의 인기도를 실감케 했다. 물론 이같은 신드롬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북한이 그들의 실체를 호도하기 위해 “미인들을 남파했다.”는 보수적 시각이 있는가 하면,“북녀신드롬에는 여성의 미를 도구화하려는 가부장적 발상이 도사리고 있다.”는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이 신선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남김으로써 북한을 닫힌 사회로만 인식해온 일부 보수세력에조차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 것만은분명한 사실이다. 박해옥기자 hop@
  • “北 만경봉호 입항거부 검토”日관방장관 밝혀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정부는 6일 북한 만경봉호의 니가타(新潟)항 입항 문제와 관련,각성제 밀수 등의 법률 위반 혐의가 있을 경우 입항 거부나화물 검사를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법적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범죄가능성도 있을지 모르는 선박에 대해 어떤 조치가 가능할지 정부 차원에서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니카타항의 경우 국제법상의 개항(開港)이기 때문에 입항을 희망하는 선박을 거부할 수 없으며,관세법을 근거로 한 화물 검사도 강제적으로 할 수 없게 돼 있다. marry01@
  • 황성기 특파원의 도쿄 이야기/선 넘는 日 ‘北혐오증’

    지금쯤은 만경봉호에 실려간 쌀과 건빵이 북녘 곳곳에 배급되고 있을지 모른다.식량이 제대로 나눠진다면 굶주린 북한 주민들에게는 요긴한 몇 끼니가될 것이다.일본에서 건너간 식량이다.북한과 일본 관계가 납치로 꽁꽁 얼어붙은 마당에 웬 식량원조인가 하겠지만 분명 이들 식량을 실은 만경봉호는지난달 26일 일본 니가타(新潟)항을 떠났다. 외무성의 외곽단체 ‘일본외교협회’가 도쿄도를 비롯한 전국 30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제공받은 것들이다.세계 난민을 지원하는 일도 하고 있는 외교협회는 지난 여름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를 구하고 싶다.”는 의뢰를 받고는 폐기 직전의 비상식량을 지자체들로부터 모았다.그렇게 해서 유통기한(5년)이 임박한 쌀,건빵 40만끼니분이 만경봉호에 선적돼 북한으로 갔다. 그러나 “북한과의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섬뜩한 폭언을 서슴지 않는일본의 대표적인 보수 정치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가이런 대북 지원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그는 도쿄도가 이런 비상식량을지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듯 지난 29일에서야 입을 뗐다. 그는 “납치 문제로 국민 전체가 분노하고 있는 지금,외무성 외곽단체가 (정부의 외교)노력을 무시하고 제 정신이냐.”고 분개했다.그는 “국회에서도 문제삼아야 한다.”며 도청 창고에 있는 비상식량을 다시는 북한에 지원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납치를 시인한 이후 일본의 우파 언론과 황색매스컴의 ‘북한 때리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북한을 통틀어 흉악한 범죄집단,범죄소굴로 이미지화해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거기서 납치라는 국가범죄를 저지른 소수 지도부와 체제,그리고 기아에 시달리는 몇백만 북한 주민들을 분리해 생각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외교협회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어 인도적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이런 인도적 발상은 아쉽게도 일본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일본 언론인조차 자신들의 납치 보도행태가 “무섭다.”고할 정도이다.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 조선인은 물론 재일 한국인조차 최근 일본인들 사이에 한반도 혐오증이 싹트기 시작했음이 느껴진다고 말한다.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다. marry01@
  • 北核 파문/ 北 “100억弗 사라지나”

    (도쿄 황성기특파원) 북한의 핵 개발을 포기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북 제재는 먼저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의 중단이다. 오는 29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수교 협상이 지속될 수 없다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경고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북측이 어떤 형태로든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2년 만에 재개되는 협상의 문은 열리자마자 닫히기 쉽다.북한에 있어 협상 중단은 아픈 일이다.곪을 대로 곪은 경제 재건을 위해 수교의 대가로 예상되는 100억달러 안팎의 경제협력은 너무나 절실하다.경제 재건이 어려우면 체제마저 위태롭게 돼 어떻게든 수교협상을 유지하고 이른 시일 안에 국교를 수립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일본인 납치문제에 북한 당국이 뜻밖의 유연성을 보이고 있는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추진중인 경수로 건설을 한·미와 공조해 일시 동결하는 것이다.미국이 제네바 핵 합의 파기를 공식 선언할 것에 대비해 일본 정부도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일본측 협상단을 이끌 스즈키 가쓰나리(鈴木勝也) KEDO 담당대사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이를 확인했다.스즈키 대사는 KEDO 이사회가 다음달 초 열릴 것이라고 밝히면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문제해결에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경우 경수로 건설 사업은 물론 수교 협상이 자체 합의에 따라 중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밖의 제재 조치로는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 직후 취한 ▲대북 식량 지원 동결 ▲직행 전세기(나고야∼평양)의 운항 정지를 꼽을 수 있다.당시 북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초긴장 상태에 빠졌던 일본 정부는 초강경으로 일관,국교 정상화 교섭도 동결시켰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미사일을 재발사할 경우 북한에 대한 송금 정지,무역제한,만경봉호 등 정기 여객·화물선의 입항거부 조치도 세웠으나 이들 제재방안은 말로만 그쳤다.금융 및 물적교류 제재는 북한에 단기간 내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일본의 대북 송금은 1996년 28억 6000만엔에 달했다. 무역의 경우 양국은 지난해 438억엔의 수출입액을 기록했다. 인적 왕래 제한으로는 북한을 방문한 재일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 동포의 일본 재입국을 허가하지 않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marry01@
  • 南男마음 흔들고… 北女 북으로

    ‘37억 아시아의 축제’에 참가했던 291명의 북한 응원단은 “다시 꼭 만나자.”는 기약없는 작별인사를 뒤로한 채 15일 부산 다대포항을 떠났다. 18일 동안의 짧은 체류기간이었지만 미모의 ‘북녀(北女) 응원단’은 화려한 패션과 율동으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리고 다녔고,경기장에서는 남북이 하나가 돼 서로를 응원하는 감동의 순간을 잇따라 연출해 내기도 했다.하지만 분단에 따른 특수상황으로 북한 응원단과 시민들 사이에 쳐진 ‘인의 장막’으로 인해 속내를 드러낸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부산땅에 도착한 며칠 동안 이들은 남측에 대한 느낌과 소감에 대해 한결같이 “환대해줘서 고맙다.”,“빨리 통일을 이루자.”는 등 판에 박힌 말을 했으나 이날 ‘이별의 다대포항’에서는 어느 정도 속내를 드러냈다.북한 응원단의 소회를 모아 간추린다. ◆소감은. 응원단원 리성애씨는 “우리의 응원에 대해 남조선 인민들이 함께 응원을 해줘 힘든 줄 몰랐다.”면서 “역시 같은 핏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며 작별을 아쉬워했다.취주악단 지휘자인 정명선씨는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이번 부산아시안게임에서 한 민족이 단결해 응원을 펼쳐 기쁘다.”면서 “이 기회를 살려 조국 통일을 보다 앞당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응원단장인 리명원(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 비서)씨는 이날 고별사에서 “동포애로 따뜻하게 맞아 준 부산시민과 남녘 동포 여러분들께 깊은 사의를 표한다.”면서 “경기장에서의 공동응원의 우렁찬 함성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환송행사 내내 대형 한반도기를 힘차게 흔든 남자 응원단원 최성철씨는 “함봉실과 이봉주 선수가 마라톤에서 함께 금메달을 딴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우리 민족이 함께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습네다.”라고 힘주어 말했다.한 중년여성 응원단원은 “남쪽 경기장에서 아리랑응원단 등 남쪽 동포들과 함께 단일기 아래 ‘조국통일’을 외치며 응원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다음에 북쪽에서 경기를 갖게 되면 다시 한번 어울려 ‘우리는 하나’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여성응원단원 김송애씨는 “그동안 경기장뿐 아니라 여기 다대포항에 매일 나와 우리를 환대해 준 남쪽 동포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남쪽 선수들이 북쪽에 오면 만사를 제치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응원단의 미모가 빼어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북한 응원단의 리더 리유경씨는 “여성 응원단 얼굴이나 찍고 짧은 치마 입은 거나 보여 주고 그게 무슨 보돕네까?”라며 “조국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기사를 좀 더 써달라.”며 주문했다.여성응원단원 황윤미씨는 “임수경씨가 올라왔을 때 우리가 열광한 것은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며 “우리는 응원하러 왔지 얼굴을 뽐내려고 온 게 아닌데 남쪽 언론들이 너무 얼굴에만 신경쓴다.”며 꼬집었다. ◆아쉬웠던 점은. 한 남성 응원단원은 “(남쪽에) 내려오기 전에는 동포들을 많이 만나볼 줄 알았지만 (통제가 심해) 제대로 인사 한 마디 못해봤다.”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 할 시간이 없어 못내 아쉬웠다.”고 말했다.만경봉호의 한 요리사는 “남쪽음식이 ‘서양식’이 많이 들어가 입에 맞지 않았다.”면서 “역시 조선 민족은 맵고 짠 김치와 남새(나물)를 먹어야 힘을 쓰지 않겠느냐.”며 서구화된 남쪽 음식에 대해 촌평했다. 한 여성응원단원은 “남한사람들은 왜 찢어진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물을 들이고 다닙네까.”라고 말해 신세대의 몸치장에 불만을 드러냈다.또 부산시내 상점들의 외래어 간판을 보며 “여기는 조선땅이 아닌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응원단원 리성희(여)씨는 “공기가 탁하다.”며 북에서 갖고 온 ‘금강산샘물’을 마셨다. ◆남쪽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북측 취재단의 림경수 기자는 “오늘 환송식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을 보니 통일조국의 앞날이 밝다.”면서 “통일되면 부산을 꼭 다시 찾겠다.”고 말했다.림 기자는 “북남이 하나돼 꼭 조국 통일을 이뤄내자.”고 당부했다.정명선씨는 “비록 지금은 우리가 부산을 떠나지만 남쪽 동포들이 우리와 함께 외쳤던 ‘조국은 하나다.’라는 말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며 “나도 응원단이 준 한반도 배지를 간직하면서 언제까지나 동포애를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작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부산 조현석 황장석 이두걸기자 hyun68@
  • 북한응원단 무얼 남겼나 - 긴장의 반세기 18일만에 녹여

    “이번 부산 아시안게임은 만경봉호와 북한 미녀 응원단의 참가로 남북의 긴장관계를 눈녹듯이 녹였습니다.” 15일 만경봉 92호가 떠나는 광경을 지켜본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회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달 28일 만경봉 92호가 북측 응원단 290여명을 태우고 다대포항에 정박하면서 다대포항 일대는 매일 1000여명이 넘는 실향민과 주민 등이 모여들 정도로 부산 최대의 명소로 등장했으며 이번 부산아시안게임의 의미를 크게 부각시켰다. 이를 알기나 하듯 북측 응원단은 지난 9일부터 저녁마다 다대포항 앞에 모여 환영해준 남측 주민들을 위해 1시간여씩 공식일정에도 없던 공연을 자청했고 이에 주민들은 13일 오후 8시 다대포항 앞 공원부지에서 열린 마지막공연에 2만 5000여명이 모여들어 응원단측에 화답했다. 14일 오후 7시 아시아게임 주경기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도 연분홍빛 한복차림의 북측 응원단이었고 이들의 빼어난 미모는 단연 ‘인기짱’이었다.특히 응원단을 지휘한 리유경(21)씨는 남한 남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고 인터넷 카페에 생겨난 팬클럽(http://cafe.daum.net/leeykjjang)이 개설되자마자 회원 1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북측 응원단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공연을 펼친 거리공연단도 있었다. 북측 응원단을 환영하기 위해 전업예술인과 직장풍물동호인 등 50여명이 통일응원단 ‘아리랑’ 소속 거리공연단과 함께 북측 응원단 곁에서 매일같이 풍물판을 벌였고 13일 오후 8시부터 펼쳐진 북측 응원단의 공연에 앞서 마지막 풍물판을 벌여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북응원단을 따라다니며 공연을 펼쳤던 거리공연단 단장 김영구(34·굿패 영산마루 대표)씨는 “만경봉호가 떠나고 나니 다대포항이 갑자기 작아보인다.”면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부산 황장석기자 surono@
  • [아시안게임 결산] (1)남북스포츠교류 ‘활짝’

    37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부산아시안게임이 14일 막을 내렸다.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참가 등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 이번 대회는 운영상 몇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이번 대회의 의미,한국선수단의 빛과 그림자,아시아 스포츠 판도의 변화,남은 과제 등을 짚어본다. ***최고의 금은 ‘하나된 남북' 지난 13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북한의 함봉실은 인공기를 휘날리며 트랙을 돌았고 관중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북한 국가인 ‘애국가’를 들으며 갈채를 보냈다. 이런 장면은 대회기간 9차례나 이어졌고 대학에도 인공기가 나부꼈지만 일부 보수진영이 우려하던 ‘사고’는 단 한건도 없었다.오히려 20∼30년전 간첩선이라는 이미지뿐이었던 만경봉-92호가 정박한 다대항이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자리잡았고 경기장마다 북녀응원단을 보기 위해 관중이 몰리는 현상으로 나타났다.일부에선 “북한이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대회가 참 초라할뻔 했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런 뜻에서 대회최고의 금메달은 경기장의 선수 몫이 아니었다.바로 우리 민족이었다.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들은 한반도기를 휘저으며 한 복장으로 공동입장했고 선수촌과 훈련장,경기장에서 어깨를 다독이며 서로를 격려했고 한핏줄임을 확인했다.다른 나라 선수의 장단점을 서로 교환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북녘 응원단과 취주악단은 부산 시내 곳곳에서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한 공연을 여러차례 펼쳐 교류의 넓이를 한층 확대했다는 평가다. 스포츠를 통한 이같은 교류는 지난 6월 서해교전 이후 급격하게 높아진 심리적 긴장 수위를 누그러뜨렸다.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남한에서 인공기 게양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데 필요한 통과의례”라며 “대회기간 인공기 사용을 둘러싸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은 북한을 자연스럽게 대하려는 우리 사회의 성숙된 자세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북한의 스포츠외교 사령탑인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지난 11일 “이번 대회는 남북화합의 새 장을 연 것”이라고 평가함으로써 향후 교류확대에 밝은 전망을 던졌다. 이제 문제는 양측 당국이 교류협력을 상시화하는 것이다.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뛸수 있는 이벤트를 활성화하고 체육회담을 상설 개최하며 이를 위해 스포츠 교류협정 체결 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이중 가장 급선무는 역시 체육회담을 상설화해 항시적인 교류 협력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일이다. 임병선기자 bsnim@
  • [젊은이 광장] 북한 응원단 상품화 유감

    지난달 28일 부산 다대포항에는 북쪽에서 온 만경봉호가 도착했다.배에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응원단 293명이 타고 있었다.인공기가 달린 배가 정박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긴장감은 잠시.만경봉호 주변에는 북쪽 응원단을 맞기 위한 엄청난 인파가 몰렸으며,응원단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최대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단지 ‘북쪽에서 온 응원단’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무엇보다 남쪽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그들의 미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쪽 응원단이 중년의 여성과 할머니,남성 등이 뒤섞인 ‘평범한’ 응원단이었다면 이 정도로 뜨거운 환영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응원단을 미모의 여성으로 구성한 북쪽 담당자도 이 같은 현상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결과적으로 북쪽의 선택이 외교적으로 탁월한 결정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신성분이 좋고 빼어난 미모의 여성들’로 구성된 응원단이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한 신문에 실린 것처럼 ‘북쪽의 미인계를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북쪽의 치밀한 계산보다 오히려 한국 언론의 상업적 태도를 지적하고 싶다.취재의 범위가 제한돼 피상적인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북한 여성의 화장법과 최신 유행,심지어 신세대 여성의 성(性) 인식을 낱낱이 기사화하는 것이 남북 상호간의 이해 증진과 통일의 길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남북관계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북쪽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더욱 위험한 것은 이번 북쪽 응원단을 보도하는 자세가 사회 일각의 잘못된 통일관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빨리 통일이 돼서 북쪽 여자들과 사귀고 싶다.”는 노골적인 글을 읽은 적이 있다.이는 “통일을 해서 북쪽의 값싼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통일 전에 충분히 준비해서 소유권이 불분명한 북쪽의 토지를 차지해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을 연상시킨다.이른바 ‘도구적 통일관’에 해당하는 이 같은 견해는 남북간의 본질적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며,북쪽을 남쪽이 가진 욕망의 연장으로 인식하는 것이다.이들은 통일의 방해세력이 되기보다 욕망의 만족을 위해 적극적인 통일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 본격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통일 이후 민족간의 진정한 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같은 견해가 철저히 비판받아야 한다.‘꽃바람’이라고도 불리는 이번 북쪽 응원단의 방문은 분명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이를 애써 과소 평가하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태도 또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남쪽사회의 통일 관련 논의에는 다양한 시각이 뒤섞여 있다.자본주의의 욕망과 잃어버린 혈육에 대한 그리움,냉소주의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통일을 위한 작업이란 제도적인 차원을 넘어 이러한 다양한 시각을 적절히 거르고 모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북쪽 응원단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지 스스로 충분히 점검해야 한다.그래야 ‘꽃바람’을 진정한 통일의 바람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다음 기회에는 남북의 남녀노소가 함께 어우러진 응원단이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란성호 서울대 인터넷신문 편집국장
  • 남남북녀/ ‘70년대형 미모’ 북녀들의 ‘男侵’

    ■'얼굴박사' 조용진교수가 본 北女신드롬 요즘 가장 유행을 탄 단어가 아마 ‘남남북녀’일 것이다.부산아시안게임에 참여한 북한의 응원단으로 ‘북녀(北女)’들이 경기장에,길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뒤 우리 사회에는 ‘북녀 신드롬’이 생겨났다.‘남남북녀’란 말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북녀’가 예쁘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북녀’들이 던져준 참신한 아름다움이 과연 외모에서만 비롯된 것일까,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분석해 보았다.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여한 북한 여성 응원단원들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아졌다.‘역시 남남북녀’라는 둥 ‘때묻지 않은 자연미인’이라는 둥 온갖 찬사와 함께 이들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았다. 그들은 ‘북녀’이기 때문에 하나같이 예쁜 걸까.또 그들의 외모가 북한 여성을 대표하는 것일까.북한의 미모관(美貌觀)은 우리와 어떻게 다르고,북한미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인물화가이면서 ‘얼굴박사’로 불리는 조용진(趙鏞珍·52) 서울교대 미술과 교수를 10일 교수실에서만났다.김 교수는 한국화가이면서 의과대 해부학 교실 조교로 취직해 해부학을 7년간 공부하면서 얼굴 연구에 매달린 얼굴전문가다. 김 교수는 우선 ‘남남북녀’란 말이 조선시대 이후 쓰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조선시대 기생들을 그린 인물화 등을 보며 얻은 결론이라는 것.당시의 미모관을 대표하는 기생 인물화가 조선 중기 이후 대부분 북쪽 내륙의 기생들을 대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시대 미인은 갸름한 얼굴,하얀 피부,가늘고 흐린 눈썹,검고 작은눈동자,긴 이마와 긴 코,긴 턱,작은 입,긴 허리를 갖춘 여성이라고 말한다.이러한 전통적 미모관은 500년 이상 이어져 왔는데,바로 북쪽 내륙 여성들이 이런 형태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따라서 남남북녀란 말도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으리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에 온 응원단원들 중에는 북방형 미인이 많지만 남방형 미인도 몇몇 섞여 있다고 했다.그래서 전통적인 조선시대 미인과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면서,아마 유전적인 요소보다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직된 환경에서생활하느라 다소 긴장한 듯하면서도 똑똑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듯한 표정과 자세가 굳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미모관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방형이었으나 이후 남방형으로 돌아섰으며,최근 10여년간 남방형으로 완전히 굳어졌다고 분석했다.그 예로 장미희 등 북방형 얼굴을 가진 연기자가 많았으나 점차 줄어들더니 요즘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남방형 미인은 큰 눈,짙은 눈썹,넓은 이마,두꺼운 입술 등이 특징으로 서구적 미모관과 비슷하다.김 교수는 김희선·채시라·이미연 등 스타 연기자들은 물론 TV에 막 얼굴을 내민 신인 연기자도 대부분 남방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남방형 미모관에 젖은 우리 사회에서 ‘과거형’인 북방형 미모를 갖춘 북한 응원단원들에게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남쪽 사람들의 뇌리에 아직 남아 있는 70년대 미인 이미지가,이번에 북방형 미인들을 한꺼번에 접하면서 되살아난 것이라고 풀이했다.물론 얼굴에 칼을 댄 ‘인공미인’이 적지 않은 우리현실에서 북쪽의 ‘자연미인’이 내비치는 참신한 아름다움이 관심을 부추겼을 것으로도 해석했다. 김 교수는 최근 들어 북한 미인들도 턱이 짧아지는 등 남방화·서구화하는 기미가 보인다고 설명했다.이번 북한 응원단원 중에서도 서구화한 미인들이 적잖게 눈에 뜨인다는 것이다.만약 북한 사회가 개방돼 북쪽에서도 남방형·서구형 미인이 자리잡게 된다면 ‘남남북녀’란 말은 한낱 과거의 유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남남북녀 유래는 - 명확한 근거없는 속설 조선시대부터 쓰인듯 ‘남남북녀(南男北女)’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남자는 남쪽 남자가 잘 났고,여자는 북부 지방 여자가 잘났다.’는 것인데 이러한 풀이에는 늘 ‘속설’이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문헌 상에도 ‘남남북녀’의 유래를 명확히 설명한 것은 없다.이 표현을 가장 먼저 기록한 책은 이능화(1869∼1943)의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1927년 간)’라는 것이 통설인데 여기에도 유래에 관해서는 특별한언급이 없다.‘얼굴박사’조용진 교수가 추정한 것처럼 조선시대 때 나온 것이 아닌가 할 뿐이다. 다만 ‘여자의 잘난 것’을 미모로만 국한해 평가한다면 북한 지역에는 미인의 산지로 이름 높은 곳이 여럿 있다. 흔히 ‘강계미인’‘회령미인’‘함흥미인’이라고들 말하는 땅이다. 반면 남쪽에는 미인의 산지로 꼽을 만한 데가 따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민속학자인 고 임종석은 ‘남남북녀’에 관해 설명하면서 “역사상 뛰어난 남자로 북부 지방 출신인 을지문덕·연개소문·온달·정지상·이성계가 있고,잘난 남쪽 여자로는 선덕여왕·허난설헌·신사임당·명성황후 등이 있다.”는 예를 들었다. 곧 남녀가 잘나기에는 출신지가 큰 의미없다는 말이다.따라서 그는 ‘남남북녀’란 “조잡한 관찰과 성급한 단정으로 사실의 일부를 무리하게 일반화한 개념”이라고 결론 지었다. 임창용기자 ■응원현장서 본 北女/ “외모보다 품성이 더 예뻐” ‘북녀(北女)’는 예뻤다. 부산 다대포항과 아시안게임 경기장을 오가며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북한여성응원단원들이 남쪽의 뭇남성들로부터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남남(南男)들의 마음은 빼어난 용모와 기지 넘치는 화술을 뽐내는 북녀들에게 온통 사로잡힌 듯하다.북녀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접근하려는 장외 경쟁의 열기가 경기장 안보다 더욱 뜨겁다. 북한팀의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늘 관중들로 가득 찬다.경기 관람이나 응원을 하는 것보다는 북한 미녀들을 한번 볼 심산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이다.급기야 지난 6일 밤에는 다대포항에서 미녀들을 가까이서 보려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그녀들이 묵고 있는 만경봉호로 돌진,경찰과 충돌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기자의 눈에도 그녀들은 예뻤다.165㎝쯤 되는 키,갸름한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육감적인 몸매를 갖춘 과연 순수 천연미인이라고 할 만했다.가지런히 땋은 머리에 기초화장만 살짝한 뽀얀 얼굴엔 청순미도 풍기고 있었다. 이런 ‘북녀 신드롬’을 두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외모 지상주의와 언론 상업성의 합작품’이라거나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비판이다.북한 사회에 대한 남한의 우월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미의 잣대’를 그저 눈에 보이는 겉모양새에만 둔 결과일 수 있다. 좀더 자세히 보면 북녀들에겐 ‘내면의 미(美)’가 더 빛을 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북한 미녀들의 진정한 매력은 외모가 아니라 고운 품성인 듯했다.다소곳한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재치있는 말솜씨로 응대한다. 북한 여성응원단은 집요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짜증내는 법이 없다.늘 미소를 띠며 반갑게 대한다.경기장에서 만난 한 여성응원단원은 접근을 막는 경호요원들과 안쓰러운 몸싸움을 하고 있던 기자에게 입모양과 손짓으로 “내 얼굴 봐뒀다가 경기 끝난 뒤 버스로 이동할 때 찾아오시라요.내 도와 줄게요.”라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결혼한 뒤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조선의 미덕 아닙니까.” 한 취주악대 대원은 결혼관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국내에 팬클럽 사이트까지 생겨난 여성응원단의 리더 리유경(21)씨는 “예뻐서 뽑힌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음이 고와서 뽑힌 겁네다.” 라고 응수했다. 북한 여성응원단은 환영나온 시민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더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때문에 더욱 시민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경기가 끝난 뒤 녹초가 된 몸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시민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손을 흔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차창에 막혀 대화가 여의치 않을 때는 손짓과 필담으로 어떻게든 고마움을 전하려는 모습에서 고운 마음씨와 여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부산 이영표기자 tomcat@
  • “북녘서 통일의노래 부르는게 꿈”

    부산 다대포항에 정박해 있는 만경봉호 주변에서 날마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40대 시민이 북한 응원단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통일 악사(樂士)’로 불리는 이희완(48·부산 다대1동)씨는 아시안게임이 열린 지난달 30일부터 오전 8시30분이면 어김없이 낡은 아코디언을 메고 만경봉호 앞을 찾는다. 오전에는 경기장으로 가는 북한 응원단에게 ‘아리랑’,‘도라지 타령’ 등을 흥겹게 들려주며 기운을 북돋아 준다.늦은 밤 응원단이 지친 몸을 이끌고 배에 돌아오면 ‘우리의 소원’,‘고향의 봄’,‘반달’ 등 잔잔한 곡을 연주해 피로를 풀어준다.낮에는 배에 남아 있는 북한 승조원들에게 춤과 하모니카 연주를 곁들여 가며 무료함을 달래준다. 처음 며칠 동안 북한 손님들은 다소 서먹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는 아코디언 선율에 따라 갑판에서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춘다.일부는 망원경으로 연주 모습을 지켜보기도 한다. 이씨는 “북한 응원단이 연주에 호응해줄 때는 ‘작은 통일’을 이룬 것 같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며칠 전에는 만경봉호를 나서던 북한 취주악단 여성 지휘자가 즉석에서 연주를 신청,북한 응원단과 어울려 ‘반갑습니다’,‘다시 만나자’ 등을 정겹게 불렀다.북한 예술단원 신윤희(21)씨는 “이씨의 아코디언 연주가 어느새 친숙한 일상이 됐다.”면서 “우리 응원단 중 이씨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부산 이영표기자 tomcat@
  • 南손님 처음맞는 北만경봉 92호/ 김정일·김일성 발언들 계단곳곳 금색글씨장식

    어둠이 짙게 내린 부산 다대포항의 검푸른 바다 위에 한반도기를 내걸고 우뚝 선 만경봉-92호가 7일 밤 남북간의 화해를 상징하듯 바다를 환히 밝힌 채 사상 최초로 남측 손님들을 맞았다. 리명원 북측 응원단장은 부산시민들이 보여준 지대한 관심에 감사하는 뜻에서 7일 오후 안상영 부산시장과 이영 부산시의회의장 등 남측 인사 6명을 배로 초청,만찬을 열고 선박 내부를 공개했다. 북측 장창영 선장의 안내로 6층 연회실에 도착한 안 시장은 만찬사에서 “응원을 통해 남북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 민족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리 단장은 “북과 남이 응원을 해서 여러 종목에서 성과를 거두었다.”면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남북이 하나가 되는 창창한 앞날을 앞당겨와야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북측은 보도진에게 객실,식당,다방,매대(상품판매점) 등 만경봉-92호의 일부를 공개했다. 길이 126m,높이 20m,너비 21m로,1992년 6월부터 북·일항로에 투입돼 10년이 넘었지만 배 안은 세월을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했다. 6층의 특별여객실을 포함,객실은 100여개로 방마다 3명 이상씩 머문다.북측 응원단은 객실 10개당 1개인 공동욕실에서 ‘위생사업’을 해결하고,층마다 마련된 세탁기로 빨래한다. 계단 곳곳에는 총련을 고무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타계한 김일성 주석의 발언들이 금색 글씨로 장식돼 있었다. 이날 1시간여 동안 뜨거운 정을 보여준 만경봉-92호 선원들은 “또 오세요.”라는 말로 잠깐의 만남을 아쉬워하면서 재회를 기대했다. 한편 아시안게임 기간중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만경봉-92호가 접안하고 있는 선착장으로 6일 밤 시민 300여명이 한꺼번에 돌진,북한 응원단과 접촉을 시도하며 경찰과 10여분간 몸싸움을 벌이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부산 아시안게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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