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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웨이트­사우디 합병안 막후협상/이집트판 영자지

    【카이로 연합】 쿠웨이트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25일자 이집트판 영자시사주간 미들이스트 타임스지에 따르면 쿠웨이트와 사우디의 통치자들은 약 6개월전 막후위원회를 구성,양국 합병방안을 논의해왔다는 것. 이들 걸프국이 결합하게 되면 세계최대의 석유공급국이 형성되게 된다. 쿠웨이트의 고위소식통들은 쿠웨이트협상대표단이 자베르 알 아흐메드 알 사바 쿠웨이트국왕의 지시에 의해 사우디대표단과 밀실협상을 벌여왔음을 확인했다고 타임스는 보도했다.
  • 민자중진들 “동색모임” 활발/상도동진영·육사출신·TK의원 잇단회동

    ◎“집권중반기 세력판도 겨눈 약진시작” 기미 최근 여권안에 뿌리를 같이 하는 중진인사들의 모임이나 활동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사들은 화합분위기를 해치거나 공연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 사적인 모임을 자제해 왔다.또 권력의 핵심에서 떨어져 있는 인사들은 활발한 활동이 오히려 계파의식을 조장하거나 소외감으로 비춰질까 봐 눈에 띄는 모임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새정부 출범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각세력들의 역학구도가 이제 자리를 잡았고「5공」과「6공」의 두전직대통령이 화해를 하는 등 사회분위기가 달라짐에 따라 같은 색깔끼리 모이는 「회동정치」가 부활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지난 17일「상도동 캠프」의 핵심세력인 최형우내무부장관,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김덕용의원,서석재전의원(시간 변경으로 불참)이 1년 남짓만에 모임을 갖고 앞으로의 활동방향등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또 줄곧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민정계의 김윤환의원도 최근 모월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정권교체과정의 권력비사 일부를 공개하는 등 말문을 열어 앞으로의 활동이 주목되고 있다. 이들은 자기네들의 모임이나 활동에 특별한 정치적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지만 이들이 김영삼대통령의 집권에 앞장선 공신들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역할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특히 공신이면서도 아직도 이렇다 할 직책을 맡지 못하고 있는 서석재전의원과 정무장관을 그만둔 뒤 7개월 넘게 일선에서 비켜나 있는 김덕용의원이 민주계 결속과 집권 중반기의 안정 차원에서 당정의 요직 복귀가 모색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러한 막후 실세들의 활동재개와 더불어 소외인사들로 대표되는 12·12관련인사,육사출신의원,6·29관련인사,대구·경북의원들의 모임도 두드러져 이해와 결부된 조심스러운 계파결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새정부출범후 공식모임을 전혀 갖지 않았던 육사출신의원 20여명이 지난 5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친목모임을 가졌다.이날 모임은 정호용 박준병 박세직 민태구 신재기 배명국 안무혁 김상구 정순덕 서정화(민자),임복진 나병선 장준익(민주),김복동(신민),정동호 강창희의원(무소속)등의 여야를 망라한 친목모임이었지만 이들이「5·6공」화해 이후 결속을 다짐했다는 차원에서 세력화의 일환이라는 추측도 있다. 또 이만섭 정호용 김용태 김한규의원등 대구출신 의원들이 지난 12일 오찬모임을 갖고 보궐선거등 지역현안들에 대한 논의를 한데 이어 경북출신 의원들도 조만간 회동할 것으로 알려져 계파와 이해에 따른 다양한 결속모임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이 여권 인사들의 활동이 눈에 띄고 있는 것은 친목 또는 계파결속 차원이든 소외세력의 집단적인 자구모임이든간에 여권내의 다양한 색깔의 세력들이 내년부터 시작될 선거정국과 집권중반기의 세력판도를 겨냥해 약진을 시작했다는 징후로 보여진다.
  • 북한경제 누가 이끌어 갈까

    ◎개방 빨라지면 김달현 재기용 유력/강성산·홍석형도 핵심역할 맡을듯 「북한 경제를 이끄는 실세는 누구일까」 북한은 지난해 12월 경제팀을 새로 짰다.그동안 대외 경제통이던 김달현 국가계획위원장과 박남기 당 경제비서를 각각 퇴진시키고 홍석형 등 실무진들을 대거 기용했다. 중국식 개혁을 본뜬 듯한 3차 7개년 경제계획이 실패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당분간 개방보다 농업,경공업,무역 등 내실에 역점을 두겠다는 포석이다.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현 경제팀을 한시적 체제로 본다. 북한의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개방은 불을 보듯 뻔하며 현 경제팀은 개방을 준비하는 팀이라는 분석이다.김정일이 권력을 순조롭게 이어받으면 개방의 속도가 한층 빨라지며 개방 주도세력의 재부상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김달현의 재기용이 유력하게 점쳐진다.강성산 정무원 총리와 홍석형 국가계획위원장 등도 북한 경제의 핵심으로 남고 박남기,전병호의 당측 실세와 이성대,김환 등도 막중한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성산은 전총리인 연형묵·이근모와 함께 북한 경제를 진두 지휘해 온 경제 테크너크랫의 선두주자다.1931년생으로 만경대혁명학원을 거쳐 체코 프라하 공과대학에 유학한 2세대 엘리트이다.지난 84년 최고인민회의에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교류」를 강력히 주장,대내외 주목을 받았다.김일성의 이종사촌이자 김정일 권력이양의 일등공신이다. 지난 92년 경제계획의 총수인 국가계획위원장을 맡아 대외개방을 주도한 김달현은 강성산이후의 총리 1순위로 꼽힌다.지난 77년 36세에 과학원 부원장을 맡은데 이어 화학·경공업 위원장,무역부장,대외경제위원장 등 주요 경제부처를 모두 거쳤다.대남 경협의 장본인이며 중국 심천특구를 수차례 방문,개방의 최전선에 나섰음을 보여줬다.김일성의 조카뻘로 김정일의 신임이 두텁다. 김달현의 후임인 홍석형은 강성산의 측근으로 김일성대학과 인민경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정통경제관료이다. 김달현과 함께 물러난 박남기 역시 실세.김책공대와 레닌그라드공대에서 수학했으며 김정일이 중공업정책은 박남기에게 먼저 보고하라고 할만큼 신임이 두텁다.국가계획위원장을 거쳐 당에서 경제계획,상업,재정을 담당했다. 권력 서열 11위인 전병호도 경제의 막후 사령관으로 통한다.당의 경제·기계 담당비서이며 군출신이 아니면서도 국방위원 7인에 끼는 정도다.이성대 대외경제위원장은 우리 기업과 물밑접촉을 벌이는 개방 인맥으로 김달현이 차세대 주자로 키우는 측근이다. 김일성의 고종사촌이며 허답의 처남인 김정우 대외경제위 부위원장은 나이(51)와 직급에 비해 최근 주목받는 개방 주도 인물이다. 이밖에 최영림 금속공업부장과 무기화학의 전문가 김환 부총리도 진취적인 성향의 인물로 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의 무역현황/작년 교역 24억불… 중·일 편중/원유·식량 수입에 의존… 광산물은 수출/남북거래 7.5% 차지… CIS이어 4위 북한의 무역은 지난해 54개국과 수출 9억3천8백만달러,수입 15억3천8백만달러를 기록했다.이를 합친 총 교역액은 24억7천6백만달러.92년보다 1·1%가 줄었다.수출품은 광산물과 비금속류 등 1차 원자재가,수입품은 원유와 식량 및 재수출을 위한 수송기기가 주류이다. 북한 무역정책의 특징은 외화벌이에 총력을 집중,위탁가공 무역 주도의 수출증대 및 외화반출 억제로 인한 수입축소로 요약된다.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최근 집계한 「93년 북한의 무역 동향」에 따르면 북한의 수입은 92년보다 2.12%가 줄었으나 수출은 지난 90년 동구권 붕괴 이후의 급속한 감소세(91년 25.3% 감소)에서 0.6%의 증가세로 돌아섰다. 10대 무역국(전체 교역액의 88%를 차지)가운데 중국,일본,독립국가연합(CIS)등 3대 무역국이 전체의 68.8%(17억3천만달러)를 차지한다.편중이 심한 셈이다. 중국과의 교역액은 8억9천9백만달러.중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91년부터 3년 연속 북한 제1의 무역국(전체의 36.3%)이 돼 왔다.물물교환 위주의 변경무역(국경무역)이 전체의 80.7%이다. 대일무역은 핵문제에 따른 관계 악화로 수출입이 각각 14.5%가 줄어 총 4억7천2백만달러(전체의 19.1%).엔고로 수입가가 크게 올라 원부자재와 기계류 등의 수입선을 유럽으로 옮기고 있다. 단순 위탁가공 수출에서 벗어나 조총련계와 합작으로 북한에 공장을 세우는 방식이 주로 섬유류에 나타나고 있다. 남북한 교역액은 92년보다 7.6%가 늘어난 1억8천8백만달러(대북반출 1억8천만달러,반입 8백만달러)로 중국,일본,CIS에 이어 4위(전체의 7.5%). 우리의 반입품목은 철강·금속류(전체의 86.6%),농림산물(5.4%),섬유류(5%),광산물(0.8%) 순.반출은 섬유류(40%),화학제품(9.1%),전자·전기(4.9%),농수산물(4.8%) 순이다. 북한은 지난 4월 제9기 7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무역 제일주의」를 천명,수출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어 올 수출은 5% 정도 늘 것으로 예상된다.
  • “남북대화 호기 놓치지 않겠다”/대북대화 정부의 입장

    ◎“시간걸려도 정상대좌 필요” 적극적/무산돼도 당분간 막후접촉은 계속 김일성의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한동안 활발했던 남북대화 분위기가 주춤해졌다.10일로 예정됐던 우리 정상회담 대표단의 평양 체류일정 접수가 11일로 늦춰졌다.11일에도 가능할지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하다.남북대화와 불가분의 함수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고위급회담도 중단됐다.어렵사리 재가동된 남북간의 대화창구는 결국 다시 문을 닫게 될 것인가. 현재의 흐름은 비관적인 방향으로 치닫는 것 같지는 않다.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는 남북대화에 호의적이다.김일성의 사망 뒤에도 북한은 여전히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미국의 분석 역시 낙관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우리 정부도 정상회담 자체가 무산된 것으로 보는 눈치는 아니다.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회담을 추진하고 싶어하는 듯한 인상이다. 남북대화가 경색으로 회귀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적인 전망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클린턴 미국대통령은 10일 새벽(한국시간)나폴리에서 가진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여전히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했다. 북한은 미국과 꾸준히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은 미국에 대화를 늦춰줄 것을 요청했다는 소식이다.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이 제네바에서 우리에게 연락을 취해 회담을 2∼3일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이같은 사실은 현재의 대화분위기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연락 자체를 대화의 일부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의 적극적인 대화태도는 김정일체제의 출범과 관련이 있다.북한은 김일성의 장례기간중임에도 불구하고 11일 최고인민회의와 당중앙위원회를 소집,김정일을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오는 25일 열리면 김영삼대통령과 대좌하는 사람은 당연히 김정일이 된다.김정일이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인정받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우리 정부로서도 북한이 25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25일 회담이 무산되더라도 멀지 않은 시기에 김영삼대통령과 김정일 사이의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한 김정일의 인식에 못지 않게 우리정부로서도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미국이 북한에게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대화분위기를 끌고가자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정부는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9일 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다.하지만 그것은 군사적 위기가 임박했다는 판단에서가 아니라 국민들을 안심시키자는 차원으로 여겨진다.주한미군이 경계태세를 전혀 강화하지 않고 있는 것을 봐도 우리 군에 내려진 비상경계령이 「국내용」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저런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설사 정상회담이 무산되더라도 남북은 당분간 막후접촉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남북 모두 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비교적 개방적인 것으로알려진 김정일의 권력장악 가능성을 그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다. ◎미·북회담 연기로 새국면 판단/정부,북핵정책 재편추진/정상회담과 연계 전략 무산따라/「비핵화 실천」 대북요구 강도높여 북한 주석 김일성의 돌연한 죽음으로 정부의 미­북 3단계고위급회담에 대한 전략이 조금은 수정되어야 할 판이다. 그러나 미­북회담이 겨우 하루만에 중단된 상태인데다 김정일의 등장으로 정책이 변화할 수도 있어 아직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의 사후 북한핵정책의 골간은 결국 재개될 미­북회담에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은 일단 북한의 태도를 지켜본다는 자세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정책이 당분간은 궤도이탈을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김정일이 내부의 권력기반을 확실히 다져야하고 체제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충격적 시도로 국력을 분산시킬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요원 2명이 평양에 계속 머무르고 있고 미­북회담 북한측 대표인 강석주일행도여전히 제네바에서 철수하지 않고있는 점을 들어 일단 북한의 외교노선이 그대로 지속될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이 불투명한 상황에 빠져 진전 속도나 합의 정도등에 있어서 두 회담을 연계시키려 했던 회담전략은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다 하더라도 의제등에 있어 단계별 전략과 상호보완 측면의 수정이 불가피해진 때문이다.물론 미­북회담을 1,2단계로 나누고,남북정상회담을 그 사이에 끼우려고 했던 전략과 경수로 전환지원 문제를 두 회담에서 나눠 거론하려했던 것을 어떻게 조정할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비록 남북정상회담이 불투명해지긴 했지만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대화의 필요성과 남북 관계개선,한반도 비핵화선언의 실천을 북측에 강조할 생각이다.이 부분은 기존의 전략대로 미­북회담을 이용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미국의 입을 통해 이러한 우리의 의지를 분명히 전달한다는 복안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공동선언의 실천과 연계해서 보완적으로 논의하려 했던 북한의 핵과거 문제도 남북정상회담의 축이 없어진 만큼 처음 계획보다 미국의 요구 강도를 높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이같은 뜻을 9일 크리스토퍼 미국국무장관에게 전화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는 이같은 우리 정부의 뜻을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핵정책 기조를 재편할 생각이다.김일성 사후 북한의 핵정책이 어떤 모습을 띨지 아직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대화론자들이 핵정책을 주도할지,아니면 핵개발을 주장한 군부의 강경론자들이 잡고흔들지,첫 시험대가 미­북회담이라는 시각에서 이 회담을 보고있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회담을 연기하고 싶다』고 한 강석주의 현지 반응,해외공관의 전문등을 토대로 미­북회담에 성의있는 태도로 나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3단계회담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따라 북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큰 상황이다.
  • 장례위원장이 후계자 유력/공산국가 권력승계 사례

    ◎절대권력자 죽음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도자간 권력안해 합의뒤 “사망” 발표 김일성 북한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공산국가중에서도 유례없는 세습체제를 도입한 나라인데다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반발도 꽤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더욱이 옛 소련의 붕괴로 절대독재권력을 휘두르던 공산국가들이 사실상 사라진 지금 북한은 유일하게 「철의 장막」이 걷히지 않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경우는 과거 소련이나 중국·베트남 등 공산국가들과는 여러 분야에서 다른 측면들이 있는게 사실이다.그러나 이들 국가의 권력승계 과정이 북한 내부사정을 추측하는데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공산독재국가의 경우 절대권력자의 죽음은 우선 비밀에 부쳐지는 것이 일반적인 예였다.지도자의 죽음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철저한 비밀 속에 몇몇 지도자들이 모여 후계자 문제 등에 관한 사후 권력안배에 대한 합의를 마친 뒤에야 사망 사실이 발표됐던 것이다. 이같은 예는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부터 흐루시초프나 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 등으로 이어지는 옛 소련의 지도자들의 죽음에서 두드러진다. 스탈린은 1953년3월5일 뇌출혈로 사망했다.스탈린의 후계자리를 놓고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던 베리야,말렌코프,몰로토프는 아무도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해 3명이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했다.그러나 이들 3자간에 3두체제가 합의될 때까지 스탈린의 사망소식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어야만 했다.베리야가 3개월만에 스탈린 개인숭배와 관련,체포·처형됨으로써 집단지도체제가 막을 내리게 됐다. 브레즈네프가 죽었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브레즈네프는 82년11월10일 사망했는데 그의 후계자리를 놓고 막후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의 권력다툼에서 소련비밀경찰(KGB)의 막강한 힘을 등에 업은 안드로포프가 국장위원장에 선임돼 후계자의 위치를 사실상 확정한 11일에야 사망소식이 발표됐다.김일성주석의 경우와 같이 사망 하룻만에 발표된 것이다. 중국 모택동의 경우도 사망발표까지 걸린 시간이 조금 짧다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모는 76년9월9일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 발표는 사후 16시간만에 이뤄졌다.중국은 모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장례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화국봉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모택동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화국봉은 장례위원장을 맡는다는 발표와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끝내는 모택동의 뒤를 잇는 중국의 지도자로 선정됐다.이는 브레즈네프의 장례위원장직을 맡았던 안드로포프가 체르넨코를 밀어내고 소련의 실권을 잡게된 것과 마찬가지다. 화국봉이나 안드로포프의 경우에서 공통되는 점은 이들 국가에서 절대권력을 가진 지도자의 후임으로 장례위원장을 맡는자가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는 것이다.이같은 점은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과거 소련이나 중국에서와 같은 권력승계 과정이 북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가정한다면 김일성주석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김주석의 장례위원장직을 그의 아들 김정일이 맡는다는 북한당국의 발표는 앞으로 북한의 진로를 추측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김일성주석이 생전에 그토록 다져오려고 노력한 후계세습을 북한지도부가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또 김정일이 김일성주석의 후계자 자리를 굳히는데 있어 북한내부의 반발을 이미 극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 자체로서는 너무도 큰 충격일 수 밖에 없는 김일성주석이 사망한지 불과 하룻만에 북한내부에서 김정일체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김일성 사후체제에 대한 북한내부의 준비가 생각보다도 훨씬 많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소식은 이같은 북한의 준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의 권력승계 절차/국가 주석 최고인민회의서 선출/총비서는 당중앙위 전체회의서/장례끝난뒤 소집… 공식 추대할듯 북한 김일성의 사망에 따라 김정일의 권력승계 절차가 관심이 되고 있다. 권력승계가 확실시 되는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생전에 물려받지 못한 직책은 노동당 총비서 및 국가주석이다.이같은 2개 직책중 당총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그리고 국가주석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토록 규정하고 있다.당규약 제24조에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시기에 당이 직면한 중요문제 등을 토의,결정하며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을 선거한다.또 당중앙위원회 총비서와 비서를 선거하고 당중앙위원회의 비서국과 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고 명시돼 있다.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6개월에 1회이상 소집토록 되어 있고 가장 가깝게는 지난해 12월 6기 21차 전원회의가 열렸다.그리고 최고인민회의의 권한을 명시한 사회주의 헌법 제91조5항을 보면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을 선거 또는 소환한다」고 규정 돼 있다.따라서 북한은 김일성의 장례절차가 끝난 직후 당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소집, 김정일을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으로 추대할 것으로 예상된다.다만 이번의 경우는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에 따라 이같은 절차에 관계없이 김정일이 김일성의 권한을 사실상 대행할 것으로 관측 되고 있다.
  • 김일성 생활습관과 남북정상회담 일정

    ◎「김­김회담」 저녁나절 열릴 가능성/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스타일/이후락씨 방북땐 자정에 “만나자”/김일성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독특한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로인해 남북정상회담 스케줄이 어떻게 짜여질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두차례 이상으로 예정돼 있는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시간표는 앞으로 평양을 방문할 우리측 실무진들이 북측 관계자들과 협의하여 정하게 돼있다. 김주석을 직접 만난 우리측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야행성 습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 김주석(당시 직책은 수상)은 지난 72년 박정희전대통령의 밀사로 평양을 방문했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자정이 넘은 0시10분께 만수대의사당 옆에 있었던 관저로 불렀다고 한다. 지난 72년 우리측 밀사로 4차례나 평양을 오가며 7·4공동성명의 산파역을 맡았던 정홍진씨(송원장학회이사장)가 들려준 비화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갑자기 깨우는 바람에 일어난 우리측 일행에게 김주석은 『한밤중에오라 해서 미안하다』면서 『이 시간이 가장 조용해서 좋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는 것. 당시 남북대화 막후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강인덕씨(극동문제연구소장)도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다.김주석이 주로 심야에 주요인사를 개인적으로 불러 면담하고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는 귀띔이다. 이같은 김주석의 생활패턴을 감안한다면 김영삼대통령과의 단독정상회담은 상오보다는 하오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25일 단독대좌가 이뤄진다고 한다면 하오 늦게나 저녁 시간대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2시간 이상 걸리는 개성∼평양간 이동시간과 우리측 준비시간을 감안한 추론이다. 특히 김주석은 이따끔 북한을 방문한 요인들의 숙소를 불쑥 찾아가기도 한다.이는 북한에서 남의 이목에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무소불위의 권좌를 구축하는 바람에 체질화된 습관인 듯하다. 김주석이 지난 90년 방북한 일본 자민당 대표단의 가네마루대표 숙소를 하오 늦게 직접 방문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김주석은 동구권 붕괴와 구소련의 개방으로 일본과의 수교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자 같은 기간 방북했던 우당격인 사회당의 다나베대표를 제쳐둔 채 당시 일본의 집권당 실세를 찾았던 것이다. 그는 이밖에 지난 89년 방북한 작가 황석영씨(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중)를 파격적으로 무려 6차례나 만나주기도 했다.북한으로선 추후 범민족대회 등과 관련해 황씨에 대해 어떤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우리측 기준으로 얼핏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김주석의 이같은 스타일을 감안한다면 2차례 이상 가질 것으로 남북간에 잠정 합의된 정상간 공식 대좌외에 의외의 비공식 「조우」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7·4성명」 막후실무 정홍진씨(인터뷰)

    ◎“평양대좌는 공존→통일의 시발점”/대결종식의 뜻 22년만에 열매맺은 셈/회담초기에 우리입장 분명히 제시를 『7·4남북공동성명이 남북의 대결상태를 평화공존의 상태로 끌고가자는 의도에서 이뤄진 것이었는데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이제서야 그 열매가 맺어지는 것 같아 뒤늦게라도 그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부터 22년전 우리측 밀사로 네차례나 휴전선을 넘나들며 남북공동성명이 탄생하기 까지 중요한 막후역할을 수행했던 정홍진씨(60·현 송원장학회이사장)는 4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요즈음 남다른 감회에 젖어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 72년 밀사로 평양을 오갔던 정씨는 그때 대한적십자사 회담사무국 회담운영실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당시 이후락중앙정보부장의 명령에 따라 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키는 일을 맡았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어떻게 보는지. ▲북측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당시부터 지금까지 「여건이 성숙되면」이라는 이유를 달아 정상끼리의 만남을 계속 미뤄왔었기 때문에 이번에 남북의 정상이 만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전망은. ▲7·4공동성명 당시와 지금을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국력이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북한의 대남기본노선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회담결과를 속단하기는 어렵고,다만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의 평화공존과 통일로 가는 시발점으로 인식하면 될 것입니다. ­경험자로서 정부측에 조언이 있다면. ▲그들(북)과의 시각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번에 정상이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 대통령께서 김일성주석에게 우리의 통일정책을 명백하고 단호하게 밝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와관련,『7·4공동성명 발표 다음해인 73년 발표된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선언」이 북측에서 볼 때 2개의 한국을 고착시키는 것으로 오인돼 남북대화 자체가 무산됐던 경험에 비춰볼 때 우리의 입장을 회담초기에 확고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될 당시 첫돌이 갓 지났던 막내가 벌써 대학원생으로 성장했다는 정씨는 『이번 정상회담의 열매는 정상이 만나 합의한 내용을 각료들간의 회담을 통해 구체화되어 나오겠지만 국민들은 너무 조급해 하지말고 회담결과를 냉정히 시켜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는 말을 잊지않았다. 정씨는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그후 남북적십자회담 예비회담대표,남북조절위간사위원,중정 차장보를 거치면서 대북전문가로 활약하다 지난 80년 5공화국 출범과 함께 야인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송원장학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꺼질듯 말듯 이어온 「통일 불씨」/민족단결 등 3원칙 「기본합의서」 연결/정상회담 성사로 오랜불신 허물 계기/「7·4」 22돌 맞은 남북대화의 역정 4일은 「7·4 남북공동성명」 22주년되는 날이었다.7·4공동성명의 3원칙은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결 ▲조국통일이었다.남북사이에 어렵게 합의된 이 3원칙이 22년의 세월동안 실천이 못되고 있었던 것이다.때문에 이번 「7·25 남북정상회담」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후락전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전북한부수상이 평양과 서울을 극비리에 각각 교차방문한뒤 지난 72년7월4일 상오10시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공동성명을 발표했을때 모두들 놀라고 흥분했었다. 그러나 통일을 향한 획기적인 물꼬로 평가되던 공동성명은 같은 해 10월1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조절위 1차회의부터 사문화의 조짐을 보였다.북한측위원장인 김영주노동당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참석한 박성철은 「조국통일 3원칙」을 들먹이며 ▲반공정책의 포기와 공산주의의 허용 ▲주한미군철수 ▲국군의 전략증강 및 군사훈련 중지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남북한은 그뒤 3차례의 본회의와 10차례의 부위원장 접촉,그리고 3차례의 간사회의를 더 가졌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남북조절위는 75년 5월29일 북한측이 제11차 부위원장회의의 무기한 연기를 통보하면서 해체됐다. 이어 남북한 사이에는 우리의 수재물자지원 혹은 적십자사 주관의 상징적 이산가족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7·4공동성명의 근본 정신을 실현시키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공동성명은 지난 91년12월13일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간의 화해 교류 및 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의 채택으로 역사적 의미를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양측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의 해석을 둘러싸고 대립을 계속했고 그 결과 남북대화는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그뒤 8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과 수없이 많은 접촉과 연락이 있었지만 모두 결렬로 끝났다.지난해 3월12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뒤로는 남북대화의 재개는 요원한 것처럼 여겨졌다.결국 남북한 최고책임자들의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라 볼수 있다.
  • “연정서의 사회당 역할에 한계”/우리정부­정치권의 시각

    ◎무라야마 「급진」 피할듯… 혼돈수습땐 한일관계 타격 우려도 일본에 자민당과 사회당의 새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47년만에 사회당총리가 등장했다. 우리정부와 정치권은 일본의 새정권 출범이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전체적인 분위기는 비록 사회당이 북한과 가깝다 하더라도 자민당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지난 날과 별다른 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정부는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두나라가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돈독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큰 여파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앞으로 일본정국의 추이에 보다 관심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번 호소카와(세천)정권때 사회당이 보인 태도로 볼때 다시 집권당이 되긴 했지만 그 역할엔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풀이이다.또 사회당이 지난날처럼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움직이는 정당이 아니고 이제는 다양한 정당 가운데 한 정파로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일본 전문가는 『일본의 새 정권은 선거관리와 세법개정,정치개혁법의 마무리등에 역점을 둘 일시 동거내각으로서 결코 합쳐질수 없는 연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무라야마 새총리가 사회당 좌파이긴 하나 당내 조정자로서 신망이 두텁고 노동운동 출신이어서 급좌노선을 걷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때문에 관심은 오히려 앞으로 있을 일본의 정치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에 더 기울여 있는 눈치다.벌써부터 자민당 일부가 탈당을 선언하고 사회당 일각에서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수연립이 정권은 잃었지만 막후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의 정계개편 구도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오자와의 구상대로 된다면 일본은 앞으로 총선을 거치면서 자민·사회등 기존정당과 이에 반발해 뛰쳐 나온 연립정당으로 대개편을 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때가 되어야 비로소 일본의 대외정책과 외교노선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치권◁ ○…여야 정치권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자민·사회당 연립정권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사회당 총리가 추대됐다 하더라도 한반도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개발과 이에 따른 국제적인 사찰활동,남북정상회담등 주요한 외교이슈가 이어지는 시점이어서 아무래도 친북성향이 강한 사회당 좌파출신의 무라야마총리가 어떤 외교정책을 펼쳐 나갈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인 나웅배국회외무통일위원장은 『일본의 대외정책이 혼돈상태여서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이 예견된다』면서 『한일관계에 사회당측의 시각이 가미될 수는 있지만 연립정권이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수한한일친선 협회회장은 『사회당의 기본 외교노선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수용』이라면서 『얼마전 무라야마를 만나보니 한반도를 보는 시각이 우리가 흡족하게 생각하지는 못해도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낙관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민주당의 조순승의원은 『무라야마는 사회당내에서도 좌파로 분류되는 친북 인물』이라고 지적하고 『현정권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경제를 제외한 외교·사회·문화등 각 분야의 한일관계에 타격이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민자당의 박정수의원은 『옛 소련이 붕괴된뒤 일본 사회당의원들과 개별적인 접촉이 있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한일의원연맹등을 통해 더욱 활발한 교류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오자와전략」 와해… 제2정계개편 가속/일 새연정 탄생배경과 전망

    ◎“어떻게든 정권잡고 보자” 자민 집념/자민분열·외교정책 달라 단명점쳐 일본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위원장이 새 총리로 선출됐다.사회당 출신 총리의 등장은 일본정치의 흐름이 일단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호헌파 중심으로 바뀌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사회당 총리는 지난 47년 「가타야마 내각」 이후 전후 일본정치사에서 두번째이며 이번 총리선출을 계기로 자민당이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지는등 일본정국은 제2정계 개편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선출은 그러나 단순히 일본정치의 「사회당 시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무라야마정권은 전후 일본정치를 지배해왔던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권이다.자민당 지도부는 총리후보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총재 대신 무라야마 위원장을 옹립하기로 결정했으며 자민당의 지지를 배경으로 「무라야마 총리」가 탄생했다. 자민당 지도부가 무라야마 위원장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가 지배하는 연립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할수 있다. 오자와는 자민당 집행부 결정에 대항,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총리후보로 내세웠다. 가이후 전총리는 그러나 연립여당과 자민당 개혁파등의 지지를 받았으나 사회당내 중도·우파들의 지지까지는 얻지못해 패배했다.가이후 전총리의 패배는 그동안 일본정치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하며 권력집중형 보수양당제로의 정계개편을 추진해왔던 오자와의 이른바 「오자와 전략」의 패배라 할수 있다. 오자와는 군사면을 포함,적극적인 국제공헌을 할수 있는 이른바 「보통국가」의 실현을 위한 정치구조를 지향하고 있다.그러나 「오자와 전략」이 일단 패배함으로써 일본정치는 사회당과 자민당의 호헌파,신당사키가케등을 중심으로한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비둘기파」세력이 정권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자민당과 사회당은 안보·외교등 기본적인 국가정책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정권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자민당은 특히 가이후 전총리를 지지한 개혁파들을 중심으로 탈당할 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여 재분열 될 가능성이 있다.오자와는 이러한 과정에서 보수세력의 결집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라야마 정권의 등장으로 일본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사회당내에는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미·일,한·일관계등 기본적인 외교정책에는 큰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다만 북한과의 관계가 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있다.◎일총리 올른 무라야마 누구/팔자 흰눈썹 인상적인 화합형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신임 일본총리는 일본 사회당 출신으로는 지난 47년 가타야마(편산)총리 이후 47년만에 처음으로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정치인. 지난 24년 3월 3일 규슈의 오이타(대분)현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고학으로 메이지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오이타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향리에서 노조지도자로 일해왔다. 그는 지난 72년 중의원의원에 당선된 뒤 7선을 거듭해 왔으며 연금과 복지문제등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펴왔다. 그는오이타시 의원으로 출마할 때도 주위의 간곡한 권고로 출마했으며 지난해 국회대책위원장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려 했으나 좌·우파의 추대로 야마하나위원장을 이어 사회당 위원장에 올랐다.그는 경력에서 보듯이 서민적인 풍모를 풍기는 대중정치인으로 화합에는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같은 성품이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사회당의 지도자로서 난세를 맞고 있는 일본 정국에서 총리에까지 오르도록 한 비결. 사회당내 온건좌파 그룹의 지도자인 그는 우파에 비해 다소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부인 요시이에여사와의 사이에 1녀를 두고 있다.
  • 풀죽은 명동성당 농성/김학준 전국부기자(현장)

    ◎성당측 퇴거요청에 노조 더욱 난감 27일 상오 서울지하철노조원들이 5일째 파업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서울 중구 명동성당. 경희대·한국기독교회협의회등 파업근로자들의 농성장에 잇단 공권력 투입으로 「최후의 농성장」이 된 이 곳에는 노조원 3백여명만이 남아 메아리없는 노동구호만을 외치고 있었다. 불과 이틀전까지만 해도 기세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고 농성인원도 1천여명에 달했던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었다.26일까지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 「동참」했던 1백여명의 학생·재야단체회원들도 자취를 감춰 더욱 쓸쓸해 보였다. 『우리는 조금도 굽힘없이 끝까지 투쟁해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위원장 명령없는 현장복귀는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농성지도부는 갈수록 위축돼 가는 노조원들을 연신 독려했지만 이들 역시 예전의 당당한 모습은 아니었다. 26일 하오 10시 명동성당측의 중재로 열린 지하철노사 막후협상에서 노조측은 기본급 5만원 인상선에서 재협상을 하자고 제의했다.기본급 7만원 인상에서 한발도 후퇴하지 않던 방침에서 처음으로 변화를 보인 것이다. 공사측이 오히려 직권중재가 내려졌다는 이유로 불가입장을 밝히자 노조간부가 공사측 간부를 성당마당으로 불러내 「발표따로 실제따로」를 제의하는 다급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원칙을 그토록 강조하던 노조측의 행태로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방패막이」가 돼 주리라 믿었던 명동성당측이 퇴거를 요구해 노조측을 더욱 난감케하고 있다.막후협상이 결렬된 직후 성당측은 『농성으로 성당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받고 있다』면서 27일 자정까지 나가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야당인 민주당에서 조차 「쫓겨난」 마당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노조측은 성당내 잔류허락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성당 관계자는 『시민의 발을 잡아놓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한정 머무르게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이날 낮에는 인근상인들이 몰려와 농성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며 다른 곳으로 가달라고 항의,노조원들의 부아를 북돋기도 했다. 농성장에서는 계속 각종 구호와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 아이티 군실권자 국외탈출 기도설/미,이이티인 비자취소

    【포르토프랭스·워싱턴 AP AFP 연합】 클린턴 미행정부는 민선대통령의 복귀를 가로막고 있는아이티 군사정권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아이티인들의 미국 비자(입국사증)를 취소할 것이라고 미행정부의 한 소식통이 25일 전했다. 한편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아이티 정부 막후 실력자인 세드라스가 최근 50만달러를 아이티 중앙은행에서 인출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미국과 캐나다의 민항기 취항 중단 조치로 아이티군부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이같은 움직임은 세드라스장군의 국외탈출 가능성을 가리키는 서곡일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다르 소식통은 이 돈이 망명중인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대통령의 귀환을 저지하기 위한 대미 로비자금으로 사용될 것으로 믿고 있다며 엇갈린 시각을 보였다.
  • “일전불사”외치다 경찰진입후 잠잠/전기협·지하철노조원농성 해산현장

    ◎기독회관 농성자 순순히 연행 응해/명동성당,“당사자간 자체 해결하라” 경찰은 26일 상·하오 철도와 지하철노조원들이 대학생들과 농성을 벌여온 한국기독교회관과 경희대등에 대해 잇따라 해산작전을 벌였다. 농성자들은 경찰이 진압작전을 펼치자 미리 대피하거나 순순히 연행에 응해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한국기독교회관◁ ○…경찰은 이날 하오 3시30분 파업중인 전기협소속 철도노조원들이 지난 23일부터 3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 9개중대 1천2백여명의 정사복경찰을 투입해 30여분만에 농성근로자 2백71명 모두를 연행,성동경찰서등 시내 9개 경찰서에 분산수용하고 조사를 벌였다. 경찰이 투입되자 기독교회관 3층부터 7층까지 분산돼 농성을 벌이던 근로자들은 모두 7층으로 올라가 복도와 사무실에서 구호를 외쳤으나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경찰의 연행에 순순히 응했다. 그러나 이중 1백여명은 7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사무실로 몰려가 20여분동안 저항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하오 3시20분쯤 농성근로자 지도부에 경찰투입사실을 통보했으며 건물주변에 매트리스등을 깔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은 건물로 들어가면서 지도부들은 7층에 있다는 정보에 따라 사복조는 별도로 엘리베이터를 이용,곧바로 7층에 들여보냈으며 전경들은 비상계단을 통해 농성을 하고 있던 3층부터 훑고 올라가는 양동작전을 폈다. 농성 근로자들은 경찰이 들어오기 전만해도 「승리가」등을 부르며 『공권력투입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등 일전불사태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막상 경찰이 덮치자 대부분 연행에 순순히 응해 큰 충돌은 없었다. ○…한편 이날 당직을 맡은 김기석신부(35)는 경찰투입에 앞서 경찰지휘부를 만나 『농성근로자 가족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수 있도록 20분간의 여유를 달라』고 했으며 경찰은 10분정도 여유를 준뒤 건물에 진입. ○시위장소 못찾기도 ▷명동성당◁ ○…명동성당에서 4일째 농성중인 서울지하철 노조원 5백여명은 경희대·기독교회관 등에 경찰력이 들어가 농성근로자를 강제해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위축된 분위기속에서 대책마련에 부심. 농성근로자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구호등을 외치며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리려 애쓰는 모습. 이들중 2백여명은 이날 밤 안암동 개운사로 자리를 옮겨 농성장에 대한 공권력투입을 규탄하는 대회를 열기로 했으나 개운사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성균관대로 다시 이동하는등 시위장소 물색에 어려움을 겪기도. ○…명동성당측이 이날 하오 10시쯤 농성근로자와 지하철공사측 간부간에 열린 막후협상이 결렬된 이후 『노사문제는 당사자들간에 자기 회사안에서 해결하고 자정까지 성당에서 떠나달라』고 요구하자 농성근로자들은 난감한 표정. 막후협상을 벌인 사람들은 농성근로자대표 김종식노조법규부장과 지하철공사 장영석총무부장·김정근노무부장 등으로 이들은 성당측의 주선으로 성당 사무처에서 만났으나 서로 종전 입장만 되풀이 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이 막후협상에서 근로자측은 종전에 내건 기본급 7만원 인상안을 후퇴,5만원 인상·파업관련자 고소고발 및 직위해제 취소등의 안을 제시하고 회사측이 이를 수용하면 즉각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으나 회사측이 이를 거부했다는 것. 한 농성주동자는 『성당측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파업으로 얻은 소득이 전혀 없어 조합원들을 설득할 길이 없다』면서 『따로 갈데도 없고 여기에 당분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피력. ▷경희대·동덕여대◁ ○…경찰은 서울지하철노조 파업 사흘째인 26일 새벽 지하철 노조원들과 대학생 1천5백여명이 농성중이던 경희대에 공권력을 투입,이들을 강제해산시켰다.경찰은 이날 상오 4시30분쯤 경희대 주변에 40개 중대 5천여명의 병력을 배치,상오 5시쯤 페퍼포그 차량 4대가 앞서서 다연발최루탄을 쏘며 정·후문과 경희유치원,경희중·고등학교 등 4곳의 진입로를 통해 일제히 진입했다. ○…경찰은 일부 학생과 노조원들이 진입 기미를 눈치채고 상오 4시쯤 학교 뒷산인 임업시험장을 통해 달아나 농성중이던 성북구 월곡동 동덕여대에 상오 6시30분쯤 병력을 재투입,노조원과 대학생을 연행했다. ○노조간부 자취 감춰 ▷동아대◁ ○…부산지방경찰청은 26일 부산지하철 파업을 주도한 교통공단노조 강한규위원장(37)에 대한 긴급구속장을 발부받아 3개중대 1백22여명의 경찰력을 투입,강위원장이 피신했던 동아대 하단캠퍼스를 수색했으나 검거에는 실패. 전날 공권력 투입에 대비 부산대에서 노조 집행부와 함께 동아대 캠퍼스로 피신했던 강위원장및 노조간부등은 경찰이 검거에 나섰을 때 이미 자취를 감춘뒤였다고. ◎전기협/전지협/공조 “삐걱”/파업이후 불협화의 저변/“전기협 왜 복귀 서두르나” 못마땅/부산지하철 「지각파업」에도 불만/서울지하철 전국기관차협의회와 지하철노조의 연결고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두 노조는 지난 3월16일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전지협)」를 결성한뒤부터 제법 끈끈한 동지애를 발휘해 왔다. 지하철노조측은 전기협이 법외노조여서 전지협에 가입자격이 없음에도 참관단체라는 명목으로 가입시키는 편법을 발휘하면서까지 전기협을 끌어안은 의리를 발휘했다.전기협 또한 이러한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각종 공동집회시 불법단체 특유의 강경성을 유감없이 발휘,지하철노조쪽을 만족시켜 왔다. 특히 지난 23일 전기협에의 공권력투입에 항의,서울지하철노조가 24일 전격파업을 선언했을 때는 이들의 동지애가 절정을 이루었다. 노조이념에 있어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이들이 급속히 가까워질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 이해때문. 지하철노조는 올해 정부측과의 임금협상에 난관이 예상됨에 따라 전기협의 강한 투쟁력이 필요했고 임의단체로 법적 기반이 없는 전기협은 합법노조인 지하철노조를 끌어들여 공동전선을 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이러한 기대에 걸맞게 공동파업이라는 최대목표를 일궈냈지만 최근들어 「한지붕 세가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하철노조원들은 정부의 강경방침에 전기협소속 기관사들이 일부 복귀하자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전에는 그렇게 강경하던 전기협동지들이 먼저 손을 들 줄은 몰랐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동시 연대파업을 약속했던 부산지하철노조가 서울쪽의 24일 상오4시 파업방침에 맞추지 않고 마라톤협상을 벌이다 25일에야 파업에 마지못해 동참한 것에 대해서도 야속해 한다. 한 조합원은 『자기들 실속을 다 차리려다 안되니까 파업에 동참한다』며 불만을 떠트렸다. 「이해가 다하면 멀어진다」는 속세의 법칙이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 남측예비접촉대표/「통일정책」 베테랑 포진/양측진용의 면면과 컬러

    ◎전원 「남북한문제」 종사… 정상의중 잘 파악/일면직없는 사이… 우리측 협상 처음나서 우리측의 이홍구통일부총리 정종욱 청와대외교안보수석 윤여준 총리특별보좌관,그리고 북한측의 김용순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 안병수 조평통부위원장 백남준 정무원책임간사.오는 28일 정상회담준비를 위한 예비접촉에 나서는 남북 대표단의 면면들이다.양측 모두 대북·대남정책 종사자들로 구성돼있다.특징은 이들이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특히 우리 대표들은 모두 북한과의 협상에 당사자로 나서본 적이 없다.그래서 첫 접촉이 상견례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반면 북측대표들은 경험으로 보면 우리 대표들에 비해 프로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순조롭게 진행되던 회담을 한순간에 결렬로 몰고갈 수도 있는 협상의 베테랑들이다.일부에서 예비접촉이 북한측의 페이스에 끌려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측 대표진용을 보면 역사적인 정상회담문제들을 협의하는데 최적임자들을 골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수석대표인 이부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문제 최고브레인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하고 있어 이번 예비접촉에서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수석 역시 이론가인데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으로써 예비접촉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잘 반영해 협상을 원만히 끌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윤보좌관도 6공때 대통령 정무비서관및 정무1장관보좌관 등을 역임하면서 막후협상등 정치력을 발휘한 바 있어 이번 회담의 가닥과 방향을 잡아나가는데 적지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측 김단장은 대남및 국제문제전문가로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일성의 친척이라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노동당 대남비서인 그는 지난 90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 등을 방문한 뒤 김일성에게 개방의 필요성을 건의했다고 한다.북한체제의 속성상 웬만한 측근이 아니면 꺼내기 힘든 이야기다. 또 91년 10월 김일성의 중국방문을 수행하고 12월에는 김일성의 특사로 쿠바를 방문하는등 김일성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몇 안되는실세로 분류되고 있다.그는 김일성이 외국인사를 접견할 때 빠짐없이 배석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김용순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에도 개입하는등 북한의 대서방 교섭창구로도 잘 알려져있다.지난 90년 가네마루 신(김환신) 당시 일본 자민당간사장과 「조일관계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한 바 있다.또 92년 2월에는 북한의 핵안전협정 서명을 앞두고 열린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에 수석대표로 참석했다.그리고 부시행정부 시절 아놀드 캔터 미국무부정무차관과 뉴욕에서 몇차례 회담을 갖기도 했다.현재 13명이나 되는 조평통부위원장직도 겸하고 있다.당내 서열은 26위쯤. 안병수는 이번 북한측 대표 가운데 우리쪽에서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선전선동전문가.입심이 굉장히 센 사람으로 전해진다.그래서 회담에서 논쟁을 도맡아 한다.남북고위급회담 대변인 자격으로 서울에도 온 적이 있다. 백남준도 안병수와 경력이 거의 비슷하다.김일성대학을 졸업했으며 폴란드대사로 잠시 외유를 한 것을 빼고는 72년 남북적십자회담때 자문위원을 시작으로 계속 대남정책에 관여해왔다. ○…이번 예비접촉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할 남측의 이수석대표와 북측의 김단장은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 특색.두사람 모두 34년생 동갑내기로 이수석대표의 생일이 김단장보다 두달정도 빠르다. 두 사람은 또 통일문제와 남북관계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겸비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이수석대표는 통일안보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총리로 현정부의 통일정책 모태가 된 「한민족통일방안」을 6공때 마련한 통일문제전문가이며 김단장은 북측에서 통일정책을 포함한 대남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 EU 차기수상 선출 “핫이슈”/12국정상회담 뭘 논의하나

    ◎불·독서 벨기에총리 지지/4명 거론… 막후협상 변수 유럽연합(EU) 12개국 정상들이 오는 24,25일 이틀동안 그리스의 코르푸에서 올 상반기 정례회담을 갖는다.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제는 앞으로 5년동안 EU를 이끌어갈 신임집행위원장 선출이다. 자크 들로르 현집행위원장은 85년이후 10년동안의 「장기집권」을 오는 연말로 마감한다.3선금지규정은 없으나 관례와 회원국간 기회균등의 원칙에 따라 그가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게다가 프랑스 사회당 소속인 그는 로카르 전당수가 사임함에 따라 좌파의 대통령후보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는 과연 누가 들로르위원장의 뒤를 이어 「유럽연방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보는 장 드안 벨기에총리,루드 루베르 네덜란드총리,레온 브리튼 현집행위원(영국),피터 서덜랜드GATT사무총장(아일랜드)등 4명이다. 정상회담에 앞선 사전 외교접촉에서 신임집행위원장을 드안총리로 하자는 데 회원국들은 의견을 집약하고 있다.특히 유럽통합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프랑스는 이미 드안총리 지지입장을 밝혀놓고 있고 독일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원만한 성격의 드안총리를 밀고 있다. 따라서 대세는 드안총리로 굳어져가고 있다는 것이 EU 관계자들의 설명이다.그러나 2가지의 변수가 있다. 루베르 네덜란드총리가 네덜란드의 자존심을 걸고 집행위원장 출마의사를 강력히 밝히고 있다.EU정상회담은 만장일치로 진행되는 만큼 11개국 정상들이 모두 드안총리를 밀더라도 그가 비토하면 끝장이다. 또 유럽의회선거에서 참패,국내정치적으로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영국정부가 어떤 입장을 보일는지가 주목된다.메이저총리가 연방통합론자인 드안총리를 선뜻 지지하는 데는 국내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제3의 인물이고 브리튼집행위원과 서덜랜드사무총장이 여기에 해당된다.브리튼위원은 강대국 다음에는 약소국이,좌파에 이어 우파 집행위원장을 뽑는다는 EU의 불문율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서덜랜드사무총장은 『일을 맡기면 할 수 있다』는 본인의 소극적인 희망의사에다 아일랜드정부가 강하게 밀지 않아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런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이 막후외교접촉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안이 9월 특별정상회담 개최다.이번에는 집행위원장을 선출하지 않는 것으로 영국의 체면을 살려주고 루베르총리의 임기도 이달이면 끝나 9월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행위원장 선출의 이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WEU(서유럽연합)·OECD(경제협력개발기구)등의 사무총장직을 놓고 회원국간 막후협상이 진행되고 있다.정상들은 24일 하오(현지시간) 집행위원장 선출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막후협상결과에 따라 25일에 합의를 도출해낼 가능성이 많다.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23일 하오(현지시간) 참석,「12+1」회담을 갖고 러시아의 정치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위해 상호협력한다는 내용의 「동반자협력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다.그리고 내년 1월부터 정식회원이 되는 오스트리아·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등 4개국 정상은 옵서버자격으로 참석한다.
  • 정상회담 실현의 청신호/북 예비접촉 수락 배경과 전망

    ◎“국면전환용”­“대화 노력” 평가 상반/접촉과정서 진실성여부 최종 검증 북한이 22일 정상회담을 위한 우리측의 28일 예비회담 제의에 그대로 호응해 옴으로써 정상회담 성사에 일단 청신호가 켜졌다. 이번 예비회담은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 및 의제 등 절차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따라써 북한측이 이에 별다른 이의없이 화답해온 것은 정상회담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한 첫단추가 제대로 채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북측이 이처럼 예비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온 데 대해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실천의지가 확인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송영대통일원차관)고 긍정평가하고 있다.우리측 전통문에 전례없이 신속히 회신해 왔을 뿐만 아니라 대표의 급등 예비회담 절차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제안에도 선선히 응해왔기 때문이다. 북측이 이처럼 과거와 달리 정상회담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배경에 대해선 정부내에서조차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첫째,북한이 얼마전까지 핵연료봉 교체로 국제제재 움직임을 자초한 데서 절감했듯이 이른바 핵카드의 효력이 소진되고 있는 데 따른 국면전환용이라는 것이다.즉 당면한 국제제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미·북 관계개선을 진전시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북측도 미국과의 막후접촉을 통해 핵문제와 관계개선을 일괄타결하기 위한 미·북 3단계회담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형식상으로라도 남북대화를 진전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말하자면 북한핵문제를 중재키 위한 카터 전미대통령의 방북 이후에도 미국 등 국제사회가 제재의 고삐를 완전히 늦추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둘째,정상회담의 모양새와 관련해 모종의 불순한 동기가 개재되어 있다는 추측이다.즉 전일본총리 부인인 미키여사를 통해 애드벌룬을 띄운 것처럼 북측이 김영삼대통령을 오는 광복절을 기해 평양으로 초청,그들의 각본에 따른 「8·15 민족대회」의 일환으로 정상대좌를 가지려는 시도로 보고있는 시각이다. 셋째,북한이 종래의 대남전략·전술에서 후퇴하여 진실한 남북대화에 응하려한다는 매우 긍정적인 해석이다.그러나 북한이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체제동요를 우려해 전면적 교류와 개방이라는 모험을 할 형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연성이 적은 관측이다. 이처럼 북한이 작금에 처한 대내외적 상황이 극히 어려운 만큼 예비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속셈도 그만큼 다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북한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물론 북한의 정상회담 실현의지의 진실성은 오는 28일 이후 열릴 몇차례의 예비회담 과정에서 최종 검증될 것이다. 이번 예비접촉에서 우리측은 정상회담의제를 논의하지 않고 장소는 어디든 좋다는 입장이어서 북한측이 예비회담에 순조롭게 응해올 경우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다음달중에 열릴 공산이 크다. 그러나 북한이 예비회담에서 장소나 시기문제 등 순수한 절차문제 이외에 종전처럼 의제문제로 시간을 끌 경우 카터전미대통령을 통한 북측의 정상회담 제의 자체가 핵문제와 관련한 국면전환용임이 입증될 것이다.또 불필요한 전제조건을 내거는 행태를 보일 경우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계속했으나 실패로 끝난 특사교환 실무접촉의 재판이 될 것이다. 우리측 수석대표의 카운터파트로 북측이 어떤 인물을 내보내느냐에 따라서도 북측의 실현의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수석대표로 김일성부자의 신임이 보다 두터운 인물이 낙점될 경우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은 그 만큼 높아질 것이다. ◎북의 대남전통문 요지 대한민국 국무총리 이 영 덕 귀하 최고위급회담을 통하여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해소하고 외세에 의존함이 없이 자주적으로,평화적으로 조국통일의 새국면을 열어나가려는 것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일관하게 견지하여온 방침입니다. 오늘 나라에 조성된 첨예한 정세는 북남 쌍방에 다같이 최고위급회담의 개최를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문제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때에 귀측이 이번에 우리와 최고위급회담을 하려는 입장을 표시한데 대하여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위임에 의하여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을 가지자는 귀측의 제의를 환영하며 그에 동의한다는 것을 통지하는 바입니다. 쌍방 최고위급회담의 개최는 7천만 우리 겨레에게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기쁨을 주고 나라의 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새로운 희망을 주는 역사적인 사변으로 될 것입니다. 우리측은 내외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되고 있는 북남최고위급 회담을 성과적으로 마련하기 위하여 오는 6월28일(화)오전10시 판문점 귀측지역에 부총리급을 단장으로 하는 3명의 대표와 4명의 수원(수행원)을 보낼 것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강 성 산 1994년6월22일 평양
  • 남북대화 채널 복원… 핵주도권 잡기

    ◎예비접촉 선제의 배경/대표 격상하고 절차 줄여 「장애」 제거/미­북 3단계 회담전 핵동결 진의 파악기회로 정부가 20일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을 먼저 제의한 것은 북한핵문제의 돌파구를 열어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이번의 대북 선제의에는 남북을 오간 카터 전미대통령의 중재로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북한주석간 정상회담 개최가 원칙적으로 합의된 만큼 그 불씨가 사그러들기 전에 구체화하려는 의지도 실려있다. 이는 북측의 제의를 기다리기보다는 우리측이 주도권을 잡고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실익이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정부로선 남북고위급회담과 특사교환 실무접촉이 모두 중단된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든 남북대화 체널이 복원되는 것이 긴장완화나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모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또 설령 최악의 경우 북측이 다시 태도를 바꿔 정상회담이나 이를 위한 예비접촉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초미의 현안인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속셈을 파악할 수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관계개선 전기삼아 이날 정부의 제의는 가능하면 빠른 시일내에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부총리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예비회담을 ▲오는 28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갖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리측이 당초 예상보다 발빠르게 예비접촉 날짜를 앞당겨 제안한 것은 미북 3단계회담 성사 이전에 핵개발과 관련한 북측의 의도를 파악,대처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이를테면 만일 북측이 지난번 특사교환 때처럼 핵문제가 아니라 김주석이 직접 작성했다는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따위를 의제로 들고 나오면 「정상이 무조건 만나자」는 그의 태도에 허구성이 개재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또 이 경우 북한이 핵개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간접 확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사교환이 아닌 부총리급 예비회담을 제안한 데서도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측의 적극성이 엿보인다.지난해 추진하던 실무접촉­특사교환­정상회담이라는 3단계 추진방식보다 한단계 생략된 2단계 추진방식인 것이다.남북한이 지난 80년대 이후 모두 12차례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절차 논의 과정에서 모두 무산된 점을 감안,예비접촉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대표의 격을 높인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정부는 정상회담의 시기·장소문제에 대해서는 융통성있게 임하고 의제 문제에도 가능한한 신축성있게 임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이는 이홍구통일부총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과거와 같이 절차문제로 시간을 끌거나 장애요인을 만들지 않고 가급적 시기와 장소 논의에 집중하겠다』고 언급한 데서도 감지된다. ○시기·장소 집중 논의 예비회담 수석대표를 부총리급으로 제안한 만큼 우리측 대표로는 이통일부총리를 일단 영순위로 상정할 수 있다.이부총리는 이와 관련,『나를 지칭한 것 같으나 기다려 봐야 한다』고 귀띔했다.이부총리가 안될 경우는 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측은 북한이 어느 정도 비중있는 인사를 대표로 내보내느냐 하는 것도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진지성을 검증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측 대표로는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과 노동당비서들인 김용순·황장엽 등이 점쳐지고 있다.하지만 현재로선 추측일 뿐이다. ◎북은 어떤반응 보일까/예비접촉 태도 보면 속셈 드러날듯/엉뚱한 조건 내세워 「샅바싸움」으로 끝낼지도 우리측이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 등 절차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함으로써 북측의 호응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 개최문제는 카터 전미대통령이라는 비중있는 중재자를 통해 김일성주석이 먼제 제기하고 이를 김영삼대통령이 이의없이 수락하는 형식을 밟았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사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즉 종전처럼 어느 한쪽에서 기선을 잡는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제안했다가 실무접촉 과정에서 전제조건 등에 대한 현격한 시각차로 정상회담 자체가 무산된 것과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은 과연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인가에 대해선 회의하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있다.과거 수많은 남북간의 합의가 북한에 의해 휴지조각이 되는 등 아직도 상호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85년 가을 남북한은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까지 합의했으나 끝내 무산된 전례도 있다.장세동 당시 안기부장과 허답 북한노동당비서(91년 사망)가 남북의 밀사로 오가며 성사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와 올림픽공동개최 보장 등이 걸림돌로 작용해 백지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문제도 예비접촉 과정에서 언제든지 뒤틀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다시 말해 북한이 지난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특사교환을 먼저 제안해 놓고도 터무니없는 전제조건들을 내세워 성사를 불가능하게 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북측은 올 3월19일까지 계속된 특사교환을 위한 8차례의 실무접촉 과정에서 ▲핵문제와 관련한 국제공조 포기 ▲패트리어트미사일 반입중지▲김대통령의 북한핵 관련 발언 사과 등 매번 엉뚱한 전제조건을 들고 나온 바 있다. 또 김주석의 이번 제의 자체가 핵문제로 인한 국제제재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눈가림용일지도모른다는 우려도 아직은 해소되고 있지 않고 있다.북한이 핵카드를 구사하는 과정에서 남북대화보다는 미국과의 직접협상에 매달려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도 미·북 3단계회담을 위한 막후접촉 과정에서 북한의 태도가 표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설령 북측이 예비회담에 응해온다 하더라도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과 이에 반드시 수반되는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한 4개항의 요구 등 우리측이 수용할 수 없는 사항을 의제로 올릴 경우 지루한 「샅바싸움」만 하다 끝날 공산도 있다. 북한이 우리측이 정상회담을 수락한 이후에도 김대통령과 문민정부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을 그치지 않는 점도 정상회담 성사에는 불길한 조짐이다. 때문에 북측이 스스로 제기한 정상회담에 진지하게 응해올 것인지는 우리의 예비접촉 제의에 어떻게 나올 것인지,또 그 때까지 김대통령에 대한 비방을 전면 중단할 것인지에 따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남북정상회담 추진 경과/81년1월 전전대통령 첫 공식제의

    ◎김대통령,93년 2월 취임사서 표명/김일성,90년 방북대표에 처음 언급 남북한정상회담이 우리측에 의해 공식제의된 것은 81년1월 당시 전두환대통령에 의해서다.그러나 그에 앞서서도 막후에서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이 이끌던 자유당정권은 「북진통일」이 국시였다.남북정상회담은 상상조차 못하는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남북대화의 기운이 일었지만 정상회담 개최논의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어 등장한 박정희대통령의 「5·16정부」는 처음 반공을 강력히 내세우다 보니 정상회담추진이 어려웠다.72년에 들어서야 남북조절위가 열렸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특사 사이에 남북정상회담논의가 비공개로 있은 것으로 알려진다.박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공개적인 운을 뗀 것은 집권말기인 79년1월이었다.그는 연두회견에서 『남북한당국이 어떤 시기·장소·수준이든 조건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남북정상회담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긴 했지만 직접표현에는 신중을 기했다. 전두환대통령은 80년 정권을 잡자마자 정상회담개최에 집념을 보이기 시작했다.81년1월 국정연설에서 「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안,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의사를 밝혔다.전대통령은 거의 매년 8·15 경축사등을 통해 북한이 회담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북방외교를 가장 큰 목표로 내건 노태우대통령은 전대통령보다 남북정상회담에 더 열심이었다.노대통령은 88년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며 김일성주석과 만날 뜻을 피력했다.또 88년10월 유엔연설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의제까지도 소상히 밝혔다. 김영삼대통령은 최초의 「문민정부」답게 남북정상회담에 접근하고 있다.김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사에서부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획기적 전제아래 정상회담을 제안했다.올해 들어서도 취임 1주년회견에서 남북한정상회담의 조기개최의지를 천명했다. 「5공」과 「6공」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정통성 확보의 가장 효율적 수단으로생각한 듯 비밀협상을 통해 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5공」 때는 장세동안기부장,「6공」 때는 박철언청와대특보가 나서 북한의 고위당국자와 해외에서의 만남 혹은 상호방문등으로 깊숙한 논의를 진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북한에 대한 대대적 경협이 정상회담개최의 대가로 제시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당시 정부의 노력은 북한측의 기만적 태도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북한은 해방직후부터 최고당국자의 만남을 거론해왔다.하지만 그것은 모든 정당·사회단체대표들의 회담으로 우리 내부를 교란시키려는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었다.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가끔 정상회담의사를 비췄으나 무게가 실리지 않은 듯했다.지난 90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 대표에게 정상회담의사를 밝혀 기대를 부풀게 했으나 역시 구두선으로 끝났다. □남북한 정상회담 관련 일지 ▲81년1월12일=전두환대통령,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제의(국정연설) ▲81년6월5일=전대통령,남북한당국최고책임자간 직접회담제의(평통정책자문회의 개회사) ▲81년7월1일=북한금일성주석,우리측 제의 거부 ▲88년2월25일=노태우대통령,김일성과 대화용의 표명(대통령취임사) ▲88년8월15일=노대통령,김일성과 회담제의(8·15경축사) ▲88년10월18일=노대통령,평양방문 회담용의표명(유엔총회연설) ▲93년2월25일=김영삼대통령,김일성과 회담용의표명(대통령취임사) ▲93년5월25일=북한 강성산총리,특사교환통한 정상회담논의제의(대남전통문) ▲94년2월25일=김대통령,핵문제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의사천명(취임1주년회견) ▲94년6월16∼17일=김일성,남북정상회담 수락의사표명 ▲94년6월18일=김대통령,김일성주석 제의 즉각수락
  • “초안에 우리입장 상당히 반영”/「북제재초안」관련 한외무 일문일답

    ◎무기금수 전담기구 별도 설치/「비핵화」 아직 재고단계 아니다/IAEA 탈퇴로 제재 가속화 한승주외무부장관은 16일 『정부는 미국측이 마련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초안을 수락했다』고 밝히고 『이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장관은 이날 상오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초안은 우리정부의 뜻이 상당히 반영됐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미국측 결의 초안은. ▲전문과 본문 20개 항으로 되어있다.크게 보면 전문과 제재종류를 7개로 압축할 수 있다. ­러시아가 제안한 「8자회담」은. ▲그런 표현은 없고 북한이 결의안에 담긴 요구사항을 수용하면 국제회의를 추진할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을 할 것에 대비한 예고적 제재내용도 있는가. ▲그렇다.대북송금 중지와 자산동결 조치등이 그것이다. ­중국의 반응은. ▲중국측에는 우리 시간으로 15일 밤에 알려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아직까지 알려진 것은 없다.현재로는 예상하기 어렵다.당장 중국이 결정해야할 문제는 결의안에 대한 협의를 이사국들과 같이 하느냐,아니면 제재안에 대해 태도를 먼저 취하느냐이다.곧 알려질 것으로 본다. ­우리의 뜻은 어느 정도 반영됐나. ▲한·미·일 세나라의 실무협의 내용을 토대로 지난번 나의 미국 방문을 통해 확정지은 내용이 상당히 반영됐다.효과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결의안이다.그대로 채택되면 굉장히 강력한 압력수단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선언이 초안에 미친 영향은. ▲내용 자체보다는 과정의 속도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중국이 반대헤도 표결을 통한 결의안 채택을 강행할 것이지. ▲앞으로의 협의과정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표결로 가느냐의 문제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협의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기수출 금지조항이 있는데,선박에 대한 수색권도 있는가. ▲금수라는 것은 수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모든 제재안이 그렇지만 세부상항과 관련해서는 그것을 관리할 구조가 별도로 만들어질 것이다. ­제재 가운데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국제공조적인 성격을 띠고있기 때문에 일단 제재결의안이 채택되면 우리의 역할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본다.외교적으로,양자적으로 무척 많다. ­미국과 북한의 막후접촉은. ▲미국언론들이 그렇게 보도하고 있으나 겉으로 드러난 것 말고는 내면적으로 어떤 움직임도 없다. ­제재 초안에 들어있는 한반도비핵화 선언의 무효 또는 폐지는. ▲정부는 비핵화선언의 준수가 어렵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아직 재고의 단계는 아니다.비핵화선언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원칙이다.
  • 북핵위기 타개 막후접촉 시사/케리 미상원의원

    【워싱턴 연합】 미국과 북한은 현재의 핵위기 타개를 모색하기 위해 『양측 관리들간의 접촉을 갖고 있다』고 존 케리 미상원의원(민·매사추세츠)이 13일(이하 현지시각) 말했다. 미상원외교위에 소속된 케리의원은 이날밤 방영된 CNN­TV 생방송 대담프로인「래리 킹 라이브」에 나와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탈퇴선언으로 더욱 악화된 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북한관리들이 접촉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 공식회의보다 물밑대화 활발/IAEA이사회 북핵논의

    ◎대북 기술지원 중단 신중 검토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이사회는 정중동의 긴박한 분위기다.북한 핵문제는 회의장에선 거의 논의되지 않지만 핵심우방을 중심으로 물밑대화가 한창이다.이사회는 당초 회의 첫날인 6일 상오 한스 블릭스사무총장으로부터 북한 핵문제 보고를 듣기로한 일정을 수차례 바꿔오다 7일 회의가 끝나기 직전 전격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이사회는 먼저 일반적 의제를 다룬 뒤 9일 하오 또는 10일쯤 북한 핵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는 북한 핵문제를 서둘러 논의할 경우 북한의 회의지연 전술등으로 불필요한 논란거리만 제공할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또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 추진일정과 보조를 맞추고 안보리 상임이사국간 협의과정을 지켜보면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입장표명의 강도와 수위를 조절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핵심우방들은 매일 이사회 시작 전과 끝난 뒤 두차례씩 대책회의를 갖고 대북 결의안 채택문안 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IAEA의 결의안 내용은 IAEA로서 할수 있는 최강의 문안과 조치들로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우선 북한이 영변원자로 연료봉 교체문제로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데 대해 이사국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어 이런 분위기를 담은 비난과 경고성 내용이 결의문에 포함될 것이라고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또 북한에 대한 IAEA의 기술지원을 중단하는 문안을 놓고 이사국간 막후접촉을 통해 의견을 집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기술지원중단은 북한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IAEA로서 취할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조치다.그동안 잠깐씩 거론되기도 하던 기술지원중단은 IAEA의 마지막 카드에 해당된다.그런 카드를 사용하려는 것은 북한의 연료봉교체문제가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보다도 더욱 중요하고 핵투명성 확보에 치명적이라는 이사국들의 시각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IAEA의 결의문이 채택되면 유엔 안보리의 제재조치 논의를 가속화시키고 강력한 논거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편에서는 IAEA가 북한에 촉구하고 있는 특별사찰이 IAEA 스스로 발목을 잡는 수가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북한이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하는 폐기물처리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이 또 다른 북한의 시간끌기 카드로 작용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북한은 IAEA가 특별사찰을 받으라고 결의할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효력정지를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나 NPT 완전탈퇴는 북한으로서도 마지막 카드인 만큼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북한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 특별사찰을 받기로 한다면 상황은 또다시 급변할수 밖에 없다.특별사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면서 북한의 의도적인 연료봉교체와 증거인멸문제는 논외로 다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 시점은 국제적인 압력이 구체화됐을 때 북한이 탈출구로 사용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때문에 특별사찰에 대한 「안전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관측통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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