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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對北 새 대화창구 모색

    정부는 金大中대통령이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올해 중 남북당국간 대화 재개 의지를 강력히 천명함에 따라 조만간 공식·비공식 채널을 망라해 북 한당국에 대화 추진 의사를 타진할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이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북한내에서 새로운 인물들과 막후 대 화 창구를 개설하는 데 주력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고위 소식통은 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 냉전시대의 대남 투사들만을 상대해선 획기적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며 이같이 시사했다. 이 소식통은 또 “정부는 그동안 남북간 공식적 회담을 추진해 왔으나 필요 하다면 비공식 회담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해 남북간 막후 접촉도 가능하 다는 입장도 천명했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이날 당국자 회담 재개 방향과 관련,“앞으로 긴급구 호차원의 지원보다는 북한 식량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농업구조 개선을 돕고,농자재를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이산가족 문제에 언급,“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되 북한이 호응할수 있는 방안으로부터 시작하자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말해 서독이 동독에 경제적 반대급부를 주면서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심화시켰던 동서독 방식을 적극 원용할 뜻을 내비쳤다. [具本永 kby@]
  • 안전보장회의에 나타난 金대통령 對北정책

    金大中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올 정부가 추진해나갈 안보정책의 기본 골격을 제시함으로써 ‘흔들림없는 대북정책 추진의지’를 거듭 천명했다.특히 우리가 북한에 의해 끌려가고 동요해왔던 그동안의 잘못된 행태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만들고 주도해가는 그런 시대를 열자고 촉구했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자신감은 지난 1년동안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온 안보와화해·협력의 병행추진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金대통령 스스로도 이날 회의에서 “안보와 화해협력을 병행하는 추진전략을 추구,많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그 실례로 ●대북정책 주도권 확보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대내외적 신뢰도 제고 ●안보기반 공고화 등을 꼽았다.이러한 판단은 적극적인 대북정책으로 표출됐다.金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남북당국자간 대화재개와 이산가족 문제,그리고 대북농업개발협력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金대통령의 이날 언급으로 볼 때어느 때보다 활발히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북한의 핵 및 미사일문제에있어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함으로써 그 필요성이 절실 한까닭이다. 이는 정부가 ‘상호주의 원칙’을 완화,직접 나서서 북한을 지원해 줄 수도 있다는 제안이기도 하다.그동안 북측은 국제무대에서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남한의 기업과 단체들이 도왔지,정부가 직접 도와준 것이 무엇이냐”고볼멘소리를 거듭해왔다.이에 대한 ‘화답(和答)’인 셈이다.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회담이 결렬된 뒤 다시 만날 때는 서로가 양보하는 것”이라고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이 때문에 올봄 북한의 파종기를 앞두고 지난해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이 자리에서는 비료,농약,씨감자 등종자개량 지원과 같은 대북농업협력이 크게 진척될 공산이 크다.또한 金대통령이 이산가족 상봉을 역점사업으로 선정한 만큼 이를 논의할 막후협상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金대통령의 의지는 무엇보다도 한반도에 불필요한 긴장이나 위기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우려한 결과다.金대통령은 “우리의 재도약과 번영을 보장하는 중요한 해”라고 강조해왔다.호기(好機)를 놓칠 때 남과 북 모두 피해당사자일 뿐이라는 우려가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따라서 북핵과 미사일문제 등 당면한 현안 처리과정에서 북한의 안보위협 요소 포기와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및 관계정상화 등을 아우르는 일괄타결 방식이 핵심으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미국측도 최근 金대통령의 구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대북화해추진의 토대가 튼튼한 국방태세와 견고한 한·미안보동맹 등 만반의 대비태세에 있음을 분명히하고 있다.새해 벽두부터 안보회의를 소집한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유동적인 안보정세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金대통령이 “안보는 국가목표 실현을 위한 기본 전제이며,여기에는 추호도 빈틈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데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 도약99 정치권 빅뱅-정계개편 예상주역들

    올해의 정치무대를 주름잡을 인물은 누가 될 것인가.정치권 빅뱅을 앞두고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정계개편의 주역을 놓고 설왕설래중이다. 물론 누구도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정계개편의 윤곽이 드러날 국민회의 5 월 전당대회를 주목하고 있다.요즘 정가에서 심심치 않게 터져나오는 ‘비호 남 대표설’이 단서다.동서화합과 전국정당화에 걸맞는 인물이 당의 얼굴이 돼야 한다는 당위성도 적지않다. 우선 TK(대구·경북) 출신의 李壽成전총리와 金重權청와대비서실장이 거론 되고 있다.李전총리는 ‘각계의 마당발’로서 金실장은 ‘신주류의 대표주자 ’로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중부권 대표론’으로 기치를 올렸던 李漢東의 원(한나라당)의 여권 합류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DJ와의 전격 제휴가 성사될 경우 중부권에서의 그의 위상을 감안,상당한 ‘파괴력’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 좌장격인 權魯甲전의원의 향배도 관심거리다.최근 ‘金重權-李鍾贊 라인’으로 이어지는 신주류 ‘강세’를 겨냥해 동교동계의 구심점이 될 것 으로 보인다.하지만 그동안 DJ 그늘에서 악역을 맡았던 權전의원으로서 전면 부상보다는 ‘막후실세’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정계개편의 ‘막후 해결사’로 뛰었던 趙世衡총재권한대행,韓和甲총 무와 金令培부총재의 부상도 점칠 수 있다.비호남대표설이 현실화될 경우 韓 和甲총무의 사무총장 기용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金부총재의 경우 權전의 원 대신 동교동계의 ‘방풍역’으로 수석부총재 또는 공동대표에 전격 기용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DJ의 총애를 받고 있는 李康來정무수석도 정계 개편의 막후에서 조정역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대연합 구상’이 가시화될 경우 국민회의 徐錫宰의원이나 한나라당 徐淸源의원 등도 막후 창구로서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반 면 李仁濟전지사의 경우 차기 대선주자를 꿈꾸며 ‘은인자중’의 모습을 보 일 것이란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정계개편 과정에서의 비주류 향배가 주목된다.李會昌총재 와 결별을 선언한 金潤煥의원은 ‘TK 신당 창당’ 등 다양한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이나 자금 등물리적 한계로 아직은 미지수다. 吳一萬 oilman@ [吳一萬 oilman@]
  • 통일외교 전망-남북정상회담 가능할까

    새로운 밀레니엄(천년)을 앞둔 마지막 한해인 99년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이 뤄질 것인가. 남북간 각급 회담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작은 징검다리들에 비유할 수 있 다.그러나 분단 반세기 동안 우리측 역대 정권들은 각급 회담을 추진하면서 이를 정상회담으로 연결시키려고 했다.정상회담이야말로 분단의 골을 단번에 뛰어넘는 가장 크고 튼튼한 다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시지프스의 신화’였다.남북 양측 의 주도권 다툼이나 북한측의 이런저런 사유로 번번이 좌절된 탓이다. 그 문턱까지 간적도 두번이나 있었다.지난 85년 가을 남북한은 張世東 전안 기부장과 許談 노동당비서가 밀사로 나서 그 해안에 양쪽 정상간의 만남을 성사시키로 한 바 있다.그러나 북측이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올림픽 공동개최 등에 대한 사전보장을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민정부 때인 지난 94년에도 날짜까지 받아놓았으나 끝내 유산됐다.金日成 주석이 회담 직전인 그해 7월9일 돌연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金大中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도 기본적으로는 정상회담의 성사를 바라고 있다.그러면서도 대화를 구걸하지는 않는다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 고 있다. 金대통령은 지난 연말 몇몇 언론과의 회견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기본 입장 을 천명했다.즉 “정상회담을 포함한 모든 회담에 대해서 문호를 열어놓고 있다”는 요지였다.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갖고 호응한다면 정상회 담은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물론 가장 큰 변수는 북한당국,특히 金대통령의 카운터파트인 金正日 국방 위원장의 태도다.공개석상 보다는 막후정치를 즐기는 그의 성향이 문제다. 하지만 金正日은 지난해 10월30일 오랜 은둔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만난 것이다.더욱이 나락으로 떨어진 북한경제를 회생 시키는 데는 남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金正日이 정상 회담 석상에 모습을 나타낼 개연성은 그만큼 커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지난해 9월 헌법개정으로 북한의 명목상의 국가원수가 金永南 최고인 민회의 상임위원장인 점이 문제다.이른바 정상회담 당사자간 ‘비대칭성’의 문제다. 그러나 정부는 큰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미국도 구소련의 명목상의 국가원수를 제쳐두고 실세였던 후르시초프 공산당 총서기와 정상회담을 가졌 다는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具本永 kby7@ [具本永 kby@]
  • 오늘의 눈-日자유당의 위험한 흥정

    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또 나라를 불문하고 명분과 실리,막전과 막후 거래의 산물인 것 같다.명분을 놓고 싸우는 무대 뒤를 살펴보면 실리를 빼앗고 뺏 기는 이해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 일본의 정치상황도 예외가 아닌 듯 싶다.무대의 주인공은 집권 자민당 과 자유당.중원 참원 통털어 367석을 가진 거대 자민당과 47석의 미니 야당 인 자유당의 연립정권 수립을 둘러싼 지루한 싸움은 관객에겐 잘 보이지 않 는 무대 뒤 흥정을 읽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양당간 최대 걸림돌은 자위대의 유엔군 참여문제다.자유당 오자와 이치로( 小澤一郞)당수는 헌법을 개정하더라도 자위대를 유엔군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자민당 지도부는 ‘평화헌법’의 해석을 바꾸면서까지 자유 당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11월19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와 오자와 당수간 연정합의 이후 자 유당은 줄곧 ‘자위대’문제를 고집해왔다.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연정 합의마저 깰 수 있다고 자민당을 겁주고 있다. 그러나 ‘자위대 파병’이 연정합의를 깰 만큼의 긴급하고도 핵심적인 사항 인가 묻는다면 두 당 모두에게 ‘아니올시다’이다.자유당이 내세우는 ‘자 위대’문제는 흥정용 카드에 가깝다. 연정을 수립하게 되면 내년 봄 치를 통합지방선거 및 총선에 같은 선거구에 서 제각각 후보를 내세울 수 없다.두 당의 후보중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으 로 단일화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군소정당인 자유당으로서는 선거구 조정은 사활이 달린 문제다.내년초 있을 개각 때 각료 지분을 더 많이 확보 하려는 것도 자유당이 떠들며 내세우지 못하는 속내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에 일본 헌법 개정이나 해석변경은 군국주의 부활과 재 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정치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 주변국을 자극해가면서까지 ‘위험한 흥정’을 하는 일본의 정 치판에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marry01@daehanmaeil.com [ marry@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日 자민­자유 聯政 새달 출범

    ◎각료수 대폭 감축 등 2∼3개 현안 막바지 협상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 집권 자민당과 자유당의 연립정권이 정기국회 직전인 내년 1월초 발족할 것 같다. 지난달말 연립정권 합의 이후 구체적인 협의를 계속해온 두 당은 자유당이 요구하고 있는 각료수 대폭 삭감을 둘러싼 조정 등 2∼3개 현안만 남겨두고 대부분 타결됐기 때문이다. 자유당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당수는 ‘작은 정부’ 기치 아래 현재 20자리인 각료수를 17자리로 줄일 것을 자민당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각 파벌에 각료를 배분해야 하는 자민당으로선 쉽사리 자유당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 게다가 자유당에도 1∼2자리의 각료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래저래 각료수 삭감은 자민당에겐 ‘뜨거운 감자’다. 자민당은 막전 막후 채널을 통해 여러차례 ‘곤란하다’는 뜻을 전달했으나 오자와 당수는 “파혼(연립합의 파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민당 수뇌부간에는 문부상과 과학기술청장관을 겸임시켜 각료를 1명 줄이는 쪽으로 최종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유당 의원의 입각도 1∼2명선으로 좁히되 주요 각료선임은 배제한다는 방침. 자민당은 오부치총리가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참석하고 귀국하는 19일 수뇌회담을 열어 이같은 카드를 자유당측에 제시할 계획이다. 초점은 오자와 당수의 입각 여부. 대장상 기용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대장상이 사퇴 의사를 철회하면서 물 건너간 상태. 그러나 정기국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연립정권 수립에 애타는 오부치 총리와의 담판에서 자유당이 뜻밖의 성과를 얻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월초 연립정권이 발족하면 일본 정계의 보수연합은 이른바 ‘자·자연합’을 중심으로 보다 속도감을 띠고 전개될 전망이다.
  • 향후 재계의 ‘딴소리’ 차단책 심혈/구조조정 합의 뒷얘기

    ◎삼성自­대우전자 빅딜/金宇中 회장이 제안 ‘12·7 기업 구조조정 대합의’는 규모나 파장 만큼이나 험난한 산고(産苦)를 겪어야 했다. 정부와 재계,그룹과 그룹은 막전막후의 숨가쁜 협상에서 수없는 신경전과 힘겨루기를 거듭한 끝에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최대의 관심을 모았던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맞교환은 대우 金宇中 회장이 제안했다는 후문. 대우측은 부산의 삼성 신호공단 설비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군산 대우공장으로 옮기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신호공단은 지반침하 등의 문제가 있어 자동차를 추가로 생산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설명. ●5대그룹 구조조정 추진합의문은 6일 밤 9시30분 康奉均 경제수석이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재가를 받아 확정. 金대통령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가장 신경을 쓴 대목은 ‘앞으로 어떻게 이행토록 할 것인가’와 7일 간담회에서 ‘이견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는 후문. 金대통령은 일단 합의내용에 만족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계열기업의축소 등 후속조치 이행과정에서의 기업 자율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등 종업원들의 반발과 부작용에도 대비하는 모습. ●간담회에는 5대그룹 총수 외에 두산 朴容旿 회장과 효성 趙錫來·동양 玄在賢 회장이 참석해 눈길. 일각에서는 두산이나 효성·동양그룹이 성공적인 구조조정과 내실경영으로 IMF영향을 덜 받은 그룹이라는 점에서 5대재벌개혁을 가속시키려는 ‘압력용’이 아니겠느냐는 시각. ●이번 기업 구조조정 논의는 철저히 금융감독위원회와 5대그룹간에 이뤄진 반면,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나 재정경제부는 재계나 금감위에 협의상황을 물어봐야 할 정도로 ‘2선’에 머물렀다. 이는 구조조정 이후 있을지도 모를 ‘잡음’ 때문이었다고. ●孫炳斗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7일 “앞으로 5대그룹내에서 제 2,3의 빅딜(대규모사업교환)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孫부회장은 정·재계간담회가 끝난 뒤 전경련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합의로 5대그룹의 빅딜은 종결됐다고 봐야 하며 현대­삼성의 대산석유화학단지 통합에 따른 효과로 다른유화단지의 통합 가능성을 점칠 수 있으나 이는 시장기능에 따라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예산안 7일 표결처리

    법정시한을 넘긴 내년도 예산안이 7일 국회 예결위와 본회의에서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처리될 전망이다. 여야는 6일 99년 예산안 처리를 놓고 막후 절충을 계속했으나 ‘제2건국운동 관련 예산 20억원’에 대한 원안통과와 전액삭감을 주장하는 입장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예산안을 표결처리하기로 의견 접근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은 “그동안 한나라당을 상대로 충분히 설득을 한 만큼 더 이상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킬 수 없어 표결처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표결처리에 적극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辛卿植 사무총장은 이날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처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면서 “7일 오전 총재단회의에서 당론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제청문회는 예산안 처리가 지연됨에 따라 8일 개최가 사실상 무산됐다.
  • “경색정국 타개” 여야 모두 환영/총재회담 청와대·여야 반응

    ◎청와대­“생산적 정치로 가는 이정표 세워”/국민회의­“IMF 극복·개혁작업 순조로울것”/한나라당­“건전한 여야관계 확립의 새 전기” 지루한 막전막후의 협상끝에 10일 청와대에서 대좌한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2시간20분에 걸쳐 단독회담에 임했다. ▷오찬회담◁ ○…두사람은 회담을 마치고 朴智元 청와대 대변인과 安商守 한나라당 대변인을 불러 회담내용을 전한 뒤 양당 총무간 합의된 발표문에 서명, 상호 교환했다. 두 사람은 대화 내용을 자세히 적은 노트(金대통령)와 메모지(李총재)를 보며 번갈아 회담내용을 구술했고 “두분 모두 상대방의 설명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朴대변인이 전했다. 朴대변인은 회담 결과에 대해 “여야대치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좋은 분위기로 평가한다”며 만족감을 피력했다. ○…12시30분쯤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날씨와 단풍을 화제로 가볍게 대화를 시작하며 분위기를 잡아갔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표정이 굳어 있어 다소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전언이다. 이에 앞서 金重權 청와대비서실장은 李총재 일행과 환담을 나누며 “李총재 주변에 법조인들이 많아 합리적이지만 까다로운 측면도 있다”며 어렵사리 성사된 회담 소감을 우회적으로 표현. 한편 이날 오찬엔 중국음식이 나왔고 과일을 포함해 모두 6가지 메뉴였다고 朴대변인이 전언. ▷국민회의◁ ○…이번 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키는 큰 역할을 한 鄭均桓 사무총장은 “총재회담으로 대결과 투쟁의 정치가 화해와 협력의 정치로 가는데 큰 물꼬를 텄다”면서 “앞으로 IMF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여야간 협조체제는 물론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鄭東泳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회담을 계기로 우리 정치가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는 생산적 정치의 대도로 가는 한 이정표가 마련됐다””고 평가하고 “여야는 이제 내년도 예산안을 심도있게 다루고 경제회생을 위한 개혁입법을 진지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여야 총재회담으로 “건전한 여야 관계 확립의 전기가마련됐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청와대 회담을 마친 李총재는 오후 3시37분쯤 여의도 당사에 도착,기자간담회를 갖고 소감을 전했다. 李총재는 “정국 정상화를 위해 매우 유익한 회담이었다”며 긍정 평가했다. 李총재는 “金대통령이 야당을 협력자로 인정하고 여야관계를 정상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李총재는 특히 “金대통령이 경제실상과 전망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며 “金대통령이 경제상황과 야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이어 “金대통령이 ‘여당이 李총재를 과도하게 비난하고 공격한데 대해 주의를 주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安商守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金대통령이 인위적 정계개편과 보복적 사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판문점 사건과 불법 감청·고문 등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제도개선을 약속한 것은 정국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그러나 몇몇 당직자들은 “청와대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어서야”라며 협상과정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 통일외교통상위(國監 하이라이트)

    ◎‘장석중씨 대북 보고서’ 공방/“현정권 특사로 북과 접촉” 야 장씨 방북보고서 공개/여선 “조작 가능성 크다” 통일부도 “자료 받은적 없다” 9일 통일외교통상위의 민족통일연구원과 국제협력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총풍(銃風)사건’으로 구속된 張錫重씨의 ‘대북 밀사의혹’이 뜨거운 쟁점이 됐다.여야 의원들은 이같은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李信範 의원의 발언을 놓고 3차례나 정회를 거듭하며 ‘난타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李의원은 감사에 들어가기 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張씨가 지난 1월24일부터 2월3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비료회담의 막후협상 등 현정권의 대북특사 활동을 했다”며 張씨가 통일원에 제출했다는 8쪽짜리 ‘북한 방북보고서’를 공개했다.이어 “지난달 23일 국감에서 통일부가 제출한 張씨의 방북보고서엔 이러한 내용이 왜 빠져있었느냐”며 은폐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이날 저녁 긴급호출된 康仁德 통일부 장관은 답변을 통해 “통일부는 李의원이 제시한 문서를 접수한 적도 없고,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康장관은 이어 “이런 식의 보고는 (대북사업을 위해)자신을 과시하거나 입장을 유리하도록 (조작)할수 있기때문에 진실로 믿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李의원이 ‘張씨의 대북밀사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1쪽짜리 ‘남북 직접 대화창구에 대한 전언 보고서’.지난 2월 평양에서 安炳洙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부위원장과 張씨와의 면담시 安부위원장이 “구두메시지를 신중히 검토하겠다.林東源씨에게 안부전해 주기 바라며 편지 교환하자고 전하라”는 내용이 있다는 것. 李의원은 이를 근거로 “여당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배후에 한나라당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전후관계로 보아 張錫重씨는 현정권과 관련된 사람”이라며 “오히려 여당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역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국민회의 金琫鎬 의원 등은 “저런 저질의원이 어디 있느냐”면서 “면책특권을 악용한 언론플레이를 중지하라”고 맞섰다.한나라당은 金의원의 발언을 물고 늘어지며 사과를 요구하다 결국 의원 전원이 회의장을 퇴장해 이날 회의는 자동유회됐다.
  • 여야 총재회담 연기/경제청문회·司正관련 이견 못 좁혀

    ◎오늘 오전 재절충… 실패땐 방중후로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9일 청와대 회담이 공식의제 채택을 둘러싼 여야간 이견으로 일단 무산됐다. 총재회담은 여야 총무가 10일 오전 9시 다시 만나 이견을 절충키로 해 극적으로 열릴 가능성도 있으나 의제채택 절충에 실패할 경우 11일부터 시작되는 金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총무들은 이날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경제청문회와 정치인 사정(司正)문제 등을 놓고 막판 절충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한나라당측은 金대통령의 답변보장을 요구한 데 반해 국민회의는 총재회담에서 이들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공동발표문에 명문화하는 것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8일까지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경제청문회 개최와 관련,국민회의는 경제청문회 실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한나라당측의 ‘내년 예산안 처리후 경제청문회 개최’안을 일부 수용한 상태다.국민회의는 그러나 12월3일로 경제청문회 실시날짜를 못박자고 주장,한나라당과 의견대립을 보였다. 여야는 이에 앞서 원내총무간 막후접촉을 통해 경제청문회 등 막판 쟁점을 제외한 총재회담 공동발표문 내용에 합의했었다.
  • 위기의 한국교회/윤대골 목사(기고)

    ◎군사문화속에서 몸집만 키워 ‘함께하는 교회’ 기능 상실/안으로부터 개혁 이뤄 지역사회에 봉사 다해야 한국교회가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면,한국교회의 현 상태를 운명 직전의 경우와 같다고 말한다면 과언일까? 필자의 진단으로는 한국교회의 현재를 그 이상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를 ‘주’(믿음과 삶의 기본지침)로 하는 신앙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가 누구인가? 하늘의 자리를 내놓으신 분 아닌가? 왜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된 자리를 내놓으셨나? 버림받은 생명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하나가 되어 죽음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생들과 더불어 함께 일어서기 위함이셨다. 그뿐만인가? 모든 것을 다 내주시기까지 가난해지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까지 주셨다. 예수의 ‘내주심’의 삶은 거기서 그치지 않으셨다. 내주신 몸의 자리,무덤의 소유도 거부하셨다. 그리고 전무(全無)의 자리에 드셨다. 성서는 그것을 ‘부활’이라 한다. 한국교회,세상을 위해 무엇을주었나? 무엇을 버렸나? 한국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인가? 하늘이 주는 도리로 감히 묻는다. 한국교회는 부활의 종교공동체인가? 필자가 한국교회의 부활을 크게 의심하는 큰 이유중 하나가 이미 자체조절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버린 ‘대형화’에 있다. 세계 50대교회의 꼭 절반이 한국에 있다. 한국의 대교회는 자신들이 알았거나 몰랐거나,지난 40여년간 소위 ‘조국 근대화’를 존립철학으로 했던 군사통치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루어져온 산물이다. 그 주장이 그렇고,그 용어가 그렇고,그 사고가 그렇다. 지난 40년동안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무력통치를 감행해온 집단과 한국 대교회론자들은 그 궤를 같이해온 것이다. 그러면서 두 세력이 꼭같이 수(數)를 지상으로 하는 ‘매머니즘’을 신앙으로 자리잡게 해버렸다. 그래도 한국교회가 죽을 수는 없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지은 죄로 운명의 전야에 이르러 있다 해도,하늘이 한국교회에 내린 소명이 있는 한 한국교회는 살아야 한다.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살 길을 말한다. 첫째,원 예수교회의 회복이다. 성령께서 시작한 교회는 ‘함께’하는 교회였다. 다른 것은 다 후에 하더라도 목사들 기본급료의 호봉제 정도는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날 같이 목사되었는데,어느 목사는 500만원이나 받고 어느 목사는 50만원도 못 받는다면 그걸 어찌,교회는 그만두고 사람세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둘째,대교회를 해체해 지역에 봉사하는 건강한 중소교회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서울은 나의 교구’라는 따위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극동교회가 극서지역의,북쪽교회가 남쪽교회의 교인을 실어나르는 짓은 이제는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선교행위가 아니다. 지역사회를 책임지는 교회들로 선교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셋째,인적 청산을 해야 한다. 세상의 구석구석에 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다. 하늘의 뜻이다. 세상의 누구도 역사가 가는 길은 막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개혁의 바람막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것이 소위 대교회라는 것이다. 개혁은 안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력에 의한 징벌을 당하게 될 것 아닌가? 군부통치 40년동안 끊임없이 군부세력을 등에 엎고 기독교 지도자를 자처해온 무리들은 겸손하게 이제 막후로 물러나야 한다. 새 술을 더 이상 낡은 부대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 “李 총재 태도 변하면 언제든 가능”/국민회의·자민련 입장

    국민회의는 총재회담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일단 총재회담의 문호는 활짝 개방해 놓고 있다.다만 총재회담 개최 여부는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태도에 달렸다는 입장이다. 국민회의측은 특히 막후협상 과정에 나타난 한나라당 지도부의 ‘비(非)타협성’에 적지않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총무·총장선에서 합의된 사항이 결재라인인 李총재측에 의해 번번이 깨지는 상황에 몹시 당황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경제청문회 연내 개최문제,총격요청사건(銃風)·정치인사정(司正)문제 등에 대해서는 이미 총무간 협상라인에서 ‘합의’가 돼있었으나 李총재가 끝까지 金대통령의 답변 보장을 고집,회담이 연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회의쪽도 야당만큼 총재회담을 성사시켜야 하는 ‘절박한’이유가 있다.각종 경제개혁을 연내 매듭짓고 내년 봄까지 정치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대국민 약속’을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특히 내년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고 각종 정치·경제개혁 관련 법안 통과가 늦춰지면 경제회생에 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자민련은 이날 金大中 대통령과 朴泰俊 총재와의 회담에서 선출직공무원에 대한 불구속수사원칙이 확인된 점을 평가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측의 ‘새해예산안처리 후 청문회 실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朴총재는 金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골자가 빠지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경제청문회의 정기국회 회기 내 실시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朴총재는 한나라당 李총재가 ‘3자회담’ 대신 단독회담을 요구하는 데 대해 “만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모양인데 상관없다”면서도 “그런데 저쪽(李총재)은 재미없는 사람”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했다.
  • 대화채널 복구로 ‘정국 정상화’/총재회담 배경·전망

    ◎재벌·공공개혁 등 새로운 여야 협력관계 모색/‘총재회담’으로 표현… 권위주의 잔재 청산 여야가 회담 의제중 하나인 경제청문회 개최문제를 놓고 막판 진통을 거듭했으나 총재회담 개최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결국 시기의 문제만 남아있는 셈이다. 여야가 경색정국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과 총재회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따라서 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간 총재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그 시기를 떠나 정국 정상화와 정치 본궤도 진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여야총무간 합의한 의제는 다양하다.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협력과 새로운 여야 협력관계 구축 등 국정현안에 대해 폭넓은 논의가 가능하다.특히 재벌개혁과 공공개혁,그리고 각종 개혁입법,대북정책 등 외교 분야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어서 이에 대한 논의도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나아가 ‘제2의 건국운동’에 대한 설명과 정치개혁 문제도 곁들여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큰 폭은 아니더라도 정국은 일단 정상적으로 운영될 여지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金대통령 취임후 대치상태를 보여온 여야가 상대를 대화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신뢰회복에 비중을 두고있다고 봐야 한다.국무총리 인준,의원 영입 등으로 서로 상처를 입을대로 입은 처지여서 봉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화복원을 꾀한 여야간 출발점은 좋다.막후협상에서 일본식 ‘영수회담’이라는 표현 대신 ‘총재회담’으로 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 자체가 좋은 출발을 예고한다.회담을 성사시키면서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까지 신경을 썼다는 것은 일단 우호적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국민회의 趙世衡 대행도 “당이 앞장서서 총재회담이라는 용어를 정착시키려 한다”고 강조했다.
  • “큰사람 있었나”“그렇다”/金正日 면담 막전막후

    ◎첫 통화 “밥 잘먹었다”/만남보고 첩보전 방불 “밥 잘 먹었답니다. 큰 사람도 포함됐답니다”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金正日 국방위원장간의 면담 사실이 국내에 전해진 과정은 이들의 만남 자체만큼이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철저한 보안속에 이루어졌다. 지난달 31일 0시40분 鄭명예회장­金위원장의 면담 소식과 鄭명예회장의 귀경일정 등에 대한 통보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현대종합상사 중국 베이징지사에 현대 대북팀 관계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베이징지사 관계자에게 다짜고짜 전해진 첫 마디는 “밥 잘먹었다”는 것.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전에 면담 사실이 섣불리 공개되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던 평양 대북팀 관계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실을 비밀리에 서울 본사에 알리기 위해 생각해낸 ‘OK’사인이었다. 직감적으로 면담이 성사됐음을 알아차린 베이징사무소측은 “큰 사람도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긴박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베이징사무소는 곧바로 서울 계동 본사로 전화를 했고 본사에서는 이를 다시 통일부 당국자에게 보고했다. 현대그룹과 통일부는 그러나 이날 새벽 6시30분 북한 중앙방송의 보도가 있을 때까지 면담성사 여부에 대해 일체 함구했다.
  • 친일의 군상:11/여자 밀정 裵貞子(정직한 역사 되찾기)

    ◎伊藤博文의 꼭두각시로 매국·배족 선봉에/1885년 도일… 이등박문 만나 ‘스파이 교육’ 받아/러 견제·고종퇴우 막후활동… 만주지역서 독립운동가 탄압/태평양전쟁때 韓人 부녀자 100여명 위안부로 내몰아/해방후 반민특위에 체포된뒤 후회의 눈물/시골 아전의 딸로 출생 대원군 실각후 집안 몰락/어릴때부터 조정에 반감/한때 官妓여승으로 전전 1949년 2월 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姜明珪 조사관 일행이 서울 성북동 언덕길을 급히 오르고 있었다. 한 양옥집 앞에 다다른 姜조사관 일행은 백발의 한 노파를 끌어내 수갑을 채우고 남대문로 반민특위 사무실로 연행했다. 그 노파의 나이 79세. 겉으로 보기엔 여느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늙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가 반민특위로 잡혀오자 특위 요원들이 이 노파의 얼굴을 보려고 姜조사관 주위로 모여들었다.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그 나이에 수갑에 채워져 끌려왔을까? 과연 이 노파는 누구인가? 裵貞子(1870∼1952). 흔히 이름 앞에 ‘요화(妖花)’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배정자가바로 그 노파였다. 정사(正史)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한국근대사의 이면사(裏面史)에 ‘일제의 앞잡이’로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배정자급(級)에 드는 친일파는 몇 안된다. 한말 일제의 ‘을사조약’ 강제체결에 협조하였고 ‘한일병합’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조선인 항일세력 탄압에 앞장섰었다. 친일파 가운데 우두머리급에 드는 친일파였다. 해방후 반민법 위반으로 반민특위에 잡혀온 여성피의자는 총 6명. 그들중 첫번째로 잡혀온 사람이 바로 배정자였다. 흔히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로 ‘마타 하리’를 든다. 고급창녀 출신의 마타 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1917년 프랑스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배정자를 바로 이 ‘마타 하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배정자는 1870년 경남 김해 고을에서 아전노릇을 하던 裵祉洪의 딸로 태어났다. 아명은 분남(粉男). 부친은 1873년 대원군 실각후 그 졸당(卒黨)으로 몰려 대구 감영에서 처형되었다. 모친은 이 충격으로 눈이 멀어버렸다. 그가 세살때의 일이었으니 그의 초년은 순탄치 못했다. 이후 그는 모친과 함께 유랑 생활을 하다가 밀양에서 관기(官妓)로 팔렸으나 도중에 뛰쳐나와 양산 통도사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우담(藕潭)이란 승명(僧名)으로 목탁을 두들기던 그는 2년만에 다시 절을 뛰쳐나와 배회하다가 밀양 관청에 체포됐다. 여기서 우연히 은인을 만났다. 당시 밀양 부사 鄭秉夏는 그의 부친과 알고 지내던 사이로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일본으로 가서 살도록 주선해주었다. 1885년 15세 되던 해 그는 일본인 밀정 마쓰오(松尾彦之助)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에게 뜻밖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배정자는 갑신정변 실패후 일본에 망명해 있던 개화파 인사 安경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金玉均과도 알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물굽이를 틀어준 사람은 바로 이 김옥균이었다. 김옥균은 당시 일본 정계의 실력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의 빼어난 미모에 끌린 이토는 하녀 겸 양녀로 자기 집안에들여앉히고 ‘다야마 데이코(田山貞子)’라는 일본이름을 지어주었다. 裵貞子의 ‘貞子’는 여기서 생겨났다. 이토는 재색(才色)을 겸비한 그를 장차 고급 밀정(스파이)으로 키울 요량으로 수영·승마·사격술·변장술 등을 가르쳤다. 소위 ‘밀봉교육’을 시킨 셈이다. 일본으로 간지 9년만인 1894년 배정자는 조선으로 돌아왔다. 공식적으로는 신임 공사(公使)로 부임하는 하야시(林權助)의 통역이었으나 본분은 일제의 밀정. 첫 임무는 당시 조선황실 내의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공사관에 머물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엄비(嚴妃·고종의 계비)의 친인척을 통해 황실과 선을 댔다. 고종(高宗)은 미모에다 출중한 일본어 실력을 갖춘 그를 총애하였다. 당시 한 신하가 고종에게 “비기(秘記)에 가로되,갓 쓴 여자가 갓 쓴 문(門)으로 출입하면 국운이 쇠한다 하였습니다. 통촉하옵소서”라고 아뢴 바 있다. 양장에 모자(갓)를 쓴 그가 대안문(大安門·덕수궁의 정문으로 현재 명칭은 ‘大漢門’임)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을 꼬집은 것이었다.러일전쟁 직전 친러파는 고종의 신변안전을 위해 ▲평양 천도 혹은 ▲고종의 블라디보스토크 천거(遷居)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비밀이 누설돼 일본측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고종으로부터 이 정보를 빼내 일본공사관에 제공한 장본인은 바로 배정자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 3월 이토가 초대 한국 통감으로 부임하자 배정자는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오빠 裵國泰는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으로,동생은 경무감독관(현 경찰청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토를 등에 업은 그는 밀정이자 막후 권력자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일제와 함께 고종에게 퇴위 압력을 넣기도 했다. 이 무렵 그는 ‘흑치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의 기세는 1909년 이토가 통감자리에서 물러나고(6월) 다시 4개월 뒤 하얼삔에서 安重根 의사에게 살해됨(10월26일)으로써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이토 사망소식을 접하고는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은 ‘한일병합’후 부임한 조선주둔 헌병사령관 아카시(明石元二郞)였다. 아카시는 배정자의 과거 밀정경력을 높이 평가하여 헌병대 촉탁으로 채용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일본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자 그는 일본군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서는 이 지역에서 수년간 군사첩자로 활동하였다. 그 후 봉천(奉天·현 瀋陽)주재 일본영사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만주지역 거주 조선인들의 동향을 정탐,귀순공작을 담당했었다. 배정자는 1920년 일제가 옛 일진회(一進會)의 잔당들을 규합,만주지역 최대의 친일단체인 ‘보민회(保民會)’를 창설할 때 배후인물로도 활동하였으며 나중에 이 단체의 고문을 맡았다. 이 단체는 일제가 독립운동가 탄압과 체포를 위해 조직한 무장 첩보단체로,초대회장 崔晶圭는 대한제국 시절 참위(소위)출신이었다. 매국노 李容九의 한일합방 청원을 지지했던 崔는 보민회에서 활동한 공로로 나중에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한편 만주지역에서의 맹활약(?)으로 독립투사 진영에서 처단대상자로 지목하자 배정자는 1922년 신변에 위협을 느껴 조선으로 돌아왔다. 조선총독부에서는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가 그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가 경무국 촉탁으로 다시 고용하였다. 나중에 그는 총독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600여평의 토지를 받기도 했는데 은퇴한 뒤에도 총독부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지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일본군 위안부 송출업무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70 노구에도 불구하고 조선여성 100여명을 ‘군인위문대’라는 이름으로 남양군도까지 끌고 가서 일본군 위안부 노릇을 강요하였다. 해방후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취재차 형무소를 찾은 한 기자에게 그는 “따끈한 장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애걸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정자’의 모습은 흔적도 없고 한낱 늙은 죄수의 모습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제와서 전비(前非)를 어찌 변명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어떤 벌을 내리신대도 달게 받고 가겠습니다. 다만 제 아들 무덤 앞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법정 최후진술을 통해 뒤늦게 자신의 죄과를 후회했다. 배정자의 형량과 얼마동안 징역을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의 죽음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종로구청에 보관돼 있는 호적에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2월27일 서울 성북동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묘하게도 그가 죽은 날짜는 그의 출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어릴 때 조정(朝廷)에 대한 증오 때문에 조국을 배반,매국녀(賣國女)가 된 배정자는 해방후 조국에서 81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裵貞子의 남성편력/빼어난 미모에 화려한 경력 소유/결혼·동거 등 거쳐간 남자 7∼8명 裵貞子는 빼어난 미모와 화려한 경력에다 연령·민족을 불문한 ‘남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첫남자’는 田在植. 한 때 관기로 있을 때 대구 중군(中軍) 田道後의 아들 전재식을 만나 사랑에 빠졌었다. 배정자의 일본행으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가 전재식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재회,결혼했다. 이 사이에서 田有和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러나 경응의숙(慶應義塾)에재학중이던 전재식이 병사하자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이 났다. 두번째 남편은 일본공사관의 조선어 교사였던 玄暎運. 1895년 당시 외부(外部·현 외무부) 번역관(주임관 6등)이던 현영운은 배정자의 도움으로 10년만에 육군 참장(종2품·현 준장)으로 승진,농공상부 협판(차관)직을 맡았다. 배정자는 현영운과 1년 가까이 살다가 이혼하였다. 그리고는 현영운의 후배인 朴榮喆(일본육사 15기 졸업,함북도지사·중추원 참의 역임)과 결혼하여 5년간 동거하다가 또 이혼하였다. 이후 일본인 오하시(大橋),은행원 崔모,전라도 갑부 趙모,대구 부호의 2세 鄭모 등과도 끊임없이 관계를 맺었다. 대륙전선에 투입됐을 때는 중국인 마적 두목과 동거한 적도 있다. 1924년 57세로 밀정생활을 은퇴한 후에는 25세의 일본인 순사와 동거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힐러리 선거지원 동분서주/생일도 잊고 전면서 선거전략 지휘

    【워싱턴 연합】 힐러리 여사가 이번에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선거운동의 ‘잔 다르크’로 맹활약하고 나섰다. 힐러리의 51회 생일이었던 26일 백악관에서는 그 흔한 생일파티조차 없었다.힐러리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곧장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장으로 달려갔다.성추문에 시달리고 있는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정치적 장래가 이번 중간선거 결과에 달려있는 만큼 한가로이 생일상 타령을 할 때가 아니었다. 최근엔 민주당의 선거운동을 막후에서 지원하는 차원을 벗어나 직접 유세장을 찾아다니며 ‘몸’으로 뛰고 있다.특히 미국 헌정사상 첫 흑인 여성 상원의원인 일리노이주의 캐롤 모슬리 브라운의 재선을 돕기 위해서는 이미 두 차례나 현지를 방문했다. 유권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곤 했음은 물론이다. 앨 고어 부통령,제시 잭슨 목사와 힘을 합쳐 선거에서 고전중인 민주당 후보들과 수시로 전화 회의를 갖고 선거전략이나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높이는 데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힐러리의 내조가 없었다면오늘의 클린턴 대통령은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남편을 백악관에 입성시키기까지 탁월한 정치적 노하우를 발휘한 그녀의 역할에 또 한번 주목하고 있다.
  • 부패척결과 국민의식/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한국사(서울광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로마문화의 위대성을 지적하는 의미다. 그런 로마가 망한 것이 무슨 이유인가.부정부패와 퇴폐·타락 때문이었다. 북송(北宋)의 왕안석은 신법(新法)을 통해 국가 부강을 제시했다.그중 주목되는 것은 부패척결이 선행되어야 나라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고 하면서 부정 공직자는 상하 구분없이 철저히 색출,엄벌하고 백성(국민)도 부정부패의 연결 소지를 근절해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찬란했던 신라의 멸망이나 고려의 최후,조선조의 피침(被侵) 등도 따져보면 총체적 부정부패가 주요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결국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한 나라가 최후를 맞았던 근본 이유중 부정부패가 그 으뜸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문제가 돼왔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부정부패를 어떻게 척결하여 대외적으로 한국의 신인도를 올릴 수 있을까. ○규제완화로 ‘관행’ 차단 첫째,각종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여 원천적으로 국민들이 담당 공직자와 업무상 은밀한 교섭·거래를 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한다.담당자가 칼자루를 쥐고 눈을 크게 뜨며 관련 서류를 몇번이고 다시 고쳐오게 한다든가 접수를 거부·지연시키는 등 공포적 분위기를 표출해서 ‘부정거래’를 유도하는 듯한 과거의 관행을 이제는 완전 차단해야 한다.각종 규제가 안 풀리기 때문에 공직자에게 아쉬운 거래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허가 등 업무를 민영화해서 중하위직과의 상담 자체를 제도적으로 격리할 필요도 있다.많은 규제가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왕안석의 신법에서 지적됐듯이 부정부패를 일삼는 무리를 적발하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일벌백계주의로 엄히 처벌하여 이런 부정한 일을 범하면 개인적으로 크나큰 불이익이 돌아온다는 자각심을 심어놓아야 한다.이 점은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지적한 바 있다. 부정부패 관련자들을 얼마간 사회로부터 격리 수용해서 회개케 하는 것도 중요하다.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로비에 천재이기 때문에 상하 담당자와 막후 교섭으로 잠시뒤 원상복귀하는 사례를 목격하곤 한다.기소유예·보석·가석방·주거제한 형식으로 일단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는 파렴치한들을 볼 수 있다.뇌물받은 것을 숨겼다가 복역하고 나와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삐뚤어진 생각이 이런 악순환을 연출시키는 것이다. ○일벌백계주의 처벌을 셋째,아무리 공직자가 청렴하게 양심적으로,법대로 하려 해도 국민이 공직자를 악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는 경향도 있다.뇌물을 주어야 일이 잘 되고 빨리 된다는 빗나간 이기주의를 갖고 있는 국민의 의식이 개혁되거나 발상의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어느 정부이건 깨끗한 사회,맑고 명랑한 순리의 사회를 만들 수 없다.국민들이 정당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는 생각이 정착되어야 된다. 국민의 정부에서 마침 중하위 공직자에 대한 부패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매우 적절한 시기에 핵심적으로 착안한 것이다.위의 세가지 부정부패 척결 제안은 올바른 역사의식이 온 국민들에게 확산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 鄭周永·金正日 면담 이뤄질까/현대 방북 날짜까지 정부 제출

    ◎‘외부인 기피’ 金의 스타일 변수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북한의 金正日 당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과연 성사될 것인가.한쪽 당사자인 현대측은 부쩍 의욕을 보이고 있다. 금강산관광 등 대북 사업에 가속 페달을 밟기 위해서다. 현대그룹 金潤圭 대북사업단장(현대건설 사장)은 11일“鄭명예회장이 이달내 방북할 가능성이 높다”고까지 희망적 애드벌룬을 띄웠다.현대측은 특히 鄭명예회장의 방북 희망일자까지 은밀히 통일부에 전달해놓은 상태다. 현재 금강산관광사업은 물론 서해공단조성,자동차조립사업,고선박해체업 등 현대측의 야심적 프로젝트들은 북한의 ‘개방 알레르기’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金正日의 새 ‘교시’만이 이를 잠재우는 유일한 묘약인 상황이다. 따라서 회동만 이뤄지면 현대측의 각종 대북 사업은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결코 ‘잘못된 만남’일 수는 없다.때문에 ‘金·鄭 회동’은 잘만 홍보하면 남한 기업과 외국 기업들의 대북 투자에 촉진제가 될 수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회동 성사가능성에 대해서 낙관도 비관도 않고 있다.金日成 사후 북한측의 의사결정 메커니즘 자체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군부 등 북한에서 개방을 두려워하는 세력일수록 남북경협 과정에서 더 많은 ‘보험금’을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이들은 현대측에 1인당 300달러의 금강산관광비용 외에 장전항 공사비용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면담은 현대와 북한의 아태평화위간 이 문제에 대한 교통정리 이후에나 가능하리라는 관측이다.게다가 金正日 당총비서의 독특한 스타일도 변수다.외부인사와의 면담을 극력 꺼리면서 막후에서 일을 도모하는 성벽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 ‘銃風­稅風’ 수사 본궤도 진입

    ◎李 총재 개입 밝힐단서 속속 드러나/한성기씨 등 3인방 연결고리 추적/기초자료 확보­참고인 잇단 소환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궤도에 올랐다. 수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개입 여부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단서들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검찰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에 밀려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대선자금 불법모금사건’에 李총재의 동생 會晟씨(52·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가 직접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이른바 ‘세풍(稅風)사건’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은 따라서 ‘세풍사건’과 ‘총풍(銃風)사건’을 한데 묶어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우선 李會晟씨의 ‘세풍사건’개입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李씨가 대선 당시 李총재의 막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만큼 李총재가 대선자금 불법모금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데 결정적인 ‘물증’을 제공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그만큼 李총재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李會晟씨와 韓成基씨(39) 등 ‘총풍사건’ 3인방간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한나라당측의 ‘고문조작’ 주장에 휘말려 수사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지만 최근 李씨의 계좌추적이나 감청자료 등을 통해 관련자들을 압박할 ‘단서’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李씨와 3인방 사이의 커넥션이 확인되면 李총재가 판문점 총격요청에 대한 보고를 사전 또는 사후에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검찰의 분석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가 이날 “기소 만기일인 24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본격적인 참고인 소환 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참고인이나 피의자 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는 이미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검찰이 8일 韓씨에게 활동비로 7,000만원을 건넨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을 소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연장선상에서 수사대상에 오른 한나라당 朴寬用 鄭在文 의원 등도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검찰은 청와대행정관이었던 吳靜恩씨(구속)가 李총재에게 15건의 ‘대선보고서’를 전달한 것과 관련,吳씨의 국가공무원법 위반 사건에 대한 참고인 자격으로 李총재를 조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李총재의 신분을 감안,검찰은 李會晟씨 등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거쳐 명백한 혐의를 확인한 후 직접 조사 등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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