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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위 새해법 제시 의미·전망

    현대그룹 계열분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달 말 현대의 ‘역계열분리’신청으로 얼어붙었던 현대-공정거래위원회간의 대립 국면에서 점차 해결국면으로 바뀌어가고 있다.전윤철(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이 새로운 계열분리 해법을 제시하면서 현대측을 압박한 것이계기가 되고 있다.그러나 현대의 역계열분리 제의에 이어 공정위-현대간 힘겨루기 2라운드가 시작됐다는 해석도 있다. [새로운 해법] 의결권 제한이라는 해법은 공정위가 꾸준히 검토해 온 비장의카드로 현대의 역계열분리안에 대한 공정위의 ‘역공’에 해당된다. 역공은 현대의 중심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전 위원장은 16일 “최근 정몽준(鄭夢準) 현대중공업 고문을 만나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공개했다.그는 조만간 계열분리의 핵심인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의장도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제시한 절충안은 정 전회장의 현대차 지분 9.1% 가운데 6.1%는 의결권을 제한하고 나머지 3%만 의결권을 갖도록 해 법적요건(3%)을 충족시키라는 것이다. 현대측이보통주 9.1%를 우선주로 전환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데다 현행상법이나 현대차 정관상 불가능한 것 같다는 반응에 전 위원장은 “상법도모르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전 위원장은 “의결권 제한 외에도 여러가지 방안이 있다”고 강조한다.3%를 초과하는 6.1%의 지분에 대해 경영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제출하는 것도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거부할 수만 없는 현대] 공정위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현대의 분위기가 차갑지만은 않다.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의장이 빠르면이번 주초 계열분리와 관련해 만나 막후협상을 통해 모종의 카드를 마련할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은 공정위로부터 공식 요청이 없지만 보통주의 우선주 전환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이는 종전 입장에서 크게 선회한 것으로,양측이 협상여하에 따라 절충점을 찾을 수도 있음을 시사해준다. 물론 양쪽이 머리를 맞댄다고 해서 금방 답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그러나공정위와 현대가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정 전 명예회장의 지분정리에대해 다소 신축적인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특히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현대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계열분리에 대해 ‘성의있는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그 대안은 ‘역계열분리’안과 같은 기상천외한 방법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우며,그 성공 여부는 1차적으로 공정위가 수용하느냐에달려 있다. 박정현 주병철기자 jhpark@
  • [지방자치5년 현주소와 문제점](7)각종 행사의 홍수사태

    ‘행사로 날이 지고 샌다’ 지방자치제가 정착돼가면서 지자체가 행사단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그만큼 행사가 빈번하다.다양성을 추구하고 주민화합을 도모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단체장 입지확보를 위한 전시성 행사에 시간과 예산을낭비한다는 지적이 함께 일고 있다. 목적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민이나 참가자보다는 단체장과 공무원 위주로행사가 흘러 마찰을 빚곤 한다. 국제행사들의 경우 행사내용이 빈약해 찾는 외국인이 얼마 되지 않는데다내용도 비슷비슷해 ‘국화빵’ 행사라는 지적이 따라다닌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는 올초 총리실에 국무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행사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모한 국제행사 개최를 억제하기로 했다.중앙정부는 지자체들이 개최하는 행사들이 겉모습과는 달리 수익성도 없이 국고를 낭비시키고 지방재정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가을 경기도 하남시가 개최한 국제환경박람회는 허울좋은 빚잔치로끝났다.무모한 계획으로 막대한 적자를 안겼고 관중동원으로 물의를 빚기도했다.환경행사답지 않게 폐막후에는 폐기물 처리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행사가 조금 잘 된다 싶으면 단체장이나 공무원이 ‘젖가락’을 얹으려 해마찰을 빚기도 한다. 아시아 최대의 문화예술축제로 자리잡고 있는 광주비엔날레는 공무원들이예산권을 무기 삼아 예술행사를 좌우하려해 예술인들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이 때문에 광주비엔날레는 관람객이 1회 160만명,2회 90만명,3회 60만명으로 내려앉고 있다.예술인들은 이러다가는 상하이 비엔날레나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 추월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기도 과천의 세계마당극큰잔치도 공무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운영개편안을 내놓고 공동집행부를 구성하려다 시의회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했다. 각종 행사와 이벤트 속에 단체장들은 행사장에서 행사장으로 뛰어다니고 있다.주민 의견 수렴이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행정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150여건의 시주관 행사를 치뤘다.1주일에 2∼4번의 행사를 치른 셈이다.최기선(崔箕善)시장은대부분의 행사에 참석한다.행사 가운데는 보고회와 간담회 등 시정수행을 위해 필요한 행사도 있지만 단순한 문화·체육·주민행사도 많은 편이다.더욱이 주민이나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에도 시장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 시장의 일정은 빡빡하기만 하다. 전시성·낭비성 행사 남발은 기초단체일수록 더욱 심하다.인천시 연수구는지난 5월 20일부터 26일까지만 구민노래자랑,구민생활체육대회,구합창단 발표회,동대항 여성가요합창대회 등 4건의 행사를 가졌다.신원철(申元澈) 구청장은 이들 행사에 모두 참석하느라 진땀을 흘렸지만 주변에서는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는 신 구청장이 지나치게 예산낭비성 행사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신 구청장은 98년 7월 송도매립지에서 세계적 규모의 록페스티발인‘트라이피아’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가 기획사의 펑크로 4,200만원의 예산만 날렸다. 행사 예산이 모자라 기업체 등에 손을 벌리는 모습마저 심심찮게 보인다.97년부터 매년 국제영화제를 개최해온 경기도 부천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예산만으로는행사를 치르기 어렵자 관내업체들로부터 수억원에 달하는 찬조금을 거둬들여 물의를 빚었다. 조성권(趙成權·43·인천시 남구 관교동)씨는 “단체장들이 행사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것은 민생복리보다는 정치권 진출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의 입신을 위해 펑펑 쓰는 돈이 시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hjkim@. *후유증 앓는 하남 환경박람회. ‘환경 그 생명의 시대 개막’이라는 거창한 문구를 내걸었던 하남 국제환경박람회는 ‘허울좋은 빚잔치’‘비리 박람회’라는 불명예를 얻은 채 곳곳에 커다란 후유증을 남기고 말았다. 행사 뒤 나타나고 있는 자치단체와 주민과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해 시는 여러가지 이유를 대고 있지만 주민들을 납득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지난 겨울 생계보호비를 못받은 일부 생활보호대상자들은 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박람회의 적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해 9월21일부터 한달간 열린 열린 하남국제환경박람회는 모두 219억원의 시예산이 투입됐다.그러나 주먹구구식 운영과 준비부족 등으로 10일간의행사연장에도 불구하고 무려 13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예상관람객수는 당초 예상의 30%수준인 40여만명에 불과했다.1,000만원의웃돈까지 주고 입주한 일부 상인들도 심각한 적자를 경험해야만 했다.박람회 진행을 맡은 도우미들까지 임금걱정을 했고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많은 대학생들이 도중에 일자리를 잃었다. 관람객 부족으로 학생을 동원하는 추태도 보였고 시청 직원과 동사무소 직원에게 표팔이를 시키며 대금을 조직위원회에 입금토록 지시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비리의혹도 줄을 이었다.회계의혹과 관련해 환경부가 조사를 벌여 상당수가 간이영수증으로 처리됐으며 계약서 리스트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조직위원회가 입주업체와 이면 계약을 맺었다는 등의 의혹으로 환경부장관이 직접 조사를 천명하기도 했다. 환경박람회가 환경을 파괴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행사가 끝난뒤 행사장 곳곳에는 고철덩이가 수북이 쌓였고 참가업체들이 버리고 간 장식대와 나무패널 등 온갖 폐기물이나뒹굴었다. 이동식 화장실도 제때 치워지지 않아한강둔치를 찾은 주민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주민들은 아직도 ‘이런 박람회를 누가,왜 개최했는가’라고 묻고 있다.그런데도 시는 이 행사를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정기행사로 정착시킨다는 대책없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어느 단체장의 일과. 지난 6일 경기도 H군 W군수의 하루는 새벽 7시부터 시작됐다.관사를 나선군수는 7시30분 G호텔에서 열린 상공회의소 주관 조찬간담회에 참석했다.업체 대표들에게 최근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공장총량제에 대해 설명하고 군정에 협조해 줄것을 당부했다.간담회가 끝나자 마자 군 특색사업인 ‘충·효·예향지 순례’행사에 나서는 주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출발지로 향했다.아침 회의를 못했기 때문에 차안에서 전화로 주요 업무를 보고 받고 지시를 내렸다. 예향지 순례행사에 이어 10시 인근 사찰에서 열리는 순국선열 위령제 행사에 참석한 후 11시쯤 군청에 도착했다.결재서류와 어제 끝내지 못한 서류 등을 챙겨본다.12시 인근 지역 기관장들과의 정례 모임에 참석,오찬을 함께하며 협조를 구한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는 민원현장을 찾아가 주민대표및 이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애로 및 건의사항을 들었다. 간담회가 끝난후 5시로 예정된 민간 사회복지시설 창립기념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10여㎞가 넘는 먼길이지만 군수가 직접와서 축사를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오전에 내린 지시의 진행상황은전화로 점검할 수밖에 없다. 군의원들과 만찬을 한후 관내 구획정리사업현장을 찾아갔다.토지보상문제와관련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어 주민대표들을 설득하는데 1시간가량 보냈다.9시쯤 돼서야 간담회가 끝났다. 공식일과는 저녁 9시쯤 끝나지만 현안이 있는 날이면 자정이 다돼야 관사로퇴근한다. W군수의 스케줄은 거의 매일 비슷하다.하루 평균 4∼5건의 행사가있으며 어쩌다 없는 날이면 하루종일 민원인과 씨름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금융파업 비상/ 3차 노‘정협상 숨은 주역

    파업을 하루 앞둔 10일은 노‘정 양측 모두에게 대타결을 이루기 위한 길고 긴 하루였다. 특히 양측의 공식 협상 파트너인 이용근 금감위원장과 이용득 노조위원장간의 3차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양측의 비공식 채널 담당자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덥고 힘든 하루였다. 정부측 막후 채널로는 98년 1차 금융구조조정대 실무 협상자로 참여했던 이우철 금감위 기획행정실장이 단연 돋보인다. 이 실장은 전날인 9일 금융노조 파업 지도부가 농성 중인 명동성당에서 이 위원장과 함께 2시간이나 이 노조위원장을 기다리는 등 이번 협상의 막전막후 인물이다. 이정재 금감위 부위원장, 연원영 상임위원 등 금감위 간부들과 금융감독원 간부들도 노조측 간부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을 하며 대타결을 위해 부지런히 뛰었다. 노조측에서는 외환은행 출신인 김준기 사무처장, 양병민 전략기획분과위원장(서울은행 노조위원장), 윤태순 홍보분과위원장(조흥은행 노조위원장), 유선기 정책분과위원장(신용보증기금 노조위원장), 김정태 조직분과위원장(기업은행 노조위원장) 등이 막후 협상의 채널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김 사무처장은 독일식 은행자본주의 도입 등 금융노조의 정책 대안 제시가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비공식 채널 담당자들이 공식적으로 공개하고 거론할 수 없는 서로의 속내를 주고받은 끝에 나온 것이 오후 10시부터 열린 3차 노‘정 협상이다. 당초 양측은 '더이상 알맹이 없는 협상은 필요없다'(노조), '금융 구조조정의 원칙은 양보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정부)는 등 한치의 양보 없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현갑기자
  • 勞·政 2차협상 결렬

    은행권 총파업을 막기 위한 정부와 금융산업노조의 2차협상이 9일 오후 열렸으나 양측이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해 결렬됐다.그러나 양측은 이날 심야막후접촉을 갖고 절충을 계속했다. 정부는 금융산업노조와의 2차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10일 오전 8시 청와대에서 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 등이 참석하는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금융파업 대책을 점검한다.이용근(李容根) 금융감독위원장은 이날 밤 노조집행부가 있는 명동성당을 방문,노조집행부와 만나 10일 협상재개를 위한 막후협상을 벌였다.막후협상에서 노조측은 “정부입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협상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보여 10일 3차협상이 열리더라도 타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에 앞서 이헌재 재경부장관·이용근 금감위원장 등 정부측 대표 4명과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 등 노조측 대표 4명은 이날 오후 2시20분부터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김호진(金浩鎭) 노사정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3시간여 동안 협상을 벌였다. 양측 대표들은 협상에서 ▲관치금융 청산을 위한 특별법 제정▲관치금융에 의한 부실채권 전액 정부매입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3년 유보 등 노조측이 1차 협상에서 거론한 쟁점들을 놓고 토론했으나 종전의 상반된 입장을 되풀이했다. 노정은 그러나 ▲은행이 부도난 종금사에 지원한 대출금을 예금보험공사가조기상환하는 문제 ▲러시아 경협차관 지급보증 이행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부실여신을 배드뱅크로 이관,정부책임 아래 구조조정하는 문제 등 일부 쟁점은 정부가 최대한 해결에 협조한다는 선에서 의견을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은행 본점 노조원 830여명은 이날 오후 금융총파업에 불참하기로 결의했으며,국민은행 본점 직원들도 10일 오전 각 부서별로 파업에 불참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라고 은행측이 밝혔다.그러나 해당은행 노조위원장들은 “총파업 불참 결의는 은행측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용득금융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협상 이후 정부의 사법처리에 대비,이날저녁 명동성당으로 투쟁 지휘부를 옮겼다. 박현갑·안미현·조현
  • 금융노조 총파업 결의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등을 통한 은행권의 2차 구조조정에 반대,3일 은행 총파업을 결의함에 따라사상초유의 ‘금융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금융노조측에 파업자제를 촉구하면서 막후협상을 벌이고있으나 노동계의 입장이 완강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측은 특히 이날 밤 가진 각 지부 전산담당자 회의를 통해 파업돌입시전산망 가동을 중지시키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예금인출 등 은행업무가완전 중지되는 사태가 예상된다. 이용득(李龍得) 금융노조위원장은 4일 오전 11시 총파업 강행에 대한 노조입장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힐 예정이다. 금융노조는 이날 한빛 등 18개 은행별로 파업찬반 투표를 실시했으며 투표가 완료된 지부별로 밤 늦게부터 개표에 들어갔다.산업·조흥·서울·부산은행의 경우,지난주 파업찬반 투표를 끝냈으며 신한·제일은행은 각각 오는 6일과 7일 투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농협·하나·한미 등 3개 은행은 파업에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용근(李容根) 금융감독위원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시중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금융지주회사는 금융기관의 겸업화·대형화·전문화를통해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려는 것으로 각 은행들이 주체성을 지니는 연합성격”이라면서 “노조가 오해하고 있는 2∼3개 은행을 합쳐 하나로 하는 합병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공적자금이 투입안된 은행은 전적으로 자율적으로 구조조정방안을 수립해 추진하면 된다”면서 “이같은 정부입장을 지난달 29일 열린노사정위원회에서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김영재(金暎才)금감위 대변인은 “정부는 금융노조에 정부와 은행, 노조 3자간의 파업대책협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여·야 정당도 파업만은 자제해줄 것을 금융노조측에 당부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금융노조가 문제삼고 있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빛·외환·조흥은행의 합병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정세균(丁世均) 제2정조위원장은 “국제통화기금체제 직후인 2년전 추진했던 1차 구조조정과는현재상황이 다르다”면서 “점진적이고 온건하며 근로자들의 충격을 덜 주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관치금융 철폐 및 낙하산 인사금지를 요구하는 금융노조 입장은지지하나 이를 관철하기 위해 총파업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제해 줄것을 당부했다. 박현갑 진경호 조현석기자 eagleduo@
  • 의료대란/ 끝내 파국으로 치닫나

    의사협회가 당정이 제시한 대책을 거부함에 따라 이제 집단폐업사태는 의사들의 중단없는 투쟁과 정부의 사태진압이라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당정은 23일 대책을 내놓으면서 “의사협회가 받아주기를 바란다”는 희망섞인 기대를 비쳤다. 또 이날 오전 당정회의 결과를 전해들은 의협 지도부 관계자는 “약사법을포함한 현행법이 잘못됐다는 점을 당정이 인정한 것은 의미있는 것”이라며반기는 등 타협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협 지도부의 의견과 달리 전공의,일반의들이 “정부의 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면서 강력 반발하자 의쟁투가 반대입장을 굳히면서 거부분위기로 사실상 돌아섰다. 이어 전국 시·군·구의사회 대표자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당정안을 거부키로 해 이제는 양측의 실력대결만 남았다. 의협의 거부소식이 알려짐에 따라 사태를 관망하던 의대교수 등도 폐업에동참할 것으로 보여 최악의 ‘의료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의 비상진료대책도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하면 전국각지의 응급환자나 중환자 가운데 사망자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현재 국립의료원 등 국공립 병원과 보건소 등에는 신규 환자가 평소보다 2∼3배 더 많이 몰려 비상진료기관의 진료가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이다. 특히 이들 기관에서는 의사들이 철야근무 등으로 과로한 상태여서 앞으로 2∼3일 이상 버티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협의 거부로 최종안을 제시한 정부는 검찰을 동원한 사태 진압 등 마지막수습책이 남아있으나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 사태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또 설사 폐업중인 의사들을 진압해 병·의원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이들이순순히 진료 및 의약분업에 협조할지는 미지수이다. 이 때문에 막후 접촉을 통한 극적 타협설과 공권력을 동원해 사태를 물리적으로 해결한 뒤 의약분업 실시를 3∼6개월 보류하고 시행에 들어간다는 얘기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의협의 갈데까지 가보자는 강경 투쟁자세와 정부의 어설픈 대응으로 피해를보고 있는 것은 국민들로,의약분업은 시행도 되기 전에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유상덕기자 yo
  • 다케시타 前 日총리 생애

    19일 타계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일본총리는 자민당 최대파벌의 오너로 일본 정가 막후에서 10년 넘게 ‘킹메이커’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일본 경제 최대호황기에 총리를 지낸 그는 ‘조정의 미학’‘화(和)의 정치’를 구현했다는 호평과 함께 파벌정치,선단(船團)정치 등 일본형 정치병리의 씨를 뿌렸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잠시 교사로 일하던 다케시타는 58년 중의원에 당선,정식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내리 14선을 기록했다.일찍부터 다나카가쿠에이(田中角榮) 전총리의 유력한 후계자로 권부를 지켜오다 87년 7월 독자적으로 ‘게세카이(經世會)’(다케시타파)를 출범시켜 그해 11월 총리에취임,절정기를 구가한다. 89년 6월까지 1년반 재임하는 동안 다케시타는 소비세 도입 등에서 강력한추진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정·관·재계가 고리처럼 얽힌 유착형 정치문화를 심화시켜 일본경제의 거품붕괴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리크루트사 헌금의혹 사건으로 퇴진한 뒤에도 우노 소스케(宇野宗佑),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등 후임내각을 탄생시키며 건재를과시했고 92년 파벌영수를 정치문하생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에게넘겨준 뒤에도 사실상의 오너로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오부치의 총리선출에 깊숙히 관여해 왔다.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 역시 병상의 다케시타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공식 행사를 멀리한채 요양해왔지만 결국 지병인 변형성 척추증을 이기지 못한 셈.그의 공백으로 모리 총리의 위상은 물론,오부치파를 비롯한 집권당 역학구조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와세다(早稻田)대 동문인 박태준(朴泰俊) 전총리 등과 오랜 지인인 것을 비롯,한국내에도 인맥이 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남북 화해시대/ 金대통령의 ‘평양 54시간’

    ‘6·15’ 남북공동선언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5일 오후 평양 방문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귀경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주었다.김대통령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나눈 회담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이에 앞서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도 평양을 떠나기 전 기자들에게 3시간50분 동안 숨가쁘게 펼쳐졌던 전날 정상회담의 막전막후를 공개했다.두정상이 공동선언의 표현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고,서로에게 가졌던 서운한 감정도 거침없이 개진했다고 전했다. 박 대변인은 “회담시간은 3시간50분(중간 휴식 45분 포함)이었지만 3시간40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그만큼 진지했고,신뢰를 쌓는 대화였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밝힌 김 위원장과의 대화내용과 박 대변인이 전한 회담 주변얘기를 묶어 김 대통령의 ‘평양 54시간’을 재구성한다. □통일방안 의견접근. 15일 새벽 발표된 남북공동선언에서 제2항의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표현은김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오랜 시간 설득해 얻은 결과로 밝혀졌다. 김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통일방안인 ‘연합제’와 북한 ‘연방제’의 차이를 ‘중앙정부의 존재와 권한의 유무’라는 관점에서 풀어 김 위원장에게설명했다”고 말했다.김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남북연합’에 대해 ‘현재의 ‘2체제 2정부’를 그대로 두고 양쪽에서 수뇌회의,각료회의를 구성,합의기관으로 만들어 차츰차츰 모든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에게 수용토록 설득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이 순간에도 김 위원장은 중앙정부가 외교와 군사에 관한 권한을 갖는 ‘연방제’를 거듭 주장했다고 한다.그러나 김 대통령은 “(연방제 형태는)국제기구에 가입하지 못하는 등 사실상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면서 “지방정부가 외교와 군사권한을 갖는 의미로 ‘연방제’ 앞에 ‘낮은 단계’를 명시하자”고 설득,결국 김 위원장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성공했다.김 대통령은 “젖먹던 힘까지 내서 진실되게 설명했다”고 소개했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 양측의 대표와 학자,전문가들이 모여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토론해보자고 김 위원장에게 얘기했다”고 전하고 “통일운동사에서구체적인 합의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주적 해결’. 김 대통령은 국내 일각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지적하는 이 표현에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이 표현을 북한의 요구대로 공동선언에 사용하는 대신 제2항의‘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 나머지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이끌어내는 ‘협상카드’로 사용했음을 내비쳤다. 14일 심야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자주해결’이라는 말은 7·4 남북공동성명에도 있는 것”이라며 이 표현을 선언문에 넣을 것을 거듭 주장한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대통령은 “옛날과 똑같이 자주,평화,민족 등 원칙만 얘기했다간 세계가 실망할 것이니 2항부터는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내놓자고 (김 위원장에게)얘기했다”고 밝혔다.‘자주 해결은 당연한 말이지만 7·4성명 이후 지난 28년동안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는 점과 ‘92년 2월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을 선언했으나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지적하고 이제는 아주 구체적으로 손에 쥔 것부터 실천을 하자고 김 위원장을 설득했다는 것이다.김 대통령의 협상방식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공동성명 서명 논란. 누구 이름으로 공동성명에 서명하느냐도 ‘논란’이 됐다.북측은 국방위원장의 경우 형식적으로 국가원수가 아니므로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서명하거나,두 정상의 명을 받아 다른 두 사람이 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남측은 “우리는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을 남북의 지도자로 생각한다”고 설득,결국 김 국방위원장의 서명을 이끌어 냈다. □이산가족 교환방문. 김 대통령은 도착인사에서 “공동선언의 조항은 어디까지나 실향민과 이산가족이 초점” 이라고 말했다.북한이 주장하는 ‘비전향 장기수’가 명시된 데 국내 일각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점을 의식한 언급이다. 김 대통령은 “오늘도 공항에 나오면서 다시 김 위원장에게 ‘8·15까지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통크게 한번 하시오.그러면 여러분이 말하는 장기수문제도 내가 국민과 상의해 보겠소.먼저 잘하시오’라고 얘기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김 대통령은 또 “승용차안에서 (김 위원장에게) ‘서울 가는 즉시 적십자사측에 요청하겠다’고 하자 김 위원장도‘그렇게 하라’고 했다”며 “6월부터 적십자사가 곧 가동될 것”이라고 말해 이산가족 문제를 강력하게 추진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 서울 방문. 김 대통령은 이 대목에 대해 “합의를 보는 데 좀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이 즉답을 피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이에 “김 위원장께서 서울에 와야 민족과 세계사람들이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믿는다.그렇지 않으면 저거 1회성 아니냐고 생각한다”고 설득했다고 밝혔다.김 대통령은 이어 김 위원장이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다’,‘동방예의지국’ 등의 말을 한 점을 지적,“김 위원장은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를 굉장히 숭상하는데 내가 나이가 십수살 위이고 노인이 여기까지 왔는데 (김 위원장이 서울에) 안 온다면 되겠느냐고 농담도 했다”고말해 김위원장으로부터 답방을 약속받기까지의 과정을 털어놓았다. 김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때로는 절망적인 생각을 가진 적이 몇번 있었으나 성의껏 노력하고 김 위원장도 상당히 협력해 우리가 (국민에게) 바친정도의 합의를 도출했다”고 말해 회담과정에서 몇차례 고비가 있었음을 토로했다.김 대통령은 그러나 “결국 김 위원장이 우리와 ‘합의된 시일안’에서울을 방문키로 결심했다”고 밝혀 김 위원장의 답방시기에 대해 이미 남북간에 어느정도 의견접근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회담 분위기. 3시간 50분 동안의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자기 주장을 거침없이 펴다가도 남측 설명이 합리적이면 즉각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특히 김위원장은 김 대통령 발언 중간중간에 “나도 섭섭한 게 있다”며 그동안 남측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안들을 기탄없이 얘기했다고 한다.“우리는 일관되게 하는데 남측이 모순되게 한다.이래서 합의가 무슨 의미가있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면서국가보안법 폐지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자신을 좋지 않게 다룬 기사를 보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후문이다. 반면 김 대통령의 정치역정에 대해서는 “여러번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탄압을 받고도 집권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여러차례 존경심을 나타냈다고 한다.이에 김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서운한 점을 밝혔다고 박대변인은 귀띔했다.강릉 잠수정 침투사건이나 서해교전 등을 언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도착인사에서 김 대통령은 “(회담에서)서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자며내 말의 요지를 문서로 전달했다”고 밝혔다.김 대통령은 “핵도 미사일도얘기했고 주한미군 문제와 국가보안법 문제도 나왔다”면서 “대화는 매우유익했고,그중에 아주 좋은 전망을 발견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고 회담결과를 낙관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 남북 정상회담/ 2차 단독회담 5대 의제

    *긴장완화-평화 정착. 남북 단독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단연 한반도 평화 정착문제다.55년간의 한반도 냉전구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기초작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양 정상은 회담에서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한반도 평화선언’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두 정상들은 이미 13일 ‘승용차회담’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남북통일까지 ‘1국2체제’ 형식의 평화 공존을 통해 공동번영이란 민족적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합의가 이뤄질 공산이 높다.상징적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을 포함,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과 이를 위한 화해·군사·경제·사회문화 공동위의 재가동문제도 깊숙이 토의됐다는 후문이다. 미국과 일본 등 주변 우방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 8일 도쿄한·미 정상 회동에서 이 문제를 북측에 전달,설득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핵·미사일문제가 미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주요 관심 사항임을 지적한 뒤 “북한의 경제 회생과 대외 개방을 위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북측의 성의 있는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같은 맥락에서 김 대통령은북·미,북·일관계 정상화를 강력히 권유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대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반응은 즉각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적어도 향후 “북·미 미사일회담이나 고위급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란 원론적 입장을 피력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앞서 분위기 조성문제도 심도 있는 토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오일만기자 oilman@. *화해와 통일. 평양 방문 이틀째의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우호적인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부당국간 대화 재개’에 대한 합의는 상당한 진전을 이룰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정상이 이산가족 문제와 경제 협력 등 각종 의제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이끌어낼 경우 그것을 구체화시킬 부문별 양측 실무 접촉은 자동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우리 정부는 특히 당국간 대화채널을 일시적이 아니라 상설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대화 상시화는 남북이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합의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양쪽의 결단이 있을 경우 어렵지 않게 타결될 수 있다. 우선 가장 손쉬운 것은 판문점에 국장급을 대표로 하는 ‘연락사무소’를설치하는 것이다.나아가 장관급을 대표로 하는 부문별 ‘공동위원회’를 가동한다면 통일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게 된다.공동위 설치가 합의될 경우 경협 등을 다룰 경제공동위나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는 사회문화공동위가 최우선적으로 가동될 공산이 크다. 한쪽에서는 남북이 서울과 평양에 각각 상주(常駐)대표부를 설치할 것이란기대 섞인 전망도 나돈다.상주 대표부는 대사관이나 다름없는 시설로 사실상평화체제로 본격 진입하는 ‘획기적인’ 진전을 의미한다. 김상연기자 carlos@. *이산가족 문제 해법.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도 중요한 실마리가 풀렸다. 김정일 위원장은 14일 김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어제 남한의 TV를 보니 실향민이라든가 탈북자들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빨라지지 않는가 해서 이번 정상회담을 환영하더라”고 말했다. 적어도 김 위원장이 남측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를알고 있다는 의미다.특히 김 위원장이 실향민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회담에서 “현재 남북의 이산가족은 대부분 고령자”라면서 “이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반드시 부모형제를 만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도 김 대통령의 인도적 차원의 제안에 동감하고 양측이 이 문제를풀기 위해 노력해나가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우리측의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북측의 김용순(金容淳)노동당 통일선전 담당비서가 접촉,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양측의 의견을 교환할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측 특별수행원에는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는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과 장치혁(張致赫)고합그룹 회장 등 북한에 이산가족을 둔 기업인 3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도 14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북측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협의했다. 이도운기자 dawn@. *경제등 다방면 교류. 남북경협 활성화문제는 향후 남북관계 개선의 강력한 ‘물적 토대’가 될전망이다.북한의 경제난은 회복 중에 있다고 하지만 자력으로 완전히 복구되기 어려운 지경이며 체제 유지를 위해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현안이란 인식이 강하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1차 단독회담에서 “김 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김 위원장은 왜 승낙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고대답을 주는 사업에 김 대통령뿐 아니라 장관들도 기여해 달라”고 강조한것도 같은 맥락이다.이번 방북단에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과 이기호(李起浩)청와대경제수석은 물론 경제단체,기업대표들이 대거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다양하고 심도있는 논의와 가시적 성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14일 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경협의 확대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했다.특히 민간 차원으로 국한돼온 경제협력을 당국 차원에서 제도화,안정화하는 문제에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위해 당장 시급한 투자보장협장과 이중과세방지협정,분쟁해결 절차 문제 등이 정상회담 이후 실무진 차원에서 전격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 이후 실무 차원에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문제 역시 구체적 진전이 예상된다. 경의선 복원문제와 도로 건설 등이 1순위로 떠오른다.공장 가동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에너지 공급 문제도 심도 있는 토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방북단의 기업대표들은 막후에서 북한 경제 전문가들과 수시로접촉하면서 서해안 대규모 공단 건설과 관광자원 개발 문제 등 향후 남북경협의 ‘밑그림’을 완성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오일만기자. *서울 온다면 언제쯤. 평양 순안공항 영접 등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로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 상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과의 14일 2차 단독회담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적극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13일 서울공항에서의 방북 출발 인삿말에서 “김 국방위원장의서울 방문도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했었다. 실무작업을 총괄한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도 방북 전 “김 국방위원장의서울 답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수차례 언급었했다. 김 대통령이 적극적인 초청 의사를 보였을 경우 김 국방위원장도 이를 딱잘라 거절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그렇다면 문제는 답방 시기다. 현재 중국 외교가에서는 김 국방위원장이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 서울을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한쪽에서는 연내에 방문할 것이란 분석도있다. 그러나 만일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이 합의되더라도 ‘빠른 시일 안에…’라는 식으로 원론적인 표현만 쓰고 구체적인 시기는 명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북한이 대내외에 개방을 공식 선언하는 전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북측으로서는 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고, 따라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김상연기자
  • [대한시론] 일본의 위험한 복고주의

    일본 정치를 상징하는 두 얼굴은 일본의 총리와 도쿄도 지사이다.총리는 국회에서 뽑은 행정수반격이고,도쿄도 지사는 도민이 직접 뽑은 민선 공직자다.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발언을해서 말썽이다.이시하라 신타로 지사는 재일동포를 위험집단으로 모욕하는발언을 하더니,모리 총리는 “왕(천왕)중심의 신의 나라”란 발언의 파문이가라 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국체(國體)수호의 발언으로 일본에서 조차 반발을 사고 있다.왜 일본의 대표적 정치적 인물이 군국주의 시대의 편견과 독단에 불을 붙이고 있는가.잘 살펴보면 그런 일은 돌발적 개인의 실수는 결코아니란 점이다. 이제까지 일본을 지배해 오는 보수세력은 패전 전이나 후나 그 본체에선 변함이 없다.자민당의 구성은 결코 자유주의자나 민주주의자가 아니다.그들 대개는 국수주의자나 보수기득권세력의 대변자나 천황제 신권주의자로부터 토건업자의 후견을 받는 정상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잡다한 수구세력의 연합체일뿐이다.일본의 지배층은 침략전쟁의 범죄에 대해 스스로 단죄해 과거를청산하려고 한 적이 없다.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게 패전한 것만이 잘못이라는 망집에 사로잡혀 있다.결국 그들은 왕(천황)이 신의 자손이고 자기 나라가 신의 나라로서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황국사관(皇國史觀)에의 집착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다.명치헌법(1889년)의 국가관이 그대로 존속되고있다.일본의 지식인조차 일본수구세력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항의해 오고 최근 국기국가법의 제정에 반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일본이 우경반동화, 국수주의화해서 침략주의적 복고풍조로 되돌아가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너무나 미미하고 무관심하다고 할까.아니그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다고 할까?현실인식의 빈곤을 본다.경제대국이 된 것에서 자신을 가지게 된 일본의 국수주의 세력이 일관되게 추진해오는 것은 패전전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실현이다.그들로선 이미경제적으로 성취했다고 보고,정치 군사적으로 마무리 단계에서 방위지침법으로 일본군대(자위대)의 해외출동의 길을 열었다. 아울러 국기국가법으로 황국사관의 기점인 왕(천황)의 숭배와 찬양의 노래를 국가로 공인시켰다.그간에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침략전쟁의 전몰자를 제사지내는 야스쿠니신사에 총리의 자격으로 참배함으로써 반동복고의 관례를 기정사실화했다. 모리는 총리로서 좀더 노골적 구체적으로 왕의 국법상의 지위를 패전전의수준으로 복고시키려고 국체(國體)수호의 발언을 하고 있다.일본 자민당이시도하는 개헌의 내역에는 왕의 국가원수로서 지위부여와 재무장의 허용 및방종(?)의 자유주의 폐풍(?)을 시정하는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 강조 등이 올라 있다. 이미 국회의 헌법조사회는 가동하고 있다.패전후 50여년이 지나 경제적 풍요와 우경(右傾)무드에 물든 세대는 침략의 과거청산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이 분위기가 절호의 기회로 우익 보수반동세력에 의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사회의 우경 반동화가 의미하는 위험성을 실감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친한파 인사가 어떠한 인물인가를 잘 모르고 있다.그들이 박정희를높이 평가하는 저의는 박정희나 그 행적을 자기들의 식민통치의 산물로서 보기 때문이란 점을 모르고 있다. 친일파가 주도한 군사정권은 일본의 국수주의 보수세력과 유착관계를 지속해 왔다.전 관동군 참모 세지마 유조가 박정희로부터 전두환,노태우에 이르기 까지 유착 연결되었고,그는 현재도 한국의 전경련의 고문이다.세지마는한일협정의 막후 교섭 창구역을 해내고,그 후 한일협정에 따른 일본상품발주의 이권에 개입해 온 흑막의 인물이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박선원 교수의연구에 따르면 신군부는 12·12쿠데타 당시로부터 일본당국과 사전교신이 있었고,또 그들의 지원도 받아왔다는 보도다.이런 보도가 있었지만 우리의 반응은 시큰둥하다.여기서 우리는 시민의 정치교육과 역사인식에 대해 얼마나허술히 해 왔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똑바르게 알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 되고서는 자기나나라를 지켜낼 수 없다.우리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일본사정이 정치적 반동복고로 되어간다고 할 때엔 그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한상범 동국대교수법학.
  • 남북정상회담 D-9/ 北·中 정상회담이 남긴것

    2박3일간의 중국 방문에서 보여준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다양한 행보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94년 권력승계 후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 ‘실용주의 노선’을 대내외에 각인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장쩌민(江澤民)주석의 5원칙/ 장 국가주석과 김 위원장은 영토의 보전과 주권의 상호존중,상호불가침,내정불가침 등 중국이 제시하는 ‘평화공존 5원칙’과 7·4 공동성명에 명기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에 서로 환영과 지지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미묘한 갈등관계에 있는 중국으로서 북한의 통일원칙을 지지하면서미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북측 역시 주변 4강이 지지하는 ‘한반도 당사자 해결원칙’에 무게 중심을이동하면서 중국과 ‘전략적 제휴’로 정상회담 이후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치밀한 포석이 담겨 있다. 하지만 북·중 관계 복원은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변화에서 주변 4강들의 치열한주도권 다툼과 이념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이런 맥락에서 북·중 정상들이 쌍방의 통일정책을 지지하는 대목이 관심을 끄는 것이다. ◆김 국방위원장의 변화/ 김 위원장은 중국의 대외개방 정책을 평가한 뒤 이례적으로 중국의 경제발전 현장을 방문했다.내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알려진북한의 5개년 경제개발에서 주요 ‘참고서’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한반도 문제해결에 있어서 남한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남북관계 중시 발언’은 향후 남북대화의 전망을 무척 밝게하는 대목이다.그동안 북·미협상 등미국을 통한 체제유지와 경제회생을 고집했던 김 위원장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끈질기게 이어졌던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설’이 해소된 것도 계산할 수없는 ‘부수익’일 것이다.“김 위원장이 건강을 생각해 절주와 금연을 하고있다면서 술은 포도주 정도를 마시는 수준으로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일만기자 oilman@. *訪中이후 관심 커져.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은 국제 외교무대 데뷔의 신호탄인가. 한국은 물론 서방의 언론들도 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인 ‘정상외교’를 가동할지 여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상황변화론’을 앞세워 김 위원장의 국제무대 복귀를 점치고 있다.이들은 “대외개방으로의 전환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상황에서 ‘김정일 신비화 카드’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제시한다.더욱이 김일성(金日成) 주석처럼 대일본 항전 등의 뚜렷한 정치적 자산이 없는 상태에서 김 위원장을 경제회생의 주인공으로 각인시키는 권력 공고화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시각이다. 반면 이번 방중과 남북정상회담 이후 종전처럼 막후로 모습을 감출 가능성도 없지 않다.대외개방에 대한 군부의 반발을 무마하고 자칫 불거질 ‘책임론’에서 한 걸음 비켜날 필요성도 제기된다. 중요 고비에만 나타나 ‘해결사’ 이미지를 심는 것이 더욱 효과적 통치술이란 지적도 이런 맥락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정상회담이후 본격적인 남북경협 협상에서 명목상국가원수인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않다”고 밝혔다. 오일만기자 oilman@
  • 러 푸틴호 ‘첫 암초’

    ‘푸틴의 러시아’가 첫 암초를 만났다. 푸틴대통령의 지방정부 장악 및 권력 수직화 조치에 러시아의 막후 실력자이자 ‘푸틴 대통령 만들기’의 주역이었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54)가 반기를 든 것이다. 베레조프스키는 지난달 30일 푸틴의 조치는 “민주제도를 파괴하는 행위이자 러시아 유권자들에 대한 기만,신진 정치 엘리트들의 싹을 자르는 행위”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크렘린과 언론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이같이 밝히고 “푸틴이 크렘린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는 이해한다.그러나 이번 조치는 정반대의 결과만 초래할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8일 ‘강력한 러시아 재건’을 내세우며 취임한 푸틴은 취임 첫 조치로 지방권력 장악 및 권력의 중앙집권화를 택했다.89개 지방정부를 7개 연방지구로 재편한 뒤 부총리급인 수장들을 자신의 수족으로 임명했다. 대통령이 결정한 정책을 해당 지역에서 실현하고 지역내 연방정부기관을 통제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은 벌써부터 ‘총독’으로 불리며 세를과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푸틴은지방정부 수장이 상원의원으로 갖는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대통령이 지방수장의 해임권과 지방의회 해산권을 갖는 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31일 하원의 심의 바로 전날 터져나온 베레조프스키의 공식적인 반(反) 푸틴 입장 표명은 향후 푸틴의 개혁조치가 암운을 만날 것을 예고하는 동시에크렘린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일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베레조프스키는 러시아의 대표적 과두산업재벌로 네자비시미야 가제트 등각종 언론과 아에로 플로트 등을 소유한 재력가.옐친 때부터 크렘린의 돈주머니 역할을 하며 옐친의 재선을 성공시켰고 크렘린 인사도 좌지우지해 왔다. 지난해 12월 총선 때 단합당을 급조,푸틴의 오늘을 있게 한 것도 베레조프스키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개혁파들이 포진한 하원의 경우 푸틴의 입법안은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이지만 지방 주지사 및 의회 대표들로 구성된 상원(연방위원회) 통과는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언론들은 ‘푸틴호’가 너무 빨리 풍랑을 만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현대사태 이모저모

    현대와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의 실무팀은 29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비공개 실무협상을 계속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가운데 정부는 관계자들에게 갑자기 함구령을 내려 그 배경을 둘러싸고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오전 11시30분쯤 현대 경영전략팀 이주혁 이사와 외환은행 기업여신부 강경문(姜景文) 차장 등 실무팀 4명은 2시간여 동안 만나 첫 실무협상을 시작. 그러나 이는 ‘언론 따돌리기용’이고 모처에서 진짜 ‘막후 협상’이 오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정치권의 급작스런 함구령도 이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반대로,생각보다 현대의 자금난이 심각하지 않아 일시적 자금난을 볼모로현대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쳐보려던 정부가 오히려 ‘시장을 볼모로 한 현대의 버티기에 당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실제 현대는 계동 본사에 돌아온 기업어음(CP) 1,000억원어치를 포함해 이날 하루 금융권에 돌아온 3,000억∼4,000억원어치의 CP를 ‘거뜬히’ 결제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했다. ■현대 그룹구조조정위원장을 지냈던 박세용(朴世勇) 인천제철 회장은 이날자신이 현대의 속사정을 낱낱이 채권단에 알리는 바람에 현대문제가 노골적으로 커졌다는 얘기가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이를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렀다.박 회장은 “이번 현대사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한 사실이 없으며 어떤외환은행 관계자와도 만난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현대의 자구책 발표에 대해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있는 가운데 재정경제부 직원들에게 함구령이 내려졌다. 이헌재(李憲宰) 재정경제부장관은 29일 간부회의에서 “현대사태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에 맡기는 게 좋다”며 “재경부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와 혼선을 주거나,혼선이 있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된다”며 말조심을 당부했다. 주병철 박정현 조현석기자 bcjoo@
  • 초점 인물/ 미국서 귀국 權魯甲고문

    민주당 권노갑(權魯甲) 상임고문이 9박10일간의 미국방문 일정을 마치고 23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권 고문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입당과관련,“출국하기 전 정 의원과 만났고 입당문제에 대해 어느정도 얘기가 있었다”며 입당에 대한 교감이 이뤄졌음을 시사했다.이어 “정 의원이 입당문제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면 불원간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면서 “조만간정 의원을 만나볼 생각”이라고 말해 정 의원과의 회동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이해된다. 권 고문은 자신의 향후 당내 역할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했던 대로 할 것”이라고만 했다.당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막후 조율사’ 또는 차기대권‘킹 메이커’의 역할에 치중할 것임을 내비친 것이다.한 측근은 “권 고문은 지금까지 당을 감싸고 필요할 때 나서서 챙기는 ‘병풍’ 역할을 해왔고,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총무 경선에 대해서는 “우리는 완전 중립”이라며 “의원들이 알아서판단할 일”이라고 강조했다.공항에는안동선(安東善)윤철상(尹鐵相)이훈평(李訓平)이길재(李吉載)임복진(林福鎭)국창근(鞠창根)의원과 조재환(趙在煥)당선자 등 동교동계 인사 50여명이 마중을 나왔다. 한종태기자 jthan@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6)95년 쌀회담

    95년 6월3일.전금철(全今哲) 조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직속 상관 김용순(金容淳)위원장으로부터 온 긴급전화를 받고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당장 베이징으로 가 남측의 쌀지원 가능성을 타진하라.한시가 급하니 당신이실권을 쥐고 협상을 성공시키라”는 게 김 위원장의 지시 요지였다. “설마,설마했는데.‘우리식 사회주의’가 남측의 지원을 받을 정도가 됐다니…”라며 전 부위원장은 상념에 빠졌다.그러나 시간이 없었다.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길로 간단한 옷가지만 챙긴채 평양 순안공항으로 달려가베이징행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대홍수로 식량난에 시달리다 못한 북한이 대북(對北)곡물지원 의사를 밝힌한국의 진의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 ‘밀사’를 파견하는 과정을 전 부위원장이 사석에서 밝힌 바에 따라 재구성한 것이다. [막후접촉] 베이징에 도착한 전 부원장은 북한 대사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한국과의 물밑 접촉을 시도했다.한국기업들에게 ‘쌀을 보내달라’고 바람을 잡는 한편,대외경제추진위 소속의삼천리 총회사는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베이징무역관에 같은 신호를 보냈다.KOTRA 홍지선실장은 황급히 날아가 쌀회담을 위한 막후 접촉에 들어갔다. [회담성사] 홍 실장은 정부관계자 6명과 북한측이 내세운 협상 파트너인 삼천리총회사 김봉익 총사장 등과 협상을 시작했다.다급해진 북한측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옴에 따라 상황이 급진전돼 쌀 지원을 위한 남북 당국간 회담이 성사됐다. [1차회담] 6월17∼21일 베이징에서 당시 이석채(李錫采) 재경원차관과 전 부위원장간의 비공개 1차회담이 열렸다.한국측은 지원 규모부터 먼저 정하자는북한측 주장에 1차로 쌀 5만t을 제공하고 추가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던 반면,북한측은 1단계로 10월말까지 20만t을 제공해줄 것 등을 요구해왔다.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남북은 ▲쌀 15만t을 무상지원하고 ▲7월 2차회담을 개최하며 ▲쌀 부대에 국적 표시를 하지 않고 ▲수송선에 어느쪽 국기도 게양하지 않는다는 등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2차회담] 쌀 수송선 ‘씨아펙스호’에 북한측의 인공기 강제게양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7월15∼19일 2차회담이 열렸다.한국측은 인공기 강제게양 사건과 관련,북한측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고납치·억류중인 우성호 선원을 조속히 송환할 것을 촉구했다. 2차회담은 결국 무산됐다. [3차회담] 8월2일 ‘삼선 비너스호’ 1등 항해사 사진촬영 사건으로 무기연기됐던 3차회담은 북한측의 조속 귀환을 받아들임에 따라 9월26일∼10월1일개최됐다.남북관계의 긴장국면이 풀리지 않은 탓인지 한국측은 우성호 송환등 당면 현안 해결을 강력히 촉구했고,북한측은 여타 현안은 다른 회담에서논의해야 한다고 완강히 주장했다.3차회담도 결렬됐다. [평가] 쌀회담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쌀지원을 통해 김정일 정권과 대화의 물꼬를 트고 북녘 동포들의 식량난을 덜어줬다는 긍정론이있는 반면, 정부가 지방자치제 선거를 의식해 추진한 작품으로 사실상 실패했다고 혹평하는 부정론도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북한의 식량사정. “감자는 흰쌀과 같다”.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지난 98년 10월 극심한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감자증산을 지시하면서 한 말이다.북한의 감자증산정책은 절대진리처럼 받아들여지던 김일성 주석의 ‘주체농법’에 대한 문제점을 자인하고 개선책을 모색한 결과라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주체농법은 주식(主食)의 범위를 쌀과 옥수수로 한정하고 밀식(密植)재배와다락밭 개간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자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지력(地力)이 나날이 떨어지고 병해충 창궐,홍수 피해 등 자연재해마저 겹쳐 북한의 식량난을 부채질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지난해들어 대대적인 감자증산과 함께 이모작 확대,토지정리,품종개량 등 농업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또 양어장을 건설하고토끼·젖염소를 사육하는 등 식량난 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식량증산 방법도시도,성과를 거둠으로써 식량난이 크게 완화됐다. 정부가 추정하는 북한의지난해 식량 생산량은 전년보다 33만t이 늘어난 422만t이다.품목별로는 ▲쌀170만t ▲옥수수 154만t ▲맥류 20만t ▲콩 11만t 등이다. 따라서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분은 100만t 정도로 추산된다.지난 95년 이후 가장 적은 양으로,식량사정이 최악이던 97년 부족분(195만t)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이는 북한의 식량 수요량이 정상적으로 배급할 경우 606만t이지만,현재 22% 정도 감량배급(518만t)하고 있는 점을 감안,추정한 것이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호전된 것은 지난해 비교적 양호했던 기상조건과 한국등 국제사회의 농자재 지원,농업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책 우선순위 부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덕분이다. 반면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및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들은 북한의99년 식량생산량이 전년보다 오히려 8,000여t이 줄어든 347만2,000t으로 추정하면서 올해의 식량부족분이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규
  • 남북정상회담 D-24/ 취재진 구성 어떻게

    남북한이 방북 취재단 수를 50명으로 결정함에 따라 ‘평양행 티켓’을 놓고 정부와 언론사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가고자 하는 언론사 수에 비해 ‘티켓’은 턱없이 적어 ‘제비뽑기’ 방안도 나오지만 언론사들은 ‘절대 거부’다.기자들끼리 조율이 안될 경우 정부중재 아래 언론사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돼야 할 형편이다. 청와대를 상시 출입하는 신문·방송·통신사 기자들은 55명.방송보조요원을제외한 숫자다. 우선 취재진에 대통령의 발언을 기록하는 청와대 전속담당관과 K-TV(국립영상방송) 관계자 등 10명 가량을 포함시켜야 한다.또 생방송을위한 TV기술요원과 TV기자만도 최소 25명선.신문·라디오에 배당된 몫은 15명선에 그칠 수도 있다.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주말쯤에는 대체적인 ‘교통정리’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곤혹스러워했다. *뒷이야기. 남북정상회담의 실무합의서가 나오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준비접촉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우호적이었다. ■대표들은 지난해 베이징 차관급회담을 비롯,각종 국제행사를 통해 서로를잘 알고있는 사이였다.첫날 만남에서 ‘평화의 집’에 온 북측 대표에게 한남측 대표는 “여기는 처음이지”라며 귀엣말을 나눌 정도. 서울·평양의 회담 지휘부는 양측 대표단에게 메모와 쪽지를 전달하는 등 준비접촉에 높은관심을 보이기도.회담장은 폐쇄회로 TV를 통해 서울·평양에 직접 연결돼 실황중계됐다.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첫번째 준비접촉에서 남측은 회의가정오를 넘어 늦게까지 열릴 것에 대비,서울 롯데호텔의 식당에 꼬리곰탕을주문해 식사준비까지 했으나 북측이 “돌아가 점심을 먹겠다”고 하는 바람에 같이 식사는 하지 못했다.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4차접촉에서도회의가 길어졌으나 점심을 들지 못한 채 남측지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실무합의서 탄생엔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임동원(林東源)국가정보원장,황원탁(黃源卓)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막후서 맹활약했다.베이징에서 정상회담 합의의 큰 틀을 엮어낸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도 막후에서 진행사항을 챙기며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다는 후문. 이석우기자
  • 문명자씨 특별기고/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한매일은 회담의 상대방인 북측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의 면모를 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 특집은 재미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의 ‘내가 본 김정일 총비서’특별기고와 북한문제 전문가인 서대숙(徐大肅) 미 하와이대 정치학 석좌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의 국제전화 인터뷰로 구성했다.이번 기획특집은북한을 현실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위원장의 품성과 지도자적 자질이 어떠한지를 전문가들을 통해 파악해보자는 것이다.이는 김정일 위원장을 ‘성격이괴팍한 영화광’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의 성격과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최근 북한연구자들이 김정일 위원장을 재평가하는 연구서를 잇따라 출간하고 있는 것도이같은 의미로 풀이된다.문씨의 기고는 지면사정으로 절반가량 압축한 것이며 함께 실린 사진은 문씨가 제공했다. [편집자주]■나는 지난 92년 4월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인터뷰했다.참으로 어렵게 마련된 자리였다.인터뷰 성사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는데 그것은 오찬을 겸한 인터뷰였다.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 접견실에는 식탁 가운데에 김정일화가 장식되어 있었다.김 주석은 그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꽃을 개발한 일본 사람의 요청에 따라 ‘김정일화’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는데 사실 저 꽃이 너무 고와서 조직비서 성격하고는 맞지 않는단 말이오.우리 조직비서는 통이 크고 사나이 답거든.” 김 주석은 아들을 꼭 ‘조직비서’라고 불렀다.나는 내심 갸우뚱했다.서방에 알려진 ‘내성적인 영화광’이라는 평과는 다른 얘기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자식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부모다.계속 연구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비로소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게 된 것은 94년 7월 14일 김일성 주석의장례식 시기였다. 비록 국장의 마당이었지만 나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그를세밀하게 관찰했다.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멀리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가짐은 정중했고 목소리에는 무게가 있었다.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주장과는달리 말을 더듬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얼굴은 여위고 눈자위가 붉어져 있었지만 손은 따뜻했고 손아귀에 힘이 있었다.전혀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조문 후 잠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그는 말했다. “지난 4월 쓰신 수령님 인터뷰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제가 글자를 크게 확대해서 수령님께도 가져다 드렸습니다.” “혹시 잘못된 곳은 없었습니까.” “아주 정확히 쓰셨습니다.잘 읽었습니다.” 나는 김정일 총비서와의 면담을 포함해 김일성 주석의 언급,측근들의 증언,주변 취재,북한 인민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그의 진면목에 다가서 보고자 했다.단지 김정일 총비서와의 94년 7월 이후의 면담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자세히 밝힐 수 없어 양해를 구한다. 나는 김정일 총비서의 생일 명절인 2.16 기간에 북을 방문한 일이 있다.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었지만 본인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전에도자신의 생일 행사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그 시기 그는 어디로 갔을까.나는 그 점이 궁금했는데 뒤에 알게 되었다.그는 매년 그 무렵이면 백두산을 찾는 듯 했다.특히 99년 2월에는 백두산 천지를 등반한 후 2월 16일 갑무(갑산-무산) 경비도로를 달리다 차에서 내려 10리를 걸었다고 한다.갑무경비도로는 길 양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한대림이 끝없이 이어진 풍치 좋은 길이다.그러나 이 무렵의 백두산 지역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린다.혹한 속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그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며 특히 백두산의 겨울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지금까지 그가 “내성적이며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그가 사람들 앞에 나서지않는 것은 사실이었다.김일성 주석의 급서 후 나는 당시 북미 회담의 북측대표이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국가원수가 서거하셨는데 회담 진행에 차질이 없겠습니까.” “물론 회담은 수령님의 결재로 진행되어 왔지만 장군님께서 직접 지도해오신 사업이기 때문에 예정대로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은 상식으로 되어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김정일 총비서가 막후에서 북미회담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뉴스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 사후에도 김 총비서는 외교 의전 일선에 나서는 시기를계속 미루어 왔다. 서방의 관측통들은 그 이유 중 하나를 그의 ‘내성적인성격’ 때문으로 평가해 왔다.반면 그의 측근 인사인 김용순 비서는 그를 “박력 있고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 평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 나는 종종 두 인물을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받는다.물론 차이가 있다.소년 김정일은 대단히 영리했던 것 같다.김정일 총비서는 아버지를 꼭 ‘수령님’이라 불렀다.그런데 김정일 총비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라 외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바로 94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였다.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고무된 김일성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7월 한여름 더위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들르게 될 묘향산 특각을 직접 돌아보기 위해 평안북도로 떠났다.묘향산 인근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고 묘향산 특각에 도착한 김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 부처가 묵게 될 방의 냉장고 문까지 열어보았다고 한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노인의 건강을 염려한 김정일 총비서는 김일성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평양으로 돌아올 것을 계속 권유했다.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성공의 일념에 가득차 있던 김 주석은 말을 듣지 않았다.계속 설득하던김 비서가 마침내 전화통에 대고 소리쳤다. “아버지! 제발 돌아오십시오.” 김정일 총비서가 스타일상 김 주석과 다른 점이라면 표현 방식의 차이를 들수 있을 것이다. 김 주석과 달리 김 총비서는 노기를 표현하는 인물이다.그만큼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 사후 대부분의 평자들은 김정일 정권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점쳤다.짧으면 3개월,길어야 3년 안에 붕괴한다는 것이다.그 유력한 논거 중하나가 북의 새 지도자 김정일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후계자가 되었을뿐 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오늘날 페리 보고서조차 ‘김정일 정권의 안정성’을 공언하는 것을 보면 이같은 문제는 해소되었다는 얘기가 된다.지난 95∼97년 사이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총비서는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한 것이다.그의 정책 결정의 특징중 하나는 ‘의외성’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의 장지가 금수산기념궁전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현재 금수산기념궁전은 북의 사회 통합의 구심이 되고 있다. 98년 8월 북이 발사한 ‘물체’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며칠 후 북이 그것을‘인공위성’이라 발표했을 때 세계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국문제의 인공위성은 한반도의 정세를 뒤바꾸어 놓았다. 미국에게 북은 ‘붕괴시켜야’ 하거나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 대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체제를 인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변화했다.물론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 막대한외화를 들여 인공위성을 개발했어야 하는가라는 비판도 있다.이에 대해 북의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우리에게 그같은 능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우리를 이라크나 유고처럼 대했을 것이다.그것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다.” 북의 인민들은 김 총비서의 정책적 의외성을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는’ 강점으로 인식하지만 서방에서는 ‘예측불가’라는 그다지긍정적이지 않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내가 아는 김 총비서는 다양한 방면에 대해 화제가 풍부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이같은 측면이 성격적 대담성과맞물려 정책의 ‘의외성’을 빚어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64년 6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당사업을 시작했다.총비서에 이르기까지 37년간의 당 사업에서 그는 여러 가지 일화를남겼다.업무스타일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것은 ‘한밤중의 전화’다.나는 북의 여러 고위인사들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들었다.김 총비서는 “서류를 결재하던 중 의문이 생겨 늦은 시간이지만 부득이 전화했다”며 낮에 올린 결재서류에 대해 보다 자세히 묻곤 한다고 한다. 그가 반드시 묻는 말 중의 하나가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라는 것이다.그러니 부하들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도 김 총비서 업무스타일의 한 특징이라 한다.“새로 작곡된 음악을 틀어놓고 평가하면서 눈으로는 결재 서류를 검토하는 한편 전화로는 누군가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식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서구식 양복을 입지 않는다.그가 서구식 양복을 입지 않는이유를 물었을 때 한 측근 인사는 “화려한 옷차림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계셨다”고 했다.가장 좋아하는 꽃이 목화꽃이라는 점은 같은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목화꽃은 화려하지 않으나 유용하다. 서방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북의 지도자 김 총비서가 세계적인 추세를 제때에 파악해 나가는 수단은 무엇일까.김 총비서가 서방의 방송,영화를 많이 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서방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나는 특히 그가 영어를 이해하는 것으로 느꼈다.그가 구사하는 것은 전통적인 영국식 영어가 아니라 현대미국어였다. 김일성종합대학에는 ‘김정일 사적관’이 있다.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라 한다.이 곳에서는 김정일 총비서의 대학시절을 잘 볼 수 있다.사적관에서 필자는 그가 재학중 쓴 ‘3국통일 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라는 논문을특히 관심깊게 보았다.핵심내용은 “신라의 3국 통일은 통일이 아니다”라는것이다. 동시대 조선반도에 발해라는 다른 주권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으며,신라는 영토를 넓히려는 야심만 있었을 뿐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지향이 없어서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국가를 멸망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민족통일은 3국중 통일 지향이 가장 강했던 고구려를 이어 받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관에는 김정일 학생과 동료들이 군사 강의,사격훈련,점호,야간습격 전투훈련,군사야영훈련 등을 받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사적관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다 보면 재미난 공통점이 발견된다.학급 동료들과 함께 찍은 여러장의 사진에서 김정일 학생은 사진의 가운데 있는 인물이 아니다.그의 모습은 항상 맨 뒷줄 한켠에서 발견된다.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던 4월 10일 나는 평양에 있었다.4일부터 8일까지 계속된 제9차 조일회담 취재차 방북했다가 역사적인 뉴스에 접하게 됐던 것이다.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 총비서의 한 측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분단이후 여러차례 최고위급 회담 성사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이루어지지 못했다.특히 94년에는 수령님의 서거로 최고위급 회담이 무산되었는데 이제 드디어 성사되었으니 우리 민족의 손으로 통일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장군님께서는 지금 회담 준비로 대단히 바쁘다.그 분의 건강을지켜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그는 특히 “지난날 조문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며 이번에는 아무런 전제 없이 서로가일단 부딪혀 보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오는 6월 12일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될 남북의 두 정상.그 한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나는 30년간의 취재 파일을 바탕으로 지난해 책을 한 권출간한 바 있다. 나의 눈에는 두 정상의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게 비친다.오는 정상회담에서 이 두 정상의 서로 다른 캐릭터가 어떻게 어우러져 분단 50년의 역사를 청산해 나갈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 문명자씨 프로필. 문명자(文明子)씨는 올해 71세의 재미 원로언론인으로 미국 ‘US아시안 뉴스서비스’의 주필이며,아직도 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이다.61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시작으로 국내 여러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문씨는 73년11월 당시 보도금지 사항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직후미국에 망명했다.90년 이후 10여차례 방북 취재했고 두 차례에 걸쳐 김일성주석을 회견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면담한 바 있다.그녀는 서방기자중‘최고의 북한소식통’으로 불릴 정도로 북한 지도층과 북한 사회에 이해가깊다.
  • 인물 포커스/ 서유진 광주시민연대 상임자문위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의 벨로 주교,요한 갈퉁 교수(유럽평화대 교수) 등 해외 인권 운동가들의 광주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이 20주년을 맞아 세계사적인 이벤트로 자리잡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같은 해외 인사들의 광주 방문을 막후에서 추진한 사람이있어 화제다.주인공은 서유진(徐裕鎭·58) 광주시민연대 상임자문위원.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씨가 광주시민연대와인연을 맺게 된 것은 94년.시민연대는 5·18의 국제화를 위해 아르헨티나 ‘5월 광장 어머니회’ 등 해외 민주단체와 연대를 추진하고 국제청년캠프와각종 국제학술대회를 준비중이었다. “시민연대가 비정부기구(NGO)로서 5·18 정신의 확산을 위해 힘쓰는 것을보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참여했다”는 서씨는 그동안 시민연대의 국제교류사업을 도맡다시피했다. 그는 스리랑카·태국·캄보디아·베트남·동티모르 등 분쟁지역을 돌며 각국의 인권상황을 출판물 등을 통해 세계에 알려 왔다.이같은 활동으로 이번5·18 20주년을 맞아 광주를 방문한 동티모르 벨로 대주교와 제1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결정된 동티모르 지도자인 사나나 알렉산더 구스마오 등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현재의 인권상황이 5·18 당시와 비슷한 국가들의 인권 지도자들이5·18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0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때 문동환 목사가 이끌었던 ‘북미 한국민주회복통일연합’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군사정부로부터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뉴스피플 최신호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5월16일 발매,5월25일자)는 요즘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는 ‘로비’와 ‘로비스트’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백두사업,고속철도사업과 관련,검찰수사의 배경과 이를둘러싼 로비활동의 막전막후를 자세히 다뤘다. 과외금지 위헌판정으로 고액과외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인터넷과외 대안론’이 새롭게 일고 있는 것과 관련,현황과 문제점 등을심층취재했다.최근 발견된 생체 리듬 지배 유전자 활동을 토대로 한 ‘인간생명활동의 비밀’도 흥미롭게 취급했다. 대우차 인수를 둘러싸고 GM과 포드간의 신경전이 날카롭다.한국 자동차업계에 유리한 ‘보따리’를 제시할 쪽은 어딘지 꼼꼼히 짚어봤다.또 7세이하의유아들도 성폭행 대상이 되고 있지만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방법이 전무한‘유아 성폭행’의 현주소를 긴급진단했다. 올해로 스무해를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행사의 이모저모를 현장 취재했다.또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16주년 행사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5)체육회담

    지난 90년 10월 평양의 남북 통일축구대회 남측선수단 환영 만찬장.남북 대표단이 한데 어울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갑자기 한바탕웃음바다가 펼쳐졌다. 정동성(鄭東星·99년 작고)체육부장관이“통일을 위해”라고 건배를 제의하고 노래를 부른 데 이어 세 차례나 ‘몸 뒤로 젖혀 뒷머리 땅에 대기’묘기를 펼쳤기 때문.북측 임원·기자들과 일일이 술잔을 주고받는 바람에 얼큰하게 취한 정장관이 특유의 주흥 돋우기를 시작한 것이다. 정장관의 돌출 행동은 오히려 남북 체육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김유순(金兪順)북한 올림픽위원장의 경우 검지로 상대방손바닥을 긁는 정장관의 악수 방법에 같이 화답해올 정도로 가까워졌다. ■남북 단일팀 구성 정장관과 김위원장의 친숙함은 통일축구대회 기간중 회담을 통해 체육회담 개최에 합의하는 밑거름이 됐다.그해 11월부터 91년 2월까지 4차례에 걸쳐 판문점 평화의 집과 통일각을 오가며 회담을 열어 선수단호칭을 우리말로 ‘코리아’,영문으로 ‘KOREA’로 하는등 남북 단일팀 구성과 관련된 문제를 완전타결짓고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 덕분에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91년 4월 일본 지바세계 탁구선수권대회와 6월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탁구대회에서는 남쪽 현정화와 북쪽 이분희 황금 콤비가 맹활약,남북 단일여자팀이 중국의 벽을 무너뜨리고 우승을 차지했다.최철 등 북한측 선수들이선전한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8강까지 올라 한민족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 50여년동안 남북은 체육회담을 20여차례 가졌지만 정치상황과궤를 같이하는 바람에 국민들에게 기대와 좌절을 번갈아 안겨줬다. ■60년대 분단 이후 냉각기가 지속되다 63년 1월 59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도쿄올림픽 남북단일팀 권고안의 통과와 함께 스위스 로잔에서첫 체육회담을 가졌다.회담은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별 성과없이 끝났다. ■70,80년대 10여년동안 소원했던 남북은 ▲79년 2월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파견을 위한 탁구협회 대표들간의 4차례 회담 ▲84년 4월로스앤젤레스올림픽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등 국제 체육경기에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 세 차례 회담을 벌였으나 역시 무산됐다. ■90년대 90년 남북을 오가며 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잘 나가던’체육회담은 91년 8월 북한 유도선수 이창수가 한국으로 망명해 오는 바람에북한측이 전면 중단시켜 맥이 끊기고 말았다. ■평가 체육회담은 63년 첫 회담 이후 북한측의 필요 여부에 따라 좌우돼왔다.따라서 91년 2월 회담의 성사는 옛소련 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에 따른 체제위기를 돌파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평가다. 김규환기자 khkim@. *회담 주역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남북 체육회담의 주역들은 회담에 참석한 지 10∼40년 가까이 흐른 때문에일부는 작고했고 대부분 역사의 현장에서 비켜나 있다. 지난 63년 첫 체육회담에서 대좌한 남측 수석대표 정상윤씨는 농구계 원로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 91년 노환으로 별세했다.당시 북측 수석대표였던김기수씨의 행방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상태. 79년 탁구협회 회담 대표로 참석했던 채영철(蔡永喆·74)씨는 군사문제연구소장 등을 거쳐 민족중흥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파트너였던 북측 대표김득준(金得俊)씨는 국가체육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북 통일축구대회와 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 체육회담을 처음으로 성사시킨 정동성(鄭東星) 당시 체육부장관과 그의 상대역 김유순(金兪順)북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90년대 후반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제6공화국 ‘북방외교의 밀사’로 활약하며 체육회담 성사를 위해 막후에서뛰었던 박철언(朴哲彦·57)전체육청소년부장관은 4월 16대 총선에서 고배를마시고 칩거하고 있고,막후 파트너였던 이종옥(李鍾玉)은 국가부주석 등 핵심 요직을 거친 뒤 지난해 사망했다. 84년 체육회담에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종규(金鍾圭·72)씨는 서울신문(현 대한매일)·연합통신 사장 등을 역임한 뒤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으며,북측 수석대표였던 박무성(朴武成)씨는 98년 9월 체육성 부상에 올랐다.85년회담 남측 수석대표였던 김종하(金宗河·65)씨는 재계로 돌아가 고합그룹 상임고문으로 재직중이다. 김규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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