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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서 입방정 떨지 마라

    SNS서 입방정 떨지 마라

    당신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여기저기에다 계정을 만들어 온라인 사교를 즐기는 ‘인터넷 마당발’인가? 그렇다면 여유 부릴 일이 아니다. 얼마나 ‘입조심’을 하며 그 공간들을 누비고 다녔는지, 지금 당장 자가점검에 들어가야 한다. SNS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개인정보 관리에 초비상이 걸렸다. 계정을 만들 때 무심코 제공한 ID(온라인 개인정보) 등 온라인 상의 각종 개인정보들이 향후 취직, 승진, 은행대출, 심지어 이혼과정에서도 어이없는 걸림돌이 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CNN머니 인터넷판은 10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 만든 계정이 마냥 공짜가 아니라 개인정보가 새나가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ID야말로 철저히 단속해야 할 21세기 최신형 자산이라고 지적했다. 평소 별 생각없이 올린 신상 관련 정보들 때문에 뜻하지 않게 인생이 꼬여 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는 오싹하다. SNS 등에서 스스로 혹은 친구들이 올린 사소한 글이나 평소 자주 이용한 위치 정보, 검색 및 구매 정보들이 여러 목적의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데이터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추적해 정보를 뽑아내는 작업)에 축적되고 소리소문 없이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NS가 일찍부터 보편화된 미국 등지에서는 SNS의 개인신상 정보들이 고용시장의 자료로 활용되는 풍토가 이미 일반화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 고용주의 무려 75%가 SNS 관련 사이트에서 입사지원자의 성향이나 능력을 ‘뒷조사’하고, 70%는 실제로 사이트에서 확인된 내용을 근거로 채용을 거부하거나 진급을 누락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정보를 파악하는 막후 통로로 SNS가 활용되는 범위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개인신용 관련 온라인회사인 크레디트닷컴의 공동창업자인 애덤 레빈은 “SNS는 요즘 이혼전문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매우 유용한 도구”라면서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은행들도 이 사이트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용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SNS에서 께름칙한 정보가 노출된다면 대출을 받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 미국 금융서비스리서치업체인 셀렌트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제이컵 제거는 “아마존에서 500달러를 썼다는 사실은 대출에 전혀 지장이 없으나, 트위터에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올렸다면 당장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사이트가 프라이버시 보호장치를 개발하고 정부가 관련 대책을 아무리 강화해도 정작 개인 이용자들이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글이나 사진을 잠깐 올렸다가 내려도 순식간에 그들의 개인의사와 무관하게 고용시장이나 금융권의 데이터 마이닝으로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프렌들리’로 소문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해 청소년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 실수를 거론하며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를 사이트에 올리는 것은 위험하다. 그 내용들이 훗날 자신을 괴롭히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고 충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개인정보를 단속하는 방안으로 ▲프라이버시 보호장치 활용 및 주기적인 점검 ▲사진 댓글 확인 ▲온라인 설문참가 주의 등을 꼽고 있다. 새로 문을 연 사이트들은 개인정보 보호장치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만큼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11일 시장조사전문업체 TNS가 세계 46개국 5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모바일 기기 사용자들이 매주 SNS에 투자하는 시간은 평균 3.1시간으로 이메일에 투자하는 시간(2.2시간)보다 많았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오바마 대외정책 열강 → 아시아

    오바마 대외정책 열강 → 아시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간) 제임스 존스(왼쪽) 백악관 안보 담당 보좌관이 이달 말 사임하는 것과 관련, 토머스 도닐런(오른쪽) 부보좌관을 후임으로 내정했다. 2년 가까이 유지해 온 외교안보팀을 다음 달 중간선거를 전후해 새롭게 개편하기 위한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AFP통신에 따르면 도닐런 내정자 임명이 주목받는 이유의 하나는 그가 부보좌관 시절 열강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아시아에서도 장기적 전략과 균형을 맞춰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민간인 출신인 도닐런 부보좌관을 내정한 것은 앞으로 국가 안보 문제에서 민간인 출신의 정치 참모들에게 발언권을 더 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9일 보도했다. 지난해 가을 군 장성들이 아프간 전쟁과 관련해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로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도닐런 내정자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국방부·군부와 갈등을 빚었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이 최근 발간한 ‘오바마의 전쟁’에 따르면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도닐런을 차기 백악관 안보 보좌관으로 선택하는 것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도닐런 내정자는 지미 카터 행정부 당시 백악관에서 근무했고, 빌 클린턴 행정부 때는 국무부에서 활동하는 등 민주당 지도자들과 30년 넘게 호흡한 인물이다. 존스 보좌관이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다른 백악관 참모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후 핵심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아침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외교 안보 핵심 현안을 브리핑해 왔고, 백악관 상황실에서 이란 핵과 중동 문제 등 여러 현안에 관한 실무회의를 주재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령관과 해병대 사령관 등을 거친 존스 보좌관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함께 지난해 초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동안 외교안보팀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선임고문, 람 이매뉴얼 전 백악관 비서실장,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 등 다른 핵심 참모들과도 갈등을 빚었다. 격주간지 ‘롤링스톤’과 무단으로 인터뷰한 사건으로 낙마한 스탠리 매크리스털 전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은 존스 보좌관을 “1985년에서 시간이 멈춘 광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당초 존스 보좌관은 올 연말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의 참모진을 구성할 때 물러나려 했지만 ‘오바마의 전쟁’에서 그가 발언한 것으로 보이는 인용 문구가 백악관을 분노케 하면서 사임 시기가 빨라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후임 백악관 비서실장 라우스 유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카고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의 사임을 1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한다. 이매뉴얼의 사임에 따라 공석이 되는 비서실장직은 오바마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피트 라우스 선임보좌관이 임시로 맡게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라우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에 당선됐을 때와 의원 시절, 대통령 당선자 신분일 때와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다.”면서 “라우스를 대통령이 대단히 신뢰하고 있다.”고 말해 라우스가 비서실장을 맡게 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라우스는 오바마의 정치적 스승인 톰 대슐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의 보좌관을 지냈다. 당시 상원내 주요 의제들을 막후에서 조정하는 실무역할을 수행해 ‘101번째 상원의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매뉴얼 실장과는 달리 라우스는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스타일이라는 평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간선거 이후 새 비서실장을 임명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韓·리비아 관계 정상화 ‘형님 외교’ 결국 통했다

    韓·리비아 관계 정상화 ‘형님 외교’ 결국 통했다

    한국과 리비아가 넉 달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외교통상부가 1일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지난달 30일 오후(현지시간)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만나 불미스러웠던 한국 외교관 추방사건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영사 업무를 중단하고 철수, 현재 중국 베이징에 체류 중인 주한 리비아 대표부 외교관들이 조만간 서울로 돌아와 비자 발급 업무를 재개할 전망이다. <서울신문 9월15일자 1면> 자신의 고향인 리비아의 시르테 시에서 이 의원의 예방을 받은 카다피 원수는 주한 리비아 대표부의 업무 중단 및 리비아 국내법 위반 혐의로 구금 중인 한국인 2명에 대한 석방 문제가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안에 해결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구금돼 있는 한국인 선교사 구모씨와 농장주 전모씨는 추방 형식으로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리비아가 대수로 사업 등의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함께 사업을 추진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앞으로도 한국 기업이 리비아 내에서 불편 없이 사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카다피 원수 예방에 이어 리비아측 요청으로 알 마흐무디 총리를 면담한 뒤 귀국 길에 올랐다. 이 의원 측은 “1시간 동안 카다피 원수를 만났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자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동안 양국 정보기관 사이에 꾸준한 협의가 있긴 했지만 이 의원의 역할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 의원이 지난 7월 초 중남미 자원외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픈 몸을 이끌고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로 건너가 리비아 측을 설득했을 때 사실상 관계 정상화의 결정적인 물꼬가 터졌다.”면서 “리비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형이 몸을 낮추고 간곡하게 호소하자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의원이 7월 초 리비아 방문했을 때 비록 카다피 원수는 만나지 못했지만 리비아 총리를 무려 세 차례나 만나 설득을 하는 등 ‘정성’을 보인 일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한편 카다피 원수와 이 의원의 면담 성사에는 국내 건설업체의 노력도 한몫했다. 외교문제가 발생했던 초기 리비아에서 사업을 벌였던 대우건설과 포스코건설 등이 중간에서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한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리비아에서 100억달러가 넘는 공사를 수주한 대우건설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간총리 2기 내각 코드 ‘脫오자와’

    간총리 2기 내각 코드 ‘脫오자와’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17일 오후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상을 외무상에 임명하는 등 2기 내각을 발표했다. 17명 중 10명을 새 인물로 기용했다. 민주당 대표경선에서 경쟁했던 막후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그룹을 사실상 배제하는 데 조각의 초점이 모아졌다. 간 총리와 오자와 진영 간의 갈등국면이 지속되는 것은 물론 분당 사태까지 초래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간 총리는 총무상에 돗토리현 지사를 지낸 가타야마 요시히로 게이오대 교수를 발탁한 것을 비롯해 법무상에 야나기다 미노루, 국토교통상 겸 오키나와·북방영토담당상에 마부치 스미오 부대신을 승격시켰다. 후생노동상에는 호소카와 리쓰오, 농림수산상에 가노 미치히코, 환경상에 마쓰모토 류, 소비자행정·저출산대책담당상에 오카자키 도미코 의원을 발탁했다. 친(親)오자와 성향 인사 중에서는 가이에다 반리를 신설된 경제재정담당상에, 오하타 아키히로를 경제산업상에, 다카키 요시아키를 문부과학상에 임명했다. 센고쿠 관방장관과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렌호 행정쇄신상,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 연립 파트너인 국민신당의 지미 쇼자부로 우정개혁·금융상은 유임됐다. 겐바 고이치로 당 정책조정회장이 국가전략상을 겸임하게 된다. 이번 개각의 특징은 ‘탈(脫)오자와’로 모아진다. 간 총리는 민주당의 얼굴인 간사장에 오카다 가쓰야 외상을 기용하는 등 대표 경선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각 계파의 수장들을 주요 보직에 전진배치시킨 것이다. 오자와 측을 배려한 측면도 보인다. 간 총리는 오자와 전 간사장과 그의 측근인 고시이시 아즈마 민주당 참의원 의원회장에게 실권이 없는 당 대표대행을 제의했다. 또한 오자와 지지자인 가이에다 반리 등을 기용했다. 하지만 실속 없는 자리로 생색 갖추기라는 평가가 대세다. 간 총리가 여론의 힘을 업고 탈오자와를 강화하면서 철저한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의도로 여겨진다. 실제로 간 총리가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 내각과 민주당 지지율이 60~70%대까지 급상승하고 있다. 이에 이번 경선에서 의원 200명의 지지를 형성한 오자와 그룹은 간 총리가 약속을 어겼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간 정부가 당정 운영에 틈을 보이거나 참의원의 여소야대를 극복하지 못해 예산안 편성과 법안처리 등에 차질을 빚을 경우 국회에서 야당과 손을 잡거나 분당 등의 수순을 밟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패장 오자와 어디로

    4년여 전인 2006년 4월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은 변화를 역설했다. 경선 직전 마지막 연설에서 이탈리아 영화 ‘들고양이’의 명대사를 인용, “변화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우선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버트 랭커스터의 명대사를 인용해 당심을 흔들었고, 결국 경쟁자인 간 나오토를 꺾었다. 14일 간 총리와의 리턴매치에서 오자와 전 간사장은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을 꺼내 들었다. “내겐 꿈이 있습니다.” 눈물을 머금은 채 갈라진 목소리로 돌아서는 당심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 노회한 백전노장은 끝내 정치자금 의혹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고, 패배가 확정된 직후 “당의 한 병졸로서 민주당 정권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오자와가 일단 자숙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물밑으로 재기의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다음달 자신의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 시민으로 구성된 도쿄 검찰심사회가 강제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오자와는 강제기소될 경우 운신의 폭이 한층 좁아지지만 반대로 ‘결백’이 입증되면 그나마 정치적 입지가 넓어질 수 있다. 간 총리가 국정운영에서 헛발질을 거듭, 민심을 잃게 된다면 즉각 전면에 다시 나서려 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오자와는 경선에서 당내 현역 의원 411명 가운데 200명의 지지를 확보했다. 오자와 그룹 150명에다 50명의 지지자를 추가로 얻은 것이다. 당내 2대 세력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그룹이 오자와를 지지한 셈이다. 결국 오자와는 비록 졌지만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공천·당선시킨 이른바 ‘오자와 칠드런’과 지지 의원을 앞세운 막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작 그의 앞에 놓인 걸림돌은 돌아선 민심이다. 일본 언론은 오자와를 청산해야 할 구시대 정치의 화신으로 공격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오자와 “당 대표 출마”… 日 정계개편 신호탄?

    오자와 “당 대표 출마”… 日 정계개편 신호탄?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의 막후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이 26일 민주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다음 달 14일로 예정된 대표 경선에서 간 나오토 총리와 민주당 내 최대 세력을 거느린 오자와 전 간사장이 정치생명을 건 양보 없는 전면 대결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자와 전 간사장의 출마를 정계개편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오자와 전 간사장이 부정적인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당 대표 경선 출마를 결정한 것은 간 총리의 탈오자와 노선과 차기 중의원 선거가 치러질 3년 뒤엔 70세가 넘는다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 대표 경선은 전날까지만해도 간 총리의 재선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져 오자와 전 간사장의 출마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당내 중·참의원 의원 413명 가운데 150명을 거느린 오자와 그룹에 이어 60명의 의원들을 계보로 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26일 오전 돌연 오자와 전 간사장을 지지하고 나서 상황이 급변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은 다루도코 신지 그룹 15명을 포함해 이미 225명의 의원을 확보해 사실상 과반수(207명) 이상을 장악한 셈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전날까지만해도 당내 단합을 위해 간 총리를 지지한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이날 오전 오자와 전 간사장과 회동을 마친 뒤 “(2003년 민주당과 자유당 합당 당시) 내 판단으로 오자와를 민주당에 받아들였다. 그런 경위가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오자와를 응원하며 그것이 대의라고 생각한다.”며 선회했다. 이와 관련해 하토야마 전 총리의 최측근인 나카야마 전 총리 보좌관은 “오자와 전 간사장이 여소야대 정국을 해소할 비책을 제시해 하토야마 전 총리가 마음을 돌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즉 오자와 전 간사장은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총리는 다른 당에 양보하는 방식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해소해 3년간 민주당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복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오자와 전 간사장이 대표 경선에서 이기든 지든 정계재편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이 승리할 경우 참의원의 ‘여소야대’를 돌파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끌어들여 정계재편을 할 가능성이 있다. 패할 경우에도 민주당을 이탈해 정치판을 다시 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뒤통수를 맞은 간 총리는 비장하다. 재선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흘러나오던 전날과는 표정이 사뭇 달랐다. 그는 “(오자와 전 간사장의 출마는) 아주 잘된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겠다. 재선되면 총리로서, 대표로서 목숨을 건다는 각오로 직무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은 4년 전인 2006년 4월에도 한 차례 맞대결을 펼쳐, 119표를 얻은 오자와가 72표에 그친 간 총리를 47표 차로 이겼다. 민주당은 소속 중·참의원 413명이 1인 2표를 가져 국회의원 826표와 지방의회 의원 2382명이 득표순에 따라 100표를 행사한다. 여기에다 당원 및 서포터 등 34만 7733명이 300개 선거구에서 300표를 가진다. 모두 1226표 중 과반수 획득자가 당 대표로 선출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오릭스 투수진은 김태균의 ‘부진 탈출구?’

    오릭스 투수진은 김태균의 ‘부진 탈출구?’

    김태균(지바 롯데)이 일본진출 첫 홈런을 쏘아올린게 지난 4월 2일 오릭스 버팔로스(투수 콘도 카즈키)전이다. 그리고 6월 29일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시즌 18호 홈런을 터뜨릴때까지만 해도 일본야구를 정복할 페이스였다. 하지만 7월에 들어서며 급격한 타격슬럼프로 인해 홈런포는 침묵했고 이후 19호 홈런이 나올때까지는 무려 39일을 기다려야 했다. 김태균이 19호 홈런을 터뜨린 경기는 8월 7일 오릭스전(투수 코마츠 사토시). 오랜만에 나온 홈런, 더군다나 밀어서 우측 펜스를 넘긴 홈런이었기에 바닥을 쳤던 타격감각이 올라왔다는 일본 언론의 평가마저 있었다. 하지만 김태균은 부활의 기미만 보여준채, 방망이는 침묵했고 20호 홈런은 보름후인 오릭스전(22일)에서 터져 나왔다. 선발 야마모토 쇼고에게 뽑아낸 홈런이다. 김태균과 오릭스는 궁합이 맞는 것일까? ◆ 김태균 코가 석자,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던 오릭스 투수들 김태균은 지난 3월 20일 퍼시픽리그 개막전(세이부)에서 무려 4연타석 삼진을 당하는 굴욕을 당한다. 상대투수가 지난해 사와무라상 수상자인 와쿠이 히데아키였다지만 매우 치욕스러운 결과였다. 이튿날 좌완선발 호아시 카즈유키의 팜볼에 농락당하며 6연타석 삼진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자 우려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김태균은 개막후 정확히 10경기만에 마수걸이 홈런을 터뜨리며 장타가 터지지 않는다는 불안감을 날려버렸다. 이후 김태균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5월 월간 MVP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급격한 타격상승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부터 그의 방망이는 침묵했고 3할을 넘나들던 타율은 급전직하 한다. 김태균이 6월 29일 이후 다시 홈런손맛을 본건 역시 오릭스전. 한국야구팬들에게도 낯익은 코마츠를 상대로 홈런을 쳐내며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지난주 일요일 경기에서 나온 20호 홈런 역시 보름간의 침묵끝에 터져 나온 한방이다. 이쯤되면 ‘오릭스 킬러’라 불러도 이상할것이 없는 김태균과의 인연이다. 부진에서 허덕일때 오릭스를 만나서 회복했던 김태균이지만, 사실 김태균에게 홈런을 허용했던 투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정이 딱한(?) 선수들이다. 김태균에게 1호 홈런을 허용했던 콘도는 지난해 퍼시픽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중 평균자책점 꼴찌(4.78)로 올해 오릭스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꿈꾸기 위해선 그의 부활이 절실하다. 콘도는 비록 김태균에게 일본진출 첫 피홈런을 허용한 투수로 이름을 남기게 됐지만 올 시즌 현재까지는 지난해보다 나은 성적(평균자책점 3.84)이다. 김태균에게 19호 홈런을 허용했던 코마츠의 사연도 기가 막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일본대표로 참가했던 코마츠는 이대호(롯데)에게 홈런을 얻어 맞은 투수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역시 굴곡진 프로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2008년 오릭스에 입단, 그해 15승(3패, 평균자책점 2.51)을 거두며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고 지난해 3월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투수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작년 코마츠는 1승 9패(평균자책점 7.09)라는 참담한 성적표로 단 일년만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올해 재기를 꿈꿨던 코마츠는 그러나 지금까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5승 8패, 평균자책점 4.73)으로 규정이닝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김태균에게 20호 홈런을 허용했던 좌완 야마모토 역시 올 시즌이 좋지 못하다. 비록 일요일 지바 롯데전에선 5이닝(3자책)을 던지며 승리투수가 되긴 했지만 이전까지 5연패를 이어왔을 정도로 기대만큼의 성적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투수다. 기교파 투수지만 공이 가벼워 피홈런을 허용하는 경기가 많은데 올해도 변함없이 19피홈런으로 이부문 2위에 올라와 있다. 평균자책점 5.38 은 지난해 보다(4.23) 높은 수치로 아직도 피안타 허용율이 높고 이닝이터형과는 거리가 멀어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 세명의 토종투수들은 팀의 에이스인 카네코 치히로와 더불어 오릭스에서 꾸준한 기회 그리고 기대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다. 일본진출 첫해인 김태균이 부진할때마다 홈런 탈출구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뜻밖의 인연이라고 할만 하다. ◆ 김태균이 강한팀 오릭스, 약한팀 라쿠텐 현재까지 김태균은 오릭스를 상대로 타율 .361(72타수 26안타) 6홈런 14타점의 호성적을 기록중이다. 슬럼프에서 탈출할때마다 오릭스가 있었으며 실제로도 유독 강했다. 지바 롯데 역시 오릭스를 상대로 13승 5패의 압도적인 상대전적을 기록중인데 앞으로 김태균은 순연된 경기까지 포함해 오릭스와 6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반면 현재 리그 꼴찌를 달리고 있는 라쿠텐을 상대로 해서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중이다. 타율 .154(52타수 8안타) 4타점, 홈런은 없다. 지바 롯데는 김태균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유독 라쿠텐전에서 빈타에 허덕였다. 덕분에 상대전적에서도 6승 10패로 열세인데 지난해부터 이어온 클리넥스 스타디움(라쿠텐 홈구장) 원정 14연패는 남은 경기에서 반드시 끊어야 한다. 올 시즌 지바 롯데가 1위 탈환을 목전에 두고 번번히 물러났던 것도 꼴찌 라쿠텐에게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균 역시 연속안타가 이어지지 못하고 끊긴 것도 라쿠텐전에서의 부진 때문이다. 아직까지 포스트시즌 진출팀의 윤각이 불투명하기에, 어차피 올 시즌은 시즌막판까지 가봐야 리그 순위가 결정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바 롯데는 다음달 센다이 원정 4연전(18-21일)이 기다리고 있다. 막판 이대결의 결과여부에 따라 최종순위가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기에 김태균 개인이나 팀으로서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원정길인 셈이다. 아직 김태균은 세이부와 라쿠텐전에서만 홈런을 쳐내지 못했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세이부와는 6경기가 남아 있는데, 포스트시즌을 대비해서라도 한국산 거포의 매운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홈런만 없을뿐이니 세이부전 성적(타율 .328)은 좋은 편이다. 누구나 특정팀에 강하고 약함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본진출 첫해에 김태균은 그 격차가 매우 심하다. 이제 올 시즌도 30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경기에서 약했던 팀에겐 복수를, 그리고 강점을 보였던 팀에게는 확실한 천적 타자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선거참패 ‘3鄭체제’ 종언… 4말5초 黨·靑·政 전면에

    ‘이상득·최시중·강만수·류우익(2008년), 정정길·정몽준·정운찬(2009년), 이재오·임태희·백용호(2010년)’ 이명박 대통령 주변의 권력 핵심부는 정치적인 사건에 따라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다. 때문에 임기 반환점을 맞는 현재의 권력지도도 정권 출범 때와는 많이 달라진 양상이다. 집권 첫해인 2008년에는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측근라인’이 권력의 핵을 이뤘다. 초대 내각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정운천 농림수산부 장관, 이영희 노동부 장관 등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독점했다. ‘원로그룹’이 포진하면서 내각 평균 연령도 62.4세로 지금에 비해 높았다. ●“대통령실장·정무수석 靑·국회 가교역” 청와대에서도 이 대통령의 ‘복심’인 류 대통령 실장을 비롯,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 측근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한나라당에서는 당시 안상수 원내대표, 이방호 사무총장 등 친이(이명박) 직계들이 실세였다. 이상득 의원도 막후에서 실세 후견인 그룹으로 파워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들 측근 라인은 이른바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S라인(서울시라인)’으로 대표되는 인사 잡음에 시달리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어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거세지면서 이 대통령은 두 차례나 대국민사과를 하는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2인자’ 이재오 전 의원은 낙선을 하고, 미국 워싱턴으로 외유를 떠난다. 취임 4개월 만에 류우익 실장과 곽승준·이주호 수석도 청와대를 떠난다.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정두언 의원과 마찰을 빚다 청와대를 나가게 된 것도 이 시점이다. 2009년 들어선 2기 이명박 정부의 최고위 핵심 자리는 대선 당시 캠프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쇠고기 파동의 위기 때 구원등판한 정정길 대통령실장,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직접 영입한 정몽준 의원, 지난해 9월 취임한 정운찬 국무총리 등 이른바 ‘3정(鄭)’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측근 색깔이 옅어졌고 연령대도 낮아졌다. 친박(박근혜)계인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 주호영 특임장관 등 정치인 출신 5명도 이때 입각했다. ‘한번 쓴 사람은 또 쓴다.’는 이 대통령의 인사철학에 걸맞게 1기 때 물러났던 측근 세력들이 다시 자리를 잡은 것도 이 무렵이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류우익 주중대사,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등이 권력 주변에 ‘복귀’한다. 올 들어서는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예상을 깨고 ‘참패’를 하면서 당·정·청 물갈이 폭이 훨씬 커졌다. 청와대에서는 ‘핵심 3인방’인 박형준 정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모두 옷을 벗었다.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정길 실장과 정몽준 대표가 물러난 데 이어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되면서 정운찬 총리까지 퇴진하면서 ‘3정 체제’는 1년도 못 가고 막을 내렸다. 이들의 빈자리는 ‘세대교체’ 요구가 거세지면서 ‘4말5초(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해당하는 젊은 인사들이 대신 메웠다. 지난달 14일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40대 중후반과 50대 초반인 나경원·정두언 최고위원이 각각 지도부에 입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와대에서도 만 54세 동갑인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과 백용호 국세청장이 각각 대통령실장과 정책실장에 임명되면서 ‘투톱체제’를 이뤘다. 이어 ‘8·8개각’을 통해 만 48세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전격 내정된 것이 여권 세대교체의 하이라이트다. 3기 내각과 청와대에는 집권 후반기 여의도와의 소통을 고려해 정치인 출신을 대거 배치한 것도 눈에 띈다. ●1~3기 박재완 중용… ‘MB맨’ 입증 3선 의원인 임태희 대통령실장, 역시 3선의 중진인 정진석 정무수석이 청와대에 자리를 잡고 국회와의 가교역할을 맡았다. 이재오 특임·진수희 보건복지·유정복 농림수산식품·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새로 내정되면서 무려 8명의 정치인 출신 장관(내정자)이 3기 내각에 포진하게 됐다. 박재완 후보자는 청와대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진정한 ‘MB맨’임을 입증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의 향후 행보다. 야권에서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의 역할을 빗대, ‘인턴 총리(김 후보자)’, ‘특임총리(이 후보자)’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이 후보자가 ‘정권 2인자’로서, 여야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설] 성공적 G20 개최 위해 ‘100일 정성’ 모으자

    제5차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100일 남았다. 11월11~12일 열릴 서울 정상회의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다. 이번 회의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우리는 과거 선진국들이 만든 정치·경제 질서의 ‘규칙’을 따라가야 했던 처지에서 이제는 그 ‘규칙’을 만드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세계 정치·경제의 새 패러다임을 짜는 주역으로 도약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전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회의로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상의 홍보 효과와 5억달러 이상의 경제 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과 국격(國格)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를 명실상부한 국운(國運) 상승의 호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하나가 돼야 한다. 먼저 정부는 회의 개최에 조금의 차질도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대규모 경호작전 부대를 편성해 특별경계를 강화하는 등 외형적 준비에도 빈틈이 없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내실을 기해야 한다. 우리가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회의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금융위기 이후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나온 은행세 도입 등 풀지 못한 주요 의제에 대한 해법을 만드는 데 우리의 적극적인 조율 능력을 보이도록 미리 꼼꼼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공식의제는 아니지만 장외무대에 북핵, 천안함 폭침 사건 등도 대화 테이블에 올려 북핵 정책과 남북문제에서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외교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이번 회의 유치가 일본과 프랑스 등의 견제를 받으면서 치열한 막후 외교전 끝에 가져온 외교의 승리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각국 주요 인사 1만여명이 참여한다니 우리 앞마당에서 대한민국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정치권은 국익을 위해 초당적인 자세로 성공적인 개최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국민들도 우리 역사에 또 하나의 쾌거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야 한다.
  • [서울 G20 정상회의 2010] ‘美·濠 지지 + TF팀 특파 설득전’ 주효

    G20 정상회의를 한국이 유치한 것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국 유치가 최종 확정되기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치열한 막후 작전이 있었다. 유치 과정에서 미국·영국·일본 등 각국의 국내 정치상황도 작용했으며, 이로 인해 각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막판까지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 대통령은 유치 직후 “총성 없는 전쟁터에 갔다 온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몇몇 주요국가들이 경쟁을 벌였고, 한국 개최에 대한 이들 국가의 견제도 심했다.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로 자리잡은 G20 회의를 주재한다는 것 자체가 국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실제 제1차 미국 워싱턴 회의(2008년 11월) 이후 일본과 호주가 차기 회의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2차 회의는 영국 런던(2009년 4월)에서, 3차 회의는 미국 피츠버그에서 각각 열렸다. 4차 회의는 캐나다에서 개최됐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개최 의사에 지지를 표시했다가 일본의 개최가 좌절된 뒤 자연스레 일본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미국과 호주의 도움도 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차 런던회의에서 한국이 내년에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는 비공식 입장을 표명, 사실상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이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호주는 그동안의 두 차례 회의에서 내년에는 한국에서 개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며 다른 국가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G20 의장단의 일원으로서 그동안 의제 선정과 정상선언문(코뮈니케) 작성 과정에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것도 한국 유치에 밑바탕이 됐다. 이 대통령은 특히 1차 회의부터 보호무역주의 반대 및 현 수준 동결(스탠드 스틸)을 제안해 회의 성명에 반영시켰다. 지금까지 진행된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내용 중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가 스탠드 스틸이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한국 유치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1월 워싱턴 1차 회의에서 귀국하자마자 G20 관련 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했다. 사공일 당시 대통령 경제특보에게 G20정상회의 기획조정위원장을 맡겨 이 문제를 전담시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국 개최를 설득하라는 특명도 내렸다. 사공일 위원장은 미국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독일·중국·일본 등 주요 G20 회원국을 직접 방문해 한국 개최에 대한 협조를 구하며 분위기를 무르익게 주도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선거 앞둔 日민주 ‘자중지란’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이 참의원 선거를 불과 10일 앞두고 심각한 적전분열을 보이고 있다. 간 나오토 총리가 소비세 10%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운 뒤 당 지지율이 하락하며 과반수(121석) 의석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에 부닥치자 당의 막후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집행부를 향해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7일 내놓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간 총리가 소비세 발언을 한 이후 내각 지지율이 50%로 떨어졌다. 지난 8일 출범 당시 64%에 달했던 지지율이 20일만에 무려 14%포인트나 하락했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도 35%에 머물렀다. 선거 정국이 불투명해지자 지난 2일 간사장직을 사퇴, 물러나 있던 오자와 전 간사장이 당의 공약 불이행을 공개적으로 따졌다. 최근 지원유세를 위해 에히메현과 미야기현을 찾은 자리에서 민주당이 참의원 선거의 공약에서 소비세 인상과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등 기존 공약을 축소하거나 수정한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소비세 인상론과 관련, “지난해 총선(중의원 선거)때 4년간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다.”면서 “국민과의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아동수당 지급철회에 대해서도 “아동수당 등을 공약으로 확정, 정권을 획득해 놓고 이제 와서 돈이 없다고 공약을 지킬 수 없다고 해서야 말이 되느냐.”며 간 총리를 겨냥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자와 전 간사장의 행보와 관련, 내각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당 안팎의 불만이 불거지자 자신의 당내 입지를 한층 강화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낳고 있다. 실제 계파 소속 의원들에 대한 유세만 돕는 등 독자적인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반드시 제가 미력이나마 기울여 약속대로 공약을 실현하겠다.”고 강조, 오는 9월말 실시될 당 대표 경선에서 권토중래를 꾀할 뜻도 분명히 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한국전쟁 名著]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 名著]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전후 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은 낡은 흑백사진이다. 호화찬란하지도, 역동적이지도, 극적 반전도 없는 재미없는 전쟁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이 모든 얘기들이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쟁쟁한 역사가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가 출판되기 전의 얘기다.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은 이 책에 대해 ‘기념비적인 책’이라고 정의했다. 부연한다면 미국인의 눈으로 본 걸작 한국전쟁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베트남전쟁보다 흥미가 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착각을 확실하게 불식시켜 준다. 방대한 문헌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을 정공법으로 조명하면서도 소설처럼 읽는 재미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책은 200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으며,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됐다. 4만 8000원이라는 가격보다 1082쪽이라는 분량 때문에 지레 질릴 수도 있다. 잠깐의 망설임만 극복하면 일사천리로 읽힌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전투와 작전묘사는 숨이 막힐 듯 생생하고, 전쟁의 막후에서 벌어지는 정치인, 고급 군인들의 권력투쟁은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이다. 60년 전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한 시점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된 국제정세가 60년이 지난 지금과 판박이라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적이 실감 난다. 학자들은 별로 환영하지 않는 눈치다. 흥미 위주의 문학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된 이유는 막강 화력의 미군이 중국 해방군에게 처절하게 패했을 뿐 아니라, 참전자들의 인간 스토리가 별로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돌아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색없다. 핼버스탬은 이 책의 출판을 30년 동안 구상했고, 10년 동안 집필했다. 참전용사들을 찾아 미국 구석구석을 뒤졌다. 책의 진가는 인터뷰 대상자 목록에서 나타난다. 그가 인터뷰했다고 이름을 밝힌 사람은 모두 130명이다. 이 중에는 알렉산더 헤이그 전 국무장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명예교수 등 유명인사도 있다. 대부분은 최전선에서 싸운 초급 장교이거나 사병들이었다. 저자는 후기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의 변두리에 사는 폴 맥기를 특별히 소개했다. 그는 지평리 전투 당시 소대장이었다. 저자는 “맥기는 55년 동안 내가 찾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 같았다.”고 했다. “일반대중이 얼마나 고귀한 이야깃거리를 가슴속에 숨겨두고 있는지 알았고, 그들을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을 기획하고 연출한 스탈린과 마오쩌둥, 두 공산 지도자는 물론 옛 소련 적군 소령계급장을 달고 평양에 나타난 김일성,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에서의 행적, 대륙에서 쫓겨난 장제스 등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책은 중국군과의 첫 교전으로 시작해 미국의 참전 배경으로 옮겨간다. 세계 최강의 부대 미군이 중국군에 얼마나, 어떻게 호되게 당했는지 낱낱이 알려준다. 미국인답게 워싱턴 내부 정가와 군부의 이야기가 압권이다. 한국전에서 동고동락한 맥아더, 리지웨이, 알몬드 등 세 장군의 애증 관계가 저자 특유의 저널리즘적인 서술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갈등과 알력이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을 읽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만 알려진 맥아더의 야망에 대한 분석은 새롭다. 족보까지 파헤치면서 맥아더의 허상을 밝혔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겨울 한반도에는 100년 만에 닥친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책제목은 하복차림으로 투입된 미군들이 중국군이나 인민군보다 ‘동장군’ 때문에 고생했다는 데서 따왔다. 50년 동안 21권의 저서를 남긴 핼버스탬은 베트남전쟁에서 실패한 미국의 이야기를 주로 썼다. ‘최고의 인재’는 베트남전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한 권이다. ‘콜디스트 윈터-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는 유작이다. 저자는 2007년 봄 마지막 퇴고작업을 마무리한 닷새 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미식축구에 관한 새로운 책을 준비하려고 캘리포니아로 가던 길이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1) 한국전쟁 발발 막전막후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1) 한국전쟁 발발 막전막후

    다시 유월이다. 60년 전 한반도를 선혈로 물들였던 한국전쟁 발발의 막전막후에서 남북한, 미국과 옛 소련 그리고 공산화된 중국 간의 이합집산과 동상이몽이 클라이맥스에 올랐던 바로 그 여름이다. 일갑자의 세월이 흐른 지금,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전쟁의 두 당사국과 주변 4강이 편을 갈라 맞서고 있는 풍경의 흑백판이다. 한국전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전쟁을 일으킨 발발자와 원인 그리고 전쟁의 성격에 대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한국전쟁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주변 4강의 지정학적 관계와 국제정세 속에서 발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신문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러시아연방 대통령문서보관소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한국전쟁 관련 문서발굴을 통해 전쟁의 실체에 한걸음 다가서려고 시도했다. 문서 속에는 한국전쟁의 총연출자인 스탈린과 동조자이자 막후 조종자였던 마오쩌둥, 각본을 썼지만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김일성이 노렸던 적화통일의 염원이 빛바랜 엽서처럼 남아 있다. 1949년 3월5일은 김일성에게 역사적인 날이었다. 김일성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정부대표단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마주 앉았기 때문이다. 소련군 장교출신의 풋내기 김일성이 절대적 독재자에게 첫선을 보인 날이다. 김일성으로서는 우상 스탈린으로부터 전쟁 승인과 지원을 이끌어낼 절호의 기회였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 비밀문서는 겉으로는 경제협력, 문화교류 확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전쟁준비를 위한 소련의 군사 및 군비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월4일 평양에서 외무성에 보낸 전문 중에는 ‘2월3일 남조선 경비대가 38선을 넘어와 북한 경비대와 교전 끝에 격퇴됐다. ’는 내용의 문서가 있다. 4월20일 소련 국방상이 스탈린에게 보낸 38선 상황에 대한 극비보고서에서도 ‘남한의 38선 침범행위는 도발적이며 체계적이다. 올 들어 지난 15일까지 모두 37건의 침범사례가 있었다. 발포는 남한이 시작했다. 남한군의 38선 집결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보고했다. 회담을 전후해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1946년 대구폭동과 1948년 제주 무장봉기, 여수·순천반란사건 등으로부터 한숨을 돌린 이승만 대통령은 38선 부근에 국군을 집중적으로 배치했으며 시중에는 ‘8월 북벌론’이 팽배해 있었다. 첫 회담에서 스탈린은 남한에 미군이 얼마나 있으며, 남한군의 규모와 남한군을 두려워하는지 여부, 희망하는 차관액수 등등에 대해 김일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일성은 2만명의 미군이 있으며, 남한 군대는 6만명이고, 남한군보다 북한군이 강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스탈린은 빨치산의 남한 군부 침투를 주문했으며 동석한 박헌영은 ‘침투를 시켰지만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스탈린은 38선 충돌상황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스탈린은 또 ‘김일성, 박헌영 둘 다 전보다 살이 많이 쪄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두 사람이 1946년 여름 모스크바를 방문한 사실을 염두에 둔 얘기다. 이후 스탈린은 ‘ 첫째, 북한군은 남한군대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지 못하며 수적으로도 뒤진다. 둘째, 남한에 있는 미군이 개입할 우려가 있다. 셋째, 38선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협정이 유효하다.’는 이른바 ‘3대 남침 불가론’을 내세워 김일성의 전쟁의지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김일성의 데뷔는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스탈린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김일성은 항일 유격전에서 일본군이 가장 체포하고 싶어 하는 게릴라 지휘관 출신이었다. 1942년 소련군에 입대해 1945년 평양에 지도자로 나타났을 때 적군 군복에 소령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는 중국보다 소련을 후원자로 선택한 스탈린 추종자였다. 그는 ‘나는 스탈린 동지에게 충실한 공산주의자이며, 나에게 스탈린은 바로 법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를 파헤친 최신작 ‘콜디스트 윈터’에서 스탈린이 김일성을 좋아한 이유를 ‘김일성의 지도력이 소련군보다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인 역량과 지도력이 뛰어났다면 마음대로 다루기 어려웠을 테니 당연했다. 다소 경력이 부족하더라도 미화시킨 다음 권좌에 앉히면 그만.’이라고 분석했다. 김일성은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마오쩌둥에게 빌붙기 전까지 스탈린의 입맛에 맞게 움직였다. 김일성은 평양주재 스티코프 소련대사를 구워삶는 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스티코프는 남한의 북침 가능성이 크며, 북의 준비는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한 전문을 스탈린에게 계속해서 보냈다. 스탈린은 이 같은 스티코프의 언동에 대해 경고장을 보냈을 정도다. 스탈린은 북한의 선제공격이 미국과의 전면전을 유발할지 모른다면서 몸을 사렸다. 스탈린은 스티코프에게 ‘전쟁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남한이 먼저 북한을 공격하는 경우밖에는 없다.’라며 남한이 공격해 올 때까지 자제토록 지시했다. 김일성의 다음 행로는 마오쩌둥 설득에 맞춰졌다.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주석에 취임한 다음 날 소련과, 나흘 뒤 북한과 각각 국교를 맺었다. 김일성은 1949년 4월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일을 보내 원조의사를 떠봤다. 베이징 지도자의 답은 ’선제공격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만 ‘필요하면 중국군 조선인 사단 2개를 지원해 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검은 머리이니까 중국 해방군인지 북한 인민군인지 분간을 못 할 것’이라는 희망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이때만 해도 김일성은 신생 중국을 얕봤다. 소련에 매달렸고, 중국의 도움은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전쟁을 통해 입지를 다지려던 김일성은 끈질겼다. 1950년 4월 한 달 동안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스탈린과 세 차례 만났다. 마오쩌둥의 개입 의사를 전해 들은 스탈린의 마음도 움직였다. 김일성은 ‘전쟁이 나도 미국은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20만명의 공산당원들이 들고 일어나 북한을 지지할 것’이라고 허풍을 쳤다. 스탈린은 마침내 ‘북한군을 38선에 집결시키고서 남한에 대해 평화통일을 제의할 것, 남한이 거부하면 옹진반도를 점령하되 남한이 반격하면 전선의 폭을 넓혀 나간다.’는 이른바 ‘3단계 작전지침’을 제시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AV토르쿠노프 총장은 저서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에서 “전면전 허용은 아니었다.”라고 분석했지만 김일성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뜸을 들일 의사가 없었다. 마오쩌둥도 합류했다. ‘미국이 개입한다면 중국도 북한에 군대를 보낸다.’는 것이 마오쩌둥의 기본 생각이었다. 마오쩌둥은 1949년 12월16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석 달 가까이 체류하면서 스탈린과 만났다. 그 때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혁명에 성공한 영웅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숱한 공산주의 국가 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스탈린의 고희연에 참석, 장기집권을 축하하도록 초대받았을 뿐이었다. 두 공산주의 국가 거목 사이에는 불화가 싹트고 있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에 따르면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전혀 믿지 않았다. 스탈린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기보다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고마워하는 단일 공산국가로 통일되기를 바랐다. 또한 일본에 맞설 정도로 강해지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일본 동양학원대학 주지안롱 교수는 저서 ‘모택동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에서 중국의 참전이유를 ‘첫째, 미국 7함대의 타이완해협 파견을 대중국 선전포고로 간주했다. 둘째, 한반도 개입이 국내 정치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셋째, 미군이 한반도 북부에 진군하면 중국 동북지역이 위협에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전쟁 전문가인 선즈화 화동사범대 교수는 ‘미국의 침공을 저지하고자 미·중대결의 전장으로 한반도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본토 원자폭탄투하설을 입에 올린 맥아더 장군의 쇼맨십도 마오쩌둥의 참전의지에 불을 붙였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책은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면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간 일이었다. 마오쩌둥은 미국의 원자폭탄을 종이호랑이로 깎아내렸다. 인도의 네루 수상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1000만~2000만명의 인명피해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라고 호언장담했다. 공개된 러시아 비밀문서를 유심히 살펴보면 공산진영 세 나라 지도자의 성격과 품계가 잘 나타난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직접 지시하기보다는 평양주재 대사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썼다. ‘김일성에게 문서를 읽어주고 나서 베껴가는 것은 허용하지만 문서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마오쩌둥 역시 스탈린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갔다. 문서의 서두는 스탈린의 암호명인 ‘필리포프 동지’로 시작했고, ‘귀하의 검토와 의견을 바란다.’라고 마무리했다. 또 ‘볼셰비키적 경의를 표하며 모택동’이라고 썼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국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마오쩌둥은 스탈린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휴전교섭 지침을 스탈린에게 의뢰한 1951년 6월30일자 전보에서 마오쩌둥은 ‘ 귀하에게 나의 의견을 전한다. 검토 후 김일성에게도 직접 지시하시기 바란다. 귀하가 김일성과 접촉하고 나서 나에게도 알려주기 바란다.’라고 썼다. 의례적인 칭송은 사용하지 않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스탈린은 물론 김일성과 공산진영에서 ‘무시 못할 둘째 형’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이 줄기차게 주장한 ‘남침공격’을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결국 허락했지만 상호 담보를 원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베이징 지도자의 지원을 구하라고 지시했다. 1950년 5월13일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베이징 장도에 올랐다.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 등 공산진영 3자의 전쟁 합의는 이날 성사됐고, 한국전쟁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제재결의안 배제… 中 동참 유도

    앞으로 진행될 천안함 사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논의의 열쇠는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인 중국이 사실상 쥐고 있다. 중국이 지금까지 대북제재 요구에 동의를 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문책에 동의할지, 그리고 동의한다면 어느 정도 수위로 할지에 따라 북한이 맞을 ‘회초리’의 종류와 시기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정부 주변에서는 중국의 입장 변화가 좀처럼 감지되지 않았다는 관측과 중국이 명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묵시적으로 비교적 약한 수준의 안보리 제재에 동의해 주겠다는 신호를 한국 측에 줬다는 추측이 엇갈리고 있다. 안보리 제재의 유형은 크게 결의안 채택과 의장성명 채택 2가지가 있다. 결의안 채택은 안보리 이사국들의 표결을 거쳐야 하는 것이고 의장성명은 표결 없이 이사국 간 막후 합의(Consensus)로 채택되는 것이다. 결의안은 다시 구체적인 제재방안을 담은 ‘제재결의안’과 제제방안 없이 의견(규탄 등)만 담은 ‘일반결의안’으로 나뉜다. 따라서 제재결의안이 가장 세고 그 다음 일반결의안, 의장성명 순으로 강도가 약한 징벌로 인식된다. 우리 정부는 제재결의안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채택된 결의안 1874호가 워낙 완벽하기 때문이다. 일반결의안은 좀더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인식된다. 다만 표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사국들의 찬성을 끌어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의장성명은 좀 약해보이지만 표결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좀더 강력한 문구를 넣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중국을 설득하기는 의장성명이 더 유리하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하토야마·오자와 동반 사퇴] 오자와 향후 거취는

    │도쿄 이종락특파원│민주당의 최고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68) 간사장이 2일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함께 퇴진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고 오자와 간사장이 정치적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여기는 정치인이나 국민들은 없다. 킹메이커, 선거 귀재, 정치 9단이라는 수식어가 오자와 간사장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해 ‘8·30 총선거’를 총지휘, 정권교체를 이룬 실질적인 주역인 데다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에 계파의원들이 150여명에 이른다. 당내 최대 계파다. 하토야마를 총리로 옹립한 것도 오자와 간사장이다. 47세 때 당시 집권당인 자민당의 간사장을 맡았을 정도로 정치력도 남다르다. 오자와 간사장은 이미 정치적 스승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로부터 막후정치를 체득한 터다.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고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갖춰진 셈이다. 오자와 간사장은 “정권을 맡은 정당으로 정치공백이 생겨서는 안 되는 만큼 가능한 한 빨리 차기 리더를 선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간사장으로서의 마지막 책무로도 보이지만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jrlee@seoul.co.kr
  • 김태균-임창용 맞대결 이뤄질까?

    김태균-임창용 맞대결 이뤄질까?

    퍼시픽리그 2위인 치바 롯데가 야쿠르트 스왈로즈(21-22일)를 만난다. 이번 2연전은 선발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마운드 운영에 비상이 걸린 치바 롯데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야쿠르트의 대결이란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또한 김태균과 임창용의 맞대결이 이뤄질수 있는가도 관심거리다. 치바 롯데는 그동안 선발한축을 담당했던 ‘미래의 에이스’ 카라카와 유키가 오른손 중지 골절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투수 로테이션상 19일(주니치전)경기가 카라카와의 등판일이었지만 중간계투인 빌 머피가 그를 대신해 마운드에 올랐다. 이렇게 되면 지난 요미우리전(15일)에 선발로 등판했던 나루세 요시히사가 하루 앞당겨 21일 경기에 선발로 출격할 것으로 보이며 22일은 오미네 유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야쿠르트는 선발진들의 문제보다는 터지지 않는 타선이 팀을 최악으로 내몰고 있다. 19일 경기(세이부전)에서 다잡은 경기를 놓친 야쿠르트는 교류전 들어와 단 1승도 없이 6연패를 기록중이다. 교류전 성적 꼴지는 물론 13승 1무 29패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것. 특히 이날 경기에서는 믿었던 마무리 임창용이 9회말에 끝내기 안타(카타오카 야스유키)를 허용하며 팀 연패를 끊지 못한것이 컸다. 이날 선발로 등판한 이시카와 마사노리는 개막후 지금까지 타선의 도움없이 6경기 패전투수가 되는 불운 속에 시즌 첫승을 노렸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팀 분위기도 최악인 상황. 야쿠르트의 부진 원인은 기록으로도 쉽게 알수 있다. 팀평균자책점은 3.57로 매우 준수한 편이지만 팀타율은 .236으로 양리그 통틀어 최하위다. 교류전에 들어와서는 팀타율이 .177에 머물 정도로 빈타에 허덕이고 있다. 한경기에서 1득점을 올리기도 버겨울 정도인데 더 큰 문제는 뚜렷한 반전을 이끌어 낼만한 것이 없다는데 있다. 이미 시즌을 포기할정도가 된 야쿠르트는 이번 치바 롯데와의 2연전이 올 시즌 운명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야쿠르트전에서 김태균이 상대할 투수는 토니 바넷(21일), 나카자와 마사토(22일)가 될것으로 전망된다. 바넷은 올 시즌 야쿠르트가 야심차게 영입한 외국인 투수. 150km에 육박하는 포심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일본야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5번의 선발등판 동안 승리없이 3패만 기록중이어서 김태균의 먹잇감으로서는 안성맞춤이다. 김태균 입장에서는 바넷이 다양한 변화구를 지니고 있지만 제구력이 좋지 못해 몰리는 실투가 자주 들어 온다는점을 인식하고 타석에 들어섰으면 싶다. 지금까지 김태균의 페이스를 봤을때 바넷을 상대로 홈런을 기대해봐도 충분할듯 보인다. 올 시즌 바넷은 7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37.1이닝을 던지며 2승 3패(평균자책점 5.06)를 기록중이다. 최근 2경기 연속 5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도 눈여겨봐야할 대목이다. 22일 경기에서 맞붙는 나카자와는 그나마 야쿠르트 선발진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투수중 한명이다. 토요타 자동차를 거쳐 올해 야쿠르트에 입단한 나카자와는 좌완투수 특유의 떨어지는 슬라이더가 일품인 선수다. 리그 평균자책점 1위(1.65)에 올라와 있을 정도로 핀포인트를 공략하는 제구력 역시 수준급이다. 현재까지 3승(43.2이닝, 2패)에 불과한 성적이지만 좀처럼 연속안타를 허용하지 않으며 맞춰 잡는 피칭이 능구렁이와 같은 투수다. 그가 좋은 투구내용에도 불구하고 3승 밖에 없는 것도 팀타선의 도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8일 주니치전에서는 8.2이닝동안 1실점하며 호투했지만 패전투수가 됐고 소프트뱅크와의 교류전(15일)에서도 7이닝동안 2실점으로 틀어막았지만 역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나카자와를 보면 야쿠르트의 팀타선이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을정도다. 나카자와를 상대로 김태균은 불리한 볼카운트까지 오기전, 빠른 공격으로 승부할 필요가 있다. 그와 볼카운트 승부를 하다 헛방망이를 돌리기에 바빴던 주니치의 강타선을 감안해보면 초구라도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오는 공을 노린다면 충분히 좋은 타구를 생산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김태균은 타율 .308(8위) 홈런 12개(2위) 46타점(1위)을 기록중에 있다. 홈런1위인 호세 오티즈(14개,소프트뱅크)가 잠시 주춤했던 방망이를 조율하고 있는 지금, 김태균의 방망이도 뒤쳐지지 않아야할 시점이다. 김태균은 최약체 야쿠르트를 상대로 타격상승세를 이어갈수 있을까. 그리고 임창용을 만날수 있을까. 팀 연패를 끊어야 하는 임창용과 타격페이스를 지속해야할 김태균. 한국팬들에겐 결코 놓칠수 없는 2연전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개막전 선발도 어려운 이승엽…왜 이렇게 됐나?

    개막전 선발도 어려운 이승엽…왜 이렇게 됐나?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이승엽(요미우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승엽은 센트럴리그 개막일(26일)이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일본진출 후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출전이 어렵게 됐다. 요미우리로 이적해온 2006년부터 ‘개막전 4번타자’ 유무에 관심이 쏠리던 시기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와 같은 일이다. 지난해 압도적인 전력으로 리그 3연패와 일본시리즈까지 차지했던 요미우리의 올시즌 화두는 투수력이다. 10승이 보장됐던 좌완 타카하시 히사노리가 미국으로 떠난 공백을 지난해까지 필승불펜으로 활약했던 야마구치 테츠야가 대신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선발진의 안정감은 떨어져 보인다. 외국인 투수 세스 그레이싱어의 부상과 지난해 일취월장한 위르핀 오비스포가 제자리를 찾는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딕키 곤잘레스, 우츠미 테츠야, 토노 순, 후지이 슈고, 야마구치를 뒷받침 해 줄 선발진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부상치료차 미국에 가있는 그레이싱어는 늦어도 5월 중순, 스프링캠프 기간 발목부상을 당했던 오비스포는 4월 중순을 1군복귀 시점으로 잡고 있어 당초 요미우리가 구상했던 ‘6선발 로테이션’은 물건너 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레이싱어와 오비스포가 돌아오면 그렇지 않아도 1군엔트리에 등록할수 있는 외국인 선수(4명) 제한으로 이승엽은 설 곳이 사라진다. 물론 시즌 초반부터 맹타를 휘두르면 이러한 걱정은 사라지겠지만 현재까지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 이승엽은 개막전부터 벤치를 지킬것이 확실해졌다. 부상선수들이 돌아올 때까지 자신의 입지를 다질수 있는 여건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개막전에 선발로 출전할 것이 유력시 되는 2루수 에드가 곤잘레스의 주전입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시범경기에서 폭발력 있는 타격으로 2년여의 공백에 따른 우려를 날려버린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이승엽을 대신해 1루 자리를 맡을게 기정사실인 상황. 개막전 선발투수가 확실한 곤잘레스와 마무리 투수인 마크 크룬, 2루수 곤잘레스, 이승엽까지 이렇게 4명의 외국인 선수 등록은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포화 상태에 있는 외야수 자원을 감안할때 설사 시즌에 들어가서 타카하시가 부진하더라도 이승엽이 그를 대신해 1루 자리를 맡을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는 말도 안될 정도로 전력이 강한 요미우리 팀 사정도 이승엽을 더욱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스 라미레즈, 카메이 요시유키, 마츠모토 테츠야, 스즈키 타카히로, 타니 요시토모, 쵸노 히사요시까지 이 6명의 선수들은 외야수 자원이다. 현재까지는 라미레즈-마츠모토-카메이가 개막전에 선발로 출전할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스즈키와 타니가 다른팀에서 뛰고 있다면 백업이 아니라 얼마든지 주전으로 활약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이다. 백업전력 치고는 사치에 가까운 선수구성이다. 쵸노는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안고가야 할 신인선수다. 이미 시범경기에서 날카로운 방망이 실력을 선보인 쵸노는 주전으로 뛰지는 않겠지만 시즌내내 1군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원래 외야수였던 타카하시가 1루로 돌아서게 된 것도 외야를 볼 수 있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1루는 카메이도 볼수 있고,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 퍼시픽리그와의 교류전이 되면 경우에 따라서 라미레즈가 1루를 맡을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승엽이 없어도 얼마든지 그를 대신할수 있는 선수가 널린게 올시즌 요미우리의 팀 전력이다. 요미우리 그룹은 시즌을 앞둔 23일, 후원회 성격의 재계모임 행사를 가지며 올해 요미우리 구단의 선전을 당부했다. 이자리에서 ‘일본 우익의 거두’ 로 불리는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의 행동이 일본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와타나베는 허리부상으로 2년만에 돌아온 타카하시의 시범경기 성적까지 정확히 알고 있을 정도로 팀 간판타자의 복귀를 반겼는데 예전부터 타카하시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던 와타나베의 이러한 모습은 전혀 이상한게 아니다. 요미우리는 타카하시가 2007년 시즌 후 FA 자격을 획득했음에도 계약을 하지 않고 눌러앉힌 구단이다. 돈이 문제가 아닌 평생 ‘요미우리 맨’으로 미리 점찍어둔 타카하시는 됴쿄 명문 게이오 대학을 나온 프랜차이즈 출신이기 때문이다. 요미우리는 1936년 후지모토 사다요시 제 1대 감독부터 지금의 하라 타츠노리까지 프랜차이즈 출신 외에 감독을 맡은 전례가 없는 팀이다. 타카하시가 현역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라 감독의 대를 이어 훗날 요미우리 감독감으로 점찍었다는 이야기는 와타나베의 입을 통해 전파된 소문이다. 상식적인 정서로는 이해할수 없는 일이지만 일본이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요미우리 구단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타카하시가 부상에서 완치돼 팀에 복귀하는 순간부터 이미 이승엽의 1루자리는 주인이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타카하시는 시범경기동안 타율 .469 홈런4개를 기록하며 와타나베의 기대에 부응했다. 올해로 요미우리와의 계약이 종료되는 이승엽은 1루 포지션 외에는 맡을 곳이 없기에 타팀으로의 이적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본다. 물론 그의 높은 연봉이 부담스럽지만,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신의 명예를 감안할때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는 처지가 계속될수 밖에 없다. 요미우리 팀의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 지금 이승엽은 팀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수라는 인상이 짙다.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은 누구? 요미우리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룹과 야구단의 관계가 이상하리만치 독특한 구단이다. 다른 구단이 현장과 프론트 그리고 구단 고위층을 삼권 분리해 가며 각자의 위치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데 반해, 요미우리는 프론트의 입김, 더 정확히 말해 구단 고위층의 말한마디에 따라 현장의 수장인 감독입지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간섭이 심한 구단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신문 회장이다. 와타나베는 일본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항간에서는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데 2007년에 자민당의 후쿠다와 민주당의 오자와의 밀실야합을 추진했을 정도다. 이런 그를 두고 요미우리는 일본우익의 정신적 지주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요미우리의 매시즌 목표는 우승이다. 물론 다른팀들이라고 우승에 대한 목표가 없지는 않겠지만 요미우리는 우승 이외의 성적은 실패한 시즌으로 규정해버릴 만큼 우승지상주의를 외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지금의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요미우리에서만 두번째 감독을 맡고 있다. 그의 스승이자 요미우리 종신감독인 나가시마 시게오가 2001년을 끝으로 물러난 후 감독직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하라 감독은 감독 첫해(2002년)에 우승을 차지한 후 이듬해인 2003년 리그 3위의 성적을 거두자 가차 없이 경질됐다. 후임으로 호리우치 쓰네오를 감독직에 올렸는데 당시 와타나베 회장과 하라감독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호리우치 감독이 물러나고 하라가 다시 감독으로 복귀할수 있었던 것은 당시 감독을 맡을만한 요미우리 출신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으로 요미우리 야구는 감독이 하는게 아니라 와타나베 회장이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장 간섭에 있어서만큼은 상상을 초월한지 오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혹독한 데뷔’ 김태균ㆍ이범호의 日야구 숙제는?

    ‘혹독한 데뷔’ 김태균ㆍ이범호의 日야구 숙제는?

    우여곡절 끝에 나란히 첫 안타(22일)를 신고한 김태균(치바 롯데)과 이범호(소프트뱅크)에게 이번 3연전은 자신들의 야구인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특히 김태균은 개막전 4연타석 삼진과 이튿날(21일) 2번째 타석까지, 6연속 삼진을 당하며 체면을 구겼는데 국가대표 4번타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부진이었다. 이범호 역시 3차전에서 두개의 안타(2루타 포함)를 생산하긴 했지만 이미 승패가 기운 상황에서 나온 것들이라 큰 의미는 부여하긴 힘들다. 이번 퍼시픽리그 개막 3차전을 통해 본 김태균과 이범호는 아직 일본야구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숙제를 남겼다. 여기에는 향후 팀내 상황과 경기일정 등을 감안할때 다시한번 가파른 오르막길이 놓여 있는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먼저 김태균은 굉장히 불운했던 리그 일정도 그의 부진과 맞물렸다. 타격은 사이클이 있어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타자가 좋은 성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타격감이 상승하는 시간을 오래 가져가야 하며 그 상승이 끝났을때는 떨어지는 감각을 빨리 회복시키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3할의 예술’ 의 저자인 찰리 라우(전 화이트삭스 타격코치)는 “타격의 상승세가 지속되면 곧 다가올 슬럼프를 준비하라.” 라는 멋진 명언을 남긴바 있다. 김태균이 시범경기 동안에 보여줬던 불방망이(타율 .342 홈런2개)는 자신의 타격감이 떨어졌던 시점에 이르러 시즌이 시작됐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는 마지막 시범경기였던 히로시마전(16일)에서 무안타를 기록한 후 무엇이 마음에 걸렸던지 특타를 자청하며 타격 감각을 유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개막후 타격 사이클의 하락이 김태균을 어렵게 했던 원인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개막전이 시작된 후 일본 특유의 분석야구가 김태균을 힘들게 했다는 말도 맞지만 야구는 사람이 하는 운동이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있더라도 투수가 마운드에서 분석한대로 투구를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김태균 역시 경기를 치를수록 상대해 본 투수들에게 대한 분석이 가능해진다는 뜻도 되기에 이점에 있어서는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김태균을 압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하나 불운했던 것은 두번째 경기에서 ‘좌완 팜볼러’ 호아시 카즈유키를 만났다는 점이다. 개막전에서 에이스 와쿠이 히데아키의 투구에 악몽을 경험했던 김태균으로서는 가능하면 좀더 수월한 상대를 두번째 경기에서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싶다. 타격감 회복과 일본야구에 대한 낯설음을 극복하는게 무엇보다 시급했던 김태균이었기 때문이다. 호아시는 자국내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특급’ 선발투수로 분류되는 선수가 아니다. 최고 130km대 후반을 겨우 찍는 포심패스트볼과 팜볼 외에 커브, 체인지업의 구종이 전부인 투수다. 체인지업도 2007년 부상후 재활을 거치면서 급작스럽게 익힌 구종이라 실전에서는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김태균 입장에서 보면 호아시의 팜볼은 마구나 다름없는 공포였을 것이다. 국내에서 팜볼을 던지는 투수가 KIA의 윤석민이다. 하지만 윤석민 역시 실전에서는 거의 던지지 않을 정도로 구사력이 낮은 편이다. 한국에서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공에 대처해야 했을 김태균의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문제는 이제 지나간 세이부전이 아닌 주말 3연전에서 맞붙게 될 니혼햄전이다. 퍼시픽리그는 이번주 주중 경기를 쉬고 금요일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리그일정을 시작하는데 투수 로테이션상 소프트뱅크와의 개막전에서 선발로 등판했던 다르빗슈 유가 치바 롯데전(금요일)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세이부가 자랑하는 ‘특급 선발 3인방’과의 대결에서 벗어난가 싶더니 ‘일본 제1의 에이스’ 라는 다르빗슈가 김태균 앞에 산처럼 가로막혀 있는 형국이다. 김태균은 시범경기에서 다르빗슈를 상대로 초대형 홈런포를 터뜨린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르빗슈는 모두가 알고 있듯,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경기가 없는 3일동안 김태균이 얼만큼 자신의 타격컨디션을 회복할지가 니혼햄전은 물론 올 한해 김태균의 성적을 좌우할수도 있다고 본다. 이범호 역시 비록 니혼햄과의 세번째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더 검증절차가 남아 있다. 개막전에서 다르빗슈를 상대했던 이범호는 두번째 경기에선 니혼햄의 좌완 에이스인 타케다 마사루에게 안타를 뽑아내지 못했다. 이 두선수들은 니혼햄의 실질적인 원투펀치로서 아직 기량을 확인 받아야할 외국인 선발투수들을 제외하면 니혼햄이 가장 내세우는 투수들이다. 3차전 니혼햄의 선발투수였던 외국인 투수 바비 케펠이 초반에 물러나 상대하지 못했지만 이후 이범호는 중간투수들인 베테랑 키다 이사무에겐 볼넷, 첫안타는 카나모리 타카유키, 2루타는 우완 사이드암 투수인 에지리 신타로에게 뽑아낸 것이다. 김태균과 마찬가지로 톱레벨급 투수들과의 대결에서 보여준 것이 아직 없다는 말이다.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서고 있는 이범호는 팀내 상황으로만 놓고 봤을때 김태균에 비해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다. 지난해까지 소프트뱅크의 지명타자는 베테랑 마츠나카 노부히코의 몫이었다. 오프시즌동안 무릎수술을 받았던 마츠나카는 아직 몸이 덜 만들어져 1군에 등록돼 있지 않지만 몸상태만 정상으로 돌아오면 언제든지 이범호의 자리를 대신할수 있는 타자다. 박빙의 승부가 벌어졌던 개막전과 두번째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이범호로서는 좀더 분발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범호 역시 김태균과 마찬가지로 금요일 홈경기(야후돔, 오릭스전)에서 만나게될 투수가 보통이 아니다. 라쿠텐과의 개막전에서 이와쿠마 히사시와 맞대결해 완봉승을 거뒀던 카네코 치히로의 선발등판이 유력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카네코는 붕괴된 팀 마운드를 홀로 이끈 오릭스의 에이스다. 150km가 넘는 포심패스트볼이 매우 위력적이며 이와 더불어 타자의 허를 찌르는 ‘슬로커브’는 카네코만의 전매특허. 홈 개막전 선발출전이 유력시 되는 이범호 역시 매우 괴로운(?) 상대가 기다리고 있기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다. 김태균과 이범호는 이제 겨우 세경기를 치뤘을 뿐이다. 비록 비싼 수업료 치곤 혹독한 데뷔무대였지만 이들 스스로도 느낀 점이 분명히 있을거라고 본다. 퍼시픽리그는 특급투수들과 그 아래에 위치한 투수들간의 레벨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다. 이왕이면 주말 3연전에서 만나게될 특급투수들에게 한국야구의 매운맛을 보여주며 컨디션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대통령 취임 2주년] 3鄭 전면부상…이재오 등 6인회 여전히 막강

    [이대통령 취임 2주년] 3鄭 전면부상…이재오 등 6인회 여전히 막강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청와대, 국회, 정부에 포진해 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여전히 권부의 핵심 위치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 대선캠프의 최고지휘부인 ‘6인회’ 멤버들이다. 캠프 고문이었던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이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7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선 당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희태 의원은 지난해 재선을 통해 6선 의원이 되면서 국회의장을 노리고 있다. 김덕룡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대통령 국민통합특보로 한발 물러서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막후에서 이 대통령에게 정무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 미국으로 떠났던 이재오 전 의원은 지금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컴백해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2인자’ 논란에 휩싸여 있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몇년을 끌어도 해결이 안 되던 민원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조정과 현장실사 등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힌다. ●정총리 세종시 해결땐 유력 차기대권주자로 선거 캠프에서 일하진 않았지만, 집권 만 2년을 맞아 전면에 부상한 ‘3정(鄭)’은 특히 주목된다. 지난해 9월 지명된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충남 공주 출신의 정 총리는 ‘세종시 전도사’를 자처하며 충청권 민심을 다독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가 잘 해결될 경우 차기 대권주자로도 거론된다. 이 대통령이 영입한 정몽준 의원은 집권 2년을 맞는 한나라당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당내 기반은 약하지만, 이 대통령의 신임이 남다르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2008년 쇠고기 정국이라는 최대의 위기에서 긴급투입된 정정길 대통령 실장도 오래된 ‘측근’은 아니지만,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잘 추슬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분야에서는 집권 초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독주’하다가, 지금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한걸음 뒤로 빠졌다. 대신 윤진식 대통령 정책실장(경제수석 겸임), 사공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삼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모두 대선 캠프 때 눈에 띄게 나서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전문가’로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특히 윤 실장은 이 대통령의 경제철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윤 장관, 사공 위원장 등과 호흡을 맞춰 ‘MB노믹스’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공 위원장은 폭넓은 글로벌 인맥 등을 활용해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윤진식·사공일·윤증현 MB노믹스 삼두마차 정책 자문을 맡았던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 중 일부는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요직을 맡아 ‘실세’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번 썼던 사람을 믿고 다시 쓰는’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제정책연구원을 이끌었던 류우익 서울대 교수는 초대 대통령실장을 맡다가 촛불시위 때 물러났지만, 주중 대사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맡았다가 촛불시위로 물러났던 곽승준 고려대 교수도 미래기획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류 대사와 곽 위원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의 대표주자인 원세훈 전 서울시 부시장은 행정안전부 장관을 거쳐 국가정보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국정원 개혁에 앞장서며, 연내 개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지휘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바른정책연구원을 이끌었던 백용호 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뒤 국세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였던 ‘안국포럼’ 출신들은 상당수가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춘식 전 서울시 부시장을 비롯, 정태근, 백성운, 조해진, 강승규, 권택기, 김영우, 김용태 등 안국포럼 멤버 대부분은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주호영 의원은 특임장관으로,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임태희 의원은 노동부 장관으로 각각 내각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집권 2년차를 맞아 ‘수석 3인방’이 확실하게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인방은 박형준 정무, 박재완 국정기획, 이동관 홍보수석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들 3인방은 결국 MB정권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 대통령의 대학 선배인 김백준 총무기획관은 청와대 안살림을 챙기고 있다.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신재민 문화관광부 차관도 ‘실세’로서의 위치는 여전하다. 다만, 대선 당시 핵심 측근 중에서 이방호 전 사무총장과 정종복 전 의원은 아직 뚜렷한 요직을 맡지 못하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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