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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참패 ‘3鄭체제’ 종언… 4말5초 黨·靑·政 전면에

    ‘이상득·최시중·강만수·류우익(2008년), 정정길·정몽준·정운찬(2009년), 이재오·임태희·백용호(2010년)’ 이명박 대통령 주변의 권력 핵심부는 정치적인 사건에 따라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다. 때문에 임기 반환점을 맞는 현재의 권력지도도 정권 출범 때와는 많이 달라진 양상이다. 집권 첫해인 2008년에는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측근라인’이 권력의 핵을 이뤘다. 초대 내각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정운천 농림수산부 장관, 이영희 노동부 장관 등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독점했다. ‘원로그룹’이 포진하면서 내각 평균 연령도 62.4세로 지금에 비해 높았다. ●“대통령실장·정무수석 靑·국회 가교역” 청와대에서도 이 대통령의 ‘복심’인 류 대통령 실장을 비롯,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 측근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한나라당에서는 당시 안상수 원내대표, 이방호 사무총장 등 친이(이명박) 직계들이 실세였다. 이상득 의원도 막후에서 실세 후견인 그룹으로 파워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들 측근 라인은 이른바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S라인(서울시라인)’으로 대표되는 인사 잡음에 시달리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어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거세지면서 이 대통령은 두 차례나 대국민사과를 하는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2인자’ 이재오 전 의원은 낙선을 하고, 미국 워싱턴으로 외유를 떠난다. 취임 4개월 만에 류우익 실장과 곽승준·이주호 수석도 청와대를 떠난다.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정두언 의원과 마찰을 빚다 청와대를 나가게 된 것도 이 시점이다. 2009년 들어선 2기 이명박 정부의 최고위 핵심 자리는 대선 당시 캠프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쇠고기 파동의 위기 때 구원등판한 정정길 대통령실장,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로 직접 영입한 정몽준 의원, 지난해 9월 취임한 정운찬 국무총리 등 이른바 ‘3정(鄭)’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측근 색깔이 옅어졌고 연령대도 낮아졌다. 친박(박근혜)계인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 주호영 특임장관 등 정치인 출신 5명도 이때 입각했다. ‘한번 쓴 사람은 또 쓴다.’는 이 대통령의 인사철학에 걸맞게 1기 때 물러났던 측근 세력들이 다시 자리를 잡은 것도 이 무렵이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류우익 주중대사,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등이 권력 주변에 ‘복귀’한다. 올 들어서는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예상을 깨고 ‘참패’를 하면서 당·정·청 물갈이 폭이 훨씬 커졌다. 청와대에서는 ‘핵심 3인방’인 박형준 정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모두 옷을 벗었다.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정정길 실장과 정몽준 대표가 물러난 데 이어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되면서 정운찬 총리까지 퇴진하면서 ‘3정 체제’는 1년도 못 가고 막을 내렸다. 이들의 빈자리는 ‘세대교체’ 요구가 거세지면서 ‘4말5초(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해당하는 젊은 인사들이 대신 메웠다. 지난달 14일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40대 중후반과 50대 초반인 나경원·정두언 최고위원이 각각 지도부에 입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와대에서도 만 54세 동갑인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과 백용호 국세청장이 각각 대통령실장과 정책실장에 임명되면서 ‘투톱체제’를 이뤘다. 이어 ‘8·8개각’을 통해 만 48세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전격 내정된 것이 여권 세대교체의 하이라이트다. 3기 내각과 청와대에는 집권 후반기 여의도와의 소통을 고려해 정치인 출신을 대거 배치한 것도 눈에 띈다. ●1~3기 박재완 중용… ‘MB맨’ 입증 3선 의원인 임태희 대통령실장, 역시 3선의 중진인 정진석 정무수석이 청와대에 자리를 잡고 국회와의 가교역할을 맡았다. 이재오 특임·진수희 보건복지·유정복 농림수산식품·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새로 내정되면서 무려 8명의 정치인 출신 장관(내정자)이 3기 내각에 포진하게 됐다. 박재완 후보자는 청와대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진정한 ‘MB맨’임을 입증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의 향후 행보다. 야권에서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의 역할을 빗대, ‘인턴 총리(김 후보자)’, ‘특임총리(이 후보자)’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이 후보자가 ‘정권 2인자’로서, 여야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설] 성공적 G20 개최 위해 ‘100일 정성’ 모으자

    제5차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100일 남았다. 11월11~12일 열릴 서울 정상회의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다. 이번 회의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우리는 과거 선진국들이 만든 정치·경제 질서의 ‘규칙’을 따라가야 했던 처지에서 이제는 그 ‘규칙’을 만드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세계 정치·경제의 새 패러다임을 짜는 주역으로 도약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전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회의로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상의 홍보 효과와 5억달러 이상의 경제 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과 국격(國格)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를 명실상부한 국운(國運) 상승의 호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하나가 돼야 한다. 먼저 정부는 회의 개최에 조금의 차질도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대규모 경호작전 부대를 편성해 특별경계를 강화하는 등 외형적 준비에도 빈틈이 없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내실을 기해야 한다. 우리가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회의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금융위기 이후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나온 은행세 도입 등 풀지 못한 주요 의제에 대한 해법을 만드는 데 우리의 적극적인 조율 능력을 보이도록 미리 꼼꼼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공식의제는 아니지만 장외무대에 북핵, 천안함 폭침 사건 등도 대화 테이블에 올려 북핵 정책과 남북문제에서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외교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이번 회의 유치가 일본과 프랑스 등의 견제를 받으면서 치열한 막후 외교전 끝에 가져온 외교의 승리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각국 주요 인사 1만여명이 참여한다니 우리 앞마당에서 대한민국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정치권은 국익을 위해 초당적인 자세로 성공적인 개최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국민들도 우리 역사에 또 하나의 쾌거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야 한다.
  • [서울 G20 정상회의 2010] ‘美·濠 지지 + TF팀 특파 설득전’ 주효

    G20 정상회의를 한국이 유치한 것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국 유치가 최종 확정되기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치열한 막후 작전이 있었다. 유치 과정에서 미국·영국·일본 등 각국의 국내 정치상황도 작용했으며, 이로 인해 각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막판까지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 대통령은 유치 직후 “총성 없는 전쟁터에 갔다 온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몇몇 주요국가들이 경쟁을 벌였고, 한국 개최에 대한 이들 국가의 견제도 심했다.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로 자리잡은 G20 회의를 주재한다는 것 자체가 국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실제 제1차 미국 워싱턴 회의(2008년 11월) 이후 일본과 호주가 차기 회의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2차 회의는 영국 런던(2009년 4월)에서, 3차 회의는 미국 피츠버그에서 각각 열렸다. 4차 회의는 캐나다에서 개최됐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개최 의사에 지지를 표시했다가 일본의 개최가 좌절된 뒤 자연스레 일본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미국과 호주의 도움도 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차 런던회의에서 한국이 내년에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는 비공식 입장을 표명, 사실상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이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호주는 그동안의 두 차례 회의에서 내년에는 한국에서 개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며 다른 국가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G20 의장단의 일원으로서 그동안 의제 선정과 정상선언문(코뮈니케) 작성 과정에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것도 한국 유치에 밑바탕이 됐다. 이 대통령은 특히 1차 회의부터 보호무역주의 반대 및 현 수준 동결(스탠드 스틸)을 제안해 회의 성명에 반영시켰다. 지금까지 진행된 G20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내용 중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가 스탠드 스틸이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이처럼 한국 유치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11월 워싱턴 1차 회의에서 귀국하자마자 G20 관련 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했다. 사공일 당시 대통령 경제특보에게 G20정상회의 기획조정위원장을 맡겨 이 문제를 전담시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한국 개최를 설득하라는 특명도 내렸다. 사공일 위원장은 미국을 비롯해 영국·프랑스·독일·중국·일본 등 주요 G20 회원국을 직접 방문해 한국 개최에 대한 협조를 구하며 분위기를 무르익게 주도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선거 앞둔 日민주 ‘자중지란’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이 참의원 선거를 불과 10일 앞두고 심각한 적전분열을 보이고 있다. 간 나오토 총리가 소비세 10%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운 뒤 당 지지율이 하락하며 과반수(121석) 의석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에 부닥치자 당의 막후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집행부를 향해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7일 내놓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간 총리가 소비세 발언을 한 이후 내각 지지율이 50%로 떨어졌다. 지난 8일 출범 당시 64%에 달했던 지지율이 20일만에 무려 14%포인트나 하락했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도 35%에 머물렀다. 선거 정국이 불투명해지자 지난 2일 간사장직을 사퇴, 물러나 있던 오자와 전 간사장이 당의 공약 불이행을 공개적으로 따졌다. 최근 지원유세를 위해 에히메현과 미야기현을 찾은 자리에서 민주당이 참의원 선거의 공약에서 소비세 인상과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등 기존 공약을 축소하거나 수정한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소비세 인상론과 관련, “지난해 총선(중의원 선거)때 4년간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다.”면서 “국민과의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아동수당 지급철회에 대해서도 “아동수당 등을 공약으로 확정, 정권을 획득해 놓고 이제 와서 돈이 없다고 공약을 지킬 수 없다고 해서야 말이 되느냐.”며 간 총리를 겨냥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자와 전 간사장의 행보와 관련, 내각 지지율이 추락하면서 당 안팎의 불만이 불거지자 자신의 당내 입지를 한층 강화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낳고 있다. 실제 계파 소속 의원들에 대한 유세만 돕는 등 독자적인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반드시 제가 미력이나마 기울여 약속대로 공약을 실현하겠다.”고 강조, 오는 9월말 실시될 당 대표 경선에서 권토중래를 꾀할 뜻도 분명히 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한국전쟁 名著]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 名著]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전후 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은 낡은 흑백사진이다. 호화찬란하지도, 역동적이지도, 극적 반전도 없는 재미없는 전쟁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이 모든 얘기들이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쟁쟁한 역사가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가 출판되기 전의 얘기다.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은 이 책에 대해 ‘기념비적인 책’이라고 정의했다. 부연한다면 미국인의 눈으로 본 걸작 한국전쟁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베트남전쟁보다 흥미가 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착각을 확실하게 불식시켜 준다. 방대한 문헌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을 정공법으로 조명하면서도 소설처럼 읽는 재미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책은 200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으며,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됐다. 4만 8000원이라는 가격보다 1082쪽이라는 분량 때문에 지레 질릴 수도 있다. 잠깐의 망설임만 극복하면 일사천리로 읽힌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전투와 작전묘사는 숨이 막힐 듯 생생하고, 전쟁의 막후에서 벌어지는 정치인, 고급 군인들의 권력투쟁은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이다. 60년 전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한 시점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된 국제정세가 60년이 지난 지금과 판박이라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적이 실감 난다. 학자들은 별로 환영하지 않는 눈치다. 흥미 위주의 문학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된 이유는 막강 화력의 미군이 중국 해방군에게 처절하게 패했을 뿐 아니라, 참전자들의 인간 스토리가 별로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돌아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색없다. 핼버스탬은 이 책의 출판을 30년 동안 구상했고, 10년 동안 집필했다. 참전용사들을 찾아 미국 구석구석을 뒤졌다. 책의 진가는 인터뷰 대상자 목록에서 나타난다. 그가 인터뷰했다고 이름을 밝힌 사람은 모두 130명이다. 이 중에는 알렉산더 헤이그 전 국무장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명예교수 등 유명인사도 있다. 대부분은 최전선에서 싸운 초급 장교이거나 사병들이었다. 저자는 후기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의 변두리에 사는 폴 맥기를 특별히 소개했다. 그는 지평리 전투 당시 소대장이었다. 저자는 “맥기는 55년 동안 내가 찾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 같았다.”고 했다. “일반대중이 얼마나 고귀한 이야깃거리를 가슴속에 숨겨두고 있는지 알았고, 그들을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을 기획하고 연출한 스탈린과 마오쩌둥, 두 공산 지도자는 물론 옛 소련 적군 소령계급장을 달고 평양에 나타난 김일성,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에서의 행적, 대륙에서 쫓겨난 장제스 등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책은 중국군과의 첫 교전으로 시작해 미국의 참전 배경으로 옮겨간다. 세계 최강의 부대 미군이 중국군에 얼마나, 어떻게 호되게 당했는지 낱낱이 알려준다. 미국인답게 워싱턴 내부 정가와 군부의 이야기가 압권이다. 한국전에서 동고동락한 맥아더, 리지웨이, 알몬드 등 세 장군의 애증 관계가 저자 특유의 저널리즘적인 서술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갈등과 알력이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을 읽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만 알려진 맥아더의 야망에 대한 분석은 새롭다. 족보까지 파헤치면서 맥아더의 허상을 밝혔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겨울 한반도에는 100년 만에 닥친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책제목은 하복차림으로 투입된 미군들이 중국군이나 인민군보다 ‘동장군’ 때문에 고생했다는 데서 따왔다. 50년 동안 21권의 저서를 남긴 핼버스탬은 베트남전쟁에서 실패한 미국의 이야기를 주로 썼다. ‘최고의 인재’는 베트남전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한 권이다. ‘콜디스트 윈터-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는 유작이다. 저자는 2007년 봄 마지막 퇴고작업을 마무리한 닷새 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미식축구에 관한 새로운 책을 준비하려고 캘리포니아로 가던 길이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1) 한국전쟁 발발 막전막후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1) 한국전쟁 발발 막전막후

    다시 유월이다. 60년 전 한반도를 선혈로 물들였던 한국전쟁 발발의 막전막후에서 남북한, 미국과 옛 소련 그리고 공산화된 중국 간의 이합집산과 동상이몽이 클라이맥스에 올랐던 바로 그 여름이다. 일갑자의 세월이 흐른 지금, 천안함 사태를 둘러싸고 전쟁의 두 당사국과 주변 4강이 편을 갈라 맞서고 있는 풍경의 흑백판이다. 한국전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전쟁을 일으킨 발발자와 원인 그리고 전쟁의 성격에 대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한국전쟁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주변 4강의 지정학적 관계와 국제정세 속에서 발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신문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러시아연방 대통령문서보관소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한국전쟁 관련 문서발굴을 통해 전쟁의 실체에 한걸음 다가서려고 시도했다. 문서 속에는 한국전쟁의 총연출자인 스탈린과 동조자이자 막후 조종자였던 마오쩌둥, 각본을 썼지만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김일성이 노렸던 적화통일의 염원이 빛바랜 엽서처럼 남아 있다. 1949년 3월5일은 김일성에게 역사적인 날이었다. 김일성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정부대표단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마주 앉았기 때문이다. 소련군 장교출신의 풋내기 김일성이 절대적 독재자에게 첫선을 보인 날이다. 김일성으로서는 우상 스탈린으로부터 전쟁 승인과 지원을 이끌어낼 절호의 기회였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 비밀문서는 겉으로는 경제협력, 문화교류 확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전쟁준비를 위한 소련의 군사 및 군비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월4일 평양에서 외무성에 보낸 전문 중에는 ‘2월3일 남조선 경비대가 38선을 넘어와 북한 경비대와 교전 끝에 격퇴됐다. ’는 내용의 문서가 있다. 4월20일 소련 국방상이 스탈린에게 보낸 38선 상황에 대한 극비보고서에서도 ‘남한의 38선 침범행위는 도발적이며 체계적이다. 올 들어 지난 15일까지 모두 37건의 침범사례가 있었다. 발포는 남한이 시작했다. 남한군의 38선 집결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보고했다. 회담을 전후해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1946년 대구폭동과 1948년 제주 무장봉기, 여수·순천반란사건 등으로부터 한숨을 돌린 이승만 대통령은 38선 부근에 국군을 집중적으로 배치했으며 시중에는 ‘8월 북벌론’이 팽배해 있었다. 첫 회담에서 스탈린은 남한에 미군이 얼마나 있으며, 남한군의 규모와 남한군을 두려워하는지 여부, 희망하는 차관액수 등등에 대해 김일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일성은 2만명의 미군이 있으며, 남한 군대는 6만명이고, 남한군보다 북한군이 강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스탈린은 빨치산의 남한 군부 침투를 주문했으며 동석한 박헌영은 ‘침투를 시켰지만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스탈린은 38선 충돌상황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스탈린은 또 ‘김일성, 박헌영 둘 다 전보다 살이 많이 쪄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두 사람이 1946년 여름 모스크바를 방문한 사실을 염두에 둔 얘기다. 이후 스탈린은 ‘ 첫째, 북한군은 남한군대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지 못하며 수적으로도 뒤진다. 둘째, 남한에 있는 미군이 개입할 우려가 있다. 셋째, 38선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협정이 유효하다.’는 이른바 ‘3대 남침 불가론’을 내세워 김일성의 전쟁의지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김일성의 데뷔는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스탈린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김일성은 항일 유격전에서 일본군이 가장 체포하고 싶어 하는 게릴라 지휘관 출신이었다. 1942년 소련군에 입대해 1945년 평양에 지도자로 나타났을 때 적군 군복에 소령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는 중국보다 소련을 후원자로 선택한 스탈린 추종자였다. 그는 ‘나는 스탈린 동지에게 충실한 공산주의자이며, 나에게 스탈린은 바로 법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를 파헤친 최신작 ‘콜디스트 윈터’에서 스탈린이 김일성을 좋아한 이유를 ‘김일성의 지도력이 소련군보다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인 역량과 지도력이 뛰어났다면 마음대로 다루기 어려웠을 테니 당연했다. 다소 경력이 부족하더라도 미화시킨 다음 권좌에 앉히면 그만.’이라고 분석했다. 김일성은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마오쩌둥에게 빌붙기 전까지 스탈린의 입맛에 맞게 움직였다. 김일성은 평양주재 스티코프 소련대사를 구워삶는 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스티코프는 남한의 북침 가능성이 크며, 북의 준비는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한 전문을 스탈린에게 계속해서 보냈다. 스탈린은 이 같은 스티코프의 언동에 대해 경고장을 보냈을 정도다. 스탈린은 북한의 선제공격이 미국과의 전면전을 유발할지 모른다면서 몸을 사렸다. 스탈린은 스티코프에게 ‘전쟁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남한이 먼저 북한을 공격하는 경우밖에는 없다.’라며 남한이 공격해 올 때까지 자제토록 지시했다. 김일성의 다음 행로는 마오쩌둥 설득에 맞춰졌다.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주석에 취임한 다음 날 소련과, 나흘 뒤 북한과 각각 국교를 맺었다. 김일성은 1949년 4월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일을 보내 원조의사를 떠봤다. 베이징 지도자의 답은 ’선제공격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만 ‘필요하면 중국군 조선인 사단 2개를 지원해 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검은 머리이니까 중국 해방군인지 북한 인민군인지 분간을 못 할 것’이라는 희망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이때만 해도 김일성은 신생 중국을 얕봤다. 소련에 매달렸고, 중국의 도움은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전쟁을 통해 입지를 다지려던 김일성은 끈질겼다. 1950년 4월 한 달 동안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스탈린과 세 차례 만났다. 마오쩌둥의 개입 의사를 전해 들은 스탈린의 마음도 움직였다. 김일성은 ‘전쟁이 나도 미국은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20만명의 공산당원들이 들고 일어나 북한을 지지할 것’이라고 허풍을 쳤다. 스탈린은 마침내 ‘북한군을 38선에 집결시키고서 남한에 대해 평화통일을 제의할 것, 남한이 거부하면 옹진반도를 점령하되 남한이 반격하면 전선의 폭을 넓혀 나간다.’는 이른바 ‘3단계 작전지침’을 제시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AV토르쿠노프 총장은 저서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에서 “전면전 허용은 아니었다.”라고 분석했지만 김일성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뜸을 들일 의사가 없었다. 마오쩌둥도 합류했다. ‘미국이 개입한다면 중국도 북한에 군대를 보낸다.’는 것이 마오쩌둥의 기본 생각이었다. 마오쩌둥은 1949년 12월16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석 달 가까이 체류하면서 스탈린과 만났다. 그 때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혁명에 성공한 영웅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숱한 공산주의 국가 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스탈린의 고희연에 참석, 장기집권을 축하하도록 초대받았을 뿐이었다. 두 공산주의 국가 거목 사이에는 불화가 싹트고 있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에 따르면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전혀 믿지 않았다. 스탈린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기보다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고마워하는 단일 공산국가로 통일되기를 바랐다. 또한 일본에 맞설 정도로 강해지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일본 동양학원대학 주지안롱 교수는 저서 ‘모택동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에서 중국의 참전이유를 ‘첫째, 미국 7함대의 타이완해협 파견을 대중국 선전포고로 간주했다. 둘째, 한반도 개입이 국내 정치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셋째, 미군이 한반도 북부에 진군하면 중국 동북지역이 위협에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전쟁 전문가인 선즈화 화동사범대 교수는 ‘미국의 침공을 저지하고자 미·중대결의 전장으로 한반도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본토 원자폭탄투하설을 입에 올린 맥아더 장군의 쇼맨십도 마오쩌둥의 참전의지에 불을 붙였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책은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면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간 일이었다. 마오쩌둥은 미국의 원자폭탄을 종이호랑이로 깎아내렸다. 인도의 네루 수상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1000만~2000만명의 인명피해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라고 호언장담했다. 공개된 러시아 비밀문서를 유심히 살펴보면 공산진영 세 나라 지도자의 성격과 품계가 잘 나타난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직접 지시하기보다는 평양주재 대사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썼다. ‘김일성에게 문서를 읽어주고 나서 베껴가는 것은 허용하지만 문서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마오쩌둥 역시 스탈린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갔다. 문서의 서두는 스탈린의 암호명인 ‘필리포프 동지’로 시작했고, ‘귀하의 검토와 의견을 바란다.’라고 마무리했다. 또 ‘볼셰비키적 경의를 표하며 모택동’이라고 썼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국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마오쩌둥은 스탈린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휴전교섭 지침을 스탈린에게 의뢰한 1951년 6월30일자 전보에서 마오쩌둥은 ‘ 귀하에게 나의 의견을 전한다. 검토 후 김일성에게도 직접 지시하시기 바란다. 귀하가 김일성과 접촉하고 나서 나에게도 알려주기 바란다.’라고 썼다. 의례적인 칭송은 사용하지 않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스탈린은 물론 김일성과 공산진영에서 ‘무시 못할 둘째 형’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이 줄기차게 주장한 ‘남침공격’을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결국 허락했지만 상호 담보를 원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베이징 지도자의 지원을 구하라고 지시했다. 1950년 5월13일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베이징 장도에 올랐다.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 등 공산진영 3자의 전쟁 합의는 이날 성사됐고, 한국전쟁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제재결의안 배제… 中 동참 유도

    앞으로 진행될 천안함 사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논의의 열쇠는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인 중국이 사실상 쥐고 있다. 중국이 지금까지 대북제재 요구에 동의를 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문책에 동의할지, 그리고 동의한다면 어느 정도 수위로 할지에 따라 북한이 맞을 ‘회초리’의 종류와 시기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정부 주변에서는 중국의 입장 변화가 좀처럼 감지되지 않았다는 관측과 중국이 명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묵시적으로 비교적 약한 수준의 안보리 제재에 동의해 주겠다는 신호를 한국 측에 줬다는 추측이 엇갈리고 있다. 안보리 제재의 유형은 크게 결의안 채택과 의장성명 채택 2가지가 있다. 결의안 채택은 안보리 이사국들의 표결을 거쳐야 하는 것이고 의장성명은 표결 없이 이사국 간 막후 합의(Consensus)로 채택되는 것이다. 결의안은 다시 구체적인 제재방안을 담은 ‘제재결의안’과 제제방안 없이 의견(규탄 등)만 담은 ‘일반결의안’으로 나뉜다. 따라서 제재결의안이 가장 세고 그 다음 일반결의안, 의장성명 순으로 강도가 약한 징벌로 인식된다. 우리 정부는 제재결의안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채택된 결의안 1874호가 워낙 완벽하기 때문이다. 일반결의안은 좀더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인식된다. 다만 표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사국들의 찬성을 끌어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의장성명은 좀 약해보이지만 표결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좀더 강력한 문구를 넣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중국을 설득하기는 의장성명이 더 유리하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하토야마·오자와 동반 사퇴] 오자와 향후 거취는

    │도쿄 이종락특파원│민주당의 최고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68) 간사장이 2일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함께 퇴진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고 오자와 간사장이 정치적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여기는 정치인이나 국민들은 없다. 킹메이커, 선거 귀재, 정치 9단이라는 수식어가 오자와 간사장의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해 ‘8·30 총선거’를 총지휘, 정권교체를 이룬 실질적인 주역인 데다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에 계파의원들이 150여명에 이른다. 당내 최대 계파다. 하토야마를 총리로 옹립한 것도 오자와 간사장이다. 47세 때 당시 집권당인 자민당의 간사장을 맡았을 정도로 정치력도 남다르다. 오자와 간사장은 이미 정치적 스승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로부터 막후정치를 체득한 터다.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고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갖춰진 셈이다. 오자와 간사장은 “정권을 맡은 정당으로 정치공백이 생겨서는 안 되는 만큼 가능한 한 빨리 차기 리더를 선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간사장으로서의 마지막 책무로도 보이지만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겠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jrlee@seoul.co.kr
  • 김태균-임창용 맞대결 이뤄질까?

    김태균-임창용 맞대결 이뤄질까?

    퍼시픽리그 2위인 치바 롯데가 야쿠르트 스왈로즈(21-22일)를 만난다. 이번 2연전은 선발투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마운드 운영에 비상이 걸린 치바 롯데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야쿠르트의 대결이란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또한 김태균과 임창용의 맞대결이 이뤄질수 있는가도 관심거리다. 치바 롯데는 그동안 선발한축을 담당했던 ‘미래의 에이스’ 카라카와 유키가 오른손 중지 골절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투수 로테이션상 19일(주니치전)경기가 카라카와의 등판일이었지만 중간계투인 빌 머피가 그를 대신해 마운드에 올랐다. 이렇게 되면 지난 요미우리전(15일)에 선발로 등판했던 나루세 요시히사가 하루 앞당겨 21일 경기에 선발로 출격할 것으로 보이며 22일은 오미네 유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야쿠르트는 선발진들의 문제보다는 터지지 않는 타선이 팀을 최악으로 내몰고 있다. 19일 경기(세이부전)에서 다잡은 경기를 놓친 야쿠르트는 교류전 들어와 단 1승도 없이 6연패를 기록중이다. 교류전 성적 꼴지는 물론 13승 1무 29패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것. 특히 이날 경기에서는 믿었던 마무리 임창용이 9회말에 끝내기 안타(카타오카 야스유키)를 허용하며 팀 연패를 끊지 못한것이 컸다. 이날 선발로 등판한 이시카와 마사노리는 개막후 지금까지 타선의 도움없이 6경기 패전투수가 되는 불운 속에 시즌 첫승을 노렸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팀 분위기도 최악인 상황. 야쿠르트의 부진 원인은 기록으로도 쉽게 알수 있다. 팀평균자책점은 3.57로 매우 준수한 편이지만 팀타율은 .236으로 양리그 통틀어 최하위다. 교류전에 들어와서는 팀타율이 .177에 머물 정도로 빈타에 허덕이고 있다. 한경기에서 1득점을 올리기도 버겨울 정도인데 더 큰 문제는 뚜렷한 반전을 이끌어 낼만한 것이 없다는데 있다. 이미 시즌을 포기할정도가 된 야쿠르트는 이번 치바 롯데와의 2연전이 올 시즌 운명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야쿠르트전에서 김태균이 상대할 투수는 토니 바넷(21일), 나카자와 마사토(22일)가 될것으로 전망된다. 바넷은 올 시즌 야쿠르트가 야심차게 영입한 외국인 투수. 150km에 육박하는 포심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일본야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5번의 선발등판 동안 승리없이 3패만 기록중이어서 김태균의 먹잇감으로서는 안성맞춤이다. 김태균 입장에서는 바넷이 다양한 변화구를 지니고 있지만 제구력이 좋지 못해 몰리는 실투가 자주 들어 온다는점을 인식하고 타석에 들어섰으면 싶다. 지금까지 김태균의 페이스를 봤을때 바넷을 상대로 홈런을 기대해봐도 충분할듯 보인다. 올 시즌 바넷은 7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37.1이닝을 던지며 2승 3패(평균자책점 5.06)를 기록중이다. 최근 2경기 연속 5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도 눈여겨봐야할 대목이다. 22일 경기에서 맞붙는 나카자와는 그나마 야쿠르트 선발진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투수중 한명이다. 토요타 자동차를 거쳐 올해 야쿠르트에 입단한 나카자와는 좌완투수 특유의 떨어지는 슬라이더가 일품인 선수다. 리그 평균자책점 1위(1.65)에 올라와 있을 정도로 핀포인트를 공략하는 제구력 역시 수준급이다. 현재까지 3승(43.2이닝, 2패)에 불과한 성적이지만 좀처럼 연속안타를 허용하지 않으며 맞춰 잡는 피칭이 능구렁이와 같은 투수다. 그가 좋은 투구내용에도 불구하고 3승 밖에 없는 것도 팀타선의 도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8일 주니치전에서는 8.2이닝동안 1실점하며 호투했지만 패전투수가 됐고 소프트뱅크와의 교류전(15일)에서도 7이닝동안 2실점으로 틀어막았지만 역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나카자와를 보면 야쿠르트의 팀타선이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을정도다. 나카자와를 상대로 김태균은 불리한 볼카운트까지 오기전, 빠른 공격으로 승부할 필요가 있다. 그와 볼카운트 승부를 하다 헛방망이를 돌리기에 바빴던 주니치의 강타선을 감안해보면 초구라도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오는 공을 노린다면 충분히 좋은 타구를 생산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김태균은 타율 .308(8위) 홈런 12개(2위) 46타점(1위)을 기록중에 있다. 홈런1위인 호세 오티즈(14개,소프트뱅크)가 잠시 주춤했던 방망이를 조율하고 있는 지금, 김태균의 방망이도 뒤쳐지지 않아야할 시점이다. 김태균은 최약체 야쿠르트를 상대로 타격상승세를 이어갈수 있을까. 그리고 임창용을 만날수 있을까. 팀 연패를 끊어야 하는 임창용과 타격페이스를 지속해야할 김태균. 한국팬들에겐 결코 놓칠수 없는 2연전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개막전 선발도 어려운 이승엽…왜 이렇게 됐나?

    개막전 선발도 어려운 이승엽…왜 이렇게 됐나?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이승엽(요미우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승엽은 센트럴리그 개막일(26일)이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일본진출 후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출전이 어렵게 됐다. 요미우리로 이적해온 2006년부터 ‘개막전 4번타자’ 유무에 관심이 쏠리던 시기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와 같은 일이다. 지난해 압도적인 전력으로 리그 3연패와 일본시리즈까지 차지했던 요미우리의 올시즌 화두는 투수력이다. 10승이 보장됐던 좌완 타카하시 히사노리가 미국으로 떠난 공백을 지난해까지 필승불펜으로 활약했던 야마구치 테츠야가 대신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선발진의 안정감은 떨어져 보인다. 외국인 투수 세스 그레이싱어의 부상과 지난해 일취월장한 위르핀 오비스포가 제자리를 찾는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딕키 곤잘레스, 우츠미 테츠야, 토노 순, 후지이 슈고, 야마구치를 뒷받침 해 줄 선발진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부상치료차 미국에 가있는 그레이싱어는 늦어도 5월 중순, 스프링캠프 기간 발목부상을 당했던 오비스포는 4월 중순을 1군복귀 시점으로 잡고 있어 당초 요미우리가 구상했던 ‘6선발 로테이션’은 물건너 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레이싱어와 오비스포가 돌아오면 그렇지 않아도 1군엔트리에 등록할수 있는 외국인 선수(4명) 제한으로 이승엽은 설 곳이 사라진다. 물론 시즌 초반부터 맹타를 휘두르면 이러한 걱정은 사라지겠지만 현재까지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 이승엽은 개막전부터 벤치를 지킬것이 확실해졌다. 부상선수들이 돌아올 때까지 자신의 입지를 다질수 있는 여건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기 때문이다. 개막전에 선발로 출전할 것이 유력시 되는 2루수 에드가 곤잘레스의 주전입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시범경기에서 폭발력 있는 타격으로 2년여의 공백에 따른 우려를 날려버린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이승엽을 대신해 1루 자리를 맡을게 기정사실인 상황. 개막전 선발투수가 확실한 곤잘레스와 마무리 투수인 마크 크룬, 2루수 곤잘레스, 이승엽까지 이렇게 4명의 외국인 선수 등록은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포화 상태에 있는 외야수 자원을 감안할때 설사 시즌에 들어가서 타카하시가 부진하더라도 이승엽이 그를 대신해 1루 자리를 맡을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는 말도 안될 정도로 전력이 강한 요미우리 팀 사정도 이승엽을 더욱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스 라미레즈, 카메이 요시유키, 마츠모토 테츠야, 스즈키 타카히로, 타니 요시토모, 쵸노 히사요시까지 이 6명의 선수들은 외야수 자원이다. 현재까지는 라미레즈-마츠모토-카메이가 개막전에 선발로 출전할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스즈키와 타니가 다른팀에서 뛰고 있다면 백업이 아니라 얼마든지 주전으로 활약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이다. 백업전력 치고는 사치에 가까운 선수구성이다. 쵸노는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안고가야 할 신인선수다. 이미 시범경기에서 날카로운 방망이 실력을 선보인 쵸노는 주전으로 뛰지는 않겠지만 시즌내내 1군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원래 외야수였던 타카하시가 1루로 돌아서게 된 것도 외야를 볼 수 있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1루는 카메이도 볼수 있고,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 퍼시픽리그와의 교류전이 되면 경우에 따라서 라미레즈가 1루를 맡을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승엽이 없어도 얼마든지 그를 대신할수 있는 선수가 널린게 올시즌 요미우리의 팀 전력이다. 요미우리 그룹은 시즌을 앞둔 23일, 후원회 성격의 재계모임 행사를 가지며 올해 요미우리 구단의 선전을 당부했다. 이자리에서 ‘일본 우익의 거두’ 로 불리는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의 행동이 일본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와타나베는 허리부상으로 2년만에 돌아온 타카하시의 시범경기 성적까지 정확히 알고 있을 정도로 팀 간판타자의 복귀를 반겼는데 예전부터 타카하시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던 와타나베의 이러한 모습은 전혀 이상한게 아니다. 요미우리는 타카하시가 2007년 시즌 후 FA 자격을 획득했음에도 계약을 하지 않고 눌러앉힌 구단이다. 돈이 문제가 아닌 평생 ‘요미우리 맨’으로 미리 점찍어둔 타카하시는 됴쿄 명문 게이오 대학을 나온 프랜차이즈 출신이기 때문이다. 요미우리는 1936년 후지모토 사다요시 제 1대 감독부터 지금의 하라 타츠노리까지 프랜차이즈 출신 외에 감독을 맡은 전례가 없는 팀이다. 타카하시가 현역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라 감독의 대를 이어 훗날 요미우리 감독감으로 점찍었다는 이야기는 와타나베의 입을 통해 전파된 소문이다. 상식적인 정서로는 이해할수 없는 일이지만 일본이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요미우리 구단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타카하시가 부상에서 완치돼 팀에 복귀하는 순간부터 이미 이승엽의 1루자리는 주인이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타카하시는 시범경기동안 타율 .469 홈런4개를 기록하며 와타나베의 기대에 부응했다. 올해로 요미우리와의 계약이 종료되는 이승엽은 1루 포지션 외에는 맡을 곳이 없기에 타팀으로의 이적을 고려할 때가 됐다고 본다. 물론 그의 높은 연봉이 부담스럽지만,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신의 명예를 감안할때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는 처지가 계속될수 밖에 없다. 요미우리 팀의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 지금 이승엽은 팀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수라는 인상이 짙다.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은 누구? 요미우리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룹과 야구단의 관계가 이상하리만치 독특한 구단이다. 다른 구단이 현장과 프론트 그리고 구단 고위층을 삼권 분리해 가며 각자의 위치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데 반해, 요미우리는 프론트의 입김, 더 정확히 말해 구단 고위층의 말한마디에 따라 현장의 수장인 감독입지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로 간섭이 심한 구단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신문 회장이다. 와타나베는 일본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항간에서는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데 2007년에 자민당의 후쿠다와 민주당의 오자와의 밀실야합을 추진했을 정도다. 이런 그를 두고 요미우리는 일본우익의 정신적 지주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요미우리의 매시즌 목표는 우승이다. 물론 다른팀들이라고 우승에 대한 목표가 없지는 않겠지만 요미우리는 우승 이외의 성적은 실패한 시즌으로 규정해버릴 만큼 우승지상주의를 외치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지금의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요미우리에서만 두번째 감독을 맡고 있다. 그의 스승이자 요미우리 종신감독인 나가시마 시게오가 2001년을 끝으로 물러난 후 감독직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하라 감독은 감독 첫해(2002년)에 우승을 차지한 후 이듬해인 2003년 리그 3위의 성적을 거두자 가차 없이 경질됐다. 후임으로 호리우치 쓰네오를 감독직에 올렸는데 당시 와타나베 회장과 하라감독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호리우치 감독이 물러나고 하라가 다시 감독으로 복귀할수 있었던 것은 당시 감독을 맡을만한 요미우리 출신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으로 요미우리 야구는 감독이 하는게 아니라 와타나베 회장이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장 간섭에 있어서만큼은 상상을 초월한지 오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혹독한 데뷔’ 김태균ㆍ이범호의 日야구 숙제는?

    ‘혹독한 데뷔’ 김태균ㆍ이범호의 日야구 숙제는?

    우여곡절 끝에 나란히 첫 안타(22일)를 신고한 김태균(치바 롯데)과 이범호(소프트뱅크)에게 이번 3연전은 자신들의 야구인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특히 김태균은 개막전 4연타석 삼진과 이튿날(21일) 2번째 타석까지, 6연속 삼진을 당하며 체면을 구겼는데 국가대표 4번타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부진이었다. 이범호 역시 3차전에서 두개의 안타(2루타 포함)를 생산하긴 했지만 이미 승패가 기운 상황에서 나온 것들이라 큰 의미는 부여하긴 힘들다. 이번 퍼시픽리그 개막 3차전을 통해 본 김태균과 이범호는 아직 일본야구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숙제를 남겼다. 여기에는 향후 팀내 상황과 경기일정 등을 감안할때 다시한번 가파른 오르막길이 놓여 있는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먼저 김태균은 굉장히 불운했던 리그 일정도 그의 부진과 맞물렸다. 타격은 사이클이 있어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타자가 좋은 성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타격감이 상승하는 시간을 오래 가져가야 하며 그 상승이 끝났을때는 떨어지는 감각을 빨리 회복시키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3할의 예술’ 의 저자인 찰리 라우(전 화이트삭스 타격코치)는 “타격의 상승세가 지속되면 곧 다가올 슬럼프를 준비하라.” 라는 멋진 명언을 남긴바 있다. 김태균이 시범경기 동안에 보여줬던 불방망이(타율 .342 홈런2개)는 자신의 타격감이 떨어졌던 시점에 이르러 시즌이 시작됐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는 마지막 시범경기였던 히로시마전(16일)에서 무안타를 기록한 후 무엇이 마음에 걸렸던지 특타를 자청하며 타격 감각을 유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개막후 타격 사이클의 하락이 김태균을 어렵게 했던 원인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개막전이 시작된 후 일본 특유의 분석야구가 김태균을 힘들게 했다는 말도 맞지만 야구는 사람이 하는 운동이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있더라도 투수가 마운드에서 분석한대로 투구를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김태균 역시 경기를 치를수록 상대해 본 투수들에게 대한 분석이 가능해진다는 뜻도 되기에 이점에 있어서는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김태균을 압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하나 불운했던 것은 두번째 경기에서 ‘좌완 팜볼러’ 호아시 카즈유키를 만났다는 점이다. 개막전에서 에이스 와쿠이 히데아키의 투구에 악몽을 경험했던 김태균으로서는 가능하면 좀더 수월한 상대를 두번째 경기에서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싶다. 타격감 회복과 일본야구에 대한 낯설음을 극복하는게 무엇보다 시급했던 김태균이었기 때문이다. 호아시는 자국내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특급’ 선발투수로 분류되는 선수가 아니다. 최고 130km대 후반을 겨우 찍는 포심패스트볼과 팜볼 외에 커브, 체인지업의 구종이 전부인 투수다. 체인지업도 2007년 부상후 재활을 거치면서 급작스럽게 익힌 구종이라 실전에서는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김태균 입장에서 보면 호아시의 팜볼은 마구나 다름없는 공포였을 것이다. 국내에서 팜볼을 던지는 투수가 KIA의 윤석민이다. 하지만 윤석민 역시 실전에서는 거의 던지지 않을 정도로 구사력이 낮은 편이다. 한국에서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공에 대처해야 했을 김태균의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문제는 이제 지나간 세이부전이 아닌 주말 3연전에서 맞붙게 될 니혼햄전이다. 퍼시픽리그는 이번주 주중 경기를 쉬고 금요일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리그일정을 시작하는데 투수 로테이션상 소프트뱅크와의 개막전에서 선발로 등판했던 다르빗슈 유가 치바 롯데전(금요일)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세이부가 자랑하는 ‘특급 선발 3인방’과의 대결에서 벗어난가 싶더니 ‘일본 제1의 에이스’ 라는 다르빗슈가 김태균 앞에 산처럼 가로막혀 있는 형국이다. 김태균은 시범경기에서 다르빗슈를 상대로 초대형 홈런포를 터뜨린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르빗슈는 모두가 알고 있듯,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경기가 없는 3일동안 김태균이 얼만큼 자신의 타격컨디션을 회복할지가 니혼햄전은 물론 올 한해 김태균의 성적을 좌우할수도 있다고 본다. 이범호 역시 비록 니혼햄과의 세번째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더 검증절차가 남아 있다. 개막전에서 다르빗슈를 상대했던 이범호는 두번째 경기에선 니혼햄의 좌완 에이스인 타케다 마사루에게 안타를 뽑아내지 못했다. 이 두선수들은 니혼햄의 실질적인 원투펀치로서 아직 기량을 확인 받아야할 외국인 선발투수들을 제외하면 니혼햄이 가장 내세우는 투수들이다. 3차전 니혼햄의 선발투수였던 외국인 투수 바비 케펠이 초반에 물러나 상대하지 못했지만 이후 이범호는 중간투수들인 베테랑 키다 이사무에겐 볼넷, 첫안타는 카나모리 타카유키, 2루타는 우완 사이드암 투수인 에지리 신타로에게 뽑아낸 것이다. 김태균과 마찬가지로 톱레벨급 투수들과의 대결에서 보여준 것이 아직 없다는 말이다.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서고 있는 이범호는 팀내 상황으로만 놓고 봤을때 김태균에 비해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다. 지난해까지 소프트뱅크의 지명타자는 베테랑 마츠나카 노부히코의 몫이었다. 오프시즌동안 무릎수술을 받았던 마츠나카는 아직 몸이 덜 만들어져 1군에 등록돼 있지 않지만 몸상태만 정상으로 돌아오면 언제든지 이범호의 자리를 대신할수 있는 타자다. 박빙의 승부가 벌어졌던 개막전과 두번째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이범호로서는 좀더 분발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범호 역시 김태균과 마찬가지로 금요일 홈경기(야후돔, 오릭스전)에서 만나게될 투수가 보통이 아니다. 라쿠텐과의 개막전에서 이와쿠마 히사시와 맞대결해 완봉승을 거뒀던 카네코 치히로의 선발등판이 유력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카네코는 붕괴된 팀 마운드를 홀로 이끈 오릭스의 에이스다. 150km가 넘는 포심패스트볼이 매우 위력적이며 이와 더불어 타자의 허를 찌르는 ‘슬로커브’는 카네코만의 전매특허. 홈 개막전 선발출전이 유력시 되는 이범호 역시 매우 괴로운(?) 상대가 기다리고 있기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다. 김태균과 이범호는 이제 겨우 세경기를 치뤘을 뿐이다. 비록 비싼 수업료 치곤 혹독한 데뷔무대였지만 이들 스스로도 느낀 점이 분명히 있을거라고 본다. 퍼시픽리그는 특급투수들과 그 아래에 위치한 투수들간의 레벨차이가 많이 나는 곳이다. 이왕이면 주말 3연전에서 만나게될 특급투수들에게 한국야구의 매운맛을 보여주며 컨디션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대통령 취임 2주년] 3鄭 전면부상…이재오 등 6인회 여전히 막강

    [이대통령 취임 2주년] 3鄭 전면부상…이재오 등 6인회 여전히 막강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청와대, 국회, 정부에 포진해 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여전히 권부의 핵심 위치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 대선캠프의 최고지휘부인 ‘6인회’ 멤버들이다. 캠프 고문이었던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이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7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선 당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희태 의원은 지난해 재선을 통해 6선 의원이 되면서 국회의장을 노리고 있다. 김덕룡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대통령 국민통합특보로 한발 물러서 있긴 하지만 여전히 막후에서 이 대통령에게 정무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 미국으로 떠났던 이재오 전 의원은 지금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컴백해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2인자’ 논란에 휩싸여 있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몇년을 끌어도 해결이 안 되던 민원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조정과 현장실사 등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힌다. ●정총리 세종시 해결땐 유력 차기대권주자로 선거 캠프에서 일하진 않았지만, 집권 만 2년을 맞아 전면에 부상한 ‘3정(鄭)’은 특히 주목된다. 지난해 9월 지명된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충남 공주 출신의 정 총리는 ‘세종시 전도사’를 자처하며 충청권 민심을 다독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가 잘 해결될 경우 차기 대권주자로도 거론된다. 이 대통령이 영입한 정몽준 의원은 집권 2년을 맞는 한나라당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당내 기반은 약하지만, 이 대통령의 신임이 남다르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2008년 쇠고기 정국이라는 최대의 위기에서 긴급투입된 정정길 대통령 실장도 오래된 ‘측근’은 아니지만,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잘 추슬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분야에서는 집권 초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독주’하다가, 지금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한걸음 뒤로 빠졌다. 대신 윤진식 대통령 정책실장(경제수석 겸임), 사공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삼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모두 대선 캠프 때 눈에 띄게 나서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전문가’로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특히 윤 실장은 이 대통령의 경제철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윤 장관, 사공 위원장 등과 호흡을 맞춰 ‘MB노믹스’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공 위원장은 폭넓은 글로벌 인맥 등을 활용해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윤진식·사공일·윤증현 MB노믹스 삼두마차 정책 자문을 맡았던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 중 일부는 자리를 옮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요직을 맡아 ‘실세’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번 썼던 사람을 믿고 다시 쓰는’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제정책연구원을 이끌었던 류우익 서울대 교수는 초대 대통령실장을 맡다가 촛불시위 때 물러났지만, 주중 대사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맡았다가 촛불시위로 물러났던 곽승준 고려대 교수도 미래기획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류 대사와 곽 위원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의 대표주자인 원세훈 전 서울시 부시장은 행정안전부 장관을 거쳐 국가정보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국정원 개혁에 앞장서며, 연내 개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지휘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바른정책연구원을 이끌었던 백용호 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뒤 국세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였던 ‘안국포럼’ 출신들은 상당수가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춘식 전 서울시 부시장을 비롯, 정태근, 백성운, 조해진, 강승규, 권택기, 김영우, 김용태 등 안국포럼 멤버 대부분은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주호영 의원은 특임장관으로,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임태희 의원은 노동부 장관으로 각각 내각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집권 2년차를 맞아 ‘수석 3인방’이 확실하게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인방은 박형준 정무, 박재완 국정기획, 이동관 홍보수석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들 3인방은 결국 MB정권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 대통령의 대학 선배인 김백준 총무기획관은 청와대 안살림을 챙기고 있다.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신재민 문화관광부 차관도 ‘실세’로서의 위치는 여전하다. 다만, 대선 당시 핵심 측근 중에서 이방호 전 사무총장과 정종복 전 의원은 아직 뚜렷한 요직을 맡지 못하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역사인물 18인 고정관념 뒤집기

    ‘숙주나물’이란 이름에서 보듯, 배반의 화신처럼 여겨지는 신숙주가 알고 보니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끈 탁월한 인재였다? 국정을 어지럽힌 외척 난신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윤원형이 사실은 서얼 등용을 추천하고 양반 기득권 세력의 이익 독점에 제동을 건 정치가였다? 이처럼 교과서나 역사서에 의해 형성된 고정관념을 깨는 도발적인 평가를 통해 18명의 역사인물들에 대한 뒤집어 보기를 시도한 책이 나왔다. ‘한국사 인물통찰’(김종성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이다.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18명의 말과 행적, 활동 당시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왜곡된 측면은 없는지 살폈다. 찬사의 이면을 되짚었고, 폄하의 밑바닥을 들쑤셨다. 결과는 놀라운 수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저자는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을 거둔 ‘구국의 명장’쯤으로 평가받지만, 당시 세계의 패자였던 요나라의 남진을 꺾음으로써 동아시아 전역에 평화구도를 정착시킨 세계적인 영웅이었다고 주장한다. 꽉 막힌 강경 쇄국론자로 인식된 흥선대원군도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외려 마지막까지 국제친선에 매달린 인물이었다는 것.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태종에게서 ‘양보’를 뜻하는 한자 ‘양(讓)’이 들어간 군호를 받은 양녕대군이 실제로는 충녕대군(세종)에게 경쟁심을 가졌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한 대학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퇴계 이황이 28세 때부터 69세까지 무려 42년씩이나 관계(官界)를 들락거린 ‘정치 9단’이었으며, 효종과 함께 북벌론의 기수로 알려진 송시열이 실제로는 북벌과 관련해 아무런 일도 추진하지 않았다는 등 ‘발칙한’ 주장도 여럿 내세웠다. 태조 이성계가 여진족의 후예일 수도 있다는 의혹, 고종황제를 막후에서 조종한 것으로 알려진 명성황후가 사실은 남편의 진정한 후원자였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이들 18명 외에도 잘못 알려진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며 “이 책을 통해 다른 역사인물들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1만 3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MB 2기경제팀 삼각편대 순항중

    MB 2기경제팀 삼각편대 순항중

    지난 1년 MB정부의 2기 경제팀을 이끈 수뇌부들의 공통분모는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라는 점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경제수석 겸임)은 물론 강만수 청와대 경제특별 보좌관 등이 대표적이다. ‘시장중시와 민간중용’이 강조됐던 1기 경제팀 사령탑들이 시장 개입을 선호했던 기존 관료들과 ‘불협화음’을 빚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반면 ‘윤-진-윤’으로 대표되는 2기 경제팀은 관료 특유의 일사불란한 명령 체제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이른바 ‘모피아 3각편대’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비상사태에서 힘을 발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행시 기수로 윤 장관이 10회로 좌장격이고 윤 실장(12회), 진 위원장(17회) 순이다. 윤 장관과 윤 실장은 1946년생 동갑이기도 하다. 끈끈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복잡한 현안에 대해서도 파열음이 적은 이유라고 한다. 서민경제 강화와 일자리 창출, 내수활성화를 위한 재정 조기집행 등에서 힘을 발휘한 비결이기도 하다. 반면 강만수 재정부장관-전광우 금융위원장-박병원 경제수석으로 이어지는 1기 경제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학계와 재계를 넘나들며 다소 개혁적 정책을 선호했던 전광우 초대금융위원장은 현실주의자들인 관료 사회와 충돌이 잦았다. 1기 경제팀의 경제수석을 맡았던 박병원 전 수석의 경우 직설화법의 강경론자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경제기획원 출신의 박 수석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모피아의 대표격인 강만수 장관과 화합이 어려웠다는 것이 경제계의 평가다. 재정부 관계자는 “당시 개성이 강한 강 장관과 박 수석은 별도의 정책 협의도 거의 없었다. 이들이 부딪치면 완충작용이 없어 정책 집행에 애를 먹은 적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2기 경제팀에서 윤진식 실장의 역할이 돋보였다는 평가도 많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윤 실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며 드러내지 않고 막후 조율-완충 작용을 충실히 수행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인내를 갖고 묵묵하게 이견을 조율하는 윤 실장이 있었기에 외환위기 극복이 가능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윤-진-윤’의 2기 경제팀를 두고 ‘신관치의 심화’라는 시각도 있다. ‘시장 자율중시, 관치 배격’이란 MB의 국정 기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급속히 후퇴했고 시장 개입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2기 경제팀 내부에 균형과 견제 시스템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이른바 ‘관치 리스크’의 대표적 폐해로 꼽히는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4년 카드대란의 재발을 막기 위한 경제 시스템 복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간사장직 유지 ‘오자와 역습’ 시작되나

    │도쿄 박홍기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4일 정치자금 의혹에서 벗어난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의 거취와 관련, “간사장 직무를 계속 맡기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인사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도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한때 오자와 간사장과 거리를 두려던 조짐도 없지 않았지만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오자와 간사장에게 확실한 신뢰의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날 오후 정치자금법위반(허위기재) 혐의를 받았던 오자와 간사장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결과적으로 지난달 16일 “단호하게 싸워 나가겠다.”며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언한 오자와 간사장이 이겼다. 오자와 간사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기소된다면 매우 책임이 무거울 것”이라며 사법처리될 경우 사임할 뜻을 내비쳤다. 뒤집어 보면 기소되지 않는 한 간사장의 역할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오자와 간사장의 입장 정리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결백하다.”고 강조해온 오자와 간사장이 “검찰의 불기소를 예견했던 것 같다.”는 관측이 나왔다. 민주당 안에서도 오자와 간사장의 현직 유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의원 20여명은 이날 모임을 갖고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서 “오자와 간사장을 지지, 참의원 선거를 위해 결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오자와파의 움직임도 수그러들었다. 오자와 간사장은 오는 7월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달성, 연립정권이라는 하토야마 내각의 한계를 벗어나도록 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측근들이 기소된 만큼 ‘감독책임론’의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당분간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정치자금 의혹의 족쇄를 푼 오자와 간사장의 ‘대역습’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만만찮다. hkpark@seoul.co.kr
  • [가시화되는 남북정상회담] 역대 정상회담 막후 인물은

    그동안 역대 남북정상회담은 막후(幕後)에서 어떻게 추진돼 왔을까. 남북정상회담은 비밀유지가 필수조건이다. 때문에 국가정보원장은 빠지지 않고 관여해 왔다. 눈에 보이지 않게 회담 전체 과정을 조율하는 역할이다. 회담성사가 가시화되기 전에는 남북한 실무자들의 물밑접촉이 주로 이뤄진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때쯤엔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할 핵심 측근이 ‘밀사’로 움직인다. 북측 카운터파트를 만나서 최종 방안을 결정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2000년 DJ 핵심 박지원씨 전권 2000년 6월 남북한이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사실은 4월10일 남북 동시 발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발표 한달 전인 3월9일 양측 정상의 특사인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측 송호경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비밀접촉을 가졌다. 지난해 말 남북 고위관계자가 싱가포르에서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것처럼 싱가포르가 비밀스러운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의 인프라가 좋은 데다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장점 때문이라고 한다. 국정원 대북담당 차장 등 국정원 실무자가 박 전 장관을 수행했다.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도 몇 차례 극비리에 방북했지만 협상은 주로 박 전 장관을 통해 이뤄졌다. 박 전 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데다, 문화부 장관은 남북접촉 창구가 아니라 북측인사 접촉 때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도 고려됐다. ●2007년 안희정·김만복 투톱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2차 정상회담도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6년 10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가 베이징에서 이호남 북한 참사와 만났다. 이어 2007년 7월초 김만복 국정원장의 대북접촉 제의를 같은 달 29일 북한이 수용하고 김 원장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이후 김 원장이 전권을 위임받아 평양을 두 차례 비밀리에 방문했고, 8월8일 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발표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될 뻔했지만,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무산됐다. 정상회담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에 보내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는 각각 장세동·서동권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日 오자와 “의도적인 위법 없었다”

    日 오자와 “의도적인 위법 없었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도쿄지검 특수부가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의 막후 최대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에게 노골적으로 칼끝을 들이댔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생명에 치명적인 타격도 불가피한 형국이다. 오자와 간사장으로서는 지난해 5월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민주당 대표직을 사퇴한 이후 최대 위기다. 검찰은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자금관리단체인 리쿠잔카이(陸山會) 사무실과 간사장의 개인사무실, 간사장에게 정치자금을 준 건설회사 가지마(鹿島) 본사와 지점 등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당초 검찰은 리쿠잔카이가 2004년 10월 토지구입자금 4억엔(약 48억원)을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혐의에 초점을 맞췄으나 오자와 간사장이 지난 5일부터 소환에 계속 불응하자 수사 수위를 높였다. 검찰은 리쿠잔카이의 회계담당자이자 오자와 간사장의 전 비서인 이시카와 도모히로(36) 중의원에 대한 조사에서 “땅 구입에 쓴 4억엔을 간사장으로부터 빌린 돈”이라는 진술을 확보, 오자와 간사장에게 출두를 요청했었다. 오자와 간사장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의도적으로 법을 어긴 것이 없다.”고 밝힌 데 이어 13일 밤 “국민들도 나의 결백을 이해할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사과하면서도 검찰의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더욱이 오자와 간사장은 14일부터 검찰의 수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는 7월11일 실시될 참의원선거를 겨냥, 텃밭을 다지기 위한 본격적인 지방 순회에 나섰다. 한편 하토야마 총리는 14일 오자와 간사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따른 간사장의 교체 가능성과 관련, “현 시점에서 생각 하지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또 “오자와 간사장의 체제로 지금까지 왔으며, 중의원선거에서의 어려움도 극복했다.”며 오자와 간사장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나아가 7월 참의원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아직 미래의 얘기”라면서 “그때까지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정가 빅7 새해 승부수] (7·끝)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

    [정가 빅7 새해 승부수] (7·끝)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

    지방선거를 5개월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의 복귀 시점은 당내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해 두 차례의 재·보궐선거에서 ‘막후 승부사’를 맡아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그이기에 올해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재·보선 등에서 어떤 승부수를 내놓을지 더욱 관심이 쏠린다. 2008년 7월 당 대표직을 내놓은 손 상임고문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손학규’가 되어 돌아오겠다.”며 강원 춘천시의 산골마을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지난해 4월 재·보선 때는 수도권 선거 지원에 차출됐지만 직책도 없이 당원 신분으로 백의종군했다. 10월 재·보선에서도 당의 출마 제안을 뿌리치고 자신을 지지했던, 당시 이찬열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뛰었다. “선거를 통해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명박 정권의 독선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민심이 민주당을 택했다.” 재·보선 뒤 이런 소회를 밝힌 그는 다시 산골로 돌아갔다. 한 측근은 10일 손 상임고문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고 전했다. 물리적으로도 선거전이 불붙기 전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당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언급하지만, 손 고문은 지난해 재·보선 때처럼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말에는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김진표 최고위원이 경기 수원시에서 연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등 벌써부터 알게 모르게 당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당시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기념회에 나타난 손 고문은 “수염을 깎고 나오면 정치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할까봐 안 깎고 왔다. 오로지 김진표이기 때문에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통합’을 제시하고, ‘이견은 인정하고 일치되는 의견을 찾아 함께 추구한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직 탈당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이지만, 스스로를 낮추고 결정적인 선거 국면에서 당에 힘을 보태는 행보를 계속해 오히려 칩거 이후 당 안팎에서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적지 않은 규모가 될 7월 국회의원 재·보선의 격전지에서 그가 화려하게 복귀할 가능성도 점쳐지는 이유다. 사색과 독서를 주로 하고 있다는 손 고문이 최근 감명깊게 읽었다는 책은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이다. 개인적 부의 축적이 핵심인 아메리칸 드림을 뛰어넘어 인간 정신의 고양을 중시하는 유러피언 드림을 부각시킨 작품이다. 이 책에서 “살아 있는 선진 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배웠다.”는 손 고문의 올 한해 궤적과 정치적 메시지가 새해 벽두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창구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용산참사 타결] 서울시 요청에 종교계 적극 중재로 진전

    서울시는 최근까지도 “중재자의 역할만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총리의 참사현장 방문과 야 4당의 성명서 발표 등 압박이 이어지자 이달 들어 연내타결을 목표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정부와 서울시 내부에서도 협상이 길어질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4월까지는 아예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고, 5~7월까지는 용산구청, 7~8월은 한국교회봉사단이 나섰지만 진척이 없었다. 실질적인 협상은 10월 말부터 진행됐다. 8~9월 동안 양측은 서너 차례 만나 입장 차이만 확인했지만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무려 11차례에 걸쳐 공식협상이 진행됐다. 서울시 측은 “100여 차례 넘게 만났지만, 11월 이후에야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종교계의 역할이 컸다. 종교계는 8월 중순 오세훈 시장의 협조 요청을 받은 후 서울가톨릭 사회복지회 김용태 신부와 한국교회봉사단 김종생 목사, 조계종 총무원 혜경 스님 등으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구성해 대화를 유도했다. 자문회의는 가장 첨예한 관건이었던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측의 ‘정부사과’와 ‘임시상가 설치’ 요구를 완화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막판에는 서울시의 치밀한 전략이 빛을 발했다. 서울시 측은 “다섯 차례나 자정쯤 타결 직전에 협상이 깨지자 29일 협상은 무조건 새벽까지 시간을 끌기로 방침을 정했다.”면서 “타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범대위 측에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특히 서울시는 범대위와 협상을 진행하는 한편으로 유족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설득하는 등 창구를 이중화했다. 구체적인 합의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선례를 만들 수 없다는 서울시와 ‘결국은 돈 문제’라는 비판을 우려한 유족 측의 입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양측은 합의문을 공증한 후 문서를 모두 소각하는 등 보안에 철저히 신경을 썼다. 34억원이 넘는 위로보상금이 모두 현금으로 지급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협상과정에서 서울시는 현금이 아닌 재건축공사장 ‘함바집’ 운영권 형태의 보상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상금 중 일부가 상가 운영권 등 다른 형태로 제공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오자와 ‘후텐마’ 이전개입 대체지 시모지시마 부상

    오자와 ‘후텐마’ 이전개입 대체지 시모지시마 부상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하토야마 정권의 막후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이 오키나와현의 미군 후텐마비행장 이전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오자와 간사장은 29일 연립 3당 간사장 및 국회대책위원장 송년회에서 비행장의 이전지로 “시모지시마(下地島)에 사용되지 않는 공항이 있다.”며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따라 미·일 합의안에 제시된 나고시의 미군 슈와브 기지가 아닌 시모지시마가 새로운 대체지로 부상했다. 오자와 간사장은 “사민당은 오키나와현 내로의 이전은 안 된다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시게노 야스마사 사민당 간사장이 미국령 괌을 주장하자 시모지시마를 지목했다. 일본 정부 측에서는 시모지시마와 함께 미군의 보조비행장을 갖춘 이에지마(伊江島)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자와 간사장은 앞서 28일 나고시로 옮기기로 한 미·일 합의안에 대해서는 “우리의 푸른 바다를 메워서는 안 된다.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대응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오자와 간사장의 잇단 후텐마 발언은 현재 진행중인 연립 3당 간의 협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현 밖 및 국외에서 현내 이전 쪽으로 전환을 내비친 상황에서 현 안의 시모지시마와 이에시마에 대한 논의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모지시마는 오키나와 본섬과 타이완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섬으로 3000m짜리 활주로를 가진 공항을 갖고 있다. 그러나 1979년 7월 개항한 공항은 현재 정기편이 끊겼으며 항공회사의 조종사 훈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에지마는 오키나와현 북쪽 서해안 모토부반도에서 9㎞쯤 떨어진 섬으로 1600m의 활주로와 미 해병대 훈련시설이 있다.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은 이미 지난 10월 담당국장을 보내 오키나와현의 이에지마와 시모지시마의 현지 조사를 실시했다. 히라노 히로후미 관방장관도 내년 1월 두 섬을 방문할 계획이다. 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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