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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부총리와 불란서 여직원(김호준 정치평론)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방한선물로 양도한 우리 고문서 1권을 파리에서 서울로 공수해온 프랑스국립도서관의 두 여직원이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껴안고 울면서 내놓기를 거부해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일개 말단공무원이 감히 대통령의 결정에 반발하다니… 그것도 국가의 체면을 중시해야 할 외국 땅에서 눈물까지 펑펑 쏟으며 저항했다니… 관료사회 하면 먼저 상명하복과 보신주의만을 연상하고 있는 우리네로선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어서 그런지 신기하기조차 했다. 더구나 두 여직원이 귀국후 이 고문서반환을 『프랑스의 국익과 합법성에 반하는 행위』라고 항의하며 사표를 냈다는 보도에 접하곤 그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에 다시한번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문명사회의 인류양심에 비추어본다면 두 여직원의 저항은 결코 미화할 대상이 아니다.남의 나라에서 무력으로 약탈해간 문화재를 돌려준다는 건 현재의 지구촌 윤리로 볼때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한국고문서는 프랑스의 높은 문화의식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그들의 제국주의 만행을 웅변하는 장물일 뿐이다.그걸 계속해서 움켜쥐고 있겠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편협한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그러한 이기심은 오히려 인류 양심과 문화의식의 함몰로 규탄되어야 마땅하다.그럼에도 두 여직원의 눈물이 찬양됐던건 한국 관료사회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충실한 직무의식과 떳떳한 소신 표명이 거기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평화의 댐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두한 수의의 장세동 전안기부장이 의원들 앞에서 두눈을 바로 뜨고 목을 곧추세운채 당당한 태도를 보인 것이 시중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이유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그는 「오야붕」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걸 자신의 몸으로 막으려는 듯 평화의 댐은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아래 입안,건설됐다고 거침없이 증언했다.5공비리와 관련한 두번째 옥살이로 더이상 떨어질 나락이 없는 그로선 평화댐 건설책임을 몽땅 뒤집어 써봤자 두려울게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평화댐 진상규명과 냉철한 과거 반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장씨의 막무가내는 실망스런 것이었는지 모른다.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장씨의 태도가 당당하게 비쳐진 까닭은 그렇지 못한 오늘날의 세태 때문이었을 것이다.정치인들의 신의없는 처신과 책임질 일은 요리조리 빠지려고만 드는 관료들의 매끄러움을 뻔질나게 보아온 국민들의 눈에 장씨의 태도가 옛날 소설에나 나올법한 우직한 돌쇠로 비쳐진건 당연하다. 신정부의 경제총수이자 실명제추진의 주역으로 알려진 이경식부총리가 지난주 관훈토론회에서 드러낸 대통령과의 관계에서의 소극성은 문민시대의 소신있는 공직자상을 기대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씁쓸함을 안겨 주었다.대통령의 지시가 경제논리에 맞지않을 때 『노』라고 말한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그런적이 없다고 답변했다.또 장관들이 요즘 「예스 맨」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대통령 밑의 장관이니까 예스를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당연시한뒤 『그렇다고 대통령앞에서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개진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그의 답변을 뜯어보면 「강력한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예우가 함축돼 있음을 발견한다.동시에 그가 적극적인 직언형이 아니라는 것도 감지할 수 있다. 지금 항간에선 대통령 주변에 직언하는 측근,직언하는 각료가 드물다고 지적하는 소리가 많다.이부총리의 관훈클럽답변은 그런 항설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실명제실시와 관련하여 가·차명예금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대상이 당초의 1억원에서 3천만원으로 내려간 것도 경제논리에 입각한 주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각료들이 직언으로 「1억원」을 지켰던들 실명제보완대책은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21일 국회연설을 통해 『분출하는 집단이기주의에 맞서 안될 것은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국민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대통령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인기를 의식해야 할 자리다.더구나 의정단상을 정치적 성장의 배경으로 갖고 있는 김대통령은 누구보다도 국민의 인기에 민감한 정치인이라는 평을 들어왔다.그가 이제 그러한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들에게 얼마든지 『노』라고 말하겠다고 선언한 건 예사로 보아 넘길일이 아니다. 문제는 공직사회다.대통령도 필요하면 국민에게 『노』라고 말하겠다고 공언한 판국에 공직자들만 여전히 보신주의에 파묻혀 줏대없이 군다면 이는 역사의 기대를 저버리는 짓이다.국민들은 각료나 대통령 측근들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근성을 요구하고 있다.그건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하라는 뜻이 아니다.투철한 애국심,뚜렷한 소신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해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좌한다면 「예스」와 「노」를 말하는데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재산공개를 통해 깨끗함을 인정받은 공직자라면 무엇이 무서워 소신을 펴지 못한단 말인가.
  • 영주 귀국의 꿈(사할린 한인 망향의 한 50년:1)

    ◎“단하루 살다 죽어도 고국에서…”/“일제에 의한 강제 타국생활 청산” 갈망/1세대 등 1만3천명 고향이주 고대 사할린 땅에는 지금도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간뒤 50여년을 타의에 의해 타향살이를 해온 4만여명의 우리 동포가 살고 있다.망국의 한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만든 고통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이야기야말로 어쩌면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서글픈 역사의 한토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지난 89년이래 다행이 많은 사할린 한인들이 모국땅을 밟고 가족들과 꿈같은 재회의 기쁨을 누렸지만 이들의 가슴에 맺힌 한이 풀어지기엔 아직도 숱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본사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이 사할린 동포들을 찾아 요즘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문제점들을 취재,4회에 걸쳐 보도한다. 『이기 사람 사는 기가.일찍 죽으마 억울한끼네 악으로 사는 기지.죽은 몸띵이라도 고향땅에 묻힐라꼬』 임판개(68세)옹의 이 절규의 밑바닥에 깔린 한을 이해하지 못하면 일제때 징용으로 끌려온 소위 사할린한인 1세노인들이 왜 그토록 기를 쓰고고향땅으로 돌아가려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할린한인들 사이엔 지금 너도나도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영주귀국의 「열병」이 돌고 있다.영주귀국을 신청한 노인들은 『왜놈들한테 강제로 끌려와 자나 깨나 고향하늘 쳐다보며 부모형제 만날 날만 기다리며 한평생을 보냈다.이제 돌아갈 길이 열렸는데 왜 안가.단 하루라도 고향땅에 가서 살다가 묻힐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지난 89년 9월 25일 역사적인 첫 모국방문이 이루어진 이래 많은 사할린 동포들이 그동안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들과 꿈같은 재회의 감격을 맛보았다.지금까지 대한적십자사가 주선한 전세기를 타고 모국을 찾은 사람은 4천6백명.사할린한인들을 돕고있는 일본변호사 다카키 겐이치씨의 도움으로 일본을 경유,모국을 찾은 사람이 1천2백명 그리고 개별친척 초청에 의한 5백여명 등 총 7천명에 가까운 사할린한인들이 고향산천을 다시 보는 꿈을 이루었다. 5백여명으로 집계된 70세이상 노인들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모국을 한번씩은 다녀왔다.이에따라 모국방문과 영주귀국을 주선하는 사할린주 이산가족회와 노인회에서는 1세의 범위를 해방된 해인 45년 출생자까지로 확대,1세의 수는 총8천5백명으로 늘어났다.이 경우에도 1천여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국방문을 한번씩 한 셈이다. 현재 2세,3세까지를 모두 합친 사할린한인총수는 4만3천여명.이들에게 골고루 모국방문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아래 대한적십자사가 실시하는 공식 모국방문은 1인 1회로 국한돼 있다.그러나 단한번의 모국방문으로 타의에 의해 평생을 타국땅에서 보낸 1세노인들의 한이 풀어질 수는 없었다.그래서 생겨난 것이 영주귀국이다. 고향인 경남 산청군에서 18살때 잡혀온 임판개씨의 사연을 들으면 그가 왜 「막무가내로」 모국땅에 묻히고 싶어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그는 1943년 11월 어느날 아침밥상을 받아놓고 숟가락을 드는데 왜놈순사가 들이닥쳐 숟가락을 든채로 잡혀왔다.14살 위인 그의 형님앞으로 징용장이 나왔는데 형님은 형수와 아이들 둘이 있고 장자라서 도저히 보낼 수가 없어 피신을 시켰다.『왜놈순사가 나를 보더니「네가 임영식이냐」고 하데요.「아닙니다.형님은 읍내 일보러 갔습니다」했더니 「물론 도망갔겠지」하면서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그럼 네가 대신 가자」해서 그길로 끌려왔다』는 것이다. 산청군에서 함께 끌려온 사람이 1백명이었다고 한다.그길로 징용복으로 갈아입고 「가라후토(사할린)보국대」란 완장을 차고는 부산,시모노세키,홋카이도,하쿠다테를 거쳐 사할린에 도착했다.그는 당시 한인들이 대거 투입된 유즈노사할린스크시 북서쪽 「한많은」브이코브탄광에 투입돼 해방될때까지 「죽을 고생」을 했다. 식사라고는 보리쌀이 보일락말락 섞인 콩밥 한공기씩.그걸 먹고 하루 11∼12시간의 중노동을 했다.『갱내에서 1시간 일하고 바지를 잡으면 땀이 물같이 주루룩 흘렀다』고 한다.같은 조원 5명중 1명이 일주일도 안돼 작업도중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허기때문에 조금이라도 일손이 느려지면 사정없이 왜놈들의 발길질이 날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고향에 돌아갈줄 알았던 그는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귀환의 꿈이 좌절된채 또다시 50여년을 이국땅에서 보냈다.그는 90년 2월에 적십자사의 전세기로 고향땅을 다시 밟았다.그러나 부모와 그의 형님 내외는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그뒤에도 고향에 대한 그의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 사할린에서의 생활은 하루가 지루하게만 느껴졌다.그는 지금 영주귀국 신청을 해놓고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주노인회가 집계한 바로는 이렇게 영주귀국을 희망한 사람의 수가 2,3세를 합쳐 모두 1만3천4백84명에 이른다.
  • 자녀/청소년기 이성교제/이대 전찬화교수 공개강좌서 도움말

    ◎“공개적 사귐”되게 부모가 도와줘야/5∼6학년부터 눈 떠… 무조건 반대는 역효과 초래/공부 소홀이 않도록 “그나이 때 한계” 일깨우도록 자녀들의 이성교제를 어떻게 할것인가. 청소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이성교제 문제로 걱정하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이들의 이성교제를 부모입장에서 드러내고 허락할 수도 없고 또 막무가내로 막기만 할 수도 없어 이래 저래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들을 위해 한국지역사회교육중앙협의회가 이 분야 전문가인 이대 교육심리학과 전찬화교수를 초청,26일 협회 강당에서 공개강좌를 열었다. 전교수에 따르면 자녀들의 이성교제가 시작되는 시기는 아이들의 성장속도에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요즘은 대충 국민학교 5∼6학년이 되면 이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더 일찍 눈을 뜬다. 『국민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성교제 입니다.그러나 이 시기에 실제로 교제를 하고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별로 많지않지요』전교수는 이 시기에 아이들의 태도는 실제 마음과 달리 이성을 싫어하는 것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성숙정도와 특징등을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대개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제를 허락하면 공부에 지장이 있을것같고 그렇다고 막아버리면 반항을 하거나 성격발달에 지장이 있을것같아 엉거주춤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전교수는 아이들도 남녀가 함께 대화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협력하는 태도를 배우며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경험과 기회를 얻게되는만큼 부모들이 이성교제를 밝고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시기는 부모보다 친구들이 더 중요한 위치로 바뀌면서 자칫하면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가 단절되기 쉽다.따라서 지혜로운 부모라면 자녀가 가벼운 마음으로 이성 이야기를 하도록 먼저 그들의 주변에 있는 이성에대해 묻고 관심을 보여 터놓고 의논할 수 있는 의논대상이 되도록 노력하는 태도를 갖도록 한다. 즉 청소년 이성교제에 대한 사회의 눈이 따듯하지 않고 부모들도 이성교제를 문제행동의 앞단계로 보기때문에 아이들은 숨어서 정신적 부담을 갖고 비밀스럽게 이성교제를 하다 사춘기의 미숙함과 경험부족으로 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믿음직한 부모가 의논의 상대로 뒤에 있음을 알게 하라는것. 그러나 자녀의 이성교제를 허락하기에 앞서 부모는 아이들로부터 공부문제와 교제의 한계에 대한 확실한 다짐을 받아둬야 한다.그래야만 아이들이 그같은 약속에대한 책임때문에 몸가짐에도 세심한 주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이성교제에서 상대자가 결혼의 짝이 되는 일은 거의 없는만큼 청소년기의 이성교제는 우정의 테두리안에서 지낼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된다.이밖에도 이성교제는 1대1보다는 그룹으로 가볍고 넓게하도록 하고 항상 10년뒤의 변화할 자신의 모습을 생각,성에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주는등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슬기를 일깨워 줘야 한다.
  • 총독부건물 철거와 폭파/김재룡 칼럼니스트·제일증권 전무(굄돌)

    장고끝에 대통령의 결단으로 중앙박물관이 헐리게 된 것은 참으로 잘된 일이다.나는 그 건물이 꼭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이고 조선 식민통치의 상징으로서 총독부 건물이었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유감(?)이 많았던 터라 남다른 감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위치상의 부적합성과 오만불손한 외형이다.시청앞 광장에서 광화문을 향해 가노라면 의레 사람들의 시선은 가까이에 있는 청와대 뒷산을 중심으로 구름이 비낀 북한산 주봉과 인왕산 자락에 머무르게 되어 있는데 가까이 갈수록 눈길을 차단시키는 흉물이 바로 그 건물이다.또한 근정전을 뒤로 깔아뭉개고 남산과 온 조선천지를 정면으로 향하여 호령하듯 버티고 선 그 자세가 도무지 권위주의적이고 오만불손하다.해체결정이 내려진 며칠후 일부러 인왕산에 올라 그 총독부 건물을 자세히 관망해보니 일본인 풍수가 보더라도 할말이 없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북한산 봉우리와 북악산의 등고선이 그림처럼 흘러내려 남산으로 뻗어가는 바로 그 길목에,그것도 근정전을 중심으로 지금 한창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강령전과 교태전의 코앞에 막무가내로 버티고 서있는 그 건물을 왜 진작 헐어버리지 않았는가. 둘째로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서의 민족자존과 전시공간으로서의 기능성의 문제이다.내경우 현위치로 이전하기 전에는 자주 박물관을 찾았는데 이전한 이후 딱 한번 가보고는 그만 발길을 끊었다.그것은 이미 태통령이 언급했듯이 우리의 민족문화유산을 하필이면 총독부 건물에 들여 놓느냐 하는 자존심도 있고 유물의 전시공간으로서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래저래 자존심 건드리고 보기 싫던 그 건물이 헐리게 되었으니 다행인데 그다음은 어떻게 허물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다.주무부처가 어련히 검토해서 하겠지만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요즈음 고층건물도 일시에 폭파해서 해체하는 특수해체공법이다.기술적인 측면이야 알 수가 없으나 예산도 절약될것 같고 약간의 상징성도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굳이 발파스위치를 독립운동 후손이 누르게 하는 치기는 보일 필요가 없다고 하겠으나 허물어져 내리는 옛 총독부건물의 잔해를 보면서 가슴속에 쌓였던 한의 응어리를 풀었다고 할 서민들은 꽤 많을성 싶어서이다.
  • 더불어 살기Ⅱ/안경렬 역촌동성당 주임신부(굄돌)

    지난 시절 두려워했던 것은 정보기관들이었고 불안해했던 것은 막무가내로 치닫는 학생데모였다.요즈음 금기의 대상은 학생운동과 노조운동 그리고 언론계와 종교계의 비리 정도일 것이다.그중에 걱정거리는 뭐니뭐니해도 「현대」로 대변되는 노사분쟁이다. 미사드릴 때마다 『현대에 평화를 주시고』라는 기도문 구절은 물론 현대기업을 뜻하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기에 신경이 쓰인다. 어찌 현대만의 문제랴.어느 신문엔 노동계와 신정부와의 대결로 보기도한다.한편 노동부는 새로운 기치(?)를 들고 나오다말고 노사당사자문제라고 발뺌하려하는 인상이다. 자동차 한대에 2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며 그중 많은 양을 하청으로 중소기업에서 생산납품한단다.이들 하청업체의 근무조건과 임금수준은 조립하는 대기업 근로자와 비해서 어떠한가.온 산하가 공장으로 인해 받은 환경공해부담금도 생각해야한다.더욱이 국민의 저축,국민의 담보로 은행대출과 정부의 직간접지원아래 유지되는 오늘의 기업이 아닌가.또한 국내 소비자들이 턱없이 떠맡게되는비싼값에 대한 보상도 우리는 찾아야 한다. 사실 오늘의 기업은 노동자의 희생,환경오염비용외면,농어촌의 희생,국민에의 부담,중소기업의 희생 위에 성장했다. 조악한 원자재는 공장에서 쓸모있는 제품이 되어나올때 고귀한 인간은 걸레가 되어나온다고 했다.우리 기업은 역사가 짧고 그나마 저임금의 노동력과 외국기술을 비싼 대가를 치르며 들여와 정부담보로 투자해 생산조립해서 내외국에 팔아왔다.이제 고금리 고임금 고기술사용료와 환경비용 교통비용등 살아나가기 힘든 때가 왔다. 국민은 사편에 비판의식을 지니지만 근로자편에도(특히 대기업의) 곱지않은 시각을 지니고 있다.생산직 직원편이 일반직보다 임금이 많고 영국근로자보다도 높다는 말이 진실일까. 일본이 70년대 극렬하던 춘투가 엔고와 불황의 90년대 접어들며 노사협력으로 대처해나감을 배워야한다.노조지도자들에게 작은 고언을 하고 싶다.붉은 머리띠를 청색이나 초록색으로 바꾸어보자.국민의 지지를 받는 첫걸음이 되리라.기업,특히 대기업은 국민 모두의 것이다.
  • 교통도의와 신앙심/안경렬 역촌동성당 주임신부(굄돌)

    우리 일상의 삶 가운데 나와 남의 마음을 아프게하며 다투는 일이 무엇때문에 가장 많이 일어나는가 조사해본다면 너나할것없이 교통과 차량운행문제라고 대답할 것이다. 언젠가 나는 차선을 바꾸려다 뒤따라오는 분을 놀라게했나보다.경적을 울리며 뭐라고 해댄다.얼핏 백미러로 보니 아뿔싸,내가 잘아는 우리 교회신자였다.순간 부끄럽고 당황했는데 다행히도 직진신호가 떨어져 위기를 모면했다.색유리 덕분에 그는 미처 나를 몰라본게 틀림없다.후에 만나도 겸연쩍어 그 얘긴 못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난폭운전,얌체운전,안하무인운전과 부주의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멍들게하는가.우선 그중에 못마땅히 여기는 두가지가 좌회전 차선으로 앞서나가서 막무가내 직진으로 끼어드는 차와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중에도 위협적으로 급정거하며 보도를 밟으며 슬금슬금 나가는 차다.놀라며 분노하는 보행자를 볼때마다 죄스러운 느낌이다. 자동차때문에 좋은 면도 많겠지만 우리 심성과 생활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어떻게 가늠할까.거기에 교통사고까지 합친다면 우리의 정신과 육체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게될까.드물지 않게 교통사고사망으로 장례미사를 집전할땐 이것이 우리 모두의 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같은 현상은 흔히 우리의 조급한 성격과 생활습관때문이라한다.우리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백성이었지않은가.사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선가.느긋하게 천시를 기다려야하는 천하지대본인 농업을 포기해선가.정보의 홍수시대에 사회변화와 발전속도에 발맞추려는 허덕임인가.숱한 전쟁과 수탈의 역사와 정책의 불안정,요령과 선착순,투기의 시대에 벼락출세 벼락부자 물질적 향락 경제제일주의속에 빗나간 경쟁과 허세가 우리를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가의 어짐,불가의 자비,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 이들이 대부분인 이 사회에 왜 이다지도 겸양과 자애와 희생을 교통도의에선 찾기힘든가.이름뿐의 신앙이 많기때문이다.남에게 베푼것이 내게로 돌아온다.벌칙강화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할 형제들임을 명심해야한다. 여기 신앙인들이 솔선해야할 이유가 있다.나는 보행자와 버스엔 우선 양보하련다.「혼자」라는 미안함에서라도 말이다.
  • 할부금 완납 1년후에 청구서가 왔는데…(소비자상담실)

    ◎채권 시효3년… 영수증있어야 손해안봐 ◇91년 6월경 노상에서 10회 할부로 그릇세트를 구입한 후 매달 방문하는 수금사원에게 대금을 전액납부했다. 그런데 마지막 할부금을 납부한지도 1년이 넘은 지난 11일 그릇회사에서 물품대금을 영수하지 못했다며 최고장을 보내왔다. 대금지불을 않을 경우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한다. 구입한지 상당 기간이 경과한 까닭에 영수증은 보관해 두지 않았지만 대금은 전액 지불했다고 수차례 항변했으나 회사측은 막무가내다. ◇민법 제163조에 의하면 사업자는 물품을 판매한 대금에 대해 3년간 채권을 행사할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소비자는 사업자의 대금청구에 대비해 영수증 또는 확인서를 3년동안 보관해 두어야 한다. 만일 대금의 지불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법적 보호조치도 받을수 없게되므로 소비자의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다.
  • 식량부족으로 이혼·가출 등 가정불화 빈발(북한 이모저모)

    ◎농촌 김매기에 근로자·사무원들 집단투입 ○한끼식사 옥수수 100g ○…북한에서도 최근들어 부부간 이혼사건이 빈발,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부부간 이혼의 주원인은 식량부족에 따른 남편의 구타행위가 첫째요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구타행위는 힘든 노동과 배고픔으로 인한 짜증으로 막무가내로 아내에게 「이밥과 배부른 식사」를 요구하며 이를 나무라는 아내를 구타,이혼 및 가출행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자강도 만포시 소재 타이어공장에 다니는 이모(32)는 아내가 『식량은 없고,밥을 많이 먹는 남편과 못살겠다.이혼하자』고 하여 합의이혼했다. 하였고 같은 공장의 김모(38)는 배가 고파 아내가 없을때 한꺼번 최근 북한을 다녀온 중국동포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극심한 식량난으로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일부지방에서는 2개월에 15일분만의 식량을 배급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가족들이 옥수수 1백g으로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하루 2∼3시간 노력동원 ○…북한은 최근농촌일손이 크게 부족한 실정을 감안,논밭 김매기에 공장·기업소 근로자와 사무원을 집단동원하고 있다. 북한방송들의 보도를 종합한데 따르면 북한은 모내기와 강냉이 모종이식이 끝난후 일손이 많이 필요한 김매기를 기한내에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각급 협동농장원들의 노력동원을 극대화하는 한편 군단위별로 노동자·사무원을 최대한 차출,농촌지원사업에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장이나 기업소,행정단위들은 업무에 꼭 필요한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김매기지원에 내보내고 있으며 휴일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퇴근후 2∼3시간씩 주변농장에 나가 김매기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인민대학습당(평양시 중구역소재)3층에 위치한 「김일성동지 노작 전람관」에 해외서 출판한 김정일의 「문헌」을 다수 전시했다고 중앙방송이 15일 보도했다. 북한은 그동안 김일성·김정일의 「문헌」등을 번역,해외보급에 주력해 왔는데 이날 중앙방송에 의하면 세계 1백여국서 50여개언어로 출판된 4백여종의 김일성·김정일 「문헌」들이 전시되어있는 이 전람관에 최근 라오스 파키스탄 짐바브웨 나미비아 포르투갈 유고 불가리아 러시아 헝가리 등에서 출판한 김정일의 「문헌」들을 새로 전시했다는 것이다. ○1천6백여종 식물재배 ○…북한의 원산식물원은 모두 1천6백여종의 식물을 재배,청소년들의 식물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북한방송이 지난 19일 보도했다. 원산식물원은 김정일이 지난 70년 6월20일 이 곳을 시찰한 이래 다양한 실험을 통한 식물재배·관리에 주력,현재 금강소나무·금강초롱을 비롯해 1천6백여종의 식물들을 재배·전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 야영생들과 원산시 청소년들을 집단으로 관람시켜 식물에 대한 지식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북한방송은 전했다. 또 이 식물원은 1천㎡의 규모로 「김정일화」온실을 조성,해마다 1만포기 이상 재배·보급하는 한편 이 곳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재배되고 있는 「김정일화」를 보여주면서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 고취를 독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식물원은 국화인 목란 재배연구를 비롯해 새 품종육성과 북한지역 풍토에 알맞는 화초 재배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북한방송은 덧붙였다.
  • 「글방전화」 봉사/이경표 국립중앙도서관장(굄돌)

    『슬롯 머신을 영어로 어떻게 씁니까』 『율곡사업은 왜 율곡이라 이름을 붙였습니까』 요즘 국립중앙도서관 「글방전화」에 걸려오는 문의전화내용 중 일부다.『꺾기란 왜 그런 용어를 썼습니까』 『KFP는 무엇의 약자입니까』시류에 따라 사정바람과 관련한 내용이 많다. 우리 「글방전화」에 걸려오는 전화건수는 1일 평균 80여건.한때는 1백50여건에 이른적도 있었다.물론 그 가운데 절반이상이 자료를 찾거나 책에 관한 내용이지만 이같이 시사상식에서부터 문화 과학 농수산 의례등다양한 내용의 문의가 걸려오고 있다.서편제의 말뜻은 무엇이냐,18번의 유래는,그리고 신토불이의 어원,6순잔치 축의금 봉투는 수정이라 쓰는데 7순 8순에는 어떻게 쓰느냐.좀 심한 경우는 자라양식 토끼번식은 어떻게 하느냐는등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고 있다. 「글방전화」는 이용자 편의를 위해 도서정보내용을 알려주도록 설치된 전화다.그런데 어떤때는 인생상담까지 요구해 답변해야하는 경우도 있다.얼마전 어느 30대 남자는 아내가 자기를 구타하는데 어찌했으면좋겠느냐는 내용이었다.이같은 하소연에는 우리 「글방전화」가 처리해야 할 내용이 아니니 인생문제를 다루는 상담소에 전화해보라고 권유하나 들어만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막무가내다. 걸려오는 여러가지 문의에 답변을 할라치면 한번 전화로 끝내지를 못하고 두번 세번 통화를 해야 할 때가많다.따라서 사서들이 토끼처럼 이리뛰고 저리뛰고 두더지처럼 이곳 저곳 서고를 헤맨후 찾아서 알려주지만 자료가 없을 때는 그 민망함이란 이루 말할수 없다. 나라의 대표 도서관인데 그만한 자료쯤이야 있으려니 하는 기대를 안고 문의하는 것일텐데….사서들은 답변을 하기위해 아침일찍 출근하자마자 당일 신문을 모두 탐독해야하는 등 준비에 바쁘다.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구석의 일이지만 이따금 날아드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고마운 일을 하는 곳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는 감사의 편지는 사서들에게 봉사자로서의 새로운 사명감을 다짐케 한다.
  • 외무부 여권2과 2계 윤선화계장(이런자리 저런일)

    ◎특정국가 여행허가업무 처리/한­중수교후 업무량 폭주… 민원청탁 쇄도로 골치 매일 반복되는 일과지만 책상에 수북히 쌓인 민원서류를 대할 때마다 「국제화 시대」라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외무부 여권2과 2계장 윤선화씨(39).그녀는 과거 정부의 시혜차원에서 이루어진 해외여행이 이제는 자유화돼 국민들이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을 보면서 14년전 외무부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와 비교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여권2과 2계는 특정국가 여행허가 담당부서.중국·라오스·캄보디아·쿠바·독립국가연합(CIS)·그루지아 등 여행제한국 여행허가 신청서류를 받아 안기부의 조회를 거쳐 여권에 여행제한국 허가 직인을 찍어주는 일을 한다. 보통 하루에 처리하는 민원건수는 3백50∼4백건.이가운데 상용목적의 중국여행허가 신청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권2과 2계 직원은 윤계장을 합쳐 모두 6명.창구에서 직접 서류를 접수하는 직원을 합치면 10여명이 되지만 지난해 8월24일 수교후 갑자기 늘어난 중국여행 허가신청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한숫자다. 게다가 간혹 규정상 미달되는데도 막무가내식으로 허가를 내달라고 조르거나 불친절하다고 언성을 높이는 민원인들때문에 골치를 썩이기도 한다. 윤계장은 『우리의 여권 관련 민원 처리속도가 세계에서 2,3번째로 빠른데도 일반인들은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빨리 빨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라며 『또 서류에 전혀 하자가 없는데도 소위 「아는 사람」을 동원하려 한다』고 민원인들이 좀더 계획성있게 그리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줄 것을 당부한다. 이같은 민원 청탁은 하루에 5∼6건쯤.이미 처리가 다 끝났는데도 「아는 사람」을 통해 부탁이 들어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과 2계를 포함해 여권과 전체 직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민원부서라고 해서 외무부내에서조차 홀대를 받는 것.또 타 부처로부터 이권부서라고 오해를 받는 일도 속상한 일이라고 한다.
  • 핵·핵·핵(외언내언)

    핵무기를 단순히 고도로 발달한 무기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그 가공할 파괴력으로 핵무기가 수억 또는 수십억의 인간을 살상하고 산업혁명 이후에 이루어 놓은 물질문명을 그 이전상태로 되돌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전 인류가 공유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이르기까지 지구 최대의 핵강국일수 밖에 없는 미국의 핵입장은 이렇다. ­핵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선제공격을 하지않을 것을 공약할 수 있는가. 『공약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공세를 취할수 있을 것으로 가정할수 있는지. 『미국은 어떻한 경우에도 그점에 관하여 논평하지 않는다.그러나 소련측은 이 가공할 무기가 역사상 두번이나 인류에게 투하되었다는 사실과두번다그투하한장본인 이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러므로 소련인들은 이 점을 고려해서 계산해야 할것이다』 지난 80년 당시 카터대통령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문답내용이다.미국의 외교정책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준다.역설적으로 보면 미국은그래서 오늘날 핵감축이나 개발억제등 핵확산 방지에 앞장서고 있다고 할수 있다. 핵무기가 폭발할때 맨 먼저 목격하게 되는 것은 눈부신 섬광이다.이것은 공모양의 불덩어리로 변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본것 만으로도 벌써 상해를 입게된다.약 5㎞범위에서 빛의 섬광을 본 사람은 모두 망모화상으로 실명하게 된다.압력파는 또 어떠한가.19 45년 당시 히로시마의 인구는 26만 이었는데 원폭투하 직후 곧바로 6만명이 죽었다.투하지점 1㎞내에 있던 사람의 86%가 즉사했다. 이것이 핵이다.핵무기체계의 논리는 한마디로 「절멸주의의 범주」이며 인류 공멸의 총체적 사회체계인 것이다.그런데도 북한은 지금 막무가내 전세계를 상대로 핵불장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과연 어쩔 것인가.
  • 공연문화 관람문화/서동철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서울오페라극장의 개관을 기념해 15일 저녁에 있었던 오페라「시집가는 날」의 첫 공연은 거창한 외형에 비해 의식은 뒤쳐진 우리의 처지를 그대로 드러낸 한 판이었다. 이날 공연은 객석수를 훨씬 넘는 관람객이 빚은 한바탕 소동으로 시작됐다.예술의 전당측은 애초부터 2천3백46개 객석보다 훨씬 많은 초대권을 보내는 무리수를 두었다.객석수와 일치하는 초대권을 낼 경우 여기저기 빈자리가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해 축제분위기에 흠집이 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이 초대권을 남발한 이유 가운데는 또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같은 시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독창회에 행여 관객을 빼앗길까 초조해진 나머지 초대권을 남발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그렇다면 개관 첫 날 준비한 레퍼터리에 그 만큼 자신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관객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주최측은 당초 초대권을 보내며 참석여부를 미리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그럼에도 이에 응한 사람은 고작 4백여명이었다는것이다.이에따라 공연 시작전부터 좌석을 얻지 못한 초대권 소지자와 주최측 사이에 실랑이가 오갔다. 그러나 정작 큰 소동이 벌어진 것은 공연 시작시간인 하오 7시를 넘어 도착한 사람들로 해서였다.이들은 격렬한 항의와 공연중인 극장문을 밀고 당기는 막무가내로 7시30분쯤에는 극장안으로 진입할수 있었고,결국 3백여명이 서서 관람하는 가운데 장내 분위기는 어수선해질수 밖에 없었다.이렇게 되자 같은 초대권으로 들어간 문화부 공무원 등 「예술의전당 입장을 알만한 사람들」은 1막이 끝난뒤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러한 해프닝이 지나가고 3시간여의 공연이 끝날때 쯤의 객석은 군데군데 이가 빠졌다.기대에 못미치는 공연이었다고는 해도 출연자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가 됐다.객석도 무대도 개운치 못했다. 그렇다고 이날 있었던 일로 해서 우리의 공연문화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사실 이날 극장을 찾은 사람의 상당수는 오페라를 보기위해 왔다기 보다는 극장 시설을 구경왔다고 해야 옳을 것이기 때문이다.계획은 거창하면서도 운영의 묘를 못살리는 예술의 전당이나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관객 모두가 생각해 볼 문제다.서울오페라극장이라는 「하드웨어」에 걸맞는 수준의 「소프트웨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 인도영화/베드신 등장할까?

    ◎엄격한 검열 불구 성표현 삽입 노력 인도영화에도 베드신이 등장할 것인가.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1천편에 이르는 새 영화,한 주일의 영화관객 7천만명,1만2천곳의 극장,70여개의 영화스튜디오와 30개남짓한 현상소. 이것이 세계 최대라는 인도 영화산업의 명세서이다.10억의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가히 「영화의 낙원」이란 말이 어색하지가 않다. 그러나 인도영화는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주제면에 있어서 극히 제한적이어서 세계시장에서는 규모만큼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남녀의 사랑이나 가정·사회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성에 관한 검열이 엄격해 베드신은 물론 농도가 진한 키스신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계급제도인 카스트와 힌두교의 영향으로 노골적인 애정행각을 화면에 비치는 것이 금기로 여겨지는 것이다. 남자를 위해서 희생하고 무조건 순종해야하는 여성상이 굳어진 사회에서 영화속의 인도여성들은 늘 천대받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인도의 할리우드라는 「볼리우드」,즉 봄베이를 중심으로 이러한 전통은 서서히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봄베이 교외의 대규모 종합촬영소인「4름시티」앞문에 앉아 좋아하는 배우가 나올 때를 기다리는 열광적인 영화팬들은 이제 새로운 영화를 원하고 있다.판에 박힌 줄거리에 막무가내로 감동해주지 않는다.그들은 키스신이나 베드신이 사회관습이라는 빌미로 가위질당하는 것에 서서히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관객들뿐 아니라 감독과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영화주제를 자유롭게 넓혀보려는 움직임이 조용히 일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벗기는 영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하나의 완성된 성으로서 인정한 영화,관습이 걸머씌운 굴레로부터 여성들을 풀어줄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실제로 이들은 최근 제작하고 있는 영화에서 검열에 지적될 것을 알면서도 이미 있는 틀을 깨기위해 시나리오에 걸맞는 성적 표현을 조금씩 곁들이고 있다.
  • 담배자판기철거 마찰(현장)

    ◎주민 자진철거 요구에 업자 반응 냉담 9일 상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버스정류장앞 슈퍼마켓. 『청소년들을 위해 제발 담배자판기를 철거해 주십시요』 『아니,요즘 애들이 자판기가 없다고 담배를 안피우겠습니까』 『그래도 자판기때문에 청소년들이 손쉽게 담배를 구하지 않습니까』 『왜 하필 담배 자판기만 갖고 야단입니까.이곳 말고도 청소년들에 유해한 업소가 어디 한두곳입니까』 이날 부천시내 20여곳에서는 「부천담배자판기 추방시민단체연대」(일명 담추련)회원들과 아직 철거하지 않고 담배자판기를 갖고있는 업주들간에 이같은 실랑이가 벌어졌다.심지어는 멱살을 잡거나 삿대질이 오가기도 했다. 이날 이 지역 89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담추련」(상임대표 김흥식)의 3백여 회원들은 가는 곳마다 업주들의 큰 반발에 부딪쳤다. 회원들은 자판기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진 철거를 요청했으나 업주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되레 호통을 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사유재산권을침해하는 거요』 『그렇게 청소년문제에 관심이 많으면 당신의 집 아이들이나 돌보시요』 이럴때마다 회원들은 『자판기가 없으면 청소년들이 그래도 담배를 덜 피우지 않겠느냐』면서 양해를 구했지만 업주들은 막무가내였다. 가는 곳마다 실랑이가 벌어지자 한 부녀회원은 『자식기르는 부모심정으로 이 운동에 협조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없는데 왜 당신들만 유별나게 구느냐』는 핀잔을 듣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이 때문에 결국 회원들은 이날 현장방문을 통해 부천지역에 설치됐던 전체 1백12대의 자판기 가운데 아직까지 자진철거를 거부하고 있는 22대의 자판기철거에 동의하는 위임장을 받아내려던 당초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지난해 행정당국의 권유로 자진철거했던 자판기의 일부가 다시 그자리에 설치되고 있는 것이 드러나 회원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했다. 이행사에 참석했던 박경희씨(40·여·부천YMCA)는 『자판기설치금지조례에는 처벌조항이 없어 업주들의 반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수 없다』면서 실정법상의 한계를 아쉬워했다. 더욱이 미철거업주들은 『금지조례제정자체도 자유경쟁시장원칙에 위배된다』며 이의 위헌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을 내놓고 있는 상태여서 담배자판기추방운동은 갈수록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다. 이날 「담추연」성수렬사무국장(39·여)은 그러나 『부천을 선두로 서울·부산등 전국 각 자치단체에서 같은 조례제정이 잇따른 것만도 큰 성과』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 실적위주 암표상단속/박상렬 사회1부기자(현장)

    ◎마구잡이 연행에 귀성객 분통 『귀성객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단속실적을 높이기위해 선량한 귀성객을 암표상으로 몰다니….이럴 수가 있습니까?』 설날을 하루앞둔 지난22일 호남선 열차를 이용,고향에 가려던 박모씨(30·회사원)는 경찰의 무리한 암표상단속으로 하마터면 귀성열차를 놓칠뻔 했다. 박씨는 당초 동생과 함께 고향을 찾기위해 어렵게 열차표 2장을 구했으나 동생이 하루 전날 고속버스편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차표를 바꾸어야 했다. 이날 상오 9시50분쯤 서울역 광장에 있는 반환창구를 찾은 박씨는 창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귀성객 4∼5명에게 둘러싸였다. 차표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귀성객들이 서로 표를 사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때 박씨 옆에 있던 20대후반의 사복경찰이 박씨의 두팔을 붙잡고 「암표상」이라며 연행하기 시작했다. 회사원 신분증을 보이며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사복경찰들은 『암표상이 웃긴다』며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일부 귀성객들이 『그게 무슨 암표냐,너무하다』면서 항의했으나 단속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 없이 역전파출소까지 끌려간 박씨는 경찰이 단속실적을 올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연행했음을 뒤늦게 알고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단속경찰가운데 일부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일부러 반환창구 부근에 기다리고 있다가 박씨와 비슷한 처지의 귀성객들을 「암표상」으로 몰아 연행했기 때문이었다. 박씨가 해명을 요구하자 박씨를 연행한 서울경찰청 제1기동대 95중대소속 사복경찰들과 역전파출소직원들은 뒤늦게 『조용히 돌아가지 않으면 입건하겠다』며 열차시간에 쫓기는 박씨를 파출소밖으로 내몰았다. 예정보다 빨리 귀경한 박씨는 24일 남대문경찰서 역전파출소 박성삼소장으로부터 『기동대원들이 새로 배치돼 이런 불상사를 빚은것 같다』는 해명아닌 해명을 듣고 시민의 편의를 돌보기보다 단속에만 급급한 경찰처사에 어이가 없었다.
  • 교통사고 편파수사“말썽”/경찰/특정인 유리하게 현장검증”항의 속출

    ◎서울 한달 이의신청 1백50건/“뺑소니시인” 강요 등 일방처리 잦아/가해­피해자 뒤바뀌기도 경찰의 교통사고조사반이 검증을 편파적으로 하거나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민원인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담당경찰관들이 교통사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사고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고압적인 언행으로 윽박지르거나 심지어는 은연중 금품제공을 암시하기도 해 민원인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한다.또 간단한 서류처리에도 민원인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는 것은 물론 여러차례 경찰서를 오가게해 불편을 가중시킨다. 이때문에 사고 당사자들은 많은 액수의 보상문제가 걸린 경우 교통안전연구소등 사설 사고 전담조사연구기관에 원인규명을 의뢰,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도 한다. 사고조사반이 이처럼 불친절과 비리의 온상이 되고있는 것은 사고처리결과에 따라 사법처리는 물론 피해보상등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는데다 가해자 또는 피해자들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사건처리를 하려고 금품제공을 서슴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19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30개 경찰서 사고조사반이 한달에 처리하는 4천2백여건의 교통사고 가운데 당사자들이 사고조사에 이의를 제기,재조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1백50여건으로 집계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더욱이 경찰 자체조사에서도 이의 신청건수중에서 3%가량이 담당경찰의 법규이해부족등으로 인해 원천적으로 잘못 처리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상오2시쯤 서울 동작구 상도터널 부근에서 술에 취해 차를 몰다 맞은편에서 달려온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사와 충돌한 이모씨(31·동작구 상도동)는 담당 경찰관으로부터 『내가 아는 변호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라』는 말을 듣고 경찰서에서 8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는 김모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을 소개받아 계약금 2백만원등 모두 6백만원을 주고 변호사를 구했다. 이씨는 뒤늦게 변호사선임료는 보통 2백만∼3백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씁쓸해 할수밖에 없었다. 또 같은달 28일 하오6시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네거리에서 중앙선을 침범,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영업용 개인택시와 충돌사고를 낸 이모씨(34·경기도 과천시 별양동)는 담당경찰이 막무가내로 뺑소니사고로 모는 바람에 이틀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가해자 진술을 하면서 사고당시 뺑소니를 치지않았음을 입증해 줄 목격자가 있다고 말했으나 담당경찰은 『소용없다.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묵살하고 대신 피해자가 내세운 목격자 진술만을 듣고 『뺑소니를 쳤음을 시인하라』고 강요하는 통에 진땀을 흘려야했다. 나중에 목격자 진술을 한 나모씨(39·여)덕분에 뺑소니를 치지않았음을 밝히고 자유의 몸이 된 이씨는 그러나 『한 경찰관으로부터 「합의금 5백만원가지고는 안되겠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또 담당경찰관이 마치 돈을 주지않으면 사건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으며 사건의 성격상 변호사를 구하지않으면 힘들 것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고 분개해했다.
  • 소설가 최인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0)

    ◎「자신의 언어」에 충실한 “지적성직자”/현실묘사보다 관념성 짙은 작품활동 주력/화제작 「광역」발표로 “전후최고작가” 명성도/다방면에 해박한 지식·분석정신… 주관 강한 성품 『흰 바다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마스트에도 그 언저리 바다에도.아마,마카오에서 다른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소설 「광장」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추악한 밤의 광장인 남쪽이나 밀실은 없고 광장만 허용되는 북의 기계적 체제등 모든 것에 염증과 환멸을 느낀 주인공이 어딘가 먼곳,아득한 이상의 나라인 제3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실종되자 독자는 그의 실종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은둔인가,영원한 죽음인가,그렇다면 희망과 기대없는 암담한 절망이란 말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 소설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곧 이 소설은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을 동시에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는 점과 분열된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첨예하게 묘사됐다는 이유외에도 불꽃튀기는 눈부신 지적 문체와 지성미 넘치는 철학적 사고,극명한 체제분석등은 60년당시 정치상황의 독자들에겐 싱그러운 통쾌한 충격일수밖에 없었다. 최인훈은 문단데뷔 1년만에 일약 유명작가로 부상되었고 많은 평자들은 다각도로 그를 조명하기에 앞을 다투었다. 문단과 젊은 문학도들은 당연히 이 당돌한 신인작가가 누구인가에 주목했다.그러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최인훈은 그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거나 물러서지 않은,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적당한 범주속에서 언제나 담담하고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이다. ○견고한 자기세계 구축 좀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 자신이 자신을 감추거나 도사린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의 실체를 공략할 수 없게끔 이미 탄탄하고 견고한 지식의 성속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편이 옳다. 그와 친한 친구들­이라기보다 그를 가까이 하려고 접근했던 이들은 그의 문학과 철학 역사와 생태학 진화론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과 지적직관,철저하게 파고드는 분석정신에 삼투된 나머지 오히려 그를 난삽한 존재로 규정짓고는 일찌감치 그에대한 현혹을 포기했던 것 같다. 예를들어 그는 아무나를 만나서 선뜻선뜻 대화에 응하거나 문학지등이 내건 잡다한 기획에 뛰어들어 그때마다 지면을 장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필자는 아니다. 그가 나설 자리 나서지않을 자리를 또박또박 구두점을 찍어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타당성 여부를 명료하게 따지고 타진한다.그래서 편집자측도 그에게 맞는 마땅한 기획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게되었고 그역시 『부덕한 사람이 실수를 피할수 있는 길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상』임을 전제,상대방이 빠져나갈수 있는 탈출구를 터주고 있다. 만사에 긍·부정을 분명히 하면서 이렇게 적당한 변명을 달아주는 것만봐도 지금까지의 주변의 평가대로 그의 행동과 말에는 막무가내의 기미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작가라는 작위」가 갖는 위치가 「막대한 부채를 인수한 상속자」라 현지라도 체면상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거나 체면상 글 한줄 써야 하는 허례와 허식,의례적 형식들을 외면하기 위해서,그러니까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걸맞는 이유를 장치하고 있었는지도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오라하지도 않고 갈만한 일도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된다.따라서 사교적인 모임이나 장소에서는 객관적으로 건너다보아도 그의 존재는 어울려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의 네 귀가 딱딱 들어맞아 빈틈이나 허술함을 찾아볼수 없듯이 그의 평상시의 모습,작가로서의 모습도 여전히 그의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의 걸음걸이에서도 성격이 나타난다.그는 손끝까지 똑바로 편채 걷는다.호들갑스럽게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하지 않는다.침착하게 아주 천천히 반응하기 때문에 그와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곤혹스러운 노릇이다. 자연스러운 자리가 아닌 이상 상대방이 아무리 떠들어도,그래서 의도적으로 작가의 어떤 면을 꿰뚫어보고 그 대답을 얻고자 하는 방법일 때는 그 질문이 명료해질 때까지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린다.그리고 산만함중에도 상대방의 의중이 진지하고 진실하다고 여겨지면 비로소 한마디의 압축된 대답으로 노냐 예스냐로 반응한다. 그는 말을 절제하되될수 있는한 명증한 말만을 고르고 있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 그의 소설은 흔히 「관념소설」또는 「환상소설」,작가로서의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비현실적이라고도 말한다. 혹자들은 그의 소설에는 「생동하는 인물」보다 「지적괴뢰」들이 넘쳐있으며 「쉽게 쓸것도 어렵게 쓰고」그래서 그는 「관념보다는 현실을 그리는게 목적인 소설가로서의 임무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꼬기도 한다. 이른바 카뮈나 사르트르보다는 로맹롤랑이나 레마르크처럼 삶의 향훈이 물씬 풍기는 눈물과 한숨과 인생역정과 사랑의 애증을 그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은 관념에 우선한다」는 논리에 반대되는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관념」은 예술적으로 소설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도 「현실에 우선할 수 있는 소설적 기법」임을 그의 여러소설에서 단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고귀한 자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비극적 상황」만이 독자의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정답은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라는 유클리드의 공식만큼이나 자명하고 단순할뿐 「고귀한 자」는 「한사람의 남자」이거나 「귀족」이거나 「영웅」이전에 그가 처하고 있는 사회적·철학적·도덕적 차원에서 「고뇌하는 현대인」「방황하는 지식인」일수도 있음을 그는 대표작 「광장」과 「가면고」「회색인」「웃음소리」등에서 증명해보이고 있다. 평소의 그는 그의 소설속의 주인공들처럼 24시간 책읽기에 빠져있고 혼자 앉아있기를 좋아하며 남들과의 케상공론보다 아들 윤F(20)에게 「영산회상곡」이나 베토벤을 신청해 듣는 것이 행복하다. 바둑을 둘줄도 모르고 스포츠도 모른다.다른 취미나 오락이 있을리 없다.요즘은 긴 방학을 맞아 갈현동 2층서재에서 오랜만에 신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실은 소설에 손댈 경황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34세에 뒤늦게 결혼해서 낳은 아들 윤F가 중2때 간염백신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보균자로 나타나는 바람에 그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일념과 기원으로 좋은 의사,좋은 병원을 찾아 뛰어다녀야만 했다. 학업을 중단한채 누워서 책과 음악으로 소일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천둥처럼 무너져 내렸으리라. 문학이 예술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예술일 것이다.아들의 아픔을 보면서 이를 체험으로 끄집어내고 휘두를만큼 그는 잔혹하지 못하다. 그것이 작가로서 위대한 것이라면 그는 「사양하고 싶은 위대함」이라고 외면해 버린다.2년전 윤구는 회복하여 검정고시합격으로 지난해 대학에 갔다.딸아이 윤경이도 올해 이대 영문과에 입학,모처럼 가정에 안락이 찾아들어 그는 작품구상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무슨일에든 까탈을 부리거나 까다롭게 군 적은 없다.남들이 지레짐작하는 것이라면 그로서도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그는 다만 글을 쓰는 일에서는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않아 쓰지않을때도 언제나 내면에서 쓰고있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광장」이후 사람들은 그를 향해 작품을 쓰느니 못쓰느니 끝없는 소요로 들끓었다. 그가 「광장」을 쓴것은 24세때다.이후 이 소설은 대학생과 문학도들의 필독서에다 지난 32년간 해마다 1만부이상,지난해엔 2만부,지난해초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단일작품으로는 평자들의 가장 많은 논란을 받았고 「전후 최대의 작가」로 찬사되기도 했다. ○24세때 「광장」 발표 그는 함남 회령출신으로 6·25때 가족이 모두 월남,피란지 부산에서 16세때 장편소설 「두만강」을 쓰기 시작해서 이 소설은 70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면서 아무런 목적없이 법과를 택한 자책감에 학문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결국 출석미달로 4학년에서 1학기를 남기고 대학을 중퇴했다. 그의 웃음은 순백하다.그의 심성은 천진무구한 소년과도 같고 그의 행동은 순리를 좇아 자연스럽기만 하다.그는 집에서는 두남매와 소탈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원영희씨)와의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고 그리고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의 한사람이다. 평론가 김현은 그의 향기높은 지적 탐구로서의 문학에 대해 롤랑 바르트와 줄리앙 방데의 말을 빌려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그는 독자의 평균에 부합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에 성실하게 맞부딪치려고 글을 쓰고 있다.그의 정신의 질서는 혼란된 세계를 조리있게 파악하려는 의지이며 논리에 따라 부당하게 기울어지지 않는 천칭,그는 바로 지적 성직자」라고. 그리고 평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임무가 무엇이든 성직자에겐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라고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연보 ▲1936년4월 함북 회령서 목재상인 부친 최국성씨와 김경숙여사의 4남2녀중 장남 ▲47년 함남 원산으로 이사,회령국민교에 이어 원산중­원산고2까지 ▲50년 6·25로 가족 전원 월남,부산 정착 ▲57년 서울대 법대 4년때 출석미달로 중퇴 ▲58년 군입대,통역장교로 근무 ▲59년 「GREY 구락부 전말기」「라울전」이 안수길씨 추천으로 「자유문학」지 통해 문단 데뷔 ▲60년 문제의 작품 「광장」을 「새벽」(10월호)에 발표 ▲61년 단행본 「광장」(정향사)출간 ▲67년 「총독의 소리 1·2」연작 발표에 이어 단편집 「총독의 소리」(홍익출판사)출간 ▲70년 평론집 「문학을 찾아서」(현암사)출간,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극단 자유극장공연),11월17일 신문회관에서 이헌구씨 주례로 원영희씨와 결혼 ▲71년 창작집 「서유기」(을유문화사)출간 ▲72년 창작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삼성출판사)출간 ▲73년 장편 「태풍」(중앙일보)연재 ▲73년8월∼76년5월 미국체류,미아이오와대 세계작가 프로그램(IWP)초청,「광장」(일어판),수필가 김소운씨 역으로 일본 동수사출간 ▲76년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극단 산하 초연) ▲77년 「봄이오면 산에들에」(극단 동랑레파토리 공연) ▲78년 「둥둥 낙랑둥」(국립극단 97회 정기공연) ▲79년 미뉴욕주 브록포드대 초청,「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참가,「최인훈전집」(문학과 지성사)완간(전 12권) ▲80년 소설집 「왕자와 탈」(문장사),「하늘의 다리」(고려원)출간 ▲81년 소설집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민음사)출간 ▲82년 희곡집 「한스와 그레텔」(문학예술사)출간 ▲87년 미 뉴욕 「범아시아 레파토리」극단 10주년기념공연,「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 참관 ▲89년 창작선집 「달과 소년병」(세계사),산문집 「길에 관한명상」(청하),창작선집 「웃음소리」(책세상)출간 ▲92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소설 「광장」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 ▲77∼현재 서울예전 교수 그외 대표작 「구운몽」「회색인」「가면고」「크리스마스캐럴」「두만강」「우상의 집」과 수필집 「유토피아의 꿈」외 동인 문학상,한국연극영화예술상(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서울극평가 그룹상(달아 달아 밝은 달아)
  • 「도이모이」성과(변화하는 베트남:3)

    ◎올해 처음 7천만달러 무역흑자/물가안정 힘입어 경제목표 초과달성/매년 쌀 1백만t이상 수출… 세계 3위/오토바이 보급률 50%선… 가전품상가 등 항상 북적 87년초부터 본격 추진된 「도이모이」(쇄신)는 6년여가 지난 오늘 여러 부문에서 가시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아직 실업률이 20%에 이르고 곳곳에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특히 도시에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도이모이」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오토바이는 하노이와 호치민·하이퐁과 같은 대도시의 경우 보급률이 50%선에 이른다. 따라서 거리에는 자전거,앞에 손님을 태우고 뒤에서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3륜 자전거인 시클로와 함께 오토바이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하노이의 초 동 슈안 시장,호치민의 벤 탄 같은 대규모 시장에는 전자제품에서부터 신발 화장품 철물 농산물 건어물 등 없는 것이 없다. 또 우리에게 베트콩모자로 알려진 「논」을 쓰고 막대 양쪽에 바구니를 매단 「광까이」를 어깨에 멘 여자 짐꾼들이 물건을 나르느라 바쁘다. 13세기 중국에 대항해 싸웠다는 정씨 자매를 기념해 이름을 지었다는 하노이 하이바쭝(두 명의 정씨 부인이란 뜻)가에는 삼성전자 전시장을 비롯해 외국 전자제품 상점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다. 얼핏 보면 자본주의사회로 착각할만큼 도시 곳곳에 활력이 넘친다. 「도이모이」는 서민들이 웬만큼 먹고 사는데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풍요를 가져온 것이다. 베트남 인민들에게는 92년이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베트남은 올해 수출 24억5천5백만달러,수입 23억8천만달러를 기록,최초로 7천5백만달러의 무역흑자를 내는등 모든 경제목표를 초과달성했다. 특히 86년부터 88년까지 매년 3백∼5백%,89년 1천% 가까이 치솟던 물가가 90년 67%,91년 69%로 대폭 떨어졌고 올해는 15%로 전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같은 물가안정은 베트남정부가 자국 화폐 「동(Dong)」의 달러당 환율을 87년 1대 2백40에서 91년 1대 1만6백으로 무려 44배나 인상한 덕분이다. 경기침체없이 인플레를 잡았다는 사실에 베트남 관리들은 크게 고무돼 있다. 베트남은이와함께 블랙 마켓(암시장)의 달러시세도 정부의 공정환율과 별차이가 없어 통화도 크게 안정되어가고 있다. 「도이모이」는 농업부문에서 특기할만한 생산증대를 가져왔다. 협동농장을 폐지하고 농민에게 토지를 배분한 결과 89년에는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1백42만t의 쌀을 수출할 수 있었고 그후 매년 1백만t가량의 쌀을 수출하고 있다. 베트남은 현재 세계 제3위의 쌀수출국이다.국제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수출하고 있어 태국으로부터 쌀값을 떨어뜨린다는 원성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농업생산 증대는 국민의 80%를 점하는 농민들에게 반드시 풍요만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농산물값의 하락으로 쌀값이 5㎏에 1달러로 떨어졌고 신문 한 장값이 토마토 1백10㎏ 값과 같다. 「도이모이」는 공업부문에 있어 국영기업·집단기업·사기업 모두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수만개에 달하는 집단기업과 사기업들은 베트남 공업생산의 50%를 점할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도이모이」경제는 자본주의의 극히 초보적인 이론조차 모르는 관리·기업가들 탓에우스꽝스런 일면을 보이기도 한다. 베트남은행은 예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기는 커녕 오히려 예금액의 1%에 달하는 이자를 요구한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이자개념을 가르치려면 1주일도 모자란다』는 것이 포철 하노이지사 오대용 과장의 설명이다. 또 건물과 기계설비를 모두 갖추어 놓고도 운영자금이 없어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공장들이 수두룩하다. 건물과 기계설비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면 될 은행측이 현재 생산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기업이 어떻게 돈을 갚겠느냐며 대출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식 사고가 빈약하다보니 외국기업들과의 상담에서도 때때로 막무가내식일 수밖에 없다. 외국기업에 대한 공장임대,종업원 고용등 제반 계약을 총괄하는 각 지방정부산하 대외용역회사(FCS)는 「너희들이 부자니까 양보하라」는 주문을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무역진흥공사 호치민시 무역관장 조영복씨는 베트남 사람들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인은 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지난 6년간의 「도이모이」는 베트남 인민들의 생산의욕을 고취해 상당한 수확을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앞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깊이있는 공부가 병행되지 않는한 지금까지와 같은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이곳에 진출한 우리 기업관계자들의 분석이다.
  • 선거개혁 의지 외면한 국민당 대집회(사설)

    강바람과 눈보라가 휘몰아친 주말의 여의도 대집회를 바라본 유권자의 마음은 당황스러웠다.이 험하고 궂은 날씨에도 3당중의 양당이 이미 취소한 군중집회를 유독 한 당만이 고집한 것은 시중에 파다한 소문을 입증해주는 듯해서 더욱 우울했다.1사람당 2사람씩을 대동하고 유세장을 메우는 것이 「현대가족」에게 주어진 의무였다는 소문으로 미루어 이날 이곳을 메운 군중은 생업에 얽매인 볼모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기업의 총수로서 독선과 강권에 이토록 길들여진 후보가 대권까지 갖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스트립쇼에서 무소불능의 금권에 이르는 선정주의 일변도의 선거운동을 통해서도 유권자들을 우울하게 하는 일은 너무 많았다.이치는 묵살하고 막무가내로 밀고가는 천민자본주의적인 사고가 선거풍토를 멋대로 유린하는 것도 보았다. 유권자가 바라는 것은 축제처럼 기쁘고 친화력이 가득찬 선거지 천박하게 타락한 그것을 보려는 것은 아니다.떳떳하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되 엄격하게 법과 규칙을 지키며 정당한방법으로 아름답게 성숙한 경쟁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지 흑색 폭로전으로 얼룩진 저급 충격전술의 구태의연한 선거전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제 남은 날은 불과 닷새다.폭로전과 자해협박,비방과 험구의 달변으로 변신과 국면전환의 곡예를 보여주기에 모든 날을 탕진하고 겨우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그러나 그래도 성숙한 안목을 가진 유권자라면 남은 닷새로도 충분하다.당선에 대한 집착으로 흥분과 신열에 들떠있는 후보들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만 급급하여 온갖 임기응변적 즉흥극을 서슴지 않지만 유권자들에게는 그것이 환히 보인다. 유권자는 미래를 생각한다.그들의 거짓말 공약이 미래의 우리 삶에 어떻게 나타날지,정직을 가장한 허위와 이중성에 잠복된 미심쩍은 그림자가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 체체 수호에 어떤 불안을 줄수 있는지를 유권자들은 직관력을 가지고 분별한다.법을 지킬 줄 모르는 후보,금권과 독선의 체질을 종횡무진으로 휘두르는 후보,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국가경쟁력을 키워갈 능력이 의심스러운후보들을 분별해내는 안목을 유권자가 발휘하기에 닷새는 모자란 날이 아니다.다가오는 2천년대의 우리운명을 개척하기에 마땅하고 믿음직한 후보가 누구인지를 알기에 결코 모자라지도 너무 넉넉하지도 않은 이 닷새를 유효적절하게 보내는 유권자의 현명함에 우리의 국운은 달려 있다.
  • 부도난 영입(외언내언)

    민자당을 탈당한 박태준의원의 영입을 호언하던 국민당 주장이 또 불도가 났다. 국민당 정주영대통령후보는 10일 박씨 귀국저지 외압설을 다시 제기한뒤 『박의원이 돌아오더라도 만날수가 없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며 박의원 영입추진이 사실상 무산됐음을 시사했다.그는 박의원을 만나지 않아도 당선될 자신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외국으로 나가서 만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불과 1주일전 관훈토론회에서 정후보는 『박씨가 10일 전까지 귀국해서 국민당에 입당할 것을 확언한다』고 언명했다.그렇게 안되면 『우리가(선거에서)떨어져 큰 일』이라는 위기감까지 드러냈다.그러나 정작 10일이 되도록 해외에 체류중인 박의원이 귀국도 하지 않자 외압설을 내세워 말을 바꾼 것이다. 그동안 국민당은 박의원 문제를 관권개입의 대표적 사례로 내세워 정부를 호되게 공격했다.청와대비서관이 일본까지 건너가 박의원의 국민당 입당을 만류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안기부가 동원돼 박의원을 통신이 불편한 나라(베트남)로 쫓아 보냈다고 비난했다.청와대 김학준대변인과 안기부 당국자가 이같은 주장을 공식 부인하고 청와대비서관이 『원한다면 여권을 보여주겠다』며 도일설을 일축했는데도 국민당은 막무가내로 우겨댔다. 국민당 주장대로 박의원 영입계획이 외압의 방해를 받았다면 이는 은밀히 추진했어야 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국민당은 떠들어왔다.정후보 측근이 친서를 갖고 일본을 방문해서 박의원과 3차례 접촉했다는 진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얘기를 흘리는가 하면 정후보 자신은 박의원과의 제휴 합의를 공공연하게 언급했다.보안해야 할 접촉내용을 공개하다니,일이 일찌감치 틀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박의원은 민자당탈당을 선언했지만 탈당계가 수리되지 않아 법적으로 소속이 애매한 상태다.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민자당출신 전국구의원이라는 사실이다.국민당은 자당의 전국구 조윤형의원이 탈당했을때 소속정당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매도하며 그의 의원직을 상실시켜야 한다는 헌법소원을 냈다.국민당은 박의원 영입추진이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도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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