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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구하려 자신의 고가 벤츠 부순 男 감동

    고양이 구하려 자신의 고가 벤츠 부순 男 감동

    유기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고가의 차량을 ‘내어준’ 한 남성이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대만 뉴스전문채널인 TVBS의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대만에 사는 천(沈)씨는 얼마전 자신의 벤츠 차량을 몰고 인근 공원으로 드라이브를 나섰다가 공원에서 사람들이 작은 고양이를 구출하려 애쓰는 모습을 목격했다. 천씨도 곧바로 차를 세우고 고양이 구하기에 나섰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 놀란 고양이는 재빠르게 달려 천씨의 차량 아래로 몸을 숨겼다. 천씨와 사람들은 차 아래쪽 부품 안으로 기어들어간 고양이를 유인하기 위해 차량을 막대기로 두드리거나 먹이로 유인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차 주인인 천씨는 차량에 시동을 걸어 움직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다 부품사이에 몸을 숨긴 고양이가 다칠 것이 염려돼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천씨는 직접 견인차를 불러 차를 인근 차량수리공장으로 옮긴 뒤, 차량 아래 밑판을 완전히 철거해 고양이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천씨의 차량을 받았던 수리소 역시 동물을 구하기 위해 차량을 고의로 훼손한 사례는 처음이었으며, 차량 밑판을 뜯어내기 전 고양이가 또 다른 차량에 몸을 숨길 것을 우려해 차량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했다고 전했다. 당시 천씨가 고양이 구출을 위해 ‘내놓은’ 차량의 가격은 현지에서 200만 타이완달러, 한화로 약 7155만원에 달하는 고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씨는 이후에도 사비를 들여 고양이를 인근 동물병원으로 데려간 뒤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후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생명은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해 손해를 감수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현장 블로그] 캡사이신 물대포 쏘는 경찰의 ‘세월호’ 진압…인권교재 뭐하러 썼나

    지난 1일 늦은 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며 세월호 유가족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회원, 시민 등 1300여명(경찰 추산)이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앞에는 경찰의 차벽과 펜스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주최 측은 “평화롭게 행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경찰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차벽 설치의 요건으로 내세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집회 참가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실 민주노총은 이날 낮부터 을지로, 종로 일대를 행진하면서 차벽을 향해 물병과 돌을 던지고, 쇠막대기로 경찰버스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 보호장구와 방패를 빼앗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안국동 사거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폴리스라인용 펜스를 무너뜨리는 등 일부 참가자들의 불법 행위가 난무했습니다. 캡사이신 최루액으로 맞대응하던 경찰은 급기야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살수차를 동원하겠다”고 밝힌 뒤 세 차례의 경고 살수에 이어 본격적으로 물대포를 발사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경찰은 과격 양상을 보인 참가자뿐 아니라 제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던 비폭력 참가자들까지 물대포를 조준 사격했습니다. 나중에는 캡사이신까지 섞어서 뿌렸습니다. 일부 참가자가 물대포에 맞아 넘어지거나 호흡 곤란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강경 진압에 항의하며 맨몸으로 나선 참가자들을 향해 물대포 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집회 해산 절차를 준수했을 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경찰은 이날 기본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경찰청은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경비 분야 인권교육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일선 경찰관 배포용으로 제작된 이 교재의 첫 장에는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하며 감정을 자극한다고 하여 경찰관도 되받아 물리력을 사용하는 등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합법적인 집회 관리가 아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경찰이 살수차 동원의 근거로 삼은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에도 ‘위해성 경찰 장비는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씌어 있습니다. 지난 1일 밤 경찰 현장 지휘관의 머릿속에 인권교재와 직무집행법이 존재하기는 했던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아하! 우주] 아득한 우주 거리, 과연 어떻게 잴까?

    [아하! 우주] 아득한 우주 거리, 과연 어떻게 잴까?

    -천문학자들의 줄자 ‘우주 거리 사다리’  100억 광년 밖의 은하를 관측했다느니, 1000만 광년 거리의 은하에서 초신성이 터졌다느니 하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1광년이라면 1초에 30만km,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돈다는 빛이 1년을 내달리는 거리다. 이것만 해도 우리의 상상력으로는 잘 가늠이 안되는 거리인데, 천문학자들은 10억 광년이니 100억 광년이니 하는 그 엄청난 거리를 도대체 어떻게 재는 걸까? 물론 하루아침에 우주 측량술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천재들의 열정으로 갖가지 다양한 기법들이 차례로 개발되면서 이 엄청난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우주 측량술이 정립되었다. 태양이나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행해져 왔지만, 하늘의 단위와 지상의 단위를 결부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문학자들은 먼저 지구의 크기와 달과 태양까지의 거리를 구한 다음, 그것들을 기초로 삼아 가까운 별에서 더 먼 천체까지 차례로 거리를 측정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이런 식으로 단계별로 척도를 늘려나가는 측량 방식을 '우주 거리 사다리'(cosmic distant ladder)라 한다. 측량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것이다. 사람은 늘 측량한다. 인류가 지상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측량은 시작되었다. 측량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측량에도 ‘천문’은 깊이 개입되어 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삼은 한 달의 날수가 바로 천문학적인 것이다. 또 미국과 미얀마 등 몇 나라만 빼고 전 세계가 쓰고 있는 미터법은 바로 지구의 크기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이 채 잦아들기도 전인 1790년, 혁명정부가 도량형 통일을 위해 ‘미래에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을 기준으로 1m를 정했는데, 그게 바로 북극과 파리, 적도에 이르는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1m로 한 것이다. 곧, 북극점에서 적도에 이르는 거리의 1만분의 1이 1km인 셈이다. 그러니까 지구 한 바퀴는 4만 km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 미터법으로 원자의 크기를 재고 우주의 넓이를 잰다. 삼각형 하나가 가르쳐준 ‘천동설’ 역사상 최초로 ‘우주 거리’를 잰 사람은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BC 310경~230)였다. 그가 우주 측량에 사용한 도구는 삼각형과 원, 그리고 하늘의 달이었다. 그러나 그 측량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먼저 그가 월식을 관측하고 얻은 결과물을 살펴보도록 하자. 월식 때 월면은 지구에 대한 거울 구실을 한다. 월면에 지구 그림자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지구 그림자를 보면 원형이다. 지구가 만약 삼각형이라면 그림자도 삼각형일 것이요, 편평한 판이라면 그림자도 길쭉하니 비칠 게 아닌가. 그런데 월식 때 보면 지구 그림자는 언제나 둥그렇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이를 지구가 구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보았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월식 관찰은 여느 사람과는 달랐다. 월식으로 지구 그림자가 달의 가장자리에 올 때 두 천체의 원호 곡률을 비교함으로써 달과 지구의 상대적인 크기까지 알아냈던 것이다. 가히 천재의 발상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알아낸 값은 지구 크기가 달의 3배라는 사실이다. 참값은 4배이지만, 기원전 사람이 맨눈으로, 그리고 오로지 추론만으로 그 정도 알아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지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천재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달이 정확하게 반달이 될 때 태양과 달, 지구는 직각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이룬다는 사실을 추론하고, 이 직각삼각형의 한 예각을 알 수 있으면 삼각법을 사용하여 세 변의 상대적 길이를 계산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지구와 태양, 달이 이루는 각도를 쟀다. 87도가 나왔다(참값은 89.5도). 세 각을 알면 세 변의 상대적 길이는 삼각법으로 금방 구해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달과 태양은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다. 이는 곧, 달과 태양의 거리 비례가 바로 크기의 비례가 된다는 뜻이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이 점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이 세 천체의 상대적 크기를 또 구했다. 태양은 달보다 19배 먼 거리에 있으며(참값은 400배), 지름 또한 19배 크다. 고로 달의 3배인 지구보다는 7배 크다(참값은 109배). 따라서 태양의 부피는 7의 세제곱으로 지구의 약 300배에 달한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수학은 정확했지만 도구가 부실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지구보다 300배나 큰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 것은 모순이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구가 스스로 하루에 한 번 자전하며 1년에 한 번 태양 둘레를 돌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감각에만 의존해왔던 오랜 천동설을 젖히고 인류 최초의 지동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아리스타르코스의 주장은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신성 모독이므로 재판에 부쳐야 한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어쨌든 우주의 중심에서 인류의 위치를 몰아낸 지동설은 이렇게 한 천재의 기하학으로부터 탄생했다. 따지고 보면 직각 삼각형 하나가 인류에게 지동설을 알려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천재에게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한다. 천문학사에 불멸의 이정표를 세운 아리스타르코스는 달 구덩이 가운데 하나에 그 이름이 붙여져 영원히 남게 되었는데, 그 중심 봉우리는 달에서 가장 밝은 부분이다. 작대기 하나로 지구의 크기를 잰 사람 아리스타르코스의 뒤를 이어받은 한 천재는 한 세대 뒤에 나타났다. 그가 바로 역사상 최초로 한 천체의 크기를 잰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BC 276~194)였다. 그가 잰 천체는 물론 지구였다. 에라토스테네스는 터무니없이 간단한 방법으로 인류 최초로 지구 크기를 쟀는데, 참값에 비해 10% 오차밖에 나지 않았다. 그가 이용한 방법은 작대기 하나를 땅에다 꽂는 거였다. 해의 그림자를 이용한 측정법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 역시 기하학을 이용한 건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남쪽의 시에네 지방(아스완)에서는 하짓날인 6월 21일 정오가 되면 깊은 우물 속 물에 해가 비치어 보인다’는 문장을 읽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스 인들은 지역에 따라 북극성의 높이가 다른 사실 등을 근거로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체인 지구의 자전축은 궤도 평면상에서 23.5도 기울어져 있다. 하짓날 시에네 지방에 해가 수직으로 꽂힌다는 것은 곧 시에네의 위도가 23.5도란 뜻이다.(이 지점이 바로 북회귀선, 곧 하지선이 지나는 지역이다) 여기서 천재의 발상법이 나온다. 그는 실제로 6월 21일을 기다렸다가 막대기를 수직으로 세워보았다. 하지만 시에네와는 달리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막대 그림자가 생겼다. 그는 여기서 이는 지구 표면이 평평하지 않고 곡면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에라토스테네스가 파피루스 위에다 지구를 나타내는 원 하나를 컴퍼스로 그리던 그 순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수학적 개념이 정확한 관측과 결합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가를 확인해주는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다. 에라토스테네스가 그림자 각도를 재어보니 7.2도였다. 햇빛은 워낙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두 곳의 햇빛이 평행하다고 보고, 두 엇각은 서로 같다는 원리를 적용하면, 이는 곧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거리가 7.2도 원호라는 뜻이 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걸음꾼을 시켜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걸음으로 재본 결과 약 925km라는 값을 얻었다. 그 다음 계산은 간단하다. 여기에 곱하기 360/7.2 하면 답은 약 46,250이라는 수치가 나오고, 이는 실제 지구 둘레 4만km에 10% 미만의 오차밖에 안 나는 것이다. 이로써 인류는 우리가 사는 행성의 크기를 최초로 알게 되었고, 이를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과 달까지 상대적 거리에 대입시켜, 비록 큰 오차가 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실제 거리를 알게 된 것이다. 2300년 전 고대에, 막대기 하나와 각도기, 사람의 걸음으로 이처럼 정확한 지구의 크기를 알아낸 에라토스테네스야말로 위대한 지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분은 또 수학사에도 이름을 남겼는데, 소수(素數)를 걸러내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를 고안해낸 수학자이기도 하다. 달까지 거리를 ‘줄자’로 재듯이 잰 사람 에라토스테네스 다음으로 약 1세기 만에 나타난 걸출한 천재는 에게 해 로도스 섬 출신의 히파르코스(BC 190~120)였다. 그가 남긴 천문학 업적은 세차운동 발견, 최초의 항성목록 편찬, 별의 밝기 등급 창안, 삼각법에 의한 일식 예측 등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다. 그는 지구 표면에 있는 위치를 결정하는 데 엄밀한 수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오늘날과 같이 경도와 위도를 이용하여 위치를 나타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돌던 팽이가 멈추기 전에 팽이 축을 따라 작은 원을 그리듯이 지구 자전축의 북극점도 그러한 모습으로 회전한다는 세차운동의 이론을 정립하고 그 값을 계산해냈다. 1년 동안 춘분점이 이동한 각도를 구하고, 360도를 이 값으로 나누어 구한 값이 2만 6,000년이었다.(오늘날의 그 참값은 25,800년). 히파르코스의 측량술은 달에까지 미쳤다. 그는 간단한 기법으로 달까지의 거리를 구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시차(視差)였다. 한 물체를 거리가 떨어진 두 지점에서 바라보면 시차가 발생한다. 눈앞에 연필을 놓고 오른쪽 눈, 왼쪽 눈으로 번갈아 보면 위치 변화가 나타난다. 이처럼 하나의 물체를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보았을 때 방향의 차이를 시차라 하는데, 천문학에서는 관측자의 위치에서 본 천체의 방향과 어떤 표준점에서 본 천체의 방향과의 차이를 말하며, 연주시차와 일주시차가 있다. 이 시차는 우주 거리를 재는 천문학자들이 가장 애용한 도구였다. 히파르코스는 두 개의 다른 위도상 지점에서 달의 높이를 관측해 그 시차로써 달이 지구 지름의 30배쯤 떨어져 있다는 계산을 해냈다. 이 역시 줄자를 갖다대 잰 듯이 참값인 30.13에 놀랍도록 가까운 값이었다. 이로써 그는 아리스타르코스가 구한 값(지구 지름의 9배)을 크게 수정한 셈이다. 이는 지구 바깥 천체까지의 거리를 최초로 정밀하게 측정한 빛나는 업적이었다. 히파르코스는 나이 쉰 살이 되어 로도스 섬 해변 가까운 산꼭대기에 천문대를 세우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히파르코스 이후 적어도 300년 동안 그를 능가하는 천문학자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시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新방위협력지침’...전범국 일본 ‘족쇄’ 풀어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합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덫에 걸린 뱀 구해줬더니, 삼켰던 먹이 토해내

    덫에 걸린 뱀 구해줬더니, 삼켰던 먹이 토해내

    덫에 걸린 뱀을 구해주던 남성들이 녀석이 삼킨 먹이를 토해내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26일 영국 매체 미러는 덫에 걸린 뱀을 구해주는 남성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소개했다. 이 영상은 최근 ‘헬로 크링글(HelloCringle)’ 유튜브 계정에 게재된 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 영상은 덫에서 풀려난 뱀이 삼켰던 먹이를 토해내는 순간이 고스란히 포착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상을 보면 뱀 한 마리가 녹색 망에 몸이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발견한 남성들 중 한 명은 나무 막대기로 뱀의 머리를 누르며 녀석의 공격에 대비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녀석이 걸려든 망을 칼로 찢어 뱀을 구조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영상의 30여 초 지점, 두 남성의 도움으로 무사히 덫에서 빠져 나온 뱀은 달아나기는커녕, 입을 크게 벌린 채 서서히 뭔가를 뱉어내기 시작한다. 이어 녀석은 자신의 몸통보다 큰 먹이를 완전히 입 밖으로 토해낸다. 이를 본 남성들은 화들짝 놀란다. 해당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 역시 현장에서 지켜본 남성들만큼 반응이 뜨겁다. 이 영상은 지난 24일 유튜브에 게재된 이후 현재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 영상=HelloCringle, C1 News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 책] 부모와 떨어진 남매 그들을 보듬은 자연

    [이주일의 어린이 책] 부모와 떨어진 남매 그들을 보듬은 자연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김용택 지음/정순희 그림/사계절/40쪽/1만 2000원 ‘비가 내렸다. 풀잎에 빗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내 얼굴이 들어 있었다. 내가 야 하고 가만히 나를 불렀다. 빗방울이 뚝 떨어졌다. 내 얼굴이 사라졌다.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이른 봄, 아홉 살 보미는 동생 재영이와 함께 서울에서 시골 할아버지댁으로 살러 왔다. 아버지는 남매를 데려다 놓고 곧바로 서울로 돌아갔다. 밤이 되었다. 캄캄했다. 두려웠다. 다음 날 남매는 할아버지를 따라 학교에 갔다. 학교도 교실도 아이들도 낯설었다. 선생님이 남매를 보며 “아버지 어릴 때랑 닮았다”며 아는 체했다. 아버지 이름도 알고 있었다. 학교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귀갓길에 보는 논과 밭, 풀들, 새들 모두 낯설었다.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가면 산이 까맣게 무서웠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남매는 시골의 삶에 적응해 갔다. 장다리꽃을 구경하는 여유도 생기고 길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 캄캄한 밤, 달구경도 했다. 달을 보고 가만히 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당가의 소도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보미는 글쓰기 시간에 시도 지었다. ‘할머니께서/풀 같은 것을/거꾸로 들고/나무 막대기로/탈탈 털었다/거기서 깨가/하얗게 쏟아졌다’(참깨)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 시인이 쓴 한 편의 시와 같은 동화다. 부모와 떨어져 시골에 살게 된 남매가 자연과 교감하며 아픔을 이겨내 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이 이야기는 시인이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만난 아이와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아이의 사연에 시적 감성을 보태 글을 완성했다. 한지에 덧칠 없이 한 번에 채색한 그림은 글에 생명력을 더했다. 시골 마을 모습을 정감 있게 고스란히 재현해 진짜 시골을 접하는 듯하다. 꽃들이 피어나는 봄,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 낙엽이 떨어지는 완연한 가을까지 눈앞에 펼쳐지는 시골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 초등 저학년.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나무에서 놀다 떨어지는 판다 ‘너무 귀여워~’

    나무에서 놀다 떨어지는 판다 ‘너무 귀여워~’

    나무에서 떨어지는 자이언트 판다의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고 있다. 26일 유튜브에 게재된 14초 가량의 영상에는 중국의 한 동물원 판다 우리에서 서로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 판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무 곁에서 마치 레슬링(?)을 하듯 몸싸움 하는 새끼 판다들. 잠시 뒤, 나무 위에서 판다 한 마리가 나무막대기를 든 채 ‘두앙’(Duang)이란 자막과 함께 떨어진다. 한편 미지의 의성어 ‘두앙’(Duang)은 중국에서 핫한 신조어로 홍콩 출신의 세계적인 스타 청룽이 2004년 출연한 샴푸 광고에서 검은 머리결이 빛나는 것과 관련해 ‘두앙’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청룽의 成(청)과 龙(룽) 합쳐서 ‘두앙’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 ‘두앙’이란 표현은 적절한 뜻을 밝힐 수는 없지만 “판다가 ‘두앙’ 귀엽네요”, “오늘 내 마음은 ‘두앙 두앙’ 했어요”등 재미를 돋우는 단어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Upload 3/3/2015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씨줄날줄] 中 ‘방방면’과 명동 거리음식/정기홍 논설위원

    중국 고사(古史)집에서 시안 지방의 관중(關中)인들이 좋아한다는 ‘방방면’을 소개한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모양이 우리의 수제비와 비슷한데 면발의 폭은 2~3촌(1촌=3.3㎝), 길이는 1m 남짓 된다고 한다. 두꺼운 것은 동전 두께이고 얇은 것은 매미 날개처럼 가늘다. 국수 한 가락이면 밥 한 끼를 너끈히 먹는 셈이라고 한다. 관중 방언인 ‘방’ 자는 무려 57획이나 돼 중국의 글자 가운데 획수가 가장 많고 사전에 실리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아직 표준음이 없다니 글자로 유명한 음식이 아닌가 싶다. 중국에는 궁중식은 물론 골목 길거리 음식도 매우 다양하다. 중국을 프랑스, 이탈리아(혹은 터키)와 함께 3대 음식 국가라지만 종류만큼은 이들 국가가 따르지 못한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요리문화를 달리하면서도 한족 음식의 정통성을 이어오다가 만주(몽골)족이 세운 청나라 때부터 음식문화가 뒤섞여 오늘에 이른다. 한족의 요리사들이 만주족 관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솜씨 경쟁을 벌이면서 종류와 맛이 진화했다. 30~40가지의 요리가 나오는 ‘만한취안시’(滿漢全席)가 대표적 궁중식이고, 베이징의 양고기 샤부샤부인 ‘솬양러우’도 몽골 제국이 만든 음식이다. 베이징의 골목길인 ‘후퉁’(胡同)으로 잘 알려진 길거리 음식도 궁중식 못지않다. 후퉁에서 파는 ‘바이미저우’(흰 쌀죽), ‘유타오’(막대기 모양의 튀긴 빵) 등은 관광객이 먹는 필수 코스의 요리다. ‘책상다리 빼고 네 발 달린 건 다 먹는다’는 중국 음식문화의 일면이다. 중국의 흥미로운 음식문화는 이외에도 많다. 환관과 문화혁명은 큰 영향을 끼쳤다. 환관이 황제에게 올리는 음식의 재료를 까다롭게 고르면서 중국 음식 역사를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한다. 청나라 말의 서태후가 먹었다는 달걀 요리는 지금 가격으로 한 개에 수십만원대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문화혁명은 큰 전환점이었다. 혁명을 이끌던 마오쩌둥은 고급 음식점을 문 닫게 하고 요리사를 부르주아 앞잡이로 탄압해 요리법을 적은 원본을 상당수 없앴다. 반면 노동자와 농민, 병사의 식단인 ‘노동병 메뉴’를 등장시켰다. 당시 배추와 당면 몇 가락을 담은 멀건 죽과 찐빵만을 내놓았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며 매운 음식을 권장했다. 매운맛의 고장인 쓰촨 출신인 덩샤오핑도 매운 것을 좋아해 매운맛은 중국 음식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요즘엔 서민 요리는 매워지고 고급 요리는 달아지고 있다. 서울 명동 거리에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몰리면서 이들의 입맛에 맞춘 일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한때 일본인이 좋아하던 음식은 물론 떡볶이 등 우리의 포장마차 음식도 자리를 내주고 있다. 명동에서 우리의 길거리 음식이 사라질까 걱정된다. ‘방방면’도 상륙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음식 주권을 생각할 때가 아닌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맹수에 공격당하고도 살아남은 아찔한 순간 TOP3

    맹수에 공격당하고도 살아남은 아찔한 순간 TOP3

    ‘구사일생(九死無一生)’은 아홉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 번 살아난다는 뜻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남는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이러한 사자성어를 생각나게 하는 영상들 TOP3를 꼽았다. 이 영상들은 동물들의 끔찍한 공격에도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첫 번째 영상은 한 남성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는 순간이 담겨 있다. 이는 인도 카지랑가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사고다. 영상을 보면 코끼리를 나눠 탄 여행객들이 풀이 무성한 초원 지대를 지나고 있다. 그 순간 호랑이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이에 가이드가 호랑이를 향해 막대기를 휘두르며 저항하지만, 호랑이는 순식간에 코끼리 머리 위로 뛰어오르며 그를 덮친다. 이 사고로 가이드는 팔에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두 번째 영상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악어농장에서 발생한 사고다. 당시 악어농장주는 악어에게 발이 물리는 큰 사고를 당했다. 영상을 보면 3m 대형 악어가 석고상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녀석은 알을 품고 있는 상태. 그 어떤 동물보다 강한 모성애를 갖고 있는 악어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먹지도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방증하듯 잔뜩 몸을 움츠리고 경계하고 있던 악어는 농장주가 다가서려 하자 입을 크게 벌리고 위협한다. 그렇게 예민한 모습을 보이던 녀석은 결국 농장주를 공격, 순식간에 그의 발을 물어 넘어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부상 없이 악어에게서 몸을 피한 농장주는 “내게 발가락이 남아있는 것은 기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 번째 영상은 러시아에서 발생한 사고로 북극곰에게 공격당한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40여초 길이의 영상을 보면 허름한 건물을 배경으로 커다란 흰 북극곰 한 마리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볼 수 있다. 잠시 후 여성이 자리를 피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녀석은 재차 그녀를 무참히 공격한다. 이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북극곰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는 등 녀석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북극곰은 건물 뒤편으로 모습을 숨긴다. 그 사이 여성은 몸을 일으켜 가까스로 현장을 피하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 된다. 이 세 편의 영상들은 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들의 끔찍한 공격에도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은 구사일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사진·영상=Youtube: WildFilmsIndia, Earth Touch, RT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최병규 전문기자의 골프는 과학이다] ①샤프트 뒤집어 보기

    [최병규 전문기자의 골프는 과학이다] ①샤프트 뒤집어 보기

    ‘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돈’이라는 말이 있다. 티박스에서 뻥뻥 내지르는 드라이브샷보다 1m 안팎의 짧은 퍼트가 실속있는 골프를 보장해준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럴까. 90타 안팎의 주말골퍼가 레인지(연습장)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하는 게 드라이브샷이다. 퍼트는 돈일지 모르지만 티박스에서 매 홀의 판도를 결정짓는 드라이브샷은 골퍼들의, 특히 남성 골퍼들의 자존심이다. 드라이브샷의 비거리를 좌우하는 3요소는 볼의 초속(初速·발사속도)과 타구각, 그리고 백스핀양이다. 또 이 3요소를 결정짓는 건 헤드스피드다. 아마추어 남자골퍼의 70%는 헤드스피드가 40~43m/s 정도인데, 이 경우 이 골퍼의 비거리는 ‘헤드스피드X5.5 =220야드’다. 단, 볼의 반발 초속이 60m/s이고 타구각이 13~15도 사이, 백스핀 2500rpm 안팎이라는 최적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켜야 계산대로 이 같은 비거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이들 조건을 만족시키는 요소는 무엇일까. 골프채의 헤드와 손잡이를 지탱하는 샤프트다.우리 말에 ‘낭창낭창’이라는 말이 있다. ‘줄이나 막대기가 탄력 있게 휘어지거나 흔들리는 모양’이 사전적 의미다. 그런데 손으로 느껴지는 이 표현은 골프채에서는 곧 샤프트의 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샤프트 강도는 비거리와 함수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샤프트는 비거리에 절대적이다. 골프채 전체가 100%일 때 샤프트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80%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프트 강도는 전문용어로 CPM(Cycle Per Minute)으로 표기한다. 샤프트 손잡이를 기계에 고정시키고 헤드 부분을 진동시켜 1분에 진동하는 횟수다. 처음에는 미국 기준으로 X(eXtra Stiff), S(Stiff), R(Regular), A(Amatuare), L(Lady)로 구분했는데 CPM은 각각 280, 270, 260, 250, 240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조업체별로 CPM 차이가 많아 강도의 기준도 제각각이다. 따라서 A회사의 제품이 다른 회사의 S보다 강할 수도 있다. cbk91065@seoul.co.kr ■도움말 혼마코리아
  • 새끼 독사 잡는 거대 독거미 포착

    새끼 독사 잡는 거대 독거미 포착

    독사 잡는 거대 독거미의 모습이 포착돼 화제다. 2일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구록(Gooroc)의 농가에서 독사 잡는 거대 독거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기사와 함께 소개했다. 20년간 농부로 지내온 닐 포슬스웨이트가 촬영한 영상에는 아내의 차 밑에서 발견한 호주의 독사 동부갈색뱀(eastern brown snake)이 거대한 붉은등거미(red-back spider)의 거미줄에 걸려있는 모습이 포착돼 있다. 거미줄에 엉켜 매달려 있는 뱀의 꼬리 쪽엔 거미가 올라타 있으며 닐이 막대기로 뱀의 머리를 건드린다. 놀란 뱀이 머리를 치켜들지만 동부갈색뱀은 이미 거미 독에 당한 듯 힘이 없어 보인다. 독사 대 독거미의 결투를 목격한 닐에 의하면 이날 땅에 떨어져 있는 새끼 이스턴 브라운 스네이크를 거대한 붉은등거미가 거미줄을 이용해 차 밑 둥지로 끌어올리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닐은 “새끼 뱀은 하룻밤이 지나고서야 죽었다”며 “죽은 뱀은 개미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 독거미는 아내의 차량 밑에서 살고 있다”며 “아내가 ‘하부 세차를 하기 전까진 차를 운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죽음을 맞은 동부갈색뱀은 혈액을 빠르게 응고시킬 수 있는 신경독을 지닌 세계에서 두 번째 강한 독을 가진 뱀이다. 또한 독거미 붉은등거미는 호주 전체에 걸쳐 서식하며 매년 2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붉은등 거미에게 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Neale Postlethwait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독사 VS 독거미, 목숨 건 대결…결과는?

    독사 VS 독거미, 목숨 건 대결…결과는?

    뱀과 거미가 싸운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뱀의 승리를 점치기 쉽다. 하지만 이들 생물이 모두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다면 그 결과는 아마 예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호주에서 꽤 커다란 독거미 한 마리가 자신보다 몸집이 큰 독사 한 마리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이목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밤(현지시간) 호주 빅토리아주(州) 구록에서 닐 포슬스웨이트라는 이름의 남성이 독사 한 마리가 독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공개된 영상 속 독사는 호주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사 중 하나로 평가되는 동부갈색뱀(이스턴 브라운 스네이크),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있는 독거미는 역시 매우 치명적인 독을 지닌 붉은등거미(레드백 스파이더)이다. 이 지역에서 20년 넘게 농부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닐 포슬스웨이트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장면이었다”며 “뱀이 거미줄에 걸린 채 경직돼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상을 보면 누군가가 막대기로 뱀을 여러 차례 건드려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뱀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동부갈색뱀은 혈액을 빠르게 응고시킬 수 있는 신경독을 지니고 있어 물리면 급사할 정도로 강력한 독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영상 속 뱀은 아직 어려 노련한 독거미에 오히려 당했다고 볼 수 있다. 포슬스웨이트는 “거미에 당한 뱀은 그날 밤이 지나고 나서야 죽었다”며 “이후 개미들에 의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영상 속에 등장한 거미를 아내의 차량 밑에서 종종 발견했다”며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지만 당분간 해당 차량을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진=닐 호슬스웨이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막대 가지고 놀다 성질 뻗친 코끼리, 결국은?

    막대 가지고 놀다 성질 뻗친 코끼리, 결국은?

    막대기를 가지고 놀던 코끼리가 성질 내는 모습이 포착돼 누리꾼들의 폭소를 자아내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미국 텍사스 주(州) 포트워스 동물원을 찾은 한 관람객이 코끼리가 화를 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면서 해당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통나무를 마주한 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코끼리 두 마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오른편의 코끼리가 긴 코를 흔들며 놀고 있는 사이 왼편에 서 있던 코끼리는 작은 막대기를 가지고 씨름 중이다. 코끼리는 막대기를 통나무에 세워 그 위에 올라가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막대기는 잘 세워지지도 않을뿐더러 코끼리가 발을 올리는 순간 힘없이 바닥에 나뒹군다. 잠시 후, 거듭된 실패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코끼리는 막대기를 통나무 위에 강하게 내동댕이친다. 관람객들은 성난 코끼리의 모습에 폭소한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코끼리도 성질 있네!”, “무서운 코끼리”, “그래도 귀엽다”라는 등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사진·영상=johnbod/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주역’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주역’

    ‘궁하면 통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써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주역(周易) 십익 중의 하나인 계사전 하편 2장에 실린 말이다. 그 원형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극한 상황에 이르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는 길이 생기고, 통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다)로 변화에 대한 긍정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주역이 추구하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이 말뜻을 되새기느라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위편삼절·韋編三絶)는 이야기가 사기에 전해진다. ‘위편삼절’은 학문에 대한 열의와 노력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주역의 흔적은 태극기에서도 볼 수 있다. 태극기에서 태극 모양을 가운데 두고 네 모서리에 이어졌거나 토막 난 막대기들로 이루어진 건, 곤, 감, 이가 바로 주역의 핵심 원리인 괘 중 일부이다. 이처럼 낯설다고 생각했던 주역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주역이라 하면 점치는 책이나 미신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여기는 것이 모두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주역의 시작은 점을 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역 = 점’이 맞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주역은 유가에서 해설을 덧붙여 가며 우주와 인간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이자 인문학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현대에 주역을 점치는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동양고전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사서삼경의 하나로 받들어 그 가르침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읽는 사람 마음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주역은 ‘주(周)나라 때의 역(易)’이란 뜻으로, ‘역’이라고도 불린다. 역은 본래 도마뱀의 일종을 그린 상형문자이다. 도마뱀은 주위의 상황에 따라 몸 색깔을 수시로 바꾼다. 여기에서부터 ‘바뀌다’ ‘변화’라는 의미가 나왔다. 그런 까닭에 ‘역’을 키워드로 하여 성립된 주역이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근본 양상을 변화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 우리가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주역이다. 주역은 크게 ‘역경’(易經)과 ‘역전’(易傳)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역경은 64괘(卦)와 각 괘에 6개의 효(爻)로 구성되었다. 역전은 ‘십익’(十翼)이라고도 하며 ‘문언전’, ‘단전(상하)’, ‘상전(상하)’, ‘계사전(상하)’, ‘설괘전’, ‘서괴전’, ‘잡괘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전은 역경의 길과 흉의 의미를 읽어내는 데 도움을 주는 해설서 역할을 한다. 실제 고전으로 더 많이 읽히는 것은 바로 이 역전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는 주역의 주인 격인 역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이하 ‘주역’이라 칭하는 것은 ‘역경’을 뜻한다) 주역의 핵심은 64괘와 각 괘에 따르는 6개의 효이다. 괘를 알기 위해서는 효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효를 알기 위해서는 음양(陰陽)을 알아야 하며, 음양을 알기 위해서는 태극(太極)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주역에서는 삶을 진리 또는 하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보았는데 이런 삶의 형태를 태극으로 설명하고 있다. 태극의 삶은 인식을 초월한 실천만의 세계이다. 태극의 삶을 살고 있으면 이미 태극인 셈이다. 이게 무슨 소린지 쉽게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다시 태극의 원리를 음양으로 설명했다. 음양은 ―과 - -의 기호로 나타내며 왼쪽과 오른쪽, 하늘과 땅, 불과 물, 남자와 여자, 더위와 추위, 가는 것과 멈추는 것 등 둘로 분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왼쪽이 음이라고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왼쪽을 양이라 하면 오른쪽이 음이 될 뿐이다. 두 갈래 길을 예로 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길은 길이다. 다만 사람이 구분하여 인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태극을 보면 태극의 반인 붉은 쪽이 양이고 나머지 반인 푸른 쪽이 음이 아니라 그저 음양일 뿐이다. 그래서 태극은 곧 음양이고 음양이 태극인 것이다. 효는 음을 상징하는 기호(- -)와 양을 상징하는 기호(―)를 말하는 것으로 괘를 구성하는 낱낱의 획들을 가리킨다. 효 6개가 하나의 괘를 이루고 괘 안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를 표현한다. 각각의 효에 그 의미를 설명하는 효사가 있다. 괘는 모두 64개로 구성되어 각각 변화의 유형을 제시한다. 각 괘에는 괘명이 있는데 인간의 감정 상태, 구체적인 행위나 상황을 상징하는 것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괘의 전체 의미를 설명하는 괘사(卦辭)가 있다. 주역에서 설명하는 대로 점을 치자면 복잡하기 짝이 없다. 변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없으면 실행해 보기 쉽지 않다. 점을 칠 때 쑥대처럼 생긴 다년생 식물인 시초를 말린 것이나 대나무를 쪼개 가늘게 만든 막대, 동전 등을 사용해 양손에 쥐고 뽑았다가 나누고 이를 또다시 뽑고, 던지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꾹 참고 열과 성을 다해 괘를 뽑아 그 풀이를 읽더라도 애매하고 모호한 구절들에 또 한번 절망하게 된다. 풀이가 구체적인 답을 담지 않은 것은 여러 상황에 두루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자신이 지닌 의문이 절실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역의 권위에 의심을 품을 경우에 대비하여 안전장치를 해 놓은 듯한 구절이 역전에 있다. ‘계사전(상)’ 제10장에 ‘군자가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점을 쳐서 역에게 물으면 역은 분명하게 답변해 준다. 그리고 군자는 답변을 주저함 없이 실천에 옮기니 모든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다. 주역의 명에 따라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정밀하고 순수한 사람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소인이라면 점괘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답이 나오면 따르기를 주저하거나 무시함으로써 낭패를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천하에서 지극한 변화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라 이르고 있다. 이는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의지가 있는 군자가 아니면 주역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왜 우리는 주역에서 답을 구하고자 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선택을 자주, 많이 하며 살아간다고 해서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선택이 곧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줄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늘 선택의 갈림길에서 헤맨다. 어떨 때는 차라리 나 아닌 누군가가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갈등은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을 때 심해진다.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이 길이 맞는 길인가 확신이 없다. 이런 순간에 점이라도 쳐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바로 이때 주역이 필요해진다. 주역은 자신의 갈망을 담은 질문에 괘를 내어 답을 준다. 그 답은 확신을 위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선택의 길과 흉은 어차피 반반의 확률을 갖고 있다. 주역이 내어준 답이 길하다고 느껴진다면 일이 잘될 확률이 반에서 더 높은 쪽으로 갈 것이고 질문을 한 사람도 자신감을 가지고 더 많이 노력할 것이다. 만약 답이 흉하다고 느껴진다면 후회하지 않도록 실패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쪽으로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게 뭐야?’ 할 수도 있지만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갈 때 참 유용하다. 주역은 인간에게 내재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 이것이 심해질 때 터져 나오는 광기를 다스릴 힘을 주는 책이다. 이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원숭이를 ‘상속자’로 정한 인도 부자 부부

    원숭이를 ‘상속자’로 정한 인도 부자 부부

    아이가 없고 가족과도 소원한 인도의 한 부부가 자신들이 애완동물로 기르고 있는 원숭이를 유일한 ‘상속자’로 지명했다고 미국 CNN 등 외신이 보도했다. 부부는 유언장에서 원숭이 ‘츈문’을 자신들의 유일한 “자식”이라고 칭하며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州)에 있는 자택을 비롯한 부동산과 예금 등 전 재산을 양도한다고 밝혔다. 남편 부리제시 스리바스타바는 제분 공장과 케이블TV 회사 등 여러 회사를 소유한 사업가이고 아내 샤비스타는 변호사이다. 부부는 오래전 가족들에게 종교적 차이를 이유로 결혼을 반대 받은 뒤 가족들과는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남편은 힌두교, 아내는 이슬람교인이다. 샤비스타는 2005년 거리의 예술가에게 당시 생후 1개월이었던 원숭이 ‘츈만’을 사들였다. 츈만이 예술가에게 막대기로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녀는 밝혔다. 이후 부부는 츈만을 자기 자식처럼 돌봐왔다. 부부는 2010년 츈만을 암컷 원숭이와 “결혼”시키고 그들에 에어컨이 달린 방까지 내줬다. 부부는 츈만에 남기는 유산의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부부는 수백만 루피의 예금이 있다고 말한다. 현재 100만 루피는 약 1776만 원에 해당한다. 또한 부부는 원숭이의 구제와 전용 재활 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기금을 설립했다. 샤비스타는 “인도 사람들은 동물을 걱정하지 않지만, 나는 동물도 인간과 같다고 느낀다. 그들도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中 소년 전기뱀장어 잡으려다 감전돼…

    中 소년 전기뱀장어 잡으려다 감전돼…

    한 소년이 전기 뱀장어를 잡으려다 봉변을 당하는 영상이 경각심을 주고 있다. 지난 2013년 유튜브에 게재된 이 영상은 중국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작은 도랑에서 한 소년이 전기뱀장어를 잡다가 감전돼 기절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영상을 보면 소년은 맨발로 도랑에 들어가 물속 어딘가에 있는 뱀장어를 한 쪽 구석으로 몰아댄다. 이어 막대기를 하나 집어들어 뱀장어를 잡으려 한다. 하지만 뱀장어가 강력한 전기를 발생시키면서 소년을 마치 고목나무 처럼 뒤로 넘어진다. 소년이 물속에 쓰러진 뒤 괴로워 신음하면서 영상은 끝난다. 전기 뱀장어는 순간적으로 400~500w의 강력한 전기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상= Steves Tradelnc/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백남준 다시보기’

    ‘백남준 다시보기’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9주기를 맞아 그의 예술정신을 기리는 문화행사가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백남준의 실험성과 선구자적인 통찰력을 볼 수 있는 ‘TV는 TV다’전과 그의 예술정신을 잇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 주는 ‘랜덤 액세스(임의 접속)’전이 백남준의 기일인 지난달 29일 추모식과 함께 막을 올렸다. ●실험정신과 선구자적 통찰력 재조명 오는 6월 21일까지 계속될 ‘TV는 TV다’전은 미디어 자체를 예술로 한 단계 끌어올린 백남준이 텔레비전과 영상을 활용해 표현하려 한 실험정신을 보여 준다. 전시 제목은 미디어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의 유명한 명제인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패러디해 ‘미디어는 미디어다’라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 착안해 지었다. 미술관 측은 텔레비전을 주요 매체로 삼은 그의 예술정신을 재조명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 작품은 백남준이 표현한 TV의 속성에 따라 실험, 라이브와 재생, 신체, 방송 등 4개로 나눠 보여 준다. 전시작 중 ‘TV 첼로’는 크고 작은 모니터를 세로로 조합해 첼로처럼 줄로 이은 작품인데, 백남준아트센터에선 처음으로 일반에 전시된다. 백남준 평생의 예술적 협업자였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을 염두에 두고 만든 대표작이다. 12대의 모니터로 만든 ‘달은 가장 오래된 TV’, 불상이 TV를 보고 있는 ‘TV 부처’, 옛 진공관 라디오들로 표현한 ‘슈베르트’, 흑백 모니터와 장식용 전구·전기선을 천장에 늘어지게 매단 ‘비디오 샹들리에 1번’도 전시작에 포함된다. ●박승원 등 신진 작가들의 실험작품 기획전 이번 9주기 기념행사로 백남준의 실험정신을 잇는 신진 작가들의 기획전 ‘랜덤 액세스’가 5월 31일까지 함께 열려 의미를 더한다. 기획전 제목은 백남준이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발표한 작품 제목으로, 디지털 사회의 정보접속 방식이자 즉흥성, 비결정성, 상호작용, 참여 등 백남준 예술의 핵심을 담고 있다. 당시 백남준은 오디오 카세트의 테이프를 케이스 밖으로 꺼내 벽에 임의로 붙이고 관객이 금속 헤드를 자유롭게 움직여 소리를 만들어 내게 했다.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5명이 공동기획한 전시에는 김시원+윤지원+이수성, 김웅용, 다페르트튜토 스튜디오, 박승원, 서영란, 양정욱, 오민, 이세옥, 차미혜, 최은진 등이 참여한다. 박승원은 색색의 긴 나무 막대기를 소주 박스 사이에 꽂은 ‘멜랑콜리아 1악장과 2악장 협주곡’을 선보였다. 관람객은 자유롭게 막대기를 작품에서 빼 가랑이 사이에 끼고 그 광경을 폐쇄회로(CC)TV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차미혜는 오래전에 문을 닫은 청계천 주변 극장의 스산한 풍경을 담은 비디오 작품으로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나타냈다. 양정욱은 나무, 실, 모터, 발광다이오드(LED)로 만든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먹고 있는 사람’ 등의 작품으로 노인들의 질병과 노년의 외로운 삶에 대한 작가의 느낌을 표현했다.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의 예술정신이 오래 사는 이 공간에서 그의 실험정신과 신진 작가들의 창작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CCTV에 안 찍혔다고 교사는 되레 협박”

    “CCTV에 안 찍혔다고 교사는 되레 협박”

    지난해 4월 경기 부천의 유치원에 다니는 준희(4·가명)를 목욕시키던 엄마는 등에 가늘고 긴 막대기로 맞은 듯한 상처들이 벌겋게 부어오른 것을 발견했다. 준희는 엄마에게 “선생님이 블록 방에서 파란 막대기로 때렸다”고 말했다. 준희 엄마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신고는 ‘상처’로 되돌아왔다. 경찰은 2시간 동안 아이를 경찰서에 잡아 둔 채 진술을 받고, 집에도 두 차례 찾아와 당시 상황을 되물었다. 심지어 유치원에 있는 막대기들을 모두 가져와 아이에게 보여 주며 어떤 막대기로 맞았는지 묻기도 했다. 3개월 만에 경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해당 교사를 불기소 처분했다. 유치원에 폐쇄회로(CC)TV가 있었지만 준희가 언급한 블록 방이 찍히지 않은 데다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준희 가족 측은 “경찰이 수차례 찾아와 아이를 붙잡고 물어보는 통에 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며 “해당 교사는 처벌을 받지 않았고 되레 소송을 걸겠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인천 어린이집 아동폭행 사건 이후 정부가 부랴부랴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을 내놓았지만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2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아동학대로 판정받은 6796건 가운데 고소·고발 등으로 수사에 착수한 경우는 544건(8%)에 불과했다. 형사처벌에 이르는 길 또한 멀다. 2010~13년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 937건 중 검찰은 289건(30%)만 기소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 관행이 이번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검찰은 이제야 ‘모든 아동학대 행위자를 원칙적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장성근 변호사는 “그동안 아동에 대한 체벌이 ‘훈육’으로 둔갑돼 용인되는 분위기였지만 더는 가혹행위가 용납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아동학대 행위자를 법정에 전부 세우겠다는 것은 앞으로 (이들을) 엄벌로 다스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아동폭력 근절대책으로 제시한 CCTV 설치가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날 상습폭행 의혹이 제기된 인천 S유치원의 경우 경찰이 CCTV 영상을 확보했지만 4일치밖에 보관돼 있지 않았다. 이재연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아동은 학대 상황이 있어도 부당함을 이야기하거나 소통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린이집의 모든 문을 없애고 누구나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며 “교사 한 명에게 아이들을 맡길 것이 아니라 보조교사를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사과정에서 아이들이 2차 피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학대 상황에 대한)질문이 반복되는 경우 아이들의 진술이 ‘오염’될 수 있고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독감 정복돼나... ’만능’백신 올해 임상시험

    독감 정복돼나... ’만능’백신 올해 임상시험

    인류를 괴롭혀온 독감 완전정복이 멀지 않았다? 미국 abc뉴스가 독감 바이러스의 모든 변종에 효과가 있고 최소 20년간 면역효과가 지속될 수 있는 '범용 독감백신'(universal flu vaccine) 개발이 곧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13일(현지시간)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 미생물학과장 피터 팰리스 박사는 이 백신의 임상시험이 올해 안에 시작될 것이며 사람에 따라 한 번 맞으면 평생 면역효과를 보일 수도 있다고 abc뉴스와의 회견에서 밝혔다. 또한 이 백신이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입증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밴더빌트 대학 메디컬센터 예방의학과장 윌리엄 샤프너 박사에 따르면 이 범용 백신이 독감 바이러스의 변하지 않은 부분을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아무리 변신을 해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독감 바이러스를 막대사탕처럼 '막대기'에 둥그렇게 '사탕다발'이 달려있는 모양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 사탕다발은 해마다 부분적으로 변하지만 막대기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백신은 바로 이 '막대기 부분'을 공격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모든 변종의 독감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는 것. 현재는 매년 바뀔 수 있는 '사탕다발'을 표적으로 하는 백신이 만들어지고 있다. 매년 독감 시즌이 시작되기 여러 달 전에 올 시즌에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독감 바이러스 변종을 몇 가지 미리 지목해 이에 맞는 백신을 생산한다. 그러나 지목한 변종이 백신이 만들어지는 사이에 변신을 하면 예상이 일부 빗나간 백신이 만들어질 수 있다. 금년의 경우가 그렇다. 금년 백신은 면역효과가 33% 정도인 것으로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평가하고 있다. 올들어 유달리 독성이 강한 독감 바이러스 변종이 맹위를 떨치면서 지금까지 소아환자 26명이 사망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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