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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들 주목! 우리 아이 책과 친구 되게 해주는 법

    아빠들 주목! 우리 아이 책과 친구 되게 해주는 법

    “나중에 쉬고 애들한테 책 좀 읽어줘요.” 아내의 성화에 마지못해 책을 든 김모(39)씨. “이리 와봐. 아빠가 책 읽어줄게!” 하지만 여섯 살 아들과 네 살 딸은 아빠를 한 번 쓱 쳐다보더니 이내 관심을 꺼버린다. 머쓱한 김씨가 책을 밀어 놓고 소파에 누워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아내의 ‘스매싱’이 어김 없이 등짝을 강타한다. “TV 좀 그만 보고 애들 책 좀 읽어주라니까!” 벌개진 등을 만지며 김씨도 소리를 빽 지른다. “책 읽어준대도 애들이 싫어하는데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아빠의 육아 참여가 높을수록 아이의 자아 존중감과 정서가 발달하는 것은 물론, 학습과 인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국 옥스퍼드대 자녀양육연구소는 “자녀의 성장과 교육에 적극적인 아빠 밑에서 자란 아이는 사회성이 높다”고 했다. 심리학자 블란차드와 빌러에 따르면 아빠와 접촉이 많은 자녀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상위권을 유지한다. 자녀와 친밀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잦은 야근으로 자녀와 함께하지 못한 아빠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에게 책도 읽어주고 싶다’는 욕심으로 억지로 책 읽기를 시도한다면 아이가 도망가게 마련이다. 책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고 책도 많이 읽히고 야외활동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이런 아빠들에게는 ‘아빠표 독서 교육법’을 권하고 있다. [1단계] 우선 책에 대한 발상부터 바꿔보는 것이다. 정은주 한우리 독서토론논술 연구소장은 8일 “책은 가만히 앉아 읽기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면 장난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다양한 놀이 활동이 가능하다”면서 “독서를 꺼리는 아이들이 책과 친숙해지도록 하는 효과가 있고, 육아 초보 아빠들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책을 도구로 활용한 ‘책 놀이’는 따로 비용이 들지 않고, 가정에 책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육아를 처음 시작하는 아빠들이 시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신체 활동을 동반하기 때문에 일거양득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책을 볼링핀처럼 세워두고 공을 굴려 책을 쓰러뜨려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책 볼링’, 거실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녀와 함께 책을 이어서 세운 뒤 쓰러뜨리는 ‘책 도미노’는 창의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책 다리 만들기’는 정해진 시간에 바닥에 책을 일렬로 이어 가장 긴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 승리하는 놀이다. ‘책 옮기기’는 막대기 2개를 11자로 만들어 그 위에 올린 책을 골인 지점까지 빠르게 옮기는 게임이다. 아빠와의 대결은 신체 발달에도 좋다. 아빠와의 놀이에서 이기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2단계]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은 책에 흥미가 적은 아이에게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자녀가 책과 어느 정도 친숙해졌다면 ‘잠자리 독서’를 시작해보자.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이면 충분하다. 아이의 집중력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데 효과적이다. 자녀가 아빠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해주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권장할 만하다. 책을 읽어줄 때에는 자녀와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으로 읽도록 한다. 책의 표지나 그림에 대해 자녀와 이야기 나누거나 책 문장에 아빠의 감정을 담아 읽은 후 자녀가 이를 따라 읽는 방법도 권할 만하다. 역사나 모험 등과 같은 남성적 성향의 책이나 의성어·의태어가 풍부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도서도 좋다. 김수연 제천북스타트위원장(인천재능대학 교수)은 “잠자리에 들 때에는 정적인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마련인데, 굳이 그런 책을 억지로 고를 필요는 없다”며 “책 읽어주기의 본질은 ‘소통’이라는 점부터 명심하자”고 했다. 예컨대 김 위원장이 추천하는 ‘곰 사냥을 떠나자’는 곰을 사냥하러 수풀 사이를 헤치고, 강도 건너고 동굴도 건너다가 결국 ‘아이고 무서워!’ 하면서 침대 안으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유아 때에는 이런 책들이 아이의 올바른 수면습관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 [3단계] 주말이나 휴일에는 자녀와 함께 읽은 책 속의 내용을 주제로 야외 활동을 해보자. 독서를 통한 야외활동은 자녀와 더욱 깊은 교감을 쌓을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책에 대한 흥미를 확장하고, 관련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로 연결하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억지로 손에 이끌려 체험학습을 하는 학생도 많은데, 책을 읽고 체험학습을 하다 보면 능동적인 학습도 가능하다. 신체놀이를 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해 읽어주고, 주말에 관련 활동을 하면 자녀와의 유대감이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책 내용과 연관된 야외 활동은 배경 지식에 경험이 덧붙여져 내용 이해가 쉽다. 신체활동과 연결도 가능하다. 예컨대 운동에 관심이 많은 자녀와 함께 ‘WHY-스포츠 과학’ 중 야구에 관련된 내용을 읽고 나서 야외에서 책 속에 삽화로 표현된 직구나 변화구의 손가락 모양을 따라 하며 캐치볼을 하는 방식이다. ‘신기한 수영장’을 읽고 자녀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를 읽고 자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직접 알려주는 등의 활동은 자녀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방식이 습관화하면 ‘나들이는 반드시 멀리 떠나야 한다’는 막연한 부담감도 줄어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외계 생명체?’ 누들 모양 벌레들 ‘경악’

    ‘외계 생명체?’ 누들 모양 벌레들 ‘경악’

    도로서 발견된 이상한 벌레 더미의 모습이 포착됐다. 7일(현지시간)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liveleak.com)은 지난주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미국 텍사스주 데니슨 아이젠하워주립공원의 한 도로에서 누들 모양의 벌레 더미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게재했다. 영상에는 누들 모양의 더미를 막대기로 헤집자 서로 엉킨 벌레들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벌레 더미는 도로 중앙선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 한편 이 미스터리한 벌레 더미들에 대해 다우트풀뉴스닷컴 사이트의 샤론 힐은 “이 퇴비 더미 속 엉겨 붙어 있는 것들은 줄지렁이(red wigglers)”라고 밝혔다. 이어 샤론은 “줄지렁이들이 안전하고 건조한 장소로 무리 지어 이동한 모습”이라며 “벌레들이 홍수로 인해 길이 사라지자 중앙선 부근을 가장 안전하고 건조한 지역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진·영상= liveleak / FunnyVids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어른스러워서 더 건강한 노후

       건강한 노후에 대하여 그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일년감 할매’의 주름이 깊어 쪼그라든 얼굴이 떠오르거나, 문득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일년감 할매가 돌아가신 게 30년도 전이니, 지금쯤 하늘 어디에선가 어설픈 작대기 하나로 굽은 등 버티며 바지런히 일년감 밭을 일구고 계시겠지요. 요새 흔한 토마토를 예전에는 흔히 일년감이라고들 불렀습니다.  나이가 들어 ‘노친네’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어른’ 노릇 대신 한사코 세상에 대거리를 하려고 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그 할매 얼굴이 떠오릅니다. 너무 바싹 말라붙어 불씨라도 얹히면 금새 활활 타오를 듯 살벌하고 강퍅한 세상이어서 나이 잘 든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가 봅니다. 나이 든다는 건 건강 상태가 점차 취약해진다는 뜻이니, 누구라도 건강한 노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얘기이지요. 그런데, ‘건강한 노후’라고 하니 자꾸 신체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예전의 체육정책의 슬로건이 틀린 건 아니지만, 뒤집어서 정신이 건강하면 몸의 건강이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니, 다 생각 나름인 것 같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양보와 배려를 안다는 것  나이 드신 분들은 체력은 물론 면역력이나 섭생 등 건강의 기초가 취약한 데다 자칫 세상의 일에서 배제되고 소외됐다고 여기기 쉬워 잘 살펴야 하는데, 요즘의 세상을 보면 뭐가 그리도 바쁜지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따로 돌아보는 일도 없어 뵈고,그래선지 더러는 한사코 엇나가 세상일에 버럭질이나 하려고 드는 노인들이 더 많아지는 듯도 합니다.  ‘경로(敬老)’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이 들어 근력이 약해진 고령의 노인들을 고된 일터에서 물러서게 해 노후를 편하게 맞으라는 기성세대의 배려이기도 하고,이제는 몸을 내세워 일하기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삶의 경륜을 잇게 하는 소위 ‘어른 노릇’을 하시라는 주문일텐데, 어른 노릇을 하려는 쪽이나 가르침을 받으려는 쪽이나 다 그런 염의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온몸으로 아이들 지키려다가 그만 실신해 자빠진 옛날의 그 일년감 할매가 두고 두고 그리울 밖에요.  이웃에 사셨던 그 할매는 노인 반열에 들어서도 여전히 숫기가 없어 말도 가려서 하셨고, 오지랖 넓게 이 일, 저 일 설치지도 않는 그냥 찬찬한 성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세가 풍족해 몸을 놀리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이 어렵지 않은 살림이 못 됐던 탓에 종일 들에 나가 하다 못해 밭두렁에서 쇠비름이라도 뜯어야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간다는 타고난 농투산이 일꾼이기도 했지요. 워낙 말수가 없어 하루 종일 들일을 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는데, 젊은 아낙들이 “아니, 고되실텐데 죙일 입 막고 무슨 일만 그렇게 하시느냐”고 농이라고 건넬라치면 그제서야 쪼글쪼글한 얼굴에 소녀같은 웃음을 지으며 “쉰소리 해봐야 배나 꺼지지”라고 내뱉듯 대꾸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잘 가꿔 탐스러운 일년감의 유혹  아마 제가 초등학교 1∼2학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 할매가 한 해는 마을 초입의 텃밭 귀퉁이에 토마토를 심었는데, 조석으로 돌보고 갈무리한 덕분에 어떤 놈은 어른 주먹을 둘쯤 보태놓은 것처럼 크고 실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오가면서 발그레 맛이 들어가는 토마토를 볼 때마다 한 입 베어물고 싶은 생각에 한참씩 그걸 바라보곤 했는데, 코흘리개가 입맛을 다시며 토마토를 쳐다보는 모양이 그랬던지 그 할매는 “다 익으면 너도 한 개 줄테니 좀만 기다려라”시며 오져 하곤 했지요. 그 뒤로 학교가 끝나면 굴렁쇠를 굴리며 부리나케 집으로 향해 그 집 텃밭에서 익어가는 토마토를 곁눈질하며 지나치곤 했는데, 하루는 어린 나이에 그 탐스러운 일년감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나서 또래 동무와 둘이 슬그머니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일부러 마을을 멀리 돌아 나간 뒤 다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잡아 들어오면 그 텃밭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라도 상당한 지능범 수준이어서 요즘 신문, 방송에서 뉴스 보도하는 식으로 말하면 ‘계획 범행’임에 틀림없습니다. 벌써 어두워졌지만 어둠이 눈에 익어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가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주변을 쓱, 살핀 뒤 날다람쥐처럼 생울을 비집고 텃밭으로 들어가 손에 잡히는대로 토마토를 서너개 따 들었는데, 아뿔싸, 마을쪽 텃밭 어귀에서 할머니의 쇠된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눔들, 가만 있거라. 그거 먹으면 안 된다”며 토마토밭 고랑을 타고 후적후적 달려오는 소리에 그만 오금이 얼어붙었습니다.  어느새 이마에는 찐득하게 진땀이 배고,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는데, 그 때 밭고랑에 바싹 엎드려 있던 동무가 다급하게 나를 잡아끌고는 냅다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 와중에 간이 쪼그라들어 토마토는 어디다 내던졌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어둑한 밭두렁을 타고 걸음아 날 살려라 내달리는데, 참 일이 난감하게 됐습니다. 그 할매가 한사코 뒤쫓아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들 다람쥐같이 뛰는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한참을 뛰다가 돌아보니 멀리 신작로 어귀에서 그 할매가 가쁜 숨을 내쉬며 여전히 고함을 질러대고 계셨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그거 먹지 말고 이리 가져와라. 내가 사탕 주마”라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할매는 숨길이 가빠 몇 걸음 떼다가 이내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 때까지도 숨을 헐떡거리며 “그거 갖고 이리 와라”고 쇠된 소리로 외치고 계셨습니다. 부리나케 뛴 덕분에 잡힐 걱정은 없었습니다. 사방이 어두워 우리가 누군지 알 턱도 없고, 이 길로 뽕밭은 가로 질러 마을 뒷편으로 돌아 집으로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를 일이었지요.  막 따 쥔 토마토를 내버리고 튀는 동무도 마찬가지여서 둘 다 헛웃음만 내뱉으며 몰래 마을 뒤 고샅길로 들어섰는데, 마을 어귀에서는 그 할매의 고함소리에 놀란 아낙들이 두런거리며 눈을 꿈벅이고 있었습니다. 텃밭이 마을 입구여서 요요한 저녁에 할매가 내지른 고함소리가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갔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집으로 들어왔는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머니가 닥달을 하십니다.  “이눔아, 토마토 어쨌어. 당장 내놔” 불문곡직 불호령부터 쏟아내는 어머니에게는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웅얼대다가 마침내 전말을 죄다 토설해야 했는데, 그 때 골목 어귀에 나와 있던 아낙들이 두런대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박혔습니다. “찬호 할매가 실신해 신작로에 나자빠진 걸 찬호 아부지가 업어왔대. 이게 무슨 일이래” 뜻밖에 사단이 지경이 되고 보니 당장 제 멱살을 거머쥐고 찬호 할매한테 달려가 이실직고라도 할 태세이던 어머니도 목소리를 낮추고 가만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어쩔래”라며 연방 머리통을 쥐어박았는데, 저는 낯이 뜨겁고 가슴이 울렁거려 숨도 크게 쉴 수 없었습니다.  웅숭 깊었던 그 할매의 배려  그 밤, 찬호 할매가 기를 쓰고 우리를 뒤쫓았던 사연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날 해질녘, 찬호 할매가 토마토밭에 농약을 쳤는데, 요즘처럼 기능성이 강화된 농약이 없던 시절이어서 무식하게 독성만 센 DDT를 뿌렸다는 겁니다. 그 시절에야 분무기도 없어 그냥 하얀 DDT를 삼베주머니에 넣은 뒤 밭고랑을 따라가며 막대기로 툭툭, 쳐서 뿌리곤 했는데, 낮이라면 허연 DDT 가루가 금방 눈에 띄어 따먹을 엄두도 못 냈겠지만 밤에 일을 벌였으니 그게 눈에 보일 리도 없고, 그래서 철부지들이 주린 배에 그걸 맛있다고 따먹었더라면 아마 개거품 물고 나자빠졌겠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서 힘이 빠지며 왈칵,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세견머리’에 토마토가 아까워 그렇게 악다구니를 부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혹시라도 토마토를 먹고 어찌 될까봐 당신은 실신하도록 우리 뒤를 쫓으며 “그거 먹지 말고 가져와라. ‘아메다마’(사탕) 줄테니 이리 와라”시며 한사코 우리 뒤를 쫓으신 거지요. 찬호 할매가 절규처럼 토해낸 외침이 밤새 귀 속에서 징징 울렸습니다.  어른스러워서 더 건강한 노후  다시, 그 날을 생각합니다. 다들 잠자리에 드는 저녁까지 혹시 농약 사단이라도 날까봐 텃밭을 떠나지 못한 그 할매의 심지 깊은 사려가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이 곳에 있지도 못했겠지요. 그 어른스러운 마음씀이 자꾸 지금의 노인들과 겹쳐 새삼 가슴이 아려옵니다. 막말로, 누군가 야밤에 토마토를 서리해 먹고 죽어나가도 요즘 정서로 말하자면 그 할매는 책임질 일이 없는 일이지요. 그 시절에야 그냥 서리였지만 요즘으로 치면 절도니까요.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 그 수준을 넘어 아름답게 늙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노탐의 무게에 짓눌려 아귀처럼 남의 것 뺏으려고만 들거나,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젊은 사람을 마치 변종 바이러스처럼 여기는 건 천박하고 강퍅해 보여 싫습니다.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았길래 나이 들어서도 젊은 사람에게 충고는 언감생심 권고 한 마디 건넬 요량을 못 갖췄으며, 이념에 대한 생각은 또 왜 그렇게 꽉 막혀 있는지 한심합니다. 나이 들어 수수함의 격을 잊고 비싼 옷, 값진 장신구로 겉치장만 해대 돈자랑 하려고 드는 것도 저급하고, 뭘 그리 세상을 올곧고 바르게만 살았는지 허구헌날 목에 핏대만 세우려 드는 관용을 모르는 노후도 안타깝습니다.  찬호 할매야 초등학교도 못 나왔으니 당연히 글을 읽고 쓰지 못하고, 평생을 빈천하게 살았으니 노탐이라야 이밥에 쇠고깃국 한번 원없이 먹어보거나,안 아프고 편하게 죽는 것이었을테고, 주제를 아는 탓에 그 나이토록 누군가를 단죄하거나 가르치려는 생각도 꿈에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살면서 무시로 그 할매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런 추억이 몰래 토마토 하나 따먹으려다 들통 나 뽕밭 어름에 납작 엎드려서 들었던 개구리 울음이 그리워서라기엔 그 분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곱습니다. 저의 철 없는 서리 행각이 부끄럽다고만 여기기에는 그 분의 정이 너무 이타적입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는 당연히 몸의 건강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좋은 것 찾아 먹고, 운동도 열심이지요. 그런 노후가 보기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나이 들면서 마음 건강을 도모하는 지혜도 몸 건강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아직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아서 제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다면 이기심, 노탐, 벽창호 같은 옹고집을 좀 덜어내고, 그 자리에 배려와 양보, 넉넉한 포용과 비움의 미덕 같은 걸 채워넣고 싶습니다. 정신 건강에는 그런 것들이 약이니까요.  아마도 찬호 할매는 하늘에서도 자그마한 땅에 일년감을 키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삶이 지상에서든, 천국에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노후를 고민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피할 수 없는 게 많고, 한사코 운명을 회피하려다 추해질 수도 있을 터이니 너무 애 닳아 하지 말고, 찬호 할매가 그랬듯 주변도 돌아보면서 사는 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선택 아닐까요. 내려 놓을 것 조금씩 내려 놓으면서….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막대기만 세우면 전기 생산? ‘날개 없는’ 풍력발전 실험 성공

    막대기만 세우면 전기 생산? ‘날개 없는’ 풍력발전 실험 성공

    에너지를 얻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과거에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서 깨끗한 에너지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이슈로 인해서 청정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의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태양 에너지와 풍력 에너지는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그 보급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 물론 아직 대체 에너지는 기존의 화석 연료를 완전히 대체할 수준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분야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중에서 풍력 발전은 밤에도 문제없이 발전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으나, 아직 단가가 기존의 화력 발전에 비해 비싸고 설치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 풍력 발전 터빈을 돌리기 위한 거대한 풍차는 소음 공해 문제와 야생 조류의 충돌 문제, 그리고 크기가 커질수록 비용도 따라서 커진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터빈을 돌리는 풍차 날개가 없는 디자인의 풍력 발전이다. 그런데 어떻게 발전기를 돌리지 않고 풍력 발전이 가능할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몇 가지 공학적 아이디어들이 있다. 이 아이디어 가운데서 최근 보텍스 블레이들리스(Vortex Bladeless)라는 신생 기업에서 내놓은 아이디어는 정말 기발하다. 이들은 1940년대 있었던 유명한 다리 붕괴사고인 타코마 다리 붕괴 사고에서 영감을 얻었다. 당시 이 다리는 강풍에 의해 부서졌는데, 공학자들은 이 사고가 바람에 의한 공탄성 플러터(aeroelastic flutter)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강풍에 의해 발생한 작은 소용돌이가 다리 상판 주변에 발생하여 다리를 심하게 아래위로 흔드는 현상이다. 보통 엔지니어들은 이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보텍스 블레이들리스는 반대로 이를 응용했다. 즉, 바람이 부는 지역에 긴 막대기 내지는 기둥 같은 구조물을 만들고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현재까지는 실내에서 축소모델 실험과 야외에서의 소형 축소 모델 시험만 성공한 상태이지만, 이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앞으로 4kW급의 소형 발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이 날개 없는 풍력 발전의 이점은 명확하다. 일단 움직이는 부위가 없다 보니 제조, 설치 및 유지보수가 매우 쉽다. 이들은 이 새로운 풍력 발전기의 제조 단가 및 유지 단가가 기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옳을지는 실제 발전기를 통해 검증되어야 하겠지만, 만약 실용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매우 독특하게 생긴 막대기 같은 풍력 발전기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흔들리는 기둥을 이용하는 방식인 만큼 안전성 문제는 반드시 검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해외여행 | 남아프리카의 손짓②Zambia 잠비아

    해외여행 | 남아프리카의 손짓②Zambia 잠비아

    여행 3일째, 요하네스버그 OR 탐보 국제공항을 떠나 잠비아 리빙스톤 하뤼 왕가 엔쿰 블라 국제공항으로 향한다. 비행시간은 겨우 1시간 50분. 빅토리아 폭포를 보러 간다. 빅토리아 폭포를 빼면 이름마저 낯선 나라가 잠비아다. ●Victoria Falls 천둥치는 빅토리아 폭포 하늘로 피어오르는 폭포 빅토리아 폭포는 폭포다. 이 말은 맞지만 틀렸다. 그 모습을 ‘폭포’라고 간단히 말해 버리기에 그 위용은 너무 대단하다. 위엄찬 그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우리에게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거다. 빅토리아 폭포는 아래로도 어마어마하게 떨어지지만 하늘로도 흘러간다. 우리는 폭포에 대해 말할 때 ‘하늘로 흘러간다’고 쓰진 않는다. 빅토리아 폭포가 특별한 한 가지 이유다. 이는 원주민들이 빅토리아 폭포를 보고 ‘모씨 오아 튠야Mosi-oa-Tunya’, 즉 ‘천둥치는 연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실제 멀리서 들으면 빅토리아 폭포는 천둥이 우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물줄기는 연기처럼 보인다. 엷은 안개, 물보라, 심지어 빗줄기처럼 보일 때도 있다. 엷은 안개 같은 물줄기는 빅토리아 폭포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보일 때도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밑으로 떨어지는 물은 어떠한가? 폭포에서 한참 떨어진 곳을 걸어도 양동이로 들이붓는 것 같은 빗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진다. 빅토리아 폭포 주변을 걷다 보면 ‘나이프의 가장자리 다리Knife’s Edge Bridge’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 하나를 건너게 된다. 빅토리아 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다. 종종 거대한 무지개가 다리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한데 다리를 건널라치면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비를 맞게 된다. 빅토리아 폭포수로 즐기는 샤워다. 너무 시원하고, 너무 흥분되는, 지구의 미스터리가 실감나는 순간이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라도 지를 것 같다. 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 쪽뿐만 아니라 짐바브웨 쪽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짐바브웨 쪽에서 보는 게 빅토리아 폭포를 훨씬 더 제대로 볼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니 양쪽에서 모두 봐야만 진정으로 빅토리아 폭포를 제대로 보는 셈이다. Victoria Falls Helicopter Tour 빅토리아 폭포 헬기 투어 바오밥 나무 옆 헬기 이륙장 난생 처음 헬기를 탔다. 그것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서. 인생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심장이 쿵쾅거리지 않겠는가! “헬기에 탈 때 주의할 점이 있어요.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헬기에 타고 내릴 때 프로펠러를 피해 항상 안전지대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액체류는 휴대할 수 없습니다. 모자도 쓸 수 없습니다. 하늘거리는 옷도 안 됩니다.” 헬기장 직원이 전하는 주의사항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헬기 이륙장 바로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바오밥 나무는 헬기에 탑승하는 순간, ‘그래 여기가 아프리카 맞지!’ 하는 특별한 감동을 더했다. 기장이 건네주는 헤드셋으로 양 귀를 감싸자 프로펠러의 굉음이 차단되며 기장의 환영인사가 들려온다. “안전벨트 하셨나요? 우리는 빅토리아 폭포 위를 한 바퀴 반 정도 선회한 후 코끼리와 하마를 볼 수 있는 롱 아일랜드를 거쳐 기린, 버펄로, 영양 무리를 볼 수 있는 모씨 오아 튠야 국립공원으로 날아갑니다.” 헬기는 순식간에 500m 상공으로 올라가 빅토리아 폭포로 향한다. 장엄하게 펼쳐진 빅토리아 폭포와 굴곡진 주변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헬기는 여러 앵글에서 다채롭게 빅토리아 폭포를 보여 준다. 짐바브웨 국경도 무심코 넘나드는 게 아닌가 싶다. 잠비아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짐바브웨 쪽 빅토리아 폭포가 보인다. 헬기를 탔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빅토리아다. 빅토리아 폭포 바로 옆, 내가 3일 동안 지낸 더 로열 리빙스톤 호텔도 눈에 띈다. 까마득하지만 코끼리도 내려다보인다. 잠베지강줄기를 따라 고개를 돌리면 강물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로 흘러간다.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 평원을 헬기로 비행하니 땅이 정말 살짝 둥글게 보인다. 지구는 정말 둥근 게 틀림없다. 아쉽게도 15분간의 비행은 너무 짧다. 헬기에서 내리니 살짝 멀미가 느껴진다. 기체가 흔들렸기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봤다. www.uaczam.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Mukuni Big 5 Safaris 사자와의 산책 무쿠니 빅 5 사파리 www.mukunibig5.co.zm 사자와 치타를 직접 안아 보다 무쿠니 빅 파이브 사파리Mukuni Big 5 Safaris에서는 치타, 사자와 인터액션을 경험한다. 인터액션Interaction이란 치타, 사자 같은 야생동물과 신체적, 정서적 교류를 경험해 보는 액티비티다. 무쿠니 빅 파이브에 도착하면 먼저 1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는 치타를 지켜볼 수 있다. 자욱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치타의 속도는 눈앞에서 봐도 신기할 나름이다. 작은 머리에 길고 가는 다리, 치타가 시속 120km, 육상 동물 중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이유다. 치타의 질주가 끝나면 쓰다듬고 안아 주는 식으로 치타와의 인터액션을 경험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치타를 쓰다듬을 때는 힘을 주어 세게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치타는 이를 애정으로 받아들인다. 치타를 겁내 살살 쓰다듬으면 간지럼을 태우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자연히 치타는 이를 성가시게 여기고, 그 동작을 멈추게 하려 든다. “아프리칸 타투를 만들 게 아니면 조심해야 해요.” 아프리칸 타투는 야생동물에 의해 생긴 상처를 말한다. 불현듯 치타와 표범이 어떻게 다른가 했더니 몸의 얼룩무늬 모양이 다르다. 얼핏 치타와 비슷하게 생긴 표범은 몸에 도넛 모양의 점을 가졌다는 점에서 단순한 모양의 점을 가진 치타와 구별된다. 표범은 빅 5 중 하나다. 아쉽게도 사파리 일정 내내 표범을 볼 기회는 없었다. 이곳엔 아홉 마리의 치타가 있다. 잠비아 전체에 스무 마리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의 치타가 여기 있는 셈이다. 참고로, 전 세계에 치타는 1만~1만2,000마리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절반이 나미비아에 있다. 인터액션 후에는 치타와 함께 덤불 사이를 산책한다. 치타 다음은 사자다. 레인저가 사자를 만나기 전 사람들에게 막대기 하나씩을 건넨다. 이 가느다란 막대기의 역할은 사자와 대적하는 게 아니라 사자의 주의를 흩뜨리는 것뿐이다. 사람이 든 막대기로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레인저를 따라가니 저 앞에 사자 두 마리가 보인다. 사자와의 인터액션은 치타 때보다 주의할 점이 더 많다. 관람객은 항상 무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자에게 다가갈 때는 사자 뒤쪽에서 다가간다. 비명을 지르거나 하는 식으로 사자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면 안 된다. 사람의 비명 소리를 사자는 사람이 자기랑 같이 놀고 싶어 하는 거라고 오해한다. 사자가 앉거나 눕는 방향을 바꾸면 사람들도 위치를 바꿔야 한다. 사람은 항상 사자의 시선을 피해 사자 뒤편에 있어야 한다. 아주 어린 사자를 선 시티의 라이언 파크에서 잠깐 쓰다듬어 본 적이 있지만 여긴 차원이 다르다. 덩치부터 완전히 다르다. 이제 두 살이 좀 지난 수사자 테리와 암사자 다이애나의 덩치는 어른 사자 못지않다. 사자들은 우리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슬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다. 사자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당장이라도 예상치 못한 무슨 일이 생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사자가 몸을 큰 동작으로 뒤집으면서 사람들이 깜짝 놀랐던 일은 있었으나 다행히도 사자와의 인터액션은 무사히 끝이 났다. 인터액션 후에는 덤불 사이를 사자와 함께 걷는다. 바로 눈앞에 밀림의 왕, 사자가 있다. 2013년 여기서 살던 암사자 세 마리는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 있는 어느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보내졌다. 암사자들은 거기서 모두 엄마가 되었다. 비록 개인이 운영하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이지만 거기서 야생의 방식 그대로 살고 있다. 테리와 다이애나 역시 다섯 살이 되면 야생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무크니 빅 5 사파리는 리빙스톤 타운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Zambezi River Safaris 잠베지 리버 사파리 하마의 역습 리버 사파리에는 택시 보트가 이용된다. 최저 20cm의 깊이에서도 운행할 수 있도록 특별한 장치를 갖췄다. 제트 프로펠러를 장착해 빠르고 신속하게 이동하고, 몸체는 작아 협소한 지형에도 최대한 근접해 야생동물과 주변 환경을 보여 준다. 빅토리아 폭포 쪽으로도 최대 200m 지점까지 접근할 수 있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빅토리아의 지형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잠베지 리버 사파리를 하면서 제일 먼저 만난 동물은 하마다. 하지만 하마는 좀체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 사람들의 애를 닳게 했다. 하지만 주변을 맴도는 보트 엔진 소리가 성가셨던지 하마는 어느 순간 버럭 화를 내듯 화다닥 수면 위로 뛰어올라 보트에 있는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난생 처음 수면으로 뛰어오른 하마를 봤다. 유순히 물속에서 유유자적하던 하마의 예상 못한 역습이었다. “금방 봤어? 하마가 뛰어올라 왔다고?!” 보트 위에선 하마의 점프로 인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참 동안 끊이지 않았다. www.seasonsinafrica.com ●The Royal Livingstone Express 향수 어린 증기기차 www.royal-livingstone-express.com 빅토리아 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 붉은 카펫 위에서 웰컴 드링크를 받고, 기차에 오른다. 기관차에선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른다. 증기기관차다. 라운지 객차를 통해 기차에 오르면 다양한 음료와 스낵이 제공된다.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한 장면 같다. 더 로열 리빙스톤 익스프레스(이하 리빙스톤 익스프레스)는 실제 증기기관차 이름이다. 마치 100년 전 증기시대의 개척자라도 된 기분으로 증기기관차 타고 떠나는 시간 여행이 리빙스톤 익스프레스에서 이루어진다. 파노라마 뷰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창틀, 내부를 장식한 나무에 따뜻하고 은은한 빛을 더하는 백열등 조명은 리빙스톤 익스프레스라는 무대의 배경막이 된다. 실제 리빙스톤 익스프레스는 1926년 운행을 시작했다. 리빙스톤 익스프레스는 다섯 개의 객차와 두 개의 다이닝 객차, 라운지 객차, 주방 객차 등으로 구성된다. 다이닝 객차 중 하나인 ‘더 웸블리The Wembley’는 버밍엄 철도 회사가 만들었다. 1924년 대영제국박람회 때 선보인 후 남아프리카로 수입되어 지금까지 운행을 이어 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더 웸블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리빙스톤 익스프레스의 운행구간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이집트 카이로를 잇는 철도 구간의 일부다. 선로의 한 쪽 끝은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케이프타운을, 다른 한 쪽은 대륙 북단의 이집트 카이로를 향한다. 아프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철로라는 꿈은 식민시대의 유산이자 욕망이다. 부시트랙역을 출발한 기차는 얼마 되지 않아 잠비아와 짐바브웨 국경을 이어 주는 다리 위에 멈춘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석양을 보기 위해서다. 승객들은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과거는 늘 그리운 것일까. 오늘의 주인공은 승객도 아니고 빅토리아 폭포도 아니고 리빙스톤 익스프레스가 상기시키는 19세기, 과거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리빙스톤 익스프레스 안에서 모두 꿈을 꾼다. 여기가 아닌 과거의 한 순간을 사는 꿈을. 리빙스톤 익스프레스의 디너 타임 때는 은으로 만든 나이프와 포크, 숟가락, 크리스털 유리제품, 두툼한 린넨으로 세팅된 테이블 위로 다섯 가지 코스 요리가 선보인다. 시발역인 부시트랙역을 출발한 지 세 시간 반 만에 디너까지 모두 마치고 기차는 다시 부시트랙역으로 돌아왔다. 시간여행의 꿈에서 이제 깨어날 때다. The Royal Livingstone Hotel 더 로열 리빙스톤 호텔 “여기는 지상 낙원이에요” 잠베지강변에 바로 인접한 호텔, 더 로열 리빙스톤은 이제는 사라진 아프리카의 지난날을 추억하게 한다. 모던하고 럭셔리한 스타일로 고상했던 과거의 시간을 상기시킨다. 무엇보다 걸어서 10분이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빅토리아 폭포에 도착한다. 더 로열 리빙스톤 투숙객들은 더 로열 리빙스톤만의 입구를 통해 무제한으로 빅토리아 폭포로 갈 수 있다. 더 로열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에서 수상택시나 스피드 보트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호텔이다. 우리 일행이 리빙스톤 공항에서 ‘더 로열’로 이동할 때도 택시 보트를 이용했다. 차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보트를 타고 호텔에 접근하니 마치 호텔이 한적한 섬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호텔에서 대부분의 액티비티 장소까지는 15분 이내에 도착한다. 호텔 안에서 얼룩말, 기린과도 종종 마주친다. 호텔 안에서 사는 동물들이다. 체크인을 하고 포터가 운전하는 카트를 타고 내 방으로 가는 길에 얼룩말과 마주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새벽에 바람을 쐬러 베란다로 나갔다가 바로 옆에서 쓰윽 얼굴을 들이대는 기린 때문에 깜짝 놀랐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리조트를 꿈꿀 때 기대하는 모든 게 더 로열 리빙스톤에 있다. 이국적이고, 따뜻하고, 편안하고, 호사스럽고, 친절하다. 호텔 수영장이나 정원의 데크에서 맞는 잠베지강의 석양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콘드 나스트 트래블러Conde Nast Traveler>는 더 로열 리빙스톤 호텔을 세계 최고의 호텔 중 하나로 꼽은 바 있다. 더 로열 리빙스톤 레스토랑의 긴 베란다는 정원과 잠베지강을 응시하며 애프터눈 티를 마시기에 최고의 장소다. 내가 호텔 주변 풍광에 넋을 놓고 있을 때 옆 자리에서 차를 마시던 30대 여자가 말을 건넨다. “여기는 정말 지상 낙원이에요.” 나는 더 로열 리빙스톤 호텔에 꼭 다시 돌아오고 싶다. www.livingstone-hotel.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남아프리카항공 02-777-6943 www.flysaa.com, Sun International www.suninternational.com, Thomson Gatraway www.thompsonsafrica.com
  • 유기 고양이 구하려 자신의 벤츠 ‘직접’부순 시민

    유기 고양이 구하려 자신의 벤츠 ‘직접’부순 시민

    유기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고가의 차량을 ‘내어준’ 한 남성이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대만 뉴스전문채널인 TVBS의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대만에 사는 천(沈)씨는 얼마전 자신의 벤츠 차량을 몰고 인근 공원으로 드라이브를 나섰다가 공원에서 사람들이 작은 고양이를 구출하려 애쓰는 모습을 목격했다. 천씨도 곧바로 차를 세우고 고양이 구하기에 나섰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 놀란 고양이는 재빠르게 달려 천씨의 차량 아래로 몸을 숨겼다. 천씨와 사람들은 차 아래쪽 부품 안으로 기어들어간 고양이를 유인하기 위해 차량을 막대기로 두드리거나 먹이로 유인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차 주인인 천씨는 차량에 시동을 걸어 움직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다 부품사이에 몸을 숨긴 고양이가 다칠 것이 염려돼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천씨는 직접 견인차를 불러 차를 인근 차량수리공장으로 옮긴 뒤, 차량 아래 밑판을 완전히 철거해 고양이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천씨의 차량을 받았던 수리소 역시 동물을 구하기 위해 차량을 고의로 훼손한 사례는 처음이었으며, 차량 밑판을 뜯어내기 전 고양이가 또 다른 차량에 몸을 숨길 것을 우려해 차량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했다고 전했다. 당시 천씨가 고양이 구출을 위해 ‘내놓은’ 차량의 가격은 현지에서 200만 타이완달러, 한화로 약 7155만원에 달하는 고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씨는 이후에도 사비를 들여 고양이를 인근 동물병원으로 데려간 뒤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후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생명은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해 손해를 감수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고양이 구하려 자신의 고가 벤츠 부순 男 감동

    고양이 구하려 자신의 고가 벤츠 부순 男 감동

    유기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고가의 차량을 ‘내어준’ 한 남성이 훈훈한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대만 뉴스전문채널인 TVBS의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대만에 사는 천(沈)씨는 얼마전 자신의 벤츠 차량을 몰고 인근 공원으로 드라이브를 나섰다가 공원에서 사람들이 작은 고양이를 구출하려 애쓰는 모습을 목격했다. 천씨도 곧바로 차를 세우고 고양이 구하기에 나섰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 놀란 고양이는 재빠르게 달려 천씨의 차량 아래로 몸을 숨겼다. 천씨와 사람들은 차 아래쪽 부품 안으로 기어들어간 고양이를 유인하기 위해 차량을 막대기로 두드리거나 먹이로 유인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차 주인인 천씨는 차량에 시동을 걸어 움직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다 부품사이에 몸을 숨긴 고양이가 다칠 것이 염려돼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천씨는 직접 견인차를 불러 차를 인근 차량수리공장으로 옮긴 뒤, 차량 아래 밑판을 완전히 철거해 고양이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천씨의 차량을 받았던 수리소 역시 동물을 구하기 위해 차량을 고의로 훼손한 사례는 처음이었으며, 차량 밑판을 뜯어내기 전 고양이가 또 다른 차량에 몸을 숨길 것을 우려해 차량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 했다고 전했다. 당시 천씨가 고양이 구출을 위해 ‘내놓은’ 차량의 가격은 현지에서 200만 타이완달러, 한화로 약 7155만원에 달하는 고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씨는 이후에도 사비를 들여 고양이를 인근 동물병원으로 데려간 뒤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후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생명은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해 손해를 감수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현장 블로그] 캡사이신 물대포 쏘는 경찰의 ‘세월호’ 진압…인권교재 뭐하러 썼나

    지난 1일 늦은 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며 세월호 유가족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회원, 시민 등 1300여명(경찰 추산)이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앞에는 경찰의 차벽과 펜스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주최 측은 “평화롭게 행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경찰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차벽 설치의 요건으로 내세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집회 참가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실 민주노총은 이날 낮부터 을지로, 종로 일대를 행진하면서 차벽을 향해 물병과 돌을 던지고, 쇠막대기로 경찰버스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 보호장구와 방패를 빼앗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안국동 사거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폴리스라인용 펜스를 무너뜨리는 등 일부 참가자들의 불법 행위가 난무했습니다. 캡사이신 최루액으로 맞대응하던 경찰은 급기야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살수차를 동원하겠다”고 밝힌 뒤 세 차례의 경고 살수에 이어 본격적으로 물대포를 발사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경찰은 과격 양상을 보인 참가자뿐 아니라 제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던 비폭력 참가자들까지 물대포를 조준 사격했습니다. 나중에는 캡사이신까지 섞어서 뿌렸습니다. 일부 참가자가 물대포에 맞아 넘어지거나 호흡 곤란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강경 진압에 항의하며 맨몸으로 나선 참가자들을 향해 물대포 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집회 해산 절차를 준수했을 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경찰은 이날 기본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경찰청은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경비 분야 인권교육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일선 경찰관 배포용으로 제작된 이 교재의 첫 장에는 ‘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하며 감정을 자극한다고 하여 경찰관도 되받아 물리력을 사용하는 등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합법적인 집회 관리가 아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경찰이 살수차 동원의 근거로 삼은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에도 ‘위해성 경찰 장비는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씌어 있습니다. 지난 1일 밤 경찰 현장 지휘관의 머릿속에 인권교재와 직무집행법이 존재하기는 했던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아하! 우주] 아득한 우주 거리, 과연 어떻게 잴까?

    [아하! 우주] 아득한 우주 거리, 과연 어떻게 잴까?

    -천문학자들의 줄자 ‘우주 거리 사다리’  100억 광년 밖의 은하를 관측했다느니, 1000만 광년 거리의 은하에서 초신성이 터졌다느니 하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1광년이라면 1초에 30만km,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돈다는 빛이 1년을 내달리는 거리다. 이것만 해도 우리의 상상력으로는 잘 가늠이 안되는 거리인데, 천문학자들은 10억 광년이니 100억 광년이니 하는 그 엄청난 거리를 도대체 어떻게 재는 걸까? 물론 하루아침에 우주 측량술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천재들의 열정으로 갖가지 다양한 기법들이 차례로 개발되면서 이 엄청난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우주 측량술이 정립되었다. 태양이나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행해져 왔지만, 하늘의 단위와 지상의 단위를 결부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문학자들은 먼저 지구의 크기와 달과 태양까지의 거리를 구한 다음, 그것들을 기초로 삼아 가까운 별에서 더 먼 천체까지 차례로 거리를 측정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이런 식으로 단계별로 척도를 늘려나가는 측량 방식을 '우주 거리 사다리'(cosmic distant ladder)라 한다. 측량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것이다. 사람은 늘 측량한다. 인류가 지상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측량은 시작되었다. 측량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측량에도 ‘천문’은 깊이 개입되어 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삼은 한 달의 날수가 바로 천문학적인 것이다. 또 미국과 미얀마 등 몇 나라만 빼고 전 세계가 쓰고 있는 미터법은 바로 지구의 크기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이 채 잦아들기도 전인 1790년, 혁명정부가 도량형 통일을 위해 ‘미래에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을 기준으로 1m를 정했는데, 그게 바로 북극과 파리, 적도에 이르는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1m로 한 것이다. 곧, 북극점에서 적도에 이르는 거리의 1만분의 1이 1km인 셈이다. 그러니까 지구 한 바퀴는 4만 km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 미터법으로 원자의 크기를 재고 우주의 넓이를 잰다. 삼각형 하나가 가르쳐준 ‘천동설’ 역사상 최초로 ‘우주 거리’를 잰 사람은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BC 310경~230)였다. 그가 우주 측량에 사용한 도구는 삼각형과 원, 그리고 하늘의 달이었다. 그러나 그 측량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먼저 그가 월식을 관측하고 얻은 결과물을 살펴보도록 하자. 월식 때 월면은 지구에 대한 거울 구실을 한다. 월면에 지구 그림자가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지구 그림자를 보면 원형이다. 지구가 만약 삼각형이라면 그림자도 삼각형일 것이요, 편평한 판이라면 그림자도 길쭉하니 비칠 게 아닌가. 그런데 월식 때 보면 지구 그림자는 언제나 둥그렇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이를 지구가 구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보았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월식 관찰은 여느 사람과는 달랐다. 월식으로 지구 그림자가 달의 가장자리에 올 때 두 천체의 원호 곡률을 비교함으로써 달과 지구의 상대적인 크기까지 알아냈던 것이다. 가히 천재의 발상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알아낸 값은 지구 크기가 달의 3배라는 사실이다. 참값은 4배이지만, 기원전 사람이 맨눈으로, 그리고 오로지 추론만으로 그 정도 알아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지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천재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달이 정확하게 반달이 될 때 태양과 달, 지구는 직각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이룬다는 사실을 추론하고, 이 직각삼각형의 한 예각을 알 수 있으면 삼각법을 사용하여 세 변의 상대적 길이를 계산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먼저 지구와 태양, 달이 이루는 각도를 쟀다. 87도가 나왔다(참값은 89.5도). 세 각을 알면 세 변의 상대적 길이는 삼각법으로 금방 구해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달과 태양은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다. 이는 곧, 달과 태양의 거리 비례가 바로 크기의 비례가 된다는 뜻이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이 점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이 세 천체의 상대적 크기를 또 구했다. 태양은 달보다 19배 먼 거리에 있으며(참값은 400배), 지름 또한 19배 크다. 고로 달의 3배인 지구보다는 7배 크다(참값은 109배). 따라서 태양의 부피는 7의 세제곱으로 지구의 약 300배에 달한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수학은 정확했지만 도구가 부실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지구보다 300배나 큰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 것은 모순이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구가 스스로 하루에 한 번 자전하며 1년에 한 번 태양 둘레를 돌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감각에만 의존해왔던 오랜 천동설을 젖히고 인류 최초의 지동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아리스타르코스의 주장은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신성 모독이므로 재판에 부쳐야 한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어쨌든 우주의 중심에서 인류의 위치를 몰아낸 지동설은 이렇게 한 천재의 기하학으로부터 탄생했다. 따지고 보면 직각 삼각형 하나가 인류에게 지동설을 알려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천재에게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한다. 천문학사에 불멸의 이정표를 세운 아리스타르코스는 달 구덩이 가운데 하나에 그 이름이 붙여져 영원히 남게 되었는데, 그 중심 봉우리는 달에서 가장 밝은 부분이다. 작대기 하나로 지구의 크기를 잰 사람 아리스타르코스의 뒤를 이어받은 한 천재는 한 세대 뒤에 나타났다. 그가 바로 역사상 최초로 한 천체의 크기를 잰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BC 276~194)였다. 그가 잰 천체는 물론 지구였다. 에라토스테네스는 터무니없이 간단한 방법으로 인류 최초로 지구 크기를 쟀는데, 참값에 비해 10% 오차밖에 나지 않았다. 그가 이용한 방법은 작대기 하나를 땅에다 꽂는 거였다. 해의 그림자를 이용한 측정법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 역시 기하학을 이용한 건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남쪽의 시에네 지방(아스완)에서는 하짓날인 6월 21일 정오가 되면 깊은 우물 속 물에 해가 비치어 보인다’는 문장을 읽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스 인들은 지역에 따라 북극성의 높이가 다른 사실 등을 근거로 지구가 공처럼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체인 지구의 자전축은 궤도 평면상에서 23.5도 기울어져 있다. 하짓날 시에네 지방에 해가 수직으로 꽂힌다는 것은 곧 시에네의 위도가 23.5도란 뜻이다.(이 지점이 바로 북회귀선, 곧 하지선이 지나는 지역이다) 여기서 천재의 발상법이 나온다. 그는 실제로 6월 21일을 기다렸다가 막대기를 수직으로 세워보았다. 하지만 시에네와는 달리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막대 그림자가 생겼다. 그는 여기서 이는 지구 표면이 평평하지 않고 곡면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에라토스테네스가 파피루스 위에다 지구를 나타내는 원 하나를 컴퍼스로 그리던 그 순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수학적 개념이 정확한 관측과 결합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가를 확인해주는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다. 에라토스테네스가 그림자 각도를 재어보니 7.2도였다. 햇빛은 워낙 먼 곳에서 오기 때문에 두 곳의 햇빛이 평행하다고 보고, 두 엇각은 서로 같다는 원리를 적용하면, 이는 곧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거리가 7.2도 원호라는 뜻이 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걸음꾼을 시켜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걸음으로 재본 결과 약 925km라는 값을 얻었다. 그 다음 계산은 간단하다. 여기에 곱하기 360/7.2 하면 답은 약 46,250이라는 수치가 나오고, 이는 실제 지구 둘레 4만km에 10% 미만의 오차밖에 안 나는 것이다. 이로써 인류는 우리가 사는 행성의 크기를 최초로 알게 되었고, 이를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과 달까지 상대적 거리에 대입시켜, 비록 큰 오차가 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실제 거리를 알게 된 것이다. 2300년 전 고대에, 막대기 하나와 각도기, 사람의 걸음으로 이처럼 정확한 지구의 크기를 알아낸 에라토스테네스야말로 위대한 지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분은 또 수학사에도 이름을 남겼는데, 소수(素數)를 걸러내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를 고안해낸 수학자이기도 하다. 달까지 거리를 ‘줄자’로 재듯이 잰 사람 에라토스테네스 다음으로 약 1세기 만에 나타난 걸출한 천재는 에게 해 로도스 섬 출신의 히파르코스(BC 190~120)였다. 그가 남긴 천문학 업적은 세차운동 발견, 최초의 항성목록 편찬, 별의 밝기 등급 창안, 삼각법에 의한 일식 예측 등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다. 그는 지구 표면에 있는 위치를 결정하는 데 엄밀한 수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오늘날과 같이 경도와 위도를 이용하여 위치를 나타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돌던 팽이가 멈추기 전에 팽이 축을 따라 작은 원을 그리듯이 지구 자전축의 북극점도 그러한 모습으로 회전한다는 세차운동의 이론을 정립하고 그 값을 계산해냈다. 1년 동안 춘분점이 이동한 각도를 구하고, 360도를 이 값으로 나누어 구한 값이 2만 6,000년이었다.(오늘날의 그 참값은 25,800년). 히파르코스의 측량술은 달에까지 미쳤다. 그는 간단한 기법으로 달까지의 거리를 구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시차(視差)였다. 한 물체를 거리가 떨어진 두 지점에서 바라보면 시차가 발생한다. 눈앞에 연필을 놓고 오른쪽 눈, 왼쪽 눈으로 번갈아 보면 위치 변화가 나타난다. 이처럼 하나의 물체를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보았을 때 방향의 차이를 시차라 하는데, 천문학에서는 관측자의 위치에서 본 천체의 방향과 어떤 표준점에서 본 천체의 방향과의 차이를 말하며, 연주시차와 일주시차가 있다. 이 시차는 우주 거리를 재는 천문학자들이 가장 애용한 도구였다. 히파르코스는 두 개의 다른 위도상 지점에서 달의 높이를 관측해 그 시차로써 달이 지구 지름의 30배쯤 떨어져 있다는 계산을 해냈다. 이 역시 줄자를 갖다대 잰 듯이 참값인 30.13에 놀랍도록 가까운 값이었다. 이로써 그는 아리스타르코스가 구한 값(지구 지름의 9배)을 크게 수정한 셈이다. 이는 지구 바깥 천체까지의 거리를 최초로 정밀하게 측정한 빛나는 업적이었다. 히파르코스는 나이 쉰 살이 되어 로도스 섬 해변 가까운 산꼭대기에 천문대를 세우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히파르코스 이후 적어도 300년 동안 그를 능가하는 천문학자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고대 그리스 시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기획] 유사시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新방위협력지침’...전범국 일본 ‘족쇄’ 풀어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美, 전범국의 ‘족쇄’를 풀어주다...한반도 앞날은?

    일본의 끔찍한 전쟁 범죄 사실은 부인한 채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의 이번 방미 기간 중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방미 기간 중 논의된 여러 가지 의제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은 27일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의(2+2회의)에서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었다. 합의문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한 장의 합의가 차후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가져올 후폭풍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합의 이번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냉전 시기 북해도 지역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시달리던 일본의 필요에 의해 책정된 정부 간 합의이다. 이 합의에는 일본이 타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군과 자위대가 정보·작전·군수 등 분야에서 각각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부 대 정부의 합의문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이 지침은 1978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일본 영토와 영해, 영공 방위를 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기 때문에 헌법 제9조에 따라 정규군을 보유할 수 없었고, 자위대는 이름 그대로 자국의 치안과 영토 보호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자위대의 성격과 작전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일본의 공세적 무기 획득과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일본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방위청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제창한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해 오고 있었지만, 냉전 붕괴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1차 북핵위기로 홍역을 치른 이후인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공세적 무기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한 변화는 미국의 세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 재정위기 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위협론을 부채질했고, 미국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을 잡아두고 있던 끈을 서서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했다. 일반적으로 자위권이란 국가 주권과 이익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하는데, ‘집단적 자위권’이란 지켜야 할 주권과 이익에 자국뿐만 아니라 동맹 또는 우방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불량배에게 맞을 위기에 있으면 친구가 와서 함께 싸워주고, 반대로 친구가 불량배에게 당할 위기에 처하면 자신도 나서서 친구와 함께 불량배와 싸워 준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집단안보체제, 또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체결한 동맹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한 국가가 정상국가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전쟁범죄국가일 경우에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은 전쟁범죄국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대신, 일본 영토와 영공, 영해에서 방어적 목적으로만 운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인 ‘자위대’만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헌법 제9조에서 군대의 보유와 국가의 교전권 포기를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이 헌법 개헌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국내외의 반대로 개헌이 어려워지자 헌법 해석 변경과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개념 도입을 통해 자위대를 교전권을 가진 정식 군대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전권이란 국가 간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적국과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교전권이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파트너 국가가 미국이라면 이론적으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거나 우방 관계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할 수 있는 교전권을 손에 쥐게 된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병' 날개? 또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일본은 굳이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유사시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이 작전에 투입될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위대가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형식상 최고사령부가 되는 UN군사령부는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기지들은 모두 미군과 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지다. 요코스카 해군기지는 미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1호위대군이, 사세보 해군기지는 제7함대와 해상자위대 제2호위대군이 함께 쓰고 있고, 캠프 자마에는 주일미육군 제500군사정보여단과 지원부대가 일본판 특전사라 할 수 있는 중앙즉응집단사령부와 함께 입주해 있다. 제5공군사령부가 있는 요코타 공군기지는 항공자위대 방공지휘소가, 해군과 공군, 해병대가 사용하는 가데나 기지와 후텐마 기지, 화이트비치 기지 등에도 모두 자위대 지원부대가 함께 입주해 있거나 유사시 기지에 전개되는 전력의 작전을 지원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한반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에 자위대가 엮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인해 자위대는 날개를 달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후방지원 수준을 넘어서, 필요에 따라 미군과 함께 북한에 대한 공세적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앵무새처럼 “우리 동의없이 한반도전쟁 개입 못해” 우리 정부는 즉각 “일본의 사전요청과 우리의 동의 없이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전 초기 북한은 한·미 연합군을 향해 대량의 미사일 공격을 가할 것이고, 새로 개정된 지침에 따라 자위대는 해상에서 이 미사일 요격을 시도할 의무가 있다. 미군의 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해야 하는 일본은 일본 인근 해역이나 괌 인근에서 들어오는 사전배치전단은 물론 미 본토와 하와이 등지에서 병력과 장비를 싣고 들어오는 미 수송선단에 대한 보호 작전도 ‘후방 지원’ 개념에서 수행해야 한다. 기동함대 등 선단 호위를 위한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미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 지원을 제공하지 못해 미 해군 수송선단이 한반도 해역 진입에 난색을 표하고, 연합사령부가 신속한 물자 하역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 영해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정부는 평시에는 “우리 동의 없이 자위대가 한반도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시가 되어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빠진 상황이라면 명분 보다는 생존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자위대의 해외 군사작전 허용은 곧 일본에 채워져 있던 전범국이라는 족쇄가 서서히 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심각한 골칫거리인 북한과 잠재적 적국인 중국에 맞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미일동맹 격상은 미국의 자충수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중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가 지속되다가 통일되고, 통일되어 전성기를 잠시 누리다가 부정부패와 반란, 외적의 침입 등으로 망하고 흥하고를 수 없이 반복했고, 우리나라 역시 비록 왕조 교체는 중국보다 적었다고는 하지만 위정자들의 권력다툼과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 이 틈을 탄 외적의 침략, 침략을 물리친 뒤 잠시 평화를 누리다가 다시 권력다툼과 외침이 이어지는 같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변두리에 있었던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들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왔다. 이들은 국가가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이거나 힘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한국과 중국에 사신단을 보내 이른바 통신사로 불리는 사절단을 보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지만, 힘이 있을 때는 수시로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3세기 초 호족연합정권인 야마토 정권이 전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정규군을 갖춰 가야, 백제와 결탁해 신라를 침략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경상·전라·충청·경기 연안 일대에 수시로 해적선단을 보내 해안선을 약탈하거나 조운선, 무역선을 습격했다.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와 가까운 쓰시마섬에 거점을 마련하고, 한반도 해안에 대한 노략질을 일삼았고, 조선시기에는 15만 대병력으로 한반도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기도 했다. 문제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과 과거 한반도를 침략하고 노략질을 일삼았던 가문이 현재 일본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노략질 일삼던 가문들이... 에도시대부터 일본 정계의 주류를 이루며 한반도와 대륙 침략을 주장했던 조슈번(長州藩) 세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번주(藩主)인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제7군(약 3만 명)을 이끌고 조선 전국토를 유린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배출했고, 이들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 정치계의 주류로 남아 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극우 민족주의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동해와 남해, 난세이 제도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해적 집단이었던 사쓰마번(薩摩藩) 역시 번주인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이끄는 제4군(약 1만5,000여 명)이 참전하여 경상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멸시켰으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죽게 만든 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슈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며 일본제국해군을 건설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전후에도 일본 정계의 주류 정치세력으로 남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라는 극우 정치인을 배출하고 현재도 극우 민족주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 정치세력은 과거부터 내부 권력 투쟁을 이어오면서 일본 국내 상황이 정리되고 힘이 축적되면 반드시 한반도와 대륙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자들이다. 특히 이들은 현재도 과거사 왜곡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열등 민족이자 타도 대상으로, 미국을 ‘핵무기'라는 비인도적인 무기를 일본인에게 사용한 가해자로 선전하고 있다. 현재 미일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역대 그 어느 시절보다 굳건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실제로 냉전 시기 ‘120% 한통속’이라는 미·일 밀월관계 속에서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까지 성장했던 일본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국을 향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외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초강대국이 될 것이며, 미국이 첨단 무기를 자랑해도 일본의 전자부품 없이는 빈껍데기라며 초강대국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미국은 ‘슈퍼 301조’라는 무역통상법 제301조, 즉, “미국의 눈 밖에 난 국가와는 무역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결과로 일본은 치명타를 입게 되었는데 금융과 제조업의 거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도쿄 증시는 3분의 1토막이 났고, 금융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제력으로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일본이 이제는 군사력 카드를 들고 나왔다. 중국 위협론과 자신들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며 자위대라는 이름의 족쇄를 서서히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일본은 원거리 공습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항공모함과 대형 상륙함과 같은 공격무기를 손에 넣었고, 수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약 47톤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약 8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인 640kg의 플루토늄을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은닉했다가 적발되는 등 미심쩍은 행동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 관문 '핵무장'만 남은 셈 일본이 이처럼 공세적 군사력을 갖추고 대량의 플루토늄까지 보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용인과 협력 덕분이었다.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은 이제 보통군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군대까지 보유했고, 군사강국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핵무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과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전용할 수 있는 고성능 위성 발사체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몇 주 이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출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제10조 1항에 따르면, NPT 가입국은 NPT에 가입했더라도 국가 비상사태나 국가이익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는 UN에 통보하고 NPT를 탈퇴할 수 있다. 즉, 센카쿠에서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빌미로 얼마든지 NPT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순간 경제력·핵 능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다시 "NO"라고 맞서려 할 것이며, 그때는 미국도 일본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일본 우익의 속셈과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라는 맹수를 잡기 위해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가를 풀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에 맞설 강력한 군사력이라도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허세만 부리며 막대기라도 주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에 무엇으로 대응할지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위정자들에게 물어볼 때가 아닐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덫에 걸린 뱀 구해줬더니, 삼켰던 먹이 토해내

    덫에 걸린 뱀 구해줬더니, 삼켰던 먹이 토해내

    덫에 걸린 뱀을 구해주던 남성들이 녀석이 삼킨 먹이를 토해내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26일 영국 매체 미러는 덫에 걸린 뱀을 구해주는 남성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소개했다. 이 영상은 최근 ‘헬로 크링글(HelloCringle)’ 유튜브 계정에 게재된 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 영상은 덫에서 풀려난 뱀이 삼켰던 먹이를 토해내는 순간이 고스란히 포착돼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상을 보면 뱀 한 마리가 녹색 망에 몸이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발견한 남성들 중 한 명은 나무 막대기로 뱀의 머리를 누르며 녀석의 공격에 대비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녀석이 걸려든 망을 칼로 찢어 뱀을 구조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영상의 30여 초 지점, 두 남성의 도움으로 무사히 덫에서 빠져 나온 뱀은 달아나기는커녕, 입을 크게 벌린 채 서서히 뭔가를 뱉어내기 시작한다. 이어 녀석은 자신의 몸통보다 큰 먹이를 완전히 입 밖으로 토해낸다. 이를 본 남성들은 화들짝 놀란다. 해당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 역시 현장에서 지켜본 남성들만큼 반응이 뜨겁다. 이 영상은 지난 24일 유튜브에 게재된 이후 현재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 영상=HelloCringle, C1 News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 책] 부모와 떨어진 남매 그들을 보듬은 자연

    [이주일의 어린이 책] 부모와 떨어진 남매 그들을 보듬은 자연

    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김용택 지음/정순희 그림/사계절/40쪽/1만 2000원 ‘비가 내렸다. 풀잎에 빗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내 얼굴이 들어 있었다. 내가 야 하고 가만히 나를 불렀다. 빗방울이 뚝 떨어졌다. 내 얼굴이 사라졌다.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이른 봄, 아홉 살 보미는 동생 재영이와 함께 서울에서 시골 할아버지댁으로 살러 왔다. 아버지는 남매를 데려다 놓고 곧바로 서울로 돌아갔다. 밤이 되었다. 캄캄했다. 두려웠다. 다음 날 남매는 할아버지를 따라 학교에 갔다. 학교도 교실도 아이들도 낯설었다. 선생님이 남매를 보며 “아버지 어릴 때랑 닮았다”며 아는 체했다. 아버지 이름도 알고 있었다. 학교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귀갓길에 보는 논과 밭, 풀들, 새들 모두 낯설었다.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가면 산이 까맣게 무서웠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남매는 시골의 삶에 적응해 갔다. 장다리꽃을 구경하는 여유도 생기고 길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 캄캄한 밤, 달구경도 했다. 달을 보고 가만히 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당가의 소도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보미는 글쓰기 시간에 시도 지었다. ‘할머니께서/풀 같은 것을/거꾸로 들고/나무 막대기로/탈탈 털었다/거기서 깨가/하얗게 쏟아졌다’(참깨)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 시인이 쓴 한 편의 시와 같은 동화다. 부모와 떨어져 시골에 살게 된 남매가 자연과 교감하며 아픔을 이겨내 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이 이야기는 시인이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만난 아이와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아이의 사연에 시적 감성을 보태 글을 완성했다. 한지에 덧칠 없이 한 번에 채색한 그림은 글에 생명력을 더했다. 시골 마을 모습을 정감 있게 고스란히 재현해 진짜 시골을 접하는 듯하다. 꽃들이 피어나는 봄,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 낙엽이 떨어지는 완연한 가을까지 눈앞에 펼쳐지는 시골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 초등 저학년.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나무에서 놀다 떨어지는 판다 ‘너무 귀여워~’

    나무에서 놀다 떨어지는 판다 ‘너무 귀여워~’

    나무에서 떨어지는 자이언트 판다의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고 있다. 26일 유튜브에 게재된 14초 가량의 영상에는 중국의 한 동물원 판다 우리에서 서로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 판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나무 곁에서 마치 레슬링(?)을 하듯 몸싸움 하는 새끼 판다들. 잠시 뒤, 나무 위에서 판다 한 마리가 나무막대기를 든 채 ‘두앙’(Duang)이란 자막과 함께 떨어진다. 한편 미지의 의성어 ‘두앙’(Duang)은 중국에서 핫한 신조어로 홍콩 출신의 세계적인 스타 청룽이 2004년 출연한 샴푸 광고에서 검은 머리결이 빛나는 것과 관련해 ‘두앙’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청룽의 成(청)과 龙(룽) 합쳐서 ‘두앙’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 ‘두앙’이란 표현은 적절한 뜻을 밝힐 수는 없지만 “판다가 ‘두앙’ 귀엽네요”, “오늘 내 마음은 ‘두앙 두앙’ 했어요”등 재미를 돋우는 단어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Upload 3/3/2015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씨줄날줄] 中 ‘방방면’과 명동 거리음식/정기홍 논설위원

    중국 고사(古史)집에서 시안 지방의 관중(關中)인들이 좋아한다는 ‘방방면’을 소개한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모양이 우리의 수제비와 비슷한데 면발의 폭은 2~3촌(1촌=3.3㎝), 길이는 1m 남짓 된다고 한다. 두꺼운 것은 동전 두께이고 얇은 것은 매미 날개처럼 가늘다. 국수 한 가락이면 밥 한 끼를 너끈히 먹는 셈이라고 한다. 관중 방언인 ‘방’ 자는 무려 57획이나 돼 중국의 글자 가운데 획수가 가장 많고 사전에 실리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아직 표준음이 없다니 글자로 유명한 음식이 아닌가 싶다. 중국에는 궁중식은 물론 골목 길거리 음식도 매우 다양하다. 중국을 프랑스, 이탈리아(혹은 터키)와 함께 3대 음식 국가라지만 종류만큼은 이들 국가가 따르지 못한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요리문화를 달리하면서도 한족 음식의 정통성을 이어오다가 만주(몽골)족이 세운 청나라 때부터 음식문화가 뒤섞여 오늘에 이른다. 한족의 요리사들이 만주족 관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솜씨 경쟁을 벌이면서 종류와 맛이 진화했다. 30~40가지의 요리가 나오는 ‘만한취안시’(滿漢全席)가 대표적 궁중식이고, 베이징의 양고기 샤부샤부인 ‘솬양러우’도 몽골 제국이 만든 음식이다. 베이징의 골목길인 ‘후퉁’(胡同)으로 잘 알려진 길거리 음식도 궁중식 못지않다. 후퉁에서 파는 ‘바이미저우’(흰 쌀죽), ‘유타오’(막대기 모양의 튀긴 빵) 등은 관광객이 먹는 필수 코스의 요리다. ‘책상다리 빼고 네 발 달린 건 다 먹는다’는 중국 음식문화의 일면이다. 중국의 흥미로운 음식문화는 이외에도 많다. 환관과 문화혁명은 큰 영향을 끼쳤다. 환관이 황제에게 올리는 음식의 재료를 까다롭게 고르면서 중국 음식 역사를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한다. 청나라 말의 서태후가 먹었다는 달걀 요리는 지금 가격으로 한 개에 수십만원대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문화혁명은 큰 전환점이었다. 혁명을 이끌던 마오쩌둥은 고급 음식점을 문 닫게 하고 요리사를 부르주아 앞잡이로 탄압해 요리법을 적은 원본을 상당수 없앴다. 반면 노동자와 농민, 병사의 식단인 ‘노동병 메뉴’를 등장시켰다. 당시 배추와 당면 몇 가락을 담은 멀건 죽과 찐빵만을 내놓았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며 매운 음식을 권장했다. 매운맛의 고장인 쓰촨 출신인 덩샤오핑도 매운 것을 좋아해 매운맛은 중국 음식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요즘엔 서민 요리는 매워지고 고급 요리는 달아지고 있다. 서울 명동 거리에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몰리면서 이들의 입맛에 맞춘 일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한때 일본인이 좋아하던 음식은 물론 떡볶이 등 우리의 포장마차 음식도 자리를 내주고 있다. 명동에서 우리의 길거리 음식이 사라질까 걱정된다. ‘방방면’도 상륙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음식 주권을 생각할 때가 아닌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맹수에 공격당하고도 살아남은 아찔한 순간 TOP3

    맹수에 공격당하고도 살아남은 아찔한 순간 TOP3

    ‘구사일생(九死無一生)’은 아홉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 번 살아난다는 뜻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남는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이러한 사자성어를 생각나게 하는 영상들 TOP3를 꼽았다. 이 영상들은 동물들의 끔찍한 공격에도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첫 번째 영상은 한 남성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는 순간이 담겨 있다. 이는 인도 카지랑가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사고다. 영상을 보면 코끼리를 나눠 탄 여행객들이 풀이 무성한 초원 지대를 지나고 있다. 그 순간 호랑이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이에 가이드가 호랑이를 향해 막대기를 휘두르며 저항하지만, 호랑이는 순식간에 코끼리 머리 위로 뛰어오르며 그를 덮친다. 이 사고로 가이드는 팔에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두 번째 영상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악어농장에서 발생한 사고다. 당시 악어농장주는 악어에게 발이 물리는 큰 사고를 당했다. 영상을 보면 3m 대형 악어가 석고상처럼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녀석은 알을 품고 있는 상태. 그 어떤 동물보다 강한 모성애를 갖고 있는 악어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먹지도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방증하듯 잔뜩 몸을 움츠리고 경계하고 있던 악어는 농장주가 다가서려 하자 입을 크게 벌리고 위협한다. 그렇게 예민한 모습을 보이던 녀석은 결국 농장주를 공격, 순식간에 그의 발을 물어 넘어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부상 없이 악어에게서 몸을 피한 농장주는 “내게 발가락이 남아있는 것은 기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 번째 영상은 러시아에서 발생한 사고로 북극곰에게 공격당한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40여초 길이의 영상을 보면 허름한 건물을 배경으로 커다란 흰 북극곰 한 마리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볼 수 있다. 잠시 후 여성이 자리를 피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녀석은 재차 그녀를 무참히 공격한다. 이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북극곰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는 등 녀석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북극곰은 건물 뒤편으로 모습을 숨긴다. 그 사이 여성은 몸을 일으켜 가까스로 현장을 피하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 된다. 이 세 편의 영상들은 사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들의 끔찍한 공격에도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은 구사일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사진·영상=Youtube: WildFilmsIndia, Earth Touch, RT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최병규 전문기자의 골프는 과학이다] ①샤프트 뒤집어 보기

    [최병규 전문기자의 골프는 과학이다] ①샤프트 뒤집어 보기

    ‘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돈’이라는 말이 있다. 티박스에서 뻥뻥 내지르는 드라이브샷보다 1m 안팎의 짧은 퍼트가 실속있는 골프를 보장해준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럴까. 90타 안팎의 주말골퍼가 레인지(연습장)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하는 게 드라이브샷이다. 퍼트는 돈일지 모르지만 티박스에서 매 홀의 판도를 결정짓는 드라이브샷은 골퍼들의, 특히 남성 골퍼들의 자존심이다. 드라이브샷의 비거리를 좌우하는 3요소는 볼의 초속(初速·발사속도)과 타구각, 그리고 백스핀양이다. 또 이 3요소를 결정짓는 건 헤드스피드다. 아마추어 남자골퍼의 70%는 헤드스피드가 40~43m/s 정도인데, 이 경우 이 골퍼의 비거리는 ‘헤드스피드X5.5 =220야드’다. 단, 볼의 반발 초속이 60m/s이고 타구각이 13~15도 사이, 백스핀 2500rpm 안팎이라는 최적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켜야 계산대로 이 같은 비거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이들 조건을 만족시키는 요소는 무엇일까. 골프채의 헤드와 손잡이를 지탱하는 샤프트다.우리 말에 ‘낭창낭창’이라는 말이 있다. ‘줄이나 막대기가 탄력 있게 휘어지거나 흔들리는 모양’이 사전적 의미다. 그런데 손으로 느껴지는 이 표현은 골프채에서는 곧 샤프트의 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샤프트 강도는 비거리와 함수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샤프트는 비거리에 절대적이다. 골프채 전체가 100%일 때 샤프트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80%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프트 강도는 전문용어로 CPM(Cycle Per Minute)으로 표기한다. 샤프트 손잡이를 기계에 고정시키고 헤드 부분을 진동시켜 1분에 진동하는 횟수다. 처음에는 미국 기준으로 X(eXtra Stiff), S(Stiff), R(Regular), A(Amatuare), L(Lady)로 구분했는데 CPM은 각각 280, 270, 260, 250, 240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조업체별로 CPM 차이가 많아 강도의 기준도 제각각이다. 따라서 A회사의 제품이 다른 회사의 S보다 강할 수도 있다. cbk91065@seoul.co.kr ■도움말 혼마코리아
  • 새끼 독사 잡는 거대 독거미 포착

    새끼 독사 잡는 거대 독거미 포착

    독사 잡는 거대 독거미의 모습이 포착돼 화제다. 2일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구록(Gooroc)의 농가에서 독사 잡는 거대 독거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기사와 함께 소개했다. 20년간 농부로 지내온 닐 포슬스웨이트가 촬영한 영상에는 아내의 차 밑에서 발견한 호주의 독사 동부갈색뱀(eastern brown snake)이 거대한 붉은등거미(red-back spider)의 거미줄에 걸려있는 모습이 포착돼 있다. 거미줄에 엉켜 매달려 있는 뱀의 꼬리 쪽엔 거미가 올라타 있으며 닐이 막대기로 뱀의 머리를 건드린다. 놀란 뱀이 머리를 치켜들지만 동부갈색뱀은 이미 거미 독에 당한 듯 힘이 없어 보인다. 독사 대 독거미의 결투를 목격한 닐에 의하면 이날 땅에 떨어져 있는 새끼 이스턴 브라운 스네이크를 거대한 붉은등거미가 거미줄을 이용해 차 밑 둥지로 끌어올리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닐은 “새끼 뱀은 하룻밤이 지나고서야 죽었다”며 “죽은 뱀은 개미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 독거미는 아내의 차량 밑에서 살고 있다”며 “아내가 ‘하부 세차를 하기 전까진 차를 운전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죽음을 맞은 동부갈색뱀은 혈액을 빠르게 응고시킬 수 있는 신경독을 지닌 세계에서 두 번째 강한 독을 가진 뱀이다. 또한 독거미 붉은등거미는 호주 전체에 걸쳐 서식하며 매년 2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붉은등 거미에게 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Neale Postlethwait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독사 VS 독거미, 목숨 건 대결…결과는?

    독사 VS 독거미, 목숨 건 대결…결과는?

    뱀과 거미가 싸운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뱀의 승리를 점치기 쉽다. 하지만 이들 생물이 모두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다면 그 결과는 아마 예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호주에서 꽤 커다란 독거미 한 마리가 자신보다 몸집이 큰 독사 한 마리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이목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밤(현지시간) 호주 빅토리아주(州) 구록에서 닐 포슬스웨이트라는 이름의 남성이 독사 한 마리가 독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공개된 영상 속 독사는 호주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사 중 하나로 평가되는 동부갈색뱀(이스턴 브라운 스네이크),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있는 독거미는 역시 매우 치명적인 독을 지닌 붉은등거미(레드백 스파이더)이다. 이 지역에서 20년 넘게 농부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닐 포슬스웨이트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장면이었다”며 “뱀이 거미줄에 걸린 채 경직돼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상을 보면 누군가가 막대기로 뱀을 여러 차례 건드려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뱀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동부갈색뱀은 혈액을 빠르게 응고시킬 수 있는 신경독을 지니고 있어 물리면 급사할 정도로 강력한 독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영상 속 뱀은 아직 어려 노련한 독거미에 오히려 당했다고 볼 수 있다. 포슬스웨이트는 “거미에 당한 뱀은 그날 밤이 지나고 나서야 죽었다”며 “이후 개미들에 의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영상 속에 등장한 거미를 아내의 차량 밑에서 종종 발견했다”며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지만 당분간 해당 차량을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진=닐 호슬스웨이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막대 가지고 놀다 성질 뻗친 코끼리, 결국은?

    막대 가지고 놀다 성질 뻗친 코끼리, 결국은?

    막대기를 가지고 놀던 코끼리가 성질 내는 모습이 포착돼 누리꾼들의 폭소를 자아내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미국 텍사스 주(州) 포트워스 동물원을 찾은 한 관람객이 코끼리가 화를 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면서 해당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통나무를 마주한 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코끼리 두 마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오른편의 코끼리가 긴 코를 흔들며 놀고 있는 사이 왼편에 서 있던 코끼리는 작은 막대기를 가지고 씨름 중이다. 코끼리는 막대기를 통나무에 세워 그 위에 올라가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막대기는 잘 세워지지도 않을뿐더러 코끼리가 발을 올리는 순간 힘없이 바닥에 나뒹군다. 잠시 후, 거듭된 실패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코끼리는 막대기를 통나무 위에 강하게 내동댕이친다. 관람객들은 성난 코끼리의 모습에 폭소한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코끼리도 성질 있네!”, “무서운 코끼리”, “그래도 귀엽다”라는 등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사진·영상=johnbod/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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