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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금강산 관광 중단 7년] 건어물가게 사장, 관광길 막힌 후 막노동으로 입에 ‘풀칠’

    [단독][금강산 관광 중단 7년] 건어물가게 사장, 관광길 막힌 후 막노동으로 입에 ‘풀칠’

    금강산 관광길이 막힌 지 오는 12일로 만 7년이 된다. 해마다 690만명의 관광객을 맞아 생활하던 강원 고성 지역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과 희망을 잃었다. 오직 관광과 고기잡이에 의존하던 주민들은 어자원 고갈까지 겹쳐 가족이 해체되는 등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게는 금강산 관광길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고성군 주민들을 위해, 크게는 통일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금강산 관광길은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열려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났고 갈 곳 없는 사람들만 남아 막노동과 해녀 일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길이 끊긴 동해안 최북단 강원 고성 주민들의 삶이 해를 거듭할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길에 나섰던 박왕자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 지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관광길이 다시 열리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실낱 같은 주민들의 희망도 사라진 지 오래다. 6일 기자가 다시 찾은 금강산 관광길은 군부대 차량들과 통일전망대를 찾는 승용차만 가끔 오갈 뿐 썰렁하기만 했다. 관광버스가 오가던 도로 주변 건어물 가게들도 주인을 잃은 채 잡초만 무성하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고 장사가 안 되면서 대부분 문을 닫아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통일전망대로 오르는 초입 마차진리의 ‘일심이네’ 건어물집이 그나마 문을 연 유일한 가게다.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건어물 가게를 열고 한때 재미를 봤던 일심이네지만 지금은 노부부만 남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부인 박정임(70)씨가 새벽마다 물질(해녀)을 하고 남편 박완준(74)씨가 드물게 찾는 손님을 맞아 건어물을 파는 것이 고작이다. 박씨는 “손가락부터 무릎까지 온 몸이 쑤시고 아프지만 날씨만 좋으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녀 일에 나가야 한다”면서 “하루 뱃삯 1만 2000원을 못 채우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성게와 전복을 잡아야 살아갈 수 있다”고 한숨 지었다. 명파리 도로 끝머리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끝집 오징어’ 건어물 가게도 문은 닫았다.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다섯 가족은 여전히 가게에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 오고 있다. 주인 이종복(60)씨는 가게가 안되는 바람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막노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이씨는 “금강산 관광길이 끊기고 처음 3년 동안은 가게 문을 열고 곧 금강산 관광길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 속에 어떻게든 장사를 하려 했지만 관광객 없이 가게를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면서 “관광길을 끊은 정부에서 소상공인 피해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지원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전방부대를 오가며 3년째 막노동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다”고 고개를 떨궜다. 설상가상 통일전망대로 오르는 국도 7호선 길이 새로 뚫려 이들 가게는 모두 고립될 처지에 놓였다. 당초 새 도로는 이달 중순쯤 개통할 예정이었다. 명파리와 마차진리 도로변 주민들은 “마지막으로 이번 여름 한철 반짝 관광객들을 상대로 건어물이라도 팔아 볼까 해서 다음달 중순 이후로 개통을 연기해 줄 것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최북단 통일전망대 금강산휴게소에도 찾는 관광객이 적어 썰렁하기만 하다. 휴게소에서 간이 식당을 운영하는 심선춘(60·여)씨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이 찾아 그나마 유지되지만 겨우 인건비와 임대료를 내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의 출경게이트도 굳게 닫혀 있다.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출입문이 굳게 잠긴 발권장 안에는 먼지만 쌓여 있다. 건물 관리인은 “몇 해 전만 해도 이맘때면 금강산 관광 중단을 취재하려는 언론사 기자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관심도 없어지고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에 대한 고성 지역 주민들의 기대감도 사라져 무덤덤하다. 통일전망대와 가까운 대진에서 작은 국수 가게를 열고 있는 김모(53)씨는 “처음에는 실망이 컸고 이때나 저때나 다시 열리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금방 금강산 길이 열리지 않겠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제각각 살길을 찾아 뿔뿔이 객지로 나가고 남아 있는 주민들도 이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지난해 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찾았을 때와 올 초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제의하고 북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 주민들은 환영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늘 참담했다. 이렇게 금강산 관광 재개를 기다리는 7년 동안 고성 지역 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기간 인구 3만여명의 고성 지역에서 문을 닫고 휴폐업한 가게들만 400여곳에 이른다. 고성 지역 전체 상권의 10%에 이르는 수치다. 군부대 장병들의 전입으로 어느 정도 인구 유출을 막고 있지만 경제인구는 실제 4000여명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관광객도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2003년부터 2008년 7월까지 해마다 690만명이 찾았지만 지금은 당시보다 220만여명이 줄어 470만명에 그치고 있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지금까지 고성군이 입은 경제적 피해만 3600억원에 이를 전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설상가상 어족자원도 줄어 지역경제는 어렵기만 하다. 김동완 군 관광정책계장은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피폐해진 지역 주민의 삶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이고 지역경제는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면서 “세월 따라 잊혀져 가고 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금강산 관광 재개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고성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무명배우를 위한 나라는 없었다

    생활고를 겪던 무명 배우들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영화배우 판영진(58)씨가 전날 오후 11시 50분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동 자신의 집 앞마당에 주차된 차 안에서 숨져 있었다. 판씨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으며, 승용차 배기관에서 실내로 호스가 연결돼 일산화탄소 중독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판씨가 평소 생활고를 비관하며 우울증을 앓았고, 지난 19일에도 지인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메시지에는 “인생이 무상하다”, “내 명은 여기까지”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1978년 데뷔한 판씨는 2008년 독립영화 ‘나비두더지’에서 첫 주연도 맡았지만 특별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가지 못했다. 판씨는 중고차 딜러를 했지만 지난 5월 ‘20년을 버티어 온 일산 이 집 이젠 내주고 어디로’라는 글을 남길 정도로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19일에는 연극배우 김운하(40)씨가 고시원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됐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연극에 대한 열정을 간직했던 김씨가 숨지기 직전 극단에서 받은 월급은 3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문화예술계는 이른바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 자체가 유명무실하다고 말한다. 2011년 궁핍한 생활 속에서 며칠을 굶다 홀로 세상을 떠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사건을 계기로 생계가 어려운 문화예술인에 대한 긴급 생활자금과 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그러나 심사 과정이 길고 선정 기준도 까다로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예술인 복지제도의 수혜 대상이 되려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 활동 증명을 해야 한다. 영화와 연극, 음악 등 부문별로 최근 3년 동안 3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한 실적이 있어야 하지만 횟수를 채우기 어렵고 활동 증명 절차도 복잡하다. 무엇보다 심사 과정에만 3개월 이상 걸려 긴급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다. 올해는 6월이 되도록 예산 배정조차 되지 않아 지원 신청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데스크 시각] ‘쪽파 할머니’조차 못 보듬는 사회라니…/박홍환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쪽파 할머니’조차 못 보듬는 사회라니…/박홍환 사회부장

    늦은 퇴근길 아파트 단지 상가 앞 벤치에는 늘 쪽파를 파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쪽파 사세요, 맛있는 쪽파 사세요.” 남루한 차림도 그렇지만 시력까지 안 좋은 듯 쪽파를 바싹 눈앞까지 당겨 다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고단한 삶이 담긴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갈라졌고, 고개 숙인 작은 얼굴에 매달린 두꺼운 뿔테 안경은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듯 위태롭게 보였다. 길고양이조차 사라진 새벽 1~2시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할머니다. 대야 속 쪽파는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겨울에도 할머니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한자리에서 쪽파만 매만졌다. 그대로 시간이 정지해 버린 듯 꼼짝 않고 그렇게 앉아 일년여 쪽파만 다듬었다. 쪽파 한 단에 1000원. 대야 속 쪽파를 다 팔아도 겨우 2만~3만원 될까 싶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저녁 준비할 시간도 아니니 쪽파 살 생각을 아예 갖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실성한 할머니를 만난 양 비켜가기 바빴다. 할머니도 꼭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닌 듯 누구 하나 붙잡지 않았다. 그 ‘쪽파 할머니’가 사라졌다. 벌써 한 달 넘게 나타나지 않는다. 몹쓸 생각이 스친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절망감 속에 혹시? 손 내밀지 못했던 무신경을 이제야 자책한다. 할머니는 분명 차상위계층, 아니면 기초생활수급자였을 게다. 5000가구에 이르는 아파트 단지 속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았을 게다. 어찌어찌 서울의 대형 아파트단지 벤치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가 그 외로운 벤치에서 쪽파를 팔면서 느꼈을 박탈감, 소외감을 이제야 짐작할 수 있다. 들릴 듯 말 듯 갈라진 목소리는 절망감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 ‘쪽파 할머니’뿐일까. 막노동 김씨 할아버지며, 상추 파는 박씨 아줌마며 우리 주변에는 숱한 가난이 널려 있다. 세상 사람들은 오늘도 무신경하게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칠 뿐이다. 그 지독한 가난을 오로지 그들의 수완부족 탓으로만 돌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의 손길도 받아 보지 못한 각박한 현실 앞에서 그들은 절망에 빠져 모진 세상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간접고용 노동자 153만명을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850만명, 차상위계층 400만명, 기초생활수급자 130여만명, 장애인 250만명, 독거노인 125만명, 이주노동자 100만명, 탈북민 3만명…. 가난하거나 소외된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이 이렇게 넘쳐나는데도 정부는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가 열렸다고 자화자찬한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학교는 밥 먹는 곳이 아니다”라며 급식예산을 끊었다. 한 달 5만원 남짓 받으며 염전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장애인들은 구출된 뒤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그 지긋지긋한 염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매주 받아 보는 다산 정약용 전문가 박석무 선생의 최근 글이 유난히 눈에 쏙 들어온다. 주역의 손상익하(損上益下), 다산의 손부익빈(損富益貧)을 소개한 글이다. 부자들의 재산을 덜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태 줘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 ‘부자증세’쯤으로 해석된다. 다산은 또 ‘하일대주’(夏日對酒)라는 시를 통해 경제정책 실패로 빈부 격차가 커지는 불공정, 불평등한 세상에 대해 무서운 비판을 가했다고 한다. ‘쪽파 할머니’조차 보듬지 못해서야 어찌 제대로 된 사회, 온전한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방식으로 계산한 우리의 불평등지수는 7.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재화가 일부 소수에게 집중되는 사이 수많은 빈곤층은 더욱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성장의 과실을 나눠야만 한다.stinger@seoul.co.kr
  • [또 하나의 미생, 간접고용] “해고 걱정 없이 일하고 싶은데… 하청 준 서울시 관리책임 없나”

    [또 하나의 미생, 간접고용] “해고 걱정 없이 일하고 싶은데… 하청 준 서울시 관리책임 없나”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신청사 로비. 버스중앙차로 정류장 청소노동자 9명이 이곳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도 36일이 지났다. 농성 현장을 오가는 김영일(44)씨는 지금도 자신의 처지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투쟁’, ‘농성’, ‘파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안전한 곳에서 해고 걱정 없이 일하고 싶다는 소망뿐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상고를 졸업한 김씨는 22세 때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중학교 3학년 때 고혈압으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김씨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았다. 공장에도 취업해보고, 막노동도 해봤지만, 돈을 모으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운전을 시작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을 1.5t 트럭에 실어 공사 현장에 배달하는 일부터 했다.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면서 2주에 한 번 쉬었다. 그렇게 한 달에 120만원씩 벌었다. 그럭저럭 생계를 이을 순 있었지만,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2010년 대한통운에 취직했다. 도봉구의 물류창고에서 짐을 부려 대전까지 배송하는 일을 맡았다. 오후 9시에 출근해 아침 7시에 퇴근했고, 월 280만~30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대한통운이 CJ GLS와 통합되면서 김씨는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 새 직장을 구하던 김씨는 지난해 2월 서울시 버스중앙차로 정류장을 청소하는 용역업체(에버가드)에 취직했다. 실질적인 원청에 해당하는 서울시가 버스정류장 시설물 설치·관리(하청)를 맡긴 JC데코라는 업체의 재하청 업체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새벽에 일하면 되기 때문에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사 때 관리자를 제안받았지만, 현장을 알아야 제대로 할수 있을 것 같아 청소부터 시작했다. 3개월만 체험해 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그에게는 ‘늪’이 됐다. 정류장 청소는 오후 10시에 시작해 다음날 오전 7시에 끝난다. 2인 1조로 하루 12곳의 정류장을 청소했다. 이동시간(10~15분)까지 포함하면 빠듯했다. 업무량은 너무 많았고, 김씨와 동료들은 크고 작은 부상과 감기몸살에 시달렸다. 정류장 지붕을 청소할 때는 안전장비 하나 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음주 및 과속차량의 위협에도 무방비로 노출됐다. 육체적 고통보다 힘든 건 ‘훈련소 조교’ 뺨치는 관리자들의 행태였다. 김씨는 아직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동료들이 정류장 청소를 마치고 다음 정류장으로 이동하면 관리자들이 뒤따라와 청소 상태를 점검했다. 하얀 면장갑을 끼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정류장 틈새마다 손을 집어넣어 문질렀고, 먼지가 나오면 어김없이 다시 청소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김씨와 동료들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기 때문에 불합리한 일이 있더라도 참아야만 했다. 참다못한 김씨와 동료들은 지난해 4월 사측에 불만을 제기했다. 과도한 업무량을 줄이고 지나친 감시를 자제해달라는 것. 돌아온 건 보복뿐이었다. 5월부터 하루 청소량이 정류장 15곳으로 늘었고, 앞장서 민원을 제기한 동료 세 명은 집중 감시에 시달렸다. 결국 청소노동자들은 7월 말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버스중앙차로분회를 결성했다. 노사의 대립은 이어졌다. 노조는 7월말 과중한 작업량 등에 대해 서울시에 민원을 제출했다. 사측은 노조 간부들에게 대기발령 조치를 했다. 10월에는 23명을 해고했다. 서울시의회의 도움으로 잠시 복직했다. JC데코의 위임을 받은 에버가드는 고용 승계와 임금 인상, 과도한 업무량 조정 등을 포함한 협약을 노조 측과 맺었다. 하지만 JC데코는 12월 말 에버가드와 도급계약이 끝나자 전격적으로 D사 등 세 곳과 계약을 맺었다. 김씨 등은 D사 소속으로 고용승계가 됐지만, 거기까지였다. 업체는 노동자들에게 에버가드와 맺었던 협약은 무효라고 통보했다. 수습기간 3개월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동료 최모씨가 지난해 12월 마포구의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와 신병비관 탓에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동료는 급성 백혈병으로 쓰러졌다. 노조 측은 백혈병 발병이 청소과정에서 사용하는 ‘세정액’과 무관하지 않다고 호소했다. 겨울에 세제가 얼지 않도록 넣는 첨가물에 메탄올 성분이 포함돼 암을 유발했다는 것. 노조 측은 세정제의 위험성을 지난해 9월부터 서울시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지만, 올 1월에야 세정액은 전량 회수됐다. 김씨를 비롯한 동료들의 요구는 JC데코에서 직접고용을 하고 실제 사용자에 해당하는 서울시가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라는 것뿐이다. 근본적으로는 버스중앙차로제를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던 2003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JC데코가 맺은 일련의 협약서가 작성된 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들을 규명하라는 것이다. 협약서에서 서울시는 JC데코 측의 재하청을 용인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은 버스 이용자들의 안전과 편리성보다는 JC데코 측의 광고독점권을 보장하는 데 급급했던 계약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서울시는 당시 계약서가 어떻게 작성됐는지 파악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버스중앙차로 정류장은 서울시 세금으로 운영되는 건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운영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김씨는 서울시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줌 인 서울] “집에 직접 들러 초보 엄마·아기 도와요”

    [줌 인 서울] “집에 직접 들러 초보 엄마·아기 도와요”

    생후 4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미혼모 이모(17)양은 고1 때 자퇴 후 당시 남자 친구와 동거하다 임신했다. 이양은 세 살 때 부모의 가정 불화로 인한 이혼을 경험했고, 엄마와는 연락도 끊겼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아버지는 당뇨와 알코올 질환 등으로 요양 병원에 입소한 상태다. 오갈 데 없던 이양은 결국 임신 33주였던 지난해 7월 서울 서대문구의 미혼모 거주시설인 ‘애란원’에 입소했다. 이양은 입소한 뒤에도 안정을 찾지 못해 산전 우울증이 심해졌고 담배는 계속 피웠다. 하지만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의 지속방문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현재 이양은 보건소 금연클리닉과 육아종합지원센터 연계 프로그램, 미혼모들의 양육 역량 강화를 위한 자조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안정을 찾고 있다. 이양은 방문간호사가 0~2세 영유아의 산모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가정 방문을 통해 산모의 양육역량 강화 등을 지원하는 건강관리 사업의 혜택을 받고 있다. 산모의 상태에 따라 지속방문이 필요한 가정에는 아이가 2세가 될 때까지 간호사가 20~25회 방문한다. 산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일 정도로 뜨겁다. 26일 기자와 만난 생후 5개월 된 아기의 엄마인 곽수진(31·양천구)씨는 “산전, 산후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방문해 많은 도움을 줘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하다”며 활짝 웃었다. 이 사업은 2013년 7월부터 강북구, 동작구, 강동구 등 3개 자치구에서 시범 실시됐다. 임산부와 영유아를 둔 엄마들의 전폭적인 호응을 얻자 시는 지난해 중랑구, 도봉구, 구로구, 양천구, 서대문구 등 8개 구로 확대했다. 올해엔 성동구, 성북구, 금천구, 광진구 등 4개 자치구를 추가해 현재 12개 구에서 실시된다. 2017년까지는 25개 전 자치구로 확대된다. 혜택을 본 산모들은 간호사 방문 횟수, 홍보 부족 등을 지적하며 이 사업이 더욱 강화되기를 바랐다. 김예주(42·동작구)씨는 “아이가 클수록 방문 빈도도 낮아져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던 간호사가 요즘엔 두 달에 한 번 온다”고 아쉬워했다. 곽씨도 “친구들에게 추천하려 하면 이 사업이 없는 자치구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업 지원단장을 맡은 강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현재 방문간호사들이 자치구당 2~3명에 불과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현재 계약직인 간호사들의 신분 안정과 동시에 자치구 차원의 복지서비스가 연계돼 서비스의 질적인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김지연 대학생 인턴기자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富] “막노동마저 없을 때 더 많아… 가난 대물림” “살 만한데도 아기 셋 뒀다고 보육료 주더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富] “막노동마저 없을 때 더 많아… 가난 대물림” “살 만한데도 아기 셋 뒀다고 보육료 주더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를 취재하면서 만난 상위 1% 부유층과 하위 9.1% 절대빈곤층은 의외로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만날 기회가 거의 없고, 그래서 서로를 마치 ‘딴 세상’에 사는 것처럼 인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신문은 상위 1%와 절대빈곤층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탈리아 명품 수입업체 ‘에트로’ 대표인 이충희(60)씨는 자수성가해 상위 1%로 도약한 사업가다. 그는 6·25 전쟁 직후 태어나 가난한 윤리 교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8남매가 자란 탓에 배를 주린 날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 특급호텔 면세점장을 거쳐 1993년 명품 수입업을 시작해 성공한 그는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에 가입하는 등 활발한 기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독신인 김동민(45)씨는 충남 서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상경해 노숙과 쪽방 생활을 하며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생활을 전전했다. 현재 서울의 한 매입임대빌라에서 살면서 한 달 수입이라고는 열흘 정도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해 버는 80만~90만원이 전부인 전형적 절대빈곤층이다. 두 사람이 지난 16일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김상연 특별기획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공감과 이견 사이를 오가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자) 평소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김동민(이하 김) 없는 사람은 너무 없고 있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 현실이다. 나 같은 서민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빈곤층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올라갈 가능성은 없고 현상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이충희(이하 이) 빈부 격차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있는 문제다. 특히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빈부 격차는 필연적으로 벌어진다. 결국 빈부 격차를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노력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만약 노력을 통해 현 세대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다음 세대라도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 나도 어릴 때 배급쌀을 받아 먹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교사였던 아버지가 대학 등록금을 내 주신 덕에 가난에서 벗어났다. -김 노력해서 돈을 벌고 적금도 넣고 재산을 불리면 좋다. 그런데 열심히 돈을 벌면 물가가 그만큼 올라버리니 돈을 모을 여유가 없다. 예를 들어 담뱃값만 보자. 이 대표님은 담배를 태우시나. -이 피우지 않는다. -김 나는 피운다. 담배는 서민의 기호식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가격이 하루아침에 2500원이나 오르니 힘들다. 서민들은 “안 오르는 건 내 월급밖에 없다”고 한다. 조금씩 저금해서 돈을 모으면 물가가 그만큼 올라가 저축한 효과가 없어진다. -이 4000원 하는 커피값을 30년간 모아 복리이율을 적용하면 2억 1400만원이 된다. 4500원 하는 담뱃값을 모아도 마찬가지다. 나는 20여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통장에 있는 800만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최대한 돈을 안 쓰려고 노력했다. 출장 갈 때는 코펠을 갖고 다니며 라면을 끓여 먹고 중국집에 가도 백반 시켜 자차이(중국식 채소 반찬)와 함께 먹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10년을 안 쓰니까 돈이 모이더라. 버는 건 내 마음대로 안 될 수 있지만 쓰는 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 -김 나도 ‘담뱃값을 모아 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몸 쓰는 노동을 하면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공사장에서 힘들 때 담배 한 대 피우며 쉬는 게 유일한 낙이다. 막노동하고 오면 너무 힘드니까 저녁에 술 한잔 하게 되고 그러면 아침에 술이 깨지 않아 일을 나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태껏 모아 둔 돈이 없다. 노후를 생각하면 저축해야 하는데 저축하는 습관도 안 돼 있고 월세,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교육비가 워낙 많이 들어 빈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인데. -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다들 어려웠다. 그래서 누구든 조금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정 형편이 전체적으로 좋아졌고 경쟁이 심해졌다. 있는 집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해외연수를 보낸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없는 사람이 부자 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교육밖에 없다. 공부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독서와 어학 공부는 자기 노력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내 나이가 올해 환갑인데 요즘도 오전 5시 30분이면 일어나서 7시면 출근한다. 사무실 책상과 집, 차에 각각 돋보기를 두고 한 달에 책 2~3권씩은 읽는다. 독서는 내가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정부에서 복지를 강조한다고 해도 결국 밥 굶는 사람에게 밥 한 끼 주는 수준일 뿐이다. 결국 내가 부지런해야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 -김 가난한 사람이 학력까지 떨어지면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나처럼 배운 게 없으면 공사장에서 막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다. 그마저도 꾸준히 일감이 있는 게 아니다. 겨울철에는 공사는 없는데 일하려는 사람은 많아서 일주일에 1~2일밖에 일하지 못한다. 한 달에 10번 일하면 많이 한 건데 수입은 8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정책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김 한참 부족하다. 최근 지적장애인 언니를 혼자 돌보며 어렵게 살던 20대 여성이 자살한 사건도 있지 않았나. 박근혜 정부가 서민 정책을 펴겠다고 했는데 담뱃값 올리는 것만 봐도 더 이상 못 믿겠다. 없는 사람은 없어서 세금을 못 낸다.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내서 없는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이 기본적으로 복지는 확충해야 한다. 문제는 재정이 어느 정도 받쳐 줄 수 있느냐다. 없는 사람에게 복지 혜택이 집중돼야지 모두에게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을 하면 실제 필요한 사람의 몫은 줄어든다. 선별적 복지로 가야 한다. 내 딸이 아기가 3명인데 매달 국가에서 보육료를 받는다고 한다. 왜 우리 딸처럼 살 만한 사람에게까지 돈을 주는지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을 두고 ‘게으르다’고 하거나 부자에게 ‘운이 좋다’고 하는 등 부정적 고정관념도 있는데. -김 ‘게으르니까 가난하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이 대표님이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막노동하는 사람 중에도 새벽 2~3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많다. 일감 구하러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거나 폐지를 주워야 하니까. 열심히 하면 대가가 따라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서민은 계속 서민일 뿐이다. 부자는 그만큼 노력해서 부를 쌓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돈이 돈을 낳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부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부자가 그냥 된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도 있지만 고생 끝에 부를 쌓은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해 줬으면 한다. 부자를 보면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배우려고 할 필요가 있다.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부유층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부를 자녀에게 상속해 주고 싶은 욕구는 본능이긴 하지만 재산의 일정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부유층 사이에서 이런 인식이 점점 더 퍼질 것이라고 낙관한다. 일례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4년 전엔 40~50명뿐이었는데 지금은 700명을 넘어섰다. -김 일부 공감한다. 그런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부유층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요즘 ‘땅콩회항’ 등 갑질 횡포 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고소득층의 세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부자들에게 과세해서 나눠 쓰자는 얘기에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아무리 부자여도 자기 돈의 5%도 못 쓰고 죽으니까. 한 끼 먹는 데 드는 비용은 다르겠지만 김 선생님이나 나나 세 끼 밥 먹는 건 똑같다. 문제는 지나친 과세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데 있다. -김 기업 운영하시는 분들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같은 저소득층도 공과금이 밀리면 통장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지급정지시켜 못 쓰게 한다. 많이 버는 분들이 세금을 더 냈으면 좋겠다. →오늘 대담을 통해 생각이 달라진 게 있나. -이 김 선생님 말씀을 들어 보니 가난을 벗어나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기회가 없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적지만 100만원이라도 벌면 반의 반 정도는 저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근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주방·수도·화장실 없어 감옥보다 못한 쪽방… 월세는 계속 올라

    주방·수도·화장실 없어 감옥보다 못한 쪽방… 월세는 계속 올라

    베이징 서북쪽 끄트머리에 똬리를 튼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 쪽방촌을 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지하철 14호선에서 15호선으로, 다시 8호선으로 갈아탄 뒤 지선인 창핑(昌平)선 종착역에 내렸다. 거기서 1.5㎞를 더 걸어야 목적지인 창핑구 둥반비뎬(東半壁店)촌에 다다를 수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던 지난 14일 농민공의 보금자리는 스모그로 자욱했다. 중국 설인 춘제(春節)를 닷새 앞둔 주말이라 귀성을 서두르는 차량이 곳곳의 도로를 가득 메웠다. 둥반비뎬촌에 다가갈수록 자동차보다 오토바이 대열이 많았다. 수년 전부터 오토바이는 농민공들의 가장 중요한 귀성 수단이 되고 있다. 한 아낙은 대여섯 살로 보이는 딸과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서 동냥을 하고 있었다. 땟국으로 얼룩진 고사리손을 가진 아이도 아마 농민공의 자식일 것이다. 노점에서 파는 싸구려 음식 냄새와 매캐한 스모그 냄새가 뒤섞인 시장통에서 젊은 부부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소리쳤다. “당장 라오반(板·사장)을 찾아가자고. 이번 달에도 월급을 안 주면 춘제를 어떻게 쇠란 말이야.” 남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연락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시장통을 가로지르니 쪽방들이 보였다. 감옥만도 못해 보였다. 검은색 가죽 점퍼를 제법 말끔하게 차려입은 마(馬)씨가 쪽방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고향에 가느냐”고 물으니 “바람 쐬러 간다”고 했다. 다시 보니 그의 손엔 꾸러미가 없었다. 올해 쉰다섯인 마씨는 2년 전 고향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왔다. 밭농사로는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 도시 막노동을 택했다. 고향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 결혼을 늦게 해 아들들이 이제 겨우 중학생이다. 그는 쓰레기 수거 업체에서 하루 12시간 일하고 월 2000위안(약 35만원)을 번다. 그중 1200위안을 집에 보낸다고 했다. “집에 갔다 오면 최소 500위안은 깨질 텐데, 엄두가 안 나요. 명절 기분이나 내려고 옷을 차려입었죠.” 마씨는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듯했다. 다닥다닥 붙은 단칸방 월세는 300~400위안(5만 3000~7만원)이다. 주방, 화장실이 없다. 수도 시설도 없다. 밥은 일터에서 먹고, 공동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용변을 본다. 3~4년 전만 해도 이런 방은 150위안이면 충분했다. 대도시의 부동산 광풍이 농민공 쪽방촌이라고 봐줄 리 만무했다. 인근엔 제법 괜찮은 주택도 많다. 이공계 석사를 마치고 지난해 기계 공장에 취업했다는 장(張·27)씨가 여행용 가방을 끌고 2층집에서 나왔다. 장씨는 월 1000위안짜리 방에서 산다. 장씨는 “이런 동네에 살아야 돈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친김에 청년 실업에 대해 물어봤다. 장씨는 “젊은이들의 눈높이와 씀씀이를 충족시켜 줄 일자리가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누가 뭐래도 가장 힘든 사람은 농민공이죠. 후커우(戶口·호적)가 없어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 일자리도 사라지고, 월급도 깎이는데 물가와 방값은 계속 오르잖아요.” 중국의 경제성장세는 꺾였다. 이를 지도자들은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라고 부르며 중속성장의 시대에 맞게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언론들은 반부패 드라이브와 성장 둔화가 겹쳐 부유층의 명품 소비가 줄었다고 호들갑이다. 그러나 장씨 말대로 경제의 질적 변화에서 터져 나오는 파편은 최하층 농민공들에게 향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토대였던 농민과 노동자는 오성홍기 속 별로 박제된 지 오래고, 성장의 견인차였던 3억명의 농민공은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돈 주고 들어가라고 해도 주저할 만한 허름한 목욕탕을 운영하는 여주인 류(劉)씨도 귀성을 포기했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농민공들이 많아지자 혹시나 연휴 기간에 손님이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류씨는 “돈벌이가 시원치 않으면 목욕비부터 줄인다”고 혀를 찼다.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가 고향인 구멍가게 주인은 월요일에 고향으로 간다며 들떠 있었다. 그가 말을 계속하려 하자 옆에 있던 아내가 “그만하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요즘 장사가 안돼서…”라며 미안해했다. 비좁은 골목에 한 노파가 앉아 스모그를 뚫고 쏟아지는 볕을 쬐고 있었다. 사투리가 워낙 심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멀리서 할머니를 돌아봤다. 일 나간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다. window2@seoul.co.kr
  • [오늘의 눈] 놀라운 기억력의 비결/유대근 특별기획팀 기자

    [오늘의 눈] 놀라운 기억력의 비결/유대근 특별기획팀 기자

    “한 푼이 아쉬워 봐요. 고지서에 찍힌 숫자가 가슴에 박혀 저절로 외워진다니까.” 서울 서대문구의 16평짜리 임대주택에 사는 독거 남성 A(44)씨는 “한 달 생활비로 얼마나 쓰느냐”는 질문에 항목별 액수를 막힘없이 내뱉었다. 기자는 서울신문 특별기획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취재차 막노동으로 월 80만원을 버는 A씨의 집을 방문한 터였다. “지난달 방세가 17만 4200원이었고, 전기료가 3만 1050원이었나. 상수도 요금이 1만 2950원. 반찬은 가끔 한 팩에 2500원인 마늘장아찌 사 먹는 게 전부예요” 하는 식이었다. 10원 단위까지 버림 없이 토해 내는 기억력의 비결은 뭘까.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숫자랑 친할 리 있겠어요? 10원도 아까우니까 나도 모르게 기억하는 거지.” 절박함. 그가 말한 놀라운 기억력의 비법이었다. 비단 A씨만이 아니었다. 취재차 만난 수십 명의 극빈층은 대체로 자잘한 액수를 곧잘 기억했다. “한 번 마트에 가면 한 20만원 쓰려나” 하는 식의 부유층 화법과 구별됐다. 10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매달 버티는 극빈층에게는 전 달보다 몇 만원 더 나온 도시가스비나 몇백원 오른 채소값이 치명타가 된다. 당연히 적은 금액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고된 아르바이트 뒤 귀가하면서 통닭 냄새를 맡으면 먹고 싶을까봐 지름길인 시장통을 놔두고 멀리 돌아 간다는 빈곤 청년과 취미라고는 서울 남대문시장에 가서 진열된 옷을 멀뚱히 보는 게 전부라던 가난한 싱글맘은 고지서에 찍힌 숫자를 외우며 우리 곁에 살고 있었다. A씨는 “복지하려고 증세한다는데 그 돈은 다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여전히 빈틈이 많은 정부의 복지 안전망을 메우는 건 민간 조력 단체들이었다. 특히 설 등 명절 때에는 이들의 역할이 더 커진다. 홀로 아이 셋을 키우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B(40·여)씨는 민간 단체 덕에 큰 고민을 덜었다. B씨는 딱히 찾아갈 가족이 없는 데다 돈이 없어 차례상을 제대로 차리기 어려웠다. 아이들이 명절 때조차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 미안했다. 다행히 싱글맘 단체의 지원으로 설 당일 자녀와 1박2일로 놀이공원에 가게 됐다. A씨도 이번 설을 빈민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는 “민간 단체에서 평소 생활비가 부족하면 몇만원씩 꿔 주고 명절이면 음식도 챙겨 준다”며 고마워했다. 하지만 A씨를 비롯한 빈곤층은 ‘좋은 이웃들’의 사정이 안 좋아질까봐 속을 끓였다. 지난해 세제 개편으로 기부금에 대한 실질적 세금 감면 수준이 낮아지면서 전체 기부액도 줄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기부금이 줄면 민간 단체의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민간 단체의 역할을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올해는 공무원들이 민간 단체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어느 빈곤층의 새해 소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dynamic@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 (10)절대빈곤층의 미용 관리-7000원 아끼려 짧게 커트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 (10)절대빈곤층의 미용 관리-7000원 아끼려 짧게 커트

    “화장품요? 저는 소주로 만든 스킨 쓰는 게 전부예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간호조무사 A씨의 유일한 화장품은 ‘소주 스킨’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간단한 색조 화장은커녕 로션도 바르지 않는다. 소주와 레몬 조각, 글리세린을 섞어서 가제로 덮고 냉장고에 2~3개월 정도 숙성시켜서 쓴다. 인터넷상에서는 천연 화장품 비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A씨가 ‘소주 스킨’을 만들어 쓰는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다. 글리세린은 병원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얻어 쓰기 때문에 1200원 하는 소주값과 레몬값까지 하면 2000원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 넷(고등학생과 초등학생 딸 두 명,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들 2명)을 키우면서 월 135만원을 버는 A씨에게 화장품이란 구매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쓰는 것이다. 그나마 주변에서 얻은 화장품 샘플들은 아이들 몫으로 돌아간다. 절대빈곤층에게 화장품은 ‘사치품’일 뿐이다. 먹는 것을 사기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난 절대빈곤층의 대부분은 아예 화장품을 사지도 바르지도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31세 싱글맘 B씨는 5년 전 아이를 낳은 뒤부터 지금까지 스킨, 로션을 한번도 발라 본 적이 없다. B씨는 “딸 아이는 베이비로션을 발라 준다”면서 “나도 베이비로션이라도 같이 쓸 수 있지만 아끼려고 안 썼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처녀 때랑 다르게 주름이 많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39살 싱글맘 C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녀 3명(12세 아들과 2세와 8개월 된 두 딸)명을 키우는 C씨는 과거에는 명동의 화장품 매대에서 화장품을 사기도 했지만 3년 전부터 기초 화장품조차 바르는 것을 포기했다. 어쩌다가 결혼식 등 신경을 쓰고 가야 할 자리가 있을 때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정도다.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C씨는 “왜 없겠어요. 여자는 나이가 적건 많건 꾸미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당연하죠”라면서 “그런데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니 나 자신한테 쓸 돈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C씨의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이 창백해 보였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D(82)씨도 20년간 로션 같은 것을 사 본 적이 없다. D씨는 “이제 나이를 먹으니 화장품을 바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서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데 바를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절대빈곤층에게 귀한 화장품은 바로 ‘샘플’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E씨는 지인들로부터 샘플을 얻어 쓰고 있다. 특히 고급 화장품으로 알려진 S브랜드의 샘플을 얻는 날은 ‘운수대통’이다. 딸 셋(초등학교 6학년, 4학년, 5세)을 키우고 있는 기초수급자 싱글맘 F(33)씨는 시장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가서 ‘샘플 동냥’을 한다. 운이 좋으면 샘플 몇 개를 얻어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동네 복지관 행사에서 색조 화장을 받아 본 게 F씨가 ‘제대로’ 화장이라는 것을 해 본 전부다. F씨는 “화장한 나를 보고 복지관 선생님이 ‘못 알아보겠다. 너무 예쁘니 매일 화장하라’고 하는 말에 웃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화장이야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F씨지만 학부모 총회나 공개수업처럼 아이들 학교 행사 때만큼은 초라한 자신이 신경 쓰인다. “다른 엄마들은 다 화장하고 예쁘게 하고 오는데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부끄럽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마음이 아프죠.” 샘플은 본래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빈곤층이 밀집해 사는 주변 상가에는 묶음으로 판매하는 곳이 꽤 있었다. 지난달 22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개미마을 인근 시장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는 설화수 샘플 2~3개를 2000~3000원에 팔고 있었다. 경기도 광명시장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G씨는 “샘플 한 개당 100원에 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1000원어치씩 팔기도 한다”고 했다. G씨는 “화장품 샘플을 달라고 무턱대고 가게에 오는 할머니들도 일주일에 한 명은 있다. 며칠 전에 화장품을 샀는데 샘플을 못 받았다는 식”이라면서 “그런 분들에게는 그냥 샘플 두어 개를 준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판매되는 ‘정품’도 대부분 5000원을 넘지 않는다. G씨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그나마 많이 사는 게 4000원짜리 H 보디워시(900㎖)와 3000원짜리 B 로션(450㎖)”이라면서 “3000원짜리 로션도 바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3000원이라는 소리에 놀라서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절대빈곤층한테 화장품 중 ‘사치품’은 핸드크림이라고 한다. 겨울에 막노동 등 험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손이 트는 경우가 많지만 꼭 필요한 화장품은 아니라는 인식에서 핸드크림을 구입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진다는 얘기다. 1000원짜리 D 핸드크림을 종종 사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H씨는 “여기서는 중간 가격대의 브랜드 화장품도 사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서 “저가 브랜드 중 M이나 C는 그래도 1만원 남짓이면 살 수 있으니 사 가는 사람들이 좀 있다”고 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 I씨는 1년에 1만원 내외의 제품 2개 정도를 구매한다. 여름철에는 바르지 않고 겨울에만 조금씩 아껴서 바른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달동네 개미마을에 사는 50대 J씨는 “아는 사람들 중 S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기초제품만 해도 2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화장품 하나 사면 한 석 달밖에 쓰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J씨는 손녀와 1만 5000원짜리 베이비로션을 같이 쓴다. 절대빈곤층이 미용에 신경을 쓰는 것은 화장품이 아니라 머리다. 화장품은 바르지 않아도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머리는 겉모습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달리 한번 돈을 들이면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앞서 소개된 싱글맘 H씨도 1년에 3번 정도는 머리를 자른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인 K(81)씨는 “화장품은 못 발라도 파마는 해야 한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한다”면서 “그래도 여기가 물가가 싸니 2만원이면 파마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개미마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L씨는 “대부분 기본적인 파마만 하고 가기 때문에 2만원 선을 넘지 않는다”면서 “할머니들은 1년에 한두 번 오시기 때문에 돈을 많이 받을 수 없다. 1000원이라도 올리면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나마 올해 가격을 1000원씩 올려 커트 8000원, 학생은 6000원, 염색은 1만 8000원이다. 복지관이나 봉사단체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개미마을 근처의 한 교회에서는 1년에 두 번 무료 봉사로 머리를 잘라 준다. 앞서 소개된 E씨는 7살 딸 아이와 14살 아이의 머리를 직접 잘라 주고는 한다. 남성의 경우는 스타일을 따지기보다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게 ‘답’이다. 서울 중구 중림동 쪽방촌 주변 미용실을 이용하는 30~40대 남자들은 짧은 머리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한다. 짧을수록 깔끔하고 머리를 더 자주 자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쪽방촌 근처 한 미용실은 커트 7000원에 머리를 감으면 1만원인데 열이면 열 모두 머리만 자르고 감지 않은 채 간다고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M(26)씨도 되도록이면 머리를 짧게 자른다. 집안 사정이 괜찮았을 때는 3주에 한번씩 미용실에 갈 정도로 헤어스타일에 특히 공을 들였지만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한 이후에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주기가 길어졌다. ‘멋’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남자 연예인들이 많이 선보이면서 유행하고 있는 헤어스타일인 포마드 머리(2:8 가르마를 연출해 머리를 빗어 넘기는 형태)를 시도해 보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커트만 해도 일반 커트 가격에 3배일 뿐만 아니라 스타일 연출을 위해 필요한 전용 기름이 3㎖에 4만원 정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남성들이 많이 하는 파마도 꿈꾸지 못한다. 6000원짜리 왁스로 반년을 버틴다. M씨는 “향수와 스킨, 로션에 수십만원씩 쓰고 외모에도 투자를 많이 하는 친구를 보면 놀라기도 한다”면서 “화장품은 아껴 써도 두 달 정도밖에 못 쓰니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여자를 만날 때도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M씨는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서 외모도 큰 차이가 나겠지만 중요한 건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내 스스로가 이성 앞에서 위축되다 보니 만날 때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송수연 이두걸 유대근 기자 songsy@seoul.co.kr
  • 유일한 낙 TV 시청…전기세 겁나 그나마 짬짬이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유일한 낙 TV 시청…전기세 겁나 그나마 짬짬이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지난해에 큰 맘 먹고 거금 120만원을 주고 3D TV를 샀습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눈을 떴을 때부터 감을 때까지 보는 TV에 ‘사치’를 부린 거죠.” 서울 강북 지역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A(55)씨의 ‘재산목록 1호’는 TV다. 3년간 매달 3만~4만원씩 모은 돈으로 최신 TV를 샀다. 그가 공사판에서 버는 한 달 수입(1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사치품’이다. 다른 가구들은 재활용센터 등에서 헐값에 사들이거나 버려진 걸 주워 왔지만 TV는 달랐다. 스포츠뿐 아니라 평소 즐겨 보는 SF 영화도 기존에 쓰던 구형 브라운관 TV 대신 3D TV로 보니 현장감이 훨씬 살아났다. A씨는 “TV가 없으면 딱히 낙이 없고 뉴스라도 봐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 있다”면서 “서너 달 생활비 전부를 TV 사는 데 썼어도 별로 아깝지 않다”고 했다. 놀기 위해서는 돈과 여유가 필요하다. 먹고사느라 고달픈 절대빈곤층에게는 그래서 TV가 유일한 여가 수단인 경우가 많다. 그저 켜놓는 것만으로도 온갖 ‘문화생활’을 브라운관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 B(76)씨에 비하면 A씨는 ‘호사스러운’ 축에 든다. B씨는 TV를 보고 싶어도 전기요금 걱정에 손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B씨가 단칸방에서 매일 아침 눈뜨는 시간은 오전 4시. 하지만 딱히 할 게 없다. 아직 밖이 깜깜해 산책할 수 없는 시간이다. TV라도 보고 싶지만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 처지라 전기비 걱정에 잘 틀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오전 10시쯤 동네 경로당을 찾는다. 거기서 인근 노인들과 어울리며 줄곧 TV를 시청한다. B씨는 “집에서는(공중파만 나와서) 채널이 몇 개 안 되지만(케이블 채널을 갖춘) 경로당 TV는 채널이 많아서 더 볼 게 많다”면서 “저녁 때 집에 오면 밥 먹으면서 TV를 잠깐 보다가 끄고 8시면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경기 광명에 사는 독거 노인 C(83·여)씨는 노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의 유일한 낙은 TV 시청이다. 하지만 낮 대신 밤에만 본다. 하루 종일 TV를 틀어 놓기에는 전기요금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C씨는 “오후 6시 이후 3시간이 TV 시청 시간”이라면서 “TV로 영화를 보고 싶어도 (공중파에서는) 늦게 영화를 틀어 주니까 요즘엔 제대로 본 게 없다”고 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빈곤층은 PC방에서 여가를 보내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매입임대빌라에 사는 D(45)씨는 2주에 한 번꼴로 일 없는 날을 골라 PC방에서 ‘게임 데이’를 즐긴다. 보통 한 번 가면 13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 한때 20시간 연속으로 죽치고 앉아 게임에 몰입한 적도 있다. 1만원이면 13시간 정도 게임을 할 수 있어 점심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거나 컵라면 등 간식을 먹어도 2만원이면 하루를 날 수 있다. D씨는 “게임방에서 오락을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가 있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기 좋다”면서 “게임 도중 채팅에서 만난 사람 소개로 경기 인근 지역에서 일주일 동안 막노동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다수 빈곤층은 제대로 된 여행을 꿈꾸기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4년 비수급 빈곤층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한 번 이상 2박 3일 이상의 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빈곤층(기초생활수급대상자)은 98.0%로, 전체 가구 평균(22.4%)의 4배가 넘는다. C씨는 평생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없다. 젊은 시절 명절 때 고향인 광주를 오고 간 것 외에는 순전히 여가를 위해 버스 등을 타고 나간 적이 없다. 더욱이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요즘 들어 여행은 꿈도 못 꾼다. 그는 “재작년 노인복지관에서 여는 무료 나들이에 따라 갔다가 몸살이 걸려 꼬박 일주일을 누워 지냈다”면서 “사는 게 심심하고 따분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셈”이라고 했다. 빈곤층 아이들 역시 여행이나 나들이를 쉽게 가지 못한다. 부모가 형편이 안 되는 데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일 때문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짬이 없는 탓이다. 아름다운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 서울 지역 저소득 가정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강에서 역사와 문화 체험을 하는 무료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한강에 처음 와봤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쉽사리 가지 못하는 빈곤층의 약점을 노리는 ‘사기’도 종종 벌어진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빈곤층 E(74·여)씨는 지난가을 황당한 일을 당했다. 낯선 이들이 E씨가 자주 가는 동네 경로당을 찾아 “공짜로 세종시 구경을 시켜 주겠다”면서 전세버스에 오를 것을 종용했다. E씨와 주변 노인들은 의심 없이 따라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내린 곳은 세종시가 아닌 서울 외곽의 허름한 가건물 강의실이었다. 이들은 노인들을 앉힌 뒤 녹용과 옥장판 등을 파는 강의를 4시간 넘게 진행했다. 항의하는 이들에게는 “자꾸 이러면 못 간다”며 윽박질렀다. E씨는 “강의와 호객 행위가 끝난 뒤 차로 다시 경로당에 데려다준 게 다행이었다”면서 “그 이후에는 누가 ‘공짜 여행을 보내 준다’고 해도 절대 안 따라간다”고 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겨우 의식주만 해결하는 수준을 도와주는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층 지원 시스템으로는 빈곤층이 여가라는 걸 누릴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정보 검색’에 능한 빈곤층 중 복지단체에서 지원하는 무료 여행의 기회를 잡은 경우도 있다.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 싱글맘 E(40)씨는 2013년 여름 강원도 속초로 2박3일 휴가를 다녀왔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들과 2살 딸 외에 100일이 갓 지난 막내딸까지 네 식구가 함께했다. 그러나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모 복지재단이 한부모가정 등을 대상으로 주최한 여름휴가 프로그램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주최 측이 숙박과 교통, 식사비 일체를 무료로 제공했다. 앞서 그녀는 지난해 11월에는 아이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이 역시 싱글맘 관련 협회의 후원 덕분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E씨 역시 비행기를 탄 건 처음이었다. E씨는 “아이들을 위해 1년에 한 번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함께 여행을 가려고 한다”면서 “집에만 있는 애들을 생각하면 무료 여행을 갈 좋은 기회가 없을까 여기저기 찾아보게 된다”고 했다. E씨는 미혼모 관련 협회가 여는 ‘부모 교육’ 강의를 20차례 수강하면 제주도 여행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한 덕택에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 관람도 빈곤층에게는 쉽지 않다. 노년 빈곤층에서는 최근 수십년간 영화관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례가 수두룩했다. 특히 한창 영화 관람에 맛을 들일 젊은 층이 돈 때문에 참아야 하는 일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방식이 동원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스튜던트 푸어’ F(27)씨는 밥 먹을 돈을 아껴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 애호가다. 하지만 영화 관람비는 지갑이 가벼운 그에게 큰 부담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 대신 스크린을 적게 내거는 군소 영화관에 주로 간다. F씨는 “멀티플렉스는 관람비는 1만원에 가깝지만 단관 극장은 6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면서 “이것조차 부담스러우면 인터넷으로 영화 파일을 공짜로 내려받아 본다”고 했다. SF 영화를 즐겨 보는 G(34)씨도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데 1만원이나 내야 하니 최근 6년간 극장 문턱도 밟지 못했다”면서 “대신 가끔 동대문시장 등에서 복제한 최신 영화 DVD를 5편에 1만원 주고 사서 집에서 본다”고 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은 예나 지금이나 빈곤 노년층의 놀이터다. 강서구에 사는 H(82)씨도 매일같이 정오쯤 탑골공원으로 출근한다. 공원 팔각정 주변에 자리 잡은 뒤 허리에 찬 소형 카세트 라디오를 들으며 공원을 천천히 산책한다. 팔각정에 앉아서 주변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한 달 소득이 국민연금 40만원에 노인연금 16만원 정도가 고작인 처지라 탑골공원 만큼 ‘경제적인’ 소일거리 공간이 없다. 주변 식당들의 밥값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시키면 6000원 정도면 충분하다. 친구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한두시간은 훌쩍 간다. H씨는 “지하철 요금은 공짜이니 밥값 정도를 빼면 돈이 별로 들 일이 없다”면서 “날씨가 좋을 때는 청와대 앞까지도 놀러간다”고 했다. I(71)씨도 매일 아침 경기도 성남에서 탑골공원으로 나오는 ‘터줏대감’이다. 그는 “밖에서 밥을 챙겨 먹지 않으면 한 달 용돈은 10만원이면 충분하다”면서 “잠실 석촌호수 부근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라고 했다. 봉사 활동으로 여가를 보내는 빈곤 노년층도 일부 보인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독거 노인 J(82·여)씨는 10년째 지역 노인복지센터 뜨개질 교실에서 다른 노년층을 가르친다. 그녀는 “그냥 놀 바에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는 게 훨씬 보람 있다”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삼시세끼 3000원… 밥상이 풀밭이다

    삼시세끼 3000원… 밥상이 풀밭이다

    ■ 대한민국 상위 1% 부유층과 하위 9.1% 절대빈곤층의 카트에 담긴 먹거리는 어떻게 다를까. 소득 격차에 따른 식료품 구입 패턴 차이 등을 면밀히 분석한 인터랙티브 기사인 ‘카트 속 다른 세상’을 감상하세요. ☞<카트 속 다른 세상> 보러 가기 클릭 (http://interactive.newsjel.ly/seoulnews) “못사는 집 엄마들은 5000원 넘게 사 가는 일이 거의 없어. 국물 낼 때 꼭 필요한 청양고추 정도나 사 간다니까.” 경기 광명의 한 전통시장 채소가게인 ‘G상회’ 주인 정모(61)씨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많이 사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이곳에는 주변 임대아파트 등에 사는 극빈층 주부들이 장을 보러 많이 온다. 정씨는 10년 넘게 시장통에서 장사하면서 “허름한 옷차림의 주부가 사가는 채소라고는 기껏해야 고추나 값싼 푸성귀 정도”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다. 이 가게에서는 800g짜리 무 1개에 1000원, 양파 2㎏에 2000원, 당근 1㎏에 2000원 등 주변 마트보다 싸게 판다. 하지만 극빈층 주부들은 이마저 부담스럽다. 그는 “20일에 한번씩 와서 나물 1000~2000원어치만 사 가는 할머니가 있는데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오시는 모습을 보면 ‘장 봐줄 자식도 없나’ 싶어 한 줌이라도 더 드린다”고 했다. 같은 시간 시장 내 생선가게 종업원이 “동태 한 손(2마리)에 5000원!”이라고 목청껏 외치며 손님을 끌었지만 주부들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 정육점 주인은 “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국거리용으로 돼지고기 뒷다리를 사 가거나 삼겹살을 사는 게 전부”라고 했다. 절대빈곤층의 식탁에서 보기 힘든 대표적 식품은 육류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 김모(42)씨는 월 90만원인 수급비 중 10만원을 식료품비로 쓴다. 식구 4명(김씨와 남편, 중학생, 고등학생인 두 딸)이 넉넉히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이 때문에 김씨 가족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양을 최대한 불려 네 식구가 함께 먹을 수 있는 반찬을 선호한다. 찌개에 넣는 재료라고 해봐야 김치, 된장 외에 호박, 양파 등이 고작이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고기 반찬을 해 달라”고 투정하지만 빠듯한 살림 탓에 시장에 가도 고기에 손이 가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오는 매달 20일에 삼겹살을 사다 먹는 게 김씨 가족이 누리는 최고의 호사다. 그는 “인근 재래시장에서는 삼겹살 두 근을 마트보다 싸게 1만원이면 살 수 있다”면서 “소고기는 아이들 생일 때 미역국에 넣으려고 1년에 딱 두 번 산다”고 했다. 과일도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식재료다. 독거 빈곤층인 임모(41)씨는 막노동 등으로 매달 80만~90만원을 버는 것이 전부라 과일을 사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식당에서 과일 한 쪽을 후식으로 내놓는 행운이라도 만나면 간신히 맛만 보는 수준이다. 임씨는 설, 추석 등 명절에 택배 아르바이트를 곧잘 하는데 과일 선물을 배달하다 보면 먹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렵다. 그는 “택배 물품으로 귤박스가 들어오면 살짝 뜯어 5~6개를 빼먹고는 다시 테이프로 붙여 놓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동작구의 한 마트 관계자는 “혼자 가난하게 사시는 할머니인데 마트에 와 과일을 사지는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분들도 계신다”면서 “마음이 편치 않아 멍든 과일을 공짜로 드리기도 한다”고 했다. 절대빈곤층에게 ‘외식’이란 단어의 말뜻은 ‘참아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 윤모(44)씨는 TV 맛집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게 낙이다. 그렇다고 소개된 맛집을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윤씨는 “비싼 음식을 사 먹을 돈도 없고 차 타고 멀리 나갈 형편도 안 된다”면서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조금 해결되는 것 같다”고 위안했다. 극빈층은 싼 가격을 선호하다 보니 품질이 낮거나 건강에 이롭지 않은 식품을 사 먹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광명시장의 H과일가게 주인은 “사과를 싸게 팔기 위해 흠이 난 ‘하(下)품’을 조금 가져다 놨다”면서 “사과 6~7개를 5000원에 팔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동작구 상도동의 D마트 직원은 “바나나 중 시간이 지나 껍질이 검게 변한(갈변현상) 제품은 원래 판매가보다 2000원 싼 2800원에 판다”고 했다. 빈곤층 고객이 많은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G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어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면서 “물건을 대량으로 떼어와 가격을 낮춰 20~30% 정도 싸게 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모든 상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저렴한 물건을 떼어 오기 위해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짧게 남은 물건도 들여온다”면서 “물건 자체에 흠이 있지는 않고 상품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법을 어기는 현대판 ‘장발장’들도 있다. 광명시장 내 한 슈퍼마켓은 지난해 매장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를 고화질로 교체했다. 슈퍼 물건을 조금씩 가져가는 좀도둑 탓이다. 슈퍼 직원은 “우리 가게의 좀도둑은 다른 곳과 좀 다르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어린아이가 과자나 음료수를 훔치다 붙잡히는데 이곳에서는 40~60대 성인들이 물건을 몰래 챙기려다 곧잘 적발된다는 것이다. 고작 몇천원짜리 물건을 살 형편이 되지 못해서다. 이 직원은 “하루에 한 번꼴로 인공조미료 등을 훔치려다 걸리는 어른들이 있다”고 했다. 먹거리 취약계층은 방학 기간 아동·청소년들이 대표적이다. 초교 6학년인 고모(12·서울 구로구)양은 다른 또래처럼 방학을 마냥 반길 수 없다. 먹는 문제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그나마 영양을 갖춘 무상 급식을 점심으로 먹을 수 있지만 방학에는 라면, 과자 등을 주식 삼아 버텨야 한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버는 월 70만~80만원의 소득으로 고양과 부모, 2살 어린 동생이 한 달을 버텨야 해 넉넉히 사 먹을 형편이 못 된다. 고양의 어머니도 아르바이트로 배달일 등을 해 아이의 끼니를 제때 챙겨 주기 어렵다. 고양처럼 방학철 먹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제법 많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김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부모가 낮시간 집을 비우는 저소득층 아동에게는 지방자치단체가 한 끼에 3000~5500원가량의 음식 쿠폰을 준다”면서 “하지만 시골 아이들은 이 쿠폰을 쓸 수 있는 식당이나 편의점을 찾기 어려워 굶기도 한다”고 전했다. 세심한 건강관리가 필요한 노인도 돈이 없으면 먹을거리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렵다. 서울 동작구의 달동네인 ‘밤골마을’의 독거 노인 윤모(84·여)씨는 하루 세 끼를 쌀죽으로 해결한다. 아들 2명과는 명절 때도 보기 어렵지만 부양 능력을 갖춘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신청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이 때문에 윤씨의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20만원과 서울시의 지원금 15만원 등 35만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는 마트에서 식재료를 제대로 사 먹기 어렵다. 인근 N교회에서 김치와 무조림 등 밑반찬을 가끔 가져다주는 것을 그나마 죽에 곁들여 먹는다. 윤씨는 “아는 과일장수가 가끔 바나나를 가져다주는데 이 과일을 잘 으깨어 죽에 넣어 먹는 것이 내가 먹는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했다. 장년층 남성도 먹는 문제에 취약하다. 서울의 한 주민센터 관계자는 “특히 50~64세의 혼자 사는 남성이 먹는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65세가 넘으면 복지관에서 밑반찬 서비스라도 받지만, 그 직전 나이대는 전혀 관리대상이 안 된다”고 했다. 이들 남성은 공사장에서 일할 때는 ‘함바집’(건설현장의 간이식당) 밥이라도 먹지만 평소에는 집에서 찬물에 밥 말아 김치를 올려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학생 등 청년빈곤층도 먹는 문제 앞에서 서러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대학 입학 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한 대학생 이모(26)씨는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 지쳤을 때 맥주 한 모금이 절실하지만 늘 주머니 사정 때문에 머뭇거린다. 큰 맘 먹은 날에는 을지로 3가의 허름한 맥줏집을 찾아가는데, 그가 시키는 안주는 늘 1000원짜리 ‘노가리’다. 자기 돈으로 ‘치맥’(치킨과 맥주)을 주문하는 것은 꿈도 못꾼다. 이씨는 “친구들에게 자주 얻어먹다 보니 이젠 미안함을 넘어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극빈층 ‘스튜던트 푸어’인 서울의 한 사립대생 정모(24)씨는 두 달에 한 번씩 꼭 헌혈을 한다. 햄버거 교환권이나 영화 관람권을 주기 때문이다. 정씨는 “평소에는 1000~2000원이 아까워 햄버거가 먹고 싶어도 편의점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일이 많다”면서 “가끔 친구들이 5000~6000원 하는 순대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돈 없다고 하기가 자존심이 상해서 난감하다”고 했다.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서울광장] 현대판 음서라는 로스쿨 제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현대판 음서라는 로스쿨 제도/오일만 논설위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폐지 여론이 거세다. 다양한 인재 충원과 전문성 확보를 기치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시행 6년을 맞으면서 초기부터 불거진 회의론이 최근엔 무용론으로 번지고 있다. 대신 2017년 폐지가 확정된 사법시험을 존치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로스쿨 입학과 졸업 후 대형 로펌의 취업 과정에서 집안 배경이나 부모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 요지다. 로스쿨 제도는 현실적으로 대학 졸업 후 3년간의 시간과 억대의 학비를 기회 비용으로 지불할 수 있는 계층에 유리하다. 그래서 ‘로스쿨은 상속이 부를 넘어 사회적 지위의 원천이 되게 만드는 제도’로 변질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로스쿨 폐지를 주장한 신호영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로스쿨 계속 갈 것인가’<서울신문 1월 19일자> 칼럼은 현직 교수의 정확한 현실 진단이란 측면에서 의미가 컸다. 인터넷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상에서 댓글을 통해 격한 동감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틀을 만들고 사고와 행동의 방향까지 규정짓는 법조계를 일부 계층이 독점해 가는 현실은 사회 안정성과 계층 간 유동성 측면에서 아주 불길한 징조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는 어딘가 잘못된 사회다. 고려나 조선시대에나 가능했던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 21세기에 재현됐다는 의미에서 로스쿨을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가난하지만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이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힘겹게 대학을 다니는 서민의 자식들에게도 최소한의 문호는 개방돼야 한다. 지난해 사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현직 경찰 김신호 경위의 분투기는 눈물겹다. 3년 4개월 동안 매일 오전 5시에 경찰서에 출근해 업무 시작 전까지, 업무가 끝난 뒤 다음날 오전 1시까지 하루 평균 9시간씩 책과 씨름했다고 한다. 2004년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막노동꾼 출신의 장승수씨도 세 차례 도전 끝에 사시에 합격했다.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차디찬 현실에 굴하지 않고 인생 역전의 꿈을 키우는 청년들에게 시작도 하기 전에 꿈을 접으라고 하는 것이 바로 현행 로스쿨 제도다. 가장 공정한 시험 시스템은 합격자가 만족하는 제도가 아니라 불합격자가 승복할 수 있는 제도다. 주위에서는 벌써부터 실력보다 배경을 통해 로스쿨에 입학하고 변호사나 검사가 됐다는 ‘카더라 통신’들이 난무한다. ‘순경시험에 7번 떨어진 친구가 연줄로 지방대 로스쿨에 갔다거나 전직 아무개 검찰총장 손녀딸이, 아무개 시장 아들이 검사로 특채됐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변호사 시험에서 성적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이라 실력 이외의 것들이 작용할 개연성도 있다. 수익 우선주의인 대형 로펌 입장에서 실력이 비슷하면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집안이 좋은 응시자에게 눈길이 가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로스쿨을 운영 중인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 3국이다. 독일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기존 사시 출신에 비해 법 지식과 실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시행 13년 만인 1984년에 제도 자체를 폐지했다. 우리보다 5년 먼저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문제점 탓에 회의론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로스쿨의 본고장 미국도 시끄럽다. 세계적인 법학자인 브라이언 타마나하(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가 2013년 ‘로스쿨은 끝났다’(Failing Law schools)는 책을 통해 로스쿨과 법조계의 추잡한 이면을 폭로해 경종을 울렸다. 이렇듯 국제적으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로스쿨 제도는 2007년 7월 법안 통과 당시에도 여야가 사학법 재개정안과 빅딜하면서 졸속 처리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현재 변호사시험법 개정안 4건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그동안 논의 과정을 보면 사시와 로스쿨 병존이라는 투 트랙으로 방향을 잡아 가고 있는 듯하지만 13년 만에 로스쿨 제도를 폐지한 독일의 사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백년대계의 국가 초석을 놓는 마당에 6년이란 시간과 국가적 비용이 아깝다고 눈을 감는 것은 그야말로 국회의 직무유기다. 로스쿨 폐지야말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정 목표에 정확하게 부합된다. oilman@seoul.co.kr
  • [단독] 옷무덤 쇼핑…1000원도 사치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

    [단독] 옷무덤 쇼핑…1000원도 사치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

    “골라 골라. 천원 천원!” 체감온도가 영하 6도까지 떨어진 지난 7일 서울 동묘앞 역 벼룩시장. 동묘 담벼락을 끼고 이어진 길가 곳곳에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는 손때 묻은 티셔츠와 바지, 코트와 패딩 등 각양각색의 중고제품 옷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목도리에 모자까지 뒤집어쓴 손님 십여명이 이 ‘옷 무덤’들 중 한 곳에 웅크리고 앉아 입을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바삐 옷들을 헤집는다.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입고 온 점퍼를 벗고 골라잡은 패딩 점퍼 하나를 그 자리에서 걸쳐 본다. 좀 더 값이 나가는 물건들은 길거리에 놓인 가판대나 이동식 옷걸이에 걸려 있다. 5000원짜리 바지에서 2만원짜리 점퍼, 5만 5000원짜리 패딩도 있다. 옷더미 속에서 1000원짜리 베이지색 바지를 구입한 박모(60)씨는 “남이 입었던 것이지만 집에 가서 빨면 새것이나 똑같다”면서 “운이 좋으면 예상 외로 좋은 물건을 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경기 하남시에서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는 그는 입고 있던 검은색 패딩 점퍼도 이곳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비수급 빈곤층인 김모(44)씨는 1년에 대여섯 번 이곳에서 ‘쇼핑’을 한다. 이번 겨울에는 2만원짜리 ‘짝퉁’ 블랙야크 방한점퍼와 5000원짜리 바지를 구입했다. 한 달에 열흘 정도 막노동을 해 80만~90만원을 버는 김씨에겐 이 옷이 ‘생활복이자 작업복’이다. 막노동을 하러 갈 때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이 옷을 입는다. 여름옷은 1만원이면 두 벌을 사는데 겨울옷은 가격이 더 비싸니 부담이 배가 된다. 김씨에게 패션을 통해 개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먼 나라 얘기다. 옷이란 몸을 가리고 추위와 더위를 막는 ‘원시적’ 기능을 할 뿐이다. 여름에 김씨는 서울역 앞에서 자원봉사단체들이 나눠 주는 옷과 자신의 옷을 교환해서 입고는 했다. 김씨가 입었던 옷을 단체에 주면 세탁된 옷을 내주고 김씨의 옷은 세탁해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방식이다. 노스페이스 매장에서 구입한 15만원짜리 바지가 김씨가 가지고 있는 가장 ‘럭셔리’한 옷이다. 그는 지금보다 어렵게 살 때에는 남의 집 마당 빨랫줄에 널린 빨래를 훔쳐 입은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김씨의 또 다른 쇼핑 장소는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풍물시장이다. 이곳은 동묘 벼룩시장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다. 2층짜리 건물 안에 있는 시장이었지만 추위 때문에 패딩 점퍼나 장갑을 끼고 있는 상인들이 많이 보였다. 곳곳에 전기 난로가 켜 있었지만 추위를 온전히 물리칠 수는 없었다. 짝퉁 가방을 파는 한 상인은 칠이 벗겨진 검은색 가방에 구두약을 바르고 있었다. 손때가 묻은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스피디 백과 구찌, 펜디 가방 등 짝퉁처럼 보이는 명품 백들이 뒤섞여 있었다. 물건 종류와 상관없이 상태가 좋으면 1만원, 좋지 않으면 7000원이라고 했다. 얼룩이 진 1만원짜리 짝퉁 버버리 트렌치코트와 4만 5000원짜리 에르메스 스웨터, 때가 탄 3만 5000원짜리 나이키 운동화도 보였다. 이곳에서 점퍼를 팔고 있는 이모씨는 “5000원짜리부터 100만원짜리까지 있다”면서 “요즘에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찾는 사람이 줄었다”고 했다. 노원구 중계동에서 만난 기초생활수급자 김모(39)씨는 여름과 겨울에 한번씩 1년에 총 두 차례 쇼핑을 한다. 쇼핑이 ‘연례 행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주로 온라인 쇼핑몰인 G마켓에서 옷을 구입한다. 싱글맘인 김씨는 “한번 살 때 윗옷 4벌, 바지나 치마 3벌 정도 사는데 한벌당 5000원이 넘으면 안 된다”고 했다. 디자인이나 질보다는 가격이 절대적 기준이 되다 보니 티셔츠와 같은 심플한 옷만 사게 된다고 말하는 김씨의 티셔츠는 목 부분이 늘어나 있었다. 김씨는 “나와 사정이 비슷한 엄마들도 가끔씩은 백화점을 가지만 나는 세일을 해도 백화점엔 가지 않는다”면서 “물건을 보면 솔직히 다 사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어 신경질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8개월짜리 딸을 포함해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김씨가 아끼는 옷은 5년 전 G마켓에서 구입한 5만원짜리 원피스다. 예식장이나 돌잔치 등 중요한 행사 때만 가끔 입는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이모(26)씨도 최근 롯데닷컴에서 폴햄 패딩을 85% 세일로 6만원에 샀다. 온라인 쇼핑몰 외에는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패션(SPA) 브랜드를 이용한다. 저렴하고 트렌드에 강한 옷들이 많기 때문이다. 계절별로 1년에 4회 쇼핑을 한다. 겨울옷은 조금 비싼 것을 감수하지만 여름 티셔츠는 무조건 2만원, 셔츠는 4만원 밑이어야만 산다. 의류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김씨는 ‘패션 중독자’라고 불릴 정도로 유행에 민감했다. 그러나 대학교 1학년 말 벤처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빈곤층으로 전락한 이후엔 옷 한 벌도 선뜻 사기 어려운 신세가 됐다. 현재는 초등학생 2명과 고등학생 1명을 대상으로 과외를 해 월 90만원을 벌고 있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빠듯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안 사고 오래 입는 것’이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기 전 샀던 120만원짜리 코트를 8년째 입고 있다. 이씨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면 기계는 마모될 때까지 쓴다고 전제하고 미래 마모 비용까지 계산하지만 옷은 그렇지 않다. 옷은 낡지 않아도 유행이 지나면 다들 다시 사 입지 않느냐”면서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진짜 옷이 마모될 때까지 입게 되더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캐러멜색 면바지의 가랑이 부분을 보여 줬다. 낡아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김씨는 “친구 중에는 수백만원짜리 몽클레어 패딩을 입거나 300만원짜리 시계를 찬 친구들도 있다”며 “나도 명품 좋아했지만 이제는 부모님 돈 받아서 명품 사는 건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얻어 입는 것’도 방법이다. 은평구에 사는 싱글맘 박모(30)씨는 “어머니가 주변의 아시는 분을 통해 아기 옷을 얻어 줬다”며 “그래도 신생아 때 입는 배냇저고리만큼은 내 돈으로 샀다”고 했다. 박씨는 43개월 된 딸 지은(가명)이의 옷을 사야 할 때는 주로 집 근처에 있는 이마트나 시장, 온라인을 이용한다. 그녀는 “올겨울 들어 아기가 계속 감기를 달고 살아서 이마트에서 내복을 사줬다”면서 “특가할 때 세트로 사는 게 싸다”고 했다. 남대문시장이 싸다고 하지만 차비를 생각하면 집 근처 시장이나 인터넷에서 사는 게 더 낫다는 게 박씨의 생각이다. 박씨는 “내 옷 사는 것보다 아기 옷 사는 게 더 좋아서 자꾸 그쪽에 눈길이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기 옷 원단이 어른 옷보다 훨씬 적게 드는데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쯤 되면 얻어 입히는 것마저 쉽지 않다. 맞는 옷을 찾기 힘들뿐더러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남이 입었던 옷을 입는 것에 대해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아이 넷을 키우고 있는 간호조무사 김모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5, 6학년이었던 두 아들은 한 벌당 9만원이었던 태권도 학원 유니폼과 점퍼를 일상복처럼 학교 갈 때에도 입고 다녔다”면서 “지금까지는 부끄러운 줄 몰랐던 모양인데 중학교에 들어가면 걱정”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지인들에게 옷을 얻어 입혔는데 최근에는 아이들이 자고 나면 부쩍부쩍 크고 있어 어려워지고 있다고 김씨는 토로했다. 올겨울에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큰맘 먹고 ‘뱅뱅’에서 두 아들의 외투 두 벌을 10만원대에 구입했다. 경기 화성시 임대아파트에 사는 박모(42·여)씨의 딸 아름(14·가명)이는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올겨울 초 지난해 입던 외투를 꺼내 입었다가 깜짝 놀랐다. 1년 사이에 키가 5㎝ 이상 자라는 바람에 옷이 작아져 입을 수가 없었다. 박씨는 속상해 울고 있는 아름이를 겨우 달랜 뒤 할머니 외투를 입혀 등교시켰다. 박씨는 “집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것을 아는 아이가 옷 사 달라는 말은 못하고 밤새 혼자 끙끙대고 있었다”면서 “크리스마스 직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삼성중공업의 후원으로 패딩을 선물 받고 아이가 너무 기뻐했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장모(42)씨도 최근 동네 아웃렛에서 고등학교 1학년인 큰딸에게 13만원짜리 점퍼를 사줬다. 장씨는 “아이가 생전 브랜드 옷을 사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어렵게 얘기를 하기에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그것도 아이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에 보태서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백화점에 가 보니 100만원이 넘는 옷들도 있던데 그 돈이면 우리 가족 한 달 생활비”라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이모(33)씨의 딸들은 일찍부터 가난을 깨달았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이씨는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 5학년인 딸 셋을 키우고 있다. 정부에서 주는 수급비 66만원 외에 장난감 자동차 부품 조립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에 20만~30만원씩 벌었으나 최근에는 허리가 아파 그마저도 그만뒀다. 이씨는 “집안 형편을 잘 아는 아이들이 일찍 철이 들어 옷 사 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송수연 이두걸 유대근 기자 songsy@seoul.co.kr
  • [세계의 창] 美 노숙자 61만명… “경제회복은 숫자일 뿐 극빈층 삶 더 팍팍”

    [세계의 창] 美 노숙자 61만명… “경제회복은 숫자일 뿐 극빈층 삶 더 팍팍”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것이라면 영하로 떨어진 추위에 한 손에 구멍 난 장갑을 꼈다는 것뿐이다. 기자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로 향하는 버지니아주 펜타곤시티 지하철역 입구에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40대 흑인 남성에게 동전을 건넸다. 노숙자인 그를 지하철역에서 보는 건 벌써 7개월째다. “미국 경제가 나아졌다는데 사람들한테 받는 돈은 좀 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2년 전 다리를 다쳐 실직한 뒤 빚더미에 앉았다가 노숙자가 됐다고 했다. 그는 아침 일찍 지하철역 앞에 나와 구걸하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간다. 지난 몇 달간은 지하철역 안에서 자거나 공원 벤치 등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날씨가 추워지자 시당국 및 피난처 지원 시민단체 등의 도움으로 인근 체육관으로 향했다. 세계 경제 침체 속에 유독 미국 경기만 회복세를 타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수도 워싱턴DC 지역에는 갈 곳을 잃은 노숙자가 넘쳐나 암울한 현실을 보여 준다. 한쪽에서는 실업률이 낮아지고 기름값도 내려갔다며 안도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극빈층의 삶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더욱 힘들어져만 간다. 미국 내 노숙자 지원 시민단체 노숙근절전국연합(National Alliance to End Homelessness)이 지난해 5월 발표한 ‘2014 노숙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50개 주와 워싱턴DC 등 미 전역에 있는 노숙자는 모두 61만 42명으로, 인구 1만명당 19.3명꼴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63만 3782명)보다 3.7% 줄었든 규모이나 뉴욕 등 21개 주에서는 노숙자가 오히려 늘었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노숙자들이 몰려 워싱턴DC는 1만명당 106.2명, 하와이주 45.1명, 뉴욕주 39.4명, 캘리포니아주 35.7명 등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인근에서 만난 백인 남성은 대형 쇼핑 카트에 담요·가방 등을 잔뜩 넣은 채 힘겹게 끌고 있었다. 벤치가 나타나자 그곳에 담요를 꺼내 깔고 밤을 지낼 준비를 했다. 기자가 다가가 “오늘 밤 영하로 내려갈 텐데 여기 있으면 동사할 수 있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어제도 여기 있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면 워싱턴DC 당국 픽업 트럭이 돌면서 노숙자들을 태워 인근 피난처로 데려간다”며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을 50대 ‘케빈’이라고 밝힌 이 남성은 “DC 당국이 대형 레크리에이션센터 3곳을 노숙자용으로 활용한다. 지난해보다 센터에 노숙자들이 더 많이 몰려와 같이 있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워싱턴DC 당국에 따르면 DC 내 가장 큰 피난처인 셔우드 레크리에이션센터에는 최근 매일 밤 300여명의 노숙자가 찾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가 늘어난 규모다. 특히 노숙자 가족들이 매주 늘고 있다. 케빈은 경기가 되살아나는 것과 노숙자가 많은 것은 별개라고 했다. 상당수 노숙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등 경제 침체의 영향을 받은 개인이지만, 그 전부터 노숙을 해온 ‘만성 노숙자’와 참전용사 등도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경제가 나아진다고 하지만 노숙자들이 취업할 곳은 마땅히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백악관·재무부 등 주요 정부 건물과 가깝게 위치한 패러것광장은 노숙자들의 ‘천국’이다. 삼삼오오 몰려 앉은 노숙자들은 오전 11시부터 광장 주위를 둘러싸는 푸드트럭 근처에서 구걸한 뒤 돈을 모아 7~9달러(약 7600~9700원)짜리 트럭 밥을 사서 나눠 먹는다. 멕시칸 푸드트럭 관계자는 “미국 경제 회복이 숫자상으로는 확실히 나타나는 것 같은데 저렴한 푸드트럭을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다”며 “음식값을 올리려고 해도 손님을 잃을까봐 지난해와 똑같이 팔고 있다. 특히 노숙자들에게는 우리 음식도 비싸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기자는 지난 13일 워싱턴DC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연방 건물이 밀집한 지역 인근 아카이브 지하철역 앞에서 ‘도와주세요, 아들이 아픕니다’라는 문구의 푯말을 들고 앉아 있는 30대 백인 여성을 만났다. 얇은 담요를 두르고 도움을 청하는 그에게 다가가 동전을 건넸다. 다행히 한 흑인 남성도 1달러를 건네고 지나갔다. “왜 거리로 나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남편이 실직한 뒤 나까지 정신병을 겪게 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섯살 난 아들이 아파 홈리스(노숙자)를 택했다. 그래도 여기 앉아 있으면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 여성도 저녁이 되면 가족들을 데리고 노숙자 피난처인 레크리에이션센터로 향할 예정이다. 남편은 근근이 막노동을 하며 아들 병원비를 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워싱턴DC 당국이 도와줘 담요와 간이 침대도 쓸 수 있고, 칠리 수프도 먹는다”며 “경제가 나아진다는데 우리 가족에게도 희망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月10만원이라도 저축 쪽방의 재테크는 희망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절대 빈곤층의 재산 관리

    月10만원이라도 저축 쪽방의 재테크는 희망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절대 빈곤층의 재산 관리

    경기 하남시에 사는 싱글맘 A(39)씨는 세 자녀 명의로 한 달에 총 10만원의 생명보험료를 내고 있다. 저축성 보험이라 비상시에 대비하면서도 돈까지 모을 수 있다. 여기에 가급적 매달 10만원씩 저축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팍팍한 살림 탓에 아직까지 100만원밖에 모으지 못했다. 그러나 A씨는 아라비아 숫자 ‘0’이 6개 일렬로 찍힌 통장 잔고를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보험료와 저축액을 합해 매달 많아야 20만원이 나가는 정도지만 A씨에게는 쥐꼬리만 한 수입의 6분의1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돈이다. A씨의 한 달 수입은 월 130만여원의 기초생활보장수급비가 전부다. 이 중 지금 살고 있는 15평 빌라 월세로 41만원이 나간다. 여기에 생후 8개월인 막내딸이 쓰는 기저귀 등 육아용품으로 20만원, 본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쓰는 휴대전화 요금으로 10만원, 아들의 태권도 학원비 12만원, 큰딸(4살)의 어린이집 특별활동비 8만원 등이 더해진다. 식비로는 20만원 정도 쓴다. 수급권자로서 전기나 수도 등 각종 공과금 할인 혜택을 받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A씨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저축을 하지만 ‘그 돈이면 큰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도 있는데’ 하는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간호조무사 B(45·여)씨도 매달 15만원의 정기 적금을 붓는다. 간호조무사 월급 135만원에 주말 일본어 과외로 버는 24만원, 정부에서 극빈층 모자 가정의 초등학생 이하 자녀에게 한 명당 5만원씩 지급하는 지원금까지 합쳐 B씨의 한달 총수입은 174만원이다. B씨는 “고등학생을 포함한 자녀 4명과 함께 어떻게든 먹고살기 위해 매일 전쟁을 벌이지만 저축마저 안 하면 살아갈 의욕을 잃을 것 같다”고 했다. B씨의 간호조무사 업무 시간은 오전 7시 20분부터 오후 7시까지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 14시간 넘게 일에 쏟아붓고 있다. 토요일은 쉬지만 일요일에는 격주로 출근한다. 이렇게 해서 매달 30만원의 월세 외에도 전기비, 수도비 등으로 30만원을 낸다. 한창 크는 아이들은 무섭게 먹는다. 아무리 못해도 식비로 60만원은 써야 한다. 둘째와 셋째 태권도 학원비로 19만원, 막내 어린이집 독서교실 비용으로 5만원을 쓴다. 중계동의 판자촌 ‘백사마을’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C(73)씨도 없는 살림 가운데서도 조금씩을 쪼개 저축하고 있다. 매달 부부가 받는 노령연금 40만원과 조금씩 나오는 국민연금이 수입의 전부다. 이 중 20만원을 매달 은행에 넣고 있다. 좀 더 괜찮은 곳으로 집을 옮기고 싶어서다. C씨는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전세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돈을 조금씩 비축하는 중”이라며 “서울을 벗어나면 전세가 좀 싸니까 꾸준히 모으면 이사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그는 “여기 사는 사람들이 다 어렵게 살지만 그래도 좋은 곳으로 전세를 얻어갈 꿈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했다. C씨는 현재 살고 있는 판잣집에 1500만원의 보증금을 집주인한테 주고 들어왔다. 전세 보증금 격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통의 전세 개념은 아니다. 비가 새고 무너질듯한 낡은 집에 집주인이 1500만원만 받고 사실상 무한정 살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 일반 전세와 달리 집 수리도 다 C씨의 돈으로 해야 한다. 그는 “그래도 다른 데 가면 못해도 7000만~8000만원은 줘야 전세를 얻는데 여기는 이렇게 (구호단체에서) 연탄도 날라 주고 하니 당장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이런 데가 없다”고 했다. C씨는 매달 두 부부 휴대전화(폴더폰) 요금과 식비 등을 빼면 특별히 나가는 돈이 없어 저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세 사람의 경우와 같이 하루하루 먹고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절대빈곤층 중에서도 없는 돈을 쪼개 저축하는 가구가 서울신문 취재 결과 아주 적게나마 있었다. 내일에 대한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빈곤층 중에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저축을 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 관계자는 “할머니들은 기초생활수급자라도 수급비를 통장에 알뜰하게 모아 두지만 할아버지들은 며칠 만에 다 써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극빈층 남성 D(44)씨는 한때 지방 공사현장이나 양계장 등에서 일할 때는 한 달에 400만원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주머니에 일단 돈이 들어오면 남김 없이 쓰는 습성 탓에 돈을 모으지 못했다. 한 달 수입이 90만원에 불과한 요즘도 그는 주머니 사정이 좀 괜찮다 싶으면 한 그릇에 3만원이 넘는 ‘전복 삼계탕’을 사먹는다. 배우자가 없는 D씨는 돈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을 뿐 아니라 돈에 대한 개념도 익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져 일을 못할 때를 대비해 돈을 쌓아 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저축 습관이 들지 않아 주머니에 일단 돈이 들어오면 쓰는 편”이라고 했다. D씨는 한 달 평균 10일 정도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한다. 날씨가 나쁘거나 일자리가 바로 나타나지 않아 더 많은 날을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일당 10만원에서 직업소개소 소개비로 1만원을 뗀 9만원이 그의 하루 수입이다. 매달 생활비는 40만~50만원 정도 들어간다. 현재 살고 있는 빌라 임대료는 월 17만원. 지난해 11월에 전기비 3만 1050원, 수도비 1만 2950원, 디지털TV 요금 3만 2890원, 도시가스 요금 3100원을 썼다. 이를 함께 사는 지인과 나눠 낸다. 식료품과 각종 용품 등을 사면 남는 돈은 매달 10만원 정도인데 이 돈은 PC방 요금 등 여가 비용으로 쓴다. 하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이어가느라 허덕이는 다수의 빈곤층에게 저축은 ‘사치’에 가깝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에 사는 E(65·여)씨의 최근 한 달 수입은 50만원이 채 안 된다. 이 돈으로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인 손자 2명과 연명하는 처지다. 노령연금 20만원과 복지단체의 조손가정 지원금 24만원이 전부다. 노령연금이 나오기 전에는 한 달에 10만원으로 생활한 적도 있다. E씨는 한겨울에도 가스 난방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잘 때만 전기장판을 잠시 튼다. 가스비는 1000원 이하, 전기비와 수도비도 각각 1만원 남짓만 나온다. 식비는 아무리 안 먹어도 한 달에 20만원은 써야 한다. 동네 마트의 ‘떨이 상품’을 주로 산다. 그나마 주변의 도움이 있어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지역 복지관에서 밑반찬을 지원받고 10㎏에 2만 2900원 하는 정부미를 동사무소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DHD) 증세를 보이는 큰손자는 초등학교 교사의 지원으로 매달 8만원을 내야 하는 태권도를 무료로 다닌다. 작은손자는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이 철마다 옷을 사준다. E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2010년 이전에는 매달 20만원 정도 저축을 했지만 이젠 다 까먹고 남의 얘기가 돼 버렸다”고 했다. E씨의 현재 생활형편만 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되고도 남지만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에 땅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E씨는 “남편이 사망하면서 유산으로 나하고 두 아들한테 공동 명의로 땅이 상속됐다”며 “그러나 아들들이 사이가 안 좋은 데다 작은아들은 감옥에 들어가 있어 땅을 처분하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F(91·여)씨도 노령연금 20만원에 공장에 다니는 손녀딸이 보내주는 30만원 등 5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한다. 이 돈으로 인근에 사는 수양딸이 F씨를 봉양한다. 매달 각종 약값만 10만원이 나간다. F씨는 “젊었을 때 장사하러 돌아다니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골다공증에 걸려 파스 없이는 한시도 못 견딘다”면서 “여기에 우울증약과 우황청심환 등을 사면 남는 돈이 없다”고 했다. 빈곤층의 경우 상속은 꿈도 못 꾼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실은 이를 종종 배반한다. 부천에 사는 독거노인 G(82)씨는 자식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60대인 두 아들이 변변한 직업이 없는데도 매달 그에게 10만원씩 부쳐 준다. 음식은 주말마다 집에 들르는 둘째 며느리 몫이다. 의복 역시 복지관에서 얻어 입거나 며느리가 가져온 옷을 입는다. G씨의 한 달 수입은 노령연금 20만원과 아들들이 부쳐 주는 돈을 합해 30만원이 전부다. 한때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10여평의 집도 갖고 있었지만 부인 병치레 등으로 다 날렸다. G씨는 “노령연금으로 가스비 등 각종 공과금을 내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어렵게 사는 와중에 자식들로부터 부양은 못 받을망정 시달림을 받는 노인들도 보인다. 강남구 개포동의 판자촌 ‘구룡마을’에 사는 70대 후반의 H씨는 “가끔씩 자식들이 찾아와서 (그나마 있는 돈을) 싹 뒤져서 가져간다”면서 “그래봤자 워낙 가진 돈이 없으니 가져가는 돈도 별로 없다”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기자 douzirl@seoul.co.kr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사는 300억원대 자산가 H(92)씨는 구순(九旬)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새벽 빠짐없이 일어나 외신을 꼼꼼히 챙겨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CNN 등 방송은 물론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경제 전문지도 태블릿PC로 살핀다. 속칭 ‘슈퍼 개미’인 그는 오전 9시 본인 소유의 강북 지역 빌딩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 국내 금융시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전까지 투자 전략을 짜고 투자를 단행한다. 개미 투자자들이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장기 투자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의 성공가도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는 영어였다.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몇 안 되는 ‘미국 유학파’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미군을 상대로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었다. 영어를 통해 얻은 정보가 ‘일확천금’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이를 토대로 부동산과 주식으로 투자 범위를 넓혀 본격적으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요즘 연 10억원 가까운 빌딩 임대료 수익을 얻지만 여전히 영어를 토대로 한 국제 감각을 활용해 돈을 번다. 그의 투자 대상은 우리나라를 벗어난다. 해외 금융시장뿐 아니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부동산 투자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종종 탄다. 체력 유지도 필수적이다. 매일 새벽 일어나 맨손 체조를 한 뒤 인근 야산을 오르내린다. 여간해서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는다. 과다한 운동으로 얼마 전에는 발목 수술을 받았을 정도다. H씨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전 세계에서 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각을 유지하니 돈이 수중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H씨의 경우 100% ‘개천에서 용 난’ 사례로 볼 수는 없지만 본인의 노력이 상당 부분 작용한 자수성가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H씨 이후 세대 중에서는 부모로부터 직접적으로 받는 상속이 부를 형성하는 추세가 짙어지고 있다. 경기 고양에 사는 I(41)씨는 1년 전 부모로부터 시가 30여억원의 공장 부지를 물려받았다. 부모가 손주들 교육비에 보태 쓰라면서 증여를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증여는 고소득으로 이어졌다. 그는 부지 내 5곳의 공장으로부터 매달 750만원의 임대료를 받는다. 가만히 앉아서 올리는 임대 수입만 한 해 9000만원으로 웬만한 고액 연봉자 수준이다. 돈이 돈을 버는 ‘행운아’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의 부모는 공직 생활 도중 틈틈이 땅을 사 모은 덕에 1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그가 부모의 도움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러 차례 사업 밑천을 대준 것은 물론 사업이 망했을 때 뒷감당도 부모 몫이었다. 일반인에게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패자부활전’을 그는 부모 덕에 여러 차례 치른 셈이다.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J(38·여)씨는 최근 2년간 증여세만 2억원 넘게 냈다. 시댁으로부터 10억원 이상을 물려받았다. 주식과 토지, 현금 등 형태도 다양하다. 패션 업종 중견 업체를 경영하는 시댁은 앞으로도 틈틈이 증여해 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살고 있는 압구정동의 상가 건물 역시 J씨 부부의 소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않는 한 꿈도 꿀 수 없는 금액이다. J씨는 증여받은 재산을 시댁에서 소개해 준 시중은행 프라이빗 뱅커(PB)에게 맡겨 관리한다. 금융상품의 수익률은 연 5% 정도다. 10%가 넘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 불경기와 저금리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적지 않다. 월급 말고도 연 5000만원은 통장에 꼬박꼬박 들어온다. J씨는 “시부모께서 과거에 세금 문제 때문에 곤란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자식들이 일찌감치 돈을 굴리는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재산을 미리 나눠 주고 있다”고 했다. 전직 대학교수인 K(68)씨는 3년 전 정년퇴직을 하면서 100억원대 재산 중 70억원 정도를 2남 1녀인 자식들에게 나눠 줬다. 서울 반포 특급호텔 헬스 회원권과 K씨 부부의 실버타운 생활비, 1년에 한 번 정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비용 등 총 30억원이 그에게 남은 전부다. K씨는 “셋 중 형편이 좀 안 좋은 아들 한 명에게 증여를 더 하려고 했지만 딸이나 사위 눈치가 보여 똑같이 재산을 나눠 줬다”면서 “그래도 죽기 전에 ‘숙제’를 마친 것 같아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장인 L(44)씨의 사례는 부모의 재산과 개인의 능력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그의 연봉은 10억원이 넘는다. 미국 본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성과급까지 합쳐 연 200만 달러를 넘게 번 적도 있다. 현재 그의 자산은 100억원대다. 그러나 이를 모두 연봉만으로 모은 건 아니다. 부모의 증여가 큰 뒷받침이 됐다. 그의 부친은 한때 국내 굴지의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관련 기업의 CEO로 재직 중이다. L씨의 부친은 아직까지 그에게 본격적인 상속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예금과 보험 등을 활용해 20억원 가깝게 물려준 상태다. L씨는 자신의 연봉과 이를 종잣돈 삼아 금융상품에 직접 투자한다. 미국과 싱가포르, 홍콩 등의 금융시장이 주 무대다. 현재 거주 중인 서울 용산의 15억원대 아파트와 함께 싱가포르에 주상복합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그가 미국의 유명 사립고와 명문대를 졸업한 뒤 소위 ‘잘나갈 수’ 있었던 것도 부모의 막대한 교육비 투자가 ‘마중물’이 됐다. L씨는 “몇 년 전에는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선물옵션에서도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면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부친과 투자 정보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L씨의 경우처럼 단순히 돈을 주는 것뿐 아니라 ‘노하우’를 전수하는 부자도 보인다. ‘물고기’ 대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부모 세대가 물려준 부를 효과적으로 늘리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 제조업체 사장 M(64)씨는 아들이 미국에 유학 중일 때는 학비와 생활비를 전액 지원해 줬다. 그러나 방학 때 한국으로 들어오면 용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네 유흥비는 네가 벌어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식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방학 기간에는 화장품 공장 등에서 틈틈이 일해 용돈을 벌었다. M씨는 “외환위기 직후 서울 강남이나 대전 등으로 땅을 보러 갈 때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아들을 꼭 데리고 갔다”면서 “부동산뿐 아니라 좋은 ‘물건’을 어떻게 판별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알려준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재산 관리를 위해 ‘정치판’에 뛰어드는 부유층도 발견된다. 특히 ‘상위 0.1% 부자’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는 사회적 영향력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500억원대 자산가인 N(44)씨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맨’이었다. 대학 졸업 뒤 15년 가까이 국내 대형 시중은행에서 근무했다. 본점에서 쭉 일할 정도로 능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 직장을 제 발로 걸어나갔다. 부동산 관리업을 하던 부친에게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서다. 마침 당시 금융권의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요즘엔 수도권 지역의 여당 당원협의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명예직’에 가깝지만 산하 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맡았다. N씨는 “경제력을 갖췄으니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우리 집안의 부를 지키기 위한 ‘방패’를 얻는 게 정치 활동의 일차적 목표”라며 “재산이 일정 정도 넘어서면 정치적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의 대물림’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상위 1% 부자도 많다. 돈은 무엇보다 강력한 ‘권력’인 만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손에 쥐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PB는 “부자들은 돈의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데다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를 권하기도 쉽지 않아 미리 증여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증여 시점이 늦어질수록 그리고 분산하지 않고 한꺼번에 할수록 증여세 부담은 커진다. 그는 “고객 중 한 명이 얼마 전에 시가 130억원짜리 빌딩을 매각했지만 증여세 등을 떼고 나니 결국 자식에게는 50억원 정도밖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기부를 선택하는 자산가도 없지 않다. 명품 패션 브랜드 업체 대표인 O(59)씨는 얼마 전 두 명의 자식들에게 “재산의 20%만 상속하겠다”고 천명했다. 자식이 물려준 재산을 관리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자식을 망치는 일인 만큼 본인 스스로 돈 버는 재미를 느끼고 성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 이상은 악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O씨는 “재산의 20% 정도면 20여년 전 8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나보다 훨씬 여유 있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1평 쪽방 인생… 영구임대가 로또다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절대빈곤층의 주거

    1평 쪽방 인생… 영구임대가 로또다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절대빈곤층의 주거

    “없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첫째 조건은 집이에요” 김모(44)씨는 자신이 사는 서울 서대문구의 C빌라 401호가 호텔 같다며 흡족해했다. 16평짜리(방 2칸과 거실) 좁은 빌라 안을 채운 낡은 소파, 고장 난 세탁기와 전자레인지, 그리고 담배와 홀아비 냄새가 찌든 방안 공기까지 그 어떤 것도 호텔의 고급스러움을 닮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는 “거리 돌바닥에서 잠을 자 본 사람은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안다”고 했다. 막노동으로 월 90만원을 버는 김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저소득 독신자나 장애인, 미혼모 등에게 염가로 임대한 이 임대주택에 2009년 입주했다. 그는 이 집에서 또 다른 독신자 이모(48)씨와 함께 산다. 두 사람이 매달 모아 내는 월세는 17만 4200원. 벌이에 비하면 큰 액수지만 풍찬노숙을 피할 수 있기에 불만은 없다. 과거 10년 넘게 남산 인근 등에서 노숙했던 그는 “밖에서 자면 이불을 5개 덮어도 춥고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아프다”고 회고했다. 고물 수집 등으로 매달 20만~30만원이라도 벌 때는 월 17만원을 주고 서울역, 영등포 등지의 쪽방촌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는데 1평 남짓한 쪽방은 관(棺)에 갇힌 듯한 갑갑함을 줬다. 그는 “잠을 자다가 잠버릇처럼 입을 오물거렸는데 ‘우드득’ 하며 뭔가 씹히는 느낌이 나더라”면서 “급히 일어나 뱉었더니 바퀴벌레였다”고 했다. 그는 “먹을 것, 입을 것은 나눠 주는 곳이 많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살 곳은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복권에 당첨돼 1억원이 생긴다면 당장 월세를 전세로 돌리고 싶다”고 했다. 사실 저소득층의 대표적 주거시설로 알려진 장기공공임대주택(영구임대아파트, 장기전세주택 등)은 극빈층에게는 초특급 주거시설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빈곤층 사이에서는 ‘영구임대아파트에 당첨되면 로또 맞는 것과 같다’고 얘기할 정도”라고 전했다. 13살과 6살배기 딸을 둔 박모(42·여)씨는 3년 전 경기 화성시의 방 2칸(18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첫발을 들일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5년 전 남편의 사업 실패로 거리에 나앉았던 박씨는 두 딸과 동네 교회, 지인의 원룸 등에 얹혀살았다. 교회 기도방에서 1년간 살 때는 나무 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겨울 칼바람 탓에 돌 지난 막내딸을 밤새 안고 체온으로 ‘보일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교회 사람으로부터 “벌이가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166만원) 이하이니 영구임대아파트를 임대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당장 입주 신청서를 썼다. 그리고 7개월 만에 입주에 성공했다. 남편과 별거해 저소득 한부모가정을 꾸린 까닭에 입주 1순위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월세 15만원과 공과금 25만원 등 매달 40만원이 주거비로 들어간다. 새벽 신문배달 등으로 버는 월 80만원의 수입 중 50%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래도 그는 “큰딸은 방이 갖고 싶다고 했고 작은딸은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했는데 아파트에 입주해 둘 다 얻었다”면서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박씨처럼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할 확률’의 행운을 잡지 못하는 빈곤층은 일반 주택 시장에서 가장 싼 집을 찾아야 한다. 이들을 기다리는 건 전세 2000만~3000만원의 허름한 반지하 셋방이나 옥탑방 정도다. 그나마 돈이 없어 몇 달씩 방세를 밀리거나 집수리를 요구하다가 쫓겨나는 일이 흔하다. 초등학생 손주 2명과 함께 사는 장모(64·여·경기 부천시)씨는 최근 30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장씨는 “10년 넘은 보일러가 터져 주인에게 통사정해 수리를 받았는데 그 일 때문에 감정이 상했는지 갑자기 ‘내년 3월 전세 만기 때 집을 비우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빈곤층들은 겨울에 난방비를 아끼려 보일러를 오랫동안 틀지 않다가 고장 나는 경우가 있는데, 장씨의 경우처럼 집주인에게 밉보일까봐 수리를 요구하지 못하는 세입자가 적지 않다. 주거비 지출 비율이 워낙 높다 보니 꼭 필요한 세간 살림조차 사지 못하는 극빈층이 많다. 독거 노인 곽모(79·여)씨는 세탁기가 없어 아직도 손빨래를 한다. 8평짜리 집 안을 채운 살림이라고는 철 지난 브라운관 TV와 낡은 침대, 1단 목재 옷장과 서랍장이 고작이다. 대부분 남에게 얻거나 주운 것들이다.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는 홍모(45·여)씨가 사는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 거실에는 형편에 맞지 않는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다. 피아노가 없어 복음성가 가수를 꿈꾸는 첫째딸(15)이 공책에 흑백 건반을 그려 놓고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본 홍씨가 우유 배달을 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버려진 피아노를 발견해 집으로 들인 것이다. 건반 몇 개가 망가진 고물 피아노지만 딸에게는 ‘보물 1호’다. 서울의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독신 남성 정모(42)씨의 집에는 세탁기와 전자레인지가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다. 그는 “전자레인지는 지난해 겨울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윗집 남성의 유품을 건네받은 건데 몇 달 썼더니 고장 나더라”라고 했다. 저소득층 밀집촌은 치안도 열악하다. 독거 노인 한모(91)씨가 사는 경기 부천 다세대주택에는 입구에 가로등 하나 설치돼 있지 않아 성인 남성인 기자가 걸어가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서울 구로구의 단독주택 반지하 셋방에서 3살배기 딸을 키우는 한부모가정의 박모(29·여)씨는 새벽에 자다가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인기척이 들려 눈을 떠보니 누군가 골목길로 난 방 창문을 열고 들어오려 한 것이다. 박씨는 “‘누구냐’고 소리쳐서 실제 침입하지는 않았다”며 “집주인에게 방범창을 설치해 달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고 했다. ‘달동네’도 도시 극빈층의 오랜 보금자리다. 서울의 달동네·판자촌은 서대문구의 개미마을과 노원구의 백사마을, 강남구 구룡마을 등 몇 곳 남지 않았다. 10만~20만원짜리 월세방을 구할 수 있는 개미마을은 1960~1970년대 배경의 시대극 세트장을 옮겨 놓은 듯 남루하다. 주민 김모(56·여)씨는 “30년 전 결혼해 이곳에 들어올 때 ‘주거환경이 열악해 1년 뒤면 재개발된다’던 마을이 지금까지 그대로 있다”고 했다. 지은 지 40~50년 된 집들이 몰려 있지만 재개발 논의가 더디다. 전체 140여 가구(주민 250여명) 중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 마을 공용 화장실을 쓰는 이들도 많고 ‘푸세식’으로 불리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집도 20여곳 된다. 2년 전에는 당뇨를 앓던 50대 남성이 구식 변기를 쓰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똥 구덩이로 빠졌고, 며칠 지나 숨진 채 발견된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사정이 좀 나은 나머지 가구 대부분도 ‘쪼그려 앉기’식 수세식 화장실이다. 마을을 오르는 교통수단이라고는 ‘07번’ 마을버스가 유일한데 눈이 내리거나 빙판길이 되면 이마저 운행을 멈춘다. 하씨는 “등유 보일러가 있지만 씻을 때만 잠시 켜고 평소에는 장당 500원 하는 연탄 난로로 버틴다”면서 “아궁이에 불을 때 난방하는 집들도 아직 마을에 남아 있다”고 했다”고 했다. 용케 겨울을 버틴다 해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왕산 기슭의 가파른 비탈길을 사이에 두고 낡은 집들이 붙어 있다 보니 기온이 풀리는 봄에는 축대 붕괴사고 등이 가끔 발생한다. 김씨는 “몇 해 전 축대가 무너지면서 토사가 창문을 깨고 들어와 딸의 방을 덮쳤다”고 했다. 더운 여름에는 방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고 천장에서는 비가 줄줄 새기도 한다. 주민들은 2009년 대학생들이 미화사업차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준 이후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반갑지 않다. 이모(45·여)씨는 “사람들이 마당에 들어와 빨래 넌 것까지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밤에는 플래시를 터뜨려 노인들이 무서워한다”면서 “주민 중에는 ‘우리가 마치 벽화 속에 갇힌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다’고 푸념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쪽방과 고시원은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빈민층의 몫이다. 기자가 찾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겨울 풍경은 참혹했다. 마을 어귀의 3층짜리 쪽방 건물에 들어서니 녹슨 난간과 돌바닥이 쩍쩍 갈라진 복도가 나타났다. 공용 세탁 공간의 낡은 세탁기 아래로 낯선 이의 접근에 급히 숨은 쥐의 꼬리 부분이 보였다. 나무로 된 우편함에는 ‘서부지방법원 재산과’와 ‘OO신용정보’ 등에서 온 독촉 편지 10여통이 쌓여 있었다. 주민 이모(54)씨는 “이곳 주민의 70%는 신용불량자일 것”이라고 했다. 3층 이씨의 방은 2.5평 남짓했다. 그는 “이 쪽방촌은 과거 유곽(집창촌)으로 방마다 성매매가 이뤄졌는데 내 방은 관리실이었던 곳이라 넓은 편”이라고 했다. 김씨 말처럼 다른 쪽방들은 1평이 채 되지 않는다. 이곳의 한 달 임대료는 15만~30만원 수준. 고시원은 옆방 숨소리까지 들리는 2평 공간이지만 싼 곳은 20만원으로 한 달을 날 수 있다. 서울 외곽이나 농촌 지역에는 쪽방 대신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 거주하는 사람도 많다.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라미란 남편 존중 “막노동-일수 찍는 남편 창피하지 않다” 인생은 각자 사는 것?

    라미란 남편 존중 “막노동-일수 찍는 남편 창피하지 않다” 인생은 각자 사는 것?

    ‘라미란 남편 존중’ 배우 라미란의 남편 존중 발언이 화제에 올랐다. 라미란이 MBC ‘일밤-진짜 사나이’를 통해 인기를 얻으며 과거 남편 존중 발언이 재관심 받고 있다. 라미란은 지난해 tvN ‘택시’에 출연해 “사람들이 남편 무슨 일하냐고 물어보면 막노동한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정당하게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피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라미란은 “남편이 신성우 매니저 출신”이라고 밝히며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전화도 잘 안 하는데 계속 같이 있다고 생각해봐라. 영화에 노출 장면이 있는데, 남편이 매니저 한다는 것도 이상한 것 아니냐. 인생은 각자 사는 거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라미란은 또 “남편이 과거 대출업에 종사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소액대출 회사에 근무하며 일수를 찍으러 다녔다”고 밝히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라미란 남편 존중, 멋지다”, “라미란 남편 존중, 남편이 든든할 듯”, “라미란 남편 존중, 막노동 한다고 말하는 게 존중하는 건가”, “라미란 남편 존중, 남편은 기분 나쁠 수도”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MBC(라미란 남편 존중)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라미란 남편 존중 발언 “남편 막노동, 그게 뭐 창피한가요” 쿨한 그녀에 박수

    라미란 남편 존중 발언 “남편 막노동, 그게 뭐 창피한가요” 쿨한 그녀에 박수

    ‘라미란 남편 존중’ 배우 라미란 남편 존중 발언이 네티즌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라미란은 지난해 5월 방송된 케이블 채널 tvN 예능 프로그램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남편에 대해 소개했다. 라미란은 “사람들이 남편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면 막노동한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정당하게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피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편에 대해 “신성우 매니저 출신이지만 나랑 (같이 일하는 것)은 잘 안 맞는다. 지금도 전화도 잘 안 하는데 계속 같이 있다고 생각해봐라. 영화에 노출 장면이 있는데, 남편이 매니저 한다는 것도 이상한 것 아니냐. 인생은 각자 사는 거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라미란은 해당 방송에서 “남편이 과거 대출업계에 종사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소액대출 회사에 근무하며 일수를 찍으러 다녔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라미란은 지난해 방송된 MBC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2014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여자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라미란은 ‘막돼먹은 영애씨’ 등 수많은 작품을 오가며 명품 조연 연기를 펼치는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솔직담백한 모습으로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라미란 남편 존중 “매니저 출신, 나랑은 안 맞지만..”

    라미란 남편 존중 “매니저 출신, 나랑은 안 맞지만..”

    배우 라미란은 지난해 tvN ‘택시’에 출연해 “사람들이 남편 무슨 일하냐고 물어보면 막노동한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정당하게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피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라미란은 “남편이 신성우 매니저 출신”이라고 밝히며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전화도 잘 안 하는데 계속 같이 있다고 생각해봐라. 영화에 노출 장면이 있는데, 남편이 매니저 한다는 것도 이상한 것 아니냐. 인생은 각자 사는 거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라미란은 또 “남편이 과거 대출업에 종사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소액대출 회사에 근무하며 일수를 찍으러 다녔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라미란 남편 존중 발언 “남편 막노동, 그게 창피한 건가요?”

    라미란 남편 존중 발언 “남편 막노동, 그게 창피한 건가요?”

    ‘라미란 남편 존중’ 배우 라미란 남편 존중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라미란은 과거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람들이 남편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면 막노동한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이용해 정당하게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피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편에 대해 “신성우 매니저 출신이지만 나랑 (같이 일하는 것)은 잘 안 맞는다. 지금도 전화도 잘 안 하는데 계속 같이 있다고 생각해봐라. 영화에 노출 장면이 있는데, 남편이 매니저 한다는 것도 이상한 것 아니냐. 인생은 각자 사는 거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라미란은 해당 방송에서 “남편이 과거 대출업계에 종사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소액대출 회사에 근무하며 일수를 찍으러 다녔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라미란은 지난해 방송된 MBC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2014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여자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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