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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날이 코앞인데…70대노인 굶어죽어

    자식들의 무관심 속에 차가운 단칸방에서 살아온 70대 할머니가 설 명절을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7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중랑구 면목4동 2층 주택단칸방에 세들어 살던 김영순(金榮順·75·여)씨가 숨진것을 이웃주민 이선임(41·여)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설을 앞두고 돌봐주는 가족도 없이 병상에 누워 지내는 할머니께 쌀과 떡 등을 전하기 위해 방문을 열어보니 할머니는 이미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30년 전 남편을 잃고 3남매를 데리고 상경한 김씨는 막노동을 하며 어렵게 자식들을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김씨는 두 달 전 큰아들마저 일자리를 구한다고 집을 나간 후인근 교회 신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끼니를 해결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자식들이 살아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로지정되지 않았다. 이영표기자 tomcat@
  • 뇌성마비 딛고 서울대 공대 붙은 이정민군

    “절망 속에 빠져 있던 어머니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서울대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정시모집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에서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공과대에 합격한 이정민(李正民·19·강원 춘천고 졸업)군은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군은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뒤틀리는 뇌성마비를 앓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빨리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재활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녔고,고등학교도 비평준화 고교인 춘천고를 선택했다. “신체의 장애가 인생의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어머니(47)의 말에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아버지가 IMF 사태의 여파로 실직을 당하자 어머니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상경, 물류창고회사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맹모삼천지교’도 쉽사리 결실을 보진 못했다. 이군은 지난해 연세대 특별전형에서 수능점수가 낮아 탈락한데다 어머니마저 과로로 쓰러지자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에 대학 진학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대학에 당당히 합격한 네 모습을 보는 게 소원”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어머니의 모습에 이군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수능 등급도 1등급을 받아냈다. 30일 밤 강남구 논현동 월세 40만원짜리 지하 단칸방에서는 공장일을 마치고 귀가한 어머니와 이군이 한동안 할말을 잊은 채 오랜 시름을 떨쳐버리듯 서로 부둥켜 안았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던 이군은 일찌감치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이군은 “매일 새벽 도시락을 싸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직장을 찾아 전전하고 있는 아버지는 아직 합격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군은 “평소 관심 있는 뮤지컬 동아리에 가입할 예정”이라면서 “반도체 분야의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특별전형에서는 97년 외환위기로 실직한 30대 장애인이 법대에 합격했다. 뇌성마비로 하체가 마비된 한상근(30)씨는 “”음지에 있는 약자들을 돕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서울대 정시모집에서는 이들을 포함,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에 합격한 길모군 등 모두 8명의 신체장애인들이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에 합격했다. 손홍석(19·의예과),홍철(공대)형제와 김덕형(19·자연대),덕원(여·사범대) 남매 등 쌍둥이 합격자도 탄생했다. 지난해까지 뇌성마비를 포함, 장애를 지닌 수험생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일반 전형을 통해 정상인과 똑같은 기준과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극소수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재일동포 사업가 양천식씨 서울대 체육교육과 65억 기부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국 체육이 발전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70대 재일교포 사업가가 29일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써달라며 주식 65억원 어치를 서울대에 기부했다.주인공은 15살 때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홀로 일본에 건너가 사업에 성공한 양천식(梁天植·79·일본 고베 거주)씨. 경북 울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양씨는 일본에서 막노동과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힘겨운 생활을 한 끝에부동산업으로 큰 재산을 모았다.그는 지난 67년 동업자 2명과 함께 서울 명동에 R호텔을 지었다.미국 LA 한인타운에는 ‘코리아 타워 플라자’라는 대형 쇼핑센터도 건립했다. 양씨가 이번에 기증한 주식은 R호텔 지분.서울대는 이 주식을 체육교육과 발전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양씨는 “가난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면서 “기부금이 젊은이들의 전인교육에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기부금 전달식에는 와병중인 양씨를 대신해 부인 장영증(張永曾·75)씨와 장남 창홍(昌弘·55)씨가 참석했다. 윤창수기자 geo@
  • [공무원Life & Culture] ‘붉은악마’회장 한홍구 건강보험평가원 주임

    북소리가 들려온다.가슴이 떨린다.귀청을 때리는 나팔소리가 진군을 재촉한다.두루마리 화장지가 흰색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색색의 종이가루가 하늘에서 쏟아진다.스탠드를 메운 붉은 색이 그라운드의 녹색과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열기는 점점 달아오른다. 월드컵 축구대회때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는 11명뿐.그러나 이들 뒤에는 ‘12번째 선수’로 ‘붉은악마’ 5만명이 있다. 대표 선수들은 히딩크 감독의 작전지시에 의해 움직인다.하지만 사기만은 붉은 악마의 응원을 먹으며 자란다.스탠드에서 조직적으로 응원하는 붉은 악마의 한가운데 한홍구(韓弘九·40)회장이 있다. 한 회장의 공식 직함은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관리실 약가관리부 주임(5급).국민들이 일선 병·의원 및 약국에서 진료를 받으면 요양기관이 건강보험공단에급여비를 청구하게 되는데 그 청구에 허위나 부정이 없는지를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다.지난해 12월부터는 복지부 본부에서 파견근무 중이다. 한 회장도 어렸을 땐 ‘한 축구’ 했다.동네축구에선 스트라이커였다.초등학교 땐 선수생활도 했다.하지만 남들에 비해 체격도 작고,실력도 달려 5개월 만에 포기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축구에의 열정은 지난 83년 대입에 실패한 뒤 재수하면서 되살아났다.당시 프로축구가 출범했고 한 회장은 동대문운동장을 자주 찾았다.텔레비전을 보면서 외국의 응원단들이 형형색색의 종이꽃가루를 날리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던지며 나팔을 불어대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해 보일 수가 없었다. 재수 끝에도 대입에 또 실패.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군에 다녀왔다.87년 의료보험연합회(국민건강보험공단 전신)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2년후 정식사원으로 발령났다. 축구에 미쳐 있는 자신이 미워 한때 축구장을 의도적으로피해다니기도 했다.일부러 다른 취미를 찾아 암벽등반과 빙벽등반에 목숨을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열병처럼 도졌다.직장생활도 안정되고 92년 결혼해 가정도 안정을 찾을 무렵 PC통신에 축구동호회가 생겨났다.한 회장도 ‘하이텔 축구동호회’에 가입했다. 이동호회는 97년 ‘한국 그레이트 서포터스 클럽’으로 바뀌었다.그해 열린 한·중 친선경기 때부터 이름이 알려지기시작했다.당시 명칭이 길다며 바꾸자는 제의가 있었다.83년세계청소년축구대회때 청소년대표들의 별명이었던 ‘붉은 악마’로 정했다. 한 회장도 당연히 ‘붉은 악마’ 회원이 됐다.98년 프랑스월드컵 때는 박봉을 쪼개 원정응원에 나서기도 했다.그러나결과는 예선탈락.더욱이 프랑스에 5-0으로 완패,선수단뿐만아니라 ‘붉은 악마’들도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그후 ‘붉은 악마’는 활동이 저조해졌다.그러나 몇몇 회원들이 다시 재건에 나섰고 한 회장을 3대 회장에 추대했다.한 회장은 2월 말이면 1년 임기가 끝난다.지난해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4대 지부를 결성,회원을 6,000여명에서 5만명으로 늘리는 등 큰 공을 세웠다.‘12번째 선수가 됩시다’라는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올해는 ‘붉은 악마가 됩시다’(Be the Reds) 캠페인을 펴고 있다.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은 가능성이 아니라 당위입니다.” 회장직에서 물러나면 평회원으로 더욱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한 회장은 업무에도 더욱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수기자 dragon@
  • [공무원 Life & Culture] 서울지방노동청 일일취업센터 이영종씨

    “IMF 직후에는 매일 5,000명이 몰렸으나 요즘에는 50명정도에 불과하니 상황이 많이 나아진 거죠.하지만 아직도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수은주가 영하 13도를 오르내리던 지난 3일 새벽 6시.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약국 앞 사거리에 돼지머리와 떡등이 올려진 제사상이 차려졌다.50여명의 건설 일용근로자들이 돼지 코에 만원권 지폐를 꽂고 절을 올린 뒤 빈 속에 막걸리를 들이켰다.올 겨울을 사고없이 무사히 넘기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고사였다. 그곳에서 50m쯤 떨어진 허름한 상가건물 2층에 자리잡은서울지방노동청 중부일일취업센터(02-741-1010)에는 불이환하게 켜져 있었다.지난 98년부터 이곳에서 새벽 5시면문을 열고 일용직 근로자 취업이나 공공근로 접수를 해온이영종(李煐淙·34)씨가 실직자들에게 알선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김철수씨(가명·55)는 “그만한 사람은 없습니다.우리들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집에서 쉬고 있을 때도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볼 정도지요”하고치켜세운다. 이씨는 IMF 직후인 지난 98년 계약직으로 채용됐다.“그때는 어찌나 사람이 많았던지 북새통에 컴퓨터가 부서질정도였다”고 회고했다.이씨는 일요일에도 취업센터에 나온다.하루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편안히 쉴 수 없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제가 공무원 출신이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씨는 군에서 제대한 뒤 1년 동안 막노동판에서 뒹군 경험이 있다.십장의 눈에 들어 총무 일을 맡으면서 현장 노동자들을 다루는 방법과 협업체계 등을 익혔다.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오전 7시45분.현장에 나갔던 한 근로자가 “지금까지 일당 6만원씩 받았는데 왜 5,000원이 깎였느냐”며 목청을높였다.이럴 때면 이씨는 몹시 속이 상한다.“겨울철 새벽 5시에 일어나 두어 시간이나 떨면서 기다린 끝에 어렵게얻은 일자리인데….”이씨는 목젖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끝내 내뱉지 못했다. 해가 떠오르자 사무실 근처에 몰렸던 구직자들이 하나둘흩어지고 일당 1만9,000원에 식대·교통비 3,000원을 받는 공공근로라도 하겠다는사람들이 취업센터로 몰려왔다. 공공근로로 받은 일당으로는 생활이 안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을 대하는 이씨의 마음도 울적해진다. 이씨는 낮 12시쯤 퇴근,한숨 잔 뒤 오후 4시쯤 창신동 가파른 산비탈 동네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수소문했다.오후 6시 다시 취업센터에 나와 일손을 구하는 건설현장 등의전화를 기다렸다.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이씨는 가끔 사설 직업소개소까지기웃거렸다.“우리 인부들은 성실하고 일도 잘 한다”면서 써달라고 매달렸다.직업소개소를 통하면 일당 6만∼7만원짜리 일자리도 소개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구직자들이현장에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조바심을 낸 적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이씨는 일시적인 실업으로 이곳을 찾았던 이들이 안정된직장을 구할 때면 각별한 보람을 느낀다. 언젠가 ‘먹물’이 들어보이는 30대 남자가 건설현장 잡역부라도 하겠다며 찾아왔다.궁금증을 억누르고 현장을 소개해 줬더니 1주일 동안 성실하게 다녔다.어느날 연락이끊겨 전화했더니 “명문 K대를나온 학원강사 출신”이라고 뒤늦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다른 학원에 취업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기쁜 마음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고 이씨는 회고했다.이씨는 일자리를 구하러 오는 이들에게 ‘된다’‘잘 될 것이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어느덧 저녁 7시.“어디 가서 식사나 하자”고 했더니 이씨는 “전화를 기다려야 한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임병선기자 bsnim@
  • 쪽방촌 9세꼬마 ‘슬픈 크리스마스’/ “성탄 선물요? 엄마 낫게만”

    “선물은 필요없어요.엄마의 병만 꼭 낫게 해 주세요.” 이정일군(9) 가족에게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찾아왔다. 하지만 작은 선물조차 받지 못하고 이불 하나에 네식구가 발을 포갠 채 김치 반찬 하나로 저녁을 때웠다. 성탄 전야인 24일 밤 서울 종로3가 돈의동 쪽방촌.20여년전부터 쪽방이 들어서기 시작한 이 곳에는 빌딩 틈바구니 속에 1평이 채 안되는 900여개 ‘벌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행려자,무의탁 노인,실직자,중증 장애인 등 2,000여명이 모여산다. 빈 소주병이 쌓인 골목 귀퉁이를 지나 낡아빠진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정일군과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44),허리가 아파8개월째 누워있는 어머니(38),고교 1년인 형(17)이 사는 곳이 나온다.창문도 없는 반평 남짓한 방에 주전자,냄비 등 생필품과 옷가지,학용품이 널려 있다. 정일이는 형과 함께 경북 안동 할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니다 부모님과 함께 성탄을 보내기 위해 23일 저녁 집에 돌아왔다.파출부 일을 하던 어머니가 지난 5월 허리병으로 몸져눕고,새벽마다 인력시장으로 돈벌이를 나가는아버지도 일감이 끊겨 하루 방값 6,000원도 내기 어려워 안동으로 내려간것이 지난 9월이다. 정일이는 집안 일도 잘 거드는 ‘살림꾼’이다.아버지가 일을 나가면 어머니 대신 설거지와 빨래,청소를 도맡는다.“부모님께 속만 썩혀 드려서 산타할아버지가 안 오시는 것 같아요.친구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더 아파요.” 4개월만에 본 정일이의 말을 듣는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정일군 가족은 낡은 전기장판 마저 고장나 연탄불과 이불만으로 겨울을 힘겹게 나고 있다.아버지는 얼마 전 동사무소에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했다가 나이가 젊고 몸이 멀쩡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24일에는 구청에서 쌀 배식과 의료 지원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끼니를 걱정할 때가 많지만 돈의동 사랑의 쉼터 자원봉사자들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김치 종지를 지원받는 것이 전부다.연말까지밀린 방세를 어떻게 내야할 지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도 정일군은 씩씩하다.축구와 컴퓨터만은 뒤지지 않아‘꼬마 마라도나’,‘꼬마 빌게이츠’로 불리는 정일군군은“나중에 꼭 훌륭한 컴퓨터공학자가 돼 부모님들을 호강시켜드리겠다”고 말했다. 네식구가 손을 마주 잡은 쪽방에서 불과 50m도 떨어지지 않은 종로 3가 극장가는 현란한 조명 속에 크리스마스 캐롤이울려퍼지는 가운데 성탄 분위기를 만끽하는 연인과 가족들로가득했다. 돈의동 사랑의 쉼터 자원봉사자는 “쪽방 거주자들 대부분이 건강이 나쁜데다 추위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있다”면서“종로 3가에서 성탄을 즐기는 사람들은 쪽방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른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집중취재/ 일용직 근로자 실태 “”일 없어 사흘 공쳤어요””

    ■일용직 근로자 실태. 일용직 근로자에게는 겨울이 두렵다. [인력시장 실태] 3일 새벽 6시 서울 북창동 인력시장.며칠동안 영하로 떨어진 기온이 다소 풀렸지만 초겨울 새벽 바람은 여전히 옷속을 파고 들었다.10여명의 구직자들이 종종걸음하며 ‘자신을 사 갈’ 사람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이따금 승합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일감과 일당을 외친다.대기자들은 이내 우르르 달려가지만 한 명만이 ‘선택’을 받았다.나머지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까지 벌써 사흘 공쳤어요.” 탁모씨(43·서울 금천구)는 자격증은 없지만 10년째 식당주방장 일을 해왔다.그러나 오늘은 주방일을 찾는 사람이없었다.한 시간 반 정도 기다린 끝에 그는 아예 배달직으로나갔다. 그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아무거나 돈벌이를 해야 하는것 아니냐”면서 “주방일은 하루 8만∼9만원 받지만 배달은 3만∼4만원밖에 못받는다”면서 일자리로 떠났다. 이윽고 오전 8시30분이 넘어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김모씨(55·서울 종로구)는 “나이 든 사람은 (구인자들이)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서 “운이 좋으면 오전 9시 이후에도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며 연신 담배를 피워물었다. 이날 오전 북창동 인력시장에 모여든 일용근로자는 30여명,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10여명 남짓에 그쳤다. 새벽시장에서 일터를 찾는 사람들은 “정부나 언론은 경기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지만 요즘 우리가 느끼는 경기는여전히 바닥 수준”이라면서 “뭔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현재 전체근로자 가운데 임시직과 일용직을 합친 비정규 근로자는 전체의 51.6%인 696만명으로 최대규모에 이른다.관계자는 “임시일용직 근로자가외환위기 이후 급증하다가 올해 다소 감소했으나 이는 지난해 급등에 따른 기술적 반락의 성격이 강하다”면서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앞으로도 계속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은] 이들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이 절실하지만 정부는공공근로사업 확대 등 실업률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정책만내놓고 있다.특히 매년 10월쯤 바닥으로 떨어진 실업률이다음해 3∼4월까지 계속 올라가는 추세여서 대책 마련은 더욱 절실하다. 정부는 공공근로사업 시행을 위해 지난 98년 7,800억원,99년 1조5,124억원,지난해 7,898억원,올해 4,000억원 등 지금까지 3조4,822억원을 공공근로 예산으로 집행했다.올해의경우 4·4분기 공공근로사업 예산 600억원 외에 겨울철 공공근로사업을 위한 600억원을 긴급편성해 일용근로자들의일터를 제공하기로 했다.그러나 신청자 가운데 일자리를 얻는 근로자는 69%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안정한 일자리는 생활의 불안정과 사회문제로도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노숙자쉼터 자유의 집 최성남(崔成男)사무국장은 “겨울철에 노숙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일용직 근로자들의 일터가 별로 없는 데 기인한다”면서 “구체적 실업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일용근로자가 ‘잠재적 노숙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라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어느 일용근로자의 한숨-“품삯 적어도 일만 있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자식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무엇보다 가슴 아픕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일용공공근로 현장에서 3일 만난 이모씨(45·서울 동작구 신대방동)는 한숨부터 내쉬었다.이씨는 98년부터 일용근로자로 나섰다.이전 판촉물 납품업체를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다 외환위기로 부도나 집마저 처분하고 은행의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터다.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고작 막노동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하릴없이 공사판을 전전하게 됐다.“건설현장 일은 힘든 만큼 비교적 후한 일당을 받을 수 있지만 몸이 안 좋아 조금만 무리해도 약값이 더 들어 포기했다”면서 “돈은 적지만비교적 힘이 덜 드는 공공근로사업에만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받는 공공근로사업 일당은 1만9,000원에다식대 3,000원을 합친 2만2,000원.푼돈이어서 저축은 꿈도못꾼다.부인도 학교 급식업체에 나가지만 겨울방학에 들어가면 그만둬야 한다. 서울 사당동 태평백화점 앞은 최근 형성된 인력시장.지난1일 새벽 공사장행차량을 기다리는 실직가장 정모씨(42·여)를 만났다.그는 남편을 잃고 지난 3년 동안 공사판 잡일은 물론 식당 설거지,일일파출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그래도 공사판이 일당을 많이 줘 좋단다. “공사판은 남자 위주로 하는 일이라 힘들고 욕설도 예사로 듣지만 이제는 만성이 됐다”면서 “매일 새벽에 나오는바람에 아이들과 따뜻한 밥 한번 제대로 못먹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끝을 흐렸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자리가 꾸준히 있어야 하는데 더 추워지면 이마저 할 수 없어 걱정”이라며“정부에서 겨울철 서민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진상기자 jsr@
  • 阿 관련책 동시 펴낸 안순구박사·장강환씨

    아프리카를 다룬 두 권의 책이 동시에 나왔다.31년 동안 의료봉사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안순구(64)박사의 ‘검은 대륙 의사·추장님’(문학사상사)과 장강환(40)씨가 쓴 ‘트럭운전사 짱 아저씨의 아프리카 종단여행기’(북하우스).유명과무명,60대와 40대,붙박이와 떠돌이,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등많은 차이를 지닌 두 사람이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한 ‘별난 고집’에서 나오는 ‘검은 대륙’사랑은 닮았다. 5일 오전 11시 경기 고양시 일산의 안 박사 집.비록 첫 만남이지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갔다.평범을 거부한외곬 인생을 서로 알아보기라도 하듯.안 박사는 장씨에게 남부에서 동부와 중부,서부로 이어진 여행일정을 물은 뒤 “아프리카를 제대로 여행했구먼”이라고 말했다.코트디부아르 부족들과 31년을 산 자기의 아프리카 삶이 ‘한쪽’이라는 의미.두 사람의 대화와 책 내용을 주제별로 간추려 본다. ◆아프리카로 간 이유. ▲안순구=어머님의 죽음을 본 뒤 의사가 되려고 결심했는데 의대 동기가 준 슈바이처의 책을보고 감명받았다.기회를 보고 있는데 아프리카 의료봉사 지원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는 앞뒤안가리고 지원했다. ▲장강환=남이 많이 가는 곳은 가기 싫어하는 성미라 ‘오지’인 아프리카를 선택한 것이다. ◆아프리카를 보는 시각. ▲안=전통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본받야 할 것이다.추장에게 치외법권에 가까운 힘을 허용하는 것도 고유의 풍속을 지키려는 ‘싸움’으로 보인다.‘개발의 눈’으로 보면 안된다.비록 흙속에 살지만 행복하고 ‘건드리지 말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장=일정상 훑기식으로 봐서 그런지 몰라도 못 살고 개발이 안된 곳이라는 선입관은 깨졌지만 그 곳 역시 과거가 훼손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을 낸 동기. ▲안=‘제2의 고향’에 담긴 추억을 정리하고 빚만 남긴 세 딸에게 아비의 삶을 들려주고 싶었다. ▲장=여행도중 만난 유럽인들이 글을 써보라 권했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너무 정보가 미흡하다는 안쓰러움이 작용했다. ◆두 책은 어떤 내용. ‘검은 대륙…’은 31세의 젊은 나이에 코트디부아르의 디보도립병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원주민들을 위한 의료봉사에 바쳐온 삶을 담고 있다.81년 아베족,93년 바우레족이 ‘명예추장’으로 추대한 “전무후무”한 사건이 웅변하는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을 원주민의 이색적인 풍속과 함께 읽을 수 있다.아버지의 임종을 못지켰고 세 딸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무책임’등 인간적인 번민도 곁들여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8,000원. ‘트럭운전사…’는 트럭·택시운전사,막노동꾼,가스배달부 등 안해본 일이 거의 없는 장씨가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에서이집트의 카이로까지 340일동안 대륙을 종단하면서 몸으로 배운 이야기들을 담았다.여러나라의 외양과 풍속을 자세히 묘사해아프리카 여행가이드로는 제격이다.이번 여행에 하루 15달러로버텼다고 한다.1만3,000원. 비록 아프리카를 읽는 독법이 31년간 한 나라라는 ‘정독’(안박사)과 1년동안 여러 나라의 ‘다독’(장씨)으로 다르지만 두사람의 의견은 같았다.“사람 사는 방식은 고만고만하다”고. 이종수기자 vielee@
  • [CLEAN 3D] 울산 화학·폐기물 업체 르포

    ‘우우웅,우우웅…’ 울산시 남구 용연동 화학제품 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는공단지역의 한 페인트 제조업체.150여평 남짓한 허름한 공장 입구에 도착하자 기계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와 메스꺼운 기름냄새가 보통이 아니었다.고막을 때리는 소음에다 콧속으로 파고드는 기름냄새 때문에 곧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띵해졌다. 그러나 공장 건물안에서 일하는 4∼5명의 근로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페인트 원료를 휘젓고 갖가지 색을 섞어 완성된 페인트를 용기에 담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40대 중반이 넘는 근로자들이었다.20년이 넘게 페인트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모씨(56)는 “수십년동안 온종일 기름냄새를 맡다보니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며 “하루일이 끝나면 온통 기름과 페인트로 범벅이 되지만 막노동보다는 힘이 덜 드는 편이며 아직까지 건강에도 별 문제가없다”고 말했다. 부사장 정모씨(51)는 “영세한 페인트 제조업체에서 화공관련학과 출신의 젊은 인력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며 “요즘은 기술을 배우려고 취직하는 청년층은 아예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페인트 제조업의 경우 영세한 업체들끼리 한정된판매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가격경쟁을 하다보니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30년 넘게 해온 업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공단 안에 있는 모 폐기물처리업체.폐유,페인트,합성수지 등 각종 화학제품 폐기물을 고열로 태워 재로 만든 뒤 지정된 매립장에 묻어 처리하는 소규모 업체다.이같은 폐기물처리업체도 작업환경이 열악한 업종 가운데 한곳으로꼽힌다. 200여평쯤 되는 공장안으로 들어서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찔렀다.작업복을 입은 근로자 5∼6명이 소각로시설 주변에서 지저분한 폐기물을 태우기 쉽게 기름과 섞고 소각로로보내 태운뒤 차에 싣는 일을 하고 있었다.작업복도 얼굴도온통 시커먼 모습이었다. 소각로시설 주변은 자주 물로 씻고 청소를 한다고 했지만군데군테 남아있는 시커먼 찌꺼기와 소각로 앞에 풀어놓은온갖 종류의 폐기물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소각로를 비롯해 폐기물 처리시설은 3∼4명의 근로자들이하루 3교대를 하며 24시간 가동한다.근로자들은 3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의 고령층이다. 이 공장이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10년째 일을 하고 있다는 최모씨(44)는 작업환경이 지저분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 힘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라 그런대로 할 만하단다. 소각로가 가동되면 섭씨 1400도가 넘는 고열이 발생하기때문에 특히 무더운 여름철은 일하기가 좀 벅차다고 했다. 이 공장 근로자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박모씨(55)는“20∼30대 젊은사람들이 일하러 왔다가 며칠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벌어 먹고 사는 데 어찌 편한일만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처음에는 어렵지만 참고 버티다 보면 곧 견딜 만해 진다고 했다. 관리부장 장모씨(39)는 “폐기물 처리업체의 일 자체가 각종 지저분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모가 큰업체라 하더라도 지저분한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대기업체보다야 못하지만 그런대로 대우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40대 후반이 넘는 근로자들은 들어오면 오래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울산지방노동사무소 산업안전과 변원수 감독관은 “규모가 큰 석유화학제품 제조업체의 경우 장치산업으로 대부분의공정과정이 자동으로 진행돼 작업환경이 좋지만 영세한 일부 화학제품 제조업체는 자동화 설비를 갖출 수 없기 때문에,또 폐기물처리업체는 일 성격상 작업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전문가 대책 제언/ 화학물질 취급·응급조치 지식 필요. 우리나라의 50인 미만 화학제품제조업의 현황은 1만3,925사업장에서 11만5,659명의 근로자가 종사하고 있다.전체 화학제품제조업에 대해 50인 미만이 차지하고 있는 점유율은사업장수는 93.4%,근로자수는 46.5%에 달한다. 또한 50인 미만의 화학제품제조업에서의 재해율이 1.16으로 50인 이상의 화학제품제조업에서의 재해율 0.28보다 무려 4.1배나 높다.이는 전국의 평균 재해율보다도 1.6배 높은 수치다. 50인 미만의 화학제품제조업에서 일어나는 재해를 유형별로 분석하면 협착 45.1%,전도 9.7%,충돌 8.5%,추락 7.6% 및낙하·비래(飛來) 5.3% 등 후진국형의 단순 재해가 76.2%를 차지하고 있다. 동종 사업장에서의 사망재해의 원인을 분석하면 화재폭발20%,협착 16%,추락 12%를 차지하고 있다.이는 화학제품제조업은 화학물질을 취급함으로써 화재 폭발에 의한 사고가 매우 높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재해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첫째,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설비가 갖고 있는 위험요인을 철저히 분석해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이는 현재 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추진하고 있는클린 사업장 조성 및 안전보건 기술지원사업을 활용하면 필요한 자금도 보조받을 수 있고 또한 이에 필요한 기술 지원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둘째로 근로자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주위에는 항상 위험한 요인이 함께 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본인 스스로가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항상 주의하고 안전·보건에 필요한 기본 수칙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셋째로 이런 사업장에서의 재해는 설비의 유지·보수시 많이 일어나므로 이러한 작업 시작전에 안전조치를 철저히 실시하고 확인해야 하며 또한 근로자에게 안전수칙을 교육,철저히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근로자가 취급 물질의 유해성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근로자에 대한 사전 안전교육의실시와 작업장에는 물질안전보건정보(MSDS) 시트를 항상 비치,위험물질의 취급·응급조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근로자와 사업주가 작업전에 안전을 조금만 신경쓰면 예방할 수 있는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작업 중에는 사소한 사항이라도 안전매뉴얼에 따라 행동하고 작업 후에는 작업장을 정리정돈하는 등 가장 기본적인 수칙을 준수할 때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은 유지될 수 있다. 김기영 산업안전공단울산지도원장
  • 노숙자들 또 ‘지하둥지’로

    ■'돌아온 그들' 동행 취재. “그냥 내버려 둬.이대로 살래.” 최근 한데서 잠을 청하기가 어려울만큼 날씨가 차가워지자 노숙자들이 지하철 서울역과 을지로역,영등포역 등 지하보도로 속속 찾아들고 있다.노숙자에게 다시 시련의 계절이찾아온 것이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노숙자 다시 서기 지원센터’ 소속자원봉사자 12명은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 17일 밤∼18일 새벽 노란색 조끼를 입고 서울역 등의 지하보도를 찾아 ‘노숙자 쉼터’ 입소를 권유했다. 서울 지역의 노숙자는 대략 3,500여명.최근에는 막노동판의 일자리가 뚝 끊겨 매일 수십명의 노숙자가 생겨나고 있다.지원센터 관계자는 “달마다 20여명의 행려병자들이 거리에서 숨을 거둔다”고 말했다.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다가오자 을지로역 노숙자들은 저마다 종이상자,찢어진 이불,옷가지 등으로 ‘이부자리’를 마련했다.IMF 구제금융 시절부터 생겨난 낯설지 않은 모습이지만 요즘에는 유난히 여성과 젊은 노숙자들이 늘었다고 한 자원봉사자는 설명했다.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자원봉사자 김지선씨(35·여)가 다가가 쉼터 입소를 권유했다.“여기가 더 좋아.쉼터에는 자유가 없잖아.더 추워지면 몰라도 아직 갈 생각 없어” 많은 노숙자들이 정신질환이나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어대화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쉼터를 거부하는 이유는 대부분 “자유가 없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쉼터 관계자들은 “자활을 돕고 단체 생활을 원활하게 하려면 어느 정도의 통제는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쉼터에 입소하지 않는 노숙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3∼4년 노숙생활을 해온 사람들은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고무료 급식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 쉼터에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다른 한 부류는 알코올 중독자와 정신질환자이다.이들은 규율을 견디지 못하고 공동체 생활을 파괴하기 때문에 쉼터에서도 섣불리 받지 못한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인생이지만 을지로식구들에게도 규칙이 있었다.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알코올중독자와는 다른 구역에서 잠을 잤다.‘대장’ 노숙자는취침 전 동료들이 손발을 깨끗이씻었는지를 확인했다. 자원봉사자 김상태씨(26)는 “나름대로의 규칙 때문에 을지로 지역은 그나마 깨끗한 편”이라면서 “이곳에서 낙오된 사람들 가운데 부랑자들은 서울역으로,몸이 심하게 아픈 사람들은 영등포역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2년전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나와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는 최모씨(39)는 “희망만 보인다면 매일 일하겠지만 나에겐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김웅씨(32)는 “노숙자 문제의 핵심은 알코올중독과 정신질환”이라면서 “그러나 이들을 수용해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시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이국땅에 있어도 마음만은 고향에”

    “몸은 비록 먼 이국땅에 있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고국의고향발전을 염원했습니다.” 경북 군위 출신으로 재일 기업가로 자수성가한 최태해(崔泰海·78·소보면)씨가 지난 30여년간 자신의 고향발전을 위해 기금 30억여원을 전달해온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최씨는 이같은 공로로 12일 열린 군위군민체육대회에서 자랑스런 군민상을 받았다. 최씨의 고향사랑 출발은 지난 72년 군위경찰서 소보지서 신축을 위한 부지 매입 및 공사비로 현금 2,800만원을 내놓은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이 돈은 논 45마지기를 살 수있는 거액이었다. 73년과 74년에는 소보면사무소 및 지역 송원초등학교 건물신축비로 1억7,000만원과 2억7,000만원을 내놓았다.이어 90년 군위군청사 신축 부지 매입비 1억 4,000만원,93년 소보면사무소 증축 공사비 1억3,000만원을 쾌척하는 등 지금까지모두 30억원의 거액을 지역발전에 보탰다. 최씨는 “오늘 내 생애에서 가장 영광스런 상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최씨는 15세때인 37년 일본으로 건너가 탄광과 막노동판을전전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으며 55년 대형 전기공사 전문업체인 다카야마(高山)건설㈜를 세워 지금은 종업원 200여명에 연간매출액 순위 1,100번째 안에 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최씨는 이런 공로로 고국으로부터 83년 내무부장관상을 받았으며 이어 84년과 92년 대통령표창,89년 국민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
  • [CULTURE & JOB] 이랜서(Elancer)

    출퇴근 시간은 내 편한대로,근무하다 머리가 아프면 영화한 편 즐기고,쉬고 싶으면 훌쩍 휴가를 떠나고…. 하지만직장에 매여사는 봉급쟁이들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하기 싫은 일도,보기싫은 상사도 ‘참을 인’자를 새기며견뎌야하는 게 조직생활의 생존법칙 아니던가.그래서 여건만 허락한다면,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프리랜서는 직장인들에게 꿈의 직업이다.막 동터온 21세기,전문지식과 실력으로 무장한 채 인터넷을 누비며 일감을 따내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신종직업 ‘이랜서(Elancer)’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양재동의 한 사무실.컴퓨터 모니터 앞에 모여 뭔가에 몰두중인 젊은이 4명의 첫인상은 ‘날티’가 물씬 풍겼다. 자유분방했다.염색한 머리를 갈기처럼 기른 이,여성용 철사 헤어밴드로 머리를 올려붙인 이….하나같이 편안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걸쳤고 맨발로 조리 스타일 슬리퍼를 찍찍끌고 다녔다. 그래픽 디자이너 최성우(31),웹 디자이너 조현철(31),의류패션과를 휴학하고 멀티디렉터로 나선 한상규(22),전문학교를 갓 졸업한 한영렬씨(20).이들은 모두 이랜서들의 모임‘레드 브레인’의 주멤버들이다.경력 1∼5년차로,겉모습과는 달리 각 분야에서 한 몫을 톡톡히 하는 ‘꾼’들이다.그동안 기업체 홈페이지,교과서CD롬 제작등을 함께 해왔다. 이랜서는 전자(Electronic)와 프리랜서(Freelancer)를 합친 신조어.보통 인터넷 중개사이트를 통해 프로젝트를 수주해 일한다.분야는 다양하지만 주로 정보기술(IT)관련 일이70∼80%를 차지한다. 최씨는 스티커 사진기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다 IMF때 퇴직금조로 받은 매킨토시 컴퓨터를 밑천으로 독립했다. “처음에는 저도 ‘나홀로’족으로 활동했어요.하지만 규모가 너무 커 혼자 할 수는 없고 포기하기는 아까운 일감을 따기위해 작년말 뜻 맞는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었죠.” ‘레드 브레인’은 일이 생기면 모이고 일이 끝나면 흩어진다.큰 프로젝트때는 10여명이 넘는 전국의 이랜서들이 긴급소집된다.팀장격인 최씨는 “첫미팅때 한번 만나고 나면인터넷으로 연락을 취하니까 얼굴 볼 일이 없어요.돈도 온라인으로 부쳐주죠.팀원에게 또다른 일거리가 생기면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수입은 들쭉날쭉하다.많게는 1달에 900만원까지 벌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빨아야한다. 생활리듬도 불규칙하다.이상하게 밤이 돼야 생기가 돌기때문에 밤샘작업하기 일쑤다.아침에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난다. 남들 눈에 ‘백수’로 보이기 딱 좋다.결혼 1년차 최씨는“낮 1∼2시에 강아지 한마리를 데리고 공원에서 운동을 하면 사람들이 ‘쯧쯧’하는 얼굴로 쳐다보더라”면서 “최근에는 아침운동을 하려고 애쓴다”고 웃었다. 그렇다고 되는대로 살지는 않는다.이 바닥에서 꽤 유명한‘플래시’ 전문가로 한달에 5∼7건씩 일이 쏟아진다는 한상규씨는 “일이 끝나면 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괜찮다고 소문난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새 노하우를 익히고 다음 일을 준비한다”고. 혹시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취업난의 또다른 도피처는 아닐까 궁금증이 생겼다.그러나 이구동성 “IT쪽은 얼마든지 일자리가 있어요.하지만 충분한 자유를 주는 회사라면모를까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대꾸한다. 이랜서는 국경도 없다.중개사이트에 올린 프로필을 보고해외 프로젝트도 심심치않게 들어온다.최씨는 미국 오하이오주 한 디자인 회사와 켄터키주 명상서원 ‘달마’의 홈페이지 이미지컷을 작업했다. 마냥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시간’만은 ‘칼같이’ 지켜야 한다.한번 납기를 어기면 두고두고 꼬리표로 남아 업체의기피대상이 되기 때문. 마감이 임박하면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다.팀원중 막내인 한영렬씨가 “승우형은 평소에는 좋은 데 잠깨울 때는무섭다”고 흉을 보자 최씨가 겸연쩍게 변명했다.“날은 밝아오고 마감은 다가오고 애가 바짝바짝 탑니다.깨우는 나도 가슴이 찢어지지만 시간은 우리의 생명줄이거든요.” 전날의 피로 때문인지 충혈된 눈을 끔벅이던 이들은 “밤샘 작업이 막노동 못지않게 힘들다”며 엄살을 부리다가도일 얘기가 나오면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돈은먹고 살 만큼만 벌면 족하다.내가 맡은 분야에서 최고라는소리를 듣고 싶다”는 이들에게서 IT의 광야를 내달리는 ‘야생마’의 모습이 스쳤다. 허윤주기자 rara@. ■이랜서, 10만명 활동…시장규모 5兆.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제작해줄 웹디자이너 구합니다.기한은 9월말입니다.” “경력 3년차입니다.그동안 작업한 작품들을 참고하시고연락주십시오.입찰가격 300만원입니다.” 대표적인 이랜서 인력시장 ‘이랜서’(www.elancer.co.kr)는 오늘도 일꾼을 구하고,일감을 찾으려는 이들로 분주하다.지난해 5월 오픈한 ‘이랜서’는 8월 현재 가입자가 1만5,000명을 넘었고 3,400여건의 프로젝트가 성사됐거나 진행중이다.‘이랜서’ 이창섭 마케팅팀장은 “현재 국내 활동중인 이랜서는 10만명,시장규모는 5조원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랜서라는 신조어가 공론화된 것은 MIT대 경영대학원 토머스 말론 교수가 ‘이랜스 경제의 출발’이란 논문을 발표한 지난 99년부터. 일반 프리랜서들은 주로 인맥을 통해 일을 구하지만 이랜서는 실력만 있다면 인터넷을 매개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랜서’가입자중 30%인 4,600명은 해외프로젝트에도 참가한다.제휴사인 미국의 ‘이랜서 닷컴(www.elancer.com)’은 160개국에서 35만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IT시장의 급팽창,전문인력의 부족은 이랜서 열풍의 촉매제가 됐다.신세대들의 개인주의 성향 증가,평생직장 개념의붕괴,아웃소싱을 통해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의 경영전략도주요인이다.직장생활보다 더 많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큰 매력이다. 하지만 지난해 직장을 그만두고 이랜서로 나선 프로그래머 진미영씨(23·여)는 “자유롭긴 하지만 가끔씩 직장생활의 회식,동료들과의 수다도 그립다”면서 “고용보험이 없고신용카드 가입이 어려운 점 등 애로도 많다”고 어려움을털어놓았다. 현재 이랜서들의 활동영역은 웹 프로그래밍,그래픽디자인등 IT분야가 주종.그러나 이랜서의 영역은 앞으로 퇴직한대기업 간부,관료,가정주부 등으로 갈수록 확산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유목민으로 시작해 농경시대,산업혁명을 거치며 정착생활을 해온 인류가 첨단 정보통신기기와 인터넷을 이용해 다시 유목민적인삶을 살게 될 것”이라며 “사이버 공간에 펼쳐지는 새 일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흘러다니는 ‘정보 유목민’(Nomad)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함께 작업을 하다가도 끝이 나면 뿔뿔이 흩어지고,새로운일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며 다시 길을 떠나는 ‘이랜서’의 출현은 ‘신 유목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지 모른다.
  • 신간 맛보기

    ◇전쟁과 기상(반기성 지음,명진출판 펴냄)에게해 연안에서 자주 발생하는 강한 폭풍과 마라톤 평야의 늪지는 그리스군에게 승리를 안겨줬다.폭우가 내릴 때까지 기다려 인도를 기습한 알렉산드로스는 1,000명의 손실로 23배가 넘는 적군의 목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날씨 칼럼니스트인 저자는날씨가 전쟁과 역사 발전에 끼친 영향을 살핀다.결론은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말로 대신한다.“훌륭한 장군은 전략을 배우고 유능한 장군은 병참학을 공부한다.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날씨를 아는 장군이다.”상·하 각권 8,500원.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와 언어(박영배 지음,지식산업사 펴냄)1,500여년동안 형성되어온 영어의 뿌리를 추적한 연구서.특히 앵글로색슨족이 영국에 정착하기 훨씬 전에 영국에서 쓰이던 고대 튜튼족의 문자인 ‘룬 문자(Runes)’에 대해상세히 다뤄 주목된다.오늘날 영국인의 조상이 된 게르만민족이 영국에 들어온 경위도 살폈다.선사시대의 영국(구석기∼410년),초기 앵글로색슨시대(410∼800년),후기 앵글로색슨시대(800∼1066년),노르만왕조시대(1066년 이후),노르만왕조와 그후 등 5장으로 이뤄졌다.2만원.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등용지음,임계순 옮김,김영사 펴냄)덩샤오핑의 막내딸 등용이 문화대혁명 기간 아버지와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적은 책.1966년 8월 중국공산당 제8기 중앙위원회 11차 전체회의에서 덩샤오핑은 린뺘오(林彪)로부터 ‘인민의 적이며 구제할 수 없는존재’로 내몰린다.덩샤오핑은 ‘자본주의 노선으로 나아가는 집권파’인 주자파(走資派)로 지목돼 가택연금됐고,심지어 부인 주어린(卓琳)과 함께 트랙터 수리공장에서 막노동자로 일하며 3년간 ‘사상개조’ 단련을 치러야 했다.1만9,900원. ◇봉건사회Ⅰ·Ⅱ (마르크 블로크 지음,한정숙 옮김)봉건제에 대한 다양한 개념들을 수용,하나의 ‘사회형’으로서 봉건제의 개념을 밝혔다.마르크 블로크는 20세기 역사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아날학파의 공동창시자.그는 정치보다는 사회,개인보다는 집단,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은 아날학파의 정신에 입각해 봉건사회의 종합사를 구축했다.1권에서는 봉건사회의 형성 및 작동 원리로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존관계를,2권에서는 봉건사회에서의 정치체제 문제를 다뤘다.1권 2만5,000원,2권 1만8,000원.
  • 16년간 남편 때리고 정신병자 몰아 재산 독차지

    아내에게 16년 동안 매맞고 정신병자로까지 몰렸던 남편이 이혼소송에서 승소했다.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 黃正奎)는 2일 “아내의 학대로 더이상 가정생활을 유지할수 없다”며 L씨(47)가 부인 B씨(40)를 상대로 낸 이혼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와 피고는 이혼하되 피고는 원고에게 재산분할금으로 1억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L씨는 지난 83년 1년 가량 사귄 B씨와 결혼했다.그러나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파탄이었다.B씨는 늘 L씨를 의심,회사에서 조금만 늦어도 동료직원들에게 확인전화를 했다.부부싸움을 하다 꼬집고 때리는 것은 다반사였다.맏며느리인 B씨는 시댁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시누이 결혼식장에서 친척들과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시어머니의 회갑잔치 때에는 시누이와 시비가 붙자 시누이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등 행패를 부렸다. 지난 99년 L씨가 회사에서 명예퇴직하자 퇴직금을 노린 B씨는 “남편이 바람난데다 마약에 중독된 것 같다”고 속여 L씨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L씨는 곧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무서운’ 아내를 피하기 위해 가출,막노동일을 하면서 숨어 살았다.B씨는 남편보다 먼저 남편의 퇴직금을 챙겼다.또 남편 명의의 부동산을 자신의 명의로 이전 등기했다.여섯달 만에 L씨를 찾아낸 것은 L씨 가족들이었고 L씨는 소송을 냈다. 조태성기자 cho1904@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일대기

    정주영은 격동의 현대경제사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근대화의 거목(巨木)이었고,옛소련과 중국의 경제 교류를 이끌어낸 민간 외교관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성공적으로 치른 체육인이면서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을 이끌어낸 이도 그였다.‘소떼 방북’은지난해 6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밑거름이 됐다.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로 자신의 퇴진 여부가 도마에 올랐던 지난해 5월에는 ‘3부자 동반 퇴진’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던정주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만큼이나 그의 인생 역정은 위기와 시련,극복의 연속이었다. ■소년 정주영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산골짜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의 호 아산도 고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어려서부터 남달리 야심이 많았던 그에게“농사일을 하라”는 부친의 말은 성에 차지 않았다.가난은 야심찬 통천 산골의 소년을 잡아두지 못했다. 신천지를 꿈꾸며 세번씩이나 가출을 시도했던 정주영은 19살때 아버지가 소 팔아 모아 둔 70전을 훔쳐 들고 네번째‘탈출’에 성공, 드넓은 세상으로 나온다.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냉엄한 현실뿐.막노동판을 전전하다 다다른 곳이서울 신당동 쌀 가게였다.황소처럼 우직하게 일한 그에게운이 따랐다.그의 성실성에 탄복한 주인이 그에게 쌀 가게를 넘겨줘 일약 점원에서 사장으로 올라앉게 된다.‘경일상회’라는 상호로 자신의 간판을 내단 것은 고향을 떠난지 4년 만의 일이다.보통학교(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안되는 일은 없다’는 불굴의 의지가 생긴 것도 이무렵이다. ■사업은 탄탄대로 40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 자동차수리공장인 ‘아도써비스’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길로 들어선다. 이후 46년에는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47년에는 현대건설 모태인 현대토건을 세우며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손대는 일마다 성공했다.그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머리 속은 ‘도전’ ‘성공’이란 단어들로만 가득찼다.반세기에 걸친 ‘현대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잠깐 부산으로 피란 길에 올랐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복구사업에 뛰어든다.단일 공사로는최대였던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맡아 일약 대형 건설업체로 부상한 것도 57년이다.62년부터 본격 추진된 경제개발계획때는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65년에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와소 고속도로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렸다.68년엔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성공리에 마친다.세계 최단 시간 완공이라는 기록까지남긴 이 공사는 ‘정주영’을 불세출의 인물로 각인시킨대역사였다. 70년대 후반은 중동 붐을 타고 대규모 건설공사를 수주,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사업 절정기는 80년대.76년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승용차를 만들어 미국 수출 길을 닦았다.86년에는 포니의 후속 모델인 엑셀이 미국 수입시장 소형차 판매 1위를 차지,‘엑셀신화’를 만들어냈다.엑셀신화는 후속 모델인 엑센트,베르나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결단의 승부사 그의 ‘신화 창조’는 초인적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의 삶은 위기와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승부를 걸었다.결과는 늘 적중했다. 고비때마다 결단은 더욱 빛났다.한국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겨울에 유엔군 묘지에잔디를 깔라는 미군측 요청에 보리밭을 떠다가 푸른 잔디로 바꿔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독점한 일화는 두고두고회자된다.조선소 도크도 없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밀어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따낸 일,일본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일은 아마도 그가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4년 2월 서해안 서산 간척지의 물막이공사는 정주영의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양쪽에서 쌓아온 방조제의 끝 사이를 막아 조류를 차단하는 당시 공사는 유속이너무 빨라 난공사 중 난공사였다.정주영은 때마침 외국에서 들여온 고물 유조선 한 척을 활용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물막이공사를 완벽하게 해낸다.후일 ‘정주영공법’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대통령에 출마해 떨어진다.대가는 비쌌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그는 현대그룹 일선에서 물러났고,건강도 극도로 악화되는이중고(二重苦)를 겪어야 했다. 회사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문민정부 5년간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일 욕심은 물론 명예욕도 컸던 그가재벌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계산하지 못해무리수를 둔 결과였다. ■마지막 불꽃,대북사업 금강산에 가졌던 그의 애착은 남달랐다.그에게 통천에서 가까운 금강산은 바로 고향이었다. 98년 6월 ‘소떼 방북’을 추진하면서 “아버님의 소판돈 70전을 갖고 집을 나선 뒤 긴 세월 동안 저는 묵묵히일하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걸어왔습니다.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한 마리의 소가 1,000마리가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갑니다”라며벅찬 감회를 표현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방북 길에 올랐던 그의 노력은 헛되지않았다.‘3부자 동반 퇴진’과 함께 대북 총수 자리를 아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물려줬지만대북사업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을 따낸 것도 성과 중의하나다. 지난해 6월28일에는 막걸리를 싣고 방북,김 위원장이 지방 순시 중인 원산까지 날아가 대북경협을 담판짓는 지칠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자식들엔 엄격 손주들엔 자상. 아버지 정주영은 자식들에겐 매우 엄격했다.잘못을 저지른 아들에겐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다.아들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고백하곤 했다. 92년 총선 전후까지만 해도 자식들을 한데 모아 아침을같이 먹고 계동사옥으로 출근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면을지니고 있었다.자식들과는 달리 손자·손녀들에게는 정이많은 할아버지였다.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손자·손녀들을 자주 찾곤 했다. 이렇듯 위세당당하던 그도 나이는 이기지 못했다.말년에몽구(MK)와 몽헌(MH) 두 아들이 싸우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몹시 속상해 했다고 한다. 일 벌레로 비쳐진 그에게도 멋진 풍류가 있었다.‘아침이슬’을 곧잘 불러댔고,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가는 세월’ ‘고향의 봄’ ‘고향무정’ 등 3∼4곡을 불러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다.시간이 날 때면 작가와화가를 만나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면도 있었다. 외지와의 회견에선 “120살까지 살겠다”고 장담했던 정주영.그러나 그도 불로초를 구할 수는 없었다.매순간 승부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대사업가 정주영은 이승에 ‘왕(王)회장’이란 이름 석자를 남기고 끝내 이 세상을 떴다.사업가로 첫 발을 내디딘 지 63년,47년 현대건설 전신인 현대토건을 설립한 지 꼭 54년 만의 일이다. 손성진기자 sonsj@
  • “살아있다니 이제 여한없어”

    “분명히 살아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15일 밤 대한적십자사 직원으로부터 아내(79)와 두 아들(63,58),두 딸(56,53)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제배(李悌培·93) 할아버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함경남도 강천군 용전리가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1·4후퇴때 단신월남했다.미처 가족을 챙길 틈도 없이 급박한 상황에서 밤길을 달려 남행(南行)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죄스럽기도 했다.부산에 뿌리내려 살면서 자갈치시장에서 막노동과장사로 고단한 50년을 지내온 이 할아버지이건만 생전에 아내와 4남매를 만나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월남 후 지금의 아내(72)를 만나 2남1녀를 둔 이 할아버지는 “이제 여한이 없다”고 기뻐했다. “아쉽다면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데,이제 생사를 확인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이 할아버지는 오는 26일 평양에 가는 100명의 3차 이산가족 방문단에 끼었으면 한다고 마지막 소망을 얘기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희망2001] ‘억척 중년’ 이연식씨

    어두운 터널 안으로 비치는 빛은 희망이요 비전이다.경기 침체의 그늘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실업자와 노숙자들,자신의 안일보다 불우한 사람을 돌보는 데 헌신하는 평범한 이웃들.그들은 각박하고 우울한 세태에 사는 우리를 훈훈하게 해주는 빛이다.어둠이 짙을수록 그들은 더욱 빛난다.대한매일은 신사(辛巳)년을 맞아 이같은 일반시민들의 끈끈한 이야기를 담아 ‘희망 2001’이라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땀으로 일궈낸 '인생역전'. ‘시련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실직으로 2년동안 노숙생활을 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직장과 가정을되찾은 이연식(李演植·51·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2동)씨가 맞는 새해 아침의 의미는 남다르다.인고(忍苦)의 세월을 뒤로하고 이씨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일하던 이씨가 노숙을 시작한 것은 98년 11월14일,서울역 근처 서소문공원에서였다.느닷없는 사고를 당해투병 생활을 한지 6개월만에 직장마저 잃고 노숙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고는 98년 3월 시장에서짐을 옮기다 당했다.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이었다.일을 할 수 없었음은 물론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순식간에 4,000여만원의 빚더미를 지게 됐다.아내(46)와 말다툼이 잦아졌고 가정의 화목도 깨지고 말았다. 9월 퇴원한 그는 농산물유통조합의 지분으로 갖고 있던 점포를 정리해 마련한 1,300만원으로 빚의 일부를 갚았다.그래도 남은 2,700만원의 이자만 한달에 36만원이나 됐다.집을 팔 수는 없었다.“어떤 일이있어도 어렵게 마련한 내집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정을 되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겠다는 각오로 집을떠났다. 홈리스를 자청한 셈이었다.서소문공원 노숙자 천막에서 이씨는 큰 깍두기 3개와 몇 숟갈밖에 안되는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재기의 의욕을 불태웠다. 무엇이든 하겠다고 생각하니 일자리도 생겼다.일당 2만∼3만원이 고작인 막노동이었지만 일을 한다는 게 행복했다.난지도 쓰레기매립장에서도 공공근로를 하기도 했고 밤일도 마다하지 않았다.이렇게 해서달마다 40만∼50만원을 집으로 부칠 수 있었다.월 10만원씩 붓는 정기저축도 따로 들었다. 소문이 빠른 공사판에서 그는 성실한 일꾼이라는 소리를 듣게됐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풍진아이디에 취업할 수 있었다.숙련공으로 인정받아 한달에 180만∼220만원이나 되는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됐다.80만원씩 꼬박꼬박 저축했고 아내와 아들(23),딸(21)의 이름으로 통장도 만들었다. 이씨를 상담한 사회복지사 홍순애(洪順愛·32)씨는 “매일 번돈을은행에 꼬박꼬박 입금하며 성실하게 생활해 언젠가 좋은 소식을 전해올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집을 나간지 꼭 1년 11개월만인 지난해 10월 8일 마침내 그는 가족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집이 없다(homeless)고 해서 절망(hopeless)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갖고서였다. 송한수기자 onekor@
  • 원조교제 10대소녀 첫 입건

    지난 7월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뒤 원조교제를한 10대 소녀가 처음으로 입건됐다. 서울지검 소년부(부장 愼滿晟)는 16일 성인 남자들과 상습적으로 원조교제를 해온 윤모양(16)을 윤락행위 등 방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도록 경찰에 수사지휘했다. 윤양은 지난 9∼10월 전화방을 통해 원조교제를 원하는 성인 남자들과 접촉,10명의 성인 남자(6명 구속)와 성관계를 맺고 모두 12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윤양은 초등학교때 부모가 이혼한 뒤 막노동일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고교를 중퇴하고 가출했다가 생활비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에 빠져든 것으로 밝혀졌다. 윤양은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반법원 대신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된 뒤 법원의 결정에 따라 보호관찰,사회봉사명령,청소년보호센터 수용 등의 처분을 받게 된다. 장택동기자 taecks@
  • 우정과 야망 사이에 선 두남자 ‘태양은 가득히’

    KBS 2TV는 오는 16일부터 ‘꼭지’ 후속으로 새 주말드라마 ‘태양은 가득히’(극본 배유미,연출 고영탁·신창석)를 방송한다.스토리전개가 빠른 남성드라마여서 젊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으로 제작진은 보고 있다. 이 드라마는 같은 고향에서 자란 두 친구가 서울로 와서 형제애보다 더 진한 우정을 나누다가 야망과 사랑 때문에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다.“우정과 같은 불변의 가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점을 부각시키고,금전만능의 세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는 것이 고영탁 PD의 말이다.드라마의 두 주인공 호태와 민기는 박상민과 유준상이 맡았다.민기는 아버지의 죽음,엄마의 가출 등으로 얼룩진 유년기의 상처 때문에 출세에 대한 야망과 자기방어 본능만 남은 차가운 인물이다.반면 호태는 다혈질에 쾌활한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촌놈으로 ‘존경받는 재벌’이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두 사람은 서울에서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 굳은 우정을 키워나간다.그러나 가흔(김민)이 나타나면서 이들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가흔은 대그룹의 상속녀로 처음에는 호태와 사랑을 나눈다.그렇지만 민기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애인 지숙(김지수)을 버리고 가흔을좇아 다닌다.가흔의 집안에서 호태보다 민기를 신랑감으로 점찍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한다.그렇지만 이 결혼은 민기에게 성공의 출발이 아닌 몰락의 서곡이다. 민기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의 새 남편이경영하는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한다.기업전쟁을 벌이던 민기는 자금조달을 위해 자신의 회사 지분을 시장에 내다 파는데 이를 민기에게배신당한 호태와 지숙이 사들인다. 드라마의 끝은 ‘용서’로 맺어진다.민기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호태를 찾아간다.호태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민기를 용서하고 한아이를 소개시켜준다.다름아닌 지숙이 낳은 민기의 아들.아이는 선천성 소아백혈병을 앓고 있다.민기는 아이에게 자신의 골수를 준 뒤 행복하게 죽어간다. 형제애와 뒤틀어진 야망,가족간의 사랑을 그렸던 ‘꼭지’에 이어우정과 야망을 주제로 한 무거운 톤의 드라마를 만든다는 점이제작진에게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또 SBS 주말드라마 ‘덕이’에서주요 배역으로 출연 중인 박상민의 겹치기 출연 문제도 넘어야 할 과제다. 장택동기자 taecks@
  • [조약돌] 투신자살 실패 30代 끝내 목매

    23일 새벽 5시1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마포대교 확장공사장 옆 잔디밭에서 김송일씨(34·노동·전남 신안군 압해면 대천리)가 나무에 목을 매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막노동으로 번 3,000만원을 아는 사람에게 빌려줬다가 떼이게 되자이를 비관,전날 새벽 0시25분쯤 여의도쪽 마포대교 밑 한강에 뛰어 들었다가 순찰중이던 경찰에 구조된 뒤 집으로 돌려 보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창구기자 windo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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