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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매 노정연·혁준씨(사법시험 영광의 얼굴들)

    ◎부정입시관련 사표 부친 시름 덜어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법을 통한 정의구현에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올해 사법시험에서 나란히 합격한 노정연(26)·혁준(23)남매는 『그동안 여러가지 문제로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부모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이들 남매는 지난 2월 막내아들(20·연세대의예과 1년)이 후기대 대리시험사건과 관련돼 구속된데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난 노승행전광주지검장(53·변호사개업중)의 2남2녀중 장남·장녀. 특히 시험준비중이던 지난해 11월 서울남부지청에 근무하던 조성욱검사(32·현 강릉지청근무)와 결혼,내조와 함께 법서에 매달렸던 정연씨는 『남편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 SBS 본격 농촌드라마 선보인다

    ◎이문구 소설 각색한 「친애하는…」 50부작으로 방송/K·M­TV 「대추나무…」「전원일기」에 도전 SBS-TV가 본격 농촌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SBS가 의욕적으로 제작에 들어간 작품은 오는 10월부터 방송예정인 수목드라마 「친애하는,기타 여러분」.「한강 뻐꾸기」후속으로 준비중인 「친애하는,기타 여러분」은 중진소설가 이문구씨의 장편소설「산너머 남촌」과 창작집「유자소전」을 각색한 작품으로 창사1주년 특집드라마 「관촌수필」을 연출했던 이종한PD가 다시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의 등장은 MBC-TV의 「전원일기」,KBS-1TV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함께 농촌드라마의 3파전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관심을 갖게 한다. 농촌드라마의 선발주자인 두 방송사의 드라마는 농촌의 현실을 진단한 본격 농촌드라마라기 보다는 농촌이나 도시·농촌의 접경지역을 배경으로 생활중심에 농촌문제를 간간이 다룬 「홈드라마」 성격이 강하다. 반면 「친애하는,기타 여러분」은 농촌출신의 작가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붕괴되고있는 우리네농촌모습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있는 이문구의 원작소설을 50부작으로 밀도있게 영상화시킨데 그 차이가 있다.50∼60년대 농촌을 다룬 「관촌수필」,70년대 농촌모습인 「우리동네」에 이어 80년대 우리네 농촌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철저하게 소외되고 무시돼온 농촌사람들이 겪고있는 절실한 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는 동시에 그속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진실된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산업화에 찌든 도시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데 역점을 두고있다. 당면한 문제점의 파악과 극복을 통해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하고 단절된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적 삶의 연대를 모색한다. 주인공 이문정은 군복무 3년을 제외하고는 두물머리를 떠나본 적이 없는 농사꾼이다.3남1녀 가운데 장남이 농약중독으로 죽고 현재는 서른을 넘긴 차남 응두와 농협판매장 직원인 명숙,대학생인 막내아들 영두를 두고있다.마을의 사교장으로 온갖 소문의 온상인 읍내다방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선거철만 되면 가슴이 설레이는 과거 정치꾼들의동분서주한 모습,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농촌총각의 결혼문제등이 다뤄진다. 다방 얼굴마당 하순남역은 김혜선이,두물머리 터줏대감 문정은 70년대 TV스타 김성옥이 맡아 오랜만에 연기력을 과시한다.이밖에 소설가역은 홍요섭이, 그의 아내역을 김미숙이 맡아 SBS에 첫나들이를 한다.또 박근형이 문정의 동생이자 정치에 뜻을 둔 지방유지 무정으로,송영창이 문정의 둘째 아들 응두역을 맡았다.
  • “사업자금 거절에 모두 살해”/패륜 막내아들 구속/일가족 암장사건

    서울 성북구 장위동 이정현씨(73)일가족 5명 살해암매장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종암경찰서는 24일 숨진 이씨의 막내아들 호성씨(33)로부터 5명을 모두 살해했다는 범행사실을 자백받고 호성씨를 존속살인 및 사체유기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호성씨가 범행직후 집안 금고에서 빼내 동거하던 같은 동네 임모씨(35)에게 건네준 현금 39만원과 집문서·예금통장등을 증거물로 확보하는 한편 범행때 사용한 망치를 찾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호성씨는 지난 14일 상오 5시쯤 아버지 이씨에게 『재산을 나눠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신발장 밑에 있던 길이 30㎝·지름 5㎝크기의 망치를 들고 2층 안방으로 올라가 이씨와 어머니 조금례씨(73)의 머리를 때려 숨지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호성씨는 이어 1층 큰 방에 자고 있던 형 호창씨(39),문간방에 자고 있던 형수 박흥분씨(34)와 조카 미영양(12·석관중1년)도 잇따라 살해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범행뒤 호성씨는 15일 낮 용역회사에 다니면서 알게된 최모씨(27)등 2명에게 배수공사를 한다며 함께 정원을약2m가량 판뒤 16일 상오3시쯤 아버지 이씨를 혼자 묻었으며 상오 10시쯤 이들을 다시 불러 구덩이를 더 파고 17일 상오3시쯤 형수와 조카·형·어머니순으로 사체를 묻었다는 것이다. 호성씨는 경찰에서 『아버지에게 「재산이 그렇게 많은데 형이 경영하는 당구장까지 세를 받을 수 있느냐」「과일 도매상이나 당구장을 할테니 사업자금을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해 살해했으며 정신이 없는 가운데 나머지 가족들 마저 죽이게 됐다』고 진술했다.
  • 일가족 5명 암장시 발견/장위동 집정원에 묻혀… 딸이 신고

    ◎30대아들 “아버지 내가 살해” 자백/“인부2명 시켜 시체처리” 진술도/사업자금 관련 범행가능성 23일 하오 2시45분쯤 서울 성북구 장위3동 203의9 이정현씨(73)집에서 이씨와 부인 조금례씨(73),아들 호창씨(39·당구장 경영),며느리 박흥분씨(34),손녀 미영양(13·석관중 1년)등 일가족 5명이 둔기로 살해된 뒤 정원에 암매장된채 발견됐다. 경찰은 숨진 이씨의 막내아들인 호성씨(33)가 다른 30대 남자 2명과 함께 지난 15일쯤 하수도를 고친다며 정원을 파는 것을 보았다는 이웃 주민 김모씨(47)의 진술에 따라 이날 호성씨를 연행,범행을 집중추궁한 끝에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정확한 범행경위를 캐고 있다. 경찰은 호성씨가 『아버지는 내가 살해했으나 나머지 가족들은 아버지가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신이상증세가 있었다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진술에 대한 사실여부 확인조사를 펴고있다. ▷사체 발견◁ 이씨의 맏딸 호연씨(48)는 『17일 여동생으로부터 친정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22일 경찰관 한명과친정집에 가니 호성이가 「아버지와 형 부부가 싸우고 지방에 내려갔다」면서 「이집을 세놔야겠다」는 등 횡설수설하는데다 정원이 파헤쳐져 있는 점이 이상해 오늘 상오11시쯤 가출신고를 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하오 2시쯤부터 정원을 파기시작,30분만인 하오 2시30분쯤 정원 1.8m 아래 흙속에서 암매장된 이씨의 사체를 발굴한데 이어 하오 7시30분쯤까지 나머지 4명의 사체를 차례로 찾아냈다. 피살자들은 이마와 머리 뒷부분등을 둔기로 맞은 상처가 나 있었고 알몸이거나 잠옷차림인 상태로 비닐에 싸여 40평규모의 정원 왼쪽에 ㄱ자모양으로 매장돼 있었다. ◎공범여부도 수사 ▷수사◁ 경찰은 범인 이씨가 『당구장을 차려달라』는 등 평소 사업자금을 요구하며 숨진 아버지 이씨와 자주 다투었다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사업자금 문제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이씨를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호성씨가 아버지만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져 범행에 사용했다는 망치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사체암장을 부탁했다는 김종화·전진욱씨등 2명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의 연고지인 정릉에 수사관을 급파하는 한편 이들을 긴급수배했다. 또 호성씨가 최근 밤에 나가 새벽에 돌아오곤 했는데 밥을 먹지 않았다는 누나 호연씨등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호성씨가 도박에 손을 댔다 빚을 지자 돈을 구하려 범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경찰은 호성씨가 이들 5명의 사체를 혼자 힘으로 옮기기는 어렵다고 보고 공범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웃 주민 김씨가 『16일 상오 3시쯤 숨진 이씨의 집에서 흙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아침 9시쯤에는 호성씨가 정원의 흙을 다 메운뒤 다지고 있었다』고 말한 점을 중시,호성씨가 이때 사체를 암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또 범인 이씨가 지난해 9월부터 술집 여주인 임모씨와 동거해왔으며 지난 22일 집 거실을 도배할때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임씨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이씨 가족◁ 숨진 이씨는 지난 75년1월 본처인 조씨와 헤어져 후처와 함께 살아 오다 87년1월 본처및 아들식구들과 재결합해 살아왔다. 이씨는 재결합 당시 이웃집 가옥 한채를 매입,헐어낸뒤 새로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시가 5억원 상당)을 지어 지하 1층은 대우전자 대리점,2층은 피아노학원에 세를 주었으며 3층의 당구장은 지체 부자유자인 맏아들 호창씨가 운영해 왔다. 호성씨는 지난 77년 고교 2년때 셋째 누나의 교통사고를 목격한뒤 충격으로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학교를 자퇴,하는 일 없이 지내오다 84년 육군하사로 제대한뒤 노동판을 전전하며 아버지에게 사업자금등을 요구하면서 불화가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살해전 가족들 이미 숨져”/용의자 이씨 일문일답 범행을 자백한 호성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범행 동기는. ▲우발적이었다.안방에서 신문을 보려는데 아버지가 망치로 내려치려고해 망치를 빼앗아 아버지의 머리를 때렸다. ­다른 가족들은 살해하지 않았는가. ▲아버지가 숨진 것을 보고 형을 찾았는데 형은 머리에서 피를 흘린채 구석방에서,어머니·형수·조카등은 각자 자기방에서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나는 아버지만을 살해했을 뿐이다. ­범행뒤 무엇을 했나. ▲집에서 나와 드림랜드와 동네 등지등을 돌아다니다 밤에 집에 돌아와 잠만 잤다. ­사체는 언제 암매장했나. ▲노동을 하며 알게된 진욱이와 종화를 지난 16일 전화로 불러 5만원씩 주고 땅을 파게 했다.사체는 친구들이 돌아간뒤 혼자 묻었다. ­사업자금을 요구,아버지와 자주 다퉜다는데. ▲이달들어 당구장을 차려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과일도매상을 하면 목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꼭 이 장사를 해보려 했다.
  • 외궁인진료소 신촌세브란스/언어불편 덜고 양질의료 서비스

    ◎하루 40∼50명씩 찾아… 주한 대사까지 손님 다양/영어구사 능숙한 간호사 등 친절 대기/정밀치료 필요한 환자 전문의에 연결/인 요한소장,“한국의료진 이미지 높이는데 주력”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외국인들의 출입이 유난히 잦은 곳이 있다. 한국에 상주하는 외국인과 대사관직원및 가족들에게 언어장애로 인한 불편을 덜어주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설립,30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외국인진료소(소장 인요한박사·미국명 John A Linton). 국적을 막론하고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들의 건강관리및 응급조치등의 1차진료업무를 책임지며 비자신체검사도 담당하고 있다.현재는 가정의학과 소속으로 되어 있으며 의료진은 인소장이외에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간호사 3명으로 짜여져 있다.전문의의 정밀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발생하면 내과·정형외과·비뇨기과·산부인과등 연세의료원산하 19개 전문과에 일일이 연결해주는 진료체계를 갖추고 있다.또 캐나다와 필리핀정부의 요청으로 이들 국가 유학생들의 신체검사를 대행하며 기타 다른국가의 대학에서 요청하는 유학생들의 신체검사업무도 실시한다. 외국인진료소를 찾는 외국인환자는 하루 40∼50명선.그 계층도 학생에서부터 회사원,국가대사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인소장에 따르면 이 곳을 찾는 외국인은 50%가량이 미국인이고,호주·캐나다등 영국계가 35%가량이다.또 내원환자의 20∼30%가량이 신경과질환을 호소하고 있는데,이는 본국과 한국과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입원환자도 하루에 4∼5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진료소이용이 보다 손쉽도록 예약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진료뒤에 대금을 청구하는 후납제를 채택하고 있다. 개원시간은 공식적으로 상오 8시30분부터 하오 5시30분까지지만 응급환자를 위한 비상전화를 24시간동안 개설하고 있다. 외국인진료소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국내 의료수가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진료비는 국내 병원보다 10배이상 비싸다. 『외국인들은 흔히 타향에서 병이나면 그곳의 의료수준에 의심을 갖게 되어 심리적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이럴 경우 저와 같은 외국인의사와 대화를 통해 병력을 충분히 상의 한 뒤 설명을 들으면 일단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지요』.지난 91년부터 소장직을 맡고 있는 인박사는 미국인이면서도 전라도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로 한국어·한국문화에 통달한 자칭 「순수 한국인).지난달 24일 세계결핵의 날을 맞아 복십자대상 봉사부문상을 받은 순천결핵요양원 인애자원장의 막내아들이기도 한 인소장은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그뒤 연세대의대를 졸업,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뒤 87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CMC에서 가정의학수련의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외국인진료소의 운영계획은 아주 소박합니다.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진료해서 한국의료진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있습니다』 한국의 의료수준은 세계적인데 비해 의료진의 서비스정신이 결여돼 있는것 같아 안타깝다는 인소장은 병원이 앞으로 치료보다 예방차원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 만큼 더욱 친절한 진료소를 만들어외국인에게 「신뢰할수 있는 한국인상」을 심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 고종임금 이름도 「개똥이」라(박갑천)

    지금도 「김간란」 「이입분」같은 「호적이름」의 할머니가 살아 있을 수 있다.이 할머니들의 아이때 이름은 「간난이」 「이쁜이」였고 그렇게 불리다가 출가를 했다.출가한 다음에는 「××형수님」 「△△아주머니」하는 식으로 불렸으므로 「이름」의 필요성이 별로 없었다.그러므로 「김간란」 「이립분」은 사회활동을 위한 이름이 아니라 법률적 필요에 의한 한자표기의 이름일 뿐이다. 아지·예지·아지·아지·아지·아지·아지·아지·아기·아기·아기·아기·아기·아기·아기·예가·아개·아가·아이·아이·예이·애지·애기·악지·악기·악기·악이·악지·악지…등등이 「아지·아기·아이」라는 이름의 한자 표기였다.한 국어학자(고 최범훈교수)가 각종 금석문(김석문)과 노비문서(노비문서)·고문서 및 그밖의 사료(사료)등에서 뽑아낸 것들이다.앞서의 「갓난이」 「이쁜이」와 다를 것 없는 고유어 이름.「글자」로 쓰려면서 그렇게 한자화한 것이다.「삼국사기」(삼국사기:탈해니사금9년조)에 보이는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알지」도 이 갈래의 이름이라 생각케 하는 것.「□」과 「지」가 합쳐진 이름이었다는 견해도 있겠으나 「아지」의 표기가 「알지」였다고 할 것이다. 신문지상에서도 가끔씩 대할 수 있는 남자 이름에 ◎소동·소동·소동,◎계동·개동·개동,◎마동·마동·마동…등이 있다.이름이 천해야 무병장수 한다해서 갖게된 아명(아명)들.◎은 「쇠똥이」,◎는 「개똥이」,◎은 「말똥이」이다.다만 ◎의 경우는 「막동이」(막내아들)일 수도 있긴 하다.그 맥락에서 「서동요」의 「서동」을 「●둥→막둥이」로 해석하는데 대해(양주동)「말똥이」였다고 이설을 제기해 볼 수도 있다.「고려사」(고려사:지지주)에는 「백제무왕=말통대왕」으로 나와 있는바 뜻으로 새길때 「막동이」,음으로 새기자면 「말똥이」로 안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왕으로 말하자면 조선왕조 고종(고종)의 아명도 「개똥이」였다.「점잖게는」명복(명복)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눈솔 정인섭(정인섭)박사가 생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어느 해던가,그가 세계 언어학자들의 국제회의에 나갔을 때다.유럽의 어떤 학자한테 한자로 된 자기 명함을 내밀었더니 질문하더라는 것이다.『당신 중국 사람이오?』하고.그 「창피」이후부터 한글로 된 명함을 쓴다고 했다.아호 「눈솔」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 얘기를 눈솔선생 특유의 재담이냐 아니냐로 몰고 갈일은 아니다.성명 석자 한자로 쓰면 중국사람과 구별이 안된다는 건 사실이니까.대체로 넉자 이상인 일본사람과는 그 점에서 달라진다. 국자생활의 한글화 추세 따라 고유어로 이름짓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얼마전 삼성생명이 자기회사 보험가입자들의 이름을 조사한 결과에도 그 흐름은 나타난다.그에 의할때 남녀 모두 「슬기」라는 이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음절을 셋 이상으로 하는등 동명이인 없애는 작명법도 생각해 나가야겠다.
  • “이종옥부주석 막내아들도 갇혀”/같이 수용됐던 주요 인사

    ◎당재정부장 김경련,월남기도 혐의/보위부장 김병하 딸은 체제비판죄/전 해군사령관 방철갑 일가 8명도 안혁·강철환씨가 수용됐던 함경남도 요덕정치범수용소에는 해방후 「악질지주」「친일파」「종교인」은 물론 김일성·김정일부자의 「체제비판자」「해외도피기도자」,연수·유학등 해외파견뒤 견문내용을 전파한 자와 그 가족,북송교포등 모두 5만여명이 감금돼 있는 것으로 이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이처럼 많은 정치범 가운데에는 이들 귀순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있는 당고위층및 전 조총련간부등이 상당수 있었으나 대부분 예전에 보였던 위세당당함은 온데간데 없고 노동에 시달린 초췌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현 이종옥부주석의 막내아들로 소련에서 핵물리학을 연구한바 있는 이만호씨(35)는 동료연구생들에게 북한체제를 비난하다 87년 수용됐으며,국가보위부장 김병하의 딸은 역시 북한체제를 비판했다 가족 친척 4세대와 87년 수용됐다가 조카사위들은 강제이혼당하고 친척들은 다른 정치수용소로 뿔뿔이 흩어졌다. 안·강씨는 김일성의 인물유화와 조각제작을 해온 만수대창작사과장 최덕환씨(53)를 수용소에서 만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북한에서 칭송을 받아온 최씨는 86년 김의 인물조각을 잘못만들었다는 이유로 끌려왔다가 평소 불평이 많다며 수용소내 「완전통제구역」인 용평지구로 이감됐으나 생사를 알수 없는 상태라고. 또한 전 조총련중앙위 고위간부 한학수씨(67)가족 6명과 전 조총련 교도본부위원장 윤도구씨(78)가족 8명,교도본부 조청위원장 박기현씨(62)가족 6명등은 76년 이유없이 수용됐다가 부인들이 영양부족및 결핵으로 모두 숨졌다. 북한사회의 관제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해군사령관 상장 방철갑(56)도 비슷한 형편에 처해 있다.84년 처와 아들 철(33·중앙사로청 철도부 담당지도원),딸 정숙(28·평양의학대학생)등 일가족 7명과 함께 수용돼 하루를 여삼추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다. 또 전 중앙당 재정경리부장 김경련(67)은 82년 월남기도혐의로 직계및 동생가족 8명과 함께 고초를 겪다 김은 교화소로 이감되고 나머지가족은 아직도 수용소생활을 하고있다. 김정일과 김일성종합대학정치경제학부 동기동창이라는 당 군사부과장 홍순호(51)는 86년 김정일이 『나의 동기생 가운데 당군사부에 있는 홍순호가 나의 믿음을 배반했다.엄하게 혁명화시키라』고 직접 지시해 전가족과 함께 수용됐다면서 『김부자 족벌체제는 곧 무너질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전했다. 특히 재독 자수간첩으로 잘 알려진 오길남씨(50)의 처 신숙자씨(50)와 두딸 혜원(16)규원양(13)이 87년말 수용돼 「눈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 환갑 지난 두 노인 못배운 한 풀었다

    ◎고입·고졸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내년에 전문대 입시에도 도전/이근복씨/국졸 50년만에 「중졸소원」 풀어/김해수씨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올해 하반기 고졸·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평생 가슴에 응어리진 「못배운 한」을 풀었다. 서울시교육청이 31일 발표한 검정고시 합격자 가운데 고졸부문 역대 최고령자로 밝혀진 이근복할아버지(68)와 고입부문 최고령자인 김해우할머니(61). 이들은 합격의 기쁨에 그동안의 노고가 말끔히 씻긴듯 『이제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 기분』이라며 밝게 웃었다. 경기도 강화가 고향인 이할아버지는 가난 탓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막노동·남의집살이등 온갖 궂은 일을 해오며 가시밭길 같은 인생을 억척스럽게 헤쳐왔다. 일제때는 징용으로 끌려가 홋카이도·남양군도등지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하며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었다.해방이 된 뒤에도 등짐장사등 「장돌뱅이」생활을 해왔지만 네 아들만은 대학과 고교를 어엿히 졸업시켰다. 새벽5시부터 하오1시까지 서울 중구 신당동 중앙시장쌀가게에서 「나이든 종업원」으로 허드렛일을 하다 하오6시면 어김없이 학원으로 달려가 밤11시까지 강의를 들었다.집에 돌아와서는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서야 고단한 몸을 눕혔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하루 4시간씩 잠을 자며 4년동안 꾸준하게 책과 씨름했다.이렇게 해서 이할아버지는 지난해 5월 중학교입학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이어 지난4월에는 고입검정고시를 통과했다.이할아버지의 향학열은 더욱 불타올라 또다시 4개월만에 고졸자격까지 얻게 된 것이다. 이할아버지는 『얼마전 군에서 제대한 막내아들(24)과 함께 대학입시준비를 할 예정이며 농과계열 전문대에 진학해 여생을 농사일에 바치고 싶다』고 「내일」의 포부를 밝혔다. 한편 경북 상주출신인 김할머니는 일제때 국민학교를 졸업한뒤 50년만에 중학졸업자격을 따내 평생의 설움을 풀었다.남매를 모두 결혼시키고 지난90년8월부터 책을 잡은 김할머니는 처음엔 수학과 음악과목이 제대로 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에 재미가 붙어 포기하지 않고 책과 씨름한 끝에이날 기쁨을 맛보게 됐다고 했다. 김할머니는 『손자들이 영어·수학을 물어봐도 부끄럽지않게 대답할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 외언내언

    북녘 사람들이 「남반부 인민들」의 고민의 실상을 바로 안다고 할 수는 없다.예를들어 보자면 사회적으로는 자동차가 넘쳐나는 것도 고민거리 중의 하나.개인적으로는 비만화에 대한 고민의 비중도 크다.◆비만화의 경우 어른만의 문제는 아니다.어린이의 경우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된지가 오래.서울시 교육청이 지난해 서울의 초중고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5명중 1명이 비만증이었다.이는 서울에만 40만명의 비만증 초중고생이 있다는 계산.이 비율은 해마다 높아져 간다.그에 따라 성인도 아니면서 각종 성인병을 앓고 있기까지.이것이 김만철씨 막내아들이 말했던바 『거지가 득시글거리는』서울의 모습이다.고민이다.◆어째서 비만증이 오는가.그 이치야 뻔하다.첫째 이것 저것 잘 먹으니까 그렇잖겠는가.그러고도 운동부족.사람에 따라선 선천적으로 비만 체질의 경우가 있긴 하다.그들은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고 비명이다.그러나 말라깽이도 입맛 당겨 먹기만 잘하면 역시 살집은 붇게 마련.이렇게 살이 찌게 하는데 공헌하는 것이 10분도가 넘는 새하얀 쌀밥이다.고깃국이며 고기구이이다.◆김일성주석의 신년사 가운데는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이 어린다.『모든 사람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살려는 우리 인민의 염원을 실현하는 것은…』.「거지가 득시글거리는 남반부」에서는 흰쌀밥과 고기 종류는 기피하는 흐름.현미식·잡곡밥이 권장되고 있고 육류보다는 야채·과일쪽을 선호하고 있다.비만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그런데 김주석은 그것 먹는 것을 「인민의 염원」으로 친다.◆텔레비전 같은데에 비치는 북녘 동포들에게서 비만증을 보기는 어려웠다.그 대목은 남녘 동포들로서 대단히 부러웠던 터.한데,김주석의 신년사가 실현될 때 북녘에도 뒤뚱거리는 백성들이 불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다.
  • 전 전대통령 막내 재만군/연세대 경영학과에 합격(조약돌)

    ○…전두환 전대통령의 막내아들 재만군(20·서울경복고 졸)이 25일 연세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 이날 수험번호 160398번으로 합격한 재만군은 지난 89년 이 대학 법학과에 지원했다가 불합격되자 그동안 바이올린을 배우는 등 대학진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올해에도 재만군은 지난 3월 군대에 입대할 예정이었으나 군입대가 12월로 연기되자 뒤늦게 다시 공부를 해 마침내 합격의 영광을 안게됐다. 이로써 전 전대통령의 아들 3형제는 모두 연세대에 다닌 동문이 됐다. 한편 민정기비서관은 『전 전대통령 내외께서 막내아들의 연세대합격을 세상 어느 일보다 기뻐하신다』면서 『가족끼리 조촐한 파티를 열어 자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외로운 노후” 2명,가족 모른새 사망

    ◎가정불화·부인과 사별뒤 혼자 살다/인천 두곳서 뒤늦게 발견 【인천=이영희기자】 외롭게 혼자 살아오던 70대와 50대 남자가 각각 숨진뒤 오랜시간이 지나 가족들에 의해 발견됐다. 지난 3일 하오5시40분쯤 인천시 남구 숭의2동 177의 8 이덕심씨(72)가 방안에서 심하게 부패된 채 숨져있는 것을 막내아들(24·충남 천안시 다가동)이 발견했다. 막내아들은 『혼자 생활하는 아버지에게 15일전부터 여러차례 안부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이날 찾아와 보니 방문이 안으로 잠겨있었고 아버지는 방안에서 숨져있었다』고 말했다.경찰은 슬하에 3형제를 둔 이씨가 4년전 부인과 사별한 뒤 혼자살아 오다가 숨졌으며 사인은 뇌졸중이었다고 밝혔다. 또 같은날 하오10시35분쯤 인천시 중구 도원동 23 이은익씨 집에 혼자 세들어 살던 박동진씨(56·부동산중개업)가 방안 전기담요위에 누운채 숨져 있는 것을 둘째아들(26·회사원·인천시 서구 가좌동)이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이씨의 사체는 일부 부패돼 있었고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린채였으나 외상은 없었다.경찰조사결과 숨진 박씨는 부인,두아들과 함께 살다 가정불화로 집을 나와 3년전부터 혼자 생활해 오다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 아들 목소리 흉내,송금 요청/60대 노파에 1천만원 사취(조약돌)

    ○…지난달 30일 하오1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9동 211호 김귀숙씨(43·여)집에 40대남자 1명이 김씨의 어머니 정순전씨(66)에게 전화를 걸어 정씨의 막내아들 덕용씨(40)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교통사고처리비용 1천만원을 요구,정씨가 돈을 입금시키자 이돈을 찾아 달아났다. 정씨는 이날 상오11시쯤 서대문구 북가좌2동 집에서 맏딸 김씨집에 들렀다가 『막내아들인데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가라 앉았다』면서 『차로 사람을 치어 1천만원이 필요하니 조흥은행 영등포지점에 돈을 입금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입금시켰다고 말했다. 범인은 이날 하오1시40분쯤 조흥은행 행당동지점에서 현금으로 1천만원을 빼내 달아났다.
  • 강석을씨 어제 자진출두/“사채 집구입에 사용… 세모완 무관”

    세모의 「강남지역사채모집책」으로 지목돼 수배중이던 강석을씨(45·여)가 30일 하오 서울시경에 자진 출두,『나는 오대양사건과 세모,구원파 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끌어모은 사채는 집을 늘리는데 사용했을뿐 세모측에 건네준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씨는 출두동기에 대해 『고교3년생인 막내아들이 내가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신문보도를 보고 충격을 받아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봐 걱정이 돼 나왔다』면서 『지난 88년10월 교도소를 나와 서초구 방배동과 강남구 삼성동의 민물장어집 「송강」등 음식점에서 일해오며 삼각지교회에 다닐때 사귄 청담동 강춘옥씨(43·여)아파트에서 머물러 왔다』고 말했다. 강씨는 유병언세모사장과 송재화씨(45·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난 82년 「자연보호강연회」에 참석해 강연하는 유사장을 먼 발치에서 본것말고 2번정도 더 보았을뿐 개인적으로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다』면서 『송씨는 삼각지교회에 다니면서 2∼3번 정도 만났지만 서로 깊이 사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대전지검으로 압송 한편 강씨는 이날 하오 대전지검으로 옮겨져 조사를 받고 있다.
  • “내 아들이 내손에 숨지다니”/박현갑 사회부기자(현장)

    ◎아내 가출이 빚어낸 한 가정의 비극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대 때렸을 뿐인데…』 9일 상오 11시. 서울 청량리경찰서 형사계. 집나간 어머니에게 전화걸 잔돈을 마련하기 위해 바지주머니를 뒤져 몇백 원을 훔친 맏아들 광남군(9)을 때려 숨지게 한 정영갑씨(36·무직)가 수갑찬 두 손을 내려다 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틀 전 화장실에 간다며 나간 아들이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집주변에서부터 온 동네를 밤이 새도록 샅샅이 찾아헤맸다』는 정씨는 아들이 다음날인 8일 상오 9시30분쯤 구로경찰서 오류1파출소에 보호돼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가 집으로 데려왔다. 정씨는 『왜 집을 자꾸 나가느냐』며 다그쳐도 아들이 대답을 하지 않자 홧김에 회초리로 종아리를 몇 대 때렸다. 광남군이 계속 입을 다무는 데 더욱 화가난 정씨는 이번에는 아들의 두 어깨를 잡고 벽에다 밀치고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 박았다. 그러나 광남군은 머리를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갑자기 힘을 잃고 쓰러졌다. 이때가 8일 하오 8시쯤이다. 정씨는 식은 땀을 흘리며 맥없이 쓰러진 아들의 모습에 놀라 얼른 자리에 눕힌 뒤 허겁지겁 약국에 달려가 응급약을 사왔으나 아들은 이미 숨진 뒤였다. 결국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씨는 쇠고랑을 찬 채 구치소로 향하는 길목에서 노환으로 누운 어머니(61)와 막내아들(6)의 걱정이 머리 속에 가득차 올랐다. 지난 81년 이 모씨(36)와 결혼한 뒤 행복한 보금자리를 꾸밀 꿈을 안고 중동으로 해외취업을 떠났던 정씨는 3년 동안 현지서 조리사로 일해 어느 정도 목돈을 마련해 갖고 귀국했었다. 그러나 그가 땀흘려 일하는 동안 그의 아내는 이미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었다. 귀국해서 집나간 아내를 찾아낸 정씨는 아내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이 변한 그의 아내는 정씨가 8개월여 동안 외항선 잡역부로 취직해 집을 비운 사이 다시 두 아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정씨는 가정형편을 펴기 위해 집나간 아내가 걱정되면서도 다시 해외취업을 했고 마침내 그는 우울증에 걸려 4개월 남짓 입원치료도 받아야만 했다. 정씨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도중 막내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 보며 『정신이 불안해지면서 나도 몰래 엄마를 보고 싶어 집을 나간 아들을 때리다가 이같은 엄청난 결과를 빚었다』며 자신의 잘못으로 죽은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있었다.
  • 가정집에 모자 암장시/집수리중 화단서 발견… 목졸린듯

    ◎가족내부 범행여부 집중수사 경찰 11일 상오 11시30분쯤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133 임정문씨(42·공인중개사)집 정원에서 이 집에 세들어 살던 이순애씨(54·여)와 이씨의 셋째 아들 이영우씨(23·술집종업원)가 목이 졸려 숨진 시체로 암매장돼 있는 것을 집수리를 하던 이 동네 이성국씨 등 인부 2명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수리공 이씨는 『상오 9시부터 공사를 시작,2평짜리 정원화단을 파다 사람의 손가락이 보여 더 파 보니 남녀 시체 2구가 포개져 묻혀있었다』고 말했다. 구덩이는 길이가 2m,깊이가 1m의 크기였는데 아들 이씨가 밑에 묻히고 그 위에 어머니가 묻혀있었다. 사체를 검안한 대흥의원 신현수 원장(60)은 『부패 정도 등으로 보아 이들이 한달전 쯤 목졸려 숨진 뒤 암매장된 것으로 보이며 목졸린 흔적 말고는 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사결과 이 여인은 2년 전 보증금 7백50만원에 월세 10만원씩을 주고 이 집에 세들어 셋째 아들과 함께 살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발견 당시 이 여인은 검정색 상하의에,아들 이씨는 흰색 러닝셔츠에 흰색팬티 차림으로 두 사람 모두 목졸린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이 집 주인 임씨는 『지난 4월 중순 큰아들 영길씨(31)가 이사를 가려 하니 보증금을 빼달라고 해 지난 8일 둘째·막내아들을 만나 밀린 월세를 뺀 7백만원을 건네주었다』면서 『이 자리에서 아들들이 숨진 이 여인의 채권자들에게 6백만원을 지불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집수리책임을 맡았던 이 동네 반장 이장수씨(57)의 부인 임분년씨(55)는 『지난해 7월 숨진 이 여인에게 2백만원을 꿔주고 지난달말까지 받기로 했다』면서 『이 여인이 지난 3월30일 집에 들른 뒤로는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조사에서 둘째 아들 영수씨(26·회사원)는 『지난 3월29일 이후 어머니의 소식이 끊겨 큰 형에게 행방을 물었는데 큰 형이 서너 차례나 계속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큰 아들 영길씨(31)는 동생들에게 『어머니가 부채문제로 서부경찰서에 구속되어 있다』 『서대문경찰서로 옮겨졌다』 『청송감호소에 갔다』는 등의 답변을 했으나 동생들이 확인한 결과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큰 아들 영길씨는 최근 들어 어머니의 돈 3백만원을 몰래 써버려 형제들과 다툰 것을 비롯,동네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려쓴 뒤 어머니에게 갚게 하는 등 돈 문제로 가족들과 자주 다퉈왔다는 것이다.
  • 「자활의 구슬」 꿰기 8년/서울 은평구 장애자의 집 「바오로교실」

    ◎정박아 20여명 모아 밝은 새삶 가르쳐/의지하며 살아갈 정착지 마련이 소망 20일은 11번째 맞는 장애자의 날. 몸과 마음 어느 한 구석이 불편한 이들을 위하는 이날 서울 은평구 증산동 163의1 「바오로교실」에서는 19살부터 38살까지의 정신장애자 20여 명이 모여 이날의 뜻을 되새겼다. 겉모습은 한결같이 어엿해 보이지만 하는 행동은 7∼8살 어린이마냥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이들은 매일 아침 「성취반」 「성실반」 「노력반」 「열심반」 등 4개 교실로 나뉘어 「가나다라」를 익히며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땀을 흘린다. 공부가 끝나면 오색의 구슬목걸이를 꿰는 작업으로 성한 사람 못지않은 보람을 엮는다. 비록 불우한 장애자들이지만 어둡고 그늘진 표정보다는 밝고 희망찬 기대가 더 크다. 「바오로교실」이 문을 열게 된 것은 여원장 정종화씨(52)의 막내아들 윤바오로군(19) 때문이었다. 정씨는 아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늦는 것을 이상히 여겨 생후 5개월 됐을 때 병원을 찾아갔다가 담당의사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통고를 받아야 했다. 아들의 증세는 정신박약증인 「다운증후군」이었던 것이다. 충격과 슬픔 속에서 한동안 아들을 부둥켜 안고 울며 지내던 정씨는 그러나 용기를 내 스스로 바오로의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특수교육에 관한 온갖 책들을 사다놓고 공부하면서 서대문구 북가좌동 집에 바오로를 위한 교실을 차렸다. 그러나 이웃집 정박아 경철이(19)를 아들의 동무삼아 함께 가르치면서부터 가난 때문에 아무런 보호와 교육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정박아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창피하다』며 골방 속에 가두어놓은 부모 때문에 주먹이 퉁퉁 붓도록 벽을 쳐대며 답답함을 달래야 했던 이웃의 정박아들을 하나 둘 모아 가르쳤다. 그리고 83년 1월에는 여러 이웃들의 작은 도움을 모아 지금 자리에 번듯한 교실을 차리게 됐고 학생수도 20여 명에 이르게 됐다. 이제는 교사 4명이 헌신적인 사랑으로 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서강대·이화여대 등에서 자원봉사 나온 대학생들의 도움도 크다. 이선희 교사(26·여)는 비록 대학에서 이들을 위한 특수교육을전공했지만 막상 직접 접해보니 외모와 다른 행동에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선생님』하며 따르는 이들의 꾸밈없는 마음을 헤아리면서부터 가장 친한 벗이 될 수 있었다. 『비록 학습능력과 지각능력은 떨어지지만 이들 만큼 분명히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이 교사는 자신들의 가식적인 모습은 보지 못하면서 정신지체장애자들을 비웃는 세상 사람들을 빗대어 말했다. 원장 정씨는 지난해 이 교실을 떠나 신발공장에 취업한 박 모군(20)이 얼마 전에 찾아와 1년 동안 월급을 받아 모은 2백만원이 든 통장을 꺼내 보였을 땐 부둥켜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말했다. 「바오로교실」 가족들의 남은 소망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정착지를 갖는 것. 차가운 사회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기보다는 함께 모여 토끼를 기르거나 채소를 심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자활촌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들은 오늘도 가느다란 실에다 하나하나 「소망」을 꿰어나가고 있다.
  • 청소년 연료용가스 흡입사고 급증/처벌규정 없어 “속수무책”

    ◎독극물서 제외… 적발해도 훈방만/88년 9건서 작년엔 97건으로/흡입처벌 법적장치 절실 청소년들이 연료용가스를 마시고 질식해 숨지거나 환각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려다 가스가 폭발해 다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따르면 화상 또는 사망 원인 등이 분명하지 않아 정밀감정을 의뢰받은 사건·사고 가운데 가스를 마시다 숨지거나 화상을 입은 경우가 지난 88년 9건에서 89년에는 32건,지난해엔 97건으로 급증했다. 연료용가스는 구입하기가 쉽고 그동안 환각제로 널리쓰이던 본드보다 흡입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또 본드는 독물 및 극물에 관한 법률에서 독극물로 규정,이를 마신 청소년들을 형사처벌하거나 선도차원에서 격리수용하고 있는데 반해 연료용가스는 독극물의 종류에서 제외돼 처벌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일선경찰서 등에서는 연료용가스를 흡입한 청소년들을 적발하더라도 훈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스가 폭발해 재산피해를 냈을 때에도 실화 등의 혐의만 적용할뿐 흡입자체는 처벌하지 않고있다. 1일 하오 5시쯤 서울 도봉구 미아3동 박모양(18·여상3년)의 자취방에서 박양의 친구 김모군(17·공고3년) 등 10대 5명이 부탄가스를 마시다 가스가 폭발하면서 얼굴 등에 2도씩의 화상을 입었다. 사고는 박양이 잠깐 집을 비운사이 김군 등이 이웃 가게에서 부탄가스 4통을 사다 차례로 마신뒤 환각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는 순간 방안에 가득찬 가스가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이에 앞서 지난 1월에도 김모씨(49·성북구 돈암동)가 연료용가스를 상습적으로 흡입하고 있는 막내아들 강모군(15·중학교 2년중퇴)을 서울 성북경찰서에 고발,처벌을 호소했었다. 경찰은 그러나 처벌규정이 없어 고민하다 궁여지책으로 경범죄처벌법 제1조의 24 「불안감 조성·위험한 불씨사용」 규정을 적용,구류 5일을 받게 했다. 강군은 그전에도 연료용가스를 마시다 적발돼 파출소에서 2번이나 훈방된 적이 있는 상습흡입자였다. 같은달 서울 영등포구 신길2동 이모씨(41·여) 집에서는 하숙을 하고 있던 이모군(15·중학교 3년)이 연료용가스를 마시다질식해 숨지기도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화학 2과장 박성우박사(46)는 이에 대해 『독극물에 관한 법률에 연료용가스를 추가하는 등 청소년 선도차원에서 흡입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우선 절실하다』고 밝히고 『제조업자도 연료용가스를 흡입할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용기에 자세히 표시하고 판매업자들도 연료용가스를 구입하는 청소년들을 유심히 살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 걸프종전… 쿠웨이트·이라크 교민 표정

    ◎“걸프전 빨리끝나 기쁘다”/“중동행 비행기 언제 뜨나” 문의 빗발 걸프전쟁이 종식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8일 대부분의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는 지구촌에 전쟁과 같은 대규모 인명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특히 전쟁의 현장인 쿠웨이트와 이라크에 가족을 두고 있는 쿠웨이트교민과 현대건설근로자 가족들은 예상보다 전쟁이 빨리 끝난데 대해 반가움을 표시하고 하루빨리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쿠웨이트교민 대책위원회 회장 장정기씨(48) 등 교민 10여명은 이날 상오 서울 강서구 화곡동 88체육관에서 1일부터 3일동안 열릴 「쿠웨이트 철수교민돕기 사랑의 바자전」을 준비하던 중 종전소식을 듣게되자 일손을 놓고 『이제 새출발을 할 때가 왔다』면서 박수를 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교민들은 『동포들의 따뜻한 정으로 마련되는 바자행사가 열리는 것과 때맞춰 종전소식까지 개전이후 짓눌려 있던 안타까움과 답답한 마음이 씻어지는 듯 가셨다』며 반가워 했다. 또 양천구 신월동 적십자 청소년복지관에 설치된 쿠웨이트교민 대책위원회에는 지난해 8월21일부터 귀국해 친척집 등에 머물며 막노동을 하거나 회사에 임시직으로 취업한 교민 3백72명으로부터 귀국일정 등을 묻는 전화가 쇄도했다. 이라크 현지 여자와 결혼,부인과 1살된 막내아들을 현지에 남겨두고 지난 23일 두 아들과 함께 귀국한 현대건설 외자소속 박휴중씨(35)는 『아내와 막내아들을 전장에 남겨두고와 귀국한 뒤에도 항상 마음의 절반을 이라크에 가 있었다』면서 『이라크의 상황이 좋아지는 대로 가능한한 빨리 현지로 돌아가 전쟁때문에 치르지 못한 막내아들의 돌잔치를 치러주겠다』고 들뜬 모습이었다.
  • “자살흉내” 중학생 숨져

    15일 하오2시쯤 서울 구로구 고척2동 168의62 이정순씨(48ㆍ식당업)집 건넌방에서 이씨의 막내아들 김동중군(13ㆍ오류중 1년)이 출입문에 나일론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누나 경미양(18ㆍ재수생)이 발견했다. 경미양은 『학원에서 돌아와 건넌방문을 두드려도 아무 대답이 없어 창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동생이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군이 평소 TV에서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고 관심을 많이 가졌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호기심에 자살연습을 하다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 전 전대통령,연희동 오던 날

    ◎769일만의 “환속”… 은은한 찬불가 마중/“그동안 배려로 인생 새로 깨달아” 출발인사/“대통령 보필 잘하라” 청와대 참모에 당부도/전직의원등 1백명과 악수뒤 사저 안으로/“송구영신” 글귀넣은 난초화분 보내/노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2년1개월여의 백담사 은둔생활을 마치고 30일 상오9시 하산,이날 하오2시 연희동 사저로 귀가. 지난 88년 11월23일 5공비리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강원도 인제군의 자그마한 산사인 백담사로 「유배」돼 숱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반승반속의 생활을 해온 전전대통령 내외는 정확히 7백69일만에 「환속」한 셈. 전전대통령으로서는 지난 12월31일 국회 5공·광주 특위합동청문회에 출석,증언한후 백담사로 돌아간지 만 1년만에 다시 서울 땅을 밟은 셈인데 지난해의 굳은 얼굴과 달리 비교적 밝은 표정. ○주민에 손들어 답례 ▷연희동 사저 도착◁ ○…전전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여사를 태운 서울2 두6759호 베이지색 그랜저승용차가 백담사에서 4백여리 길을 달려와 먼지를 뒤집어 쓴채이날 하오1시54분 연희2동 사저입구 골목길에 도착하자 주위에 모여있던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 검은색 오버코트에 미색 머플러를 두른 전전대통령은 미소를 띠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몸을 돌려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승용차 옆에 대기하고 있던 최석립 대통령 경호실차장,김원환 서울시경국장과 악수를 하며 『고생했다』고 노고를 치하. 전전대통령은 오랜 산사생활과 29일 밤 잠을 설쳤는지 약간 여윈 모습이었으며 검은색 오버코트에 물방울무늬의 검은색 머플러를 한 이여사는 엷은 화장을 했고 사저로의 귀환이 기쁜듯 시종 웃는 얼굴. 전씨부부는 서울 조계사와 수국사 연합합창단 69명이 부르는 찬불가 「나의 연꽃」 「보현 행원」의 은은한 합창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가운데 골목길에 늘어서 대기하고 있던 주민대표·스님대표 및 이한동의원 등 현직의원,김용갑씨 등 전직각료,유흥수씨 등 전직의원 등 모두 1백여명의 환영인사들과 6분여 동안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 전전대통령은 주민대표들에게는 『일요일인데 쉬지않고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스님들에게는 『바쁘실텐데… 추운데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고 했고 전현직 의원들과 전직 각료들에게는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고만 인사를 했는데 김정례 전 보사장관에게는 어깨를 두드렸다. 이어 전씨부부는 불교합창단이 있는 곳으로 가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는데 집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과의 일체 대화를 나누지 않고 하오2시 정각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가 아쉬움을 남겼다. 전전대통령은 집안에 들어가기 직전 『집에 돌아오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기자질문에 말없이 미소만 띈채 대문안으로 들어갔는데 사전에 기자들과의 만남은 일체 계획하지 않았었다는 후문. ▷노대통령 안부 전달◁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하오1시40분쯤 붉은 꽃이 화사하게 핀 난초화분을 연희동으로 보내 전전대통령의 귀환을 환영했는데,화분리본에 「송구영신」의 글귀를 써넣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비서실쪽에서는 지난 27일 백담사를 다녀온 김영일 사정 수석비서관이 영접나와 전전대통령에게 인사한 후 집안으로 들어가 노대통령의 간절한 「안부말씀」을 전달. 노대통령은 하오3시30분쯤 정해창 대통령 비서실장을 김수석과 함께 다시 연희동으로 보내 자신의 「기쁨 마음」을 간곡히 전언. 전전대통령은 안현태 전 경호실장 등 측근들과 함께 정실장으로부터 노대통령의 「안부말씀」을 전해 듣고 자신의 경험을 피력하면서 『잔여임기가 2년이지만 나머지 1년은 선거 등으로 경황이 없기 마련』이라며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이 노대통령을 잘 보필하여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는데 노대통령과의 짙은 「우정」이 넘쳐흐르는 분위기였다고. ○아침부터 친척 모여 ▷영접인사들◁ ○…이날 전전대통령의 연희동 집 귀환을 앞두고 자택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친인척들의 출입이 잦았으며 상당수의 신·구 정치인들이 인사차 찾아와 눈길. 이날 상오 전전대통령의 친형 전기환씨 부부와 처남 이창석씨 부부,동서 김상구 전 의원 부부 등이 전전대통령을 맞을 준비로 여러차례 집을 들락거렸고 5공출신의 정치인들로는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이 이날 정오 무렵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이한동·정동성·권해옥·이원조·이학봉·강성모의원(이상 민자)과 권익현·김정례·권정달·유흥수·이영일·홍우준·이대순·한갑수·김정남 전 의원 등이 눈에 띄었고 이원홍·이상의·김주호·이해원 전 장관 등과 고명승 전 보안사령관 등의 인사들도 연희동 자택에서 미리 기다리다 전전대통령을 영접. ○“막상 떠나니 섭섭” ▷백담사 출발◁ ○…전전대통령 내외는 30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새벽4시에 새벽예불을 올린 뒤 상오8시쯤 대웅전인 극락보전에서 차남 재용씨와 막내아들 재만씨 등 가족들과 신흥사 혜법주지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조계종 스님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하산예불」. 전전대통령은 하산예불이 끝난 뒤 상오8시30분쯤 「서울귀환에 즈음해 국민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발표문을 보도진에게 배포한 뒤 백담사 출발에 앞서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전전대통령은 『감개무량하시지 않습니까』라는 기자들의 물음에 『감개무량할 것 까지는 없고…』라고 말끝을 흐린 뒤 『남들이 서울로 돌아가게 돼 기쁘겠다고 하지만 막상 이곳을 떠나자니 섭섭한 마음도 있다』고 소회를 피력. ○…전전대통령 내외는 상오9시 정각 백담사를 출발,귀경길을 재촉. 백담사는 백담사 일주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분 서울 귀환 환송」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거는 한편 전전대통령 내외가 거처하던 만해당의 문마다 자물쇠를 채워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등 「환송」에 신경을 쓰는 모습. 전전대통령 내외는 이에 앞서 29일 저녁 가족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허문도 전 통일원장관,이양우변호사,민정기비서관 등 「백담사 캠프」와 귀경이후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는 한편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김도후 백담사 주지 등과 가족예불을 드리고 만찬을 함께 하며 지난 2년여 동안의 산사생활을 회고하며 환담. ○차량행렬 2백여m ▷귀경연도◁ ○…상오9시에 백담사를 떠난 전전대통령의 차량행렬은 원통∼인제∼홍천∼양평∼구리∼워커힐∼올림픽대로∼양화대교 등을 거쳐 약 5시간만인 하오2시께 연희동 사저에 도착. 전전대통령의 하산행렬은 민정기 비서관이 탄 로열프린스 승용차가 선도했고 이어 선도경호차량,전전대통령 차량 순으로 뒤를 이었는데 전전대통령 승용차 뒤편엔 안전경호실장,이량우 고문변호사 등 측근 차량,장남 재국씨 부부 등 가족·친지차량,서총무원장 등 조계종 차량을 포함해 20여대의 차량이 줄을 이어 대열의 길이가 2백여m에 이를 정도. 11시50분께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근처의 파라다이스호텔에 도착한 전전대통령 일행은 전전대통령의 제의로 복지리로 점심식사를 들며 휴식을 취하기도. ○대학생들,반대시위 ▷연희동 주변◁ ○…이날 전전대통령의 연희동 사저 주변에는 20개 중대 2천4백여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어 긴장된 분위기. 경찰은 이날 하오1시55분쯤 전전대통령 내외가 무사히 이곳에 도착해 집안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안도하는 모습들. ○…이날 전전대통령의 사저 골목입구에는 이웃사촌 명의의 『수현이 할아버지 할머니 환가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주민일동 명의의 『건강한 모습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눈길. 또 연희2동 부녀회 회원 1백여명은 골목입구의 어린이놀이터에 쌀막걸리 육개장밥 등을 준비해와 환영나온 주민들을 접대하기도. ○…연세대 학생 50여명은 이날 하오1시10분쯤 학교 교문앞에 모여 전전대통령 내외의 환가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10여분 남짓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유인물에서 『현정권이 전씨를 다시 불러들인 것은 5공으로 회귀하려는 국민 기만행위이며 민주세력에 대해 탄압을 가중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산사생활 감사 표시 ▷백담사 주변◁ 전전대통령이 막상 2년1개월여만에 「삭풍의 광야」로 불리는 이곳 백담사를 떠나자 현지 주민들은 대체로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여 인정에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 백담사 홍천 총무스님(40)은 전전대통령이 전날밤 만해당에서 차를 나눈 자리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해 입산을 하도록 배려해 준 여러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만약 내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처럼 값진 새삶을 알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라며 산사생활에 감사를 표시했다고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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