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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장사로 마련한 20억땅 대학에 선뜻/남대문 의류상 김덕윤 할머니

    ◎“「한경직 목사 기념관」 건립에 써 주세요”/시장생활 26년… 불이웃보면 못참아요 실향민 할머니가 의류행상 등으로 어렵사리 마련한 20여억짜리 땅을 대학에 기증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로 재산을 모은 김덕윤(67·여)씨는 2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205일대 4백77평의 대지를 「한경직목사 기념관」 건립 등에 써달라고 숭실대에 맡겼다. 김씨는 지난 51년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빈손으로 월남한 실향민.부산 국제시장에서 행상을 시작,서울 남대문시장에 자리를 잡기까지 모진 시련을 견뎌야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남에게 베푸는 일에 열심인 삶이었다. 『피난살이 때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어렵게 모은 재산을 좋은 일에 쓰게 되니 더없이 기쁩니다』 옷가지를 만들어 내다 팔기 26년.그 동안 두 아들을 대학까지 가르치고 재산도 모을 정도로 악착같았지만 어버이날·어린이날이면 잊지 않고 양로원·고아원을 찾아 다니는데 보람을 느꼈다. 막내아들 김인(45·건설업)씨는 『장삿일에 바쁜 어머니 대신 이웃 아주머니들이 끓여 주는 김치찌개와 콩자반을 주로 먹고 자랐다』고 회상하고 『남들에게 오히려 더 자상한 어머니에게 섭섭함을 느낄 때도 가끔씩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77년 남편 김상목씨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장사를 그만두고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서울 보성여고와 영락보육원 등에 꾸준히 장학금을 지원,지금도 은혜를 못잊는 졸업생들이 꼬박꼬박 세배를 오곤 한다. 이번에 숭실대에 재산을 내놓은 것은 이 학교 1백주년 기념사업의 하나인 「한경직 목사 기념관」건립에 대한 관심때문.어릴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져온 김씨는 같은 고향 출신의 한목사를 늘 존경해왔고 평양에 뿌리를 둔 숭실대에도 애착을 느끼고 있다. 동부이촌동과 남대문시장에도 약간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지만 자식들마저 자세한 내역은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김씨가 자식들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을 작정이기 때문이다.
  • 베트남종전 20돌 화제의 2인

    ◎국방장관이 격려 라이따이한 최민호 일병/“한국은 나의 조국… 국방의무 당연”/어머니 품안겨 탈출… 시련딛고 꿋꿋한 삶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저 얼떨떨합니다』 베트남전쟁 종전 20주년인 4월30일을 하루 앞둔 29일 이양호 국방장관으로부터 「격려」를 받은 「라이 따이한(한국인 2세)」 최민호 일병(21)은 「졸병」인 자신이 국방장관을 만났다는게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 장관은 최근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청년이 한국군에서 복무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베트남전 종전 20주년을 맞아 주인공을 어머니 장티투씨(43·인천 북구 삼산동)를 함께 만나기로 한 것.육군은 이에 따라 28일 밤늦게 육군 제28사단 소속 90㎜무반동총소대 부사수로 근무중인 최일병에게 이날 아침 급거 상경을 지시,「국방장관과 라이 따이한 일병」의 만남이 성사됐다. 인솔장교 송모중령은 『최일병은 사고방식이 건전하고 적극적이어서 부대에서도 모범적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최일병이 이등병시절인 지난해 장거리행군에서 모범용사로 뽑혀 4박5일간 포상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최 일병이 우리나라에 온 것은 생후 1년이 막지난 75년. 월남패망 나흘전인 4월26일 어머니의 품에 안겨 사이공에서 마지막 철수선인 우리 해군함정을 탔다.어머니 장티투씨는 73년 당시 월남에 조선기술자로 파견와 있던 최모씨(56)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최 일병은 한국에 입국하면서 자동적으로 주민등록번호 「740307­1079319」를 취득,완전한 한국인이 됐다. 그러나 최 일병은 14세때 어머니가 친척들의 반대로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단둘이 부천에서 어렵게 살아왔다. 어머니는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며 최일병을 키워 인천제물포고 정보처리과를 졸업시켰다.어엿한 컴퓨터기술자로 자란 최일병은 지난해 입대직전까지 컴퓨터업체인 삼원전자에서 전자기판설계 일을 했다. 제대후의 계획에 대해 『베트남에 가 외할아버지등 친척을 만나보는 것』을 첫 손가락으로 꼽은 최 일병은 앞으로 계속 컴퓨터를 공부,훌륭한 컴퓨터설계사가 되는 것이꿈이다. 최 일병은 이 장관으로부터 『어려움에 좌절 말고 충실히 근무,자랑스런 한국인이 돼달라』는 당부와 함께 이틀간의 특별휴가증을 얻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베트남 음식점 「라우제」대표 김성창씨/“전쟁 상흔 씻고 민간외교 한몫/자유기고가로 참전… 한·월관계 교량역 30일은 베트남전쟁이 끝난지 20년 되는 날. 베트남전쟁때 주월한국대사관 무관부 직원으로,영자 월간잡지 자유기고가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든 김성창(57)씨가 맞는 종전 20년의 감회는 남다르다.그는 지난달말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 우리나라에선 처음인 베트남 궁중 음식점 「베트남하우스­라우제」를 차린 주인공이다.음식점을 차린 이유는 『지난날 전쟁의 상흔을 잊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말이 식당이지,우리와 베트남의 민간가교 역할을 자임한 「서울의 호치민거리」인 셈이다. 방한켠 색바랜 벽지 위에 비닐로 정성스레 싸여 벽에 걸려있는 베트남 전통의상 분홍빛 아오자이,그 위로 과일나무 잎사귀로 만든 모자와 남녀가 사랑의 정표로 주고 받는다는 농라도 보였다. 두나라가 수교한 뒤 해마다 몇차례씩 베트남에 드나들던 김씨는 지난해 6월 호치민시에서 식중독에 걸려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베트남통」이 되었다.치료해준 응엔 리엔씨(64)와는 의형제를 맺었다.8년동안 호치민(호지명)의 주치의를 지낸 리엔씨는 다음달 20일 김씨의 초청으로 서울에 오게 돼 있다. 김씨는 최근 도 무오이 베트남공산당서기장이 방한하자 숙소에 전통궁중요리 라우제(노양제)를 만들어 보냈고 치료차 우리나라에 온 무오이서기장의 막내아들 통역을 맡을 만큼 「베트남파」로 꼽힌다.베트남에 진출하려는 업계관계자들이 하루에도 2∼3명씩 알음알음으로 식당에 찾아와 자문을 구하고 베트남 현지에서도 『한국에 가면 반드시 「옹 김(미스터 김)」을 찾으라』는 말이 퍼져있다. 김씨는 지난 18일 버스에 깔려 숨진 동료 여자연수생의 소식을 듣고 침울해 있는 4천여명의 베트남 산업연수생들을 위해 달마다 고향음식으로 생일잔치를 열어주기로 했다고 한다. 「당신이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농라를 벗어드리겠습니다」­농라에 얽힌 베트남의 전설을 얘기하는 김씨는 종전 20년의 베트남이 지금 우리에게 수줍게 농라를 내밀고 있다면서 우리도 가슴을 활짝 열자고 말했다.
  • 66세 사업가 「47년만의 학사모」/대명레저대표 조동오씨

    ◎48년 서울대정치학과 입학… 6·25로 포기/언론인거친기업가… 93년 딸 권유로 복학 언론인 출신의 6순 사업가가 서울대에 입학한지 47년만에 졸업,「최고령 재학생·최장기 졸업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는 25일 서울대를 졸업하는 대명레저 대표 조동오(66·영등포구 여의도동)씨. 조씨는 지난 48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이 한창이던 51년 4학년때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조씨는 전쟁직후인 54년부터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57년 재등록을 했으나 바쁜 업무때문에 또 다시 등록을 포기,제적됐었다.그러나 조씨는 서울대 특례재입학 조치로 지난해 2학기때 65세의 나이로 재입학하여 「비교정치론」「일본정치론」「한국정치론」 등 5과목을 막내아들뻘인 후배들과 함께 배우며 졸업이수 학점 1백40학점보다 많은 1백48학점을 땄으며 전체 학점 평균은 4.3만점에 2.12점으로 높지 않았으나 5과목에서 2.92의 비교적 높은 학점을 따내는 저력을 보였다. 대학 1년 후배인 김영국(65)전 부총창의 지도로 제출한 졸업논문은「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일 고찰」. 조씨는 93년 김교수를 비롯한 동창들의 권유를 받은뒤 복학을 망설이다 맏딸 윤정(35·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일어과)씨의 설득으로 학업을 잇게 됐다고. 54년 조선일보 수습 1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한 조씨는 한국일보를 거쳐 중앙일보 일본특파원,중앙일보 편집국장(74년)을 엮임했다.
  • “김대통령「인권개선 노력」평가”/「평화상」시상차내한 스코트 킹여사

    ◎“상호 문화 이해가 한흑갈등 해소 지름길 64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저명한 흑인 인권운동가 고 마틴 루터 킹목사의 미망인인 코레타 스코트 킹여사(68)가 김영삼대통령에게 「마틴 루터 킹 평화상」을 수여하기 위해 25일 하오 내한했다. 킹여사는 이날 「킹센터」소장인 막내아들 덱스트 킹목사(34)와 함께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김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타협할 줄 모르는 자세로 비폭력원칙에 충실함으로써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본보기가 됐다.또 한국을 성공적인 민주주의국가로 이끌었으며 언론자유와 사회개방에도 공헌한 점을 높이 샀다. ­미국내 한국인과 흑인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은.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 갈등해소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킹센터가 하는 일과 킹목사가 추구했던 것은 무엇인가. ▲킹센터는 비폭력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을 추구한다.킹목사도 이를 통해 사랑·평화·정의를 실현하려 했다.인종을 초월해 세계자녀들이 함께 하자는 것이 남편과 나의 꿈이다. 「마틴 루터 킹 평화상」은 킹목사가 창립한 「비폭력 사회변화를 위한 마틴 루터 킹 센터」에서 매년 세계적으로 인권운동과 민주주의 신장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수여하는 권위있는 상이다. 킹여사는 26일 상오 청와대를 방문,김대통령에게 상을 수여한 뒤 오찬을 함께 할 예정이다.
  • 소설 포청천/석옥곤 지음(화제의 책)

    ◎연기 TV외환 「판관 포청천」의 원작소설 현재 TV드라마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판관 포청천」의 원작소설로 원제목은 「충렬협의전」이다. 백성을 위해 정의롭고 엄정하게 법집행을 한 중국 송나라 때 실존인물 포증의 일대기를 그렸다.「청천」이란 당시 사람들이 그의 청렴강직함이 「푸른 하늘」과 같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부농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청천이 아버지가 꾼 불길한 꿈 때문에 버림받은 어린 시절,왕조·마한·장룡·조호등 4대 호법을 만나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청년기,황실과 승상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악인을 처벌하는 장년기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오직 백성만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의 모습이 돋보이는 한편으로는 ▲사건을 파헤쳐가는 추리기법 ▲전조와 4대 호법이 펼치는 무협소설식의 활약상들이 재미를 더해준다. 19세기 말에 나온 이 소설은 중국인들에게 「삼국지」「수호지」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무협소설 작가 박영창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미래사 전 4권,각권5천원.
  • 6·25때 월남한 60대 금방주인(조약돌)

    ◎2번째 장학회 세워 10억 기증 ○…금은방을 운영하는 60대노인이 대학에 10억원을 장학금으로 기증키로 해 화제. 원주시 중앙동 중앙시장에서 금은방인 보금당을 운영하는 한승룡씨(68)는 24일 장학금으로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올해 5억원을 기탁하고 96년과 97년에 각각 2억5천만원씩을 추가로 내놓겠다고 밝혔다.이를 위해 지난 15일 자신의 아호를 딴 「청파장학회」를 설립. 1·4후퇴때 함남 함흥에서 월남,지금까지 원주에서 살아온 한씨는 연세대 원주캠퍼스 보건과학대학을 졸업한 막내아들 경범군이 지난 89년 교통사고로 숨지자 90년 아들의 이름을 딴 「경범장학회」를 설립,3억5천만원의 장학금을 이 대학에 기탁해 그동안 연세대 원주캠퍼스 보건과학대학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
  • “김정일 막내아들 스위스 유학중”/일 주간문춘 보도

    ◎세번째처 소생… 베른 「인터내셔널 스쿨」에/공관운전수아들 「문강철」 위장 92년입학 【도쿄 AFP 연합】 북한 김정일의 13세난 아들이 현재 스위스에서 수학중인 것으로 일본의 주간문춘이 21일 보도했다. 이 주간지는 지난주 스위스 베른의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김의 아들 사진을 게재하면서 베른과 제네바주재 한국 정보요원들과 외교관들은 그가 김이 세번쩨 처 김혜숙과 사이에 난 막내아들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문춘은 약 1백65㎝ 키의 김의 막내아들이 지난 92년12월부터 문강철이라는 이름으로 이 학교에 입학했다면서 그는 제네바주재 북한 유엔대표부의 운전사인 박남철의 아들로 돼 있으나 공관운전사가 부담하기에는 학교수업료가 너무 비싸며 매일 그를 학교까지 태워주면서 그앞에서 굽신거리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김의 아들은 또 박철이라는 이름의 역시 13세난 소년과 함께 학교에 다니는데 베른의 외교관들은 그(박철)를 『세계에서 가장 어린 경호원』으로 지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의 아들과 같은학급인 한 아동의 학부형은 『문이 입학당시 긴장되고 굳어 있었으며 영어도 서툴렀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영어도 구사하고 보다 사교적으로 됐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세번 결혼해 26세난 딸 김혜경과 23세의 아들 김정남 등 수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면목4동 유상호씨/환경파수꾼:7(녹색환경가꾸자:66)

    ◎일요일마다 중량천쓰레기 수거/옥상에 고추 심어 음식찌꺼기 퇴비로/가족회의서 합성세제 안쓰기 등 결의 『중랑천 풀 한포기,돌멩이 하나도 낯설지 않습니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일대 중랑천에서 1년째 남몰래 쓰레기수거작업을 해온 「중랑천파수꾼」 유상호씨(54·유류도산매업·면목4동 399의20)는 휴일인 지난달 31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속에서도 어김없이 장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하오3시쯤부터 3시간여 근처 면목교에서 장평교까지 중랑천 1㎞남짓 구간을 청소한 유씨는 푸른색 고무장갑과 목장갑을 벗고 쇠갈쿠리를 비스듬히 눕혀 둔채 소나기땀을 훔쳐냈다. 『우리의 식수원이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조금씩 노력하면 푸른 물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씨는 매주 일요일 중랑천에 나가 하천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폐타이어와 비닐·플라스틱용기 등을 건져내고 고수부지에 파묻힌 헝겊·이불·폐가죽등을 끄집어내 불태우거나 근처 쓰레기집하장에 버리기도 한다. 매번 80㎏들이 부대 5∼6개를 족히 채울 정도의 쓰레기가 걷힌다. 『주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겸손해 하는 유씨는 그러나 『갈수록 주민들의 마음이 맑은 중랑천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특히 최근에는 열대야현상으로 더위를 식히러 중랑천에 나온 주민들이 음식물찌꺼기와 비닐조각 등을 마구 버리는 바람에 유씨는 더욱 바빠졌다. 경남 산청군 생초면 신연리 지리산 기슭이 고향인 유씨는 59년 진주고를 졸업한 뒤 이듬해 상경해 낯선 면목동에 터를 잡았다. 30여년의 타향살이 끝에 어느새 면목동 토박이가 된 유씨는 그러나 지금도 눈만 감으면 시리도록 푸르던 고향 하늘과 맑은 시냇물이 아련히 떠오른다고 말했다. 『중랑천도 불과 15∼16년전만해도 고향마을의 시냇물 못지않아 여름에는 맑은 물에 멱을 감기도 하고 저녁무렵에는 아내와 제방을 거닐면서 오손도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이후 공장폐수와 생활하수가 부쩍 늘면서 갈수록 중랑천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자 유씨는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 없어 「중랑천지기」를 자청했다. 유씨는 그동안 주민들이 『하루에 얼마받고 일하느냐』『구청에서 나온 과장님이냐』고 접근하다가도 『동네 주민인데 같이 좀 치웁시다』는 제의에 모른 체하고 꽁무니를 빼는 경우가 많아 속이 상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4월에는 고수부지 웅덩이에 반쯤 파묻힌 이불을 꺼내다가 어깨가 탈골되는 바람에 2개월 남짓 침을 맞기도 했다. 또 비닐에 싸여 고수부지에 내버려진 죽은 고양이와 강아지를 치울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귀띔했다. 크고 작은 어려움속에서도 유씨는 언젠가는 중랑천이 꼭 되살아날 것이라는 신념으로 숨은 일꾼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특히 유씨는 최근 관할 중랑구청 직원을 찾아가 근처 차량경정비업소에서 몰래 내다버리는 폐타이어와 폐베터리가 이 일대 고수부지에 쌓이고 있으니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해 단속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노모(75)와 부인(49),1남2녀와 함께 비교적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유씨는 이밖에도 중랑천에 흘러드는 오염원을 줄이기 위해 집 옥상 10평남짓 공간에 고추·토마토·들깨 등을 재배하면서 음식찌꺼기를 거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온 가족이 회의를 갖고 합성세제 안쓰기·우유 안버리기·재활용품모으기 등을 결의했다. 『우리만 이런다고 나아지겠느냐』며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막내아들 삼수군(19·대학1)도 아버지의 「중랑천나들이」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쓰레기줄이기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가정과 학교·직장 등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으면 중랑천은 금방 되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유씨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 일에 동참한다면 더욱 신바람이 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 유미리(재일교포 작가)의 연극세계 집중조명

    ◎민중극단,9일∼10월2일 성좌소극장서 「유미리 연극전」/「물고기…」/장례통해 붕괴된 가정 복원과정 그려/「해바라기…」/민족 정체성 상실·모성의 부재 꼬집어/재일 한국인의 정신적 현주소 한눈에 일본 최고권위의 기시다(안전)희곡상을 수상한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씨(26)의 연극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무대가 선다. 민중극단이 오는 9일부터 10월2일까지 대학로 성좌소극장에서 펼치는 「유미리 연극전」.특히 이번 무대는 한국인의 혼이 담긴 일본속의 우리 연극을 깊이있게 소개,재일한국인의 정신적 현주소를 한번쯤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88년 극단「청춘 오월당」을 창단,연출가로도 활동해온 유씨는 재일교포의 불운한 가족사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신예여류작가.『나의 연극은 장례식이다.죽음을 더듬어가는,나를 찾기위한 여행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에는 언제나 이별과 죽음을 통해 확인되는 절박한 사랑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물고기의 축제」와 「해바라기의 죽음」등 2편.이들 역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죽음 등을 공통의 모티브로 깔고있다. 「유미리 연극전」의 서막을 장식할 「물고기의 축제」는 92년 제37회 기시다(안전)희곡상 수상작.일본 연극계의 신인극작가 등용문인 이 상은 본격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아쿠타가와(개천)상과 대중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나오키(직목)상의 혼합성격을 띠는 희곡문학상이다. 「물고기의 축제」는 막내아들의 죽음과 장례를 통해 붕괴됐던 가정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품으로 도쿄,삿포로,나고야 등 일본 현지공연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화제작이다.장례식이라는 죽음의 통과의례를 웃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극복해내는 작가 특유의 「초월의 미학」이 담겨져있다. 연출을 맡은 윤광진씨(40)는 『기존의 이야기중심의 극전개방식에서 탈피,인간 내면심리의 흐름을 연극적 이미지로 승화시키는데 연출의 역점을 둘 방침』이라며 『서로의 삶을 닮아가고 이해하면서 변화해가는 인간화해의 과정을 서정적인 톤으로 그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94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김혜옥·우상전 등 중견연기자와 서주희 김정석 김성노 문진수 등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호흡을 맞춘다.9일부터 8월16일까지 화·수 하오7시30분,목∼일 하오4시30분·7시30분 공연. 재일한국인의 슬픔과 희망을 진솔하게 그린 「해바라기의 죽음」(박상현 연출)은 민족정체성의 상실과 인간의 영원한 정서적 생명줄인 모성의 부재를 날카롭게 꼬집은 작품.근친상간과 근친살해라는 가장 폭발적인 비극성에도 불구,그 격렬한 감정은 연극이 끝날때까지 줄곧 침묵의 언어에 갇혀져있는 것이 이 극의 특징이다.요즘의 우리 연극이 불필요하게 많은 대사와 과장된 표현에 기대고 있음에 비춰볼때,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린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다.이영숙 이열 박기산 등 중견연기인들이 출연한다.8월20일부터 10월2일까지 하오 4시30분·7시30분 공연.
  • 지명유래:5(서울 6백년 만상:36)

    ◎정동/태조계비 신덕왕후 묻혔던 곳/태종 즉위후 무덤 파헤치고 석물치워/시신 버렸던 북한산골짝 「정릉」으로 태조 이성계.꺼져가는 고려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포은 정몽주가 왕권찬탈에 걸림돌이 된다고 단칼에 살해했던데서 보듯 대단한 냉혈한이었음에 틀림없다.어디 정몽주뿐인가.최영,임견미,염흥방등 개국에 방해되는 인물은 닥치는대로 무차별 제거했던 태조였지만 사랑과 죽음앞에서는 그도 평범한 지아비요 인간이었다. 태조 이성계에게는 두여인이 있었다.함경도 영흥출신인 태조는 고향에서 백년가약을 맺었으니 흔히 한씨로 통하는 신의왕후였다.방원등 6남2녀를 낳았던 한씨는 불행하게도 조선개국을 1년 앞두고 좋은시절 한번 맛보지 못한채 숨졌다. 또 하나의 여인은 태조가 벼슬길에 올라 고려의 서울인 개성에서 함께 살았던 계비 강씨였다.방번,방석의 모친인 강씨는 조선개국후 4년을 더 살았다.명실상부한 왕후였고 그가 신덕왕후였다.태조는 신의왕후와도 금실이 좋았지만 평생을 전쟁터로 뛰어다녀 따스한 「치마폭 정」을 제대로 알았을리 없다. 왕위에 오른 태조는 뒤늦게 신덕왕후의 「분내음」을 알았던지 계비 강씨를 무척 사랑했다.결국 왕자의 난을 불러오지만 왕위세습의 철칙까지 거슬러가며 강씨와의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그토록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태조나이 61세 조선개국 5년만에 숨을 거둔다.태조는 강씨에 대한 연모하는 정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다.태조는 강씨의 묘자리를 손수 찾아 나섰다가 끝내는 도성밖으로 내보낼 수없다며 경복궁에서 내다보이는 맞은편 언덕에 시신을 묻도록 했다.그곳이 바로 지금의 문화체육관옆의 언덕바지로 정릉이었다.그때부터 사람들은 덕수궁일대를 정릉이 있던 동네라해서 정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태조의 신덕왕후에 대한 요즘말로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숭유배불을 「국정지표」로 제시했던 태조는 정릉옆에다 흥천사라는 무려 1백70칸짜리 대사찰을 짓고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고 또 빌도록 했다.그러나 사람의 운명이 한치앞도 못보는 법.신덕왕후가 죽은 2년뒤에는 아들 방번과 방석은 이복형 방원의 칼에 무참히 참살되었고 그뒤로 또 3년후에 방원이 태종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정릉은 풍비박산이 난다.신덕왕후의 시신은 북한산 골짜기에 아무렇게나 버렸고 그 웅장했던 묘석들은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는데 자재로 활용됐다.당시만해도 인왕산을 오르내리던 호랑이가 낮잠을 잤다고 전해지는 북한산 골짜기는 정릉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신덕왕후의 죽음은 두곳에 이름을 지어준 셈이 됐다. 이조실록을 보면 고종에 이르러 신덕왕후의 시신이 묻혔던 자리를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상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면 신덕왕후의 묘자리는 5백년동안이나 아무렇게나 방치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또 정릉을 감싸던 「귀하신」 묘석들은 천하디 천한 청계천 다리돌이 됐고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시궁창에 처박혀버렸다. 절대권력의 서릿발같은 한기가 따스해지는데는 6백년의 세월도 부족했던가.어디 한 인간의 사무친 원한이 이러했겠는가.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불공대천지 원한이라도 몇백년동안 끌어왔겠는가.정릉골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싸늘한 냉기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연유를 알 것만 같다.
  • 백18세 최고령할머니 별세(조약돌)

    ○…올해 1백18세로 우리나라 최고령자로 알려진 이아기할머니가 2일 하오 노환으로 별세. 이할머니는 공부상 생년월일이 1876년 3월15일로 조선조말 고종때 태어나 만 1백18년 2개월 18일,날짜로 따져 4만3천1백48일의 천수를 누렸다. 이할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이어 네명의 자식을 호열자로 잃은 후 막내아들 김판술씨(63)내외와 증손자와 함께 관악구 신림5동에서 살아왔다.
  • 「산의 화가」 박고석화백 판화전

    ◎10일까지 갤러리현대 등 3곳서 14점 공개/수채화·드로잉 분위기 살려… 화문집도 출간 「산의 화가」 박고석화백(80)이 판화전을 연다.1일부터 10일까지 갤러리현대와 샘터화랑·부산공간화랑에서 갖는 개인전은 작가가 그동안 오르내리며 화폭에 담아온 산그림 14점을 판화로 제작해 보여주는 자리다. 전시작품은 산을 대상으로 한 수채화와 데생 2백여점 가운데 가장 그의 화풍을 압축해 담고있는 것만을 고른 것으로 모두 미공개작이다. 판화들은 파리의 판화공방 그라파 리도파리에서 1년에 걸친 작업끝에 완성했으며 작가가 현장에서 제작한 수채화와 드로잉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제작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원화를 판화로 바꿔 제작한 복제판화전의 성격이지만 국내 대표적인 과작작가인 박화백이 판화제작에 나섰다는 점 자체가 눈길을 끈다.예술적 완성도에의 집착으로 작품을 많이 제작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박화백이 판화전을 여는 것은 판화의 특징인 복제성과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일반인에게 다가선다는 뜻을 담아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한편 박화백은 이번 판화전에 맞춰 자신의 수필과 미술평문을 한데모은 화문집 「글과 그림」을 출판했는데 지난 50∼70년대 신문 잡지에 기고한 글과 함께 사진작가 강운구씨와 막내아들 기호씨가 찍은 박화백의 일상과 창작활동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
  • 지명유래:3(서울 6백년 만상:34)

    ◎초동/왕자의 난때 방원­진압군 싸운곳/수송동/정도전이 이름 붙였던 수진방서 유래/고덕동/“두임금 못 섬긴다” 충신 이양중이 은거 조선시대는 선비정신이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는 사회였다.뜻을 세우면 목숨을 걸고 그 뜻을 관철시키는 선비정신은 충절이나 명현으로 칭송받기도 했고 때로는 멸문지화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수송동은 1914년 수동과 송현동이 합해지면서 수자와 송자를 따서 붙여진 땅이름이다.송현동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고갯마루라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수동은 바로 조선왕조의 실세 정도전이 붙였다고 전해진다.정도전은 지금의 종로구청과 교통센터가 들어선 곳에 집을 짓고 「당대에 집주인은 오래장수할 것이요 백자천손이 번창할 자리」라는 뜻으로 수진방이라고 동네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경복궁의 좌향을 놓고 논쟁끝에 무학대사를 물리칠만큼 풍수지리에도 높은 식견을 가졌던 정도전도 자기 운명앞에서는 삼척동자였다.서울정도 5년만인 태조 7년(1398년) 세자책봉을 놓고 조선왕조는 첫번째 혈전을 벌이게 됐다.충직한 신하였던 정도전은 이태조의 명에 따라 후궁 강씨 소생의 막내아들 방석을 지지하려다 방석등과함께 방원에게 피살당하고 만다. 정도전이 터를 잡고 이름까지 붙였던 「정도전터」는 그가 역적으로 몰리자 수만필의 말을 길러내는 사복시터로 전락하고 만다. 근래 수송국민학교가 들어서 미래의 꿈나무들을 배출하면서 「백자천손이 번창할 자리」라는 정도전의 예언을 이어가는듯 했으나 결국 종로구청과 교통센터가 차지해 버렸으니 그의 예언 역시 별것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정도전의 죽음은 또하나의 땅이름을 지었다.방원이 사병을 일으켜 두명의 이복동생과 개국공신 정도전,남은등을 살해하자 태조는 펄쩍펄쩍 뛰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제 동생을 둘씩이나 죽이고 개국공신을 살해하면서까지 왕위를 노리는 정안군(정안군 방원)를 살려둘 수 없다.당장 잡아들이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왕위를 노렸던 방원이었지만 처음에는 아버지 군대에 차마 맞서 싸우지 못했다.광화문에서부터 뒷걸음질 치다 지금의 스카라극장까지 밀리게 됐다.막다른 골목에 이른 방원은 결국 칼을 빼 부왕의 군대와 첫 싸움을 벌였다.그때부터 이곳은 「처음 싸움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초전골이라고 불렸다.그후 백성들은 초자를 풀초자로 바꿔 불러 지금의 초동에 이르렀다. 똑같은 옹고집도 때를 잘 만나면 두고두고 칭송거리가 된다.역시 이태조와 태종연간의 일이다.방원과 절친한 친구이면서 고려왕조에서 형조참의까지 지낸 이양중이라는 선비가 있었다.이양중은 방원과 그의 아버지 이태조가 조선을 개국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지금의 고덕동의 농촌으로 은거해 버렸다. 왕위에 오른 방원은 옛 우정으로 이양중을 불러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판윤에 임명하려 했다.태종이 친히 고덕동에까지 나가 밤새도록 술잔을 나누며 우정을 받아 줄 것을 간청했지만 불사이군을 고집한 이양중은 태종의 청을 끝내 거절했다. 왕명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으니 트집을 잡자면 혼줄이 났으련만 태종은 이양중의 뜻과 덕이 높다고 칭송하고 그의 아들을 불러 높은 벼슬을 제수했다고 한다.이때부터 이양중이 은거했던 일대를 고덕리 혹은 고더기로 불리다가 뒤에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지금의 고덕동이란 이름을 얻었다.
  •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앙헬 로메로/27일 세종회관서 서울시향과 협연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앙헬 로메로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협연자로 27일 하오 7시30분 세종문화회관대강당 무대에 선다. 앙헬은 브리태니카백과사전에 「20세기에 고전기타를 부흥시킨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 가문」 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로메로가의 막내아들.아버지 셀레도니오(1918년생)를 리더로 셀린(1940년생),페페(1944년생),앙헬(1946년생)등 4부자가 모두 세계 기타계를 주름잡는 명연주자들.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는 1967년 유명한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을 작곡해 이들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앙헬은 「천사」라는 이름답게 뛰어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한다.이번 연주회에서 아버지 셀레도니오가 작곡한 「말라가 협주곡」과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즈 협주곡」을 들려줄 예정.서울시향은 이밖에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과 에네스코의 「루마니아 광시곡」1번과 2번을 연주한다.지휘는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 원경수.문의는 3991­630.
  • 김평일 돌연귀국 권력투쟁과 유관/러시아지 보도

    【모스크바 연합】 북한 김일성주석의 막내아들이자 핀란드 주재 대사인 김평일의 돌연한 평양 귀국은 북한 내부의 권력 투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러시아 일간 세보드냐지가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평일이 핀란드에 부임,신임장을 제정하고 대사 관저에서 불과 2주를 체류한후 핀란드 대통령이 연례적으로 주최하는 외교사절단을 위한 연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지난 4월말 평양으로 귀국한 사실은 북한 고위층에서 전개되고 있는 치열한 권력투쟁과 관련이 있다는 무성한 관측을 낳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북한핵문제와 관련,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과 타협할 준비가 돼 있으나 북한은 핵문제보다는 자체 권력투쟁에 보다 관심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 자식에의 유산은 「건전한 정신」으로(박갑천칼럼)

    송장 누여놓고 싸움판 벌인다고 했다.숨거둔 아비 주검 묻지도 않은채 형제간에 재산문제로 이러쿵 저러쿵 찧고 까부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대체로 재산이 많은 경우들이다.창피하기 이를데 없는 짓이건만 당자들은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입에는 게거품을 문다.재산이란게 뭔지,원.지난해 서울 장위동의 일가암매장 사건도 아버지 재산을 탐낸 막내아들 범행이었다. 이같이 못된 집안의 보추없는 다툼질을 듣고 보면서 생육신의 한사람인 인재 성담수의 가멸진 마음씀을 되짚어 보게 된다. 그는 동생 홍문관교리 담년과 함께 시문으로 이름이 높았다.형제자매가 10명이나 되었는데 부모가 돌아가자 3년상을 마치고서 그들 모두를 불러모아 놓고 재산을 나누었다.그는 변변한 물건은 동생들에게 주면서 종들에게까지 마음을 썼다.누이동생인 이정견의 아내가 집이 없기 때문에 본집을 그에게 주려고 했다.이에 아우들이 부모 계시던 집은 장자가 가져야 한다고 반대하자 다같은 자식으로 나만 집을 가질수 없다면서 무명등의 재산을 팔아 이정견의 집사는데 보태었다.아우 담년도 가재를 팔아 형의 뜻에 따랐다(이육의 「청파극담」에서).재산 놓고 아옹다옹하는 것과 대조가 되지 않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그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 한다.그래야만 봉제사 제대로 하고 가문도 떳떳이 이어가리라 생각하면서.그 유지를 잘 받들면 좋겠지만 그 유산이 도리어 사람까지 망쳐버린 사례도 적지않다.거저 생긴 재산에 자신의 피땀이 어려있겠는가.그러니 귀한줄을 모른다.낭비하고 실수하고 하다가 쉽게 날려버린다.저승의 아버지로 볼때는 자식과 재산을 함께 잃은 꼴이다. 이를 경계하여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한서」(한서)에서 인용하여 적어놓고 있다.『상자속에 가득히 황금을 채워두는 것이 자식에게 경서 한권을 가르쳐 주느니만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한가지 재주를 가르쳐 주느니만 못하니라』.지봉 이수광의 자경수신훈에도 그런 대목이 보인다.『…착한일 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재물로써 그 자손을 부유하게 하려는 사람은 그 자손을 불행하게 만든다』 『재산을 자식에게만 물려주지 말고 이웃과도 나눕시다』고 하는 유산 남기지 않기운동이라는 것이 있다.10년전 종교인들 사이에서 싹튼 이 운동은 이제 각계각층의 비종교인까지 가세하여 깊이 널리 뿌리내려 가고 있다고 한다.자식에게 물리는 참된 재산은 「건전한 정신」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 팔순부부교수… 이의철·김갑순씨댁(훈훈한 우리가정:6)

    ◎“주말마다 3대가 모여 이야기꽃 피워요”/자손들에 요구·간섭없이 개성·자유 존중/“모든 문제는 대화로”… 세대벽 허물고 화목/매사 긍정적… “부끄럽지않은 삶이 최고의 가정교육 최근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 셰익스피어」1·2권을 연달아 펴내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김갑순교수(81·전 이대 영문과)의 가정은 토요일이면 언제나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면서 훈훈한 가족애를 다진다. 『할머니,오늘 성적표받았는데 언니는 상을 다섯개 받았고 저는 여섯개 받았어요.어때요,이번엔 제가 더 잘했지요』 마침 봄 방학이 되어 23일 성적표를 들고 엄마와 함께 과천 본가를 찾은 예령(13)·예은(10)자매­. 이들을 맞은 할머니 김갑순교수와 할아버지 이의철교수(82·전 서울대 심리학과)내외는 늘 언니에게 공부가 밀린다고 생각해온 작은손녀 예은이가 자신있게 내민 학년말 성적표에서 독후감쓰기상·경필쓰기상등 수상내용을 읽어가다 개근상을 발견하곤 『암,공부도 중요하지만 학교생활에선 그래도 개근상이 최고』라며 어린 손녀들을안아주고 격려하는데 조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옆사람에게까지 전해진다. 김교수가정에서 가족 모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는것은 각자의 개성과 자유.따라서 생활전체에서 부모 자식간이라도 어떤 요구나 간섭이 없는것이 특징이다.그러나 김교수는 78년 결혼,분가해 살던 큰 아들이 주말마다 부모를 찾아오기 시작한것이 계기가되어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하루는 반드시 전 가족이 모여 대화의 시간을 갖는것이 어떤 원칙처럼 굳어져 버렸다고 밝힌다. 슬하에 3남1녀를 둔 김교수 내외는 맏아들 백희씨(48·현대건설)와 막내아들 승희씨(44·삼성반도체)의 경우 가정을 이루고 자식까지 두었지만 제일 맏이인 딸 원희씨(50·대학강사)와 둘째아들인 민희씨(46·광고업)는 아직 독신인 상태.그러나 김교수 내외는 보통 부모들처럼 나이든 자식이 결혼을 하지않는다고 애달파 하지도않고 자신의 내외가 나이가 들었다고 며느리들에게 함께 살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데 이것 역시 각자의 개성과 자유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어머님·아버님은 집안에 행사가있을때도 며느리들이 사정이 있으면 그 사정이 무엇이 됐건 인정을 해주시지 절대 시어머니라고 권위적으로 대하시는 경우가 없습니다.그때문에 저희 자식들도 모든것을 부모님께 솔직히 말할 수 있어 벽이 생기지 않으며 늘 마음이 편하고 아이들도 너무 좋아해요』 방학에 들어간 두 딸을 데리고 본가를 찾은 막내며느리 김인선(39)의 이야기. 김교수는 부부가 모두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교수를 했으니 가훈도 거창하고 교육방법도 대단하리라 생각,이따금 주변사람들로부터 그런것들에대한 질문을 받는데 『우리집은 가훈도 없고 특별한 교육방침도 없으며 단지 부부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들려준다. 김교수내외는 특히 주변에서 검소하기로도 소문이 나 있는데 어느자식도 이 부분에대해 불평을 하지 않으며 모두들 매사에 편안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부모를 닮고싶어 할 뿐이라고.그중에서도 원희씨는 『어머니가 처녀적 쓰던 장롱을 자신이 물려받아 쓰고 있다』며 어머니의 손때가 묻고 골동품같아 새것보다 오히려 정감이 가고 좋다며 웃는다. 며느리 김씨는 또 『어머니는 아버님과 똑같이 사회활동을 하시면서도 집안에서 아버님에게 그렇게 다소곳하게 순종하고 잘 하실수가 없다』며 우리가정이 이처럼 검소한것도 어쩌면 변화를 싫어하시는 아버님의 취향을 맞춰 살아온 어머님의 생활철학때문일 것이라고 들려준다.
  • “기괴한 그림”… 영 루치안 작품 미서 화제

    ◎「알몸의 여인」 등 너저분한 묘사/물감 엉겨붙어 덩어리지기도/뉴욕서 3월까지 전시… “독특한 감각 개발” 호평 너저분한 화실의 철제 침대밑에 가랑이를 벌리고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비대한 알몸의 여인(「스튜디오의 저녁」),우람한 체구의 「벌거벗은 남자의 뒷모습」 등.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3월까지 예정으로 전시중인 이 기괴한 그림들이 요즘 미국에서 최고의 찬사와 함께 화제를 불러모으는 그림들이다. 작가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라는 점도 관심을 끌게 하는 대목이다.화제의 주인공은 프로이트의 막내아들 에른스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루치안 프로이트. 루치안의 그림,특히 누드화들은 파격적인데가 많다.내팽개쳐진듯 침대에 드러누운 모델이 있는가 하면 더러운 화실 한구석의 넝마더미에 버려진 모델도 있다.때로는 가랑이를 벌린채 치부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그림속의 나신에 불끈 솟아오른 정맥이 생생히 묘사되기도 한다.따라서 그의 그림이 「누드화의 예법」에 어긋난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그림은 또 물감이 엉겨붙어 거칠게 덩어리진 부분들이 많다.그림들은 대부분 사정없이 두껍게 물감이 덧칠해져 있다. 그러나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구상작가,혹은 살아 있는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극찬하고 있다.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본능을 좇아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들이다.그리고 루치안은 욕망을 따라 모더니즘 역사라는 큰 폭포수를 거스르는 사람이라는 것. 루치안은 작품세계만큼이나 특이한 생을 살아왔다.그는 1922년 독일에서 태어나 33년 런던으로 갔다.런던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그 결과 오늘날 그의 글씨는 10세 소년의 필체와 진배 없다. 루치안의 청년시절은 방탕의 연속이었다.한때 뱃사람 노릇을 하기도 한 그는 도박과 음주에 탐닉,결혼생활도 순탄치가 못했다.두번 결혼해 두번 다 이혼한 그는 혼외정사를 통해 낳은 아이를 포함,여덟 아이의 아버지이다. 어린 시절 런던에서 그림을 공부했지만 루치안은 그림에 대한 재능을 타고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런 그가 누구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혼자 공부해서 마침내 육체묘사의 독특한 감각을 개발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71세의 노인 루치안의 능력쇠퇴와 정신력 감퇴가 그의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 런던 화이트 채플 갤러리의 관리자 캐더린 램퍼트의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루치안이 육체를 그리는데 있어서 묘사가 어려운 부분에 물감을 마구 덧칠해 돌기가 생긴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들은 루치안이 자신의 작품들을 유리로 덮으려 고집하는 것은 결국 이같은 결점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돌기가 영혼으로부터 나오며 그것이 오히려 작품의 핵이라고 평한다.그의 그림들은 곧 현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 김사원장 공관입주 고민

    ◎직원들 업무보고 쉽게 “들어 갔으면”/“거부 화제” 이 총리는 삼청동공판에 이시윤 신임감사원장은 요즘 업무파악에 분주한 가운데서도 또 다른 고민에 빠져있다.감사원장공관에 입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것이다. 감사원장공관은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자락에 자리잡은 대지 9백평,건평 1백50평의 양옥이다.지난 85년 당시 황영시 육군참모총장이 감사원장에 부임하면서 『어떻게 감사원장이 공관도 없느냐』고 건립을 지시해 마련됐다. 이회창 전임원장은 지난 2월 취임을 앞두고 공관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사정 책임자가 살기에는 너무 호화롭다』는 이유였다.이신임원장의 생각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같다. 그러나 감사원 직원들은 내심 이원장이 공관에 입주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선 이원장의 이문동집이 감사원에서 너무 멀다는 것이다.이총리의 집은 공관 근처인 구기동으로 감사원에서 멀지 않았지만 신임 이원장은 이문동으로 출퇴근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것이다.한밤에도 이따금씩 급한 보고를 해야하는 간부들은 원장이 가까이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 또 공관을 계속 비워두는 것도 온당치 않다는 판단이다.감사원은 비어있는 원장공관을 청사앞 베트남대사관과 맞바꿔 부족한 사무실로 쓰는 방안도 강구했지만 여의치 않다고 했다. 감사원 직원들은 『원장공관이 꽤나 호화스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이감사원장이 사는데 불편할까봐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공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은 원장의 침실과 서재 단 2개뿐이다. 공관건립당시 두 아들을 군대와 미국에 보냈던 황원장은 방이 많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훗날을 생각지 않고 즉흥적으로 건립해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부인및 세 자녀를 거느린 이원장으로서는 공관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일부와는 본의아니게 이산가족이 되고 만다. 이에 비해 감사원장공관에 입주를 거부했던 이총리는 이번에는 「어쩔수 없이」 삼청동 총리공관에 들어가게 된다. 우선 총리로서 공관에서 주최해야 하는 회의,만찬등 공식·비공식행사가 많다.또 대통령을 대리해 일할 때의 총리에 대한 경호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난 17일 황인성총리가 떠난뒤 삼청동 공관은 대청소를 마치고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부인 한인옥여사와 대학생인 막내아들,세 식구만 사는 이총리에게는 덩그러니 큰 총리공관이 가끔씩은 적막함을 느끼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 UR 예비한 충북진천 장척부락의“과학영농”(농산물개방 극복의현장)

    ◎2년시험끝 일품벼 선택… 25% 증산/“맛좋고 차지다” 도시서 주문 쇄도/소득 3백만원씩 늘어… 내년엔 직파로 생산비 30% 절감 좌절하지 않는 곳에 새로운 삶의 길은 열린다.UR태풍 앞에서 지금 농민들은 엄청난 시련에 휩싸여 있다.그러나 용기와 신념을 잃지않고 수입쌀과 수입농산물에 대응할 수 있는 고품질 농작물을 개발하여 개방의 파도에 미리 대비해온 농민들의 성공적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전국 곳곳의 심층취재를 통해 「UR극복」의 현장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진천=박찬구기자】 『우리들에게는 UR도 두렵지 않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장척부락 1백여 농민들은 UR협상타결과 쌀시장개방을 앞두고 질좋은 「일품(일품)벼」를 대량생산하는데 성공,「우리쌀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서울에서 1시간30여분.중부고속도로 진천인터체인지에서 17번국도를 따라 5분남짓 거리에 있는 9만여평의 농지가 바로 농산물개방의 거센 파고를 극복하고 있는 현장이다. 『정미작업이 한창입니다.「일품벼」의 품질이 뛰어나 냉해에도 불구하고 일반벼보다 마지기당 쌀 1.5가마정도가 더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3천6백여평의 농지에서 2년째 일품벼를 수확한 이마을 토박이 김동묵씨(58·산척리262)는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맛좋은 고품질의 쌀을 90여가마나 수확하게 됐다』면서 『UR타결을 앞두고 4년전부터 준비한 보람이 있다』고 활짝 웃었다. 김씨는 특히 지난해 이후 수확량이 일반벼를 심던 91년까지의 평균 70가마보다 무려 20여가마나 늘어 2백만∼3백만원의 소득증가효과를 얻게 됐다고 자랑했다. 막내아들 재인씨(24·진천농고졸)에게 「일품벼」의 재배농법을 물려줘 『어떤 수입쌀보다 맛좋은 우리마을 쌀의 명맥을 잇겠다』는 것이 김씨의 바람이다. 장척부락 농민들은 언젠가는 닥칠 쌀시장개방에 대비해 지난 90년부터 농촌진흥청에서 분양받은 서호·진미·일품 등 신종볍씨를 실험재배했고 그결과 「일품벼」가 습기가 많은 이 일대 토양에 가장 적합하고 질도 우수하다는 결론을 얻었다.이에따라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일품벼」를 재배,수확한 결과가구당 평균3백여만원씩 소득이 증가해 밤새워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외국쌀을 이기고 우리 벼농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토양과 입맛에 맞는 양질미를 생산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마을 주민 모두의 일치된 생각이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동현씨(62·산척리258)는 『쌀의 청결도를 높이기 위해 돌과 겨등 이물질을 자동으로 닦아내는 습식연미기·색채선별기 등 특수가공시설을 과감하게 도입한 것도 일품미의 품질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6천5백여평의 농지가운데 5천여평에 일품벼를,나머지 1천5백여평에 추청벼(추청·아키바레)를 재배,종전보다 30여가마가 많은 1백50여가마의 수확을 올릴 예정인 김씨는 『내년에는 6천5백여평 전체에 품질이 뛰어난 「일품벼」를 수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장척부락농민들은 내년에는 파종기를 새로 들여와 모를 심지않고 벼를 직파하는 무논 직파재배법을 도입,생산비 30%절감을 이룬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장척마을을 포함해 올해 진천군내에는 전농가의 20%인 1천4백54개농가가 3백만평의 땅에 일품벼를 재배해 10억여원의 소득증대를 이루었다. 진천군 농촌지도소 윤광호소장(59)은 『농민들이 신품종개발을 통해 UR를 극복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면서 『장척부락 등에서 생산되는 「진천쌀」이 서울등 도회지사람들의 입맛에 맞아 요즘은 주문 수요를 따라가기 벅찰 정도』라고 말했다. 「진천쌀」은 지난해 전국 농산물 품평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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