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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억 연봉’ 금융협회장은 관피아 독차지?

    ‘수억 연봉’ 금융협회장은 관피아 독차지?

    차기 손보협회장에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단독 추천이직 심사 땐 최소 한달 이상 걸려…“공직자윤리법 위반 소지”차기 거래소 이사장엔 손병두 전 금융위 부위원장 등 물망금융협회장과 금융기관장 자리를 두고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연쇄이동이 현실화되고 있다. 각 금융협회의 회장직은 많게는 7억원의 연봉(은행연합회장 기준)을 받는 자리라 퇴직 관료로선 매력을 느낄 만 하다. 보험과 은행업계는 정부 기관과의 소통 능력을 장점으로 들며 관료 출신 협회장을 원하는데 이를 두고 “후배 공무원들에게 업계 민원을 들어 달라는 얘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손해보험협회는 2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손보업권의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 현안을 두고 보험사 입장을 정부 부처나 정치권에 잘 전할 수 있는 관료 출신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부산 출신인 정 이사장은 행정고시 27회로 1986년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을 거쳐 2014년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이후 한국증권금융 사장으로 일하던 중 임기를 1년 넘게 남긴 2017년 9월 거래소 이사장 공모에 지원해 내정설이 돌았고 결국 선임됐다. 문제는 현 김용덕 회장의 공식 임기가 오는 5일 끝나는데 정 이사장은 빨라야 다음달 중순에나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는 공직유관단체여서 상근 임원을 지내다 민간단체로 이직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빨라야 다음달 18일에나 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은 “손보협회 회원사는 거의 상장기업이라 한국거래소와의 업무 관련성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퇴직 이후 3년 안에 유관 업무를 하는 자리를 맡을 수 없는데도 손보협회가 단독 후보 추천을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정 이사장이 손보협회장에 취임하면 공직자윤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장 정 이사장의 후임 선임 절차도 삐걱대고 있다. 정 이사장의 임기는 지난 1일 만료됐는데 한국거래소 후보추천위원회는 공개모집 공고조차 못 냈다. 일각에서는 “특정 인사 선임을 염두에 둬 절차가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애초 거래소 이사장 후보로 거론되던 도규상 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지난 1일 금융위 부위원장에 임명됐는데 자리를 내준 손병두 전 부위원장이 유력한 거래소 이사장 후보로 떠올랐다. 또 다음달 30일 임기가 끝나는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의 후임으로도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 관료 출신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생명보험협회 새 회장 후보로 오르내리는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과 정희수 보험연수원장 등은 관료 출신이다. 애초 하마평에 오르던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전직 관료를 협회장에 임명해 순리에 맞지 않는 일까지 추진하려다 보면 소비자 후생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금융협회장의 월급도 결국 소비자가 낸 보험료 등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매년 여름이면 베를린은 음악 페스티벌과 테크노 파티로 각 공연장과 클럽들이 바빠진다. 몇천 명씩 모이는 페스티벌 역시 올해는 모두 취소됐다. ‘롤라팔루자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여름, 거의 매주 페스티벌을 찾아다니던 친구 멜도 올해는 풀이 죽었다. 빌리 엘리시, 마틴 게릭스, 칼리드,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 세계무대를 휩쓰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 ‘롤라팔루자’도 결국 내년을 기약하며 취소됐다. 록과 일렉트로닉, 힙합, 인디뮤직이 어우러지는 10만명 축제가 사라지면서, 베를린의 여름도 광기를 잃었다. 내로라하는 클럽과 파티가 없는 베를린은 이제 무엇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도시 물들인 이벤트 회사들의 ‘적색경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면서 가장 직격탄을 입은 건 이벤트 업계였다. 기획자부터 조명 기술자, 사운드 엔지니어, 무대 설치가,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 케이터링 담당자 등 행사에 관련된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파산 위기에 처했다.한 달 전쯤, 베를린에서는 이 업계 사람들의 고통과 파산 직전의 상태를 알리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산업 종사자들이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모두 빨간색 조명으로 쏘아 ‘빛의 밤’(night of light)을 만들었다. 이벤트가 열려야만 일을 할 수 있는 분야의 특성상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독일 정부의 보조금이나 대출을 받는 부분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이를 알리고 도움과 지지를 구하는 단발성 행사였다. 이벤트 종사자들은 도시의 상징이 되는 건물에 빨간 조명을 쏘아 일종의 ‘적색경보’를 보냈다. 관람객도, 홍보도 없는 조용한 이벤트였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본 사람들은 저게 뭘까 궁금해하다 말았을 것이고, 뉴스를 들었던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이벤트 종사자들을 응원하며 지나갔을 것이다.붉은 조명의 건물들을 찾아나서 봤다. 전기로 가는 공유 오토바이를 타고 한밤중의 베를린을 질주했다. 동남쪽 끝에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텅 빈 도시를 달리며 빨간빛을 찾아다녔다. 파티가 많이 열리는 크로이츠베르크의 클럽들은 외벽부터 클럽 안까지 빨간 조명을 설치했다. 란트베르 운하를 지나 조너선 보롭스키의 ‘분자맨’이 보이는 슈프레강 앞에도 길고 가느다란 빨간빛이 이어졌다.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 예술극장 외관도,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건물들도 온통 빨갰다. 화려한 이벤트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이 한편으론 나와 다르지 않기에 빨간빛은 더 위태롭게 보였다.●자유 멈추고 ‘룰’ 따라야 하는 베를린의 밤 베를린은 괴짜들이 살기 좋은 도시다. 금요일 밤에 클럽에 들어가 월요일 아침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무슨 유별난 짓을 해도 상관없는, 자유의 도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베를린도 큰 손상을 입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요시해 온 베를린은 이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며,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는 도시가 됐다. 춤추는 사람들이 없는 베를린 클럽이나 파티를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내로라하는 클럽들은 새로운 규칙에 따라 ‘비어 가든’으로 임시 문을 열었다. 새벽까지 여는 클럽과 바로는 아직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베를린스러운 ‘클럽 비지오네레’와 노이쾰른에 있는 옥상바 ‘크룽커 클라니히’처럼 야외 공간이 있는 곳은 그 야외 공간만 오픈해 맥주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우주 최강’의 하드코어 클럽인 ‘베르크하인’도 계속 문을 닫고 있다가 새로운 콘셉트로 오픈 소식을 알렸다. 거칠고 거대한 클럽 공간이 음악과 전시,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미술관으로 탄생했다.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해 내부에서는 가이드투어를 하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아티스트 듀오인 ‘탐탐’의 사운드 설치 전시 마지막 날, 친구와 나도 베르크하인에 갔다. 전시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베르크하인 클럽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겨울에도 두세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차례가 돼도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베르크하인은 못 가 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줄만 서면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최고의 클럽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 그랬는지,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500m는 이어진 듯했다. 줄의 뒤꽁무니에 섰던 우리는 남은 네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클럽 관계자가 와서 이 줄 뒤부터는 들어가기 힘드니 돌아가라고 했다. 계속 줄을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서게 되니 줄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줄은 바로 우리 앞에서 끊겼다. 우리는 위용 넘치는 베르크하인의 외관만 구경하다 돌아섰다. 그래도 다행인 건 베르크하인이 9일부터 ‘스튜디오 베를린’이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베르크하인은 앞으로도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100명의 사진과 조각, 회화, 비디오,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보로스 재단과 베르크하인의 협업으로 선보이는 이 예술 전시는 베르크하인 내부에 있는 파노라마 바와 거대한 시멘트 기둥이 우뚝 선 조일레 공간, 할레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베를린의 파티는 여전히 물음표 상태이지만 이렇게라도 음악을 듣고 클럽에 갈 수 있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매년 여름이면 베를린은 음악 페스티벌과 테크노 파티로 각 공연장과 클럽들이 바빠진다. 몇천 명씩 모이는 페스티벌 역시 올해는 모두 취소됐다. ‘롤라팔루자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여름, 거의 매주 페스티벌을 찾아다니던 친구 멜도 올해는 풀이 죽었다. 빌리 엘리시, 마틴 게릭스, 칼리드,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 세계무대를 휩쓰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 ‘롤라팔루자’도 결국 내년을 기약하며 취소됐다. 록과 일렉트로닉, 힙합, 인디뮤직이 어우러지는 10만명 축제가 사라지면서, 베를린의 여름도 광기를 잃었다. 내로라하는 클럽과 파티가 없는 베를린은 이제 무엇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도시 물들인 이벤트 회사들의 ‘적색경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면서 가장 직격탄을 입은 건 이벤트 업계였다. 기획자부터 조명 기술자, 사운드 엔지니어, 무대 설치가,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 케이터링 담당자 등 행사에 관련된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파산 위기에 처했다. 한 달 전쯤, 베를린에서는 이 업계 사람들의 고통과 파산 직전의 상태를 알리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산업 종사자들이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모두 빨간색 조명으로 쏘아 ‘빛의 밤’(night of light)을 만들었다. 이벤트가 열려야만 일을 할 수 있는 분야의 특성상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독일 정부의 보조금이나 대출을 받는 부분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이를 알리고 도움과 지지를 구하는 단발성 행사였다. 이벤트 종사자들은 도시의 상징이 되는 건물에 빨간 조명을 쏘아 일종의 ‘적색경보’를 보냈다. 관람객도, 홍보도 없는 조용한 이벤트였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본 사람들은 저게 뭘까 궁금해하다 말았을 것이고, 뉴스를 들었던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이벤트 종사자들을 응원하며 지나갔을 것이다. 붉은 조명의 건물들을 찾아나서 봤다. 전기로 가는 공유 오토바이를 타고 한밤중의 베를린을 질주했다. 동남쪽 끝에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텅 빈 도시를 달리며 빨간빛을 찾아다녔다. 파티가 많이 열리는 크로이츠베르크의 클럽들은 외벽부터 클럽 안까지 빨간 조명을 설치했다. 란트베르 운하를 지나 조너선 보롭스키의 ‘분자맨’이 보이는 슈프레강 앞에도 길고 가느다란 빨간빛이 이어졌다.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 예술극장 외관도,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건물들도 온통 빨갰다. 화려한 이벤트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이 한편으론 나와 다르지 않기에 빨간빛은 더 위태롭게 보였다. ●자유 멈추고 ‘룰’ 따라야 하는 베를린의 밤 베를린은 괴짜들이 살기 좋은 도시다. 금요일 밤에 클럽에 들어가 월요일 아침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무슨 유별난 짓을 해도 상관없는, 자유의 도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베를린도 큰 손상을 입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요시해 온 베를린은 이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며,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는 도시가 됐다. 춤추는 사람들이 없는 베를린 클럽이나 파티를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내로라하는 클럽들은 새로운 규칙에 따라 ‘비어 가든’으로 임시 문을 열었다. 새벽까지 여는 클럽과 바로는 아직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베를린스러운 ‘클럽 비지오네레’와 노이쾰른에 있는 옥상바 ‘크룽커 클라니히’처럼 야외 공간이 있는 곳은 그 야외 공간만 오픈해 맥주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우주 최강’의 하드코어 클럽인 ‘베르크하인’도 계속 문을 닫고 있다가 새로운 콘셉트로 오픈 소식을 알렸다. 거칠고 거대한 클럽 공간이 음악과 전시,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미술관으로 탄생했다.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해 내부에서는 가이드투어를 하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아티스트 듀오인 ‘탐탐’의 사운드 설치 전시 마지막 날, 친구와 나도 베르크하인에 갔다. 전시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베르크하인 클럽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겨울에도 두세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차례가 돼도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베르크하인은 못 가 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줄만 서면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최고의 클럽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 그랬는지,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500m는 이어진 듯했다. 줄의 뒤꽁무니에 섰던 우리는 남은 네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클럽 관계자가 와서 이 줄 뒤부터는 들어가기 힘드니 돌아가라고 했다. 계속 줄을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서게 되니 줄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줄은 바로 우리 앞에서 끊겼다. 우리는 위용 넘치는 베르크하인의 외관만 구경하다 돌아섰다.그래도 다행인 건 베르크하인이 9일부터 ‘스튜디오 베를린’이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베르크하인은 앞으로도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100명의 사진과 조각, 회화, 비디오,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보로스 재단과 베르크하인의 협업으로 선보이는 이 예술 전시는 베르크하인 내부에 있는 파노라마 바와 거대한 시멘트 기둥이 우뚝 선 조일레 공간, 할레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베를린의 파티는 여전히 물음표 상태이지만 이렇게라도 음악을 듣고 클럽에 갈 수 있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 여름을 틀어줘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 여름을 틀어줘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면 내 베를린 생활은 어땠을까? 겨울에 꼭 다시 가자던 ‘바발리’(베를린의 유명 혼욕 사우나)에 가서 뜨끈한 사우나를 즐겼을 거고, 예정대로 3월에는 서울에도 다녀왔을 것이다. 설날만큼 큰 명절인 부활절에는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뵈러 갔을 테고, 프랑스 남부나 이탈리아 바사노로 둘만의 여름휴가를 갔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봄과 여름에 열리는 베를린의 페스티벌들을 빼놓지 않고 즐겼으리라. 베를린에 살면서 꼭 가 보고 싶었던 축제들을 드디어 가 보는구나 설는데, 이제는 내년에도 열릴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모든 것들이 취소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때로 미뤄졌다. 이제 우리에겐 엄청난 인파의 페스티벌도, 음악이 골목골목을 메우던 베를린의 여름도 정말 사라지게 되는 걸까?●35년 전통, 브레메어 삼바 카니발코로나가 터지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페스티벌은 브레멘에서 열린 ‘브레메어 삼바 카니발’이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명함도 못 내미는 작은 축제이지만, 유럽의 여러 도시와 독일 전역에서 삼바 드럼팀이 참가하는, 나름 유럽 최대의 삼바 카니발이다. 브라질 리우의 삼바 혼이 살아 있고 수많은 색과 재치 넘치는 가면들, 장대 예술가와 삼바 댄서들이 퍼레이드를 펼친다. 여기에 다양한 삼바 드럼을 연주하는 밴드들이 생생한 리듬을 들려주며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이곳에 간 이유는 남자친구가 베를린의 삼바팀인 ‘사푸카유 노 삼바’(사푸)의 멤버이기 때문이었다. 목요일마다 하는 삼바 드럼 연습이 취미 정도인 줄 알았건만, 브레멘에 가서 보니 매년 1, 2등을 놓치지 않는 유명한 팀이었다. 이 축제에 독일에서만 80여팀이 참가하고 유럽까지 포함하면 100여팀, 참가하는 멤버가 1500명이나 되는 규모를 생각하면, 결코 그저 그런 팀은 아니었다. 카니발에 참가한 모든 팀이 이틀간 거리 퍼레이드에 나서고 그중 잘하는 몇몇 밴드는 저녁 공연 무대에도 서는데, 사푸는 메인 밴드답게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공연장에는 “사푸카유 노 삼바”를 외치며 환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일렉트릭 기타 리드 너무 멋지던데! 프란시가 한 랩도 최고였어!” 오랜만에 만난 다른 도시의 삼바팀들이 다음날까지 찾아와 응원의 말을 남겼다. 서로가 연대하고 지지하는 모습에 코끝이 찡할 정도였다.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카니발에 참여하는 팀의 일원으로 보는 축제는 또 달랐다. 숙소부터 백스테이지, 식사 장소, 메인 공연까지 팀과 함께한 3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푸 팀 숙소는 브레멘의 한 공공 유치원이었다. 모두가 익숙하게 침낭을 싸왔고, 아침엔 아이들이 앉는 의자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아침을 먹었다. 이를 닦는 세면대도 아이들용이라 다들 무릎을 꿇고 이를 닦았다. 마치 일곱 난쟁이들 집에 놀러 온 거인 같았달까.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너무 자연스러워 인상적이었다. 축제에 참가한 다른 삼바 팀도 브레멘의 공공 교육시설이나 기관을 숙소로 빌려 이용한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35회째를 맞은 올해까지 브레멘 카니발은 100% 비상업적인 축제로 운영됐다. 모든 참가자들이 축제를 위해 무보수로 참가하고 독일 전역에서 모인 자원봉사자와 예술가들이 힘을 보태고 있었다. 축제 운영진도 수익을 이듬해 행사에 재투자했다. 마지막 날, 독일 각지에서 온 삼바 팀은 모두 한데 모여 아침식사를 했다. 장소는 브레멘의 한 초등학교 로비다. 임시로 긴 테이블과 의자들을 붙여 놓고, 뷔페처럼 한쪽에는 토스트와 수프, 햄과 치즈, 커피 등을 두었다. 소박했다. 축제의 모든 것이 비상업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브레멘까지 오는 교통비나 진행비는 각자가 부담하되 브레멘에 머무는 3일 동안의 숙소와 식사는 운영팀이 제공했다.카니발에서 인상적인 점은 또 있었다. 공연을 하는 많은 팀원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많은 시니어들이었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십몇 년씩 삼바 드럼을 배우고 함께 공연을 해 온 이들이었다. 드러머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카니발 댄서와 장대를 타는 예술가 중에도 중년이 훌쩍 넘은 사람들과 부모님 나이대의 어르신들이 있었다. 한두 해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오랜 시간 실력을 갈고닦은 전문가였다. 브레메어 삼바 카니발에는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는 사람들의 하모니가 있었다. 22세의 장대 예술가에서 40대 중년의 삼바 댄서, 60세가 넘은 드러머까지 모두가 함께 팀을 이루고 서로를 지지해 준다. “5년째 이 카니발에 왔는데, 올해 우리 팀 공연이 최고였어!” 브라질 출신의 브루노가 말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몇 달 전 사랑하는 독일인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독일 말을 아직 능숙하게 못하는 브루노를 사푸 멤버들은 정말 가족처럼 대하고, 따로 장례식까지 치렀다고 들었다. 아내를 잃고 참가한 올해 카니발에 브루노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이미 사푸 멤버 모두를 알고 있는 아이는 유치원 안을 제 집처럼 뛰어다니며 사푸 팀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브레멘 공연을 한 사푸 멤버는 총 25명 정도. 건설 노동자, 이벤트 회사 대표, 정보기술(IT) 소프트 엔지니어, 변호사 등 직업도 가지각색인 사람들이 20년 넘게 한 팀이자 큰 가족을 이루고 있다. 1996년에 팀을 만든 리더 ‘디디’와 딱 10년째를 맞이한 남자친구, 5년째 사푸와 함께하고 있는 브루노, 그리고 이제 막 멤버들과 얼굴을 트기 시작한 내가 모두 함께한 축제였다. 브레멘 삼바 카니발은 매년 주제가 있다. 각 팀들은 그 주제에 어울리는 의상과 깃발, 소품들을 직접 만들고 준비한다. 올해의 주제는 ‘In The Intoxication of Love’, 즉 ‘사랑의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최고의 열정’이었다. 이틀간의 퍼레이드에서 ‘사랑’을 갖가지 방식으로 표현한 아이디어를 볼 수 있었다. 거리 어딜 가나 ‘하트’ 모양이 떠다녔고, 히피 차림의 삼바 드러머들이 거리를 누볐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 상황으로 ‘사랑’은커녕 얼굴도 보기 어려워진 시대, 나는 유치원 의자에 모여 앉아 서로의 커피를 따라 주던 사푸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줄줄이 취소된 베를린 페스티벌 5월을 기다렸다. 베를린의 가장 큰 축제인 ‘카니발 데어 쿨투어렌’이 열리는 달이다. 여기서도 사푸 팀이 매년 선두에 서서 축제를 이끈다고 했다. 4일 동안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서 열리는 이 문화 카니발에는 평균 50만명 이상이 참가한다. 퍼레이드에 직접 나서는 참가자만 5000명 이상. 브라질 삼바에서 중국 사자춤, 서아프리카의 드럼, 한국의 사물놀이까지 각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행렬이 줄을 잇는 카니발이다. 올해 축제는 당연히 열리지 못했다. 낮이 가장 긴 날, 하지. 유럽에선 이 날에 맞춰 ‘페트 드라 뮤지크’ 행사가 열린다. 1981년에 파리에서 시작한 이 축제는 독일에선 뮌헨에서 먼저 시작했고(1989년), 베를린에서는 1995년부터 열렸다. 독일에서는 원래 길거리 공연을 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페트 드라 뮤지크’ 때만큼은 허가 없이 누구나 어디서나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날은 거리를 걸으면 어디서나 일렉트로닉 음악과 버스킹, 거리 예술가들의 퍼포먼스, 댄스 등을 볼 수 있다. 많은 뮤지션들이 줄줄이 공연하는 오버바움 브리지에는 매년 10만명이 모인다고 했다. 6월에 열리는 이 행사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 대신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 안에서 댄서들이 춤추는 것을 라이브 방송으로 보여 줬다. 많은 음악 공연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대체됐다. 이런 와중에도 게릴라 공연을 시도한 버스커들이 있었다. 에바스발더역 아래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경찰이 득달같이 나타났고, 사람들에게 빨리 흩어지라고 손짓을 했다. 어딜 가나 한산한 요즘이라 30명 정도만 모여 있어도 금방 눈에 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도로 반대편에서 기웃거리다 곧 제 갈 길을 갔다. 나도 이내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베를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화려했던… 그 예술을 깨워줘 매년 여름이면 베를린은 음악 페스티벌과 테크노 파티로 각 공연장과 클럽들이 바빠진다. 몇천 명씩 모이는 페스티벌 역시 올해는 모두 취소됐다. ‘롤라팔루자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여름, 거의 매주 페스티벌을 찾아다니던 친구 멜도 올해는 풀이 죽었다. 빌리 엘리시, 마틴 게릭스, 칼리드,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 세계무대를 휩쓰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 ‘롤라팔루자’도 결국 내년을 기약하며 취소됐다. 록과 일렉트로닉, 힙합, 인디뮤직이 어우러지는 10만명 축제가 사라지면서, 베를린의 여름도 광기를 잃었다. 내로라하는 클럽과 파티가 없는 베를린은 이제 무엇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도시 물들인 이벤트 회사들의 ‘적색경보’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면서 가장 직격탄을 입은 건 이벤트 업계였다. 기획자부터 조명 기술자, 사운드 엔지니어, 무대 설치가,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 케이터링 담당자 등 행사에 관련된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파산 위기에 처했다.한 달 전쯤, 베를린에서는 이 업계 사람들의 고통과 파산 직전의 상태를 알리는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이벤트 산업 종사자들이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모두 빨간색 조명으로 쏘아 ‘빛의 밤’(night of light)을 만들었다. 이벤트가 열려야만 일을 할 수 있는 분야의 특성상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독일 정부의 보조금이나 대출을 받는 부분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이를 알리고 도움과 지지를 구하는 단발성 행사였다. 이벤트 종사자들은 도시의 상징이 되는 건물에 빨간 조명을 쏘아 일종의 ‘적색경보’를 보냈다. 관람객도, 홍보도 없는 조용한 이벤트였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본 사람들은 저게 뭘까 궁금해하다 말았을 것이고, 뉴스를 들었던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이벤트 종사자들을 응원하며 지나갔을 것이다.붉은 조명의 건물들을 찾아나서 봤다. 전기로 가는 공유 오토바이를 타고 한밤중의 베를린을 질주했다. 동남쪽 끝에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텅 빈 도시를 달리며 빨간빛을 찾아다녔다. 파티가 많이 열리는 크로이츠베르크의 클럽들은 외벽부터 클럽 안까지 빨간 조명을 설치했다. 란트베르 운하를 지나 조너선 보롭스키의 ‘분자맨’이 보이는 슈프레강 앞에도 길고 가느다란 빨간빛이 이어졌다.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 팔라스트 예술극장 외관도,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건물들도 온통 빨갰다. 화려한 이벤트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이 한편으론 나와 다르지 않기에 빨간빛은 더 위태롭게 보였다.●자유 멈추고 ‘룰’ 따라야 하는 베를린의 밤 베를린은 괴짜들이 살기 좋은 도시다. 금요일 밤에 클럽에 들어가 월요일 아침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무슨 유별난 짓을 해도 상관없는, 자유의 도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베를린도 큰 손상을 입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엇보다 중요시해 온 베를린은 이제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며,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는 도시가 됐다. 춤추는 사람들이 없는 베를린 클럽이나 파티를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내로라하는 클럽들은 새로운 규칙에 따라 ‘비어 가든’으로 임시 문을 열었다. 새벽까지 여는 클럽과 바로는 아직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베를린스러운 ‘클럽 비지오네레’와 노이쾰른에 있는 옥상바 ‘크룽커 클라니히’처럼 야외 공간이 있는 곳은 그 야외 공간만 오픈해 맥주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우주 최강’의 하드코어 클럽인 ‘베르크하인’도 계속 문을 닫고 있다가 새로운 콘셉트로 오픈 소식을 알렸다. 거칠고 거대한 클럽 공간이 음악과 전시,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미술관으로 탄생했다.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제한해 내부에서는 가이드투어를 하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아티스트 듀오인 ‘탐탐’의 사운드 설치 전시 마지막 날, 친구와 나도 베르크하인에 갔다. 전시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베르크하인 클럽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겨울에도 두세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차례가 돼도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베르크하인은 못 가 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줄만 서면 세상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최고의 클럽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 그랬는지,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500m는 이어진 듯했다. 줄의 뒤꽁무니에 섰던 우리는 남은 네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클럽 관계자가 와서 이 줄 뒤부터는 들어가기 힘드니 돌아가라고 했다. 계속 줄을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서게 되니 줄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줄은 바로 우리 앞에서 끊겼다. 우리는 위용 넘치는 베르크하인의 외관만 구경하다 돌아섰다. 그래도 다행인 건 베르크하인이 9일부터 ‘스튜디오 베를린’이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베르크하인은 앞으로도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100명의 사진과 조각, 회화, 비디오, 사운드, 퍼포먼스 등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보로스 재단과 베르크하인의 협업으로 선보이는 이 예술 전시는 베르크하인 내부에 있는 파노라마 바와 거대한 시멘트 기둥이 우뚝 선 조일레 공간, 할레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는 한 베를린의 파티는 여전히 물음표 상태이지만 이렇게라도 음악을 듣고 클럽에 갈 수 있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민주, 주호영 연설에 “비판으로 일관 아쉽지만...협치 놓지 않을 것” (종합)

    민주, 주호영 연설에 “비판으로 일관 아쉽지만...협치 놓지 않을 것” (종합)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두고 앞으로의 협치를 당부하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8일 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비판으로 일관해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협치의 끈은 놓지 않겠다”며 “여야정 정례대화를 비롯한 여야 간 대화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해 소통과 협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신 대변인은 “정책이 아닌 정쟁으로 편 가르기를 주도하거나 위험이 아닌 위협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일은 여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 출신인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은 “어제 이낙연 대표가 ‘우분투’로 ‘장군’을 부르니, 오늘 주호영 원내대표가 ‘독재’를 (연설에서) 빼며 ‘멍군’을 불렀다”며 “야당이 여당에 화답하는 내용이 담긴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얼마 만에 들어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동근 최고위원은 “원자력 마피아와 부동산 투기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고 사법개혁에 대한 왜곡된 인식 등 ‘도로 미래통합당’ 선언이었다”면서도 “말미에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차별을 시정하는 선도적인 사회 개혁정당, 약자와 동행하는 경제민주화, 진정한 협치를 제안해 다행”이라고 밝혔다. 윤건영 의원은 “정당의 이름만 바뀌었지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진실을 외면한 정치 공세 일색에, 앞뒤 논리도 일관되지 않고,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않는 것이 지난 7월과 똑같았다”고 평가했고, 윤준병 의원은 “국민의힘의 현실 진단은 왜곡된 내용이 많아 실망했다”고 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주 원내대표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을 비판한 것에 대해 “진단은 정확하나 대책은 가짜뉴스를 반복하고 있다”며 “기후변화 위기를 진정 고민한다면 1대1 끝장토론에 응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당은 주 원내대표의 연설에 호평을 보냈다. 안혜진 대변인은 “현 정부의 수없이 많은 패착을 질책할 때는 절절한 안타까움을 담아 토해내듯 비장했고, 미래에 대한 염려를 토로할 때는 침통한듯했으나 결기를 보여준 시간”이라고 평했다. 반면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여당에 적극 문제 제기한 것은 동의하지만 자성의 목소리가 일절 없었다는 것에 유감”이라며 “지난 정부의 반헌법적인 행위들에 아직도 책임이 자유롭지 못한 정당에서 법치주의를 운운하며 타당을 지적하는 것은 내로남불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할스의 명화 세 번째로 도둑 맞아, 작은 미술관 어쩔 수 없어

    할스의 명화 세 번째로 도둑 맞아, 작은 미술관 어쩔 수 없어

    명화가 세 차례나 도둑 맞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의 작품 ‘맥줏잔을 들고 웃는 두 소년’(Two Laughing Boys with a Mug of Beer)이 네덜란드 중부의 작은 미술관에서 세 번째로 도난 당했다. 현지 경찰은 이 작품이 전날 오전 레이르담에 있는 한 미술관에서 도난 당했다고 27일(이하 현지시간) 밝혔다. 해당 미술관은 이와 관련한 언급을 거부했다. 두 번째로 도둑 맞았다가 되찾은 뒤 이 미술관에서는 일반 관람을 시키지 않고 직원들만 정기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등 보안 조치를 강화했지만 소용 없었다. 경찰은 전날 오전 3시 30분 미술관의 경보기가 꺼졌고, 뒷문이 강제로 열린 것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황금기를 이끈 거장 가운데 한 명인 프란스 할스가 1626년 그린 이 작품은 1988년 또다른 네덜란드 거장 야곱 판 로이스달의 작품과 함께 도둑을 맞았다가 3년 만에 되찾은 뒤 2011년에 호프제 판 메브로우브 판 아에르덴 미술관에서 또 도난 됐다가 6개월 뒤 되찾았다. 예술작품 탐정 아서 브랜드는 정교하게 훔쳐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이런 작은 박물관들은 제대로 보안을 갖추기가 매우 어렵다. 도둑들이 훔치겠다고 마음 먹으면 손에 넣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명화를 훔치는 도둑들은 몰래 명화를 팔아 치우고 잡히더라도 짧게 교도소에 다녀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다고 덧붙였다. 마약 거래상인 키에스 후트만이 1990년대 빈센트 반 고흐 작품을 팔아치운 뒤 감형돼 석방된 일이 대표적 예다. 이탈리아 나폴리 마피아 보스는 2002년 유명한 예술품 도둑인 옥타브 더럼이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훔친 그림을 사들였다. 더럼 역시 감형돼 짧은 형기를 마쳤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 여파로 휴관 중이던 암스테르담 동부 싱어 라런 미술관에 있던 반 고흐의 그림 ‘봄 정원’이 도둑 맞았을 때 이런 작은 미술관들에는 더욱 많은 도둑들이 찾아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해 11월에도 영국 런던 남부 덜위치 픽처 갤러리에서 렘브란트 작품 두 점을 훔치려는 시도가 있었다. 침입자들이 난입했을 때 경찰이 곧바로 출동해 실패했다.하지만 최근 들어 네덜란드와 프랑스 경찰이 예술작품 탐정과 협력해 범죄자들이 주고 받는 특급 보안이 되는 통신 수단들을 추적해 도난 예술작품을 되찾는 일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예전에는 훔친 작품을 사주던 네덜란드 정부가 사들이지 않는 것도 도둑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굉장히 오랫동안 잃어버린 자국 거장들의 작품을 찾으려 애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를 이탈리아 북부 피아센차의 미술관 담의 비밀스러운 구멍에서 다시 찾아냈는데 사라진 지 23년 만이었다. 담쟁이 덩굴을 제거하던 인부가 찾아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스스로 ‘사냥개’라 한 감사원장, 원전마피아 사고 가져”

    “스스로 ‘사냥개’라 한 감사원장, 원전마피아 사고 가져”

    민주당, 언론사 재직중인 감사원장 동서 문제 제기 더불어민주당이 원자력발전소 감사와 감사위원 임명 문제를 놓고 최재형 감사원장 때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에 대한 감사를 지휘하는 최 감사원장에게 “원전마피아들이 했던 논리와 사고구조, 그런 말들이 감사원장의 입을 통해 나온다고 하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송 의원은 감사원이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 뿐만 아니라, 정부의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감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며 “절차적으로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사원의 감사 과정을 “매우 부당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그는 “공공기관 감사국 감사에서 공익감사청구 감사국에서 해야 할 내용까지 사전고지도 없이 함께 뒤섞여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게 조사 받는 당사자들한테 흘러나온 이야기”라고 했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공공기관 감사국의 감사가 지난해 10월 정갑윤 전 미래통합당 의원과 울산 시민들이 탈원전 정책전반에 대해 청구한 공익감사청구 감사국 소관 공익감사와 동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송 의원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에 대해서도 과거 시각에 머물러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월성1호기 조기폐쇄 문제있다는 감사결과 미공개 또 국회에서 제기됐던 최 원장의 동서 문제도 꺼냈다. 최 원장은 두 동서가 있는데 한 명은 원자력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고 한 명은 언론사 논설주간이다. 최 원장은 감사원 실국장회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는 데 대해 내부자만 있다고 볼 수 없고 피조사자도 언론 유출의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국회에서 해명한 바 있다. 최 원장은 지난 4월 총선 전날 나흘간 휴가를 냈고, 이후 원전 감사를 맡은 국장 인사를 단행하면서 “원장인 제가 사냥개처럼 달려들려 하고 여러분이 뒤에서 줄을 잡고 있는 모습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며, 이 내용이 조선일보에 보도됐다. 감사원 측은 ‘사냥개’ 발언이 원전 등 특정 감사사항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공직사회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감사원이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당부하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국회의 의결로 작년 10월부터 월성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을 감사했는데, 올 5월에 결론났어야 할 감사 결과를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전 발표할 예정이었던 1차 감사결과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가 경제성을 중심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는데 감사위원들의 반대로 공개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조기숙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은 민주당의 감사원 때리기에 “박근혜 정부때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다 청와대 외압에 스스로 물러났던 양건 전 감사원장이 떠오른다”며 행정부를 견제하는 독립기관인 감사원의 독립성 보장을 주문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연일 감사원장 때린 민주 “대통령 방향에 안 맞으면 사퇴하라”

    연일 감사원장 때린 민주 “대통령 방향에 안 맞으면 사퇴하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반대’ 강력 비판“원전 마피아 입장 대변하나” 사퇴 압박민주, 41% 득표율 대통령 발언도 공격崔 “국정과제 정당성 폄훼 의도 아니다”윤호중 “팔짱 끼고 답변하나” 지적도더불어민주당이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계획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진 최재형 감사원장을 연일 맹폭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29일 단독으로 개최한 전체회의에서 최 원장을 불러놓고 “사퇴하라”고 압박했다. 신동근 의원은 “원전 마피아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의 임명 방향에 맞지 않으시면 사퇴하라”고 비판했다. 박범계 의원도 최 원장에게 “대선에서 41% 지지밖에 받지 못한 대통령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동의를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발언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최 원장은 지난 4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감사원의 심문 과정에서 해당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최 원장은 “백 전 장관이 원전 조기 폐쇄를 정부 방침으로 정한 이유를 설명하며 ‘(월성 1호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전 국민이 안다’고 설명했다”며 “그래서 저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론을 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41% 지지를 받았는데 과연 국민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은 했지만, 대통령 득표율을 들어 국정과제의 정당성을 폄훼하려 한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고 그런 의도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간 여권에서는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관련 감사결과 발표가 미뤄지자 불만이 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탈원전 정책에 대한 최 원장의 비판적 입장이 새어나오자 본격적으로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 원장이 대통령 지지율을 언급하는 등 정치적 발언까지 한 것으로 파악되자 임계점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최 원장의 친척이 탈원전을 비판하는 모 언론사 주간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친족과 관련 있는 사항을 감사할 수 없도록 하는 감사원법을 어긴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최 원장에게 “지금 팔짱을 끼고 답변을 하나”라고 자세를 지적했고, 최 원장은 “죄송하다”며 자세를 고치기도 했다. 한편 최 원장이 공석인 감사위원 자리에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제청해 달라는 요청을 청와대에서 두 차례 받았음에도 거부했다는 한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인사 사안은 확인해 드리지 않는다”면서도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기획] 대한민국 금융사기의 끝은 어디인가…옵티머스 사태의 전말

    [기획] 대한민국 금융사기의 끝은 어디인가…옵티머스 사태의 전말

    사기와 횡령, 돌려막기, 불완전판매까지…. 지난달 터진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는 대한민국의 금융시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어디까지 기만당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학연을 배경으로 한 정계 유착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미 도주한 펀드 운용사의 전 대표는 신병 확보조차 못하고 있고, 판매사는 “우리도 손해를 봤다”며 피해 투자자들의 대책 마련 요구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실타래 얽히듯 꼬여 있는 옵티머스 사태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진행 상황을 4가지 영역으로 나눠 정리했다.●궁금증 ① : 옵티머스 펀드의 시작, 잘못된 만남? 현재 환매 중단된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들은 2017년 12월부터 운용, 판매되기 시작했다. 김재현(50·구속기소) 대표가 취임한 지 6개월째 되던 때였다. 사모펀드는 운용사가 상품을 만들어 은행·증권사 등을 통해 팔고, 판매사들은 수수료를 챙기는 식으로 운용된다. 옵티머스운용 측은 “한국도로공사, 경기교육청 등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했고 증권사들은 이를 믿고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주로 팔았다. 매출채권은 물건, 용역의 대가를 나중에 주기로 하고 발행한 일종의 어음이다. 운용사는 공공기관이 망하지 않는 한 돈을 떼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안정성을 강조했다. 이후 이 펀드가 시장에서 안정적 판매고를 올리자 판매사들은 프라이빗뱅커(PB)가 관리하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팔기 시작했다. 옵티머스 펀드 전체 판매량의 84%를 NH투자증권도 2019년 6월부터 지점 PB들을 통해 이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사모펀드치고는 낮은 3~4%의 수익률이 기대됐지만 예·적금이 사실상 ‘제로(0) 금리’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안전 지향적 성향의 고객들이 상품을 샀다. NH증권 관계자는 “당시에는 이 상품의 인기가 워낙 좋아 다른 금융사에서도 많이 팔았다”고 말했다. NH증권은 환매 중단 한달 전인 지난 5월까지도 지점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53·54호 펀드를 판매하는 등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적극적인 판촉을 한 NH증권 등 판매사들로부터 끌어모은 편입자산은 46개 펀드에 5235억원(지난 7월 1일 기준)까지 불어났다. ●궁금증 ② : 안전해보이던 펀드, 왜 문제가 된거야? 애초 홍보해온 이 펀드의 실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옵티머스운용 측은 애초 투자하기로 했던 공공기관 매출채권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옵티머스의 2대 주주인 이모(45·구속기소)씨가 대표로 있는 비상장기업의 사모사채를 사는데 쓰였다. 씨피엔에스(2053억원), 아트리파라다이스(2031억원), 라피크(402억원), 대부디케이에이엠씨(279억원) 등으로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들이다. 이 업체들은 복잡한 자금 이체 과정을 거쳐 부동산, 상장·비상장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했다. 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대출해줬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금은 약 60여개 투자처에 3000억원 안팎으로 흘러들어 갔으나 정확한 규모 등은 자산실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펀드 자금은 이미 발행한 사모사채를 차환 매입하는 펀드 돌려막기에 이용되기도 했다. 어떻게 이같은 사기극이 가능했을까. 사모펀드의 관리·판매 과정에 사각지대가 있어서다. 사모펀드의 운용과 관리, 판매는 크게 ▲자산운용사 ▲수탁기관 ▲사무관리기관 ▲판매사 등이 각자 역할을 맡아 진행한다. 자산운용사가 펀드 편입 자산 등을 설계한 뒤 수탁기관을 통해 편입자산을 실제 매입해 보관·관리한다. 또, 사무관리기관은 펀드 기준액과 수익률 산정 등 펀드 재산 평가 관련 정보를 관리하고, 판매사는 투자자에게 펀드는 파는 역할을 한다. 옵티머스운용 측은 이 과정에서 각 기관이 맡은 업무만 할뿐 서로의 정보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우선 아트리파라다이스 사모사채 등을 수탁기관인 하나은행을 통해 사도록 했다. 하지만 사무관리기관인 한국예탁결제원에는 이 사채 대신 부산광역시매출채권 등이 편입된 것으로 이름을 바꿔 등록해달라고 요청했다. 수탁기관과 사무관리기관, 판매사가 모두 분리돼 관리가 허술하다는 점을 악용한 범죄였다. 또 이들은 범행의 전(全) 과정에서 100장 넘는 서류를 위조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재현 옵티머스운용 대표는 수차례 이체 과정을 거쳐 자신의 개인 명의 증권 계좌로 수백억원을 횡령한 정황도 금감원에 포착됐다. 김 대표는 이 돈을 주식, 선물 옵션 매입 등에 썼는데 금감원은 대부분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궁금증 ③ 투자자들은 왜 판매사를 더 비판할까?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옵티머스운용이 사실상 공중분해된 상태라 이들에게서 투자금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현 대표와 이모씨는 구속됐고 다른 임직원들도 대부분 퇴사했다. 또 옵티머스의 남은 미집행 투자금은 400억원 정도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는 NH증권 등 판매사들이 펀드가 실제 얼마나 안전한지 따져보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지점의 일부 PB들이 펀드 관련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불완전 판매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신문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NH증권의 대전 지역 한 PB는 지난해 11월 고객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만기 9개월에 확정금리 2.9%인 사모펀드 상품이 있다”면서 가입을 권했다. 이에 A씨가 “위험한 걸 안 좋아해서…원금보장이 되느냐”고 묻자 “원금보장이 된다”고 답했다. 또, A씨가 “해당 상품이 NH투자증권에서 하시는 거냐”고 질문하자 “네, 저희 회사에서 기획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믿은 A씨는 옵티머스펀드 23호에 1억원을 투자했다. 이 펀드는 오는 8월 만기인데 이미 환매 중단된 펀드들과 비슷한 구조로 설계돼 같은 피해가 우려된다. 피해 투자자들은 NH증권이 펀드 판매 심사 과정에서 상품구조나 투자 대상자산이 실재하는지 등을 적절히 확인하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 증권사에 대해 24일까지 현장 점검을 진행한 금융감독원도 이 부분을 중점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투자 피해자는 “개인 고객들은 규모가 작은 옵티머스운용을 믿고 억대의 투자금을 맡긴게 아니라 NH증권을 신뢰해 투자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중 60대 이상 비중이 51.9%나 돼 노후자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궁금증 ④ 전현직 관료, 정치인들의 이름은 왜 등장할까? 옵티머스운용의 정관계 유착·비호 의혹은 이혁진 옵티머스운용 전 대표와 김 대표, 문서 조작 등을 도운 윤모(43·구속) 변호사 등 때문에 나온다. 이들은 모두 한양대 출신이다. 이 전 대표와 김 대표는 모두 같은 대학 출신인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녔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또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서울 서초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 전 대표는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때 동포간담회장에 등장해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등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문제는 당시 이 전 대표가 횡령과 조세포탈, 성범죄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던 상황이라는 점이다. 검찰은 그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기소 중지를 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김치 판매·배달 사업을 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는 ‘바지 사장’인 김 대표를 내세워 모피아(옛 재무부 영문약칭인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와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의 카르텔이 치밀하게 기획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며 자신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또 윤 변호사의 아내 이모 변호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자 지난달 사임했다. 이 변호사는 청와대 행정관 근무 직전인 지난해 3월부터 약 8개월간 옵티머스 계열사인 해덕파워웨이에 사외이사로 근무했다. 이 회사는 옵티머스 펀드 자금에 의해 무자본 인수합병(M&A)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돈만 된다면”… 마피아 채권 덥썩 잡은 글로벌 투자가들

    “돈만 된다면”… 마피아 채권 덥썩 잡은 글로벌 투자가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위해 이탈리아 ‘마피아가 발행한’ 채권을 대량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몇년간 지속된 초저금리 시대에 마피아가 세운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들이 내세운 상대적 고금리 유혹에 덜컥 넘어간 것이다. 7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최대 프라이빗뱅크(PB) 가운데 하나인 이탈리아의 방카 제네랄리는 회계법인 언스트앤드영(EY)의 자문서비스까지 받아 마피아 채권을 매집(買集)한 것으로 밝혀졌다. EY는 최근 독일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핀텍업체 와이어카드 회계스캔들에서 회계업체로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은데 이어 마피아 채권과도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FT는 시장 소식통들을 인용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지난 2015~2019년 10억유로(약 1조 3500억원) 규모의 민간채권을 사들였다며 이 중 일부는 이탈리아 범죄조직인 엔드랑게타의 페이퍼컴퍼니가 발행한 자산과 연계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엔드랑게타는 외부에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마피아처럼 잘 알려진 범죄조직이 아니지만 지난 20년간 급부상해 서구 범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두려운 범죄조직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기업형 코카인 밀수부터 돈세탁, 강탈, 무기밀수 등 다양한 범죄에 연루돼 있다. 엔드랑게타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폭력을 앞세우되 지역 유지, 권력자들과 유착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다른 마피아와 달리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혈연과 가족관계로 똘똘 뭉친 조직이기에 검거하기가 매우 어렵다. 조직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들 중 후계자를 뽑아 ‘명예로운 소년’이라고 부르며 트레이닝을 시키고 이들 중에서 다시 ‘명예로운 남자’를 뽑는 방식이다. 조직을 구성하는 각 가족들 사이에선 경쟁적 수직 관계가 아닌 협력적 수평 관계를 유지한다. 이 조직이 장수하며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이들의 주 수입원 역시 마약 밀매다. 엔드랑게티의 수입 중 80%가 마약 밀매에서 나온다고 유로폴(유럽형사경찰기구)은 파악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부지리까지 누리고 있는데, 언택트(비접촉) 정책 덕분에 공항의 검색 절차 등이 완화되면서 마약 밀매가 상대적으로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채권 시장에 손을 댄 건 나름의 사업 다각화 중 하나로 분석된다. 이들이 발행한 채권은 이탈리아 공중보건 당국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직 결제를 받지 못한 의료 종사자들의 청구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정부에서 받을 돈으로 소위 ‘카드깡’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피아가 채권을 발행한 것이다. EU 법에 따라 이 같은 정부 체납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채권은 수익률이 높다. 정부기구가 대금을 연체할 경우 벌금으로 지불하게 되는 금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수익률에 목마른 기관투자가들은 이렇게 형성된 거대한 채권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고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안정적인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FT는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채권은 대부분 합법적인 것이었지만 일부는 훗날 엔드랑게타와 연계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더군다나 기관투자가들이 맺은 채권 구매 계약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역의 난민캠프가 발행한 것도 있다. 이 채권은 범죄조직이 먼저 인수해 국제 기관투자가들에게 넘겼다. 이들은 EU 기금에서 수천만 유로를 강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10억 유로 채권 대부분은 어떤 신용평가사로부터도 신용등급이 매겨지지 않았고 금융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은 채권들도 있다. 스위스 제네바의 투자은행 CFE가 방카 제네랄리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에게 채권을 팔 수 있도록 금융상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관련 당사자들은 이 채권들이 범죄조직과 연계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카 제네랄리도 합법적인 거래에만 의존했다고 항변했고, CFE는 범죄활동과 연관된 자산을 사들인 것인지 결코 몰랐다고 주장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伊 일자리 잃고 대출 힘들어… 금붙이 들고 전당포 앞으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와중에 이탈리아에서 전당포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생계가 힘든 주민들이 급전을 찾아 대출이 까다로운 은행 대신 전당포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은 북부의 밀라노뿐 아니라 남부 나폴리에서도 아침부터 전당포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전당포는 ‘마피아의 현금 통로’라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현지에서는 400여년에 걸쳐 정착된 은행 시스템의 일부다. 현지 전당포들의 매출은 코로나19 이후 20~30%가량 늘어난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 최대 저당대출업체인 ‘도로테움’의 자회사 ‘아피드’의 매출은 30% 증가했다. 도로테움은 지난 2월 경쟁사인 ‘크레벌’을 사들여 이탈리아 전역에 40개 이상의 지점을 거느리고 있다. 다른 전당포 업체인 ‘프론토 페그노’는 지난달 매출이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전당포의 호황은 이탈리아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정부가 코로나 긴급 지원 및 일자리 대책에 수십억 유로를 쏟아부었지만 복지 혜택은 올여름이면 끝난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있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3.2%나 차지하는 관광업도 여전히 힘들다. 게다가 은행들은 서민대출에 대해 까다롭고, 추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서민들의 신용 연장에도 소극적이다. 결국 서민들은 돈이 될 만한 물건과 신분 증명만 있으면 바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전당포로 몰릴 수밖에 없다. 저당 잡히는 물건도 금, 다이아몬드, 고급 시계, 옛날 화폐 등 다양하다. 아니타 파리스(75)는 NYT에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자동차 수리공 아들의 일감이 떨어지고, 연금과 코로나 정부 지원금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집안을 뒤져 금붙이들을 긁어모아 전당포에서 생계비로 바꿨다”고 말했다. 아피드의 로마 지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가을까지 주민들의 재정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에서는 “전당포만 돈을 양동이로 긁어모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伊 일자리 잃고 대출 힘들어… 금붙이 들고 전당포 앞으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와중에 이탈리아에서 전당포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전했다. 생계가 힘든 주민들이 급전을 찾아 대출이 까다로운 은행 대신 전당포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은 북부의 밀라노뿐 아니라 남부 나폴리에서도 아침부터 전당포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전당포는 ‘마피아의 현금 통로’라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현지에서는 400여년에 걸쳐 정착된 은행 시스템의 일부다. 현지 전당포들의 매출은 코로나19 이후 20~30%가량 늘어난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 최대 저당대출업체인 ‘도로테움’의 자회사 ‘아피드’의 매출은 30% 증가했다. 도로테움은 지난 2월 경쟁사인 ‘크레벌’을 사들여 이탈리아 전역에 40개 이상의 지점을 거느리고 있다. 다른 전당포 업체인 ‘프론토 페그노’는 지난달 매출이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전당포의 호황은 이탈리아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정부가 코로나 긴급 지원 및 일자리 대책에 수십억 유로를 쏟아부었지만 복지 혜택은 올여름이면 끝난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있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3.2%나 차지하는 관광업도 여전히 힘들다. 게다가 은행들은 서민대출에 대해 까다롭고, 추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서민들의 신용 연장에도 소극적이다. 결국 서민들은 돈이 될 만한 물건과 신분 증명만 있으면 바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전당포로 몰릴 수밖에 없다. 저당 잡히는 물건도 금, 다이아몬드, 고급 시계, 옛날 화폐 등 다양하다. 아니타 파리스(75)는 NYT에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자동차 수리공 아들의 일감이 떨어지고, 연금과 코로나 정부 지원금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집안을 뒤져 금붙이들을 긁어모아 전당포에서 생계비로 바꿨다”고 말했다. 아피드의 로마 지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가을까지 주민들의 재정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부에서는 “전당포만 돈을 양동이로 긁어모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81억짜리 그림 도둑맞는 순간…고흐 작품 훔치는 남자 공개 (영상)

    81억짜리 그림 도둑맞는 순간…고흐 작품 훔치는 남자 공개 (영상)

    지난달 네덜란드의 한 미술관에서 후기 인상파 거장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훔쳐간 도둑의 범행 전말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다. 호주 ABC뉴스 등 해외 언론의 2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새벽,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휴관 중이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싱어 라런 미술관에서는 고흐의 작품인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Parsonage Garden at Neunen in Spring)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고흐의 1884년 작인 이 작품은 600만 유로(한화 약 81억 3000만원) 상당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해당 미술관은 전시를 위해 네덜란드의 다른 미술관에서 대여한 상황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폐쇄회로(CC)TV 영상은 사건 당일 검은색 옷을 입고 복면을 쓴 남성이 대형 망치로 미술관의 강화 유리문을 깨부수고 들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한 손에는 대형 망치를 들고 있었는데, 강화 유리는 남성이 휘두르는 망치에 몇 번 맞자 마치 일반 유리처럼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문제의 남성은 망치를 이용해 강화 유리벽과 유리문을 몇 차례나 부수고 고흐의 그림이 있는 전시실까지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왼손에는 망치를, 오른팔 아래에는 고흐의 그림을 끼고는 유유히 미술관 밖으로 빠져나갔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CCTV 영상이 공개된 뒤 56건의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으며, 범행 당일 미술관 앞을 지나간 흰색 자동차 한 대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찾고 있다. 한편 반 고흐의 작품이 도난 사고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역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서는 단 3분 40초 만에 고흐의 초기 작품 두 점이 도난당했다. 당시 도둑 두 명은 사다리를 이용해 건물 외벽을 오른 뒤, 유리창을 부수고 건물로 침입해 그림 두 점을 들고 사라졌다. 이후 범인들은 체포됐지만 도난당한 그림은 마피아에게 넘어간 후였다. 결국 경찰이 마피아의 가족들이 지내는 집을 급습해 두 개의 벽 사이에 숨겨져 있던 그림을 발견했고, 다시 반 고흐 미술관으로 넘겨졌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소련은 하루에 무너지지 않았다

    소련은 하루에 무너지지 않았다

    1991/마이클 돕스 지음/허승철 옮김/모던아카이브/672쪽/3만 5000원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 독립국가연합 창설에 관한 정국상황에 따라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을 마칩니다.”●1980년 티토 사망부터 1991년 소련 해체까지 재해석 1991년 12월 25일 오후 7시 정각,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2억 8000만 소련인들에게 했던 소련 해체 공식 선언. 볼셰비키 세력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을 습격한 지 74년 만에 공산주의 종주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워싱턴포스트 모스크바 지국장 출신 언론인 마이클 돕스는 ‘1991’을 통해 진부한 테마일 수 있는 ‘공산주의의 종언’을 색다르게 파고든다. 소련 해체의 시작과 과정, 종말을 12년에 걸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로 재해석한 역작. 옮긴이의 말대로 ‘소련 붕괴’라는 한 주제를 놓고 수십 대의 카메라가 균열이 벌어진 곳을 찾아가 생생하게 중계하듯이 생동감 있게 풀어나간다. 그동안 소련 붕괴의 신호탄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돼왔다. 1986년 소련 체제의 기술적 무능력을 노출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1985년 고르바초프의 소련 공산당 서기장 취임, 1953년 스탈린 사망…. 이 책의 특징은 소련의 내부적 요인보다는 동유럽 공산정권의 균열과 동요, 아프간 침공 같은 과도한 팽창이 소련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었음을 지목하고 풀어낸 점이다. 저자는 반볼셰비키 혁명, 다시 말하면 소련 해체의 시작 지점을 1980년 5월 유고슬라비아 국부, 티토의 사망으로 잡는다. 티토의 사망 말고도 소련 몰락을 설명하는 역사적 사건들은 책에 숱하다. 레닌조선소 파업에 따른 계엄령, 대한항공 007편 격추, 미소 정상회담,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보리스 옐친 정치국 축출, 조지아 트빌리시 대학살, 베를린 장벽 붕괴, 8월 쿠데타….●“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를 해체한 공산주의자” 책의 특장은 소련 붕괴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맛깔스럽게 버무려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현장의 ‘살아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독재자 브레즈네프의 위상과 관련해선 “집권 16년 차에 들어서면서 신격화된 존재인 동시에 국가적 광대가 되었다”며 “우상화가 지나친 나머지 비웃음을 살 정도에 이르렀다”고 꼬집는다. 폴란드 노조 지도자인 레흐 바웬사와의 만남 대목도 흥미롭다. 왜 기자들을 피하는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기자를 만나주느냐는 질문에 바웬사는 “사람들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답을 했다고 전한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상황도 눈길을 끈다. “미사일이 두 비행기 사이의 거리인 약 8㎞를 날아가는 데 대략 30초가 걸렸다. 소련 전투기 조종사 오시포비치가 오른쪽으로 벗어나는 동안 적기가 바다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스포비치가 흥분된 목소리로 보고했다. ‘목표 파괴됨’” 그런가 하면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대해 저자는 “공산주의를 해체한 공산주의자, 혁명을 시작했지만 결국 자신이 착수한 혁명의 희생자”라 평가한다. 그렇다면 소련 해체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공산주의가 사라지게 한 공에 있어서 어떤 사건이나 인물도 결정적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공산주의는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에 패배한 게 아니라 결국 자멸했다는 주장이다. ●“공산주의 유령 여전… 현대사회와 통합이 가장 큰 도전” 많은 전문가들은 20세기 내내 긴 그림자를 드리우다가 실패한 공산주의가 다음 세기까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핵 전쟁의 위협이며 환경 재앙, 대규모 전쟁, 마피아 국가의 부상처럼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재앙 시나리오’의 상당수가 과거 공산 세계에서 비롯됐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빅브라더가 죽었을지라도,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우리 앞에 출몰할 것”이라 전망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포스트공산주의 사회를 현대세계와 통합하는 일은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일 것이다.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해 우선 어떻게 그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 이해해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코로나 집콕’ 하는 주말 3·1절, ‘친일파 잡기’ 보드게임 어때요

    ‘코로나 집콕’ 하는 주말 3·1절, ‘친일파 잡기’ 보드게임 어때요

    다가오는 삼일절을 겨냥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와 친일파를 소재로 한 게임이 등장했다. 바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보드게임1945: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보드게임1945)이다. 유야무야 해체된 반민특위의 역사를 다시 되새기고, 게임 속에서라도 반민특위가 성공하는 역사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보드게임1945는 세 명의 청년이 모여 개발했다. 보드게임1945를 기획한 바른 엔터테인먼트 권재욱(22)씨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민특위가 활동한 해방 이후와 전쟁 이전 사이의 시기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골든타임’이라 생각한다”면서 “이 시기가 역사 교육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권씨는 “보드게임1945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역사와 인물들을 알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권씨에 따르면 프로젝트를 후원한 사람들은 “역사에 묻혔던 독립운동가들을 알게 돼서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드게임 소재가 된 반민특위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만들어진 제헌국회에서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구성한 위원회다. 하지만 친일 행적이 파악된 682건 중 실제 처벌을 받은 사람은 14명에 그쳤다. 반민특위는 결국 1년도 안 돼 해산됐다. 권씨는 “역사적인 부분을 다루는 만큼 제작 과정에서 이념 논란에 휘말릴까 우려가 많았다”면서 “역사는 좌·우나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모바일 게임이 주가 되는 게임 시장에서 아날로그식 보드게임을 출시한 점도 눈에 띈다. 보드게임1945는 심리전과 추리를 통해 상대방의 정체를 밝히는 ‘마피아 게임’ 방식을 이용해 긴장감을 더했다. 여기에 해방 이후 반민특위와 친일파라는 역사적 맥락을 입혔다. 권씨는 “간단하게 종이 한 장 펼쳐 놓고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보드게임으로 제작했다”고 말했다. 보드게임1945 프로젝트는 삼일절인 다음달 1일 종료된다. 27일 기준 보드게임1945 프로젝트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 사이트에서 후원금액 800만원을 넘겼다. 목표금액인 300만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보드게임1945를 후원한 사람은 총 190명이다. 후원금액 500만원이 넘은 17일에는 게임에 새로운 인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장 여운형이 추가됐다. 권씨는 “역사는 무겁고 어려울 수 있는데 보드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더 쉽게 역사를 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은수미 항소심서 당선무효형

    은수미 항소심서 당선무효형

    조폭과 연루된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은 은수미 성남시장이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수원고법 형사1부(노경필 부장판사) 6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은 시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9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앞서 지난달 9일 결심 공판에서 벌금 150만원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검찰의 구형량보다 두 배나 높은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교통편의를 기부받는다는 사정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1년 동안 코마트레이드 측으로부터 차량과 운전 노무를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행위는 민주 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해야 할 정치인의 책무 및 정치 활동과 관련한 공정성과 청렴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 시장은 재판 직후 “상고하겠다”며 법원을 빠져 나갔다. 지난 2016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코마트레이드 등으로부터 95차례에 걸쳐 차량 편의를 받아 교통비 상당의 정치자금을 불법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코마트레이드는 성남지역 폭력 조직인 국제마피아파 출신 A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청년이 살고 나라가 살려면 대학 살려야… 정치, 교육에 눈떠라

    청년이 살고 나라가 살려면 대학 살려야… 정치, 교육에 눈떠라

    두 개의 금언이 있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모두 동의하는 말이다. “교육이 살아야 미래가 있다.”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교육이 살아야 미래가 있다”는 말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본이 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 기본에 탈이 났다. 고령화에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인데 젊은이들 사이에서 4B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철렁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비연애, 비성관계, 비결혼, 비출산을 4B라고 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마당에 4B운동이라니 대책이 없다. 청년들에게 희망이 없다면 나라에도 희망이 없는 것 아닌가? 서울과 수도권에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밀집해 살고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금값이다. 정상적인 직장생활로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꿈이다. 반대로 나머지 모든 지역은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소멸위험지수를 보면 서울과 수도권 일부 도시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역이 소멸 지역이니 국가균형발전은 애저녁에 물 건너갔다.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고 자영업자가 다수다. 중소기업은 재벌과의 관계에서 쪼그라들었다. 재벌은 배가 터지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배를 곯는 양극화가 한강의 기적으로 일군 한국자본주의의 실상이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라지만, 낙타 앞의 바늘구멍이어서 양질의 일자리는 신기루에 가깝다. 여기까지가 현실이다. 이 암울한 현실을 바꾸려면 정치와 교육이 살아 있어야 하는데 교육은 현실보다 비극적이고 정치는 교육에 관심이 없다. 교육의 의미도 모르고 교육의 역할도 모르니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것과 똑같다.교육은 청년을 인재로 양성하는 과정이다. 청년들은 교육을 통해서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는다. 교육은 또한 청년을 사회로 연결하는 사다리 역할을 한다. 교육은 모든 사회적 관계가 고착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계층이동의 통로다. 바람이 대기를 섞어 주고 해류가 바닷물을 섞어 주는 것처럼 교육은 사람과 사회를 섞어 주어야 한다. 이 사다리가 튼튼해야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데, 사다리 역할을 할 교육의 계층이동 기능은 정지됐고 그 정점에 있는 대학은 위기에 직면했다. 대학의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사실인데 대입 수험생은 2018년에 60만명 이하로 줄었고 올해 49만명에서 4년 후에는 37만명으로 12만명이 감소한다. 전체 수험생의 25%가 줄어드는 셈이다. 전국에 330개의 4년제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이 있는데, 줄어드는 숫자로 보자면 입학 정원 1500명 규모의 대학 90개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이 상황을 방치하면 혼란이 온다. 서울 일부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대학이 신입생을 채우지 못하고, 특히 지방 사립대와 전문대가 폐교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학생이 줄고 재정이 악화되면 교직원 급여가 체불되고, 교육환경이 부실해지고, 재정 투자가 감소하면서 교육은 총체적 부실에 빠진다. 교육 현장은 갈등과 분규의 아수라장이 된다. 선명하게 보이는 교육의 미래다.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입학 정원을 줄이든 대학을 줄이든 방법을 강구해야 할 상황에서 교육부가 손을 놓아 버렸다. 정원 감축의 책임을 대학의 자율 감축으로 떠넘겨 버린 것인데, 두 가지 판단착오가 있다. 첫째, 학생의 감소는 재정의 감소를 의미하는데, 국가 지원금도 없고 재단 전입금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감축은 대학을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둘째, 학령인구의 감소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학의 소멸로 이어지고 지방대학의 소멸은 지역 소멸을 더욱 재촉한다. 지방대학과 지역의 동반 몰락을 예고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면 서울과 지방을 구별하지 않고 균등하게 줄이면 된다. 자생력이 없는 일부 대학은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입학 정원이 줄면 대학 재정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므로 정부가 재정결손을 보전해 주어야 한다. 차제에 국공립대학과 대학원이 활성화된 사립대학은 연구 중심 대학으로 전환하고 학부 정원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 학령인구만 문제가 아니다. 사학 비리는 가장 오래된 고질적인 문제다. 대학의 86.5%가 사립이고 사학의 투명성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사학 비리 척결 없이는 교육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유치원 3법’은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사립학교법은 왜 개정되지 않을까? 사립학교법 개정이 어려우면 시행령 개정으로, 시행령 개정이 어려우면 재정지원 방식으로, 그것도 어려우면 정부의 지도감독권으로 대학의 정상화를 다각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데 그런 노력이 아쉽다. 교육부 예산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가장학금의 규모가 4조원을 넘어섰는데 여전히 정부와 학생 간의 직거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이 국가장학금을 직접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과 전문대학의 혁신지원사업과 BK사업 등 지원 사업의 규모가 2조원에 육박하는데 비리가 있는 대학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대학 운영 상황에 따라 차등 지원하면 대학의 정상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정부 정책의 혁신은 집권세력, 정부, 공무원, 국민이 함께 풀어 가야 성공한다. 공무원은 당연히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한다. 그러나 관료집단은 기득권에 매몰되거나 보신주의적 태도에 젖어 혁신에 저항할 가능성이 크므로 관료주의는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 교육 영역에서도 그간 관료적 기득권주의가 적잖이 확인됐다. 과거 사분위를 통해 비리 재단이 속속 복귀할 때 교육부는 수수방관했고 일부 관료들은 교육 마피아가 돼 비리 재단과 결탁했다. 상지대는 매우 상징적인 사례인데 분규 내내 교육부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고, 결국 교육부를 대신해서 대법원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대법원의 판결로 정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교육부는 정상화를 촉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부의 교체가 관료집단의 개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기득권적 관료주의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청년이 대학교육을 받는다. 긴 교육의 마지막 단계인 대학은 청년이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이자 청년의 미래를 구축하는 디딤돌이다. 그런데 그 대학이 천박한 경쟁주의에 매몰되고, 서열주의로 고착되고, 사학 비리에 찌들고, 재정 부족으로 허덕인다면 어떻게 제 역할을 수행하겠는가? 형식적인 취업률 향상에 연연해 취업에 유리한 순응적인 기능인만 양산한다면 나라의 미래가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현실을 비판하면서 고난을 무릅쓰고 진리와 정의, 협동과 창조의 가치를 함양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청년들에게는 눈앞의 현실 못지않게 미래와 희망이 중요하다. 특히 삶의 전 과정을 지배하는 출산, 육아, 교육, 주거에서 희망이 필요하다. 청년들을 가슴 뛰게 하는 것은 미래를 향해 열린 길이므로 사회가 그 길을 만들어 주고 교육이 그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교육이 기득권을 옹호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이라면 희망은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교육하는 모든 과정이 오로지 개인의 몫이라면 누구도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이 살고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대학이 살아야 하고 대학이 대학다워야 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비리는 교육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학 비리든 교육 비리든 일체의 비리와 부조리를 교육 현장에서 제거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고 대학을 개방해 대학 간 연결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가가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면 된다. 대학이 살아야 미래가 열린다. 먼저 대학을 살리는 일을 시작하자. 상지대 총장
  • 진중권 “PK 하나회 대부 자처한 문 대통령, 공직에 적합한지 의문”

    진중권 “PK 하나회 대부 자처한 문 대통령, 공직에 적합한지 의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유재수 감찰 무마’와 관련해 당시 민정 라인 등을 ‘PK(부산·경남) 하나회’라고 칭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공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인물인지 깊은 회의를 품게 된다”고 지적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21일 페이스북에 ‘PK 패밀리, 대부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론에 보도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직권남용 공소장 내용을 토대로 “‘우리 식구인데 왜 감찰을 하느냐’, 이걸 말이라고 하는지. 원래 감찰은 우리 식구에 하는 거고, 남의 식구에 하면 사찰”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금융위원회 재직 당시 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해 청와대의 특별감찰이 진행될 당시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천경득 총무인사팀 선임행정관 등 이른바 ‘텔레그램 3인방’이 “참여정부에서 우리와 함께 고생한 사람이다”, “참여정부에서도 근무한 유재수를 왜 감찰하느냐” 등 구명운동을 펼쳤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을 말한 것이다. 진중권 전 교수는 이들 3인방을 ‘참여정부 하나회’라고 칭하며 “그 동안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국가의 공적 기능을 사적으로 쥐고 흔들어온 것”이라면서 “국정농단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그는 “설사 대통령 측근들이 설치더라도 청와대에선 이들을 말렸어야죠”라면서 “민정수석이 이들의 말을 그대로 들어줬다”고 조국 당시 민정수석의 책임을 지적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상관인 대통령이 아니라 사조직인 PK 하나회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을 향해선 “본인도 불법이란 걸 알았으니 아예 감찰 자체가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도둑 잡으라고 그 자리에 앉혔더니 외려 경찰이 마피아와 작당해 범행을 눈감아주고 범행 흔적이 담긴 CCTV 영상마저 지워준 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서는 “민정수석이 잘못했으면 법무부라도 일을 제대로 처리해야죠”라며 “법무부 장관이란 분이 검찰의 수사를 돕기는커녕 그걸 무산시키지 못해 안달이 났다”며 “조국의 범행을 덮어주기 위해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맹공했다. 마지막으로 “법무부 장관이 잘못하면 대통령이라도 말려야는데 그걸 보고도 대통령은 방관을 넘어 응원을 한다”면서 “애초에 수사 중단시키려고 그 분(추미애)을 장관 자리에 앉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PK 하나회의 지존이 누구인지 분명해진다. 이건 인의 장막을 쳐서 대통령의 눈을 가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대통령 자신이 자기를 PK 패밀리의 대부로 생각해 제 식구들을 살뜰히 챙겨주려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때문에 문 대통령이 과연 공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인물인지 깊은 회의를 품게 된다”고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한 후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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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해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 ■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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