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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논쟁 마침표 찍을까

    배아를 파괴하지 않고 배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개발됐다고 과학 전문지 네이처 인터넷판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생쥐 대상 실험에서 성공한 수준이지만 인간에게서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면 배아 줄기세포 윤리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미국 생명공학기업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의 로버트 랜저 박사팀은 시험관 수정을 할 때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기 전 유전질환 검사를 위해 실시하는 착상전 유전진단(PGD)에 사용되는 초기 단계 배아를 이용한다. 연구팀은 배아의 8개 세포 가운데 1개를 떼어내 배양시킨 결과 배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었다. 세포가 7개만 남은 나머지 배아는 자궁에 이식돼 정상적으로 성장, 새끼가 태어났다. 다음으로 매사추세츠공대(MIT)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 루돌프 제니시 박사 등은 체세포 복제와 비슷한 변형 핵이식(ANT)이라 불리는 방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쥐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 핵을 이식했는데, 이 핵에는 배아의 착상을 가능케 하는 유전자의 활동이 차단돼 있어 이렇게 만들어진 ‘불구 배아’는 착상되지는 않지만 배아 줄기세포는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윤리 논쟁의 핵심은 배아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새끼로 성장할 수 있는 배아’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인데 새 방법들은 이런 논란을 비켜갈 수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PGD방법에 대해 호주 모나시 대학의 알랜 트러운손 교수는 “배아 파괴라는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환영한 반면 미 생식유전학연구소의 유리 베를린스키 소장은 “배아에서 떼어낸 세포 1개도 생명으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ANT방법은 보수 진영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미 대통령 산하 생명윤리위원회의 윌리엄 헐버트 박사는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배아는 성장 능력을 갖지 못한 다른 개체”라고 옹호했지만 생명운동가인 리처드 도어플링거는 “배아를 만든 뒤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비윤리적”이라고 반대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코리아女검객 세계를 찔렀다

    2005세계펜싱선수권 한국-루마니아의 여자플뢰레 단체전 결승이 열린 독일의 아레나 라이프치히. 9라운드까지 19-19로 팽팽히 맞선 경기는 어느덧 1점을 먼저 따면 끝나는 ‘서든데스’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패색이 짙던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간 ‘에이스’ 남현희(24·성북구청)는 공격해 들어오는 루마니아 록산나 스카라틴의 가슴팍을 그대로 찔렀고, 그순간 한국 쪽에 선명한 불이 들어오며 한국 펜싱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는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여검객들이 세계최강 유럽의 심장을 꿰뚫었다. 한국 여자펜싱대표팀은 14일 새벽 유럽의 강호 루마니아와 연장혈전 끝에 20-19,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세계선수권 사상 첫 단체전 금메달의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이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것은 남·녀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전에선 지난 2002년 여자 에페에서 ‘주부검객’ 현희(28·경기도체육회)가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실업팀 6개에 선수 30여 명에 불과할 만큼 척박한 토양에 놓인 한국 여자 플뢰레가 ‘라이프치히의 기적’을 일군 순간, 선수들은 일제히 이성우(36) 코치에게 달려갔다. 남자 청소년대표를 지낸 유망주였던 이 코치는 일찌감치 지도자의 뜻을 품고 펜싱종주국 프랑스 국립펜싱지도자학교에서 유학했다. 현지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프랑스 청소년팀을 지도했던 그는 아테네올림픽 노메달 치욕을 겪은 한국 펜싱을 살릴 소방수로 지난 2월 여자 플뢰레 코치를 맡았다. 대한펜싱협회와 이 코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20대 초중반의 유망주들로 대표팀을 대폭 물갈이했고,1년도 안돼 한국 여자 플뢰레를 세계정상으로 이끄는 결실을 맺었다. 이 코치는 “그동안 루마니아와 수차례 맞붙어 그들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었다.”면서 “개인전에서 드러난 우리 선수들의 단점을 보완해 챔피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7번 시드의 한국은 전통의 강호 러시아와 겨룬 3회전에서 초반 1-9로 크게 뒤지며 위기를 맞았지만 ‘조커’로 투입된 정길옥(25·강원도청)의 깜짝 활약에 힘입어 21-18로 역전하며 준결승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종주국 프랑스와 맞닥뜨렸다. 하지만 ‘땅콩 검객’ 남현희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선수들은 시종일관 리드를 지킨 끝에 40-26으로 승리, 대망의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 영웅도 역시 남현희. 남현희-서미정(25·전남도청)-정길옥이 번갈아 나선 한국은 결승전 마지막 9라운드에 이르기까지 1∼2점 차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마지막 주자로 나선 155㎝의 단신 남현희가 종료 직전 18-19에서 상대가 멈칫하는 사이 날다람쥐처럼 빠른 발로 빈틈을 찌르며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전에서도 번개같은 몸통공격으로 금메달을 안겼다. 세계 정상 한가운데를 찌른 한국 여자 펜싱대표팀은 16일 아침 인천공항으로 개선할 예정이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송진우 구원 ‘PO行 특급공신’

    한화의 플레이오프 진출 특급공신 최영필(31)이 준플레이오프 MVP까지 거머쥐었다. 최영필은 6일 SK와의 준PO 5차전에서 송진우를 구원 등판,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또한 지난 3일 준PO 3차전에서도 구원승을 거둬 준PO 최우수선수(MVP)로서 손색이 없는 성적을 거둬냈다. 이날 9회 박재홍에게 투런 홈런을 얻어맞으며 6-5까지 쫓기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영필은 다음 타자 김민재를 10구 접전 끝에 2루 땅볼로 잡고 경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 [깔깔깔]

    ●끔찍한 책 한 노부인이 도서관 안내실로 가더니 소리쳤다. “불만이 있어 왔습니다. 지난주에 책을 하나 빌려갔었는데 아주 끔찍한 책이더군요.” “뭐가 잘못됐나요?” “이 책은 엄청나게 많은 글자가 있고 게다가 마침표도 없더라고요!” 도서관 사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부인이 우리 전화번호부를 빌려가셨던 분이군요.”●온몸이 아픈 이유 괴로운 얼굴로 한 환자가 병원에 왔다. “의사 선생님, 온몸이 아파 죽을 것 같아요. 머리를 찔러봐도 아프고, 다리를 찔러봐도 아프고, 배를 찔러봐도 아프고, 온몸이 아파요.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요?” 의사가 환자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 한 “盧 다음 수 탈당→개헌발의?” 與 “설마…”

    한 “盧 다음 수 탈당→개헌발의?” 與 “설마…”

    여야가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후속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맹형규 정책위의장이 8일 노 대통령의 예상 행보 시나리오를 제시해 귀추가 주목된다. 맹 정책위의장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권 ‘빅뱅’ 구상:대통령발 개헌카드’라는 글에서 “노 대통령이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연정론과 선거구제 개편을 밀어붙이면서 정치권 대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맹 의장은 노 대통령의 연정 구상과 관련된 구체적 정국 시나리오로 ▲선거구제 개편을 둘러싼 정기국회 파행 ▲열린우리당 탈당 ▲개헌 및 임기단축 로드맵을 제시하며 정치권에 최후통첩 ▲개헌안 발의 ▲국회 부결-대통령직 사퇴 ▲조기 대선·총선 등 6단계로 전망했다. 그는 “대통령의 예상 행보가 실제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그 논거로 ▲지역구도 해소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의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대통령직에 연연해 하지 않은 인물 ▲선거구제 개편을 위해 개헌카드 활용이 불가피함 등을 들었다. 이어 “현재 정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대통령발 핵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으며 일반적 예상과 달리 그 폭탄은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같은 분석은 전날 회담에서 “연정 얘기는 아예 꺼내지 말아달라.”라는 박근혜 대표의 요구에도 불구, 노 대통령이 “상황이 말할 필요가 없다면 하지 않겠지만 여러 결단이 필요하다 싶으면 말하겠다.”고 맞대응한 뒤에 제기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앞서 한나라당과 호남·반노(反盧) 세력을 결집하는 ‘빅텐트 정치연합’을 제안했던 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글에서도 “지역을 초월한 모든 우국세력과의 연합이야말로 지역주의 해소의 새 대안을 보여줌과 동시에 ‘한나라당 고립구도’를 깨는 최상의 카드”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는 전날 회담에서 연정 논의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판단,‘무대응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에서 “연정과 관련된 언론 토론에 대해 거부를 했고 일절 응하지 않는다.”며 의원들에게 불참할 것을 에둘러 주문했다. 나경원 공보부대표도 “어제 회담으로 연정론은 종식됐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여당이 다시 선거구제 관련 개정안을 추진하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전날 회담이 상생·협력 분위기를 조성했다.”며 “그 동안 정부 정책 내용을 야당에 설명하는 데 부족했다고 판단, 한나라당과 협의해서 정책브리핑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연정 관련이 아닌 정책브리핑은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대통령 설마 탈당까지야…”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회담이 사실상 결렬로 마감된 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다음 카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시 한번 ‘깜짝카드’를 들고나올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술렁거림이 심화되는 듯하다. 일단 지도부는 ‘깜짝카드’ 가능성을 낮게 점치면서 선거구제 개편에 총력을 집중할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지도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탈당이나 조기사퇴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문희상 의장은 다음 수순과 관련,‘무수’라고 답했다. 문 의장은 8일 열린 정책의총에서 “다음 수순이 무엇이냐고 언론에서 많이 묻는데 무슨 수가 있겠느냐.”면서 “수가 있으면 무수”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 수순이 소연정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그건 아니라고 본다.”면서 노 대통령이 쉽게 대연정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따라서 지도부는 일단 당내 연정 논의를 자제하면서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정치개혁특위 운영에 심혈을 기울일 작정이다. 친노직계가 주도하는 ‘의정연구센터’ 소속 이화영 의원은 ‘관망’으로 내다봤다. 이 의원은 “‘공’이 정치권으로 넘어왔다.”면서 “노 대통령은 우리당이 정개특위를 통해 선거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야당과 토론하는 진행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 차원에서 선거구제 개편뿐 아니라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행정구역 개편도 논의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특히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굳이 한나라당이 아니더라도 다른 야당과 생각이 맞으면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 정개특위 간사인 민병두 의원도 다른 야당과의 협력을 거론했다. 이는 다른 야당을 동원해서 한나라당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회담결렬을 계기로 탈당이나 조기사퇴 등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야파 우원식 의원은 “예측불허”라면서 ‘깜짝카드’를 제시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어 노 대통령이 연정 논의를 연말까지 끌고 갈 것이라고 점치면서 “연정 논의가 당에서 계속될 경우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MLB] 찬호, PO선발 ‘글쎄’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게 포스트시즌 선발자리가 주어질까. 박찬호가 4년 만에 만난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초반 고비를 넘지 못한 채 제구력 불안을 드러내며 패전을 기록, 생애 첫 포스트시즌 선발 출장 전망을 어렵게 했다. 박찬호는 7일 페코파크에서 펼쳐진 미국프로야구 콜로라도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5이닝 동안 탈삼진 5개를 솎아냈지만 6안타 4볼넷 4실점으로 0-4로 뒤진 5회말을 끝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방어율도 5.79에서 5.83으로 뛰어올랐다. 샌디에이고는 7회 4점을 뽑는 등 막판 추격을 펼쳤지만 5-6으로 패해 결국 박찬호는 시즌 7패째(12승)를 떠안았다. 이로써 박찬호의 연승행진은 ‘3’에서 마침표를 찍었고, 최근 11경기에서 무패행진을 달리던 코리안빅리거 4총사의 ‘불패행진’도 막을 내렸다. 박찬호는 앞으로 4차례 정도 선발등판을 남겨놓고 있어 지난 2001년 이후 4년만의 15승 고지 탈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박찬호는 콜로라도의 간판타자 토드 헬튼을 상대로 올시즌 최고구속인 155㎞를 찍을 정도로 스피드는 괜찮았지만,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102개의 공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59개에 그칠 만큼, 스트라이크존을 외면했다. 특히 1회에만 무려 35개의 공을 던지며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다. 1회 2사뒤 토드 헬튼에게 2루타를 얻어맞고 연속볼넷으로 2사 만루위기를 자초한 박찬호는 재럿 앳킨스에게 중전안타를 맞아 2실점했다. 계속된 2사 1·3루에서 루이스 곤살레스에게 내야안타를 허용,0-3까지 벌어졌다.4회에도 헬튼에게 적시타를 맞고 1점을 더 내줬다. 한편 지구 2위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이날 LA 다저스에 2-4로 져 샌디에이고는 5경기차 선두를 유지했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해도 박찬호에게 선발 중책이 맡겨질지는 미지수. 이날 투구는 특히 1996년 샌디에이고의 지휘봉을 잡아 98년 월드시리즈 진출 이후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한 채 올해로 계약이 만료되는 보치 감독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송재우 Xports해설위원은 “투구수 조절에 대한 강박관념이 되레 박찬호의 컨트롤을 무너뜨린 것 같다.”면서 “포스트시즌 선발자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남은 경기에서 승수쌓기보다 방어율을 낮추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한번 들어서면 뒤를 볼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김호연(50) 회장의 경영 ‘일방 통행론’이 진행된지 횟수로 13년째.1992년 ‘미운오리 새끼’였던 빙그레는 2005년 확실한 ‘백조’가 됐다. 당시 부채 비율 4000%대는 50%대로,230억원대의 시가 총액은 무려 20배 가까이 늘어난 43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10년간 누적적자 100억원은 놀랍게도 2004년에 순이익 350억원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변신은 빙그레와 김 회장이 처했던 극한의 조건들이 이뤄낸 절묘한 조화 덕분이다. 그룹 신규 투자에서 항상 ‘찬밥 신세’였던 빙그레는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한화와의 단절을 통해 자력 갱생의 계기를 만들었고, 한때 경영능력에 대한 오해를 뒤집어쓴 김 회장은 처절한 구조조정으로 수익성과 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특히 빙그레의 뛰어난 경영 성적표는 일방적으로 제기됐던 김 회장의 ‘자질 오해’를 깨끗이 불식시켰다. 내성적이며 말수가 적은 ‘충청도 양반’ 스타일인 김 회장에게 10년 이상의 기나긴 구조조정을 성공케 한 원동력은 뭘까. 불명예를 안고 무너지기엔 너무나 억울해서였을까. 아니면 성공해서 반드시 보여줘야만 했던 오기였을까. ●형제 분가 김승연-호연 형제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시작된 형제간의 재산권 분할과 관련된 소송은 여론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의 사장인 김호연 회장을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시킨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김 회장으로서는 공격적으로 유통업을 확장시키려는 순간에 경영 감사에서 이런 사실을 통보받자 너무나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한양유통은 인수 시절부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데다 증자가 없어 한층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회사에서 저를 밀어낸 것은 사실상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이 사건 이후 6개월 가량 두문불출했다.‘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2004년 4월에 수상한 ‘한국의 경영자상’에 유독 애착이 간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일련의 사태 이후 재산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자, 약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3년 6개월의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김 회장은 모친인 강태영(78)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강 여사의 칠순을 맞아 대학 은사인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형제간 화해를 권유하자 김 회장은 이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다. 강 여사는 당시 “칠순 잔치보다 가족들의 화합이 더 중요하며, 형제들의 잔치 비용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좀 서먹해진 것도 있지만 과거 형님과의 갈등은 해소됐다.”면서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간 모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10년 구조조정 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때 빙그레의 부채 비율은 4183%,10년간 누적적자가 100억원이나 되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당시 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420%대였던 점과 비교하면 무려 10배나 높은 수치였다. 한때 한화그룹의 ‘캐시카우’로서 그룹의 투자 자금을 조달했던 옛 위용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시장 점유율 1위는 의미가 없다. 수익성을 개선시킬 여지가 없는 사업은 과감히 잘라야 한다.”는 김 회장의 경영판단 아래 강도높은 사업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김 회장은 우선 가지치기를 시작했다.‘썬메리’ 베이커리 사업을 삼립식품에 매각했으며, 냉동식품과 초코케이크 등 비주력 사업은 시장 철수를 단행했다. 특히 초코케이크 사업 철수로 인해 유휴 상태였던 생산라인을 가동시키기 위해 아이스크림 경쟁사인 롯데제과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도 받는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았다. 빙그레 구조조정의 핵심은 주력 사업인 라면과 스낵사업 부문이었다.80년대 중반 겨울철 비수기 주력 사업으로 시작한 라면과 스낵사업은 매년 30억∼40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는 빙그레의 ‘두통거리’였다. 김 회장은 2003년 3월 라면사업 철수와 스낵사업의 국내 영업권 위탁이라는 고강도 처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수자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회장의 이같은 구조조정과 현금 흐름의 개선 노력은 92년 부채비율 4183%에서 외환위기 당시인 98년 360%,2004년에는 53.7%로 줄어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학구파에서 몽골 인연까지 김 회장은 재계의 학구파로 유명하다.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온 김 회장은 일본 히도쓰바시(一橋)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 학위도 땄다. 또 지금은 서강대에서 경영학과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그의 독서량은 경영인들 중에서도 다독으로 손꼽힌다.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는 편이니 그야말로 ‘독서광’이다. 또 빙그레의 구조조정이 만들어준 김 회장과 몽골의 인연은 각별하다. 서울 압구정동 사옥을 매각하고 남양주시 도농동으로 본사를 옮긴 빙그레는 남양주가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몽골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 등의 잦은 방문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은 김구재단을 통해 몽골 유학생들을 지원했고, 몽골 정부는 2001년 김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김 회장은 또 ‘몽골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후원했으며, 특히 최근에는 차남 동만의 아이디어로 몽골 수흐바토르 테뮤렐 종합학교에 어학실습실 설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김 회장은 바가반디 몽골 전 대통령의 딸인 바야르마씨와 서강대 동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2005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우호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북극성 훈장은 몽골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러브 레터로 결혼하다.’ 김 회장과 김미(48)씨는 떠들썩한(?) 연애 결혼으로 유명하다.‘끼리 문화’가 지배적인 재벌가에선 이례적이다. 보통 정략 결혼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더러 연애 결혼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커플은 정말 뜨거운 사이였다. 한화 김종희가(家)의 2세 가운데 유일한 연애 결혼 케이스다. 김 회장과 김미씨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간다. 서강대를 다니던 김 회장과 이화여대를 다니던 김미씨는 명문가의 자제로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던 사이.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즐기다가 김 회장의 공군장교 입소 훈련으로 한층 각별해진 사이로 발전했다. 김미씨의 ‘러브 레터’로 김 회장은 당시 연애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훈련생으로 부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편지와 함께 김미씨가 곱게 접어 보낸 종이학은 김 회장의 군 생활 내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은 5년 넘게 연애를 했다. 김 회장의 군 생활이 길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형인 김승연(53) 회장의 ‘싱글’도 이들 연애를 길게 했다. 김 회장의 얘기다.“훈련소에서 저의 연애 스토리는 꽤 유명했습니다. 아내에게 답장을 쓰는 것도 중요한 하루 일과였죠. 지금도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나 종이학들은 아내가 추억으로 잘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엔 형님 결혼이 어서 이뤄지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백두진 전 국회의장의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1982년 10월 서영민(44)씨와 결혼식을 올리자, 김 회장도 그 다음해 2월 김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회장과 김미씨는 장남 동환(22)-장녀 정화(21)-차남 동만(18) 등 2남1녀를 뒀다.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처가는 독립운동가(家) 산실 김 회장의 처가는 국내 독립운동가(家)를 대표할 만한 명문가다. 김미 여사의 조부가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이며, 큰어머니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고 안미생 여사다. 김 여사의 부친은 교통부 장관과 타이완 대사, 공군 참모총장, 국회의원 등을 지낸 김신(83)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이다. 김신 회장은 임윤연(작고) 여사 사이에 김진­김양-김휘-김미 등 3남1녀를 뒀다. 김진(56)씨는 동서통상과 글로볼씨스텍 대표이사를 거쳐 DJ정권 시절인 98년 대한주택공사 감사를 역임했다. 또 참여정부 들어서는 대한주택공사 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행정학 석사 학위를 땄다. 차남 김양(52)씨는 최근 주중국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됐다. 이로써 그의 집안은 4대째 상하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김구 선생은 1919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이듬해는 선생의 모친인 고 곽낙원 여사와 부인인 최준례 여사가 상하이로 갔다. 김 총영사의 부친 김신 백범 기념사업협회 회장 역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김 총영사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고, 외국계 회사 근무와 기업체 운영 등으로 경제 경험이 풍부한 데다 상하이가 갖는 독립운동의 상징성을 감안해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젖소 사료를 제조·판매하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EBT 네트웍스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시티뱅크 서울지점 부장과 컴퓨터 코리아 부사장 등을 거쳤다. 3남 김휘(50)씨는 광고인으로 나라기획 이사와 멕켄 에릭슨 상무를 거쳐 지금은 광고대행사 ㈜에이블리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라는 인연으로 독립운동가 추모사업에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회장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기념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백범 사상의 학술연구과 관련 출판물 발간도 지원하고 있다. 김 회장은 또 후손 없이 서거한 이봉창 의사의 기념사업회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이봉창 의사의 업적을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10월9일 ‘광복 60주년 기념 이봉창의사 마라톤 대회’를 연다. 이밖에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김구재단을 통해 매년 15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천재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커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고…. 하지만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큰 자산은 균형 잡힌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천재로 키우기보다 평범하지만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김호연 회장) 김 회장과 김 여사는 자식들에게 유난히 사회봉사 활동을 강조한다.‘우리’라는 단어의 참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다. 독립운동가(家)의 후손다운 자녀 교육법이다. 큰 아들 동환군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을 보낼 때다. 김 여사가 아들 손을 잡고 찾은 곳은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 맹인교회. 설거지나 청소 등 맹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도우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아들에게 가르쳤다. 모자(母子)는 동환군이 중3이 될 때까지 6년간 매년 여름을 맹인교회에서 봉사하며 지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인 98년에는 성공회 ‘푸드뱅크’ 주관의 노숙자 돕기 자원봉사에 김 여사와 3남매가 함께 참가해 서울역 광장에서 석달간 식사 배식과 설거지 등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도 해비탯(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자녀들을 참여시켜 함께 집을 짓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 김구선생 손녀 김미 여사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사치 안 하고, 겸손하고, 얘들 교육에 관심 많고요. 또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데, 일은 조용히 하려고 해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쑥스러워하고 꺼려합니다.” 김호연 회장이 보는 부인 김미 여사의 평이다. 김 여사도 국내 여느 재벌가의 며느리처럼 공식적인 바깥 활동을 거의 안한다. 김 여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봉사 활동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 손도 모르게’ 하는 식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외 활동을 한다.6년간 맹인교회의 도우미로서 활동했고, 여전히 어린이 교육사업에 앞장서고 있지만 남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이런 배경에는 국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家)로서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조부 백범 김구 선생의 명예에 혹시나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 회장과 자녀들이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 것도 김 여사의 영향이 크다. 특히 김 여사의 봉사 활동은 살아있는 자녀 교육이 됐다. 김 여사는 자녀들에게 명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며, 균형 잡힌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여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인의 설명이다.“김 여사의 모친인 임윤연 여사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김 여사는 중2 때부터 집안 살림을 챙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어린 시절부터 주부 역할을 해오신 거죠. 그래서 그런지 차분하고, 조용할 뿐 아니라 일처리도 깔끔합니다.” 김 여사는 현재 국내·외 아동의 건강과 교육을 비롯해 결손·빈곤 가정 어린이 지원사업 등을 펼치는 국제 어린이 보호재단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은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황해도 장연에서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에 애썼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광복60 지상토론] 北 현충원 참배

    [광복60 지상토론] 北 현충원 참배

    광복 이후 처음 이뤄진 북측 인사들의 국립현충원 참배를 놓고 환영과 우려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남북 화해의 일대 전기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6·25에 대한 참회 없는 참배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소지가 많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상반된 견해를 가진 두 학자의 진단을 통해 전환기를 맞은 남북관계의 해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동족상잔 전쟁 마침표 남북공존 전향적 몸짓”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측 정부 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그 자체로 획기적인 일이다. 우리의 요구가 아니라 북측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점은 더더욱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진전되었지만 양측 모두 금기의 영역이 존재했다.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문제는 직접 건드릴 수 없었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양 측의 건국 및 호국 인사들이 안치되어 있는 묘소 참배 문제였다. 특히 전쟁까지 직접 치른 남북으로서는 상대방의 국립묘지가 곧 바로 적군의 묘지였고 상대방의 호국영령은 곧 전범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는 분단과 전쟁으로 얼룩진 남북 현대사의 멍에와 상처를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전향적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남북은 이제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그 자체도 인정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이번 현충원 참배는 최근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보여준 적극적인 자세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전술적 일회성보다는 구조적 진정성을 기대하고 싶다. 장기 소강국면 끝에 지난 5월 차관급 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었고 이후 진행과정은 오히려 북한이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6·17 평양 면담,15차 장관급 회담,10차 경추위, 개성과 백두산 개방 허용 등이 모두 그랬다. 이같은 적극 행보는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직접 결단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어서 더욱 무게가 실린다.6·15 5년을 맞는 지금,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남북관계의 진전은 오히려 북에 절실하고 불가피한 선택임을 짐작케 한다. 또한 현충원 참배는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과 이념적 화해라는 의미 말고도 보다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마련이라는 과제와 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다.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안치된 현충탑을 북측 대표단이 참배한 것은 동족 상잔의 전쟁상태를 종료하고 진정한 평화를 회복하자는 보다 적극적 해석까지 가능한 대목이다. 전쟁이 아직 법적으로 종료되지 않은 정전체제하에서 실제 교전 당사자인 상대방의 국군묘지에 참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전쟁에 대한 유감표시와 함께 이제 전쟁을 실제적으로 끝내고 평화상태를 회복하자는 간접적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북핵 6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부각되고 있다. 이번 현충원 참배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시작을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이다. 북측의 현충원 참배를 불순한 의도로 보는 사람도 있다. 평양을 방문한 남측 대표단에 금수산 궁전 참배를 강요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선의는 일단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족화해에 기여하는 일마저도 색안경을 끼고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정말 소심의 극치일 뿐이다. 이제 우리가 대범해야 한다. ■ “반역사적인 무력남침 참회없는 참배 무의미”북한이 6·25에 대해 공식적으로 진실과 통한의 뉘우침을 담은 사과절차 없이 북측 8·15 축전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이같은 행위는 자칫 남과 북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고 김일성 주석이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행한 무력도발의 반(反)역사성을 묻히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 경계를 요한다. 아직도 6·25를 ‘민족해방전쟁’으로 신성시하고 있는 북한 정치체제의 본질적인 변화가 전무한 상황에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는 방편으로 민족 감정을 활용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인식과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막말로 해서 항상 전략과 전술로 남북문제를 재단하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선 손해 볼 일이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정보의 흐름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북한당국은 이번의 참배를 그들의 구미에 맞게 정치적으로 요리해 체제유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남한의 친북 세력을 지원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대북문제로 분열돼 있는, 우리 사회내에서 사상적으로 이질적인 집단간의 갈등은 더욱더 깊어 갈 것이다. 특히 국제적으로도 대북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노정된 미국과의 벌어진 틈새가 더 벌어질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출발점’이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감상적이고 순진한 발언은 앞으로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날이 되면 얼마나 위험한 대북관의 노출이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 정부가 북한측의 이러한 참배 제의를 받아 들인 것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서 아무 곳에도 기댈 곳이 없는 북한체제에는 북한식 통일전선전술의 전개에서 가장 큰 장벽으로 남아 있는 한·미동맹의 틀을 허물어 가는 매우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대북 지원시 엄격한 상호주의의 적용을 주장하는 우리 사회내의 목소리는 반(反)민족적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유독 북한의 체제 선동이 지향하는 상호주의는 우리 대표단의 방북 시 김일성 시신 조문 요구 및 기타 지역 참배요구로 연결될 것이다. 현충원 참배가 지금 휴회 중인 6자회담에서 북측이 북핵과 연관시켜서 거론 중인 ‘대북 적대시정책의 포기’와 ‘평화협정체결’을 더 논리적으로 가다듬고 선전·선동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의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답방을 사전에 정지 작업하는 차원에서 보는 견해도 매우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한·미간의 공조 틈이 더 벌어지는데 촉매제 역할이 될 수 있는 북 대표단의 국립묘지 참배 허용을 관련 정부부처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부정적인 여파를 차단하는 후속 대책이 하루 속히 세워지길 바란다.
  • [임혜리의 色色남녀] 일대일은 지루해

    최근에 친구에게서 뜻밖의 통보를 들었다. 그녀는 얼마 전 4년에 걸친 ‘권태로운 연애’(?)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술이나 한잔하자고 권했더니 차나 한잔 마시자고 했다. 차를 마시면서 자신의 이별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전하는 그녀의 태도는 의외로 담담하게 보였다.“그래도 그 남자는 너한테 잘해주고 성격도 그만하면 좋은데…. 네가 유난하고 까탈스러운 것 아니?” 물론 그 남자가 그녀와 어울리는 짝이라는 생각은 절대 해본 적이 없었지만 막상 헤어졌다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짠해지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별성명은 이랬다.“한 때는 한 남자에게 완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으로 엄청 행복했고 그래서 사랑한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의 감정보다는 그냥 정(情)으로 묶여 있는 것 같고 그 정 속에는 서로의 몸에 길들여진 성적 욕망이 늘 고리를 잡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섹스는 사랑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결론이 났어. 도대체 사랑이 뭘까?” 그녀는 그 남자와 잠깐 같이 있으면 휴식이 되고 오래 있으면 뇌가 퇴화되는 걸 느낀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내가 보기에도 백치미(白痴美)를 가진 남자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제 모처럼 짬을 내어 영화를 보았다. 노 화가의 누드모델을 하면서 애인노릇을 하다 정사 중에 죽게 만든 17살의 여자에게 중독된 40대 이혼남의 연애담이자 사랑과 섹스, 인간의 권태와 소외 등을 표현한 영화였다.“한 남자만 사랑하는 것은 따분해요!”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여자는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왜 안되냐고 반문하고 그녀와 이별준비로 선물을 사던 40대 철학교수는 전혀 분석이 안되는 그녀에게 점점 집착하며 결혼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도 좋다는 굴욕적인 제안까지 한다. 그 순간 그녀가 던지는 한마디는 “우리 섹스하자!”였다. 주인공 남자는 다른 남자와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그녀에게 많은 돈을 쥐어주고 교통사고를 당한다.“너는 창녀야!”라고 절규하고 언젠가 여자의 목을 조이던 남자에게 나중에 그녀는 조용히 말한다.“당신이 돈을 주지 않았을 때도 나는 당신에게 갔었다.” 스토커 수준으로 변한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녀의 엄마는 그의 등에다 칼을 꽂는 대사를 날린다.“세실리아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광화문 길을 걸었다. 사랑한다고 느낄 때는 그 남자와 섹스도 황홀했는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에 대해 깊이 알수록 허무함이 생겼고 점점 섹스도 하기 싫어졌다는 친구의 얼굴과 영화 속 여주인공의 얼굴이 겹쳐지는 듯했다. 흔히 여자는 섹스보다는 감정을 중시하고 남자는 동물적 본능인 섹스에 집착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남자들에게 물어보면 자기들도 정신적 교감이 통해야 섹스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면 섹스는 뇌로 하고 사랑은 마음으로 하고 결합은 생식기로 하는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섹스하기 전 아님 한 뒤에 고민해볼까?성칼럼니스트 sung6023@kornet..net
  • 인기그룹 ‘쿨’ 공식 해체

    인기 혼성그룹 ‘쿨’의 멤버 이재훈 유리 김성수가 2일 서울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해체를 선언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지만 ‘쿨’이란 이름과 음악은 영원하길 바란다. 이번 해체는 마침표 아닌 쉼표”라면서 “앞으로 각자 활동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쿨’은 지난해 9집을 발표한 이후 불화설에 시달리며 일절 방송활동을 하지 않았고, 최근 10집을 발표했다. 연합
  • [피플 인 포커스] 연말 퇴진발표 슈렘프 다임러회장

    위르겐 슈렘프(60)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이 28일 연말 퇴진을 급작스레 발표하자, 오히려 회사의 주가는 9%나 뛰었다. 슈렘프 회장은 1961년 당시 다임러-벤츠에서 16살의 견습기계공으로 시작해 1995년 회장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회장직에 오르자마자 문어발식 확장을 하던 거대 독일기업을 자동차그룹으로 재정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998년 미국 3위의 자동차회사인 크라이슬러를 400억달러란 높은 값에 사들인 것은 그의 최대 실수로 분석된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 이후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최고 1153억달러에 달했던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시가는 절반 이하인 449억달러까지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투자자들은 떨어진 주가를 ‘슈렘프 디스카운트’라 불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일본 자동차기업 미쓰비시에 거액을 투자했으나 쓴맛만 봤고, 현대와의 합작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사임 직전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최대 주주이자 슈렘프의 든든한 방패막이었던 도이체은행이 지분율을 10.4%에서 6.9%로 낮춘다고 발표,80년넘게 이어온 두 회사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기 시작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임러 관계자가 “슈렘프는 남은 임기내에 계획을 완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지금이 (회사를 떠날) 적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견습사원이 회장까지 승진한 동화같은 이야기의 결말은 쓸쓸하다. 아직 임기가 2년이상 남았으나, 연말 사임을 밝히면서 미국내 크라이슬러그룹을 이끌고 있는 디터 제체(52)를 후임자로 지명했다. 제체는 2000년 미국 크라이슬러에 부임, 근로자 2만 6000여명을 해고하는 과감한 구조조정에도 인기를 잃지 않았다. 한때 회생불가능이란 회의적 전망까지 나돌았던 크라이슬러는 제체의 절제된 경영스타일로 GM과 포드가 적자에 허덕임에도 불구하고 8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기록 중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KBS 노사갈등 극적 타결

    경영혁신안을 둘러싸고 두 달여 극한의 대립을 보이던 KBS노사가 22일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연주 KBS 사장과 진종철 노조위원장은 이날 오후 사장 불신임 투표 마감 시한 직전, 극적으로 노사 합의안에 서명하고 회사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키로 했다. 이날 합의안에는 ▲노사가 KBS의 당면위기를 극복하고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해 협력한다 ▲경영진은 회사 경영위기에 대해 사과하고 임원 전원이 사장에게 사표를 제출, 올해 적자 발생시 4·4분기 내에 책임진다 ▲회사는 조합원의 고용안정에 최대한 노력한다 ▲노사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신료 현실화와 방송·통신융합법 등에 대비한다 등이 담겨 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3부작 완결 박찬욱 감독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3부작 완결 박찬욱 감독

    요 며칠새 박찬욱(42) 감독의 눈가엔 피곤이 그득하다.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평소와 달리 인터넷에서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꼼꼼히 검색하기도 한다. 그 이름 석자를 빠트리고는 이제 한국 영화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최고 감독의 위치에 오른 그이지만, 새 작품을 내 놓고 평가받는 일은 언제나 신경쓰이고 가슴 졸이는 작업이다.‘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에 이은 복수 3부작의 완결판인 박 감독의 신작 ‘친절한 금자씨’(29일 개봉)가 베일을 벗었다. 지난 18일 시사회 이후 반응은 뜨겁다 못해 펄펄 끓고 있다.20일 신라 호텔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다소 엇갈린다. -많이 엇갈리더라. 심한 악평도 있고,“더 이상 잘 만들기 힘드니 은퇴하라.” 는 극찬도 있고….‘복수는 나의 것’때만큼은 아니더라. 작품에 대해 평점을 매긴다면. -점수로 말하기는 그렇고…후반부만큼은 여지껏 내가 만든 영화 가운데 최고다. 폐교에서 백 선생에게 복수를 할 사람들이 모여 그 방법을 찾고 매장하기까지의 장면이 그렇다. 영화가 제목과 달리 ‘불친절하게’ 느껴진다.‘올드보이’와 달리 고압적인 자세로 관객들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오히려 그 반대다. 관객들의 지성을 믿었다. 더 새롭고 대담한 표현 방법에 이제는 익숙해졌을 거라 생각했다. 낯설어하지 않고 충분히 즐길 거라 생각한다.‘올드보이’때처럼 관객이 주인공과 동일시하길 원치 않았다.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관찰하도록 요구하는 영화다. 이영애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아닌가. 극중 금자의 긴장이 처음 이완되는 순간인 근식과의 정사 신에서 뒷 모습이라도 삽입해 이해를 도울 필요는 없었을까. -본래 예정돼 있었지만, 촬영 직전 뺐다. 영애가 하기 싫어한 것도 있지만, 애초에 찍지 않기로 전제를 했다. 필요했다면 어떻게든 설득했을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로 마침내 박 감독의 복수 3부작이 마침표를 찍었다. 박 감독이 생각하고 추구해 온 ‘복수’란 어떤 것인가. -극중 아이를 잃은 아빠가 말하는 “이런다고 아이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라는 한마디에 ‘복수 3부작’을 관통하는 복수의 개념이 담겨 있다. 아이가 살아오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찌르는 행동.‘어리석은 욕망’이며, 그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역량과 인지도를 지닌 감독이다. 최고의 배우를 고집하지 않아도 투자유치 등 별다른 걱정 없이 영화의 성공을 이뤄낼 것 같은데. -나도 한 명의 관객인데, 내가 좋아하고 반한 배우와 일해보고 싶지 않겠나. 또 나는 스타의 기존 이미지를 뒤집어 활용하는 것을 무척 재미있어 한다. 송강호, 최민식, 이영애도 모두 그런 차원의 캐스팅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인 배우를 키워 스타로 만들어낼 위치가 아닌가. -솔직히 신인 주인공은 나 스스로 두렵다. 현실적으로 스타가 가진 상업적 능력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내가 추구하는 영화는 보편적인 영화가 아니다. 위험한 기획이다. 그나마 최민식과 유지태가 있었기에 ‘올드보이’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거다. 다음엔 어떤 스타의 이미지를 비틀고 싶나. -한 명을 찍어 말하기엔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하고…. 전도연, 김혜수, 문근영 정도? 전도연은 애교스럽고 선하고 불쌍한 이미지를, 김혜수는 최근 공포영화 두 편을 통해 바뀐 음침한 이미지를 정반대로 활용해 보고 싶다. 문근영은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곧 베니스영화제가 시작된다. 경쟁부문 진출 가능성도 점쳐지는데. -올림픽 출전하는 것도 아닌데(웃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경치 좋은 베니스에 간다면 일정 가운데 하루쯤은 가족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긴 하다. 칸의 수상은 ‘기적’이자 ‘이변’이었을 뿐이다. 그런 기적을 다시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대된다. -황당무계한 팬터지 요소가 듬뿍 가미된 코믹·로맨스물이다. 정신병원을 전혀 억압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소수의 의사·간호사를 빼고는 등장인물이 모두 정신병 환자다.CJ가 투자하며 HD영화로 촬영된다. 흥행 욕심은 어느 정도인가. -원금과 금융이자 등 본전 이외에 조금만 더 갖고 가면 되지 않겠나?(웃음)많이 가져갔으면 좋겠지만, 적다 해도 후회는 않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여풍당당 홀로 길을 떠나 볼까?

    여풍당당 홀로 길을 떠나 볼까?

    젊은 여성들이 혼자 훌쩍 떠난다. 낯선 이국땅으로 지도 한 장에 수트케이스 하나 끌고 간다. 불과 1∼2년 사이에 부쩍 많아진 여행 풍속도다. 혼자 갔다온 이들은 말한다. 여행의 참맛을 느꼈노라고. 색다른 재미가 쏠쏠하다고. 여성들이 혼자 여행을 가는 이유도 갖가지다. 친구들과의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여행 동반자와 사소한 말다툼이 싫어서…. 나홀로 여행은 더 이상 한낮의 꿈이 아니다. 올 여름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여성들이여, 떠나라. 서울신문 주말매거진 We는 최근 일본과 홍콩을 갔다온 김지은·정지수씨의 과감한 나홀로 여행 도전기를 싣는다. 2003년 3월 실습과 동시에 취직을 했다. 그동안 비용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여행은 남의 일로 치부해 왔다. 내 주변 사람들이 여름휴가나 해외여행을 갈 때면 그저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을 뿐. 그러기를 2년이 훌쩍 지났다. 업무상 알게 된 홍콩, 이국적이면서도 동질감이 느껴지는 홍콩, 사진으로 본 현란한 거리 조명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내겐 꿈의 여행지로 다가왔다. 지난 4월30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책상에 앉았다.‘이렇게 꿈만 꾸다가는 여행은 평생 단 한번도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곧바로 인터넷으로 비행기표를 알아보자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할인티켓이 나와 있었다. 망설임도 없이 ‘구매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드디어 ‘사고’를 친 것이다.5월13일자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사는 데까지는 단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호텔 예약 완료. 무엇에 홀렸는지 그냥 밀어붙였다. 나 혼자 여행을 결정한 이유는 스케줄을 맞출 친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또 혼자만의 자유도 만끽하고 싶었다. 또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욕구도 적잖았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 화장실 사용과 같은 사소한 일로 친구와 신경전을 벌였던 적도 있었다. 서로 보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으로 인한 말다툼도 있었다.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 나홀로 여행의 가장 큰 이유다. 회사에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니 “왜 혼자가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청승맞다.”,“혼자 가면 심심할 텐데….”,“쇼핑하러 가요?”,“5일씩이나 뭐해요?”…. 시샘어린 동료들의 질문이었다. 5월13일 드디어 출발. 홍콩에 도착하는 순간 조금 두려웠다. 학창시절 이후 처음 맞는 해외여행이었기에…. 하지만 입국 심사통로의 책상에는 한국말로 된 홍콩 여행 가이드 책자와 지도가 비치되어 있었다. 안내 표지들이 잘 되어 있어 첫 방문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배려가 고마웠다. 여행 첫날밤, 투숙한 셰라톤홍콩의 스카이 라운지로 올라갔다. 칵테일 한잔을 마시면서 그 유명하다는 홍콩 야경을 감상하려고. 내가 굉장히 멋져보인다는 상상의 날개를 펴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그런데 잡념을 떨치려 했는데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메모지를 꺼내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나중에 꼭 같이 오고 싶다고….” 5월이 여행하기 좋은 날이라고 하지만 홍콩의 날씨는 거의 살인적이었다.‘끈적끈적’이라는 말이 정말 어울렸다. 평소 아무리 운동을 해도 땀을 흘리지 않는 체질인데 그냥 걷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소매 없는 옷을 준비한 것이 그래도 다행이었다. 빅토리아 피크·소호 등 홍콩의 관광명소를 둘러봤다.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전철도 노선이 복잡하지 않고 택시 요금은 우리보다 비싸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 저녁 먹고 수다 떤 하루를 제외하고는 내내 혼자였다. 자고 싶으면 자고, 가고 싶으면 가고, 자유가 넘치는 시간, 휴식을 만끽했다. 혼자 여행에서 불편한 점. 디카를 완벽하게 충전했지만 혼자 사진 찍는 게 한계가 있었다. 셀카라고 찍어봤지만 내 얼굴은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배경은 보이지도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찍어달라고 하기엔 너무 쑥스럽고, 사진 찍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또 하나. 정말 맛있는 음식을 그냥 두고 지나칠 때 혼자 온 게 후회스러웠다. 아무리 내가 얼굴이 두껍다고 해도 혼자 그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는가? 연인이랑 올 수 있다면 더 좋겠지?  혼자 여행을 하면 생각이 넓어지는 듯했다.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부분까지 미치는 것 같았다. 가장 큰 소득은 미지의 세계에서 생긴 두려움을 이겨낸 자신감 아닐까 생각한다. ●홍콩 여행을 하기 전에… 여행 가이드 책자:사지 않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해도 충분하다. 현지에 도착하면 여행 가이드 책자와 지도가 곳곳에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날씨:습도가 높고 더운 열기가 우리나라 열대야는 저리가라다. 휴대용 선풍기를 가지고 가도 좋으며, 땀 흡수가 잘 되는 옷을 택할 것. 그러나 실내는 에어컨이 엄청 세게 나오므로 위에 걸칠 수 있는 옷 하나 정도는 준비하는 센스를 갖출 것! 정지수(26·웨스틴조선호텔 마케팅 담당) ■ 길치女, 도쿄거리 접수하다 모든 길은 통한다. 서울에서도 길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악명높은 ‘길치’인 내가 혼자여행을 떠난다? 지도 한장 달랑 들고.‘농담하냐?’‘국제미아 나오는군.’‘다시 만날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5월 초 그냥 일본을 가기로 맘먹었다. 휴식과 재충전의 5월 황금연휴, 친구들은 이미 수첩에 스케줄이 꽉 찼다. 몇몇은 도쿄를 몇차례 갔다온 터여서 같이 가려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발동이 걸리면 무조건 밀어붙이는 막무가내. 저렴한 가격으로 다녀올 수 있는 에어텔 예약을 마쳤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귀차니스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계획을 세우고 정보도 모으고…. 일단 서점에서 ‘아이 러브 도쿄’라는 가이드북을 샀다. 이 책에는 테마별, 하루씩 여정을 소개해 놓아 관심있는 코스를 선택해 따라다니기만 해도 좋았다. 또한 중간에 길을 잃었는지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리스트이자 나침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실 여행의 주 목적지 중 한 곳은 지브리 스튜디오. 미리 입장권을 사야 하는 인기있는 장소였다. 일본도 연휴 기간이라 도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매진된 상태였고 친구들이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정문을 넘을 순 없었다. 좌절에 빠진 나를 위로해준다고 친구들은 ‘짝퉁 지브리’라고 놀리며 들르는 장난감 가게마다 셔터를 눌러줬다. 또 야경으로 유명한 오다이바로 갔다. 오다이바까지 운행하는 유리카모메(모노레일)를 타고가면서 빌딩 사이의 일몰이 서울과는 또 다른 향수를 자아낸다. 단, 맨 뒤 차량을 타야 한다. 이틀째는 혼자서 움직여봤다. 전철타는 법 등을 알려주면서 친구는 못내 불안한지 휴대전화 번호도 알려준다. 하지만 신주쿠에서 이미 ‘호텔 찾아 삼만리’를 찍었으므로 배짱도 두둑해졌다. 도쿄의 전철역은 어찌나 출입구가 많은지 친구가 알려준 대로 나온 것 같은데 있어야 할 광고 간판이 보이지 않았을 때의 낭패감이란…. 몇군데 더 들락거리다가 포기하고 전단지를 돌리던 여자에게 더듬거리며 물어보니 모르겠단다. 혼자 여행이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건물 경비원 아저씨에게 손짓 발짓을 하니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살았다. 다음날부터는 전철역 개찰구의 할아버지, 아저씨들에게 지도를 들고 다니며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남자는 말을 듣지 않고, 여자들은 지도를 읽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럼 지도를 대신 읽어줄 사람을 찾으면 된다. 공항, 전철, 도쿄 거리로 이어지는 질문은 이젠 머뭇거림도 없었다. 어차피 언어란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일 따름. 굳이 완벽한 문장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키워드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풍부한 표현력! 살인적인 물가의 도쿄는 택시비가 너무 비싸서 현지인들도 큰 마음을 먹어야 탈 수 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여행객은 튼튼한 다리가 무기다. 가이드 북과 지도를 펼쳐 들고 일정에 따라 걸어다녔다. 특히 에도성에 갔을 때는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 성벽을 따라 하루종일 걸었다. 비까지 맞아 생쥐 꼴을 하고 친구를 만났더니 불쌍해 보였던지 양말도 사주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찬코’라는 음식도 소개해 주었다.3박4일간 열심히 걸었던 여파로 서울에 돌아와 한방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여전히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길치이지만 도쿄의 거리를 혼자 찾아 다녔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친구들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지구는 둥글고, 모든 길은 통하는 것 아닌가? 혼자 떠나는 여행은 꼼꼼한 사전 준비가 없으면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거나 엉뚱한 곳에서 시간 낭비하기 일쑤이다. 스스로 공부하고 결정하고 계획하게 되므로 살아있는 지식을 챙기게 되고 현지인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느끼는 교감도 무시할 수 없는 재미다. 김지은(34·JW메리어트서울 마케팅 실장)
  • [NBA] 디트로이트 “7차전서 웃겠다”

    ‘배드보이스는 역시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미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을 최종 7차전까지 몰고갔다. 디트로이트는 22일 SBC센터에서 열린 챔프전 원정 6차전에서 천시 빌업스(21점 6어시스트)-리처드 해밀턴(23점) ‘가드듀오’가 44점을 합작,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95-86으로 꺾고 시리즈 전적을 3승3패로 맞췄다. 물고 물리는 접전이었다. 샌안토니오는 ‘기둥’ 팀 던컨(21점 15리바운드)-‘아르헨티나 특급’ 마누 지노빌리(21점 10리바운드) 원투펀치가 디트로이트의 끈질긴 수비를 뚫고 꾸준히 득점, 전반을 47-46으로 마치며 2년 만에 정상 등극을 꿈꿨다. 하지만 ‘디펜딩챔프’ 디트로이트는 턴오버를 5개로 줄이는 완벽한 조직력으로 샌안토니오를 압박하고 ‘악동’ 라시드 월러스(16점)와 ‘파워 테크니션’ 안토니오 맥다이스(10점 8리바운드)가 파워포워드 자리를 바꿔가며 고비 때마다 그물을 갈라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챔피언 반지의 주인을 가리게 될 최종 7차전은 2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①-창업 최종건·종현씨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①-창업 최종건·종현씨

    “윤원아, 신원아, 월요일자 신문 꼭 봐라. 우리 회사가 크게 나온다.”(고 최종건 SK 창업주) “아버지,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최신원 SKC 회장) “그때 보면 알 수 있어, 이놈들아.”(고 최종건 창업주) 최신원 SKC 회장이 공개한 워커힐호텔 인수 직전 부자간에 오갔던 대화다.1973년 1월 선경(현 SK)은 정부로부터 서울 워커힐(현 쉐라톤 워커힐)호텔을 26억 3200만원에 인수하며, 당당히 재벌 반열에 들어선다. 선경이 국민과 재계에 던진 ‘무명의 반란’이었다. 최종건 선경(현 SK) 창업주가 맨손으로 선경직물을 일으킨 지 20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최 창업주는 같은 해 11월 폐암으로 별세,‘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원대한 꿈을 동생인 고 최종현 SK(당시 선경직물 부사장) 회장에게 맡긴 채 ‘짧고 굵은’ 인생을 살다갔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최 창업주가 20년간 SK의 섬유를 책임졌다면 25년간 SK를 이끈 고 최종현 회장은 ‘석유’를 개척하고,‘이동통신’의 길을 터놓았다. 고 최종현 회장의 50년 지기(知己)인 언론인 홍사중씨가 본 형제는 이렇다.“형(최종건)은 좋은 의미의 ‘보스형’이었다. 의논할 상대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일에 혼자 결정을 내렸다. 동생(최종현)은 ‘리더형’이었다. 형제는 그렇게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좋은 짝이었다.” 소리없이 일을 꾸미는 사람은 동생이요, 밖에서 뛰는 사람은 형이었다. 그래서 회사 돌아가는 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은 형을 가리켜 ‘용장’이라 했고, 아우를 가리켜서 ‘지장’이라 했다. 형제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SK를 자산규모 재계 4위의 대그룹으로 일궈냈다. ●‘원조 불도저’ 최종건 창업주 최근 재계 CEO(최고경영자) 가운데 강한 추진력과 남다른 승부 근성 때문에 ‘불도저’라 불리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상 불도저라는 애칭은 최 창업주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의리파, 불같은 추진력, 강한 뚝심’은 최 창업주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장비’ 같은 성격에 ‘조조’의 꾀도 많았다. 이런 점을 잘 드러낸 에피소드 하나.1966년 선경직물은 차관 도입 문제로 일본 정부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에 불과한 선경직물의 상환 능력을 의심하며 차관 제공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싶었던 최 창업주는 일본 대사관 관계자들을 단골 술집으로 초청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가 술집 마담에게 거짓말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전화가 왔다고 하라는 것. 술집 마담은 때가 되자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전화가 왔다고 말을 건넸다. 최 창업주는 일본 관계자 앞에서 “급한 일이 있으니 잠깐 나가겠다.”고 밝힌 뒤 2시간 가량 단잠을 자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이거, 죄송합니다. 저 위에 좀 다녀 오느라 늦었습니다.”고 설명했다. 일본 관계자들은 최 창업주가 정부 최고위층의 부름을 받고 나간 것으로 모두 오해했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선경직물이 정부로부터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구나.’를 암시하며, 차관 도입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했다. 그의 장비 같은 성격은 또 이렇다. 최 회장의 지인들은 그가 다혈질인 데다 성미가 급하고, 감정을 폭발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화가 나면 앞뒤 생각없이 퍼부었다. 그러나 뒤끝은 없었다. 이 때문에 그가 화난 얼굴로 “누구 불러오라.”고 불호령을 내리면 서울에 있으면서도 일본으로 출장갔다고 곧잘 거짓말을 했다고 회고한다. 최 창업주는 1926년 수원에서 최학배 공과 이동대 여사의 4남4녀(양분, 양순, 종건, 종현, 종분, 종관, 종순, 종욱)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1944년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선경직물에 견습기사로 취직, 사회 첫 발을 내디뎠다.24세 때인 1949년에는 교하노씨인 노순애(77) 여사와 결혼했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선경직물을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상반된 스타일의 ‘안주인’ 노순애 여사가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한다면, 최종현 회장의 부인인 고 박계희 여사는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풍긴다. 노 여사는 시동생과 시누이 등을 거느린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시집살이를 만만치 않게 했다. 차남 최신원 SKC 회장의 얘기다.“100마지기 농사 일에 집안 대소사를 다 챙기셨으니 고생이야 말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부친은 사업 때문에 공장에서 먹고 자며, 한달 가까이 집에 들어오시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 전형적인 한국 여인이었습니다.” 노 여사의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에 반한 최 창업주의 누나 최양분(83) 여사는 그를 맏며느리감으로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고 박 여사는 박경식 전 해운공사 이사장의 넷째딸로 1953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베네트칼리지를 거쳐, 칼라마주대학을 졸업했다. 최종현 회장과 만났을 때는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그는 내성적이고, 자기 의사를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았지만 강단있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태원에 가서 1만∼1만 5000원짜리 옷을 사 입을 정도로 검소하고, 깍쟁이였다. 고 박 여사가 모일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내가 ‘이태원표’ 옷을 입고 있으면 모두들 몇십만원짜리로 아는데, 그래서 더욱 그런데 가서 사 입어도 불편한 게 없어요.” 최 회장도 부인을 깍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병마와 씨름하던 그는 먼저 간 박 여사를 두고 “자기 성격 따라 깍쟁이처럼 죽었다.”고. 박 여사는 1997년 6월18일 최 회장의 폐암 수술 경과가 좋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밤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두 ‘안주인’은 상반된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도 적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특히 가정 일에는 소홀함이 없었다. 박 여사가 미술관에서 일하면서도 최 회장이 일찍 퇴근하면 아무리 중요한 미술관 행사를 주재하는 중이라도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은 “모친은 외출도 좋아하시지 않고, 조용한 성격”이라며 “두 분께서 같이 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골프였다.”고 말했다. ●최종현 회장의 연애론과 혼맥 고 최종현 회장의 연애론은 이렇다. 그가 죽음을 몇 달 앞두고 마지막으로 손질을 한 책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에서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지켜본 바에 따라 나는 남녀간의 연애과정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연애는 ‘date→steady date→I love you’, 이렇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고 ‘데이트’를 하다가 다른 사람과는 데이트를 하지 않는 ‘스테디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것이 발전되면 ‘아이 러브 유’가 되어 결혼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헤어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너 없이는 못살아.’가 되는데 이것은 병이다.” 최 회장 본인의 경험 때문일까. 최씨가의 2세들은 정략이나 중매 결혼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특히 최종건 전 회장이 일찍 별세한 이후 최종현 전 회장이 사실상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자임했던 만큼 ‘큰집’ 조카들도 이같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신원 SKC 회장은 “숙부는 자식들 결혼과 관련해서 복잡한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다.”면서 “예물 등도 가능한 한 안 주거나 받지 않는 주의였다.”고 설명했다. 장남인 최태원(45) SK㈜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결혼했다. 부친과 똑같이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노 관장을 만나 연애했다. 차남인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의 부인은 영어교사였던 채희경씨의 맏딸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다. 막내딸 최기원(41)씨는 당시 ㈜선경정보시스템 차장으로 근무하던 김준일(46)씨와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큰집’인 고 최종건 회장의 일가 혼맥도 학계부터 권력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지만 정략적인 냄새는 없어 보인다. 장남인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김이건 전 조달청장의 딸인 채헌(51)씨와 결혼했다. 장녀 정원(50)씨의 남편은 고학래 전 사상계 고문의 아들인 고광천(54)씨며, 차녀 혜원(48)씨는 박주의 전 금융인 아들인 박장석(50) SKC 사장과 결혼했다. 막내 아들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은 변호사 집안인 최유경(38)씨와 결혼했다. 4녀 예정(43)씨의 남편인 이동욱(43)씨가 최종건가(家)에서는 눈에 띈다. 현재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이씨의 부친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최 창업주와 이후락 전 중정 부장은 서로 호형호제를 할 정도로 막역했던 사이였다. 양가가 둘의 결혼을 일찍이 약속을 했고, 결혼은 최 창업주 사후에 이뤄졌다. 고 최종건 회장이 각별하게 지냈던 재계 인물로는 김용산 전 극동건설 회장이었으며, 언론계에서는 고 방일영 조선일보 고문과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다. 방계로 넘어가면 장녀 최양분 여사는 한때 종건·종현 형제의 가정교사였던 고 표현구 전 서울대 농대 학장과 결혼했다. 표문수(52) 전 SK텔레콤 사장이 그의 아들이다.3녀 최종분(73) 여사는 고 이한용 신아포장 대표와 혼인했으며, 막내 사위인 정재현(46)씨는 현재 SK C&C 전무로 일하고 있다. 차녀 최양순(82) 여사는 고 여운창 경기개발 대표와 결혼했으며,4녀 최종순(69) 여사는 해군 중령 출신인 고 조제동씨에게 시집갔다. 3남 최종관(71) 전 SKC 고문은 장명순(71) 여사와의 사이에 1남 6녀를 두었다. 이 가운데 3녀 경원(42)씨가 김연준 전 한양대 이사장 아들인 김종량(55) 한양대 총장에게 시집갔다. 또 4녀 은성(40)씨는 나웅배 전 부총리 아들인 나진호(42)씨와 짝을 이뤘다. 장녀 순원(47)씨는 존 캐리 퍼크너(47)씨와 국제 결혼했다. 장남인 최철원(36) 마이트엔메인 대표이사는 한숙진(34)씨와 인연을 맺었다. 4남 최종욱(66) 전 SKM 회장은 조효원 전 서울대 교수 딸인 조동옥(59)씨와 결혼했다. 조씨의 남동생이 조동성 서울대 교수다. 미혼인 장남 준원(30)씨는 현재 SK C&C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차녀 윤선(29)씨도 통신·방송장비 전문업체인 SK텔레시스에서 일하고 있다. ●섬유에서 석유…정보통신 SK그룹의 모기업인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은 1930년대 일본인이 조선에서 만주 일대를 대상으로 직물을 수출하던 선만주단(鮮滿綢緞)과 일본의 교토(경도)직물(京都織物)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였다. 교토직물은 현물출자하고, 선만주단은 공장 부지를 비롯한 건물 공사비 등을 투자했다. 상호도 선만주단의 ‘선’자와 교토직물의 ‘경’자를 따서 ‘선경(鮮京)’이라고 지은 것이다. 고 최종건 회장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선경직물을 재건하기 위해 1953년 부친 몰래 빼낸 땅문서로 공장을 불하받는다. 이후 선경직물은 나일론 생산을 계기로 본격적인 섬유기업으로 탈바꿈한다. SK의 성장사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보면 3단계로 나눠진다.1단계는 아세테이트 원사공장과 폴리에스터 원사공장(현 SK케미칼) 건설.2단계는 유공(현 SK㈜) 인수,3단계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다. 소프트웨어로 볼 때 최종현 회장의 경영 참여와 이순석과 손길승, 김항덕 등 1세대 전문경영인의 합류 등이다. 1980년은 유공 인수로 선경의 숙원 사업을 달성한 해이다. 고 최종건 회장이 울산을 오가며 국내 유일의 정유사였던 유공을 넘본 지 10년 만이다.‘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매진한 결과, 돌아온 보상이었지만 당시 재계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선경은 유공을 손에 넣자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선경이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상한 것은 80년대 초반까지 올라간다. 당시 국내 어느 기업도 정보통신사업에 대해 꿈도 꾸지 않을 때, 고 최종현 회장은 미국 방문길에서 통신사업에 진출할 것을 결심하고, 미국 현지에 경영기획팀을 만든다. 이것이 훗날 한국이동통신 인수와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는 밑거름이 됐다. golders@seoul.co.kr ■ 풍수지리 거부한 최씨 형제 “집터보다 내 기가 더 세니까 염려들 말어.” 국내 재벌가(家)가 최근 서울 한남동과 이태원동에 둥지를 트는 까닭은 풍수지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곳은 남산을 베개삼아 한강으로 다리를 곧게 쭉 뻗어 복록과 자손복이 대대로 넘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아예 재벌가 ‘집성촌’으로 불린다. 이처럼 집터의 풍수지리를 꼼꼼히 따지는 재벌가에서 유독 이에 무관심한 집안이 있다.SK그룹 최씨가이다. 고 최종건 회장이 1968년 서울 삼청동에 새 집을 마련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 데이진 오야 사장의 부인이 풍수지리를 잘 안다면서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삼청동 자택의 지형 사진을 보내달라고 연락해왔다. 당시 최 회장과 오야 사장은 비즈니스를 떠나 개인적으로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오야 사장은 당시 일본 정·재계의 거물로 최 회장의 호탕한 성격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오야 사장 부인은 매우 까다로운 성격 탓에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잠옷만 두 박스를 가지고 왔으며, 매일 밤 우유로 목욕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최 회장은 이들이 한국에 머물 때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을 본 오야 사장 부인은 “지형이 사나워 좋지 않다.”며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를 무시하고 예정대로 이사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삼청동 자택은 화재로 가정부가 화상을 입어 숨진 데 이어 여름 장마철에 큰 물난리를 겪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집터의 기가 세서 그런 것이니 이사가는 게 좋다고 자주 권했다. 그래도 최 회장은 “내 기가 집터보다 더 세니 염려말라.”고 했다고 한다. 고 최종현 회장도 집터와 관련된 고집은 ‘그 형에 그 동생’이었다. 암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1997년 11월. 풍수지리 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최 회장이 사는 서울 워커힐 호텔 내 빌라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광나루 쪽을 찌를 듯 달려드는 곳인 탓에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다며 이사를 권했다. 그는 “그런 곳은 일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장기간 머물며 살기에는 문제가 많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최 전 회장이 풍수지리 연구를 위해 교수직을 내던진 최 전 교수의 소식을 듣고, 아무런 조건 없이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맺어졌다. 최 회장은 그러나 “집이란 어차피 일시 머물다 떠나는 곳”이라며 “나는 이곳이 좋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집을 옮길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최 회장은 훗날 “형님처럼 기가 세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여기서 산 지가 1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느냐.”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golders@seoul.co.kr ■ 1세대 전문경영인 3인방 ‘그룹부흥 한몫’ “손길승 실장은 단순히 내가 부려먹는 사원이 아니라 나의 비즈니스 파트너, 동업자입니다.” 고 최종현 회장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로 검찰에서 조사 받을 때 일개 그룹 기획실장이 거액의 정치헌금을 다룰 수 있느냐는 검사의 추궁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손 회장을 경영 참모가 아닌 동반자로서 얼마나 믿고, 의지했던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정태수 한보 회장의 ‘머슴론’과 비교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SK그룹이 오늘날 재계 서열 4위의 위상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순석 전 ㈜선경(현 SK네트웍스) 부회장과 손길승 전 SK 회장, 김항덕 고문 등 1세대 전문경영인 3인방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이들의 역할은 이 전 부회장이 ㈜선경, 김 고문은 유공(현 SK㈜), 손 전 회장은 경영기획실로 나눠진다. 특히 손 전 회장은 20년간 기획실에서만 근무해 직업이 ‘기조실장’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59학번 서울대 상대 동기 출신으로 때로는 ‘맞수’로 경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부회장이 1995년 가장 먼저 SK를 떠났으며, 한때 ‘좌(左)길승, 우(右)항덕’으로 불렸던 전문경영인 체제도 결국 손 전 회장의 단독 체제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김 고문은 손 전 회장이 당시 그룹 회장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최종현 회장이 돌아가시고 난 뒤 그룹 회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대해 격론을 벌인 결과, 그룹 전반을 꿰찬 사람은 손길승 전 회장 밖에 없다는 것이었어요. 명분이나 이치에도 맞았고요. 그리고 나는 사심없이 회사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습니다.” 손 전 회장은 1998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야인으로 물러났던 김 고문을 회장대우 상임 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는 회장 집무실 옆에 자신의 방과 똑같은 크기의 공간을 김 고문에게 제공했고, 경영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와 상의했다. 그러나 3인방 가운데 ‘SK호’에 가장 먼저 탑승한 사람은 이 전 부회장이다. 그는 1965년 4월 고 최종건 회장의 설득에 못이겨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수원 출신으로 최종욱 전 SKM 회장과는 초등학교 동기다. 김 고문은 일본 이토추상사에서 근무하다가 69년 선경으로 말을 갈아탔다. 그는 39세 때 대한석유공사의 수석 부사장에 올라 재계를 놀라게 했다. 이 전 부회장의 강력한 권유로 65년 12월에 입사한 손 전 회장은 지난 40년간 고 최종현 회장의 평생 동지이자, 경영 전도사였으며,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지독한 일벌레’였다. 그는 대졸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회장에 오른 최초의 전문경영인인 동시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역임했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오늘의 눈] 무너지는 ‘기능한국’/최용규 공공정책부 차장

    여기서 ‘기능한국’의 마침표를 찍는 것일까. 지난 1일 끝난 핀란드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드러낸 무대였다. 한국은 당초 금메달 10개를 목표로 해 6연패를 자신했으나 결과는 금메달 3개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금메달 순위로는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핀란드에 이어 6위에 머물렀다. 그동안 38차례 대회 중 통산 14번의 종합우승과 지난 대회까지 5연패라는 신화가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에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해명에 나섰다.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우수 인력의 관심이 줄었고, 우승 독식으로 인한 다른 나라의 견제, 각국 기술·기능 수준의 평준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가 강한 직종의 통폐합 등을 초라한 성적의 직접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공단의 실패 원인분석을 보면서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내탓은 없고 네탓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앞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매우 컸었다. 대회 직전 간담회에서도 기자들은 공단이 기능올림픽대회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았다. 기술과 기능 변화에 대한 대처가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시대가 변한 만큼 첨단기술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에 공단 관계자들은 “걱정말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우려는 현실화됐다. 우리의 금메달은 용접과 목공, 드레스메이킹에서 나왔다. 최근 대회부터 등장한 컴퓨터 관련 직종에서는 단 한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다. 떠넘기기에 급급한 우리와 달리 국제무대의 눈은 날카로웠다. 잭 뒤셀도르프 국제기능올림픽조직위원회회장은 “이제는 기능경기가 더 이상 손기술만을 측정하는 단순경기가 아니다.”면서 “한국도 고도의 기술과 지식이 통합된 종합능력을 측정하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해 미래를 보고 훈련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산업인력공단은 물론 정부도 꼭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 첨단기술이 부국(富國)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최용규 공공정책부 차장 ykchoi@seoul.co.kr
  • ‘스타워즈’의 자양분 받은 영화들

    ‘스타워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28년을 달려온 ‘스타워즈’ 시리즈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최근 칸영화제에서 향후 10년 동안 후속편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 주변을 실망케 한 것. 하지만 벌써부터 10년 뒤의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는 성급한 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BS TV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의 한국 개봉에 맞춰 26일 오후 10시50분 ‘시네마 천국’을 통해 특집 프로그램 ‘스타워즈의 아들들’을 내보낸다. 이 프로그램은 ‘스타워즈’에 영향을 끼치고,‘스타워즈’에 오마주를 바쳤던 영화들을 살피고, 미국인들이 이 작품에 몰입하고 환호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프레데릭 스테파니 감독의 ‘플래쉬 고든’(1936)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1958)에서부터 케빈 스미스 감독의 ‘제이 앤 사일런트 밥’(2001)과 에피소드 2.5격인 애니메이션 ‘클론의 전쟁’(2003)에 이르기까지 10여편이 준비됐다. 미국에서는 이 시리즈가 개봉될 때마다 이른바 대소동이 일어났다.‘스타워즈 광팬(STAR-WOID)’들이 상영 수십일 전부터 극장 앞에서 영화 속 캐릭터 복장으로 개봉 날을 기다리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이번 ‘시스의 복수’도 마찬가지다. 상영 첫 날 영화를 보려고 결근하는 회사원들 때문에 수억 달러의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는 조사 발표까지 있었다. 한국에도 마니아층은 많았지만, 흥행 1위를 차지할 정도의 폭넓은 지지를 받은 적은 없다. 그러나 6편 시리즈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마지막 편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는 예매가 폭주하는 등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1977년 첫선을 보였던 ‘스타워즈 에피소드4-새로운 희망’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100대 영화에 들기도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오늘의 눈] 웃찾사 개그맨들 ‘허무개그’/홍지민 문화부 기자

    지난주 소속사 스마일매니아 박승대 대표 밑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개그맨들이 있었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했고, 강압에 의해 말도 안 되는 이중 계약을 맺게 됐다고 울먹였다. 이들은 특히 “억울한 상황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사뭇 비장한 각오를 내비치기도 했다. 일주일이 흘렀다. 이들은 적으로 돌렸던 박 대표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동침’을 선언했다. 국민에게 제대로 된 개그를 선보이기 위해 뭉치겠다고 했다. 지켜보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허무 개그하냐?”는 속삭임이 이어졌다. 직전까지 개그 연기자들은 이미 대화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고, 단 하루도 함께할 수 없다고 공언했던 터였다. 하지만 사태가 불거진 이후 18일 점심 즈음,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다는 박 대표는 “대화를 하니,10분 만에 오해를 풀고 모든 게 정리됐다.”며 웃었다. 정말 그렇게 간단히 풀릴 문제였는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개그맨 연기자들은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을까.‘밥그릇’ 문제였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처음에는 불공정 계약의 약자 입장으로 지지를 받았지만, 그동안 그들의 인기를 담보하고 있는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시청률은 곤두박질쳤다. 또 타 매니지먼트사로의 이적설이 떠돌며 여론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파문에 마침표를 찍고 싶은 SBSi의 압력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윤택 등은 “우리는 자극적인 단어 사용을 삼갔으나, 일부 언론이 노예 계약이라는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사태가 과장됐다.”고 파문 확산의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했던, 계약금도 없는 15년 기간의 계약과 비인간적인 처우. 노예 계약이란 단어 외에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어쨌든 박 대표와 윤택 등의 화해에 일단 박수는 보내고 싶다. 하나, 앞으로 시청자들이 이들의 개그를 통해 진정한 웃음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실소를 머금게 했던 이번 사태의 잔상을 지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지민 문화부 기자 icarus@seoul.co.kr
  • [그 영화 어때?]칸 초청받은 홍상수의 ‘극장전’

    지루한 일상의 탈출을 희망하기 때문일까. 현실과 꿈의 경계를 뭉개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꿈의 공장’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그 욕망이야 말할 것도 없이 더욱 강렬할 것이고. 홍상수 감독의 여섯번째 영화 ‘극장전’(제작 전원사)은 꿈에서 미처 덜 빠져나왔을 때처럼 나른한 미소를 흘리게 만드는 드라마다. 홍 감독의 작품 목록 가운데서도 유쾌지수가 유난히 돋보이는 편안한 작품이라고 장담해도 될 듯싶다. 1,2부에 다르게 붙여진 두가지 한자 제목은 영화가 관객들과 어떤 메시지로 소통하고 싶어하는지를 재치있게 보여준다.1부 ‘극장전(傳)’은 말뜻 그대로 영화 이야기. 수능시험을 마치고 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19세 고교생 상원(이기우)이 우연히 중학교 때의 첫사랑 영실(엄지원)을 만나면서 돌발적인 로맨스 드라마를 빚어나간다. 영화의 기조는 내내 경쾌하다. 재회한 첫날 여관에 함께 들어간 남녀는 수면제를 사모아 동반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긴장은커녕 청춘 특유의 즉흥성과 유약함에 스크린은 번번이 즐겁게 이완된다. 감독은 영화에 ‘형식의 묘미’를 부여했다. 돌발사고처럼 하룻밤 섹스를 했을 뿐 모든 것이 미완으로 마침표를 찍는 영실과 상원의 짧은 만남인 1부는, 알고본즉 감독 지망생인 동수(김상경)가 극중에서 보고나온 영화 이야기. 두 10대의 이야기가 ‘영화 속 영화’였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뜻밖에 반전의 묘미까지 맛본다. 감독의 이런 능청스러운 재치 덕분에 관객들은 2부 ‘극장전(前)’을 좀더 쫀쫀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10년째 감독 데뷔를 준비해온 동수는 선배가 만든 단편영화를 보고 나오다 영화 속 여배우 최영실(엄지원)을 우연히 만난다. 째째하고 엉뚱하되 아직 철부지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캐릭터의 동수는 막무가내로 영실의 꽁무니를 쫓아다닌다. 30대 남자주인공으로 바뀐 2부는 그대로 1부의 ‘복기’다. 영실을 따라다니다 ‘사고처럼’ 여관방을 찾게 되는 수순까지 동수의 하루는 그가 본 영화속 이야기와 닮았다. 동수의 꿈이 극장앞을 나서면서 현실로 ‘형질변경’하는 과정에도 소소하고도 유쾌한 파장이 계속된다. 일상에 카메라를 디밀어온 감독은 이번 영화를 좀더 사유화했다는 인상이 짙다. 감독을 꿈꾸는 동수의 소시민적이면서도 순수를 잃지 않은 면모, 영화속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는 동수의 하루 등은 홍 감독 자신의 ‘생활 속 발견’이 아닐까 싶다. 탐미적 영상, 신경 곤두설 극적 내러티브가 있을 리 없는 ‘홍상수표 영화’에는 그럼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세상이 다 알 만한 익숙한 골목과 동네병원 간판을 클로즈업하고,‘88라이트’‘말보로 레드’ 등 담배이름까지 시시콜콜 언급하게 한 감독의 의도가 관객에게 온전히 먹혀들었다. 영화가 생활 속에 함께 들어와 있다는 구체적 동질감에 관객은 자발적으로 화면에 꽁꽁 묶이는 셈이다. 엄지원이 1인2역 했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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