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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어 주는 여자들? 웃겨 죽는 여자들!

    웃어 주는 여자들? 웃겨 죽는 여자들!

    “이 잘 만들어진 리얼돌도 부족한 점이 하나 있더라고요. 남성분들이 간과한 게 있는데 이 리얼돌이 롱런하려면 이 기능이 추가돼야 해요. 모순적인 명령을 실행하는 기능요. ‘천박하고 퇴폐적이되 기품을 잃지 마.’”(고은별) “‘미쳐도 곱게 미쳐라’는 여자들한테 하는 이야기죠. 여자가 미치면 머리에 꽃을 꽂잖아요. ‘너네가 미쳤다고 꾸밈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는 메시지가 담긴 거죠.”(김보은) 지난 7일 토요일 오후 8시. 서울 용산구의 한 공연장에 관객 100여명이 모였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건 마이크 스탠드와 마이크뿐. 텅 빈 무대에 차례로 오른 여성 7명은 마이크를 잡고 10분씩 ‘농담의 향연’을 펼쳤다. 가부장제의 부조리함부터 연극에서 여성 캐릭터에게 요구되는 이미지, 직장인의 애환, ‘29금’ 성적 농담까지 솔직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우스꽝스러운 분장도, 화려한 무대 장치도, 재미를 극대화할 소품 하나 없이 오로지 입담만으로 무대를 채운 이들은 여성 코미디언으로만 구성된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블러디 퍼니’다. 이날 첫 정기공연을 선보인 블러디 퍼니의 반전 가득한 이야기에 관객들은 한 시간 30분 동안 깔깔대며 환호했다. 국내에서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스탠드업 코미디가 최근 몇 년 사이 활기를 띠고 있다. 방송인 유병재와 박나래가 넷플릭스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선보였고, 지난달에는 KBS가 박나래를 진행자로 내세운 ‘스탠드업’을 방영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방송뿐만 아니라 홍대 인근 공연장이나 호프집 등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현장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남성 중심의 웃음 코드가 뿌리 내린 한국에서 여성 코미디언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여자는 남자보다 웃기지 않는다’는 편견 아래 여성은 코미디에서 주체보다는 객체에 머물 때가 많았다. 지난해 2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씨가 지난해 말 여성으로만 구성된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블러디 퍼니’를 꾸리게 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번역가, 외신 기자 등의 일을 했던 최씨는 지난해 초 우연히 오픈 마이크(아마추어 공연자가 설 수 있는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얻어 한 달간 무대에 섰다. 그러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코미디언의 성지’로 여겨지는 미국 뉴욕의 한 코미디 클럽에서 두 달 동안 수업까지 듣고 돌아왔다. 현재는 문을 닫았지만 지난해 6월 문을 연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클럽 ‘코미디 헤이븐’에서 유일한 여성 출연진으로 무대에 섰던 최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해졌다. 여자 코미디언은 왜 이렇게 적을까. 그래서 최씨는 스스로 ‘웃기는 여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사라진 여자들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서다. 최씨는 먼저 코미디 헤이븐에서 진행된 오픈 마이크에 종종 참여한 최예나씨를 섭외했다. 이후 두 사람이 다른 여성 코미디언들과 함께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한 ‘그날’이라는 스탠드업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고은별, 이슬기씨가 팀에 합류했다. 지난 10월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와 연극을 결합한 공연에서 협업한 것을 계기로 연극배우 경지은, 김보은씨도 블러디 퍼니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정기공연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만난 이들은 “여자들은 늘 ‘웃어 주는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회의 편견을 넘어 여자도 ‘웃기는 사람’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여성 코미디언이 적은 이유는 왜일까요. 최정윤 “제 생각엔 웃기는 여자도 되게 많고 코미디를 하고 싶어 하는 여자도 많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자가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결혼식 사회자만 봐도 여성들이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나이 있는 희극인 남성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몇 번 들었어요. ‘(코미디를) 짜는 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잘 짜는 여자들은 드물다’고요. 저는 여자들이 코미디를 잘 못 짠 게 아니라 본인의 아이디어를 올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최예나 “제가 예전에 돌잔치에서 사회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남성분이 저를 보더니 ‘여자가 하네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엔 많은 뜻이 내포돼 있잖아요. 일단 사회를 맡은 여자를 처음 본다는 의미가 있었고 사회를 맡은 저를 약간 못 미더워하는 뉘앙스도 묻어 있었고요. 이런 분위기가 코미디언들 사이에도 있어요. 여자 코미디언이 준비한 코미디는 남자 코미디언들이 많은 곳에서는 공감을 못 얻고 뒤로 밀리거든요.” -여성 코미디언들로만 이루어진 팀이라서 좋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최정윤 “여성 동료들과 공연을 하면서 느끼는 게 웃음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판에서 저희는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저희처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코미디의 깊이나 내용의 질적인 부분에서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서로를 보면서 ‘얼마나 잘하나 보자’가 아니라 ‘잘했다’는 응원을 해 주니까 서로 성장할 수 있고요.” 이슬기 “방송에 출연하는 남성 코미디언들을 보면 자신들끼리 서열화된 모습을 개그로 많이 쓰잖아요. 어떤 사람은 신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라인을 따른다’고 언급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특정 역할 이상을 맡지 못하게 되잖아요. 저희들끼리는 누가 1등인지 누가 우두머리인지 상관하지 않아도 되니까 눈치를 볼 필요도 없죠.” -각자 생각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매력은 뭔가요. 최예나 “저는 방송사 코미디언 공채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원을 다녔었는데 여자들은 주체적으로 웃기기보단 어떤 특정 역할로 많이 쓰여요. 예쁜 역할, 못생긴 역할, 뚱뚱한 역할, 마른 역할 이런 식으로요. 콩트를 짜면 저 같은 경우는 뻔한 역할만 맡았어요. 아줌마나 혹은 마르고 예쁜 여자를 시기하는 못된 선배 같은 역할요.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남이 부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내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보여 줄 수 있어서 좋아요.” 최정윤 “한국에서 코미디언이라고 하면 끼도 엄청 많고 뭔가 나대야 되고 무대에서 기도 안 죽는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스탠드업 코미디 자체는 내가 어떤 성향인지는 전혀 상관없거든요. 내 매력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농담을 잘하면 좋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될 수 있다는 게 멋있죠.” 이야기의 결은 다르지만 이들이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 건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애환과 고충이다. 지난해 스탠드업 코미디 개론서인 ‘스탠드업 나우 뉴욕’(왓어북)을 펴내기도 한 최정윤씨는 “뉴욕에서 코미디 수업을 들었을 때 선생님이 자신의 감정에 가장 큰 반응을 일으키는 이야기에 재미가 숨어 있다고 했다”면서 “아무래도 일상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최정윤 “저는 낮에는 구성애 선생님이 운영하는 ‘푸른아우성’에서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성교육 수업을 할 때 아이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을 때가 많아요. 거기서 이런저런 재밌는 에피소드를 많이 가져옵니다. 한국 사람들이 어릴 때 제대로 된 성교육을 못 받고 성인이 된 탓에 사회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그런 면에서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려고 해요.”김보은 “저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도 하고 있어요. 무대 예술 작품을 만들 때 왜 젠더 의식이 필요한지 현재 작품들은 어떤 점이 문제인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강의를 할 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스탠드업 무대에서 하기도 해요.”고은별 “사회적인 이슈 중 여자랑 연관이 없는 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코미디의 소재로 엮을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정기공연에서 리얼돌에 대한 이야기도 할 예정이에요.” 아무래도 대중에게 익숙한 코미디는 ‘코미디 빅리그’나 ‘개그 콘서트’와 같은 짜여진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콩트나 ‘몸개그’라고 불리는 슬랩스틱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여성 코미디언은 조롱거리나 희화화의 대상으로 소비될 때가 많다. 남성의 관점에서 얼굴이나 몸매를 평가받고 성적인 농담이나 여성 혐오 발언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기성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여성 코미디언들이 불편한 농담의 대상이 돼야 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최예나 “코미디언 공채를 준비하면서 학원에 다닐 때 성차별 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 쪽으로 도피했거든요. 코미디를 빙자해서 여자 위에 남자가 올라가서 성행위를 하는 듯한 몸짓을 하기도 해요. 경력이 얼마 안 되는 여자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그럴 때 가만히 있지 않고 대들면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 취급을 하고요. 여자에 대한 혐오가 너무 심하죠.”경지은 “제 코미디의 소재가 자기 비하적이고 자조적인 내용이거든요. 실제로 외모나 행동이 여성스럽지 못해서 조롱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속한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 자신을 더 격하해서 웃기거나 남자 선배가 내 외모로 웃기려고 할 때 그냥 수긍하기도 했어요. 스탠드업 무대에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이제 제가 더이상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쪽으로 변화했다는 걸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에서 박나래씨가 도전한 스탠드업 코미디쇼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고은별 “내용에 대한 비판을 하기 전에 유명세 있는 사람이 새로운 시도를 한 건 엄청난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자체가 대단하고 용기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박나래씨 덕분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조명도 많이 되고 있거든요. 관심이 전무하던 상황에서 그 자체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최예나 “저는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봤는데 반응이 진짜 뜨거웠어요. 어떤 분은 미국 여성 코미디언 앨리 웡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영향을 받아서 삶이 바뀌기도 했는데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다고도 하시더라고요. 제가 생각할 땐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여자들의 스펙트럼은 넓고 색깔도 다양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로서는) 박나래씨 한 분이 선보인 거니까 그분만 보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일단 물꼬를 터 줘 고맙죠.”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이슬기 “앞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지난 9월부터 격주에 한 번씩 해방촌에서 진행하고 있는 오픈 마이크도 계속해서 운영할 예정이고요. 재즈 보컬리스트, 래퍼 등과 협업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최정윤 “저는 언젠가는 각자 한 시간씩 스탠드업 쇼를 할 수 있으면 멋있을 것 같아요. 한 시간을 메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3년이 걸릴 수도 누군가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모두 다 그걸 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보은 “저는 다른 여성들도 스탠드업 코미디에 관심을 가져서 꼭 저희 팀이 아니더라도 자신들만의 크루를 꾸려서 코미디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최예나 “나중엔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끼리 타이틀을 걸고 대항전을 해도 재밌겠네요(웃음).”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도로혼잡 사전에 예측하는 ‘교통 마이너리티 리포트’ 나왔다

    도로혼잡 사전에 예측하는 ‘교통 마이너리티 리포트’ 나왔다

    2002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SF의 거장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미래에 벌어질 범죄를 사전에 파악해 잠재적 범죄 피의자를 체포함으로써 도시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만든다는 내용을 골자로 벌어지는 문제점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범죄자를 사전에 체포한다는 내용은 황당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책개발자들은 자신의 정책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몹시 궁금해 한다. 국내 연구진이 교통 정책을 사전에 검증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일명 ‘교통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정보연구본부 연구진은 클라우드 기반 교통혼잡 예측 시뮬레이션 기술 ‘솔트’(SALT)를 개발했다고 12일 밝혔다. 솔트는 새로 도입하려는 교통정책이나 변경되는 신호체계가 해당 지역의 전체 교통소통 상황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한 눈에 보여주고 교통혼잡율을 계산해주는 기술이다.연구진은 서울시, 경찰청, SKT에서 데이터를 제공받아 지역도로망, 신호체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여기에 실시간 측정 교통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로의 차량수요까지 분석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솔트는 구축된 도로 데이터를 ‘1차선 X 30m’ 단위로 나눠 구역 내 차량정보를 파악하게 된다. 기존에 개별 차량단위로 분석하는 마이크로스케일 분석법보다 더 넓은 범위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특정 장소에서 도로공사를 하거나 대형 스포츠 행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교통량이나 혼잡도 변화를 예측해 분석값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교통 혼잡지역 중 하나인 서울 강동구를 대상으로 하루 평균 40만대 차량이 지나는 도로를 1만 3000개 단위로 쪼개 24시간 교통흐름을 5분 내에 시뮬레이션했다. 이는 차량 이동량 측정에 가장 많이 쓰이는 ‘수모’기술보다 18배 빠른 속도이다.실제로 연구팀은 강동구 둔촌로 길동사거리 신호체계를 변경할 때 나타나는 결과를 시뮬레이션했다. 분석 결과는 평일 기준 하행 속도를 2.4% 개선할 수 있다고 예측됐는데 서울시에서 실제 신호체계를 변경한 결과 통행속도가 4.3%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교통정책의 사전검증은 물론 불법주차 탐지, 상습정체 구간 파악, 기상 영향 예측 등 다양한 상황에서 교통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옥기 ETRI 지능정보연구본부장은 “매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교통혼잡비용은 약 30조원대에 이르며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낮추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주민 권리 짊어진 이자스민 정의당 입당… “차별금지법 제정”

    이주민 권리 짊어진 이자스민 정의당 입당… “차별금지법 제정”

    “저는 대한민국 사람… 과정이 달랐을 뿐 6411번 버스 노회찬정신 새기며 제 역할 새누리당, 한국당 바뀌며 약자 생각 변화” 심상정 “차별받는 소수자 대변… 같은 편” 이주민인권특위장 임명… 총선 출마할 듯 필리핀 출신의 우리나라 최초 귀화인 국회의원으로 지난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으로 활동했던 이자스민 전 의원이 11일 정의당 입당식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공식화했다.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열린 이 전 의원의 입당식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총출동했고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려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심 대표가 이 전 의원에게 정의당 상징색인 노란색 점퍼를 입혀 주고 윤소하 원내대표가 정의당 배지를 점퍼에 달아 줄 때는 열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문화·이주민의 인권을 위해 정치권에서 싸워야 하는 이 전 의원은 입당식에서 “정의당이 주장해 온 취업이주민의 노동 인권 보호, 폭력피해 여성 지원 강화, 여성차별철폐협약 권고에 따른 이행과 같은 조치들을 통해 이주민들의 권리를 지켜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다만 여러분과 한국 사람이 되는 과정이 달랐을 뿐”이라며 “그래서 저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함께 행동할 정의당에 왔다.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며 부끄럽지 않은 정의당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은 노회찬 전 의원이 언급해 유명해진 6411번 버스에 대해서도 말했다. 6411번 버스는 이른 새벽부터 일터로 나가는 서민 등 소외계층이 많이 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노 의원님이 말한 6411번 버스는 구로·대림·영등포를 지나 강남으로 간다. 구로·대림·영등포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이 살고 있다”며 “심 대표가 말했던 것처럼, 같이 사는 주민인데 존재가 없다”고 했다. 이어 “6411번 버스를 이용하는 이주민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며 “제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또 “어떻게 해서라도 사회 모든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난민도, 이주민도, 소수자도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은 “새누리당에 있었을 때는 저를 영입하고 탈북자 조명철 의원님도 영입을 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 곳곳의 약자들이나 그런 마이너리티(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자유한국당으로 변하면서 그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국당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이 전 의원은 자신을 향한 악성 댓글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4년이 지난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처럼 좋은 시선이나 좋은 댓글은 아직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4년 전엔) 다른 의원이 했으면 별로 큰일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했기 때문에 왜곡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심 대표는 “서로 앉아 있는 위치는 달랐지만 저는 이주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이자스민 의원을 늘 응원했다. 우리는 차별받는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늘 같은 편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입당과 동시에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장으로 임명된 이 전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나 비례대표로 출마할지에 대해 “정의당의 모든 공천은 당원들이 결정하는 걸로 알고 있다. 활동을 하고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정의당원들의 마음과 믿음, 신뢰를 얻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정의당 입당한 이자스민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가 해야 할 일”

    정의당 입당한 이자스민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가 해야 할 일”

    최근 정의당에 입당한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한민국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여러분과 똑같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조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입당식에서 “(과거 국회의원 재직 시절) 저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저이기 때문에 왜곡되는 일이 많았다”면서 “한국 사람이 되는 과정이 달랐을 뿐 저는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이날 ‘6411번 버스’를 언급했다. 이 버스는 고 노회찬 전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소개한 버스다. 고인은 당시 연설에서 이 버스를 타고 새벽부터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6411번 버스가 지나는 (서울) 영등포, 구로, 대림에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이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이 살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면서 “6411번 버스를 이용하는 이주민의 보편적 권리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제가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이자스민 전 의원은 의원 재직 시절 어려웠던 일들을 털어놨다. 그는 “2012년부터 (의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2016년 5월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4년이 지난 지금 약간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를 향한) 좋은 댓글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그러면서 “다른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내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지 않았는데 제가 하는 모든 일은, 마치 현미경 속을 지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당했던 혐오·차별 피해를 언급한 것이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또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에 있을 때는 당이 사회적 약자,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으로 바뀌면서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오는 말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정의당의 이주민 인권 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그는 “차별 발언과 혐오표현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면서 “차별금지법은 우리가 해야 할 숙제고, 어떻게 해서라도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해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혐오’란 상대가 마이너리티에 속한다는 이유로 그를 모욕하고 멸시하거나, 배제하고 차별하면서 그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다만 내년 총선 출마 계획과 관련해서 이자스민 전 의원은 “공천은 당원들의 결정에 달려 있다”면서 “저는 지금 맡은 일을 계속 충실히 하고 그 과정에서 당원의 마음, 믿음, 신뢰를 얻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창조도시 정책’ 택한 리옹… 균형발전 한계 뛰어넘었다

    ‘창조도시 정책’ 택한 리옹… 균형발전 한계 뛰어넘었다

    균형발전은 현 정부의 5대 국정과제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가운데 핵심적인 전략과제 중 하나다. 2018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개정·시행돼 법적·제도적 추동력을 재확보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균형발전과 같이 국가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실제 효과를 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방 쇠퇴를 넘어 지방 소멸론이 등장하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중앙정부의 정책효과를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다.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균형발전정책의 효과를 제고하고 정책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체감도가 높은 균형발전정책은 지역적 특성이 잘 반영된 정책이다.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정책의 실행 주체는 지방정부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균형발전정책 추진에서 중앙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호응(呼應)한 지방정부의 더 적극적인 정책적 관여(commitment)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5월 한 광역지자체가 수립하는 도시균형발전계획과 관련해 프랑스 리옹을 다녀왔다. 광역도시권 내에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어떠한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봤다. 리옹의 사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추진 중인 프랑스의 지방자치정책에 대한 개략적 이해가 필요하다. 프랑스의 지방행정체계는 크게 레지옹(R?ion 18개:광역), 데파르트망(D?artement 101개:중역), 코뮌(Commune 3만 5357개:기초)으로 구성되고 각각의 권한을 가진다. 프랑스 지방자치정책의 변화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고 권한 배분의 원칙을 확립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한 사회당(1981~1995) 제1기를 거쳐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재정적 분권을 위한 체계 정비를 한 자크 시라크·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집권 기간(1995~2012)인 제2기를 지나왔다. 제3기는 지방자치단체 개혁법(2010년)을 근거로 추진되고 있는 지방자치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위한 지방행정체계의 정비와 새로운 권한 배분 정책이 추진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집권 시기부터다. 제3기 정책의 목표는 정책 비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지역 간의 격차를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프랑스의 지방행정체계 변화 속에서 지방정부 스스로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자율적이고 내발적인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리옹 사례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방자치단체 개혁법에 의거 2015년에는 10개 메트로폴(M?opole)이 설립됐고, 리옹도 메트로폴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경기연구원 보고서 ‘프랑스 국토개혁정책의 시사점’(2015년)에 따르면 ‘메트로폴은 다수의 코뮌으로 구성된 코뮌협의체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균형발전정책을 함께 수립·추진하는 지역 간 연대로서 행정적 경계를 초월해 도시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대도시권’으로 정의하고 있다. 리옹 메트로폴(M?opole de Lyon)은 리옹시를 포함한 59개 코뮌으로 구성됐다. 리옹 메트로폴은 면적 533.68㎢, 인구 138만 1349명(2016년 기준)으로, 2018년도 국내총생산(GDP)이 740억 유로를 기록하며 파리 다음의 경제규모를 가지게 됐다. 리옹은 19~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적 수도로 성장하고자 했으나 프랑스의 중앙집권화가 심화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1970년대 탈중앙화가 시작됐을 무렵 일시적으로 도시기능을 회복하는 듯했지만 국제도시들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파리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중앙집중화 정책에 의해 큰 타격을 받았다. 또한 국내 도시 간 경쟁이 심화하며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1980년대 그르노블, 툴루즈 등의 도시가 국가 주도의 신산업을 유치하고, 인구 유입이 활발한 연안도시인 니스, 보르도 등에는 정부가 신기술 산업투자를 했다. 전통적 산업구조를 가진 리옹은 이런 심각한 위기 속에서 중앙정부의 정책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미셸 누아르 시장(재임 기간 1989~1995)은 도시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문화유산의 미관을 개선하고 수준 높은 공공공간을 조성했다. 특히 기업을 유치하기보다는 중·상류층의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주거지를 조성했다. 이는 창조적인 시민이 우수한 기업을 유인한다는 판단에 따른 정책적 결정이었다. 유럽의 다른 도시가 창조도시정책을 실시한 시점에 비해 20년 정도 앞선 것이었다. 뒤를 이은 레몽 바르 시장(재임 기간 1995~2001)은 시내에 산재해 있는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적 유적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등 원도심 재생과 문화 활성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제라르 콜롱 시장(재임 기간 2001~현재)은 ‘온리 리옹’(ONLY-LYON)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활용한 적극적인 도시 마케팅을 실시했다. 이는 프랑스 최초의 도시홍보정책으로, 행정뿐 아니라 민영기업에서도 ‘온리 리옹’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편 리옹은 파리와의 경쟁적 관계 구도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유럽의 국제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유로시테(EuroCit?라는 유럽도시연합체를 결성했다. 같은 시기에 유럽연합(EU)이 결성돼 유럽 내 도시 간 이동이 활발해졌다. 이 영향으로 프랑스의 탈중앙화 경향이 다시 강해졌다. 리옹은 도시 혁신을 위해 연구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선택과 집중의 정책이 성과를 거두면서 리옹의 산업클러스터 구조는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심각한 위기 속에서 리옹은 지방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정책적 수단을 각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했다. 리옹을 둘러싼 도시·사회적 변화를 수렴하면서 새로운 도시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혁신적 지방행정조직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시민소통 및 미래 연구부가 바로 그곳이다. 시민소통 및 미래 연구부의 공공정책의 미래센터 장 루 몰랭 센터장과 최근 리옹이 추진하고 있는 균형발전정책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시민소통 및 미래 연구부는 1990년대 리옹광역시 개발계획을 수립할 당시 시민참여를 담당한 부서에서 점차 발전해 왔다. 인원은 20명 내외로 ①이용 및 참여 경험 수집(주로 도시마케팅, 디자인 영역) ②시민참여 ③공공정책평가를 담당하는 3개의 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공공정책평가팀은 리옹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면서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하기 위해 가장 최근에 신설된 조직이다. 지방정부가 보다 신중하게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책평가가 중요하다는 정책적 판단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메트로폴 이전에는 교육 및 고용은 중앙정부 소관, 직업훈련은 레지옹 소관 등 분야별로 정책실행 주체가 구분돼 있어 정책적 수단을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었다. 메트로폴로 전환되고 난 후에는 ‘사회적 참여’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리옹 메트로폴은 ‘사회적 참여’에 대한 정책적 권한이 없다고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았다. 도심 환경 개선, 주거 개선, 교통체계 개선이라는 3가지 정책을 통해 우회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주거·교통정책만으로 리옹 메트로폴이 안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에 리옹 메트로폴은 중앙정책과 지방정책에 차별을 두면서 자체 재정 확보를 위해 보조금을 삭감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시민들의 반발이 커서 추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우선적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젊은 계층의 실업수당을 기간에 따라 줄이는 방향으로 예산을 확보하는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 리옹의 사례는 중앙정부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적 노력에 호응하고 조기에 정책적 효과를 지역에 파급하려면 지방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 준다. 첫 번째는 2000년대 초반 리옹이 수도인 파리와의 경쟁적 관계 구도에서 탈피하고 독자적 도시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서울과 지방도시와의 경쟁적 관계 구도에서 추진되는 균형발전정책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지역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진되는 균형발전정책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균형발전은 요원해진다. 두 번째는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 점이다. 리옹 메트로폴은 사회적 참여에 대한 정책적 권한이 없다고 해서 직면한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주거·교통정책 등을 통해 주어진 정책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청년에 대한 보조금 삭감 등과 같은 시민적 저항감이 큰 정책까지 추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강력한 정책 의지가 동반됐다. 세 번째로 지방정부의 지속적인 재정 악화가 예측되는 가운데 정책평가 기능을 강화해 신중한 정책 추진을 실시한 점이다. 2017년 한국의 세출을 보면 중앙정부가 차지한 비율이 40%, 지방정부는 60% 정도다. 반면 세입의 경우 국세가 76.7%(265조 4000억원), 지방세는 23.3%(80조 4000억원)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세입과 세율의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대규모 재정이 필요한 정책은 보다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리옹의 사례는 법·제도를 포함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적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옹의 사례는 이제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정부 스스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 또한 스스로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한승욱 주택도시금융연구원(HUGI) 박사 ■한승욱 박사는 부산연구원을 거쳐 주택도시금융연구원(HUGI)에서 도시재생과 관련한 다수의 정책연구를 수행했다. 일본 교토에서 9년간 머물며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구성된 파편화된 도시공간을 관찰하고 그곳에서 이뤄지는 마이너리티의 삶에 대한 도시사회학적 연구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 지진·테러, 더이상 ‘예측 불가’ 아니다

    지진·테러, 더이상 ‘예측 불가’ 아니다

    인류의 오랜 꿈 중 하나는 미래의 일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다. 거북이 등껍질에 칼자국을 내 벌어지는 형태나 신탁을 통해 전쟁의 승패, 국가의 길흉화복을 읽으려는 것도, 그리고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가상의 기계 ‘타임머신’을 꿈꾸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 발생을 사전에 파악해 원인을 제거하면 ‘범죄 없는 도시’라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 예측’에 대한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태풍이나 폭염, 혹한 같은 날씨 변화는 일정부분 예측이 가능하지만 지진은 지금도 그야말로 예측 불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또 사람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는 테러리즘도 예측이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과학자들이 지진과 테러라는 예측 불가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 관심을 끌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ETH Zurich)의 연방지진정보국(SED) 연구진은 지진학에서 주로 쓰는 ‘구텐베르크-리히터 법칙’으로 특정 지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난 뒤 발생하는 여진의 횟수로 또 다른 큰 지진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0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방법으로 교통신호등처럼 큰 지진 발생 가능성을 빨간색(확실), 노란색(주시), 녹색(안전)으로 경고하는 방법도 고안해 피해지역 주민들과 정부, 지방정부 등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 특히 주목받고 있다.연구팀은 2016년 4월에 발생한 일본 구마모토 지진(규모 7.3)과 8월 이탈리아 아마트리체-노르시아 지진(규모 6.6)을 대상으로 구텐베르크-리히터 법칙 속 b값(여진의 빈도)을 분석했다. 이들 지역에서 b값은 1.2~1.3 정도로 나타나는데 큰 지진이 발생하고 나면 b값이 커진다. 여진의 발생 빈도수가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큰 지진이 발생한 뒤 b값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작아지는 경우, 즉 여진 발생 빈도가 줄어드는 경우는 뒤이어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여진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은 단층끼리 꽉 맞물려 있기 때문인데 이는 지각이 안정된 상태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지진을 발생시킬 수 있는 응력이 쌓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연구팀은 큰 지진이 발생한 다음 b값이 평균보다 10% 이상인 경우는 큰 지진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안전한 상태(녹색)라고 볼 수 있지만 평균값보다 5% 정도 낮아지는 경우는 주시해야 하는 상황(노란색)이며 평균값 이하 10%로 나타날 경우는 큰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은 빨간색 상태라고 봐야 한다는 ‘지진 신호시스템’을 제시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SED 연구팀의 아이디어는 과학계에서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이미 큰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시민들에게 또 다른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을 신속하게 알려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한편 미국 노스웨스턴대 복잡계연구소, 켈로그경영대학원 소속 수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메릴랜드대에서 운영하는 ‘국제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GTD)와 랜드연구소의 ‘국제 테러리즘 랜드 데이터베이스’(RDWTI)를 바탕으로 테러조직의 성장 가능성과 테러의 규모 및 강도를 사전에 판단할 수 있는 ‘테러 조기경보 모델’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8일자에 실렸다.GTD에 따르면 2000~2015년 매년 61개의 새로운 테러집단이 생겨나 전 세계적으로 테러 공격이 20세기 말과 비교해 약 800% 늘었다. 연구팀은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처럼 잘 알려진 테러집단은 물론 인도 아삼지역 통일해방전선, 소말리아 알샤바브, 필리핀 모로 이슬람해방전선까지 1970년부터 2014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운영된 모든 테러집단을 대상으로 이들이 초기에 벌인 테러사건 10건만으로 앞으로 벌일 테러 규모나 치명성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분석 결과 미래에도 가장 위협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력이 큰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집단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히 격퇴했다고 주장한 IS로 밝혀졌다. 브라이언 우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모델은 현재는 소규모이고 보잘것없지만 파괴력 큰 집단으로 커질 수 있는 조직을 사전에 파악해 대응함으로써 미래에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축구 덕에 결혼하고 축구 에세이까지 낸 ‘성덕’ 부부

    축구 덕에 결혼하고 축구 에세이까지 낸 ‘성덕’ 부부

    SNS에 여자축구 체험기 쓰던 회사원 金 잡지에 글까지 쓰며 축구 사랑의 길 실천 “느리고 알아서 노는 詩적인 매력이 재미” 2002년 한일월드컵서 K리그 천착한 朴 “월드컵 통해 세계와 이어주는 것도 마력” 축구를 통해 서로에게 ‘입덕’(덕후가 되다)한 부부가 나란히 축구 에세이를 냈다. 김혼비(필명·38)·박태하(39) 부부다. 순서대로 지난해 아내가 먼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민음사)를, 남편이 최근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민음사)를 출간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부부는 사진 촬영을 위해 부부가 응원한다는 성남FC 유니폼과 축구공을 챙겨 왔다. “이거 어제 ‘직관’(직접 관람하다) 가서 사온 거예요.” 어쩐지 공 표면이 반짝반짝했다. 두 사람이 축구 에세이를 쓴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데는 잡지 릿터 서효인(38) 편집장 공이 컸다. 15년차 출판편집자인 박태하는 2015년 출간한 ‘책 쓰자면 맞춤법’(엑스북스) 예문을 성남FC 얘기로 도배하고,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김혼비는 페이스북에 여자축구 체험기를 주기적으로 올렸다. 이들 부부 글은 야구 에세이를 썼던 ‘스포츠 친화 편집자’인 서 편집장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그렇게 박태하는 ‘릿터’ 창간 때인 2016년 8월부터, 김혼비는 다음해 ‘릿터’에 지극한 축구 사랑을 읊는 것으로 에세이스트의 길을 걷는다. ‘왜 하필’이라는 말이 무색한, 둘의 축구 입덕 경로는 ‘어려서부터’다. 그 가운데서도 박태하가 해외 축구가 아닌, K리그에 천착하게 된 데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붉은 악마가 수놓았던 ‘CU@K리그’가 한몫했다. 연고도 없는 성남을 응원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자발적 선택이었다. 서울에 살긴 하지만 직관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성남FC를 응원하게 된 데에는 특히 황의조라는 신인 스트라이커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컸다. ‘스텝 오버(헛다리 짚기) 달인’ 브라질 호나우두를 좋아했던 김혼비는 박태하를 만나 처음 축구장에 갔다가 직관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축구 리듬을 내 몸으로 직접 타고 싶다는 충동은 그를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게 하는 데까지 이끌었다. 이토록 두 사람을 하나 되게 만드는 축구의 매력, 아니 마력은 무엇일까. “공간의 미학이 다른 어떤 운동보다 잘 구현돼요. 다양한 유형의 패스와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공간을 뚫어내야 하는 게 가장 매력적입니다. 자기 지역과 내 팀에 강한 정체성을 갖고 그것이 국가 버전으로 확장된 월드컵까지 이어지며 세계와 이어지는 점도 좋아요.”(박태하) “야구는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바로 바로 알 수 있고 농구는 패스가 빠르죠. 축구는 뭔가 느리고, 그라운드에 저 혼자 던져져서 ‘알아서 놀아봐라’ 하는 느낌이어서 낚시같이 지루한 면이 있어요. 보는 사람이 찾아서 적극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게 재밌었어요.”(김혼비) 그런 점에서 “축구는 시(詩)적이다”고 김혼비는 말했다. 한 가지 대상을 향한 둘의 글은 비슷한 듯 다른 부분이 있다. 박태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 지극할 수 있을까 싶게 K리그를 향한 덕심을 결결이 썼다. 김혼비의 글은 호나우두의 ‘스텝 오버’처럼 휘몰아치는 비유가 ‘꿀잼 모먼트’다. 그러나 글 전반에 흐르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애착은 공통점이다. K리그도 KBO나 월드컵, 해외 유명 리그에 비해서는 ‘마이너’하고, 여자축구는 말할 것도 없기 때문. “K리그도 여자축구도 인기가 없지만 이 사람들 세계에서는 우주잖아요. 이 격차가 주는 감동이 있어요.”(김혼비) “가지려고 가진 게 아니라, 어떤 감정이 와서 나를 흔들 때 보면 그게 ‘마이너리티’였어요. 매끈하고 잘 굴러가는 세계에는 크게 매력을 못 느껴요.” 이어 박태하는 덧붙인다. “성정이에요, 성정.” 축구 얘기에 이어 지난 6월부터 부부는 릿터에 팔도 축제 유람기 ‘전국 축제 자랑’을 연재한다. 둘이서 함께 에세이를 쓸 때 보통은 분량을 나눠 쓰거나 돌아가며 쓰지만 이들은 다르다. 휘몰아치는 김혼비가 초고를 쓰면, 꼼꼼한 박태하가 손보고, 이를 다시 김혼비가 수정하는 식이다. 이 비효율적인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두 사람 문투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한 사람 호흡처럼 느껴져요. 기본적으로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둘한테는 어울려요. 둘 다 비효율적인 인간이고요. 하지만 그들에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죠.” 옆에 있던 서 편집장이 첨언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日 여성 정치인 “女의원은 소수파 아닌 이물질” 발언 왜?

    日 여성 정치인 “女의원은 소수파 아닌 이물질” 발언 왜?

    일본은 여성의 국회 진출이 주요국 가운데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부진한 편이다. 국제의회연맹이 올 3월 발표한 ‘여성의 의회 진출에 관한 리포트’ 2018년판을 보면 일본의 여성 국회의원 비중은 중의원 기준 10.2%로, 조사 대상 193개국 중 165위였다. 지난해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이 만들어지는 등 나름의 노력은 기울여지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2일 보도했다. 제도적인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이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여성 의원이 늘어나면 방만한 재정지출 등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낡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국회에서 여성 의원은 마이너리티(차별받는 소수자집단)가 아니라 이물질에 가깝다”는 노다 세이코 전 총무상의 최근 발언이 척박한 일본의 여성 정치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 신조 총리의 국회의원 초선 동기로 차기 총리 후보 여론조사에도 오르내리는 노다 전 총무상은 이달 초 여성 정치인 양성기관인 ‘패리티 아카데미’ 등 주최의 ‘여성 정치리더 트레이닝 합숙’ 리셉션에서 이 발언을 했다. 노다 전 총무상은 여당인 자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여성들을 많이 입후보 시켜준 야당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성의 정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법률 제정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올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여성 후보자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반면 야당은 입헌민주당 45%, 국민민주당 36% 등 2~3배에 달했다. 일본 국회는 지난해 5월 ‘남녀후보자균등법’(정치분야에서의 남녀 공동참여 추진법)을 제정했다. 정당과 정치단체, 국회·지방의회 선거에서 남녀 후보자 수를 가능한 한 균등하게 맞추도록 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여성 참정권이 발효된 1946년 이후 여성 의원의 수를 늘리기 위해 법이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이라는 문구에서 나타나듯 의무조항이 아니어서 당초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전문가들은 제도적 장치는 둘째 치고라도 여성 의원에 대한 회의론이 정계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쿠쓰 유키히코 입헌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대리는 패리티 아카데미 합숙행사에서 “여성 정치인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 정치인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여성 의원의 수가 늘어나면 가뜩이나 심각한 일본 정부의 재정난이 한층 심화될 것이라는 인식도 큰 걸림돌 중 하나다. 나카바야시 미에코 와세다대 교수는 “취업여성의 증가로 육아, 돌봄 서비스 등 그동안 여성들이 해온 노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여성 의원들일수록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정부지출 압력을 높임으로써 방만한 예산을 초래할 것이라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나카바야시 교수는 그러나 “미국 의회에 제출된 법안이나 결의안을 조사한 결과 2013년 이후 여성 의원들 쪽이 남성 의원들보다 세출 증가를 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며 근거없는 선입견일뿐이라고 주장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여성 의원 할당제 등을 도입하지 않았지만 여성 후보자에 대한 활발한 자금 지원을 통해 여성 정치인의 수를 늘린 미국 사례를 들면서 “여성 후보자에 대한 자금 지원이 할당제 등 입법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마크롱, 부인 깎아내린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에 어떻게 대꾸했나

    마크롱, 부인 깎아내린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에 어떻게 대꾸했나

    “그 자신과 브라질인들에게 슬픈 일이다. 브라질 여성들은 자국 대통령이 수치스러울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자신의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66) 여사를 비하하는 듯한 언급을 한 데 대해 발끈했다.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 휴양도시 비아리츠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의장국으로 주재한 마크롱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기자회견 도중 보우소나루의 페이스북 언급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어 “그는 우리 아내에 대해 아주 불손한 말들을 했다. 브라질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그들이 본분에 맞는 대통령을 빨리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쏘아붙였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전날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이 페이스북에 마크롱 부부 사진과 자신과 부인 미셸리 보우소나루(37) 여사의 사진을 비교할 수 있게 올리고 “왜 마크롱이 보우소나루를 못 살게 구는지 이제 알겠네”라고 조롱한 데 대해 “그 남자를 모욕하지 말라. 하하하”라고 적었다. 미셸리 여사는 보우소나루(64) 대통령보다 27살이나 어린 반면, 브리지트 여사는 마크롱(42) 대통령보다 24살이 더 많다. 보우소나루의 페이스북 언급은 남편보다 24세 연상인 브리지트 여사를 깎아내린 것으로 해석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기후변화 문제의 리더를 자임해온 마크롱과 열대우림을 보존하기보다 개발을 앞세워온 보우소나루는 국제무대에서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왔다. 마크롱이 아마존 열대우림의 대규모 화재를 국제적인 긴급 과제로 규정, G7 정상회의의 의제로 채택하자고 제안하자 보우소나루는 트위터에다 “과거 식민지 시절의 정서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열대의 트럼프’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보우소나루는 여성과 흑인, 원주민 등 마이너리티를 짓밟는 언행으로 악명 높다. 그 가운데 최악은 지난 2014년 9월 좌파 여성 의원인 마리아 도 로사리오와 의회 토론 과정에 언성을 높이다 “그럴 만한 깜도 안되니 당신을 강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는 2017년 4월에는 자신의 딸을 비하하는 기절 초풍할 말로 분노를 자아냈다. “난 다섯 아이를 뒀는데 넷이 사내 아이들이고, 막내가 딸인데 그애는 내 몸이 약해져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한편 이날 폐막한 G7 정상회의에서 마크롱이 국제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낳았다. 그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을 회의장에 깜짝 초대해 그로 하여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파기로 인해 벌어진 미-이란 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호소하게 만들었다. 비록 자리프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 미국 당국자들을 대좌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의 압박에 못 이긴 척 폐막 기자회견 도중 “여건이 조성되면 이란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진짜 G7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엄청난 일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또 이번 정상회의는 아마존 산불 진화를 위해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에 2000만 유로(약 271억원)를 즉각 지원하고 열대우림 훼손을 막기 위한 중장기 이니셔티브를 출범하기로 뜻을 모은 것도 마크롱의 중재 노력 덕분이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그 작가의 북캉스는 [   ]다

    그 작가의 북캉스는 [   ]다

    바야흐로 여름 바캉스 ‘극성수기’ 시즌이다. 해마다 요맘때 꼼짝 말고 출근하는 것이 되레 시원하다고들 하지만, 또 마음은 어디 그러한가. 더우면 짜증이 나고, 짜증 나면 ‘지금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소용돌이친다. 소설을 읽는 일은 제일 저렴하게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휴가를 가는 이에게는 이중삼중의 여행을 즐기시라는 의미에서, 휴가를 안 가는(또는 못 가는) 이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지금 이곳을 잊으시라는 의미에서 소설을 물색했다.극성수기만큼 독자들이 열광하는 소설가 8인이 ‘여름 휴가에 가져갈 책’을 꼽아주었다. 의례적인 추천이 아닌, 실제로 여행가방에 넣을 책으로 말해 달라고 했다. ‘스릴러퀸’ 정유정은 최고의 좀비 소설을, ‘문단 아이돌’ 박상영은 뜻밖에 고전을 골랐다. 이외 신인 작가의 최신작부터 SF, 무더위를 날릴 범죄 스릴러까지 이야기의 바다가 펼쳐질 만하다. 이것이 김금희·김봉곤·김연수·김초엽·박상영·장강명·정유정·편혜영 작가(가나다 순)의 캐리어, 혹은 머리맡에 놓일 책들이다.김금희 이번 휴가는 동네와 가까운 곳으로 갈 예정이다. 공원이나 야외 수영장에서 평소와 다르지 않은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느 정도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묻는 윤성희의 새 장편소설 ‘상냥한 사람’(창비)을 읽는 것이다. 윤성희 소설에서 나는 가장 멋쩍고 심드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목에서조차 삶의 상냥한 위안을 발견해왔으므로 충분히 환한 날들이리라 생각한다. 먼 곳을 다녀오지 않아도 긴 휴식을 하다 돌아온 사람처럼 달라져 있을 것이다, 당연히 더 깊어져 있을 것이다. 김봉곤 최은미의 소설과 잘 연결되지 않는 계절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여름이었다. 낙하하거나 쓸쓸하거나 얼어붙게 만드는 소설들. 하지만 ‘아홉번째 파도’(문학동네)에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해 뜨거움과 물기 역시 가득하다. 어제는 없었고 내일은 없을 듯 흥청흥청한 여름. 의외로 여름은 여름 아닌 계절을 생각하기에 좋은 계절이며, 어쩌면 바캉스는 내게도, 너에게도 ‘비어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채우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바로 이 소설이 여름과 바캉스, 그 자체로 느껴진다. 김연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2’(민음사)를 읽을 예정이다. 몇 년 만에 새 작품인지 모르겠다. 테드 창의 ‘숨’(엘리)도 오랜만의 신작이었는데 좋았다. 포어 역시 늘 다음 작품이 궁금했던 우리 시대 작가라 기대가 크다. 김초엽 휴가지에서는 역시 밀실 살인사건이다. 그냥 밀실이 식상하다면 우주선이 나오는 무르 래퍼티의 ‘식스 웨이크’(아작)를 추천한다. 고립된 우주선 안에서 깨어난 승무원 마리아는 공중에 둥둥 떠있는 동료들과 자신의 시체를 목격한다. 대체 누가 ‘나’를 죽였을까? 승객들은 모두 냉동 수면 중이고, 범인은 우리 중에 있다. 복제인간이 보편화한 미래에 벌어지는 밀실 추리게임은 상당히 혼란스럽고, 아주 재미있다. 박상영 유대계 러시아인, 미혼모 가정, 가난…. 로맹 가리와 어머니, 둘뿐인 가정은 프랑스 사회에서 온갖 사회적 마이너리티로 점철돼 있다. 로맹 가리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새벽의 약속’(문학과지성사)은,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꿈을 불어넣고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유머러스한 어조로 그려져 있다. 낄낄 웃으며 화자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상처와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안간힘이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야말로 로맹 가리적인, 로맹 가리만이 쓸 수 있는 소설. 장강명 아내와 7박 8일로 몽골로 떠난다. 몸과 마음 모두 최대한 21세기 한국에서 멀어지고 싶다. 고비 사막의 별 아래서 읽을 책으로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노블마인) 시리즈를 골랐다. 옛 소련을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물이다. 평이 엄청 좋고, 박산호 번역가의 추천도 믿는다. 1~3권을 합하면 1500쪽이 넘지만 나는 전자책으로 볼 예정이라 짐 부담은 없다. 정유정 독자의 기대를 배반할 때 소설은 존재를 드러낸다. 전형적인 좀비 소설이 아니라는 단언에도, 숨 막히는 열기를 식혀주기를 기대하며 콜슨 화이트헤드의 ‘제1구역’(은행나무)을 펼치면, 그렇다. 핏빛 좀비들에게 쫓기며 유혈이 낭자한 길을 달리는 대신,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망령 같은 기억의 구조물과 마주 서게 된다. 다만 그 기억이 서늘함을 자아낸다는 것이 여름에 읽는 이 소설의 미덕. 편혜영 휴가 때는 대개 세 권 정도 챙긴다. 한 권은 장편, 두 권은 단편 소설집으로. 장편은 다시 읽으려고 벼르던 고전으로 고른다. 올해는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문학동네)이다. 단편소설집은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창비). 발표 당시 이미 다 읽은 소설이지만, 유머와 슬픔을 넘나드는지라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나머지 한 권은 신인 작가 임승훈의 ‘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문학동네). 휴가는 그게 어디든 지구 밖으로 떠나는 기분일 테니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美대법 “인구조사 때 ‘시민권 질문’ 안돼…게리맨더링은 주의회에 맡겨야”

    2020년 미국 대선 레이스가 대장정의 막을 올린 가운데 연방대법원이 27일(현지시간) 내년 인구조사 때 시민권 보유 여부를 질문 항목에 추가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에 반발하며 18개 주가 낸 소송에서 정부 패소 판결을 내리며 제동을 걸었다. 이 소송은 인구조사 결과가 연방 하원의원 수와 선거구 조정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시민권 질문이 이민자들의 인구조사 참여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민주당 측 논리가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셈이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5명이 원고 측을 지지했으며 4명은 정부 편에 섰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주장은 불충분했다”며 시민권 질문이 소수 인종 등 마이너리티의 투표권 보장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시민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인구조사 응답률을 낮출 위험이 있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이번 법적 다툼은 상무부가 내년 인구조사 때 미국 시민인지를 확인하는 질문을 포함하겠다고 지난해 3월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상무부는 “투표법의 원활한 집행을 위해 필요하다”는 법무부의 요청을 수용해 1950년 조사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이 질문을 부활했지만 일부 주들이 반발해 소송을 냈다. 이들 주는 이 질문이 포함되면 시민권이 없는 이민자들이 답변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해 인구조사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인구조사국은 약 200만 가구 이상,약 650만명 이상의 인구가 조사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미 인구조사는 헌법과 연방법에 따라 10년 주기로 이뤄지며 인구조사일은 4월 1일이다. 법무부는 인구조사를 토대로 연방 하원의원 수와 하원 선거구를 조정한다. 민주당 단체장이 이끄는 지역과 이민자 단체 등은 정부 방침이 수백만 명의 히스패닉 및 이민자의 선거 참여를 제한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선고결과를 즉각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계정에 글을 올려 “우리 정부와 실제로 국가가 매우 비용이 들고 상세하고 중요한 인구조사에서 시민권에 대한 기본적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연방대법원은 또 이날 이른바 ‘게리맨더링’으로 불리는 자의적 선거구 획정에 대해 주 입법체가 결정할 일이지 법원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판시해 공화당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주 입법체가 그들의 지역구에서 (선거구를 가르는) 선을 긋는다면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도,그것은 법원이 중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CNN은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게리맨더링에 사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표면적으로만 보면 양당에 균등하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향후 10년간 공화당에 큰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소송에서 문제가 된 주는 민주당이 게리맨더링을 한 메릴랜드와 공화당이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한 노스캐롤라이나이다. 그러나 이 판단을 확장해보면 50개 주 가운데 30개 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에 절대 유리하다. 더구나 공화당은 22개 주의 경우 상하 양원을 장악한 것은 물론 주 정부까지 손에 쥐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이 의회와 주 정부를 모두 장악한 주는 14곳에 불과하다. 더욱이 공화당이 장악한 주는 텍사스처럼 광활한 곳이 많아 게리맨더링을 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내년 선거와 2022년 중간선거가 있지만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선거구가 한 번 획정되고 나면 2030년까지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공화당으로서는 ‘10년 농사’를 지을 땅을 확보한 셈이 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종이처럼 돌돌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 원천기술 개발

    종이처럼 돌돌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 원천기술 개발

    가까운 미래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SF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신문처럼 둘둘 말거나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로 책이나 뉴스를 읽는 것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절반으로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는 폴더블폰이 등장해 SF 속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종이처럼 돌돌 말고 펼 수 있는 필름형태의 롤러블 디스플레이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베이징대, 중국과학원 물리학연구소, 난징대, 칭화대, 푸단대, 남방과기대,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ETH), 독일 막스플랑크 프리츠하버연구소 국제공동연구팀은 종이처럼 쉽게 말 수 있는 저전력, 고성능 롤러블 디스플레이 제작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23일자에 발표했다. 롤러블 디스플레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원자 1~2개 층 두깨로 종잇장보다 수 백만배 얇은 2차원 소재가 필요하다. 원자 배열이 균일한 단결정 소재를 활용해 이를 구현한다면 작은 전력으로도 고성능을 낼 수 있는 전자기기가 가능하다.연구팀은 구리기판을 사용해 붕소(B)와 질소(N)가 삼각형 형태로 구성된 원자 1~2개 두께의 2차원 물질인 ‘화이트 그래핀’ 제조에 성공했다. 특히 지금까지는 가로, 세로 각각 수㎜ 크기로 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세계 최초로 100㎠ 대면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반도체 제작공정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크기로 평가받고 있다. 화이트 그래핀은 열과 방사선에도 강해 전자기기는 물론 항공기나 우주선처럼 가볍고 열적, 화학적 안정성이 요구되는 분야에 두루 활용 가능한 물질이다. IBS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 펑 딩(울산과학기술원 특훈교수) 그룹리더는 “그래핀 등장 이후 물성이 우수하다고 알려진 2차원 소재들이 다양하게 등장했지만 제작기술 한계로 상용화가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 연구는 2차원 단결정 소재의 대면적화를 위해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제작공식을 고안해냈다는데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흉측한 외모에도 빼어난 지성 ‘엘리펀트 맨’ 무덤 “129년 만에 확인”

    흉측한 외모에도 빼어난 지성 ‘엘리펀트 맨’ 무덤 “129년 만에 확인”

    영화 ‘엘리펀트 맨’을 기억하는지? 1980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연출하고 앤소니 홉킨스, 존 허트, 앤 밴크로프트, 존 길거드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연기한 작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뼈와 피부 세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흉측한 외모를 지녔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지성과 감성을 겸비해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인물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조셉 메릭을 다뤘다. 그런데 메릭이 1890년 세상을 떠난 지 129년 만에 묘비명도 없었던 그의 무덤이 확인됐다고 영국 BBC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사실 그의 유골은 런던왕립병원에 해부 교육용으로 보존돼 있다. 그의 전기를 집필했던 작가 조 비고르먼고빈은 시티 오브 런던 세메트리에 그의 피부를 묻은 무덤이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기구한 일생이었다. 1862년 8월 레스터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정상적인 발육을 하지 못했다. 레스터에서 품팔이로 살다 1884년 돈을 받고 기이한 외모를 갖춘 이들을 보여주는 프릭(freak)쇼 극단을 따라 유랑했다. 번 돈을 모두 빼앗기고 극단에서 쫓겨난 뒤 1886년 6월 런던에 도착, 프레드릭 트레베스 박사를 만나 런던 동부 화이트채플에 있는 런던병원에 방 하나를 얻어 박사의 관찰 대상이 됐다. 머리는 91㎝나 됐으며 오른 손목이 30㎝, 손가락 하나의 길이가 13㎝였다. 병원 직원들은 그의 지성과 감성에 깜짝 놀랐다. 1887년 5월 웨일스 공주 알렉산드라가 병원을 찾아 그를 만난 뒤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기도 해 일약 비주류(마이너리티) 유명인사가 됐다. 1890년 4월 11일에 짧은 생을 마쳤는데 잠자리에 누우려다 머리 무게에 눌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많은 연구자들은 희귀 유전질환인 프로테우스 신드롬이 이런 신체 기형을 낳은 것으로 보고 있다. 비고먼고빈은 그의 피부가 어딘가에 묻혔다는 얘기를 듣고 여러 공동묘지들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다 포기할까 싶었던 순간,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았던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에게 당한 희생자들과 같은 묘지로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리퍼 희생자 둘이 묻힌 에핑 포레스트 근처 시티 오브 런던 세메트리의 기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 앞뒤로 8주 정도를 뒤지기로 했는데 두 번째 쪽에 조셉 메릭의 이름이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꼼꼼한 기록은 이 무덤이 엘리펀트 맨의 것임을 “99% 확신”하게 해줬다고 그녀는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1890년 4월 24일 안장됐다. 사망 장소는 런던병원, 나이는 28세. 부검 의사는 윈 백스터로 메릭의 주검을 조사했던 의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공동묘지는 이제 공용 추모정원으로 작게 만들어졌는데 비고먼고빈은 당국이 조그만 명패를 세워 그가 묻혔음을 알리고 있다며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나아가 “고향인 레스터에서 그를 추모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티 오브 런던 세메트리는 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한웅의 의공학 이야기] 머리를 이식할 수 있을까

    [임한웅의 의공학 이야기] 머리를 이식할 수 있을까

    머리는 해부학적으로 사람 목 위의 부분을 뜻한다. 눈, 코, 입이 있는 얼굴과 뇌, 중추 신경을 포함해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의 머리를 이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이 있다. 지난달 이탈리아 신경외과 의사 세르지오 카나베로와 중국 하얼빈의대 외과의사 런샤오핑(任曉平) 교수는 개와 원숭이의 끊어진 척수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세계 최초로 인간의 머리를 이식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특히 끊어진 척수 연결에 성공해 수술을 마친 원숭이와 개가 걸어다닐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 머리를 이식하는 데 따른 심각한 윤리적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의학적으로 중추신경계 중의 하나인 척수를 끊었다가 다시 연결해 기능을 살리는 것은 현대 의학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해당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도 척수 연결에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해 사람의 척수도 끊었다가 재연결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중추신경계의 신경 연결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나 근거 없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머리 이식을 주장하는 것은 유명세를 얻으려는 행동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머리뿐 아니라 눈 이식도 현대 의학 수준에서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여러 원인으로 시신경이 손상돼 시력을 잃은 환자들이 시신경 이식이나 눈 이식이 가능한지를 물어볼 때가 많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 현대 의학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린다. 그러면 시력을 잃은 환자들은 많이 실망하시는데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시신경을 이식하는 일은 척수를 다시 잇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영역이다. 신경 연결에 대한 미지의 영역이 연구를 통해 지금보다 많이 알려지거나 개척됐을 때에야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톰 크루즈가 다른 사람의 눈을 이식받는 장면이 나온다. 홍채 인식을 피하기 위해 눈을 이식받는 내용인데 비닐 주머니에 눈알을 들고 다니는 장면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홍채 인식을 해킹하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다른 홍채 모양의 컬러 렌즈를 끼면 될 것을 굳이 눈 이식을 꼭 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과 같이 떠들썩한 소문이나 큰 기대에 비해 실속이 없거나 소문이 실제와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여러 매체들로부터 의료 정보나 광고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특히 수술과 같이 의학적으로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허황된 광고나 근거 없는 주장에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전문가의 도움이나 조언을 받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 [특파원 칼럼] 일본 ‘빙하기 세대’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 ‘빙하기 세대’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김태균 도쿄 특파원

    올여름 일본의 참의원 선거는 아베 신조 총리의 남은 임기 전체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압승의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적어도 참패까지는 되지 않아야 그가 우려하는 ‘조기 레임덕’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겨냥해 유권자의 표심을 향한 선거용 정책들이 속속 정부·여당에서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며칠 전 발표된 ‘취직 빙하기 세대’에 대한 지원이다. 1990년대 초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일본의 취업 적령기 청년들은 이전까지 상상도 못 했던 구직난과 마주해야 했다. 거품 붕괴 직전 80%를 웃돌았던 대졸 취업률은 2000년대 들어 50%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어느 회사에 들어갈지 선택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이 막을 내리고, 어떤 회사도 나를 선택해 주지 않는 실업의 공포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많은 청년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정직원 입사’에 실패하고, 졸업과 함께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로 전락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가 돼 스스로 세상과 결별했다. 주로 1970년대생인 빙하기 청년들에게는 오랜 기간 재기의 봄날도 오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청년들의 절망감과 패배주의는 가뜩이나 ‘상실의 시대’에 고통받던 일본 사회에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앗아가는 듯 비쳐졌다. 일본 정부는 1993~2004년 사이에 학교를 졸업한 약 1700만명 중 400만명 정도를 지금까지도 비정규직이나 실업 상태에 있는 빙하기의 피해자로 추산하고 있다. 당장의 경제적 여유가 없다 보니 이들 중 대다수는 고작 우리 돈 몇십만원 수준의 국민연금 외에는 미래 노후 대책도 거의 없다. 향후 3년간의 집중 지원을 통해 빙하기 세대들을 정규직 사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하지만 이미 실패와 좌절의 긴 터널을 지나 많게는 50대가 코앞인 이들을 상대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높지 않다. 우선 이들을 반길 만한 ‘번듯한 직장’이 별로 없을 것이고, 당사자들 역시 어지간해서는 일할 의욕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인생이다. 용케 정규직이 돼 새 출근을 한다 해도 사회의 마이너리티로 흘려보낸 20대, 30대는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청년 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보조지표인 ‘체감(확장)실업률’이 25%를 넘어서 역대 최악으로 나왔다고 한다. 일할 의욕이 있는 15~29세 인구의 4분의1 이상이 제대로 일자리를 못 찾았다는 얘기다. 우리와 반대로 일본은 전후 가장 긴 경기확장 국면 속에 지난해 대졸자들이 통계 작성 이후 20여년 만에 가장 높은 98.0%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일본의 고용 사정이 호전된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좋은 때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언제일지 모르는 그때의 따뜻한 햇발이 지금 취업을 못 해 고통받는 청년들의 몫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불행한 세대의 고통은 그 당사자들이 계속 껴안고 갈 수밖에 없는 탓이다. 민간의 일자리 사정이 나빠지면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지금의 청년들이 시기를 잘못 만난 희생자라고 비관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일자리 문제에 우리나라 정책과 행정의 인적·물적 자산을 쏟아부어 지금 사회에 나서는 청년들의 불행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질곡의 시간을 보내며 중년으로 접어든 일본의 빙하기 세대와 같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정책과 행정이 아니라 내 자녀, 내 동생을 생각하는 진정성 있는 자세를 정책 당국자들에게 호소해 본다. windsea@seoul.co.kr
  • [팩트 체크] “미국이 꽉 찼다”는 트럼프에 “뭔소리냐 일손 부족한데”

    [팩트 체크] “미국이 꽉 찼다”는 트럼프에 “뭔소리냐 일손 부족한데”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나라가 꽉 찼다”며 더 이상 이민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고 발언했다. 이틀엔가 여러 자리에서 이 발언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일간 뉴욕타임스의 업샷에서 도시정책을 파고드는 에밀리 배저 기자와 닐 어윈 경제전문기자는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현실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해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노령화와 출산율 감소 탓에 한창 일해야 할 25~54세 인구가 많은 주에서 줄고 있다는 것이다. 두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망명을 희망하는 이들을 심사하는 과정을 어렵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주제를 언급했다는 점을 받아들이더라도 인구학자와 경제학자들이 컨센서스를 이룬 내용과도 상반된 언급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여러 도시와 마을들에서 인구 부족, 빈집이 늘고, 대중교통을 제공하는 재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필 스콧 버몬트주 지사는 내년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가장 큰 위협은 줄어든 노동력이라고 믿는다”며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문제의 뿌리”라고 지적할 정도다. 그는 주 정부의 비용을 댈 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고 커뮤니티의 재력이 늘지 않아 문제라고 했다. 에드워드 글레이서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예로 들어 “이 도시의 많은 문제는 인구가 다시 늘기 시작하면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새로 인구가 유입된다고만 가정하면 연금의 안정성을 둘러싼 의심 같은 것은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들은 정부의 공식 예측과도 일치한다. 의회예산처는 미국의 노동 인구가 앞으로 10년 동안 기껏해야 0.5% 늘어난다고 내다봤는데 1950년부터 2007년까지는 1.5% 늘어났다. 경제 성장률이 20세기 말보다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게 만드는 주 요인도 노동력 부족이었다. 우리의 주민등록과 비슷한 소셜 시큐리티 넘버를 한 명이 지녔을 때 혜택을 보는 노동자가 현재는 2.8명인데 2035년에는 2.2명으로 떨어진다. 많은 주의 연금 설계자들이 인구 감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작은 도시, 시골로 갈수록 인구 감소의 압박은 더욱 심해진다. 이코노믹 이노베이션 그룹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도시 가운데 80%는 2007년과 비교했을 때 2017년에 오히려 더 일하는 인구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남쪽 국경에 이민 희망자들이 쇄도하는 것을 위기라고 묘사하고 장벽 건설을 공언하는 등 압박하면서도 임시 노동자들에게 발급하는 H-2B 비자를 30만명까지 추가로 발급하겠다고 밝히는 등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 “꽉 찼다”는 말은 보수든 진보든 돈 없는 세입자, 마이너리티 가구주 등을 밀어낼 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때로는 다른 이를 따돌리지 않는 척할 때 잘 먹히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다.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이 나라는 너무 차서 문제가 아니라 텅 비어 있어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고 두 기자는 결론 내렸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조두순 24시간 감시할 전자발찌… 80가지 징후로 성범죄 사전대응

    조두순 24시간 감시할 전자발찌… 80가지 징후로 성범죄 사전대응

    성범죄자 범행 전 유사패턴 반복 포착 과거전력 분석 도입… 위험징후 ‘경고’ 오늘부터 CCTV로 현장 실시간 확인 재범 가능성 높아지면 집중 보호관찰 AI 개발 ‘허수경보’ 줄이고 업무 경감지난해 말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오는 2020년에 출소한다는 소식에 청와대 게시판은 ‘조두순의 출소를 막아달라’는 국민청원으로 도배됐다. 조두순은 출소 이후에도 7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해 24시간 전자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또다시 범행을 저질러도 ‘사후 대응’밖에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작용한 탓이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정부는 지난 2월 전자발찌 착용자의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범죄 징후 예측 시스템’을 새로이 도입했다. 시행 11년째를 맞이하는 전자감독제도(전자발찌)는 이번 개선을 통해 ‘사전 대응’이 쉽지 않다는 비판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울신문은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법무부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를 방문해 조두순을 감시하게 될 전자발찌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직접 살펴봤다.●3등급으로 관리 ‘범죄 징후 예측시스템’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지난 4일 기자가 찾은 중앙관제센터 2층 관제실은 쉴 틈 없이 분주했다. 거대한 중앙관제 화면과 함께 4교대로 근무하는 5명의 관제직원들이 분주히 준수사항 위반 경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 관제직원이 다급히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출입금지구역에 진입한 전자발찌 착용자에게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고 퇴거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다. 출입금지구역은 일반적으로 초·중·고, 유치원, 어린이집 등이며, 법원에서 범죄와 연관성 있는 장소도 추가 설정할 수 있다. 만일 전자발찌 훼손 등 긴급 상황에서 착용자와의 통화 연결이 되지 않을 경우, 관제직원은 즉시 지역 보호관찰소와 관할 경찰에 연락해 현장 출동을 요청해야 한다. 그 와중에도 경보음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이들이 관리해야 하는 착용자는 대전 관제센터와 합쳐서 3115명. 하루에 울리는 경보는 평균 1만건이 넘는다. 여기에 법무부가 새로 도입한 ‘범죄 징후 예측시스템’이 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었다. 경보 대상자들의 명단이 표시되는 알림판에는 착용자 각각의 재범 가능성에 따라 예측시스템이 분류한 ‘일반’, ‘주의’, ‘고위험’ 등급이 표시됐다. 등급은 판결문, 보호관찰 상황, 위치 추적 시스템으로부터 뽑아낸 자료를 토대로 범죄수법, 이동경로, 정서상태, 생활환경 변화 등 80여 가지 요인에 점수를 매겨 ‘재범 가능성이 얼마나 큰가’를 수치화시킨 것이다. 착용자의 현재 상태에 따라 등급은 실시간으로 변화된다. 문서에서 특정 정보를 뽑아내는 ‘텍스트 마이닝’ 기법을 통해 실시간으로 면담 기록에서 위험 징후를 파악해내기도 한다. 관제직원은 점수가 높은 착용자일수록 우선순위에 두고 주의 깊게 관리할 수 있다. 특히 이동경로 분석은 착용자의 평소 생활패턴을 ‘빅데이터’로 관리하며 이상 징후를 보일 경우 경고해주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관제직원이 ‘고위험’ 등급으로 분류된 한 착용자의 생활패턴을 조회하자 평소 주야간 생활패턴과 함께 최근 갑자기 드나들기 시작한 장소가 나타났다. 출입금지구역은 아니지만, 착용자가 생활패턴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보이자 예측시스템이 자동으로 인식한 것이다. 관제센터 관계자는 “성범죄자는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유사 패턴을 계속 반복하는 특성을 보인다”면서 “예를 들어 공원에 아동을 유인해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경우, 재범도 공원에서 저지를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원 자체가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진 않지만, 갑자기 공원 방문 횟수가 늘어난다면 과거 범죄전력, 생활패턴 변화 등을 감안해 점수가 올라가 고위험 등급으로 분류될 것”이라면서 “당장 위반 사실이 없더라도 면담 횟수를 늘리는 등 집중 관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자발찌 11년… 재범률 감소 효과 톡톡 2006년 용산 초등학생 성폭행 살인사건, 2007년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인사건, 2008년 안산 초등학생 납치 강간사건까지. 2008년 우리나라에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될 당시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전자발찌 제도는 형량을 채워 출소한 이후에도 재범 위험성이 높은 특정 범죄자의 신체에 전자발찌를 부착해 24시간 대상의 위치, 이동경로, 상태를 파악한다. 정부는 보호관찰관의 밀착 지도·감독을 통해 재범을 억제하고 있다. 이미 미국(1983년), 캐나다(1987년), 영국(1989년) 등 해외에선 일찍이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강력범에 대한 재범 방지 목적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부분 경범죄자에 대한 자택구금 목적이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도입 초기엔 오히려 강력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우지 않고, 대신 교도소 과밀 수용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수용자들을 전자발찌 착용 대가로 가석방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캘리포니아주 등에선 우리나라와 같이 재범 방지를 위해 성범죄자에 대해 전자발찌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30여개 국가가 전자발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전자발찌 제도의 목표가 ‘재범 방지’로 수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발찌의 효과는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전인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성폭력 범죄 재범률은 평균 14.1%에 달했지만, 제도 시행 이후 성폭력 범죄 전력이 있는 착용자의 재범률은 7분의1 수준인 2.01%로 낮아졌다. 성폭력 범죄뿐만 아니라 살인, 강도, 미성년자 유괴 등의 범죄도 24시간 전자감독을 받고 있다. 법무부는 향후 가정폭력 범죄도 전자발찌 착용 대상에 포함되도록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 “법령 근거… 인권 침해 요소 없어” 일각에선 전자발찌 제도, 나아가 범죄 징후 예측시스템을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비유하며 사생활 침해적 요소가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실제로 미래에 발생할 범행을 미리 예측해 범죄자를 사전에 체포하는 내용을 다룬 SF영화다. 영화에서처럼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미리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미 10년 넘게 시행된 전자발찌 관련 법을 토대로 수집해온 자료를 활용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인권 침해 요소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범죄 사실, 보호관찰관 면담내용, 위치추적 결과 등 정상적인 업무를 통해 이미 수집된 정보를 컴퓨터가 분석하는 것으로 모두 법령에 근거하고 있어 인권 침해적 소지는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에 비유되는 것에 대해선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을 사전에 체포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단지 재범 가능성에 따라 면담 횟수를 늘리고 집중적으로 보호관찰을 실시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1명당 9만건 경보처리… 고질적 인력난 숙제 고질적인 인력난은 현재 여전히 숙제다. 2008년 첫 도입 당시 151명이었던 전자발찌 착용자는 3월 기준 3115명으로 약 20배가 됐다. 그러나 같은 시기 관제직원은 9명에서 43명으로 4.8배가 됐을 뿐이다. 착용자들이 지난해 울린 경보는 387만건에 달했다. 직원 1인당 한 해에 평균 9만여건에 달하는 경보를 처리한 셈이다. 직접 출동해야 하는 일선 보호관찰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국 58개 보호관찰소에서 근무하는 전담 직원은 162명으로, 1인당 착용자 19명에 대한 정기 면담, 긴급 출동, 상황 수습을 도맡아야 한다. 특히 지방 관찰소에선 야간에 여러 상황이 발생하면 한꺼번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인력 충원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법무부는 ‘범죄 징후 예측시스템’과 더불어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을 통한 업무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우선 전국에 퍼져 있는 폐쇄회로(CC)TV를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은 착용자가 이상 징후를 보이더라도 당장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 상황이 발생해 보호관찰관이 현장에 가서 확인하더라도 시간이 지체된 상황이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 1월 국토교통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보내주는 CCTV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우선 1일 대전에서 시작하는 CCTV 연계 시스템은 서울, 광주 등 다른 지역으로 순차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착용자의 일탈 행동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근처 CCTV를 통해 착용자의 행동을 즉시 파악하고 전화를 통한 대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통해 ‘허수 경보’ 대응을 줄이는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기존에는 착용자가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출입금지구역에 진입하게 되는 경우에도 경보가 울리기 때문에 관제직원들은 모든 경보를 일일이 파악하고 상황을 종료해야만 한다. 그러나 AI 시스템이 도입되면 금지구역에 진입한 착용자의 이동 속도가 차량과 비슷하다는 것을 스스로 파악하고 경보를 울리지 않게 자동으로 조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법무부 관계자는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감도는 상당히 올려놓을 것”이라며 “(허수 경보를) 30%만 걸러도 충분히 업무 부담이 경감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조두순법’도 조만간 본격 시행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조두순과 같은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범죄자에 대해 일대일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하고 매년 심사를 통해 재범 위험성이 있다면 전자발찌 부착 기간을 늘릴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박쥐는 에볼라 숙주가 아니다?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박쥐는 에볼라 숙주가 아니다?

    특정 지역의 여러 학교 학생들이 급식을 먹은 뒤 집단 설사나 식중독을 일으켜 보건당국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한다는 뉴스를 간혹 들을 수 있습니다.역학조사는 질병이 발생했을 때 개별 환자에 대한 관찰조사를 바탕으로 통계적 분석을 거쳐 법칙성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집단 식중독이 발생했을 경우 환자들의 혈액을 채취하고 먹었던 음식을 수거해 실험실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검사하고 환자 발생 분포와 빈도, 발생시간 등을 그래프로 만드는 등 전염 경로와 확산 속도를 파악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역학조사의 일반적인 과정입니다. 이런 현대 역학조사를 처음 만들어 낸 것은 19세기 중엽 영국 런던의 뒷골목을 휩쓸던 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 존 스노(1813~1858) 박사입니다. 그 이후 역학은 공중보건에 중요한 수단이 됐습니다. 역학은 감염자 파악과 그와 접촉한 사람에 대한 시공간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최근 들어 교통수단의 발달로 개인의 활동반경이 커지고 도시가 확대되면서 불특정 다수와 감염자가 접촉할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에볼라 바이러스나 메르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S)처럼 갑자기 나타나 순식간에 확산되는 경우 역학조사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도시발달로 역학 조사 어려워져 영국 글래스고대 수의대 생물다양성연구소, 바이러스연구센터, 모어던연구소 공동연구팀이 인공지능(AI)의 한 분야인 머신러닝(컴퓨터가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을 이용해 에볼라 같은 치명적 바이러스의 원인숙주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최신호에 실렸습니다. 바이러스 전파 원인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사람들의 접촉을 제한하거나 백신 개발 같은 대응책을 발빠르게 마련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에 발병원인을 차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알고리즘 숙주 예측 정확도 72% 연구팀은 우선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고 원인숙주가 비교적 명확하게 알려진 수백 개의 바이러스에 대한 역학 데이터와 게놈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렇게 수집된 바이러스의 RNA 게놈 정보를 바탕으로 영장류, 설치류 등 11개 동물 그룹 중 어느 집단이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가능성이 높은지 예측할 수 있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만들었습니다. 원인 바이러스와 확산 경로가 알려진 전염병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테스트한 결과 바이러스의 숙주를 72%의 정확도로 예측했다고 합니다. 또 연구팀은 이번 알고리즘을 이용해 아프리카 남부지역 풍토병이면서 치사율이 높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원인숙주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에볼라 바이러스 원인숙주는 과일박쥐 같은 설치류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번 AI 알고리즘에 따르면 우간다와 코트디부아르에서 발견된 두 종류의 에볼라 바이러스 모두 박쥐가 아닌 영장류에게서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답니다. AI가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의사 탐정’ 역할까지 하게 된다는 이번 연구 결과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AI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대신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완전히 사라져 인간 존재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edmondy@seoul.co.kr
  • 커밍아웃 4년 된 팀 쿡 애플 CEO “게이인 건 신이 주신 은총”

    커밍아웃 4년 된 팀 쿡 애플 CEO “게이인 건 신이 주신 은총”

    4년 전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로는 처음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팀 쿡 애플 CEO가 게이로서 지내는 것은 “신이 내게 주신 은혜로운 선물”이라고 털어놓았다. 쿡은 2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NN 인터내셔널과 공영방송 PBS를 통해 방영된 유명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포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다름과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에 대해 매우 행복하다”고 털어놓은 뒤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그가 커밍아웃한 것은 2014년 10월 30일이었는데 그 전에 그의 성정체성이 의심된다는 루머가 파다한 상황이었다.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은 미국 전역에서 보내오는 어린이들의 편지 때문이었다. 쿡은 “내가 게이란 얘기를 온라인에서 읽었다며 아이들이 보내오는 글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난 이미 공적인 상황에 놓였다”며 “그들의 편지와 이메일에는 성정체성 때문에 쫓겨나거나 모욕을 당하고 놀림을 당했다는 얘기가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은 매우 조용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을 커밍아웃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도 침묵하고 있으면 이기적인 일이라고 판단해 커밍아웃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힌 그는 게이 어린이들에게 “게이일 수 있으며 그래도 살아갈 수 있으며 삶의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자신은 포천 500대 기업 CEO 가운데 첫 번째 커밍아웃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으며 그 뒤 다른 CEO들도 커밍아웃했지만 아직 자신이 목표한 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또 기업 지도자로서도 커밍아웃을 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쿡은 “마이너리티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며 “마이너리티 느낌을 갖는 것은 메이저리티에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을 갖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편견에 사로잡혀 툭툭 던지는 발언은 자신에게 이제 둔감한 일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런 역할을 통해 얻어지는 혜택도 대단히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기무사 문건과 진주만 공습/김상연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기무사 문건과 진주만 공습/김상연 정치부장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무지몽매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몽매한 이성이 집단화하면 얼마나 허망하게 공동체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배우는 데 일본의 진주만 공습보다 더 적절한 교과서도 없을 것이다.지금보다 정보유통 수준이 열악한 시대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감히 미국이라는 거인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을까. 그 동인(動因)은 일본 육군의 무지몽매함이었다. 전쟁이 일상인 군국주의 국가 일본에서 권력은 군대에 있었고, 그 핵심은 육군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연승한 데 이어 중일전쟁으로 대륙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인도차이나까지 유린하자 일본 육군은 속된 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 표현이 너무 자극적이면 사자성어로 ‘간출외복’(肝出外腹)이라고 하자. 물론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한 번 간출외복이 되자 일본 군부와 정부에서 온건론은 설 자리를 잃는다. 국민 여론도 덩달아 간출외복이 돼서 온건론은 곧 배신자로 간주되는 광적인 분위기로 치닫는다. 그런데 일본군 중에서도 해군은 미국과의 전쟁이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속성상 해군은 육군에 비해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하고 원시적 인력(人力)에 의존하기보다는 첨단 무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국제 정세에 밝은 편이다. 하지만 일본군 내 마이너리티였던 해군은 육군이 주도하는 전쟁의 광기에 감히 반기를 들 수 없었고, 무지몽매의 기관차는 파멸을 향해 폭주했다. 지금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에 국민 다수가 어이없어하는 것은 형법상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는지와 같은 거창한 문제 이전에 그 문건에서 배어 나오는 몽매함 때문이다. 설령 실행문건이 아니라 검토문건이라고 치더라도 ‘광화문에 공수부대 투입’, ‘언론 통제 보도검열단 운영’, ‘표결 차단 위해 국회의원 구속’ 등의 문구는 유치하다 싶을 만큼 시대착오적이다. 국민은 인터넷이 날아다니는 21세기를 살고 있는데 문건 작성자들은 흑백 TV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나 할까. 이 명랑만화 같은 문건을 주도한 사람들은 육군, 그중에서도 육군사관학교 출신들로 드러나고 있다. 당시 관련 라인에 있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청와대 경호실장, 육군참모총장, 기무사령관 등이 모두 육사 출신 선후배 사이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합참 계엄과가 맡아야 할 계엄 문건을 기무사가 만들고,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아닌 육참총장으로 상정한 것은 비육사(3사) 출신인 당시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사 출신끼리 뭔가를 도모하려는 의도 아니었을까. 5·16, 12·12, 5·17 등 육사 출신이 도모한 정변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는 ‘눈부신 추억’에 젖어 단체로 간출외복을 한 것은 아닐까. 해·공군에 비해 폐쇄적으로 흐르기 쉬운 것은 육군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런 육군에서도 특정 조직(육사)으로 좁게 뭉치면 이성은 자폐적으로 매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호두 껍데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나 자신을 무한한 공간의 왕으로 여길 수 있다”고 햄릿은 자신했지만, 평범한 인간은 호두 껍데기(조직)에 갇혀 있으면 호두로 썩어 갈 뿐이다. 물론 육사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폐쇄성을 스스로 경계하지 않고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면 이성은 무지몽매와 간출외복으로 마비되기 십상이다. 손에는 첨단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도 사무실 책상 위에서는 이상한 문건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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